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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0823~221115] 아실헬리 - 12시의 도밍게즈 ch 1. 시계 바늘의 방향

초현_c 2022. 11. 15.

플레이타임 : 약 38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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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실링은 DOT의 14회의실에서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누구라고 설명하면 좋을까요.
 
살면서 무수히 많이 들어 보았을 이름의 주인. 도밍게즈의 구원자, 모든 사람이 사랑하고, 시간이 선택한……
 
타이머, 오늘부터 당신의 파트너가 될 헬레네를.
 
이름을 곱씹는 것만으로 미묘하게 기분이 들뜹니다.
 
이상하기 짝이 없는 일입니다.
 
사실 얼마 전부터 아실링의 삶에는 이상한 일만이 가득했습니다. 그러니까,
 
<지능> 판정
 
아실링 펜들레엄:
지능
기준치: 75/37/15
굴림: 20
판정결과: 어려운 성공
 
봄처럼 소리소문없이 드러난 시간의 각인을 발견했을 때부터요.
 
아무 일 없이 지나갔던 12살의 생일과 달리,
 
시간, 운명…… 혹은 이름 모를 무언가가 당신을 붙잡는 것처럼 각인을 따라 희미한 열감이 두드러졌습니다.
 
아실링이 거울을 바라보았을 때, 그곳에는 유일한 구원자, 타이머만이 가질 수 있는 시간의 각인이 새겨져 있었습니다.
 
믿을 수 없는 일이었지만 눈을 몇 번이고 깜박이고 손목을 아무리 문질러 보아도 사라지지 않았더랬죠.
 
고모의 이야기는 그저 재미를 위해 지어낸 줄로만 알았는데, 진짜였던 것입니다.
 
당신은 굳이 각인이 나타났다는 사실을 알리고 싶지 않아하였고, 고모도 그에 동의하였지만..
 
도대체 어떻게 알아냈는지, 얼마 지나지 않아 DOT의 담당자가 문을 두드렸습니다.
 
조용히 살고 싶었던 아실링이었지만... 군부대를 일개 민간인이 어떻게 거절할 수 있겠나요.
 
그래요, 평범한 일상이 덜그럭덜그럭, 기묘한 소리를 내며 뒤틀리기 시작한 것은 바로 그 날부터였습니다.
 
세 달 전, 아실링이 담당자를 따라 DOT에 도착했을 때, 모두가 놀라움을 금치 못했습니다.
 
이 세상의 것이 아닌 자를 보는 양 황망하고,
 
황당함을 가득 담아 깜빡이던 눈꺼풀과 다물지 못하던 입술 사이로 새던 신음성…….
 
하인리히 장교:세계를 구원할, 새로운 구원자가 깨어났군.
 
흰 가운을 입은 연구원과 흐릿한 남색 제복을 입은 사무원들 사이를 비집고 들어온 하인리히 장교가 감탄을 흘렸습니다.
 
익숙한 얼굴이었습니다.
 
DOT의 장교, 실질적인 책임자로 종종 TV에도 얼굴을 비추곤 하는 사람이었으니까요.
 
설마 그를 실물로 보게 되는 날이 올 줄이야...
 
그야, 당신이 거주하던 11구역은 DOT가 위치한 4구역과는 멀고도 멀었으니까요.
 
장교를 비롯한 그 누구도 아실링의 자격을 부인하지 않았습니다.
 
왼손목에 새겨진 두 자리의 숫자란 도밍게즈에서 그토록 절대적이거든요.
 
아실링은 세계를 구원할 새로운 구원자라는 명분하에 DOT에서 생활하게 되었습니다.
 
갑작스럽게 군부대에서의 생활이라니, 이래저래 어색하여 투덜거리기도 했지만...
 
도밍게즈는 세계 멸망의 소문에 시달리고 있었어요.
 
그런 상황에서 DOT가 당신을 놓아주지 않은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었습니다.
 
그들은 당신을 일컬어 헬레네, 타이머의 이라 불렀습니다.
 
하루, 이틀, 사흘…… 시간은 흐르고, DOT에서의 생활은 평이했습니다.
 
아실링의 존재는 헬레네에게도 비밀에 부쳐졌습니다.
 
정확한 결과가 나올 때까지 타이머를 혼란케 하지 않으려는 조치라더군요.
 
아실링은 연구원들이 머무는 동관에서, 사무원의 질문에 대답하거나 연구원의 신체검사 따위에 응하는 것을 제외하면 쭉 홀로였습니다.
 
세 달간 DOT에서 지내본 바의 소감은 어떤가요?
 
아실링 펜들레엄:(새로운 구원자니 뭐니, 그전까지의 일상에서 들어보지도 못한 말이며 생활이 조금 어색하긴 하다. 그래도 잘 먹고 잘 자는 것을 보면 싫어하는 것처럼 보이지는 않는다.)
 
긴 밤 동안 운명의 짝, 당신의 파트너, 당신과 같은 시간의 타이머인 헬레네를 그려보지는 않았나요?
 
그도 그럴 게, 아주 가까이, 바로 너머에 머물고 있었는걸요.
 
각인이 나타나고 타이머로서 세간에 노출이 되던 첫 순간부터 국민들은 헬레네를 사랑할 수밖에 없음을 실감했습니다.
 
차분하면서도 상냥하고 다정한 성격, 남을 우선시하여 챙기는 이타심.
 
세계를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열심히 해내겠다는 그 빛나는 의지...
 
세간이 원하던 '구원자'의 이미지를 마치 그대로 따와 옮겨둔 듯한 사람이었으니까요.
 
사람들은 곧 그의 코드네임인 네레이스를 열렬히 환호하기 시작했습니다.
 
헬레네 또한 그에 응답하듯 다양한 광고나 인터뷰 등에 모습을 비치면서, 자신의 능력이 성장하고 있음을 보여 왔지요.
 
동글하니 귀엽고 사랑스런 외모까지 겹쳐져, 현재 헬레네의 인기는 거의 아이돌 수준입니다.
 
당신은 그런 헬레네를 어찌 생각하고 있나요?
 
아실링 펜들레엄:(그 사람을 어떻게 잊을 수 있을까? 처음 본 그때부터 무척이나 사랑스러운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분명 제가 아닌 다른 사람도 자신과 같은 생각을 하고 있을 것이라고 의심하지 않았다. 바로 근처에 머물고 있다는 것이 신기하기만 하다.)
 
건물 하나만을 넘어가면 만날 수 있는 거리에 있지만, 지금까지는 마치 벽에 가로막힌 듯 만날 수 없었습니다.
 
당신은 타이머들을 그저 이야깃거리, 아주 먼 거리에 있는 사람들, 정도로만 치부해 왔지만...
 
이제는 그들과 직접 대면하고, 그들과 섞이게 될 것입니다.
 
tv에서나 보던 타이머들을 실제로 보게 된다니, 떨리거나 기대되지는 않나요?
 
아실링 펜들레엄:(기대는 전혀 아니었고, 조금의 떨림만을 가지고 있다. 직접 만난다고 해서 기가 죽거나 그러지는 않겠지만, 기분이 묘할 것이라는 것은 분명했다. 진짜로 만났네. 같은 생각이나 할 것이 분명하다.)
 
워낙 무난무난한 성격인지라, 그들을 보게 되더라도 호들갑을 떨거나 두근거리지는 않을 것 같네요.
 
기대감도 당연히 없을 수밖에요.
 
하인리히 장교:곧 도착한다는군.
 
기나긴 회상을 깨고, 하인리히 장교가 타이머들의 도착을 예고합니다.
 
기다렸다는 것처럼 타닥타닥, 바닥을 밟는 소리가 경쾌하게 복도를 가르고,
 
“왔어요? 저쪽에서 기다리고 계세요.”
 
안내데스크에 앉은 직원이 상냥하게 건네는 안내가 문턱 너머로 들립니다.
 
헬레네가 그 복도를 건너 당신에게 오고 있습니다.
 
세계가 예비한……
 
운명을 마주하기 직전입니다.
 
똑똑.
 
형식적인 노크와 함께 14회의실의 문이 열리고, 익숙한 얼굴들이 들어섰습니다.
 
도밍게즈의 구원자, 시간이 선택한 타이머.
 
어떻게 그의 얼굴을 모를 수 있겠어요?
 
그러나 아실링이 그를 알아본 것은 눈에 익은 얼굴이라는, 그저 그런 이유 때문이 아니었습니다.
 
깜빡, 깜빡. 아실링이 눈을 깜빡이자 헬레네 또한 같은 속도로 눈을 깜빡입니다.
 
그래요, 분명히 낯익은 얼굴이에요. 낯익기 짝이 없어요.
 
도밍게즈의 국민으로 태어난 이래 매일을 거르지 않고 본 얼굴이었으니까.
 
TV도, 신문도, 휴대폰 속 무수히 많은 게시글마저 그를 주목했는걸요.
 
그래요, 분명히 낯익은 얼굴이에요.
 
그러니, 하나도 특별한 것 없는 대면이건만.
 
어째서일까요?
 
이토록 그 ‘존재’에 시선을 빼앗긴 것은?
 
정반대에 서 있는 사람에게서 도저히 시선을 뗄 수 없습니다.
 
누군가 그러라고 명령한 것도 아닌데,
 
밑바닥부터 가장 높은 곳에 이르기까지 모든 감각과 기분, 생각과 언어, 감정과 본능이 그곳으로 향했습니다.
 
<이성> 판정
 
아실링 펜들레엄:
SAN Roll
기준치: 55/27/11
굴림: 81
판정결과: 실패
 
가까이 가고 싶다는, 명백한 욕구가 고개를 쳐듭니다.
 
정신을 차리면, 이미 몇 걸음이나 걸어 나간 후였습니다.
 
손을 잡았던가요, 아니면 숨소리가 들릴 만큼 바짝 다가섰던가요?
 
눈앞에 훅 가까워진 얼굴에 가까스로 정신을 차립니다.
 
아, 그래요.
 
아실링은 운명이 안배한 일련의 사건을 따라 새로운 구원자가 되었고,
 
DOT에 도착해, 기어코 눈앞의…… 헬레네를 만나고 만 것입니다.
 
얼굴을 보자 새삼스럽게 사람들이 어째서 ‘운명’이니 ‘파트너’라느니 거창한 칭호를 붙여댄 건지 자연스럽게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헬레네 R. 히페리데:(작게 숨을 들이킨다. 무엇일까. 당신을 마주하는 순간 갑작스럽게 온몸을 지배하는 이 이끌림은. 저도 모르게 양손으로 입가를 막는다. 왜인지 뺨이 붉었다.)
 
아실링 펜들레엄:(뒤늦게 돌아온 이성줄 잡고, 그전에 잡고 있었던 선 손은 거둔다. 열렬한 팬들한테 방금 모습을 보였다면 엄청 욕을 먹고 있었겠지. 같은 딴생각을 한다. 자신의 당황스러운 행동에서 눈을 돌리기에는 딱 좋은 행동이었다.) ... (말 걸어도 괜찮나? 묘한 들뜸을 감추고 가만히 바라본다.)
 
기묘한 이끌림 사이에서, 그럴 줄 알았다는 웃음소리가 가볍게 새어 나옵니다.
 
웃음소리는 방아쇠를 당기고, 지나간 기억을 꿰뚫습니다.
 
무척 익숙한 웃음입니다.
 
그야, 아실링을 처음 만났을 때도 하인리히 장교는 비슷하게 웃었으니까.
 
<심리학> 판정
 
아실링 펜들레엄:
심리학
기준치: 60/30/12
굴림: 51
판정결과: 보통 성공
 
그가 기쁨과 더불어 어떤 기묘한 흥분을 감추지 못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군인답지 않은 태도예요.
 
그러거나 말거나, 아실링과 헬레네는 들이닥치는 서로의 존재감에 휘둘리는 중이었습니다.
 
여러 기분과 감정이 파도처럼 일어났다 쓸려갑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관찰> 판정
 
아실링 펜들레엄:
관찰력
기준치: 70/35/14
굴림: 84
판정결과: 실패
 
타이머의 얼굴에 홀린 듯 시선을 빼앗기고 말았습니다.
 
하인리히 장교:(턱을 매만지며) 인사하게. 자네의 이 될 사람일세.
 
어쩜 이리, 더할 나위 없이 완벽한지.
 
하인리히 장교는 익숙하게 타이머들에게 카운터들을, 카운터들에게 타이머들을 소개합니다.
 
미리 설명을 들었던 아실링과 달리, 헬레네는 처음 듣는다는 것처럼 놀란 기미를 숨기지 못합니다.
 
설명이 지나치게 단출하군요.
 
군인이란 되묻지 않는 법이지만, 헬레네는 기어코 되묻고 말았습니다.
 
헬레네 R. 히페리데:짝이라구요? 하지만, 타이머는 열넷인데 어떻게 갑작스럽게 짝이 생길 수 있다는 말인가요...? (당황스럽기 그지없는 듯, 시선이 흔들린다. 보통 말할 때는 상대방을 보는 것이 기본적인 예의지만, 푸른 눈은 눈 앞의 당신에게서 떨어질 줄을 몰랐다.)
 
하인리히 장교:1시의 타이머도 만만찮게 놀란 모양이군.
친절히 다시 말해주도록 하겠네. 자네의 이 될 사람이라네.
 
뻐꾸기처럼 반복되는 대사가, 친절하게도 믿을 수 없는 현실을 다시금 짚어줄 뿐이었지만.
 
하인리히 장교는 타이머의 당황한 얼굴을 한껏 즐기고 난 후에야 제대로 된 설명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아실링은 각인이 드러난 후, DOT로부터 익히 들어왔던 설명입니다.
 
하인리히 장교:세계 멸망에 관한 이야기는 이미 들었으리라고 생각하네.
물론, 그런 불상사는 일어나지 않을, 일어나서도 안 될 일이지. 하지만 예언의 탑에서부터 시작된 이야기야. 이미 세간에서는 반쯤 기정사실로 받아들이고 있어. 무슨 뜻인지 알겠나? 이건…… 아주 좋지 못한 조짐일세.
멸망이 실재한다고 해도 문제지만, 실재하지 않는다고 하면 더 문제거든.
멸망이 예정된 세계의 법과 도덕, 규칙 따위를 누가 지키겠냔 말이야. 그렇지 않은가? 세계는 무너질 테고, 점차 아수라장이 될 테지. 처리하기 곤란한 쓰레기가 넘쳐날 거야.
그래서 우리는 이전부터 세계 멸망에 관해 알아보기 시작했다네. 어떻게 하면 이 난관을 헤쳐나갈 수 있을까, 하고 말이야.
 
자신의 수염을 가다듬은 하인리히 장교가 드디어 본론을 꺼내 들곤,
 
하인리히 장교:결론부터 말하도록 하지.
세계는 멸망하지 않는다. 도밍게즈는 새 계절을 맞을 거야.
그리고…… 눈앞의 이가 그 증거일세.
 
아실링의 어깨를 붙잡아, 끌어당깁니다.
 
아실링 펜들레엄:예? (제가요? 끌어당겨져서 어리둥절한 표정 짓는다. 아닌 것 같은데... 잘못 생각하신 것 같은데.. 그리 생각하며 장교 손에서 슬쩍 빠져나온다.)
 
하인리히 장교:지난 예언의 타이머는 매우 훌륭한 이였어. (슬쩍 빠져나가는 아실링을 흘긋 내려다보지만 제지는 않는다.) 눈과 귀가 밝고 입이 무거운 데다…… 미래를 바꾸는 방법을 함께 점지받곤 했거든.
많은 이들이 세계 멸망의 예언이 예언의 탑으로부터 시작한 줄 알지만, 천만의 말씀.
DOT는, 타이머는 이미 그 미래를 알고 있었네. 그 예언이 퍼질 것도, 세계가 혼란스러워질 것도, 그리고…… 새로운 구원자가 나타날 것마저도!
반년 전쯤부터, 예언을 따라 새로운 능력자가 나타나기 시작했네. 바로 이들이지. 정확히 열네 명, 자네들과 같은 각인이 새겨져 있어.
우리는 이들을…… ‘카운터’라고 부르기로 했네.
 
이미 예비된 만남이었다니. 이것은 아실링도 처음 듣는 이야기입니다.
 
하인리히 장교:세계 멸망의 초읽기를 앞둔 작금의 상황에, 썩 잘 어울리는 이름이 아닌가?
 
그는 그렇게 말하며 웃었습니다.
 
세계를 구원하는 역할에 도취한 것인지, 예언의 탑을 한 방 먹일 즐거움에 심취한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하인리히 장교는 하나씩, 카운터의 시간과 이름을 소개했습니다.
 
:제0시의 ■■, 제1시의 아실링, 제2시의 ■과 제3시의 ■, 제4시의 ■■과 제5시의 ■■■,
제6시의 ■■■■, 제7시의 ■■, 제8시의 ■■■■■, 제9시의 ■■■, 제10시의 ■■■과 제11시의 ■■, 제12시의 ■■■와 제13시의 ■■■…….
 
모두 열넷이었지만, 헬레네는 오직 아실링의 이름에 사로잡혔습니다.
 
하인리히 장교:연구 결과, 카운터가 타이머와 똑같은 능력, 자질이 있으며 시간의 선택을 받았다는 것이 입증됐어. 그뿐만 아니라 타이머의 능력에 개입하거나 간섭할 수 있을 거란 가설이 등장했지. 물론, 긍정적인 방향으로 말이야.
오늘부터 서관에서 함께 지내게 될 거야. 수업부터 시작해서 모든 타이머의 활동과 역할을 부여받아, 자네들과 동행할 걸세.
그러니 인사들 나누고, 사이좋게 지낼 수 있도록 노력해보라고.
 
하인리히 장교는 웃는 얼굴로 통보합니다.
 
모든 것은 세계 멸망을 막기 위해서라고.
 
어떤 재난이 닥쳐와도, 어떤 재해가 밀려와도 타이머와 카운터가 함께라면 세계 멸망을 막을 수 있노라고.
 
즉, 이것은…… 대의이자 명령.
 
개인의 의견은 묵살하기 딱 좋은 명분이었습니다.
 
하인리히 장교:전달 사항은 이걸로 끝이라네. 서관으로 데려가서, 건물 소개도 좀 해주고, 이야기도 나누면서 친해지도록 해.
다음 달쯤, 건국 축제에서 정식으로 카운터의 존재를 발표할 예정이니 외부에 유출하지 말고.
 
마지막까지 일방적으로 명령한 장교가 절도있게, 그러나 한없이 가벼운 걸음으로 회의실을 나섭니다.
 
회의실에는 침묵과 함께 타이머와 카운터, 두 개의 시간이 남았을 뿐이고요.
 
…….
 
14명의 타이머 중 누구도, 시간이 데려온 운명의 상대에게 표정 관리를 하는 법은 훈련받지 못한 것 같습니다.
 
이러니저러니 해도 타이머와 카운터가 각기 짝을 지어 흩어지고,
 
아실링의 앞에는 여전히 헬레네가 서 있습니다.
 
헬레네는 아실링을 가만히 바라보다가……
 
헬레네 R. 히페리데:(아직도 뭐가 뭔지 상황 파악이 되지 않았는지 당황스럽고 얼떨떨해 보이지만, 오랜 시간 사람들을 접해와서인지 금세 능숙하게 표정을 감추고 예의 밝은 미소를 지어보인다.) 반가워요! 성함이 아실링... 이라고 하셨던가요? 저는 헬레네라고 해요. 다소 당황스럽기는 하지만, 앞으로 함께하게 되었나 봐요. 잘 부탁드릴게요.
 
라고 말했습니다.
 
아실링 펜들레엄:(실제로 보니 더 귀엽고 예의 바른 사람이었다. 앞으로의 활동 동안 자신에게도 잘 대해줄 것 같다는 의미 모를 확신도 들었고. 문제는 생각만 들었지 지금 제 생각이 나 감정을 어떻게 표현해야 알지 모르겠다며 몸이 뻣뻣하게 굳어있다. 이럴 때는 뭐라고 하더라. 첫 인사이니 제대로 된걸, 그리고 즐거울만한 대화를 하는 것이 좋을 텐데.) ... 잘 부탁드려요. (고르고 고른 것 중에 나온 게 저거다. 자신이 생각해도 영 아닌듯싶어 아랫입술 슬쩍 깨문다.)
 
헬레네 R. 히페리데:네, 아실링. (생글 웃는다.) 멸망이 1년도 남지 않았다는 예언은 익히 들어 알고 있었지만, 새로운 구원자, 카운터가 예비되어 있다는 소식은 오늘 처음 들었어요. 저희 타이머들의 반응을 보셨다면 아마 짐작하셨겠지만요. 시간이 내려준 저희의 능력에 긍정적으로 개입할 수 있다니... 분명 좋은 소식인 건 맞지만, 무척 얼떨떨하네요. 아실링은 이미 설명을 들으셨던 듯한데, 뭔가 알고 계시는 게 있으신가요?
 
아실링 펜들레엄:(말하는 것만큼 듣는 것도 잘한다. 이곳에 온 이후로 시끄럽게 종알거린 일은 없지만, 그것도 잠깐이겠지. 하지만 아직은 그날이 아닌 것 같다. 뻣뻣하게 굳어서 어, 음, 아. 같은 단어만 중간중간 말하다가 조심스레 입 연다.) 시간이 내려줬다는 것에 대해 좀 더 자세하게 얘기해 주시겠어요? (...) 제가 얼마나 잘 알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당신에 대해서는 좀 알고 있어요. (어라, 진실만 말했는데 뭔가 느낌이 이상하다.)
 
헬레네 R. 히페리데:아. 건국 신화와도 같은 맥락이에요. 세계는 열두 개의 숫자로 이루어졌고, 그 시작과 끝인 0과 13을 더해 열네 명의 타이머가 태어나죠. 시간에게 선택받아 타이머라고 불리는 이들에게는 몸 어딘가에 시간의 각인이 새겨지잖아요.그건 반드시 열두 살의 생일에 일어나는 일이기도 하고요. (자신의 주 분야가 나오자 신이 났는지, 차분한 톤으로도 조잘거리며 친절히 설명한다.) 지금껏 한 번도 뒤늦게 시간의 각인이 나타났다는 말은 들은 적이 없어요. '카운터'라는 존재 자체도요. 혹시 아실링은 어디에 각인이 나타나셨나요?
 
아실링 펜들레엄:아, 그렇게 이어지는 내용이군요. (신기해라. 표정이나 말투는 크게 달라지지 않았지만 속으로는 꽤나 흥미로워한다. 이상한 부분에서 호기심에 불 떨어졌다.) 그럼 저는.. 희귀한 것이네요. 무슨 멸종 위기 야생동물처럼 이곳으로 잡혀온 것 같은 기분이 떠나가질 않아요. (말 끝나자마자 팔 들어서 손목 안쪽 보여준다.)
 
헬레네 R. 히페리데:어머...! (당신의 손목에 새겨진 숫자를 보고는 다시금 눈이 커진다. 자켓을 걷어 제 왼손목을 보여주었다. 당신과 같은 숫자가 같은 위치에 새겨져 있다.) 저와 같은 위치에 각인이 있어요. 이것도 저희가 짝이자 운명이라는 표시일까요...? 사실, 운명이란 책에서나 접해보았던 단어인지라 실제로 저에게 적용될 줄은 상상도 못 했었는데... (여전히 어색하기도 하고.)
장교님의 말대로라면 저희가 모두 함께 힘을 합친다면 멸망을 막아낼 수 있다는 뜻이 되겠죠. 열일곱에 뒤늦게 각인이 나타난 것도 멸망을 막기 위해서라고 생각해보면 납득이 가요. 지금껏 저까지 열네 명이서 지내 왔는데... 이제 배가 된 스물 여덟이 함께하게 되겠네요! 북적북적해서 더 즐거울 것 같아요. (마냥 긍정적인 사고를 지닌 듯, 알 수 없는 이 상황도 반갑게 받아들인다.)
 
아실링 펜들레엄:파트너 같은 것으로 생각하는 게 편하지 않을까요..? (운명? 그런 것이 싫은 것은 아니었다. 이곳에서 헬레네를 만나 느끼고 생각한 것들은 신기하기도 하면서, 한편으로는 조금 무섭기도 한 것이었다. 첫 만남부터 시선을 빼앗기다니. 종알종알 거리던 입이 무거운 것도 이상했다. 그리고 느낀 것과 다르게 운명이나 짝 같은 것을 제 상황과 엮고 싶지 않았다. 자신과 헬레네가? 뭔가 이상한데.)
지내는 것은 좀 괜찮아요? 뭔가. .당신이 괜찮다고 한다면 정말 괜찮을 것 같아서요.
 
헬레네 R. 히페리데:파트너. 참 멋진 단어네요. 임무를 함께하고, 힘들 때면 의지하거나 기댈 수 있고, 희노애락을 함께 할 수 있는... 그런 관계처럼 들려서요. (곧 당신과 그런 관계가 되고 싶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만난 지 삼십 분도 채 되지 않았는데, 어디서 그런 친화력이 나오는지.)
네! DOT의 관계자 분들은 다들 저희에게 잘해주세요. 아무래도 군대다 보니 의지와 관계없이 수행해야만 하는 명령이 내려올 때도 있지만 다른 군대 조직에 비해서는 자유롭고 풀어진 분위기라고 들었어요.
그러면, 일단 저희가 머무는 곳을 소개해드릴까요? 아... 그러고 보니 그간은 어디에서 지내셨나요? 각인이 나타난 지는 얼마나 되셨구요? (당신처럼 호기심이 많은 듯, 질문이 연이어 몰아친다.)
 
아실링 펜들레엄:(앗, 희로애락 같은 부분까지 같이할 줄은 몰랐다. 정신적으로 서로를 돕는 것보다는 비즈니스적인 파트너를 생각했기에 놀랄 수밖에 없었다. 물론 얼마 안 가서 그렇게 친하게 지내는 것도 괜찮겠다는 생각을 한다. )
다른 군대에 비해..? 당신이 말한 것은 믿지만.. (관계자가 말했다는 것에서 약간 신뢰성이 떨어졌다. 우리가 더 좋다~ 같은 말들로 속이는 것은 쉬운 일이니.)
소개해 주시면 감사해요. 혼자 있을 때는 어딜 안 돌아다녀서, 이번에 제대로 내부에 대해 알고 싶네요. 제가 잘못 알고 있는 게 아니라면 동관이요. 각인이 생긴 것은 꽤 오래전 일이에요. 언제였더라.. 무척 신기해했다는 기억은 드네요.
 
헬레네 R. 히페리데:DOT 건물 내부에서 지내셨군요? 아까 장교님이 말씀하시길 반 년 전쯤부터 각인이 나타났다고 했는데... 생각보다도 더 오래 전부터 아주 가까이에 있었네요. 그런데도 이제야 얼굴을 뵙게 되다니... 아쉬워요. 왜 조금 더 일찍 소개시켜주지 않으신 걸까요? (어느새 어색함도 버터가 녹듯이 풀어졌다. 아쉬움 어린 투로 말하면서 회의실을 나선다.)
 
14회의실을 빠져나오면, DOT 본관의 복도입니다.
 
흰 대리석이 깔린 바닥과 열두 개의 별자리가 그려진 남색 천장,
 
몇 번이고, 몇 번이고, 붓의 흐름조차 눈치채지 못할 만큼 섬세하게 회칠을 한 벽.
 
DOT의 본관은 언제나 그렇듯 흠 없고, 점 없이 완벽하기만 했습니다.
 
당연하게도, 헬레네에게는 낯익은 풍경이었고, 아실링, 당신에게는……
 
<이성> 판정
 
아실링 펜들레엄:
SAN Roll
기준치: 55/27/11
굴림: 64
판정결과: 실패
 
무척 낯선 풍경이었죠. 당연한 일입니다. 처음 와보는 곳이잖아요.
 
헬레네 R. 히페리데:그러면... 우선 저희가 있는 이 본관부터 소개해 드릴까요?
일단 본관과 서관은 지하 1층부터 5층까지예요. 이 본관 지하 1층에는 식당과 바(Bar)가 있고, 1층에는 로비와 안내데스크. 그리고 아까 저희가 나온 회의실이 1부터 14까지 있답니다. (지나가며 안내 직원에게 밝게 인사한다.)
2층과 3층은 훈련실, 4층은 숙소, 옥상엔 스카이라운지가 있어요. 이곳의 숙소는 임원분들이 쓰시는 곳이랍니다. 답답할 때 스카이라운지에 올라가면, 수도의 풍경이 훤히 내려다보여서 마음이 풀린답니다. 저희는 낮에만 들어갈 수 있지만요. 지금 한 번 올라가 보실래요?
 
아실링 펜들레엄:시설이 잘 준비되어 있네요. 누가 계획하고 디자인한 것인지 좀 궁금할 정도예요. (근데 회의실이 14개? 회의할게 많구나. 자기는 안 낄 수 있으면 좋겠다. 그렇게 생각하며 걷다가 너 따라 직원한테 인사한다.)
왜 낮에만 사용할 수 있나요? 밤에 보는 것도 괜찮을 것 같은데. 물론 지금 당장 올라가고 싶어요. 얼마나 예쁠 풍경일지 기대되네요. (졸졸 따라간다~)
 
헬레네 R. 히페리데:DOT는 타이머가 등장했던 아주 오래 전부터 긴 역사를 갖고 있는 건물이죠. 리모델링을 몇 차례 했다고 들었는데, 그러면서 여러 공간을 디자인하지 않았을까 싶어요.
미성년자는 낮에만 출입이 가능하다는 규칙이 있거든요. 야경도 정말 멋질 텐데, 그렇죠?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 문을 연다.)
 
헬레네가 문을 열자, 스카이라운지가 펼쳐집니다.
 
여러 식물들과 꽃들이 심긴 화단이 조성되어 있고, 편안히 앉아 쉴 수 있는 벤치와 자판기가 놓여있는 등 멋진 휴식 공간이네요.
 
테라스에 서자 헬레네의 말대로 수도의 풍경이 한눈에 내려다보입니다.
 
저 수많은 건물과 사람들은 이제 아실링이 카운터로서 지켜야 할 대상입니다.
 
그리고 저들도 당신에게 같은 찬사를 보내겠죠.
 
아실링 펜들레엄:(찬사. 그것 꼭 받아야 할까? 받을 수는 있고? 그런 생각을 하자마자 바로 헬레네 돌아본다. 그런 것은 제가 아닌 헬레네와 더 잘 어울려 보였다.) 예뻐요. 낮에만 출입 가능하다는 것이 아쉬울 정도로요.
 
헬레네 R. 히페리데:(조마조마하게 반응을 기다리다가, 활짝 웃는다.) 다행이에요! 앞으로도 쭉 이곳에서 지내게 될 테니까요. 아실링의 마음에 들었으면 좋겠어요. 계절마다 어떤 꽃이 피고 지는지 보는 것도 꽤나 재미가 있답니다. 아실링만 괜찮으시다면 자주 함께 와요.
 
아실링 펜들레엄:누가 진작에 알려줬으면 좋았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좋아요. (화단 구경하다가 막 나온 것 같은 이파리를 손가락으로 톡 건든다.) 처음으로 알려준 사람이 당신이라 더 좋은 것 같네요. 함께해 주신다면 저야 좋죠. 이곳에 와서 대화 상대가 별로 없어서, 살짝 외로웠답니다.
 
헬레네 R. 히페리데:다른 카운터 분들과는 얼굴을 트지 않으셨나요? (외로웠다는 말에 대번 눈썹이 처진다. 그것도 얼마 가지 않아 금세 양손을 꼭 쥐며 힘있게 말했다.) 그럼 제가 앞으로도 많이 많이 알려드릴게요. 타이머에 관한 것도, 능력에 관한 것도, DOT에 관한 것들도요.
라운지를 봤으니, 이번에는 서관으로 가볼까요?
 
아실링 펜들레엄:(심심하다는 정도였으나 농담 삼아 좀 과장한 것을 네가 진심으로 받아들인 것 같아 조금 다 왕 한다. 잘못 얘기한 것은 아니겠지?) 좋아요. 나중에 가서 저 귀찮다고 하기 없기예요. 영웅님이 거짓말은 안 하겠죠? (슬쩍 농담 꺼내며 겨우 미소 보인다. 이제 좀 긴장이 풀어졌다. 아주 조금..)
서관으로 가죠. 뭐가 있을지 정말 궁금해요.
 
헬레네 R. 히페리데:귀찮다뇨. 전혀 안 그래요! 그, 그런데 영웅님이라니... 아직 그 정도까진... (부끄러워하며 손사래친다.) 제게 걸린 기대에 부흥하려면 앞으로도 더 열심히 노력해야죠. 아실링 같은 파트너와 함께라면 금세 영웅이 될 수 있을 것 같네요!
(점점 더 거리는 좁아지고 가까워져 간다. 친근하게 대화를 나누며 서관으로 향했다.)
 
본관을 나와 당신이 머무르게 될 서관으로 향합니다.
 
헬레네 R. 히페리데:이곳도 본관이랑 건물 구조 자체는 비슷해요. 지하 1층에 식당과 카페테리아가 있고, 1층에는 로비와 안내데스크... 그리고 도서관이 있답니다. 저는 도서관에 정말 자주 가는 편이에요.
2층은 수업을 듣는 교실, 3층은 훈련실... 그리고 4층은 숙소예요. 옥상에는 아쉽게도 출입금지랍니다. 하지만 다른 타이머 분들은 몰래몰래 자주 가시는 듯해요. 저도 어릴 때 한 번 이끌려서 가본 적이 있답니다. 그곳에서 야경을 봤던 기억이 나네요.
 
아실링 펜들레엄:여기가 제가 지내게 될 곳이군요. ... 도서관이 클까요? 책은 얼마나 많고요? 새 책이 자주 들어오면 좋을 텐데. (도서관 얘기를 듣자마자 눈 반짝인다. 다른 곳보다 도서관을 제일 궁금해한다.)
4층이 숙소라면 자는척하다가 옥상으로 몰래 올라가 볼 수도 있겠네요. 출입 금지인 이유가 무엇일지 궁금해요. 그냥 단순히 위험해서 일까요? (이유는 중요하지 않았다. 말리던 이르던 꼭 가보고 말 것이라는 생각이 깊은 곳에 심어졌다.) 그래요..? 그럼 시간 괜찮으실 때 저랑 같이 가는 건 어때요?
 
헬레네 R. 히페리데:장서가 제법 많아요. 웬만한 자료들은 쉽게 찾을 수 있답니다. (동지를 만났다) 아실링도 책을 좋아하시나 보군요? 지금 한 번 가볼까요? ... 그리고 옥상은... 아마도 위험해서가 아닐까요? 어릴 때에는 혹시나 떨어질 수도 있으니까요. 물론 지금은 많이 자라기는 했지만 저는 규칙을 어기기 싫어서 가지 않았어요. (그리 말하자마자 같이 가자는 말에 어깨가 파득 튄다.) ... ... 으, 음... 꼭 가보셔야 할까요?
 
아실링 펜들레엄:저 지금 엄청 기대 중인데, 헬레네가 그렇게 말하니 더 기대가 되네요. 못 본 책들이 많으면 좋겠어요. (뭔가 시간 날 때마다 둘이 도서관에 갈 것 같다는.. 그런 예감이 들었다.) 아.. 아직 어두워지기 전이라 빨리 들킬까요? 그럼 지금 말고 나중에 가요. 걸렸다가 꾸중 들으면 저나 당신이나 좋을 일은 없을 테니까요. (안 가겠다는 말은 절대로 안 꺼낸다.)
 
헬레네 R. 히페리데:아실링의 지식욕을 충족할 만한 자료들이 많았으면 좋겠네요. 저희 앞으로 도서관에 자주 같이 가게 될 것만 같아요. (같은 미래를 예감한다) 으음, 들키는 게 문제가 아니라... 규칙을 어기게 되는 거니까요. 양심에 찔리는 행위잖아요. 그래도 거기엔 오다니는 연구원 분들도 거의 없고 하시니, 들어가는 것 자체는 문제가 없긴 할 거예요. (왜인지 저의 미래가 보이는 듯하다...)
 
두 사람은 도서관으로 들어섭니다.
 
헬레네의 말대로 서고가 많이 늘어서 있네요.
 
소설, 동화, 만화, 논문, 신문, 수필, 사전, 에세이······ 종류를 가리지 않습니다.
 
아실링 펜들레엄:(다양한 책들 보고 심장이 두근두근 뛴다. 타이머에 관한 책들도 있나? 슬쩍 찾아본다.)
 
타이머에 관련된 책들도 있지만, 대외적으로 공개된 것과 크게 다르진 않네요.
 
아실링 펜들레엄:(대외적으로 공개된 것...? 뭔가 상부의 자료를 찾으면 새로운 게 나올 것 같다는 생각이 퍼뜩 들었다. 이런 생각한다고 몰래 자료를 뒤질 생각은 없다. 그러지 못 할 것이고.)
(아쉽~..)
 
헬레네 R. 히페리데:좀 찾아보셨나요? (이전에 읽던 분야가 있던 건지 책을 한 아름 들고서 다가온다.) 빌릴 게 없으시면 이제 슬슬 저희 숙소로 올라갈까요? 그러고 보니 서관의 숙소는 방이 열네 개 뿐인데... 카운터 분들은 어디에서 머무르는지 설명을 듣지 못했네요.
 
아실링 펜들레엄:(고개 끄덕. 그러고는 자신이 도와주겠다며 한 아름 가지고 있던 책들 중 반권 정도를 제가 가져간다.) 방이 열네 개.. 방을 몇 개 더 만들 일은 없겠죠? 그러면 저는.. 헬레네랑 같이 머무는.. 것일까요? (설마?)
 
헬레네 R. 히페리데:... ... 설마 그렇게 될까요? 하지만 언질을 전혀 받지 못했는데... (감사해요, 습관적으로 인사하며 책을 몇 권 넘겨준다.) 일단 올라가 봐요.
 
엘리베이터를 타고 숙소가 있다는 4층으로 올라갑니다.
 
각 방문마다 호실이 쓰여 있습니다. 헬레네는 제 1시이니 1번 방이네요.
 
호실보다 더 눈에 띄는 건, 숙소마다 눈 앞에 놓인 짐들입니다.
 
정말로 같은 방을 쓰게 되는 것일까요?
 
이미 도착한 카운터와 타이머 페어도 있는지, 어디서는 언성이 들려오기도 하고 어느 숙소는 이미 짐을 방 안으로 들인 곳도 있습니다.
 
헬레네 R. 히페리데:저, 잠시만요. (마침 지나가는 연구원을 붙잡는다.) 카운터의 숙소에 관해 전해듣지 못했는데... 혹시 같은 방을 쓰게 되나요?
 
연구원: 맞아요. 장교님께서 지시하셨답니다. 각 카운터의 짐을 옮겨둔 게 보이죠? 혹시 실수로 잘못 가져다두진 않았는지 잘 확인해보도록 해요. (아실링에게 말한다.)
 
아실링 펜들레엄:(연구원분께 감사하다고 꾸벅 인사한다.)
(정말 같은 방이라니. 언질도 받지 못했고, 서로 괜찮은지 확인도 못했는데, 과연 이렇게 같이 방을 써도 괜찮은 것일까? 걱정부터 밀려들어온다.) .. 일단 짐을 들고 들어가죠. 이렇게 내버려 둘 수는 없으니까..
 
헬레네 R. 히페리데:(일단 같이 인사를 하지만, 멀어지는 연구원의 뒷모습을 황망하게 바라본다. 그러다 당신의 눈치를 슬쩍 본다. 혹여 기분이 상했을까 걱정이 돼서이다.) 이렇게 의견도 묻지 않고 하달하는 경우가 많은 건 아니에요. 저야 아실링과 함께 방을 써도 크게 상관이 없지만... ... 괜찮으시겠어요, 아실링? (일단 책도 들고 있고, 짐도 있으니 문을 연다.)
 
다소 넓은 원룸 형태입니다.
 
가벼운 샤워 시설을 갖춘 욕실이고, 작게나마 거실이 분리되어 있지만 주방은 없습니다.
 
책상, 옷장, 소파, 침대와 욕실이 하나씩 딸려 있습니다.
 
아무리 그래도 언질 한 마디 없이 덜컥 숙소를 함께 쓰라고 하다니.
 
DOT는 어떻게든 타이머와 카운터를 붙여두고 싶어 안달이 난 것 같습니다.
 
아실링 펜들레엄:(고모네서 살았던 곳만큼 좋지는 않지만, 이 정도면 꽤 좋은 시설이구나~ 하면서 원룸마저 살펴본다. 먹을 것과 책만 있으면 이곳에서 나가지도 않고 살 수 있을 것만 같았다.) ... 저랑 방 쓰는 거 괜찮으세요?
 
헬레네 R. 히페리데:저는 괜찮아요. 나름 정리를 잘 하고 지내는 편이라, 아실링에게 거슬릴 일은 없을 것 같기는 한데... (깔끔한 방을 한 번 휘 둘러본다.) 혹시 불편한 점이나 고쳤으면 하는 점이 있다면 언제든 말씀해주세요. 아, 침대도 어느새 이층침대로 바꿔주셨군요.
 
아실링 펜들레엄:제가 헬레네에게 거슬릴만한 일을 하는 것은 아닌가 걱정돼서 그래요. (확실히 깔끔하긴 하다. 방을 보는 것만으로도 네가 어떻게 생활하는지 눈에 훤히 보인다.) 침대, 위층이랑 아래층 둘 중에 뭘 쓰고 싶으세요?
 
헬레네 R. 히페리데:그럴 것 같진 않은걸요. 음... 저는 청결과 정리를 중요시해서, 자기 전이나 바깥에 나가기 전에는 꼭 책상과 주변을 잘 정리해두고 가요. 물론 책을 읽거나 공부할 때는 다 어질러두긴 하지만요. 제가 정리해둔 곳을 일부러 어지르지만 않으시면 저는 괜찮을 것 같아요.
 
아실링 펜들레엄:저도 아주 바쁜 상황이 아닌 이상 정리는 제대로 해요. 공부할 때 책 같은 걸 아무렇게나 쌓아두긴 하지만.. 헬레네랑 저는 비슷한 점이 많네요. 다른 사람들도 이럴까요? (이런 게 운명인가? 정말 운명이라는 게 있을 수도 있다는 생각을 조금 해본다. 아직 완전히 믿는 상태는 아니다.)
 
헬레네 R. 히페리데:다행이네요. 하지만 만약 성향이 다르더라도, 천천히 맞춰나가면 되지 않을까 싶어요. 함께 지낸다는 건 그런 거니까요. 서로에게 공간을 내어주고 서로를 배려하기. (당신의 질문에 문가를 돌아본다.) 아까 오면서 보니, 저희처럼 받아들인 분들도 계시지만 싸우시는 분들도 계신 것 같더라구요. 아무래도 워낙 갑작스러운 일이니까요. 카운터의 존재를 오늘 처음 접했으니, 함께할 짝이 나타났다는 말 자체도 당황스러울 만도 해요.
저희는 화가 나는 일이 있어도 웬만해서는 대화로 풀어나갔으면 해요. 얼굴을 붉혀봤자 좋을 건 없잖아요. 웃으며 긍정적으로 살기에도 바쁜 세상인걸요~
 
아실링 펜들레엄:혼자가 아닌 두 사람이 함께 쓰는 방. 이제서야 진짜 이곳에서 살게 되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것도 혼자가 아닌 다른 사람과 함께. 누군가와 같이 방을 공유해 본 적이 없어서 어색할 만도 한 것을, 생각했던 것보다 그리 불편하지도 싫지도 않았다.) 아까 많이 당황하셨죠? 제가 마음에 안 드는 사람인 것은 아닐까 하고 조금 걱정했어요.
싸워봤자 좋을 일 없다는 건 저도 긍정해요. 혹시라도 저로 인해 속상한 일이 생긴다면 바로 얘기해 주셔야 해요. 함께 살 사람의 말을 무시할 정도로 나쁜 사람은 아니니 걱정 마시고요. 아, 다시 한번 더 잘 부탁드려요.
 
헬레네 R. 히페리데:아...! 전혀, 전혀 마음에 안 든다는 생각은 하지 않았어요. (서둘러 고개를 홰친다. 다음 말을 이으려다 잠시 멈칫하더니, 슬슬 타오르는 볼을 손으로 가린다.) 그보다는... 이상하게도 시선이 쏠리고, 본능이 이끌리는 듯한 감각이 들어서... 한 번도 느껴본 적 없는 강렬한 감정이어서 제 스스로에게 놀랐었어요. 아실링도 그러셨을지는 잘 모르겠지만요. (마치 한순간에 달아올라 폭발하는 화산마냥 감정이 달음질하여, 그때 당신이 가까이 다가왔었는지 아닌지도 잘 기억이 나지 않았다.)
그럼요. 저도 잘 부탁드릴게요. 방까지 같이 쓰게 된다니, 저희는 아마 정말 가까운 파트너가 될 것 같아요. 저를 편히 부르셔도 돼요. 다른 타이머 분들은 대개 저를 '헬리' 라는 애칭으로 부르신답니다.
 
아실링 펜들레엄:(이어지는 말들이며 불어지는 본을 멍하니 바라보다가 얼굴이 펑 터질 것 같이 순식간에 붉어졌다. 이런 상황은 처음인지 어쩔 줄 몰라 하며 제 손가락을 마구 꼼지락거린다. 겨우 긴장이 풀렸던 몸이 처음 만났을 적보다 묘하게 더 뻣뻣 거렸다.) 그.. 래요? 싫다는 게 아니라 다행이에요. (그리고 네가 자신의 추태를 기억 못 해서 더욱 다행이다!)
헬리.. 귀여운 애칭이네요. 누가 먼저 그렇게 부른지는 모르겠지만, 당신하고 아주 잘 어울리는 이름이에요. 저는.. '아실'이라고 불러주세요.
 
헬레네 R. 히페리데:전혀, 전혀 싫지 않답니다. 오히려 아실링 같은 분과 파트너가 되어서 참 다행이라고 생각하고 있는걸요. 친한 친구가 될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단순히 친구가 되고 싶다기에는, 자신이 느낀 강렬한 감정은 다소 달랐지만... 모두를 공평하게 아끼고 사랑하는 헬레네는 이번에도 우정이라고 퉁치고 넘긴다)
아실의 애칭도 귀여운걸요. 그럼 아실이라고 부를게요. (고개 꾸닥이고는 일어선다.) 그러면 아실의 짐부터 정리할까요? 정리하면서 DOT에 오기 전에는 어디에서 지냈는지 말씀해주세요.
 
아실링 펜들레엄:(친구! 생각해 보면 아실링은 친구가 없다... 이게 바로 우정이구나 하는 생각과 함께 지금까지 느꼈던 감정들이 빠르게 이해가 되었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우정이라는 틀에 제 감정을 밀어 넣은 것이었다. 그 사실을 본인이 알게 되는 것이 언제일지는 아무도 모른다. 친구 좋아. 헬레네 따라 꾸닥꾸닥.)
(짐 정리하다가보면 시간이 또 금방 지나겠지. 일어나서 스트레칭 쭈욱 한다.) 이곳에 오기 전에는 고모와 함께 11구역에서 살았어요. 그전에는 10 구역에서 살았고요. 10구역보다는 11구억이 더 마음에 들었어요. 제가 좋아하는 것들도 잔뜩 했고요.
 
헬레네 R. 히페리데:11구역에서 거주하셨군요. 많은 예언과 정보들이 오가는 곳이죠. 그리고 무척 추운 곳이기도 하고요. 1-2년 전쯤에 홍보 영상을 찍으려고 갔던 기억이 나네요. (미소하며 짐을 꺼내어 정리한다.) 저는 9구역에서 태어났어요. 부모님과 위로 남매 세 분이 있는 대가족이죠. 부모님과 오빠, 언니들은 전부 의료에 종사하고 계신답니다. 아마 저도 계속 있었다면 의사가 되었을지도 모르겠어요.
 
아실링 펜들레엄:네. 정작 저는 그리 예언 같은 것에 관심은 없었지만.. 가끔가다가 듣는 것은 재밌었어요. 홍보영상 본 적 있어요. 그래서 어땠나요? 11구역은 괜찮은 곳인가요? 저는 10구역과 11구역밖에 가본 적이 없는 사람이라, 다른 곳은 어떤지 잘 몰라요. (무거운 물건들부터 바로 꺼내서 착착 정리한다.) 의사가 된 헬리.. 지금도 멋지지만, 의사가 된 헬리도 무척 멋질 것 같아요. 병원 어린애들한테 인기 많았을 것 같고요. 어린애들은 착하고 예쁜 선생님 좋아하잖아요.
 
헬레네 R. 히페리데:괜찮았죠. 모든 구역이 다 저마다의 매력을 갖고 있어요. (끄덕끄덕) 사정상 갈 수 없는 제 0구역과 제 13구역만 빼고 말이에요. 언젠가는 그곳도 가볼 수 있다면 좋을 텐데... 호기심이 많아서, 궁금한 건 꼭 알아야 직성이 풀리거든요. 대부분의 건물이 하얀색인 9구역에서 지내다가 이곳 4구역에 왔을 때는 얼마나 놀랐는지 몰라요. 건물의 색이 이렇게 다양할 수 있다니, 하면서요. 11구역은 말로만 듣다가 그때 처음 가봤었는데, 쉴새없이 정보들이 돌고 도는 모습이 재밌더라구요. 정보상도 많이 있다고 해요. 한 번 찾아가보고 싶었지만 타이머라는 신원이 노출되면 안 되니, 영상 촬영만 마치고 돌아와야 했었죠. (과거의 경험을 쭉 이야기한다)
맞아요, 저는 아이들을 좋아하니까 소아과 의사가 됐을지도 모르겠네요. 하지만 지금은 타이머가 된 게 무척 잘 됐다고 여기고 있어요. 저의 힘으로 많은 사람들을 구하고, 더 나은 세계를 만들기 위해 힘쓸 수 있다니... 제가 바라던 바거든요.
 
아실링 펜들레엄:나중에 기회가 된다면 다른 구역도 가보고 싶네요. 저를 데리고 홍보영상을 찍는 일은 없겠죠...? 그렇게 찍는 일이 생긴다면 짧게라도 다녀올 수 있을 텐데.. (언젠가는 직접 갈 일이 있겠지. 그리 생각하며 아쉬운 마음 달랜다. 하얀색 건물이라니, 눈이 부셔 별로일 것 같다고 생각했지만, 새하얀 세상 속 예쁘게 빛날 네 머리카락을 상상하니 자신도 모르게 미소가 지어졌다.)
타이머들은 다 당신 같나요? 사람을 돕는 것을 좋아하고, 더 나은 세계를 만들기 위해 노력하는... 그게 아니라면 당신이 대단한 사람이라는 것이겠죠.
 
헬레네 R. 히페리데:다음 달 건국 축제에서 카운터가 소개되면, 그 후로부터는 아마 타이머와 같은 대우를 받을 거예요. ... 아실도 저처럼 제1시의 능력을 쓰실 수 있는 거죠? (문득 그걸 물어보지 못했다는 듯 재빠르게 말한다) 많은 분들이 타이머를 좋아하고 응원해주시는 것처럼 카운터도 곧 좋아하게 되실 거예요. 같은 힘을 지니고 세상을 지키게 될 테니까요. 같이 홍보영상을 찍을 날이 기대되는걸요? (아무래도 당신은 내향적인 성격 같은데, 카메라 앞에서 과연 적응할 수 있을까? 당황하며 시선을 어디에 둘 지 몰라 우물쭈물하는 당신의 모습을 상상하고는 작게 웃는다)
전부 저처럼 책임감과 사명감이 넘치지는 않죠. 단순히 돈을 많이 벌 수 있고, 인기가 많은 점을 좋아하시는 분도 계시고 모든 임무를 설렁설렁 참여하는 분도 계세요. 그래도 멸망을 위해서라면 모두가 힘을 합치지 않을까요. 그렇게 교육받아 왔고, 그게 맞는 일이니까요. (힘이 들어간 목소리였다. 굳은 확신과 신념을 가진 자에게서 들을 수 있는 목소리.)
 
아실링 펜들레엄:아... 그렇게 큰 곳에서 소개가 되고 싶지는 않았는데. (그냥 대우 안 받으면 안 될까요. 이런 생각 하다가 그만둔다. 하기 싫다고 해도 시킬 것 같다나.) 네. 아주 좋은 실력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지만, 사용하는 방법은 알고 있어요. (세상을 지킨다느니, 카메라 앞에 서느니 같은 것들하고는 완전히 관계가 없는 사람이었다. 그런 것들과 관계되고 싶지도 않았고. 아직 오지 않은 미래를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힘이 쭉 빠진다.)
다른 생각을 가지고 모였으나, 멸망 관련한 것은 모두 힘을 합친다니 좋네요. 여러 사람이 모여서 뭔가 단합이 안 되는 것은 아닐까~ 했던 고민이 다 사라졌어요. (그 정도면 자신도 적당히 어울릴 수 있겠다고 생각한다.)
 
헬레네 R. 히페리데:아... 아무래도 좀 불편하실까요? 그래도 그런 행사는 부상을 입었거나 병을 앓는 정도가 아니라면 웬만해서는 참여해야 하거든요. (그는 지금껏 모든 행사를 성실하게, 시종일관 밝은 태도로 참여해 왔던 바 있다. 하지만 제 파트너의 성향은 저와 이렇게나 다르구나. 새삼 깨닫는다.) 사회자 분께 저희 파트를 짧게 편집해 달라고 미리 부탁드려 볼까요?
처음에는 단합이 잘 되지 않았어도, 5년이나 함께 시간을 보내면서 다들 많은 유대감이 쌓였거든요. 이제 두 배로 늘어나게 되었지만 저희는 그보다는 더 빨리 가까워질 거예요. (본능적인 이끌림이 지금도 자석의 인력처럼 서로를 끌어당기는 듯했다.)
그보다... 훈련실에 한 번 가보지 않으실래요? 아실의 이능력은 어떤 것인지, 어떤 방식으로 쓰시는지 알고 싶어요.
 
아실링 펜들레엄:(병을 앓는다고 꾀병을 부려야 할까. 꼼수 쓰고 회피할 생각이나 한다.) 매번 빠지기는 어렵겠죠. 어쩔 수 없네요. 짧게 편집해달라고 부탁드리는 게 좋을 것 같아요. 너무 길었다가는.. (상상도 하기 싫다!)
당신하고는 금방 친해진 것 같은데.. 다른 사람들하고도 빠르게 알아갔으면 좋겠네요. 그렇다고 너무 만나는 것은 좀 그렇고. (잦은 만남은 아실링을 지치게 만든다..)
언젠가는 보여드려야 하는 것이니, 좋아요. 너무 기대하지는 마세요. 부끄러운 실력일 거예요.
 
헬레네 R. 히페리데:다른 분들과도 곧 친해지실 수 있을 거예요. 제가 소개시켜드릴게요. (금세 친해지리라 믿는 듯 긍정적인 톤으로 말한다. 그 자신이 원체 친화력이 좋은지라 더 그러한 것이겠지만)
어차피 앞으로도 계속 합을 맞추게 될 테니까요. 너무 부끄러워하지 않으셔도 된답니다. (곧장 일어나 문을 연다.) 그러면 3층으로 내려가요.
 
아실링 펜들레엄:(소개를 통한 만남을 통한 것이라면 친하지는 것이 빠르겠거니 하며 일단 고개를 끄덕인다. 여러 사람과 두루두루 친하게 지내는 편이 아니다 보니 어려움이야 있겠다만, 처음부터 마음을 접기에는 그럴 수 없는 상황이었다.)
이럴 줄 알았으면 좀 열심히 해볼 걸 그랬어요. 저 같은 일반인..한테 이런 능력을 연습할 장소나 기회 같은 건 없어서요. (차분한척하지만 꾹 쥔 손에서 긴장감이 드러났다.)
 
헬레네 R. 히페리데:아직 각인이 나타나신지도 얼마 되지 않으셨으니까요. 연습할 만한 기회가 없었던 게 당연하죠. (계단참으로 향해 가벼운 걸음으로 층계를 내려간다.) 앞으로 이곳에서 마음껏 훈련하고 연습하면 되니까요! 저도 밥 먹듯 이곳을 드나든답니다.
이제 혼자가 아니라 둘이니까... 오늘은 일단 8번 훈련실로 가봐야겠어요. 훈련실의 숫자가 커질수록 공간이 넓어지거든요. 그간에는 3~5번 훈련실을 주로 사용했었답니다.
 
헬레네가 8번 훈련실을 노크하고, 아무도 없다는 걸 확인한 뒤 문을 엽니다.
 
깔끔하면서도 여러 전문적 설비가 준비되어 있는 공간입니다.
 
8번이면 중간 즈음 크기에 속하는 훈련실일 텐데도 상당히 큽니다.
 
타이머들의 능력이 그만큼 잠재력이 깊고 범위가 넓다는 증거겠죠.
 
헬레네 R. 히페리데:어떠신가요? (당신이 구경하도록 두면서 한켠의 드레스룸으로 다가간다. 그 옆에는 냉장고와 서랍 등이 붙어있다.) 훈련하다 피곤하거나 출출해지면 간단하게 배를 채울 수 있게, 각자의 취향에 맞춘 간식이 준비되어 있어요. 물과 음료수도 물론이구요. 훈련이 끝난 후에는 드레스룸에 붙은 샤워실에서 씻고 나올 수 있답니다. 저는 아무래도 물 능력인지라 젖을 일이 많은데, 그럴 때를 대비해서 수건도 넉넉히 준비되어 있어요.
 
아실링 펜들레엄:(시설을 둘러보며 놀라움을 감추지 못한다. 수건 두어 개정도를 손에 쥐고 들뜬 표정으로 뒤돌아본다.) 그 말은 물을 이용할 수 있는 공간도 크다는 말이겠네요. 저는 고작.. 욕조에 있는 물 정도만 겨우 사용해 봤는데. ... 능력이 능력이다 보니, 많은 물을 사용해 본 적이 없어서 좀 들뜬 것 같아요. 너무 어린애 같았나요..?
 
헬레네 R. 히페리데:어린애 같긴요. 저희의 훈련 및 능력 향상을 위해서 DOT의 분들께서 신경써서 만들어주신 공간이니까요. 방수나 화재에도 다 대비해두었다고 하니 마음껏 능력을 사용하셔도 돼요. (아, 하면서 벽의 상단 구석을 가리켠다.) 혹시나 다칠 염려를 대비해서 CCTV도 설치되어 있답니다.
 
아실링 펜들레엄:그렇군요~.. (다 대비해뒀다는 말을 망가트려도 잘 고칠 수 있다는 말로 알아듣고 눈 반짝인다. 돈도 많이 있을 테니 훈련실 좀 엉망으로 만들어도 괜찮겠지 하는 것이 눈에 훤히 보인다.) 당신은 어떻게 훈련했나요. 이야기가 듣고 싶어요.
 
헬레네 R. 히페리데:그럼 먼저 제 능력에 대해 정확히 말씀드려야겠네요. (작은 사이즈의 수조에 물을 담아오더니 바닥에 내려놓는다.) 저는 공기 중의 액체를 극대화시켜 물을 생성할 수 있어요. 훈련할 때는 이렇게 물을 받아오지만, 바깥에서는 수증기나 빗물, 심지어 땀이나 침 같은 체액으로도 만들어낼 수 있답니다. (손바닥 위에서 투명한 물방울이 몽글몽글 생겨난다. 손바닥을 바로 적시지 않고 동그란 형태를 유지하고 있다.) 염도도 조절할 수 있지만, 아직 기본값은 바닷물로 생성되고, 완전한 민물을 만들어내는 걸 목표로 훈련 중이에요. 만들어낼 수 있는 물의 양도 천천히 늘려가고 있답니다. 현재는 약 500리터까지 만들 수 있어요. 그만큼 생성해낸 이후에는 어느 정도 휴식을 취해야 한답니다.
 
아실링 펜들레엄:저와는 전혀 다른 능력이네요. 제가 원했던 능력이기도 하고요. 아, 그렇다고 지금 제 능력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말은 아니에요. 제 능력은 물이 없는 곳에서는 힘을 못쓰다 보니, 사용함과 동시에 생산할 수 있으면 좋겠다고 항상 생각했거든요. (제 능력의 단점을 보안할 수 있다는 것에 집중하며 손 위의 물방울을 유심히 바라본다.) 얼마나 연습한 건가요? 물론 저보다는 더 오랜 기간 동안 열심히 연습하셨겠지만...
 
헬레네 R. 히페리데:아실링은 능력을 어떤 식으로 사용하고 계시나요? 저는 물을 생성할 수는 있지만, 그 많은 양을 조절하지는 못해요. 고작 제 얼굴 정도의 크기까지나 이렇게 손바닥 위에 떠올릴 수 있는 정도랍니다. 그래서 저는 대체로 가뭄을 겪은 지역에 물길을 터주거나, 위험한 상황에 처한 이들에게 물로 받침대를 만들어서 충격을 완화해주는 식으로 사용하고 있어요. 생성 위치는 제 시야에 들어오는 곳이라면 어디에서든 마음대로 만들어낼 수 있거든요. 이걸 활용해서 공격 쪽으로도 쓸 수 있겠지만 지금까지는 대인 전투 상황에 나서본 적은 없어요. 조금 더 공격적인 능력을 지닌 타이머 분들께 일임했었죠. (그건 그의 성향과도 관련이 있을 것이다.) 각인이 생겨나고 DOT에 들어온 직후부터 훈련을 시작했으니, 이제 5년 정도 되었네요.
 
아실링 펜들레엄:저는 조종하는 쪽이에요. 최대로 조종할 수 있는 양은.. 아직 몰라서 정확하게 말씀드릴 수 없네요. 수영장 같은 곳에서 능력을 사용했다가는 걸릴 것 같아서, 욕조 물로 해본 게 최대치에요. 대충 가늠해 보자면... 200리터네요. 그 이상은 아직 시도 못해봤어요. 사용도 아주 소심하게 해봤을 뿐이에요. 욕조에 있는 물로 작은 파도 만들기나 수압을 조절해 보기, 몸에 두르기가 끝이네요. (전에 연습했던 것처럼 손을 이리저리 움직여본다.) 어린 나이인데... 연습이 하기 싫거나 힘들지는 않았어요? 저라면 귀찮아했을 것 같아서요.
 
헬레네 R. 히페리데:조종이군요! 그러면 저희의 능력은 합이 정말 잘 맞겠어요. (기뻐하며 박수를 친다.) 제가 물을 생성해내면 그 물로 아실링이 적재적소에 활용해주시면 되겠네요. 이제 막 각인이 생겨났는데 200리터라니, 잠재력도 대단하신 것 같아요.
사실 훈련하는 건 저의 한계를 뛰어넘고자 노력하는 것이니, 힘들지 않았다고 하면 거짓말이겠죠. 그래도 사람들을 위해 제 능력을 발전시킨다고 목표를 잡으니 그 목표에 다다르고 싶어 열심히 노력하게 되더라구요. 무엇이든 목표가 있어야 하는 것 같아요.
그러면 한 번 시도해볼까요? 제가 물을 만들 테니 저희 주변에 물을 방어막처럼 둘러주세요.
 
아실링 펜들레엄:너무 칭찬해 주시면 부끄러워요.. 컨디션 같은 것에 영향을 많이 받는듯해서 너무 기대해 주시면 조금 부담스럽기도 하고요. 물론 싫다는 건 아니에요.
저와 매우 다른 시간을 보내셨네요. 자라온 환경이 달라서였을까요? 저는 능력을 쓰는 것에 대한 목표 같은 것은 없어서요. 정할 필요성도 아직 잘 모르겠고.. 아, 물론 걱정 마세요. 보이기에 부족함 없도록 노력할 테니까요.
그런 식으로 해본 적은 없어서.. 잘 될지 모르겠지만 일단 해볼게요..!
 
<이능력> 판정
 
헬레네 R. 히페리데:(아실링의 주변에 둥둥 떠오른 물을 만든다)
 
아실링 펜들레엄:
이능력 Roll
기준치: 30/15/6
굴림: 84
판정결과: 실패
(떠오른 물을 유리 어항마냥 둥글게 만들어보다가 바로 실패한다.) ... 부끄럽네요... 쥐구멍이 있다면 숨고 싶어요.
 
물들을 둥글게둥글게 뭉쳐보려고 했지만...
 
그냥 주변으로 촥 하고 떨어지고 맙니다.
 
물이 튀면서 치마며 양말이 쫄딱 젖고 말았네요.
 
헬레네 R. 히페리데:정말 괜찮아요, 아실! (익숙한 일인 듯 전혀 개의치 않으며 수건으로 대강 다리 부분만 닦는다.) 저도 열두 살 때는 얼마나 실패했는지 몰라요. 게다가 그때는 염도를 조절할 줄도 몰라서, 매번 바닷물을 마시고 켁켁댔답니다. 떠올려보면 무척 우스울 것 같지 않나요? (분위기를 풀어주려는 듯 웃는다)
 
아실링 펜들레엄:(한 번에 성공하는 게 쉽지 않을 일이라는 것 정도는 알고 있지만, 감정은 따로 노는지 침울한 티를 못 벗어내고 있다. 수건으로 물기를 툭툭 닦아내며 캑캑거리는 헬레네가 아닌 어린 헬레네를 상상한다.) ... 귀여웠을 것 같아요. (사진 있으면 보여달라고 해야지.)
 
헬레네 R. 히페리데:(수건으로 당신의 머리칼에 튄 물기도 톡톡 닦아준다.) 제 입으로 귀엽다고 말하기는 부끄럽지만... 아무튼, 실패에 너무 마음쓰시지 않아도 된다고 말씀드리고 싶었어요. 앞으로도 함께할 시간은 많을 테고, 훈련할 시간도 무궁무진할 테니까요.
그런 의미에서 한 번만 더 해볼까요?
 
아실링 펜들레엄:이번에도 실패하면... 좀 혼내셔도 돼요. 그쪽이 저한테 더 편할 것 같기도 해서요. 아니면 학생처럼 대해주시던가요.
한 번 더 해볼게요..!
이능력 Roll
기준치: 30/15/6
굴림: 45
판정결과: 실패
 
이번에는 물이 어느 정도 형태를 갖추는 듯하다가...
 
다시 철퍽 떨어져 바닥을 적시고 맙니다.
 
능력을 세심하게 조절하는 건 어렵네요.
 
헬레네 R. 히페리데:제가 왜 혼내나요. 저는 그럴 만한 자격도 없고, 혼내고 싶지도 않아요. (이번엔 상의까지 젖었지만 마찬가지로 하나도 신경쓰지 않는다.) 원래 실패해가면서 배워가는 거예요. 어떻게 처음부터 잘 할 수 있겠나요?
 
아실링 펜들레엄:혼나면서 진행하면 더 잘할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서요. 물론 당신이 싫다는 것을 해달라고 할 생각은 없어요. (연속된 실패화 애매한 축축함 때문에 표정이 더욱 굳어졌다.) 잘해보고 싶은 마음이 컸나 봐요. 원래 다 그런 거잖아요.
 
헬레네 R. 히페리데:그럼요, 그 마음도 충분히 이해가 가요. (아무래도 여기서 더 진행하면 안 되겠다! 싶어 얼른 수건으로 머리도 닦아주고 조끼도 탈탈 털어준다. 굳어진 표정에 고민하다가 냉장고로 도도도 뛰어가더니 초콜릿 바를 하나 들고 온다.) 초콜릿, 좋아하세요? 아니면 마카롱이나 샌드 쿠키도 있어요. 기분이 안 좋을 땐 단것으로 달래보는 것도 좋죠.
 
아실링 펜들레엄:(이렇게 연속으로 실패해놓고 간식을 먹어도 괜찮은 것인가? 이곳에 정말 있어야 하는 사람인가? 같은 것들을 줄줄이 이어 생각하다가 거절하는 것도 예의는 아닌 것 같다 싶어 손을 내민다.) 초코바면 충분해요.
 
