오늘은 9월 23일. 그렇게 신나지도, 우울하지도 않은 적당한 날입니다. 제대로 땅을 밟고 서 있다는 기분이 듭니다.
오늘도 하루를 시작해 볼까요.
한국 고등학생의 하루라고 해 보아야 학교에 가는 것이 전부지만요. 움직여봅시다.
류예성:(학교에 갈 준비를 성실히 마치고 집을 나선다. 엘레베이터 앞에 서서 옷매무새를 다듬는 동안 오늘의 일정을 생각해본다. 수행평가지 제출 마감이 오늘이었고... 옆 반 친구한테 빌린 돈 갚아야 하고, 또 뭐가 있더라. 걷다 보면 마저 생각나겠거니 하고 아파트를 나선다. 별다를 것 없는 평범한 등교길. 오늘도 학교를 간다.)
예성은 뭘 하느라 돈을 빌렸나요?
류예성:매점을 가려고 보니 깜빡하고 지갑을 다른 가방에 두고 왔더라고요.
그랬군요. 좋습니다. 당신은 오늘 해야 할 일을 되새기며 발걸음을 옮겨 학교로 향합니다.
언제나 똑같은 등교길. 똑같은 공동현관에서 신발을 벗고, 당신의 반을 찾아 갑니다.
2학년 1반.
2층에 위치한 2학년 교실은 한산합니다.
일찍 등교한 탓일까요? 당신의 반 역시 텅 비어 있습니다.
아니... 텅 비었다기에는, 누군가의 가방이 이미 올려져 있네요. 저 자리는, 아라의 자리입니다.
원래 저렇게 빨리 나오던 사람이었던가?
유학을 가느라 1년 꿇었다는 사실을 알 뿐, 많이 가까운 사이는 아닌지라 잘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아라의 자리에는 가방이 올려져 있으니, 당신보다 빨리 등교한 것은 맞겠네요. 오늘은 눈이 일찍 떠졌던 게 분명합니다.
귀찮게 체육복으로 갈아입고 강당까지 가야겠네요. 지금 아무도 없을 때, 어서 교실에서 체육복을 갈아입는 것도 괜찮겠습니다.
정 신경쓰인다면 화장실로 가도 괜찮겠지만요.
체육복은 사물함 안에 있었죠.
류예성:(아라의 자리와 창밖을 차례로 한 번 본다. 가방을 두고 나간 걸 보면 저쪽도 체육복 갈아입으러 갔나? 시간도 많겠다, 옷 갈아입는 장면을 누가 볼 위험을 굳이 감수하고 싶지 않다. 화장실에 다녀오기로 결정하고, 사물함 문을 연다.)
당신은 당신의 자리를 찾아 사물함 문을 엽니다.
정갈히 올려진 체육복이 보이고... 어라, 그 위에 무언가 놓여 있네요.
프린팅된 글씨가 적힌 쪽지입니다.
[ 학교에서 살아남고 싶다면, 다음 수칙을 따르시오. ]
...
... 예?
무의식적으로 시선을 내리니, 아래쪽에 수칙 몇 가지가 적혀 있습니다.
1. 혼자 다니지 말 것.
2. 야간 자율학습은 당분간 관둘 것.
3. 지하에 가지 말 것.
<관찰력> 판정.
류예성:
관찰력
기준치:
75/37/15
굴림:
27
판정결과:
어려운 성공
타이핑으로 글이 쓰인 쪽지에는 아직 온기가 남아 있습니다.
인쇄한 지 얼마 되지 않았거나, 혹은... 누군가가 아까까지 쥐고 있었다던가?
범인은 이 학교 어딘가에 있는 걸까요?
아니면, 교실에?
류예성:(쪽지를 쥐고 무의식적으로 주변을 둘러본다. 누가 이런 걸? 어제 야자 후 문단속을 한 것은 나. 고로 이 쪽지를 둔 사람은 나보다 먼저 학교에 온 사람일 것... 제일 먼저 떠오르는 사람은 역시 아라지만, 왜 이런 쪽지를 내 사물함에? 다른 사람 사물함하고 착각했나? 뭐가 어찌 되었건... 나중에 다시 전해주어야겠다고 생각하며 쪽지를 접어 주머니에 넣는다. 그리고 옷을 갈아입으러 화장실로 향한다.)
누가 이런 장난을 쳤단 말인가요? 혼자 다니지 말라니.
예성이 친구가 없는 것도 아니고 말이죠. (없으면 죄송)
야간 자율학습을 하는 것에도 특별한 이유가 있나요? 한국 고등학생이라면 반강제로 참여하게 되는 것이고.
지하는... 학교에 지하가 있었나? 이건 또 처음 보는 정보입니다.
다른 친구들도 이런 쪽지를 받았을까요? 알 수 없습니다.
옆에 열린 사물함이 있긴 하지만, 슬쩍 보아도 이런 수상한 쪽지가 보이지는 않습니다.
아무튼, 예성은 쪽지를 주머니에 넣고 체육복을 입으러 화장실로 향합니다.
오래지 않아 체육복을 갈아입었습니다. 이제 강당으로 향해 볼까요.
다소 크리피한 쪽지의 내용에 기분이 찜찜하지는 않은가요?
류예성:별 생각 없어요. 내용이 좀 이상하긴 하지만... 친구들끼리 장난이라도 치는가보다 싶어서.아니면... 설마, 야자를 그만두게 해서 내 성적을 떨어트리려는 고도의 작전인가?
정말 당신의 성적을 떨어뜨리려는 고도의 작전이기라도 한 걸까요? 알 수 없습니다.
예성은 별 생각 없이 강당으로 향합니다.
K-고딩에게는 체육 시간이 귀찮게 느껴지는 게 대다수입니다. 예성도 그러한가요?
선생님이 자유시간을 주신 덕에 농구나 배드민턴 덕에 참여하지 않아도 되었지만요.
류예성:사실 이럴 때면 두 가지 생각이 속에서 충돌하곤 해요. 수업시간에 게으름피우지 않고 참여하겠다는 생각과 운동하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그렇지만 이왕 빼 주시는 거, 영단어나 외워볼까 싶네요.
예성이는 정말로 성실한 학생이군요!
분명 서울대를 갈 수 있을 겁니다. 그럼요 그럼요. 체육시간까지 영단어를 외우는 열정으로는 못할 게 없다구요.
영단어나 외울까 하며 주변을 둘러보니, 강당 창고 옆에 반에 가방만 던져두고 사라졌던 아라가 보입니다.
