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은 것, 나무가 아닌 것, 썩은 동아줄을 꼬아 세운 기괴한 괴물들은 다닥다닥 달라붙어 이 숲으로 밀려듭니다.
염소 발굽을 닮은 다리가 우악스럽게 바닥을 때려대고, 가지마다 달린 입들이 흰 이빨과 불쾌한 점액질을 내보입니다.
아실링 펜들레엄:헬리, 괜찮나요? 방금은 정말 큰일 날뻔했어요. (다급하게 헬레네 뒤로 향해 등을 잡아준다. 이어 다친 곳이 없나 확인까지 한다.)
헬레네 R. 히페리데:(아슬아슬하게 몸을 굴리자마자 옆쪽으로 발굽이 내리꽂힌다. 자칫하면 큰 부상을 입을 뻔했구나. 이미 수도 없이 전투에 임해 봤지만서도 등골까지 쭈뼛 소름이 돋았다.) 네, 다행히 돌조각에 조금 긁힌 것 말곤 괜찮아요. 걱정 끼쳐 미안해요. (창을 꾹 쥔다.)
아실링 펜들레엄:다치지 않은 것만으로도 다행이에요. 지금은 한 명 한 명의 힘이 절실하니... 물론 그것이 아니어도 당신의 건강은 상태가 가장 중요하지만요. (긁힌 작은 상처에도 안타까운 눈빛을 보내다가 바닥에 한발 쿵 딛는다.) 상황이 더 심각해지기 전에 마저 해치워보죠. 준비되셨나요?
헬레네 R. 히페리데:그럼요. 전투에서 저희의 전력이 얼마나 중요한지 모르지 않아요. (고쳐쥔 창을 앞으로 내밀었다. 예리하게 뻗은 날이 날선 소리와 함께 공기를 갈랐다.) 네, 준비되었어요. 그럼- (단번에 물의 모양을 뾰족하게 만들어 괴물들을 향해 내리꽂았다.)
미스틸테인
기준치:
25/12/5
굴림:
18
판정결과:
보통 성공
피해:
48
아실링 펜들레엄:헬리가 이렇게 열심히 하는데 저 혼자 손가락 빨고 있을 수는 없죠. (지면에 닿은 발바닥을 따라 뻗어나가던 물들이 모아지며 파도 같은 가시방 벽을 만들어 괴물들을 휩쓸어버린다.)
범람(氾濫)
기준치:
100/50/20
굴림:
8
판정결과:
극단적 성공
피해:
35
권능이 괴물들을 향해 휘어지며 숲을 쓸어버리자, 겨울잠 자던 토끼들도 놀라 후다닥 반대 방향으로 도망칩니다.
백야 현상으로 희게 샌 하늘에 검은 새 그림자가 푸드덕 날아오르고, 괴물들은 마른 장작처럼 부스러집니다.
흔적이 일그러지자, 귓가에 무전이 울립니다.
[여기는 지구 지부, 여기는 지구 지부. 제1시의 타이머 응답하라.]
헬레네 R. 히페리데:(순식간에 뻗어나가는 물줄기들과 그에 바스라지는 괴물들을 마지막 순간까지 주의깊게 지켜본다. 완전히 처치했음을 확인하고서야 안도의 한숨 내쉰다.) 고생하셨어요, 아실.
(이후 무전에 응답한다.) 제 1시의 타이머, 헬레네. 응답합니다.
아실링 펜들레엄:(끔찍한 외형처럼 주변을 망가트리며 사라지는 괴물들의 끝을 바라본다. 특히 헬레네를 집중 공격하던 것의 마지막은 특별히 한 번 더 확인을 했다.) 헬리도 고생하셨어요. ... 이런 말 하면 안 되는 것 아는데.. 너무 쉽게 사라진 것 같아요. 저들이 남긴 자리는 손쓰기 어려울 정도인데...
[1시 타이며, 즉시 블루 아버를 개방하라. 도밍게즈 제10구역으로 복귀 바란다.]
[연구기지 사정거리 내 게이트가 발생했다. 우선순위를 변경한다.]
[즉시 블루 아버를 개방하라. 도밍게즈 제10구역으로 복귀 바란다.]
제10구역 DOT 연구기지에는 외우주의 모든 데이터가 집약되어 있습니다.
진척이 없는 연구라도 빼앗겼다간 핀치에 몰리고 말 것입니다.
이건 인류에게 불리하기 짝이 없는 게임이니까요.
겨울을 입은 달스니바산은 순백의 한 폭. 동물도 겨울잠을 자고 식물도 언 땅 아래 움츠리고 있는 시기.
눈사태의 위협이 형형한 터라 도로가 폐쇄되는 비수기입니다.
확실히, 인명 피해가 가장 적은 파견지이긴 합니다.
하지만,
관찰력 판정
헬레네 R. 히페리데:
관찰력
기준치:
65/32/13
굴림:
86
판정결과:
실패
관찰력
기준치:
65/32/13
굴림:
24
판정결과:
어려운 성공
군대도 주둔하지 않는 지역인지라 이대로 내버려두면 남은 괴물들은 아무 방해 없이 숲을 벗어날 겁니다.
저 아래 게이랑에르 피오르에 숨은 작은 마을까지도.
연구기지를 수비한 후 시간을 맞춰 돌아올 수 있을까요?
확신이 서지 않습니다.
헬레네 R. 히페리데:연구기지에 게이트가? (삽시간에 표정이 굳는다. 하필이면 10구역에 게이트라니.) 하지만 이대로 산을 벗어나긴 어렵습니다. 괴물들을 완전히 잡지 못했는데…… 당장 이동할 수 있는 다른 타이머들은 없나요?
아쉽게도 둘에게 닿은 무전은 희망적이지 못합니다.
타이머들이 아무리 강하다 해도 지킬 수 있는 곳은 한정되어 있죠.
불가능하다는 소식과 함께 빠른 선택을 하라는 무전 목소리가 이어집니다.
헬레네 R. 히페리데:…… 이곳은 군대도 파견하지 못하는 지역. 기지의 중요 연구들을 지키자고 사람의 목숨을 포기할 수는 없어요.
아실, 저는 숲에 더 머물러야만 할 것 같아요. 괜찮다면 10구역 쪽으로 가주시겠나요?
아실링 펜들레엄:... 이곳에 당신 혼자 두고 가라니. (한쪽 손들어 얼굴 쓱 훑는다.) 혼자서 막기는 벅찰지 모르는데. 근데, 예상 못 한 답도 아니네요. 당신이라면 어느 쪽이든 포기 못할 줄 알았어요. 몸조심하세요. 저는 먼저 가 있을게요.
연구기지를 사수하기로 마음먹은 아실링은 돌아가기 전 헬레네를 꾹 끌어안습니다.
아실링 펜들레엄:다치지 말고 오세요. 약속.
헬레네 R. 히페리데:미안해요. 저도 아실을 혼자 보내는 게 마음이 편치는 않지만…… 모두를 구할 가능성을 최대한을 높이기 위한 방법은 이것뿐이네요. (별빛처럼 아스라하게 미소하고는, 눈을 잠시 내리감으며 양 팔로 마주 당신을 끌어안았다.) 무사히 돌아가겠다고 약속드릴게요. 아실도 같은 약속, 해주실 테죠?
아실링 펜들레엄:구하는 모두 안에 당신을 넣어주면 정말 좋을 텐데... 약속할게요. 이따가 봐요. (끌어 안겨져서 느껴지는 온도를 통해 짧은 휴식을 갖는다. 두 손으로 등 감싸 힘을 나눠주듯 꾹 누르고 떨어진다. 더 이상 늦장 부릴 수도 없어 아쉬움 가득한 얼굴을 마지막으로 자리를 떠났다.)
헬레네 R. 히페리데:저는 다른 이들을 모두 구하고 나서 마지막으로 해도 충분해요. 타인을 위해 힘을 쓸 수 있다는 건 얼마나 다행인가요. (짧은 당신의 머리칼을 손끝으로 가볍게 쓸어내렸다. 오히려 헬레네는 저보다 아실링의 안위를 더 걱정하고 있었다. 제 눈앞에서 저를 구하고 사라져가던아실링의 모습이 아직도 선연히 맴돌고는 했다. 다른 세계에서 온 이라는 건 명백하게 알고 있고, 제 눈앞의 아실링과 다른 사람이라는 것도 알지만, 모습도 목소리도 능력마저도 같으니 이런 위기 상황에서는 겹쳐보게 되고는 했다.) 그럼, 나중에 뵈어요. (떠나는 아실을 마지막까지 지켜본다.)
멀어지는 아실링의 뒷모습이 사라짐과 동시에 눈앞의 적에게 신경을 곤두세웁니다.
괴물들은 새하얗게 도드라진, 인간을 닮아 더 불쾌한 이빨을 드러내며 몰려옵니다.
헬레네 R. 히페리데:(품 안에 들어찼던 아실링의 체온이 점차 사그라든다. 체온을 붙잡아 가두려는 듯 주먹을 꾹 쥐고, 몸을 비스듬하게 틀어 공격할 태세를 취했다. 무사히 돌아가야만 하니, 그 어느 때보다도 집중해야만 하겠지.)
(괴물의 수는 의식하지 말자. 하나하나 없애는 데에만 신경을 집중하는 거야. 창을 높게 치솟는 동작에 따라 드높은 물길이 끌려간다. 원을 그리며 회전하던 물줄기는 어느덧 깊게 패이고 패여 거대한 형체를 만들어낸다.)
제 뒤로는 하나도 지나가지 못할 거예요! (창을 그대로 내리찍었다. 거대한 회오리가 괴물들을 향해 내리꽂힌다.)
물폭풍
기준치:
80/40/16
굴림:
67
판정결과:
보통 성공
피해:
45
괴물들이 베이며 검은 가루를 흩뿌려짐과 동시에 나동그라집니다.
혼자서 많은 수의 괴물을 상대한 것은 얼마만인가요?
오랜 전투의 끝에서 숲이 뱉어낸 차가운 겨울 숨이 폐부에 가득 차오릅니다.
1D25
헬레네 R. 히페리데:
rolling 1d25
(
17
)
=
17
인명피해는 없었으나 게이랑에르 피오르의 작은 관광 마을은 17% 파괴되었습니다.
헬레네 R. 히페리데:(차디찬 공기가 가슴 안을 가득 파고들어온다. 폭풍은 광범위하고 위력이 센 만큼 기력을 많이 소모하여 자주 쓸 수는 없는 스킬이었다. 그럼에도 막아내기 위해서라면 제 모든 힘을 끌어내어야만 했다. 마을의 파괴는 안타까우나 어쩔 수 없다. 관광보다야 인명이 우선 아니겠는가.)
헬레네의 마음이 닿았던 것일까요?
괴물들을 피해 도망갔던 사람들이 하나둘 모이기 시작합니다.
“Guten Tag!”
“Herzlichen Dank!”
“Frhe Weihnachten!”
“Viel Gluck!”…….
성탄절의 여운이 가시지 않은 도시 한복판에서, 빠른 독일어가 빗발칩니다.
헬레네 R. 히페리데:(오른쪽 눈에서 따끔한 통각을 느낀 건 괴물들을 모두 쓸어내버리고서도 한 박자 뒤였다. 이 정도 상처쯤이야 자주 입는 거였으니 개의치 않으려 했지만 한쪽 시야가 금세 피로 흐려진다. 아, 다치지 않고 돌아오기로 했는데……)
(서둘러 피를 닦아내고 붕대를 꺼내 지혈하며 마을 사람들에게 마주 인사한다.) 다들 무사하신 건가요? (제 상처보다도 시민들의 안위가 우선이다.)
투박하지만 따뜻한 느낌을 품은 독일어들이 이어집니다.
말은 통하지 않지만, 마음까지 통하지 않을리가 없죠.
고마움의 표시들이 줄줄이 이어집니다.
블루 아버를 열기 위해선 세 가지 조건이 충족되어야 합니다.
신성한 손가락의 붕괴, 타이머 두 사람의 피.
손가락이라 하면 바로 눈 앞에 있는 독일 뮌헨의 시계탑입니다.
헬레네 R. 히페리데:(치료를 위해서라도 서둘러 돌아가야 한다. 시민들에게 짧게 인사를 거듭하고는, 창을 살짝 움직여 물기둥으로 시계탑을 직격해 무너뜨린다. 바로 복구된다고는 하지만 블루 아버를 열 때마다 가장 유명하고 신성시된다는 장소들을 부수는 게 영 기꺼운 일은 아니었다.)
(항상 액체 상태가 되도록 처리가 되어있는 특수한 병을 꺼내었다. 유사시를 대비하여 항상 파트너의 피를 담아두고 다니고 있었다. 그 피를 꺼내어 흩뿌린다. 저의 피는…… 지금도 상처에서 뚝뚝 떨어지고 있었으니 진작에 조건을 충족시킨 셈이지.)
사람들을 물리고 시계탑을 부숩니다.
무너진 기둥과 문설주에 두 영웅의 피를 섞어 바르자 피를 마시고 만개한 장미가 눈앞을 새파랗게 물들입니다.
도착한 곳은 연구기지
연구 중이던 신화생물 사체와 관련 자료가 15% 소실되었다는 소식이 들립니다.
인명피해는 없다는 소식이 그나마 다행으로 들립니다.
아실링 펜들레엄:(건물 외벽에 몸을 반만 기댄 상태로 고개 푹 숙이고 있다가 헬레네의 기척을 느끼자마자 얼굴을 든다.) 아, 헬리. 잘 다녀오셨... (고개 들자마자 보이는 눈가의 상처에 화들짝 놀라 몸 일으켰다가 짧은 신음과 함께 몸 숙인다.)
헬레네 R. 히페리데:(새파란 장미가 피어나고, 연구기지가 보인다. 온전해보이지는 않지만 타이머 혼자서 이만하면 최선이나 다름없다. 제 상처를 치료할 생각도 않고 다급하게 아실링부터 찾아 사방을 두리번거렸다.) 아실, 아실! (눈에 띄자마자 서둘러 그에게로 달려간다.) 어떻게 된 건가요. 다치셨나요? 어디를요?
아실링 펜들레엄:(덜덜 떨다가 옆에 있는 연구원들에 의해 맨바닥에 눕는다. 왼쪽 어깨부터 쇄골까지 큰 발톱 모양의 흉터를 연구원들의 옷 아무렇게나 받아 가렸다.) 헬리... 저 큰일 났어요. 쇄골 부러진 것은 그렇다고 쳐도, 저 흉터 크게 날것 같아요... .... 이제 비키니 못 입을 텐데 어떡하죠?!!
헬레네 R. 히페리데:아실, 상처가…… 상처가 깊어요! (누가 보아도 발톱에 찍힌 게 분명하다. 입술을 꾹 깨물며 서둘러 연구원들에게 처치를 부탁한다. 9시의 타이머가 있었더라면 훨씬 나았을 텐데.) 이런 와중에도…… (걱정이 뚝뚝 떨어지는 눈으로 당신의 한쪽 손을 꾹 잡는다. 저를 안심시키려 실없는 소리를 하는 게 빤해서 마음이 괜시리 더 아팠다. 사실, 둘 모두 알고 있었겠지. 혼자 전투를 하면서 다치지 않기란 불가능에 가깝단 것을. 알고 있으면서도……)
괜찮아요. 흉터가 있더라도 아실은 모두의 눈에 아주아주 멋져 보일 테니 말이에요. (눈물이 나려는 걸 꾹 참으면서 말했다.)
아실링 펜들레엄:지금 자기 상처는 생각도 안 하고 저한테 그리 말씀하시는 거예요...? (움직이면 뼈 벌어진다는 연구원들의 말림에 얌전히 누워 헬레네만 바라본다. 마음 같아서는 손이라도 뻗어서 뺨이라도 쓰다듬어주고 싶은데. 안타까움 가득한 눈으로 헬레네 눈가의 상처를 가득 담는다.) 표정 보아하니 사람들은 안 다친 것 같네요. 수고하셨어요. 혼자서 얼마나 힘드셨을지... (아픈 것은 싹 잊은 사람처럼 옆에 연구원들 째릿 노려본다. 이어지는 것은 어린애 투정 같은 고자질이다. 살려줬더니 사체 관련 자료가 사라져서 자신에게 뭐라고 한다는 투정 거림이다.)
... 저는 당신 눈에만 좋아 보이면 다 괜찮을 것 같아요. 멋진 훈장이라고 하죠. 당신의 것도.. 그리 여길게요.
헬레네 R. 히페리데:아, 이건…… (그제야 제 상처를 자각하고 눈가를 매만진다. 나름대로 붕대를 동여매 지혈을 하긴 했지만 그 덕에 한쪽 시야는 차단되었고, 붕대 위로도 여전히 피가 새어나오고 있었다.) 죄송해요. 최대한 다치지 않으려고 노력했는데 어쩔 수가 없었네요. 그래도 저는 거동에는 문제가 없는걸요. 눈을 베이기는 했지만, 시력을 아예 잃지는 않을 것 같아요. 아실이 일단 응급처치를 받고 나면 저도 제대로 처치를 받도록 할게요. (계속 아실링의 곁에 앉아 푸념하는 소리를 들으며 고개 끄덕끄덕였다.) 그랬군요, 이런. 자료에 관한 이야기는 추후에 해도 되었을 텐데. 말은 그리 하셔도 아실이 최선을 다했다는 건 모두들 알고 계실 거예요. 저도 그렇구요.
그렇게 할까요. 지구와 도밍게즈를 구하기 위해 애쓰다 다치게 되었으니, 가슴 아픈 상처보다는 명예로운 훈장인 걸로 해요. (미소짓는다. 다시금 당신에게 미소짓는 모습을 보일 수 있어 얼마나 다행인지.)
아실링 펜들레엄:과소평가하기는... (시력을 아예 잃지는 않을 것 같다는 말에 기뻐해야 할지 슬퍼해야 할지 고민하다가 주먹 쥐어 땅 툭 치며 화풀이한다. 그거 잠깐 움직였다가 통증이 다시 몰려와서 얼굴로 비명 지른다.) ... 저는 맞은 곳이 운이 없었을 뿐이에요. 다른 뼈를 건들 것이지 왜 하필 쇄골을 건드려서 이렇게 누워있어야 하는 것인지... 뭐, 금방 낫겠죠. 낫기 전까지만 불편할 뿐이니까요. (그러고는 멀뚱하게 헬레네 바라보다가 작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손잡아 주세요.' 손가락 하나도 움직이기 힘든 상황에도 손은 잡고 싶나 보다.) 그렇죠? 다들 말은 저렇게 해도 저한테 감사할 거예요. 아, 물론 상관들한테 이번 일 귀에 들어가면 저나 당신이나, 둘 다 혼나겠지만.......
다시 볼 수 있어서 기뻐요. 진심이에요. 저 아직도 그때 당신이 구해준 목숨 값 못 갚았잖아요. 그거 갚기 전까지는 무사하셔야 해요. (그날 일이 아직도 눈에 선명하다며 아파 죽는 와중에도 키득거리며 웃었다. 이어서 가슴 통증 몰려서 바로 입 다무는 것을 선택했지만 말이다.)
헬레네 R. 히페리데:쇄골을 다치면 한동안 움직이는 게 쉽지 않겠네요. 사소한 움직임만 있어도 아픈데다가 어긋날지도 모르니까요. 괴물도 참, 하필이면 그곳을 공격했을까요. 그래도 심장을 피한 게 얼마나 다행인가요. (당신의 말에 동조해주다가 주먹 쥐는 모습에 뒤늦게 말리려는 듯 고개 젓는다. 그와 동시에 주먹이 땅을 내리쳐 버렸기에 소용은 없었지만……) 얼마든지 잡아드릴게요. (아예 제 양손으로 당신의 손을 꾹 잡았다. 그전에 손에 번진 핏자국을 문질러 닦아보려 했지만, 이미 다 말라붙은지라 별 소용은 없었다.)
저도 다시 볼 수 있어 기뻐요. 그리고 앞으로도 쭉, 볼 수 있을 거예요. (저는 이전의 아실링처럼 당신을 떠나가지는 않을 거예요. 당신의 앞에서 죽을 위기에 처하지도 않을 거예요. 나가지 못한 말이 입안에서 맴돈다. 그에게 애칭 한 번 불러주지 못한 것이 못내 미련으로 남았다. 끝끝내 미지수라는 명칭으로 남은 게 슬펐다. 남겨진 사람이 얼마나 괴롭고 아픈지 잘 안다. 희생하는 날이 오지 않게 하기 위해서는 더 강해져야만 하겠지.) 이제 들것이 올 때까지 가만히 누워서 쉬셔요, 아실.
아실링 펜들레엄:시간이 좀 걸려서 그렇지 금방 붙을 거예요. 그리고 그 괴물 같은 상관들이 저 가만히 내버려 둘 리가 없어요. 어떻게든 치료시켜서 일 시키려고 9시의 타이머 부를 거예요. 미안하게 되었지만.. 그게 그 사람이 일이니 어쩔 수 없네요. (빨리 와줘서 헬레네부터 먼저 봐주면 좋겠다는 짧은 말과 함께 눈 접어 웃는다. 피 자국 같은 것에 놀랄 일도 없이 익숙하기 짝이 없는 상태라 어떤 상태로 잡히든 상관없었다. 지금 당장은 청결이 아니라 따뜻한 체온이 중요하기도 했고.)
... (당신은 가끔 내가 모르는 눈으로 봐요. 지금의 헬레네에게 하고 싶은 말이었으나 눈 피하며 모른척한다. 무엇 때문에 그리 슬퍼하는 것일까. 생각나는 것은 많았다. 사랑하는 것이 너무나도 많은 사람이었으니... 지금 생각하는 것에 자신과 닮았다는 '그 자'가 아니기를 바랄 뿐이다.) 네에. 그때까지 당신은 제 옆에 있어주시고요. 잔소리도 같이 듣기예요.
헬레네 R. 히페리데:맞아요. 9시의 타이머께서 또 꽤나 고생하시겠네요. (우스갯소리를 하며 분위기를 푼다. 같은 얼굴을 한 사람 앞에서 다른 이를 떠올린다. 자신을 처음 보았던 미지수 아실링도 같은 기분이었겠지. 이제는 완전히 그 심정을 이해할 수 있었다. 동시에 죄책감 역시도. 내가 다른 이를 떠올린다는 걸, 당신이 모른다면 좋을 텐데. 티를 내지 않아야 할 텐데, 같은 얼굴을 하고서 같은 웃음을 짓는 모습을 볼 때면 짧은 시간 함께했을 뿐인 미지수의 존재가 자꾸만 눈앞을 떠돌았다.) 그럼요. 잔소리도 칭찬도 함께 듣죠. 그래도 이번에는 칭찬을 더 받지 않으려나요. 포상 휴가를 받을지도 모르겠네요.
제3차 코스모스 웨이브, 그로부터 꼬박 삼 년.
인류는 새 국면을 맞이했습니다.
