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레이타임 : 약 13시간 반
구름이 모여 비가 되고, 비가 내려 바다를 이루리라
바깥에서 보았을 때는 안개로 둘러싸인 것 같으나,
막상 안으로 들어서면 드높은 하늘 가운데 구름 몇 조각만이 걸려있는 비옥한 땅이니,
이환, 당신이 운국의 왕으로 즉위한 지 10년이 흘렀습니다.
타국과의 소모적인 전쟁 또한 이환이 즉위한 이후로 사라졌고, 운국은 부국하고 강병해졌습니다.
백성들은 왕의 어짊을 찬양하고, 그들의 나라와 왕을 사랑하며 충성합니다.
게다가 3년 전에는 공석이던 왕비 자리도 다시 채워졌으니, 이보다 평화로운 때는 전에도 후에도 없을 것입니다.
낮것상을 들기 위해 걸음을 옮기던 차, 이환의 귀에 익숙한 소리가 들려옵니다.
류이환:
듣기
기준치: |
65/32/13 |
굴림: |
35 |
판정결과: |
보통 성공 |
(익숙한 소리에 귀를 기울인다.)
화살이 날아가는 소리와 함께, 명중이오! 하는 외침이 들려옵니다.
윤아가 최근 궁도를 취미 삼고 있다는 사실이 슬그머니 떠오릅니다.
그러고 보니, 최근 집무가 바빠 윤아를 만나지 못한 지도 조금 되었네요.
마침 여유가 되니, 윤아를 보러 잠시 들리는 것도 나쁘지 않겠습니다.
류이환:(궁도에 관심을 가지는 것도 그 이와 같구나. 하고, 저도 모르게 떠나보낸 이를 떠올린다. 이제 그러지 않아야한다고 생각하면서도, 어찌 당신을 잊는지...)
... ...궁도장으로 가겠다. (그리 말하고는 수행원들과 함께 윤아가 있는 곳으로 향한다.)
수행원을 이끌고 대궐 안쪽에 있는 작은 궁도장으로 향합니다.
취미로 삼았다는 말을 들은 지 얼마 되지도 않은 것 같은데, 대부분의 화살이 과녁의 중앙에 가깝네요.
붙여주었던 궁도선생이 그의 실력을 찬사하던 게 그저 한 말은 아니었던 모양입니다.
류이환:...(재능이 있나. 무예를 갈고 닦는 것은 좋은 일이지. 일부러 흠, 하고 소리를 내어 제 기척을 알린다.) 부인. 실력이 많이 느셨군요.
궁도장에 모습을 드러낸 이환을 보고는 환관들이 허리를 굽히며 물러납니다.
서윤아:오셨습니까, 전하. (여전히 과녁을 향해 활시위를 매긴 채로, 집중하는 것이 역력한 투로 대답한다.)
과녁을 향해 곧게 꽂히는 붉은 시선, 활시위를 쥔 자세...
그 모습이, 과거 궁도를 즐기던 인아와 놀랍도록 겹쳐 보여 잠시 말문이 막힐 지경입니다.
윤아는 길게 겨눈 화살을 쏘지 않은 채 말을 잇습니다.
서윤아:활에 능통한 이는 날아가는 새라도 능히 단발에 쏘아 맞힐 수 있다고들 하지요.
그러나 떠난 마음만은 백 개의 화살을 쏘아도 맞힐 수 없으니, 마음 없는 육신만 붙잡는 조잡한 잔기술이 되지 않겠습니까.
<심리학>, 혹은 <모국어> 판정 가능합니다.
류이환:
심리학
기준치: |
80/40/16 |
굴림: |
6 |
판정결과: |
극단적 성공 |
윤아는 최근 일이 바빠 자신에게 소원했던 이환에게 비유적으로 서운함을 드러내고 있는 것 같습니다.
류이환:...(그의 말에 담긴 속 뜻을 파악하고 잠시 침묵한다. 그리곤 활을 매고 있는 그에게 다가가 뒤에 서서 자세를 교정하듯 손을 감싸잡는다.) ...훌륭한 궁수는 한 눈에 보는 것 만으로도 목표물을 파악한다 하지요.
허나 때로는 눈으로 보아도 보이지 않는 것이 있으니, 직접 쏘아 맞추어 보기 전까지는 알 수 없지 않겠습니까.
서윤아:... ... 제 원하는 목표물이 아주 지척에 있으니, 활시위를 놓자마자 결과를 알 수 있을 테지요? (살짝 웃음기 어린 음성으로 화답한다. 이 목소리마저도 당신이 그리던 이와 흡사하기 그지없어서.)
이환이 윤아의 뒤에서 자세를 조정해주고, 얼마 지나지 않아 윤아가 마침내 시위를 놓습니다.
허리를 숙이고 있던 몸종이 황급히 일어나 깃발을 듭니다.
그제야 윤아가 활을 내려두고 이환을 돌아봅니다. 장난기 어린 웃음이 능라마냥 걸려있습니다.
서윤아:전하가 보시기엔, 어떠한 것 같으십니까? 화살촉이 정확히 목표로 하던 것을 맞춘 듯싶으신지요? (삐진 체 하던 투는 농담이었다는 듯 살그레 눈 휘었다.)
류이환:(장난기 어린 목소리와 웃음이 더 없이 사랑스러우면서도, 새삼 눈 앞의 인물이 제 기억 속의 사람과 다른 사람임을 상기하게 한다. 그 점이 좋으면서도 또 가슴이 아파서.) 예, 정확히 와닿은 듯 싶군요. (그리 말하며 가벼이 그를 안는다.)
서윤아:(꺄르르 웃으며 당신의 한 팔을 두 손으로 끌어안았다.) 정무가 많이 바쁘셨던 모양이에요. 혹여나 저를 잊으신 것은 아닐까, 괜한 걱정을 하였습니다. 이제는 여유가 조금 나셨는지요?
오전 정무가 마무리되어 여유로우니, 점심 식사라도 함께 든다면 좋을 것 같네요.
류이환:부인을 잊을리 있겠습니까. 다만 일이 바빠 여유가 나지 않았습니다. 괜찮으시다면 오찬이라도 같이 하는건 어떨까요.
서윤아:전하께서 그리 직접 권해주신다면... (망설이는 체 하다가 기다렸다는 듯 고개를 연신 끄덕거린다.) 어찌 거절할 수 있겠습니까? 사실, 이 시간만을 기다렸답니다. 수라를 오래 들면서 얼굴을 보지 못하였던 동안의 이야기를 해주셔요.
류이환:그리 기다리셨다니, 그간 너무 소홀했던 듯 싶어 미안할 따름입니다. 그러니 바라시는대로 오늘은 오롯이 당신을 위해 사용할터이니, 부디 너그러이 봐주시지요. (그의 손을 잡고 천천히 걸음을 옮긴다.)
예기치 못한 비의 방문 소식에 궁인들이 바삐 상을 더 채우는 기척이 들립니다.
윤아는 조금 거슬리는 듯한 눈치면서도, 방문을 물릴 생각은 없는지 당신의 맞은편에 앉아 조용히 눈을 내리감습니다.
그의 낯에서 어딘가 기묘한 기운이 느껴집니다.
류이환:
관찰력
기준치: |
65/32/13 |
굴림: |
42 |
판정결과: |
보통 성공 |
(윤아의 안색을 살핀다.)
윤아는 날이 갈수록 당신이 기억하던 인아와 흡사해지는 것 같습니다.
아니, 당신의 인식이 그리 변하는 걸까요. 윤아로 인해 인아가 흐려지고 있다거나요.
그와 눈이 마주치는 순간 인아가 겹쳐보이고, 당신은 깊게 묻어두려 애썼던 연심이 다시금 깨어나는 듯한 느낌마저 받습니다.
류이환:... ...(기억이란 아무리 확고히 세워두었다해도 흐려지기 마련이다. 사람인 이상 그럴 수 밖에 없다. 그가 죽은지 10년이란 세월이 지났으니, 겹쳐져가는 것도 당연한가. 본래도 그리 닮았었으니...)
(눈이 마주하자 저도 모르게 손 끝이 살짝 떨린다. 아, 당신이 아닌 다른 이에게는 결코 마음 주지 않으리라 다짐했는데.)
서윤아:제 낯이 어딘가 변하기라도 했나이까? (당신의 시선을 눈치챈 듯, 차분한 물음이었다.) 혹은... 이전보다 더 아름다워졌다거나요? 새 장신구가 들어왔다기에 한 번 착용해보았거든요. 혹여 전하의 눈에 아리땁게 보일까 하여. (수줍은 듯 미소하며 머리 한켠에 꽂은 장식을 매만진다.)
류이환:...예. 무척이나 잘 어울리시는군요. (그런 네 미소에 그저 나직히 웃는다. 저도 모르게 고개를 두는 연심을 애써 내리누르며. 안된다. 더 이상은. 군주란 함부로 사랑에 빠져서는 안되는 자리란 것을, 그간 뼈저리게 느끼지 않았나...) 전보다 훨씬 아리따워지셨습니다.
서윤아:전하께옵서 직접 말씀해주시니, 이 기쁜 마음을 어이해야 할지 방도를 모르겠나이다. (두 뺨이 꽃잎 물들인 것마냥 붉어지고, 손으로 입가 가린 채 웃음소리 감춘다. 금세 부끄러워하는 면은 당신이 기억하는 이와 어찌 그리도 닮았는지. 스스로가 아리땁지 않냐는 둥 좋게 보이고 싶다는 티를 솔직하게 내는 성격이 그나마의 차이점이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평소보다 많은 양의 상이 들어오고, 둘만의 시간을 위해 최소한의 궁인들을 제외한 이들이 모두 물러갑니다.
서윤아:전하, 이 반찬들을 좋아하셨지요? (당신이 평소에 즐기던 반찬이 놓인 그릇을 조심스레 앞쪽으로 밀어준다.) 오후에도 정무를 보시려면 식사를 든든히 하셔야 합니다.
류이환:기억해주시니 기쁩니다. (그러고보니 나는 윤아의 취향을 알던가. 인아의 것이라면 기억하지만... 그를 기준으로 같은지, 다른지만 구분하여 기억하다보니 같이 지낸 세월이 벌써 3년인데도 제대로 아는 것이 없구나. 한심하기는)
요 사이 일이 늘어 그대와 함께할 수 있는 시간이 적어 안타까울 따름이에요.
류이환:
지능
기준치: |
85/42/17 |
굴림: |
90 |
판정결과: |
실패 |
음... 인아가 좋아하는 반찬이 채소 위주였다는 것 말고는 떠오르질 않네요.
윤아한테 직접 물어볼까요? 아니면. 찍어보자고
류이환:(물어보면 마음이... ...상하겠지. 상에 올라와있는 것 중 맛있어보이는 채소반찬을 슬쩍 밀어줘본다...)
서윤아:아, 저까진 신경써주시지 않으셔도 되는데. 감사합니다, 전하. (깨작... 깨작...) (인사는 밝게 했지만 젓가락이 영 자주 가진 않는다. 시선은 약간... 고기반찬으로 향하는 듯...)
류이환:(이런... 아무래도 이 쪽이 취향이 아닌 듯 한데.) 그러고보니 이번에 수라간에 좋은 고기가 올라왔다 합니다. 드셔보시겠습니까. (제 가까이에 있던 것을 윤아에게 놓아준다.)
서윤아:(표정 급 밝아짐) 감사합니다. (고기 뇸냠 집어먹고 표정 풀린다....) 말씀대로 참으로 맛이 좋습니다. 전하도 함께 드셔요.
류이환:(표정 풀렸네.. 이 쪽이 정답이었구나. 죄책감과 귀여움을 함께 느낀다.) 부인께서 드시는 것만으로도 충분합니다.
서윤아:(그릇을 이환 쪽으로 슬쩍 밀어준다.) 하지만 오랜만에 함께 하는 오찬인데, 저만 맛있는 반찬을 독차지할 수는 없지 않습니까. (그러다 무언가 생각난 듯 어물어물거리며 눈치를 슬쩍 본다.) 그런데... 혹 오후 정무가 많이 바쁘신지요?
류이환:(오후 정무...바쁜가? 잠시 기억을 되짚어보자... 오늘 내 일정이 많은지...)
오늘 정무는 그럭저럭 왕답게 많습니다. (...)
하지만 조금 빠릿빠릿하게 해치운다면 저녁 즈음에는 완료할 수 있을 것 같네요.
(역시 물려주고 나는 물러나야했다....)
권해주신다면야. (저도 접시에서 한 점 집어먹는다.) 아, 오후 정무는... ...(잠시 말 끝을 흐렸다가) 저녁 즈음에는 시간이 날 듯 싶습니다.
서윤아:그러면... 저녁 수라를 드신 후에, 저와 함께 별 구경을 하지 않으시겠습니까? 요새 매일같이 날이 좋아 밤하늘이 참으로 아름답습니다. 전하와 함께 본다면 더 운치가 있을 듯하여서...
류이환:....(그 말을 듣고 잠시 침묵한다. 별 구경. 인아와의 추억을 흐리고 싶지 않아 윤아와는 부러 늦은 밤에는 함께하지 않았건만. 이리 직접적으로 물어오는데 거절하는 것도 상처가 되겠지. 잠시 고민하다 가벼이 고개를 끄덕인다.) 예, 그렇게 하지요. 가능한 한 시간 안에 마치도록 노력해보겠습니다.
서윤아:정말인가요? (전 왕비와 제가 흡사하다는 것은 알고 있으나, 어떤 추억을 함께 쌓았는지까지는 알 수 없었으므로 요청이 받아들여진 것이 마냥 좋아 웃는다.) 흔쾌히 들어주셔서 참으로 감사드립니다, 전하. 벌써부터 저녁이 무척이나 기다려져요.
조정의 대신 중 하나가 바깥에서부터 이환을 부르짖는 소리가 들려옵니다.
외침과 함께 대신 하나가 궁인들을 밀치며 처소로 들어옵니다.
궁인들이 비명을 지르며 비켜서고, 익숙한 낯의 대신이 문을 박차고 들어와 이마를 바닥에 바짝 붙인 채 절을 합니다.
대신:전하, 아뢰옵기 황공하오나, 전하, 전하…….
대신:그, 그것이... (입술을 꾹 깨물더니)
해원국에서 전쟁을 선포했사옵나이다! 이미 수천의 군대가 운국을 향해 진군하고 있으며, 수 일 내로 국경에 들이닥칠 것이라 하옵니다. 게다가, 거기다…….
대신의 온몸이 공포와 당혹으로 인해 부들부들 떨리고 있음이 보입니다.
당혹스러운 것은 이환, 당신도 마찬가지입니다.
갑자기 전쟁이라니요, 최근 해원국에서 어떤 소식도 들려오지 않았던 것은 분명하지만, 전쟁을 준비중이라는 첩보 또한 없었습니다.
전쟁을 위한 군사나 물자는 어디서 준비했단 말입니까?
대신은 뒤엣말이 남은 모양이지만, 고개를 들어 윤아를 바라보고는 황급히 고개를 다시 숙입니다.
서윤아:(당혹스러운 소식에 들떠 있던 낯빛이 굳는다.) ... ... 어서 가보시지요. 한시가 위급한 상황이 아닙니까. 대신께서 지극한 충정으로 입을 열지 못하시는 듯합니다. 혹 수라를 마저 드실 생각이시라면 제가 자리를 비우도록 하겠습니다.
윤아는 대신과 이환을 번갈아보고는, 수저를 내려둔 채 자리에서 일어납니다.
대신:(윤아가 멀어지는 것을 보고서야 남은 말을 잇는다.) 전쟁을 선포한 이는 해원국에 새로이 즉위한 왕이며…….
그가 돌아가신 왕후, 인아 마마라는 말이 있나이다.
인아는 당신의 눈앞에서 병사했으며, 그 장례까지 치루는 것을 당신의 눈으로 똑똑히 보지 않았습니까?
방금, 뭐라고. (평정을 잃고 자리를 박차고 일어난다.) 만약 거짓이라면 네 목이 남아나지 않을 것이다. 그게 사실이더냐?
대신:아뢰옵기 황공하고 통탄스러우나, 한 치 거짓 없는 진실이옵니다, 전하. (고개를 더욱 낮추며 고한다.)
도저히 믿을 수 없는 말이나, 대신이 거짓말을 하는 것으로 보이지는 않습니다.
그렇다면 정말로 그런 소문이 돌고 있다는 걸까요? 대체 어떻게요? SANc (0/1)
류이환:
SAN Roll
기준치: |
70/35/14 |
굴림: |
3 |
판정결과: |
극단적 성공 |
해원국이 운국에게 전쟁을 선포했으며, 이 땅에 다시금 끔찍한 죽음의 그림자가 드리울 것만은 분명합니다.
당장 대신과 장군들을 소집해 전시 상황에 돌입하고, 운국이 입을 막대한 피해를 조금이라도 줄이는 게 지금 할 수 있는 최선의 일입니다.
류이환:... ...(이마를 짚는다. 어떻게 해야 하지? 아니, 해야 할 일은 명확하다. 명확한데.... )
... ...(아니, 아니다. 그 사실에 집중해서는 안된다. 나는 왕이 아닌가. 운국의 왕. 온 백성과 군사들의 목숨이 내게 달려있다. 저것이 사실일리 없다. 죽은 이가 살아돌아올 수가 없지 않은가.) 당장 조정 대신과 장군들을 모두 들라 하라!
(우선은 전쟁을 대비해야해. 그래, 그것이 최선이다.)