그도 움직이고 싶지 않은 걸까요? 다리를 모으고 웅크려 앉은 채 가만히 멍을 때리고 있네요.
쉬고 있는 건 둘뿐인 듯 합니다.
류예성:(아라가 혼자 있는 것을 멍하니 응시하다가 무심코 주머니에 손을 찔러 넣자, 아까 발견했던 쪽지가 만져진다.) 아, 맞다... 지금 물어볼까. (천천히 다가가 아라의 등을 톡톡 건드린다.) 저, 그, 아라 선... 배? 아라? 이거 말인데.
아라를 향해 <관찰력> 판정.
류예성:
관찰력
기준치:
75/37/15
굴림:
63
판정결과:
보통 성공
아라의 표정은 퀭해보입니다. 마치 며칠 잠도 못 자고, 고뇌에 빠져 있는 것처럼요.
무릎 앞으로 가지런히 모아둔 손은 흠집투성이네요.
고된 일을 했나? 녹슨 것을 만진 마냥, 쇠 냄새가 나는 것 같기도 하고요.
배아라:응? (금세 당신을 올려다본다. 초췌해보이기는 하지만 당신이 드문드문 보았던 모습처럼 입가에 부드런 미소가 어리고, 여린 목소리가 흘러나온다.) 무슨 일 있어?
류예성:(안색이 좋지 않은데, 괜찮냐고 먼저 물어봐야 할까? 아니, 됐다... 그냥 용건이나 묻고 말자. 주머니에서 쪽지를 꺼내 네게 보여준다.) 이거, 선배가 넣어 놓으신 거에요? 아까 아침에 보니까, 저보다 일찍 온 사람이 선배밖에 없길래...
배아라:(내밀어지는 쪽지를 잠깐 응시하다가, 고개를 작게 내저었다.) 아니. 하지만 그 쪽지 내용은 나도 알아. 여기저기서 소문이 좀 도는 것 같던데... 너도 그냥 넘기진 않는 게 좋을 것 같아.
정말 무슨 일이 일어날지도 모르잖아? (소심한 성정 탓에 그대로 믿고 있기라도 한 건지 제법 진지한 목소리다.)
이 학교에요? 이렇게나 평화로운 곳에?
늘 같은 일상을 살아오던 당신에게는 의문일 따름입니다.
배아라:이 강당도 좀... 느낌이 별로고. (강당을 잠깐 휘 둘러보았다.)
... 대답을 바라는 걸까요? 당신은 어떤가요.
류예성:(... 뭐지? 그렇게 안 봤는데, 혹시 사이비... 였나...? 요새 사이비들 수법이 영악해졌다곤 하지만 같은 반 친구한테도 이럴 줄은 몰랐네. 미심쩍음 반, 사회적 미소 반이 섞인 표정으로 하하 웃는다.) 아, 그래요... 네, 알겠어요. 충고 새겨들을게요.
배아라:(당신의 미심쩍은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금세 미소도 흩어 날아가고 피로가 어린 눈으로 당신을 응시하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이런 곳도, 혼자서는 오지 마.
아라는 이상한 말만 늘어놓곤 떠나가 버립니다.
곧 선생님에게 무어라 말하나 싶더니, 그대로 교실 방향으로 가버리네요.
아파보이긴 했는데. 조퇴라도 하는 걸까요?
<지능> 판정
류예성:
지능
기준치:
80/40/16
굴림:
14
판정결과:
극단적 성공
아라는 정말 사이비라도 되는 걸까요?
평소에 점술 책이나 오하아사를 챙겨본다는 말을 드문드문 듣긴 했지만, 진심으로 미신 같은 걸 신봉하는 줄은 몰랐습니다.
그렇게 친하지도 않을 뿐더러..,
하지만 다른 이들에게 그가 그런 말을 하는 건 들어본 적 없었는걸요.
영 이상하지요.
그보다 혼자 다니지 말라면서 본인은 잘도 혼자 다니는군요. 웃긴 사람입니다.
류예성:(그러게, 생각해보니 그렇네? 앞뒷말이 하나도 안 맞잖아. 그냥 무시해버려도 괜찮을지도. ... 그렇게 생각하며 제자리로 돌아간다.)
오래지 않아 체육 시간이 끝나고, 시간은 빠르게 흘러 야간 자율학습 시간이 됩니다.
분명 쪽지에서는 이 학습도 하지 말라곤 했는데, 그게 어디 제멋대로 되나요.
하겠다고 한 것을 끊을 수도 없고. 선생님 눈치도 보인단 말이에요.
그리고 애초에 그 쪽지의 말은 헛소리일 게 분명합니다.
역시 미신은 미신이라고, 9시 56분- 야자가 끝나기 4분 전인 지금까지도 아무런 일이 없었는걸요.
역시 전부 헛소문일 뿐이었던 거예요.
땡! 종이 칩니다. 짐을 챙겨 집으로 향해보도록 합시다.
류예성:(야자가 끝마칠 때 즈음에는 그런 쪽지를 받았었다는 사실조차 까먹은 상태였다. 짐을 챙기고 어제처럼 문단속을 하고... 교실 문을 닫고나자 그제서야 쪽지가 생각난다. 어두워서 그런지 약간 불안감이 엄습해 오지만 뭐... 별 일이야 있겠나? 집에나 가자.)
<지능> 판정
류예성:
지능
기준치:
80/40/16
굴림:
7
판정결과:
극단적 성공
생각해보니 아라도 야간 자율학습에 참여하던 학생이었는데.
문단속을 하려던 당신은 주변을 둘러봅니다. 그리고 기억해냅니다.
아라, 정규 수업은 모두 해놓고선 막상 야자 때는 코빼기도 비치지 않았습니다.
어디로 간 걸까요?
...뭐, 별일이야 있겠어요. 오늘은 땡땡이가 치고 싶었나 보죠. 그렇게 간이 큰 사람으로 보이진 않았지만...
류예성:(아니면... 아까 좀 아파보이기도 했으니까, 야자만 빠졌을 수도 있겠네. 아니 잠깐, 왜 계속 생각하는 거야? 신경 끄고 집에나 가자. 열쇠를 만지작거리며 교무실로 향한다.)
집에나 가도록 합시다.
열쇠를 교무실에 걸어두고 계단을 내려가 정문으로 향합니다.
그렇게 운동장을 가로지를 때, 문득 ...
<듣기> 판정.
류예성:
듣기
기준치:
65/32/13
굴림:
1
판정결과:
대성공
꺄아악!!!
어디선가 비명소리가 들려옵니다! 학생이 내지른 소리 같은데요.
