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레이타임 : 약 33시간
평범한 일상이 가장 행복할 수 있다는 사실을 가르쳐준 사람.
불가능하다는 기적도 언젠가는 두 손에 보석처럼 쥘 수 있을 것 같았다.
당신을 향한 이 마음에 불순물이 섞일 날은 오지 않을 것이다.
가장 높이 솟은 것. 화려한 장미의 향기 아래 가라앉은 피 냄새.
모래가 떨어지는 소리와 이 별과 이별의 경계.
초봄의 건조한 바람을 타고 낯선 장미 향기가 흘러들었다.
사방이 트인 곳에서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우주와 우주가 연결되고 행성과 행성이 나란히 서는 순간.
아무것도 모르는 무구한 얼굴로 너는 내게 말했다.
출처를 알 수 없는 소문은 그렇게 이 별에 불시착했다.
아예 만나지 않았더라면 우리는 조금 덜 외로웠을까?
초봄의 건조한 바람을 타고 급박한 고함이 귓전에 달라붙습니다.
목소리의 출처를 파악하기도 전에 헬레네는 반사적으로 허리를 숙여 몸을 낮춥니다.
날카로운 파열음이 아슬아슬하게 머리가 있던 자리를 때리고 지나갑니다.
한 박자만 늦었어도 목 위가 통째로 날아갔을, 무시무시한 파괴력입니다.
목표물을 놓친 신화생물의 혓바닥은 애먼 주택가 담벼락을 때려 부수며 분풀이를 일삼습니다.
저 멀리서 꿈틀거리는 점액질을 태우던 불의 타이머가 한걸음에 달려옵니다.
불의 타이머:위험하게 전투 중에 한눈을 팔아? 죽고 싶어서 환장했어? (소리를 왁왁 지르며 화라는 화는 다 낸다.)
헬레네 R. 히페리데:(반사적으로 몸을 낮추자마자 둔중하면서도 날카로운 혓바닥이 원래 머리가 있었을 위치를 휘젓는다. 쎄한 소리가 귀를 뚫자 절로 등줄기에 소름이 돋았다.) 죄, 죄송해요! 집중할게요!
불의 타이머:(쯧. 하고 혀차는 소리와 함께 어디 다친 곳이 없나 위아래로 확인한다. 상태를 확인하고는 몸을 훽 돌린다.) 저게 마지막 남은 녀석이야. 끝까지 집중해.
헬레네 R. 히페리데:네……! (저는 도움을 받아야 하는 사람이 아니라 시민들을 구해내야만 하는 타이머다. 얼빠진 채로 있다가 그렇잖아도 바쁜 다른 타이머들에게 민폐를 끼칠 수는 없지. 4년이 지났는데도, 처음으로 전장에 나섰던 때의 트라우마가 아직도 제 발목을 종종 붙잡고는 했다. 고개를 재빠르게 내저어 상념을 떨쳐내고는 스킬을 꾹 쥐었다.)
방금까지 한참 접전을 벌이던 중이었는데, 갑자기 전원이 나간 것처럼 정신이 끊겼습니다.
헬레네 R. 히페리데:(한시가 바쁜 상황. 지금으로선 원인을 자세하게 찾고 있을 시간은 없다. 신화생물들과 그 주위를 맴돌며 공격하는 타이머들의 위치를 차분히 파악하고, 아군이 휘말리지 않을 만한 크기의 물폭풍을 만들어낸다.)
(언제라도 폭풍을 날릴 수 있도록 창을 고쳐쥐며 신화생물을 뚫어져라 바라보았다. 약점이 될 만한 곳은 없던가)
헬레네 R. 히페리데:
지능
기준치: |
70/35/14 |
굴림: |
29 |
판정결과: |
어려운 성공 |
사람 서넛은 거뜬히 드나들 수 있는 규모입니다.
꺾인 관절의 형태와 사족보행이란 점은 빼면 닮은 구석이라곤 없는데도 틴달로스의 ‘사냥개’라고 불리는 신화생물입니다.
눈도 코도 없이 길게 찢어진 입만이 얼굴을 가득 채우고 있습니다.
날카로운 이빨 사이로 들락거리는 혓바닥은 채찍처럼 길고 팔뚝만큼 두꺼운 데다가 끝이 추보다 무겁습니다.
헬레네 R. 히페리데:(인상 찡그리며 게이트로 시선 돌린다. 더 쏟아져나올 기미는 보이지 않는가?)
살아있다고 주장하듯, 일정한 속도로 박동하는 게이트는 칠흑처럼 새카맣습니다.
너머의 풍경이라곤 보이지 않고 불온한 어둠만 번들거립니다.
헬레네 R. 히페리데:
지능
기준치: |
70/35/14 |
굴림: |
13 |
판정결과: |
극단적 성공 |
강렬한 파열음과 폭발음 사이로 아주 작은, 끼익― 문이 열리는 소리를 들었습니다.
대피하지 못한 인원이 남아있던 건가 싶어 반사적으로 돌아본 거였는데.
헬레네 R. 히페리데:
지능
기준치: |
70/35/14 |
굴림: |
66 |
판정결과: |
보통 성공 |
(설마, 잔존해있는 게 있는 건 아니겠지……)
그도 그런 게, 주변의 건물은 얼추 다 부서져 문이라곤 남아있지 않고 딱히 인기척도 느껴지지 않으니까요.
헬레네 R. 히페리데:(하지만, 착각일 것 같진 않은데. 혹시 모르니 서둘러 타이머들에게 뛰쳐가며 소리친다.) 대피하지 못한 인원이 있을지도 몰라요. 한 번 더 확인해주세요!
(그리고 사냥개에게 겨냥한 폭풍을 그대로 휘날린다.)
상황 파악이 끝나면 틴달로스의 사냥개가 다시 공격 태세를 갖춥니다.
머리를 땅에 처박고 근육을 한껏 긴장시킨, 사냥감을 노리는 포식자의 태도입니다.
헬레네 R. 히페리데:
파도의 창
기준치: |
70/35/14 |
굴림: |
78 |
판정결과: |
실패 |
피해: |
18 |
발을 딛고 있던 지면이 아래로 무너져 내리며 공격이 엇나갔습니다.
공격을 피한 틴탈로스의 사냥개가 반격을 합니다.
헬레네 R. 히페리데:앗! (비틀거리며 위쪽 지면에 창을 직선으로 걸쳐 추락을 막는다.)
틴탈로스의 사냥개:
공격
기준치: |
40/20/8 |
굴림: |
62 |
판정결과: |
실패 |
피해: |
6 |
헬레네 R. 히페리데:(휴, 공격이 엇나가 다행이다. 다시금 집중하여 회오리를 만들어내고, 틴달로스를 향해 창을 내리꽂을 기세로 휘두른다.)
파도의 창
기준치: |
70/35/14 |
굴림: |
15 |
판정결과: |
어려운 성공 |
피해: |
36 |
서걱. 차갑고 불쾌한 소리를 내며 권능이 사냥개의 머리를 단숨에 베어냅니다.
드러난 단면에 심긴 뼈는 검은색. 죽음을 인지하지 못한 목 아래는 한 박자 늦게 쓰러집니다.
마지막으로 남아있던 틴달로스의 사냥개를 해치웠습니다.
틴달로스의 사냥개는 시간 여행자의 천적이지만,
대미지는 근방 100m 이내가 파괴되는 데 그칩니다.
갑각류와 포유류를 억지로 합성한 것 같은 사체가 시가지에 즐비해 있습니다.
회색 연기가 자욱하게 하늘로 피어오르지만, 다행히 인명 피해는 크지 않은 것 같습니다.
한 바퀴 휘 둘러본 불의 타이머가 전투 종료를 알리려는지 무선 이어폰을 두드립니다.
불의 타이머:벌써 쉬려는 건 아니지? 피곤하겠지만 대피 못 한 잔류 인원 있는지 확인해 봐.(걱정 섞인 당부를 하는것도 잊지 않는다.)
임시 소강상태에 들어선 시가지를 조사할 수 있습니다.
헬레네 R. 히페리데:쉬기엔 아직 이르죠. 다치신 데는 없죠? (사납게 울부짖던 사냥개의 검은 뼈가 드러나자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창을 내리고, 불의 타이머의 몸상태부터 살폈다. 적응하지 못하고 울며 괴로워하였던 과거에도 전투가 아닌 구조나 치료 등의 일에는 솔선수범하며 앞장섰던 헬레네였다. 4년여가 지난 지금도 그 면모는 여전했고, 훨씬 성장한 전투 실력까지 더불어 세계를 위협에서 구하는 영웅이라는 반짝이고 무거운 칭호에 이제야 한 발짝 다가간 참이었다.)
(다른 타이머들의 안부를 확인한 후에야 시가지로 들어서서 대피하지 못한 이들은 없는지 찾아다닌다. 아까 들은 문소리가 마음에 남았다.)
표면을 덮은 끈적한 액체는 아직 마르지 않았습니다.
이 점액질은 소량으로도 무엇이든 부식시키는 치명적인 독성이 있습니다.
꽤 성가신 위협이지만, 방치하면 서서히 말라붙으니 신경 쓸 일은 아닙니다.
수거한 사체는 제10구역에 설립된 DOT 과학 기지에서 철저히 조사합니다.
게이트 탐사가 번번이 실패하니 이렇게나마 우주의 위협을 간접적으로 조사 중인 셈이죠.
헬레네 R. 히페리데:
듣기
기준치: |
50/25/10 |
굴림: |
97 |
판정결과: |
실패 |
숨이 겨우 붙어있는 마지막 개체가 최후의 일격을 날립니다.
억센 송곳니는 질긴 군복을 끊임없이 짓이깁니다.
이성이라곤 없고 오직 사냥 본능으로 들끓는 꼴입니다.
이미 목숨이 경각에 달한 터라 팔을 한 번 휘두르는 것만으로 쉬 떨쳐냈습니다.
특수 소재로 만들어진 군복은 질기기 짝이 없어, 피부를 한 점도 드러내지 않고 꽁꽁 싸맵니다.
멍은 들지언정 큰 부상으로 이어지진 않겠군요.
헬레네 R. 히페리데:(깜짝 놀라서 창을 든 팔을 홱 휘둘러 내친다. 죽인 줄 알았건만 아직도 끈질기게 살아있다니. 하긴 어떤 전투도 쉬웠던 적은 없었다……)
(건물의 잔해로 다가간다.)
표면을 눈부시게 빛내던 전면 유리창은 산산조각,
직전까지 분주히 움직였을 사람들은 차가운 시체가 되어 한 데 섞였습니다.
커다란 보울에 온갖 종류의 시리얼을 쏟아붓고 대충 휘저은, 무질서한 풍경.
헬레네 R. 히페리데:
SAN Roll
기준치: |
70/35/14 |
굴림: |
39 |
판정결과: |
보통 성공 |
(이제 이 수없이 널린 시체들은 눈에 익은 광경이 되어버렸다. 그렇다 해서 참담해지지 않을 수는 없는 노릇이었고, 미간이 일그러지지 않을 순 없었지만. 그 누구도 피해를 입지 않을 수 있도록 구해내고 싶었는데, 자신의 목표는 너무도 높고 힘든 것인지 자꾸만 실패하고 만다.)
(눈을 내리감고 짧게 묵념한다. 그리고 잔해와 시체의 틈을 헤치고 걸어가며 시선을 이리저리 돌린다. 혹여나 아직 살아있는 이가 있을지도 모른다. 한 줄기 미약한 희망을 품고서.)
게이트가 열리면 신화생물이 강림할 때까지 약간의 시차가 발생합니다.
즉시 대피 경보를 발령하고 경찰과 군부대가 피난 경로를 지휘하지만,
인파는 북적거리고, 피난길은 까마득한 데다가,
재난을 피하지 못한 자들의 말로는 참담하지만, 시체는 말이 없습니다.
[게이트 NO. 2032-17의 폐쇄 확인. 출몰한 사냥개는 모두 사살했다.]
불의 타이머와 무전 너머 본부의 교신만 이 적막한 도시를 채웁니다.
헬레네 R. 히페리데:(이번에도 여남은 생존자는 없나. 이번에도……)
관찰력
기준치: |
65/32/13 |
굴림: |
73 |
판정결과: |
실패 |
(땀과 핏물로 젖어든 시야를 군복의 소매로 닦아내며 다시금 눈을 감았다 뜬다.)
관찰력
기준치: |
65/32/13 |
굴림: |
53 |
판정결과: |
보통 성공 |
아슬아슬하게 쏟아지기 직전 멈춘 잔해 아래, 눈을 홉뜬 시체가 보입니다.
군복의 색깔을 보아하니, 마지막까지 게이트를 경계하던 최전선 부대입니다.
미처 도주할 틈도 없이 게이트가 열렸던 것 같습니다.
시체의 눈을 감겨도 두꺼운 장갑에 가로막힌 손끝은 식지 않습니다.
뻑뻑한 눈꺼풀을 힘주어 내려놓은 후에야 헬레네는 숨은,
헬레네 R. 히페리데:…… (눈을 감겨주며 그의 명복을 빌다가, 색이 다른 군복을 발견하곤 의아함에 가까이 다가간다. 다른 부대가 섞여 있었나?)
남색과 흰색을 배치해 깨끗한 느낌을 풍기는 디자인.
목을 꼼꼼하게 둘러싼 차이나 카라, 상체를 사선으로 가로지르는 어깨띠와 은색 훈장.
……완전히 같지는 않지만 DOT, 타이머 특유의 복식입니다.
DOT의 연구원이거나 근처 군부대의 인원이라면 한 번쯤 스쳐 지나갔을지도 모르는데,
완벽하게 인생에서 단절됐던 상대라는 확신이 듭니다.
그러니, 결단코 특별할 수 없는 상대이건만…….
문득 그와 호흡의 속도를 맞추고 있는 자신을 발견합니다.
명령 한 토막 없었는데, 밑바닥부터 꼭대기에 이르기까지 모든 감각,
기분, 생각, 언어, 감정과 본능이 상대에게 쏟아집니다.
헬레네 R. 히페리데:(타이머의 복식이건만 자신이 한 번도 본 적 없는 사람이라니. 그럴 수 있을 리가. 14시의 타이머는 모두가 몇십 번이고 함께 합을 맞추고 전투며 재해를 이겨내온 만큼 긴밀하기 그지없는 사이였다. 그런데 어째서일까. 단순히 익숙한 배색의 옷차림이기 때문에 드는 감정이라기엔 지나치게 혼란스럽다. 오르내리는 가슴팍의 속도가 어느덧 같아졌다. 시선이 앗긴다. 감정이 밑바닥까지 가라앉았다가 단번에 천장까지 역류하는 것만 같은 이 감각…… 도저히, 말로 표현할 수 없었다.)
SAN Roll
기준치: |
70/35/14 |
굴림: |
62 |
판정결과: |
보통 성공 |
아, 그래요. 헬레네는 죽음으로 가득 찬 무덤에 순장된 산목숨을 발견하고 만 것입니다.
아까 들은 건 이 자의 숨이었을지도 모릅니다.
불의 타이머:야, 돌아오란다. 슬슬 복귀할, 생존자야?! (헬리 곁으로 성큼성큼 다가간다.)
울퉁불퉁하게 팬 바닥을 딛는 발소리가 이 순간을 쿵쿵 울립니다.
911이니 추가 보고니 떠들어대는 목소리가 귓전을 의미 없이 스치고…….
딱, 당신의 이름을 단말마로 바치는 찰나 동안만.
대답을 하기도 전에 상대는 다시 정신을 잃습니다.
헬레네 R. 히페리데:네, 의식은 없지만 생존자로…… (쿵쿵 다가오는 발소리에 겨우 정신을 차렸다. 불의 타이머에게 보고를 하려다, 울리는 제 이름에 다시 한 번 그대로 굳고 만다. 내 이름을, 이름을 넘어선 애칭을 알고 있어……? 대체 어떻게?) 언니, 혹시 아시는 분인가요? 타이머와 비슷한 군복인데 저는 본 적이 없는 분이어서……
불의 타이머:내가 이 사람을 어떻게 알아? 네가 알고 있는 거 아니야? (자신도 이 사람은 처음 본다며 고개를 도리질 한다.)
헬레네 R. 히페리데:저도 정말 처음 뵙는 분이어서…… 우선은, 어서 구조 요청을 해요. 생존자가 있다니 얼마나 다행인가요. (여전히 두통이 몰려온 것처럼, 물속에 잠긴 것처럼 어질어질하고 낯선 기분이었지만 침착함을 찾으려 애쓴다.)
(불의 타이머가 본부에 추가 보고를 하는 사이 쓰러진 이의 얼굴을 좀 더 자세히 살핀다. 정말 내가 아는 사람인가?)
혹여 아는 사람은 아닐까 죽은 듯이 눈을 감고 있는 상대를 관찰해봅니다.
조금 푸석해 보이는 은색 머리카락은 어깨를 조금 넘는 길이입니다.
눈동자는 서늘할 정도로 기이한 푸른색이었지만, 눈을 감고 있으니 순하기 짝이 없습니다.
헬레네 R. 히페리데:(아주 잠깐이었지만 제 이름을 부르던 그 푸른 눈동자가 꼭 심해마냥 깊은 빛깔이었더랬다.)
(이어 복장도 살펴본다.)
원작 군복을 입고 있습니다. 디자인은 비슷하지만, 소재의 신축성이나 내구성은 떨어집니다.
소매가 닳고 헤지거나 덧댄 흔적도 흔히 보입니다.
헬레네 R. 히페리데:
운
기준치: |
60/30/12 |
굴림: |
84 |
판정결과: |
실패 |
운
기준치: |
60/30/12 |
굴림: |
95 |
판정결과: |
실패 |
운
기준치: |
60/30/12 |
굴림: |
15 |
판정결과: |
어려운 성공 |
상대의 가슴 주머니에 걸린
군번줄을 발견합니다.
헬레네 R. 히페리데:(군번줄까지 있다니. 정말 같은 소속 부대기라도 했던 건가? 조심스럽게 빼내어 확인한다)
풍화된 탓에 군데군데 글씨가 뭉개졌지만 읽는 데 거슬릴 정도는 아닙니다.
[On the dot― The ■th Timer]
퇴색한 은빛으로 새긴 이름은 아마 상대의 것 같습니다.
헬레네가 소지 중인 군번줄과 생김새도 표기도 얼추 비슷합니다.
헬레네 R. 히페리데:아실링……
히페리데……?
지능
기준치: |
70/35/14 |
굴림: |
80 |
판정결과: |
실패 |
현세대 타이머 중에서도, 역대 타이머들 사이에서도.
정신을 차리자 상대를 떼어놓을 수 없단 걸 깨닫습니다.
의식을 잃은 채로도 헬레네의 망토를 꽉 붙들고 있습니다.
헬레네 R. 히페리데:(히페리데라니. 군번줄에 적힌 이름에 혼란이 한 줌 추가된다. DOT 소속이라면 저와 같은 소속임이 분명한데, 심지어 저의 성씨까지 달고 있는 이를 어째서 저는 처음 보는 것인가.)
(문득 망토가 꾹 붙잡힌 것을 깨닫고 조금 곤란해하다가, 일단은 그대로 두고 쓰러진 위치를 살핀다.)
게이트 NO. 2032-17로부터 멀리 떨어지지 않은 건물입니다.
군인들이 바리게이트를 친 지점이라 어설픈 흉내를 내는 민간인은 여기까지 접근할 수도 없었을 겁니다.
어떻게 여기까지 온 거지? 의문으로 눈가를 좁히면,
헬레네 R. 히페리데:
관찰력
기준치: |
65/32/13 |
굴림: |
67 |
판정결과: |
실패 |
(행운 깎겠습니다)
먼지와 재, 피 냄새가 지독하게 뒤섞인 장소에는 어울리지 않는…….
전쟁터 한복판에 숨어든 취객이라니. 제정신은 아닌 모양입니다.
헬레네 R. 히페리데:(술을 마시고…… 바리게이트를 친 이 근접지까지 들어왔다고? 다소 황당해졌다. 대체 뭐지, 이 사람…… 정체가 여러모로 궁금해진다.)
설마, 타이머 코스프레인가? 유행인 건 알고 있었지만…….
이런 데까지 쫓아오는 건 좀 과한 것 같은데.
무엇보다 군번줄 위조라면 그냥 넘어갈 순 없습니다.
어느새 코앞에 다가온 불의 타이머가 바닥을 툭툭 찹니다.
헬레네 R. 히페리데:(사칭. 그런 건가? 만약 그런 거라면 이 심각하고 위험한 시국에 참 철없는 행동일 것이다. 하지만 그를 처음 봤을 때 느껴졌던, 몰아치는 파도와 같던 그 감정은 대체 무엇이었을까. 저도 모르게 생각에 잠겨 있다가 바닥을 치는 소리에 퍼뜩 정신 차리고 고개 끄덕인다.) 살아있어요. …… 음. 술에 취한 상태인 것 같고요.
불의 타이머:생존자야? 근데 복장이. ... 우리 군복이라는 조금 다르고. 민간인? 취객? 어느쪽이야??
헬레네 R. 히페리데:잘 모르겠네요, 지금으로선. 군번줄도 갖고 있어서요. 단순 사칭인지는 조금 더 알아봐야 할 것 같아요.
불의 타이머:그으래? 일단은 생존자라고 본부에 연락한다~.
헬레네 R. 히페리데:네. 숨은 제대로 붙어있어요. 어서 구조하고 돌아가죠.
[불의 타이머는 복귀하고, 헬레네는 생존자를 병원으로 인계하라.]
[리히트 장교와 닥터 오프-화이트가 병원으로 향할 예정이다.]
헬레네 R. 히페리데:알겠습니다. (짧게 승복하는 대답을 내놓고, 구조 팀과 협업하여 이 이상한 취객을 구조한다. 물어야 할 것이 많았다.)
화한 소독약 냄새가 흰 천장에 안착하고, 크고 작은 상처를 입은 사람들이 병상을 채우고 있습니다.
정체불명의 상대가 당신의 옷자락을 놓아주지 않았기 때문이고,
정체불명의 상대가 당신의 애칭을 불렀기 때문이고,
정체불명의 상대가 당신과 비슷한 차림새였기 때문입니다.
DOT 본부 소속, 타이머 담당의 오프-화이트와 리히트 장교입니다.
리히트 장교는 헬레네에게 다가오고, 닥터 오프-화이트는 정체 모를 상대의 옷소매를 걷어 주삿바늘을 찔러넣습니다.
리히트 장교: 보고받은 대로, 범상치 않은 복장이군요. 아는 사람인가요? 생김새만이 아니라……. 재질도 타이머의 군복과 유사해요. 어디서 어떻게 만났는지 좀 듣고 싶군요.
헬레네 R. 히페리데:잔해 틈을 수색하며 생존자를 찾던 도중 발견했습니다. 군번줄에 이름과 더불어 제 성씨가 적혀있었고, 저의 애칭을 부르셨지만…… 전혀 면식 없는 분이에요. 저도 설명을 좀 듣고 싶을 정도로요. 처음엔 DOT에 소속된 분인 줄 알았으니까요. (이 술렁이는 감정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알 수가 없다.)
헬레네가 질문에 대답하면 리히트 장교는 태블릿에 빠뜨린 정보가 없도록 꼼꼼히 메모합니다.
닥터 오프-화이트는 혈액 검사부터 해보겠다며 커튼 밖으로 퇴장합니다.
잠시후 테블릿으로 정보를 확인한 리히트 장교의 대답이 돌아옵니다.
리히트 장교: 이 사람, 도밍게즈 국민이 아닙니다.
나지막한 목소리는 담담하기 짝이 없어 내용과 먼 거리를 유지합니다.
도밍게즈는 이 별의 이름이자 유일한 국가의 이름.
그런데 도밍게즈 국민이 아니라면 대체 어느 별에서 떨어진 거란 말인가요?
리히트 장교: 홍채와 지문을 스캔했지만 신원 조회에 실패했습니다. DOT에 사진을 전달하고 CCTV를 되감아 봤지만……. 그곳에 도착하기까지의 과정은 일절 찍히지 않았어요.
군이 말한 곳에 어느 순간 나타나 있더군요.꼭, 텔레미터를 사용한 것처럼.
헬레네 R. 히페리데:도밍게즈의 국민이 아니라니…… 그럼 다른 세계의 사람이기라도 하단 건가요? (전혀 예상치 못한 대답이 돌아와 눈이 커진 채 되물었다.) 텔레미터까지 쓸 수 있을 정도라면 이 DOT와 무관한 이는 아닐 것 같은데요.
혹, 게이트와 관련이 있는 걸까요? 사냥개와 싸우던 도중 문이 열리는 소리를 들었습니다. 전투의 흔적 때문에 주변의 문은 다 부서져 있었는데도요.
리히트 장교:순식간에 어떤 좌표에 도착할 수 있다면 텔레미터라고 밖엔 설명할 수 없지만… 텔레미터는 DOT의 군용 물품 중에서도 가장 엄격하게 관리하는 품목이다 보니 허튼 사람의 손에 들어갈 일은 없습니다. 게이트와 관련된 것이라면.. 닥터가 도와주겠죠.
잠든 상대의 정체는 점점 더 미궁에 빠집니다.
담당의의 소견에 따르면 경증 외상성뇌손상이라고 하니.
그리 설명을 하던 리히트 장교는 자기 머리를 가리킵니다.
손가락 끝으로 시선을 옮기던 도중, 누운 사람과 눈이 마주칩니다.
초점은 희미하지만, 분명히 헬레네를 바라보고 있습니다.
헬레네 R. 히페리데:아, 일어나셨나요? (의자에서 일어나 침대가로 가까이 다가간다.) 정신이 드세요? 가벼운 뇌진탕이라고 해요. 크게 다치지는 않아서 정말 다행이에요.
■■■:(강한 손아귀로 여전히 헬레네의 망토를 꾹 붙잡고 있다가 마른 목소리를 낸다.) ……여기가 어디죠?
헬레네 R. 히페리데:(망토를 꾹 쥔 그의 손길을 괜찮다는 듯 느리게 쓸어주었다.) 여긴 병원이에요. 신화생물과의 전투가 일어났던 격전지에 쓰러져 계셔서 구조팀과 함께 이쪽으로 옮겼어요. 뭔가 기억나는 게 있으신가요? 이름이라거나, 어쩌다 그곳에 오게 되었는지…… 천천히 떠올리셔도 돼요.
■■■:(질문 내용과 달리 시선은 헬레네에게 못 박혀 있는다. 병원이라는 대답에도 별다른 반응이 없다가 한 템포를 쉰 후 입을 연다.) 제 이름이요….?
… 제 이름이 뭐였죠?
백치처럼 깨끗한 눈동자엔 한 톨의 자아도 없습니다.
기억상실. 드라마나 영화에나 나올 법한 병명을 떠올린 순간, 커튼이 빠른 속도로 열리고 오프-화이트가 뛰쳐 들어옵니다.
한껏 목소리를 낮췄는데도 그에게 닥친 흥분과 충격이 고스란히 전달됩니다.
닥터 오프-화이트: 이 사람, 사람이 아니에요! 유전 정보가 타이머와 똑같다고요!
타이머는 신의 그릇. 인간과 마찬가지로 한낱 피조물이지만 구성 성분과 구조 체계는 엄격히 다릅니다.
범접 못 할 권능을 다루고, 중력을 무시하며 물속에서도 호흡합니다.
치명상을 입더라도 쉬 죽지 않는, 명백한 인간의 상위종입니다.
헬레네 R. 히페리데:네? (영화에서나 나올 법한 대답이 돌아오자 순간 멍해져 되묻는 순간 소란스레 뛰쳐들어오는 닥터에게 시선이 쏠린다. 그의 입에서 나오는 말은 기억상실보다도 더 충격적인 사실을 담고 있어서 어느 사실에 더 놀라야만 할지 고민될 지경이다.) …… 그럴 수가. 그럼, 이분도
타이머라는 건가요?
헬레네 R. 히페리데:
SAN Roll
기준치: |
70/35/14 |
굴림: |
35 |
판정결과: |
어려운 성공 |
헬레네의 말에 병상을 둘러싸고 침묵이 고입니다.
처음 보는 타이머가 존재한다는 건 어떤 타이머의 죽음을 의미합니다.
타이머의 세대교체는 정교하게 이루어지기 때문입니다.
도밍게즈 탄생 이래, 그 어떤 때에도 타이머는 오직 14명이었으므로.
리히트 장교: 정말로…… 열다섯 번째란 말인가요.
헬레네 R. 히페리데:지금껏 열다섯인 역사는 존재치 않았었죠. (처음으로 던져진, 평범을 벗어나는 상황에 진지한 낯이 된다.) 기억은 없으시다고 했지만, 그 잔해 속에서 깨어난 순간도 떠오르지 않으시나요? 저를 헬리라고 부르셨어요. 군번줄에는
아실링 히페리데라고 적혀 있었고요. (그의 군번줄을 다시 꺼내어 보여준다.)
■■■:(주고받는 이야기엔 시큰둥하게 굴다가 헬레네의 망토를 잡아당긴다.) 헬리, 헬레네. (입에서 나온 말이라고는 아기새가 어미를 찾듯 이름을 부르는게 끝이지만. 군벌줄에는 관심이 없어보인다.)
헬레네 R. 히페리데:네. (옅은 미소를 지으며 대답한다. 신화생물을 대적할 때가 아니라면 그는 자신이 구하고자 하는 민간인이나 DOT 소속원 누구에게나 친절하고 다정했다.) 제 이름은 어떻게 알고 계셨나요? (아무래도 말이 통하지 않는 상대려나 싶었지만, 한 번 더 끈기있게 물어보기로 한다.)
헬레네의 망토를 잡고 있던 손가락에 힘이 들어갈 뿐입니다.
아주 비슷하고 거의 똑같지만 절대 헬레네의 것은 아니라고 외치는 권능입니다.
폭발의 궤적은 시릴 정도로 선명해서 부정할 다른 말이 떠오르지 않습니다.
어디서 생긴 것인지 출처를 모를 물방울들이 방안을 가득 채웁니다.
비 내리는 것을 사진으로 찍은 순간 같습니다.
물방울은 뻗어진 손의 움직임을 따라 빠르게 이동하다가 헬레네 몸을 감쌉니다.
수면이 된 물방울들은 헬레네의 몸을 잡고 물속으로 점점 끌어내립니다.
헬레네 R. 히페리데:(취객이나 사칭범 같은 게 아닌 타이머임이 이 순간 명확해진다. 커다란 폭발 소리에 반사적으로 곁에 두었던 창을 쥐었다. 온갖 돌발상황을 겪어봤고 그에 대처할 방법도 익혀온 헬레네였지만, 같은 권능의 폭발이란 아무리 산전수전 다 겪은 그라도 상정할 수 없었던 일이었다. 그렇기에 당황하여 물방울을 쳐내는 게 다였다.) 진정하세요!
회피
기준치: |
45/22/9 |
굴림: |
3 |
판정결과: |
극단적 성공 |
두 사람은 들이닥치는 서로의 존재감에 휘둘리고 맙니다.
당황하거나, 놀라거나, 혹은 이끌리거나, 밀어내거나, 도망치고 싶은 기분이 파도처럼 밀려왔다 쓸려가길 반복합니다.
그야, 당연하잖아요. 눈앞의 사람이 제1시의 타이머라면 헬레네는 이미 죽었단 뜻이니까!
헬레네 R. 히페리데:
관찰력
기준치: |
65/32/13 |
굴림: |
20 |
판정결과: |
어려운 성공 |
고작 숫자에 불과하건만 형용하기 어려울 만큼 강한 끌림을 느낍니다.
이곳엔 첫 만남을 강제할 작자 따위 없는데도.
“다가오는 마지막 계절에, 세계가 멸망해요.”
아무것도 모르는 당신과 불길한 예언은 또다시 이 별에 불시착했습니다.
리히트 장교: 이런 경우는 처음이라……. 정체를 파악하려면 시간이 소요될 것 같군요. 알아낼 때까진 안전장치가 필요하니, 헬레네에게 맡기겠습니다. 당분간 헬레네의 숙소에서 머무는 걸로 하고, 일거수일투족을 동행하세요.
간단한 신문 후, 리히트 장교는 뱀처럼 친절한 얼굴로 웃으며 통보했습니다.
도밍게즈를 혼란케 할지도 모르는 요소는 무턱대고 풀어놓을 수 없다는 견고한 뜻.
즉 이것은 대의이자 책임. 항거할 수 없는 명령이었습니다.
헬레네 R. 히페리데:정체를 파악하는 건 마땅히 필요한 일이지만…… 꼭, 저와 같은 숙소에서 머물러야 할까요? (머뭇거리며 다시 반문한다.) 같이 머무는 게 싫어서가 아니에요. 살갗이 살짝 닿은 것만으로도 권능이 폭발했는데, 함께 지내다가 또 비상사태가 생기기라도 하면……
(저는 자신의 쓸모와 효용을 잘 알았다. 혹여라도 다쳐서 임무에 지장이 생기면 제가 빠진 빈자리만큼 위기가 고여들 테니, 스스로의 안부를 신경쓰고 걱정하는 건 당연지사였다.)
리히트 장교:혹여 안전을 걱정하는 것이라면 따로 격리시킬 수도 있지만.. 보다시피 본인이 군과 함께 있고 싶어 하는 것 같아 보여서.
좀 전의 일은 하나도 기억 못 한다는 듯 여자는 헬레네 옆에 붙어있습니다.
리히트 장교:권능도 같다 보니 군 쪽이 컨트롤할 수 있다고 판단하고. 아닌가?
헬레네 R. 히페리데:같은 시간대의 권능이지만 완전히 똑같지만은 않은걸요. (소심하게 반박해보지만 이미 일은 다 결정이 난 것 같다. 아까부터 제 곁에서 떨어질 줄 모르는 이 사람을 억지로 떼놓으려 들면 더 큰 문제가 생길 것 같기도 하고. 그리고 만약 정말 문제가 생긴다고 해도, 아까처럼 자신이 피해내면 그만이기는 했다. 해결할 수 있을 것 같으면서도 어려워 보이는 문제가 저에게 던져졌다. 수학이나 과학의 문제는 해답이라도 있지.)
…… 알겠습니다. 혹여 함께 지내며 문제가 생긴다면 추가로 보고를 올리도록 할게요. (결국 반쯤은 울며 겨자먹기로 고개 끄덕인다.)
리히트 장교:내일 닥터에게 연락이 올걸세. 그때까지 잘 관리해 주길 바라네.
대의이자 책임. 항거할 수 없는 명령이었습니다.
그리하여 두 사람은 DOT 입구에 서 있습니다.
그 존재가 확실해질 때까진 외부에 유출할 수 없는―
걸어 다니는 일급기밀 아실링은 어쭙잖은 군복 대신 연구원의 가운을 걸쳤습니다.
종종 지나가던 연구원들이 낯선 얼굴에 갸우뚱거립니다.
순백과 감청이 교차하는 본부는 출동할 때와 조금도 달라지지 않았습니다.
열린 문턱을 넘으면 윤이 도는 대리석이 깔리고 가짜 별자리로 채워진 천장이 펼쳐집니다.
헬레네 R. 히페리데:…… (착잡한 심정으로 DOT의 천장을 올려다봤다가, 옆의 아실링을 바라본다.) 아실링. (자기의 이름은 알아들어야 할 텐데.) 혹시 이곳에 와보신 적 있나요? 혹은 이곳을 알고 계시나요?
아실링:(아실링? 고개를 갸웃거렸다가 이내 자신을 부르는 것인 줄 알고 고개를 끄덕인다. 헬레네의 망토를 굳게 잡고 있는 손은 여전하다.) 음.... .... 없어요. (할 수 있는 말이 단답 말고 없는 것인지, 아님 정말 할 말이 없는 것인지 답이 짧다.)
헬레네 R. 히페리데:아직도 기억이 나진 않으시나요? 군번줄에 '아실링 히페리데'라고 적혀 있었어요. 그런데, 히페리데는 제 성씨이기도 하거든요. 이전에 한 번도 아실링을 뵌 적은 없는데. (그야, 이 도밍게즈의 사람이 아니라고 했으니까.) 혹시 저에 대해 무어라도 알고 계시나요?
아실링:(한동안 쓸 일이 없었던 것인지 아니면 마른 것인지 목을 가다듬는다.) ... 전혀. 아무것도 기억 안 나요. 아... 전에 말한 세계가 멸망한다는 말 말고는 아무것도... 그것만 기억나요.
당신 이름은 헬리... 아니, 헬레네. 맞죠? 그렇게 불러야 할 것 같아서요. 처음 본 순간부터 그랬어요.
헬레네 R. 히페리데:그러고 보면, 거기에 대해서도 묻고픈 게 많아요. 마지막 계절에 세계가 멸망한다니. 확실히 게이트들이 열리고 신화생물과의 전투가 많지만…… 그래도 아직까지는 막아내고 있는데. (하지만 그때마다 매번 많은 수의 희생자가 나왔다. 언젠가 권능이 마모되고 닳는 날이 오면, 더 이상 지켜야 할 시민들조차 없다면 그게 바로 멸망이겠지 싶었다. 아실링의 불길한 예언이 그렇게까지 놀랍지만은 않은 이유였다.)
네, 헬레네 라세리온 히페리데예요. 어째서 기억을 잃으신 걸까요. 뇌진탕의 후유증이려나요…… 얼른 돌아오기를 바라야겠네요. (아직도 제 망토를 꼭 붙잡고 있는 모습이 정말 아기 오리 같다. 워낙 갑작스럽게 나타난 사람이라 묻고 싶은 게 가득인데, 자신에 대해서조차 기억하지 못하니 시원스런 답을 듣기엔 요원할 수밖에 없을 듯하다.)
아실링:(게이트? 신화 생물? 헬레네 입에서 단어가 나올 때마다 눈썹이 올라갔다 내려갔다를 반복한다. 마치 새로운 단어를 듣는 것처럼.) 헬레네 라세리온 히페리데... (익숙한 이름인 것처럼 두어 번 중얼거린다.)
망토를 잡고 헬레네 곁을 종종 따라다니는 모습이며, 이름을 중얼거리는 것까지 전부
헬레네를 잡고 있던 손을 놓고 본관 안으로 뛰어들어갑니다.
헬레네 R. 히페리데:?! 아실링? 아실링! (당황해서 후다닥 그의 뒤를 쫓아 뛰어간다.) 어딜 가시나요?!
헬레네 말을 못 듣는 건지 안 듣는 건지...
목줄 없는 강아지처럼 본관에 뛰어 들어갑니다.
... ... 어디죠?!
헬레네 R. 히페리데:(혹여나 사고를 칠까 싶어 서둘러 뛰느라 절로 숨이 찬다. 헉헉거리면서 그의 옷깃을 붙잡고 설명한다.) 여긴 DOT예요. 정식 명칭은 On the Dot, 신화생물을 막기 위해 세워진 특수 군사 기관이죠. 여긴 본관이고, 동관과 서관도 있답니다. 저희가 머무를 숙소는 이 본관에 있어요. 한 번 돌아보시겠어요?
아실링:신화 생물... 군사기관... 몰라요. 어렵네요. (말이 끝나자마자 발길 가는 대로 움직이려다가 헬레네 손에 잡힌 옷깃이 늘어나는 것을 느끼고 멈춘다.) 소개해 줄 수 있어요? 아니면 저 혼자 가고..
헬레네 R. 히페리데:아직 구조를 전혀 모르시니 혼자 다니다가 길을 잃기라도 하실까 봐요. 제가 같이 안내해드릴게요. (미소하며 계단가로 안내한다.) 일단 이 1층에는 로비와 안내데스크, 회의실이 있어요. 지하에는 식당과 바가 있고, 2층과 3층에는 가장 자주 가는 훈련실. 그리고 4층에 저희가 머무를 숙소가 있답니다. 옥상엔 스카이라운지가 있는데…… 한 번 가보시겠어요?
아실링:(안내해 주자 튀어나가는 것 없이 얌전히 따라다닌다. 소개하는 내내 이리저리 움직이는 고개는 정신없지만, 꾹 다문 입 때문에 조용하기만 하다.) 좋아요, 가볼게요.
헬레네 R. 히페리데:뭔가 떠오르는 건 없으신가요? (비슷한 제복에 권능까지 쓸 줄 아는 타이머이니, 이 DOT와도 관련이 없을 것 같지는 않은데. 그의 모습을 잘 살피며 옥상까지 다다라 문을 열고 들어간다. 평화롭고 고즈넉하게 꾸며진 스카이라운지가 드러났다.)
아실링:떠오르는 것이요...? 그렇게 말씀하셔도 저는 잘... ... (너무 성의 없는 대답인가 싶어 다시 주변을 살펴본다.)
Spot Hidden Roll
기준치: |
70/35/14 |
굴림: |
16 |
판정결과: |
어려운 성공 |
... 어쩐지 이 모든 풍경이 무척 그립다라는... 생각이 드네요. 낯익다 못해 제자리에 온 것 같고... 저는... 원래 이곳 사람이었나요?
헬레네 R. 히페리데:그립다…… (그의 말을 곱씹는다. 리히트 장교님은 분명, 당신이 이 세상의 사람이 아니라고 했었는데. 그렇지만 유전정보가 타이머와 일치한다. 어딘가에서 뚝 떨어진 타이머일까. 어쩌면 차원을 넘어서 이동할 수 있는, 텔레미터보다도 더 월등한 성능의 무언가가 존재하는 걸까.) 일단 장교님이 조사해본 결과로는 도밍게즈의 국민은 아니라고 하시더군요. DOT가 익숙하다고 하시지만, 저나 다른 연구원들도 모두 아실링을 처음 뵙고요.
그나저나, 안대는 눈이 불편해서 쓰신 건가요? 치료가 필요한 거라면 9시의 타이머에게 여쭤볼 수도 있는데요.
아실링:그런가요...? 그렇다면.. 어쩌면 이 느낌은 거짓된 것일 수도 있겠네요. 제가 이곳에 와본 적이 없을 테니까요. (별로 중요하지 않은 것처럼 단어 하나하나에 감정이 없다. 난간에 몸을 기대어 슬쩍 부는 봄바람을 느낄 뿐이다.)
안대요? 아.. (자신이 안대를 쓰고 있다는 것을 몰랐다는 것처럼 반응한다. 안 대위로 제 눈을 툭툭 건들다가 헬레네 쪽으로 눈을 돌린다.) 뭐든 다 치료해 줘요?
헬레네 R. 히페리데:음…… 다친 지 너무 오랜 시간이 지난 상처라면 어려울 수도 있지만, 얼마 되지 않은 상처라면 가능할 거예요. (눈치를 보다 당신의 곁으로 다가가 난간에 팔을 올려두고 바람을 맞는다. 이제 막 싹을 틔우고 꽃봉오리가 피어나는 초봄이었다.)
아실링:뭐예요... 다 치료할 수 있는 줄 알았는데. (투정 부리듯 말꼬리를 늘리다가 헬레네 쪽으로 상체를 숙여본다.) 확인해 볼래요? 치료할 수 있는 것인지 아닌지..
헬레네 R. 히페리데:섣부른 말을 꺼냈다면, 죄송해요. 사과드릴게요. (움찔하며 얼른 양손 모으고 유순히 대답한다.) …… 제가 확인해보아도 괜찮은 건가요? 혹여나 아프기라도 하시면……
아실링:어.. 이런 일에 사과할 필요는 없을 텐데요. ... 신경 쓰지 말라는 이야기예요. (어정쩡하게 있다가 자기도 두 손 모아본다.) 확인한다고 무슨 일이 생길 것 같지는 않아서요. 아픔은 무슨 저는 눈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도 몰랐었고... 아. 보기 흉하려나요. 흉할 테니 안대로 가린 것이겠지만...
헬레네 R. 히페리데:아, 아실링까지 그러실 필욘 없어요. (같이 양손 모으는 모습에 쩔쩔매다가, 조심스럽게 그의 안대를 걷어내본다.) 흉하다고 생각하진 않았어요. 안 좋은 일이 있진 않으셨는지, 크게 다친 건 아닌지 걱정이 되어서요.
