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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219~240220] 아실헬리 - 여름을 말려 심장에 꽂는 법

 

 

플레이타임 : 약 8시간

 

 

 
깜빡.
 
.
 
새벽을 적시던 비는 어느새 폭우가 되어 내리는 중입니다.
 
개학을 하루 앞둔 지금, 아실링은 집에 홀로 남아있습니다.
 
말발굽 소리처럼 휘몰아치는 비, 색을 잃은 잿빛 하늘, 습한 여름.
 
기승을 부리는 여름은 꺾일 기미 하나 보이지 않으매 비는 더위를 감추지 못합니다.
 
특별한 것 없는, 언제나와 같은 일상입니다.
 
TV에서는 캐스터가 강수량에 대해 떠들어대고 있습니다. 그러고 있자니,
 
<듣기> 판정
 
아실링 펜들레엄:(TV를 끄는 것을 깜빡했나? 과하다 싶을 정도로 빗소리에 피곤함을 느끼며 전원을 끄려고 몸을 움직였다. 특별한 것이 없다면 바로 전원을 끌 생각으로 리모컨을 잡는다.)
듣기
기준치: 80/40/16
굴림: 89
판정결과: 실패
 
쏴아아- 매서운 빗소리가 끊이지 않습니다. 이 비는 언제쯤 그칠까요?
 
재판정이 가능합니다.
 
아실링 펜들레엄:
듣기
기준치: 80/40/16
굴림: 4
판정결과: 극단적 성공
 
“8월 하순을 기준으로 역대 최고치의 강수량이….”
 
빗소리보다 조금 더 거칠고, 무게 있는 소리가 들립니다.
 
귀를 기울일 필요는 없습니다. 앵커가 무어라 하든, 그 소리는 점점 더 선명해지니까요.
 
“새벽부터 시작된 비는 전국을 강타했습니다.”
 
--
 
“시간당 100mm로 브리스톨 전역을 시작해 전국에 호우주의보가 내려졌으며,”
 
-똑,
 
“기습폭우로 인한 피해 역시 속출하는 중입니다.”
 
똑똑.
 
확실하게, 누군가가 현관문을 두드리고 있습니다.
 
택배를 시켰던가요? 누가 집에 방문하기로 했던가요? 기억을 더듬어도 그럴 만한 일은 없습니다.
 
그러나 아실링이 어떤 행동을 취하기도 전에,
 
팟-
 
몇 가지 소리와 함께 가전제품들의 불이 꺼집니다. 정전입니다.
 
우중충한 하늘 덕에, 잿빛이 슬금 들어온 집안은 낮임에도 어둑합니다.
 
인터폰마저 지직, 뚝. 끊겨 버립니다.
 
문을 두드리는 소리는 정전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끊이지 않습니다.
 
어째 예감이 좋지 않네요. 문을 열어줄 건가요? 아님, 조용히 그 누군가를 무시할 건가요?
 
아실링 펜들레엄:(발꿈치를 들어 발소리가 들리지 않게 살금살금 문쪽으로 다가간다. 문을 두드릴 사람이 누가 있던가? 예상되는 사람이 없기에 대답만 가만히 기다린다.)
 
“…”
 
“…아실?”
 
다행히도 이름 모를 방문객은 아닌 모양입니다.
 
익숙한 목소리, 헬레네입니다.
 
창밖에 비가 이리도 사납게 쏟아지는데, 무슨 이유로 연락도 없이 찾아온 걸까요.
 
아실링 펜들레엄:헬리? (자신을 부르는 익숙한 애칭. 언제나 반가운 목소리였으나 이번에는 단순히 반가움만 있지는 않았다.) 오늘 같은 날씨에 여기까지는 무슨 일로...? (대답을 듣기도 전에 문을 열었다. 이런 날씨에 밖에 세워두는 것은 예의가 아닐 테니.)
 
여전히 불 하나 켜지지 않은 실내는 어둑하기만 합니다.
 
대답을 듣기도 전에 문을 열면……
 
뚝, 뚝.
 
흥건히 젖은 바닥이 보입니다.
 
그리고, 물벼락을 맞은 듯 푹 젖은 헬레네도 함께.
 
빗물이 방울방울 매달린 긴 곱슬머리, 하염없이 물이 떨어지는 옷, 또….
 
