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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905~230913] 에르리체 - 장마전선

플레이타임 : 7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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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마전선
 
Writer
 
평화로운 금요일 저녁, 창밖으로는 비가 내리고 있습니다.
 
이번주 내내 비가 오지 않은 날이 없었죠. 창문을 두드리는 빗소리가 요란합니다.
 
까만색의 하늘은 커다란 구멍이라도 뚫린 것 같습니다.
 
잦은 빗방울이 창문을 핥고서 도시의 현란한 불빛 속으로 떨어져 사라집니다.
 
평범했지만 나름의 고생이 담긴 한 주가 지나가고 주말을 맞이하는 기쁜 금요일 저녁.
 
모든 것이 완벽하지만, 에르드는 오늘도 늦을 참인가 봅니다.
 
요즘 들어 야근이 잦았죠.
 
우연히 돌아간 시선은 이제 막 10시를 가리키고 있는 시계 바늘에 꽂힙니다. 유난히 늦는 날이네요.
 
영 피곤하니 먼저 침대에 누워있을까요?
 
베아트리체 힐:...오늘도 늦나보네. (소파에 한참을 앉아 기다리다 침실로 걸어간다.)
 
베아트리체가 침실로 막 들어가려는 그때,
 
현관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리고 지친 얼굴의 에르드가 문을 열고 들어옵니다.
 
에르드:(다크서클 짙은 눈가를 문지르며 온다.) 휴…… 나 왔어.
 
베아트리체 힐:..어서와. 많이 피곤하지. (발걸음을 그대로 돌려 현관으로 향한다. 반가움도 잠시 피곤이 드리운 얼굴이 안쓰러워 가볍게 안았다가 떨어졌다.)
 
에르드:아냐. 시간이 생각보다 늦었네. 계속 기다렸어? (가벼운 포옹에 잠시 몸 굳히는가 싶다가도 슬쩍 손바닥을 펼쳐 베아트리체의 머리 위에 올려뒀다.)
 
베아트리체 힐:...조금. (그대로 고개를 들어 눈을 마주하고 고개를 저었다.)
얼른 들어와. (그대로 손을 잡아 끈다.)
 
에르드:(손 잡힌 채로 순순히 들어가면서 자켓을 벗어내린다.) 늦었으니 먼저 자. 난 샤워 좀 하고 갈 테니까.
 
얼마 지나지 않아 에르드는 곧장 무거운 몸을 이끌고서 샤워를 위해 화장실로 들어갑니다.
 
그가 바쁜 이유는 굳이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습니다.
 
아마도 한달 내내 도시의 모든 라디오, 뉴스, 그리고 신문에서 떠들고 있는 연쇄살인 때문입니다.
 
지금까지 총 5명이 살해당했다고 합니다. 뉴스에서 떠드는 바로는 그랬습니다.
 
어떤 증거도 남기지 않는 다섯 번의 연속적인 살인들은 경찰들을 꽤 애먹이고 있었습니다.
 
형사 신분인 에르드마저 이렇게 바쁠 지경이니 말입니다.
 
베아트리체 힐:(옷가지를 문 앞에 챙겨두고는 침실에 들어서 스탠드를 켜두고 잘 준비를 하곤 눕는다.)
 
샤워 소리가 잦아드는 것을 느끼면서 침대의 포근함에 파묻혀 있으면,
 
곧 샤워를 마친 에르드가 바디워시의 향기를 풍기면서 옆자리에 털썩 눕습니다.
 
에르드:(푹신한 매트리스와 이불의 촉감을 한껏 만끽하며 당신 쪽으로 몸을 반쯤 돌린다.) 별일 없었지? 밖이 괜히 뒤숭숭하니깐.
 
베아트리체 힐:별일 없었어. ...나보단 네가 더 걱정이지. 여전히 진전은 없는거야? (당신 쪽으로 돌아보며 물기가 남은 머리칼을 쓸어낸다.) ...걱정이네. 좀 야윈 것 같기도 하고...
 
에르드:야위긴. 따로 시간 내서 운동할 필욘 없어서 좋네. 맨날 여기저기 뛰어다니느라 바쁘거든. (나름 우스갯소리랍시고 내뱉으며 어깨 으쓱인다. 머리칼에 닿는 손길이 괜히 간지럽게 느껴져 눈을 반쯤 감아내렸다.) 이렇게 열내면서 뛰어다녀도 진전은 없네. 대체 웬 이상한 놈이 설쳐대는 건지 알 수가 없다니깐.
 
베아트리체 힐:...하여간. 그래도 쉴 때는 쉬어가면서 해. ...누가 우리 에르를 이렇게 힘들게 하는걸까. 혼내줘야겠네. (조금 농담조로 읊으며 머리칼을 만지던 손이 부드럽게 눈가를 지나 뺨을 쓸고는 떨어졌다.) 잠은 안 와?
 
에르드:그러게 말이야. 근데 안 돼. 혼내준다는 건 곧 네가 그놈을 만나야 한단 거잖아? 무슨 험한 일을 당할 줄 알고. (손길이 눈가에 닿자 이내 눈이 완전히 스륵 감긴다.) 엄청 오지……. 지금 당장이라도 잠들 수 있을 것 같아. 그래도 잘 자란 말은 해야 하니까. (다시 눈에 힘 뽝 준다) …… 잘 자.
 
베아트리체 힐:...걱정도 많아. 응, 얼른 자자. 잘 자, 에르. (번뜩 다시금 떠지는 눈을 보며 작게 웃었다가 아이를 재우듯 잔잔한 목소리와 손길로 쓰담는다.)
 
쓰다듬은 지 얼마 되지도 않아, 에르드는 금세 잠에 빠져듭니다.
 
불쌍하게도 잠에 든 얼굴마저 피곤함이 덕지덕지 묻어있네요.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자니 눈이 절로 감겨오는 듯합니다. 베아트리체도 이만 잠에 들기로 해요.
 
눈을 감은 베아트리체는 빗소리가 더 선명해지는 것을 느낍니다.
 
하늘에서 떨어지는 빗방울은 창문에 몸을 던지고 여러 갈래로 부서졌습니다.
 
투둑, 투둑, 투두둑, 소리를 내며….
 
손을 쓸면 푹신한 침구와 옆자리를 따뜻하게 데워주는 체온이 느껴집니다.
 
투둑, 투둑,
 
무수히 많은 빗방울들이 도시의 건물 벽을 향해 몸을 던졌습니다.
 
뺨에 닿는 빗방울은 다시 여러 갈래로 부서집니다.
 
여름밤 비는 유난히 차갑습니다. 온몸이 으스스 떨려옵니다.
 
몸의 떨림이 물결처럼 퍼지더니 입술 끝이 파르르 떨렸습니다.
 
턱을 타고 흐르는 빗방울을 습관처럼 손등으로 닦아내자 손에 들린 시퍼런 칼날이 보입니다.
 
빠아앙ㅡ
 
등 뒤에서 들려오는 커다란 클락센 소리가 베아트리체의 정신을 날카롭게 깨우며 지나칩니다.
 
방금 전까지 손에 닿던 따뜻한 온기는 온데간데 없고,
 
어두운 골목 안, 비가 세차게 베아트리체의 뺨과 어깨, 그리고 옷을 차례로 때리고 있습니다.
 
손에는 생전 처음 보는 듯한 칼까지 들려있고요.
 
이게 무슨 상황일까요. 꿈이라도 꾸고 있는 걸까요?
 
하지만 차가운 밤공기와 비의 습기는 마치 이게 모두 현실인 마냥 선명합니다.
 
도시의 불빛을 등지고 있는 캄캄한 골목은 빗줄기까지 더해져 앞을 구분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베아트리체가 차마 상황을 채 인식하기도 전, 갑자기 골목 안을 환하게 비추는 동그란 불빛 여러대가 미끄러지며 등장합니다.
 
그제야 베아트리체는 골목이 막다른 길이라는 것을 깨닫습니다.
 
그리고 벽에 기대어 쓰러져있는 남자의 모습 역시도요.
 
빛을 향해 몸을 돌리자 강한 빛에 눈 앞이 번쩍입니다.
 
여러대의 자동차 헤드라이트가 골목을 둘러싸고 비춰옵니다.
 
번갈아 벽을 훑는 붉은 색과 파란 색의 사이렌, 분주하게 차에서 내리는 사람들의 발자국 소리.
 
세찬 빗속에서도 당신을 향해 겨눠지는 총구들이 생경합니다.
 
“무기 버리고 머리 위로 손 올려!!”
 
누군가의 성난 목소리가 크게 골목 안을 울립니다.
 
베아트리체 힐:(번쩍이는 빛에 미간을 구겼다가 손에 들린 칼에 시선이 멈춘다. 무슨 상황인지 이해하기도 전에 손에 힘이 풀려 챙그랑하고 칼이 바닥으로 굴러떨어진다.)
...이게 무슨. (천천히 고개를 들어 올리며 그와 동시에 두 손을 펼쳐 들었다.)
 
천천히 총을 들고서 베아트리체의 사위를 좁혀오던 경찰들은,
 
베아트리체가 칼을 내려놓기 무섭게 베아트리체의 팔을 제압하며 바닥으로 무릎을 꿇립니다.
 
이어서 단단한 경찰의 손이 베아트리체의 목을 잡고서 고개를 숙이게 만듭니다.
 
이곳저곳 움푹 패인 골목 바닥에 고인 물 웅덩이 사이로 빗방울이 난잡스럽게, 그리고 혼란스럽게 몸을 던지고 갈라집니다.
 
웅덩이를 가르며 들어선 신발.
 
신발의 주인은 베아트리체의 뒤를 돌아 제압당한 팔을 붙잡습니다.
 
손목에 채워지는 차가운 금속의 감촉은 굳이 말하지 않아도 수갑임을 알 수 있었습니다.
 
단호하게 읊어지는 당신의 죄와 마지막 권리.
 
“베아트리체 힐, 당신을 커티스 외 5명의 살인 혐의로 체포합니다.”
 
수갑이 채워진 베아트리체의 몸이 붙잡은 사람들에 의해서 다시 일으켜 세워집니다.
 
“당신은 묵비권을 행사할 수 있으며, 당신이 한 발언은 재판소에서 불리하게 사용될 수 있습니다.”
 
“당신은 변호인을 선임할 수 있으며, 질문을 받을 때 변호인에게 대신 발언하게 할 수 있습니다.”
 
“만약 변호사를 쓸 돈이 없다면, 국선변호인이 선임될 것입니다.”
 
강한 헤드라이트의 불빛을 등지고서, 용의자의 팔을 단호하게 움켜진 손.
 
분노와 범죄에 대한 혐오, 그리고 슬픔과 혼란이 뒤섞인 눈빛.
 
에르드:…… 이 권리가 있음을, 인지했습니까?
 
베아트리체의 팔을 움켜쥔 자의 뺨을 사이렌의 붉은 빛이 훑고 사라집니다.
 
당신의 품안에서 피곤에 지친 얼굴로 곤히 잠들던 얼굴은 어느새 노련한 형사의 얼굴을 하고 있습니다.
 
베아트리체 힐:...에르. (시선이 혼란 그 자체의 빛을 띄며 흔들린다.)
 
에르드:…… 어째서 너인 거지? (비보다도 진하고 차디찬 비탄에 젖은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어째서 네가……
 
베아트리체 힐:...아니야. 난... (온몸을 적시고 바닥으로 떨어져 내리는 빗방울보다 마음을 시리게 하는 목소리와 시선에 말을 잃었다. 몇 번이고 입을 벙긋거렸지만 문장도 단어도 되지 못하고 사라졌다.)
... 그럴리가 없어.
 