아실링:이미 다친 것에 대해 무슨 걱정을 하나요. 이미 끝난 일을. 그리고 저는 기억도 못 하는 것 같은데... (왼쪽 눈을 가리는 검은 안대가 벗겨지고 두 눈을 감았다가 뜬다. 오래전에 다친 듯 흉터와 안구 색이 바랬다. 빛 정도만 감지할 수 있는 것을 느끼고 고개를 젓는다.) 그래서, 어때 보이나요?
헬레네 R. 히페리데:아실링은 눈가의 상처뿐 아니라 모든 기억을 전부 잊어버리신 것 같으니까요. (안대를 걷어내자 비로소 가려져 있던 눈이 드러난다. 이미 빛이 바랜 지 오래되어 보이는 홍채의 빛깔과 흉터를 보며 작게 탄식했다.) …… 아무래도 다친 지로부터 긴 시간이 경과되어서 치료를 하기에는 어려울 것 같네요. 일단 아픔이 느껴지지는 않으신다고 하니 다행이겠지만요.
동관과 서관도 있는데, 그곳에도 한 번 다녀오시겠어요? (괜히 미안스러워져 화제를 돌리며 무마하려 해 본다.)
아실링:그럴 것 같았어요. ... 아쉬움 같은 건 없네요. 별다른 감정도 느껴지지 않고요. 익숙한 것 같아요. (신경 쓰지 말라는 것처럼 말한다. 자신에게도 의미 없는 것이니, 당신에게도 그러라고.)
(다시 안대를 고쳐 쓰고 고개 끄덕인다.) 동관이랑 서관에는 뭐가 있나요?
헬레네 R. 히페리데:동관에는 연구소가 있고, 서관엔 사관학교가 있답니다. 연구소와 연계된 과학 기지가 10구역에 있는데, 저희가 싸우는 신화 생물들에 관해 연구해요. 어째서 게이트를 통해 그런 것들이 쏟아져나오는지 알고자 하죠. 큰 위협이니까요. (다시금 스카이라운지를 나서서 동관으로 향한다.)
세계가 멸망한다는 말을 어디서, 누구에게 들었는지에 대해서도 전혀 떠오르는 게 없으신가요?
아실링:연구소.. 그 닥터라는 분도 그곳에 계시는 걸까요? 그렇다면 그곳은 내일 가보겠네요. (앞으로 무슨 일이 생기던 관심은커녕 아무 생각이 없어 보였다. 사관학교에 대해서는 더욱 관심이 없었고.) 당신이 가장 좋아하는 장소는 어딘가요?
전혀 떠오르지 않아요. 그저.. 머릿속에서 그걸 말해야 한다는 생각만이 들었어요. 그래서 말했을 뿐이에요.
헬레네 R. 히페리데:네, 연구소는 아무렇게나 출입할 수 있는 공간도 아니니 닥터께서 호출을 하면 가보는 걸로 해요. 저는 스카이라운지를 가장 좋아한답니다. 훈련을 하고 난 후나 임무에 다녀온 후, 높은 곳에서 평화로운 정경을 내려다보면서 지친 몸과 마음을 달랠 수 있거든요. 그리고 다시금 되새기곤 하죠. 이 평온한 풍경을 보기 위해서라도 더 힘내서 이 도밍게즈를 지켜야겠다고요. (그러면서 동관으로 들어선다.)
아실링:그곳이 당신에게 그런 장소였군요.. (좀 전에 본 스카이라운지를 떠올리다가 처음으로 잔잔하게 미소 짓는다.) 당신은… 이곳을 항상 그렇게 소개하네요.
... ... 저 방금 뭐라고 말했나요? (멩)
헬레네 R. 히페리데:(내내 무심하고 멍하기만 하던 그의 낯에 처음으로 미소가 떠오른다. 그 모습에 홀린 듯 가만 멈춰섰다가, 이어진 말에 한 박자 늦게 반응하고 만다.) …… 어머. 분명, …… 제가 이곳을 항상 그렇게 소개한다고 말씀하셨어요.
이전에 만났던 적이 있는 걸까요? 모종의 사고로 기억이 지워지기라도 한 걸까요…… 사실, 잔해 속에서 아실링을 처음 보았을 때 무척이나 격정적이면서도 혼란스런 감정들이 마구 치솟았었거든요.
아실링:... 그렇군요. 뭔가 생각이 난 것 같기도 해요. 많은 것은 아니지만... 당신이 어떻게 생각할지는 모르겠네요. (손으로 입을 가린 체 딱 봐도 생각이 많은 듯 보였다. 검지만이 입술을 툭툭 건들며 움직인다.)
제 기억이라면 몰라도 당신의 기억이요? 그럴 수도 있겠네요... 실제로 있을 일인지 아닌지는 모르겠지만. ... 저를 보고 어떤 감정이 느껴지셨는데요?
헬레네 R. 히페리데:무언가 떠오르셨나요? (반색하며 묻는다. 모든 것이 안개와도 같은 의문과 의아함에 감싸여 있는 상황이었다. 그 상황에 일조한 것은 당신의 등장뿐 아니라 흐릿한 기억이기도 하였으니, 정보 하나하나가 소중했다.)
(잠시 그때를 돌이켜본다.) 워낙 파도처럼 모든 게 밀어닥쳐서 정확히는 표현하기가 어렵지만, 모든 감정이나 생각, 감각이 아실링에게로 순식간에 쏠리는 기분이었어요.
아실링:아주 많이는 아니고.. 솔직히 말하면 작은 것만 기억나네요. (지금 상황을 확인하려는 듯 건물 인테리어며 시계를 관찰하다가 마지막에는 헬레네 얼굴에 시선이 머물렀다. 그러고는 두 손으로 헬레네 볼을 감싸 멈춘다. 관찰하는듯한 행동이 이어진다.) 당신이 믿어줄지 아닐지는 모르겠지만... 아, 당신을 의심하는 건 아니에요. 저도 저 자신을 못 믿겠으니까요.
어렵네요. 무슨 감정인지 자세하게 알 수 있는 게 아닌가 보군요. ... 이해해요. 굳이 대답을 들으려고 하지는 않을게요.
헬레네 R. 히페리데:괜찮아요. 믿어드릴 테니 말씀해주시겠나요? (양손이 뺨을 감싸자 놀라서 눈이 커졌지만 딱히 밀어내지는 않았다. 적대감이나 살의가 느껴지지도 않았고, 왠지 거절하고픈 마음이 들지 않기도 했다.) 사실, 열넷으로만 정해진 타이머가 한 명 더 늘어났다는 사실이 가장 믿기 어려운 일이었지만 이미 일어났으니까요. 그보다도 놀랄 만한 일은 잘 없을 것 같다고 해야 할까나요.
아실링:...이랬던 것 같지는 않은데. (헬레네 볼을 잡은 상태로 고개를 이리저리 돌려 얼굴을 자세히 확인해 본다. 집중해서 관찰했던 것인지 미간에 약간 주름이 잡혔다가 사라진다.) 저는 도밍게즈의 카운터에요. 2032년 초봄에 타이머를... 당신을 처음 만났고요. (담담하게 이야기를 늘어놓지만 모르는 사람이 들으면 미친 소리같이 들리는 말들이었다.) 그래서, 당신은 몇 살이죠? 지금은 몇 년도 몇 월 며칠이고요?
헬레네 R. 히페리데:으음……? (돌리는 대로 이리저리 돌아감) 도밍게즈의 카운터…… 라고요? 그런 명칭은 처음 들어요. 아실링은 저를 이전부터 알고 계시는 것처럼 말씀하셨는데, 2032년에 처음 만나셨다고요? (의아한 사태에 고뇌하느라 인상이 가벼이 일그러진다.) 오늘이 바로 2032년 3월 8일인걸요. 저를 처음 만나셨을 때 아실링은 몇 살이셨나요?
아실링:앳되긴 하지만 10대로는 안 보여서요. 불편하셨다면 죄송해요. (양손 들며 행위에 악의는 없었다고 표현한다.) 만난 적 있죠. 제 기억에서는... 그때는 제 눈 두 쪽 다 멀쩡했던 것 같아요. 한참 과거의 일이었던 것일까요? (자세한 상황에 대해서 모르는 것은 이쪽도 마찬가지라며 쉽게 정답에 가까운 말을 꺼내지 못한다.) 17살이요. 당신도 그랬고요. 지금은 아닌 것 같지만.
헬레네 R. 히페리데:스무 살이에요. 제 나이보다 앳되어 보인단 말 자주 듣곤 하죠. (머쓱하게 미소하며 괜찮다고 손 설레설레 내저어보였다.) 그럼 지금 아실링의 나이는 몇 살이신가요? 2032년에 열일곱 살이었다니……. 만약 과거로 돌아왔다고 하여도 나이대가 맞질 않네요. 정말 다른 시간선이나 다른 차원에서 오게 되기라도 한 걸까요? 신화생물들도 알 수 없는 고차원들을 넘나든다고 했었으니 그 틈으로 사람이 올 수도 있을지도 몰라요. 물론 지극히 어려운 일이겠지만요.
아실링:몇 살 차이 난다고 분위기나 스타일이 달라지셨네요. 제가 기억하는 당신은 그래요. (몇 살이냐는 물음에 굳어있다가 급하게 근처에 거울이 없나 찾아본다.) 제 정보에 대해서는 아까 말한 것까지만 기억이 나요. 17살에, 카운터에, 이름은 아실링 펜들레엄. 확실히 제 기억과 지금의 상황은 맞지 않네요. 어쩌면 제 기억이 이상한 것일 수도 있지만요... 그나저나, 신화 생물이나 고차원... 같은 것에 대해 자세히 알려주시겠어요? 무슨 말인지 전혀 몰라서..
헬레네 R. 히페리데:아실링이 아는 저는 어떤 모습이었나요? 당신이 기억하는 나이가 열일곱이고 저도 그랬다면 동갑이었을 것 같은데. 이곳에서는 나이 차이가 있어 보이네요. (과거의 어느 시점에서 그대로 기억이 멈춰버리고, 그 정도만 떠오르는 걸까. 들은 정보들을 토대로 그의 상태를 신중히 추측한다.) 아, 그곳에도 타이머와 카운터가 있다고 하였으니 저희와 비슷하거나 더 심각한 상황이지 않을까 싶었는데…… (차분하게 제 살아가는 세상을 설명해준다. 게이트가 열릴 때마다 쏟아져나오는 신화생물하며, 텔레미터라는 공간을 이동하는 수단, 수많은 전투 경험까지……)
아실링:지금보다 머리카락은 좀 더 길었어요. 긴 머리카락을 양 갈래로 묶었고요. 코카스파니엘 같아서 무척 귀여웠고요. 아, 지금 단발이 안 어울린다는 말은 아니에요. 지금보다는 확실히 어려 보이는 이미지였다는 말이에요. (말투며 표정은 담담했지만 어딘가 나잇대에 어울리지 않은 어린애 같은 티가 났다. 여전히 17살인 것처럼.) 여긴 교육기관도 없어요...? DOT 이란 참.... (쯧. 하고 혀를 찼다. 기억 속 17살 여자아이와 분위기가 다른게 이런 것 때문이었나, 싶어 하며 전보다 세밀하게 관찰해 본다.) 당신도 고생이 많네요.
헬레네 R. 히페리데:코, 코카스파니엘. 그건 처음 들어보는 비유네요. 귀엽다는 칭찬은 많이 들어봤지만요. (괜스레 부끄러워져서 말 더듬으며 제 짧은 곱슬머리 끝을 만지작거렸다.) 따로 교육기관이라 할 법한 건 없었어요. 저는 열다섯에 권능이 발현됐는데, 그러자마자 곧바로 이곳으로 와 전투에 투입되었죠. 아마 차근차근 교육을 시킬 시간도 모자랄 정도로 아실링이 아는 세계보다 여기가 훨씬 더 위험했고 위급했던 게 아닐까요. 그래서 처음 전투에 나갔을 때는 적응하지 못해 한동안 트라우마가 생기고 말았지만요. (그때처럼 자신이 쓸모없고 바보처럼 느껴졌던 적이 없었다. 5년 가까이 흘렀음에도 처음으로 목격했던 전투의 낱낱한 참상은 큰 충격으로 제 안에 각인되었다.) 이제는 서관으로 가요. 저희 숙소도 거기에 있을 거예요.
아실링:여기서는 양갈래 머리 안 하셨나 봐요? 진짜 딱 생각나는데... (기억나는 것 몇 없나는 것 치고 주장이 강하다. 머릿속에 제대로 박힌 이미지인가 보다.) ... 안됐네요. 아무리 그래도 15살이면 힘들었을 텐데. 여기나 거기나 아무튼 DOT은 쓰레... (기.까지 말하려다가 멈춰서 헬레네 눈치 본다. 동일 인물이라고 확신하기 어렵지만 그렇게 말하면 헬레네가 좋아할 것 같지는 않아서.) ... 고생 많았어요. 그럼 숙소 안내해 주시겠어요?
헬레네 R. 히페리데:네, 아무래도 긴 머리는 오래 하진 않았고 금방 잘랐어요. 전투가 잦다 보니 머리가 길면 거슬리더라구요. 다치면 피가 묻어서 끈끈하게 굳어지는 것도 그렇고요. (당신이 뱉다 만 단어가 뭔지 대강 유추할 수는 있었지만, 일부러 모른 척 한다. 제가 처한 상황이 힘들기는 했어도 DOT를 그리 나쁘게 생각하고 있지는 않았으므로.) 어쩔 수 없죠. 제가 나서지 않으면 아무런 힘 없는 시민들이 더 많이 다치고 죽어나갈 테니까요. 저의 미숙한 힘이라도 필요로 하셨던 거라고 생각해요. 그리고 지금은 많이 적응되어서 괜찮아요. (이쪽이에요, 하며 동관을 나서서 서관의 숙소가 있는 층으로 향한다.)
아실링:(피가 묻을 리가 없었던 기억 속의 세상과 DOT의 일들을 기억하다가 고개를 저었다. 그때 일을 이곳에 잡아끌고 와봤자 헬레네의 상황이 달라질 것 같지는 않았으니. 할 수 있는 게 위로 말고는 없어서 어깨를 가볍게 두드려준다.) 남을 생각하는 건 좋지만 가끔은 남 탓도 해보세요. 자기 탓을 하다가는 쉽게 지칠 것 같아서요. (그럼 가보죠. 헬레네 따라서 숙소로 따라가본다. 익숙한 건물의 구조 때문에 기분만 이상해질 뿐이었다.)
헬레네 R. 히페리데:(문을 열고 들어선다. 단정하고 깔끔한 외관이다. 책이 가득찬 서가가 벽 한 칸을 차지하고 서 있었다.) 음, 저 혼자 쓰는 방이라 침대가 좁을 텐데. 제가 오늘은 소파에서 잘 테니 침대에서 주무시겠어요?
책상, 옷장, 소파, 침대와 욕실이 있는 큰 방입니다.
가벼운 샤워 시설을 갖춘 욕실이고, 작게나마 거실이 분리되어 있지만 주방은 없습니다.
기본적인 생필품은 지급되고 위험하지 않은 개인 물품은 추가로 소지해도 무관합니다.
헬레네 R. 히페리데:(침대는 아직 일층침대 그대로일까?)
아실링이 쓸만한 다른 침대나 2층 침대는 보이지 않습니다.
갑작스러운 상황이다보니 DOT이 준비할 수 없는게 당연한 일이겠죠.
헬레네 R. 히페리데:(하긴 아무래도 그렇겠지……) 곧 새로운 방을 따로 마련해주실 거예요. 오늘만 불편하시더라도 참아주세요.
아실링:배려는 감사하지만, 주인 있는 방에서 제가 어떻게 침대를 쓰겠어요. 저는 원래 잠도 늦게 자는 편이라 소파에서 자도 괜찮아요. (기억 속 방이 맞는지 확인하다가 소파에 앉는다.) 당분간은 제 자리인 것으로 할게요.
헬레네 R. 히페리데:그래도 괜히 죄송스러운걸요. 하루 정도는 저도 괜찮은데…… (어떻게 해야 할지 망설이다가 우선은 겉옷부터 벗어 옷걸이에 걸어둔다.) 우선 잠옷은 제 걸 빌려드릴게요. 저희 키차이가 아주 많이 나지는 않는 것 같으니까요. 다리 부분은 좀 짧을 수도 있을 것 같아요.
그러고 보면…… 아실링이 있던 그곳에서는 숙소를 어떻게 썼었나요? 타이머와 카운터가 별개로 존재했다는 걸 보면 아마 따로 마련이 되어 있었을까 싶은데.
아실링:아니에요. 저는 충분히 감사한걸요. DOT이 외딴 방에 가두는 건 아닌가 싶어서 걱정했었거든요. 헬레네의 방에 있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만족해요.
당신이랑 같이 사용했어요. 정확히 말해서는 모든 타이머들에게 한 명씩 짝으로 카운터가 있었거든요. 늘 그랬던 건 아니고 제 세대에 처음 있었던 일이에요. 그때 지금처럼 좀 어색했던 것 같기도 하네요. (소파에서 일어나서 옷장 근처를 걸어 다니다가 거울로 자신의 얼굴을 확인한다. 기억 속 17살이 아닌 한참 나이가 먹은 얼굴이라 놀라움을 감출 수가 없었다. 무엇보다 파란색으로 염색한 머리카락도 아니었고.)
헬레네 R. 히페리데:외딴 방이라니…… 아무리 갑작스레 나타난 분이었대도 그리 박하게 대우하는 건 잘못됐는걸요. (그러다 이어지는 말에 제 입가 손으로 가리며) 어머. 거기에서도 저와 한 방을 썼었다니. 모든 타이머에게 카운터가 있었던 거군요. 하지만 그것도 이례적인 일이었고…… 만약 아실링이 여기로 갑자기 넘어오게 되신 거라면 다른 카운터 분들은 어떻게 되신 걸까요? 그리고 그곳에 남아있는 타이머인 저는 또 어떻게 된 걸까요? 짝이 되었을 때는 지금의 매커니즘과 어떻게 달랐을지 궁금하네요. 서로의 능력을 보다 잘 보완할 수 있었나요? (호기심 넘치는 성격답게 질문이 계속 이어진다.)
아실링:(어린애를 교육도 안 시키고 괴물이나 다름없는 것들에 맞서게 하는 기관이라면 충분히 가능할 것 같아요. 하고 싶은 말은 길었지만 이것 역시 말하지 않았다.) 다른 카운터들은... ... 모르겠네요. 솔직히 이름이랑 얼굴도 흐릿해요. 제가 다른 사람한테 관심이 없어서 제대로 기억 안 했거든요. 만나지 얼마 지나지 않았던 거기도 하고... 그곳에 있는 당신이라면 걱정 마세요. 어디에서 있던지 모두에게 사랑받을 사람이니까요. 그곳에서는 타이머 대우가 엄청 좋았거든요. 연예인을 넘어서서... 거의 신적인 아이콘이었던 것 같아요. (이어지는 질문에 다 답을 해주기에는 아는 게 없어 곤란해하다가 문득 생각나는 것들에 놀란다.) 전에 저를 처음 봤을 때 기분이 새로웠다고 하셨죠. 저 역시 17살 기억에서 그렇게 느꼈던 것 같아요. 존재에 시선을 뺏긴듯한.. 그런 감각이었어요.
헬레네 R. 히페리데:하긴, 열일곱 살 초봄에 저를 처음 만나셨다고 했죠. 지금은 그때에서 시간이 거의 흐르질 않았으니 잘 기억나지 않는 것도 당연하겠어요. (들려주는 이야기가 신기하기만 하다. 절로 눈을 반짝이며 경청한다.) 연예인이나 신 같은 존재라니. 여기라고 해서 타이머의 대우가 나쁘거나 한 건 아니지만, 저흰 지극히 수호를 위한 군인 정도에 가깝거든요.
음, 열일곱 이후로 기억이 없으시다면…… (슬쩍 눈치를 본다. 같은 성씨를 가질 정도면 그곳에선 저와 그가 가족이었거나 혹은 부부가 되었거나 하는 경우일 뿐일 텐데, 만난 지 얼마 안 되었을 시기라면 사이가 나빴을지도 모르니까.) 아실링의 군번줄에 왜 이름이 '아실링 히페리데' 라고 적혀 있었는지도 모르시겠군요.
아실링:매번 티비나 잡지 같은 것으로만 보다가 직접 만나는 건 처음이었죠. 직접 보는 게 더 좋아 보이더라고요. 남들이 알았으면 엄청 부러워했을걸요? 이곳의 생활방식이나 사회가 제가 있던 곳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것을 전제하고 말하는 것이지만요. 음... 괴물 같은 게 있으니 다르다고 보는 게 좋을 것 같기도 하겠네요. (지극히 수호를 위한 군인. 언제 죽어도 모른다 같은 말로 들려서 입가가 삐뚜름해졌다.)
... 네? (지금 그게 무슨 소리냐면서 허겁지겁 목 부분을 확인한다. 군번줄이 있는지도 몰랐다며 서두르는 손길에 진정성이 가득하다.) ... 네??! (눈으로 확인해도 이해하지 못할 상황에 어리둥절하기만 하다. 한참의 생각 끝에 나온 것은 힘 빠지는 답변뿐.) ... 저 나중에 입양... 당해지는 것일까요?
헬레네 R. 히페리데:물론 영웅이자 세계를 위한 구원자라는 칭송을 듣고 있어요. 그렇지만 연예인만큼 대외적인 활동을 많이 한다거나 인기도를 측정한다거나 하는 건 없거든요. 생사를 같이하는 만큼 저는 다른 타이머 분들과 빠르게 가까워졌지만…… 매번 죽음의 위기에 놓여 있어서, 언제까지 그분들을 볼 수 있을까 하는 비관적인 생각이 들기도 해요. 저도 크게 다친 적이 여러 번 있구요.
입양…… 인지는 저도 잘 모르겠네요. (아무래도 그는 당신이 알던 곳의 헬레네는 아닐 테니) 입양일 수도 있겠지만 일반적으로 성씨를 따르는 건 부부가 되는 경우가 대부분이기는 하죠. (열일곱의 아실링에게는 미래를 스포일러 당한 느낌일까. 혼자 추측한다) 저와 가까운 사이가 되나 봐요. 처음 느꼈던 감정이 그대로 이어진다면, 아마 크게 어려운 일은 아니었을지도 모르겠네요. (그만큼 이질적이면서도 새롭고, 벅차오르는 감각이었으니까.)
아실링:크게 다쳤다는 게 어느 정도죠? 수술을 받는 것 같은 큰 부상인가요? 그렇다면 생각보다 큰 문제인 것 같아서요.. 제가 있는 곳에서 타이머들이 다쳤으면 난리 난리 났을걸요. 대체 무슨 일을 시켰길래 타이머들이 다쳤냐면서 DOT 앞에 피켓 들고 찾아왔을지도 몰라요. (그런 건 본 적이 없지만. 극성팬의 경우에는 그럴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결혼이나 연애 같은 것은 자신에게 너무나도 먼 이야기라 함부로 상상하기도 어려웠다. 관련된 기억은 하나도 없는지라 생각할수록 미궁에 빠질 뿐이었다.) ... 제가 아는 DOT이라면 강제 결혼을 시킬 것 같기도 해요. 겉으로 보여주는 이미지 관리를 위해서 같은.. 것 때문에요.
헬레네 R. 히페리데:아, 네에. 신화생물에게 공격당해서 복부를 크게 다쳤던 적이 있어요. 그때 처음 수술을 받았었네요. 팔이 부러지거나 발목뼈에 금이 간 적도 여러 번이구요. (피켓이라니, 저의 이 세계에서는 정말이지 상상도 가지 않는 일이다.) 아실링이 계셨던 그곳은 여기만큼 신화생물이 많이 침공하지는 않았나 봐요. 다칠 위기가 그만큼 적었다는 의미일 테니까요. (그 도밍게즈의 국민들은 한결 안전하게 살고 있었겠구나. 조금은 씁쓸해지는 기분이 들었다. 자신이 지키지 못한 수많은 이들이 자연히 상기되어서.)
가, 강제 결혼이요? 그 정도로 관리가 엄격하고 권한이 강했던 건가요? 물론 여기도 군부대이니만큼 원칙과 규칙에 복종하는 게 우선이기는 하다지만…… 그건 조금 심하네요. (당황)
아실링:(자신이 있던 세계에서는 있을 수 없는 일에 두 눈이 커졌다. 나이에 상관없이 능력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온갖 위험에 시달려야 한다니. 믿기 싫어지는 사실에 찌푸려진 인상은 풀릴 줄 몰랐다.) 뭐라고 위로를 해야 할지 모르겠네요. 원래라면 그런 위험에 노출되지 않아야 하는데... 타이머로서 열심히 활동하는 당신에게 안쓰럽다고 말하는 건 좋지 않은 거겠죠? 위험을 무릅쓰는 행동에 긍지를 가지고 계실 테니까요.
그 정도는 아니고~.. 그냥 그럴지도 모른다는 생각이에요. 돈 되는 일이나 외관상으로 괜찮아 보이면 뭐든지 시킬 것 같아서요. (이곳처럼 어린애들을 바로 내보내지 않아서 다행인 건가. 쓸데없는 잡념을 하다가 고개를 젓는다.)
헬레네 R. 히페리데:첫 전장에 투입되었을 때에는 무척 무섭고 도저히 적응하지 못할 것처럼 느껴졌어요. 열다섯에 달란트가 생겨나기 전까지 저는 의사로 일하는 막내오빠와 함께 6구역에서 살았거든요. 그 작은 마을에는 운 좋게도 신화생물이 거의 쳐들어오지 않아서 평화로운 생활을 보내고 있었죠. 그래서 처음 전쟁의 참상을 접했을 때 더욱 충격을 받았던 것 같네요. 그래도 이제는 괜찮아요. (고개를 가벼이 저으며 미소한다.) 힘들지 않은 건 아니지만 제 미약한 힘으로나마 시민들을 구해낼 수 있다는 데 긍지를 느끼고 있으니까요. 아실링의 말처럼요. 위로해주셔서 감사해요. (첫인상은 무척 당황스러웠지만, 그래도 보면 볼수록 착하고 다정한 사람 같다.) 아실링은 아직 능력이 생긴 지 얼마 되지 않으셨다고 했었으니, DOT에 들어간 지도 얼마 되지 않으신 거겠죠? 첫인상이 안 좋아서 그리 느끼신 걸지도 몰라요.
아실링:정말이지.. 영웅은 아무나 못하나 봐요. 저였으면 그냥 도망치고 싶었을 것 같아요. 원래 살고 있던 일상에서 눈을 돌리지 못할 거고요. 솔직히 저는, 능력이 발현된 이후로 오랫동안 숨기고 살았거든요. 고모와의 비밀로 여겼어요. 물론~.. 보시다시피 DOT에게 들켰지만. (가운 아래로 보이는 검푸른 색 제복을 보다가 옷소매를 내린다.) 저였다면 긍지고 뭐고 무서워서 바로 얼어붙었을 텐데... 그런 책임감을 갖는 것도 매우 어려운 일이에요. 무척이나 멋지네요, 헬레네는. (정말 헬레네 말대로 얼마 되지 않아서 그런 걸까? 계속 가슴에 남는 찝찝함에 입꼬리를 비죽인다.) 이곳에서는 어떨지 모르겠네요. 좋은 기억으로 남으면 좋겠어요.
헬레네 R. 히페리데:사실 저도 수도 없이 도망치고 싶었어요. (이리 솔직한 심정을 고백해본 적이 대체 얼마 만이던가. 차마 제 오빠에게도 털어놓지 못한 말이었다. 이야길 들으면 저를 더 걱정할 게 뻔했으니. 비록 다른 차원 같지만 그곳의 저와 함께했다고 하는데다, 타이머로서의 중압감을 이해해주는 덕분에 그간 꽁꽁 숨기고 있던 본심이 자연스레 얼음 녹듯이 흘러나왔다.) 그렇지만 제가 도망치면 저만 믿고 피하고 계실 수많은 시민 분들의 목숨이 위험해지니까요. 매 순간 저에게 달려 있는 책임감을 상기하면서 버텨왔던 것 같네요.
모쪼록 다른 기억들도 어서 돌아왔으면 좋겠네요. 그리고 이곳에서도 좋은 시간을 보내실 수 있도록 노력할게요. 여기의 DOT는 아실링의 기억만큼 나쁘지 않기를 바라면서요. (마지막 말은 희미한 농담조였다.) 그럼 이만 잘 준비를 해도 괜찮을까요?
아실링:(찬찬히 이야기를 듣다가 문득 하나 생각이 났다. 그럼 당신은 누가 지키지? 다른 타이머의 도움을 받을 때도 있겠지만, 만약 그들이 바쁘다면? 약간 거친 입술을 깨물다가 입을 연다.) 어쩌면 저는 당신을 지키기 위해 이곳에 왔는지도 모르겠네요. (농담조의 말투지만 표정에는 조금의 장난 없이 진지하기만 하다.)
저도 어서 알고 싶어요. 열심히 일한 당신의 위험을 조금 덜어주고 싶고요. 저는 누구를 적극적으로 돕는 그런 성격은 아닌데... 당신이 계속 신경 쓰여서 그런가 봐요. (잘 준비를 위해 옷을 갈아입으려고 한다.)
리히트 장교가 15번째 타이머 가설을 벌써 본부로 전달한 모양입니다.
DOT의 절차는 두 사람을 기다리지 않고 신속히 흐릅니다.
헬레네 R. 히페리데:어머. (막 옷을 벗고 씻으려 들어가려다가 호출 소리를 듣곤 서둘러 다시 군복을 챙겨입는다.) 아실링, 잘 준비 대신 훈련실로 가봐야 할 것 같아요. 장교님께서 벌써 단서를 찾으셨나 봐요.
아실링:지금 이 시간에 부른다고요? DOT은 정말이지... (옷 갈아입으려다 말고 전부 챙겨입는다. 눈 아래로 내려운 다크서클이 피곤함을 대신 증명한다.) 가보죠... 데려가주세요.
헬레네 R. 히페리데:많이 피곤하시죠……. 얼른 다녀와서 바로 자야겠어요. (걱정 어린 낯으로 다크서클을 바라보다 훈련실로 당신을 안내한다.)
호출을 따라 훈련실로 걸음을 옮기면, 문 앞에서 흰 가운을 입은 연구원들이 두 사람을 반깁니다.
닥터 오프-화이트: 왔어? 늦은 시간이지만 미안해. (손을 팔랑팔랑 흔들며 친근하게 군다.)
손에 들린 일지에는
15번째 타이머? 물음표가 커다랗게 쓰인 낙서가 잔뜩 적혀 있습니다.
닥터 오프-화이트: 음, 뭐라고 불러야 할지 모르겠네. 리히트 장교님의 말에 따르면 저 친구가 15번째 타이머일 수도 있다며?
그래서 일단은 X라고 부르기로 했어. 미지수니까. 그래서~ 어떻게 생각해?
헬레네 R. 히페리데:네, 확실히 이능력이 있었으니까요. (그리고 아실링 쳐다본다. 아실링을 부르는 호칭이니 마음에 들어야 할 텐데)
아실링:(내 이름 알텐데? 뚱해보이는 표정 유지하다가 마음대로 하라며 고개 끄덕인다.)
닥터 오프-화이트: 그럼 X인걸로~. 자, 그럼 연구 내용 설명해도 될까?
헬레네 R. 히페리데:네, 벌써 결과가 나왔다니 무척 열심히 조사해주셨나 봐요. (X라니, 타이머와는 퍽 다른 결의 호칭이라 신기했다.)
닥터 오프-화이트: 솔직히 말하면 결과보다는 의심 같은 거라... 기대했으면 미안해?
어깨를 으쓱인 닥터는 연구 내용을 간단히 설명합니다.
설명이 이어지는 동안에도 연구원들은 부지런히 움직입니다.
익숙한 패드가 뺨, 귀 뒤, 목덜미나 손목 안쪽 등에 달라붙습니다.
헬레네 R. 히페리데:제…… 제게도 이게 필요한 건가요? (어색하게 서 있는다)
SAN Roll
기준치: |
70/35/14 |
굴림: |
68 |
판정결과: |
보통 성공 |
닥터 오프-화이트: 그러엄. 필요하지. 그러니까 조금만 참아줘~.
우선…… X가 헬레네와 같은 값의 수라는 전제로 몇 가지 실험을 해보려고.
손수 훈련실의 문을 열어주며 닥터가 신신당부합니다.
이레귤러인 만큼 DOT에도 DB가 없으니, 두 사람의 협조가 중요하다고요.
스크린 속 영상에는 우주의 느긋한 한때가 반복되고 있습니다.
성간구름은 바람에 나부끼는 먼지처럼 한껏 부풀었다가 폭삭 꺼집니다.
헬레네 R. 히페리데:실험이라니 뭘까요? (패드의 감각이 영 익숙하지 않아 손목을 이리저리 돌려본다.)
아실링:이상한 실험은 아니겠죠? 저 이곳에 온지 아직 하루도 안 지났는데... (DOT에 대한 신뢰감 같은 것이 애초에 없었기 때문인지 불안함 가득이 주위를 두리번거린다.)
달칵. 문이 완전히 닫히자 천장에 달린 스피커에서 닥터의 목소리가 들립니다.
닥터 오프-화이트: 가볍게 인터뷰부터 시작할 건데, 솔직하게 대답해야 해?
X는 기억이 아예 없는 거야? 원래 뭘 했는지, 언제부터 권능을 쓸 수 있었는지, 여기 오기 전엔 어디에 있었던지. 어떻게 오게 된 건지.
헬레네와 대화했던 것과 같은 대답이 나옵니다.
아실링이 떠올린 기억을 토대로 대답하더라도 명쾌한 진실은 밝혀지지 않습니다.
같은 연도, 같은 행성, 같은 곳에서 같은 존재였다는 아실링의 주장은 완벽한 역설에 불과하므로.
닥터 오프-화이트: 그렇구나... 헬레네는 어떻게 생각해? 방금 X가 한 말 말이야.
헬레네 R. 히페리데:소설이나 영화 같은 데서나 일어날 법한 일이지만, 저는 가능할 수도 있다고 봐요. 아실링이 DOT에 갖고 있는 기억은 이 세계의 것과는 다르지만 무척이나 구체적이었거든요. 그곳에서의 '제'가 어땠는지도 상세히 묘사하셨었고요.
닥터 오프-화이트: 뭐? 그런 중요한 이야기를... 방금 나한테는 그곳의 '헬레네'에 관한 이야기는 안 했잖아! 치사해!
오늘은 바쁘니까, 그 이야기는 나중에 해주는 걸로 하고.
헬레네 R. 히페리데:(아이 같은 면이 있으시다니까)
진실 혹은 거짓을 판별하는 대신 닥터가 다른 걸 묻습니다.
닥터 오프-화이트: 흠. 그럼 능력은 다시 사용할 수 있겠어?
아실링:(저 지금 사용해야 해요? 하고 물어보듯 헬레네를 빤히 본다.)
헬레네 R. 히페리데:점검을 위해서라도 보여주시면 좋을 것 같아요. 그런데, 아까 능력이 보여졌을 땐 저희의 피부가 닿았을 때였는데…… 혹시 스킨십을 하지 않고도 쓰실 방법을 알겠나요?
아실링:어떻게 하는지 기억은 나요. 뭔가 제 몸이 잘 안 따라줄 것 같지만요... 그럼 해볼게요.
권능 Roll
기준치: |
80/40/16 |
굴림: |
10, 92, 34 |
+2: |
극단적 성공 |
+1: |
극단적 성공 |
0: |
극단적 성공 |
-1: |
실패 |
-2: |
실패 |
가까스로 성공했지만 하품 수준의 위력이 고작입니다.
지켜보는 헬레네도 타이머 특유의 파동을 느끼지만…….
게다가 어딘가 불안정하고 불완전하다는 불편한 감각을 무시할 수 없습니다.
애매한 출력값을 보고 아쉬운 한숨을 내쉰 닥터가 묻습니다.
닥터 오프-화이트: 두 사람, 처음 만났을 때 특별한 느낌을 받았어? 역대 타이머의 기록을 살펴보면 세대교체를 미리 예감한 경우도 종종 있더라고. 분할되거나 교체되려던 거였다면 두 사람도 뭔가 느꼈을지 모르잖아.
뭔가 있을텐데.. 내 감이 그걸 말하고 있어!
헬레네 R. 히페리데:세대 교체를요……? 그건 곧 타이머의 죽음을 의미할 텐데. 느껴본 적이 없으니 (그야 평생 한 번밖에 느껴보지 못할 감각일 테니 말이다) 정확히 어떤 감각일지는 모르겠지만, 처음 아실링을 보았을 때 모든 감각과 본능이 쏠리는 듯한 기묘한 느낌을 받았어요. 상대에게 그런 감각을 느껴본 건 난생처음이었죠.
아실링:저도 비슷했어요. 세상에 저랑 헬레네 둘이서만 있는 듯한 기분도 들었고요. 제가 있던 곳의 '헬레네'와도 비슷했어요. 그게 무슨 의미인지는 모르겠지만요.
닥터 오프-화이트: 그래? 그렇단 말이지…….
그럼 이번에는 말이야, 우선 둘이 양쪽 벽 끝에 등을 대고 서줄래? 완전히 떨어져 줘. 그리고 화면에 뜬 순서대로 진행하면 돼.
아실링:(벽에 찰싹 붙는다. 행동은 하지만 표정으로 왜? 라고 말하는 듯 하다.)
헬레네 R. 히페리데:양쪽 벽 끝에요? (의아하지만 시키는 대로 반대쪽 벽에 등을 붙이고 선다)
스크린을 채운 우주는 어느새 새파란 알림창으로 축소되었습니다.
또박또박한 픽셀로 쓰인 글자는 이런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헬레네 R. 히페리데:(접근과 접촉까지는 이해했지만,) 접목, 접전……? 이건 정확히 무슨 의미인가요?
닥터 오프-화이트: 접목~ 쉽게 말하면 양쪽의 권능을 서로 단단히 붙들고……. 두 사람이 함께 같은 권능을 휘두르는 거야.
그리고 접전은 각자의 권능으로 서로에게 대항하는 거고. 어떻게 충돌할지 궁금하잖아~
헬레네 R. 히페리데:대, 대항이라뇨. (당황스러워 뻘뻘댄다) 닿기만 했을 때도 능력이 폭발하는 듯해서 당황스러웠었는데…… (즉 고의적인 충돌을 유발하라는 거나 다름없다. 무척 당황했지만, 곧 오래잖아 침착을 찾는다. 능력을 자세히 알아보고 판단하기 위해서라면 한 번쯤은 거쳐야 하는 과정이겠지.)
아실링, 준비는 되셨나요……?
닥터 오프-화이트: 걱정마, 걱정마~. 괜찮지 않겠어? 그리고 혹시 모르는 일이기도 하고! 반복해보자고!
아실링:하라면 해야겠죠..? 제가 거절해도 저분이... (닥터 오프 화이트 보다가 한숨 폭.) 네, 준비는 끝났어요. 제가 능력을 잘 쓸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요.
닥터 오프-화이트: 제군들! 준비는 끝인가?!
헬레네 R. 히페리데:…… (완전 신나셨군요) 네. 힘내요, 아실링. (눈짓한다)
아실링:(저 벌써부터 기운 빠져요. 입으로 빠끔빠끔.) 잘 부탁드려요, 헬레네. (아자..!)
닥터 오프-화이트: 우선 X, 이 상태로 권능을 사용해볼래요?
아실링:
권능 Roll
기준치: |
80/40/16 |
굴림: |
88, 97, 55 |
+2: |
보통 성공 |
+1: |
실패 |
0: |
실패 |
-1: |
실패 |
-2: |
실패 |
타자를 두들기는 효과음이 요란하게 지나고, 닥터 오프-화이트는 두 사람 사이 거리를 좁혀 봅니다.
닥터 오프-화이트: 더! 더 좁혀봐요! 아니 그렇다고 너무 가깝지는 말고!
둘이 중앙에서. 가까워지되 닿지는 않을 정도로만.
헬레네 R. 히페리데:괜찮아요, 아실링! (주눅들 필요 없다며 양 주먹 쥐어보고는, 더 중앙을 향해 걸어나간다.)
지시를 따르는 로봇처럼 상대를 향해 다가가노라면.
아직 아무것도 하지 않았건만 심장박동이 점차 선명해집니다.
외눈박이 CCTV는 훈련실에 사각지대를 남겨두지 않고 꼼꼼히 살펴보고 있습니다.
아실링:후... (깊게 숨 내쉬고는 손으로 이마 짚는다.) 노력해 볼게요. 노력으로 괜찮아 질지는 모르겠지만...
권능 Roll
기준치: |
80/40/16 |
굴림: |
14, 27, 27 |
+2: |
극단적 성공 |
+1: |
극단적 성공 |
0: |
극단적 성공 |
-1: |
어려운 성공 |
-2: |
어려운 성공 |
닥터 오프-화이트: 우연의 일치라기엔 확실히, 눈에 띄는 차이가 있네.
이젠 손을 좀 잡아 볼래? 내키지 않는다면 옷자락도 좋고. 일단 접촉해 봐. (흥미!)
헬레네 R. 히페리데:(쏟아치는 물을 보며 푸른 눈을 크게 뜬다.) 거리가 가까워질수록 능력을 안정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것일까요?
이대로만 하면 될 것 같아요, 아실링! (한결 밝아진 낯으로 완전히 중앙까지 걸어왔다. 살갗이 닿았을 때 권능이 폭발했던 기억 때문에 조심스럽게 두 손을 내민다.)
아실링:정말 이걸로 괜찮은 걸까요? 전의 능력 폭발은 그럼 왜... (생각한다고 해결될 일은 아니라고 결론이 났는지 지금은 묵묵히 따르기로 결정한다. 혹시 모를 상황을 대비해 손을 아주 조금씩 이동한다.)
신체를 접촉하자 권능은 압도적으로 몸을 부풀립니다.
닿은 부분으로부터 새로운 권능이 넘어오는지 열감이 느껴집니다.
헬레네 R. 히페리데:
정신
기준치: |
70/35/14 |
굴림: |
3 |
판정결과: |
극단적 성공 |
닥터 오프-화이트: 어이 너! 그래 안경잡이! 지금 관측되는 상승 곡선 기록해! 변화 수치 계산하고, 혹시 모르니 CCTV 영상 백업해둬!
쉴 새 없이 지시하던 닥터가 한 단계 다음을 요구합니다.
닥터 오프-화이트: 좋아, 잘하고 있어. 아직 힘들지 않지?
아실링:
정신
기준치: |
60/30/12 |
굴림: |
86 |
판정결과: |
실패 |
(잡아진 손가락을 꿈틀 거린다. 뭔지 모를 부족함에 눈썹이 올라갔다가 내려간다.)
아직 힘들지는 않... 아니요. 힘들어요. (정신이)
헬레네 R. 히페리데:히, 힘드세요? (무척이나 편안한 감정에 절로 표정이 풀리려다가 후다닥 정신 다잡고 되묻는다.) 여기에서 멈춰야 하지 않을까요?
아실링:저 닥...터라는 사람이 입을 좀 다물어 주면 덜 힘들 것 같아요. 그건 힘들겠죠? (헬레네에게만 들리도록 소곤소곤...)
헬레네 R. 히페리데:그, 그건 아무래도 어려울 것 같네요. 계속 지시를 내리셔야 하니까요. (마찬가지로 카메라 눈치 보며 소곤소곤……) 다음 단계까지 해 보고 정 안 되겠다 싶으시면 그만두기로 할까요?
아실링:역시 그렇겠죠... 맨 몸으로 와서 밥값은 해야 할 테니, 노력해볼게요. (힘내겠다가 손 들어서 주먹 쥐어본다.)
닥터 오프-화이트: 뭐야아. 이야기 끝? 준비한 거야?
권능의 접목은 DOT에서 끊임없이 시도하던 연구입니다.
타이머들의 팀플레이를 넘어서, 권능끼리 접목해 새로운 지경을 연다면 더 강력한 힘을 얻을 수 있을 테니까요.