말도 안 되는 소리입니다. 당신의 품 안에서 눈 감은 이가 어찌 10년이 지난 지금 살아돌아오겠습니까.
당신은 대신의 말을 믿지 않고, 대비를 위해 서둘러 휘하 신하들을 소집합니다.
대개는 이 일에 당혹감을 숨기지 못하며, 해원국에 관한 분통이나 적개심, 배신감에 치를 떨고 있고,
그들이 이쪽을 치기 전에 우리가 먼저 해원국을 쳐야 한다는 말을 하는 이들 또한 있습니다.
운국과 해원국이 벌였던 기나긴 전쟁의 역사를 아는 노신들은 과거의 답습에 두려움과 무력감으로 덜덜 떨 뿐 성급히 말을 보태지 않습니다.
대신1: 전하! 해원국은 이제까지 운국과 쌓아왔던 신의를 배반한 은혜를 모르는 자들이옵니다. 부디 엄히 다스리소서.
대신2: 전하, 소신에게 병사와 말을 주신다면 당장이라도 출정하여 해원국을 박살내 버리고 다시는 운국에게 칼을 겨누지 못하도록 혼쭐을 내주겠사옵나이다!
대소신들이 한데 입을 모아 조정이 떠나가라 외칩니다.
그들 모두가 적개심과 분노에 불타고 있습니다.
전쟁을 이미 겪었던 이들이라면 해원국에 의해 가족이나 벗들을 잃은 경험이 있어 그간의 화평 탓에 참아왔던 분노를 터뜨리는 것일 테고,
전쟁을 겪지 못했던 이들이라면 그간 운국과 해원국이 맺었던 친교에 대한 배신감에 치를 떠는 것일 텝니다.
지나치게 과열된 분위기를 잠시 진정시키는 것이 좋겠습니다.
류이환:
위협
기준치: |
65/32/13 |
굴림: |
21 |
판정결과: |
어려운 성공 |
지금 어느 안전이라고 말을 높이는 것인가? (낮고 서늘한 음성으로 읊조린다.)
과열되었던 대소신들이 이환의 말에 입을 다물고 허리를 수그립니다.
그러나 이 열기를 영구히 식힐 수는 없습니다.
그들 중 몇이 온당하고 효율적인 방안을 제시하니, 그것들을 택해 당장의 사태를 해결하는 게 좋겠습니다.
류이환:우선은 국경의 방비를 단단히 하라. 아무리 해원국에서 먼저 쳐들어 왔다고는 하나, 우리도 같이 전투로 항전할 수는 없다. 수비에 집중하라. 백성들을 대피시키고... (여러 지시를 내린 후에 잠시 숨을 고른다. 이 말을 꺼내도 되는걸까. 하지만... ..)
...해원국의 왕에게 사신을 보내라. 직접 만나 해결하자고.
회의는 외교적인 문제가 끝난 이후엔 전술 회의로까지 이어져, 사신을 보내고 모든 회의가 끝난 이후엔 벌써 달이 휘영청 떠오른 이후입니다.
이환, 당신에게도 피로가 몰려옵니다. 이만 처소로 돌아갑시다.
류이환:...(머리가 아프다. 오늘 무슨 일을 겪은건지. 이해가 안될 지경이야. 우선 가서 쉬어야겠다. 쉬면...나아지겠지. 처소로 걸음을 옮긴다.)
처소로 돌아가던 중, 윤아의 처소가 눈에 띕니다.
아까 그런 식으로 자리를 비웠으니, 원한다면 윤아의 처소에 들러 잠깐 인사를 나누는 것도 좋겠습니다.
만일 정말로 전쟁이 일어난다면... 오래 보지 못할 수도 있으니까요.
피곤하다면 그냥 처소로 돌아가 잠을 청해도 좋습니다.
류이환:(잠시 고민한다. 기다리고..있겠지. 약속도 지키지 못하게되었으니. 오늘은 들르도록 할까. 아마 이후로는 오래 보지 못할 것 같고...)
아직 불이 꺼지지 않은 윤아의 처소로 향합니다.
이환이 온 것도 눈치채지 못한 채 독서에 열중하고 있는 윤아의 모습이 보입니다.
방 안에는 전쟁과 전술, 해원국에 관한 서적들이 온통 어지럽게 널려 있습니다.
류이환:... ...(문을 살짝 두드려 소리를 낸다.) 들어가도 괜찮겠습니까?
문소리를 들은 윤아가 황급히 일어나 예를 갖춥니다.
서윤아:전하. 시각이 늦었는데 어찌 침소에 들지 않으시고...
(그러다 뒤늦게 제 방의 꼴을 눈치채고는 이미 들고 있는 책이나마 아닌 척 뒤쪽으로 숨겨보려 한다.)
류이환:약속을 지키지 못한 것이 마음에 걸려 찾아왔습니다. 물론 사정은 이해해주실거라 생각 하나...
...공부를 하고 계셨습니까?
서윤아:작금의 상황이 얼마나 심각한지 알고 있사온데... 과히 죄송스럽나이다. (머쓱하게 미소한다.) ... 낮의 일을 들은 뒤로부터 계속 신경이 쓰여서, 가만히 있을 수가 없었습니다.
... ... 미력하나마 저의 의견이라도 도움이 될까요?
류이환:죄송하실 것 없습니다. 한 국가의 왕비로서 당연히 생각하실 수 있는 방향이 아닙니까. 오히려 운국의 안위에 마음 써주시는 모습이 기쁩니다.
말씀해주신다면 기쁘게 듣겠습니다.
서윤아:(차분하게 말을 이어간다.) 해원국은 운국뿐 아니라 다른 국가와도 주기적으로 전쟁을 벌이고 있습니다. 단순히 전쟁을 좋아하는 민족이라기에는 석연찮습니다. 필시 그를 통해 얻으려는 다른 무언가가 있을 것으로 보입니다.
또한, 성미가 불 같고 당장의 결과가 없으면 상심하는 바가 큰 이들이니, 전쟁을 장기전으로 끌고 간다면 아마 자발적으로 꼬리를 내리거나 허점을 보일 것으로 예상됩니다. 어릴 적부터 전투를 가르치는 경우도 허다하다고 하니 아마 개개인 모두 우수한 병사로 추측이 되고요. (직접 정리해나간 듯 글이 가득히 쓰인 책을 한 장 한 장 넘긴다.) 정석적으로 싸우는 것보다는 함정이나 교란하는 방식이 더 효율적일 듯합니다.
... ... (그리고는 한참 말이 없다가, 조심스레 당신의 푸른 눈을 올려다본다.) 전 왕비 마마가 해원국에 살아돌아왔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부활이 사실이건 그저 낭설이건, 전 왕비 마마를 자처하는 것은 곧 전하께 원한을 품고 전쟁을 벌인 것이라는 명분이니... 그 명분을 간파하고 모순을 짚어야 운국의 사기가 오를 것입니다.
윤아의 말을 듣고 있자니 아스라한 기억 속에서 과거의 대화가 스칩니다.
저와 전하의 숨이 끊기는 순간까지, 저만을 연모하시겠노라고.
적국의 세자와 반 강제적으로 한 혼인은 결코 수월하지만은 않았습니다. 두 사람은 엇나갔고 삐걱거렸죠.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거리는 가까워졌고, 서로의 표정과 마음을 이해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첫 합궁 날, 보드라운 바람을 쐬며 함께 밤하늘을 올려다볼 때 인아와 나누었던 대화.
말을 꺼낸 인아 본인도 반신반의하며 물어보았었던 표정이 선연합니다.
그 대화 이후 인아는 완전히 이환과 운국을 받아들이고 순응했습니다.
만약 인아가 당신에게 원을 품었다면, 당장 그밖에는 떠오르는 것이 없습니다.
하지만 그 대화는 이환과 인아, 단 둘이 은밀하게 나눴던 대화.
어떻게 지금 해원국의 왕으로 즉위한 가짜가 그 대화를 알 수 있단 말입니까.
류이환:... ...(하지만 나는 당신이 아닌 다른 사람을 마음에 품은 적이 없는 것을. 내가 다른 이와 혼인하여, 그리하여 분을 품었소? 내가 더 이상 그대만을 사랑하지 않는다 생각해서? 그럴리 없는데. 아직도 나는 당신밖에 품지 않았는데...)
...만약 원한이 진실이라면.
그리하면 어떻게 해야하겠습니까.
윤아의 이야기 중 몇은 아까의 회의에서 현명한 자들이 내놓은 이야기이기도 하며, 어떤 회의에서도 나온 일 없는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운국의 사람들은 해원국과의 지나치게 오래된 적대 관계 탓에 그들을 알려고 하지 않거나, 평화로운 시대를 누린 이들은 그들을 알아야 할 필요를 느끼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윤아가 내어놓은 전술들은 해원국과 그 성향을 완전히 꿰뚫어봐야만 나올 수 있는 것들입니다.
서윤아:... ... 전쟁의 범위가 커지기 전, 최대한 빠르게 그 분을 대면하여 원한을 풀어드리는 것밖에 도리가 없지 않겠습니까. (어둡게 고개를 떨군다.) ... ... 하나, 쉬운 일로 보이지는 않습니다. 전쟁의 명분으로 들고 왔을 만큼 가벼운 원으로는 보이지 않기에.
... 만일 그분께서 저를... (무어라 말하려다가, 입을 다문다.) ... 아닙니다.
류이환:... ...피해가 갈 일은 없도록 하겠습니다.
(할 수 있는 말이 이것 뿐이었다. 아마 윤아도 어느 정도 짐작하고 있었겠지. 그렇기에 이런 말을 꺼내는 것이고. 인아와 내가 결혼한 후 두 나라 사이에 평화가 찾아왔으니, 그 화평이 끝나게 되는 원인은...)
저의 잘못으로 인해, 부인이 피해를 입는 일은. 결코 없도록 할테니까요. (강조하듯 다시 한 번 말을 반복하며 손을 잡는다. 내가 선택한 결혼이고, 내가 선택한 상대다. 원을 품었다면 이 한 몸 기꺼이 당신을 위해 바칠테니, 부디 무고한 이들이 상처입지 않기를...)
서윤아:... (맞잡힌 손에서 도달해오는 체온을 느끼다가, 서글프게 미소지었다. 모순적이게도 당신의 사랑과 똑 닮은 표정이다.) 제 목숨이 아까워 꺼낸 말은 아니었나이다. 오로지 전하의 안전을 중히 여기소서. 운국을 상서로이 보호하는 구름이자 내리쬐는 태양이 아니십니까.
밤하늘을 같이 보지 못하여도 좋으니, 그저... 무사하시기를 바랄 따름입니다.
류이환:(아, 닮았다. 그래, 당신에게 처음 마음을 빼앗긴 그 순간의 미소를. 여전히 잊지 못하는 그 표정을. 당신 이외의 다른 그 누구도 마음에 들이지 않겠다 약조했었지요. 하지만 당신을 이리도 닮은 이가 다가온다면 나는 어찌해야 합니까. 이리도 애달픈 마음을 받으면, 나는 어찌해야합니까...)
...언젠가 함께 밤을 볼 수 있는 날이 오길 바라겠습니다.
서윤아:(지금껏 따스하고 온정적인 관계를 이어왔으나 기실 당신의 마음이 진짜로 향하는 곳이 어디인지 모르지 않았다. 혼인식을 치루어 왕비의 자리에 오를 수 있었던 것도, 놀라울 정도로 그 사람과 닮았기 때문이었으니까. 부러 더 밝고 장난스런 태도를 유지한 것은, 그 사실을 자각할 때마다 처지려는 마음을 붙들기 위해서. 전 왕비와 전하가 어째서 그토록 금슬이 좋았었는지 3년을 함께하며 절절히 깨달았다. 사랑의 감정은 그리 불길처럼 찾아들어 꽃처럼 피어 향을 내뿜었다. 그러나 제 사랑은 끼어들 수도 없고 감히 내밀어서도 안 되는 것임을, 아주 잘 알았다.)
시간이 늦었습니다. 이만 침소로 향하시지요.
류이환:(제가 취하고 있는 행위가 옳지 않음을 안다. 그럼에도 당신을 비로 들인 것은 첫째는 나라를 위해서요 둘째는 저를 위해서였다. 당신을 아예 만나지 못했다면 모를까, 이미 만난 이상 내칠 수는 없었다. 그야, 당신이 남긴 흔적이 눈 앞에 앉은 이의 곳곳에 앉아 피어나는데, 어떻게 물릴 수 있겠나...)
...예, 부인. 편안한 밤 되세요. (나직히 인사하고 처소로 돌아간다.)
착잡함 속에서도 날은 밝고, 시간은 화살처럼 흘러갑니다.
운국 측에서 보낸 사신은 목만 남은 채로 되돌아왔습니다.
운국의 대신들이 크게 분노하고, 사기가 충천한 것은 당연한 일이었을 것입니다.
해원국의 병사가 운국의 국경에까지 당도하고, 운국은 윤아와 우수한 장군들의 전략과 전투로 조금씩 승기를 거머쥡니다.
그러나 해원국의 병사들은 특유의 근성 탓인지, 혹은 알 수 없는 기묘한 조화 덕인지
전멸할 수도 있었던 상황에서 살아나며, 전의를 잃을 법한 상황에서도 목청껏 해원국의 승리를 외칩니다.
그 탓에 전쟁은 승리와 패배를 반복해, 결국 이전처럼 치열한 상황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장군:전하, 전쟁이 길어지니 탈영병이 늘어나고 병사들의 사기가 위축되나이다. 전하께서 걸음해주시어 잠시나마 병사들을 위로해주신다면 병사들에겐 크나큰 기쁨이 될 것이며, 이 전쟁에서 목숨을 잃는다 해도 아깝지 않다 생각할 것이옵니다.
출정을 준비해라.
장군:알겠사옵니다, 전하! (절도있게 고개를 숙인다.)
결국 출정을 결심하고 채비를 끝내던 전날 밤.
윤아가 급히 당신의 처소로 찾아와 무릎을 꿇고 머리를 조아립니다.
서윤아:전하. 외람된 말씀인 줄 아옵니다만... ... 전하의 출정에 함께하게 해주소서.
비록 전쟁에 관해서는 아는 바가 적을지 모르나, 해원국에 관하여만큼은 운국의 누구보다 더 많은 공부를 했다 자신할 수 있나이다.
..그 부탁은 허락할 수 없습니다.
당신을 믿지 못해서가 아니라, 당신의 안위를 위해서입니다.
(전장에 나가, 나와 함께 있는 당신을 보면, 인아가 어떤 기분일지.... ...)
서윤아:부디 허락해 주십시오, 전하. (답지 않게 매달린다.) 폐를 끼치지 않겠습니다. 후방에서만 머무르라 하신다면 그리 하겠습니다! 도저히 궁에서 가만히 기다릴 수만은 없을 것 같아 그러합니다.
류이환:(아, 당신은 왜 언제나, 이리도... 내 마음을 흔들어두는지.)
(내가 감히 당신의 청을 거절할 수 있을리 없지 않나... ...) 예. 뜻이 정 그러하시다면.
서윤아:감사합니다, 진실로 감사드립니다, 전하. (그제야 한 줄기 안도가 서린다. 연신 감사의 뜻을 표한다.)
류이환:..(네 손을 붙잡고 간절함이 어린 목소리로 말한다.) 부디... ..부디 다치지만 마세요.
서윤아:두 번, 세 번 새기고 행동하겠습니다. (결연하게 고개를 끄덕인다.) 전하도 또한... ... 조심, 또 조심하세요.
류이환:운국의 왕인 저는 죽어도 죽을 수 없습니다. 너무 걱정마세요.
당신이 어떻게 청을 거절할 수 있을까요. 인아의 얼굴을 한 이의 청을.
결국, 당신은 동행하게 해 달라는 윤아의 청을 윤허합니다.
사흘 간의 행군 끝에 국경에 도착한 당신은 전쟁을 목도합니다.
당신의 선대가 끊어내려 했던, 그러나 결국 끊어내지 못했던.
아비규환과 아수라장. 서로의 목을 물고 물리는, 시작한 이상 결코 물릴 수 없는 절벽으로의 걸음.
두 개의 군대가 언덕을 사이에 두고 마주선 지 한 시진이 지났습니다.
그때, 저측에서 우레와 같은 함성이 들려옵니다.
장군2:전하, 전하께서 직접 출정하심을 알고 해원국의 왕도 출정을 했다 하옵니다.
장군:그가 직접 병사들의 앞에 서 운국을 조롱하고 해원국의 명분을 내세우니, 저들의 사기가 하늘을 찌를듯 치솟습니다.
부디 운국의 병사들도 승리를 확신하고, 전하와 운국을 위해 기꺼이 목숨을 바치게 하소서!
천막의 너머로 보이는 운국의 병사들이 우레와 같은 함성을 듣고 혼란에 빠져 저들끼리 수군거리는 모습이 보입니다.
그들에게 사기를 고무해주는 것도 좋을 듯 하네요.
류이환:(잠시 눈을 감는다. 그렇게나 끊어내려 했던 증오의 굴레가 결국 나로 인해 다시 되살아나는구나. 선조들을 어찌 뵌단 말인가.)
(말을 몰아 병사들의 앞에 나선다. 검을 뽑아 들어 위로 치켜 든다.) 들어라! 나의 병사들이여!
저 곳에 우리의 터전을 짓밟고 조국을 침략한 증오스러운 침략자들이 있다!
과거, 해원국과 운국의 혼약을 통해 맺은 평화의 조약을 깨트리고 말을 몰아 국경을 넘었으니 실로 통탄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하지만 자랑스러운 운국의 병사들, 그대들이 죽음을 감수하고 맞서 싸운 덕분에 지금껏 우리는 버텨내고 있다!