방향은 학교 뒤편입니다.
류예성:(비명소리? 불안에 찬 눈빛으로 어찌할 줄 모른 채 잠시 주위를 서성이다 창가로 다급히 다가간다. 무슨 일이지? 경찰을 불러야 하나?)
경찰을 불러야 할까요? 일단 무슨 일인지 살짝이라도 확인해봐야 할 것 같은데요.
창문을 통해서는 어두운 바깥이 잘 보이지 않습니다.
류예성:(창가에서 기웃대는 것만으로는 역시 보이질 않는다. 아, 젠장... 괴한같은 거면 어떡하지? 한참을 고민하다 한 손에는 휴대폰, 다른 한 손에는 빗자루를 들고 학교 뒤편으로 향한다. 여차하면 위험 요소를 치고 튀겠단 심산으로...)
당신은 한 손엔 휴대폰, 한 손엔 빗자루로 만반의 준비를 하고 학교 뒤로 향했습니다.
수풀이 무성한 곳은 꽤 어둡습니다.
빛이 있어도 금세 먹혀버릴 듯한 어둠이 깔려 있네요.
발걸음 사이사이 그림자를 타고 올라오는 벌레들이 목격될 즈음,
퍽! 당신의 어깨를 치고 가는 한 인영이 있습니다.
<민첩> 판정
류예성:
민첩
기준치:
55/27/11
굴림:
73
판정결과:
실패
아야! 쿠당탕... 균형을 잡지 못하고 풀숲에 넘어지고 맙니다.
으악! 벌레들이 손등을 타고 기어오르는 것만 같아요.
류예성:으, 아악! (자기도 모르게 비명을 질렀다가 황급히 입을 틀어막는다. 잔뜩 찌푸린 얼굴로 일어나 기어오르는 벌레들을 탈탈 털어내고 옷매무새를 가다듬는다. 심호흡 한 번 하고, 전열을 가다듬고... 다시 걸어가본다,)
급히 손을 탈탈 털고, 당신을 친 사람이 달려간 곳을 허망히 바라봅니다.
이미 저 멀리로 사라져 버렸지만요.
하지만... 울고 있었던 것 같아요. 소리를 지른 장본인일까요?
혼비백산하여 도망간다는 모습이 딱 알맞습니다.
그렇다면 그를 놀래킨 무언가가 이곳에 있었다는 소리인데.
조금 더 걸어가면서 주변을 둘러보면...
<관찰력> 판정
류예성:
관찰력
기준치:
75/37/15
굴림:
34
판정결과:
어려운 성공
저 너머로 사라져가는 사람의 인영이 보입니다.
체구는 당신보다도 조그맣네요. 학생인 것 같은데.
오해를 풀 마음이 없는 걸까요? 그는 도망치듯 사라집니다.
류예성:(혼란스럽다. 역시 괜히 내려왔나 싶고... 그래도, 사람이 칼을 뽑았으면 무라도 썰어야 한다고, 뭐가 있었는지나 확인하고 가야겠다 싶어 사라지는 누군가가 있었던 자리를 살펴보러 간다. 뭐야, 대체?)
그가 있었던 자리에 가 보아도, 별달리 남아있는 흔적이 없습니다.
아침부터 이상한 일에만 휘말리고 있네요.
시간이 늦었습니다. 집에나 갑시다, 예성...
류예성:(그래요... 안그래도 야자하느라 지쳤는데 야밤에 빗자루나 들고 뭐 하는 짓인지. 빗자루를 벽에 대강 세워두고서 집으로 갑니다.)
그렇게 얼레벌레 하루가 지나가고, 당신은 또 다시 아침을 맞이하여 학교로 향합니다.
오늘은 9월 24일.
괜히 더 피곤한 기분이에요.
등교길은 유난히도 고요합니다.
태풍의 눈이라고 하던가요? 큰일이 일어나기 전에는, 꼭 이렇게 고요한 바람이 부는 것처럼...
아무튼간에 예성은 교문을 지나쳐 반에 들어섭니다.
하지만 꽤 시끌벅적하네요. 피곤해서 어제보다야 더 늦게 등교하긴 했지만, 그렇다고 지각한 건 아닌데도 말이에요.
무슨 일이냐고 친구들에게 묻기도 전에, 탕! 뒤에서 선생님이 출석부로 문을 두드리십니다.
선생님:다들 자리에 앉아! 너희 반이 여기서 목소리 제일로 커. 아주 교무실까지 들린다, 교무실까지.
맨날 하는 소리십니다. 아마 모든 반한테 똑같은 말을 하시겠죠.
다들 우수수 흩어져 앉네요. 예성도 얼른 자리로 돌아가 볼까요.
류예성:(멀리 돌아갈 것도 없이 자리에 착석해 선생님 말씀을 들으며 가방을 주섬주섬 정리한다.)
가방을 주섬주섬 정리하고 있자면 선생님의 말씀이 들려옵니다.
선생님:어젯밤에 야간 자율학습이 끝나고 조금 불미스러운 일이 있었던 것 같다. 학교 뒤에서 누가 쇠파이프를 휘두른 모양인데... 그러다가 도망가서 얼굴은 못 봤다고 해. 아무튼, 경비도 더 세우고 했으니까 너무 걱정하진 마. 그래도 야자 신청자 중에서 정 걱정되는 사람은 이따 선생님한테 와서 말해라. 일주일 정도는 그냥 빼줄게. 이왕이면 둘 이상씩 다니고!
그 외 지나가는 소리들은 그저 틀에 박힌 설교입니다.
그나저나 어제 본 게 잘못된 건 아니었나 봅니다.
쇠파이프라. 자칫하면 당신도 피해를 입을 뻔했네요.
류예성:(뭐? 쇠파이프?? 황당함에 손이 저도 모르게 멈춘다. 그래, 역시 내려가지 말자는 생각은 바른 판단이었네... 휘말리지 않아서 다행이란 생각 뒤로 혹시 내가 범인으로 몰리면 어떡하나 하는 이상한 걱정이 고개를 든다. 선생님께 가서 어제 본 것을 말씀드려야 할까 고민하던 찰나에 아라 선배가 준 것으로 추정되는 쪽지가 생각났다. 혼자 다니지 마시오. ... 자작극 같은 건, 아니겠지...? 뭐가 어쨌건 선생님을 찾아뵙는 게 좋겠다.)
마침 대각선 너머로 하품을 하는 아라가 보입니다.