그러나 2032년에 이르기까지 번번이 실패한 연구이기도 합니다.
서로 다른 속성의 권능은 절대 융화하지 않았거든요.
닥터의 기대심리가 스피커 너머로 생생하게 맥동합니다.
닥터 오프-화이트: 헬레네, 네가 리드해 줘. 아직까지 능력은 네가 몇 수 위니까.
헬레네 R. 히페리데:(게다가 저와 아실링의 능력은 같은 시간, 즉 제 1시에 속한 능력으로 보였으니까. 융합을 시도한다면 가장 높은 가능성을 지닌 셈이다. 다른 시간대와는 그리 시도해도 안 되었는데, 설마하니 다른 차원에서 넘어온 이와 융합을 시도하게 될 날이 오게 될 줄이야.) 아실링은 정확히 어떤 능력을 지니셨나요? 저는 물의 모양을 자유자재로 조절할 수 있어요. 주로 방패를 만들거나, 커다란 돔처럼 만들어 주변인을 감싸고 보호하는 용도로 쓰거든요. (제 무기로 쓰는 창을 보여준다.) 이 매개체를 통해 모양을 섬세하게 조절하곤 해요.
아실링:제 기억에는 모양을 만든다거나 하는 특별한 일은 없어서요. 집에서는 그런 연습을 해볼 일이 없는지라. 아, 수압을 이용해서 잘라낸다거나 하는 일은 있었어요. 자주 사용하지는 않았지만요. (헬레네가 설명해 주는 다양한 방법들을 기억에 새기다가 손을 아래로 뻗어본다. 작은 파도가 치는 것처럼 바닥을 얕게 물로 가득 채운다.) 지금은 이 상태로 아래에서 위로 강력하게 솟아오르게 하는 게 전부에요. 활용도가 떨어지네요.
헬레네 R. 히페리데:수압을 이용해서…… 독특한 방식이네요. 활용도가 떨어진다뇨! 지금은 아실링이 아직 기억을 잃으셔서 그럴 뿐 분명 훌륭하게 다루셨을 거예요. 만약 그렇지 않더라도 지금부터 해나가면 되는 법이구요.
그렇다면…… 제가 물을 다루어서 칼날의 모양을 만들 테니, 아실링이 강력한 수압을 통해 칼날을 십수 개로 나누어서 단번에 바닥으로 내리꽂게 만드는 건 어떠신가요? 저는 물의 모양을 만들어낼 순 있지만 위력은 썩 강하지 못하거든요. (타고나길 근력 힘이 약했던 탓이다) 그래서 주로 방어 위주로 능력을 써 왔구요.
아실링:(내심 시무룩해있다가 고개 꾸닥이며 자신감 찾는다.) 바로 눈에 그려지는 설명이네요, 감사해요.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었어요. (손을 뻗어 수면을 일렁거리며 몇 번 연습하다가 자신 가득히 웃어본다.) 제가 느끼는 바로는, 저는 방어보다는 공격인 것 같네요.
그럼 진행 전에, 이번에는 좀 더 다가가고 싶어요. 그래도 괜찮나요?
헬레네 R. 히페리데:그렇죠? 아실의 힘이라면 분명 해내실 수 있을 거예요. (자신만만한 웃음에 한결 마음이 놓여, 따라 배시시 웃는다.) 네, 편히 다가와주세요. 가까워질수록 능력의 세기가 더 강해지는 것 같으니까요. 어찌 된 영문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아실링이 오셨던 차원에서는 저희가 타이머와 카운터로 연결되었기 때문일까요.
아실링:고마워요. 헬레네 덕분에 긴장이랑 스트레스도 좀 줄어든 것 같아요. 그럼... (허락도 받았겠다, 잡았던 손을 놓고 팔을 헬레네 허리에 감는다. 헬레네와는 처음인 이 행위가 왜인지 모르게 익숙하게 느껴지는 것은 함구하며.) 정말 이곳에 온 이유가 당신과 만나기 위해서일지도 모르겠네요.
헬레네 R. 히페리데:그러게요. (처음엔 무척이나 당황스럽고도 놀라운 만남이었지만, 그 이유가 그새 짐작될 것처럼 서로에게 서로가 맞아가고 있음을 느낀다. 허리에 닿는 손길이 약간 부끄러워 고개를 살짝 숙이곤 한 손에 창을 단단히 쥐었다.) 준비되셨나요?
아실링:지금 이런 말이.. 이상하게 들릴지도 모르지만, 원래 이래야 했던 것처럼 느껴져요. 마음이 편해지네요. (헬레네와 다르게 부끄러움보다는 안심이 되는 느낌으로 가슴이 가득 찼다. 손바닥을 바닥 아래로 향하게 두고 고개를 끄덕인다.)
가지에 다른 가지를 접붙이는 것처럼 객체였던 헬레네와 아실링이 하나처럼 견고해지면
아실링:
권능 Roll
기준치: |
80/40/16 |
굴림: |
22 |
판정결과: |
어려운 성공 |
헬레네 R. 히페리데:
권능 Roll
기준치: |
70/35/14 |
굴림: |
84 |
판정결과: |
실패 |
(창을 바닥에서부터 하늘로 들어올리며, 물을 하나의 거대한 칼 모양으로 만들어낸다.)
나무가 가지를 뻗어 하늘로 향하는것 같이 올라가던 칼날은, 천장에 박히기 직전에 멈춥니다.
헬레네 R. 히페리데:(이제껏 한 번도 합을 맞춰본 적 없는 상대인데, 전투에서 수십 번 함께 싸워 본 동료 타이머들보다도 더 익숙하게 능력이 이어지고 감각이 전달된다. 커다랗게 생성된 칼날이 당신의 수압에 따라 나뉘고 위력을 지닌다. 처음으로 융합에 성공해냈음을 깨닫곤 표정이 환해져서 아실링을 꼭 껴안는다.) 아실링! 성공했어요!
아실링:(헬레네에게 안기자마자 어린애 같은 웃음이 터져 나온다. 쭉 뻗은 팔이 헬레네 등을 감싸더니 이후 안아 올려서 빙글빙글 돈다.) 성공할 줄은 알았지만, 이렇게나 위력이 좋을 줄은 몰랐네요. 저희는 정말 잘 어울리는 짝인가 봐요!
헬레네 R. 히페리데:
정신
기준치: |
70/35/14 |
굴림: |
23 |
판정결과: |
어려운 성공 |
아실링:
정신
기준치: |
60/30/12 |
굴림: |
8 |
판정결과: |
극단적 성공 |
닥터 오프-화이트: 대단해! 여태 우리가 찾아 헤매던 해답일지도 몰라!
온 세상이 들뜨는 것처럼 환희에 찬 목소리였습니다.
헬레네 R. 히페리데:꺅~! (번쩍 들리자 깜짝 놀라 눈이 커졌지만, 이내 놀람마저도 금세 휘발되어 사라져버린다. 그 정도로 성공해냈다는 데 대한 환희가 대단한 고취감을 주었다. 잘 어울리는……
짝. 그 단어가 무척이나 매력적으로 들렸다.) 아실링이 잘 해주신 덕분이에요.
아실링:헬레네의 도움 없었으면 절대로 못해냈을걸요. 저 이렇게 사용해 본 거 처음이에요. 적어도 지금 제 기억 속에서는 그래요. (한 번 더 세게 안았다가 놓아준다. 그러고는 스크린으로 시선을 돌린다. '접전') 이렇게나 사이좋은데.. 일단 해봐야겠죠?
헬레네 R. 히페리데:이걸 필두로 해서 기억도 금세 돌아온다면 좋을 텐데 말이죠. 일단은 계속 합을 맞춰보면서 감각을 익혀가는 걸로 해요. (마찬가지로 스크린을 바라본다.) 부딪히는 건 능력일 뿐이니까요. 저는 사감을 담지 않아요. 그래도 최선을 다할게요!
(눈을 내리감고 심호흡을 한다. 집중력을 그러모으며 창을 위쪽으로 높게 뻗었다가 단번에 아래로 내리그었다. 그의 머리 뒤쪽에서 물의 장막이 소용돌이치기 시작한다.)
아실링:그렇다면 최선을 다해주세요. 저 봐줄 생각하지 마시고요. 저도 힘이 닿는 대로 열심히 해볼 테니까요. (이제는 사용법을 제대로 알아낸 것인지, 아니면 몸이 사용법을 기억하는 것인지 물의 형태가 제대로 만들어지기 시작한다. 물기둥이 솟아올라 철장 같은 형태로 만들어졌다가 좀 더 더 촘촘하고 날이 선 모양으로 만들어진다.)
아실링:
파란(波瀾)
기준치: |
80/40/16 |
굴림: |
28 |
판정결과: |
어려운 성공 |
피해: |
37 |
헬레네 R. 히페리데:(소용돌이치는 장막이 점차 둥근 모양을 갖춰간다. 숨을 깊이 고르고, 푸른 눈을 번쩍 뜨며 창날을 쥔 팔을 휘둘러 크게 호선을 그렸다. 저를 크게 감싸는 두꺼운 방어막의 형태가 완성되고, 동시에 당신을 삼킬 듯하며 압박감을 준다.)
파도의 창
기준치: |
70/35/14 |
굴림: |
32 |
판정결과: |
어려운 성공 |
피해: |
20 |
펑! 허공에서 맞부딪친 두 갈래의 권능은 곧 가벼운 바람 소리와 함께 사방으로 흩어집니다.
그도 그럴 게, 명백히 폭발한 권능은 상대와 겹치는 순간 완벽히 소거되었으니까요.
플러스 마이너스 제로처럼 명백한 계산식이었습니다.
타이머의 권능이란 위대하면서도 폭력적인 자연재해와 같아서,
손발이 맞지 않으면 아군이 더 무서운 적이 되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번만큼은 명백히. 권능이 서로를 식별한 양 굴었습니다.
이런 일이 가능해진즉, 이보다 완벽한 파트너가 있을까요?
아실링:(권능이 만나 물보라로 훑어지는 것을 지켜보다가 손바닥으로 입을 가린다. 자신의 표정이 지금 어떨지 상상할 수가 없다. 표정을 고치는 것도 어려운 것은 당연하고. 정말 자신이 이곳에 온 이유가 이것 때문이라면, 그렇다면...) 저는 아무래도 좋은 파트너가 될 것 같네요. 그렇죠?
헬레네 R. 히페리데:세상에. (팽팽한 힘을 담은 두 권능이 맞닿자마자 단번에 사라진다. 그 광경이 물을 담은 색의 눈에 선명히 새겨졌다. 우리의 권능은 서로를 결코 해칠 수 없다. 이것만큼 완벽한 표식이 있을까? 저와 당신이
짝이리라고.)
네, 정말 그렇네요……! (눈앞의 광경에 아직도 고양감이 남아, 목소리가 다소 떨려왔다.)
여러 감정에 휩쓸린 것은 아실링과 헬레네 뿐만이 아닙니다.
닥터와 연구원들의 목소리가 너무 높아 한 문장씩 알아듣기가 어려울 지경입니다.
당장 보고해야 한다며 소란을 피우는 것 정도는 확실해 보이네요.
헬레네와, 아실링이 닿을 때마다 빈구석이 있었던 것처럼 권능은 계속해서 몸집을 부풀립니다.
더욱 광범위하고 정교하게 사용할 수 있습니다.
헬레네 R. 히페리데:
정신
기준치: |
70/35/14 |
굴림: |
70 |
판정결과: |
보통 성공 |
아실링:
정신
기준치: |
60/30/12 |
굴림: |
39 |
판정결과: |
보통 성공 |
지직, 지지직. 스크린에 노이즈가 섞이고 화면 전체가 미미하게 흔들리는가 싶더니
접근 → 접촉 → 접목 → 접전, 그다음은
접문입니다.
근본적인 의문 대신 자극적인 질문이 고개를 듭니다.
접문이라면…… 지금 생각하는,
‘그거’ 맞나요?
아실링도 똑같은 글자를 이제야 확인한 모양입니다.
미묘한 침묵이 시간 사이 여백을 채우고 있습니다.
헬레네 R. 히페리데:(기쁨에 들떠 있다가, 그제야 들어오는 두 글자의 단어. 똑같이 '접'으로 시작하는……) 다, 닥터! 이 단계는 아까까진 없었지 않았나요?
연구원들과 닥터의 시끄러운 대화만이 이어집니다.
새로운 연구 결과를 보고하느라 바빠 연구실을 살펴보지 않는것 같군요.
아실링:저런 것이 원래 있었나요...? 제 눈에만 보이는 것 같지는 않네요. (다 커놓고 설마 뽀뽀를 안 해봤을까? 거부감이라고는 전혀 없지만 이유 모를 두근거림 때문에 양 볼이 붉어졌다.) 원하지 않으면 이것은 넘어가죠. 제가 컨디션 안 좋다고 말할게요.
헬레네 R. 히페리데:그, …… 이것도 권능에 영향을 미칠 수도 있으니 할 수 있는 한 해보고 싶기는 한데요. 하필이면 이런 스킨십이라서……. (얼굴에 금세 홍조가 어린다.) 아실링은 괜찮으신가요?
아실링:저는... 괜찮아요. 안 괜찮을 리가 없죠. 한번 한다고 입술이 닳는 것도 아니니까요. (괜찮다고 느끼는 것과 몸이 긴장한 것은 별개의 일인 것처럼 몸이 뻣뻣하게 굳었다.) 저 눈 감고 있을게요. (꾸악)
헬레네 R. 히페리데:이, 입술이 닳는 건 아니긴 하지만요……. (망설이다가 조금씩 거리를 좁혀 다가간다. 직전에 능력의 상승도 확인을 위해 중앙으로 다가갔던 것과는 비교도 안 되는 긴장감에 심장이 점점 더 쿵쿵 뛰기 시작한다.)
그럼……. (어느새 한 걸음도 남지 않는 가까운 거리. 심장은 너무 빠르게 뛰다 못해 터질 것만 같다. 아, 분명 당신에게까지 들릴 것 같다. 바보 같다 생각하시면 어쩌지. 상념들이 폭풍마냥 어지럽게 회오리친다. 망설이다가 고개를 살짝 들어서 쪽- 하고 입술 겹친다. 이런 스킨십은 처음인지라 키스를 하자마자 화끈거리는 뺨을 감싸며 얼른 몸을 뒤로 뺐다.)
아실링:(감고 있는 눈 때문인지 평소에는 느끼지 못했던 것들이 쉽게 닿아졌다. 긴장한 숨소리며 그 잠깐 사이에 맡아진 체향까지 전부 느낄 수 있었다. 짧게 입술이 맞닿았다가 떨어진 이후에도 감았던 눈은 쉽게 떠지지 못했다.)
아실링:
정신
기준치: |
60/30/12 |
굴림: |
27 |
판정결과: |
어려운 성공 |
헬레네 R. 히페리데:
정신
기준치: |
70/35/14 |
굴림: |
78 |
판정결과: |
실패 |
입술이 닿았다 떨어지는 순간마저도 길고 긴 찰나처럼 느껴집니다.
나를 떠나지 마, 이 낯선 세계에 나만 두고 가면 안 돼…….
절박한 심정이 되어 매달리고, 매달리고, 매달리게 됩니다.
그러던 도중 헬레네에게 여러 감정들이 파도처럼 덮쳐옵니다.
치사량의 애정을 쏟고. 쏟고, 쏟아부어서…….
다디단 입맞춤 끝에 남는 것은 원죄로 가득한 저주.
기분이 제멋대로 널뛰며 방향을 종잡지 못합니다.
헬레네 R. 히페리데:(멀어지려던 와중 파도처럼 수많은 감각들이 몰려온다. 처음에는 달콤했고, 어느 순간 애절했고, 마지막에는 번개가 치듯 참담했다. 당신을 처음 만났을 때 불가항력처럼 이끌렸듯이, 지금 머릿속을 비집고 떠오르는 감정들도 제 것이 아니다. 그도 그럴 게, 내가 누군가를
죽여버리고 싶다고 생각하다니……)
(어떻게 내가 이런 생각을 할 수가. 꼭 죄를 지은 것 같아, 헛숨을 들이키며 양손으로 제 입가를 가린다. 어쩔 줄 모르고 겁 먹은 눈으로 아실링을 올려다보기만 했다. 나의 생각이 당신에게 읽힐 리 없을 텐데. 도저히 당신 앞에 서 있을 수 없을 것 같아서.)
상대에게서 도망쳐야 한다는, 떨어져야 한다는, 벗어나야 한다는!
누가 울리는지 알 수 없을 적색경보가 머릿속을 어지럽히고 입을 틀어막습니다.
아실링이 헬레네의 모습을 확인후 말은 건네기 직전, 훈련실의 문이 벌컥 열립니다.
아실링:(닥터의 말은 거의 무시한 상태로 헬레네 곁으로 다급하게 다가간다. 이런 표정은 처음 보아서, 기억은 없지만 이런 표정은 자신의 세계에 있는 '헬레네'한테도 보지 못한 것 같아서.) 괜찮으세요...? 혹시 제가 뭔가 잘못한 것이라도..
헬레네 R. 히페리데:아, 네, 네……. (훈련실의 문이 열리는 소리가 순간의 숨막히는 정적을 깨는 듯하다. 그제야 저도 모르게 틀어막혔던 호흡을 뱉는다.) 아니에요, 아실링은 전혀 잘못하신 점이 없어요. 단지…… 모르겠어요. 갑자기 너무 이질적이고 부정적인 생각이 들어서요.
아실링:네...? 그게 무슨... (무슨 상황인지 몰라서 어리둥절한 닥터는 눈에 들어오지도 않았다. 창백해져있던 얼굴에 침울함이 그늘지었다. 좋게만 생각했던 것은 자신뿐이었나. 헬레네가 원하지 않는 것을 하게 한 것 같아서 미안한 마음이 뒤따라왔다.) 역시 힘드셨군요, 죄송해요. 제가 몇 번 더 생각해 봤어야 했는데...
헬레네 R. 히페리데:아니에요. 스킨십을 먼저 한 건 제 쪽인걸요! 할 때까지만 해도 전혀 아무렇지 않았어요. 오히려 아까 능력의 융합이나 접전의 경험 때문에 무척 고양된 상태였구요. 다만…… 입을 맞춘 순간 갑자기 그런 감정들이 쏟아진 거여서요.
너무 신경쓰지 마세요. 아실링의 탓이 아니에요. (도닥인다. 금방 기억에서 지워버려야겠다고 생각했다. 어차피 일어나지 않을 일이다.)
아실링:(괜찮다고 말하는 헬레네의 대답을 들어도 침울한 표정을 쉽게 사라지지 못했다. 어떻게 잊을 수 있을까? 헬레네가 아닌 자신을 탓하며 주먹 쥔 손에 힘이 들어간다.)
닥터 오프-화이트: 저기, 저기. 지금 무슨 대화? 아까 키스는 왜 한거고? 실험 결과에 대해서는 아주 만족하지만~
헬레네 R. 히페리데:왜 한 거라뇨……? (와중에 당황해서 닥터를 바라본다) 다음 단계를 띄워주신 게 아니었나요? '접문' 이라고요.
닥터 오프-화이트: 그건 또 무슨 소리야? 난 그런거 적은 적 없는걸.
무슨 소리인지 모르겠다며 고개를 갸웃거립니다.
실제로, 스크린에 그런 단계는 적혀 있지 않아 혼란을 가중시킬 뿐입니다.
아실링. 방금 아실링도 분명히 보셨죠?
아실링:이게 무슨... (침울했던 감정이 순식간에 다 깨졌다.) 저도 분명히 봤어요. 근데... ... (말을 잇지 못하고 스크린만 바라본다.)
헬레네 R. 히페리데:
rolling 1d20
=
19
헬레네 R. 히페리데:스크린에 오류라도 뜬 것일까요? 아니면 누군가의 질 나쁜 장난……? (하지만 굳이 그럴 이유가 있나. 혼란스러움에 제 입술 매만진다.)
아실링:굳이 이런 것으로 질 나쁜 장난을 칠 일은 없을 것 같네요. 아니라고 해도 문제지만... 잠시만요. 뭔가 생각나는 일이.
심리학 Roll
기준치: |
70/35/14 |
굴림: |
2 |
판정결과: |
극단적 성공 |
헬레네 R. 히페리데:뭔가 떠오르셨나요? (예상치 못하게 기억에 영향을 미쳤나?)
아실링:(엊그제 일처럼 느껴지는듯한 과거의 일들이 눈앞을 지나간다. 처음 그 손을 잡았던 순간. 가락 끝에 옮겨붙던 온도, 가까워진 거리에 겹치던 두 그림자와 자신이 망가트린 CCTV, 옥상, 그리고 당황스럽던 연구 보고 내용까지) ... 그때는 도망치고 싶었는데… 이번에는 어떻게 보이련지. ('헬레네'는 알지 못 할 이야기를 추억에 젖어 중얼거린다.)
헬레네 R. 히페리데:그때……? (고개를 옆으로 기울인다. 저로서는 알 수 없을 기억들이므로.) 이곳에 오기 전의 일이 기억나신 걸까요?
아실링:네... 제가 이곳에 온 이유 같은 것은 생각나는 것이 없지만요. 당신과 함께했던 날들이 기억나요. (자신의 손목에 있는 표식을 보며 말을 잇는다.) 매일 같이 일어나서 식사를 같이했어요. 훈련은 당신이 더 잘했고요. 밤에는 차에 잼을 넣기도 하면서 티타임을 했죠. 그런 즐거운 날들을 보내다가 제 능력이 사라졌었고요. 지금 잘 쓰는 걸 보니까 나중에 돌아오는 것 같은데… 그때는 내심 힘들었어요. 미안해요. 모르는 이야기를 중얼거려서.
헬레네 R. 히페리데:그랬군요. (당신이 해주는 이야기를 깊이 경청한다. 매일 식사를 함께하고, 밤에는 티타임을 갖고,……) 능력이 사라졌다구요?! 그런 일도 있었나요? 세상에……. 도저히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에요. 대체 어쩌다 갑자기 그런 일이 생겼을까요. (저와 함께했던 날들이라고는 하지만 그 기억 속의 헬레네는 자신이 아니다. 또 다른 세계의 자신은 어땠을까. 지금의 나와 성격이나 외모가 비슷했을까. 상상 속으로만 그려볼 수 있는 것들.) 사과하지 않으셔도 괜찮아요. 기억이 돌아오고 있다는 건 긍정적인 일인걸요.
아실링:엄청 당황했어요. 그 세계에서 '당신'은 연예인 이상이라서, 이렇게 쓸모 없어지면 '그곳의 당신'과 다시는 못 만나는 건가.. 싶기도 했고요. 뭐, 잘 해결됐나 보네요. 앞으로의 저도 옛날처럼 잘 해결되면 좋겠어요.
기억을 잃어버린 아실링도 답답하지만, 기억을 떠올린 아실링도 답답하긴 마찬가지입니다.
그가 말하는 기억 속엔 분명히 헬레네의 이름이 있는데…….
이래서야 기억을 잃어버린 게 아실링인지 헬레네인지 헷갈릴 지경이라니까요.
정작 이곳에 왜 오게 됐는지, 어떻게 오게 된 건지,
중요한 항목은 공백으로 비워둔 채 선문답을 던집니다.
아실링:있잖아요, 헬레네. 이런 생각 해본적 있나요? 타이머가, 그리고 나아가서 카운터가 사라진다면 세계는 멸망할지… 아닐지 같은 것이요.
아무도 정답을 모르는 태초의 진리지만, 헬레네도 타이머 가설 정도는 알고 있습니다.
도밍게즈 국민이라면 대체로 그 가설을 정설로 배우죠.
세계 멸망은 세계에 부여된 시간이 다 되었기 때문에 임한다.
시간이 모두 떠난 세계란 홀연히 멸망을 겪게 된다.
시간이 끝나지 않고, 끝없이 순환하기 위해서는 이정표가 필요하다. 공간에 꽂아둘 책갈피 같이.
타이머는 존재 자체로 세계― 공간을 구원하고, 역사― 시간을 구원한다.
헬레네 R. 히페리데:타이머 가설에서 기반한 이야기 같군요. 도밍게즈에서 나고자라면서 배운 가설에 따르면, 시간이 모두 떠난 세계가 멸망을 맞이하지 않게 하기 위해 타이머를 만들어 시간이 세계에 머무르도록 하였다고 해요.
그러니 타이머나 카운터가 사라지게 된다면 세계는 멸망을 맞이하게 되지 않을까요? …… 가설이라지만 실험을 해보고 싶지는 않네요.
아실링:너무 위험한 실험이죠. 특히 이 세계에서 타이머가 없다면 삶이 더 힘들어질 테니까요. 세계를 건 실험이다 보니.. (고대한 대답이 아닌지라 애매모호한 얼굴로 창밖을 바라본다.) 저도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분명히 그렇게 배우고 자랐는데……. 왠지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꼭 그렇지만도 않았던 것 같아서요.
헬레네 R. 히페리데:맞아요, 지금 이 세계는 아실링이 오셨던 세계보다도 더 위태로우니까요. 하루가 멀다하고 전투가 벌어지고 수많은 국민들이 죽어가죠. 어쩌면 이 사태는 멸망이 목전에 다가와서일지도 모르겠네요. (당신이 하였던 청천벽력같은 예언을 상기한다. 그러면 저는 곧 죽음을 맞이하게 되는 걸까. 다가오는 마지막 계절에.) 네? 그렇지 않다는 건……?
아실링:정말 재난 같네요. 대비할 수도 없고, 대비한다고 해도 너무나도 큰 피해를 껴안게 될 수밖에 없어요. 능력이 있어도 무능력함을 느끼네요. (네 마지막 물음에는 입을 다물고 고개를 젓는다.) 뭔가를 더 생각하려고 해도 당신과 제 머리만 더 아파질 뿐이에요. 뭔가 더 기억나면 제일 먼저 말해줄게요. (지금은 이런 약속이 헬레네에게 해줄 수 있는 최선이었다.)
헬레네 R. 히페리데:아실링의 말처럼 능력이 있어도 아무 힘도 없는 듯 무력함을 느끼곤 해요. (눈을 반쯤 내리감았다.) 그래도 그 감정에 매몰되지 말고 일어서서 할 일을 꾸준히 해나가야죠. 제가 멈춰버리면 피해가 더 커지기만 할 뿐일 테니까요. (오도 가도 못하는 좁은 공간에 끼인 것과도 다를 바 없는 삶이지 않나.) 네. 예상치 못한 일이기는 했지만 그래도 기억이 떠올라서 다행이에요. (대화를 나누다 보니 아까 흔들렸던 제 감정도 어느 정도 진정이 된 듯했다.)
아실링:혹시라도 제 존재가 당신의 무기력에 더 무게를 얹는 게 아닌가 하고.. 걱정했어요. 이곳은 제가 있던 곳보다 더 희망이 없어 보여서요. 아, 제가 또 감히 부담을 더 안겨준 게 아닌가 싶네요. (요놈의 입! 지나치게 솔직한 입을 찰싹 때린다.) ... 당신은, 그리고 이곳 사람들은 최선을 다하니까 괜찮을 거예요. 하루빨리 제 기억이 완전히 찾아지면 좋겠네요. (불빛이 하나하나 꺼져가는 밤을 거리를 멍하니 바라본다. 되찾은 기억에서 이곳을 위한 희망을 자신이 안고 있기를 바랄 뿐이다.)
헬레네 R. 히페리데:아니에요. 멸망을 하게 된다는 예언이 있다면 멸망을 막을 수 있다는 예언도 나오지 않을까요? 그런 희망을 가져봐야죠. (희미하게 미소를 짓다가, 입 때리는 손길을 얼른 조심히 잡아서 내려주었다.) 아실링이 가장 혼란스러우실 텐데 말이죠. 지금은 시간이 많이 늦었지만, 내일 밤부터는 저희도 티타임을 가져볼까요? 마침 저도 차 마시는 시간을 꽤 좋아하거든요. 요새는 허브 차를 주로 마시고 있어요.
아실링:당신은 정말이지... (자신이 알고 있는 '헬레네'와 겹쳐 보이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말로 꺼냈다가는 마음이 상할지도 모른다는 생각해 자제는 하고 있다.) 그럴까요? 분명 기억에서는 단것을 좋아했던 것 같은데, 지금은 단 게 많이 안 끌리는 것 같네요. 나이 먹으면서 입맛이 조금 변한 걸까요... 그럼 저도 헬레네가 마시는 허브차 마시게 해주세요. (되찾은 기억 덕분인지 이제는 방 쪽으로 알아서 척척 걸어간다.)
헬레네 R. 히페리데:좋아요. 그럼 내일 허브를 여러 종류 받아와서 보여드릴게요. 방에 남아있는 건 대부분 다 마시고 히비스커스만 남아 있거든요. (어느덧 구조에 익숙해졌구나. 기억을 찾은 효과가 확실하다 생각하며 다시 방 안으로 들어서서 제복을 벗고 편한 잠옷으로 갈아입었다.) 늦은 시간까지 고생 많으셨어요, 아실링. 역시 침대에서 주무셨으면 하는데…… 괜찮으시겠나요, 소파에서 주무셔도?
아실링:어떤 차일지 벌써부터 기대되네요. DOT이 다른 건 몰라도 식사나 차 종류는 잘 챙겨줬었죠. (여기도 그런가? 묵묵히 방으로 가서 옷 갈아입는다.) 소파에서 자도 좋아요. 근데 당신이 많이 신경 쓰는 것 같아 보여서... (침대 앞으로 가서 대충 사이즈를 확인해 본다.) 한 침대에서 다른 사람이랑 같이 자면 불편한가요? 제 기억에서는 당신이랑 같이 한 침대를 사용해서.. 아, 그렇다고 당신에게 강요하는 건 아니에요. 당신은 당신이니까.
헬레네 R. 히페리데:가, 같이요!? 그야 어릴 때는 막내 오빠와 같이 잠들고는 했었지만…… DOT에 온 뒤로는 한 번도 그런 적이 없었거든요. (잠옷으로 갈아입고 머리를 빗어내리다 말고 얼굴이 또 화끈거린다. 비록 끝에 느껴진 감정이 너무 이질적긴 했지만, 입을 맞췄다는 사실이 선명하게 떠올라서였다.) 제 잠버릇이 어떨지 잘 모르겠어서……. 오, 오늘은 따로 잘까요? 나중에 방이 마련되지 않는다거나 하면 다시 생각해보고…… (다시 생각한단 말은 좀 이상한가? 먼저 말해놓고 뒤늦게 허둥지둥하며 뻘뻘댄다)
아실링:(당황하는 말투며 표정을 보다가 입꼬리가 올라갔다. 기억은 없어도 몸이 기억하는 것인지 이상한 게 눈치만 올라갔다.) 정말로 잠버릇 때문인가요? 그러면 어쩔 수 없죠. 오늘은 따로 자고 방이 마련되면 좋겠어요. 개인적으로는.. 당신과 같이 쓸 방이 생기면 좋겠네요. 같이 사용하는 게 즐거웠거든요. 무척. (그러고는 베개 하나 끌어안고 소파에 눕는다.) 그럼, 안녕히 주무세요. (후후)
헬레네 R. 히페리데:그으럼요……. (올라간 입꼬리를 보니 아무리 봐도 간파당한 것 같지만 뻘뻘대며 어떻게든 무마하려 해본다.) 거기에서는 쭉 같은 방을 썼던 모양이군요. (그런데 같은 침대까지 쓸 정도였다니. 내 생각보다도 더 가까웠던 사이였던 거 아닐까? 구름마냥 상념이 몽글몽글 피어나기 시작한다. 순진하고 강아지 같던 아실링이 급격히 능글맞아 보이는 듯도 하고) 주, 주무세요, 아실링. (얼굴이 새빨개진 채로 후다닥 방의 불을 끄고 침대에 눕는다. 어쩐지 잠들기까지 꽤 오래 걸릴 것 같았다.)
아실링:(소파에 누워 헬레네 쪽으로 몸을 돌린다. 능글맞게 굴던 것은 어디 가고 제법 순하게 눈웃음 짓는다.) 주무세요. 언제 바빠질지 모르잖아요. 굳이 제가 아니어도 이곳은 일이 많아 보이니... 좋은 꿈 꾸세요. (마지막 말을 남기고 눈 감는다.)
웨엥, 웨엥, 웨에에엥― 채 어둠이 물러가지 않은 새벽.
불 꺼진 방안에서 텔레미터가 번쩍번쩍 빛을 터트리고 있습니다.
아닌 밤중에 홍두깨지만, 헬레네에겐 익숙한 신호.
게이트 발생, 신화생물 출현을 알리는 긴급 호출입니다.
헬레네 R. 히페리데:(호출벨 소리를 듣자마자 튕겨져나가듯 벌떡 몸을 일으켰다. 게이트의 발생은 낮과 밤, 먹고 자는 시간대를 가리지 않고 나타났다. 그런 것에 불평불만을 늘어놓을 만한 형편은 안 된다. 서둘러 달려가 스마트폰을 살핀다.)
(댐 상류에 게이트. 영 좋지 않은 상황이다. 내용을 확인하자마자 텔레미터를 챙긴다
위기를 경고하는 시계는 본래의 창백한 은빛 대신 핏빛으로 물들었습니다.
뚜껑을 열면 날카롭게 벼려진 시곗바늘과 촘촘한 눈금이 보입니다.
제1구역 댐 상류라면 DOT 관사로부터 3구역 너머에 있습니다.
헬레네 R. 히페리데:
지능
기준치: |
70/35/14 |
굴림: |
97 |
판정결과: |
실패 |
지능
기준치: |
70/35/14 |
굴림: |
82 |
판정결과: |
실패 |
연달아 쏟아진 메시지가 동시다발적으로 발생한 게이트 오픈을 알립니다.
한 번에 게이트가 여럿 열리는 경우가 없진 않았습니다만,
어제도 하나가 닫혔으니 며칠은 여유가 있을 줄 알았는데요.
헬레네 R. 히페리데:(게이트가 한 번에 세 개나 생기다니. 초조한 마음으로 서둘러 군복에 몸을 끼워넣는다)
작일 입고 있던 군복은 이미 엉망이 되었지만,
옷장에는 각 맞춰 다려둔 군복이 여러 벌 대기 중입니다.
군복의 단추를 채우고 장갑을 손목에 딱 맞게 조인 다음 허리춤엔 텔레미터를,
귓바퀴에는 무전기를 걸면 출동 준비가 끝납니다.
헬레네가 텔레미터를 열었을 때, 예상치 못한 인기척이 손목을 붙잡습니다.
아실링:저를 잊으신 건 아니죠? 저도 같이 갈게요. 여기서 지내는 밥값을 충분히 할 거예요.
잠기운이 말끔히 달아난 얼굴로 아실링이 동행을 자처합니다.
웬만한 쇠심줄이 아니고서야 깨지 않을 수 없는 거대한 경보긴 했죠.
일반인이라면 절대, 무슨 일이 있어도 전선에 데려가진 않겠지만…….
자칭 카운터라는 아실링이라면 전력이 될지도 모릅니다.
헬레네 R. 히페리데:아실링. 그렇잖아도 깨워야 할지 망설이던 중이었어요. 하지만…… 괜찮으시겠어요? 위험한 현장이에요. 부상을 입으실지도 몰라요.
아실링:위험한 현장은 많이 가봤어요. 게이트는 처음이지만... 부상은 처음도 아니고 괜찮아요. 그리고 지금은... 장소가 댐이다 보니까 더욱 거야 할 것 같네요. 분명 제가 도움이 될 거예요, 헬레네.
헬레네 R. 히페리데:…… 지금 상황에서는 타이머 한 명 한 명이 급하기는 해요. 길게 설전을 할 시간도 없으니, 함께 가죠. 책임은 제가 질게요. (당신의 손을 꾹 맞잡는다.) 텔레미터를 사용할 거예요. 준비는 되셨나요?
아실링:(잡아진 손보며 일부러 의기양양한 표정 한다.) 텔레미터, 순간 이동 같은 거죠? 그건 잘 몰라서 적응 못할 수도 있지만~. 그래도 같이 갈게요. 그럼 부탁드려요.
헬레네 R. 히페리데:네, 처음에는 조금 느낌이 이상하실 수도 있을 거예요. 그럼, 이동하겠습니다. (시계에 온 신경을 집중한다. 소요 시간과 좌표를 계산한 뒤, 섬세하나 유려한 손길로 눈금을 돌린다.)
시곗바늘을 섬세하게 빙그르르, 휘저으면
훽! 시야가 반으로 접힙니다.
몸이 줄어들었다가 늘어나는 끔찍한 탄력감과 함께
내장이 거대한 파도에 휩쓸린 것처럼 크게 출렁거리면 어느새 주변의 풍경은 바뀌어 있습니다.
목덜미와 옷깃 틈새로 간지러운 부슬비가 굴러떨어지고,
습기 자욱한 물안개와 눅눅한 지면이 구두 굽 아래에서 뭉개집니다.
시선이 닿는 곳 어디든, 온전히 고인 저수지가 보입니다.
저 끝에 보이는 거대한 댐이 상류의 경계일 겁니다.
헬레네 R. 히페리데:아실링, 괜찮으신가요? (우선 당신의 몸상태부터 묻는다. 그 사이에도 푸른 시선은 재빠르게 주변을 훑었다. 어디지? 어서 확인해야만 해.)
아실링:(무릎이 지면으로 살짝 구부러졌다가 다시 서서 중심을 잡는다.) 제 걱정은 마세요. 눈앞이 좀 어질어질하지만 참을만해요. 첫 번째 치고 이 정도는 잘했죠?
헬레네 R. 히페리데:잘 버텨주셨어요. 저는 맨 처음 텔레미터를 썼을 때 속이 안 좋아서 고역을 겪었거든요. (당신이 중심 잡는 데 도움이 되도록 팔을 힘있게 붙잡아준다)
아실링:아, 고마워요. (잡아진 팔에 살짝 기대서 잠시 동안 중심 잡는 것에 익숙해지려고 한다.) 근데, 게이트라는 게 정확히 어떻게 생긴 거죠?
헬레네 R. 히페리데:
관찰력
기준치: |
65/32/13 |
굴림: |
1 |
판정결과: |
대성공 |
흐리멍덩한 시야를 좁히고 집중해도 게이트랄 건 확인되지 않습니다.
검은 구덩이, 불온한 소용돌이, 침묵이 고인 심연.
이 고요한 풍경에 그런 존재감이 가려질 리 없는데도.
아직 완전히 열리지 않았는지, 새까만 형태는 물그림자처럼 불규칙하게 일렁거리고 있습니다.
긴장으로 장갑 안의 손바닥이 차갑게 식어갑니다.
무엇이 나올지 짐작할 수도, 예측할 수도 없습니다만, 부디 도울은 아니길 바랄 뿐입니다.
그런 거대한 게 튀어나왔다간 댐은 반드시 무너질 테니까요.
헬레네 R. 히페리데:저기 있어요. (게이트를 발견하곤 손을 뻗어 중심부를 가리켠다. 보자마자 등줄기에 식은땀이 흐르는 것 같았다. 아무리 게이트를 많이 보고 수많은 전투를 겪었어도 저 무시무시하게 일렁이는 긴장감은 익숙해질래야 익숙해질 수가 없다.)
아직 완전히 열리지는 않았으니 전열을 가다듬을 시간은 있어요. …… 신화생물이 튀어나오면 댐이 무너지지 않도록 최대한 먼 곳으로 유인하죠.
아실링:끔찍해 보이네요. 나오는데 걸리는 시간이 평균 얼마 정도 걸리나요? 이럴 줄 알았으면 미리 어떤 경우들이 있는지 자세히 알아보고 왔을 텐데. (느껴지는 불길한 기운에 아랫입술 질끈 깨문다.)
헬레네 R. 히페리데:최소 30분부터 최대 두 시간까지, 천차만별이에요. 그 시간 동안 한시도 긴장을 놓아서는 안 되고요. (차갑게 식은 제 손을 바지춤에 문지르고, 창을 단단히 감아쥐었다.) …… 도울처럼 거대한 생물이 아니기만을 바랄 뿐이에요.
아실링:게이트가 늦게 열리기를 바라야겠네요. (불안감 때문인지 손가락을 가만히 두지 못하다가 끝내 착용하고 있던 장갑을 벗어던졌다.) 도울이라면.. 어떤 생물이죠? 거대한 생물인가요? 그런 것이 이런 댐으로 떨어진다면... 사람들이 빨리 대피를 해야 할 텐데.
헬레네 R. 히페리데:네, 덩치가 대단히 큰 생물이에요. 그게 나온다면 댐은 붕괴하고 말 거예요. 저희의 예상보다도 피해가 걷잡을 수 없이 커지고 말겠죠……. (장갑이 툭 떨어지는 소리에 눈가를 깜박거린다. 감각이 무척이나 예민해져 나뭇잎이 흔들리는 소리마저도 크게 들렸다) 대피가 완료될 때까지라도 기다려주면 좋겠지만, 신화생물은 그런 사정을 봐주지 않죠.
아실링, 만약 위험한 경우가 온다면 반드시 도피하도록 하세요. 한 명이라도 피하는 게 우선이에요. 아시겠죠?
아실링:게이트에서 못 나오게 막는 방법 같은 것은 없는 거죠? 아니면 시간을 늦춘다거나. 대비가 덜되었다면 그쪽이 훨씬 더 좋은 방법일 것 같아서요. (무의식적인 행동인지라 헬레네를 신경 쓰지 못했다. 미안하다며 고개 꾸벅 숙인다.) 제 세상에서는 자연재해가 세상에서 제일 무서운 줄 알았는데.. 자연재해보다 더한 것들이네요. 그래도 이건 잘하면 막을 수 있다는 것일까요? 당신이나, 저 같은 사람들이 있으니까요.
제가요? ... 걱정해 주시는 마음 잘 알겠어요. 필요하다면 그럴게요. (판단은 자신이 알아서 하겠다는 말과 다름없었다.)
헬레네 R. 히페리데:네. 지금으로서는 방법이 없네요. 게다가 저렇게 저수지 중심부에 위치해 있다면 막기 위한 장비 등을 가져오고 운반하는 데만 해도 시간이 상당히 걸릴 거예요. (아, 사과하지 않으셔도 되는데. 뻘뻘거리며 손을 내저었다.) 막아내야죠. 무슨 일이 있더라도요. 사람들의 목숨을 하나라도 더 지키기 위해서…….
…… 현명한 판단을 해주시기를 바라요. (그저 그 말밖에 할 수 없었다.)
몸 안에서 날뛰는 맥박이 공포의 서막을 올리면 게이트는 지독하게 검은색으로 가라앉습니다.
여태 담았던 어둠은 바탕색에 불과하단 것처럼.
온전한 칠흑. 빛 한점 들지 않는 심연이 완성된 순간.
옆에 선 헬레네와 게이트에서 나오는 헬레네, 모두를.
사실, 게이트는 통로가 아니라 거울이었던 걸까요?
헬레네 R. 히페리데:(검은색으로 가라앉는 게이트. 과연 무엇이 튀어나올까. 긴장에 가득 차 입술을 깨물며 창을 거세게 거머쥔 순간이었다.)
……? (순간 손에서 힘이 풀릴 뻔했다. 게이트를 찢고 나온 것은 흉측하고 괴이한 신화생물들이 아니라, 바로 나……?)
SAN Roll
기준치: |
70/35/14 |
굴림: |
93 |
판정결과: |
실패 |
(어떻게 이런 일이? 이건 불가능하다. 아니, 아니야. 다른 차원의 아실링이 이곳으로 넘어온 것처럼, 어쩌면 '저' 헬레네는……? 충격으로 인해 온몸이 굳은 채로도 뇌는 홀로 바삐 돌아간다.)
전조 증상에서, 오직 머리만 빠져나온 또 다른 헬레네는 아직 눈을 감고 있습니다.