에르드:……. (그의 생각도 당연히 같았다. 당신이 이 사건의 범인일 리가 없지 않은가. 하지만, 눈앞에 펼쳐진 광경은 너무나도 뚜렷한 범죄의 현장이자 증거였다. 결국 그는 입술을 꾹 다문다.)
가지. (수갑을 채운 그대로 당신을 붙들고 경찰차에 올라탄다.)
 
...
 
샌디에이고 피브 포인츠 조사실 203호
 
20XX.07.23 11:56 PM
 
탕!
 
베아트리체의 앞에 선 제이크 형사는 으레 범죄 드라마에 나오는 형사처럼 두꺼운 서류철을 용의자의 얼굴 앞에 소리나게 내려놓으며 기선제압을 합니다.
 
그는 에르드의 동료로 베아트리체와도 몇 번인가 얼굴을 마주한 적이 있습니다.
 
한번은 에르드와 셋이서 저녁식사도 함께 한 적이 있었죠.
 
베아트리체는 양손에 수갑이 채워진채로 차갑고 불편한 의자에 앉아서 적대적인 얼굴의 형사를 마주하고 있습니다.
 
그는 곧 두꺼운 서류철을 펼쳐 그 안에 있던 사진들을 베아트리체의 앞에 던집니다.
 
다섯 장의 사진.
 
어디에나 있을 법한 평범한 사람들의 얼굴입니다.
 
제이크:커티스, 28세 전화 상담원.
 
그가 사진 중 빼빼 마른 붉은색 머리의 남자 사진을 가리키며 고압적인 말투로 입을 열었습니다.
 
베아트리체가 그를 아는지 묻는 듯한 행동이지만 베아트리체는 사진에 찍힌 얼굴을 처음 봅니다.
 
그가 아주 평범한 사람이기에 길거리를 지나치며 마주쳤을지도 모른다는 착각이 드는 것만 빼면요.
 
제이크:이 사람을 본 적 있나?
 
베아트리체 힐:(천천히 고개를 가로저었다.) ...없어요.
 
제이크:실레나, 34세 수학 교사.
 
이번에는 칙칙한 갈색이 드문드문 섞인 머리카락을 단발로 단정하게 자른 여자의 사진을 가리킵니다.
 
하지만 이번에도 처음 보는 얼굴입니다.
 
베아트리체 힐:(여전히 고개를 내저을 뿐이었다.)
 
베아트리체의 반응을 본 제이크 형사는 얼굴을 구깁니다.
 
아마도 베아트리체가 능청을 떨거나 거짓말을 한다고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그는 남은 3장의 사진을 밀쳐두고는 그 위에 한 장의 사진을 올려둡니다.
 
제이크:똑바로 봐.
티미, 47세 방송국 PD.
 
베아트리체는 처음으로 사진 속 얼굴을 알아봅니다.
 
그것은 조금 전 베아트리체가 비를 맞으며 서있던 골목 끝에 쓰러져 있던 남자의 얼굴이었습니다.
 
그렇지만 역시 그의 이름도, 나이도 직업도 모두 익숙하지 않습니다. 오늘 처음 본 인물이라는 것은 틀림없습니다.
 
베아트리체 힐:...믿기 힘드시다는 거 알아요. ...하지만 정말 처음 보는 사람이에요.
 
제이크:웃기지도 않는군! (무척이나 단호하고 강압적으로 군다.) 당신이 방금까지 서 있던 곳에 티미의 시체가 있었어. 그런데도 발뺌할 셈인가?!
 
베아트리체 힐:...그건 저도...! (두 손에 걸린 수갑이 찰그랑 소리를 낸다. 차분하게 숨을 내쉬고는 다시 입을 열었다.) ..저도 왜 그 곳에 서있었는지 모르겠어요. ...하지만 정말 사실이에요.
 
제이크:허! 뻔뻔하기도 하지. 살인 현장에 칼까지 들고 서 있었으면서 모른다 발뺌하는 용의자라니.
내가 당신을 많이 본 건 아니지만 말이야, 에르드에게 항상 이야길 들었어. 아주 착하고 마음 여린 사람이라 들었는데……. (쯧, 혀를 찬다.) 실망스럽군.
 
베아트리체 힐:....정말. 정말이에요. (차분하던 목소리에 간절함이 실린다. 어떻게든 평정을 유지하려는 표정이 그의 이름에 한순간에 무너져 내렸다.)
...에르, ...아니 에르드는요? 지금 어디있나요? (몇 번이고 끊어지는 목소리를 겨우 붙여 이어갔다.)
 
그때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리고 누군가 들어옵니다.
 
당신이 찾은 에르드입니다.
 
에르드:제이크 씨, 잠시. (손짓한다)
 
제이크 형사와 속삭이듯 작은 목소리로 대화를 나눈 에르드는 곧 베아트리체의 맞은편 의자에 앉습니다.
 
제이크 형사는 파일을 챙기며 못마땅한 듯 에르드를 보다가 방을 나섭니다.
 
에르드:…….
 
그는 한참 말이 없습니다.
 
베아트리체 힐:... ... ......에르. (오랜 정적에 그만 숨이 막혀 나지막이 이름을 불렀다.)
 
에르드:…… 그래. (고통스러울 정도로 긴 정적을, 그보다도 더 힘겹게 깨고 간신히 한 마디 대답한다. 그는 당신과 눈을 마주하지 못하고 한참을 앉아있다가, 한 손으로 이마를 짚었다. 어젯밤보다도 배로 피곤해 보였다.)
…… 대화가 녹음되고 있어. (어떠한 말을 하기 전 넌지시 그 사실부터 전해준다.)
 
베아트리체 힐:(제 탓에 모든 것이 어그러진 것 같아서 안타깝고 안쓰러워져 늘 그러듯 그에게 손을 뻗었으나 양 손목을 구속하는 수갑이 선명하게 느껴져 천천히 손을 내렸다.)
(천천히 고개를 끄덕인다.) ...미안해.
 
에르드:(원래 이쯤이면 당신이 저에게 손을 뻗어야 했는데. 가느다란 손가락이 느껴지고, 체온이 전해져 와야 했는데. 익숙해져버린 것들이 차디찬 수갑에 가둬진다. 또 한참 동안이나 침묵했다.)
네가 한 게 아니라는 거, 정말이야?
 
베아트리체 힐:(차마 시선을 당신에게 두는 것이 더 큰 상처가 될까 똑바로 마주 보지 못하고 책상의 모서리에 두었던 시선을 끌어올렸다.) ... ...정말이야. 다들 처음 보는 얼굴이고. ...정말 모르는 사람들이야.
...내가 어떻게 너에게 피해가 되는 일을 벌이겠어.
 
에르드:그래. 넌 내 곁에 함께 누워 있었지. 비록 내가 너보다 먼저 잠들어서, 잠든 사이 네가 바깥으로 나갔는지 아닌지는 알 수 없지만……. 네가 그런 짓을 할 사람이 아니라는 건 알아.
하지만, 이 직업에 오래 몸담아본 만큼 평소에 알던 이미지만 믿어서는 안 된다는 것 역시 잘 알지. (제 얼굴을 쓸어내리며 착잡하게 한숨을 내쉬었다. 만일 이 상황이 누군가의 농간이라면 베아트리체가 누구보다도 가장 무섭고 혼란스러울 텐데. 하필 제 직업이 형사인 탓에 몰아붙이는 이들과 같은 입장이 되어야만 한다니. 그는 직업 만족도가 상당히 높은 편이었으나 지금만큼은 전부 무용하고 괴롭게만 느껴졌다.)
 
베아트리체 힐:......의심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라는 거 잘 알아. (눈을 천천히 내리 감으며 말을 이어간다.) ...네가 잠드는 걸 보고 잠에 들려고 할 때 쯤 어느 순간 그 곳에 서있었어. ...마치 꿈을 꾸고 있는 것처럼.
(그의 한숨에 마음이 안타까워진다. 자신의 직업에 자부심을 갖고 누구보다 열심히 하는 이가 아니었던가. ...그런데 이런 식으로 휘말리게 하다니 속이 쓰렸다. 자신을 용의자로 몰 수 밖에 없는 에르드에게 미안한 마음 뿐이었다.)
 
에르드:(탁자 위에 올려둔 양 손을 모아 감싸쥔 채로 베아트리체의 이야기를 주의깊게 듣는다. 어디 하나라도, 조그만 구석이라도 석연치 않다면 그걸 즉시 범인으로는 불충분하단 증거로 들 생각이었다.) …… 알겠어.
일단 경찰들은 네가 범인이라고 거의 확신하고 있는 분위기야. 하지만 네가 극구 아니라고 부인하니, 더 철저히 조사할게.
(너무 걱정하지 말라던가, 내가 널 지켜줄 거라던가, 그런 말을 하고 싶었다. 하지만 녹음기가 그를 가로막는다. 결국 자리에서 일어나 당신의 어깨를 감싸듯 한 손을 올렸다 떼었다. 지금으로선 고작 이 정도뿐이다.)
 
그가 당신의 어깨에서 손을 떼기 무섭게 경찰복을 입은 두 명이 들어와 베아트리체의 양 팔을 잡고 일으킵니다.
 
조사는 끝났습니다.
 
에르드:너무 험하게 다루지 마. (경찰들에게 낮은 목소리로 중얼인다.)
 
베아트리체 힐:... (에르드의 뒷모습에 시선을 둔다. 닿지 않을텐데도 미안해, 나지막이 중얼거렸다.)
 
베아트리체를 철창 안으로 밀어넣은 경찰들은 문을 잠그고서 돌아섰습니다.
 
유치장은 흔한 의자 하나 없습니다.
 
취객들이 남기고 간 술 냄새와 장마의 습한 공기가 대신 가득 차 있네요.
 
아무래도 긴 밤이 될 것 같은 기분입니다.
 
베아트리체 힐:(...어쩌다가 이렇게 된거지. 가장 구석 자리에 앉아 벽에 머리를 툭 기대어 생각에 잠긴다. 생각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져 ...진짜 내가 범인이라면, 하고 생각의 끝에 이르렀다.)
 
생각에 잠겨 있자면, 문득 옆쪽에서 철창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경찰관들의 팔에 붙잡힌 남자가 베아트리체 바로 옆 유치장 안으로 던져집니다.
 
경찰들은 손을 털면서 ‘선생님 술 좀 적당히 드세요.’라는 둥 구시렁거리며 돌아나갑니다.
 
그 남자는 술에 취한 건지 몸을 흐느적거리다가 곧 베아트리체의 유치장과 맞닿아 있는 철창 쪽으로 굴러옵니다.
 
제대로 씻지도 않는 모양인지 악취가 대단합니다.
 
남자는 베아트리체를 보더니 바짝 다가와 속삭입니다.
 
취객:이보세요, 이보세요!
당신이죠? 경찰들이 연쇄살인범이라고 몰아가는 사람 말입니다!
 
베아트리체 힐:...아마 맞을 거에요.
...그런데 그걸 어떻게 아신거죠? (천천히 고개를 들어 취객을 마주한다.)
 
취객:그럼 당신이 베아트리체 힐 씨겠군요. (어쩐지 이름도 알고 있다.) 그런 건 중요하지 않고요, 제가 당신을 도와드리겠습니다. 여기서 나가고 싶지 않아요?
 
베아트리체 힐:...제 이름은 어떻게? (의아한 기색을 숨기지 않고 되묻는다.) ...나갈 수 있나요? 그보다 어떻게 도와주신다는 건가요?
 
취객:다 아는 법이 있지. 나갈 수 있는 방법도 있다마다요. 비밀을 알고 싶다면 날 믿어야 할 겁니다.
그래서, 나갈 겁니까, 말 겁니까? (조급하게 채근한다.)
 
베아트리체 힐:(의심이 들었지만 왜인지 모르게 믿어도 되지 않을까 하는 마음이 앞섰다.) ...믿을게요. 나가고 싶어요.
 