<지능> 판정
류예성:
지능
기준치:
80/40/16
굴림:
23
판정결과:
어려운 성공
그러고 보니, 어제 아라의 손에서 쇠 냄새가 나지 않았던가요?
문득 그런 기억이 스쳐지나갑니다.
보통 쇠 같은 걸 만질 일이 있던가요...?
문득, 아라와 눈이 마주칩니다.
선생님이 조례를 마치고 나가자마자 일어나 당신 쪽으로 다가오네요.
배아라:(교실 문을 닫고 나가는 선생님을 흘끗 바라보다가 목소리를 작게 낮추어 속삭인다.) ...그거, 진짜인 것 같지 않아?
그거?
...
문득, 어제 당신이 털어놓은 이야기를 생각해냅니다.
쪽지. 그것에 무엇이 적혀 있었지요?
첫 번째. 혼자 다니지 말 것. 두 번째, 야간 자율학습은... 당분간 관둘 것.
어쩐지, 상황과 이어지지 않나요?
비록 당신이 당한 일은 아니라지만.
그러나 막상 아라의 시선은 다른 곳을 향하고 있습니다.
시선이 닿은 곳은, 당신의 사물함입니다.
... ... 혹시 또, 쪽지가?
행여나, 하는 마음이 솟구치네요.
류예성:(그거라니, 지금 나한테 하는 소리야? 내가 지금 사물함 열어보길 바라는 거? 미심쩍은 표정으로 당신을 바라보다 자리에서 일어나 사물함으로 향한다. 그래, 오늘은 또 무슨 쪽지를 넣어 놓으셨길래? 내용이나 보자.)
당신은 사물함을 열었습니다. 그리고 보이는 것은, 쪽지입니다.
1. 혼자 다니지 말 것.
2. 야간 자율학습은 당분간 관둘 것.
3. 지하에 가지 말 것.
대체 누가, 왜 자꾸만 같은 내용의 쪽지를 넣어두는 거죠?
이쯤 되면 불쾌감이 차오를지도 모릅니다.
시선을 위로 올려보면,
[ 학교에서 살아남고 싶다면, 다음 수칙을 따르시오. ]
알 수 없습니다. 당신이 규칙을 따르지 않아 이런 일들이 일어나고 있는걸까요?
아니, 우연히 한 번 일어난 것 가지고 과대해석을 하는 걸까요?
생명을 위협받은 적은 딱히 없으니까요.
하지만, 하지만. 마음 저편에서 흘러나오는 의심이란 겉잡을 수 없이 퍼져갑니다.
마치, 이미 한 번 경험한 적이 있는 것처럼 ...
예? 뭐라고 했나요? 아닙니다.
하지만 분명 이상한 점이 있을 것입니다. 애초에 지하는 무엇인가요?
가지 말아야 할 곳이라는데, 정작 어딘지도 모릅니다.
야간 자율학습을 정말 계속해야 할까요? 어떻게 하고 싶나요, 예성?
류예성:(대체가 뭘 원하는 건지 모르겠다... 어쩌라는 거야? 학교에서 살아남는 법이라니, 규칙을 분명 어제 하나 이상 어겼음에도 불구하고 난 여기 지금 멀쩡하게 살아있는데? 이런 쪽지를 받은 게 나 하나 뿐이란 것도 이상하고, 쪽지 내용은 더 이상하다. ...... 누가 질 나쁜 장난을 치나본데...장난질에 놀아나주는 건 좋은 기분이 아니지만 나는 야간 자율학습 후 쇠파이프를 든 괴한에게 머리를 맞아 사망한 모 고등학교의 학생으로 뉴스 1면을 장식하고 싶진 않다. 그러니까... 오늘 야자를 빼고 독서실로 바로 가겠다는 결정은 절대 쪽지를 믿어서가 아니다.)
쪽지가 다시 돌아온 것도, 실제 이상한 일이 벌어지는 것도... 어쩌면 웃어넘길 해프닝이 아닐지도 모르니까요.
절대 쪽지를 믿어서는 아니지요, 자신의 안위를 위해서입니다!
그럼 아까 선생님의 말을 따라 교무실로 가 볼까요.
혼자 가는 게 무섭(?)다면 아라에게 같이 가자고 말해볼 수도 있겠지요.
좋은 친구... 음, 친구겠죠. 아무튼.
마침 아라도 야자를 빼려는 건지 교무실 쪽으로 가고 있습니다.
류예성:(저 앞에 아라 선배가 보인다. 말 걸 생각이 별로 없긴 했지만 저 선배도 교무실 가는 길인 것 같으니. 발걸음을 재촉해 당신을 따라잡고 가볍게 어깨를 톡톡 두드린다.) 교무실 가는 길이죠? 선배도 야자 빼려고요?
배아라:(어깨를 두드리는 손길에 살짝 놀라는가 싶다가도, 고갤 돌려 당신임을 확인하고는 금세 안심한 낯을 한다. 아무튼 타고난 겁쟁이에 소심쟁이다.) 응, 나도. 너도 빼려고 가는 거지? 잘 생각했어. 근데 애들 엄청 많을 것 같네.
아라의 말대로, 교무실은 야간 자율학습을 취소하러 온 학생들로 북적입니다.
이야, 더 늦었으면 들어가지도 못할 뻔했는걸요.
줄에 선 채 차례를 기다리기로 합시다. 아라도 역시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당신의 옆에 서 있습니다.
그러다 문득, 어디선가 이야깃소리가 들려옵니다.
<듣기> 판정
류예성:
듣기
기준치:
65/32/13
굴림:
76
판정결과:
실패
학생1:그거 알아? 어제 우리 학교 지하 열린 거.
학생2:어? 우리 학교에 지하도 있었어?
학생1:있지! (이내 주변을 의식하는 듯 목소리가 작아진다.) ... 창고 속에 문이 ... ... 있는데... 엄청 ... 었다고 하거든? 근데 거기 들어가면 지하가 있다는거야. 지금까지 ... .... , 어제 문이 ... ... 쌤들이 ... ... 안에 발암물질이 많다나 뭐라나, 폐쇄된 곳인데 ... ...
지하가 있었다니. 처음 듣는 이야기입니다.
그런데 왜 열렸을까요. 발암물질 때문에 폐쇄된 곳이라면, 교직원 측에서 직접 열 일은 없었을 것 같은데.
아무것도 모르는 학생이? ... 아니, 애초에 학교를 잘 다니는 학생들도 모르는 정보를 누가 알고?
더더욱 미궁입니다.
하지만 확실한 것은, 당신에게 쪽지를 보낸 자는 그 '지하'의 정보를 알고 있었다는 점입니다.
