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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926~231031] 에르리체 - 도망자를 위한 낙원은 없다.

플레이타임 : 14시간 반

 

 
당신들은 세상을 구한 영웅들입니다.
 
모든 것이 제자리로 돌아왔습니다. 평화를 이룩했어요.
 
하지만, 이제 인류는 당신들을 두려워합니다.
 
.
 
도망자를 위한 낙원은 없다.
 
Writer 청렴
 
틱.
 
눅눅한 눈꺼풀을 들어올립니다.
 
벌써 날이 밝았던가요.
 
창문 바깥에 시린 눈송이가 검푸른 빛을 받아 흩날리고 있습니다.
 
겨울이 끝났다 생각했던 것과 달리, 이 외진 시골 마을은 여즉 눈발로 그득합니다.
 
낡은 소파에 누운 채 베아트리체는 어젯밤 들었던 라디오를 곱씹습니다.
 
어느 날부터 기이한 생명체가 세계를 무너뜨렸습니다.
 
수세에 몰린 인간들은 몇 번이고 패배를 맛보아야 했고, 결국 거대한 돔 안으로 갇히듯 도망쳐야만 했습니다.
 
그때 기적처럼 능력의 씨앗이 개화한 이들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괴물들에 맞서 싸웠고, 속수무책으로 폐허가 되어간 세계를 돌려받았으며 마침내 계절이란 개념을 가져왔습니다.
 
사람들은 그들을 영웅이라 부르며 추앙하였습니다.
 
베아트리체와 에르드, 당신들도 영웅이라 불리는 사람들 중 하나였습니다.
 
하지만, 어느 날부터 사람들의 입에 오르는 말은 사뭇 달랐습니다.
 
[저 이상한 괴물을 없앤 능력으로 우리를 없애면 어떡하지?]
 
[혹시 기분이 수틀려서 인류를 전부 몰살해 버리면 어떡하지?]
 
[수많은 괴물을 처리했는데, 인간쯤은 손쉽게 죽이겠지.]
 
그래, 쉽게 추론할 수 있습니다. 누구나 할 수 있는 상상이죠.
 
하지만, 그 진위 여부에 당신들의 의견 따위는 없었습니다.
 
인류는 멋대로 당신들을 의심하고, 공포의 반열에 올리며 침묵을 강요했습니다.
 
영웅이었을 때 당신들에게 환호했던 이들은 어느새 뒷걸음질로 멀어졌고, 당신들은 세상의 눈초리를 감내하며 도망쳐야만 했습니다.
 
아, 이사를 빙자한 도피도 어느덧 7번째였습니다.
 
도시에서의 삶은 가히 최악이었습니다.
 
외출을 할 때마다 의견을 묻는 기자들,
 
혐오가 드높아져 영웅들을 '폐기' 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
 
사실 당신들도 그 괴물의 일부가 아니냐는 사람들.
 
말은 참으로 쉽습니다.
 
그렇게 몇 번의 이사 끝에 당도한 곳은...... 눈이 많이 내리는 시골 마을 외곽이었습니다.
 
나무로 무성한 숲으로 들어가는 입구 근처에 자리를 잡은 두 사람은, 가까운 마을에서 얼굴을 가리고 외출해 필요한 물건과 음식을 사거나 했죠.
 
하지만, 이 생활을 얼마나 지속할 수 있을까요?
 
창문 바깥으로 들이친 볕이 서광을 머금습니다.
 
낡은 나뭇바닥에 잔뜩 묻긴 그 빛은 어쩐지 처량하기 짝이 없습니다.
 
한숨은 입김으로 스산하고, 알 수 없는 암담한 미래가 너무도 가까운 것 같아요.
 
다시 뜨인 눈꺼풀을 닫자 온연한 어둠 뿐입니다.
 
그래요, 베아트리체.
 
당신은 세상을 구했던 영웅입니다.
 
하지만, 지금.
 
인류는 당신을 두려워합니다.
 
...
 
오래된 가죽 소파에서는 쿱쿱한 향이 배어나옵니다.
 
에르드는 잠깐 자리를 비웠나 봅니다.
 
며칠 전까지 내리 이사를 하느라 고생이었을 텐데, 낮부터 참 바쁜가 보군요.
 
한적한 시골 마을은 참으로 고요합니다.
 
눈이 휘날리는 간간한 소리만이 만연합니다.
 
고개를 돌리면, 앞으로 익숙해져야 할 집안 풍경이 보입니다.
 
마른 곰팡내가 나는 낡은 집.
 
숲과 가까워 야생 동물들이 잦게 출현해 굉장히 헐값에 매매한 집이었습니다.
 
이전에는 사냥꾼들의 안식처로 썼었다고 했죠.
 
당신들은 이곳을 가정집으로 개조해 가구와 생필품을 가져다 놓았습니다.
 
타닥, 타닥 하며 불씨를 튀기는 [벽난로]가 보입니다.
 
그 옆에는 종이를 끼울 수 있는 [코르크 메모판]이 있네요.
 
[주방] 쪽에 전등이 켜져 있는지 노란 불빛이 보입니다.
 
베아트리체 힐:(천천히 몸을 일으켜 벽난로를 살펴본다)
 
마른 장작이 온기를 품고 타오르고 있습니다.
 
불티가 아롱아롱 타들어 방 안을 훈훈하게 덥혀줍니다.
 
<관찰> 판정
 
베아트리체 힐:
관찰력
기준치: 65/32/13
굴림: 33
판정결과: 보통 성공
 
장작은 넣은 지 얼마 안 됐는지 그을음이 짙지 않습니다.
 
아마, 에르드가 나가기 전 당신이 추울까 우려하여 새 장작을 넣어둔 거겠죠.
 
베아트리체 힐:(따스한 온기와 떠오르는 얼굴에 희미하게 웃었다가 주방으로 향한다)
 
노란 그을음이 새어 나오는 주방으로 향합니다.
 
무언가 만드려고 했던 흔적만이 남은 아일랜드 조리대가 인상적입니다.
 
각종 야채들이 꺼내져 있지만, 손질되어있지 않은 것을 보아하니 꺼내만 두고 나갔나 봅니다.
 
원래 요리는 거의 에르드가 담당하곤 했으니까요.
 
냉장고 표면에는 [종이]가 하나 붙어있습니다.
 
주방 뒷편으로는 바깥을 바라볼 수 있는 [창문]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베아트리체 힐:(종이를 확인해본다.) ...뭘 적어뒀을까나.
 
동그란 자석과 함께 종이 하나가 달라붙어 있습니다.
 
에르드의 글씨체로 간단한 메모가 남겨져 있습니다.
 
아마, 오늘도 바쁠 예정인가 봅니다.
 
베아트리체 힐:(고개를 끄덕이며 코르크 메모판으로 돌아간다.)
 
낡은 메모판 위에 종이가 꽂혀 있습니다.
 
인류의 시선을 피해다니며 살아왔던 당신들의 흔적입니다.
 
이사를 거듭하면서 그 목록들은 점점 늘어났습니다.
 
기존에 있었던 내용에 빗금이 그어진 것들도 많군요.
 
이사를 거듭하면서 생겨난 약속들이었습니다.
 
언제까지 이런 삶을 반복해야 할지는 모르겠지만 말이에요.
 
베아트리체 힐:...언제 이렇게나 많아졌을까. (종이를 한번 손으로 쓸어내리고는 주방의 창문으로 걸어간다.)
 
주방에서 바깥을 볼 수 있게 난 창입니다.
 
여즉 눈이 내리고 있군요.
 
그 앞으로는 숲으로 들어갈 수 있는 길이 보입니다.
 
어마어마한 크기로 자란 나무들로 그득한 저 숲은 마을의 사냥꾼들이 아니면 출입하는 일이 거의 없습니다.
 
종종 야생동물이 나온다고도 했죠.
 
<관찰> 판정
 
베아트리체 힐:
관찰력
기준치: 65/32/13
굴림: 92
판정결과: 실패
 
짐승...... 인가요? 잘은 모르겠지만 어떤 형체가 느릿하게 다가오고 있는 것 같아요.
 
그런데.
 
어쩐지 온통 검붉습니다.
 
온통 붉은 선혈을 뒤집어쓴 이는 느릿하고 비틀거리는 행색으로 이쪽을 향해 다가옵니다.
 
아. 자세히 보니 에르드, 그입니다.
 
베아트리체 힐:....! (눈이 커다랗게 뜨이며 얼른 문 밖으로 향한다.)
에르...!
 
베아트리체는 황급히 문을 열고 바깥으로 나섭니다.
 
긴 눈길을 지르밟고 천천히 다가오던 에르드는 당신을 발견하곤 발걸음을 멈춥니다.
 
우묵히 다물린 입술, 덤덤한 낯. 베아트리체를 보고 미미하게 미소를 지어보입니다.
 
에르드:날이 추운데 왜 나왔어. (무덤덤하고 평이하게 되묻는다. 오히려 당신을 걱정하는 투였다.)
 
베아트리체 힐:...지금 그게 문제야? 괜찮아? 어디 다친 곳은? (꼼꼼히 살피면서도 다급한 투의 질문들에서는 걱정이 잔뜩 묻어난다.)
 
에르드:음? (그제야 피가 잔뜩 묻은 제 옷깃을 내려다보곤, 작게 탄식한다.) 아. 이거 때문에 표정이 그랬던 거구나. 난 아무렇지도 않아.
 
다시 보니, 에르드 뒷편에 커다란 멧돼지가 묶여 있습니다.
 
그의 큰 체구에 절묘하게 가려져 보이지 않았나 봅니다.
 
이미 죽었는지 혀를 빼어 문 채로, 내장 손질까지 다 하고 왔는지 배가 아물려 있습니다.
 
에르드:설마 내가 고작 이 정도 멧돼지한테 당하겠어? (어깨 가볍게 으쓱한다) 근데 일반인답게 잡으려니 영 쉽지가 않아서 말이지. 능력 안 쓰고 처리하려다가 한 번 놓치는 바람에 피가 다 튀어버렸지 뭐야.
 
베아트리체 힐:.... 그건 알지만, 그래도 사람 일이 어떻게 될지 모르는거니까... (그제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쉰다.) 고생많았어. 춥지? 얼른 들어가자. (자연스럽게 손을 내민다.)
 
에르드:피가 이렇게 묻었는데? (고개 절레절레 저으며 양 팔을 뒤로 숨긴다) 씻고서 잡아줄게. 그건 안 되나? 네 장갑까지 더러워진다고.
 
베아트리체 힐:...난 상관없는데. (조금 아쉬운지 눈썹이 슬 내려갔다가 돌아온다.) 대신 들어줄까?
 
에르드:됐거든? (어딜 들려고 하냐는 듯 눈을 슬쩍 흘긴다.) 이 정돈 한 손으로도 가뿐해. 멧돼지 끌고 가는 동시에 너도 안고 갈 수 있을걸. 옷이 더러우니깐 안 하는 것뿐이지. (허세처럼 들릴 수 있지만 진짜긴 하다……. 괴력남) 잠은 잘 잤어? 잠자리가 불편하진 않았고?
 
베아트리체 힐:(가벼운 웃음소리가 흐른다.) ...진짜 가능할 것 같으니까 그만둘게. .... ...음, 나쁘지는 않았어. ...네가 있으니까 어디든 상관없기도 하고.
 
에르드:넌 그런 이야길 아무렇지도 않게 하냐…… (베아트리체 쪽 보던 고개를 스윽 정면으로 돌린다. 귀끝이 불그스레해졌다. 영웅이라 추앙하던 사람들에게서 갑작스럽게 쏟아지던 핍박과 질시가 어찌 그를 흔들지 않았을까. 과거의 가정사까지 들춰져 보다 더 괴로운 트라우마로 돌아왔다. 그럼에도 꾸역꾸역 버텨낸 건 제 곁에서 그 모든 걸 함께 감내해야만 했던 연인 덕분이었다. 낯간지런 말은 하지 못하는 성격상 터놓고 말하진 못해도, 베아트리체와 똑같은 생각을 갖고 있기는 한 셈이다.)
오늘은 스튜를 만들 거야. 고기가 없어서 숲에 좀 다녀왔지. (화제를 빙글 돌린다) 가죽도 다듬어서 마을 섬유상한테 팔면 돈이 좀 될 것 같은데.
 
베아트리체 힐:...너니까 그런거지. (이제는 반응을 보면 척하고 속까지 읽어버리는지 여전히 미소를 띈 채였다. ... 사람들의 인정과 환영을 바라고 한 일은 아니었지만 이렇게 언제고 도피해야 할 줄은 몰랐으니까. 몇 번이고 무너지고 부서지는 마음을 다 잡고 살아가고자 했던 것은 저와 함께 감내해온 연인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분명 지금도 같은 생각을 하고 있을테지.)
...아, 스튜. (끄덕) 그럼 오늘은 조금 바쁘겠네. 먼저 들어가서 씻어. 내가 준비할게.
 
에르드:(혼자였더라면 분명 오래 견디지 못하고 무너졌을 것이다. 자신을 혐오하고 자책한 끝에 부서졌을지도 모르지. 베아트리체가 있기에 온전한 자신으로 남을 수 있었다.) 나 말고 다른 사람한텐 이런 말…… ……하지 마라. 괜히 그 사람들까지 너 좋아하게 되면 안 되니까. (이게 질투인지 걱정인지)
같이 해. 대강 준비는 해두고 나오긴 했는데. 금방 씻고 올 테니까. (멧돼지를 마당 한켠에 두고 집안으로 들어가 겉옷을 벗는다. 서리 어린 겨울 향취가 풍긴다.)
 
베아트리체 힐:.........걱정 안 해도 다른 사람한테는 이런 말 안 해. (...질투인가..? 걱정이겠지..? 갸웃거리며 뒤따른다. 시린 겨울 향에 코 끝이 시린 기분이 든다.)
...으음, 그럼 옷만 앞에 준비해둘게. (겉옷을 받아든다.)
 
에르드는 곧 욕실로 들어섭니다.
 
에르드가 나오기 전까지 조금이라도 시작해두면 좋겠죠.
 
베아트리체, 요리 잘 하나요?
 
보통은 에르드가 베아트리체를 위해 영양분이 고루 섞인 음식을 만들어주는 쪽이었죠.
 
각종 야채들이 구비되어 있으니 웬만한 음식은 만들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베아트리체 힐:(그래도 어깨 너머로 본 게 있으니까... 어떻게든 되겠지...? 조금 비장해진 얼굴로 주방에 선다.)
...뭐가 들어가더라. (앞에 놓인 야채들을 찬찬히 노려본다.)
...당근...? (비장하게 식칼을 들어 탕! 하고 내려친다! 똑 하고 반으로 부러지듯..? 잘린다.....)
 
스튜엔 무슨 재료가 들어가더라? 아무튼 당근을 탕근탕근 하고 잘라봅시다.
 
다른 재료들도 다져볼까요? <손놀림> 판정!
 
베아트리체 힐:...감자도 들어갔던 것 같은데...
손놀림
기준치: 10/5/2
굴림: 59
판정결과: 실패
(빗나가는 칼!)
 
칼은 휑~ 하니 감자를 빗나갑니다.
 
감자 손질도 쉽지 않다...
 
베아트리체 힐:...이런데 능력쓰면 혼나려나..? (힐끗 욕실 문 쳐다보기..)
 
글쎄요? 모르게만 하면 상관없는 것 아닐까요?
 
게다가 능력 한두번쯤 쓴다고 에르드가 당신을 혼낼 성격도 아니구요.
 
원하는 대로 해봅시다! (이능력 사용시 이능력 판정 해주세요 ㅋ)
 
베아트리체 힐:(야채들을 찬찬히 바라보며 허공에 칸을 나누듯 손가락을 휘두른다!)
공간왜곡 Roll
기준치: 80/40/16
굴림: 86
판정결과: 실패
(도마가 토막토막 나버렸다...)
 
베아트리체는 야채를 다듬기 위해 공간왜곡 능력까지 사용했지만……
 
야채가 아니라 도마가 잘려버렸습니다.
 
쉽지않네……
 
때마침 에르드가 머리에 수건을 덮고 욕실 문을 열고 나옵니다.
 
에르드:뭔가 묵직한 소리가 난 것 같은데? 무슨 일 있어? (다가옴)
 
베아트리체 힐:...응? 아무것도 아니야. (토막토막 도마를 슬 안 보게 구석으로 민다...)
 
에르드:칼에 다칠지도 모르니까, 굳이 안 도와줘도 돼. (아무것도 모른 채로 채소들 다듬으려 모은다.) 응? 쓰던 도마가 안 보이네. 여분을 꺼내야 하나. (찬장 이리저리 뒤적거린다)
 
베아트리체 힐:...그래도, 사냥까지 다녀왔는데 구경만 하기엔 미안하니까. ...그게 어디 갔을까. (찾는 척하며 슬 밀어둔 도마 조각들 위로 합치듯 두 손을 그러모은다.)
공간왜곡 Roll
기준치: 80/40/16
굴림: 1
판정결과: 대성공
(짠! 멀쩡해진 도마를 번쩍 들어올린다.)
아, 찾았다.
 
에르드가 찬장을 뒤지는 사이 베아트리체는 조각난 도마들에 다시 능력을 사용합니다.
 
언제 조각난 적 있었냐는 듯 새것처럼 말끔하게 붙었네요!
 
에르드:거기 있었구나. (아무것도 모르고 고개 돌려서 도마 받는다. 깔끔하고 재빠른 손길로 감자며 양파를 삭삭삭 균일하게 잘라냈다.) 이것 좀 먼저 냄비에 넣어줄래? 난 고기를 좀 손질해서 가져와야겠어.
 
베아트리체 힐:(안 보이게 안도의 한숨! 익숙한 손길을 보고는 작게 감탄한다.) 응. 넣어둘게. (작게 조각난 야채를 냄비에 와르르 쏟아넣는다. 주변으로 톡톡 몇 개가 빗나간다...)
 
베아트리체가 조각 몇 개를 흘려가면서 냄비에 야채를 넣는 동안,
 
에르드는 잡아온 멧돼지를 고기와 가죽을 분리해두고 고기 몇 점을 잘라 냄비에 넣습니다.
 
크림까지 넣고 한데 섞어 한참 끓이고 나면, 짜잔! 먹음직스러운 크림 스튜의 완성입니다.
 
에르드:식사가 좀 늦어져 버렸네. 원랜 좀 더 일찍 다녀올 생각이었는데. (식탁에 수저와 그릇을 슥슥 세팅한다.)
 
베아트리체 힐:...오늘도 고마워. 잘 먹겠습니다. (자리를 앉기 좋게 빼놓고는 돌아가 자기 자리에 앉는다.) 깨우지 그랬어. 같이 다녀오면 편했을텐데.
 
에르드:날도 춥고, 어두운 숲속은 위험하니까. 능력을 쓸 수만 있었음 같이 가는 게 훨씬 수월했겠지만. (하지만 능력 사용에 눈치볼 필요 없었다 해도 위험하단 이유로 같이 안 갔을 것이다. 은근히 과보호하려는 경향이 있다) 그나저나 냉장고에 메모 붙여뒀는데, 혹시 봤어?
 
베아트리체 힐:...은근히 과보호야. (빤히 보다가 수저를 스튜에 퐁 담근다.) 아, 봤어. ....... ...마을에 내려가야하지?
 
에르드:응, 이사온 지 얼마 안 됐으니 생필품도 좀 구비를 해둬야 하고…… 음식도 그래. 매번 이렇게 마을 눈치 보면서 사냥하는 것보단 사냥꾼의 방식을 아예 제대로 따라하는 게 낫겠지. 사냥꾼 행세를 하면서 말야. 가죽도 팔고, 사냥꾼들이 살 만한 무기도 함께 사오면 될 것 같아.
여긴 특히 눈이 많이 내리니, 밤마다 얼어죽지 않으려면 장작도 좀 많이 챙겨둬야 할 것 같더라. 오늘은 마을만 다녀와도 해가 다 저물 것 같으니깐, 내일 덫을 놓는 쪽이랑 장작 패는 쪽으로 역할을 나누는 건 어떨까 하는데.
그리고 과보호할 수밖에 없잖아? 너랑 나 키차이가 몇인데. 덩치도. (딱히 원해서 되는 게 아닌 요소들이지만…… 퍽 얄밉게 반박했다.)
 
베아트리체 힐:그래, 아무래도 그래야겠네. ...매번 이럴 수는 없으니까. (생필품, 무기와 장작... 덫... 찬찬히 하나씩 손으로 꼽으며 끄덕인다.)
여긴 아직도 눈 밭이니까. 에르, 넌 어느 쪽이 좋아? 덫? 장작?
(손가락 두 개를 펼쳐 보이며 묻다가 손을 쏙 도로 집어 넣는다. ...맞는 말이긴 하지만 괜히 반박하고 싶어진다.) ...그래도, 그렇게 약하지 않아.
 
