붉은 장미가 만개하는 5월이라 그런가, 열어둔 창문 사이로 장미향이 미미하게 흘러 들어와요.
특히 이 저택의 주변에 유독 가득한 붉은 장미와, 헬레네 소유의 장미정원 때문에 더욱 그렇습니다.
저택 뒷편에 만들어진 장미정원은 5월이 되면 만개한 붉은 장미로 가득찹니다.
건강한 큰 주인님과 다른 가족과는 달리 헬레네는 유별리 몸이 약해서, 꽤나 오래 전 큰 주인님이 선물로 내주었던 곳이었죠.
이해는 갑니다.
실낱같은 바람이라도 헬레네의 몸을 스치면 헬레네는 꼭 탈이 나서는, 바깥에 제대로 나간 적이 손에 꼽을 정도니까.
저택 안에서 할 수 있는 것이라면 무엇이든 해 주고 싶은 큰 주인님의 마음이겠죠.
당신도 그 마음에 포함되는 거였을지도 몰라요.
큰 주인님은 바쁘니 비슷한 나잇대의 당신을 전속 메이드로 고용해서는,
함께 시간을 보낼 사람이 항상 옆에 있도록, 거대한 저택에서 외롭지 않도록.
당신은 큰 주인님의 그 기대에 부응하듯, 지금껏 가장 가까운 자리에서 열심히 헬레네를 모셔 왔습니다.
잠잘 때 외에는 떨어지는 일 없이 어디든 붙어다니며, 헬레네의 손과 발을 대신하였죠.
어느덧 헬레네와 당신이 만난 지도 8년째.
시간이 흘러가며 자연스레 피어난 연심이 꽃잎처럼 사분사분 발끝을 물들입니다.
아무튼, 헬레네의 이야기로 돌아오자면.
우리의 작은 주인님은 이 저택에서 할 수 있는 것이라면 이골이 나 있기도 합니다.
예를 들자면….
<관찰> 판정
아실링 펜들레엄:
관찰력
기준치:
85/42/17
굴림:
84
판정결과:
보통 성공
…고개를 잠깐 돌렸더니 언제부턴지 옆에 와있는 이 새라던가?
그래요, 이렇게 잠깐 휴식을 취하고 있는 사이에 부를 일이 생기면,
당신의 작은 주인님은 꼭-
잘 훈련시킨 새의 발목에 할 말이 적힌 종이를 묶어서 보내곤 하는 일이 종종 있었습니다.
오늘을 포함한 평소에 헬레네가 아실링을 혹사시키는 건 아니지만…
사실, 헬레네는 지나칠 정도로 당신을 비롯한 하인들에게 유한 편이지만.
휴식을 그만두는 건 언제나 아까운 법이죠.
오늘의 헬레네는 어떤 말을 남겼을까요?
아실링 펜들레엄:(익숙한 종이. 무슨 내용을 적었을지 내심 궁금해하며 종이를 펼친다.)
【 아실, 간만에 티파티를 해보려고 해요.
장미정원에서 기다리고 있을게요. - 헬레네 】
쪽지를 새에게서 가져오면 새는 어쩌면 헬레네가 있을 장미정원으로 날아갑니다.
티파티?
…다만 새의 움직임을 의식하지 못할 정도로, 아실링은 당황스러울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도 그럴 게, 꽤 오래 전에 딱 한 번.
아실링과 티파티를 했던 이후로는 전혀 한 적이 없었거든요.
자연히 헬레네의 취미는 아니겠거니, 하고 있었는데, 다소 의외의 내용입니다.
하지만 뭐, 부르라면 부르는 대로 가야하는 게 전속 집사의 운명 아니겠어요?
헬레네의 부름에 답하기로 합시다, 아실링!
아실링 펜들레엄:(오랜만이라 놀랐을 뿐, 싫을 리가 있나. 손에 쥐고 있던 종이를 곱게 접어 주머니에 소중하게 넣고 새가 날아간 쪽으로 향한다.)
지금 아실링이 있는 방은 2층의 중앙복도에 위치해 있고, 그 옆에 헬레네의 방이 있습니다.
저택은 총 3층으로, 각 층마다 방은 굉장히 많지만.
주로 헬레네의 생활반경인 1층의 [서재], [식당],
2층의 [헬레네의 방], [아실링의 방],
3층의 [큰 주인님의 집무실]
…그리고 저택 뒷편의 [장미정원] 정도다 보니,
오랜 시간을 이 저택에서 지내서 내부는 손바닥 안인 아실링이지만, 주로 그 정도로만 움직이게 되는 것 같아요.
오늘은 날이 좋으니, 헬레네의 변덕에 어울리는 것도 괜찮은 일이 될 거예요.
아실링은 포르르 날아가는 새를 따라 장미정원으로 향합니다.
【 1st Day, PM 12 : 43 】
자박자박―
이 저택은 참 넓어서, 장미정원으로 가는 데만도 시간이 꽤 걸립니다.
장미정원은 저택의 뒷편에 있다보니 저택 뒷편과 연결된 작은 뒷문으로 나오는 편이 조금 더 빨랐었죠.
그 정도야 이 저택에 오랜 시간 있던 아실링에게 모를 일은 아닙니다.
아실링 펜들레엄:(뒷문을 발견하고 작게 웃는다. 이게 아니었다면 얼마나 걸어갔어야 했을지 속으로 투덜거리며 문고리를 잡고 힘주어 당긴다.)
뒷문의 문고리를 힘주어 당기면,
문이 열리는 미약한 소음과 함께 눈 앞에 정원사의 손을 타 잘 정돈된 뒷뜰의 모습이 보입니다.
이맘때의 초목은 제멋대로 푸르러서, 5월의 바람에 또 제멋대로 나부꼈죠.
그 풍경이 보기 나쁘진 않네요.
머지않아 보이는 장미정원의 입구 앞에는 언제부턴가 아치형의 지지대를 세워서 장미가 그를 따라 자라도록 했습니다.
누가봐도 장미정원의 입구임을 알 수 있도록요.
장미정원은 유리 온실로 되어 있어 정오와 같은 지금이 되면 따스한 햇빛이 투명한 유리를 통과해 들어옵니다.
몸이 약한 헬레네가 감기에 걸릴 일은 걱정하지 않아도 될 것 같습니다.
헬레네 R. 히페리데:... 아실?
몸이 약한 사람은 약한 만큼 예민하다고 했던가요.
반쯤 열려있던 유리온실의 입구로 들어와 숨 막히게 피어 있는 장미와 장미 사이를 헤집어,
당신의 작은 주인님을 찾으려 한 지도 얼마 되지 않았는데.
그새 기척을 눈치채고 한 마디 건네는 모습이 그 말을 증명합니다.
소리가 들려오는 곳으로 다가가면 장미정원의 중앙입니다.
평소에 장미정원의 중앙은 의자나 몸이 약한 헬레네를 위한 담요라던가, 그런 게 있곤 했죠.
대개 있는 것은 작은 부피의 것들이라,
항상 이곳에서 가장 눈에 띄는 건 헬레네였지만…
오늘만큼은 크림색의 테이블보가 티파티 테이블에 구김없이 잘 펴져있는 모양새와 고품질의 찻주전자와 찻잔, 디저트 따위에 먼저 눈길이 갑니다.
쪽지의 내용은 괜히 적은 게 아니었나봐요.
헬레네 R. 히페리데:금방 와 주셨군요. 이쪽으로 앉으시겠어요? (늘상 그랬듯 봄 햇살처럼 엷은 미소를 띄며 테이블 맞은편을 손짓한다.) 의자를 가져다두었어요.
아실링 펜들레엄:불러주셨잖아요. 바로 와야죠. 근데.. (맞은편 의자에 쉽사리 앉지 못한다. 전속 메이드라고 해도 주인과의 동석이라니.) 배려는 감사하지만.. 정말로요..?
헬레네 R. 히페리데:괜찮아요. 제가 초대를 드렸는걸요. 함께하는 티파티인데, 손님을 어떻게 파티 내내 세워둘 수 있겠어요? (재차 권한다.)
아실링 펜들레엄:그렇게 말씀하신다면... 주최자를 무안하게 만드는 것도 좋지 않은 것이겠죠. 알겠어요. 아가씨를 무안하게 만들고 싶지도 않고요. (재차 권하는 것에 져 결국 자리에 앉는다.)
헬레네 R. 히페리데:감사해요, 아실. (당신이 앉는 모습을 흐뭇하게 지켜보며, 곱게 부푼 식빵을 잘게 떼내어 새에게 건네듯 테이블 구석 쪽에 올려둔다.)
티파티는 참 오랜만이죠?
콕콕콕, 식빵을 쪼아 먹는 새를 뒤로 하고 헬레네는 손수 자리에서 일어나 찻주전자를 듭니다.
헬레네 R. 히페리데:즐겨 마시는 차나, 취향이 있으신가요? (달그락 소리를 내며 주전자의 뚜껑을 열고 내용물을 확인한다.) 일단은 사과잼과 딸기잼을 준비해달라 일렀는데 아실의 취향은 다를 수도 있으니까요.
아실링 펜들레엄:(찻잔을 만지작거리며 곰곰이 생각해 본다. 얼그레이, 다즐링, 실론티. 종류별로 다 마셔보긴 했지만 특별히 마음에 드는 것이 없었다.) 즐겨마시는 차는 딱히 없어요. 홍차라면 다 괜찮아요.
헬레네 R. 히페리데:그러면 평소에 제가 먹는 대로 사과잼을 섞도록 할게요. (사과잼이 든 병을 가져와 한 숟가락 덜어넣고, 잘 섞이도록 티스푼을 몇 바퀴 돌린다. 자신의 잔에도 같은 양을 넣고는, 당신의 앞으로 잔을 친절하게 밀어준다.) 한 번 드셔보실래요? 입맛에 맞았으면 좋겠는데요.
아실링 펜들레엄:(매번 자신이 뭔가를 해주는 쪽이었다가, 역으로 뭔가를 받는 쪽이 되자 약간 당황했다. 이것도 파티 주최자가 해주는 것이니 얌전히 받아야 하는 것이겠지.. 하며 찻잔을 받고 한 모금 마신다.)
사과잼의 달콤한 맛이 홍차의 부드런 향기와 섞여 은은하게 퍼져갑니다.
바쁜 메이드이니만큼 평소 차의 맛을 즐길 만한 여유가 없었지만, 헬레네와 함께하는 오늘만큼은 잔뜩 달콤함을 누릴 수 있겠어요.
차도, 잼도, 무엇 하나 고품질의 것이 아닌 게 없으니 맛은 좋을 수밖에요.
헬레네 R. 히페리데:(다시 의자에 앉아 당신과 함께 차를 한 모금 홀짝인다. 당신과 달리 차를 물처럼 마셔왔기에 이번에도 익숙하게 맛을 음미한다.) 가장 품질이 좋은 사과들로 담은 잼이라고 하더니, 과연 맛이 훌륭하네요. 아실은 어떠신가요?
아실링 펜들레엄:따뜻하고 달콤하고.. 피곤했던 게 확 풀어지는 기분이네요. 차 한 잔으로 나머지 일도 빠르게 끝낼 수 있을 것 같아요. (한껏 즐거운 목소리로 말을 끝내자마자 다시 한입 마신다.) 아, 맞아. 이런 좋은 기회를 주셔서 저야 좋기는 하지만.. 좀 궁금해서요. 티파티는 갑자기 왜 여신 건가요?
헬레네 R. 히페리데:입에 잘 맞는 것 같아 다행이에요. (반응이 나올 때까지 약간 긴장한 듯 당신을 응시하다가 안심하며 찻잔을 어루만진다.) 여기 스콘도 있으니 함께 드세요, 아실. (스콘이 든 바구니에서 손수 스콘을 두어 개 꺼내 당신 앞에 놓인 접시에 올려준다.)
갑자기 옛날 생각이 나서요. 아주 어렸을 때 말고는 해본 적이 없다시피 했었으니까요. 저택 안에서만 지내는 것도 조금은 지루하기도 했고요. 다른 영애와 영식들은 사교 파티에 많이 가는 모양이던데, 저는 그럴 순 없으니까 티파티로 대신해보았어요. ... 혹시, 불편하신가요?
헬레네야 원래도 선하고 상냥한 성격이긴 했지만, 오늘따라 평소보다도 더 친절한 것 같네요.
아실링 펜들레엄:스콘도요? 오늘 제 생일파티도 아닌데 말이죠. 맛있는 거 많이 먹네요. 감사히 잘 먹을게요. (별다른 위화감을 느끼지 못하고 스콘도 맛있게 잘 먹는다.)
그렇죠. 제 기억에서도 아주 어릴 적으로 기억하는데.. 언제였더라.. 아무튼 그게 중요한 게 아니고. 많이 지루하셨나 봐요? 지루한 걸 많이 해소시켜드린다고 노력하긴 했는데 역시 부족하긴 했죠.. 그 점에는 항상 죄송하다고 느끼고 있어요.. (먹던 스콘을 접시에 내려놓고 비 맞은 강아지처럼 침울한 표정을 한다.) 불편할 리가 없죠. 그냥 죄송할 뿐이에요.
헬레네 R. 히페리데:저만 맛있는 음식을 먹는 게 죄송스러워서요. 티파티가 끝나면 하인들을 위한 간식을 좀 더 마련해달라고 아버지께 부탁해볼게요. (자기도 하나 집어서 앙 베어문다)
아, 아실이 죄송해하실 이유는 전혀 없어요! (놀라서 얼른 손사래를 친다.) 아실이 최선을 다하고 계시다는 걸 저택의 모든 사람들이 다 알고 있을걸요. 저를 위해 얼마나 십시일반 애써주셨는데요. 오히려 받은 것만큼 보답해드리지 못해 제가 죄송스러워요.
그러니까 그렇게 시무룩해하지 않으셔도 돼요. 정말로요, 아실. (당황해서 이번엔 앞에 놓인 딸기 케이크도 앞으로 밀어준다.)
아실링 펜들레엄:(오늘따라 유난히 예쁜 빛을 내는 팔찌를 침울하게 보다가 조심스럽게 입을 연다.) 그렇지만 아가씨 건강이.. 아니에요. 말을 아낄게요. 제가 이런 말을 하는 것은 좋지 않죠.
(침묵을 유지하다가 포크로 딸기 케이크 폭 찌른다.) 다음 휴가 때 제가... 좋은 거 하나 잡아올게요. 기대하세요.
헬레네 R. 히페리데:... 괜찮아요. 언젠가는 차차 나아지겠지요. 아실도 이렇게나 노력해주고 계시고, 제 부모님도 힘쓰고 계시니까... (나눠 낀 똑같은 디자인의 팔찌를 매만지다가) 좋은 걸요...? (감이 오지 않는지 고개를 갸우뚱거린다. 아무것도 모른 채 케이크를 먹는 모습만 뿌듯하게 바라봄) 달콤하죠? 유명한 베이커리에서 한 판을 사 왔다고 하더라구요.
아실링 펜들레엄:네. 건강해지셔서 저랑 이곳저곳 다 놀려 다녀요. 제가 함께할게요. (놀러 다니기 좋은 곳을 많이 알고 있다며 종알거린다.) 네. 좋은 거요. 마구간 아저씨한테 이번에 좋은 걸 하나 들은 게 있어서.. 나중에 알려드릴게요. 나중에. (의미심장하게 웃다가 큼지막하게 자른 케이크를 입에 넣고 오물거린다.) 아가씨도 드세요. 맛이 좋네요.
헬레네 R. 히페리데:마구간 아저씨...? (갸웃) 아실이 하는 일이라면 전부 좋은 일이겠죠. (궁금한 듯 했지만 당신을 대단히 신뢰하고 있었으므로 그러려니 하며 넘어간다. 대신 포크를 들어 제 몫의 딸기 케이크를 먹는다.) 아실과 함께 나눠먹으니 더 맛이 좋네요. 진작에 이런 시간을 가질 걸 그랬나 봐요.
맛있는 홍차와 간식들을 먹으며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시간은 금세 흐릅니다.
…정오를 조금 넘긴 시간의 햇빛이 유리온실의 창 근처를 멤돌아,
이 티파티 테이블에는 더위를 탔다면 더울 정도의 햇볕이 들어옵니다.
햇볕향이 있다면 이 곳의 장미향과 어울려 제법 근사한 향을 내었을 것 같습니다.
약간 열어 둔 유리온실의 문으로 미미한 바람이 들어오고,
그 바람이 아실링의 머리카락을 살랑였다는 감각이 들 그때.
쨍그랑!
눈 앞에서 갑작스럽게 날카로운 파열음이 들려옵니다.
아실링 펜들레엄:(깜짝 놀라 자리에서 일어나 네 주위부터 살핀다.) 다친 곳은 없으세요?
소리의 원천은 당신의 앞, 헬레네입니다.
헬레네 몫의 찻잔이 보기 좋게 깨져서 정원 바닥을 뒹굴고 있군요.
헬레네도 적잖이 당황한 눈치입니다.
찻잔이 깨진 자리를 보는 헬레네의 손이 미세하게 떨립니다.
헬레네 R. 히페리데:아... ... (잠깐 굳어 있다가, 한풀 진정한 후에야 겨우 느린 대답이 흘러나온다.) 네, 괜찮아요. 순간적으로 힘이 풀려서 그만... ... 많이 놀라셨죠, 죄송해요.
아실링 펜들레엄:.... 손에 힘이 풀리셨나 봐요. 다치신 곳은 없는 거죠? (찻잔 파편을 손수건에 감싸 치운다.) 저도 가끔 그런 경우가 있어요. 손은... 의사를 부를까요?
헬레네 R. 히페리데:(조각을 치우기 편하도록 치맛자락을 살짝 들어준다.) 네, 다행히 다치진 않았어요. 주치의는 부르지 않으셔도 될 것 같아요.
이래서야, 헬레네는 찻잔도 없이 티파티를 하게 생겼어요.
헬레네의 옆에서 몇 년을 지켜온 메이드의 입장에서 이런 디테일을 챙기지 않을 수 없죠.
어디, 여유 찻잔이 있는지 살펴볼까요?
아실링 펜들레엄:(아가씨께 쓰던 찻잔을 드릴 수는 없는 법. 여유 찻잔이 있나 주위를 살펴본다.)
주위를 둘러보면, 곱게 부푼 식빵에 약간의 스콘과 그에 곁들일 오렌지 마멀레이드, 사과잼,
딸기가 차곡차곡 올려진 스펀지 케이크와 여전히 홍차가 들어있는 찻주전자와….
아, 저 한 구석에 있는 찻잔이 있습니다.
저걸 사용하길 권해도 괜찮지 않을까요?
아실링 펜들레엄:아, 찻잔이. (남아있는 찻잔 손바닥 위에 올려 들어 네게 보여준다.) 이걸 쓰는 것은 어떠세요? 사용하지 않은 것으로 보이는데..
헬레네 R. 히페리데:남은 찻잔이 있었나요? (고개를 들다가, 찻잔이 시야에 들어오자 순간 눈이 커지며 흠칫한다.) ... 아니에요. 그 찻잔은 쓰지 않는 게 좋겠어요. 부모님이 아끼는 찻잔인데, 사용인이 잘못 가져온 것 같더라구요. (은근히 시선을 피한다.)
아실링 펜들레엄:아끼시는 찻잔이라고요? (조심조심 테이블 위에 내려놓는다.) 귀중한 찻잔을 험하게 다룰 수는 없죠. (이걸 깨트리면 월급이...)
헬레네 R. 히페리데:고마워요, 아실. (그 모습을 바라보다가) 아무래도 여분 찻잔이 없으니, 티파티는 여기까지 할까요?
그리고 아실, 심부름을 하나 해 주셨으면 해요.
아실링 펜들레엄:어떤 심부름인가요. 물론 어떤 것이든지 간에 다 잘하지만요. 맡겨만 주세요. 빠르게 다녀올게요.
헬레네 R. 히페리데:마차를 타고 번화가에 다녀와주셨으면 해요. (미리 적어둔 듯 주소지가 적혀있는 듯한 접힌 종이를 건네며 자리에서 일어난다.) 주소는 여기 있어요.
테이블은 다른 사용인에게 치우라고 말해둘 테니, 마차가 있는 곳까지 같이 갈까요? (맞잡자는 듯 슬쩍 한 손을 내민다.)
아실링 펜들레엄:네. 늦지 않게 다녀올게요. (조소 적힌 종이를 주머니에 넣는다.)
어머, 오늘 너무 친절하게 대해 주시는 거 아니에요? (반쯤 농담 투로 얘기하더니 손바닥을 겹친다. 원래도 친절한 제 주인이지만, 오늘따라 뭔가 더 친절하게 대해주는 것만 같아서 말없이 길을 걷는다.)
헬레네 R. 히페리데:그럼 앞으로도 쭉 똑같이 친절하게 대해 드려야겠어요. (웃으며 당신과 보폭을 맞추어 걸었다. 손에서 느껴지는 체온이 한창때의 봄날과 맞물려 더더욱 따스했다.) 아실에게, 모두에게 좋은 사람이 되고 싶으니까요.
헬레네는 지식계층 중에서도 유별나게 고용인과 사용인이라는 장벽을 그다지 신경쓰지 않는 사람이었습니다.
저택 안에서만 지내서 무딘 면도 있겠지만, 천성이 재력으로 사람을 편가르는 것과는 맞지 않았던 모양이죠.
아실링 펜들레엄:아가씨는 이미 좋은 사람이세요. 이 저택 모든 사람들이 아가씨를 좋아하는걸요. 싫어하는 사람이 있으면 나와보라고 해요. (그런 사람은 없다며 큰소리를 내며 자신도 모르게 몇 걸음 더 앞장서 걸었다가 다시 소심하게 뒷걸음쳐 너와 걸음걸이 맞춘다.) 여담이지만, 아가씨께서 이곳을 떠나신다면 다들 엄청 쓸쓸해 할 거예요. 저도 그렇고요... 제가 괜한 말을 했죠? 계절을 타나 봐요. 이런 말이나 하고요. (머쓱하게 웃는다.)