도개교가 되어준 블루 아버 덕분에 도밍게즈와 지구는 GEM 연합을 결성하고 공동 전선을 형성했습니다.
역사 기록, 조사 자료, 연구 결과 등, 감히 값을 매길 수 없는 거대한 정보가 은하를 건넙니다.
외따로 떨어져 있던 인류에게 서로는 가장 든든한 아군이었습니다.
그러나 빛이 드리우면 어둠이 도사리는 법.
게이트의 발생 빈도는 점점 빨라지기 시작합니다.
제4차 코스모스 웨이브가 닥칠 징조일지도 모른다고, 쌍둥이 행성은 기약 없는 공포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다행히’ 외우주의 신은 강림하지 않았으나…….
“제9구역 경계에 새로운 게이트가 생성됐습니다, 출동 지시를……!”
“타이머 전원, 이미 출동했습니다! 대기 중인 인력이 없습니다!”
“게이트 규모를 분석해. 인명 피해가 가장 적은 경우의 수를 찾아야 한다.”
시대의 평화도 도래하기엔 먼 미래였습니다.
DOT는 더 이상 ‘모든’ 위험지대에 타이머를 발령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동시다발적으로 열리는 게이트를 감당하려면 최적의 효율을 따지는 과정이 필수 불가결해졌습니다.
헬레네와 아실링도 몇 번이고, 몇 번이고, 몇 번이고 눈앞의 위험으로부터 등을 돌려야 했을 겁니다.
헬레네는 매 순간 어떤 선택을 했을까요?
우리의 운명은 은하를 흘러 어디쯤 도착했을까요?
그리하여
세계는 지금, 얼마만큼 멸망에 가까워진 걸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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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GEM 연합은 제3차 코스모스 웨이브 이후 처음으로 위기 단계를 하향했습니다.」
「클라커 프로젝트 공개 10개월 만에 얻어낸 결과입니다. DOT는 1주년을 맞아 클라커를 대폭 증원할 예정이며…….」
2035년 10월 10일.
딱 기분 좋게 선선한 바람이 창틀을 쓰다듬는 시기.
가로수들은 울긋불긋한 옷으로 갈아입는 단장에 한창 바쁩니다.
헬레네는 모처럼 관사에서 ‘한가롭게’ ‘여유’를 만끽하고 있습니다.
이것도 다 클라커 프로젝트 덕분입니다.
때마침 뉴스도 클라커가 얼마나 대단한지 떠들어대고 있습니다.
곧 증원을 앞두고 있으니 단단히 관심을 끌어둘 작정이겠죠.
아실링 펜들레엄:요즘 엄청 핫한 화제더군요.
쇼파에 늘어진 아실링이 툭 말을 던집니다.
자기 집 안방인 양 편한 모습입니다.
바로 이 장면이 GEM 연합 탄생 이후 가장 큰 변화입니다.
게이트가 빈번하게 발생하면서 한 회차에 등장하는 신화생물 개체 수도 큰 폭으로 증가했고
이에 대응하기 위해 타이머는 2인 체제로 재편성되었습니다.
클라커들의 배치로 시간적 여유를 확보한 후엔 이런 장면이 일상이 되었습니다.
지구와 도밍게즈의 관사에서 두 사람이 함께 시간을 보내는, 살짝 낯간지러운 일상.
아실링 펜들레엄:클라커들... 그들 덕분에 편하기는 하지만, 마음 한구석이 찜찜한 것을 무시할 수 없네요. 정말 안전한 거겠죠?
헬레네 R. 히페리데:그간은 타이머들만이 게이트의 무게를 짊어져야만 했었죠. 열리는 게이트 수에 비해 타이머의 수는 턱없이 적으니, 필연적으로 구해내지 못하는 이들이 생겨 안타까웠어요. 클라커가 생겨나며 보다 많은 이들을 신속하게 구할 수 있게 되었으니 저는 긍정적으로 보려고 해요.
게다가 박사님의 지휘 아래의 프로젝트인걸요. 도밍게즈와 지구 모두를 위한 일이 아니겠나요. (줄리아 애벗 박사에 대해 떠올려볼 수 있을까)
아실링 펜들레엄:저희가 해낼 수 있는 것 이상의 것을 짊어지곤 했었죠. 어쩔 수 없는 일이라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다시 생각해도 너무 고된 날들이었던 것 같아요. 어디 잠깐 몸 기대는 곳만 있었으면 바로 잠들었던 것이 엊그제 일 같은데, 이젠 그렇게 바쁠 일도 없으니 좋긴 해요. (느껴지는 찝찝함 같은 것은 넘겨버리겠다가 쥐고 있던 쿠션에 머리 툭 기댄다.)
그럼요. 모두를 위한 일로 시작되었다고 하죠. 저희가 들을 수 있는 것은 얼마 없었지만..
DOT 도밍게즈 지부 연구 기지 소속. 30대 초반의 여성으로, 신화생물 사체를 분석·연구하고 있습니다. 모종의 사건을 계기로 클라커 프로젝트를 추진하기 시작했습니다. 타이머와 클라커의 경우 분리되어 있어 제대로 된 정보나 과정, 심지어 클라커 인원까지 제대로 알고 있는 것이 없습니다.
헬레네 R. 히페리데:……클라커에 대해 제대로 알 수 없다는 건 조금 아쉽기는 해요. 결국은 함께 세계를 구하는 입장이니, 클라커들이 어떤 식으로 송환 주문을 쓰는지 저희도 알 수 있다면 여려모로 도움이 될 텐데.
그래도, 덕분에 이렇게 편히 여가시간을 보낼 수 있는 것 아니겠나요. (쿠션에 머리 기댄 아실링의 몸에 힘 빠진 제 몸을 툭 기대어본다.) 타이머가 된 이후로 어느덧 8년이 되었지만…… 휴가를 받아본 적은 드물었거든요. 며칠 연속 휴가를 즐길 수 있던 건 딱 한 번뿐이었죠. (제 3차 코스모스 웨이브가 닥쳐오기 직전. 그때 마주했던 외우주의 신이 주는 위압감과 공포, 절망을 어찌 잊을까. 그리고 그곳에서 떠나고 말았던 아실링까지. 아직도 가끔 그 광경이 나오는 악몽을 꾸곤 했다.)
아실링 펜들레엄:언젠간 만날 일 있겠죠. 만나는 날에는 고맙다는 인사도 좀 전하고 싶어요. 덕분에 저희가 이런 여유도 가지게 되었으니 말이에요. 쿠키 잔뜩 만들어서 선물이나 할까요? 좋아해 줄지 아닐지는 모르지만....
(뺨에서 느껴지는 곱슬머리의 부드러움에 고개 들어 뺨을 비비적거린다. 의문투성이인 세상이지만 전으로 돌아가고 싶다는 생각은 전혀 하지 않는다. 이런 평화에 익숙해진 자기 몸에 따라주지 않을 테니까.) 며칠 연속 휴가.. 클라커 전에 그런 날들은 전혀 없던 것과 마찬가지였죠. 이틀이라도 좋으니 좀 쉬게 해달라고 빌었던 것 같은데... 아, 마침 뉴스에 클라커 관련해서 영상이 떴네요.
헬레네 R. 히페리데:그럴까요? 저번에 인터넷에서 크랜베리 쿠키를 만드는 레시피를 봤답니다. 아주 맛있어 보여서 한 번 시도해보고 싶어요. 다음에 나갈 때 재료를 사오는 건 어떨까요? (항상 의욕은 넘친다)
이틀도 마음대로 쉴 수 없는 상황이었으니, 그만큼 저희의 임무가 과중했죠. 죽어나가는 이들도 무척 많았었구요. (아실링의 말에 TV로 시선을 돌린다) 어머. 어떤 영상인가요?
클라커는 특수 훈련을 받은 인공 사역으로 단편적인 송환 주문을 사용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특수 훈련의 내용은 공개되지 않았지만…….
마침 뉴스도 클라커의 전투 장면을 송출 중입니다.
평범한 소녀가 신화생물과 대치하는, 위기일발의 순간.
척추 대신 도드라진 뼛조각을 곤두세우던 오물 덩어리가 달려들고,
「클라커가 게이트를 엽니다!」
그것이 악의를 품고 뛰어든 순간, 소녀는 손바닥을 찢어 피를 냅니다.
담벼락에 피를 적시고 반 마디의 주문을 외우자 기하학과 어떤 숫자의 규칙이 섞인 원진이 피어납니다.
눈 깜짝할 새 원진은 검은 구덩이― 게이트로 개화하고, 신화생물은 홀린 듯이 게이트로 빨려 들어갑니다.
시든 꽃송이가 낙화하듯, 게이트가 자취를 감추며 전투는 끝납니다.
카메라 렌즈 너머로 소녀가 이쪽을 돌아봅니다.
앳된 얼굴, 이제 막 성인이 되었을까 싶은 품.
단정한 군복은 타이머의 것과 달리 칠흑 같은 검정.
그 모든 낯선 정보의 나열에서,
지능 판정
헬레네 R. 히페리데:
지능
기준치:
70/35/14
굴림:
41
판정결과:
보통 성공
소녀를 기억해냅니다.
“조, 조심하세요!”
제3차 코스모스 웨이브 당시, 피난 행렬 끄트머리에 서 있었습니다.
겁에 질린 얼굴과 덜덜 떨리는 목소리가 형편없던 어린아이였는데.
어느새 저렇게 성장했군요.
헬레네 R. 히페리데:(클라커가 게이트를 여는 모든 과정을 주의깊게 관찰한다.) 매번 저리 피를 내어야만 하는 걸까요? 아플 것 같네요. 저희에겐 권능과 다름없는 개념일 텐데…… (인상을 가볍게 찡그리다가 주문을 쓰는 주체를 알아보고는 눈이 커진다. 어찌 그를 잊을까. 그때의 일은 3년이 지났어도 그림으로 그린 것처럼 모든 부분을 상세히 기억할 수 있었다.) 저분은……!
아실링 펜들레엄:왜 하필 피를 내는지 모르겠어요. 무슨 흑마법도 아니고, 기분 나쁘게. (소녀의 정체에는 감흥 없는 목소리로 클라커 프로젝트를 걱정하다가 마지막 말에 두 눈 커진다.) ... 아는 사람이에요?
헬레네 R. 히페리데:그러게요. 꼭 피를 내어야만 하는 거였을까요. 하긴, 저희도 블루 아버를 열 때 저희 두 사람의 피를 필요로 했으니 같은 방법일 것 같긴 하지만…… (화면에서 시선을 떼지 못한다.) 3년 전 3차 코스모스 웨이브 때, 1구역에서 신과 싸우던 저에게 응원의 말을 보내주셨던 분이에요. 그때 워낙 싸움이 크고 거칠었던 터라 솔직히 살아계실지 장담이 어려웠는데…… 이리 자라셔서 클라커까지 되셨군요. 감회가 새롭네요.
아실링 펜들레엄:저희 것이랑은 다른 느낌이지만, 살펴보면 비슷한 것일 수도 있겠네요. 그냥 속 시원하게 어떻게 하는 구 조고 어떤 이들인지 말해주면 좋을 텐데. (큰 관심 없는이지만 헬레네가 아는이라는 것을 알자 몸까지 숙여 얼굴을 자세히 관찰한다.) 3년 전이라면.. 엄청 어렸겠네요. 그때 당신은 응원하던 아이가 지금은 당신과 비슷한 일을 하고 있는 영웅이라니... 다음에 만나는 일이 있으면 좋겠어요.
헬레네 R. 히페리데:다음에 도밍게즈 지부 DOT에 가게 되면 박사님을 만날 기회를 한 번 만들어볼까요? 잘 부탁드리면 저희도 지식을 알 기회가 있을지 몰라요. (한참이나 화면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러게요. 줄리아 박사님을 만날 때 저분에 관해서도 여쭈어봐야겠네요. (화면에 혹시 소녀의 이름이 나와 있을까?)
아실링 펜들레엄:음... 그냥은 힘들 것 같네요. 그동안 클라커 문제를 제외하고는 제대로 된 활동도 보이지 않으셨으니까요. 타이머와 클라커의 합동 작전 같은 것에 대해 이야기를 꺼내볼까요? 그런 것이라면 뭔가 이야기를 들어주실지도 몰라요.
특수 훈련 내용은 공개되지 않았지만, 10개월 동안 무던하게 진행된 프로젝트니 괜한 트집을 잡기는 어려울 겁니다.
이러니저러니 해도 덕분에 타이머들의 워라밸도 보장되고 있고요.
「지금까지, 제1번 클라커의 첫 출전 영상이었습니다.」
「기억납니다. 오롯한 인간의 첫 승리였죠. 반응도 엄청 열렬했어요.」
아나운서들은 달뜬 분위기를 숨기지 못합니다.
하기야, 쌍둥이 행성의 발견과 새로운 영웅의 등장이라니.
희망이 움트는 것도 당연합니다.
“타이머들만 고생하지 않아도 되는 거잖아요. 다행이라고 생각해요.”
“DOT에서 공고 뜨자마자 지원할 겁니다! 친구들도 다 그러기로 했어요!”
“클라커가 되면 타이머의 파트너, 뭐 그런 게 되는 건가?”
지구와 도밍게즈를 교차하는 인터뷰가 이어집니다.
사람들의 두 뺨에는 단풍의 붉은 색이 물들었습니다.
창백하고 푸른 점들은 타이머를 사랑한다.
창백하고 푸른 점들은 타이머의 운명에 열광한다.
창백하고 푸른 점들은 타이머와 가까워지길 희망한다.
브라운관 안팎으로 선명한 명제입니다.
뭐, 타이머는 클라커와 우연히 마주친 적도 없다는 것이 현실이지만요.
클라커의 본적은 연구기지라서 동선이 거의 겹치지 않습니다.
임무를 함께 수행할 일도 없으니 파트너나 동료라고 부르긴 어폐가 있습니다.
육군과 해군이 서로를 파트너로 여기지 않는 것처럼.
현실은 원래 초라한 법입니다.
“곧 타이머는 필요 없는 세상이 오는 거 아닐까요?”
웃으며 던지는 농담에는 뼈가 있습니다.
소녀에 대한 이름같은 것은 나와있지 않지만 인터넷에 클라커에 대한 검색이 가능합니다.
헬레네 R. 히페리데:제1번 클라커…… (중얼거린다.) 타이머가 필요로 없는 세상이 온다면, 그거야말로 이상적이고 좋은 세상이겠죠. 저희는 결국, 도밍게즈와 지구를 위험하게 하는 요소들을 지키고자 있는 존재이니……
(인터넷에 '제1번 클라커' 라고 검색해본다)
제1번 클라커부터 제96번 클라커까지 사진과 이름, 나이 등을 정리한 블로그를 발견합니다.
몇몇은 뉴스나 기사를 통해 접한 얼굴입니다.
어쩌면 헬레네의 지인도 포함되어 있을지 모릅니다.
DOT는 클라커의 신상 정보를 공개하지 않았습니다.
세대교체 때마다 프로필이 업데이트되는 타이머와는 대조적인 행보입니다.
그러나 정보의 바다에는 사람들이 촬영한 사진, 영상이 떠돌아다니고 있습니다.
듬성듬성 빈자리나 화질이 열악한 사진이 끼어 있지만, 이 정도면 대단한 정보 수집 능력입니다.
자료 조사
헬레네 R. 히페리데:
자료조사
기준치:
60/30/12
굴림:
71
판정결과:
실패
(사람들의 집념이란 대단하네…… 톡톡톡 검색)
자료조사
기준치:
60/30/12
굴림:
86
판정결과:
실패
(나는 사실 기계치?)
아실링 펜들레엄:(옆에서 토도도독 하면서 뭔가 검색해본다.)
Library Use Roll
기준치:
70/35/14
굴림:
75
판정결과:
실패
(앗)
헬레네 R. 히페리데:핸드폰이 좀 오래되긴 했죠? 바꿀 때가 됐나 봐요.
아실링 펜들레엄:저희 더 좋은 것으로 검색해보죠! (노트북 켜서 다시 검색해본다.)
Library Use Roll
기준치:
70/35/14
굴림:
98
판정결과:
실패
헬레네 R. 히페리데:(자기 노트북도 켜서 서칭해본다)
자료조사
기준치:
60/30/12
굴림:
97
판정결과:
실패
아실링 펜들레엄:(노트북이랑 핸드폰 꼬라...본다.) 얘가 일을 안하네요. (노트북 한 대 침)
Library Use Roll
기준치:
70/35/14
굴림:
31
판정결과:
어려운 성공
(때리기 전에 좀 이렇게 잘 나오지...)
헬레네 R. 히페리데:(……)
블로그 포스팅은 그렇게 끝이 납니다.
댓글은 엉망진창입니다.
1달이 지나도록 소식이 없는 걸 보면 이대로 꼬리 말고 도망간 거라는 비난과 DOT가 손을 쓴 게 분명하다는 음모론이 혼재합니다.
클라커들을 두고도 갑론을박이 시끄럽습니다.
모든 국민이 의무적으로 특수 훈련을 이행해야 한다는 강경파
신화생물을 그저 쫓아내는 것으론 안심할 수 없다는 불안 분자
클라커들은 인체 실험 끝에 만들어졌다든가, 타이머의 클론이라든가…….
SF가 가미된 망상도 끝없이 쏟아져 나옵니다.
창백하고 푸른 점들은 심한 몸살을 앓고 있습니다.
거스를 수 없는 변화의 물결, 피할 수 없는 혼란의 도가니에 점령당한, 바야흐로 혁명의 시대입니다.
「속보입니다.」
그때, 갑자기 뉴스 화면이 전환됩니다.
간신히 느슨해졌던 활시위가 다시 팽팽하게 긴장합니다.
「금일 저녁 8시 48분. 지구,대한민국의 주택가에서 일가족이 시체로 발견됐습니다.시체는 심각하게 훼손된 상태지만, 도난의 흔적은 없는 것으로 보아 경찰은 원한 살인에 초점을 두고 수사에 착수할 예정이라고 밝혔습니다.」
때 아닌 속보는 비극적인 불청객이었습니다.
헬레네 R. 히페리데:게이트 소환설……. 신화생물을 소환한 기록이 있다니, 이게 정말일까요? 잘 믿기지 않아요. 대체 누가 그런 흉측하고 불길한 짓을. (미간이 절로 찡그려졌다. 신화생물이 한 번 게이트를 비집고 나올 때마다 얼마나 많은 이가 죽어나가고, 경관이 망가지고 시설들이 파괴되는지. 얼마나 많은 고난을 감수해야만 하는지를 안다면, 감히 그런 짓을 할 수는 없을 터인데.)
DOT 측에서 이 글에 관해 손을 쓴 건지 모르겠네요. 이어지는 내용이 없으니……. 그저 거짓말일 가능성이 높겠지만요.
(불길한 속보 소식에 절로 시선이 움직인다.) 지구에서 일가족이 시체로……? 이런 끔찍한 일이 있다니.
아실링 펜들레엄:오컬트 쪽을 좋아하는 사람일까요? 일단 이런 것에 대해서는 도밍게즈와 지구 어느 쪽에도 들어본 적이 없어서... 너무 마음에 두지 마세요. 이렇게 자극적인 정보를 올리면서 관심받고 싶어 하는 사람이 한둘인 것도 아니잖아요. (걱정 말라며 헬레네 어깨를 감쌌지만 자신도 글의 내용에 자꾸 머리에 맴도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정말 그런 일이 일어나는 것일까? 그렇다면 그 이유는? 답 없는 질문들만 꼬리를 문다.)
평화가 이어지는 줄 알았는데... 이렇게 끔찍한 일이라니. 경찰들에게 오래간만에 일이 생겼겠네요. 무슨 일인지 자세히 나오지는 않았는데... 알아도 저희한테 그리 좋을 일은 아닐 것 같아요. 안 좋은 일 계속 들어봤자 기분만 안 좋아질 뿐이잖아요.
헬레네 R. 히페리데:네, 허황된 소리이길 바랄 뿐이에요. (어깨를 감싸는 따스하고 상냥한 손길이 어느덧 익숙해졌다. 3년이란 시간은 도밍게즈와 지구를 이어주었을 뿐 아니라 저와 아실링의 연을 더 깊게 맺기도 하였다.)
모쪼록 범인을 근시일 내로 찾을 수 있게 된다면 좋겠어요. 일가족이 모두 저리 나쁜 결말을 맺다니…… 안타까워요.
아실링 펜들레엄:분명 잘 해결될 거예요. 뉴스에 뜰 정도의 일이니 경찰이며 클라커까지 동원되어 일이 열심히 진행될 테죠. 저희는... 이곳에서 기도를 하기로 해요. 사후세계 같은 게 있다면 이번에 죽은 가족들에게 그곳에서라도 평화를 달라고요.
헬레네 R. 히페리데:그럴까요. (희미하게 웃었다. 그는 3년 전 다른 차원의 아실링을 떠나보낸 이후 종종 그의 평안한 안식을 기원하는 기도를 올리고는 했었다. 마찬가지다. 사후세계가 있다면, 부디 그곳에서는 아픔도 눈물도 없이 평온할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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띠링.
한적한 밤을 깨트린 방해꾼은 ‘또’ 스마트폰이었습니다.
2035-10-10, 21:41
제1시 타이머 의무실 방문 요망
샘플 채취 협조 바람.
메시지는 아실링과 헬레네에게 똑같은 내용을 적어 동시에 도착했습니다.
아실링 펜들레엄:벌써 주기가 돌아왔네요.
아실링이 익숙하다는 듯이 중얼거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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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 복도를 따라 차례대로 연구실, 훈련실을 지나자 곧 의무실의 문패가 보입니다.
발소리를 듣고 튀어나온 닥터 오프-화이트가 활짝 문을 열어 줍니다.
늘 그렇듯 품이 넉넉한 흰 가운 차림입니다.
싸한 소독약 냄새, 커튼을 친 침대, 약이 진열된 선반, 출처 불명의 내용물이 찬 눈금 실린더와 플라스크, 비커로 꽉 찬 냉장고.
뼈, 근육으로만 이루어진 인체 모형과 두개골 시리즈까지…….
닥터의 괴랄한 인테리어 취향이 눈에 띕니다.
헌혈 준비를 마친 닥터가 두 사람에게 손짓합니다.
닥터 오프-화이트:자, 누구부터 할래?
DOT는 건강 검진 겸 유전자 분석을 위해 주기적으로 타이머의 혈액을 채취하고 있습니다.
자세히는 몰라도, 타이머와 인간의 유전 정보가 다르다는 것 정도는 익히 알려진 사실입니다.
헬레네 R. 히페리데:안녕하세요, 닥터. (언제 봐도 이상한 인테리어지만 내색 않으며 인사한다.) 저부터 할게요.
닥터 오프-화이트:자, 팔 줘.
순순히 팔을 건네면 굵은 바늘이 피부를 파고듭니다.
소리 없이 차오르는 혈액은 선명한 붉은색. 이렇게 보아선 평범한 인간과 무엇이 다르다는 건지 통 알 수 없습니다.