헬레네 L. 라세리온:…… 아실.
 
당신을 부르는, 파리한 인상의 헬레네.
 
<심리학> 판정
 
아실링 펜들레엄:맙소사..! 헬리. 어쩌다가 물벼락을 맞은 생... 고양이처럼 되신 건가요! (집안이 따뜻한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밖의 날씨에서 서있게 하는 것보다는 덜 춥겠지. 손을 잡고 현관 안으로 이끈다.) 안색이.. 좋지 않은 것 같은데. 괜찮으세요..?
심리학
기준치: 70/35/14
굴림: 64
판정결과: 보통 성공
 
당신을 향한 헬레네의 푸른 눈동자에서 불안이 읽힙니다.
 
당신을 주의깊게 살피더니, 썩 좋지 못한 표정으로 손을 맞잡습니다. 체온이 차갑습니다.
 
헬레네 L. 라세리온:그런 아실은, 아실은 괜찮으신 건가요……?
 
…무엇이?
 
헬레네는 그리 물었다가도, 언제 그랬냐는 듯 표정을 고칩니다.
 
아까처럼 목소리를 떨지 않고, 그저 평소처럼 부드러운 낯으로.
 
헬레네 L. 라세리온:그만 우산을 놓고 나와서, 급하게 아실의 집에 들렸어요. 좀 많이 젖었죠? 추워서 표정이 좋지 않았나 봐요. 그나저나 죄송해요, 물자국이 많이 날 텐데. (걱정스럽게 물이 뚝뚝 떨어지는 제 옷차림과 집 마룻바닥을 번갈아본다.)
 
네모난 상자 속 [뉴스]는 여전히 이번 기습폭우를 다루고 있으며, [화장실]에서는 뽀송한 수건을 가져올 수 있습니다.
 
아, [부엌] 찬장에 고이 모셔둔 티백으로 차가운 헬레네의 몸을 녹일 수 있겠네요.
 
[헬레네]는 젖은 탓에 문간에 우뚝 서 있습니다.
 
아실링 펜들레엄:지금 물 자국이 중요한 게 아닌걸요. 그런 것 신경 쓰지 마시고 우선 안으로.. 거실에서 기다려주세요. (비를 쫄딱 맞은 것만 아니라면 거실까지 가는 길 내내 조잘거리기 바빴을 테지만, 그런 대화는 뒷전으로 밀려났다. 뽀송한 수건을 있는 대로 다 챙기기 위해 화장실로 먼저 이동한다.)
 
습기 가득한 눅눅한 하루라 해도 수건은 뽀송한 게 제구실을 할 수 있겠습니다.
 
수건을 꺼내면서 <관찰력> 판정
 
아실링 펜들레엄:(좀 더 크기가 큰 샤워타월 같은 것은 없나? 두리번거리며 주위를 살펴본다.)
관찰력
기준치: 85/42/17
굴림: 40
판정결과: 어려운 성공
 
가지런히 놓인 칫솔이 눈에 밟힙니다. …원래 저런 색이었던가요?
 
옆 찬장에 큼지막한 샤워타월도 보이네요.
 
아실링 펜들레엄:(큼지막한 샤워타월까지 챙겨서 손에 타월 탑을 만든다. 나가기 전에 칫솔 색깔 확인한다.)
 
칫솔의 색은 빨간색입니다.
 
아실링 펜들레엄:(칫솔 힐끔 보고 고개 기우뚱했다가 거실에서 기다리고 있을 헬레네를 생각하고 바로 빠르게 걸어갔다.) 헬리! 있는 대로 다 가져왔어요! 많이 추우시죠?
 
세찬 비를 맞은 탓인지 헬레네의 낯은 평소보다 창백합니다.
 
그 외 평소와 다른 점은 보이지 않습니다. 아니, 평소와 다른 점이….
 
<관찰력> 판정
 
아실링 펜들레엄:
관찰력
기준치: 85/42/17
굴림: 96
판정결과: 실패
 
찰나, 헬레네의 손등 위로 여린 푸른빛이 반짝거립니다.
 
아실링 펜들레엄:응? (뭔가에 빛이 반사된 건가 싶어 주위 두리번거렸다. 잘못 본 건가?)
 
