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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209~230215] 아이린&헤이즐 - 손끝의 신호

초현_c 2023. 2. 15. 01:32

플레이타임 : 5시간

 

 
손끝의 신호
 
.
 
Written by 604
 
▷ 저녁
 
헤이즐은 오늘의 일과를 대략 끝마치고 집에 돌아옵니다.
 
잠들기 전 잠깐 틀어놓은 뉴스에서 테러 사건에 대한 보도가 흘러나와요.
 
종종 들려오는 이야기로, 이젠 새삼스럽지도 않을 정도가 되었습니다.
 
세상이 멸망하기 시작한지 반 년째.
 
당신의 일상은 어떻게 변화하였나요?
 
이전과 크게 다르지 않을지도 모르죠.
 
헤이즐 레르:(크게 변한 것은 없지만 물가라던가... 그런 현실적인 부분에서부터 조금씩 망가지기 시작한 일상은 살아가기가 너무 고되게 변했다. 사람들의 인심도 좋지 않고, 가끔씩 보이는 끔찍한 뉴스에 점점 적응하는 스스로가 싫었다.)
 
세상은 영화처럼 극적이지도, 자극적이지도 않습니다.
 
천천히 밀려온 파도가 모래를 깊숙이 적셔가는 것과도 같은 느릿한 변화가 다가올 뿐.
 
테러며 죽음에 관한 이슈가 연일 떠오르는 와중에도 해와 달은 착실하게 시간에 맞춰 제 자리를 교환합니다.
 
다시 내일의 해를 맞이하기 위해서라도, 이만 잠에 들어야겠네요.
 
헤이즐 레르:벌써 어두워졌네. (잘 준비를 한다.)
 
불을 끄고 침대에 누우면, 주사위가 굴러가는 소리가 들려옵니다.
 
이젠 익숙해진 효과음입니다. 동시에,
 
<듣기> 판정
 
헤이즐 레르:
듣기
기준치: 70/35/14
굴림: 60
판정결과: 보통 성공
 
누군가 당신을 부르는 소리가 들려요.
 
반응을 하자니 이미 잠이 몰려오는 몸이 무겁네요.
 
하기야. 당신뿐인 집에 또 누가 있겠어요. 잘못 들었겠죠.
 
의식이 서서히 멀어집니다.
 
흘러가는 일상 속. 내일이라고 특별하게 다를 건 없을 겁니다.
 
잘 자요, 헤이즐.
 
과연 오늘보다 나은 내일이 찾아올 수 있을지 보자구요.
 
.
 
.
 
.
 
▷ 새벽
 
똑똑, 노크소리가 당신의 잠을 깨웁니다.
 
헤이즐 레르:... 누구? (갑자기 들려오는 소리에 몸을 일으킨다. 잘못 들었나?)
 
시간을 확인하니 새벽 4시군요. 대체 누구일까요?
 
의아한 와중에 귓가에 다시금 주사위 구르는 소리가 들려옵니다.
 
이젠 익숙해진 소리에 고개를 드니, 허공에 반투명한 숫자가 떠오릅니다.
 
그 값은…,
 
<지능> 판정
 
헤이즐 레르:
지능
기준치: 50/25/10
굴림: 24
판정결과: 어려운 성공
 
24입니다.
 
노크 소리는 무척 가까이에서 들렸습니다.
 
이상하네요. 현관에서 들리는 소리가 이렇게까지 선명하던가요? 방문도 닫혀 있었는데.
 
다시금 노크 소리가 들립니다.
 
똑똑.
 
바로 옆에서 들리는 것 같은 이질감.
 
착각이 아니에요. 소리는 머릿속에서 울리고 있습니다.
 
주사위에 이어 노크 소리일까요?
 
헤이즐 레르:... (순간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얼어붙는다. 내가 지금 잘못 들은 것인가? 아무리 생각해봐도 그건 아닌 것 같은데... 허공에 대답한다.) 누구세요?
 
허공에 대답하자, 누군가의 속삭임이 들려옵니다.
 
[내 목소리, 들리니?]
 
주변을 둘러봐도 목소리의 주인은 보이지 않습니다.
 
하다하다 이젠 목소리 환청까지 들리는 걸까요.
 
그런 당신을 재촉하는 것처럼 목소리는 이어집니다.
 
[들린다면 대답해. 헤이즐, 맞니?]
 
그런데 이 말투와 이 목소리, 왠지 익숙한데요...
 
헤이즐 레르:... 헤이즐 맞아요. 누구... ... ... 혹시, 아이린이야?
 
???:[그래. 나야. 들리는구나. 상황이 이렇게 되어버리긴 했지만... 널 다시 만날 수 있어서 정말 다행이야. (안도하는 듯한 옅은 한숨 소리가 들린다.)]
 
헤이즐 레르:... 너 어디에 있어? 내가 널 얼마나 걱정했...! ... 잠깐만. 그런데 정말 어디에서 말 하고 있는거야?
 
???:[미안. 사정이 있었어. 절대로 이전처럼 일부러 도망치려던 건 아니었으니 믿어주렴. 잘만 하면 보이는 것도 가능할 것 같은데... 조금만 기다려주겠니? 처음이라 서투르거든.]
 
헤이즐 레르:무슨 마법이라도 쓴거야? (네 말을 믿겠다며 대답했지만 여전히 목소리에 걱정이 묻어난다.)
 
???:[아니, 마법은 아냐. 마법도 이제 쓰지 못하게 된지 꽤 되었잖니? ... 아주 간단한 마법 정도라면 모를까 이렇게 복잡한 마법은 쓰고파도 구현이 안 돼. ■■하려는 건데...]
 
헤이즐 레르:하긴 그렇지... 마법은 못 쓰니까. 그런데, ... 방금 뭐라고 했어? 뭘 하려고 했다는건지 못 들었어.
 
???:[■■. … 아, 이것도 안 전해지는구나. 곤란하게.]
[난 지금 ■■■■에 있어. 그렇지만 계속 여기 머무르진 않을 거야……]
 
중간중간 아이린의 말이 노이즈가 끼는 것처럼 끊겨 들립니다.
 
헤이즐 레르:... 전해지지 않는다니... 마법보다 더 신기한 일은 없을거라고 생각했는데, 마법이 아닌 다른건가...? 너무 오래 살았나봐. (아직 30대도 아니다.)
어디 있다고 하는지도 못 들었지만... 안전한거야? 위험한건 아니지?
 
???:[위험하진 않아. 오히려 위험한 건 ■■에 있는 네 쪽이지.]
[잠시만 기다려 봐. 이렇게 하면 될 것 같은데.]
 
머릿속에서 예의 똑똑거리는 노크 소리가 울려퍼지더니,
 
허공에 노이즈가 끼고, 이내 사람의 모습이 그려집니다.
 
주사위 숫자가 뜰 때와 비슷하네요.
 
반투명하던 사람은 점차 진해지고는 선명한 형체를 갖습니다.
 
아이린 E. 테라코르:……된 것 같구나. 나, 보이니? (한 손 당신에게 내민다.)
 
헤이즐 레르:...! 아이린. 어떻게 한거야? 정말... 이해가 안 되는 일이네... (내미는 손 잡아보려 한다.)
 
손에 닿는 감촉은 뚜렷합니다. 환각이 아니에요.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거죠? SANc (0/1).
 
헤이즐 레르:
SAN Roll
기준치: 60/30/12
굴림: 54
판정결과: 보통 성공
 
이성 감소 없음.
 
아이린 E. 테라코르:(제자리에서 몇 걸음 발 내디뎌본다. 원체 인기척이 없는 탓인지 소리가 거의 나질 않았다. 제 모습을 이리저리 살펴보더니, 당신 향해 고개 든다.) 이해가 안 갈 만도 해. 나도 내 상황을 이해하기까진 시간이 좀 걸렸거든.
... 헤이즐. 멸망하는 세계에서 살아남는 법을 가르쳐줄게.
 
뜬금없는 구원 선언입니다.
 
헤이즐 레르:... 여기서? 어떻게? ... 멸망이라는건 예정된 일이 아닌거야?
 
아이린 E. 테라코르:■■된 일이지. (눈앞에 보이고 나서도 노이즈가 끼는 듯 기묘한 말투는 여전하다. 당황스러워할 게 뻔한 당신을 두고 방을 이리저리 살핀다.) 전단지는 어디에 뒀니?
 
그 말에 어제 받은 전단지가 떠오릅니다.
 
《당신은 선택받았습니까?》 그 문장으로 시작하는 내용은 사이비 종교 집단의 향이 풀풀 넘쳐흘렀죠.
 
그런데도 버리지 않고 챙긴 건 이후의 내용 때문이었습니다.
 
단순한 우연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정확했습니다.
 
그런데 아이린은 전단지에 대해 어떻게 알고 있는 걸까요?
 
헤이즐 레르:(주변에서 전단지를 찾아온다.) ... 그러니까, 이 말도 안되는 전단지에 적힌 내용이 사실이다?
 
아이린 E. 테라코르:말도 안 되는 것 같지만, 네 상황을 꿰뚫는 듯한 내용이지 않았니? (전단지를 받아들어 빠르게 훑어내린다.) 여기에 같이 가줬으면 해.
 
헤이즐 레르:가는건 어렵지 않은데... 어떻게 갈 수 있는데?
 
아이린 E. 테라코르:여기 주소가 나와 있구나. (전단지 아래쪽에 작게 쓰인 글씨를 손끝으로 가리켠다.) 분명 ■■에 도움이 될 거야.
 
전단지의 주소는 걸어서 이십여분 정도의 거리입니다.
 
