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레이타임 : 13시간
베아트리체는 삼엄한 경비를 뚫고, 소문의 근원지를 좇아 지하로 향합니다.
수없는 관을 달고, 온 몸이 상처로 난자된 용, 에르드였습니다.
채 다 닫지 않은 창문에서 날아드는 바람이 코끝을 간질여서일까요, 바깥에서 속닥이는 시종들의 목소리를 들어서일까요.
가물가물한 정신이 푹신하고 두꺼운 이불 아래 가려 금방이라도 다시 잠들고 싶지만...
베아트리체 힐:
듣기
기준치: |
70/35/14 |
굴림: |
68 |
판정결과: |
보통 성공 |
목소리를 한껏 낮춘 모양새였지만, 조용한 밤공기는 모든 것을 실어다 나릅니다.
"쉿, 그건 소문일 뿐이야. 게다가.... 여긴 공주님 방과 너무 가까워.“
괴물
.그 단어는 베아트리체를 강하게 사로잡습니다.
혹 2주 전의 기억이 사라진 연유가 그곳과 연관이 있는것은 아닐까요.
단순히 소문일 뿐이라지만 호기심을 자극하는 데엔 충분합니다.
어쩐지 그곳으로 가야만 할 것 같은 직감이 강하게 듭니다.
베아트리체 힐:(천천히 침대에서 일어나 밖을 살핍니다)
침대에서 내려서면, 차가우면서도 보드라운 융단에 발이 닿습니다.
지하는 어떨까요. 차갑거나, 먼지가 앉아 있지 않을까요?
빼꼼, 문을 열면 방문 앞에는 이미 아무도 없습니다.
아까 소곤소곤 이야기하던 시종들은 이미 제 갈길들을 간 모양입니다.
베아트리체 힐:(밖을 확인하면 침대의 옆에 가지런히 놓인 슬리퍼를 신고 문소리가 나지 않게 숨죽여 문 밖으로 나섭니다.)
지하가 어느 방향이었더라. 한 번도 가지 않아 기억이 가물하네요.
자박, 자박. 작은 걸음이 한밤중의 복도를 활보합니다.
그러다, 순찰을 돌고 있던 위병 하나와 마주칩니다.
위병:공주님? 이 시간에 여기에서 뭐하십니까?
베아트리체 힐:.... 잠이 오지 않아서. 불면증 탓인 듯하니 잠시 산책이라도 다녀올까하고.
위병:산책을요? 으음…… (고민하다가 길을 비켜준다) 밤공기가 찹니다. 금방 돌아오십시오.
위병은 짧게 인사를 하고, 순찰을 마저 돌기 위해 움직입니다.
걸음을 옮긴 끝에 당신은 지하로 가는 문을 발견합니다.
하지만 두 명의 위병이 꼿꼿하게 문 앞을 지키고 있네요.
고작 지하로 통하는 문에 사람이 둘씩이나요? 그것도 이 야밤에.
지하로 통하는 문은 저곳 하나라, 몰래 들어가는 것 또한 무리일 것 같습니다.
베아트리체 힐:(그들의 눈에 띄지않게 숨어 생각에 잠깁니다.
...어쩌면 좋을까.
생각에 잠겨 천천히 주변을 둘러보면 곳곳에 놓인 장식품들이 눈에 들어옵니다. 호기심이 앞선 탓이었는지 평소라면 하지 않은 법한 행동도 서슴치 않습니다.
복도를 밝히던 금색의 촛대를 들어 바로 건너편의 창문을 향해 던지면 큰소리와 함께 창문이 깨집니다.)
위병 중 한 명이 다급히 건너편의 창문을 확인하러 뛰어갑니다.
하지만 다른 한 명은 여전히 자리를 지키고 있네요.
베아트리체 힐:(...역시 이정도로는 안되는걸까?)
(잠시 망설이더니 그들의 앞에 무심한 표정으로 나섭니다.)
... 이게 무슨 소란이지?
위병:고, 공주님? (당황해서 얼른 제자리로 돌아간다.) 죄송합니다. 방금 도둑이라도 든 건지 갑자기 창문이 깨져서, 다른 위병이 확인하러 간 참입니다.)
그런데 공주님께서 여기까지는 무슨 일이십니까? (묘하게 경계심 어린 표정으로 묻는다)
베아트리체 힐:... 잠이 오지 않아 산책이라도 가려던 차에 소란스러운 소리가 들려서.
이렇게 경비가 허술해서야 내가 다시 맘 편히 잠들 수 있을까?
(거짓을 말하는 표정은 무심 그 자체로 그들이 보기에는 제법 위압적으로 보였다.)
... 소란을 일으킨 이를 잡아와.
위병:그것이…… (위압감에 당황해서 어물거린다) 경비에 부족함이 있어 정말 죄송합니다! 하지만 방금 간 위병이 곧 추가 인원을 불러올 것입니다. 저는 지하를 지켜야만 합니다.
얼마 전의 큰 비로 지하가 잠겨 보수 공사 중이라고 합니다. 혹시라도 누군가 잘못 들어갔다가 피해를 입기라도 하면 안 되기에 저희가 이 문을 지키는 일을 맡았습니다.
부디 통촉해 주십시오, 공주님.
아무래도 그는 문에서 벗어날 생각이 없어 보입니다.
수가 없네요. 일단 푹 자고, 내일 방법을 생각해보는 게 더 나을까요?
베아트리체 힐:(아침이면 더 많은 이들이 다닐텐데...
경비가 더 삼엄해 질지도 모르고. ...지금이 아니면 안될 것 같은 예감이 들어...)
(문 앞을 지키고 선 경비를 똑바로 바라보다가 잠시 고민에 빠집니다.)
... 그래. 고생이 많아.
(무거운 마음을 뒤로 하고 발걸음을 천천히 돌립니다.)
요지부동인 위병을 뒤로하고 느린 걸음을 옮깁니다.
하지만 쉬이 그 호기심이 사그라들지는 않는군요.
적어도 두 눈으로 직접 확인하고 싶지 않나요?
분명 어떻게든 들어갈 방법이 있을거예요. 막을수록, 더 궁금한 법입니다.
베아트리체는 다시 침실로 돌아가, 몸을 누이고 못다 잔 잠에 빠져들었습니다.
마침 아침의 커튼을 걷으러 들어온 시종이 눈에 띕니다.
... 얼마 전에 큰 비가 와서 지하가 잠겼다던데. 아는 얘기니?
시종:예? 지하가 잠길 만큼 물이 찼단 말은 못 들었습니다. 왕궁이 그렇게 허술하게 지어지진 않았을 거예요.
베아트리체 힐:(그 말에 조금 눈을 휘어 웃어보인다.)
...그래. 그렇겠지, 고마워.
시종:예, 그럼 식사를 가져오겠습니다, 공주님. (꾸벅 인사하고 방을 나선다.)
베아트리체는 어떻게 할까요? 아직 아침까지는 시간이 조금 남았습니다.
베아트리체 힐:(다짐한 듯 천천히 일어나 문 밖을 조심해서 살펴봅니다.)
아까 그 시종은 식사를 가지러 간 모양이네요.
베아트리체 힐:(어제의 기억을 떠올리며 복도를 지나 지하로 향하는 문을 찾습니다.)
... 이 쪽이었던것 같은데.
기억을 더듬어 문으로 향하면, 입구에는 아무도 없고, 복도에는 못 보던 서빙 카트가 하얀 천에 덮여 있습니다.
서빙 카트의 흰 천을 살짝 들춰봅니다.)
살짝 들춘 천 아래는 빈 유리병들로 빼곡히 채워져있고, 아래는 비었네요.
베아트리체 힐:(빈 유리병을 하나 들어 찬찬히 살펴봅니다.
무엇을 담으려고 이렇게 많은 병을 모아둔걸까...?)
(의문이 커지면 어제의 그 입구로 시선이 옮겨간다.
저 안에서 필요한 물건일까?)
적어도 보수공사에 쓸 만한 물건이 아니란 건 확실한데요.
베아트리체 힐:(손에 든 유리병을 다시 내려놓고 천천히 입구로 향합니다.)
(입구에 다다르면 천천히 문을 밀어봅니다.)
문을 열기 위해 걸음을 떼려는데, 위병들이 교대 중이었는지 꺾인 모퉁이의 반대편 복도에서 발소리와 함께 말소리가 들립니다.
베아트리체 힐:(가까워지는 발소리가 들리면 살짝 열린 문 안으로 재빨리 몸을 숨깁니다.)
앗, 문은 잠겨 있어요. 아마도 열쇠가 필요한 것 같습니다.
베아트리체의 눈에 천으로 덮인 카트가 띕니다.
베아트리체 힐:(닫힌 문에서 재빨리 시선을 돌려 아까 본 카트로 향합니다.
몸을 숙여 카트를 꼼꼼히 살펴봅니다.)
(가득한 유리병을 지나 카트의 아래쪽까지 살피는 시선이 조급해보인다.)
다행히도 카트의 빈 아래칸은 한 사람이 들어갈만큼 넉넉하네요.
서둘러 안으로 들어갈까요? 숨는다면 <민첩> 판정
베아트리체 힐:
민첩
기준치: |
70/35/14 |
굴림: |
29 |
판정결과: |
어려운 성공 |
민첩
기준치: |
70/35/14 |
굴림: |
54 |
판정결과: |
보통 성공 |
베아트리체는 날래게 안으로 들어가 티나지 않게 하얀 천으로 덮는 것까지 성공합니다!
이곳에 박혀있다가 들키면 망신도 이런 망신이 없겠네요.
벌렁거리는 심장을 달래고 있자면, 얼마 지나지 않아 카트가 움직입니다.
카트를 끌고 가는 사람과, 위병들의 대화가 들려옵니다.
문이 열리는 소리와 함께, 카트는 힘차게 움직입니다.
당신이 그리 궁금해하던 문 안으로 들어온 것이 분명합니다.
지하 특유의 서늘한 공기가 발치를 감싸고, 한동안 움직이던 카트가 멈춥니다.
본인을 자책하며 후다닥 뛰어 다시 나가는 소리와, 멀찍이서 킬킬거리는 위병들의 웃음소리가 들립니다.
그것이 멎고 나면.... 조용합니다. 나가볼까요?
흰 천을 헤치고 밖으로 나가면, 베아트리체는 눈 앞의 거대한 문에 압도됩니다.
분명 문 안으로 들어왔는데, 그 안에 또 문이 있었네요.
의미를 알 수 없는 고대어로 음각된 거대한 철문이 베아트리체의 앞에 버티어 서 있습니다.
절대 열리지 않을 것 같은 견고함을 뽐내는 듯한 문에는, 아주 작은 열쇠구멍이 하나 있을 뿐입니다.
[카트], [문], [열쇠구멍]의 조사가 가능합니다.
베아트리체가 열쇠구멍을 살펴보기 위해 가까이 다가서자,
갑작스러운 일이지만, 이상하게도 전혀 당황스럽거나 두렵게 느껴지지는 않네요.
베아트리체 힐:(천천히 문에 손을 가져다대봅니다.)
퍽 기이한 감각을 느끼는 순간, 문이 자그맣게 열립니다.
의문도 잠시 열리는 문을 밀고 나아갑니다.)
(아, 낮은 탄식을 흘리며 걸음을 멈췄다가 뒤에 놓인 카트로 돌아가 살펴봅니다.)
카트는 영문 모를 유리병들로 가득 차 있으며, 하나같이 비어 있습니다.
특이한 점이 있다면, 유리병의 병 목을 따라 안쪽에서 고대어가 쓰여있다는 것입니다.
베아트리체 힐:
지능
기준치: |
55/27/11 |
굴림: |
75 |
판정결과: |
실패 |
베아트리체 힐:
지능
기준치: |
55/27/11 |
굴림: |
56 |
판정결과: |
실패 |
지능
기준치: |
55/27/11 |
굴림: |
64 |
판정결과: |
실패 |
베아트리체 힐:(다시 문으로 돌아갑니다....)
베아트리체 힐:
관찰력
기준치: |
65/32/13 |
굴림: |
58 |
판정결과: |
보통 성공 |
관찰력
기준치: |
65/32/13 |
굴림: |
36 |
판정결과: |
보통 성공 |
베아트리체는 이 문이 단지 고대어만이 아닌, 커다란 그림을 새겨넣은 것이라는 것을 알아봅니다.
시간이 오래 지난 탓인지 군데군데 닳아 있기는 하나, 알아보는 데에는 문제가 없습니다.
갈라진 태양, 그리고... 산을 닮은 무언가 거대한 존재, 그의 앞에 선 왕관을 쓴 왕.
사람들은 왕의 앞에서 머리를 조아리고 있으며, 그런 사람들에게 무언가가 흘러들어가는 모양입니다.
이 거대한 존재는... 오피나티..?)
(무언가 흘러들어가는 모양새 까지 그림을 유심히 살펴보다가 조금 문에서 멀어집니다.
다 살펴본걸까..?)
베아트리체 힐:(의문점들에 머리가 복잡해지는 것을 느끼며 천천히 문들 열고 들어선다.)
손으로 밀어보면, 그 무거워 보이던 문이 맞냐는 듯 매끄럽게 틈을 벌립니다.
안으로 들어서자 발광하던 빛은 점차 사그라들고, 작게 물방울이 뽀그륵거리는 소리가 들립니다.
무언가 거대한 묵빛의 언덕과 푸른빛으로 발광하는 마력병이 군데군데에 달려 있습니다.
언덕에게서 천천히 마력이 새어나와 병을 채워가는 모양입니다.
가득 찼다는 것이 이 병들을 말한 것인지, 병들은 모두 완전히 차 있습니다.
그때, 뒤쪽에서부터 다급한 발걸음이 가까워집니다.
일촉즉발의 그 순간, 거대한 언덕이 움직이더니 단번에 거대한 막으로 베아트리체를 덮습니다.
이거, 살아있는 거였나요? 베아트리체, SanC (0/1)
베아트리체 힐:
SAN Roll
기준치: |
50/25/10 |
굴림: |
68 |
판정결과: |
실패 |
막의 바깥에서는 달그락거리며 병을 바꾸는 소리가 들리고, 베아트리체의 앞에는 거대한 파충류의 눈동자가 드러나 있습니다.