그를 믿겠다 말하자, 유치장의 문이 스르륵 열립니다.
 
취객이 철창 사이로 손을 뻗어 당신의 팔을 잡아챕니다.
 
남자는 베아트리체의 주머니에 무언가를 욱여 넣습니다.
 
그가 기름기로 번들거리는 눈으로 외칩니다.
 
취객:조심하십시오! 모든 곳에 그들이 있어요!!
 
베아트리체 힐:...고마워요. (그의 외침에 의아함만 가중될 뿐이었다. 그럼에도 고개를 끄덕이며 나섰다.)
 
베아트리체는 유치장을 나와 경찰서 1층의 로비에 닿고서야 깨닫습니다.
 
이 경찰서에는 아무도 없습니다.
 
심지어 입구 앞을 지키던 사람들까지 텅텅 빈 모습입니다.
 
베아트리체 힐:...아무도 없어. (정말 꿈이라도 꾸고 있는 걸까. 믿을 수 없는 상황만 벌어지니 머리가 복잡해진다. 그제서야 취객이 주머니에 무언가 넣은 것이 생각나 꺼내들었다.)
 
취객이 준 것은 쪽지였습니다.
 
베아트리체 힐:(쪽지를 한참 들여다보다 다시 주머니에 깊숙이 넣었다.)
...내일 두 시.
 
경찰서 문을 열고서 밖으로 나가자, 곧 등 뒤로 요란스러운 소리가 들려옵니다.
 
고개를 돌리자 유리문 안으로 한창 소란이 벌어진 경찰서의 내부가 보입니다.
 
방금까진 아무도 없었는데 다들 어디에 있다가 갑자기 튀어나온 걸까요?
 
다시 잡히기 전에 자리를 피해야 할 것 같습니다.
 
<꿈> 판정
 
베아트리체 힐:
꿈 Roll
기준치: 50/25/10
굴림: 86
판정결과: 실패
 
그저 의아하기만 하네요.
 
베아트리체 힐:(...역시 이상해.)
...나오긴 했는데 어떻게 돌아가지. (경찰서에서 멀어지려 걸음을 옮긴다.)
 
새벽 2시를 막 지나고 있는 시간, 경찰서 앞 도로는 텅텅 비었습니다.
 
버스도, 지하철도 모두 끊길 시간이니 당연했습니다.
 
어림잡아 보아도 여기서 집까지는 걸어가기에는 거리가 꽤 됩니다.
 
게다가 이 비까지…. 베아트리체는 유치장에 나오고서도 발이 묶인 기분이 듭니다.
 
경찰서 건너편 거리의 가게들은 전부 셔터를 내리고 문을 닫았습니다.
 
유일하게 불이 켜져 있는 곳은 24시간 운영하는 [편의점]과, 오래된 [공중전화기] 한 대입니다.
 
베아트리체 힐:(일단 우산이라도 살까 싶어 편의점으로 갑니다. 혹시나 또 알아보는 이가 있을까 싶어 조심스럽게 걸음을 옮긴다.)
 
그런데, 무심코 주머니를 뒤져보니 1달러 두 장이 전부입니다.
 
휴대폰도 지갑도, 열쇠도 모두 집에 두고 나온 모양입니다.
 
편의점은 건물 1층의 비좁은 공간을 활용하여 만든 곳입니다.
 
안으로 들어서면 앉아서 핸드폰 영상을 보고 있던 알바생이 이어폰을 빼고 자리에서 일어나 피곤한 목소리로 베아트리체를 맞이합니다.
 
<관찰력> 판정
 
베아트리체 힐:
관찰력
기준치: 65/32/13
굴림: 94
판정결과: 실패
 
CCTV가 눈에 들어옵니다.
 
생각해보면 거리나 이런 상점에는 어디든지 CCTV가 있기 마련입니다.
 
수천 수백개의 눈이 행인들의 범죄를 감시하고 있죠.
 
용의자 신분으로 너무 눈에 띄게 돌아다니는 것은 좋지 않을 것 같습니다.
 
베아트리체 힐:(들릴 듯 말듯 인사를 하고는 조용히 편의점을 빠져나온다.)
...어쩌지. (겨우 1달러 두 장을 들고 그 앞의 공중전화기로 향했다.)
 
공중전화 부스는 이제 좀처럼 찾아보기가 힘든 물건입니다.
 
이것 역시 철거가 되기 직전인지 관리가 소홀한 모양새네요.
 
파란색의 페인트 외관은 곳곳이 벗겨져있고 부스 안은 어딘가 꿉꿉한 냄새가 납니다.
 
빗물이 튀어 쇠로 된 바닥이 베아트리체의 걸음마다 끼익거림과 찰박거리는 소리를 내고 있습니다.
 
기다란 네모 모양의 전화기 위에 수화기가 들린 채로 위에 누워있습니다.
 
친절한 누군가가 전화를 쓰고서 남은 돈을 빼가지 않고 수화기를 올려놓았나 봅니다.
 
베아트리체 힐:(누구인지 모를 고마운 이에게 속으로 감사 인사를 건네며 수화기를 들어 귀에 가져간다.)
 
누구에게 전화를 거나요?
 
베아트리체 힐:...받을까. (당연하게도 누르는 버튼들은 에르드에게 향하는 전화였다.)
 
베아트리체가 전화를 걸면 보통의 신호음 대신 노래가 들려옵니다.
 
<자각> 판정
 
베아트리체 힐:
자각 Roll
기준치: 50/25/10
굴림: 44
판정결과: 보통 성공
 
1d10 굴려주세요. 그만큼 기능 수치가 상승합니다.
 
베아트리체 힐:r/1d10
rolling 1d10
 
(
6
 
)
 
 
=
6
 
<자각> 기능 50 → 56
 
공중전화기에서 이런 노래가 나온다뇨. 뭔가 이상합니다.
 
아무튼, 신호가 간 지 얼마 되지 않아 에르드가 전화를 받습니다.
 
에르드:(졸음기 어린 목소리로 전화를 받는다.) …… 여보세요?
 
베아트리체 힐:....아, 자고 있었구나. 미안해. ...혹시 와 줄 수 있나해서.
 
에르드:베아트리체? (목소리에서 졸음기가 확 달아난다.) 어떻게 된 거야?
 
베아트리체 힐:...그게 그러니까. (설명하려다 말고 말이 뚝 끊긴다.) ...혹시 지금 어디에 있어?
 
에르드:집에 있었지. 이만 퇴근하라고들 해서……. 설마 바깥으로 나온 거야? 그 사람들이 쉽게 전화를 허락해줬을 리가 없는데.
 
베아트리체 힐:... ...나갈 수 있게 도와준 사람이 있었어.
...막는 사람도 없었고.
 
에르드:막는 사람이 없었다고? (목소리에서 의문이 읽힌다.) 그럴 리가 없는데……. 아무튼, 지금 어디야? 진짜 네가 나온 거라면 언제 들킬지 모르잖아.
 
베아트리체 힐:...근처에 있는 공중 전화 부스야. ...늦게 미안해. 혹시데리러 와줄 수 있을까?
 
에르드:미안하긴. 됐어. 거기서 딱 기다리고 있어. 웬만하면 얼굴 가리고. 당장 갈 테니까. (부산스럽게 일어나 옷을 입는 소리가 난다.)
 
약 30분 뒤, 베아트리체의 앞으로 우산 하나가 드리워집니다.
 
에르드:최대한 빨리 온다고 했는데, 너무 많이 기다린 건 아닌가 모르겠네. 비도 오는데…… (근처에 세운 차를 가리켠다.) 어서 가자.
 
베아트리체 힐:(천천히 가로 저었다.) ...고마워. (우산 안으로 들어서며 차로 걸음을 옮긴다.) ...이래저래 일만 만드는 것 같네.
 
에르드:됐어, 신경쓰지 마. 그보다 춥진 않아? 여름이긴 해도 새벽공기는 차가우니까. 히터 틀어줄게. (제 겉옷을 벗어서 당신에게 걸쳐준다)
 
베아트리체 힐:...아, 괜찮은데. 고마워. (그렇게 말하면서도 걸쳐지는 겉옷을 두 손으로 꼭 붙들었다.)
...아. 그러고 보니 방금 너한테 전화 걸었을 때 노랫소리가 흘러나왔어. 이상하지...? 공중전화인데.
 
에르드:노랫소리가? (빠르게 시동을 걸고 액셀러레이터를 밟는다. 경찰서 근방을 지나칠 땐 일부러 좀 더 페달을 꾹 밟았다. 몇 년간 형사로 일하며 자신의 일에 나름대로 자부심도 있었고, 투철하진 않아도 정의감이 없는 것도 아니었다. 제 옆자리의 연인이 정말 연쇄살인범이라면 자신은 형사의 신분으로 범인을 숨겨주었으니 조력범이라 몰려도 할 말이 없겠지. 그런데도 자신이 사랑하고, 소중히 여기는 사람이라는 이유만으로 앞뒤 하나 재지 않고 달려와 이렇게 경찰서 앞을 도망치듯 벗어나고 있다. 조금은 양심의 가책이 느껴지는 듯도 했다.)
도와준 건 누군데? 경찰이 널 꺼내주었을 린 없고.
 
베아트리체 힐:응.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다 잠시 말이 멎었다. 아무리 자신이 부인하고 있다고 하나 용의자 신분이다. 게다가 유치장도 몰래 빠져나왔으니 그라면 당연히 다시 자신을 철창 안으로 돌려보냈어야 했다. 그럼에도 자신을 위해 달려와준 에르드를 보고 있자면 고마우면서도 마음이 암담해졌다. 역시 다른 이를 불렀어야했을까. 그 자리에 남아 있었어야했나. 생각이 깊어지다 돌아온 물음에 정신을 차렸다.)
...아, 유치장에 들어왔던 취객이었는데 자신을 믿으면 도와줄 수 있다고 했어. ...그랬더니 이렇게 나올 수 있었고.
 
에르드:취객이? …… 뭔가 이상한데. 열쇠를 몰래 훔치기라도 했나. (제 턱을 매만진다.) 뭐, 그런 거 깊게 골몰해봤자 무슨 소용 있겠어. 솔직히 나로선 좋은 일이지. 착잡하지 않은 건 아니지만…… 유치장은 네가 있을 만한 곳은 아니야. 온갖 이상한 놈들이 다 몰려오는 곳이니까.
난, 너를 믿고 싶어. 모두가 범인이라고 해도 나는 끝까지 상황을 의심할 거야.
 
베아트리체 힐:...역시 그랬을까. (고개가 기운다.) ...미안해. 그리고 고마워. 너에게 피해주는 일 만은 하고 싶지 않았는데.
...만약 내가 기억을 못하는 것 뿐이라면. ... ...정말 그런거라면 어쩌지.
 
에르드:미안하단 말은 그만해. 별로 듣고 싶지 않아, 우리 사이에. 넌 그냥 기억을 되새겨보려고 노력해봐. 나도 좀 더 철저하게 단서를 찾아볼 테니까. 거기 CCTV 화면만 있었어도 진작에 명확하게 알 수 있었을 텐데…….
(이내 입을 다물었다. 이 화제는 더 꺼내고 싶지 않은 듯했다.) 집에 도착할 때까지 좀 쉬어. 피곤할 텐데.
 
우는 하늘은 울음을 그칠 생각이 없어보입니다.
 
대신 자동차 앞 유리의 와이퍼가 얼굴을 닦기에 여념이 없습니다.
 
뻥 뚫린 새벽의 도로는 신호등을 제외하면 자동차의 움직임을 막는 것이 없습니다.
 
라디오에서는 새벽 방송이 한창입니다.
 