헤이즐 레르:... 가깝네... 여전히, 그 단어는 안 들리는데... 아이린, 그동안 여기에서 지낸거야? 어떻게 지냈어?
 
아이린 E. 테라코르:(제 입술 끝을 손끝으로 잠시 매만지다) 조건을 채울 수 있게 도와줄게. 그럼 너도 알아들을 수 있을 거야.
아까 말했다시피 난 이곳이 아니라 ■■■■에 머무르고 있었어. 나, 며칠이나 연락이 안 닿았던 거니?
 
헤이즐 레르:거의 두달... 세달 가까이 된 것 같아. 그렇게 오래 떠나있을거라면 쪽지라도 남겨두고 갔어야지. 얼마나 걱정했는데...
그래도, 잘... 지낸건 맞는거지? 아이린은 거기에 대해 어떻게 알게 됐어? 나처럼 전단지로?
 
아이린 E. 테라코르:그렇게 오래 됐구나. (당신의 대답을 느리게 곱씹는다.) ■■에서는 ■■■■■마저도 다르게…… 미안해. 일부러 그러려던 건 아니었어. 다신 이전처럼 말없이 사라지는 일은 없게 하려고 애썼는데, …… (어차피 끊겨 들릴 거라 생각했는지 입 다문다.) 그럼. 못 지내진 않았어.
(전단지를 가벼이 팔랑인다.) 알 수 있는 방법이 있어. 설명해줘도 지금의 너는 제대로 듣지 못할 거야. 일단은 내가 하잔 대로 따라 주겠니?
 
헤이즐 레르:... 응, 알았어. 어차피 죽을거라면 뭐라도 하는게 좋겠지. (고개 끄덕인다. 침대 옆 책상에서 메모지와 펜을 꺼내 집을 비운다는 메모를 남겨놓고는.) 일단... 여기로 가면 되는야?
 
아이린 E. 테라코르:그래. 우선 나가자. ... 그나저나 지금 시간이 몇 시지? 내가 자려던 널 방해한 것 같았는데.
 
시계를 보니, 벌써 6시입니다. 다시 잠들기에도 애매해져 버렸네요.
 
헤이즐 레르:여섯시... (...) 괜찮아. 좀 피곤하고 말겠지 뭐...
 
아이린 E. 테라코르:……미안. ■■■■에선 ■■ 개념도 다른가 봐. 그것도 아니라면 어쩌면…… (알아듣지 못할 소리를 중얼거리다 한 걸음 물러선다.) 준비 다 되면 가자꾸나.
 
헤이즐이 외출 준비를 마치면, 두 사람은 집을 나섭니다.
 
▷ 외출
 
정말로 그 사이비 종교 교단에 가는 것일까요?
 
평소 아이린은 신이니 운명이니 하는 건 믿지 않았던 걸로 알고 있는데...
 
의심쩍은 구석은 많지만, 아이린이 당신을 위해 동행하고자 하는 것이니 나쁠 건 없을지도요.
 
서늘한 바람에 지독한 썩은내가 섞입니다.
 
이런 악취도 일상입니다. 마스크를 잘 챙겨 씁시다.
 
헤이즐 레르:... (역해... 마스크 잘 쓰고 아이린 것도 챙겨서 건내줍니다.)
 
아이린 E. 테라코르:고마워. (귀에 끈 걸고 나선다)
 
길을 나서 걷던 중,<관찰력> 판정
 
헤이즐 레르:
관찰력
기준치: 75/37/15
굴림: 31
판정결과: 어려운 성공
 
하수구 옆편에서 꿈틀대는 쥐가 보입니다. 무언가에 깔렸던지 몸통이 으깨진 채입니다.
 
찍찍, 내뱉는 소리가 애달프네요.
 
근처에서 살펴보니 더욱 끔찍합니다. 내장은 다 터져있네요.
 
본래라면 당연히 죽었어야 할 상태입니다.
 
세상이 이상해지면서, 이 정도로는 죽지 못하게 되었을 뿐이지만요.
 
쥐는 저 상태로도 한참을 살아갈 것입니다. 내장을 다 쏟아내고 사지가 뜯겨도 찍찍 울음을 멈추지 않겠지요.
 
누군가 죽여주지 않는 한, 어쩌면 평생을 고통에 눌리면서.
 
쥐를 물끄러미 바라보던 아이린이 당신을 향해 속삭입니다.
 
아이린 E. 테라코르:죽여주자. (주어가 비어있는 문장이었으나, 가리키는 대상은 명확했으리라.)
 
헤이즐 레르:... 이런거... 적응하기 어렵네. (어쩔 수 없다는 듯 쥐가 편해지도록 합니다.)
 
어차피 가만히 두면 환경 미화부가 와서 해 줄 일이겠지만, 당신이 못할 것도 없긴 합니다.
 
꿈틀거리는 쥐를 바라봅니다.
 
자그마한 머리통. 멸망하는 세계에서 온전한 죽음을 얻는 유일한 방법은.
 
생물의 뇌를 부수는 것 뿐입니다.
 
헤이즐 레르:... (티슈같은걸 올려두고는 발로 지긋이 밟아 누릅니다.)
 
콰직,
 
유쾌하지 못한 소리가 울리고 쥐는 축 늘어집니다. 더는 꿈틀거리지 않아요.
 
아이린은 감흥없이 고개를 돌립니다.
 
그는 직접 수많은 생명을 죽여보았으니 이런 일에 무심한 것도 당연할지 모르겠습니다.
 
그렇지만 생명의 소중함을 모르는 이는 아니었는데, 방금 전의 일은 일말도 신경쓰지 않는 듯 보입니다.
 
아이린 E. 테라코르:고마워, 따라줘서. 그냥 지나가도 상관없는 일이었는데. (평이한 음성이다.) 불유쾌한 일이잖니.
 
헤이즐 레르:그냥 지나갔더라면 그게 더 불편했을거야. 언제까지고 고통받기만 하는 모습을 보고있긴 어려우니까...
 
아이린을 따라 죽은 쥐를 뒤로합니다.
 
아이린 E. 테라코르:더 이상 새로이 태어나는 생명은 없고, 아무도 쉬이 죽지 못하는 세상이 되어버렸구나. (시취를 실어나르는 바람이 그의 머리칼을 길게 흐트리고 지나간다.) 한때, 영원을 바라며 이와 비슷한 광경을 상상했던 적이 있었어. 그 누구도 죽지 않고 계속계속 살아갈 수 있다면, 그럼 이별할 일이 없으니 슬픔도 사라질 수 있지 않을까, 하고. ……그렇지만 전혀 아닌 것 같구나. 오히려 이 모습이 새로운 슬픔을 유발하고 있으니 말이야.
 
헤이즐 레르:... 적어도 그때 네가 생각했던 영원은 이런 고통이 아니었을테니까. 나도... 아니, 아마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런 멸망이 있을거라고는 생각도 못했을거야. 해봐야 전쟁정도가 있겠지. 그러니... 이건, 재앙인거야.
 
아이린 E. 테라코르:맞아. 내가 바랐던 영원은 이런 게 아니었어. 애초에 내가 바랐던 건 불사뿐 아니라 불로도 포함되어 있었겠지. 그리고, 상해를 입지 않는 것도. 저리 끔찍한 꼴이 되어서도 영원을 바라게 될 리 없잖니. (눈을 내리감고 고개를 두어 번 내저었다.) 재앙이나 다름없구나.
그런데도, 이 세상은 여전히 톱니바퀴가 맞물리듯 돌아가고 있구나. 다들 이런 세계라도 괜찮단 걸까.
 
아이린의 말대로입니다.
 
시체나 다름없는 사람들이 늘어도, 완전한 멸망이 오기 전까지 세상은 돌아갑니다.
 
산 사람은 살아야지. 삶과 죽음의 경계가 애매한 세상에서 그렇게 말하면서요.
 
헤이즐 레르:(느리게 고개를 끄덕인다. 어슴푸레한 새벽 하늘을 바라보다가,) 이런 세계라도... 살고싶어하는 사람은 있겠지. 죽는다는건 누구나 무서워하는 일이니까.
 
아이린 E. 테라코르:그 누구도, 죽고 싶진 않겠지. 멸망을 순순히 받아들이고 싶은 이도 없을 테고. (푸른빛이 오묘히 섞인 보랏빛 눈이 당신을 응시한다. 꿰뚫어보기라도 하듯이.) 너도 그렇지, 헤이즐?
 
헤이즐 레르:맞아. 나도 죽고싶은 마음은 없어. 그러니까 네 말을 따라가는거고... 언젠가 죽겠지만, 그게 이런 형태의 멸망으로 이루어지진 않았으면 해.
 
아이린 E. 테라코르:이런 곳에서 이런 형태로 죽으리라 예상해본 적 있니? ……차라리 전쟁터에서 죽을지도 모른다는 게 더 현실적이었을지도 몰라.
 
헤이즐 레르:맞아. 차라리 전쟁터에서 죽는게 더 현실적이지. 그것도 아니라면 병이나, 사고로 죽는다거나 말이야. 죽지 못해서 죽여달라고 빌어서 이루어내는 죽음은... 비참하잖아.
 
아이린 E. 테라코르:(고개 들어 허공을 향해 손바닥을 펼쳐본다. 꼭 세상을 채우는 공기 한 줌 움켜쥐어보려는 것처럼. 그 모습에서 회의감이 읽혔다.) 이런 데서 죽을 순 없겠지. 그러니 살아남을 수 있도록, 내가 도와줄게.
 
헤이즐 레르:응. 도와주는 만큼 열심히 따라갈게. ... 나 말고 다른 사람들도 이랬으면 좋겠다. 이런 재앙 말고.
 