헬레네 R. 히페리데:그래도, 저도 사람인지라 이따금 실수를 할 때가 있을 테니까요. 항상 더 노력하려고 해요. (커다란 목소리에서 느껴지는 당당함과 자부심에 쿡쿡 작게 웃는다. 당신이 앞서나가자 맞잡은 팔이 위쪽으로 쑥 들렸다가, 뒷걸음질치자 다시 아래로 스르륵 내려간다.) 떠나긴요. 아직 저택을 떠날 생각은 해보지 않았어요. 혼담이 들어오지 않은 건 아니지만, 몸이 안 좋으니까요. 건강이 나아질 때까진 쭉 이곳에 머무를 거예요. 이곳엔 정이 많이 든 사용인 분들과, 아름다운 장미정원과, 그리고 가장 가까운 친구인 아실이 있잖아요. (맞잡은 손에 미약하게나마 힘이 더 들어간다.)
아실링 펜들레엄:그럼요. 아직은 좀 더 이곳에서 머물러 계셔도 된다고 생각해요. 저 말고 다른 사람들도 그렇게 생각할걸요? 분명 그럴 거예요. 결혼할 상대도 아주 고민하고 고민한 끝에 고르셔야 해요. 아주 좋은 사람으로요. (너무 먼 이야기를 벌써부터 늘어놓았다며 피식 웃는다.) 아가씨 생각만 하면 말이 많아지네요. 어쩔 수 없는 것 같아요. 제 소중한.. 친구니까요. 네, 소중한 친구의 부탁 잘 들어주고 올게요.
헬레네 R. 히페리데:맞아요. 저 실은, 딱히 결혼을 하고 싶지 않답니다. (비밀이라도 이야기하듯, 주변엔 아무도 없는데 소리를 죽여 소근거린다.) 가문의 후계자이고, 대를 이어야 하니 언젠가는 해야 할 일이겠지만... 아직까지는 남의 일만 같아요. (게다가 정말로 좋아하는 사람은 따로 있었으니까. 걸어가며 자연스레 손이 흔들릴 때마다 팔찌의 구슬들이 경쾌히 부딪혔다.) 그럼에도 만약 그때가 온다면... ... 아실의 눈썰미로 상대가 괜찮은지 날카롭게 살펴주세요.
여전히 날은 너무 좋고, 정원 곳곳의 초목은 옅은 바람에 잔잔히 흔들립니다.
빈말로도 세다고는 할 수 없는 바람이지만 그렇게 잔잔한 채로 꽤 길게 바람이 불었다가, 어느 순간에 멈춥니다.
그제서야 바람을 타고 미미하게 날아드는 장미향이 멎습니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걷다 보면 어느새 마차를 두는 곳이 코앞입니다.
마차 관리를 담당하는 고용인에게 헬레네가 무어라 말하는가 싶더니,
고용인이 아실링에게 헬레네의 마차를 내어 줍니다.
어, 어라?
저택이 번화가와는 꽤 떨어진 편이라, 이 저택의 고용인이라면 누구든 저택에서 구비한 마차를 이용할 수 있는 건 사실이지만...
감히 헬레네의 마차 같은 걸 이용하지는 않는 게 보통일 텐데요?!
아실링 펜들레엄:(마차랑 헬레네 번갈아가며 바라본다.) 저... 마차가 잘못 온 것 같아요... (마차랑 거리 둔다.)
헬레네 R. 히페리데:제대로 잘 왔어요, 아실. (잔잔하게 웃으며 당신의 손을 잡아 마차 앞으로 데리고 온다.) 어차피 저는 바깥에 잘 나가지도 않고, 제 심부름이기도 하니까 괜찮아요.
행선지는 마부에게 미리 말해두었으니, 종이는 마차에 타서 확인해보셔도 돼요.
정말, 오늘따라 유독 상냥한 것 같기도 하고……
그게 아니라면 그저 오랫동안 옆을 지킨 친구에 맞는 대우를 해주는 걸까요.
어느 쪽이든 썩 나쁜 기분은 아닙니다.
아실링 펜들레엄:(어색하게 마차에 타고는 뻣뻣한 자세로 네게 손 인사한다.) 다녀올게요..? 혹시 따로 뭐 주의하실 거 있나요?
헬레네 R. 히페리데:(어색한 모습에 입가를 한 손으로 가린 채 키득거린다.) 잘 어울리네요, 아실. 주의사항은 따로 없으니 편안히 다녀오세요.
아실링 펜들레엄:어색한 제 모습이 즐거우신 건가요? (그래도 즐거워하는 네 모습이 보기 좋다며 삐질 뻔한걸 푼다.) 다녀오겠습니다.
헬레네의 호의를 받아 마차에 오르면, 과연 고용인이 쓰던 마차와는 내부의 분위기마저 다른 것 같습니다.
좌석도 포근포근하네요.
아실링이 자리를 잡고 마차의 문을 닫으면, 마차는 천천히 움직이기 시작합니다.
창 너머로 헬레네가 멀어지고,
당신을 오래 배웅하다가 몸을 돌려 저택으로 돌아가는 헬레네가…
<관찰> 판정
아실링 펜들레엄:
관찰력
기준치:
85/42/17
굴림:
70
판정결과:
보통 성공
…어쩐지 꽤나 격한 기침을 하는 듯 손으로 입을 틀어막고 몸을 움츠리는 모습이 보입니다.
티파티는 나름 햇볕이 잘 드는 곳에서 했다고 생각했는데…
헬레네에겐 부족했던 걸까요?
상냥하면서도 그리 몸이 약하니 걱정입니다.
그렇게 헬레네도, 저택도 더 이상 보이지 않을 즈음에 바깥을 보면, 맑은 하늘에 크림을 떠다놓은 듯한 구름이 몇 있습니다.
확실히 헬레네의 마차는 좋은 건가, 승차감이 조금 편안한 것 같기도 해요.
행선지는 미리 말해두었다하니 도착하기 전까지 잠시 풍경을 보거나, 조금 전 받아두었던 접힌 종이를 확인하거나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아실링 펜들레엄:(창밖으로 보이는 풍경들을 눈에 담고 있다가 주머니에 넣어두었던 종이를 꺼내 열어본다.)
로즈 스트리트 분수대가 있는 곳에서 내려 세 블록, 더 올라가서 우측으로 한 블록. 와인색 외벽의 가게.
'헬레네가 주문한 걸 찾으러 왔다'고 하면 물건을 내어줄 거예요.
그리고 번화가에 어떤 게 있는지 전부 보고 와서, 전부 말해주실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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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st Day, PM 03 : 48 】
덜컹―
종이를 확인하고 슬슬 번화가에 도착할 즈음이 아닐까, 싶으면 과연 마차가 서서히 멈춰 섭니다.
내려도 괜찮겠어요.
아실링 펜들레엄:(마차에서 내려 찌뿌둥한 몸을 스트레칭하며 주위를 둘러본다.)
종이에 적혀 있던 대로 머지 않은 곳에 분수대가 보입니다.
번화가라 그런가, 역시 오늘도 사람이 많네요.
분수대에 기대어 쉬는 사람부터 물줄기에 손을 대보려고 안달인 어린 아이에,
지팡이를 짚고 그 사이를 노련히 헤집는 노인까지 각양각색의 사람들이 거리에 색을 칠합니다.
어디라고 했었죠? 어서 가보도록 해요.
아실링 펜들레엄:아, 여기가 로즈 스트리트 분수대. (지금 서 있는 장소에서 세 블록 더 올라가서 우측으로 한 블록 이동해 와인색 외벽의 가게 안으로 들어간다.)
딸랑―
헬레네가 적어준 대로 따라 와인색 외벽의 가게에 들어왔습니다.
간판에 '셀리나의 장신구점'이라고 박혀있었죠.
간판의 이름을 반영하듯 내부는 여느 장신구점에서 볼 법한 풍경입니다.
유리로 덮여진 진열대에 색색의 보석이 작거나 크게 박힌 반지나, 꽃모양으로 잘 세공된 브로치, 척 보기에도 비싸보이는 진주목걸이 따위가 죽 진열되어 있습니다.
꽤나 섬세한 솜씨네요.
…그 안쪽에는 어딘가 불성실한 태도의 주인이 있습니다.
유독 미간에 주름이 깊게 패인 제법 큰 체구의 중년 여성입니다.
아실링이 들어오는 걸 눈으로 흘금 보고도 인사도 하지 않습니다.
섬세한 장신구와는 꼭 반대의 사람이네요.
셀리나:무슨 볼 일 있나? 돈 없으면 안 받아.
거기에다 누가 봐도 속물스런 태도까지!
가게 주인의 태도가 썩 마음에 들지는 않지만… 어쨌든 헬레네가 받아오라 했던 건 받아와야겠죠.
아실링 펜들레엄:헬레네 아가씨의 물건을 찾으러 왔습니다. 빨리 받고 싶네요. 가능할까요. (빨리 집에 가고 싶은 생각뿐이다.)
가게주인은 느릿느릿 주문서로 추정되는 문서더미에서 헬레네, 헬레네…. 하며 이름을 찾더니,
주문하신 건 제대로 준비해뒀어요. 이 셀리나의 솜씨를 믿고 거액을 지불해주셨으니 저도 특별히 신경을 썼죠. (아까와 같은 사람이 맞나 싶을 만큼 사탕발림을 늘어놓는다.)
저 사람의 장신구와 같은 섬세함은 돈 앞에서만 한정되나 봅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백색 포장지에 푸른색 리본을 정성스레 동여 맨 작은 상자를 들고 가게 주인이 나타납니다.
셀리나:오래 기다리셨죠~ (유리 진열대 위에 상자를 올려둔다.)
이곳 진열대의 장신구만큼이나 섬세한 포장이군요.
역시 돈이 최고입니다.
아실링 펜들레엄:뭔가 포장이.. (의심스러운 표정으로 포장된 상자를 요리저리 보다가) 주문한 상품이 뭔지 알 수 있을까요?
셀리나:그건 주문하신 고객님께서 말하지 말라고 하셔서요~
굉장히 친절하고 나긋한 톤으로 설명하는 이 사람은 가게에 들어온 아까 전의 사람과는 꼭 딴판입니다.
당신의 작은 주인님은 부모님께 선물이라도 하려는 걸까요?
이렇게 당신에게까지 비밀로 해서는…
나름 그래도 옆을 지켜온 세월이 몇 년인데, 조금 서운할지도 모르겠지만 어쩔 수 없습니다.
안되는 건 안되는 거니까요.
아실링 펜들레엄:(쥐꼬리만한 제 돈으로 매수 못 할 사람일 것 같아서 빠르게 포기하고 밖으로 나간다..)
셀리나:안녕히 가세요~
딸랑― 문이 닫히는 소리를 뒤로 하고, 처음 왔을 때와는 완전 딴판의 반응을 마지막으로 가게를 나옵니다.
한 손에는 백색 포장지로 둘러싸인 상자를 들고 와인색 가게를 뒤로 합니다.
그리고…
또 하나, 헬레네가 당신에게 부탁했던 일이 있었죠.
'그리고 번화가에 어떤 게 있는지 전부 보고 와서, 전부 말해주실래요?'
…라고.
바깥을 통 돌아다니진 않는 당신의 작은 주인님이니 이런 부탁을 하는 것도 이상하진 않습니다.
그러고 보면 아무래도 헬레네의 고용인인지라 헬레네의 생활반경과 비슷하게 지내다보니,
아실링도 번화가에 나온 건 꽤 간만인 것 같죠.
요즘의 번화가는 어떨까요? 여기저기 살펴보도록 합시다.
온갖 화려한 드레스를 파는 옷가게, 알록달록 맛있는 디저트를 늘어놓은 베이커리, 싱그런 향기를 풍기는 꽃집, 카페...
온갖 가게들이 늘어서 있네요.
예전에 나왔을 때보다 더 많은 상점들이 생긴 것 같습니다.
어디선가에서는 듣기 좋은 노랫소리가 울려퍼지는군요.
사람들이 모여있는 곳을 보니 리라를 뜯으며 노래하는 음유시인이 보입니다.
아실링 펜들레엄:(음유시인에게 다가가본다!)
음유시인 주변에는 이미 사람들이 삼삼오오 앉아, 그의 노래를 감상하고 있습니다.
부드럽고 노랫소리가 리라를 뜯는 소리와 조화를 이루어 감미롭기 그지없습니다.
음유시인의 노랫소리를 가만 듣고 있으니, ‘평안 기원제’라는 단어가 들리는군요.
평안 기원제…
그러고 보니 여름을 앞둔 이 시기에는 꼭 그런 걸 했던 것 같습니다.
여름은 더워서, 해가 작열하면 어린 아이나 노인은 픽픽 쓰러지곤 했죠.
그렇게 쓰러지지 않도록, 해가 지고 밤이 되면 여름을 무사히 넘기고 건강하도록.
흥겨운 풍의 음악과, 누구든 함께 하고 싶은 사람과 로즈 스트리트를 따라 춤을 추고, 이야기하고 웃으면서 번화가의 끝에서 끝까지 이동하는 행사입니다.
굳이 끝에서 끝까지 춤을 출 필요는 없어서, 기원제의 마지막 즈음에 남은 사람은 평균적으로 처음의 1/5 정도에 불과하다고 하죠.
그렇기 때문에, 함께 하는 사람과 끝까지 남은 사람들은 그 관계도 내내 평안하리라―
정도의 미신이 있는 행사입니다.
더불어 길의 가장자리에는 원래 있던 가게를 비롯해 그 시기만을 노린 노점상들은 또 얼마나 많고요!
그 노점상 중에 꽤 괜찮은 곳은 이미 아는 사람 사이에선 다 알려져 있습니다.
생긴 지는 이제 겨우 십 년 남짓 되지만 꽤 괜찮은 행사죠.
행인1:평안기원제가 벌써 내일이라지?
행인2:그래그래. 뭘 입을지 준비는 해 뒀어?
행인1:그럼, 물론이지.
……그런데 그 행사가 마침 내일이라고 하네요.
벌써 그렇게 됐나?
행인1:그러고 보니, 이번 평안기원제 기념으로피레타 연극단이 온다며?
피레타 연극단? 그게 뭐죠?
한 번 물어볼까요?
아실링 펜들레엄:안녕하세요. 피레타 연극단이 뭔가요? 제가 이곳에 오랜만에 와서요. 새로 생긴건 잘 몰라요. (없는 외향력 다 끌어 모아서 처음 보는 행인1한테 웃으며 말 건다.)
행인1:음? 처음 들어봤어요? 최근 이 번화가의 완~전 뜨거운 감자인데. 연기가 워낙 실제같아서, 사랑에 빠진 사람은 정말 사랑을 하는 것 같고, 복수심에 불타는 사람은 진짜 복수를 하는 것 같다고 명성이 자자합디다. 어디서 이런 실력자들만 모은 건지! 피레타 연극단이 올 때는 다른 연극단들은 발도 못 붙인다는 우스갯소리가 나올 정도라니까요.
마침 그 연극단이 내일 평안기원제를 맞이해서 온다지 않습니까! 이번 연극내용은 새드엔딩이래요. 장르는 로맨스 같다는데, 정확하진 않아서 잘 모르겠네요. 평안기원제가 시작할 시간에 딱 맞춰 끝나도록, 늦은 오후에 시작한다더군요.
피레타 연극단의 또 남다른 점이 이거지. 연극을 하는 날짜와 시간만 알려주고, 정확히 어디에서 하는지, 표를 어디서 파는지는 알려주질 않아요! 아마 표를 사재기하려는 사람들이나 있으신 분들이 자리 뺏는 걸 막으려고 그러는 거겠죠. 모두가 동등하게 연극을 볼 수 있어야 한다는 주의라나? 아무리 보고 싶어도 운이 좋아야 하는 거죠. 전 연극단이 온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부터 입장을 노리고 있습니다. 어떻게 해서든 보고 말 거예요.
아실링 펜들레엄:그렇군요.. (알려줘서 고맙다고 말하고는 꾸벅 인사한다.)
나름 요새 번화가의 큰 화젯거리는 다 들은 것 같네요.
가게에 들려 헬레네에게 줄 선물을 사 갈까요? 아니면 이만 돌아갈까요?
닥닥 긁어모은 외향력이 벌써 바닥났습니다...
아실링 펜들레엄:(주머니에 꼬깃꼬깃 모아둔 돈으로 헬리한테 줄 간식을 산다.)
(비실비실..)
아실링은 비실거리면서도 아갓시에게 드릴 간식을 구매했습니다...
장하다!
이곳저곳 돌아다니며 구경하고 물건을 사다 보니 어느덧 시간이 꽤 지나 있습니다.
마차는 아까 처음 왔던 로즈 스트리트의 분수대 앞에 그대로 있습니다.
마차를 이끄는 사람은… 졸고 있네요!
그럴 만도 하죠, 꽤 오래 걸렸으니까요.
마부를 깨워서 저택으로 돌아가도록 해요.
아실링 펜들레엄:(마부 옆자리 툭툭 쳐 깨우고는 마차 안으로 쇽 들어간다.)
덜컹, 덜컹―
아실링이 마차를 이끄는 사람을 깨우고, 마차에 타면 이내 마차는 천천히 가속합니다.
헬레네의 마차는 승차감이 좋지만, 그래도 미약하게 흔들리는 기분이 드는 건 어쩔 수 없죠.
꽤나 이곳 저곳을 돌아다녀서 그런가,
등받이에 풀썩, 소리가 나게 기대면 이제사 여태 번화가를 돌아다닌 피로가 느껴져요.
바깥으로 마차의 속도에 따라 지나가는 풍경을 멍하니 보면 꼭 저녁의 나른함도 온 몸을 감싸는 기분입니다.
돌아가면 헬레네에게 무엇이 든지 모를 상자를 줘야죠.
번화가에서 듣고 본 이야기도 해줘야 하고……
그리고…… 또……….
【 1st Day, PM 07 : 12 】
마부:도착했습니다.
마부의 덤덤한 한 마디에 퍼뜩 정신이 깹니다.
어느 틈에 기절하듯 잠들었나 보네요.
주변을 돌아보면 아직 해가 저물진 않았습니다.
곧 있으면 지려나요?
번화가에서부터 시간은 꽤 오래 보냈던 것 같은데, 여름이 가까워져서인지 해도 늦게 지네요.
아실링 펜들레엄:(마부에게 고맙다고 인사하고는 마차에 내려 저택쪽으로 빠르게 걸어간다. 헬리에게 오늘 있었던 일을 얘기해 주고 싶은 생각만 가득하다.)
마차에서 내려 저택으로 걸어갑니다.
저택엔 달라진 점이 없습니다. 그게 당연한 일이지만요.
끼이익― 저택 문을 열고 들어가면 고용인들은 저녁준비로 한창 바쁩니다.
헬레네는 어디 있을까요?
그런 생각을 갖고 주변을 둘러보면 누군가 뒤에서 접시를 품에 한가득 들고는 당신을 부릅니다.
지나가던 고용인:너! 작은 주인님 전속으로 일하는 애 맞지?
아실링 펜들레엄:제가 헬레네 아가씨 전속 메이드이기는 한데.. 누구세요?
지나가던 고용인:고용인이지 뭐야. (어처구니없단 듯 대답해주곤) 작은 주인님이 너 바깥에 나갔다고, 돌아오면 서재에서 기다릴 테니 오라고 하셨어.
…그렇게 자기 할 말만을 남긴 채 고용인은 사라집니다.
헬레네가 지나가는 고용인을 아무나 붙잡고 부탁했던 모양입니다.
그럼, 헬레네가 어디있는지도 알았겠다. 가볼까요?
서재는 분명 1층이었습니다.
아실링 펜들레엄:(저택 도착하기 전 비실비실하던 모습은 어디 가고 생글거리는 얼굴로 1층 서재를 향해 걸어간다.)
좋은 마차를 빌려주셔서 편히 다녀왔어요. 오는 길에 깜빡 잠에 들 정도였어요. 물론 구경도 잘 하고 왔고요. 꽤나 즐거웠어요. 무슨 얘기부터 해드릴까요?
헬레네 R. 히페리데:잠드셨군요. 돌아오는 길에 조금이라도 쉬신 것 같아 다행이에요. 번화가는 복잡해서 많이 돌아다니셨을 텐데... (손잡이를 잡고 느릿하게 몸을 일으킨다.) 바로 물건을 받고 이야기를 듣고 싶었는데, 생각보다도 더 시간이 늦어져서요.
밤이 되면 제 방으로 와주실래요? 그때까진 갖고 계셔 주세요. 물건도, 제게 들려줄 얘기도요.
일단은 저녁식사부터 하기로 해요. (장갑을 낀 손이 다정하게 당신의 손끝을 스친다)
그래요, 생각해보니 조금 전에 저택에 왔을 때도 다들 저녁준비로 분주했죠.
아실링 펜들레엄:어쩐지 분주하다 싶더니.. 시간이 벌써 그렇게 됐네요. 그럼 식사 후에 제가 아가씨 방으로 갈게요. (스쳐진 손끝 위에 손 올린다.)
헬레네 R. 히페리데:부탁드릴게요, 아실. (느껴지는 촉감에 부드럽게 웃는다.)
헬레네가 규칙성없이 쌓아둔 서적을 난감해하더니, 인사를 하고 먼저 서재를 나갑니다.
본래 목재의 낡은 소음이 귓전을 울립니다.
…아실링도 슬슬 저녁을 먹으러 나가야죠.
아실링 펜들레엄:(저녁 먹으러 후다닥 밖으러 나간다.)
(아무렇게나 쌓아둔 서적이 마음에 걸리는지 결국 유턴해서 치우러 다시 돌아간다.)
(책은 소중히 소중히)
(서적 정리한다.)
서적들을 정리하다 보면 눈에 들어오는 제목들은 죄다 《 고대의 의식 》,《 의식의 성립요건 》,《 기이한 사건 모음집 》,《 주술의 이해 》……
……따위의 꽤 음산하고, 왜 골랐는지 모를 서적들입니다.