라디오 DJ: 장마가 벌써 시작인가 봅니다. 이번 주 내내 비가 그치지 않네요. 일기 예보에서는 앞으로도 또 한 주는 계속 비만 내린다는 데, 이래서 어디 맑은 하늘이나 볼런지 모르겠어요.
여름철이라고 휴가 계획 잔뜩 세워두신 분들은 얼마나 상심이 크실까요. 저도 이번 주에 바다에 놀러가려고...
 
새벽 라디오 방송의 DJ는 간간히 조용한 음악에 재치 있는 농담과 일화를 덧붙이며 게스트도 없이 홀로 방송을 이어나갑니다.
 
방송을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려보내며 스쳐가는 풍경을 바라보다 보면, 어느덧 두 사람의 집에 도착합니다.
 
집안은 베아트리체가 잠들기 전과 변함이 없습니다.
 
벗어놓은 옷가지들도 여전히 늘어져 있고, 어제 먹고 남은 저녁 또한 그대로 식탁에서 식어가고 있습니다.
 
원래라면 에르드가 설거지를 했겠지만, 에르드 역시 들어온 지 얼마 안 됐기에 건드릴 만한 여력이 안 됐던 거겠죠.
 
너무나도 일상적인 모습에 방금까지의 일들이 꿈처럼 느껴집니다.
 
베아트리체 힐:... 오늘은 정말 꿈 속에 있는 것 같네. (한숨처럼 말들 뱉고는 에르드를 향해 돌아선다.)
...많이 피곤하겠다. 얼른 다시 자자.
 
에르드:그래. 집정리를 좀 했어야 했는데, 아깐 나도 좀 제정신이 아니었던지라……. (한숨 내쉰다)
 
어쩐지 아까부터 진동 소리가 시끄럽습니다.
 
베아트리체 힐:...전화 오는 것 같은데?
 
에르드:시끄럽더라, 아까부터. (마지못해 핸드폰 꺼낸다.)
 
제이크와 동료 경찰들의 전화로 보이네요.
 
에르드:…… 어떡할까. (당신의 표정을 살짝 살핀다.)
 
베아트리체 힐:...괜찮아. 받아봐.
 
에르드:(한숨 푹 쉰다) 멀리 가 있어. 혹시나 모르니까.
 
베아트리체 힐:...응. (작게 끄덕이며 조금 떨어지면서도 귀를 열어둔다.)
듣기
기준치: 70/35/14
굴림: 15
판정결과: 어려운 성공
 
에르드가 통화를 나누는 소리가 들려옵니다.
 
에르드:베아트리체가 도주를 했다고? 어떻게, 누가 한 건데? (꼭 지금 처음 듣는 사람인 것마냥 나름 리얼하게 연기를 한다.)
…… 말이 되는 소릴 해. 그동안 유치장 앞을 아무도 안 지키고 있었단 게 말이 돼? 이거 알려지면 해이한 경찰이라고 난리나겠네.
알겠어, 일단 새벽 수색은 당직인 애들한테 맡기고…… 난 아침에 교대해서 찾아볼 테니까.
(한숨 쉬며 전화를 툭 끊는다.) …… 됐어.
 
베아트리체 힐:...벌써 시끄러워진거야?
 
에르드:그렇네. 일단은 네가 어디로 갔는지 모르는 것 같아. 집까지 찾아올 일은 없을 테니, 조금이라도 마음 편하게 먹고 푹 자.
 
베아트리체 힐:...다행인걸까. 먼저 자, 내일도 나가야 하잖아. 나도 정리해두고 금방 잘게.
 
에르드:일단은…… (옷을 벗어 걸쳐두고 다시 침실로 향한다.) 이번에는 네가 먼저 자는 걸 봐야겠는걸. 의심해서 그런 건 아니고, …… 그냥 내가 불안해서. 뭐 할 게 있어?
 
베아트리체 힐:...식탁이라도 좀 치워두려고 했는데. ...그게 마음 편할 것 같으면 그렇게 할게. (주변을 둘러보다 같이 침실로 향한다. 이불 안으로 들어가서 바른 자세로 누워 옆자리를 톡톡 두드린다.)
 
에르드:방금까지 경찰서에서 심문받다 왔는데 그런 걸 왜 해. 넌 그냥 푹 쉬는 데 집중해. 내가 해둘 테니까. (옆자리에 누워 당신을 한참 바라보더니, 한 팔로 당신을 부드럽게 끌어안고 어깨에 고개를 묻는다.) 잘 자.
 
베아트리체 힐:(그대로 품에 고개를 파묻으며 천천히 눈을 감는다.) ...잘자.
 
이번에 눈을 떴을 땐, 아까와 같은 괴이한 풍경이 아니기를.
 
베아트리체는 서로의 심장 박동 소리를 들으며 잠에 들었습니다.
 
...
 
아침. 흐린 날씨 탓인지, 전날의 일 탓인지 몸이 조금 노곤합니다.
 
여전히 내리고 있는 비 때문에 하늘이 어두컴컴해 시간을 가늠하기가 어렵습니다.
 
에르드가 있어야 할 옆자리는 텅 비어있네요.
 
시계는 12시 40분을 가리킵니다.
 
아마도 직장에 간 것이겠죠.
 
그런 난리가 났으니 아무리 에르드라도 나가지 않고는 못 버텼을 겁니다.
 
베아트리체 힐:...역시 없네. (빈자리를 더듬으며 서서히 무거운 몸을 일으킨다.)
(...그러고 보니 어제 그 사람이 말한 게 오늘이었던가. 하는 생각에 시계를 들여다본다.)
...늦기 전에 준비해야지.
 
쪽지는 2시를 말하고 있었죠. 지금 준비하면 딱 시간에 맞게 도착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베아트리체 힐:(옷가지를 챙겨 욕실로 들어선다. 오래 지나지 않아 준비를 거의 끝마쳤다.)
 
이제 호텔로 향해 볼까요? 얼굴을 가리고 이동해야겠지만요.
 
베아트리체 힐:(조금 긴장되는 표정으로 평소에는 잘 쓰지 않는 모자까지 꾹 눌러쓰고 문을 나선다.)
 
베아트리체는 모자를 눌러써 위장하고 호텔로 향합니다.
 
PJ 호텔
 
20XX.07.24 01:51 PM
 
도심에 위치한 비즈니스 호텔입니다.
 
규모가 그렇게 크지 않지만 깔끔한 외부와 도금된 현판이 고급스럽습니다.
 
붉은색 벨벳이 둘러진 문을 밀고서 로비 안으로 들어서면 대리석으로 꾸며진 내부가 한층 더 '비즈니스적인' 기분을 고취시킵니다.
 
취객의 쪽지에는 방 번호까지 쓰여있었습니다.
 
프론트를 거칠 것 없이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가면 될 것 같습니다.
 
<관찰력> 판정
 
베아트리체 힐:
관찰력
기준치: 65/32/13
굴림: 12
판정결과: 극단적 성공
 
이 호텔에는 계단이 없군요.
 
베아트리체 힐:(...계단이 없는 호텔이라니. 의문으로 가득 차는 머리를 가볍게 저으며 엘리베이터 앞에 선다.)
 
엘리베이터 버튼을 누르고서 기다리던 베아트리체는 언뜻 눈에 띄는 무언가를 발견합니다.
 
노란색 원피스를 입은 어린 소녀입니다.
 
오른손에는 부모의 손을, 다른 손으로는 하얀 풍선을 꼭 쥐고서 발랄한 걸음걸이로 로비를 가로질러 밖으로 나서고 있습니다.
 
등지고 있는 탓에 아이의 얼굴은 보이지 않지만, 이상하게도 눈길이 갑니다.
 
비가 오는 우중충한 하늘임에도 소녀의 원피스가 호텔 로비의 샹들리에 빛을 산란시킵니다.
 
<자각> 판정
 
베아트리체 힐:
자각 Roll
기준치: 56/28/11
굴림: 43
판정결과: 보통 성공
 
1d10 굴려주세요.
 
베아트리체 힐:
rolling 1d10
 
(
1
 
)
 
 
=
1
 
자각 기능치 1 상승.
 
소녀의 원피스, 흐드러지는 빛무리, 그 모든 광경이 무척 비현실적으로만 느껴집니다.
 
유쾌한 아이의 발걸음에 시선을 빼앗기고 있을 때, '띵'하는 소리와 함께 엘리베이터의 문이 열립니다.
 
엘리베이터는 현대적인 호텔 분위기와 조금 붕 뜬 느낌의 빈티지한 모습입니다.
 
부드러운 붉은 패턴의 카펫 바닥과 고동색 나무 프레임으로 짜진 벽은 굉장히 고풍스럽습니다.
 
베아트리체 힐:(슬쩍 고개가 기울었다가 이내 엘리베이터에 올라타 12층 버튼을 누른다.)
 
엘리베이터에 들어서면 미소를 짓고 있는 엘리베이터 도우미가 버튼 앞에서 베아트리체를 맞이합니다.
 
깔끔한 하얀색의 유니폼을 입은 직원이 친절한 목소리로 베아트리체에게 층수를 묻습니다.
 
“몇 층으로 가십니까, 손님?"
 
베아트리체 힐:..아, 12층이에요.
 
베아트리체가 층 수를 말하자 직원이 버튼을 누르고, 엘리베이터가 움직입니다.
 
문 윗쪽에 솟은 화살표는 엘리베이터가 한 층씩 올라갈때마다 옆으로 움직입니다.
 
"12층입니다. 좋은 시간 되십시오."
 
경쾌한 소리와 함께 엘리베이터가 열립니다.
 
베이지색의 카펫이 깔린 일자 복도, 짙은 색 말바우 나무로 된 문들이 길게 늘어섭니다.
 
현대적인 모습은 로비에서 그친 것인지 엘리베이터와 맞춰 꽤 빈티지스러운 모습입니다. 중간중간 장식된 꽃병들이 생기를 돋굽니다.
 
베아트리체 힐:(가볍게 고개를 숙이고 나서면서 1205호의 문패를 찾는다.)
 
1205의 문패를 어렵지 않게 찾습니다.
 
베아트리체 힐:(작게 심호흡 하고는 1205호의 문을 두 번 두드린다.)
 
노크를 하니, 몇 초도 지나지 않아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문이 열립니다.
 
취객:오셨군요, 베아트리체 씨!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유치장에서 만났던 그 취객입니다.
 
그는 다행히도 면도와 샤워를 했는지 어제처럼 마냥 지저분한 모습은 아닙니다.
 
하지면 여전히 길게 늘어진 다크서클과 정신없이 굴러가는 눈동자가 그 이상한 이미지를 배가시키네요.
 
"아, 제가 소개도 아직 못 드렸네요. 저는 이런 사람입니다."
 
그는 베아트리체에게 명함을 내밉니다.
 
'테이커보도 기자 브릴리언'라고 쓰여있는 심플한 명함입니다. 기자였네요.
 
베아트리체 힐:기자님이셨네요. ...이렇게 따로 부르신 이유가 있나요?
 
브릴리언:그야 있고말고요. 일단 어서 들어오세요. 복도에 오래 서 있어봤자 좋을 일 없으니까.
 
그를 따라서 방안으로 들어서면 싱글 베드 하나와 작은 화장실이 딸린 호텔방의 모습이 보입니다.
 
밖으로 난 벽을 채우고 있는 창밖으로 여전히 비가 내리고 있습니다.
 
빗줄기가 유리창에 몸을 부딪히는 소리가 커다랗습니다.
 
브릴리언:베아트리체 씨. 제 말을 잘 들으셔야 합니다.
 
기자는 베아트리체를 앞에 두고서 갑자기 옷장 문을 열어재꼈습니다.
 
그리고 안을 보라는 듯 옆으로 비켜섭니다.
 
브릴리언:우리는 지금 정부한테, 경찰들한테 속고 있는 겁니다!!! 애초에 살인 사건은 없었어요!!
 