아이린 E. 테라코르:…… 그들에게도 나 같은 이가 있다면 좋겠지. (모두를 구해낼 수 있단 보장은 없었으므로.)
 
얼마나 걸었을까요? 조금만 더 가면 전단지에 적힌 주소입니다.
 
어쩐지 허전해서 뒤돌아보자, 멀거니 서 있는 아이린이 보입니다.
 
그의 시선 끝이 닿은 장소는 병원입니다.
 
헤이즐 레르:... 아이린? 뭘 그렇게 쳐다보고 있어...? ... 아, 병원이구나.
 
아이린 E. 테라코르:잠깐 여기부터 들리지 않겠니?
이런 장면도 네게 필요할 수 있거든.
 
헤이즐 레르:... 어, 병원에... 왜? 병원은 좀 싫은데... ... ... 아니야, 필요하다면 가야겠지. ... 거긴, 끔찍한 장면이라도 있니?
 
아이린 E. 테라코르:... 아마도.
안 좋은 기억이라도 있는 걸까.
 
헤이즐 레르:그런건 아니고... 거긴, 아직 죽지 못한 사람들이 있어서. 그 광경은 조금 버겁거든.
 
아이린 E. 테라코르:마음이 강한 사람이 아니라면 버티기 어려운 광경이지.
그래도 한 장면쯤은 있어야 할 것 같아서. 나중에 냉정하다 원망해도 좋아.
 
헤이즐 레르:날 위해서 해주는 일이잖아. 원망하지 않을거야. ... 갈까? (병원쪽으로 몸을 돌린다.)
 
▷ 병원
 
근방에서 가장 큰 병원입니다.
 
분만실을 중환자실로 리모델링해도 병실이 부족해서, 최근 더 확장했더랬죠.
 
이번에는 의료인 인력 부족으로 골머리를 앓는 모양이지만요.
 
안으로 들어가니 1층 프론트부터 북적거리는 사람들로 가득합니다.
 
<듣기> 판정
 
헤이즐 레르:
듣기
기준치: 70/35/14
굴림: 56
판정결과: 보통 성공
 
대기하는 사람들의 대화가 들려옵니다.
 
사람1: 약물로도 못 죽는다며?
 
사람2: 돈 줄테니 뇌 좀 부숴달라 애원하는데 안타깝긴 하더라.
 
사람1: 쯔, 돈 준대도 누가 하겠냐. 그것도 살인이나 다름없는 짓일 텐데.
 
아이린은 무심한 듯 그들을 바라보지만, 언뜻 낯에서 씁쓸함이 묻어납니다.
 
대체 왜 이곳에 오자고 한 걸까요?
 
아이린 E. 테라코르:이질적인 모습이구나. 너희가 왜 그리도 내가 바라는 영원을 반대했는지, 이제야 알 것 같다 싶어.
 
헤이즐 레르:... 그렇지만, 그건 다른 종류의 영원이니까. 아이린이 바란 영원은 이게 아니었잖아?
 
아이린 E. 테라코르:맞아. 내가 바랐던 건 이런 게 아니었지.
헤이즐은 이전이나 지금이나 상냥하네... (희미하게 미소했다.)
 
병원은 입원 환자와 간병인으로 가득합니다.
 
둘러보라 해도 마땅히 들어갈만한 곳은 보이지 않아요.
 
당신은 치료나 간병, 병문안을 위해 온 건 아니니까요.
 
<듣기> 판정
 
헤이즐 레르:
듣기
기준치: 70/35/14
굴림: 79
판정결과: 실패
 
간병인과 간호사가 대화를 나누는 모습도 보이네요.
 
간병인: 만병… 니, 새로운 신을 …… 한다느니!
 
간호사: 저희가 …… 강화하도록 …. 죄송합니다.
 
간병인: …… 또라이들만 신났어….
 
<지능> 판정으로 내용 추측이 가능합니다.
 
헤이즐 레르:
지능
기준치: 50/25/10
굴림: 32
판정결과: 보통 성공
 
아마 사이비 신도들이나 가짜 약팔이가 병원까지 들어와 신을 믿으면 나을 수 있다며 떠들어댄 모양입니다.
 
본디 세상이 멸망해갈수록 악한 집단들이 세를 얻고 날뛰는 법이죠.
 
쉽게 유추할 수 있는 내용이었습니다. 뉴스나 신문에서 흔히 들어봤었거든요.
 
그때, <관찰력> 판정
 
헤이즐 레르:
관찰력
기준치: 75/37/15
굴림: 40
판정결과: 보통 성공
 
2층에서 사람들이 모여 웅성거리는 모습이 눈에 띕니다.
 
살펴보니 상태 심각한 어린 아이가 병실에서 사라진 모양이네요.
 
인상착의 등을 알리며 찾는 모습이 꽤 다급해 보입니다.
 
헤이즐 레르:... 아이린, 좀 소란스러운 것 같지 않아? ... 어린 아이가 없어졌다는 것 같은데.
 
아이린 E. 테라코르:... 그렇네. 어떻게 하겠니? 이런 큰 병원에서 아이가 없어지다니, 심상찮은 일은 아닐 것 같은데.
 
헤이즐 레르:... 찾는걸... (도와줘야 좋겠지만 돕고싶지 않다. 헤이즐은 성자는 커녕 특별하게 선량한 사람은 아니었으니까.) ... 어떻게 하는게 좋을 것 같아? 여기의 장면이 필요하다면서. 그러면... 아이를 찾는 것도 도움이 되는걸까?
 
아이린 E. 테라코르:…… 어쩌면. (애매모호한 긍정이다. 그리곤 먼저 걸음을 내디뎠다.) 가보자꾸나. 다른 이라면 몰라도 아이라면 나라도 그냥 지나치긴 어려웠을 것 같거든.
 
2층은 여러 병실이 길게 늘어져 있습니다. 병실을 둘러보거나 1층으로 다시 내려갈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사라진 아이의 병실은 204호라고 하네요.
 
헤이즐 레르:역시, 그게 좋겠지? (선량한 행동을 원해서 하는건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그냥 지나치기도 불편했다. 병실들을 돌아본다. 일단은 204호 먼저.)
 
아이가 사라졌다던 병실입니다. 4인실로 한 침대만 텅 비어있습니다.
 
아무래도 저기가 아이의 침대인 모양이에요.
 
다른 침대의 환자들 옆에는 간병인이 한 사람씩 붙어 있습니다.
 
몹시 피곤해 보여요. 조용히 보고 나가야겠습니다.
 
헤이즐 레르:(슬쩍 쳐다보고 나오기만 한다. 203호도 갈 수 있나?)
 
옆 병실에도 가볼 수 있습니다.
 
문을 열면, 아이는 보이지 않습니다.
 
복도를 걸으며 쭉 둘러보면, 빈 병실 하나 없네요.
 
심지어 4인실도 6인실로 사용하는 모양입니다.
 
장기 입원 환자가 많아졌기 때문일까요?
 
하기야, 죽기 직전의 몸상태인 사람들이 할 수 있는 건 많지 않을테니 어쩔 수 없습니다.
 
<관찰력> 판정
 
헤이즐 레르:
관찰력
기준치: 75/37/15
굴림: 56
판정결과: 보통 성공
 
한 병실에서 바닥에서 비명을 지르는 머리와 시선을 마주합니다.
 
모든 신체는 몸에서 잘려도 뇌가 살아있는 한 기능한다곤 들었는데.
 
실제로 보는 건 처음입니다. SANc (0/1)
 
헤이즐 레르:
SAN Roll
기준치: 60/30/12
굴림: 26
판정결과: 어려운 성공
 
이성 감소 없음.
 
곧 간병인으로 보이는 사람이 머리를 주워 환자복을 입은 목의 단면에 각목과 붕대로 감아 고정시키네요.
 
또 떨어져버렸네, 하는 말로 봐서 한두번 있던 일은 아닌 모양입니다.
 
헤이즐 레르:... (움찔, 눈이 마주치자 걸음이 멈췄다. 그러고보니 아이는 어떻게 다쳤길래 움직일수 있었지? 다시 204호로 돌아가서 아이 침대를 살핀다.)
 
어린아이의 침대라고 부르기에는 너무 삭막한 디자인입니다. 병원 침대가 다 그렇겠지만요.
 
<관찰력> 판정
 
헤이즐 레르:
관찰력
기준치: 75/37/15
굴림: 61
판정결과: 보통 성공
 
이불 아래로 작게 꿈틀거리는 무언가가 보입니다.
 
헤이즐 레르:...?
(봅..니다...)
 
이불을 걷어 살펴보니, 아, 자그마한 발입니다.
 
발목의 잘린 단면 부분은 검게 썩어 있어요.
 
바르르 떨리는 모습이 경련이라도 일으키는 것 같습니다.
 
…그러고 보면 절단된 신체에서도 신경이 살아있어, 통증을 느낀다던가요.
 
이불 위에 놓인 삐뚤삐뚤한 글씨의 쪽지가 눈에 띕니다.
 
[의사 선생님, 나 너무 아파요.]
 
쪽지를 읽어내려가던 그때, 보호자로 보이는 사람이 다가옵니다.
 
보호자:누구십니까? (눈시울이 붉어진 채 걸어들어온다.)
 
불안하게 주변을 둘러보는 걸 보면, 아직 아이는 찾지 못한 모양입니다.
 
헤이즐 레르:... 아, 저기... 안녕하세요. 아이를 찾는걸 도와드리려고요. ... 아이가... 어디로 갔을지 예상이 가는 곳이 있으실까요?
 