아실링 펜들레엄:(대체 이런 것을 왜? 헬리의 새로운 책 취향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의 내용이기에 바로 인상을 찌푸린다. 혹, 다른 사람이 헬리에게 이 책을 선물 한 것이라면 그 사람을 가만두지 않을 것이라는 다짐을 하며 신경질적으로 책을 정리하고는 방 밖으로 나온다. )
헬레네는 왜 이런 책을 읽고 있던 걸까요?
혹시 누군가 선물해준 거라면, 악질적인 의도를 담았을 게 뻔합니다.
아실링은 신경질적으로 책을 정리하곤 서재를 빠져나갑니다.
【 1st Day, PM 09 : 43 】
모두 저녁식사를 끝낼 즈음이 되면 식당은 설거짓거리를 처리하는 움직임으로 바빠지다가,
식당이나 저택 어디를 가릴 것 없이 고요해집니다.
저벅저벅― 적막이 내려앉은 저택을 당신의 발소리가 메웁니다.
당신은 헬레네의 방에 볼일이 있으니까요.
이 상자도, 얘기도. 전부 전해주기로 했으니까.
아실링 펜들레엄:아가씨, 저예요. (헬레네의 방 앞에 서서 익숙하게 노크한다.) ... 들어가도 괜찮을까요?
헬레네 R. 히페리데:네, 들어오세요.
헬레네의 방 앞에 서서 가볍게 문을 두드리면 기다렸다는 듯 대답이 들려옵니다.
…서재에서의 고요함은 잊힐 정도로, 나긋하지만 분명합니다.
아실링 펜들레엄:(주위를 두리번 거리다가 안으로 들어간다.)
문을 열면 당연하게도 아실링의 방보다는 훨씬 넉넉한 크기에,
헬레네 혼자 눕는다기에는 두 사람도 누울 수 있을 것 같은 정도의 침대나 탁상,
피아노나 작은 서랍장, 해가 떠 있는 동안 헬레네의 말을 전해 주었던 새가 있는 새장…
세련되고 비싸보이는 가구들이 헬레네의 방을 가득 메우고 있습니다.
어릴 적부터 자주 들어왔기에 익숙한 풍경이죠.
침대 옆의 창문은 꽤나 커서인지, 그를 가려놓은 커튼도 꽤나 큰 편입니다.
헬레네는 침대 헤드에 기대 앉아 당신을 봅니다.
잘 준비를 하고 있었던 걸까, 꽤 편한 옷차림이네요.
헬레네 R. 히페리데:기다리고 있었어요. 옆에 앉으시겠어요? (침대 옆에 있는 폭신한 방석이 깔린 의자를 가리켠다.)
헬레네 R. 히페리데:아실링도 피곤할 테니까요. 아, 감사해요. 다행히 제때 받을 수 있었네요. (손을 내밀어 상자를 받는다.) 그 가게, 주인의 성격은 썩 좋지 못하지만 실력 하나만큼은 일취월장하다고 들었어요. 저는 전부 대리로 부탁했으니 직접 겪지 못했지만... 어떻던가요?
아실링 펜들레엄:확실히 성격은 좋지 않더라고요.. 아가씨 이름이 나오니까 확 태도가 달라지는 거 있죠. 엄청 속물이에요. 저 같은 메이드는 주문도 못할걸요~.. 아, 주문한 물건은 뭔가요? 궁금해서요.
헬레네 R. 히페리데:그렇군요. (눈을 반짝이며 즐겁게 당신의 설명을 듣는다. 돌아다닐 수 있는 반경이 저택까지다 보니, 사소한 이야기라도 바깥에 관한 것이라면 집중한다.) 아, 주문한 물건은... (상자를 곱게 싸맨 리본을 매만진다.) 소중한 분에게 드리고 싶어서 주문했는데, 드리는 그날까지 조금 마음의 준비가 필요해서요. 죄송스럽지만 아실에게도 알려드릴 수 없을 것 같아요.
아실링 펜들레엄:('소중한 그분','나에게도 비밀' 두 단어가 생각보다 큰 충격으로 와닿았는지 몇 초간 경직되어 있다가 쓸쓸하게 웃음을 흘린다.) 그.. 그렇군요.. 그래요.. 맞아. 오늘 여러 가지 이야기를 듣고 왔어요. (충격을 충격이고, 약속은 약속이라며 평안 기원제 이야기와 피레타 연극단 이야기도 해준다.)
헬레네 R. 히페리데:(리본을 만지작거리느라 당신의 그런 상태를 눈치채지 못했다. 자연스레 화제가 전환되고, 당신의 이야기를 열심히 경청한다.) 기원제... 연극단...! 무척 흥미로운 행사들이 연달아 열리네요!
연극은 특히나 책에서밖에 본 적이 없어서 궁금해요. 직접 눈앞에서 볼 수 있다면 얼마나 즐거울까요? 로즈 스트리트에서 사람들이 다같이 춤을 추는 광경도 장관일 것 같아요. 상상만 해도 가슴이 설레오네요.
내일 제 몸상태가 좋으면... ... 번화가로 나갈까요.
아실링 펜들레엄:그렇게 얘기하시는 거 보니까 엄청 어릴 적으로 돌아가신 것 같아요. 한 열두 살 정도? 우리 아가씨 이제 시집가서야 하는 나이인데. (놀리는 말투로 얘기하며 손끝으로 네 머리카락을 살살 빗어내리며 웃는다.)
아가씨께서 가고 싶으시다면.. 네, 같이 가요. 같이 재미있는 하루를 보내고 오는 거예요. 말로 들은 것보다 훨씬 더 재미있을 거예요.
헬레네 R. 히페리데:저, 저 방금 너무 아이처럼 말했나요?! (깜짝 놀라서 손으로 입가를 가린다. 손길에는 익숙하게 머리칼을 내어주었다. 길고 굽슬거리는 머리칼은 이래저리 손이 많이 가서, 당신이 항상 관리를 도맡아 주었었지.) 하루 종일 아실이 들고 올 바깥 이야기를 기대했더니 들떴나 봐요.
이야기만 들어도 이렇게 상기되는데, 직접 나가서 경험하면 얼마나 기쁠지 상상이 안 가요. (배시시 미소한다)
아실링 펜들레엄:그렇게 기분 좋으세요? 이야기만으로 이렇게 들떠하면 안 되는데... 실제로 나갔다가는.. (곰곰) 너무 즐거워서 중간에 기절하거나 열이 난다면...?? 주치의를 데리고 가야 하는 것은 아닌지 진지하게 고민을 해야겠어요! (그렇게 말하면서도 실실 웃고 있다. 손으로는 이불 끝 잡고 어깨까지 끌어올렸고)
헬레네 R. 히페리데:그런 일은 없게 적당히 조절하면서 돌아다니면 괜찮지 않을까요? 주치의 선생님을 너무 자주 뵈었어요... (칭얼거리면서 자연스럽게 침대로 몸이 기울어진다. 끌어주는 대로 이불에 폭 덮인 채, 옆으로 누워 당신을 올려다본다. 이미 졸음이 몰려온 듯 눈이 가물가물하다.)
목소리도 그렇고, 당신의 작은 주인님의 약한 몸은 한계를 맞이했나봐요.
평소에 열지도 않는 티파티를 연다느니, 일부러 당신을 신경써서 마차가 있는 곳까지 바래다 준다느니.
아실링에겐 무리가 없을 일들이지만 당신의 헬레네는 조금 다르겠죠.
헬레네 R. 히페리데:(이불 밖으로 손을 꼼실 내밀어 당신의 옷깃을 슬쩍 잡는다.) ... 아실. 오늘은... 저와 함께 잠에 들면 안 될까요?
졸려서 어리광을 피우는 걸까요.
철모르던 어릴 때야 종종 같이 잠들었던 적도 있지만...
아실링 펜들레엄:아가씨...? (잡힌 옷깃을 보다가 픽 웃는다.) 아직 아가 아가씨인 줄도 모르고 혼자 주무시게 할 뻔했네요. 네, 저랑 같이 자요 아가씨. (말하는 중간중간마다 웃음을 흘린다.) 역시 제가 있어야 하죠? 그렇죠? (슬금슬금 이불 안으로 들어간다.) 착한 아실링~이라고 해주세요. (헤헤)
헬레네 R. 히페리데:이전에도 같이 잠들곤 했었으니까요...! 아직 성년도 아니니까 아이예요...! (말해놓고 부끄러운지 볼이 살짝 빨개졌지만 꿋꿋하다. 당신이 잘 들어오도록 이불 한쪽을 들어주고, 꾸물꾸물 들어온 당신의 옆에 착 붙어 누웠다.) 선선히 들어주시다니, 아실은 너무 착하세요. 착한 아실링~ (쑤담쑤담)
아실링 펜들레엄:그렇게 말하는것 치고는 볼이 좀 빨개요, 아가씨. (착 누워서는 만족스럽게 쑤담쑤담 받는다.) 아가씨한테만 착한 아실인거 아세요? 물론 그렇다고 다른 사람들한테 무례하거나 그런 건 아니지만... 그러면 아가씨가 저 안 좋아할 테니까. 아무튼 제가 아가씨를 엄청 좋아한다는 것만 알아주세요. 그거면 충분해요.
헬레네 R. 히페리데:(열심히 머리를 쓰다듬어 주다가, 당신의 품에 자연스레 쏙 안긴다. 두근두근, 심장이 뛰는 소리가 울린다.) 모두에게 착한 사람이 되어야죠, 아실. 그래도... 저를 좋아해주셔서 무척 기쁘네요.
저도 아실을 아주 많이 좋아해요. ... 말로는 다 표현하기 어려울 만큼이요.
더 많은 선물을 드리고 싶고, 더 많은 시간을 함께했으면 좋겠어요.
아실링 펜들레엄:착하게 사는 게 얼마나 힘든 건지 아가씨가 몰라서 그래요.. 그러니까 아가씨가 예쁘다 예쁘다, 착하다 착하다 많이 해주셔야 해요.. 지금같이 포옹도 좋고요. (따뜻한 체온이 닿는 게 좋은지 눈이 스르륵 감긴다.)
저는 사실 선물은 안 받아도 돼요. 물론 주시면 감사히 받지만.. 시간을 함께하는 건 좋아요. 선물보다 몇십 배, 몇백 배는 더요. 그러니까.. 지금 이렇게 있을 수 있는 것에 감사하게 여길게요, 아가씨.
헬레네 R. 히페리데:알겠어요. 많이 많이 말해드리고, 자주 꼭 끌어안아 드릴게요. 저도 포옹을 좋아하거든요. (어느샌가 눈을 감았다. 일정하게 맥박치는 고동과 온몸을 따스하게 덥히는 체온에 서서히 잠이 몰려온다. 그 탓에 중간중간 말이 느려지고 끊기곤 했다.) 그래도 아실은 제게는 항상 착하셨으니까요.
... 저도 감사해요. 아실과 이렇게 함께 시간을 보낼 수 있다는 것에요. 그러니 내일도... 즐거운 날을 함께해요.
새근새근.
어느덧 미약한 숨소리가 조용히 들려옵니다.
함께 잠들어달라고 했었죠.
그래도 사용인의 신분이니만큼 이대로 잠들었다간 내일 하녀장님께 경을 칠 텐데, 쉽게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습니다.
누군가가 숨을 들이키고 내뱉는 소리와,
이따금 창문을 울리는 조금 강한 바람 소리만이 이 방을 채우고,
커튼이 채 가리지 못한 달빛이 연푸르게 두 사람의 주위에서 일렁입니다.
기이하리만치 고요하고 정적인 풍경.
그러나, 꼭 끌어안고 있기에 더없이 안정적이고 따스한 풍경입니다.
어떻게 할까요, 아실? 이대로 잠들까요, 혹은 돌아나올까요? 어느 쪽이든 당신의 선택입니다.
아실링 펜들레엄:(헬리에게는 미안하지만 돌아나온다..)
그래요, 밤이 늦었으니 어서 돌아가도록 해요.
아실링은 헬레네를 뒤로하고 방을 나옵니다.
당신이 잠자리에 들면 저택에는 완전한 밤이 내립니다.
【 2nd Day, AM 07 : 26 】
바깥부터 들리는 꽤 분주한 발걸음, 소음, 바깥에서부터 들리는 미약한 새 소리…
아, 아침입니다. 그것도 꽤 이른 아침이요.
어제… 헬레네의 방을 들렸다가, 그대로 방으로 돌아와서 침대에 엎어졌었죠.
머리맡에 폭신한 감촉이 느껴지고 얼마 지나지 않아 까무룩 잠이 들었던 것 같아요.
아실링, 일어나며 <건강> 판정
아실링 펜들레엄:
건강
기준치:
60/30/12
굴림:
67
판정결과:
실패
…오늘도 평소와 별 다를 바 없는 몸상태입니다.
적당히 피로가 풀리고, 적당히 움직일 수 있을 정도네요.
어쨌든, 오늘 하루도 기지개라도 피면서 시작해보자고요!
헬레네는 일어났을까요?
바깥이 분주한 걸 보면 곧 아침식사를 할 때가 되었을 거예요.
한 번쯤 방문을 두드려봐도 좋을 것 같아요.
아실링 펜들레엄:(헬레네 방으로 가서 노크한다.)
똑똑.
끼이익―
헬레네의 방문을 두드리면 들어오라는 말 대신 안 쪽의 누군가가 방문을 열어줍니다.
당연한 소리지만 헬레네네요.
헬레네?
어쩐지 어색하군요.
그도 그럴 게, 잘 있는 일은 아니잖아요?
헬레네는 이렇게 나서서 문을 열어주기보다는 어제처럼 들어오라고 말을 건네는 편이었으니까요.
몸이 약하니 당연하다고 생각했지만….
헬레네 R. 히페리데:좋은 아침이에요, 아실. 간밤에는 먼저 돌아가셨더군요. (약간 아쉬운 티를 내면서도 웃으며 문을 연다)
게다가 오늘따라 어딘가… 묘하게 들떠보이지 않나요?
아실링 펜들레엄:그게... 죄송해요. 따로 해야 할 일이 생각나서요. 이, 맞아. 좋은 아침이에요, 아가씨. (문을 잡고 안으로 들어가며 네 모습을 살핀다.) 오늘은 몸 상태가.. 괜찮으세요?
곧 그 의문이 사실이라는 듯 헬레네가 경쾌하게 입을 엽니다.
헬레네 R. 히페리데:하긴, 저택에선 눈을 잠시만 돌려도 새로이 할 일이 생겨난다고 했으니까요. (고용인인 당신의 입장을 이해하고 수긍한다. 몸을 돌려 창가로 걸어가는 걸음이 가볍다.) 네, 오늘따라 유난히 몸 상태가 좋은 것 같아요. 이런 기분은 참 오랜만에 느껴 보네요.
촤아악―
경쾌한 소리를 내며 옆으로 걷힌 커튼,
달칵, 잠금쇠로 고정되어 있던 창문이 열리는 소리.
열리는 창문 틈새로 아침 특유의 선선한 바람이 들어옵니다.
주황빛 머리칼이 바람의 흐름을 따라 어깨에서 찰랑입니다.
바다를 한 폭 잘라낸 듯한 푸른 눈은 창 너머의 바깥을 가득 담습니다.
헬레네 R. 히페리데:마침 날씨도 참 맑네요. (맑은 공기를 한 번 깊게 들이마셨다가) 아실은 어떠세요? 컨디션은 좀 괜찮으신가요?
아실링 펜들레엄:저야 뭐 언제나 그렇듯이 건강하죠. 메이드한테 건강은 필수적인걸요. (네 옆으로 걸어가 창가에 몸을 기댔다가 어제 했던 대화가 순간 기억나 빠르게 고개를 돌린다.) 설마.. 밖으로 나가시려고요?
기억 속에서 어젯밤의 헬레네와 지금의 헬레네가 겹칩니다.
헬레네 R. 히페리데:맞아요. 아침 식사를 하고 나서 함께 번화가로 나가요, 아실. (비치는 햇살과 깨끗한 아침 공기에 절로 가슴이 설레어 온다. 상상만으로도 들뜨기 그지없는지 웃음이 만개한 낯에 옅은 홍조가 번진다.) 어제 말해주셨던 것처럼 아실도 함께해주실 거죠?
그래요, 평안기원제라느니, 연극단이라느니 온갖 볼거리는 오늘 다 몰리고, 헬레네는 몸상태가 좋고, 날은 맑고.
무엇이 부족해서 나가지 못하겠어요?
이렇게 모든 조건이 잘 맞는 걸 보면 오늘은 특별한 날일지도요.
아실링 펜들레엄:(곤란하다는 표정을 유지하다가 네 두 손을 감싸잡는다.) 제가 한 말이니 취소할 수도 없는 법이고.. 아가씨 부탁을 제가 어떻게 거절하겠어요. 대신에, 건강에 조금이라도 문제가 있다 싶으면 바로 저택으로 돌아오기로 해요. 네?
헬레네 R. 히페리데:알겠어요. 축제도 연극도 구경할 생각을 하니 너무 좋아요, 아실! (손을 잡힌 채 꺄르르 웃다가 팔을 뻗어 당신을 와락 끌어안는다. 정말 드물게도 아이처럼 신난 모습이다.) 저, 열심히 외출 준비를 하고 있을게요. 아침 식사 후에 정원 입구에서 만나요!
아실링 펜들레엄:어휴. 벌써부터 너무 좋아하시면 안 돼요. 가기 전에 힘 다 빼시면 이따 가서 못 놀아요. 외출 준비 후에 식사 든든하게 드셔야 해요. (너무 좋아하는 모습에 말리지도 못하고 실 웃다가 안고 있는 거 놓아준다.) 이따가 뵐게요, 아가씨.
헬레네 R. 히페리데:네, 든든하게 식사할게요. 그럼 조금 이따 뵈어요, 아실!
아침 식사를 마치고, 약속했던 장미 정원의 입구로 향하면,
헬레네는 평소 집에서 보던 편한 옷차림의 모습이 아닙니다.
오랜만에 하는 바깥 외출이라 여간 들뜬 게 아닌지, 프릴이 촘촘히 달린 연보라색 드레스에 보랏빛 메리제인 구두, 리본 장식으로 화려하게 치장했네요.
헬레네 R. 히페리데:아실, 저 어때요? 이전에 사둔 파티용 드레스를 입어봤는데... (팔랑이는 드레스 자락을 손으로 살짝 들고 인사하는 시늉을 해본다.)
아실링 펜들레엄:아가씨..! 너무 아름다우셔서 놀랐어요..! 요정인 줄 알았잖아요! 그 예전에 아가씨께서 읽어주신 동화책에서 나오는.. 안되겠어요. 오늘 나가서 옷도 잔뜩 사기로 해요. 아.. 아가씨 건강이 조금 걱정되니까 그건 나중으로 미루고.. 아무튼 같이 가실까요? (마차에 먼저 오르라며 손을 뻗는다.)
헬레네 R. 히페리데:칭찬해주시니 다른 사용인분들께 부탁해서 열심히 꾸민 보람이 있네요. (장갑 낀 양손으로 제 뺨을 감싸며 부끄러워했다가 당신의 손을 잡고 조심스레 마차에 오른다.) 그럴까요? 저, 아실과 같은 디자인의 드레스를 맞추고 싶어요. 아니면 비슷한 색상의 드레스도 좋구요. 그리고 악세사리도 구두도... (하고 싶은 것들이 손에 다 꼽을 수 없을 정도로 넘친다)
아실링 펜들레엄:사용인들이 열심히 일을 했나 보네요. (수고했다는 의미로 이따가 간식이라도 사다 줘야겠다며 속으로 중얼거리고는 너를 따라 마차 위로 오른다.) 네..? 같은 드레스랑 구두? (그런 건 너무 과분한 것이지 않냐는 말을 하려다 입을 다문다. 그저 빙그레 웃으며 즐겁게 얘기하는 네 모습을 지켜보기만 한다.)
둘이 마차 안에 자리를 잡고 마차의 문을 닫으면, 마차는 천천히 움직이기 시작합니다.
부드러운 승차감은 어제와 같습니다.
헬레네 R. 히페리데:네, 같은 드레스랑 구두요. 꼭 바깥에 나갈 때가 아니더라도, 장미 정원에 갈 때라도 함께 맞춰 입으면 외출하는 분위기가 날 것 같고 참 예쁘지 않으려나요? 요새 옷가게는 어떤 디자인이 유행일지 궁금하네요. (조잘거린다.)
서서히 창 너머로 저택이 멀어집니다.
그렇게 저택이 더 이상 보이지 않을 즈음에 바깥을 보면 여전히 맑습니다.
비가 온다거나, 하는 생각은 추호도 들지 않을 만큼요.
파랑새마냥 종알대던 헬레네는 잠시간 바깥의 풍경을 가만 바라봅니다.
덜컹― 마차의 바퀴에 무엇인가 걸려 짧게 나는 단말마와 함께…
<관찰> 판정
아실링 펜들레엄:
관찰력
기준치:
85/42/17
굴림:
19
판정결과:
어려운 성공
투명한 창가에 헬레네의 옆얼굴이 비칩니다.
그 형상 속 푸른색 눈이 어쩐지 가라앉아 있는 듯합니다.
……왜?
아실링 펜들레엄:아가씨...? 혹시 몸 상태가 안 좋아지셨나요? 멀미라던가.
헬레네 R. 히페리데:아뇨. 저, 지금 아주 기분이 좋은걸요? (언제 그런 표정을 했느냐는 듯, 아까와 다름없이 밝게 웃으며 답한다.) 번화가에 언제쯤 도착할지, 너무 기다려져요.
아실링 펜들레엄:그런가요? 그럼 다행이고요. (착각인 건가 싶지 마음이 통 편해지지 않는다.) 조금만 더 기다려보세요. 기대하신 만큼 즐거운 하루가 될 테니까요.