차라리 피도 푸른색이었다면 가시적이었을 텐데.
닥터 오프-화이트:10분 정도 걸리니까 가볍게 주먹 쥐었다가 폈다가 하고 있어.
헬레네 R. 히페리데:네. (과연 뭐가 다르다는 걸까? 하긴, 권능도 수명도 일반적인 인간과는 차이가 있다지만…… 얌전히 대답하며 주먹을 연신 쥐었다 폈다.)
침대 등받이에 기댄 채로 하릴없이 시간이 흐르길 기다리자면, 닥터는 아실링의 팔에도 바늘을 꽂아줍니다.
닥터 오프-화이트:정말로 손위 형제 없어?
은근슬쩍 따라오는 질문은 목적이 선명합니다.
아실링 펜들레엄:그 질문만 몇 번째인지 모르겠네요. (이제는 익숙하다는, 조금은 질렸다는 표정을 지으며 등받이에 몸 기댄다.) 여자 형제는 없어요. 있다고 하더라도 그 사람은 아닐 거예요.
닥터 오프-화이트:정말..?? 정말? 생김새만이 아니라 유전 형질까지 똑같은 타인이 있을 수 있다는게 말이 돼? (사실을 연거푸 의심하지만 일단 물러선다.)
헬레네 R. 히페리데:……. (의심될 만도 하지. 저도 3년 전 댐의 게이트에서 나오던헬레네를 보지 못했더라면 지금의 아실링에게 같은 질문을 몇 번씩이나 했을지도 모른다. 자신이 본 아실링은 그럼 어디의 아실링이었을까? 정말 과거나 미래의 도밍게즈에서 온 아실링이었을까. 떠오르면 의문만이 가득해진다.)
아실링 펜들레엄:(손바닥으로 제 볼을 감싸 이리저리 만져보다가 헬레네를 바라본다.) 그렇게 닮았나요? 다들 나만 보면 그 사람 타령이라서요.
새삼스럽게 비교하려고 그 얼굴을 들여다보면,
정신력 대항
헬레네 R. 히페리데:
정신
기준치:
70/35/14
굴림:
10
판정결과:
극단적 성공
맥박이 완만하게 가라앉습니다.
두근, 두근.
혈액이 빠져나간 여백을 느끼지 못할 정도로 충만한 고양감입니다.
상대의 권능이 흘러 들어오고 있습니다.
둘이 함께 있을 때면 권능은 중력의 영향권에서 벗어나 천방지축으로 날뜁니다.
마음이 아주 약간 기우는 것만으로도 상대의 것을 빼앗거나 내어주고 맙니다.
빠져나간 권능을 돌려받는 방법은 한 가지입니다.
거리를 0으로 좁히는 것.
채혈 중에는 침대 밖으로 손을 내미는 게 최대치입니다.
헬레네 R. 히페리데:(아, 또다시 날뛴다. 또다시 제 몸에 잠든 힘이 통제를 벗어나 상대에게 흘러가려 하고, 상대의 것을 앗아오려 들었다.)
(의식하지 말아야 해. 의식해서는…… 침대 밖으로 손을 내밀어 아실의 살갗과 접촉한다.) 닮기는 닮았지만, 분명 다른 분이세요.
소꿉장난처럼 손을 거머쥐면 권능은 주인에게 귀환합니다.
아실링 펜들레엄:... (저를 볼 때마다 그 사람이 생각나지 않은 것이면 좋겠어요. 만나본 적도 없는 사람, 심지어 사라졌다는 사람에게 이유 모를 질투를 느낀다.)
헬레네 R. 히페리데:(권능이 되돌아가는 것을 느끼고서야 안도의 한숨을 쉰다. 저의 이 감정이 들키지 않으면 좋겠다 바라고는 있지만, 과연 정말로 당신이 모를까. 이러한 불안감이 드는 것도 사실이었다.)
닥터 오프-화이트:평소에는 사이좋게 말도 많더니. 왜 갑자기 조용하니? 둘이 싸웠어? 혹시 주사 아프니??
헬레네 R. 히페리데:아, 아니에요. 이 정도 주사는 아프지도 않구요. 싸우지도 않았어요. (애써 웃는다.) 아실, 팔은 좀 어떠세요? 괜찮으신가요?
아실링 펜들레엄:싸우긴요. 그럴 일 없어요. 저랑 헬리는 사이좋으니까요. (부드럽게 미소 짓다가 주먹 쥐었다가 피는 것을 몇 번 반복한다.) 괜찮아요. 조금 느낌은 이상하지만요.
닥터 오프-화이트:다행이네. 난 또 너희가 불만이라도 가졌거나 했으면 어떡하나 했지.
헬레네 R. 히페리데:불만은 없답니다. 그보다, 닥터. 혹시 줄리아 박사님과 가까우신가요?
닥터 오프-화이트:어? 그 애는 왜? 혹시 클라커 같은 것에 관심이라도 있어?
헬레네 R. 히페리데:네, 관심있어요. (미소하며 고개 끄덕인다) 클라커의 특수 훈련도 궁금하구요. 닥터도 호기심이 무척 많으시니 제가 궁금증을 갖게 되는 마음도 이해해주시겠지요?
닥터 오프-화이트:그렇게 말하면 말해주지 않을 수 없지. 나도 완전 자세하게 아는 것은 아니야. 그래도 너희보다는 잘 알고 있지! (우하하하!)
클라커들은...직접 만난 적은 없지만, 지원 대상자들의 서류는 훑어본적 있어. 다들 평범하던데. 자. 여기까지면 충분하지? (입에 지퍼 채우는 제스처 한다.)
헬레네 R. 히페리데:닥터답지 않으시네요. 제가 알던 닥터는 관련 분야라면 신나서 뭐든 다 말씀해주시는 분이었는데…… (단편적인 정보에 대놓고 아쉬워하는 표정을 짓는다.) 어쨌건, 타이머처럼 유전자 정보가 보통 인간과 다르지는 않다는 거군요.
특수 훈련에 관해서는 알고 계신 것 없나요? 저, 그게 정말 궁금한데. (애교어린 표정 짓는다)
매혹
기준치:
50/25/10
굴림:
31
판정결과:
보통 성공
닥터 오프-화이트:어... 어어어어... 그렇지? 아, 맞다. 초반 대상자는 전 세대 타이머의 가족들로 고려하던 것 같긴 해. 아무래도 확률이나 상성의 문제 아니었을까?
큿! (애교 어린 표정에 심장 부근 잡는다.)
아실링 펜들레엄:(옆에서 같이 심장 부근 잡고 귀여워하는중)
헬레네 R. 히페리데:(^////^)
닥터 오프-화이트:내 관할이 아니라 나한테 물어도…….(힐끔...) 신체 능력 향상과 정신력 강화에 치중한다고 들었어. 자세히는 몰라. 뭐, 우주비행사나 전투기 조종사들이 받는 그런 훈련이겠지.
닥터는 관심 없는 듯, 뚱한 얼굴로 빈 주사기의 피스톨만 당겼다 놓는 손장난을 반복합니다.
심리학 판정
헬레네 R. 히페리데:
심리학
기준치:
60/30/12
굴림:
43
판정결과:
보통 성공
이 화제를 반기지 않는 것 같다고 느껴집니다. 어딘가 서글픈 사람처럼 보이기도 하고요.
헬레네 R. 히페리데:신체 능력 향상과 정신력 강화라…… (골몰해있다가 뒤늦게 닥터의 낯을 확인한다. 무슨 문제라도 있는 건가?) 음, …… 박사님께 무슨 일이라도 있나요? 아니면 클라커의 내부 문제……?
닥터 오프-화이트:... 에이 무슨 문제가 있겠어. 아, 이제 다 뽑았다. 고생이 많아~ (바늘을 뽑곤 초콜릿과 샌드위치, 이온 음료를 건네준다. ) 이거 먹으면서 10분 앉아있다가 나가!
헬레네 R. 히페리데:네, 감사해요. (건네주는 것들 잘 받고는 닥터를 배웅한다.)
(그리고 닥터가 나갈 때까지 기다렸다가 아실링에게 목소리 낮춰 속닥인다) 표정이 별로 좋지 않으셨죠……?
아실링 펜들레엄:저만 그렇게 느낀 게 아니었군요. 뭔가 일이 있으신 것 같긴 한데... (닥터가 맞추고 간 타이머를 손가락으로 툭툭 치며 골똘히 생각한다.) 더 물어봐도 대답해 주실까요?
헬레네 R. 히페리데:답을 해주실지 잘 모르겠네요. 분위기로 봐서는 느낌이 좀 좋지 않은데 말이에요. 10분이 지나고 나면 줄리아 박사님을 한 번 찾아뵈러 갈까요? 아까 말씀하셨던 합동 훈련 이야기도 꺼낼 겸 말이에요.
아실링 펜들레엄:마음이 힘든 사람한테 여러 가지 물어보는 것은 좀 그럴 수 있겠네요. 어디 안 가시고 여기에 계셔야 할 텐데. 계신다면 바로 합동 훈련 관련해서 이야기해 보죠. 물론 거기서 안 끝나고 클라커에 대한 다른 것도 물어보기로 하고요.
10분이 지나자 닥터가 둘에게 찾아옵니다.
닥터 오프-화이트:어지럼증 같은 것은 없지?
헬레네 R. 히페리데:멀쩡해요. (제 팔을 이리저리 흔들어본다.) 아실은 어떠세요?
아실링 펜들레엄:(밴드 붙여진 자리를 꾹꾹 눌러보다가 닥터한테 제지 받는다.) 괜찮아요. 이상한 느낌도 없고요.
닥터 오프-화이트:다행이네. 우리한테 너희는 아~주 귀중한 생물, 아니! 사람이니까! 너희 건강이 중요하지!
우리는 아직도 모르는 게 많아. 타이머도 신화생물도 미지의 수수께끼거든.
타이머는 ‘원래’ 인간이잖아. 각성하기 전까지는 건강 검진을 아무리 정밀하게 해봐도 특이점을 찾을 수가 없어.
그런데 각성한 후에는 어떻게 인간과 근본부터 달라지는 걸까? 애니메이션 캐릭터처럼 진화라도 한 게 아닌 이상 이론적으로는 불가능한데.
사람을 무슨 포켓몬이나 디지몬으로 보는 눈입니다.
진화인 걸까, 변화인 걸까?
진화라면 트리거가 뭘까?
생존 본능? 환경 변화? 호르몬의 영향?
난해한 질문들은 이 사람이 왜 닥터가 되었는지 설명하는 것처럼 끝없이 생성됩니다.
감히 설명치 못할 존재들은 제4의 벽을 세웁니다.
타이머가 존재하는 이상, 인류는 무대 바깥의 신을 부정할 수 없을 겁니다.
헬레네 R. 히페리데:생물……. (타이머를 보는 닥터의 시선에는 그런 생각이 섞여있었구나. 별로 충격을 받거나 하지는 않았다. 저 역시 타이머와 인간의 유전 정보가 다르다는 사실을 무척 흥미롭고 또 신기하게 여기고 있었으므로. 외우주의 신이 존재한다면, 도밍게즈와 지구를 빚었다는 신이 존재하지 못할 이유는 무엇이겠는가?) 신의 선택을 받아 타이머가 되면 어떠한 다른 존재로 다시 태어나게 되는 건 아닐까요.
닥터 오프-화이트:신??? (신을 믿니..? 같은 표정 하면서 옆에 해골 껴안는다.) 으으으음....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겠네..! 난 아니지만! 나는 진화적인 면에서 생각 중이거든~! 하지만 진화를 다르게 말해보자면, 그래! 문학적으로 말해보자면 다른 존재로 태어난다고 해도 맞는다고 볼 수 있겠어! (조잘조잘)
헬레네 R. 히페리데:흥미로운 가설이에요. 명확하게 밝혀질 수 있다면 좋을 텐데. 언제 한 번 닥터와 관한 이야기를 진득하게 나눌 수 있다면 좋겠어요.
타이머가 될 재목에는 이미 권능이 깃들어 있다가, 전대 타이머가 죽으면서 비로소 발휘하고 그러면서 새 존재가 되는 걸지도요.
닥터 오프-화이트:타이머 그만두는 날 있으면 언제든 내 연구소로 찾아와! 내가 비~리를 통해 내 옆에 앉아두고 진득하게 이야기할 테니까. (깔깔 웃다가 멈춘다.) 그만두는 날은... 죽는 날이었지.... 취소! 취소!!! 그냥 너랑 나랑 한가하는 날에 만나자! 그래! 아실링도 꼭 오고!
특이한 뭔가로 이어진다는 가설에 한 표가 더 붙었네. 줄리아한테 제대로 물어봤어야 했는데. (중얼...) 아무튼 재밌는 이야기 고마워. 이 닥터는 오늘 조오 오금 바빠서 말이야! 오늘은 여기서 바이바이 하는 걸로 하자. 자! 어서 인사해 줘! 허그도 좋아!
헬레네 R. 히페리데:(어정쩡하게 웃는다. 타이머란 아무래도 자의로 그만둘 수 있는 직업 같은 개념은 되지 못하였지.) 네, 네에. 여유있는 날에 꼭 찾아뵐게요. 아실도 같이 가실 거죠? (옆의 아실링 돌아본다.)
그럼, 오늘도 고생 많으셨어요. 뵐 수 있어 기뻤어요, 닥터. (가볍게 안아준다)
아실링 펜들레엄:(타이머인 것을 끊어내는 방법이 없을까? 이런 생각을 하던 중 헬리의 물음에 바로 고개 끄덕인다.) 그럼요. 저도 옆에서 참여하게 해주세요. (이런 능력 같은 것이 없는 날이 온다면, 나도 당신도 완전히 자유로울지 모르지. 닥터나 헬레네의 생각과는 조금 다른 길로 빠져들었으나 자신 역시 특이한 것에 흥미를 느끼고 빠져드는 사람이었다.)
(옆에서 같이 헬레네랑 닥터 안아줬다)
닥터 오프-화이트:고마워라! 그래. 나도 기뻤어. 조심히 잘 가고~!
탁, 탁, 탁.
의무실을 나서려다 뒤를 돌아보면, 뒷정리를 서두르는 닥터가 보입니다.
아주 옅은 장미 향기와 화한 소독약 냄새가 떠다니는 의무실.
출처를 알 수 없는 출렁거리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단 착각이 들고,
심리학 판정
헬레네 R. 히페리데:
심리학
기준치:
60/30/12
굴림:
59
판정결과:
보통 성공
홀로 된 옆얼굴에는 무방비한 슬픔이 배어납니다.
그러고 보니 가운 아래, 어울리지 않는 검은 정장이 숨겨져 있습니다.
헬레네 R. 히페리데:닥터. (가려다 말고, 돌아와 다시 조심스레 말을 건다.) 상을 당하셨나요……?
닥터 오프-화이트:(황급히 뺨을 문질러 표정을 지운다. 곧이어 다시 생글생글 웃으며) 어, 어어어.. 걱정해줘서 고마워. 그렇게 되었지 뭐야. 이런 일은 몇십 년 뒤에 나 일어날 줄 알았는데 말이지.
헬레네 R. 히페리데:(TV에서 보았던 일가족 살해 사건이 자연히 떠오른다. 진심으로 안타까운 표정을 지으며 닥터의 어깨에 가벼이 한 손 얹었다.) 유감이에요. 혹, 가족이……?
다른 반응도 없이 솔직히 털어놓을 생각은 없어 보입니다.
헬레네 R. 히페리데:
설득
기준치:
55/27/11
굴림:
42
판정결과:
보통 성공
닥터 오프-화이트:그냥, 별일 아냐. 가족도 아니고. 아는 사람이 죽었거든. 게이트에 휩쓸렸대. 요즘 같은 세상엔 흔한 일이지, 뭐……. (말과는 달리 아주 우울한 목소리다.)
헬레네 R. 히페리데:아아……. (그런 죽음은 저도 수도 없이 본 바 있다. 게이트들이 우후죽순으로 생겨나며 저의 가족 또한 위험에 처한 적이 몇 차례 있었으니. 절로 미간에 주름이 잡힌다.) 회복하실 수 있기를 바라요, 닥터.
이만 진짜로 가 볼게요. (예의 갖춰 인사했다.)
닥터 오프-화이트:그럼. 회복해야지. 나는 해야할 것이 많은 닥터니까! (부러 환하게 웃으면서 둘을 보내준다.)
.
.
2035년 10월 11일.
전날 이름 모를 일가족이 시체로 발견된 비극이 있었음에도 세상은 원래의 속도에 맞춰 흘러갔습니다.
어제와 별다른 것 없는 아침.
가을의 따뜻한 햇살이 커튼 틈 사이로 들어옵니다.
똑딱거리는 소리를 내는 시계는 아침 7시를 가리킵니다.
시계 옆에는 메모로 가득 찬 달력이 보입니다.
그중에서도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오늘 날짜인 11일에 그려진 붉은색 동그라미입니다.
헬레네 R. 히페리데:(오늘이 무슨 날이었더라? 달력 보며 기억 되새겨본다)
붉은 동그라미 아래에는 짧은 메모가 남겨있습니다.
[우유식빵&초코칩 쿠키]
오늘은 아실링과 베이킹을 하기로 한 날이었죠.
클라커의 등장으로 인해 어느 정도의 여유를 가지게 된 두 사람의 취미 중 하나입니다.
헬레네 R. 히페리데:(맞아, 그랬지. 클라커가 생긴 덕분에 여유시간에는 이렇게 베이킹도 할 수 있고. 덕분에 제 끔찍하기 그지없던 요리 실력도 차츰 성장해나가고 있었다. 혹시나 잠을 방해하고 싶진 않으니 살금살금 침대로 걸어가서 아실링이 일어났나 확인해본다) 아실, 일어나셨나요?
아실링 펜들레엄:(작은 소리에도 잘 일어나는 것은 예전 일인 것처럼 헬레네의 부름에도 몸을 뒤척일 뿐 잠에서 깨지 못한다. 이제는 익숙해진 여유에 단잠에 빠져있기 바쁘다.)
헬레네 R. 히페리데:(아직 주무시고 계시는구나. 그럼 굳이 깨우지 말고 미리 재료만 준비해둬야겠다. 침대 아래에 무릎 모으고 앉아 잠든 아실링을 잠시간 흐뭇하게 바라보다가 주방으로 가 재료들을 꺼내두었다. 나름대로 조용히 하려 애썼지만 비닐봉지가 부시럭거리는 소리가 난다)
따스한 햇살이 들어와 부엌을 환하게 비추고 있습니다.
두 사람은 베이킹을 취미로 삼으면서 방의 부엌 부분을 넓혔습니다.
벽면은 부드러운 베이지색으로 꾸며져 있으며, 나무로 만들어진 캐비닛과 선반들이 자연스럽게 어우러져 따뜻한 느낌을 주고 있습니다.
화이트 컬러의 대리석 카운터 탑이 임시 부엌의 많은 부분을 차지합니다.
작은 창가에는 햇볕을 받으며 자라는 미니 허브 화분들이 놓여 있습니다.
향기로운 허브 향기가 주방에 스며들어 마음을 평화롭게 만듭니다.
기본적인 재료들은 준비되어 있지만 제일 중요한 레시피북을 어디에다가 뒀었죠?
정리를 잘하는 둘의 성격상 책꽂이에 꽂아있을 텐데...
맙소사. 책에 꽂혀있는 책이 한두 권이 아닙니다.
자료 조사 판정
헬레네 R. 히페리데:
자료조사
기준치:
60/30/12
굴림:
89
판정결과:
실패
레시피북을 못 찾아도 괜찮습니다.
우리에게는인터넷이 있으니까요!
검색할 시 자료조사 판정
헬레네 R. 히페리데:(요새는 인터넷에서도 얼마든지 책을 볼 수 있다구요)
(초록창에 토도독 서치해본다)
자료조사
기준치:
60/30/12
굴림:
25
판정결과:
어려운 성공
(좋아, 레시피까지 다 찾아뒀으니 준비는 만전. 핸드폰을 싱크대 위에 올려두고 다시 침대로 향한다. 아직도 주무시고 계시려나?)
아실링 펜들레엄:(그 새 잠이 깬 건지 상체 세워 침대에 앉아있는다. 잠이 덜 깬 것인지 눈은 아직 덜 떠졌지만...) ... 좋은 아침이에요. (눈 팅팅)
헬레네 R. 히페리데:일어나셨나요, 아실? (빵실 웃으면서 총총 다가간다. 미지근한 물을 가득 채운 컵을 건네주며) 좋은 아침이에요. 오늘 무얼 하기로 하셨는지 기억하고 계신가요~?
아실링 펜들레엄:(끄응 거리며 손으로 눈 비비다가 컵 받아 꿀꺽꿀꺽 마신다. 잠자는 사이에 갈증을 느끼기라고 했나.) 오늘은... ... 당신하고 베이킹하기로 한 날이잖아요!! (벌떡! 눈도 팍 떠진다!)
헬레네 R. 히페리데:맞아요~! (손뼉을 치며 발랄하게 웃는다) 제가 재료도 다 준비해두고 레시피도 찾아뒀답니다.
아실링 펜들레엄:잠 잘게 아니라 당신 도왔어야 했는데... 감사해요. 저 빠르게 세수하고 베이킹할 준비할게요. (입에 달고 다니던 미안하다는 말 대신 감사를 전하는 말을 선택한다. 자신이 아는 헬레네라면 미안함보다는 고마움을 더 기쁘게 받아들일 테니까. 화장실로 가서 가볍게 세안 등을 한 뒤 베이킹에 거슬리지 않게 머리카락을 질끈 묶는다.) 저 준비 다 되었어요!
헬레네 R. 히페리데:아니에요. 주무시는데 깨우고 싶지 않았어요. 클라커가 등장하며 여유로워졌다고는 하지만, 그래도 저희에게 수면을 취할 수 있는 시간이란 특별한 의미를 갖잖아요. (아실링이 세안을 하고 나오는 동안 저도 짧은 머리를 하나로 잘 모아 묶어본다. 앞치마와 장갑까지 두르고 나면 준비 완료.) 그러면 둘 중 무엇부터 만들어볼까요? 시간이 비교적 짧은 쿠키부터 만들까요?
아실링 펜들레엄:(앞치마 입은 뒤 헬레네 뒤로 가서 앞치마 끈을 단단하게 리본 모양으로 묶는다. 만족!) 빠르게 쿠키 먼저 만드는 편이 좋겠어요. 만들다가 중간에 배고프면 빠르게 집어먹을 수 있으니 좋을 것 같고요.
베이킹의 시작은 계량입니다.
행운 판정
헬레네 R. 히페리데:
운
기준치:
59/29/11
굴림:
60
판정결과:
실패
아실링 펜들레엄:
운
기준치:
60/30/12
굴림:
63
판정결과:
실패
계량 저울이 이상합니다.
망가진 것 같네요.
베이킹의 가장 중요한 계량부터 문제라니, 심각합니다.