이상하리만치 선명하게만 보이는 금빛 안구의 세로 동공이 좁아듭니다.
머릿속으로 탁하고 묵직한 저음의 음성이 울립니다.
듣기 좋은 목소리라는 생각이 들어요. 이상하네요. 분명 낯선 음색인데.
목소리는 더 이상 들려오지 않고, 바깥에서는 여전히 병을 달그락거리고 있습니다.
이내 바깥의 소리가 멎고, 인기척이 문 밖으로 사라지자 비로소 막이 거두어집니다.
처음 들어왔을 때처럼 어두울 줄 알았건만, 일렁이는 빛무리들이 공간을 비추고 있었습니다.
베아트리체는 그제서야 눈 앞의 이를 제대로 응시합니다.
온 몸에 마력병으로 이어지는 관을 셀 수 없이 달고, 상처로 난자된 거죽 위로 검붉은 피를 흘리는 거대한 용.
베아트리체 힐:
심리학
기준치: |
70/35/14 |
굴림: |
96 |
판정결과: |
실패 |
베아트리체 힐:
심리학
기준치: |
70/35/14 |
굴림: |
56 |
판정결과: |
보통 성공 |
심리학
기준치: |
70/35/14 |
굴림: |
35 |
판정결과: |
어려운 성공 |
체념과 고통, 희끄무레한 그리움을 담고 있습니다.
용:이번에는 또 어떤 이유로 여기까지 왔지? 베아트리체.
이 거대한 용은, 마치 당신을 이미 알고 있다는 듯 이름을 부릅니다.
오래전부터 베아트리체를 알아왔다는 듯 한 어조입니다.
맹세컨데, 베아트리체는 이곳에 처음으로 발을 딛어보는걸요.
질척한 피웅덩이가 신발바닥을 온통 적시고 있습니다.
용이 베아트리체를 급하게 당길 때 묻은 것인지, 드레스 자락에도 온통 핏물이 배여 얼룩덜룩하네요.
베아트리체 힐:(거대한 이의 말에 의문이 드는 것도 잠시 바닥에 고인 피웅덩이에 심장이 내려앉는다. 자신의 것이 아니니 분명 이 거대한 이에게서 흘러나오는 것일텐데.)
... 어째서 이런...?
(자신에게 묻은 피는 생각도 나지 않는지 피 웅덩이의 근원을 찾는다.)
아플텐데...
(심정이 조금 처참해지는 것 같은 기분이 들어 미간이 찌그러진다.)
그것부터 걱정하는 건가. …… 참 너답군.
베아트리체 힐:(이곳에 드나드는 이가 있는데도 아무도 치료해주지 않다니. 저도 모르게 한숨이 흘러나온다.
그의 상처난 거죽을 손으로 천천히 쓰다듬으며 그제서야 머릿속의 의문을 꺼내든다.)
... 나 답다니. 나를 아나요?
용:(거죽을 쓰다듬는 손길을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고개를 들어 위를 잠시 올려다본다.)
자세한 이야기는 내일 마저 하는 게 어때. 널 찾는 이들이 많아.
내일이요? 내일도 이런 식으로 들어올 수 있을 것이라는 보장이 없습니다.
당연하잖아요, 한 번 걸렸으니 감시는 곱절이 될 것이 분명합니다.
베아트리체 힐:... 그렇지만. 내일 다시 못 돌아온다면.
(천천히 생각에 잠겼다가 눈을 마주한다.) ... 당신의 이름을 알려줘요.
용:괜찮아. 내일부터는, 네가 원할 때에 나를 볼 수 있을 테니까.
거대한 용은 턱을 당겨 다시금 베아트리체를 응시하며 예견하듯 말합니다.
나를 마음껏 원망하고 미워하도록 해. 너는 그래도 되는 사람이니.
이유는 모르겠지만, 익숙한 이름이라는 생각이 스쳐지나갑니다.
베아트리체 힐:(거죽을 쓰다듬던 손을 거두는가 싶더니 천천히 작은 두 팔을 펼쳐 거대한 언덕을 안듯이 기대었다.
처음 듣는 이름인데도 어쩐지 가슴 한 구석이 아려서 그렇게 하지 않고서는 버틸 수가 없었다.)
... 정말이죠? 약속해줘요.
반드시 다시 볼 수 있다고.
용:그래, 약속하도록 하지. (거대한 몸에 얹히는 조그맣고 가느다란 팔. 크기를 빗대보면 거의 느껴지지도 않을 정도였지만, 그 온기만은 분명히 전해져오는 듯했다. 느리게 눈을 내리감는다.)
다시 볼 수 있을 거야, 분명히.
……. (더 이상은 말을 잇기 괴로워, 숨을 깊게 들이마시곤 입을 다물었다.)
베아트리체 힐:(고개를 푹 파 묻었다가 숨소리가 들리면 서서히 떨어진다.)
...아프지 말아요.
(떨어져나간 커다란 온기가 마음을 더욱 허전하게 한다.)
(천천히 돌아서면서도 자꾸만 돌아보게 되어 발걸음을 재촉했다.)
용:(너를 아는 한, 나는 계속 고통스러울 수밖에 없겠지.)
아프지 않아. 용을 걱정할 필요는 없으니 안심하고 돌아가도록 해.
베아트리체가 나가고자 하면, 문은 매끄럽게 열립니다.
철문 다음의 지상으로 통하는 문은 직접 여는 수밖에 없겠죠.
베아트리체 힐:(뒤를 돌아봤다가 숨을 크게 들어쉬고는 조심스레 문을 밀어봅니다.)
말은 하지 않으나, 동요가 크다는 것은 선명히 드러납니다.
베아트리체 힐:(위병들을 뒤로 하고 천천히 방으로 향합니다.)
그도 그럴것이, 일국의 공주가 아침부터 실종되었다가 피투성이로 돌아온 것이니까요.
시종:공주님! 이게 대체 어찌 된 일이십니까? 다치신 겁니까? 어찌 이리 피범벅이 되셔서……
베아트리체 힐:... 나는 괜찮아. ... 조금 쉬고싶네.
시종:아이구, 다치신 데는 없으시다니 다행입니다만…… 그래도 옷은 갈아입으셔야지요!
... 새 옷을 가져다주겠니?
목욕물도 부탁해.
시종들은 부산을 떨며 베아트리체의 피를 닦아주고 새 옷과 목욕물을 가져옵니다.
시종들은 조용하게 베아트리체의 목욕 시중을 듭니다.
그들이 핏물로 물든 목욕물을 가지고 나가면, 이제 방에는 베아트리체 혼자 남았네요.
분명 아버지와 어머니가 당신의 소식을 들었을 법도 하건만, 어떠한 언질도 내려오지 않았습니다.
두 분 다 바쁘신 것일까요. 하지만 이렇게나 잠잠할 리가요.
베아트리체 힐:(의자에 천천히 몸을 묻으며 생각에 잠긴다.
... 두 분께서 이 상황을 모르실 리가 없는데. 어째서 이렇게 잠잠한걸까.
내게 숨기고 싶은 일이었던걸까?
머릿속이 복잡해지는 걸 느끼며 고개를 두 손에 파묻었다가 천천히 고개를 든다.)
차라리 서재나 집무실에 직접 가 보면 조금 속시원해질지도 모르겠지만……
베아트리체는 시종들의 법석으로 오늘 하루간 꼼짝없이 침대에 갇혀야 하는 신세가 되었습니다.
새들이 지저귀고, 따사로운 햇살이 비추는 아침입니다.
베아트리체가 눈을 뜨자마자, 귀신같이 노크소리가 들려옵니다.
아버지의 바로 곁에서 일을 하고 있는 자일 텐데, 무슨 일로 여기까지 찾아온거죠?
문을 열면, 깍듯하게 고개를 숙인 시종장이 안으로 들어섭니다.
시종장: 공주님, 오늘부터는 예배를 포함하여 어떠한 수업도 없다는 것을 전해드리러 왔습니다.
이외 맡고 계셨던 정무 또한 더 이상 임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지하로 가는 문은 열어두었으니, 이제 이 왕궁 내에서 공주님을 막는 장소는 없을 것입니다.
베아트리체 힐:(아침부터 시종장이 와서 꺼내놓는 말은 도무지 이해가 가지않는 것들 투성이였다.)
... 폐하께서 직접 명하신 일인가?
시종장에게 <심리학> 판정을 시도할 수 있습니다.
베아트리체 힐:
심리학
기준치: |
70/35/14 |
굴림: |
86 |
판정결과: |
실패 |
표정관리를 하고 있는 건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 없습니다.
베아트리체 힐:... 폐하를 직접 만나뵈겠네.
(꼿꼿하던 몸을 천천히 의자에서 일으킨다.)
시종장: 폐하께서는 현재 지하에 계셔, 만나뵐 수 없습니다.
우선은 아침 식사부터 하시지요, 공주님.
(알 수 없는 말들만 이어지니 현기증이 인다. 의자의 손잡이를 잡으며 고개를 내저어보인다.)
... 입맛이 없으니 아침은 되었어.
시종장: 식사는 하셔야만 합니다, 공주님. 공주님의 건강을 각별히 신경쓰라는 폐하의 명령이 계셨습니다.
조금이라도 드시지요.
베아트리체 힐:(천천히 숨을 내쉬고는 고개를 끄덕인다. 아무리 거절한듯 달라지는 것이 있을까.)
... 그럼 방으로 부탁해.
시종장: 예, 시종들에게 식사를 가져오라 명하겠습니다. (어두운 낯으로 고개 깊이 숙여 인사하고는 물러난다)
시종장이 천천히 물러나면, 늦은 아침 식사가 들어옵니다.
시종 두엇이 들어와 테이블에 간단한 아침식사를 늘어놓습니다.
:부드럽게 찢어지는 흰빵과 버터, 과일 졸인 필링을 얹은 스콘, 소세지와 햄 두가지, 샐러드와 3가지 드레싱, 두꺼운 계란프라이, 양송이 수프, 크로와상과 머핀, 토스트...
음료를 제외한 모든 음식이 하나같이 따뜻하게 데워져 있습니다.
베아트리체 힐:(눈 앞에 놓인 음식을 멍하니 바라보다 시종을 다시 불러세운다.)
... 밖으로 나가고 싶어졌어. 음식을 담을 바구니를 준비해줄래?
(무엇이라도 챙겨가면 좋을테니. 그렇게 생각하며 시종을 향해 가볍게 웃어보였다.)
시종:바깥으로요? …… 예, 알겠습니다. 바로 준비해 올리겠습니다.
오래지 않아 시종이 바구니를 들고 와 바쳐올립니다.
시종:예, 공주님. 너무 위험한 곳에 가시면 안 됩니다. (허리 숙여 인사하고 물러난다)
베아트리체 힐:(커다란 바구니에 먹을 것들을 챙겨 넣는다. 흰 빵과 버터. 과일 필링이 얹힌 스콘, 빵과 토스트 등을 가득 넣은 후에 간단하게 샐러드를 찍어먹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지금쯤이면 다시 볼 수 있을까.
어제 보았던 용이 생각납니다. 어떻게 할까요?
베아트리체 힐:(바구니를 들고 일어나던 찰나 테이블 위 화병에 가득 꽃혀있는 황금빛에 가까운 노란 메리골드가 눈에 들어온다.
그 중 가장 탐스러운 한 송이를 바구니에 꽂아두며 다시 천천히 방을 나선다.
발길이 향하는 곳은 단 한 곳. 어제 보았던 거대한 용이 있는 지하.)
베아트리체는 바구니를 든 채 어제 향했던 지하로 다시금 발을 내딛습니다.
지하를 지키는 위병은 그대로였으나 베아트리체를 보자마자 깍듯하게 고개를 숙이며 문을 열어줍니다.
어제는 몰랐는데, 볕 하나 들지 않는 지하로 향한다는 길이라기에는 굉장히 고풍스럽습니다.
붉은 벨벳이 깔린 바닥은 깨끗하게 관리되고 있었으며, 일정한 간격을 두고 등이 달려 있어 어둡지도 않습니다.
베아트리체 힐:
듣기
기준치: |
70/35/14 |
굴림: |
57 |
판정결과: |
보통 성공 |
이 익숙한 목소리는... 이 나라의 왕이자 당신의 아버지입니다.
화가 난 듯한 음성이 용의 둔탁한 저음과 교차하며 지하를 울리고 있네요.
베아트리체 힐:(대화를 듣기 위해 문에 소리를 죽여 다가선다.)
베아트리체 힐:
은밀행동
기준치: |
60/30/12 |
굴림: |
53 |
판정결과: |
보통 성공 |
왕:누구보다도 아끼는 내 딸아이입니다. 이런 말은 없지 않으셨습니까?!
에르드:내가 정할 수 있는 일이 아니야. 그건 당신도 알고 있을 텐데.
선대에게 아무런 언질도 받지 못했나?
허나……, 에르드. 당신이라면 막을 힘이 있지 않습니까.
에르드:그 문을 내가 열었다고 생각하는 것인가.
그렇지 않아. 베아트리체가 직접 열고 들어왔지.
그를 어떻게 막을 수 있겠어? …… 두 번은 나로서도 무리였다.
왕:(한참이나 침묵한다.) …… 얼마나 남았습니까?
대화는 끊어지고, 이내 왕이 문 밖으로 나옵니다.
왕은 잠시 베아트리체를 바라보다, 걸음을 재촉합니다.
베아트리체 힐:(멀어지는 아버님의 등을 보며 잠시 침묵에 잠긴다.
두번...?
얼마나 남았냐는 말을 무슨말일까.
멀어지는 등이 시선에서 사라지면 그제서야 다시 문으로 몸을 돌린다.
... 나중에 여쭈어봐도 괜찮겠지.
천천히 열린 문의 안 쪽으로 들어선다.)
방으로 들어서면, 환하게 불이 들어와 있습니다.
에르드:왔구나. 바깥에서 하는 대화는 전부 들었겠지?