헬레네 R. 히페리데:원하는 만큼 마음껏 드셔도 돼요. 그래도 많이 젖지는 않았으니 일단 다시 저희 숙소로 돌아가서 잠옷으로 갈아입을까요? 이제 슬슬 저녁 식사를 하고 잠들 시간이네요.
 
아실링 펜들레엄:하나면 충분해요. (지금 상황에서 먹었다가는 소화도 잘 안될 것 같고. 초코바 가져가서 입에 쏙 넣는다.) 벌써 시간이 그렇게 되었군요. 그럼 돌아가서 준비하죠. 능력에 관한 이야기는 옷 갈아입은 뒤에 더 들려주시겠어요?
 
헬레네 R. 히페리데:물론이에요. 훈련실은 저희가 다 썼다는 신호를 보내면 알아서 청소 및 정돈을 해주시니 이것도 참고해주시면 된답니다. (신호를 보내는 버튼을 꾹 누르고는 문을 연다.)
 
두 사람은 다시 숙소로 올라갑니다.
 
평소에는 식당에서 식사를 하지만, 오늘은 타이머와 카운터의 시간을 위해서인지 방으로 식사가 조달된다고 하네요.
 
옷을 갈아입고 조금 쉬고 있자면 노크 소리와 함께 문 너머로 맛있는 냄새가 풍겨옵니다.
 
아실링 펜들레엄:식사하면서 다른 분들과 대화를 나눌 수 있을 줄 알았는데. (이렇게 말만 잘하지 여러 사람과 대화 나눌 기력은 없어서 오히려 이 상황이 반갑기만 했다.)
메뉴는 뭘까요? (문 앞으로 쫑쫑)
 
헬레네 R. 히페리데:내일 아침부터 식당에서 뵐 수 있겠네요. 하지만 늦잠을 자는 분들은 아침 식사를 거르기도 하셔서 전부 뵈려먼 또 점심이나 아침이 되어야겠어요. (같이 쫑쫑 간다.)
 
문을 열자 고급 식판 두 개가 트레이에 가지런히 놓여 있습니다.
 
식전빵과 버터와 잼, 스테이크와 샐러드 등 아주 화려하진 않지만 척 봐도 먹음직스럽고 품질이 좋아 보이는 식사입니다.
 
아실링 펜들레엄:(생각한 것보다 식사 질이 좋아서 좀 놀랐다.) 뭔가 집에서 먹었던 것보다 더 좋은 식사인 것 같은 느낌인데... 평소에도 이렇게 드세요?
 
헬레네 R. 히페리데:평소엔 이보다 더 반찬 가짓수가 많답니다. 오늘은 나름 조촐하게 준비해주신 것 같네요. (이게 조촐) 맛있어 보이죠? 얼른 함께 먹을까요?
 
아실링 펜들레엄:이렇게 맛있어 보이는 식사를 차갑게 식히는 것은 요리해 주신 분에 대한 예의가 아니긴 하죠. (배가 고프기도 했고. 금방이라도 꼬르륵 소리가 날 것 같은 배를 의식하며 트레이를 안으로 가져간다.)
 
헬레네 R. 히페리데:(트레이를 들고 와 테이블에 앉아 식사를 시작한다. 일단 빵부터 냠냠) 잘 먹어야 체력도 키울 수 있으니까요! 식사를 잘 챙기는 건 타이머의 기본 중 기본이죠.
 
따스한 음식은... 하나같이 엄청나게 맛있습니다!
 
DOT 복지가 좀 되네요.
 
아실링 펜들레엄:(빵에 버터를 발라 한입 베어먹고는 눈 동그래진다.) 요리사분이 누군지는 모르겠지만... 만나게 된다면 감사 인사를 드려야겠네요. 버터 질도 아주 좋고, 빵도 맛있네요. (냠냠!)
 
헬레네 R. 히페리데:그렇죠? 내일부터 식당에서 먹게 될 식사도 기대해주세요. (괜히 자기가 뿌듯하다. 스테이크도 잘라 샐러드를 얹어 먹는다.) 아, 제 능력에 관해서 또 궁금하신 점이 있으신가요?
 
아실링 펜들레엄:아침식사도 기대가 되네요. 하루를 좋게 시작할 수 있겠어요. (나이프로 스테이크를 자르던 손을 멈추고 주위를 살펴본다.) cctv나 도청기 같은 것을 설치했을 것 같지는 않겠죠? 사람 사는 방인데? (...) 능력 사용이나 성장에 대해서 DOT이 많이 주시하는지 궁금해서요.
 
헬레네 R. 히페리데:아, 저희의 방에는 그런 건 없으니 걱정 마세요. (안심시켜주듯 얼른 대답한다) 아무래도 그렇죠. 저희의 발전과 향상은 곧 DOT의 힘이자 세상을 지킬 힘이 될 테니까요. 또 그만큼 위협적으로 비칠 수도 있을 테고요. 저는 순응하고 있지만, DOT의 체제나 타이머로서 사람들을 지키는 일에 반항하는 분들도 계시거든요.
처음에는 많이 신경쓰이시겠지만, 지내다 보면 차차 적응될 거예요. (약간은 서글프게 미소한다) 이런 건 적응해서 좋을 건 없다곤 하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니까요. 그만큼 저희는 일반인과는 다르기도 하고요.
 
아실링 펜들레엄:저희 방에는...? 다른 곳에는 있다는 얘기군요. 아까 본 cctv도 그렇고.. (말 잘못하면 큰일 나겠다 싶었는지 샐러드로 입을 가득 채운다.) ... 사람들을 위한 행동들은 좋은 것이지만, 제가 보기에는 희생 같아보기이도 해서요. 남들에게 없는 능력 때문에 DOT에 협조해야 하니, 좋게 생각하는 것도 한계가 있다 싶고요.
저는 자유롭고 싶어서 제 가족을 떠나 고모한테로 갔어요. 그래서 그런지, 제 맘대로 할 수 없는 부분에는 적응하기 어려울 것 같네요. 물론 어렵다 뿐이지 못한다는 아니니 걱정 마세요. 노력해 볼게요.
 
헬레네 R. 히페리데:만약 언행을 거칠게 하더라도 일일이 추궁받거나 질책을 받는 일은 없다시피 해요. CCTV는 많지만, 어쨌건 저희를 존중해주시려고 하거든요. 그러니 너무 본인을 검열하려 들지는 않으셔도 돼요. 적어도 저희에겐 여기가 집과 같은 공간인걸요. (세상에서는 언제나 눈에 띄는 능력자였으니.)
자유... ... (두 음절의 단어가 마치 먹지 못하는 것을 입안에 넣은 듯이 이질적으로 혀 위를 굴렀다.) 슬프게도, 군부대적 규율과 규칙을 많이 도입한 DOT와는 어울리기 힘든 말이네요. ... 그래도 저희가 성인이 되고 정식으로 타이머와 카운터로서 임관을 받고 나면 한결 규제가 풀릴 거예요. 관사 바깥에 나가서 살 수도 있다고 들었어요.
 
아실링 펜들레엄:추궁이나 질책을 받는 일은 거의 없다니 좋은 소식이네요. 귀한 능력자니 그 정도는 봐준다는 것이군요. 존중인지 아닌지는 잘 모르겠지만요. 지금의 제가 보기에는 그래요. (제 눈으로 직접 상황을 확인한 뒤에는 다르게 생각할 수도 있다는 말이기도 했다.)
학교 규율이나 규칙도 아닌, 군부대의 것이니 아주 자유로울 것이라는 생각은 안 했어요. 그런 생각해 봐야 좋을 것 같지도 않고. ... 바깥에 나가서 사는 상상 같은 거 해본 적 있어요? 당신 마음대로 사는 삶이요.
 
헬레네 R. 히페리데:각자의 가치관과 시야는 각기 다르니, 제가 그렇게 느꼈대도 아실에게는 다를 수도 있겠죠. 그래도 저는 DOT의 분들이 나쁜 분들이라는 생각은 하지 않아요. 다 좋은 세상을 만들기 위해 함께해주시고 계신걸요. 어릴 적부터 뵈어서 그런지 저에게는 가족 같기도 해요. (차분하게 말하며 마지막 샐러드를 입안에 넣었다.)
음... ... 상상해본 적 있었던 것 같아요. 하지만 저는 사람들을 위해 헌신하고, 도우며 살아갈 수 있는 지금의 삶이 마음에 들어서요. 천성이 그런가 봐요. 다른 타이머 분들은 1:1 인터뷰 같은 개인적인 일정을 잡을 때, 저는 봉사활동이나 여러 공적 행사에 일부러 참여하고 싶어했거든요. 저는 사람들을 많이 만날수록 더 활기를 얻게 되더라구요.
 
아실링 펜들레엄:가족 같다고 하는 걸 보니 많이 믿고 있나 보네요. 좋아요. 당신이 그렇게 말하니 저도 믿어볼게요. (아는 것보다 모르는 것이 많다 보니 완벽하게 신뢰하기는 어렵지만, 적어도 부정적인 시선으로 바라보지 않으려 노력하는 마음먹는다.)
아... 봉사와 공적 행사 둘 중에 고를 수 있는 건가요? (자신도 둘 중 하나를 고를 수 있다면 어느 쪽을 고를지 짧게 상상한다.) 저는 둘 다 별로일 것 같지만, 이왕이면 당신이 있는 곳으로 가고 싶네요.
 
헬레네 R. 히페리데:한 행사에 모든 타이머가 강제 참여해야 하는 건 아니거든요. 전원이 소집되는 건 매년 있는 건국 축제 정도밖에 없어요. 그 외에는 광고나 행사 활동 의뢰 중 마음에 드는 걸 골라서 참여하면 되는 거랍니다. 웬만해서는 자유 참여예요. 하지만 한 번 참여할 때마다 보수가 대단하기 때문에, 재산을 원하시는 분들은 일부러 더 열심히 참여하기도 하시더라구요.
저도 웬만해서는 아실과 함께하고 싶어요. 그래도 아실이 참여하기에 어렵거나 불편한 곳이라면 당신의 의향을 많이 따를게요. (친근하게 미소한다.) 이제 식판을 내놓고 잘 준비를 할까요? 수업이 있으니 너무 늦게 자면 안 돼요.
 
아실링 펜들레엄:(보수 소리에 귀가 솔깃해졌다. 광고나 행사 의뢰라면 딱 질색이지만, 대단한 보수는 없던 외향성도 만들 것 같았다. DOT에서 벗어나든 못하든, 금전적인 것에 대한 부분은 어디서든지 중요할 것이라며 자세한 것은 나중에 질문하기로 결심한다.)
좋아요. 방금 말한 거 잊지 않을 거예요. 저 기억력 좋아요. 저 혼자 두고 다른 곳 가시면 삐질 테니 잘 챙겨주세요. (가벼운 농담을 하며 픽 웃는다.)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는 습관을 길러야 하군요. ... 알겠어요. 이참에 야행성 생활습관도 고쳐보도록 할게요.
 
헬레네 R. 히페리데:그럼요! 저도 꼭 기억해서 아실의 마음이 상하지 않도록 노력할게요. (식판을 다시 트레이 위에 가져다두고 온다. 샤워를 하면서 묶은 머리칼도 풀어내려, 주황색 곱슬머리가 허리춤을 길게 덮었다.) 야행성이셨군요... 생활 패턴을 바꾸는 게 쉽지만은 않을 텐데.
그러고 보니, 저희 이층침대의 어떤 층을 쓸지 아직 안 정했던 것 같아요. 어디가 편하세요, 아실?
 
아실링 펜들레엄:(내려 묶었던 머리카락으로 땋으며 잘 준비를 한다.) 쉽게 바뀌는 것은 힘들 것 같죠? 제가 뒤치적거려도 좀 용서해 주세요. 야행성에, 누구랑 같이 방을 쓴다는 게 어색해서 쉽게 잠들 것 같지가 않아서요.
제가 골라도 괜찮은 것인가요? ... 그렇다면 저는 위층으로 고를게요. 물론 당신이 지내기에 아래층이 불편하시다면 바로 바꿔드릴 수 있어요.
 
헬레네 R. 히페리데:걱정 마세요. 그런 사소한 점은 함께 지내면서 적응해가면 되니까요. (끄덕끄덕) 좋아요, 제가 아래층을 쓰게 되겠네요. 저는 원래 1층 침대를 오래 써 왔다 보니까, 아래층이 더 익숙할 것 같기는 해요.
만난 지 하루밖에 안 됐는데도, 왠지 아주 긴 하루였던 것 같아요! 이제부터는 더 많은 시간을 함께하게 되겠죠? 그리 상상하니 설레어서 저도 오늘 잠을 설칠 듯해요.
 
아실링 펜들레엄:오늘과는 비교도 안될 정도로 긴 시간을 함께하겠죠. 오늘 여러 가지 일들이 많았네요. 멋지게 능력 사용하는 것 못 보여드려서 아쉽긴 하지만, 그래도 즐거운 하루였어요. 내일은 더 즐거웠으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잠에 들려고 할게요. 내일도 함께해 주세요.
 
헬레네 R. 히페리데:아실도 즐거우셨다고 하니 무척 기뻐요. (들판에 피어난 흰 들꽃마냥 순수하게 미소한다.) 실수는 너무 오래 마음에 담아두지 말고, 시냇물에 흘려보내듯 잊어버리세요. 좋은 일만 상기하기로 해요. (당신의 두 손을 살짝 잡았다가 놓아준다.)
그럼, 이만 누워볼게요. 부디 좋은 꿈 꾸세요, 아실. 너무 잠이 오지 않으신다면, 여러 티백을 구비해두었으니 한 잔 마시고 주무셔도 괜찮을 거예요.
 
아실링 펜들레엄:당신 덕분에 즐거웠어요. 혼자였다면 느끼지 못했을 거예요. (네가 아닌 다른 사람과 함께 시간을 보냈다면 어땠을까? 같은 생각은 하지 않았다. 그 어떤 사람이 와도 지금 이 관계보다 더 좋을 것 같다는 확신이 들지 않았다.)
(계단을 타고 쪼르르 올라가 자리에 눕는다.) 주무세요. 헬리도 좋은 꿈 꾸시고요. 저 때문에 못 주무시겠으면 바로 얘기도 해주세요 해요~.. (아래층을 향해 손 뻗어 흔든다.)
 
헬레네 R. 히페리데:네, 잠자리가 아실에게 편안하기를 바랄게요! (이불 안으로 꼼지락거리며 들어간다. 아래층으로 뻗은 당신의 손을 손끝으로 살짝 건드리곤 작은 웃음소리를 냈다. 생각지도 못한 만남과 동거의 시작이었지만, 처음 볼 때부터 느꼈던 운명적인 강렬함 때문일지 마냥 좋기만 했다.)
 
강렬한 만남으로 장식된 하루였습니다.
 
야행성인 아실링은 잠을 설쳤을지도 모르지만, 어느 순간부터는 까무룩 잠에 빠져들었답니다.
 
두 사람은 아주 가까워질 수 있을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던 밤이었습니다.
 
그리고, 또 다시 날이 밝습니다.
 
타이머와 카운터는 아직 미성년자이기 때문에 정식 임관을 받지 못했습니다.
 
따라서 임무보단 수업과 훈련이 주 일과를 이룹니다.
 
아침 식사를 마치고, 서관 2층의 교실로 들어오면 14개뿐이던 책상과 의자는 28개가 되었습니다.
 
이러니저러니 해도 타이머와 카운터는 서로의 옆자리를 꿰차고 있고요.
 
헬레네 R. 히페리데:간밤에는 잘 주무셨나요? (식사를 마치고 교실로 향하고 있다.)
 
아실링 펜들레엄:편안한 밤이었지만.. 저한테는 원래 이 시간이 한참 잠자고 있을 시간이어서 그런지 조금 어색하고 피곤한 게 남아있는 것 같아요. 아, 그래도 활동하는 것에는 문제없어요~..
 
헬레네 R. 히페리데:그래도 편안하게 보내셨다니 다행이에요. 여유있게 일어나려고 하지만, 저도 아침잠이 조금 있어서 아침 시간에는 빠르게 준비를 하느라 바쁘답니다.
 
교실로 들어섭니다.
 
교사: 1시 페어도 왔군요. 자리에 앉으세요.
 
자리는 나란히, 딱 두 개가 남아있습니다.
 
아실링 펜들레엄:저희.. 늦은 건가요? (소곤거리고는 빠르게 자리에 착석한다.)
 
헬레네 R. 히페리데:약간 아슬아슬했어요. (속삭인다) 저도 어젯밤 설레서 뒤척이다 보니 조금 늦게 일어나 버렸거든요.
 
두 사람이 자리에 앉으면 수업이 시작됩니다.
 
창틀 너머로 아침 햇살이 쏟아집니다.
 
꽃샘추위도 누그러진 초봄은 앉아서 수업을 듣기엔 아까울 정도로 완벽한 날씨입니다.
 
교사는 칠판 위로 분필을 움직입니다.
 
달그락거리는 소리와 부드럽게 흔들리는 커튼, 책상 위의 그림자…….
 
평소와 똑같지만, 단 하나, 옆에 앉은 사람만이 어제와 다르군요.
 
<관찰> 판정
 
아실링 펜들레엄:
관찰력
기준치: 70/35/14
굴림: 33
판정결과: 어려운 성공
 
그러고 보니, 입학하고서도 딱히 교과서나 시간표를 안내받은 적이 없는데……
 
교실에도 교과서는커녕 공책조차 보이지 않습니다. 무슨 수업이 이렇담?
 
아실링 펜들레엄:(원래 공부를 이렇게 하는 건가? 헬리만 힐끔힐끔 바라본다.) 여기서는 다르게.. 공부를 하나요? (소곤..)
 
헬레네 R. 히페리데:아... 오늘 수업은 국어나 사회 같은 일반 과목이 아니라, DOT의 자체 과목인 '시간'이거든요. 보통 입학 후 초반에 듣는 수업인데, 교과서가 필요한 과목은 아니에요.
능력의 정의를 비롯한 다루는 방법과 더욱 효율적으로 활용하는 방법, 능력을 사용해도 되는 상황과 사용해선 안 되는 상황... 대체로 이런 걸 배우거든요.
 
아실링 펜들레엄:저한테는 엄청 낯선 상황이네요.. (교과서가 없는 수업이라던가 전체 수업 같은 것은 어색한지 앉은 자세 그대로 굳어있는다.) 뭔지 모르겠으니 일단 들으면 되는 거겠죠?
 
헬레네 R. 히페리데:일반적인 수업과는 좀 다르죠? (도닥여준다) 어렵지 않으니, 일단은 들어보아요.
 
교사가 분필을 들어 다각다각 글씨를 새깁니다.
 
적은 것은 다음과 같습니다.
 
: 1. 타이머와 카운터로서 가장 중요하게 여겨지는 자질은 무엇인가?
2. 타이머가 사라진다면 세계는 멸망할 것인가?
3. 도밍게즈의 건국 신화를 읽고, 시간과 능력 사이의 상관관계를 생각해보자.
 
교사:자, 새로운 친구들이 왔으니 오랜만에 초심으로 돌아가 볼까요.
 
운을 뗀 교사는 첫 번째 문장을 읽습니다.
 
교사:타이머와 카운터로서 가장 중요하게 여겨지는 자질은 무엇인가? 별 것 아닌 문제 같지만, 도밍게즈에서 타이머란 상당한 영향력을 가집니다. 따라서 자신의 본분과 역할을 정확히 이해해야 하죠.
카운터 또한 건국 축제를 기점으로 동일한 권리와 의무를 갖게 될 테니, 여러분에게도 중요한 문제입니다.
(시선이 아실링에게로 향한다. 대답을 기다리는 듯하다.)
 
아실링 펜들레엄:행동에 대해 책임지려는... 마음가짐이나 자세이지 않을까요? (너무 솔직하게 대답했다가는 혼나는 게 아닌가 싶어 교과서적인 대답을 한다. 첫날부터 이러는 게 어디 있어요! 구시렁거리는 것은 덤이다.)
 
헬레네 R. 히페리데:(오래지 않아 답을 내놓는다. 평소에도 자주 생각해 오던 문제였던 듯.) 자신이 무엇을 위해야 하고, 무엇을 추구해야 하는지 정확히 파악하는 시야라고 생각해요.
 
이어 다른 학생들도 대답합니다. 강한 능력, 자비로운 마음, 결단력...
 
교사:여러 가지 이야기를 들었습니다만, 저는 적어도 ‘타이머가 아닌 나와 타이머인 나를 분리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럴싸한 대답인가요? 혹은 의외의 대답인가요?
 
아실링 펜들레엄:(의외의 대답이지만 일단 고개 끄덕이고 본다. 말 잘 이해하는 학생으로 보여서 나쁠 일은 없다고 판단한 결과.)
 
교사:사람으로 태어난 이상, 구원자라고 하더라도 결국 개인이에요. 언제나 구원자, 타이머, 카운터라는 이름에 휘둘렸다간 오래 버틸 수 없을 겁니다.
그러니 힘들어진다면 ‘구원’한다고 생각하지 말고, ‘일’을 하는 중이라고 생각해보세요. 사회적인 껍질을 뒤집어쓰고, 개인으로서의 일은 잠시 차치해두는 거죠. 정말 정의로운 사람이 되려고 기를 쓰거나, 훌륭한 사람이 되려고 발버둥 치는 것보단 쉬울 겁니다.
 
헬레네 R. 히페리데:(그 말의 무게를 깊이 이해하는 듯 집중하여 들으며 연신 고개를 끄덕인다. 헬레네에게는 구원자라는 자아가 아주 큰 책무였으므로)
 
가볍게 조언한 그는 이윽고 2번째 문장으로 넘어갑니다.
 
교사:자, 그럼 생각해보죠.
타이머가, 그리고 나아가서 카운터가 사라진다면 세계는 멸망할까요?
 
아실링 펜들레엄:멸망하지 않을까요...? (저 같은 사람이 발언하기에는 어려운 문제인 것 같습니다, 선생님! 하고 말이 튀어나올 뻔했다.)
 
헬레네 R. 히페리데:아마 큰 위기가 닥쳐오겠죠. 하지만 가능성이 낮다는 걸 알고 있음에도, 멸망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침통한 대답이었다. 멸망이란 상상만 해도 아픈 주제였으니.)
 
교사:사실 이건, 도밍게즈가 생겨난 이래, 타이머와 카운터가 존재하지 않았던 적이 없으므로 명확히 기다, 아니다를 나눌 수 있는 문제는 아닙니다. 하지만 충분히 가능성 있는 가설로 여겨지고 있어요.
 
교사:사람들은 시간이 있기에 타이머가 태어난다고 믿지만, 실상은 반대예요. 타이머가 있기에 시간이 존재하는 거죠. 인류는 눈에 보이는 것이 있을 때, 비로소 눈에 보이지 않는 것들을 잊지 않는 법입니다.
물론... 이는 전부 가설입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 것들의 섭리를 인간이 모두 다 이해할 수는 없는 노릇이니까요.
하지만,
타이머가 둘이라면 시간은 더 안정적으로 존재하며 흘러갈 거예요. 끝은 멀어질 겁니다. 영원히 미룰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최소한 초읽기에서는 벗어날 수 있을 테죠.
 
마지막 문장만큼은 단호했습니다.
 
교사:그러니까, 우리는 모두 여러분이 사이좋게 지낼 수 있기를 바라요.
 
<듣기> 판정
 
아실링 펜들레엄:
듣기
기준치: 80/40/16
굴림: 70
판정결과: 보통 성공
 
멀리서 무언가 떨어지는 소리가 들립니다.
 
정체불명의 소리입니다.
 
아실링 펜들레엄:(떨어지는 소리? 뭔지 확인하기 위해 바로 소리가 가깝게 난 쪽을 본다. 어느곳이지?)
 
아주 먼 곳이라, 위치를 짐작하기 어렵습니다.
 
헬레네도 같은 소리를 들은 건지, 주변을 두리번거립니다.
 
헬레네 R. 히페리데:방금... 뭔가 떨어지는 것 같은 소리가 들리지 않았나요? (작게 속삭인다)
 
아실링 펜들레엄:저도 확실하게 들렸어요. 분명 뭔가 떨어진 소리였는데... 별일 아니겠죠..?
 
헬레네 R. 히페리데:으음... 어딘지 알 수도 없을 만큼 멀리에서 들린 소리 같아요. 별 일 아니길 바라야겠네요.
 
정체를 파악하려고 하기도 전에 유인물이 배부됩니다.
 
회색의 종이에는 익숙한 이야기가 쓰여 있습니다.
 
도밍게즈 신화입니다. 도밍게즈에서 나고 자란 이들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 들어 보았을.
 
:어느 날 불현듯 신은 세계를 만들었다.
손을 뻗어 하늘을 펴고 땅을 빚었다. 눈물을 몇 방울 흘리니 바다가 되었고, 한숨을 쉬니 갈래갈래 찢어져 구름이 되었다. 완벽한 세계를 두고 신은 좌우를 잡아 길게 찢었다. 낮과 밤이 생기고 해와 달이 뜨고 지니 비로소 완벽하게 갈라졌다. 완벽한 대칭을 이루니 그제야 그의 마음이 흡족하더라.
신의 손가락은 14개였다. 완벽한 숫자가 그의 각 손끝에 있었다. 신은 자신의 손가락을 하나씩 꺾어 세계의 지표로 삼았다. 첫 번째 손가락은 햇볕에 아지랑이처럼 녹아 버렸고, 마지막 손가락은 달빛 아래 산산이 조각나 별이 되었다. 해가 뜨고 달이 지면 세계 곳곳에 선 신의 손가락을 따라, 그림자가 원만한 바퀴를 그렸다.
그림자가 도는 방향을 따라 시간이 생겼다.
무한한, 영원과 억겁을 누리던 신은 처음으로 시간의 존재를 실감했다. 그리하여 손가락들에 큰 복을 내리고 눈을 감았다. 깊은 호수에 몸을 뉘니 신은 그 자체로 공간이 되었더라. 부러진 채, 땅 위에 남은 신의 손가락만이 숫자와 시간을 주관하며 세계를 구성했다.
그래서 세계에는 14개의 숫자가 실존한다. 녹아 버린 0과 산산조각이 난 13을 제외하고 1부터 12까지. 인류는 12가지 숫자의 섭리를 따라 별에 이름을 붙이고, 날과 달을 나누고, 동물의 머릿수를 헤아려 왔더라. 완벽한 수의 기원이었다.
 
3. 도밍게즈의 건국 신화를 읽고, 시간과 능력 사이의 상관관계를 생각해보자.
 
교사:마지막 질문은 숙제입니다. 이건 유인물의 뒷장에 적어 내면 돼요.
오늘은 첫 수업이니, 조금 일찍 마치도록 할까요? (경쾌하게 말한다)
친해지라는 의미로 주는 휴식이니까, 되도록 타이머와 카운터는 함께 다니세요. 조금 불편하더라도 건국 축제까지는 바깥에 나가지 않도록 하고요.
 
당부와 함께 교사가 먼저 교실을 떠납니다.
 
교실에는 타이머와 카운터, 그리고 유인물이……
 
<관찰> 판정
 
아실링 펜들레엄:
관찰력
기준치: 70/35/14
굴림: 51
판정결과: 보통 성공
 
어라, 한 장이 아니라 두 장이었네요?
 
아실링 펜들레엄:(두 장? 유인물 읽어본다.)
 
또 다른 유인물은 ‘연구 보고서’입니다.
 
아실링 펜들레엄:헬리.. 이거. 이거. (번진 부분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이 부분 뭐라고 한 건지 안 보여요.
 
헬레네 R. 히페리데:어머... (그러더니 자신의 유인물을 들여다본다) 제 것도 그 부분만 알아보기가 어렵네요. 인쇄 과정에서 문제가 있었던 걸까요?
 
아실링 펜들레엄:인쇄 과정 중에 문제가 생겨 안 보였다는 이유로 저 문제를 빼먹으면... 나중에 혼날 것 같네요. 이따가 찾아뵐 수 있으면 같이 가지 않을래요? 저 혼자 돌아다니기에는 아직 좀 어색해서..
 
헬레네 R. 히페리데:좋아요. 그래도 제출일까지는 여유가 있으니까요. 아마 이와 관련된 훈련 같은 게 있을 것 같기도 한데...
우선 다른 답부터 적을까요? 도서관이나 카페에 가시는 건 어떠세요? 보통 저는 숙제를 할 때 그곳으로 가거든요.
 
아실링 펜들레엄:훈련이 관련되어 있다면 꼭 알아봐야 할 것 같네요. (대충 넘어가려는 계획 완전히 실패~)
그럼 도서관으로 갈까요? 카페보다는 도서관 쪽이 조용할 것 같아서요. 뭔가 집중도 잘 될 것 같기도 하고요.
 
헬레네 R. 히페리데:좋아요. (끄덕이며 유인물을 챙겨서 자리에서 일어난다.) 아, 필기구를 챙겨야 하니까 저희 방도 잠깐 들렸다 가요.
 
두 사람은 방에서 필기구를 챙겨 도서관으로 향했습니다.
 
헬레네 R. 히페리데:(비어있는 라운지의 문을 열고 들어가 창가 근처의 책상에 앉는다.) 2번은 아직 알 수 없으니, 1번부터 답을 쓸까요? 아직도 어제 일이 생생하네요.
 
아실링 펜들레엄:(네 앞자리에 앉아 창 너머로 들어오는 햇빛을 바라본다. 장소는 다르지만, 꼭 제가 자주 있었던 곳과 분위기가 비슷해서, 도서관은 분위기가 다 비슷한 건가? 같은 생각을 하다가 정신 차리고 펜을 잡는다.) 어제 일은 잊기 힘들겠죠. 다른 사람들에게도 그럴 것 같네요. ... 내용 쓴 것을 발표하거나.. 그런 일은 없겠죠?
 
헬레네 R. 히페리데:설마요. 일단 이전까지는 과제를 발표하는 일은 없었답니다. 애초부터 발표하게 된다고 고지된 과제 외에는요. (일단 펜을 꺼내들긴 했지만, 막상 바로 쓰지는 못한다.) 다른 타이머와 카운터 분들도 저희와 비슷한 감정을 느낀 것 같았죠. (한순간 눈앞에 나타난, 이성과 감성을 전부 흐리게 만드는 운명적인 존재라니.) 어떻게 정리해서 써야 할지 잘 모르겠네요... 그 감정을 말로 표현하기가 어려워요.
 
아실링 펜들레엄:그걸 왜 궁금해하는지, 숙제로 적어오라고 하는 것인지 모르겠어요. 못할 이유도 없지만... 1 대 1 면담으로 물어보는 게 아니라 숙제로 적어내라고 해서 다행이네요. (그때 그 감정과 본능을 어떻게 글로 적어야 할지에 대한 곤란함은 이쪽도 만찬가지였다. 잘만 쓰던 글로도, 어떤 단어로도 대체하기 어려웠던 그 순간을 짚어보다가 짧은 단어 하나를 적는다. '운명'. 대충 적어서 뭐라고 한다면 그러라지. 흥 코웃음치고 종이를 뒤집어가린다.)
 
헬레네 R. 히페리데:(한동안 고민하다가 고개 숙이고 열심히 내용을 써내려가기 시작한다. 짙푸른 눈과 마주치는 순간 마치 전기에 감전되는 것 같았고, 심장이 마구 격랑을 띄게 되었으며... 말 그대로 운명이자 제 반쪽을 만난 것만 같은 기분이었다. 그러한 내용을 종이를 거의 다 채울 정도로 빽빽하게 써내려간다. 평소에도 그리 성실하게 숙제를 하는 듯하다. 완성하고 나서야 퍼뜩 고개를 든다.) 아실도 다 쓰셨나요?
 
아실링 펜들레엄:(자신이 쓴, 처참하게 짧은 뭔가와 대비되게 빽빽한 글들을 힐끔 바라보다가 종이 반으로 접는다. 무슨 내용을 적었을지 내심 궁금해하면서도, 막상 봤다가는 여러 감정에 속이 울렁거릴 것 같다는 직감에 궁금을 잠시 묻어둔다.) 저는... 네. 졸려서 짧게 썼어요. (그짓말!!!)
 
헬레네 R. 히페리데:무리해서 길게 쓰실 필요는 없죠. (종이를 깔끔하게 파일에 끼워둔다.) 그럼 1번은 마쳤으니... 어떻게 할까요? 이제 오늘 오후는 수업도 없으니 자유시간이에요. 책을 읽어도 좋고 카페에 가도 좋을 듯해요.
 
아실링 펜들레엄:(부디 이 숙제 가지고 면담을 하는 일이 없기를. 그렇게 생각하며 파일에다 넣는다.) 수업을 빽빽하게 넣을 줄 알았는데, 그건 또 아닌가 봐요? .. 그거 좋네요. 카페 가서 커피라도 한잔 마시고 싶어요. 그럼 잠이 깰 것 같거든요.
 
헬레네 R. 히페리데:수업은 대체로 오전에 끝나고, 오후부터는 각자 개인 훈련에 매진하는 스타일이랍니다. 특히 오늘은 저희가 함께 있을 시간을 위해서 더 일찍 끝내주신 듯해요. (파일을 챙기고 자리에서 일어난다.) 커피를 좋아하시나 봐요, 아실. 너무 많이 마시면 몸에 좋지는 않을 텐데...
 
아실링 펜들레엄:오후부터는 개인 훈련시간이군요. 어쩐지 너무 풀어준다 했어요. (이렇게 해라 저렇게 해라 같은 것에 맞춰나가는 성격은 아니기에 피곤함이 몰려들어왔다.) 좋아한다기보다는... 중독이네요. 커피향이 좋아서 몇 모금 마신 것을 시작으로 지금은 여러 잔 마시고 있어요. 역시 건강을 위해 줄여야겠죠?
 
헬레네 R. 히페리데:자기 능력껏 하면 돼요. 결코 무리하실 필요는 없어요. 타이머의 능력은 마땅히 매뉴얼도 없고, 그렇다고 누군가 가르쳐줄 수 있는 것도 아니라서 대부분 각자의 루틴에 맡기거든요. 선대 타이머가 능력을 쓰는 영상을 보여주는 것 정도가 전부예요. 그마저도 저와는 능력이 다르다면 참고하기 어렵구요. 독촉하는 분들은 없으니 걱정하지 마세요. (안심시켜주며, 카페로 걸어간다. 무얼 마실지 고민하다가 블루베리 에이드를 시켰다.) 하루에 여러 잔을요?! 아실, 저희는 아직 열일곱밖에 되지 않았는데... ... (좀 심각해짐) 잠은 제대로 주무시고 계신가요?
 
아실링 펜들레엄:무리해서 이것저것 하라고 명령받았으면... (튀었을 것이다. 나는 못한다 하기 싫다. 같은 말들로 해결될 일이 아닐 테니 도망칠 수밖에.) 선대 타이머들의 능력 영상은 어디서 보나요? 저랑 관련 있는 능력이 아니어도 좀 궁금해서요. 아, 그런 건 다른 타이머들한테 보여달라고 하면 되는 걸까요? 갑자기 친한 척 구는 것도 영 아닌 것 같은데... (카페 앞에 도착하자마자 망설임 없이 아메리카노 한 잔을 주문한다.) 한번 줄인 양인데.. 역시 좀 많죠? 잠은 제대로 자고 있어요. 피곤한 날에는 몇 잔을 마셨든 바로 잠에 들 수 있어서요. 밤낮이 바뀌었지만, 제대로 자고 있어요. 평균 이상의 수면을 취하고 있으니 걱정 마세요.
 
헬레네 R. 히페리데:담당 연구원 분들께 말씀하시면 보여주실 거예요. 사실 선대 타이머들의 영상은 인터넷에서도 찾아보면 금세 많이 볼 수 있지만... 능력 부분만 집중해서, 깔끔한 환경에서 찍은 영상은 또 다르니까요. (밤낮이 바뀌었단 말에 안심시키려는 시도에도 불구하고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평균 이상이라지만... 밤낮이 바뀐 생활패턴은 여기에서 지내기엔 맞지 않아요. 매일같이 오전에 일어나고 밤까지 훈련을 하거나 광고 등의 일정을 소화하다 보면 많이 지치거든요. 생활 패턴을 바꿔보실 의향은 없으신가요?
 
아실링 펜들레엄:인터넷에 떠돌아다니는 것이 아닌, 깨끗하게 찍힌 능력들은 어떨지 정말 궁금하네요. 쉽게 볼 수 있는 것도 아니니 정말 기대가 커요. (어쩐지 걱정만 잔뜩 안겨주는듯해서 안절부절못한다. 받은 아메리카노 마시지도 못하고 손에 쥐고만 있다.) 바꿔야겠다는 생각은 하고 있어요. 안 바꾸면 저만 손해일 것 같기도 하고.. 함께 다니기 곤란한 파트너로 남지는 않을게요.
 
헬레네 R. 히페리데:어떤 식으로 사용하는지 자세히 관찰할 수 있는 좋은 기회랍니다. (테이블에 앉아 블루베리 에이드를 마시려다가, 손에 쥐고만 있는 모습을 보고는 얼른 빨대를 꽂아주었다.) 일단은 시켰으니 어서 드셔요, 아실. 다행히 커피를 드신다고 잠을 못 주무시는 것 같지는 않고... 패턴은 이제부터 바꿔나가면 되죠. 파트너로서 곤란할까 하는 걱정이 아니라, 아실의 건강에 대한 걱정이랍니다. 저랑 열심히 운동을 하고 일찌감치 침대에 누워보는 연습을 해요. (주먹 결연하게 꾹!)
 
아실링 펜들레엄:그럼 시간 남을 때 보러 갈게요. 같이 가주시겠어요? (빨대를 꽂아주자 바로 쬽 마신다. 익숙한 쓴맛과 좋은 향기. 요리사만 대단한 줄 알았는데 바리스타도 대단하구나~ 하면서 자리 옮긴다.) 생활패턴도, 건강도 잘 챙겨 볼게요. 물론 하루치 미만에 고쳐질 것들이 아니지만... 잘 시간이면 침대에 바로 누울게요. (뜬눈으로 천장만 멀뚱멀뚱 보는 게 아닌가 싶어 쓰게 웃는다.)
 
헬레네 R. 히페리데:그럼요, 당연히 함께 가야죠. (고개를 끄덕인다.) 음악실에도 훈련실에도 프로젝터가 있으니, 어디서든 봐도 좋겠네요. 아, 도서관에도 DVD실이 있어요. (여러 가지 참고할 만한 위치를 설명해준다) ... 처음에는 쉽지 않겠지만... 열심히 노력하다 보면 아실도 꼭 해내실 수 있을 거예요.
 
아실링 펜들레엄:(쭙쭙 두세 번 빨대로 마시더니 한 잔이 금방 비었다. 컵 정리하더니 주위를 잠시 둘러본다.) 저 궁금한 게 있는데.. 이곳에 와서 적응하기까지 얼마나 걸렸나요? 힘든 부분 같은 것은요? 저보다 먼저 겪으셨을 테니, 알아두면 도움이 될 것 같아서요. 들려주시겠어요?
 
헬레네 R. 히페리데:적응하기까지요? 으음... ... (아무래도 거의 5년 전의 일인지라, 침음하며 기억을 더듬는다.) 전 각인이 나타나기 전부터 타이머가 되고 싶다고 바라왔었어요. 그래서 정말 타이머의 징표가 나타났을 때는 뛸 듯이 기쁜 마음뿐이었죠. DOT에 가고 나서 타이머가 마냥 멋지고 반짝이는 일만 하는 게 아니라는 걸 깨달았지만요. 처음에는 군대식 명령 체계도 어렵고, 가족들도 보고 싶고... ... 사춘기 시기까지 겹쳐서 방에서 혼자 운 적도 여러 번이에요. 그래도 무엇이든 열심히 하겠다는 마음가짐으로 하루하루 지내다 보니, 어느덧 타이머로서의 저를 익숙하게 받아들일 수 있게 되었어요. 아마 거기까지 반 년은 넘게 걸린 것 같아요. 1년쯤 지났을 땐 완전하게 적응했구요.
 
아실링 펜들레엄:멋지고 반짝여 보이는 것은 다 그림자가 있는 법이죠. 그 뒷부분을 모르고 간 것이라 충격이 컸겠어요. 긴 시간이었는데, 후회하지는 않았나요? 능력이 생긴 것에 대한 원망은요. 저라면 그랬을 것 같아서요. (익숙해졌다. 시간이 흘러가며 받아들인 것과 네가 어떻게 생각하는지는 전혀 다른 것이었다. 익숙한 것 봐 별개로 지금의 네 상태는 어떠할까?) ... 행복하세요?
 
헬레네 R. 히페리데:맞아요, 어린 나이에는 빛 뒤에 그림자가 존재한다는 사실까지 알아채기에는 어려우니까요. (에이드를 홀짝홀짝 마신다. 이제야 절반 정도 줄었다.) 힘들었지만, 후회하지는 않았어요. 포기하고 싶지도 않았구요. 저에게 주어진 책임의 무게를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시간이 꽤나 길었지만, 받아들이고 해낸 제가 뿌듯하답니다. (당신의 질문에 한 치 망설임도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맑은 목소리로 확답했다.) 행복해요. 아무에게도 알려지지 않는 뒤쪽에서 묵묵히 봉사만 했더라도 가치 있는 일을 하며 보람을 느꼈을 텐데, 운이 좋게도 스포트라이트를 받아 시민분들이 저를 아끼고 찬사해 주시잖아요. 그분들의 웃는 얼굴을 보면, 피로도 다 날아간답니다.
 
아실링 펜들레엄:헬리는 책임감이 강한 사람이네요. 힘든 것을 견딜 수 있는 강함도 있고. 저랑은 또 다른 사람이라 신기해요. (어린 나이의 자신이었다면 부정적인 생각을 지워내지 못했을 것이다. 어린 나이에 가족을 떠나 고모의 집으로 가서 살은 애의 성격이란, 다른 애들과는 확실히 차이점이 있었다.) 운이 좋은 것이 아니라 당신이 그런 스포트라이트를 받을만한 사람이라 그런 것이겠지요. 당신을 처음 보는 사람도, 당신이 얼마나 사랑스럽고 좋아할 만한 사람인지 바로 알걸요. 저도 그렇게 느꼈고요.
 
헬레네 R. 히페리데:그런가요? (웃는 모습이 순수하다) 저는 저를 그리 좋게 봐주셔서 매번 감사한걸요. 제 스스로도 좋은 이가 되려고 노력하고 있는데, 그 노력의 결실을 맺은 듯하기도 하고요. 아실에게도 첫인상이 좋아서 참 다행이에요.
아직까지는 DOT에서의 삶이 어색하시겠지만... (당신의 두 손을 꼭 맞잡는다.) 아실도 잘 적응하실 수 있을 거예요. 제가 버텨낼 수 있던 건 다른 타이머 분들과 함께 믿고 의지했기 때문도 있거든요. 혼자서는 할 수 없는 일도 함께라면 해낼 수 있어요. 제가 아실에게 의지가 되고, 힘이 되기를 바라요.
 
아실링 펜들레엄:봐요. 이렇게 사랑스러운 사람을 그 누가 좋아하지 않을 수 있겠어요. (잡은 손을 바라보다 따뜻하게 감싼다. 그리하겠다는 대답은 하지 못했다. 다른 사람들과도 잘 어울릴 수 있을 것이라는 확신이 들기 어려웠고, 거짓말 또한 하기 싫었기에 말을 아낀다. 이곳에서 잘 적응한다면 그 이유는 다른 누구도 아닌 다 헬레네 덕분일 것이다.) 힘낼게요. 당신의 좋은 파트너가 되고 싶어요.
 
헬레네 R. 히페리데:분명 쉽지만은 않을 거예요. 저도 단언하지는 않을게요. 모두가 어떻게 적응하는지는 다 다른 것이니까요. 그래도... ... 저는 항상 아실의 곁에 있을 거예요. (진심이 가득히 든 말이다.) 좋은 파트너가 될 수 있도록, 저도 노력할게요.
 
아실링 펜들레엄:앞으로의 일이 어떻게 될지는 아무도 모르는 일이지만, 확실한 것은 당신이 있는 한 저는 DOT을 떠나지 않을 거예요. 열심히 노력할 것이고요.
앞으로도 잘 부탁드릴게요, 헬리. 나의 파트너.
 
헬레네 R. 히페리데:저도 잘 부탁드려요. (마주 잡은 손길의 온기가 선명했다. 이 손이 떨어지는 일 없기를, 한 줄기 소망이 여린 햇빛줄기마냥 비친다. 만난 지 하루밖에 되지 않았는데도 저와 당신을 끌어당기는 운명의 결속이란 그리 단단해서.)
 
그때, 타이밍 좋게도 문자 알림이 울립니다.
 
「 2052-03-08, 09:18
 
제1시 페어 1번 훈련실 사용 가능
 
연구 보고 협조 요망 」
 
아실링 펜들레엄:타이밍 좋네요. 저는 말로만 열심히 한다고 하지 않아요. 직접 노력하는 것도 보여드릴게요. (이번에야말로 성공하겠다며 자신 있게 훈련실로 간다.)
 
헬레네 R. 히페리데:좋아요. 어떤 연구 보고인지는 모르겠지만... ... (손 잡고 훈련실로 간다) 힘내봐요!
 
시간은 두 사람을 기다리지 않고 신속히 흐릅니다.
 
어쩌면, 함께 있어서 더욱 그렇게 느껴졌는지도 모릅니다.
 
시간이 흐를수록, 흐를수록…… 이끌림은 짙어집니다.
 
호출을 따라 훈련실로 걸음을 옮기면, 다른 타이머와 카운터는 보이지 않습니다. 페어별로 진행할 모양입니다.
 
문 앞에서 흰 가운을 입은 연구원들이 두 사람을 반깁니다.
 
애쉬:왔어?
 
부드런 갈색 머리칼에 보랏빛 눈을 지닌 청년이 상냥하게 웃으며 말을 겁니다.
 
애쉬는 일지에 ‘제1시 페어, 타이머 헬레네, 카운터 아실링’이라고 적습니다.
 
헬레네 R. 히페리데:안녕하세요, 애쉬. (아실링에게 속삭인다) 제가 열두 살에 막 입대했을 때부터 알고 지낸 사이에요.
 
그는 곧 오늘의 연구 방식에 관해 설명합니다.
 
애쉬:보고서로 간략하게 설명했지만, 별로 어려운 건 아냐. 첫 만남의 소감은 되도록 진솔하게 적어주고, 지금부턴 타이머와 카운터 간의 상관관계나 영향력을 검사해볼 거거든.
몇 가지 단계에 맞춰 진행 가이드를 띄워놨으니까 보고 따라가면 되고, 힘들거나 불편하다 싶으면 너무 무리하지 마. 어쨌건 오늘은 처음이니까.
(그러더니 당신에게 친절히 묻는다) 컨디션은 좀 괜찮고, 아실링?
 
아실링 펜들레엄:... 안녕하세요, 아실링입니다. 잘 부탁드려요. (헬레네랑 둘이서 하는 줄 알았는데! 연구원 보고 굳었다. 숨는 것처럼 네 등 뒤로 이동한다.) (연구원님 보기 전에) 좋(았던 것 같)아요.
 
애쉬:(헬레네 뒤로 가는 모습 보고 미소한다) 그래, 그럼 이쪽으로 와. 패드를 붙여야 하니까.
 
애쉬가 헬레네에게 작은 패드를 부착합니다.
 
아실링에게도 다른 연구원이 같은 위치에 패드를 붙입니다.
 
뺨, 귀 뒤쪽, 목덜미와 손목 안쪽……. 피부색과 엇비슷한 그것은 눈에 띄지 않지만,
 
<관찰> 판정
 
아실링 펜들레엄:
관찰력
기준치: 70/35/14
굴림: 50
판정결과: 보통 성공
 
애쉬:봐봐, 잘 됐어?
 
저 두 사람은 왜 이렇게…… 다정한 거죠? 유난히 거리가 가까운 것 같습니다.
 
아무리 친하다지만, 비정상적으로 가까운 거리 아니야?
 
아실링 펜들레엄:(얌전.. 하다못해 좀 차가워진 눈으로 본다. 조금만 건드리면 화 팍 낼 것 같은 상태)
 
애쉬:음? 아실링, 무슨 일 있니? (시선을 알아채고는 묻는다.) 아, 무슨 연구인지 궁금해서 그래? 아직 설명을 안 해주긴 했지.
 
아실링 펜들레엄:아정말너무궁금해요. (전혀 궁금하지 않은 말투. 입 대발 나왔다.)
 
애쉬:(내가 싫은가...? 아무것도 안 했는데... 잘 이해는 안 가지만, 아무튼 성실하게 설명해준다.) 타이머와 카운터는 시간을 함께 보내는 것도 영향을 주지만, 물리적 거리가 가까워질수록 좋은 영향을 준다는 가설이 유력해. 실제로…… 다른 페어들의 결과도 좋았고.
자리를 비켜줄 테니까, 테스트해봐. 수치는 전부 기록될 거야. 뭘 하고, 얼마큼 편차가 있었는지 보고서로 작성하면 끝. 어렵지 않지?
 
애쉬는 상당히 경쾌하게 설명합니다. 설명만 듣자면 별로 어려울 것은 없어 보입니다.
 
세상만사 생각처럼 흘러가지 않는다는 게 주의점이지만요.
 
아실링 펜들레엄:... 앞으로 자주 보려나요, 저 사람? (헬리한테만 보이게 고개 돌려서 말한다.)
 
헬레네 R. 히페리데:(패드가 잘 부착됐는지 이곳저곳 만져본다. 당신이 무슨 생가을 하는진 꿈에도 모른다.) 저 사람...? 아, 애쉬요? 네. 아무래도 저희가 가장 많이 뵙게 될 연구원이시죠.
 
아실링 펜들레엄:그렇... 군요. (이름 부를 생각은 아직 없다. 앞으로도 없을 것 같고. 기분 꽁해져서 입 꾹 다문다. 분명 들어오기 전까지는 기분이 매우 좋았는데!)
 
애쉬:자, 진행 가이드는 안쪽에 있어. 그러면 힘내봐.
 
애쉬와 연구원들은 의미심장하게 웃으며 아실링과 헬레네의 등을 떠밉니다.
 
연구 보고를 돕는 일이라면 별로 어려울 것도 없습니다.
 
아실링이 여태까지, 헬레네와 만나기를 기다리는 동안, 카운터라는 이름을 부여받기 위해서 몇 번이고 거쳤던 과정이잖아요.
 
심장박동과 능력의 효율을 확인하는 패드를 부착하고, 능력을 사용하거나 사용하지 않거나, 사용한 후의 신체 변화를 검사하기도 했었죠.
 
건강 검진이랑 비슷해서 조금도 여상히 와닿지 않았습니다.
 
아실링 펜들레엄:(다른 사람이었다면 모를까, 저 사람을 돕는 일이라고 생각하니 하고 싶었던 마음이 슬슬 사라지기 시작했다. 반항인 것처럼 아주 열심히는 아니고 적당히 능력 사용해 본다.)
 
헬레네 R. 히페리데:(일단 훈련실 안쪽으로 들어간다) 정확히 뭘 하라는 걸까나요...?
 
문득 소독약 냄새를 맡습니다. 짭조름하고, 화한…… 약물 특유의 그 냄새.
 
바람도 불지 않는데 머리카락이 조금 흔들리고, 거세게 뛰지도 않는데 심장이 쿵쾅거리는 소리가 귀를 막습니다.
 
긴장인지 설렘인지 모를 애매한 감각입니다.
 
마지막으로 각인이 새겨진 손목까지 패드를 부착하고 나서 훈련실 안으로 들어섭니다.
 
훈련실 내부는 깨끗하기 짝이 없습니다. 천장도 바닥도 반지르르하니 윤이 납니다.
 
자리를 비운 지 오래된 건지, 스크린만 바닷속 풍경을 비춥니다.
 
거품이 일다가 흩어지고, 다시 일다가 부서지고……
 
달칵, 문이 완전히 닫히면 스크린은 그제야 정신을 차립니다.
 
스크린이 띄운 진행 가이드는 한 줄이 전부입니다.
 
손깍지, 포옹, 이마 맞대기, 비쥬, 입맞춤.
 
다시 읽어도 내용은 바뀌지 않습니다.
 
네, 그러니까……
 
<교육> 판정
 
아실링 펜들레엄:
교육
기준치: 85/42/17
굴림: 69
판정결과: 보통 성공
 
Baiser. 흔히 ‘비쥬’라고 알려진 프랑스의 인사법으로 양 뺨을 번갈아 맞대며 마치 입을 맞추듯 ‘쪽’ 소리를 내는 것이 특징입니다.
 
연구 보고라는 게…… 지금 생각하는, ‘그거’ 맞나요?
 
아실링 펜들레엄:(손가락으로 스크린 가린 상태로 입 멍하니 벌린다. 지금 자신이 보고 있는 게 틀림없는 진행 가이드인가? 정말로? 헬리 보면서 이거 정말 해야 하냐는 손짓을 해본다.)
 
헬레네 R. 히페리데:...!! (스크린에 띄워진 글씨를 읽고 내용을 이해하고는, 순식간에 눈이 커져서 양손으로 입가를 막는다. 보아하니 이쪽도 전혀 상상치 못한 내용이었던 듯싶다.) 이게, 이게 무슨... 정말로... 정말로요? 하지만 이렇게 갑작스럽게...?
 
이 상황을 예상하지 못한 것은 헬레네도 마찬가지였던 듯해요.
 
아실링 펜들레엄:이런 걸 다른 사람들도 한다고요...? (헬리도 모르는 일이었구나... 그리 생각하며 일단 손을 내민다.) 어차피 해야 하는 것이라면, 빨리할까요? (아까보다 의욕 넘친다. 뽀뽀나 입맞춤은 부끄럽지만.. 하기 싫다고 도망칠 생각은 없다.)
 
헬레네 R. 히페리데:그으... ... (어느새 두 뺨에 홍조가 올랐다.) 저도 정말이지 이런 훈련은 처음이에요. 상상도 못 했는데...
연구 보고서 2번의 중간에 알아볼 수 없는 글씨가 있었잖아요. 그거, 지금 생각해보니 '스킨십'이었나 봐요. (이제야 깨닫는다) 이, 일단 저도 손잡기나 포옹 정도야 할 수 있겠지만...
 
<심리학> 판정
 
아실링 펜들레엄:
심리학
기준치: 60/30/12
굴림: 47
판정결과: 보통 성공
 
헬레네는 예상치 못한 상황에 크게 당황한 듯하지만,
 
싫어하지는 않습니다. 저 볼에 띄워진 홍조만 해도요.
 
아실링이 그렇게 믿고 싶은 건지, 사실인진 모르겠지만요!
 
아직 아무것도 하지 않았건만 심장박동이 점차 선명하게 들립니다. 쿵쾅, 쿵쾅, 쿵쾅…….
 
<관찰> 판정
 
아실링 펜들레엄:
관찰력
기준치: 70/35/14
굴림: 56
판정결과: 보통 성공
 
황망히 헤매던 시선이 스크린의 반대편 모서리에 닿습니다.
 
온통 하얘서 눈에 띄지 않았는데, 검은 점이 반질반질 빛나며 이쪽을 향하고 있습니다.
 
……. 동관의 실험실, 연구소도 비슷한 장치가 있었죠.
 
아무리 봐도…… CCTV입니다.
 
아실링 펜들레엄:... 악취미. (자신도 모르게 생각하던 거 입 밖으로 툭 튀어나온다.) ... DOT은 정말 이상한 곳 같아요. (할 말은 한다!!!)
 
헬레네 R. 히페리데:(이미 훈련실엔 수도 없이 와 봤으니, cctv가 있단 사실도 당연히 알고 있었다. 눈을 질끈 감으며 아예 고개를 양손에 파묻는다.) ... 지금만큼은 틀린 말은 아니네요.
불편하면 하지 않으셔도 돼요, 아실. 강제하지는 않을 테니까요. 애쉬도 그리 말씀하셨고... ...
 
아실링 펜들레엄:찍는다는 게 마음에 안 들지만... 헬리는 싫나요, 저랑 저런.. 거 하는 거? 싫은 것 전까지만 하는 건 괜찮을 것 같아서요. 저렇게 찍는 것도 다 이유가 있겠죠... (없으면... 정말 화날 것 같다.)
 
헬레네 R. 히페리데:아뇨. 저... 저도 싫지는... .... 않아요. (부끄러운지 제대로 말 잇지 못하고 띄엄띄엄 뱉는다.) 단지 상상도 못한 일이라 당황하고 쑥스러워서... ...
일단은 첫 단계부터 해 봐요. 그건 무리없이 가능하니까요. (내밀어진 당신의 손을 조심스레 잡고, 부드럽게 깍지를 낀다. 훈련실에 올 때에도 손을 꼭 잡은 채 왔었는데, 새삼스럽게 더 열이 나는 것만 같았다.)
 
아실링 <이성>, <초능력> 판정
 
아실링 펜들레엄:
SAN Roll
기준치: 55/27/11
굴림: 36
판정결과: 보통 성공
이능력 Roll
기준치: 30/15/6
굴림: 46
판정결과: 실패
 
어쩐지 심장이 간질간질하지만, 나쁘지 않아요.
 
하지만 능력이 향상되었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손을 맞잡는 순간, 의식했기 때문인지 능력이 몸 안에서 한 차례 날뛰는 듯한 감각이 느껴지기는 했지만요.
 
아실링 펜들레엄:(스킨십을 자주 하는 편은 아니었지만, 이곳에 와서 네 손을 잡는 것은 어려번 있었기에 힘든 일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생각만 그렇게 했다. 창백한 피부 위로 붉은색이 점점 퍼져나갔다.) 그, 그럼 다음 걸로 넘어갈까요? (아무렇지도 않은 척)
 
헬레네 R. 히페리데:네, 네... (손을 맞잡기만 했는데도 왜 이리 부끄러운 걸까? 평소 스킨십에 익숙한 헬레네에게 이 정도는 별것도 아니었는데. 한 번 의식하고 나니 사소한 움직임도, 숨소리나 옷깃이 스치는 소리에도 민감하게 반응하게 되었다.)
다음은 포옹이죠...? (양 팔을 어색하게 벌린다.) 제가 안길까요...?
 
아실링 펜들레엄:... 그냥 제 쪽에서 안을게요! (빨리 끝내던가 해야지. 좀 전에 애쉬한테 쏠렸던 감정은 다 어디 가고 묘하게 행복해져서 바로 껴안는다.) ... 이 정도로 껴안아도 괜찮겠죠? 더 세게 껴안아야 하나...?
 
헬레네 R. 히페리데:이... 이 정도면 되지 않을까요? (체온과 체향이 훅 가까워지고, 섞여든다. 당신의 품에 파묻힌 채 시선을 어디다 둘지 몰라 부끄러워하다 이내 어깨에 조심스럽게 머리를 기댄다.)
 
<이성>, <초능력> 판정
 
아실링 펜들레엄:
SAN Roll
기준치: 55/27/11
굴림: 55
판정결과: 보통 성공
이능력 Roll
기준치: 30/15/6
굴림: 48
판정결과: 실패
 
헬레네 R. 히페리데:
이능력 Roll
기준치: 65/32/13
굴림: 99
판정결과: 실패
(너무 부끄러운 탓인지, 바로 발치에 물이 고여 단숨에 촤악- 하고 튀어오른다. 심지어 짠물이었다!) 어. 어머나. 염도가 조절이 안 됐나 봐요. 어떡해. 얼른 물 드세요, 아실...! (당황해서 후다닥 준비된 수건과 물병을 들고 왔다.)
 
아실링 펜들레엄:(물로 작은 구 모양 만들다가 손 위에서 툭 터졌다. 팔꿈치까지 물이 흘러내려 새 옷이 축축하게 젖었지만 그리 기분 나쁘지는 않았다.) 뭘 또 준비를 해요. 어차피 갈아입으면 그만인데. (가져온 수건으로 젖은 부분 툭툭 닦는다.)
 
헬레네 R. 히페리데:그치만... 일단 물이라도 드세요. 짠물이 눈에 들어가기라도 하면 아프잖아요. (안절부절 못한다.)
 
헬레네와의 포옹은 안락하기 짝이 없습니다. 왜 이렇게 완벽하게, 편안하지?
 
아실링 펜들레엄:(물 받아서 꼴깍 마신다. 다음으로 넘어갈 각오는 끝났다. 손으로 앞머리 슥슥 만져 이마 보이게 만든다.) ... 우리 다음 것도 해요?
 
헬레네 R. 히페리데:다음... (스크린에 쓰여진 내용을 다시 한 번 읽고는, 마른침을 삼켰다.) 다음까지는, 아직 저도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같이 앞머리 주섬주섬 쓸어넘긴다. 하지만 차마 눈을 마주보기가 어려웠다. 스킨십이 뭐라고, 이렇게 부끄럽고 떨려오는지.)
 
아실링 펜들레엄:(포옹이라는 게 이렇게나 어려운 것이었나? 뽀뽀나 입 맞추는 것은 얼마나 힘들고 두근거릴지 상상이 가지 않았다. 네 쪽에서 아직 할 수 있다는 말이 나오고 나서야 이마를 콩 맞댄다.) ... 저 솔직히 말하면 누군가랑 이렇게 이마 맞대본 적 없어요.
 
헬레네 R. 히페리데:... 저도요. 손을 잡거나 포옹은 타이머끼리도 자주 해봤지만... 이마 맞대는 것 이상부터는 한 번도 해보지 않았어요. (닿는 부분부터 전류가 통하는 느낌이다. 뺨이 너무 붉어지진 말아야 할 텐데. 우스운 꼴일까 걱정이 되었다. 외모에 대한 걱정과 연구에 대한 영향과 또 당신을 향한 감정이 제멋대로 혼재되어, 머릿속이 실타래마냥 복잡하게 엉켰다.)
 
<이성>, <초능력> 판정
 
헬레네 R. 히페리데:
이능력 Roll
기준치: 65/32/13
굴림: 23
판정결과: 어려운 성공
 
아실링 펜들레엄:
SAN Roll
기준치: 55/27/11
굴림: 67
판정결과: 실패
이능력 Roll
기준치: 30/15/6
굴림: 37
판정결과: 실패
 
시야에 닿는 모든 곳이 애틋하고, 완벽하고, 더할 나위 없어서……
 
조금 더, 한 번만 더, 잠시만 더…….
 
이상한 일이에요. 아무것도 아닌 접촉인데, 왜 이렇게 특별하게 느껴지죠?
 
아니, 이상한 일은 훨씬 이전부터 일어나고 있었어요.
 
헬레네, 상대의 존재를 실감한 그 순간부터. 그리고……
 
...
 
놓기 싫어. 떨어지기 싫어. 욕심은 계속 커져만 갑니다.
 
아, 어쩌면 이 충동은…… ■■과 닮아있어요.
 
헬레네 R. 히페리데:(이번에는 물이 깔끔하게 그의 주변에 생겨나, 미리 준비해둔 수조에 정확히 담긴다.) ... 휴! 이번에는 성공했네요. (무척 부끄러워하며 수줍게 이마를 떼어낸다.)
 
아실링 펜들레엄:... 잠깐만요. (떨어지려는 것에 묘한 감정 느끼고는 바로 두 팔 잡고 말린다. 떨어지는 게 아쉽다는 듯 순간 떨어졌던 이마를 다시 맞댄다.) ... 우리 조금만 더 이러고 있으면 안 돼요...?
 
헬레네 R. 히페리데:앗. (두 팔이 잡히는가 싶더니 이마가 다시 맞대어진다. 싫지는 않았지만, 아직도 적응이 되지 않았는지 가까워진 당신의 눈을 마주하고 숨소리를 느낄 때마다 심장이 자꾸만 속도를 빨리한다. 당신에게 들리면 어떡하지.)
(그래도 한동안 밀어내지 않고, 당신이 바라는 만큼 그대로 있어주었다. 시야 한구석에 빛나는 스크린이 들어온다. 비쥬, 그리고 입맞춤...)
 
아실링 펜들레엄:(이마를 다시 맞댄 뒤 얼마의 시간이 흐르자, 헬레네를 잡아뒀던 손에 힘이 풀려 아래로 스르륵 내려갔다. 갑작스러운 충동 이후의 남은 것은 부끄러움과 자신의 행동에 대한 의문뿐. 꼬옥 모은 손을 꼼지락거리며 주변을 살핀다.) ... 죄송해요. 제가.. ... 아니에요.
 
헬레네 R. 히페리데:뭔가 불편하신 점이라도 있나요...? (금세 걱정스럽게 물어온다.) 여기에서 그만할까요...?
 
아실링 펜들레엄:불편하기보다는 죄송해서요.. (남의 팔을 함부로 잡고 억지 부리는 것이 좋은 모습은 아니었기에 미안하기만 했다.) 헬리가 그만두고 싶다면, 저도 여기서 그만둬도 좋아요.
 
헬레네 R. 히페리데:괜찮아요, 저는. 저는... ... 부끄럽기는 하지만, 싫지는 않아요. (자그마한 목소리로 속삭인다.) ... ... 비쥬까지도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아실링 펜들레엄:저 역시 그래요. 역시 입맞춤은 오늘은.. 힘들 것 같으니 일단 비쥬까지만 할까요? (그러고는 고개 옆으로 돌려 뺨을 맞댄다. 쪽 소리도 잊지 않고 완벽하게 끝낸다.)
 
헬레네 R. 히페리데:(고개를 기울여 양 뺨을 맞대며, 쪽쪽 소리를 낸다. 그저 입으로 소리를 냈을 뿐인데, 순간적으로 당신과 입을 맞추는 상상을 하고는... 얼굴이 그야말로 불꽃처럼 새빨개진다. 아실링이 제 얼굴을 제대로 보기 전에 얼른 가라앉혀야 할 텐데! 어깨 너머로 후다닥 손부채질을 했다.)
 
<이성>, <초능력> 판정
 
헬레네 R. 히페리데:
이능력 Roll
기준치: 65/32/13
굴림: 87
판정결과: 실패
 
아실링 펜들레엄:
SAN Roll
기준치: 55/27/11
굴림: 59
판정결과: 실패
이능력 Roll
기준치: 30/15/6
굴림: 56
판정결과: 실패
 
입술이 닿았던 자리가 뜨거워서, 화상을 입을 것 같습니다.
 
소스라치게 놀라는 한편, 누가 찌른 것처럼 애쉬와 헬레네의 친근한 장면이 떠오릅니다.
 
아, 그와도 이런 인사를 나눴을까요? 싫은 기분이 가득해지고, 가득해지고, 가득해져선……
 
이유를 찾아냅니다.
 
헬레네가 문제예요.
 
헬레네만 없어지면 다 해결될 텐데.
 
아주 충동적이고, 말도 되지 않지만…… 살해 충동이 고개를 듭니다.
 
헬레네의 물이 엉망으로 떨어지고, 당신의 조종 또한 힘을 전혀 발휘하지 못한 건 동시였습니다.
 
아실링 펜들레엄:아, 이제 알겠어요. (왜 이렇게 불쾌한 것일까. 혼란스러운 머릿속 사이로 선명한 감정이 튀어나왔다. 이곳에 오기 전, 카페에서 제 입으로 사랑스럽다고 말한 사람에게 들을 감정은 아니었다. 불쾌함이 그득그득 밀려들어와 제 감정을 죄어왔다.)
 
헬레네 R. 히페리데:아, 이번에는 되지 않았네요. (이능력으로 초점을 돌리며 아쉬운 목소리를 내다가, 뭔가 이상함을 알아챈다.) ... 아실? 괜찮으세요?
 
아실링 펜들레엄:... 좀 뜬금없는 이야기인데. 저랑 저 사람, 애쉬인가 하는 사람이람 친해요? (차가운 말투와 다르게 깎지 껴 얽혀 올린 손은 다정하기만 하다.) ... 아니 그냥. 갑자기 생각이 들어서요. 내 쪽이 아니면 좀.. (기분이 뒤집어질 것 같아서.)
 