에르드:물론, 네 능력은 강하지. (지금껏 베아트리체와 수많은 전투를 함께했고 무수한 사선을 건너왔다. 서로를 향한 마음만큼이나 합이 잘 맞는 능력을 보유했으니 두 사람이 기나긴 전쟁에서 세운 공은 혁혁했다.) 그렇지만 능력이 없으면 그냥 일반인이잖아. 그건 나도 마찬가지지만, 난 일반인 중에선 좀 쎈 일반인이고. (유치)
솔직히 둘 다 내가 해 버리고 싶은데…… 어느 쪽이 좀 덜 위험하겠어? 그래도 덫이 좀 더 쉬우려나. 하, 근데 가다가 발 다치기라도 하면…… (입안으로 중얼거린다)
 
베아트리체 힐:...으음, 그것도 맞는 말이지만... (확실히 맞는 말이지. 전장에서나, 일상에서나 서로의 등을 믿고 맡기어 기댈 수 만큼 서로를 믿고 의지하는 만큼이나 그는 자신을 더욱이 보호하려 들었다.)
(중얼거림이 길어지기 전에 슬 뺨을 쓸며 제게로 시선을 맞춘다.) ...자자, 그만. 그럼 내가 덫을 놓기로 할게.
 
에르드:(뺨에 손길이 닿자 중얼거림은 대번에 멎었다. 대신 숨을 들이키더니 얼굴이 순식간에 뜨겁게 달아오르기 시작한다. 언제 줄줄이 말을 늘어놓았냐는 듯 한동안 입술만 달싹거렸다.) …… 아, 알았어. 그럼 내가 장작을 패는 걸로…….
 
베아트리체 힐:(원하는 반응이었는지 한순간 달아오른 연인이 그저 귀여워서인지 눈을 반쯤 접어 웃는다. 손 너머로 느껴지는 온기가 퍽이나 기분좋게 와닿는다.) ...응. 좋아. 자, 그럼 다 식기 전에 마저 먹을까?
 
에르드:그, 그래. (무슨 양철인형마냥 삐걱거리며 숟가락으로 스튜를 떠먹는다) 다 먹고 나면 마을 나갈 준비 하자……. (아까보다 확연히 작아진 목소리)
 
베아트리체 힐:(...귀여워. 저보다 덩치도 키도 한참은 커다란 그를 보면서 그렇게 생각하고 마는 것이었다...) 응. 맛있다, 그치.
 
에르드:어, 어. 맛있네. (삐걱대면서 어찌저찌 그릇을 다 비운다)
 
베아트리체 힐:(비운 그릇과 수저를 차곡차곡 정리한다.) 그럼 설거지는 내가 할게. 고마워, 잘 먹었어. (아 참, 하고 다시 돌아오더니 볼에 가볍게 입을 맞추고는 주방 안 쪽으로 사라진다.)
 
에르드:(그야말로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새빨개진다. 어디서 펑 터지는 소리가 들리지 않았나?) 바, 바, 방금 너…… (차마 입술의 촉감이 남은 뺨을 제 손으로 감쌀 생각도 못하고 입맞춤의 여파로 부들부들 떤다)
 
베아트리체 힐:(새빨갛게 달아오른 그를 봤다면 환하게 웃었을 것이 분명했다. 솨아, 하는 물소리와 달그락거리는 그릇들, 작게 섞인 웃음소리가 꼭 노래처럼 집안에 흐른다.)
 
너무 잘 익어 터진 토마토 같은 꼴이 된 에르드를 두고 설거지를 마칩니다.
 
마을로 갈 채비를 마쳤다면 이만 집을 나서도록 합시다.
 
베아트리체 힐:(제 겉옷의 후드를 뒤집어쓰고는 발돋움해 그의 후드도 푹 씌워준다.)
가볼까?
 
에르드:(발돋움하는 걸 눈치채고 고개를 살짝 숙여준다) 그래. 출발하자.
 
마을은 20분 정도의 거리로, 숲에서 꽤 떨어진 곳에 위치해 있습니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두 사람의 능력은 신체 강화 쪽과는 관련이 없으니, 이동 속도로는 의심받지 않겠네요.
 
두 사람은 곧 마을 어귀에 들어섭니다.
 
소박한 마을은 도심과 떨어져 있지만, 안에서 자급자족하며 살아갈 수 있을만한 가게들이 모여 있습니다.
 
:[섬유상 / 식료품점 / 철물점 / 광장] 을 둘러볼 수 있습니다.
 
베아트리체 힐:...우선, 가죽을 팔아야 하니까 섬유상을 먼저 가볼까? (손을 맞잡으며 걸음을 옮긴다.)
 
에르드:흠. 좋아. (괜히 후드를 한 번 더 깊게 눌러쓰고 가게 안으로 들어선다.)
 
각종 섬유를 취급하는 가게입니다.
 
주위를 둘러보니 섬유 말고도 완성된 옷들을 판매하고 있습니다.
 
사냥꾼들이 자주 오가며 유해한 야생동물을 사냥하고 남은 가죽을 판매하는지, 카운터 옆에는 잘 손질된 가죽과 털 섬유가 차곡차곡 쌓여 있습니다.
 
섬유상:어서 오세요. 새로운 이웃분들인가 보네, 안 그래요? (푸근한 인상으로 미소지으며 두 사람을 반긴다.)
무얼 찾으시나요? 아님 갖고 오신 그 가죽을 팔러 오셨을까?
 
베아트리체 힐:아, 안녕하세요. (환하게 인사하며 가죽을 들어보인다.) 네, 맞아요. 이 가죽을 팔려고요.
 
섬유상:(가죽을 이리저리 살펴본다) 오, 손질이 참 깔끔하게 잘 됐네요. 솜씨 좋은 사냥꾼인가 봐요.
 
대인기능 판정을 통해 흥정할 수 있습니다.
 
베아트리체 힐:...역시 눈썰미가 좋으시네요. 값은 잘 쳐주실거죠?
설득
기준치: 40/20/8
굴림: 68
판정결과: 실패
...이 사람이 솜씨 좋기로 전에 살던 마을에서 유명했거든요. 손질도 전문가처럼 잘하구요. (에르드의 팔짱을 끼며 제 옆으로 착 끌어온다.)
잘 쳐주시면 다음번엔 더 좋은 가죽으로 들고 올게요.
 
에르드:……. (거리감 어떡할 건데. 자연스러운 팔짱에 반대쪽 손에 고개 푹 묻는다. 베아트리체가 무어라 설명하는 건 별로 귀에 들어오지도 않는다)
 
섬유상:흐음. 그래요~? (웃는 낯으로 두 사람을 번갈아본다) 어깨도 떡 벌어지고 키도 멀대만한 게 척 봐도 실력있어 보이긴 해요. 좋아요, 값을 후하게 쳐드릴 테니 앞으로도 저희 가게와 쭉 거래를 해주셔야 한답니다?
이 마을은 겨울이 길어서 방한 용품을 미리 구비해두는 게 좋아요. 거위 털을 듬뿍 넣은 겉옷 두 개와 바꾸면 값이 딱 맞을 듯한데 어떤가요? 물론 돈으로 줄 수도 있답니다.
 
베아트리체 힐:...그럼요, 물론이에요. 정말 감사해요. (살짝 웃으며 가볍게 끄덕인다.)
..음, 어떻게 하는 게 좋을까? 에르? (고개를 묻은 손을 슬 끌어내려 시선을 맞춘다.)
 
에르드:(저항없이 손 잡혀 스르륵 끌려내려간다. 후드로 가리고 있어서 여러모로 다행이었다.) 어느 쪽이든 상관없긴 한데. 겨울이 길다면 지금 가진 옷으론 버티기 어려울 수도 있을 것 같아.
 
베아트리체 힐:(고개를 끄덕이고 다시 섬유상 쪽으로 고개를 돌린다.) 응, 그럼 겉옷 두 개와 바꿀게요.
 
섬유상:좋아요. 아주 흡족한 거래네요. (짝 박수를 치며 두툼한 겉옷 두 개를 건네주었다.) 이 마을은 사람이 별로 많지 않아서 한 지붕 건너면 전부 아는 사이랍니다. 자주 와서 얼굴 비추고 그래요.
 
베아트리체 힐:...아, 네. 그렇게 할게요. 말씀해주셔서 감사해요. (겉옷을 받아들고는 후드를 살짝 고쳐쓴다.)
 
섬유상:잘 가요. (손 흔들며 인사한다)
 
에르드:…… (이후로 말이 없다가 가게를 나와서야 중얼인다.) 친절한 건 좋지만, 인구가 적으니 우리 이야기도 더 빨리 퍼지겠어. 작은 마을은 숨기엔 좋지만 이런 데선 불편하다니까.
 
베아트리체 힐:...응, 아무래도 그렇겠다. 너무 자주 밖으로 나오면 안되겠는걸...
(잠시 침묵했다가 다시 입을 연다.) 그럼 이 다음은 식료품점으로 갈까?
 
에르드:(끄덕) 그러자. 우리도 마을을 알아가는 단계니까, 신중하게 행동하는 게 중요해.
 
식료품점은 신선 제품만을 취급한다고 적혀 있는 팻말이 인상적인 가게입니다.
 
안쪽으로 들어서자 기분 좋게 웃으며 당신들을 맞이하는 주인이 보입니다.
 
식료품점 주인:좋은 물건들이 많이 들어왔으니 둘러보고 가요~. (살갑게 안내하고 카운터에 앉는다)
 
베아트리체 힐:안녕하세요. (꾸벅 인사하고 찬찬히 둘러보다가 에르드 쪽으로 돌아본다.)
...뭘 사는 게 좋을까? 요리는 거의 에르가 하니까.
 
에르드:(매대에 놓인 각종 채소와 과일류들을 꼼꼼히 바라본다.) 먹고 싶은 거 있어? 맞춰서 사게. 아주 조금만 당기는 거라도 다 말해봐. 넌 잘 먹질 않으니깐.
 
베아트리체 힐:...글쎄, 네가 해주는 건 다 맛있으니까. (으음...하고 한참 고민하다가 양상추를 하나 집었다.) ..샌드위치?
 
에르드:그래. 그럼 샌드위치에 넣을 만한 걸 사야겠네. (이내 아보카도나 파프리카, 사과, 양상추 등 조금이라도 연관 있을 법한 채소와 과일을 족족 골라담기 시작한다.) 그거 말곤 또 없어? 고기 요리라던가.
 
베아트리체 힐:고기? ...으음, 뭐가 있을까... (곰곰) 아, 오늘 크림 스튜 맛있었어.
...네가 먹고 싶은 걸로 골라도 되는데.
 
에르드:그럼 나중에 또 만들어줄게. (스튜에 들어갈 만한 재료도 골라담는다) 나야 뭐든 잘 먹으니까. (곰곰 고민하다가 블루베리를 한 팩 담았다.) 블루베리, 좋아하던가?
 
베아트리체 힐:(담는 재료를 유심히 본다) ...응, 그것도 좋아해.
 
에르드:잘됐네, 이것도 후식으로 먹으면 되겠다. (그리고 고른 물건들을 계산대에 올려둔다.)
 
베아트리체, <재력> 판정
 
베아트리체 힐:
재력
기준치: 90/45/18
굴림: 96
판정결과: 실패
 
하필 오늘따라 지갑에 돈을 조금밖에 들고 오질 않았네요!
 
이 중에서 몇 개는 빼야만 할 것 같습니다.
 
베아트리체 힐:...아무래도 모자라겠다. 그럼.. 스튜는 오늘도 먹었으니까 다음에 만들어 먹을까?
 
에르드:그래야겠네. (마지못해 스튜 재료를 뺀다.) 다음에 왔을 땐 좀 더 넉넉하게 사가자.
 
식료품점 주인:계산은 이걸로 끝인가요? 그나저나 못 보던 분들이네. 혹시 저 숲 초입에 이사왔다던 분들인가요?
 
베아트리체 힐:..아, 네. 맞아요.
(살짝 웃는다.) ..다들 금방 알아보시네요.
 
식료품점 주인:거긴 야생동물이 많이 나와서 살기 곤욕일 텐데. 마을에서 멀기도 멀고. 참 고생이 많겠어요. (다감한 어조로 말 잇는다) 그래도 이 마을이 살긴 좋아요. 공기도 맑고. 새 주민이 생기니 반갑네요.
그나저나 두 사람 꽤 가까워보이네요. 연인이신 건가요?
 
베아트리체 힐:걱정해주셔서 감사해요. 네, 공기도 맑고 좋아요. (끄덕이던 고개가 잠시 멈춘다. 그를 한번 돌아보고는 붙어서며 빙긋 웃는다. 후드에 가려진 얼굴이 조금 달아오른다.)
...네, 맞아요.
 
에르드:…… 큼큼. (할 말이 없으니 괜히 헛기침이나 한다)
 
식료품점 주인:어쩜 좋아~. (흐뭇하게 웃는다) 청춘이네요, 청춘. 앞으로도 자주 보자구요, 우리.
 
베아트리체 힐:...감사합니다. (꼬박 인사하고는 옮기는 발걸음이 조금 빨라진다.) ...다른 사람 입으로 들으니까 괜히 부끄럽네...
....흠흠. 그럼 다음은 무기니까.. 철물점에 가볼까..? (그러면서도 다시금 팔짱을 끼고 붙어섰다.)
 
에르드:부, 부끄러울 일도 아닌데 뭐. (라고 하면서 누구보다도 부끄러워하는 중)
가자고. (애꿎은 후드만 늘어날 지경으로 눌러쓰고 걸음 옮겼다)
 
기름내가 물씬 배어나오는 철물점입니다.
 
생각보다 각종 기구들이 잘 구비되어 있습니다.
 
사냥꾼들이 오가는 곳이라 그런지, 사냥용 산탄총이나 서바이벌 용품들이 즐비합니다.
 
또한 각종 주방 기구나 가정에서 쓸 만한 것들도 제법 있습니다.
 
각자 선호하는 걸 고르면 되겠군요.
 
베아트리체 힐:안녕하세요. (인사를 하며 들어서서 꼼꼼히 살펴본다.)
...우선 덫이랑 사냥용 무기...는 총이면 되려나...? (중얼거리다가 다시금 돌아본다.) 주방 기구는 더 필요한 거 없어?
 
에르드:산탄총을 하나 살까 싶어. 탄약도 필요하고. (무기 쪽을 기웃거리다가 이내 주방 도구도 돌아본다. 무기와 주방도구 코너를 오가는 194cm 남성이라……) 흠. 눈이 많이 와서 수도가 끊길 상황을 대비해서 그릇을 좀 더 살까? 수저도 한 벌 정도 예비로 마련해두고.
 
베아트리체 힐:(무기와 주방 도구 코너를 오가면서 척척 골라내는 능숙한 살림 솜씨에 절로 고개가 끄덕여진다.) ......응, 그게 좋겠다. 아무래도 산탄총이 사냥에는 더 수월할 거고..
(그릇과 수저를 빤히 보다가 푸른색 유리잔과 같이 놓인 금빛으로 반짝이는 노란색 유리잔을 같이 집어든다.)
이것도 같이 살까?
 
에르드:(산탄총과 탄약을 몇 개 집어들고 와선 유리잔을 고르는 당신 곁을 기웃거렸다.) 좋아. 그런데 푸른색보다 보라색이 더 낫지 않나? (와중에)
 
베아트리체 힐:...아, 역시 이 쪽이 더 마음에 들어? (푸른색 잔을 놓아두고 그 옆에 연보라색 잔으로 바꿔든다.) 그리고 밑에 컵받침을 이렇게 바꿔서 두면- (엇갈리게 다시 놓아둔다.)
짠, 예쁘지. (하고 돌아보서 웃었다.)
 
에르드:아까보다 맘에 드네. (씩 웃는다.) 파란색보단 연보라색이지. 그릇도 네가 고르고 싶은 무늬로 골라. 고른 건 나 주고. (바구니에 테트리스하듯 잔을 잘 정리해둔다)
 
베아트리체 힐:(컵과 받침을 건네주고는 머지않아 아무 무늬도 없이 깔끔하게 생긴 그릇을 가지고 온다. 같이 얹혀진 수저도 마찬가지였지만 손잡이는 컵과 같은 색의 손잡이였다.)
...너무 커플같나?
 
에르드:…… 실제로 커, (더듬음) 커플인데 뭐 어때.
………… 아 진짜. (또 귀에 열 올라서 고개 푹 숙인다) 다 골랐음 빨리 계산이나 하자.
 
베아트리체 힐:.....아. 응, 그렇지. ..역시 마음에 들어. (볼을 톡톡 두드리고는 카운터로 향한다.)
저기 아무도 안 계시나요? 계산할게요.
 
철물점 주인:오, 어서 오게. 새로 왔다던 이웃들인가 보구만.
 
<재력> 판정
 
베아트리체 힐:
재력
기준치: 90/45/18
굴림: 37
판정결과: 어려운 성공
 
12 게이지 산탄총 (2D6, 탄창 2) 및 다른 물건들을 구매합니다.
 
베아트리체 힐:아, 네. 안녕하세요. (꾸벅 인사하고 계산한 물건들을 차곡차곡 담는다.)
 
철물점 주인:그나저나 오자마자 총부터 구매하는 겐가? 야생동물이 많이 다니는 곳이긴 하다마는.
자네들은 사냥꾼인 건가? (계산해주며)
 
베아트리체 힐:네, 맞아요. 사냥감이 제법 풍족하던걸요. (괜히 덧붙이며 슬 웃는다.)
 
철물점 주인:그렇구만. 아무래도 산탄총은 민간인이 쓰기엔 요란뻑적지근한 물건이라 말이야.
요새 그 숲 근처에 야생동물이 아닌 것들이 보인다는 소문이 있다더군. 혹시 모르니 조심해서 다니도록 해. 사냥하려다가 다치기라도 하면 큰일 아니겠나?
 
베아트리체 힐:...아, 걱정 마세요. 마을 분들도 걱정이시겠네요. 말씀해주셔서 감사해요. 기억해둘게요.
..정말 다들 친절하시네요. 감사해요.
 
철물점 주인:이제 다 한 마을에서 사는 이웃 아니겠나. 이웃끼리 돕고 사는 건 당연한 거지. 아 참, 그러고 보니 이름을 못 들었군. 무어라 부르면 되겠나?
 
베아트리체 힐:아, 저는... 리리에요.
 
에르드:(가명은 좋은데 꼭 그런 이름이어야 했나? 싶은 눈으로 베아트리체를 슬쩍 내려다보다가) 아이크입니다. (적당히 둘러댐)
 
철물점 주인:그래, 리리랑 아이크라 이거지? 좋은 이름이구만. 다음에도 또 보자고!
 
에르드:(가게 나와서 후드를 살짝 들추고 베아트리체 빤히 내려다본다) …… 리리.
 
베아트리체 힐:............ (슬쩍 시선 피하면서 먼 곳을 응시하기...) ....갑자기 물어보시니까.
...흠흠. 그럼 광장까지만 가볼까요, ...아이크씨.
 
에르드:그으래, 리리 씨. (솔직히 엄청 귀엽다고 생각 중이다. 리체에 이은 또 다른 애칭으로 가끔 불러볼까…… 애칭 주인보다 부르는 내가 더 쑥스러워질 것 같긴 하지만.)
 
두 사람은 가명을 주거니받거니 하며 시장 거리 가운데 위치한 광장으로 걸어갑니다.
 
조경에 제법 힘썼는지 공원 같은 느낌이 물씬 납니다.
 
어쩐지 축제라도 준비하는 건지 천막 같은 것을 올리고 있기도 하네요.
 
옆에는 [아이들]이 뛰어다니며 놀고 있습니다.
 
광장 거리 한 켠에는 [각종 신문]들이 끼워져 있습니다.
 
베아트리체 힐:(놀고 있는 아이들에게 살짝 다가간다.)
...안녕, 여기 곧 축제가 있니?
 
아이들은 광장을 뛰어다니며 꺄르르, 웃고 있습니다.
 
곧 점심시간이라 소란스러운 것 같습니다.
 
삼삼오오 몰려다니는 무리들이 인상적입니다. 무어라 떠들어대며 각자 바빠보이는군요.
 
베아트리체가 다가가 말을 걸자, 아이들은 저 멀리로 도망쳐 버립니다.
 
처음 보는 낯선 어른이기 때문이려나요.
 