아실링 펜들레엄:... 감으로 계량해 볼까요? (마른 세수)
헬레네 R. 히페리데:(시작부터 어째 불안불안하지만…… 아무렇지 않게 힘찬 목소리 낸다) 좋아요. 감으로 계량한다고 큰 문제가 생기진 않을 거예요.
(가라 직감이여)
재료는 총 7개.
초코칩을 뺀 나머지는 최대한 정량을 맞추는 편이 좋겠죠.
두 사람이 세 번씩 나눠서 행운 판정합니다.
헬레네 R. 히페리데:
운
기준치:
59/29/11
굴림:
41
판정결과:
보통 성공
운
기준치:
59/29/11
굴림:
41
판정결과:
보통 성공
운
기준치:
59/29/11
굴림:
59
판정결과:
보통 성공
아실링 펜들레엄:
운
기준치:
60/30/12
굴림:
96
판정결과:
실패
운
기준치:
60/30/12
굴림:
92
판정결과:
실패
운
기준치:
60/30/12
굴림:
32
판정결과:
보통 성공
헬레네 R. 히페리데:(어쩐지 오늘은 직감적으로 잘 될 것 같은 기분? 손이 마법처럼 움직이는 기분?)
박력분 250g 성공
실온 달걀 1개 성공
베이킹 파우더 2g 성공
실온 무염버터 150g... ...
설탕 50g
소금 2g
초코칩은 많을수록 좋죠!
헬레네 R. 히페리데:(많이많이!)
아실링 펜들레엄:... 저 설탕 너무 많이 넣은 것 같아요. 더 줄여야 하는 것 아닐까요? 곰곰)
헬레네 R. 히페리데:으음……. 너무 달게 먹으면 몸에 안 좋기는 하죠! 초콜릿도 있으니까 줄여도 괜찮을 것 같네요. (잘 모름)
그러면 이제 무염버터를 풀고 설탕이랑 잘 저으면 되겠군요~
1. [실온에 두었던 무염버터를 부드럽게 풀어줘야 합니다.]
지능 판정!
헬레네 R. 히페리데:
지능
기준치:
70/35/14
굴림:
10
판정결과:
극단적 성공
거품기보다는 실리콘 주걱으로 풀어주는 것이 더 편했었죠!
아실링 펜들레엄:(큰 볼이랑 거품기 등등 가져온다.) 차갑지 않게 미리 밖에 둬서 다행이에요. 기억나세요? 저희 맨 처음에 차가운 버터 넣어서 엄청 고생했었잖아요.
헬레네 R. 히페리데:저는 그땐 뭐가 문제인지도 몰랐었답니다. 버터 온도가 중요한지도 모르는, 베이킹 초짜 중의 초짜였었죠. (웃으며 주걱으로 버터를 열심히 풀어준다)
아실링 펜들레엄:그때는 그냥 버터만 넣으면 되는 줄 알았죠. 가염버터를 넣어야 하는지 무염버터를 넣어야 하는지도 몰랐는데. 지금은 그래도 여러 번의 실험(?)을 통해 무염 버터를 선택할 수도 있게 되었잖아요. 엄청난 발전이죠!
실온에 있던 버터는 뭉쳐지는 것 없이 잘 녹아내립니다.
다음 단계!
[2. 설탕을 2번에 나눠 버터와 잘 섞어줍니다.]
지능 판정!
헬레네 R. 히페리데:
지능
기준치:
70/35/14
굴림:
52
판정결과:
보통 성공
한꺼번에 넣어도 상관습니다. 설탕의 서걱거리는 소리가 거의 없어질 때까지 부지런히 저어주세요.
표면이 매끄러운 쿠키를 원한다면 이때, 설탕 대신 슈가 파우더를 넣어주세요.
아실링 펜들레엄:(... 역시 설탕이 많은 것 같은데. 반죽 빤....)
헬레네 R. 히페리데:두번에 나눠 넣으라고 했으니 절반씩 넣으면 되겠죠? (그런 아실 생각도 모르고 설탕 절반을 버터 위에 스윽 붓고 잘 젓는다)
아실링 펜들레엄:(고개 끄덕끄덕하면서 이후 쓸 재료와 도구들 쓱 가져온다.) 잘 녹아지나요? 하다가 힘드시면 제가 해볼게요!
헬레네 R. 히페리데:네! 잘 되고 있어요. (남은 설탕도 잘 넣고 부드러운 소리만 날 때까지 부지런히 저었다.)
퍼펙트!
파티쉐가 보면 극찬을 할 정도로 잘 준비해뒀습니다.
그 다음은
[ 3. 실온 달걀을 풀어 달걀물을 만든 후 버터+설탕 반죽에 넣고 하나로 섞어줍니다.]
지능 판정!
헬레네 R. 히페리데:
지능
기준치:
70/35/14
굴림:
73
판정결과:
실패
... 헬레네는 재료 준비를 하면서 달걀도 같이 밖에 뒀나요?
헬레네 R. 히페리데:(꺼내뒀다!!)
현명한 선택이었습니다.
달걀이 차가우면 잘 섞이지 않고 오히려 버터와 분리가 됩니다.
똑똑한 헬리 입니다!
헬레네 R. 히페리데:(^///^)
아실링 펜들레엄:이번에는 제가 섞어볼게요. (달걀을 먼저 푼 뒤에 버터와 설탕 반죽을 넣고 섞기 시작한다. 야무지게 왼손으로 볼 쥐고 오른손으로 부드럽게 섞어나간다.)
헬레네 R. 히페리데:좋아요. (아실링이 달걀을 반죽과 잘 섞는 동안 남은 재료들도 잘 살펴둔다. 다음은 박력분이랑 베이킹 파우더를 체에 내리는 거였던가?)
[4. 가루류를 체에 곱게 내려 준비합니다.]
행운 판정!
헬레네 R. 히페리데:
운
기준치:
59/29/11
굴림:
89
판정결과:
실패
폴폴 휘날리던 가루가 코에 들어갔는지 콜록거리는 기침이 나옵니다.
기침할 때는 손으로 입을 가리는 것을 잊지 마세요!
헬레네 R. 히페리데:콜록, 콜록콜록! (가루가 풀풀 날려서 얼른 입가를 가리고 뒤쪽으로 두세 걸음 정도 떨어진다.) 미안해요, 아실!
아실링 펜들레엄:헬리..! (물수건 가져와서 헬리 손에 쥐여준다.) 가루가 많이 날리죠. 저도 가끔가다가 그러니 괜찮아요. 아.. 그때가 생각나네요. 시나몬 가루 통을 톡톡 두들기다가 통의 머리 부분이 빠져서 그대로 가득 쏟았었잖아요. 그때 시나몬 가루 때문에 아주 고생을 했었는데.. (다시 생각해도 웃긴 일이었다며 키득거리는 소리 낸다.)
헬레네 R. 히페리데:기억나네요. 저 그때 이후로 가루가 든 병은 아주 조심스럽게 두드리는 습관이 생겼답니다. (감사해요, 하면서 수건으로 풀풀 날리는 가루들 정리한다.) 다시할게요! 하던 거 마저 하셔요.
[5. 체 친 가루들을 버터 반죽에 넣고 주걱으로 11자를 그리며 섞어주세요. 이때 초코칩도 함께 넣고 잘 섞어 줍니다.]
헬레네 R. 히페리데:이제 초코칩을 넣을 차례겠네요! (또 날리지 않도록 가루를 반죽 위에 조심조심 붓고 주걱으로 11자를 그리며 섞어본다.) 이 위에 초코칩을 부어주시겠어요, 아실?
아실링 펜들레엄:네! 초코칩은 많이 들어갈수록 좋지만, 일단 섞을 수 있을 정도로만 넣어볼게요! (50g을 볼에 우르르 담는다.)
반죽을 하는 헬레네! 근력 판정!
헬레네 R. 히페리데:
근력
기준치:
25/12/5
굴림:
43
판정결과:
실패
(열심히 해보지만 어째 힘이 잘 안 들어가고, 금세 팔도 아파오고…… 영 효율이 안 난다)
아실링 펜들레엄:(옆에서 지켜보다가 다시 한번 더 손 씻어서 헬레네 옆으로 다가간다.) 쿠키도 빵처럼 반죽기로 끝낼 수 있으면 좋을 텐데, 아쉽네요. 이제는 제가 해볼게요! (볼 가져다가 반죽해 보기 시작한다.)
근력
기준치:
45/22/9
굴림:
67
판정결과:
실패
... (이따가 훈련실 가서 열심히 상체운동해야겠다..)
그동안 너무 놀았나 봐요... (울적...)
헬레네 R. 히페리데:반죽이 제일 힘든 것 같네요, 그렇죠……?
괜찮아요! 저희 둘이 힘을 합쳐서 열심히 하면 되죠. 좀 오래 걸리면 어떤가요. (울적해진 아실 얼른 위로한다.)
아실링 펜들레엄:헬리이... (촉촉한 눈으로 바라보다가 팔 들어 쓱쓱 스트레칭한다. 힘들다고 멈춰 설 수는 없었다.) 네! 같이 번갈아가면서 하기로 해요!
헬레네, 1D30 판정해 주세요.
헬레네 R. 히페리데:
rolling 1d30
(
23
)
=
23
반죽의 완성까지 23분이 걸렸습니다.
오래 걸린 느낌이 들지만 무시하세요!
둘은 멋진 반죽을 완성했으니까요!
헬레네 R. 히페리데:(어째 상당히 시간이 오래 걸린 것 같은 느낌이지만?) 마침내 다 된 것 같아요, 아실~. (일단 기뻐하고 본다)
아실링 펜들레엄:(어느새 한 덩어리가 되어있는 반죽을 보고 뿌듯한 미소 짓는다.) 그렇죠~ 분명 맛있는 쿠키가 될 거예요! 저희 이거 잘 만들어지면 다른 타이머들에게도 나눠주는 것 어떤가요? (벌써부터 잘 만들어진 결과만 생각한다.)
헬레네 R. 히페리데:정말 좋은 아이디어네요, 아실! 꼭 모두에게 나눠드릴 수 있을 만큼 멋진 쿠키를 만들어야겠어요. (의지 충천하여 얼른 냉장고 문을 열고 반죽을 넣어둔다)
반죽을 한 덩어리로 뭉쳐 위생 백에 담아 냉장고에서 20~30분 정도 휴지시켜줍니다.
잠깐의 휴식시간이 주어졌습니다.
헬레네는 이 시간을 어떻게 보내나요?
헬레네 R. 히페리데:(아무것도 안 먹고 쿠키만 만들 수는 없으니…… 어제 사둔 에그 타르트 두 개를 꺼내서 아실링에게 하나 내민다.) 잠시 쉬면서 이거라도 먹을까요?
아실링 펜들레엄:마침 조금 출출하던 참이었어요. 이따가 먹을 쿠키를 위해서 기운 차리기 용으로 조금만 먹어보죠. (헤실 웃으며 에그타르트 받아가 냠 하고 먹는다. 바삭한 파이 부분과 다르게 촉촉함을 아직 가지고 있는 크림 부분의 달콤함에 저절로 눈이 감겨진다.) 엄청 맛있네요. 다음에는 에그타르트를 만들기로 할까요?
헬레네 R. 히페리데:좋아요! 오늘 쿠키를 성공적으로 만들면 자신감이 더 붙을 것 같아요. (역시 유명 빵집에서 사온 덕인지 고소하고 맛있는 에그타르트라 칭찬하며 냠냠 먹었다. 꿀 같은 휴식 시간이 그리 지나간다.)
반죽을 너무 오래 보관해도 좋지 안죠.
시간에 딱 맞춰서 반죽을 꺼냅니다.
[7. 냉장고에서 꺼낸 반죽을 5~6mm 두께로 균일하게 밀어주세요.]
요리 판정!
헬레네 R. 히페리데:(최대한 균일하게 반죽을 밀어보려고 시도한다)
요리 Roll
기준치:
40/20/8
굴림:
70
판정결과:
실패
너무 힘을 줬나요? 5mm보다 더 얇아진 것 같습니다.
한 번 더 뭉쳤다가 밀어보는 것이 좋겠습니다!
헬레네 R. 히페리데:(어째 힘조절이 쉽지 않다. 반죽을 다시 뭉쳤다가 좀 더 공들여서 다시 한 번 밀어본다!)
다시 요리 판정!
헬레네 R. 히페리데:
요리 Roll
기준치:
40/20/8
굴림:
19
판정결과:
어려운 성공
5mm. 완벽한 피치의 하이에프, 아아니 완벽한 두께의 반죽입니다.
반죽도 무르지 않아서 바로 쿠키 틀을 사용해도 될 것 같습니다.
헬레네 R. 히페리데:(됐다! 기뻐하며 얼른 쿠키 틀을 반죽에 잘 눌러 찍어본다. 그러고보니 틀은 무슨 모양일까? 곰돌이 모양도 있으면 좋겠다)
아실링 펜들레엄:(반죽을 반 나눠서 자신 몫의 반죽에 쿠키 틀을 꾹꾹 누른다. 곰돌이 모양 틀과 꽃 모양 틀을 사용하고 있다.)
베이킹을 준비하면서 여러 가지 쿠키 틀도 사뒀죠. 헬레네가 원하는 것이라면 다 있을 겁니다.
헬레네 R. 히페리데:(기본의 동그라미 모양 틀도 누르고, 곰돌이 모양과 별 모양 틀도 섞어가며 꾹꾹 누른다!)
아실링 펜들레엄:(오븐 판에 쿠키 반죽을 올려놓다가 별 모양 반죽을 보고 손가락으로 콕 눌러본다. 살살 누른다는 게 손가락 자국이 남아서 모르는척한다.)
헬레네 R. 히페리데:(같이 반죽을 올려두다가 손자국이 남은 걸 보고는 고개 살짝 기울인다. 모르는 척 하는 아실을 알아채고는 작게 풋, 웃음소리 내고 만다. 저보다 나이가 많으신데도 참 귀여우시다니까.) 이제 잘 굽기만 하면 쿠키는 완성이네요!
이제 남은것은
[9. 170도로 예열된 오븐에서 13분 정도 구워줍니다.]
과 스페셜 [10]이 있습니다.
[10. 쿠키가 잘 구워지게 해달라고 빌기.]
헬레네 R. 히페리데:(오븐이 알아서 해주겠지만…… 그래도 아실과 함께하는 베이킹이니만큼 잘 구워졌으면 좋겠다!!)
(양손 모으고 빌어본다)
(맛있는 초코칩쿠키가 완성되게 해주세요!)
아실링 펜들레엄:(헬리랑 처음 만들어보는 초코칩 쿠키...! 잘 나오게 해주세요. 옆에서 같이 빌어본다.)
둘 다 행운 판정!
아실링 펜들레엄:
운
기준치:
60/30/12
굴림:
70
판정결과:
실패
헬레네 R. 히페리데:
운
기준치:
59/29/11
굴림:
39
판정결과:
보통 성공
13분이 지나기 전부터 달콤한 쿠키 향이 부엌을 잔뜩 감쌉니다.
헬레네 R. 히페리데:(음~ 좋은 냄새.)
띵하고 쿠키가 완성되었다는 소리와 함께 오븐을 열자, 누가 봐도 쿠키의 정석으로 보이는 초코칩 쿠키가 나옵니다.
바로 맛을 확인해 보나요?
헬레네 R. 히페리데:겉으로만 봐도 무척 잘 구워진 것 같아요, 아실! (기대감에 눈이 잔뜩 반짝인다. 식을 때까지 잠시 기다리며 바람을 불어보았다가 동그란 모양 쿠키를 반으로 똑 잘라 아실에게 한쪽을 건네주고, 저는 남은 반쪽을 조심스레 한 입 베어물어본다.)
조금 더 식힌 다음에 먹어도 좋겠지만, 지금의 달콤한 향을 참을 수는 없죠.
쿠키를 한입 먹는 순간
달콤한 초콜릿과 촉촉한 쿠키가 입안에 가득한 즐거움을 남깁니다.
잠깐... 촉촉...?
아까 버터를 많이 넣은 결과인가 봅니다.
바삭과는 거리가 멀지만 맛은 좋으니 괜찮다고 볼 수 있을 겁니다!
아실링 펜들레엄:이 맛은...! (냉장고 빠르게 열어 우유를 꺼내더니 예쁜 잔 두 개에 따른다.) 이건 우유 없이 먹으면 벌받아요! (???)
헬레네 R. 히페리데:촉촉한 쿠키가 되었네요. 원래 만드려던 바삭한 쿠키랑은 조금 달라졌지만, 이것도 맛있으니 좋아요! (찰랑거리는 소리 내며 우유가 따라진다. 컵에 차오를 때까지 기다렸다가 제 몫의 잔을 들고 한 모금 마신다.) 우유와 같이 먹으니 맛이 보다 더 조화롭고 좋네요! 다른 타이머 분들도 분명 좋아해주시겠죠?
아실링 펜들레엄:저희 원래 만들던 것하고는 좀 다르지만.. 이제 베이킹 천재 같지 않나요? (오늘 쿠키 한번 성공해놓고 벌써부터 천재라고 칭한다. 그만큼 오늘 쿠키가 마음에 들었다는 것이겠지만...) 선물할 때 작은 우유도 같이 선물해야겠어요. 다른 분들도 이 즐거움을 알아주셔야죠!
헬레네 R. 히페리데:맞아요. 저희가 열심히 노력한 게 드디어 결실을 맺었나 봐요! (쿠키와 우유를 번갈아 먹으며 행복을 만끽한다.) 그래야겠어요. 예쁘게 꾸며진 비닐포장지에 잘 담아서 드리면 되겠군요.
아실링 펜들레엄:저희가 만든 걸작이라고 소개하면서 나눠주죠. 우유식빵도 분명 맛있게 나올 거예요. 분명 다른 분들도 인정해 주실만한 맛일 테니, 힘내서 우유 식빵도 만들어보기로 해요!
우유식빵은 어떻게 나왔을까요?
행운 판정
헬레네 R. 히페리데:
운
기준치:
59/29/11
굴림:
58
판정결과:
보통 성공
정확한 계량 없이 우유 식빵 만드는 것에 성공했습니다.
전문가도 어려운 것을 두 사람이 해냅니다.
겉모양은 전문가가 보기에 미숙한 형태지만, 맛으로는 빵집에서 팔아도 손색없습니다.
헬레네 R. 히페리데:(레시피를 보고 열심히 만든 보람이 있다! 조금 뜯어 맛을 보곤 무척이나 뿌듯해졌다.) 아실! 저희가 해냈어요~!! 모양은 조금 떨어져도 맛은 아주 좋네요!
아실링 펜들레엄:맛뿐만 아니라 식감이랑 향까지 전부 좋아요. 이래서 빵은 바로 나왔을 때 사 먹어야 하나 봐요.. 이렇게 따끈하고 촉촉하다니... ...!! 식기 전에 다른 분들에게도 어서 맛보게 해드려야겠어요! 서두르죠! 온기가 식기 전에 드려야 해요! (펄쩍 뜀)
헬레네 R. 히페리데:빵집 앞에서 오픈런을 하는 분들이 종종 있던데, 이제 그 심정이 이해가 가요. 그러죠! 식빵에 잼을 발라 먹으면 아주 맛있을 거예요. (연이은 성공에 신나서 서둘러 쿠키들을 포장지에 넣고 식빵도 잘 챙겨서 다른 타이머들을 만나러 내려간다)
정오가 지날 무렵이었습니다.
운이 좋게 다른 타이머들 전부가 외출 없이 남아있는 날이었습니다.
나눠주기 수월했죠.
모두에게 나눠주는 것을 마치고 나오는 길에 DOT의 직원, 레인과 마주칩니다.
한참을 뛰어다녔는지 숨을 헐떡거리던 그는 대뜸 서류철을 코앞에 들이밉니다.
레인:혹시 어디로 외출하셨을까 봐 한참 뛰었네요! 엇갈리지 않아서 다행이에요. 갑자기 죄송하지만, 새로운 임무입니다. DOT 지구 지부로부터 호출이 도착했거든요. 혹시 뉴스 보셨습니까?
헬레네 R. 히페리데:레인, 안녕하세요. (쿠키와 식빵을 나눠주며 달콤하고 고소한 향기에 취해 있다가, 헐떡거리는 레인을 보니 다시금 현실감각이 되돌아오는 듯하다. 웃음 가득하던 낯이 점차로 굳어간다.) 호출이요? 뉴스라면 어떤 뉴스를 말씀하시는 걸까요?
레인:어제 뉴스에 나왔던 사건입니다. '일가족 살인사건'인데.. 혹시 짧게라도 뉴스 보셨습니까?
헬레네 R. 히페리데:아, 네. (심각하게 고개 끄덕였다.) 그 사건은 경찰의 관할에 인도된 줄 알았는데. DOT 지구 지부와 무슨 관련이 있는 거죠?
레인:그럼 얘기가 빠르겠네요. 바로 본론으로 들어가자면, 헬레네 군에게‘일가족 살인사건’ 수사를 의뢰하고 싶다는 내용입니다. (말이 끝남과 동시에 서류철을 전달한다.)
보고서에 해부 기록이나 검식 결과가 포함되어 있긴 한데, 우선 현장에 가 보시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상대가 신화생물이라면 경찰들이 놓친 흔적이 있을지도 모르니까요. 주소랑 좌표도 거기 적혀 있습니다.
아실링 펜들레엄:비슷한 사례라뇨? 이번 일과 연관된 일이 있었나요?
헬레네 R. 히페리데:(용의자가 신화생물이라고? 어째서 경찰이 맡아 마땅한 일을 저를 부르는지 모르겠다 생각했는데, 단박에 이해가 간다. 하지만 대체 왜 신화생물이 일가족을 죽인 것이며, 어떻게 게이트도 없이 나타날 수 있었단 말인가. 굳은 낯으로 아실링의 질문에 대한 답을 기다린다.)
레인:(대답을 잠시 주저하다가 둘에게만 들릴만한 정도로 작게 이야기한다.) 헬레네 군이 과거에 사람 모습을 한 신화 생물과 만났다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이번 일이 그 사건과 비슷하다는 것이 DOT의 입장입니다.
헬레네 R. 히페리데:……. (순간 어떤 말도 잇지 못한다. 정신이 멍해지고, 순식간에 과거의 편린이 그를 에워싼다. 게이트에서 빠져나왔던 이는, 저와 똑같은 모습을 하고 있었다. 무해한 척 하였으나 결국은 저를 공격했지. 사실 지금도 그 정체를 완벽히 알 수는 없지만…… 그곳에서 만났던 아실링은 헬레네가 이미 죽었다고 하였으니 높은 확률로 모습을 의태한 신화생물이었을 것이다. 그런 거라면 어느 정도 짐작은 가지만, 게이트는 어떻게 된 것일까.)
…… 알겠습니다. (겨우 목소리를 쥐어짜내 대답한다.) 블루 아버를 써야겠군요. 아실링과 함께 가도 괜찮을까요? 함께, 가주실 수 있나요? (곁의 아실링을 힘겹게 돌아본다.)