그러니 물러서지 말라! 검을 들어 적의 심장을 겨누라!
류이환:평화를 깨트린 자들에게, 구름과 안개의 두려움을 맛보여주도록 하자!
자신들이 모시는 군주의 격려로 잠시 흐트러졌던 병사들은 대열을 갖추고, 해원국에 뒤지지 않을 정도의 함성으로 대지를 울립니다.
발끝에서부터 올라오는 전율, 승리에 대한 강한 확신과 그들이 맞이할 숭고한 죽음에 한 치의 후회도 없는 낯을 마주합니다.
그들의 왕을, 그들의 나라를, 그들의 벗을, 그들의 가족을 지키기 위한 싸움.
전열을 갖춘 두 군대가 가까이에 서고, 신호가 울리면 죽음을 불사한 병사들이 서로에게 달려듭니다.
이환, 당신 또한 말에 올라 전투에 참여합니다.
긴 칼 끝에 셀 수 없는 해원국의 병사가 베여나갑니다.
어느 순간부터는 단순히 기계적으로 눈앞의 다른 군사를 베어내고 있을 뿐입니다.
당신의 곁에 있던, 있었던 병사들이 하나둘씩 화살을 맞아 쓰러집니다.
어느 누가 두 개의 군사가 한데 섞여 서로를 알아보기조차 힘든 난장판 속에서 적군에게만 활을 겨눠 맞출 수 있단 말입니까?
당신은 본능적으로 기시감을 느끼며 돌아봅니다.
류이환:
관찰력
기준치: |
65/32/13 |
굴림: |
41 |
판정결과: |
보통 성공 |
이 난장 속에서, 이 전쟁 속에서 단 한 순간 마주치더라도 당신만은 무심히 스칠 수 없는, 몽중에서조차 잊은 적 없던 낯.
검은 갈기를 휘날리는 준마에 올라탄, 해원국의 신향神香, 인아.
류이환:... ... ...인아. (저도 모르게 툭, 흘러나오는 그 이름.)
SAN Roll
기준치: |
70/35/14 |
굴림: |
71 |
판정결과: |
실패 |
2
이환, 당신이 인아를 발견함과 동시에 인아 또한 당신을 발견합니다.
그는 잠시 멈춰 멀리서 당신을 응시하다가, 말에 박차를 가해 멍하니 선 당신이 올라탄 말에 스치듯 부딪힙니다.
류이환:
민첩
기준치: |
75/37/15 |
굴림: |
5 |
판정결과: |
극단적 성공 |
(순간 정신을 놓고 있다 재빨리 고삐를 잡아 말을 다룬다. 하마터면 부딪힐 뻔 했다.)
급히 고삐를 틀어 가까스로 심하게 부딪히는 것은 면했지만, 놀란 말이 갈피를 잡지 못해 이리저리 흔들립니다.
당신 또한 자칫했다간 크게 다칠 뻔 했습니다. SANc (0/1)
류이환:
SAN Roll
기준치: |
68/34/13 |
굴림: |
46 |
판정결과: |
보통 성공 |
... ...(다시금 시선은 당신을 향한다. 사람이 죽고 피가 튀기는 이 전장의 한복판에서도, 어찌 당신만큼은 이리 선명한지.)
서인아:(능숙히 고삐를 잡아챈다. 흩날리는 머리칼 사이로 시선이 맞붙는다. 비틀거리며 말을 달래는 당신을 보더니, 순간적으로 입가에 냉소가 스친다.)
전군 후퇴하라! (차갑고 냉엄한 명령이 진영을 가른다.)
기다려! (급하게 당신을 쫓아 말에 박차를 가한다.)
후퇴하는 인아를 쫓아가려 하나, 운국의 피해가 막심합니다.
장군:전하! 지금은 후퇴해야 할 듯 싶사옵니다. 상황이 심상치 않습니다.
그런데 저건, ... 저건 정말로...
서윤아:경솔한 언사를 삼가세요! 전하, 어서 돌아가시지요. 우선은 태세를 정비해야 합니다.
장군의 뒤를 따라온 윤아가 날카롭게 제지합니다.
류이환:하지만!... 저기. 저기에... ....(입술을 깨문다.)
인아는 당신을 비웃기라도 하듯 해원국의 병사들 사이로 모습을 감춥니다.
서윤아:전하...! (당신의 한 팔을 붙잡는다. 간절한 눈빛이다.)
류이환:(저를 바라보는 당신에 눈빛에 결국 고삐를 돌린다.) ....돌아가지.
전군, 후퇴해라!
이환의 명에 운국의 병사들이 부상병을 추스리며 후퇴를 시작합니다.
밤이 깊었으나, 잠은 조각조차 오지 않습니다.
낮에 당신이 마주했던 장면이 눈앞에 여즉 생생합니다.
당신이 보았던 것은 결코 환영 따위가 아닙니다.
인아와 마주했던 순간은 찰나에 불과했으나, 당신은 그가 인아의 형제자매도, 가짜도 아닌 그 본인임을 직감합니다.
하지만 어떻게 그럴 수 있단 말입니까? 그는 당신의 눈앞에서 숨을 거두었는데요.
그 시신은 국법에 따라 운국에서 장례를 행했는데요.
그의 릉을, 이환. 당신의 손으로 장식하지 않았습니까.
류이환:... ...(잠이 오지 않아 그저 뒤척인다. 분명 환영이 아니었다. 알아보지 못할리도 없다. 몇 년이고 그리워하던 얼굴이 아닌가. 그런데 대체 어떻게, 죽은 사람이 살아돌아올 수 있는지...)
생각에 잠긴 채 한참 뒤척이고 있으면, 윤아가 막사의 입구에서 조심스레 당신을 부릅니다.
그 낯을 마주하면 잠시나마 현실감각이 돌아오는 것 같기도, 아예 잃어버릴 것만 같기도 합니다.
서윤아:아직... 잠을 청하지 못하고 계셨는지요. 예상은 되었기에, 마음을 달래드리려 술을 한 병 가져왔는데... ... 드시겠습니까?
류이환:.. ...(당신의 얼굴을 마주하면 더욱 마음이 아려온다는 것을, 어찌 말하겠습니까. 그저 쓰게 웃는다.) 예, 부탁합니다.
서윤아:많이 드셔서는 아니됩니다. 지금은 전시이니... (당신이 딱히 주당이 아님은 알고 있었음에도 의례적인 말을 한다. 저 또한 심란하다는 증명이다. 흰 잔에 탁주가 채워진다.)
류이환:... ....괜찮으십니까? (별다른 어구가 덧붙지는 않았으나, 그 뜻을 쉬이 짐작할 수 있는 내용이다.)
서윤아:... ... 죄송스럽습니다. 제 얼굴을 보는 것도 전하께는 편치 않은 일이실 텐데, 직접 저와 얼굴이 같은 이를 대면하니, 좀체 진정이 되지 않습니다. 저도 이러한데 전하께선 대체 어떤 심정일지... 넘겨짚을 수조차 없나이다.
(술잔을 밀어준다.) ... 술을 드시면 한결 잠에 빨리 드실 수 있을 겁니다.
류이환:...(술을 받아들고는 잠시 그의 얼굴을 바라본다. 닮았다. 너무나도. 너무나도 닮아서 잠재운 기억을 떠올리게 할 만큼.)
...후방에 있으라 하지 않았습니까. 왜 그리 앞까지 나오신겁니까. (인아가 떠나갈 때, 당신이 저를 붙잡지 않았다면 어찌 되었을지 모르지 않으면서도 괜히 그런 말을 한다.)
서윤아:송구합니다. 하지만, 거기에서 제가 붙잡지 않았더라면 폐하께서 해원국의 군대 속으로 금세라도 뛰쳐가실 것만 같아서... ... (쓰디쓴 표정으로 술병을 어루만진다.) 제 직감이 틀렸는지요.
류이환:...아니요. 맞습니다. (쓴 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푹 숙인다. 그래, 그 때의 저는 확실히 제정신이 아니었다. 윤아도 그것을 알기에 저를 붙잡았겠지.)
... ...미안합니다. 당신께 그런 소리를 해서.
서윤아:어찌 전하께서 사과를 하십니까. (고개를 가로젓는다.) 그분을 사랑하고 계시지 않습니까. 만일 제가 같은 상황이었다면 다를 바 없었을 텝니다.
... 허나, 그분이 되살아났건 혹은 아예 죽지 않았건... 그분은 해원의 왕을 죽이고 그 자리를 꿰찼으며 되도 않는 명분을 내세워 운국을 능멸하니. 마음을 굳게 다잡으셔야만 합니다. 그분이 오늘 전투에 출정한 것은 아마 전하를 흔들기 위해서였을 테지요.
류이환:... ...원한이 있지 않을까, 라고 하셨었죠. 그 원한이 역시 저를 향한 것이라는 생각이 떠나지 않습니다. 차라리 저를 내어주면 이 전쟁이 끝나지 않을까. 그런 생각마저 듭니다.
... ..일국의 왕으로서 해서는 안되는 생각이지만요. (쓰게 웃는다.) 정말로 그리 할 생각은 없으니 안심하셔도 됩니다.
서윤아:... (눈썹이 서글피 일그러진다. 사랑하는 이의 곁으로 가고픈 것은 당연한 바이겠지. 허나 그 길은 사지임이 분명하니.) 전하께 운국의 앞날이 달려있습니다. 지겨울 정도의 정론이지만, 제가 드릴 수 있는 말은 이뿐이군요... (애상스러운 목소리로, 당신의 손을 조심스럽게 붙잡은 채 말한다.)
류이환:때론 정론이 가장 중한 법 아니겠습니까. (붙잡은 손을 마주잡는다.) 의무와 책임을 잊지는 않았습니다. 걱정하지 마세요. (그러나 만약 그 의무와 책임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다면... ...나는 기꺼이, 당신에게...)
서윤아:(저의 사랑은 당신을 붙잡을 수 있는 수단이 될 수 없겠지. 그 사실을 너무도 잘 알아 입 밖으로 꺼낼 수도 없다. 어찌나 괴로운 밤인가.)
급하게 병사 하나가 울타리 바깥으로 뛰어옵니다.
밖을 지키고 있던 호위병이 당신에게 서신을 들고옵니다.
호위병: 전하. 해원국의 왕이 전하께 서신을 보냈다 하옵니다.
류이환:...서신을? (인아가 서신을 보냈단 말인가) 어서 가져오라 하라.
과거 단정하였던 글씨체의 흔적이 조금은 남아있으나, 폭풍마냥 휘몰아치는 듯한 글줄이 종이를 검게 채웁니다.
류이환:... ...(서신을 다 읽고 내려둔다. 말하는 내용은 한 치의 망설임도 없었다.) 명일 오후에 해원국의 진영으로 가겠다.
서윤아:(내려둔 서신을 속독하고는, 낯이 하얗게 질려 당신을 만류한다.) 전하! 가셔서는 아니 됩니다. 낮에 그분을 보지 않으셨나이까. 함정입니다. 전하의 안위가 위협받을 수 있습니다!
가야해요. (목소리는 단호했다.)
서윤아:운국과 백성을 생각하셔야만 합니다. 제발 반려해주소서. (애걸한다.)
류이환:...부인. (네 손을 붙잡고 눈을 맞춘다. 아까와는 달리 저만을 향하는 다정한 눈)
약조했습니다. 저는. 그러니 가야만 해요.
이것이 이 의미 없는 전쟁을 끝내고, 제 죄를 씻는 유일한 방법입니다.
서윤아:(다정한 시선을 피하고 싶었는데, 옴짝달싹도 할 수가 없었다. 저에게 향하는 한 줄기 다정조차 기꺼워서. 슬피 일그러진 낯으로 한참이나 시선을 받아내다가, 눈을 질끈 감았다 떴다.) ... 그렇다면, 저 또한 가겠습니다.
류이환:...그건 안됩니다. (눈동자가 당혹감으로 가득찬다.) 그가 당신에게 무슨 짓을 할 지 알 수 없습니다.
서윤아:그분이 전하께 무슨 짓을 할지는 알 수 있나요? (말릴 새도 없이 결연함이 깃든다. 전쟁에 따라가겠다 요청하던 때와 동일했다.) 호위병이나 책사로 위장하여 얼굴을 가리겠습니다. 그리하면 그분도 저를 알아볼 수는 없을 테죠.
류이환:나는... ..(무슨 일을 당해도 상관 없습니다. 죽임 당한다 해도. 그러나 이어진 말은 속으로 삼킨다.) ... ...왜 이렇게까지 하십니까. 제가 왕이고, 당신이 왕비이기 때문에?
서윤아:... (한참 동안 침묵하다가 겨우 흐른 목소리가, 여린데도 강인했다.) 제가 전하를 은애하기 때문입니다. 전하가 사지로 발을 들이셨는데 홀로 안전해봐야 의미가 없기 때문입니다. 비록 전하의 마음은 그분께 가 있으나, 사랑을 한다면 저의 심정 또한 이해하시겠지요...?
류이환:... ....부인. (입이 말랐다 .눈치채지 못했다면 거짓이다. 누구보다 솔직하게 자신을 드러내는 당신을, 어찌 모를 수 있었을까.)
정말이지, 어떻게 그렇게 솔직하실 수 있습니까. (힘 없는 웃음이 흘렀다. 저는 제 스스로의 마음조차 모르는데. 자신에게조차 솔직하지 못한데. 어떻게 당신은 이리도....)
당신께 답을 드릴 수 없으니, 답할 수 있는 말은 한 마디 뿐입니다.
...뜻대로 하세요.
서윤아:... ... (온몸이 돌덩이를 매단 듯 천근만근 무겁다. 심해로 가라앉아가는 기분이었다. 그런데도 생긋 미소지을 수 있었던 건 당신을 향한 사랑이, 저를 향한 당신의 배려와 이해가 부레가 되어 주어서겠지. 애초부터 화답은 기대하지 않았다. 당신이 저를 내치지 않은 것만으로도 감사한 일일 테다.) 매번 고집을 부려 송구할 따름입니다. 그저, 감사드립니다.
제가 너무 오랜 시간을 끈 것 같습니다. 이만 물러갈 테니, 깊은 잠을 주무시기를 바랍니다. (예를 갖추어 가벼이 인사했다.)
류이환:...감사해야 할 쪽은 이 쪽인 것을요. (제 이기심과 미련을 언제나 이해하고 받아주는 것은, 당신이 아닌가.)
... ...부인도 좋은 꿈 꾸시기를 바랍니다.
윤아는 고개를 숙이곤 막사 바깥으로 걸어나갑니다.
술 한 잔이 효용을 발휘하여 당신을 꿈 없는 잠으로 인도해 주기를.
명일 오후가 되고, 이환은 최소한의 호위병과 함께 해원국의 진영으로 향합니다.
만류하는 장군들과 병사가 있었으나 워낙 이환이 강경해 그 의지를 꺾을 수 없었습니다.
채 열이 안 되는 숫자로 언덕을 넘어 해원국의 진영에 도착하면, 입구를 지키고 있던 자들이 저들끼리 대화를 나누다 안으로 사람을 보냅니다.
곧 말을 세워두고 들어오라는 듯 입구가 열립니다.
류이환:...가지. (말에서 내려 천천히 열린 입구 안으로 들어간다.)
병사 하나의 안내를 받아 안으로 들어서는데, 어쩐지 병사들에게서 느껴지는 기류가 심상치 않습니다.
류이환:
듣기
기준치: |
65/32/13 |
굴림: |
5 |
판정결과: |
극단적 성공 |
전쟁 중인 병사들의 막사에서 으레 들릴 법한 앓는 소리나, 쉬는 시간을 틈타 떠드는 소리,
그러니까 말하자면, '사람이 낼 법한 소리'는 조금도 들리지 않습니다.
그마저도 이환, 당신이 곁을 지나가면 하나 같이 하던 일들을 모두 멈추고 미동도 없이 당신을 바라봅니다. SANc (1/1d2)
류이환:
SAN Roll
기준치: |
68/34/13 |
굴림: |
73 |
판정결과: |
실패 |
1
류이환:(막사 안을 가득 채운 적막. 생기라곤 하나도 느껴지지 않는 공간에서 문득 섬칫함이 밀려온다. 여긴... ...산자들의 공간이 맞는건가)
막사의 양옆에 해원국의 깃발이 걸려있는 것을 보아, 인아가 기거하는 막사인 모양이네요.
병사는 잠시 일행을 남겨두고 막사 안으로 들어갑니다.
그의 얼굴을 가까이서 보는 것은 얼마만이던가요.
윤아와 놀랄 만큼 흡사한 낯이지만... 순수한 듯 어리던 따스한 분위기는 온데간데없습니다.
오히려 창칼마냥 싸늘한 눈빛으로 이환과 운국의 병사들을 둘러보다가, 비소하며 입을 엽니다.
류이환:(잘못 본 것이 아니다. 정말로... 인아가.)
서인아:서신 하나를 믿고 정말 이곳까지 걸음하다니... 우둔한 왕을 둔 죄로 운국의 백성들만 고통받는군.
(이환의 눈은 거의 마주하지도 않은 채로 병사들을 향해 손짓한다.)
인아의 손짓에 무기를 든 해원국의 병사들이 일사불란하게 움직여 이환과 호위병들을 둘러쌉니다.
류이환:...약조를 어긴 것에 대한 대가를 치르러 왔을 뿐이오.
운국의 병사들 또한 무기를 꺼내지만, 턱도 없는 숫자입니다.
