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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0205~260323] 그린루비 - Time Out :: Deadly Belladonna

초현_c 2026. 3. 23.

플레이타임 : 20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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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이스!”
 
날카로운 겨울바람이 뺨을 할퀴고, 외마디 비명이 어깨를 붙잡습니다.
 
<회피> 판정
 
루이스 레너드:
회피
기준치: 50/25/10
굴림: 3
판정결과: 극단적 성공
 
거대한 나무 발굽이 땅을 찍어 누릅니다.
 
웅장한 땅울림과 함께 대자연의 삼림이 여러 갈래로 쪼개집니다.
 
움푹 팬 정중앙은, 방금 루이스가 서 있던 자리입니다.
 
가까스로 몸을 굴려 공격을 피합니다.
 
루이스의 궤적을 따라 눈발과 흙먼지가 흩날립니다.
 
먹잇감을 놓친 발굽이 화풀이하듯 빈 터를 잘근잘근 짓밟습니다.
 
위치 좌표는 지구, 노르웨이, 달스니바산 중턱.
 
시간 좌표는 크리스마스가 막 지난 2052년 12월 26일.
 
루이스가 지구의 비올라와 만난 해의 일입니다.
 
비올라 카지안:루이스! 괜찮아요? 방금 진짜로 큰일날 뻔한 것 같은데. (희게 질린 낯으로 다급히 뛰어왔다.)
 
루이스 레너드:(제가 있었던 자리를 정확히 때려 부순 흔적에 등골이 섬짓하다. 위험에는 익숙해도, 죽음의 위기가 목전인 것은 또 다른 문제니까. 가까스로 숨을 골라 쉬며 고개를 끄덕인다.) 전 괜찮아요. 비올라는, 다친 곳 없죠?
 
비올라 카지안:네, 전 괜찮아요. (루이스의 옷에 묻은 흙을 털어주며 재빠르게 새로 생긴 상처가 없는지 확인하고 숨을 고른다.) 위험한 적이에요. 어서 해치우죠. (비올라는 무척이나 소심하고 조심스러운 이였지만, 긴 시간 인류의 보루인 타이머로서 싸워 왔기 때문인지 신화생물과의 전투에서는 좀처럼 두려움에 떨지 않았다. 자신이 무너지면 그 뒤에 스러질 생명이 얼마나 많은지를 아주 잘 알고 있는 이의 책임감이다.)
 
검은 것, 나무가 아닌 것, 썩은 동아줄을 꼬아 세운 기괴한 괴물들은 다닥다닥 달라붙어 이 숲으로 밀려듭니다.
 
염소 발굽을 닮은 다리가 우악스럽게 바닥을 때려대고, 가지마다 달린 입들이 흰 이빨과 불쾌한 점액질을 내보입니다.
 
회피 판정이 끝났으니 비올라와 루이스의 공격 턴입니다.
 
순서는 루이스-비올라입니다.
 
루이스 레너드:최대한 움직임을 봉쇄해볼테니, 틈을 노려 공격해줘! (빠르게 제 계획을 외치고, 꽃가루를 흩뿌려 상대를 공격한다.)
수면가루
기준치: 100/50/20
굴림: 41
판정결과: 어려운 성공
피해: 21
 
어둠의 아이:
붙잡기
기준치: 40/20/8
굴림: 18
판정결과: 어려운 성공
피해: 3
 
루이스의 꽃가루가 어둠의 아이를 감싸며 타격을 입힙니다.
 
어둠의 아이가 굵은 촉수들을 흔들어대며 발악해보지만 당신에게 닿지는 못합니다.
 
어둠의 아이 HP -21.
 
비올라 카지안:알겠어요! (루이스와 거리를 벌려 신화생물의 시야가 닿지 않는 곳에서 공격을 시도한다. 공중에 흩뿌린 씨앗에서 날카로운 가시덩굴이 우박처럼 뻗어나와 적의 심부를 노렸다.)
생장
기준치: 100/50/20
굴림: 18
판정결과: 극단적 성공
피해: 27
 
두 사람의 권능이 꽃잎처럼, 우박처럼 숲을 쓸어버립니다.
 
어둠의 아이 9마리가 추풍낙엽처럼 나가떨어집니다.
 
백야 현상으로 희게 샌 하늘에 검은 새 그림자가 푸드덕 날아오르고, 적은 마른 장작처럼 부스러집니다.
 
옹이 자국이 아귀처럼 일그러지면, 귓가에 무전이 울립니다.
 
루이스 레너드:(귓가에 손을 가져가 무전을 받는다.) 제3시 타이머 루이스 응답했습니다.
 
제10구역 DOT 연구기지에는 외우주의 모든 데이터가 집약되어 있습니다.
 
진척이 없는 연구라도 빼앗겼다간 핀치에 몰리고 말 것입니다.
 
이건 인류에게 불리하기 짝이 없는 게임이니까요.
 
겨울을 입은 달스니바산은 순백의 한 폭.
 
동물도 겨울잠을 자고 식물도 언 땅 아래 움츠리고 있는 시기.
 
눈사태의 위협이 형형한 터라 도로가 폐쇄되는 비수기입니다.
 
확실히, 인명 피해가 가장 적은 파견지이긴 합니다.
 
하지만,
 
<관찰력> 판정
 
루이스 레너드:
관찰력
기준치: 75/37/15
굴림: 41
판정결과: 보통 성공
 
군대도 주둔하지 않는 지역인지라 이대로 내버려두면 어둠의 아이들은 아무 방해 없이 숲을 벗어날 겁니다.
 
저 아래 게이랑에르 피오르에 숨은 작은 마을까지도.
 
연구기지를 수비한 후 시간을 맞춰 돌아올 수 있을까요?
 
확신이 서지 않습니다.
 
어떤 선택을 할 건가요?
 
루이스 레너드:··· (무전에 응답하기 전, 비올라에게 고개를 돌려 의견을 묻는다.) 어떻게 할 겁니까, 저는 즉시 10구역으로 복귀하겠습니다.
 
비올라 카지안:10구역으로…… 가겠다고요. (연구 기지의 중요성은 안다. 그간 타이머와 연구원들이 치열하게 신화생물과 싸워 오며 모아온 지식들의 집대성이니까. 하지만 미처 대피하지 못한 시민들이 있다. 망설임도 없이 기지를 택하다니…… 물론 비올라 역시 타이머로 오랜 시간 활동해 오며 양자택일의 상황을 겪어보지 않은 건 아니었지만, 저 자신과 물자들을 희생해서라도 사람을 구하기를 우선시해왔었다. 루이스의 선택을 어느 정도는 이해했지만 전부 납득할 수만은 없었다.)
저는 마을의 사람들을 지켜야만 해요. 데이터도 중요하지만 당장 경각에 달한 목숨이 있는걸요.
 
루이스 레너드:(반쯤은 예상한 결과라는듯 고개를 끄덕인다.) 개인의 신념으로 입씨름할 시간이 없다는 것에는 우리 둘 다 동의할테고, 제 판단을 강요할 수도 없습니다. 하지만··· 딱 한 번만 제안할게요. 함께 10구역으로 가서 자료를 보존할 때까지만이라도 기지를 수비하고, 늦지 않게 돌아오는 건 안 되겠습니까. 나라고 마을을 무시하고 싶은 게 아닙니다. 다만··· 우리가 지킬 수 있는 범위에는 한계가 있고, 그 한정된 것 안에서 우선 순위를 매기는 것이, 잔인하지만 때로는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마을과 이곳의 거리를 빠르게 재어 보고) 모든 재앙들이 마을로 몰리지는 않을 겁니다. 아마 산개하겠죠. 아직은 시간이 있다고 봅니다.
 
비올라 카지안:알아요. 마을을 무시하는 게 아니란 걸. 저 역시도 연구기지의 중요성을 무시하는 게 아니고요. (부드럽게 답했다.) 때로는 우선순위를 따져야만 하는 잔인한 현실이 온다는 것도 잘 알죠. 그래서, 저도 어쩔 수 없이 경중을 따져서 마을을 지키려 하는 거예요. ……데이터는 다시 쌓으면 돼요. 하지만 떠난 목숨은 돌아오지 않아요. 저는 그 사람들을 모른 척할 수가 없네요.
 
루이스 레너드:(단박에 설득되리라고는 생각지도 않았지만, 예측과 동일한 결과에 옅게 한숨을 내쉰다. 한 번 시도했으니 이 이상 시간을 낭비할 여유는 없다고 판단하고 전투를 이어나갈 태세를 취한다.) 알겠습니다. 조금 무리해서라도 최대한 빠르게 해결해보죠.
 
비올라 카지안:(이렇게 대립해보는 건 처음이다. 지켜야 할 행성이 두 배가 된 만큼 타이머들을 필요로 하는 일들도 늘어났다. 결국 언제나 그래왔던 것처럼 이번에도 함께 마무리를 짓고자 한다.) 미안해요. (씨앗을 흩뿌린다.) 저도 힘내볼게요!
 
시끄럽게 떠들어대는 무전을 무시하고 눈앞의 적에게 신경을 곤두세웁니다.
 
어둠의 아이들은 새하얗게 도드라진, 인간을 닮아 더 불쾌한 이빨을 드러내며 몰려옵니다.
 
루이스-비올라 순으로 공격 가능합니다.
 
루이스 레너드:(속전속결로 끝내야 하니, 생각할 시간도 줄여야 한다. 비올라에게 언질을 주고는 즉시 꽃잎을 휘날린다.) 공격한다!
꽃잎댄스
기준치: 100/50/20
굴림: 32
판정결과: 어려운 성공
피해: 58
 
비올라 카지안:(하얀 눈 위로 색색의 꽃잎이 흩날리는 광경이 퍽 장관이다. 상대가 강력한 신화생물이고 뒤에는 지켜야 할 마을이 있다는 상황만 아니라면 사진으로 남겨도 아깝지 않을 테지. 그러나 우리는 무언가를 포기하고 이 자리에 섰고, 풍경 따위를 감상할 여력은 없다. 시야에 들어오는 건 오로지 루이스의 이능력과 아가리를 들이미는 신화생물뿐. 타이밍을 맞추어 신화생물에게로 씨앗을 내던지고, 스킬의 효과를 강화시키는 독성 꽃잎을 피워냈다.)
생장
기준치: 100/50/20
굴림: 58
판정결과: 보통 성공
피해: 24
 
형형색색의 꽃잎이 신화생물들을 뒤덮고 독성 꽃가루를 흩날립니다.
 
루이스와 비올라의 몸에 난 상처들이 몇 배는 커다란 데미지를 품고 적들에게로 반사됩니다.
 
신화생물들이 검은 가루를 흩뿌리며 나동그라집니다.
 
숲이 뱉어낸 차가운 겨울 숨이 폐부에 가득 차오릅니다.
 
게이랑에르 피오르란 장엄한 험곡 아래, 작은 마을은 온전하게 보호받았습니다.
 
싸움의 여파로 단발적인 눈사태가 발발했지만, 민가와는 거리가 멀어 인명 피해는 발생하지 않았습니다.
 
단, 두 사람이 마을을 지키고 뒤늦게 연구기지로 출동했을 때는 이미 피해가 막심한 상황이었습니다.
 
연구 중이던 신화생물 사체와 관련 자료가 17% 소실되었을 뿐 아니라 연구원 6명이 사망하고 말았습니다.
 
제3차 코스모스 웨이브, 그로부터 꼬박 삼 년.
 
인류는 새 국면을 맞이했습니다.
 
도개교가 되어준 블루 아버 덕분에 도밍게즈와 지구는 GEM 연합을 결성하고 공동 전선을 형성했습니다.
 
역사 기록, 조사 자료, 연구 결과 등, 감히 값을 매길 수 없는 거대한 정보가 은하를 건넙니다.
 
외따로 떨어져 있던 인류에게 서로는 가장 든든한 아군이었습니다.
 
그러나 빛이 드리우면 어둠이 도사리는 법.
 
게이트의 발생 빈도는 점점 빨라지기 시작합니다.
 
제4차 코스모스 웨이브가 닥칠 징조일지도 모른다고, 쌍둥이 행성은 기약 없는 공포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다행히’ 외우주의 신은 강림하지 않았으나…….
 
“제9구역 경계에 새로운 게이트가 생성됐습니다, 출동 지시를……!”
 
“타이머 전원, 이미 출동했습니다! 대기 중인 인력이 없습니다!”
 
“게이트 규모를 분석해. 인명 피해가 가장 적은 경우의 수를 찾아야 한다.”
 
시대의 평화도 도래하기엔 먼 미래였습니다.
 
DOT는 더 이상 ‘모든’ 위험지대에 타이머를 발령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동시다발적으로 열리는 게이트를 감당하려면 최적의 효율을 따지는 과정이 필수 불가결해졌습니다.
 
루이스와 비올라도 몇 번이고, 몇 번이고, 몇 번이고 눈앞의 위험으로부터 등을 돌려야 했을 겁니다.
 
루이스는 매 순간 어떤 선택을 했을까요?
 
우리의 운명은 은하를 흘러 어디쯤 도착했을까요?
 
그리하여 세계는 지금, 얼마만큼 멸망에 가까워진 걸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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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55년 10월 10일.
 
딱 기분 좋게 선선한 바람이 창틀을 쓰다듬는 시기. 가로수들은 울긋불긋한 옷으로 갈아입는 단장에 한창 바쁩니다.
 
루이스는 모처럼 관사에서 ‘한가롭게’ ‘여유’를 만끽하고 있습니다. 이것도 다 클라커 프로젝트 덕분입니다.
 
때마침 뉴스도 클라커가 얼마나 대단한지 떠들어대고 있습니다.
 
곧 증원을 앞두고 있으니 단단히 관심을 끌어둘 작정이겠죠.
 
비올라 카지안:요새 어디서든 다 저 얘기더라.
 
쇼파에 늘어진 비올라가 툭 말을 던집니다.
 
자기 집 안방인 양 편한 모습입니다.
 
바로 이 장면이 GEM 연합 탄생 이후 가장 큰 변화입니다.
 
게이트가 빈번하게 발생하면서 한 회차에 등장하는 신화생물 개체 수도 큰 폭으로 증가했고, 이에 대응하기 위해 타이머는 2인 체제로 재편성되었습니다.
 
클라커들의 배치로 시간적 여유를 확보한 후엔 이런 장면이 일상이 되었습니다.
 
지구, 혹은 도밍게즈의 관사에서 두 사람이 함께 시간을 보내는, 살짝 낯간지러운 일상.
 
비올라 카지안:덕분에 이렇게 여유를 누릴 수도 있는 거지만. 매일같이 잠도 거의 못 자고 행성을 오가며 돌아다니다가 갑자기 쉬는 날이 늘어나니 뭔가 어색하기도 해.
저 프로젝트도 그렇고. ……안전한 거겠지?
 
루이스 레너드:쉴 수 있을 때 쉬어둬야지. 타이머에게는 충분한 휴식도 일종의 의무니까. (부엌에서 비올라의 말을 받는다. 삐익- 주전자가 끓는 소리가 평온한 일상에 포인트를 더해준다. 익숙한 몸짓으로 차를 따라낸다. 두 잔을 양손에 들고 거실로 걸어간다. 한 잔은 당신의 앞에 두고, 다른 한 잔은 제가 든 채로 소파 옆 안락의자에 앉는다.) 그리고, 그런 말 있지 않아?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라든가···. 지구 출신 위인이 이런 말 했다고 하던데. 개인적으로는 실패하는 결과를 최대한 낳지 않기 위해 성공에 가까운 루트를 시도하는 편이긴 하지만, 세상을 구하는 일에는 여러 시도도 필요한 법이지. (차를 한 모금 마시고) 만일 안전하지 않아도 우리가 있잖아.
 
비올라 카지안:하긴. 잘 쉬면서 회복해야 다음 임무에서 최선을 다할 수 있을 테니까. (고마워, 인사하며 찻잔을 양손으로 살짝 감쌌다가 입가에 기울였다. 너무 피로에 찌든 나머지 공격을 미처 피하지 못해 큰일날 뻔했던 적도 있고, 식사를 할 여유도 없이 쪽잠을 자는 데 바빴던 시절. 그러나 제 몸이 힘든 것보다는 점점 더 늘어나는 게이트 때문에 제4차 코스모스 웨이브가 올까 봐 두려웠었다. 오래 살지는 못할지도 모르겠다는 직감을 하면 했지, 이런 평화를 누리게 될 줄은 상상도 못했더랬다.) 맞아. 자주 쓰이는 관용구. 나도 당연히 세상을 위한 일이라고 생각해. 실제로 도움이 되고 있다고 하니까. 그래도 너무 알려진 게 없으니 조금 걱정될 뿐이야. 타이머인 우리도 아는 게 거의 없으니까.
 
클라커는 특수 훈련을 받은 인공 사역으로 단편적인 송환 주문을 사용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특수 훈련의 내용은 공개되지 않았지만……. 마침 뉴스도 클라커의 전투 장면을 송출 중입니다.
 
평범한 소녀가 신화생물과 대치하는, 위기일발의 순간.
 
척추 대신 도드라진 뼛조각을 곤두세우던 오물 덩어리가 달려들고,
 
그것이 악의를 품고 뛰어든 순간, 소녀는 손바닥을 찢어 피를 냅니다.
 
담벼락에 피를 적시고 반 마디의 주문을 외우자 기하학과 어떤 숫자의 규칙이 섞인 원진이 피어납니다.
 
눈 깜짝할 새 원진은 검은 구덩이― 게이트로 개화하고, 신화생물은 홀린 듯이 게이트로 빨려 들어갑니다.
 
시든 꽃송이가 낙화하듯, 게이트가 자취를 감추며 전투는 끝납니다.
 
카메라 렌즈 너머로 소녀가 이쪽을 돌아봅니다.
 
앳된 얼굴, 이제 막 성인이 되었을까 싶은 품.
 
단정한 군복은 타이머의 것과 달리 칠흑 같은 검정.
 
그 모든 낯선 정보의 나열에서,
 
<지능> 판정
 
루이스 레너드:
지능
기준치: 80/40/16
굴림: 85
판정결과: 실패
 
어디서 본 얼굴 같은데. 뚜렷이 기억나지는 않습니다.
 
루이스 레너드:(비올라에게는 마음 편히 가지라고, 쉬는 것도 나쁘지만은 않다고, 그렇게 말했어도 '클라커'라는 것이 마냥 행복하게만 다가오지 않는 까닭은 '알지 못함'에서 기인한다. 나와 비올라, 우리는 타이머. 신화생물과 싸우고 우리의 행성을 지켜내는 영웅. 클라커 역시 도밍게즈와 지구를 지킨다는 점에서는 영웅과 다름이 없다. 작동 원리가 어떻게 되는지는 정확히 알지 못해도, 싸우지 않고 피해도 없이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면 그것보다 좋은 게 어디 있겠는가? 신에게 선택받은 영웅이 아니더라도, 인간이 직접 영웅을 선택할 수 있다면, 우리의 존재 의의는 대체 뭐란 말인가? ··· 그런 의구심, 미심쩍은 기분, 존재 의의에 대한 허무주의적 사고 같은 것들이 머리를 때때로 돌아다니기 시작했다. 저··· '클라커'라는 존재들이 등장한 이후로.)
(그래서 일부러 더 소식을 찾아보기도 했는데, 저 소녀의 얼굴이 익숙해보이는 이유는 그 탓일까? 차를 한 모금 더 마시며 기억의 편린을 뒤져본다.)
 
<지능> 재판정!
 
루이스 레너드:
지능
기준치: 80/40/16
굴림: 82
판정결과: 실패
 
행깎?
 
행운 2 감소. 성공 처리합니다.
 
편린 더미에서 마침내 과거의 한 조각을 잡아챕니다.
 
제3차 코스모스 웨이브 당시, 피난 행렬 끄트머리에 서 있던 소녀.
 
겁에 질린 얼굴과 덜덜 떨리는 목소리가 형편없던 어린아이였는데. 어느새 저렇게 성장했군요.
 
비올라 카지안:전투 능력은 일반인이랑 다름없는 것 같던데…… (텔레비전의 화면을 보며 작게 경탄하면서도 여전히 심려하는 눈치다.) 타이머한테도 공개되지 않는 특수 훈련이라니.
피를 내는 건 우리가 블루 아버를 여는 걸 따라한 건가……? (고개를 기울인다)
 
비올라는 소녀의 정체엔 감흥이 없어 보입니다.
 
당연하지요. 그에겐 처음 보는 사람일 테니.
 
루이스 레너드:··· 아, (가물가물하지만, 그 아이가 맞는 것 같다. 더 큰 재앙을 막기 위해 포기하기를 선택했던 적고 작은 피난자들. 살아있는 모습을 보니 다행이라는 생각도 들고, 그때 지키러 달려가지 않아 미안하다는 마음도 든다. 하지만 되돌아가더라도 나는 같은 선택을 할 것이다. 온 도밍게즈를 집어삼키려 들었던 신화생물을 처치하는 쪽이 도밍게즈를 지키는 길이었으니까. 나의 가족, 혹은 나 자신이 포함된 행렬이라 하더라도 결과는 같았을 것이다.)
(화면에서 시선을 돌리고 비올라의 말에 동참한다.) 그런 것 같네. 피를 덧칠해서 세계의 문을 여는 것이니 원리는 거의 동일하겠지. '어떻게' 했느냐···, 그게 제일 궁금하긴 하지만. 대체 뭐길래 타이머에게도 비밀인 건지 영문을 모르겠다니까.
 
특수 훈련 내용은 공개되지 않았지만, 10개월 동안 무던하게 진행된 프로젝트니 괜한 트집을 잡기는 어려울 겁니다.
 
이러니저러니 해도 덕분에 타이머들의 워라밸도 보장되고 있고요.
 
아나운서들은 달뜬 분위기를 숨기지 못합니다.
 
하기야, 쌍둥이 행성의 발견과 새로운 영웅의 등장이라니.
 
희망이 움트는 것도 당연합니다.
 
“타이머들만 고생하지 않아도 되는 거잖아요. 다행이라고 생각해요.”
 
“DOT에서 공고 뜨자마자 지원할 겁니다! 친구들도 다 그러기로 했어요!”
 
“클라커가 되면 타이머의 파트너, 뭐 그런 게 되는 건가?”
 
지구와 도밍게즈를 교차하는 인터뷰가 이어집니다.
 
사람들의 두 뺨에는 단풍의 붉은 색이 물들었습니다.
 
브라운관 안팎으로 선명한 명제입니다.
 
뭐, 타이머는 클라커와 우연히 마주친 적도 없다는 것이 현실이지만요.
 