아실링 펜들레엄:(전에 짧게 전해 들은 이야기를 떠올리고는 표정이 차분해진다. 사람의 모습을 하고 말까지 하는 신화 생물. ... 그때 자신을 닮은 사람도 있었지. 침묵으로 일관하다가 마지막 헬레네의 물음에 평소와 같은 미소를 짓는다.) 그럼요. 저는 당신의 파트너잖아요. 어디서든 당신의 곁을 지킬 거예요.
헬레네 R. 히페리데:정말 고마워요, 아실. (함께 가지 않았더라면 저는 바람 앞 등불마냥 흔들렸을지도 모른다. 아직도 과거의 기억을 온전히 놓지 못한 것이 아실링에게는 그저 미안할 뿐이었지만, 서슴없이 동행해주겠다는 말이 헬레네에겐 무척이나 큰 위안이었다.)
.
.
.
대한민국, 동해, 한적한 바닷가의 조촐한 별장.
DOT에서 적어준 좌표를 따라가면 텅 빈 모래사장과 철썩이는 파도가 객을 반깁니다.
성수기가 끝난 쌀쌀한 가을이라 바닷가에는 인적이 드문 편입니다.
별장 앞에는 흉흉한 폴리스 라인이 복잡하게 얽혀 있고, 조금 떨어진 곳에서 소수의 경찰이 대기하고 있습니다.
헬레네 R. 히페리데:안녕하세요. 도밍게즈의 1시의 타이머 헬레네입니다. (경찰에게 목례한다.) 혹 현장의 폐쇄회로 TV 영상을 좀 볼 수 있을까요? 신화생물로 추측되는 대상의 모습을 보고 싶어서요.
타이머의 군복을 알아본 원경태 형사가 앞으로 나섭니다.
경찰수첩을 내민 그는 의례적으로 두 사람의 군번줄과 보고서의 업무 협조 요청 공문을 확인합니다.
원 형사:고생이 많으십니다. 내용은 대충 전달받으셨으리라 생각합니다만……. 알겠습니다.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
확인된 것은 정원에 있는 것 뿐입니다.
헬레네 R. 히페리데:(화면을 보며 저도 모르게 미간을 찡그린다. 재해에 당한 시신들은 수도 없이 봤지만, 사람의 악의나 악행이 명백하게 드러나는 이런 사건에는 익숙지 않았다.)
(혹시 여자의 얼굴을 확인해볼 수 있을까?)
화면을 최대한 확대하지만 자세한 외관이 보이지 않습니다.
원 형사:이런 것은 타이머에게도 힘든 부분이라는 것 잘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계속 확인해주시길 바랍니다. 우선현장을 살펴보시겠습니까?
헬레네 R. 히페리데:검증만 거치면 종결이라는 건…… 아무래도 신화생물은 직접 추적이 어렵기 때문에 그러시는 걸까요?
원 형사:그야 정부와 DOT 모두 평범한 살인 사건으로 취급되길 원해서죠. 대외적으로는 원한 살인 후 범인도 자살했다고 입장을 표명할 겁니다.
확인되는 게이트도 없고, 당연히 경보 발령도 안 울렸고. 그런 상황에서 일가족이 살해당하다니, 분명히 몰매 맞을 상황이잖습니까. 굳이 불안을 조장할 필요 없다는 게 윗선의 지시예요.
그러니 신화생물의 소행이 맞는지만 확인해 주십쇼. 애쓰실 필요 없습니다.
헬레네 R. 히페리데:으음. (일을 크게 벌이지 않고 덮고 싶다는 의사를 이렇게 노골적으로 표명하다니.) 가족이 잔인하게 죽었는걸요. 신화생물을 잡지 않으면, 피해자가 또 나올 수도 있는 일입니다. 게이트의 흔적이 어딘가에는 있을지도 모르니 끝까지 협조해주세요. (그래도 부드러운 투로 답한다.)
원 형사:열정이 넘치시는 군요. 저도 한때는 그런 적이 있었지요. (짧게 말을 끊고는) 현장 확인하실 마음의 준비 해주시길 바랍니다. 시체들이 전부 녹았어요. 게다가 녹은 형태도 화상이라기 보단……. 염산에 당한 것 같다고 할까. 이건 직접 보시는 게 빠를 겁니다. 들어가시죠.
헬레네 R. 히페리데:…… (녹았다. 제가 과거에 봤던 제 모습을 흉내낸 크리쳐도 녹아내리지 않았던가? 그와 같은 종류인 것일까?) 알겠습니다. (역시 살인 사건을 맡는 건 제게는 맞지 않는 일이다. 곁의 아실링을 바라본다. 그의 손을 짧게 찾아쥐었다.)
아실링 펜들레엄:(이 상황에 끔찍함을 느끼는 것은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경찰들 앞에서 약한 모습 보일 수는 없었다. 적극적이지 못하는 이들 앞에서 그런 모습이라도 보였다가 대충 상황을 마무리 지으려고 할까 봐.) ... 가죠. 저희가 제대로 나서야 할 때예요. (꿋꿋한 대답과 함께 잡아진 손에 힘을 준다. 걱정 마세요. 뭐든 당신과 함께 짊어질 테니.)
현장
2층 구조의 작은 별장. 비극을 올릴 무대로는 적합하지 않은, 그윽한 도처입니다.
옥상에는 걷을 이 없는 빨래가 처연하게 흔들리고 있습니다.
현관을 여는 순간 심한 악취가 풍깁니다.
피가 고이고 썩어 풍기는 불쾌한 낌새…….
그 자취를 쫓아 바닥으로 시선을 떨구면 피투성이인 시체가 쓰러져 있습니다.
얼굴을 뜯어 먹힌 끔찍한 꼴로.
이성 판정(0/1).
헬레네 R. 히페리데:
SAN Roll
기준치:
70/35/14
굴림:
72
판정결과:
실패
아실링 펜들레엄:
SAN Roll
기준치:
60/30/12
굴림:
56
판정결과:
보통 성공
헬레네 R. 히페리데:(신화생물에게 끔찍하게 당한 시체들을 한두 번 본 것도 아닌데. 그래도, 그래도 익숙해질 수는 없는 일인지라. CCTV 화면에서 보았던 모습이 그대로 눈앞에 드러나자 한 손으로 눈가를 가리며 잠시 고개를 옆으로 돌린다.) 참담하군요……
원 형사:제8시의 타이머가 복원해둔 시체입니다. 진짜보다 생생하더라고요.
뒤뜰로 이어지는 문은 주방에 있고, 거, 현장 훼손하지 않게 조심하십쇼. (혀를 내두르다가 현관으로 향한다.)
범인의 족적은 온데간데없고 큰 붓으로 문댄 것처럼, 계단까지 이어지는 긴 핏자국이 보입니다.
상식적으로라면 시체를 끌고 간 흔적이겠지만…….
관찰력 판정
헬레네 R. 히페리데:
관찰력
기준치:
65/32/13
굴림:
33
판정결과:
보통 성공
A 씨의 후두부나 등, 발바닥은 비교적 깨끗합니다.
아무래도 이 혈흔이 곧 범인의 발자취인 모양입니다.
거대한 뱀의 허물처럼 휘청거리던 핏자국은 계단이 시작되자 사람의 발자국과 뒤섞입니다.
헬레네 R. 히페리데:(이 사람의 발자국은 가족의 것이려나. 일단, 안방도 가본다.)
피 젖은 발자국을 따라가면 2층 계단참에 도착합니다.
중간부턴 피가 마르기 시작했는지 형태가 불규칙하게 끊깁니다.
그래도 도착지는 한눈에 알아볼 수 있습니다.
가장 가까운 방의 문설주가 온통 피 칠갑하고 있으니까요.
B 씨가 살해당한 안방입니다.
문고리만 헛돌 뿐, 문은 열리지 않습니다.
근력 판정
헬레네 R. 히페리데:
근력
기준치:
25/12/5
굴림:
66
판정결과:
실패
…… 물의 힘을 써서 어떻게 열 수 없을까요? (급기야 창을 쥔다)
아실링 펜들레엄:일단 제가 문을 밀어볼게요.
근력
기준치:
45/22/9
굴림:
21
판정결과:
어려운 성공
강제로 밀어젖히자 기분 나쁜 소리와 함께 B 씨의 시체가 아실링 위로 쓰러집니다.
문에 기댄 죽음이 그토록 무거웠나 봅니다.
생김새만 따지자면 아까보다는 사정이 낫습니다.
아실링 펜들레엄:(위로 쏟아진 시체에 비명지를 뻔한 것 꾹 참는다. 죽은 고인의 시체를 함부로 밀 수도 없어 최대한 부드럽게 잡고 옮긴다.)
자세히 살펴보니 얼룩덜룩한 흉터는 남아 있지만, 이목구비는 온전합니다.
대신 머리카락이 엉성하게 잘려 나갔습니다.
아무렇게나 쥐고 잘라낸 것처럼 끄트머리가 우둘투둘합니다.
헬레네 R. 히페리데:아실……! 이런, 제가 열었어야 했는데. 죄송해요. (마찬가지로 비명을 지를 뻔했지만 애써 참아누르며 시신을 함께 눕혔다.)
(바닥에 잘 눕히고 나서야 시신을 살핀다) 시신은 녹아내리진 않은 것 같지만, 머리칼은 어떻게 된 거죠……?
관찰력 판정
헬레네 R. 히페리데:
관찰력
기준치:
65/32/13
굴림:
62
판정결과:
보통 성공
잘려 나간 게 아니라 피부처럼 녹아내린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아마 범인은 1층에서 A 씨를 살해하고, A 씨의 모습으로 위장해 B 씨까지 살해했을 겁니다. 그다음 행적은…….
뒤뜰로 나가려면 주방을 거쳐야 합니다.
헬레네 R. 히페리데:(얼굴, 머리카락. 그 다음은 어디지? 왜 이런 짓을 한 거지? 신화생물을 이해하려고 시도해본 적은 없었지만, 도저히 저의 상식으로는 받아들이기 어려운 일이었다.)
아실, 괜찮으세요? 뒤뜰로 가실 수 있겠나요?
아실링 펜들레엄:괜찮아요. ... 이런 말 하면 안 되는 것 알지만 그래도 피해자의 얼굴 부분이 훼손되지 않아서 다행인 것 같아요. (훼손된 얼굴과 내부를 직접 눈앞에서 봤다가는 수사에 진전도 못하고 굳어있을게 뻔했다.) 가죠. 저도 제 눈으로 지켜본 뒤에 잡고 싶어요. 이 멀쩡한 사람들을 처참하게 망가트린 그 신화 생물을요.
헬레네 R. 히페리데:무슨 뜻인지 이해해요. (아실링의 어깨를 조용히 토닥거리며 일어섰다.) 이곳의 정부는 사건을 무마하고 싶은 모양이지만, 그대로 뒀다간 피해자가 더 늘기만 할 거예요. 저희가 어떻게든 찾아낼 수 있도록 해 봐요.
어지러운 발자국 사이로, 여전히 붓을 끄는 것처럼 길게 이어지는 핏자국 하나가 눈에 띕니다.
규모는 아까보다 훨씬 작아 손바닥 반 정도 됩니다.
유의 깊게 살펴보지 않으면 모를 만한 흔적입니다만…….
크게 유별난 흔적도 아닙니다.
고등 쇼고스는 인간처럼 굴다가도 쉽게 녹아내리고 부풀어 오르길 반복한다는 걸, 헬레네는 이미 겪어 보았으니까요.
헬레네 R. 히페리데:(핏자국이라는 건 부상을 입었을지도 모른다는 것인가? 형사에게 묻는다.) 저 피의 DNA 감식은 되었나요? 피해자의 혈흔인지 궁금해요.
원 형사:감식을 위해 DNA를 보내긴 했지만 오늘안에 해결하기는 어려울 것 같습니다.
cctv도 제대로 확인하지 못하는 상황이라 아쉬운 것은 마찬가지입니다.
그래도 계속 보다보니 알겠군요. 뒤뜰에 나온 건 피해자 중 한 사람인 아내 B 씨였습니다.
그런데 어딘가 이상한 부분이 있습니다.
헬레네 R. 히페리데:이상한 부분이라면?
원 형사:아내 B 씨의 사망 추정 시각은 같은 날 오후 2시경.
부검 결과 아들 C 군보다 훨씬 먼저 사망한 것으로 밝혀졌죠.
그런데 이 CCTV에는 범인으로 등장한단 겁니다. 하필 배터리가 다 닳아서 이다음 장면은 녹화되지 않았지만, 저녁 9시경 아들 C 군이 차를 몰고 해안도로를 벗어나는 장면이 구간단속 카메라에 포착됐습니다.
인간이라면 불가능한 알리바이 아니겠습니까?
인적이 드문 곳이고, 별장 내부에는 CCTV가 없는 터라 이 이상의 증거는 확보할 수 없었습니다.
헬레네 R. 히페리데:네? C군이 추락사한 장면이 CCTV에 찍힌 시간은 8시가 아니었던가요? (C군의 시체를 뜯어먹던 이가 B씨라는 것도 충격이다. 당연히 범인이라고 생각했는데. 하지만 B씨는 이미 사망한 사람. 그러면 답은 하나뿐이다.) 범행을 저지른 신화생물은 모습을 자유자재로 바꿀 수 있는 걸로 추정됩니다. 혹은, 여럿일 수도 있겠네요. B씨와 C군의 외양을 각각 훔친 거예요.
(하지만, 신화생물이 차를 운전할 정도의 지능이 있다고? 그게 과연 가능한 일인가? 게다가, 만약 빠져나간 것이 정말로 신화생물이라면 피해가 얼마나 커질지 알 수가 없는 노릇이다. 점점 더 사안의 심각성이 무거워져 온다.)
C군의 행적은 계속 쫓고 있나요? 혹시나 신화생물이 모습을 따라한 거라면 얼마나 위험해질지 알 수 없어요.
일련의 상황이 시사하는 바가 명확합니다.
뜯어 먹힌 시체, 죽은 자의 껍데기를 뒤집어쓰고 배회하는 살인마.
인간이 능히 범할 수 없는 죄입니다.
지능 판정
헬레네 R. 히페리데:
지능
기준치:
70/35/14
굴림:
16
판정결과:
어려운 성공
「C 군의 추락 후, B 씨의 등장이 너무 빠르다.」
B 군의 사망 시각은 2032.10.10. 20:48:52.
C 씨가 문을 열고 나온 건 2035.10.10. 20:49:06…….
뒤뜰에서 옥상까지는 주방을 거쳐 계단을 2층이나 끼고 있습니다.
바로 옥상에서 뛰어내린다면 모를까, 그 경로를 10초 남짓에 주파하는 건 불가능합니다.
헬레네 R. 히페리데:이 CCTV에 나오는 B씨는 결코 원래의 B씨가 아닐 거예요. 꼭 추락할 것을 예상했거나, 기다리기라도 한 것처럼…….
상황이 심각합니다. C군의 행적을 쫓는 게 무엇보다 중요해요.
원 형사:... 신화 생물의 짓이라고 확신하시나요?
원 형사는 단도직입적으로 묻습니다.
범인이 신화생물인가, 아닌가. 자, 이번 사건의 당락을 결정할 때입니다.
헬레네 R. 히페리데:…… 네. 현장을 살펴본 결과 이는 도저히 인간의 범행이라 할 수 없습니다. (단호하게 확언한다.) 지금은 범인의 정체를 밝혀내는 것보다 혹 이어질지 모르는 추가적인 피해를 예방하는 데 집중해야만 해요.
원 형사:그렇군요... 알겠습니다. 이로서 수사 권한은 전적으로 여러분들에게 이관됩니다.
용의자는 저쪽 해안도로로 도주했습니다.
쭉 뻗은 손가락은 별장 뒤편의 야트막한 언덕을 향합니다.
헬레네 R. 히페리데:알겠습니다. 아실, 가죠. 운전을 부탁드려도 괜찮을까요?
아실링 펜들레엄:... (원 형사 본다. 혹시 운전해 줄 다른 인원 없냐는 눈)
원 형사:(나를 왜 보는거지...? 하고 있다가) 아. 확인된 결과에 따르면 당해 해안도로를 빠져나간 용의자는 차고에 주차되어 있던 하얀 아반떼를 타고 도주한 것 같더군요. (이거 맞지?)
헬레네 R. 히페리데:(맞나?)
아실링 펜들레엄:(이게 아닌데.....) 감사합니다.
헬리. 아무래도 제가 운전을 해야 할 것 같아요. 저 믿으실 수 있죠...?
헬레네 R. 히페리데:그럼요! 저는 언제나 아실을 믿어요. 사실 웬만하면 제가 운전하고 싶은데…… (바쁜지라 면허도 못 딴 사람) 무슨 일이 있으면 텔레미터를 쓰거나 물 능력으로 어떻게든 막아내면 되지 않을까요? (지극히 이능력자다운 사고나 한다)
아실링 펜들레엄:일단 더 접수된 피해 신고는 없다고 하니 지금은 직접 추적하는 수밖에 없는 것이겠죠.. (이럴 줄 알았으면 쉬는 기간에 운전이라도 할걸. 뒤늦은 후회를 한다.) 저희에게는 텔레미터가 있으니 한결 다행이네요. 좋아요.
근데 저희 무슨 차를 지원받는 거죠?
원 형사는 차 키를 휙 던집니다.
잠입 수사 때 쓰는 애마라면서 소개하는 차량은…… 샛노란 스쿨버스입니다.
옆구리에 「On time 미술 학원」이라고 대문짝만하게 쓰인.
원 형사:도움이 필요하면 이쪽으로 연락하시면 됩니다.
그럼, 다녀오십쇼?
헬레네 R. 히페리데:(스쿨버스? 차 보고 아실링 본다) …… 괜찮으시겠나요, 아실? 아니면 무리해서라도 텔레미터를……
아실링 펜들레엄:... 오픈카를 기대한 것은 아니지만, 이런 것일 줄이야. (저 멀리 있는 하늘 본다...) ... 괜찮아요. 어차피 저희가 직접 찾아야 하는 일이니... 앞좌석에 타세요! 그리고.. 저 대신 주변 좀 잘 봐주세요. 저는 아마 운전하느라 정신이 없을 것 같아서... (시무룩)
헬레네 R. 히페리데:네, 아주 열심히 살필게요! (아무래도 꽤나 마음 졸이면서 가게 될 것 같다……)
(앞좌석에 착석하고 안전벨트를 꽉 조여 맸다)
덜컹 덜컹.
큰 차가 어지럽게 움직입니다.
옆좌석에는 운전대를 잡고 덜덜 떠는 아실링이 있습니다.
이 운전 괜찮을까요?
...
인간은 적응의 동물이라는 말이 정말인지 얼마지나지 않아서 운전에 제법 적응합니다.
아실링은 긴장을 덜 하며 운전에 적응하고, 헬레네는 운전의 덜컹거림을 적응합니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요.
바닷가를 따라 휘어지는 해안도로는 달리기만 해도 시간의 흐름을 거스르는 듯한 묘한 감상을 남깁니다.
앞으로는 겹겹이 일렁이는 물살이, 뒤로는 촘촘히 드리운 삼림이 야생의 광폭을 완성합니다.
사실 이 도로에 범인이 남아 있을 리 없습니다.
이미 어젯밤에 도주했으니 가도 한참을 움직였을 테니까요.
아실링 펜들레엄:(운전에 너무 집중한 나머지 기운이 뚝 떨어진다.) 헬리. 혹시 차에 간식 같은 것 없을까요? 갑자기 훅 배고파져서.. (민망...)
헬레네 R. 히페리데:아, 잠시만요. (잔뜩 긴장하고 집중한 건 이쪽도 마찬가지라 몸에 힘이 가득 들어가 있다. 어깨에서 힘 빼려고 노력하며 앞좌석 아래의 수납칸을 열어본다. 겸사겸사 뒤쪽 좌석도 한 번 살펴보고)
헬레네 R. 히페리데:(책은 일단 무릎 위에 올려두고 카라멜부터 포장지를 까서 아실링의 입 안에 쏙 넣어준다.) 아, 하세요~.
아실링 펜들레엄:(고개라도 돌렸다가 사고 나는 것은 아닐까 싶어서 고개와 시선 정면인 상태로 입만 벌려 받아먹는다.) 감사해요... (냠... 훌쩍...)
헬레네 R. 히페리데:더 있으니 다 드시고 나면 말씀해주세요. 화이팅……! (아자, 하며 응원해주고는 책을 펼쳐보았다. 무슨 제목의 책이지?)
심리학과 철학, 인류학 중 모호한 어느 영역을 다루고 있습니다.
시작하는 단락은 다음과 같습니다.
조수석에 앉은 헬레네가 소리 내서 읽습니다.
「사람의 본질은 위기가 극한으로 고조됐을 때 민낯을 드러낸다. 가령 두 사람이 치명적인 독을 마시고 죽을 위기에 처했다고 가정해 보자. 안타깝게도 해독약은 딱 한 사람 몫만 남아 있다. 필연적으로 내가 살면 저 사람이 죽고, 저 사람이 살면 내가 죽는 딜레마에 빠지게 되는 것이다.」
「죽음, 혹은 그에 준하는 시련 앞에서 사람은 가장 솔직해진다.」
「이 글을 읽는 그대. 당신의 본질은 어떤 낯을 띠고 있는가?」
헬레네 R. 히페리데:(만약 저와 아실링이 책에서 가정한 위기에 처한다면, 자신이 택할 답은 명확했다. 목숨을 빚져 살아남았으니, 타인을 위해 바칠 수 있다면 먼지처럼 바스라진다 한들 아깝지 않으리라.) 철학적인 책이네요. 괜히 제가 운전하시는 데 집중을 흐리게 한 건 아닌지…… (슬쩍 옆자리의 아실 눈치 살핀다.)
아실링 펜들레엄:(운전에 정신없는 와중에도 헬레네가 읽은 글만큼은 머리에 깊이 박힌다. 죽음이나 그에 준하는 시련 앞에서 망설임 없이 선한 본질을 가지고 있을 사람이 누가 있을까? 전이라면 이리 생각했을 것이다.) 방해는요. 좋은 내용인 것 같아요. 사람이라면 한 번 정도는 생각해 봤을 내용이잖아요. 저희 같은 사람이라면 여러 번 생각했을 내용이기도 하고...
헬레네 R. 히페리데:상정하지 않을 수 있다면 좋을 텐데, 저희의 임무가 임무인 만큼 죽음은 언제나 저희의 가까이에 있지요. (책의 글줄을 손끝으로 살짝 쓸어내리다 다시 곧게 앞을 바라보았다.) 저희가 모두 치명적인 독을 마시는 상황이 오지 않을 수 있도록 제가 더 열심히 노력할게요. 주변도 좀 더 경계하고, 조심성도 기르고요. (하지만 사실 따져보자면 우리는 이미 독을 마시는 선택을 했을는지도 모른다. 당신의 쇄골과 저의 눈가에 남은 흉터가 그것을 증명하지 않는가? 다칠 걸 알면서도 우리는 무사를 기원하며 갈라질 수밖에 없었다……. 더 많은 사람들의 안위를 위해.)