그들이 여기서 덤벼든다면 손도 써보지 못한 채 전멸당할 겁니다.
서인아:대가라 한들 적진의 막사까지 제발로 들어온단 것은 목숨을 내놓아도 아깝지 않다는 의미와 같겠지. (팔짱을 끼며 차갑게 당신을 응시한다.) 이제야 운국의 모든 것을 해원에게 내바칠 생각이 들었나.
류이환:(별다른 동요 없이 그저 인아를 바라본다.)
서인아:무기를 내려두고 투항하라. 그리하면 최소한 귀빈의 신분으로 대접할 테니.
류이환:....내 목숨은 아깝지 않소. 애초에 나라와 (약간의 간극, 잠시 말을 고르다가) 당신을 위해 바친 목숨이니.
그대의 분노가 나로부터 비롯되었다면 마땅히 그 대가를 치러야할터. 하지만 양 국의 백성들은 아무 잘못이 없는 것을 그대도 알고 있겠지. 전쟁이 계속되어 봤자 모두가 피해를 입을 뿐이오.
...그러니. (검을 뽑아 바닥에 내려두고 한 쪽 무릎을 꿇어 너를 바라본다.) 당신이 바라는대로 나를 내어줄테니... 부디 군사를 거두어주세요. 인아.
서인아:나를 위해 바친 목숨이라... ... (당신의 말을 되풀이하다, 입가가 비틀려 올라간다.) 스스로 되풀이해 보기에도 우스운 말이 아닙니까.
(한순간 혼인했던 시절의 존칭을 썼다가도 금세 표정을 굳힌다.) 우둔한 이를 왕으로 삼은 죄는 백성 전체가 짊어져야 할 업이니. 어찌 운국의 백성들에게 아무 죄가 없다고 할 수 있겠는가? (주변의 병사들에게 고갯짓을 한다.)
왕이 검을 버렸으니 병사들은 마땅히 따라야 하겠지요.
해원국의 병사들이 일사불란하게 무기들을 수거해갑니다.
서인아:(딱딱하고 장엄한 목소리로 명령을 내린다.) 내일 중으로 본국에 돌아갈 것이다. 내 명이 있기 전까지 진영을 유지하되, 운국의 동향을 주시해 그들이 선공할 경우 응수하는 정도로만 대응하라.
'운국의 왕께서 초대를 받아 해원국에 들릴 것이다' 라 전해두도록. 제 왕이 볼모로 잡힌 상황에 공격을 감행하는 정신 나간 군대가 있겠느냐마는... ... (당신을 잠시 내려다보고는, 고개를 휙 돌려 막사 안으로 돌아간다.)
명령을 끝으로 인아는 다시 막사 안으로 돌아가고, 무기를 잃은 이환과 병사들은 강제로 해원국 진영의 막사에 밀어 넣어집니다.
그마저도 다른 병사들은 한 막사에 밀어 넣어지지만, 이환은 대우인지 분리인지 다른 막사로 보내집니다.
방 안 탁자 위에는 갈기갈기 찢긴 운국의 깃발이 있으며, 깃발의 정중앙을 칼로 찍어두었습니다. SANc (0/1)
류이환:
SAN Roll
기준치: |
67/33/13 |
굴림: |
68 |
판정결과: |
실패 |
단순한 전쟁이 아닌, 인간이 인간에게 가질 수 있는 가장 큰 증오,
이유는 알지 못해도, 당신은 인아가 가진 서슬 퍼런 감정의 잔흔을 느낄 수 있습니다.
류이환:(제가 아는 인아는 강인하고 단단한 사람이었을지언정, 이렇게까지 강한 원과 분노를 품는 이가 아니었다.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건지...) .. ..인아....(네 이름을 입 속에서 되뇌인다.)
(..윤아는 잘 있을까. 역시 괜히 데려온 것이 아닌가. 막사 안에 앉아 시름에 잠긴다.)
어찌하여 이리 심해 같은 감정이 소용돌이치는지, 윤아는 어찌되었을지, 알 수 있는 것이 없습니다.
왕의 자리에 올라 가장 무력한 날인 듯만 싶습니다.
인아는 군대를 주둔시키고 제 부대를 이끌어 본국으로 귀환하며, 그 행렬에 당신 또한 함께합니다.
도주를 우려해 직접 말에 태우는 것이 아닌 마차를 제공하니, 조롱뿐인 말일지라도 '귀빈' 처럼 보이기는 합니다.
그마저도 전시 중인지라 일국의 왕의 대접치고는 초라하지만요.
마차 안에서 길고 긴 시간을 보내다, 어느 순간 행렬이 멎는 것을 느낍니다.
류이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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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5/32/1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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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정보다 일찍 돌아오셨습니다, 전하. 그런데, 혹 저 마차에는……?"
서인아:신경 쓸 것 없다. 돌아오던 중 귀빈을 만나 모셨으니, 귀빈의 병사들은 따로 거처를 마련해드리고 귀빈께는 궁에 방을 내어드리도록 하라.
해원국에 도착함과 동시에 그들의 승리를 알리고 멸시할 수도 있었을 것을,
정말로 '귀빈' 취급을 하고 있으니 영문 모를 일투성입니다.
류이환:... ...(알리지 않는건가. 이유가 무엇이지. 따로 만나 이야기를 하고 싶은걸지도...)
이환은 궁의 한편, 타국의 사신 등이 머무르는 별채로 안내됩니다.
휴식 같지 않은 불편한 휴식으로 시간을 때우니 어느새 해가 지고 날이 어두워집니다.
그에 맞추듯 바깥에서 궁인이 찾아들어 나긋한 목소리로 입을 엽니다.
류이환:... ...나를? (조금 의아한 듯한 목소리로 답했으나 이내 자리에서 일어서 밖으로 나선다. 이제 때가 된거겠지.)
궁인을 따라가는 길, 자연스레 궁의 모습이 눈에 들어옵니다.
느긋하고 운치 있는 분위기의 운국의 궁과는 달리, 화려한 장식과 강렬한 조각들로 해원국의 위용을 자랑한 듯한 꾸밈새입니다.
드나드는 사람으로 하여금 위축되게끔 만드는 분위기네요.
그중에서도 가장 안쪽, 입구부터 용의 조각으로 장식된 내전으로 들어서면 공기부터 다름을 실감합니다.
곧 인아가 기다리고 있다는 건물에 도착하면, 이렇다 할 경계도 없이 그저 호위병 한둘 정도만 입구에 서있습니다.
(안으로 천천히 걸음을 옮긴다.)
안으로 들어서자, 상 가득 음식들이 차려져 있는 것이 보입니다.
바닷가에 위치한 나라답게 운국에서는 구경하기 힘들었던 싱싱한 해산물들이 놓여있습니다.
그러나 그보다 이환의 눈길을 끄는 것은 역시 인아입니다.
그는 눈을 감은 채 자리에 앉아있다가, 인기척을 느끼고는 조용히 눈을 뜹니다.
전쟁터에서 마주쳤을 때보다는 한결 가라앉은 음성입니다. 말투도 과거와 같이 차분하네요.
서인아:앉으시지요. 식사를 하실 틈도 없었을 것 같은데. (앞자리에 손짓한다.)
류이환:...(잠시 망설이다가 맞은 편 자리에 앉는다.)
(무어라 말을 꺼내야 할까. 아니, 내가 먼저 말을 꺼낼 자격은 있을까.)
서인아:(말을 꺼내놓기는 했으나 정작 본인은 식사 생각이 없어 보인다. 음식에는 눈길조차 주지 않은 채, 생기 없는 붉은 눈이 오롯이 당신에게만 향했다.) 기분이 어떠십니까. 의지와 감정은 철저히 무시당한 채 적국에 팔리듯 끌려온 입장으로서 말입니다. 거부할 수도, 바꿀 수도 없는 상황에 놓여서...
그렇기에 더욱, 과거 당신과 함께 시간을 보냈던 인아를 그에게서 볼 수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당장 그를 구별할 수 있는 차이는 해원국의 왕이 되었음을 증명하는 눈가의 붉은 원怨 뿐입니다.
류이환:모든 것이 결국 저의 업으로 인해 일어난 일인데 누굴 탓하겠습니까.
(그래, 정말로...이 모든 것이 나의 업이자 죄이거늘. 감히 누구를.)
서인아:제가 되살아난 것도 그대의 업으로 인한 일일까요? (그러면서 제 앞에 놓인 술잔을 앞으로 민다.) 한 잔 채워주시지요. 왕에게 술을 대접받는 일, 흔치 않은 일이니 유흥이 되겠습니다.
류이환:제가 약조를 어겨 하늘께서 분노하셨나봅니다. (내민 술잔에 술을 따른다.)
서인아:... 과거 함께했던 시절을 기억하고는 계신지요? (작은 소음을 내며 술잔이 채워진다. 잔을 들어 입가에 가져다대나 입술을 축일 뿐이다.) 약조마저 전부 잊으셨을 줄 알았습니다.
류이환:...어찌 잊을 수 있겠습니까. (쓴 웃음이 입가에 머문다. 그래, 어떻게 잊을 수 있을까. 당신과 함께했던 시간을. 잊지 못해 당신을 닮은 이를 들이고, 그러면서도 차마 마음을 온전히 내어주지 못해 그의 마음에마저 상처를 입혀버린, 어리석은 나를.) 조금도 잊지 않았습니다.
서인아:조금도 잊지 않으셨다는 말치고는 행보가 딴판이십니다. 전날 전쟁터에서 스쳤을 때, 저를 따르려 하시던 그대를 붙잡는 이를 똑똑히 보았습니다. 저를 똑 닮았더군요. 어떻게 그런 이를 다시 찾아내셨는지... 운국의 백성들은 국모를 잃을 일이 없어 좋겠습니다. (끝에는 거의 비꼬는 듯한 말투다.)
류이환:... ...(그 말을 듣자 숨이 턱 막혀왔다. 보았구나. 그래. 보았겠지. 그리 가까운 거리였는데. 무어라 말을 할 수 있을지. 아니, 그 어떤 말도 그저 변명이겠지. 그저 고개를 숙인다.)
서인아:... 농입니다. 기껏 화려한 술상을 내왔는데 이리 말이 없으시니 흥취가 나지 않는군요. (자리에서 일어나 직접 술병을 쥐고 당신의 잔에 따른다. 자연히 몸이 가까워지고, 풍겨오는 향기는... 당신에게 직접 만들어 주었던 붉은 앵초의 향.)
류이환:...감히 무어라 말을 해야할지 떠오르지 않아 그렇습니다. (익숙한 향이 풍겨오자 그제야 고개를 든다. 붉은 앵초의 향. 그 무엇보다도 잊을래야 잊을 수 없는 향기에, 문득 울음이 차올라 황급히 눈을 가린다.)
서인아:(가까워진 거리에서 시선이 맞닿는다. 구름 같은 땅을 다스리는 주제에 바다를 닮은 푸른 눈... 시선을 빼앗길 수밖에 없었다. 어쩌면 이리 근거리에서 당신을 보고 싶어 일부러 친히 술병을 기울였을지도 모른다.) ... 이상하지요. 이 가슴 안에 남은 것은 당신을 향한 원怨뿐이라 여겼는데 어찌하여... (당신을 원하게 되는지.)
(뒤늦게 말을 돌린다.) 어찌하여 눈을 가리시는지요.
류이환:(다시는 볼 수 없을 것이라 여겨 체념하고 있었다. 전장에서 처음 당신을 마주했을 때도 믿기지 않았다. 홀로 해원국의 막사로 걸어들어갈 때는, 당신의 손 안에서 죽을 수 있으면 족하다 여겼다.)
(그런데 왜, 붉은 앵초의 향을 맡자 그제야, 다시 한 번 당신과 함께하고 싶다는, 주제 넘은 생각이 드는지...) 아닙니다. 그저... ...옛, 생각이 나서... (눈물을 삼키며 애써 웃는다. 눈가가 살짝 발갛게 물들었을까.)
서인아:과거를 회상하고 계십니까. (저도 모르게 한 손을 뻗어 불그스레하게 물든 눈가를 어루만진다. 여전히 원을 그린 눈가에는 생기가 없었으나, 당신을 담으면 담을수록 아련함과 애틋함이 밀물처럼 느릿하게 차올랐다.) 어떠한 과거인지요. 저희가 함께했던 그 순간입니까...?
류이환:...예. (어루만지는 손길에 가만히 눈을 감고 살짝 기댄다. 선명한 온기가, 다시금 당신이 살아있음을 느끼게 한다. 마주하면 마주할수록 차오르는 확신과, 그에 비례해 그리움이 몰아쳐서...) ...당신과 함께했던... 모든 순간입니다. (그리 읊조리는 음성은, 애정과 후회로 짙게 뒤섞여있었다.)
서인아:... 10년이 지났는데도 여전히 전부 기억하고 계십니까? (이름 모를 갈증이 해갈될까 싶어 손을 뻗었다. 허나 손끝에 당신의 살갗과, 온기와, 애정이 닿는 순간 갈증은 타들어가듯 심해져만 간다. 충동을 억눌러야만 한다. 왕으로서의 위엄을 지켜야 한다. 귀빈이라 포장했을 뿐 이이는 그저 한낱 포로일 뿐이다. 그러한데 어째서 터져나갈 듯 벅차 오는 이 마음을, 설레임인지 애정인지 증오인지 명명할 수 없는 감정을 진정시킬 수가 없는 것일까. 꼭 눈물이라도 날 것처럼 코끝이 시큰거려 오는 것인지.) 행복한 추억이었는지요. 다시 붙잡고픈 기억이었습니까?
류이환:어찌 잊을 수 있겠습니까. (몇 번이고, 몇 번이고 당신이 없는 시간 동안 당신과의 추억을 되새겼다. 그리하면 조금이라도 버틸 수 있을까 싶어. 당신과 닮은 이를 데려오면 조금 나아질 듯 싶었지만, 이는 크나큰 오산이었다. 같으면 같아서, 다르면 달라서 당신을 떠오르게 하는데, 어떻게 잊을 수 있을까.) 그 시간으로 돌아갈 수만 있다면, 저는 죽어도 여한이 없습니다. (의무와 미안함으로만 점철된 10년 이었다. 삶이 이리 고통스러운 것이라면, 차라리 죽어 당신의 곁으로 가는 것이 편하지 않을까, 생각하기를 수십번. 그럼에도 죽지 못한 것은 제게 달린 책임이 너무 무거운 탓이라.)
서인아:... 목숨을 중히 여기셔야지요. 한낱 사내도 아니고 일국의 왕 되신 이께서 이리 사랑에 목을 매면 어찌하십니까. (눈가를 쓸어내리던 손길이 당신의 긴 머리칼을 천천히 훑었다. 입 밖으로는 고지식하고 당연한 소리를 내어놓으나, 기실 당신의 대답이 기껍게만 다가왔다.)
류이환:사랑 앞에서는 직위도 신분도 소용 없어지지 않습니까. (제 머리칼을 흝는 손길에 잠시 시선을 주었다, 다시 당신의 눈을 바라본다. 선명하게 빛나는 붉은 눈동자. 영원히 잊을 수 없는 나의 붉음.) 죽음 앞에서도 연인에게 입을 맞추는 것이 인간인걸요. (그리 말하며 네 뺨을 가만 감싸잡는다.)
서인아:... ... 맞습니다. 저 또한, 경험해본 바 있었지요. (문득 옅게 웃었다. 되살아난 후 처음으로 짓는, 비웃음도 냉소도 아닌 진심에서 흘러나오는 얇은 꽃잎 같은 잔흔.) 그 이치를 가르쳐준 이가 바로... 제 눈 앞에 계시는군요. (손길을 거부하지 않았다. 오히려 고개가 조금 더 가까이 기울어진다. 적국의 왕이라는 지위와 자존심이 발목을 붙잡아 제 먼저 다가가진 못하여도 당신과 닿고파 절절이 끓어오르는 마음을 붙잡을 도리가 없어서.)
류이환:...적국에 잡혀온 볼모 주제에 이리 분수도 모르고 당신께 닿고자 하는 저처럼요. (그리 말하고는 네게 천천히 다가가 입을 맞춘다. 본래라면 하지 않을 일이었겠으나, 애달픈 마음에서 비롯되는 충동을 참을 수 없어 결국 너를 탐하고 만다. 어디까지 죄를 저지를 생각인지. 스스로를 책망하면서도...)
서인아:(밀어내지 않았다. 그럴 수도 없었다. 몰아치는 파도를 피할 수 없듯이. 발목에 찰랑거리는 물이 감기고, 치맛자락이 아래서부터 서서히 젖어온다. 아, 당신의 사랑이 빚어낸 바다에 빠져 버린 것만 같다.)
(부드럽게 섞이는 숨결이 얼마나 달콤하던지. 입맞춤 끝에 가까이 고개를 맞댄 채로 묻는 낯엔 끝내 눈물이 어른거렸다.) ... ... 여전히 저를 사랑하세요?
류이환:(지금 당장이라도 붙잡은 당신이 날아갈까 두려워 안은 손에 힘이 들어간다. 허상이 아님을 확인 받고 싶은 듯 당신의 숨을, 체온을, 실체를 느낀다. 몇 번이고 꿈에서 그리던 당신이 내 앞에 와 있어서, 그래서...)
... ...단 한 순간도 그렇지 않은 순간이 없었습니다. (그제야 뺨을 타고 흘러내리는 눈물은, 기쁨일지 고통일지.)