베아트리체 힐:
지능
기준치: |
55/27/11 |
굴림: |
35 |
판정결과: |
보통 성공 |
어제와는 등이나 조도가 차이나는 걸 보아하니, 어제는 에르드가 마법으로 불을 밝혔던 모양입니다.
불이 켜진 조명 아래에서 보니, 용은 어제 예상했던 것 보다도 훨씬 큽니다.
머리만 하더라도 베아트리체가 드러누워도 남을 정도의 크기인걸요.
한쪽 눈을 완전히 가르는 자상과 몸 곳곳의 상처는 여전하네요.
엎드린 몸의 곳곳에 마력관을 꽂은 채로, 베아트리체를 똑바로 바라보고 있습니다.
:에르드와 대화를 하거나, [용], [마력관], [바닥]의 조사가 가능합니다.
베아트리체 힐:(어제 들었던 그 이름을 몇번이고 입안에서 되내이고야 비로소 입 밖으로 꺼낼 수 있었다.)
...에르드, 당신의 말이 맞았네요.
(그의 질문에 답하듯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며 용을 살펴본다.)
흑색 비늘로 뒤덮인 몸 곳곳에 상처가 나 있습니다.
특히 안광을 발하는 금빛 눈가에 그어진 상처는 꽤나 깊어 보입니다.
상처들은 언제 생겼는지 알 수 없으나, 느리게 출혈이 일고 있습니다.
설마 내 말을 믿지 못한 건가? (둔탁한 음성이지만, 말투는 퍽 부드러웠다.)
베아트리체 힐:(낮은 음성이 들리면 불안했던 천천히 마음이 가라앉는 것이 느껴진다. 이내 천천히 고개를 저어보인다.)
... 믿었어요. 그래서 이렇게 왔구요.
(다가가던 걸음은 천천히 그의 얼굴 앞에 멈춰선다. 들고 있던 바구니를 내려놓으며 눈가를 가로지르는 자상의 근처로 손을 뻗는다.)
... 대체 이 많은 상처는 언제 생긴거에요?
(몸 곳곳의 상처들을 볼때면 돌덩이를 삼킨것 마냥 마음이 무겁다.)
에르드:그래, 이렇게 문을 열고, 다시 이 자리에 왔군. (그 음성에는 무슨 감정이 들어 있는 건지 좀처럼 파악하기가 어렵다. 시선이 눈앞의 이를 느리게 훑는다.)
아주 오래 전…….
네가 상상하기도 어려울 만큼 오래 전.
말은 편하게 해도 상관없어. 칭송을 받고자 너를 이곳에 들인 것이 아니니.
베아트리체 힐:(마지막 말에 입술을 몇 번 달싹이다 입을 다시 열었다.)
...이렇게나 고통받으면서?
(어제의 흥건한 피웅덩이가 생각나 다시금 바닥을 살펴봅니다.)
어제 왔을 때에는 바닥이 온통 피웅덩이라 옷과 신발을 망쳤었는데, 오늘은 청소가 된 것인지 깨끗하기 그지없습니다.
에르드:고통스럽지 않아. 아주 긴 시간 동안 가졌던 상처이니, 처음에 느껴졌던 고통이 있을지라도 이제는 내 삶의 일부가 되었지.
걱정돼, 내가?
(고통이 익숙해졌다는 것이 왜 이렇게 제 가슴을 찢어놓는지 모르겠다.)
(걱정스러움에 조금 일그러진 얼굴로 커다란 몸에 이어진 마력관을 살펴봅니다.)
용의 목, 날갯죽지, 등, 다리 등에 마력의 추출을 위해 연결된 관은, 푸른 연기가 벽면의 병으로 이동하고 있습니다.
저곳에 마력을 채워 매일 아침 교환하는 것이겠죠.
베아트리체 힐:
관찰력
기준치: |
65/32/13 |
굴림: |
5 |
판정결과: |
극단적 성공 |
마력관의 접합부는 꽤 오래된듯, 딱딱하게 굳어 배긴 모양입니다.
이 정도라면... 시간이 얼마나 지났을까요? 100년? 200년?
이 정도라면... 뽑는 것이 더 고통스러울 것이라는 것만을 예상할 수 있습니다.
에르드:괜찮아, 날 걱정하지 않아도. 한낱 인간이 거의 영생에 가까운 삶을 사는 용을 걱정한다니 어딘가 엇나간 것 같지 않나.
베아트리체 힐:... 한낱 인간이지만. 걱정할 수 있는 것도 인간으로서 할 수 있는 일이야. 에르드.
(내려놓았던 바구니를 천천히 열었다.)
빈 손으로 오고 싶지는 않아서.
(바구니의 제일 위에 놓인 노란 꽃을 천천히 꺼내든다.)
... 이건 내가 제일 좋아하는 꽃이야.
(그의 거대한 손 위에 조심스레 올려놓고는 천천히 일어난다.)
베아트리체 힐:... 먹을 것도 가져왔는데. 좋아하는 게 있을까?
에르드:그건…… (자신의 눈 색과 꼭 닮은 꽃을 본 순간 눈이 크게 뜨였다가, 이내 천천히 반쯤 내리감긴다.) 메리골드군. 꽃말이 있었던 것 같은데, 기억이 나지 않아. 혹시 알고 있나?
나는 굳이 뭔가를 먹을 필요가 없어. 그보다는 네가 먹지 그래. 지금은 꽤 애매한 시간인데, 식사는 하고 온 건가?
베아트리체 힐:(그 말에 눈이 동그랗게 뜨였다가 부드럽게 휘어진다.) 맞아. 메리골드. ...반드시 오고야 말 행복. 그래서 너에게 주고 싶었어.
(바구니를 찬찬히 내려다본다.) ...대충.
에르드:반드시 오고야 말 행복…… (조용히 그 말을 되풀이했다.)
지금의 나는 행복해보이지 않기라도 한가?
베아트리체 힐:(천천히 바닥으로 떨어지는 시선을 다시금 들어올렸다.)
... 그렇다고 한다면?
지금이 행복하다고 할 수 있어?
에르드:…… 나의 행복은 네가 신경쓰지 않아도 되는 부분이야.
용의 행복을 그 누가 따지겠어? 다들 칭송하거나 경외하거나 혹은 두려워하기 바쁘지. 그게 아니라면 혐오할 수도 있겠으나, 그걸 내 앞에서 솔직히 드러내는 간 큰 인간은 없을 테지.
인간은 인간의 짧은 인생만을 바라보고 앞으로 나아가면 돼. 그뿐이야.
그래서 네가 이곳에 또다시 오고 만 게, 솔직히 반갑지만은 않아.
베아트리체 힐:... 스스로도 본인의 행복을 신경쓰지 않는데. 그럼 누가 신경써야하는건데.
(어째서 어제 처음 마주한 이 용의 말 한마디 한마디가 제 가슴에 비수처럼 꽂히는지 모를 일이었다.)
짧은 인생이니까 너의 영원이 걱정되는거야.
(눈 앞이 일렁이는 것 같아 잠시 고개를 숙이면 또 의아함을 자아내는 말이 흐른다.)
...또다시라니? 나는 어제 이곳에 처음 왔어.
에르드:어차피 나에게 그런 감정은 허락되지 못한 것.
태양빛 한 점 들지 않는 이 지하에 갇혀있어야만 하는 나에게 행복을 찾는다 한들 그건 저 멀리에 뜬 구름마냥 잡을 수 없는 것이야.
그런 걸 바라보았자 나 스스로를 더 괴롭히는 일일 뿐이지…….
걱정하지 마. 나보다는 너를 더 걱정했으면 좋겠군.
(물끄러미 바라본다. 한동안 말이 없었다.) 네가 나를 다시 만나러 오지 않기를 바랐어. (그 목소리에 얼핏 묻어있던 감정은 회한이었던가.)
기억이 지워진 부분이 있지 않아?
베아트리체 힐:... 용은 그래야 한다고 누가 정해둔거야?
...어째서 이 곳에 갇혀있어야만 하는건데.
(목소리가 점점 가라앉는 것이 느껴져 또박또박 말하려고 몇 번이고 노력했다.)
...나는 걱정이 돼. 하지말라고 할 수록 더. 나같은 것보다 훨씬.
(감정이 묻어나는 목소리에 커다란 금빛 눈동자를 똑바로 마주한다.)
...맞아. 2주전이었던가. 크게 앓았다고 들었는데...
베아트리체 힐:(아무리 떠올려도 제 머릿속에는 없는 기억이었다.)
그거면 충분하겠지. 이 왕국은 오피나티를 주신으로 섬기고 있으니까. 너도 매일같이 오피나티를 위한 기도를 올려왔지 않았던가. (제 말이 틀리냐는 듯, 그저 무뚝뚝한 투로 말을 이었다.)
오히려 나는 네가 신경이 쓰일 수밖에 없겠군. 원래라면 이곳에 갇힌 용의 존재 따위, 네가 몰라도 되는 일이었는데.
2주 전의 그때에도 너는 이곳의 문을 열고 들어왔었다. 내가 네 기억을 지웠어. (눈을 떨군다.)
베아트리체 힐:(오피나티. 나의 나라의 주신. ... 그 이름을 여기서 들을 줄이야. 말문이 턱 막힌다.)
(침묵이 잠시 이어진다.)
... 이 나라에 내가 몰라야 하는 일이 있었다는 게 오히려 놀라운데.
(자신은 이 왕국의 공주가 아니었던가. 천천히 떨어지는 눈을 보며 생각에 잠긴다.)
...그래서 두 번이라는 말을 했던거구나. ... ... 내가 너를 몰라야 하는 이유가 있어?
기억을 지우면서까지 잊혀져야했던 이유가 뭐야, 에르드.
베아트리체 힐:(떨구어지는 시선을 똑바로 올려다본다.)
에르드:왕위를 계승하게 될 너였으니, 네 부모는 오로지 너에게만큼은 알려지지 않기를 바랐겠지.
나만 그리 바란 일은 아니었단 뜻이야. 결코 네게 긍정적인 일이 아니었으니…….
(잠시간 침묵만이 이어졌다. 어떻게 말해야 할지 고르는 것처럼 보였다.)
베아트리체.
너는 나를 만난 순간부터, 천천히 죽어갈 운명이니까.
베아트리체 힐:(왕위 계승과 너의 존재가 무슨 상관이 있는건지. 말을 들으면 들을수록 혼란스러워진다.)
(문에 그려져있던 그림과 지금 그의 몸에 박힌 마력관들을 번갈아 떠올린다.)
... 네 힘으로 이 나라가 굴러간다는 사실을 숨기려 했던거야?
(이어지는 침묵에 제 느릿한 심장소리만 들리다 이내 불려지는 이름에 심장이 툭하고 떨어진다.)
...죽어간다니?
에르드:그래, 그 사실마저도 너에게는 숨겨져야 했겠지.
이 왕국이 마력으로 하여금 지탱되고 있다는 것부터, 그 마력의 원천까지…… 용과 관련된 모든 것이라면 너에겐 닿지 않았어야만 했어.
말 그대로야. 내가 여기에서 더 말해줄 수 있는 건 없을 것 같군. (눈을 지긋이 내리감아 버렸다.) 오늘 네가 이곳으로 오는 걸 아무도 막지 않았을 거야. 그렇지 않던가? 어쩌면 네게 해당되었던 업무도 전부 거둬들여졌겠지.
베아트리체 힐:(목이 껄끄러워져 마른 침을 삼킨다.)
(자신이 지키고자 했던 것. 자신이 가장 소중하게 여기고 있던 모든 것. 그 모든 것이 이 눈 앞 하나의 존재 위에 가장 무거운 짐으로 얹혀져 있었다니. 눈 앞이 깜깜해진다. )
... 너와 마주한 순간 죽을 운명이니까?
결국 이것도 오피나티의 뜻인가 보네.
(오늘 제게 있었던 일들을 떠올린다. 제 아버지의 갈무리하지 못한 표정까지.)
...그래 맞아. 그래서 그랬던거구나.
베아트리체 힐:(여태 자신의 모든 것이 허무하게 무너지는 것 같아 눈을 꼭 감았다.)
에르드:차라리 기억이라도 지워진다면 네 운명이 바뀌지 않을까 했어. 그렇지만…… (말끝이 흐려진다. 이내 눈을 내리감았다.)
그래서 나에게 행복이란 올 수 없다고 하는 거야. 아주 오래 전 처음으로 그 순간을 겪었을 때부터…… 용으로서의 업을 내려놓게 되는 날까지 아마 영원히.
(깊은 회한이 배인 음성이 묵직하게 울린다.)
꽃은 고마워. 그렇지만 이곳에 있어보았자 금방 시들어버릴 테니 다시 가져가지 그래.
베아트리체 힐:(낮은 목소리가 귓가에 울리는 것을 가만히 듣고만 있었다. 서서히 감은 눈을 떠 시선을 마주하면 입가에는 미소가 걸려있지만 차마 갈무리하지 못한 감정이 얼굴에 흔적처럼 남아있다.) ...기억을 지우는 정도로는 막을 수 없었나보네.
...아주 오래전 처음...? ...지금 이 일이 몇 번이고 반복되었다는 말로 들려. (무거운 입을 떼어 말을 꺼낸다.) ... ...네가 행복할 수 없는 이유가 나 때문인거야?
(천천히 꽃으로 시선이 향했다가 서서히 고개를 저어보인다.) ...여기 두고 갈게. 시들면 또 새로운 꽃을 가져올테니까.
에르드:방금 말은 못 들은 걸로 해. (고개를 느리게 내저었다.) 그 질문에도 대답해줄 수 없네.
너는 이런 말을 듣고서도 미소를 짓는구나. 화를 내거나, 억울하다며 울분을 토해낼 수도 있을 텐데. 차라리 내게 분풀이라도 하지 그래? 어차피 용은 쉽게 죽지 않으니 네가 무슨 짓을 하더라도 괜찮아, 나는.
베아트리체 힐:(천천히 시선을 맞추고는 한참 말이 없다가) ...말할 수 없는 이유가 있나보네.