그것도 지하가 '열리기 전'부터요.
배아라:(당신의 팔을 가볍게 톡톡 치고는 목소리를 낮춰 속삭인다. 학생들의 말을 엄청 신경쓰는 듯하다.) 아까 얘기 들었어? 역시... 규칙을 따라야 할 것 같아.
규칙. 쪽지의 규칙을 말하는 걸까요.
그보다...
<지능> 판정.
류예성:
지능
기준치:
80/40/16
굴림:
84
판정결과:
실패
남의 일인데 정말 말이 많네요. 오지라퍼입니다 오지라퍼.
류예성:규칙... 선배, 정말로 그 이상한 종이를 곧이곧대로 믿고 있는 거에요? 아니, 몇 개가 들어맞은 시점에서 완전 이상한 종이는 아니긴 한데... 뭔가 알고 있는 게 있는 거죠, 말해봐요. 뭘 알고 있는 거죠?
배아라:으응? (눈에 당황스러움이 번진다.) 아니, 그 말이 틀린 것 같진 않으니까...
아라가 뒷말을 더 이으려던 찰나, 선생님이 당신의 이름을 호명합니다.
어느새 당신의 차례가 된 모양이네요.
아라와 이야기를 나눌 시간은 없어보입니다. 뒤에서 기다리는 학생들도 많네요.
류예성:(당신의 대답을 들으려다가, 손을 설렁설렁 저어 당신의 말을 막는다. 종이에 적힌 것이 진짜라 하더라도 야자만 빼면 이제 그 규칙을 어길 일은 없으니까.) 됐어요, 그리고 그 종이 계속 넣어 놓으시는 게 진짜 선배가 맞으면, 그만해주세요. 상관은 없는데 기분이 별로 좋진 않네요. 그럼, 이따 교실에서 봐요. (대답을 기다리지 않고 몸을 휙 돌려 선생님께 간다.)
선생님:너도 자율학습 취소하러 왔니? (이미 똑같은 일들을 처리한 듯 귀찮아보이는 기색이 역력하다.)
류예성:네, 선생님. (주저하는 말투로) 그... 실은, 제가 어제 밤에 문단속 하고 집에 가는 길에 그 이상한 사람을 봤거든요. 선생님도 아시잖아요, 제가 웬만해서는 야자 안 빠지는 거. 그런데 직접 보니 좀 불안하더라고요. 당분간만이라도 야자 취소하고 싶어요.
선생님:그래, 그래. 알았다. 굳이 위험하게 늦게까지 남아있을 필요 없으니까 이 사태 진정될 때까진 취소해주도록 하마. (당신의 이야기를 제대로 듣고 있지도 않은 듯, 당신의 학번과 이름을 물어본 뒤 대충 고개를 끄덕이곤 나가란 손짓을 해 보인다.)
류예성:(꾸벅 인사하고 뒤돌아 나온다. 나오는 길에 아라 선배와 눈이 마주친 것 같기도 하지만... 신경쓰지 않는다.)
교무실에서 나오면 아라가 없습니다. 인파 사이로 먼저 나가버린 걸까요?
뭐, 당신이 신경쓸 바는 아니지요.
하지만 머릿속에는 어쩐지 그 강당이라는 존재가 계속하여 맴돌기 시작합니다.
마침 자율학습도 사라졌겠다. 오후에 일찍 집에 갈 수 있게 되었는데, 그 지하라는 곳...
잠깐 보는 것 정도는 괜찮지 않을까요? 어떻게 할까요, 예성?
류예성:(굳이......? 아까 얼핏 들은 바로는 발암물질이 어떠니, 여태껏 잠겨있었니 뭐니 하던데, 잠겨 있었던 것에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지 않았을까? 그리고 기껏 야자를 빼 놓고서 지하로 내려간다는 건 또다시 규칙을 어기게 되는 일이지 않나. 여기까지 생각하다 저도 모르게 그 '규칙'을 진지하게 대하고 있었단 것을 깨닫고 고개를 흔든다. 아니, 여하튼 별로 안 궁금하고 안 내려갈 거라고! 규칙이랑은 상관 없어!)
그래요, 규칙도 규칙이기도 하고... 아, 신경 안 쓴다고 했지요. 아무튼 궁금하지 않습니다!
문자:[안녕, 예성아. 갑자기 이런 부탁 해서 미안한데, 네 사물함 살펴본 뒤에 내 책상 서랍 좀 정리해줄 수 있어?]
... 자기 책상 서랍 정리를 왜 나한테?
나이 한 살 많다고 부려먹기라도 하는 걸까요?
그런데 어딘가 이상합니다. 네 사물함을 살펴본 뒤에, 라니.
보통 타인의 사물함 생활에 관심을 가지던가요?
... 조금 묘해집니다.
뭐, 그렇다고 학교를 안 갈 수는 없으니 이만 등굣길에 올라볼까요.
류예성:(청소를 해 달라는 거면... 못 해줄 것도 없긴 하다. 평소에도 친구들 중 사물함을 더럽게 쓰는 녀석이 있으면 자처해서 정리해주곤 했으니까. 그런데 아무래도 앞부분이 이상하다. 내 사물함을 살펴본 뒤... 또 그 쪽지인가? 미심쩍은 표정으로 휴대폰 화면을 째려보다 일단 학교에 도착하고 나서 생각하기로 하곤 집을 나선다.)
일단은 학교에 도착한 뒤에 생각해 보기로 하고, 예성은 집을 나섭니다.
햇살은 따갑습니다. 새소리는 청량하고, 생크림 향기가 당신을 반깁니다.
그러나 어딘가 이상합니다.
정확히 무엇이 이상한지는 알 수 없습니다.
괜히 천장을 짚고 거꾸로 서 있는 듯한 기분이에요. 속이 불쾌해집니다.
그래도 발걸음은 착실히 학교로 향하겠지요.
중앙현관을 지나쳐, 당신의 반으로 향합니다.
그리고 당도한 반, 아라의 자리에 그의 가방이 놓여 있습니다.
여전히 등교가 빠른 건 둘째치고, 늘 아침마다 가방만 던져두고 어디에 가는 건가요?
게다가 학교에 왔다면 대체 자기 책상 서랍 정리는 왜 부탁한 건가요? 진짜 꼰대이기라도 한 걸까요.
그래도 온 김에, 당신의 사물함을 살펴볼까요?
류예성:(자리에 놓여 있는 아라의 가방을 한 번 어이없다는 눈빛으로 흘겨보고는 사물함을 향해 걸어간다. 오늘은 또 뭐가 들어있나...)