서인아:(슬픔과 기쁨과 비참함과 애틋함이 뒤섞인 물기가 눈가에 일렁거린다. 결국 저는 당신만을 원하고 또 원했다고 깨달아 버리고 말아서. 한 번의 입맞춤으로 10년간의 세월을 뛰어넘는다. 함께하였던 시간을 되새긴다. 고작 한 차례의 입맞춤으로도 머릿속이 아득해지는 듯하다.)
저 또한 마찬가지였습니다. 홀로되었던 그 7년간... ... (숨을 잃고 어둠에 매몰되었던 7년. 그 과거를 떠올린 순간, 마치 찬물을 끼얹은 듯 두 눈이 커진다.)
갑작스럽게 인아의 온몸이 얼어붙더니, 말을 멈추고 숨을 삼킵니다.
서인아:헉... (한때나마 빛이 깃들었던 눈이 다시 혼란에 잠긴다. 불에 데인 듯 당신의 품에서 멀어진다.)
류이환:
심리학
기준치: |
80/40/16 |
굴림: |
16 |
판정결과: |
극단적 성공 |
...왜 그러십니까? (네 눈이 혼란에 잠기는 것을 보고 당황한다.)
인아가 극도의 공포와 불안을 느끼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인아는 숨이 막힌 것처럼 제 목을 움켜쥐었다가, 환청을 들은 것처럼 귀를 틀어막고 주변을 둘러봅니다.
어떤 소리도 들리지 않고, 그의 주변에는 당신 외에 아무도 없는데 말이에요.
마치 당신의 앞에서 숨을 거두기 직전, 병증을 앓았던 때처럼.
서인아:아, -싫어. 싫어...! (비명을 지르며 머리를 감싸쥐고 덜덜 떤다.)
류이환:인아? (비명을 지르는 네게 당황하며 달려가 붙잡는다.) 왜 그러십니까. 인아!
서인아:이젠 그만, 제가 잘못했으니 제발... 제발 그만둬 주세요! (당신의 목소리도 알아듣지 못한 듯 좀체 진정하지 못한 채 알아들을 수 없는 소리만을 뇌까렸다.)
류이환:대체 무엇이 당신을... (입술을 깨문다. 잘못했다니? 이건 꼭, 그 때. 당신을 잃었을 때 같아서... 공포가 밀려온다. 당신을 다시 잃을지도 모른다는 공포가.) 제가 여기 있습니다. 인아. 제가 있어요. 저를 보세요. 괜찮습니다. 네? 아무도 없어요. 아무도....
그러기를 한참, 정신을 차린 듯한 인아가 당신을 팍 내칩니다.
당신을 응시하는 눈에 다시금 붉은 원망과 증오가 이글거리기 시작합니다.
직감합니다. 그가 당신에게 느끼는 배신감과 분노가 단순히 '자신과 나눈 약조를 어기고 다른 이를 만났기 때문' 만은 아님을.
류이환:(이상해. 이건....명백히 이상하다.)
(무언가가 그에게, 얽매여있는 듯한 느낌이...)
서인아:감히 해원의 왕에게 손을 대다니. 떨어지지 못하겠느냐! (언제 입맞춤을 나누고 다정한 손길을 건넸냐는 듯 한순간에 다시 싸늘한 태도로 돌아간다. 그러나 방금 보인 광증의 여파가 남았는지 손길이 여리게 떨린 채였다.)
류이환:... ...인아. (여리게 떨리는 손끝을 눈에 담는다. 당신의 바람이 아님을 안다. 방금 나눈 입맞춤이 거짓일리 없다. 느낄 수 있다. 그를 옥죄고, 붙잡아. 안식조차 누리게 하지 못한 것을 찾아내야만 한다. 그래야해.) ... 실례했습니다. (가볍게 목례하고는 한 발 물러난다. 지금은, 물러설 때다.)
당신이 알 수 없는 그의 시간 동안 그가 겪은 고통, 그것을 해갈할 수 없는 이상 이 원한을 풀 수도 없습니다.
그러나, 지금 당신이 무엇을 어떻게 알 수 있단 말입니까.
한참 거친 숨을 내쉬던 인아는 가까스로 여유를 되찾고는, 그림처럼 의자에 앉아 덤덤한 투로 말을 잇습니다.
서인아:전시 중에 적국의 왕을 귀빈으로 초대하다니, 있을 수 없는 일이지.
너 또한 짐작하고 있지 않았더냐. (익숙하게 비웃는다.) 이 촌극은 얼마 가지 않아 끝내고, 네 목을 잘라 해원국의 성문에 걸어둘 것이다.
그 전까지 남은 삶을 누리도록 하라. 이 궁 안에서라면 무얼 원하건 들어주도록 하지... (시선을 맞추지 않는다.) 그것이 한때 반려였던 자로서 네게 베풀 수 있는 마지막 은혜이자 공덕이니라.
류이환:... ...인아, '당신'의 손에 숨을 다할 수 있다면 그것으로 만족합니다. (그리 말하며 나직히 웃는다. 이는 진심이다. 하지만 내 숨을 거두는 것은 '당신'이어야만 한다.)
무얼 원하건, 이라 하셨습니까. 그렇다면 생의 마지막 남은 날까지. 반려로 있어주시겠습니까. (받아들여지지 않을 것임을 알면서도 그리 말한다.)
서인아:하찮기는. (만족한다는 말에 작게 숨을 내뱉으며 고개를 돌린다.) ... ... 다시 혼인이라도 올리자는 것이냐? 연인마냥 시답잖은 연기를 해 줄 수는 있으나 이미 너와 나의 관계는 끝난 지 오래다.
류이환:글쎄요. 그리해주실 수 있다면 더할 나위 없겠지요.
연기라 하여도 좋습니다. 곧 죽을 이의 소원 치고는 소박하지 않습니까.
서인아:웃기지도 않는 소리. 곧 죽을 왕과의 혼인 따위를 위해 해원의 국고를 쓸 이유는 없다.
정말 연기라도 원한다는 것이냐. 너의 곁에는 이미 나를 닮은 왕비가 있을 텐데, 무엇하러 마음에도 없는 연인 행세를 바라는지 통 모르겠구나. (거의 비워지지 않은 술잔을 들어 천천히 마신다.) ...... 그럼에도 바란다면 그리해드리지요.
류이환:...제가 사랑하는 이가 누구인지는 이미 아시지 않습니까. (그저 웃어보인다. 이 때문에 그리도 윤아에게 많은 상처를 주지 않았나. 허나 사람의 마음이란 쉽게 움직이지 않아서...)
...자비에 감사드립니다. (그리 말하며 가볍게 인사한다.) ...부인.
서인아:그렇다면 이제 의미없어질 마음은 버리고, 당신 곁에 있는 이에게나 시선을 두는 것이 더 나을 것으로 사료됩니다. (거절의 뜻을 돌려말하고는 있으나, 어쨌건 말투만큼은 연인에게 하듯 나름대로 부드러웠다.)
좋은 밤 되시길 바라겠습니다, ... ... 부군.
류이환:(...그리 할 수 있었다면 이미 그리했을텐데요. 꺼낼 수 없는 대답을 속으로 삼키며 쓰린 속을 달래기 위해 그저 웃어보인다.)
예, 좋은 밤 되시기를.
인아는 당신이 방에서 나갈 때까지 자리에서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이환은 별채의 곁에서 알 수 없는 소리를 듣습니다.
류이환:
듣기
기준치: |
65/32/13 |
굴림: |
4 |
판정결과: |
극단적 성공 |
제대로 된 의식이라기보다는 비명이나 울음 소리가 섞이는 걸 보아 마치 방언을 하고 있거나 광인이 울부짖고 있는 것 같기도 합니다.
이상할 정도로 섬뜩한 기시감. 당신의 정신 기저를 첨예하게 꿰뚫는 소리.
저 소리가 들리는 곳으로 가봐야겠다는 직감이 당신을 사로잡습니다.
도대체 당신이 저런 소리에 기시감을 느낄 이유가 무엇이란 말입니까?
류이환:... ...(저도 모르게 소리가 들려오는 곳으로 걸음을 옮긴다.)
나무 판자로 온통 막힌 문, 창호마다 빽빽하게 붙어있는 부적.
바깥으로부터 안을 지키는 건지, 안으로부터 바깥을 지키는 건지 모를 호위병들.
아, 당신은 이 광경이 익숙합니다. 운국에도 이런 곳이 한 번 있지 않았습니까.
도저히 인간이 내는 것이라곤 믿을 수 없을 정도로 고통스러운 비명과, 본인은 알지도 못한 것들을 떠들어대는 방언.
당신의 기억 속 가장 깊은 곳에 잠들어 있던 끔찍한 기억이 되살아나는 것만 같습니다. SANc (1/1d2)
류이환:
SAN Roll
기준치: |
66/33/13 |
굴림: |
99 |
판정결과: |
실패 |
1
류이환:(되살아나는 기억에 저도 모르게 발을 헛디뎌 넘어질 뻔 한다. 겨우 정신을 붙잡고 눈 앞의 광경을 바라본다. 이게 무슨 일이지. 저 불길하고 괴로운 음성. 나는 이미 들은 적이.... 아...)
촛불 하나 없이 어두운 방, 난장판이 된 내부에 누군가가 있습니다.
온통 머리를 풀어헤치고, 벽마다 알 수 없는 문자를 적어둔 그는 비명을 지르고 흐느끼다가도,
알 수 없는 것으로 인해 고통받는 것처럼 온 몸을 뒤틀고 바닥에 머리를 찧기도 합니다.
그는 뒤늦게 이환을 발견하고는 느리게 기어 이환에게 다가옵니다.
눈가에는 해원국의 왕처럼 붉은 자국이 남아있으나, 화장으로 칠한 것이 아닌 제 몸에 피를 내어 눈가에 바른 것마냥 덕지덕지 검붉습니다.
???: : ……인아, 인아냐? 인아야, 나는, 나를……. 나를 부디 용서해다오. 내가 다 잘못했다. 나라고 네가 미워서 그랬겠느냐, 살기 위해 그랬을 뿐이야. 그런데 왜 나는 안 된다는 거냐? 그분께서는 왜 너여야만 한다시는 거냐? 응?
아니다, 내가 다 잘못했다. 감히 내가 어찌 그분께……. 해원님께……. 아, 죽을 죄를 지었사옵니다. 부디 고면하여주소서…….
제가 무슨 말을 하는 건지, 상대가 누구인지, 자신이 누구인지조차 알지 못하는 것처럼 되는대로 떠들던 끝에는 실성한 이처럼 웃어제끼다가, 별안간 울음을 터뜨리며 다시 방의 구석으로 기어들어갑니다.
얼마 가지 않아 찢어지는 비명을 내기 시작하며 몸을 뒤틀어댑니다.
그 순간, 다급하게 안쪽으로 누군가 들어와 이환을 끌어냅니다.
궁인:여, 여기 들어가시면 안 됩니다! 분명 잠시 뒷간에 다녀올 테니 아무도 들이지 말라고 해두었는데, 분명…….
이환을 바깥으로 끌어내고는 단단히 문을 걸어잠근 채, 이환을 수상쩍은 눈으로 바라봅니다.
궁인:어, 어디까지 들으셨습니까? 전하께서 이 안의 일들은 모두 발설하는 것을 금지하셨으니, 함부로 떠들고 다니셨다간 혀가 잘리실지도 모릅니다!
눈을 가늘게 뜨고선 협박 아닌 협박을 하는 것이, 적당히 구슬린다면 원하는 정보를 얻어낼 수도 있을 것 같네요.
류이환:죄송합니다. 고통에 찬 비명이 들리기에 도움이 필요한 자인가 하고. 헌데...저 안의 사람은 누구입니까?
궁인:그런 것은... 아무리 전하께서 직접 초대한 귀빈이라 하여도 말씀드릴 수 없습니다.
류이환:안타까운 마음에 그럽니다. 비슷한 증세를 지닌 사람을 본 적이 있어...(거짓은 아니지) 도움을 드릴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말재주
기준치: |
65/32/13 |
굴림: |
44 |
판정결과: |
보통 성공 |
궁인:비슷한 분을요...? (안절부절 못하다가 결국 목소리를 낮추고 속닥인다.) 안에 있는 이는 본래 해원국의 왕이셨던 분으로, 현 전하의 사촌입니다. 바깥에는 죽은 것으로 알려졌으나 실상은 폐위되어 이곳에 갇혀있습니다.
어느 순간부터 광기에 휩싸여 방언을 하십니다. 환각과 환청을 보고 온몸엔 열이 들끓으시고요. 병자처럼 걷지도 못할 정도였다가, 또 어느 순간에는 장정 몇이 달라붙어도 이기지 못할 정도로 알 수 없는 힘이 솟기도 합니다.
류이환:... ...혹시 그 시기가 현 왕께서 돌아오신 시기와 일치합니까?
궁인:... 그것은 아닙니다. 그보다 몇 년 전, 선왕께서 승하하신 이후인데...
(그러다 정신을 차렸는지 갑자기 까무러치며 앞에 엎드린다.) 제, 제가 미쳤나 봅니다! 이 사실을 발설한 것이 전하의 귀에 들어가면 저를 가만히 두지 않으실 겁니다. 비밀은 꼭 지켜주셔야 합니다, 예?
류이환:예, 물론입니다. 어디에서도 말하지 않을테니 너무 염려마세요. (엎드린 궁인을 일으켜 세워준다.)
궁인: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주변에 다른 이가 없는지 몇 번이나 확인하고선 얼른 몸을 숨기려는 듯 문을 연다.) 그럼 저는 이만...
류이환:...예. 평안한 밤 되십시오. (가볍게 목례하고 자리를 떠나 침소로 돌아간다.)
처소로 돌아온 당신은 안쪽에 낯선 인기척이 있음을 알아차립니다.
이환에게 찾아올 손님이 있을 리도 없고, 그렇다고 인아가 당신과 다시 대화를 나누기 위해 찾아왔을 리도 없습니다.
혹 전시 중에 적국의 왕이 기거하는 곳을 알고 해원국에 충성을 다하기 위한 자객이 숨어든 것일지도 모르는 일입니다.
류이환:(잠시 호흡을 고르다가 천천히 음성을 낸다.) 누구냐. 모습을 보여라.
"……돌아오셨습니까. 일이라도 생기신 줄 알았나이다."
순간적으로 완전히 착각할 뻔했지만, 그는 당신에게 원한을 품고 있지도 않고, 적의를 드러내지도 않습니다.
다만 인아처럼 눈가에 새긴 붉은 원怨 의 자국,
그리고 그처럼 해원국의 복식으로 차려입은 모습 탓에 눈앞에 그를 두고도 기묘한 감각에 심장이 자맥질합니다.
류이환:... ..윤아? 여기 어떻게...(음성에 당황한 기색이 역력하다.) 모습은 왜 또 그렇습니까?
서윤아:아... 용서하소서. (얼른 겉옷을 벗어내린다.) 병사들과 같은 막사에 갇혀 있다 보니 전하의 소식도 닿지 않고, 제가 할 수 있는 일이 따로 없을까 하여... 분과 옷가지를 몰래 가져와 해원국의 전하 행세를 하며 궁 안쪽을 잠시 돌아보았나이다.
얼마 안 가서 그분께 들켜 이곳으로 내쫓겼지만요. (머쓱하게 미소한다.) 전하를 뵙게 되었으니 차라리 이 편이 더 낫네요.
그리 말하는 윤아는 평소보다 차분하고, 복잡한 생각을 하는듯 가라앉아 있습니다.
차림새를 보아하니 이 방으로 보내진 지도 얼마 되지 않은 것 같네요.
류이환:그리했다가 큰일이라도 나면 어찌하려고 했습니까!... (네게 다가가 걱정스러운 말을 하며 어깨를 감싸 잡는다.) 아무 일도 없어서 다행입니다. (안도한 듯 한숨을 쉰다. 저를 사칭하였다고 큰 징벌이라도 내리지 않을까 했는데, 이 곳으로 내쫓긴 것이 다행인가.)
...많이 걱정하였나 보군요. 염려하게 만들어 미안합니다. 별다른 일은 없었으니, 괜찮습니다.
서윤아:송구합니다. 저도 해원국의 전하와 마주쳤을 때는 그대로 죽는 것이 아닐까 싶었습니다. 허나 어째서인지 저를 보시고도 별 말 없이 보내주시더군요.
윤아는 잠시 멍하니 허공을 바라보다, 마치 전시 상황이 되기 전, 운국에서처럼 당신에게 웃으며 다가옵니다.
서윤아:전하. 오늘 밤은... 잠시 제게 시간을 내어주시겠습니까.
류이환:...물론입니다. 당신이 원한다면, 기꺼이.
서윤아:... 막사에서 그리 갈라진 후로 많이 걱정했습니다. 어디 다치신 데는 없으신지요?
류이환:예, 다행히 별 일은 없었습니다. 약조한대로 귀빈으로 대우해주더군요.
서윤아:(안도의 한숨을 내쉰다.) 다행입니다. 무기를 버리라 명령하기에 혹여 해를 끼치지는 않을까 싶었는데... 정말로 귀빈 대접을 해 주시다니, 그분의 생각을... 잘 모르겠습니다.
(괜히 소맷자락만 만지작거렸다. 의도치 않게 저의 마음을 고백한 이후 당신을 이전처럼 보기가 조금 부끄러웠다. 게다가 왕이 적국으로 끌려간 상황이 상황이니만큼 저의 사소한 마음을 이야기할 때가 아니기도 하였다. 그러니... 그저 이렇게 대화를 나누며 시간을 보낼 수만 있다면, 그걸로 만족해야만 한다. 제 스스로에게 되뇌였다.)