화를 내거나 억울하다고 울분을 토할 수도 있었겠지. ...그렇지만 그러고 싶지 않아서. 그것도 너에게는 더더욱. (천천히 다가가 가벼운 손길로 너의 거죽을 천천히 쓰담는다.) 더이상 상처주고 싶지않아. ...너는 이미 아주 많이 아파보이거든. 겉으로보이는 상처만 얘기하는게 아니야. ...왜인지는 모르겠지만 그런 생각이 들어. ...내 착각일까? (마지막 말은 어쩐지 조금 떨림이 느껴진다.)
에르드:…… 그래. (닿아오는 손길은 무척이나 미약하지만 분명한 온도와 다정을 품고 있었다. 너는 네 미래를 안 순간에마저도 이렇게 상냥해서……. 차라리 나를 미워해주었더라면 조금은 마음이 가벼워졌을지도 모를 텐데. 아니, 실은 안다. 무슨 반응을 하더라도 이 무거운 죄책은 사라지지 않겠지. 다만 네가 조금 더 못되게 굴었으면, 하고 바라게 될 뿐이다.) 착각일 거다. 설령 정말로 그렇다 한들 너에게 드러내보이고 싶지는 않군.
베아트리체 힐:(천천히 고개를 끄덕인다. 얼마 남지 않은 미래가 눈 앞에 있는데도 아직 실감이 나지 않아서 일까, 그저 도피하고 싶을 뿐인걸까. ...아니면 너를 만나게 되어서일까. 분풀이를 하라고 해도 할 수 없었다. 억울하지 않았다. 자신의 모든 것이 아무 소용없게 되었는데도. ...참 이상하지. 영원을 사는 커다란 존재가 한낱 인간을 뿐인 저를 이렇게 걱정하고 매 순간 후회하고 있어서인가? 생각은 무수히 떠오르지만 명확한 답은 내려지지 않는다. 자신을 책망하기를 바라는 상대가 그저 안타깝고 안쓰럽고 가엽게 느껴질 뿐.) ...솔직하지 못하네. 용도 인간과 별 다를 게 없구나?
에르드:용이라 해도 볼만한 건 힘이나 수명 정도뿐이지. 그마저도 힘은 이 감옥이나 다름없는 곳에 갇혀 착취당하고 있으니 더 이상 특별함과도 고귀함과도 거리가 멀고. (공허하게 피식 웃는 소리를 냈다.) 한미한 인간보다도 더 못한 존재 아니겠나 싶군.
베아트리체 힐:...힘과 수명. 어느 인간이라면 탐낼 것들이 너에게는 무거운 짐이구나. 네가 나와 같은 인간이었다면 좋았을까? ...차라리 내가 너와 같은 용으로 태어났다면 너의 짐을 덜어줄 수 있었을텐데. (평소라면 하지 않았을 뜬구름 잡는 말들이 흘러나온다.)
... 그렇지않아. (힘없는 웃는 소리가 들리면 고개를 저으며 너의 뺨을 쓰다듬는다. 이런 생각을 하기까지 긴 세월을 이 곳에서 시달려 왔을테니. 가슴 한구석이 무겁게 내려앉았다.)
...이곳에서 벗어날 수 있는 방법은 아무것도 없는거야?
에르드:뜬구름 같은 소리군. 언젠가 입에서 입으로 전해져내려온다는 인간들의 구전 설화를 들었을 적 같아. 그리고, 만일 그리 된다고 해도 네게 내 짐을 덜어내어줄 이유는 하등 없다. 왜 너는 굳이 나에게 이렇게까지 큰 신경을 쓰려 하는 거지? (진심으로 이해가 되지 않는다는 듯이 의문조로 속삭인다. 뺨에 내려앉는 이 손길도, 다정한 음성도, 전부 나에겐 닿아서는 안 되는 것일 텐데.)
없어. 찾으려는 노력도 하지 않았지. 이건 사실상 내가 받은 벌이나 다름없으니까. …… 어차피 내 목숨은 질기게도 붙어 살아가게 될 테지. 너도, 이런 우중충한 지하에서 계속 머무느니 얼마 남지 않은 네 스스로나 더 걱정하는 게 어때.
베아트리체 힐:...뜬구름이라도 잡아보고 싶어져서. (고개를 끄덕이며 힘없이 웃어보인다. 쓰다듬는 손길은 여전하다. 다정하고도 미약한. 그러다 손길이 멎는가 싶으면 천천히 몸을 기댄다.) ...글쎄. 나도 그 이유를 알고 싶은데 ... 여전히 잘 모르겠어. 그냥 그렇게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 (그런 생각이 드는데에는 너와의 마주침이 이번이 처음이 아닌 것 같은 느낌이 강하게 들어서 일지도 모른다. 제대로 된 답을 들은 적은 없지만 이런 상황이 몇 번이고 반복되었을 것 같은 느낌.) 이해가 안되겠지만. ... 나도 이해가 안되지만 그래. 네가 나를 걱정하는 것처럼.
...찾아보지 않아서 그런 걸지도 몰라. 해결하지 못하는 문제는 없으니까. ... 왜 너만 벌을 받아야 하는건지. (작은 숨이 밷어지고는 천천히 더 깊이 몸을 기댄다.) ...얼마 남지 않았으니까 하고 싶은대로 살아볼까 싶어서.
에르드:미련하네. 잡을 수 없는 것을 바라다니…… (나도 같은가. 누군가에게 무어라 할 처지가 아니지 않던가. 눈 앞에 있는 너를 보며 기쁘면서도, 가슴속은 점점 더 곪아 썩어들어가는 것만 같다.) 하지만 네가 바라는 일이라면 막을 수도 없겠지. 하고 싶은 대로 해. (내가 말했고 네가 말했듯 끝이 곧 다가올 테니까. 공연히 억압해보았자 구속력이라곤 없는 허상의 사슬이 될 테지.)
…… 나만 벌을 받고 있는 거라고 생각하나? 나는 나보다도 네 운명이 더 가엽고 안타까워. (미약하게 메리골드의 향이 풍긴다. 부드럽고 달콤했지만, 동시에 꼭 독을 들이키고 있는 것 같기도 했다.)
베아트리체 힐:그럴지도 모르겠네. (가만히 눈을 감으며 나지막한 목소리로 천천히 늘어놓는다.) ...한 번쯤은 아무런 것도 신경쓰지않고 이렇게 살아보고 싶었어. 그러니까 그런 눈으로 보지 않아도 돼. (문드러지는 너의 마음도 모르고 그저 조금이나마 마음의 짐을 덜어주고 싶어서 마음에도 없는 말을 하면 허탈함에 마음이 가라앉는 것이 느껴져 목소리를 가다듬었다.)
... 나도 벌을 받고 있는 거라면. (그것은 다행일까 불행일까.) ... 또다시 너와 만나게 될지도 모르겠네. ...무엇에 대한 벌로 이렇게 같은 상황을 반복하게 되는지는 모르겠지만.
에르드:너는 이 벌을 같이 받을 필요가 없어. 나는 그저…… (문득 목이 메어서, 한참이나 목소릴 낼 수가 없었다. 말을 잇지 못하고 그릉거리는 숨을 삼키다가 낮게 입 연다.) 네가 진정 자유로워지길 바랄 뿐.
또다시 이런 신세의 용을 만나는 게 네게 좋은 일일 리 없잖아나. 멀어지고 멀어져. 차라리 어디 멀리로 도망가버리기라도 해. 아예 내 눈에 띄지 않을 정도로.
하. 어차피 지금으로선 가능한 이야기도 아닌데. (헛웃음을 치며 고개를 느리게 반대쪽으로 돌렸다.) 헛소리를 했군. 이것도 못 들은 걸로 해.
베아트리체 힐:...어떤 죄로 받고 있는 벌이라면 너 혼자만의 죄가 아닐 것 같아서. (한참이나 끊어진 목소리에 의아한 얼굴이 되었다가 삼켜지는 숨소리에 마음이 울렁여 몇 번이고 눈을 깜빡인다.) ...궁금해. 네가 바라는 진정으로 자유로워진 나는 어떤 모습이야?
... 그렇게 나 혼자 멀리 도망가버리면, 너는 영원히 이곳에 홀로 남을텐데. ... 내가 다시는 네 눈앞에 나타나지 않는게 너의 행복을 위한 일이야? ... ...그렇게하면 더이상 상처받지 않을 수 있어? (차분한 목소리에 점점 물기가 어린다. 뚝 하고 말이 멈췄다가 희미하게 웃는다.)
(... 다 그렇게 못들은 걸로 하라고 하면 마음 편히 그렇구나 할 수 있을까.) ... 못할 말이, 잊어야 할 말이 그렇게 많다면, 네가 할 수 있는 말을 해줘. 못들은 걸로 하지 않아도 되는 것들.
에르드:글쎄. (죄에 대한 부분에서는 정적을 잣다가 대답했다.) 운명에 얽매이지 않고, 마음 가는 대로 원하는 걸 하면서 살아가는 모습. (자신이 떠올릴 수 있는 자유로운 모습이란 이게 전부였기에.)
(당신의 음성이 젖어듦을 알아차리자 눈이 커진다.) 나는 어디까지나, 너를 위해서……! (잠깐 목소리가 격해졌다가, 평정을 찾으려는 듯 숨을 깊이 들이마시고는 끊어진 뒷말을 잇는다.) 네 행복을 위해 한 말이었어. 상처를 주려는 건 아니었다. (네가 상처받는 모습은 보고 싶지 않아. 하지만, 당신을 아프게 해서라도 벗어나게 만들 수 있다면 차라리 잘된 걸까. 이런 생각을 하게 되는 스스로가 지독하게 증오스러웠다.)
잠깐 동안이라도 네가 평온하기를 바랄 뿐이다. 그리고, …… 너무 상처받지 않기를. (가뭄이 혀에라도 내린 것처럼 목소리 끝이 갈라진다.)
네가 더 알고 싶은 게 있다면, 나를 아는 이를 찾거나 기록을 찾아보도록 해. 정확할진 몰라도 얼마간의 답은 되어줄지 모르지.
베아트리체 힐:... 그래. (자신이 되돌려주고 싶어하는 자유와도 같았으니 천천히 고개를 끄덕인다.)
... 너도 나도 이상해. 자신은 상관없다면서 서로를 걱정하고 슬퍼하는 게. 어쩌면 조금은 비슷할지도 모르겠네. (흐려지는 눈을 몇 번이고 깜빡인다. 눈꺼풀에 열기가 더해지고 물기가 맺히는 것이 느껴져 두 손으로 눈가를 꾹 눌렀다가 떼어낸다. 젖어드는 목소리를 몇 번이고 삼키고 가다듬었는지 모른다.) ... 그렇게 한다고 해서 행복해지지 않을 것 같아. (아아, 얼마나 어렵게 입을 떼었는데. 갈무리하지 못한 감정이 틈을 비집고 나온다. 금새 다시 눈가의 물기가 모여 뺨을 타고 흐른다.)
...네가 바란다면. 노력해볼게. (한줄기 떨어져내린 흔적을 손등으로 닦아내며 몸을 일으킨다.)
...너를 아는 이라면. 폐하를 찾아가보면 될까?
에르드:울지 마. (비가 들이치듯 눅눅해지는 것만 같은 목소리를 겨우 짜내어 속삭였다.) 나 같은 놈 때문에 그 귀한 눈물을 흘리지는 않았으면 좋겠군. (몸 곳곳에 마력관이 꽂힌 고통도 한낱 먼지 정도로 치부할 수 있을 만큼 가슴이 천 갈래로 찢기는 것만 같으니까.)
그럼, 역시 나는 네가 행복해질 만한 방법을 떠올려내지는 못하는 사람인 거겠지. 네가 스스로 찾아보는 수밖에 없겠어.
왕을 보러 가는 것도 나쁜 선택지는 아니겠지. 무엇이든 네 원하는 대로 해.
지금의 이 순간이 더없이 익숙하다는 듯 바라보는 시선은 조금쯤 지쳐보였을지도 모르겠습니다.
낫지 않는 상처, 이곳에 매인 듯 엎드려 베아트리체가 이제부터 죽어갈 것이라 말하는 비밀스러운 존재.
베아트리체. 당신은 에르드의 말을 어디까지 신뢰할 수 있나요?
베아트리체 힐:....이런 때에도 걱정 뿐이야. (자신의 처지는 신경도 쓰지않는 너를 보며 힘빠진 웃음이 새어나온다. 이어지는 말이 마음에 들지 않는지 조금 미간이 찌푸려졌지만 이내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가라앉은 목소리를 숨길 생각이 없는 듯 천천히 다시 입을 연다.) ...그래. 원하는대로. ...다녀올게. (처음부터 의심한 적 없었으니 못 믿을 것도 없었다. 여전히 답을 피하는 이유는 알 수 없지만 거짓을 이야기 하는 것처럼은 보이지 않았으니까.)
용을 뒤로 하고 깊은 두 개의 문을 열고 나아갑니다.
무언가 불길하게 깨지는 듯한 소리와 함께 당신의 발밑에서 따끔거리는 통증이 번개처럼 느껴집니다.
발밑을 보니 부서진 유리병이 나뒹굴고 있습니다.
베아트리체 힐:...이건? (손을 뻗어 부서진 조각을 하나 주워든다.)
카트 안에 들어있던 유리병 중 하나로 보입니다.
관리의 소홀함일까요? 왜 이런 바닥에 나뒹굴고 있는지.
그보다, 조각이 박혔는지 발이 무척 아프고 따끔거립니다.
베아트리체 힐:아... (주변에 걸터앉아 찬찬히 발바닥을 살펴본다.)
근처를 순찰하던 위병이 급히 베아트리체에게 뛰어옵니다.
위병:공, 공주님! 무슨 일이십니까? 피가 나질 않습니까!
베아트리체 힐:... 유리 조각을 밟았나 봐. 조각이 박힌 것 같은데 의사를 불러줄 수 있을까.
위병:유리조각이라니……. (바닥에 널브러진 부서진 병을 보곤 눈이 커진다.) 이건 분명 철저히 관리하는 걸로 알고 있는데 왜 바닥에 있는 건지.
알겠습니다! 곧장 다녀오겠습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다급한 발소리와 함께 주치의가 달려옵니다.
상처는 생각만큼 가볍지만은 않아, 간단한 처치와 함께 붕대를 감아야 한다는군요.