헬레네 R. 히페리데:여전히 몸상태는 최상이니, 걱정하지 않으셔도 돼요. (당신의 걱정을 아는 건지 모르는 건지, 손을 살짝 맞잡으며 미소할 뿐이다)
【 2nd Day, PM 11 : 48 】
덜컹―
얼마나 지났을까요?
슬슬 번화가에 도착할 즈음이 아닐까, 싶으면 과연 마차가 서서히 멈춰 섭니다.
내려도 괜찮겠어요.
아실링 펜들레엄:(마차에 먼저 내려 손을 내민다.) 자, 조심히 내리세요.
헬레네 R. 히페리데:드디어 도착했나 보군요...! (상기된 낯으로 몸을 일으킨다. 한 손으론 드레스 자락을 잡고, 한 손은 당신의 손을 맞잡은 채 사뿐히 마차에서 내린다. 발을 다 딛기도 전부터 시선이 이곳저곳을 훑느라 바쁘다.)
어제와 같은 분수대가 보이는 곳입니다.
조금만 둘러봐도 번화가의 공기는 어제보다 들떠보이고, 평소보다 사람이 많아 혼잡한 느낌이 물씬합니다.
어제 본 옷가게, 카페, 베이커리, 꽃집에...
일찍이 장사를 시작한 좌판들은 벌써 기념품이며 간식거리들을 내놓고 있습니다.
기껏 나온 거리에서 헬레네를 놓치면 곤란하겠죠? 조심하도록 해요.
아실링 펜들레엄:와.. 이거 놓치면 큰일이겠네요. (네게 손 내민다.) 손잡고 다니는 게 좋을 것 같은데.. (헬레네 빤히 본다.)
헬레네 R. 히페리데:우와아... 사람이 예상보다도 더 많네요. 가게들도 많고... 축제 분위기란 거겠죠? 아실, 저기에서는 솜사탕을 팔고 있는 것 같아요! 저 좌판에선 인형들을 팔고 있는 걸까요? (당신의 시선도 모르고 번화가의 모습에 푹 빠졌다) 전부 다 가보고 싶어요!
아실링 펜들레엄:(내게 손 내밀고 있는 어정쩡한 자세 유지하다가 힘 빠지는 소리 내며 웃고는 그대로 손에 깍지 꼭 껴서 잡는다.) 그렇게 좋으세요? 그런 거면~.. 어쩔 수 없네요. 다 가보죠. 돈이야 충분할 테니까요. 그렇죠?
헬레네 R. 히페리데:네에, 그렇죠. (손이 잡히자 그제야 자신이 정신을 빼놓고 구경에 빠졌음을 깨닫고는 머쓱하게 웃는다. 손을 더더욱 꼭 맞잡고) 그럼... 뭐부터 하는 게 좋으려나요. 역시, 옷부터 한 번 볼까요?
아실링 펜들레엄:(옷 관련한 이야기 정말이었던가 하는 얼굴로 헬리를 보다가 헬리 잡고 있던 손에 힘 살짝 푼다.) 아가씨 옷 보러 가는 거죠~ 와, 와아. 재밌겠다아.. ... 그렇죠? (제 옷이 아니라.)
헬레네 R. 히페리데:아뇨. (두 손 꼭 잡고 눈 맞춤!) 저와 아실 두 사람의 옷을요!
아실링 펜들레엄:저와.. 아가씨의... (이걸 침울해하면 네가 슬퍼할까 봐 최대한 기분 좋은 표정 한다.) 와아..~
헬레네 R. 히페리데:그럼 어서 들어가 봐요. 아, 저기 진열된 드레스들이 아실에게 잘 어울릴 것 같네요! (손을 꼭 잡고 가게로 들어간다.)
점점 따뜻해지는 봄을 대비한 산뜻한 디자인의 드레스와 원피스들이 가득한 가게입니다.
주인은 편안히 둘러보라며 요새 인기가 많다는 코너로 안내를 해 주네요.
색색의 드레스와 원피스들이 각자 화려하게 제 위용을 뽐내어, 어디에 눈을 둬야 할지 곤란할 정도입니다.
헬레네 R. 히페리데:요즘 유행하는 옷은 이런 느낌이군요. (치맛자락을 반투명하게 덮은 천과 명화의 붓칠 같은 무늬들이 그려진 드레스들을 구경하며) 어때요, 아실? 마음에 드는 게 있으신가요?
아실링 펜들레엄:네, 넷? (이런 곳은 어색한지 헬리 옆에 붙어있다가 화들짝 놀라 순간적으로 말을 더듬는다.) 어.... 글쎄요.. 아직 덜 구경해서요. 좀만 더 구경해 볼게요. (다시 헬리 옆에 챡 달라붙는다.)
헬레네 R. 히페리데:그럼... (헬레네 또한 쇼핑이 익숙하지는 않지만 적응력이 좋은지라 아무렇지도 않게 가게를 휘젓고 다니며 구경한다. 한참 돌아본 끝에 산뜻한 분홍빛 반팔 드레스를 가리켜며) 이 옷은 어떠신가요? 봄꽃을 꼭 닮은 색이어서 무척 사랑스럽네요. 아실과도 잘 어울릴 것 같아요.
아실링 펜들레엄:(헬리 따라 돌아다니면서 이 옷 저 옷 구경하며 헬리에게 어울릴 것 같은 옷을 살펴본다. 한창 집중을 하며 미간에 주름이 생길락 말락 하던 차 자신을 부르는 네 목소리에 뒤를 돌아서고는) 와, 엄청 귀여운 드레스.. 제가 입을 거요? 물론 엄청 귀엽지만.. (가격이 걱정되는 얼굴)
헬레네 R. 히페리데:그렇죠, 귀여우니까 더더욱 아실과 어울릴 것 같아요. (싱글벙글 웃으며 드레스를 당신에게 내민다) 일단 한 번 갈아입어 보세요! 오늘은 축제인데, 계속 검은색 메이드복만 입을 순 없잖아요.
아실링 펜들레엄:아, 아가씨의... (그런 친절이 너무 힘들다는 말을 차마 하지 못하고 터덜터덜 걸어가 갈아입고 나온다. 매번 메이드복만 입다가 산뜻한 색의 드레스를 입은 것이 어색하다며 그대로 우뚝 선다.) 저 정말로 이거 입어요??
헬레네 R. 히페리데:네 그럼요! 정말이죠! (아무것도 모르고 그저 기대감 가득한 ^o^ 표정 지음) 이런 디자인이 어색하시다면 갈아입는 걸 도와드릴까요?
아실링 펜들레엄:(방긋 웃는 헬레네 표정 보고 다 내려놓았다. 힘이 다 빠졌는지 터덜거리는 발걸음으로 헬리 곁으로 다가가서는 팔 장 낀다.) 아, 아니에요. 저는 너무 감사해요. 충분히 감사해요. 그러니까 우리 빨리 다른 거 보러 가요!!
헬레네 R. 히페리데:제 예상대로 아주 잘 어울리네요, 아실! 눈이 부실 정도예요. (환하게 웃으며 물개박수를 친다.) 진작에 같이 옷을 고를 걸 그랬어요.
앗, 잠시만요. 제 옷도 골라주셔야죠, 아실. (여전히 아무것도 모름) 저도 비슷한 분홍색 계열이 좋을 것 같아요. 음... 꽃무늬가 들어가면 더 좋을 것 같구요.
아실링 펜들레엄:아, 그건 그렇네요. (헬리 옷을 고른다고 생각하니 힘들다고 느꼈던 게 괜찮다고 느끼며 숍 이곳저곳으로 마구 돌아다닌다. 무늬와 색 하나하나 체크하며 옷을 살펴보다가 드레스 하나를 고른다.) 이 드레스는 어떠세요? 베이지 핑크색 베이스에 붉은 카네이션으로 꽃무늬가 들어가 있어요. 중간중간 빨간색으로 작은 리본도 있는 게 귀여워서 아가씨랑 잘 어울리는 것 같은데. (헤헤)
헬레네 R. 히페리데:어머. 무척 마음에 들어요. (당신이 골라온 드레스를 보곤 눈이 반짝거린다.) 아실은 안목도 참 뛰어나시군요. 그럼, 저는 이 드레스를 사도록 할게요. 오늘은 이미 열심히 꾸미고 나와서 갈아입진 못하겠지만요. 저, 이 드레스와 지금 이분이 입고 있는 옷까지 같이 구매할게요. (가게 주인에게 고른 옷을 가져가 쿨하게 계산한다.)
(포장된 옷을 받고) 다음에는 어디로 가 볼까요? 음, 축제니까 아실도 악세사리로 꾸미시는 건 어때요? 귀걸이나 머리 장식으로요.
아실링 펜들레엄:(액세서리도 산다는 말에 안색 창백해진다.) 귀걸이나 머리장식이요.. (그래도 아까 드레스보다는 덜 비싸겠거나 싶어 고개 끄덕인다.)
헬레네 R. 히페리데:그럼, 다음엔 악세사리 가게로 가면 되겠네요. (손을 잡고 신나게 옷가게를 나선다.)
(To GM)rolling 1d100<25
(
61
)
=
0 Successes
헬레네 R. 히페리데:
(To GM)rolling 1d4
(
4
)
=
4
그때, 문을 나서던 헬레네가 갑자기 입가에 손을 가져다대며 허리를 숙입니다.
헬레네 R. 히페리데:우욱... (당겨오는 배를 붙잡고 두어 번 헛구역질을 한다.)
아실링 펜들레엄:아가씨? (네 어깨를 감싸 안고 네 안색을 살핀다. 아침에 상태가 좋았어도 역시 오지 말았어야 하는 것을.) 마부를 불러주시겠어요? (주위에 있는 사람 아무한테나 말을 건다.)
헬레네 R. 히페리데:아뇨... 아뇨, 괜찮아요, 아실. (겨우 손을 뻗어 당신을 막는다.) 그냥 잠깐 속이 울렁거렸을 뿐이에요. 물을 좀 마시면 나아질 것 같아요. 나온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이렇게 돌아가기엔 너무 아쉽잖아요.
아실링 펜들레엄:... 아가씨.. 다른 무엇보다 아가씨 몸이 제일 중요한 거 알고 계시죠? (너는 괜찮다고 했으나 걱정이 되는 건 어쩔 수 없다.) 그럼 악세사리 보는 건 뒤로하고 잠깐 쉬기로 해요. 뭘 먹는다든지.
헬레네 R. 히페리데:그럼요, 잘 알고 있어요. 걱정을 끼쳤죠. 미안해요. (근육이 당겨지며 따라오는 통증에 저도 모르게 흐른 눈물을 얼른 닦아낸다. 굽혔던 허리를 펴고는) 어제 자기 전에 무얼 할지 계획하면서 디저트 가게를 떠올렸었어요. 그곳에 가도록 할까요?
아실링 펜들레엄:(걱정이 가득 담긴 얼굴로 바라보다가 한 손을 네 허리에 감고 그대로 가게 쪽으로 향한다. 목소리는 최대한 긍정적으로, 네가 최대한 오늘 하루를 즐길 수 있도록.) 저번에 티파티에서 마셨던 차, 이번에도 마실 수 있으면 좋겠어요. 종류는 아가씨께서 골라주세요.
헬레네 R. 히페리데:... 그럴까요? (당신이 저를 배려해주는 마음이 고마워 희미하게 미소한 채 디저트 가게 안으로 들어간다.) 이번에는 같은 차, 다른 간식을 먹어봐요. (가게 안에 자리를 잡고, 주인에게 사과 잼이 들어간 홍차와 조각케이크, 마카롱을 주문한다.)
오래지 않아 주인이 주문한 음식들을 날라옵니다.
정성이 가득 들어간 치즈케이크와 티라미수, 알록달록 예쁜 색을 입힌 마카롱들은 보기만 해도 만족스럽습니다.
아실링 펜들레엄:(보기만 해도 달콤해 보이는 디저트들을 보고 벌써부터 기분이 좋아져 히죽히죽 웃다가 문뜩 예전 생각이 들어 입을 연다.) 아가씨. 제가 뭘 잘 몰라서요. 질문 좀 할게요. 이런 것도 티파티죠?
헬레네 R. 히페리데:그럼요. 이것도 티파티죠. (기분 좋게 미소하며 티스푼으로 제 홍차를 느릿하게 젓는다.) 어서 드셔보세요. 이 간식들도요. 저는 평소에도 자주 먹으니까요.
아실링 펜들레엄:아 역시 그렇구나. (헬리가 권한 디저트들 볼 빵빵해질 때까지 맛있게 냠냠 먹는다.) 근데 왜 자주 안 여세요? 아가씨네 집은 부자니까 자주 열만 할 텐데. 제 기억으로는 며칠 전까지 합해봐야 두 번? 정도였고. (냠냠)
헬레네 R. 히페리데:(햄스터마냥 볼이 빵빵해진 아실이 너무너무 귀여워서 홍차를 홀짝거리면서 한 번 보고 한 모금 마시고 또 슬쩍 본다) 음... 티파티는 조금 얌전한 느낌이 들지만, 그래도 어쨌거나 '파티'잖아요? 많은 이야기를 나누는 것도 제게는 다소 힘이 부치더라구요. 하지만 아실이 이렇게 잘 드시는 걸 봐서라도 앞으로도 종종 둘만의 티타임을 가져볼까 싶어요.
아실링 펜들레엄:('둘만의 티타임'이라는 말에 또 단순하게 기분 좋아졌다. 일 땡땡이도 치고, 헬리랑도 시간 보내고. 얼마나 좋은가. 기분 좋아서 몸 양옆으로 살랑살랑 흔들거린다.) 좋아요. 그때는 찻잔도 여러 개 준비해 두기로 해요. 한두 개 깨져도 문제없어도 될 정도로..! (념!)
헬레네 R. 히페리데:좋아요. 다음에는 깨뜨릴 일 없게 애초부터 정신을 바짝 잡고 있을 거지만요. (끄덕거리며 마카롱 하나를 냠 베어문다.) 역시 나오기를 잘했죠? 아실도 기분이 좋아 보이세요. (흐뭇하게 바라본다.)
아실링 펜들레엄:(나오기를 잘했다라.. 드레스 고를 때만 했어도 저택으로 돌아가고 싶어서 속으로 울고 있었다.) 아가씨랑 있어서 즐거워하는 거예요. 아가씨랑 있으면 뭐든지 다 새롭고 즐겁게 느껴지거든요. 결과적으로는 오기 잘했네요. 감사해요, 아가씨.
헬레네 R. 히페리데:선뜻 함께해주셔서 제가 더 감사하죠. (찻잔을 양손으로 매만진다. 팔뚝에 느껴지는 화려한 프릴의 촉감, 가게에 가득한 달콤한 향기, 와글와글한 사람들의 소리. 모든 요소들이 제 가슴을 두근거리게 했지만 그 모든 것들은 당신과 함께기에 더더욱 빛을 발한다.) 다음에는 악세사리를 사러 가 볼까요? 아실의 드레스와 세트처럼 보이도록 꽃 장식을 사면 좋을 것 같아요.
아실링 펜들레엄:(지난번 혼자 찾아왔던 이곳은 오늘처럼 아름답지 않았다. 겉모습이 그날과 달라졌냐 하면 그것은 아니다. 달라졌다고 하면 오늘에는 네가 있다는 것. 그 점이 오늘에 이곳을 눈부시게 바꿔나서 자꾸 자신을 미소 짓게 만들었다.) 꽃 장식에 리본도 달린 걸로 해요. 아가씨랑 리본 엄청 잘 어울린다고 생각하거든요.
헬레네 R. 히페리데:잘 어울리나요? 다행이에요. (쑥스럽게 웃으며 머리칼에 달린 리본을 손끝으로 살짝 만지작거린다.) 아실이 달아도 정말 예쁠 거예요. 그럼, 티타임은 이만하고 다음 가게로 가 봐요.
두 사람은 짧은 티파티를 끝낸 후 다음 가게로 향합니다.
함께이기에 발걸음은 더욱 가볍고, 산들거리는 바람이 기분 좋게 힘을 더해줘요.
가게 주인:안녕하세요. (두 사람이 들어오자 꾸벅 고개숙여 인사한다.) 무얼 찾으시나요?
헬레네 R. 히페리데:이쪽 숙녀분이 착용할 머리 장식을 보고 싶어서요. (자연스럽게 아실을 옆으로 이끈다.) 지금 입은 이 드레스와 어울리는 색으로 추천해주시면 감사드리겠어요.
가게 주인:아휴, 아주 아름다운 숙녀분들이시네. (친절하게 웃으며 매대로 두 사람을 안내한다.) 은발 숙녀분은 마침 옷도 분홍색으로 입으셨고 하니 분홍색에서 보랏빛 계열 악세사리가 어울릴 것 같네요. 여기, 이 꽃장식은 어떠신가요? 중간중간에 잎새 모양으로 리본 핀이 달려 있어서 머리에 길게 고정할 수도 있답니다.
헬레네 R. 히페리데:어떠신가요, 아실? 아까 아실이 말씀하신 게 다 들어있는 것 같은데. (꼼꼼하게 살펴봄)
헬레네 R. 히페리데:마음에 든다면 다행이에요. 그러면 이제 또... 장식과 어울리는 귀걸이도 사죠! (부자다운 씀씀이) 마침 저도 귀걸이를 사야 했거든요. 제 것까지 골라주세요, 아실.
아실링 펜들레엄:귀걸이 종류가 많네요. 확실히 요즘 와서 크기도 다양해지고. (진열되어 있는 귀걸이를 처음부터 끝까지 살펴보다가 작은 리본과 꽃이 달려 있는 귀걸이 하나를 손끝으로 가리킨다.) 큰 사이즈 귀걸이는 귀에 너무 무거울 것 같아서요. 작은 게 편하지 않을까요? 디자인은 이걸로 어떠세요?
헬레네 R. 히페리데:그러게요. 갈수록 기술이 발전하나 봐요. 어쩜 이렇게 작고 섬세한 장식을 만들어낸 걸까요? (감탄하며 진열된 귀걸이들을 살펴보다가 당신이 가리킨 상품을 보곤 고개를 연신 끄덕인다.) 마음에 들어요. 역시 어릴 때부터 함께 지내와서 그런지, 아실이 가장 제 취향을 잘 알고 계시는군요. 그럼 이 귀걸이... (주인을 향해 말을 건다.) 같은 걸로 두 개 주시겠어요?
가게 주인:친구 사이신가 보네요. 참 보기 좋아요. (흐뭇하게 보다가 카운터 아래에서 같은 귀걸이를 두 점 꺼낸다.) 같은 디자인으로 두 개 맞지요? 바로 포장해드리겠습니다.
아실링 펜들레엄:(친구? 아가씨인데... 헬레네 힐끔 바라본다. 무슨 표정 할지 궁금)
헬레네 R. 히페리데:그렇죠? (완전 햅삐하게 웃고 있다) 저의 가장 친한 친우예요. 알아봐주시니 무척 감사해요.
아실링 펜들레엄:아.. 네..! 엄청 친한 친구죠..! (헬리 반응 보고 뒤늦게 반응하며 웃어 보인다.)
헬레네 R. 히페리데:으음... 포장하지 않으셔도 될 것 같아요. 상자만 주시겠어요? (그리곤 귀걸이를 조심스레 들어, 당신의 귓가에 직접 끼워준다.) 직접 달아보니 몇 배는 더 예쁘네요! 거울에 비춰보실래요?
아실링 펜들레엄:(몇 초간 거울에 비춰 보이는 제모습을 보다가 후다닥 뒤돌아선다.) 뭐, 뭔가? 어색하네요? 근데 싫지는 않아요.. (자신이 뭐라고 말하는지 모르는 사람인 것처럼 허둥지둥거리다가 네 어깨를 잡고 자리를 바꾼다.) 아가... 헬리도 귀걸이 껴보면 잘 어울릴 것 같은데.
거울에 비친 아실링의 모습은... 무척 아름답습니다!!
곱게 땋은 은발의 머리칼에 점점이 떨어지듯 꽂힌 보랏빛 장식과 은은히 빛나는 분홍빛 귀걸이가 화려한 드레스와 훌륭하게 어우러집니다.
누가 봐도 전혀 메이드라는 걸 알 수 없을 거예요.
잘 꾸며놓으니 흡사 귀족 아가씨와도 같은 용모입니다. 역시... 태생 아름다움은 감출 수 없는거죠
헬레네 R. 히페리데:(거울에 비친 당신의 모습을 같이 바라보며 자신이 더 벅차오르는 것을 느낀다.)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아름다우세요, 아실. 지나가는 분들이 아실을 보고 혹여나 반하지 않을까 걱정이 될 정도예요. (진심 가득한 칭찬을 잔뜩 쏟아내고는, 제 몫의 귀걸이도 착용해본다. 머리를 살짝 흔들자 귀걸이가 따라서 찰랑인다.) ... 어떤가요?
아실링 펜들레엄:맙소사 아가.. 헬리. 눈부시게 아름다우세요. (자신이 고른 귀걸이지만 어쩜 이렇게 잘 어울릴 수가 있다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꺼내다며 한 손으로 내 머리카락 끝을 쓸어내린다.) 동양에서는 어느 미인의 미모 때문에 달이 부끄러워 구름 뒤로 숨었다는 말이 있다고 해요. 헬리의 미모 때문에 갑자기 밤이 될지도 몰라요.
헬레네 R. 히페리데:어머나, 아실도 참... (당신의 칭찬에 부끄러워 뺨이 불그스레해지면서도 좋은지 입가를 가린 채 웃는다.) 만약 정말로 밤이 온다면 아실의 미모 때문일 거예요. 이렇게 새로운 모습도 보게 되고... 역시 같이 나오길 잘했어요.
가게 주인:(그리고 그 주접들을 다 듣고있는 주인) ^_^...
아실링 펜들레엄:아이참 헬리도.. .... 아. (가게 주인이랑 눈 마주치고는 헬리 팔짱 낀다.) 우리 다른 곳으로 구경 가는 것은 어떨까요..