에르드:(옆에 서 있는 거구 때문일지도)
 
베아트리체 힐:(어쩐지 조금 아쉬운 표정... 에르 한 번 힐끔 쳐다본다..)
...낯선 사람은 잘 없으니까 그런가보다.
 
에르드:아마 그렇겠지. (아이들을 보면 어릴 때가 떠오르는 탓에 그닥 가까이 가고 싶진 않다. 오히려 먼저 도망가주니 솔직하게는 고마운 심정이었다. 베아트리체에겐 아니겠지만.)
 
멀리 도망간 아이들이 다시금 저들끼리 쑥덕거리는 소리가 들려오네요.
 
대화는 못 하더라도 들어볼 순 있지 않을까요? <듣기> 판정
 
베아트리체 힐:(...괜히 손을 꼭 잡았다.)
듣기
기준치: 70/35/14
굴림: 37
판정결과: 보통 성공
 
"있잖아, 요새... 정육점 아저씨 좀 이상하지 않아?"
 
"그래? 나는 잘 모르겠는데."
 
"몰라. 쫌 그래. 이상해."
 
"워낙 바쁘신 분이잖아. 신경 쓰지 마."
 
에르드:뭐래? (아이들의 대화에는 별 관심 없지만 베아트리체가 보고 있으니 물어본다)
 
베아트리체 힐:(고개가 기운다) ...정육점 아저씨가 좀 이상하시다고. 혹시 모르니까 조심해두자.
 
에르드:정육점이? (눈살 작게 찡그린다.) 유념해둬야겠네.
 
베아트리체 힐:...응. (끄덕이던 고개가 뚝 멈춘다. ...한참 전부터 보기를 그만두었던 신문들에 시선이 꽂혔다. 지금쯤이라면... 별 얘기 없지 않을까 하고.)
...오랜만에 신문도 확인해볼까?
 
에르드:(잠깐 망설인다) 도망친 지도 꽤 됐으니 우리 이야긴 없겠지, 아마. 너 하고픈 대로 해.
 
베아트리체 힐:(조금 더 고민하나 싶더니 이내 신문을 펼져든다.)
 
한켠에 각종 일간지가 꽂혀 있습니다. 아마 도시에서 배달되는 건가 봅니다.
 
베아트리체는 신문을 하나 골라 펼쳤습니다.
 
직접적으로 에르드와 베아트리체를 겨냥하지는 않았으나, 여전히 영웅에 관한 이야기로 가득합니다.
 
베아트리체 힐:...별 얘기는 없네. (신문을 다시금 접어 원 상태로 꽂아두고는 괜히 웃어보인다.)
 
에르드:(하지만 이미 크게 쓰인 헤드라인을 읽었다. 세간은 아직도 영웅들을 그들의 씹을거리로 삼는 일을 그만두지 않은 건가. 아직도 물어뜯기를 멈추지 않은 건가…….) 역시 조심하면서 지내야겠어.
이만 돌아갈까?
 
날이 벌써 저물어갑니다. 슬슬 돌아가서 쉬는 게 좋겠습니다.
 
베아트리체 힐:...응, 돌아가자. (남은 손을 맞잡으며 고개를 툭 기댄다.)
 
에르드:(찬 공기에 얼지 않도록, 손을 좀 더 꾹 감싸쥐고 제 주머니 안에 넣었다.)
 
볕이 든 하늘 아래 눈송이가 눈꺼풀에 내려앉습니다.
 
돌아가는 길 너머로 당신들이 들렀던 가게 사람들이 손을 흔들어보입니다.
 
마을에서의 하루가 막을 내립니다.
 
...
 
다음날, 방 안에서 분주하던 에르드는 곧 두터운 후드를 가져와 당신의 어깨에 둘러줍니다.
 
어제 이야기를 나눈 대로 숲으로 나갈 시간입니다.
 
에르드:자, 덫은 여기 있어. (덫이 담긴 자루를 건넨다.) 혹시나 다치지 않게 조심하고. (뭔가 더 걱정을 줄줄이 말하고 싶은 표정이었지만 참는다)
 
베아트리체 힐:(자루를 받아들면서 가볍게 끄덕인다.) 응, 고마워. (표정을 잠시 마주하다가 살짝 웃는다.) ...그렇게 걱정 하지 않아도 돼.
 
에르드:다 보였어? (작게 한숨 내쉰다.) 능력을 마음껏 쓸 수 있던 시절에는 이렇게까지 걱정되지 않았는데, (물론 그때라고 아예 아무 걱정 않았던 건 아니었다) 지금은 어디에서든 행동을 조심해야 하는 처지니 더 신경쓰이네. 조심해서 잘 다녀와.
아, 그리고 이건 호신용. (어깨에 걸머지고 있던 장총 한 자루를 당신에게 건넨다.)
 
베아트리체 힐:이미 표정으로 다 말하고 있었는걸? (일부러 더 환하게 웃으며 손끝으로 가볍게 상대의 머리칼을 흐트린다. 이리 걱정하는 것도 무리는 아닐테니.) 그만큼 두번 세번 더 조심할게.
(아. 하고 짧은 탄식과 함께 장총을 받아 어깨에 걸쳐 멘다.) 너는?
 
에르드:넌 사람 표정도 잘 읽냐. (손길에 저항 없이 머리칼을 내맡겨, 곱슬기 있는 머리칼이 살짝 흐트러진다)
난 이거. (장작용 도끼 들어보이면서 창밖으로 대강대강 잘라진 나무들을 흘끗 바라본다. 견적을 재듯이) 금방 끝낼 수 있을 것 같네. 네가 너무 늦게 오면 데리러 가야지.
 
눈은 아까보다는 비교적 멎은 것 같습니다.
 
베아트리체 힐:에르 표정이 너무 읽기 쉬운 건 아니려나? (찬찬히 끄덕이고 창밖으로 고개를 돌린다. 잔잔해진 밖을 보며후드를 푹 뒤집어 쓰고서 살짝 올려본다.)
...그럼 먼저 끝내는 사람이 서로를 찾기로 하자.
 
에르드:그럴까. (씩 웃는다) 지지 않을 자신 있어. (누가 보면 대결인 줄)
 
베아트리체 힐:나도 이 정도는 자신 있어. (자루를 들어보이며 같이 웃는다. 대결(?)에 응한다..)
 
에르드:그럼 조심해서 다녀와. (웃으며 당신의 어깨를 한 손으로 살짝 감쌌다가 놓는다.) 눈발이 조금 가늘어져서 다행이네.
 
베아트리체 힐:응, 에르도 조심해서 다녀와야 해. (폭 붙었다가 떨어지며 문으로 향하다가 참, 하더니 돌아와 후드를 푹 뒤집어 씌워주고는 다시 나선다.)
 
베아트리체는 숲의 안쪽으로 향합니다. 에르드는 입구 근처에서 장작을 패기 시작하는군요.
 
나무를 내리치는 소리를 들으며 소복하게 쌓인 눈길을 즈려밟고 안쪽으로 향하니, 사냥꾼들이 다닌 흔적이 바닥에 남아있습니다.
 
눈을 조금 쓸어낸 자국과 덫을 설치했던 모양으로 바닥이 눌려 있습니다.
 
옆쪽에는 채 회수하지 못한 덫 몇 개가 보입니다.
 
<지능> 판정
 
베아트리체 힐:
지능
기준치: 55/27/11
굴림: 54
판정결과: 보통 성공
 
밤새 눈이 쌓여서 아마 덫을 회수하지 못했을 겁니다.
 
그렇다는 말은, 이 눈 쌓인 바닥이 덫밭일 수도 있다는 말입니다.
 
발밑을 조심해야 하겠죠.
 
베아트리체 힐:...조심해야겠네. (주변에 쓸만한 나뭇가지를 주워 몇 발치 앞을 톡톡 두드리며 쓸만한 자리를 찾는다.)
 
베아트리체는 나뭇가지로 앞쪽을 확인해나가며 덫을 피해갑니다.
 
능력을 썼더라면 이 정도 눈밭은 아예 몇 미터쯤 깔끔히 들어낼 수도 있었겠지만, 그래서는 안 되니까요.
 
마침 덫을 설치하기 딱 좋은 자리가 보입니다.
 
베아트리체 힐:(자리를 발견하고는 주변을 확인하고 자루에서 덫을 꺼내 놓는다.) ...딱 좋네.
(주변의 마른가지와 눈으로 위장해두고는 일어난다.)
 
당신이 일을 마무리하자 어느 새 해가 뉘엿 뉘엿 지고 있습니다.
 
힘을 사용하지 않고 살아간다는 건 이런 수고로움을 견뎌야 하는 거겠죠.
 
베아트리체 힐:...역시 생각보다 오래 걸리는구나. (가볍게 손만 휘두르면 금세 해결할수 있는 쉬운일이었텐데 더는 그렇게 할 수 없었다. 무엇을 잘못했길래 이렇게 숨기고 숨어야 하는 걸까, 문득 생각이 고개를 든다. 물끄러미 손을 내려다보다 고개를 내저으며 생각을 털어낸다.)
...에르를 찾으러 가야지.
 
주변을 정돈하고 길을 돌아서려고 하자, 저 멀리에서 어떤 불길한 소리가 가까워져 옵니다.
 
 
 
 
쉽게 알 수 있습니다.
 
눈 쌓인 바닥을 딛고 다가오는 짐승의 단단한 발소리.
 
그것은 당신의 기척을 알아차리고 똑바로 행로를 정했습니다.
 
도망치기 위해 뛴다면 분명 저것도 같이 뛰어올 것입니다.
 
사람은 짐승의 달리는 속도를 따라잡을 수 없어요.
 
물론, 당신은 짐승의 감각을 간단하게 왜곡시켜버릴 수 있겠지만요.
 
어떻게 할 건가요, 베아트리체?
 
베아트리체 힐:(커다란 발소리가 가까워질수록 제 심장 소리도 점점 커진다. 무어라 생각하기도 전에 반사적으로 다가오는 위협을 향해 손을 뻗었다가 비틀기 전에야 화들짝 정신을 차렸다. ...안돼. 안돼. 툭 떨어지는 손에 덜거럭 장총이 닿자 재빨리 어깨에서 빼내어 조준한다. ...적당히 비켜나간다면 좋을텐데...)
(방아쇠에 걸린 손가락이 떨린다. 이 짧은 순간이 천천히 흘러가는 것처럼 느껴진다.)
(부디 큰소리에 놀라 도망가길 빌며 다가오는 커다란 형체의 주변에 있는 나무 둥치를 향해 방아쇠를 당겼다.)
장총
기준치: 25/12/5
굴림: 74
판정결과: 실패
피해: 8
 
탕! 베아트리체의 총구는 허공을 겨냥합니다.
 
공중에 커다랗게 울리는 소리에 곰이 순간 멈칫하는가 싶다가, 자극을 받았는지 더 거칠어진 기세로 달려오기 시작합니다.
 
일촉즉발의 상황입니다. 어떻게 할까요?
 
베아트리체 힐:(숨을 크게 들이키고 나무들 사이로 뒤돌아 뜁니다)
 
베아트리체가 뒤돌아 뛰쳐가려던 그 순간,
 
탕!
 
당신의 옆쪽에서 다시 한 번 매서운 총성이 울려 퍼집니다.
 
고개를 돌리니, 어제 마을에서 지나가듯이 보았던 익숙한 얼굴들이 보입니다.
 
그들은 사냥용 산탄총을 곰에게 쏘아대다가 당신을 알아보고 소리칩니다.
 
사냥꾼1: 아니, 자네 괜찮나!?
 
사냥꾼2: 큰일날 뻔 했군그래! 우리가 왔으니 안심하게!
 
그들은 당신의 앞으로 나서서 커다란 곰이 쓰러질 때까지 총을 쏘아대기 시작합니다.
 
붉게 점멸하는 그 장면은 어쩐지 이전에 보았던 것만 같습니다.
 
그래요. 당신은 저 사냥꾼들처럼 인류를 등지고 서 있었습니다.
 
세계를 구하기 위해 기이한 것들 앞에 몸을 내세웠고, 그렇게 많은 삶을 구했습니다.
 
하지만 지금 당신은
 
자신의 이름 하나 제대로 발음하지 못한 채
 
눈더미에 도주의 발자국을 남길 뿐인 이방인이군요.
 
상념이 머리를 훑고 갈 때 즈음, 곰이 눈 위로 고꾸라집니다.
 
“이봐, 괜찮나? 다친 덴 없어?”
 
사냥꾼들은 커다란 곰이 쓰러지는 걸 확인하고 나서야 베아트리체에게 다가와 다친 곳이 없는지 확인합니다.
 
남은 사냥꾼들은 눈더미에 깔린 덫들을 수거합니다.
 
다섯명쯤 되어 보이는 그들은 주위를 정돈하고 난 후 당신에게 가까이 다가옵니다.
 
베아트리체 힐:(붉게 퍼지는 장면과 쓰러지는 형체를 천천히 눈에 새기며 입을 열었다.) ....괜찮아요. 감사합니다. ..덕분에 살았어요.
사냥 중이셨나요?
 
사냥꾼1: 맞네, 내일 일 때문에 고기를 충당하러 오던 길이었거든. 자네, 며칠 전에 사냥꾼의 오두막에 이사 온 사람이 아닌가. 자네 말고 한 명이 더 있었던 것 같은데.
이곳은 야생동물들이 많이 다녀서 특별히 주의해야 하네. 물론, 그 총을 보아하니 기본적인 것은 할 줄 아는 것 같네만... 아깐 우리가 있어서 망정이었지.
우리가 둔 덫 때문에 숲을 다시 빠져나가는 것도 고역이었겠군... 사과하겠네. 괜히 우리 때문에 곤란한 일을 겪게 만든 것 같군.
 
사냥꾼3: 저런, 빌 자네, 새로 온 이웃을 곤란하게 만든 건가? 그렇다면 응당 그 값을 치뤄야하지 않겠나! 으하하!
 
정육점 주인:뭘 이런 곰 하나 잡았다고 요란스럽게 굴고 그러나...
 
호탕하게 웃고 있던 사냥꾼이 베아트리체의 어깨를 툭, 툭 쳐댑니다.
 
글쎄요, 사실 이런 곰쯤이야, 당신의 손짓 한 번이었으면 바로 해결할 수 있었을 겁니다.
 
민간인 취급을 받는다는 것은 어쩐지 이상한 기분입니다.
 
옆에 서 있는 정육점 가게 주인은 팔을 꼰 채로 뭔가 탐탁치 않은 눈을 하고 있습니다.
 
베아트리체 힐:...아니에요, 이렇게 구해주셨으니까요. (덩달아 입꼬리를 살짝 끌어올린다. 그와는 반대로 무겁게 가라앉는 마음은 어찌할 도리 없이 점점 아래로 아래로, 내려앉는다. )
...혹시 하실 말씀이라도 있으신가요? (정육점 가게 주인을 향해 기울여 묻는다.)
 
정육점 주인:(영 탐탁찮은 표정으로 베아트리체를 훑어볼 뿐, 별다른 대답 없이 고개를 모로 돌린다.)
 
곧 잡은 곰을 손질한 다른 사냥꾼이 자루에 그것들을 담아 어깨에 짊어지면, 진한 피냄새가 배여옵니다.
 
사냥꾼1: 그럼, 이렇게 하는 게 어떻겠나? 우리 마을에는 고기 굽는 실력이 일품인 요리사가 있다네. 우리에게 이 고기를 양보해 준다면 최고의 맛으로 재탄생시켜 주겠네. 어쨌든, 이건 자네의 사냥감이었으니. 하지만, 우리에게도 훌륭한 곰 고기를 맛볼 기회 정돈 줄 수 있지 않겠나?
 
호탕한 기색으로 말을 건네던 사냥꾼의 어깨를 퍽, 내리친 호탕한 기색의 다른 사냥꾼이 말을 가로챕니다.
 
사냥꾼3: 뭘 그렇게 의견을 묻고 있나! 어차피 이곳에 살게 되었으니 모두 마을의 일원이 아닌가. 자네, 이렇게 된 거 우리가 술과 음식을 양껏 제공하겠네. 마침 내일 저녁 마을에서 야시장을 열게 되었다네! 함께 사는 사람도 있던 것 같은데, 그 자도 함께 데려오게. 어떤가?
 
사냥꾼4: 아하! 그래, 그래. 이렇게 된 거 새로운 이웃들을 위한 축제도 겸해야겠구먼!
 
사냥꾼2: 좋네! 좋네! 그렇게 하지!
 
베아트리체 힐:...아, 그래서 장식이 많았나 보네요. (여전히 웃는 얼굴로 그들은 한번 돌아본다. 평범하게 섞여들 수 있으려나, 이들도 머지않아 돌아서면 그때는 어쩌지. 가라앉는 마음에 부정적인 생각만 물거품처럼 떠올랐다 사라진다.) ...초대해주셔서 정말 감사해요. 우선은 돌아가서 그 이에게도 물어볼게요.
 
사냥꾼2: 꼭 오게! 우리 마을 축제엔 빠지면 섭하지. 게다가 이번엔 이렇게 커다란 곰까지 잡았으니 경사일세.
 
정육점 주인:쯧, 우리 마을 먹을 것도 모자란데 뭐 다들 그러나!
 
사냥꾼1: 어휴, 자네도 참. 한 마을에 사니 다 이웃이지 뭘 야박하게 구나. 일단 가장 돈이 되는 가죽은 두고 갈 테니, 마을 방문 건에 대해서는 긍정적으로 생각해 주길 바라네. 혹여 오지 않는다면 이 고기들을 좀 보내주겠네.
 
사냥꾼3: 다음엔 야시장에서 만나기로 하자고. (껄껄 웃는다)
 
정육점 주인이 부정적인 말을 하든 말든 호탕한 인삿말을 마친 사냥꾼들은 자루를 짊어지고 사박거리며 산을 내려가기 시작합니다.
 
바닥은 곰의 유해였던 것으로 엉망이군요.
 
사냥꾼들이 눈으로 조금 덮어두어 흔적이 흐려지긴 했지만, 어쩐지 그 피범벅이 익숙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베아트리체 힐:(그들은 뒷모습을 지켜보다가 바닥에 가까이 쪼그려 앉는다. 근처의 눈을 그러 모아 그 위로 한참을 덮어두고 일어났다. 이렇게 쓸모없는 조각들과 껍데기만 남은 것이 꼭 자신의 처지 같아서 그랬을지도 모른다. 손을 툭툭 털어낸다. 지금 당장 그가 옆에 없으면 가라앉는 마음에 질식해버릴지도 모르겠는 생각이 들어 걸음을 빨리 재촉한다.)
 
노을의 파고로 주홍빛 그을음이 잔뜩 묻긴 설원을 가로질러 나오면, 에르드가 마당에 서 있는 게 보입니다.
 
싸락눈의 결정이 머리카락에 들러붙어 있는 것으로 보아, 기다리고 있던 지 좀 됐나 봅니다.
 
에르드:베아트리체! (멀리서 당신의 형상을 알아보자마자 서둘러 뛰쳐온다.) 그렇잖아도 숲에 들어가야겠다 고민하던 참이었어. 총소리가 났는데 괜찮은 거야?
 
베아트리체 힐:... 에르드! (재촉하던 발걸음이 당신을 시야에 담은 순간 점점 속도를 더해 거의 뛰다시피 되어 그대로 품에 뛰어들었다.) ...괜찮아. 괜찮았어. 나는 괜찮아. 별일없었어. (그에게 전하는 말인지 자신에게 들려주려는 말인지 몇번을 더 괜찮다고 되새겼다.)
 
에르드:(베아트리체가 뛰듯 안겨오자 조금 당황했다가도, 이내 한참이나 작은 연인을 힘주어 꾹 끌어안았다. 차가운 바람도 눈발도 지금은 베아트리체에게 닿을 수 없도록. 그가 진정할 수 있도록 한참 동안 말없이 끌어안고 있다가 조용히 입을 열었다.) 다친 데는 없어 보이는데…… 짐승이라도 만난 거야?
 
베아트리체 힐:(잠시 응석 부리듯 더욱 고개를 품으로 파고들었다가 한참이 지나고 나서야 천천히 시선을 맞춘다. 드물게도 감정이 정리되지 않는지 말도 어수선해진다.) ... ...곰을 만났어. ...원래라면 금세 해결할 수 있었을텐데. 그러지 못했어. 그랬는데, 때마침 마을 사람들이 도와줬어. (...내 자신이 너무 초라해. 남겨진 잔해가 꼭 내 처지 같았어. 그 말은 도로 삼켰다. 이런 절망을 다시금 상기시키고 싶지 않아서.)
..에르가 같이 있었다면 도움 받아 않아도 됐을텐데.네 생각이 나니까 갑자기 네가 너무 보고 싶어져서 참을 수가 없었어. (그제서야 감정을 덧씌우듯 미소를 띄운다.) ...참, 마을 사람들이 우리를 초대했어. 함께 곰 고기를 나눠먹자면서. ....어떻게 생각해?
 