베아트리체 힐:...걷는 데는 문제가 없는거겠지?
주치의: (발을 섬세하게 살피다가 자리에서 일어선다.) 네, 하지만 무리한 활동은 주의하셔야 합니다.
베아트리체 힐:...그렇다면 다행이네. 늘 고생이 많아. (다시 나서려는 듯 천천히 몸을 일으킨다.)
베아트리체는 왕을 보러 집무실로 가거나, 왕실 문헌보관소로 갈 수 있습니다.
베아트리체 힐:...뵙기 전에 일단 문헌보관소로 가봐야겠다.
왕실 문헌보관소는 드나드는 사람들로 부산스럽습니다.
다들 각자의 이유를 가지고 정보를 열람하기 위해 오가는 공간 사이에서, 베아트리체를 보는 사람들이 저마다 한 번씩 고개를 숙이고 지나갑니다.
어디서부터 어떻게 뒤져야 할지 감도 안 잡힐 정도로 넓어, 막막함이 듭니다.
[테이블], [서가], [태피스트리]의 조사가 가능합니다.
베아트리체 힐:(시야에 다 들어오지도 않는 넓은 보관소를 찬찬히 살피다 테이블 쪽으로 향했다.)
테이블에는 누군가 보고 아직 정리를 하지 않은 것인지 책 한 권이 펼쳐져 있습니다.
책의 내용은..... 주신 오피나티를 찬양하는 내용이네요.
:[죽음을 코앞에 두고 살아가는 우리는 신 따위는 믿을 여유가 없었으나, 그런 우리를 기꺼이 구원해주신 오피나티의 뜻대로 항상 기뻐하며, 쉬지말고 기도하고, 범사에 감사하도록 해아한다. 그 분 없이는 이 나라 또한 존재하지 못했을지니.]
베아트리체 힐:(얼마 전이었다면 당연하게 받아들였을 구절이 조금은 달갑지 않게 느껴진다. 페이지를 몇 장 넘기다가 태피스트리로 시선을 옮긴다.)
벽에 걸린, 가로 약 3M 길이의 큼지막한 태피스트리는 풍요로운 대지의 풍경을 그리고 있습니다.
나무에는 속까지 영근 열매들이 주렁주렁 열려 있고, 논과 밭에서는 작물들이 자라나 제 모양을 뽐냅니다.
구름 몇 점이 걸린 하늘은 푸르렀으며, 샛노란 태양이 걸려 있습니다.
베아트리체 힐:
관찰력
기준치: |
65/32/13 |
굴림: |
73 |
판정결과: |
실패 |
태양 속에 같은 색으로 된 자수가 박혀 있는 것을 발견합니다.
베아트리체 힐:(역시... 잘 모르겠네. 고개를 슬 기울였다가 천천히 서가로 걸어들어간다.)
베아트리체 힐:
자료조사
기준치: |
60/30/12 |
굴림: |
39 |
판정결과: |
보통 성공 |
문헌보관소에 있기에는 얇았으며, 문서라기보다는 설화의 기록에 가까운 문서입니다.
베아트리체 힐:... 용이라면. (찬찬히 글을 읽어내려가던 눈동자가 마지막에 닿자 동요하듯 흔들린다. ... 인간을 사랑했다. 사랑. 무언가 쿵 내려앉은 느낌이 든다. 떨리는 손으로 책을 챙겨 보관소를 나서며 집무실로 향한다.)
베아트리체가 서가에서 책을 덮을 즈음, 누군가의 인영이 옆으로 다가옵니다.
베아트리체 힐:....아. (가볍게 인사를 건내고는 손에 든 책을 보인다.) 찾을 것이 있어서. ... 혹시 오피나티의 용에 대해 알고 있으신가요?
교사:오피나티의 용 말씀이십니까? (다소 뜬금없는 질문에 고개를 기울이다, 당신의 손에 들린 책을 발견하곤) ㅡ아아, 공주님께서 이런 낡은 설화를 좋아하시는 줄은 미처 몰랐군요.
으음. 용에 대해 궁금하신 거라면, 제가 말하는 것보다는 직접 보시는 게 더 빠를 겁니다. 여기에서는 낡았어도, 왕궁 바깥에서는 쉽게 구할 수 있는 책이니까요. 구해다 드릴까요? 내일이나 모레 즈음은 되어야 할 것 같지만.
차라리 직접 나가서 보고 오는게 나을지도 모르겠어요.
베아트리체 힐:...고마워요. 도움이 됐어요. (가볍게 예를 표하고 걸음을 옮긴다. 기다릴 시간이 없으니 직접 가보는 수 밖에. 밖으로 나서는 느릿하던 발걸음이 점점 빨라진다.)
지금 이 시간이면 분명 집무를 보고 있을 시간이겠지요.
제아무리 딸이라 한들 말도 없이 문을 열고 들이닥친 적은 없었는데도, 지금은 긴급상황입니다.
짙은 고동색의 원목제로 다듬어진 문 앞에 선 베아트리체를, 왕의 직속 비서관이 안절부절못하며 응시하고 있습니다.
비서관의 언질 후 안으로 들어서면, 왕은 마치 당신이 올 것을 알았다는듯 응시하며 주위를 완전히 물립니다.
무엇이 궁금하기에 나를 찾아왔느냐?
베아트리체 힐:실례인 줄 알지만 궁금한 것이 있어서요. ... 오피나티의 용에 대해 말씀해주세요. ... 아시는 것은 전부요. (차분한 목소리가 평소답지 않게 조급함을 띄었다.)
왕:네가 만난 그 용에 대해 말이지. (착잡한 듯 제 수염을 만지작거리다가 책상에 한 손을 올린다.)
그는 이 나라가 세워질 때부터 존재하였던 고대의 용. 주신 오피나티께서 우리를 굽어살피시어, 나라의 번영에 쓰도록 내려주신 존재이니라.
어제에는, 네가 그 용을 만나버렸다는 소식을 들었기에 친히 그 아래까지 찾아갔었지.
베아트리체 힐:...나라의 번영에 쓰도록이요. (입안을 잘근 씹었다.) ... 그와 만나면 어떻게 되는지 이미 다 알고 계셨던거네요.
왕:왕국에 오래전부터 전설처럼 전해져내려오는 이야기가 있다.
보랏빛 머리칼에 보랏빛 눈을 가진 사람이 용을 만나게 되면, 반드시 죽고 만다는 오피나티의 예언이 있었다지.
그래서 어떻게든 네가 그곳에 가는 걸 막고 싶었으나……. 어쩔 수 없는 일이었던가 보구나.
베아트리체 힐:(전설처럼 내려오는 이야기. 그 전설 속의 주인공이 자신이라니 믿기지 않는 이야기였지만 직접 눈으로 봤으니 부정할 수도 없었다. 천천히 다가가 그의 손을 잡는다.) ...죄송해요, 아버지. ... 일이 이렇게 되어서.
...그리고 얘기해주셔서 감사해요.
왕:…… 네가 한순간에 죽음을 앞두게 될 줄은 그 누구도 알지 못했겠지. (안타까워하며 당신의 어깨를 반대쪽 손으로 토닥인다.) 그 누구보다도 심경이 복잡한 건 바로 베아트리체, 네가 아니겠느냐.
베아트리체 힐:...운명만이 아셨겠죠. (그를 다정하게 안았다가 떨어지며 가볍게 웃어보인다.) 저는 정말 괜찮아요. ...또 문안을 여쭈러 돌아올게요. (울적해지는 마음을 숨기고자 예를 표하고는 문을 나선다.)
베아트리체가 대화를 마치고 나가려고 하려는 그때,
천장에 잘만 매달려 있던 샹들리에가 삐걱이더니 그대로 떨어집니다.
베아트리체 힐:
민첩
기준치: |
70/35/14 |
굴림: |
66 |
판정결과: |
보통 성공 |
영롱하게 빛나던 유리조각들이 와장창, 하는 커다란 소리와 함께 부서지고 깨져 비산합니다.
몇 개의 파편이 베아트리체의 뺨과 팔을 스치고 지납니다만...
저 아래에 깔리지는 않았습니다. 천만다행입니다.
샹들리에가 추락하는 요란한 소리에 왕이 기겁하고, 근위대와 시종들이 뛰어들어옵니다.
왕:괜찮느냐? 다친 데는 없느냐? (허겁지겁 베아트리체에게로 뛰어와 몸을 살핀다)
베아트리체 힐:(놀란 가슴을 쓸어내리며 달려온 그와 눈을 맞춘다. 조금만 늦었어도. 끔찍한 상상이 머리를 스친다.) ...다행히도 크게 다친데는 없는 것 같아요. 저는 괜찮아요. ... 많이 놀라셨죠.
왕:다행히도 깔리지는 않았지만…… 이것 보거라. 뺨에 상처가 나질 않았느냐. 바로 주치의를 부르겠다. 잠시만 기다리거라.
주치의:오늘만 해도 벌써 두 번째입니다. 대체 이게 뭔 일이랍니까. (한숨 쉬며 상처 치료해준다.)
지금까지의 대화가 생각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지금까지 등한시하던 자잘한 사건들 또한, 머릿속을 헤집습니다.
다음은 무엇이 어떻게 베아트리체의 목숨을 노릴까요.
죽음의 그림자가 당신의 목전까지 드리운 것을 깨달은 베아트리체, SanC (1/1d2)
베아트리체 힐:
SAN Roll
기준치: |
49/24/9 |
굴림: |
21 |
판정결과: |
어려운 성공 |
베아트리체 힐:(어지러운 머릿속을 정리하려 천천히 숨을 내쉰다. ... 죽음이 제 눈 앞에서 손짓하고 있는 것 같았다. 이제껏 느끼지 못한 두려움이 스멀스멀 발목에 감기며 다리를 타고 천천히 기어올라오는 것이 느껴진다.)
베아트리체 힐:(두려움에 묶인 두 발을 억지로 떼어낸다. 제게 얼마나 시간이 남았는지 알 수 없으니. ...조금이라도 더 빨리 알아내야 해. 이대로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죽을 수는 없어. 주변에 있던 이들에게 인사를 할 새도 없이 걸음을 옮긴다. 떨리는 손끝을 힘주어 마주 잡는다 . ... 왕궁의 밖. 시간이 없어.)
그냥 당당하게 정문으로 나가나요? (just 질문)
정문에서 경비를 하던 위병들은 평소라면 용건을 물으며 베아트리체를 막았겠지만,
이번에는 베아트리체가 나가는 것을 보고도 별달리 막거나 의심하지 않습니다.
위병:밤이 늦기 전에 돌아오셔야 합니다, 공주님. 부디 무사하시길.
아참, 내일이 추수감사절을 기념하는 축제가 있는 날이었죠.
거리마다 형형색색의 종이와 전구들이 달려 내일을 위해 대롱거리고, 몰린 관광객들을 위해 벌써부터 좌판을 깐 장사치들도 몇 보입니다.
그러고 보니... 베아트리체. 서점이 어디 있는지는 아나요?
:주변을 둘러보면, 주변을 둘러보며 제 갈길을 다니는 [행인], 호객행위를 하는 [장사치], 닭꼬치를 파는 [노점]이 있습니다.
베아트리체 힐:(장사치에게 다가가 말을 걸어봅니다.)
장사치가 어설픈 좌판을 펼쳐놓고서 베아트리체를 올려다보고 있습니다.
베아트리체 힐:...마법보다는 책에 관심이 있어서. (잠시 구경하는 척하더니 본론을 꺼낸다.) ...근처에 서점이 있을까요?
장사치:음? 서점은 잘 모르겠는데. 그보다 내가 파는 물건 좀 보쇼. 여기에도 책은 꽤 있거든.
장사치가 내어놓은 낡은 서적들과 문서들 중 몇 개가 눈에 띕니다.
:[사랑의 묘약 제작법], [실전! 나도 할 수 있다 집안일 마법 20종], [까마귀 고기를 먹은 당신을 위해, 기억 마법 10종]……
수상해보이지만, 하나의 책이 눈에 들어옵니다.
혹시 2주 전 그 때에 정확히 어떤 일이 있었는지 기억해내기에 도움이 되는 주문이 있지 않을까요?
베아트리체 힐:(찬찬히 둘러보다 기억 마법이라 적힌 책을 집어든다.) ....그럼 이걸로 하나. 값은... (그러고 보니 맨몸으로 나와 값을 지불할 만한 돈이 없었다. 잠시 고민하다 머리 장식 하나를 내어 놓는다.) ...이거면 충분하겠죠?
장사치:척~ 봐도 귀티가 풀풀 흐른다 싶더니, 역시 있는 집 자식이셨구먼! (장식을 두 손으로 공손히 받아든다) 그럼요. 차고 넘칩니다요.
[기억 마법 10종] 책은 꽤나 낡아 보입니다.
페이지도 금방이라도 분해될 듯 너덜거리는 책장을 넘기자면, 한 장의 쪽지가 팔락거리며 떨어집니다.
(...신기한 내용이네. 쪽지를 반듯하게 펴서 다시 책 사이에 꽂아둔다. ) ...그럼 다음엔- (행인들을 피해 그 옆에 노점으로 향한다.)
특유의 육질이 일품인 닭고기로 만든 꼬치를 파는 노점입니다.
사람이 북적거리는 것을 보니 맛이 꽤나 좋은 집인가 봐요.
고기와 양념이 적당히 버무려진 냄새가 코 아래를 간질입니다. 궁에서는 맡아보지 못 한 냄새입니다.
그도 그럴 게, 길거리 음식과 왕궁의 음식이 같겠어요?
베아트리체 힐:(하루 종일 제대로 먹은 것이 없기 때문인지 눈 앞의 음식이 제법 맛있어 보인다. 빤히 내려다보다가 고개를 절레절레 젓는다.) ...저, 실례합니다. 혹시 근처에 서점이 어디 있는지 아시나요?
노점 주인: 음? 서점이요? 그렇잖아도 음식 만드느라 바빠 죽겠는데. 저 위쪽으로 한 번 가보쇼. (성의없이 손가락질한다)
베아트리체 힐:아, 고마워요. (북적이는 사람들 틈을 빠져나와 지나가는 행인을 붙잡는다.) ...저기, 실례합니다. 저 위쪽으로 가면 서점이 있나요?