헬레네 R. 히페리데:아, 그럴까요? (이번에도 아무것도 알아차리지 못하고 순진하게 팔짱 낀다) 이번엔 무얼 해볼까요. 조금 있으면 연극이 시작하려나요. (총총~)
가게 주인이 아실링에게 눈인사를 합니다. 고맙다는 의미인 듯 싶어요...
헬레네 R. 히페리데:
(To GM)rolling 1d100<25
(
73
)
=
0 Successes
헬레네 R. 히페리데:
(To GM)rolling 1d4
(
2
)
=
2
아실링 펜들레엄:(주인한테 꾸벅 인사하고 연극하는 곳으로 헬리랑 사이좋게 간다~)
사이좋게 가게를 나오던 차, 헬레네가 갑작스럽게 균형을 잃고 비틀거립니다.
다행히 당신과 팔짱을 끼고 있었던 탓에 주저앉지는 않았지만, 들고 있던 귀걸이 상자를 놓치고 말았네요.
헬레네 R. 히페리데:(한 손으로 이마를 짚는다.) 아... 죄송해요, 아실. (어지럼증에 정신도 없으면서 일단 사과부터 한다.)
아실링 펜들레엄:(다급하게 네 몸부터 부축하고는 주위에 앉을 곳을 찾는다.) 아가씨, 제 말 들리세요..? (시간차를 두고 제 반응을 살핀 후에) 뭐가 죄송하다는 거예요?
헬레네 R. 히페리데:네, 들려요. 괜찮아요, 잠깐 갑자기 어지럼증이 느껴져서... (당신의 팔을 꼭 잡은 채 두어 걸음 더 비틀거리다가 차차 회복한다.) 오랜만에 아실과 즐겁게 나왔는데, 자꾸 걱정하시게 만들어서요. ... 오늘은 정말 상태가 좋다고 생각해서, 오래도록 바깥에 머무르고 싶었거든요.
아실링 펜들레엄:하루아침에 몸이 괜찮아질 일은 없죠. 단 하루 몸이 완벽하게 안 아플 일도 없고. 그래요.. 사실 이럴 줄 알고 아가씨를 모시고 온 제 잘못도 있어요. 그러니 아가씨 잘못 없어요. 제 탓인데... (두 눈을 질끈 감고 감고 있다가 손바닥으로 얼굴을 비빈다. 그러고는 아무렇지도 않은 얼굴을 네게 보인다.) 어차피 이렇게 된 거 최고로 좋은 날을 보내고 가요. 그래도 괜찮지 않을까요? 딱 오늘만?
헬레네 R. 히페리데:아니에요. 아실의 잘못은 없어요. 전부 제가 무리하게 떼를 썼기 때문인걸요. (시무룩하게 처져 당신의 눈치를 살피다가, 이어지는 말에 잠시 우물거리다가 결국 미소한다. 이러니저러니 해도 당신만큼 제 마음을 잘 알아주는 사람은 없었다.) ... ... 고마워요, 아실. 당신의 말대로, 오늘은 제게 정말 최고의 날이 될 거예요. 그러니까 조금만 더 즐겨봐요, 우리.
아실링 펜들레엄:그래요 잔뜩 즐기고.. 결과가 어떻든 간에요.. (아프기만 해봐요. 몸에 좋으면 모양새가 어떻든 몸에 좋다는 것을 다 고아 먹일 테니. 같은 생각을 하고 있다.) 생각한 것보다 더 최고의 날이 되어야 해요. 언제 이렇게 나올지 모르니까요. 자, 몸 상태는 괜찮아진 거죠? (헬리 볼 조물조물)
헬레네 R. 히페리데:네에. (조물받으며 헤실거린다) 이미 지금까지만으로도 너무 행복하지만, 더 즐겨봐요.
【 2nd Day, PM 4 : 39 】
단원:자자, 줄 서세요 줄! 피레타 연극단의 놓칠 수 없는 오늘의 공연~
입장권 판매 진행중입니다~ 한 사람씩 차례로!
꽤 느지막한 오후로 내내 부드럽게 내리쬐던 햇볕이 조금은 덜해질 시간입니다.
잔뜩 번화가를 돌아다니다가 잠시 쉬고 있던 중,
붉은 벽돌 외벽의 건물 앞에서 로즈 스트리트가 떠나가라 소리치는 사람이 있네요.
아마 피레타 연극단의 단원인 걸까요?
<행운> 판정
아실링 펜들레엄:
운
기준치:
80/40/16
굴림:
85
판정결과:
실패
이크, 타이밍이 썩 좋진 않았어요.
이미 피레타 연극단이라는 소리에 사람들이 꽤 길게 늘어서 있습니다.
연극을 볼 예정이라면 빨리 줄을 서는 게 좋겠네요!
헬레네 R. 히페리데:아실, 어제 말씀하셨던 연극단이라는 게 도착했나 봐요!
사람이 많은 것 같으니, 저희도 어서 보러 가요.
당신의 작은 주인님은 눈을 반짝이며 들뜬 듯 당신을 바라봅니다.
언제 아팠냐는 것처럼 호기심이 가득하네요.
아실링 펜들레엄:(헬리 손 잡고 호다다닥 줄 선다!!!)
두 사람이 줄로 다가가 서면, 단원의 주도 하에 신속하게 줄어드는 줄에도 불구하고 꽤 오랜 시간을 기다립니다.
볕이 따가울 정도는 아니라 강한 햇빛에 쓰러지진 않겠지만, 헬레네는 조금 힘드려나요?
아실링 펜들레엄:햇빛이... 줄이 많이 기네요. 괜찮으세요? (헬리 걱정되는지 빤히 바라본다.)
헬레네 R. 히페리데:(손으로 차양을 만들어 눈가를 가린다.) 조금 덥지만... 그래도 물을 마시니 버틸 만해요. (꼴깍)
……길고 긴 기다림 끝에 둘은 입장권을 구매합니다.
입장권 값의 걱정은 없어요. 그야, 헬레네의 재력은 상당하잖아요?
어쩌면 예상했듯이 그렇게 좋은 자리는 아닙니다만, 나름 무난한 자리를 얻습니다.
피레타 연극단의 인기가 대단한 걸 생각하면 이정도면 선방이에요.
헬레네 R. 히페리데:드디어 표를 얻었네요. 얼른 안으로 들어가 봐요. (두근두근)
아실링 펜들레엄:어서 들어가서 앉아요. (헬리 다리랑 건강 걱정)
헬레네 R. 히페리데:(날듯이 쇼쇽 들어가서 자리에 앉는다.)
짝짝짝짝짝―
입장권에 새겨진 자리에 앉고 얼마간이 지나면, 주변의 박수소리와 함께 반쯤은 환했던 조명이 꺼집니다.
시작하려나 봐요.
꼬끼오―!
누군가의 성대모사일지 꽤 사실스러운 닭 울음소리가 무대를 메우고 사그라들 때면, 기다렸다는 듯이 조명이 환해집니다.
무대는 평화로운 농가.
작은 농가에서 주황색의 머리칼을 하나로 올려 묶은 소녀가 나와서 기지개를 폅니다.
꽤나 성실해보이는 소녀의 이름은 레일리. 꽤 귀엽고, 호감이 가는 인상입니다.
그 인상대로 레일리는 마을사람들에게서 평판이 좋은 편입니다.
마을사람A:레일리, 이걸 옆 집 아저씨에게 가져다주지 않겠니?
마을사람B:아냐 레일리! 우리집 밭일 좀 도와줘.
마을사람C:다들 그러지 말어, 애가 곤란해하잖아. …우리집에서 딸기잼 만드는 걸 도와주는 건 어때?
그건 바로 레일리가 호감가는 인상만큼이나 어떤 일이든 척척척! 해내기 때문이었죠.
마을 사람들은 곡식이나 합당한 만큼의 돈을 주며 레일리를 데려가려고 안달입니다.
그렇게 난처한 가운데, 레일리가 마을 사람들의 제안 사이에서 갈등하다 무언가를선택하는 장면은 꽤 과장되어 있단 느낌이 들도록 연출됩니다.
그러던 어느 날, 레일리는 마을 촌장의 부탁을 받습니다.
마을 촌장:레일리, 네가 우리 마을에서 가장 일을 잘하니 이번에 우리 마을에 온다는 부잣집 도련님을 돌봐주는 건 어떻겠니?
삯은 넉넉하게 챙겨준다고 하더구나.
소위 말하는 있으신 분에 해당하는 자제분이 이 마을에 온다지 뭐예요?
그런데 이상하죠.
그 잘났다는 집에서 이 시골에 데려올 고용인 하나 없었는지,
마을 촌장에게 이곳의 사람 한 명이 삼 년은 먹고 살 수 있는 돈을 주며 괜찮은 사람을 소개시켜달라고 했답니다!
일단 그 삼 년치가 선금이고, 월급은 또 따로 주겠다네요!
이게 무슨 일이람? 그 행운의 주인공이 레일리가 된 거예요!
레일리는 여태 여러 일들 사이에서 선택을 고민했던 것과 달리, 이번에는 고민도 하지 않고 바로 승낙해버립니다.
그렇게 당장 일주일 뒤부터 시작된 도련님 모시기!
조명이 어두워졌다가, 다시 밝아지면 으리으리한 저택의 내부입니다.
도련님은 이 시골에서 오랫동안 사람이 살지 않았던 외진 곳의 큰 저택을 리모델링해 그곳에서 지냅니다.
무대를 등지고 있어 제법 신비로운 느낌이 드는 도련님은 노크소리에 무대쪽으로 몸을 돌립니다.
척봐도 유약해 보이는 인상, 예민해보이는 다크서클, 창백한 피부…
레일리가 친절히 몇 마디 붙여본 끝에 돌아오는 건 도련님이란 작자의 이름 뿐입니다.
에스칼 D. 라폰드네…라는데 그냥 에스칼이라고 부르라네요.
그러고는 또 말이 없습니다.
……저, 저 싹퉁바가지 없는 것을 봤나!
레일리가 여태 마을에서 좋은 평판을 갖고 일할 수 있었던 건,
일처리가 확실하기도 해서였지만 어느 정도는 사람과 잘 어울리는 활달하고 털털한 성격에 적당히 화도 낼 줄 알았던 게 그 이유일 거예요.
레일리는 과장되게 발소리를 내며 에스칼에게 다가가더니, 머리를 한 대 쥐어박습니다.
에스칼은 당황한 듯이 레일리를 보고,
레일리는 에스칼을 보고 당당하게 양 팔로 제 옆구리를 짚고.
그게 둘의 첫 만남이었습니다―
그런 나레이션이 깔리고 조명이 꺼집니다.
그 뒤의 이야기는 어쩌면 진부하고, 어쩌면 운명적으로.
두 사람은 친해집니다.
제가 돈 받은 몫 이상을 오기로 해내는 레일리와 그런 레일리를 부담스러워하는 에스칼은 좋든 싫든 긴 시간 붙어있을 수밖엔 없었으니까요.
저택은 마을 외곽에 있고, 그 큰 저택에 사는 건 에스칼과 레일리 뿐인 걸요?
그렇게 성실한 레일리는 기어코 거대한 저택 앞이 휑하다며 작은 장미정원을 가꿉니다.
에스칼과 어지간히 친해졌을 때였죠.
그 즈음부터 에스칼이 레일리를 유독 다정히 대하고,
누구는 두 손을 모아 입을 가리고 지켜볼 만한,
진부하고 뻔하고 전형적인 로맨스 연출이 몇 장면 이어집니다.
레일리:……에스칼!
하지만 처음 봤던 유약한 인상이 거짓이 아니라는 듯,
에스칼은 실제로 어떻게 손을 써볼 수 없는 병에 걸려있었고 병세는 나날이 악화되어갔습니다.
이렇게 레일리가 에스칼의 이름을 대놓고 부른 날은, 에스칼이 강도 높은 기침과 함께 쓰러진 날입니다.
다급히 불리는 이름과 함께 암전.
타이밍이 절묘합니다.
에스칼:레일리, 나는 아마 오늘을 넘기지 못할 거야.
네 일도 오늘 밤으로 끝이겠지. 그러니까, 챙길 걸 챙겨서 떠나.
이제 너는 자유야, 레일리.
어느덧 조명이 들어오고 바뀐 세트장은 밤하늘의 배경에 하얀 별이 섬세하게 총총 박혀 있어 꽤 정교합니다.
장미정원을 이루는 장미모형 또한 그 모양새가 세련된 느낌을 물씬 풍깁니다.
히페리데 저택의 장미정원만은 아니어도, 이런 모형으로 장미정원 같은 분위기를 자아내는 게 신기하네요.
레일리와 에스칼은 언젠가 그곳에 레일리가 설치해 둔 2인용 의자에 나란히 앉았습니다.
약간의 정적이 흐른 후 에스칼은 여태 털어놓지 않던 자신의 이야기를 털어 놓기 시작했고,
레일리는 그 이야기를 듣고는 그게 이제와서 무슨 상관이냐며 웃습니다.
약간의 훌쩍임은 레일리의 것이겠죠.
한 손으로는 붉게 물들어가는 눈가를 닦고 한 손으로는 에스칼의 손을 조심스레 잡아 깍지낍니다.
또 다시 정적.
이 얼마나 잊기 힘든 풍경인가요.
밤하늘의 별과 달은 하얗게 두 사람을 비추고,
장미는 만개해 두 사람 사이를 그 특유의 향으로 메웁니다.
레일리:그래요, 그날 밤. 그날 밤은 제 인생에서 평생 잊지 못할 순간이 될 것 같다는 예감이 들었습니다.
레일리의 방백으로 스포트라이트가 레일리에게 잠시 집중되고,
이어 에스칼이 입을 열면 스포트라이트는 에스칼에게 향합니다.
에스칼:마지막 부탁이 있어, 레일리.
내가 죽으면…… 네가 가꿨던 이 장미정원에 묻어줄래?
그 질문이 극장 내부를 잔잔히 울리고도 레일리는 쉽게 대답하지 못합니다.
마을 사람들의 부탁을 도맡을 때에도, 도련님을 처음 맡겠다고 했을 때에도,
과장된 모양새로 연출되었던 '선택'의 순간은 지금에서는 그 선택, 본연의 모습으로 연출됩니다.
잔잔하고도 조용하게.
레일리:……좋아요.
그 말뿐이었습니다.
그 뒤 에스칼과 레일리는 맞잡은 손을 견고히 하고 서로를 눈에 담으려는 듯 마주봅니다.
그러다가 문득 잠이 몰려와 조는 레일리를 에스칼은 누구보다도 다정하게, 제 어깨에 기대도록 합니다.
무심한 듯 다정하게 시선은 하늘 어딘가를 올려다보듯 앞을 보면서,
맞잡지 않은 손으로 레일리의 눈을 감겨주듯 부드럽게 눈가를 쓸어내립니다.
에스칼:잘 자. 좋은 꿈 꿔.
그리고 무대는 천천히 암전됩니다.
암전되고 조명이 다시 돌아오는 그 사이에 객석 곳곳에서 훌쩍이는 소리가 들립니다.
어쩌면 끝이 뻔한 이야기는 오히려 뻔해서 사람의 눈물을 자극하곤 하죠.
……다시 조명이 켜지고,
환해진 무대에는 익숙한 장미 모형에 익숙하지 않고 어설픈 십자가가 있습니다.
그 앞에서 가만히 서 있는 레일리.
누가 말하지 않아도 에스칼이 어떤 결말을 맞았는지는 명백합니다.
마을사람A:레일리― 짐 다 챙겼니?
레일리:네, 가요.
누군가가 레일리의 저택 생활 청산을 도우러 온 것일지 무대 밖에서 들리는 소리.
레일리는 대충 대답하고는 그 쪽으로 다가섭니다.
중간쯤 가다 뒤돌아보는 장미정원에는 장미만이 만개해 있습니다.
한 때 레일리가 사랑했고, 이제는 누구에게도 사랑했다고 말할 수 없는 사람은 장미와 마지막을 맞았습니다.
행복하겠죠.
레일리는 부탁을 들어줬고, 그는 추억의 잔재속에 소원대로 묻혔는걸요.
이 저택도, 이 장미정원도.
레일리가 발걸음하지 않는다면 이젠 누구도 찾아오지 않을 곳이 될 겁니다.
이 저택은, 이 이야기는 이걸로 묻힐까요?
글쎄요, 기억해줄 당신만 있다면 이 이야기는 영원할지도 모르겠습니다.
짝짝짝짝짝―
연극이 시작할 때와 비슷하지만, 더 큰 박수소리가 극장 내부를 메웁니다.
일부는 감동받은 듯 기립박수를 하는 모양새입니다.
연극에서 봤던 익숙한 레일리와 에스칼,
그 외 조연들이 무대에 나란히 서서 관객들에게 손을 흔듭니다.
과연, 피레타 연극단의 명성은 괜히 자자한 것이 아니었군요.
괜찮은 연출에, 괜찮은 배우, 괜찮은 소품으로 이루어진 잘 짜인 연극입니다.
꽤 긴 시간 박수가 멈추지 않아 자연스레 퇴장도 늦어집니다.
당신의 옆자리에 앉은 헬레네도 연극이 꽤 만족스러웠던 건지……
얼굴을 눈물로 다 적시며 울고 있네요.
헬레네 R. 히페리데:... (손수건으로 눈물을 쿡쿡 찍어내다가, 결말 부분에서는 그럴 생각도 하지 못한 채 소리만 간신히 삼키며 우느라 바빴다. 잠긴 목소리로 속삭이듯 말한다.) 무척... 잘 만들어진 연극이네요. 너무 슬퍼서 저도 모르게 몰입해버렸어요.
아실링 펜들레엄:(끝에 조금 울은 것인지 코를 훌쩍이다가 손수건을 꺼내 눈 간에 고여있는 눈물을 닦는다.) 많이 우셨네요. 너무 집중해서 서로 어떻게 있는지 확인도 못하고.. 좋은 연극이었어요.
헬레네 R. 히페리데:특히나 주연 분들의 관계가 저희랑 비슷해서 더더욱 공감이 갔지 뭔가요. ... 이렇게 슬픈 연극일 줄은 몰랐어요. 정말 인상깊고 아름답네요. 앞으로도 피레타 연극단의 작품을 계속 볼 수 있다면 좋을 텐데...
... 사람이 많네요. 저희도 조심해서 바깥으로 나갈까요?
아실링 펜들레엄:또 볼 수 있을 거예요. 다음에는 더 좋은 작품으로 볼 수 있다면 좋겠네요. 이왕이면 아무도 죽지 않은 해피엔딩인 걸로요.
(헬리 손을 잡고 조심스럽게 밖으로 나간다.)
【 2nd Day, PM 6 : 34 】
헬레네와 아실링이 바깥으로 나오면……
어쩐지, 조금 전보다도 더 들뜬 분위기 같지 않나요?
평소 같으면 다들 저녁 준비에 한창일 때라 꽤나 한산해질 시간의 거리가 한낮과 같이 인산인해를 이룹니다.
펑―!
그렇지만 역시 이상한 일은 아니에요.
얼마간 떨어진 곳에서 들려오는 경쾌한 폭죽소리가 평안기원제의 시작을 알리고 있으니까요.
소리가 난 곳으로 고개를 돌리면 붉은 폭죽이 아름답게 하늘을 수놓습니다.
로즈 스트리트, 라는 이름답게 장미모양이에요.
펑, 펑― 폭죽 소리가 몇 번 더 들리더니, 같은 색의 붉은 장미가 막 떠오르기 시작하는 별들과 함께 하늘을 장식합니다.
저택의 붉은 장미와 비교하면 향도 없고, 모양도 금세 흐트러지는 것이지만,
한 순간 눈에 담기에는 부족함없는 광경이군요.
…폭죽은 짧습니다. 어디까지나 평안기원제의 시작을 알리기 위함이니까요.
원칙대로라면 로즈 스트리트의 시작에서 출발해야 하지만, 평안기원제는 순수한 즐거움과 다가올 여름의 안녕이 목적이니까요.
주변을 가득 메운 사람들이 들뜬 발걸음으로 앞으로, 앞으로 걸어갑니다.
어린 아이는 부모로 보이는 어른의 손을 맞잡고,
손녀의 부축을 받아 발걸음을 옮기는 할머니가,
연인으로 보이는 둘은 깍지낀 손을 놓을 기색이 보이지 않습니다.
각자가 아끼는 사람에게 한 마디씩 건네는 소리는 거리 전체를 메워서, 소음마저도 혼잡합니다.
헬레네 R. 히페리데:... 잊지 못할 모습이에요. 그렇죠?
그 광경이 꽤나 눈을 떼기 힘들 정도로 따스했나요.
잠시 정신을 어딘가에 두었던 것 같습니다.
다정하게 울리는 목소리를 따라 시선을 돌리면 당신의 작은 주인님이 있겠죠.
작은 주인님은 설레임과 우수가 가득한 눈으로 당신을 바라봅니다.
아실링 펜들레엄:네. 오기 잘했다고 생각해요. 이런 소음이나 혼잡함도.. 아가씨랑 함께라 행복하네요. 분명 잊지 못할 행복할 하루가 될 거예요.
헬레네 R. 히페리데:맞아요. 오늘은 모든 순간순간이 도저히 잊을 수 없는 특별한 것들뿐이네요. (손에 손을 잡고 한마음으로 나아가는 이들을 보며, 맞잡은 당신의 손을 다시금 고쳐쥔다.) 그럼 저희도 이제 출발해볼까요? 저희의 관계도 내내 평안할 거라고 믿으면서요.
아실링 펜들레엄:정말이지.. 천천히 걸어가도록 해요. 지금이야 몸 상태가 좋다고 느낄지 몰라도, 내일은 몸이 아파 끙끙 앓아누울지 모르는 일이잖아요. (즐겁게 즐기던 중에 이런 말을 꺼내는 것이 미안하지만 네 건강이 걱정이 되는 것은 어쩔 수 없는 것이라 머쓱하게 웃는다.) 천천히 즐기다가 가요. 즐기는 건 충분하니까요.