당신의 사물함으로 가던 길에, 문득 아라의 사물함 역시 조금 열려있는 게 눈에 보입니다.
저거, 원래 잠겨 있지 않았던가? 실수로 잠그지 않은건가?
남의 사물함을 함부로 여는 건 좀 미안한 짓이라지만, 애초에 자기 책상 서랍 정리도 부탁한 마당에, 뭐...
[예성의 사물함/아라의 사물함/아라의 책상] 을 조사할 수 있습니다.
류예성:(열려있는 아라의 사물함이 조금, 아니 많이 신경쓰이긴 하지만... 남의 사물함을 뒤져보고 싶진 않다. 일단은 내 사물함부터 살펴봐야겠다.)
여전히 같은 외양의 사물함입니다.
쪽지는 또 들어있을까요? 누가 넣어뒀을까요? 그런 의문도 들고요.
아라는 왜 콕 집어 사물함을 확인하라고 했는지.
사물함을 열어보면, 여전히 쪽지 하나가 당신을 반깁니다.
그런데 어딘가 이상합니다. 추가된 게 있지 않아?
1. 혼자 다니지 말 것.
2. 야간 자율학습은 당분간 관둘 것.
3. 지하에 가지 말 것.
PW. 0925
PW? 비밀번호? 이건 왜...?
류예성:(0925면... 오늘 날짜 아닌가? 점점 의아해진다. 이게 뭐람... 쪽지를 들고 이미 몇 번이나 읽어서 어느 정도 외워버린 내용을 읽고 다시 읽는다. ... 답이 나오질 않는다. 부탁 받은 서랍 정리나 해 주자. 사물함 문을 닫고 아라 선배 자리로 걸어간다.)
위는 깨끗합니다. 대신 책상 안에 다이어리가 어렴풋 보이네요.
류예성:(뭘 정리해야 하나 하고 책상 안에 있는 물건을 모두 꺼내보았는데, 고작 다이어리 하나? 뭐야? 정리할 필요도 없이 깨끗한데. 다시 집어넣고 가려던 찰나 손이 미끄러져 다이어리가 교실 바닥에 떨어졌다. 다이어리는 이상하게도 특정 페이지가 펼쳐진 채였다. 원래라면 그냥 덮었을 테지만... 펼쳐진 김에 여기만 살짝... 읽어볼까?)
페이지가 펼쳐지...려고하지만! 자물쇠가 걸려있네요.
0부터 9까지 누를 수 있는 작은 철제 자물쇠가 달려 있습니다.
아라가 책상을 정리해달라곤 했지만 안에는 다이어리밖에 없으니... 이 다이어리를 봐달라는 걸 돌려 말한 게 아닐까요.
마음 편히(?) 열어봅시다, 예성.
류예성:(누군가의 설득에 넘어갔습니다...)(아, 아까 패스워드가 이거였나? 약간의 죄책감을 마음 한 켠에 품고서... 0925를 눌러봅니다.)
0925, 찰칵. 자물쇠는 허망히도 풀립니다.
안에는 아라의 글씨체로 적힌 여러 글구들이 보입니다.
장을 넘겨보면 ... ...
다이어리가 끝이 납니다.
신도? 주의문? ... 신? 차원여행?
이 세계로...? 머릿속이 멍해집니다.
당신은 기억이 매우 희미하지만, 그는 기억하고 있는 모양입니다.
이 학교 밑에서 무언가가 일어나고 있고, 그것에 휘말린 우리들은... 끊임없이 이 9월로 오고 있다는 사실을요.
예성, <이성> 판정 SAN (1/1D2+1)
류예성:
SAN Roll
기준치:
75/37/15
굴림:
9
판정결과:
극단적 성공
이성 1 감소.
마지막 장이 눈에 띕니다.나는, 너를 살릴 수 있어. 약속할게.
한낱 인간이, 차원 여행이라는 격이 다른 이야기를 내뱉으며, 또 다른 인간에게 안위를 기약하고 있습니다.
말이 되는 이야기인가요. 사실 믿기지가 않는 게 당연할 겁니다.
정말 이런 일들이 벌어진 거라면, 결국 신의 손바닥 안일지도 모르는데.
인간이 바꿀 수 있을까? 애초에 친하지도 않은 애가 왜?
이 부분은 그에게 직접 물어봐야하겠지만요.
하지만 그는 적어도 거짓을 써두지는 않은 것 같네요. 분명 계획도 좀 세워둔 것 같고요.
그가 언제나 퀭해있고, 자리를 자주 비우던 것이 이제서야 이해가 됩니다.
신도, 라는 작자들과 싸움을 벌인 모양이죠. 소심해 보였는데도 말이에요.
당신이 이후 협조해주지 않는다면. 그는 어떻게 되는 걸까요?
우리는 그저 우연히 같은 사건에 휘말렸었다는 이유로 삶이 뒤바뀌고, 그는 모종의 이유로 몇 번이나 이 곳에 회귀하여 당신과 생존하고 있었습니다.
6시는 정규 수업이 끝난 뒤 집에 하교할 수 있는 시간입니다.
당신이 야자를 하지 않는다면 말이에요.
자, 점차 학생들이 들어오기 시작합니다. 금세 시간은 흘러가고 말 거예요.
당신은 어떻게 하나요? 6시에, 그를 이 곳에서 기다릴까요? 아니면 집으로 향할까요?
류예성:(다이어리에 이런 내용이 적혀 있을 거라고는 정말, 정말로 상상도 못 할 일이다. ... 끽해봐야 치과 예약 일정이라거나, 오늘 공부할 내용, 아니면 일기 몇 줄 정도라고 생각했는데. 현실과 완전히 척을 지는 다이어리 속 기록은 나를 약간 붕 뜨게 만들었다. 허황된 것을 쉽게 믿지는 않는다. 그렇지만 선배의 기록을 읽었을 때 나는 진실에 가까워 보이는 절박함을 느꼈다. 선배의 몸에서 나던 쇠 냄새, 이상하리만큼 일찍 교실에 와 있던 그간의 행적, 피곤해보이던 최근 인상, 그리고, ... 다른 건 몰라도, 선배가 아무 이유 없이 친분도 별로 없던 나에게 이럴 이유가 없다는 것은 안다. 선배에게 더 자세하게 이야기를 듣고 싶다. 하나부터 열까지 다.)
아라는 당신과 가까운 사이가 아니지만, 오히려 그렇기에 이 허황된 소리들이 더 진실처럼 느껴집니다.