행인: 아, 네. 북쪽으로 쭉 걷다 보면 오른쪽에 큼지막한 간판이 보일 거예요.
베아트리체 힐:고마워요. (답하듯 가볍게 웃어 보이고는 행인이 가르쳐준 길을 따라 쭉 걸어간다.)
행인이 알려준 대로 쭉 걸어 올라가자 서점이 뵙니다.
시내의 중심에 위치한, 2층 규모의 거대한 서점은 이제 겨우 해가 뉘엿뉘엿 넘어가고 있음에도 이미 불을 환히 밝혀둔 채입니다.
서넛의 손님들이 책을 보거나, 책장 사이를 걸어다니는 정도입니다.
하긴, 축제 전날에 서점을 찾는 사람이 많지는 않겠지요.
베아트리체 힐:(책등을 살펴보면서 용과 관련된 설화가 있는 책을 천천히 찾아봅니다.)
베아트리체 힐:
자료조사
기준치: |
60/30/12 |
굴림: |
94 |
판정결과: |
실패 |
베아트리체는 궁에서 보았던 책의 색과 비슷한 가죽을 덮은 책을 발견하지만...
이건 아니네요. 꽝입니다. 이 서점에는... 없는 걸까요?
베아트리체 힐:... 잘 안보이네. (책장 사이를 나와 카운터의 주인에게 향합니다.) ... 저 실례합니다. 이 책과 관련된 책들을 찾고 싶어서요. (궁에서 들고 온 낡은 책을 꺼내보인다.)
주인은 낡은 책을 이리저리 살펴보더니, 곧 서가 하나로 베아트리체를 안내합니다.
궁에서 보았던 색과 비슷한, 그것보다는 훨씬 새것의 가죽으로 양장된 책을 뽑아 건네주네요.
베아트리체 힐:(천천히 반듯한 글씨들을 읽어간다. ...벌. 용이 계속해서 말했던 것. 그와 자신에게 내려진 것. 그를 영원의 고통과 후회 속에 살게 하며 영원히 끝나지 않을. ...전설 속의 인물이 자신과 그가 맞다면. ...아니, 가정해볼 필요가 없었다. 앞선 일들이 모든 일들이 이것이 사실이라고 입을 모아 말하고 있었으니까. ...아. 낮은 탄식이 터진다. 그의 이름을 들었을 때. 그가 자신의 이름을 불렀을 때. 마치 그때가 처음이 아닌 것처럼 가슴이 일렁인 까닭을. ... 어쩌지. 다시금 눈 앞이 흐려지는 것 같아 입술을 세게 깨물었다. 숨을 고르려고 들이쉬고 내쉴 때마다 폐를 뾰족한 것들이 찌르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금방이라도 주저앉고 싶어지는 것을 간신히 참는다.)
... 돌아가야 해. (몇 번이고 무너질 뻔한 다리를 한참의 시간이 지나고 나서야 겨우 움직인다.)
사실이 아니라고 믿고 싶으나, 이미 모든 가능성이 하나의 답만을 가리키고 있지 않나요.
이건 그저 전설과 설화들을 엮어둔 이야기책인데요, 하지만...... SanC (1/1d2)
베아트리체 힐:
SAN Roll
기준치: |
48/24/9 |
굴림: |
61 |
판정결과: |
실패 |
베아트리체 힐:...? (소리가 들리는 쪽으로 고개가 돌아간다.)
말이 무엇에 놀라기라도 했는지, 미친 듯이 질주 하는 마차가 베아트리체의 지척에 닿아 있습니다.
왜 지금까지 듣지 못했던 걸까요, 그렇게나 충격적이었나요?
베아트리체 힐:(놀란 것도 잠시 마차를 피해 몸을 움직였다.)
베아트리체 힐:
민첩
기준치: |
70/35/14 |
굴림: |
25 |
판정결과: |
어려운 성공 |
베아트리체는 무거운 몸을 이끌고 급하게 갓길로 몸을 던집니다.
놀라기는 했지만, 다행히 다친 곳은 없이 마차가 마저 달려갑니다.
베아트리체 힐:(급하게 피하느라 발이 꼬여 바닥에 쓰러지듯 넘어져 빠르게 뛰는 심장을 부여잡는다.)
...이번엔 진짜 위험했어.
빠르게 뜀박질하는 심장을 안은 채 궁으로 돌아올 즈음에는,
이미 해는 모두 지고, 달이 하늘 높이 걸렸습니다.
손 안에 쥔 쪽지가 마음에 걸리지만, 지금은 손 까딱 하기 힘들만큼 지칩니다.
베아트리체의 오늘 하루가 꽤나 길고 험난하기는 했죠. 나머지는 내일 생각합시다.
베아트리체 힐:(천천히 침대에 지친 몸을 누이면 무거운 눈꺼풀이 스르르 감겨온다.)
베아트리체는 침대에 누워, 그대로 몰려오는 잠에 몸을 맡깁니다.
암전되었던 정신에 불이 켜지듯, 베아트리체는 눈을 뜹니다.
기절하듯 잠들었는지, 옷을 갈아입은 기억도 나지 않습니다만...
방을 확인한 시종이 깨끗한 잠옷으로 갈아입힌 모양입니다.
가지고 왔던 책과 쪽지는 침대 옆 협탁에 가지런히 놓여 있습니다.
베아트리체 힐:(빛이 세어 들어오면 눈꺼풀이 무겁게 뜨인다. 언제 잠들었는지 기억도 흐려 멍한 정신으로 익숙한 천장을 올려다보았다가 눈을 천천히 다시 감았다 뜨며 몸을 일으켰다.)
(정신이 들면 침대 옆에 놓인 책과 쪽지로 자연스레 시선이 돌아가고 손을 뻗어 품에 안아 들었다.) ...만나러 가봐야겠지. 할 얘기 많으니까.
책과 쪽지를 챙겨 에르드에게 향하려고 하면, 마침 밖에서 시종들이 들어옵니다.
시종장: 공주님, 어디를 가시려 하십니까? 잠시 시간을 내주실 수 있을까요?
시종장의 뒤를 보면, 줄자를 든 시종이 두엇 더 서있습니다.
베아트리체 힐:... 갑자기 옷 치수를? (의아함에 고개가 슬 기우는가 싶더니 이내 가볍게 끄덕였다. ... 그래, 곧 필요할지도 모르지.)
시종들은 베아트리체를 둘러싸고 일사불란하게 치수를 재기 시작합니다.
어깨너비, 가슴둘레, 허리둘레... 꼼꼼히 기록하고 측정하는 것을, 시종장은 특유의 무표정으로 응시하고 있습니다.
어쩌면 이건, 수의를 짓기 위함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온 몸이 욱신거리고, 다친 상처들이 아립니다.
세상이 목을 빼고 나의 죽음을 기다리고 있지 않을까, 하는 아득한 기분이 베아트리체를 덮쳐옵니다. SanC (0/1)
베아트리체 힐:
SAN Roll
기준치: |
46/23/9 |
굴림: |
7 |
판정결과: |
극단적 성공 |
시종장:다 되었습니다, 공주님. 그럼 이만 물러나 보겠습니다. (고개 숙이고 시종들을 데리고 나간다)
베아트리체는 금방 자유의 몸이 되었습니다. 모두가 물러난 방은 적막으로 가득 찹니다.
느껴지는 것은, 그림자에 질척하게 달라붙는 죽음의 존재입니다.
베아트리체 힐:(그들이 나가기까지 얼마 안되는 시간이었음에도 그 순간이 너무 느리고 무겁게만 느껴졌다. 숨을 크게 내쉬었다가 조금 차게 식은 손끝을 어루어 만졌다. 쪽지를 책 사이에 잘 끼워두고는 방 문을 나선다. 그를 만나야 해. .... 에르드. 상처 입은 용.)
오늘따라 지하의 온기는 더욱 서늘하게 가라앉아 있습니다.
이제는 이 길이 익숙하게 느껴질지도 모르겠어요.
그곳의 용은 무언가를 말하려는 듯 잠시 몸을 일으켰다가, 이내 풀썩. 먼지를 일으키며 다시 그 자리에 눕습니다.
금색 눈이 베아트리체가 쥔 쪽지로 옮겨집니다.
베아트리체 힐:... ...잃어버린 내 기억을 되찾아 줄지도 모르는 것.
에르드:(눈가가 미세하게 일그러진다) 내용을 보여주겠어?
베아트리체 힐:(... 조금 망설이는가 싶더니 천천히 다가가 글이 적힌 쪽으로 보기 쉽게 내민다.)
베아트리체가 쪽지를 보여주면, 에르드의 시선이 바닥으로 깔리고,
걱정스러운 듯한 목소리가 머릿속을 지긋이 긁어내립니다.
베아트리체 힐:... 맞아. 위험해. (걱정 가득한 목소리가 온 몸에 울리는 것 같았다. ... 그래서인가. 네 앞에서는 왜 평소의 자신 같지 않아지는지 모를 일이다.)
...하지만 어차피 끝이 머지 않았으니 상관없지도 않을까하고.
에르드:알고 있으면서……. (하지만 당신의 말대로 끝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건 여기 있는 둘 모두 아주 잘 알고 있는 일일 테지.) 네가 감당할 수 없을 거다.
베아트리체 힐:(...맞아. 네 말이 틀린 적 없다는 것을 안다. 감당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 ... 내가 한낱 인간이기 때문에?
에르드:……. (대답 없이 침묵하며 고개를 미약하게 옆쪽으로 돌린다) 꼭 알아야겠어? 괜히 망각인 게 아닐 텐데.
베아트리체 힐:인간에게 있어 망각을 가장 커다란 축복이다... (바닥을 물끄러미 내려다보며 쪽지에 맨 앞 줄에 적혀있던 문장을 입 밖으로 되내인다.) 맞는 말이라고 생각해.
(잠시 침묵이 내려앉는가 싶으면 천천히 눈을 마주한다. 차분한 목소리를 농담하듯 띄운다.) ...하지만 나는 보통의 인간과는 조금 다른가 봐. 아무것도 모르고 끝을 맺는 게 나한테는 달갑지 않아서. ... 이렇게 보여도 호기심은 지지 않거든.
에르드:너는……. (말끝이 채 이어지지 못하고 끊기기를 몇 번이나 반복한다. 무슨 생각에 잠겨 있는 건지 한참 동안이나 정적만이 감돌았다. 당신에게서 모로 고개를 돌린 채 눈을 내리감고 낮게 중얼거렸다.) 인간은 역시 미련하군.
하지만 너라면 그럴 것 같았지. …… 주문을 대신 사용해줄게. 그러면 되겠나?
베아트리체 힐:(가만히 너를 지켜본다. 몇 번이고 삼킨 말들이나 결국 입 밖으로 나오지 못하는 말들. ... 너로서는 할 수 없는 것 들이니 내가 직접 알아내는 수 밖에. ) ...인간이니까 그럴 수 밖에 없는거야.
...나에 대해 잘 아는구나? ... ...고마워. 부탁할게.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며 입가에 가벼운 미소를 띄운다.)
에르드:(그런 너를 눈에서 뗄 수 없게 되어버린 내가 더 미련할 테지. 차마 입 밖으로는 흘러가지 못한 소리를 다시금 꾹 삼켜 감춘다.)
(그리고 손을 뻗었다.) 전혀 고맙다고 할 만한 일이 아니다. 후회하더라도 난 몰라.
('망각 삭제' 주문을 사용한다.)
주문이 시전되자마자, 베아트리체는 눈앞이 하얀 빛으로 물드는 것을 느낍니다.
1000년 동안 태어나 에르드를 만나고 죽어갔던 삶들이 셀 수 없는 페이지가 되어 눈 앞에서 넘어가고 있는 광경이라는 것을요.
당신은 늘 붉은 벨벳이 깔린 이 복도를 따라 걸었으며,
지하에 감금된 에르드를 마주했다는 것을 기억해냅니다.
당신은 언제나 보랏빛 눈동자와 머리칼을 가진 공주였으며,
금빛 눈동자에 비치는 당신의 몸에 상처가 늘어나고,
또다시 죽어가는 모습을 수번, 수십번, 수백번.
에르드가 어떻게 지쳐가고, 미쳐가는지 느껴집니다.
에르드는 처음 몇 번은 반가워 웃었고, 당신과 목소리 높여 싸워 보기도 했으며, 아이처럼 울기도 했습니다.
그 모든 과정을 거쳐 모든 것에 체념하듯, 그저 엎드린 죄인이 되었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견딜 수 있나요? 수백 번의 탄생과 죽음을 되감기한 베아트리체, SanC (1d5+3/1d10+5)
베아트리체 힐:
rolling 1d5+3/1d10+5
=
11.5
SAN Roll
기준치: |
46/23/9 |
굴림: |
4 |
판정결과: |
극단적 성공 |
베아트리체 <지능> 판정. 성공시 광기에 걸립니다.
베아트리체 힐:
지능
기준치: |
55/27/11 |
굴림: |
67 |
판정결과: |
실패 |
머리가 지독히 아픕니다. 숨을 쉬기 힘들 정도로 힘듭니다.
너무도 많은 삶이 책장처럼 넘겨지니, 오히려 현실감이 떨어지는 듯합니다.
괴롭지만, 다행인지 불행인지 미쳐버릴 정도는 아닙니다.
베아트리체 힐:(몇 번이고 반복되는 삶과 정해진 결말이 눈 앞에 서 되살아나는 것을 수도 없이 보고서야 비틀거리며 쓰러지듯 머리를 부여잡았다. 감당할 수 없을 만큼의 버거운 것들이 몰려들어오는 것이 느껴진다. 미쳐버렸을지도 모를만큼.)
에르드:(어느 순간, 단단한 두 팔이 뻗어나오는가 싶더니 비틀거리는 당신의 몸을 단단히 받치며 끌어안는다.) 이래서 내가 말렸던 건데. 괜찮은 거야? 내 말, 들리나?
정신을 차리니, 당신의 눈 앞에 보이는 이는 뿔과 비늘이 사라진 인간의 모습입니다.