<지능> 판정
아실링 펜들레엄:
지능
기준치:
80/40/16
굴림:
43
판정결과:
보통 성공
……그러고 보니, 오늘 꽤 오랜 시간 돌아다녔습니다.
정오가 채 되기 전에 번화가에 도착해서 하루종일 구경하다가,
또 연극을 보고, 또 이렇게 사람들 사이에 섞여서 걷고 있잖아요?
헬레네는 오늘 몸상태가 좋다고는 했지만…
걱정이 되는 건 어쩔 수가 없네요.
정말 괜찮은 걸까요?
헬레네 R. 히페리데:조금은 더 돌아다녀도 괜찮아요. 오늘이 아니면 또 언제 이렇게 나와 축제를 즐길 수 있겠어요? (잡은 손을 붕붕 흔든다.) 아실이 어떤 걱정을 하시는지는 이해해요. 안 좋다 싶으면 얌전히 마부에게 돌아갈 테니까요.
아실링, <심리학> 판정?
아실링 펜들레엄:
심리학
기준치:
70/35/14
굴림:
47
판정결과:
보통 성공
내내 설레임과 밝은 경쾌함을 띈 채 축제를 즐기던 헬레네였지만,
옅은 미소와 함께 건네는 그 말이 어째서인지... ... 절박하게 느껴집니다.
아실링 펜들레엄:(의미 모를 절박함을 느끼고는 마음이 약해졌다. 언제나 헬레네에게 약하다지만, 건강과 관련한 것에서는 단호하게 행동하는 편이였기에 마음이 편치 않았다.) 알겠어요.. 아가씨께서 그렇게 말씀하신다면...
헬레네 R. 히페리데:고마워요, 아실. 역시 제 마음을 가장 잘 알아주시는 분이세요. (당신을 와락 끌어안고선 헤헤 웃는다. 언제 절박함이 묻어나왔냐는 듯 마냥 천진스럽기만 하다.) 아, 저기 솜사탕을 파는 분이 있네요. 하나씩 먹으면서 걸어갈까요? 단 걸 먹으면 힘이 나니까요~
아실링 펜들레엄:아가씨의 마음은 제가 제일 잘 알아야죠. 메이드여서 그런 것 같기도 하지만.. 꼭 일 때문에 그런 건 아니에요. 일과 상관없이 아가씨가 행복해지셨으면 좋겠어요. (오늘따라 어리광이 많은 것 같다고 말하면서 제 품에 안아 등을 토닥이는 손길은 능숙하기만 하다.) 좋아요. 대신에 다 먹고 이따가 저녁도 드셔야 해요.
헬레네 R. 히페리데:당연하죠. 저녁 식사는 아무래도 저택에 돌아가서 해야겠지요? 저녁까지 여기에서 먹자고 하면 아실이 저를 끌고 가실 것 같아요. (장난조로 키득거리며 당신의 어깨에 부비작거린다.) 저, 솜사탕 두 개 주시겠어요?
노점상인이 파란색과 분홍색의 솜사탕을 각각 건네줍니다.
구름 같은 솜사탕은 한 입만 물어도 사르르 녹네요.
헬레네 R. 히페리데:저도 아실이 행복하셨으면 해요. 언제나... 아픈 일은 없이요. (솜사탕을 베어물면서도 내내 시선은 당신에게 향한 채다.)
아실링 펜들레엄:제가 아플 일이 뭐 있나요. (솜사탕 크게 뜯어 입에 쏙 넣고는 뭔가 생각났다며 너 바라본다.) 저는 한번 아파봤으면 좋겠어요. 아파서 한 며칠 일 안 하고 푹 쉬어봤으면 좋겠는... 아니다. 그러면 그동안 아가씨를 못 보겠네요..? 취소할게요. 그리고 그냥 평생 안 아플게요. (냠!)
헬레네 R. 히페리데:아안돼요. (얼른 도리도리 고개 젓는다) 아실은 아픔은 모르셨으면 좋겠어요. 절대 좋은 게 아니거든요. ... 그간 쉬고 싶으셨어요? 역시 일이 많이 힘드셨죠. 진작에 아버지께 말씀드려서 휴일을 늘릴 걸 그랬네요. (미리 알아차리지 못한 자신의 불찰이라며 시무룩해한다.)
아실링 펜들레엄:(시무룩한 표정에 뭔가 잘못된 것을 느끼고 다급하게 제 솜사탕을 뜯어 네 입에 넣어준다.) 아, 아니에요~ 아프고 싶지도 않고, 휴일도 적당해요~ 그리고 여기서 저한테 휴일이 더 생겨봤자 뭐 하겠어요. 분명 제가 허전할 거예요. 쉬고 있다가 말고 아가씨 옆으로 달려갈 거예요, 분명! 그러니 아까 제가 한 말은 잊으세요~ (입에 제 솜사탕 더 넣어준다.)
헬레네 R. 히페리데:그래도 아실도 자유시간이 있어야 할 텐데... 너무 제가 붙잡고 있는 건 아닐지 갑자기 걱정이 되어서요. 물론 저는 아실과 함께하는 시간이 매분 매초 너무나도 좋지만요. (냠냠 솜사탕 먹여지고는 입안에 퍼지는 단맛에 조금 표정이 풀어진다.) 참 달콤하네요...! 아무튼, 아실에게는 항상 좋은 일만이 있었으면 좋겠어요. ... 저얼대 아프지 마시고요.
아실링 펜들레엄:그렇게 안 봤는데, 우리 아가씨 걱정이 참 많으시네요. 걱정 마세요. 이 메이드, 엄청 잘 살고 있어요. 자유 시간도 잘 즐기고 있어요. 아가씨랑 있는 시간도 너무너무 즐겁고요. (우리 아가씨는 솜사탕도 잘 드시지! 어미 새도 아니도 아주 흐뭇하게 솜사탕 먹여준다.) 항상 좋은 일만 있었고, 앞으로도 그럴 거예요.
헬레네 R. 히페리데:원래 이렇게까지 많지는 않았는데, 아실과 관련된 일이라면 사소한 것이라도 신경쓰게 되어요. 아실을 많이 아껴서 그런가 봐요. (연심이란 그런 거겠지. 뒤돌아 가다가도 몇 번이나 되돌아보게 되고, 결국엔 뒷모습을 종종 쫓아가 손을 붙잡고 웃는 모습을 보고픈 분홍빛 마음.) 정말 그러면 좋겠어요. 정말로요... (주는 대로 열심히 받아먹는다)
아실링 펜들레엄:저를 너무 아끼시네요, 아가씨. 역시 메이드 중에는 제가 최고죠? (평소와 같은 부드러운 미소를 짓지만 자신과 관련된 일이라면 신경 쓰게 된다는 네 얘기가 들었을 때문에 빠르게 뛰던 가슴을 진정시키려 속은 난리가 났다.) 어휴.. 솜사탕은 아가씨한테만 많이 드렸는데. (적게 먹은 자신이 달콤해 죽을 것 같다며 속으로만 앓아 삼킨다.)
헬레네 R. 히페리데:네에, 모든 분들을 다 좋아하지만 제겐 아실이 가장 최고예요. (배시시 웃으며 망설임도 없이 긍정한다.) 참, 저만 너무 받아먹었네요. 아실도 어서 드세요. 제 솜사탕은 저희의 눈처럼 파란색이에요. 어떤 재료로 색을 낸 건지 참 곱지 않나요? (그러면서 당신이 해 준 것처럼 솜사탕을 뜯어 입안에 쏙 넣어준다. 이리 간접적으로라도 저의 마음이 당신에게 가 닿았을까? 그리 가정하니 저 하늘의 노을이 옮은 것처럼 괜시리 볼이 화끈해져 왔다.)
그렇게 얼마나 사람들을 따라 로즈 스트리트를 걸었을까요.
헬레네 R. 히페리데:오늘 연극도 참 재밌었지요?
물줄기가 낙하하는 소리가 헬레네가 건넨 질문 사이를 메웁니다.
계속해서 걸어 도달한 이곳은 로즈 스트리트 분수대의 바로 앞이네요.
당신의 작은 주인님은 익숙한 이곳에서 걸음을 멈춥니다.
…그러고는 한 발짝 앞으로 다가가서 가만히 손을 내밉니다.
저녁바람이 당신과 작은 주인님의 사이를 갈라놓습니다.
사람의 소음과 분수대의 소리 사이를 헬레네가 비집는 것만 같습니다.
그제서야 경쾌한 톤의 악기가 만들어내는 음색이 귓가에 맺힙니다.
헬레네 R. 히페리데:마지막까지도 즐거움만이 가득했으면 해서요. (나풀거리는 옷자락을 가볍게 붙잡고, 당신이 골라준 귀걸이를 부드럽게 흩날리며, 또각이는 구두 신은 발을 앞으로 내밀어 허리를 작게 숙인다.) 저와 춤춰주시겠어요, 아실?
아, 그제서야 주변의 풍경이 제대로 눈에 들어옵니다.
경쾌한 톤의 악기가 만들어내는 음색은 한 무리의 떠돌이 악단의 것으로,
그들은 로즈 스트리트의 분수대를 중심으로 빙글빙글 돌며 사람들을 끌어모으고 있습니다.
여태 아실링과 헬레네의 곁에서 함께 걷던 사람들도 그 음색에 정신이 팔려,
분수대를 중심으로 둥글게, 둥글게 함께 온 사람과 춤을 추고 있네요.
스탭이 엉성해도, 한 바퀴 돌다가 넘어질 뻔 한 걸 잡아도, 누군가는 제 연인의 허리를 잡고 빙글 돌아도…
가지각색의 사람들이 그저 즐거운 듯이.
이 틈에 끼어든다면 아실링나 헬레네가 춤에 익숙하지 않다 해도 상관이야 없겠죠.
즐겁기만 하면 될 테니까요.
헬레네 R. 히페리데:저는 건강 때문에 춤을 정식으로 배우지 못해서, 곁눈질로 본 것뿐이라 아무래도 많이 엉성하겠지만... 그래도 저 군중들처럼 음악에 맞춰 춤추고 싶어요. 아실과 함께니까요.
아실링 펜들레엄:저도 춤은 제대로 배워본 적 없어요. 엉성한 것은 똑같겠네요. 어쩌면 엉망일지도 몰라요. 그렇지만 이곳에서, 우리 둘만의 춤이라는 것이 중요하잖아요. 그러니.. 같이 춤춰요. 저도 헬리 아가씨와 같이 춤추고 싶어요.
헬레네 R. 히페리데:(절로 어깨가 들썩여지는 흥겨운 가락, 섞이어드는 유쾌한 가사, 신난 이들이 흥얼거리는 콧노래... 언제까지고 허공에 반쯤 떠오른 듯한 이 상기된 분위기 속에서 녹아들 수 있다면 좋을 것만 같았다. 축제가 이어지는 동안에는 영영 시간이 흐르지 않을 것만 같았고, 아무리 먹고 마셔도 음식들이 줄어들지 않을 것만 같았다. 잠시나마 저의 몸상태를 잊어버릴 정도였으니까.) 어차피 저희를 아는 이들이 없으니, 저희 둘에게만큼은 멋진 춤일 거예요. (손을 꼭 맞잡은 채로 음악에 맞추어 발을 내딛는다. 제 스스로도 말했었듯 자세가 영 엉거주춤하고 박자도 자꾸만 엇나간다. 하지만 무슨 상관일까. 맞잡은 곳에서 느껴지는 온기와 시야에 가득 담기는 푸른 눈이 무엇보다도 유려하고 화려했으니.)
아실링 펜들레엄:(눈을 매료시키는 화려한 분위기에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있다가 맞잡은 손에 눈을 동그랗게 뜬다. 뒤늦게 헬레네와 주변 사람들을 따라가는 엉성한 발. 누가 봐도 춤과는 거리가 먼 사람처럼 보일 것이다. 평범한 사람 같으면 익숙하지 않은 상황에 놀라 불편한 것을 표정에 보였겠지만, 뭐가 그렇게 재미있고 즐거운지 계속 웃음 보인다.) 아가씨, 이거.. 정말 즐거워요. 다른 사람들이고 뭐고..! 그냥 아가씨랑 함께라서 너무 좋아요. (빙글빙글 도는 몸을 따라 흝날리는 네 머리카락이 불빛을 따라 빛나는 것에 시선을 집중했다. 저택에 있는 동안 흐트러질 일이 없었던 그 머리카락이, 그리고 그 머리카락 아래 환하게 웃고 있는 네가 눈이 부실 정도로 아름다워서 아무런 말도 하지 못하고 한발 두발 발을 내딛는다.)
헬레네 R. 히페리데:저도요, 아실. 아실과 함께여서 지금 이 순간이 너무나도 특별하고 새로워요. (환하게 웃는다. 분홍빛 드레스 자락과 연보랏빛 드레스 자락이 부드럽게 사락거리며 스치고, 어설픈 턴을 할 때마다 불어오는 바람결이 온몸을 보듬었다. 그야말로 봄의 절정에서 춤을 춘다.) 아마도 죽는 날까지 잊지 못하겠죠... 이 순간이 또다시 반복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아실링 펜들레엄:아무것도 모르는 상태로 추는 춤도 좋네요. 다음에 둘이서 몰래 춰볼까요? 오늘 같은 분위기는 아니겠지만요. 자유롭게 추는 거라 뭔가 홀가분하고 좋잖아요. (시선을 떼지 않고 온전히 네게만 집중한다. 네게는 닿을 수 없는 마음이며, 네 건강 상태 같은 걱정들이 생각나지 않아 더욱 너만을 바라볼 수 있었다.) 분명히 좋을 테죠. 근데 이왕이면 아가씨의 건강이 조금 더 좋은 상태면 좋을 것 같아요. 제 욕심이 좀 많아서요.
헬레네 R. 히페리데:그럴까요? 다음에는 잔디밭에서, 신발도 벗고 음악도 없이... 그렇더라도 지금처럼 즐거울 것 같아요. (어쩌면 지금보다도 더.) 아실의 말대로 바람처럼 자유로운 기분이 들지도요. 그날이 기다려져요. 제가 조금만 건강이 나아진다면 한 번 시간을 내어볼까요? 봄을 맞아 몸상태가 좋아진 것 같으니, 시간이 갈수록 차차 더 나아질지도요. (눈을 살짝 감으면, 머리칼과 바람이 분간할 수 없이 보드랍게 뺨을 스치고 지나갔다.) 아실은 항상 제 건강을 신경써주시네요. 매번 몸 둘 바를 모를 정도로 감사해요. 당신의 마음에 보답해서 진작에 나았더라면 조금 더 걱정을 덜 끼쳤을 텐데...
아실링 펜들레엄:잔디밭도 좋고, 방 안도 좋아요. 새로 산 카펫이 아주 부드럽더라고요. 춤추기에는 딱일 거예요. 어쩌면 몸을 조금씩 움직여 주는 게 건강에 도움이 될지도 모르는 일이고요. 시간 괜찮으신 대로 바로 함께할게요. 언제든지 불러만 주세요. (춤을 추며 분수대 가까이에 도착해 스텝을 느리게 밟는다. 물방울이 튀며 빛에 반사되는 색이 꼭 네 눈 색으로 보여 신기하다 생각한다.) 그게 어떻게 마음대로 되는 일이겠어요. 정말로 보답을 해주고 싶으시다면.. 가끔 쓰다듬어주세요. 그거면 충분할 것 같아요.
헬레네 R. 히페리데:카펫도 좋지요. 오늘 아침에 그랬던 것처럼 커튼을 치고 창문을 연 뒤에 춤을 추면, 바람이 살랑살랑 틈을 타고 들어와서 무척 산뜻할 거예요. (분수대의 물줄기 소리가 시원하다. 팔뚝에 이따금 작은 물방울이 튀어 춤추느라 달아오른 몸을 식혀주었다. 투명히 빛나는 물방울처럼 웃는다) 보답으로는 너무 소박하지 않나요? 오늘 입은 옷처럼 화려한 드레스나 반짝거리는 장신구를 선물해드린다거나, 일주일간의 휴식이라거나... 꼭 물질적인 게 우선은 아니라지만, 조금 더 좋은 걸 생각해볼게요.
한 바퀴, 두 바퀴, 세 바퀴…
천천히 돌면 처음에는 삐걱거렸던 몸도 점차 익숙해집니다.
분수대의 물줄기가 찰랑이는 소리가 귓가를 간지럽히고...
헬레네 R. 히페리데:있죠, 아실.
헬레네가 눈을 맞춰 옵니다.
여전히 주변을 메우는 음색에 맞춰 움직이는 발과 발 사이로,
그 움직임에 흔들리는 긴 굽슬머리 사이로……
헬레네는 눈꼬리를 미세히 휘고, 입꼬리를 올려 웃습니다.
즐겁다거나 아쉽다거나, 슬프다거나 기쁘다거나.
무엇 하나로 정의할 수 없는 표정.
그 사이 해가 집니다.
헬레네 R. 히페리데:연극에 관해서 쭉 여쭤보고 싶었던 게 있어요.
순간 헬레네가 발을 멈춥니다.
분수대를 둘러싸며 춤을 추던 사람들이 멈칫하는 듯 싶다가도,
이내 자연스레 헬레네와 아실링을 피해 다음으로, 또 다음으로 옮겨갑니다.
문득 작은 주인님과 시선을 맞춰 가만 보고 있노라면 사람들의 웃음소리도, 경쾌한 음악소리도 흐려진다는 생각은 착각일까요.
아실링 펜들레엄:연극이요? 인상 깊게 보셨나 봐요..?
헬레네 R. 히페리데:맞아요, 아직까지도 그 모습이 기억에 남을 만큼 인상이 깊더라구요.
가볍게 불어오는 저녁바람은 발걸음을 옮길 때와는 다른 느낌으로 헬레네를 스칩니다.
그럼에도 헬레네는, 무엇 하나로 정의할 수 없는 표정이 여전히 같았습니다.
헬레네 R. 히페리데:... 아실. 만약에...
만약에 에스칼을 살릴 수 있는 방법이 있었다면,
그리고 당신이 레일리였다면, 어떻게 했을 것 같으세요?
묘한 기시감.
문득 지는 해와 함께 헬레네를 물들이는 오렌지빛의 햇살이란.
보는 사람의 눈이 다 아릴 정도로 눈부십니다.
…하지만 기시감이 느껴지는 이유는 그 풍경이 눈이 부셔서 따위는 아닙니다.
헬레네 R. 히페리데:그 방법이 레일리를 죽이는 일이어도, ... 포기하지 않을 자신이 있으신가요?
오렌지빛 햇살을 그대로 머금은 채로 그제서야 머리칼을 귀 뒤쪽으로 넘기며 미소하는 헬레네.
곁의 소음이 사라지는 듯한 기분.
따라서 기이하리만치 정적이고 고요한 풍경.
…그 틈에서, 헬레네는 당신과 춤을 추려 맞잡고 있던 손을 놓습니다.
고요하고 정적인 풍경은 그렇게 단순한 손짓으로도 쉽게 깨져버립니다.
질문에 미처 답할 새도 없이, 헬레네는 이내 미련은 없다는 듯한 표정을 짓고 말합니다.
헬레네 R. 히페리데:쓸데없는 소리를 했네요. 이만 돌아갈까요? (마냥 축제에 젖은 사람처럼, 춤을 출 때와 같은 표정이다.)
아쉽지만... 길의 끝까지 걷진 못할 것 같아요. 오늘 많이 움직여서 그런지 조금씩 피곤해져 오네요.
분명 그런 표정에 그런 말일 뿐일 텐데… 왜일까요?
어제 느꼈던 헬레네가 영원히 눈을 감은 듯한 착각.
오늘은 더 놓을 미련은 없다고 말하는 듯한 헬레네.
그 모든 것이 눈을 감고 손을 가지런히 가슴에 모았던 헬레네와 겹치는 것은……
아실링, SANC (1/1D3)
아실링 펜들레엄:
SAN Roll
기준치:
65/32/13
굴림:
61
판정결과:
보통 성공
이성 1 감소.
그래요, 벌써 밤이 깊었습니다.
오늘이 아니면 안될 것 같은 사람처럼 번화가를 둘러보고,
연극을 보고, 평안기원제의 행렬을 따라 걷고,
…경쾌한 음악소리와 섞이는 사람들 사이에서 춤을 췄죠.
슬슬 돌아갈 때도 되었어요.
아실링 펜들레엄:마부를 부를게요. 마차에서 푹 쉬세요. (사람들 사이로 마차를 찾으며 계속해서 네게 말을 건다.) 저택에 도착 후 바로 목욕은 어떠세요? 장미도 띄워서요. 따뜻한 물에 몸을 푸면 좋을 거예요. 식사는 그 후에 해도 좋을 텐데.
헬레네 R. 히페리데:그렇게 할까요? 장미꽃잎을 띄운 목욕... 좋네요. 쌓인 피로가 금방 풀릴 것 같아요. (기대감이 가득 어린 목소리로 응답하며 당신을 따라 걷는다. 하지만 춤을 췄을 때 감돌던 마법 같은 기운은 언제 있었냐는 듯 자취를 감추고 스물스물 숨어들어간다. 이제 다시 현실로 돌아올 시간이었다.)
아실링과 헬레네는 분수대 근처 사람이 없는 쪽에 세워져 있던 마차에 올라탑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덜컹, 하는 소리와 함께 마차가 규칙적인 소음을 내며 저택을 향합니다.
창 밖으로는 어슴푸레 빛나는 달과 곳곳에 박힌 별만이 간혹 풍경을 메웁니다.
밤이라 부쩍 서늘해진 바람소리도 창을 가볍게 두드립니다.
……헬레네는 마차에 올라 타서는 꽤나 피곤했던지 꾸벅꾸벅 조는가 싶더니, 잠에 빠져든 지가 꽤 되었습니다.
당신에게 가볍게 기댄지도 꽤 되었고요.
피곤하다면 따라 함께 자는 것도 좋겠죠.
아실링 펜들레엄:(잠에든 헬레네를 계속 챙기다가 자기도 모르게 잠에 든다.)
평화롭네요. 눈을 감으니 잠의 수마는 쉽게도 몰려옵니다.