아실링 펜들레엄:저희의 안식도 언제나 죽음과 함께하겠죠. 죽음만이 저희가 타이머에서 벗어나는 방법일 테니까요. (멍하니 운전에 집중하다가 속마음이 툭 튀어나왔다. 틀린 말은 아니지만 이런 상황에 나오기에는 불길하기 짝이 없는 말이었다.) 그런 상황은 있어서는 안되죠. 저도 옆에서 열심히 노력할게요. 짐을 진 것은 당신 혼자만이 아니니.
노을이 내려오고, 잿빛 방파제도 황금칠로 단장하기 시작합니다.
드문드문 설치된 구간 단속 카메라가 눈도 깜빡이지 않고 아스팔트 도로를 응시하고 있습니다.
그 옆, 녹색 안내판이 분기점을 고지합니다.
4km 전방에서 도심지로 향하는 해안 도로와 섬으로 향하는 대교로 갈라지는 모양입니다.
도로를 둘러봐도 특별한 것은 없고, 바다의 풍경은 평화롭기만 할 때.
관찰력 판정
헬레네 R. 히페리데:
관찰력
기준치:
65/32/13
굴림:
43
판정결과:
보통 성공
아스팔트 도로에 부자연스럽게 그인 획을 발견합니다.
숲을 향해 다분히 고의적으로 휜 타이어 자국입니다.
그 궤도를 훑으며 시선을 옮기면 빼빼 마른 목본 사이 은밀하게 몸을 숨긴 차량이 보입니다.
흰색 아반떼. 번호판도 정확히 일치합니다.
구간 단속 카메라를 분석해도 발견되지 않더라니, 중간에 도로에서 탈주했던 모양입니다.
헬레네 R. 히페리데:(그의 속마음에 무어라 답할 새도 없이, 도로에 그인 타이어 자국을 보고는 다시금 긴장에 몸이 굳는다. 예리한 시선으로 풍경을 뚫어져라 바라보다가 나무들 사이에 가려진 차량을 발견하곤 소리 높인다.) 아실, 저기에요! 숲 속으로 갔나 봐요!
아실링 펜들레엄:숲속이요? (헬레네의 말을 듣자마자 브레이크를 밟는다. 이어 숨겨진 차량을 발견하고는 차를 돌려 길가 옆 숲에 주차한다.) 맞는 것 같네요. 가서 수색하도록 하죠.
헬레네 R. 히페리데:(들키지 않기 위해 중간에 숲길로 빠졌을 정도면 정말 인간의 지능과 흡사하거나 그 이상의 수준이라는 소리다. 생각보다도 더 위험할 것 같다.) 긴장을 놓지 말아야겠어요, 아실. 언제든 능력을 쓸 준비를 하죠. 인간의 모습을 하고 있을 확률이 높지만 속아넘어가서는 안 돼요. (자신도 그 모습에 속아헬레네에게 당할 뻔했었으니까.)
조심조심 다가간 차량에는 아무도 없습니다.
운전석 핸들과 쿠션에는 시체에서 본 것과 같은 녹은 흔적이 남아 있습니다.
시간이 꽤 지난데다가 새로 떨어진 낙엽이 많아 발자국을 추적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추적 판정
헬레네 R. 히페리데:
추적
기준치:
10/5/2
굴림:
6
판정결과:
보통 성공
드문드문 들풀이나 그루터기에서도 녹은 흔적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저녁을 목전에 둔 야생은 사납고 예민합니다.
발걸음을 죽이고 숨소리도 가다듬어야 합니다.
바람 한 결로도 자신의 위치가 적발될 수 있으니까요.
헬레네 R. 히페리데:(창을 세게 말아쥔 채로, 발소리를 죽인 채 흔적을 따라간다. 어디에서 무엇이 튀어나올지 모르니 예리한 감각을 한계까지 치켜세웠다.)
걷고 걸어 산 정상에 도착합니다.
산책로도 내지 않은 야산 꼭대기에는 사람의 손길이 닿은 흔적은 전혀 없습니다.
정자도 전망대도 없이 불분명한 형태를 뽐내는 바위기둥이 전부입니다.
어떤 사람이 바위기둥 지척에서 발밑에 펼쳐진 경관을 음미하고 있습니다.
벙거지 아래 보이는 얼굴은 A 씨도, B 씨도, C 군도 아닙니다.
지팡이까지 챙긴 본격적인 등산객인 것 같습니다.
30대 중반 정도로 보이는 남성이네요. 석상인 것처럼 멈춰 서 있습니다.
헬레네 R. 히페리데:(어느덧 산 정상. 바위기둥 근처에 서 있는 남성을 보고선 미간을 찡그린다. 길조차 제대로 나지 않은 곳에 등산객이라, 아무리 봐도 불길하지. 높은 확률로 쇼고스에게 먹혔을 가능성이 높다.) 아실, 조심하세요. 경계하시고요.
(혹시 모르니, 거리를 유지한 채로 말을 건다.) 안녕하세요, 이곳은 위험합니다만…… 어쩌다 이곳까지 오셨나요?
남자:아이고 놀라라! (소리에 깜짝 놀란다.) 산에 무슨 일로 오긴요. 등산이죠, 등산.
헬레네 R. 히페리데:길도 없는 곳까지 등산을요? …… 혹시 산을 오르는 과정에서 이분들 중 누구라도 마주치신 적이 있나요? (여전히 의심을 거두지 않은 채로, 일가족의 사진을 보여준다.)
남자:(유심히 사진을 보다가) 험한 산이라 다른 사람과 마주친 적은 없습니다. 그나저나 이 곳 풍경은 보셨습니까? 정상에 올라왔으면 확인을 해보셔야죠.
헬레네 R. 히페리데:죄송하지만 저희는 수사 중인지라 풍경을 확인하기는 어려울 것 같아요. 일가족 살인사건의 범인을 뒤쫓고 있습니다. 신분증을 보여주시겠나요?
남자:풍경 볼 시간도 없이 바쁘신 분들이시군요. 매우 아쉽습니다. (타이머 군복을 보고는 주머니를 뒤적거리며 앞으로 걸어간다.)
이곳의 풍경은 제가 살던 곳과는 매우 다릅니다.
그래서 흥미로워요.
하지만 무엇보다…….
일방적인 대사를 쏟아내며 가까워진 남자는 흥분으로 부글거리는 눈을 하고 있습니다.
인두겁을 뒤집어쓴 본질은 끄트머리부터 형체를 잃고 뭉근하게 녹아내립니다.
손끝에서 뚝, 땀방울도 핏방울도 아닌 살점이 떨어지고
“당신을 다시 한번 만나고 싶었어요.”
낯짝을 두 갈래로 쭉 찢은 고등 쇼고스가 헬레네에게 달려듭니다.
과학으로 설명할 수 없는 범주로 머리통이 갈라지자, 그 골짜기 깊은 곳에서 썩은 구정물로 말미암은 더러운 거품이 요란하게 들끓습니다.
헬레네 근력 대항
인간형 고등 쇼고스:
근력
기준치:
75/37/15
굴림:
95
판정결과:
실패
헬레네 R. 히페리데:(이럴 줄 알았지! 남자가 거리를 좁혀올 때부터 경계 태세로 창을 내밀고 당장이라도 전투에 돌입하기 위해 권능을 쓰려 한다. 그러나 달려들기 전 쇼고스가 내뱉은 말에 순간 머리가 백지처럼 변했다.그때의 그쇼고스가 아직 살아있었다고……? 말도 안 돼, 분명히 내가…….)
근력
기준치:
25/12/5
굴림:
55
판정결과:
실패
(본능적으로 창을 내뻗어 달려드는 쇼고스를 막아내려 한다. 하지만 충격 탓일지, 그만 자세가 흔들리고 말았다.)
저를 알고 있는 건가요? (근거리는 불리하다. 뒤쪽으로 거리를 벌리며 창을 빠르게 휘둘러 물의 검날을 만들어냈다.)
파도의 창
기준치:
80/40/16
굴림:
15
판정결과:
극단적 성공
피해:
44
헬레네의 일격에 고등 쇼거스가 조각납니다.
사경을 헤매는 고등 쇼고스의 형태는 들쑥날쑥 변화합니다.
등산객의 이목구비와 C 군의 이목구비가 게임처럼 억지로 조합되었다가 녹아내리는 괴물의 면모를 드러내고, 종내 흔적도 남기지 않은 채 바스러집니다.
“■■, ■ ■■ ■■■ ■……”
볼품없는 본질로 회귀한 고등 쇼고스는 유언을 남깁니다.
거품이 터지는 소리와 섞여 잘 들리지 않습니다.
모국어 판정
헬레네 R. 히페리데:
언어(모국어)
기준치:
70/35/14
굴림:
81
판정결과:
실패
아실링 펜들레엄:
Language(Own) Roll
기준치:
70/35/14
굴림:
30
판정결과:
어려운 성공
“켁켁, 또다시 만■고 싶…….”
“테켈리-리!”
단말마와 함께 전투가 일단락됩니다.
헬레네 R. 히페리데:(단번에 쇼고스를 처치해내기는 하였으나, 기묘한 불쾌감과 공포와 의문에 가빠진 호흡이 쉽게 돌아오지 않았다. 대체, 어떻게 된 거지?)
아실링 펜들레엄:(또다시? 뒷부분의 말은 흐릿했으나 만나고 싶었다는 말임을 예상할 수 있었다. 물어보고 싶은 것은 많았으나 헬레네 상태가 심상치 않다는 것을 알고 급하게 어깨를 잡는다.) 헬리, 헬리! 진정하세요. 다 끝났어요.
헬레네 R. 히페리데:아, …… 아실. (어깨에 닿아오는 손길, 익숙한 목소리와 온기. 그래, 아실링은 가지 않았어. 아실링은 지금 내 곁에 있어……. 다른 사람이지만 같고, 같은 얼굴이지만 다르다. 3년 전 블루 아버를 넘어간 곳에서 처음 아실링을 보았을 때의 감각이 되풀이되는 듯했다. 안개마냥 분별하기 어려운 흐릿함과 혼란.) 죄송해요. 저 쇼고스, 말하는 걸 보았을 때 과거에 제가 이미 처리한 적 있었던 것 같아서요. 그때의 쇼고스는 제 모습을 하고 있었거든요. 어느 다른 차원에서의 헬레네가 먹혔었다는 거겠죠.
아실링 펜들레엄:(이런 상황에 묘한 어색함을 느꼈다. 자신을 부르는 얼굴이며 목소리가 익숙지 않았다. 모른다고 하기에는 언젠가 본 것 같은 표정. 기억을 되짚다가 처음 만났던 날을 떠올려본다. 구세주처럼 자신을 구원해 줬던 날, 도밍게즈가 멸망할 뻔한 날.) .... 네, 헬리. 저예요. (언젠가는 제대로 캐물어야 할 것이지만 그게 지금은 아닌 것 같아 다시 묻어둔다. 자세한 내용은 모르지만 지금의 헬레네는 과거의 일로 지극히 힘겨운 것 같았으니.) 이곳 말고도 다른 차원의 당신... 많이 놀라셨겠어요. 그것도 과거에 만난 적 있던 것이라면 더욱이요. ... 그래도 이젠 괜찮아요. 이렇게 처리했잖아요. 그렇죠?
헬레네 R. 히페리데:(눈앞에는 살아있는 아실링이 있다. 아, 이 아실링마저 잃어버린다면 나는 정말 무너지게 될지도 몰라…….) 맞아요, 제가 분명히 쓰러뜨렸죠……. 하지만 사라지기 전 쇼고스가 무어라 말하지 않았었나요? (놀란 탓에 미처 제대로 들을 틈이 없었다. 한 번 죽였는데도 다시 나타났으니 어쩌면 다시 만날지도 모른다고, 불길한 느낌이 들었다.)
아실링 펜들레엄:(헬레네에게 들은 것을 사실대로 말해봤자 안정을 주긴커녕 두려움만 깊어질 것만 같았다.) ... 그렇게 조각났음에도 끝까지 뭐라 말하긴 하더라고요. 죽기 싫다는 그런 내용이었어요. 동정할 만한 가치 같은 것은 없으니 자세히 말하지는 않을게요. 그리고.. 당신도 너무 신경 쓰지 마세요.
헬레네 R. 히페리데:네, …… 일단 범인을 처치하는 데는 성공했으니 임무는 완수했다고 봐도 되는 것이겠죠. (조심히 시체로 다가가 잔해를 살펴본다. 지난번에는 군번줄이 있었지. 이번에도 뭔가 남은 게 있지 않을까?)
깨어나면 아무것도 아닌 악몽처럼 흔적도 없이 사라져있습니다.
아실링 펜들레엄:임무 완수했으니 DOT에 알리기만 하면 되겠네요. 일은 제대로 끝냈으니 다행이에요. 그렇죠?
헬레네 R. 히페리데:증거물이 있었더라면 더 좋았을 텐데, 그건 조금 아쉽네요. (흔적 없이 빈자리만을 물끄럼 내려다보다 억지로 두 발을 돌린다. 어째서였을까. 바위를 단 것마냥 걸음이 그토록 무거웠던 건.) 이만 돌아가요, 아실.
DOT에 보고하려고 무전을 켜면 지대가 높은 탓인지 신호가 잘 터지지 않습니다.
우선 내려가는 것을 선택합니다.
.
.
.
다시 해안도로로 내려옵니다.
헬레네는 DOT에 뭐라고 보고하나요?
헬레네 R. 히페리데:('일가족 살인사건의 범인은 고등 쇼고스. 고등 쇼고스는 일가족뿐 아니라 어떤 남성의 모습까지 의태하여 숲 속으로 도주하였고, 항전 끝에 처리하였다. 다만, 쇼고스의 발언으로 미루어보아 3년 전 도밍게즈의 댐 게이트에서 처리한 개체가 부활 혹은 도주하였던 것으로 추정됨.' 이라고 정리하여 보고한다)
DOT에 보고를 마치면 보랏빛과 쪽빛으로 오묘하게 얼룩진 밤하늘에는 별이 총총 빛나고 있습니다.
소녀와 숙녀 사이, 나이를 가늠하기 어려운 여자가 장미꽃을 한 송이씩 바다로 내던지고 있습니다.
파도의 방향이 바뀔 때마다 꽃송이는 정처 없이 쓸려나갑니다.
마구 흩날리는 긴 머리카락 사이로 보이는 얼굴이 익숙합니다.
평범한 소녀가 신화생물과 대치하는, 위기일발의 순간.
척추 대신 도드라진 뼛조각을 곤두세우던 오물 덩어리.
「클라커가 게이트를 엽니다!」
제1번 클라커, 로잘린 애버리지입니다.
단출한 흑색 군복 대신 평범한 일상복 차림인지라, 뉴스에서 본 클라커보단 3년 전 구한 소녀에 가까운 인상입니다.
우울을 감추지 못하는 얼굴입니다.
헬레네 R. 히페리데:(가까이 다가가면 금세 알아볼 수 있었다. 자신에게 무사하라 외치던 앳된 낯, TV 안에서 신화생물과 대치하던 한층 성숙해진 얼굴.) 로잘린 씨……?
로잘린 애버리지:(고개를 들었다가 헬레네를 보고 조금 놀란 얼굴을 한다.) 앗, 안녕하세요. 임무 중이셨나 봐요. 고생하셨습니다.
품에 안은 꽃다발과 작은 상자.
추모 중인것 같습니다.
다만 이상하긴 하네요.
로잘린은 도밍게즈 출신이니까요.
무엇 하러 지구까지 와서 추모하는 걸까요?
헬레네 R. 히페리데:아니에요, 방금 임무를 마친 참이라서요. (부드럽게 미소한다.) 그런데…… 로잘린 씨는 어쩐 일로 이곳에 오셨나요?
로잘린 애버리지:저어.. 그게... (사정을 물어도 쉽게 입을 떼지 못한다.)
대인 관계 판정
헬레네 R. 히페리데:추모를 하고 계신 것 같았는데…… (바닷물 위로 넘실대는 꽃송이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죽음은 타이머와는 뗄래야 뗄 수 없는 것이죠. 클라커에게도 비슷할지도 모르겠군요. DOT에서는 클라커와 타이머들을 만나게 하고 싶지 않아하는 것 같지만, 저는 좋은 동료가 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 왔답니다. 누군가를 위하는 마음은 다 똑같지 않겠나요.
매혹
기준치:
50/25/10
굴림:
7
판정결과:
극단적 성공
로잘린 애버리지:그렇게 말씀해주셔서 감사해요.. (눈이 금방 촉촉해지더니 먹먹한 목소리가 이어진다.) 언니한테 인사를 하러 왔어요. 최근에 게이트 사태에 휘말려서…….
헬레네 R. 히페리데:아, 이런. (진심으로 안타까워하며 로잘린의 어깨를 가볍게 도닥인다.) 항상 모두를 구하고 싶지만, 원하는 대로 해낼 수 없는 게 저희의 피할 수 없는 운명이나 다름없죠. 이 지구에서 돌아가셨던 건가요?
로잘린 애버리지:네... 정말 예상하지 못한 일이었어요. 이 장소도 그렇고요.언니의 유품을 정리하다 보니 얼결에 여기더라고요.
내일 복귀해야 하는데 마침 바다가 보여서 그만...
헬레네 R. 히페리데:누군가를 잃는 일을 겪었다면 추모의 시간도 충분히 가져야 마음이 그나마 덜 힘들 거라고 생각해요. 경험에서 나온 이야기랍니다. (씁쓸하게 미소하며 로잘린을 위로했다. 마음껏 추모하고 가도 된다는 의미다.) 유품이라면……?
로잘린 애버리지:다시는 만날 수 없다고 생각하고 제멋대로 평범한 물건에도 괜한 의미 부여를 한 것 같지만요...
줄리아 애벗, 이라면…… (눈이 커진다. 비슷한 성씨라고는 생각했지만 정말 친언니였다고?) 도밍게즈 연구 기지의 박사님이 아닌가요? 그분이, 돌아가셨다구요……?
로잘린 애버리지:아, 아시는군요. 타이머시니 당연한 걸까요...? 네에... 제 언니에요.
줄리아 애벗 박사, 클라커 프로젝트, 제1번 클라커, 언니, 유품.
각기 흩어졌던 단어들이 단 하나의 귀결을 매듭짓습니다.
“그냥, 별일 아냐. 아는 사람이 죽었거든. 게이트에 휩쓸렸대.”
“요즘 같은 세상엔 흔한 일이지, 뭐…….”
오늘 낮까지도 언론은 클라커 프로젝트의 성공을 떠들어댔습니다.
증원을 앞두고 홍보에 전심전력이었고, 모든 것이 더할 나위 없이 완벽하기만 했는데.
정작 공로자의 죽음은 완전히 은폐되어 있었습니다.
헬레네 R. 히페리데:(닥터 오프화이트가 검은 정장을 입고 있던 게 설마…… 줄리아 박사의 죽음 때문이었다니. 언론에는 지나가는 기사 한 줄로조차도 실리지 않았다.) 대체 어떻게 된 거죠? 클라커 프로젝트를 진두지휘하는 분이 아니셨나요? 대체 어쩌다 게이트에 휘말려서……
로잘린 애버리지:... 죄송해요. 저도 자세히 알고 있는 것이 없어요. 제 친언니인데도 말이죠... 그리고 (주위를 살피다가 작게 소곤거린다.) 더 이상은 말할 수가 없어요. DOT에서 함구하라는 명령을 받았거든요. 이해해 주시길 바랄게요.
헬레네 R. 히페리데:(친언니인데도 말할 수 없다니. 대체 DOT는 무얼 그리 숨기려 드는 걸까. 답답했지만, DOT에 속해있는 건 헬레네도 다를 바 없었다. 군 체계를 따르느니만큼, 무언가 이유가 있을 거라 넘어갈 수밖에. 그럼에도 '하지만' 이라는 말이 자꾸 따라붙으려 드는 건 막을 수가 없었다.) …… 당연히 이해해요. 마음이 많이 안 좋으시겠어요. (자신이 할 수 있는 건 진심어린 공감과 위로뿐.) 앞으로는 좀 더 자주 대화를 나눌 수 있었으면 좋겠네요.
로잘린 애버리지:(계속되는 위로에 울컥해져서 안고 있는 상자에 힘이 들어간다.) 듣는 사람이 따로 없어서 하는 말이지만, 정말 너무했어요. 언니의 유품들도 마구 검사하고 가져가고... 이것도 겨우 챙긴 거예요. 챙겼다고 보기는 어려운 거지만요.. (소매로 눈가를 쓱 닦는 것을 마지막으로 투덜거림이 끝났다.) 기회가 된다면 꼭 만나고 싶어요. 다른 클라커들도 다 타이머님들을 만나 뵙고 싶어 했거든요.
헬레네 R. 히페리데:어째서 그리 배려없는 짓을 했을까요. 아무리 중요한 프로젝트를 맡고 있었다고는 하지만…… (기밀의 영역이라 한들 가족을 잃어 슬픈 마음이 어찌 규율의 천 아래 온전히 가려질 수 있을까. 어쩌면 그 죽음마저도 석연치 않기 때문에 그럴지도 모른다는 가능성이 혜성처럼 뇌리 한구석을 스쳤다. 그러나 가족에게는 무례하게 들릴 수 있으니 소리내어 말하지는 않았다.) 그랬나요? 저도 클라커 분들을 만나뵙고 싶었는데…… 합동 훈련 같은 걸 추진해보는 건 어떨까 하고, 아실과 대화를 나누기도 했었어요. (옆의 아실링을 돌아보며 느리게 미소한다) 저희의 마음이 닿았으니 제가 한 번 상부에 건의해보도록 할게요.
로잘린 애버리지:뭔가 찾고 있는 것처럼 보였어요. 언니가 급하게 넘길 물건이나 자료 같은 것이 있었는지... 물론 추측일 뿐이에요. (말이 끝난 이후 찝찝하다는 표정으로 잠시 상자를 바라봤다.) 정말요? 합동훈련이라니... 다른 애들도 정말 좋아할 거예요. 지원한 많은 클라커들 꿈이 타이머님들 뵙는 거였어요. 모두들 타이머님을 좋아하니까요. 저도 그렇고요. 3년 전에도 두 분에게... (손으로 입을 가리고 아실링과 헬레네를 번갈아 바라본다.) 아무튼 구조 받았었잖아요. 제 지원 동기에요!
헬레네 R. 히페리데:…… 추측해서 나쁠 건 없겠죠. (하지만 대체 무엇 때문에 그랬는지가 중요하다. DOT 내에서 내부 갈등이 있었던 걸까? 그렇다면 원인은 높은 확률로 클라커 프로젝트에 관한 것이었을 터다.)