에르드:곰을? …… 역시 내가 갔어야 했는데. (한동안 베아트리체의 말을 들으며 표정관리를 할 수가 없었다. 항상 힘들어하는 자신을 감싸주고 다독여주던 그였지만, 똑같은 처지에 처해 있었으니 베아트리체도 저 못지 않게 힘들고 괴로웠을 테지. '원래라면' 이라는 한 마디에서 무척이나 많은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의 등을 느리게 쓸어내렸다.) 마을 사람들이 그때 거길 지나가고 있어서 다행이었네. 네가 능력을 쓰지 않으려고 하다가 다치기라도 했더라면 난 스스로를 용서할 수 없었을 거야.
역시 다음엔, 굳이 시간 절약하려고 분담할 생각 말고 뭐든 함께 해야겠어. 그래야 비상상황이 일어났을 때도 같이 대처할 수 있지. 이렇게 아쉬워하거나 후회하는 일도 없고. (품안에서 미소 짓는 이를 가만 내려다보다가, 느리게 마주 입꼬리를 끌어올렸다.) 초대라니, 그건 생각도 못 했지만…… 넌 어때. 가고 싶어?
 
베아트리체 힐:(가만 제 등을 쓸어내리는 다정한 손길을 고스란히 받으면서 그의 얼굴에 한 손을 가볍게 얹었다. 내 감정이 결국 너도 슬프게 하는구나. 눈썹이며 눈가를 가볍에 쓸었다.) ...정말 다행이었어. 다친 곳도 하나도 없고. ...미안해, 내 사소한 실수 때문에 또 다시 다른 곳을 찾아 언제고 떠돌고 싶지는 않았어. ....그러지 않기로 약속했는데.
...역시 그 편이 좋을까? (살짝 올라간 입꼬리를 손 끝으로 따라 그린다.) ......솔직하게 말하자면 가보고 싶어. (체념하고 잊으려 해도 사실은 다른 이들과 섞여서 평범하게 예전처럼 지내고 싶었으니까.) ...하지만 그래도 괜찮을까? 너무 가까워지면 들킬지도 모르잖아.
 
에르드:(반대쪽 손으로 뺨에 닿는 손길을 느리게 감싸쥐었다. 장갑 너머로도 전해져 오는 체온. 바람 탓일까, 차갑게 느껴져 마음이 쿡쿡 쑤신다.) 사과하지 마. 다친 곳도 없고, 능력도 쓰지 않고 무사히 돌아왔잖아. 그거면 돼. 설사 떠돌게 된다 하더라도 괜찮아, 난. 너만 함께 있으면…… 그러면 괜찮아. (우리는 까마득히 높은 절벽에서 서로를 지탱하는 외나무다리나 다름없다. 한쪽이 끊어지면 붙잡을 줄사다리 하나 없이 같이 무너지고 말겠지. 그만큼 우리가 몰아붙여진 상황은 가혹하고 혹독했기에.)
(아무리 모두에게 배척받는 삶을 오래 살아왔다 한들 어찌 익숙해질 수 있을까? 사람을 먼저 밀어낸 건 에르드 그였지만, 사람들과 가까워지지 않으려 드는 게 모두에게서 미움받고 싶다는 의미는 결코 아니었으므로. 다만 살얼음 위를 건너듯 조심스럽고 두려울 뿐이다. 그래도, 차디찬 얼음물에 빠진다 해도 네가 손을 내밀어준다면 다시 올라올 수 있겠지…….) 네가 원한다면, 가자. 능력을 쓰는 모습을 들키지만 않으면 돼. 너나 나나 능력이 화려한 효과를 가진 건 아니니까, 무의식적으로 썼다고 해도 어떻게든 수습할 수 있을 거야. 게다가 잠깐 내려가는 것 정도라면 계속 주의할 테니 괜찮겠지.
 
베아트리체 힐:...... ......응. 그래, 괜찮아. 나는 너만 있으면 돼. (두 팔을 들어 제 연인의 목에 감고 가득 끌어 안는다. 아마 우리는 언제가 되어도 익숙해질 수 없을 것이다. 가혹한 겨울처럼 시린 세상의 눈초리도 언제 부서질지 모르는 살얼음판처럼 아슬아슬한 이 생활도. 그럼에도 서로가 서로의 안식처가 될 테니까. 오로지 하나밖에 남지 않은 온전한 자신의 안식처. 그러니 더 강하게 매달리듯 끌어안는다.)
.......응, 능력만 쓰지 않으면 괜찮을거야. 분명히. (자신에게 다짐하듯 더욱 힘주어 입 밖에 낸다.) ... 그럼에도 혹시 모를 만약의 일이 생긴다면. 그때는 반드시 네가 먼저야, 에르.
 
에르드:마찬가지야. (세상의 사람들이 전부 저를 배척한대도 이렇게 두 발로 땅을 밟고 서 있다. 인간으로서 살아가고 있다. 모두 자신 곁에 남아있는 전우이자 친구이자 연인 덕분. 그게 아니라면 살아갈 이유도 자신의 가치도 잃고 말았겠지. 이제 베아트리체가 없는 자신을 상정하는 게 어려웠다.)
…… 그건 무슨 뜻이야. 내가 먼저라니. (처음에는 이해가 되지 않는 듯 되물었다가, 벼락처럼 뜻을 납득하고는 표정을 굳힌다.) 내가 반대로 말했을 때 넌 그럴 수 있어? 못해, 난.
 
베아트리체 힐:(...지금 내 품에 가득 안은 이가 나의 모든 것. 세상 모든 것을 내던지고 뒤로 한 채, 도망치고 부서지면서도 여태 살아있을 수 있는 이유.)
....그냥 말 그대로야. 너무 깊게 생각하지마. (처지는 눈썹과는 반대로 입꼬리를 끌어당긴다. 굳은 표정의 연인은 담은 눈동자가 애처롭다.) ...에르는 나보다 강하니까 그런 일은 없을거야. 그러니까 아주, 아주 만약의 일이야.
 
에르드:(워낙 협조성이라고는 없는 독립적이고 독선적인 성격이었고, 남을 위해 자신을 희생한다는 개념 역시 생각해본 적도 없었다. 그러나 베아트리체와 점차 가까워지고, 그가 소중해지면서 처음으로 저보다 더 중요하게 여기고 싶은 이가 생겼다. 이게 사랑이라는 거겠지.) 만약의 일이 벌어져서 안 좋은 일을 당하게 되더라도, 함께야. (이전의 자신이었더라면 다른 사람 아니냐며 놀랐을 말이 자연스럽게 나온다.)
애초에 그런 일이 벌어지지 않도록, 내가 널 지켜줄게. 그럼 되지? (그리곤 화제를 돌리듯) 더 오래 밖에 있다간 감기 걸리겠어. 들어가자.
 
베아트리체 힐:(눈이 조금 크게 뜨였다가 이내 부드럽게 휘어졌다. 어느새 이렇게 소중해져버린걸까. 자신을 저버릴만큼, 자신을 뒤바꿀만큼. ....이게 사랑이라는거겠지.) .... .......그래, 그런 순간이라도 함께하자. 에르가 날 지켜주고 내가 에르를 지킬테니까.
응, 이제 들어가자. ...머리에 눈이 쌓였네. (곱슬기 있는 검은 머리칼을 톡톡 털고는 손을 꼭 잡는다. 돌아가자. 우리의 집으로.)
 
두 사람은 손을 꼭 맞잡고 집으로 향합니다.
 
그래요. 가끔, 아주 가끔은 이런 것도 괜찮지 않을까요?
 
'평범함' 을 도살당했던 당신들에게 이번에는 다른 기회가 왔을 수도 있으니까요.
 
만일 그 기회가 칼날이 되어 당신들을 아프게 찔러오더라도, 우리는 사랑의 힘으로 서로를 지킬 것입니다.
 
피로로 찐득한 몸을 씻어내리고 나오니, 에르드가 벽난로에 장작을 넣으며 잠들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불티가 타닥거리며 오르는 소리가 잔잔하게 깔려 듣기 좋습니다.
 
에르드:자. (따뜻한 훈김이 오르는 우유 잔을 건넨다.)
 
단 향취가 느껴지는 것을 보아하니 꿀을 탄 우유인가 봅니다.
 
베아트리체 힐:...아, 고마워. (표정없는 얼굴 위로 금세 미소가 떠오른다.)
 
에르드:고생했으니까, 일찌감치 자자. 내일 갈 준비도 해야 하고. 얼굴을 들키지 않으려면, 좀 더 두껍고 큰 후드를 써야 하려나. (내일의 옷차림을 그려보며 제 몫의 우유를 몇 모금 마셨다.)
 
베아트리체 힐:(두 손으로 받아든 잔은 느긋하게 입으로 가져간다. 달콤한 온기에 마음도 서서히 녹아내린다.) ...그래야겠다. 조금 피곤하네. ...아무래도 그래야겠지? (옷장 안 쪽의 큰 후드를 떠올린다. 그걸 뒤집어쓰면 꼭 사신같아보인다고 생각하곤 했다.)
...정말 내려가도 괜찮을까?
 
에르드:걱정돼? (누가 선뜻 아니라고 대답할 수 있을까. 아무리 조심하더라도 언제나 만약의 경우는 있는 법이고, 불가피하게 얼굴이 드러날 수도 있겠지. 아직도 다 풀지 못한 이삿짐이 남아있건만 또다시 도피의 길에 올라야 할지도 모른다. 침대에 걸터앉아 제 곁에 오란 듯 옆자리를 살짝 두드렸다.) 하지만 가보고 싶다고 했잖아. (위험한 가능성이 산재하는데도, 그런데도 사람들 사이에 평범하게 섞여 살고 싶다는 희망은 꺼지질 못해서.)
 
베아트리체 힐:(차마 다 풀지 못한 짐들이 제 가슴에 얹힌 것처럼 무겁게 느껴져, 벽난로를 물끄러미 보다 희미하게 고개를 끄덕인다. 툭툭, 그 부드러운 부름에 옆자리에 앉아 어깨에 기댄다.) ...그래도 가보고 싶어. 온전히 포기하지도 체념하지도 못하고 참 미련하지. 바보같고. (그렇게 상처받고 도망치면서도 여전히 버리지 못하는 미련이 무겁다. 그건 당신도 분명 같은 마음이라 속이 쓰리다.) ...그래도 에르, 네가 있으니까 괜찮을거야. 우리는 늘 그래왔잖아.
 
에르드:(손을 뻗어 조심스럽게 베아트리체의 어깨를 감싼다. 저보다 한참 작은 이의 체구가 손 안에 넉넉히 들어찼다.) 현명하게만 굴 수 없는 게 사람이란 걸, 이미 잘 알게 됐지. 가장 나은 선택지가 눈앞에 있는데도 결국은 사람들의 사이에 섞이고 싶어하니까. (하지만 어쩌겠는가. 혼자 살 수 없는 게 인간이란 존재인 것을. 우유의 김이 드문드문 올라오는 허공을 올려다보았다. 차디찬 겨울바람이 부는 바깥과 다르게 장작의 온기로 따스한 집 안. 또다시 이 온기를 잃고 도망쳐야 하는 날이 오더라도……) 그래, 괜찮아. (많은 의문과 어려운 질문의 해답을 너로 정의할 수 있으니까.)
 
베아트리체 힐:(저를 감싸는 온기에 기대어 깊숙이 파고든다. 묻은 고개에서 한숨 같은 웃음소리가 난다.) ...맞아, 그랬었지. ...우리도 역시 사람이니까. (... ...차라리 세상이 뭐라 떠드는 대로 괴물이었다면 마음이 편했을 터이다. 고개를 들어 시선을 맞춘다. 그럴때 면 늘 그렇듯 가볍게 뺨을 쓸어내린다.) ...내일은 베아트리체와 에르드가 아닌 리리와 아이크겠네.
 
에르드:(쑥스러운 티를 애써 감추면서 그의 보랏빛 눈을 가만 마주 들여다보았다.) 아무렇게나 둘러대긴 했지만, 역시 가짜 이름은 좀 어색하네. 이렇게 네 애칭을 부르게 될 줄은 몰랐는데 말이야. (희미하게 웃는다) 우유 다 마셨으면 이만 잘까. 리리?
 
베아트리체 힐:(언제 보아도 늘 한결같이 사랑스러운 얼굴. 그 입에서 나오는 어느 때보다 다정하게 들리는 제 애칭에 마음이 간질간질해졌다.) ... ...나는 오히려 좋을지도 모르겠네. (두 개의 잔을 옆에 놓인 협탁에 나란히 올려둔다.) 응, 이제 그만 자자.
 
에르드:…… (귀엽긴. 이라고 저도 모르게 말하려다가 튀어나가기 직전에 자각하고 얼른 입을 다문다. 빈말로라도 애칭을 자주 불러줘야겠다고는 못 하는 에르드. 2n세. 숫기없음.) 잘 자.
 
베아트리체 힐:응, 잘 자.
 
그렇게 눈꺼풀을 감기면 설원에 세워진 당신들만의 쉘터가 아늑한 수마로 안내합니다.
 
...
 
다음날.
 
해가 지고 노을 대신 검푸른 달이 눈 밭에 드리우면, 에르드가 따뜻한 후드를 팔목에 걸쳐 가지고 나옵니다.
 
밤새 내리던 눈은 어느새 멎었는지 소복히 쌓인 눈길을 만들었네요.
 
에르드는 언제나처럼 무덤덤한 낯입니다만,
 
혹시 모를 '이번에는' 의 희망이 그의 눈시울에 깃들었던 것도 같죠.
 
사람들 사이에 섞이는 걸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그였으나, 그렇다고 배척당하고 미움받는 상황까지 의연할 순 없었습니다.
 
몇 번이나 결백을 말해도 두 사람을 향한 의심과 불신의 시선은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결국 무고를 증명하려던 베아트리체는 체념의 탈을 덮어쓸 수밖에 없었고, 격렬히 항의하고 반항하던 에르드 역시 당신을 제 뒤에 숨긴 채 물러서는 게 다였습니다.
 
하지만 어쩌면, 어쩌면 이번에는…….
 
세계를 구하고 계절을 되찾아준 것이 흉흉한 계책을 꾸미는 죄라 비난받는들,
 
희망마저 죄라 손가락질할 수는 없을 테지요.
 
에르드:자, 깊게 눌러써야 해. (후드를 건네준다.)
 
베아트리체 힐:응. (후드를 받아 걸치고는 얼굴이 다 가려질 만큼 푸욱 눌러쓴다.)
 
에르드:(저 역시 얼굴이 거의 다 가려질 만큼 후드를 깊게 눌러쓰고, 목도리며 장갑 등을 분주하게 챙겨 건넨다.) 나갈 준비는 다 됐어?
 
베아트리체 힐:응, 에르가 늘 먼저 다 챙겨주니까. (마음을 다잡으려는 듯 결연하게 숨을 크게 내쉬더니 아, 하고 고개를 든다.) ... 이걸 잊었네. (당신의 후드 끝을 쥐어 더 푹 씌우는가 싶더니 훅 끌어당긴다. 시야에 얼굴이 가득 들어차나 싶으면 서로의 입술이 맞닿는다. 슬쩍 놓으며 빙긋 웃는다.) .......이만 갈까, 아이크.
 
에르드:…… 뭘? (잊었다는 말에 놓고 간 거라도 있나 싶어 돌아보다가 무방비하게 끌려간다. 영문을 물어볼 새도 없이 가까워지는 낯, 그리고 맞닿는 찰나의 따스함과 부드러운 촉감…… 뭘 했는지 깨닫자마자 얼굴에 온통 열이 올라서 제 입가를 한 손으로 후다닥 가린다) 너, 너 진짜 저번부터 자꾸……! (허망하게 당신을 바라보다가 후드를 아예 턱까지 끌어내려 버린다.) 부끄러움도 없냐, 진짜?
 
베아트리체 힐:(푹 당겨 쓴 후드 아래로 즐거운 웃음소리가 조그맣게 울린다. ...부끄러움도 없냐니, 그럴리가 없는데. 보지 않아도 느껴지는 뺨의 열기가 제게는 온전히 느껴진다. 깊고 큰 후드가 오늘처럼 고마운 날은 없었다.) ...그치만 하고 싶었는 걸, 어떡해. (흠흠, 목을 가다듬더니 재촉하듯 손을 잡아끈다.)
 
에르드:하고 싶음 해야지, 그렇긴 한데……. (와중에 또 납득은 하면서 순순히 손 잡아끌린다. 어릴 적엔 하늘만큼 높이 쌓았던 제 경계의 벽을 기어코 허물더니, 제 경계심이 낮아진 틈을 타서 이렇게 훅훅 치고 들어온다니까. 좋은 의미로 마음을 놓을 수가 없다. 아직도 닿았던 입술의 촉감이 남은 듯해 손끝으로 조심스럽게 제 입가를 쓸어보다가, 눈 질끈 감고 얼른 문 열고 바깥으로 나선다. 얼굴이 너무 뜨거워져서 찬바람이 간절했다.)
 
바깥으로 나섭니다.
 
타드는 노을이 산 너머로 추락하고, 검은 창공에 맺힌 별무리가 눈 밭에 쏟아칩니다.
 
말갛게 빛나는 결정들은 보석 파편처럼 아스라져 눈 밭에 가득입니다.
 
그 사이를 가로지르며, 당신들은 사람 향취로 가득한 마을 입구로 들어섭니다.
 
마을은 광장 가운데 제법 그럴싸한 캠프 파이어를 피워두고 음식을 준비하느라 바쁩니다.
 
아이들은 이리저리 뛰어다니고, 작은 부스들을 여럿 열어두었군요.
 
규모가 그렇게 크지는 않지만, 야시장 같은 느낌이 물씬 납니다.
 
가운데 커다랗게 피어오른 불씨를 중심으로 양 옆에 부스들이 일렬로 세워져 있습니다.
 
간단한 주전부리와 술, 놀거리가 있는 부스들이 일렬로 놓여 있습니다.
 
:[꼬치 부스 / 사격 부스 / 점술 부스 / 사람들이 몰려 있는 곳] 을 가볼 수 있습니다.
 
베아트리체 힐:...어딜 먼저 가볼까? 일단 뭐라도 먹을래? (생각보다 본격적인 광경에 조금 마음이 들뜬다. 주변을 둘러보며 꼬치 부스를 가르키는 눈이 빛을 받아 반짝인다.)
 
에르드:(작은 마을이지만 그래도 제법 어엿한 야시장의 모습이다. 축제의 분위기는 무뚝뚝한 그의 마음도 울리는 무언가가 있었다.) 그럴까. 마침 저녁 먹을 때도 다 됐으니까.
 
꼬치 부스에서는 맛있는 냄새가 모락모락 피어 오르고 있습니다.
 
각종 구운 꼬치들과, 녹인 설탕을 묻힌 과일들이 꽂혀 있습니다. 먹음직스러워 보여요.
 
식료품점 주인:어머, 또 보네요. 두 분. (반갑게 손 흔든다.) 이야기는 들었어요. 마을 축제를 위해서 고기를 나눠주셨다고요. 우릴 위해 양보해줘서 고마워요.
두 사람에게는 오늘 뭐든지 무료로 대접해야만 한다고 단단히 일러두더군요. 후후.
이렇게 된 거, 행운을 한 번 시험해 보는 건 어때요?
 
식료품점 주인은 가격을 구분하기 위해 끄트머리에 오색의 테이프가 붙여져 있는 꼬치 막대를 내밀어 보입니다.
 
한 번 뽑아볼까요?
 
두 사람 모두 <행운> 판정
 
베아트리체 힐:
기준치: 50/25/10
굴림: 16
판정결과: 어려운 성공
 
에르드:
기준치: 50/25/10
굴림: 27
판정결과: 보통 성공
 
당첨! 베아트리체가 뽑은 꼬치에는 녹색 테이프가 둘러져 있습니다.
 
식료품점 주인:어쩜! 가장 희귀한 걸 뽑으셨네요. 운도 좋지~.
 
주인은 당신에게 양손 가득 고기 꼬치들을 안겨 줍니다.
 
하나같이 먹음직스러워 보여요. 원하는 것을 골라 먹을 수 있을 겁니다.
 
에르드가 뽑은 꼬치에는 오렌지색 테이프가 둘러져 있습니다.
 