이대로 돌아가면 목욕물을 받고…… 내일은 또 당신과………
.......
마부:도착했습니다.
어느 틈에 잠이 들었었나요.
마차는 착실하게 달려 어느덧 저택 앞에 도착했습니다.
꽤 늦은 밤임에도 불구하고 저택의 불이 켜져있는 건 이 저택의 작은 주인님인 헬레네가 아직 귀가하지 못해서겠죠.
이제 저택으로 돌아가 씻고 잘 채비를 하면 저택에는 완전한 밤이……
헬레네?
뭔가 이상합니다.
마차가 도착함을 눈치채고 부스럭대는 소음이 필연적으로 따라오면,
자신에게 기대있던 헬레네도 필연적으로 소음을 내야 했습니다. 몸을 뒤척이든, 눈을 깜빡이든.
그러나 마차 안은 기이하리만치 고요합니다.
아실링 펜들레엄:(조심스럽게 네 손등 위에 제 손을 올려 흔든다.) 아가씨.. 일어나셔야죠.. 졸리시더라도 잠은 침대에서 주무셔야 하는데. 그래야 하는데.....? ...
당신은 그의 손등을 조심스레 흔들어 보지만, 헬레네는 미동도 없습니다.
힘없이 늘어지는 손. 뜨지 않는 눈.
아니, 그전에.
원래부터 이렇게 손이 차가웠던가요?
원래부터 이렇게 숨이 불편하고, 이마가 뜨거웠었나요?
"오늘따라 유난히 몸상태가 좋은 것 같아요."
"아침 식사를 하고 나서 함께 번화가로 나가요."
"아실, 어제 말씀하셨던 연극단이라는 게 도착했나 봐요!"
"모든 분들을 다 좋아하지만 제겐 아실이 가장 최고예요."
이 순간이 또다시 반복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헬레네가 했던 말이 머릿속에서 어지러이 엉킵니다.
이상하게 오늘은 몸상태가 좋다고 했잖아요.
번화가에서도, 춤을 출 때도 아무런 문제가 없었잖아요.
이상한 질문을 하고, 미련이 없다는 듯한 표정을 짓고……
마부:저기, 이제 슬슬 내려주셔……아니? 작은 주인님? 안색이 영 아닌데...?
아실링 펜들레엄:... 지금 뭐 하시는 거예요? 빨리 주치의 부르세요! 당장요! 다른 하인들도요! (한참 동안 아무런 행동 없이 굳어 있다가 날이 선 목소리로 마부를 탓한다. 날이 그에게 가야 할 것이 아닌 것을 그 누구보다 알고 있으면서.)
마부:그, 그래 알겠어, 금방 주치의 선생 불러올 테니까 딱 어디가지 말고, 어?
마부가 저택 가까이로 다급히 뛰어가는 소리가 멀어집니다.
마부가 상태를 확인하러 왔다가 마차 문을 미처 닫지 않았던 것일지,
저택을 나설 때와는 달리 밤바람이 미미한 장미향을 마차 안으로 실어 나릅니다.
히페리데 가주:……헬레네가?
마부:예에, 그렇다니깐요? 아니, 마차에서 통 안 나오길래…….
몰려드는 사람의 소음, 밤바람을 가르는 다급한 발걸음, 아득히 일렁이는 불빛……
고용인A:작은 주인님 좀 누가……
고용인B:세상에, 이마가 불덩이가 따로 없네…
마부:아, 제가 업을게요, 어서 로첼리 님한테……
사람들이 바쁘게 헬레네를 업고 저택 안으로 사라집니다.
히페리데 가주:분명 자네가 오늘 헬레네를 따라 바깥에 나갔다 온 것이겠지? (날 선 목소리가 냉담하게 울린다.)
상황이 정리되면... 내 집무실에서 보세.
고용인 여럿 사이에서 큰 주인님의 다급하고 차가운 목소리가 귀 끝을 찌릅니다.
찌르는 목소리가 무색하듯 정신이 어지러이 섞입니다.
그 와중에 선명한 기억 하나,
당신의 작은 주인님은 쓰러졌습니다.
그 뒤 기억이 규칙성없이 섞입니다.
어느 순간 아실링의 기억이 끊깁니다.
【 3nd Day, AM 12 : 14 】
히페리데 가주:자네는 제정신인가?
퍼뜩.
이리저리 섞이는 기억이 제자리를 찾는 한 마디가 들립니다.
조금 전… 아니, 시간은 꽤 지났나요?
밤늦게 번화가에서 돌아온 당신의 작은 주인님은 언제인지도 모르게 쓰러졌습니다.
머리는 불덩이, 손은 얼음더미, 불규칙적인 호흡…….
마부가 그걸 우연히 발견하고 사람을 불렀고,
그 때도 꽤 늦은 밤이었는데 새벽이 다 된 지금까지도 저택에는 불이 다 꺼지지 못할 정도로 정신이 없었습니다.
그리고 이제사 대충 정리가 된 참이었죠, 아마……
그런 이유로, 당신은 지금에서야 마차에서의 큰 주인님의 말씀대로 3층의 [큰 주인님의 집무실]에 왔습니다.
큰 주인님의 말문이… 꽤 거친 말로 열리는군요.
히페리데 가주:그렇게 오랜 시간 그 애를 바로 옆에서 봐온 사람은 자네가 제일일 걸세. 나와 아내는 바빴고, 그 애도 자네를 무척이나 따랐으니까.
그걸 알면서도 이상한 낌새를 눈치채지 못해?
쾅!
고급스러운 재질의 목재탁상이 큰 소리와 함께 울립니다.
탁상 위에 즐비하던 서류가 몇 장 함께 주변에 날립니다.
잘근잘근, 꽤 초조한 듯 보이는 큰 주인님은 그걸로도 부족한지 신경질적으로 앞머리를 쓸어 넘기고.
오른쪽으로 갔다, 왼쪽으로 갔다… 산만하게 움직입니다.
아실링 펜들레엄:(연속해서 들려오는 큰 소리에 주눅 들어 고개를 푹 숙인다.) 다 제 불찰입니다. 벌이라면 주시는 대로 다 받겠습니다.
<듣기> 판정
아실링 펜들레엄:
듣기
기준치:
80/40/16
굴림:
61
판정결과:
보통 성공
히페리데 가주:……그러게 진작 내 말을 듣고 티파티를 했으면 좀 좋았나!
……그런 와중에 문득 들려온 혼잣말은, 큰 주인님의 움직임말고는 쥐 죽은 듯 조용한 집무실에 서 있던 아실링이 듣기엔 충분했습니다.
티파티?
하지만 말씨가 향한 곳은 꼭 아실링이 아니라……
아무리 아실링이 오랫동안 봐온 고용인이라고 해도 그렇지,
이런 식으로 혼잣말을 흘리는 건 썩 좋은 일은 아닐텐데요.
어지간히 조급하셨나 봅니다.
히페리데 가주:……후.
그렇게 한참을 정신사납게 굴던 큰 주인님은, 어느 순간에야 진정이 된 것일지 탁상을 양 팔로 짚고 간신히 서있는 모양새입니다.
지쳐보이는 게, 그럴 만도 했죠.
기억이 뚝 끊길 정도로 정신없었는걸요.
이런 밤에 저택의 전속 의사를 깨우고, 헬레네를 옮기고, 온 고용인이 난리가 나서는…….
히페리데 가주:... ... 내가 경솔했네. 자네도 충분히 당황할 수 있는 걸 알고 있는데도 화살을 돌리는 발언을 하다니.
……그래, 그 번화가도 헬레네가 원하는 것이었겠지.
자네가 헬레네를 얼마나 위해왔는지는 저택의 모두가 다 알 걸세. 미안하군. 자네의 탓이 아니니, 주눅들 필요 없네.
시간이 어느새 이렇게 됐나... 피곤할 텐데, 들어가도 좋아.
그렇게 큰 주인님의 말씀이 있고서야 나가도 된다는 허락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아실링, 돌아가도록 해요.
번화가도 하루종일 돌아다녔고,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나 사실은 꽤 지쳤을 거예요.
아실링 펜들레엄:... (자신의 어떠한 말도 아픈 딸을 둔 아버지의 마음을 위로할 수 없을 것이라며 짧은 목 인사 후 문을 닫고 나간다.)
고급스러운 무늬가 세공된 목재 문을 조심스레 닫으면 문이 닫히는 소리가,
2층의 방으로 내려가면 발걸음 소리가 저택에 울립니다.
저벅저벅―
한 바탕 소란스러웠던 저택도 이젠 가라앉은 지 오래입니다.
주워들은 이야기로는, 헬레네가 익숙하지 않은 바깥 공기에 너무 오래 노출되어 있어서 몸이 무리를 한 것 같다고 했던가요.
뜨거운 이마도, 차가운 손도, 불규칙적인 숨도,
…시간이야 걸리겠지만 안정을 취하면 괜찮아질 거라고.
그래요, 분명 그렇겠죠.
어느새 도착한 당신의 방 문고리를 잡고 들어갈 때가 되면, 헬레네의 방문이 눈에 들어옵니다.
굳게 닫힌 문. 저 안에 헬레네가 있을 겁니다.
너무 걱정하지 말고, 지금은 내버려두도록 해요.
일어나면 당신의 작은 주인님은 걱정 끼쳐서 미안하다고,
그래도 번화가는 재미있었다고 상냥하고 다정하게 말해주겠죠.
<지능> 판정
아실링 펜들레엄:
지능
기준치:
80/40/16
굴림:
59
판정결과:
보통 성공
……서재에서도, 번화가에서도, 온 몸을 타고 기어오르던 기묘한 감각은 잊혀지지 않지만.
별 거 아닐 거예요. 그래야만 합니다.
달칵, 문고리를 잡아 열며 미세한 소음이 나고, 뒤이어 문이 닫히는 소리가 미미했습니다.
아실링이 잠자리에 들면 저택에는 완전한 밤이 내립니다.
...
...
【 Last Day, AM 02 : 12 】
콕! 콕콕콕콕!
……그렇게, 잠드는 줄 알았는데.
뜻밖에도 아실링이 눈을 뜨면,
늦게 내린 저택의 밤이 해가 떠오르며 사라지기 한참 전입니다.
콕콕콕콕!
그리고… 정신이 점차 맑아질수록 함께 선명해져가는 딱딱하고 작은 부리로 손등을 쪼는 감각.
이건 헬레네의 새가 아니던가요?
게다가, 새의 발목에는 쪽지가 매어져 있습니다.
미처 잠그지 못한 창문 틈새로 들어왔나 봐요.
아니, 그게 문제가 아니라… 왜 이런 시간에?
아실링 펜들레엄:(급하게 부를 일이 있었던 것일까. 졸림을 뒤로하고 종이를 펼쳐본다.)
쪽지를 펼치면,
【 아실, 오늘 새벽에 티파티를 해보려고 해요.
장미정원에서 기다리고 있을게요. - 헬레네 】
【 누구도 깨우지 말고 오직 당신만. 】
쪽지를 새에게서 가져오면 새는 어쩌면 헬레네가 있을 장미정원으로 날아갑니다.
티파티?
…다만 새의 움직임을 의식하지 못할 정도로, 아실링은 당황스러울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도 그럴 게, 헬레네는 조금 전에 쓰러져 방 안에서 안정을 취하고 있던 게 아니었나요?
헬레네의 의중을 알 수 없습니다.
이 새벽에 티파티라니요, 다들 단잠에 절어있을 시간에…
【 누구도 깨우지 말고 오직 당신만. 】
게다가 그 문구… 무슨 일이 있는 걸까요?
하지만 그런 의아함 속에서도 부르라면 부르는 대로 가야하는 게 전속 고용인의 운명입니다.
아실링 펜들레엄:(몸은 괜찮으신 걸까. 단순하게 그 생각부터 들었다. 그 이후로는 바로 나갈 채비를 한다. 아가씨를 기다리게 하는 메이드는 있을 수 없으니.)
……저택 뒷편의 장미정원으로 가보도록 해요.
지금은 밤이 깊었고, 헬레네의 변덕은 알 수 없지만.
자박자박―
이 저택은 참 넓어서, 장미정원으로 가는 데만도 시간이 꽤 걸립니다.
그 시간이 조급함을 더합니다.
장미정원은 저택의 뒷편에 있다 보니 그 쪽에 있는 작은 뒷문으로 나오는 편이 조금 더 빨랐었죠….
의문과 조급함이 섞여 걸음이 빨라지고,
평소보다 서둘러 뒷문의 문고리를 잡아 밀면,
문이 열리는 미약한 소음과 함께 눈 앞에 정원사의 손을 타 잘 정돈된 뒷뜰의 모습이 보입니다.
새벽바람이 차갑습니다.
이맘때 초목 특유의 푸르름도 새벽의 어둠에는 묻히고 맙니다.
머지 않아 보이는 장미정원의 입구 앞에는 언제부턴가 아치형의 지지대를 세워서 장미가 그를 따라 자라도록 했습니다.
이 새벽에도 누가 봐도 장미정원의 입구임을 알 수 있는 걸 보면, 헛수고는 아니었던 모양이군요.
장미정원은 유리 온실로 되어 있어 내부가 훤히 비칩니다.
어둠이 내려앉고 장미조차 그 아래에서 숨을 죽이는 사이에서,
이질적이고 따스한 불빛이 장미정원 안 쪽에서 미약하게 일렁입니다.
금방이라도 꺼질 듯이.
헬레네 R. 히페리데:... 아실.
장미정원에 들어서면, 익숙한 여린 목소리 끝이 갈라지며 당신을 부릅니다.
헬레네 R. 히페리데:아실... ... 아실링.
꽤 애타는 듯한 부름이 이어집니다.
몸이 약한 사람은 약한 만큼 예민하다고 했던가요.
추울 텐데도 당신을 환영하듯 활짝 열려있던 유리온실의 입구로 들어와 만개한 장미와 장미 사이를 헤집어, 당신의 작은 주인님을 찾으려 한 지도 얼마 되지 않았는데.
그새 기척을 눈치채고 한 마디 건네는 모습은 그 말을 증명합니다.
소리가 들려오는 곳으로 다가가면 장미정원의 중앙입니다.
조급하게 걸음했던 차에 차오르는 숨을 겨우 가다듬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도무지 오늘만큼은 헬레네의 의중을 감히 짐작할 수 없습니다.
크림색의 테이블보가 티파티 테이블에 구김없이 잘 펴져있는 모양새와,
고품질의 찻주전자와…
언젠가 쓰기를 만류했던 찻잔 하나,
그리고 일렁이던 불빛의 정체였던 랜턴 하나가 테이블에 놓여있습니다.
헬레네 R. 히페리데:와 주셨군요. 늦은 시간에 죄송해요.
... 앉으시겠어요? 맞은편에 의자를 준비해뒀어요.
……애타게 당신을 부르던 것치고는 당신이 시야에 들어오자마자 차분한 모양새가 묘합니다.
아실링 펜들레엄:늦은 시간이라 조금 놀라기는 했어요. 그렇지만 아가씨께서 죄송하다고 말씀하실 정도는 아닌걸요. 저는 메이드잖아요. 이 정도는 당연히 해야죠. (맞은편 의자에 앉으며 네 안색을 살핀다.)
당신의 아가씨는 태연히 그저께에 들어봤던 것 같은 말을 합니다.
헬레네 R. 히페리데:이해해주셔서 감사해요. 고용인은 전부 잠에 들 시간이라 무언가를 더 내올 수는 없겠더라구요.
다소 소박한 티파티가 되겠지만... ... 괜찮으실까요?
그렇게 말하는 시선은 온전히 당신에게로 향해있습니다.
헬레네는 눈꼬리를 미세히 휘고, 입꼬리를 연약하게 올립니다.
즐겁다거나 아쉽다거나, 슬프다거나 기쁘다거나.
무엇 하나로 정의할 수 없는 표정.
…익숙합니다. 이마저도.
문득 일렁이는 랜턴 새로, 창백한 안색과 떨리는 손끝이 비치는 것 같습니다.
아실링 펜들레엄:어제 아가씨랑 화려한 티파티를 했었죠. 오늘까지 그렇게 했다가는 분명 뱃속이 난리가 날 거예요. 평소에 안 먹던 것들을 마구 먹었다고, 이상하다고요. 소박한 티파티도 전 좋아요. (괜찮다며 웃어 보인다.)
헬레네 R. 히페리데:그러려나요...? 하긴, 길거리의 음식들은 평소에는 주치의 선생님께서 몸에 절대 안 좋다면서 말리셨었으니까요. 그래도, 정말 다시없을 경험이었어요. 후회는 없네요. ... 그런 식으로 끝나버릴 줄은 몰랐지만요. (빈 찻잔을 양손으로 감싸 만지작거린다.) .아버지가 혹시 아실을 질책하셨나요...?
아실링 펜들레엄:어머.. 저를 걱정하셨군요. 아가씨 몸을 더 걱정하셨어야죠..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나는 일에 대해 어떻게 말해야 되나 고민을 하다 솔직히 털어놓기로 한다.) 아픈 딸을 둔 아버지라면 당연히 하실 말을 하셨을 뿐이에요. 솔직히 제 잘못이 맞기도 했고요. ... 그것 때문에 저를 부르신 걸로 보이지는 않는데...
헬레네 R. 히페리데:어떻게 아실을 걱정하지 않을 수 있겠어요. 어릴 적부터 쭉... 저에겐 가장 가깝고도 사랑스러운 분이셨는데요. (답을 예상했다는 듯 서글픈 표정이 된다.) 아실의 잘못이 아니에요. 처음부터 저를 걱정하셨잖아요. 아실의 권고를 듣지 않고 바깥에 나가겠다 고집을 부린 저의 잘못이죠.
하지만 그렇게 해서라도 나가고 싶었어요. 그렇게 해서라도... ... 다시 없을 기회였으니까.
【 Last Day, AM 02 : 43 】
어떤 대화가 이어지고 있었나요?
간간히 정적이 내려앉고,
무엇인가 말하려다 입술을 달싹이는 헬레네는 또 미미하게 웃으며 자리에서 일어섭니다.
갑자기, 차라니.
아무리 티파티라며 당신을 불렀던 헬레네지만,
조금 전엔 쓰러지고, 남들 다 자는 새벽에 여는 이게 어딜 봐서 티파티인가요.
게다가, 찻잔은 오직 하나뿐인 걸요.
이걸로는 둘이서 티파티 구색도 갖추지 못할 텐데….
당신의 의문에 상관없이 일어선 헬레네가 미세하게 비틀거립니다.
덜덜 떨리는 손으로 찻주전자를 들고,
유일하게 테이블을 차지하던 찻잔에 천천히,
……아주, 아주, 천천히……
헬레네 R. 히페리데:사과잼은 찾지 못했어요. 이왕이면 그저께 마셨던 것처럼 사과 홍차로 해주고 싶었는데...
그래도 맛은 좋을 거예요.
그리 차분한 말을 이어가면서, 표정은 왜 울 것만 같은지.
……꼭 찻잔이 다 채워지길 바라지 않는 사람처럼.
차갑게 내려앉은 밤공기 사이로 이질적인 따뜻함이 공기 중에 피어오릅니다.
헬레네 R. 히페리데:다시 물어보고 싶은 게 있어서 무례임을 알면서도 새벽 중에 연락을 드리고 말았네요.
찻잔이 메우는 소리가 끊이지 않는 와중에 헬레네의 목소리가 들립니다.
저 물음을 끝까지 들으면, 이 모든 것의 답을 찾아낼 수 있을까요.
헬레네 R. 히페리데:만약에 '에스칼'을 살릴 수 있는 방법이 있었다면, 당신이 만일 레일리였다면 어떻게 했을 것 같냐고 여쭈었었죠.
번화가에서 들어본 적 있는 질문이 귓가를 메웁니다.
기이하리만치 고요한 정적을 찻잔을 메우는 소리가 뒤덮습니다.
헬레네 R. 히페리데:그 방법이 레일리를 죽이는 일이어도...
포기하지 않을 자신이 있냐고도 했었지요.
거기까지 말한 헬레네의 목소리는 담담한 듯 떨렸습니다.
헬레네 R. 히페리데:만일... 만일, 지금 저희가 연극을 한다면, 아실...
당신이 레일리고, 제가 에스칼이라면... ... (끝내 눈물이 한 방울 턱을 타고 떨어진다.)
당신은 어떻게 하실래요?
굳이 말하지 않았지만 그렇게 들린 듯한 기분입니다.
…곧이어 내내 찻잔을 메우던 소리가 끊겼습니다.
찻주전자는 크림색의 테이블보 위에 조용히 내려앉았습니다.
이윽고 당신의 곁에선 작은 소음마저 흩어져 정적이 됐죠.
장미정원의 유리창 사이로 흘러온 달빛이 당신을 비췄고,
헬레네 R. 히페리데:... ...아실, 당신의 차에 독을 탔어요.
그 순간 들려온 목소리는 명백한 울음기를 머금고 있었습니다.
아실링, SANC (1/1D4)
아실링 펜들레엄:
SAN Roll
기준치:
65/32/13
굴림:
77
판정결과:
실패
r 1d4
rolling 1d4
(
3
)
=
3
이성 3 감소.
아실링 펜들레엄:...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제 앞에 놓인 찻잔을 보다가 실소가 흘러나왔다. 네가 자신한테 이런 식으로 거짓말이나 장난을 할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기에 이 상황을 더욱 믿을 수 없었다.) 제가 이걸 마시면 아가씨는 확실하게 건강해질 수 있어요? 건강하게 오래오래 사실 수 있는 건가요? 바로 마시겠다는 이야기가 아니에요. 말을 들어보겠다는 거예요.
헬레네 R. 히페리데:... ... 네, 그럴 거예요. 왜냐하면 이 찻잔에는타인의 건강과 자신의 건강을 맞바꾸는 주문이 걸려 있거든요. (울음을 참으려 이를 악물고 무진 애를 쓴다. 여린 입술이 금세 찢어지고, 한 번도 피를 본 적 없던 살갗에 피가 맺힌다. 그런데도 아픔 따위 느껴지지 않았다. 이미 휘청이는 몸 상태에 평생을 시달려왔기 때문일까. 아니면 당신에게 이런 말을 건넸다는 충격 때문일까.)