후후…… 그렇군요. 이렇게 저흴 좋아하시는 줄 알았으면 좀 더 빨리 이야기를 꺼내 볼걸요. (세계를 구하는 클라커라고 떠받들어지지만, 이렇게 보면 역시 영락없는 아이다. 어릴 적 자신을 바라보던 다른 타이머들도 이런 마음이었을까 싶어져 절로 흐뭇한 미소가 입가에 그려졌다가, 3년 전의 이야기에 입꼬리가 순간 삐끗한다. 곁의 아실링을 돌아보기가 어려웠다. 그때의 이야기만 나오면 자꾸 과거로 붙잡혀가는 것만 같아서.) 저 덕분에 클라커에 지원하게 되었다니 이만큼이나 기쁜 일은 없네요. 언제나 위험이 도사리고 있는 일이라지만 항상 조심하셔야 해요. 오직 한 시간대에 두 명씩뿐인 타이머와 달리 클라커는 훈련을 받으면 될 수 있으니까요. 자기 자신을 조금은 우선시해도 된다는 의미랍니다.
로잘린 애버리지:정말요...? 나쁠 건 없을까요? (...) 저 두 분에게만 말씀드리는 건데, 언니의 유품 중 눈에 띄는 것이 있었어요.
훈련이라면 열심히 하고 있어요. 저희가 할 수 있는 것은 게이트를 여는 것뿐이지만... 혹시 모를 상황에 대비해서 열심히 체력운동을 하고 있어요! 여러 외국어도 배우고 있어요. 물론 가슴 깊이 담아두고 매번 기억할게요. 항상 조심하겠습니다!
헬레네 R. 히페리데:고생이 많네요. 제 조언을 깊이 받아들여주시니 그저 감사할 따름이에요. (꼭 같이 활동하는 날이 오면 좋겠다고, 다시 한 번 생각했다.)
헬레네 R. 히페리데:(이 시각에 열렸다는 게이트를 확인해봐야겠어. 뒤이어 편지를 펼쳐보았다.)
보내는 사람은 대한민국 강원도에서 줄리아 애벗.
받는 사람은 우루과이 몬테비데오의 토브바 아일루지.
내용물은 부둣가에 외롭게 선 등대가 찍힌 사진입니다.
로잘린 애버리지:그 주소로 가 봤는데 처음 보는 사람의 집이더라고요. 언니 이름을 듣더니 편지 한 통이 잘못 온 적 있다고 알려 주셨어요.
편지에는 그 사진이 전부라서, 찾아보니 여기 이 등대더라고요.
하지만 잘 모르겠어요. 언니는 왜 그런 편지를 보낸 걸까요? 중요한 걸 놓치고 있다는 기분이 들어요.
로잘린은 울적한 목소리로 등대에도 올라가 보았지만 특별한 건 없었다고 덧붙입니다.
그래도 곧 씩씩하게 웃습니다.
헬레네 R. 히페리데:(대체 무슨 연관성이 있는 걸까? 어쩌면 그곳이 밝혀지지 않은 또 하나의 블루 아버인 걸까?) 아무튼 이 등대에 한 번쯤 가보아야 할 필요가 있겠어요.
많이 힘드셨을 텐데, 제게 기꺼이 보여주셔서 정말 고마워요, 로잘린.
로잘린 애버리지:제가 더 감사드려요. 조언과 위로 덕분에 제가 뭘 해야 하는지 더 잘 알게 되었어요.
언니는 늘 모두를 구하기 위해서 힘냈으니까, 저도 그럴 거예요.
앗, 물론 타이머 분들에 비할 바는 아니지만요. 저번 코스모스 웨이브 때 구해 주신 덕분에 여기까지 올 수 있었어요. 감사합니다!
뒤늦은 인사가 진심을 동반하고 다가옵니다.
아실링의 표정은 미묘하기만 합니다.
한 적 없는 일, 겪은 적 없는 날을 시시때때로 마주하게 되는 처지니까요.
헬레네 R. 히페리데:아니에요. 저도 그때 로잘린의 말 덕분에 더 힘을 얻어낼 수 있었어요. 그리고 그 덕분에 블루 아버가 열려, 아실링을 만날 수 있게 되기도 했고요. (아실링은 코스모스 웨이브의 일을 모르니 꼭 이 대화에서 소외된 것처럼 느껴지겠지. 그게 아니라고 말해주고 싶어서 아실링의 손을 살짝 맞잡았다.)
저희 앞으로도 힘내요. 그리고, 무언가 알아내게 된다면 꼭 말해줄게요.
로잘린 애버리지:제가 도움이 되었다니 다행이에요. (뭔가 아실링에게도 뭐라 말을 더 하려다가 표정이 심상치 않다는 것을 알고 입을 꾹 다문다.) 사이좋아 보이시니 다행이에요! 두 분 다 잘 지내고 계셨나 봐요.
먼저 연락까지요? 제가 따로 연락할 방법이 있나 찾아볼게요. 감사해요! 그리고 그런 거 아니어도 언제든 연락 주세요. (헤헤)
헬레네 R. 히페리데:(무어라 해야 할지 대답을 찾기가 어려워 잠시 곤란하게 미소만 지었다. 이 자리에서 바로 로잘린이 알던 아실링이 죽었다 말하기에는 아무래도 그렇다. 곁의 아실링이 듣기에도 썩 좋은 이야기는 아닐 테니. 개인적으로 시간을 내어 전해주어야겠다. 그리 결심하고 우선은 자연스럽게 화제를 넘겼다.) 네, 저흰 항상 사이가 좋죠. 그럼 다시 만날 날을 기다리고 있을게요.
로잘린 애버리지:(곤란한 미소에 약간의 의문을 가지다가 지금 표현하지 못하는 의미가 있겠거니 하는 생각에 밝은 미소만을 보인다.) 네, 그때까지 부디 건강하세요. 항상 저희의 영웅으로 있어주시고요!
띠링.
「2035-10-11, 18:10
도래솔 광장에 신화생물 출몰.
제1번 클라커 즉시 출동할 것.」
익숙한 양식의 메시지가 추모하는 잠깐을 기다리지 못하고 끼어듭니다.
차이라면 타이머가 아닌 클라커를 부른다는 것 하나.
메시지를 확인한 로잘린은 이만 가봐야겠다며 텔레미터를 조율합니다.
헬레네 R. 히페리데:조심히 잘 다녀오세요. (부디 무사히 다시 만날 수 있기를. 으레 바라곤 하는 지진한 소망이 스친다.)
로잘린은 마지막까지 헬레네와 아실링을 향해 손을 흔듭니다.
고장 난 시계와 달리 텔레미터의 바늘은 핑그르르, 거침없이 돌아가고 순식간에 부둣가에는 두 사람만 남습니다.
아실링 펜들레엄:(로잘린이 사라지고 나서도 한참 입을 열지 않고 있다가 조심스레 차가운 기운이 남은 손으로 헬레네와 손을 겹친다.) ... 저 헬레네한테 허락받아야 할 것 같아서요. 좀 유치하게 굴어도 돼요? 어리광 말고요. 당신이 싫다고 한다면 안 할게요.
헬레네 R. 히페리데:그럼요. (계속 조마조마하고 있던 차였으므로, 아실링의 손이 닿자 속으로 흠칫 놀랐지만 티내지 않으며 부드럽게 대답한다. 일련의 상황은 아실링이 저에게 화를 낸다 하여도 할 말이 없었으므로.) 어리광을 부리셔도 괜찮은걸요.
아실링 펜들레엄:(비어있는 손으로 이마를 잠시 짚었다가 뗀다. 유하고 가볍게 굴던 평소의 모습을 지킬 자신이 없어 한참을 입을 열었다 다물었다를 반복한 끝에 다듬어지지 못한 말이 튀어나온다.) 대체 뭘 얼마나 각별했던 건가요. 그 사람이랑 당신이요. 어딜 가든 그 이름이 따라다녀서요. ... 하지도 않은 일로 감사를 받아도 되는지 모르겠네요. (마지막 말에 가서야 목소리에 장난스러움이 섞인다.)
... 제가 DOT이랑 당신을 곤란하게 한 것 같네요. 방금 말은 무시하셔도 돼요. 다른 이야기나 할까요? 지구의 바다 가보셨나요? 할당된 임무도 처리했겠다, 여기까지 온 김에 구경이나 하는 것도 좋을 것 같네요. (시시콜콜한 말을 하며 등대 쪽으로 먼저 몸을 돌린다.)
헬레네 R. 히페리데:…… 미안해요. (이런 반응이 돌아오리라 예상은 했다. 그게 당연한 거니까. 자신이 도밍게즈의 아실링에게서 느꼈던 감정과 다를 바 없을 테니까. 저 역시 자신이 아닌 헬레네와 어떤 사이였고 어떤 이야기가 쌓여 있었는지 궁금해했었다.) 다른 분과 아실링을 겹쳐보고 싶지 않았는데, 3년이란 시간이 지났는데도 아직 완전히 과거를 떠나보내지 못하고 신경쓰이게 만들어 버렸네요…….
아니에요, 한 번쯤은 제대로 짚고 갔어야 했는데 제가 너무 차일피일 미루어왔죠. (심호흡을 한다. 추를 내리고 내려보아도 과거의 무게는 쉬이 가벼워지질 않아서.) 그분은 아마도 다른 차원의 도밍게즈에서 시공간을 넘어온 것 같았어요. 아실링과 얼굴이 완벽히 똑같았죠. 성격도…… 거의 비슷했구요. 그분의 세계에서는 제가 신화생물에 당해 죽었다고 했어요. 그리고 그분은, 3년 전 코스모스 웨이브에서 위기에 처한 저를 감싸고 대신 돌아가셨죠. (긴 시간이 흐르고서야 겨우 담담해질 수 있는 죽음.) 그분의 피와 저의 피가 섞여 블루 아버가 열렸고, 그때 런던에 계시던 아실링을 처음 뵌 거예요. 그 세계의 아실링과 제가 많은 시간을 함께한 건 아니었지만 저희가 이렇게 마음이 맞듯 그분과도 나름대로의 추억을 쌓아 왔기에, 아직도 이따금 과거의 잔재가 향기마냥 남아 감돌고는 하네요.
아실링 펜들레엄:(헬레네에게 말하지 않았을 뿐, 자신이 모르는 '아실링'을 질투했다. 처음에는 그러려니 할 수 있었으나, 죽어 흔적도 없는 그 사람이 살아있는 자신을 통해 이 세상에 남아있는 것 같아 불쾌했다. 그게 꼭 자신을 지우는 것만 같아서. 살아있는 자신을 유령으로 만드는 것 같아서. 헬레네는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봐준다는 것을, 그리고 전 아실링을 자신과 겹쳐보지 않으려고 하는 것을 알고 있음에도 생각은 꼬리를 물고 끊어지지 않았다. 정말 그 아실링과 아무 관계도 없냐는 3년간의 물음과 시간. 차근차근히 마음을 어지럽히는 것을 막을 수는 없었다. 옆에서 그런 말을 같이 들을 헬레네 또한 마음 편치 않았던 것을 알았으면서. 이기적이기 짝이 없다는 자기평가가 내려졌음에도 쉽게 바뀌지 못했다.)
(항상 듣기를 기다렸고, 동시에 듣기 두려웠던 이야기의 끝에 남은 것은 헬레네를 향한 미안함과 자기 자신을 향한 부끄러움이었다.) 당신을 정말 힘들게 한 것은 그 사람이 아닌 저였던 것 같네요. ... 당신이 저를 통해 그 사람을 바라볼까 봐 두려웠어요. 하지만 정말로 그 사람을 바라보고 벗어나지 못한 사람은 저였네요. 죄송해요.
헬레네 R. 히페리데:3년 전의 아실링은 타이머와 유전정보가 같지만 많은 것이 베일에 싸여 있었기에미지수라 불렸어요. 끝까지 제 이름으로 불리지 못하고 'X'라고 호명되었죠. 그분의 애칭을 불러드리지 못한 게 못내 죄송스러웠어요. (미지수를 잃자마자 블루 아버 너머에서 완벽히 똑같은 아실링을 만났다. 그렇기에 미지수의 죽음을 받아들이고 정리할 시간이 부족했던 것 같다. 3년이 지나고서야 헬레네는 꼬인 테이프마냥 엉켜있던 감정과 시간을 풀어놓고 되감아간다.) 그분이 마지막에 남긴 부탁이 있어요.이번엔 나를 만나지 말라고……. 그 직후 열린 블루 아버 너머로 전투에 임하는 아실링을 보았어요. (시선이 또렷하게 빛을 발한다. 명확히 지금 제 눈앞에 있는 이를 바라보고 있었다.) 무슨 뜻인지 이해할 수 있었지만, 그 이해를 부정하고서라도 넘어가고 싶었어요. 혼자 두고 싶지 않았거든요.
그래서 저는 넘어갔고, 이렇게 아실의 파트너가 되어 곁에 함께 있네요. (희미하게 웃으며 아실링의 손을 조심스럽게 감싸쥐었다.)
좀 더 일찍 말씀드리지 못해 죄송해요. 아실이 어떻게 느끼셨더라도 정당해요. 과거에서 완벽히 벗어났다고 한다면 거짓이 되겠지만……. 저는 지금의 아실을 아주 소중하게 여기고 있어요. 이렇게, 제대로 바라보고 있구요.
더 많은 시간을 함께 한다면 과거의 아픈 기억도 차차 좋은 추억들로 덮여져 가겠죠. 얼룩진 어둠을 화사한 실로 수놓아 덮는 것처럼…… 그래서 언젠가는 아실에게 더는 미안해지지 않도록, 노력할게요.
아실링 펜들레엄:아직도 기억해요. 아프고, 지치고, 힘들었던 그때 당신이 저를 구해주셨었죠. 그 사람이 왜 그런 말을 했는지... 저는 모르겠어요... 하지만, 당신은 이미 그때 저를 선택해 주셨던 거네요. 이미 그때 저를 바라봐 주셨던 거예요. (길고도 짧은 3년. 떨어져 있는 시간보다 붙어있는 시간이 더욱 많은 날들. 그 시간 동안 당연하게 옆자리를 지키고 있었던 당신을 두고 왜 그 너머에 있는, 모르는 자신을 질투했었다. 헬레네와 행복하기도 바쁜 시간이었을 텐데.)
저는 진짜 어른이 되려면 한참은 먼 것 같아요. 네.. 그 말이 듣고 싶어서 지금껏 유치하게 굴었나 봐요. 당신이 저를 제대로 바라보고 있다는 말을 꼭 듣고 싶어서. 그런 말 하지 않아도 당신은 저를 봐주고 있었는데 말이죠. 그것만으로 충분했는데... 제 눈을 제가 가리고 있었어요.
당신이 왜 그동안 이야기를 안 하려고 했는지 이제는 알아요. 당신은 상냥한 사람이니까... 제가 좀 더 당신을, 그리고 저를 제대로 봤으면 도움이 되지 않더라도 당신을 덜 힘들게 했을 테죠. 너무 늦어져서 죄송해요. 하지만 저에게 기회를 더 주세요. 과거의 아픈 기억은 제가 좋은 기억으로 덧칠할게요. 세상에서 제일 예쁜 색깔들로, 시간이 아무리 지나도 바래지지 않는 것들로요. 그러니... 옆에서 같이 노력하게 해주세요.
헬레네 R. 히페리데:아니에요. 사과하지 않으셔도 돼요. 오히려 사과드려야 하는 건 제 쪽인걸요. 저도 이제는 과거의 아픈 잔재에 더는 매몰되지 않고 앞을 바라볼게요. 나아갈 수 있도록. (걸음을 내딛지 않으면 성장할 수 없다. 알면서도 차마 고개를 돌리지 못했었다. 그러나 이제는 해묵은 감정을 터놓았다. 혼자가 아닌 함께라는 안도와 안심이 저에게 용기를 준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분은 제가 그분과 똑같은 결정을 내리지 않을까 걱정하셨던 게 아닌가 싶어요. 결정적인 순간 상대를 위해 목숨을 내놓으려 할까 싶어서……. 그때의 코스모스 웨이브는 필연적으로 목숨을 앗기는 이들이 존재할 수밖에 없는 사고였었죠. 만약 그런 일이 또 반복된다고 한들 홀로 남는 쪽이 없도록, 함께 노력해요. (맞잡은 손은 단단하다. 어느 쪽도 놓지 않으려 굳게 마음먹는다면 떨어지지 않을 것처럼.)
아실링 펜들레엄:정말... 그 사람의 자세한 것은 모르지만 저였어도 그랬을 것 같네요. 이제 못 미워하겠어요. (가벼운 농담 이후 손가락으로 가볍게 손등 쓸는다.) 당신과 저 둘 다 어느 한쪽을 혼자 둘 생각은 하지 않죠. 클라커의 도움으로 피해가 확실히 줄어들었다지만, 저희는 마냥 안심할 수는 없는 사람들이라는 것 알아요. 그럴 일 없기를 바라야 하지만, 코스모스 웨이브처럼 끔찍한 일이 또 일어날지도 모르죠. 하지만 그런 일이 일어난다고 해도, 당신이 말해준 것처럼 서로의 자리를 지키기로 해요. 약속.
헬레네 R. 히페리데:네, 그럼요. (사실 이리 말하곤 있어도, 견뎌내기 어려운 위험이 왔을 때 아실링을 살리고 제가 죽는 선택지를 고르지 않으리라 장담할 수는 없었다. 그는 언제나 타인들을 위하는 데 익숙했으므로. 그래도 현재로서는 닥치지 않은 미래. 열심히 기반을 다져간다면 3년 전과 같은 날이 오지 못하게 만들 수도 있겠지.) 힘내서 지키고, 살아남기로 해요.
도착한 자그만 등대 안에는 나선 모양으로 계단이 쭉 뻗어 있습니다.
소라 껍데기처럼 둥글게, 둥글게.
한 칸을 오를 때마다 작달 만한 창밖의 색이 바뀝니다.
탁 트인 바다에 밤이 내리는 과정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집니다.
아실링 펜들레엄:오늘 진짜 바다 원 없이 보는 것 같아요. 여행이라도 온 기분이에요. (바닷바람에 휘날리는 머리카락을 한갈래로 묶는다.) 이따가... 돌아가기 전에 발이라도 담그는 것은 어떨까요? 아, 이제는 물이 차가우려나요?
창문에 달라붙은 아실링은 은근히 들뜬 얼굴입니다.
그러나 기대와 달리 등대의 꼭대기엔 고장 난 망원경과 먼지 가득한 난간이 고작입니다.
인기척이 끊겼는지 바닥에는 세월의 흐름을 간직한 발자국들이 겹겹이 쌓여 있습니다.
아실링 펜들레엄:그동안은 숨 돌릴 새도 없이 바빴잖아요. 이런 말 해도 괜찮을지 모르겠지만.. 저는 늘 이런 일탈을 꿈꾸곤 했어요. (아직 순수함이 묻어있는 미소로 답한다. 소금기도 물기도 아닌 웃음기만 한가득 배어 있다.)
헬레네 R. 히페리데:글쎄요, 차가우면 저희가 만들어낸 물을 바로 발 아래 깔아볼까요? 그러면 바닷가에 들어가는 의미가 없으려나요? (하늘은 맑고 등대가 자리한 바닷가는 고즈넉했다. 창가로 보이는 밤의 조각을 헤일 때면 나직한 서로의 목소리가 파도처럼 밀려오고는 했다. 순수함이 가득 어린 파트너의 낯에 저도 모르게 달빛 같은 미소가 어렸다. 이런 평화로움을 누리는 건 얼마만이던지. 해가 떠 있을 때만 해도 살인사건에 추격전까지 겪었는데, 조용한 밤바닷가가 힘든 기억을 씻어내려주는 듯했다.) 그러면 마음껏 이 밤의 일탈을 누려보도록 해요. 사실 일탈이라 하기에도 너무 소박한 것 같지만요.
아실링 펜들레엄:발만 살짝 담갔다가 너무 차갑다 싶다면 그때 만들어내기로 해요. 일탈도 좋지만 결국 당신과 함게 잘 즐겼다는 것이 중요하니까요. 헬리의 발을 차갑게 만들 수는 없죠. (이어진 대답에 눈 땡그래진다.) 정말이죠? 헬리가 그렇게 말한 거예요..! 당장 핸드폰을 켜서 주변에 상점이 있나 찾아볼게요. 이런 바다 가면 역시 불꽃놀이죠. 물론 이것도 전부 드라마나 영화에서 본거지만... 아무튼 저도 즐겨보고 싶어요. (한번 신이 나서 시작한 말을 한참이 지나도 끝나지 않는다. 어린 시절부터 의무에 의해 일반인들은 흔하게 즐기고도 남을 흔한 놀이조차 제대로 해보지 못하게 마음에 남았었나 보다.)
헬레네 R. 히페리데:네, 좋아요. (대번에 신나서 떠들썩해지는 모습에 눈을 살짝 크게 떴다가 이내 푸스스 웃어버린다.) 아실도 열두 살에 타이머가 되신 거죠? (한창 놀며 즐기기에도 바쁜 어린 나이. 그 나이에 군대에 들어왔고 그로부터 벌써 십 년이 넘는 시간이 흘렀다. 평범한 이들과는 다르게 살아올 수밖에 없는 삶. 능력을 쓰고 신화생물을 처치할 때에는 능숙하고 어른스러워 보여도 파트너와 단둘이 있는 순간만큼은 아이로 돌아간 것만 같았다. 저와 함께 있을 때만큼이라도 아실링이 편하게 쉴 수 있다면 참 기쁜 일이다.) 저도 불꽃놀이는 드라마에서 본 적이 있어요. 어릴 때는 바닷가로 갈 일이 없어서 직접 해보진 못했네요. 위험하다고 오빠가 말리기도 했었고…….
아실링 펜들레엄:저도 그쯤에 들어갔어요. 엄청 피하려고 했는데 말이죠... 헬리를 걱정하는 오빠분의 마음은 알 것 같네요. 저는.. 말려줄 사람은 없었는데 그냥 못해봤어요. 바다 가본 적이 없어서. 그때는 집에 있는 게 좋았거든요. 음... 아마 영화에서 나오는 것 같은 예쁜 폭죽을 사기는 힘들 거예요. 그래도 작은 것 하나 정도는 살 수 있겠죠. (토도독 하고 핸드폰으로 빠르게 주변 상점을 검색한다.)
헬레네 R. 히페리데:집순이셨던 거군요? (이게 요새 젊은이(?)들이 쓰는 단어라고 하네요, 하며 웃는다) 아실과 함께 불꽃놀이를 한다는 게 중요한 거니 모양은 너무 괘념치 말기로 해요. 어때요, 가게가 있나요? (옆에서 화면 들여다본다)
아실링 펜들레엄:바로 콕 집어서 얘기해 주셨네요. (요새 젊은이(?)이라는 대답에도 고개 끄덕이기만 한다. 바쁘다 보니 자세히 칭하는 새 단어는 알지도 못하는 상황이었다.) 아... 안타깝게도 문을 일찍 닫았나 보네요. 여름이 아니라 문을 일찍 닫나 봐요. 아무래도 사람들이 바다에 잘 안 오는 시기가 지금이다 보니... 그냥 바다 구경하기로 하죠! 폭죽은 나중에 하는 걸로 해요!