(조심스럽게 물었다.) ... 폐하께선 그분을 여전히 사랑하시나요?
류이환:잘은 모르겠습니다만... 적어도 한 방향으로 마음이 치우처져 있지 않은 것은 확실합니다. (그건 아마도 인아에게 달라붙어있는 원 때문이겠지.) 단지 지금은 해원국에 와 있으니, 그의 뜻을 따를 수 밖에요.
... ....(뒤이은 질문에는 대답하지 않고 그저 쓰게 웃었다. 당신의 마음을 알기 전이라면 모를까. 알고 있는 한, 어떻게 답할 수 있겠나. 더군다나 그와 같은 얼굴을 지니고 있는 당신에게...)
서윤아:... (침묵과 쓴웃음이 곧 대답이 된다. 애초에 묻기 전부터 어떤 답이 돌아올지 알고 있지 않았나.) 죄송합니다, 곤란한 질문을 드려서...
(이대로 물러나는 것이 맞겠지. 어찌하여 사랑받는 이와 같은 얼굴을 지니고 태어나 같은 마음은 받을 수 없는 운명을 타고난 것일까. 하지만 이미 품은 연심을 죽이는 방법은 어떻게 배워야만 할까.)
류이환:...아닙니다. (이 말에 대답하지 못하는 내 자신이 한심했다. 왜 마음 하나 정리하지 못해서 이렇게 되어버린걸까. 차라리 약조를 끝까지 지켰더라면, 그랬다면 당신도 그도 상처받지 않았을텐데...)
...고생만 시키는 것 같아 미안하군요. (네 손을 조심스레 잡고 시선을 땅으로 향한다. 저로 인해 적국까지 오게 된 당신을 어찌할까.)
서윤아:...... 폐하께서 사과하실 이유는 없습니다. 전쟁터에도 이 해원의 땅에도, 따라오겠다고 고집을 부린 것은 다름 아닌 저이니까요.
단지 저는... (단 하루, 단 오늘 밤만큼은 저를 사랑해주실 수 없겠습니까? 물음이 차마 입 밖으로 빠져나가지 못하고 맴돌았다. 이미 당신은 너무 많은 짐을 지고 있는 것을 알기에. 너무 많은 고뇌와 고통을 이고 있음을, 3년간 함께한 비로서 잘 알고 있었다.)
... 전하, 한 번만 저를 끌어안아 주시겠습니까? (간구하고픈 진심을 다른 핑계로 다듬고 바꾸어 내놓는다.)
류이환:...허나 결국 그 모든 것의 이유는 결국... (저 때문이 아니었습니까. 역시 당신을 데려오지 말았어야했다. 당신을 받아들이지 않았다면, 끝내 내쳤다면. 지금 이 상황은 일어나지 않았을텐데. 자책은 더욱 깊어져만 간다. 이미 일어난 일을 돌이킬 수도 없으니, 그저 후회할 뿐이다.)
... ....예. (그리 말하며 당신을 가만 끌어안는다. 직전까지 당신을 닮은 그에게, 제가 사랑하는 이에게, 반려로 여겨달라 말했던 스스로의 행동에서 눈을 돌린다. 어리석은 인간. 어찌하여 이렇게나...같은 실수를 반복하는지.)
서윤아:(당신의 너른 어깨에 고개를 묻은 채 눈을 내리감았다. 이것으로 만족해야만 한다. 이것으로 끝이어야만 했다.) ... 감사합니다, 전하.
(숨을 한 번 깊이 들이켜고는 먼저 팔을 풀고 고개숙여 인사한다.) 이만 물러가보겠습니다.
류이환:... ...(잠시 망설인다. 여기서 손을 뻗으면 안된다. 참아야한다. 하지만... ...이 행동이 어쩌면 당신에게 더 상처가 될지도 모른다. 마음을 주지 않으면서 이리 행동하는 것은 이기적이라 말할지도 모른다. 허나, 곧 죽을 목숨. 당신이 조금이라도 더 따듯한 기억을 많이 가져갔으면 했다.) ...
부인.
...오늘 밤은 여기서 머물다 가시는게 어떻겠습니까.
서윤아:...! (제가 방금 들은 말이 진짜인지 믿기지 않아, 크게 뜨인 눈이 몇 차례 깜박거렸다. 축 처져 있던 시선이 다시 천천히 올라갔다. 맞닿을 즈음에는 구름 같은 희망이 희미하게 아른거린다.) 정말... ... 정말 그리해도 되겠습니까?
류이환:...예. (함께하는 밤이 앞으로 얼마 남지 않았으니, 당신께 조금이라도 정성을 다하고 싶다. 비록 당신에게 있어 상처가 된다 할지라도. 이 역시 내 이기심이겠지.) 홀로 있기에는 너무 두려운 밤이 아닙니까.
서윤아:(당신의 다정한 태도가 어찌나 따스한지. 눈이 봄을 맞이해 녹을 때 이토록 기쁘게 사그라들지 않았을까 싶을 정도였다.) 맞아요, 실은... 머나먼 타국의 땅에서 어찌 잠에 들어야 하는지 고민하고 있었습니다. 내치지 않아 주셔서, 붙잡아주셔서... ... 말로 할 수 없이 기쁩니다, 전하.
류이환:(기쁘다. 그럴까. 당신에게 진짜 기쁠까. 진심으로 당신에게 기쁜 밤이 될 수 있을까. 그럴 수만 있다면 더는 바랄게 없다.) ...비록 둘 뿐일지라도 하나 보다는 나으리라 생각합니다. 그러니, 곁에 있어주시지요. (어쩌면 이는, 당신 뿐 아니라 나에게도 하는 말)
서윤아:함께 있겠습니다. (날이 밝고, 또 그 다음 밤이 오고, 또 다음의 날이 올 때까지 쭉 함께할 수 있다면... 가슴 속으로만 빚어낼 기약 없는 희망이다. 볼모 신세론 당장 내일 목숨이 위태로울 지경이니 택도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홀로는 버텨낼 수 없는 밤이라도 전하와 함께라면 무엇이든 이겨낼 수 있을 것만 같아요.
류이환:...예. 저도 그렇습니다. (이는 거짓이 아니었다. 당신이 없었다면 아마 저는 일찌감치 인아의 곁으로 떠났을지 모른다. 언제나 밝게 웃어보이며, 3년이라는 시간 동안 저를 굳건하게 지지해주었던 사람. 진심을 돌려주지 못해도 변함 없이 제 곁에 남아주었단 사람. 당신에게 받은 은혜가 이리 크고 깊은데... 어찌 진실이 아니겠는가.) 당신이 계셨기에, 이제껏 버텨올 수 있었습니다.
서윤아:과분한 칭찬이십니다. 그래도... 제가 전하의 심신과 정무를 보는 데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었다면 보람찬 일입니다. (앞으로도 함께라는 수식어가 떨어지지 않기를... 폭풍 앞에 등이 꺼지지 않기를 바라는 것과 다를 바 없음을 알면서도 이름 모를 신에게 기도를 올린다.)
마음의 갈피를 잡을 수 없이 흔들리더라도...
이 밤이 무겁더라도 홀로 아닌 함께라면 버텨낼 수 있을 것이라 믿으면서.
별채에서 지낸 것은 하루 뿐이나, 막연하게 시간이 흐르니 마치 죽을 날만을 기다리는 축생이 된 것 같아 기분이 가라앉은 채 영 떠오르지 않습니다.
윤아는 어쩐 일인지 잠을 설친 것처럼 깨어나지 못하니 달리 대화를 나눌 상대도 없고요.
윤아를 깨워 잠을 방해하느니 차라리 잠깐 나가 산보나 즐기고 오는 게 나을 지도 모르겠습니다.
류이환:... (왜 일어나지 못하지? 몸에 이상이라도 생긴 것은 아니겠지. 불안한 마음을 삼키며 산보하러 밖으로 향한다.)
별채 바깥으로 나서면, 옆의 길을 따라 길게 난 화단이 보입니다.
여태까지는 정신이 없어 눈에 들어오지 않았던 것 같네요.
아니, 그보다 그 화단이 눈에 띈 건 그 길을 따라 인아가 걷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는 느린 걸음으로 바람을 쐬다가, 당신을 발견하고는 멈춰섭니다.
서인아:... 간밤에는 푹 주무셨는지요. (단조로운 안부인사를 건넨다.)
류이환:.. ...(너를 마주할 것이라 예상하지 못한 탓에 표정관리를 하지 못해, 안면에 당황함과 반가움이 고스란히 묻어난다.) 예. 다행히.. ...부인도 간밤은 평안하셨습니까.
무료하신 거라면 따라오시겠습니까. 구경 정도는 시켜드릴 수 있으니까요. (화단을 향해 살짝 고갯짓한다.)
류이환:...허락하신다면. (가볍게 목례하고 네 곁으로 걸어가 선다.) 화단 산책을 좋아하십니까. (예전의 너는, 좋아했던가.)
서인아:... 좋아합니다. 꽃의 향기를 맡고 있자면 어느 향수를 만들지, 그 향수는 어떤 상황에 어울릴지 생각들이 떠올랐거든요.
길은 언덕을 따라 미로 같은 정원으로 이어집니다.
화단마다 색색의 꽃이 심어져 있으며, 정원의 중앙에는 앵초가 한가득 심어져 있습니다.
운국에서 지낼 적에도 꽃들을 좋아하는 인아를 위해 정원을 앵초로 가득 채우곤 했었죠.
언덕 위로 올라선 뒤에는 궁의 전경 일부가 눈에 들어옵니다.
서인아:그대와 혼인해 함께 살았을 적에 향수를 종종 만들어드렸던 것이 기억납니다. (손끝으로 꽃송이를 스친다.) ... 병이나마 아직 갖고 계시는지요?
류이환:...물론입니다. 그대가 너무 그리워 견디지 못할 때면 꺼내어 뿌려보곤 했지요. 세월이 무색해 지금은 전부 흩어졌습니다만... 어찌 당신이 주신 것을 버리겠습니까?
서인아:... ... (꽃을 한 송이 툭 꺾었다. 눈을 감고 향을 맡는다.) 저는 이 향을 가장 좋아합니다. 늦가을의 바람처럼 처연하면서도 끝은 단아한 듯 달콤한 향을 풍기지요.
(그리고는 당신에게 꽃을 내민다.) 해원과 운국의 정원을 비교해보자면 어느 쪽이 더 아름다운 것 같습니까? 이 사사로운 대답 하나로 그대의 처우를 결정하지는 않을 테니 편히 말해보세요.
류이환:그러십니까. ...그런 점은 그대로시군요. (당신이 당신이라는 것을, 이런 사소한 점에서 문득 깨닫게 된다. 꽃을 좋아하는 것, 향수의 이야기를 하는 것, 앵초와 잘 어울린다는 것...)
아름다움이란 주관적인 가치이죠. 저는 보는 눈이 없어 잘 알지는 못하나... (내밀어진 꽃을 받아든다.) 감정이란 감상 외에도 기억에서부터 유래하는 것. 당신과의 기억이 어려있는 곳을, 어찌 고르지 않겠습니까. (함께 해원국의 정원을 거닐던 때를 떠올린다. 앵초꽃밭 한가운데에서 웃던 당신은, 무척 아름다웠는데.)
서인아:(차분히 가라앉은 눈가에는 여전히 붉은 칠이 선명하다.) ... 아주 잘 안다는 듯 말씀하시는군요. 하긴, 전부 기억한다고 하셨던가요... 그 향기나마 품고 가시지요.
오늘 저녁, 축하 연회를 열 것입니다. 그곳에서 그대의 목을 베어 해원국의 승리를 알리고, 날이 밝는 대로 출정하여 운국의 궁을 차지할 심산입니다. (미련 없는 듯 단조로운 투로 말하지만 후련해 보이진 않는다.)
류이환:...백성들은 죄가 없으니 부디 편히 지내게 해주시지요. 모든 죄는 저에게 있으니, 저의 목을 베는 것으로 그대의 원이 풀리기를 바랄 뿐입니다.
...마지막이나마 당신의 향을, 온기를 품고 갈 수 있는데. 어찌 슬퍼하겠습니까. 당신이 죽은 이후 제 삶은 살아도 사는 것이 아니었으니. (그저 나직히 웃어보인다.)
서인아:글쎄요. 모든 것은 순리대로 돌아가야만 합니다. 그래야만 모든 업이 제자리를 찾을 수 있을 것입니다. (딱딱히 되뇌이는 투는 자기 자신의 의견을 말하기보다는, 어디선가 듣고 배운 듯한 모습이다.) 그때 비로소 저의 원도 풀어질 수 있겠지요.
... 살려달라고 빌거나, 죽고 싶지 않다며 조건들을 들이밀 줄 알았는데. 목숨이 아깝지도 않으신 모양이군요. 그토록 저를 사랑하셨습니까?
류이환:예. 그토록 사랑하였습니다. 10년이라는 세월 동안 당신을 그리고, 잊지 못하고, 끝내는 당신을 닮은 이를 데려올 정도로.... ...어리석을만큼. 사랑했지요.
그러니, 그대를 위해 죽는 것은 조금도 두렵거나 슬프지 않습니다. 다만 하나 여쭈고 싶을 뿐입니다. 그 순리라는 것이 무엇입니까? (당신의 의견인가? 아니. 아니다. 당신은 자신의 뜻을 말할 때 그런 표정을 짓지 않는다.)
서인아:그대의 말대로, 참으로 어리석습니다. 사랑 앞에 순순히 창칼을 내려두고 사지로 걸어들어오고, 목이 베이는 순간까지 반항 하나 없는 왕이라니.
... 설명한들 이해하실 수 있겠습니까? 그저, 해원국은 원怨을 잊지 않는다는 사실만을 똑똑히 기억하시지요. 그 사실은 죽어서도 달라지지 않습니다.
이야기를 하며 인아는 어딘가를 멍하니 응시합니다.
류이환:원이라 하셨습니까. (어디를 바라보는 거지? 당신의 시선을 따라간다.) 그렇다면 그대의 원은 무엇입니까.
서인아:... 그대가 제게 한 짓을 잘 떠올려 보세요. (일축한다.)
류이환:
관찰력
기준치: |
65/32/13 |
굴림: |
97 |
판정결과: |
실패 |
관찰력
기준치: |
65/32/13 |
굴림: |
42 |
판정결과: |
보통 성공 |
인아의 시선 저편, 내전의 옆쪽에 위치한 호수가 있는 정원이 보입니다.
내전 옆을 드나들 때는 건물과 나무들로 교묘하게 가려져 있어 알지 못했는데, 꽤 큰 규모의 호수네요.
그런데 궁 안에 저런 규모의 호수를 메꾸지 않고 두는 이유가 뭘까요?
류이환:..약조를 어긴 일을 말씀하시는겁니까?
서인아:... ... 이 이상 대답할 가치를 느끼지 못하겠군요. (그리곤 당신의 시선을 차단하듯 옷깃을 끌어당긴다.)
무슨 일이 있건 간에 저쪽으로는 발 들일 생각도 하지 마시길 바랍니다.
류이환:제가 약조를 어기지 않았다면... (그러나 말을 채 맺기도 전에 끌어당겨진다.) ...그저 호수가 아닌지요.
출입하지 않아야하는 이유라도 있습니까.
서인아:모든 것을 보려 하면 아무것도 얻을 수 없습니다. (고요한 음성이 떨어진다.) 단지 그것만을 기억하세요.
... (옷깃을 놓아주곤 몸을 돌린다.) 오늘 밤, 연회에서 다시 만나죠.
류이환:...모든 것을 보려 하면 아무것도... ...(무슨 뜻일까.)
...예. 연회에서 뵙겠습니다.
아직 밤까지는 시간이 남았으니 이환도 이만 처소로 돌아갑시다.
이환이 가까이 다가가자 병사들이 경계를 바짝 세웁니다.
병사: 여긴 어쩐 용무십니까? 전하 외에는 아무도 출입할 수 없습니다.
류이환:... ...호수가 있길래 구경이나 하려 했습니다만, 이리 삼엄하게 경비를 서는 이유라도 있으십니까?
병사: 이곳은 평범한 호수가 아닙니다. 구경할 만한 곳도 아니니 당장 돌아가십시오.
막는 이유를 이해하지 못하겠습니다만...
병사: 돌아가십시오. (딱딱히 한 마디만 되풀이한다.)
류이환:(더 얻을 수 있는 정보는 없나... 가볍게 목례하고 자리를 떠난다.)
처소로 돌아오자, 윤아가 자리에 앉아 창밖을 바라보고 있습니다.
이환이 잠시 산책을 다녀온 사이 잠에서 깨어난 모양이네요.
류이환:아, 깨어있으셨군요. (다가간다.) 몸은 괜찮으십니까.
윤아는 당신을 보고는 반가운 얼굴로 자리에서 일어나려다, 곧 표정을 갈무리한 뒤 시선을 피합니다.
서윤아:... 해원국의 전하를 만나고 오셨는지요.
류이환:우연히 마주쳤습니다만... 어찌 아셨습니까?
서윤아:그저 짐작이었습니다. (고개를 살풋 내젓고는) ... 전하, 그분이 전하께 가진 원怨이 무엇인지 이제는 아시나이까.
류이환:...정확히는 모르겠습니다. 짐작할 뿐입니다. 무엇보다... ...본래 알던 그 사람이 아닌 것 같아.
서윤아:... 그렇겠지요. 저 또한 여러모로 생각해 보았지만... 그리고, 직접 여쭤보아도 답은 들을 수 없었지만... (비 내리는 거리마냥 유달리 가라앉은 분위기다.)