부드럽게 흘러내리는 흑색 머리칼과 짙은 피부의 훤칠한 청년 모습으로, 깊은 흉터가 진 금빛 눈이 그가 용 에르드라는 것을 알리는 듯합니다.
팔과 다리, 목덜미에는 붕대가 칭칭 동여매져 있었습니다.
피 나는 상처들을 그리 묶어 가려둔 모양입니다.
베아트리체 힐:(머리를 부여잡느라 제 시선을 가리고 있던 손을 떼어내면 네 모습이 선명하게 자리 잡는다.) ... 에르드.
에르드:…… 그래. 나야. 베아트리체. (마치 햇빛에 금세 녹아 사라질 서리를 끌어안기라도 하는 것처럼 아주 조심스럽고 섬세한 동작으로 당신을 제 품에 안았다.) 너를 이렇게 안아보는 게 과연 몇백 년 만인지 모르겠구나.
모든 진실을 알게 되니 내가 조금 다르게 보이지 않나? 그 무조건적인 호의에 원망이 섞여들어도 충분할 만한 시간이니까. (얼마든지 밀쳐내어도 된다는 것처럼 팔의 힘이 무척이나 미약했다.)
베아트리체 힐:...에르드. (...아, 이제서야 나를 부르는 네 목소리가 온전한 제 것인양 안심이 된다. 그 커다란 두 팔로 마치 저를 금방이라도 부서질 듯 안고 있는 모습이 참으로 애틋하고 안쓰럽고 사랑스럽기까지 했다. 겨우 맞닿은 온기를 놓칠 수 없어서 제 작은 팔을 네 등에 둘러 채 틈이 남지 않을 정도로 가득 껴안았다.) ... 미련해. 미련한 나의 용.
에르드:맞아. 너더러 미련하다고 했지만 사실 미련한 건 나야. 가져서는 안 되는 마음을 품어, 네게 천 년에 달하는 끝없는 환생과 죽음의 고통을 안기고 말았으니……. 그런데도 넌 나를 밀쳐내지 않는구나. (오랜 가뭄에 쩍쩍 갈라지고 메마른 줄로만 알았던 심장이 당신의 목소리로 하여금 물기를 머금고, 당신의 온기로 하여금 맥박치게 하며, 비로소 당신의 마음에 공명한다.) 네가 나의 메리골드나 다름없었는데. 너를 잃어야만 하는 운명의 굴레에 갇힌 내가 어떻게 감히 행복할 수 있겠어…….
베아트리체 힐:(...어쩜 이런 것까지도 닮아버렸는지. 아주 느리게, 그러나 단호하게 고개를 내젓는다.) 네 잘못이 아니야. ... 그런 마음을 품은 건 너 혼자가 아니었으니까. ... ...그러니 어떻게 밀어낼 수 있겠어. (이렇게 눈 앞에 두고 서로의 온기가 맞닿아 있는데도 안타깝고 애절한 마음이 넘쳐흐르는데. 등에 둘러진 손이 찬찬히 팔에 감긴 상처 위를 부드럽게 쓸어낸다.) ...메리골드.
... ...영원히 곁에 있어주지 못해 미안해. 내 잘못이야. 내가 없이도 네가 행복하면 좋겠어. 에르드.
에르드:미안하다고 말해야 하는 건, 네가 아니라 나야. (심장이 둔기로 두들겨맞는 듯한 둔통에 눈을 꾹 감으며 당신의 어깨에 고개를 느리게 묻었다. 붕대 위를 스치는 손길은 나뭇잎을 어루만지는 햇살과도 같이 느껴졌다. 태양을 관장하는 용이기에 그랬을까. 이 다정함과 상냥함에 이끌려 처음 시선을 앗겼을 때부터, 돌이킬 수 없었음을 직감해야만 했었는데. 미련하게도 처음 찾아온 사랑이란 낯선 감정에 홀려 제때 발을 빼지 못해 지극히 아끼는 이를 무한한 고통의 굴레에 던져지게 만들었다.)
(끝없이 보랏빛 머리칼과 보랏빛 눈을 타고나 나에게 돌아오는 네가 있는 한, 내가 어떻게 진정 행복할 수 있을까. 너를 볼 때 나는 행복하면서도 고통스럽고 환희에 찼다가도 더없이 비탄에 잠기곤 했다.)
하고 싶은 말이 있어. 바깥으로 나가 좀 걸을까.
베아트리체 힐:(기어코 사과를 하는 네 목소리가 너무나도 아프게 들려서, 상처를 쓸어 내리던 손을 뺨에 가벼운 손짓으로 가져갔다. 태양과도 같은 빛을 띄는 밝은 눈동자. 그 안에는 자신이 온전히 담겨있었으며 더 깊은 곳에는 끝없는 회한과 고통 역시도 깃들어있었다. ... 바보처럼. 그럴 필요가 없는데. 너의 사랑은 나를 아프게 만 한 것이 아니었으니. 그 끝없는 굴레 속에서도 결국 너를 다시 만나 이토록 벅차오르는 마음을 하나하나 늘어놓고 싶었다.)
(... 어떻게 하면 너를 행복하게 만들어 줄 수 있을까. 더이상 네가 아프지 않았으면 좋겠어. 입 밖으로 나오지 않는 말을 꾹꾹 삼키며 검은 머리칼 아래서 반짝이는 금빛 눈동자를 마주한다.)
... 응. 좋아. (한걸음 물러서며 가볍게 손을 내민다. 마주하는 표정은 웃음에 가까웠지만 슬픔이 서려있던가.)
에르드:(뺨에 닿는 손길을 차마 붙잡지도 못한 채, 그저 그 손에 얼굴을 잠시 느리게 기댈 뿐이었다. 아아, 곧 안개마냥 스러져버리고 말 미약한 온기여. 영영 함께 할 수 있었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이리 다시 만난 와중에도 함께일 수 있어 행복하다는 감정보다 과거의 아픔으로 인해 갈라지고 괴로웠던 세월이 더 깊게 새겨져 제 존재감을 드러낸다.)
(우리는 서로의 행복을 바라지만 그것이 서로 없이는 완전히 이뤄지지 못할 것을 알고, 서로가 있더라도 완전히 채워줄 수 없음을 안다. 이 얼마나 가혹한 운명인지.)
(차마 마주 미소짓지 못한 채로 눈을 느리게 내리감았다가 떠올렸다. 당신의 반대쪽 손을 부드럽게 감싸쥔다.) 가자.
에르드와 베아트리체는 천천히 거대한 문을 나와, 붉은 복도를 걸어올라갑니다.
마주치는 사람들은 있었지만, 아무도 둘을 막지 않았습니다.
상처투성이가 된 베아트리체 옆의 처음 보는 존재 에르드에게서 우러나오는 분위기는,
감히 누군가 저지할 수 없는 어떠한 힘이 있었습니다.
지하에서 해후를 보내며 오랜 시간이 지났는지, 벌써 해가 저문 저녁입니다.
아이들의 웃음소리와 달음박질들, 좌판을 펼친 노점상들이 선보이는 음식들의 냄새,
사람들의 대화들로 가득 찬 길은 더할나위 없이 행복으로 한껏 여민 축제라는 단어가 어울립니다.
에르드:이런 축제 광경을 보는 건…… 지하에 갇히고 나선 거의 처음인 것 같군. 인간들의 정취를 조금이나마 즐기는 것도 나쁘진 않겠지?
베아트리체 힐:(즐거워 보이는 사람들과 빛으로 가득 찬 거리를 바라본다.) ... 응. ... 아주 아주 오랜만이겠네. 하고 싶었던 거라도 있었어?
에르드:글쎄……. 사실 내가 이전에 나왔던 때와 지금의 인간계는 너무 달라진 것 같아서. (조금 어색한 눈길로 주변을 두리번거린다.) 네가 소개시켜주는 건 어때.
베아트리체 힐:(가볍게 웃어 보이고는 노점을 손 끝으로 가르킨다.) ... 그럼 저기부터 먼저 구경해볼까?
치즈를 얹은 고기볶음, 달달한 소스를 뿌린 꼬치들, 갓 짜낸 주스와 도수가 강하지 않아 적당히 즐길 수 있는 즉석 칵테일, 시원한 맥주 등...
과연 축제입니다. 몇 가지를 사 먹어보는 것도 좋을 것 같아요.
에르드:(냄새에 이끌린 듯 슬쩍 걸어가서 고개 숙여 음식들 바라본다. 그리고 베아트리체 쪽을 돌아보며) 네가 좋아하는 것도 있나? (공주는 이런 음식은 안 먹는단 것도 모르고)
베아트리체 힐:(사실 자신도 여태 먹어본 적 없는 음식들이었으나 아무래도 좋을 듯 싶었다.) ... 저 쪽에 있는 주스.
... 음, 먹을 것도 필요할까?
에르드:(주스 흘끔 본다) 배를 채우는 것도 나쁘진 않겠지. 난 굳이 뭘 먹지 않아도 되니 네가 먹을 것만 사. …… 난 인간의 돈이 없으니까 이것도 네게 맡겨야겠군.
베아트리체 힐:... 그래. (한 노점 앞에서 주인을 불러 손으로 앞에 놓인 꼬치도 하나 가르킨다.) ...여기 주스 두 개랑 저것도 하나 주게. 값은... (주머니 속에 하나 있던 금화를 꺼내들었다.) ...이거면 충분하겠지?
"아가씨, 물론이지요! 그 금화면 열 개는 거뜬히 살 수 있을 겁니다."
베아트리체 힐:(당신을 물끄러미 바라본다.) ..정말 안먹을거야?
에르드:(고민……) 하나쯤 먹는다고 탈이 나지는 않겠지.
베아트리체 힐:그럼 두 개만 주게. ... 나머지는 혹시 먹고 싶어하는 아이들이 보이면 나눠줬으면 좋겠어.
"마음도 착하시지... 알겠습니다. 여기 있습니다!"
주인이 꼬치 두 개와 주스 두 잔을 건네줍니다.
주스는 시원하고, 갓 구워진 꼬치에서는 김이 모락모락 올라와 겉보기에도 무척 맛있어 보여요.
베아트리체 힐:고맙네. (가볍게 인사를 건네고 당신에게 돌아와 음식들을 건낸다. 제 몫의 주스 한 잔을 제외하고.)
에르드:(주스랑 꼬치를 약간 어정쩡한 손길로 받아든다. 코끝에 가까이 가져다 대고 킁킁 냄새를 맡다가 꼬치를 한 입 물어보았다. 꽤 맛있는 듯 우물거리는 속도가 서서히 빨라졌다.) 인간은 이런 음식을 먹는군…… 그러고 보면 아주 이전의 너와 거리를 돌아다니며 인간의 식사를 함께했던 적도 있는 것 같아.
베아트리체 힐:(평상시라면 무례한 일이라며 그러지 않았겠지만 그 모습이 귀여워서 빤히 지켜보았다. 저도 모르게 입가에는 미소가 걸렸다.) ...잘 먹네. 안 샀으면 아쉬웠겠다. ... 10개 다 가져올걸 그랬나?
...아. (찬찬히 스쳐가는 기억들을 되짚어본다.) ..그런 적이 있었지. 즐거웠어. 지금만큼이나.
에르드:됐어. 먹어봤자 의미도 없는데. 그냥…… 너 혼자만 먹으면 좀 머쓱할까 봐 내 것도 하나 사 달라고 한 거니까. (약간 머쓱하게 대답하며 주스도 꿀꺽 마셨다.)
천 년을 헤치며 네가 이렇게 모든 기억을 찾은 건 처음이다. 언제나 너는 당당했고 선하며 호기심 넘치는 사람이었지. 얼굴은 바뀌어도 그 성격만은 여전하네.
베아트리체 힐:(이어지는 대답에 조그맣게 웃음소리가 흐른다. 즐거운 축제 분위기에 더해져 음악처럼 거리로 스며든다.) ...그래. 신경 써줘서 고마워.
(천천히 원래의 담담한 표정으로 돌아온다.) ... 이번이 처음이구나. ...미안해. 너를 더 빨리 기억하고 싶었는데.
에르드:사과할 것 없어. 지금까진 네가 그 주문을 찾지 못했을 뿐이니까. 천 년이나 지났지만, 너와 이렇게 축제를 함께 보낼 수 있을 줄은 몰랐는데……. (꽤나 감회가 새로웠다.)
호객행위로 시끌시끌한 상점가에서, 베아트리체는 유독 선명하게 들리는 하나의 외침을 듣습니다.
베아트리체 힐:
듣기
기준치: |
70/35/14 |
굴림: |
96 |
판정결과: |
실패 |
:"전생체험을 할 수 있는 물약입니다! 전생이 궁금하지 않으셨나요? 이 물약 하나면 당신이 어디에서 태어난 어떤 사람인지, 일생을 전부 체험해보실 수 있습니다!"
(호기심 가득한 눈으로 돌아본다.)
에르드:…… 이미 천 년 전 기억까지 어렴풋 돌아온 거 아니었나? (저런 게 궁금해? 라는 눈으로 상인과 베아트리체 번갈아본다)
베아트리체 힐:...음. 그건 그래. 그냥 진짜일까 해서. (빈 주머니를 떠올린다.) ... 사지도 못하겠지만.
에르드:네가 하고 싶다면야 굳이 말리진 않겠지만. (곰곰이 보다가) 저 물약보단 내가 말해주는 게 훨씬 정확할걸.
베아트리체 힐:... ...아, 그러고 보니 할 말이 있다고 했었지.
에르드:내가 하려던 말은 전생에 관한 건 아니야. 그 말은…… 조금 더 나중에.
베아트리체 힐:... ...그래. 때가 되면 얘기해줘. 그럼 전생 이야기라도 해줄래? (손을 다시금 잡으면서 발걸음을 옮긴다.)
마침 축제의 절정인지, 걸음을 내딛고 얼마 지나지 않아 폭죽 터지는 소리와 함께 색색의 불꽃들이 하늘로 날아올라 화려하게 장식합니다.
무심코 옆을 보면, 에르드는 하늘이 아닌 베아트리체를 보고 있습니다.