주인은 고기와 야채가 맛스럽게 익어 바베큐 소스가 함뿍 뿌려진 꼬치를 건네줍니다.
 
보기만 해도 군침이 돕니다. 입에 넣고 씹으면 육즙이 함뿍 배어나올 것 같죠.
 
베아트리체 힐:......이렇게나 많이요? (양손에 가득 들린 꼬치를 내려다보다 감사의 인사를 전한다.)
...같이 먹을까? (반쯤 손에 넘겨준다.)
 
식료품점 주인:(흐뭇하게 바라보며) 즐거운 축제 되세요, 새로운 이웃분들.
 
에르드:(주인에게 애매모호하게 고개를 수그려 인사하고는) 왜. 네가 많이 먹는 게 좋은데. 이것도 맛있어 보이고. (씩 웃으면서 제가 받은 꼬치를 한 입 베어문다)
 
베아트리체 힐:...노력은 해보겠지만, 이렇게 많이는 못 먹어. (한참 내려보다 그 중 잘 구워진 야채와 버섯, 고기가 골고루 섞인 꼬치를 하나 베어 물었다.) ...맛있다.
(오물오물. 꽤나 즐거워보이는 얼굴로 열심히 꼭꼭 씹는다.) ...저기도 가볼까? (양손의 꼬치로 사격 부스를 가르킨다.)
 
에르드:알겠어, 그럼 특별히 같이 나눠먹어 줘야겠네. (사실 대식가라 꼬치 하나 가지곤 간에 기별도 안 간다. 괜히 장난이나 쳐본 것으로 오래지 않아 당신의 손에서 꼬치 두세 개를 받아들었다. 와중에 후드 아래로 조금이나마 보이는 베아트리체의 볼이 꼭 다람쥐 같아 흐뭇해진다.) 잘 먹으니 좋다.
(제 꼬치에 남은 고기를 한 입에 다 넣으면서 고개 끄덕인다) 재밌겠는데. 자신있어, 리리?
 
베아트리체 힐:정말 고마울 따름이야. (일부러 장난스레 덧붙였다. 먹는 모습만 봐도 배부르다는 말은 정말 누가 만든건지. 딱 들어맞는다.)
(눈이 크게 깜빡이다 웃음이 터진다.) ..응, 이 정도는 무리 없지. 오랜만에 내기라도 해볼까, 아이크?
 
에르드:좋아. 참고로 능력 쓰는 건 반칙이다. (애초에 제 능력은 사격과는 아무런 관련도 없었지만.)
 
사격 부스에는 고무탄을 장전해서 쏠 수 있는 모조 총기들이 놓여져 있습니다.
 
앞쪽에는 당신들에게 총과 칼을 판매했던 철물점 주인이 서 있네요.
 
앞쪽 팻말에 "고득점시 키링 증정!" 이라고 적혀 있습니다.
 
철물점 주인:오, 자네들 왔는가. 사냥꾼들에게 얘긴 다 들었네.
어디 솜씨 한 번 보여주겠는가? 허허허.
 
사람 좋게 껄껄 웃어보인 주인이 해 보라는 듯 턱짓하네요.
 
베아트리체 힐:(꼬박 인사하고는 모조 총기 두 개를 집는다.) ...누가 먼저 할까?
 
에르드:내가 먼저 해볼게. (권총을 골라잡고 양손으로 감싸쥔다. 한쪽 눈을 감고 과녁을 바라보는 모습이 퍽 태가 난다. 승부욕이 센 만큼 제대로 자세를 잡고, 잠시간 숨을 고르다가 방아쇠를 당긴다. 누가 보면 진짜 총을 쏘는 모습처럼 보일 정도다)
사격(권총)
기준치: 50/25/10
굴림: 25
판정결과: 어려운 성공
 
10점짜리 과녁에서 8점을 맞췄네요!
 
과연 자신있단 말이 헛소린 아니었네요.
 
베아트리체 힐:(숨죽여 지켜보다 조용히 환호하며 짝짝짝 박수 친다.) ...역시 아이크네. 멋있다, 응. (조그맣게 고개를 끄덕이고는 모조 권총을 쥐어든다. 자세를 잡고는 한쪽 눈을 내리 감아 초점을 맞춘다. 장난삼아 하는 게임이라도 제법 진지해보인다. 방아쇠에 걸린 손가락이 당겨진다.)
사격(권총)
기준치: 50/25/10
굴림: 43
판정결과: 보통 성공
 
베아트리체가 쏜 총은 과녁의 6점을 맞췄습니다!
 
두 사람 다 실력이 뛰어난걸요.
 
에르드:너도 대단한데? 평소에 총은 잘 안 잡아 봤잖아. (눈 크게 뜨며 과녁과 베아트리체를 번갈아본다.) 쉽게 이길 줄 알았는데 좀 난항이 있을 것 같네. 한 번 더 하자.
 
베아트리체 힐:...그러게. 의외로 잘 맞는걸까? (과녁과 손을 두어번 번갈아 본다.) ..좋아, 한번 더 하자.
 
에르드:못하는 게 없네. (괜시리 자기가 흐뭇해진다) 이번엔 네가 먼저 쏴보는 건 어때?
 
베아트리체 힐:(쑥스러움을 감추려 괜히 웃는다.) ..좋아, 먼저 할게. (다시금 과녁을 향해 자세를 잡고 방아쇠에 손가락을 걸어 당긴다.)
사격(권총)
기준치: 50/25/10
굴림: 51
판정결과: 실패
(아차, 초점 맞추는 걸 잊었다.)
 
그만 초점을 맞추는 걸 깜박 잊어버렸네요. 3점을 맞춥니다.
 
그래도 과녁을 맞췄는걸요!
 
베아트리체 힐:으음, 아깝네.
 
에르드:아. (탄식한다. 이내 얄밉게 씩 웃는다) 승리에 한 발 가깝게 다가간 것 같은데.
그럼 내 차례지? (아까보다 좀 더 신중하게 과녁을 겨냥하고 방아쇠를 걸어당겼다.)
사격(권총)
기준치: 50/25/10
굴림: 24
판정결과: 어려운 성공
 
에르드가 당긴 고무 총알은 이번에도 8점을 맞춥니다.
 
16점과 9점, 에르드의 승리네요. (떼잉)
 
에르드:봤어? (8점을 다시금 맞추자마자 상기된 목소리로 외치며 당신을 돌아본다.)
 
베아트리체 힐:(환한 얼굴로 금세 다가와서는 푹 안겼다가 두 볼을 꼭 붙잡는다.) 응, 봤어 봤어. 역시 잘하네. 진짜 멋있었어.
 
에르드:흠, 흠. (헛기침을 하며 진지한 척 해보려고 하지만 별로 그런 쪽이랑은 맞질 않는다. 얼굴이 가려져 있어서 이나마 숨겨진 것이지, 원래였다면 길거리에서 호탕하게 소리라도 질렀을지 모른다.) 내가 좀…… 멋있지. (자랑하듯 물어봐놓고 막상 칭찬을 받으니 좀 쑥스러워서 말을 더듬는다.)
 
철물점 주인:이야. 둘 다 사냥꾼 아니랄까 봐 실력이 뛰어난데?
자, 두 발 다 과녁을 맞췄으니 가져가게.
 
주인이 베아트리체에게 귀여운 늑대 모양 키링을 증정합니다.
 
에르드에게는 토끼 모양 키링을 줍니다.
 
철물점 주인:마을에서 직접 만든 거라네. (자랑한다)
 
베아트리체 힐:(두 손으로 받아 든 키링을 아주 빤-히 오래도록 쳐다본다. 한참 뒤에 든 고개에 눈동자가 반짝인다... 어지간히 마음에 드나보다..) ........정말 너무 너무 귀여워요. 감사합니다.
..이거봐, 아이크랑 닮았지. (뺨 가까이 가져다댄다.)
 
에르드:…… 꽤 귀엽네. (무미건조하게 말하지만, 마찬가지로 시선을 토끼 키링에서 떼지 못한다.) 근데 그게 나랑 닮긴 뭐가 닮았어? 차라리 이게 훨씬 닮았지. (늑대 키링을 슬쩍 밀어내고 베아트리체의 얼굴 곁에 토끼 인형을 들어올렸다.) 쪼그맣고 귀여운 게 딱이야.
 
베아트리체 힐:(시선을 눈치채고는 슬 웃는다. 마음에 들면서, 괜히 저러는 모습도 제 눈에는 그저 사랑스럽게만 보인다.) ...난 이렇게 조그맣지도 귀엽지도 않은데. 안 닮았어.
 
에르드:무슨 소리야? 내 눈엔 이거랑 너랑 거의 똑같아. (큭큭 웃는다. 아, 아직은 이렇게 자연스럽게 웃을 수 있는 사람이었구나. 문득 자각하는 사실.)
 
베아트리체 힐:..말도 안돼. (토끼 인형과 당신을 번갈아본다. ......얼마 만에 보이는 웃음인지, 그만 같이 웃어버린다. 이렇게 웃을 수 있다면 무엇이 대수일까.) ...네 눈에는 이렇게 조그맣게 보인다는거지? 그래서 늘 걱정이구나?
 
에르드:당연하지. 이렇게― (시선이 맞닿을 만한 높이까지 허리를 낮춘다. 후드로 눈가를 가린지라 평소보다 조금 더 숙였다.) 허리를 한참 숙여야 시선이 닿을 만큼 작은데 어떻게 안 걱정하겠어.
 
베아트리체 힐:.....아, 응. 그, 그렇겠네. (늘 자신이 먼저 다가간 터라 이렇게 반대의 상황이 되니 심장이 고장난 것처럼 덜컥하고 크게 널뛰었다. 가려진 후드 틈으로 보이는 별을 닮아 반짝이는 시선에 사로잡힌다. ...얼굴 빨갛게 보일까..? 괜히 시선을 슬 돌린다.)
저, 점술 부스도 가볼까?
 
에르드:음? (못할 말을 했나? 말을 더듬는 모습에 고개를 기우뚱 기울인다. 아무튼 이런 쪽으론 눈치도 없고 숫기도 없고 없는 것만 많다.) 그래, 가자.
 
서로를 닮은 키링을 손에 쥔 채 점술 부스로 향합니다.
 
믿거나 말거나 카드 점술! 우정과 사랑의 궁합을 봐준다고 적혀 있습니다.
 
옆에는 아이들이 그렸는지 크레파스로 삐죽삐죽한 하트 모양이 잔뜩 그려져 있습니다.
 
점술가:어서오세요.
 
검은 천을 걷고 당신들이 안쪽으로 들어서자 묘한 기운이 흐릅니다.
 
정말 무언가 점을 쳐줄 것만 같은 느낌이에요.
 
부스 주인은 수상한 후드를 쓴 채 카드 덱을 손으로 셔플하고 있습니다.
 
베아트리체 힐:....안녕하세요. (묘한 분위기에 이끌려 신기한 듯 이곳저곳 둘러본다.)
 
점술가:전 우정과 사랑 궁합을 전문으로 봐드리고 있답니다. 마을의 명물이라면 명물 부스죠.
자, 점을 보러 오신 거죠? 앞에 앉아 주세요. 두 분은 어떤 관계이신가요?
 
베아트리체 힐:(자리에 앉으며 제 옆자리를 톡톡 두드린다.)
..음, 연인이에요.
 
에르드:(이런 분위기는 영 어색한지라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어정쩡하게 옆자리에 앉았다.) 점이란 거 신빙성이 있는 거야? (소근소근)
 
베아트리체 힐:...글쎄, 나도 점은 이번이 처음이라. ...그래도 궁금하지 않아? (마찬가지로 소근소근)
 
점술가:점술이 어떤 결과가 나오든 그건 믿는 사람 마음이랍니다. (수상하게 웃으면서) 자, 카드를 뽑아보도록 할까요?
 
그가 여러 장의 카드를 펼칩니다. 적당히 원하는 걸 골라보죠.
 
베아트리체 힐:...음, 뭐가 좋을까? (당신과 점술사를 번갈아 본다.) 하나씩 고르면 되는걸까요?
 
점술가:원하는 카드를 하나씩 골라 주시면 된답니다.
 
베아트리체 힐:...그럼, 이걸로 할게요. (놓인 카드 중 가장 중앙에 놓인 카드를 고른다.)
 
에르드:(베아트리체가 고르는 걸 보다가 따라서 적당히 옆쪽에 있는 카드를 골랐다.) 난 이걸로요.
 
점술가:흐음, 좋습니다. (두 사람이 고른 카드를 바라보며 작게 감탄사를 낸다.)
과연. 연인이라고 하셨던가요. 과거부터 아주 끈끈하게 이어져 온 인과 연이 읽히네요. 순탄하지만은 않았지만, 긴 시간이 결국 두 사람의 마음을 하나로 이어주었어요.
두 분이 각각 뽑은 카드들의 조합을 보니, 이보다 더할 수 없는 천생연분을 의미하고 있네요. 서로에게 없어선 안 될 존재로 서로를 인식하고 계시군요.
 
베아트리체 힐:... (잠자코 듣고 있다가 고개가 절로 끄덕인다. 신기한지 뽑은 카드를 뚫어져라 쳐다본다.)
...신기하다, 그치.
 
에르드:카드 몇 개로 이런 걸 다 읽어낼 수 있다고? (반신반의하는 표정으로 점술가와 카드 뭉치를 번갈아 바라본다. 평생 점술 같은 것관 인연 없이 살아왔으니 더욱 믿기 어렵기도 했다. 하지만 이름과 얼굴이 알려진 이전이었다면 모를까 지금은 모두 가리고 있는 상황이니, 믿기진 않아도 인정할 수밖에.)
(그러다 문득 이런 생각도 든다. 혹시 우리가 누구인지도 알아차리는 건 아니겠지?)
 
점술가:점술이란 신비스럽고 아름다운 분야지요.
자아, 그럼 지금부터는 서비스입니다. 두 분의 과거와 미래를 점쳐드릴까 하는데요.
어디 한 번 볼까요?
 
그렇게 말한 점술가는 유리 구슬에 손을 마주 닿이고 무어라 주문을 외우기 시작합니다.
 
사실, 그냥 아무 말이나 하는 것 같지만요.
 
그런 의심이 들 때 즈음, 유리 구슬에서 빛이 나기 시작합니다. 생각보다 그럴싸합니다.
 
점술가:자아, 보이는군요.
피로 물든 황량한 대지 위에 서 있는 당신들이 보여요.
아주 무거운 업을 짊어지고 있었군요. 당신들은 이걸 기꺼이 받아들였지만, 세상은 당신들을 믿질 못했어요.
결국은 자의든, 타의든 당신들을 억누르고 말을 할 수 없게 봉쇄해 버렸네요.
거칠고 험한 말들이 너무 쉽게도 오르내렸어요.
자, 지금 무엇을 바라나요? 더 이상 '도피처'를 찾을 필요 없도록, 떠돌지 않는 삶을 살기를 바라나요?
 
베아트리체 힐:..... (꿰뚫어진 질문에 침묵이 이어진다. 그의 입에서 나오는 말은 자신들의 처지를 너무나도 선명하게 그렸다. ...대체 어떻게? 떠오르는 질문들에 머리가 어지럽다. 그럼에도 어느새 간절해진 목소리가 튀어나온다.) ...네, 그러길 원해요.
(뒤늦게 자신들의 정체를 알아차린 것은 아닐까, 불안한 기분이 들었지만.)
 
점술가는 조용히 미소할 뿐입니다.
 
점술가:좋아요. 그 말, 잊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제가 봐드리는 점술은 여기까지입니다.
나갈 땐, 뒤를 돌아보지 않는 것이 원칙이랍니다.
 
손을 깍지 낀 채 턱에 기댄 점술가는 천막 바깥을 가리켭니다.
 
아마 끝났다는 것 같죠.
 
베아트리체 힐:....감사합니다. (여전히 의문이 가득한 얼굴로 자리에서 일어난다.)
...그만 갈까?
 
에르드:(꼭 우리의 상황을 직접적으로 들여다본 것 같다. 놀랍기도 하고 얼떨떨하기도 했다. 그리고 동시에, 우리의 상황을 다른 이들에게 퍼뜨리지 않을까 의심이 든다.) 점술의 내용은 비밀로 하는 거겠죠?
 
점술가는 유하게 웃습니다.
 
점술가:누군가를 '들여다보는' 이들은 입을 함부로 놀리지 않는 것이 원칙이죠.
안심하세요. 걱정하는 일은 없을 테니.
 
깜빡.
 
눈꺼풀을 감았다 뜨는 순간 현기증이 듭니다.
 
<정신력> 판정
 
베아트리체 힐:
정신
기준치: 65/32/13
굴림: 98
판정결과: 실패
 
검은 후드 아래 드리워진 그림자가 분주히 움직이는 게 보입니다.
 
다시 초점을 당겨내자, 시선에 맺히는 건 아무것도 없습니다.
 
당신들의 손에는 아까 샀었던 꼬치와 키링만이 들려 있습니다.
 
돌아보면 점술 부스가 있던 자리는 텅 빈 채입니다.
 
베아트리체 힐:...마치 꿈이라도 꾼 것 같네. (몇 번이나 눈을 감았다 떠도 텅 빈 자리를 멍하게 응시한다.)
 
에르드:뭐지? (반신반의하며 점술 부스가 있던 자리를 두리번거린다.) 믿기질 않네. 알고 보니 우리처럼 능력을 가진 사람이기라도 했던 건가?
 
베아트리체 힐:...어쩌면 정말 그럴지도 모르겠네. (잠시 말이 없다가) ...마지막 질문은 뭐였을까.
 
에르드:우리의 정체를 거의 눈치챈 것 같던데. (조금 착잡한 심경으로 제 앞머리를 털어낸다.) …… 함부로 퍼뜨리진 않겠다고 했으니 믿을 수밖에.
 
베아트리체 힐:...응, 분명 그랬으니까. (고개를 드는 불안을 털어내고자 시끌한 곳으로 고개를 돌린다.) ...저기로 가볼까? (사람들이 몰린 곳으로 기웃 고개를 기울인다.)
 
에르드:(사람이 많은 곳. 본능적으로 거부감과 위기감이 들어 침을 한 차례 삼킨다. 긴장한 티를 내면 알아채게 되어 있어. 자연스럽게 행동해야겠지.) …… 그래. 왔으니 얼굴은 비추고 가야겠지.
 
베아트리체 힐:(긴장으로 굳어가는 것을 눈치채고 앞에 서서 시선을 마주하고 뺨을 부드럽게 위로하듯 쓸어낸다.) ... ......너무 걱정하지마. 괜찮을거야. (손을 들어 꼭 마주 잡으며 눈 앞에서 가볍게 흔들어 보인다.) ...함께잖아.
 
에르드:…… 맞아. (손을 꼭 잡고, 느리게 입꼬리를 올렸다. 빠르게 뛰려 하는 심장을 조금씩 진정시킨다.) 너무 눈에 띄지 않게만 행동하면 되겠지. 가자.
 
베아트리체 힐:(마주 웃는다. 숨을 크게 고르고 잡은 손에 힘을 준다. 그리고 천천히 걸음을 옮긴다. 시끌벅적한 사람들의 소리가 가까워질수록 심장 소리도 둥둥 울린다.)
 
광장 가운데가 소란스럽습니다.
 
커다랗게 불을 피워 놓은 곳 근처에서 사람들에게 고기와 술을 나누어 주고 있네요.
 
아마, 어제 사냥꾼들이 베아트리체 곁에서 잡았던 곰의 고기인 것 같습니다.
 
고기를 나누어 주고 있던 사냥꾼이 아는 체를 합니다.
 
사냥꾼: 아, 자네들 왔나!? 와 줘서 정말 고맙네.
덕분에 마을의 축제가 풍요로워졌어.
어제의 무례는 용서하게. 정육점 가게 그 양반도 진심은 그게 아닐 거야. 요새 무슨 일이라도 있는지 너무 신경질적인 것 같구만.
자아~. 자네들도 받게.
 
그렇게 말하곤 사냥꾼은 당신들에게 고기와 술을 나누어 줍니다.
 
플라스틱 컵에 가득 담긴 맥주는 아주 차가워 보입니다.
 
고기는 먹음직스럽게 요리되어 있습니다.
 
베아트리체 힐:...괜찮아요, 다 잊었는걸요. 챙겨주셔서 감사합니다. (진정하려 주먹을 한번 꾹 쥐었다가 가볍게 웃으며 털어낸다. 내밀어진 음식과 술을 받아 넘긴다.) 자, 아이크.
 