품에서 꺼내 내미는 것은... 은빛 단도입니다.
칼날이 창틈을 넘어오는 빛을 받아 반짝거렸습니다.
서윤아:전하. ... ... 운국과 전하를 위해, 저의 목숨을 거둬주시옵소서.
(들은 말을 이해할 수가 없었다. 그저 받아들일 수 없어 심각하게 느껴지지도 않을 정도로) ...못들은 것으로 하겠습니다.
서윤아:부디 들어주세요. (자세를 고치지 않은 채 굳건하게 말 잇는다.) 궁에 갇힌 몸이라 하여 듣는 귀가 없는 것도 아니며, 전하께서 저를 보시는 눈빛을 모르는 천치도 아닙니다. 전하의 앞에서 저는 저만으로 존재할 수 없다는 것, 저를 다른 이와 겹쳐보시는 것. ……이미 알고 있습니다.
그 때문에 저를 들이셨다는 것도요.
제가 닮은 분이 해원국의 새로운 왕이라는 것도...
그래서 저는, 저와 혼인한 전하에게 그분이 원을 품고 전쟁을 일으켰다 추측하였습니다. 전날 밤 인아 님께 저의 목숨으로 원을 풀어달라 말씀드렸으나 윤허해주지 않으셨습니다. 아마도, 진정한 복수가 아니라 여기셨기 때문이겠지요.
... ... 그러니 전하.
전하와 운국을 위해, 전하의 손으로 제 목숨을 거두소서.
이 책임은 온전히 저의 것입니다. 당신과 혼인하기로 한 것도, 약조를 깨어 원을 쌓게 한 것도, 적국에 끌려온 부덕한 왕이 된 것도. 전부.
그대께서 말하신 것을 부정하지는 않겠습니다. 예, 그리 해서는 안되는 것을 알지만. 그리했습니다. 그대는 제게 있어 오롯이 그대가 아니라, 사랑하는 이의 흔적이었지요. 제가 저지를 과오와 잘못을 합리화할 생각은 없습니다. 그래서도 안되고요.
하지만 그렇기에 더욱 이 업을 해소하는 것이 그대가 되어서는 안됩니다. 그대 역시 저의 어리석음에 휘말린 피해자일 뿐이거늘, 어찌하여 목숨을 내놓으려 하십니까.
목숨을 내놓아도 제가 내놓을 것이고, 괴로움을 당한다 해도 온전히 제 몫입니다. 다시는 그런 말, 하지 마세요.
서윤아:아뇨! (목소리가 커진다. 거의 애원하다시피 간절하게 말했다.) 제가, 저만 사라진다면... 전하께옵선 사랑하는 옛 반려를 다시 찾으실 것이며, 해원국과 운국은 화합하여 무의미한 전쟁 또한 일어나지 않을 것입니다. (이미 모든 결정을 내린 듯 눈빛은 망설임 없이 결연했다.) 통촉하여 주시옵소서, 전하. 이대로 가다간 운국은 전하를 잃고 말 것입니다. 태양을 잃은 나라가 어찌 바로 설 수 있겠나이까?
류이환:약조를 어긴 대가는 제가 치러야 합니다. 그대의 목숨이 어찌 원의 대가가 될 수 있단 말입니까? 그대는 애초에 저의 어리석음으로 희생된 자일 뿐인 것을. 빛을 잃은 태양은 필요치 않습니다. 저는 애초에 자격을 잃었습니다.
서윤아:... ... 사랑하는 이가 희생되는 것을 어찌 두 눈으로 지켜보기만 할 수 있단 말입니까?! (당신은 자신이 아닌 인아를 사랑한다. 그러니 자신이 죽는 게 차라리 나았다. 당신을 위한다고 하면서, 당신을 아프게 하는 선택을 강요하고 있구나. 그 사실을 깨닫고는 고개를 푹 숙인다.) 저는, 어찌 살아가라고...
류이환:...그렇다 하여 자신을 버리지 마세요. (윤아의 손을 잡아준다. 바라보는 눈빛은 깊고 진실했다.)
당신은 저를 잃고도 살아갈 수 있는 사람임을 압니다. 비록 그를 닮았다는 이유로 왕비가 되었으나 누구보다 현명하게 저를 도와 3년 간 나라를 이끌지 않았습니까. 그대의 자질과 능력은 제가 아닌 그대 스스로의 것이지 않습니까.
...마음은 시간이 지나면 흐려집니다. 기억도 한때겠지요. 그러니 너무 염려마세요.
서윤아:어찌 그러십니까. 너무하세요, 전하. 너무하십니다. (저를 죽여달라 요청할 때는 올곧기만 하던 목소리가 그제야 이지러진다. 눈가가 붉어지는가 싶더니 삽시간에 뺨을 타고 눈물이 흘렀다.) 십 년이 지난 지금, 전하께서는 인아 님을 잊으셨습니까? 그분을 향한 마음이 흐려지셨습니까? 제 마음과 기억이 흐려지리라고 어찌 단언하세요.
(다시금 단도를 당신의 손에 쥐여준다.) ... 한 번만 찌르면 끝입니다. 제 목숨으로 운국을 부지하세요. 네...?
류이환:...그럴 수 없습니다. 윤아. 이는 당신의 부군이 아니라 왕으로서 하는 말입니다.
한 개인으로서, 나라의 지도자로서, 이 사태에 대한 책임을 지는 것은 저여야합니다.
이는 허락할 수 없습니다. (쥔 단도를 바닥에 내려둔다.) 그대 역시 나의 반려이기 이전에 나의 국민.
...어명입니다. 물러나세요.
서윤아:(스스로도, 이 방법이 근본적으로 해결책이 될 수 없을 거라고 여기고는 있었다. 하지만 실날같은 희망이라도 존재한다면 잡아보아야 하지 않겠는가. 미력한 이로서는 사랑하는 이를 위하여 목숨밖에 내놓을 수 없었으므로.)
... ... 전하... (결국 고개를 떨군다.)
한참을 침묵하던 윤아는 잠긴 목소리로 입을 엽니다.
서윤아:전하, 전날 밤 제가 해원국의 궁을 돌아보았다 한 일을 기억하십니까. 이곳은, 해원국은……. 그 왕은, 운국과는 다릅니다. 저로서는 이해할 수 없고, 또 이해해서는 안 되는 이야기들뿐이었나이다. 전하께서 어떤 길을 걸으려 하실지, 이 끝에 무엇이 있을지 알 수 없으나…...
이곳 별채를 나서 길을 따라 걷다보면 꺾인 채 드리워진 소나무 아래 작은 장서각이 있습니다. 그 안에 해원국에 관한 비서祕書 들이 보관되어 있나이다.
부디 몸조심하소서. 이 일이 제가 운국과 전하의 신하로서 전하께 드릴 수 있는 마지막 도움이 되지 않기를 바랄 뿐입니다……
그리 말하며 윤아는 품 안에서 종이조각을 꺼내어 건넵니다.
류이환:... ...(종이를 받아 든다.) 운국의 왕비로서 몸 조심하시지 않고요. (나직히 한숨을 쉰다. 그러나 책망이라기보다는 걱정하는 투였다.)
서윤아:어차피 바치기로 결심한 목숨이니, 최대한 운국에 도움이 될 만한 것을 찾고 싶었습니다.
해원서는 해원국의 건국 신화에 관련된 이야기 같습니다.
해원국의 왕이 왕이자 사제의 역할을 겸하고 있었다니, 해원국과 좋지는 않더라도 그렇게 오래 맞대고 살았으면서도 듣지 못했던 이야기입니다.
류이환:(왕이자 사제라니... 이런 이야기는 인아에게도 듣지 못했었는데.)
류이환:그대가 알려준 곳으로 가봐야겠습니다. (자리에서 일어선다.) ...몸 조심하고 계세요. (염려의 말을 마지막으로 건넨다.)
류이환:(자리를 떠나 윤아가 일러준 곳으로 향한다.)
별채를 나와 걸으니, 꺾인 채 드리워진 소나무 아래 있는 작은 건물이 보입니다.
입구에는 호위병 둘이 자리를 지키고 있고, 도문원濤文院 이라 적힌 것을 보아하니 장서각인 모양입니다.
이환, 당신은 허가를 받지 못했으니 안쪽으로 들어가기 위해서는 특별한 방법이 필요하겠네요.
은밀행동, 대인관계 판정에 성공하거나 적절한 rp가 가능합니다.
은밀행동
기준치: |
45/22/9 |
굴림: |
51 |
판정결과: |
실패 |
(행운 6 깎습니다.)
이환은 무예를 배우며 익혔던 은신 기술을 활용하여 병사들의 눈에 띄지 않고 장서각 안으로 들어갑니다.
안쪽으로 들어서니 가라앉은 서책의 냄새들이 코끝을 간질입니다.
관리가 잘 되고 있는 건지 먼지 한 톨 없이 깨끗하며, 그리 크지 않은 규모 덕에 내부가 한눈에 들어옵니다.
다른 장서각과는 별개로 위치해 있는 것을 보니 특별히 관리되는 서책이나 기록들이 모여있는 것 같습니다.
여섯 개의 책장이 2열로 세 개씩 늘어서 있습니다.
그 중, 당신은 어쩐지 낯익은
표식
을 발견합니다.
운국에서 서책을 정리할 때에는 특별히 다섯 권마다 책을 조금 빼두고, 그 사이 확인이 필요하거나 중요한 책은 거꾸로 뒤집어두는 규칙이 있습니다.
그런데, 해원국의 장서각도 그런 식으로 정리되어 있기라도 한 걸까요?
하지만, 모든 책장이 그런 식으로 정리되어 있는 것은 아닙니다.
두 번째, 네 번째, 다섯 번째 책장이 그런 식으로 정리되어 있습니다.
누군가 먼저 이곳에 다녀가, 당신을 도우기 위해 표식을 남겨둔 걸까요?
류이환:....(윤아인가. 그럴만한 이는 윤아 밖에 없으니...)
(작게 한숨을 쉬며 책장을 살펴보자. 왜 그렇게 몸을 안챙기는지)
종교적인 서책이나 기록들이 모여있는 것 같습니다.
그러고 보니 해원국은 자체적인 종교를 믿으나, 종교적으로는 상당히 폐쇄적인 탓에 왕과 귀족, 사제들이 아닌 이상 그 상세한 교리를 알지 못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죠.
이곳에서 신을 알고 있다는 건 일종의 특권입니다.
그렇기에 이환, 당신 또한 적국의 세자로서 그들에 관해 알아갈 때에도 그들의 종교에 관해서는 자세히 알지 못했고요.
세 번째 줄에 책 하나가 거꾸로 뒤집혀 있습니다.
류이환:
자료조사
기준치: |
60/30/12 |
굴림: |
24 |
판정결과: |
어려운 성공 |
적당히 종이를 넘겨가며 들여다보자, 눈에 띄는 내용이 있습니다.
사제들에 관한 기록 같습니다. 1년도 채 되지 않은 비교적 최근의 일들이네요.
정황상 인아의 즉위 이후 일어난 일인 모양입니다.
소해호小海湖라면, 낮에 인아와 궁을 돌아보았을 때 보았던 정원을 말하는 걸까요?
(그래서 그리 엄중하게 경호하고 있었나)
(네 번째 책장을 보자)
다른 책장에 비해 크기가 크고, 오래된 기록들이 한데 묶여있습니다.
선대 왕들부터 이어진 기록들을 보관해두는 모양이네요.
책장의 오른쪽 아래, 뒤집힌 책 한 권이 보입니다.
그 이후로는 빈 책장인 걸 보아 인아가 즉위하기 바로 전쯤의 기록이겠죠.
류이환:
자료조사
기준치: |
60/30/12 |
굴림: |
44 |
판정결과: |
보통 성공 |
선대 왕, 그러니까 인아의 친족이 왕으로 즉위했던 때의 기록 같습니다. 순조로운 즉위는 아니었던 모양이네요.
류이환:(사제들이 병증에 시달리고, 비명소리가...)
(...그 신이란 존재는 도대체...)
(급히 다섯번째 책장을 살핀다.)
지금의 왕이 즉위한 이후의 기록들을 따로 모아둔 것인지,
다른 책장에 비해서는 작은 책장이며, 기록 또한 수가 적습니다.
첫 번째 책, 그리고 왼쪽 아래에 있는 책 한 권이 뒤집어져 있습니다.
자료조사
기준치: |
60/30/12 |
굴림: |
63 |
판정결과: |
실패 |
자료조사
기준치: |
60/30/12 |
굴림: |
77 |
판정결과: |
실패 |
(...)
2시간이 경과한 후 쓸모있어 보이는 내용을 찾아냅니다.
그가 정말 부활한 것이라면, 도대체 어떻게 그런 일이 가능했던 건지 적혀있지 않겠습니까.
책을 펼치자마자, 당신이 지니고 있던 상식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기록들이 이어집니다.
이 말대로라면, 그래요. 인아는 정말로 부활한 겁니다.
그가 왜 당신에게 원한을 품었는지, 왜 전쟁을 일으켰는지.
알아낸다고 한들, 어찌 할 방법이나 있습니까?
그저 무력하게 추풍의 낙엽처럼 휩쓸릴 뿐임을 깨닫습니다. SANc (1/1d2)
류이환:(머릿속이 혼란스럽다. 이게 대체 다 무슨....)
SAN Roll
기준치: |
65/32/13 |
굴림: |
10 |
판정결과: |
극단적 성공 |
....이 모든게 사실이라면... (인아는 신이라 불리는 자에게 매인 것이 틀림없다. 그를 구해야해 지금 내가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니다. 재빨리 왼쪽 아래에 뒤집어져 있는 책을 꺼내어 살펴본다.)
자료조사
기준치: |
60/30/12 |
굴림: |
87 |
판정결과: |
실패 |
자료조사
기준치: |
60/30/12 |
굴림: |
8 |
판정결과: |
극단적 성공 |
안경을 다시 닦고 잘 살펴보니... 인아가 즉위한 이후의 기록 같습니다.
왕의 일상적인 하명이나 대화를 기록해둔 책 같습니다만, 어째서 이 책이 뒤집혀있는 걸까요?
책을 적당히 뒤져보면, 굳이 집중해 보지 않아도 이상한 부분을 찾을 수 있습니다.
애초부터 기록을 지우려 한 것이 아닌, 예전에 남은 기록을 최근에 지우려 한 흔적입니다.
최근에 이 기록을 이런 식으로 조악하게 지울 이유가 있던 걸까요?
류이환:(무엇이 있다는거지? 숨기려는 것이...뭐지?)
지워진 기록을 차치하고서라도 적힌 내용은 받아들이기 힘듭니다.
인아는 재해가 일어날 것을 이미 알고 있다는 것처럼 말했습니다.
그렇게 정해둔 이가 누구란 말입니까? 그렇게 정해둔 이유는, 무엇이란 말입니까?
류이환:(정해진 일이라니? 누가, 어떻게 정해져있단 말인가?)
(문득 검게 칠해진 곳을 살핀다. 이미 글씨가 적힌 후에 덧칠한 것이라면...)(희미한 불에 비춰본다.)
검은 칠을 햇빛 아래에 비추어보니, 희미하게나마 지워진 글씨를 알아볼 수 있습니다.
운국에는 ■가 있을 것이니, 비록 ■■이라고는 하여도 그 또한 ■라.
운국에는 내가 있을 것이니, 비록 조각이라고는 하여도 그 또한 나와 같느니라.
류이환:(조각. 나. 그 단어를 보자마자 머릿속에 스치는 이는) ... ...윤아.
(지나칠만큼 닮은 외모와, 해원국에 대한 지식, 익숙함. 인아가 적대하지 않은 이. 그 모든 것이... 설마, 정말로?) ....정말로 그의 일부였단 말인가?
... ...설마. (설마 이 곳에 먼저 온 이가 윤아고. 이 것을 지운 것도 윤아라면. 그가 이것을 먼저 보았다면. 그래서 내게 그런 말을... ...)
... ...(툭, 책을 떨어트린다. 말을 잇지 못한 채 망연한 표정으로 비틀거리며 책장에 기댄다.)
그때, 장서각의 문가에서 인기척이 들려옵니다.
류이환:(!...)(지금은 들켜선 안된다. 재빨리 몸을 숨긴다.)
하지만 숨을 곳도 마땅치 않은 데다, 따로 도망갈 곳조차 없습니다.
류이환:... ...(어쩔 수 없나. 품에 넣은 단도를 쥔다. 여차하면...)
방으로 들어온 이는 인아와 비슷하게 눈가에 검은 화장을 한 채로, 사제와 같은 복장을 하고 있습니다.
그는 고고하게 이환을 훑어보고는, 마주보지 않으려는 듯 책장을 가운데에 두고서 입을 엽니다.
사제장:이곳에 있는 기록이 어떤 것들인지 알고 출입하신 겁니까, 운국의 왕이시여.
해원국에서는 해원의 법도를 따라야 하는 법이거늘, 설령 일국의 왕이라 해도 책임을 지셔야 할 겝니다.
그대는 누군가. 해원의 사제인가?
사제장:사제들을 통솔하는 사제장입니다. ... 이곳에 오신 연유가 무엇입니까.
류이환:...인아를 구해내기 위해서, 라고 하면 믿을텐가.
사제장:...... (표정 없는 낯은 한참 동안 침묵을 유지한다.)
해원국이 모시는 신의 이름은 해원海怨으로, 원한을 잊지 않는 해원국의 근본입니다. (낮고 중후한 목소리가 흘러나온다.)