헬레네 R. 히페리데:예전부터 봐 왔으니 꼭 가족처럼 가까운 사이죠. 별다른 사감은 딱히 없는데... (갑자기 왜 애쉬의 이야기가 나오는지 영문을 알 수 없어 고개를 갸웃거린다.) 혹시 이번 연구 진행 때문에 마음이 상하셨나요...? 그분이 악의적으로 그러려던 건 아닐 거예요. 저희의 능력을 위한 일이라고 했으니까요. (마음도 모르고 그를 두둔한다.)
 
아실링 펜들레엄:친하긴 한가 봐요? 그렇게 말하는 거 보니까. 말로는 뭘 못하겠어요. 능력을 위한 일이다 어쩌고는 저도 잘 할 수 있는걸요. (사감이 없다는 말에 기분이 풀어질 만도 했다가, 두둔하는 것에 팍 상해 한쪽 입꼬리를 쓱 올린다. 저놈도 이런 건 못해봤겠지. 연구니 뭐니 상관없이 괜히 제 감정에 휘둘려 볼 잡고 짧게 입 맞춘다.) 이거랑 능력이랑 뭔가 관련이 있나 봐요?
SAN Roll
기준치: 55/27/11
굴림: 52
판정결과: 보통 성공
이능력 Roll
기준치: 30/15/6
굴림: 28
판정결과: 보통 성공
 
입술이 닿았다 떨어지는 순간마저도 길고 긴 찰나처럼 느껴집니다.
 
헬레네를 다시 잡아당기고 맙니다.
 
가지 마. 나를 떠나지 마, 이 ■■ ■■에 나만 두고 가면 안 돼…….
 
절박한 심정이 되어 매달리고, 매달리고, 매달리게 됩니다.
 
……왜 그렇게 외롭고, 두렵지? 분명 무언가 이유가 있었던 것 같은데!
 
돌이켜보면 아무것도 기억나지 않습니다.
 
아실링, 초능력 향상 판정. 3D20을 굴려주세요.
 
아실링 펜들레엄:
rolling 3d20
 
(
12
 
+
4
 
+
9
 
)
 
 
=
25
 
초능력 수치 25 향상.
 
헬레네 R. 히페리데:아, 아실... 애쉬는 그런 게 아니라. (어째서 이리 날선 반응을 보이는지 알 수 없어 당황한다. 애쉬를 만난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왜 그를 적대시하는 듯한 말을 하는 거지? 의아함에 더 대화를 시도하려던 찰나. 몸이 휙 쏠리고, 뺨이 잡히고... 입술이 맞닿는다.) ...!
(입맞춤까지 이어질 줄은 상상도 하지 못했기에, 손부채질로 겨우 가라앉힌 열기가 다시금 진득하게 눌러앉아 기승을 부린다. 순간 머릿속이 하얘져 텅 비어버리고, 세상이 멈추는 것만 같았다. 예상도 못한 스킨십이었으나 당신을 밀치거나 거부하진 않았다. 내심 원하고 있었던 마음을 당신이 금광에서 캐내듯 정확히 발견해준 것만 같아서.)
(아주 오랜 시간이었던 것 같은 찰나가 흐르고, 입술이 천천히 떨어진다. 밖으로 튀어나올 듯 쿵쾅거리는 심장소리가 누구의 것인지 알아볼 수가 없다.) 아실... (붉어진 낯으로 당신을 수줍게 올려다본다.)
 
그러나 수줍어하는 헬레네와는 정반대와의 감정이 당신을 덮쳤습니다.
 
그것은 위기감이었습니다. 헬레네에게서 도망쳐야 한다는, 떨어져야 한다는, 벗어나야 한다는!
 
훈련실은 조용하기 짝이 없건만, 누가 울리는지 알 수 없을 적색경보가 머릿속을 어지럽히고 입을 틀어막습니다.
 
호흡이 가빠집니다.
 
어떤 맹목처럼 이성이 흐려지는 아실링을 뒤흔듭니다.
 
헬레네에게서 도망친다면 모든 것들이 괜찮아질 거라고, 확신 없는 믿음만 처연하게 손을 흔듭니다.
 
아실링 펜들레엄:(사랑스럽게 보였으며, 드물게 불쾌감을 준 상대. 이제는 제게 위기감까지 안겨준 사람. 헛웃음을 지으며 네게 떨어져 거칠게 손등으로 입술을 닦아낸다. 이어진 것은 신경질적으로 애쉬를 부르는 목소리였다.) 당장 문 열어요. 이제는 만족하잖아. (아직도 잘만 돌아가는 cctv를 바라본다. 이걸 보려고 그것들을 시킨 것인가? 대체 뭘 위해서?)
DOT, 당신들이 멸망했으면 좋겠어요. (주변에 물을 모으더니 한 번에 수압을 높여 cctv를 관통시키려 한다.)
이능력 Roll
기준치: 55/27/11
굴림: 24
판정결과: 어려운 성공
 
헬레네 R. 히페리데:아실, 아실...? (이건 명백히 이상하다. 수줍음은 어느덧 다시금 의아함으로 변하고, 어떤 위기감까지 가져다준다. 방금까지도 저에게 잘 부탁한다며 다정하게 대하던 당신이었는데, 이 반응은 대체 무엇이지.)
(제가 만들어낸 물들이 단번에 모이는 모습을 보곤 불길함을 직감한다.) 자, 잠깐만요! 아실! (그에게 손을 뻗으려 하나, 이미 늦었다.)
 
물을 모으던 당신은 문득 깨닫습니다. 일순, 당신은 헬레네의 능력처럼 물을 생성해낼 수도 있었습니다.
 
더욱 광범위하고 정교하게 능력을 사용할 수 있습니다. 완벽해지는 과정을 스스로 느낍니다.
 
지금껏 다루기 어렵던 물이 단숨에 당신의 휘하에서 형태를 갖추고 압력을 높이더니, 단숨에 CCTV를 꿰뚫습니다.
 
굉음과 함께 CCTV가 완전히 박살나고, 물에 섞인 잔해들이 초라하게 바닥으로 떨어집니다.
 
헬레네 R. 히페리데:이럴 수가...! (CCTV를 부순 당신의 행동도 충격이었지만, 능력의 위력에 더 크게 놀란다. 어제까지만 해도 주변의 물도 제대로 조절하기 어려워했던 당신인데. 물의 압력까지 높여내다니.) 아실... 아실! 대체 무슨 일인지는 몰라도 제발 진정하세요, 네?
 
CCTV까지 부쉈는데도 애쉬와 연구원들은 들어오지 않습니다. 나오길 기다리는 걸까요?
 
아실링 펜들레엄:(부서진 cctv 파편을 보다가 손을 쥐었다가 핀다. 입맞춤 전과는 확실하게 차이가 나는 능력. 이걸 위해서였나? 신발로 파편을 짓밟으며 상황을 정리하다가 헬레네를 보며 웃는다.) 저는, 지금 매우 침착해요.
 
헬레네 R. 히페리데:아니에요, 아실. 지금 명백하게 이상하세요. ... ... 제가 뭔가 실수를 했나요? 혹은 스킨십을 하는 과정에서 불쾌감을 느끼셨나요? 말씀해주세요. (간절히 호소한다.)
 
아실링 펜들레엄:너무 침착해서 이런 거예요. 당신, 저랑 오래 같이 있었던 것도 아니면서 제 상태를 맘대로 평가하시네요? 괜찮아요. 믿으세요. (도망쳐야 한다, 떨어져야 한다. 그런 생각들이 머리를, 이성을 지배했다. 은근히 거리를 둔 채로 열리지 않는 문을 계속 바라본다.) 지금은 해줄 말이 없네요. 미안해요.
 
헬레네 R. 히페리데:호흡이 가빠 보여요, 아실. 눈빛도 어지럽고요. ... ... 무엇보다 저에게서 멀어지려 하고 계세요. 제가 무언가 당신을... ... 괴롭게 하고 있나요? (우리의 능력을 향상하기 위한 절차라고 하였건만, 실은 이런 갈등이 수반되는 현상이었던 것인가? 가까운 사이가 될 수 있으리라 믿었건만 별안간 싸늘하게 변한 모습에 가슴이 아렸다.)
 
아실링 펜들레엄:와... DOT에서는 빠르게 눈치채는 것도 배우게 하나요? 아님 당신이라 빠르게 아는 걸까요? (어찌 됐든 제가 신경 쓸 일은 아니었다. 그것에 신경 쓸 여유 또한 없었고. 당장은 너와 있는 것을 피하고 싶을 뿐이다.) 당신에게 말해줄 것은 없어요. 궁금하거든 DOT이나 연구원들한테 물어보지 그래요? 많이 좋아하고 따르던 것 같은데.
 
헬레네 R. 히페리데:... 그분들은 저와 가족처럼 가까운 분들이지만, 지금 저에게는 아실도 몇 배는 더 중요해요. (날선 말이 날카롭게 다가왔지만, 아픔을 꾹 참고 말한다. 분명 누가 봐도 정상이 아닌 상태였다. 어떻게든 진정시킬 방법을 찾으려 애쓴다. 이 상태에서 애쉬를 포함한 연구원들을 불러온다면, 당신이 그들에게 다시금 능력을 쓸지도 모른다는 판단이 들었기 때문이다.) 아실은 저의 파트너잖아요. 당신을 친애하고 좋아해요. 그러니 문제가 있으시다면 저에게 말씀해주세요. 기댈 수 있는 버팀목이 되어드리겠다고 말씀드렸었잖아요...!
 
헬레네가 '저의 파트너'라는 말을 하는 순간,
 
거짓말처럼 충동이 잦아듭니다.
 
머릿속을 시끄럽게 울리던 경보음도, 헬레네에게서 벗어나야만 한다는 충동도, 그를 죽여야만 할 것 같은 살해욕구도 전부 사그라듭니다.
 
아실링 펜들레엄:(무리 속을 마구 뻗어가던, 어디선가 봐온 폴리스 라인 띠가 멈추었다. 점점 그 색을 잃고 사라지자 남은 것은 당황스러움뿐이었다. 한 번도 생각해 본 적 없던 감정들이 그렇게 쉽게 사라질 수 있나? 이렇게까지 침착해질 수 있나? 차갑게 식은 몸을 떨다가 손으로 입을 가린다.) 그게.. 나는... 저는... 미안해요. (헬레네를 내버려 두고 도망치듯 방에서 나간다. 지금은 헬레네의 얼굴을 볼 자신이 없다.)
 
헬레네 R. 히페리데:아, 아실! (감정이 가라앉은 것인지 확인하기 위해 다가가려 했으나 그보다 더 전에 당신이 제 곁을 지나쳐버린다. 차마 붙잡지도 못하고 있다가 뒤늦게 당신을 따라나섰다.)
 
아실링이 바깥으로 나오자 연구원들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애쉬도 서 있네요.
 
애쉬:아실링. 괜찮니? (당신을 자극하지 않으려는 듯, 차분한 톤이었다.)
 
아실링 펜들레엄:... 아니요. (착한 척 굴기는. 아직 애쉬에 대한 안 좋은 감정은 여전하다.) 벌주려고 기다리신 거예요?
 
마침 뒤에서 헬레네가 따라나옵니다.
 
헬레네 R. 히페리데:애쉬, 아실...! (안절부절못하는 낯으로 두 사람을 번갈아 바라보다가, 차마 아실 곁에 다가가진 못하고 말한다.) 죄송해요. CCTV가 파손됐어요.
 
애쉬:두 사람. DOT의 기품을 파손하는 건 군법 위반이야. (엄하게 말한다. 아실링의 적대적인 시선을 알긴 아는 건지, 혹은 컨트롤의 책임을 묻는 건지 시선은 헬레네에게로 향해 있다.) 헬레네, 다른 사람도 아니고 너는 충분히 알고 있으니 이런 불상사는 일어나지 않을 줄 알았는데.
 
아실링 펜들레엄:헬레네랑 상관없이, 제 마음대로 한 짓이에요. 뭐라 하실 거면 저한테 해주세요. 제 잘못이니까요. (착한 사람인 줄 알았는데 헬레네 탓을 하네. 하는 눈으로 본다.)
 
애쉬:아실링 너는 훈련실을 많이 써보지 않았고, 이곳에 온 지도 얼마 되지 않았잖니. 페어를 제대로 컨트롤하지 못한 책임도 질 줄 알아야 하는 거야. 그리고 그게 미안하다면, 올바르게 행동하면 되겠지?
 
헬레네 R. 히페리데:네, 죄송해요, 애쉬. (순순히 사죄한다. 막을 힘이 있었으니, 사건을 빠르게 파악하고 막아내야만 했다. 그러지 못해 기품이 망가졌으니 책임을 지는 것도 맞는 일이었다.) 다음부터는 더 기민하게 움직이도록 노력할게요.
 
애쉬:그래. 기품 값은 헬레네의 용돈에서 삭감할 테니, 그렇게 알고 있어. (통보하곤,) 잔소리는 여기까지 할게. 연구에 관한 소감은?
 
아실링 펜들레엄:(이거 시킨 책임자가 누군지는 모르겠지만 이런 불쾌한 기분을 느낀 것은 정말 오래간만이었다. 치마 주머니에 손 넣고 안 보이게 가운뎃손가락만 올린다. 이번 연구에 대한 소감이고 뭐고 얼마나 최악인지 알 수 있을듯한 얼굴로 애쉬를 본다.)
 
헬레네 R. 히페리데:스킨십 단계가 가까워질 때마다 순차적으로 이능력이 상향되는 느낌은 아니었어요. 이마를 맞댔을 땐 능력이 향상됐지만, 그 이후부터는 그렇지 않았거든요. 다만 아실링은... (이야기하기가 조심스러운지 눈치를 본다.) 마지막 스킨십 이후 능력이 크게 향상된 듯했어요. (감정적인 일은 말하지 않고 능력에 관해서만 간결히 전달한다.)
 
아실링 펜들레엄:(그렇대요. 라고 말하듯이 본다. 충동적으로 굴던 제 자신만큼은 아니지만, 애쉬를 보는 것은 여전히 싫었다. 나가는 문쪽으로 고개를 돌린다.) 이제 가도 괜찮나요? 능력을 썼더니 피곤해서요.
 
애쉬:그래. 이만 가도 좋아. (엄하게 잔소리를 하던 모습은 어디가고 다시금 부드럽게 말한다.) 둘 다 고생 많았어.
 
아실링 펜들레엄:네. (아까처럼 잔소리 계속해보지. 착한 척하기는, 재수 없어. 양손 주머니에 넣고 양손 뻐큐...한다..)
(아직 헬레네 얼굴 보기 미안해서 빠르게 방을 나간다. 지금은 혼자서 생각정리를 해야할 것 같았다.)
 
헬레네 R. 히페리데:(멀어지는 그의 모습을 서글피 바라보다가, 안녕히 계세요, 애쉬에게 꾸벅 인사하고는 천천히 훈련실을 나선다. 지금은 같이 있어도 대화를 하기 어려울 듯하니, 굳이 따라잡지 않는다.)
 
아실링은 방을 나서서 어디로 가나요?
 
아실링 펜들레엄:(출입금지 지역인 옥상으로.. 탓탓 간다. 그곳이면 아무도 못 찾을 것 같아서.)
 
아실은 서관의 옥상으로 향합니다.
 
문은 닫혀 있지만, 문을 잠그는 걸쇠는 헐렁하게 풀려 있네요.
 
잦은 왕래를 보여주는 것 같습니다.
 
아실링 펜들레엄:(헬레네를 볼 낯이 없어 무작정 도망친 곳이라고 해봤자 DOT의 건물 안일 뿐이었다. 쉽게 드나든 흔적들을 보고 제 방문을 여는 것처럼 문을 열고 들어갔다. 이곳에 있는 것을 빨리 들키는 것이 아닌가 싶었던 걱정도, 오늘 있었던 일에 대한 어지러운 일들에 묻힌다.)
(힘든 상황에서 잠시 회피하기 위해 옥상을 둘러 다 본다.)
 
옥상은 본관의 스카이라운지보다는 조금 작지만, 아름답고 평화롭습니다.
 
3시의 타이머의 능력인지, 색색의 꽃과 나무들이 정원을 이루고 있습니다.
 
아실링이 들어서자 나뭇가지에 앉아 있던 새들이 포르르, 소리를 내며 날아가네요.
 
쉴 만한 벤치도 여러 개 놓여있습니다.
 
아실링 펜들레엄:(눈에 들어오는 평화롭고 아름다운 정원에서 이질적인 것을 하나 고르자면 그 무엇도 아닌 아실링 자기 자신일 것이다. 자신이 있어야 할 일이라면 방송으로 알 수 있겠거니, 하면서 벤치에 누워 시간을 맘대로 허비한다.)
 
벤치에 누워 있자니 하늘도 맑고, 바람도 솔솔 불고...
 
슬슬 잠이 몰려오기도 하네요.
 
어차피 오늘은 수업도 더 없다고 했으니, 자유시간일 겁니다. 원하는 만큼 쉬다 가도 되겠죠.
 
아실링 펜들레엄:(솔솔 부는 바람에 몸을 맡기고 그대로 누워있다가, 늘 그렇듯 잠에 드는 것을 선택한다. 지금 당장 겪기 싫은 것에서 회피하는 용도일 뿐, 잠에서 깼을 때 상태가 좋아져있을 것이라는 생각은 하지 않는다.)
 
아실링은 몰려오는 잠에 몸을 맡깁니다.
 
당황스러운 일이었으니, 도망치고픈 것도 자연스러운 일입니다.
 
해가 점점 하늘 중천에 가까워져 올 때 잠든 아실링... ... 과연 몇 시까지 잤을까요?
 
아실링 펜들레엄:(7시까지 푹 잤다. 생체 리듬 제자리로 돌리는 것은 오늘도 실패.)
 
눈을 떠 보니 노을이 지는 수준을 넘어 하늘이 캄캄해져 오고 있습니다.
 
그리고 맞은편에는... 웬 이름 모를 누군가가 앉아있네요. 비슷한 옷을 입고 있는 걸 보니 타이머 같습니다.
 
아실링 펜들레엄:.. 뭐야. (아직 잠 안 깬 상태로 누군지도 모르는 상태한테 신경질이나 낸다.)
 
금발의 소년이 당신을 물끄러미 바라보네요.
 
제0시 타이머:헬레네의 카운터지? 난 0시 타이머야.
헬레네가 널 찾고 있어서, 네가 여기 있다고 말해줬어. 지금은 자길 보고 싶어하지 않는 것 같다고 하길래, 일어나면 내가 대신 알려주겠다고 했거든.
여기서 자는 건 뭐라고 안 하겠지만... 헬레네가 널 많이 걱정하고 있으니까. 한 번 가봐. 아마 지금은 너희 방에 있을 거야.
 
아실링 펜들레엄:(뭐, 왜. 같은 자신의 평소 말투와는 많이 다른 거친 말들이 입에서 튀어나올 뻔했으나, 헬레네에 관한 이야기가 나오자 바로 다물어졌다.) ... 조언 고마워요. (그러고는 헬레네와 자신이 묵은 방 앞으로 이동한다. 앞까지 가도 쉽게 들어가지는 못한다.)
 
방문은 닫혀 있습니다.
 
곧 저녁식사를 먹으러 갈 시간이니, 그걸 핑계로 자연스레 말을 걸어보는 건 어떨까요?
 
아실링 펜들레엄:(헬레네를 내버려 두고 먼저 피해 버린 자신이 아무렇지도 않게 말을 걸어도 괜찮은 것일까? 방문 열고 고개만 빼꼼 내민다.)
 
방문을 빠끔히 열어보자, 책상에 앉아있는 헬레네의 뒷모습이 보입니다.
 
어제 도서관에서 빌려온 책을 읽는 듯해요.
 
아실링 펜들레엄:(잘 독서하는 사람한테 말 걸었다가 집중하는 거 깨트리는 건 아닌가 싶어 조심스럽게 문 닫고 헬레네 근처로 이동한다. 무슨 책을 읽나?)
 
아실링은 인기척 없이 이동하나요?
 
<은밀행동> 판정
 
아실링 펜들레엄:
은밀행동
기준치: 40/20/8
굴림: 6
판정결과: 극단적 성공
 
아실링이 근처까지 온 것도 모른 채 헬레네는 책을 읽고 있습니다.
 
<타이머와 시간논리학의 상관관계> ...?
 
제목만 봐도 어려워 보이네요.
 
아실링 펜들레엄:(헬레네 근처까지 온 거, 어차피 겪을 일이겠다 얼굴에 철판 깔기로 한다.) 이제 슬슬 식사할 시간인데..
 
헬레네 R. 히페리데:어머...! (당신의 목소릴 듣고선 깜짝 놀라 책을 덮는다.) 아실...! 어, 언제 오셨어요? (눈이 조금 부어 있다. 울었던 걸까?)
 
아실링 펜들레엄:... 방금요. (울었나? 조금 부어오른 눈 보더니 눈 질끈 감는다. 미안하다 같은 말로도 해결할 수 없을 거이라 지레짐작하고 말을 아낀다.) 오늘은 다 같이 식사하는 거죠?
 
헬레네 R. 히페리데:그럼요...! (얼른 자리에서 일어나 모자를 챙겨쓴다. 당신을 신경쓰는 듯 무척 조심스럽게 곁에 다가선다.) ... 화는 좀 풀리셨나요, 아실...? 옥상정원까지 올라갔다가 주무시는 걸 뵈었는데, 제가 멋대로 깨우면 안 될 것 같아서 기다렸어요.
 
아실링 펜들레엄:(아, 모자. 자신도 거울 보며 제대로 써본다. 신경 쓰는 것은 이쪽도 똑같다. 오전까지만 했어도 이런 일에는 같이 손을 잡고 갈만한 사이였는데, 어쩌다가 일이 이렇게 된 것일까. 또 이상한 충동이 드는 것은 아닐까 걱정이 되어 두 손을 가지런히 모아 잡는다.) 기다리지 않아도 괜찮았는데. ... 그럼 식사하러 갈까요?
 
헬레네 R. 히페리데:어떻게 그래요. 저 때문에 화가 나신 듯해서 걱정했어요. 만약 앞으로도 절 보고 싶지 않다고 하시면, 방을 바꿔달라는 등의 조치를 해야 할 테니까요. (그래도 그 정도는 아닌 것 같아 한층 안심한다.) ... 네, 같이 가요.
 
아실링 펜들레엄:당신 때문이 아니라..! ... 오늘 일로 제가 어떤 사람인지 제대로 보셨죠? 마음에 들지 않거든 언제든 조치 취해달라 하세요. (편하게 식사시간을 즐기기는 어려울 것 같다며 장소로 이동한다. 이런 상황을 만든 것은 온전히 제 탓이니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헬레네 R. 히페리데:아뇨... 저는 단편적인 일로 사람을 모두 판단할 수는 없다고 여겨요. 그러니 말씀해주시면 안 될까요? 제 탓이 아니라면, 아실이 어째서 갑자기 그런 반응을 보이셨었는지. 여전히 저를 파트너로 여겨 주신다면 함께 고민해봐요.
 
아실링 펜들레엄:들어서 좋을 일이 없을 텐데요. 뭐.. 이 상태로 더 나빠질 일도 없을 테니 그냥 말할게요. 연구에 참가한 이후로 당신을 향한 많은 감정을 느꼈어요. 수상할 정도로 편안함을 느꼈다가, 갑자기 말도 되지 않을 정도로 살해 충동 휩싸이고, 이어서는 도망쳐야만 한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어때요. 마음에 드는 이야기인가요? 밥맛은 좀 떨어졌을 것 같은데..
 
헬레네 R. 히페리데:살해... 충동이요? (충격을 받은 듯 눈동자가 떨린다. 마음의 준비는 하고 있었지만 생각보다도 더 충격적인 이야기였다. 그나마 안심인 건 자신의 행동 자체에 문제가 있었던 건 아니란 것일까.) ... ... 어째서 그런 감정이... 지금은, 지금도 그렇게 느껴지시나요?
 
아실링 펜들레엄:저도 몰라요. (어쩌다 그런 상황이 일어난 것인지는 모르나, 그 연구에서 자신과 너의 접촉을 통해 뭔가 이끌어내려고 했다는 것만은 분명했다. DOT에 관한 안 좋은 이야기를 하면 어떻게 반응할까? 내심 궁금했지만 지금 당장 듣고 싶은 것은 아니었다.) 당신과 많이 닿으면서 그렇게 된 것 같다는 생각은 해요. 우리 아무래도 같이 붙어있는 것은 줄여야 할 것 같죠? 그게 당신에게 좋을듯싶은데... ... 지금은 아니에요. 무서우면 멀리 떨어질까요?
 
헬레네 R. 히페리데:... ... 하지만 저는 전혀 그런 감정을 느끼지 않았었는데... 왜 아실에게만...? (의문점 투성이다. DOT는 이 현상까지도 예상하고 있었을까. 하지만 일언반구의 사전 전달도 없었으니 아마 구체적인 현상까지는 몰랐던 것이겠지. 연구 자료가 없다시피 하니 실험적 형태가 많을 수밖에 없다는 건 이해하고 있었지만... 멸망했으면 좋겠다며 능력을 쓰던 아실링이 상처를 받았을까 걱정이었다.) 아, 아뇨. 전혀 무섭지 않아요...! 저 때문에 아실이 원치 않는 감정을 느낀다면 스킨십은 하지 않겠지만... ... 그래도 전 여전히 아실이 좋은걸요.
 
아실링 펜들레엄:무슨... 당신, 바보예요? 지금은 무서워할 상황이어야 하잖아요. 애초에, 저한테 화도 안 났어요? 저 때문에 그런 잔소리도 듣도 받는 돈도 깎이고.. (있던 정도 사라질만한 일이었음에도 여전히 자신이 좋다고 말하는 헬레네의 말에 당황스러움을 감추지 못한다.) 제가 왜 좋다는 거예요. 파트너니까 어떻게든 잘 해보자는 그런 말인가요? 그런 것이라면 잘 맞춰드릴게요.
 
헬레네 R. 히페리데:화나지 않았어요. 어차피 거의 쓰지도 않는 용돈, 조금 삭감된다고 해서 큰 영향을 받는 것도 아니구요. (차분하게 말하며 고개 젓는다) 다만... 걱정스러웠을 뿐이에요. ... ... 저의 믿음은 쉽게 꺾이지 않아요, 아실. 저희는 좋은 파트너가 될 수 있을 거예요. 인간관계가 완벽할 수만은 없는 노릇이잖아요. 삐걱대거나 맞지 않는 부분이 있더라도, 관계를 바로 끊어내버리는 대신 감수하고 더 잘 맞는 해결책을 찾기 위해 노력하고 싶어요.
게다가 이번에는 아실이 고의로 그러신 것도 아니잖아요. 갑자기 그런 감정이 차올랐다면 저라도 당황했을 거예요. 전부 말씀해주셔서 감사해요. ... 그리고 저에게 와주셔서 고마워요.
 
아실링 펜들레엄:돈은 그렇다고 쳐도, 저 때문에 혼난 건 괜찮고요? (차라리 화라도 내주면 편할 것을. 놀라울 정도로 침착함을 유지하는 모습에 제 죄책감의 무게만 더해져 갔다.) 삐거덕거리는 것으로 끝나면 다행이지, 내가 당신을 해치려고 들면 어쩌려고 그런 말을 하나요. ... 상황이 더 나빠지지 않게 애쉬인가 뭔가 하는 사람한테 이 상황에 대해 한번 얘기해 보세요. 저보다는 당신이랑 대화가 잘 통하겠죠.
... 당신은 어려운 사람이네요. 이런 상황에 그런 말을 듣게 될 것이라고는 전혀 몰랐어요.
 
헬레네 R. 히페리데:전 애쉬의 말이 틀렸다고 생각하진 않아요. 막을 수 있었는데 당황해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지켜만 봤었으니까요. ... 스스로를 탓하지는 마세요, 아실. 당신의 잘못이 아니에요. 앞으로는 그런 감정이 일어나지 않도록, 조절해가며 나아질 방법을 찾을 수 있을 거예요.
한 번 더 여쭤볼게요. 방법을 알고 계시다면 좋겠네요.
(어려운 사람이라는 말에 입맛이 쓰다.) ... ... 이대로 관계가 멀어지는 것보다는 낫다고 여겼을 뿐인걸요. 저는 아실이 좋아요. 이렇게, 지금도 이끌리고 있으니까요. (심장은 당신을 볼 때면 언제나 평소보다 한 박자 빠르게 맥동했다.)
 
아실링 펜들레엄:제가 cctv가 아닌 당신을 그렇게 해했다면 그런 말이 안 나올 텐데. ... 마음대로 생각하세요. 나아지는 방법이나 그런 것들은 아직 잘 모르겠네요. 모르는 만큼 당신 옆에서 거리를 두려고 하는데, 괜찮죠? 다른 누구도 아닌 당신을 위해, 제대로 결정하도록 하세요.
(이어지는 말에는 아무 말도 하지 못한다. 네 대답이 예상 못 한 것이라 놀라서인지, 아니면 다른 감정이 있어 그런 것인지 구분하기 어렵게 심장이 콩닥거렸다. 입만 벌린 체 뻐끔거리다가 미간 사이를 손으로 꾹 누른다.) 역시 어려워요. 나중에 가서 후회하지나 마세요.
 
헬레네 R. 히페리데:네... 그것까진 저도 막지 않을게요. 아실을 제압하려고 시도하다 당신까지 다치게 만들지도 모르니까요. 능력에 관해서도 천천히 알아가보는 걸로 해요. 그래도... ... 같은 방에서 계속 머물러주실 거죠?
 
아실링 펜들레엄:네...? 아니 제압할 만한 일이 생기면 다치든 말든 일단 막아야죠. (무슨 소리를 하는 거냐며 볼을 한번 잡아당기려다가 전과 똑같은 충동에 시달리는 것은 아닐까 걱정되어 그만둔다.) ... 상황 보면서 머무를게요.
 
헬레네 R. 히페리데:... 제압할 거예요. 그렇지만 애초부터 그런 일이 최대한 생기지 않기를 바라요. 당신을 다치게 할지도 모른다는 건... 너무 마음이 아프니까요.
(그제야 식당의 문을 열고 들어선다.)
 
바야흐로 두 번째 밤이 찾아왔습니다. DOT의 흰 건물 위로도 어김없이 밤이 내려앉습니다.
 
12개라기엔 터무니없이 많은 수의 별들이 하늘을 수놓고, 선선한 봄바람이 운동장의 잔디를 부드럽게 훑습니다.
 
다사다난한 하루였습니다.
 
이른 아침만 해도 아주 가까운 사이가 될 줄 알았던 헬레네와 거리를 두어야 한다는 판단을 내렸으니까요.
 
바꾸기로 해보았던 생활패턴도 허무할 만큼 쉽게 제자리였습니다.
 
그래도 무슨 일이 있었건, 기분이 어떻건 간에 사람이 끼니는 챙겨야 하지 않겠어요.
 
이것도 다 먹고 살자고 하는 일인걸요.
 
두 사람은 서관의 지하로 향해, 식당으로 들어섭니다.
 
식당은 28명, 아니, 어제까진 14명을 위한 곳이라기엔 지나치게 호화롭습니다.
 
:남색 천장, 깨끗한 벽에 걸린 고풍스러운 액자들, 푹신푹신한 흰색 양탄자(식당에 배치하기엔 정말 호화스럽지 않나요?)와 56명은 앉을 수 있을 만큼 길고 커다란 테이블.
음식은 이미 차려져 있고, 개인의 앞접시가 있어 원하는 만큼 덜어 먹을 수 있는 구조입니다.
 
이미 도착한 몇 명은 식사 중이군요.
 
[액자]와 [테이블]을 살펴볼 수 있습니다.
 
아실링 펜들레엄:(다 같이 모인 뒤에 식사할 줄 알았는데, 그건 아니네? 제 자리에 앉아 액자를 살펴본다.)
 
각각 [알록달록한 하늘], [푸른 장미 아치], [검은 호수]를 촬영한 사진이 걸려 있습니다.
 
아실링 펜들레엄:(뭔 사진을 찍어뒀대? 알록달록한 하늘 사진을 본다.)
 
건물과 건물 사이로 보이는 푸르른 하늘과 새하얀 구름이 대조적입니다.
 
창틀 따위에 단단히 매인 긴 줄에는 우산과 깃발, 손수건과 종이학 같은 것이 걸려 있습니다.
 
꽃이 핀 것처럼 화려하기 짝이 없는 이 풍경은 도밍게즈 건국 축제의 장면이에요.
 
아실링 펜들레엄:(시설에 잘 어울리네.라고 생각하며 옆에 있는 푸른 장미 아치 사진을 살펴본다.)
 
은색 아치문을 따라 피어난 푸른 장미가 유난히 화려합니다.
 
공원에 설치된 조형물인데, 연인과 함께 손을 잡고 그 아래를 거닐면 사랑이 이루어진다더군요.
 
믿거나 말거나지만, 수도의 연인에게는 꽤 명소입니다.
 
아실링 펜들레엄:(아래를 거닐면 사랑이 이루어진다니. 그런 소문 같은 것은 믿지 않는다. 흥 하더니 검은 호수 사진을 본다.)
 
새까맣게 물든 호수에는 흰 종이꽃이 떠다닙니다.
 
수도의 유명한 관광지, 코마니 호수입니다.
 
건국 축제, 단 이틀간 호수의 수면이 검게 물드는 특이한 습성을 가지고 있죠.
 
축제 때면 타이머의 이른 죽음을 기리고자 많은 사람이 손수 접은 종이꽃을 띄워 보내곤 합니다.
 
사진 속 호수를 바라보던 아실링은 문득 불안함과 불쾌감을 느낍니다.
 
갑자기 찾아온 불청객입니다. 어째서일까요?
 
이유를 생각할수록, 원인을 찾을수록 두통이 밀려옵니다. 중요한 걸 잊고 있는 것처럼 불안해집니다.
 
아실링, San C (0/1)
 
아실링 펜들레엄:
SAN Roll
기준치: 55/27/11
굴림: 99
판정결과: 실패
(갑작스럽게 느껴지는 불안함과 불쾌감에 치맛단을 꾹 쥔다. 오늘 있었던 일과 같은 일이 일어나는 것은 아닌가 걱정되어 주위와 헬레네를 살펴본다.)
 
헬레네 R. 히페리데:아실? (의아하게 당신을 바라본다.) 무슨 일 있으세요...? 표정이 안 좋으세요. (같은 생각을 한 듯, 걱정스럽게 당신을 살폈다.)
 
아실링 펜들레엄:그게... (괜한 이야기 듣지 않도록 남들 귀에 들리지 않을 정도의 목소리로 속삭인다.) 호수 사진을 보고 갑자기 불쾌해지고.. 기분이 좋지 않아져서요.
 
헬레네 R. 히페리데:호수 사진이요? (액자를 바라본다.) 코마니 호수 말인가요? ... 한참 전부터 이곳 식당에 걸려 있던 사진인데... 지금까진 한 번도 그런 현상을 겪은 분이 없었거든요. 그러면 자리를 바꿔 앉으실래요? 액자가 보이지 않게요.
 
아실링 펜들레엄:... 그래주시겠어요? 조금이라도 좋으니 바꾸는 것만으로 뭔가 해결이 된다면 좋을 텐데. (거절하는 일 없이 바로 자리에서 일어나 바꿔 앉으려고 한다.)
 
헬레네 R. 히페리데:(자리에서 일어나 액자를 등질 수 있는 곳으로 옮긴다. 의자를 미리 빼 주는 과정에서 당신의 팔과 손이 살짝 스쳤다.)
 
의자를 빼 주는 헬레네의 손길과 스친 순간,
 
치솟던 불쾌감과 불안이 순식간에 누그러집니다.
 
아실링 펜들레엄:(한순간에 호전된 상태에 눈 동그래진다. 닿으면 안 되는 것 아니었나? 일단 얌전히 자리에 앉아 생각 정리한다.)
 
테이블마다 배치된 네임 카드와 은식기.
 
헬레네와 아실링의 이름은 서로 마주 보고 놓여 있습니다. 타이머와 카운터를 가까운 곳에 배치한 의도가 훤히 보입니다.
 
자리를 바꿔 앉은 덕에, 헬레네의 네임 카드가 있는 곳에 아실링이 앉게 되었네요.
 
냅킨은 토끼 모양으로 접혀 있고, 음식 사이사이 푸른 장미가 꽂힌 화병이 있어서, 꼭 비싼 레스토랑에 데이트라도 온 것 같은 기분입니다!
 
참고로 푸른 장미는 도밍게즈의 국화입니다. 불가능을 넘어선 기적의 상징이죠.
 
아실링 펜들레엄:(이런 것에도 신경을 잘 써뒀네.. 얌전히 제 식사 기다린다. 맛있는 게 나온다고 해도 잘 먹을 것 같지는 않다.)
 
리코타 치즈 샐러드와 토마토 두부 카프리제, 잘 녹은 치즈를 얹은 스테이크 정식, 흰 소스를 곁들인 연어 스테이크와 색색의 과일 스프링롤.
 
참치를 깍둑깍둑 썰어 채소와 상큼한 드레싱을 곁들인 샐러드. 콩 특유의 고소한 냄새가 나는 두유 스무디……
 
디저트로는 바싹 구운 무화과 쿠키가 나왔습니다.
 
그들이 일컫는 구원자라는 이름이 얼마나 진실하고 진솔한지는, 풍성하고 호화로운 DOT의 식단이 증거합니다.
 
집에 가고 싶다니, 함께 있기 싫다니 옥신각신, 소란을 피우던 아이들도 식사 때가 되면 재깍재깍 테이블 앞에 앉곤 했으니 말 다 했죠. (조용히 식사만 하지는 않았어도)
 
맛있게 식사합시다. 밥을 먹는 동안은 개도, 애도 건드리지 않는 법이므로 식사시간은 평화롭게 흘러갑니다.
 
아실링 펜들레엄:(근사한 식사였으나 입에서 느껴지는 즐거움이 오늘 있었던 일과 관련된 것들을 풀어줄 정도는 아니었다. 적당히 식사를 끝내고 헬레네를 본다.) 이 이후에 일정은 없는 거죠?
 
헬레네 R. 히페리데:(그 또한 입맛이 없는지 속도가 느리다.) 네, 오늘은 자유시간이에요. ... 특별히 하고 싶은 게 있으신가요?
 
아실링 펜들레엄:(자유 시간이라고는 하지만 뭔가 하고 싶다 같은 것들이 생각나지 않았다. 낮잠도 자버리는 바람에 잠도 쉽게 오지 않을 것이 뻔했다.) 잘 모르겠네요. 헬리는 보통 뭘 했나요?
 
헬레네 R. 히페리데:저는 책을 읽거나, 카페에서 시간을 보내요. 다른 타이머 분들과 모여서 TV를 보거나 이야기를 나누기도 했구요.
 
그러던 와중,
 
<듣기> 판정
 
아실링 펜들레엄:
듣기
기준치: 80/40/16
굴림: 55
판정결과: 보통 성공
 
“카운터란 거 진짜야? 세계가 멸망한다는 예언은 오늘 또 떨어졌다고.”
 
“아, 무슨 소리야. 아까 분명히 ■■■■가 그럴 일은 절대 없을 거랬어. 누구한테 들은 찌라시야?”
 
“뭐? 난 ■■한테…….”
 
“예언의 탑이 아니라?”
 
“거길 누가 믿어?”
 
치열한 대화가 그릇 위를 오갑니다. 세계 멸망? 예언? ■■■■와 ■■라면……
 
누구인지 기억해내고 싶다면 <지능> 판정
 
아실링 펜들레엄:
지능
기준치: 75/37/15
굴림: 70
판정결과: 보통 성공
 
11시, 예언의 타이머와 카운터의 이름이라는 것을 깨닫습니다.
 
심상치 않은 내용 같은데, 무슨 이야기가 오가는 걸까요?
 
<대인관계> 판정 성공시 정보를 얻을 수 있습니다.
 
아실링 펜들레엄:저, 그 얘기 더 자세하게 듣고 싶은데. 좀 더 얘기해 주시겠어요? (대화하던 사람 아무나 잡고 물어본다. 아껴뒀던 사회성을 이렇게 쓴다.)
말재주
기준치: 50/25/10
굴림: 9
판정결과: 극단적 성공
 
제 n시 카운터:아, 그게... (당신의 자연스러운 화술에 망설임도 없이 바로 이야기하던 내용을 들려준다.) 예언의 카운터와 예언의 타이머가 같은 날, 같은 시에 서로 다른 예언을 해서 문제가 되고 있대. 연구원들도, 사무원들도, 심지어 하인리히 장교님도 쉬쉬하는 것 같지만... 난 본인들한테 직접 들었거든.
 
그들은 곧 자신들이 들은 예언을 알려줍니다.
 
:카운터는 어떤 소리를 듣습니다. 세계가 무너지고, 하늘이 찢어지며, 건물이 붕괴하고, 별이 떨어지는······ 요란하고 끔찍한 소리입니다.
“멸망이 신속히 임하리니, 아무도 멸망의 때인 줄 알지 못하리라······”
타이머는 어떤 소리를 듣습니다. 새순이 돋고, 꽃이 피며, 꽃샘추위가 콧잔등을 간지럽히는······ 봄이 오는 소리입니다. 녹은 눈이 아스팔트 도로를 적시고 스며듭니다. 겨울이 지난 후의 봄.
“세계는 멸망하지 않아. 도밍게즈는 새 계절을 맞을 거야. 그리고······”
 
영문을 알 수 없는 이야기입니다.
 
아실링 펜들레엄:그렇군요.. 알려주셔서 감사해요. (적당히 감사 인사하고 헬리 곁으로 돌아온다. 누구의 말을 믿어야 할지 고민이 이어졌다. 멸망하거나, 멸망하지 않거나 둘 중 하나겠지.)
 
헬레네 R. 히페리데:(곁에서 그 말들을 듣고는, 심각한 표정이다) ... 예언이 둘로 나뉘다니. 카운터가 나타났기에 멸망을 막을 수 있으리라 믿었는데... ... 여전히 저희는 위험을 대비해야 했던 것일까요. 안일하게 안심하지 말라는 경고를 던지는 듯한 예언이네요.
 
예언의 내용에 차이가 있는 이유는 여러 가지를 찾을 수 있습니다.
 
시간의 차가 있다. 둘 중 한 명이 틀렸다. 서로 다른 경우의 수를 예언했다. 두 가지 모두 결국 같은 이야기다…….
 
세계는 멸망할까요? 멸망하지 않을까요?
 
아실링 펜들레엄:(삶이 온전한 사람이라면 멸망하지 않는 쪽을 선택하지 않을까? 아주 즐거운 삶은 아니었어도, 그렇다고 멸망하는 세계를 반가워하는 성격의 사람은 아니었다.)
 
헬레네 R. 히페리데:저는 타이머의 예언을 믿고 싶어요. (스무디를 마시는 것도 잊은 채 골똘히 고뇌하느라 바쁘다.) ... ... 단순히 멸망이 무서워서 그런 것만은 아니에요. 도밍게즈에서 살아가고 있는 수많은 소중한 생명이 한순간에 스러진다니, 너무 비참한 일이잖아요. 저는 반드시 막아낼 거예요. 이제 열넷에서 스물여덟이 되었으니, 더더욱 큰 힘을 모아서요.
 
아실링 펜들레엄:.. 부담을 주려는 것은 아니고, 그냥 하고 싶은 말이 있는데요. 당신 같은 사람들이 여럿 있다면 어떻게든 지킬 수 있을 거예요. 저 역시 멸망을 원하지는 않으니, 당신만큼은 아니어도 열심히 노력할 거고요. 아... 싫어도 여기 사람들하고는 잘 지내보려고 해야겠네요. (잔에 담긴 물을 마지막으로 더는 뭔가를 입에 대지 않는다.)
 
헬레네 R. 히페리데:아. ... 저도 아실에게 부담을 드리려는 건 아니었어요. (그제야 정신을 차린 듯 작게 침음한다) 어제도 말씀드렸듯이 모두가 저처럼 사명감이 넘치는 건 아니니까요. (좋은 관계로서 출발점을 넘었다고 여겼는데, 지금에 와서는 어긋나 버린 것 같은 기분에 입맛이 씁쓸하다. 남은 스무디와 무화과 쿠키를 챙겨 일어난다.) 이만 돌아갈까요. 남은 시간에 하고 싶으신 게 있나요?
 
아실링 펜들레엄:당신의 저한테 부담감을 주려고 그랬다는 생각은 해본 적 없어요. (앞으로도 없을 것 같았고.) ... 제가 오늘 당신보고 어려운 사람이라고 몇 번 그랬던 것 같은데. 다시 생각해 보니 그냥 솔직한 사람이라 그런가~.. 싶기도 하네요. 위선적으로 보이지는 않아서 좋아요. 계획은 아직도 생각나지 않네요. ... 그냥 누워라도 있을까요? 잠이 올지 아닐지 잘 모르겠지만.
 
헬레네 R. 히페리데:일반인들에게는 숨겨야 하는 것도 많지만, 그래도 타이머로서의 저는 솔직해지고 싶어요. 진솔하게 다가갈수록 사람들도 저를 더 믿어줄 테니까요. ... 좋아요, 훈련하느라 고생이 여러모로 많으셨죠. 이만 돌아가요.
 
두 사람은 묵묵하게 방으로 돌아갑니다.
 
아실링은 바로 침대에 눕나요?
 
아실링 펜들레엄:(좀 전에 말한 대로 계획도, 뭔가를 할 힘도 없어서 그대로 누워있는다. 잠이 올지 안 올지는 잘 모르겠지만.)
 
헬레네 R. 히페리데:(방으로 돌아와 모자와 겉옷을 벗는다.) 홍차 좋아하세요? 한 잔 타드릴까요? 아무래도 식사한 후라, 바로 잠이 오진 않으실 것 같아서...
 
아실링 펜들레엄:(홍차를 마시던 안 마시던 잠은 안 올 것 같은지 누워있다 말고 일어났다.) 그럼 한잔 주시겠어요? 종류는 아무것이나 좋아요.
 
헬레네 R. 히페리데:네에. 그럼... (일련의 사건 때문에 가만히 앉아 있기만 하기엔 영 어색했는지, 할 일이 생기자 반가웠다. 서둘러 일어나 부엌으로 향해 티백을 꺼내고 물을 끓인다. 달그락거리는 소리가 울려퍼졌다.) 저는 평소에 조용하게 지내고 있지만, 아실이 좋아하는 노래나 영화 같은 게 있다면 틀어두셔도 상관없어요. (두 사람이 되면 침묵을 의식하게 되므로)
 
아실링 펜들레엄:저나 당신이나, 조용하게 시간 보내는 걸 좋아하는 것은 같네요. 저도 음악을 틀어놓는 일은 적어서. (이 분위기에는 뭔가 틀어놓는 게 좋을까? 괜찮다고 느낀 곡이나 영화를 속으로 골라본다. 생각나는 영화는 없었다.) 영화, 뭐 좋아하세요?
 
헬레네 R. 히페리데:아, 저... 로맨스 영화도 좋아하지만, 우주를 다룬 영화도 꽤 좋아해요. 이전부터 천문학 쪽으로 관심이 많았거든요. 이전에 DVD를 여러 개 빌려두었었는데... 아실도 관심이 있으시다면 나중에 함께 볼까요? (잔 두 개를 들고 돌아온다. 티백을 막 넣었는지 물 색은 아직 투명했다.)
 
아실링 펜들레엄:다큐멘터리 느낌 나는 영화면 재미있게 볼 것 같긴 해요. 그럼 시간 날 때 추천한 것을 보기로 할까요? (잔을 받아들고, 찻잎으로 물의 색이 흐려지는 것은 찬찬히 본다. 이렇게 색이 섞여드는 것처럼 모든 것이 쉽기만 하면 좋을 텐데.)
 
헬레네 R. 히페리데:다큐멘터리 장르 쪽을 좋아하시나 보군요. 그러면 그 장르도 있나 살펴볼게요. 제가 빌려온 것 외에도, 도서관에서 다양하게 구비해둔 게 있으니 함께 골라도 좋을 거예요. (찻잔을 양손으로 감싸쥐고, 수색이 우려나자 한 모금 마신다. 따뜻한 온기가 목을 타고 퍼졌다. 훈련을 할 때 맞닿은 당신의 손이, 어깨와 몸이, 그리고 입술도 이렇게 따스했었는데. 그때 일을 떠올리면 부끄러워지다가도 또 순식간에 어두워지곤 했다. 대체 왜 그런 기이한 현상이 있었던 걸까.)
저, 그리고... ... 혹시 지금도 저에게 살해 충동과 같은 부정적인 감정이 느껴지시나요? (무척 머뭇거리다가 조심스레 덧붙인다.)
 
아실링 펜들레엄:(조용한 정적을 깨고 나온 질문에 대한 답을 미루려, 아직 뜨거운 열이 떠나지 않은 차를 한입 마신다. 반을 비울 즘에야 찻잔에서 입이 떨어졌다.) 그런 건 안 느껴져요. 밤에 무서운 일은 없을 것 같아서 다행이네요.
 
헬레네 R. 히페리데:... 다행이에요. 실은 전... 그때 아실이 입을 맞추셨을 때 무척 놀라면서도 설레고 부끄러웠었는데... 싫지 않았어요. 오히려 심장이 빠르게 뛰기 시작해서 혹시나 당신에게도 들리진 않을까, 그런 걸 걱정하고 있었거든요. ... 제 첫 키스기도 했고요. (거의 들리지 않을 정도로 작게 속삭인다) 아실이 살해 충동 같은 감정을 느끼고 계신 줄은 상상도 못했어요. 게다가 그때, 짧은 순간이었지만... 능력의 수준이 상향되지 않으셨던가요?
 
아실링 펜들레엄:... ... 첫 키스를 그런 식으로 가져가게 될 줄은 몰랐네요. 너무 원망은 하지 마세요. 저도 제 첫 번째는 드렸으니. (서로에게 처음이나 마찬가지였던 순간이었지만, 느끼는 감정은 정 반대였다는 어긋남에 헛웃음이 나왔다.) 저도 제가 그런 감정을 느낄 것이라고는 상상도 못했어요. 그것도 상대가 당신이니 더욱 그랬고. ... 맞아요. 그때 확실히 능력 사용에 도움이 되었어요. 무슨.. 도핑 같은 것일까요?
 
헬레네 R. 히페리데:... ... 아, 아실도 처- 처음이셨던 거군요. (당신이 애인을 많이 사귀는 타입이라 여긴 건 아니지만, 먼저 끌어당겨 왔으니 경험이 있던 게 아닐까 추측했었다. 둘 다 처음이었다고 하니 왜인지 더 쑥스러워지는 듯해 말까지 더듬으며 잔으로 얼굴을 슥 가린다.) 원망 같은 건 하지 않아요. (실은 너무 달콤하고 황홀한 순간이었다고 어찌 말하겠는가. 보통 매체에서 묘사하는 아름답고 스윗한 순간이 아니라, 살벌하고 위태로운 현장이 되어버렸는데.) ... 내일 훈련실에서 한 번 더 확인해 볼까요? 능력이 영구적으로 향상되었는지, 일시적이었는지 말이에요.
 
아실링 펜들레엄:처음이면 이상한 건가요? ... 당신도 처음이었다고 해놓고선. (이해를 잘못했는지 이상한 오해를 한다. 방석을 제 무릎 위에 올려놓고 푹 끌어안았다. 연구니 뭐니 관찰당하는 것은 별로였으나, 능력을 제대로 쓸 수 있는 곳은 그곳밖에 없었기에 빠르게 수긍한다.) 그래요. 훈련실에서 제대로 확인해 보도록 하죠. cctv를 망가트린다던가.. 사고는 안 칠 테니 걱정 마세요.
 
헬레네 R. 히페리데:아... 아뇨! 이상하다는 게 아니라. (얼른 손사래를 치며 정정한다.) 아실이 먼저 다가오셔서... 혹, 혹시나 스킨십에 익숙하신 걸까 여겼을 뿐이에요. (얼굴이 조금 붉어진 채로 남은 홍차를 연신 마신다.) 네. 이번엔 혹시나 능력이 어긋나더라도 제가 제대로 막아볼 테니까요. ... ... 저와 스킨십을 하게 되면 앞으로도 계속 그런 나쁜 감정이 드는 것일까요? 아니었으면 좋겠어요. ... 손도 잡고 다니고 싶고, 끌어안아 드리기도 하고 싶은걸요.
 
아실링 펜들레엄:그때는 ... ... 그냥 돌아있었다고 생각해 주세요. 제가 생각해도 이해하기 힘드니까요. 그 어떤 사람이 와도 그 상황을 설명하긴 힘들 거예요. (무릎 위에 두었던 베개로 얼굴을 반쯤 가린다. 말투며 행동이며, 계속되는 대화에도 예의라고 할만한 것을 보이지 않는다. 그럴 여유도 없었고.) 당신이 좀 신기한 것 같아요. 제가 당신 상황이었으면 바로 거리를 뒀을 텐데.
 
헬레네 R. 히페리데:... 그만큼, 아실이 좋아서 그런가 봐요. (낯부끄러울 만큼 솔직히 터놓는다. 애정을 표현하는 데 거리낌없는 성격이기도 했지만, 당신을 본 순간 느꼈던 운명적인 이끌림이 아직도 제 안에 살아 숨쉬고 있기 때문이리라.) ... ... 게다가 의도하신 일도 아니었는걸요. 제가 지금 아실을 멀리하면, 마음 아프지 않으실까요.
 
아실링 펜들레엄:... 저도 당신이 사랑스럽다고 느껴요. (설명하기 어렵게 제안에 피어난 감정들은 자신을 꽤나 힘들게 만들었다. 그렇기 때문에 더욱 조심해야만 하는 관계였다. 제 실수로 네가 다치기라도 한다면 영원히 자신을 용서하지 못할 것 같았으니까.) 아프겠지만 그게 당신을 위한 것이라면 그리해야죠.
 
헬레네 R. 히페리데:아... 아실도요...? (가라앉히려던 낯이 괜시리 더 달아오르는 것 같아 후다닥 고개를 비스듬히 돌리고 손부채질을 한다.) ... 저를 위해 그런 선택을 하려는 것이었군요. 제가 다 이해하지 못했네요. ... 그러니 앞으로 지내면서 확인해 봐요. 저는 다행히도 능력을 다루는 데 익숙해서, 돌발 상황이 일어나면 충분히 저지할 수 있으니까요.
 
아실링 펜들레엄:서로 싫어하지 않는다는 것을 확인했으니, 충분하죠? (이런 대화 주제는 어색해서, 머리카락 하나하나까지 삐쭉 서는 느낌이 들었다. 좋지만 어려운 사람. 제 눈앞에 보이는 사랑스러운 사람은 자신을 제법 곤란하게 만들었다.) 그래요. 부디 잘 막아주세요. 당신이라면 그래줄 수 있겠죠.
 
헬레네 R. 히페리데:네. 혹시나 그 일로 인해 아실이 더 이상 저와 함께하고 싶지 않으실까 내심 걱정했어요. (안도한 듯 복숭앗빛같은 웃음이 차차 퍼져나간다.) 그러면 이만 잘까요? (목소리가 한 톤 올라가선(본인은 모르는 중) 발랄하게 말한다.)
 
아실링 펜들레엄:함께하지 않는 방법이 더 힘들걸요. ... 아무튼 다시 한번 더 잘 부탁드려요. (대화 때문인지, 아님 네가 끓여준 홍차 때문인지 마음이 한결 편해졌다. 고개를 끄덕이고 올라간 제 침대는 저번에 누웠을 때보다 안락했다. 침대가 변한 것이 아니라 제 마음이 달라진 것이겠지.)
 
헬레네 R. 히페리데:네, 저도요! (잘 부탁한다는 말을 꽤나 여러 번 하는 것 같았다. 그래도 뭐 어떤가. 그만큼 새로이 관계를 다져나가는 것뿐이다. 다 마신 잔을 정리하고는 나는 듯 침대로 향했다. 무거웠던 마음이 마치 깃털처럼 가벼워진 듯했다. 해결해나가야 하는 문제는 많겠지만, 큰 산을 넘은 기분.)
 
이렇게 또 하나의 밤이 지나갑니다.
 
그리고 나면 찾아오는 손님은 언제나처럼의 아침이죠.
 
아실은 간밤 푹 잘 잤나요?
 
아님 늦잠을 잤을까요?
 
아실링 펜들레엄:(푹 잠에 든 것은 아니었으나, 제법 좋은 꿈을 꾼 것 같았다. 무슨 꿈을 꾼 것인지는 기억 못 하지만... 기분 좋게 하루를 시작하려고 한다.)
 
헬레네 R. 히페리데:좋은 아침이에요, 아실. 더 일찍 깨울까 하다가 조금 더 기다렸어요. (이미 준비를 다 끝낸 듯 머리를 단정하게 묶은 채로 고개를 내민다.) 어서 수업을 들으러 갈까요?
 
아실링 펜들레엄:아.. 배려 감사해요. 그렇지만 다음부터는 봐주지 말고 바로 깨워주세요. 그편이 더 좋을 것 같아서. (끄응. 찌뿌둥한 몸을 일으켜서 나갈 준비를 한다.) 무슨 수업을 할지 궁금하네요. 재밌는 내용이면 좋을 텐데.
 
헬레네 R. 히페리데:그럼, 그렇게 할게요. (고개 끄덕끄덕!) 이제부터는 이능력이나 신체 단련 위주 수업이 병행되어요. 재미있을지는 잘 모르겠네요.
 
공식적으로 DOT의 일원으로 편입되었으니, 타이머들의 수업도 그대로 따라가게 됩니다.
 
헬레네의 말대로 이능력을 쓸 때의 패널티, 신체를 무리시키지 않는 방법 등의 인체 공학적인 수업을 듣게 되었습니다.
 
꾸준히 들으며 실제 훈련을 병행하는 게 좋다고 하네요.
 
헬레네 R. 히페리데:(수업 내용을 깔끔하게 필기하고는, 끝이 나자 노트를 정리하며 당신에게 고개 돌린다) 어떠셨나요? 들으실 만 했나요? 유익한 내용들이라 잘 기억해두는 게 좋아요.
 
아실링 펜들레엄:(펜을 잡았던 쪽의 손목을 돌리며 잠시 휴식을 갖는다.) 흥미로운 내용이었어요. 물론 단순히 흥미에서 끝날 것이 아님임을 알고 있고요. 잘 기억하고 있을게요. 능력 사용에도 적용하도록 하고요.
 
헬레네 R. 히페리데:그러면 이제 훈련실로 가볼까요? (가방 챙겨든다.) 역시 이론은 실전에 적용해봐야 하니까요. 어제 이야기 나누었던 것도 확인해보구요.
 
아실링 펜들레엄:(길을 외운 뒤로 네 뒤를 졸졸 따라다니던 것은 그만두었다. 이제는 제가 먼저 훈련실 쪽으로 걸어나간다. 이제는 자연스럽게 발걸음이 향했지만, 그 장소가 반갑지 않은 것은 여전했다.) 오늘은 어떨지 궁금하네요. 컨디션은 괜찮은 것 같은데..
 
헬레네 R. 히페리데:꼭 스킨십 때문이 아니더라도, 능력은 단련하면 단련할수록 실력이 늘게 될 테니까요. 연습만이 살길이죠. (엄청난 노력파인 듯 손 꼭 쥐었다. 어느덧 발걸음이 익숙해져, 당신을 이끄는 게 아니라 당신 뒤를 따르게 되었다.)
 
아실링 펜들레엄:뭔가 지식 쌓는 기분도 들어요. 정확히 말해서는 그냥 경험을 쌓는 것뿐이지만... 오늘도 열심히 해볼게요. (문 앞에 서서 가볍게 숨 들이쉬고 내쉬었다가 문을 열고 들어간다.)
 
헬레네 R. 히페리데:(준비운동 열심히 헛챠헛챠 하고는 평소처럼 수조에 물을 가득 받아온다.) 아실의 능력을 먼저 볼까요? 어제처럼 강한 힘을 쓰실 수 있겠나요? 수압도 무척 높아 보였었는데...
 
아실링 펜들레엄:(물이 가득 찬 수조 보다가 쓴웃음이 나왔다.) 어제처럼 잘 될지는 모르겠지만, 실패해도 계속해야 하는 게 저희 일이잖아요. 한 번 해볼게요.
이능력 Roll
기준치: 30/15/6
굴림: 94
판정결과: 실패
 
어제의 향상은 일시적인 것이었을까요.
 
그때만큼 제대로 되지 않습니다.
 
헬레네 R. 히페리데:... ... 잘 되지 않나요? (노심초사)
 
어제는 일시적으로 물을 조종할 수도 있었으나, 지금은 그 또한 불가능합니다.
 
다시 원래의 미숙한 상태로 되돌아온 듯하네요.
 
아실링 펜들레엄:... 한 번 더 해봐도 괜찮을까요? (꿍)
(현실부정중)
 
헬레네 R. 히페리데:그럼요, 원하시는 만큼 하셔요. 건강에 무리가 가지 않는 선 안에서지만요.
 
능력을 쓰는 것도 체력을 꽤 많이 소모하는 일이니까요.
 
아실링 펜들레엄:(기절하기 전까지 한번 해볼까나~ 물론 농담이다. 너무 큰 체력을 쓰는 것은 이쪽에서 반대다.)
이능력 Roll
기준치: 30/15/6
굴림: 32
판정결과: 실패
 
물이 조종될 듯 말 듯 하다가... 다시 철퍽 바닥으로 추락하고 맙니다.
 
아쉬웠어요.
 
아실링 펜들레엄:(...삐죽)
이게 제 원래 실력인가 봐요. (삐죽삐죽)
 
귀여웡
 
헬레네 R. 히페리데:(삐죽아실 얼른 위로한다.) 무슨 소리세요. 훈련실에 온 지 일주일도 안 됐는걸요. 저도 실력이 향상되지 않아서 조바심을 냈던 적이 있어서 아실의 마음을 잘 알아요. 그래도 꾸준히 하다 보면 언젠간 반드시 늘 거예요!
 
아실링 펜들레엄:그래야죠... 안 늘면 저는 밥 먹을 자격도 없어요. 편하게 잠 잘 자격도 없을 거고.. (삐쭉거리다가 갑자기 텐션 낮아졌다.)
 
헬레네 R. 히페리데:스스로를 깎아내리는 건 안 돼요. 아실~ (당신에게 간식들을 자주 권하게 될 것 같은 미래를 본 것 같다) 능력 훈련 대신 체력 단련도 괜찮죠. 저희 같이 단련실로 갈까요? 저도 기초 체력은 더 길러야 하거든요.
 
아실링 펜들레엄:제가 그랬나요? (모르는 사이에 자연스럽게 한 듯) 그럼 체력단련하러 가요. 열심히 운동하면 그런 생각도 안 하겠죠. 몸도 건강해지고, 잡생각도 안하니 딱 좋네요.
 
헬레네 R. 히페리데:네에. 꽤 자연스럽게요. (본인도 모르는 기색인 것을 보니 이미 내재되어 있나 보다. 이 성격도 꼭 바꿀 수 있게 도와야지! 혼자 다짐하곤 쪼르르 붙어 훈련실을 나선다.)
 
훈련실 맞은편에는 체력단련실이 마련되어 있습니다.
 
스물여덟을 위한 공간이니만큼 널따랗고 운동기구도 많습니다.
 
한켠에선 먼저 온 다른 타이머와 카운터들도 보입니다.
 
아실링 펜들레엄:어라... (다른 시간에 올걸! 다른 타이머와 카운터들 보더니 헬리 뒤로 슬슬 숨는다.) 원래 이 시간에 사람 많았던.. 가요..?
 
헬레네 R. 히페리데:아무래도 스물여덟이나 되는데다, 단련실은 한 곳이다 보니 자주 마주치게 돼요. (숨는 아실 귀엽게 보면서도 조금 걱정...) 아실은 사람이 많은 곳을 좋아하지 않으시나 보군요.
 
아실링 펜들레엄:아뇨. 그냥.. 뭔가 다들 저보다 운동 잘할 것 같고.. ... 제 나약한 모습을 보여주기는 싫네요. (물론 사람이 많은 것도 싫기는 하다.)
 
헬레네 R. 히페리데:아무도 서로에게 신경쓰지 않으니 걱정 마세요. 아, 조언을 구하기 위해서 물어보면 친절하게 대답해주시겠지만요. (실제로 카운터들은 당신과 사정이 크게 다르지 않는지, 헉헉대는 이들이 다반사다.) 일단 가볍게 런닝머신부터 뛰어볼까요?
 
아실링 펜들레엄:(헬리 바보.. 친절하게 대답해 줘도 조언 구하는 것이 싫은 건데. 애매모호한 표정으로 보다가 다른 이들한테로 시선 돌린다. 내가 쟤네보다는 덜 힘든척해야지.) 좋아요. 근데 가볍게가 어느.. 정도죠?
 
헬레네 R. 히페리데:30분 정도...? 하지만 아실은 오늘 처음이니까 일단 10분만 해볼까요? (트레이닝복의 팔뚝을 걷으며 런닝머신 위로 올라간다.) 화이팅이에요, 아실! 무리하지 마시고 힘들면 중간에 휴식을 꼭 취하세요.
 
아실링 펜들레엄:... 아뇨 30분 해볼게요. (자신감이 있는 것도 아니면서 일단 말부터 하고 본다. 오래 뛸 것을 생각해 물 한두 잔을 마시며 수분을 보충하고는 러닝머신 위로 올라간다.) 걱정 마세요. 상태 잘 확인하면서 할게요.
 
두 사람은 런닝머신에 나란히 올라서서, 30분을 목표로 달리기 시작합니다!
 
과연 아실링은 잘 버텨낼 수 있었을까요?
 
두 사람 다 <건강> 판정
 
헬레네 R. 히페리데:
건강
기준치: 50/25/10
굴림: 44
판정결과: 보통 성공
 
아실링 펜들레엄:
건강
기준치: 50/25/10
굴림: 96
판정결과: 실패
 
헬레네는 무던하게 30분을 다 마쳤지만, 아실링은 15분을 넘어갈 쯤부터 숨이 가빠오기 시작합니다.
 
그뿐이 아닙니다. 눈앞이 흐려지고... 다리가 무거워지고... 목은 타고...
 
아무래도 안 되겠어요. 어서 휴식을 취하는 게 좋겠습니다.
 
아실링 펜들레엄:... (정지 버튼 누르더니 천천히 내려간다. 구석으로 가서 꿍 박혀있는다. 멀쩡한척하기는 무슨. 심장이 아직도 제 몸에 달려있는 게 신기할 정도로 빠르게 뛰고 있었다.)
(가오 상함)
 
헬레네 R. 히페리데:(아무것도 모르고 몰입해서 열심히 30분 뛰다가, 다 끝마친 후에야 아실링 발견한다.) 아실. 왜 거기 계세요? 거긴 운동기구가 없는데... ... 혹시 어디 안 좋으세요?
 
아실링 펜들레엄:... 아뇨. 그냥. 갑자기 생각할 것이 생겨서. (손에 쥔 물통 입에 대고 한통 다 마신다. 누가 봐도 힘들어 보인다..) .. 다음에는 뭘 하죠?
 
헬레네 R. 히페리데:이제... (수많은 운동기구들을 짠 보여준다) 적절해 보이는 운동기구를 골라서 하면 돼요. 제가 DOT에 막 들어왔을 때 했던 코스들로 가르쳐 드릴게요. 자, 이쪽으로 와보세요.
 
아실링 펜들레엄:... 상체 하체.. 이런것도 나눠서 운동하는 것일가요? (어디서 들은 것은 있어서 일단 말해본다. 오늘은 별 거 안하고 끝내기를. 속으로 싹싹빈다.)
 