베아트리체 힐:...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그의 옆에서 옷장의 안을 들여다본다.)
 
브릴리언 기자가 비켜난 옷장 안에는 옷걸이가 전부 빠져있습니다.
 
옷장 벽에는 대신 신문 기사와, 사진 그리고 정신없이 휘갈겨진 글씨들이 난무하는 종이들이 붙어있습니다.
 
지도 곳곳에 연결된 붉은 실들이 난잡하게 붙은 사건들을 정리해보려는 듯 길게 이어졌습니다.
 
'커티스' '실레나' '티미' '마이크' '베스티' '테미스'...,
 
이들 중 셋은 이미 제이크 형사의 입에서 확인한 이름들입니다.
 
브릴리언:샌디에이고 시내 어떤 곳에서도 이 사람들의 장례는 치뤄지지 않았습니다! 그건 제가 보장해요! (제 가슴팍을 팍팍 친다.) 피해자가 없는데 어떻게 살인 사건이 있다는 겁니까?
 
베아트리체 힐:장례가 치뤄지지 않았다고요...? ...피해자가 없다니? 게다가 이 중 한 명은 어제 분명 제 눈 앞에서 쓰러져있는 걸 봤는걸요.
...왜 쓰러져 있었는지에 대한 기억은 없지만.
 
브릴리언:그것 보세요. 제가 살인당했다는 피해자들에 관해 수소문을 해봤습니다. 그런데 살인을 당했다는데 유가족들은 어떤 반응도 없고, 직접 가족들을 찾아가기까지 했는데도 한 명도 만나볼 수가 없었습니다. 마치 아예 없는 사람인 것처럼요!
장례도 전혀 치뤄지지 않았고, 신분도 하나같이 이상해요. 마치 이름과 나이, 직장 말고는 싹 다 만들어진 사람 같다니까요. 그 사람들이 일했다는 직장에 가봤는데, 그들을 안다는 사람은 한 명도 나오질 않았어요.
 
<지능> 판정
 
베아트리체 힐:
지능
기준치: 55/27/11
굴림: 57
판정결과: 실패
 
베아트리체는 기억을 한참 더듬은 끝에, 조사 중 보았던 피해자들의 파일이 지나치게 얇았단 것을 기억합니다.
 
연쇄살인이라는 것치고는 몇 장도 채 되어보이지 않았었죠.
 
베아트리체 힐:...그러고 보면 사건 파일이 지나치게 얇았어요. 그렇다고는 해도 이게 말이 되는 일일까요..? 경찰과 정부에게 무슨 이익이 있어서 이런 사건을 벌인다는 건가요?
...이 일로 밤낮없이 바쁘게 일하고 있는데도요.
 
브릴리언:베아트리체 씨, 제 생각엔 말입니다…….
외계인입니다!
피해자들이 사실은 외계인이고!! 정부가 이 사실을 숨기기 위해 가짜 사건을 만들어서 이를 은폐하려고 하는 거다~ 이 말입니다!
그 정부의 사기에 베아트리체 씨가 희생자가 된 거죠!
 
브릴리언 기자는 커다랗게 뜨인 눈을 베아트리체의 면전 앞에서 번뜩이더니,
 
뜬금없이 외계인, 국정원, NASA, FBI와 같은 얼토당토 않는 소리를 하기 시작합니다.
 
베아트리체 힐:(그 기세에 조금 물러서면서도 잠자코 들으며 한동안 말이 없었다. ...어처구니가 없다고 할만큼 말도 안되는 얘기지만.) ...그렇게 생각하시는 근거라도 있는 건가요?
 
브릴리언:그럼요. 들어보세요, 제가 저번에 하늘에서 불길하게 반짝이는 붉은색 별을 봤는데, 이건 FBI와 외계인이 교신하는 신호가 분명합니다! 그 증거로 별이 세 번 빛을 깜박이다가 한 템포 쉬고 다시 세 번 빛을 냈는데 분명히 은밀한 뜻이 담겨 있을 거예요. (쏼라쏼라 허무맹랑한 소리들을 쏟아낸다.)
 
브릴리언은 아귀도 맞지 않는 소리들을 진짜인 것처럼 진지하게 늘어놓습니다.
 
하지만 어순도 틀리고 눈빛도 광인 같아, 신빙성은 전혀 느껴지지 않네요.
 
계속 들어주다간 하루가 다 지나겠습니다.
 
베아트리체 힐:...말씀은 감사해요. 이렇게 따로 얘기해주시고 정말 도움이 되었어요. 혹시 또 궁금한 점이 생기면 연락드릴게요. 오늘은 이만 가봐야겠네요. (길어지는 말을 부드럽게 넘기며 다시금 모자를 푹 눌러 쓰고 고개를 가볍게 숙여 인사했다.)
 
브릴리언:제가 며칠간의 신호를 아주 꼼꼼하게 분석해 봤다 이겁니다. 그래서 말인데 외계인이 주장하려는 바로 추측하고 있는 건……. (당신이 뭐라고 하던 말던 제 이야기만 줄줄이 늘어놓느라 바쁘다)
 
피해자들이 없다는 이야기는 아주 흥미로우나 그 외의 브릴리언 기자가 말하는 주장은 들어줄 가치가 없어 보입니다.
 
이만 나가는 게 좋겠습니다.
 
베아트리체 힐:...네. 오늘은 정말 감사했어요. (조금 기운빠진 목소리로 말하고는 슬금슬금 문으로 걸어간다.)
 
슬금슬금 호텔방을 나서던 베아트리체는 맞은편 방에서 문을 열고 나오는 에르드와 마주칩니다.
 
에르드:베아트리체? 네가 왜 여기…….
 
그가 놀란 얼굴로 베아트리체를 마주봅니다.
 
에르드의 뒤로 멀바우 나무 문 위의 '1207'이라 도색된 글씨가 보입니다.
 
베아트리체 힐:...에르, 네가 왜 여기에...?
 
띵ㅡ 12층입니다.
 
때마침 엘리베이터가 12층에 도착하는 소리가 들립니다.
 
동시에 에르드가 베아트리체의 손목을 끌어, 그가 방금 나온 '1207호'로 집어넣습니다.
 
베아트리체를 방 안으로 밀어넣은 에르드는 당신의 입을 막고 숨을 죽인 채 문 가까이에서 바깥의 소리를 듣습니다.
 
에르드:쉿. (한껏 낮아진 목소리로 속삭이며 경계를 한껏 곤두세운다.)
 
긴장한 기색이 역력한 낯입니다.
 
베아트리체 힐:...쉿. (고개를 작게 끄덕이고며 입을 틀어막는다.)
 
문 너머로 복도의 부드러운 카페트 위를 밟는 구두소리와 짜증스러운 말소리가 들려옵니다.
 
제이크 형사의 목소리임을 어렵지 않게 알아챌 수 있었습니다.
 
제이크:얜 먼저 왔다더니 어딜 간 거야?
 
곧 발걸음이 문 앞 어딘가에서 멈추더니, 에르드의 품에서 전화벨 소리가 들립니다.
 
에르드가 허둥지둥 휴대폰의 벨소리를 끄지만,
 
구두의 주인은 벨소리를 들은 것인지 복도의 구둣발 소리가 점차 가까워집니다.
 
뚜벅, 뚜벅, 뚜벅……
 
문 앞에서 잠시 망설이는 듯, 혹은 소리를 듣는 듯 한동안 발걸음이 멈춰있습니다.
 
에르드:(아랫입술 꾹 다물고 문을 노려본다. 심장이 박동이 울려대는 소리가 크고 빨랐다.)
 
베아트리체 힐:(문 너머에 온 신경을 집중해본다. 곁에서 느껴지는 그의 심장 박동에 동화되는지 제 심장 소리가 귀에 거슬릴 만큼 크게 느껴진다.)
 
고작 몇 초도 되지 않는 시간이었지만 수 분이 흐르는 듯한 긴장감이 닥칩니다.
 
숨소리도 내지 않고 꼭 붙어있던 에르드와 베아트리체의 귀에 이내 여러 개의 요란스러운 발자국 소리가 들립니다.
 
??: 찾았어?
 
제이크:아뇨, 없습니다. 거짓 제보 같습니다.
 
문 앞에서 웅성거리던 말소리들은 각자 불만을 토로하다가 곧 멀어져갑니다.
 
그제야 에르드는 베아트리체에게서 몸을 떨어트렸습니다.
 
에르드:(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문에 한 팔을 기대고 잠시 이마를 짚는다.) …… 걸리는 줄 알았네.
 
베아트리체 힐:(심장을 부여잡으며 크게 숨을 내쉰다.) ......나를 찾으러 온 사람들인거야?
 
에르드:그래, 널 여기서 봤단 제보가 들어와서 다른 사람들이 오기 전에 내가 가장 먼저 달려왔지. 로비에서 어떤 남자가 이 1207호의 열쇠를 주길래 혹시 네가 여기 있는 건가 싶어 기다리고 있었는데, 오질 않아서 막 나가려던 참이었어.
거긴 1205호였던가? 그 방엔 어쩌다 가 있었던 거야?
 
베아트리체 힐:...어떤 남자가? (의아함이 떠오른 얼굴이 슬 기운다.)
맞아. ...1205호. 어제 나를 도와준 사람을 보러 왔는데... (이어지던 말이 잠시 멈춘다.)
그러고보니 ...피해자가 없다고 했어. 내게 용의자로 지목된 사건에서. ...피해자의 장례는 한번도 치뤄진 적이 없다고.
 
에르드:널 도와준 사람이라면, 그 취객? (고개 기울인다.) 누군데 그런 걸 주장하는 거지?
 
베아트리체 힐:응. (받아둔 명함을 꺼내보인다.) ...테이커보도의 기자 브릴리언이라고 했어.
 
에르드:(명함을 받아들고 확인하자마자 익숙하단 듯 짧은 침음성을 낸다.) 아, 이 사람. 이쪽에선 괴짜 기자로 유명하지. 웬 허무맹랑한 소리를 퍼뜨리다가 유명 신문사에서 잘리고 지금은 혼자 신문사를 작게 운영하고 있을 거야.
그래서 사실 브릴리언 그 사람 말이 잘 믿기지는 않지만……. 확실히, 경찰 측에서도 너무 급하게 널 범인으로 몰아가려는 감이 있어서 의심스럽기는 해. 범인은 따로 있고 네게 누명을 씌우려는 건 아닌가, 추측하고 있던 차였는데.
 
베아트리체 힐:...확실히 괴짜스러운 사람이긴 했어. 그래도 그 말은 믿을만 한 것 같았거든.
(천천히 고개를 끄덕인다.) ...이런 상황에서도 날 믿어주는구나? 고마워. 에르 네가 그렇게 생각할 정도로 이렇게 급하게 몰아가려는 거라면 분명히 다른 이유가 있겠지.
아, 혹시 이 방엔 아무것도 없었어?
 
에르드:난 널 믿어. 상황이 의심스럽지 않은 건 아니지만, 네가 그런 짓을 할 사람이 아니라는 건 오래 봐 와서 알고 있으니까. (만약 정말로 베아트리체가 저지른 짓이라 한들, 에르드는 차마 그 사실을 받아들이지 못할 테지.)
널 기다리는 데 신경이 쏠려서 방은 못 둘러봤는데. 뉴스에 이미 네 얼굴이 나와 공개 수배를 하는 중이니, 일단 오늘만이라도 여기에 가만히 머무는 게 좋긴 하겠어.
 
방을 둘러볼 수 있습니다.
 
1207호는 방금까지 브릴리언 기자와 있던 방과 같은 구조를 이루고 있습니다.
 
다만 그보다 흐트러짐 없이 깔끔한 모습입니다.
 