호전적이고 공격적인 신이며, 해원국의 왕들은 대대로 해원을 모시며 살아오고 있지요.
그러나 해원은 결코 왕 혼자의 힘으로 감당할 수 있는 신이 아닙니다. 인아 전하께서는 어떤 연유에서인지 신의 힘으로 부활하여 홀로 신을 감내하고 있기에, 영혼이 많이 망가진 상태입니다.
아마 신에게 상당 부분 동화되셨을 테고, 이로 인해 운국을 파멸시킨 후에도 해원국의 백성은 끝없는 전쟁으로 고통받을 것입니다.
그분을... ... 진정으로 위하십니까.
믿을지, 말지는 그대의 선택이지만.... 적어도 가벼운 마음으로 적국의 궁까지 온 것은 아니라고 해두지.
사제장은 길게 숨을 내쉬고는, 말을 덧붙입니다.
사제장:운국의 왕이자, 한때 전하의 배필이셨고, 또한 타국이라 할지언정 인애를 아시고 백성의 고통을 이해하신다면... ... 이 일에 발을 담그신 이상, 저희와 함께 걸으셔야 할 것입니다.
운국의 왕이시여, ... ... 부디, 전하를 막아주소서.
그럴 수 없다면... ...
그 끝을 보는 한이 있으시더라도, 전하께서 완전히 해원께 잠식되는 일만은 없으셔야 합니다. (말의 끝자락에서 애달픈 안타까움과 걱정이 묻어난다.)
류이환:...내 약조하지. 막을 수 없다면... (단도를 쥔 손에 힘이 들어간다.) 내 손으로 끝을 내겠노라고. (당신의 안식마저 빼앗기게 둘 수 없다. 이미 한 번 죽어 당신을 떠나보낸 몸. 그대의 평안을 위해서라면, 기꺼이.)
사제장:... ... 곧, 소해호 옆의 우연루雨淵樓에서 연회가 시작될 것입니다. 이 사실을 전하기로 한 궁인이 별채로 가고 있으니 그대가 별채에 없는 것을 확인하면 곧 병사들이 그대를 찾기 위해 나설 것입니다.
즉시 우연루로 출발하신다면 후환을 피하실 수 있을 터입니다.
다만, 한 가지 명심하소서. 모든 것을 알려 한다면, 모든 것을 잃을 수도 있습니다. ……세상에는 인간의 힘으로는 어찌 할 수 없는 일들이 일어나고, 그 흐름을 거스른다면 가진 기회마저 놓치기 마련이니까요.
도문원을 나서 다른 궁인들이 향하는 곳으로 따라간다면 우연루로 갈 수 있으실 것입니다.
류이환:(손에 들린 단도와, 그에 비치는 자신의 얼굴을 본다. 인아. 당신을 막을 수 없다면...)
....(그대로 우연루로 향한다.)
그가 말한 대로 궁인들이 급히 걸음을 옮기는 곳으로 향하니 저 멀리 우연루가 보입니다.
동시에, 그 곁으로 난 길 뒤로 보이는 거대한 호수도요.
연회를 준비하는 탓에 소해호로 향하는 입구의 경비가 소홀해진 것이 눈에 보일 정도입니다.
동시에 우연루로 향하지 않는다면, 그에 대한 대가를 치룰 것입니다.
류이환:(소해호의 진실이 중요한 것이 아니다. 그를 안다하여 인아를 구할 수 있는 것도 아니지 않은가. 지금은 그를 구하는게 먼저다. 우연루로 급히 걸음을 옮긴다.)
지금 이 상황에선 모든 것을 알고자 하는 진실이 중요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우연루의 입구에 도달하자, 당신을 발견한 궁인들이 황급히 당신을 안쪽으로 모십니다.
연회의 상석에 지루한 듯 앉아있던 인아가 당신을 발견하곤 나른하게 웃습니다.
서인아:도망칠 수 있는 마지막 기회였건만, 스스로 걷어차 이곳까지 오셨군요.
각오는 되셨겠지요, 운국의 왕?
류이환:
심리학
기준치: |
80/40/16 |
굴림: |
74 |
판정결과: |
보통 성공 |
(가혹한 말을 내뱉는 인아를 그저 가만히 바라본다. 당신은, 진짜 당신은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날이 선 말과 달리, 인아는 어쩐지 안도한 듯 미소를 짓습니다.
그 낯 아래로 당신을 향한 아득한 그리움과 애정이 잔존하는 듯합니다.
류이환:....마지막 약조까지 어길 수는 없었기 때문에. (그리 말하며 당신에게로 변함 없이 애정 어린 웃음을 지어보인다.)
(잠깐 표정이 일그러지는가 싶더니, 평정을 되찾곤 제 옆자리로 손짓한다.) 이리 앉으시지요.
류이환:(천천히 걸어가 당신 곁에 앉는다. 품 안에는 단도를 손에 쥔 채로)
당신이 자리에 착석한 이후, 연회가 시작됩니다.
넓게 트인 공간에서 무희들이 춤을 추고, 전쟁에서 승리했을 때에나 연주할 법한 음악이 연주됩니다.
승리를 코앞까지 이끌어 온 장본인이건만, 인아는 어쩐지 가라앉은 눈으로 그 풍경을 바라보고 있습니다.
흰 옷을 입은 무희들이 하늘거리며 천을 흩날립니다.
허공을 물들인 천은 흩날리는 물감에 의해 푸르게 물들어 아래로 떨어지고, 쌓인 푸른 천들은 파도처럼 물결칩니다.
서인아:구름이 무거워지면 비가 되고, 그 비가 모이면 바다가 될 테지요…….
저는 그런 것들을 두려워했었습니다.
그는 모든 것에 초연한 것처럼 보이면서도, 끝없는 괴로움에 시달리는 듯도 합니다.
미소 어렸던 입꼬리가 어느덧 굳게 닫혔습니다.
서인아:도망치기에는 늦었습니다. 정신을 차려 보니 이미 너무도 깊은 바다에 빠져 있었습니다. 아무리 발버둥을 쳐도 수면 위로 올라갈 수 없고, 물은 자꾸만 제 온몸을 옥죄어 끝을 알 수 없는 밑바닥으로 끌고 내려가려 하는군요.
... 그대는 운명 같은 것에 얽매이는 이가 되지 않기를 바랍니다.
류이환:... ...아직 늦지 않았습니다. 그대의 삶은 그대 자신이 결정하는 것 아닙니까. 어느 것도 끝나지 않았는데 왜 벌써 한탄하십니까.
서인아:(한 손으로 제 낯을 쓸어내린다. 붉은 화장으로 가려 드러나지 않았던 고뇌와 피로가 읽혔다.) ... 저는 이미 죽었던 몸입니다. 알고 계시지 않습니까. 제 시체를 그대가 수습해 주셨었지요.
이미 거꾸러졌던 생이 억지로 되돌아와 붙잡히니, 그저 끌려갈 수밖에는 도리가 없군요.
바라시는 것이 고통에 들어찬 생입니까, 혹은 돌이킬 수 없는 안식입니까.
비록 그대의 생은 구하지 못했지만, 그대의 영혼마저 잃지는 않으려 합니다.
허니 대답해주세요.
서인아:... ... (오랫동안 대답이 없다. 시선은 발 아래에서 화려하게 펼쳐지는 연회에 가닿은 채였지만 전혀 집중하는 것 같지는 않았다.)
가당찮은 질문이군요. (옷자락을 붙잡으며 자리에서 일어난다.)
왕이 몸을 일으키자 음악과 춤이 멈추지만, 인아가 손짓합니다.
서인아:……계속 하거라. 잠시 바람을 쐬고 올 터이니.
자리를 뜨기 전, 인아는 이환에게 따라오라는 것처럼 눈짓합니다.
류이환:...(네 침묵에 그저 기다리다가, 눈짓에 자리에서 일어서 따라간다.)
두 사람은 우연루의 아래로 내려가, 나무들이 가지 뻗어 하늘을 조각낸 길 한켠에 멈춰섭니다.
인아는 등을 보인 채 멈추어섰다가, 허리춤에 차고 있던 칼집에서 칼을 꺼내 이환의 목에 겨눕니다.
구름 한 점 없는 아득한 밤하늘 아래, 바다의 승리를 축하하는 연회 속에서 그가 입을 엽니다.
서인아:아무런 설명도 하지 않을 것입니다. 제가 그대에게 품은 원한도, 제가 받은 고통도, 7년간 어떤 일이 있었는지도 전부.
그대가 그것을 알건 알지 못하건, 여전히 구름은 조각나고 바다는 흐를 것이니.
손잡이의 묵직한 촉감이 당신의 손에 닿습니다.
손의 잔떨림을 숨길 생각도 없이, 그가 잠긴 목소리로 말을 잇습니다.
서인아:생은 구하지 못하였으나 영혼만은 구하고 싶다 하셨습니까.
저를 구하고 싶으시다면, 그대의 나라와 백성과 왕비를 지키고 싶으시다면... ...
그 칼로, 그대의 손으로 저를 죽이세요.
류이환:(칼이 제 목을 향할 때도 일말의 동요나 흔들림 없이 인아를 바라볼 뿐이었다. 그러나 이윽고 손잡이가 제게로 향하자, 그제야 울 듯한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숙인다. 받아들수도, 받아들지 않을 수도 없는 칼의 끝. 그 무게가 어찌 이리 가혹한지.)
...아무런 설명도 하지 않겠다 하셨지요. (칼을 붙잡고 고개를 숙인 채 잠긴 목소리로 겨우 말을 잇는다.)
그렇다면 하나는 물어도 되겠습니까? (검을 들어 그의 심장을 겨눈다. 눈을 마주하지 못한 채로, 손이 형편 없이 떨린다.)
서인아:... ... 무엇인지요. (죽음을 코앞에 둔 사람치고는 더없이 담담했다.)
사실 저는... 죽기 직전까지도 저를 극진히 간호하고 살펴주신 당신께 정말로 감사했는데... 원망해야만 한다고, 누군가 저에게 주입하는 것 같아요.
아마도 이것은 제 몸에 깃든 이 나라의 신 때문이겠지요. 저는 점점 이성을 잃어갈 것이고, 전쟁에 미쳐 제 나라의 국민들마저 피를 흘리게 만들 것입니다.
전날 저녁, 당신과 함께 보냈던 식사시간에서의 제 행동은 전부 진심이었습니다. (미소가 쓰다.) 그대와 대화를 나누고 손길이 닿을 때면 혼란하였던 정신이 조금은 맑아지는 것 같았지요.
류이환:..그러했습니까. (저를 바라보던 애달픈 눈빛. 떨리는 손길. 그 모두가. 당신의 진심이었다니. 그것이 감사하면서도 마음이 아팠다.)
...저는 차라리 당신께서 저를 원망해주셨으면 했습니다. 그 밤의 약조조차 지키지 못한 배반자라며, 저를 증오하길 바랐습니다.
...그런데도 당신은 제게 그 모든 행동이 진심이었다 말씀해주시는군요.
...(겨우 고개를 들어 얼굴을 마주한다. 푸른 눈동자는 눈물로 가득했다. 당장이라도 가득 차오른 것이 넘쳐흐를만큼...)
...사랑합니다. 인아. (다시 없을 마지막 고백을 담아, 애써 밝은 웃음을 짓는다.이번에는 그대가 기억하는 내 마지막 모습이, 웃는 얼굴이었으면 해서... 그럼에도 뺨을 타고 흘러내리는 것은, 아마도, 채 주워담지 못한 미련.)
서인아:배반자라니요. 당신의 곁에 있던 왕비는 결국 저의 조각인 것을... 저는 처음 그이를 본 순간부터 눈치챘습니다. 목숨을 잃으며 갈라지고 조각난 저의 영혼 일부가 운국에 떨어져 새 숨을 얻었음을. 그러니 당신이 사랑했던 이는 결국 저였던 것입니다.
말씀드렸었지요, 비꼬았던 것은 농이었다고... (눈물이 넘실거리는 당신의 눈가에 따스한 손길이 닿는다. 어젯밤 그리했던 것처럼 천천히 살갗을 덧그리고, 엄지손가락으로 물기를 살짝 닦아내주었다.)
... ... 미안해요. 당신을 오래 사랑하고 싶었습니다. 오로지 당신만을 사랑하여, 오랜 원수였던 나라 간의 관계 따위 다 청산하고 당신 곁에서 끝까지 머무르고 싶었습니다.
제가 죽으면, 모든 기억이 그 아이에게 넘어갈 것입니다. 저희가 함께하였던 10년 전의 추억도, 이곳에서 있었던 일의 기억도 전부.
그러니 이곳에서 있었던 일은 그저 악몽으로, 금침을 몇 번 털고 일어나면 전부 잊힐 꿈결로 여겨주셔요.
... ... 제가 은애하는 이는 오직 이환, 당신뿐입니다. (닳고 닳아 마모된 감정 속에서도 당신을 향한 사랑만이 꽃처럼 피어나 향을 뿜었다. 끝내 울지는 않았으나, 그 대신 애상하게 미소한다.)
류이환:(윤아는 저를 사랑한다 했다. 결국 당신은 그 어떤 형태로도 저를 사랑한 셈이다. 그 마음이 너무나 벅차고 또 사랑스러워, 그저 눈물이 났다. 헤아릴 수 없는 감정의 파편이 하염 없이 녹아 흐른다.)
저 역시, 오로지 당신만을 은애 할 것입니다. 지금까지 그러했듯, 앞으로도. (그러니 저의 모든 행동은 당신을 위함이다. 당신을 제 손으로 떠나보내야한다고 해도. 그마저도. 결국...)
(눈을 질끈 감은 채, 당신의 심장에 검을 찔러넣는다.)
당신은 인아의 심장을 향해 검을 찔러넣었습니다.
그는 반항하지 않은 채 당신의 손에 제 목숨을 내맡깁니다.
마치 본래 그래야 했던 운명이었다는 듯, 당신의 품에서 잠든 것처럼 조용히 숨을 멈춥니다.
바다의 승리를 외치는 나팔소리 가운데에서, 그들의 가장 지혜롭고 강대하던 바다가 메마릅니다.
그와 동시에, 우연루의 옆쪽에 위치해있던 호수에서 기이한 울음소리가 들려옵니다.
사람 백 명이 동시에 우는 것과 같은 서글프고 끔찍한 울음소리.
동시에 알 수 없는 검은 것이 들끓기 시작해 하늘 가득 그림자가 집니다.
류이환:(잠들듯 숨을 멈춘 그의 몸을 끌어안고 그저 하염없이 눈물을 흘린다. 그간 겪었을 그의 고통이, 괴로움이, 눈물이. 알지 못한다 해도 느껴져서, 그래서... 바랄 수 있는 것은 그저, 마지막이 평안했기를.)
연회는 혼비백산해 흩어지고, 군주를 잃은 이들이 갈피를 잡지 못하는 사이, 당신은 깨닫습니다.
지금, 우연루를 벗어나 말을 달린다면 누구도 당신을 막지 못할 것입니다.
류이환:...(차라리 당신과 함께 숨을 거두고 싶은 마음이었다. 허나 그럴수는 없다. 제게는 당신이 남겨주고 간 당신의 조각이 있지 않은가. 지금도 저만을 기다리고 있을...)
(가만히 인아의 이마에 입을 맞춘다. 다시 없을 애정을 담아) ... ...그대가 남기고 간 생을, 이번에는 결코 잃지 않겠습니다.
(자리를 박차고 달려, 윤아가 기다리고 있을 별채로 향한다.)
사랑하는 이의 시신을 두고 사랑하는 이가 남긴 조각에게로 향합니다.
윤아가 우연루 바깥에서 말을 세워둔 채 당신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서윤아:... 전하! (모든 기억이 빨려들어왔는지 혼란스럽고, 또 슬픔이 가득한 낯으로 당신을 맞이한다.)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무사하셔서 정말, ... 정말 다행이에요.
류이환:(당신을 마주한다. 살아 움직이는 당신을. 그대로 달려 힘차게 그를 끌어안는다. 백 마디 말로도 전할 수 없는 감정을 대신 담아) ...네. 돌아왔습니다.
돌아왔습니다... ...당신에게로.
돌아왔어요... ...
서인아:(당신을 꼭 끌어안았다. 틈 하나 없이, 가득 들어차도록. 안도감과 가슴아린 애달픔에 절로 눈시울이 젖어들었다. 어깨가 잘게 떨렸다.) ... ...
돌아와줘서 고마워요. 이곳을 떠나요. 이 강대한 신에 묶여 스스로를 죄여가는 나라에서 떠나요, 전하.
이번에야말로 죽는 날까지 서로를 위하며, 함께 사랑하며 살아요...
류이환:...네. 부디. 이번에야말로. 숨이 다 하는 그 날까지. 함께 사랑하며 살아요.
결코, 결코 놓지 않겠습니다. 나의 정인. 나의 반려.
저는 오롯이 그대의 것입니다.
당신의 귀환을 운국의 백성들이 눈물 흘리며 기뻐합니다.
또한, 당신은 강대하던 해원국을 단신으로 무너뜨린 영웅으로 칭송받습니다.
그러나 당신은 알고 있습니다. 다시 구름이 모여 바다가 될 일은 없으리라고.
그가 두려워하던 일은 두 번 다시 일어나지 않을 것이리라고.
그의 모든 원이, 사랑이 되어 당신 곁에 자리하고 있기에.
그가 왜 그것을 두려워했을지, 산 자들은 모르는 편이 낫습니다. 물론 당신을 포함해서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