에르드:…… 감사합니다. (낮은 목소리로 감사 인사를 하며 음식과 잔을 받았다. 사람들 틈에 섞여 이야기를 나누고 식사를 한다. 이전에는 의식하지도 못할 정도로 지극히 자연스러웠는데, 지금은 마치 첫 걸음마를 내딛는 아이가 된 기분이었다. 여기에선 어떤 행동을 해야 했고 어떤 반응을 보여야 했더라.)
 
사냥꾼:(불꽃을 바라보며 말을 잇는다) 우리 마을은 이렇게 마을의 안녕과 평화를 기원하는 마음으로 축제를 열곤 한다네.
이렇게 가운데 불을 피워 놓고 마음에 끼친 근심과 불운을 태우는 거야. 마을의 전통 같은 거지.
 
주위를 둘러보면, 저마다 행복한 웃음을 짓고 있습니다.
 
너나할것 없이 말갛게 취하고, 손을 마주 잡은 채 춤을 추고 있습니다.
 
근처에 앉아서 기타를 연주하는 사람도 보입니다.
 
노오란 불씨를 등불 삼아 너울너울 춤을 추고 있는 모습이 고즈넉하고 아름답습니다.
 
베아트리체 힐:...그래서인가 다들 즐거워 보이네요. ... 정말 아름다워요. 모두가. (...우리의 근심과 불운도 밝게 타서 사라지면 좋을텐데. 입꼬리를 끌어올린다. 지금 제 표정이 부디 저들처럼 행복하고 자연스러운 웃음처럼 보이기를 바랬다. ...깊게 쓴 후드가 고마울 지경이었다. 옆으로 바짝 다가가 머리를 툭 기댄다.)
...괜찮아?
 
에르드:그럼. 괜찮지……. 괜찮지 않을 이유가 없어. (타오르는 불꽃을 하염없이 바라보며, 베아트리체의 어깨를 제 쪽으로 살짝 끌어당겨 더 기대게끔 했다. 생각이 깊은 성격도 상념이 많은 성격도 아니었지만, 긴 도피의 생활 끝에 맞이한 평화롭고 아름다운 광경은 절로 많은 것을 떠오르게 만든다.)
다들 행복해 보이네. 우리도 한때 저렇게 어떤 걱정도 없이 즐거웠던 시절이 있었지. (하물며 목숨이 위태로운 싸움을 하던 시절에도, 이토록 모두와 유리된 듯한 부유감과 외로움은 느껴본 적 없었다.)
 
베아트리체 힐:(생각에 잠긴 듯한 옆 얼굴을 올려다보는 가려진 눈이 왜 인지 애처롭다.) ...응, 정말.다들 행복해 보이지. 아름답고. 우리도 저렇게 보였을까.
(한번도 자신의 선택을 후회한 적은 없었다. 능력이 발현되었을 때 모두를 지키기 위해 나서는 것은 지극히 당연하게 해야 하는 의무라고 생각했으니까. 끈질기게 이어지는 전쟁 속에서도 지칠지언정 포기 하지 않았다. 모두와 함께 였으니까. 그런데 지금은 어떻지.)
...에르는 이 곳이 마음에 들어? (그 외에는 누구에게도 들리지 않을만큼 작게 속삭인다.)
 
에르드:(금빛 시선이 불길, 기타를 연주하는 사람, 춤추는 사람들에게로 차례차례 옮겨간다. 장작을 넣은 불빛이 타오르는데도, 어쩐지 제게만은 그 열기가 와닿지 않는 듯했다.)
(세상이 외면하는 우리. 세상에게서 미움받는 우리. 차라리 그들이 외치는 대로 정말 나쁜 짓을 저지르기라도 했다면 억울하지라도 않겠지. 그럴 마음조차 없었는데. 그저 가까운 이들과 함께 살아갈 세계를 되돌려받고 싶었을 뿐인데…… 우리에게 되돌아온 건 찬사가 아닌 온몸을 옥죄는 사슬이었다.)
잘 모르겠네. 항상 정을 붙일 새도 없이 급하게 떠나야만 했으니까. 그리고 너도 알잖아. 난 뭔가에 정을 붙이는 데 아주 오랜 시간이 걸린다는 걸. 과연 내 마음이 동할 때까지 이곳이 우릴 내치지 않을 수 있을까. (무척 쓸쓸하게 들리는 어조였다.)
 
베아트리체 힐:(제 연인의 눈동자를 닮아 어둠 속에서 더 환하게 빛나는 불씨를 가만 눈에 담는다. 시린 바람에 일렁이면서도 꺼지지 않는다.)
...응, 그렇지. 벌써 7번째니까. (쓸쓸함이 잔뜩 묻어나는 목소리가 제 가슴을 슬프게 찌른다. 벗어날 수 없는 무거운 사슬에 옥죄어 언제고 유랑해야 하는 삶이 분명 버거울 터였다. 품에 기대 눈을 잠시 감는다.) 이번에는 네가 정을 붙일 수 있을 만큼 아주 오래 남을 수 있다면 좋을 것 같아서.
평화롭고 행복하고 아름다운 곳에서.
 
에르드:모두와 하하호호하며 정답게 어울리는 건 바라지도 않아. 그런 건 내 성향에 맞지도 않고.
그냥…… 모두가 날 밀어내지 않고, 차가운 눈으로 날 바라보지 않는 거. 그 정도면 충분한데. (많은 것을 바랐나?)
(품에 기댄 연인을 내려보다가 그 위에 제 고개를 살짝 얹는다.) 나는 그 누구도 쉽게 믿지 않고, 쉽게 곁에 들이려 하지 않지만…… 네가 이곳과 이곳의 사람들을 믿는다면, 나 역시 믿을 수 있게 될 거야. (그만큼 베아트리체는 에르드에게 소중한 사람이었다. 당신으로 하여금 제 기준을 재정립할 수 있을 만큼.)
평화롭고, 행복하고, 아름다운 곳이라고.
 
베아트리체 힐:(고개를 살짝 저으며 시선을 맞춘다. 보랏빛 눈동자에 불빛이 일렁인다.) ......그걸로는 부족해. 나는 네가 더 많은 것을 바랐으면 좋겠어. 모두의 사랑을 받고 믿음과 신뢰를 얻고. 또, ....그 어떠한 두려움 없이 그저 마음 가는 대로 편히 살았으면 해. .....그 옆에 내가 있을거고.
(사람들 앞에서 짓던 부자연스러운 미소는 어느덧 부드럽게 풀어졌다.) ...그럼 내가 믿을게. 네가 믿을 수 있도록. ( 또 상처 입고 도망쳐야 한다고 해도 이번만은, 이라며 기대를 한다. 이 기대가 부디 충족되기를. 너에게 까지 상처 주지 않기를.)
 
에르드:모두의 사랑? 그거 너무 낯간지러운데. (작게 웃는다.) 믿음과 신뢰는 나쁘지 않지만. 사랑은 너한테만 받는 걸로 충분해. (사랑을 할 수도, 받을 수도 없는 사람이라고 스스로를 여겨 온 시절이 길었다. 낮아진 자존감, 그에 대비하듯 높아진 경계심. 그 모두를 깨뜨리고 완화해준 이가 바로 베아트리체였다.) 그래도 네가 바라는 대로 편히는 살고 싶다. 그래야 같이 사는 너도 편할 거 아냐.
너의 믿음이, 네게 부메랑으로 돌아와 상처입히는 일이 없었으면 좋겠어. (그의 손을 잡은 채 조용히 중얼거렸다. 다쳐도 제가 다치고, 피를 흘려도 자신이 흘릴 테니. 너는 아픈 일 없이 평화롭고 무사했으면 해.)
 
베아트리체 힐:(말을 곱씹다 작게 웃는다.) ...기꺼운 말이네. 내가 가장 사랑하는 사람이자 내게는 가장 사랑스러운 사람이니까.
(작은 중얼거림을 들은걸까, 잡은 손에 힘을 준다. ...우리는 언제나 같은 생각을 하고 있구나. ...상처받지않을거야. 세상에 맞서는 서로의 방패이자 창. 네가 있으니까.)
 
기대어 있는 두 사람에게 아까의 사냥꾼이 다시 친근하게 말을 걸어 옵니다.
 
사냥꾼:자네들도 손을 맞잡고 불을 쬐며 춤추는 건 어떻나?
이제, 이 마을의 일원이니까.
우리는 자네들의 얼굴을 제대로 알지는 못해도, 마땅히 그럴 만한 사유가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네.
 
사냥꾼은 잔을 드높게 들고 허공에서 건배를 권합니다.
 
잔잔히 울리는 음률에 몸을 싣고 발을 움직이는 이들이 분주합니다.
 
설경에 영사되는 한 장면은 진정 평화를 의미하고 있습니다.
 
불타오른 건물을 딛고 싸우던 그 때는 없습니다.
 
에르드:…… 어쩔까? (얼떨결에 같이 술잔을 높이 들어올렸다. 마시지는 않았지만.)
 
베아트리체 힐:.......우리도 가볼까? (덩달아 들어 올린 술잔을 슬그머니 내린다.)
 
에르드:…… 좋아. 춤은 별로 춰본 적 없지만. (한 손을 내밀었다.)
 
베아트리체 힐:...마음 가는 대로 움직여도 좋지 않을까. (내밀어진 손을 잡았다.)
 
에르드:우리한텐 별로 관심이 없어 보여. 다들 축제 분위기에 온전히 취해 있는 것 같네. …… 드문 일이지. (가는 곳마다 우리를 알아본 이들이 손가락질을 했으니까. 그러니 오늘만큼은 편하게 이 순간을 누려도 되는 게 아닐까.)
(안일해지고 싶다. 이 평화에 안주하고 싶다. 이 평화를, 내 소유로 하고 싶다.)
(손을 잡고, 음악의 박자에 맞추어 어설프게 발을 움직이기 시작한다. 춤춰본 경험도 적은데다 최근에는 더더욱 그럴 기회가 없었으니, 춤이라고 불러주기에도 우스울 정도였지만 얼굴엔 금세 웃음꽃이 핀다.)
 
베아트리체 힐:....오늘 만큼은 다 잊자. (얼마 만의 여유이자 평화일까. 눈에 스미는 빛처럼 시린 마음에도 따스한 생기가 돈다.)
(맞잡은 손과 어설픈 움직임, 발소리, 즐거운 사람들의 목소리, 흐르는 음악이 한데 모여 섞인다. 사실 춤을 제대로 춰본 적 없는 건 마찬가지라 우스꽝스럽고 엉망일지도 모른다. 그래도 즐거워. 이미 얼굴에는 웃음이 만개했다.)
 
세상을 구했던 자들이 군중에 섞여든다는 건 어떤 기분일까요?
 
평범함을 도살당한 자들이 손을 마주하고 춤을 추는 광경 말이에요.
 
휘청거리고 완벽하지 않아도 당신들은 이 대지에 서 있습니다.
 
물기 어린 공막을 얼어붙게 만드는 추위임에도 어쩐지 춥지 않았습니다.
 
수상한 이웃들이 손을 맞잡고 불을 쬐이며 춤을 추자, 웃음 소리가 드높아집니다.
 
옆에서는 박수를 치기도 합니다.
 
어쩐지 모든 게 괜찮을 것만 같은 하루입니다.
 
지금만큼은 모든 걸 잊어도 될 것만 같았습니다.
 
...
 
광장 가운데의 불씨가 점점 사그라들고, 밤이 더욱 기울어질 때쯔음 당신들은 돌아가기로 합니다.
 
아쉬움을 표시하는 마을 사람들을 뒤로합니다.
 
곧 당신들이 숲 속으로 다시 돌아가려고 할 때, 마을 주민으로 보이는 아주머니 한 분이 다가옵니다.
 
아주머니:저기, 숲 속의 이웃 분들. 가시기 전에 잠시만 시간 괜찮으실까요?
 
베아트리체 힐:...아, 네. 무슨 일이신가요? (후드를 슬 고쳐 쓰며 돌아본다)
 
인자한 미소를 겸한 중년 여성은 말을 조금 머뭇이다가, 살짝 웃어내어 보입니다.
 
아주머니:우리 마을에서는 이 축제가 있고 난 후 시일 내로 젊은이들이 약식 혼약을 하는 풍습이 있답니다.
식료품점 주인에게 들었는데, 두 분…… 연인이시라고요. 괜찮다면 이번 해의 약식 혼약의 주인공들은 두 분이 되어주실 수 있을까요?
정식적인 건 아니지만, 젊은 사람들의 건강과 사랑을 기리는 행사거든요. 혹여나 너무 부담스럽게 받아들이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베아트리체 힐:... (혼약이라니. 슬쩍 에르드의 표정을 살핀다.)
 
에르드:(후드 아래로도 당황한 티가 역력하다. 마찬가지로 베아트리체를 향해 고개를 돌린다. 그야, 베아트리체가 아니라면 그 누구와도 사랑 같은 걸 하지 않을 테니 약속이야 쉬이 할 수 있지만. 괜찮은 걸까? 우리의 정체가 밝혀진다면.) …… 어떻게 생각해?
 
베아트리체 힐:(영원을 약속할 이는 당연히 에르드 뿐이었으니 언젠가는 하게 되리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정체가 들킨다면 더 이상 이곳에 있을 수 없다.) ....으음, 조금 고민이네.
(후드를 만지작거린다.)
 
에르드:……. (들키지만 않는다면. 저들이 우리의 정체를 알고도 비난하지만 않는다면 받아들이고픈 제안이었다. 하지만, 언제고 그 '만약'이 발목을 잡는다.) 싫지는 않은 거지? 약식일 뿐이라면…….
 
베아트리체 힐:(고개를 젓는다.) ...싫지 않아. ( 사실은 만약의 상황이 오더라도. 약속하고 싶었다. 영원을.) ......하고 싶어.
 
에르드:…… 그러면 하자. 나도 싫지 않아. 오히려 생각지도 못하고 있었던 걸 상기시켜준 느낌인걸. (연인의 손을 꼭 잡고 아주머니를 돌아본다. 고개를 끄덕였다.)
 
아주머니:당황스러울 법도 했는데, 흔쾌히 받아들여주어 고마워요. 모두들 여러분을 축복해줄 거랍니다.
그럼 근시일 내로 뵈어요.
 
아주머니는 인사를 하고 마을로 돌아갑니다.
 
베아트리체 힐:...그럼 이제 돌아갈까? (불안과 수많은 생각이 스쳐 지나간 얼굴은 마주하자마자 환하게 바뀐다.)
 
에르드:(짧게 고개를 주억이고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혼약이라니, 약식이라 할 뿐이라도 그 의미는 크다. 그러고 보면 이전에는 전쟁으로 바빴고, 전쟁이 끝난 후에는 도망치기 바빠 관계를 더 진전시킬 생각은 할 틈도 없었지.) 이곳을 믿을 수 있게 하고 싶다고 했지. 나도 믿고 싶어. 너와 혼약을 하고 정착해 살아가고 싶을 만큼.
 
베아트리체 힐:(걸음이 우뚝 멈춘다. 이미 마을은 멀어졌다. 깊게 눌러 썼던 후드를 뒤로 넘기자 표정이 그대로 드러난다. 그 안에는 넘칠 듯한 기쁨과 안도, 걱정과 슬픔, 그 외에도 셀 수 없이 수많은 감정들이 뒤섞였다. 환하게 휘어진 눈가가 일렁인다.)
...그렇게 말해줘서 정말 기뻐. 고마워.
 
에르드:…… 널 사랑해. (제 얼굴을 마주 드러내며, 달빛이 비추는 연인을 마주하며, 진중한 한 마디를 발음했다. 이 말의 무게가 저에게는 얼마나 무겁고 또 어려웠던가. 부모는 저를 일찍이 떠나갔고 맡겨진 친척은 저를 없는 사람 취급했다. 제대로 된 사랑을 받지 못했으니 제 안에 고일 일도 없는 감정이라 여겼다. 그러나 당신의 보랏빛이 제 시야를 채우고, 당신의 따스한 온기가 저의 가슴을 채우고, 끝내는 심장마저 물들였다. 당신이 알려준 감정이니, 온전히 당신에게 되돌려줄 것이다.)
그날이 기다려지네. (희미하게 웃는다)
 
베아트리체 힐:(.........얼마나 기다려왔던 말일까. 그의 상처를 알았다. 그의 과거를 알았고, 트라우마를 알았다. 그렇기에 누군가에게 마음을 여는 일이 얼마나 힘든지 사랑이라는 감정을 받아들이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 잘 알았다. ...지금 이 순간 만큼은 나는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이 아닐까. 너무 행복해 울고 싶은 심정이었다. 일렁이던 눈가를 훔쳐내고 할 수 있는 힘껏 환하게 웃는다.)
....사랑해.
얼른 그 날이 왔으면 좋겠다. (눈 위에 거리를 좁히는 발자국이 하나 둘 놓인다. 얼굴이 가까이 다가오면 이내 입술이 닿는다.)
 
에르드:(느리게 뻗은 손은 베아트리체의 뺨에 닿았다가, 바람에 흩날리는 그의 긴 머리칼을 귀 뒤로 넘겨주고, 이내 뒷머리를 완전히 감싼다. 온 세상이 차가워도, 맞닿은 우리의 숨결만큼은 마을 한가운데에서 타오르던 불길만큼이나 뜨거울 테지.)
 
서로를 향한 마음을 다시 한 번 확인합니다.
 
두 사람은 다시 사박거리는 눈을 밟고 오두막으로 돌아갑니다.
 
등 뒤로 채 끝나지 않는 축제의 불빛이 아른거립니다.
 
나무 틈새에 빛여울들이 잔뜩 맺혀있네요.
 
이렇게 긴 하루가 집니다.
 
...
 
평범한 하루가 지속됐습니다.
 
마을 사람들은 당신들의 안위를 우려하기라도 하듯 관심을 기울이며 몇 번씩 숲속의 오두막을 방문해 이것저것 챙겨주곤 했습니다.
 
하지만, 당신들이 영웅이었다는 것을 알고서도 똑같은 반응을 이어갈 수 있을까요?
 
또다시 혐오와 멸시, 공포를 띈 눈을 피해서 도망가야 하는 건 아닐까요?
 
...
 
소란이 잦아든 새벽, 당신은 둔중한 기척에 눈을 뜹니다.
 
당신의 모든 감각이 정전기가 오르기라도 한 듯 잔뜩 예민하게 곤두서서 시끄럽게 경보를 발합니다.
 
무언가 오두막 가까이로 오고 있습니다.
 
명확하게, 당신들에게 적의를 지닌 존재입니다.
 
베아트리체 힐:....(조용히 소리를 죽여 몸을 일으킨다. )
 
다시 눈이 내리기 시작해서 그런지 창문 바깥으로는 시계가 잘 보이지 않습니다.
 
에르드는 피로한 건지 곤히 잠들어 있습니다.
 
베아트리체 힐:(...깨우지 말자. 곤히 잠든 이를 깨우지 않기 위해 발소리를 죽여 문에 다가서 기척을 살펴본다.)
 
기척이 점점 더 가까이 다가오고 있는 게 느껴집니다.
 
이대로라면 당신들의 집까지 도착하고 말 것입니다.
 
베아트리체 힐:(...집 안까지 들일 수는 없다. 만약을 대비해 사냥용 총을 두 손에 꼭 들고 문 밖으로 나선다.)
 
총을 챙기고 바깥으로 나가면, 완연한 어둠이 끼친 숲 입구가 보입니다.
 
저 안쪽에서 기이하도록 커다란 짐승이 천천히 다가오고 있습니다.
 
그림자로 덮인 숲을 등지고서, 그것이 당신에게로 다가옵니다.
 
이전에 보았던 곰과 크기를 비교하는 게 우스울 정도로 커다랗습니다.
 
한 걸음을 딛을 때마다 묵직한 산울림이 느껴집니다.
 
자연이 분노한 산물이 있다면 이런 행색일까요.
 
하지만, 그 어둠 속에서 가까이 다가오는 그것에게 두려움이 느껴지지는 않습니다.
 
아, 눈보라는 멎을 줄 모릅니다.
 
어둠이 짙어요.
 
분노의 감촉이 느껴지지만, 그저 그뿐입니다.
 
베아트리체, <■■> 판정.
 
베아트리체 힐:
■■ Roll
기준치: 99/49/19
굴림: 87
판정결과: 보통 성공
 
... ... .. .... ..
 
죽음을 불사하고 전쟁에 나섰던 자는 공포를 공기처럼 익숙히 체감하였고 두려움을 버리게 되었죠.
 
마치 습관과도 다름없습니다.
 
고작 거대한 곰 한 마리 따위, 당신이 상대해야 했던 새까만 적들과 비교하면 아무것도 아닐 테니까요.
 