저는 오늘, 해가 뜨기 전에 죽을 거예요. 그러니 이 차를 당신이 마시면, 당신은 저 대신 죽고 말겠죠. 그렇기 때문에 이 차는 당신에게 독이에요.
... ... 미안해요, ... 미안해요, 아실. (두 손에 고개를 묻고 흐느낀다. 이제껏 숨겨온 사실을 최악의 형태로 꺼내드는 스스로가 한심스럽고 추했다.) 아주 어렸을 때 했던 티파티에서 당신은 이미 죽었어야 했어요. 애초부터 당신은, 제 수명을 대신할 역할로 이곳에 들어왔었던 거예요...
하지만, 저는 도저히 당신에게 차를 권할 수가 없었어요. 그래서 미루고 미뤄왔지요. 시간이 지날수록 확신은 커져갔어요. ... ... 당신을 사랑하게 되었거든요. (죽음이 목전에 임박해서야 내놓는 진심.) 친구로서의 의미가 아니라, 연심으로서요.
언젠가는 나아지지 않을까 믿었어요. 당신이 저를 위해 지금껏 그토록 노력해주셨으니, 제 몸도 마음을 이해한다면 조금 더 건강해져서 오래 살 수 있지 않을까 희망을 가졌던 적도 있었어요. (멈출 새 없이 눈물이 흐르고, 목소리는 이지러진다.) 너무도 헛된 희망이었나 봐요.
아실링 펜들레엄:(헬레네의 병이 평범한 병과 다르다는 것은 저택의 사람이라면 모를 수가 없는 일이다. 몸을 갉아먹는 심상치 않는 병. 수차례 주치의가 다녀오고 그 비싸 약재를 사용해도 낫지 않는 병에 대해 의심을 가지긴 했다지만, 죽음의 문턱까지 너를 데려갈 것이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다. 주문이라느니 독이라느니, 자신의 역할 같은 말은 뒷전이었다. 네가 죽으면 다 끝인 것을. 새빨갛게 달아오르는 것 같은 머리를 진정하려 자리에서 일어나 정적을 유지한다. 혼란스럽기 짝이 없었던 상황을 깬 것은 네 고백이었다.) 정말이에요..? 친구로서가 아니라.. 연심으로서? 다시 한 번만 얘기해 주세요, 아가씨. 한 번만요. 아가씨. 아니, 헬리. (자신이 잘못 들었을 리라 생각하며 자리를 벗어나 네 앞으로 다가가 무릎을 꿇고 네 다리를 잡았다.) 내 희망은 아가씨였어요. 내 희망은 헬리 당신뿐이었어요.
헬레네 R. 히페리데:(손을 차마 쉽게 떼어내질 못했다. 당신의 표정이 어떤지 보는 것이 두려워서. 차가운 반응이 돌아올 것이 두려워서. 그렇지 않은가. 처음부터 당신의 목숨을 예비용으로 삼기 위해 들여왔다는 배신을 하고 말았는데, 사랑고백까지 하다니 얼마나 뻔뻔하고 추잡스러운 짓인지.) ... ... 네, 사랑해요. 당신을 오래 전부터 사랑해 왔어요. 죄송해요, 이런 식으로밖에 고백할 수 없어서. 이런 상황에서 이야기할 수밖에 없어서... ... 비정하기 그지없는 짓이라는 걸 알아요. 저를 내치셔도 돼요, 처음부터 예상했던 일이니까요. ... ... 턱끝까지 다가온 죽음이 두려워서 충동적으로 당신을 불러냈지만... 역시 당신이 저 대신 죽는 것은 도저히 볼 수 없어요...
아실링 펜들레엄:(손을 뻗어 네 턱을 부드럽게 잡고는 자신 쪽으로 돌린다. 뭘 두려워한 것이냐는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며 네 무릎에 제 뺨을 부볐다.) 당신은 이런 상황에 거짓을 말할 정도로 바보는 아니죠. 저도 뭐가 거짓이고 진실인지 구분할 줄 아는 사람이고요. (깊게 숨을 내쉰다. 단어 하나, 말 한마디 소리 말하는 것이 이렇게나 힘든 일이었나?) 저는 줄곧 기다렸어요. 이런 날이 오지 않을 수도 있을 것이라 생각도 해봤지만... 그래도 희망을 가졌어요. 당신이 저를 사랑한다는 말을 해주는 날을, 그리고 저와 당신의 마음이 같다는 것을 알게 되는 날을 요... 다만.. 조금 놀랐던 것은... 저는 당신이 (찻잔을 슬쩍 보고는) 당신이 제 죽음을 원하는 줄 알았어요.
헬레네 R. 히페리데:(방어하던 유약한 몸짓은 당신의 손길에 쉽게도 떨어져나간다. 눈물이 가득 고인 저의 눈에 비친 모습은 당신의 미소. 순간 어리둥절해졌다가, 단어가 하나하나 이어지고 문장이 완성되어가자 결국 어찌할 바를 모른 채 흐느끼고 만다.) 마음이 같았다니... ... 아실도, 저를...? (차가운 미움을 받지는 않았음에 잠시간 안도했지만, 슬픔은 겨울바람처럼 다시 품 속을 파고든다. 겨우 서로의 사랑을 확인하였건만, 둘 중 한 명은 죽음을 맞이해야만 한다니. 운명이란 게 있다면 처절하게도 잔혹한 삶이었다.) 그럴리가요. 어떻게 사랑하는 이의 죽음을 바랄 수 있겠어요? 축제에서 했던 말은 전부 진심이었어요. 당신이 행복하기를 바랐어요. 그리고 당신과 다시금 축제에 나가, 예쁜 옷들을 구경하고 즐거운 연극을 구경하고 싶었고요. 맨발로 춤을 추고 싶었어요... ... 이룰 수 없는 약속들뿐이었지만, 입 밖으로 꺼내는 것만으로도 그저 좋았어요.
아실링 펜들레엄:이렇게 잘 울어서 어떡하죠.. 연극 볼 때도 그렇고. 아가씨는 참 눈물이 많아요. (눈물이 많고, 정도 많은, 자신의 앞에서 '살아있는' 헬레네. 자신이 아주 잘 알고 있는 사람이다. 잘 알고 있기에 사랑하지 않을 수 없는 사람이기도 한 이. 어떻게 이 많은 것들을 혼자 꾹꾹 감추며 살아온 것이냐며 달래듯 등을 토닥인다. 불쌍한 사람, 동시에 사랑스러운 사람. ) 저 역시 진심이었어요. 아가씨랑은 조금 달랐지만. 정말로 다시 축제에 가게 될 줄 알았거든요. 아주 나중의 일이라고 생각했지만.. 아가씨를 더 즐겁게 해드릴 걸 그랬어요.
헬레네 R. 히페리데:함께한 십여년의 시간, 저는 언제나 당신으로 인해 행복했었어요. 이후의 미래를 그릴 수 있다면 좋았을 텐데... ... (당신의 목덜미를 끌어안은 채 흐느낀다. 저택으로 찾아오는 명문가의 일원들에게는 언제나 성숙하고 차분한 성격이라며 칭찬을 받았었지만, 당신에게만큼은 마음 편하게 어리광을 부리곤 했다. 제 가장 은밀한 비밀도 당신을 무한히 신뢰하기에 털어놓을 수 있었다. 목숨을 빼앗을 차를 내민 순간까지도 저는 당신에게 기대기만 한다. 참으로 미숙한 사람이라는 것을 재차 실감했다.)
헬레네 R. 히페리데:제 마지막 마음이에요. 말로 다 할 수 없는 고마움을 이렇게나마 작게 표현해보았어요. 역시, 조금 더 많은 선물을 드렸어야 했는데...
... ... 당신의 일도 이제 오늘 밤을 기점으로 끝이겠지요. 아버지가 당신을 위협할 수 없도록, 해가 뜨면 짐을 챙겨서 멀리 떠나세요. 제 보석들을 가져가 팔면 생활하는 데 어려움은 없을 거예요.
아실링 펜들레엄:이것은.. (별 대꾸하지 않고 상자를 보다가 조심스럽게 풀어본다.)
……헬레네와 당신이 있는 이 장미정원에서,
당신은 잘 정돈된 리본을 풀고,
상자의 포장을 뜯고, 달칵, 상자를 엽니다.
달빛을 받아 어슴푸레 빛나는 것은…
장미 모양으로 가공된 사파이어 브로치.
섬세한 세공은 헬레네가 당신을 사랑하는 마음과도 닮아있습니다.
아, 조금이라도 더 있다간 장미정원의 유리창 새로 보이는 캄캄한 밤하늘이 헬레네를 잡아먹을 것 같았습니다.
하얀 별은 그 브로치와도 같이 밤하늘에 섬세하게 박혀있었습니다.
장미정원을 이루는 장미는 그 순간에만큼은 밤을 잊고 깨어나 장미향을 훅 내뱉습니다.
코끝이 아찔해지고 감각이 아득해질 것만 같은 새벽.
당신과 헬레네는 그런 장미정원에서 서로를 마주하고 있습니다.
이 얼마나 잊기 힘든 풍경인가요.
밤하늘의 별과 달은 하얗게 두 사람을 비추고,
장미는 만개해 두 사람 사이를 그 특유의 향으로 메웁니다.
'레일리'는 이런 기분이었을까요.
레일리의 방백이 문득 머리를 울립니다.
'그래요, 그날 밤. 그날 밤은 제 인생에서 평생 잊지 못할 순간이 될 것 같다는 예감이 들었습니다.'
차라리 연극이라면 좋을 새벽이 깊어 갑니다.
아실링 펜들레엄:(상자를 테이블 위에 올려놓더니 차분한 걸음으로 원래 제 자리로 걸어가 앉는다.) ... 아가씨. 저 궁금한 게 있어요. 아가씨가 보기에 저는 어떤 사람인가요. 여러 종류의 사람이 많잖아요. 성실하거나, 둔하거나, 멍청하거나, 추악하거나... 같은.. 아가씨가 보기에 저는 어떤 사람인가요?
헬레네 R. 히페리데:(떨려오는 손을 다른 손으로 감싼다. 눈물을 눌러닦고, 목소리를 가다듬기 위해 몇 번이나 헛기침을 했다. 흘러나오는 목소리는 잠기고 갈라진다.) ... 아실은 언제나 친절하고 다정한 분이시지요. 상냥하고, 때론 장난기가 넘치시면서도 마음이 여린 면모를 지니셨어요. 사랑에 빠지지 않을 수 없을 만큼. (왜 그런 질문을 하냐는 듯 의문을 담은 눈길을 보낸다.)
아실링 펜들레엄:(자신에 대한 얘기를 들을 때마다 안색이 조금씩 안 좋아지더니 끝에 가서는 테이블에 이마를 묻는다.) 아가씨께서 저를 너무 좋게 생각해 주셔서... 양심이 찔리네요. 물론 아가씨께 예쁨 받으려고 착한 메이드로 살아왔지만요. 저 그렇게 착한 메이드는 아니에요. 욕심도 많고 꽤나 나빠요. (웅얼거리며 낮아진 목소리로 헬리, 하고 네 이름을 부르며 고개를 든다.) 정말로 저를 사랑한다고 하셨죠. 너무나도 사랑해서 제가 죽지 않기를 바라셨고요. (상자를 슬쩍 보며) 이렇게 예쁜 선물을 주시고 아가씨의 보석도 가져가라고 하셨지만.. 저는 더 특별한 선물을 원해요. 선물이라고 하기에는 약간 애매한 느낌이 있는 것 같기도 하네요. 아무튼, 정말 가지고 싶은 게 있어요. 아가씨만이 주실 수 있는 거예요. 정말로 가지고 싶은데.. 역시 저 같은 메이드는 가질 수 없는 걸까요..?
헬레네 R. 히페리데:모두에게 착할 수는 없으니, 누군가에게는 나쁜 사람으로 보여질 수도 있겠지요. 하지만 제가 지금까지 봐 온 아실은 아까 말한 그대로였어요. (와중에도 테이블에 이마를 묻는 당신의 모습은, 이 순간을 모르기 전 보내던 일상을 떠올리게 만든다. 심해에 잠겨가는 것만 같던 비탄이 잠시 잊혀지고, 조금은 웃을 뻔했을지도 모르겠다.) ... 진심으로 당신을 사랑해요. 이제 와 고백한 것을 후회할 정도로요.
저만이 드릴 수 있는 것...? 무엇일까요...? (고개를 살짝 갸웃거린다. 답은 알 수 없었지만, 본능일까. 불길한 예감이 먼지마냥 피어오르는 것은.)
아실링 펜들레엄:저는요... 아가씨가 온전히 제 것이면 좋겠어요. (긴 텀을 두고 고한 말에는 많은 것이 내포되었다. 사랑스러운 아가씨. 누구에게나 사랑받고, 내일이 있고 미래가 있다면 앞으로도 그 미래에도 영원히 행복할 아가씨. 그 아가씨를 원했다. 죽음이라는 마지막 순간이라는 것에 질서에서 나와 고스란히 내보인 추악함이었다. 원래대로라면 이런 고백조차 하지 못할 것을 마지막이라는 것에 힘입어 추악하게 고한다.) 하지만 그럴 수는 없는 법이죠. 하지만 전 아가씨의 마음을 가졌네요. 아무것도 가진 것 없던 저에게 제일 귀한 것 하나가 들어왔으니, 이보다 더 보람찬게 있을까요? (아실링의 삶은 헬레네를 처음 만났던 순간부터 지금까지 한결 같았다. 자신에게 있어 자신의 정해져 있는 길이자 끝이기도 한 사람, 사랑하는 헬레네. 자신의 삶에서 유일하게 찾아볼 수 있는 행복. 그런 아가씨가 죽는다. 헬레네가 사라진다. 내 사랑이 사라지고 삶의 방향이 사라진다면 그렇다면 자신은? 자신은 헬레네가 없으면 정말로 사라지고 싶을 것 같은데. 헬레네가 없으면 아무것도 없을 것 같은데. 그리움은 영원히 자신의 몫일 테니 말이다.)
... ... 아가씨가 나빴어요. 내가 당신을 사랑한 자리가 모두 헤쳐졌어요. (최대한 웃는 표정을 한다는 것이 결국에는 무너져 내렸다. 어느샌가 눈물 범벅이 된 얼굴을 거칠게 손등으로 닦고는 억지로 입꼬리를 올린다.)
이걸로 누가 뭐래도 아가씨는 이제 제 거예요. 제가 아가씨에게 삶을 드렸어요. 그러니까. 이제 아가씨는 제 것이에요. (우는 것인지 웃는 것인지, 확실한 것은 서러운 것에 가까운 표정으로 찻잔에 있는 차를 한입에 마신다.)
헬레네 R. 히페리데:아... 안 돼요. 아실링! (손을 뻗었으나, 이미 늦었다. 잔이 기울어지고 찻물이 당신의 입술을 타넘는다.)
쨍그랑!
온 몸을 타고 차오르는 이질적인 감각에 찻잔을 놓쳐버렸습니다.
조용하던 새벽의 장미정원이 찻잔이 깨지는 소리로 메워지는 듯한 착각이 들었습니다.
…몸이 기우는 것도, 착각일까요.
헬레네 R. 히페리데:아실... ... (황망함에 그저 눈물만이 샘솟는다.)
아. 그건 아닌 것 같습니다.
몸이 균형을 잃는 생소한 감각.
주문이 제대로 든 모양입니다.
아실링, 주문의 대가로 이성 1D20 손실합니다.
아실링 펜들레엄:
rolling 1d20
(
3
)
=
3
이성 3 감소.
1D3 굴려주세요.
아실링 펜들레엄:
rolling 1d3
(
2
)
=
2
헬레네는 이제 건강할 거란 안심,
그런 헬레네 곁에 계속해서 있을 수 없다는 슬픔,
온 몸에서 느껴지는 익숙하지 못한 감각에서 오는 괴로움, 지금의 두려움, 불안감…
모든 감정이 기다렸다는 듯이 뒤섞여 엉망이 됩니다.
기분도, 몸도 엉망진창이에요.
눈물이 가볍게 시야를 흐립니다.
새로이 밀려오는 이상한 감각에 조금이나마 적응할 쯤이 되어서야 헬레네의 안색이 눈에 띄는군요.
적당한 열기가 얼굴을 감싸고 활기를 띄는 모습.
당신의 건강은 제대로 바꿔치기 되었나 봅니다.
……헬레네는 그 오랜 시간을 이런 몸으로 살아왔던 걸까.
이제서야 온 몸으로 체감합니다.
헬레네 R. 히페리데:아실. 아실! (정신없이 의자에서 내려와, 몸을 내던지듯 쓰러지는 당신을 받아내어 품에 끌어안는다.) 아아, 사랑하는 아실... ... (당신의 창백해진 뺨에 눈물방울이 투둑 떨어진다. 중심을 잡기 어려울 만큼 비틀거리던 몸에 세찬 힘이 돌았으며 저를 평생 동안 괴롭혀 왔던 모든 통증이 가뿐히 사라졌다. 사라진 병증은 당신의 온몸에 씨를 내리고 뿌리를 박는다.) 이래선 안 되는데, 당신은 떠났어야 했는데... ... 미안해요, 미안해요... (저를 위해 사랑하는 이를 희생시키다니.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죄책감이 밀려온다. 버티고 서 있음에도 까딱하면 앞으로 전복되어 넘어질 만큼 눈앞이 깜깜하다.)
당신의 목숨을 받아 살아가는 삶에 어떻게 행복이 깃들 수 있을까요. 이 세상에 당신이 없다면 저는... (이별이 코앞으로 다가왔다. 마치 구름을 잡고 싶어 떼를 쓰는 아이처럼 아무리 손을 뻗어보아도 당신은 이내 멀어지고 말겠지. 그 사실을 믿고 싶지 않아 품 안의 당신을 더더욱 세게 끌어안고, 고개를 부빈다.) 아아, 아실, 저는...
아실링 펜들레엄:(갑작스레 덮친 고통에 눈물을 쏟는다. 아, 너는 계속해서 이런 고통과 싸우고 있었구나. 불쌍한 사람. 시야 사이로 보이는 네 모습에 히죽 웃는다.) 이상하네요.. 제 것이라고 당신이 얘기해 주면 기뻐서 깔깔 웃을 줄 알았는데.. 싫다는 건 절대로 아니고요. (피어날 대로 피어난 죄책감에 순정으로 가득한 가슴이 짓눌리는 것이 슬퍼질 뿐이었다. 죄책감이 물밀듯이 밀려와 전신을 덮쳐온다. 어쩌면 너를 괴롭게 한 병보다 더 끔찍한 것은 자신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며 천천히 눈을 감았다가 뜬다.) 좋아해요 헬리. 사랑해요. 제가 나빴어요. 행복해지세요... 행복해지라는 말이 저주가 아닌 축복이 되길 바라요.
헬레네 R. 히페리데:... 미안해요. 미안하단 말을 너무 많이 해서 미안해요. (절망에 가득 차 갈라지는 음성으로 중얼거린다.) ... ... 당신이 웃는 모습을 보고 싶었는데. 아마 아실, 당신도 마찬가지겠지요...? 서로를 사랑한다는 건 그런 것이니까... (죽음을 앞뒀으면서도 당신의 낯에는 헤실거리는 웃음이 머문다. 둘도 없이 소중하고 사랑스러운 당신의 뺨을 몇 차례나 쓸어내리다가, 힘겹게 입술을 비틀어 미소를 자아내본다. 울음이 엉겨붙은 탓에 입매는 경련하고 자꾸만 무너지려 하였지만, 그럼에도 당신에게 돌려주듯이. 망설임없이 찻잔을 들이킬 정도로 과분한 사랑을 주는 당신에게, 제가 할 수 있는 가장 최선의 보답이었다.) 당신으로 인해 저는 오늘 이 자리에서 새로운 숨을 얻었군요. 사랑하는 아실, 당신에게 받은 삶을 절대로 헛되이 하지 않을게요. 당신이 제 심장에 숨을 틔워주었으니 이 씨앗을 평생 동안 소중히 품고, 언젠가 무엇보다도 아름다운 장미를 피워보일게요. 그때는 그 장미향이 당신에게도 가닿을 수 있을까요...?
처음에는 어렵겠지만, 반드시 행복을 찾을게요. 당신의 말이니까, 사랑하는 당신의 바람이니까... (이마에 젖은 입술을 내리눌렀다.)
만일 그 꽃내음이 퍼져 당신에게 닿는다면, 부디 기꺼울 만큼 향기롭기를...
사랑하는 사람, 저는 이 목숨이 다할 때까지 오로지 당신의 사랑일 테니. 부디... 좋은 꿈을 꾸세요.
이어지던 대화는 그걸로 끝이었습니다.
헬레네의 따뜻한 손이 부드럽게 눈가를 쓸어내립니다.
……버틸 수 없다는 건 이럴 때 쓰는 말일지도 모르겠습니다.
부드럽게 뺨을 감싼 손 사이로, 아득해져가는 의식 사이에서 당신은 직감합니다.
저 멀리서부터 해가 뜨기 시작했구나, 하고.
시간이 벌써 그렇게 됐나요.
분명 익숙한 오렌지빛의 햇살이 당신과 헬레네를 뒤덮고,
장미정원의 가득한 장미들도 따스한 햇살을 타고 깨어나 오늘의 장미향을 피워냈을까요.
알 수 없습니다.
... 이윽고 완전한 암전.
날은 밝았고 당신은 헬레네를 대신해 죽었습니다.
한 때 아꼈고, 이제는 누구에게도 아꼈다고 말할 수 없는 사람은 장미와 당신 사이에서……
행복할까요. 그는 잠시간 절망하겠지만 희망찬 사람이니, 반드시 당신의 유언을 축복으로 삼아 일어설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