클라커의 본적은 연구기지라서 동선이 거의 겹치지 않습니다.
 
임무를 함께 수행할 일도 없으니 파트너나 동료라고 부르긴 어폐가 있습니다.
 
육군과 해군이 서로를 파트너로 여기지 않는 것처럼. 현실은 원래 초라한 법입니다.
 
원한다면 클라커를 검색해 볼 수 있습니다.
 
루이스 레너드:말이 나온 김에··· (스크린에서 보여주는 일종의 프로파간다같은 클라커 영상을 보다가 휴대전화를 꺼내든다.) 검색이나 해 볼까. 최근에 동향 조사가 부족하기도 했고.
 
비올라 카지안:그럴까? 궁금하다. (루이스의 안락의자 옆으로 꾸물꾸물 다가간다.)
 
구x 페이지에 클라커를 검색하자, 제1번 클라커부터 제96번 클라커까지 사진과 이름, 나이 등을 정리한 블로그를 발견합니다.
 
몇몇은 뉴스나 기사를 통해 접한 얼굴입니다.
 
DOT는 클라커의 신상 정보를 공개하지 않았습니다.
 
세대교체 때마다 프로필이 업데이트되는 타이머와는 대조적인 행보입니다.
 
그러나 정보의 바다에는 사람들이 촬영한 사진, 영상이 떠돌아다니고 있습니다.
 
듬성듬성 빈자리나 화질이 열악한 사진이 끼어 있지만, 이 정도면 대단한 정보 수집 능력입니다.
 
<자료조사> 판정
 
루이스 레너드:
자료조사
기준치: 70/35/14
굴림: 21
판정결과: 어려운 성공
 
:「2055.09.01. 익명의 투서를 받았습니다. 자세한 내용은 아직 말할 수 없으나, 필자의 주장을 뒷받침할 거대한 진실이 담겨 있었습니다. 모든 것이 확실해지거든 필자가 알고 있는 게이트의 모든 것을 밝히겠습니다.」
 
블로그 포스팅은 그렇게 끝이 납니다.
 
댓글은 엉망진창입니다.
 
1달이 지나도록 소식이 없는 걸 보면 이대로 꼬리 말고 도망간 거라는 비난과 DOT가 손을 쓴 게 분명하다는 음모론이 혼재합니다.
 
클라커들을 두고도 갑론을박이 시끄럽습니다.
 
모든 국민이 의무적으로 특수 훈련을 이행해야 한다는 강경파,
 
신화생물을 그저 쫓아내는 것으론 안심할 수 없다는 불안 분자,
 
클라커들은 인체 실험 끝에 만들어졌다든가, 타이머의 클론이라든가…….
 
SF가 가미된 망상도 끝없이 쏟아져 나옵니다.
 
창백하고 푸른 점들은 심한 몸살을 앓고 있습니다.
 
거스를 수 없는 변화의 물결, 피할 수 없는 혼란의 도가니에 점령당한,
 
바야흐로 혁명의 시대입니다.
 
비올라 카지안:으음. 역시 긍정적인 반응만 있지는 않네. 타이머들만 있던 시절에도 음모론은 으레 따라붙었다지만…….
 
루이스 레너드:인터넷이란 게 원래 좀···. (상대할 가치가 없는 몇몇 쓰레기 글은 상대도 않고, 훑어만 보며 여론을 파악한다.) 모르는 편이 나은 생태니까. 그래도 이 정도까지 정보 수집을 했다는 건, 적어도 한 가지 확실한 사실에 기반해서 활동했다는 건데. 역시 압박이 들어온 거겠지?
 
비올라 카지안:맞아. 난 SNS를 안 해서 다행이다. (작게 한숨을 내쉰다.) 압박이 들어왔다는 건 DOT에서 무시할 수 없을 정도로 확실한 사실을 기반으로 하고 있다는 뜻이려나. 그냥 사람들을 끌어모으려는 거짓말일 확률이 높아 보이지만. 저 익명의 투서란 게 뭔지 조금은 궁금한걸.
 
루이스 레너드:거짓말이든 진실이든 DOT 입장에선 위험해. (슥슥 스크롤을 몇 번 내리고는, 다 훑었다는 듯 휴대전화를 다시 집어넣는다.) 투서의 존재가 거짓일 수도 있고, 내용이 거짓일 수도 있고, 경우의 수는 여러 가지겠지만··· 확실하지 않은 정보를 살피기 위해 시간을 낭비하고 싶지는 않네. 당장 중요한 건 클라커가 우리 일을 돕고 있단 거고, DOT가 도밍게즈나 지구에 해가 될 일을 할 이유는 없으니까.
 
비올라 카지안:적당히 시선을 모았으니 만족해서 중단했을 수도 있고. (이런 부류가 정말 이 정도에 만족하진 않겠지만, SNS에 관심이 없는 비올라로서는 모를 수밖에 없다.) 어쨌건 클론 같은 게 아닌 건 분명해. 우리랑 전혀 안 닮았잖아.
 
그때, 갑자기 뉴스 화면이 전환됩니다. 간신히 느슨해졌던 활시위가 다시 팽팽하게 긴장합니다.
 
때 아닌 속보는 비극적인 불청객이었습니다.
 
루이스 레너드:(좋지 못한 속보가 흘러나오자 반사적으로 자세를 바로 하게 된다. 일가족 살인 사건이라···. 심각한 사건처럼 보이지만, 신화 생물과 직접 연관된 것이 아닌 이상 타이머에게까지 넘어올 일은 없을 것이라 생각하며 다시 자세를 편안히 한다.)
 
비올라 카지안:일가족 살인 사건이라니. …안타까운 일이네. (어느 시기에든 사람들은 서로를 죽고 죽인다지만, 신화생물의 침공이 일상처럼 변해 버린 시대에는 인간들 사이의 사건이 더 이질적으로 느껴진다. 하지만 루이스와 마찬가지로, 이런 사건이 타이머에게까지 도움을 구하는 경우는 없었으므로 잠시간의 안타까움만 품고 지나간다.)
 
이후로도 두 사람은 차를 마시며 조용한 시간을 보냈습니다.
 
띠링.
 
한적한 밤을 깨트린 방해꾼은 ‘또’ 스마트폰이었습니다.
 
2055-10-10, 21:41
 
제3시 타이머 의무실 방문 요망
 
샘플 채취 협조 바람.
 
메시지는 비올라와 루이스에게 똑같은 내용을 적어 동시에 도착했습니다.
 
비올라 카지안:아, 벌써 주기가 돌아왔나 봐.
 
비올라가 익숙하다는 듯이 중얼거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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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긴 복도를 따라 차례대로 연구실, 훈련실을 지나자 곧 의무실의 문패가 보입니다.
 
발소리를 듣고 튀어나온 닥터 오프-화이트가 활짝 문을 열어 줍니다.
 
닥터 오프-화이트:어서 와!
 
늘 그렇듯 품이 넉넉한 흰 가운 차림입니다.
 
싸한 소독약 냄새, 커튼을 친 침대, 약이 진열된 선반, 출처 불명의 내용물이 찬 눈금 실린더와 플라스크, 비커로 꽉 찬 냉장고.
 
뼈, 근육으로만 이루어진 인체 모형과 두개골 시리즈까지…….
 
닥터의 괴랄한 인테리어 취향이 눈에 띕니다.
 
헌혈 준비를 마친 닥터가 두 사람에게 손짓합니다.
 
닥터 오프-화이트:자, 누구부터 할래?
 
DOT는 건강 검진 겸 유전자 분석을 위해 주기적으로 타이머의 혈액을 채취하고 있습니다.
 
자세히는 몰라도, 타이머와 인간의 유전 정보가 다르다는 것 정도는 익히 알려진 사실입니다.
 
루이스 레너드:먼저 받겠습니다. (익숙하다는듯 소매를 걷고 나선다.) 새로운 연구 결과는 좀 있나요? 타이머나 클라커나, 어느 쪽이든지요.
 
닥터 오프-화이트:연구할 건 차고 넘치지! 최근에는 클라커 프로젝트 때문에 이쪽도 바빠서 타이머 쪽은 조금 지지부진한 상태지만. 타이머는 인간과 유사하면서 인간보다 우월한 새로운 종이잖니. 연구할 가치는 차고 넘치지. 타이머는 병으로 죽지 않으니까, 그 원인을 밝혀낸다면 의료계의 역사에 길이길이 남게 될걸.
클라커의 연구 결과는 말해줄 생각 없으니까 기대 말고! 중차대한 기밀이라고, 기밀.
 
소매를 걷고 팔을 건네면 굵은 바늘이 피부를 파고듭니다.
 
소리 없이 차오르는 혈액은 선명한 붉은색.
 
이렇게 보아선 평범한 인간과 무엇이 다르다는 건지 통 알 수 없습니다.
 
차라리 피도 푸른색이었다면 가시적이었을 텐데.
 
루이스 레너드:(자신 있는 미소를 씨익 지어 보인다.) 닥터, 제가 궁금한 건 어떻게든 알아내고 탐구하는 성격이라는 거 잘 아시잖아요. 설사 알게 된다 하더라도, 인류의 영웅인 타이머가 감히 인류를 배반하는 짓을 할까요? 이렇게 샘플도 성실히 드리는데.
 
닥터 오프-화이트:루이스가 얼마나 성실한 타이머인진 나도 잘 알지. 하지만 어쩔 수 없는걸~ 나도 위쪽에서 명령받은 건 지킬 수밖에 없고. 차라리 다른 걸 물어봐! 아는 한에선 대답해줄 테니까.
 
루이스 레너드:거창한 걸 궁금해하는 게 아니에요. 그냥 '클라커'라는 게 대체 뭔지, 아주 기본적인 정보도 허용되지 않은 걸까요? 신화생물에 대항해서 같이 싸우는 일종의 동료인데도 협업은커녕 만난 적도 없으니 궁금해지는 건 당연하잖아요.
 
닥터 오프-화이트:궁금할 만 하지. 사실 나도 직접 만나본 적은 없어. 타이머들은 물론이고 우리 DOT 연구원들도 본 적이 없다니 놀랍지 않니? (어깨를 으쓱인다.) DOT와는 외따로 떨어진 프로젝트 느낌이랄까~ 아주 연관이 없진 않지만 말이야.
그래도 지원 대상자들의 서류는 훑어본 적 있는데, 하나같이 평범한 사람들이던걸.
 
루이스 레너드:아··· (스크린으로 보았던 앳된 소녀의 모습을 기억한다.) 그런 것 같더라고요. 하지만 평범한 사람들이면 되려 타이머와의 협업이 필요할 것 같은데···. 그 특별 훈련이라는 게, 일반인을 타이머와 비슷한 수준의 육체로 끌어올리는 식으로 진행되는 건가요? 게이트를 열어 그들을 돌려보낸다, 발상은 좋지만 게이트를 여는 당사자가 당하면 끝나는 위험천만한 계획이잖아요.
 
닥터 오프-화이트:그것도 내 관할이 아니라…… 신체 능력 향상과 정신력 강화에 치중한다고 듣긴 했어. 우주비행사나 전투기 조종사들이 받는 그런 훈련이겠지, 뭐.
 
닥터는 관심 없는 듯, 뚱한 얼굴로 빈 주사기의 피스톨만 당겼다 놓는 손장난을 반복합니다.
 
<심리학> 판정
 
루이스 레너드:
심리학
기준치: 55/27/11
굴림: 43
판정결과: 보통 성공
 
이 화제를 반기지 않는 것 같습니다.
 
어딘가 서글픈 사람처럼 보이기도 하고요.
 
닥터 오프-화이트:10분 정도 걸리니까 가볍게 주먹 쥐었다가 폈다가 하고 있어, 루이스.
이제 비올라 차례지?
 
침대 등받이에 기댄 채로 하릴없이 시간이 흐르길 기다리자면, 닥터는 비올라의 팔에도 바늘을 꽂아줍니다.
 
닥터 오프-화이트:정말로 손위 형제 없어?
 
은근슬쩍 따라오는 질문은 목적이 선명합니다.
 
누구를 염두하고 있는지, 루이스라면 알아차리지 못할 리가 없죠.
 
비올라 카지안:위에 언니와 오빠가 있긴 하지만…… 애초에 다 입양아 출신이라서요. 닮은 사람은 한 명도 없어요. (익숙하게 고개를 저었다.)
 
닥터 오프-화이트:생김새는 물론이고 유전 형질까지 똑같은 타인이 존재할 수 있단 말야? 이건 정말 말도 안 된다니까. (의심하면서도 어쩔 수 없이 물러선다.)
 
침대에 커튼을 둘러치자 비올라와 루이스만 남습니다.
 
닥터 오프-화이트:간식 좀 갖고 올게. 쉬고 있어!
 
비올라 카지안:(닥터가 멀어지는 동안 조용히 있다가 바늘을 꽂지 않은 손으로 제 뺨을 매만진다.) ……그렇게 닮았어? 도밍게즈에 올 때마다 같은 얘길 듣는 것 같아.
 
새삼스럽게 비교하려고 그 얼굴을 들여다보면,
 
<정신력> 대항
 
루이스 레너드:
정신
기준치: 75/37/15
굴림: 34
판정결과: 어려운 성공
 
비올라 카지안:
정신
기준치: 50/25/10
굴림: 1
판정결과: 대성공
 
루이스의 심장이 요란하게 가속하기 시작합니다.
 
쿵쾅쿵쾅쿵쾅. 혈액이 빠져나가는 흐름보다 더 빠른 속도로 탈력감이 덮쳐옵니다.
 
권능이 상대에게 넘어가고 있습니다.
 
둘이 함께 있을 때면 권능은 중력의 영향권에서 벗어나 천방지축으로 날뜁니다.
 
마음이 아주 약간 기우는 것만으로도 상대의 것을 빼앗거나 내어주고 맙니다.
 
빠져나간 권능을 돌려받는 방법은 한 가지입니다.
 
거리를 0으로 좁히는 것.
 
채혈 중에는 침대 밖으로 손을 내미는 게 최대치입니다.
 
루이스 레너드:(기관차처럼 폭주하는 심장과 멋대로 움직이는 권능의 흐름 속, 애써 아무렇지 않은 것처럼 굴며 말없이 손만 뻗는다. 저 대신 파편을 맞고 피를 흘리던 그 비올라가, 제 판단을 우선으로 여겨주고 따라주던 그 비올라가, 마지막 순간에는 자길 구해달라던 그 비올라의 형상이 이 비올라 너머로 불쑥불쑥 나타났다 사라진다.) ··· 응, 아주 많이 닮았었지. (아, 이 탈력감은 언제 겪어도 적응되지 않는구나. 나쁜 기분을 이겨내려고 노력하며 뒷말을 덧붙인다.) 그래도, 완전히 같지는 않아.
 
비올라 카지안:(물컵이 기울어지듯 권능이 출렁거리는 감각은 언제 느껴도 적응하기 어렵다. 서로의 흔들리는 감정을 고스란히 전달하는 척도 같아서. 내밀어진 손을 자연스럽게 맞잡았다. 강하지도 약하지도 않은 힘이었다. 뜨거운 물이 빠져나가고 파도가 수평선으로 밀려나가는 것처럼 권능이 되돌아간다.)
그 사람이 그리워? (대체 누구였고, 지금은 어디에 있을까. 어떻게 헤어졌을까. 루이스를 구해준 적이 있고 저와 흡사한 외관을 지녔다는 사실 말고는 아는 게 없으니 닥터보다 더 많은 의문이 피어난다. 어쩌면…… 질투인 걸까? 혼자 제 감정을 파고들어 보다가 흠칫하며 그 가능성을 지워버린다. 아무리 처음 만난 순간 우주가 쏟아지는 듯 기이하고 특별한 이끌림을 느꼈다 한들 제겐 그런 감정을 품을 자격이 없다. 독점을 원하는 것도 아니잖은가. 그저 파트너일 뿐인데. 그래, 파트너였다…… 이제는 뗄래야 뗄 수 없는, 그러고 싶지도 않은 사이. 그래서 더욱 궁금해지면서도 정작 알고 싶지 않아 두렵기도 했다. 이전에 만났다던 '비올라'가 저보다 몇 배는 훌륭하고 뛰어난 사람이었을까 봐. 루이스의 기억에 그 사람이 얼마나 깊게 박혔는지 확인받게 될까 봐.)
 
루이스 레너드:(고작 몇 년밖에 되지 않은 기억, 길다면 긴 시간이지만 객관적으로 오래지 않은 기억. 그립지 않다면 거짓말이겠지. 좀 더 잘 대해줄 수 있었을텐데, 좀 더 대화를 나눠볼 수도 있었을텐데, 그런 후회가 그녀가 남긴 부탁과 함께 섞여 가끔은 마음을 아프게 한다. 그 한 마디가 아니었더라면 지구의 비올라와는 만날 일도 없었겠지. 그래서 부러 이 이야기는 웬만하면 화제에 올리지 않았다. 하지만 아픈 기억이 무조건 비극으로 남는 것만은 아니다. 선행된 관계가 있었기에 후행은 그보다 더 나을 수 있었다. 지나간 아픔을 묻고 일어나는 것은 익숙하다. 그러니 이 죄책감도, 파트너에게 빚을 졌다는 이 기분도, 나아가다 보면 청산할 길이 오겠지.) ··· 그렇지 않다면 거짓말이겠지. 하지만 말했지, 완전히 같지는 않다고. 예를 들어··· 도밍게즈의 비올라와는 반말을 하지 않았어. (어떻게, 또 어디까지 설명해도 괜찮을까. 잠시 말을 고른다.) 난, 그리운 감정과 현재의 관계는 별개라고 생각하고 있어. ···. 음, 말이 두서없긴 하네.
 
비올라 카지안:(말이 많지 않은 두 사람 사이에서 침묵은 익숙해진 것인데도, 답이 나오기까지의 정적이 묘한 초조함을 불러일으킨다. 이래서야 기껏 같아진 권능이 다시 흘러나갈지도 모르겠단 생각이 들 만큼.) 왜? 그 비올라는 반말을 허락해주지 않았나……? (호기심을 참지 못해 질문을 던지면서도 어떤 대답이 돌아올지 기다리다 보면 제 발로 늪에 걸어들어가는 기분이다. 루이스는 굳이 거짓말을 하는 사람이 아니니 분명 진심이겠지. 그런데 왜 나는 자꾸 안달하게 되는 걸까.) 난…… 그 사람에 대해 전혀 모르니까. 네게 듣지 않으면 상상밖에 할 수 없어서.
 
루이스 레너드:그런 건 아니고, 그냥··· 그럴 상황이 아니었지. 필요하다는 생각도 느끼지 못했고. (··· 충분히 말해주었다고 생각했는데. '도밍게즈의 네가 도밍게즈의 나를 위해 죽었어'. 그 이야기를 하지 않는 이상 내가 느끼는 부채감에 대해 더 잘 설명할 수 없다. 하는 수 없이 나오는 말은 네가 얼마나 믿음직스러운 동료인지, 그뿐인데. 네가 지금 궁금해하는 것은 그게 아니니까. 나는 어떻게 설명을 해야 할까?) ··· 본질적으로 너와 도밍게즈의 비올라는 다르지 않아. 네가 지금 염려하는 건 경험, 구체적으로는 그 차이에서 오는 불안이겠지. 모든 걸 다 털어놓을 수는 없어도 이거 하나만큼은 단언할 수 있어. 너는 확실히 내 소중한 파트너야. 내가 과거의 망령에 사로잡혀 현재의 파트너를 내버려두는 사람이라고 생각지는 않겠지.
 
비올라 카지안:하긴. 공동 연합이 만들어지기 전에는 타이머의 수가 절반이었지. 그 많은 신화생물들과 싸우는 게 보통 일은 아니었어. (물론 연합이 만들어지고도 클라커 프로젝트가 부상하기 전까지는 점점 더 바빠지는 나날이었지만, 같은 적과 비슷한 문명을 공유하는 행성과 만나게 되었다는 사실은 각 세계의 사람들에게 큰 안정과 안심을 가져다주었다. 혼자라면 못할 일을 둘이라면 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힘이 더해질 때 우리는 강해지기 마련이니까. 저 역시 처음 루이스를 만났을 때는 같은 능력을 지녔다니 놀라우면서도 이거라면 신화생물들에게 더 잘 대적할 수 있으리라는 감상을 느낀 바 있다. 또 다른 비올라의 존재를 자각한 건 한 박자 늦게서였다. 루이스와 만난 시간이 길어지고 알아가는 요소가 많아질수록 저를 지키기 위해 왔다던 그 말을 곱씹게 되었다.) ……. (입매를 흐리게 끌어올렸다. 마치 제 생각을 꿰뚫어보는 듯한 문장들. 의문을 해소하기에는 한참 모자랐지만, '소중한 파트너'라는 단어 하나만으로도 봄 햇살이 쏟아지는 듯한 온기가 심장을 감싸고 퍼져나간다. 사소한 것 하나에 일희일비하는 아이라도 된 것 같네. 그만큼 비올라에게도 루이스는 하루하루 가깝고 중요한 사람이 되어가고 있었다.) 물론, 그렇겐 생각 안 해. 네가 나한테 매몰차게 구는 것도 아닌걸. 매번 날 지켜주잖아. 얼마나 고마운지 몰라.
 
그때 닥터가 품에 간식을 바리바리 안고 돌아옵니다.
 
닥터 오프-화이트:다들 얌전히 잘 있었어? 고생 많았어. (두 사람의 팔에서 바늘을 뽑고 이온음료와 초콜릿, 샌드위치, 쿠키를 한가득 건네준다.)
 
루이스 레너드:감사합니다. (이온음료를 받아들고 마신다.)
 
비올라 카지안:잘 먹겠습니다. (말만 그렇게 하고 초콜릿 포장지를 만지작거리기만 했다.)
 
두 사람이 옷매무새를 가다듬는 동안, 닥터는 혈액 팩의 입구를 밀봉하다 말고 문득 중얼거립니다.
 
닥터 오프-화이트:우리는 아직도 모르는 게 많아. 타이머도 신화생물도 미지의 수수께끼거든.
타이머는 ‘원래’ 인간이잖아. 각성하기 전까지는 건강검진을 아무리 정밀하게 해봐도 특이점을 찾을 수가 없어.
그런데 어떻게 각성한 이후에는 근본부터 인간과 달라지는 걸까? 애니메이션 캐릭터마냥 진화라도 한 게 아니고서야 이론적으론 불가능한데.
 
사람을 무슨 포켓몬이나 디지몬으로 보는 눈입니다.
 