보호자:아이를 찾는 걸 도와주겠다고요? (눈가를 닦다가, 갑자기 의심과 불신이 어린다.) 그 핑계로 또 그놈의 만병통치약이니 신이니 이야기를 하러 온 건 아니고?
 
당한 게 꽤나 많아보입니다.
 
대인 기능 판정, 어려움 성공 이상이 필요합니다.
 
헤이즐 레르:... 아? 무슨 말씀을 하시는건지 잘 모르겠어요... 만병통치약이라는게... 있나요? 저는 정말 아이 찾는걸 도와드리려고 온건데...
설득
기준치: 50/25/10
굴림: 82
판정결과: 실패
매혹
기준치: 15/7/3
굴림: 22
판정결과: 실패
(오늘치 운을
끌어다 쓴다...)
 
행운 7 감소, 성공으로 판정합니다.
 
보호자는 금세라도 당신을 내쫓을 태세였다가, 점점 감화된 듯 표정이 풀립니다.
 
보호자:아아, 그렇군요. 순수한 마음으로 도와주시려 했는데, 저는 그것도 모르고…… 정말 죄송합니다. 하도 사이비들이 멋대로 들어와 떠들어대는 통에 그만 이번에도 마찬가지인 줄 알았어요.
돌아볼 만한 곳은 다 돌아본 것 같은데, 보이질 않아 걱정이에요. 그 아이가 갈 만한 곳이 어디 있다고... (눈물 참는다.) 혹시 괜찮으시다면 후원 쪽을 봐주시겠나요? 저는 정문 근처를 다시 돌아보고 와야겠어요.
 
헤이즐 레르:네, 그럼 혹시 아이를 찾으면 병실로 데려올게요.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금방 찾을 수 있을거에요. (울음 참아내는 보호자를 다독이고는 걸음 옮긴다. 후원... 후원...) 아이린, 갈까?
 
아이린 E. 테라코르:(고개 끄덕인다.) 쫓겨나지 않아서 다행이네. 확실히 교사로 일했던 경험이 있어서일까, 제법이던걸.
 
헤이즐 레르:... 학부모님들 상대하는게... 여기서 도움이 될줄은 몰랐네... (농담처럼 웃는다. 후원까지 얼마나 남았을까?)
 
두 사람은 전단지의 위치에 가까운 후문 쪽으로 나가기로 합니다.
 
후문까지는 그리 멀지 않습니다.
 
<듣기> 판정
 
헤이즐 레르:
듣기
기준치: 70/35/14
굴림: 93
판정결과: 실패
 
오늘따라 유독 조용한 기분이네요.
 
두 사람은 골목길로 들어갑니다.
 
그늘에 가려져 잘 보이지 않는 장소.
 
고개를 들면 3층의 병원 화장실 쯤에 열린 창문이 보여요.
 
그리고 아래에는 자그마한 어린 아이가, 머리를 붉게 물들인 채 꿈틀대고 있습니다. SANc (1/1d2)
 
헤이즐 레르:
SAN Roll
기준치: 60/30/12
굴림: 96
판정결과: 실패
1
 
이성 1 감소.
 
환자복을 입고 있는 아이입니다.
 
왼쪽 발목 아래는 텅 비어있으며 반쯤 들춰진 옷 아래로 너덜너덜한 허리 가죽이 보여요.
 
뼈가 드러나있는 걸 천으로 덧대어 기워뒀네요. 이건 방금 생긴 상처가 아닙니다.
 
이 아이 또한, 죽지 않아서 살아있던 장기 환자인 모양입니다.
 
아이: .......
 
아이가 무어라 말하려 들지만, 신음에 섞여 알아들을 수 없습니다.
 
아이를 바라보던 아이린이 당신의 손을 느리게 감싸쥡니다.
 
아이린 E. 테라코르:... 가망이 없어 보이네.
 
헤이즐 레르:... 어떻게 하면 좋을까. 내가 해줄 수 있는 일은 없는거겠지?
 
아이린 E. 테라코르:저 아이가 원하는 대로, 죽여줄 수도 있겠지. (창문을 무심히 올려다본다. 이런 와중에도 인상 하나 찌푸리지 않은 채다.)
 
자그마한 머리통. 멸망하는 세계에서 온전한 죽음을 얻는 유일한 방법은.
 
아이린 E. 테라코르:그걸 바라 뛰어내렸을 테니.
 
생물의 뇌를 부수는 것 뿐입니다.
 
헤이즐 레르:... (작은 쥐와 아이. 생명에 경중을 두는 것은 의미가 없다고는 하지만 사람을 해치는 일부터는 꺼려지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왔던 길을 돌아가며 의사를 찾고는.) 저쪽에, 아이가 있어요. 그런데...
보호자를 불러주셔야 좋을 것 같아요.
 
의사가 고개를 끄덕이곤 여러 지시를 내립니다.
 
응급대원 몇이 들것을 들고 후문 쪽으로 향하고, 다른 이는 곧 보호자를 불러오네요.
 
헤이즐 레르:... 아이린, 갈까.
(자리를 피하고싶은 표정이다.)
 
아이린 E. 테라코르:... 그래. 이만 가자꾸나. (망설임없이 병원을 뒤로하고 발을 내딛는다. 한때 아이들을 돌봤던 당신에게 저렇게 끔찍한 아이의 모습이 긍정적으로 다가올 수만은 없겠지. 그런데도 여전히 소름끼칠 만큼 무심한 모습이다.)
 
아이린은 어떻게 이리 아무렇지 않은 걸까요.
 
그는 인정을 모르는 사람이 아닐 텐데.
 
아이린이 조용히 중얼입니다.
 
아이린 E. 테라코르:저 아이도, 병원의 사람들도 ■상적이라면 진작에 죽었을 상태였어. 미쳐버린 것 같은 이 ■■이 정■적인 죽음마저 앗아가는 거겠지.
... 내 손길만 닿지 않았다면 ■■적으로 살아갈 수 있는 목숨들이 여럿 있었겠지. (자괴감이 손끝을 갉아먹는 것 같았다.) 나도 다를 바 없어. 나 역시 비정상적이야. (마지막엔 거의 혼잣말 같았다.)
 
헤이즐 레르:... 세상에는... 정상과 비정상으로 간단히 나눌 수 없는 것도 있어. 사람은 그만큼 복잡하고 양면적인 존재니까. ... 하지만, 아이린. 있잖아... 거기선 무슨 일을 하기에 이렇게 담담한거야? 이런 장면을 봐둬야할 필요가 있는 일들이 일어나는거니?
 
아이린 E. 테라코르:복잡미묘한 존재지. 인간이란 건. (고개를 살짝 떨군다.) ... 그래. 어느 정도는 네가 봐둬야 한다고 생각했어. 그리고, ■■해야 한다고. 어째서 이런 비정상적인 ■■이 일어날 수 있다고 생각하니?
■■을 알게 될 쯤에는 너도 ■■■ ■■■■■ 확신하겠지.
 
여전히, 태반이 알아듣기 어려운 말들뿐이네요.
 
더 이상 태어나지 않는 생명. 뇌를 부수지 않는 한 죽을 수 없는 현상.
 
잘려져 썩으면서도 좀비마냥 움직이는 절단 신체들.
 
양면으로 쉽게 나눌 순 없다지만, 이걸 정상이라 말할 수 있는 사람은 없을 겁니다.
 
시간이 흐를수록 상황은 악화만 되겠죠.
 
뇌를 꺼내서 통 속에 담아둔다면, 우리는 뇌도 없이 영원토록 썩은 몸뚱아리를 끌고 살아가게 될까요?
 
서로를 살아있는 사람이라 부르는 새 인류를 맞이해야 할까요.
 
허무맹랑한 감상이 스칩니다.
 
▷ 사이비 종교
 
다시 잠시간 걷다보면 어느덧 전단지에 쓰인 주소입니다. 다소 허름한 건물이 보이네요.
 
헤이즐 레르:... 도착한거야?
 
유리벽에는 반쯤 뜯어진 임대 스티커가. 바닥에는 부러진 십자가가 있습니다.
 
아이린 E. 테라코르:도착했구나.
 
건물을 바라보던 아이린이 당신을 물끄러미 바라봅니다.
 
아이린 E. 테라코르:■을 믿니?
 
아이린의 말은 이번에도 역시 잘 들리지 않습니다.
 
하지만 어쩐지, 무얼 묻는지 알 것 같아요.
 
헤이즐 레르:... 신을 믿는거냐고 묻는다면, 아니. 안 믿어. 그렇지만... 이 상황이 신의 존재에 대한 증명이라면 어쩔 수 없겠네.
 
아이린의 시선은 부러진 십자가에 고정되어 있습니다.
 
생명력이 끊긴 세상. 환생과 윤회가 의미를 잃는 순간.
 
아이린 E. 테라코르:나 역시 마찬가지야. 하지만 병원에서 본 바에 따르면, 사이비 신도들이 제 집처럼 드나드는 것 같았지.
그걸 막지 못하는 건지, 동조하는 이들이 있어 막질 않는 건진 모를 노릇이지만...
세상이 이 지경이니 무■론자라도 관심이 갈 만도 하겠지.
 
막연한 기다림에 지치고, 굳건했던 믿음이 흔들린 사람들의 선택은.
 
아이린 E. 테라코르:보다 더 완벽한 ■을.
 
건물 안쪽에서 들려오는 다수의 박수 소리에 있습니다.
 
아이린 E. 테라코르:그 ■이 자신의 편이기를 바라는 건, 어디서 온 오만일까? (입꼬리를 비튼다. 냉소가 어렸다.)
 