헬레네 R. 히페리데:아실링. 곁에 계신가요? (덜덜 떨리는 목소리로 옆을 향해 손을 뻗는다.) 대체, 이게 어떻게 된 일이죠……? 아실링이 살던 세계의 '저'인가요? 어쩌면 아실링도 이런 식으로 넘어오셨던 건가요? (도저히 아무것도 할 수 없다. 과연 저것이 '적'이 맞는지조차 분간이 어려웠다.)
(만약 저 헬레네가 저와 크게 다르지 않다면, 세계를 멸망시키려는 짓 따위는 도저히 하지 않을 터였으니까. 하지만 게이트를 통해 인간이 나온 비정상적인 상황이다. 그 무엇도 확신할 수 없다.)
아실링:(머리만 빠져나왔음에도 바로 알 수 있었다. 익숙한 얼굴. 어떻게 모를 수가 있을까. 그 어떤 세계에서도 당신인 것을, 헬레네라는 것을 알아볼 텐데.) 모, 모르겠어요. 저는... 제가... 만약 저 헬리가 제가 아는 헬리이면 어떡하죠...?
헬레네 R. 히페리데:(지금껏 게이트를 통해 사람이 나온 적이 있었던가? 과거의 기록이라도. 기억을 더듬는다)
지금의 헬레네가 아는 기록 속에서는 그런 기억은 없습니다.
헬레네 R. 히페리데:아무래도, 그럴 가능성이 높아 보여요. …… 아실링, 당신의 기억에 있던 그 모습인가요? 아니면 그때보다 많이 달라졌나요? (당신의 기억이 대관절 언제부터 언제까지 돌아온 건지 알 수가 없으니, 이 세계로 오기 직전의 '자신'이 맞는지 확인할 만한 수도 없다. 철렁 내려앉은 심장이 돌아갈 기미가 보이질 않는다. 나 자신을 공격하고, 싸워야만 한다고?)
아실링:그러니까. 저는... 제가 아는 헬리는.. (흐느낌처럼 목소리가 점점 떨리다가 끝내 소리를 잃어버린다. 당혹스러움과 혹시 모를 상황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눈앞이 흐릿해진다.) 만약 맞다고 한다면. 공격하지 않아도 되는 건가요?
헬레네 R. 히페리데:…… (지금으로선 공격 징조나 기미가 전혀 보이지 않는다. 심지어 위험한 존재인지조차 알 수 없다. 하지만 게이트에서 나오는 것이 자신의 모습을 한 이 존재 하나뿐이리라 확신할 수 없다.) 보통 게이트에서는 신화생물이 하나만 나오지 않아요. 여럿 쏟아져나오죠. 그러니까, 저를 복제한 게 아니라면…… 어쩌면 저이를 필두로 신화생물이 쏟아져나올지도 몰라요. (위기가 닥쳐올지도 모르는 상황이다. 한시라도 빨리 결정을 내려야만 하는데. 창을 쥔 손이 덜덜덜 떨린다. 마치 첫 전투에 나갔었을 때처럼.)
도저히, 못하겠어요……. (수많은 전장을 거치고, 생사의 위기를 수도 없이 넘나들며 이제는 잔뼈가 어느 정도 굵어졌다고 생각했는데. 아직도 저는 미욱한 모양이다. 끝내 창을 겨누지 못하고 마니까.)
아무 행동이 없는 헬레네와 아실링을 향해 DOT이 무어라 연락합니다.
하지만 이 상황에 DOT의 말이 들릴 리가 없습니다.
그러던 도중 게이트에 뭔가가 부딪히며 큰 폭발을 일으킵니다.
익숙합니다. DOT의 신화 생물 대비용 미사일입니다.
기습 공격에 잠에서 깨어난 또 다른 헬레네가 고통스러운 비명을 내지릅니다.
동시에 게이트에 잠겼던 몸이 완전히 빠져나오는데, 수면에 선 그 차림새가…….
흰색과 남색을 배치해 깨끗한 느낌을 풍기는 디자인.
상체를 사선으로 가로지르는 어깨띠와 은색 훈장.
정확히 말하면 아실링의 것과 똑같은 양식이니까요.
아실링에게 눈길을 돌려 안색을 살피면 창백하게 질려, 종잇장처럼 새하얗습니다.
헬레네 R. 히페리데:아, 안 돼요! (저도 모르게 반사적으로 비명을 질렀다. 적의를 내보이지 않은 상대에게 미사일이라니. 아아, 이게 합리적인 판단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뇌내가 완전히 굳어 사고회로가 제대로 돌아가지 않는 듯했다.)
(곁의 아실을 돌아본다. 아실링과 같은 복장. 높은 확률로, 당신이 있었을 차원에서 넘어온 본인이다. 자신마저도 이토록 처참한 기분인데 대체 당신은 어떤 감각일까…….)
심리학
기준치: |
60/30/12 |
굴림: |
57 |
판정결과: |
보통 성공 |
아실링의 면면에 서린 충격 아래 그리움이 묻혀 있단 걸 알아챕니다.
아실링:안돼.. 안돼요. 제발 누군가 말려주세요. 제가 아는 헬레네에요. 기억 속의 헬레네보다는 조금 다르지만... 보세요! 제 옷이랑 같잖아요! 알 수 있어요. 제가 아는 헬레네란 말이에요...! (거의 울다시피 한 얼굴로 DOT에게 연락한다.)
도와주세요. 도와주세요, 헬리. 이럴 수는 없어요.
헬레네 R. 히페리데:네, 저도 알 수 있어요. 저도…… (목이 메어온다. DOT가 과연 공격 저지 명령을 들어줄까? 대체 어째서 갑작스럽게 게이트를 타고 저 헬레네가 나타난 거지?)
하지만, 지금으로서는 저 헬레네만 구해낼 방법이…… (혹시나 모르니 DOT에 무전을 한다.) [저 존재는 또다른 타이머 아실링, 그러니까 즉 X의 차원에 있었던 헬레네로 보여요. 닥터 오프-화이트와 연락을 취해 주세요. 그가 알고 있을 거예요. 무분별한 공격을 잠시 멈춰주세요!]
적에 대한 공포로 가득한 이들에게 헬레네와 아실링의 진심은 닿지 않습니다.
막지 않는다면 이쪽에서라도 나설 수밖에 없다는 반응입니다.
헬레네 R. 히페리데:(어쩔 수 없다. DOT의 무자비한 공격에 기대느니 차라리……)
(창을 꾹 쥐고, 무전기 송신 부분을 꺼 버린다.) 아실링. 물로 방패를 만들도록 할게요. 그 틈에 최대한 접근해 보도록 해요!
(꼭 전날 훈련실에서 아실링과 능력을 맞부딪혔을 때처럼, 댐의 물을 그러모아 창을 휘둘러 둥그런 방패 모양을 만들어낸다. 그 방어막으로 마치 게이트를 감싸듯이 둘러싸고, 그 모양을 유지하며 아실링의 손을 붙들고 달렸다.) 지금이에요!
파도의 창
기준치: |
89/44/17 |
굴림: |
64 |
판정결과: |
보통 성공 |
피해: |
30 |
아실링:(게이트에서 나온 헬레네를 보다가 고개를 돌리자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 맺혀있는다. 도와주세요.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을 정도로 절박한 표정으로 헬레네를 바라보다가 수면을 향해 발을 옮긴다. 제발 부탁이니 뭔가 대화라도 할 수 있기를)
파란(波瀾)
기준치: |
85/42/17 |
굴림: |
88 |
판정결과: |
실패 |
피해: |
25 |
헬레네 R. 히페리데:아실링! (발을 헛디뎌 빠져버린 아실링을 향해 급하게 고개 돌린다. 창을 재빠르게 휘둘러 물의 밀도를 조절한다. 아실링이 다시 물 위로 무사히 떠오를 수 있도록.) 괜찮으세요?
아실링:(물에 푹 젖어서 꼴이 말도 아니다. 얼굴에 흐르는 것이 물인지 눈물인지 구별할 수가 없다.) 발목 잡았네요... 죄송해요. (도움받아 겨우 수면에 발을 딛고는 게이트 쪽 헬레네를 향해 걸어갑니다.)
헬레네 R. 히페리데:(게이트를 향해 둥글게 둘러싼 물의 막 안으로 함께 들어선다.) …… 저기, 헬레네……? 헬레네, 맞나요? (적정거리를 유지한 상태로 대화를 시도했다. 불시를 대비해 한 손에는 창을 꾹 쥔 채였다.)
한차례 있었던 DOT의 공격에도 또 다른 헬레네는 공격하지 않고, 옷매무시를 가다듬습니다.
헬레네(?):공격을 멈춰주세요. 저는 도밍게즈의 지원군입니다. (두 손을 들고 침착하게 말하는 것이 꼭 이곳의 헬레네와 똑같다.) ... 그동안 잘 계셨나요? 걱정했어요, 아실.
Charm Roll
기준치: |
50/25/10 |
굴림: |
60 |
판정결과: |
실패 |
헬레네 R. 히페리데:
심리학
기준치: |
60/30/12 |
굴림: |
97 |
판정결과: |
실패 |
그 혀는 교묘하게 감언이설을 쏟아내지만, 헬레네를 훑는 시선은 포식자 특유의 것입니다.
헬레네 R. 히페리데:도밍게즈의 지원군이라구요? 지원군이 어떻게…… (충격적인 사실에 망설이던 순간, 그는 직감한다. '나'는 저런 눈빛을 하지 않는다. 도밍게즈의 자신이 과연 어떠한 사람인지 정확히 알지는 못하지만, 적어도 저런 눈빛을 한 자가 타이머일 수는 없다. 그래서는 안 된다! 타이머는
포식자가 아니라
지키는 자니까.)
아실링! 뒤로 물러서세요. (창을 고쳐쥐어 앞으로 내밀며 아실링을 뒤쪽으로 잡아당겼다.) 저는 그쪽의 헬레네를 알지는 못하지만, 눈빛이 이상해요. 저런 눈빛을 지닌 사람이었나요?
아실링:(헬레네의 손에 뒤로 물러나다가 주저앉는다. 당혹스러운 상황이 현명함을 가려 자기 자신이 뭘 보고 있는지도 몰라 한다. 따라오지 않았다면 상황이 달라졌을까? 이곳에 와서 처음으로 후회라는 것을 해본다.) ... 모르겠어요. 제가 보는 게 맞는 것인지. 저는 이곳에서 대체 뭘.... (말을 잇지 못한다.)
헬레네 R. 히페리데:…… 당황스러우시겠지만 조금이라도 침착해지셔야 해요. 저 헬레네가 가짜이고 여기에서 죽기라도 한다면, 아실링은 원래 차원으로 되돌아갈 기회를 영영 잃으실 수도 있어요! (그의 정신을 일깨우려 애쓰며, 시선은 눈 앞의 자신을 똑 닮은 이에게 고정했다.)
정말 지원군이라면, 무슨 목적으로, 대체 어떤 방법으로 지원을 하고자 넘어온 것인지 밝혀주세요. 납득할 만한 대답이 돌아오기 전까지 저희 쪽에서는 당신을 적대할 수밖에 없습니다.
헬레네(?):정말 그래 보이세요? 아실. 당신 눈에도 정말 그런가요? 저예요. 당신의 헬리.
헬레네의 반응에 억울하다는 반응을 보인 헬레네의 얼굴을 한 '그것'은 헬레네를 향해 단숨에 달려듭니다.
두 팔을 벌려 한 품에 끌어안는데, 그 온도는 비정상적으로 높고 그 성질은 불쾌할 정도로 물컹거립니다.
정신을 차리면 또 다른 헬레네의 앞면이 젤리 거품처럼 일그러져 헬레네를 삼키는 광경을 목격합니다.
팔뚝에는 인간의 신체가 아닌 말단이 흐느적거리며 돋아나고,
헬레네 R. 히페리데:
SAN Roll
기준치: |
69/34/13 |
굴림: |
46 |
판정결과: |
보통 성공 |
헬레네 R. 히페리데:(이미 가짜라는 것을 직감해서였을까, 갑작스러운 접촉에도 짧은 비명을 질렀을 뿐 지나치게 충격받지는 않았다. 이렇게까지 타인의 존재를 완벽히 복제해내는 신화생물이 존재했던 것인가? 믿기 어려울 정도다. 서둘러 창을 휘둘러 방어막을 해제하고, 동시에 근거리에서 칼날을 만들어내어 눈앞의 끔찍한 생물을 공격한다.)
파도의 창
기준치: |
89/44/17 |
굴림: |
62 |
판정결과: |
보통 성공 |
피해: |
15 |
헬레네가 반격에 성공하면 아쉽다는 듯 입맛을 다신 신화생물이 떨어져 나갑니다.
반은 인간이고 반은 젤리인, 괴랄한 신화생물입니다.
어째서 저것은 헬레네의 모습을 가지고 있는 것일까요.
헬레네 R. 히페리데:아실링. 서둘러 뒤쪽으로! (주저앉아 있을 아실링을 향해 외치며 무전기에 대고 외친다.) 타인의 모습을 복제하는 신화생물로 확인됩니다. 항전하겠습니다.
(창을 휘둘러 날카로운 검날들을 여러 개 만들어낸다. 공격 위주로는 잘 쓰지 않는 능력이었지만 현재로서는 모든 수를 써야 한다. 합을 맞출 다른 타이머도 없고, 협업이 되었던 아실링은 충격에 빠져 있으니. 단번에 창을 내리그어 검날을 내리꽂았다.)
파도의 창
기준치: |
89/44/17 |
굴림: |
100 |
판정결과: |
대실패 |
피해: |
33 |
헬레네의 모습을 한 그것은 공격을 이리저리 피하며 농락하듯이 웃습니다.
원래의 헬레네라면 절대로 내지 않을만한 웃음소리입니다.
헬레네(?):
공격
기준치: |
45/22/9 |
굴림: |
74 |
판정결과: |
실패 |
피해: |
1 |
몸을 덮고 있던 젤리가 수면을 덮다가 가라앉았습니다.
덮쳐지는 것이 아니라면 큰 위험은 없어 보입니다.
헬레네 R. 히페리데:(위협이 되지 않을 때, 다시 한 번 검날을 다루어 내리꽂도록 한다. 본연의 헬레네가 아니라는 것을 알아도, 역시 자신의 모습을 하고 있는 자에겐 본능적으로 공격이 꺼려졌다.)
파도의 창
기준치: |
89/44/17 |
굴림: |
71 |
판정결과: |
보통 성공 |
피해: |
35 |
헬레네(?):
공격
기준치: |
45/22/9 |
굴림: |
17 |
판정결과: |
어려운 성공 |
피해: |
5 |
헬레네 R. 히페리데:
rolling 1d6
=
2
몸을 유지하지 못하고 젤리들이 몸에서 하나하나 떨어져갑니다.
강력한 공격에 멀리 있는 보존 구역이 훼손됩니다
헬레네 R. 히페리데:(제대로 대피했어야 할 텐데. 적의 공격에 얻어맞아 컥컥대면서도 제 아픔보다 망가진 구역이 더 눈에 들어온다. 나로 인해 누군가가 다치거나 죽는다는 건 괴로운 일이니까……)
[처리했습니다.] (무전기에 보고하고는 서둘러 뒤돌아 아실링에게로 다가간다.) 아실링, 괜찮으세요?
아실링:저는... ... (원래라면 헬레네를 걱정하며 먼저 달려갔겠지만, 다리에 힘이 풀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해한다.) ... 근데 저거 괜찮은 건가요?
헬레네를 흉내 낸 괴물은 숨이 끊기기 전, 마지막 힘을 짜내어 입을 엽니다.
헬레네를 아는 사람이라면 익숙한 속살거림이 이어집니다.
헬레네(?):이것을 저주라고 말하지 않기로, 당신과 약속했는데... 죄송해요, 아실.
아실링:
Listen Roll
기준치: |
65/32/13 |
굴림: |
81 |
판정결과: |
실패 |
SAN Roll
기준치: |
30/15/6 |
굴림: |
98 |
판정결과: |
대실패 |
기억이.. 아, 아아아... (수면에 가라앉는, 헬레네의 모습을 한 '그것'을 바라보다가 머리를 부여잡는다. 울음인지 비명인지 알 수 없는 소리가 댐 안을 가득 채운다. 뭐라 말하는 것은 일정한 단어. 울음이 가득한 하지만 얼마 안 가서 쉽게 알아들을 수 있었다.) 헬리. 내가 당신을.. 아아..
헬레네 R. 히페리데:(그저 모습을 따라한 생물일 뿐이라고 생각했는데. 어떻게 마지막 말마저도 이렇게,
헬레네처럼…… 쓰러뜨리고도 혼란스럽고 괴로운 기분이었다.) 아실링……! (당신의 앞에 한쪽 무릎을 꿇고 앉아 당신을 끌어안는다) 저건 가짜예요. 가짜일 뿐이에요! 진정하세요, 괜찮아요.
아실링:알겠어요. 느낄 수 있어요. 헬리가 어떻게 된 것인지. (삶의 반 이상을 함께한 사람에 대해 모를 리가 있나. 기억이 다 돌아오지 않아도 느낄 수 있었다. 차라리 느끼지 못했더라면, 완전히 기억하지 못했다면 이리 슬퍼하지 않았을 것을.)
눈에 보이는 댐은 지켜냈지만, 보이지 않는 댐은 와해되고 맙니다.
헬레네 R. 히페리데:
정신분석
기준치: |
1/0/0 |
굴림: |
73 |
판정결과: |
실패 |
지금 이 상황에 그 어떤 말이 아실링에게 닿을 수 있을까요?
오직 시간만이 이 상황을 해결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바닥에 흘러내린
사체는 인간도, 신화생물도 아닌 어정쩡한 형태로 고정되었습니다.
헬레네 R. 히페리데:(지금으로선 그 어떤 말도 닿지 않을 것이다. 본래 차원의 이로 믿었던 이가 눈앞에서 스러졌다. 게다가 그 과정에서 기억까지 떠오른 것 같으니. 부디 그 기억이 아실링에게 너무 아프지는 않아야 할 텐데.)
(아실링을 참담하게 바라보다가 무전기로 아실링을 데려가줄 것을 요청하고, 다가가 사체를 살펴본다)
한쪽 팔은 물거품처럼 부글거리고 무릎 아래도 파도가 흩어지듯 바닥에 점점 스며듭니다.
연기인지 촉수인지 모를 부위가 척추가 있어야 할 자리를 차지했습니다.
헬레네 R. 히페리데:(설마…… 내가
진짜 헬레네를 죽인 것인가? 군번줄을 발견하자마자 푸른 눈동자가 초점을 잃고 경련한다. 마찬가지로 떨리는 손을 뻗어 군번줄을 잡아들었다.)
[On the dot― The 1th Timer]
헬레네 R. 히페리데:
관찰력
기준치: |
65/32/13 |
굴림: |
42 |
판정결과: |
보통 성공 |
흩어지는 게 고작인 줄 알았던 부정형의 거품 일부가 덩어리를 이뤄 도망치기 시작합니다.
다닥다닥 돋아난 눈알들이 가장 어두운 곳을 찾아 파고듭니다.
손바닥 남짓한, 볼품없는 꼴이지만 그냥 내버려 둘 순 없겠죠.
헬레네 R. 히페리데:(창을 들고 일어서, 눈알을 향해 내리꽂는다. 과연 이 끔찍한 형태가 대체 무엇인지 짐작도 할 수 없었지만, 후환을 남겨둘 수는 없었으므로.)
떨어져 나간 덩어리를 쉽게 해치운 뒤, 가까운 곳에서 비명이 터져 나옵니다.
헬레네 R. 히페리데:(혹시 대피하지 못한 주민인가? 급히 달려간다.) 무슨 일이죠?!
소리를 따라 달리면 수풀 사이 나동그라진 아이와 그 앞에서 부풀어 오른 덩어리를 발견합니다.
헬레네 R. 히페리데:(무어라 말하기도 전 반사적으로 덩어리를 향해 물로 만들어낸 검부터 내리꽂았다.)
파도의 창
기준치: |
89/44/17 |
굴림: |
86 |
판정결과: |
보통 성공 |
피해: |
17 |
아이: 흐.. 흐어엉. (이제 안전하다는 사실을 알고 대성통곡을 한다.) 무서웠어요.
구조된 아이는 헬레네의 목에 매달린 채 서러운 울음을 토해냅니다.
이 꼭두새벽에 댐 상류까지 왜 올라온 건진 모르겠지만, 하마터면 큰일 날 뻔했습니다.
아이의 이름은 콜 메이데이. 사건·사고를 몰고 다니는 개구쟁이입니다.
혼쭐을 내도 씩 웃고 넘어가는 변죽이라 버릇을 고치기 쉽지 않습니다.
헬레네 R. 히페리데:괜찮아요. 이젠 괜찮아요. (정신없이 아이를 안고 달래고서야 곧 그 모습을 알아본다.) 콜이군요?! 어쩌다가 이곳까지 와 있었나요. 대피 명령을 듣지 못했나요?
콜 메이데이: (한참 훌쩍거리다가 입을 연다.) 흑. 추, 축제 때 할머니에게 선물할. 흐어엉… 꽃을 꺾으려다가.
헬레네 R. 히페리데:축제라면…… 건국 축제를 말하시는 걸까요? (그래, 아이가 무슨 죄가 있겠는가. 그저 운이 없이도 게이트가 하필 이곳에 나타났을 뿐. 할머니는 무사히 대피했어야 할 텐데.) …… 일단 안전한 곳으로 가죠. (DOT 측에서 아실링을 안전히 배로 태워가는 것을 보고, 저 또한 DOT 쪽으로 합류한다.)
아직 울음 가득한 눈이 아이가 쥐고 있는 장미로 향합니다.
푸르스름하게 빛났을 색채는 짓물렀지만, 아름다움은 여전합니다.
파란장미. 불가능을 넘어선 기적의 상징으로, 도밍게즈의 국화.
그 꽃을 바라보는 아실링의 눈길에 그리움이 묻어납니다.
헬레네 R. 히페리데:아실링…… 좀 괜찮으신가요? (조심스럽게 물었다.)
아실링:(괜찮냐는 물음에는 반사적으로 고개를 끄덕인다. 머릿속을 헤집어놓는 것 같았던 상황에서 겨우 눈을 떴으나, 마주한 현실은 그보다 더 끔찍했다. 조금 되찾은 기억이며, 어떻게 된 일인지 알리는 감, 그리고 이곳의 헬레네에게 도움이 되지 못했다는 미안함까지 전부 파도처럼 덮쳐온다.) 도움드리지 못해서 죄송해요. ... 잘 끝난 건가요..?
헬레네 R. 히페리데:(고개 저었다) 사과하지 않으셔도 괜찮아요. 저조차도 무척이나 충격을 받았었는데, 하물며 아실링은 어떠셨겠나요. 우선은 적을 처리하는 건 끝마쳤어요. 하지만 역시나 적에 대해 미심쩍은 부분이 많았죠……. 저는, 적이 아실링이 아는 헬레네를 흉내냈다고 확신했어요. 그런 모습이나 저에게 보인 적대심까지 도저히 평범한 인간이나 지원군으로는 볼 수 없었으니까요.
하지만 이건……. (군번줄을 꺼내어 보여주었다.)
아실링:(기계적인 끄덕임이나 가끔 목이 매이는 소리 외에는 다른 반응 없다. 적이라. 어쩌다가 이렇게 된 것이지? 아직 다 되찾지 못한 기억들에 손을 뻗어보려다 군번줄에 시선이 정착한다. 쏟아낸 줄만 알았던 눈물이 다시 차올라 표정이 일그러졌다. 곧 자신의 군번줄을 꺼내어 비교해 본다. 당신이었구나.) ... 당신에게 부담을 드렸네요. 해야 한다면 제가 끝맺어야 했을 일을.
헬레네 R. 히페리데:(아실링 히페리데. 그리고, 헬레네 히페리데…….) 저는 괜찮으니 심려 마세요. 그보다는, 기억을 되찾으신 것 같았는데 혹 여쭤보아도 괜찮을까요? 힘드실 것 같다면 무리하진 않으셔도 되어요.
아실링:(두 개의 군번줄을 한 손에 그러쥔다. 한번 내려간 고개는 올라올 생각을 안 한다.) ... 괜찮으시다면 조금 미뤄도 괜찮을까요? DOT에 보고하시는 동안 정리해 볼게요. 죄송해요..
헬레네 R. 히페리데:네, 모쪼록 마음 추스리시길 바라요. (이런 말밖에 해줄 수 없는 자신이 원망스러웠다. 아실링의 어깨를 두어 번 토닥여주었다.)
상황을 수습했다면 DOT에 보고할 차례입니다.
귀에 꽂은 무선 이어폰을 만지고 신호를 송신하면 답이 옵니다.
[전투 종료. 구조한 아이는 근처 대피소에 인계하고 본부로 복귀하라.]
현재 위치가 확실하지 않아 텔레미터를 사용하긴 어려울 것 같습니다.
헬레네 R. 히페리데:
지능
기준치: |
70/35/14 |
굴림: |
29 |
판정결과: |
어려운 성공 |
(좌표를 파악해본다.) 지금 바로 텔레미터를 쓸 수 있을 것 같기는 한데. (콜을 바라본다) 가슴이 갑갑하고 기분이 불쾌할 수 있어요. 그래도 빨리 움직일 수 있는데…… 어떻게 할까요?
콜 메이데이: 흐, 흐윽. 가족들한테 빨리 가고 싶어요. (불쾌해 봤자 얼마나 불쾌하겠나 싶어 한다.)
헬레네 R. 히페리데:그럼 조금만 참아요. 금방 이동할 거예요. (좌표를 계산한 뒤, 텔레미터를 사용한다.)
성공적으로 텔레미터 사용에 성공해 대피소 앞에 도착합니다.
헬레네 R. 히페리데:괜찮나요, 콜……? (역시 무리였나)
콜 메이데이: 네, 네엥~. (휙휙 도는 시야에 어지러워하면서도 장미는 손에 꼬옥 쥐고 있다.)
헬레네 R. 히페리데:(할머님이 무사해야 할 텐데. 그의 가족들을 찾아 데려다준다.)
도착한 곳에는 두꺼운 철문이 웅장하게 서 있습니다.
전쟁용 폭탄도 막을 수 있다는 강도지만, 외우주의 존재에게 얼마나 효용이 있을진 모를 일입니다.
대피소는 위기 상황을 대비하기 위해 한 번 닫히면 누구도 함부로 드나들 수 없습니다.
물론, 세상 모든 인류에게 적용되는 규칙이더라도 타이머라면 얘기가 다릅니다.
출입 센서에 헬레네의 손바닥과 홍채를 순서대로 인식하면 즉시 열립니다.
헬레네 R. 히페리데:(출입 센서에 손바닥과 홍채를 차례로 인식한다.)
[제1시의 타이머, 헬레네 지문 확인 완료.]
[제1시의 타이머, 헬레네 홍채 확인 완료.]
[타이머 권한 확인. 대피소 봉쇄를 즉시 해제합니다.]
육중한 문이 먼지를 풍기며 열리자 바짝 얼어붙은 사람들의 숨소리가 제일 먼저 들립니다.
헬레네 R. 히페리데:
심리학
기준치: |
60/30/12 |
굴림: |
99 |
판정결과: |
실패 |
심리학
기준치: |
60/30/12 |
굴림: |
82 |
판정결과: |
실패 |
감히 타이머의 고단함에 비할까 마는, 잠결에 도망친 사람들의 얼굴은 유독 피로에 찌들었습니다.
낯선 면면들은 곧 타이머의 군복을 알아보고 와르르 무너집니다.
동시다발적으로 터져 나오는 한숨의 구성 성분은 안도와 감사.
나레이션처럼 타이밍도 완벽하게 안내 방송이 흘러나옵니다.
[제1구역 예상 피해 없음. 댐 파손 0%.]
[모든 구역민은 군의 인솔에 따라 순차 복귀하십시오.]
새벽의 재난이 온점을 찍자, 사람들이 하나둘 타이머에게 인사를 건넵니다.
중년 여성: 고마워요, 하필 게이트가 나타난 게 댐 상류라길래 걱정이 많았는데.
노년 남성: 아침부터 욕봤소. 고생이 많구먼.
중년 남성: 이번 신화생물도 무시무시했나요? 크기는?
헬레네 R. 히페리데:(모두들 예민하고 피로가 가득한 모습이다. 그럴 수밖에 없겠지. 자신이 살던 곳이 언제 무너질지 모른다는 공포, 신화생물이 대피소까지 닥칠지 모른다는 두려움……. 일상을 갑작스레 불쑥 치고 들어오는 비일상이란 으레 그런 것이었으니.)
(저 역시 한 번 임무를 해낼 때마다 무거운 피로와 고난이 밀려옴을 느꼈다. 그래도, 평범한 시민들에게는 제 무게가 결코 드러나지 않도록 주의하고 있었다. 사람들을 구해내는 이로서 어느 정도의 이미지메이킹이 필요함을 알았다. 또한, 저를 향해 건네지는 감사 인사를 받고 있자면 아무리 힘들어도 절로 미소가 지어지기도 하였고.)
신화생물에 관해서는 DOT 측에서 자세히 조사를 할 예정입니다. 다행히 저는 크게 다치지 않았으니 걱정하지 않으셔도 돼요. 피해가 적도록 신경을 썼는데 댐이 무너지지 않아 다행입니다. 곧 모두들 일상으로 돌아가실 수 있을 거예요.
감사와 치하, 걱정과 관심의 말미에는 언제나 아이들이 와글와글 몰려듭니다.
눈곱도 못 떼고 졸음 자국이 덕지덕지 남은 어린 얼굴들이 눈을 빛냅니다.
어릴수록 영웅 전기의 화려함에 매료되는 법이니까요.
남자아이1: 나도 이다음에 크면 꼭 타이머가 될래요.
여자아이1: 우와, 그럼 한 방에 물로 촥! 한 거죠?!
헬레네 R. 히페리데:고마워요. (미소지으며 아이들의 머리를 쓰다듬어준다. 응원의 말도 건네주고.) 멋진 타이머가 될 수 있을 거예요.
덩달아 휩쓸린 아실링도 능숙하게 아이들을 안아 들거나 얼러냅니다.
아실링:... 역시 멋지시네요, 헬레네는. 모든 이들의 영웅이세요.
헬레네 R. 히페리데:영웅이라고 하기엔 아직 많이 부족한걸요. 저를 좋아해주셔서 감사할 따름이죠. 아무리 힘든 일이 있어도 제가 구해낸 이들을 보면 그나마 마음이 편안해져요.
아실링도 꽤 능숙하신걸요. (희미하게 미소지었다.)
자, 그보다는 이 아이의 가족을 찾아주어야 할 것 같은데요. (주변 사람들에게 물어보고 다닌다.)
주민 1: 수고 많으셨어요. 여기서 쉬세요. 메이데이 사람들은 제가 불러올게요.
헬레네 R. 히페리데:(새벽부터 일어나 지금까지 쭉 긴장 상태에 있었던 데다, 자신의 얼굴을 한 신화생물과의 대치라는 기이한 일에 휘말려 쌓인 스트레스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대피소의 한 켠에서 잠시 기대어 눈을 붙일까 하다가, 우선은 아실링에게 묻는다) 조금 쉬지 않으시겠어요? 이른 아침부터 일어나셨잖아요.
아실링:괜찮아요. 오히려 지금은 몸을 움직이는 편이 저한테 더 좋을 것 같아요. ... 힘든 것이라면 헬레네가 더 힘들죠. 일찍 일어나셔서 저보다 더 많이 움직이셨고... ... 어깨 기대실래요?
헬레네 R. 히페리데:아실링도 같이 쉬셨으면 좋겠는데…… 그럼, 부탁드려도 될까요. (아실링의 어깨에 가만히 고개를 기댄다. 사람들의 소음에서 멀어지고, 조용하고 차분한 정적이 찾아들자 급격히 눈꺼풀이 무거워져 왔다. 하지만 동시에 머릿속으로는 오늘 보았던 광경들이 소용돌이친다. 쉬고 싶어도 정신이 몸을 쉽게 놔주지 않는 느낌이다. 다만 눈을 내리감고 한참 숨을 고르기만 했다.)
아실링:힘을 많이 쓰신 건 헬레네잖아요. 메이데이..라고 했죠? 그 가족들이 올 때까지만 이러고 있어요. 얼마 걸리지 않을 거예요. (뻗은 손을 네 손등에 가져가 토닥인다. 짧은 순간이더라도 네가 쉼 쉴 수 있는 틈이 되길.)
헬레네 R. 히페리데:(괴이한 모습으로 나타난 헬레네. 자신의 눈앞에서 사그라들던 헬레네……. 그리고 그 품에서 떨어진 군번줄까지. 도저히 파악할 수 없는 상황이다. 제 얼굴을 한 이를 처치했다는 불편함과 이름 모를 죄책감이 여전히 수면처럼 고여 다리에서 찰랑이고 있었다. 아마도 당신은 목까지 잠겨 있는 기분이겠지. 도대체 어떻게 된 영문일지는 몰라도, 당신에게 최악의 방식인 것만큼은 아니었으면…….)
아실링:... 헬레네. 지금은 그저 기뻐하세요. 당신 덕분에 이곳에 있는 많은 사람들이 지금 이리도 행복하고 있어요. (눈앞에서 쓰러지던 형체와 다르게 따뜻한 온기를 지니고 있는 사람들을 본다. 너 나 할 것 없이 오늘도 이렇게 살아있는 것에 대하여 감사하는 사람들. 어쩜 이렇게 제 속도 모르고 행복해하는 걸까. 죄 없는 입술만 물어뜯는다.)
헬레네 R. 히페리데:언제나 저는 구해낸 사람보다 구해내지 못한 사람들을 생각할 수밖에 없게 되더군요. 이들을 보더라도 마음 편히 기뻐하기가 어렵네요. (토닥이는 손길의 온도를 느끼며 어깨에 기댄 채로 조금 뒤척거렸다.) ……아실도 조금이라도 눈을 감고 계세요.
아실링:(정말 당신 같은 대답이었어요. 그리 말하려다가 관둔다. 지금 눈앞에 있는 헬레네를 향한 생각임을 알면서도, 자꾸만 자신의 헬레네에게 무의식적으로 말을 거는 기분이 들었다.) 저는 지금 이대로가 좋아요. 지금 이 평화로운 분위기가 계속 이어지면 좋겠네요.
헬레네 R. 히페리데:(이대로가 좋다고요? 거짓말…… 쉽게 믿을 수 없는걸요. 우리는 같은 일을 겪었는데. 저보다도 더 충격받고 무너지던 당신의 반응이 이리도 생생한데.)
(하지만 아무런 말도 않은 채 침묵만을 유지했다. 그러던 사이 아주 잠시 옅은 잠이 들었던 것 같기도 했다.)
주변 풍경과 사람들, 공기의 흐름마저 평화로운 이 순간입니다.
헬레네 R. 히페리데:
지능
기준치: |
70/35/14 |
굴림: |
80 |
판정결과: |
실패 |
지능
기준치: |
70/35/14 |
굴림: |
37 |
판정결과: |
보통 성공 |
“DOT에 사진을 전달하고 CCTV를 되감아 봤지만…….”
“그곳에 도착하기까지의 과정은 일절 찍히지 않았어요.”
“군이 말한 곳에 어느 순간 나타나 있더군요.”
아실링의 품에서 나온 건 군번줄이 전부였지만, 겉보기에 완벽한 인간이었으니까.
텔레미터를 분실했거나 다른 방식의 관문을 사용했으리라고.
신화생물을 인간과 착각할 리 없다는 확신에 기인한 추측이었는데.
신화생물이 인간의 껍데기를 흉내 낼 수 있다면 전제부터 뒤집어,
CCTV에 관측되지 않는 건 텔레미터만이 아니니까.
헬레네 R. 히페리데:(하지만, …… 아실링은 '그' 헬레네와는 달랐는데. 지금도 이렇게 닿아있지만 체온이 비정상적으로 높지도 않고 젤리 같은 괴상한 제형을 가지지도 않았다.)
(그렇지만 도저히 묵과할 수 없는 가설이라는 건 명확했다. 아직도 잊을 수 없는 처음의 그 순간. 분명, '문' 이 열리는 소리가 들렸었지. 그리고 적이었던 '헬레네' 역시도 게이트를 통해 등장했다.)
(틴달로스의 개와 함께 아실링이 이곳으로 나타나게 된 거라면…….)
(그럼 나는 도대체 어떻게 해야만 하는 거지? 의심하고 싶지 않다. 가까운 사이였던 이로 추정되는 이를 보며 그리 괴롭게 울부짖고 저를 말렸던 아실링이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대화도 잘 통했고, 능력의 합마저도 특출나게 좋았는데. 무엇보다도 도저히 아실링이 신화생물들처럼 세상을 멸망시키려는 악독한 목적을 갖고 왔다고는 생각할 수 없었다. 이것도 전부 내가 순수하고 순진해서 가능성을 고려하지 않으려 드는 것뿐일까? 더 의심해야만 할까? 하지만 대체 어떻게……)
(그나마 겨우 잔잔해진 줄로만 알았던 수면에 다시금 커다란 물방울이 튀고, 혼란의 물결이 치기 시작한다.)
불현듯 깨달은 찜찜함이 얼마나 지독하건, 세계는 당신에게 친절합니다.
아이들은 선물이랍시고 녹기 시작한 초콜릿이나 사탕 따위를 쥐여주고
어른들은 눈이 마주치는 족족 고마워서 어쩌냐고 손을 붙잡아옵니다.
뒤늦게 메이데이 일가도 뛰어나옵니다. 콜을 품에 안으며 연신 감사를 전합니다.
메이데이 여사: 헬레네 씨가 아니었다면 이 녀석이 어찌 됐을지…….
메이데이 여사가 주름이 깊이 팬 눈가를 훔치며 겨우 한시름 놓습니다.
헬레네 R. 히페리데:아니에요. 타이머로서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했을 뿐인걸요. 콜을 무사히 구할 수 있어 다행이에요. (희미하게 미소를 짓는다. 제 머릿속이 얼마나 복잡하더라도 지금은 타이머의 책임이 우선이다.)
메이데이 여사: 이 감사를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감사합니다, 해야지, 이놈아!
콜 메이데이: (꿀밤 한 대 꿍 맞는다.) 고맙습니다, (훌쩍.)
그렁그렁 맺힌 눈물을 소매로 닦아낸 아이도 어설프게 감사 인사를 따라 합니다.
헬레네 R. 히페리데:괜찮아요. 무사히 가족들과 만나 다행이에요, 콜. (콜의 머리를 다정히 쓰다듬어주었다.)
(콜이 가족들의 품으로 돌아갈 때까지 배웅하고 나면, 입가에 걸쳤던 미소가 서서히 사라진다. 뒤쪽의 아실을 가만 돌아보았다. 자신이 떠올렸던 그 가능성마저도 괴로운 것이었지만, 그렇잖아도 충격을 받은 당신에게 도저히 그 가능성에 대해 묻는 무정한 짓을 할 수는 없었다. 결국 가설만이 별들처럼 수많이 혼재하여 떠오를 뿐.)
(입술을 달싹이다가도 결국 침묵을 지키기를 택했다. 지금으로서는 어떤 대화를 하더라도 아무것도 해결할 수 없을 것 같았다. 서로에게 상처만 더 주는 꼴이 될 테지.)
눅눅한 해후가 한바탕 끝나면 모두의 복귀가 시작됩니다.
바깥으로 나오면 축제를 위해 한껏 꾸민 도시에 아침 햇살이 내리고 있습니다.
건물 사이로 엮은 긴 줄마다 색색의 깃발, 손수건, 혹은 우산 따위가 걸려 있고,
새파란 장미가 창틀과 문지방마다 청명한 색채를 장식합니다.
부슬비가 내리기 시작했지만, 우산 덕에 빗방울이 떨어지진 않습니다.
산등성이 사이 고개를 내민 태양은 때마침 시작된 부슬비에 뺨을 씻고,
사람들은 삼삼오오 집으로, 일터로 흩어집니다.
아실링:.. 저희도 이제 돌아가... 어...? 헬리. 저 애는.
헬레네 R. 히페리데:으음……? (시선 돌린다)
아실링:(너무나도 익숙한 애칭. 자신이 뭐라고 부른지도 모른다.)
메이데이 여사: 아침부터 뛰어오느라 식사도 못 했을 텐데, 밥이라도 한술 뜨고 가소.
가슴에 달린 주머니 위로 꼬깃꼬깃한 장미가 보입니다.
이깟 게 뭐라고, 그리 눈을 흘기면서도 결국 버릴 순 없었나 봅니다.
헬레네 R. 히페리데:(헬리, 그 애칭은.) 네에……? 말씀은 정말 감사한 일이지만. (아실링부터 돌아본다) 괜찮으시겠나요, 아실링?
아실링:저요...? (당연히 헬레네를 초대한 것이라 여기고, 어떻게 돌아가나 생각하고 있었다.) 저야 괜찮죠. 아니, 감사하죠.
헬레네 R. 히페리데:저어, 그럼 먼저 말씀해주셨는데 죄송스럽지만 이 분도 함께 가도 괜찮을까요? 오늘 저와 함께 현장에서 힘써주셨던 DOT의 일원분이세요.
메이데이 여사: 그쪽도 수고 많구려. DOT의 일원을 우리가 모른척 할 수 없지. 그쪽도 같이 오시게. (지팡이로 땅을 짚으며 먼저 걸어나간다.)
헬레네 R. 히페리데:감사해요, 여사님. (옅은 미소를 지으며 아실링의 손을 자연스럽게 감싸쥐고 그를 따라갔다. 어떠한 진실이 저를 기다리고 있을지는 모르나, 아직은 지금까지 봐 왔던 아실링의 모습을 믿고 싶었다.)
가족 구성원은 할머니와 아버지, 어머니, 열한 살 난 아이와 아직 목도 제대로 가누지 못하는 늦둥이 동생입니다.
소담한 정원이 딸린 이층집, 울타리 너머의 지붕은 회청색,
곰팡이가 피거나 녹이 슬지 않도록 신경 쓴 인테리어.
평범해서 더 그림 같은, 당신이 지켜낸 풍경.
헬레네 R. 히페리데:
관찰력
기준치: |
65/32/13 |
굴림: |
8 |
판정결과: |
극단적 성공 |
축제가 코앞으로 다가왔는데도 장식은 보이지 않는단 걸 알 수 있습니다.
메이데이 부인은 헬레네와 아실링에게 거실의 소파를 권합니다.
메이데이 씨가 부지깽이로 벽난로를 들쑤시자 훈훈한 온기가 맴돕니다.
할머니와 손주는 사이좋게 부엌에서 아침 메뉴를 상의하기 시작하고요.
메이데이 부인: 원래는 어제 축제 때 쓸 장미를 사러 나가기로 했는데, 갑자기 막내가 열이 나서요. 다른 집은 벌써 장식을 끝내뒀으니 초조했나 봐요. 좋은 장미는 다 팔렸을 거라고 어찌나 심통을 부리던지.
미스터 메이데이: 글쎄 이 녀석이, 어머니 어릴 적엔 숲에서 장미를 꺾어 왔단 얘기를 기억하고 몰래 나갔지 뭡니까. 하마터면 큰일 날 뻔했는데……. 다시 한번 감사합니다.
헬레네 R. 히페리데:아이라면 그럴 수 있죠. 게다가, 게이트가 하필 그날 그곳에 나타날 줄 누가 알았겠나요. 콜을 너무 혼내지는 마세요. 좋은 마음에 그런 거였을 테니까요.
메이데이 부인: 아이의 마음을 모르지는 않죠. 그래도 이 아이를 잃었다고 생각하면. 아아..
가슴을 쓸어내리는 메이데이 부부의 걱정을 아는지 모르는지,
의기양양하게 내려놓은 그릇에는 따끈따끈한 음식이 담겨 있습니다.
직접 구운 잉글리시 머핀에 기름기가 듬뿍 밴 베이컨, 고소하게 볶아낸 시금치,
단맛이 날 때까지 버터를 입힌 양파를 얹고 부드러운 수란을 뚜껑 삼은 에그 베네딕트입니다.
곁들임 요리로는 토마토, 양파, 조개를 푹 끓인 맑은 수프와 오렌지를 섞은, 상큼한 샐러드가 준비됐습니다.