헬레네 R. 히페리데:상체 하체... 나누어서 할 수도 있기는 하겠지만. 오늘은 아주 기본적인 것만 할 거예요. 힘들다 싶으면 언제든 그만두셔도 되니 부담 갖지 마셔요. (속도 모르고 당신을 친절하게 운동기구로 데려다 준다.) 저는 저 덤벨을 들어볼게요! 사실 저도 이쪽은 초보라 기본밖에 못해요.
 
여러 운동기구가 아실링에게로 인도(?)됩니다...
 
초보자 수준이라고 하지만 과연 잘 해낼 수 있을까요? <건강> 판정
 
아실링 펜들레엄:
건강
기준치: 50/25/10
굴림: 16
판정결과: 어려운 성공
 
해냈다!!
 
런닝머신은 지금을 위한 추진력이었을 뿐...
 
아실링은 초보자 코스를 무난하고 깔끔하게! 훌륭하게 해냅니다.
 
헬레네 R. 히페리데:
근력
기준치: 25/12/5
굴림: 42
판정결과: 실패
 
그리고 옆에선 덤벨이 쿠당탕 굴러떨어지는 소리와 헬레네가 엉덩방아를 찧는 소리가 들리네요.
 
헬레네 R. 히페리데:아야... 역시 아직 쉽지 않네요! 근력 운동을 더 열심히 해야겠어요. (끙끙대며 다시 덤벨을 제자리로 돌려놓고 미니 아령이나 열심히 들어올린다.) 아실은 좀 어떠세요?
 
아실링 펜들레엄:괜찮으세요? 다치신 건 아니고요? (옆에 저 아무것도 못하고 쩔쩔맨다.) 초보자 정도의 난이도라 적당하게 끝낼 수 있었어요. 자랑할 만한 정도는 아니고요..
 
헬레네 R. 히페리데:아, 괜찮아요. 이런 걸 들 때는 잘 놓치는 방법도 같이 배우거든요. 괜히 무리해서 들려다가 더 다치면 큰일이니까요. 아실도 잘 끝내셨다니 다행이에요!
... 아실에겐 무리하지 말라고 몇 번이나 말씀드렸지만, 실은 저, 초조해요. 어제 11시 카운터와 타이머가 보았다던 그 예언의 광경이 자꾸 머릿속에서 떠나질 않아서요. 카운터가 있는데도 멸망의 미래가 올 수 있다면, 역시 제가 조금 더 노력해야 하는 게 아닐까. 그런 사명감이 들어요.
 
아실링은 세계 멸망을 저지하기 위해 태어난 존재라고, DOT는 분명히 그리 말했습니다.
 
그러나 어째서, 아실링이 이곳에 존재함에도 불길한 예언은 끝나지 않는 걸까요?
 
아실링 펜들레엄:좀 쉬는 게 좋을 것 같네요. (수건과 물을 건네주며 휴식을 권한다. 이 정도의 여유는 누구나 가질 수 있는 것이니 말이다.)
... 제가 둔하게 받아들이는 것일 수도 있지만. 저희는 그냥 하던 대로 계속하면 될 것 같아요. DOT을 아주 믿는 것은 아니지만... 그렇게 말하는 이유가 있을 것 같긴 하거든요.
 
헬레네 R. 히페리데:... 감사해요. (아령을 내려두고, 수건으로 땀을 닦는다. 수분 보충도 잊지 않았다.)
... ... 정말 괜찮을까요? 이대로 가도... ... 저는 멸망을 어떻게 해서든 막아내고 싶어요. 세상을 구하고 싶어요. ... 그래도, 아실이 그리 위로해주시니 마음이 한결 놓이네요. (끝에는 옅게 입꼬리 올릴 수 있었다.)
 
아실링 펜들레엄:모두가 최선을 다하고 있잖아요. 의심할 필요도 없는걸요. 계속 걱정하다가는 그게 헬리를 집어삼킬지도 몰라요. (잘하고 있다고, 확신을 가지라는 말을 하고 싶었지만 입에서 나오는 것은 그리 상냥한 말이 아니었다.) 모든 사람들이 당신의 노력을 다 알아주면 좋겠어요.
 
헬레네 R. 히페리데:맞아요. 저 말고 다른 분들도 열심히 하고 계시죠. (운동에 매진하며 땀을 뚝뚝 흘리는 타이머와 카운터들을 잠시 응시한다. 그 눈에 비치는 건 결연한 의지. 그러나 한편으로는 불안감. 초조함. 구하지 못할지도 모른다는 괴로움...) 집어삼켜지지 않도록, 아실이 저를 잡고 깊은 심해에서 끌어내주시겠어요?
 
아실링 펜들레엄:(헬레네와 다르게 자신은 다른 타이머나 카운터들에게 눈을 돌릴 틈이 없었다. 있었어도 굳이 그러고 싶지는 않았고. 제 스스로도 비정하다 여기며 눈앞의 파트에게만 집중한다.) 그래 보도록 할게요. 도움이 될지는 모르겠지만... 혼자 집어삼켜지는 게 두려우시거든, 같이 가드릴게요. 등불은 아니지만 체온은 나눠드릴 수 있거든요.
 
헬레네 R. 히페리데:(다시 눈 깜박인다. 시야에 들어차는 이는 오롯이 제 파트너인 당신뿐. 저도 모르게 당신 손 잡으려다가 반사적으로 뒤로 물렸다. 혹여나 아직 악영향이 남아있을지 걱정한 탓이다.) ... ... 두려우니 최대한 빠지지 않도록 애써 봐야죠. 하지만 가끔은 강한 의지를 내보여도 해내지 못하는 일이 있으니까요. 아실의 체온은 저에게 큰 안식과 안정이 되겠지만... ... 당신을 춥게 하고 싶지 않아요.
 
아실링 펜들레엄:이제야 저를 봐주시네요. 당신은 너무 많은 것을 봐요. 눈에 담을 수 있는 것도 한계가 있는 법인데.. (닿지 않을 정도로만 고갤 기울여 네 얼굴에 가깝게 댄다. 차가운 제 색과는 따르게 따뜻한 색을 담고 있는 눈을 응시하다가 눈을 접어 웃어 보인다.) 한 사람의 의지라면 그럴지도 모르지만, 여럿이라면 다를 거예요. 당신을 잡는 것도, 함께 가는 것도 비슷할 것이고요. 이런 제가 못마땅하셔서 그런가요?
 
헬레네 R. 히페리데:할 수 있는 한, 많은 것을 담고 싶어서요. 눈길 닿으면, 손길도 자연스레 가 닿게 되니까요. (같은 벽안을 지녔으면서도 빛깔이나 생기 등은 참 달랐다. 당신의 눈은 차가운 색이었으나, 아름다운 눈웃음은 손의 온도만큼 따스했고.) 못마땅하기는요. 얼마나 의지가 되는데요. 단지 저로 인해 당신마저 아프고 서늘한 가시밭길을 걷게 될까 죄송스러울 따름이에요. (그가 가려는 길은 진정 험하고 거친 길이었으므로)
 
아실링 펜들레엄:저 혼자서도 1인분을 할 수 있는 사람이었다면 당신이 그렇게까지 걱정하지는 않았을 텐데.. 노력해 보죠. 당신이 걱정할 일은 없도록 만들 거예요. 많은 걱정거리 중에서 제 부분만이라도 좀 덜어지면, 숨쉬기 편하겠죠? (네 앞에서 당당해지는 날, 그날이면 아주 멋진 인간이 되었지 않을까. 그런 실없는 생각이나 한다.)
 
헬레네 R. 히페리데:(저로 인해 부담 갖지 않기를 바라는 건 여전했으나, 그리 말하는 당신에게서 느껴지는 의지와 결의가 심상치 않았다. 기실 저를 짓누르는 책임감이 이따금 숨쉬기도 어려울 정도의 돌덩이 같기도 했었다. 그를 알아채고 저를 위하는 당신의 모습에서, 무한한 애정은 일방향이 아니라 쌍방향으로 이어지고 있음을 다시금 깨닫는다. 먹먹해지는 기분에 코를 작게 훌쩍였다. 조금 젖은 목소리를 낸다.) ... 그럼요. 저도 멋진 버팀목이 되어드려야 하는데, 기대고 싶어질지도 몰라요.
 
아실링 펜들레엄:(훌쩍이는 소리에 제 귀를 의심하며 네 얼굴을 확인했다가 하얗게 질린다. 갑작스럽고 익숙하지 않은 상황에 머릿속에서는 이런저런 경고음이 마구 들리는 듯했다. 이럴 때는 어떻게 해야 한담. 질릴 정도로 많이 읽어댄 책 중에서 이런 상황에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대한 지식은 담겨있지 않았다. 혼란 자체인 상황에서 할 수 있는 것은 새 수건과 물을 받아다 주는 것 말고 없었다. 이런 하찮은 것이라도 네게 도움이 되길 바랄 뿐이다.) 시간이 지나다 보면 알게 되겠죠. 얼마나 든든한 버팀목이 될지, 아닐지. 일단 믿어보세요.
 
헬레네 R. 히페리데:(눈가가 조금 젖은 정도였기에, 새하얘지는 안색 발견하고는 제가 더 놀랐다. 얼떨떨하게 지켜보다가 새 수건과 물을 얼떨결에 받아든다.) 전 괜찮아요, 아실. (그래도 착실하게 고마워요, 감사인사하고는 물 마셨다.) 저희 둘 다 멋진 타이머와 카운터가 될 수 있을 거예요. 그리 강하게 믿고 나아가야죠. 믿음이 힘이 되어줄 테니까요.
어느새 시간이 늦었네요... 내일도 수업은 계속 이어질 테니. 이만 돌아갈까요?
 
아실링 펜들레엄:아주 괜찮은 거죠? 제가 이런 쪽으로는 둔감해서.. 괜찮지 않은 거면 나중에라도 꼭 얘기해 주셔야 해요.(한참 동안 의심하는 눈으로 보다가 얼마 안 가 그만둔다.) 당신 옆이라면 저 역시 그렇게 보일 수 있을 것 같긴 해요. 물론 그렇다가 제 자리에서 대충 살겠다는 말은 아니고요. 당신만큼은 아니어도 저 혼자 멋지게 될 수 있을 거라고 믿고 있을게요.
돌아가서 따뜻한 물에 몸 담그기로 해요. 오늘은 둘 다 신체적으로 많이 힘들었으니까요.
 
헬레네 R. 히페리데:네, 아주 괜찮아요. (언제 눈가 젖었냐는 듯 배시시 웃어보였다.) 마음이 무거워도 금세 좋은 생각들로 채우는 습관을 익혔거든요. (함께 단련실을 나서 방으로 돌아간다.) 먼저 씻으세요. 제가 또 어제와 같은 홍차를 준비해둘게요.
 
아실링 펜들레엄:(방에 돌아가 씻을 준비를 하다가 말고 문 앞에서 멈춰 선다. 이번에는 자신이 홍차를 준비하겠다고 말하기에는 바로 씻을 준비가 되어있었다.) ... 내일은 제가 준비할 거예요. 아니지. 하루 아니고 이틀이요. 그동안은 헬리가 먼저 씻으시는 걸로 해요.
 
헬레네 R. 히페리데:그런 거 매일 따지면서 하지 않아도 되는걸요. 제가 그저 좋아서 하는 일인데. (또 작게 웃음소리 낸다.) 하지만 알겠어요. 배려해주시는 마음이니 감사히 받을게요.
 
아실링 펜들레엄:저 혼자 매번 받는 기분이 들어서요. 저도 해보고 싶답니다. (다른 사람이었다면 안 해줬을 테지만. 너와 관련된 일이라면 이상한 곳에서 고집을 부렸다.) 내일 밤을 기대해 주세요. 멋진 홍차를 끓여 드릴게요. (흥. 하더니 씻으러 들어간다.)
 
헬레네 R. 히페리데:알겠어요. 그럼 씻고 나오시면 티백 위치를 가르쳐 드릴게요. (흥 소리 듣고 또 웃음이 새어나온다. 들어가는 모습에 작게 손 흔들어 인사하고는 부엌으로 향했다.)
 
아실링 펜들레엄:(빠르게 샤워를 끝내고 네 옆에서 돕고 싶었지만, 그렇다고 목욕을 대충 할 수도 없는 일이라 빠른 손길로 열심히 뽁뽁 샤워하고 나온다. 몸에는 샴푸, 린스, 바디워시에서 나던 향이 폴폴 난다.)
 
헬레네 R. 히페리데:어서 오세요, 아실~ (목욕 마치고 나오면 좋은 향기가 풍기는 홍차 잔이 잘 세팅되어 있다. 옆에는 잼도 종류별로 놓여있다!) 꿀이랑, 사과잼이랑, 딸기잼이에요. 아실 취향대로 넣어 드시면 돼요. 제 몫은 씻고 다녀와서 끓일게요.
(그리곤 욕실로 쏙!)
 
아실링 펜들레엄:(차에 무슨 잼을 타볼까 고민하며 종류를 고르다가 멈칫한다. 생각해 보니 같이 마시는 게 아니었구나!! 서로 씻는 시간이 다르니까!)
(헬리 올 때까지 기다리려고 했다가 차 향 날아가는 게 아까워서 먼저 마시기로 한다. 호롭. 혼자 마시는 차는 외로워요.)
 
헬레네 R. 히페리데:(샤워는 간단히 하는 타입인지 15분 정도 후에 머리의 물기를 말리면서 걸어나온다.) 아실~ (각 잡힌 교복 대신 캐릭터 무늬가 그려진 잠옷 차림에, 머리도 부슬부슬하게 풀려서 나부낀다. 평소보다 좀 더 어려 보인다.) 심심하진 않으셨죠? 물은 끓여뒀으니 얼른 제 잔도 가져올게요. (천진한 물음 던지며 부엌으로 향했다. 금세 제 잔에 티백을 담아 가져왔다.) 어느 잼을 넣으셨나요?
 
아실링 펜들레엄:(소파에 반쯤 누워있듯이 몸 기대고 있다가 헬리 나오는 소리 들리자마자 자세 바로 한다. 심심했어요. 그 말은 안 하기로 한다.) 저는 꿀을 넣었어요. 이 티백에는 꿀이 잘 어울릴 것 같더라고요.
 
헬레네 R. 히페리데:아, 저도 이 차엔 자주 넣어요. 꿀과의 조합이 좋죠. 그래도 오늘은 사과잼을 넣어 볼까요? 이따금은 새로운 맛을 겪는 의미에서~ (사과잼 한 스푼 넣어 휘휘 젓는다.) 따뜻하고 좋네요... 예전에도 종종 혼자 자기 전 홍차를 마시곤 했는데, 이렇게 함께 마시니 더 좋아요.
 
아실링 펜들레엄:(헬리 따라서 꿀에 사과잼 한 스푼까지 더 섞어 마셔본다. 목욕으로 피로를 풀고, 따뜻하고 달콤한 차까지 계속 마셔주자 몸이 노곤하게 풀렸다. 표정도 한결 편안하고 부드럽게 변했고.) 앞으로는 이렇게 자주 마시게 될 거예요. 저랑 같이요.
 
헬레네 R. 히페리데:그럼요! 너무 기쁘네요. (당신 곁으로 가까이 붙어서는 무릎 모으고 앉아 사이좋게 차 마신다.) 하루의 루틴으로 자리잡게 될 것 같아요. (이렇게 당신과의 흔적이 점점 더 깊어지고 짙어지게 되겠지.)
 
아실링 펜들레엄:기쁜가요? 그럼 반복되는 하루에 이런 식으로 작은 일상을 추가해 보기로 해요. 맨날 수업, 공부, 훈련 이런 건 지겹잖아요. (둘 중 한 명이라도 없었으면 느끼지 못했을 따뜻함을 느끼며 소파에 등을 기댄다.) 감사해요. 홍차로 오늘 하루를 좋게 마무리할 수 있을 것 같아요.
 
헬레네 R. 히페리데:그럴까요? (헤헤 웃으며 연신 고개 끄덕인다. 속이 풀리니 슬슬 피로가 몰려오고 눈이 무거워진다.) 저 덕분에 아실도 좋게 마무리할 수 있다니 다행이에요. 내일도, 내일 모레도 같이 힘내봐요.
 
아실링 펜들레엄:아하하.. 헬리, 당신 졸리군요? (졸린 건 이쪽도 마찬가지다. 졸음으로 풀린 눈을 부드럽게 접어 웃는다.) 좋은 마무리네요. 아.. 졸린 것을 보니 오늘부터 일찍 잘 수 있을 것 같아요. 네. 내일도 모레도, 같이 행복하기로 해요.
 
헬레네 R. 히페리데:네... 몸이 따뜻해지니 잠이 와요. (눈을 비빈다. 이대로 가다간 힘이 빠져 떨어뜨릴지도 모른단 생각에 잔을 조심히 내려둔다.) 드디어 아실도 생활패턴을 바꿀 수 있게 되었군요. (같이 행복하자는 말이 얼마나 위안이 되고 기쁨을 주던지.)
(비척비척 침대로 들어가 풀썩 눕는다.) 잘 자요, 아실... 좋은 꿈 꾸세요.
 
아실링 펜들레엄:(빨리 자는 것에는 정신이 아니라 몸을 과로하는 방법이 맞는 것이었나 보다. 꾸벅꾸벅 거리며 침대로 올라가 이불까지 싹 덮는다.) 좋은 꿈 꾸세요. 내일 아침에는 저도 빠르게.. (하암) 깨워주시는 거고요.
 
헬레네 R. 히페리데:꼭 그렇게 할게요... (하품) (그리곤 순식간에 잠에 빠진다. 쿨...)
 
또 하나의 밤이 깊어갑니다.
 
예언이 어떠하든 일어나지 않은 일을 이야기하는 것.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는 진실을 알 수 없습니다.
 
그러니 현재에 충실한 선택을 하는 게 옳은 일이겠죠.
 
...
 
시간은 끊임없이 흐릅니다.
 
두 사람은 내내 붙어다니며 수업을 듣고, 오후에는 훈련실에서 연습에 매진했습니다.
 
능력의 출력과 사용법에 익숙해져가고 있을 즈음입니다.
 
사건은 고장 난 폭탄처럼 순식간에 터집니다.
 
그래, 사건이라고 불러 마땅한 ‘그 일’은 갑자기 일어났어요.
 
음, 언제냐면, 헬레네와 아실링이 막 잠자리에 들 준비를 마쳤을 때였습니다.
 
저녁 식사 후 따뜻한 홍차 한 잔씩을 마시며 하루를 마무리하던 그때쯤이요.
 
그러니까······
 
카운터의 능력이 삐걱거리기 시작한 것입니다.
 
DOT의 지시로 같은 방에서 지내게 된 탓에, 두 사람은 아주 가까이 붙어 지내고 있었죠.
 
아실링을 시선으로 좇던 헬레네가 문득 묻습니다.
 
헬레네 R. 히페리데:아실, 그런데... ... 조금 흐릿해지지 않았나요? (고개 갸웃)
 
맑은 푸른색의 시선이 당신의 손목 안쪽에 닿습니다.
 
헬레네의 말마따나 다소 옅어진 것 같습니다.
 
한 번 새겨지면 죽을 때까지 평생 지울 수 없는, 각인이자 낙인인 바로 그것이요.
 
아, 물론 착각일 수도 있어요. 잘못 본 걸지도 몰라요. 눈을 깜빡이면 어제와 다를 바 없었거든요.
 
아실링 펜들레엄:흐릿해졌나요? (워낙 제 몸에 신경을 쓰는 편이 아니기도 하고, 그런 부분에서 둔감해 모르고 지나칠 뻔했다. 헬레네가 그렇게 말하는 것에는 다 이유가 있으리라 생각한다.)
 
한 번 시험해볼까요?
 
<초능력> 판정
 
아실링 펜들레엄:
이능력 Roll
기준치: 30/15/6
굴림: 76
판정결과: 실패
 
능력이 제멋대로 날뛰고 있습니다. 내 것이 아닌 것처럼 도망칩니다.
 
사람은 호흡을 신경 쓰지 않습니다.
 
누구도 가르치거나, 배우지 않았지만 때가 되면 알아서 숨을 들이켜고 내쉬기 마련입니다.
 
능력자가 능력을 다루는 꼴이 딱 그렇습니다.
 
시간의 선택을 받으면, 능력은 존재의 증명이 됩니다.
 
그것은 사라지지 않고 영원히, 죽음에 이를 때까지 타이머와 함께합니다.
 
홀로 태어나 홀로 죽는 삶에서 유일하게.
 
그래서 타이머는, 어떻게 여기냐와 별개로 단 한 번도, 능력의 존재를 의심하지 않습니다.
 
싫건, 좋건, 마음에 들건, 들지 않건 간에…… 사라진다는 일은 있을 수 없어요.
 
카운터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시간의 각인이 새겨진 순간부터 능력은 온전히 아실링의 것이었고, 아실링의 것이어야만 했습니다.
 
그런데 어째서일까요?
 
당신은 당신의 몸에 일어나는 변화를 기민하게 눈치챕니다.
 
얌전하던 능력이 무언가 이상하게 새고 있습니다.
 
아실링에게서 도망치려는 것처럼, 자꾸만 어디론가 뛰쳐나갑니다.
 
그 종착지는……
 
<듣기> 판정
 
아실링 펜들레엄:
듣기
기준치: 80/40/16
굴림: 76
판정결과: 보통 성공
 
너의 타이머를 봐.
 
저 애가 네 모든 걸 뺏어갈 거야.
 
시간이 속삭입니다.
 
능력은 순식간에 아실링의 몸을 빠져나갑니다. 바람 빠진 풍선처럼, 순식간에!
 
타이머 또한 그 과정을 똑똑히 느낄 수 있었습니다.
 
어떻게 느낄 수 있었냐고요? 글쎄…… 아실링의 표정에 드러나서? 카운터의 행동이 이상해서?
 
아니면, 능력자 대 능력자로서 느낄 수 있는 무언가가 있어서?
 
아뇨, 그저, 스스로가 증거였습니다.
 
그 어느 때보다 평온하고, 다루기 쉬운, 당장이라도 넘칠 것처럼 넘실거리는 헬레네의 능력은……
 
이례적일 정도로, 완전하게 차 있었습니다.
 
카운터와 함께 있으면 능력의 효율이 오를 거라고 했지. 누군가는 그 설명을 두고, 타이머를 위한 배터리, 소모품이라고 불렀고.
 
그 표현이 꼭 맞아요. 그래, 이건 단순히 효율이 오르는 정도가 아니었습니다.
 
마치, 저 안에 있던 것이 내게로 넘어온 것처럼·…….
 
뒤섞인 능력은 물과 기름처럼 모호한 경계를 긋고 있습니다.
 
아실링, <초능력> 판정
 
아실링 펜들레엄:
오르기
기준치: 20/10/4
굴림: 81
판정결과: 실패
이능력 Roll
기준치: 0/0/0
굴림: 52
판정결과: 실패
 
능력이, 사라졌습니다.
 
고작 하루아침에.
 
이부자리를 사이에 두고 헬레네와 아실링은 서로를 마주 보았습니다.
 
사라진 것이 저기 있었고, 잃어버린 것이 여기 있었습니다.
 
불을 끄는 것처럼, 그리고 불을 켜는 것처럼.
 
해가 지는 것처럼, 그리고 달이 뜨는 것처럼.
 
네가 ■■ ■ 것처럼, 그리고 내가 ■■■ 것처럼.
 
오롯이 타이머와 카운터만 숨쉬는 작은 방.
 
믿을 수 없는 상황 앞에서 우리는…… 서로를 어떤 얼굴로 보고 있었던가요?
 
불현듯 스치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세계가 무너지고, 하늘이 찢어지며, 건물이 붕괴하고, 별이 떨어지는······ 요란하고 끔찍한 소리와,
 
“멸망이 신속히 임하리니, 아무도 멸망의 때인 줄 알지 못하리라······”
 
평온하기 짝이 없던 눈앞의 세계와,
 
새순이 돋고, 꽃이 피며, 꽃샘추위가 콧잔등을 간지럽히는······ 봄이 오는 소리.
 
녹은 눈이 아스팔트 도로를 적시고 스며듭니다. 겨울이 지난 후의 봄.
 
“세계는 멸망하지 않아. 도밍게즈는 새 계절을 맞을 거야. 그리고······”
 
다정하던 그 문장.
 
...
 
카운터를 소개할 때, 하인리히 장교는 분명히 세계 멸망에 관한 이야기를 곁들였습니다.
 
그렇다면 이것도, 세계 멸망과 엮인 사건인 걸까요?
 
어느 쪽의 예언이 옳고, 그른지 알 수 없었습니다.
 
길하고 불길한 예언이 공평하게 저울 위에 놓여 있습니다.
 
어두운 밤, 사위가 고요하고, 창 너머의 달만 밝습니다.
 
아실링 펜들레엄:(허, 하고 헛웃음이 터져 나왔다. 멸망에 관한 생각이 더 많이 들어야 할 지금, 그 생각은 구석퉁이에 박혀있고 다른 생각만이 시끄럽게 머리를 시끄럽게 만들었다. 있어도 없어도 그만인 능력이긴 했다. 이런 능력 없이, 자신의 노력이면 부족함 없이 삶을 살 수 있을 것이라는 확신이 있었다. 그러니 빼앗겼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다만 자신을 괴롭히는 것은 헬레네와 함께한 시간이었다. 다시 능력이 돌아오지 않으면, 자신은 원래 있던 곳으로 돌아가는 것일까? 언제나 그렇듯 외롭지는 않았지만 혼자가 되는 것이고?)
 
헬레네 R. 히페리데:(혼란스럽게 당신과 제 손을 번갈아본다. 각인이 언뜻 흐릿하지 않은가, 추측하자마자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제 몸으로 흘러들어오는 이건. 의심할 필요도 없이 당신의 능력이었다. 하지만 어째서? 타이머의 각인이 생겼던 순간부터 능력은 마치 공기와도 같이 저와 함께 숨쉬었다. 애초에 누군가에게 흘러나가고 받을 수 있다는 개념 자체를 상정해본 적이 없었다. 그런데 대체 왜.)
(제 안에 분명하게 제 것이 아닌 능력이 들어차 찰랑인다.) ... 아... 아실. (일단은 당신을 달래야 한다는 데 생각이 미쳐, 안색이 희게 질린 채로도 당신의 손 위에 제 손 얹는다.) 지금 제가 느끼기론, 아실의 능력이 제게로 넘어온 것 같은데... 저도 이런 일은 정말이지 처음이어서... 얼마나, 얼마나 넘어온 건가요?
 
아실링 펜들레엄:뭘 그렇게 놀라나요. 누가 알면 아주 큰일 난 줄 알겠어요. 제가 죽는 것도 아닌데, 뭘. (말은 아무렇지도 않지만, 꾹 쥐고 있는 손은 핏기 없이 하얬다.) 네, 어떻게 된 일인지는 모르겠지만 당신에게 넘어간 것 같아요. 그것도 전부. 아.. 전부 넘어간 것 같은데, 한번 써보시겠어요? 미약하게나마 당신에게 도움이 될 거예요.
 
헬레네 R. 히페리데:그런 게 아니라... 일어나서는 안 되는 일이에요. 능력이 누군가에게 넘어간다니. 지금껏 한 번도 이런 경우가 있었다고 들어본 적 없는데...! (왜 관계가 회복될라치면 사건이 끊임없이 일어나는 걸까? 게다가 이번엔 착실하게 훈련실까지 드나들면서 함께 능력의 합을 맞춰가고 있었는데. 이대로만 간다면 성격적으로나 능력 면으로나 최고의 파트너가 되리라 믿어 의심치 않았는데. 한 번 써보라는 말에 거의 경기 일으키듯 고개 젓는다. 눈썹이 서글프게 처진다.) 아실...! 어떻게 그런 말을 하세요. 일시적인 현상일 거예요. 그래야만 해요. ... 다시 되돌릴 수 있지 않을까요? 손을 잡아보면...
 
<지능> 판정
 
아실링 펜들레엄:
지능
기준치: 75/37/15
굴림: 29
판정결과: 어려운 성공
 
시간의 각인이 아직 선명하니,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닐 거란 확신이 듭니다.
 
헬레네의 말대로 일시적인, 일시적인 현상일 거예요. 하지만, 어떻게 돌이키지?
 
아실링 펜들레엄:못 들어볼 수도 있죠. 아니면 저 같은 경우가 처음이라던가. (갑자기 쌓여오는 스트레스에서 잠시라도 회피하기 위해 다른 생각에 열중한다. 돌아가면 무엇을 할지, 돌아갈 때 돈 같은 것을 받을 수 있는지 같은 생각이었다. 그 생각들 중에 헬레네와 함께하는 상상은 없다.) 제가 나쁜 말이라도 했나요? 당신을 위해서 한 말이었는데. 그리고 사실이잖아요. 제 능력이 당신에게 갔다면 도움이 되는 것 아닌가요? .... 다시 되돌릴 수 있든 아니든, 손을 잡아보는 것은 좋지 않은 선택인 것 같네요. 저는 또 그런 감정을 느끼고 싶지 않아요.
 
헬레네 R. 히페리데:아실은 아마 카운터니까, 타이머와는 조금 다른 존재이니까... 일시적으로 나타난 현상일지도 몰라요. (당신은 이상하게도 빠르게 진정된 모습이어서, 불안감이 더욱 커진다. 우리가 함께 보냈던 시간이 비록 몇 주밖에 되지 않았다지만 이토록 빨리 정리할 수 있을 정도로 당신에겐 의미없는 것이었나? 스킨십 실험을 했던 훈련실에서의 모습이 겹쳐보인다.) 아니에요. 저에게 '섞여든'게 아니라, 제 능력 '위에서' 경계를 지닌 채 일렁이고 있어요. 분명 다시 돌려드릴 방법이 있을 거예요...!
장교님께, 혹은 연구원 분들께 여쭤보는 건 어떨까요? 그분들이 이 상황에 대해 예측하고 계셨을지도 모르잖아요. 네?
 
아실링 펜들레엄:(정리를 하려면 빠른 것이 좋지,라며 벌써부터 또 전과 같은 상태로 돌아가려던 차, 네게 느끼는 능력 상태에 관한 것을 듣게 되자 대화에 집중하려고 한다.) 당신이 그렇게 느끼는 것에는 이유가 있을 것이라 믿어요. 뭔가 다른 방법이 있다면... 그럼 당신 말대로 한번 물어보는 게 좋겠네요. 아무것도 안 하는 것보다는 그게 좋을 것 같아요.
 
헬레네 R. 히페리데:... ... 분명 해결할 방법이 있을 거예요. (마음을 가다듬고 확고하고 단호한 목소리를 내려 애쓴다. 제가 흔들리는 모습을 보이면 당신이 또 떠나버리려 할지 모르니까.) 아실, ... 전 당신과 함께하고 싶어요. 저희, 긴 시간은 아니었지만 많은 일상을 같이 했잖아요. 매일 저녁마다 홍차도 마시기로 했고요. 이렇게 빨리 헤어지고 싶지 않아요. 그러니 너무 쉽게 포기하지 말아주세요. ... ... 포기하고 싶으실 만큼 이곳이, DOT가 아실에게는 잘 맞지 않는 장소였을까요...?
 
아실링 펜들레엄:(해결이 방법이 있을 것이라는 말에 대답은 따로 하지 않는다. 해결하지 않아도 괜찮다. 헬레네를 만나기 전에도 나쁘지 않은 삶이었다. 이대로 떠나도 상관없었다. 그리 생각을 한다. 최악의 상황을 대비해 그렇게 생각해야만 했다.) 많은 일들이 있었던 곳이죠. 뭐라 다 말하긴 어렵지만.. 당신과 함께하는 것은 즐거웠어요.
 
DOT에 보고해야 하나? 아니면 조금 더 두고 봐야 하려나?
 
아냐, 아닙니다. 아실링과 헬레네에게 이상한 짓을 했을 리가 없습니다.
 
아실링의 존재가 사실이라면, 세계를 구원할 유력한 방법인걸요.
 
절묘하게도······ 내일은 시간표상 이론 수업으로 꽉 채워져 있었습니다.
 
침묵한다면 하루, 이틀 정도는 무마할 수 있을 거예요.
 
물론 언제까지고 숨길 수는 없습니다. 건국 축제는 채 일주일도 남지 않았거든요.
 
하인리히 장교는 카운터의 존재만이 세계 멸망을 막고, 사회의 평안을 불러올 일인 것처럼 설명했습니다.
 
건국 축제에서는 무조건 등장시키려 들 테니, 그날이 온다면 얄팍한 거짓말은 결국 드러나고 말겠죠.
 
어떻게 해야 할까요? 어느 쪽이 ‘옳은’ 선택일까요?
 
이 상황을 묻어두고 해결하거나, 정직하게 보고하고 해결책을 받아 내거나.
 
우선 커다란 선택지는 그뿐인 것 같습니다.
 
<관찰> 판정
 
아실링 펜들레엄:
관찰력
기준치: 70/35/14
굴림: 64
판정결과: 보통 성공
 
때마침 창 너머로 하인리히 장교가 본관에 들어가는 것이 눈에 띕니다.
 
하필 이럴 때 눈에 띄다니. 이마저도 퍽 교묘한 배치입니다.
 
보고한다고 한들, DOT는 신이 아닙니다. 그들에게도 뾰족한 수 따윈 없을지도 모릅니다.
 
어차피 처음부터 당신의 것도 아니었던 능력. 빼앗겼다 하여 딱히 아쉬움이 느껴지지는 않습니다.
 
그럼에도 허무함과 치솟는 스트레스는 막기 어렵네요.
 
헬레네 R. 히페리데:저와의 시간이 즐거웠다면, ... 앞으로도 더 많은 즐거움으로 채울 수 있으리라 믿어보아요. (당신의 손을 꼭 잡거나 안아준 채 위로하고 싶었는데, 또다시 그 감정이 들까 걱정하는 탓에 다가갈 수 없어 슬프다.)
 
아실링 펜들레엄:... 저는 말보다 행동으로 빠르게 진행하는 게 좋아요. 저는 뭐 딱히... ... 잃을 것도 없으니 숨기지 말고 그냥 있든 대로 말해보죠. 이왕이면 장교한테. (턱 끝으로 본관을 가리킨다.) 같이 가주실 거죠?
 
헬레네 R. 히페리데:... 좋아요. 하인리히 장교님이라면, 무어라도 알고 계실 거예요. (그래야만 했다. 돌덩이를 가득 넣은 듯 가슴이 답답하다.) 함께 가요, 아실. (내내 붙어다녔던 것처럼 이번에도.)
 
DOT에 보고하는 게 좋겠어요.
 
이러니저러니 해도 숨길 게 뭐가 있겠나요. 잃을 게 없는데 말이죠.
 
창 너머로 본관에 들어서던 하인리히 장교를 보았죠.
 
운명이 배치한 것처럼 느껴질 정도로 절묘한 타이밍이었습니다.
 
서관을 나서, 인조 잔디가 깔린 운동장을 지납니다.
 
하늘은 어둑해지기 시작해선, 흰 별이 촘촘하게 박혀 있습니다.
 
세계 멸망과는 어울리지 않게 수많은 별들은 떨어질 기미라곤 보이지 않고,
 
오히려 반짝반짝하니 내일 날씨도 좋겠거니, 한가로운 감상만 일깨웁니다.
 
빠르고 느리게, 서두르고 미적거리며, 두 사람 몫의 발자국이 운동장을 가로지릅니다.
 
허리가 꺾인 잔디는 채 비명도 지르지 못했고,
 
본관 안내 데스크에는 퇴근하지 않은 직원이 앉아 있습니다.
 
그는 “어서 오세요.”라고 인사하면서도, 의외란 얼굴로 눈을 깜빡였습니다.
 
하긴, 이 시간에 본관에 방문하는 경우가 워낙 드무니 그럴 만도 하죠.
 
직원: 찾는 사람 있어요? 누굴 불러줄까요?
 
아실링 펜들레엄:(멈칫... 장교 만날 수 있나? 헬레네 바라보며 잠시 고민하다가 심각한 표정을 하고 직원을 본다.) 큰일이 생겨서 그런데, 장교님을 만나 뵐 수 있을까요. 빠르게 만나야 해요. 설명드리기는 어렵습니다. (거짓말은 안 했다.)
 
직원: 장교님이요...? 으음.
 
잠시 곤란한 기색을 보인 직원이 엘리베이터를 힐끔 바라봤습니다.
 
지하 2층. 층수를 나타내는 파란 글씨가 점등합니다.
 
그리고는 곧 지하 1층으로 올라오기 시작합니다.
 
언제 그랬냐는 듯, 정갈하게 웃은 직원이 설명합니다.
 
직원: 마침 올라오시네요. 잠시만 기다리세요.
 
여전히 상냥하지만,
 
<심리학> 판정
 
아실링 펜들레엄:
심리학
기준치: 60/30/12
굴림: 39
판정결과: 보통 성공
 
다행이라고, 안도하는 기색이 역력합니다.
 
……아까, 분명 곤란해했었죠?
 
헬레네 R. 히페리데:으음...? (의아한 듯 고개 갸웃한다.)
 
아실링 펜들레엄:(왜 그런 표정이었는지 말해보라는 듯 시퍼런 눈으로 직원 본다. 왜지???)
 
헬레네와 아실링이 (시퍼런 눈으로)직원의 얼굴을 살피는 동안에도 웃음은 여전하고, 엘리베이터는 올라옵니다.
 
지하 2층, 지하 1층, 그리고…… 1층.
 
띵. 날카로운 기계음과 함께 익숙한 남자가 내렸습니다.
 
칼같이 다린 군복을 입은 하인리히 장교였습니다.
 
식사하거나, 술을 마신 것 같지는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음식 냄새도, 술 냄새도 묻지 않았거든요.
 
두 사람과 마주친 하인리히 장교는 의외란 듯 눈을 크게 뜨면서도, 기꺼이 반깁니다.
 
하인리히 장교:이런, 며칠 전에도 본 것 같은데. 하룻밤 새 많이들 컸군.
 
시답잖은 농담을 던지는 사이, 엘리베이터의 숫자판은 완전히 점멸합니다.
 
하인리히 장교:무슨 일이지?
 
그는 두 사람의 얼굴을 하나씩 훑어봅니다.
 
지난밤 사이좋게 지냈나, 지내지 않았나 감시하는 것 같은 눈초리입니다.
 
아실링 펜들레엄:사이는 좋았습니다. 잠도 잘 잤고요. (문제는 그게 아니지만 일단 긍정적인 말부터 먼저 한다.)
 
헬레네 R. 히페리데:(불안하게 아실링 돌아보면서도, 일단 동조하듯 고개 끄덕끄덕하긴 한다)
 
아실링 펜들레엄:... 제 능력이 헬레네에게 전부 간 것 같습니다. 지금의 제 상태는 일반인인 것 같고요. (자리를 옮겨서 이야기해야 하나? 싶다가 그냥 있었던 일을 다 털어놓는다. 내보낼 거면 그러라지.)
 
헬레네 R. 히페리데:그렇다고 제 능력에 전부 섞여든 건 아니예요. 마치 물과 기름처럼, 명확히 아실링의 능력이 구별되어 있는 게 느껴져요. 지금껏 이런 일은 한 번도 없지 않았나요? 카운터는 일반 타이머와는 다른 존재이기에 생기는 현상인 걸까요...? (혹시나 부정적인 답이 돌아올까 봐 잔뜩 긴장해서 낯빛이 새하얗다.)
 
하인리히 장교:아아... 그런 일이 있었군.
 
두 사람에게 일련의 상황을 듣더라도 하인리히 장교의 눈초리는 그다지 심각해지지 않습니다.
 
얼핏 보면 엄숙하고, 얼핏 보면 거만한 얼굴로 웃은 그는 헬레네의 어깨를 툭툭 두드립니다.
 
하인리히 장교:어린 사람들이 걱정도 많긴.
걱정하지 말게. 이미 들어둔 바가 있어. 환경이 낯설어서 그럴 거라고, 마음을 편안히 갖는 게 중요하다더군. 또래라 함께 있으면 좀 나을 줄 알았는데, 꼭 그렇지도 않았나 보지?
 
웃던 그가 툭 묻습니다.
 
하인리히 장교:타이머 군이 텃세라도 부리던가? 이번 1시의 타이머의 인성은 일찍이 칭송받아 오고 있었네만.
 
아실링 펜들레엄:그런 적은 전혀 없었습니다. 제가 피해만 줬죠. (솔직..)
 
헬레네 R. 히페리데:피, 피해라뇨? (눈이 두 배는 커져서 후다닥 정정한다.) 전혀 아니에요! 저희는 사이좋게 잘 지내고 있어요. 다만 갑작스럽게 이런 일이 생겼고, 11시의 타이머와 카운터가 멸망에 관해 각각 다른 예언을 들었다는 말까지 겹쳐져서... 솔직히 많이 불안했어요.
(아실! 왜 그런 말을 하세요! 라는 눈으로 봄)
 
아실링 펜들레엄:(어라, 말 잘못했나? 사고 친 강아지 눈으로 헬리 본다. 그러던 것도 몇 초, 다시 아무렇지 않은 표정으로 장교 본다.)
 
하인리히 장교:하하, 사이는 좋아보이는군.
자네들의 존재가 세계의 평화를 좌지우지해. 그래서 우리는 작은 문제도 괄시하지 않고 방비한다네.
예언에 관해서도, 카운터의 문제에 대해서도 미리 알고 있었다네. 그러니 너무 걱정하지 말고, 내 말을 명심하게. 그러면... ...
 
녹이 슨 금색의 눈동자가 날카롭게 빛납니다.
 
그는 제 턱을 쓸고, 당부했습니다.
 
하인리히 장교:아무 문제도 생기지 않을 걸세.
도밍게즈는 언제나 평화로울 거야.
 
<심리학> 판정
 
아실링 펜들레엄:
심리학
기준치: 60/30/12
굴림: 7
판정결과: 극단적 성공
 
하인리히 장교의 시선은 집요하게 아실링을 향합니다. 도밍게즈의 평화를 노려보는 것처럼!
 
그리고 두 사람의 이야기는 전혀 심각히 여기지 않습니다.
 
카운터의 존재를 그렇게 어화둥둥하면서, 능력이 사라진 현 상태를 이토록 가볍게 여기다니.
 
정말 이미 알고 있었던 걸까요? 그렇다면 어떻게 알고, 어떻게 확신하는 거죠?
 
능력의 주인인 타이머와 카운터조차 되찾을 방법을 몰라 발을 동동 굴렀건만.
 
하인리히 장교:능력은 시간이 지나면 자연히 되돌아올 걸세. 그러니까, 더 가까이 있도록 해. 기왕이면 한 침대를 쓰는 것도 나쁘지 않겠군. 아니, 오히려 좋아. 더 가까이 있을수록, 가까워질수록, 완벽하게 적응할 테니까.
오랜 시간을 함께 보내고, 많은 이야기를 나누게. 시간마저도 자네들을 갈라놓을 수 없을 만큼, 꼭 그렇게 굴면 돼.
어렵지 않은 일이잖나? 어차피 자네들을 이해할 수 있는 건……
서로밖에 없으니.
 
세계에는 충성을,
 
명령에는 복종을.
 
군인에게나 딱 어울리는 요구사항을 목에 걸어주는 꼴이었습니다.
 
아실링 펜들레엄:(이래서 군대란! 속으로 욕 한바탕한다. 이해할 수 있는 건 서로밖에 없다는 말은 제법 달콤하게 들릴 만도 했지만, 자신은 그리 좋게 받아들일 수 없었다.)
(고분고분 잘 따르는척하는 것도 어느 정도까지다. 제 마음에 안 들으면 언제든지 튀어나갈 생각만 한다.)
 
<지능> 판정
 
아실링 펜들레엄:
지능
기준치: 75/37/15
굴림: 31
판정결과: 어려운 성공
 
그나저나, 본관에 지하 2층이 있었던가?
 
아실링 펜들레엄:... 뜬금없는 이야기지만 어디 다녀오셨나요? 이 건물에 지하 2층이 있었던가요?
 
하인리히 장교:아. 요새 잠을 잘 못 자서 말이지. 술이라도 한잔할까, 했는데 일찍 문을 닫았더군. 아쉬운 일이야.
지하 2층이라니 그게 무슨 소리인가? 본관은 지하 1층까지밖에 없는데 말일세.
 
아실링 펜들레엄:아~... 그렇군요. 제가 지하 1층을 2층으로 잘못 봤나 봅니다. (그짓말쟁이! 이래서 군인이란! 전혀 안 믿고 있다.)
 
이래서 군인들이란.
 
거짓말을 밥 먹듯이 하는 족속이 분명합니다.
 
하인리히 장교:자, 시간이 늦었으니 이만 들어들 가보게. 또 새로운 내일을 맞이해야 하지 않겠나.
 
아실링 펜들레엄:네, 알겠습니다. (새로운 내일 같은 소리나 하기는! 속으로 욕하다가 헬리에게서 자리를 떠나자는 듯 신호 보낸다.)
 
헬레네 R. 히페리데:좋은 저녁 보내세요, 장교님. (예의바르게 꾸벅 인사하고는 아실링과 함께 본관 나선다.)
 
본관으로 돌아오는 길.
 
능력이 되돌아올거란 확언을 받았으나 쉽사리 믿기진 않습니다.
 
심란하네요.
 
DOT를 믿어도 될까요?
 
아실링 펜들레엄:(완전히 믿은 적 없었다. 이번에도 그렇고. 전과 비교하자면 불신이 좀 더 생겼다.)
 
헬레네 R. 히페리데:(방으로 돌아와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소파에 거의 주저앉다시피 앉는다.) 정말, 정말 다행이에요... ... 아실과 헤어지지 않아도 돼요. 조금 의아하긴 하지만 돌아올 수 있다고 하니까요...!
 
아실링 펜들레엄:(기뻐하는 헬리를 보고 아무 말도 못 하다가 그냥 웃기만 한다. 일단 헬레네를 좀 더 볼 수 있다는 것에 작은 기쁨을 느낀다.) 저와 헤어지만, 많이 슬퍼하실 건가요?
 
헬레네 R. 히페리데:그럼요... 상상만 해도 눈물이 날 것 같아요. (기뻐하던 것도 잠시 아까의 위기감이 다시금 떠올랐는지 축 처진다. 금세 눈가가 촉촉해질락 말락한다.) 이미 잔뜩 정들어버렸는걸요.
 
아실링 펜들레엄:... 생각해 봤는데, 당신은 눈물이 많은 것 같아요. 원래부터 그랬나요? (물기 머금은 눈가 보다가 픽 웃는다. 웃는 걸 보니 상태가 제법 괜찮아졌나 보다.) 그럼요. 이제 저 없으면 홍차 혼자 드셔야 해요~.. (농담)
 
헬레네 R. 히페리데:... 웃음도 많고 눈물도 많답니다. 시민들 앞에서는 용기와 힘을 주어야 하니 항상 밝고 당당한 모습만 보여드리려 노력하지만, 사건 현장에 갈 때면 눈물을 참느라 매번 고역이에요. (홍차 이야기에 흐잉, 우는 소리를 내며 당신 껴안으려는 듯 두 팔 벌린다) 싫어요, 혼자 마시는 건...! 같이 마시는 게 의미가 있단 말예요.
 
아실링 펜들레엄:표정도 감정도 풍부하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그것 때문에 당신 너무 힘들지 않기를 바랄 뿐이에요. (자신처럼 어딘가 매정하고 무관심한 부분이 있으면 울을 일도 적을 텐데.) 저 말고 다른 사람들에게 얘기하면 어울려줄 텐데... ... 혹시 다른 사람들이 당신과 거리 두려고 하나요?? 대체 어떤 사람이?
 
헬레네 R. 히페리데:저도 장교님이나 부관님께 감정을 절제해야 하는 방법을 익혀야 한다는 조언을 여러 번 들어서, 노력하고는 있어요. 하지만 기쁠 땐 절로 웃음이 나고 슬플 땐 코끝이 찡해오는 걸 쉽게 막기가 어렵네요. ... ... 다른 타이머 분들도 물론 어울려 주세요. 하지만 지금 제 가장 가까운 파트너는 아실이잖아요. 그분들께도 다 각자의 파트너가 있으시구요.
(팔 벌린 채 눈치를 본다) ... ... 끌어안으면 안 되나요? 장교님도 더 가까이 있으라고 권장하셨는데... 이전에 손이 잠깐 닿았을 땐 그런 감정이 들지 않으셨다고 했으니 이번에도 다르지 않을까요...?
 
아실링 펜들레엄:그게 노력해서 되는 일인가요? 그 사람도 정말 말은 잘하지.. (군인이란! 또 꿍얼!) 다른 파트너랑 있으면 차 한 잔 못하나.. ... ... (자신 말고 다른 사람이랑 티타임 즐기는 헬레네 상상하니 가슴에 큰 돌덩이 하나가 떨어진 것만 같았다.) ... 떨어지기 전까지는 저랑 즐겨요. 그 사람들은 자기 파트너랑 티타임 즐기라죠.
... 안 무서우세요? 한 번 정도는 괜찮지 않을까 싶은데. 저를 묶어놓고 한다거나, 그래야 하지 않을까요? 지금 능력이 없다지만.. 혹시 모르잖아요.
 
헬레네 R. 히페리데:어렵지만... 그래도 더 멋진 타이머가 되기 위해서는 익힐 필요가 있으니까요. 다 저를 생각해 해주시는 조언이니 받아들여 봐야죠. 대신 이렇게 방에서 아실과 단둘이 있을 때는 그간 참았던 눈물이나 어리광을 솔직히 보일지도 모르겠어요. 혹시나 귀찮거나 거슬리신다면... 꼭 거절해주세요. 저는 아실을 힘들게 만들고 싶지 않으니까요. (티타임 즐기잔 말에 기뻐서 얼른 고개 끄덕인다.)
무섭지 않아요. 막을 방법이 있으니까요. ... 아니면 손부터 천천히 잡아볼까요? (손을 조심스레 내민다.) 다시 손깍지부터 시작하는 거예요.
 
아실링 펜들레엄:당신은 너무 착해요. 저라면 그렇게 안 할 텐데.. ... 저와 단둘일 때는 얼마든지 편하게 구세요. 그것을 받아주지 못할 정도로 나쁜 사람은 아니에요. (어리광? 좋다. 거절 절대로 안 한다.)
... 믿어볼게요. 무서우면 언제든지 얘기하세요. (조금 떨리는 손을 네 손에 올려놓고 천천히 깍지를 낀다.)
 
헬레네 R. 히페리데:그럼 아실도 저에겐 편하게 대해주세요. 서로의 장단점도 치부도 공유할 만큼 가까운 관계가 되고 싶으니까요. (배시시 웃었다. 그리곤 조심스레 마주 손가락을 얽는다. 맞닿는 체온, 그 너머로 두근두근 뛰는 맥박을 느끼며.)
 
헬레네와 손깍지를 끼자, 편안한 안정감이 듭니다.
 
살해 충동이나 도망치고픈 부정적인 감각은 전혀 들지 않습니다.
 
오히려, 이렇게 맞닿아 있으니 꼭 능력을 쓸 수 있을 것만 같아요.
 
아실링 펜들레엄:...? 뭔가 저번이랑 느낌이 달라요. 확실해요. (설레서 두근거렸던 저번과 다를 수밖에 없었던 상황이지만, 나쁜 상황으로 변할 것 같다는 생각은 들 리 않았다.) 다음 것도 해볼까요..? 아직까지는 좋은데..
 
헬레네 R. 히페리데:정말요...? 다행이네요! (금세 표정이 밝아진다.) 다음은 뭐였죠. 포옹이었던가요? (양 팔 활~짝 벌림)
 
아실링 펜들레엄:네, 포옹인 것으로 기억해요. (이번에는 괜찮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가지며 소심하게 팔 벌려 끌어안아본다.)
 
헬레네가 당신을 부드럽게 끌어안습니다.
 
그 손길이 따스하고 상냥합니다. 안정적이에요.
 
여전히 편안하고 기분 좋습니다. 특별히 격정적으로 감정이 날뛰지도 않습니다.
 
또다른 스킨십을 하더라도 그때처럼 기분이 마구 파도치지는 않을 거란 느낌이 듭니다.
 
아실링 펜들레엄:... 저 지금 상태 괜찮은 것 같은데. ... 혹시 모르니까 확인차 조금만 더 이러고 있을까요? 아주 잠시라도 좋으니까.. 조금만 더요. (포옹하고 있는 팔 빼내지 않고 그대로 가만히 있는다.)
 
헬레네 R. 히페리데:(혹시나 또 당신이 급격하게 상태가 나빠질까 긴장한 채로 당신을 끌어안고 있다가, 괜찮다는 말에 안도하여 몸에서 힘을 뺀다.) 당연하죠. 한참 동안 이러고 있어도 괜찮아요. 저도 계속 아실을 끌어안고 싶었는데, 이렇게 포옹하니 정말 좋네요...
 
아실링 펜들레엄:... 지금 이런 말 하면 이상하겠지만.. 이래도 잘 수 있을 것 같아요. 아, 그러니까 제 말은! 편하다는 말이에요. 저번처럼 이상한 생각도 안 들고... (후다닥 얘기하며 네 품에서 빠져나온다. 묘하게 귀 끝이 붉다.)
 
헬레네 R. 히페리데:저도 아실과 끌어안고 있으면 무척 편해서 좋아요. (오랜만의 포옹 때문인지 괜히 낯간지럽다. 옅은 홍조가 뺨에 올라온 채다.) 마침 장교님도 한 침대를 쓰는 것도 좋다고 하셨었는데... 전 아실과 정말 같이 잠들어도 괜찮아요.
 
아실링 펜들레엄:네? 당신도 편하다고요? (거기다가 좋다니. 너무 많은 것을 들어서 얼굴에 열이 빠르게 오르기 시작했다.) ... 그럼 오늘 밤은 침대에서 같이 잠 들을까요? 좀 좁을 수도 있지만... 저 역시 당신과 자는 거 괜찮아서요.
 
헬레네 R. 히페리데:그, 그럴까요? (큰맘 먹고 꺼낸 말에 당신도 긍정적으로 반응하자 저도 모르게 말 더듬는다.) 능력이 갑자기 저에게로 넘어와서 너무 놀랐지만... 그래도 이렇게 다시 아실과 손도 잡을 수 있고, 꼭 붙어있을 수 있는 기회를 주었네요. 장교님 말대로 꼭 다시 되돌아갈 거라고 믿어봐요.
 
아실링 펜들레엄:저, 바로 잘 준비할 수 있어요. (이상한 곳에서 의욕이 마구 나왔다. 꼴도 보기 싫던 장교지만, 헬레네 말을 들으니 갑자기 천사 같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저 역시 그럴 것이라 믿어요. (안 돌아와도 상관없지만, 지금은 그렇게 말해야 할 것 같았다.)
 
헬레네 R. 히페리데:저도요. 소란을 겪다 보니 벌써 이 시간이네요. (어느덧 자정에 가까워지는 시계를 바라본다.) 그러면 얼른 잠옷으로 갈아입고 잘까요? (약간 신남)
 
아실링 펜들레엄:(벌써 이렇게 시간이? 얼른 갈아입고 자자는 말에 바로 고개 끄덕 끄덕끄덕 거린다! 표정 변화는 딱히 없지만 이쪽도 좀 신났다.) 저 빠르게 준비할게요. (지금까지 보여주지 않은 속도의 몸짓으로 간단하게 씻기, 옷 갈아입기 등 준비를 빠르게 끝낸다.) ... 1층에서 자는 게 좋겠죠?
 
헬레네 R. 히페리데:네. 1층에서요! 혹시라도 좁아서 밀려나서 떨어지기라도 하면 큰일이니까요. (아실링 다음으로 후다닥 욕실에 들어가서 마찬가지로 후다닥 씻고 나온다! 잠옷으로 갈아입고 머리도 말린다. 준비 끝내곤 이부자리 단정히 정리해둔 침대로 꾸물꾸물 기어들어간다. 제 옆자리 들어올 수 있도록 이불 젖혀주며)
 
아실링 펜들레엄:(긴장된 표정으로 침대를 보다가 스물스물 네 옆으로 기어간다. 조금 딱딱한 일자 자세로 누워서 천장만 빤히 본다. 초긴장 상태.) 헬리. 불편하거나.. 힘들면 언제든지 얘기해 주세요. 바로 위층으로 올라갈게요.
 
헬레네 R. 히페리데:(옆에서 같은 샴푸와 같은 바디워시의 향기가 풍긴다. 느껴지는 체온이 좋아 이불을 눈 아래까지 올리고 웃음짓다가, 초긴장한 당신을 옆에서 꼭 안아버린다.) 긴장 푸세요, 아실. 그러다간 내일 온몸에 쥐날지도 몰라요. 저는 전혀 불편하지 않고 오히려 너무 좋으니까요!
 
아실링 펜들레엄:(좋은 향기 난다. 그리 생각하며 자연스럽게 네 쪽으로 시선 돌리려다가 눈 질끈 감는다. 네 시선이 느껴지지만, 지금 네 모습을 봤다가는 제 얼굴 꼴이 말도 아닐 것 같았다. 지금이 더 긴장돼요!!라고는 죽어도 말 못 한다. 여전히 뻣뻣함을 유지하다가 심호흡하며 천천히 힘 빼본다.) ... 보, 보세요. 이제 편하게 잘 수 있어요.
 
헬레네 R. 히페리데:(불도 다 꺼져서 좋은 향기만 난다. 당신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는 꿈에도 모르고 마냥 붙어있을 수 있어 좋기만 하다.) 잘하셨어요. 얼른 주무세요, 아실. (매일매일 이렇게 잠들어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 짧은 상념이 스치고, 금세 잠이 쏟아지기 시작한다.)
 
아실링 펜들레엄:(네 앞에서 호들갑을 떠는 모습을 보일 수 없어 평소와 다르게 입을 가만히 다문다. 숨소리만이 잔잔하게 들릴 즘 겨우 인사를 남긴다.) 오늘도 수고 많으셨어요. 내일도 잘 부탁드릴게요. 고마워요, 헬리. (뜬눈으로 밤새우는 것은 아닌가 싶었던 것은 다 착각이었나 보다. 숨소리를 따라 천천히 숨을 들이쉬고 내쉬는 것을 반복했더니 잠이 솔솔 오기 시작한다.)
 
헬레네 R. 히페리데:아실도 무척 고생하셨죠. 많이 놀라고 당황하셨을 텐데... 해결책이 있어 다행이에요. 모든 일이 잘 풀릴 거예요. (특유의 긍정적인 사고로 말하며, 점점 더 몰려오는 잠에 몸을 맡긴다.) 좋은 꿈 꾸세요, 아실. 내일 뵈어요... (이내 스르륵 잠에 빠진다.)
 
아실링 펜들레엄:정말로 다행이에요. 헬리 말을 따라 하길 잘했어요. ... 다음부터는 말 잘 들을게요. (그동안 너무 제 고집만 열심히 부린 것 같아, 네게 미안한 마음이 컸다. 미안함은 점점 고마움으로 변했고, 그 고마움은 제게 익숙하면서도 새로운 감정으로 받아들여졌다.) 네, 내일 봐요. 사랑스러운 헬리.
 
다음날의 아침이 밝았습니다.
 
아실링의 옆에는 헬레네가 새근새근 잠들어 있네요.
 
곁에 누워 있는 이 때문에 뻣뻣하게 긴장했던 것 같은데, 어느새 까무룩 잠들었나 봅니다.
 
오늘은 이론 수업만 있으니, 헬레네를 깨워 함께 갈까요?
 
아실링 펜들레엄:(자는 얼굴 빤히 지켜보다가 손가락으로 볼 콕 눌러본다. 조금 지각하는 한이 있더라도 자는 모습을 더 보고 싶어 한다.)
 
헬레네 R. 히페리데:(말랑하게 들어가는 볼... 좋은 꿈이라도 꾸는 건지 입가에 가만 미소 떠오른다.)
 
시간을 보면 슬슬 알람이 울릴 시간입니다.
 
아실링 펜들레엄:(아깝다.. 좀 더 보고 싶었는데. 아쉬운 마음은 뒤로하고 일단 헬리를 손을 잡고 부드럽게 깨운다.) 헬리. 꿈에서 깨야 할 시간이 왔어요.
 
헬레네 R. 히페리데:우음... (비척거리다 천천히 눈 뜬다. 여전히 비몽사몽, 반쯤은 감긴 눈으로 아실 응시하다 품에 폭 기댄다) 좋은 아침이에요, 아실... 간밤에는 푹 주무셨나요...?
 
아실링 펜들레엄:(가슴을 간지럽히며 나올락 말락한 웃음소리를 참다가 폭 기대지며 느껴지는 온도에 쏙 들어간다. 벌게진 낯으로 손가락 하나 까딱하지 못하다가 헛기침을 두어 번 한다.) 잠은 잘 잤어요... ... 좋은 꿈 꾸셨나요?
 
헬레네 R. 히페리데:다행이에요... 저는 꿈도 꾸지 않을 만큼 푹 잤어요. (목소리가 늘어진다. 당신의 따뜻한 품에서 체향을 맡고 있자니 다시 잠이 올 것만 같아서, 애써 의지를 다지고 천천히 몸을 일으킨다.) 벌써 또 아침이 됐군요... 오늘도 얼른 준비하고 수업을 들으러 갈까요? 참, 붙어 잤는데도 능력에 차도가 있진 않나요?
 
아실링 펜들레엄:그래요...? 제가 보기에는 아주 좋은 꿈을 꾸는 것처럼 보이던데. (편안하게 잠자는 모습을 다시 생각하니 이대로 너를 껴안고 침대에 다시 눕고 싶었다.) 가끔은 밤이 영원했으면 좋겠지만, 또 아침이죠. 네. 어서 준비하고 수업 들으러 가요. 능력은....
이능력 Roll
기준치: 0/0/0
굴림: 66
판정결과: 실패
 
능력은 여전히 아실링의 몸 안에서 전부 빠져나간 듯, 아무런 기별이 느껴지지 않네요.
 
아실링 펜들레엄:(고개 설레설레 젓는다.) 시간이 좀 지나야 할 것 같네요.
 
헬레네 R. 히페리데:역시 하룻밤만에 돌아오진 않는군요... 그러면 얼른 준비하고 수업을 들으러 가요. (아실의 두 손을 한 번 감싸쥐었다가 준비하러 간다.)
 
아실링 펜들레엄:수업 늦어서 좋을 일은 없으니까요.. (더 늦장 부렸다가는 진짜 지각할 것 같았는지 빠르게 나갈 준비한다.)
 
헬레네 R. 히페리데:(머리도 감고 교복도 단정하게 입은 다음, 아실링이 준비를 마치면 손 내민다.) 그럼 식사하러 갈까요?
 
아실링 펜들레엄:가죠. 오늘은 또 얼마나 근사한 식단을 차려주셨을지 기대가 되네요. (아침 일찍 일어나 잠들기 전까지 세 끼를 매번 챙겨 먹는 상황이 아직 익숙하지는 않았지만, 그리 싫지는 않았다. 헬레네 손잡고 식당으로 간다.)
 
두 사람은 손을 꼭 잡은 채 식당으로 향합니다.
 
오늘의 식단도 역시 아침식사치고는 화려합니다.
 
간식으로는 메이플 시럽을 잔뜩 바른 크로플이 준비되어 있어요.
 
아실링 펜들레엄:(먹고, 공부하고, 다시 먹고, 운동하고.. 이런 생활이 반복되다 보니 세 끼를 든든하게 먹어도 살이 안 찔 것 같았다. 익숙하게 자리에 앉아 식사한다. 주위에 뭔가 달라진 건 없나? 분위기라던가.)
 
크게 달라진 건 없습니다.
 
꼭 붙어 있는 페어도 보이고, 싸우기라도 한 건지 아예 멀찍이 떨어져있는 페어도 보이네요.
 
다른 카운터들도 아실링처럼 능력이 넘어갔을까요?
 
아실링 펜들레엄:(궁금하긴 하지만 말 걸기는 귀찮다.. 페어들이 무슨 얘기 하나 들어볼 수 있나?)
 
엿들어볼까요?
 
<듣기> 판정
 
아실링 펜들레엄:
듣기
기준치: 80/40/16
굴림: 29
판정결과: 어려운 성공
 
제 n시 타이머:손 줘 봐. 잡고 있으면 좀 나아질지도 모르잖아. 장교님이 했던 말 기억 안 나?
 
제 n시 카운터:싫어. 내 몸엔 손도 대지 마. 내려오기도 싫었는데, 네가 여기까지 꾸역꾸역 데려온 거잖아.
 
제 n시 타이머:야... 그렇다고 가만히 있을 순 없잖아. (안절부절)
 
소리 낮춰 싸우는 듯한 페어가 보이네요.
 
보아하니 능력이 넘어간 건 아실링에게만 있던 일은 아닌 듯합니다.
 
아실링 펜들레엄:(다들 비슷한 상황이구나.. 근사하게 준비되어 있는 식단을 보다가 간식으로 나온 크로플만 작게 잘라 입에 넣는다. 아주 입맛이 넘치지는 않는다.)
 
헬레네 R. 히페리데:(식사를 하며 주변을 짧게 둘러보곤, 아실링에게만 들릴 정도로 속삭인다.) 다른 시간대의 카운터 분들도 똑같은 일을 겪으셨을까요...? 민감한 문제다 보니 함부로 여쭙기가 조심스럽네요.
 
아실링 펜들레엄:... 그런 것 같아요. 저희랑 비슷한 상황인 것 같네요. (냅킨으로 입 주변을 톡톡 닦는척하며 소곤소곤 이야기한다.)
 
헬레네 R. 히페리데:아실링에게만 일어난 게 아니라, 카운터 전원에게 같은 현상이 벌어지다니... 장교님의 말대로 이미 예상된 일이었나 봐요. ... ... 미리 알려주셨더라면 혼란이 좀 줄어들었을 텐데. (아쉽다는 투로 말하며 제 몫의 크로플을 잘라 먹는다.)
 
아실링 펜들레엄:예상된 일었었다 해도 미리 알려주지 않은 것에 대해서는 좀.. 이상하다고 느껴지네요. 뭔가 이유가 있겠다 싶겠지만... (아무튼 마음에 안 드는 단체와 그 소속 사람들이라며 속으로 실컷 욕한다.)
 
식사를 마친 후에는 함께 수업을 들으러 향합니다.
 
장교에게 말하지 않고 숨기기를 택한 페어도 있겠죠.
 
아예 헬레네와 아실링과는 반대의 전략을 택한 페어도 있는지, 함께 앉지 않고 저 멀찍이 떨어져 앉은 페어도 보입니다.
 
개인 시간에도 따로 지내는 요량이에요.
 
아실링은 내내 헬레네와 꼭 붙어 지내나요?
 
아실링 펜들레엄:(최대한 떨어지지 않고 꼭 붙어 지낸다. 어제 일로 일부러 떨어져 있어야 한다는 생각이 좀 사라졌다.)
 
도서관도, 식당도, 헬스장도... 두 사람은 떨어질 틈 없이 함께입니다.
 
장교가 말해준 방침이 효험이 있기를 바라보아야겠네요.
 
하루, 이틀. 며칠이 더 지났습니다.
 
능력은 딱히 차도를 보이지 않았습니다.
 
아닌가? 어제보다 나아졌나? 싶으면 다시 한 움큼 사라지길 반복합니다.
 
하지만 가까이 있는 쪽이 더 안정적이란 사실은 부정할 수 없었습니다.
 
기분, 마음, 상태, 무엇이든...
 
시간이 흐릅니다. 꺾인 손가락의 주위를 맴도는 그림자는 바닥을 천천히 기어 다녔습니다.
 