에르드:그때에도 같은 머리칼과 같은 눈색을 가진 공주의 신분이었음은 당연할 테지. 다만 그때는 위로 형제자매가 많은 막내 공주였어. 사랑을 가득 받으며 자라 그런지 당차고 어리광도 많았었지. (금빛 눈동자가 아련한 추억의 바다에 잠겨든다.)
호기심이 많아 백성들을 직접 만나러 다녔다더군. 평민처럼 변장해서 그들의 삶을 가까이서 바라보기도 하고……. 평판 좋은 공주였다고 들었어.
당연히 그런 네게 혼담이 밀물처럼 쏟아져 왔었지. 좋은 왕국의 왕자와 이야기가 막 오가던 그 무렵…… 내가 있는 지하를 기어코 네가 찾아내고야 말았었다. (추억은 결국 수심으로 끝난다.)
너는 끝내 식을 올리지 못하고…… 죽고 말았어.
베아트리체 힐:(하늘을 수놓은 빛이 깃들어 네 눈동자는 어떤 보석보다도 아름답게 빛이 난다. ) ...어쩐지 조금 상상이 안되네. (잠겨드는 눈동자를 마주하며 오래 전 자신의 모습을 떠올린다.) ... 지금도 그랬으면 좋았을텐데. 왕국을 걱정할 필요도 없었을테고. 다시 한 번 그렇게 살아봐도 좋을 것 같아.
... 괜한 얘기를 꺼내게 만들었네. (손을 들어 뺨에 톡 가볍게 건들였다. 조금 과장된 장난스러움과 농담같은 말을 꺼낸다.) ... 덕분에 다른 이와 결혼하지 않았으니까 오히려 잘된 걸지도 몰라.
...결국 다시 온전한 기억으로 너와 만날 수 있게 되었으니까.
에르드:과연 잘된 일일까. 나를 만나기 전까지 너는 운명에 때묻지 않은 순수한 이였을 텐데. 그야말로 탄탄대로였지. 행복이 보장된 미래. 그걸 전부 잃고 죽고 말았는데…… 그런데도 어떻게 잘된 거라고 할 수 있는 거야. (손길이 닿은 쪽의 눈꺼풀만 살짝 감았다가 떴다.)
네 정신이 그나마 견뎌내서 다행이지. 정말 위험천만한 주문이라는 거 알고는 있나? …… 만약 네가 정신을 놓았더라도 내 힘으로 어떻게든 다시 의식을 찾을 수 있도록 도와주긴 했을 테지만.
베아트리체 힐:...너는 믿지 않을지 모르겠지만. 나는 지금 이 순간에도 네 생각하는 만큼 고통스럽지도 후회하고 있지도 않아. ... 한 톨의 미련도 없다면 그건 거짓말이겠지만. ... ... 정말 그래. (올려다 마주하는 얼굴은 그 말이 진심이라는 것을 증명하듯 오히려 편안해 보였다.)
... 내 생각보다도 정말 훨씬 더 위험한 거였네. (차마 형용할 수 없는 고통이 저를 찌른 기억이 생생하게 떠오른다.) ... 고마워. 네가 있어서 그렇게 무모해질 수 있었나봐.
에르드:때로 널 보고 있자면 천 년을 버텨온 용인 나보다도 더 강인하단 생각이 들어. (평온해 보이는 낯을 오래 시선에 담았다. 반복되는 굴레 속 함께할 수 있는 시간은 아주 잠깐뿐. 게다가 기억을 모두 되찾은 건 사실상 처음이니만큼 함께하는 시간의 1분 1초가 아까웠다.) 그래서 너를 사랑하지 않을 수 없었는지도 모르겠다.
(지금 이 순간도 언제 바스라질지 모르는 운명이라면…….)
(이내 시선을 돌린다. 끄트머리의 주점을 가리켠다.) 저곳은 술을 파는 곳이지. 잠시 여기서 기다려주겠어?
베아트리체 힐:... 용의 연인이라 그런가. (... ...이어지는 말은 잔잔한 물 표면에 커다란 파동을 일으키고 잠겨 드는 작은 돌멩이와도 같았다. 동요하는 마음이 감추지 못한 얼굴에도 드러날 만큼 크게 일렁인다.)
...아. 응, 기다리고 있을게. 다녀와. (거둔 손을 반대쪽 손으로 꼭 그러 쥐며 고개를 끄덕였다.)
...아, 다녀오면 하고 싶은 얘기가 있어.
에르드:연인이라기에는 그에 걸맞은 사랑을 한 번도 나눠보진 못했지만 말이야. (조금 서글프게 웃는다) 그래. 나도, 너도 서로에게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으니 천천히 회포를 풀면 되겠군.
잠시 기다리고 있자면, 에르드는 와인잔 두 개를 들고 돌아나옵니다.
에르드:불꽃놀이가 끝나가는군. (하늘을 올려다보았다가 턱짓한다) 강가로 가자.
베아트리체 힐:(옆에 서서 걸음에 맞춰 강가로 천천히 내려간다.)
저 먼 하늘 위로 여남은 불꽃이 터지다가 잠잠해집니다.
연기가 가시면 비로소 은은한 달빛과 별빛이 반짝이는 밤하늘이 드러납니다.
에르드:네가 하고픈 말을 먼저 듣는 게 좋겠군. (잔을 마른 땅바닥에 내려두었다.)
베아트리체 힐:(입을 몇 번 달싹이다가 고개를 저었다.) ...아. 조금 있다가. ... 그렇게 중요한 이야기는 아니라서. (땅에 놓인 잔을 집어든다.) 먼저 얘기해도 돼.
에르드:먼저 말하는 게 좋지 않을까 싶어. …… 내가 하고자 하는 건, 사실 나로선 피하고 싶은 이야기이기도 해서. (제 손을 겹쳐 만지작거린다.)
베아트리체 힐:... ......그래.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곤 손에 든 잔의 입구를 엄지로 몇 번 슬 쓸다가 입을 연다.)
... ... ...사랑해.
... 언제고 이 얘기는 제대로 하지 않은 것 같아서. 한번은 이렇게 말하고 싶었어.
(부끄러운 탓인지 조금 목소리가 줄어든다.)
에르드:……! (눈이 커진다. 흉 진 낯에 일순 수많은 감정이 스쳐지나간다. 바위가 오랜 시간 바람에 깎여나가면서도 둔중한 몸을 유지하듯, 그의 감정도 오랜 시간 메말라갔으나 완전히 표백되지는 않았다. 만나더라도 제대로 마음을 전하지도 못한 채 사랑하는 이가 싸늘히 식어가는 것을 수없이 바라만 봐야 했다. 연인이라면 흔하게 할 법한 고백이 우리에게는 너무도 진귀한 보물 같았다. 기쁘고 행복했다. 그러나 동시에 착잡했고, 비참했고, 무엇보다 깊은 자괴감이 칼날마냥 저를 갈라온다.)
나 역시…… 베아트리체, 너를 진심으로 사랑해. 단 한 순간도 너를 지울 수 없을 만큼.
(밀어를 나누는 순간이 영원히 이어질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이 비참한 단어를 입에 올려야만 하는 순간이 아니라.)
에르드:(그는 당신의 앞에 놓인 잔에 와인을 따른다.) ……나는 오피나티와 거래를 했어, 베아트리체.
베아트리체 힐:(그제서야 천천히 고개를 들어 당신을 마주한다. 무어라 할 수 있을 만큼 환한 얼굴은 아니었다. 그러나 기쁨이 스며든 얼굴은 한 일국의 공주가 아니라 그저 제 정인과 서로의 마음을 다시금 확인한 것에 기뻤을 뿐인 그저 한 명의 사람이었다. 머지않아 이어지는 말에 의문이 떠오른다.) ... 거래?
에르드:(끄덕인다.) 우리의 저주를 풀 수 있는 거래야.
내용은…… (괴로움에 목소리가 갈라져간다) 내 손으로 너를 죽이는 것.
이 와인에 독을 탔어. 고통은 없을 거야. …… 하지만 마시는 건 네가 원하는 대로 해. (너는 나에게 사랑을 말하는데, 나는 너에게 독을 건네야만 한다. 이 무슨 모순이고 배신이나 다름없는 짓인지. 끝까지 저는 당신 앞에서 죄에 짓눌려간다. 오피나티가 바라는 게 바로 이것일 테지. 감히 제 주신을 거스른 죄, 천 년이 지나도록 떨쳐낼 수가 없구나.)
베아트리체 힐:(채워진 잔에 담긴 액체를 바라보며 그저 가만히 당신의 이야기를 듣는다. 한참이고 말이 없다.) ... ...너의 신은 참 끝까지 잔인하네. 벌로는 부족해 너에게 이런 고통까지 안겨주는 걸 보니.
... ...더 이상 네가 고통 받지 않고 살 수 있다면 좋아. 저주가 풀리면 그렇게 되겠지.
... ...다만. 이제 다시는 만나게 될 수 없는걸까?
에르드:(당신의 대답을 기다리는 시간이, 꼭 죄수가 법정에 끌려나와 형량을 기다리는 것처럼 조마조마하고 불안스럽게 느껴졌다.) 너희의 왕국이 모시는 신이기도 하니, 어쩌겠어. (씁쓸하게 대답한다.)
(그런데도 결국 당신은 자신보다 또 나를 먼저 걱정해서.)
적어도 너는 더 이상 보라색 머리칼과 보라색 눈을 타고난 공주로 태어나지는 않을 거야. 나는 어찌될지 알 수 없지. 만남을 확답해줄 수는 없겠군. (낮게 깔리는 음성.) 하지만, 나는 그거면 충분해, 지금으로서는. 더 이상 나를 만났단 이유만으로 네가 죽어가는 삶을 반복하게 하고 싶지는 않아. 내 사랑으로 빚어진 관계라고 하기엔 너무 오랜 세월이었고, 너무 오래 고통스러웠지 않나.
베아트리체 힐:...그랬지. 참 잔인하고 자비로운 신.
(손에 들린 잔을 꼭 붙잡는다.)
...그렇구나. 그래도 다행이야. 너어게 사랑한다고 전해서. ...말하지 않았으면 아마 미련이 남았을지도 모르겠네. (결심이 선 듯 눈이 선명하게 반짝였다. 한 점 후회도 없는 다짐.) ...네가 충분하다면 그럴로 됐어. 너무 오래 고통스러웠을테니까. ... 그래도 만약 다시 태어날 수 있다면. ... .....그때도 반드시 내가 너를 찾을게.
(천천히 몸을 일으켜 당신의 목덜미를 감싸 안았다. 그리고는 아주 가볍게 이마에 입을 맞췄다.)
... 사랑해.
베아트리체 힐:(환하게 웃어 보였을까. 네가 슬퍼하면 안되는데. 잔을 입에 가져간다. 붉은 액체가 서서히 입술의 뒷편으로 사라지는 것이 보인다.)
에르드:아직도 나를 사랑해주어…… 고마워. (잘 떨어지지 않는 입술을 간신히 뗀다. 이걸로 끝. 지독하게 되감기던 운명의 물레는 이제 실이 끊어질 테다. 다시는 저를 만나 죽어가는 당신을 보지 않아도 된다. 그러니 분명 축복해야만 할 일일 텐데…….)
그리고, 나로 인해 이리 오래 고통받았는데도 다시 찾아주겠다는 말 또한. 오래도록 가슴에 간직할게. 부디 그때에는 너와 내가 이 운명이란 악귀에게 붙잡히지 않고, 오롯이 서로의 감정을 나눌 수 있기를.
(제 손으로 독이 든 와인을 건넨 주제에, 이마에 입술이 닿아오는 순간 참을 수 없을 만큼 잔을 내동댕이치고 싶은 충동이 든다. 어차피 끝은 목전에 있었다. 어차피 끊길 숨인데, 그런데…… 나로 인해 당신이 죽는다는 게, 너무도 참담하고 괴로워서.)
(무언가 단단히 멍울진 듯 가슴이 답답하고, 호흡이 어려워지는 것만 같다. 아랫입술을 아득 깨물면 비릿한 혈향이 풍겨져왔다. 한 팔로 당신의 가는 허리를 감싼 채, 천 년을 사랑한 이를 가만 올려다본다. 이게 너를 해방시키는 열쇠이자 끝까지 나에게 내리는 벌이라면 한 순간도 놓치지 않고 담아내리라.)
사랑해, 베아트리체. (이지러지려 드는 목소리를 애써 억누르며, 마지막 은정을 속삭인다.)
독이 든 와인이 베아트리체의 울대를 넘어가고, 얼마나 마시면 될지 의문이 들 무렵...
욱신거리던 몸도 더는 하나도 아프지 않습니다.
입안은 와인의 쌉싸름하면서도 달달한 향내로 가득하고, 눈앞에 보이는 것은 그저 에르드의 얼굴 뿐.
이내 그의 품 안에서 베아트리체의 숨이 끊어집니다.
에르드는 모든 모습을 하나도 놓치지 않고 시야에 꾹 눌러담습니다.
미동도 없이 멈춰버린 심장 박동, 더 이상 부풀지 않는 폐,
찬란하던 보랏빛 눈동자도 세상의 빛을 받아들이지 못 하게 되었다는 것을, 똑똑히 확인합니다.
자그마치 1000년간의 고통을 주고도, 마지막 순간까지 더없이 가혹한 벌을 내렸으니 이제는 만족했을까요.
오피나티는 지긋이 웃더니, 손을 한 번 휘두릅니다.
그와 동시에, 에르드의 시점이 한바퀴 회전합니다.
그것이 자신의 목이 잘려 허공을 뒹구는 것이라는 것을 깨닫는 데에는 얼마 걸리지 않았습니다.
양의 왕국, 왕궁 지하에서 목이 없는 용의 시체가 발견되고, 마력을 잃은 왕국이 몰락하기 시작한 지 벌써 30년째.
그리고 오늘은 하늘에 구름 한 점 걸리지 않은, 눈부신 오후입니다.
유한한 인생을 즐기기에 더없이 아름다운 날이네요.
ED 1. 왜인지 우리는 또 만날 것 같다는 기분이 들어
:기억을 가지고 다시금 태어난 에르드와 베아트리체. 로스트? 그리고 마지막 생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