헤이즐 레르:... 그러니까... 여긴 그런 존재를 만들어내고자 하는거야?
 
아이린 E. 테라코르:글쎄... 자신의 입맛에 맞는 ■을 만들고 싶어하긴 하겠지. 나도 정확히는 잘 몰라. 이런 곳에는 관심이 없었으니까.
(어두운 낯으로 건물을 바라보다) 들어갈까?
 
헤이즐 레르:응. 들어가자. (고개 끄덕이고 걸음 옮긴다.)
 
건물의 문은 쉽게 열립니다.
 
안쪽 벽면에는, 당신이 받았던 전단지가 잔뜩 붙어져 있습니다.
 
박수는 멈춰있고 누군가의 목소리가 크게 울립니다.
 
소리는 2층에서 들립니다. 1층에는 특별하게 볼 건 없어 보이네요.
 
헤이즐 레르:... (전단지에 특이한 점은 없나?)
(없다면 2층으로 올라간다.)
 
당신이 받은 내용과 같을 뿐, 특별한 점은 없습니다.
 
계단을 타고 올라가면 활짝 열려있는 강당 문과 그 안 가득한 사람들이 보입니다.
 
앞쪽에는 정장을 입은 여자가 마이크를 쥐고 연설하고 있네요.
 
아무래도 저 여자가 이곳의 교주인 모양입니다.
 
교주:아, 저는 당시까지만 하더라도 그 수치가 무얼 뜻하는지 알 수 없었습니다. (과장된 목소리가 마이크를 타고 울려퍼진다.)
 
<지능> 판정
 
헤이즐 레르:
지능
기준치: 50/25/10
굴림: 64
판정결과: 실패
 
교주의 얼굴이 어째 낯익습니다. 티비에서 몇 번 보았던 것 같기도 하네요.
 
교주:작은 수가 떠오를 때면 행운이, 큰 수가 떠오를 때면 불행이 나타나는 정도로만 겨우 알아냈습니다. 당시에는 감히 상상도 못했습니다. 이 숫자야말로 신이 우리에게 내린 재능의 수치라는 것을!
 
허공에서 사라져가는 숫자 50 뒤로, 강당의 현수막이 보입니다.
 
검은 바탕에 각양각색의 주사위가 그려져 있네요.
 
저게 사이비 종교의 상징물이라도 되는 모양입니다.
 
교주:신께서는 우리에게 가능성도 함께 내어주었습니다. 재능의 수치에 배움을 올려 노력하면 나아갈 수 있도록 하나하나 전부 설계하여 우리를 아낌을 보여주셨습니다.
 
열띤 연설에 신자들은 잔뜩 몰입하고 있네요.
 
헤이즐은 어떤 생각이 드나요?
 
헤이즐 레르:... ... ... (뭐라는거야? 사이비 보는 눈으로 쳐다본다.)
 
사이비의 헛소리로밖에 들리질 않네요.
 
그때, 누군가가 헤이즐에게 다가옵니다.
 
헤이즐 레르:...? (고개 돌려 바라본다.)
 
남자:처음 오신 분이십니까? 환영합니다.
 
<관찰력> 판정
 
헤이즐 레르:
관찰력
기준치: 75/37/15
굴림: 49
판정결과: 보통 성공
... 아, 네. 안녕하세요.
 
말끔하게 정장을 차려입은 남자입니다.
 
손목에는 주사위 문신이 새겨져 있습니다.
 
남자:저희 교주님의 연설은 어떠십니까? 참으로 경건하고 신실한 연설이지 않습니까. (그 역시도 종교에 푹 빠진 듯하다)
저희 교주님은 반년 전까진 유명 종교의 대표인이셨지요. 세계가 멸망하기 시작한 지 두 달쯤 되었을 때 사고로 뇌가 으깨져 '죽음'을 겪으셨다 들었습니다.
그렇지만, 놀랍게도 일주일 뒤 지금처럼 멀쩡한 모습으로 살아 돌아오신 겁니다! (흥분하여 목소리가 절로 커졌다가, 뒤늦게 한 톤 낮춘다.) 진실된 '신'을 보았다 말씀하셨었지요.
 
헤이즐 레르:... 아, 예. ... 진실된 신이라고 한다면... 어떤 신인가요?
 
남자:그 말씀은 교주님께 직접 들어보시는 게 어떻겠습니까? 바라시기만 한다면 면담할 수 있도록 자리를 마련해드리게습니다.
 
참 적극적이네요.
 
헤이즐 레르:... 음, 그러면... 부탁드릴수 있을까요? 제가 오늘 여기에 처음 온거라서 무슨 말씀을 하시는지 잘 모르겠거든요. 좀 더 정확한 설명을 듣고싶어요. 주사위라느니, 숫자라느니... 하나도 모르겠네요.
(그래도 괜찮을까? 하며 아이린 돌아봅니다.)
 
아이린 E. 테라코르:(꼭 그림자처럼 소리없이 한 걸음 떨어진 뒤쪽에 서 있다가, 고개 느리게 끄덕인다.) 만나볼 수 있다면 오히려 잘 된 일이지.
 
그런데, 남자는 아이린을 전혀 의식하지 않는 것 같습니다.
 
남자:(뒤돌아보는 모습에 의아해하며) 그쪽에 무어라도 있습니까? 거긴 그냥 벽밖에 없습니다만...
 
헤이즐 레르:... 네? ... 아이린, 그러니까... 여기 있는 여성이 안보이시나요? (아이린이 있는 자리를 돌아보고는.)
 
남자:...? (시선이 그쪽으로 향하나, 의아함은 여전하다.) 아하하. 농담을 하시는 거군요. 하지만 신 앞에서 귀신 같은 건 어떤 힘도 발휘하지 못할 겁니다.
그럼, 접대실로 안내해드리겠습니다. 당신도 선택받은 분 같으니.
 
헤이즐 레르:... 아, 예... (미심쩍은 얼굴 하고있지만 아이린에게 손 뻗는다. 내가 환각을 보는게 아니라면 손에 닿지 않을까?)
 
아이린에게 손을 뻗자, 희미하게나마 닿는 감촉이 있습니다.
 
어떻게 된 걸까요? 저들의 눈에 아이린은 보이지 않는 걸까요?
 
떠올려보면 병원에서도 아이린에게는 그 누구도 관심이 없었던 것 같습니다.
 
헤이즐 레르:... (아이린을 돌아본다. 손에 닿는 느낌이 평소랑은 다른 것 같다고 생각하면서도 일단 앞을 향해 걸어간다.)
 
아이린 E. 테라코르:... 무슨 생각하니, 레르? (희미하게 입꼬리 끌어올리고는, 당신을 따라 느리게 걷기 시작했다.)
 
헤이즐 레르:... 네가... 어쩌면 여전히 누군가에게는 보이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 있지, 아이린. 내 옆에 있는거 맞지?
 
아이린 E. 테라코르:그럼. 네 곁에 있지. 지금 이렇게, 대화를 나누고 있잖니? (손 뻗어 당신의 팔을 톡 건드린다. 그러나 여전히, 아주 미약한 촉감이다.)
 
헤이즐 레르:... 내 옆에 온전히 존재하는게 맞아?
 
아이린 E. 테라코르:......
(앞을 향해 턱짓한다. 남자가 문을 열고 당신을 기다린다.)
 
헤이즐 레르:(아이린을 잠시 바라보다가 앞을 바라본다. 천천히 앞으로 걸어가면서.) ... 어디, 이상한데로 멀리 가버리면 안돼. 알았지?
 
아이린 E. 테라코르:어디도 안 가. 네 곁에 있어. 지금처럼... (목소리가 꼭 안개와도 같았다.)
 
헤이즐은 2층 복도 안의 접대실로 안내받습니다.
 
벽면 가득히 주사위가 그려진 풍경은 집착적으로 보일 정도입니다.
 
남자:(티백을 담은 찻잔을 당신 앞에 내어준다. 하나뿐이다.) 교주님께선 이전의 거짓된 신을 믿던 때를 후회하며 새 교단을 열 결심을 하셨죠.
그분의 결심과 의지가 당신에게 닿길 바랍니다.
 
남자는 곧 물러납니다.
 
헤이즐 레르:... 감사합니다. (대답하고는 멀어지는 남자를 바라보며 교주를 기다린다.)
... (그리고는 아이린에게) 앞으로도?
 
아이린 E. 테라코르:... 네가 바란다면. (멀어지는 남자를 보며 미간을 살짝 찡그린다.)
 
<지능> 판정
 
헤이즐 레르:
지능
기준치: 50/25/10
굴림: 90
판정결과: 실패
 
어쩐지 이곳에 들어온 이후로 아이린의 기분이 좋지 못한 것 같습니다.
 
헤이즐 레르:... 아이린, 기분 안 좋아?
 
아이린 E. 테라코르:... 너 때문에 그런 건 아냐. 이곳을 봐. 딱 봐도 정상적으로 보이진 않는 풍경이잖니? (주사위로 가득 찬 벽면을 흘끗 둘러본다.)
네게 도움이 될 것 같아 오자고 하긴 했지만, ... 역시 난 종교는 마음에 들지 않는구나.
 
헤이즐 레르:... 확실히 보고있으면 머리가 아픈 풍경이긴 하지. 신은 주사위 놀이를 하지 않는다던데... 여기에서 믿는 신은 아닌가보네.
 
말을 잇던 찰나, 접대실의 문이 열립니다. 앞편에서 연설하던 교주가 들어섭니다.
 
교주는 당신을 바라보고는 진심으로 기뻐하며 인사합니다.
 
교주:어서 오세요! 저희 종교에 관심이 있으시다고 들었습니다. 이곳은 새로운 신자들을 언제나 환영하는 곳이죠.
 