진화인 걸까, 변화인 걸까?
 
진화라면 트리거가 뭘까? 생존 본능? 환경 변화? 호르몬의 영향?
 
난해한 질문들은 이 사람이 왜 닥터가 되었는지 설명하는 것처럼 끝없이 생성됩니다.
 
감히 설명치 못할 존재들은 제4의 벽을 세웁니다.
 
타이머가 존재하는 이상, 인류는 무대 바깥의 신을 부정할 수 없을 겁니다.
 
루이스 레너드:(닥터가 중얼거리는 것을 듣다가 끼어든다. 보통은 잘 그러지 않지만, 닥터에게는 궁금한 것도 이야기해보고 싶은 것도 많다.) 충실한 도밍게즈의 타이머의 입장에서 말씀드리자면··· 신의 축복 덕분이라고 할 수 있겠죠. 신이 사랑한 행성을 지키기 위해서는 그에 필적하는 힘이 필요할테니까요.
 
닥터 오프-화이트:역시 신이려나~ 과학으로 모든 게 해결될 줄 알았던 때도 있었는데 말야. 너희를 보면 무수한 과학적 전제들이 죄다 빗나가고 만다니까.
 
루이스 레너드:뭐어, 저도 과학을 무시하진 않아요. 과학은 수많은 실험을 통해 나온 결과니, 단순히 신의 은총이라고 뭉뚱그리는 것보다 논리적으로 더 타당하기도 하죠. ··· 그래서 가끔은 닥터가 우릴 연구하는 방식이 더 궁금해지기도 해요. 인간이 만들어낸 클라커도 그렇고요. (공격할 의도는 없다는, 선량한 표정을 짓는다.) 그렇다고 닥터를 탓하는 건 아니니, 걱정 마시길 바랍니다.
 
닥터 오프-화이트:다- 너희를 위한 일이야. 이렇게 말하니깐 되게 꼰대 같기는 한데, 아무튼. 정보가 많을수록 대처하거나 활용할 방법도 많아지는 법이잖아? 타이머에 관해선 연구할 수 있는 대로 해두는 게 좋지. 그러니까 앞으로도 협조해줘?
 
루이스 레너드:네, 알겠습니다. (더 끼어들면 주제넘어 보이겠지, 이쯤에서 대화를 마무리하기로 한다.) 그나저나, 오늘치 할 일은 전부 끝난 건가요? 샘플 채취 이외에도 더 할 게 남아 있을까요?
 
닥터 오프-화이트:아니, 오늘은 이걸로 끝! 둘 다 고생 많았어. (어깨를 가볍게 두드려준다.)
 
비올라 카지안:고생하셨어요. (고개를 꾸벅 숙여 인사한다.) 이만 갈까, 루이스.
 
루이스 레너드:그래, 가자. (비올라와 같이 고개 숙여 인사하고 돌아갈 채비를 한다.) 수고하셨습니다.
 
탁, 탁, 탁.
 
의무실을 나서려다 뒤를 돌아보면, 뒷정리를 서두르는 닥터가 보입니다.
 
아주 옅은 장미 향기와 화한 소독약 냄새가 떠다니는 의무실.
 
출처를 알 수 없는 출렁거리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단 착각이 들고,
 
<심리학> 판정
 
루이스 레너드:
심리학
기준치: 55/27/11
굴림: 97
판정결과: 실패
 
혼자 남은 이의 표정이 퍽 어두워 보입니다.
 
그러고 보니 가운 아래, 어울리지 않는 검은 정장이 숨겨져 있습니다.
 
루이스 레너드:(닥터의 낯을 살피더라도 다정히 다가가 대화를 나눌 마음은 그다지 없다. 아까 클라커에 대한 것을 물어볼 때부터 기분이 좋지 않아 보이기도 했고, 뭔가 연구와 관련한 고민이 있겠거니···, 하고 그냥 지나칠뿐이다.)
 
다음 날 정오가 지날 무렵.
 
식사를 마치고 나오는 길에 DOT의 직원, 레인과 마주칩니다.
 
한참을 뛰어다녔는지 숨을 헐떡거리던 그는 대뜸 [서류철]을 코앞에 들이밉니다.
 
레인:다 드시고 가셨을까 봐 한참 뛰었네요! 엇갈리지 않아서 다행이에요.
갑자기 죄송하지만, 새로운 임무입니다. DOT 지구 지부로부터 호출이 도착했거든요. 혹시 뉴스 보셨습니까?
 
루이스 레너드:(서류철을 받아들고 읽으려다가, 건넨 이에게 묻는 것이 더 빠를 것이라는 판단을 한다.) 어떤 뉴스 말씀하시는 겁니까?
 
레인:지구의 대한민국에서 일어난 일가족 살인사건에 관한 뉴스입니다. 어제 방영됐을 거예요.
 
루이스 레너드:아, 네. 확인했습니다. 하지만 타이머가 개입할 일까지는 아니라고 생각했는데요, 추가로 조사된 사안이 있는 겁니까?
 
레인:그럼 얘기가 빠르겠네요. 바로 본론으로 들어가자면, 루이스 군에게 그 살인사건의 수사를 의뢰하고 싶다는 내용입니다.
일단 확인해보시겠습니까? (서류철을 눈짓한다.)
 
루이스 레너드:··· 제게 의뢰를요? (당최 감이 잡히지 않아 의아한 표정. 평소에 일 관련으로는 표정을 잘 숨기는 편임에도 그 낯이 역력하다. 레인이 준 서류를 펼쳐본다.)
 
게이트도 신화생물도 아니고 살인 사건을 수사하라니.
 
이거야말로 경찰의 소관 아닌가?
 
황당한 기분도 잠시, 보고서를 읽으면 금세 납득하게 됩니다.
 
신화생물이 용의자라면 일반 경찰로는 역부족이겠죠.
 
레인:군이 비슷한 사례를 겪은 적 있으니 익숙하리라는 상부의 판단입니다.
보고서에 해부 기록이나 검식 결과가 포함되어 있긴 한데, 우선 현장에 가 보시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상대가 신화생물이라면 경찰들이 놓친 흔적이 있을지도 모르니까요. 주소랑 좌표도 거기 적혀 있습니다.
 
비올라 카지안:……비슷한 사례? (작게 중얼거린다.)
 
루이스 레너드:(서류를 빠르게 훑고 닫는다.) 알겠습니다. 즉시 출발하도록 하겠습니다.
 
비올라 카지안:텔레미터를 쓰자. 준비됐지?
 
루이스 레너드:준비 완료. (고개를 끄덕인다.) 가자.
 
비올라 카지안:(루이스의 손을 잡고, 좌표에 맞게 바늘을 돌린다.)
 
.
 
.
 
.
 
대한민국, 동해, 한적한 바닷가의 조촐한 별장.
 
DOT에서 적어준 좌표를 따라가면 텅 빈 모래사장과 철썩이는 파도가 객을 반깁니다.
 
성수기가 끝난 쌀쌀한 가을이라 바닷가에는 인적이 드문 편입니다.
 
별장 앞에는 흉흉한 폴리스 라인이 복잡하게 얽혀 있고, 조금 떨어진 곳에서 소수의 경찰이 대기하고 있습니다.
 
보고서를 읽거나 경찰에게 사정을 청취하거나, 바로 현장 조사를 시작할 수 있습니다.
 
루이스 레너드:(우선 순위를 매기기 위해 가볍게 눈으로 현장을 훑다가, 보고서를 가장 먼저 확인한다.)
 
목차는 세 분류입니다. 경찰에게 보내는 업무 협조 요청 공문도 동봉되어 있습니다.
 
(Ⅰ) 사건 개요 / (Ⅱ) 용의자 데이터 / (Ⅲ) 피해자 데이터.
 
:사건 개요
「2055.10.10. 20:48경 대한민국 강원도 소재의 별장에서 A 씨 일가족이 살해당했다. 피해자들은 남편 A 씨와 아내 B 씨, 아들 C 군으로 총 3명. 늦은 여름휴가를 맞아 별장에 방문했다가 변을 당한 것으로 추측된다.」
용의자 리스트
「시체의 훼손 상태와 살해 방법, 폐쇄 회로 TV 식별 결과 인간이 아닌 것으로 판단. DOT 지구 지부에 협력 요청 시 ‘2052.03.09. 도밍게즈 제1구역에 출몰했던 신화생물의 동족으로 추정된다.’ 답변 받음. 자세한 내용은 첨부 파일 참고 바람.」
기존에 관측된 쇼고스와 비슷한 양상을 띠지만, 지능, 공격성, 행동 양식 등이 현저하게 발달해 고등 쇼고스로 구분한다. 인간을 섭취함으로써 외형과 사고를 흉내 낼 수 있다는 것이 가장 큰 특징이다.
 
:피해자 데이터
순서대로 대상 / 나이 / 직업 / 사인 / 치명상 / 사망 추정 시각 / 사망 장소입니다.
남편 A 씨 / 51세 / 건축가 / 실혈사 / 전두부 훼손 / 오전 10시경 / 현관
아내 B 씨 / 50세 / 교수 / 외상성 질식사 / 원인불명 / 오후 2시경 / 안방
아들 C 군 / 24세 / 대학생 / 추락사 / 경추 손상 / 저녁 8시 48분 / 뒤뜰
「시체는 심각하게 훼손된 데 비해 별장 내부에는 범인의 흔적이 거의 남아 있지 않다. 사망 추정 시각, 사인, 사망 장소가 전부 다르다.」
 
루이스 레너드:(사건 정보를 키워드화하여 머릿속에 집어넣는다. 전부 다르게 사망해서, 이들이 일가족이라는 것 이외에는 공통점이 전혀 없는 개별 살인이라고 보아도 될 수준이군. 내용 정리를 빠르게 마치고 보고서를 덮는다. 폴리스라인 근처의 경찰에게 다가가 말을 건다.) 안녕하십니까, 사건 조사를 위해 파견 나온 DOT 소속 제3시 타이머 루이스 레너드입니다. 잠시 몇 가지 여쭙겠습니다.
 
타이머의 군복을 알아본 형사가 앞으로 나섭니다.
 
경찰수첩을 내민 그는 의례적으로 두 사람의 군번줄과 보고서의 업무 협조 요청 공문을 확인합니다.
 
원경태 형사:원경태라고 합니다. 타이머가 여기까지 오시느라 고생 많으십니다.
내용은 대충 전달받으셨겠지만……. 뭐부터 해야 할지, 원. 이런 경우는 처음이라서 저희도 당황스럽네요.
우선 현장을 살펴보시겠습니까? 용의자는 거, 신화생물……. 무슨 고등학생? 그런 이름이었는데. 아무튼 그쪽으로 확신하는 추세입니다. 타이머의 검증만 거치면 수사도 종결할 예정이고.
 
루이스 레너드:이해합니다. (고개를 끄덕이며) 타이머에게도 다소 생경한 일이라···. 네, 현장 먼저 보도록 하죠. 특이 사항이라도 있었습니까?
 
허리를 숙여 폴리스 라인을 걷어낸 원 형사는 두 사람이 다가오길 기다리며 부연 설명합니다.
 
원경태 형사:정원에 있던 CCTV 영상을 확보했는데, 인간이라면 불가능한 알리바이가 포착됐습니다.
 
2층 구조의 작은 별장.
 
비극을 올릴 무대로는 적합하지 않은, 그윽한 도처입니다.
 
옥상에는 걷을 이 없는 빨래가 처연하게 흔들리고 있습니다.
 
현관을 여는 순간 심한 악취가 풍깁니다. 피가 고이고 썩어 풍기는 불쾌한 낌새…….
 
그 자취를 쫓아 바닥으로 시선을 떨구면 피투성이인 시체가 쓰러져 있습니다. <이성> 판정 (0/1).
 
루이스 레너드:
SAN Roll
기준치: 75/37/15
굴림: 36
판정결과: 어려운 성공
 
이성 감소 없음.
 
원경태 형사:제8시의 타이머가 복원해둔 시체입니다. 진짜보다 생생하더군요.
뒤뜰로 이어지는 문은 주방에 있고, 거, 현장 훼손하지 않게 조심하십쇼.
 
혀를 내두른 원 형사는 바깥으로 나갑니다.
 
현관부터 조사가 가능합니다.
 
루이스 레너드:(A씨··· 남편이 현관에서 사망했다고 했지. 사건 정보를 복기하며 비올라에게 말을 건넨다.) 순서대로 조사해보자, 현관 먼저. (쭈그리고 앉아서 무언가 정보가 있는지 찾아본다.)
 
비올라 카지안:응, 그러자. (도저히 환각처럼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생생한 참상이다. 타이머란 특성상 누군가 죽고 다치는 모습은 수도 없이 목격하지만, 이렇게 가까이에서 조사하는 일은 드물다. 함께 현관 이곳저곳을 둘러보기 시작했다.)
 
남편, A 씨의 시체가 쓰러져 있습니다.
 
전두부 훼손으로 인한 실혈사. 치명상과 사인에 걸맞게 A 씨의 안면은 처참한 상태입니다.
 
<의학/응급처치 판정>이 가능합니다.
 
루이스 레너드:
응급처치
기준치: 60/30/12
굴림: 61
판정결과: 실패
 
비올라 카지안:
의료
기준치: 60/30/12
굴림: 15
판정결과: 어려운 성공
(시체의 전두부를 가까이에서 살피다가 고개를 갸웃거린다.) 상처의 경계가 특이하네.
뜯어먹힌 게 분명한데 잇자국이나 자상은 없고 피부만 녹아내린 상태야.
 
품안에 안겨들던 부정형의 열기.
 
거품처럼 일그러지고 액체처럼 흐르다가도 점액처럼 엉겨 붙던…….
 
고등 쇼고스에 무력하게 노출되었다면 딱 이런 꼴로 녹고 말았겠죠.
 
현관에서 시작된 [핏자국]도 이상한 형태이긴 마찬가지입니다.
 
루이스 레너드:(비올라의 말에 상처를 확인해본다.) 듣고 보니 그러네, 정말 이상한 흔적이다. 이 핏자국도 좀 위화감이 느껴지고. (주변에 흩뿌려진 피의 흔적을 스윽 둘러본다.)
 
범인의 족적은 온데간데없고 큰 붓으로 문댄 것처럼, 계단까지 이어지는 긴 핏자국이 보입니다.
 
상식적으로라면 시체를 끌고 간 흔적이겠지만…….
 
<관찰력> 판정
 
루이스 레너드:
관찰력
기준치: 75/37/15
굴림: 64
판정결과: 보통 성공
 
A 씨의 후두부나 등, 발바닥은 비교적 깨끗합니다.
 
아무래도 이 혈흔이 곧 범인의 발자취인 모양입니다.
 
거대한 뱀의 허물처럼 휘청거리던 핏자국은 [계단]이 시작되자 사람의 발자국과 뒤섞입니다.
 
루이스 레너드:(끔찍한 광경에는 익숙하지만, 결코 그것이 좋다거나 무감하게 느껴진다는 뜻은 아니다. 가장 가까이서 제 얼굴을 많이 맞댄 사람들만 알아볼 수 있을만한 수준으로 미간을 찌푸린다.) ··· 저기로 이어져 있네. 일단 족적을 확인해보자.
 
피 젖은 발자국을 따라가면 2층 계단참에 도착합니다.
 
중간부턴 피가 마르기 시작했는지 형태가 불규칙하게 끊깁니다.
 
그래도 도착지는 한눈에 알아볼 수 있습니다.
 
가장 가까운 방의 문설주가 온통 피 칠갑하고 있으니까요.
 
B 씨가 살해당한 안방입니다.
 
문고리만 헛돌 뿐, 문은 열리지 않습니다.
 
루이스 레너드:(붉게 물든 문설주를 보니 오래전 책에서 읽었던 게 떠올라 작게 혼잣말로 중얼거린다.) 꼭 종교 의식이라도 치른 것 같은 흔적이군. (열리지 않는 문고리를 툭툭 건드리다가 비올라에게 말을 건다.) 이거, 예전에 미니밴을 부쉈을 때랑 비슷한데. 현장을 훼손할 수는 없으니 그때처럼 능력으로 부수려는 시도는··· 안 되겠고. 안방으로 들어갈 수 있는 다른 경로가 있으려나. (주변을 살펴본다.)
 
비올라 카지안:음…… 무게중심이 문에 기대어 있나. (문가에 잠시 귀를 대보았다가) 문을 부수는 건 안 되겠지만 한 번 힘으로 밀어볼 순 있지 않을까?
 
루이스 레너드:하긴··· 이미 현장을 확인한 사람들이 문서를 작성했을테니, 문을 열고 들어갈 수 있다는 뜻이겠지. 한번 해 볼게. (아까보다 조금 더 힘을 주어 문을 밀어본다.)
근력
기준치: 60/30/12
굴림: 3
판정결과: 극단적 성공
 
루이스가 문을 힘주어 열어젖히자, 기분 나쁜 소리와 함께 B 씨의 시체가 쓰러집니다.
 
문에 기댄 죽음이 그토록 무거웠나 봅니다.
 
생김새만 따지자면 아까보다는 사정이 낫습니다.
 
얼룩덜룩한 흉터는 남아 있지만, 이목구비는 온전하거든요.
 
대신 머리카락이 엉성하게 잘려 나갔습니다.
 
아무렇게나 쥐고 잘라낸 것처럼 끄트머리가 우둘투둘합니다.
 
<관찰력> 판정
 
루이스 레너드:
관찰력
기준치: 75/37/15
굴림: 92
판정결과: 실패
 
단순히 잘려나간 건 아닌 듯한데요.
 
아마 범인은 1층에서 A 씨를 살해하고, A 씨의 모습으로 위장해 B 씨까지 살해했을 겁니다.
 
그다음 행적은…….
 
루이스 레너드:(결코 피해자의 의지로 자른 것 같지 않은 머리카락이, 구체적으로는 말하지 못해도 이상하다는 생각이 든다. 다시 유심히 살펴본다.)
지능
기준치: 80/40/16
굴림: 55
판정결과: 보통 성공
 
잘려나간 게 아니라 피부처럼 녹아내린 것임을 깨닫습니다.
 
루이스 레너드:(비올라를 불러 머리카락 끝부분을 보여준다.) 이것 봐, 아까 A씨처럼 녹아내린 흔적이야. 사인은 제각각으로 서술되었지만··· 어쩌면 전부 궁극적으로는 동일한 이유로 사망한 걸지도 모르겠다. (B씨의 시체를 바닥에 고이 내려두고 일어난다.) 부엌을 거쳐서 뒤뜰로 갈 수 있댔지, 가 보자.
 
비올라 카지안:(머리카락을 살피며 고개를 끄덕인다.) 확실히, 평범한 사람이 낼 만한 흔적은 아니네. 대체 어쩌다가 게이트도 없이 이런 곳까지 신화생물이 오게 됐는지는 몰라도……
(함께 안방을 나선다.)
 
뒤뜰로 나가려면 주방을 거쳐야 합니다.
 
식사 준비가 한창이던 식탁이 고스란히 방치되어 있습니다.
 
그 옆에 난 쪽문을 열면 한 폭 남짓의 좁은 [뒤뜰]이 보입니다.
 
루이스 레너드:(뒤뜰로 나가기 전 주방도 가볍게 눈으로 둘러본다. 이곳에 떨어진 흔적은 없을까?)
 
주방에는 별달리 눈에 띄는 흔적은 없습니다.
 
루이스 레너드:(눈에 띄는 것은 없음을 확인하고는 몸을 돌린다. 뒤뜰로 나간다.)
 
낮은 담벼락과 조화로운 정원수, 자물쇠가 걸린 자전거 따위가 꾸린 일상적인 풍경에 덩그러니 C 군의 시체가 떨어져 있습니다.
 
등부터 떨어진 듯하고, 팔다리의 관절도 성하지 못합니다.
 
팔뚝에 비슷한 화상이 남아 있습니다.
 
<심리학> 판정
 
루이스 레너드:
심리학
기준치: 55/27/11
굴림: 14
판정결과: 어려운 성공
 
시체의 홉뜬 눈에서 창백하게 서린 충격과 공포를 읽어냅니다.
 
마지막에 살해당했다는 건, 이 사건의 최초 목격자라는 뜻이기도 합니다.
 
<지능> 판정
 
루이스 레너드:
지능
기준치: 80/40/16
굴림: 74
판정결과: 보통 성공
 
C 군이 추락했을 [옥상]에 시선이 미칩니다.
 
범인은 아마 저기서 마지막 살인을 저질렀을 겁니다.
 
혹은 저지르기 전에 C 군이 추락했거나.
 
루이스 레너드:(피해자가 마지막으로 발을 디뎠을 곳에 시선이 향한다. 추락 전 남은 흔적이 없을지 옥상을 살핀다.)
 
계단을 두 번 올라 베란다 바깥으로 나가면 옥상에 도착합니다.
 
아담한 별장이라고 생각했는데, 의외로 층고가 높네요.
 
지붕 아래를 내려다보면 바다는 노을을 받아 웅장하게 빛나고 있습니다.
 
흙먼지가 가득한 발자국과 핏기가 밴 발자국은 쫓고 쫓기며 엉망진창으로 얽히다가 장독대 옆에서 끝납니다.
 
옥상까지 도망쳤던 C 군은 결국 죽음의 품에 떨어진 것입니다.
 
같은 곳에 서 보면, C 군의 추락 지점과 정확히 일직선에 위치합니다.
 
<추적> 판정
 
루이스 레너드:
추적
기준치: 70/35/14
굴림: 96
판정결과: 실패
 
옥상에서 알 수 있는 정보는 이 정도인 듯합니다.
 
루이스 레너드:(피해자의 마지막 발자취를 따라 걷다 보면, 그가 처절하게 도망치다 두려움에 싸인 채 사망했다는 사실만 알 수 있다. 더 찾을 것이 없나 둘러보다가 비올라에게 말을 건다.) 뭐라도 좀 보이는 게 있어? 나는 일단··· 다시 내려가서 C씨의 시체에서 녹아내린 흔적은 없는지 보는 게 좋을 것 같다고 생각하는데.
 
비올라 카지안:(옥상 아래의 모습은 일부러 내려다보지 않으며 고개를 돌렸다.) 지금은…… 여기에서 떨어진 게 사망의 원인이라는 사실밖엔 모르겠네. 아까 형사님이 CCTV 영상을 확보했다고 했었지? 녹아내린 흔적이 있다면 그 원인이 영상에 잡히지 않았을까?
 
루이스 레너드:일리 있네. 하지만 그러려면 현장을 나가야 하니까, 가기 전 간단하게라도 살펴보고 가자. 경찰이 놓친 흔적을 발견할 수도 있잖아?
 