시간이 얼마만큼 흘렀는가를 문득 깨달으면, 뱀의 비늘이 스치는 것처럼 서늘한 기분이 들곤 했습니다.
 
그러나 전부 기분 탓이겠죠.
 
일상은 고요하고 평화롭습니다.
 
일어나고, 아침을 먹고, 수업을 듣고, 점심을 먹고, 시시껄렁한 시간을 죽이고, 농담을 따먹고, TV를 보거나, 훈련하는 평범한 하루의 반복입니다.
 
능력이 사라진 적 따위, 없었던 것처럼.
 
기다리는 것은 초조했지만, 점차 익숙해졌습니다.
 
그리고 축제를 이틀 앞둔 날,
 
똑똑.
 
손님은 그때 찾아왔습니다.
 
교실에 앉아서 교사를 기다리던 타이머와 카운터의 시선이 모두 앞문으로 쏠렸습니다.
 
수업을 위해 드나드는 이들은 노크하지 않았으므로, 상당히 낯선 소리가 아닐 수 없었어요.
 
문가에는……
 
리슬러 부관:안녕하십니까. 리슬러입니다.
 
정중한 목소리와 함께 하인리히 장교의 부관이 서 있었습니다.
 
타이머에게는 낯익고, 카운터에게는 낯선 남자였습니다.
 
백색의 머리칼을 지닌 남자는 정장 차림새로 누런 서류 봉투를 들고 있었습니다.
 
리슬러 부관:수업을 시작하기 전에 전달 사항이 있습니다.
 
뱀처럼 얇은 눈꼬리가 새로운 얼굴들을 훑곤,
 
리슬러 부관:아시겠지만, 건국 축제가 코앞에 다가왔습니다.
 
지극히 당연한 이야기를 꺼냅니다.
 
리슬러 부관:도밍게즈 건국 축제의 마지막 순서는 타이머가 등장하는 것이 관례입니다. 능력을 선보여 시간이 건재함을 알리고, 세계가 평안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일종의 쇼맨십이죠. 실제로 이 시기면 타이머의 얼굴을 보겠다고 수도로 향하는 관광객의 수가 대폭 늘어나곤 합니다. 보여주기식이지만, 절대 간과할 수 없는 이벤트죠.
더군다나 이번에는 카운터…… (이름이 낯선 듯 느리게 발음한다.)의 존재를 공식적으로 드러내는 자리이니 더욱 중요히 다루어질 겁니다.
예년보다 화려하게, 완벽하게, 차질 없이 준비되어야겠죠.
 
리슬러 부관은 서류 봉투를 뒤적이며 물었습니다.
 
리슬러 부관:준비는 잘 되어갑니까?
 
아실링 펜들레엄:... 잘 모르겠습니다.. (아니라고 말하기도 좀 그렇다 싶었는지 일단 긍정적인 답을 한다. 다른 것이라면 몰라도 능력 사용에 관해서는 자신이 없었다.)
 
리슬러 부관:장교님께서도 기대가 크십니다. 능력을 선보이는 것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카운터…의 존재. 즉, 새로운 능력자의 등장입니다.
친밀하게, 다정하게, 모쪼록 완벽한 파트너의 모습을 보여주길 바란다, 고 하시더군요. 서로 간에 사이좋은 모습을 보여주십시오.
 
결국, 본론은 그거군요.
 
리슬러 부관:기왕지사 능력을 ‘함께’ 선보인다면 더할 나위 없고요.
 
그는 진지한 얼굴로 ‘함께’에 악센트를 강조했습니다.
 
축제 때까지 능력이 돌아오기는 할까요?
 
아실링 펜들레엄:(지금 다 알면서 저런 말 하는 건가? 부관 안 보는 사이에 슬쩍 째려봄)
 
헬레네 R. 히페리데:... ... 한 번 여쭤볼까요...? (속삭인다)
 
아실링 펜들레엄:.. 헬리가 해주시겠어요...? (지금 제가 했다가는 입에서 고운 말 안 나올 것 같아서...)
 
헬레네 R. 히페리데:그럴게요. (끄덕이며 아실링 손을 한 번 잡아준다.) 부관님, 질문이 있습니다. 제 카운터의 능력이 저에게로 넘어와, 아직 돌아오질 않고 있어요. 장교님께서는 저희 둘이 함께 붙어 있으면 좋아질 거라고 했지만, 특별한 차도를 보이지 않고 있어서요. 축제 전까지 돌아오지 않으면 어쩌죠?
 
리슬러 부관:(무감한 녹안이 헬레네에게 향한다. 질문을 들으면서도 어떤 표정 변화 없다가, 건조하게 대답한다.) 괜찮을 겁니다. 장교님이 그리 말씀하셨다면. (그 대답이 전부였다.)
 
아실링 펜들레엄:(군사람들은 원래 이렇게 재수가... 없는 걸까...? 은은한 눈으로 본다.)
 
리슬러 부관:아, 그리고 축제 때 일정이 정해졌습니다. 첫날에는 자유 시간이 주어질 예정입니다. 아침을 먹고 외출할 수 있을 거예요. 대신, 반드시 사복을 착용하고 타이머와 카운터는 동행한다는 조건입니다.
 
카운터의 존재가 발각되어선 안 된다며 DOT 지부 밖으론 한 걸음도 못 내밀게 했으면서. 상당히 파격적인 ‘허가’입니다.
 
축제이니만큼 어린 것들을 묶어두기가 안타까웠던 걸까요.
 
리슬러 부관:만약 누군가 인터뷰를 요청하거나, 이야기를 걸어도 되도록 답변하지 마십시오. 공식적인 발언은 언제나 DOT와 사전 협의 후에 진행되어야 합니다. 카운터에 대해서는 더더욱이요.
 
당부를 마친 리슬러 부관은 서류 봉투의 입구를 엽니다.
 
우르르, 안에서 쏟아지는 것은 팸플릿입니다.
 
리슬러 부관:저녁에는 전원 전시회에 참여할 겁니다.
 
전시회?
 
건국 축제와 전시회라니, 상당히 동떨어진, 그러니까, 개연성 없는 조합입니다.
 
아실링 펜들레엄:... 전시회라면.. 어떤 전시회죠? (뭐라고 말해야 최대한 곱게 말을 할 수 있을까 하다가 짤막한 말 툭 뱉는다.)
 
리슬러 부관:이것을 확인하십시오.
 
웬 전시회냐고 묻는 우리에게, 리슬러 부관은 팸플릿을 나눠줍니다.
 
표지에는 타이머 展이라고 쓰여 있습니다. 아, 그러니까…….
 
구원자에 미친 이 작은 행성은, 굿즈와 장난감, 드라마와 애니메이션, 기타 여러 창작물을 넘어서…… 이젠 전시회마저 열 모양입니다.
 
‘시간의 흐름과 세계의 섭리를 담았습니다.’
 
그럴싸한 홍보 문구는 지나치게 유치했습니다.
 
아실링 펜들레엄:(이상한 장사를... 하시네.. 아주 타이머 가지고 써먹을 수 있는 대로 쪽쪽 빨아먹는구나..)
 
리슬러 부관:도밍게즈에서 처음으로 열리는 타이머 전시회인 만큼 첫 번째로 관람하고, 이후 DOT로 복귀할 겁니다. 둘째 날은 축제의 마지막을 장식하기 위해서 대기하고, 세팅하고, 리허설에 참여하게 될 거예요. 눈코 뜰 새 없이 바쁠 테니 첫째 날 실컷 쉬거나, 하고 싶은 걸 해두는 게 좋을 겁니다.
 
설명을 마친 리슬러 부관이 마지막으로 우리에게 물었습니다.
 
리슬러 부관:무언가, 문제라던가, 할 이야기가 있나요?
 
아실링 펜들레엄:전 없어요. (할 말도 없게 만들어놓고 저렇게 마지막에 물어보기나 하고 말이야! 속으로 욕 x100 한다.)
 
리슬러 부관:그럼, 다음에 뵙죠. (지극히 의례적으로 던진 물음인 듯 미련없이 자리 뜬다.)
 
그는 형식적인 인사만 남기고 교실을 떠났습니다.
 
아실링 펜들레엄:(저저 저거봐라. 나간거 보고 주먹으로 가슴 탕탕한다.)
 
헬레네 R. 히페리데:아실... 괜찮으세요? 기분이 좋지 않아 보이셔요. (팜플랫 내용 확인하다 걱정스레 달래준다)
 
아실링 펜들레엄:(헬레네 보고 언제 그랬냐는 듯 미소 짓는다.) 아무것도 아녜요. 그냥. 보기 싫은걸 봐서... (히.. 죽...)
 
헬레네 R. 히페리데:그런 것치곤 표정이 나빠 보이셨는데... (걱정) 그래도 축제가 기대되지 않나요? 저는 매해 구경하러 갔는데, 볼거리도 많고 마음껏 바깥을 돌아다닐 수 있어서 좋아요.
 
달칵, 문이 닫히고…… 수업을 알리는 종이 커다랗게 울립니다.
 
수학 시간이에요. 수학 교사는 늘 종이 치면 움직이니까, 한 10분의 여유가 남았군요.
 
아실링 펜들레엄:(공식적으로 얼굴을 보이는 날이 이렇게 빨리 다가올 줄이야.. 책상에 볼 한쪽 기댄다.)
저희 둘이서만 시간을 보낼 수 있다면 좋을 텐데... ... 아무래도 그런 개인적인 시간을 보내는 것은 힘들겠죠..?
 
헬레네 R. 히페리데:왜 안 되겠어요? (밝은 낯으로 웃는다) 아까 부관님께서 말씀하셨듯이 첫날에는 자유 시간이 주어졌는걸요. 저녁 즈음에는 돌아와야겠지만, 그전까지는 저희 둘이서 얼마든지 축제를 구경할 수 있을 거예요.
 
아실링 펜들레엄:와... 솔직하게 말할 때도 있나 봐요? (다 거짓말인 줄...) 그럼 첫날 신나게 즐겨보기로 할까요? 다음날을 위해 체력을 아껴둬야겠지만요.. 저랑 어울려주실 거죠..?
 
헬레네 R. 히페리데:... ... 대체로 거짓보다 진실이 더 많으세요. (아실 안에서의 이미지가 아무래도 나락에 간 것 같다...) 그럼요. 저도 너무너무 기대되는걸요! 아실이랑 바깥에는 한 번도 못 나가봤으니까요.
그리고, 축제 둘째 날의 이벤트... 그때까지 능력이 정말 돌아와야 할 텐데요. 어떤 식으로 능력을 선보이면 좋을까요? 저는 이전엔 수족관처럼 무대 위에 물고기들이 가득 든 물을 띄우는 모습을 보여준 적이 있어요.
 
아실링 펜들레엄:(속내를 들킨 걸 알고 머쓱해진다. 그렇지만.. 아직 어린애들을 데려다가 세상을 지키느니 하는 기관이 정상일 리가 없다.. 하는 게 제 생각이었다.) 그럼 즐거운 축제를 위해서 전날에는 일찍 자기로 해요. 준비도 다 끝내놓고요. 어떻게 놀지도 정해두기로 하죠.
능력이 돌아오기도 해야 하고, 선보이는 것도 중요하긴 하네요.. 수족관이라.. 인어처럼 꾸며보실래요? 능력과 함께하면 정말 아름다우실 텐데. (진심)
 
헬레네 R. 히페리데:좋아요. 어떤 옷을 입을지, 어떤 헤어스타일을 하고 꾸밀지도 미리 정해봐요! 정말 즐거울 것 같네요. (벌써부터 기대감에 가슴이 달뜬다.)
이... 인어처럼요? (뻘뻘) 상상해보지 못했는데... 어울릴까요? 그러면 아실이 물을 만들어주시면, 제가 그 안에 풍덩 뛰어들고 그 물을 예쁜 모양으로 조종해보는 건 어떨까요? 대신 그러려면 아실이 꽤 많이 생성해내셔야 할 텐데... ... 괜찮으시겠어요? 일단 능력도 돌아오지 않아서 연습할 시간도 없을 것 같고...
 
아실링 펜들레엄:서로 꾸며주는 건 어떨까요? 골라주는 옷을 입는다던가.. (헬리 꾸밀 생각에 행복해짐.) 서로 어떤 스타일을 좋아하는지 알 수도 있잖아요.
네, 인어요. (끄덕끄덕) 생각해 보세요.. 제 머리카락 색은 칙칙하지만 헬리의 머리카락은 태양 같은 예쁜 색이잖아요. 바로 눈에 띄는 색이에요. 인어처럼 꾸미면 다른 페어들보다 더 주목받을 테고요. 물론... 제가 능력을 많이 써야 될 테지만... 아직 능력도 돌아오지 않았고... ... 그 부분은 천천히 생각해 보도록 할까요?
 
헬레네 R. 히페리데:무척 끌리는 제안이네요! 이틀밖에 남지 않았지만 시간이 얼른 가기를 바라게 돼요. 아실이 제게 어떤 옷이나 장식을 추천해주실지 무척 기대되는걸요. (아실이 제가 고른 여러 디자인의 옷을 입는 상상을 하면서 저도 모르게 생글생글 웃는다.)
칙칙하다뇨. 전혀 그렇지 않아요! 오히려 머리 색만 보면 아실이 더 잘 어울리실걸요. 바다를 상징하듯 짙고 파란 색이잖아요. ... 일단은 그 정도만 정해두고, 혹시 능력이 완전하지 않을 경우를 대비해서 나중에 다른 계획도 짜 봐요.
 
아실링 펜들레엄:뭔가 축제보다 꾸미기에 집중하게 된 것 같지만.. 이런 것도 좋네요. 당신이랑 느긋하게 시간 보낼 생각하니 시간이 빨리 흘러갔으면 하고요. (최고로 예쁜 룩을 골라주겠다며 속으로 불타오른다.)
제 진짜 색도 아니고, 눈에 더 띄는 색은 밝은 색이잖아요. 헬리가 눈에 띄는 쪽이 더 좋아요. 사람들도 그쪽을 더 좋아할 테고. ... 좋아요. 일단 첫 번째 계획은 아까 말한 것으로 하죠. 두 번째는 차차 정해가기로 하고요. 시간이 얼마 안 남았지만...
 
이야기를 나누고 있자면,
 
교사:늦어서 미안해요. 모두 자리에 앉았나요?
 
수학 교사가 뒤늦게 교실의 문을 열고 들어옵니다.
 
그는 교탁에 프린트의 모서리를 툭툭 쳐서 정리하곤 수업을 시작합니다.
 
교사:오늘은 3단원을 할 차례였던가요?
 
수학 수업은 유난히 지루하고, 점심시간 직전이기 때문에 귀에 잘 들어오지 않습니다.
 
교사가 무어라고 떠드는데, 아, 이런……
 
<이성> 판정
 
아실링 펜들레엄:
SAN Roll
기준치: 55/27/11
굴림: 78
판정결과: 실패
 
느릿느릿한 목소리가 꼭 자장가 같습니다. 저절로 눈이 감깁니다.
 
헬레네 R. 히페리데:(졸기 시작하는 아실링을 깨우려는 듯, 손등에 다정히 제 손 겹쳐 힘 두어 번 준다.)
(To GM)rolling 1d10
 
(
9
 
)
 
 
=
9
 
그렇게 헬레네가 아실링의 손등을 건드렸을 때,
 
<초능력> 판정
 
아실링 펜들레엄:
이능력 Roll
기준치: 9/4/1
굴림: 14
판정결과: 실패
 
따끔!
 
스파크가 튀더니 시간의 각인이 화끈화끈 달아오릅니다.
 
그리고, 아실링을 떠나갔던 무언가가 다시금 아실링에게 돌아옵니다.
 
텅 비었던 어딘가가 가득 차는 것을 느낍니다.
 
헬레네 R. 히페리데:...! 아실, 지, 지금...!
 
헬레네 또한 같은 것을 느꼈는지 놀란 눈으로 아실링을 바라봅니다.
 
착각이 아니에요.
 
방금, 정말로,
 
능력이 돌아왔습니다.
 
불을 끄는 것처럼, 그리고 불을 켜는 것처럼.
 
해가 지는 것처럼, 그리고 달이 뜨는 것처럼.
 
네가 ■■ ■ 것처럼, 그리고 내가 ■■■ 것처럼!
 
아실링, 초능력 기능치를 9만큼 회복합니다.
 
아실링 펜들레엄:(졸음에서 바로 깬다. 너도 지금 이 상황을 느꼈을까? 헬레네 쪽으로 고개 돌린다.)
 
헬레네 R. 히페리데:아실... 분명, 능력이 조금은 돌아간 것 같았어요. (얼떨떨하게 맞닿았던 손과 당신을 번갈아 보며 속삭인다.) 각인이 뜨거워요, 그렇지 않나요?
 
아실링 펜들레엄:(갑작스러운 상황에 대한 얼떨떨함과 기쁨이 스멀스멀 차올라 작게 웃음소리를 낸다. 계속 이렇게 돌아온다면 좋을 텐데.) 확실히 느꼈어요. ... 다행인 것 같죠..?
 
헬레네 R. 히페리데:(선생님의 눈치를 살피다가 다시 속삭인다) 스킨십 때문에 돌아온 걸까요? 그럼, 한 번 더 손을 잡아보는 건 어때요...?
 
아실링 펜들레엄:..네. 혹시 제 상태가 이상하다 싶으면 바로 피해주세요. (정말로 스킨십 때문일까..? 손 꼼지락거리다가 손바닥 겹치게 맞잡아본다.)
 
손을 맞잡자 다시금 기묘한 감각과 함께, 능력이 전달됩니다.
 
아실링, 초능력 기능치를 5만큼 회복합니다.
 
아실링 펜들레엄:... 또 돌아온 것 같아요. 확실해요. 아주 작게 들어온 것 같지만... (저번처럼 단계를 높여 실험했던 것을 생각해 본다. 손잡기 말고 포옹이나 입맞춤을 하면 빨리 돌아오려나?) ... 이따가 수업 끝나고 잠깐 방으로 가보는 건 어떨까요...? (여기서는 못할 테니)
 
헬레네 R. 히페리데:다행이에요. 정말로 스킨십이 효과가 있었나 봐요...! 딱 이때에 돌아올 줄은 예상도 못했지만... 건국 축제 무대는 무사히 해낼 수 있겠네요. (제안에 고개 끄덕인다. 원래 수업에 무척 집중하는 헬레네였지만, 이번만큼은 모든 집중력이 다 날아가고 아실에게로 꽂힌다. 마법과 같은 힘을 다루어서 그런지, 정말 마법 같은 일이 아닌가.)
 
아실링 펜들레엄:이상한 건국 무대를 보여주는 건 아닌가 싶어서 걱정했는데.. 다행이네요. (DOT 사람들, 이런 것도 다 알고 있었을까? 좀 찜찜한 부분이 남아있지만 일단은 지금의 상황에 기뻐하기로 한다.) 좋아서 수업에 집중하기 힘드네요.. 빨리 쉬는 시간이 오면 좋겠어요.
 
헬레네 R. 히페리데:저도요. 수업이 빨리 끝나기를 바라보는 건 처음이네요. (미소하며 속삭인다.)
 
수업이 끝날 때까지 잔뜩 초조하고 들떠선 종이 치기만을 손꼽아 기다렸습니다.
 
돌아온 것이 맞는지, 정말 사실인지 알고 싶어, 확신 받고 싶어 참을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나란히 앉은 어깨가 유난히 가까워집니다.
 
비로소 완전하게 충족된 기분이 들었습니다.
 
드디어……
 
존재의 가치를 증명받은 것처럼.
 
유달리 길게 느껴지는 시간이 지나면 드디어 종이 울리고, 수업 끝입니다!
 
이제 자유 시간이에요. 어서 교실을 벗어나요.
 
아실링 펜들레엄:(평소보다 더 길게 느껴진 수업이 끝나자마자 헬레네 손을 잡고 방으로 향한다. 뭐부터 실험을 해야 할지 고민이 많다.)
 
꼬옥 잡은 손의 온기가 느껴져옵니다.
 
아실링, 초능력 기능치를 9만큼 회복합니다.
 
아실링 펜들레엄:(방에 도착하고 나서도 아무 말 못 하다 네 눈치를 슬쩍 본다. 손을 계속 잡고 있는 것만으로도 이렇게 힘이 돌아온다면, 그것 외에 다른 것들을 하면 더 빨리 돌아오는 걸까? 어떻게 말을 꺼내야 할지 고민하던 끝에 조금 미안하다는 표정을 짓는다.) 헬리.. 이건 제 욕심인데요.. 괜찮으시다면 제 쪽에서 입맞춤 한 번만 해봐도 괜찮을까요..?
 
헬레네 R. 히페리데:(방으로 돌아가는 동안 설레임과 기대감에 심장이 두 배는 빠르게 뛰는 듯했다. 걸음걸이는 나비가 날듯이 가벼웠다. 잘 있던 능력이 갑자기 저에게로 넘어오는 사건 때문에 갈등도 빚고 무척이나 고민이 많았었는데, 마침내 이렇게 돌아오게 되었으니. 당신의 물음에 얼굴에 금세 홍조가 올라왔지만, 이내 수줍게 고개 끄덕인다.) 좋아요...!
 
아실링 펜들레엄:(네가 싫다고 하면 어떡하나 내심 걱정했다. 이러는 편이 건국 축제를 더욱 좋게 만들 것이라는 핑계를 내걸고 있지만, 두근거리는 것을 멈추지 않을 것 같은 심장은 그게 제 사심임을 말하는 것만 같았다.) .. 눈 감아주시겠어요...? 아무래도 이게 조금.. 흔한 일은 아닌지라. (부끄럽다며 눈을 질끈 감고 입술을 가볍게 겹쳤다 떼어낸다.)
 
헬레네 R. 히페리데:네, 네에... (눈을 꼭 감는다. 암흑이 닥쳐오자 심장이 마구 뛰는 소리가 더더욱 선명해져 제 귀까지 들릴 정도다. 간지럽고 설레고 긴장되는 감각이 마구 융합되어 어지러워질 쯔음에, 당신의 부드런 입술이 짧게 와닿는다. 한 차례 열이 휩쓸고 간 것 같은 감각과 함께 천천히 눈을 떴다. 꼭 첫사랑에 빠진 것처럼 얼굴이 수줍음으로 잔뜩 달아오른 낯이다.)
 
아실링, 초능력 기능치를 17 회복합니다.
 
이전에 꾸준히 능력 훈련 연습을 하며 늘어난 정도에까지 단번에 도달합니다.
 
스킨십의 강도가 강할수록 능력이 빨리 돌아오는 게 맞았나 봐요.
 
아실링 펜들레엄:(짧은 순간이었음에도 계속 입술이 맞닿아있는 듯한 느낌이 들어 눈앞이 팽팽 도는 것 같았다. 약간 고장 난 것처럼 버벅거리더니 네 손을 잡고 고맙다는 듯 악수를 한다.) 가, 감사해요..! 능력이 다 돌아온 것 같아요. 아... 아하하... (웃는 것도 잠시 얼굴 끝까지 새빨개지더니 그대로 자리를 벗어나 화장실로 간다.) 저 세수 좀 하고 올게요..!!
 
헬레네 R. 히페리데:네, 네에...!!! (부끄러움과 쑥스러움, 좋은 기분이 마구 엉켜서 정신이 없다. 뜬금없는 악수에도 웃을 생각도 못하고 남은 손으로 제 뺨을 계속 감싸고 있었다. 친구 사이에서 이렇게 뽀뽀를 계속 해도 되나...?)
 
아실링 펜들레엄:(세수하러 간다고 화장실에 들어가놓고는 문을 잠그자마자 바닥에 털썩 주저앉는다. 무릎에 끌어안고 여러 감정에 휩쓸려 어쩔 줄을 몰라 한다. 능력을 되찾기 위한 수단일 뿐이어야 하는데, 그래야만 하는데. 그러기에는 제 사심이 들어갔다는 것을 어느 정도 인지했기에 무릎에 이마를 콩콩 박았다.)
(어느 정도의 시간 후 세수를 아주 열심히 한 건지 앞머리까지 축축해진 상태로 나온다.) .. 기다리셨죠. 죄송해요... 어쩌다 보니 늦었네요..
 
헬레네 R. 히페리데:(아실링이 화장실에 들어간 이후 어쩔 줄 모르고 자리에 가만히 서 있다가, 후다닥 창가로 다가가 창문을 활짝 연다. 바람을 쐬며 열오른 낯 식히려 애쓴다. 생각보다도 더 아실링을 좋아하는 것 같다. 그저 둘도 없는 파트너, 가까운 친구 정도의 관계로 족하면 될 줄 알았는데... ... 한참 바람 쐬면서 진정하다가, 화장실 문 열리는 소리에 고개를 돌린다.) 아니에요, 사과하실 필요 없는걸요. 그나저나 아실, 앞머리까지 젖으셨는데... (수건 총총 가져다준다.)
능력은 다 돌아오셨나요? 아니면 조, 조금 더 스킨십을 할까요...? (자기도 모르게 말 더듬음)
 
아실링 펜들레엄:아.. 앞머리까지 젖었군요. (정신없어서 몰랐던 건지 네가 준 수건으로 앞머리 물기를 말리다가 그대로 수건에 얼굴 박는다. 그렇게 몇 초 있다가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고개 들고 웃지만 그 행동은 누가 봐도 무슨 일 있는 사람의 행동이었다.) 더 필요할.. 까요...? .. 손 조금만 더 잡아보는 건 어떨까요?
 
헬레네 R. 히페리데:아실이 보기에는 어떠세요? 일단, 제가 느끼기엔 이질감은 사라진 것 같기는 한데... 아직 다 되돌아가지 못했을 수도 있으니까요. (부끄러움을 느끼면서도 순순히 손 내민다.)
 
아실링 펜들레엄:.. 그러면 일단은 손잡아 보는 걸로 해요.. 뭔가 달라지는 게 있으면 말할게요. (내민 손 위에 제 손 올리더니 능숙하게 겹쳐잡았다. 처음 만나던 그날의 자신은 지금의 제가 이리 익숙하게 손을 잡게 될 줄 알았을까? 아마 아닐 것이다.)
 
손을 잡아도, 능력이 더 넘어오는 느낌은 들지 않습니다.
 
완전하게 차오른 듯합니다.
 
그렇다고 다시 상대에게 넘어가는 것도 아니고요.
 
헬레네 R. 히페리데:... ... 어떤가요? (조마조마한 심정으로 물었다.) 다시는 이렇게 능력이 넘어오고 넘겨지는 일이 일어나지 않아야 할 텐데요. 카운터가 된 지 얼마 안 돼 능력이 불안정해서 일어난 일인 거겠죠?
 
아실링 펜들레엄:능력이 더 들어왔거나 하는 것은 없는 것 같아요. (확인을 끝냈지만 잡은 손을 놓지는 않는다. 놓을 생각 자체를 못했다.) 그런 불안정함이라면 좀... 나중의 일이 무서워지네요. 당분간은 안심해도 괜찮은 것이겠죠...?
 
헬레네 R. 히페리데:(마찬가지로 손을 놓아야 한다는 자각도 없다. 이미 두 사람의 거리는 크게 가까워졌고, 스킨십이 자연스러워졌다. 며칠 내내 한 침대에서 붙어 잠들기까지 했으니.) 괜찮을 거라고 긍정적으로 믿어보도록 해요. 휴, 능력이 돌아왔으니 정말 안심이네요! 축제에서도 능력을 잘 선보여줄 수 있을 것 같아요.
 
아실링 펜들레엄:능력도 잘 돌아왔겠다. 이제 마음껏 축제 준비만 하면 되겠네요..! 정말 다행이에요. (능력이 돌아오지 않았다면 어땠을지 상상도 하기 싫어진다.) 그럼 저희 계획은... 아까 말한 대로 하는 건가요?
 
헬레네 R. 히페리데:좋아요.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그럼 저는 그때 머리를 묶지 말고 풀고 있어야겠네요. 옷은... 그냥 교복을 입어도 되겠죠? 대신 조개 모양의 머리핀이나 팔찌 같은 장식을 해도 될 것 같고... 아실은 마치 마법사처럼 꾸미는 거예요. 교복에 숄을 걸친다거나, 티아라를 쓴다거나... (상상의 나래 펼치는 중)
 
아실링 펜들레엄:그럼 그때 같이 교복을 입기로 하죠. 액세서리나 겉옷으로 차이를 주기로 하고요. (마법사라. 바다 마녀를 해야 하나 고민하던 중 마법사 이야기가 나오자 픽 웃는다.) 예쁜 것을 골라봐야겠네요. 아주 화려하게 꾸며서 멋진 모습을 보이기로 해요.
 
헬레네 R. 히페리데:좋아요. 저희는 1시이니 두 번째로 올라가게 되겠죠. 저희의 능력이 얼마나 아름답고 멋진지 보여드리기로 해요. 축제를 한결 밝은 마음으로 즐길 수 있게 되어 기뻐요. 그때까지 능력이 돌아오지 않았다면, 축제를 돌아다니면서도 마음 한구석이 불편했을 것 같거든요. 정말 얼마나 다행인지 몰라요. (아실 꼭 껴안는다. 그러다 무언가 떠오른 듯, 조심스런 어조로 말 꺼낸다.) 그런데, 아실... 능력이 돌아왔으니 이제 이전처럼 다시 각자 침대를 쓰나요...?
 
아실링 펜들레엄:뒤에 오는 사람들 기죽게 아주 멋진 능력을 보여야겠어요. (물론 반은 농담이다. 멋지게 보이고 싶다는 것만이 진심이었다.) 아무리 즐거운 축제여도 다음날 일 때문에 마음껏 즐기지는 못했겠죠. 정말 다행이에요. 당신과 즐기는 첫 축제를 처음부터 끝까지 행복하게 보낼 수 있을 테니까요. (껴안겨져서 팔을 어떻게 둬야 하나 잠시 고민하다가 네 등 뒤로 가져가 토닥인다.) 어... ... 같이 쓸까요? 좁지는 않았나요?
 
헬레네 R. 히페리데:맞아요. 앞으로 보낼 축제도 즐겁고 재밌는 날들이겠지만, 일단 당장 이틀 뒤에 눈앞으로 다가온 축제가 있으니까요! (마주 끌어안아주자 만족스러워 헤헤 웃음소리 낸다.) 저는... 아실만 상관없으시다면 같이 쓰고 싶어요. 잠을 험하게 자는 편이 아니라서 좁게 느껴지지도 않았고... 매일 아실이랑 같이 잠들고 일어나니까 좋은걸요.
 
아실링 펜들레엄:(껴안는 것이 잘한 선택이었나 보다! 속으로 셀프 칭찬하며 입꼬리 쓱 올라간다.) 저는.. 싫지 않아요. 누구랑 같이 잠을 자본 게 너무 오랜만이라 긴장하긴 했지만, 헬리랑 같이 자는 건 좋았던 것 같아요. 아침에도 바로 눈뜨고... ... 그럼 계속 같이 자는 걸로 할까요?
 
헬레네 R. 히페리데:좋아요...! 아실이 불편함을 느끼셨다면 군말없이 이전처럼 돌아가려고 했거든요. 그래도 싫지 않으셨다고 하니 다행이에요. (마냥 기분이 붕 뜬다. 한 번 일이 잘 되니 쭉쭉 풀리는 느낌이다.) 능력도 다 되돌아왔고... 훈련실에 한 번 다녀오실래요? 아니면 이제 슬슬 잠들까요?
 
아실링 펜들레엄:불편하긴요..! 아니에요. 이제 이상한 충동도 없는 것 같고.. 저는 좋아해요. 헬리랑 같이 있는 거. (아무렇지도 않게 말해놓고 뒤늦게 부끄러워한다. 이래도 괜찮은 것이겠지?) 오늘을 축하하기 위해 티타임 짧게 하고 잠드는 것은 어떨까요?
 
헬레네 R. 히페리데:다행이에요. (왠지 또 볼이 달아오를 것만 같아서 후다닥 손부채질을 한다.) 좋아요, 얼른 준비할까요? 오늘은 같이 해요. (자신 혼자 하면 아실링이 미안해하는 기색이 보였으므로 애초에 먼저 제안한다)
 
아실링 펜들레엄:네..! (부끄러워하는 것을 들키지 않기 위해 빠르게 티타임 준비를 한다. 몸을 움직이다 보면 정신없이 이 생각 저 생각 하는 것도 줄어들겠거니.. 하고 있다.)
 
헬레네 R. 히페리데:(물을 끓이고, 준비를 하고... 급할 것 없는데도 손길이 분주하다. 당신과 같은 심산이기 때문일 터다. 이상하게도 붙어있는데도 더 가까워지고 싶고, 다시 입맞추고 싶다는 생각이 튀어나오곤 하니 얼른 다른 일을 하면서 지워야 했다. 물이 끓자 아실링이 미리 준비해준 잔에 잘 따른다.)
 
아실링 펜들레엄:(잔을 준비하고 티백을 챙기고, 축하 기념으로 과자 같은 것도 꺼내놓는다. 능력이 돌아오지 않았으면 우울함으로 가득 차서 머리가 어지러웠을 텐데, 돌아와도 생각이 많은 것은 별 다름없을 것 같았다. 차향이 퍼지는 것을 느끼다 어색하게 말 꺼낸다.) 오늘은.. 어떤 걸 차에 넣으실 거예요?
 
헬레네 R. 히페리데:어떤 게 좋을까요...? 과자가 달콤한 거니까, 꿀 대신에 딸기 잼을 넣어볼까요? (수저와 잼 등을 꺼내온다.)
 
아실링 펜들레엄:그럼 저는 새콤한 걸로 넣어볼게요.. (잼 통을 보다가 레몬청을 차에 넣고 젓는다. 차향과 레몬향의 조화가 괜찮은지 긴장했던 것도 천천히 풀어진다.)
 
헬레네 R. 히페리데:(곁에서 딸기 잼을 한 스푼 넣고 휘휘 젓는다.) 혹시나 아실이 능력이 돌아오지 않아서 DOT를 나가게 됐다면... ... 정말 슬프고 아쉬웠을 거예요. 그 모든 가능성이 날아가게 된 것 같아서 기쁘네요. (평소보다도 더 행복한 기분으로 차를 홀짝인다.)
 
아실링 펜들레엄:... 이제 와서 말하는 거지만.. 저 역시 그건 싫었을 것 같아요. 물론 이곳에서의 생활이 자유롭지 않아 마음에 안 드는 부분이 있지만, 당신과의 생활은 좋거든요. (그건 싫다는 표정으로 차를 홀짝인다. 언제 또다시 능력을 잃게 될지 모르는 것에 대한 걱정은 조금 남아있었다. 아주 홀가분하지는 않지만 지금 당장은 그런 이야기를 꺼내기 싫었다.)
 
헬레네 R. 히페리데:그러셨던 거군요...! 다행이에요. (몹시 안도한다) 꼭 능력으로 인해서뿐만이 아니라도, 저와 함께 지내는 생활이 불편하거나 거슬리는 면이 있지는 않으실까 내심 걱정했어요. 앞으로도 아실이 이곳에 편히 머무르실 수 있도록 힘낼게요. 아실의 가까운 조력자가 되어드릴게요. (바짝 당겨 앉아 몸 맞닿은 채로 남은 차를 마신다.)
 
아실링 펜들레엄:당신과의 생활이 불편할 리가요. .. 혹 저랑 함께하는 것에 있어서 불편했던 점이 있... ... 많으셨나요..?? (많았을지도.. 지금까지 제가 했던 짓들을 생각하고는 찻잔을 잡고 있던 손을 파르르 떤다.) 저도 좋은 파트너가 될게요.. 이왕이면 이쁨 받는 파트너로요.
 
헬레네 R. 히페리데:아뇨, 아뇨! 전혀 없었으니 걱정 않으셔도 돼요. (파르르 떨리는 손 발견하고는 급하게 대답하며 손을 꼭 잡아준다.) 저는 아실과 만난 이후로 항상 새롭고 좋기만 했어요. 지금도 아실이 무척 예쁘고 매력적이라고... .... 생각하고 있어요. (말하다 보니 부끄러워져 말끝이 갈수록 작아진다.)
 
아실링 펜들레엄:전.. 혀는 좀.. 거짓말 같아요. (자기가 기억하는 게 많은데.. 파르르 떨던 건 멈춘다..) 새롭고 좋았다고요..? (약간 불신! 하다가 말고 예쁘고 매력적이다는 말에 앞에 생각했던 거 다 까먹어버렸다. 목이 타는지 찻잔에 남아있던 차를 다 마셔버린다.) .. 헬리도 무척 아름다워요. 제가 세상에서 본 사람 중에서 제일요... (꺄악. 속으로 작게 소리 지른다.)
 
헬레네 R. 히페리데:제가 거짓말을 하는 거 보신 적 있나요? (오히려 놀라서 눈 동그랗게 뜨고 반문한다) 저는 언제나 진심만을 말하는걸요, 아실~. (제일 아름답다는 말 듣고는 애써 가라앉히던 열기가 단번에 치솟아버린다. 급속도로 빨개지는 얼굴 감싸다가 남은 홍차 단번에 원샷해버리고 자리에서 벌떡! 일어난다.) 가, 가, 감사해요...! 저는 다 마셨으니 먼저 잘 준비를 할게요, 아실...!
 
아실링 펜들레엄:아, 아니.. 그게.. 아니에요. 제가 잘못했어요. (고개 도리도 이 도리 젓는다.) 당신이 저를 아낀다는 마음 잘 알아요. (같이 분위기 이상해져서 뚝딱거린다. 조금만 더 힘주면 잔을 깨트릴 것 같이 잔을 꼬옥 쥐다가 네가 일어남과 동시에 같이 내려놓는다.) 그, 그러세요! 저희 어서 잘 준비를 하죠..!! 내일 할 일도 많고! (뚝딱뚝딱..)
 
헬레네 R. 히페리데:네, 네...! (찻잔을 후다닥 가져와 설거지를 하고, 잘 정리해둔 뒤 침대에 달려가다시피 해 눕는다. 이불을 눈 밑까지 끌어올린 채 두근거리는 심장 진정시키려 하며) 어서 오세요, 아실. (그래도 같이 잠드는 시간을 포기할 수는 없다!)
 
아실링 펜들레엄:(정신없이 잘 준비를 하지만 몸에서 좋은 향기가 나는 것 정도는 제대로 확인한 뒤에 침대 근처로 간다.) ... 저 정말로 들어가도 괜찮은 거죠...?! ... (한참 동안 베개 끌어안고 있다가 네 옆에 가서 풀썩 눕는다.)
(이게 뭐라고 설레고 부끄럽지..?)
 
헬레네 R. 히페리데:그럼요...! 얼른 곁에 누우셔요. (근처에 오자 잘 들어올 수 있도록 이불 들춰준다. 왠지 어제보다 더 부끄럽고 설레는 느낌... 은은히 퍼지는 샴푸 향기를 맡으며 눈 내리감는다.) 새로운 내일이 기대돼요, 아실. 함께여서 더 그런 거겠죠.
 
아실링 펜들레엄:(옆에 누워 숨소리도 못 내고 있는다. 이렇게 두근거리고 어색한 상태로 잠에 드는 것일까 싶었다가, 이렇게 하루를 끝낼 수는 없다고 생각했는지 헬레네 쪽으로 고개만 쏙 돌린다.) 내일은 분명 오늘보다 즐거운 하루일 거예요. .. 내일도 잘 부탁드릴게요, 헬리. 좋은 꿈 꾸세요.
 
헬레네 R. 히페리데:(어둠 속에서 희미하게 웃음소리가 난다.) 네, 아실도요. 매일매일 잘 부탁드려요. 오늘도 정말 즐거웠어요... ... 행복한 꿈을 꾸시길 바라요.
 
아실링 펜들레엄:(아직 어둠에 눈이 익숙해지기 전이라 네 표정이 보이지 않았지만, 웃음소리만으로 네가 어떻게 웃는지 상상이 되었다. 이렇게 웃어주는 사람이 너 말고 또 있었던가? 자신은 알고 보면 꽤나 복이 많은 사람이라고 생각하며 배시시 웃는다.) 오늘도 감사했어요. 내일 봐요, 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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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침내, 축제의 전야.
 
매해 봄의 가운데, 4월 19일이면 도밍게즈의 건국 축제가 열립니다.
 
이튿날 동안 사람들은 꽃을 달고, 등을 띄우고, 술을 마시고, 웃고 떠들며 시간을 보냅니다.
 
‘세계의 구성원’으로서 당연한 일입니다.
 
지독하게 깨끗한 하늘 위로, 매달릴 곳을 잃은 우산이 홀로 떠다닙니다. 창 너머가 왁자지껄합니다.
 
창밖을 내다보면, 건물 사이 엮인 긴 줄마다 색색의 것들이 매달려 있습니다.
 
깃발, 손수건, 우산…… 다 나름의 소원을 담고 있는 것입니다.
 
해와 달의 장막을 비유하는 깃발. 바람의 결을 따라 흔들리는 손수건. 날씨가 맑기를 기원하며 활짝 펴둔 우산.
 
건국 축제가 끝날 때까지 화창하기를 비는 거예요.
 
정말로 효험이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올해도 날은 화창합니다.
 
헬레네 R. 히페리데:날씨가 정말 좋네요, 아실...! (잠옷을 입은 채로 창문을 활짝 열어젖히곤, 밀려오는 산들바람과 청혜한 하늘을 올려다본다.) 축제 전야라는 기분이 확 들어요.
 
아실링 펜들레엄:(몸에 이불을 둘둘 두르고 있다가 말고 창문 쪽으로 걸어가 바깥과 날씨를 살핀다.) 맘 놓고 즐기라고 말하는듯한 날씨네요. 즐거운 시간을 보낼 수 있겠어요. 하루 종일 신나게 놀 텐데, 체력은 넘치시나요? (방긋.)
 
헬레네 R. 히페리데:그럼요! 어제 티타임을 가진 덕분에 더 힘이 펄펄 나는 것 같아요. (해맑게 웃으며 옷장으로 다가간다.) 서로를 꾸며주기로 하셨던 거 기억하시죠~? 저는 전날에 벌써 옷을 다 골라두었답니다. 먼저 씻고 나오시면 제가 다 준비해둘게요.
 
아실링 펜들레엄:티타임 덕분에요? (차 덕분에 편하게 잤나? 하는 생각을 하다가 문득 어젯밤 일이 머리를 스치고 지나가 답지 않게 버벅댄다.) 다, 다행이네요. 저도 몸 상태는 좋아요..! 그럼 먼저 씻으러 갈게요! (볼이 약간 상기돼서 화장실 안으로 쏙 들어가 샤워한다.)
 
헬레네 R. 히페리데:(아실링이 씻고 나오면, 소파 위에 연보랏빛 옷깃에 하얀 리본이 달린 쉬폰 블라우스와 허벅지 절반쯤 오는 흰색 레이스 H라인 스커트, 보라색 구슬이 달린 팔찌가 단정하게 놓여있다.) 어떠세요? 평소 저희 교복은 남색이니까, 이번에는 보라색과 흰색 조합으로 찾아보았어요!
 
아실링 펜들레엄:...! (보송하게 말려진 머리카락을 손으로 빗다가 소파 위 준비된 옷을 보고 표정이 밝아진다. 외적인 모습으로는 크게 자신이 없었기에 아무것이나 입어도 좋았지만, 자신을 위해 특별히 골라준 옷이라고 하니 날개옷을 받은 것만 같았다.) 헬리는 센스도 엄청 좋으시네요. 옷이 너무 예뻐요.. 팔찌가 너무 귀엽고요. ... 혹시 팔찌 하나 더 있나요? 헬리하고도 잘 어울릴 것 같고, 같은 걸 착용하면 기분이 좋을 것 같아서요.
 
헬레네 R. 히페리데:마음에 드신 것 같아 다행이네요! 아, 네. 팔찌도 하나 더 있어요. 그러면 저희 같이 맞춰서 착용할까요~? (좋아해주자 웃음꽃이 활짝 피었다.) 인터넷 쇼핑으로 찾아보면서 어떤 옷이 아실과 어울릴까 엄청 고민했답니다. 그러면 이제 아실이 제 옷을 골라주실 차례인가요? 얼른 씻고 올게요! (욕실로 쇽!)
 
아실링 펜들레엄:네..! 같이 맞춰서 착용하기로 해요. 준비하시는 동안 팔찌와 어울리게 옷을 준비해둘게요. (욕실로 들어가는 헬리에게 손인사를 하고는 빠르게 옷 준비를 한다. 연보라색으로 별무늬 레이스가 박힌 하얀 러플 블라우스에 보랏빛 A 라인 스커트, 머리 꾸미기 용도로 보이는 진주가 달린 보라색 리본이 올려둔다.)
 
헬레네 R. 히페리데:(어떤 옷을 준비했을지 기대감과 설레는 마음에 평소보다 씻는 속도가 빠르다. 머리의 물기가 아직 조금 남은 채로 후다닥 문을 열고 나왔다. 놓여진 제 옷을 보고는 양손으로 입 막으며 너무 좋아 어쩔 줄 모르고 방방 뛰었다.) 어쩜 좋아... 너무, 너무 예뻐요, 아실! 제가 준비한 옷과도 배색부터 디자인까지 모든 게 잘 어울리고요...! 이 리본으로는 머리를 묶으면 될까요?
 
아실링 펜들레엄:헬리 마음에 든다니 다행이에요. 센스는 좀 부족하지만 열심히 준비했어요. (네가 어떤 디자인과 색상을 좋아할지 몰라서 여러 가지를 사뒀다는 말은 하지 않는다. 그건 나중에 선물해야지~ 하는 생각이나 한다.) 아.. 혹시 제가 헬리 머리카락을 꾸며도 괜찮을까요? 해드리고 싶은.. 그리고 제가 보고 싶은 머리 스타일이 있어서요.
 
헬레네 R. 히페리데:센스가 부족하긴요! 정말 너무너무 마음에 들어요. (꾸며도 되냐는 물음에 거의 0.1초만에 고개를 끄덕인다.) 물론이죠! 그럼 잠시만요. 얼른 옷을 갈아입고 올게요. 디자인도 예쁜데다 아실과 맞춰입는다 생각하니 너무 좋아서 하늘을 날아갈 것만 같은 기분이에요. (오늘은 정말 최고의 하루가 될 것이다. 서둘러 러플 블라우스와 치마를 갈아입는다. 움직일 때마다 러플과 치맛자락이 살랑살랑 흔들린다.) 어떤 스타일로 해주실 건가요?
 
아실링 펜들레엄:색깔도 비슷하니 예쁠 것 같죠? 저도 빠르게 준비할게요. (네가 옷을 갈아입는 동안 저 역시 머리카락을 뺀 나머지 준비를 다 끝내놓는다. DOT에서 지내며 입었던 옷과 다른 분위기의 옷에 묘하게 들떴다. 한 손에는 빗을 들더니 앉아달라는 듯 소파 등을 툭툭 친다.) 고민이에요.. 생각한 게 두 가지거든요. ... 아! 방금 완벽하게 정해뒀어요. 끝나면 어떤 헤어스타일인지 알게 되실 거예요.
 
헬레네 R. 히페리데:너무 궁금해요...! 그럼 아실이 제 머리를 꾸며주신 다음엔 저도 아실 머리를 만져드릴래요. 기다리는 동안 어떤 헤어스타일을 할지 고민하고 있어야겠어요. (얼른 툭툭 친 자리에 앉아 등 돌린다.)
 
아실링 펜들레엄:정말요..? 오늘 하루 헬리 덕분에 머리부터 발끝까지 아주 예쁘게 보이겠네요. 사진 같은 거 꼭 찍어둬야겠어요. (보인 등 보며 키득키득 웃는다. 비단 다루듯 섬세한 손길로 머리카락을 빗다가 양갈래로 나누어 한차례 땋아 묶은 뒤, 머리카락 일부를 감싸듯이 가볍게 뱅 두른다. 마지막으로 리본으로 장식까지 한 뒤에 네게 거울을 내밀었다.) 이런 거 괜찮으세요...? 양갈래랑 만두머리를 동시에 보고 싶어서 둘 다 합쳐봤어요.
 
헬레네 R. 히페리데:네. 필름 카메라가 제게 있으니, 사진을 잔뜩 찍어요! (과연 어떤 헤어스타일을 해주실까, 두근두근한 마음으로 얌전히 기다린다. 중간중간 거울을 보고픈 마음을 억누르며, 당신의 섬세한 손길을 즐겼다. 마침내 거울을 받아들곤, 제 모습을 이리저리 비춰보며 기쁜 기색을 여과없이 드러낸다.) 어쩜...! 평소에 제가 해본 적 없는 모양이네요, 그러면서도 양갈래라서 기존 스타일링이랑 크게 어긋나지도 않구요! 너무 마음에 들어요. 아실링은 못하는 게 없으시네요. (와락 끌어안는다)
 
아실링 펜들레엄:카메라를 어떻게 빌리나 했는데. 다행이네요. 오늘 남는 필름 없이 다 써서 찍어보죠. (혹여 네 머리카락을 잘못 만져 아프게 하거나, 이상한 모양을 만들지 않기 위해 열심히 집중한 탓인지 상체 힘이 축 빠진다. 힘은 좀 빠졌지만 마음에 든다는 네 말을 듣고 나서부터는 안겨서 계속 웃기만 한다.) 저 이런 쪽으로 재능이 있는 것일지도 모르겠네요~.. (조금 우쭐해져서 농담한다.)
 
헬레네 R. 히페리데:여분의 필름도 잔뜩 챙겨가겠어요. (비장하게 말하며 가방에 필름을 챙겨넣는다.) 재능이 있으신 게 분명해요... 이렇게 귀엽게 꾸며주시다니. 저도 아실 실력에 지지 않게 열심히 해야겠는걸요? 지나가는 분들이 모두 돌아볼 정도로 아름다우실 거예요. (빗을 든다.) 앉아주세요, 아실!
 
아실링 펜들레엄:(가방에 넣어지는 필름들 보며 뿌듯하게 웃는다. 오늘 저 필름들을 다 써서 사진으로 남길 생각을 하니 웃음이 흘러나올 수밖에 없었다.) 모두가 돌아본다고요..? 헬리도 참. 헬리의 아름다운 때문일 거예요. 좋게 말씀해 주셔서 감사해요. (얌전히 네가 앉았던 곳에 앉아 머리 만져주기를 기다린다.)
 
헬레네 R. 히페리데:아니에요. 아실링이 분명 저 하늘에 쨍쨍히 뜬 태양보다 밝게 빛나리라고 확신해요! (당당하게 말하며 빗으로 긴 푸른색 머리를 빗어준다. 혹시나 걸리는 게 없도록 헝클어진 머리칼도 풀어주고 매끈매끈할 정도로 몇 번이나 빗다가, 흰색 리본 끈 두 개를 가져온다. 머리칼을 반씩 나누어 땋아내리기 시작하고, 끝부분을 리본으로 매어 장식한다. 양갈래로 땋은 머리를 어깨 앞쪽으로 넘겨주었다. 결과물을 확인해보고는 뿌듯해져서 거울을 건네주었다.) 한 번 양쪽으로 땋아봤는데... 어떠세요?
 
아실링 펜들레엄:저는 헬리 뒤에 쏙 숨어야겠어요. 이런 모습은... 헬리한테만 보여주고 싶어서요. (남한테 별로 보이고 싶은 생각은 없다는 말 대신 네 손을 잡아다가 제 얼굴을 반쯤 가리며 장난친다. 하지만 그것도 아주 잠시, 머리카락이 만져진 이후로는 아주 얌전하게 상태를 유지한다. 숨소리조차 내지 않고 인형처럼 앉아있는 상태로 머리카락이 만져지며 중간중간 보이는 손에 눈만 빙그르 움직였다.) 과연 어떨까... 세상에 헬리. 이렇게 아름답게 꾸며주시다니.. 저한테 이런 멋진 재능이 있다는 얘기는 안 해주셨잖아요..! 정말, 정말 마음에 들어요. (양 갈래 끝을 만지작거리며 배시시 웃는다.)
 
헬레네 R. 히페리데:저한테만 보여주셔도 좋지만... ... 이 아름다운 미모를 저 혼자만 보기에는 아까울 정도인걸요~ 마음에 드셔요? 정말 예쁘죠? 옷과도 너무 잘 어울리구요! 저희 둘 다 머리를 양쪽으로 묶었네요. 팔찌도 그렇고... 커플 헤어스타일이에요~! (말해놓고는 혼자 아차, 해서 시선 스르륵 옆으로 돌린다. 자연스럽게 넘어갔겠지?)
 
아실링 펜들레엄:그럼요. 너무 마음에 들어서 오늘만큼은 아주 당당하게 거리를 걸어 다닐 거예요. 헬리가 만져준 머리카락에, 준비해 준 옷에, 액세서리까지. 정말 행복한 날일 거예요. (커플 스타일이라고 인식하지 못한 상태로 헤실 웃다가 네 말을 듣고 나서야 제 양 갈래머리와 네 머리카락을 번갈아본다. 커플 스타일이 맞긴 한데 왜 이렇게 부끄러운지.) ... 저랑 이렇게 커플 헤어 하니까 좋으시죠? (아무렇지도 않게 말하기는 하지만, 내심 네 좋은 반응을 기대한다.)
 
헬레네 R. 히페리데:제 덕분에 아실이 당당하게 다닐 수 있다니, 앞으로도 바깥에 나가는 날마다 머리를 만져드려야 하는 거 아닌지 몰라요. 옷도 골라 드리구요. (헤헤 웃는다. 당신의 물음에 얼굴에 슬슬 열이 오르려는 걸 막아보려 애쓰면서, 고개 겨우 끄덕였다.) ... 그럼요! 너무 좋아요. 얼른 바깥에 나가서 사진을 잔뜩 찍고 싶어요.
하지만 나가기 전에 일단 식사를 하러 갈까요? 열심히 준비했더니 배가 고프네요.
 
아실링 펜들레엄:매번 그래주신다면 귀찮지 않으시겠어요...? 뭔가 죄송한데.. 물론 그래만 주시다면 동시에 아주 감사하죠~.. (행복해서 죽을지도 모르겠다는 농담이나 하고는 자리에서 일어난다. 좀 전의 말이 계속 머리를 맴돌아 정신이 없었다.)
그러죠. 바깥에서 사 먹는 것도 좋지만, 차려주신 것을 내버려 두고 가기도 아까우니까요. (헬리 손잡고 식당으로 총총 향한다.)
 
헬레네 R. 히페리데:매번 새로운 헤어스타일을 도전하는 것도 즐거울 것 같지 않나요? 바쁜 일정이라면 어려울 수도 있겠지만 웬만해선 제가 꾸며드리고 싶네요. (총총~)
 
식당으로 내려가면, 축제 때문일까요? 가벼운 아침 식사가 준비되어 있습니다.
 
말랑말랑한 치아바타와 세 종류의 치즈, 구운 햄, 부드러운 스크램블드에그.
 
우유와 시리얼은 상비되어 있으니 배가 고프다면 그릇에 따라 먹으면 됩니다.
 
오늘의 아침 주스는 사과와 케일, 당근을 갈아 넣은 건강 주스입니다.
 
아실링 펜들레엄:(가볍게 먹으려던 참에 딱 좋은 식단이라며 스크램블드에그와 주스를 챙겨 먹는다.) 헬리, 오늘 뭔가 특별하게 하고 싶은 일 같은 건 없나요...?
 
헬레네 R. 히페리데:으으음... ... 일단 시장가를 돌아다니면서 간식거리를 많이 먹어보고 싶어요. 평소엔 DOT의 식당에서 나오는 건강식만 먹으니까요. 그리고 가게에도 많이 가보고 싶구요. 올해의 기념품이 나와있을 거예요. (치아바타에 치즈와 햄을 넣고, 스크램블드에그와 같이 냠냠 맛있게 먹는다.)
 
아실링 펜들레엄:식당에서 주지 않는 간식거리들을 많이 먹어봐야겠네요. 몰래 사가지고 들어오는 건 어떨까요? 맛있는 것들만 몇 개 골라서요. 티타임에 어울릴만한 것이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어울린다면 티타임 때도 먹기로 하고요. (다른 사람들에게 들리지 않게 소곤소곤 이야기한다.)
 
헬레네 R. 히페리데:그것도 좋은 생각이네요...! 과연 가져올만한 게 있을지 잘 찾아봐요. (같이 목소리 낮춰 소근거린다. 꼭 둘만의 작전을 짜는 것 같아 절로 신이 났다. 열일곱이건만 일곱 살 아이 때로 돌아간 것만 같은 기분이다.)
 
아실링 펜들레엄:오늘 하루 정도는 저희 나이 또래처럼 노는 거예요. DOT도 오늘 하루 정도는 봐주겠죠. 다 알면서 보내주는 것 같기도 하고요. (즐겁게 이야기를 하다가 말고 주위를 돌아본다. 다들 사람들도 자신들처럼 나갈 준비를 하고 있나?)
 
다른 페어들 역시 나갈 예정인 듯 잔뜩 들떠 있습니다.
 
각양각색 꾸민 모습이 이제야 제 나잇대 같아 보이네요.
 
작당모의(?)를 하며 식사가 끝날 즈음, 아침부터 반듯한 차림새의 리슬러 부관이 식당에 들어옵니다.
 
리슬러 부관:오늘 나가보실 겁니까.
 
타이머와 카운터들이 외출할지, 외출하지 않을지 확인하러 온 모양입니다.
 
아실링 펜들레엄:(오늘은 기분이 좋으니, 특별히 친절하게 굴기로 한다.) 네. 저랑 헬리는 이제 슬슬 나갈 준비를 하려고요. ... 진짜 자유롭게 시간 보내고 돌아와도 괜찮은 거죠? (나름 친절하게 군것)
 
모처럼의 외출입니다. 게다가, 건국 축제는 매년 한 번밖에 돌아오지 않아요.
 
당연히 즐겨야겠죠!
 
리슬러 부관:예. (별다른 반응 없이 당부한다.) 잊지 마십시오. 군들은 타이머와 카운터고, 세계의 구원자지만, 동시에 개인입니다. 공과 사는 구별해야 하는 법이에요. 개인적인 행동을 할 때마저 ‘구원자처럼’ 굴 필요는 없습니다.
 
타이머가 어딘가를 나갈 때마다, 무언가를 할 때마다 따라오는 이야기였습니다.
 
부담을 갖지 말라는 건지, 오히려 부담을 갖게 하려고 이러는 건지 저의가 헷갈릴 정도로 집요한 충고였지만,
 
그는 올해도, 작년에도, 재작년에도 그렇게 주장했습니다.
 
‘타이머가 본인이 개인임을 이해하고, 행동해야 사회 또한 받아들인다는 것’을요.
 
세계의 구원자라며 추켜 올리는 하인리히 장교의 언행과는 상당히 반대되는 행보였습니다.
 
하인리히 장교:그래, 그래. 내 훌륭한 부관께서 그렇다고 하시는군.
 
그러나 하인리히 장교도 말리는 대신 싱거운 농담이나 덧붙일 뿐이었습니다.
 
아실링 펜들레엄:(농... 담...? 일단 알겠다는 듯 고개 끄덕이긴 한다..) 편하게 쉬다가 오겠습니다..
 
잠깐 다른 생각을 하는 걸 눈치챘는지, 부관이 다시금 묻습니다.
 
리슬러 부관:누군가 바깥에서, 군들에게 무언갈 요구한다면 어떻게 할 거죠?
 
어깨를 반듯하게 편 리슬러 부관이 두 사람을 내려다 봅니다. 상당히 고지식한 얼굴입니다.
 
헬레네 R. 히페리데:(익숙하게 입 연다. 아마도 자주 들어왔던 듯.) 침묵하고 무시로 일관할 것, 어떤 이야깃거리도 흘리지 말 것, 최대한 빨리 그 자리를 벗어날 것. 이렇게 세 가지를 기억해야 합니다.
 
아실링 펜들레엄:네, 헬리가 말한 것처럼 할게요. (헬리가 말하는 거 빤히 보다가 아주 뻔뻔하게 자기도 이미 알고 있었던 내용인 것처럼 이야기한다.)(헹.)
 
정말 우리를 위한 조언일까요?
 
아니면 단순히, 문제가 될 상황에서 ‘그것은 타이머의 개인적인 의견입니다’ 발을 빼기 위한 수작일까요?
 
잘 모르겠습니다. 어렴풋이, 리슬러 부관이라면 후자를 의도했을 것 같단 의심이 들지만……
 
그래도 상관없죠. 나가서까지 체통을 지키라고 요구받는 것보단 낫잖아요?
 
두 사람을 내려다보는 시선에는 별다른 동경도, 애정도, 호의와 영광, 감사마저도 깃들어있지 않습니다.
 
그래서 누군가는 그를 좋아했고, 싫어했고, 편히 여겼고, 불편하게 여겼습니다.
 
대답을 듣고선 만족했는지, 그가 작은 종이를 내밉니다. ‘외출증’입니다.
 
리슬러 부관:경비실에 제출하고 나가시면 됩니다. 그럼, 이만.
 
아실링 펜들레엄:네. 잊지 않고 제출할게요. (외출증 받고 자리에서 일어난다.) .. 갑자기 궁금한 게 하나 생겨서요. 질문하나 해도 괜찮을까요? 밖에서 가져온 것을.. 검사하거나 압수하지는 않죠...? (의심!)
 
리슬러 부관:위험한 물건이 아닌 한, 소지품을 압수하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입구에서 간단한 검사가 있으니 양해 부탁드립니다.
 
아실링 펜들레엄:(이럴 줄 알았다..! 의심도 많기는..) 네, 알겠습니다. 그럼.. 저희는 자리 떠나보겠습니다. (헬리 손잡고 식당에서 떠난다.)
 
헬레네 R. 히페리데:(손 꼬오옥~ 걸을 때마다 머리칼이 쫑쫑 흩날린다)
 
경비실에 외출증을 제출하고, DOT의 정문을 나서, 긴 내리막길을 걷습니다.
 
수도 외곽이기 때문에 축제가 열리는 중심지까지 가려면 약 20분을 걸어야 합니다.
 
입구를 벗어나는 순간 화한 향기가 밀려듭니다. 때 이른 장미 향기가 은은하게 밴 탓입니다.
 
아파트 베란다며 학교의 창문마다 수놓은 새파란 장미가 시선을 훔칩니다.
 
누군가 장미 다발을 한 아름 안고 지나가면, 미처 챙기지 못한 눈물처럼 꽃잎 몇 장이 바닥으로 떨어지곤 했어요.
 
아름다운 풍경이었습니다.
 
마주친 몇몇이 고개를 갸우뚱했지만, 정확히 알아보는 사람은 없었습니다.
 
도심의 풍경은 화려하기 짝이 없습니다.
 
건물 사이로 엮은 긴 줄마다 색색의 깃발, 손수건, 혹은 우산 따위가 걸려 화려하게 하늘을 수 놓습니다.
 
도밍게즈의 국화인 새파란 장미가 창틀과 문지방마다 걸려 있고, 꽤 많은 사람이 품에 안고 있기도 합니다.
 
늘 이맘때쯤이면 날씨가 좋아요. 하늘은 깨끗하고, 바람은 살랑이고, 때 이른 장미 향기가 향긋합니다.
 
운이 좋다면 누군가에게 흰 리본을 묶은 새파란 장미라던가, 풍선을 선물 받을 거예요.
 
거리에는 사람들이 끊임없이 쏟아지고, [광장]과 [골목], [공원]으로 흩어집니다.
 
아실링 펜들레엄:광장부터 가보죠. 맛있는 간식거리가 많으면 좋겠어요. (광장으로 총총)
 
헬레네 R. 히페리데:매해 보는데도 정신을 놓고 구경하게 되는 아름다움이에요. (새파란 장미와 화려한 깃발과 손수건 등의 풍경에 흠뻑 빠졌다. 흥겨운 음악과 사람들의 웃음소리, 그리고 곁에 있는 당신. 어디 하나 부족한 것이 없다. 함께 광장으로 걷는 걸음이 새털구름마냥 가벼웠다.)
 
흰 돌이 깔린 광장의 정중앙에는 커다란 시계탑 분수가 있습니다.
 
아실링 펜들레엄:헬리. 저 카메라 좀 빌릴게요. (주위를 찍고 싶은 건지 카메라를 들고 시계탑에 초점을 맞춰본다.)
 
헬레네 R. 히페리데:네에~! (얼른 목에서 줄을 빼어 넘겨준다.)
 
시계탑은 분침과 초침이 존재하지 않으며, 시침만 존재합니다.
 
타이머의 존재를 기념하는 시계입니다. 정각이 될 때마다 긴 종소리가 울립니다.
 
아실링 펜들레엄:특이한 구조네요... (시계탑 한 번 찍고 분수대를 찍기 위해 근처로 향한다.)
 
분수대에서는 끊임없이 물길이 샘솟습니다. 보고만 있어도 시원해집니다.
 
분수에 새파란 장미의 목을 꺾어 던지며, 어떤 소원을 비는 것은 도밍게즈의 흔한 의식이죠.
 
그때, 마침 지나가던 이가 꽃다발에서 두 송이를 빼어 당신과 헬레네에게 한 송이씩 건넵니다.
 
"꽃을 받아가세요! 모두 행복한 시간 보내시기를!"
 
"우리에게 시간의 가호가 있기를!"
 
새파란 장미는 하늘보다도 더 푸르릅니다.
 
아실링 펜들레엄:(받은 꽃과 헬리를 보다가 분수 쪽으로 더 가깝게 이동한다.) 저는 사실 가호 같은 건 잘 안 믿어요.. 그렇지만.. 이런 식으로 시간 보내는 건 기억에도 좋게 남을 것 같네요. (말이 끝나자마자 장미의 목을 꺾어 던진다.)
 
헬레네 R. 히페리데:(파란 장밋잎을 섬세하게 쓸어본다.) 마침 저도 어디에서 받아올까 했는데, 이렇게 받을 수 있었네요. 어떤 소원을 비실 건가요, 아실? (당신 곁에서 장미의 목을 꺾어 시원한 물줄기 사이로 던졌다.)
 
아실링 펜들레엄:... 앞으로의 시간 동안 제가 계속 행복했으면 좋겠다는 소원이요. 사실 빌고 싶은 게 몇 가지 더 있긴 하지만, 욕심부려봤자 좋을 것은 없을 것 같아서요. (자신의 행복에 네 행복 또한 포함되어 있으니, 그것보다 완벽한 소원은 없었다.) 헬리는요?
 
헬레네 R. 히페리데:저는... ... 이 도밍게즈의 평안을 빌었어요. 여기에 있는 모든 분들의 평안이기도 하겠죠. (양 손 모으고 잠시 눈 감았다. 귓전에 울리는 물소리가 경쾌했다.)
 
광장에는 장미를 파는 사람과 가족 나들이, 데이트를 나온 사람들로 북적입니다.
 
아실링 펜들레엄:(딱 네가 빌만한 소원이라고 생각하며 웃는다. 부디 너의, 그리고 자신의 소원이 이루어지기를.) 사람들도 많고 분수 소리 때문에 시끌벅적하네요. 평소라면 싫겠지만.. 오늘은 좋아요. 자, 그럼 간식 사러 골목으로 가볼까요?
 
헬레네 R. 히페리데:(물살을 타고 흐르는 푸른 잎을 보다가, 곧 다시 당신의 손을 꼭 잡았다. 우리 모두의 소원이 이루어질 수 있기를...) 네! 어서 가 봐요. 맛있는 게 많이 있으면 좋겠네요.
 
수도의 골목 곳곳에는 노점상이 열렸습니다. 온갖 축제 음식이란 음식은 다 찾아볼 수 있을 것 같아요.
 
여러 종류의 소스를 바른 꼬치구이라거나, 과일을 정교한 모양으로 깎아 설탕물을 입힌 사탕,
 
바람에 흔들리는 색색의 솜사탕, 캐러멜을 입혀 튀겨낸 과자들.
 