에르드가 앉아 있던 것인지 침대에만 둥근 주름이 나 있습니다.
 
역시나 방의 한면을 가득 채우고 있는 [창문]으로는 장마에 흠뻑 젖은 도시가 한 눈에 들어옵니다.
 
그 외에 방 안에는 싱글 베드 하나와 작은 [책상], 그리고 생수 등이 담긴 미니 바, [TV]가 있습니다.
 
베아트리체 힐:(찬찬히 고개를 끄덕이고는 밖을 확인하려 천천히 창문으로 향한다.)
 
위로 우뚝 솟은 빌딩들에 비하여 그리 높지는 않지만, 도시의 거리와 길을 오가는 사람들을 내려다보기에는 알맞는 층수입니다.
 
사람들은 저마다 다른 색의 우산들로 비를 막으며 걷고, 차도에는 신호에 맞춰 움직이는 차들이 내려다보입니다.
 
해가 가장 높을 낮 시간임에도 우중충한 회색의 하늘은 빌딩 색과 맞물려 둘의 경계를 흐리게 만들고 있습니다.
 
이 모든 풍경들이 창문에 흘러내리는 빗방울에 망울집니다.
 
<관찰력> 판정
 
베아트리체 힐:
관찰력
기준치: 65/32/13
굴림: 16
판정결과: 어려운 성공
 
유리에 붙어있는 빗방울들이 유리창을 타고 위로 흐르는 것이 보입니다.
 
<자각> 판정
 
베아트리체 힐:
자각 Roll
기준치: 57/28/11
굴림: 94
판정결과: 실패
 
별로 이질적으로 느껴지지 않는 광경이네요.
 
베아트리체 힐:(아무렇지 않게 창문에서 떨어져 침대에 툭 걸터앉아 옆에 놓인 책상을 들여다본다.)
 
주로 사업차, 일을 하기 위해 머무르는 손님들을 고려한 깔끔한 책상입니다.
 
노트북 따위의 전자 기기를 연결 할 수 있는 전원 코드가 3구 정도 보이고 옆으로 호텔의 안내 책자가 놓여있습니다.
 
호텔의 로고가 찍힌 메모지와 펜도 보입니다.
 
베아트리체 힐:...등불 축제를 하나 보네. (혼잣말처럼 중얼거리고는 메모지에 펜으로 몇 번 끄적인다.)
...tv라도 볼까? (옆자리를 톡톡 두드리며 전원을 킨다.)
 
에르드:같이 보러 갈 수 있었으면 좋았을 텐데. (지금은 축제란 단어를 꺼내기조차도 어울리지 않는 상황이다. 베아트리체의 곁에 앉아 TV로 시선 돌린다)
 
텔레비전을 켜자, 정규 방송에서 뉴스가 방영되고 있습니다.
 
뉴스 데스크에 앉은 베이지색 정장의 아나운서가 정갈하고 정확한 발음으로 뉴스를 전달합니다.
 
아나운서: 오늘 새벽 2시경 경찰에서 조사를 받고 있던 용의자 B씨가 경찰서를 탈출했다고 샌디에이고 주 경찰 서장이 밝혔습니다. 경찰은 기자회견을 열고 용의자의 신분을 공개해 공개 수사로 전환 할 것을 밝히며 시민 여러분들에게 적극적인 도움을 요청했습니다. 에버렛 기자가 전해드립니다.
 
기자: 오늘 새벽 2시 경 살인 용의자로 구금 중이던 B씨가 경찰서를 빠져나오는 모습이 CCTV에 찍혔습니다. 경찰들은 경찰서를 지키고 있던 경찰들이 주민의 신고로 출동 중에 경비가 허술한 틈을 타 유치장을 빠져나온 것으로 보고 수사를 진행 중에 있습니다. B씨는 최근 서울에서 발생한 6명의 연쇄 살인 용의자로 수사를 받고 있던 중으로 알려졌습니다.
 
에르드:…… 다른 거 보는 게 어때.
 
베아트리체 힐:....그럴까? (황급히 다른 채널로 돌린다.)
 
<행운> 판정
 
베아트리체 힐:
기준치: 50/25/10
굴림: 94
판정결과: 실패
 
이번에도 다른 방송사의 뉴스 채널이 나옵니다.
 
마찬가지로 당신에 대해 다루고 있네요.
 
다시 채널을 돌린다면 한 번 더 <행운> 판정
 
베아트리체 힐:...(묵묵히 채널을 돌린다.)
기준치: 50/25/10
굴림: 91
판정결과: 실패
...음, 뉴스 채널이 많네...
기준치: 50/25/10
굴림: 12
판정결과: 어려운 성공
 
연신 채널을 돌리니 이번에는 영화 채널이 나옵니다.
 
유럽, 혹은 서구의 어딘가로 보이는 야외 카페에 남녀 한 쌍이 마주보고 앉아 대화를 나눕니다.
 
남배우: 꿈 속에서도 모든 게 현실 같잖아. 깨어나서야 이상하다는 것을 깨닫지.
하나 물어볼게, 너는 항상 꿈의 시작을 기억 못 하지 않나? 언제나 무슨 일의 중간부터 휘말리지.
 
여배우: 그런 것 같네요. 맞아요.
 
남배우: 그럼 우리는 여기까지 어떻게 왔지?
 
여배우: 그게, 그러니까 우리는...,
 
남배우: 생각해봐. 우리는 여길 어떻게 왔지?
 
영 알쏭달쏭한 영화입니다.
 
에르드:(묵묵히 영화의 화면을 바라보다, 손을 뻗어 베아트리체의 한 손 위에 감싸듯 올려놓는다.) …… 도망칠까?
 
베아트리체 힐:(제 손 위에 내려앉은 커다란 손에 시선을 두었다가 천천히 끌어올려 에르드의 옆 얼굴로 향한다.)
....네 모든 걸 포기해야 하잖아.
 
에르드:그래도 네가 잡히는 것보단 나아. 외계인 같은 허무맹랑한 건 제외하고서라도, 죽은 이는 없었다는 브릴리언의 말이 맞다면 넌 아무것도 하지 않았는데 연쇄살인을 했다는 죄를 뒤집어쓰는 거야. (이불의 표면을 긁듯 손가락을 모아 베아트리체의 손을 쥐었다. 목소리가 갈라졌다.) 한두 해 정도로 형량이 끝날 리 없잖아.
 
베아트리체 힐:(천천히 고개를 가로젓는다. 잡힌 손은 그대로 두었으나 남은 손으로는 다독이듯 부드럽게 토닥였다. 갈라지는 목소리가 안쓰러워 겨우 짓는 미소가 일그러진다.) ...나도 잡히고 싶지는 않아. 하지만 내게는 죄가 없으니 언젠가 반드시 밝혀질거야. ...내 죄가 맞다고 할지라도 그 무거운 짐을 너에게 어찌 같이 짊어지자고 하겠어.
 
에르드:내 생각할 때야? (답답하고 착잡한 마음에 맞잡지 않은 반대쪽 손으로 제 얼굴을 길게 쓸어내렸다.) 경찰은 이미 너를 범인으로 내정해두고 덮어씌우려고 작정을 했는데, 어떻게 밝혀질 거라고 낙관해. 구치소나 교도소나 시설이 얼마나 열악한지는 알아?
난…… 난 네가 그런 일은 겪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베아트리체 힐:... ...네 말이 맞아. 모든 증거와 상황까지 조작한다면 얼마든지 가능한 일일테까. (...마음 같아서는 제 손을 맞잡은 이와 언제까지고 멀리 달아나고 싶었다. 짓지도 않은 죄로 갇히고 싶지는 않았으니까. 그럼에도 함께 나락으로 가자고 진창으로 끌어내리고 싶지 않아서 망설일 수 밖에 없었다.)
...하지만 언제고 도망갈 수 도 없을 거라고 생각해.
 
에르드:(당장은 도망친다 해도 경찰의 촘촘한 망을 벗어나려면 상당히 고될 테지. 그 정도는 에르드도 쉽게 예상할 수 있었다. 감수하고서라도 베아트리체가 무고한 누명을 쓰고 범죄자라는 낙인이 찍히는 모습은 보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어찌하겠는가. 끝내 받아들이지 않는 베아트리체가 미련하다고 생각하면서도, 그의 현실적인 시야를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시간이 별로 없어. 언제든 마음이 바뀌면 말해. 알겠지? (할 수 있는 건 이리 보험처럼 들어두는 것뿐.)
 
베아트리체 힐:...응, 그럴게. (희미하게 웃으며 끄덕인다.)
피곤하지는 않아?
 
<꿈> 판정
 
베아트리체 힐:
꿈 Roll
기준치: 50/25/10
굴림: 25
판정결과: 어려운 성공
 
그래요, 당신은 범죄자로 이미 낙인찍힌 것이나 다름없습니다. 이것이 현실입니다.
 
평범하게 바깥을 돌아다니는 이전의 삶으로는 돌아갈 수 없는 거예요.
 
에르드:괜찮아. 내 체력이야 익히 알잖아? 그보다 넌 어떻고.
 
베아트리체 힐:...지금은 괜찮은 것 같아.
 
에르드:후…… 일단은 여기 머무르고 있자. 내가 또 다시 너를 경찰서로 데리고 가야만 한다는 게, 정말 달갑지가 않네.
(그때 그의 핸드폰에서 전화벨 소리가 울린다.) 아, 잠시만. 전화 좀 받고 올게.
 
베아트리체 힐:...아. 응, 다녀와.
 
에르드는 핸드폰을 들고 방을 나섭니다.
 
<듣기> 혹은 <관찰력> 판정이 가능합니다.
 
베아트리체 힐:
듣기
기준치: 70/35/14
굴림: 97
판정결과: 실패
(...슬쩍 화면을 본다.)
관찰력
기준치: 65/32/13
굴림: 24
판정결과: 어려운 성공
 
수신자 부분에 '제이크' 라는 이름이 언뜻 보이네요.
 
에르드가 나가고 얼마 지나지 않아, 호텔 방의 전화기가 울립니다.
 
유선 전화기 화면에 '1207-1207'이라는 번호가 벨소리와 함께 떠오릅니다.
 
베아트리체 힐:... 웬 전화지. (수화기를 들어 귀에 가져간다.) ...여보세요?
 
가벼운 플라스틱 수화기를 들어올리자 안에서 다급한 목소리가 터져나옵니다.
 
브릴리언:베아트리체 씨. 당장 거기서 나오셔야 합니다!!
함정입니다! 시간이 없어요! 어서요!!
 
베아트리체 힐:....네? 그게 무슨?
 
브릴리언:제 말을 들으셔야 합니다. 당장 거기서 나오세요. 당장!
 
브릴리언의 목소리는 무척 급박하고 간절합니다.
 
베아트리체 힐:...일단 알겠어요. (수화기를 내려놓고는 방을 나선다.)
 
호텔을 나오자 장대비는 어느샌가 부슬비로 바뀌어 소리 없이 성기게 내리고 있습니다.
 
구름은 개었지만, 저녁이 되어가는 시간에 하늘은 멍이 든 것처럼 푸른 보라색으로 얼룩졌습니다.
 
사람들은 다들 저마다 우산을 쓰고서 갈 길을 재촉합니다.
 
베아트리체는 다시 어딘가에 시선을 빼앗깁니다.
 
한 손에는 흰 풍선을, 다른 손에는 원피스와 같은 노란 우산을 들고서 경쾌한 걸음으로 걸어가는 아이.
 
분홍색의 장화 바닥에 물 웅덩이가 찰박이며 부서집니다.
 
서서히 들어오기 시작한 가로등 불빛이 아이의 그림자를 간지럽히며 몰아내고,
 
음울한 회색 배경에 아이만 빛나는 것 같은 착각에 빠집니다.
 