메이데이 여사: 어서 앉으시게. 배가 많이 고플테니.
헬레네 R. 히페리데:어머, 이렇게 진수성찬을 받아도 될지……. (눈이 동그랗게 커져서 식탁 앞에 조심스럽게 앉았다.) 아실링도 어서 오세요. (곁의 의자를 빼주는 것도 잊지 않았다.)
아실링:무척 따뜻한 집밥이네요.. 이게 얼마만인지. (정말 자신이 먹어도 되는걸까? 그리 생각하던 차에 헬레네가 빼준 의자에 앉는다.)
헬레네 R. 히페리데:감사해요, 잘 먹겠습니다. (가족들에게 진심 담아 감사 인사를 하고선 수프를 한 수저 떠먹고, 머핀과 베네딕트도 조금씩 열심히 먹는다)
아실링:(오늘 있었던 일 때문에 얼마 못 먹지 않으려나 싶다가, 막상 한입 먹으니 생각이 싹 달라졌다. 그 일들이 있어놓고 밥이 맛있게 느껴지다니. 자조적인 웃음 짓다가 마저 수저를 뜬다.)
헬레네 R. 히페리데:음식들이 하나같이 너무 맛있네요. 콜은 좋겠어요. 매일 이런 식사를 하고. (가볍게 웃음 담아 말하며 샐러드를 콕 찍어 입안에 넣었다. 아까까지만 해도 전투의 충격에 감각이 모래알처럼 시그죽은 채 버석거리고 물 속으로 잠겨들어가는 것만 같았는데, 사람들의 마음으로 이뤄진 따스한 식사를 하며 생기를 얻는다.)
메이데이 여사: 저 녀석이 몰래 군것질하느라 식사를 안 해서 걱정이었네. 이참에 군것질 말고 제대로 된 식사하라고 자네가 한마디 해주게.
헬레네 R. 히페리데:어머, 콜. 자극적인 음식만 찾으면서 이렇게 맛있고 정성이 담긴 음식을 모른척 해서야 되겠나요? 이제부터는 군것질을 줄이고 영양소가 골고루 있는 제대로 된 식사를 하기로 약속하는 거예요. 어때요? (새끼손가락 내밀었다.)
콜 메이데이: 윽... (얼굴 빨개져서 식탁 아래로 숨었다가 손만 빼꼼 들어올린다. 이후 새끼손가락 걸고 약속했다.)
헬레네 R. 히페리데:후후. 착해요, 콜. (칭찬해준다)
따뜻한 식사는 계속되고, 메이데이 여사는 흔들의자에 앉아 두 사람을 물끄러미 바라봅니다.
콜도 테이블에 턱을 괴고 먹는 모습을 요모조모 구경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꾸벅꾸벅 고개를 떨굽니다.
메이데이 부부가 두 아이를 침실로 데려가고, 할머니는 넌지시 질문을 던집니다.
메이데이 여사: TV에서 보던 것보다 훨씬 어리구먼. 올해로 나이가 몇인가?
헬레네 R. 히페리데:(쑥스럽게 웃는다) 올해로 스무 살이 되었어요.
메이데이 여사: 어리구만. 요즘 젊은 사람들 보면 한참 놀러 다닐 나이일 텐데... 도움받은 처지에 이런 말을 해도 되는가 싶지만, 힘들지는 않으신가?
헬레네 R. 히페리데:아니에요. (미소 띄며 손사래를 친다.) 고충이 없는 건 아니지만 저는 제 일에 보람을 느끼고 있는걸요. 저의 능력으로 사람을 구할 수 있다니 얼마나 감사한 일인가요. (힘든 게 없냐고 묻는다면 결코 부정할 수는 없겠지만, 평범한 일반인들에게 제 속마음이나 사정을 곧이곧대로 털어놓아서는 안 된다는 것쯤은 이미 알고 있었다.)
메이데이 여사: 말은 그렇게 해도, 힘들어 한다는 것 다 알고 있네. 목숨을 건다는 건 어느 시대건 쉬운 일이 아니니.. 그저 걱정이라오.
헬레네 R. 히페리데:…… 걱정해주셔서 감사해요. (역시 나이 많은 분의 눈은 쉽게 속이기 어렵구나.) 그래도 제 목숨 하나를 바쳐 수많은 시민들의 목숨을 구할 수 있다면 저는 기꺼이 해낼 거예요.
메이데이 여사: 말하는 게 나같이 다 늙은이 같구먼. 좀 더 편하게 말해도 괜찮은데. 자네도 참.. 고생이 많아. 어서 게이트를 해결해야 애먼 사람을 닦달하지 않을 텐데…….
헬레네 R. 히페리데:DOT 측에서 게이트가 나타나는 원인과 위치의 상관관계를 찾기 위해 열심히 연구를 하고 있어요. 최대한 빨리 성과를 내보일 수 있었음 좋겠네요. 이 도밍게즈가 보다 안전해져서 게이트가 언제 나타날지 모른다는 불안에 떠는 일이 없어졌으면 좋겠어요.
(그리고는 깨끗이 비운 접시 위에 수저를 내려놓았다.) 잘 먹었습니다. 정말 감사해요.
메이데이 여사: 다 늙어서 해줄 수 있는 게 이것 말고 없다네. (주름진 손으로 헬레네 손등을 두들긴다.)
근데, 옆에 있는 분도 DOT의 일원이라고 했지. 담당자이시오?
헬레네 R. 히페리데:아, 담당자라기보다는…… (무어라고 설명해야 할지, 순간 애매모호해져서 잠시 망설였다. DOT의 일원이 될 거라고 섣불리 말할 수도 없잖은가? 아실링의 눈치를 살핀다.)
(저와 같은 시간대의 능력을 가졌음을 드러내는 것도 문제가 될 수 있을 테고. 우선은 대강 둘러대기로 한다.) 연구원이세요.
메이데이 여사: 아무리 상황이 급하다지만 잘 챙겨주시게. 가장 고생하는 이가 아닌가. 우리는 모두 빚을 지고 있어. 갚을 길도 없지. 그러니 소홀히 대접하면 안 된다네. (누가 들어도 식상한 잔소리를 식사 내도록 늘어놓는다.)
헬레네 R. 히페리데:그럼요, 정말 고생하고 계시죠. 모두가 애쓰고 계세요. 그리고, 빚을 지고 있다고 여기진 않으셨으면 좋겠는걸요. 여러분도 다들 각자의 고충이 있으실 텐데……. 오히려 게이트를 다 막지 못했다고, 피해를 더 줄이지 못했다고 책망하셔도 저는 할 말이 없는걸요.
메이데이 여사: 내가 잘하고 있는 사람에게 괜한 이야기를 한 것 같구먼. 자네와.. 그 옆 사람이라면 잘할 것이라 믿겠네.
그리고는 헬레네의 손에 자그마한 물건을 쥐여줍니다.
메이데이 여사: 가지고 가소. 예로부터 사파이어는 소유자를 불길한 것으로부터 보호해주는 귀물이었으니, 부적이라고 생각하고 지니구려. 거절은 하지 말게. 이 늙은이의 성의라고 생각해주고.
헬레네 R. 히페리데:어머. (원래 이런 물건은 받으면 안 되는 게 규정이지만…… 이렇게까지 해주는 정성을 무시할 수도 없어 조심스럽게 그 물건을 품에 넣었다.) 식사까지 대접해주셨는데 이런 귀한 물건까지 주시다니, 정말 감사합니다. 소중히 잘 간직하고 다닐게요.
메이데이 여사: 고맙소. 그대들에게 행운이 있기를, 이 늙은이가 기도하겠네.
아실링:(식사 잘 먹었다는 인사와 함께 고개 꾸벅이며 저택을 떠난다.) ... 좋은 신분이네요. 이렇게 근사한 식사를 얻어먹을 줄은 몰랐어요.
헬레네 R. 히페리데:앞으로도 무사하게 지내시기를 바랄게요. (마지막까지 예의바르게 인사하고는 집을 나섰다.) 흔하지는 않은 일이에요. 보통 임무가 끝나고 난 뒤에는 타이머들이 모두 함께 DOT로 귀가하니까요. 오늘은 대피소에 아이를 데려다줘야 할 일이 있어서 저희만 따로 행동하게 되었지만요.
예상치 못한 일이었지만 참 따스한 마음을 받았네요. 이 펜듈럼도, 이렇게 의미깊은 물건을 주실 줄은 몰랐어요.
(펜듈럼을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아실링의 눈 색과 닮은 것 같지 않나요?
아실링:오늘이 예외적인 날인가 보네요. 그럼 저희 바로 DOT으로 복귀하는 건가요? (쉴 틈이 없네요. 투덜거리다가 헬레네 따라 펜듈럼 눈에 담아본다.) 선물 받으신 거니까 소중히 여기시겠네요. 보호해 준다고 하니 매일 착용하세요. 그리고 ... ... 이거 보면서 제 생각해 주세요. 그러면 좋을 것 같아요.
헬레네 R. 히페리데:네, 아이를 가족에게 데려다주는 것도 마쳤으니 이만 복귀하면 될 것 같아요. (텔레미터를 사용할 만한 적합한 위치를 찾아 조금 더 한적한 곳을 향해 걸어가기 시작했다.) 그럼요. 아주 소중한 물건이 될 거예요. 목에 걸고 있으면 될 것 같은데요. (제 생각을 해 달라는 말에 왠지 귀끝에 열이 오르는 듯했다. 조금 부끄러운 말 아닌가? 아무렇지도 않게 하시다니, 익숙하신 것 같아…….) 네, 네에. (조그만 목소리로 대답하며 살짝 더듬거렸다.)
텔레미터를 사용해 DOT에 돌아오면 삼삼오오 모인 닥터를 비롯한 연구원들이 헬레네를 반깁니다.
연구원1: 새벽부터 고생 많았습니다. 들어가서 푹 쉬십시오.
연구원2: 군복은 저한테 주고 가세요! 재정비해둘게요.
닥터 오프-화이트: 이번 신화생물은 새로운 종이었다면서? 어떤 놈이었어? 온통 숲이라 CCTV 화면도 확보하기 어렵겠던데.
인사와 걱정, 호기심과 칭찬이 뒤섞인 환영은 매번 겪는 일인데도 시끌벅적합니다.
어떤 신화생물이냐는 말에 헬레네는 문득 아까 느낀 꺼림칙함을 복기합니다.
사실대로 말한다면 아실링도 의심을 피할 수 없겠죠.
다 떠나서 신화생물이 하필 헬레네를 닮은 데다가 아실링랑 아는 사이라니…….
헬레네 R. 히페리데:그게……. (반사적으로 아실의 눈치부터 본다. 어떤 표정일까)
아실링:(바쁜 연구원들을 보느라 뒤늦게 헬레네 시선을 알아챈다. 닥터의 물음에는 크게 관심을 갖지 않으려는 것 같다.)
헬레네 R. 히페리데:…… 지금까지는 보인 적 없던 인간의 형태였어요. 자세한 건 조금 휴식을 취하고 내일 말씀드려도 괜찮을까요?
닥터 오프-화이트: 내일?? 내이일?? 나보고 어떻게 기다리라고. ... ... 알았어. 오늘도 고생했네. 다친 데 있음 저어기 연구원들한테 말하고. (흥미 떨어져서 다른 곳으로 가버린다.)
헬레네 R. 히페리데:아하하. (어색하게 웃으며 군복의 겉옷을 벗어 연구원에게 건네주었다.) 부탁드릴게요. 그럼 아실링, 이만 올라가서 쉬어요.
아실링:(연구원과 닥터 앞에서 최대한 말을 아끼고는, 헬레네따라 이동한다. 지금 이렇게 행동하는게 답이라 여기면서.)
헬레네 R. 히페리데:(엘리베이터를 타고 4층을 누른다. 문이 열리고 익숙한 숙소로 들어가면 그제야 쌓였던 피로가 뒤늦게 파도처럼 몰려오는 기분이다.) 구체적인 보고는 내일 할까 해요. 아실링도 오늘 너무 고생 많으셨지요. 우선은 푹 주무세요. 스트레스를 해소하는 데에는 잠도 도움이 된다고 하니까요.
아실링:피곤하시죠. 먼저 샤워하고 쉬세요. (잠시 헬레네 눈치 보며 제 팔 부분 만지작거린다.) 저 혼자 있을 만한 장소 같은 것은 없는 거겠죠? 다름이 아니라 좀 걷고 싶어서. 아.. 역시 헬레네랑 같이 있어야 하니 그건 힘들겠네요.
헬레네 R. 히페리데:(혼자 있을 시간이 필요할 만도 할 테지. 그의 마음을 십분 이해할 수 있었다. 하지만 당신은 이름조차 미지수라는 'X'가 붙은 상황. 모든 걸 파악하지 못한데다, 아까 떠오른 출신의 의문까지 더해져서 당신을 쉽게 홀로 놔둘 수는 없었다. 이성과 감정이 충돌한다. 가슴이 복잡했다.) 죄송해요. 아실링의 심정은 저도 잘 이해하지만 혼자 있을 시간을 드리기는 어려울 것 같아요.
대신 밖에 같이 나가는 건 어떤가요? 산책은 하되 저는 뒤쪽에서 멀찍이 떨어져 있을게요.
아실링:갑자기 당신을 두고 다른 감시자를 붙여달라고 말하기도 좀 그렇겠네요. 음... 저는 혼자 걷고 싶은 것이지 당신을 피곤하게 만들고 싶은 게 아니라서요. 저는 당신이 쉬었으면 좋겠어요. 당신 역시 고생 많았으니.. (제 생각 말고 편하게 쉬라는 말과 함께 의자를 들어 창가 쪽으로 가져가 놓았다. 산책하는 기분이라도 내야겠다며 의자에 앉아 바깥 구경한다.)
헬레네 R. 히페리데:아실링도 만만찮게 고생 많으셨는걸요……. (바깥을 향한 뒷모습을 안타깝게 바라보다가, 조금이라도 혼자 있을 시간을 주기 위해 샤워실로 향한다. 평소보다도 더 오랫동안 쏟아지는 물줄기를 맞고 있었다. 여전히 같은 방에 있지만 샤워실은 그나마 분리된 공간이었으니까.)
(머리를 느적느적 말리고 옷을 천천히 갈아입은 뒤 조용히 샤워실에서 나와 부엌으로 향했다. 그러고 보니 허브 찻잎을 더 구해오기로 했었는데 새벽부터 호출을 받아 구매할 틈도 없었구나. 남은 히비스커스 잎을 다 넣고 물을 끓였다. 붉은색으로 우러난 물을 찻잔에 가득 담아 당신에게로 갖다주었다.) …… 아실링, 이거라도 한 잔 드시겠나요.
저는 이만 잘게요. 그러니 아실링은 편하실 때 주무세요. 오늘 정말 고생 많으셨어요. (일찌감치 잠들면 당신이 조금이라도 개인적으로 감정을 정리할 만한 시간을 가질 수 있겠지. 그리고 저 또한 피로가 대단한지라 금세라도 눈이 감길 것만 같은 느낌이었다.)
아실링:(샤워실에서 나올 때까지 무릎 감싸 안은 채 창밖을 멍하니 보고 있었다. 나오는 소리 듣고 유리창에 기대 눌려진 이마 만지작거리며 헬레네 슬쩍 봤다가 다시 바깥으로 시선 돌린다.)
아, 죄송해요. 씻으시는 동안 제가 미리 준비했어야 했는데. (고맙다는 말과 함께 잔 받아서 마시는 것 대신 손에 찻잔 쥐고 있는다. 헬리가, 아니 헬레네가 만들어준 것이니 향이 식기 전에 마셔야 할 텐데. 그리 생각하다가 손에서 느껴지는 찻잔의 열이 식을 즘 한두 모금 마신다.)
(원래의 정신이었다면 헬레네 생각 눈치챘을 만도 하지만, 지금은 그럴 여유가 없어서 고개를 끄덕였다. 대신 침대 옆으로 가서 이불을 들춘다.) 들어가세요. 이불 잘 덮고 주무셔야 해요.
헬레네 R. 히페리데:아니에요. 제가 독단적으로 준비한 건데요. 끌리지 않으신다면 굳이 마시지 않으셔도 괜찮아요. (안타까운 심정으로 당신을 내려다보았다. 어깨에 한 손을 얹고 싶었지만, 지금은 자신의 사소한 반응도 당신을 힘들게 만들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조용히 물러섰다.) 아실링도 너무 늦지 않게 주무셔야 해요. 알겠죠? (고마워요. 속삭이며 들춰주는 이불 안으로 꾸물거리며 들어가 누웠다. 머리를 대자마자 잠의 수마가 쏟아지는 기분이었다.)
아실링:(헬레네에 상황에 대해 아직 생각이 뻗지 못해 고개가 기울어졌다. 피곤해서 평소와 다른 느낌인 것일지도 모른다,라면서 제가 생각하기 편한 것을 고른다.) 네. 저도 금방 잠 들을게요. 오늘도 수고하셨어요. (침대에 들어가는 것까지 지켜보다가 어깨를 토닥인다. 이후로는 뭐라고 말했더라. 애칭인지 이름인지 모를 것으로 너를 부르고 침대에서 떨어진다.)
사후 처리반에 의해 어제 일이 보고되었습니다.
접객용 테이블이나 소파 하나 없는 삭막한 공간은 사면을 책장이 둘러싸고 있습니다.
책상에 팔을 괴고 앉은 하슬러 원수는 지구본을 빤히 들여다보다가, 헬레네가 도착하면 고개를 듭니다.
하슬러 원수: 이런, 우리의 영웅과 새로운 미지수 아니신가. (과장된 태도로 자리에서 일어서서 둘이 맞이한다.) 왜 불렀는지는 알것이라 믿네.
헬레네 R. 히페리데:(예의 갖추어 목례한다.) 어제의 게이트와 관련된 일이라고 생각됩니다. 맞을까요?
하슬러 원수: 그래. 그거 말일세. 닥터에게 제대로 보고를 안하기에 특별한 일 없었나 싶었네만... 그게 아니더군. 자네답지 않았어. 그리 큰 일을 미루디니 말이야. 당시의 이야기를 좀 더 제대로 들려주겠나? (말투 자체는 부드러우나 거절 할 수 없도록 어제 일을 짚어낸다.)
헬레네 R. 히페리데:(잠들기 전, 아실링과 이에 대해 조금이라도 이야기를 나눴어야 했는데. 하지만 아주 가까운 사이로 추정되는 이를 제 손으로 처치하고 말았다. 얼마나 충격을 받고 상처입었는지 제 눈으로 뻔히 봤으면서 어떻게 그런 냉정한 가정을 입에 담을 수 있었겠는가. 어디까지 말해야만 할까? 어디까지 드러내보여야 의심을 피할 수 있을까? 지금껏 이런 식으로 고민해본 적은 한 번도 없었다. 언제나 타이머로서 DOT의 명령에 복종해 왔었으므로.)
(너무 오래 입을 떼지 못하는 건 자신이 머리를 굴리고 있단 사실을 고스란히 드러내주는 거나 똑같겠지. 결국 길지 않은 침묵 끝에 조심스레 입을 연다.) …… 게이트 No. 2032-21에서 나온 신화생물은, 저와 동일한 외관을 갖고 있었습니다. 옷차림 역시 DOT의 것과 비슷했지만 묘하게 달랐어요. 대화가 통했지만…… 도저히 인간이라고는 볼 수 없을 만한 뜨거운 온도와 젤리 같은 몸체를 지닌 생물이었습니다.
(최대한 아실링이 관계되지 않을 수 있도록 고르고 골라 설명한다.) 그리고…… 그를 처치한 후, 품에서 이것을 습득했습니다. (군번줄을 꺼내어 올려뒀다.)
하슬러 원수: (모든 이야기를 흥미롭게 듣다가 군번줄을 받아 확인한다.) 그거참…… 위험하면서 매력적인 이야기야. 헬레네, 자네는 자네는 어제 일과 이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지?
하슬러 원수: 내가 생각하기에 게이트 너머에 도사린 게 신화생물만이 아니라 인간일 수도 있다는 것으로 들린다만. 그건 이 우주에 지구 말고도 인류가 존재하는 행성을 증명한 셈 아닌가. 다들 경악하겠어.
헬레네 R. 히페리데:…… 네. 제 생각에도 그렇습니다. 단순히 신화생물이라기에는 석연찮은 점이 많았습니다. (무릎 위에 올려둔 두 손을 꾹 쥔다.) 솔직히 지금으로서는 영문을 알 수 없습니다. 타 차원과 세계가 존재할 가능성은 충분히 존재할 수 있다지만, 왜 하필 게이트를 통해서 넘어오는 건지 알 수가 없으니까요.
(곁에 있을 아실링을 곁시야로만 흘끗 담는다. '미지수'라 불리는 아실링에 대해서도 이야기가 나오겠지만, 제 입으로 담고 싶지는 않아서.)
하슬러 원수: 그렇군... 군의 말 잘 들었네. (뒷짐 진 상태로 아실링에게 다가간다. 여전히 얼굴은 좋은 사람의 것을 한 상태로.) 그러고 보니 석연찮은 점이 많은 자... 라면 여기에도 있는 것 같지 않은가? 영문 알 수 없는 것도 마찬가지고. (그러더니 헬레네 쪽으로 고개 돌려 싱긋 웃는다.) 그렇지 않나?
헬레네 R. 히페리데:(절로 표정이 굳는다. 주먹에 힘이 들어간다.) '미지수' 라는 이름이 붙은 만큼…… 당연한 것이겠죠.
하슬러 원수: ... 좋네! 자 그럼 이제 자네 차례일세. 미지수 군. 그래서, 기억나는 바가 있나? 신화생물의 껍데기를 아는 눈치였다던데.
아실링:어디서부터 말씀드려야 할지 모르겠네요. 말씀드려도 믿어주실지 모르겠지만, 일단 들어주셨으면 합니다. 신화 생물... (헬레네를 언급하려고 하자 목소리에 떨림이 생긴다. 짧게 숨 들이켠 이후 다시 말을 이어간다.) 어제 본 신화 생물의 '껍데기'는 제가 아는 헬레네와 같습니다. 네, 저는 신화 생물이 헬레네인척 자신의 모습을 바꿨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이 제가 껍데기라고 칭한 이유입니다. 제가 아는 헬레네는 인간이면서 타이머입니다. 이것만큼은 제가 알고 있는 진실입니다. 지금 어디에 있고, 무엇을 하고 있으며 어떤 상태일지는 불확실하지만... 그는 이곳의 헬레네처럼 절대로 남을 해치는 그런 자가 아닙니다. 믿어주세요.
헬레네 R. 히페리데:
심리학
기준치: |
60/30/12 |
굴림: |
19 |
판정결과: |
어려운 성공 |
거짓말을 하는 것처럼 보이지는 않으나, 아직 다 말하지 않은 부분이 있어 보입니다.
헬레네 R. 히페리데:(손을 옆으로 뻗어 아실링의 한쪽 손을 감싸듯 쥔다. 과연 무엇을 숨기고 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자신에게 해가 될 거라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또 내가 너무 허술하게 사람을 믿는 걸까? 그렇지만…… 짧은 시간이더라도 자신이 봐 온 아실링은 나쁜 이처럼 보이지는 않았다.)
하슬러 원수: 흠. 이번 일은 극비에 부치는 게 낫겠어. 타이머를 비롯한 DOT의 관계자 일부에게만 한정적으로 공개하자고. 자네들도 찬성할 것이라 믿네. 일단은 인간의 흉내를 내는 유형이 확인됐다, 그 정도로 해두지. 군을 닮았으니 또 다른 타이머가 있다느니 하는 부연 설명은 생략하는 거야. 자네들이 설명할 필요도 없지. 닥터와 리히트를 부르갰네.
하슬러 원수는 길게 고민할 필요도 없다는 듯, 금세 결론 냅니다.
민간인과 DOT의 관계자, 하물며 타이머들에게까지 비밀에 부치겠다는 독재 같은 단정.
그의 입가를 가로지르는 긴 흉터는 설명하는 동안 끊어졌다가 이어지기를 반복합니다.
의문을 표하거나 순응하지 않으면 하슬러 원수가 도리어 묻습니다.
하슬러 원수: 군, 전시에 가장 경계해야 하는 사태가 무엇인지 아나?
헬레네 R. 히페리데:(혼란스러울 수 있으니 숨겨야 한다는 데는 이해가 가지만…… 이들은 내가 떠올렸던 찝찝한
가능성까지는 아직 미치지 못한 것일까? 어쩌면 아실링도 그 헬레네와 같은 존재일지 모른다는. 아니면 알면서도 어떠한 이유 때문에 묵인하려는 걸까. 그는 언제나 DOT를 믿고 따라 왔지만, 요 며칠 사이에 나타난 미지의 존재로 인해 불안하고 혼란스러운 탓인지 믿음에도 금이 가는 기분이었다. 정말로 미지수 그 자체가 아닌가.) 내부분열이 아닐까요? 저희끼리 힘을 합쳐 싸우기도 모자란 상황에 서로 치고박고 싸우면 자멸하게 되니까요.
하슬러 원수: 잘 알고 있군. 내가 그래서 자네를 많이 아끼고 있지. 그래... 동료를 믿지 못하고 명령을 의심하면 그 전쟁은 시작도 전에 패배한 것이나 다름없다.
하슬러 원수는 한 치의 망설임 없이 전술을 내놓습니다.
먼 과거부터 대물림된 외우주의 공포를 버텨낸 건 언제든 타이머가 구하러 오리란 믿음에 기반했으니까.
때론 실낱같은 희망, 한 톨의 믿음이 기적이 되기도 합니다.
하슬러 원수: (엄숙하면서도 거만한 얼굴로 웃다가 둘의 어깨를 두어 번 두드린다.) 사후처리반의 감식이나 회수가 끝나면 조사에 착수할 거야. 그럼 무엇이든 알아낼 수 있겠지. 우리는 늘 위태로웠어. 그래도 이때까지 살아남았지. 그렇지 않은가?
헬레네 R. 히페리데:(상징성. 상징성……. 어제 보았던 대피소 안에서의 사람들을 기억한다. 자신에게 따스한 식사를 대접해주었던 메이데이 가족을 떠올린다. 그래, 아무런 힘도 없는 시민들을 위해서라도 타이머는 상징적인 존재로 남을 필요가 있다. 신화생물이 비록 자신과 같은 모습이었다 해도, 알리지 않으면 안 되는 사실은 아니다. 오히려 아실링을 추궁하거나 내쫓지 않는 거라면 안심해도 되는 거겠지.)
네. 무슨 말씀인지 이해했습니다. 여태껏 버텨온 만큼 앞으로도 타이머로서 더 힘내서 도밍게즈를 지킬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하슬러 원수: 그래. 모두가 함께 열심히... 함께였으니.
"괜찮아, 도밍게즈는 이번에도 살아남을 거야."
헬레네 R. 히페리데:
심리학
기준치: |
60/30/12 |
굴림: |
54 |
판정결과: |
보통 성공 |
거기 서린 건 도밍게즈의 생존을 위해서라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을, 단 하나의 의지.
아실링:
심리학 Roll
기준치: |
70/35/14 |
굴림: |
97 |
판정결과: |
실패 |
(어쩐지 익숙하다는 느낌을 받았지만, 생각을 파고들지는 못했다. 언젠가는 알게 될지도 모르지.)
차갑게 식다 못해 싸늘한 순간을 깨고 아실링이 입을 엽니다.
아실링:기억났어요... 제가 저번에 말한, 예언이 이루어지는 날이요.
「세계의 종말이라기에도, 축제의 마무리라기에도 어울리지 않는 고요함.」
「4월 20일, 도밍게즈의 축제 마지막 날.」
「타이머와 카운터만을 남겨두고, 세계가 멸망했어요.」
헬레네 R. 히페리데:축제 마지막 날에요……? 그것도 타이머와 카운터만을 남겨두고, 라니……. (놀라 커진 눈을 감추지 못한다) 그런 식으로 멸망이 올 줄은 전혀 상상도 하지 못했어요.
아실링:믿기 어려우시겠지만, 일단 지금은 제 말을 믿어주셔야만 해요. 그리고 대비해 주세요. 부탁드려요. (줄곧 바닥에 뒀던 시선을 올려 헬레네와 원수 돌아가면 바라본다.)
하슬러 원수: 축제 마지막 날이란 말이지. 시간이 빠듯하군. 비상이야. 대책을 마련해야겠어.
그래도 기습보단 낫다며, 하슬러 원수는 두 사람에게 축객령을 내립니다.
하슬러 원수: 달라질 건 없어. 사실이라면 방비하고 거짓이라도 대비한다. 혹시 몰라서 하는 말이나, 함부로 퍼뜨리지 마시게. 그리고 나가거든 예언의 타이머를 불러주겠나? 용건을 묻거든 직접 와서 들으라고 해.
헬레네 R. 히페리데:알겠습니다. (곧 결연하게 고개 끄덕인다. 전혀 예상치 못한 바였지만, 그래도 조금의 실마리나마 잡았다는 게 어디인가.) 그럼, 이만 물러가 보겠습니다.
(마찬가지로 목례하고는 아실링과 함께 문 밖을 나선다. 무겁게 짓누르는 듯한 압박감에서 벗어난 기분에 긴 숨을 내쉰다) 고생 많으셨어요, 아실링. 그런데 예언이라니…… 갑작스럽게 떠오르신 건가요?
헬레네 R. 히페리데:
듣기
기준치: |
50/25/10 |
굴림: |
50 |
판정결과: |
보통 성공 |
문가에서 드르륵, 드륵. 낯선 소리를 캐치합니다.
시계태엽이 돌아갈 때나 들릴 투박한 마찰음입니다.
원수실 어디에도 시계는커녕 태엽 같은 건 찾아볼 수 없지만.
(집무실을 나오고 나서 손으로 가볍게 얼굴 짚었다가 뗀다. 마음에 남는 것이 아직 많은지라 편안함을 찾기 어렵다.) 네.. 정말 갑자기 떠올랐어요. '이번에도 살아남을 거야.'라는 말을 들은 이후에 바로요. 정말 예상하지 못하겠더군요.
헬레네 R. 히페리데:어쩌면…… 아실링이 계시던 원래의 세계에서도 비슷한 일을 겪었던 걸까요? 날짜까지 정확히 떠올리시다니. 저희로서는 대비를 할 수 있는 시간을 조금이라도 벌었으니 잘 된 일이지만요. 사실, 어떤 식으로 대비를 해야 할지도 잘 모르겠지만……. (조금 씁쓸한 기분에 머리칼 끝을 손으로 매만졌다) 그래도 마음의 준비라도 할 수 있는 건 분명히 차이가 있겠죠.
(그나저나, 이 소리는 뭐지? 주변을 돌아본다. 뭔가 이질적인 거라도 있나?)
아실링:헬레네 말이 정확해요. 방금 되찾은 기억은 세계가 멈춘 시점까지였어요. 아마 제가 이렇게 나이가 먹은 것을 보면 잘 극복을 한 것으로 보이나, 혹시 모를 일이잖아요. 저는 그 이후에 일 같은 것은 자세히 기억도 없고... 혼란스러움 때문에 당장 생각나지 않는 것일 수도 있어요. 그리고 그런 쪽은 전문가에게 맡기는 것이 좋지요. 닥터라던가요. 그러니 너무 걱정 마세요. (고개 살짝 숙여 머리칼 쓰다듬는 손끝에 뺨 슬쩍 가져가 대었다가 뗀다.) 네. 분명 뭔가 할 수 있을 거예요.
이질적인 것은 없어 보입니다. 소리 또한 멎었습니다.
헬레네 R. 히페리데:그곳의 아실링이 잘 극복해낸 것처럼, 이쪽의 도밍게즈도 위기를 잘 이겨낼 수 있었으면 좋겠네요. (고개가 숙여지고 당신의 살갗이 닿아오자 저도 모르게 뺨이 살짝 붉어졌다. 엄지손가락 끝으로 뺨을 살짝 어루만졌다가 떼었다.) 우선은 예언의 타이머를 찾으러 갈까요?
아실링:잘 극복할 수 있을 거예요. (자신이 있었던 곳보다 상황 자체는 더 암울해 보인다는 말 같은 것 꺼내지 않는다. 말해봤자 별 도움도 되지 않을 것을 알기에. 뺨 어루만지는 손길에 눈 움찔하며 눈 감았다가 뜬다.) ... 그래요. 어서 전해주는 것이 좋을 것 같아요. 먼저 앞장서 주세요.
예언의 타이머라면 매번 도서실에서 자리잡고 있습니다.
헬레네 R. 히페리데:힘내봐야죠. (도서실로 향해 예언의 타이머를 찾아본다.)
예언의 타이머: (책상에 가득 쌓인 책들이며, 이리저리 휘날려진 종이들과 물아일체하듯 자료들에 집중하고 있다.)
헬레네 R. 히페리데:안녕하세요. (다가가 미소지으며 친근하게 인사한다.) 하슬러 원수께서 찾으세요.
예언의 타이머: (책들 사이에서 얼굴을 쏙 들고는) 왜 안 부르시나 했죠. 용건이야... 보나마나죠. 소식 전해주셔서 감사합니다.
헬레네 R. 히페리데:벌써 알고 계셨나요? (놀라는가 싶다가도 금세 납득한다) 과연 예언의 타이머세요.
예언의 타이머: 이런 것은 늘 빨리 알게 되더라고요. 누구보다 먼저 피곤함을 달고 살게 되었죠. (찌푸려진 미간 손가락으로 꾹꾹 누르다가 일어난다.) 그럼 수고하세요.
헬레네 R. 히페리데:앞일을 보는 건 여간 피곤한 일이 아니겠다 싶어요. (부드럽게 위로의 어조를 건넨다) 네. 잘 다녀오세요.
시간은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가는 모래처럼 하염없이 흘러 어느덧 4월의 초반.
축제는 코앞으로 다가와 장미 향기를 물씬 풍깁니다.
시국이 시국인 만큼 모두의 어깨엔 바짝 힘이 들어갔습니다.
하슬러 원수는 타이머를 비롯한 DOT의 주요 인물에게만 이 사실을 공유했습니다.
게이트 너머에서 인간의 탈을 쓴 신화생물이 등장했고, 아실링은 권능을 가진 미지수이며,
도밍게즈는 이미 한 차례 멸망한 별이며 중첩된 예언들이 축제 말미에 닥쳐올 거대한 재앙을 암시하고 있다는 것까지.
DOT가 그간 알아낸 사실, 아니, 가설은 다음과 같습니다.
불의 타이머: 헬레네, 파트너가 생기면 뭐가 좀 다르냐?
헬레네 R. 히페리데:(가설은 하나같이 충격적이기 그지없는 것들뿐이다. 이미 한 차례 멸망했던 별이라니…….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그 별에서 다시금 살아가고 있는 것일까? 게다가 아주 흡사한 문명과 체계를 이루고서.)
(회의실에서 들은 내용을 곱씹으며 한참이나 생각에 잠겨 있다가 한 박자 늦게 고개를 든다.) 아, 음……. (이제는 아실링과 함께하는 삶에도 제법 익숙해졌다. 그러니까 아실링이 살던 도밍게즈에서는 그의 파트너가 카운터였다는 거겠지. 내가 아실링의 카운터인 걸까, 아실링이 나의 카운터인 걸까?) 항상 함께하는 단짝친구가 생긴 느낌이랄까요. 저는 모두를 믿고 의지하고 있지만, 아무래도 거리가 가깝다 보니 더 많은 사적인 일상을 공유하고 있지요.
불의 타이머: 뭐어..?! 요즘 바쁜 일 투성이라 사람 얼굴 보기는 무슨 눈 감았다가 뜨기도 바쁜데, 친구를 사귀었겠다~? 치사하다는 느낌이 드네. 다들 안그렇냐?
불의 타이머의 물음에 다들 기다렸다는 듯이 호기심을 감추지 못하고 가까이 모여듭니다.
치유의 타이머: 똑같은 속성이라면서. 파워업하는 거, 정말 느껴져?
바람의 타이머: 아실링 군의 기억은 다 돌아온 건가요?
환각의 타이머: 도밍게즈에는 언제 발표한답니까. 계속 숨길 수도 없는 노릇입니다.
중력의 타이머: 뭐라고 불러야 하려나~ 첫 번째 1시의 타이머, 두 번째 1시의 타이머?
식물의 타이머: 원래대로 카운터라고 부르게 될지도.
와글와글, 열네 명이 한 마디씩 던지자 금세 열네 마디가 완성됩니다.
헬레네 R. 히페리데:네, 확실히 함께 있으면 능력의 효과가 더 향상되는 것 같았어요. 저번에 닥터 화이트의 지시로 능력을 접목시키는 실험도 해보았었거든요. (열심히 대답해주려다가 우르르 몰려드는 소리에 묻혀버린다. 그저 사람 좋은 미소만 지었다. 만약 아실링이 여기 있었으면 기 눌려서 힘들어했을지도…….)
여러분도 제 친구분이잖아요? 제가 여러분을 얼마나 좋아하는데, 그리 말하시면 슬퍼요~. (불의 타이머에게 팔짱을 낀다.) 호칭에 관해서는…… 제 생각에도, 카운터라고 부르는 게 편의상 나을 듯 싶어요. 하지만 공개하는 건 조금 더 고민해야 하지 않을까요. 갑작스럽게 나타나셨으니까요. 갑작스럽게 사라질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드네요. (말하면서도 가슴 한구석이 쓸쓸해지는 듯하다.)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으면 좋겠지만요. (게이트에서 나온 헬레네를 보았을 때, 당신이 얼마나 슬퍼하며 무너졌는지를 기억한다. 다시 보고 싶겠지. 아무리 얼굴이 같다고 해도 온전히 같은 사람은 될 수 없으니까.)
불의 타이머: 네 파트너라고 아끼는 걸로 밖에 안 보이는데 말이지!
수시로 파견되는 처지라 전원의 얼굴을 보기란 하늘의 별 따기인지라, 그리움과 장난을 담아 다들 한 마디씩 합니다.
헬레네 R. 히페리데:정말…… 제가 여러분을 얼마나 좋아하고 아끼는지 말로 다 표현해야 알아주실 건가요? (농조로 말하며 활짝 웃는다. 이 얼마나 오랜만에 다같이 한자리에 모이는 것이던가. 지금까지 숱한 위기가 있었지만 함께 힘을 모아 헤쳐나올 수 있었다. 미지수 아실링의 등장은 아직 베일에 쌓여있긴 해도 우리에게 하나의 힘을 더 보태주는 것과도 같겠지. 이제 얼마 남지 않은 멸망의 그날에도, 함께 버텨나갈 수 있기를.)
불의 타이머: 우리 다 토라졌어. 삐졌다고! 부러워서 못 살겠다니까. 내 파트너도 조만간 도착하려나. 혼자 일하긴 빡센데 말이야.
똑똑. 대답 대신 문 두드리는 소리가 끼어듭니다.
문가에는 하슬러 원수와 리히트 장교가 서 있습니다.
자로 잰 듯 각이 잡힌 걸음걸이가 회의실의 상석으로 향하고
건조한 인사와 함께 리히트 장교가 브리핑을 시작합니다.
리히트 장교: 아시다시피 건국제가 코앞에 다가왔습니다. 예언의 디데이 당일이기도 하죠.
DOT는 예언의 타이머와 아실링의 의견을 종합한 결과, 코스모스 웨이브의 발생 가능성이 크다고 판단했습니다.
건국제 마지막에는 타이머가 등장하는 것이 관례였습니다만……. 절체절명의 순간에 보여주기식 이벤트에 치중할 수는 없습니다.
하슬러 원수: 그렇다고 섣불리 불안감을 조장할 필요는 없지.
리히트 장교: 네, 대신 타이머들은 각 구역으로 파견됩니다. 명분은 축제의 안전 관리. 올해 쇼맨십은 수도가 아닌 구역마다 개인 무대가 준비될 예정이고, 전역에 생중계하기로 언론과 조율을 마쳤습니다.
하슬러 원수: 무대 주변에는 대피소 직통 통로가 마련돼 있다. 게이트가 등장하면 전조 증상이 끝나기 전에 전원 대피가 가능해. 담당 부서에서 시뮬레이션을 돌려본 결과, 오히려 한자리에 모여있으면 통솔도 쉽다더군.
리히트 장교: 4월 20일 당일, 이상한 조짐이 보이면 즉시 보고해 주십시오. DOT뿐만 아니라 육군과 해군, 공군이 동시 대기할 겁니다.
어쩐지 하슬러 원수의 시선이 헬레네에 쏠립니다.
헬레네 R. 히페리데:(웃던 것도 잠시, 진지한 낯으로 브리핑에 집중한다.) 각 구역으로…… 파견되는 것이군요. 하지만, 아실링의 예언은 타이머와 카운터만을 남겨두고 세상이 멸망한다고 했었죠. 각 구역으로 찢어지면 타이머간의 원활한 연락과 협업이 어렵지 않을까요?
리히트 장교: 그렇다고 하기엔 우리가 마주해야 할 상대가 만만치 않은 상대다 보니.. 스크린을 확인해 주시길 바랍니다.
헬레네 R. 히페리데:(코스모스 웨이브. 아우터 갓이라니. 갑자기 적이 몇 배는 더 강대해진 느낌에 마른침을 삼켰다.) …… 그렇군요. 아우터 갓이 어디에서 나타날지 모른다면 전 구역에 하나라도 타이머가 파견되어있는 편이 좋겠죠. 알겠습니다.
외우주의 신이라니, 역사에서나 접하던 이름입니다.
타이머조차 승산을 점치기 어렵다는 절대적 포식자.
끔찍하게도, 열네 명의 영웅을 한입에 삼키고 떠났다는 기록까지 남아있습니다.
여태 도밍게즈는 우주의 위협으로부터 아슬아슬하게 연명했지만,
아니, 어쩌면 도밍게즈는 살아남더라도 타이머들은…….
헬레네 R. 히페리데:
SAN Roll
기준치: |
69/34/13 |
굴림: |
37 |
판정결과: |
보통 성공 |
(게이트에서 나타난 신화생물을 처음 보았을 때도, 저런 기괴하고 흉측한 생물 앞에서 살아돌아갈 순 없을 거라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지금까지 어떻게든 버티고 살아남아왔지. 이번에 대적할지도 모르는 적은 신화생물보다도 몇 배는 더 강대해 보이지만…… 이제껏 죽음을 한 번도 생각해본 적 없느냐면 오히려 거짓일 테지. 침착한 낯으로 스크린만을 바라보았다.)
(차라리 내 목숨으로 세상을 구할 수 있는 거라면, 그런 거라면 기꺼이 나설 수 있다. 전장이 얼마나 험한 가시밭길로 점철되어 있더라도.)
감히 무게를 잴 수 없는 영웅의 두려움은 그 자체로 도밍게즈를 지탱하는 중력.
누군들 대신할 자 없고 어딘들 도피할 곳 없는.
리히트 장교: 알아, 무슨 생각을 하는지. 목숨을 걸라고 말하는 건 명령하는 처지에서도 늘 내키지 않지. 어떤 위로도 소용없겠지만, 이건 그대들만의 싸움이 아니다. 우리가 사는 별의 운명이 달렸어. 온 도밍게즈가 함께 할 거야.
DOT에서도 비슷한 사례를 추리는 중이다. 차라리 아는 녀석이 나타나 준다면 수월할 텐데 말이지…….
지피지기면 백전백승. 외우주의 신을 상대로 압도적인 승산을 기대할 순 없겠지만,
확실히 무방비한 상태로 맞서는 것보단 나을 겁니다.
DOT에서 끊임없이 신화생물에 이름을 붙이고 그들의 생태를 분석하는 건 그 때문이기도 합니다.
알지 못하는, 미지의 공포일수록 거대한 우주를 구축하니까.
헬레네 R. 히페리데:(방금까지 친밀하게 웃으며 이야기를 나누던 타이머들을 천천히 돌아본다. 저를 포함해 모두 열넷. 4월 20일의 축제가 지나가면 이 중에서 몇 명을 다시 볼 수 있을까?)