비올라 카지안:꼼꼼하게 확인하면 좋겠지. (고개 끄덕) 그러자.
 
루이스 레너드:(계단을 내려와 다시 경악스러운 시체와 마주한다. 찾아볼 수 있는 흔적이 하나라도 나올까?)
 
비정상적인 방향으로 뒤틀린 몸의 형체를 다시 확인합니다. 새로이 눈에 띄는 흔적은 없습니다.
 
루이스 레너드:(놓친 건 없는지 꼼꼼히 확인한 뒤에야 자리를 뜨기로 결정한다. 비올라에게 나가자고 손짓하고 현장을 떠난다.)
 
비올라 카지안:(시신을 안타깝게 바라보다가 루이스와 함께 폴리스라인 밖으로 나선다.)
 
CCTV 녹화 영상을 확인하고 싶다면 경찰에게 협조를 요청해야 합니다.
 
루이스 레너드:(아까 만난 원 형사를 찾는다. 어디에 있지?)
 
형사는 폴리스라인에서 몇 미터 떨어진 곳에서 담배를 피우고 있습니다.
 
루이스 레너드:(담배를 피우는 형사에게 다가간다. ··· 담배 냄새가 싫다는 내색은 하지 않는다!) 형사님, 현장 조사는 대략 마쳤습니다. 조사 과정에서 CCTV 화면을 확인할 필요가 있다고 판단했는데, 지금 바로 확인이 가능하겠습니까.
 
원경태 형사:아, 예. 물론이죠. 잠시만요. (주섬주섬 주머니를 뒤진다.)
 
원 형사는 안주머니에서 스마트폰을 꺼내, 영상을 하나 재생합니다.
 
흑백 화면은 화질이 열악해 간신히 형태만 식별할 수 있습니다.
 
:작은 뒤뜰을 비추는 화면. 낮은 담벼락과 조화로운 정원수, 자물쇠가 걸린 자전거 따위가 보인다. 일상적인 풍경에 청년이 추락한다. 등부터 떨어진 몸은 미동도 하지 않는다. 곧 흥건하게 쏟아진 피가 바닥을 적시고, 잠시 시간이 지나자 뒷문이 열린다. 뒤뜰로 나온 여자는 허겁지겁 시체에 달려들어 입을 벌린다. 끄트머리에는 녹화 당시 시간이 표시되고 있다. 2055.10.10. 20:49:06.
 
원경태 형사:보시다시피, 뒤뜰에 나온 건 피해자 중 한 사람인 아내 B 씨였습니다.
아내 B 씨의 사망 추정 시각은 같은 날 오후 2시경. 부검 결과 아들 C 군보다 훨씬 먼저 사망한 것으로 밝혀졌죠.
그런데 이 CCTV에는 범인으로 등장한단 겁니다. 하필 배터리가 다 닳아서 이다음 장면은 녹화되지 않았지만, 저녁 9시경 아들 C 군이 차를 몰고 해안도로를 벗어나는 장면이 구간단속 카메라에 포착됐습니다.
인간이라면 불가능한 알리바이 아니겠습니까?
 
인적이 드문 곳이고, 별장 내부에는 CCTV가 없는 터라 이 이상의 증거는 확보할 수 없었습니다.
 
하지만 일련의 상황이 시사하는 바가 명확합니다.
 
뜯어 먹힌 시체, 죽은 자의 껍데기를 뒤집어쓰고 배회하는 살인마.
 
인간이 능히 범할 수 없는 죄입니다.
 
<지능> 판정 (어려운 성공)
 
루이스 레너드:
지능
기준치: 80/40/16
굴림: 51
판정결과: 보통 성공
 
무언가 기시감이 느껴지지만…… 정확히 파악하기 어렵습니다.
 
루이스 레너드:(오늘따라 집중이 안 되는 스스로를 꾸짖으며 다시 영상을 면밀히 살핀다. 뭐가 계속 마음에 걸리는 거지?)
관찰력
기준치: 75/37/15
굴림: 36
판정결과: 어려운 성공
 
영상을 몇 번이고 돌려본 끝에 루이스는 마침내 깨닫습니다.
 
B 군의 사망 시각은 2052.10.10. 20:48:52.
 
C 씨가 문을 열고 나온 건 2055.10.10. 20:49:06…….
 
뒤뜰에서 옥상까지는 주방을 거쳐 계단을 2층이나 끼고 있습니다.
 
바로 옥상에서 뛰어내린다면 모를까, 그 경로를 10초 남짓에 주파하는 건 불가능합니다.
 
루이스 레너드:··· ··· (CCTV 하단의 시각을 확인하고 깨닫는다. 두 마리 이상이겠군, 정말 낮은 확률로 아주 미치도록 특별히 빠른 개체거나.)
 
원경태 형사:어떻습니까?
 
조사가 일단락되면 원 형사는 단도직입적으로 묻습니다.
 
범인이 신화생물인가, 아닌가.
 
자, 이번 사건의 당락을 결정할 때입니다.
 
취합한 단서에 따르면 범인은 분명히 고등 쇼고스일 것입니다.
 
아니, 그 외에는 없다고 말하는 쪽이 정확합니다.
 
하지만 여전히 떨칠 수 없는 의문은 남습니다.
 
게이트가 열리지 않았다면, 고등 쇼고스가 아니라면, 아니, 고등 쇼고스라면…….
 
루이스 레너드:··· (형사가 질문한 이후에도 신중히 말을 고르느라고 답이 약간 늦어졌다.) 신화생물일 가능성이 매우 높다, 그렇게밖에 말씀드릴 수가 없겠습니다. 저희가 판정하는 기준은 게이트인데, 조사 과정에서 게이트가 열렸다는 흔적은 찾아볼 수가 없었습니다. 하지만 남은 흔적을 고려한다면 이건··· 결코 인간이 저지를 수 없는 범죄입니다. 그래서 단언할 수가 없습니다. 신화생물이 개입되었을 가능성은 90퍼센트, 그 외 아직 확인할 수 없는 가능성이 10퍼센트입니다.
 
확신이 설 때까지 더 조사해보는 수밖에 없습니다.
 
범인을 잡은 후에 결론 내도 늦지 않겠죠.
 
원경태 형사:알겠습니다. 어떤 쪽이건 간에, 용의자는 저쪽 해안도로로 도주했습니다.
 
쭉 뻗은 손가락은 별장 뒤편의 야트막한 언덕을 향합니다.
 
동해 해안도로를 빠져나간 용의자― 그러니까 C 군의 모습을 훔친 고등 쇼고스는 건방지게도 운전석에 앉아 있었습니다.
 
틀림없이 차고에 주차되어 있던 하얀 아반떼였습니다.
 
원경태 형사:피해자의 차량을 훔쳐서 도주한 것까진 확인했는데, 도로 중반부터 감쪽같이 자취를 감췄습니다.
늦은 밤이라 화질이 나빠서 운전자의 얼굴까지 식별하긴 어렵고요.
일단 더 접수된 피해 신고는 없습니다. 직접 추적해야 할 겁니다.
 
그렇게 말한 원 형사는 차 키를 휙 던집니다.
 
잠입 수사 때 쓰는 애마라면서 소개하는 차량은…… 샛노란 스쿨버스입니다.
 
옆구리에 「On time 미술 학원」이라고 대문짝만하게 쓰인.
 
원경태 형사:도움이 필요하면 이쪽으로 연락하시면 됩니다.
그럼, 다녀오십쇼?
 
명함 하나가 비수처럼 가슴 주머니에 쏙 꽂힙니다.
 
타이머들은 텔레미터가 있으니 운전할 기회가 많지 않은 편입니다.
 
게다가 스쿨 버스라니, 흔히 몰 기회가 생기진 않죠.
 
비올라 카지안:(약간 얼빠진 얼굴로 샛노란 버스를 올려다본다.) 어…… 우리가 직접 운전해야 하는 거구나.
루이스, 운전 면허 있어……? (조마조마한 시선으로 돌아본다. 이쪽은 딱 봐도 면허를 안 딴 듯)
 
루이스 레너드:(떨떠름하게 키를 내려다본다.) 있기는 한데··· ···. (그의 입에서 '날 믿지 마'라거나 '안전은 장담 못 해'같은 소리가 나올리가 없다. 막중한 임무를 부여받은 듯한 표정을 하고서 결의를 다지는 주먹을 쥔다.) ··· 해내야지. 길 안내만 좀 부탁할게.
 
비올라 카지안:으, 응……! (네비게이션은 있겠지?) 열심히 보면서 알려줄게! (마찬가지로 막중한 책임을 부여받은 것처럼 긴장해서 고개를 연신 끄덕였다.)
 
두 사람 다 차에 올라타면 출동 준비 끝! 입니다.
 
다행히 구식 네비게이션이 붙어 있습니다.
 
목적지를 어디로 설정해야 하는지도 모르지만요.
 
루이스 레너드:(정말 오랜만에 잡아보는 운전대다. 방식도 사용해본 것과는 판이해서 더욱 긴장되지만··· 집중만 잘 하면 될 거라고 생각한다. 운전 전 점검 사항을 모두 마치고, 네비게이션을 이리저리 조작해본다.) 해안도로를 이용해 저 방향으로 도주했다고 하셨으니, 일단은 그 부근을 목적지로 잡고 가면 되겠지? 어떻게 생각해.
 
비올라 카지안:한국은 지리를 잘 몰라서, 정확히 어디를 목적지로 설정해야 할지 모르겠네. 지도 같은 건 없나……? (조수석에 타 네비게이션 버튼을 여러 개 조작해보며 적응하려 애쓴다.) 일단 도로를 쭉 타고 가볼까?
 
루이스 레너드:그래. 여차하면 잠시 멈춰 서서 재정비할 수도 있을 테니까. (한적하다 못해 썰렁한 도로를 본다.) 안전띠 맸으면 바로 출발할게.
 
비올라 카지안:응, 제대로 맸어. (웬만해서는 텔레미터를 쓰다 보니 차에 타는 게 얼마만인지 모르겠다. 고개를 끄덕이곤 창밖으로 시선을 돌렸다. 혹시라도 보일지 모를 흔적을 찾기 위해.)
 
루이스 레너드:(운전대를 꽉 쥐고, 긴장을 완전히 떨쳐내지는 못한 채로 출발한다. 집중...!)
 
운전대를 잡아보는 건 정말 오랜만이지만, 루이스는 특유의 꼼꼼하고 차분한 실력으로 조심히 운전을 시작합니다.
 
바닷가를 따라 휘어지는 해안도로는 달리기만 해도 시간의 흐름을 거스르는 듯한 묘한 감상을 남깁니다.
 
앞으로는 겹겹이 일렁이는 물살이, 뒤로는 촘촘히 드리운 삼림이 야생의 광폭을 완성합니다.
 
사실 이 도로에 범인이 남아 있을 리 없습니다.
 
이미 어젯밤에 도주했으니 가도 한참을 움직였을 테니까요.
 
비올라 카지안:(차량도 별로 보이지 않는 한적한 해안도로. 처음엔 잔뜩 긴장하고 있었으나, 루이스가 수월하게 운전을 하는데다 범인이 이곳을 떠난 지 오래리란 사실을 깨닫고 잠시 긴장을 내려놓았다.) 운전 잘하는걸, 루이스.
그런데 정말로 인간처럼 생긴 신화생물이 있어?
 
루이스 레너드:음···, 응. 우주는 넓으니까. (운전하며 말을 하려니 온전히 집중되지 않는 것도 있지만, 그닥 꺼내고 싶지 않은 화제다. 말을 사건 이야기로 돌린다.) 그보다, 운전하며 주변을 살피려니 잘 되지 않네. 쇼고스가 흘리고 갔을 법한 흔적이 있다면 보고 알려줘.
 
비올라 카지안:그렇구나. (잘 운전하고는 있어도 역시 익숙하진 않겠지. 루이스의 화제 전환이 그저 운전에 집중하기 위해서라고만 생각하고 대강 말을 맺었다.) 알겠어, 아직까진 보이지 않는데…… 계속 찾아볼게.
 
계속 도로를 밟아가다 보면 노을이 내려오고, 잿빛 방파제도 황금칠로 단장하기 시작합니다.
 
드문드문 설치된 구간 단속 카메라가 눈도 깜빡이지 않고 아스팔트 도로를 응시하고 있습니다.
 
그 옆, 녹색 안내판이 분기점을 고지합니다.
 
4km 전방에서 도심지로 향하는 해안 도로와 섬으로 향하는 대교로 갈라지는 모양입니다.
 
도로를 둘러봐도 특별한 것은 없고, 바다의 풍경은 평화롭기만 할 때.
 
<관찰력> 판정
 
루이스 레너드:
관찰력
기준치: 75/37/15
굴림: 95
판정결과: 실패
 
비올라 카지안:
관찰력
기준치: 50/25/10
굴림: 3
판정결과: 극단적 성공
어, 루이스. 저기! (도로 한 지점을 가리켰다.) 타이어 자국이 있어.
 
비올라의 손끝을 따라간 루이스도 아스팔트 도로에 부자연스럽게 그인 획을 발견합니다.
 
숲을 향해 다분히 고의적으로 휜 타이어 자국입니다.
 
그 궤도를 훑으며 시선을 옮기면 빼빼 마른 목본 사이 은밀하게 몸을 숨긴 차량이 보입니다.
 
루이스 레너드:(스키드 마크와 많이 떨어지지 않은 갓길에 차를 주차한다.) 여기서부턴 걸어가자. 가능성은 낮긴 해도 쇼고스가 여전히 차 안에 머무르고 있을지도 모르니 주의하고.
 
비올라 카지안:그래. 범인이 타고 간 차가 맞는지부터 얼른 확인하자. (서둘러 벨트를 풀고 내려 차량으로 다가갔다.)
 
나무 사이로 다가가 확인한 차량은 흰색 아반떼. 번호판도 정확히 일치합니다.
 
구간 단속 카메라를 분석해도 발견되지 않더라니, 중간에 도로에서 탈주했던 모양입니다.
 
차량에는 아무도 없습니다.
 
운전석 핸들과 쿠션에는 시체에서 본 것과 같은 녹은 흔적이 남아 있습니다.
 
시간이 꽤 지난데다가 새로 떨어진 낙엽이 많아 발자국을 추적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추적> 판정
 
루이스 레너드:
추적
기준치: 70/35/14
굴림: 49
판정결과: 보통 성공
 
그러나 루이스는 흔적을 토대로 기민하게 방향을 잡고, 낙엽 새로 금세 풀과 흙이 녹은 자국을 발견합니다.
 
발자국의 방향은 근처의 산으로 향하고 있네요.
 
루이스 레너드:(살아 숨쉬는 모든 생물은 자기 흔적을 남기기 마련이다. 설령 신화생물이라 한들 동일하다. 발견하느냐, 그러지 못하느냐의 차이일뿐. 숙련된 타이머의 눈으로 고등 쇼고스가 남긴 증거를 잡아낸다.) 저 산으로 향한 것 같아. 불일치하거나 모순되는 증거는 없으니 100퍼센트 확신할 수 있겠어. (비올라를 바라보며) 차 내부를 최종 점검하고, 보고하고, 바로 출발하자. 괜찮아?
 
비올라 카지안:신화생물이라고 확신하는 거지? (저는 인간형 신화생물을 본 적이 없으니, 이 건에 관해서는 루이스의 판단에 따른다. 고개를 끄덕였다.) 이곳에 언제쯤 차를 세웠는지가 관건이겠네. 산은 그렇잖아도 시야를 가리는 나무도 많은데. 흔적을 예의주시하면서 찾아야겠어.
 
루이스 레너드:그렇긴 하지만, 산은 우리 영역이라고 할 수 있잖아? (장갑을 꺼내 주섬주섬 끼며) 전 우주를 뒤져도 우리보다 숲과 산을 다루는 능력이 뛰어난 생명체는 우리와 같은 시간을 공유하는 타이머가 아니고서야 없을테니까. (씩 웃으며 조심스럽게 조수석 문을 열어본다.)
 
조수석은 마찬가지로 텅 비어 있습니다. 누군가 앉은 듯한 흔적도 없이 깔끔합니다.
 
루이스 레너드:(유심히 내부를 살핀다. 크게 눈에 잡히는 것이 없음을 확인한다.) 특별한 건 없으니 바로 출발하면 되겠어. 그 전에 DOT에 우리 행선지를 보고해줄래? (차에서 몸을 빼내며 비올라에게 말을 건넨다.)
 
비올라 카지안:알겠어. 원 형사님한테도 보고할게. (DOT와 아까 받은 명함에 있는 원 형사의 번호에 공통적으로 현 상황을 요약해 전달한다. '고속도로에서 범인의 차량 발견. 산으로 진입해 추적하겠습니다.')
다 보냈어. 이제 어서 움직이자. (한시가 급한 상황이다)
 
루이스 레너드:(차 문을 닫고 장갑을 벗어 주머니에 넣는다.) 그래, 가자. (자신은 있어도 방심은 언제나 금물이다. 게다가 인간형 신화생물은···. 지금까지는 의식적으로 생각해본 적은 없지만, 어쩌면 그때와 비슷한 상황을 마주할지도 모른다. 나도 마음 대비를 단단히 해 놓아야겠지. 그런 다짐을 속으로 하며 발걸음을 뗀다.)
 
저녁을 목전에 둔 야생은 사납고 예민합니다.
 
하지만 두 사람은 3시의 타이머. 식물을 다루는 데엔 아마 우주에서 가장 뛰어난 자질을 지녔을 겁니다.
 
바람이 불면 나뭇잎과 수풀이 쏴아아- 속삭이는 듯한 소리를 내며 흔들리곤 했습니다.
 
비올라 카지안:(씨앗을 뿌려 덩굴줄기를 자라나게 한다. 그것들로 나뭇잎 등을 걷어내며 흔적을 수월히 찾을 수 있도록 도왔다.)
 
루이스 레너드:(비올라와 마찬가지로 덩굴을 만들어낸다. 줄기를 나무와 접지하여 감각을 공유한다. 이렇게 하면 수많은 나무들이 내 손발이 되어줄 것이다.)
 
덩굴과 나무를 연결하자, 자연 속에 숨쉬는 수많은 생명의 흐름이 고스란히 느껴집니다.
 
루이스는 느낍니다. 한 나뭇기둥에 부딪히듯 찍힌 흔적을.
 
또한 루이스는 봅니다. 나뭇가지가 꺾여 있는 일정한 방향을.
 
그 흔적은 점차 정상 쪽을 향해 갑니다.
 
감각을 따라가던 루이스는 어떤 나무뿌리 위의 무게를 감각합니다. 무언가 쓰러져 있는 것 같습니다.
 
루이스 레너드:(비올라가 청소해준 자리에 확연히 다른 감각 하나가 느껴지는 것을 읽어낸다. 걸음을 멈추고 그 감각이 느껴지는 방향으로 몸을 돌린다.) ··· 저기야. 약 백 이십 미터 앞. (아무도 없어 고요한 산 속, 그보다 더 작게 소근거리며 비올라에게 알아낸 정보를 전달한다.)
 
비올라 카지안:……뭔가 있어? 신화생물 같아? (긴장하며, 방패로 쓸 수 있는 큰 잎의 씨앗과 덩굴의 씨앗을 여러 개 손에 쥐었다. 새로이 길러낸 덩굴이 루이스가 말한 방향으로 교묘하게 기어가기 시작했다.)
 
루이스 레너드:응. 나무에 상흔이 났고, 뿌리 위···, 밑동 부분에 무언가 쓰러져있어. 다른 나무에서 느껴지지 않는 감각이니 아마 그 신화생물이 맞다고 봐도 무방할 거야. (기어가는 비올라의 덩굴을 따라 천천히 걷는다. 발소리를 없애기 위해 걸리적거릴만한 것들은 전부 제 덩굴로 쓸어버린다.) 조심하고, 가 보자.
 
비올라 카지안:쓰러져 있다는 건, 죽은 걸까? 직접 보질 못했으니 확실히 알 수 있는 게 없네. 상태를 알 수 없으니 먼저 덩굴로 포박해둘게. (눈을 내리감고 덩굴에 온 감각을 집중한다. 대상에 닿는 순간, 손을 강하게 쥐어 수풀과 나무 새로 숨어 다가간 덩굴이 그를 강하게 붙들게끔 만들었다. 줄기를 통해 읽혀지는 감각을 읽는다. 그러나 무언가 이상한 듯, 낯빛에 조금씩 당황이 번져나가기 시작했다.) 이건……?
시체 같아. 바싹 말랐어. ……신화생물 같지는 않은데. 어서 확인해보자.
 
루이스 레너드:··· 시체라고? (예상치 못한 결과에 의아하다는 표정을 짓는다.) 가장 마지막으로 목격된 모습은 C씨니까··· 그 사람의 모습을 하고 있다가, 탈피하고 도망간걸까. 전혀 관련 없는 일반인일 가능성은 매우 낮아 보이는데.
 
비올라 카지안:이 상태에서 얼굴까진 확인할 수 없어. 어쩌면…… 또 다른 피해자일지도 몰라. 주변에 다른 생명반응은 어때?
 
으레 깊은 산속이니만큼 동물들이 있을 법도 한데, 그 주변에는 동물의 생명 징후조차 포착되지 않습니다.
 
루이스 레너드:(비올라의 말에 다시 한번 덩굴을 뻗어 탐색해보지만, 느껴지는 것은 오로지 나무와 덤불, 갖가지 식물뿐이다.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걸음을 재촉한다.) 전혀 없어. 이상할만큼 느껴지는 게 없는데. ··· 일단, 잡힌 것의 정체부터 파악해보는 게 급선무겠어.
 
두 사람은 신중하게 무언가가 쓰러진 곳으로 접근합니다.
 
그곳에 쓰러져 있는 이는, 비올라의 예상대로 마른 시체입니다.
 
등산객으로 추정되는 차림새지만 얼굴은 식별할 수 없습니다.
 
……예의 그 '녹은 흔적'으로 눈두덩이가 주저앉았기 때문입니다. <이성> 판정 (0/1)
 
루이스 레너드:
SAN Roll
기준치: 75/37/15
굴림: 83
판정결과: 실패
 
이성 1 감소.
 
비올라 카지안:……역시. 그 신화생물에게 당한 거야. 녹은 흔적이 동일해. (생리적인 거부감과 안타까움이 치밀어 눈을 꾹 감았다.)
 