수도에서 장사하는 이들은 전부 가게를 접고 노점을 냅니다.
 
음식뿐만 아니라 여러 가지 기념품이나 액세서리, 수공예품을 팔기도 합니다.
 
가장 인기인 것은 이번 세대의 타이머를 본떠 만든 봉제 인형이에요.
 
물론, 헬레네의 인형도 놓여 있습니다!
 
트레이드 마크인 양갈래 머리에 영롱하고 맑은 벽안이 잘 구현되어 있네요.
 
가격은 아실링의 용돈으로도 충분히 살 수 있을 법합니다.
 
골목은 내내 시끌벅적하고, 맛있는 냄새가 가득합니다.
 
아실링 펜들레엄:어, 어쩜 저렇게 똑 닮게 만들 수 있는 거죠..?! 머리카락 색도, 눈 색도 정말 헬리의 색이에요...! (헬리 인형 보고 눈 초롱초롱해져서 헬레네 끌고 가게 앞으로 간다.) 여기 있는 헬레네 인형, 전부다 주세요.
 
헬레네 R. 히페리데:앗, 인형이네요. 저번에는 할로윈 에디션으로도 나왔던 것 같은데, 건국 축제 기념으로 새로이 만들어졌나 봐요. 저... 전부 다요?! (자기가 더 놀라서 눈 크게 뜬다.) 가격이 아주 비싸진 않지만 다 사면 가격이 좀 나올 텐데요?
 
아실링 펜들레엄:핼러윈 에디션으로도 나왔다고요..?? ... (그건 지금 못 사...)(속상..) 네, 전부 다요. 하나라도 놓치면 잠을 푹 못 잘 것 같아요. 농담 아니고 정말이에요.
 
헬레네 R. 히페리데:... ... 어차피 인형은 하나만 있어도 되지 않나요? 저도 굿즈가 나오면 모든 타이머들 걸 하나씩 다 사기는 했었지만. (잘 이해가 되지 않는 듯 갸우뚱하면서도 신난 주인이 계산하도록 놔둔다)
 
아실링 펜들레엄:안돼요. 남은 헬레네 인형을 생각하면 마음이 아파요. 그걸 다른 사람들이 안고 있다고 해도 기분이 좋지 않고요. 헬레네 인형도 저랑 있는 편을 더 좋아할 거예요..! (마구 우기며 계산하다가 주인이랑 약간 협상해 보려고 한다.) 제가 이거 한 번에 다 사는데.. (좀 깎아달라는 말..)
 
헬레네 R. 히페리데:그... 그런가요? 물론 저도 아실이랑 있는 게 좋지만... (인형까지? 덕후의 마음을 잘 알지 못해 약간 멍해진 채로 지켜보기만 한다. 와중에 야무지게 흥정까지 하는 모습에 조금 웃음이 나올 뻔하기도 했다.)
 
주인은 고민하는가 싶더니 10%를 할인해주겠다고 하는군요.
 
아실링 펜들레엄:(10%...? 더 깎아달라고 말하려다가 손가락으로 ok 사인한다. 네고 성공!)
... 후후. 헬리, 이 귀여운 미니 헬리들을 보세요. (양손 가득 헬레네 인형이 가득 담긴 종이봉가방을 흐뭇하게 본다.) 저는 세상에서 제일 행복한 사람이에요~..
 
헬레네 R. 히페리데:결국 다 사셨군요... 흥정까지 하시고 대단하신데요, 아실. (사람이랑 대화하기 싫다고 제 뒤로 숨던 모습은 어디로 갔는지... 그렇게 인형이 좋은 걸까? 괜시리 뿌듯해진다.) 이번 축제에서 아실의 존재가 발표되면 다음 축제부터는 아실의 인형도 같이 나오기 시작할 거예요. 그럼 저는 그걸 모조리 사겠어요! 모든 에디션을 놓치지 않고 말이죠...!
 
아실링 펜들레엄:정말 다 살 계획이었거든요. 지갑은 좀 가벼워졌지만.. 마음은 아주 든든해요. (팔도 좀 무거운 것 같고.. 그래도 기쁘다!) 제 인형도 같이 나온다고요...? (그게 팔릴까.. 싶어 미간이 살짝 찡그렸다가 네가 모조리 산다는 말에 폭 풀어진다.) 헬리랑 세트인 것이 있으면 좋겠어요. 커플인형~... (무의식적으로 말해놓고 네 눈치 본다. 이 정도는 괜찮겠지?)
 
헬레네 R. 히페리데:하나는 제가 들게요! (얼른 당신 손에서 종이가방 하나를 받아든다.) 그럼요. 아실의 인형도 나오죠. 얼마나 귀여울지 벌써부터 눈앞에 그려져요. 통통하고 귀여운 봉제인형... 안에 솜이 가득 들어 포근포근하고 말랑말랑한... ... (커플인형이라는 말에 내심 삐거덕했지만 티내지 않으려 일부러 웃음짓는다.) 그러게요! 여기엔 파란 장미가 그려져 있으니 아실 인형에도 파란 장미가 있었으면 좋겠어요.
이제 뭘 좀 먹어볼까요? 아까부터 음식 냄새가 온 골목에 진동하고 있는 것 같네요. 어떤 게 끌리세요, 아실?
 
아실링 펜들레엄:아, 괜찮은데.. 감사해요. (종이가방을 쥐고 있던 손을 보다가 남은 네 손을 잡는다.) 이렇게 손도 잡고 있는 것이면 좋겠어요. 디자인 같은 건 DOT한테 이렇게 해달라 부탁할 수는 없는 걸까요? (제 인형 디자인은 크게 신경 쓰고 있지 않지만, 헬리 인형을 더 귀엽게 디자인할 생각에 갑자기 DOT을 향한 호감도가 올라갔다.) 귀엽고, 통통하고 말랑말랑.. 에다가 파란 장미까지..! .. 아하하.. 좋아요. 분명 예쁜 인형일 거예요. (분위기가 이상하지는 않다고 여겼는지 안심한다.)
저는.. 꼬치 종류가 먹고 싶어요. 한 손에 들고 먹기도 좋고, 먹으면 든든하잖아요. 헬리는요?
 
헬레네 R. 히페리데:(손 잡는 건 아주 익숙하고 자연스러운 일상에 가까워졌는데도, 일련의 대화 때문인지 유달리 닿는 손이 의식된다. 괜시리 손길이 더 뜨거운 것만 같았다. 시선을 옆으로 돌린 채 종이가방을 흔들거리며 걷는다.) 그러게요. 이렇게 사이좋게 나오면 참 좋을 텐데. 그러고 보니 제 피규어도 만들어지고 있다고 들었어요. 그거라면 좀 더 섬세하게 구현될 테니 손을 잡을 수 있도록 조절할 수도 있지 않을까요? (구원자가 곧 연예인인 이 세상...)
그럼 저도 꼬치를 먹을래요. 아, 튀김도요. 한 번에 많이 먹으면 배부를 것 같으니 돌아다니다가 과일 사탕도 먹고 싶어요.
 
아실링 펜들레엄:(손이 비어서 자연스레 잡은 것이 다시 생각해 보니 제 큰 사심같이 느껴져 가방을 쥐고 있는 손에 힘이 들어갔다.) 인형에다가... 피규어라고요..? (인형까지는 몰라도 섬세한 피규어를 만들다니, 정말 이상한 세계야.라고 생각하면서도 그 피규어를 갖고 싶다고 생각하는 자신이 더 이상하게 느껴졌다.) 소식 들리면 저한테도 꼭 알려주셔야 해요.. 꼭이요. 꼭..! 약속!
그럼 꼬치 하나랑 튀김 하나 사서 나눠먹죠. 각자 하나씩 먹었다가는 과일 사탕을 못 먹을 것 같아요.
 
헬레네 R. 히페리데:약속할게요. 소식을 접하자마자 바로 아실에게 달려올게요. (생긋 미소했다.) 전 인형은 샀어도 피규어는 사본 적 없는데, 제 친구 말에 의하면 저는 1시의 타이머라 물 이펙트가 있는 파츠도 따로 추가되어 있다나 봐요. 참 세세하기도 하죠?
좋아요. 한 입씩 나눠먹으면 되겠네요~ (꼬치를 파는 노점상에 가서 윤기 흐르는 맛있어 보이는 꼬치를 하나 받아온다.) 아실은 튀김을 맡아주실래요?
 
아실링 펜들레엄:약속한 거예요. 깜빡하는 것도 안되고요. 잊으면 저한테 간지럼 5분당 하기 벌칙을 당하게 되실 거예요. (장난 안지 진담인지 모를 말을 하며 웃는다.) 만드는 사람도 아주 열심히 만드나 보네요... 예쁘게 만들어주시면 저야 좋은 거죠. 헬리를 닮은 피규어.. 기대돼요~..
(잡고 있던 손 놓고 방금 막 튀긴 것처럼 김이 올라오는 튀김을 사 온다.) 종류별로 조금씩 달라고 했어요.
 
헬레네 R. 히페리데:가, 간지럼 5분이요? (너무 길다는 듯 입이 벌어진다) 안 되겠네요, 벌칙을 받지 않기 위해서라도 반드시 기억하고 있어야겠어요.
(봉지 안에 든 튀김 보며 좋아라한다.) 냄새부터 너무 맛있어 보여요. 아실, 일단 꼬치 먼저 드실래요? 아~ (입가에 대어주었다.)
 
아실링 펜들레엄:네, 5분이요. 저 거짓말 안 한다는 거, 방금 인형 사면서 보셨죠? 아.. 혹시 너무 짧다면 10분으로 늘릴게요~.. (벌어진 입을 보고 나서도 장난은 멈추지 않았다. 오히려 더 짓궂게 군다.)
제가 가게에 가서 눈앞에서 바로 튀기는 것까지 보고 왔어요. (입가에 대주는 걸 보고 거절 없이 한입 먹는다. 남들이 보면 무슨 생각을 할까? 같은 생각이 흘러들어와 심장 근처가 간질거리는 것만 같았다.) 맛있는 걸로 골아오셨네요. 소스 맛이 아주 훌륭해요.
 
헬레네 R. 히페리데:안 돼요, 아실- 5분도 너무 길단 말이에요. (원래도 거짓말 안 하는 성격이긴 하지만 아실 앞에선 정말정말 조심해야겠구나! 곧이곧대로 넘어가서 쩔쩔맨다.) 시장 상황을 잘 파악하고 있어야겠네요.
괜찮은가요? (맛있게 먹는 모습에 뿌듯해하며, 당신이 사 온 튀김도 하나 먹어보았다.) 와아... 막 나와서 그런지 무척 따끈따끈하고 바삭하니 맛있어요. 평소엔 잘 먹을 수 없는 음식이라 그런지 더 맛나게 느껴지는 것 같기도 하네요.
 
아실링 펜들레엄:어머~.. 안된다는 말 들으면 더 하는 사람이 바로 저예요. 방금 아주 큰 말실수하셨어요. (놀리는 것에 제대로 재미 들었나 보다. 진짜 같은 농담하며 얄밉게 웃는다.)
매일 먹는 식사에 익숙해져서 바깥 음식은 못 먹는 건가 했는데.. 그럴 일은 평생 없을 것 같네요. 아주 맛있어요. (맛있게 먹는 너 보며 흐뭇해져있다가 다른 튀김 입가로 가져가댄다.) 그렇죠. 더 드셔주세요. 제가 방금.. 부끄러움을 이기고 아~... 같은 걸 한 거니까요.
 
헬레네 R. 히페리데:아시일... (말끝 늘어진다) 거짓말만 하지 않으면 되는 거죠? 거짓말 하지 않을 자신은 있지만... (혹시 모를 후폭풍이 좀 걱정된다)
아- 해드린 게 부끄러우셨나요? (생각도 못했다는 듯 되묻다가 문득 저도 일반적인 친구들에게는 그리하는 일이 거의 없었음을 상기한다. 그만큼 아실링이 자신에게 특별하단 사실만 다시금 깨닫고 볼이 조금 붉어졌다. 얌전히 입 벌려 받아먹으면서도 시선이 살짝 떨렸다.) 마, 맛있어요. (말까지 더듬었다.) 아실도 더 드세요. 저만 먹자니 죄송스러운걸요.
 
아실링 펜들레엄:헬리가 너무 귀여워서 자꾸 거짓말하게 되네요. 미안해요~.. (이렇게 말하면서 미안한 마음은 좀 있지만, 그렇다고 고칠 생각은 없다. 고쳐지기도 힘들었고.) 거짓말만...이라고 하기에는... (눈치 쓱) 사실 제 유일한 무기가 간지럼 태우기라서요. 제 비장의 카드를 함부로 버리기 아깝네요. 용서하세요. (헤헤..)
아주 부끄러워할 일은 아니라고 생각하지만... 조금요. (흔하게 하거나 받는 일이 없었기에 부끄러움이 슬글슬금 밀려들어왔다. 이번에 네가 받아주지 않으면 평생 기억에 남아 아~같은 걸 하는 것도, 받아주는 일도 없을 것이 분명했다. 물론 네가 받아먹어주면서 그런 생각은 한순간에 싹 사라졌지만 말이다.) 다행이에요. 혹시라도 맛없는 부분을 드린 건 아닌가 걱정했는데. (말을 더듬는 것을 눈치채지도 못하고 행복하게 웃는다.) 그럼요. 저도 맛있게 먹을게요. 헬리도 많이 드세요.
 
헬레네 R. 히페리데:거짓말이 아니어도 간지럽히기 형을 당해야 하는 건가요? 아실이 절 웃게 만들고 싶으시다면 저도 막지는 않겠지만... (초롱초롱한 푸른 눈으로 애절하게 바라본다.) 그나저나 유일한 무기라뇨! 이제 아실에게는 제 1시의 물의 힘도 있는걸요? (와중에 딴지를 건다)
(부끄럽고 당황스러운 혼란이 꼭 입안에서 굴리는 사탕의 향기처럼 기분 좋게 얽혀든다. 튀김을 나눠먹으며 즐겁게 웃는 당신을 보고 있자면 혼란스런 제 마음 정도는 어찌되어도 괜찮지 않을까, 싶어지기도 하였다.) 그럼 이제 과일 사탕을 먹으러 가볼까요? 설탕을 입히고 얼려서 시원하기까지 하다네요. (노점의 소개 문구를 가리켠다.)
 
아실링 펜들레엄:(제 맘에 조금 안 들거나, 단순히 장난치고 싶을 때마다 한다는 말은 하지 않고 씩 웃기만 한다.) 그, 그렇게 예쁜 얼굴로 보셔도 저는 안.. 질 거예요..! (제대로 눈 뜨고 말해야 할 것 같다. 꺅 하더니 눈 질끈 감은 상태를 유지한다.) 그 무기를 헬리한테 쓸 수는 없으니까요. 만약 그럴 일이 있다면... 저는 정말 제 자신이 싫어질 거예요.
(이런 시간이 즐거운지 내향적인 성격도 저리 가라 한다. 이 상태라면 지칠 줄 모르고 하루 종일 놀러 다닐 수 있을 것만 같았다.) 당신과 함께라서 다행이에요. 정말 즐거운 하루고요. (가리킨 손 따라 시선 이동하다가 소개 문구 보고 표정 밝아졌다. 빨리 사 먹으러 갈 생각만 가득하다.) 따뜻한 걸 먹었으니, 차가운 것도 먹어줘야죠. 빨리..!는 좀 그렇고 느긋하게 가기로 해요.
 
헬레네 R. 히페리데:이 정도론 안 되는군요... 아실이 제게 장난을 치고 싶으시다면 어쩔 수 없이 겸허히 받아들일 수밖에요. 혹시나 싶어 말씀드리지만 장난이 싫단 건 아녜요. 단지 제가 간지럼에 약해서... (눈 질끈 감은 모습에 작게 웃음짓는다) 훈련 용도로 쓸 수도 있는걸요~ 저희에겐 대련해줄 만한 이들이 타이머와 카운터, 스물네명뿐인데다 파트너니까요. 너무 안 좋게 생각하지만은 마셔요. (뽀담뽀담)
빨리 가도 느긋하게 가도 상관없지만요. (남은 튀김과 꼬치까지 다 먹고서 사탕을 파는 가게로 천천히 이동한다.) 이건 하나씩 먹을 수 있을까요?
 
아실링 펜들레엄:(좀 더 했으면 넘어갔을지도 모른다며 질끈 감은 눈 뜬다.) 잘 받아주고, 반응이 재밌는 사람한테만 장난치는 법이죠. 또.. 좋아하니까 장난치는 것이기도 하고요. 저는 간지럼에 약한 당신도 아주 좋아해요. (귀엽잖아요. 그것도 아주 많이.) 실수로 뭔가 일이 생기는 것도 좋지 않지만.. 아무튼 안 좋은 일만 안 생기면 좋겠어요. (조금 우울해질 뻔한 거 뽀담뽀담 받고 좀 사라졌다.)
(예전이라면 깔끔하게 식사만 하고 끝냈겠지만, DOT의 식사 후 디저트 식단에 익숙해져서 자신도 모르게 단것을 찾게 되었다.) 부족해서 아쉬워하는 것보다는 그냥 하나씩 사죠. 맛을 다른 걸로 해서 나눠먹을 가요?
 
헬레네 R. 히페리데:(좋아하니까... 별다른 뜻이 담기지 않은 말이겠지만, 괜시리 설레이는 마음에 결정타를 찍는 듯해 얼른 얼굴에 손부채질을 한다.) 안 좋은 일은 생기지 않을 거예요. 언제나 긍정적으로 생각해봐야죠. 괜히 일어나지 않을 일을 미리 생각하며 우울해할 필요는 없어요. (쓰다담~)
(디저트를 좋아하게 된 아실 귀여워...) 좋아요. 딸기와 사과... 바나나도 있네요. 저는 딸기 사탕으로 먹어볼래요. 아실은요?
 
아실링 펜들레엄:(여러 가지 의미가 담긴 좋아하다는 말이었지만. 네가 얼굴에 손부채질을 할만한 뜻도 담겨있는 말이기도 했다. 상냥한 상대고, 자신의 장난도 잘 받아주고, 무슨 일이 없다면 자신과 함께해 줄 짝. 좋아하는 부분도 여러 가지인 상대는 정말 드물어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었다.) 그래야 저랑 당신에게 좋다면야.. 저 역시 긍정적으로 생각해 볼게요.
(즐겁게 종류 보더니, 잠깐의 고민 끝에 사과 맛을 고른다.) 사과가 상큼 달달해서 좋을 것 같아요. 그런 딸기맛이랑 사과 맛 두개로 주문할게요.
 
헬레네 R. 히페리데:앗, 제가 사도 되는데... (한 박자 늦게 지갑을 열었다.) 자주 나올 수 없는 날이니까요. 저 돈 많아요.
 
아실링 펜들레엄:저도 돈은..! .. 돈은... (아까 인형 잔뜩 사면서 가벼워진 지갑 본다.) ... 사주시겠어요. 아주 없는 건 아니지만...
 
헬레네 R. 히페리데:네! (기다렸단 듯 상큼한 톤으로 대답하며 돈을 건넨다.) 인형을 좀 많이 사기는 하셨죠? 그래도 덕분에 제가 살 수 있으니 좋은 기회라고 해야 할까나요~. 이제 아실도 카운터임이 정식으로 밝혀지고 나면 광고나 행사가 많이 들어올 테니 돈을 많이 버실 수 있을 거예요.
 
곧 상인이 사과와 딸기맛 사탕을 하나씩 건네줍니다. 척 보기에도 달고 맛있어 보여요.
 
아실링 펜들레엄:사주신 거 감사히 먹을게요. (네가 사준 거라 좋기는 하지만.. 역시 자신이 샀어야 했다며 속으로 쪼금 아쉬워한다.) 두고 보세요. 나중에 돈이 생기자마자 당신에게 멋진 선물을 할 테니까요. 과일 사탕도 몇십 개. 아니, 몇백 개를 사드릴게요. (아니다. 과일 사탕가게를 사는 게 좋으려나? 진지하게 고민하다가 주문한 사과 맛 사탕 냠 먹는다.)
 
헬레네 R. 히페리데:그... 그렇게까지 많이 먹다간 이가 썩을지도 몰라요. 그 대신 다양한 식당이나 가게에 많이 가보는 걸로 해요. (달래봄) 아실에게 지지 않게 저도 선물을 많이 사드려야겠네요. 뭐가 좋을지 생각해봐야겠어요. 오늘처럼 행사 때 입을 예쁜 원피스는 어떠려나요? (딸기를 합 베어문다. 적당히 언 설탕이 부서지며 다디단 맛이 입안에 가득 풍긴다.)
 
아실링 펜들레엄:역시 가게가 좋은 거겠죠.. 좋아요. 가게 이름은 헬레네의 과일 사탕가게.. 아니지. 좀 더 좋은 이름이 있을 텐데. (벌써 가게 이름이랑 가게 디자인을 생각하고 있다.) 당신이 주는 선물이라면 다 좋아요. 원피스도 당연히 좋고요. 이왕이면 헬리랑 세트인 것이면 더 좋을 것 같아요. (달달한 사탕 안에 상큼한 향이 가득한 사과의 조합이 좋은지 말도 없이 반개를 다 먹어버린다. 눈으로는 여기 것이 정말 맛있다고 말하는 것처럼 바라봤고..)
 
헬레네 R. 히페리데:가... 가게까지요?! (아실의 꿈은 생각보다도 더 원대하구나) 아실이 하고픈 걸 제가 막을 권리는 없지만... 제 이름보단 차라리 아실의 이름을 붙이는 게 더 낫지 않을까요? (조심스럽게 권유해본다.) 그래요. 이왕 사는 거면 저와 함께 맞춘 디자인으로 사야겠네요. (오늘처럼 트윈룩으로 맞춰입으면 잘 어울리겠지? 색은 어떤 게 좋을까, 길이나 계절감은... 가게를 고민하는 아실링과 다를 바 없이 골똘하게 생각 중) 어머. 벌써 반이나 드셨네요. 하나 더 살까요?
 
아실링 펜들레엄:네, 가게요. 혹시 싫으신가요..? (열심히 계획 짜다가 허망해졌다..) 그렇지만... ... 그러면 저와 헬레네 이름이 합쳐진 가게 이름인 걸로 해요. (네 이름을 뺄 수는 없다며 고집부렸다.) 헬리랑 비슷한 디자인이라면 너무 좋아서 방방 뛸 것 같아요. 너무 좋아서 매일 입겠다고 하거나, 아니면 입지 않고 보관해두겠다고 할지도 모르겠어요. (옷에 대해 고민하는 네 옆에서, 아직도 가게에 관한 것을 생각하는 아실링이 있었다. 머릿속으로는 벌써 체인점 100호까지 세웠다.) 하나를 더 사기에는 배가 부를 것 같아서.. 괜찮으시다면 헬리의 딸기맛 한입 먹어봐도 괜찮을까요? 맛이 궁금해서요.
 
헬레네 R. 히페리데:저, 전혀 싫지는 않아요! 오히려 기대되기도 하구요. 하지만 아실이 짓는 가게인데, 지은 사람의 이름이 아닌 제 이름이 들어가면 아쉽지 않으실까 싶어서... 음, 두 이름이 합쳐진 거라면 더 나을지도 모르겠네요. (그 제안에는 고민하다 고개 끄덕였다.) 그럼 아실이 매일 입거나 입지 않으려는 고민을 하지 않도록 비슷한 디자인의 옷을 많-이 사드려야겠네요. 돈이 부족할 일은 없으니까요. (색깔별로 맞추어 옷 사는 상상하며 행복해짐) 물론이죠. 어서 드셔보세요. 딸기맛도 아주 달콤하고 맛있답니다. (아직도 두어 개 남은 딸기를 당신에게로 가져다대준다.)
 
아실링 펜들레엄:헬리를 위해 짓는 가게니까, 당신의 이름이 꼭 들어가야 해요. (마음 같아서는 Dear Helene. 같은 것으로 지을 텐데. 제 이름을 어떻게 넣어야 할지 고민이었다. 물론 돈을 받을 때까지 아직 시간이 남았으니 그 기간 안에 해결하면 될 일이었다.) 그렇게나 많은 선물을 해주신다고요..?? 저 행복해서 죽을지도 몰라요.. 그럼 저는 헬레네가 사준 옷에 잘 어울리는 구두나 액세서리를 선물해야겠어요. (이러면 무한 반복 선물 교환이 되는 것은 아닌가 싶지만, 상상만으로 행복한 것을 보니 그런 것도 괜찮다고 느꼈다.) 감사해요. 하나만 먹을게요. (달콤한 향과 맛에 뭔가 간질거리는 기분까지 겹쳐져 누가 봐도 행복한 사람처럼 사탕을 먹는다. 그 와중에 메인메뉴는 딸기 사탕으로 해야지..라고 계획을 정한다.)
 
헬레네 R. 히페리데:구두와 액세서리까지요? 이미 저를 위한 가게를 지어주시는 것만으로도 너무 많이 받은 것 같은데도요. 하지만 아실에게 받는 것이라면 무엇인들 좋지 않을까요. (매일 옷장 앞에서 코디를 고민할 상상을 하니 웃음이 입가에서 떠날 기미가 없다. 딸기를 소담스레 베어무는 모습을 보다가 남은 딸기는 제 입으로 쏙 넣는다.) 역시 달콤하고 맛있죠? 노점들도 충분히 돌아본 것 같으니 이제 공원 쪽으로 한 번 가볼까요? 또 다른 게 하고 싶으시다면 더 봐도 상관없구요.
 
아실링 펜들레엄:... 과일 사탕 가게로 끝나지 말고, 구두랑 액세서리 가게까지 만들어야겠어요. (DOT에게 충성해야겠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마음에 안 들기는 하지만, 헬레네를 위해 디자인한 구두와 액세서리가 있는 가게를 위해서라면 열심히 활동할 수 있었다.) 가끔 식단에 추가로 넣어줬으면 좋을 정도로 맛있었어요. 그럼 소화도 할 겸 공원으로 가보죠.
 
헬레네 R. 히페리데:... 거상이 될 것 같네요, 아실... (자기와 아실의 이름이 붙은 가게가 하나씩 늘어나는 상상을 한다.) 그러면 한 번 건의를 넣어볼까요? 종종 이런 과일 사탕을 디저트로 달라구요. 특별한 축제에서 먹는 맛과 같을지는 모르겠지만요. (손 잡고 공원으로 총총)
 
광장에서 조금 걸으면 산책하기 좋은 공원이 나옵니다.
 
꽃과 나무를 잘 가다듬어 조경이 아름다운 곳입니다.
 
헬레네 R. 히페리데:저 아치 모양 터널이 보이시나요? (파란 장미로 장식된 아치를 가리킨다.) 손을 잡고 끝까지 걸으면 사랑이 이루어진다는 소문이 있다고 해요.
 
공원의 구석에는 낡은 [교회]가 남아있습니다.
 
아실링 펜들레엄:이렇게 예쁜 곳에는 그런 이야기가 꼭 있는 것 같네요. ... 저는 그런 거 안 믿어요. (아까 장미의 목을 꺾어 던지면서 소원 빌어놓고..) 정말 안 믿어요. (그짓말.) 근데 손은 잡고 싶어요. (이건 진실) 의미 같은 거 없이 저랑 손잡고 걸어가 주실래요..?
 
헬레네 R. 히페리데:(당신을 향한 이 감정이 단순히 친구에게 느끼는 것과 다르다는 건 인지했지만 이제껏 연정을 경험해본 적이 없으니 속단할 수도 없었다. 사실 공원으로 들어와 아치 터널을 봤을 때부터 소문의 내용이 머릿속에 떠돌았었지만, 함부로 사랑이란 이름을 붙일 수 없었다. 당신이 저에게 어떤 감정을 느끼는지도 정확히 모르고 있으니 말이다. 평범한 친구라면 입맞춤을 하지 않겠지만... 본디 똑똑한 사람도 사랑이 결부되면 괜시리 더 걱정이 많아져 상식도 무시하게 되는 법 아니던가.) 어디까지나 전설이겠지요. (맞장구를 치면서도, 손을 잡고픈 마음은 있었다. 당신의 물음에 별 고민 없이 고개를 가벼이 끄덕였다. 아실링이 먼저 믿지 않는다고 선수쳐 말했으니, 한결 안도한 것이다.) 그럴까요, 그럼? (당신의 손을 먼저 찾아쥐었다.)
 
아실링 펜들레엄:(시험 문제에 있는 답은 잘만 적는 능력만 있지, 제 감정이 정확히 어떤 것이라고 아는 머리와 능력은 없었다. 우정이라고 하기에는 제 마음 어디선가 그건 아니라고 말하고 있었고, 호감이라고 하기에는 네게 감히 품어서는 안될 것 같았다. 시간이 지나면 더욱 잘 알게 되겠지 하며 매번 정답을 알아내는 것을 미루었고, 이번도 마찬가지였다. 넌 이 감정에 대해 뭐라고 생각할까? 이 질문 역시 너에게 물어보지 못할 말이었고. 하지만 확실한 건, 사랑에도 여러 가지 방식이 있고, 자신은 헬레네를 여러 가지 의미로 사랑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그럼요. 정말 이루어졌으면 슬픈 짝사랑 같은 건 있을 수 없는 일일 거예요. (손을 잡아준다는 것에 대해 고마웠지만, 약간의 쓴 감정이 남았다. 너는 날 그런 상대로 전혀 생각하지 않아서 그런 것일까?) .. 나중에 헬리랑 이렇게 손잡고 걸을 사람은 아주 복받은 사람일 거예요. 전생에 나라를 구한 사람이겠네요. (그리 말하며 손잡고 걸어건다. 방향은 교회 쪽.)
 
헬레네 R. 히페리데:(감히 쉽게 던질 수 없는 질문이다. 저와 당신의 사이는 꼭 완벽히 평형이 맞추어진 시소처럼 평온했고, 또 가까웠으니까. 자신이 품에 감추고 꺼내지 못하는 질문이 이 무게중심을 어떻게 기울일지 예상이 되지 않았다. 최악의 경우 저를 친구로 여기던 당신의 마음마저 떠나가 제 쪽으로 푹 가라앉을지도 모르지. 서로의 생각을 알지 못하니, 장미꽃의 향기는 달콤하고 부드럽게 두 사람을 감싸건만 서로의 입가에는 머문 미소는 나란히 쓴맛이 났을 것이다.) 지금 제 손을 잡고 있는 분은 아실인걸요? ... ... 저는 앞으로도 아실과 쭉 이렇게 가깝게 지내고 싶어요. (푸른 장미가 너울진다. 제가 곱게 땋아준 당신의 머리칼과 비슷한 빛깔이란 감상이 들었다.)
 
교회는 이젠 사용하지 않는 곳이라 드나드는 이가 거의 없습니다.
 
스테인드글라스 너머로 떨어지는 색색의 빛은 꽤 장관입니다.
 
먼지 냄새가 묻어나지만, 기도를 올리는데 장소는 중요치 않죠.
 
아실링 펜들레엄:(교회 안으로 들어가 볼까 말까 고민한다. 이런 곳은 아직 익숙하지 않다. 믿음이나 기도 같은 것은 자신가 아주 먼 이야기다.) 헬리. 당신은 기도 같은 거 해봤나요?
 
헬레네 R. 히페리데:저는 신앙심이 투철하진 않지만, 종종 교회에 와본 적은 있어요. 찬송가나 목사님의 말씀을 듣고 있자면 복잡한 마음이 한결 편안해지는 것 같아서요. 가끔 기도를 올리기도 했죠. 제 머릿속 상념을 정리하기 위해서도 있고, 여러 자연재해나 인재로 인해 고통받는 이들이 없기를 바라기도 했어요.
 
아실링 펜들레엄:기도로 마음 정리가 가능해요..? .. 저도 기도로 도움 같은 거 받을 수 있을까요. 물론 신보다는 제 마음 편해지는 용도로 하는 것이기는 하지만... 조금 생각 많은 게 있어서요.
 
헬레네 R. 히페리데:결국 기도란, 제 내면과 대화하는 게 아닐까 싶어요. 제 안에 몰아치는 생각들을 차분히 정리하고 가닥을 잡아서 바라는 점들을 말하게 되는 것이니까요. 그런 관점에서 보면 저는 정리가 되더라구요. ... 안으로 한 번 들어가볼까요? 꼭 신앙심이 깊어야 할 수 있는 건 아니니까요.
 
아실링 펜들레엄:그럼 저도 기도의 도움을 좀 봐야겠네요. 교회를... 좀 이용해먹는 기분이지만.. 설마 천벌 같은 거 내려오겠어요. (픽 웃으며 어색한 자세로 기도할 준비를 한다. 내용은 간단했다. 제 선택이 우리의 관계에 좋은 일만 있도록 해달라는 것이었다.)
 
아실링은 간단하게 눈 내리감고 기도를 올립니다.
 
<듣기> 판정
 
아실링 펜들레엄:
듣기
기준치: 80/40/16
굴림: 77
판정결과: 보통 성공
 
“이리로 오세요……. 세상을 구원하기 위해선 ■■■■ 해요…….”
 
어쩐지 애절한 목소리가 아실링에게 속삭입니다.
 
아실링 펜들레엄:구원.. 뭐..? (눈 땡그래져서 주위 돌아본다.) 헬리. 방금 무슨 소리 안 들리셨나요?
 
헬레네 R. 히페리데:(곁에서 양손을 맞잡고 눈 내리감았다가, 갑작스런 반응에 의아해한다.) 네...? 이곳엔 저희뿐이라, 아주 조용한걸요. 뭔가를 들으셨나요?
 
아실링 펜들레엄:이리로 와달라고. 세상을 구원하기 위해선 어쩌고.. 하는 목소리가 들렸어요. (졸렸나? 제 볼 한번 꼬집어본다.) 잘못 들은 것일까요...
 
헬레네 R. 히페리데:... ...? 심상찮은 내용이네요... 하지만 저는 전혀 듣지 못했어요. (조금 걱정스럽게 교회를 두리번거린다.) ... 혹시 모르니 이만 나갈까요? 공원에선 '코마니 호수'란 곳이 가장 유명하답니다. 그곳을 보러 가요.
 
아실링 펜들레엄:오늘 같이 좋은 날에.. 뭔가 이상한 내용을 들은 것 같지만, 우선은 즐겁게 즐기기로 해요. (귀신 목소리도 아니고, 무슨 일이람. 찝찝한 것을 뒤로하고 우선 노는 것에 집중하기로 하며 밖으로 나간다.) 유명한 호수라니. 아주 아름다운 곳인가 봐요? 좋아요. 한번 보러 가요.
 
축제가 아니라도 유명한 관광지로 꼽히는 코마니 호수입니다.
 
바닷물이 드나드는 호수라서 물에서 짠맛이 나고, 물살이 둥글게 돌아가는 것이 특징입니다.
 
호수의 바닥은 반짝입니다. 자갈과 모래 사이에 묻은 소금기 때문입니다.
 
평소에는 바닥이 비칠 정도로 투명한데, 보기보다 수심이 깊어 성인도 발을 딛지 못합니다.
 
그런 탓에 쉽게 생각하고 뛰어들었다가 빠져 죽는 경우가 왕왕 생기곤 했습니다.
 
·· HANDOUT ··코마니 호수━━━━━━━━━━━━━━━━━─코마니 호수가 유명한 것은 건국 축제 시즌이 되면 수면의 색이 변하기 때문입니다. 1년 365일 중 단 이틀, 호수의 물은 새까맣게 변합니다. 바닥을 볼 수 없을 정도로 깊은 색을 띠는 호수는, 무엇을 탄 것도 섞은 것도 아닌데 그저 그렇게 어둠에 물듭니다. 이유는 밝혀지지 않았고, 사람들은 신의 섭리라고 여깁니다. 제13구역을 연상시켜서 무서워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이 시기에 호수에 빠지면 살아 돌아올 수 없다는 소문이 돌아요. 물론 보안관이 항상 주시하고 있으므로 누군가 빠지는 불상사는 일어나지 않습니다. 축제 전야부터 호수에서 추모식이 거행됩니다. 역대 타이머의 이른 죽음을 안타깝게 여기며, 손수 접은 종이꽃을 호수에 띄우는 방식입니다. 검은 죽음 위에 떠다니는 종이꽃들은 마치 등불처럼 희게 빛납니다. 축제가 끝나고, 호수의 색이 다시 변하기 시작할 때쯤이면 종이꽃들은 모두 너덜너덜하게 찢어져 호수 아래로 잠깁니다. 종이꽃은 아주 얇고 부드러운, 물에 잘 녹는 재질을 사용합니다. 때문에 걸핏하면 찢어지곤 하는데, 찢어진 꽃을 띄우는 것은 예의가 아니라고 여겨지므로 주의해야 합니다. 지난 세대 타이머의 가족들이라면 대부분 이곳에 들렀다 갑니다. 
 
호숫가에는 옅은 색의 잔디가 자랐습니다. 봄이 찾아오는 시기, 희고 노란 들꽃이 바람을 따라 고개를 흔드는군요.
 
호수는 온통 검고, 아침인데도 불구하고 종이꽃이 몇 송이 떠다닙니다.
 
호수에 들어갈 수 없도록 세워둔 울타리에는 매달리지 마세요. 삭막한 글귀가 붙어 있습니다.
 
이 무렵 호수에 들리는 사람들의 목적은 ‘타이머의 추모’입니다.
 
감히 도밍게즈의 모든 국민, 이라고 말해도 좋을 정도로 많은 사람이 꽃을 띄웁니다.
 
일평생 세계를 위해 살고, 사람을 구원하고, 죽은 후에도 결국 구원자로 추모받는 삶.
 
이것은 그저, 헬레네와 아실링 또한 겪게 될, 우리가 공유하는 미래입니다.
 
누군가는 명예롭고, 영광되며, 훌륭하다 칭송할지 몰라도 당사자에게는 미묘한 감상으로 다가올지도 모르는 일입니다.
 
아실링 펜들레엄:(남을 구원하다가 정작 자신은 구원하지 못한 사람이라. 영웅의 삶이라고 하기에는 안타까운 것이었다.) 타이머... 구원자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세요?
 
헬레네 R. 히페리데:(검게 변한 호수와, 그 위에 떠다니는 종이꽃 몇 송이. 매해 축제 때마다 보는 풍경인데도 이 호수만큼은 좀처럼 익숙해지기 어려웠다. 언젠가 저 역시 추모의 대상이 되리라는 당사자성 때문이었을까.) ... 숙명, 그리 말할 수 있지 않을까요. (조용히 읊조렸다.) 그 누구도 미래를 원하는 대로 이끌 수 없다지만, 타이머들에겐 예고도 없이 오로지 한 가지 길만이 주어지게 되죠. 그 숙명을 어떻게 받아들이냐에 따라 자신의 정체성을 구원자로 정할 수도 있을 테고, 비극적이고 고통스러운 운명이라 말할 수도 있을 거예요.
저는 기꺼이 받아들이고 짊어지기로 결심한 지 오래지만요. 그래도 호수를 보면, 언젠가 제 다음 타이머가 태어나고 죽음을 맞이하는 순간을 어렴풋 상상하게 되어서... 긍정적으로 볼 수만은 없는 것 같아요.
 
아실링 펜들레엄:... 짝이지만 완전히 같을 수는 없나 봐요. 만약 한 가지 길이 아니었다면, 다른 길을 선택할 수 있었다면.. 헬리는 그럼에도 사람들을 지키는 쪽을 택했을 것 같아요. 저랑 다르게요. (뒤도 안 돌아보고 제가 하고 싶은 대로 살았을 게 뻔했다. 실제로 DOT에게 걸리지만 않았다면 능력이고 뭐고 조용히 살았을 테고.) 이왕 이렇게 된 거, 짝으로서 당신과 함께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고 싶네요. 해피엔딩으로요.
 
헬레네 R. 히페리데:지금껏 열넷에게만 주어지던 숙명이, 이제 스물여덟로 늘어나게 되었네요. ... ... 겉보기엔 타이머는 무척 빛나고 화려해 보이지만, 그 껍질 안에는 세상을 위해 이바지하며 인생을 바쳐야 한다는 진실이 숨겨져 있죠. 다들 말 못할 고민을 많이 안고 계실 거예요. 제가 타이머가 된 지 1-2년쯤 되었을 때, 그러니까 열너덧살 즈음에는 서서히 진실을 파악한 동료 타이머들 중 몇 분께서 집에 돌아가겠다며 소동을 피웠던 적도 있었거든요. 쉽사리 받아들일 수 없었던 거겠지요.
(울타리를 손끝으로 느릿하게 쓸어내린다.) 저와 다른 타이머 분들은 각인이 나타난 지 5년이나 지났으니 각자의 방식으로 받아들였는데, 아실은 1년도 채 되지 않았잖아요. (실제로 당신의 첫인상은 DOT의 규율이나 카운터로서의 삶을 썩 좋아하는 것 같지는 않았으니까.) 오래 함께하고프다고 말해주셔서 기쁘지만, ... ... 저와 함께하는 삶은 아실이 원치 않는 방식이진 않을까, 걱정이 되네요.
 
아실링 펜들레엄:늘어난 만큼 나머지 열넷의 주어진 것의 무게가 덜해졌다면 다행인 것이겠죠. 아마... 저 말고 다른 사람들도 그렇게 생각할 거예요. 깊은 대화를 해본 적은 없지만, 짝을 소중히 여기는 마음만큼은 똑같을 테니까요. 헬리는 어떤가요? 제가 당신의 무게를 조금이라도 줄여드렸나요...? 저는... 그랬으면 좋겠다고 생각해서요. 우린 짝이잖아요. 힘든 일도 앞으로 많이 나눠야 할 상대니까, 그런 것은 익숙해져야 한다고 생각해요.
.. 부담 주려는 것은 아니니 그냥 편하게 이야기 들어주세요. 저는 당신 없이 이곳에 있었다면, 다 그만두고 집에 돌아가려고 했을 거예요. 당신도 알다시피 제가 남을 구하는, 그런 영웅적인 사람은 아니라서요. 자신 하나 제대로 구하지 못하는데 뭐가 영웅이냐며 제대로 된 준비 기간도 갖지 못했을 거예요. 그래서.. 당신에게 매우 감사하고 있어요. 당신이 있어서 그 모든 것들을 이해할 필요도 없이, 제 자리라고 느끼고 있어요. 물론 아직 무조건적인 희생에 대해서는 불만이 있지만.. 아무튼 저는 당신과 함께하고 싶어요. 그래 주실 것이라 믿어요.
 
헬레네 R. 히페리데:... 그러려나요? 카운터가 된 건 너무 갑작스러운 일이라 다들 많이 당황하시지 않을까 싶었어요. 아실처럼 여겨주신다면, 제 입장에서는 너무도 감사한 일이죠. (울타리를 쓸던 손길이 다시금 당신의 손길을 가만히 찾아쥔다.) 그럼요. 저번 카운터와 타이머의 상반된 예언을 들었을 때에도 부담감과 사명감 때문에 마음이 너무 무거웠었는데, 아실이 달래주셨었잖아요. 그때 얼마나 마음이 놓였었는지 몰라요. 제가 눈물을 보여서 아실이 무척 당황하셨던 기억이 나는데, 그건 슬퍼서가 아니라 마음이 놓여서 난 눈물이었답니다.
(생각해보면, 스킨십 실험 때나 능력이 저에게 넘어왔을 때 등등의 많은 사건에서 항상 두 사람이 파트너임을 주지시키는 건 저였다. 이제는 당신이 저에게 당연스럽게 우리가 짝이라 말해준다. 한 달여 남짓한 시간이었지만, 일 년, 혹은 그 이상을 함께한 것처럼 심정적으로 가까워지고 밀착된 느낌이었다.) 정말 고마워요, 아실. 그렇게 말해주셔서요.
서로에게 고마워할 일이 많네요. 긍정적인 영향을 끼치고 있는 거겠죠? ... ... 아실의 자리라고 인식해주신다는 점에, 괜시리 또 감사를 표하고 싶어져요. 열넷에서 스물여덟로 늘어나며 멸망을 막아낼 힘이 얼마나 강해졌는지는 말할 필요도 없을 테니까요. 누구 하나라도 빠진다면 위태로울지도 모를 만큼의 위기가 닥쳐오고 있는 거겠죠. (결연하면서도 진실된 푸른 눈이 당신을 깊이 담는다.) 믿어주세요. 저는 당신의 짝이고 당신은 저의 짝. 결속된 이의 곁을 떠날 일은 없을 거예요.
 
아실링 펜들레엄:당황이야 했죠. 근데 예언이니 뭐니.. 같은 말 같은 것에 익숙한 구역에서 살아서, 빠르게 침착한 것 같아요. 안 들키게 몰래 사는 것에 집중하느라 그랬던 것 같기도 하고요. (문득 아주 냉정하고 이성적이게 행동했던 것들이 다 옛날인 것처럼 느껴졌다. 이곳에 와서, 헬레네와 지내며 자신도 모르게 이성보다는 감성에 생각을 맡기는 것에 익숙해진 것을 어떻게 모를 수 있을까. 예전의 자신이 제 모습을 봤다면 멍청한 짓 그만하고 정신 차리라고 했겠지만, 지금 헬레네와 함께하는 매일매일에서 그렇게까지 신경을 써야 할까? 하는 생각이 깊게 머릿속을 자리 잡았다.)
이곳에 와서 제 많은 것들이 변한 것 같아요. 조금은 혼란스러웠는데. 이제는 정확히 이유를 알 것 같네요. 속이 후련해요. (헬레네를 좋아해 변화된 것이라면 딱 들어맞는 것이었다. 원하지 않는 무게감이나 사명감을 잊는 것도, 비슷한 입장의 사람이라고 해도 좋아하지도 않는 사람과 억지로 대화를 하며 좋게 관계를 지내려는 것도, 너와 함께라면 영웅이 되어보는 것도 괜찮다는 것까지 전부. 잡아진 손을 보며 편안한 미소를 짓는다.) 그냥 당신과 함께라면 뭐든 다 좋을 것 같아요. 물론 우는 당신을 보는 것은 조금 마음이 아프지만.. 앞으로는 웃는 일만 있도록 당신 옆에서 많이 도울게요.
제가 당신을 아주 많이 아끼고 좋아해서, 웬만한 일로 당신 속을 썩일 일은 없을 거예요. 이건 약속해요. 아주 착한 사람으로, 짝으로 있을 테니 한 가지만 들어주세요. 다른 거 다 필요 없고, 방금 말씀해 주신 것만 지켜주시면 돼요. (반대로 말하면 그것이 지켜지지 않을 시에 삐뚤게 굴 것이라는 말이기도 했지만, 지금은 단순히 투정으로 들리는 말이었다.)
 
헬레네 R. 히페리데:... (저와 함께라면 다 좋을 것이다. 그 말이 어떻게 들릴지, 당신은 알고 있을까. 의도한 것일까? 심장이 가라앉았다 싶으면 다시금 빠르게 맥박치게 만들고, 몸에는 열이 오르고, 호흡이 괜히 가빠지려 하는 이 다루기 곤란한 감정이 치솟으려 한다. 이를 무어라 불러야 할지 찾기 어렵다. 굳이 이름을 붙이자면, 당신이 지금 한 말에 담겨있는 감정과 같을까? 그렇다면 그건 무엇일까? 단순히 우정이라 명명하기에는 아슬아슬하고, 단맛이 혀를 스치는 듯 아찔하고, 그러다가도 쓴맛이 오지 않을까 지레 두려워하게 되고...) 저도 당신과 같아요, 아실. 아실과 함께라면 어떤 힘든 일이라도 헤쳐나갈 수 있을 것 같고, 아무리 슬퍼도 나아갈 용기를 얻을 수 있을 것만 같아요. (우리가 '짝'이기 때문에 당연스레 다가오는 감정인 것인지. 모두가 우리와 같은 결속력과 믿음을 느낄지. 호기심 많은 그에게 해결하기 어려운 의문만이 구름처럼 뭉게뭉게 피어오른다.)
저도 아실을 아주 많이 좋아하니까요, 꼭 지킬 수 있게 노력해야겠네요. (어느덧 발그레해진 뺨을 알아채지 못한 채로, 괜시리 떨리는 입꼬리를 살짝 끌어올려 미소했다.) 안 그러면 또 간지럼 형벌을 당할지도 모르니까요?
 
아실링 펜들레엄:(네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도 모르고 그냥 웃는 얼굴을 유지한다. 제 입장에서는 생각을 말하는 것이 어려운 일도 아니었고, 숨겨둘 일은 더더욱 아니었기에 편하게 말할 수 있었다. 물론 감정이 들어가지 않다고 한다면 거짓말일 테지만..) 서로가 같은 생각을 하니 앞으로의 일에 문제는 없겠네요. 무슨 일이 있어도 저와 당신은 잘 지낼 거예요. 분명. (서로를 위해 어떻게 행동하는 것이 다를 뿐이지, 마음만은 같다는 점에서 안락함을 느낀다. 그저 이 안락이 오래가길 바란 뿐이다.)
꼭 그래주세요 해요. 안 그랬다가는 간지러움으로는 끝나지 않을 테니까요. 어쩌면 간지러움이 좋았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할 정도로 못된 짓을 할지도 모르죠. (여전히 농담인지 아닌지 애매한 말을 하며 킥킥 웃는다. 잡은 손을 들어 하늘을 향해 팔을 쭈욱 뻗는다.) 저 때문에 장소랑 안 어울리는 이야기를 계속한 게 아닌가 싶네요. 이제는 편하게 데이트나 할까요?
 
헬레네 R. 히페리데:분명히 그렇겠죠. (한 치 의심 없이 당신의 말에 동의한다. 서로를 위하고 아끼는 마음과 믿음이 있는 한, 틀어질 일은 없을 것이다.) 간지러움 이상의 못된 짓... 어떤 걸지 상상이 가지 않는걸요. (고개 갸웃거린다.) ... 범죄의 길로 빠지시면 안 돼요. 그랬다간 아실을 제압해야 할지도 모르니까요? (매번 범죄나 재해를 막기 위해 일하는 타이머란 입장상 의미심장한 농담이다)
내면에 품었던 생각들을 꺼내두고 이야기할 수 있어 좋은 시간이었는걸요. (맞잡은 손이 올라간 하늘은, 새카만 호수와 달리 여전히 눈부시도록 파랗고 밝았다. 먹구름이 걷힌 기분이었다.)
 
둘레를 따라 쭉 걷다 보면, [종이를 파는 노인]이 보입니다.
 
[함께 종이꽃을 접는 연인]과 [난간에 매달려 있는 아이]도 보입니다.
 
아실링 펜들레엄:(종이로 뭘 만드시는 건가? 노인분 쪽으로 다가가 살펴본다.)
 
얇고 흰 종이를 차곡차곡 쌓아둔 노인은 헬레네를 알아보지 못하는 눈치입니다.
 
노인:어이, 자네들도 꽃을 접고 가게! (눈이 마주치자 손짓한다.)
 
아실링 펜들레엄:뭔가 축제와 관련될 걸 하고 계신 것 같긴 했는데.. 저희도 하러 가요. 축제잖아요. (잘 잡을 수 있을지 없을지는 생각도 하지 않고 일단 꽃 접으러 갔다.)
 
헬레네 R. 히페리데:저를 못 알아보시는 것 같죠...? (노인과 눈이 마주치자 쭈뼛거렸다가 안도한다. 그래도 혹시 모르니 아실 뒤쪽에서 얌전히 따라갔다.)
 
노인:거, 반듯하게 잘 좀 접어보라고.
 
두 사람 모두 <손놀림> 판정
 
헬레네 R. 히페리데:
손놀림
기준치: 10/5/2
굴림: 4
판정결과: 어려운 성공
 
아실링 펜들레엄:
손놀림
기준치: 10/5/2
굴림: 92
판정결과: 실패
 
헬레네는 섬세하게 종이를 만져 퍽 예쁜 꽃을 만들어냅니다.
 
역시 축제에 많이 와본 경험이 있네요.
 
그에 반해 아실링은... 꾸깃꾸깃, 구겨지고 주름지고 말았습니다.
 
노인:에잉, 쯧. 이게 꽃인가? 이게 꽃이냐 이 말이여. (한 장 더 건네준다.) 다시 혀 봐!
 
아실링 펜들레엄:(헬리는 손재주도 대단하고.. 멋지다..! 제 이상한 종이꽃과 헬리의 것 비교하다가 다시 예쁘게 접으려고 노력한다.) 이번에는 예쁘게 접어볼게요.
손놀림
기준치: 10/5/2
굴림: 54
판정결과: 실패
 
노인:에헤이, 그게 아니지. 이건 여기서 이렇게 접고, 저건 저기서 저렇게 접어서... (옆에서 엄청 훈수둠)
 
아실링 펜들레엄:...종이 낭비해서 죄송해요... 제가 이런 걸 잘 못해서...
(속으로는 하나도 안 죄송함)
 
노인:떼이잉... ... 안 되겠구만. 자, 내가 접어준 거라도 받아가. (그 자리에서 예쁜 종이꽃 하나를 만들어낸다.)
(그러면서 주절주절 이야기보따리를 푼다.) 자네들은 타이머를 본 적이 있나?
내가 젊었을 적에 말이야... 그래, 딱 자네들만 했을 때. 그때 우리 마을에 큰 홍수가 났어. 그리고 나도 물을 잔뜩 먹고 판자에 매달려 정처 없이 쓸려 다니고 있었지. 딱 죽을 뻔했다니까.
제1시의 타이머가 아니었다면 나는 그날 꼼짝없이 죽었을 거야. 그 뒤로 감사의 마음을 담아, 축제마다 추모의 꽃을 띄우러 온다네.
 
노인에게 <심리학> 판정
 
아실링 펜들레엄:종이꽃 아티스트 시군요..! (분명 저랑 비슷하게 접은 것 같았는데, 전혀 다른 결과물에 눈 커졌다. 이러면 뭐라고 할 만도 하지..)
심리학
기준치: 60/30/12
굴림: 1
판정결과: 대성공
 
그는 무척 감사하고 있지만, 그 아래에는 자랑의 기색이 깔려 있네요.
 
타이머를 향한 감사는 분명히 진심이지만, 그보다 그는 타이머에게 구원받은 순간을 무척 자랑스러워하고 유별나게 여기고 있습니다.
 
헬레네 R. 히페리데:(이야기를 듣다가 당신에게 속삭인다) 전대 1시의 타이머의 이야기인가 봐요. 그분도 아주 열심히 활동하셨던 타이머셨죠.
 
아실링 펜들레엄:(대충 무슨 상황인지 파악하고 헬리에게 속삭인다.) 아주 인기가 많은 분이셨나 봐요. 저희 나중에 비교 대상으로 욕먹는 건 아니겠죠? (농담~)
 
헬레네 R. 히페리데:... 뒤처지지 않도록 열심히 해야겠어요. (의지를 불태우며 주먹 꾹!)
 
아실링 펜들레엄:.... 노는 것에 집중해서 잠깐 까먹고 있었는데.. 저희 내일 엄청난 일 하는 거네요. 갑자기 긴장돼요... (추욱..)
 
헬레네 R. 히페리데:(축 처진 아실 꼬옥 안아준다) 괜찮아요, 아실! 벌써부터 긴장하실 필요 없어요. 침착하게만 하면 금방 지나갈 거랍니다.
일어나서 좀 걸어볼까요? 호수에 꽃을 띄우고 싶으시면 그래도 되고요. (주의 환기하려 해본다)
 
아실링 펜들레엄:(꼬옥 안겨져서 잠시 칭얼거리다가 기운차린다.) 저는 내일 일이 처음이니까, 옆에서 많이 도와주셔야 해요..
그럴까요? 그럼 제 못난 것이랑 헬리의 예쁜 것 같이 띄우러 가요. (자리 떠나기 전에 옆에 있는 연인을 슬쩍 본다.)
 
헬레네 R. 히페리데:그럼요. 제가 많이많이 도와드리고 이끌어드릴게요. 무사히 잘해낼 수 있을 거예요. (토닥이며 달래준다.)
 
데이트 중인 연인 같습니다. 종이꽃을 접고, 검은 호수에 띄워 보내는 동안 사이좋게 손을 맞잡고 있습니다.
 
떨어질 생각을 하지 않네요.
 
<듣기> 판정
 
아실링 펜들레엄:
듣기
기준치: 80/40/16
굴림: 25
판정결과: 어려운 성공
 
연인의 대화가 들려옵니다.
 
“예쁘지?”
 
“우리 자기는 손재주도 좋아. 그래도 자기가 더 예뻐.”
 
“아이, 참.”
 
시시콜콜한 이야기입니다.
 
아, 그래요. 타이머의 죽음을 추모한다니 뭐니, 다 그럴싸한 명분인 거죠.
 
그제야 주위를 둘러보면, 누구도 꽃을 띄우며 진심으로 슬퍼하거나 울지 않습니다.
 
아실링 펜들레엄:우와.. (작게 놀라다가 고개 돌린다. 어쩌면 이렇게 진심으로 슬퍼하는 것보다는 즐겁게 보내는 축제가 좋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슬퍼한다면 그건 아직 나쁜 일에서 벗어나지 못했다는 것일 테니까. 물론 사람들을 지킨 영웅 입장에서는 다르게 보일 것 같아 기분이 아주 좋지만은 않았다.)
 
헬레네 R. 히페리데:(이미 일찍이 눈치챈 것인지, 별다른 반응은 없다. 다만 잘 접힌 종이꽃을 들고서도 호수 앞에서 띄우지 않고 망설이고 있었다.) ... 아실이 제 것까지 같이 띄워주실래요?
 
아실링 펜들레엄:네? 제가요? 어려운 일은 아니지만.. (왜인지 모르지만 일단 알겠다며 물에 네 것부터 먼저 띄운 후, 그 옆에 제 종이꽃을 띄운다.) 왜인지 물어봐도 괜찮나요?
 
헬레네 R. 히페리데:(종이꽃 두 송이가 수면을 떠다닌다.) 주변에선 진심으로 추모하는 이들도 없고... ... 아실이 오기 전에는 오직 저만이 여기서 진심으로 타이머들의 처지에 공감하고 슬퍼하고 있다 여기니, 마음이 좋지만은 않아서요. 감사해요.
... 사실 이전에도 종이꽃을 띄운 적은 열두 살 때 말고는 없었어요. (그때부터 이런 분위기는 유구했으므로)
 
아실링 펜들레엄:... 분명 그전까지 당신의 행동으로 위로받는 사람이 있었을 거예요. 당신은 잘 행동한 거고요. (네 마음을 달랠 방법을 몰라 한참을 고민하다가 일단 제가 할 수 있는 말만 한다.)
 
헬레네 R. 히페리데:고마워요, 아실. (그제야 천천히 미소한다.) 괜찮아요. 종이꽃을 꼭 띄우지 않더라도, 마음 속으로 추모해도 닿을 테니까요.
 
아실링 펜들레엄:이젠 저도 있으니까. 앞으로는 같이 추모해요. 이런 꽃을 띄우지 않아도 괜찮으니까요. (손으로 네 어깨를 가볍게 토닥이다가 난간에 매달려 있는 아이를 본다.) 근데.. 저 아이 저렇게 내버려 둬도 괜찮을.. 까요..?
 
헬레네 R. 히페리데:그럴까요. 이제는 항상 아실과 함께니까요. (부드럽게 웃다가, 아이를 발견한다.) 어머, 그러게요. 주변에 보호자가 없나...? (서서히 걸음 옮긴다.)
 
아슬아슬하게 난간에 매달려 있는 아이는, 두 사람이 다가가려 하자 문득 뒤를 돌아봅니다.
 
눈이 마주쳤나? 의심했을 때, 아이가 먼저 말을 겁니다.
 
아이: 전 아빠를 만나러 왔어요. 수도에서 일하시거든요.
 
아실링 펜들레엄:(전형적인.. 어린아이구나. 안 물어봤는데 이렇게 하고 싶은 말을 다 하다니. 나도 옛날에는 저랬겠지. 일단 아이가 하는 말 들어본다.) 그렇구나.. 아빠는 어디 계셔? 아니면 다른 어른분들은? 그리고 이렇게 매달려있는 거 위험해.
 
아이는 앳된 얼굴로 당신과 헬레네를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퍽 친밀하게 굽니다.
 
아이: 괜찮아요. 저 균형 잘 잡거든요.
(아실링을 빤히 바라보다가 눈을 내리뜬다.) 주황색 머리 언니, 타이머죠?
옆의 그 언니가 누군지, 저 알고 있어요.
태어나서는 안 될......
 
아이가 말을 채 마치기도 전에,
 
“에리카! 위험하다고 했잖아. 어서 이리 와!”
 
어머니로 보이는 사람이 아이를 챙겨서 끌고 갑니다.
 
헬레네 R. 히페리데:그, 그게 무슨... (아이의 입에서 상상도 못한 말이 나오자 깜짝 놀라 아이와 아실을 연신 돌아본다.) 그런 나쁜 말은 하면 안 돼요.
 
아실링 펜들레엄:(멍하니 멀어지는 애 보다가 헬리 쪽으로 고개 돌린다.) 저 방금 잘못 들은 거 아니죠? 태어나서는 안 될.. 하고 뭐라고 더 말하려고 했던 것 같은데.. (허허..)
 
헬레네 R. 히페리데:잊어버려요, 아실. (고개 젓는다.) 아이가 뭣도 모르고 내뱉은 말일 거예요. 그 나잇대 아이들은 순수하지만 때로 순수하기에 더 못된 언행을 할 때가 있잖아요.
 
아실링 펜들레엄:잘 모르고 한말이라 생각해요. 심각하게 생각하지도 않고요. 그냥 이런 말은 처음이라 조금 놀랐네요. (정말 괜찮다며 넘기려고 한다.)
 
어느덧 하늘이 슬금슬금 어두워지기 시작합니다.
 
댕, 댕, 댕…… 광장의 시계탑이 울어댑니다. 시계를 보니 벌써 저녁 8시입니다.
 
즐거웠나요? 행복했나요?
 
혹은, 설렜나요?
 
아실링 펜들레엄:(설레고, 즐겁고, 행복한 하루였다고 거짓 없이 말할 수 있었다. 이런 축제에 헬리와 함께라면 내향적인 자신도 매일 참가할 수 있다고 여길 정도로 좋은 기억으로 남았다.) 오늘 헬리 덕분에 재밌는 일을 많이 즐길 수 있었어요. 감사해요.
 
헬레네 R. 히페리데:저도, 아실과 함께 축제를 즐길 수 있어서 무척 행복하고 즐거웠어요. 매해 같이 구경하러 나올 수 있으면 좋겠네요. 이런 나날이 많이 주어지지 않으니 더더욱 특별하고 소중한 시간이에요.
 
어떤 시간을 보냈건 돌아가야 할 시간입니다.
 
저 멀리 DOT의 꼭짓점이 보입니다. 우리가 떠나온, 우리가 돌아가야 할 곳이.
 
자, 손을 잡고 돌아갑시다.
 
시곗바늘이 아래로 비스듬하게 고개를 기울이자, 모두 로비에 모였습니다.
 
눈대중으로 인원을 헤아린 리슬러 부관은 서류철에 무어라고 적었습니다.
 
아마 전원 출석했다거나, 문제없음, 이런 걸 쓴 거겠죠.
 
리슬러 부관:타이머 展은 내일, 축제 마지막 날에 정식 개장합니다.
오늘 군들에게 먼저 시간을 내준 것은, 정식 개장 후 방문하기엔 상황이 여의치 않기 때문이죠.
꽤 많은 사람이 몰려오리라고 예상 중인데…… 이런 곳에 오는 사람들은 대부분 ‘여러분에게’ 위험하잖습니까.
 
무해한 국민이라도, 타이머에게 집요한 팬심을 드러내는 경우가 적지 않았습니다. 이런 곳을 놓칠 턱이 없죠.
 
카운터의 존재가 소개된 후에는 훨씬 더 유난스럽게 들끓을 거라고, 무미건조한 우려가 덧붙었습니다.
 
리슬러 부관:공식 일정이라곤 했지만, 견학에 지나지 않으니 가볍게 다녀오면 됩니다.
 
개인으로서!
 
무슨 말인지 아느냐고 묻는 시선이 뺨에 달라붙습니다.
 
설명을 끝낸 리슬러 부관이 자리를 비킵니다.
 
서관의 문은 이미 열려 있었고, 너머에선 하인리히 장교가 몇몇 연구원이나 일반 군인과 함께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리슬러 부관이 앞서 걷자, 곧 어른들이 먼저 DOT를 벗어났습니다.
 
전시관은 DOT에서 멀지 않은 곳에 설립되었습니다. 차를 타고 가기도 우스울 정도로 가까운 거리입니다.
 
검은 철창을 넘어, 아침에 걸었던 야트막한 내리막길을 다시 걷자면,
 
“타이머다.”
 
“하인리히 장교도 있어.”
 
누군가의 입술 사이로 새어 나온 말이 도화선이 되어 이목을 집중시켰습니다.
 
아침보다 선명한 시선이 따라옵니다.
 
호감, 호의, 온갖 곱고 귀한 것들을 모아 가루를 낸 것처럼 부드러운 시선들이…….
 
“그런데, 쟤네는 누구야?”
 
채 떨어지기도 전에, 누군가 묻습니다.
 
“그러게. 저런 교복도 있었나?”
 
“본 적 없는데. 다음 기수의 타이머 아냐?”
 
“그럴 리가 있어? 타이머는 한 세대의 하나뿐이잖아.”
 
“그럼…… 타이머의 부관이라던가?”
 
질문의 꼬리가 꼬리를 물고, 꼬리가 꼬리를 잘라, 계속해서 새로운 꼬리가 돋아납니다.
 
타이머의 근처에서 걷는 카운터의 존재가 퍽 이질적이었던 모양이에요.
 
하긴, 그렇지 않다면 더 이상하죠. 시선은 어느새 호기심이 점철되고,
 
“어, 어, 언니!”
 
소란 사이로 톡 튀어나온 것은 어린 목소리였습니다.
 
어딘가 낯익은 여자아이 둘이 앞을 막고 두 사람을, 아니, 정확히는 헬레네를 물끄러미 올려다봅니다.
 
쌍둥이처럼 차려입은 아이들은 처음 보는 상대였지만 낯이 익었습니다.
 
그럴 수밖에 없죠. 곱슬거리는 머리를 양갈래로 올려 묶은 모양이나, 단정한 옷차림에 주변에 두른 물방울 모형까지...
 
척 봐도 헬레네를 흉내낸 꼴이었으니까.
 
다른 쪽도 마찬가지입니다. 헬레네처럼 꾸며 달라며 부모를 신나게 닦달했겠지, 싶을 정도로 쏙 빼닮았습니다.
 
헬레네 R. 히페리데:어머. (시민들에게는 언제나 다정하고 밝은 모습이었던데다, 자신을 흉내낸 것이 뻔히 보이는 아이들이다. 자연히 표정이 부드럽게 풀린다.)
 
무려 타이머의 시선이 향하자 두 뺨을 발갛게 붉힌 아이들이 잔뜩 긴장한 채로 장미 다발을 내밀었습니다.
 
꽃송이가 활짝 만개한 푸른 장미입니다.
 
헬레네의 근처에 선 아실링에게도 성큼, 장미 향기가 다가옵니다.
 
헬레네와 아실링에게 각각, 장미를 건넨 어린 눈동자들은 오직 두 사람이 그것을 받아주기를 바라며 간절함으로 반짝거립니다.
 
자, 어떻게 할까요?
 
아실링 펜들레엄:(어린애의 장미 정도는 괜찮겠지. 하고 무심코 장미를 받으려다가 멈춘다. 헬레네는 어떻게 할지 보고 따라 하려고 한다. 헬레네는 아이가 주는 장미를 받나?)
 
헬레네 R. 히페리데:고마워요. (잠시 고민하는가 싶다가, 상냥한 미소를 지으며 장미를 받아든다. 원래 성격이라면 아이들을 쓰다듬어주고 좋은 덕담도 해줬겠지만, 시선이나 위치를 생각해 이 정도에서 그친다.)
 