헬레네 R. 히페리데:이런. 아무래도 시간이 좀 늦기는 했죠. (아실링의 들뜬 기분이 가라앉는 게 아쉬워 눈썹이 살짝 처진다.) 다음에는 폭죽을 미리 사서 바닷가에 오는 게 좋겠어요.
인적 드문 모래사장.
외로움이 고인 바다.
어두움으로 가득 찬 하늘.
밤과 맞닿은 수면은 칠흑으로 물들어 경계를 구분할 수 없습니다.
창공에 매달린 달은 심해에도 가라앉고, 흔들리는 파도와 똑같은 형태로 깃털 구름이 찢어집니다.
비로소 위와 아래가 똑같은 그림이 완성되면 벼락같은 깨달음이 내려칩니다.
아이디어 판정
헬레네 R. 히페리데:
지능
기준치:
70/35/14
굴림:
2
판정결과:
극단적 성공
줄리아 애벗(Julia Abbott)과 토브바 아일루지(Ttobba Ailuj).
그 이름도 양면이 뒤집힌 데칼코마니를 이루고 있다고.
단순한 우연일까요?
왜 줄리아 애벗은 지도에 토브바 아일루지의 집만 표시해 뒀던 걸까요?
헬레네 R. 히페리데:(발목에 바닷물이 고여올 즈음, 번개처럼 깨닫는다.) 아실, 그러고 보면. (편지를 황급히 펼쳤다.) 이 편지를 받는 사람인 토브바 아일루지는 줄리아 애벗이라는 이름을 뒤집은 것과 똑같아요. (지도를 반으로 접어본다. 우루과이와 대한민국의 위치가 완전히 맞닿는지 확인하기 위해서)
데칼코마니는 중심선을 기준으로 좌우가 대칭을 이룹니다.
줄리아 애벗의 지도는 정확히 반으로 접혀 있었습니다. 우루과이 몬테비데오의 반대편은…….
대한민국입니다.
정확히 대응하는 좌표도 있습니다.
해안도로를 따라 조금 달리면 도착할 수 있는 거리입니다.
뭔가 단서를 얻었지만
……. 좋지 않은 예감이 듭니다.
아실링도 불안한 눈으로 헬레네를 바라봅니다.
헬레네 R. 히페리데:…… 줄리아 박사님의 죽음은 은폐된 거나 다름없어요. 어쩌면 이곳에 DOT가 숨기고자 하는 진실이 있을지도 모르겠네요. (그런데 왜 이런 불길한 예감이 드는 걸까.괜히 묻으려 한 게 아닐 것이다, 그리 말하기라도 하는 것처럼.)
가보아도 괜찮을까요, 아실?
아실링 펜들레엄:박사님이 돌아가시기 전에 따로 숨기신 장소에... 이유 또한 아직 모르고, 어떻게 돌아가신 것인지도 의문으로 남아있죠. 아마 평범한 내용은 아닐지도 몰라요.
... 그래도 이게 저희가 해야 하는 일이겠죠. 알아낸 이상 모른척할 수는 없잖아요. 모른척할 당신도 아니고요. 같이 가요.
헬레네 R. 히페리데:…… 무엇을 숨기려는지 짐작가는 건 없지만, 저는 알아내고 싶어요. 단순히 호기심뿐만이 아니라 세계를 위해서라도, 로잘린을 위해서라도. (게다가 자신에게는 권능이 있으니 어느 정도 위험한 건 괜찮을 것이라는 방만한 자신감도 다소간 깔려 있었다.)
헬레네 R. 히페리데:왜……? (가장 먼저 입가에서 흘러나온 건 의문이었다. 무엇이 공생하려 든다는 거지? 어째서 숙주가 등장하는 것인지 이해가 어려웠다.)
(눈살을 찡그리며 표본병으로 시선을 돌렸다.)
투명한 병에는 각종 표본이 담겨 있습니다.
라벨링이 되어 있어 내용물을 식별하긴 어렵지 않습니다.
블루베리를 닮은 열매가 총총 매달린 가지는 「벨라돈나」, 불규칙하게 부서진 돌조각은 「신성한 손가락」, 마지막 병은 깨져선 텅 비어 있습니다.
라벨의 명칭은……「고등 쇼고스」.
행운 판정
헬레네 R. 히페리데:
운
기준치:
59/29/11
굴림:
100
판정결과:
대실패
운
기준치:
59/29/11
굴림:
24
판정결과:
어려운 성공
깨진 병에서부터 연구실 문까지 끌린 뭉근하게 녹은 자국을 발견합니다.
단언컨대, 고등 쇼고스가 도망친 흔적입니다.
게이트가 열린 흔적이 없는데도 등장한 고등 쇼고스의 출처는 여기서 밝혀집니다.
헬레네, 당신이 3년 전에 사냥한 개체의 유체였습니다.
트로이 목마는 이미 내부에 들어왔던 것입니다.
애벗 박사가 무엇을 위해 이런 자료들을 빼돌린 건진 모르겠지만, 여기서 출발한 건 틀림없습니다.
애벗 박사, 클라커, O'clock Serum, 그리고 사역...
모든 것을 하나로 모아 생각해본 헬레네, 지식 판정.
헬레네 R. 히페리데:
지능
기준치:
70/35/14
굴림:
28
판정결과:
어려운 성공
클라커는 무엇으로 만들어져 있을까?
타이머의 피와 신성한 파편, 그리고 치명적인 독.
그런 것들로 만들어져 있지…….
96명의 클라커들은 당신의 피로 말미암은 인공적인 사역이었습니다.
헬레네 R. 히페리데:(바로 어제만 해도 채혈을 했었다. 건강 검진과 유전자 분석을 위해서라던 채혈이…… 실은 클라커를 사역하기 위한 재료로 쓰이고 있었던 것인가. 한순간에 모든 사실을 종합하고 이해하여 결과를 도출해낸다. 불길한 예감이 들었던 건 이 때문이었구나…….)
(세상을 위해 나의 권능뿐 아니라 이제는 나의 피까지도 재료로 쓰였구나. 그래, 모든 문장은세상을 위해라는 말이 선행어로 붙으면 납득할 수밖에 없게 변한다.)
(하지만 적어도……) 적어도 동의 정도는 구할 수 있었잖아요. (자신이 듣기에도 볼품없이 떨리는 목소리가 새었다.) 제 피가 로잘린에게도 심어졌다는 것 아닌가요. (숙주는 클라커였구나. 내 피가 그들에게 기생한다.)
아실링 펜들레엄:(갑자기 등장한 클라커에 대해서 많은 의문이 있었죠. 훈련과정부터 시작해서 정확한 참여 인원도 제대로 알려지지 않아서 수상하다 하긴 했지만 이럴 줄이야.) ... 당장은 클라커들이 걱정되네요. 인체적으로는 괜찮은 것일까요? 저희 동의도 구하지 않은 DOT인데, 클라커의 제대로 된 동의는 구했을지... 그게 걱정이에요.
이성 판정(0/1D2).
헬레네 R. 히페리데:
SAN Roll
기준치:
69/34/13
굴림:
1
판정결과:
대성공
행운 판정
헬레네 R. 히페리데:
운
기준치:
59/29/11
굴림:
68
판정결과:
실패
아실링 펜들레엄:
운
기준치:
60/30/12
굴림:
8
판정결과:
극단적 성공
헬리. 여기 이런게 있어요.
연구 일지 뒷장에 붙은 포스트잇을 발견합니다.
「토끼는 당근을 먹고, 여우는 토끼를 먹고, 사자는 여우를 먹는다.」
헬레네 R. 히페리데:(먹이사슬의 구조라는 것인가. 저는 권능을 얻었고, 클라커는 타이머의 피를 받아들였고, DOT는 클라커의 능력을 활용한다……. 이를 의미하는 게 맞을까? 무엇이든 상관없다. 이성이 차가울 정도로 명료해 놀라울 지경이다.) 그렇네요. 클라커들에게, 그리고 사람들에게 이 진실이 공표된다면 그 누가 클라커를 한다고 나설까요?
헬레네 R. 히페리데:(상식적으로 게이트 경보가 내려진 곳에 사람이 이렇게 많을 수는 없다. 로잘린의 비명을 듣자마자 등줄기에 소름이 돋는다. 이렇게 많은 고등 쇼고스가 존재할 수 있다고?)
SAN Roll
기준치:
69/34/13
굴림:
36
판정결과:
보통 성공
(지금껏 겪어본 적 없는 광경이지만 충격에 오래 매몰될 시간은 없다. 광장에 울려퍼지는 팝송을 무시하려 애쓰며 창을 쥐고 물을 생성해내 하늘로 박차올랐다. 커진 사람들의 동공을 무시하려 애썼다. 저건 사람들이 아니다. 모습을 뒤집어쓴 신화생물들일 뿐이야.) 아실! 준비하세요!
아실링 펜들레엄:살면서 웬만한 일들에 다 익숙해졌다 생각했는데.. 신기하네요. 익숙지 않은 일인데 이렇게 차분할 줄이야. (전부 사람의 모습을 뒤집어쓴, 그것도 평화를 누려야 할 사람들을 죽인 것들이라 생각하니 충격으로 어지럽던 머리도 차분해졌다.) 준비 끝났어요, 헬리.
헬레네 1D50
헬레네 R. 히페리데:
rolling 1d50
(
8
)
=
8
무리에 있던 8마리의 고등 쇼고스가 다가옵니다.
헬레네 R. 히페리데:(합을 맞추어 창을 크게 휘젓는다. 살아있는 이는 로잘린뿐인가? 그를 구해내는 것이 시급하다.)
심신증으로 인해 1D10 라운드 동안 눈이 안 보이거나, 소리가 안 들리거나, 사지가 안 움직이게 됩니다.
For1rounds.
(숨이 잘 쉬어지지 않는다. 포스트잇이 말하고자 하는 게 이것이었다니. 지구의 숙적은 신화생물이 아니라 타이머라는 문장이 이를 의미하였다니. 사람을, 세계를 구하려 창을 쥐었는데 자신으로 인해 사람들과 세계가 잡아먹혀가고 있었다.)
(이번에야말로 이성이 버티지 못하고 무너져내렸다. 눈에서 흐르는 액체는 투명하였으나 기실 피눈물을 흘리는 듯했다. 몸이 마음처럼 움직여지지 않는다. 아니, 왜 움직여야 하는지도 알 수가 없다. 둔하고 무딘 움직임이나마 창을 휘두른 건 살아있을지도 모르는 로잘린, 오로지 그 존재 하나만을 상기하였기 때문이었다.)
아실링 펜들레엄:(고등쇼고스가 무너지는 모습을 보고 난 뒤 아직도 화면이 켜져 있는 핸드폰을 바닥에 던진다. 너무나도 타이밍 좋게 잘 만들어진 연극, 아니 실제 상황에 충격에서 벗어날 틈이라도 있으면 좋으련만.) ... 헬리. 힘드시겠지만 지금은 정신 차리셔야 해요. 제 말 들리세요? 아무것이나 좋으니 대답해 주세요.
헬레네 R. 히페리데:(중심을 잡지 못하고 비틀거린다. 공격은 빗나갔고, 창은 땅에 꽂힌다. 창대를 잡은 손이 주르륵 미끄러져내린다. 몸을 가누지 못하고 한쪽 무릎을 털썩 꿇었다. 타이머로서 처음으로 무너지며, 처음으로 굴복하는 순간이었다. 진실이 저를 패배하게 만든다.)
(생중계로 흘러나오는 목소리가 귀를 따갑게 찔러오고, 쓰러진 쇼고스들이 거품 부글부글 끓으며 사라져가는 소리도 선명히 들려오는데 좀처럼 정신 붙잡는 것만은 쉽지가 않았다. 어찌나 창을 세게 쥐었는지 손톱이 손바닥을 파고들어 피를 흘리고 있는데도 통증 하나 느껴지지 않았다.) 아실……. 아실. 아실도 가짜는 아닌 거죠?
아니, 가짜는 저인가요. …… 지금껏 타이머라는 껍질을 뒤집어쓰고 세계를 좀먹어간 존재.
아실링 펜들레엄:(다급하게 헬레네 손목을 잡아 제 가슴팍으로 가져간다.) 헬레네. 제 심장박동 느껴지시죠? 저예요. 이렇게 당신 곁에 살아있어요. (표정과 목소리는 차갑게 굳어져 있었지만, 헬레네 손목을 잡은 손은 덜덜 떨렸다. 오직 생존본능만이 이성을 잡아두고 있었다.)
.... 그런 말씀 마세요. 헬리, 그런 말씀 하셔는 안돼요. 저희는... 저희는... (희망이에요. 이렇게 말하고 싶었지만 차마 그 단어가 입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
헬레네 R. 히페리데:(손끝에서 박동이 전해진다. 두근, 두근……. 살아있는 자의 박동이다. 자신이 구하고 싶었던, 구하고자 했던, 그러나 실은 한 번도 구한 적 없었던,사람의 체온. 눈물로 흐리던 시야가 점차 또렷해져간다. 짧은 은빛 머리칼과 짙푸른 홍채, 익숙한 형태를 포착해내는 데 성공한다. 나의 파트너. 나와 똑같은 상황과 처지에 던져진타이머. 나만이 힘든 게 아니다. 아실링도 나와 같은 숙적으로 간주되었으니, 내가 무너진다면 아실링의 발목까지 잡는 셈이 돼…….)
(저는 지금까지 무얼 해온 걸까요? 무얼 위해 훈련을 받고, 권능을 갈고닦고, 신화생물들과 싸워온 걸까요? 밑바닥까지 무너진 존재의 의미가 묻는다. 답해줄 말이 없었다. 이런 상황에서는 꺼낼 수 있는 의문도 아니었다. 떠나간 미지수에 대한 감정조차 3년이 걸쳐서야 정리할 수 있었는데, 이건 과연 몇 년이 걸려야 받아들일 수 있을까?)
(평생을 가도 어려울 것만 같았다.)
네……. 아실. (단지, 입을 열어 잔뜩 젖고 갈라진 목소리로 눈앞에 보이는 단 하나를 호명했다.)
아실링 펜들레엄:... 미리 죄송하단 말 먼저 할게요. 지금부터는 제가 어떻게 나오던 용서해 주셨으면 해요. (지금 와서 어떤 희망의 말을 전할 수도, 한다고 해도 닿을 수 없음을 알고 있다. 시간을 되돌려도 구원할 손길이 닿지 않을 것이라는 것 또한 알고 있고. 이런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은 단 한 가지다. 절대로 하고 싶지 않은 것이었지만 이제는 해야만 하는 것. 얼굴 한번 본 적 없는, 자신과 같은 얼굴을 가진 그 사람도 똑같이 말할 것이다.) ... 이 세상은 누군가의 희생이 없으면 유지될 수가 없더군요. 헬리, 지금의 당신을 있게 한 사람을 떠올리세요. 당신이 죽은 그 사람을 위해 해줄 수 있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당신이 사는 거예요. 살아주세요. 그 사람을 위해서. 그리고 저를 위해서 살아주세요. 전처럼 고고하지는 못할 거예요. 그럼에도 저는 당신이 제 옆에 있어주셨으면 좋겠어요. 당신이 저를 선택해 주셨으면 해요.
헬레네 R. 히페리데:정말 제가 살아가도 되는 걸까요. 세계를 지금껏 위험에 빠뜨린 대가로 제 목숨을 주어야만 하는 건 아닐까요? 그들은 저희를 먹고 싶어했어요. …… 하나라도 먹이를 준다면 세계를 침범하려는 시도가 줄어들지도 모르잖아요. (양손으로 창을 감싸쥔 채 흐느꼈다. 모두가 행복하게 웃으며 살아가는 세계를 바랐다. 당연히 그곳에 저의 자리도 그렸다. 그런데 자신의 존재 자체가 위협이 된다니, 이러고도 감히 살아숨쉴 자격이 있는 걸까.)
(떠올린다. 자신의 앞에 있는 이와 동일한 미지수의 얼굴을. 저를 위해 치명상을 입고, 끝내 자신만의 세계에서 쓸쓸히 죽음을 맞은 이를.)
(그래, 만일 우리가 죽어야만 한다면 적어도 마지막의 순간만큼은 외롭지 않았으면 좋겠어. 이것을 새로운 소망으로 정하자. 역청의 바다에서 헤어나올 수 없으니 그에 걸맞게 갈라지고 탄내 나는 바람이 될 터다.)
아실링 펜들레엄:하나라도요? 지금 그 하나가 당신이 되겠다는 것은 아니죠? (아, 이것만큼은 정말 하고 싶지 않은 말이었는데. 창을 잡 고 있는 두 손등 위에 손바닥을 겹친다.) 당신은... 나를 버릴 생각인 건가요? 이런 나를 두고 정말로...? 어차피 저는 세상에 버림받을 테니 상관없을지도 모르겠네요. 그럼 제가 먼저 죽을게요. 혹시 모르죠. 제가 먼저 죽으면 돌아갈지도 모르니. (사랑하는 사람을 어떻게 잡아둬야 할까. 많은 방법이 있었고, 자신은 최악의 방법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다. 세상을 우선시하는 사람의 죄책감으로 자리 잡는 것. 내가 당신의 1순위가 아니라는 것을 안다. 언제나 1순위는 세상이었으니. 그러니 죄책감이라도 되어 삶을 살도록 잡아두는 것만이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이었다.)
헬레네 R. 히페리데:아…… 아니에요. 아니에요, 아실을, 아실을 혼자 남겨두려던 건…… (정신없이 고개를 젓는다. 비명처럼 외쳤다.) 싫어요. 안 돼요! 아실, 제가 잘못했어요. 그런 말을 해서 미안해요. 이미 저는 지키고자 하던 모든 것을 빼앗겼어요. 처음부터 지킬 수 있는 것도 아니었지요. 유일하게 제가 지킬 수 있는 건 타이머들뿐, …… 눈앞의 아실링뿐인걸요……. (당신의 시도는 훌륭해서, 먼저 죽겠다는 말을 듣자마자 헬레네는 자신의 잘못을 깨닫고 새로운 눈물을 뚝뚝 흘린다. 사랑하는 이를 잃을지도 모른다는 공포와, 제가 사라지고 혼자 남을 아실링에 대한 죄책감과, 갈 곳 없는 막막함이 제멋대로 뒤섞여 불분명해졌다.)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도저히 모르겠지만, 저희의 앞길을 도저히 짐작할 수 없지만…… 떠나가지 않을게요. 바닷가에서의 약속을 기억하고 있어요. 함께, 함께 해요. (그래서 자신이 다시 살아갈 이유를 찾을 수 있을 때까지.)
아실링 펜들레엄:(당신의 울음을 보고 싶었던 것이 아닌데. 이렇게 내가 당신을 울렸구나. 흘러내리는 눈물을 닦아주고 싶은 마음에 손을 들었다 내려놓았다. 지금의 나를, 그리고 당신을 일으킬 수 있는 것은 다정이 아닌 냉정 같아서.) ... 그럼 가요. 저랑 같이 가요. 저희는 어디든 갈 수 있어요. (텔레미터가 있음에 다행이라고 해야 할까. 도망치는 것에는 문제가 없었다.) 어떻게든 살아만 가면 돼요. 그러니... 저를 포기하지 마세요. (오늘 일이 일어나기 전까지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것이 뭐냐고 한다면 헬레네가 자신을 버리는 상황이라고 말했을 것이다. 하지만 이제는 정말 무서운 것은 따로 있었음을 안다. 나는 버려도 괜찮아요. 하지만 당신은 버리지 마세요.)
헬레네 R. 히페리데:(정말 어디든 갈 수 있을까? 텔레미터는 우리를 어디든 데려다 주겠지만, 우리가 발붙일 곳은 어디에도 없을 것이다. 고등 쇼고스의 체액이며 눈물과 흙먼지로 더러워진 채로 일어서며 헬레네는 직감했다. 그의 마음을 지탱하던 모든 기둥이 한순간에 꺾였고, 아무런 보호장비 없이 끝간 데 모르는 구덩이로 추락했다. 벽에 쓸리고 긁히며 난 상처를 벌써부터 셀 수가 없다. 그렇지만 판도라가 열어버린 상자에 단 하나만이 남아 있었듯, 헬레네에게도 단 하나 남은 가치가 있다면 제 곁의 파트너. 그를 위해서라도 온전히 포기할 수는 없다. 창을 갈무리하고 눈물을 애써 문질러 닦아냈다. 목적지도 일정도 모르는 여행의 시작이다.)
-
“좋아, 자네 말대로 타이머들을 배제해보자고. 어떻게 하면 될까? 게이트가 열리면 기둥에 묶어 산 제물로 바치기라도 할까? 다 잡아먹거든 고이 돌아가라고? 타이머가 죽으면 새로운 타이머가 각성할 텐데, 그때마다 족족 먹이로 내놓을 셈인가.”
“이미 무고한 국민은 족족 먹이가 되고 있어요. 하다 못 해 사실을 알려야 해요. 사람들은 아무것도 모르고 타이머에게 감사하고 있어요. 이건 기만입니다.”
“박사, 타이머를 먹이로 내놓겠다는 건 패배를 시인하는 거야. 외압에 무릎 꿇고 무력하게 조공을 바치는 것이나 다름없지. 그래선 안 돼.”
“원수님도, 타이머의 목숨이 일반 국민 수백보다 중요하다고 생각하시는 건가요?”
그렇게 말하는 것은 애벗 박사만이 아닐지도 모릅니다.
표면을 눈부시게 빛내던 전면 유리창은 산산조각, 위풍당당하게 섰던 기둥들은 깨진 돌멩이
직전까지 분주히 움직였을 사람들은 차가운 시체가 되어 한 데 섞였습니다.
참담한 상황을 몇 번이고 겪었으니까.
“우리 노인네가 몇 년 전 게이트 사태에 휘말려서 저승을 건넜거든요. 젊을 적엔가……. 한 번은 운 좋게 타이머가 구해줬다던데, 뭐, 그때 평생의 행운을 다 쓴 모양이지. 아무튼, 그게 그 영감탱이 평생의 업적이라 술만 마시면 똑같은 자랑을 수십 번씩 했어요. 타이머한테 고마워해야 한다, 잘해야 한다, 죽을 때까지 달달달. 지겨워 죽는 줄 알았다니까요. 아마 마지막까지도 타이머를 기다렸을 거요.”
오직 타이머만을 믿었으니까.
우리가 받은 충격만큼 인류가 겪을 배신감도 깊이 깊이 사무치겠지요.
누구의 잘못도 아니되 상황은 누구든 탓하고 싶어지도록 극한을 내달릴 것입니다.
구원자일 때도, 영웅일 적도 그렇게 외로웠는데, 숙적이자 위험 요소가 되어선들 쉬울 리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