루이스 레너드:(잔혹한 광경에 저도 모르게 한 발자국 뒤로 물러섰다가, 타이머로서의 본능에 따라 되돌아온다. 상황의 심각성이 점점 더 뼈저리게 느껴진다. 빨리 잡지 않으면 얼마나 더 많은 사람을 죽일지 모른다. 몰려오는 역겨움을 꾹 참고 시체에 남은 흔적이 없는지 찾는다.)
 
<관찰력> 혹은 <의학> 판정이 가능합니다.
 
루이스 레너드:
관찰력
기준치: 75/37/15
굴림: 31
판정결과: 어려운 성공
 
피부 상태를 보아 피해자가 젊은 축에 속한다는 것과 오른쪽 손등에 붉은 점이 있다는 것을 발견합니다.
 
비올라 카지안:
의료
기준치: 60/30/12
굴림: 55
판정결과: 보통 성공
(펜션에서 8시의 타이머가 환각으로 재현해둔 시체를 볼 때도 마음이 편치 않았는데, 진짜 시체를 가까이에서 들여다보려니 더욱 힘들다. 여리게 떨리는 손으로 시체의 옷을 걷고 몸을 확인했다.) 시반의 색이 옅어. 사망한 지 두 시간도 안 지났을 거야.
 
산 정상으로 이어지는 고등 쇼고스의 흔적이 보입니다.
 
루이스 레너드:(고개를 끄덕인다.) 그렇다면 더더욱 서둘러야겠네. 더 정상으로 올라가보자. 아직 근방에 머물고 있을지도 몰라.
 
비올라 카지안:응. 산을 벗어나면 인명피해가 얼마나 더 커질지 몰라. 어서 움직이자. (시신의 근처에 백합들을 피워 임시로 표식을 남겨두고 서둘러 정상으로 향했다.)
 
밭은 호흡으로 산 정상에 도착합니다.
 
산책로도 내지 않은 야산 꼭대기에는 사람의 손길이 닿은 흔적은 전혀 없습니다.
 
정자도 전망대도 없이 불분명한 형태를 뽐내는 바위기둥이 전부입니다.
 
어떤 사람이 바위기둥 지척에서 발밑에 펼쳐진 경관을 음미하고 있습니다.
 
벙거지 아래 보이는 얼굴은 A 씨도, B 씨도, C 군도 아닙니다.
 
지팡이까지 챙긴 본격적인 등산객인 것 같습니다.
 
30대 중반 정도로 보이는 남성이네요. 석상인 것처럼 멈춰 서 있습니다.
 
루이스 레너드:(남성의 존재를 눈치챈 직후 발걸음을 멈춘다. 비올라를 툭툭 치고 귓속말을 한다.) 일단 포획하고 보는 게 좋을까? 진짜 인간이면 후에 사과해도 늦지 않을테니···.
 
비올라 카지안:이런 곳에 등산객이라니, 일반적이진 않지. ……만일 무고한 사람이라면 쇼고스를 피해서 돌려보내야 할 필요도 있으니까. (동의하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도 조심해, 루이스.
 
몰래 공격한다면 우선 <은밀행동> 판정이 필요합니다.
 
루이스 레너드:(비올라가 동의하자 고개를 끄덕이고 천천히 등산객에게 다가간다. 안전하게 능력을 쓸 수 있을 만큼 가까이 다가간 다음, 덩굴을 뻗어 상대를 포박하려고 시도한다.)
은밀행동
기준치: 55/27/11
굴림: 84
판정결과: 실패
 
가까이 다가가던 루이스는 그만 바닥의 나뭇가지를 밟고 맙니다.
 
뚝! 가지가 부러지는 소리가 적막한 공간을 울리고, 등산객은 깜짝 놀라 몸을 돌립니다.
 
그 옆으로 루이스의 덩굴이 아슬하게 빗나갑니다.
 
등산객:어이구! 누구십니까? (덩굴이 지나간 방향과 루이스를 번갈아본다.) 방금 뭐가 날아왔는데?
 
루이스 레너드:(이런···. 뼈저린 실패에 표정관리가 잘 되지 않는다. 하지만 이미 벌어진 일을 어쩌겠나, 최대한 수습해야지. 은밀히 행동하려는 시도는 그만두고, 아무렇지 않은 듯한 태도로 등산객과 안전 거리를 유지하며 다가간다.) DOT 소속 타이머입니다. 선생님께서는 지금 위험 구역에 들어와 계십니다. 이곳에 들어온 경위를 설명해주시고, 즉각 나가주셔야겠습니다.
 
등산객:험한 산이죠. 제가 등산하는 걸 좋아하는 나머지, 하하. 여길 꽤 자주 왔는데 다른 사람을 만나는 건 처음이네요. 게다가 타이머라니.
그럼요, 그럼요. 바로 나가드려야죠. (사람 좋게 답하면서 조금씩 루이스에게 다가온다.)
이곳의 풍경은 제가 살던 곳과는 매우 다릅니다.
그래서 흥미로워요.
하지만 무엇보다…….
 
일방적인 대사를 쏟아내며 가까워진 남자는 흥분으로 부글거리는 눈을 하고 있습니다.
 
인두겁을 뒤집어쓴 본질은 끄트머리부터 형체를 잃고 뭉근하게 녹아내립니다.
 
손끝에서 뚝, 땀방울도 핏방울도 아닌 살점이 떨어지고
 
등산객:널 다시 한번 만나고 싶었어.
 
고등 쇼고스가 곧장 루이스에게 달려듭니다.
 
과학으로 설명할 수 없는 범주로 머리통이 갈라지자, 그 골짜기 깊은 곳에서 썩은 구정물로 말미암은 더러운 거품이 요란하게 들끓습니다.
 
고등 쇼고스와 근력으로 대항해 이기거나, 스킬을 사용해야 승리할 수 있습니다.
 
고등 쇼고스:
근력
기준치: 75/37/15
굴림: 60
판정결과: 보통 성공
 
루이스 레너드:큿···. 비올라, 물러서! (그럼 그렇지, 평범한 인간일리가! 즉시 포획하지 못한 멍청함을 탓하면서도, 현재에 집중해 타개책을 열심히 궁리한다. 일단은 스킬로 맞받아치기로 결정한다.)
기가드레인
기준치: 100/50/20
굴림: 26
판정결과: 어려운 성공
피해: 25
 
다루고 있던 두꺼운 덩굴을 재빨리 가져와 등산객의 몸을 옭아맵니다.
 
타이머가 다루는 신의 힘이 쇼고스의 체력을 남김없이 빨아들입니다.
 
사경을 헤매는 고등 쇼고스의 형태는 들쑥날쑥 변화합니다.
 
등산객의 이목구비와 C 군의 이목구비가 게임처럼 억지로 조합되었다가 녹아내리는 괴물의 면모를 드러내고, 종내 흔적도 남기지 않은 채 바스러집니다.
 
“■■, ■ ■■ ■■■ ■……”
 
볼품없는 본질로 회귀한 고등 쇼고스는 유언을 남깁니다.
 
거품이 터지는 소리와 섞여 잘 들리지 않습니다.
 
<모국어> 판정
 
루이스 레너드:
언어(모국어)
기준치: 75/37/15
굴림: 15
판정결과: 극단적 성공
 
“켁켁, 또다시 만■고 싶…….”
 
단말마와 함께 전투가 일단락됩니다.
 
비올라 카지안:(멀리에서 당장 공격을 퍼붓고 싶어도 루이스가 얽혀들까 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발만 동동거리다가 곧장 뛰어왔다.) 루이스! 괜찮아? (서둘러 상태를 살폈다.)
 
루이스 레너드:난 괜찮아. 다치지 않았어. (쇼고스가 사라진 장소에서 여전히 눈을 떼지 못한다.) 위치상 합동 공격을 하기 보다는 내가 빨리 처리해버리는 게 나을 것 같아서 피하라고 했는데, 너도 괜찮은 거지? ··· 저 녀석, 사라지기 전에 '또다시 만나고 싶다'···? 그 엇비슷한 말을 남겼어. 아무래도 이걸로 끝이 아닌 것 같다.
 
비올라 카지안:다행이야. (멀리에서 봐도 인간의 모습이 갈라지고 튀어나오는 신화생물의 모습은 끔찍하기 그지없었다. 거기에 루이스가 당했다고 생각하면…… 놀란 가슴을 쓸어내린다.) 난 떨어져 있었으니 무사해. 그 쇼고스, 우리가 타이머인 걸 알자마자 눈빛이 바뀌더라. ……인간의 모습을 흉내내는 게 이렇게 소름끼칠 줄이야. (그런데 이걸로 끝이 아니라니.) 또 다른 개체가 있는 걸까.
 
루이스 레너드:가능성은 두 가지라고 생각해. 첫 번째는 단일 개체가 아닐 가능성. 아직 우리에게 발견되지 않은 동료 신화생물이 있을지도 몰라. 두 번째는 단일 개체지만 육체가 두 개 이상일 가능성. 몸을 이리저리 갈아타는 걸 보면 아마 후자일 가능성이 좀 더 높아보여. 중요한 건··· 한시라도 빨리 끝을 봐야 한다는 거겠지. 일단 긴급으로 보고를 올리자. 피해자를 더 늘려서는 안 돼.
 
DOT에 보고하려고 무전을 켜니, 지대가 높은 탓인지 신호가 잘 터지지 않습니다.
 
우선 내려가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루이스 레너드:텔레미터를 쓰자. 주차한 곳까지 가서 무전을 드리고, 사건 현장까지 차를 몰고 돌아가자.
 
비올라 카지안:그래야겠어. 시신은 현장 감식도 해야 할 테니까. (루이스의 손을 맞잡고 텔레미터를 사용했다.)
 
두 사람은 텔레미터를 사용해 다시 해안도로로 내려옵니다.
 
이곳은 무전기가 정상적으로 작동되니, 보고합시다.
 
루이스 레너드:(지체없이 무전기를 켜고 상부와 연결을 시도한다.) 3시 타이머 루이스입니다. 응답 바랍니다, 오버.
 
[DOT 지구 지부, 무전 확인했습니다. 고등 쇼고스를 처리했습니까?]
 
루이스 레너드:처리했습니다. 하지만 조사 및 전투 결과로 판단하건대, 아직 고등 쇼고스에 의한 살인 사건이 종결났다고 할 수 없습니다. 개체가 두 마리 이상일 가능성이 있다는 가설에 타이머 비올라도 동의하였으며, 다른 피해자가 발생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는 점에서 사안의 심각성이 상당합니다. 우선적으로 요청드릴 것은 조사 현장에서 발견한 또다른 시신 감식입니다.
 
[알겠습니다. 시신의 좌표를 전달해 주십시오. 3시 페어에게 내려진 일차적 임무는 여기까지입니다. 다음 지시가 내려올 때까지 대기하세요.]
 
좌표를 전달하고 보고를 마무리합니다.
 
보랏빛과 쪽빛으로 오묘하게 얼룩진 밤하늘에는 별이 총총 빛나고 있습니다.
 
서늘하게 식은 바람이 옷깃 사이로 목덜미를 쓰다듬습니다.
 
소금기가 역력하게 밴 공기가 혀 위에 짭조름한 풍미를 남깁니다.
 
어렴풋이 들리는 파도 소리는 울음처럼 서럽게 쏟아지고…….
 
저 멀리, 덩그러니 선 등대 아래 낯선 인영이 보입니다.
 
루이스 레너드:(좌표까지 전달한 후 비올라에게 내용을 전달해준다.) 다음 지시까지 대기하라네. 현장으로 바로 돌아가자고 하고 싶지만···. (등대, 그리고 그 밑의 인영을 시야에 담는다.) 떠나기 전 이 주변을 마지막으로 점검하고 갈까. 민간인이면 최대한 대피시키는 게 좋으니까.
 
비올라 카지안:(쓸쓸한 파도 소리와 등대. 아름다운 곳이지만, 쇼고스가 존재할지도 모르는 지금은 위험을 배제할 수가 없다.) 현장 감식은 DOT나 경찰들이 하겠지, 아마. 다녀오자.
 
가까이 다가가자 소녀와 숙녀 사이, 나이를 가늠하기 어려운 여자가 장미꽃을 한 송이씩 바다로 내던지고 있습니다.
 
파도의 방향이 바뀔 때마다 꽃송이는 정처 없이 쓸려나갑니다.
 
마구 흩날리는 긴 머리카락 사이로 보이는 얼굴이 익숙합니다.
 
평범한 소녀가 신화생물과 대치하는, 위기일발의 순간.
 
척추 대신 도드라진 뼛조각을 곤두세우던 오물 덩어리.
 
제1번 클라커, 로잘린 애버리지입니다.
 
단출한 흑색 군복 대신 평범한 일상복 차림인지라, 뉴스에서 본 클라커보단 3년 전 구한 소녀에 가까운 인상입니다.
 
옆얼굴에는 감추지 못한 우울이 고스란히 드러납니다.
 
루이스 레너드:(방금 전 만났던 신화생물에게 저지른 실수를 기억하며, 인영을 향해 소리 없이 접근한다. 그러나 익숙한 인상에 경계심은 약해진다. 포기하기로 결정했으나 살아남은, 클라커가 된 그 소녀. 분명 성이···.) 애버리지··· 씨? 맞습니까? (확신이 없는 목소리로 그녀를 불러본다.)
 
루이스가 이름을 부르자 로잘린이 고개를 듭니다. 그리곤 조금 놀란 얼굴로 말합니다.
 
로잘린 애버리지:앗, 루이스 님. 안녕하세요.
임무 중이셨나 봐요. 고생 많으셨습니다.
 
품에 안은 꽃다발과 작은 상자.
 
어렵지 않게 추모 중이리라 짐작할 수 있습니다.
 
다만 이상하긴 하네요. 로잘린은 도밍게즈 출신이니까요.
 
무엇 하러 지구까지 와서 추모하는 걸까요?
 
루이스 레너드:예, 방금 종결하고 돌아가려던 참입니다. (민간인은 아니고, 그렇다고 수상한 생물도 아니고. 클라커가 DOT 소속임을 감안하면 굳이 자리를 비우라 명령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다만 누구를 추모하느냐고 물을 정도로 가까운 사이가 아니라는 사실을 고려한다면 굳이 담소를 나눌 이유도 없겠지. 더군더나 불편하다, 이 아이는. 그때나 지금이나 다수를 챙기겠다고 한 선택이 틀렸냐고 누군가 묻는다면 확실하게 아니라고 대답할 수 있다. 하지만 당사자에게 그런 말을 하는 것은 대단한 실례이니. 그래서 나는 이렇게만 말한다.) ··· 이 근방에서 신화생물에 의한 살인이 발생했습니다. 곧 본부에서 검시를 나올 예정이기도 하니, 되도록이면 이 현장 근처에 있지 않는 것이 좋겠습니다.
 
비올라 카지안:(저토록 우울한 얼굴이라면 필시 가까운 사람이겠지. 비올라 역시 가족을 잃어본 적이 있는데다, 저보다 한참 어린 이가 제1번 클라커로서 인류를 위해 일한다는 사실이 마치 막 타이머가 되었던 시절의 저를 상기시키기도 한다. 피어오른 안타까움과 동질감을 무시하지 못하고 조심스레 질문을 던졌다.) 실례인 건 알지만 혹시…… 추모 중이셨나요?
 
로잘린 애버리지:(루이스의 말에 눈가를 문지르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잖아도 조금만 더 있다가 떠나려던 참이었어요. 정말이지 신화생물은 어디에나 나타나는군요……
(그리곤 비올라의 말에 잠시 머뭇거리다가 조용히 답했다.) 언니한테 인사를 하러 왔어요. 최근에 게이트 사태에 휘말려서요.
언니의 유품을 정리하다 보니 얼결에 여기더라고요. 내일 복귀해야 하는데, 마침 바다가 보여서요.
 
루이스 레너드:(비올라와는 마음이 잘 통할 때가 많은데, 간혹··· 지금처럼 어긋날 때가 있다. 속으로 한숨을 슬쩍 내쉬고는 의례적인―하지만 안타깝지 않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인사를 건넨다.) ··· 그런 일이 있으셨군요. 유감입니다.
(그러다가 한편으로는, '베일에 싸인 클라커와 관련 대화를 나눌 수 있는 기회가 아닌가?'라는 생각에 몇 마디 더 나누더라도 나쁠 거 없겠다는 생각이 든다. 비올라도 대화를 하고 싶어하는 모양이니 잠깐이라면···.) 혹시 언니 분께서도 클라커셨습니까?
 
로잘린 애버리지:아, 아니에요. 클라커는 아니었어요. 대신 저희 언니는…… 클라커 프로젝트를 총괄했었죠. 멋지고 대단한 언니였어요.
 
부끄러운 얼굴로 웃는 로잘린은 품에 작은 상자를 안고 있습니다.
 
상자 귀퉁이에는 필기체로 이름이 각인되어 있습니다.
 
Julia Abbott.
 
흔하다면 흔한 이름이지만…….
 
<아이디어> 판정
 
루이스 레너드:
지능
기준치: 80/40/16
굴림: 74
판정결과: 보통 성공
 
줄리아 애벗 박사, 클라커 프로젝트, 제1번 클라커, 언니, 유품.
 
각기 흩어졌던 단어들이 단 하나의 귀결을 매듭짓습니다.
 
오늘 낮까지도 언론은 클라커 프로젝트의 성공을 떠들어댔습니다.
 
증원을 앞두고 홍보에 전심전력이었고, 모든 것이 더할 나위 없이 완벽하기만 했는데.
 
정작 공로자의 죽음은 완전히 은폐되어 있었습니다.
 
루이스 레너드:줄리아 애벗 박사···. (기시감이 안개처럼 머릿속을 맴돌다 깔끔하게 흩어진다. 남은 것이 있다면 이 중대한 사안을 그저 은폐하려고만 든 DOT에 대한 의문. 보나마나 '안전과 대의를 위해'라고 하겠지만··· 그 안전을 전면에서 책임지고 있는 타이머들에게까지도 그 어떤 것도 알려주지 않는 것은 여전히 이상하다. 아마 이번이 의문을 해소할 유일한 타이밍일지도 모르겠다.) 그렇군요. 그 클라커 프로젝트 총괄 박사가 애버리지 씨의 가족이셨군요. ··· 정말 실례되는 질문인 것을 압니다만, 그럼 애버리지 씨께서는 자의로 언니 분의 프로젝트에 지원하신 겁니까?
 
로잘린 애버리지:실례되기는요, 전혀 아니에요. (손을 내젓는다.) 항상 타이머 님들과 만나거나 협업을 해보고 싶었는데 이런 식으로라도 대화할 수 있게 돼서 얼마나 기쁜지 몰라요.
(그리곤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제가 자원했어요. 언니가 맨 처음 클라커 프로젝트를 시작했을 때, 위험성을 알 수 없다며 아무도 지원하려 들지 않았거든요. 클라커도 어쨌건 신화생물과 맞서는 사람이니까, 이렇게라도 세계에 공헌하고 타이머 님들과 같이 설 수 있지 않을까 싶었어요. 두 분을 무척 동경하고 있었거든요. (루이스와 비올라를 번갈아 바라보며 미소했다.)
 
루이스 레너드:··· 믿어주시는 시민 분들께 늘 감사할 따름입니다. (영 껄끄러운지 공식 인터뷰에서나 할 법한 형식적인 대답으로 응수한다.) 다만 동경과 현실은 늘 괴리가 있는 법인데···. (뜸을 들이며) 하시는 일은 좀 어떠십니까.
 
로잘린 애버리지:보람차요. 타이머 님들처럼 멋진 이능력을 발휘해서 싸울 순 없지만, 그래도 제 힘으로 신화생물을 돌려보낼 수 있으니까요. 경보가 울리면 매번 등을 돌리고 도망치기만 했는데, 이제는 등 돌리는 대신 당당히 마주보고 맞설 수 있다는 게 뿌듯하고 자랑스럽죠. 신화생물의 험악한 면을 보면 무섭고 섬뜩하기도 하지만요. (그리곤 조심스럽게,) 제가 타이머 님들께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고 있나요?
 
루이스 레너드:··· 네, 많은 도움이 됩니다. 덕분에 스스로를 정비할 시간이 제법 생기기도 했고요. 비올라와도 종종 그런 대화를 나눴습니다. (옆에 선 파트너를 곁눈질하며, 이것이 마치 현재의 취조하는 듯한 분위기를 풀어줄 수 있기라도 하다는 듯.) 언니 분께서는 탁월한 연구자셨나봅니다.
 
비올라 카지안:맞아요. (루이스의 눈빛을 곧장 알아채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것도 알려지지 않아 의문스러워하는 대화도 여럿 있었지만, 긍정적인 감상을 나눈 것도 사실이니까.) 저도 클라커 분들과 직접 만나는 날이 있었으면, 하고 고대해 왔었어요. 저와 루이스를 동경하셨다니 영광인걸요.
 
로잘린 애버리지:(옅게 미소한다.) 제가 더 영광이에요. 그리고 언니는…… (미소가 조금씩 흐려진다. 상자를 매만졌다.) 정말 똑똑하고 뛰어난 사람이었죠. 살아 있었다면 지금도 세계를 위해 이바지하고 있었을 텐데. 저보다 몇 배는 더 말예요.
참…… 그러고 보니 언니의 유품 중에 눈에 띄는 게 있었어요.
 
루이스 레너드:눈에 띄는 것이라면, 어떤···?
 
로잘린 애버리지:직접 확인해 보시겠어요? (상자를 건네준다.)
 
작은 상자의 내용물은 단출합니다.
 
반으로 접힌 종이, 시계, 편지.
 
루이스 레너드:(접힌 종이를 펼쳐본다.)
 
지구의 세계 지도입니다. 시판되는 버전이라 특별할 건 없습니다.
 
우루과이의 몬테비데오에 동그랗게 표시가 되어 있습니다.
 
지도 끄트머리에는 몬테비데오 어드메의 주소 한 줄이 적혀 있습니다.
 
루이스 레너드:(로잘린 애버리지는 도밍게즈인이라고 알고 있는데, 도밍게즈인의 언니가 지구의 우루과이에 연고를 두고 있을 확률은 얼마나 될까? 의아해하며 편지를 집어든다.) 그, 개인적인 내용인 것 같은데. 저나 비올라가 읽어도 괜찮으시겠습니까?
 
로잘린 애버리지:네, 괜찮아요. 염려하실 만한 내용은 없거든요. (고개를 끄덕였다.)
 
루이스 레너드:(고개를 끄덕이고 편지 내용을 훑는다.)
 
보내는 사람은 대한민국 강원도에서 줄리아 애벗.
 
받는 사람은 우루과이 몬테비데오의 토브바 아일루지.
 