아실링 펜들레엄:(장미를 받은 헬리를 보고 자신도 늦지 않게 아이가 건넨 장미를 받는다. 고맙다 도는 말도 잊지 않고 미소까지 더해준다. 누구냐고 물어본다면 할 말은 없지만...)
 
두 사람이 장미를 받아들자,
 
누군가 총성을 울린 것처럼 하나둘 선물과 이야기를 안겨주기 시작합니다.
 
아직 따뜻한 애플파이, 빨간 풍선, 손수 엮은 사탕 목걸이와 흰 리본을 묶은 파란 장미 수십 송이.
 
구름보다 커다란 솜사탕이라거나 갓 짠 우유와 치즈까지!
 
누군가 아실링의 목에 사탕 목걸이를 걸어주며 친근하게 인사를 건네고, 또 다른 누군가가 헬레네의 어깨를 두드립니다.
 
“직접 보니 생각보다도 더 귀엽게 생겼구먼!”
 
꺄악, 꺄아악. 환호성도 끊이지 않습니다.
 
인산인해. 그야말로 사람으로 이루어진 바다에서 낱말과 단어로 구성된 파도가 몰아쳤습니다.
 
“올해도 무사히 넘길 수 있기를! 더 평온한 내년이 찾아오기를!”
 
누군가 예언의 타이머를 끈질기게 쫓아오며 소리칩니다.
 
“세계 멸망이란 게, 진짜인가? 무언가 신의 계시를 받지 못 했냐고?”
 
“자네들만 믿고 있어. 우리는 언제나 그래.”
 
언니, 오빠, 형, 누나! 저기요! 타이머! 온갖 호칭이 물거품처럼 귓가에 스칩니다.
 
대답을 바라지 않는 일방적인 질문과 호의가 꽃가루처럼 허공을 떠다녔습니다.
 
그 사이를 헤치고 나가는 것은 꽃다발에 얼굴을 파묻는 것처럼 향기로웠어요.
 
향기로웠지만, 숨을 쉬기 어렵단 점에서도.
 
“그런데, 옆에는 누군가?”
 
순간, 바람이 불었습니다.
 
희고 고운 바람과 함께 쏴아아, 파도 소리 같은 것이 일렁이고 줄에 매달린 것들이 일제히 몸을 흔듭니다.
 
꽃향기는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밀물과 썰물이 교차하는 것처럼 시선의 일부가 카운터를 향합니다.
 
“처음 보는데, 역시 부관을 들이기로 한 건가?”
 
곤란한 질문이 당도합니다.
 
아실링 펜들레엄:(이 상황에 자신에 관한 이야기를 말해 좋을 일이 없다고 생각했는지 웃는 낯만 유지한 체 입을 다문다. 어차피 시간이 지나면 알게 될 일이니 그냥 잘 빠져나가려고만 한다.)
 
굳이 미리 말해봤자 좋을 건 없겠죠. 함구를 요구받기도 했었고요.
 
웃으며 대답을 미루는 사이로 익숙한 목소리가 파고듭니다.
 
리슬러 부관:잠시만요.
 
리슬러였습니다.
 
리슬러 부관:지금 다음 장소로 이동 중이라 답변을 드리기 어렵습니다.
 
기계적으로 모든 질문에 대응한 그는 점점 포위망을 좁혀오던 사람들을 물리치고 눈짓했습니다.
 
1. 침묵하고 무시로 일관할 것, 2. 어떤 이야깃거리도 흘리지 말 것, 3. 최대한 빨리 그 자리를 벗어날 것.
 
지금 필요한 것은 3번이겠군요.
 
아실링 펜들레엄:(입 다물고 있길 잘했다. 뭔가 얘기했다가는 한소리 들을 뻔 했다며 입다물고 있던 자신 셀프 칭찬한다.)
 
두 사람은 서둘러 걸음을 빨리하여 자리를 벗어납니다.
 
흰 돌이 깔린 바닥을 밟습니다.
 
건물 사이사이로 난 골목과 도로는 아주 깨끗했습니다. 캐러멜 냄새가 설탕 냄새처럼 느껴질 정도였어요.
 
시끌벅적한 인파를 물리치며 걷는 사이 점점 걸음이 빨라졌습니다.
 
앞으로, 앞으로 나아가도 하인리히 장교들은 보이지 않았습니다. 이미 거리가 꽤 벌어졌던 걸까요.
 
리슬러 부관:받아주지 말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한 발 뒤에서 쫓아온 리슬러 부관이 한숨을 섞어 책망합니다.
 
하지만 그도 쉽지 않은 일임을 아는지 크게 탓하진 않네요.
 
아실링 펜들레엄:(오늘은 헬리랑 즐겁게 놀기도 했고, 기분이 좋으니 한 번만 봐준다. 뭐라 하든 일단 얌전히 듣지만 얼굴에서 웃음이 사라지진 않는다.)
 
골목을 완전히 내려간 후에는 광장을 가로지르는 대신 옆의 도로를 따라 걷기 시작했습니다.
 
리슬러 부관이 덧붙입니다.
 
굳이굳이.
 
리슬러 부관:세계가 군들에게 바라는 것은 모두 이상입니다. 그러니 가끔은 깨트릴 필요가 있어요. 현실을 보여주는 거죠.
그건 나쁜 일도, 잘못된 일도 아닙니다. 그저…… 필요한 일일 뿐.
 
아실링 펜들레엄:(할 말은 많았지만 굳이 입 밖으로 꺼내지는 않는다. 제 윗사람이랑 말싸움해 봤자 좋을 일은 없었다. 피규어도 만들 정도로 사람을 영웅처럼 만들어놓더니, 이상이랑 현실은 구분해야 한다. 이 무슨 말인지.)
(그 마음을 모르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완벽하게 공감해 주고 싶지는 않았다. 오늘은 특별하니까 한 번만 더 봐준다.)
 
의외로 도로에는 사람들이 없어 한적합니다.
 
술에 취한 이들이 가사를 알아들을 수 없는 노래를 떠들긴 했지만 그뿐이었습니다.
 
차도 거의 다니지 않았어요. 드물게 지나가는 차량의 창문이 열리고, 또래로 보이는 아이가 손을 흔들곤 했습니다.
 
타이머를 알아본 거겠죠. 순식간에 지나갔지만.
 
곳곳에서 타이머를 부르고, 외치고, 눈짓하고, 손짓하며, 끌어당깁니다.
 
단순히 개인을 향해 쏟아지는 호의와 호감이라기엔 지나치게 두터운 것입니다. 그리고 옆에서 지켜본 일련의 광경은……
 
<이성> 판정
 
아실링 펜들레엄:
SAN Roll
기준치: 55/27/11
굴림: 98
판정결과: 실패
 
무척 낯선 풍경이었죠. 당연한 일입니다. 처음 와보는 곳이잖아요.
 
리슬러 부관:(손목시계를 확인하더니 앞서 걷는다.) 딱 맞춰 도착했습니다.
 
도밍게즈의 달은 휘영청 밝기만 합니다.
 
하늘에 뜬 달이 너무 밝아서, 전시관이 아니라 달을 향해 걸어가는 것처럼 느껴질 정도였습니다.
 
검은 하늘에는 소원 대신 별이 떠서, 흰 별이 촘촘하게 달려 있었고요.
 
그 밤, 걷는 길은 왜 그렇게 길게만 느껴졌던가요.
 
감상과 달리, 실제로는 도로를 따라 오 분 정도 걸었을 뿐인데도요.
 
전시관은 금세 모습을 드러냈는데, 지나치게 익숙한 생김새였습니다.
 
DOT의 본관을 본떠 지은 것처럼 똑같이 생겼거든요.
 
마중을 나온 전시관의 담당자가 “일부러 그렇게 지었습니다.” 간결한 설명과 함께 하인리히 장교의 옆에 섰습니다.
 
본관의, 아니, 전시관의 문을 넘기 위해 얕은 계단을 오르려던 하인리히 장교가 문득 멈춰섭니다.
 
하인리히 장교:이런, 주인공들이 먼저 들어가도록 양보를 해야겠군.
 
그가 옆으로 비켜서자, 아까 나섰던 문과 꼭 닮은 문이 보입니다.
 
좌우로 나뉜 문은 청동으로 빚고 남색으로 덧칠했는데, 무척 크고 두꺼웠습니다.
 
상당한 무게를 자랑했지만, 누구도 문을 여느라 씨름을 할 필요는 없었어요. 언제나 열린 문이었으니까.
 
DOT의 모든 건물은 현관을 닫지 않습니다. 그것이 전통입니다.
 
시간은 멈추지 않는다. 공간은 단절되지 않는다. 문은 언제나 열려 있어야 한다……
 
전시관은 생각보다 더 정교하게 베껴다 둔 것 같군요.
 
아실링 펜들레엄:(주인공은 무슨.. 그래도 듣기에 싫지는 않다. 전시관의 정교함에 숨죽여 놀란다. DOT은 대단하면서 이상한 곳이라는 생각에 힘이 더해진다.)
 
열린 문 너머로 들어서면 마찬가지로 익숙한 로비가 펼쳐집니다.
 
흰 대리석이 깔린 바닥과 열두 개의 별자리가 그려진 남색 천장, 몇 번이고, 몇 번이고, 붓의 흐름조차 눈치채지 못할 만큼 섬세하게 회칠을 한 벽.
 
DOT의 본관처럼 흠 없고, 점 없이 완벽하기만 합니다.
 
타닥타닥, 바닥을 밟는 소리가 경쾌하게 울립니다.
 
다른 점이라면…… 안내 데스크에 아무도 없단 걸까요.
 
그야, 전시관의 근무시간은 DOT보다 훨씬 짧고, 일찍 끝날 테고.
 
뒤에서 어른들이 느긋하게 따라오는 발걸음 소리가 들립니다.
 
“잘 만들었군.”
 
“장교님이 많이 도와주신 덕분이죠. 저희도 신경을 많이 썼습니다.”
 
둘씩 나란히, 복도를 거닙니다.
 
이렇게 걷자니 첫 만남이 떠오릅니다. 영문도 모른 채 걸었던 복도, 괜스레 뛰던 심장, 수런거리던 목소리, 그리고……. 문 너머의 상대.
 
그러나 이곳은 DOT가 아니고, 두 사람은 이미 만났습니다.
 
:벽 좌우에는 섬세한 벽화가 그려져 있었습니다.
해와 달이 뜬 하늘과 끝을 알 수 없는 넓은 바다, 희고 고운 모래사막, 얼어붙은 땅과 바람이 머무는 들판. 곳곳마다 열네 개의 기둥이 서 있습니다. 신의 손가락이건, 최초의 시곗바늘이건, 혹은 그 둘 다일 기둥들이. 기둥 아래에 진 그림자가 유난히 캄캄합니다. 섬세하게 신경을 쓴 티가 났습니다.
왼쪽을 보아도, 오른쪽을 보아도 그림은 똑같습니다. 다른 점이라면 해가 떴는가, 달이 떴는가의 차이입니다. 왼쪽 복도는 아침을 맞은 세계였고 오른쪽 복도는 저녁을 맞은 세계였거든요.
 
하인리히 장교:이 그림은 세계를 상징하기에 앞서 하루를 상징한다네. 아침과 저녁, 하루는 둘로 나뉘어 있지 않은가.
 
뒤따라오던 하인리히 장교가 아는 체를 합니다.
 
열네 개의 구역을 따라 그린, (정확히 말하자면 구역의 최초, 첫 모습을 그렸을) 벽화가 끝나자 전시관의 입구가 펼쳐졌습니다.
 
문은 세 개입니다.
 
전시관Ⅰ. 구원의 시간
 
전시관Ⅱ. 쌓여온 역사
 
전시관Ⅲ. 지나간 생애
 
문에는 각각 패널이 붙어 있습니다. 원하는 곳부터 둘러보면 됩니다.
 
아실링 펜들레엄:(전시관Ⅰ부터 순서대로 확인한다.)
 
전시관Ⅰ. 구원의 시간
 
:천장과 벽을 모두 남색으로 칠한 곳에는 흰 석고로 빚은 조각상들이 서 있습니다. 조각상의 수는 스물두 개입니다. 두 명의 사람이 한 쌍을 이루는 구조입니다. 하나하나 섬세하게 조각한 것으로 유려한 곡선이 진짜 사람 같습니다.
 
<관찰> 판정 (어려움 이상)
 
아실링 펜들레엄:
관찰력
기준치: 70/35/14
굴림: 24
판정결과: 어려운 성공
 
석고처럼 보이는 흰 결은, 사실 이 세계의 물질이 아니라는 것을 알아챕니다.
 
전혀 처음 보는, 존재를 들어 본 적도 없는 것.
 
아실링 펜들레엄:이건 뭐.. 우주 밖에서 가져온 건가요...? (제 눈을 의심하며 더 관찰한다.)
 
아무리 봐도 짐작하기가 어렵네요.
 
담당자나 장교에게 물어볼까요?
 
아실링 펜들레엄:(하인리히 장교 옆으로 몸 슬쩍 기울인다. 친한척하기에는 여전히 마음에 안 드는 얼굴이지만 최대한 사화성 써가며 말해본다.) DOT은 외계에서 가져온 것으로 조각도 하나요..? 저거 너무.. 이상해서요. 저 조각 말이에요.
 
하인리히 장교:외계라니, 무슨 소리인가. 그냥 대리석이 아닌가? (아무렇지도 않게 되묻는다.)
 
담당자 역시 옆에서 맞장구를 칩니다.
 
<심리학> 판정
 
아실링 펜들레엄:
심리학
기준치: 60/30/12
굴림: 77
판정결과: 실패
 
대리석인가 봅니다. 담당자가 그렇다면 그런 거죠!
 
조각상은 전시관 곳곳에 배치된 구조로 시곗바늘의 방향을 따라 걸으면 차례대로 살필 수 있는 구조입니다.
 
정중앙에는 [높은 탑]이 서 있습니다.
 
아실링 펜들레엄:(높은 탑을 살펴본다.)
 
하나의 거대한 석고를 깎아 만든 탑으로 그저 새하얗습니다.
 
단면은 사각형이고, 위로 올라갈수록 가늘어져 끝은 피라미드꼴입니다.
 
<교육, 지능, 예술, 역사> 중 택 1 판정
 
아실링 펜들레엄:
교육
기준치: 85/42/17
굴림: 50
판정결과: 보통 성공
 
탑의 정체가 ‘오벨리스크’라는 것을 알아챕니다.
 
오벨리스크의 그림자가 바닥으로 드리우면, 꼭 시침 같습니다.
 
그것을 중심으로 조각상들은 각자의 시간에 맞게 제자리를 지키고 서 있습니다.
 
:제1시의 타이머와 카운터를 상징하는, 유리구슬이 쏟아진 바다에 선 조각상. 제2시의 타이머와 카운터를 상징하는, 불붙지 않은 성화에 화살을 겨눈 조각상. 제3시의 타이머와 카운터를 상징하는, 세계수라 부를 법한 커다란 고목 아래 선 조각상과 제4시의 타이머와 카운터를 상징하는, 번개를 쥐고 휘두르는 조각상.
제5시의 타이머와 카운터를 상징하는, 얼음처럼 투명한 유리 속에 갇힌 조각상이라든가, 제6시의 타이머와 카운터를 상징하는, 발아래 온갖 동물을 거느린 조각상. 7시의 타이머와 카운터를 상징하는, 유일하게 머리카락과 옷자락이 흩날리는 조각상도 있었고, 제8시의 타이머와 카운터를 상징하는, 꿈을 꾸듯 눈을 감은 조각상도 있었으며,
제9시의 타이머와 카운터를 상징하는, 발아래 해골을 쌓은 조각상. 제10시의 타이머와 카운터를 상징하는, 각각 허공과 구덩이 안에 서 있는 조각상과, 제11시의 타이머와 카운터를 상징하는, 눈을 감고, 귀를 막고, 입을 닫은 조각상, 제12시의 타이머와 카운터를 상징하는, 차마 잊지 못한 무언가를 돌아보는 조각상……
 
정확히 열두 개. 시작과 끝이 없는 불완전한 조각상들이 서 있습니다.
 
석고로 빚었다지만 온전히 하얀 것을 제외하면 마치 살아있는 사람처럼 생동감이 넘칩니다.
 
그것의 얼굴은,
 
<관찰> 판정
 
아실링 펜들레엄:
관찰력
기준치: 70/35/14
굴림: 79
판정결과: 실패
 
어렴풋이 헬레네와 아실링을 닮았습니다.
 
카운터라면 아실링이 처음이니까, 그럴 수밖에 없겠죠. 다른 모형이 없잖아요?
 
이곳에 이렇게 전시된 기분은 어떤가요?
 
아실링 펜들레엄:(기분이 묘하다. 정확하게 말해서는 기쁘다고 말해야 할지 싫다고 말해야 할지 잘 모르고 있다.) 이거 괜찮아 보이나요? (빤...)
 
헬레네 R. 히페리데:각 시간의 능력을 표현했군요. 무척 아름답고 생동감 넘쳐서, 꼭 당장이라도 움직일 것 같아요. (하나하나 보며 감탄 중이다가, 당신의 시선을 따라간다.) ... 뭔가 이상한 점이라도 있나요?
 
아실링 펜들레엄:... 아니에요. 그냥 당신의 생각이 궁금했던 거예요. (헬리 눈에 이상한 부분이 없다면 괜찮은 것이겠지. 네 말에 그냥 별일 아니라며 넘긴다.)
 
마지막 조각상에게서 시선을 떼고, 다음 관으로 떠나기 위해 걸음을 떼는데, 무언가 앞을 막아섭니다.
 
<행운> 판정
 
아실링 펜들레엄:
기준치: 60/30/12
굴림: 23
판정결과: 어려운 성공
 
문 좌우에 서 있는 조각상을 이제야 발견합니다.
 
좌우에 태양과 달을 끌어안은 조각상이 나란히 서 있었는데, 어찌나 반질반질하게 닦아두었는지 지독하게 투명해서 존재를 눈치채지 못할 지경이었던 것입니다.
 
제0시와 제13시의 타이머와 카운터를 상징하는 조각상이 분명합니다.
 
0과 13은 존재하되 존재하지 않는 수. 그럴싸한 연출이네요.
 
아실링 펜들레엄:(연출에 힘썼구나.. 돈 많이 들었겠다 하면서 손가락으로 툭 건들어본다.)
 
눈치채지 못했다면 지나가다 그대로 부딪혔을지도요.
 
이 역시 다른 조각상들과 같은 재질로 만들어진 것 같습니다.
 
아실링 펜들레엄:(대체 재질이 뭐지? 이곳에 와서 이상하다고 느낀 점이 한두 가지가 아니라며 자세히 살펴본다.)
 
<관찰> 판정 (어려움 이상)
 
아실링 펜들레엄:
관찰력
기준치: 70/35/14
굴림: 86
판정결과: 실패
 
대리석의 한 종류가 아닐까 싶어집니다.
 
아실링 펜들레엄:(주의 깊게 살펴보다가 전시관 Ⅱ으로 이동한다.)
 
전시관Ⅱ. 쌓여온 역사
 
전시관Ⅱ의 내부는 어두컴컴하기 짝이 없습니다. 암실이라고 불러도 좋을 만큼요!
 
여러 개의 의자가 놓여 있고, 전면에는 커다란 스크린이 흘러 내렸습니다.
 
때마침 스크린에는 어떤 영상이 흘러가고 있습니다.
 
리슬러 부관:시청각실이에요. 타이머와 관련된 뉴스 영상이나, 애니메이션 따위를 볼 수 있죠. 시간이 없으니 우리는 생략할 겁니다. 원한다면 수업 시간 중 여유가 있을 때 틀어달라고 요청해두죠.
 
얼핏 스쳐본 영상에는 낯익은 얼굴이 담겨 있습니다. 바로……
 
<관찰> 판정
 
아실링 펜들레엄:
관찰력
기준치: 70/35/14
굴림: 60
판정결과: 보통 성공
 
헬레네와 아실링입니다.
 
무언가 이상합니다. 뉴스, 애니메이션 따위라고 했는데, 저건 진짜 우리잖아?
 
때마침 영상 속 아실링이 입을 엽니다.
 
아실링 펜들레엄:[... 잘 부탁드려요.]
 
맙소사! 헬레네와 아실링이 처음 만났을 때예요. 언제 촬영한 거야?!
 
아실링 펜들레엄:(손가락으로 영상 속 헬레네와 제 모습을 가리키며 석상처럼 굳어있는다. 저건 대체 언제 촬영한 거람. DOT은 어떻게 저걸 허락도 안 받고..? 그 생각을 하자마자 열이 오르다 못해 싸하게 식어서 부관을 노려본다.) 이런 식으로 한다는 얘기는 없었잖아요.
 
DOT 곳곳에는 CCTV가 설치되어 있습니다. 타이머와 카운터의 첫 만남을 담은 영상도 회의실의 CCTV가 담은 것입니다.
 
하인리히 장교:타이머와 카운터의 일거수일투족은 늘 관심을 끌지. 문제가 없는 수위로 편집해서 내보내고 있으니 걱정하지 말게. (하루이틀 일도 아닌데 새삼스럽다는 반응이다.)
 
아실링 펜들레엄:(관심받는 일거수일투족을 다른 곳에 안 보이게 지켜달라고요. 생각하는 것이 입 밖으로 튀어 타올뻔했다. 말한다고 해서 제대로 지켜줄 것 같지도 않았다는 느낌이 들어 결국에는 속으로만 욕을 잔뜩 한다.) 헬리는 이런 거 괜찮아요..?
 
헬레네 R. 히페리데:으음... (부끄럽긴 부끄러운 듯 얼굴이 약간 불그스레해졌다.) 이전에도 종종 홍보 영상으로 DOT에서의 일상에 관련된 내용이 편집되어 나간 적이 있으니 특별할 일은 아니에요. 그렇지만 저때의 광경이 이 전시관까지 보여질 줄은 상상도 못해서 조금 당황스럽기는 하네요.
 
아실링 펜들레엄:하여튼 인형이랑 피규어도 제작되니까요. 이런 영상이야 올라가는 게 당연한 것이겠죠. (내심 악의 가진 말투로 얘기하며 앞머리를 쓸어올린다. 내 인권. 내 초상권...!) 편집도 해주신다니, 익숙해지도록 할게요.
 
헬레네 R. 히페리데:... 사실 이런 일에 익숙해지는 게 좋은 건 아니죠. (안타까운 낯으로 당신 손등 쓸어준다.) 일단, 다음 전시관으로 갈까요? (굳이 여기 더 있어봤자 좋을 것도 없을 것 같고.)
 
아실링 펜들레엄:(초상권 강제로 팔린 값의 돈은 줘야 할 것이다, DOT. 헬레네 앞이라 최대한 얌전하게 굴뿐, 속으로는 저런 생각이나 한다.) 제 얼굴이 나오는 화면이 없으면 좋겠네요. (전시관 Ⅲ으로 이동한다.)
 
턱 없는 문을 넘어서자 전시관Ⅲ의 내부가 훤히 보입니다.
 
전시관Ⅲ. 지나간 생애
 
턱 없는 문을 넘어서자 전시관Ⅲ의 내부가 훤히 보입니다.
 
복도가 없고, 벽도 없는 전시관Ⅲ은 한눈에 모든 곳을 돌아볼 수 있습니다.
 
다만, 천장이 무척 높아서 고개를 다 들어도 위를 볼 수 없다는 점이 눈에 띕니다.
 
그중에 제일 눈에 띄는 것이라면…… 전면의 [액자]들일까요.
 
아실링 펜들레엄:(액자 살펴본다. 장소가 장소다 보니 타이머와 관련된 사진인 건가?)
 
흰 액자는 손바닥 두 개를 합친 크기입니다. 어찌나 개수가 많은지 한 벽면을 가득히 채우고 있습니다.
 
눈을 들어 세기에는 어려울 정도로 많은 수였어요. 수백, 수천 개는 되어 보였으니까.
 
그리고 액자 속에는……
 
당신의 예상대로, 익숙한 얼굴이 걸려 있습니다.
 
역대 타이머.
 
여태까지 우리가 나고 자라며, 혹은 책과 영상을 통해 보았던 이들의 사진이 액자 속에 갇혀 있습니다.
 
까마득하게 기억나지 않는 얼굴도, 교과서에서나 보았던 얼굴도 있습니다.
 
장교를 비롯한 어른들은 짧게 묵념합니다.
 
하인리히 장교:이곳에는 타이머의 사진이 걸릴 예정일세. 죽은 이들을 잊지 않도록.
 
천장이 유난히 높더라니. 1대, 2대쯤 되는 이들의 얼굴은 까마득해서 보이지 않을 지경입니다.
 
사진 속에 갇힌 얼굴들은 하나 같이 비슷해 보였습니다.
 
서로 간에 닮아서가 아니라 모두 타이머라서.
 
사진이란 피사체를 바라보는 이의 시선을 담는 법이니까.
 
……조각상과 마찬가지예요.
 
아래쪽의 빈 액자들에 시선이 닿습니다. 아마 저 중에는 우리의 액자가 될 것도 있겠지.
 
언제가 될까? 평균 연령이 반백 살이라지만, 어디까지나 통계입니다.
 
사진 속에는 상당히 앳된…… 또래의 얼굴도 여럿 보였습니다.
 
그래요. 우리 인생이라는 건 결국……
 
당장 내일, 새로운 부품으로 갈아 치워질지도 모르는 운명인 거였죠.
 
아실링 펜들레엄:(사진을 보고 나서야 그동안 제가 외면했던 것들이 눈에 들어왔다. 평화롭다고 생각한 일상은 한순간에 깨질지도 모른다. 그것이 먼 미래가 아닌 오늘이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자 많은 사진들을 볼 수 없었다.) .. 나는 다를 거예요. (짧게 중얼거리더니 자신만큼 불쌍한 사람들을 위해 잠시 묵념의 시간 가진다.)
 
헬레네 R. 히페리데:(곁에서 눈 내리감고 함께 묵념한다. 코마니 호수에서보다 조금 더 직접적으로 느껴지는 자신의 숙명. 저는 언제쯤 저 액자 속에 걸리게 될까. 저 또래와 같아 보이는 모습일까, 한참 늙은 모습일까... 반짝이고 화려해보이는 능력과 명성 뒤에는 꼭 검은 호수마냥 가려진 것이 많았다.)
 
묵념을 끝내고 고개를 돌리자, 주위에는 아무도 없습니다.
 
어른들은 이미 자리를 비켰습니다.
 
아실링 펜들레엄:어라, 다들 안 계시네요. 밖으로 나가신 걸까요? (두리번..)
 
헬레네 R. 히페리데:저희의 마음을 이해해주셔서, 묵념의 시간을 가지라고 자릴 비켜주셨나 봐요. 아마 바깥에서 기다리고 계시지 않을까요.
다 돌아봤으면 저희도 이만 나갈까요?
 
아실링 펜들레엄:(이상한 쪽으로 배려를 해주기는. 이제는 뭘 해도 곱게 안 보이는지라 코웃음만 나온다.) 네. 나가서 더 좋은 거 보기로 해요.
 
전시관을 모두 살피고 돌아 나오면,
 
<관찰> 판정
 
아실링 펜들레엄:
관찰력
기준치: 70/35/14
굴림: 21
판정결과: 어려운 성공
 
아까는 미처 보지 못했던 [문]이 있습니다.
 
안내 데스크 옆에 딸린 문은 특이하게도 아치 형태를 갖추고 있었는데, 철제라곤 하나도 보이지 않을 만큼 빼곡하게 장미가 덮여 있습니다.
 
장미 향기가 전시관의 바닥으로 가라앉습니다. 죽음을 추모하는 것처럼.
 
아실링 펜들레엄:문이 있네요. 다른 전시관인 걸까요..? (어떻게 꾸며졌을지 내심 궁금한지 문쪽으로 한 발자국 다가섰다가 멈춘다.) 헬리. 저랑 같이 보러 가실래요?
 
헬레네 R. 히페리데:네, 그래요. 어른들은 여기에도 안 계시고... (두리번) 아까는 못 봤던 것 같은데, 전시공간이 또 있었나 보네요.
 
아실링 펜들레엄:다른 곳 다 둘러봤는데 여기만 빼먹기 아쉬워서요. 같이 어울려주셔서 감사해요. (헬리 손잡고 문안으로 들어간다.)
 
장미는 활짝 만개한 탓에 내일이면 시들기 시작할 것 같았습니다.
 
밤 내내 화려하게 피어있다가, 찾아오는 사람들에겐 꽃잎을 떨구겠죠.
 
지금 우리가 가장 아름다울 때를 만끽하고 있는 것이 분명합니다.
 
그렇게 아치문 아래에 섰을 때였습니다.
 
하인리히 장교:자네들, 거기서 뭐 하는 건가?
 
하인리히 장교가 우리를 부른 것은.
 
목소리는 분명히, 등 뒤에서 들렸습니다.
 
뒤를 돌아보면, 하인리히 장교와 리슬러 부관, 그 외 일행들은 입구 근처에 서 있었습니다. 마치……
 
그곳으로 나가려는 것처럼.
 
이쪽은 보지 않는 건가?
 
들어가선 안 되는 곳인가?
 
그렇게 생각하며 아치문을 돌아보자, 귀신에 홀린 것처럼.
 
하인리히 장교:거긴 아무것도 없어. 뭣들 하나. 돌아가야지.
 
흰 벽이 시야를 가립니다. 새파란 장미도, 은색 아치도 없는 평범한 흰 벽.
 
이상한 일입니다. 이럴 리가 없는데. 이럴 리가 없는데…….
 
환각인가? 싶지만 제8시의 타이머와 카운터도 영문을 모르는 얼굴입니다.
 
그러니까, 다른 타이머와 카운터도 모두 이 광경을 목격한 거예요.
 
……단체로 미치기라도 한 걸까요?
 
바깥에선 어른들이 “빨리 나오라”며 우리를 재촉합니다. 아실링, San C(0/1)
 
아실링 펜들레엄:(단체로 피곤해서 헛것을 봤거나, 미쳤거나.. 아님 우리들이 모르는 뭔가가 있는 것일까? 좋게 생각해 보려고 노력도 하지 않는다.)
SAN Roll
기준치: 55/27/11
굴림: 77
판정결과: 실패
SAN Roll
기준치: 55/27/11
굴림: 82
판정결과: 실패
 
이성 1 감소.
 
아실링 펜들레엄:... 이곳에 분명 아치문이 있었어요. 파란 장미로 덮여진 은색 아치요. (미친 사람으로 보이는 한이 있더라도 일단 말하고 본다.)
 
어른들은 얼떨떨한 얼굴로 우리를 바라봅니다.
 
그러나 딱히, 걱정하거나 두려워하는 기색은 아니었습니다.
 
하인리히 장교:파란 장미라니 도밍게즈의 국화가 아닌가. 길한 일이 있으려는 걸지도 모르지.
 
하인리히 장교는 오히려 반기는 모양새였습니다.
 
워낙 속을 알 수 없는 남자니 보이는 그대로 믿을 수는 없겠지만.
 
<심리학> 판정
 
아실링 펜들레엄:
심리학
기준치: 60/30/12
굴림: 75
판정결과: 실패
 
하인리히는 이내 뒤돌아, 먼저 전시관을 나섭니다. 그의 표정을 읽을 수 없게 됐네요.
 
관람은 끝났고, 조각에 불과한 타이머와 카운터에게 이별을 고할 때입니다.
 
달리 말하자면 돌아갈 시간입니다.
 
아실링 펜들레엄:(신체적 정신적 둘 다 피곤함이 몰려온다. 중요한 일을 앞두고 이렇게 힘을 빼놓아도 괜찮은 것이냐며 투정 부리다가 헬리 어깨에 머리 툭 기댄다.) 돌아서 푹 쉬기로 해요.
 
헬레네 R. 히페리데:많이 피곤하시죠. (당신 어깨를 토닥여준다.) 얼른 돌아가서 함께 홍차를 마시고 푹 쉬어요. 내일은 내일대로 바쁜 일이 기다리고 있으니까요.
 
걸음을 옮기는 내내, 잊을 수 없는 장미 향기가 발목을 붙잡습니다.
 
타이머의 상징은 그저 시간일 텐데, 이곳의 시간은 멈춘 듯했고 오히려 때 이른 장미만 만개했습니다.
 
이상하기 짝이 없습니다. 여름도 뭣도 아닌 계절에 핀 장미는 그야말로 불가능한, 기적의 상징이었어요.
 
전시회를 벗어나, 도로를 걸어, 달에서 멀어지는 동안 때마침 광장의 시계탑이 정각을 알리며 울어댔습니다.
 
밤이 깊어 하늘은 어두컴컴합니다.
 
우연일까?
 
혹은 이 또한 어떤 운명인가?
 
그런 생각에 빠진 두 사람은……
 
내일, 무슨 일이 일어날 것인가 따위 알지 못했습니다. 내일의 ‘그 일’이 훗날 우리에게 어떤 의미가 될지도 알 수 없었어요.
 
만약 알았더라면……
 
오늘의 우리는, 결단코 그 문을 열어젖혔을 테니까.
 
.
 
.
 
축제가 한창입니다. 거리는 떠들썩하게 노래하고 춤추는 사람들로 가득합니다.
 
하늘은 구름과 흰 새, 손수건과 종이 가루 따위로 화려하게 꾸며져 있었고, 타이머의 교복, 제복과 비슷한 흰옷을 입은 사람이 유난히 많습니다.
 
희고 고운 색으로 점철된 세계란 어찌나 완벽한지.
 
땅거미가 건물을 기어 다니기 시작하면 하늘은 딱 좋은 색으로 물듭니다.
 
오렌지 마멀레이드처럼 윤기가 도는 주황색이었습니다.
 
갈기갈기 찢어진 구름은 어렴풋하게 사라졌다 드러나기를 반복합니다. 모든 것이 순조로웠습니다.
 
그래, 날이 저물고 밤이 찾아올 때까지만 해도 꼭 그랬어요.
 
수도의 광장에는 커다란 무대가 설치됐습니다. 매해 이맘때쯤이면 설치하고 철거하기를 반복하는 것입니다.
 
오르내리는 흰 차양이 비스듬하게 하늘을 가립니다.
 
가장 어두운 밤이 찾아오는 시간. 세상 모든 것들이 가라앉는 시간을 기다리며.
 
“언제 시작한대?”
 
“곧 시작할걸. 이제 10시잖아.”
 
“나 너무 기대돼. 실물을 보는 건 처음이야.”
 
객석에는 사람들이 빼곡하게 들어찼습니다. 어느 곳이랄 것 없이 빈 자리를 찾아볼 수 없을 지경입니다.
 
무대 뒤편에 서 있는 타이머와 카운터의 귀에도 그들의 소리가 확연히 들릴 정도였으니 말 다 했죠.
 
밤하늘의 별처럼 무수히 많은 존재가…… 이 너머에서 우리를 기다리고 있는 겁니다.
 
네, 오늘은 바야흐로 축제의 마지막 밤.
 
타이머의 존재를 드러내고, 카운터의 존재를 증명하는 순간입니다.
 
‘사이좋은 파트너’의 모습을 연출하라고 내내 요구받은, 그 순간이에요.
 
인이어를 귀에 걸고, 마이크가 제대로 작동하는지 확인하고, 이런저런 상황을 살핀 스태프 하나가 우리에게 묻습니다.
 
스태프: 준비됐나요?
 
아실링 펜들레엄:준비.. 네... (마음의 준비만 덜 된 것 같아서 손톱자국이 남을 정도로 손을 꽉 지고 있다가 헬레네를 마주 본다.) 괜찮다고 한 번만 해주실래요?
 
헬레네 R. 히페리데:(능력을 뽐내기 위해 꾸민 조개 모양 장식이나 산호초 팔찌 등을 한 번씩 매만지며 멀쩡한지 점검해본다. 축제나 행사엔 수도 없이 많이 가보았기 때문에, 비교적 차분한 표정이다. 하지만 무대 너머에서 들려오는 수많은 관중들의 소리를 들으면 심장이 공명하듯 박자를 조금씩 빨리한다. 긴장이나 두려움보다는 설레임 때문이었다. 웃는 낯으로 당신의 손을 대신 꼭 잡아준다.) 아무래도 많이 떨리시죠? 괜찮아요, 아실링. 잘 해낼 수 있을 거예요.
 
아실링 펜들레엄:아.. 감사해요. 저는 이런 게 처음이라서요. (따뜻한 손과 미소 덕에 긴장으로 굳어져있던 몸이 천천히 풀어졌다.) 네. 헬리와 함께라면 잘 해낼 수 있을 거예요. 분명이요. (스태프를 향해 정말 준비 끝났다며 신호 보낸다.)
 
헬레네 R. 히페리데:얼마나 긴장되실까요. 저도 어릴 적 처음으로 사람 많은 행사에 타이머로서 갔을 때는 목소리도 떨리고, 다리도 떨리고, 제가 무슨 말을 했는지도 잘 기억이 나지 않더라구요. (손 주물주물) 침착하고 천천히 해내봐요.
 
스태프: 신호하면 제0시부터 순서대로 나오면 돼요. 두 사람이 함께 나와야 하고, 되도록 친한 티가 나게. 친밀하게. 무슨 뜻인지 알겠죠? 손이라도 잡으면 더 좋고요.
 
스태프는 카메라는 정중앙의 2번을 보라던가, 어렵게 생각하지 말고, 사회자의 지시를 잘 따르기만 하라는 시시콜콜한 조언들을 늘어놓습니다.
 
우리에게 한참 무언가를 떠들던 그는 곧 “네, 네. 준비 다 됐습니다.” 누군가의 호출이 떨어졌다며 잠시만 기다리라고 당부한 뒤 사라졌습니다.
 
무대 뒤편은 어수선하기 짝이 없습니다.
 
모두가 하나같이 이 화려한 쇼를 완벽하게 성공시키려고 발을 동동 구르고 있었거든요.
 
이곳에서만큼은 그 누구도 두 사람에게 관심이 없어 보입니다.
 
그 어느 곳보다 타이머와 카운터를 위한 자리인데, 우스울 뿐입니다.
 
시곗바늘도 평소처럼 움직입니다. 하나, 둘, 셋…….
 
공연 시작인 10시까지는 채 3분이 남지 않았습니다.
 
무대로 올라가는 문을 통해 환한 조명이 떨어집니다.
 
시끌시끌한 목소리가 가득한 곳에서, 옆에 선 사람의 존재감만 뚜렷하게 느껴집니다.
 
들뜨기 시작한, 혹은 긴장하기 시작한 호흡을 간신히 가다듬었을 때,
 
스태프: 자, 이제 시작합니다. 제0시 페어부터 올라오세요.
 
스태프가 손짓했습니다.
 
제0시부터 순서대로 타이머와 카운터의 소개가 이어집니다.
 
사람들은 환호하고, 찬양하고, 기뻐합니다.
 
익숙하게 직감할 수 있었습니다.
 
우리의 모든 일거수일투족이 팔려나간다면, 이 순간 또한 온갖 곳에서 부티나게 팔리리라고.
 
“제1시 페어 올라가세요!”
 
곧장, 그 다음인 헬레네와 아실링의 순서입니다.
 
아실링 펜들레엄:(헬레네가 옆에 있으니 괜찮다. 정말 괜찮다. 같은 내용의 것을 속으로 마구 외우며 최대한 자연스럽게 무대 위로 올라간다.)
 
지시를 따라 무대 위로 걸음을 옮지가, 숨 막힐 것 같은 광경이 펼쳐졌습니다.
 
발아래에 선 사람들의 수는 도저히 눈으로 헤아릴 수 없을 지경입니다.
 
골목에서 겪었던 인산인해는 아이들 소꿉장난처럼 보일 수준이었습니다.
 
네레이스! 네레이스! 네레이스!
 
환호성이 터지고, 마치 마법의 주문이라도 되는 것처럼 사람들은 헬레네의 코드네임을 연호합니다.
 
그중에는 종종 아실링을 향한 시선이 섞여 있기도 했습니다.
 
타이머를 위한 자리에 등장한 새로운 사람이라니! 이상히 여길 만도 하죠.
 
타이머가 부관을 들였다더라. 그런 입소문이 돈 탓인지 그다지 부정적인 시선은 아니었지만…… 의문이 가득했습니다.
 
<이성> 판정
 
아실링 펜들레엄:
SAN Roll
기준치: 54/27/10
굴림: 18
판정결과: 어려운 성공
 
다리가 떨리고, 손안이 축축해지지만, 그래도 참을 만합니다. 괜찮아요.
 
그때, 헬레네가 아실링의 손을 부드럽게 끌어당깁니다.
 
잡은 손은 조명 탓인지 홧홧했습니다.
 
손을 맞잡고, 한 걸음, 두 걸음, 무대의 중앙으로 나아갑니다.
 
가장 완벽한 중앙에 섰을 때,
 
지금입니다. 능력을 펼쳐보일 순간이!
 
아실링 펜들레엄:(다른 페어가 어떻게 준비했을지는 잘 모르겠지만, 지금 자신과 헬레네의 모습을 다른 사람들 기억에 똑똑히 남기겠다며 속으로 칼을 갈았다. 능력을 사용해 헬레네가 뛰어들 수 있도록 많은 양의 물을 이용해 바다 같은 연출을 해본다.)
 
헬레네 R. 히페리데:(인어의 지느러미마냥 하늘거리는 하얀 원피스와 맨발 차림으로 한 걸음 한 걸음 걸어나온다. 아실링이 물의 모양을 바다마냥 잡아내자, 망설임없이 그 안으로 뛰어든다. 양갈래로 묶고 다니던 평소와 달리 풀어헤친 주황색 머리칼과 하이얀 옷자락이 물살의 흐름에 따라 아름답게 선을 그린다. 인어마냥 자유롭게 바다를 노니다 몸을 모로 틀었다. 수면을 향해 손을 뻗어내자, 그 위로 새로이 생성된 물이 불꽃 같은 모양을 그리며 관객들 위로 분수처럼 떨어져내린다. 조명을 받은 물방울들이 마치 보석알처럼 반짝였다.)
 
아실링 펜들레엄:(제 머리색과 비슷한 파란 바탕에 먹물에 물든 것처럼 위에서 아래까지 짙은 검은색이 그러데이션 된 원피스를 입는다. 헬레네의 것과는 정반대인 어두운색의 조합이라 눈에 띄지 않는 것을 대비해 새하얀 손과 발에 채도 높은 파란색 매니큐어를 발랐다. 제가 만든 바다에 작은 회오리를 만들기도 하며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화려한 연출을 하다가 헬레네 쪽으로 손을 내밀고 픽 웃는다.) 어떡하죠. 이 동화에 왕자는 없고 마녀만 있는 것 같아요.
 
헬레네 R. 히페리데:(당신이 조종할 수 있도록 계속해서 물을 만들어냈다. 수면 너머로 관객들의 먹힌 환호성 소리가 들려온다. 물거품마저도 아름답게 일었다. 수면 위로 발돋움하여 헤엄쳐가며 당신의 손을 붙잡고, 환하게 웃는다.) 그렇다면 저는 기꺼이 마녀의 품에 안기겠어요.
 
아실링 펜들레엄:(많은 양의 물을 사용하는 것이 아주 쉬운 일은 아니었으나, 많은 사람들 앞의 네 모습을 가장 아름답게 보여주기 위해 온 집중을 다해 능력을 사용한다. 집중하는 것과는 별개로 눈은 헬레네를 계속 쫓아다니고 있다. 많은 사람들이 지금의 헬레네를 보고 있지만 그 누구도 자신이 보는 시각의 헬레네를 보지는 못할 것이다. 그 특별한 순간을 놓치지 않으려 눈을 깜빡이는 것마저 잊는다.) 그래요. 지상으로 가지 마세요. 바다에서 계속 같이 살기로 해요.
 
시간의 현신. 세계의 구원. 타이머와 카운터.
 
그 이름을 증명하는 능력의 존재에, 사람들은 숨쉬는 것조차 잊을 만큼 일제히 시선을 빼앗겼습니다.
 
바다와도 같은 물이 산산히 흩어지고, 두 사람은 손을 맞잡은 채 관객들에게 허리 숙여 인사합니다.
 
헬레네와 아실링이 모든 것을 끝낸 후에도 잠시간 침묵이 맴돌았습니다.
 
긴 침묵을 깬 것은, 무대 한 편에 비켜 서 있던 어떤 사람이었습니다.
 
사회자:도밍게즈가 가장 사랑하는 타이머가 드디어 이 자리에 섰군요. (박수를 치며 무대 가운데로 걸어나온다.) 오, 그리고 가장 사랑하게 될 타이머도요. 네레이스, 우리에게 직접 소개해주겠어요?
 
매해, 이 쇼맨십의 사회를 맡은 여자입니다.
 
헬레네 R. 히페리데:반겨주셔서 감사합니다. 제 1시, 물의 능력을 부여받은 타이머 네레이스예요. (맑게 웃어보이며 가슴팍에 손 얹고 다시 한 번 가벼이 허리 숙여 인사한다.) 올해의 축제에서도 이렇게 저를 사랑해주시는 모두를 뵐 수 있어 영광입니다.
 
그는 자연스럽게 헬레네와 인사를 나누곤 아실링에게 시선을 돌렸습니다.
 
헬레네 R. 히페리데:그리고 이쪽은 저의 파트너이자 또 한 명의 제1시의 타이머로 남을 분이에요. (당신에게 마이크를 건네준다.)
 
아실링 펜들레엄:(마이크를 건네받고 준비했던 대로 제 소개를 이어한다. 긴장했던 것은 좀 전의 퍼포먼스에서 많이 풀어져있었다.) 처음 뵙겠습니다. 같은 제1시, 물의 능력을 부여받은 브레스입니다. 이렇게 인사드릴 수 있어서 기쁩니다. (웃음이랑 사회성 다 끌어올리며 제대로 인사한다.)
 
사회자:반갑습니다, 브레스! 이 자리에서 소개될, 타이머의 새로운 파트너를 오매불망 기다렸어요.
 
사회자는 그들이 카운터이며, 타이머의 곁에서 세상을 함께 구원할 자라는, DOT의 진부한 대본을 아주 그럴싸하게 연기합니다.
 
새로운 구원자. 타이머의 파트너.
 
시간이 선택한…… 또 다른 증명.
 
아실링의 능력을 두 눈으로 보고, 카운터의 존재를 실감한 사람들은 어안이 벙벙한 얼굴로, 멍청하게 입을 벌린 채 무대 위를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객석이 술렁인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입니다.
 
사람들은 새로운 구원자라는 말에 눈을 홉뜨고, 숨을 들이켜기도 했어요.
 
세계 멸망은 이러니저러니 해도 모두에게 눈엣가시 같은 존재였으니까.
 
잊으려 해도 잊을 수 없고, 무시하려 해도 무시할 수 없으며…… 빼내기엔 너무 두려운.
 
그런 세계 멸망의 징조를, 정확하게 깨부수는 존재의 등장인걸요.
 
헬레네의 코드네임을 연호하던 외침 사이에 아실링의 코드네임이 자연스럽게 섞여들었습니다.
 
태초부터 두 사람이 짝이었던 것처럼, 그렇게.
 
누구도 그 존재에 의문을 표하거나 반감을 제시하지 않았습니다.
 
새로운 카운터의 존재를 실감하는 것도 잠시, 사회자는 익숙하게 다음의 순서를 진행합니다.
 
사회자:DOT의 말로는 타이머와 카운터는 서로 선택받은 운명이라던데, 처음 만났을 때 기분이 어땠어요? 특별한 무언가가 느껴졌나요?
 
아실링 펜들레엄:운명이라는 단어 말고 다르게 대체할 수 없겠네요. 네, 보자마자 단번에 저에게 있어서 중요한 사람이라는 것을 느꼈어요. 제게 있어서 다시는 없을 소중하고 사랑스러운 운명의 짝이라고 생각해요.
 
헬레네 R. 히페리데:눈이 마주치는 순간, 꼭 숨이 멎을 것 같은 아찔한 감각이 느껴졌어요. (끄덕인다.) 운명이라는 말로밖에 표현할 수 없는 감각이었죠. 저희는 항상 서로를 의지하고 챙겨주며 끈끈한 파트너 사이로 지내고 있어요.
 
사회자:꼭 소설에서나 나올 것만 같은 운명이 현실로 나타난 것만 같은 느낌이군요! 영화 속 주인공이 된 듯한 기분이겠어요.
(관객들의 환호성을 들으며 마이크를 아실링에게 건네준다) 브레스, 타이머가 됐을 때 상당히 놀랐겠어요. 어떻게 능력을 자각했는지, 어떤 일이 있었던 건지 모두 궁금해하죠. 짧게라도 이야기를 들려주겠어요?
 
아실링 펜들레엄:놀라지 않을 수가 없었어요. 물론 아주 대단한 일로 자각한 것은 아니지만요. 대청소를 하다가 실수로 어항을 건든 날이었어요. 어항이 바닥으로 떨어지는 것을 보고 놀라서 눈앞이 하얘졌는데, 쨍그랑 소리만 들리더군요. 어항만 깨지고 허공에 물고기랑 물만 있는 것을 보고 알게 되었어요. 물론 제대로 믿게 된 건 손목에 숫자를 보게 된 후였지만요. (이 정도만 말해도 괜찮겠지? 이렇게 하는 거죠?라고 말하는 것처럼 헬리를 바라본다.)
 
헬레네 R. 히페리데:(당신의 인터뷰를 들으며 잘 하고 있다는 듯 중간중간 고개 끄덕여준다.)
 
사회자:사소한 일상에서부터 변화를 느끼게 되고, 이내 그것이 큰 힘으로 거듭나게 되는 것. 타이머들이 능력을 자각하고 키워나가는 공통적인 과정이죠.
브레스 역시 분명 훌륭한 카운터로 자라나실 수 있으리라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그럼, 파트너로서 네레이스는 몇 점인가요?
 
아실링 펜들레엄:몇 점이 만점인지는 안 말해주셨네요. 당연히 만점 파트너죠. (헬레네 얘기 나오자 묘하게 신이 나서 이야기를 늘여놓는다.) 네레이스 덕분에 정말 즐거운 하루를 보내고 있어요. 도움도 많이 받았고요. 그 어떤 사람과 함께한다고 해도, 네레이스만큼 완벽한 파트너는 없을 거예요.
 
헬레네 R. 히페리데:(곁에서 부끄러운 듯 볼 밝히면서도, 온온한 미소가 둥실 떠오른다.)
 
사회자:카운터가 등장한 지 이제 한 달을 조금 넘겼다고 들었는데, 그 짧은 시간에 이토록 가까워지다니. 운명은 운명인가 봐요.
그럼... 애인으로서 네레이스는 몇 점일 것 같나요? 하하하.
 
아실링 펜들레엄:(애인으로서?? 애인으로서??? 조금 뚝딱이다가 아하하 웃는다.) 짓궂으셔라~.. 네레이스는 상냥하고 귀엽고.. 분명 모두가 사랑에 빠질만한 사람이죠. 진짜로 네레이스에게 애인이 있다면 전생에 세계를 구한 사람일 거예요. 점수는.. 꼭 말해야 할까요? 물론 백 점 만점이지만, 애인한테 제 짝을 뺏기고 싶지는 않아서요. (장난스럽게 얘기하지만 진심이었다. 어느 날 갑자기 애인이라며 헬레네가 누군가를 데려오면 질투하다가 화병으로 죽을 것이었다.)
 
사회자:생각보다도 네레이스를 정말로 좋아하시는군요! 여러분, 혹여나 네레이스에게 사랑에 빠지신 분이 있다면 사랑을 고백하기 전 브레스의 단단한 장벽을 먼저 거쳐가야 할 것 같으니, 다들 주의 바랍니다! (유쾌하게 진행한다)
 
몇 가지 짓궂은 질문이 섞여 있지만 대체로 상냥한 편입니다.
 
사회자:지금까지 제1시의 타이머와 카운터를 만나보았습니다. 이제는 제1시 '페어'라고 하게 되겠군요!
앞으로도 도밍게즈를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아실링 펜들레엄:(앞으로 잘 부탁드린다며 고개 숙여 꾸벅 인사했다. 이걸로 끝인가? 손 약간 떨리기 시작했다.)
 
헬레네 R. 히페리데:잘 부탁드려요. (허리 숙여 정중히 인사하고, 환호성 속에서 아실링의 손을 잡는다.) 고생하셨어요! 이만 내려가요.
 
아실링 펜들레엄:저, 저 너무 떨려요... (소곤 얘기하며 헬레네 손 잡고 내려간다. 웃음 유지하던 얼굴이 풀어지고 힘이 추욱 빠졌다.) 저 잘 했나요? 헬리는 이런 걸 어떻게 혼자 다 한 거예요.. 정말 대단해요. 저 떨고 말 더듬은 거 아니죠?? 아... 걱정돼요.
 
탈탈 소리가 날 정도로 털리고 난 후 무대를 벗어날 수 있습니다.
 
계단을 내려오는 내내 다리가 후들거렸다면, 그건 긴장이 풀렸기 때문이겠죠.
 
헬레네 R. 히페리데:(무대를 다 내려오고서야 목소리를 크게 키우며 아실을 안아준다) 정말 잘하셨어요! 무대 위에선 전혀 떨리는 티가 나지 않던걸요. 능력을 보여주는 순간도 연습했던 것보다 몇 배는 더 멋지고 화려했어요.
 
아실링 펜들레엄:(우는소리 내면서 헬레네 마주 안는다. 남들이 보든 말든 떨어질 생각도 없이 칭얼거리기 시작했다.) 저 속으로는 엄청 떨렸어요.. 저 아무래도 배우를 해야 하나 봐요. 능력은 잘 보인 것 같아서 다행이에요. 다 헬레네 덕분이에요. 고마워요.
 
헬레네 R. 히페리데:인터뷰도 능력 구현도 자연스럽게 잘하셨어요, 정말로요. (마주 끌어안고 웃음소리 낸다. 당신의 머리칼 슥슥 쓰다듬어주었다.) 환호성을 들으셨죠? 다 저희를 그토록 환영해주는 시민 분들의 마음인 거예요.
 
이제는 남은 순서를 기다릴 뿐입니다. 스태프가 의자와 마실 것을 갖다 줍니다.
 
스태프: 수고하셨어요.
 
의례적인 인사말과 함께.
 
아실링 펜들레엄:헬리. 저희 다른 타이머 무대도 같이 지켜봐요. 다른 사람들은 어떤 분위기인지 궁금해서요. 네? (칭얼..)
 
헬레네 R. 히페리데:그럼요. 이제 저희 순서는 끝났으니 한결 편안한 마음으로 지켜보기만 하면 되겠어요! (둥가둥가) 여기 물도 드세요. (물병 건네주고)
 
아실링 펜들레엄:감사해요. 헬리도 물 꼭 드세요. 휴식도 취하시고요. (오늘은 열심히 잘 했겠다. 마음껏 둥가 둥가 받겠다며 네 옆에 착 달라붙었다.)
 
다음 순서도 무탈하게 흘러갑니다.
 
누군가 내려오면 누군가 올라가고, 능력이 무대 위를 환하게 장식하고,
 
사람들의 환호성과 연신 쏟아지는 익숙한 이름들을 듣다가, 시시콜콜한 농담 따먹기와 QNA가 이어지는 식입니다.
 
먼저 끝내두니 마음 편하게 이어지는 순서들을 지켜볼 수 있는 건 꽤나 좋네요.
 
아실링은 헬레네 곁에 착 달라붙어 시간을 보냅니다.
 
그리고 드디어 마지막 차례입니다. 제13시, 어둠의 타이머와 카운터의 순서예요.
 
두 사람은 오래 기다린 것이 지루했는지, 금세 계단을 오릅니다.
 
그들이 한 걸음을 내디딜 때마다 무대의 조명이 먹히고, 어둠이 가득해집니다.
 
완전한 어둠 속에서, 제0시 페어가 띄운 빛이 희미하게 별처럼 반짝입니다.
 
밤보다 안온하고, 검정보다 진한 어둠이 완벽히 무대에 내려앉았을 때,
 
파직!
 
날카로운 소리와 함께 무대 뒤편의 조명이 꺼집니다.
 
정전이라도 온 것처럼, 혹은 능력에 잡아 먹힌 것처럼 사방이 어두컴컴합니다.
 
아실링 펜들레엄:(갑작스럽게 주위를 덮친 어둠과 정적에 깜짝 놀라 네 손을 붙잡는다.) 헬리.. 이런 상황 무대 연출에 있던 거 아니죠..?
 
헬레네 R. 히페리데:(무슨 일이지? 조명이 꺼지는 것까진 듣지 못한 일이라, 반사적으로 자리에서 벌떡 일어난다.) 네, 큐시트에도 적혀 있지 않던 일인데... 뭔가 비상상황이 생겼나 봐요.
 
헬레네와 아실링이 주위를 두리번거리면, 가까이 있던 다른 타이머와 카운터들도 놀랐는지 하나, 둘 자리에서 일어섭니다.
 
“뭐야? 무슨 일이야?”
 
그리고……
 
<듣기> 판정
 
아실링 펜들레엄:
듣기
기준치: 80/40/16
굴림: 29
판정결과: 어려운 성공
 
문득 깨닫습니다.
 
묻는 목소리도, 대답하는 목소리도 모두 우리, 타이머와 카운터의 것이라고.
 
스태프의 목소리는 전혀 들리지 않습니다.
 
무대에서 쏟아지던 환호도, 놀란 관객의 수군거림도, 사회자의 양해 멘트도! 모두 들리지 않아요.
 
사위가 어둡기만 한 것이 아니라, 쥐죽은 듯 고요합니다.
 
사회자는 더 말을 하지 않았고, 무대 뒤편에서 바삐 소리치던 사람들도 모조리 조용해졌습니다.
 
똑딱똑딱, 끊임없이 흘러가던 시계 소리도 멈춰버렸어요.
 
제13시 페어가 어둠을 거두자, 인공적인 태양도 조명도 없는 온전한 밤이 찾아왔습니다.
 
희미하게 보라색이 섞인 하늘에는 불온한 별들이 총총 떠 있습니다.
 
붉은색 별이에요. 달도 어쩐지 붉은 듯했어요.
 
그리고 달빛 아래 드러난 광경은 더욱 믿을 수 없는 것이었습니다.
 
산 사람도, 죽은 것들도, 움직이지 않고, 살아있지 않은 모든 것들마저……
 
모두 멈춰버린 것입니다.
 
믿을 수 없는 일이었지만 정말 그랬습니다. 구름도 흘러가지 않았고, 달도 지지 않았습니다.
 
사람들은 꽁꽁 얼어버린 것처럼 멈춰 서 있습니다.
 
12시를 알려야 하는 광장의 시계탑도 조용하기만 합니다.
 
세계의 종말이라기에도, 축제의 마무리라기에도 어울리지 않는 고요함이었습니다.
 
이 순간이 소설이라면, 아마 마지막 문장은 다음과 같았을 겁니다.
 
4월 20일, 도밍게즈의 건국을 축하하는 마지막 날.
 
타이머와 카운터만을 남겨두고, 세계가 멸망했다.
 
……라고!
 
아실링 펜들레엄:.. 지금 시간이 멈춘 거예요..? 대체 어떻게..? (지금 이 상황은 멸망이라고 볼 수밖에 없었다. 능력으로도 어떻게 할 수 없는 완벽한 멸망.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을 것이라는 예감이 들었다.) 헬리.. 우리 어떻게 해야... ...
 
헬레네 R. 히페리데:그... 그런 것 같아요. 멸망이 이런 형태로 오리라곤, 전혀 상상조차 해보지 못했는데. (이런 게 멸망이라니. 전혀 우리들의 힘으로 막아낼 수 있는 게 아니지 않은가? 예언이란 전부 거짓된 것이었나. 당황스러워 어쩔 줄 모르고 모두가 멈춰버린 세계를 망연히 바라보았다.)
 
세계는 타이머와 카운터를 구원자라고 부르지만……
 
멸망과 가장 비슷한 형태의 오늘, 애석하게도 헬레네와 아실링이 할 수 있는 일이라곤 아무것도 없습니다.
 
헬레네 R. 히페리데:(맞잡은 손길이 떨렸다. 하인리히와 리슬러 등 DOT의 익숙한 얼굴들이 있는 곳으로 걸어간다.) 장교님도... 부관님도... 모두 멈춰버렸어요.
 
아실링 펜들레엄:(헬레네를 따라간 곳에서 장교와 부관을 보고 창백해진 얼굴에서 헛웃음이 흘러나왔다. 시간이 멈추는 능력이 있다면 저 얄미운 사람들의 입과 정강이를 때려주었을 것이라며 속으로 이를 갈고는 있었지만, 그런 상황보다 더 심각한 일이 일어날 줄이야.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주위를 더 둘러보다가 헬레네 어깨를 잡는다.) ... 여기에 계속 있는다고 해결될 것 같지는 않아요.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없는 것 같아요, 헬리.
 
헬레네 R. 히페리데:... ... 도저히 믿기지 않아요, 아실. (항상 모든 상황에 답을 알고 있는 것처럼 굴었던 하인리히와 리슬러이니, 이 이변에 대한 대비책도 당연히 있을 줄 알았다. 시간이 멈추더라도 우리만은 움직이는 것처럼, 이들은 멀쩡히 살아 움직일 것만 같았다고나 할까.) 대체 어떻게 이런 일이...
(쉬이 발걸음이 떨어지질 않았다. 굳어버린 사람들을 하나 둘씩 훑어보았다. 때로 팔이나 어깨를 흔들어보기도 하였다. 하지만 그 모든 끝이, 세상이 완전히 굳었음을 의미할 뿐이었다.) 왜 우리만은 멀쩡히 움직일 수 있는 걸까요? 이게 우리에게 내려진 형벌일까요? 시간이 멈추기 전에, 세상을 구하지 못해서...?
 
아실링 펜들레엄:(자연재해나 멸망에 관한 이야기는 많이 알고 있었으나, 지금 눈앞의 일은 가장 고요하고 처참한 종말이었다.) 형벌이라뇨. 우리들은 절대로 잘못하지 않았어요. 조금의 죄도 없고요. 저희는 후회할 일 없도록 열심히 할 일을 했잖아요... 그러니까 그런 말 하지 마세요. 죄책감 가지지 마세요. ... 헬리 당신이 얼마나 노력한지 알고 있어요. 얼마나 사람들과 세상에 애정을 담은 지도요. 그러기 때문에 지금 마음이 아프고 힘이 들겠지만 이 모든 일에 대한 원인을 그런 식으로 돌려서는 안돼요. 네?
 
헬레네 R. 히페리데:(어쩌면 징조가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걸 놓쳐서 이 지경이 된 건지도 모른다. 부정적인 생각이 자꾸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었다. 눈물이 날 것만 같은 광경에 입술을 세게 깨물며, 당신의 어깨에 툭 기대었다.) ... ... 네, 저희의 잘못은 없는 거겠죠? (그렇게 믿지 않으면 견딜 수 없을 것 같았다.)
 
아실링 펜들레엄:.. 헬리는 바보예요. 부정적인 생각하고 있는 거죠. 제가 아는 사람들 중에서 헬리가 제일 똑똑한 사람인데, 왜 지금은 바보같이 구세요. (자신은 정말 영웅이 될만한 사람이 아니었다. 지금 이런 상황이 생겼음에도 세상보다 헬리의 상태를 더욱 걱정하고 있었다. 두 팔로 끌어안고 토닥이는 것을 계속한다.) 자연재해를 인간의 힘으로 막을 수는 없죠. 이번도 그런 거예요. 우리는 잘못한 게 없어요.
 
헬레네 R. 히페리데:... 미안해요. 저는, 도저히 멸망이 이런 식으로 오리라곤 상상조차 하지 못해서... ... 이 많은 사람들이, 순식간에... 4구역만 이렇게 된 걸까요? 다른 전 구역도 모두 이렇게 되어버린 걸까요? 연락을 취해봐야 해요. 그래서, 어떻게든 '멈춰버리지'않은 사람이 있는지 확인을...
(세상이 이지러지고, 귓가가 웅웅대며 울려오는 것 같은 기분이다. 그런데도 너무도 조용했다. 카운터와 타이머 스물여덟의 소리만을 빼면, 원래는 생활소음으로 가득 차있어야 할 세상이... 너무나도 깊은 침묵에 빠져 있었다. 그것이 그를 견디기 어렵게 했다.)
 
아실링 펜들레엄:이런 식의 멸망이 올 것이라고는 그 누구도 상상하지 못했을 거예요. DOT도 몰랐을 거예요. 알고 있었다면 이곳으로 다시 돌아와서 얼굴에 주먹을 날려버릴 거예요. (오직 4구역만 멈춘 것일까? 그렇게 희망을 가지기에는 지금의 상황이 너무나도 처참했다. 희망을 가지는 것이 두려울 정도로 암울한 상황에서 감히 그런 곳이 있을 것이라는 말을 꺼내기 어려워 입을 다물고 있는다.)
... 일단 좀 쉬어야 할 것 같아요. 헬리. 저 피곤한데 편한 곳에서 같이 있어주실래요? 혼자는 싫어요.
 
헬레네 R. 히페리데:... ... 네, DOT가 알았다면, 그 누구보다도 솔선수범해서 막으려 나섰을 테니까요. (그리고 그 선봉장에 제가 있었을 테다.)
DOT로 돌아갈까요? 저희의 숙소가 있는 곳으로... ... 지금은 시민들이 멈춰 있는 광경을 더는 못 보겠어요. (희미하게 속삭인다.)
 
아실링 펜들레엄:저희 방으로 돌아가요. 오늘 너무 긴장했고, 능력을 많이 써서 피곤하네요. 배도 좀 고프고요. (피곤해 지쳐있는 것은 아니었지만, 지금 당장은 헬레네와 함께 자리를 떠나야 했다. 조금이라도 안식을 취하지 않으면 금방으로도 혼절할 것 같은 네 모습에 손을 잡고 자리에서 벗어난다.) ... 저희 방으로 돌아가서 차 마시기로 해요. 따뜻한 차 한 잔은 마실 수 있겠죠? 그리고 일찍 잠에 들기로 해요. 오늘도 같이 자요. 제가 당신 옆에서 있을게요.
 
헬레네 R. 히페리데:네, ... 그렇게 해요... (너무 큰 충격으로 머리가 굳어버린 듯, 제대로 된 사고를 하기가 어려웠다. 당신이 무슨 말을 하는지 거의 알아듣지도 못한 채 기계적으로 대답했다. 손을 맞잡은 채 비척거리며 무대를 벗어나 DOT로 향한다.)
 
두 사람은 달빛 아래에서 함께 DOT로 돌아갑니다.
 
돌아가는 길 중간중간, 멈추어버린 사람들이 보입니다.
 
그 누구도 예외란 없습니다. 타이머와 카운터를 제외한 모든 생명은, 생명이 아닌 것마저도, 얼어붙었습니다.
 
아실링 펜들레엄:(작은 숨소리마저 들리는 정적에 눈을 질끈 감고 DOT으로 걸어갔다. 옆에 있는 헬레네보다는 침착함을 유지한다고 볼 수 있었지만, 그렇다고 아무것도 느끼지 못하는 것은 아니었다. 그 어느 때보다 즐겁고 빛나야 할 날에 이런 일이라니. 이런 상황이 오자 DOT을 더 이해할 수 없었다. 맞물린 이 사이로 어금니가 스쳐가면서 우둑 소리를 냈다.) ... 차고 뭐고 일단 잠에 드는 게 좋을 것 같아요. 지금은 아무것도 생각하지 말고 같이 자요.
 