더 자세한 이야기를 들어야겠지요. 그러기 위해선 이 내용을 믿건 안 믿건, 이곳에 남아야 합니다.
야자를 하지 않는 학생들은 당신을 지나쳐 가고, 야자를 하는 학생들은 석식을 먹으러 급식소로 떠납니다.
혼자가 되었습니다. 그러고보니, 혼자 있지 말라고 했었는데.
이제는 이상하게 정겹기도 한 그 규칙이 떠오를 즈음,
배아라:...안 갔네.
익숙한 목소리가 등 뒤에서 들려옵니다.
돌아보지 않아도 이제는 알 수 있겠네요.
그는 지쳐 있습니다. 당신에게 안부 하나 전하기도 피곤해보여요.
배아라:다이어리, 봤어? (문가에 살짝 기대어 선 채로 묻는다.)
류예성:네, 집에 가지 말고 기다려 달라고 하셨잖아요. (제 뒷자리 의자를 빼내 앉으라는 표시를 한다.)
배아라:혹시 안 믿고 집으로 가면 어쩌지, 싶었어. (피로가 가득 묻어나는 낯으로도 희미하게 미소하며 고마워, 속삭이곤 의자에 앉았다.) 너는 이런 걸 믿지 않을 것 같았으니까.
... 잘 이해가 안 되지, 그 내용들? 하지만 전부 진짜야.
류예성:(애매한 웃음을 지으며) 음, 사실은 지금까지도 현실성없게 느껴지긴 해요. 그래도... 선배를 믿으니까요. 거짓말을 정교하게 짜내 남을 골탕먹일 사람이 아니잖아요, 선배는.
배아라:그렇게 생각하는 것도 당연해. 솔직히 신을 믿는 걸 넘어서 소환까지 하다니, 그리고 그게 바로 우리 학교 아래쪽에 있다니... 말이 안 되는 일이긴 하니까. 그런데도 믿어줘서 고마워.
너랑 난 둘 다 피해자야. 그 신도들이 신을 잘못 소환하면서 학교 내부에 있던 사람들이 다 휘말려 사라져 버렸고, 난 하교하는 중에 그걸 보고 그만 미쳐버렸으니까. 네가 학교 안에 있던 사람 중 한 명이었고, 난 그대로 네가 사라져버리는 줄 알았어.
(잠시 숨을 고른다.) 그런데 꿈에 어떤 사람이 나와서 말하길, 몇 번이고 시간을 돌려줄 테니 너를 이 사건에서 구해내라고 하더라. 난 몇 번이나 이 사건이 일어나기 전에 널 학교에서 빼내려고 했지만... 사실 우린 그렇게 가깝지 않았잖아. 네가 내 말을 허무맹랑하게 취급하거나, 혹은 주어진 시간이 너무 부족해서... 몇 번이나 이 루프를 반복했는지 몰라.
더 이상 똑같은 일을 반복하는 것도 지치고... 이제 그만 돌아가고 싶었어. 그래서 이번이 마지막 기회라고 생각하고 떠올려낸 게 그 쪽지였지. 더해서, 너만 구해내는 게 아니라 신도들까지 같이 처리해보려고 해. 아예 신이 소환되는 걸 막아내면 좀 더 수월하게 널 구해낼 수 있을 테니까.
네가 여기에 남지 않았으면 나 혼자 신도들을 상대하다가 또 루프해버릴 줄 알았는데. (살짝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이렇게 남아줬으니, 나랑 같이 신도들을 처리하고 학교를 빠져나갔으면 해.
...이 말도 믿어줄 거니?
류예성:(당신이 말을 끝낸 후, 잠시 동안 정적이 교실을 맴돈다. 방금 들은 설명은 이해한 정도로만 따지자면 아까 다이어리에 적힌 것과 크게 다르지 않은 설명이었다. 동시간대에 하교하던 사람들 중 왜 하필 아라 선배이며, 동시간대에 학교에 남아있던 사람들 중 왜 하필 나인가. 신은 왜 우리 학교를 무대 삼아 등장하고자 하는가. 선배의 꿈에 나온 자는 누구이며 왜 이런 기회를 주는 것인가. ...... 묻고 싶은 게 많았지만 꾹 참았다. 묻는다 한들 선배 또한 답을 모르고, 아니, 어쩌면 나보다 더 궁금해서 미칠 지경일지도. 이 말이 사실이라고 한다면 제일 힘든 것은 선배일테니까. 아무도 기억하지 못하는 예견된 멸망을 막으려고 홀로 이리저리 뛰어다녔을 선배를 생각하니 속에서 미안함과 고마움이 뒤섞인 감정이 올라와 쉽사리 말을 꺼낼 수가 없다.)
(이윽고, 고개를 들고 당신의 찬 손에 온기를 전한다.) 선배를 믿어요. 저는 공부를 할 때 이해를 먼저 하고 나서 해요. 알지 못하는 상태에서 무작정 외우기만 하면 그건 그저 지식을 머리에 쑤셔넣는 거랑 다를 게 없으니까요. 하지만 때로는 이해하기 힘든 내용이라도 일단 외우고 봐야 할 때가 있어요. 제 생각에는... 지금이 그 때인 것 같아요. 비록 신이니 뭐니 하는 걸 이해할 수는 없어도 선배가 하는 말을 믿을게요. 함께 이 지긋지긋한 루프를 끝내죠. 제가 뭘 도와야 하는지 말해주세요.
배아라:...그래. 나도 정신이 멀쩡하고, 너도 내 말을 믿어주는 지금이 바로 유일한 기회겠지. (이제는 손으로 하나하나 꼽기도 힘들 만큼 반복을 경험해 왔다. 그 과정을 겪으며 지치지 않을 수 있다면 그거야말로 비정상적인 거겠지. 아무리 이 상황이 상식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일이라고 한들, 이미 판은 펼쳐졌고, 우리는 그 위에 무력히 놓여져 농간당하는 장기말일 뿐이다. 하지만 인간의 의지는 때로 몹시 강하고 끈질긴 것이니, 창을 든 장기말이 되어 판을 뒤집을 때였다.)
신도들은 지금 의식을 거행할 준비를 하고 있을 거야. 너도 아마 어렴풋 유추했겠지만, 그 지하에서. 우리가 지금 당장 밖으로 나간다면 학교에 남은 다른 사람들은 의식에 휘말릴 수 있겠지만 우리는 무사하겠지. 하지만... 신도들이 또다시 의식을 거행하는 일이 반복된다면, 다른 사람들에게도 쭉 그런 위기가 닥쳐올지도 몰라. 어쩌면 우리가 졸업하기도 전 또다시 같은 일을 겪을지도 모르고. 솔직히, 무섭지만... 몇 번씩이나 그 사람들이랑 대항하다 보니 닳아버린 건지 이젠 사람을 때리는 것도 조금 익숙해져 버렸어. (씁쓸하게 웃었다. 다 지워지지 못한 광기의 일환이자 새로이 얻게 된 후유증으로 남겠지.)