내용물은 부둣가에 외롭게 선 등대가 찍힌 사진입니다.
 
로잘린 애버리지:그 주소로 가 봤는데 처음 보는 사람의 집이더라고요. 언니 이름을 듣더니 편지 한 통이 잘못 온 적 있다고 알려 주셨어요.
편지에는 그 사진이 전부라서, 찾아보니 여기 이 등대더라고요.
하지만 잘 모르겠어요. 언니는 왜 그런 편지를 보낸 걸까요? 뭔가를 놓치고 있는 듯한 기분이 자꾸만 들어요. 등대에도 올라가 봤지만 특별한 건 없었구요.
 
루이스 레너드:(등대 사진을 한번, 바로 앞에 있는 실제 등대를 한번, 번갈아 쳐다보다가 묻는다.) 확실히··· 이상하긴 하네요. 언니 분께서는 우루과이나 강원도에 연고가 있으셨습니까?
 
로잘린 애버리지:아뇨. 제가 알기로는 없었어요. 하지만 저도 클라커가 되고선 여기저기 파견되느라 바빴으니 그 사이에 연고를 두었을 가능성도 있긴 하겠네요.
 
루이스 레너드:(이곳 저곳을 돌아다닌다면 불가능한 일이 아니긴 하지만, 클라커 또는 연구직보다 훨씬 많이 돌아다녔을 나는 지구 내에서는 런던 이외에는 익숙한 지역이 없다. 비올라가 있기에 많은 시간을 보낼 수 있었던 것이지, 그 외의 장소에서는 그다지 정을 둘 기회가 없었다. 그런 것을 고려해보면 애벗 박사의 행보는 그저 의아하기만 하다.)
(잠시 이런 저런 생각에 잠겨 있다가 조심스럽게 묻는다.) 정말, 실례되는 질문이지만··· 언니 분께서 돌아가신 날짜가 어떻게 되시는지 여쭤봐도 되겠습니까.
 
로잘린 애버리지:아녜요. 오히려 같이 고민해 주셔서 감사한걸요. (다시금 짧은 슬픔이 스쳐지나간다.) 지금으로부터 일주일쯤 전이에요.
 
루이스 레너드:일주일···. 상심이 크시겠습니다. (시선을 상자로 떨구어 시계를 본다.)
 
손바닥만 한 청동 회중시계.
 
뚜껑에 각인된 옥타그램(팔각 별) 때문에 텔레미터의 유사품처럼 보입니다.
 
둘레를 따라 줄리아 애벗의 이름이 각인되어 있습니다.
 
열어보면 시침, 분침, 초침 모두 멈춰 있습니다.
 
마지막 시각은 05시 10분 04초.
 
로잘린 애버리지:역시 이걸로 뭔가 알아채기엔 부족하겠죠? (그리 큰 기대를 하지는 않는다.)
 
루이스 레너드:당장 확실하게 대답해드릴 수 있는 것이 없어 죄송할뿐입니다. (유품을 전부 고이 정리하여 주인에게 돌려주며) 다만··· 도움이 필요하시다면 언제든 연락 주십시오. 저와 비올라도 나름대로 열심히 찾아보도록 하겠지만요.
 
로잘린 애버리지:말씀만으로도 정말 감사해요. (슬픔을 거두고 씩씩하게 미소했다.) 언젠가 때가 된다면 알게 되겠죠. 언니는 늘 모두를 구하기 위해서 힘냈으니 저도 그럴 거예요. 물론 타이머 님들에게 비할 바는 아니지만요.
기억하지 못하실지도 모르겠지만…… 3년 전 코스모스 웨이브 때 구해주신 덕분에 제가 여기까지 올 수 있었어요. 정말 감사드립니다, 두 분.
 
뒤늦은 인사가 진심을 동반하고 다가옵니다.
 
비올라의 표정이 한순간에 미묘해집니다.
 
한 적 없는 일, 겪은 적 없는 날을 시시때때로 마주하게 되는 처지니까요.
 
로잘린 애버리지:두 분이 여전히 잘 지내시는 것 같아 다행이에요. 비올라 님은 그새 머리가 많이 길어지셨네요. 헤헤.
 
「2055-10-11, 18:10
 
도래솔 광장에 신화생물 출몰.
 
제1번 클라커 즉시 출동할 것.」
 
띠링.
 
익숙한 양식의 메시지가 추모하는 잠깐을 기다리지 못하고 끼어듭니다.
 
차이라면 타이머가 아닌 클라커를 부른다는 것 하나.
 
로잘린 애버리지:아, 출동 문자가 왔네요. 전 이만 가봐야겠어요. (텔레미터를 조율하기 시작했다.)
 
루이스 레너드:아, 저··· (그날 나는 비올라가 구하고 싶어 했던 당신을 포기했었다고, 더 많은 이들을 위해 소수를 포기했었다고, 그 선택에 후회는 없을지라도 그 죽음에 미안함을 느끼지 않는 것은 아니며, 그럼에도 살아남은 아이에게, 여전히 내게 고맙다는 네게 그저 고맙다는 인사를 건네려고 했다. 하지만 그 긴 인사를 건네기에는 시간이 너무 모자랐다. 무슨 말로 마무리를 해야 할지 몰라 방황하다 보면 두 눈이 소녀가 흘려보낸 꽃송이를 잡아낸다.)
(그 꽃과 같은 꽃 두 송이를 바닥에서 피워낸다. 하나는 소녀가 했던 것처럼 바다에 던지고, 색이 다른 나머지 한 송이는 소녀에게 건넨다.) 그렇게 말해줘서··· 고맙습니다. 출동 잘 다녀오고요, 다음에 또 만나 이야기할 날을 고대하겠습니다.
 
로잘린 애버리지:(루이스가 꽃을 피워내는 모습을 가만히 바라보다가, 하얀 장미가 제게 내밀어지자 푸른 눈이 커진다. 숨길 수 없는 감동과 기쁨을 안고서 보석마냥 조심히 꽃송이를 받아들었다.) 저야말로요. 저희, 앞으로도 힘내요. 그리고 다음에 만났을 때는 카페에서 차라도 한 잔 했으면 좋겠어요.
그럼 가보겠습니다. (꾸벅 인사했다.)
 
고장 난 시계와 달리 텔레미터의 바늘은 핑그르르, 거침없이 돌아가고 순식간에 부둣가에는 두 사람만 남습니다.
 
비올라 카지안:(뜻하지 않은 클라커와의 조우로 조금은 들뜨기도 했던 마음이 저 차가운 바닷물처럼 가라앉는다. 로잘린이 클라커가 될 정도로 동경했다던 비올라는 자신이 아니다. 코스모스 웨이브에서 그를 구한 것도 제가 아니고. 그것도 모른 채 혼자 설레선 영광이라느니 같은 말을 하다니.)
……어딜 가든 그 이름이 따라다니네. (먼발치를 바라보며 작게 중얼거렸다.)
 
루이스 레너드:(애버리지가 감사를 건넸을 때 제일 먼저 든 생각은 비올라가 또다시 상처받을지도 모른다는 생각. 하지만 갑작스러운 호출 문자 탓에 파트너의 마음을 돌아봐줄 시간이 없었고, 허둥지둥 소녀를 보내고 난 다음에야 가능했다.) ··· 비올라. 네가 지금 어떤 마음일지 짐작이 돼. 하지만··· 다른 건 몰라도 이건 설명해줄 수 있겠다. (천천히, 비올라의 심란한 마음이 받아들일 수 있도록 옛 이야기를 풀어 놓는다.) 저 아이는 내가 구하기를 포기했던 아이야. 당시 도밍게즈의 비올라는 피난민들을 구하자고 주장했지만 나는 받아들이지 않았어. ··· 바로 앞에 더 거대한 적이 있었으니까. 그리고 그렇게 했어. 만일 그 상황에 네가 있었다면 너는 내 반대를 무릅쓰고 피난민 행렬을 구하러 갔겠지. ··· 예전에 비슷한 임무를 나갔던 일, 기억나? 마을과 연구소 중 하나를 택해야 했던 때 말이야. 나는 연구소를 택했고 너는 마을을 택했지. 그러니 나는 네가 저 아이의 감사 인사를 받을 자격이 있다고 생각해. 그 자리에 있었지만 대의를 택해 자격을 잃은 나와 다르게 말이야.
 
비올라 카지안:……응. 기억나. (벌써 3년 전이지만, 신화생물과 대치했던 대부분의 날들은 그의 기억에 생생히 남아 있다. 매 싸움마다 수많은 희생이 따라왔고 그건 고스란히 비올라의 죄책감으로 남았으니까. 그때는 연구기지를 뒤로하고 군대의 도움조차 받을 수 없을 마을을 택했지만, 마을을 지켜낸 대가로 연구원들의 목숨 몇을 잃어야 했다. 또 다른 비올라 역시도 선택의 기로에 놓여 있던 건 다르지 않았구나. 특히나 그때는 코스모스 웨이브. 인류의 멸절을 판가름할지도 모르는 재앙 같은 신화생물을 마주한 순간- 아주 찰나의 고민조차 허락되지 않을 급박한 상황. 한때는 또 다른 비올라가 저와는 비교도 되지 않을 만큼 훌륭하고 뛰어난 이일지도 모른다고 여기곤 했으나, 루이스의 사려 깊은 설명을 듣자 그도 저와 꽤나 비슷한 사람이었구나, 라는 감상이 든다.)
하지만 난 네가 자격을 잃었다 여기진 않아. 가장 최선의 선택은 신화생물을 막는 게 맞았을 테니까. 보호와 방어만 해선 행성을 침입한 근본적인 원인을 물리칠 수 없었겠지. 네 대의에 로잘린도 포함되어 있었던 거야.
(비올라를 향한 의문, 그리고 조금의 질투와 자격지심은 여전히 마음 한구석에 남아 있다. 그래도 진심으로 저를 생각하며 위로하고 배려해 주는 루이스 덕분에 마음이 한결 편안해짐을 느낀다.) 고마워, 루이스.
 
루이스 레너드:(고개를 약하게 저으며) 희생당한 입장에서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을테니까. 중요한 건··· 도밍게즈의 비올라도, 지구의 비올라도, 모두 대의를 위해 소수를 희생하는 일에는 반대하는 성정을 지닌 사람이었지만 최종 선택은 달랐다는 사실이겠지. 너와 그 사람이 같지만 다르다고 했던 이유야. ··· 네가 이 일에 더 마음 쓰는 일이 없었으면 좋겠다. (걱정 어린 말투에서는 상대를 생각하는 마음이 묻어 나온다.)
 
비올라 카지안:(루이스는 절 이렇게 걱정해주는데, 제가 품은 마음은 어쩐지 속좁고 치졸하다. 결국 고민 끝에 솔직하게 털어놓았다.) 사실…… 너랑 이전의 비올라의 사이가 각별했던 것 같아서. 네가 날 볼 때마다 그 사람을 떠올리지는 않을까. 그런 생각이 들었어. 난 그 사람에 한참 못 미칠까봐. 내가 아닌 다른 비올라를 알고 기억하는 사람들이 이렇게나 많으니까 더더욱 매몰되게 되더라.
 
루이스 레너드: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 줄은 몰랐네, 의외야···. (약간 놀란 표정을 짓다가, 분위기를 풀어보려는 요량으로 씩 웃는다.) 그 비올라를 너무 대단한 사람으로 치켜세우진 않아도 돼. 아침잠 많은 것도 너랑 똑같았어. 별자리 운세가 꼴찌라고 하루종일 안절부절 못하던 것도 그렇고. 그냥··· 너도 그 비올라도, 똑같이 평범한 '사람'이야. 시민들이 타이머를 신과 같은 존재로 여기더래도 실제 우리는 그렇게 전지전능하지 않은 것처럼. 그러니 너무 두려워하지 마. (잠시 고민하다가) 아니다. 두려워 하더래도 매몰되진 마. 너는 네 신념을 지킬 수 있을 만큼 강인한 사람이니까 금방 빠져나올 수 있어.
 
비올라 카지안:(알까? 네게 '비올라'의 얘기를 이렇게 자세히 듣는 건 처음이라는 사실을. 우리 모두 또다른 비올라의 존재를 알면서도 수면에 꺼내는 일은 드물었다. 저는 저대로 신경이 쓰여서, 루이스는 루이스대로 아픔이 있었을 것이다. 해묵은 앙금을 풀어내듯 이제서야 지난 시간을 풀어내고 진실된 감정을 토로한다. 로잘린이 그 방아쇠가 되어준 셈이다.) 굉장히 비슷했구나? 그래…… 네 말대로야. (제게도 이제는 그 사람을 어느 정도 놓아줄 필요가 있다. 과거에 붙잡혀 현재와 미래를 놓쳐서는 안 되겠지. 무엇보다 저를 믿어주는 든든한 파트너가 있지 않은가.) 네가 날 믿어주는 만큼 나도 힘내 볼게.
아직 다음 임무도 내려오지 않았으니 저 등대나 가 볼까? 저기에도 사람이 있을지도 모르고.
 
루이스 레너드:(이 대답은 널 안심시켰을까? 이전보다는 표정이 나아 보이는 당신을 보며 조금은 안도한다. 이내 고개를 끄덕이며 당신의 의견에 동의를 표한다.) 그래, 마냥 지나치기에는 걸리는 점도 생겼고. (로잘린 애버리지가 보여준 편지 속 사진을 떠올린다.)
 
두 사람은 함께 등대로 향합니다.
 
자그만 등대 안에는 나선 모양으로 계단이 쭉 뻗어 있습니다.
 
소라 껍데기처럼 둥글게, 둥글게. 한 칸을 오를 때마다 작달막한 창밖의 색이 바뀝니다.
 
탁 트인 바다에 밤이 내리는 과정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집니다.
 
비올라 카지안:오늘 바다는 원없이 구경하네. 평소엔 게이트가 생기는 게 아닌 이상 바닷가에 올 만한 여유도 별로 없었으니까. (계단을 하나하나 짚어 올라가면서 창밖을 바라보았다.)
 
인적이 있을지도 모른단 예상과 달리 등대엔 고장 난 망원경과 먼지 가득한 난간이 고작입니다.
 
인기척이 끊겼는지 바닥에는 세월의 흐름을 간직한 발자국들이 겹겹이 쌓여 있습니다.
 
천장에는 비교적 선명한 세계 지도가 펼쳐집니다.
 
비올라 카지안:(로잘린과의 대화에서 발화된 해묵은 껄끄러움도 진솔한 대화로 풀어내니, 마음이 한결 가벼워진다.) 바다 좋아해, 루이스?
 
루이스 레너드:싫어하진 않아. (계단을 오르며 수평선과 하나가 되어가는 하늘과 바다를 바라본다.) 멀찍이서 경치를 바라보는 것만이라면 거절할 이유가 없지. 너는 어떤데?
 
비올라 카지안:나는 꽤 좋아해. 수영은 못 해도, 발을 담그는 것까지는 괜찮고. 탁 트인 바닷가는 보기만 해도 마음이 편안해지는 기분이거든. 특히 요즘은 꽤 바빴으니까, 이런 여유도 얼마만인지 모르겠네.
 
비올라의 목소리를 들으며 등대 너머의 풍경을 다시 바라봅니다.
 
인적 드문 모래사장.
 
외로움이 고인 바다.
 
어두움으로 가득 찬 하늘.
 
밤과 맞닿은 수면은 칠흑으로 물들어 경계를 구분할 수 없습니다.
 
창공에 매달린 달은 심해에도 가라앉고, 흔들리는 파도와 똑같은 형태로 깃털 구름이 찢어집니다.
 
비로소 위와 아래가 똑같은 그림이 완성되면 벼락같은 깨달음이 내려칩니다.
 
<아이디어> 판정
 
루이스 레너드:
지능
기준치: 80/40/16
굴림: 61
판정결과: 보통 성공
 
그 이름도 양면이 뒤집힌 데칼코마니를 이루고 있다고.
 
단순한 우연일까요?
 
왜 줄리아 애벗은 지도에 토브바 아일루지의 집만 표시해 뒀던 걸까요?
 
루이스 레너드:(하늘과 같은 바다, 타이머와 같은 클라커, 비올라와 비올라, ······ 생각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결국 마지막 생각은 처음을 물어 거대한 뱀을 완성한다. 놀랍다는 표정을 짓고는 뒤를 홱 돌아 비올라를 본다.) 비올라, 애벗 박사의 편지를 받은 사람은 박사와 이름이 정확히 같아! 방향의 문제일뿐이지. ··· 분명 둘은 어떤 식으로도 관련이 있어. 그러니 찾아갔던 거야.
 
비올라 카지안:이름이 같다고? ―잠깐. (비올라도 한 박자 늦게서야 깨닫는다. 줄리아 애벗, 그 철자를 정확히 뒤집으면 토브바 아일루지란 이름이 나온다.) ……'두 사람'일까? 어쩌면, 일부러 자신의 이름을 반전시킨 건 아닐까?
 
데칼코마니는 중심선을 기준으로 좌우가 대칭을 이룹니다.
 
줄리아 애벗의 지도는 정확히 반으로 접혀 있었습니다.
 
우루과이 몬테비데오의 반대편은…….
 
대한민국입니다.
 
루이스 레너드:하필 이 곳의 등대였던 것도 이유가 있었던 거야. 그들의 이름부터 시작해서 전부, 모든 게 대칭을 이루는 조합이라고. (애벗 박사가 남긴 유품은 종이, 편지, 그리고 시계. 종이에 표시된 위치도, 편지의 수발신인도, 모두 짝을 찾았다. 남은 것은···.) 시계. 시계까지 조합하면 박사가 남긴 것의 의미를 명확히 알아낼 수 있겠지. (발견해낸 사실에 들뜬 듯한 목소리. 발걸음을 계속 위로 옮긴다.)
 
등대의 가장 꼭대기에 도착해도 인적은 없습니다. 두 사람뿐입니다.
 
다만 천장에 그려진 세계 지도가 눈에 띕니다.
 
그러고 보면, 유품의 지도에 주소 한 줄이 쓰여 있었죠.
 
분명 몬테비데오의 주소였습니다.
 
모든 게 반전된 지금, 그 주소가 진정으로 의미하는 건 어디일까요?
 
루이스 레너드:(천장의 지도에서 한국과 우루과이를 찾아 번갈아가며 본다. 서로가 서로의 대칭이 되는 곳들. 애벗 박사가 전하고 싶었던 메시지는 무엇일까. 고개를 내리고 휴대폰을 꺼낸다. 지도 앱을 켜서 몬테비데오의 짝이 될 곳의 주소를 검색한다.)
 
지도에 쓰여 있던 주소의 대칭점을 검색해보자, 정확히 대응하는 좌표가 있습니다.
 
해안도로를 따라 조금 달리면 도착할 수 있는 거리입니다.
 
……. 좋지 않은 예감이 듭니다. 어쩌면 이것은 직감입니다.
 
은폐된 죽음, 숨겨진 비밀 장소, 파묻힌 진실.
 
이곳에 도착하노라면 원래대로는 돌아갈 수 없을 거라고.
 
루이스 레너드:(새로운 위협으로 뛰어드는 일은 언제나 두렵다. 누구에게나 두려울 것이다. 아무렇지 않은 것처럼, 진실이 있다는 사실조차 숨기고 살아가는 길은 편하고 간단하다. 하지만 당장 쉬운 길을 택할 수 없는 이유는 그냥 그럴 수 없기 때문이다. 있는 걸 없다고 할 수는 없다. 그것이 스스로에게 거리낄 것 없는 삶을 살고자 하는 나의 신념이다.)
(하지만 비올라는 다르다. 비올라가 관여하지 않는다는 선택을 하더라도 나에게는 비난할 자격이 없다. 타인의 신념을 내 잣대로 잴 수는 없는 노릇이다. 더하여, 그보다 중요한 것은 비올라를 위험으로부터 보호하는 것이다. 그게 지구로 넘어갔던 가장 큰 이유인데, 이제 와 어떤 재앙이 발생할지도 모르는 곳에 비올라를 밀어넣을 수는 없다. 그러나 내가 비올라의 안위를 이유로 임무를 판별한다는 것부터가 실례일지도 모른다. '그' 비올라와 '이' 비올라는 서로 다른 경험을 하고 자란 만큼 다른 인물이라 볼 수 있는데, 여전히 비올라를 파트너가 아닌 보호 대상으로 보는 셈이 될 테니까. 그리하여 나는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다가 이 모든 것을 그냥 말로 털어놓는다.) 비올라, 그러니까···
음, 대칭이 되는 주소를 발견했어. 아마 이곳으로 가면 유언이 뜻하는 바를 알 수 있겠지. 그렇지만 아마 많이 위험할거야. 박사의 죽음 자체도 그렇지만, 이 근방인 걸 보면 우리가 아까 본 신화생물이 튀어나올 확률도 적잖아 있고. 솔직히 말하자면 나 혼자 가고 싶어. 만일 사고가 또 발생한다면, 그리고 내 판단 미숙으로 인해 또다시 돌이킬 수 없는 죽음을 보게 된다면? ··· 애초에 널 지키려고 했던 걸 생각하면 위협으로부터 최대한 멀어지게 하는 게 맞아. 하지만 그건 파트너에 대한 예의가 아니겠지. 그러니 선택은 네게 맡길게. 너는··· 어떻게 하고 싶어.
 
비올라 카지안:(처음에는 숨겨져 있던 단서를 발견했다는 사실에 유레카를 외친 철학자마냥 기쁘기도 했지만, 곧바로 직감 같은 불안이 몰아닥친다. 이는 막연한 몽상 같은 게 아닌 현실이었다. 박사는 게이트에 휘말려 죽었다. 그런 이가 동생에게 깊이 생각해보아야만 풀 수 있는 비밀을 담은 유품을 남겼다. 마치 예고라도 한 것처럼…… 분명 무언가 있는 것이다. 어쩌면 우리를 파멸시킬 진실이 기다릴지도 모른다. 우리를 삼켜버릴 위험이 도사릴지도 모른다. 우리는 이제야 클라커들의 도움으로 짧은 여유를 찾았다. 눈을 피하고 등을 돌리면 이제까지 그랬던 것처럼 평온하게 지낼 수 있을 테다. 아무도 모를 일이 될 수도 있다.)
(하지만…… 망설임은 길지 않다. 달싹이던 입술 사이로 여리지만 단호한 문장이 흘러나왔다.) 가야만 한다면, 당연히 함께야. 신화생물의 위험이 있다면 더더욱 함께 맞서야지. 나를 지켜주려고 하는 네 마음은 고마워. 실제로도 몇 번이나 배려받고 보호받았었지. 하지만 언제나 지켜지기만 한다면 그게 파트너일까? 같은 시간대의 힘을 가졌잖아. 위험과 맞서야만 하는 게 우리의 운명이라면, 네가 나를 위하고 지켰듯 나도 너를 위해 온 힘을 다할 거야.
게다가 그 아이, 언니를 잃었다고 했었지. (자꾸만 제 동생들이 떠오른다. 제 형제자매 중에선 마찬가지로 게이트에 휘말려 죽은 이도 있었고, 타이머가 된 저를 응원하면서도 걱정하는 이들도 있었다. 만약 내가 죽었고 그런 유품을 남길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면, 남겨둔 동생들이 걱정되어 끝까지 눈을 편안히 감지 못했겠지.) 내 동생들이 떠올라서 이대로 지나가진 못하겠어. (눈을 잠시 내리감았다. 한 손을 꾹 쥐었다. 두려움을 감추고 결의를 품는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 있다면, 해보자.
 