헤이즐 레르:... 아, 네. 안녕하세요. 조금 전에 연설하시던걸 듣고 관심이 생겨서요. 그렇지만 제가 아직 잘 모르는 것이 많아서... 설명을 듣고싶어서 이렇게 모시게 되었습니다.
그... 주사위에 대해 설명해주실수 있으실까요? 궁금하네요.
 
교주:후후... 주사위야말로 당신이 신에 선택받았다는 증거겠지요. 진짜 신께서는 기본적으로 우리에게 시련을 내려주시되, 끼어들지 않고 지켜보기를 택한답니다. 저희가 이를 이겨낼 수 있으리라 믿으시기 때문이죠.
하지만, 이번의 멸망이라 일컫는 재해는 그 선을 넘었기에 신께서 우리를 구원하시리라 결심한 겁니다.
신께서 한 번에 구할 수 있는 범위는 한계가 있어 구원이 지체된다고 느낄 수 있지만, 길게 생각한다면 이 또한 짧은 시간일 뿐이지요. 무려 신계와 현계의 거리이니 이 정도 시간이 걸리는 것도 당연하답니다. 저는 그 거리를 좁히는 게 옳다 생각했고, 이렇게 신의 존재를 알리는게 이를 위한 도움이 될 거라 판단했답니다.
그러니 당신도, ... 흐음. 성함을 먼저 물어도 괜찮을까요?
 
헤이즐 레르:(그 설명들을 제 나름 귀담아 듣다가.) ... 아, 헤이즐 레르라고 해요.
 
교주:그래요, 헤이즐 씨. 헤이즐 씨 역시도 신을 이해하고자 마음먹으면 금방 손길을 받고 구원받으실 수 있을 겁니다. 구원을 바라 이곳에 오신 걸까요?
 
헤이즐 레르:... 네, 이런 세상은... 솔직히, 이런 재앙을 바라는 이는 누구도 없을테니까요.
 
교주:아아, 그렇다면 정말 잘 오셨습니다! (감격에 가득 차 기뻐한다. 신을 찬양하는 모습에선 환희가 느껴질 정도다.) 저는 죽음의 문턱에까지 갔었으나, 신의 구원에 의해 상처조차 남지 않은 채 다시 이 세계에 돌아올 수 있었죠. 의식을 잃었던 순간 제가 보았던 곳이야말로 신의 축복이 내린 공간이었을 겁니다!
저는 그 고차원의 세계에서 살아갈 수도 있었으나, 제가 알게 된 '진짜 신'을 사람들에게 알려야 한다 생각해 돌아오길 택했답니다.
언제든 이 교단에 오셔도 괜찮습니다. 당신은 선택받은 자이니 저와 함께 선교 활동을 해주시는 것도 좋겠지만, 제가 강제로 붙잡을 수야 없는 노릇이겠죠. 후후...
 
고차원의 세계? 신의 축복? 전부 기이하고 이상한 내용들뿐이지만...
 
헤이즐은 ‘본능적으로’ 그 말이 진실임을 깨달을 수 있었습니다.
 
헤이즐 레르:... 그렇군요. 그러면, 저는 그 신을 믿으면 구원 받을 수 있는걸까요? 재능의 수치라거나... 배움을 노력한다거나 해서 말이에요. (말 하면서 아이린을 잠깐 바라본다. 이게... 맞는 말인가?)
 
아이린 E. 테라코르:(다리를 꼰 채로 교주의 말을 듣다가, 당신의 시선을 받곤 고개를 끄덕인다.) 사실이야.
 
지금 사는 세계보다 고차원의 세상이 있단 현실성 없는 이야기가요?
 
그렇지만 놀랍게도, 아이린마저 긍정하고 마네요.
 
헤이즐 레르:... ... ... (긴 숨 내쉰다.) 교주님의 말슴은... 거짓말을 하시는 것 처럼 들리지는 않네요. 아직 인간이 모르는 것은 많으니까요.
그럼, 제가 이제 무엇을 해야할까요?
 
교주:후후. 우선은 저희 교단이 하는 일에 관해 설명해드리는 게 좋겠군요. 여러 단체와 협업하여 행사를 진행하고 있답니다. 혹 저희 교단이 만든 전단지는 받아보셨는지요?
 
헤이즐 레르:네. 받았어요. 그 전단지를 보고 여기까지 왔답니다. ... 단체? 행사? 어떤...?
 
교주:홍보팀과 함께 전단지를 열심히 만든 보람이 있네요! 잠시 이곳에서 기다려 주시면, 저희 교단이 지금껏 진행해 온 행사와 선교 활동에 관한 자료를 갖고 오겠습니다.
신을 믿으신다면, 반드시 구원받으실 수 있을 겁니다. (확신에 가득 찬 목소리다.)
 
교주는 기분 좋은 얼굴로 자리에서 일어납니다.
 
교주:자료를 챙겨오기까진 좀 시간이 걸릴 테니, 이곳에서 차를 마시며 편히 기다려 주세요.
이곳에서 기도를 올리며 신실함을 키우다 보면, 헤이즐 씨에게도 때를 알리는 신호가 들려올 겁니다. 넘어가더라도 부디 당황하지 말고, 인도해주시는 그 길을 따라가시기를. 주사위 소리가 끊어지는 그곳이야말로, 구원의 끝이랍니다. (끝까지 신실함에 가득 찬 발언을 하며 방을 나선다.)
 
아이린까지 긍정해주었으니 거짓은 아니리란 생각이 들면서도 찝찝함은 가시지 않습니다.
 
어쩌면 머릿속이 복잡해져서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아이린 E. 테라코르:교주의 말이 틀린 건 아니라지만, 그렇다고 좋게 봐주고 싶진 않네. (교주의 뒷모습을 노려본다.) 그걸 신이라고 봐줄 수 있는지도 모르겠을 뿐더러, 이 세상이 신에 의해 놀아나고 있다는 거나 마찬가지인데 어떻게 저리 좋아할 수가 있는 거지?
 
헤이즐 레르:... 본인이 구원받을 수 있는 사람이라서 그렇겠지. 그러니까 저런 반응을 보일 수 있는거야. 구원받지 못하는 다른 사람들의 입장에서는 좋은 일은 아니겠지만 말이야. (차를 한 모금 마시고는 내려놓는다.)
신이라는거... 정말 있구나.
그것도 주사위 놀음을 하는 신이. (작게 웃는다.)
 
아이린 E. 테라코르:글쎄. 나 역시 교주와 같은 상황을 겪었어. 하지만 교주는 곧장 돌아온 것과 다르게, 나는...
여전히 이곳에 있지. (한숨을 쉰다.) 그래도 이제 이 정도 정보는 필터링되지 않는구나.
 
헤이즐 레르:... 이곳이라는게 정확하게 어디야? 네가 무슨 말을 하는지 이해가 잘 가질 않아...
내 옆에 있지만, 내 옆에 있지 않은 것 같아.
 
아이린 E. 테라코르:교주가 말한, 고차원의 세계지. 내 입으론 네게 전달할 수가 없었는데, 직접 다녀온 이가 말해주니 이제 이 정돈 알려줄 수가 있구나. (교단에 오자고 한 것도 아마 이 때문이었던 듯.)
 
헤이즐 레르:... 그럼, 너는 지금 아직도 거기에 있는거야? 내 옆이 아니라?
... 어떻게 하면 네가 돌아올수 있어? 아직... 거기에 있으면, 거긴... 괜찮아? 만약에 내가 구원받으면 나도 거기로 가는거니?
 
아이린 E. 테라코르:맞아. 이건 잠시 ■을 빌린 것일 뿐, 내가 너와 소통하는 건 ■■■를 이용한 거야. 아, 아직도 전부 전할 수는 없구나... (한숨 쉬며 이마 짚는다.) 돌아가는 방법을 찾아봤는데, 아무래도 네가 이 세계에 와야 할 것 같아.
구원받아서 이곳으로 오는 게 아냐. 네가 정말 이곳에 온다면, 신이니 구원이니 하는 건 다 저 신에 미친 자의 헛소리라는 걸 깨닫게 될걸.
그렇지만, 이 세계가 그곳보다 ■■한 건 확실한 사실일 테지.
 
헤이즐 레르:... 그렇구나. 갑자기 너무 큰 일에 휘말린 기분이네. ... 물론, 이미 이 세계 자체가 이상한 일이니 어쩔 수 없지만...
그래도, ... 응. 그쪽으로 갈 수 있게 노력해볼게.
 
아이린 E. 테라코르:아직 방법도 모르면서. (문득 애정어린 손길로 당신의 볼을 쿡 찌른다. 그래봤자 거의 느껴지지도 않았겠지만.) 그래, 네가 있는 그 세계는 이상해. 망가지고 있고, 곧 망가지겠지. 그런 곳에서 같이 스러지게 두진 않을 거야.
 
그나저나, 교주가 꽤 오랫동안 돌아오지 않네요.
 
교주와 아이린에게 들은 충격적인 사실을 곱씹던 찰나...
 
<듣기> 판정
 
헤이즐 레르:
듣기
기준치: 70/35/14
굴림: 14
판정결과: 극단적 성공
 
바깥이 시끄럽습니다.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려요.
 
귀를 기울이면, 살려달라 애원하는 목소리와 비명 섞인 외침이 들립니다.
 
아이린 E. 테라코르:...! 헤이즐!
 
아이린이 다급히 당신의 팔을 잡아끕니다. 그리고,
 
쾅!
 
귀를 찢는 굉음이 들려옵니다. 건물이 흔들리고 귀가 멍해집니다.
 