(이런 냉정한 생각을 하는 스스로가 미우면서도 공허하고 슬펐다. 꼭 가슴 한구석이 무언가로 막힌 듯 답답하고 착잡했다. 항상 즐겁게 웃을 수만 있다면 좋을 텐데…….)
하슬러 원수: 상호 살아남거든 술이나 한잔할까.
돌아들 가. 촉박한 여유를 즐기라고. 탈주만 하지 말고.
해산 명령과 함께, 축제까지의 몇 주가 거한 포상 휴가로 주어집니다.
휴가 중에도 신화생물이 등장하면 꼼짝없이 출동해야 하는 처지지만.
다행인지 불행인지, 코스모스 웨이브가 임박하면 오히려 폭풍전야의 고요함이 찾아온다더군요.
회의실을 나오는 길, 분위기는 아무래도 어둡습니다.
누군가는 괜찮을 거라 애써 모두를 다독이고, 누군가는 결연한 얼굴로 죽음을 각오합니다.
누군가는 겁에 질려 보기 불쌍할 정도로 떨기 시작했습니다.
반응은 천차만별인데도 도망칠 생각을 하는 타이머는 없습니다.
그도 그럴 게, 결국 도밍게즈가 멸망하면 이 별 위에 산 것은 남지 않을 테니까요.
헬레네 R. 히페리데:(그를 안타깝게 바라보다 꼭 끌어안아준다.) 괜찮아요. 우리는 함께잖아요. 지금껏 우리가 헤쳐나왔던 수많은 위기를 떠올려 보세요. 결국은 이리 다같이 모여 있는걸요.
그러니, 이번에도 다시 다같이 얼굴을 볼 수 있을 거예요. (따스한 품에 고개를 묻고 온기를 느끼고 있자면 제 코끝도 찡해오고, 눈앞이 흐려질 것만 같다. 불그스레해진 눈가를 애써 문질렀다.) 약속이에요. 꼭.
하지만 언제까지 우는 소리는 내는 사람이 아닙니다.
“마, 맞아… 우린 이렇게 다 모여 있어.. 이 능력으로 소중한 사람을 지킬 거야. 그리고 다 같이 모일 거고. 약속이야.”
한참 훌쩍이던 타이머는 한 가닥 희망을 움켜쥐고 웃습니다.
헬레네 R. 히페리데:네, 그럼요. 소중한 사람들을 저희 힘으로 지켜내보아요. 저흰 분명 해낼 수 있을 테니까요. 희망을 가져요! (일부러 더 밝은 목소리를 냈다. 시한부 선고를 받은 환자의 마음이 이러했을까. 높은 확률로 죽음이 기다리는 임무. 고작 한 달도 남지 않은 시간. 이제 그게 나의 미래가 될 테다.)
누구 먼저 할 것 없이 팔을 뻗어 서로를 껴안습니다.
이름부터 능력, 얼굴, 성격까지 모두 다들 그들이지만 지금 이 순간은 모두 하나가 됩니다.
그리고 복도 끝에선 아실링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동료들과 떨어지고 이편과 저편에서 눈이 마주치는 순간.
헬레네 R. 히페리데:
권능 Roll
기준치: |
89/44/17 |
굴림: |
63 |
판정결과: |
보통 성공 |
스파크가 튀고, 시간의 각인이 화끈화끈 달아오릅니다.
그리고 헬레네에게 비어있던, 그러나 원래 헬레네의 것이었을 무언가가 돌아옵니다.
원래도 완전했던 그릇이 가득 차다 못해 넘쳐흐릅니다.
아실링 또한 같은 감각을 공유하는지 놀란 눈으로 당신을 바라봅니다.
헬레네 R. 히페리데:아실링……? 방금……. (깜짝 놀라 제 손을 한 번 내려다보고, 아실링을 바라본다.) 권능이 늘어나는 듯한 기분이 들었어요.
아실링:맞아요... 저도 당신과 같은 상태랍니다. 이렇게나 순수한 권능이라니... (한 순도 높은, 완벽한 형태의 권능에 놀라 두 손을 펼쳐 이리 저리 권능을 사용해 본다. 숨쉬는 것처럼 자연스레 사용되는 권능에 어딘가 자유로움까지 느끼며 생긋 웃는다.)
복도 너머에서 헬레네에게 다가오는 아실링에 의해 거리는 점점 더 가까워집니다.
비로소 완전하게 충족된 기분이 들었습니다. 드디어…….
모든 이야기를 전해 들은 아실링은 단호하게 선언합니다.
그 대사는, 퇴역한 영웅의 결연한 맹세였습니다.
휴가를 어떻게 보내야 할지 고민하던 헬레네에게, 선뜻 의견을 던진 것은 아실링이었습니다.
헬레네가 살아온 9구역에 대해 궁금하다는 것이 그 의견이었죠.
오랜만에 고향에 방문하는 것도 좋다고 생각한 헬레네이기에 선뜩 수락했습니다.
전용기가 띄어줘 먹먹하던 귓가의 불편함이 사라지고 창문에서는 예쁜 하늘만이 보입니다.
아실링:9구역에는 얼마만에 가보시는 건가요...? 그동안 바쁘셔서 제대로 방문 못하셨을 텐데.. (웰컴 기프트로 준 간식을 입에 하나하나 넣으며 바깥 풍경을 감상한다.)
헬레네 R. 히페리데:글쎄요. 대체 얼마만에 고향에 돌아가보는 건지……. (감격에 겨운 낯으로 창밖으로 아래를 내려다본다.) 부모님은 잘 지내고 계실지 모르겠네요. 막내 오빠도 너무 보고 싶구요. (미리 연락을 해두었기에 그의 막내오빠도 6구역에서 9구역의 고향집에 도착해 있을 테지.)
아실링:가족끼리 사이가 좋나 봐요? 괜찮으시다면 어떻게 지내셨는지 이야기해 주셨으면 좋겠어요. (헬레네 가족에 관한 이야기라면 자신이 아는 헬레네와 그리 다르지 않을 것 같다 생각은 하지만, 이곳에 있는 헬레네는 또 다른 사람이니 다르게 중요하다 여긴다.) 네, 내리고 나서 충분히 시간 보내세요. 저는 아무래도 x다 보니 소개받기는 좀 그래서... 잘 다녀오실 거죠?
헬레네 R. 히페리데:아, 저는 위로 언니와 오빠가 세 분이나 있답니다. 히페리데는 거의 가족 대대로 의료계를 진학해요. 그래서 저희 할머님과 부모님뿐 아니라 큰언니와 둘째, 셋째 오빠까지 모두 의사로 일하고 계세요. 다들 일이 바쁘신데다, 제가 나이차가 꽤나 많이 나다 보니 얼굴을 자주 뵐 수 있지는 않았지요. 셋째 오빠와 가장 자주 어울리며 지냈었답니다. 어릴 적엔 쭉 9구역에서 살다가 열 살 때 의사가 된 셋째 오빠를 따라 6구역으로 왔었어요. (가족 이야기를 오랜만에 꺼내자 신났는지 한껏 조잘거리다가, 눈이 커진다) 네? 저 혼자 보내실 생각이셨나요? 세상에, 그럼 함께 이곳까지 온 의미가 없는걸요! DOT의 연구원이라고 소개하면 그만이니, 아실링도 저와 함께 가요.
아실링:(열심히 고개 끄덕이는 자세로, 틈틈이 네게 간식을 먹여주며 경청한다. 휴가의 시작부터 얼굴에는 즐거움이 가득하다.) 아직 가족분들 만나 뵌 적은 없지만, 헬리처럼 전부 좋은 분들이실 것 같아요. 특히 셋째 오빠라는 분은 더 그럴 것 같고요. ... 네? 제가요? 그래도 괜찮은 것인지 잘... (뭔가 고민하는 것처럼 입 꾹 다물고 있다가 금방 빙그레 미소 짓는다.) 네, 그러죠. 대신 적당히 거짓말해 주시기예요.
헬레네 R. 히페리데:(간식 잘도 받아먹는다. 아실링 입에도 젤리 하나 쏙 넣어줌) 그럼요. 다들 아주 멋지신 분들이세요. 큰언니와 둘째 오빠는 첫인상이 조금 날카로워보일 수 있지만, 나쁜 분은 아니랍니다. 셋째 오빠는 무척 부드럽고 다정한 인상이세요. 제 위의 세 분은 전부 흑발이고, 저만 할머니의 머리칼을 닮아 주황빛 머리칼을 가졌답니다. 눈은 모두 똑같은 벽안이지만요. (제 눈가를 가리켜며 배시시 웃었다) 그럼요. 게다가 처음 와보는 9구역에 아실링 혼자 두고 어디를 가겠나요. 가족들에게 아실링을 소개할 시간이 기대되네요!
아실링:(냠 하고 잘 받아먹은 후 행복하게 입꼬리 올린다. 승무원에게 간식을 더 부탁하고는 헬레네 좌석 쪽으로 몸 기울인다.) 헬레네 형제들 인상이 날카로워 보일 수 있다고요..? 다 헬리처럼 다정하고 순할 것 같은데.. (아직 상상이 안 가는지 등받이에 머리 툭 기댄다.) 저는 혼자서도 잘 노는 것 알고 계시잖아요. DOT이 하도 어디 돌아다니지 말라 해서 가만히 있는 것도 이제는 익숙해졌어요. 그래도 헬리가 소개해 주신다면 거절 않고 잘 따라갈게요.
헬레네 R. 히페리데:네에. 직접 보시면 이해하실 거예요. (푸스스 웃는다.) 하지만 가만히만 있으면 심심하니까요~. 저희 가족에게 인사드린 이후에는 9구역도 구경하러 나가요. 거진 10년 전에 이사를 간데다 5년 전부턴 타이머로 활동하느라 바빴으니 제가 모르는 곳이 많을 것 같네요.
아실링:(고개는 끄덕이지만 머릿속으로는 머리색만 다른, 헬레네와 비슷한 얼굴과 분위기를 가졌을 것 같은 사람들로 상상하고 있다. 그 상상이 어떻게 깨질지 이때까지는 전혀 모르고 있었고.) 10년이면 많은 것들이 바뀌었을 거예요. 어쩌면 헬레네의 기억 속의 마을의 모습이 많이 남지 않을 수도 있어요. 그래도... 이왕이면 저랑 같이 새롭게 기억에 남겨주셨으면 해요.
헬레네 R. 히페리데:그럼요. 저는 타이머라는 특성상 여러 구역을 자주 돌아다니는데, 같은 곳을 고작 몇 년만에 다시 왔는데도 건물들이나 그 모습이 달라진 경우가 많더라구요. 변화란 그만큼 빠르게 찾아든다는 거겠죠. (미소하며 당신의 한 손 위에 제 손을 올려둔다) 아실링과 함께 가는 것이니 더욱 특별하고 새로운 기억으로 남겠네요.
아실링:그럼 이번에는 저랑 같이 놀라주시면 되겠네요. 저 이번에 DOT 관계자에게 부탁해서 카메라도 받아왔어요. (그리 말하며 작은 가방에서 작은 카메라 하나를 꺼낸다.) 약속해 주신 거예요. 특별하고 새로운 기억으로 남겠다고요.
작은 음과 함께 승무원이 곧 착륙할 것임을 알립니다.
타이머라도 비행기 안에서 안전벨트는 꼭 착용해야죠.
느린 하강 후 비행기 바퀴가 지면에 닿으며 덜컹거리는 것이 온몸에 느껴집니다.
진동이 멈추고 난 뒤, 승무원이 밝게 웃으며 두 사람에게 다가옵니다.
"9구역에 어서오세요! 행복한 시간 보내시길 바랍니다!"
비행기에 내리자 마자 눈 앞이 흰색으로 가득찹니다.
마을의 모든 건물은 흰색으로 칠해져 있습니다.
이유에 대해 물어본다면, 거주하는 사람들은 다양한 이유를 들면서 흰색으로 건물을 칠하는 이유를 설명합니다.
신성한 색으로 여기거나 신을 영접하기 위한 색이라고 믿는 사람들도 있으며, 빛을 반사하여 치유의 느낌을 주는 색으로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이러한 이유들은 믿거나 말거나이지만, 전체적으로 마을에 특별한 분위기를 조성하고 있습니다.
눈에 띄는 곳으로는 [화이트 루프 대학], [성당], [마을 꼭대기] 등이 있습니다.
헬레네에게는 익숙한 곳이지만, 아실링에게는 신기한 곳으로 보일수도 있겠군요.
헬레네 R. 히페리데:이 하얀 건물들이야말로 9구역의 특징적인 모습이죠. 아, 저 대학은 아직 여전하군요. (밝게 웃는다) 저쪽부터 가보시겠나요?
아실링:엄청... 하얗군요. (어쩐지 눈이 부시다 생각하며 가지고 온 선글라스 눈에 턱 낀다. 익숙한 디자인에 자세히 살펴보면 불의 타이머가 자주 쓰고 다니던 선글라스다.) 안 그래도 저곳이 제일 먼저 눈에 보였어요. 대학이군요.. 저렇게 하얗고 큰 대학이라니. 좋아요! 같이 가보죠!
치유의 흰 지붕에 위치한 이 대학은 도밍게즈의 모든 의사와 간호사, 의료 종사자들이 수료 과정을 거쳐야 하는 곳입니다.
높은 수준의 교육을 제공하며, 의료 분야에서는 최고로 알려져 있습니다.
대학 건물은 커다란 호수 주위에 흰 건물들이 다닥다닥 붙어 있어 뛰어난 학문적 분위기를 느낄 수 있습니다.
헬레네 R. 히페리데:음? 그나저나 아실링, 그 선글라스 어쩐지 익숙한데요……. (고개 기울이며 빤히 본다)
아실링:네? 아.. 이거요? (후후 웃으며 선글라스 쓱 울려 눈 부분 보인다.) 익숙한 선글라스 맞을 거예요. 불의 타이머가 주말에 쓰고 다니는 게 부러워서, 제가 빌려달라고 했거든요. 어떤가요? 그 사람보다 제 쪽이 더 잘 어울리는 것 같죠?
헬레네 R. 히페리데:어머. (14회의실에서 불의 타이머가 제게 했던 말들을 떠올리며 작게 웃고 만다.) 저더러는 혼자 가까운 파트너가 생겼다고 치사하다고 하시더니, 어느새 두 분이 가까워지셨군요? 저에게는 두 분 다 잘 어울리는 것 같아요~. 돌아갈 때 다른 타이머 분들의 선물을 뭘 사갈지도 열심히 고민해봐야겠네요. (해맑게 웃는다. 지금은 귀하게 시간을 내어 온 휴가 기간. 게다가 아실링까지 곁에 함께 있다. 그러니 굳이 위험하다는 임무에 발목이 잡혀 우울하게 있고 싶지 않았다.)
아실링:회의실 안이 조금 시끄럽다 했더니 그런 대화중이셨군요. 저한테는 그런 말 한 번도 하신 적 없으셨는데. 음.. 저는 가깝다고 생각해요. 근데 제가 저희 가까우니까 선글라스 빌려달라고 할 때는 아니라고 하시는 거 있죠? 절대 그런 적 없다고 불같이 구시더라고요. 정말 자기 권능이랑 잘 어울리는 분이지 뭐예요. (결국 두 손 두 발 들며 빌려줬을 때의 얼굴은 꽤나 볼만했다며 키득키득 웃는다.) 아이참. 저랑 있을 때는 제 쪽이 더 잘 어울린다고 해주시지. 그래요. 선물이랑 같이 선글라스 돌려주면 이제는 가까운 사이라고 해주실지도 모르겠네요.
헬레네 R. 히페리데:틱틱대는 투로 말하시지만 실은 잘 챙겨주시는 착한 분이시죠. 저도 거의 언니처럼 여기고 있답니다. 사실 타이머 분들은 오랜 시간 함께 해와서인지 다들 가족처럼 느껴져요. (그러다 당신의 말에 아차하며 제 입가를 손으로 가린다.) 이런. 제가 세심하지 못했네요, 죄송해요. 그렇지만 비교를 하지 않을 뿐 아실링도 정말 잘 어울리시니까요. (워낙 입발린 소리를 잘 하지 못하는 성격인지라 다소 쩔쩔맨다) 그럼 다른 곳들을 돌아보고 난 뒤에는 시장도 가는 걸로 해요. (대학 안을 걸으며 산책하다가 성당 쪽으로 향한다)
아실링:DOT에서 지낸 시간이 그리 길지는 못하지만, 모여있는 모습에서 항상 장난스러운 맏언니 같다고 느꼈어요. 다들 그 성격에 많이 기댄 것이겠죠. 헬레네, 당신도 그 사람에게 도움을 많이 받았을 테고.. 그럼 그 사람은 제게도 고마움 사람이에요. (고개를 갸웃거리며 아무렇지 않은듯한 얼굴로 본다.) 아니에요. 헬레네라면 그렇게 말해줄 것이라는 것 정도는 이미 알고 있었는걸요. 제가 당신을 모를까요? (마지막 말에는 어딘가 쓸쓸함을 남겼다.) 그러죠. 사실 비행기 안에서 주는 간식으로는 배가 안 찼어요. 기내식을 기대해서 아침도 대충 먹고 나왔는데, 조금 후회했었답니다.
치유의 흰 지붕에는 유서 깊은 성당이 있어 성지 순례객들로 붐빕니다.
닫아진 창문 너머로도 큰 찬송가 소리와 오르간 소리가 들립니다.
이 성당은 마을에서 특별한 신성한 장소로 여겨지며, 종교적인 의미와 역사적인 가치를 가지고 있습니다.
장난스럽기 보다는 조용히 있는 것이 좋을 것 같네요.
헬레네 R. 히페리데:(아실링이 말하는 '당신'은 과연 저인가요, 게이트에서 나왔던 헬레네인가요? 문득 의문이 들었지만 입 밖으로 꺼내지는 않았다. 그때의 일은 두 사람 모두에게 힘든 일임이 분명했으니까.) 참, 그러고 보니 여쭙고 싶은 게 있어요, 아실링. (성당 주변을 느리게 걸으며 조용히 말한다.) 아실링이 머물던 곳도 '도밍게즈' 라고 했었죠? 그곳의 9구역에 가보신 적 있나요? 이곳과 비슷한 모습일지 궁금해서요.
아실링:(종교 쪽과는 거리가 멀어 찬송가가 익숙하지는 않았으나, 어느 순간부터 흘러나오는 가사들에 집중하고 있는다. 헬레네가 부르고 나서야 눈을 껌벅이며 정신을 차린다.) 아니요. 지금 제 기억 속에서는 없어요. 제가 기억하는 도밍게즈에서는, 10구역에서 살다가 11구역으로 이사 간 게 전부랍니다. 그러다가 DOT에 시설에 들어갔고요. 10구역, 11구역은 아마 이곳과 비슷하지 않을까.. 싶어요.
헬레네 R. 히페리데:그 도밍게즈도 이곳처럼 구역명으로 지역을 나누고 부르는 건 동일했나 보군요. (하긴 저와 완벽히 똑같이 생긴 사람이 있을 정도니, 소설에서나 봤던 평행세계 같은 거라고 해도 이상할 건 없겠지.) 그러면 9구역은 처음 오시는 거군요. 다행이에요. 익숙하기만 한 광경이라면 기껏 온 휴가가 아쉬울 뻔했네요. (희미하게 미소하며 오르간 소리가 들려오는 성당 내부를 응시했다)
신을 믿으시나요, 아실링?
아실링:단순하게 부르는 것만 동일한 게 아니라 지역의 특징 같은 것은 비슷한 것 같더군요. 10구역이나 11구역에 가봤으면 좀 더 확실해졌겠지만, 저는 이곳에 더 궁금해서 그만. (작게 미소 짓고는) 설령 제가 알고 있는 곳이라고 해도 아깝지 않을 거예요. 당신과 함께 있는 이런 날과 어떻게 비교를 하겠어요.
저, 사실 신이라든지 믿음 같은 그런 것을 좋아하지는 않아요. 그렇지만 요즘은 그런 신이 있으면 좋겠다고 믿고 싶네요. 진짜 있다고 해도 기도를 드릴지 아닐지는 모르겠지만요. 헬레네는요?
헬레네 R. 히페리데:그러면 다음에 또 휴가를 받을 때는 10구역이나 11구역에 가볼까요? (휴가를 받으려면 우선은 살아있어야겠지만. 저는 살아남을 테니까. 모두와 다 함께.) 아실링은 정말 다정하고 상냥하셔서, 원래 있던 세계에서도 친구분들이 많았을 것 같네요. (진심 가득 담긴 목소리로 속삭였다.)
저도 신을 믿지는 않아요. 건국 신화에서부터 신이 이 도밍게즈를 만들었다고는 하지만, 신화는 이야기일 뿐이니까요. 신의 힘에 기대어 자만하거나 방심하기보다는…… 저희의 손으로 위기를 해결해나가는 게 더 올바른 길이라고 생각되네요.
아실링:그때는 제가 가이드 해드릴게요. 제가 아는 곳과 많이 다르지 않아야 할 테지만.. 완전히 다르지 않을 테니 쓸모는 있을 거예요. (10구역과 11구억. 멸망을 막은 후 꼭 같이 가겠다 여기며 마음에 남겨뒀다.) 다정... 상냥이요..? 사실 그리 좋은 성격은 아니라고 생각돼요. 그리고 제가 있는 곳의 DOT 시설에 안 끌려가려고 숨어있었거든요. 친구라고는 고모가 전부였어요. 딱히 외롭지 않았던 것 같지만... 헬레네와 이곳 분들을 보니 이렇게 여럿이서 즐겁게 지내는 것도 좋을 것 같네요.
나아가는 건 인간의 몫이라.. 좋네요. 기도만 해서 해결되는 것은 없죠. 당신이랑 다른 타이머, 군인, DOT의 여럿 덕분에 지금도 세상이 유지되는 것이니까요. 정말이지.. 당신이 이곳의 영웅이라고 다시 한번 더 느꼈어요.
헬레네 R. 히페리데:그랬었군요……. (안타까움에 눈썹이 처진다.) 하긴, DOT에 오는 게 마냥 반갑기만 한 일은 아니니까요. 저도 열다섯에 처음 이곳에 왔을 때 이전에도 말씀드렸듯 꽤나 마음고생을 심하게 했었지요. 그래도 이렇게 아실링의 이야기를 여유롭게 들을 수 있으니 과연 휴가가 좋기는 좋네요. 앞으로도 아실링을 알아갈 시간이 많이 있었으면 좋겠어요.
영웅이란 말은 많이 들어도 아직 부끄럽군요. (양손으로 뺨을 감싼다.) 걸맞는 사람이 될 수 있도록 노력해야죠.
이제 조금 높은 곳으로 가볼까요? 마을이 한눈에 보일 거예요. (꼭대기를 향해 오른다)
올라오느라 수고했다는 듯 작은 벤치가 드문드문 배치되어 있습니다.
관광의 끝을 장식하는 곳인지 이곳에서 사진을 찍는 사람 여럿도 보입니다.
아실링:(카메라를 든 상태로 아래로 쪼르르 내려가더니 한쪽 손을 크게 흔든다.) 헬레네..! 딱 거기서 계세요. 상체 조금만 숙여주시고요. 지금 햇빛이 딱 예쁘게 내리쬐어서 사진 찍기에 딱이에요.
헬레네 R. 히페리데:네에. (아실링이 시키는 대로 상체를 조금 숙이고 맑은 웃음을 짓는다. 한 손은 브이.) 어떤가요?
아실링:(찰칵거리는 몇 번의 소리 이후 카메라를 가지고 헬리 곁으로 후다닥 뛰어간다. 나온 사진들을 순서대로 보여주며 즐겁게 종알거린다.) 셋 다 정말 잘 나왔어요. 첫 번째 것은 햇빛 덕분에 머리색이 제일 예뻐 보이고, 두 번째 것은 바람이 순간 불어서 머리카락이 휘날려 느낌이 생겼고, 세 번째는 이때 입이 살짝 벌려진 게 무척 예뻐요.
헬레네 R. 히페리데:(쏟아지는 칭찬에 부끄러운 듯 볼이 살짝 붉어진 채로 사진들을 들여다봤다. 이내 아실링을 향해 고개 들며) 아실링이 잘 찍어주신 덕분이에요. 이제는 제가 아실링을 찍어드릴 차례네요! 저야 사진은 나갈 때마다 많이 찍지만 아실링의 사진은 사실상 제가 처음 찍는 거나 다름없겠죠? 많이많이 남겨둘래요. 어서 멋진 포즈를 취해주세요!
아실링:(좀 전에 말한 칭찬 외에, 자세하게 관찰해야 차이를 알 수 있는 부분들에 대한 칭찬들을 이어서 한다. 하지만 그렇게 즐겁게 말하는 것도 자신의 사진을 찍어주겠다는 헬레네 말에 뚝 끊긴다.) 저요...? 헬레네 찍으려고 빌려왔지, 저 찍힐 생각은 안 했는데. (땀 뻘뻘...) 안 찍겠다고 하면 아쉬워하실 거죠...? 그럼... (멋진 포즈라기에는 소심하게 손으로 꽃받침 만들어본다.)
헬레네 R. 히페리데:어떻게 저 혼자만 사진을 찍을 수 있겠나요. 함께 온 휴가인걸요! (저는 어릴 때부터 카메라 앞에 서는 일이 꽤 잦았으니 익숙했지만, 아실링은 별로 익숙지 않은 걸까. 기억을 잃은 영향이거나 애초부터 외향적인 성격은 아니어서 그런 걸지도? 어느 쪽이든 귀엽다고 생각하며 카메라를 들었다.) 좋아요, 이제 다음 포즈도 취해 주세요. 음, 다음에는 손가락 하트는 어때요? (찰칵찰칵)
아실링:그야.. 저는 찍히는 것보다 찍는 게 더 즐거우니까요..! .. 근데 당신이 그리 즐거워 보이니 제 패배인 것 같네요. (그곳에서나 이곳에서나, 자신이 이길 방법은 없다고 생각하며 픽 웃고는 손가락으로 하트를 만든다. 그리고 정확히 한 장면 찍힌 뒤 헬레네 옆으로 가서 어깨에 머리를 기댔다.) 저 이제 많이 찍힌 것 같은데... 충분하신 거죠? 그렇죠?
헬레네 R. 히페리데:헤헤, 져주셔서 감사해요~. (밝게 웃으며 손하트를 하는 아실링을 향해 연신 셔터를 누른다. 가까이 다가온 이에게 사진을 보여주려 카메라를 기울이다가 어깨에 닿는 촉감에 살짝 놀라 눈이 커진다. 그러고 보니 저번 게이트 출동 때는 내가 아실링의 어깨를 빌렸었지. 그때가 오버랩되는 순간이지만 상황이나 풍경은 많이 다르다. 훨씬 더 긍정적이고 평온한 나날.) 잘 나왔어요, 그렇죠? 모델이 아름다우신 덕분이랍니다.
아실링:조금 불공평하다는 느낌이 드네요. 저만 당신에게 지는 것 같아요. 제가 당신을 이기는 날이 있을지 모르겠지만... 언젠가, 한 번 정도는 저한테 져주세요. 그 정도는 해주실 수 있죠? (많이도 말고 딱 한 번이요. 거절하기 어렵게 괜히 저런 말까지 덧붙인다. 불쌍하게 축 처쳤던 눈 돌려 사진으로 향한다. 이어지는 것은 짧은 감탄. 거울 속 보던 익숙하지 않은 어른의 모습인 자신이, 사진 속에서는 꼭 그래 보이지 않았다. 네가 보는 자신이 이래 보이려나, 하고 속으로 생각하고는 잔잔한 미소 흘린다.) 고마워요. 사진이 실물보다 더 잘 나온 것 같아요.
헬레네 R. 히페리데:그럼요. 한 번만이겠나요? 아실링이 원한다면 몇 번이고 져드릴 수 있답니다. 게다가 그런 표정으로 부탁하시면 저뿐 아니라 다른 분들도 금세 넘어가실걸요. (정말 강아지 같다…….) 아, 타이머 일과 관련된 부탁만 빼고요. (와중에도 짚을 건 짚고 넘어간다.) 무슨 소리세요. 실물이 뛰어나서 사진도 잘 나온 거지요. 돌아갔을 때 다른 타이머 분들께 실컷 자랑해야겠네요.
많이 돌아다녀서 배고프시겠어요. 이만 식당가로 갈까요?
아실링:한 번이면 충분해요. 많이 져달라고 할 정도로 나쁜 성격은 아니고요. 아, 안 그래도 불의 타이머한테 한번 써봤어요. 선글라스 빌려준 것을 보니 제 이런 표정 제법 쓸만한가 봐요. 많이는 아니고 가끔 써먹을게요~. 근데 타이머 일이라요? 일에 나가지 말라 이런 것일까요? (그런 일로 당신을 막을 수 있을까? 막아도 당신은 나를 두고 갈 텐데. 누구보다 타이머의 무게를 짊어진 사람을 알기에 그런 부탁을 함부로 할 생각은 없었다.) 헬리 사진도 아니고 제 사진을요? 그... 그러세요... (몰래 빼돌려야겠다고 생각하며 일단은 웃어 보인다. 아직까지 다른 타이머들한테 그런 사진 보이기에는 부끄럽다.)
네..! 9구역이면 이건 꼭 먹어봐야 한다는 그런 음식이 있을까요? 아님 헬레네가 좋아하는 음식 먹어보고 싶어요.
헬레네 R. 히페리데:음- 위험한 상황에서 나서지 말라던지? 막내 오빠가 제게 보내는 편지에서 종종 그리 부탁하셨었거든요. 몸을 아끼라고 말이에요. 오빠의 마음도 이해가 가지만, 그래도 막을 수 있는 힘을 지녔는데 위기에 빠진 이들을 모른 체하고 뒤에서 보호만 받고 있을 수는 없으니까요. 아실링은 역시 제 상황을 이해해주시는군요. (고마워요, 하며 카메라에 찍힌 사진을 계속 들여다보았다. 이 순간은 보석마냥 소중한 순간으로 제 심장 안에 자리하겠지.)
저는 웬만한 건 다 좋아하지만, 이곳의 한 가게에서 파는 국수를 정말 맛있게 먹은 기억이 있답니다. 아실링은 어떠신가요? 좋아하시는 음식일까요?
아실링:헬레네가 막내 동생이라 더 그럴 거예요. 어린 나이에 일찍 떨어진 동생이 무서운 괴물들하고 대치한다고 한다면.. 저라도 최대한 뒤에 서달라고 부탁할 거예요. 하지만 당신은 그럴 사람이 아니죠. 조금 숨어도 괜찮았을 텐데... DOT에서 정식으로 임명을 받아야 되겠지만, 저는 아마 당신과 계속 함께 있겠죠. 당신은 세상을 지키세요. 저는 당신을 지킬게요. (다른 이 보호하느라 바쁜 영웅을 보호하기 위해 이곳에 있는 것이라고, 그리 믿는다. 멸망을 막고 이곳에서 당신을 지키겠다고, 그것만이 자신이 사는 이유라고 되새기면서.)
... 헬레네 말을 들으니 갑자기 배고파진 것 같아요. 분명 방금 전까지는 그렇게까지 배가 안 고팠던 것 같은데.. 따뜻한 국물이랑 국수가 먹고 싶어졌어요..! 빨리 국수가게로 가죠!
다양한 사람들과 물건이 오가는 생동감 넘치는 시장입니다.
거리에는 사람들의 목소리와 웃음소리, 상인들의 판매 소리가 어우러져 시장의 활기를 돋보입니다.
시장에서는 다양한 상점과 가게들이 줄지어 있으며
신선한 과일, 야채, 어류, 고기, 양념 등 다양한 물건들이 진열되어 있습니다.
헬레네 R. 히페리데:무척 든든하네요, 아실링. 감사해요. 사실 누군가를 지키겠다고 마음먹는 건 화살이 날아오는 전장의 앞에 서겠다는 뜻이니 결코 쉬운 일이 아닌데……. ……저도 온 힘을 다해서 세상을 지킬 거예요. 그 세상에 살고 있는 아실링도요. (결연한 목소리로 말하며 주먹을 꾹 쥐었다)
(활기 어린 사람들을 헤치며 시장을 돌아본다) 저희는 멸망을 코앞에 두고 있어 긴장되고 경직된 분위기라지만, 여기는 아직 이렇게 평화롭네요. …… 다행이에요. 시민들의 낯에 띄워진 웃음이 곧 저의 기쁨이나 다름없으니. (부드러운 미소를 띄며 사람들을 돌아본다.) 가게는 이쪽이에요, 아실링.
아실링:세상을 지키는 것, 사람 한 명 지키는 것 둘 중에 제 쪽이 더 편한 쪽이죠. 어머... 아. 잊고 있었지 뭐예요. 당신이 지키는 세상 속에 저도 포함되어 있음을. 저 한 명 정도의 무게는 내려놓아도 될 텐데. (다정하기 짝이 없는 사람. 손바닥으로 뺨 살짝 쓸어주고는 그대로 시장으로 앞장서 걸었다.)
평화로움을 유지해서 다행이죠. 지금도 이렇게 시끄럽고 평화로운데, 축제가 다가오면 얼마나 더할까요? 분명 저희랑 다르게 기쁨으로 가득 찰 거예요. (많이 지켜보고 힘내자며 등을 가볍게 두드려줬다. 이어 가게에 들어가서 좌석에 앉아 메뉴를 살펴본다.) 저는 기본으로 먹어보고 싶어요..! 원래 맛있는 것은 딱 기본이 제일 맛있다잖아요!
헬레네 R. 히페리데:어떻게 내려놓을 수 있겠나요. 저는 그 누구도 포기하지 않을 텐데요. 그래도 아실링, 너무 무리하지는 마셔요. (부드럽게 웃으며 가게의 빈 자리에 앉아 메뉴판을 들여다본다) 좋아요. 저도 이곳에서 기본적인 잔치국수를 가장 자주 먹곤 했었답니다. 그러면 잔치국수 두 개로 주문할게요. (종업원에게 주문한다)
아실링:(모두를 지킬 수 없다는 것 정도는 알고 있으면서. 그 짧은 말을 차마 꺼내지 못한다. 생명을 소중히 여기는 헬레네가 그 말을 들으면 얼마나 속상할지 알기에. 그동안 지키지 못한 사람들과, 지키지 못할 것에 슬퍼하는 모습을 아직 보고 싶지 않으니 함구하는 것을 선택한다.) 이곳에는 혼자 오셨나요? 아니면 좋아하는 사람들과 같이?
헬레네 R. 히페리데:(이미 수도 없이 많은 전투에 나갔고, 수도 없이 많은 시체들을 보았다. DOT 관련인들이 휘말려 죽은 것도 다수였다. 하지만 그럼에도 포기할 수는 없다. 희망의 불꽃을 꺼트릴 수는 없으니까. 내 마음을 장작으로 바쳐, 숯이 되더라도 타오르리라.) 주로 가족들과 같이 왔어요. 타이머가 된 이후로는 행적 하나하나를 조심해야 하는 만큼 거의 와보지를 못했었네요. 이 그리운 곳에 아실링과 같이 오게 되다니 무척 기뻐요.
아실링:가족분들과의 추억이 있는 곳이군요. 그런 곳에 저랑도 와주셨다니... 이번 일 끝나고 휴가 받으면 10구역 11구역 꼭 구경시켜드릴게요. 얼마 없는 기억이지만, 저도 당신에게 제 좋았던 기억을 나누고 싶어요. 오늘 아침부터 시작해서 저는 정말 즐거웠거든요. 출발하는 순간부터 가슴이 두근거렸어요. 제 심장도 오늘 여행이 즐거울 것이라는 것을 알았나 봐요. (즐겁다는 것을 숨기지도 못한 체 턱을 괴고 웃다가 테이블에 올려지는 국수 그릇에 다시 자세 바르게 한다.) 헬레네가 맛있다고 한 국수 맛이 어쩔지 기대되네요. 그럼 잘 먹겠습니다..!
헬레네 R. 히페리데:아실링도 제게는 이제 소중한 분이 되셨으니까요. 함께 10구역과 11구역으로 휴가를 갈 날이 기다려지네요! 제가 살던 곳을 소개시켜드리는지라 저도 아실링이 과연 즐겨주실지 조금 긴장을 했었는데, 이리 좋다고 말해주시니 무척 기뻐요. (시종일관 밝은 어조로 말하곤, 제 앞에 놓여진 그릇을 보며 젓가락을 쥔다.) 잘 먹겠습니다. (기대감에 찬 낯으로 한 젓가락 가득 입에 넣었다. 몇 번 우물거리더니 감격으로 눈이 커진다) 아, 정말 제가 알던 그 맛 그대로예요. 너무 감동적인걸요!
아실링:이번 일 잘 끝나면 제가 휴가 달라고 졸라볼게요. 잘하면 봐주실지도 모르죠. 물론 불의 타이머랑 헬레네한테 했던 표정은 사용 못 하겠지만... 노력해 볼게요..! (멸망이니 뭐니 같은 것은 다 까먹은 것 같이 휴가 생각만 하다가 국수 한 젓가락 먹고 표정이 또 달라진다. 이제는 머릿속이 잔치국수로 가득 찬 사람처럼 몇 입 더 맛있게 국수를 먹고 나서야 입을 연다.) 곱빼기로 시킬 걸 그랬나 봐요. 헬레네 말대로 정말 감동적인 맛이에요...! 아. 역시 다음에 휴가에 9구역에 들려서 여기 한 번 더 오는 걸로 해요. 그 이후에 10구역이랑 11구역 가고요. 네? 그러기로 해요~..
헬레네 R. 히페리데:하슬러 원수님께 그 표정 짓는 아실링을 상상했어요. (소리내어 웃어버린다. 이렇게 웃으며 이야기를 나누고 있자면 그저 즐겁고 평화롭기만 해서, 미래의 일은 잠시 잊어도 괜찮을 것처럼 느껴졌다.) 그럼요. 못할 게 뭐가 있겠나요. 제가 추천한 음식을 맛있게 먹어주시니 제가 다 뿌듯하네요! (행복해하며 국수 그릇을 싹싹 비웠다.) 10구역과 11구역에서도 이런 맛있는 식당이 있는지 찾아봐야겠어요.
아실링:헬레네....... 왜 그런 생각을 하셨나요. (온몸에 소름이 짝 돋아 제 두 팔을 껴안는다. 소리 내어 웃는 표정 보고 뭐라 이어 말하지는 못한다. 이렇게 활짝 웃는 것은 앞으로도 보기 드물 것 같다는 생각이 문득 들어서. 멸망을 막아낸 이후에도 이렇게 웃어줄 수 있을까? 아무리 힘든 일이 있어도 곁에서 이 웃음 다시 한번만 더 볼 수 있으면 좋겠다고 여기며 마저 국수 한 그릇 다 비운다.) 찾는 것은 제 몫으로 여겨주세요. 그래야 다음 휴가에 더 의미 있을 테니까요. (이제 슬슬 돌아갈 때가 되었다며 자리에 일어나 헬레네 쪽으로 손 뻗었다.)
헬레네 R. 히페리데:아하하. 휴가 달라고 조른다고 하시니 말이죠. 지금 아실링 표정도 사진으로 찍어 남기고 싶을 정도네요. (가벼운 어조로 장난친다. 당신과 함께 있자면 어릴 적으로 돌아가는 것만 같아. 전투나 진득한 피, 방대하게 쌓인 시신 같은 건 알지 못했던 순수한 어린 시절로. 원래 세계의 헬레네도 아실링과 함께 있을 때 저와 같은 감정을 느꼈을까? 처음 시신들 틈에서 쓰러져 있던 당신을 마주했을 때 느꼈던 강렬한 인력처럼, 서로를 본능적으로 끌어당기는 것만 같은 감각을 느꼈을까. 서로의 성씨가 같을 정도로 가까운 사이였음은 분명해 보였다. 그럼, 언젠가 다시 원래의 세계로 되돌아가는 날도 오겠지. 그때 나는 당신을 말끔하게 보내줄 수 있을까……. 폭풍 같은 상념이 일시적으로 일었다가 잦아들었다.)
좋아요, 덕분에 즐거운 시간이었어요. (눈가를 휘며 내밀어진 손을 기꺼이 잡는다. 어떤 미래가 기다리고 있든, 지금은 눈 앞에 놓인 현재를 붙잡을 따름.)
아실링:시간 내주셔서 감사해요. 텔레미터 사용해도 되는 것을, 제 편의 위해서 비행기도 같이 타주시고... 바쁜 영웅의 시간을 독차지하는 저는 정말 행운아에요. 이렇게 말하면 얄미우려나요? 그렇지만... 저랑 텔레미터가 잘 맞는듯하면서도 안 맞는걸요.. 급한 경우가 아니면 쓰고 싶지 않아요. 속이 반대로 뒤집히는 기분을 좋아하는 사람은 없잖아요...! (변명거리 붙여가며 투덜거린다. 잡은 손에 익숙함을 느끼며 DOT이 마련해 준 전용기에 탑승한다. 많이 움직인 것도 있고, 좀 전에 먹은 잔치 국수가 배불렀는지 졸음이 꾸벅꾸벅 몰아왔다.) 헬레네. 저는 아마 제가 아는 헬리와 영영 만나지 못할 것 같아요. 그때, 게이트에서 본 기억이 그랬어요. 움직이지 않았어요. 내가 불렀는데도... 원래 불러주면 항상 아실. 하고 답해주는 사람인데. ... 그러니까 저는 이곳에서 당신을 지킬게요. 이번에는 꼭.
헬레네 R. 히페리데:무슨 소리세요. 저도 함께 오게 되어서 얼마나 기뻤는데요. 게다가 실제로도 아실링과 함께라서 더욱 즐거운 날을 보낼 수 있었고 말이에요. 전혀 얄밉지 않으니 걱정마세요. (맞잡은 손을 가볍게 앞뒤로 흔들며 걷는다.) 텔레미터는 확실히 적응이 어렵죠. 저도 십분 이해한답니다. 무리하실 필요 없어요. (편안하게 가면 좋은 거라며 전용기에 올라 맞은편에 앉았다. 꾸벅꾸벅 조는 아실링을 흐뭇하게 바라보며 담요를 받아와 어깨에 둘러주다가, 비몽사몽 이어지는 목소리에 멈칫한다.) 그런……. (그 세계에서, 헬레네는 아마도…… 아, 이럴 수가. 게이트에서 나온 헬레네를 보았을 때 당신의 심정이 대체 어떠했을지. 저를 지키겠다는 심정이 너무도 깊이 이해되어 얼음에 찔린 듯 가슴이 아파올 지경이었다.) 네, 그럼요. 부탁드릴게요, 아실링. 함께라면 정말 든든할 거예요.
아실링:빨리 적응 못하는 것에 정말 별별 생각이 다 들어요. 제가 정말 돌연변이거나, 이곳 사람이 아니거나, 아님 그냥 약하거나 해서 그런 건 아닌가 싶어서... (이곳에 왔고, 이곳에 다른 누구도 아닌 헬레네가 있는 이상 도움을 줘야 한다는 것은 거의 피에 새겨진 것과 다름없는 것이었다. 다른 누구도 아닌 자신이 정한 것. 제 기억 깊이 사랑으로 자리 잡은 사람을 돕지, 그럼 누구를 도울까. 발목 잡는 것만 아니길 바랄 뿐이다.) 기억도 어서 찾으려고 노력할게요. 텔레미터 사용법도 빨리 익힐 거고요. DOT은 여전히 마음에 안 들지만, 당신을 지킬 수 있으면 그들이 하라는 대로 다 할 수 있어요. 이번에는 꼭 그럴 거예요. (웅얼거리는 목소리에 옅게 울음이 묻어난다. 등받이에 몸 기댄 상태로 젖은 눈꺼풀 깜빡이며 눈물로 흐릿해진 헬레네 눈에 담는다. 익숙한 실루엣. 바로 손 뻗으면 닿을 수 있는 사람인데 왜 이렇게 마음이 부서지게 아플까. 한번 보낸 이의 장례 한번 제대로 못 치른 것이 마음에 남아 그런 것이라 여기며 졸음 가득한 눈 감는다.