이내 눈이 부십니다. 아이는 사람들의 인파 속으로 곧 사라집니다.
 
베아트리체 힐:(...아까 봤던 그 아이? 눈을 몇 번 깜빡이다 인파에 섞여 아이를 따라간다.)
 
아이를 따라가면 도심 속 하천 위로 오색빛깔, 여러 모양의 초롱들이 떠 있습니다.
 
장마가 한창인 도중에도 연인과 데이트를 나온 사람, 가족들과 시간을 보내기 위해서, 혹은 혼자서라도 축제를 즐기기 위해 나온 사람들로 붐빕니다.
 
나무를 숨기기 위해서는 숲으로 가면 좋다는 말이 있듯,
 
오히려 많은 인파 속에 숨어드는 편이 좋을지도 모릅니다.
 
베아트리체 힐:(초롱을 물끄러미 보다 사람들 틈에 섞이려 걸음을 옮긴다.)
 
그때 누군가가 자신의 이름을 크게 부르는 목소리가 들립니다.
 
"베아트리체!"
 
"베아트리체!!"
 
베아트리체 힐:(제 이름을 부르는 소리에 반사적으로 고개가 휙 돌아간다.)
 
저도 모르게 고개를 돌리면, 스무 걸음 정도 떨어진 곳에서 자신을 부르며 마주 보고 있는 에르드의 얼굴이 보입니다.
 
그 한참 뒤로 제이크 형사와 그의 동료들이 사람들 속을 뒤지고 있는 모습이 스칩니다.
 
동시에 모든 것이 느려집니다.
 
...
 
...
 
손바닥으로 바닥을 쓸면 붉은 색의 카페트의 부드러운 표면이 만져집니다.
 
좁은 내부는 짙은 색의 나무벽이 짜여 있고 다른 보통의 엘리베이터들과 달리 거울이 보이지 않습니다.
 
띵, 경쾌하고도 짧은 알림음에 고개를 들면 문 위에 솟은 화살표가 'B'를 가리키고 있습니다.
 
“좋은 시간 되십시오.” 엘리베이터의 직원이 말합니다.
 
엘리베이터의 문이 열리고 베아트리체는 자동차의 조수석에 앉아 있습니다.
 
라디오에서는 진행자의 재미없는 농담에 웃어주는 게스트의 어색한 웃음 소리가 들립니다.
 
어두운 밤 도로를 달리는 차창에는 빗방울들이 부딪히며 갈라져 물길을 만들고 있습니다.
 
세찬 비 때문에 와이퍼의 양 팔은 쉴 틈이 없습니다.
 
왼쪽으로 고개를 돌리면 피로가 약간 얹혔지만 즐거워 보이는 낯으로 운전대를 잡은 에르드의 모습이 보입니다.
 
음료수와 과자 봉지들이 보입니다. 막 여행을 다녀왔거나, 가는 중인 것 같습니다.
 
그는 입을 뻐끔거리며 무어라 말하고 있습니다.
 
무어라 말하고 있나요, 베아트리체?
 
에르드:피곤하면 눈 좀 붙여. 도착하면 깨울테니까.
 
귀가 트이자 빗소리와 함께 에르드의 말소리가 들립니다.
 
무뚝뚝한 투지만, 다정함이 묻어나는 걱정.
 
그는 고개를 잠시 돌려 베아트리체를 바라보고 다시 앞을 향했습니다.
 
어떤 표정이었나요?
 
에르드:(피곤한 기색을 잠시 지우고 바라본 표정은 저만 느낄 수 있을 정도로 퍽 다정했다.)
 
에르드는 곧 손을 뻗어 라디오를 돌렸습니다.
 
비 때문인지 전파 위를 미끄러지던 라디오는 곧 팝송 채널을 잡아냅니다.
 
듣기 편안한 목소리와 곡조가 흘러나와 차 안을 채웁니다.
 
앞을 보던 에르드가 베아트리체 쪽의 갓길을 곁눈질 합니다.
 
그리고 조금 속도를 늦춥니다.
 
사고가 난 모양이네요. 자동차 두 대가 갓길에 서 있습니다.
 
운전자들은 차에서 나와 우산 아래에서 심각한 표정으로 전화기를 붙잡고 있습니다. 아마도 보험 회사에 전화 중인가 봅니다.
 
하얀색의 중형차의 탑승자들은 젊은 부부인지 우산 하나에 둘이 비집고 들어가 구겨진 범퍼를 살피고 있습니다.
 
뒷좌석이 열려있습니다.
 
<지능> 판정
 
베아트리체 힐:
관찰력
기준치: 65/32/13
굴림: 47
판정결과: 보통 성공
지능
기준치: 55/27/11
굴림: 73
판정결과: 실패
 
차량의 뒷번호가 어쩐지 흐릿합니다.
 
12...
 
도움이 필요한 상황은 아닌 것으로 보입니다.
 
에르드는 다시 천천히 엑셀을 밟았습니다.
 
세찬 비와 가로등 한 점 없는 도로 덕에 시야가 어둡습니다.
 
자동차의 헤드라이트가 겨우 빗길을 밝히며 앞을 향합니다.
 
그때, 퉁 하는 소리와 함께 하얀 무언가가 자동차 앞 유리를 부딪히고 와이퍼에 밀려 날아갔습니다.
 
풍선입니다.
 
에르드가 고개를 앞으로 쭉 내밀어 하늘로 올라가는 풍선을 바라봅니다.
 
그가 핸들을 꺾은 것은 바로 그다음의 일이었습니다.
 
자동차의 헤드라이트가 아이의 노란 원피스를 비추고,
 
반사된 빛은 순간 번쩍이며, 다음으로 도로 옆의 나무를, 그리고 가드레일을 비췄습니다.
 
빗길에 미끄러지는 타이어는 기다란 소음을 내며 고막을 찢습니다.
 
자동차는 가드레일을 부수고 떨어집니다. 중력을 상실합니다.
 
하늘은 땅이 되고, 땅은 하늘이 되었다가, 비는 아래로 내리고, 위로 내리며 모든 게 뒤집힙니다.
 
다시 모든 것이 느려집니다.
 
<꿈> 판정과 <자각> 판정을 대항합니다. 각 한 번씩 굴려주세요.
 
베아트리체 힐:
꿈 Roll
기준치: 50/25/10
굴림: 7
판정결과: 극단적 성공
자각 Roll
기준치: 57/28/11
굴림: 70
판정결과: 실패
 
모든 구분을 잊습니다. 눈앞에서 벌어지는 모든 일이 당연한 현실인걸요.
 
눈에 보이는 광경을 그대로 받아들입니다.
 
...
 
...
 
에르드:많이 피곤했나 봐, 베아트리체. 오는 내내 자고. (체온이 높은 손길이 베아트리체의 이마를 쓴다.)
계속 뒤척거리던데, 악몽이라도 꾼 거야? 깨울까 고민하다가 말았는데. 도착했어.
 
베아트리체 힐:...그렇게나 오래 잤어? 운전하는데 혼자 잠들었네. 미안해. (나른하게 눈을 감았다가 느긋하게 뜬다.)
...그랬나봐. 기억은 안 나지만. 여기가 어디야? (창 밖을 내다본다.)
 
눈을 깜박여 졸음이 눌어붙은 눈꺼풀을 떼고 나면 평범한 차 안의 풍경이 보입니다.
 
한바탕 쏟아지던 비를 뚫고 온 것인지 와이퍼 자리를 둥글게 비워두고 빗방울이 맺혀있습니다.
 
조수석 창문 앞으로 밤바다가 펼쳐집니다.
 
밤바다는 한여름에도 서늘합니다.
 
파도가 밀려와 해안을 건드리고 부서지는 소리가 잔잔하게 들리고 은은한 쪽빛의 어두운 밤하늘에는 별들이 셀 수 없이 박혀있습니다.
 
별빛의 잔물결 위로 윤슬이 넘실거립니다.
 
해안선은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길게 이어져 있어 마치 이곳이 어느 땅의 끝, 어쩌면 시작처럼 보였습니다.
 
에르드:어떤 집에서 살고 싶어? (미안하단 사과에 괜찮다고 답한다거나, 질문의 대답 대신 꺼낸 말은 그것이었다.)
 
에르드는 대뜸 그런 질문을 합니다.
 
베아트리체 힐:...집? 갑자기 그건 왜? (의문이 가득 떠오른 얼굴이었지만 이내 생각에 잠겼다.)
...너무 크지도 작지도 않은 집이면 좋겠네. 같이 가꿀 작은 정원이 있었으면 좋겠고. 너와 내 취향이 담긴 가구들을 하나씩 채우는거야.
아, 책을 잔뜩 꽂을 큰 책장도 있으면 좋겠다. ...볕이 잘 들어오면 좋겠네.
 
에르드:(읽을 수 없는 표정으로 베아트리체의 설명을 듣는다.) 크지도 작지도 않고, 정원이 있고, 큰 책장과 볕이 잘 들어오는…….
집으로 가자.
 
에르드는 그 말과 함께 몸을 돌렸습니다.
 
그리고 이곳은 이 됩니다.
 
당신이 꿈에 그리던 집과, 당신이 있고 싶은 사람과 함께있는 섬이 됩니다.
 
에르드:(발 아래 모래가 밟히고, 따사로운 햇볕이 쏟아져내린다. 그는 얇은 코트를 벗고 당신에게 한 손을 내밀었다. 어느새 맨발이었다.) 들어갈까? 집으로.
 
베아트리체 힐:(부드럽게 밟히는 모래 위로 한 발자국 다가가 내밀어진 손을 맞잡았다.) ...응.
 
집 안은 모든 것이 완벽합니다.
 
작지도 크지도 않은 적당한 크기, 볕이 들어오는 커다란 창문, 한쪽 벽을 채운 책장들…….
 
에르드와 베아트리체가 평소 좋아하던 색과 스타일의 가구들이 들어차 있습니다.
 
어느 것 하나 아쉬워할 것이 없습니다.
 
넓은 창밖으로는 바다가 보이고, 하늘이 맑은 것을 보아 내일은 분명 비가 내리지 않을 것입니다.
 
에르드:어때. 우리의 집이야. 아, 이건 내가 사자고 했던 탁상. 어때? (옅은 색의 원목 탁상을 쓸어보이며 당신을 향해 평온하게 미소한다.)
 
베아트리체 힐:...내가 생각한 그대로네. 좋아, 예뻐. 잘 어울리네. (곁에 서서 탁자를 손 끝으로 훑으며 가볍게 웃었다.)
 
에르드:이 창가에 서서 사진 찍으면 잘 나올 것 같지 않아? 서 있기만 해도 일광욕은 완벽하게 할 수 있을 것 같고. 이리로 와줄래? 베아트리체. (손짓한다)
 
베아트리체 힐:그렇겠다. 분명히 예쁠거야. ...크게 인화해서 걸어둘까? (가볍게 끄덕이며 곁으로 다가간다.)
 
에르드:…… 눈부시네. (쏟아지는 햇살 아래 선 사랑하는 이는 윤슬보다도 반짝거렸고, 꽃덤불보다도 향기로웠다. 항상 힘이 들어가 있던 낯이 편안하게 풀리자 에르드는 뒤늦게야 제 나잇대처럼 보였다.) 아주 크게 인화해야겠어. 매일 들여다볼 수 있게.
 
창가로 다가선 베아트리체의 눈에 거실의 벽난로 위에 놓인 금고 하나가 띕니다.
 
마치 완벽한 그림에 잘못 찍힌 점 하나처럼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금고는, 번호를 입력하는 자물쇠가 달려있습니다.
 
베아트리체 힐:...응, 꼭 그러자. (풀어진 얼굴을 가볍게 쓸어주고 그 안에 반짝이는 다정한 눈을 들여다본다. 그 안에 담긴 자신마저 반짝여보일만큼 어두운 밤 달빛보다도 빛나는 눈. 겨우 마주 웃어보이고 살짝 떨어진다.)
...금고가 왜 저기에?
 