시선을 부딪히자, 곰이 걸음을 우뚝 멈춥니다.
 
누구에게도 밟히지 않은 설원의 한가운데 영웅이 서 있습니다.
 
곰이 주춤거리더니, 분노로 가득 차 돌진하던 곰의 속도가 점차 느려집니다.
 
눈을 마주한 시간이 길어질수록 짐승이 눈에 띄게 멈칫하는 것이 느껴집니다.
 
짐승은 야성스러운 울음을 한 번 내지릅니다. 공포에 질린 울음소리였습니다.
 
그것은 도망치려는 것처럼 몸을 돌리려 합니다. 마치 본능과도 같았습니다.
 
그 순간,
 
짐승의 안광보다도 선명하고 짙은 금색 빛무리가 번뜩이며 베아트리체의 옆을 스칩니다.
 
동시에 커다란 곰의 움직임이 그대로 얼어붙습니다. 꼭, 돌덩이가 되듯이.
 
탕! 커다란 총성이 얼어붙은 공막을 울리며 굳어버린 곰을 정확히 격발합니다.
 
짐승은 비명조차 지르지 못한 채 바닥으로 스러집니다.
 
에르드:…… (짐승의 움직임이 완전히 멎은 것을 확인하고서야 손에 쥔 총을 천천히 내린다. 베아트리체를 돌아보는 시선은 여전히 짐승보다도 날것 같은 호전성이 가득했지만, 차차 걱정이 스며든다.) 괜찮아?
 
베아트리체 힐:(바닥에 쓰러진 형상에서 다정한 이에게 까지 천천히 시선이 돌아간다. 놀란 듯 커진 눈에 마찬가지로 걱정이 스며들었다.) ...난 괜찮아. 에르 넌?
(혹시나 싶어 주변을 슬 돌아본다.)
 
<듣기> 판정
 
베아트리체 힐:
듣기
기준치: 70/35/14
굴림: 94
판정결과: 실패
 
누군가의 발소리가 들립니다.
 
다급히 멀어지듯 소리는 빠르게 사라집니다.
 
에르드:나도 당연히. 얕게 깼는데 옆에 네가 없어서 무슨 일인가 하고 나와봤는데……. 네게 접근하기 전에 죽일 수 있어서 다행이야. 물론, 네 능력이 나보다 강하지만. (그래도 본능적으로 서로의 안위를 걱정하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피 한방울 묻히지 않은 자는 느린 걸음으로 당신에게 다가옵니다.
 
공포 한 점 없는 평이한 손길은 당신의 어깨에 외투를 둘러주며 손을 감싸 잡습니다.
 
베아트리체 힐:...깊게 잠든 것 같아서. 결국 깨웠네. ...고마워. (언제나 제 자신보다 제 안위를 챙기는 이. 닿은 온기에 부드럽게 미소 지었지만 조금 걱정이 서린다.)
...누군가 있는 것 같았는데 괜찮을까?
 
에르드:앞으로도 언제든 이런 일이 있다면 깨워야 해. 그런데, 누가 있었어? (곰에 집중하느라 미처 듣지 못한 모양인지, 눈살을 찡그리며 뒤늦게 주변을 둘러본다.)
 
베아트리체 힐:(..능력을 쓴다면 얼마든 해치울 수 있었으나 언제 어디에도 보는 눈이 있을지 모르니 그 편이 낫겠지. 천천히 고개를 끄덕인다.) ...멀어지는 발소리를 들었어. ...이 시간에 짐승이 이 곳으로 돌진해 온 것도 조금 이상하고.
 
에르드:(잠시 골똘히 고민하다가 말을 꺼낸다.) 일전에 네가 덫을 놓으러 갔을 때 사냥꾼들이 곰을 죽였었지. 그 곰보다 덩치가 컸어?
 
베아트리체 힐:(그것은 어둠 속에서도 확연한 차이를 보였다.) ...응, 비교도 안 될만큼.
 
에르드:어쩌면 그 곰의 어미였을 수도. (눈밭에 소리도 없이 널부러진 시체를 물끄러미 바라본다.) 먼저 들어가. 내가 뒷처리를 해둘게.
 
베아트리체 힐:...어쩌면 그럴지도 모르겠네. (천천히 고개를 가로 젓는다.) 아니야, 같이 해.
 
에르드:피가 묻을 텐데. (무심코 뱉어놓고서도 곧 피식 작은 웃음을 흘리며 고개를 모로 돌렸다. 피칠갑이 된 전쟁터에서 얼마나 굴렀는데, 새삼스러운 말을 했지.) 그래. 같이 하면 금방 끝나겠지.
 
두 사람은 곰의 사체를 함께 집까지 끌고 와 적당히 뒷처리를 합니다.
 
설원의 대지에 찍힌 발자국은 눈보라에 금방 묻힐 것입니다.
 
시린 추위를 인내하며 피를 흩뿌리지 않아도 되는 삶으로 돌아가세요.
 
밤새 휘몰아치던 블리자드가 멎고 진눈깨비만을 지분거립니다.
 
푹푹 고루 빠지던 대지는 얕은 궤적을 남기네요.
 
눈부신 순백의 광채가 빛을 머금고 바닥에 흩뿌려집니다.
 
아, 곧 봄이 오려나 봅니다.
 
혼약식의 아침이 밝았습니다.
 
마을 사람들은 얼굴을 가리고 다니는 당신들을 위해 어두운 빛깔의 면사포로 두 사람의 얼굴을 가려주기로 했습니다.
 
그들만의 배려겠죠.
 
결혼, 결혼이라.
 
생각해본 적 있나요?
 
전쟁터에서 등을 맞대고 목숨을 불사한 당신들에게 도살된 것들이 있다면, 아마 그런 것들이 아니었을까요.
 
죽음을 우려하지 않는 생활, 평범한 삶, 누군가의 행복에 쉽게 박수 치며 안녕을 바라줄 수 있는 현재 같은 것들.
 
과거를 헤아리며 핏자국을 셈하지 않아도 되는 지금 말이에요.
 
에르드는 마을에서 챙겨준 옷을 차려 입고 나옵니다.
 
약식으로 진행되기 때문에 제대로 된 연미복은 아니지만, 제법 그럴듯한 옷에 꿰여진 그는 어색한 듯 옷소매를 매만집니다.
 
에르드:역시 이런 옷은 나랑 안 맞는 것 같다니까…… (면사포를 옆에 내려둔 채로 이질적인 옷을 내려다본다.)
 
베아트리체 힐:(조금 어색한 듯 제 옷가지를 매만지다 구색을 맞춘 제 연인을 마주하면 곧 봄을 맞을 대지처럼 따스하게 웃어 보인다.) ...지금 그 누구보다도 잘 어울려. 멋있다. (천천히 다가가 어깨를 슬 매만진다.)
 
에르드:글쎄, 나보단…… (가까이 다가오는 베아트리체의 모습을 눈에 담고는 잠시 멍해졌다.) 비할 수도 없이 네가 훨씬 더 어울리는데. (너무 예뻐서 괜히 눈도 못 마주칠 지경이었다. 슬쩍 시선을 내린다.)
큼. (헛기침을 하며 검은 면사포를 내민다.) 준비는 됐어?
 
베아트리체 힐:...음, 고마워. (괜스레 심장이 크게 뛴다. 같이 조그맣게 헛기침을 하고는 면사포를 받아 든다.)
...응, 준비 됐어. (숨을 후 크게 뱉고 끄덕인다.) 에르는?
 
에르드:(제 면사포를 집어들어 조금 급하다 싶게 머리에 눌러썼다. 시야가 면사포로 조금 가려지자 그제야 마음이 좀 놓이는 듯해 작게 안도의 한숨을 내쉰다. 보고만 있어도 심장이 미친 듯 뛴다는 게 무엇인지 제대로 알게 되어버렸다.) 그래, 나도.
 
당신들만의 소박한 공간에서 에르드가 손을 내밉니다.
 
그 손길은 서투르기 짝이 없습니다.
 
그럼요, 당신들이 지금껏 행해보지도 상상해보지도 못한 것들이니까요.
 
오늘, 이곳은 당신들의 도피처이자 낙원이 되어줄 겁니다.
 
베아트리체 힐:(그 모습에 작게 웃음이 터진다. 에르드의 면사포를 바로 고쳐 씌워주며 그 안으로 들어가 코 끝을 톡하고 두드린다. 웃음 가득한 얼굴은 금세 빠져나가 저도 면사포를 푹 뒤집어 쓴다. 이 서툰 손길마저 얼마나 사랑스럽고 달콤한지. 다시는 놓지 않을 손을 꼭 강하게 마주 잡는다.)
...가볼까.
 
에르드:(겨우 면사포로 시야를 좀 가리나 했더니, 불쑥 들어오는 선명한 연인의 낯에 숨을 덜컥 들이킨다. 하마터면 딸꾹질까지 날 뻔했다. 황급히 한 팔로 입가를 가리며 볼멘소리를 중얼거렸다.) 진짜, 넌 내가 부끄러움을 감출 틈을 안 준다니까. (그래봤자 정말 불평할 마음이라고는 일말도 없는 속 좋은 투정이다.)
가자. (마주 힘주어 손을 맞잡고, 다시 한 번 얼굴이 잘 가려졌는지 확인한 뒤 문을 열고 나섰다.)
 
마을로 내려가자 녹은 서리 사이에 조화를 잔뜩 꽂아 놓은 길이 보입니다.
 
저마다 행복에 함뿍 젖은 성음으로 웃고 있습니다.
 
야시장의 여운은 지워졌는데도, 사랑의 향취로 가득한 광장은 향기가 없는데도 이른 봄으로 만개했습니다.
 
이내 검은 면사포를 덮은 당신들에게로 시선이 쏠립니다.
 
섬유상:와 주셨군요, 두 분. 정말 감사드려요. (웃으며 두 사람을 다정하게 반긴다.)
마을 안쪽에 작은 성당이 있으니, 조화로 만들어진 길을 쭉 따라 걸어오시면 된답니다.
 
섬유상 주인은 함뿍 만개한 꽃을 한아름 안고 있습니다.
 
아, 이 많은 조화 사이에 그것만이 생화라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곧 그녀는 하얀 리본 장식이 달려진 그것을 베아트리체, 당신에게 건넵니다.
 
섬유상:이건 부케예요. 작고 볼품없지만, 이 추위를 견디고 피워진 꽃이랍니다.
 
베아트리체 힐:(건네받은 꽃을 하염없이 바라보았다. ...이토록 시린 추위를 견디고 피어난 꽃.) ...정말 멋진 부케에요. 감사합니다.
 
그녀는 사랑으로 벅찬 이들을 기다리는 황홀한 기쁨에 젖어든 채 당신들을 등집니다.
 
아이들도, 어른들도 모두 깔끔한 옷을 차려 입고 그곳으로 향하고 있습니다.
 
에르드는 비운으로 아득히 젖어 있던 과거와 달리 유한 낯으로 당신을 바라봅니다.
 
에르드:…… 부케까지 드니까, 정말 신부 같네. (모두가 우리를 축복하기 위해 성당으로 향하는 광경과, 흰 꽃다발을 든 연인을 보니 마침내 결혼한다는 사실이 조금씩 실감이 된다. 정말 코앞까지 다가온 것이다.) 너랑 무척 잘 어울려.
 
베아트리체 힐:....고마워. ...이런 내 옆에 있는 너도 무척이나 신랑 같아. (새삼스레 부끄러워져서 부케로 입가를 슬 가리며 웃었다. 코 끝에 은은한 향이 스친다. 이 행복으로만 이루어진 광경은 아마 평생 잊을 수 없을 것이다. ...사랑하는 연인과의 결혼, 심장이 크게 울렁인다.) ...이 꽃처럼 우리도 이 곳에서 봄을 맞을 수 있으면 좋겠다.
 
에르드:(왠지 울렁이는 기분이다. 최근 도저히 느낄 기회가 없었던 두근거림과 설레임, 기대감이 한데 모여 요동쳤다. 이 감정을 솔직히 드러내보여도 되는 것일까. 용솟음치고 싶어 애타는 이 감정의 크기를, 원하는 만큼 키워나가도 되는 것일까.) 그러게. 약식 혼약뿐 아니라 정식으로 결혼식을 올릴 수 있을 때까지.
 
베아트리체 힐:(...우리는 가끔 웃을 때도 저 밑바닥의 그늘까지 밝힐 수는 없었다. 그러나 오늘 만큼은 제 연인이 그 어느 때보다 환해 보여서 저도 자연스레 커다란 감정에 물든다.) ...응, 그렇게 될 수 있게 할게.
 
에르드:(아주 오랜만에 느끼는 이 감정이, 부디 오래갈 수 있기를. 믿는 신도 신앙심도 없으나 막연히 기도하게 된다.)
 
마을 사람들의 시선을 헤치고 성당으로 향하는 길을 따릅니다.
 
진눈깨비는 어느새 멎었네요.
 
블리자드로 서린 추위를 인고하던 마을에 볕이 가득 내리고 있어요.
 
아마, 곧 쌓인 눈들은 녹아내릴 겁니다.
 
그렇게 종이 울리는 길을 따라 걷다 보면... ...
 
갑자기 뒷편에서 누군가의 날선 목소리가 들려옵니다.
 
정육점 주인:나는 알고 있어!!!!! (거친 쇳소리로 외친다.)
나는 봤어. 나는 봤다고!!!!
 
익숙한 얼굴입니다.
 
전부터 당신들을 탐탁치 않게 생각하던 정육점 가게 주인. 그가 당신들을 향해 손가락질을 하며 외치고 있습니다.
 
사냥꾼:아이고, 자네 왜 그러나... ... 이렇게 좋은 날에.
 
정육점 주인:다들 제정신인가? 어? 이런 말도 안 되는 식 따위에 오고 말이야. 저들은 우리를 죽여버릴 거야. 우리를 모두 죽일 거라고!!!
 
사냥꾼:자자. 저리로 가서 나랑 얘기 좀 하게. 어휴, 다들 신경쓰지 말고. (손짓 휘휘 하며 정육점 주인을 끌고 간다.)
 
당신들에게 현란스럽게 손가락질 하던 이는 사냥꾼의 손에 이끌려 멀어집니다.
 
사력을 다해 목청 높히던 이의 소음이 점점 작아져갑니다.
 
다행히 다른 사람들은 개의치 않는 것 같습니다.
 
그야, 최근에 그가 예민하고 이상한 소리를 하고 다닌다는 것을 이방인인 당신들마저 알고 있었잖아요.
 
베아트리체 힐:(큰 소리에 무겁게 멈춘 발걸음을 다시 돌린다. 그와 동시에 제 옆의 연인에게만 들릴 만큼 아주 작은 소리로 속삭였다.) ...어쩌면 그때 도망간 발소리가 저 사람일지도 모르겠네.
...그래도 다행이다, 그렇지?
(웃음기 머금은 목소리가 미묘하게 떨린다. 기쁨이었는지 슬픔이었는지, 무언가 북받치는 감정을 눌러낸다.)
 
에르드:(순간, 모래성처럼 쌓았던 긍정적인 감정이 파도에 휩쓸려 단숨에 무너져버린 것 같았다. 저도 모르게 힘껏 아랫입술을 깨물고 있었음을 자각하고 힘을 푼다.) 하필이면 저자가 그 광경을 봤을 줄이야.
그렇지만 의심 한 번 안 할 줄은 몰랐어. (솔직히, 안도해야 할지 경계해야 할지 감을 잡기가 어렵다. 다시금 저를 화살처럼 꿰뚫고 지나갔던 과거의 상흔이 차디찬 둔통을 발한다. 역시 마지막의 마지막 순간까지 마음을 전부 놓고 안심할 수만은 없겠구나.)
(그래도 너만큼은 온전히 웃었으면 좋겠다. 에르드는 최대한 제 목소리에 부정적인 감정을 싣지 않으려 노력하며 미소한다. 면사포 덕에 표정이 조금은 가려질 수 있으니 다행이다.) 응. 계속 갈까.
 
베아트리체 힐:(잡은 손에 더욱 힘을 준다. 이 순간을 더 이상 방해 받고 싶지 않았다.) ... 오히려 저자라서 다행일지도 몰라. 모두가 저 사람을 이상하다고 여겼으니까.
...정말 모두 우리를 믿어 주는 거라면 좋을텐데. (저들에게 우리는 늘 후드로 얼굴을 가리고, 제대로 얼굴조차 보인 적 없는 수상한 사람일텐데. 너무나 오랜만에 마주한 다정함이라 기쁜만큼 불안감도 커진다.)
(그럼에도 웃음을 잃지 않으려 노력한다. 제 불안은 쉽게 전염될 테니까. ...면사포가 있어서 다행이다.) 응.
 
에르드:(어떤 순간이 오더라도 베아트리체를 우선으로 지킬 것이다. 어떤 적대감이 우릴 향해 칼끝을 겨누고, 어떤 분노가 우리를 향해 화살처럼 쏟아질지라도. 짧은 시간에 연인을 제 뒤로 감추는 상상이 수도 없이 스쳐지나간다.)
(마음 놓고 이곳을 평화롭고 행복하고 또 아름다운 곳이라고 믿고 싶은데. 아직까진 쉽지 않다.)
만일 저자의 말에 신빙성이 있다 느껴진다면 이미 마을 사람들이 우릴 가만히 두지 않았을 테니까. (당신과 저를 달래듯이 중얼거리며 걸음을 옮겼다.)
 
아린 목소리는 쓸쓸한 후미를 남깁니다.
 
그럼에도 에르드와 베아트리체는 마저 성당으로 향합니다.
 
길게 그어진 에르드의 그림자가 당신의 발등에 맞닿습니다.
 
마을 사람들의 만연한 행복의 웃음소리가 음률처럼 파형칩니다.
 
그럼에도 그 곡에 변주될 수 없는 건 당신들이 영웅이기 때문일까요?
 
알 수 없습니다. 알 수 없습니다......
 
성당은 사람들로 북적입니다.
 
아마, 이 시골 마을 주민들이 대부분 나온 것 같죠.
 
검은 면사포를 쓴 두 사람은 아직 입장을 않고 대기 중입니다.
 
꽃을 건네주었던 아주머니가 당신들에게로 다가옵니다.
 
아주머니:두 분, 와주셔서 고마워요. 연미복이 무척 잘 어울리네요. (상냥하게 웃는다.)
하고픈 말이 있어요. 부디, 끝까지 들어줄 수 있을까요?
 
베아트리체 힐:...네. (오로지 기쁨으로만 두근거리던 심장에 불안이 뒤섞여 불규칙하게 뛰기 시작한다. 그럼에도 겉으로는 평정을 가장했다.)
 
에르드:(굳은 낯으로 베아트리체의 손을 조금 더 힘주어 잡았다.)
 
아주머니:(그 모습을 알아챈 듯, 조금은 안타까운 낯으로 두 사람을 바라보다가 조용히 입을 연다.) 우리는 당신들이 세상을 구했던 영웅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어요.
얼마나 핍박을 받았는지, 얼마나 오래 떠돌아다녔고 손가락질받아 왔는지도요.
하지만 이전에도 말했듯 우리 마을 사람들은 당신들을 사랑하고 아낀답니다. 앞으로도 이곳에서 함께 해줄 수 있나요?
 
베아트리체 힐:....! (...면사포가 있어서 다행이었다. 아니었다면 상대의 말에서 자신들의 정체가 비로소 밝혀졌을 때 순식간에 무너져내린 감정을 감출 수 없었을테니까. 맞잡은 손이 아플만큼 손에 힘이 들어갔다. 그러나 차분히 이어지는 말들은 언젠가 자신이 간절히 원했던, 바라 마지않던 바로 그 순간이었다.)
(제 연인을 한참 올려본다. ...나와 같은 생각일까. 감정이 울렁이며 뒤섞이는 탓에 쉽게 입이 떨어지지 않는 입을 겨우 떼어낸다.)
...정말..인가요?
 
아주머니:믿기 힘드시겠죠. 이해해요. 그렇지만 당신들이 이 마을에 섞이기 위해 얼마나 노력했는지 잘 안답니다. 이런 분들이 세간에 알려진 것처럼 우리를 해치지는 않을 거라고, 다들 그렇게 믿었어요.
우리가 당신들을 믿은 것처럼, 두 사람도 우릴 믿어줘요.
 