헬레네 R. 히페리데:아니에요. 아실링은 강력한 능력을 지니셨잖아요? 돌연변이라니, 그런 말씀은 마셔요. (아실링의 손을 제 양손으로 부드럽게 감싸듯 잡는다. 게이트에서 나왔던 신화생물 헬레네와 같은 존재일지도 모른다는 가능성을 방심해선 안 된다는 건 안다. 하지만, 이리 착하고 다정하며 상처 입은 모습이 어찌 전부 거짓이리라고 단정지을 수 있을까. 저로서는 도저히 할 수 없었다. 손을 잡으면 똑같은 체온이 전해져 오는데.) 천천히 해나가요. 제가 곁에서 쭉 도와드릴게요.
(긴 시간 함께해 왔을 상대를 잃는다는 건 얼마나 힘든 일일까. 자신과 함께해온 다른 타이머들을 잃는다는 상상만으로도 제 심장이 떨어지는 것만 같은데. 그보다도 더 괴롭고 참담한 일이었겠지. 게다가 영문은 알 수 없어도 새로운 차원에 넘어와 제 이름보다는 미지수로 불리는 일이 더 잦으니. 고초를 많이 겪었겠구나……. 당신의 아픔이 마치 제 것처럼 통증을 준다.) 울지 마세요, 아실링. 이번에는 분명 해내실 수 있을 거예요. (같은 얼굴을 한 이를 다시 만났음은 과연 당신에게 축복일까, 저주일까? 홀로 상념을 되새기며 손 뻗어 젖은 눈가를 빛줄기가 나뭇잎 새로 들어오듯 부드럽게 닦아주었다.) 분명히…… 그러니, 부디 편히 주무세요.
그 많던 구름들도 어둠에 가려져 보이지 않습니다.
하지만 당신은, 그리고 타이머들은 맞설 겁니다.
눈을 깜빡이면, 도로시를 쓸어간 태풍처럼 아지랑이는 흔적도 없고 희고 고운 모래가 누워있을 뿐입니다.
쨍쨍한 태양, 그 아래 선 신의 첫 번째 손가락.
눈부심으로 얼룩진 시야에도 헬레네는 그 탑 표면에 쓰인 글씨를 발견합니다.
헬레네 R. 히페리데:
언어(모국어)
기준치: |
70/35/14 |
굴림: |
56 |
판정결과: |
보통 성공 |
「나는 시작과 끝이오, 알파와 오메가이며 우림과 둠밈이라. 」
「태초의 빛이 모든 것을 밝힐지니 있던 것들은 원래 있어야 할 자리로 돌아갈지라.」
낯선 글귀는 황금의 몸체에 빛처럼 희게 일렁거립니다.
이상하게도 전혀 모르는 글자를 익숙하게 읽을 수 있었습니다.
가만히 읽어보노라면 누군가 헬레네를 부릅니다.
“잊지 마세요, ‘당신들’이 해야 하는 건…….”
귀 기울이지 않아도 목소리의 주인을 알 수 있습니다.
축제의 마지막 날 아침. 이상한 꿈과 함께 예정보다 이른 시간에 기상합니다.
멸망을 앞두고 제1 구역을 파견 나온 것이 어제, 오늘은 드디어 디데이입니다.
옆자리를 돌아보면 아실링은 아직 잠들어 있습니다.
설핏 든 새벽빛은 잠든 얼굴을 비스듬하게 쓸어내립니다.
이 별에 불시착한 존재라는 걸 아는지 모르는지, 고요한 풍경입니다.
어깨를 한 번 뒤척인 아실링이 잠꼬대를 중얼거립니다.
맥락을 알 수 없어 살해 대상도 진정성도 알 수 없지만…….
헬레네 R. 히페리데:(전날, 내내 심장이 폭풍마냥 부산스럽게 요동쳐 일상을 보내기가 퍽 어려웠다. 그래도 평소대로의 루틴을 어그러뜨리지 않기 위해 애써 일찌감치 잠에 들었다가 기이한 꿈과 함께 눈을 뜬다. 그 사막은 뭐였을까? 1구역은 사막과는 거리가 한참 먼 물의 도시인데…….)
(뒤척거리다가 무심코 옆을 돌아보면 아실링이 누워 있다. 아직 이른 시간. 해는 완전히 떠오르지 않았고 어스름한 새벽빛이 낯을 쓸었다. 어쩌면 마지막이 될 평화일지도 모른다. 감상에 사로잡히려던 찰나, 아실링의 입에서 흘러나오는 잠꼬대에 남은 잠도 퍼뜩 달아나는 기분이다. 전부 듣진 못했어도 아실링이 얼마나 험한 일을 겪었는지는 그의 왼쪽 눈만으로도 대강 짐작할 수 있었다. 그쪽 세계의 헬레네가 죽은 일과 관련된 상처였을까?)
(상념을 끝으로, 아실링이 따라 깨지 않도록 조용히 자리에서 일어난다. 악몽을 꾸는 건 아니겠지…….?)
여전히 잠에 푹 빠진 아실링의 입에서 낭만적이지 않은 말이 툭 튀어나옵니다.
기상 시간을 알리는 모닝콜이 천장을 뒤흔듭니다.
아실링:(모닝콜을 듣자마자 눈이 뜨기도 전에 몸부터 반응해 침대에서 일어난다. 감겨있는 눈을 거칠게 비비며 시야를 확인하다가 헬레네와 눈이 마주친다. 이어지는 것은 잔잔한 미소.) 어머.. 일어나계셨군요. 좋은 아침이에요, 헬레네.
헬레네 R. 히페리데:(도밍게즈를 위해서? 대체, 당신에게는 어떤 과거가 잠들어 있는 걸까…….)
네, 좋은 아침이에요. (마찬가지로 옅은 미소로 화답했다.) 혹시 악몽을 꾸진 않으셨나요? 잠꼬대를 하시는 듯해서.
아실링:(익숙하게 침대 옆에 놓인 테이블 위에서 안대를 가져다 착용한다. 멀쩡한 눈 하나로 헬레네를 가득 담고는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는 표정을 짓는다.) 제가 악몽을 꿨나요? 기억나는 게 없는데... 잠꼬대를 심하게 한 모양이군요.. 혹시 저 때문에 깨신 건가요? 오늘같이 중요한 날에 저 때문에 잠 설치신 거면 정말 죄송한데...
오늘 저녁에는 쇼맨십 무대에 참석할 예정이죠.
제1 시에겐 아실링의 존재를 처음 알리는 자리이기도 하니 무게가 남다릅니다.
새로운 타이머, 타이머의 파트너인 카운터, 미지수 X…….
헬레네 R. 히페리데:아니에요. 아실링 때문에 깬 건 아니니 걱정 않으셔도 된답니다. (안심시키려는 듯 얼른 부정한다) 잘 주무셨다면 다행이에요. 그냥, 아무래도 날이 날이다 보니 마음을 편하게 가지려 해도 일찌감치 눈이 떠져서요. (중요한 날이지. 미지수, 아실링이 저의 파트너가 되었단 사실을 처음으로 알리는 날이자 이 도밍게즈의 명운이 결정될 날이니 말이다. 원래라면 매해 이 무대를 어떻게 장식할지, 어떤 식으로 능력을 펼칠지 설레임에 가득 차 이야기하고는 했었는데…… 지금은 그보다는 비상사태가 일어났을 때의 매뉴얼을 머리 속으로 복기하느라 바쁘다.)
(그래도 할 일을 전부 내팽개칠 수는 없겠지. 사람들을 불안하게 만들 수는 없으니, 그 멸망의 순간이라는 게 오기 전까지는 완벽하게 무대 위 타이머로서의 연기를 보여줘야 할 테다.) 아실링이 살던 도밍게즈에서도 매해 건국 축제마다 타이머들이 능력을 보여주고는 했었나요?
아실링:(제1 구역을 순회해야 해서 마냥 늦장 부릴 수도 없었다. 드디어 연구 원복에서 벗어나 DOT이 마련해 준 군복으로 갈아입는다. 아직은 어색해서 옷소매 같은 부분을 이리저리 만지작거린다.) 축제에서 항상 빠지지 않았죠. 시작 때마다 보이는 것이라 준비도 엄청 했었는데.. 이곳도 다름이 없었다고 해서 놀랐어요. 다만 이번에는 예외적으로 무대에 올라가고 나서 쓰는 것이지만요... 저희는 어떻게 할까요? 저는 생각한 것이 하나 있긴 해요.
헬레네 R. 히페리데:(처음 시체들의 틈에서 아실링을 보았을 때에도 이와 비슷한 군복을 입고 있었지. 어쩐지 흐뭇한 미소가 절로 나온다) 이런 쇼맨십 무대는 여기나 거기나 똑같았군요. 어떤 아이디어인가요? 궁금하네요.
아실링:(흐뭇한 미소의 의미를 알아채고 한 바퀴 빙글 돈다. 잘 어울리나요? 하고 짧게 잇는 것도 잊지 않았고.) 하늘을 넓고 얇게 물로 덮어 하늘처럼 연출하는 거예요. 그리고 무게 있는 물방울들로 폭죽이 터지는 모양처럼 만드는 것인데... (이해를 돕기 위해 펜으로 종이에 뭔가를 그린다. 축제 때 빠질 수 없는 폭죽처럼 연출하고 싶은 것인지 여러 그림들이 그려져있다.)
헬레네 R. 히페리데:네. 정말 잘 어울려요. (웃으며 연신 고개 끄덕였다. 막 잠에서 깼을 때의 무겁고 착잡하던 심중이 깊은 산의 옹달샘마냥 맑아지는 것을 느낀다. 아실링과 함께 머무르고, 대화를 나누다 보면 어떤 걱정과 불안도 금세 안개마냥 흩어져 날아가는 것만 같다. 나를 죽게 내버려두지 않을 거라 말하던 당신의 결연한 목소리 때문이었을까. 시선을 도저히 뗄 수 없는 짙푸른 홍채 때문일까. 당신의 수많은 요소가 저에게는 산소가 되는 듯했다.)
이해했어요. 하늘처럼 보이도록 얇은 막으로 물을 두른 뒤 그 위에서부터 물방울이 떨어지면서 폭죽처럼 보이도록 연출하자는 의미죠? 정말 좋네요! 이대로 가면 될 것 같아요.
아실링:역시 헬레네에요. 부족한 설명에도 이해해 주시네요. 그럼 오늘 무대에서 이 모습 보이는 걸로 하죠. (텔레미터까지 챙기며 준비를 다 끝낸다. 안락하기만한 방을 한번 빙 돌아보다가 두 팔 뻗어 헬레네 어깨를 끌어안는다.) 오늘 밤까지는 아무 일 없을 거예요. 그러니 조금은 여유 갖기로 하죠. 준비되셨나요?
헬레네 R. 히페리데:(어깨를 안는 팔에 가만히 제 몸 맡긴다. 이 체온이 점점 익숙해진다. 저는 너무 정이 많고 쉽게 마음을 주어버리는지라 이미 당신에게도 제 마음을 한 조각 크게 잘라 건네고 말았다. 이 이상 내준다면 위험해질지도, 슬퍼질지도 모른다. 하지만 오지도 않은 미래에 겁나며 물러서는 건 헬레네와 어울리지 않는 일이다. 그저 저의 선택이 아픈 비수로 돌아오지 않기를 막연하게 바랄 뿐. 보험은 없다. 눈 앞의 이를 향한 신뢰만이 마음을 연결하는 동앗줄이다. 당신의 날개뼈 위에 마주 제 두 팔을 올렸다.) 네, 저는 준비되었어요, 아실링. (더 원하게 되어 버리면 어쩌지. 살아남아서, 좀 더 오래도록 당신을 끌어안고 싶다고…….)
하지만 둘은 자신이 무엇을 해야하는 지 알고 있습니다.
둘은 오늘의 시작을 알리며 1구역 순회를 나섭니다.
거리에는 멸망을 상상도 하지 못한 사람들이 웃는 얼굴로 오가고,
광장과
골목,
공원으로 흩어집니다.
헬레네 R. 히페리데:사람들의 표정이 좋아 보여서 다행이에요. 좋은 날이죠, 오늘은…….
(원래라면 저도 평소의 책임감이나 중압감은 잠시 내려두고 짧게나마 축제를 즐기는 사람이 되었을 텐데. 지금은 가슴 한구석에서 새까맣게 도사리는 불안감으로 인해 무얼 하더라도 진심으로 즐거울 수 없을 것만 같았다. 자신이 지키고 싶은 사람들의 낯을 유심히 살피는 것으로 만족한다.) 광장 쪽으로 가볼까요?
아실링:축제니까요. 모두가 걱정같은 것은 내려두고 기뻐하는 날이죠. (밤에 있을 일은 생각지도 못하고 그저 기쁨에 젖은 사람들을 살펴본다. 이사람들은 분명...) 이들을 마지막까지 좋게 만들어보는 것이 저희 일이겠죠. 구역을 살펴보는 것도 저희 일이고요. 네, 그곳부터 가보죠.
흰 돌이 깔린 광장. 정중앙에는 커다란
시계탑과
분수가 있습니다.
분침과 초침이 존재하지 않으며, 시침만 존재하는 시계탑.
헬레네 R. 히페리데:(도밍게즈에는 타이머에 관한 것이 아주 많지. 상징도, 건물도…… 이어 분수를 본다)
새파란 장미의 목을 꺾어 던지며, 소원을 비는 행위는 도밍게즈의 흔한 의식입니다.
광장에는 장미를 사고파는 사람들로 북적입니다.
두 사람도 장미를 사서 분수대에 던질 수 있습니다.
헬레네 R. 히페리데:아실링, 저희도 장미를 사서 던질까요? 의례적인 행위라곤 하지만, 그래도 오늘 같은 날은 왠지 이런 미신에라도 기대보고 싶어지네요.
아실링:저도 미신은 믿지 않지만.. (둥둥 떠다니는 장미잎 보다가 입에 호선 그린다.) 그래볼까요? 잠시만 기다려주세요. 제가 장미 얻어올게요. 두 송이면 충분하겠죠? (얼굴이 안 알려진 자신이 구매에도 편할 것이라며 빠르게 자리를 벗어나 장미 두 송이 가져온다.) 자, 이것은 헬레네 것, 이것은 제 것이요.
헬레네 R. 히페리데:어머. (쫓을 새도 없이 빠르게 벗어나는 모습에 눈 동그랗게 떴다가 이내 푸스스 웃으며 한 송이 받아든다.) 민첩하시네요. 고마워요. 그러면…… (푸른 장미꽃을 툭 꺾으며 분수에 던진다. 그리고 눈을 감고 소원을 빈다. 부디, 모든 타이머가 무사히 멸망을 막아낼 수 있게 해 주세요. 신이 있다면, 이 간절한 소원을 들어주세요.)
아실링:(장미꽃을 꺾어 분수대에 던진다. 헬레네 장미가 있는 쪽으로 던진다는 게 좀 멀리 떨어져 아쉬워하던 것도 잠시, 바로 눈 감고 소원 빈다. 기도라고 해봤자 별거 없는 내용이겠지만, 지금은 그런 뻔함에 기댄다. 헬레네를 지킬 수 있게 해주세요. 헬레네의 소원을 이뤄주세요.)
헬레네 R. 히페리데:(이내 눈을 떴다. 분수의 물소리가 맑다. 이 도밍게즈의 앞날도 흐르는 물처럼 맑기만 하다면 좋으련만.)
아실링, 이만 골목 쪽으로도 가 볼까요? (소원을 다 빌 때까지 기다렸다가 말 건다.)
아실링:(소원이 짧아서인가 기도 비슷한 것이 오래 걸리지는 않았다. 눈 뜨자마자 골목쪽으로 몸 돌린다.) 그러죠. 사람 많을테니 조심하시고요.
헬레네 R. 히페리데:그럼 손을 잡고 갈까요? (부드럽게 웃으며 제 손을 살짝 흔든다)
골목은 내내 시끌벅적하고, 맛있는 냄새가 가득합니다.
여러 종류의 소스를 바른 꼬치구이라거나, 과일을 정교한 모양으로 깎아 설탕물을 입힌 사탕,
바람에 흔들리는 색색의 솜사탕, 캐러멜을 입혀 튀겨낸 과자들.
한눈판 사이에 아실링이 어디서 설탕시럽을 씌운 딸기 꼬치를 헬레네 손에 쥐여줍니다.
헬레네 R. 히페리데:아실링, 오늘따라 엄청 동작이 빠르신걸요? (눈 깜짝할 사이에 손에 들린 딸기 꼬치랑 아실링 번갈아보다가 딸기 하나 와앙 하고 입에 넣는다.) 음. 아주 달콤하고 맛있네요! 아실링도 드세요. 아~. (입가에 대어준다)
아실링:사람도 많다 보니 길 잃을 것 같기도 해서요. 이 겉모습으로 미아 방송에서 이름 알리고 싶지도 않거든요. (맛있어하는 헬레네 보며 눈 접어 웃다가 입가에 대어진 딸기 한입 베어먹는다.) 맛있을 것 같았어요. 맛있는 것에 맛있는 것을 뿌렸으니 당연한 것이지만요. (냠냠)
헬레네 R. 히페리데:(받아먹는 아실링을 마치 제가 배불리 먹기라도 한 것마냥 흐뭇하게 바라보다가) 아실링은 또 무얼 좋아하시나요? 받기만 할 수는 없지요. 저도 맛있는 걸 사 드릴게요.
아실링:사탕이 그리 대단한 것은 아닌데... 헬레네가 주시면 받아야죠... (지금 상황에 먹기 좋은 것이 뭐가 있나 고민하다가 전방에 있는 주스가게 발견한다.) 마침 갈증이 살짝 있었는데 저기의 주스가게가 있네요. 수박주스 어떠실까요?
헬레네 R. 히페리데:저를 생각하며 사 주셨으니 저에겐 대단한 사탕이랍니다. (부드럽게 웃으며 주스 가게를 응시한다.) 좋아요, 시원한 수박주스로 갈증을 달래면 딱 좋겠네요. (가게로 걸어가서 수박주스를 두 잔 주문한다)
아실링:(먹어보지 않아도 갈증 같은 것은 한 번에 해결해 줄 것 같은 시원한 수박주스의 자태에 눈 땡그래졌다.) 감사해요. 이 음료면 오늘 하루 하주 힘내서 돌아다닐 수 있을 것 같아요. (나온 주스 컵에 빨대 꽂아서 헬레네 손에 쥐여준다. 자신 것도 챙기는 것 잊지 않았다.)
헬레네 R. 히페리데:저보다는 아실링을 먼저 챙기셔도 되는데. (주스까지 제게 먼저 주는 모습에 마음에 봄비가 내리는 듯하다. 어쩌면 이리 배려심 많고 다정할 수 있는지.) 감사해요. (빨대 꽂아진 주스를 잘 받아들어 몇 모금 마신다. 달고 시원한 액체가 입안을 가득 채우니 기분이 한결 나아지는 듯했다.)
이제는 공원으로 가 봐요. (자연스레 걸음 튼다)
꽃과 나무를 잘 가다듬어 조경이 아름다운 곳입니다.
헬레네 R. 히페리데:이 터널은 언제나 참 아름답네요. (장미 터널 아래를 향해 걷는다.)
은색 아치를 따라 피어난 파란 장미가 유난히 화려합니다.
연인과 함께 손을 잡고 그 아래를 거닐면 사랑이 이루어진다던데.
믿거나 말거나지만, 도밍게즈의 연인에겐 꽤 유명한 설화입니다.
아실링:축제 기념으로 파란 장미 가득하게 꾸민 것일까요? (장미 잎 상하지 않게 조심조심 건들며 아래 지나간다.)
헬레네 R. 히페리데:그렇네요. (터널을 올려다본다.) 연인과 함께 손을 잡고 아래를 거닐면 사랑이 이루어진단 이야기가 유명하죠.
아실링, 이런 상황에 여쭈어도 될 이야기인지는 모르겠지만…… 그래도 한 번쯤은 묻고 싶었어요.
혹시, 원래 세계의 헬레네와는 어떤 관계셨나요? (조심스레 물었다.) 그렇지만, 만약 대답하기 힘드시다면 말씀하지 않으셔도 괜찮아요. 무례하게 굴고 싶지는 않으니까요.
아실링:무례하긴요. 아니에요. ... 헬리와의 온전한 기억은 어릴 때밖에 없어요. 대부분 확실치 않은 파편적인 기억들뿐이죠. 하지만... 그 파편적인 기억들과, 군번줄을 합쳐보면 아마 부부였던 것 같네요. ... 이렇게만 알아주시면 될 것 같아요. 나머지는 제 기억이 성치 못해 제대로 알려드리기도 죄송할 정도라서요.
헬레네 R. 히페리데:(역시 그랬구나. 헬레네 히페리데, 그리고 군번줄에 적혀 있던 아실링 히페리데. 가족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닮지 않은 외모. 선택지를 하나하나 지워가면 남은 답은 사실상 하나뿐이었으니. 결혼할 만큼 사랑했던 이를 잃었다니, 그 마음을 도저히 상상도 하기 어렵다.) 아니에요. 말씀해주셔서 감사해요. (그와 얼굴이 똑같이 생긴 저를 볼 때마다, 당신은 무슨 생각이 들까. 이것만은 차마 물을 수 없었다.)
만약…… 그 세계로 다시 돌아갈 수 있는 기회가 생긴다면, 아실링은 어떻게 하실 건가요? 이런, 어쩐지 전부 곤란한 질문만 드리는 것 같네요.
아실링:돌아갈 수 있다뇨...? (헬리가 없는 세상으로? 속에 담고 있던 말을 입 밖으로 꺼낼 뻔한 것을 겨우 참았다. 비수라도 맞은 듯 차갑게 가라앉은 얼굴로 두 눈을 어지럽게 데굴데굴 굴린다.) ... 아니요. 이곳에 있을 거예요. 이곳에 있게 해주세요. (혼란스러움에 제대로 얼굴을 바라보지 못하고 입구 쪽으로 몸 돌린다.)
헬레네 R. 히페리데:…… 죄송해요. 역시 무례한 질문이었죠. (미지수라 불리는 것보다는 익숙한 사람들이 있는 곳이 더 낫지 않을까 싶었다. 하지만, 자신이 왈가왈부할 문제가 애초 아니지 않은가. 일순 차갑게 굳어지는 낯에 제가 실수했음을 깨닫고 사과한다.) 어떤 미래가 오더라도, 선택은 오로지 아실링의 몫이에요. 절대로 억지로 떠밀거나 하는 일은 없을 테니까요……
(침묵이 무거웠다. 콧속으로 들어오는 장미의 향기를 애써 밀어내려는 듯 고개를 조금 가벼이 내저었다) 저희, 호수를 보러 갈까요?
아실링:... 선택할 수 있게 해주셔서 감사해요. 저는 그것이면 충분해요. (다시 헬레네를 향해 돌아본 얼굴에는 혼란스러워하던 기색은 티끌만큼도 보이지 않았다. 자신도 모르게 차갑게 굴어버린 게 마음에 걸리긴 했나 보다.) 새카맣게 물든 호수라니 직접 눈으로 확인하고 싶네요. 같이 가죠.
캄캄한 호수를 떠다니는 종이 등은 마치 별처럼 희게 빛납니다.
지난 세대, 혹은 그보다 먼 과거의 타이머를 추모하는 흔적입니다.
호수 둘레를 따라 걷다가 어느 순간 아실링의 손을 놓칩니다.
헬레네 R. 히페리데:아실링? (뒤돌아본다. 아까 제가 했던 말 때문에 저에게 토라진 것일까. 사람이 많아 놓치면 찾기가 어려울 텐데……)
거리를 가깝게 둬야하는 둘이기에 헬레네가 주위를 살피면
종이 등을 파는 젊은이에게 붙잡힌 아실링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종이 등을 파는 젊은이: 등 하나 사세요. 얼마 안 해요.
아실링:네…? 등이요? (종이 등보다는 지금 헬레네한테 다가가려고 노력중이다. 정중히 거절하고 돌아가려고 노력한다.)
종이 등을 파는 젊은이: 타이머한테 받아먹은 게 얼만데 이 정도도 투자 못 해줍니까?
아실링:(이사람이? 하는 눈으로 젊은이 보다가) 저 아세요?
종이 등을 파는 젊은이: 거, 젊은 분이 너무 야박하시네. 모처럼 축제잖아요.
헬레네 R. 히페리데:
심리학
기준치: |
60/30/12 |
굴림: |
75 |
판정결과: |
실패 |
일견 타이머를 향한 보은처럼 포장했지만, 뻔한 상술에 불과합니다.
이 이름을 팔아먹으면 아무래도 지갑이 쉽게 열리는 법이죠.
변죽 좋은 성격에 장사꾼 특유의 뻔뻔한 말투가 특징입니다.
대목을 맞아 종이 등을 만들어 팔고 있습니다.
적당히 아실링을 상대로 호객하던 소렌은 헬레네가 등장하면 멈칫합니다.
소렌: 아, 아아. 타이머랑 아는 사이셨구나.
쉽게 물러서는 소렌의 어깨 너머로 수레 안을 살펴볼 수 있습니다.
완성된 등과 펼쳐진 종이, 얇고 가벼운 살, 재단용 날붙이 따위가 보입니다.
헬레네 R. 히페리데:아실링, 여기 계셨군요. 떨어지지 않아서 다행이에요. (얼른 아실링에게 다가가 다시 손을 맞잡는다.) 아무래도 저는 타이머인지라 직접 등을 살 일은 별로 없지만요. 저 색이 다른 등은 뭔가요?
타이머를 위한 등은 순백이지만, 이 등들은 선명한 쪽빛입니다.
하늘로 날려 보내는 풍등인지 안은 텅 비어 있고 짤막한 종이 꼬리가 달려 있습니다.
헬레네 R. 히페리데:
관찰력
기준치: |
65/32/13 |
굴림: |
22 |
판정결과: |
어려운 성공 |
꼬리 한쪽에는 이름이 빼곡하게 적혀 있습니다.
소렌: 아, 이건 신화생물 희생자들을 기리는 등.
소렌은 색이 다른 등을 끌어오며 덤덤하게 설명합니다.
소렌: 타이머의 추모식과 달리 일반 희생자들은 흐지부지되니까.
구역에서 나름 장례를 치르고 추모한다지만, 아무래도 잦은 일이고 적지 않은 수인 만큼 하나하나 기리기는 어려운 편입니다.
그는 짬이 날 때마다 자신이 아는 이름이라도 추모하고 있다고 말하며 쓸쓸한 얼굴을 내비칩니다.
헬레네 R. 히페리데:(비록 타이머의 이름을 이용하는 장사꾼이라지만, 추모하고자 하는 마음만큼은 진실되어 보였다. 게다가 어차피 타이머와 관련된 물건인데 타이머의 이름쯤 쓴다고 해도 뭐 어때, 그런 마음도 들었다.)
그럼…… 저 푸른 등 하나 주시겠어요?
소렌: 이 등? 이건 파는 건 아닌데... 어디에 쓰려고? (주지 못할 것처럼 보이지는 않지만 의도를 궁금해한다.)
헬레네 R. 히페리데:아아, 그렇군요……. 별다른 의도는 없었어요. 신화생물에 희생된 이들을, 저도 기리고 싶어서요. 항상 모두를 지키고자 애쓰지만, 지키지 못하는 이들이 나오고 마니까요. (저도 모르게 쓸쓸한 낯이 되었다.)
소렌: ... 왜 그쪽이 그런 표정을 하는 거야. 안 줄 수 없게 만드네.
두 손 두 발 다 들었다며 소렌은 두 사람에게 풍등을 건네줍니다.
소렌: 타이머라면 잘 사용하겠지. 의미있게 사용해주쇼. (마저 장사를 위해 물건들을 지고 떠난다.)
헬레네 R. 히페리데:감사해요. (두 손으로 공손히 풍등 받아들고 인사한다. 정말 값도 안 받고 떠나시는구나. 역시 실은 착한 분이었던 거야.) 아실링. 괜찮으시면 같이 날리시겠나요?
아실링:아까는 저한테 나쁘게 굴어놓고.. 저러면 욕도 못 하겠네요. (멀어저가는 뒷모습 멍하니 보다가 뭔가 생각난 것처럼 입 벌어졌다.) 좀 더 의미 있게 써보는 것은 어떨까요? 저희 무대에서 능력이랑 같이 날려보는 거예요. 그럼 모두가 지켜볼 수 있잖아요. 어떤가요?
헬레네 R. 히페리데:그래도 심성이 나쁜 분처럼 보이진 않아요. 안 그런가요? 결과적으론 떨어지지 않고 다시 잘 만났으니까요. (속없이 미소하다가, 깨달음 얻는다) 그런 아이디어는 미처 생각도 못했네요. 너무 좋아요! 추모에도 좀 더 힘이 실리겠죠. 타이머는 상징성 때문에 호수에 등을 올리는 게 연례행사까지 될 정도지만…… 희생된 이들에게 향하는 관심은 상대적으로 적으니까요.
아실링:(아까 그 사람 때문에 잡혀서 떨어진 건데... 차마 그 말은 하지 못하고 웃기만 한다. 의미 있는 물건까지 얻었으니 그러려니 하고 넘기려고 한다.) 저희 무대 때 와주시길 빌어야겠네요. 가장 멋진 무대랑 같이 추모도 하기로 해요. 그리고.. 이번 일로 다른 사람들도 이런 일에 관심을 더 가져주셨으면 좋겠어요.
구역 어디서든 고개를 들면 발견할 수 있는 건축물.
소위 신의 손가락이라고 불리는 열네 가지 상징.
인류의 불가침영역인 제0구역과 제13구역에도 얼핏 드러난 실루엣은 그야말로 인력으론 설명하지 못할 불가사의.
헬레네 R. 히페리데:이번 행사로 그리 될 수 있다면, 정말로 좋겠네요. (무대의 빛을 받으며 하늘 위로 날아갈 풍등을 잠시 머릿속으로 그려본다.)
(근처에 기상 관측소가 있나?)
불분명한 기원과 달리 정확히 열네 개가, 모든 구역 정중앙에 세워져 있다는 점이 특히나 신화에 신빙성을 부여합니다.
그 건축물들을 가만 바라보노라면 아실링은 어딘가 불편한지 인상을 구깁니다.
무언가 떠오를 듯 말 듯, 머릿속이 복잡하게 헝클어집니다.
헬레네에겐 조금도 특별하지 않은 풍경이지만……. 아실링에겐 방아쇠였던 걸까요?
아실링:두통이.. 잠시만요. 금방이면 사라질 거예요. (하지만 시간이 한참 지나도 두통은 사그라지지 않고, 기억까지 떠오르지 않아 곤란함을 잔뜩 표출한다.) 왜인지 모르겠네요... 이대로 통증에 시달리느니 차라리 주변을 환기할까요? 마침 저 골목에 예뻐 보이는 게 보이는 것 같은데.
헬레네 R. 히페리데:괜찮으세요, 아실링? (신의 손가락이 당신의 잃어버린 기억 어느 지점과 어떤 연관이 있었던 걸까? 갑자기 두통이라니…… 걱정스럽게 아실링의 낯을 살핀다.) 우선은 좀 쉬는 게 좋겠어요. 골목에 무언가 있나요? (그를 천천히 부축하며 골목으로 다가가본다.)
아실링:오늘 같은 날에 걱정 끼치게 한 것 같아 죄송해요. ... 별거 아니겠죠. 잠시 쉬면 괜찮을 거예요. (한쪽 손으로 여전히 이마 짚은 상태로 헬레네 도움받아 골목으로 향한다.)
근처 골목의 담벼락을 잔뜩 뒤덮은 벽화를 발견합니다.
마치 데칼코마니처럼 양쪽 담벼락에 똑같은 그림이 두 번 그려져 있습니다.
헬레네 R. 히페리데:(웬 벽화지? 똑같은 그림이라니…… 살펴본다)
해와 달이 뜬 하늘과 끝을 알 수 없는 넓은 바다, 희고 고운 모래사막, 얼어붙은 땅과 바람이 머무는 들판.
신의 손가락이건, 최초의 시곗바늘이건, 혹은 그 둘 다일 기둥들이.
헬레네 R. 히페리데:
교육
기준치: |
70/35/14 |
굴림: |
33 |
판정결과: |
어려운 성공 |
양쪽으로 펼쳐진 두 쪽의 하늘, 두 개의 해, 두 개의 달, 두 폭의 바다와 두 면의 풍경.
샅샅이 살펴봐도 다른 점이나 숨은 요소는 눈에 띄지 않습니다.
동화였던 것 같기도 하고, 만화였던 것도 같고…….
헬레네 R. 히페리데:이전에 읽었던 이야기가 떠오르네요. 태초의 세상에는 해도 달도 두 개씩 걸려 있었다는 이야기였죠. 두 영웅이 각각 활을 겨누어 해와 달을 하나씩 쏘아 떨어뜨렸다고요. (벽화를 물끄러미 바라보며 이야기했다.)
아실링:제가 알고 있는 도밍게즈 신화랑 비슷한 느낌이 나네요. 아니면 또 다른 구전 신화인 걸까요?
헬레네 R. 히페리데:신화와는 조금 다를 수도 있을 것 같아요. 사실 정확히 어디에서 읽었는지는 잘 기억이 나지 않네요. (그리곤 자신이 아는 도밍게즈 신화를 이야기한다.) 아실링이 알던 신화도 이것과 같나요?
아실링:(헬레네가 도밍게즈 신화를 들려주자, 의아한 얼굴로 마주 본다. 마치 자신이 알고 있는 것과 다르다는 것처럼) 그런 내용이었나요? 제가 알고 있는 신화 이야기 들려드릴게요. (그리고 자신이 아는 도밍게즈 신화를 들려준다.)
헬레네 R. 히페리데:같은 도밍게즈지만, 신화는 다르군요. (과거 혹은 미래의 도밍게즈라 전해져내려오던 이야기가 바뀐 것일까? 아니면 정말 다른 차원이기 때문에?) 신의 손가락과 신의 기둥. 아실링이 알고 있는 신화는 열네 개, 제가 알고 있는 건 열두 개네요. 결국 이곳의 손가락이라고 할 법한 기둥은 열네 개가 맞기는 하지만요.
아실링:이곳에 와서 가장 비슷하다 느낀 부분이 그것 때문이었죠. 신화도 비슷하다고 이번에 느끼게 되었지만... 완전히 같지 않다는 것에 놀랍네요. 대체 제가 있던 곳과 이곳은 뭐가 다른 것일까요?
비슷한 이야기는 명백히 다른 결말에 다다릅니다.
헬레네 R. 히페리데:
정신
기준치: |
68/34/13 |
굴림: |
19 |
판정결과: |
어려운 성공 |
문득, 정말로 불현듯 아실링이 알고 있는 모든 사실을 부정하고 싶단 충동이 입니다.
그건 전부 잘못됐다고, 다른 별은 떠올리지 말라고, 오직 이 별의 이야기가 전부라고.
헬레네 R. 히페리데:(그래선 안 돼. 아무리 아실링이 원래의 세계에 돌아가고 싶지 않아한다고 해도 내가 그래서는 안 된다. 대체 무슨 권리로? 불쑥 치솟는 충동을 억누르려 허벅지 옆에 붙은 주먹을 꾹 쥐었다.) 아실링의 세계에서는 신화생물의 위협이 그리 크지는 않았나 봐요. 전투가 별로 없었다고도 말씀하셨었죠. 아주 많은 것들이 비슷한데 왜 신화의 결말은 다른지 궁금하네요.
아실링:... 헬레네? 괜찮으신가요? 혹시 몸이 안 좋으신 걸까요? 그렇다면 곧 있을 무대 시작 전에 상태 확인이라도 제대로 해봐야 할 텐데. (꾹 쥔 손이 떨리는 것을 보고 손등에 제 손 조심스럽게 올린다.) 그런 것 자체를 몰랐어요. 어쩌면... 잃어버린 기억 속에서는 있을지도 모르겠지만요. 아마 그 차이 때문일지도 몰라요. 빨리 기억이 되돌아와야 할 텐데.. 아쉽기만 하네요.
헬레네 R. 히페리데:아, 아니에요. 저는 아무렇지도 않아요. (닿아오는 당신의 손길에 뒤늦게 정신을 차리고 표정관리를 한다.) 그보다 아실링, 머리가 아픈 건 좀 어떠신가요? 쉽게 나아지질 않았잖아요. 기억상실증에 관한 것 때문에 머리가 아프신 걸지도 모르겠네요…… 우선은 이만 돌아갈까요?
아실링:아무렇지 않기는요... 임시로 만들어둔 의무실이 무대 근처에 있었죠? 같이 가서 진료받죠. (표정이 달라져도 여전히 걱정되어 침울함 숨기지 못한다.) 가서 저랑 같이 확인해 보기에요.
헬레네 R. 히페리데:저는 정말로 아픈 곳은 없는데도요. (하지만 당신이 저를 걱정하는 게 곧 제가 당신을 걱정하는 것과 맞먹겠지. 금세 납득하고 고개 주억인다) 그럼, 함께 가요.
모든 구역 점검이 완료되었고, 푸른 하늘에 어느순간 어둠이 깔립니다.
임시 의무실에서 진찰을 받은 둘은 긴장으로 인한 스트레스라는 진단을 받습니다.
깊은 진료야 더 할 수 있지만, 시간이 얼마 남지 않은 둘에게 내려진 어쩔 수 없는 진료였습니다.
헬레네 R. 히페리데:알겠습니다. (간결하게 무전에 답하고, 아실링의 손을 꾹 잡는다.) …… 올라갈 때가 된 것 같네요. 준비되셨나요, 아실링?
아실링:기억 속에서도 이미 한번 해본 것 같아요. 그렇다고 긴장한 것이 달라지지 않지만... 그럼요. 같이 가주세요. (한 손에는 헬레네 손을, 다른 손에는 풍등을 쥔 상태로 의무실에서 나간다.)
희고 고운 바람과 함께 쏴아아, 큰 파도가 출렁이자 줄에 매달린 것들이 일제히 몸을 흔듭니다.
화한 꽃냄새가 휘몰아치면 도밍게즈의 달은 휘영청 밝은 얼굴을 내밉니다.
하늘에 뜬 달이 너무 밝아서, 어디로 걷든 그 점을 향해 가는 것 같을 정도로.
그 밤, 걷는 길은 왜 그렇게 길게만 느껴졌던가요.
이 연례행사가 수도가 아닌 제1구역에 열리는 건 도밍게즈 역사상 처음입니다.
오르내리는 흰 차양이 비스듬하게 하늘을 가립니다.
가장 어두운 밤, 세상 모든 것이 가라앉는 시간이 다가오면.
“나 너무 기대돼. 실물을 보는 건 처음이야.”
무대 아래는 구경 온 사람들로 인산인해를 이룹니다.
빈 자리는커녕 무대 뒤편까지 웅성거리는 소리가 닿을 지경입니다.
밤하늘의 별처럼 무수히 많은 존재가…… 이 너머에서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는 사실을 새삼 실감합니다.
아실링:대피하다가 인명 사고가 발생하는 건 아니겠죠…? (슬쩍 커튼 틈새를 훔쳐 봤다가 초조하게 중얼거린다. DOT이 마련해준 새 군복을 차려 입은 폼은 다시봐도 그럴싸하지만 어딘가 어색하다는 느낌도 든다.)
헬레네의 무전기를 점검하던 연구원이 아실링을 안심시킵니다.
명찰을 확인하면 이름을 알 수 있습니다. ‘레인’.
레인: 도밍게즈 국민은 어릴 때부터 수시로 게이트 훈련을 받습니다.
대피 중의 인명 피해를 방비하기 위해 군도 경찰도 긴장하고 있고요.
그러니 다른 걱정일랑 저희에게 맡기고, 여러분은 앞만 보세요.
타이머만 할 수 있는 일은 타이머가, 그렇지 않은 일은 모두가. 그런 겁니다.
그리고는 헬레네와 아실링에게 비타민 음료를 하나씩 쥐어줍니다.
헬레네 R. 히페리데:고마워요, 레인. (비타민을 받아 몇 모금 마신다.) 레인의 말대로예요.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아실링. (사실 저라고 해서 어찌 불안하지 않겠는가. 하지만 부정적으로 생각해봤자 될 일도 안 된다. 무엇이든 긍정적으로 바라보는 것, 그것이 헬레네의 모토였다.)
앞으로 어떤 일이 닥쳐오더라도 함께 힘을 모아 이겨내요.
아실링:시작 전부터 걱정이 앞서긴 했죠.. 네, 모두 힘 모아서 같이 이겨내요. 걱정 마시고 하시고자 하는 일에 집중하세요. 저는 그 옆에서 당신을 지킬 테니.
옆에서 둘의 이야기를 듣던 레인은 마이크 박스까지 허리춤에 걸어준 뒤 손을 털고 일어섭니다.
레인: 게이트가 열리면 본부에 보고 송신한 후, 즉시 출동하십시오.
게이트 발생 구역이 확인되면, 다른 구역의 타이머들은 지시받은 위치에서 대기하며 주변을 경계합니다. 새로운 게이트가 확인되지 않으면 본부의 지시를 따르면 됩니다.
이후에는 군이 경계 태세를 넘겨받기로 협의했습니다.
준비되셨나요? 그러셔야 할겁니다.
헬레네 R. 히페리데:(결연한 낯으로 고개 끄덕인다.) 확인했어요. 준비되었습니다.
(앞으로 어떤 일이 나를 기다리고 있더라도 침착하게 대처해야만 한다. 몇 번이고 되풀이하여 다짐했다.)
둘의 끄덕임 이후 10시를 알리는 카운트 다운이 시작됩니다.
인트로를 알리는 음악, 스피커가 뱉어내는 MC의 목소리, 열렬한 환호성이 거대한 파동이 되어 백스테이지 바닥을 쿵쿵 울립니다.
제0시부터 순서대로 등장해, 모두가 기대했을 쇼맨십을 펼치고, MC와 가벼운 대화를 나눈 후 대기합니다.
매 해 빠지지 않는 이벤트였으니 이젠 대본 없이도 척척 해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아실링의 등장이 추가되긴 했지만, 그건 MC가 맡을 테니까요.
헬레네의 몫은 거창한 쇼맨십과 예측불허의 멸망을 위한 애드리브입니다.
시끄러운 열기 속에, 옆사람의 존재감은 뚜렷하게 달아오릅니다.
들뜨기 시작한, 혹은 긴장하기 시작한 호흡을 간신히 가다듬었을 때,
무대에 오르기 직전, 한 발 물러섰던 레인은 충고를 덧붙입니다.
레인: 게이트가 열리거든……. 절대로 뒤돌아 보지 마십시오.
눈앞의 상황에 발목이 붙잡혔다간 더 큰 대가를 치러야 할지도 모릅니다.
헬레네 R. 히페리데:(어떻게 그럴 수 있나요. 내 뒤에 내가 지키고자 하는 세상이 있을 텐데.)
(하지만 소리는 본심과 다르게 순순히 붙잡혀 나왔다.) 그리할게요.
(아실링의 손을 한 차례 꾹 잡았다 놓는다. 동시에 그와 시선을 맞춘다.) 저희 힘내봐요.
아실링:(헬레네와 다르게 레인의 말이 계속 마음에 남는지 손이 잡히기 전까지 레인을 바라본다. 고개 끄덕임 이후 헬레네가 잘 아는 미소를 지으며 무대 쪽으로 몸을 돌린다.) 당신과 함께라면 없던 힘도 생길 거예요. 잘 부탁드릴게요.
난세의 영웅은 환호와 찬양과 박수세레를 향해 전진합니다.
세계 멸망 디데이에 울려퍼지는 팡파레는 숨 막히게 웅장합니다.
마법의 주문이라도 되는 것처럼 사람들은 당신의 이름을 연호합니다.
시선 일부는 의문을 담아 아실링에게로 향합니다.
사람들 위로 가득히 물이 퍼져나가고, 산호초처럼 물들이 꽃을 피웁니다.
이어 비눗방울 같은 소리와 함께 폭죽처럼 터져나갑니다.