<지능> 판정
 
베아트리체 힐:(그를 뒤로 하고 금고를 살펴본다.)
지능
기준치: 55/27/11
굴림: 97
판정결과: 실패
 
베아트리체 당신은 이 금고의 번호를 이미 알고 있습니다.
 
무엇이든지 당신에게 이미 중요한 번호일 것입니다.
 
오로지, 당신만이 정답을 알고 있습니다.
 
베아트리체 힐:...1207?
 
1207을 입력하자, 금고가 부드럽게 열립니다.
 
금고에는 권총 한 자루가 들어있습니다.
 
베아트리체 힐:.......이게 왜 여기에. (권총을 집어든다.)
 
다시 한 번 <꿈> 판정과 <자각> 판정 대항합니다. 이때, 각 판정의 기능치는 원하시는 만큼 조절하셔도 됩니다.
 
베아트리체 힐:
꿈 Roll
기준치: 30/15/6
굴림: 72
판정결과: 실패
자각 Roll
기준치: 70/35/14
굴림: 91
판정결과: 실패
꿈 Roll
기준치: 30/15/6
굴림: 88
판정결과: 실패
자각 Roll
기준치: 70/35/14
굴림: 58
판정결과: 보통 성공
 
어딘지 안개처럼 뿌옇던 의식 한구석이 점차 걷혀져갑니다.
 
내내 느껴지던 기이한 위화감의 이유를 이제야 알겠습니다.
 
베아트리체는 이 모든 것이 임을 비로소 자각합니다.
 
그러니, 이곳에서 죽는다 해도 꿈에서 깰 뿐이지 실제로는 죽지 않으리라고, 베아트리체는 직감적으로 깨닫습니다.
 
집 밖이 소란스럽습니다.
 
일말의 틈도 없이 요란스레 문이 부서지고, 어두운 옷을 입은 경찰들이 집안으로 들이닥칩니다.
 
두꺼운 부츠 여러개가 둔턱하게 마루 바닥을 찍어누르며 완벽했던 집안을 어지럽힙니다.
 
선두에 선 제이크 형사가 두 사람에게 총을 겨눕니다.
 
제이크:당신들은 포위됐다. 얌전히 투항해!
 
창문으로 들어오는 헬기의 밝은 조명 때문에 한순간이 눈이 부셨다가 시야가 돌아옵니다.
 
경찰들의 원래 모습들이 눈에 선명하게 들어옵니다.
 
분명 모두의 생김새를 알고 있었던 것 같은데, 얼굴이 있어야 할 자리는 그냥 밋밋하기만 합니다.
 
매끄럽고 번들번들한 고래 같은 표면이 소름끼칠 만치 새까맣습니다.
 
기괴한 뿔이 서로를 향해 안으로 굽어있고, 박쥐 같은 날개는 소리없이 퍼덕거립니다.
 
가시 돋친 꼬리가 휘적거립니다.
 
어떻게 해야 할까요?
 
에르드:(반사적으로 베아트리체의 앞을 막아선다.) 리체. (작고 낮은 목소리로 당신의 애칭을 읊조렸다. 두 음절에 담긴 애정과 걱정, 열정, 헌신, 그 밖에 셀 수 없는 많은 감정들…….)
죽더라도 널 보낼 순 없어.
 
베아트리체 힐:(시야가 가로막힌다. 미처 생각할 틈도 없이 자신을 지키려드는 커다란 등에 머리를 툭하고 기대었다. 제 이름 두 글자에 감히 담기에 너무나 많은 것들이 담겨있어서 가슴이 저리게 아파온다.) ...에르.
......무슨 일이 있어도 나를 믿는다고 했지. 허무맹랑하다고 해도 좋아. ...하지만 날 믿어줘.
...이 곳은 꿈이야. 우리는 죽어도 죽지 않을거야. 꿈에서 깨어날 뿐.
 
에르드:(굳은 낯으로 경찰들을 노려본다. 그에게는 경찰들의 모습이 기이하게 느껴지지 않는 것일까. 잔뜩 날세운 들짐승마냥 경계를 늦추지 않다가, 와중에도 의아함이 묻어나는 말에 고개를 살짝 돌렸다.) 무슨 소리야? 꿈이라니……
그럼, 저들에게 우리가 죽어야만 하는 거야?
 
베아트리체 힐:...혹시 너에게는 저들이 경찰로 보이는거야? 내 눈에는 다른 것들로 보이거든. (한 발자국 당신에게서 멀어진다. 지금은 가로 막혀 있지만 여전히 눈꺼풀 안쪽에 남은 소름끼치는 형태는 확실했다.)
...아니. 그건 아닐거야. 가능하다면 스스로.
 
에르드:솔직히 네가 무슨 소릴 하는 건지 잘 모르겠어. 제이크, 빌, 내 동료들이 다 저기 있는데. …… 동료'였던' 사람들이지만. (씁쓸하게 중얼거렸다.)
하지만 정말…… 정말 꿈이라는 거지? 그러고 보면 당장이라도 강경 진압을 할 것처럼 쳐들어왔으면서 꼼짝 안 하고 지켜보기만 하네. (그들을 가늘게 노려보다가 천천히 돌아서 베아트리체를 바라보고 경찰들을 등지고 섰다.) 연쇄살인을 했다는 누명을 썼을 때도 차마 널 놓지 못한 나야. 꿈이라는 소리 하나 못 믿어줄까.
하지만 스스로라는 건 좀 싫다. (눈썹이 처졌다.) 네가 아프지 않았으면 좋겠는데.
 
베아트리체 힐:...이해해. 당연한걸. (그럼에도 씁쓸함이 묻어나는 목소리에 눈썹이 조금 내려간다.)
응, 확실해. 그래서 모든 이상하고 기이한 것들이 이해가 가니까. (손에 든 새까만 권총을 묵묵히 내려보다 돌아서며 옷깃 스치는 소리에 당신을 천천히 올려다 본다. 밤바다를 수놓은 윤슬보다도 빛나게 웃을 수 있었다면 좋았을텐데. 나는 괜찮다고 우리는 아무 일 없을 거라고 위로할 수 있게 최선을 다해 웃어보였다.)
...그런 너에게 늘 고마워. 사진을 못 찍는 건 좀 아쉽네.
...아마 아픔도 느끼지 못할 만큼 순간일거야. (처진 눈썹을 손 끝으로 몇 번 쓸다가 몇 발자국 더 멀리 떨어진다.)
...이런 모습 보여주고 싶지 않은데. 미안해. ...눈은 감고 있는 편이 좋겠다. (겨우 입꼬리를 들어보인다.)
 
에르드:그럼 난 너의 확신을 믿어야겠네. (에르드는 협동심이라곤 눈곱만큼도 없었고, 항상 모든 것을 홀로 하는 데 익숙했으며, 자신의 판단을 무엇보다도 중시하는 사람이었다. 그 누구도 자신 곁에 설 수 없으리라 믿었고 실제로도 그리 밀어냈다. 그런데 있는 줄도 몰랐던 제 옆자리에 당신이 어느새 들어와 있었다. 에르드가 유일하게 우선시할 수 있는 존재, 그가 바로 베아트리체였다.)
꼭, 들어맞아야만 해. 그게 아니라면 네가 내 눈앞에서 스스로 죽었다는 걸 받아들일 수 없을 것 같으니까.
꿈이라면 사진은 깨어나서 찍으면 되지. 우리 둘 중 하나라도 기억하고 있으면 괜찮아. (혼자가 아니니까. 이 문장이 자신에게 긍정적인 의미로 다가오게 된 것도 전부 사랑하는 이 덕분이었지.)
…… 감고 있을 테니까, 네가 먼저 깨어나면 나를 꼭 흔들어서 깨워줘. 알았지? (날 익숙하지 않은 두려움의 늪에 잠기지 않게 해 줘. 손끝이 떨려옴을 느낀다. 당신을 잃을지도 모른다는 가정이 불러일으키는 공포다. 그는 손을 꾹 말아쥔 채, 느리게 눈을 내리감았다.)
 
베아트리체 힐:...응, 믿어줘서 고마워. 네 덕분에 용기가 나. (천천히 숨을 크게 들이켰다가 천천히 내뱉는다. 내뱉는 숨이 파르르 떨리는 것은 아마 저만이 느꼈을 것이다. 고개를 들면 제가 사랑하는 이가 눈은 감은 채 굳게 서있다. 이런 혼란 속에서도 오직 자신만을 믿으며. ...늘 혼자가 익숙했던 이가 어렵사리 저에게 곁을 내어주었으니 사실은 이런 순간에도 잠시도 떨어지고 싶지 않았다.)
...가장 먼저 너를 깨울게. 그리고 아주 예쁜 사진을 찍으러 가자. (그럼에도 결심할 수 있는 건 오로지 에르드. 네 덕분이야. 사랑같은 건 무섭다고. 겁먹고 두려워하기만 했는데. 이렇게 강한 힘이라는 걸 네가 가르쳐줬으니까. ...어느새 두 손도 잘게 떨리고 있었다. 총구를 돌려 제 턱 밑으로 가져간다. 방아쇠에 손가락을 걸자 차게 식어 등골이 서늘하게 식는다.)
...언제나 사랑해.
(그저 인삿말처럼 담담히 얘기하고는 방아쇠를 당겼다.)
 
베아트리체는 스스로의 턱에 총구를 가져다댑니다.
 
금속의 촉감이 너무도 선연해 절로 소름이 돋을 지경입니다.
 
이렇게 선명한데, 꿈이라니…….
 
그러나 당신은 이미 확신했습니다. 자각했습니다.
 
꿈은 자각한 순간 금세 깨어난다고들 하죠.
 
베아트리체는 그대로 방아쇠를 당깁니다.
 
총소리도, 아픔도 느껴지지 않았습니다.
 
...
 
...
 
제일 처음 느껴진 것은 생생하게 뺨을 타고 흐르는 빗물입니다.
 
뒤이어 갈비뼈를 옥죄는 아픔에 저절로 얼굴이 일그러집니다.
 
습기가 가득한 공기를 들이마실 때마다 누군가 주먹으로 가슴을 누르는 것처럼 아파져 옵니다.
 
주변이 소란스럽습니다.
 
사이렌 소리, 누군가의 외침과 비가 그친 진흙 바닥을 신발로 밀어내는 소리.
 
시야가 초점이 맞지 않는 카메라의 화면처럼 흐릿하게 맺히다가 돌아옵니다.
 
모든 것이 거꾸로 뒤집혀 있고 몸은 안전벨트로 의자에 고정된 채입니다.
 
"정신이 드십니까? 지금 꺼내드리겠습니다! 조금만 참으세요!"
 
깨진 창문 너머로 얼굴을 내민 소방대원이 베아트리체를 안심시키고는 뒤를 향해 소리칩니다.
 
"여기 한 명, 정신이 들었습니다!”
 
몸을 최대한 움직이지 말라는 구조대원의 흐릿한 목소리를 들으며 운전석으로 고개를 돌리면 에르드의 모습이 보입니다.
 
에르드는 찢어진 이마에서 선혈을 흘리며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축 늘어져 있습니다.
 
푸르게 보이기까지 하는 입술과 창백한 피부.
 
잠시 그가 죽은 것인가, 하는 두려움이 덜컥 몰려왔지만,
 
그의 가슴이 희미하게 오르내립니다. 얕은 숨소리가 들립니다.
 
모든 것이 그 어느 때보다 생생합니다.
 
꿈에서 깨어났습니다.
 
이곳이, 현실입니다.
 
End 3. 비가 그치고...
 
베아트리체 생환, 에르드 생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