루이스 레너드:··· 그래, 그렇게 말할 것 같았어. ("네가 나를 위하고 지켰듯 나도 너를 위해 온 힘을 다할 거야", 라···. 역시 나는 오만한 생각을 하고 있었던 셈이다. 파트너라면 그게 당연한 건데. 그러니 감히 합당한 반대 근거가 없어진 나는 잠잠히 고개만 끄덕인다.) 해보자. 로잘린 애버리지를 위해서라도.
 
찾아낸 주소로 향하면 한적한 바닷가 근교, 낡은 간판이 달린 상가 건물에 도착합니다.
 
주변에는 시장 어르신들 몇 분이 느릿느릿 계산기를 두드리고 있습니다.
 
타이머를 알아봤는지 힐끔힐끔 시선을 던지거나 애먼 말을 붙이기도 합니다.
 
주소는 정확한데, 상가 문은 단단히 잠겨 있습니다.
 
권능을 사용하면 쉽게 부술 수 있겠지만 보는 눈이 있으니 온건하게 해결해야겠죠.
 
철통처럼 지키고 선 도어락은 여섯 자리 숫자를 요구합니다.
 
루이스 레너드:숫자라면··· 역시 그 시계가 마지막으로 가리키던 시간이겠지? (몰라서 묻는 것이 아닌, 그저 동의를 구하고자 하는 확신에 가까운 물음을 건네고는 숫자를 입력해본다. 5시 10분 4초니까, 051004···.)
 
비올라의 끄덕임을 배경으로 051004를 입력하자, 도어락은 삐 소리를 내며 에러를 표시합니다.
 
아무래도 그 숫자 그대로는 답이 아닌 모양입니다.
 
루이스 레너드:(예상 범위 내에 있었다는 듯 별로 놀라지 않는다.) 디지털 숫자를 반전한다면 올바른 값이 나올 수가 없으니··· 그럼 이번엔 반대로. (400150을 입력해본다.)
 
400150을 입력하자 비로소 짧고 경쾌한 노랫소리와 함께 도어락이 풀립니다.
 
루이스 레너드:들어가자. (가볍게 말하지만 몸은 긴장 상태를 유지한다.)
 
비올라 카지안:(무엇이 기다리고 있을까. 경계 태세를 취한 채 짧게 고개를 끄덕이곤 굳은 낯으로 발을 내디뎠다.)
 
상가 안으로 진입하면 텅 빈 복도 종점에 엘리베이터가 서 있습니다.
 
문을 활짝 열고 타이머들을 반긴 채.
 
두 사람이 올라타면 버튼은 딱 하나만 불이 들어와 있습니다. 지하 2층.
 
루이스 레너드:··· 복잡하게 생각할 것 없는 거 하나는 좋네. 대놓고 오라고 하니, 가 줘야겠지? (버튼을 누르며)
 
비올라 카지안:꼭 우릴 기다리고 있었던 것 같네. (짐승이 벌린 아가리 안으로 기어들어가는 기분이다. 아무도 없이 고요한 상가에 엘리베이터 하나만 열려 있으니 더욱 음산하다.)
 
버튼을 누르면 기다렸다는 듯이 문이 닫히고, 도르래가 움직이고, 캄캄한 땅 아래 멈춰 섭니다.
 
전기가 나간 건지, 불이 꺼진 건지, 한 치 앞을 구별하기 어려울 정도로 사위가 어둡습니다.
 
엇갈리지 않으려면 목소리를 더듬어 손을 잡고 이동해야 합니다.
 
고요한 어둠 속에서 싸늘한 소독약 냄새가 콧잔등을 간지럽힙니다.
 
병원, 연구소, 실험실. 그런 위험한 곳에 으레 따라오는 향취인지라 불안감이 한껏 고조됩니다.
 
루이스 레너드:(쓸 수 있는 손의 개수에 제약이 생기니 더 예민해진 기분이다. 주위를 경계하며 어둠 속을 더듬어, 혹시 잡히는 스위치가 있는지 찾아본다. 먼저 불을 켜야겠지.)
 
비올라 카지안:엄청 어둡네. (혹시나 어둠 속에서 신화생물이 튀어나올지도 모른단 생각에 긴장이 고조된다. 손을 맞잡은 채 조심조심 걸음을 옮기며 스위치를 찾으려 했다.)
 
<행운> 판정
 
루이스 레너드:
기준치: 68/34/13
굴림: 90
판정결과: 실패
 
비올라 카지안:
기준치: 50/25/10
굴림: 100
판정결과: 대실패
 
비올라는 그만 뭔가에 걸려서 대차게 넘어집니다.
 
비올라의 손을 잡고 있던 루이스까지 함께 몸의 중심이 크게 흔들리고 맙니다.
 
비올라 카지안:꺅! (우당탕) 미, 미안해 루이스!
 
루이스 레너드:윽, (휘청거리며 몸의 중심을 잡기 위해 노력한다. 반대 손을 내밀어 비올라를 일으킨다.) 아냐, 괜찮아. 그보다 다치지는 않았어?
 
비올라 카지안:음, 아마도. 뾰족한 물건이 있는 것 같지는 않고…… (바닥을 더듬거리다가 루이스의 손을 붙잡고 비틀거리며 몸을 일으켰다.) 그냥 팔이 좀 욱신거리는 정도야.
 
두 사람은 이후로도 몇 분을 더 헤매다가, 겨우 복도 중간에서 스위치를 찾을 수 있었습니다.
 
달칵. 천장의 형광등이 희게 달아오르고, 곧 모든 것이 밝은 빛 아래 들어섭니다.
 
그곳에는…….
 
삭막한 연구실이 고스란히 구현되어 있습니다.
 
듬성듬성 책이 꽂힌, 구색만 갖춘 [책장]과 새하얀 [실험대], 서랍도 의자도 없는 외톨이 [책상]이 전부입니다.
 
루이스 레너드:(한참을 어두운 채로 있다가 마주한 빛에 눈을 찡그린다. 곧이어 시야에 들어오는 것은 전형적인 연구실의 모습. 보통 이런 상황에서는 기록을 확인하는 것이 우선이겠거니, 그렇게 생각하며 천천히 책장으로 다가간다.)
 
책장에는 과학 이론, 철학 사상, 수학 난제에 관한 책이 잡다하게 꽂혀 있습니다.
 
<자료조사> 판정
 
루이스 레너드:
자료조사
기준치: 70/35/14
굴림: 53
판정결과: 보통 성공
 
책의 배열이 대칭이란 걸 발견합니다.
 
시작이 과학 서적이라면 끝도 과학 서적, 앞에서 두 번째가 수학 서적이면 뒤에서 두 번째도 수학 서적인 식입니다.
 
그렇게 대칭을 맞춰 나가자 딱 한 권, 짝 없는 책이 남습니다.
 
「악마의 풀」.
 
루이스 레너드:(식물학 서적인가? 책을 펼쳐본다.)
 
쐐기풀, 은방울꽃, 복수초……. 흉흉한 제목에 걸맞게 각종 독초를 다루고 있습니다.
 
루이스 레너드:(유일하게 대칭이 맞지 않는 책인 걸 보면, 단순히 독초를 다룬 도감만은 아닐 거라는 생각이 들지만··· 지금으로써는 할 수 있는 게 더 없어 보인다는 판단에, 책을 다시 꽂아놓고 책상으로 다가간다. 수기 같은 게 있으면 좋을텐데.)
 
비올라 카지안:루이스, 잠시만. 여기에 연구일지 같은 게 있어. (마찬가지로 박사가 직접 남겼을 만한 자료를 찾아보다가 실험대 근처에서 루이스를 부렀다.)
 
루이스 레너드:그래? 알았어. (책상으로 향하다 말고 멈칫, 비올라가 있는 실험대 근처로 다가간다.)
 
스테인리스 스틸이 눈부시게 빛나는 실험대 위에는 현미경과 복잡한 계산식, 그래프가 가득한 [연구일지]가 흩어져 있습니다.
 
상부 선반에 나열된 [표본병]은 대조적으로 가지런합니다.
 
루이스 레너드:이 방을 쓴 사람, 누군지는 몰라도 종잡을 수가 없네. 지저분한 건지 깨끗한 건지···. (중구난방하게 흩어진 연구일지를 비슷해보이는 것끼리 잡아다 정리하며 읽는다.)
 
O'clock Serum. DOT에서 지을 법한 이름입니다. 목차는 다음과 같습니다.
 
(Ⅰ) 제조 방법 / (Ⅱ) 작동 원리 / (Ⅲ) 부작용.
 
책장에서 발견한 책을 뒤져 벨라돈나의 데이터를 확보할 수 있습니다.
 
루이스 레너드:(일지를 읽다보면 머릿속을 퍼뜩 스치고 지나가는 단어가 있다. 생뚱맞게 왜 독초 관련 책이 있나 했더니···.) 잠시만, 아까 책장에서 벨라돈나가 적힌 부분을 봤어. (그리고 책장으로 걸어가 책을 가지고 온다.) ··· 찾았다, 여기야.
 
O'clock Serum, 숙주, 피로 여는 관문.
 
헷갈릴 수도 없이 혈청의 숙주를 확신하게 만드는 단서들.
 
96명의 클라커들은 당신의 피로 말미암은 인공적인 사역이었습니다.
 
<이성> 판정 (1/1D2).
 
루이스 레너드:
SAN Roll
기준치: 74/37/14
굴림: 97
판정결과: 실패
rolling 1d2
 
(
2
 
)
 
 
=
2
 
이성 2 감소.
 
루이스 레너드:(그토록 궁금했던 '만들어진 영웅'의 정체가 바로 이런 것이었다니···. 심지어 연구자들이 그들에게 붙여준 명칭은 '클라커'처럼 멋들어진 이름도 아닌, '숙주'. 벨라돈나 추출물이 도움이 된다는 사실을 발견해내기까지 얼마나 많은 이들이 희생당했을까. 그런 연구 따위에 제 피가 쓰였단 생각을 하니 역겹기 그지 없어, 표정이 일그러지는 것을 참을 수가 없다. ··· 어떤 누가, 감히 이런 생각을 해냈을까. 지구일까? 도밍게즈일까? 그러다 스치는 생각은, '내가 두 행성을 잇지만 않았더라면 이런 일은 벌어지지 않았을까', 하는 것. 나는 결국 로잘린 애버리지를 두 번 죽인 거구나. 힘이 쭉 빠진다.)
 
비올라 카지안:숙주라는 게 대체 뭘 가리켜는 건가 했는데…… (안색이 창백해졌다. 손이 여리게 떨려 왔다.) 건강검진을 위해서라고 했잖아. 난 그 말만 믿었는데. 내 피가 클라커를 만들기 위해 쓰였다고? (클라커 프로젝트에 대해 이상할 정도로 우리에게 함구한 이유가 다 있었던 것이다, 결국은. 로잘린도 저의 피를 주입받았을지도 모른다 생각하니 속이 뒤틀리는 듯했다.)
 
이어 <행운> 판정
 
루이스 레너드:
기준치: 68/34/13
굴림: 63
판정결과: 보통 성공
 
연구 일지 뒷장에 붙은 포스트잇을 발견합니다.
 
루이스 레너드:(착잡한 마음에 포스트잇을 구긴다. 가지런히 진열된 표본병을 하나 들어올려 내용물을 확인한다. 설마 이게··· 그 세럼이라는 건가.)
 
투명한 병에는 각종 표본이 담겨 있습니다.
 
라벨링이 되어 있어 내용물을 식별하긴 어렵지 않습니다.
 
블루베리를 닮은 열매가 총총 매달린 가지는「벨라돈나」,
 
불규칙하게 부서진 돌조각은「신성한 손가락」,
 
마지막 병은 깨져선 텅 비어 있습니다.
 
라벨의 명칭은……「고등 쇼고스」.
 
<관찰력> 판정
 
루이스 레너드:
관찰력
기준치: 75/37/15
굴림: 86
판정결과: 실패
 
예상 외 이름의 등장에 당황했나요? 혹은 너무 많은 정보가 한눈에 들어와서일까요. 주변은 잘 눈에 들어오지 않습니다.
 
루이스 레너드:(전혀 생각도 못한 이름의 등장에 당혹감을 숨길 수가 없다. 눈을 크게 두어 번 깜빡이고 다시 집중해본다.)
관찰력
기준치: 75/37/15
굴림: 11
판정결과: 극단적 성공
 
마음을 가다듬고 다시 둘러보자, 깨진 병에서부터 연구실 문까지 끌린 뭉근하게 녹은 자국을 발견합니다.
 
단언컨대, 고등 쇼고스가 도망친 흔적입니다.
 
게이트가 열린 흔적이 없는데도 등장한 고등 쇼고스의 출처는 여기서 밝혀집니다.
 
루이스, 당신이 3년 전에 사냥한 개체의 유체였습니다.
 
트로이 목마는 이미 내부에 들어왔던 것입니다.
 
애벗 박사가 무엇을 위해 이런 자료들을 빼돌린 건진 모르겠지만, 여기서 출발한 건 틀림없습니다.
 
루이스 레너드:(언제 어떻게 이 유체가 빼돌려진 것인지도 모르겠지만, 그로 인해 발생한 결과는 황당하기 그지 없다. 결국 여기서 탈출한 신화생물이 사람을 셋이나 죽였다. 어쩌면 그보다 더 많이 죽었을지도 모른다. ··· 인간이란, 모름지기 그저 위기에 대응하는 것에서 한 단계 발전해 타개책을 찾아내는 존재다. 그런 관점에서 본다면 애벗 박사는 훌륭한 인물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희생을 당연시해서는 안 된다. 희생이란 아주 불가피한 것이어야만 하고, 대의라는 거창한 명분 하에서나 가능해야 한다. 그게 타이머로 활동하며 내가 쌓아온 지론이다. 여우가 사자를 잡아먹은 꼴이지 않은가. ··· 애초에 그것들은 여우 따위였던 적이 없지만.)
(침울한 마음으로 책상까지 걸어간다. 만일 빼돌려진 게 이것 하나가 아니라면 어떻게든 빨리 찾아내야 한다. 더 큰 피해는 막아야 한다. 이를 위한 정보를 충분히 모을 수 있으면 좋을텐데···.)
 
책상에는 마치 나를 열어보라는 듯 꽉 닫힌 노트북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노트북을 열면 여섯 자리의 패스워드를 다시 요구합니다.
 
루이스 레너드:(들어올 때와 동일한 비밀번호일까? 일단은 처음 숫자 그대로 051004를 입력해본다.)
 
열리지 않습니다. 틀린 비밀번호인가 봅니다.
 
루이스 레너드:(그럼 아까처럼 반대로, 400150을 입력한다.)
 
400150을 입력하자 잠금이 풀립니다.
 
펼쳐진 배경화면은 깨끗하게 정리된 채, 인수인계라는 제목을 단 폴더만 남아 있습니다.
 
안에 든 건 순서대로 [텍스트 파일], [음성 파일], [이미지 파일]입니다.
 
루이스 레너드:(텍스트 파일을 더블 클릭한다.)
(인류의 숙적은 타이머다, 라···. 애벗 박사가 남긴 것으로 추정되는 메모를 읽으며 허탈한 웃음을 속으로 삼킨다. 다른 사람이면 몰라도, 우리 피로 생체 실험을 한 사람에게 들을 말은 아닌 것 같은데. 그런 생각을 하며 텍스트 파일 위에 이미지를 띄운다.)
(생경한 명함에 의아하던 것도 잠시, 클라커 관련 모니터링을 하다가 발견했던 이름이라는 사실을 깨닫는다. 이런 인물에게까지 연락을 시도했다는 것은 DOT가 철저하게 박사를 막았다는 뜻이겠지. 그 과정에서 박사의 통제가 힘들어지자 죽임으로 입을 막았을 것이고. ··· 약간은 놀랍다. DOT가 아무리 군사 집단이고, 인류의 존속을 위해 뭐든 한다지만, 이런 짓까지 저지를 것이라고는 생각해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 그 블로거, 진실을 폭로하겠다는 장담 뒤 아무것도 올라오지 않아 비난 깨나 받았던 걸로 기억하는데. 박사와 연락 자체는 닿았던 걸까? 그런 의문을 품으며 음성 파일을 클릭한다.)
 
비올라 카지안:(연구일지부터 표본병까지, 이미 본 것만으로도 충분히 착잡한데 노트북의 파일이 화룡점정을 찍는 기분이다. 몰아치는 혼란과 상념 탓에 루이스의 말에 제대로 대답도 하지 못하고 화면만을 바라보고 있었다.)
 
애벗 박사가 남긴 녹취록.mp3
 
시계가 없는 방 안에 초침이 째깍거리는 소리가 요란합니다.
 
가빠지는 호흡 틈새 화려한 장미 향기가 흠뻑 폐를 파고듭니다.
 
질식해 죽길 바라는 것처럼 지독하게.
 
비올라 카지안:(이미 창백하던 안색이 점점 더 희게 질렸다. 장소를 특정해냈을 때 들었던 불길한 직감은 이것 때문이었을까. 적어도 신화생물 같은 위협이 있을 줄 알았는데. 신화생물의 강한 힘보다도 진실에 거세게 얻어맞은 기분이었다. 목이 졸린 듯 가느다랗고 힘없는 목소리로 속삭였다.) ……왜 우리가 인류의 숙적이라는 거야?
 
연구실을 샅샅이 뒤져도 이 이상의 정보는 없습니다.
 
당장 하슬러 원수를 찾아가 닦달해야 할까요?
 
DOT의 기밀 정보라도 빼돌리면 알 수 있을까요?
 
애벗 박사의 무덤에 대고 묻고 싶을 지경입니다.
 
“지금 도밍게즈는 명백한 전시. 타이머는 유일한 영웅이야.”
 
“그 상징성은 절대 훼손되어선 안 돼.”
 
추호도 의심해 본 적 없건만.
 
구원이라는 한 점을 믿을 수 없게 된다면.
 
오직 오류, 맹목, 허위만이 구원을 증명한다는 걸 눈치 챘다면.
 
영웅이야말로 인류가 눈치 채지 못한, 가장 오래된 거짓말이었다면…….
 
비올라 카지안:[루이스는…… 이런 생각 해봤어? 타이머나 카운터- 아, 여기에선 카운터가 없지만. 아무튼, 그들이 사라진다면 세계는 멸망할까?]
[모르겠어. 타이머는 존재만으로도 시공간을 구원하는 존재. 분명 그리 배우고 자랐는데…… 이제 와 돌아보면 꼭 그렇지만도 않았던 것 같아서.]
 
애매모호한 얼굴로 창밖을 내다보던 과거의 비올라를 떠올립니다.
 
왜 불길한 예감은 틀리는 법이 없는 걸까요.
 
루이스 레너드:('타이머는 세계를 구원할 영웅이다'라는 불변의 명제와 '타이머는 인류의 숙적이다'라는 애벗 박사의 명제가 충돌한다. 명쾌히 답을 내려줄 수 있을만한 인물 중 하나는 죽었고, 다른 하나는 '인류 수호'라는 목적 이외에는 입밖으로 꺼내는 말이 없다는 점에서 없으니만 못하다. 지끈거리는 머리를 붙잡고 한참을 컴퓨터 화면을 응시하다 어렵게 말을 꺼낸다.) ··· 그래서, 이젠 우린 뭘 해야 하는 걸까. 그 애 언니가 어떻게 죽었는지 알려줄 수도 없고, 이 모든 사기극을 숨긴 하슬러 원수를 찾아갈 수도 없어. 뭘, 뭘··· 어떻게 해야.
 
이제 우린 뭘 해야 할까요. 누구에게 찾아가 따져물어야 하는 걸까요. 무력함이 몰려오던 그때,
 
거친 파도로 자란 의심이 존재의의를 흔들어대도 세상은 당신을 부릅니다.
 
귓전을 울리는 목소리가 촉박하기 짝이 없습니다.
 
돕고 싶다며 의연하게 굴던 로잘린이었는데, 변수가 생긴 모양입니다.
 
루이스 레너드:··· 타이머 루이스, 무전 받았습니다. 즉시 출동하겠습니다. (귓가를 톡톡 두드려 응답을 종료한다. 머리와 마음이 아무리 시끄럽게 떠들어 대더라도, 몸에 새겨진 이 구원자 본성은 사라지지 않는다. 힘겹게 기운을 내려고 애쓰며 스트레칭을 한다.) ··· 일단은, 갈까. 박사가 남긴 것에 대해서는··· 이것부터 해치우고 생각해보자.
 
비올라 카지안:응, 그래. (급박한 무전을 듣자 폭풍처럼 복잡하던 뇌내가 단번에 정리된다. 실재적인 위기 앞에서 상념 따위가 고개를 들 자리는 없다. 한결 정돈된 낯으로 텔레미터를 꺼냈다.) 로잘린한테 큰일이 생기지는 않았어야 할 텐데.
 
텔레미터로 도래솔 광장에 출동하려면 <지식> 판정에 성공해야 합니다.
 
루이스 레너드:
지능
기준치: 80/40/16
굴림: 81
판정결과: 실패
 
어쩔 수 없이 집중력이 흔들립니다. 계산에 아주 작은 오차가 생겼습니다.
 
루이스는 광장 중앙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도착합니다.
 
어디에 도착했건 게이트나 신화생물은 보이지 않습니다.
 
시야를 휙휙 전환해도 로잘린의 흔적조차 발견할 수 없습니다.
 
캄캄한 밤인데도 인파가 상당한 탓입니다.
 
비올라 카지안:이 시간에 사람이 왜 이렇게 많지……?
 