그 모든 이름을 증명하는 권능에, 관객 일동은 시선을 빼앗깁니다.
기회를 놓치지 않고 스크린 너머의 MC가 포문을 엽니다.
도밍게즈가 가장 사랑하는 타이머가 드디어 이 자리에 섰군요. 오, 그리고 새로운 얼굴을 데려오셨네요.
운명의 파트너를 만났다고 들었어요. 설마 결혼 발표는 아니죠?
헬레네 R. 히페리데:(지금까지는 완벽했다. 능력을 펼치고 풍등을 날리는 순간순간, 사람들의 열기에 저도 모르게 고양되어 취할 것만 같았으나 냉정한 현실이 그를 차갑게 이끈다. 완전히 몰두할 수 없도록. 그래도, 아직은 사람들에게 웃어줄 수 있어 다행이다. 이렇게나 부족한 사람이지만, 나를 영웅으로 보아주는 사람들이 있음에 순수한 기쁨을 느낀다.)
겨, 결혼 발표 같은 건 아니구요! (의례적인 인사를 하다 MC의 질문에 놀라 손사래친다.)
아주 소중하고 기쁜 만남이랍니다. 비슷한 군복을 입으신 걸로도 눈치채실 수 있지 않으려나요?
(힘을 주려는 듯 아실링의 손에 제 한 손을 올려둔다.)
아실링:(관중들의 시선이 익숙하지 않아 내내 헬레네만 보고 있다가 손에 올려진 따뜻함에 뻣뻣함이 조금 풀렸다.) 헬레네도 참... (소곤..)
관중들을 기다리게 하는 것도 예의는 아니겠죠!
신사숙녀 여러분. 이 자리를 빌어 기쁜 소식을 전하고자 합니다.
타이머의 파트너, 미지수 아실링입니다!
들뜬 목소리 이후 여전히 헬레네의 손을 잡은 상태로 아실링이 일어나 고개 숙입니다.
타이머와 함께 있을 때 더욱 강력한 시너지를 발휘하는 새로운 이.
헬레네 R. 히페리데:부디 기쁘게 맞이해주세요. 도밍게즈에 큰 힘이 되어줄 분이랍니다. (손을 맞잡은 채 정중하게 고개 숙였다.)
MC 메이: 와하하!! 보세요! 이리 사이가 좋으십니다!
자 모두 박수를!
도밍게즈는 한층 더 안전해질 겁니다. 타이머와 카운터의 보호 아래!
또 다른 주연의 등장에, 관객들은 어안이 벙벙한 얼굴로 무대 위를 바라봅니다.
어떤 반응도 터져 나오기 전에 누군가 외칩니다.
헬레네 R. 히페리데:(한순간에 표정이 굳어 재빠르게 주변을 둘러본다. 어디지?)
인파 사이로 손가락이 튀어나오고, 관중은 사냥감을 쫓은 맹수처럼 잽싸게 그 궤적을 뒤쫓습니다.
목표 지점은 제1구역의 손가락, 바로 그 위의 게이트입니다.
그 위에 난 문이 벌어질수록 가로등 불빛은 애처롭게 깜빡거립니다.
외우주의 소용돌이가 불길하게 휘몰아치며 완벽한 어둠을 담금질합니다.
똬리를 튼 게이트는 기지개를 켜듯 사방으로 찢어져 제1구역의 하늘을 물들입니다.
눈 깜빡할 사이 무대 차양을 뒤덮는 거대한 그림자가 드리우고,
「제0구역, 게이트 생성 확인. 위치는 오벨리스크 상공. 전례 없던 규모입니다.」
「제3구역도 게이트가 등장했습니다. 세, 세계수 상공입니다!」
「제11구역은 예언의 탑 상공에 열리고 있습니다. 계속 확산하는 중입니다.」
헬레네 R. 히페리데:신의 손가락 위……?! (1구역의 우연이 아니었단 말인가. 신의 상징이나 다름없는 곳에 게이트가 나타나다니. 이건 꼭…… 작정하고 하는 신성모독이자, 도밍게즈에 신화생물이 제대로 전쟁을 선포하기라도 하는 것 같다. 이것이 외우주의 신. 아우터 갓의 위용이라는 것일까. 심장이 거칠게 맥동한다. 침착함을 찾아야 해. 침착함을.)
다들 진정하세요! 게이트를 보지 말고 대피소로 질서있게 이동하세요! (큰 목소리로 외치며, 아실링을 돌아본다.) 어서 저곳으로 이동하죠!
아실링:(쉽게 깨질 평화임을 알았지만, 직접 눈으로 확인하는 것과 생각했던 것은 비교도 할 수 없이 다른 것이었다. 많은 인파에 눈을 떼지 못하다가 헬레네의 말에 겨우 정신을 차리고 게이트에 집중한다.) 텔레미터 쓰기 싫었는데.. 어쩔 수 없네요..!
공포 영화의 클라이맥스에나 어울릴 법한 배경 음악으로 서막을 연 게이트는 빈틈없이 여백을 점령합니다.
제1구역을 넘어, 옆 구역의 하늘을 침범하고, 그곳의 게이트와 만나 경계를 잃고 온전한 하나가 되어서.
도밍게즈 전역을 거느릴 만큼 거대한 게이트의 등장입니다.
헬레네 R. 히페리데:
SAN Roll
기준치: |
69/34/13 |
굴림: |
49 |
판정결과: |
보통 성공 |
(하늘을 덮을 만한 게이트라니. 오히려 너무나도 커진 게이트 앞에서 머리가 차분해지는 기분이었다. 아무리 커다랗더라도, 아무리 흉악한 신화생물들이 쏟아져나오더라도 내가 할 일은 하나. 도밍게즈를 지키는 것. 그것뿐이다.)
(아실링의 손을 잡고, 침착하게 텔레미터를 사용한다.)
게이트와 가까운 곳으로 이동한 둘은 같은 것을 바라봅니다.
이 순간, 헬레네는 다른 말로는 표현할 수 없는 압도적인 신의 강림을 목도합니다.
날카로운 피리 소리가 뇌리를 파고들면 관자놀이를 못질하는 격렬한 고통이 찾아옵니다.
팽창하고 축소하길 반복하며 불규칙하게 꿈틀거리는 위족은 주변을 맴도는 행성을 때려 부수고 산산조각 내며 짜증을 일삼습니다.
정중앙에서 몸부림치는 혼돈의 핵과 눈이 마주치는 순간, 맥이 쭉 빠집니다.
손끝이 식는 감각이 등골에 선연하게 고입니다.
헬레네 R. 히페리데:
SAN Roll
기준치: |
69/34/13 |
굴림: |
14 |
판정결과: |
어려운 성공 |
섬세하게 깎아낸 보석에 새파란 하늘이 일렁거리는 듯한 환각을 봅니다.
헬레네 R. 히페리데:(행성을 신경질 수준으로 깎아내고 부수는 거대한 혼돈. 사악한 우주, 그 자체…… 아무리 산전수전 겪어 온 영웅이라 할지라도 미지의 공포 앞에서는 한풀 꺾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절로 다리에 힘이 풀리려 하는 찰나, 반짝- 빛이 떠오른다. 소중히 받아 간직했던, 아실링의 눈 색을 닮았다고 하였던 펜듈럼이 빛난다.)
(결국은 타인을 향한 이타적인 마음이 빛을 발한다. 배려와 사랑과 이해가 승리에 추를 싣는다.)
(무너질 수 없어. 무너져서는 안 돼.)
(창을 강하게 말아쥔다. 위부터 아래로 강하게 호선을 긋듯 내리친다.) 제 1시의 타이머, 헬레네! 지금 여기에서, 도밍게즈를 지키기 위한 싸움을 시작하겠습니다.
이 몸 부서지는 한이 있더라도 멈추지 않겠습니다. 제가 받은 사랑을 지키기 위해. 봄빛처럼 따스한 마음이 이어질 세상을 위하여.
눈앞의 적은 광활하고, 등 뒤의 지켜야 할 것들은 연약하기만 합니다.
권능으로도 감히 대적할 수 있을지 감이 오지 않습니다.
군의 인솔을 따라 도망치는 사람들이 보입니다.
그리고 당장 도피 행렬을 쓸어버릴 듯 한껏 젖힌 위족도.
이대로라면 무대를 벗어나지도 못하고 몰살당할 겁니다.
헬레네 R. 히페리데:(창을 휘젓자, 물길이 날카로운 칼날이 되어 창공으로 떠오른다. 인위적인 밤이 만들어졌다 하나 사파이어 펜듈럼은 저에게 새파란 하늘을 보여주었다.) 아실링, 힘을 주세요! (저의 파트너와 함께 만들어내었던 강력한 기술을, 위족을 향해 단번에 내리쳤다.)
미스틸테인
기준치: |
100/50/20 |
굴림: |
48 |
판정결과: |
어려운 성공 |
피해: |
42 |
도피 행렬에 채 닿기 전에, 신의 어깨 중 하나를 찢어발깁니다.
시작을 알 수 없는 피리의 음계가 비명처럼 날카롭게 울부짖습니다.
볼 수 없는 눈동자, 백색 동공, 끊임없이 폭발하는 핵도 주춤할 일격입니다!
파편에 꿰뚫리거나 위족에 터져나가거나 갈라진 땅, 무너진 물건에 삼켜진 시체들.
어쩌면, 방금 구한 이들도 채 몇 걸음을 떼지 못한 채 죽어 나자빠질지 모릅니다.
행렬을 따라가던 소녀 한 명이 힘껏 외칩니다.
인간은 형편없는, 최악의 상황에도 타인을 걱정하곤 합니다.
당신의 그 마음을 받았으니, 최선을 다해 힘낼게요. (돌아보지는 않았으나, 그는 이 상황에서도 입꼬리를 올려 호선을 그렸다.)
전조 증상이 끝나 위대한 옛것이 완전히 강림합니다.
게이트를 열고, 우주를 뒤집어 깐 것처럼, 상상할 수 없는 캄캄한 굶주림이 도밍게즈를 삼키려 아가리를 찢습니다.
모든 영원의 중심에서 부글거리는 근본적 혼란.
그것은 아무도 그 이름을 감히 입에 담지 못하는 무한한 신격.
그 신격을 수호하듯 크고 작은 신화생물 5마리가 뒤따릅니다.
블랙홀만도 까마득한데 지긋지긋하네, 누군가 질린 목소리로 이죽거립니다.
헬레네 R. 히페리데:(저 신화생물들까지 신경쓸 여력이 없다. DOT의 군대가 힘을 내주길 바랄 뿐. 일격 하나하나를 신중하게 꽂아야만 한다. 최대한 민간인들에게 가는 피해를 줄여야 하니까.)
(다시금 창으로 물을 가득 모아 건물 가까이에 가려 하는 위족을 향해 칼날마냥 내리쳤다.)
파도의 창
기준치: |
100/50/20 |
굴림: |
45 |
판정결과: |
어려운 성공 |
피해: |
32 |
아실링:(가시덤불 모양처럼 물을 엮어 그물 같은 형태를 만든다. 위족의 살을 뚫고 붙잡아두길 바라며 양손 뻗는다.)
파란(波瀾)
기준치: |
100/50/20 |
굴림: |
13 |
판정결과: |
극단적 성공 |
피해: |
30 |
외우주의 신:
위족
기준치: |
25/12/5 |
굴림: |
34 |
판정결과: |
실패 |
피해: |
8 |
도로 블록 세 개가 통째로 꺼지고, 그 위에 세워져 있던 빈 차량 30대가 싱크홀 아래로 떨어집니다.
거친 재앙과 맞서 싸우노라면 주위는 폐허가 되어가고 있습니다.
도피 행렬은 아주 약간, 끄트머리만 남긴 상태입니다.
「여기는 본부, 여기는 본부. 타이머 전원 응답하라.」
헬레네 R. 히페리데:(숨을 몰아쉰다. 아무리 막으려 해도 완전히 피해를 막아낼 수는 없구나.) 제 1시 타이머, 헬레네. 응답합니다.
「현재 도밍게즈 상공에 등장한 신격의 정체를 파악했다.」
「도시의 파괴는 무시하고 중심부로 파고들도록.」
군인, 경찰, DOT의 부서 등, 이 일대에는 아직 사람들이 대기하고 있습니다.
도시의 파괴를 무시하겠다는 건 그들의 안전을 보장하지 않겠다는 뜻입니다.
문득 무대에 오르기 전 들었던 당부가 떠오릅니다.
“게이트가 열리거든……. 절대로 뒤돌아보지 마십시오.”
“눈앞의 상황에 발목이 붙잡혔다간 더 큰 대가를 치러야 할지도 모릅니다.”
헬레네 R. 히페리데:(레인의 당부를 상기해야 하는 순간이 이토록 빨리 다가올 줄이야.) 아직 1구역의 피난이 완료되지 않았습니다! 위족을 포기하면 민간인의 피해가 더 늘어나고 말 거예요.
헬레네 R. 히페리데:(도밍게즈를 구한다는 거시적인 시야에 의거해 대피하지 못한 시민들을 포기해야만 하는가. 한 명이라도 더 안전하게 대피할 수 있도록 위족에 산발적인 공격을 가해야만 하는가. 하지만 위족을 막으려 하면 핵에 권능이 집중되지 못할 테고, 아자토스를 몰아내는 데까지 더 오랜 시간이 걸리겠지. 결론적으로 도밍게즈가 피해를 입는 시간은 더 길어질 뿐…….)
(찰나의 순간 머릿속으로 복잡한 가능성이 수십 개가 스친다. 저울의 무게를 따진다. 저울 자체를 지키고 싶었는데. 어느 것이 더 중할지 경중을 논해야만 한다니…….)
(절망적이다. 다른 어떤 것보다도, 신화생물의 등장보다도 자신이 필연적으로 어떠한 생명을 포기해야만 한다는 사실이 더 괴로웠다.)
(이를 악문다. 혈향이 고였으나 이미 발밑에 깔린 죽음의 냄새가 짙어 눈치채지도 못했다.) 핵으로, 향하겠습니다…….
(돌아볼 수 없다. 돌아봐서는 안 된다. 발목이 잡혀서는 안 된다. 나아가야만 한다는 사명을 지닌 걸음이 얼마나 무거운지. 그는 창을 쥔 채 중심부를 향해 파고든다.) 아실링. (절망과 우울이 짙게 묻어나는 소리로 간신히 제 파트너만을 불렀다.)
아실링:(두 가지 선택지 중 가장 그가 원하지 않을 것을 고르자 겨우 멀쩡한 눈에 슬픔이 가득 찬다. 군이라면 냉정하고 현명한 선택이라 말할 것이다. 하지만 당신이라면, 사람들을 사랑하는 당신이라면 그리 말을 못 하겠지. 그 결정을 내릴 때 얼마나 속으로 얼마나 괴로워했을까. 그것은 감히 그 누구도 쉽게 입에 담지 못할 것임이 분명했다.) 헬레네. (팔을 끌어당겨 와락 끌어안고 뒷머리를 쓰다듬는다. 이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당신이 금방이라도 부서질 것 같아서.) ... 이번에는 제가 앞장서게 해주세요. 당신은 저를 따라와 주시는 거예요. 알겠죠? (그러면서 텔레미터를 손에 든다.)
헬레네 R. 히페리데:죄송해요. 이런 모습을 보여서……. (당신의 품에 안기자 왈칵 눈물이 차올랐다. 저에게 조심하라고 외쳤던 소녀는 무사히 피했을까? 제발, 시신으로 만나는 일만큼은 없기를.)
그리고 고마워요. (기댈 수 있게 해줘서 고마워요. 소맷자락으로 눈가를 슥슥 쓸어냈다.)
아실링:고맙긴요. 지금 당신의 마음을 이해 못 하는 사람이 어디 있겠네요. 그리고 저는 이게 제 할 일이니까요. 당연한 거예요. (어쩐지 안쓰럽다 싶어 계속 눈가를 쓰다듬다가 이마에 가볍게 입 맞춘다.) 준비되셨나요. 연습이야 해봤지만 이렇게 긴장한 상태로 텔레미터를 사용해 보는 것은 처음이라서요.
헬레네 R. 히페리데:저 역시 도밍게즈를 위하는 건 당연한 일인데. 그런데도, 뒤를 돌아보지 않고 나아가는 게 어째서 이리도 무겁고 괴로운 걸까요. 아무도 잃지 않고 지킬 수 있는 방법은 정말 없는 걸까요. (이마에 와닿는 촉감에 애써 닦은 눈물이 다시금 터질 듯했다. 감정을 갈무리하려 심호흡을 하며, 창을 다시 한 번 세게 거머쥐었다. 손 안에 감기는 차가운 금속의 느낌이 저를 현실로 데려오는 듯하다.) 네. 준비되었어요. 이동하죠.
외우주의 신은 도밍게즈 전역에서 동시에 등장했습니다.
끝을 가늠할 수 없을 만큼 거대한 체구는 공포를 자극하지만, 딱 하나 다행인 점이 있다면 어디서든 핵에 접근하기 쉽다는 것입니다.
그 아래 도움닫기에 쓰기 좋은 디딤돌이 하나.
제1구역의 손가락 꼭대기를 밟고 뛰어오르면 핵까지 아슬아슬하게 사정거리에 들어옵니다.
하지만, 타이머와 카운터가 시간에 얽매이는 것만큼 어울리지 않는 일도 없습니다.
시간을 따르는 자가 아니라 시간을 다루는 자니까.
시간을 좌표 삼아 공간을 뛰어넘는 방법은 이미 우리의 손아귀에 있습니다.
아실링:
지능
기준치: |
75/37/15 |
굴림: |
41 |
판정결과: |
보통 성공 |
눈을 뜨면 아득하게 멀어진 제1구역의 풍경이 고스란히 발아래 있습니다.
성한 구석이 없는 도시는 장난감이라기보단 홍수에 휩쓸린 개미굴처럼 처참한 꼴입니다.
시민들의 대피를 돕느라 거점을 세우고 방어 사격에 집중 중인 군인들도 보입니다.
도피 행렬의 꼬리는 간신히 도시를 빠져나갔지만, 바리케이드를 채 철수하기도 전에 위족이 다시 내리꽂힙니다.
아실링:아래 보지 마세요. 지금 저희가 집중해야 할 것은 따로 있으니. (망설일 시간이 없다는 걸 짐작한 사람처럼 헬레네의 손을 끌어당긴다. 아래에서 들리는 비명이며 굉음에 신경 쓰지 않을 리 없었다. 하지만 자신이라도 이렇게 냉정한 모습을 보여야지 상냥한 당신이 자신 때문이라도 따라와 줄 테니까.)
헬레네 R. 히페리데:…… 네. 아래쪽은 보지 않을게요. (의식적으로 고개를 든다. 자신이 지금 신경써야 할 것은 1구역의 모습이 아니다. 어떻게든 핵을 꿰뚫고, 도밍게즈를 집어삼키려 하는 괴물을 내쫓는다. 지금 자신이 몰두해야 하는 임무는 그것 하나뿐. 자신에게 세뇌를 건다.) 공격하죠, 어서요! (제 집중력이 흐려지기 전에 서둘러야만 해.)
외우주의 신은 지척으로 다가가자 한층 더 위압적으로 군림합니다.
어쩌면 생명체가 아니라 블랙홀에 가까울 존재.
그저 존재하는 것만으로 세계를 집어삼킬 재앙.
당장이라도 무릎 꿇고 목숨마저 상납해야 할 것 같은 절대적인 격차…….
무전 너머로, 하슬러 원수가 다짐을 묻습니다.
헬레네 R. 히페리데:저건 신이 아닙니다. 저런 것을 신이라 불러서는 안 됩니다. (울음의 흔적이 채 지워지지 않아 먹먹한, 그러나 다짐과 결의에 찬 목소리가 답한다.)
세상을 멸망시키러 군림한 악(惡)일 뿐.
저는 이 자리에서 악을 물리칠 것입니다.
이 자리에 모인 이들이 해야 할 일은 한 가지입니다.
헬레네 R. 히페리데:(지금까지 그 어떤 적도 자신을 이렇게 불태우지 못했다. 동시에 이렇게 냉정하게 만들지도 못했다. 세상을 해치는 악한 존재를 향한 적의가 시뻘건 불꽃을 날름거린다. 도밍게즈를 지키고 평범한 일상과 행복을 되돌려주어야만 한다는 현실감이 고드름마냥 차갑게 심장을 관통한다.)
(수많은 물을 그러모은다. 지금껏 이토록 거대한 공격은 시도해본 적 없었다. 과거 어떤 영웅이 먹히는 순간까지 포기하지 않았듯, 모든 최선을 쥐어짜 날카로운 수십 개의 칼날을 만들고, 비처럼 쏟아지는 순간 그 모든 칼날을 하나로 합쳐 거대한 검으로 화한다. 네 심장을 가를 것이다.)
선의(善意)
기준치: |
100/50/20 |
굴림: |
95 |
판정결과: |
보통 성공 |
피해: |
130 |
시간이 내어준 권능은 추락을 모르는 궤도에 올라타, 빛의 속도로 가속하며 모서리를 뾰족하게 깎고…….
모든 것의 시초이자 종말인 한 점을 꿰뚫습니다.
새하얀 빛이 정확한 위치에 꽂히는 것을 눈이 먼저 확인하고
그러나 몇 번이고 눈을 깜빡여도 외우주의 신격은 여전히 그 자리에 드리워있습니다.
꿰뚫었다고 생각한 자리에는 상흔조차 남기지 않은 채,
아자토스는 모든 타이머의 권능, 인류의 필살 일격마저 집어삼켰습니다.
신의 건재를 목격한 사람은 전원 이성 판정(0/1D5)합니다.
아실링:
SAN Roll
기준치: |
30/15/6 |
굴림: |
66 |
판정결과: |
실패 |
헬레네 R. 히페리데:
SAN Roll
기준치: |
69/34/13 |
굴림: |
73 |
판정결과: |
실패 |
헬레네 R. 히페리데:
rolling 1d5
=
3
목숨을 걸어도 맞설 수조차 없다는, 난생처음 겪는 무력감이 쓰나미처럼 몰려옵니다.
최악은 언제나 최악이라고 생각할 때 찾아오는 법.
여태 새카맣기만 하던 아자토스의 전신이 새하얗게 변하더니, 그 안에 든 모든 행성을 게워내기 시작합니다.
헬레네 R. 히페리데:
회피
기준치: |
45/22/9 |
굴림: |
76 |
판정결과: |
실패 |
본능적으로 몸을 날리긴 했는데, 허공을 잘못 디뎠는지 그대로 굴러떨어지고 말았습니다.
아프다는 생각도 사치스러울 정도로 위태롭게 추락하는 동안 귓전을 스친 별똥별이 먼저 지면을 터트리고, 기둥을 무너뜨립니다.
폭발의 화마가 등으로 느껴지고 죽는다. 실감한 순간,
가까스로 지면에 낙하하기 전, 헬레네를 붙잡은 아실링이 크게 한 바퀴를 구릅니다.
몇 마디 멀쩡한 땅은 겨우 두 사람을 받아냅니다.
온몸의 관절이 욱신거리고 근육이 비명을 질러댑니다.
재수 없게 파편에 찔렸는지 장갑이며 군복에 축축하게 피가 뱄습니다.
제1구역의 손가락에 등을 기대고 앉아 있습니다.
기둥은 외부의 충격을 견디지 못하고 밑동만 남긴 채 무너졌고, 아실링도 기운이 없는지 고개를 반쯤 떨궜습니다.
아실링:아.. 아하하… 이거 더럽게 아프네요.
다시 보면 시곗바늘은 아니고, 아주 날카로운 잔해입니다.
왼쪽 가슴께. 늑골과 갈비뼈, 심장이 들어 있을 지점입니다.
왈칵 흘러넘친 피가 기둥에 칠해지고, 바닥까지 차근차근 적십니다.
가물가물한 눈으로도 아실링은 당신을 바라봅니다.
“아마도 저는……. 당신을 구하러 왔던 것 같아요.”
그 사이, 칠흑 같은 어둠을 도로 갖춰 입은 아자토스는 신격을 한층 부풀립니다.
아무도 가르쳐주지 않았는데 확신할 수 있습니다.
헬레네 R. 히페리데:(신음을 뱉으며 제자리에서 구른다. 그대로 죽는 줄 알았는데, 이번에도 아실링이 저를 또 구했다. 저는 당신에게 도움만 받네요…… 이 정도 부상은 익숙하니, 아프지 않은 척 자연스레 고개를 들며 말하려 했다. 당신의 가슴팍을 뚫고 튀어나온 시곗바늘을 보기 전까진.)
아, 아…… 아실링! (순간 모든 고통이 잊혔다. 비명을 지르며 아실링에게로 정신없이 뛰어가 주저앉았다. 수도 없는 임무에 파견되며 수도 없이 시신을 봐 온 헬레네는 단번에 직감했다. 심장이 있을 부분을 정확히 관통했다. 치명상이다. 피가 너무 많이 흘러. 이대로라면. 삽시간에 스쳐가는 냉정한 현실 파악. 그리고 울부짖는 이성.)
안 돼요. 아, 안 돼요……. 어째서, 어째서 당신이. (집중을 잃지 말았어야 했는데. 내가 떨어져서, 아실링이 나를 구하려다가, 회선이 이리저리 터지고 합선된 것처럼 사고가 흐름을 잃고 날뛰었다. 의식도 하지 못한 사이 참으려 하던 눈물이 시야를 흐렸다.) 이렇게 되려고, 라니……. 싫어요. 이 세계에 계속 있으시겠다고 했잖아요. 이런 끝은 싫어요. 안 돼. 안 돼! 9시의 타이머, 없나요? 제발 이리로 와 주세요, 제발. 제발! (처절하게 울부짖는다. 혼돈이 유발하는 거대한 소음에 묻혀 들리지도 않을, 너무도 작고 여린 외침이었다.)
아실링:바보 같은 사람... 당신은 꼭 현명하다가도 이런 바보 같은 짓을 했지요. 그런 모습은 꼭 제 앞에서만 보여줘서, 그게 정말로 기뻤는데. (오늘은 왜 이리도 마음이 아픈 건지. 흐려지는 시야 사이로 보이는 것은 제게 손을 뻗은, 언제나 눈부시던 등 발을 가진 여자의 실루엣. 다른 사람이라는 것을 알아도 이렇게 겹쳐보는 자신을 알면 당신은 나를 미워할까? 실없는 생각과 함께 웃음과 피가 입가에서 흘러나왔다.) 여기 올 시간에 다른 것을 하지 그랬어요. 몇 가지 더 있을 텐데.. 도망치는 방법도 있고, 아직 멀쩡한 이들과 함께 포기하지 않는 방법도 있잖아요. 아, 그래도 마지막에 당신이 있으면 좋을 것 같긴 해. (편하지 못하겠지만, 마지막까지 눈에 담을 수 있다면 이것도 괜찮지 않을까? 흘러나가는 피로 인해 산소가 부족해지는 것인지, 점점 생각조차 멍해진다. 끝까지 자신이 좋은 생각만 하게 되는 것이었다.)
헬레네 R. 히페리데:어떻게 그래요. 당신이 저를 구하려다 다치고 말았는데. 저 때문에…… 저 때문에 죽게 될지도 모르는데 어떻게 제가……. (강물처럼 눈물이 흐른다. 쉴새없이 떨어지는 눈물을 모아 당신의 상처를 틀어막을 수라도 있으면 좋으련만. 함부로 잔해를 뺄 수도 없으니 지혈을 하기도 어렵다. 상비하고 다니는 붕대를 빼내기는 했으나 꼭 타이머가 된 지 얼마 지나지 않았을 때 임무를 나갔던 과거처럼 손이 덜덜 떨린다.)
(실은 이미 알고 있다. 뒤를 돌아보아야 할지 앞을 향해 걸어가야 할지 고민했던 방금 전의 상황처럼 답은 이미 명명백백하게 주어져 있다. 그런데도 사실에서 도망치고 싶다. 부질없음을 알면서도 붙잡고 싶어. 이토록 가혹한 현실이 존재한다니. 얼굴 하나 모르는 시민들의 시신을 목도할 때에도 가슴이 아렸건만, 어느덧 제 안에서 소중해진 이가 죽어가는 순간은 말로 표현하기 어려울 정도의 고통이 심장을 후벼파는 것만 같다. 서럽게 흐느끼며 피범벅이 된 손으로 당신의 손을 꾹 마주잡았다.) 곁에 있을게요, 제가, 곁에…….
아실링:무슨 소리예요. 저를 살린 것은 당신이었는걸요... 그동안 저 혼자 생각을 해봤어요. 너덜너덜한 기억을 안고 온 제가, 정말 생존했다고 볼 수 있었는지요. 사람은 상실을 견디고 성장한다지만, 저는 무엇을 상실했는지도 기억하지 못하니까요. 이런 제가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정말 많이 고민했어요. 근데 그런 저에게 의미를 부여해 준 것은 당신이에요. (나를 살아 숨 쉬게 만들어줘서 고마워요. 다 죽어가는 중에 이런 말을 했다가는 당신은 더 슬퍼하겠지. 손가락 하나 까딱할 수 없는 상황에서도 이상하리만큼 웃음이 나왔다. 그래 이왕이면 웃는 모습이 마지막이면 좋겠지. 당신에게도 그래야 할 텐데.)
이렇게 될 줄 알고 있었어. 나는 어쩌면 당신을, 헬리, 헬레네라는 사람을 처음 만나는 순간부터 알고 있었을지도 몰라요. 그 어느 세계에서든지 당신이라면 사랑할 것임을. 당신이랑 눈을 마주친 순간부터 이렇게 될 줄 알았어. (우연이 아니라 필연이라고. 비록 그것이 이렇게 막을 내리게 될 줄은 몰랐지만.) 돌부리에 걸려 넘어졌다고 울 나이는 아니죠? 이번에도 그런 거예요. 그냥.. 당신한테 잠깐 힘든 시기가 온 거야. 금방 일어설 거예요. 언젠가는 지금 이 순간도 그랬었지.. 하고 생각할 수 있는 날이 올 거예요... 그러니, 너무 메여있지 말아 주세요. 그게 지금의 제가, 아실링의 부탁이에요.
헬레네 R. 히페리데:함께, 장미 아치 터널을 걸어가면……. 사랑이 이루어진다고 했었는데. (문득 그 터널이 떠올랐다. 나도 주마등을 보기라도 하는 건지. 심정만으로는 이미 죽음을 코앞에 둔 것처럼 참담하였으니 아주 틀린 건 아닐지도 모른다. 당신을 잠깐이나마 신화생물과 비슷한 위험한 이일지도 모른다고 의심했던 자신이 참을 수 없이 미워졌다. 저를 위해 몸을 아낌없이 던져 끝내 치명상을 입어두고도 저를 탓하거나 원망하기는커녕 저를 위로하고 있는 사람이라니. 아아, 신이 기적처럼 문을 열어주어 나에게 찾아온 인연인 줄 알았건만 이리도 빠르게 앗아가는구나.)
소중한 사람을 잃는 건 싫어요, 아실링. 아직 서로의 애칭 한 번 불러주지 못했는데……. (구원의 동앗줄마냥 꼭 잡은 손에서 점차 힘이 빠져나가는 것이 느껴진다. 그것이 싫어 더 힘을 주어 감쌌다.) 이런 걸 딛고 일어나야만 하는 게 영웅이라면, 정말로 영웅이란 건 너무나도 아프고 힘든 것 같아요. 힘을 지닌 이는 흔히 행복할 거라고, 모든 걸 가질 수 있으니 빛 속에서 기쁠 거라고 생각하지만……. 동경하거나 질투하는 이들은 알까요? 빛은 어둠이 있어야만 존재할 수 있다는 걸.
(그런데도, 이 아픔마저 딛고 넘어가는 것이 진정한 영웅이라 불리울 수 있는 것이겠지. 쉬이 얻을 수 있는 사랑과 명예라는 건 존재하지 않으니까. 그는 숨이 넘어갈 듯 흐느끼면서도 결국 고개를 주억이고 만다.) 아실링의 부탁, 똑똑히 들었어요. …… 쉽지는 않겠지만 힘내 볼게요. 무너지지 않고 일어설 수 있도록 애쓸게요. (저 멀리로 굴러떨어진 창을 시야로 좇는다.) 그래도 지금만은 당신의 마지막을 지킬 수 있게 해주세요.
끌어당기는 중력이 머리 위에서, 발아래에서 번갈아 요동치니 몸을 가누기 어렵습니다.
휘청거리지 않으려면 무엇이든 붙잡아야 할 것 같습니다.
한때는 도밍게즈의 상징이었던 기둥은 이제 당신의 어깨에도 채 미치지 못하는, 몽당연필이 되어버렸습니다.
헬레네가 무심코 손을 대면 아실링의 피로 젖어 있던 부러진 손가락에 헬레네의 피가 덧칠해집니다.
모래가 떨어지는 소리와 이 별과 이별의 경계.
초봄의 건조한 바람을 타고 낯선 장미 향기가 흘러들고 사방이 트인 곳에서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려옵니다.
철제를 두르고 피어난 새파란 장미는 기적과 불가능의 상징.
헬레네 R. 히페리데:(이 문 소리. 아실링을 처음 만나기 전에도 들었다. 번개처럼 고개를 든다. 근원을 확인했다.)
그 장미 향기는 있어선 안 되는 것에게 있어야 할 곳으로 가는 길을 안내합니다.
모든 별은 제자리를 찾고 어긋난 시간선은 다시 둘로 갈라집니다.
취한 것처럼 비틀거리던 신격도 열린 우주의 틈새로 돌아갑니다.
비디오테이프를 거꾸로 되감는 것처럼, 아자토스의 가장 긴 위족과 배행하던 신화생물들이 모두 떠나자
하늘은 언제 그랬냐는 듯 수술 자국 없이 매끈하게 이어집니다.
「아, 아자토스가 돌아갑니다. 게이트가 완전히 닫혔습니다!」
「새로운 게이트가 열릴 조짐은 보이지 않습니다.」
무전 속 목소리들이 차근차근 상황을 정리하는 사이 아실링의 형체는 점점 흐릿해집니다.
아마 이대로 사라져, 헬레네의 도밍게즈에는 흔적도 남기지 않고.
먼 시선으로 푸른 장미 아치를 보던 아실링이 후회막심한 유언을 남깁니다.
아실링:제가 있어야 할 곳으로 가나보네요... 헬레네. 저번에 제 부탁 하나 들어주신다고 하셨죠. 기억나세요?
헬레네 R. 히페리데:어떻게 이런……. (눈앞에서 펼쳐지는 광경에 당황하여 말을 잇지 못한다. 눈물로 온통 젖은 얼굴을 피 묻은 군복으로 닦아내었다. 흐리던 시야가 또렷해져도 정경은 변함없다. 도밍게즈를 침탈하고 유린하던 아우터 갓은 사라졌다. 무전 소리에 현실로 돌아온 것처럼 서둘러 다시 눈 앞의 이에게 고개 돌렸다. 흐려져 간다. 나의 파트너가.)
네. 기억해요. 말씀해주세요. 무엇이라도 들어드릴 테니, 제발요. (떠나가지 마세요.)
아실링:(제가 있어야 할 곳으로 돌아가는, 이곳에서 영영 사라지는 몸을 느낀다. 이렇게 사라질 줄 알았으면 멋진 척이라도 했을 텐데. 숨 한번 내쉬기 힘든 상황에 나지막하게 원망 섞인 헛웃음 짓는다. 몸과 시간마저 제 편이 아닌 상황. 그럼에도 해야 할 말은 하고 떠나줘야 하겠지. 하고 싶은 말들은 전부 뒤로 보내고, 해야 할 말을 겨우 전한다.)
“이번엔, 나를, 만나면, 안 돼요…….”
눈을 감기도 전에 아실링의 형체가 고운 모래, 그보다 작은 우주 입자로 흩어집니다.
이 별에 있어선 안 되는 것들은 모두 왔던 곳으로 돌아갔습니다.
헬레네 R. 히페리데:이번엔……. (망연히 주저앉은 채 사라져가는 당신의 말을 곱씹는다. 한 손으로 감쌌던 아실링의 뺨의 촉감이 사라져간다. 손끝에 닿았던 온도가 점차 흔적을 잃어간다.) 만나지 말라니, 그게 무슨……. (왜요? 어째서 그런 부탁을 하시나요? 이미 여러 번 만나기라도 한 것처럼. 당신 때문에 제가 해 입거나 다친 것도 아닌데. 대체 왜. 의중을 알 수 없는 부탁을 곱씹는 사이에도 눈물은 뺨을 타고 흘렀다.)
(푸른 눈동자가 제 홍채를 닮은 색을 지닌 장미 아치로 굴러간다.)
새벽빛을 받아 환히 도드라진 그 철제문 너머에는 물안개가 자욱한 도시가 펼쳐집니다.
창문마다 장식된 파란 장미, 천공을 조각내는 빨랫줄과 총총 매달린 색동 우산들.
축제가 끝난 직후의 외로운 풍경 속, 홀로 선 사람은 익숙한 뒷모습을 보여줍니다.
일곱 살쯤은 어려, 되려 헬레네와 또래로 보이는 그는 사납게 달려드는 틴달로스의 사냥개를 상대하고 있습니다.
수적 열세지만, 차근차근 적을 해치우는 모습은 흠잡을 데 없습니다.
새벽인 걸 감안해도 이상할 만큼 고요하더라니, 단순히 축제가 끝나고 퇴장한 것이 아니라 대피령에 달아난 모양입니다.
과거인지 미래인지 혹은 또 다른 우주인지도 알지 못하는데.
당장 너머에 펼쳐진 저곳은 가깝고 선명하게 느껴집니다.
한 발자국만 내디디면 우주라도 건널 수 있을 것처럼.
헬레네는 아치문을 건너갈 수도, 그러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헬레네 R. 히페리데:(아. 이 광경을 본 순간 헬레네는 많은 것을 이해했다. 저에게 넘어온 아실링도 이 비슷한 광경을 보았겠구나. 아니, 어쩌면 완벽히 같은 광경이었을지도. 그러면 나는 아실링과 똑같은 대우를 받을까? 똑같이 미지수라 불리게 되어, 디자인이 조금은 다른 군복을 입고 함께 싸우게 될까.)
(나는 아실링에게 목숨을 빚졌다. 심지어, 이 도밍게즈마저도 빚졌다. 신화생물들이 빨려들어간 이 아치 관문이 그냥 나타난 건 아닐 테지. 아실링이 왔기 때문에 나타난 것이리라는 직감이 강하게 들었다. 아실링은 모두를 구하고서 목숨을 내놓았는데, 내가 어떻게 저 뒷모습을 지켜보고만 있을까.)
미안해요. 무슨 부탁이라도 들어드리려고 했는데……. 당신이 왜 만나지 말라고 했는지는 이해할 수 없었어요. 오직 그 뜻만은. (중얼거리며 자리에서 일어난다. 바닥에 굴러떨어진 창을 주웠다.) 그러니까, 이해하기 전까지만 제 마음대로 행동할게요.
저도 당신을 사랑할 수밖에 없다는 걸 깨달을 것 같아요. (희미하게 웃었다.)
(그는 이번에야말로 세상을 돌아본다. 인류를 위협하던 가장 큰 적이 사라졌다. 신화생물들이 빨려갔으니 이 도밍게즈는 안전할 것이다. 내가 사라지더라도 또 새로운 타이머가 태어나겠지. 신이 고른 영웅은 언제나 열넷이었으니. 망가진 세계는 차근차근 재건될 테고, 난세를 막아낼 영웅들은 사라지지 않으리라.)
(엉망으로 부서진 1구역을 바라보다가, 무전기를 꺼내어 내려둔다. 텔레미터는 챙겼다. 혹시나 어떻게 쓰일지 모르니까. 어떤 준비도 되지 않았지만 차분하게 모든 준비를 끝마친 여행자가 된다.)
헬레네 R. 히페리데:저는 이제 저 세계를 구하러 갈게요.
그간, 고마웠고 감사했어요. 모두들. (들리지 않을 목소리를 중얼거리고, 헬레네는 아치문 너머로 발을 디뎠다.)
헬레네 R. 히페리데:(구한다. 그게 타이머의 일이니까.)
헬레네의 도움으로 사냥개의 송곳니가 아슬아슬하게 아실링의 뺨을 할퀴고 지나갑니다.
아실링은 예상치 못한 간섭에 놀라 고개를 번쩍 치켜듭니다.
헬레네 R. 히페리데:
심리학
기준치: |
60/30/12 |
굴림: |
5 |
판정결과: |
극단적 성공 |
처음 보는 사람을 향한 생경함이 도드라집니다.
그 눈에 서린 감정은 곧 다채로운 색으로 변화합니다.
피투성이인 꼴을 보곤 걱정하고, 비슷한 군복을 보고 또 놀라고.
아실링(?):방금 그쪽, 권능을……. 아, 일단 괜찮으세요? 많이 다치신 것 같은데.
대화가 다음 단락으로 이어지기도 전에 틴달로스의 사냥개가 틈을 놓치지 않고 달려듭니다.
당신을 향한 걱정도 호기심도 눈 녹듯 사라지고, 달려드는 숙적을 향한 적개심으로 눈꼬리에 날이 섭니다.
아실링이 권능을 휘둘러 마지막 남은 한 마리를 해치우자 곧 주변에는 사체만 수두룩하게 쌓입니다.
눈앞의 아실링은 ‘어리다’라는 절대적인 시차를 제외하면 아실링과 동일 인물이 분명해 보입니다.
머리카락 한 올부터 눈동자의 한 겹까지 빼다 박았습니다.
어린 아실링이 입은 군복은 타이머의 것과 배색만 다르고 나머지는 똑같은 디자인입니다.
아실링은 정말로 과거, 혹은 미래의 도밍게즈에서 온 걸까요?
아실링(?):어디서 오신 거예요? 분명히 인기척은 없었는데.
헬레네 R. 히페리데:(아실링이 나의 도밍게즈로 넘어와 나를 봤을 때 이런 감상이 들었겠구나. 이렇게나 똑같이 생겼다니…… 자신이 알던 것보다 앳된 모습. 흉터도 안대도 없다. 그토록 힘겨운 전투를 겪고 왔지만 어쩐지 웃음이 날 것 같았다.)
음, 글쎄요. 저는 도밍게즈에서 왔답니다.
괜찮다면, 당신의 파트너가 되고 싶어요.
아실링(?):네...? 그게 무슨.... 목숨 구해주신 것은 감사해요. 하지만 잠시만요. 상부에 연락해야해서.
연락이 온 것이 맞는지 급하게 문전기를 듭니다.
간단한 대화를 나누며 주위를 둘러보면 역시, 제1구역과 건축 양식부터 지리적 환경까지 유사하기 짝이 없습니다.
헬레네 R. 히페리데:
관찰력
기준치: |
65/32/13 |
굴림: |
4 |
판정결과: |
극단적 성공 |
헬레네가 아는 한, 이쯤 메이데이 일가가 있어야 하는데 보이지 않습니다.
“도밍… 게즈요? 그런 나라는 처음 들어보는데.”
이편과 저편에 걸린 쌍둥이 행성이 비로소 같은 궤도로 공전하기 시작하는 순간이었습니다.
회전하는 방향을 따라 운명의 시곗바늘은 움직이고, 두 사람은 다시 한번 서로에게 형언할 수 없는 끌림을 느낍니다.
그건 마치, 온 우주가 쏟아지는 감각이었습니다.
그날 우리는 도밍게즈의 쌍둥이 행성을 발견했다.
쌍성이 멸망을 불러오는 불길한 징조인 줄 아직 몰랐던 때였다.
아자토스를 송환하고, 헬레네는 우주 맞은 편에 걸린 쌍둥이 행성 지구에 착륙합니다.
카프 (GM):
rolling 45d6
=
164
금번 피해를 모두 복구하는 데엔 164년이 소요됩니다.
인명 피해도 적지 않은 수지만, 세계 멸망은 막아냈습니다.
살아남은 사람들은 새로운 내일을 맞이하러 대피소 바깥으로 나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