각종 비명소리가 들려오는 가운데 시야가 뿌얘집니다.
 
스물거리며 밀려오는 연기에 숨이 턱 막힙니다.
 
<지능> 판정
 
헤이즐 레르:
지능
기준치: 50/25/10
굴림: 37
판정결과: 보통 성공
 
요즘 부쩍 늘어난 테러 사건이 떠오릅니다.
 
이유는 다양했지요.
 
폭사로 뇌까지 터져 죽고 싶다던 신종 자살법. 몇 남지않은 종교마저 노리는 신에 대한 원망풀이.
 
멸망한 세계에 희망은 없다는 미치광이 사이비들까지.
 
이번에도 그런 걸까요? 알 수 없습니다.
 
헤이즐 레르:... 아, (잡아당기는 미약한 손길에 끌려가는가 싶다가 갑작스레 들려오는 굉음에 눈을 크게 뜬다. 아, 또 테러구나. 놀란 가슴과 다르게 머리는 침착했다.) ... 일단, 나가야겠지. (비상구가 주변에 있나?)
 
나갈 곳이라곤 문밖에 보이지 않습니다. 심지어 이 방에는 창문도 없네요.
 
헤이즐 레르:... (일단 문을 열어본다. 혹시 손잡이가 뜨거울까봐 문 열기 전에 옷으로 감싸고 연다.)
 
덜컹, 덜컹.
 
문을 열려 시도하지만, 건물이 흔들리며 문제가 생겼는지 꽉 끼여 열리질 않습니다!
 
도저히 도망칠 곳이 보이지 않건만, 연기는 문틈새로 계속해서 미어져들어옵니다.
 
헤이즐 레르:... 하, 진짜. (적당히 식었을 찻물로 소매를 적시고 입가를 가로막는다. 이후, 찻잔으로 문고리를 부숴보려고 한다. 이 잔은 뭘로 만들어진 잔이지?)
 
찻잔은 플라스틱입니다.
 
그닥 위력에 도움이 되지 않을 것 같네요.
 
그래도 어쨌건 헤이즐은 몇 번이나 문을 내리쳐봅니다.
 
연기를 너무 마셔서 그런지 속이 울렁거립니다. 절로 마른 기침이 터집니다.
 
비교적 멀쩡해 보이는 아이린이 옆에서 초조한 얼굴로 당신을 바라보고 있습니다.
 
아이린 E. 테라코르:헤이즐... (이곳에 없는 존재이기 때문일까? 방에 들어차는 연기에도 불구하고 표정이 나쁠 뿐 기침은 하지 않는다.) 안 돼. 아무래도 열리질 않잖아. (옆에서 문손잡이를 당겨보려 하지만, 손이 문고리를 쥐는 듯 싶다가 통과해버린다.)
... 헤이즐, 살고 싶니?
 
… 그러고 보면 처음에 아이린은 말했습니다. 멸망하는 세계에서 살아남는 법을 알려준다고.
 
그런 아이린이라면 지금 상황의 해결책도 알고 있지 않을까요?
 
헤이즐 레르:... 살고싶냐고 묻는다면 그렇게 절박하진 않은데, 그래도 죽고싶진 않아.
게다가, 여기서 죽으면 죽지도 못하고 아플거잖아?
 
아이린 E. 테라코르:(어둡게 고개 끄덕인다.) 이 세계에선, 죽더라도 죽는 게 아닌 영생의 삶을 살게 될 거야.
교주가 죽었다가 살아났다 하였던 말을 기억하니? 조건을 채우기만 하면 너 역시 가능해.
꼭 그처럼 죽을 필욘 없어. 오히려 교주의 경우가 특이 케이스였겠지.
이제는 내가 말하지 않아도 알잖니? (연기가 점점 더 매캐하게 방을 채운다. 초조하게 당신의 손을 붙잡으려 한다.) 비현실적인 상황들, 고차원의 세계, 고차원의 존재에게 '선택'받았다는 것...
그들이 개개인의 인생을 주무르고 있어. 그게 뭘 뜻할 것 같아?
 
문득, 더 이상 아이린의 말이 끊겨 들리지 않는단 걸 깨닫습니다.
 
뿌연 연기. 타들어갈 것 같은 심장. 흔들리는 몸.
 
그 속에서 아이린의 목소리만이 선명하게 들려옵니다.
 
어째서일까요? 현실감 없게도.
 
…이 모든게 한 편의 극처럼 느껴집니다.
 
아이린 E. 테라코르:네가 살기를 바라. 그러니 이젠 인정하고, 말해.
네가 있는 그곳이 ■■라는 걸.
 
■■. 들리지 않는 단어에 대한 의문은 들지 않습니다.
 
당신은 이미 답을 알고 있는 걸요.
 
이제는 시야가 새까맣게 물들어 아무것도 보이지 않습니다. 아이린조차도.
 
아, 이대로 죽는 걸까요.
 
모든 게 만들어진 ■■세상에서, 죽어도 죽지 못한 채로요?
 
헤이즐 레르:... (콜록, 기침이 나오는 것을 막을수가 없다. 눈이 매워서 눈물이 나오는걸까. 아니면, 이 현실에 슬픈걸까. 선명히 들리는 네 목소리에 느리게 웃었다.)
... 네가 뭐라고 하는건지 잘 모르겠어. 그렇지만, 어쩌면... 알 것 같아. 그래서 네가 무슨 말을 했는지 궁금하지가 않아. ... 여긴, 지옥인가봐 아이린. 열심히 살지 않아서 벌을 받는걸까?
그래도, 죽고싶지 않아.
적어도 이렇게 죽고싶진 않아.
 
아이린 E. 테라코르:그렇다면 네 입으로 말해야 해! (당신의 양손을 붙잡은 채 간절히 말한다.) 이 세상은 누군가에 의해 만들어진......
 
가짜 세상이라고.
 
목소리가 들리지 않았으나, 번개처럼 깨달을 수 있었습니다.
 
헤이즐 레르:맞아. 여긴, 누군가의 장난감같은 세상인가봐. 여긴... 가짜구나. 그런거구나...
내가 있는 세상은, 가짜인거야. 이제 알 것 같아.
 
당신이 '가짜'라는 말을 뱉는 순간, …몸이, 크게 흔들립니다.
 
사지가 끊기는 고통이 이럴까요. 무언가에 튕겨져 나가는 기분이 들고 속이 울렁거립니다.
 
너무도 끔찍한 고통입니다. 생리적으로 나오는 눈물을 흘리고 거친 숨을 토해내다 보면...
 
...
 
아이린 E. 테라코르:헤이즐! 정신이 드니?
 
처음 보는 낯선 방입니다.
 
불길도 무엇도 없는.
 
헤이즐 레르:... 아이린? 아이린인거야...?
... 나, 분명 방금 전까지... ... 여긴 어디야?
 
아이린 E. 테라코르:그래...! 나야. 아이린이야. (당신의 손을 꾹 맞잡으며 반대쪽으로 어깨를 받쳐준다. 이제야 온전한 감촉과 체온이 느껴져 왔다.)
 
방에는 앞과 뒤로 [문]이 두 개 있고 왼편에 커다란 [컴퓨터]가 하나 있습니다.
 
<지능> 판정
 
헤이즐 레르:
지능
기준치: 50/25/10
굴림: 26
판정결과: 보통 성공
 
이게 무슨 상황인가 고민하기도 잠시. 본능적으로 깨닫습니다.
 
앞쪽의 문은 고차원의 존재가 사는 세상이고, 뒷쪽의 문은 당신이 살아왔던 세상입니다.
 
이 방은 그 사이의 틈 정도 되겠네요.
 
헤이즐 레르:... 아아린이구나... (이번엔 정말 내 옆에 있는 아이린이다. 얼떨떨함에 눈을 깜빡이다가 컴퓨터를 본다.) ... 저건 뭐야?
 
커다란 컴퓨터입니다. 화면을 살펴보면, 세 개의 창이 보입니다.
 
헤이즐 레르:... (무슨 창이지? 첫번째 창부터 본다)
 
날짜별로 기록되어 있는 창입니다.
 
클릭해서 확인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헤이즐 레르:(가장 먼 날짜부터 클릭해본다.)
 
가장 먼 날짜는 바로 당신의 탄생일.
 
당신이 이제껏 살아왔던 하루 하루가 서술되어 있습니다.
 
당신의 말 한마디 한마디, 행동의 전부, 생각의 전부가, 하루도 빠짐없이.
 
헤이즐 레르:... (멍한 얼굴로 그 창을 바라보다가 가장 최근도 본다. 어디까지 기록되어 있지?)
 
헤이즐 레르 : 내가 있는 세상은, 가짜인거야. 이제 알 것 같아.
 
헤이즐 레르의 몸이 크게 흔들린다. 그는 큰 고통을 느낀다. 그리고 이내 정신을 잃는다.
 
기록은 거기까지입니다.
 
헤이즐 레르:... (순식간에 오싹해지는 기분을 느낀다. 두번째 창을 살핀다.)
 
오늘 날짜가 적힌 창입니다. 마찬가지로 당신이 직전까지 행했던 일들이 서술되어 있습니다.
 
창의 아래에는 채팅을 치는 화면도 있어요.
 
채팅창의 플레이어 이름에는, ‘아이린 E. 테라코르’라 쓰여 있습니다.
 
헤이즐 레르:... (세번째 창은?)
 
두번째 창 화면의 제일 마지막에는 붉은 글씨가 띄워져 있습니다.
 
[헤이즐 레르, LOST]
 
세 번째 창의 내용은 조금 독특합니다.
 