루이스 <관찰력> 판정
 
루이스 레너드:
관찰력
기준치: 75/37/15
굴림: 16
판정결과: 어려운 성공
 
거대한 분수대는 물을 뿜을 때마다 오묘한 색의 일루미네이션을 밝혀 달 무지개를 형성하고, 가로등은 보도블록 여기저기에 스포트라이트를 떨어뜨립니다.
 
광장에 모인 사람들은 타이머를 발견하곤 동공을 확장시킵니다.
 
관제탑에서 쏘아 보낸 낡은 팝송이 적막한 밤에 착륙합니다.
 
가사 속 카운트다운이 줄어들수록 초조한 기분은 배가됩니다.
 
목표를 찾아 헤매던 중, <듣기> 판정
 
루이스 레너드:
듣기
기준치: 65/32/13
굴림: 94
판정결과: 실패
 
먼발치에서 희미한 목소리가 들려옵니다만, 주인을 구별하기 어렵습니다.
 
루이스 레너드:(주변의 소음에 묻혀 들릴락 말락 하는 소리를 찾아 두리번거리다가, 그냥 직접 찾아가는 편이 빠르겠다는 판단을 내린다.) 비올라! 5시 방향에서 누가 부르는 것 같아. 가 보자.
 
비올라 카지안:알겠어……! (느낌이 좋지 않다. 괜한 텔레미터만 꾹 쥔 채로 사람들을 헤치고 루이스가 말한 방향을 향해 뛰었다.)
 
소리가 들려온 쪽으로 뛰어가자, 다시 한 번 주파수를 잘못 맞춘 라디오처럼 가냘픈 목소리가 들려옵니다.
 
“루이스 님…….”
 
분명히 로잘린 애벗의 목소리입니다.
 
그곳에는 시민들이 모여 있습니다.
 
버스킹을 감상하듯 둥글게 모인 채 이쪽을 바라봅니다.
 
낯선 신발 사이로 빠져나온 낯익은 소매가 보입니다.
 
스포트라이트를 받은 손등은 흉측하게 녹아내렸습니다.
 
이미 오른팔을 잡아먹힌 로잘린은 공포에 질린 목소리로 외칩니다.
 
로잘린 애버리지:전, 전부 인간이 아니에요!
 
쏟아지는 시선은 익숙해서 괴리감을 느끼지 못했습니다.
 
외마디 비명에 찬물을 맞은 것처럼 화들짝 정신을 차립니다.
 
가로등을 빗겨선 사람들은 동공을 확장시킨 채 루이스와 비올라를 바라봅니다.
 
노래 가사가 선명할 정도로 숨죽이고선.
 
게이트가 열렸다면, 신화생물이 등장했다면, 절대 불가능한 풍경입니다.
 
루이스는 면면 중 익숙한 이들을 관측합니다.
 
일가족 살인 사건의 피해자인 남편 A 씨와 아내 B 씨, 제1번 클라커 로잘린, 사진으로나 보았던 몇몇 클라커들.
 
인두겁을 뒤집어 쓴 고등 쇼고스 군집과 조우한 루이스, <이성> 판정 (0/1D3).
 
루이스 레너드:
SAN Roll
기준치: 72/36/14
굴림: 92
판정결과: 실패
rolling 1d3
 
(
1
 
)
 
 
=
1
 
이성 1 감소.
 
시민과 클라커들의 얼굴을 한 쇼고스들은 두 타이머를 한 점으로 두고 몰려듭니다.
 
똑같은 말을 주문처럼 되뇌며.
 
로잘린을 먹은 고등 쇼고스가 손에 쥔 고깃덩어리를 내다 버리며 불평합니다.
 
입맛을 다시는 소리가 질척질척하게 고막에 달라붙습니다.
 
토끼는 당근을 먹고,
 
여우는 토끼를 먹고,
 
사자는 여우를 먹고,
 
외우주의 신은 소우주의 신을 먹습니다.
 
작은 신격을 삼켜 강력한 신격을 얻기 위해.
 
그렇게 밝혀지는 진실 하나.
 
타이머는 구원자도, 영웅도 아닌 먹이였습니다.
 
권능도 이제는 고쳐 적읍시다. 생존본능이라고.
 
아, 영웅의 서사시는 갈가리 찢겨 식탁 위 냅킨으로 전락합니다.
 
기실 세계 멸망은 신의 부재가 아닌 신의 존재에서 기인했던 셈입니다.
 
두 사람 다 <이성> 판정 (0/1D5).
 
루이스 레너드:
SAN Roll
기준치: 71/35/14
굴림: 64
판정결과: 보통 성공
 
비올라 카지안:
SAN Roll
기준치: 50/25/10
굴림: 70
판정결과: 실패
2
 
비올라 이성 2 감소, 루이스 이성 감소 없음.
 
루이스 레너드:(사람인줄로만 알았던 것들이 전부 괴물 집단이라는 것을 깨달아 버리고, 생명체로서의 본능에 따라 주춤거리다가도, 팔을 뜯어 먹힌 채 비명을 내지른 로잘린을 외면할 수도 없어서, 그저 머릿속이 하얘진다. 당장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비올라의 팔을 꼭 잡는 것뿐.
그리고 파트너와 접촉하는 순간, 힘이 공유되며 불현듯 또 다른 깨달음이 찾아온다. 이런 끔찍한 상황이 찾아왔을 때 냉정을 찾는 것은 제 역할이라는 것과, 어찌 되었든 자신은 비올라를 지키기 위해 최선을 다해야 한다는 것. 그러자 떨림은 조금 멎게 된다. 싸워야 할 적들에게서 시선을 피하지 않고, 두려워 하지도 않으며, 늘 그래왔던 것처럼 정면을 똑바로 응시한다.)
··· 비올라, 어쨌든 싸워야 해. 서로를 지켜주기로 했던 약속 기억하지. 난 너를 지키기 위해 싸울 거야. 그러니 너도 날 지켜줘. (말은 그렇게 해도, 사실 자신은 없다. 이렇게 많은 수를 상대로 사지 멀쩡히 이길 수 있을지···. 그렇지만 내가 그런 티를 내면 안된다. 소심하고 겁 많은 내 파트너, 단순히 보기에는 어떻게 타이머 일을 이어나갈 수 있는지 의심될 정도로 유약한 내 파트너. 하지만 누구보다도 더 큰 용기를 낼 수 있는 사람인 걸 나는 안다. 그리고 그 용기를 끌어내는 방법은··· 이런 거지.) ··· 저 아이까지 구해서 돌아가자.
(비올라에게 속삭인다. '내가 주의를 끌테니 먼저 저 아이를 구해. 이후에 차근차근 한 마리씩 정리해가자.' 그리고선 평소에는 성격상 절대 하지 않을 짓을 한다. 아주 크고 당당하게, 호쾌하고 대범한 사람인 척 소리를 지르는 것.) 누가 먹혀주려고 지금껏 살아온 줄 알아? 토끼도 궁지에 몰리면 여우를 문다는 걸, 너희 같은 것들이 이해나 할까!
 
비올라 카지안:거짓말이지……? (망치에 세게 얻어맞은 것처럼 눈앞이 흐렸다. 진실에 강타당한 온몸이 사시나무처럼 떨려 왔다. 앞으로 나서려고 했었나? 로잘린을 찾아 감싸려고 했었나? 목적과 목표가 순식간에 표백되어 버린 몸은 갈피를 잃고 숫제 비틀거리기 시작했다.)
(타이머로서의 삶이 아무리 고통스럽고 버거워도 꾹 참으며 버텨 온 건, 제가 무너지면 시민들까지 죽어나가리라는 책임감 때문이었다. 영웅이란 칭호를 과분하게 여기면서도 저의 모든 능력을 아낌없이 세상에 환원했다. 신에게 내려받은 권능이었으니까. 사람들을 지키기 위해 받은 힘이라고 믿었으니까. 그런데,)
내가, 내가 세상을 망가지게 하는 이유였다고……? (핏기가 싹 가셔 허옇게 질린 입술 새로 클라커보다도 가녀린 중얼거림이 흘러나왔다. 그가 만약 조각상이었다면 이 순간 산산이 부서졌을 테고, 나무였다면 뿌리까지 뽑혀 버렸으리라.)
(루이스의 목소리가 귓가에서 웅웅거렸다. 파트너의 말은 항상 경청했었는데, 지금은 잘 들리지 않았다. 고개를 들었다. 초록빛 눈에 비치는 건 그들이 물리쳐야 할 쇼고스 떼가 아닌 새까만 공허뿐이다.) 못 해. 못 하겠어. 나, 나는…… (맞잡고 있던 손에서 힘이 빠졌다.)
 
루이스 레너드:(비올라가 힘을 뺀 만큼 제 손에 힘을 더한다. 비올라도 로잘린도 없이 오롯이 홀로 싸워내야 할 최악의 가능성을 염두에 두며 파트너를 더 격려해본다.) 힘들겠지만, 내 말이 온전히 받아들여지지도 않겠지만, 잘 들어. 너나 나나 잘못한 것 없어. 우리가 선택한 적도 없고 벗어날 수도 없었던 이 길의 원죄를 우리에게 돌릴 순 없어. 굳이 따진다면 신격이라는 걸 가진 주제에 우리 같은 하등 문명 사회의 규칙도 지키지 못하는 저 괴물들에게 돌려야겠지. ··· 일어나라고 강요하지는 않을게. 하지만 나는 널 위해 싸울 거라는 그거 하나만 기억하고 있어줘. ··· ··· 그리고 나는 비올라 네가 상상할 수 없이 큰 용기를 가진 사람이란 걸 알아.
 
바람 앞 등불처럼 위태로운 파트너를 뒤로하고, 루이스는 전투 태세를 갖춥니다.
 
허기에 아우성치는 고등 쇼고스 군집과의 전투가 시작됩니다.
 
스킬의 데미지가 해치운 쇼고스의 마릿수가 됩니다.
 
현재 도래솔 광장을 점거한 고등 쇼고스는 총 30마리입니다.
 
루이스 레너드:(우선은 방어적으로 길목을 좁혀 놓아야 한다. 당장 사용할 수 있는 거치물이 없으니, 저것들의 몸으로라도 막아야지. 전방위로 가루를 흩뿌려 가장 근접하게 다가오는 무리들을 무력화시킨다.)
수면가루
기준치: 100/50/20
굴림: 83
판정결과: 보통 성공
피해: 21
 
피해가 더 번지지 않도록, 재빠르게 광장의 구조를 확인하고 계획을 구상합니다.
 
거의 본능에 가까운 대처 능력으로 쇼고스 21마리를 죽음 같은 잠에 빠뜨리는 데 성공합니다.
 
보통 당신이 먼저 나서면, 그 뒤에서 비올라가 생장시킨 식물들로 받쳐주는 쪽이었죠.
 
그러나 평소와 같은 연계는 이어지지 않습니다.
 
그 틈을 타 남은 쇼고스들이 달려듭니다. 당장이라도 사지에 달라붙을 것처럼 아가리를 벌리고, 그 사이로 열기를 품은 거품이 흘러내립니다.
 
비올라 카지안:(파도처럼 몰아닥친 충격이 그를 삼켜, 도무지 벗어날 수 없을 것만 같았다. 잘못한 게 없다고? 태어난 것부터가 잘못된 게 아닐까? 극한의 스트레스에 놓인 뇌내는 극단적인 사고를 향해 치닫는다. 힘이 풀린 다리를 갈무리하지 못하고 그대로 자리에 주저앉았다. 그런 와중에도 제 파트너는 앞으로 나선다. 저 이상으로 성실하게 세상을 위해 나섰으니 분명 그도 혼란스러울 텐데, 그런데도 맞서 싸운다. 를 위해서. 한참 늦게서야 루이스의 말을 제대로 이해했다. 쇼고스들이 달려들며 땅이 묵직하게 진동하자 벼락을 맞은 듯이 정신이 번쩍 들었다. 그는 나를 위해 싸우는데, 그를 내팽개쳐 두고 무책임하게 가만있을 수만은 없다. 주저앉은 그대로 양손을 땅에 찍어눌렀다. 창 같은 거대한 줄기가 대지를 뚫고 자라나 쇼고스들을 꿰뚫었다.)
생장
기준치: 100/50/20
굴림: 21
판정결과: 어려운 성공
피해: 24
(초록빛으로 일렁이는 줄기를 차라리 제 목에 감고 싶은 심정이었고, 몇 가닥은 땅을 타고 그의 가슴팍까지 기어올라오기도 했으나, 결국 행하지는 못했다. 제가 죽어도 또 다시 새로운 타이머가 태어나 자리를 대체할 뿐이라는 사실을 아주 잘 알았으니까.)
 
쇼고스들이 드러낸 뭉툭한 치아에 루이스의 군복이 찢기기 직전, 비올라의 날카로운 줄기들이 나타납니다.
 
푸른 식물들이 여남은 쇼고스를 전부 휩쓸어 버립니다.
 
더 이상 분열할 수 없도록, 흔적조차 남기지 못하도록, 말라붙어 부스러지도록.
 
미스터 블랙의 고발에 생존자들이 술렁거리기 시작합니다.
 
이게 무슨 소리야? 통제 불가능한 생중계가 쌍둥이 행성을 혼란에 빠뜨립니다.
 
쏟아지는 시선은 벌써부터 피부를 따끔따끔 찔러댑니다.
 
타이밍 좋게 노래가 끝납니다.
 
창백하고 푸른 점들은 타이머를 의심하기 시작할 것입니다.
 
진실을 깨닫고도 인류는 우리를 필요로 할까요?
 
달이 저물기 전, 루이스는 결단을 내려야 합니다.
 
이대로 떠나거나 그대로 남거나.
 
루이스 레너드:(비올라가 일어나 함께 싸워줬다는 사실에 기뻐할 새도 없이, '타이머는 인류의 숙적이다'라는 비수같은 고발이 날아든다. 스스로도 아직 생각 정리가 안 됐는데, ··· 참 잔인하구나. 씁쓸한 마음에, 지금까지 제가 지켜왔다고 생각했던 도시를 바라본다. 엉망이 된 광장과 불안해하는 시민들의 표정을.
··· 영웅이라는 건, 과연 어디까지 영웅이어야 하는 걸까? 타이머가 불러들인 재앙이라면, 그 재앙을 안고서 함께 끝을 내줘야 하는 걸까? 스스로를 번제하는, 진정한 의미의 '구원자'가 되어야만 하는 걸까? 하지만 그러고 싶지 않다. 그것은 내가 지금껏 해 온 모든 일을 부정하는 것이며, 곧 타이머가 인류의 숙적이라는 명제를 직접 인정하는 꼴이 된다. 다수를 위해 소수를 희생하는 거, 다 좋다. 하지만 그런 오명을 뒤집어 쓴 채로는 안 된다. 하물며 내가 원해서 타이머가 된 것이 아닌데, 온전히 남을 수는 없게 되더라도 떠나는 것만큼은 받아들일 수 없다.)
··· ··· 방금 있었던 일 때문에 시민 여러분들의 심려가 크실 줄 압니다. 고발··· 이라는 것에 대해서도 각자 생각하시는 바가 다르실 겁니다. 하지만··· (숨을 한번 들이쉰다.) 한 가지 확실하게 말씀드릴 수 있는 것은 있습니다. 저는 도밍게즈의 제3시 타이머, 루이스 레너드입니다. 어떤 경로로든 저를 접하셨을 것이고, 저와 제 파트너가 활동해온 궤적을 아실 것입니다. 단언하건대, 세계를 구하겠다는 일념으로 달려온 그 궤적에는 어떠한 거짓도 없습니다. 우리는 언제나 우리가 택하지 않은 이 과업을 위해 싸워왔습니다. ··· 그러니, 우리가 어떠한 존재라 규정하고 싶다면, 나와 내 파트너, 내 형제들이 살려낸 목숨들부터 부정하십시오. (그렇게 말하는 목소리는 전투 등으로 인해 피로함이 잔뜩 묻어난다. 하지만 떨림은 없다.)
 
비올라 카지안:(두꺼운 식물 줄기를 붙잡고 겨우 몸을 일으켰다. 하얀 망토는 먼지와 흙이 묻어 거뭇해졌고, 머리칼은 흐트러지고 옷깃도 구겨져 꼴이 엉망이다. 다리엔 여전히 힘이 잘 들어가지 않는다. 지금까지 난 무얼 위해 살아온 걸까. 세상을 구하는 줄 알았는데 신화생물의 품으로 밀어넣는 꼴이었다. 모든 인류가 저를 적대한다 해도 할 말이 없다. 하지만, 아무것도 몰랐다. 아무도 알지 못했다. 타이머가 노려졌다는 사실을, 그들의 권능이 유혹하는 먹이나 다름없었다는 내막을 그 누구도 몰랐다. 타이머조차도.)
(파트너가 신화생물에게 당하도록 둘 수 없다는 본능으로 능력을 발휘했지만 여남은 힘을 모두 소모해 버린 듯 온몸이 무거웠다. 루이스의 뒤에 그림자처럼 선 채 고개를 푹 숙이고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시민들을 마주할 용기가 나지 않았다. 저를 향해 쏟아질 선명한 적개심과 비난을 받아들일 자신이 없었다. 루이스는 비올라가 내면에 용기를 품고 있다고 여기지만, 모든 진실이 까발려진 순간 그는 이렇게도 초라하고 무력해진다.)
루이스……. (수군거리는 시민들을 보지 않고, 그의 옷깃을 살짝 붙잡으며 희미하게 속삭였다.) 우린 이제 어떻게 해야만 할까.
세상에 우리가 발 붙일 곳이 남아 있기는 할까?
 
루이스 레너드:(괴로운 기색이 역력한 파트너의 얼굴을 바라본다. 힘을 내서 함께 맞서 싸워준 것만으로도, 비올라는 제 최선을 다 했다. 이런 가치 판단의 문제는 정답이라는 게 있을 수 없는 만큼 비올라에게 향하는 비난을 내가 막을 수도 없고, 그로 인해 괴로워하는 비올라의 힘이 되어줄 수도 없다. 내가 유일하게 할 수 있는 것은, 그리고 아직도 해야 하는 것은, 파트너 곁을 지키는 일. ··· 그렇게 하기로 두 세계의 비올라 모두와 약속했었으니까.) ··· 없을 이유가 없지. 우리가 우리의 이익을 위해 싸운 적은 단 한번도 없어. 모든 것은 오로지 지키기 위함이었고, 그 모든 게 반전된 거였다 한들 우리의 의지까지 바뀌진 않아. 그러니··· 남아서 계속 싸워야지. 함께···. (파트너의 어깨에 손을 얹는다.)
 
비올라 카지안:(메마른 낙엽처럼 입안이 말라붙었다. 뺨을 타고 소리없이 눈물 한 방울이 흘러내렸다. 물방울이 땅에 떨어지기 전 눈을 천천히 내리감았다.) 네 말이 맞아. 우리는 세상을 위해 싸워 왔고 앞으로도 그렇겠지. 죽을 때까지. (우리는 타이머이기 이전에 사람이다. 전 인류의 적이라 해도 신화생물처럼 단번에 존재를 지워버릴 수는 없다.)
네가 남겠다면…… (비올라가 지금껏 품어온 의지와 결의는 산산조각났지만, 루이스와 함께라면 그 조각 하나하나를 다시 주워 이어붙일 힘이 생길지도 모르겠다. 그는 흔들릴지언정 강인하고, 이성적이며, 현명한 사람이니까. 결국 제가 있을 곳은 루이스의 곁이다.) 나도 남을게. (어깨에 얹어진 손을 아주 살짝 맞잡았다가 힘없이 떨어뜨렸다. 모든 것이 너무나 힘겹고 무겁게 느껴졌다. 의무도, 책임도, 생존조차.)
 
루이스 레너드:··· 어려운 결정을 내려줘서 고마워. (마음 약한 제 파트너. 그 누가 죽고 싶어 하겠느냐마는, 백 명을 구해도 그만 놓쳐버리고 만 하나의 생명에 아파하고 자책하는 제 파트너라면, 버티지 못했을 거라는 확신이 강하게 든다. 도밍게즈의 비올라가 지켜달라고 했던 것은 몸이 아니라 마음이었을까. 수없이 다칠 것이 예정된 미래에 함께 남아 주겠다는 그 말의 무게를 알기에, 그저 말없이 파트너를 껴안는다. 어떤 일이 있더라도 옆에 있어주겠다고, 힘이 되어 주겠다고, 그러니 무너지지만 말아달라는 당부와 다짐을 가득 담아서.)
 
비올라 카지안:(끝없는 어둠 속에 갇혀 버린 것만 같다. 루이스의 품에 안겨 눈을 내리감자 구덩이 속으로 몸이 꺼지는 것만 같았다. 그러나 전해져 오는 온기가 비올라를 단단히 붙든다. 모두가 등을 돌려도 마지막까지 저를 믿어줄, 칠흑 속에서 빛나는 단 하나의 등불. 포기할 수 없게 만드는 마지막 버팀목.)
 
그렇게 말하는 것은 애벗 박사만이 아닐지도 모릅니다.
 
표면을 눈부시게 빛내던 전면 유리창은 산산조각,
 
위풍당당하게 섰던 기둥들은 깨진 돌멩이,
 
직전까지 분주히 움직였을 사람들은 차가운 시체가 되어 한 데 섞였습니다.
 
참담한 상황을 몇 번이고 겪었으니까.
 
오직 타이머만을 믿었으니까.
 
우리가 받은 충격만큼 인류가 겪을 배신감도 깊이 깊이 사무치겠지요.
 
누구의 잘못도 아니되 상황은 누구든 탓하고 싶어지도록 극한을 내달릴 것입니다.
 
구원자일 때도, 영웅일 적도 그렇게 외로웠는데, 숙적이자 위험 요소가 되어선들 쉬울 리 없습니다.
 
죄인으로 남거나 배신자가 되어야만 하는 잔인한 때가 도래했습니다.
 
이 글을 읽는 그대.
 
당신의 본질은 어떤 낯을 띠고 있는가?
 
그것은 영웅에게만 존재하는…….
 
END 2. 치명적인 영웅 심리
 
루이스 생존, 비올라 생존
 
:두 사람은 DOT의 묵인하에 오류, 맹목, 허위로 만들어진 영웅으로 완성될 것입니다. 그러나 확실히 알고 있었습니다. 모든 것이 예전과는 달라졌다고.
금이 가기 시작한 것은 언제고 깨지고 만다는 걸.
3부 Final Salute로 이어집니다.
TMI. 벨라돈나는 블루베리를 닮았지만, 독성이 강한 열매입니다. 타이머들을 상징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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