에르드:(당장이라도 전투에 돌입할 것처럼 긴장으로 온몸이 팽팽해졌다가, 차차 풀려간다. 도저히 믿을 수 없는 일이지만 이들은 우리의 정체를 알고도 우리를 받아들여주겠다 하고 있었다. 꿈을 꾸고 있는 것일까? 그렇다기엔 맞잡은 손에서 느껴지는 체온이 너무도 생생한데. 베아트리체가 든 부케에서 나는 봄꽃의 향이 이리도 싱그러운데.)
(도망치지 않아도 되는 걸까? 정말, 안심해도 되는 걸까. 이전까지 자신이 가졌던 것이 소망이었다면 이제는 믿고 싶은 사실로 변해간다. 마을 일원의 입에서 직접 나온 말이다. 이마저도 불신할 만큼의 기력을 이끌어내기에는 그는 너무 지쳐 있었다.)
…… 믿고 싶어, 베아트리체. (리리라는 가명으로 둔갑한 애칭 대신, 마침내 본명을 나직하게 읊조리며 눈을 마주했다. 더 이상 쓸모 없어진 면사포 너머로.)
 
베아트리체 힐:........나도. 나도, 그러고 싶어, 에르드. (더 이상 가명도, 얼굴을 가리는 면사포도 필요 없다. 뼈까지 사무치게 시리던 겨울은 어느새 멀찍이 물러났다. 볕은 눈을 녹이고 싹을 틔워낼 것이다. 우리의 너덜해진 마음과 상처도 이 다정함에 치유되고 아물게 되겠지.)
(오랜 시간 묵혀둔 감정이 새롭게 휘몰아치는 감정에 더해 넘쳐흐른다. 그 덕에 시야가 자꾸만 뿌옇게 흐려지고 가면처럼 쓰고 있던 웃는 얼굴이 조금씩 일그러진다. 다행인 것은 이 감정이 쏟아져 내린 뒤에는 비로소 싹튼 희망이 푸르게 피어날 것이라는 것.)
....더 이상 도망치지 않아도 돼. (그의 품에 안긴다. 자신의 도피처이자 낙원. 영원히 함께할 반려.)
 
에르드:(안겨오는 연인을 기꺼이 와락 끌어안았다. 거친 풍랑에 이리저리 휩쓸리면서도 서로를 위해 자신을 잃지 않고 살아왔다. 이제는 마침내 암초처럼 붙박혀 살아갈 날이 왔다. 더 이상 떠돌지 않아도 돼. 마음을 겹겹이 둘러싼 빙하에 따사로운 햇볕이 내리쬔다.)
더는 도망치지 말자. 뿌리를 내리고 살자. 비록 모두가 믿지는 못하더라도, 그들마저 우릴 믿지 않을 수 없도록.
 
아주머니:주책맞게 눈물이 날 것 같네. (웃으며 두 사람의 면사포나 매무새를 다시 다듬어준다.) 아직 울기엔 이른데 말이에요. 축복의 순간이 아직 ==기다리고 있잖아요?
조금 후에 봬요.
 
매무새를 다듬어 준 아주머니가 뒷걸음질치고는 가지런히 인사합니다.
 
품에 안겨 있는, 순백의 생화에서 마지막 겨울의 향취가 느껴집니다.
 
성당의 입구에 설까요? 이 식의 주인공들.
 
베아트리체 힐:...그럼 가실까요, 신랑님. (맞잡은 손을 살짝 흔들며 입구에 바로 선다.)
 
에르드:그래, …… 내 신부. (울컥 차오르는 감정은 잠시 가라앉힐 때다. 조금 있으면 더한 기쁨을 누릴 수 있을 테니까. 온전히 새신랑마냥 풀린 얼굴이 되어선 입구로 다가간다.)
 
댕 ㅡ.
 
댕 ㅡ.
 
댕 ㅡ.
 
아, 입장을 알리는 소리입니다.
 
신부님:혼약식을 진행하는 두 사람 입장하겠습니다.
 
중후한 남성의 목소리가 울립니다.
 
맞은편의 에르드는 긴장으로 굳은 호흡을 정돈하며 당신의 손을 다시금 힘주어 잡습니다.
 
정결한 공간에서 시선이 충돌합니다.
 
그럼에도 그는 웃고 있습니다. 당신과 함께하고 있어서.
 
두 사람이 걷습니다.
 
바닥에 굽이 부딪히는 청량한 마찰음이 박수 갈채에 섞입니다.
 
긴 버진로드를 나란히 걸어 당도합니다.
 
엄숙한 그 가운데 침묵이 가라앉습니다.
 
얼굴 없는 신랑과 신부, 그들을 묵인해주는 사람들.
 
신부님은 부드럽게 웃으며 두 사람을 번갈아 바라봅니다.
 
신부님:마을의 이방인 신랑, 신부. 성혼 선언을 하기 전 마주보고 인사하십시오.
 
베아트리체 힐:(가볍게 돌아 마주보고 서서 살짝 고개를 숙인다.)
 
에르드:(점점 더 심장이 크게 뛰어온다. 심호흡을 하며 베아트리체를 향해 가벼이 목례했다.)
 
신부님:신랑. 신부를 아내로 맞아 오늘부터 삶을 다하는 날까지 어떠한 경우라도 항시 사랑하고 존중하며, 그 도리를 다할 것을 굳게 맹세합니까?
 
에르드:(목소리는 망설임이 없었으나 낮고 진중했다. 시선은 오롯이 눈앞의 사랑하는 이에게로.) 맹세합니다.
 
신부님:신부. 신랑을 남편으로 맞이해, 기쁠 때나 슬플 때나, 건강하거나 병들거나, 부요하게 되는 모든 경우에서 이 사람만을 사랑하고 존중히 여기며, 도와주고 보호하며 진실한 신부가 되기를 굳게 맹세합니까?
 
베아트리체 힐:(망설임 없는 목소리는 일말의 거짓 없이 차분하게 흐른다. 시선은 사랑하는 이에게서 떨어지지 않았다.) 네, 맹세합니다.
 
두 사람의 굳건한 성음이 잔잔히 울립니다.
 
결의 찬 마지막 대답에 박수가 쏟아집니다.
 
화동들은 남은 꽃잎들을 흩뿌리고 당신들을 축복합니다.
 
투미한 창 바깥으로 햇빛이 일자로 들이칩니다.
 
행복하세요. 진정한 평화의 가운데 붉게 핀 사랑의 열기가 피어오릅니다.
 
에르드:(제대로 된 연미복을 입은 것도 상대에게 흰 베일을 씌워주지도 못했지만, 지금 이 순간 우리는 온전히 이어진 것과 다름이 없다. 연인에서, 부부. 무게의 차이를 체감한다. 아주 기껍고도 행복한 무게였다. 부드럽게 웃으며 손을 뻗어 면사포 안의 뺨을 감싼다.)
사랑해, 베아트리체.
 
베아트리체 힐:(비록 약식이라지만 눈 앞의 연인이 평생의 반려가 된 기꺼운 순간이었다. 처음 느껴보는 감정의 무게에 심장께가 뻐근해진다. 이어지는 달콤한 울림. 제 뺨을 감싸는 온기에 눈을 감고 가만 기댄다.)
...사랑해, 에르드.
 
부부가 된 연인은 서로를 마주보며 웃고, 더없이 진솔한 사랑을 고백합니다.
 
그 무엇보다 행복한 순간입니다.
 
평화와 사랑의 향취가 만연한 가운데, 누군가가 뛰어오는 게 느껴집니다.
 
경박스러운 발소리는 육중한 존재감을 피력하며 목소리를 드높힙니다.
 
정육점 주인:다들 미쳤나!? 저들을 이곳에 들이다니!!!!
우리는 모두 죽고 말 거야! (미친 듯 삿대질을 하며 고함친다.)
 
이목이 쏠립니다. 수십개의 시선이 그에게로 달라붙습니다.
 
정육점 주인:저, 저들이 누군지 알고 있나?
저들, 저들은 에르드 베아트리체 힐이야! 그 영웅들이란 말일세!! 다들 죽으려고 환장을 한 건가!!
 
그리고 눈동자들은 당신들에게로 쉬이 다시 쏠립니다.
 
어쩐지 냉랭해진 시선은 의심과 공포를 떠안습니다.
 
검게 덮겨진 당신들의 속을 궁금해하는 그 지긋지긋한 의문의 눈초리 말이에요.
 
정육점 주인:우, 우리 마을 사람들을 전부 죽이러 왔지!? 우리를 전부 죽일 작정이잖아!
그 괴물들을 죽였던 것처럼, 이제 너희들을 두려워하고 무시한단 이유로 죽일 작정이지! (정신을 놓은 이처럼 침을 튀기며 고함을 지른다.)
 
베아트리체 힐:(내리 감긴 눈이 소란의 근원지로 옮겨간다. ...더이상 도망치지 않기로 했다. 뿌리내리고 살자고. 그렇게 다짐하고 약속했다. 이곳에서 봄을 맞자고. ...그들이 우리를 믿은 것처럼 우리도 그들을 믿어줬으면 한다고.)
...그만. 그만두세요.
(가장 높은 곳으로 끌어 올려졌다가 순식간에 저 밑바닥으로 내리쳐진 마음을 애써 무시한다. 잔잔하고 차분한 목소리에는 어딘가 강한 의지마저 느껴졌다.)
...전쟁은 끝났어요.
 
정육점 주인:하? 전쟁이 끝나긴, 뭐가 끝나! 바깥 괴물들이랑 싸우던 게 끝났을 뿐, 너희가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다시 전쟁을 일으킬 수 있겠지. 이번엔 인간들을 상대로 말야!
안 그럽니까? 내 말이 틀려요? (마을 주민들에게 동의를 구하듯, 눈을 번들거리며 주변을 둘러보았다.)
 
베아트리체 힐:(천천히 그러나 단호하게 고개를 내젓는다.) ...사람들의 두려움을 이해해요. 그래서 여태 도망 다녔던 거니까요.
...하지만 우리도 같은 인간이에요. (그 한마디에는 한번도 밖으로 꺼낸 적 없는 체념과 슬픔이 깃들어 무겁게 떨어졌다.)
 
에르드:(혹시나 주인이나 마을 주민들이 달려들기라도 할까, 반 발자국쯤 앞으로 나서 베아트리체를 막고 선다.) 당신들은 우리를 믿는다고 말했지. 그 믿음이 헛된 거짓말이 아니었다면 저 따위 이간질에 속아넘어가지 마. (이를 아득 갈며, 특유의 짐승 같은 샛노란 눈을 번쩍였다.)
우린 당신들을 해칠 생각 없어. 오로지 인간을 위해 썼던 우리의 힘을, 당신들이 멋대로 두려워한 것뿐. 우리의 힘은 단 한 번도 인간들을 타겟으로 한 적 없었고 앞으로도 그럴 거야.
우리 역시, 평범하게 살아가고 싶을 뿐이니까.
그 누구도 배척받고 싶은 사람은 없다고. (목소리가 괴로이 갈라진다.)
 
정육점 주인:그 말을 믿을 것 같나? 어차피 사탕발림일 뿐이란 걸 모를 것 같아!
 
조잡스런 말을 쏟아내던 그가, 갑작스럽게 앞으로 고꾸라집니다.
 
퉁퉁한 살 표면에 무언가 당장이라도 튀어나올 듯 울룩불룩한 거품이 부글거리며 입니다.
 
사람들이 비명을 지르며 뒷걸음질칩니다.
 
???:너희, 만, 없었, 어도... 세, 상은, 내, 것이, 될 수, 있었다!
 
흉측한 몸뚱이는 곧 머리가 녹아내려 없어집니다.
 
기이한 육질로 몸이 뒤덮힌 그것의 손바닥에서 이빨이 돋아나와 당신들을 향해 타액을 뚝, 뚝 흘립니다.
 
지독히도 모독적이고 역겨운 광경이지만……
 
베아트리체, <■■> 판정.
 
베아트리체 힐:
■■ Roll
기준치: 99/49/19
굴림: 2
판정결과: 극단적 성공
 
이어서 <이성> 판정
 
베아트리체 힐:
SAN Roll
기준치: 65/32/13
굴림: 95
판정결과: 실패
 
영웅이었던 당신에게 이런 것은 평범한 장면일 뿐이었다. 지긋지긋할 뿐.
 
이성 감소 없음.
 
???:하지만, 봐...
너희가 나를 죽인다고, 해도, 그들이, 너희들을, 믿어 줄까?
말은, 너무, 쉽지.
너희들이, 갈 곳은 없다.
도망자를, 위한, 도피처는, 없다.
 
끔찍한 흉투성이인 그것은 손바닥에 난 입으로 들썩대며 당신들에게 말을 건넵니다.
 
마을 사람들은 흉악한 모습에 도피를 하면서도, 당신들을 바라보고 있습니다.
 
의구심과 혼란으로 굳은 그 얼굴, 수십 개의 시선이 달라붙습니다.
 
베아트리체.
 
당신의 내면에 깊게 새겨진 죽음의 피웅덩이가 발목을 붙듭니다.
 
잊었어?
 
마치 영겁과도 같은 시간이었습니다.
 
하지만 무궁한 죽음을 딛고, 피칠갑을 한 채 영웅으로 추앙되는 시간은 찰나였습니다.
 
저것의 말이 옳을 수도 있습니다.
 
저것을 죽이고, 상황을 해결한다고 해도 당장 나아지는 것이 없을 수도 있겠죠.
 
하지만 끈덕한 시선들이 당신의 선택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어떻게 하겠습니까?
 
베아트리체 힐:.........그럼에도 불구하고. (전쟁 이후로 언제나 멈칫하던 손짓이었으나 더 이상 망설임은 없었다. 학살자든 영웅이든. 결국 자신에게 주어진 의무이자 이것이 자신에게는 옳은 일이었으니. 망설임 없는 손짓은 그것에게 향하며 공간을 쥐어틀 듯 힘주어 손에 거머쥐어 비튼다.)
...더 이상 저게 못 움직이게 막아줘. (남은 한 손으로 제 반려의 손을 힘주어 붙잡는다. 돌아보는 얼굴에는 묘한 웃음이 떠있다.)
(언제나 그랬던 것처럼.) 뭐든 함께하기로 했잖아.
 
에르드:당연하지. (그는 힘주어 맞잡은 손을 제 가슴께로 가져온다. 연미복 너머로 두근, 두근, 심장의 박동이 전해지도록.)
이제 내 심장은 죽을 때까지 너만을 위해 뛸 테니까.
네 뜻이 곧 나의 뜻이 될 거야. (괴물을 향해 맞잡지 않은 반대쪽 팔을 번개처럼 내뻗는다. 그 무엇도 우리의 정착을 방해할 수 없을 것이다. 우리의 희망을 꺾는 이는 더 이상 그 누구라도 용납하지 않으리라.)
 
번개 같은 움직임에 괴물의 몸이 돌처럼 굳습니다.
 
흉한 말을 쏟아내던 입 또한 더 이상 기능하지 못합니다.
 
베아트리체 힐:(그 너머로 따스한 온기와 심장 박동이 느긋하게 와 닿는다. 당신의 심장께 에서 얼굴로 서서히 시선이 올라간다. 신뢰와 기쁨, 행복마저 뒤섞인다.) ...응, 내 심장 역시.
(아주 간만에 보는 그의 능력은 그를 닮아 여전히 아름답고 강인했다. 저 역시 허공을 향해 뻗은 손을 공간을 움켜쥐듯 힘주어 비튼다. 그것의 주변의 공간이 일렁이고 구겨지고 그것 역시 공간과 함께 조용히 일그러져간다.)
 
베아트리체, 당신의 전능한 힘이 두터운 괴물의 살점을 구겨지고 일그러뜨립니다.
 
아, 그것이 속단한 것은 당신이 영웅이었다는 것이죠.
 
근육질이 꿈틀거리며 비명을 삼킵니다. 손바닥에 붙은 이빨이 들썩대며 피를 구역질합니다.
 
다 죽어가는 그것은 에르드의 능력을 어떻게 풀어냈는지 희미해져가는 목소리로도 끝까지 꿱꿱거립니다.
 
???:만족, 하나?
하지만, 의심, 이라는 것은.
너희를, 갉아, 먹을, 것이다.
영원히!
 
고꾸라진 몸이 경련하고, 곧 불쾌한 향취를 게우며 커다란 몸이 가라앉습니다.
 
사랑과 축복으로 가득한 그곳은 형장과도 다름이 없습니다.
 
주위가 적요로 들어차 고요해집니다.
 
피가 여울져 바닥에 궤적을 만듭니다.
 
두 사람이 가로질렀던 순백의 버진 로드는 붉음으로 만연합니다.
 
부케 끄트머리에 핏망울이 묻어 있습니다.
 
에르드는 바닥에 버려진 그 부케를 들어 꼭 쥡니다.
 
끝을 부정하고픈, 그러나 반복되어 온 긴 시간에 탈력한 눈빛입니다.
 
축복과 사랑으로 가득했던, 당신들이 유예했던 자리가 검붉은 것들로 혼탁합니다.
 
그때 어디선가 박수 소리가 들립니다.
 
그리고, 숨어 있던 마을 사람들이 한 두명씩 일어납니다.
 
마치 신랑 신부인 두 사람을 축하해주었던 것처럼 박수 소리가 한데 어우러져 성당 내부를 울립니다.
 
어떤 이들은 눈물을 흘리고 있습니다.
 
누군가가 말합니다. 박수 소리 가운데 흐느낌이 섞입니다.
 
당신들을 안내했던 아주머니가 앞으로 나와 에르드가 쥔 부케에 묻은 피를 손등으로 닦아줍니다.
 
아주머니:우리들에게 영웅은 필요없어요.
당신들은 그저 우리 마을의 일원 중 하나고 그저, 평범하게 숨쉬고 말하고 살아가는 사람들 중 하나니까요.
우리들은 당신들을 믿어요.
떠나지 말아주세요. 부탁이에요.
 
그래, 바랐는지도 모릅니다.
 
대가 없이 기쁨을 말하는 삶.
 
영웅이라는 그늘에 찍혀 그 무게를 감당하지 않아도 되는 삶 말이에요.
 
에르드는 얼룩진 부케를 내려보다가, 당신에게로 시선을 돌립니다.
 
목소리 내지 않은 입모양이 문장을 만듭니다.
 
베아트리체 힐:(마주친 시야가 흐려지고 무어라 말을 꺼내려던 입이 어물어물하다 꾹 다물어진다. 천천히 당신에 앞에 와 선 발걸음이 툭 기대어진다. 그와 함께 숙여진 고개만 조용히 몇 번이고 끄덕인다.)
...응, 그렇게 하자. 우리가 에르드와 베아트리체 일 수 있는 이 곳에서 뿌리내리자.
 
에르드:(숙여진 고개를 가만히 내려보다 꾹 끌어안았다. 이제 더 이상 피비린내가 익숙하지 않은 삶을 살게 될 것이다. 우리의 삶은 비로소 평화의 궤도에 진입한다.) 함께.
(우리의 겨울이 진다. 봄이 올 것이다.)
 
베아트리체 힐:....응, 함께. 영원히. (얼룩진 얼굴이 그제서야 고개를 든다. 모든 것이 뒤섞인 와중에 비로소 끝을 맞이한 기쁨이 가장 크게 자리 잡았다. 등 뒤로 끌어안은 팔이 목덜미에 감겼다. 그리고는 귓가에 작게 속삭인다.) ...오늘만은 우리가 주인공이니까.
...사랑해.
(감긴 팔을 가벼이 끌어당겨 사뿐히 입을 맞춘다.)
 
에르드:오늘 마을의 주인공은 우리지만, 둘만의 삶의 주인공은 항상 우리야. (그제야 마음 놓고 웃는다. 이리 편안하게 웃는 게 얼마만이었더라? 베아트리체의 앞이 아니라면 항상 어딘가 험악하고 날카로워 보였던 그는 이제야 봄을 맞이하는 오월의 생명처럼 다정하고 생그러워 보인다.)
응, 언제까지나. (이어지는 건 열렬한 답가의 입맞춤이다.)
 
소란이 일었던 가운데, 눈물을 닦고 일어난 주민들은 부풀어 오른 기이한 시체를 바깥으로 치워버리고 행복을 바라는 이들의 한가운데 두 사람을 세웁니다.
 
진정한 감사와 경외를 담은 박수 속에 두 사람은 영웅이 아닌 평범한 사람으로서 섭니다.
 
오래도록 바라왔던 순간.
 
마침내 두 사람은 영웅 아닌 인간으로서의 삶을 살아가게 되겠지요.
 
폐부에 끼쳐 있던 부담의 무게가 한결 가벼워졌습니다.
 
서리 끼친 겨울이 끝나고 봄이 올 겁니다.
 
베아트리체.
 
당신의 도피처는 어디인가요?
 
당신을 위한 낙원은 존재하나요?
 
이 모든 질문에, 당신은 확신을 담아 긍정할 것을 압니다.
 
END 2. 종착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