당신의 인적사항이 적혀 있고 특성치와 기능치란 항목이 있습니다.
 
근력, 지능, 교육, 건강, 크기, 외모, 정신력... 그리고 옆에 쓰여진 99이하의 숫자들.
 
…이게 무얼 뜻하는지, 당신은 알고 있습니다.
 
헤이즐 레르:... 고차원이라는게, 이런거였구나.
... 아이린, 갈까.
 
화면을 돌리면 다른 사람들의 것도 같이 올라와 있습니다. 그 중에는 아이린의 것도 있어요.
 
전부 잠금이 걸려 있습니다.
 
컴퓨터 창에 떠오른 것. 이것들이 무얼 뜻하는가는 선명합니다.
 
당신은 만들어진 세상의 주사위 놀음용 장난감일 뿐이었습니다.
 
지금껏 채팅창에 타이핑을 치던 건 누구였을까요.
 
당신이 했던 말과 행동은 정말 당신이 한 일이던가요? SANc (1d3/1d6)
 
헤이즐 레르:
SAN Roll
기준치: 59/29/11
굴림: 80
판정결과: 실패
1
 
이성 1 감소.
 
…멸망하던 세계마저 그 놀음의 일종일지도 모르는 일입니다.
 
아이린 E. 테라코르:그래. 나 역시 이곳에 튕겨져와서, 이 진실을 알고 경악했지. 나의 아픔도, 나의 절망도, 애정도 전부 만들어진 운명이었을 뿐이라니. (비소한다. 시작부터 누군가의 손바닥 위에서 놀아나고 있었을 운명.)
... 어디로 가고 싶니, 헤이즐? (담담히 당신의 곁에 선다.)
 
헤이즐 레르:(어디서부터 어디까지가 나의 생각이고, 나의 선택이었을까. 그동안의 삶이 허무하게 느껴진다. 느리게 눈을 깜빡이고는 그저 웃을 뿐이다.)
적어도, 이제 놀아나지 않을 수 있는 곳으로.
(자신이 여태까지 살아왔던 세상의 반대쪽에 있는 문 앞으로 간다.)
이 너머에 가면... 이제부터 나는 나로서 존재 할 수 있는걸까?
(여태까지 자신이 살아왔던 세계로 향하는 문을 살핀다.)
 
당신이 살던 세계로 향하는 문입니다.
 
이곳을 넘어가면 돌아갈 수 있을 거란 생각이 듭니다.
 
다신 이곳에 돌아오지 못하리란 확신도요.
 
멸망하는 세상. 그곳으로 정말 넘어갈 건가요?
 
아이린 E. 테라코르:이곳에 왔을 때, 이 공간을 살펴보느라 열린 틈으로 다시 돌아갈 기회를 놓치고 말았어. 누군가 이곳에 다시 와야만 문이 열리는 것 같더라. 그래서 너를 불러낸 거야.
멸망하는 세계에서 살아남게 해주겠다 너를 꼬여냈지. (한동안 말이 없었다.) 저 앞문에 뭐가 있을지 나는 알지 못해. 그렇지만 뒷문에는 내가 알던 세계와 내가 알던 이들이 있지. 비록 그것이 전부 만들어진 것이더라도, 멸망을 앞둔 세계더라도...
나는 내가 사랑하는 이들을 놓을 순 없을 것 같구나.
너와 이야기를 하며 내 나름대로 내린 결정이야. ... 비참한 '엔딩' 을 맞이할지도 모르는데 다시 돌아간다니, 좀 바보같긴 하지? 나도 저 표시처럼, ('헤이즐 레르, lost'라 쓰인 글자를 가리켠다) 끝을 맞이할지도 모르겠네.
 
헤이즐 레르:... (그 말에 문을 빤히 바라본다. 이번에는 반대쪽의 문을 살핀다.)
그 생각은 못했구나. ... 아직, 저쪽 세상에는 남은 사람들이 있는거겠지.
 
너머로는 당신을 만들었던 이들이 있는 차원이 있을 겁니다.
 
이 문을 넘으면 다신 이곳에 돌아오지 못하리란 확신이 들어요.
 
가진 것 하나 없는 당신이 상위 존재들이 있는 곳에 넘어갔을 때, 버틸 수 있을지는 의문일 뿐입니다.
 
당신은 고작 만들어진 장난감 신세잖아요?
 
헤이즐 레르:... 아이린 네가... 나를 저 안에서 구해냈듯이... 나도, 아직 좋아하는 사람들이 많이 남아있어.
그러니까... 음, 너만 괜찮다면... 여기서 다른 친구들이 오는 것도 기다려주지 않을래?
네가 내게 해준 것 처럼, 네가 나를 도와준 것 처럼... 나도, 다른 사람들을 돕고싶어. 저런 죽어가는 곳에서 다른 친구들이 살아가길 바라지 않아.
 
아이린 E. 테라코르:... 구해냈다곤 하지만, 사실상 내가 돌아가기 위해 널 이용한 거나 다름없어.
그게 아니었음 난 계속 여기에 갇혀 있어야만 했을 테니까. 나와 같은 방식으로 했을 때 틈이 또다시 열린다는 보장도 없고...
친구들을 구해낸다면, 앞문으로 향할 생각이니?
 
헤이즐 레르:네가 어떤 의도를 가지고 행동했더라도 내겐 구원이나 마찬가지였는걸.
... 맞아. 다른 친구들이 온 다음에는 저 문으로 향할거야. 돌아가고싶진 않아.
 
아이린 E. 테라코르:그래. 돌아가고 싶지 않은 거구나...
(한 손 제 입가에 가져다댄다.) 저 문 너머에 무엇이 있는지 모른다고 해도? 우릴 만들어낸 고차원의 존재들이야. 어쩌면 멸망하는 세계에서보다 더욱 끔찍한 죽음을 맞이할지도 몰라. (당신을 말리기보단 현실적인 가능성을 열거하는 것에 가까웠다.)
 
헤이즐 레르:어차피... 돌아가도 남은건 저런 세상이잖아? 그러면, 어떻게 죽더라도 다른 가능성을 시도해보고싶어.
(느리게 웃는다. 짧은 간극.) 그러니까, 시도해보려고. 내가 있을 자리는 내가 고르고싶어.
 
아이린 E. 테라코르:네가 그러길 바란다면, ... 그래. (설득력이 있다 생각했는지 고개 끄덕였다.) 내가 돌아가고 싶었던 건 거기에 내 소중한 이들이 있기 때문이었지. 하지만 이곳으로 그들을 데려올 수 있다면 굳이 멸망하는 곳에 자진해 갈 필요도 없을 거야.
여러 방법을 시도해야 할 거야. 각오는 되어있니?
 
헤이즐 레르:각오... 라고 하면, 솔직히 잘 모르겠어. 조금 무섭기는 하지만... 하다보면 뭐든 될거야. 결국, 어떻게든 살아남게 되는게 사람이잖아.
지금 당장 각오가 되었다고 대답해도... 그게 정말 각오가 된건지도 모르겠고 말이야.
그러니까, 해보자. 안되면 뭐 죽기밖에 더 하겠어?
 
아이린 E. 테라코르:후후... (죽기밖에 더 하겠냔 말에 작게 웃음짓는다. 자신이 누군가에 의해 '만들어졌고' 지금껏 조종당해왔단 사실을 알았을 때, 사실상 저는 이미 죽은 것이나 다름없었을지도 모른다. 자유의지 하나 없이 꼭두각시처럼 굴러가는 삶을 과연 살아있다고 표현할 수 있을까? 그러나 이 공간에서만큼은 누구의 간섭도 받지 않을 수 있다. 할 수 있는 건 무척 한정적인 일뿐이고, 친구들을 데려오기 위해 짐작할 수도 없는 시간을 헤매어야 하겠지만... 진정 저의 의지로 해내는 일이란 데서 의미가 있을 터다.)
해보자꾸나. 사랑하는 이들과 함께 알 수 없는 새로운 차원으로 건너가는 그날까지.
비틀어지고 망가지는 세상에서 함께 스러지느니, 차라리 새로운 시도라도 해 보고 죽는 게 낫겠지.
 
당신들은 앞문과 뒷문, 둘 중 어떠한 결정도 하지 못했습니다.
 
아니, 하지 않았습니다.
 
두 사람은 자의로 이곳에 남아, 차원의 문을 계속해서 열어 소중한 이들을 데려오기로 합니다.
 
가짜 세상으로 넘어가 멸망을 바라보고 싶지 않아요.
 
할 수 있는 게 진실을 떠안고 망가져가는 세상에서 스러져가는 것뿐이란 건, 너무 가혹하잖아요.
 
차라리 그럴 바에는 멸망하는 세상에서 아이린이 헤이즐을 구원했듯, 다른 이들을 구원해낼 것입니다.
 
아이린은 돌아가기 위해 당신을 이용했을 뿐이라 말하지만, 당신에겐 구원이었던 것처럼.
 
시간이 흐르자, 당신들의 차원으로 돌아가는 문이 서서히 사라집니다.
 
뒤늦게 만져보려 해도 잡히지 않아요.
 
이제 돌아가는 길은 잠겼습니다.
 
다시 차원의 문을 여러 차례 열기까지는 무수한 시행착오와 노력이 필요할 것입니다.
 
그래도 두 사람은 해낼 것입니다. 애정을 기반으로 한 힘이란 강한 것이니까요.
 
그 누구의 개입도 없는, 순수한 자기의지로서의 결정이었습니다.
 
그렇기에 더 가치있을 선택이라, 감히 말해봅시다.
 
END 3-1. Error Signal (to us)
 
아이린, 헤이즐 로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