헬레네 R. 히페리데:(아무런 표정도 없는 표백된 낯으로 서관의 건물로 들어서 계단을 올랐다. 숙소의 문을 열고 익숙한 방의 풍경을 볼 때까지도 도저히 실감이 나지 않는 현실이었다. 차라리 전부 다 꿈이라면 기분 나쁜 악몽을 꾸었다며 떨쳐내버릴 수라도 있을 텐데. 옷을 겨우겨우 갈아입고 세수를 했지만 푸른 눈은 초점이 돌아올 생각을 하질 않았다. 당신이 잘 준비를 하고 올 때까지 침대에 두 다리를 모으고 웅크려 앉은 채 허공만을 바라보고 있었다.)
 
아실링 펜들레엄:(눈에 띄게 상태가 안 보이는 헬레네의 모습을 보고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처참함을 느꼈다. 이번 일이 멸망이 아니었다면, 분명 이번 밤은 여러 가지 이야기를 나누며 즐겁게 잠에 들었을 텐데. 그럴 날이 과연 오기는 할까? 희망 같은 것은 잡고 있지도 않았고, 차갑게 이성을 유지하려고 애쓴다.) 헬리... 먼저 누워있지 그랬어요. (두 손으로 네 양 볼을 감싼다. 단 한 번도 보지 못한 표정. 절대로 보여주지 않을 것이고, 볼 일도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던 표정을 이렇게 보게 될 줄은 몰랐다.) 오늘은 제가 팔베개해 드릴게요.
 
헬레네 R. 히페리데:그래도... 아실과 함께 눕고 싶어서요. (당신의 손길이 닿는 대로 가만히 눈 내리감는다.) 저는 좋아요. 하지만 아실 팔이 저리진 않을까, 걱정이네요.
 
아실링 펜들레엄:오늘 밤에 헬리를 안지 않으면 잠 못 들 것 같아서 그래요. 잠든다고 해도 악몽을 꿀 것 같고요.. 그냥 저를 위해서 하루만 안겨주세요. 불편하다면 언제든 빠져나가셔도 좋아요. (볼에서 손 내리고 침대 안쪽으로 먼저 들어가 누웠다. 헬레네 쪽으로 팔을 뻗는 것도 잊지 않았고.)
 
헬레네 R. 히페리데:불편하지 않을 거예요. 오히려 꼭 붙어있지 않으면 잠들기도 어려울 것 같네요. (쓰게 말하곤, 꾸물꾸물 이불 안으로 들어가 당신 곁에 팔을 베고 눕는다. 평소에는 어느 정도 적당한 거리를 두고 눕던 것과는 달리, 오늘은 꼭 파고들듯 가깝게 붙었다. 쉬이 잠이 오지 않을 것 같았다. 당신의 체향과 온기를 느끼며 애써 생각을 비우려 해볼 수밖에.)
 
아실링 펜들레엄:아무 생각 말고 주무세요. 오늘 고생 많으셨잖아요. (파고드는 몸 위로 다른 팔도 둘러 껴안았다. 불편하면 빠져나가도 좋다는 말과 다르게 껴안고 있는 팔은 풀어지지 않을 것처럼 힘이 들어가 있었다. 평소에는 이런저런 이야기라도 나누다가 까무룩 잠들기 전에 잘 자라는 말을 남겼을 텐데. 지금 들리는 것은 숨소리만이 유일했다. 뭔가 위로라도 하고 싶었으나 내일 일어나면 다 괜찮아져 있을 것이다 같은 말은 해봤자 소용도 없을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부디 오늘 밤 네가 빨리 잠들기를 빌 뿐이다.)
 
헬레네 R. 히페리데:아실도요. ... 오늘 고생 많으셨어요. 주무세요. (눈 내리감는다. 닥쳐오는 암흑이 유달리 깜깜하게 느껴졌다. 이대로 잠들어도 악몽을 꿀 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지만, 밤새 깨어있는 것보다는 낫겠지. 곁에서 들려오는 희미한 숨소리나, 저를 끌어안은 팔의 온기에 집중하며 한참 동안 시간을 보내다, 겨우겨우 선잠에 든다.)
 
아실링 펜들레엄:(잠을 자는 것처럼 눈을 감고 있던 것도 잠시. 얼마 지나지 않아 눈을 뜨고는 제 옆에 헬레네를 지켜본다. 간간이 숨소리만 내며 움직임 없이 바라보기만 하다가 잠에 든 것을 확인하고 나서야 베개 깊숙이 뺨을 기댔다. 이대로 같이 눈을 감고 잠에 들어 아무도 깨지 않으면, 그것은 축복일까 다른 사람들과 똑같은 저주일까. 그런 생각을 하다가 피곤에 지쳐 까무룩 잠든다.)
 
아침이 왔습니다.
 
아침이 밝았다고 말할 수 없는 것은 밝아지지 않았기 때문이에요.
 
하늘은 여전히 어두컴컴했고 해는 고개를 내밀지 않았습니다.
 
달과 별은 그 자리에 풀칠한 것처럼 불온한 색으로 빛날 뿐입니다.
 
사람들은 여전히 멈춰 서 있을 테죠.
 
웃고 떠들던 그대로, 손을 잡고 걷던 그대로, 돌아서던 그대로, 박수갈채를 보내던 그대로.
 
무구하고 기쁨에 찬 얼굴이 생생합니다.
 
자신의 시간이 멈췄다는 걸 전혀 모르는 것이 분명했습니다. 폼페이의 그 날처럼!
 
다른 점이라면 화산재 대신 부서진 빛만 떠다닌단 걸까요.
 
문득, 전시관에서 보았던 조각상들이 떠올랐습니다. 움직이지 못하는 것이 퍽 닮았거든요.
 
사람이 육신과 영혼으로 이루어졌다면…… 그들의 영혼은 어디로 갔을까요?
 
그마저 멈추어 버린 걸까요?
 
혹은 생생하게 움직이며, 우리를 지켜보고 있는 걸지도 모릅니다.
 
어느 쪽이라고도 확신할 수 없었습니다.
 
겪어보지 않은 일을 확신하는 건 인간이 이루어낼 수 있는 영역이 아니었으므로.
 
헬레네 R. 히페리데:(결국 거의 잠을 자지 못했지만, 그래도 아실링의 품에 안긴 덕이었는지 막판에는 깜박 얕게나마 잠들었던 것 같기도 하다. 정신이 깨어났지만, 보통 감은 눈꺼풀 사이로도 아침이 왔음을 알 만큼 비쳐오던 빛은 전혀 없이 여전히 눈 감기 직전처럼 캄캄하고, 새 소리나 생활 소음도 전혀 들리지 않는다. 아, 어제의 악몽보다 더 악몽 같은 일이 현실임을 체감하게 되는 순간.)
아실, 일어나셨나요...?
 
아실링 펜들레엄:네, 저 방금 일어났어요. (헬레네 상태를 걱정한 탓인지 얕은 선잠에 들었다가 목소리를 듣자마자 바로 눈을 뜬다. 잠이 들었어도 계속 긴장한 상태를 유지해서인지 깨는 것이 어렵지는 않았다.)
.. 몸 상태는 괜찮으신가요? 불편한 곳이 있다거나.. (축제가 정상적으로 끝났다면 늦잠을 잔다던가 좋은 아침이라고 말하면서 일어났을 텐데, 지금은 그럴 상황이나 여유가 주어지지 않았기에 아침 인사 대신 짧게 상태 확인을 한다.)
 
헬레네 R. 히페리데:네... 괜찮아요. (눈만 움직여 창문을 바라본다. 야속하게도 어둠만이 자리한, 달도 별도 사진처럼 멈추어있을 하늘.) 역시 꿈이 아니었네요. 조금은, 힘든 나머지 헛것을 보는 게 아닐까 싶었는데.
(애써 몸 일으킨다.) ... 그래도 가만히 있을 수만은 없겠죠. 다시 씻고 준비를 하고 올게요.
 
아실링 펜들레엄:... (헛것을 본 것이었다면 좋았을 텐데. 그 말에는 긍정했지만 입으로 소리 내어 말하지는 않았다. 긍정도 부정도 함부로 말하기 어려운 사태였기에 침묵만을 유지한다.)
네, 먼저 씻어주세요. 저도 준비를 하고 있을게요. (같이 일어나서 자리를 정리를 하고 대충이나마 준비를 한다.)
 
헬레네 R. 히페리데:(샤워실에 들어가, 일부러 찬물을 튼 채 그 아래에 잠시간 아무것도 하지 않고 가만히 서 있었다. 분명히 비참하고 절망적인 상황이지만, 언제까지고 절망 속에 침체되어 있을 수는 없다. 분명히 방법이 있을 것이다. 어떻게든 찾아내어야만 한다. 세상은 사라지지 않았고, 멈추었을 뿐 눈앞에 그대로 자리하고 있으니까.)
(마음을 굳게 다잡은 뒤로는 빠르게 씻은 후 옷을 챙겨입고 나왔다.) 아실, 다녀오세요. (여전히 어두운 표정이었지만 조금이나마 힘이 깃든 목소리로 말했다.)
 
아실링 펜들레엄:(밖에서 헬리를 기다리는 동안 잠시도 가만히 있지 못하고 이리저리 움직인다. 힘이 넘친다기보다는 몸이라도 움직여서 잡념들을 무시할 생각이었다. 바쁜 와중에도 현실의 상황에 타협하지는 생각만이 꼬리를 물고 늘어졌다. 희망적인 것들을 생각 함부로 바랬다가 되려 실망당하기 싫은 것이 이유였다. 하지만 그러던 것도 아주 잠시, 전보다 힘이 실어진 목소리를 듣고 생각을 바로 고치기로 한다. 네가 아직 포기하지 않았는데 어떻게 자신이 포기할 수 있단 말인가.) 네, 빠르게 씻고 올게요. 그 뒤에 앞으로 어떻게 할 것인지 얘기하기로 해요.
 
헬레네 R. 히페리데:네, 좋아요. ... 아실이 씻고 계시는 동안 차를 타고 있을게요. 평소엔 자기 전에 마셨지만, 지금은 아침이어도 바깥은 내내 어둡기도 하고... 어제 마시지 않았으니 대신하는 걸로 할까요. (희미하게 미소지어보이곤, 당신이 들어간 뒤 부엌으로 향했다. 물을 끓이고 찻잎을 넣어 젓는다. 이내 찻잎의 향기가 천천히 퍼지기 시작하면, 마음이 한결 더 안정되는 느낌이다.)
 
아실링 펜들레엄:차 한 잔의 여유 정도는 즐길 수 있겠죠. 네, 부탁드릴게요. (티타임 준비를 같이 도와주지 못해서 미안한 마음이 들지만, 우선 빨리 씻기로 한다. 몸은 여전히 긴장해 있었으나 현 상황에 대한 암울함은 전보다 훨씬 내려갔다.)
저 늦게 나온 거 아니죠? 헬리가 만들어준 차를 식게 내버려 두고 싶지는 않아서요. (보송해져서 제 자리에 풀썩 앉는다.)
 
헬레네 R. 히페리데:(잔 두 개를 들고 테이블로 걸어온다.) 딱 맞게 나오셨어요. 식으면, 또 데우면 되는 일이니 괘념치 않으셔도 되지만요. ... 마시면서 한 번, 고민해볼까요. 어떻게든 해결할 방법이 있을 거라고 믿어요. 이대로 멸망한 채 둘 수는 없어요. 저흰... 구해낼 수 있을 거예요.
 
아실링 펜들레엄:처음 끓였을 때 그 향이 날아가는 게 아쉬워서요. 물론 헬리의 차는 향이 한번 날아가도 맛있겠지만요. (따뜻한 온기가 느껴지는 찻잔을 손에 쥐고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지 생각에 빠진다.) 시간이 멈춘 이유에 대해서는 생각나는 게 없네요. 저희는 모르는 종말이라는 생각만 들어요. 그럼 이제 어떻게 해야 할지가 문제일 텐데..
 
그저 우리는…… 고민할 따름입니다. 시간이 왜 멈췄는지, 그리고 어떻게 해야 다시 돌이킬 수 있을지.
 
구원자로서 우리가 처음 가진 사명이니까요.
 
헬레네 R. 히페리데:다행히 아직 향은 날아가지 않았을 거예요. (찻잔을 양손으로 감싼 채 조용히 들이킨다. 꿀을 넣어 달고 따스한 차가 퍼지고, 향이 올라온다.) DOT를 다 뒤져서라도, 혹은 다른 구역까지 가서라도 단서를 찾아낼 거예요. ... ... 저희만이 멈추지 않았다는 건, 저희의 힘으로 이 사태를 다시 되돌릴 수 있다는 뜻이기도 하지 않을까요.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시간은 왜 멈췄을까?
 
답을 아는 이는 없습니다. 신은 우리에게 응답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문제를 맞이했고, 답을 내놓고, 정답인지 오답인지 스스로 확인해야 합니다.
 
:자, 이상했던 징조를 돌이켜 볼까요.
세계 멸망의 예언과 전 세대 예언의 타이머가 내놓았던 해결 방법. 갑자기 나타난 카운터와 홀연히 사라진 새파란 장미의 아치문…….
불가능과 기적이 순서대로 교차하는 배치입니다.
모두가 불가능하다고 떠들던, 일어날 리 없다고 부정한 세계 멸망.
시시각각 다가오던 세계 멸망으로부터 세계를 구해낸, 한 줄의 예언.
타이머는 오직 하나뿐이라던, 세계의 섭리를 깬 카운터의 등장과,
 
:기적을 상징하는 새파란 장미의 아치문.
데칼코마니처럼 좌우의 아귀가 딱 들어맞습니다.
이것이 만약, 정말로 예정된 멸망이라면……
타이머와 카운터로서, 우리가 무언가 할 수 있는 일이 있단 건 아닐까요.
그래서 예언의 타이머는, 카운터의 등장으로 말미암아 세계가 멸망에서 벗어날 것이라고 예언한 걸지도 몰라요.
물론 모두 추측입니다.
 
시계는 울지 않습니다. 세계는 고요합니다.
 
새파란 장미는 무르익었지만, 꽃잎을 떨구지 않아요.
 
문득,
 
<이성> 판정
 
아실링 펜들레엄:
SAN Roll
기준치: 54/27/10
굴림: 17
판정결과: 어려운 성공
 
아치문을 넘어야 한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것은 생각이라기보단 사명감에 가까운 감각이었습니다.
 
어째서일까요? 혼란스럽기 짝이 없습니다.
 
아실링 펜들레엄:헬리. 저랑 같이 아치문이 있던 곳으로 같이 가지 않을래요? 장교들도 보지 못했지만, 다른 카운터와 타이머들만 볼 수 있었던 것에 이유가 있을 것 같아요. 단순히 우연이라기에는 너무 이상한 일이고요. 저는 그것에 뭔가 희망을 가져보고 싶어요. 당신이 사랑하는 세계를 다시 원래대로 돌려놓고 싶고요.
 
헬레네 R. 히페리데:... 아실도 아치문을 떠올리셨군요. 저도 그래요. 꼭 그곳을 넘어야 할 것만 같은 막연한 생각이 드네요. 장교님도 부관님도 볼 수 없고 저희의 눈에만 보였던 그 문, ... 기이한 현상이었죠. (이번 일을 예고라도 했던 걸까.)
 
그렇다면, 그것은 어디에 있나요?
 
이미 사라졌던, 전시관의 그곳에?
 
아니라면, 흡사한 공원의 장미 터널로?
 
아뇨, 전혀 다른, 세계의 어딘가에 있을지도 모릅니다.
 
예를 들면……
 
<지능> 판정
 
아실링 펜들레엄:
지능
기준치: 75/37/15
굴림: 7
판정결과: 극단적 성공
 
전시관은 금세 모습을 드러냈는데, 지나치게 익숙한 생김새였습니다.
 
DOT의 본관을 본떠 지은 것처럼, 똑같이 생겼거든요.
 
마중을 나온 전시관의 담당자가 “일부러 그렇게 지었습니다.”
 
그러고 보니, 전시관은 본관을 본떠지었다고 했었지.
 
그렇다면 오히려, 전시관이 아니라……
 
아실링 펜들레엄:DOT... 이 정도면 다 알고 있었던 거 아닌 건가 싶네요.. (얼마 있지도 않은 DOT 향한 긍정적인 감정이 또 다운되었다. 물론 욕하는 것은 나중에. 지금은 제 생각이 맞는 것인지 확인을 해야 했다.) 저희 본관으로 가요. 전시관에서 본, 아치형이 있던 곳과 같은 곳으로 가보죠.
 
헬레네 R. 히페리데:하지만 그때 장교님의 표정을 보셨었죠, 아실도? ... 저희가 그걸 봤다는 게 썩 기껍지는 않으신 것만 같았어요. 만약 이 일도 예측하셨다면 그건 그것대로 대단한 일이겠지만요. (빈 잔을 내려놓고 일어난다.) 다른 카운터와 타이머 분들도 불러 함께 가요.
 
DOT 본관은 언제나처럼 문이 활짝 열려 있습니다. 시간이 멈춘 지금도 그렇습니다.
 
청동으로 빚은, 남색으로 덧칠한 문을 지나면 익숙한 풍경이 펼쳐집니다. 본관의 로비입니다.
 
흰 대리석이 깔린 바닥과 열두 개의 별자리가 그려진 남색 천장,
 
몇 번이고, 몇 번이고, 붓의 흐름조차 눈치채지 못할 만큼 섬세하게 회칠을 한 벽.
 
언제나 그렇듯 흠 없고, 점 없이 완벽하기만 한.
 
안내 데스크에 앉은 직원도, 로비에서 이야기를 나누던 직원도 모두 멈춰선 상태입니다.
 
그때, 전시관의 구조가 어땠더라.
 
전시관을 모두 돌고 난 후, 안내 데스크의 옆에 세워졌었지.
 
빙그르르, 한 바퀴를 돈 시선이 비로소 장미 아치가 있던 곳에 다다릅니다.
 
그곳에 있던 것은,
 
엘리베이터입니다.
 
띵.
 
멈춘 시간을 깨트리고, 요란한 소리가 울립니다. 때마침 엘리베이터가 도착하는 소리였습니다.
 
엘리베이터는 1층에 선 채, 내려갈 채비를 마치고 있습니다.
 
열린 문이 어쩐지 우리를 기다리는 괴물의 입속인 양 께름칙합니다.
 
우연인가?
 
혹은 운명인가?
 
새파란 장미는 한 송이도 보이지 않았고, 엘리베이터의 문설주는 둥글긴커녕 각지고 네모나지만…… 위치는 분명히 같았습니다.
 
때마침 도착한 것도 수상하기 짝이 없어요.
 
시간이 멈췄다면 엘리베이터 또한 움직이지 않아야 하는데, 어째서 이것만은 움직이는 건가요?
 
그러나 장미 아치와 달리, 엘리베이터는 눈을 깜빡여도 사라지지 않습니다.
 
들어오라는 것처럼, 문을 닫지 않고 내내 그렇게 서 있을 뿐입니다.
 
어떻게 할까요?
 
아실링 펜들레엄:아무래도 저기로 들어가 봐야 할 것 같네요. 함정이라고 해도 지금은 이것 말고 희망을 걸어볼게 없을 것 같아요. (먼저 엘리베이터 안으로 들어가서 내부를 확인해 본다.)
 
엘리베이터 안에는 지하 1층부터 4층, 그리고 옥상까지. 총 6개의 버튼이 보입니다.
 
그 외엔 아치문이라 할 만한 건 아무것도 없이 깔끔합니다.
 
아실링 펜들레엄:뭔가 별거 없는 것 같네요. 평범한 엘리베이터처럼 보여요. ... 저기를 다 돌아봐야 하는 걸까요? 일단 지하 1층부터 가보도록 하죠. (지하 1층 버튼 꾹)
 
헬레네 R. 히페리데:그러게요. (다른 타이머와 카운터들과 함께 엘리베이터 안으로 들어선다.) 어디로 가야 할지 감이 잡히질 않으니... 우선은 하나씩 가보는 수밖에요.
 
그런데 이상한 일입니다. 분명히 버튼을 제대로 눌렀지만, 불이 들어오지 않습니다.
 
엘리베이터도 움직일 기미 없이 잠잠합니다. 몇 층을 눌러도 똑같습니다.
 
정작 문이 열렸으면서 운행은 하지 않는단 건가요?
 
아실링 펜들레엄:
지능
기준치: 75/37/15
굴림: 19
판정결과: 어려운 성공
 
하인리히 장교를 찾아갔었을 때를 기억합니다. 초능력이 사라졌었던 그때요.
 
그가 분명 지하 2층에서 올라왔었지요.
 
이상하죠, 버튼은 지하 1층까지뿐인데.
 
아실링 펜들레엄:... 저번에 장교님이 지하1층말고 다른 지하까지 내려갔다가 올라오시지 않았던가요? (어떻게 내려갔던거지? 버튼 다 눌러본다.)
 
<초능력> 판정
 
아실링 펜들레엄:
이능력 Roll
기준치: 40/20/8
굴림: 11
판정결과: 어려운 성공
 
어떤 위화감이 움틉니다. 능력을 사용하지도 않았는데, 잠잠하던 그것들이 요동칩니다.
 
정확히, 엘리베이터의 버튼 중 가장 아래, 긴급 호출 버튼을 가리킵니다.
 
꼭 그것을 누르라는 것처럼!
 
제 8시 타이머:이거…… 비상 호출 버튼이 아닌 것 같아.
 
제8시의 타이머가 그렇게 이야기하면 모두 깨닫습니다.
 
버튼에, 환각이 걸려 있노라고.
 
마치 비상 호출 버튼인 것처럼. 원래 지하 2층으로 향하는 버튼 따위는 존재하지 않았던 것처럼!
 
상당히 정교한 방식의 환각입니다. 만져본다고 해도 손끝에 걸리는 홈 따윈 없습니다.
 
아실링 펜들레엄:(안 그래도 눌러보고 싶었는데. 잘 됐다. 악동같이 웃으면서 상큼하게 버튼 꾹 누른다.)(헤헤)
 
상큼하게 버튼을 꾹 누르면, 파란 LED 램프가 점등합니다.
 
엘리베이터의 안내판에는 정확히 B2, 지하 2층이라고 쓰여있습니다.
 
듣도 보도 못한 공간입니다.
 
<행운> 판정
 
아실링 펜들레엄:
기준치: 60/30/12
굴림: 86
판정결과: 실패
 
덜컹, 덜컹, 덜컹! 갑작스럽게 엘리베이터의 몸체가 흔들리기 시작합니다.
 
쾅! 소화라도 시작한 것처럼 요란하게 좌우로 뒤틀던 그것은 곧 문을 닫아 젖히고……
 
우당탕탕! 아래로 급격하게 떨어지기 시작했습니다.
 
더는 기다릴 수 없단 것처럼 성급하기 짝이 없는 속도입니다.
 
내장이 위로 치밀고, 공기가 역류하는 감각이 선명하게 뇌를 흔듭니다.
 
멀미라고 표현하기엔 지나친 부유감은, 제대로 서 있기 어려울 정도였습니다.
 
헬레네 R. 히페리데:꺄악! (작게 비명 지르며 꺾일 뻔한 다리에 간신히 힘을 준다.) 아실, 물을 만들어주세요! 제가 완충재로 조종할게요!
 
그리고 모두, 곧 직감했습니다. 이대로라면 바닥에 떨어지다 못해 처박혀서, 납작한 파이가 되고 말 거라고!
 
<초능력> 판정
 
아실링 펜들레엄:
이능력 Roll
기준치: 40/20/8
굴림: 75
판정결과: 실패
(이러다가 여기 있는 사람들 다 죽겠다 싶었는지 급하게 물을 만들어냈다. 만들어내긴 했지만... 너무 많이 만들어버렸다. 안에 있는 사람들이 쫄딱 젖을 만큼 많이 만들어내고 당황한다.)
 
헬레네 R. 히페리데:
이능력 Roll
기준치: 65/32/13
굴림: 95
판정결과: 실패
(급박한 상황인데다 예상보다도 많이 만들어낸 물 때문에 당황해 제대로 물의 모양을 잡지 못한다. 원래라면 물을 쿠션처럼 만들어 모두의 충격을 경감시키려 하였으나, 일부 타이머와 카운터의 발밑에 엉성하게 만들어내는 게 고작이다.) 조, 조심하세요!
 
퍽! 바닥에 처박히다시피 떨어졌을 때, 엄청난 소리가 났습니다.
 
그나마 물로 완충재를 만들어낸 헬레네와 아실링 덕에, 잘 구워진 납작한 파이가 되는 일은 면했지만……
 
몇몇은 손목을 접질리거나, 발목을 삔 것 같습니다. 두통을 호소하기도 합니다.
 
특히 헬레네가 심각해 보입니다.
 
다른 사람들의 완충을 신경쓰느라, 정작 자신까지 보호할 만큼 조종하진 못했던 탓일까요.
 
헬레네 R. 히페리데:(떨어지면서 머리를 부딪힌 듯 이마를 짚은 채 비틀거린다.) 다... 다들 괜찮으신가요? (정신없는 상황에도 다른 사람의 안위부터 묻는다.)
 
아실링 펜들레엄:(특별히 다친 곳 없이 놀란 가슴 진정시키다가 이마 짚은 헬리 보고 얼굴이 하얘져서 다가간다.) 헬리..! 괜찮으신가요? 머리 다치신 거예요..?? 아.. 어떡해.. (다른 사람 걱정할 시간이 없다. 지금은 헬리가 제일 중요하다.)
 
헬레네 R. 히페리데:머리를 벽에 부딪힌 것 같은데, 저는 괜찮아요. (어지러움에 입술 깨문다.) 그런 아실은요. 아실은 다친 데 없으세요?
 
아실링 펜들레엄:어디 봐요. 찢어졌거나 혹이 난 건 아닌지 살펴봐야겠어요. (이마에서 손을 떼어내어 짚어져 있던 자리를 살펴본다.) 저는 그냥 놀라기만 했지 다친 곳은 없어요. 헬리 대신에 제가 다쳤어야 했는데... 죄송해요. 제가 물을 너무 많이 만들었죠..
 
헬레네 R. 히페리데:(찢어진 곳은 없어 보인다. 단순 타박상인 듯하다. 뒤쪽에서 9시의 타이머와 카운터가 다친 이들을 치료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2시 페어는 작은 불씨를 피워 젖은 옷을 말려주고 있었다.) 무슨 소리세요. 그 단시간에 빠르게 물을 만들어주셔서 겨우 이만큼이라도 구해낸걸요. 아니었더라면 아실도 크게 다치셨을 거예요. 무사하셔서 얼마나 다행인지 몰라요.
 
아실링 펜들레엄:그래도... ... 아무튼 아주 크게 다친 게 아니어서 다행이에요. 저희도 다른 타이머들한테 같이 도움받기로 해요. (어지럼증에 대비해 헬레네를 부축하면서 걸어나간다.)
 
우여곡절 끝에 엘리베이터에서 내렸을 때, 제일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은 칠흑 같은 어둠이었습니다.
 
불이 꺼진 탓일까. 옆에 선 사람의 위치를 파악하기 어려울 정도로 사위가 어두웠습니다.
 
제13시 페어가 내린 어둠만큼.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가운데, 소독약 냄새가 싸하게 코끝을 스칩니다.
 
한 걸음을 내딛는 것도 내키지 않는 냄새입니다. 병원이라기엔 지독하게만 느껴집니다.
 
여긴 대체…… 뭐 하는 곳일까요?
 
아실링 펜들레엄:(어둠에서 눈이 익숙해질 것 같다고 판단되지 않아 2시 페어에게 불을 이용해 주변을 비춰달라고 한다.)
 
당신의 부탁에 2시 페어가 금세 불을 밝힙니다.
 
그러나 오래지 않아, 발 내딛는 순간 자동으로 불이 켜집니다. 센서가 작동하기라도 한 것처럼.
 
금세 주변이 환해집니다.
 
불이 켜지고, 지하 2층의 모든 곳이 밝은 빛 아래 들어섰습니다.
 
그리고 그곳에는……
 
14개의 [원형 유리관]과 [컴퓨터 PC], [멈춘 연구원], 그리고 정체를 알 수 없는 [커다란 원통]이 놓여 있습니다.
 
안쪽에는 [철제문]이 딸려 있습니다.
 
여러 대의 CCTV가 모서리에 매달려 있었지만, 모두 멈췄는지 움직이거나, 액정을 빛내진 않습니다.
 
어느 것 하나 수상쩍기 짝이 없습니다.
 
DOT 본관 지하에, 이런 것들이 왜 필요로 한단 말인가요?
 
아실링 펜들레엄:(14개? 수상해 보이는 원형 유리관을 살펴본다. 안에 뭔가 있나?)
 
천장에 닿을 듯 높이 선 원형 유리관에는 모두 정체불명의 액체가 꽉 차 있습니다.
 
투명한 파란색으로 물든 그것은 꼭 장미의 색을 훔친 것처럼 흐릿합니다.
 
각 유리관에는 숫자와 간단한 낱말이 적힌 네임택이 붙어 있습니다.
 
〈제0시, 빛〉, 〈제1시, 물〉, 〈제2시, 불〉, 〈제3시, 식물〉, 〈제4시, 전기〉, 〈제5시, 얼음〉……
 
구태여 더 읽어볼 필요도 없습니다.
 
전부 시간이 부여한 숫자와 능력을 적어둔 것이었으니까.
 
마침 수도 14개였으니 딱 떨어집니다.
 
헬레네 R. 히페리데:... 대체 이게 뭐죠? (전혀 알지 못했던 듯, 의아함에 가득 찬 채로 미간을 작게 찡그렸다.) 대체 왜 본관에 이런 것들이...
 
카운터인 아실링도, 연구를 도왔지만 이런 곳의 존재는 알지 못했어요.
 
<관찰> 판정
 
아실링 펜들레엄:
관찰력
기준치: 70/35/14
굴림: 12
판정결과: 극단적 성공
 
네임택 아래에는 작은 글씨로 [숫자] 몇 개가 적혀 있습니다.
 
아실링 펜들레엄:(지금 자신이 생각하는 그것이 아닐 것이라고 애써 여기며 숫자를 본다..)
 
〈2051. 10. 08〉, 〈2052. 02. 27〉, 〈2052. 01. 01〉, 〈2051. 12. 17〉……
 
공통점이라곤 없어 보이는 날짜들은, 대략 반년 전부터 일주일 사이의 어느 날들이었습니다.
 
이날이, 무슨 날이었더라.
 
……. 고민은 길어지지 않았습니다.
 
“아.”
 
카운터들이 곧 익숙한 날짜를 발견했기 때문입니다.
 
네, 그들이 DOT에 처음 발견되었던, 혹은 스스로 발을 들였던…… 그 날짜였습니다.
 
불길하게도 유리관은, 딱 한 명의 사람이 들어가기에 충분해 보입니다.
 
헬레네 R. 히페리데:... 저 숫자에 무슨 의미가 있는 건가요, 아실? (불길한 느낌을 애써 다잡으려 하며 조심스레 당신을 부른다.)
 
아실링 펜들레엄:어... 아무래도 DOT은 저희를 여기에 넣고 싶어 하는 것 같네요. 여기 보세요. 제가 들어온 날짜가 적혀있어요. 아마 다른 사람들도 비슷할 것이고.. ... 우연이라고 하기에는 좀.. 어렵네요. (원래부터 제대로 믿고 있던 것도 아니지만, 이렇게까지 할 줄은 몰랐는지 헛웃음만 터져 나온다.)
 
헬레네 R. 히페리데:... ... 설마요, 그럴 리가... 대체 왜... 저와 만나기 이전에는 같이 연구원 분들과 서관에서 머무르셨던 게 아니었나요? (뭔가 알아볼 게 있었다면 그 시기에 전부 끝마쳤을 줄 알았는데. 세상을 구하고자 온 곳에서 점점 더 충격적인 진실에 다가가는 것만 같아 불안감이 몰려온다.)
 
아실링 펜들레엄:동관에서 질문에 대답하거나, 신체검사를 한 적은 있는데... ... 아무래도 이것에 관한 건 직접 물어봐야 할 것 같네요. 물론 상황을 제대로 해결한 뒤에 나 물어볼 수 있을 것 같지만요. (아무튼 마음에 안 드는 사람들 투성이야. 컴퓨터 pc를 확인한다.)
 
엘리베이터와 센서 등이 작동하기에 기대했는데, PC는 작동하지 않습니다.
 
제4시 페어가 고치려고 해봐도, 고장난 것이 아니라 멈춘 것이기 때문에 소용없습니다.
 
아실링 펜들레엄:이렇게 멀쩡히 있는데.. 사용을 못 하다니 아깝네요. 무슨 내용이 있을지 궁금했는데. (멈춘 연구원 본다. 아는 얼굴인가?)
 
어쩐지 얼굴이 낯익더라니. 연구 보고를 설명하고 지시한 애쉬입니다.
 
그 또한 [가운]을 입고 [커다란 책]을 든 채 조각상처럼 꼿꼿하게 멈춰버렸습니다.
 
아실링 펜들레엄:(너 이놈 잘 만났다. 첫 만남부터 별로였어. 화풀이라면서 툭팍팍 때린다. 이 마음에 안 드는 놈! 나쁜 놈! 재수없어! 너도 똑같아! 몇 대 더 때리다가 가운 슬쩍 확인한다.)
 
가운 주머니 안의 사원증과 담배 한 갑, 라이터가 보입니다.
 
헬레네 R. 히페리데:아, 아실... (말리지도 못하고 어정쩡하게 지켜만 본다.)
 
아실링 펜들레엄:(주머니 안에 있는 것들 다 챙기고는 커다란 책도 뺏어서 읽어본다.)
 
미묘한 색의 가죽 표지가 눈에 띕니다. 요즘 책도 이런 가죽 표지를 쓰던가요?
 
애쉬가 책을 쥐고 있어, 쉽게 빼내기 어렵습니다.
 
<근력> 판정
 
아실링 펜들레엄:
근력
기준치: 50/25/10
굴림: 97
판정결과: 실패
(애쉬 다시 팍 때림)
 
재판정!
 
아실링 펜들레엄:
근력
기준치: 50/25/10
굴림: 23
판정결과: 어려운 성공
 
낑낑대며 책을 빼내는 데 성공합니다.
 
어쩐지 가죽은 서늘하고, 끈적거리며, 희미하게 사향 냄새가 납니다.
 
불길한 감촉에 아실링, SanC (0/1).
 
아실링 펜들레엄:
SAN Roll
기준치: 54/27/10
굴림: 25
판정결과: 어려운 성공
 
이성 감소 없음.
 
아무리 봐도 연구원이 실험실에서 읽을 법한 책은 아닙니다.
 
책 표지에는 도저히 읽을 수 없는 글씨로 제목이 쓰여 있습니다.
 
무언가를 사용하기 위한 설명서라는 것은 알겠는데, 어떤 문장도 헬레네와 아실링이 가진 의문에 해답이 되진 못합니다.
 
이런 건 왜 읽고 있던 걸까요?
 
아실링 펜들레엄:(이상한 놈이랑 잘 어울리는 이상한 책 읽고 있었겠지 뭐. 애쉬 다시 팍팍 때리고 커다란 원통 본다. 이건 유리관이랑 뭔가 다른가?)
 
빛나는 원통은 단 하나가 놓여 있습니다.
 
높이 30cm 정도에 지름은 그보다 약간 작고, 볼록한 앞부분에 신기한 소켓 세 개가 이등변 삼각형 모양으로 배열된 생김새인데,
 
유리창도 없어서 내용물을 종잡을 수 없습니다.
 
무척 무겁고, 움직이면 내용물이 출렁거립니다.
 
라벨에 낯선 이름이 쓰여있습니다.
 
아르고.
 
원통 뒤에는 렌즈와 진공관, 금속 원반을 연결한 작은 상자라던가, 그 외에는 통 용도를 알 수 없는 것들이 매달린 기다린 기계가 서 있습니다.
 
도저히 도밍게즈의 것이라기엔 믿을 수 없는, 수상쩍은 물건들입니다.
 
그러고 보니 책에서 이 원통과 비슷한 그림을 본 것 같습니다.
 
다시 한 번 읽어보는 건 어떨까요?
 
아실링 펜들레엄:(책에 있던 삽화와 원통을 비교해서 관찰한다.)
 
<자료조사> 판정
 
아실링 펜들레엄:
자료조사
기준치: 70/35/14
굴림: 31
판정결과: 어려운 성공
 
이제야 책의 내용이 읽히기 시작합니다.
 
...
 
커다란 원통의 용도가 뇌를 보관하는 것이며, 안에 든 것이 라벨에 적힌 이름의 뇌라는 걸 알게 된 아실링, SanC(0/1D2)
 
아실링 펜들레엄:
SAN Roll
기준치: 54/27/10
굴림: 74
판정결과: 실패
 
이성 2 감소.
 
아실링 펜들레엄:그러니까.. 이게 저기 적힌.. 아르고라는 사람의 뇌라고요...? (생각지도 못한 것에 헛구역질이 나왔다. 제가 생각했던 것보다 DOT의 사람들은 더 이상하고 미친놈들이었다며 욕을 중얼거리다가 장치를 켜보려고 한다.)
 
장치를 정확히 사용하자, 렌즈를 통해 벽면에 어떤 장면이 투영되고, 단조로운 나레이션이 시작됩니다.
 
흑백 영화처럼 모두 회색인 데다 상당히 화질이 좋지 못해서, 더더욱 도밍게즈의 것이 아님을 실감하게 됩니다.
 
TV도, 녹화한 영상도 아니므로 장면은 조절할 수 없습니다.
 
그저, 운 좋게 흘러나오는 것들을 훔쳐보고 주워들을 뿐입니다.
 
:어떤 예언
깜빡, 깜빡, 깜빡. 눈을 감았다 뜨는 것처럼 시야가 재조명되더니, 낯익은 얼굴이 떠오릅니다. 예언의 타이머입니다. 그는 신중하게 말합니다.
“세계가 멸망할 거예요. 시간이 가지고 있는 권능이 다 닳아가기 때문이니, 이제 타이머만으로는 부족할 겁니다.”
주변에는 하인리히 장교와 리슬러 부관을 비롯해 몇몇 연구원이 보입니다. 모두 DOT의 직원입니다.
“다른 방법을 찾으세요. 새로운······”
뒷말은 들리지 않았으나, 아실링은 이미 다른 방법을 알고 있습니다.
 
 
:어떤 샘플
“정말 괜찮겠어요? 내키지 않아요.”
기억의 주체인 연구원이 무미건조한 목소리로 묻습니다. 내키지 않는다거나, 두려워한다기엔 지나치게 삭막한 나레이션입니다.
시야의 맞은편에 선 것은 마찬가지로, 전 세대의 타이머들이었습니다. 누군가는 팔을 내밀었고, 누군가는 머리카락을 잘랐고, 누군가는 또 다른 신체 일부분을…… 내놓으며 이렇게 말합니다.
“세계를 위한 일이라면, 어쩔 수 없죠.”
“이 방법뿐이니까.”
 
:목소리 너머로 장면이 바뀝니다.
시체 안치실입니다. 냉동 보관되어있는 것들은 전부…… 익숙한 시체들입니다. 전전 세대, 혹은 전전전 세대……. 죽어서도 시체조차 묻히지 못한 그것들은 서랍에 얌전히 들어 있습니다. 하인리히 장교가 문가에서 지시합니다.
“유전자 샘플 확보해. 조심히 다뤄.”
 
 
:어떤 기적
“타이머의 능력은 유전되지 않아요. 아시잖아요!”
누군가 밋밋하게 소리를 지르자, 하인리히 장교가 단언합니다.
“그걸 해내기 위해 자네를 고용한 거야.”
“신을 모독하는 행위가 될 겁니다.”
“자네가 가부를 판단할 일이 아닐세.”
 
:“이건, 불가능해요.”
영상 속 하인리히 장교의 입이 천천히 움직입니다.
“그렇다면 기적이라도 만들어 내.”
 
 
:어떤 괴물
다음의 장면은 상당히 끔찍했습니다. 흐물거리고, 물컹거리는 무언가가 바닥을 기어 다닙니다. 흰 대리석 바닥은 그것이 흘린 진액으로 끈적끈적해졌습니다. 화질이 나쁘고, 음질이 더러운 것이 불행 중 다행이었습니다.
누군가 한숨을 쉬고, 가운의 소매를 걷어 올립니다.
“실패라니까. 도저히 무리야. 다른 방법이 필요해.”
마찬가지로 지친 누군가 “다른 방법?” 이라고 물었고,
“그래, 전혀 다른……“
 
:지직, 지지직. 잘 들리지 않았습니다.
 
 
:어떤 이름
“성공, 성공이야!”
여전히 억양과 감정이 전혀 실리지 않은 목소리가 뛸 듯이 기뻐합니다. 두 눈은 똑똑히, 원형 유리관을 바라보고 있습니다. 옅은 회색으로 보이는 그 물속에는…… 익숙한 얼굴이 들어있습니다.
네, 아실링입니다.
자신의 얼굴을 목격하는 것과 동시에 누군가 말합니다.
“이들을 카운터라고 부르도록 합시다.”
 
 
:어떤 대화
“표정이 좋지 않네요, 아르고.”
또다시 예언의 타이머입니다. 뇌의 주인을 부르며 곁에 앉은 그는 커피잔을 들고 있습니다. 아르고는 한참 고민하다가, “정말 괜찮겠어요? 내키지 않아요.” 무미건조한 목소리로 묻습니다.
“나는, 분명히 세계 멸망을 봤어요. 그리고 우리가 살아남으려면 이 방법뿐이에요.”
단호한 대답이 돌아오지만, 연구원은 여전히 내키지 않는 얼굴입니다.
“예언을 하나 하죠.”
 
:“아르고, 당신은 양심으로 인해 사는 내내 시달릴 것입니다. 양심을 죽인즉 당신이 살고, 양심을 살린즉 당신이 죽습니다. 세계의 모든 구조가 살아남기 위해 발버둥을 치고 있으니 훼방을 놓았다간 목숨을 건질 수 없을 거예요.”
“……하지만 그래도, 당신이 양심을 따라 행동하고자 한다면……”
예언의 타이머는 조금 망설이다가, 마저 예언합니다.
“당신의 ■■, 단 한 번의 기회가 있을 겁니다.”
 
모든 진실을 목격한 아실링, SanC(1D2/1D5)
 
아실링 펜들레엄:
SAN Roll
기준치: 54/27/10
굴림: 63, 16, 94
+2: 어려운 성공
+1: 어려운 성공
0: 실패
-1: 실패
-2: 실패
SAN Roll
기준치: 54/27/10
굴림: 97
판정결과: 실패
rolling 1d5
 
(
1
 
)
 
 
=
1
 
이성 1 감소.
 
아실링 펜들레엄:(어디서부터 계획이 되어있었던 것인지 내심 궁금해했었다. 이런 식으로 알고 싶지는 않았을 뿐이었는데. 알게 된 진실도 좋게 받아들일 수 없는 것들이었다. 툭 치면 쓰러질 것 같이 화면만 들여다보다가 헬레네 쪽을 급하게 돌아본다. 정말 너와 나는 운명인 건가? 이런 식으로?)
 
헬레네 R. 히페리데:(더없이 충격받은 낯으로 모든 영상을 지켜보고 있었다. 저 안에 든 것이 누군가의 뇌라는 사실부터가 기함할 만한 일이었는데, 그 주인이 이곳의 일원이었으며 심지어... 카운터가 이 멸망을 위해 만들어진 존재였다니.)
 
연구소는 결백합니다. 천장도, 바닥도 온통 하얀색이었습니다.
 
건조한 공기에는 날 리가 없는 소독약 냄새가 빽빽하게 차 있었고,
 
문득, 하인리히 장교의 목소리가 떠올랐습니다.
 
하인리히 장교:[세계는 멸망하지 않아. 도밍게즈는 2053년의 새 계절을 맞을 거야. 그리고……]
 
그 목소리는 예언의 타이머가 들었던 예언과 똑같았고, 아실링은 다음에 올 문장의 정체를 알고 있습니다.
 
하인리히 장교:[눈앞의 이들이 그 증거지.]
 
그가 그때, 아실링의 어깨를 잡아, 한 발 앞으로 끌어냈었죠.
 
단순히 표면적인 행동이 아니었을지도 모릅니다.
 
그저 앞으로 끌어당긴 것이 아니라, 어쩌면, 그들은 우리의 존재 자체를 물밖으로…….
 
불쾌한 이야기니 여기까지 할까요.
 
하인리히 장교:[지난 예언의 타이머는 매우 훌륭한 이였지. 눈과 귀가 밝고 입이 무거웠어. 무엇보다 가장 훌륭한 점은…… 미래를 바꾸는 방법을 함께 점지받곤 했단 거야. 많은 이들이 세계 멸망의 예언이 예언의 탑으로부터 시작한 줄 알지만, 천만의 말씀.]
 
미래를 바꾸는 방법이란 건 이런 식이었던가.
 
눈과 귀가 밝고, 입이 무겁다는 것은 도덕과 정의의 죽음을 의미했던가.
 
전 세대 타이머는 어떤 심정으로 그 명령에 순응했는가. 자의였는가, 타의였는가.
 
진정으로 그들은 구원을 자신의 사명으로 삼았던 걸까.
 
알 수 없는 질문들이 산재하고,
 
하인리히 장교:[DOT는, 타이머는 이미 그 미래를 알고 있었네. 그 예언이 퍼질 것도, 세계가 혼란스러워질 것도, 그리고…… 새로운 구원자가 나타날 것마저도!]
 
쏟아지는 깨달음이 선명했습니다.
 
신은 인간의 탄생을 확신합니다. 스스로 빚어낼 것이기에.
 
그렇다면 하인리히 장교가 그토록 확신에 차 있던 것 또한 당연한 일이 아니겠어요?
 
그들은 스스로, 카운터의 창조주를 자처했으므로.
 
깨끗한 대리석 벽면에 얼핏 인영이 비칩니다.
 
서 있는 것은 스물여덟 명이었는데, 비치는 것은 열네 명뿐이었습니다.
 
제대로 비치지 않는 쪽이 누구인지는 굳이 말할 필요도 없겠죠.
 
가지고 있던 기억들은 무엇인가. 왜 축제에는 아는 이를 찾아볼 수 없었는가.
 
어째서 DOT에 도착한 이후로, 단 한 번도, 가족이나 지인의 연락을 받지 못했던가.
 
그 모든 것의 답을 깨닫는 순간,
 
운명이라는 말을 실감합니다.
 
그래, 우리는 서로의 운명이었던 거예요.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내가, 너를 위해 예비된 운명이었던 거지.
 
목전의 상황을 두고, 그것을 어떻게 부정할 수 있을까.
 
시간이 멈춰버린 기분이었습니다. 내내 멈춰있었던 것이지만, 귀가 먹먹해서 유난히 그렇게 느껴졌습니다.
 
아실링 펜들레엄:... (혼란스러운 상황이었으나 지금은 뭐라도 해야만 했다. 자신만큼 놀란 사람이 여럿 있고, 그중에는 헬레네도 있었으니까. 이런 상황에도 놀랍도록 침착하고 냉정한 상태를 유지했다. 그 감정은 충격에서 회피하기 위한 것이기도 했으나 어떻게 보면 행동하기에 아주 나쁜 것은 아니었다. 어색한 정적을 깨고 뭐라고 말 꺼내야 할지 모르다가 괜찮냐고 슬쩍 물어본다.) ... 많이 놀랐죠. ... 괜찮아요..?
 
헬레네 R. 히페리데:(도저히 괜찮을 수 없는 상황에서, 저를 먼저 챙기려 드는 당신. 눈앞에서 깨달은 충격적인 진실보다도 그 사실이 더 저를 고통스럽게 했다. 아, 여기에서 무너져선 안 된다. 이제는 DOT가 당신에게 얼마나 큰 빚과 죄를 졌는지 알고야 말했다. 그리고 저는 그 DOT의 일원이었다.)
아실... (울 자격조차 없다. 눈물을 꾹 눌러참으며 당신을 와락 끌어안았다.) 저보다 아실이 더 놀라셨을 텐데, 더 충격받으신 건 아실일 텐데... 저부터 먼저 신경쓰실 필요 없어요. 괜찮으세요? (이렇게 따뜻하고, 이렇게 살아있고, 저와 다를 바 없이 똑같은 사람인데...)
 
아실링 펜들레엄:왜 당신이 금방이라도 울 것 같은 표정을 하고 있나요. 그러지 마세요. 당신이 우는 건 싫어요.. (안겨져 얼굴이 보이지 않아 안절부절 한다. 달래줘야 한다는 생각은 들었으나 마주 안아주거나 등을 토닥일 만큼의 힘은 없었다. 허공에서 힘이 빠진 팔만 흔들거린다.) 저를 만들 때 이런 일에 충격 안 받도록 만들었나 봐요. 그런 것까지 설정할 수 있는 걸까요..? 아무튼.. 대단하긴 해요. (괜찮다는 말이에요. 그렇게 이어말하기는 했으나 정말로 괜찮은 것인지 아닌지 의심이 들었다. 자신에 대해서 뭔가를 생각하기에는 너무 많이 힘이 들어서, 꼭 중간에서 생각으로 연결되는 전선을 하나 뽑은 것만 같았다.) ...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니에요. 저는.. 제가 할 일을 해야 할 것 같아요.
 
헬레네 R. 히페리데:네, 울지 않을게요... (코를 한 번 훌쩍였을 뿐, 정말로 눈물은 흐르지 않았다. 어깨가 떨리지도 않았다. 단지 당신의 체향과, 머리칼의 촉감과, 옷깃 너머의 체온을 깊이 감각했다. 어떤 목적과 어떤 방식으로 만들어졌든 당신은 저의 곁에 살아숨쉬고 있는 인간이다. 그 사실만은 변치 않을 것이라고, 스스로에게 되뇌였다. 충격의 연속으로 꼭 머리가 이상해진 것만 같은 기분이었다. 하지만 그 누구보다도 혼란스러운 건 당신일 테지. 차라리 이런 상황에서는 깊은 생각에 빠지지 않는 게 좋을 것이다. 미쳐버릴지도 모르니까.) 네... ... 어떻게든, 움직여요.
 
철제문은 묵묵히 제자리를 지키고 있습니다.
 
아실링 펜들레엄:(이곳에서 빨리 나가는 게 좋겠다고 판단했는지 철제문 앞으로 다가간다. 이걸 어떻게 열지?)
 
단단히 잠겨 있어 열리지 않습니다. 카드를 태그해야 하는 것 같습니다.
 
아실링 펜들레엄:(아까 에쉬 주머니 뒤져서 훔친 카드 태그해본다.)
 
사원증을 태그하자 문이 열립니다.
 
철제문을 열고 들어가면, 소독약 냄새가 무척 짙고 온도가 서늘하기 짝이 없습니다.
 
추위가 뼈를 파고들 정도입니다.
 
이상한 약품과 수술대, 생체 바이오리듬을 확인하는 기계같이 수술실에서나 쓸 법한 장비들로 가득하고……
 
[캐비넷] 위에는 이상한 것들이 담긴 [병]이 줄 서 있습니다.
 
아실링 펜들레엄:(이젠 놀랄 것도 없다. 이젠 뭐가 나와도 침착하게 유지할 것 같이 변화 없이 굳은 표정으로 캐비넷 열어본다.
 
커다란 정사각형 칸이 여럿 나열된 캐비넷. 벽면을 꽉 채우고 있습니다.
 
캐비넷을 열면 전 세대 타이머의 시체가 들어있습니다.
 
영상에서 보았던 대로 신체 일부가 없습니다. 아실링, SanC(0/1)
 
아실링 펜들레엄:
SAN Roll
기준치: 50/25/10
굴림: 50
판정결과: 보통 성공
 
이성 감소 없음.
 
헬레네 R. 히페리데:(뒤에서 비명 같은 숨 삼키고는, 서둘러 캐비넷 닫는다.)
 
아실링 펜들레엄:(눈앞에서 시체를 보고 놀라 굳어있다가, 캐비닛 문이 닫히고 나서야 겨우 움직인다.) 미, 미안해요. 이런 게 바로 보일 줄은 몰랐는데... ... 많이 놀랐죠. (전 타이머의 시체를 직접 보고 나서야 DOT이 얼마나 미친 집단인지 똑똑히 느껴졌다. 영웅이었던 사람들의 시신을 이렇게 이용을 하다니. 헬레네에게는 이런 일이 없어야만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자신이 만들어진 용도대로 잘 써야겠지.)
 
헬레네 R. 히페리데:아뇨, 아실이 사과하실 필요 없어요. 전혀 예상 못했잖아요. 저도 몰랐고요. 이렇게까지... 이렇게까지 하는 이유가 전부, 세상을 구하기 위해서인 걸까요? (캐비닛은 닫혔지만, 한 번 눈에 띈 시체의 모습은 계속 잔상처럼 남아있었다. 캐비닛에서 시선이 쉽사리 떨어지지 않는다. 저 역시 죽고 나면 저들처럼 묻히지도 못한 채 교본으로, 재료로 쓰이게 될까? 그것이 모두를 위한 일이라면, 나는... 기본적으로 짜맞추어졌던 윤리와 규범들이 근간에서부터 흔들리는 느낌이다. 엘리베이터에서 부딪힌 머리가 다시 아파오는 듯해 이마를 짚고 눈 내리감았다. 당신의 생각을 알 턱 없이.)
 
아실링 펜들레엄:이 정도면 거의.. 정상의 범위를 넘어섰네요. 세상을 구하기 위해서라는 것이 이유라면.. 힘들지만 이해는 가능해요. (이렇게 말할 수 있는 것도 캐비닛의 시체와 자신이 관련이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헬레네는 저곳에 들어갈 일이 없을 것이다. 그런 일이 없도록 자신이 바꿀 것이다. 그리 생각하며 병을 확인한다.)
 
선반에 세워진 유리병에는 끈적한 투명 액과 함께 이상한 것들, 눈동자라던가 내장의 어딘가, 혹은 뼈 같은 것들이 들어있습니다.
 
어렵지 않게 그것의 정체를 알아볼 수 있습니다. 분명, 사람의 것이겠죠.
 
주인을 고민할 필요도 없었습니다. 병에 정확하게 쓰여 있었거든요.
 
6시, 8시, 11시라던가, 13시.
 
이름 따윈 없었지만 무엇을 의미하는지 모를 수 없었습니다.
 
<관찰> 판정
 
아실링 펜들레엄:
관찰력
기준치: 70/35/14
굴림: 98
판정결과: 실패
 
참담함에 시선을 떨구자, 바닥을 기던 것들의 환각이 보입니다.
 
곳곳의 풍경이 참담합니다.
 
아실링 펜들레엄:(이게 정말 세상을 지키기 위한 집단이 한 일인지, 아님 영화 속 매드 사이언티스트의 집단인지 모르겠다며 농담 섞인 말을 툭 던진다. 이렇게라도 가볍게 말하지 않고서는 충격에 짓눌릴 것만 같았다.)
 
헬레네 R. 히페리데:(도저히 어떤 말에도 답할 수 없어, 그저 고개만 푹 숙였다. 이 공간의 모든 것이 고통스럽게 숨을 옥죄는 것만 같았다. 당신의 손을 구원의 동앗줄처럼 찾아쥐었고.)
 
짓누르는 충격을 떨쳐보려 숨을 크게 들이켰을 때, 소독약 냄새 대신 새파란 장미 향기가 흠뻑 폐를 파고들었습니다.
 
질식할 것처럼 짙은 향기는 엊그제 맡았던 그것과 똑같습니다.
 
고개를 돌리면, 엘리베이터가 있어야 할 자리에는 다시금 새파란 장미로 장식한 아치문이 서 있습니다.
 
멀찍이 서 있는 이들을 유혹하는 것처럼 장미 향기가 짙어지고,
 
바람도 불지 않는데 너울, 너울 꽃송이가 흔들립니다.
 
이번엔 또, 우리를 어디로 데려가려는 걸까요?
 
아실링 펜들레엄:뭔가 이곳을 넘어가면.. 영영 돌아오지 못할 것 같은 기분이 들어요. 괜한 생각이겠죠? (상황에 맞지 않게 웃음이 흘러나왔다. 분명 희망을 가진 줄 알았는데, 어쩌면 제 손에는 아무것도 없었던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아주 특별하다고 볼 수 없었던 인생이었다. 물론 그것도 DOT의 입맛대로 만든 것이겠지만.. 특별하지 않았다고 생각이 들게 만든 것은, 세상을 구하기 위해 가차 없이 써버릴 장기짝으로 쓰기 위해서였을까? 그렇게 생각하니 비참하기보다는 체념에 가까운 감정이 머릿속을 감쌌다.) 저는 지금 좀 무서운 것 같은데.. 헬레네는 어때요?
 
헬레네 R. 히페리데:... ... (소독약 냄새를 가릴 만큼 짙은 장미 향기. 적어도, 이 괴로운 공간을 잊게 해줄 수 있다는 점에서 저 정체 모를 아치문이 반갑게까지 느껴졌다. 하지만 동시에 아득하기만 한 것도 사실이다. 우리를 어디로 보내려는 걸까?) 알 수 없는 일이지만... 저것만큼은 DOT가 의도한 건 아니지 않을까. 그런 생각이 들어요.
움직이지 않으면 아무것도 변하지 않겠죠. ... 이곳에서 저희는 여러 진실을 알았지만, 그게 지금 당장의 멸망에 도움이 될 만한 건 아니었어요. 무엇이 기다릴진 모르지만 저 아치문을 넘어가, 또 새로운 단서를 찾아보도록 해요. 어떻게든 멸망을 막아야 하니까요. (아무리 처참한 진실이 도사리고 있다고 하여도- 그래, 헬레네는 여전히 구원자, 타이머라는 자신의 정체성을 포기하지 않았다.)
손을 꼭 잡고 함께 가면 덜 무섭지 않을까요?
 
아실링 펜들레엄:당신은 제가 꼭 듣고 싶은 말을 해주네요. 그 말이 듣고 싶었어요. 무섭지만 같이 넘어가기로 해요. 앞에 무슨 일이 있을지는 아무도 모르지만, 세상을 구할 수 있는 뭔가를 같이 찾아보도록 하죠. (너는 정말로 내가 듣고 싶은 말만 해줬다. 지금 이 순간 가장 물어보고 싶은 질문이 머릿속에 떠올랐다. 진짜 사람이라고 보기 어려운, 만들어진 것도 예쁘게 봐줄 수 있냐고, 적어도 가엽게라도 봐줄 수 있냐는 것이 질문이었다. 물론 너는 상냥한 사람이고 제가 듣고 싶은 것만 말해주는 사람이라 내가 뭐래도 괜찮다고 해주겠지만 말이다.)
무서운 게 좀 사라질 것 같네요. 같이 손잡고 들어가요. (무슨 의도를 만들었든, 일 이후에 어떤 취급을 받든 아무래도 좋을 정도로 마음이 편안해졌다. 이런 사람을 위해서라면 뭐가 어떻게 되든 괜찮았다.)
(아치 너머로 이동한다.)
 
기적과 같은 존재가 기적 아래를 건넙니다.
 
머리를 숙이고, 허리를 숙이고 아치문을 넘어서면 그곳은……
 
코마니 호수였습니다.
 
검게 물들어 있던 호수가 달빛을 받아 순간 반짝이고, 종이꽃의 그림자가 드리웁니다.
 
축제가 끝나기라도 한 것처럼 어둠은 물러가고 희고 투명한 물결이 찰랑거립니다.
 
잘못 본 것이 아니에요. 분명히, 수면의 색이 밝아옵니다.
 
둥글게, 둥글게, 원만한 원을 그리며 물결이 칩니다.
 
호수 바닥이 반짝이는 것과 동시에 종이꽃이 소금기에 녹아 물속으로 스며들고……
 
헬레네와 아실링은 호수 아래에서, 어떤 광경을 목격했습니다.
 
수도입니다.
 
꽃가루가 흩날리고, 사람들이 환호하며 웃고 떠듭니다.
 
정확히 말하자면 ‘그 상태로’ 멈춰있습니다.
 
호수가 비춰야 할 것은 밤하늘이어야 하는데, 믿을 수 없게도 그곳에는 어젯밤 무대의 장면이 고스란히 담겨 있습니다.
 
하나부터 열까지……
 
<관찰> 판정
 
아실링 펜들레엄:
관찰력
기준치: 70/35/14
굴림: 5
판정결과: 극단적 성공
 
아니, 딱 하나 다른 점이 있습니다.
 
무대 뒤에, 원래의 세계에는 존재하지 않았던 거대한 시계탑이 서 있어요.
 
광장에 서 있는 그 시계탑입니다.
 
아실링의 시선을 느낀 것처럼, 호수 속의 시곗바늘은 보란 듯이 움직입니다.
 
결국, 닿은 곳은 정확하게 12시 정각입니다.
 
그 순간 다시 꽃가루가 흩날리고, 빛이 산산이 부서지며, 타이머와 카운터들이 무대 위에서 손을 흔듭니다.
 
본능적으로 시선이 위를 향했습니다. 광장의 시계탑이 시야에 들어옵니다.
 
바늘은 11시와 12시 사이에 애매하게 멈춰있습니다.
 
호수 아래의 세계는 여전히 소란스럽게 움직이고, 화려하게 춤을 춥니다.
 
자정을 기점으로 풀리는 마법이라니. 신데렐라의 이야기가 생각나는군요.
 
시계의 바늘을 움직이면 무언가가 달라지지 않을까. 시선이 바삐 오갑니다.
 
물론 세계를 구하고 싶은가, 아닌가는 별개의 이야기입니다.
 
아실링 펜들레엄:아... 다행이에요. 정말로 기적이라는 게 있나 봐요. 저 시곗바늘만 움직이면 세상을 구할 수 있어요. (티 없이 밝고 환하게 웃는다. 그 웃음만큼은 진정으로 기쁜 웃음이었다. 시간이 제대로 돌아가면 세상은 구원받고, 헬레네는 그것에 기뻐할 테지. 그 이후의 일에 대해서는 따로 생각하지 않는다. 멸망하지 않은 세계 속에서 웃는 너를 볼 수만 있다면, 그게 마지막으로 보는 것이라고 해도 기쁠 테니까.) 호수의 물을 이동시켜서 바늘을 움직이는 걸까요..? .. 헬리. 세상을 구할 준비는 끝났나요?
 
헬레네 R. 히페리데:(어떤 일이 일어나도 더 놀라지는 않으리라, 그리 각오한 채 아치문을 넘어섰다. 그리고 보이는 풍경은, 멸망을 막을 수 있다는 듯한 환영의 모습... 세상을 되돌릴 수 있어. 그런 안도감이 탁 드는 동시에 당신을 살피게 된다. 이 세상은 당신에게 가혹하다. 시작부터 가혹하였고 앞으로는 더욱 그리할 것이다. 저에게 너무도 소중한 사람이 되어버린 만큼 쉽게 제 의견만을 개진할 수는 없었다. 하지만 그 기우가 무상하게도 당신은 웃었다. 밝고 환하게, 진정 잘되었다는 듯이. 왜 그 웃음이 저의 심장을 유리처럼 뾰족히 누르는 것만 같을까? 방법을 찾았으니 기뻐해야 하는데, 도저히 마주 웃을 수는 없었다.)
... 저는 준비되었어요. 하지만 아실, 괜찮으시겠어요? (이런 물음이 의미있을까? 문득 스스로에게 그리 묻고는, 고개 내저었다. 당신의 손을 꼭 쥐었다.)
어떤 일이 있더라도 저는 당신 곁에 있을 거예요. 이 명제만큼은 변하지 않아요.
 
아실링 펜들레엄:괜찮다는 게 무슨... 아... (네가 말하는 괜찮냐는 물음이 무엇인지 단번에 이해했다. 이제는 걱정 같은 건 다 잊고 기뻐하기만 해도 괜찮을 텐데. 입꼬리 올리더니 네 볼 살짝 잡아당겼다가 놓는다.) 지금 이 상황에 그런 걱정을 왜 해요~.. 기뻐하세요. 당신은... ... 우리는 영웅이 될 거예요. 그것도 세상을 지킨 영웅이요. 저는 그것을 매우 자랑스러워할 거고요. 당신도 같이 자랑스러워해줬으면 해요.
(잡아진 손을 양옆으로 흔들거린다. 우리가 정말 운명이라면 함께하겠지. 성격 탓인지, 아님 DOT이 자신을 그렇게 만든 것인지는 몰라도 확실한 것이 머릿속에 박혔다. 운명이 아니었다고 해도 자신은 헬레네와 만나 행복했다. 헬레네의 행복만 지켜진다면 마지막의 마지막까지 자신의 탄생과 끝을 축복할 수 있을 것이다. 모든 것이 만들어진 거짓투성이 세상에서도 진실하게 사랑한다는 감정을 느낄 수 있게 해준 네게 진심으로 고마움을 느낀다. 이 감정을 네게 전부 전할 수 있는 날이 오기만을 빌 뿐이다.)
고마워요. 우리가 구원할 세상으로 같이 가요.
(잡고 있던 손을 호수 쪽으로 뻗는다. 수면에 파동을 일으켜 시계탑까지 이동시키고는 마지막에 시곗바늘을 건든다.)
 
헬레네 R. 히페리데:그만큼 제게 아실의 감정이 중요하니까요. (볼이 잡아당겨지자 그제야 맥없이 입꼬리 끌어올려 보인다. 그닥 웃음처럼 보이진 않았다.) 네... (그렇지만 전, 스스로를 불순물 하나 없는 영웅이라 칭하지는 못할 것 같아요. 채 꺼내지 못한 말이 입안에서 파도처럼 일었다 사그라들었다.)
(함께 손을 뻗는다. 시곗바늘을 움직이며, 세상을 구원하고- 어쩌면 독이 될지도 모를 세상의 시간을 다시금 흐르게끔 만든다.)
 
바람이 멈춘 바늘을 떠밉니다.
 
손을 겹쳐 시간을 되돌리자, 그제야 시계가 정각을 알리며 긴 울음을 터트렸습니다.
 
그 소리를 듣는 순간, 세계가 순환하기 시작했다는 것을 직감할 수 있었습니다.
 
어두웠던 밤하늘은 급격하게 색을 바꾸어 청명한 새벽이 되었다가 새파란 아침이 되고, 자줏빛 노을을 지납니다.
 
재빠르게 회전한 도밍게즈가, 다시금 어두운 밤하늘을 드리웠을 때,
 
어제와는 분명히 다른 크기의 달과 다른 위치의 별이 머리 위에 찾아옵니다.
 
눈을 깜빡이면, 다시 무대입니다. 타이머와 카운터를 향한 환호성이 객석에서 터져 나옵니다.
 
무대 위건 뒤편이건, 그 광경을 똑똑히 볼 수 있었습니다.
 
마치 시간을 되감은 것처럼…… 시간이 멈추기 직전으로 돌아온 것 같습니다.
 
사람들은 아무렇지도 않게 구원자의 이름을 부르짖고, 두 팔을 벌려 우리를 환영합니다.
 
누군가 놓친 풍선이 저 멀리, 하늘 위로 두둥실 날아오릅니다.
 
익숙한 밤하늘을 가르는 풍선은 붉은색.
 
너머에 뜬 별은 마냥 희고 곱습니다.
 
세계를 구원한 것이 기쁜가요?
 
진실이 얼마나 비참하고, 끔찍할지언정…… 현실은 이토록 당신에게 다정해요.
 
구원받은 것들은 구원자를 잊었지만,
 
그럼에도 맹목적으로 헬레네를, 아실링을, 타이머와 카운터를 사랑합니다.
 
눈 아래 사람이 가득한 탓에 광장의 시계탑은 보이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날 선 바늘의 끝은 정확히 우리를 가리키고 있었을 거예요.
 
Chapter 1. 시계 바늘의 방향
 
: 현실로 돌아옵니다. 사람들은 아무것도 기억하지 못합니다. 1년은 366일이 되어버렸고, 하루의 여백은 온전히 우리의 것입니다. 세계는 당신에게 구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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