내가 두 사람은 힘을 못 쓰게 만들어뒀어. 남은 건 두 명이야. 우리가 한 명씩 맡으면 성공할지도 몰라. 아마 의식날이니 그 사람들도 죽기살기로 반항할 것 같아서, 우리도 위험해질지 모르지만... 성공하면 모두가 안전히 살아남을 테고, 실패하면 우린 또다시 루프하겠지.
어떻게 할래? 네가 선택해줘, 예성아.
그는 분명 혼자 신도와 맞서려고 했다가, 그 한계를 깨달았다고 말했습니다.
고로 당신의 도움 없이는 지하로 가는 일도 없겠죠.
당신이 나간다고 말하면, 그 역시 그대로 몸을 피할 생각입니다.
회귀의 시작점이자 끝, 신의 손끝에서 시작된 이 장난은 인간 둘의 삶을 송두리째 바꾸어 두었습니다.
그러나 선택은 인간의 몫이죠.
결과가 어떻든, 과정은 인간만이 이루어낼 수 있는 산물입니다.
도망칠까요? 맞서 싸울까요?
결정의 시간입니다, 예성.
류예성:지금 당장의 안전을 최우선으로 따지자면 탈출하는 게 맞다고 봐요. 둘이서 맞선다고 해서 성공하리라는 보장이 없으니까요. 다른 사람들이 겪을 위기는... 냉정하게 말해서 알 바 아니에요. 싸우는 걸 선택한대도 그건 아마 우리에게 닥쳐올 수도 있는 미래의 위협을 제거하기 위함이겠죠. 모두 확실히 안전할 수 있는 방법이 있다면 참 좋겠지만...... 선배가 루프 동안의 기억을 다 갖고 계시니 저는 선배에게 선택권을 드리고 싶어요. 어느 쪽이 더 나은 방법이라고 생각하세요?
배아라:(당신의 냉정하고 객관적인 말에, 가만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리 반복을 겪으며 익숙해졌다고 한들, 사람을 마구잡이로 때리는 것이 어찌 마냥 달가울 수가 있을까. 게다가 그들이 가만히 있는 것도 아니고, 성인 두 명을 학생이 감당하는 것은 커다란 리스크를 져야만 할 수 있는 행동이다. 우리는 단지 교문으로 나가기만 하면 안전해질 수 있는데.) 내가 지금껏 애써온 건 네가 이 일을 믿게 하기 위해서였으니까. 비록, 다른 신도들을 처리해두긴 했지만... 그 과정도 무척 어렵고 힘들었어. 내가 약학대 지망이 아니었으면 다친 데를 치료하는 것도 무척 어려웠을 거야. 다른 어른들한테는 이 일을 쉽사리 알릴 수가 없었으니까... 분명 믿어주지 않으시겠지.
(그러니까, 지금껏 이렇게나 힘들었으니까. 당신에게 이 사실을 전부 알려준다는 목적은 달성했으니까... 이제는 그만, 다시 일상으로 되돌아가도 괜찮은 것 아닐까. 다시 푹신한 침대에 누워 평화로운 일상을 만끽해도 괜찮지 않을까.)
우리, 빠져나갈까? 나는 너를 구했으니 이제 모든 건 됐어.
류예성:(천천히 고개를 끄덕인다.) 그래요, 선배 결정을 따를게요. 혼자서 여기까지 해낸다고 정말 고생이 많았어요. 그리고 고마워요. 내가 믿을 때까지 포기 않고 노력해줘서.
(잡고 있던 손에 힘을 주며 미소짓는다.) 학교를 나가면, 일단 먼저 뭐라도 좀 먹으러 가요. 제가 살게요. 선배 밥도 제대로 못 먹었죠? 잠자리도 많이 불편했을텐데... 먹으면서는 선배 얘기를 많이 해 주세요. 그러고보면 저랑 선배, 선택 탐구 과목도 같던데. 비슷한 걸 공부하면서도 정작 친하지는 않았잖아요 우리. 어쩌면 신이 친구를 좁게 가려 사귀는 제가 선배랑 좀 친해졌으면 하는 마음에서... 이런 질나쁜 짓을 벌여놨을 수도 있겠네요. 아, 이런 농담은 농담이라도 별로인가? 기분 나쁘셨다면 사과할게요. 여하튼... 이젠 괜찮을거에요. 만약 또 이런 일이 벌어진다면... 그때는 제대로 기억할게요. 그리고 둘이서 문제를 해결하는 거에요. 혼자 싸우게 두지 않을게요.
배아라:그럴까? (당신이 그리는, 다시 돌아갈 일상의 이야기들을 정겹게 경청한다. 어쩐지, 조금 눈물이 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 괜히 고개를 잠깐 떨구기도 했다. 제가 보아도 저는 강한 사람이 아니었는데, 광기와 살고픈 욕망에 휩쓸려 한 걸음 한 걸음 나아가다 보니 여기까지 오게 되었다. 당신의 미소 어린 표정과 말을 들으니 이제는 정말로 무겁게 얹혔던 짐을 내려놓을 시간이라는 것이 실감이 난다. 저 역시 손에 조금 더 힘을 주며 희미하게 눈을 휘었다.) 그러자. 분식집도 좋으니까, 여길 벗어나서 좀 더 이야기를 하는 거야. (당신의 농담에는 어딜 보아도 긍정적인 반응으로 입가를 가리며 작게 웃었다.) 아냐, 전혀 기분 안 나쁜 걸. 너랑 가까워지기 위한 조건치고는 시련이 너무 큰 것 같지만...
제대로 기억해준다는 말이 가장 기쁘네. (혼자 싸우도록 두지 않겠다는 말이 왜 그리도 든든하게 들리는지. 어쩌면 홀로 외로이 고군분투하는 동안 이것을 가장 원했는지도 모른다고. 눈물이 정말로 찔끔 배어져나올 것만 같아 소매로 괜히 눈가를 벅벅 문질렀다.) 이제 다시 좋아지겠지...?
... 돌아가자. (손을 잡고 일어섰다. 가방을 챙긴다. 끝이자, 시작을 맞이할 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