어둑어둑한 집안에 빛이 반사될 만한 물건은 딱히 없습니다.
 
다시 보면 헬레네의 손등은 멀쩡하기만 합니다. 잘못 본 걸까요?
 
헬레네 L. 라세리온:조금 춥기는 하지만 괜찮아요. (미소한다.) 번거로우실 텐데 죄송할 따름이에요.
 
아실링 펜들레엄:번거롭긴요. (보드랍고 뽀송한 수건으로 물기를 마구 닦아준다.) 제가 비에 쫄딱 맞고 헬리에게 찾아갔으면 헬리도 저와 똑같이 해주셨을 거면서. ... 음, 그래도 저처럼 너무 과하지는 않았을 것 같기도 하네요. (정신 차려보니 긴 타월 포함해서 헬레네를 수건으로 돌돌 감아뒀다.)
 
헬레네 L. 라세리온:(인간 김밥말이? 같은 게 됐다.) 그건 그렇긴 하지만요. 이렇게 큰 타월까지는 안 주셔도 되는데…… 감사해요. (뽀송하게 잘 마른 타월에 감싸져 있으니 따뜻하고 안정이 된다.) 하지만 저도 아실과 비슷했을지도 모른답니다. 일단은 샤워부터 해야 한다고 화장실에 데려갔을 수도……
 
아실링 펜들레엄:...! 제가 왜 그 생각을 못 했을까요? 지금 당장 샤워를...! ... 정전이라 힘드실 수도 있겠네요. (빛이 나간 전등을 힐끔 노려봤다가 수건 틈 사이로 드러난 헬레네의 손등을 토닥인다.) 가스는 안 끊겼어야 할 텐데. 확인해 보고 멀쩡하면 제가 따뜻한 차라도 만들어서 올게요. 잠시만 기다려주세요.
 
헬레네 L. 라세리온:(수건 틈새로 열심히 손사래쳐본다. 자세가 어정쩡해서 그런지 펭귄 같다) 아녜요. 저는 그 정도까진 아닌걸요. 아실 덕분에 물기도 많이 닦아냈구요. 왜 갑자기 정전이 됐는지는 모르겠지만…… 네에. 기다리고 있을게요.
 
아실링 펜들레엄:(펭귄이 된 헬레네를 흐뭇하게 바라봤다가 바로 부엌으로 이동한다. 가스는 멀쩡한가? 차 티백 같은 것이 남아있어야 할 텐데.)
 
찬장에는 티백이 여러 개 놓여 있었습니다.
 
어디서 받았던 건지, 직접 산 건지 기억은 흐릿하지만요.
 
다행히 가스는 작동하는 것 같으니 찬장을 열어볼까요?
 
아실링 펜들레엄:(티백도 여러 개 있고 가스도 작동한다는 것을 확인하고 나서야 표정이 조금 풀어진다. 집까지 찾아온 헬레네에게 차 한잔 대접하지 못한다면 마음이 편안하지 못했을 것이라 생각하며 찬장을 연다.)
 
덜컹, 내부는 텅 비어있습니다.
 
분명 많이 남아있었는데, 함께 사는 가족이 모두 마셔버린 걸까요?
 
지금 헬레네에게 줄 수 있는 건 따뜻한 물이 전부일 것 같네요.
 
<행운> 판정
 
아실링 펜들레엄:
기준치: 80/40/16
굴림: 79
판정결과: 보통 성공
 
찬장 문을 닫으려던 찰나, 아실링은 구석 깊은 곳에 딱 하나 남아있던 코코아를 발견합니다. 운이 좋네요!
 
아실링 펜들레엄:(딱하나 남아있는 코코아를 번쩍 들고 소리 없이 기뻐하다가 바로 잔 두 잔을 꺼낸다. 잔 하나는 방금 막 만든 코코아, 다른 잔에는 그냥 따뜻한 물 담은 뒤에 쟁반에 올려 거실로 간다.) 오래 기다리셨나요? 홍차가 없어서 코코아를 가져왔어요~.
 
헬레네 L. 라세리온:아녜요, 얼마 기다리지 않았어요. (머리칼에 여남은 물기가 수건에 잘 스며들도록 수건에 머리를 기대고 있다가 고개 돌린다) 앗, 이 달콤한 향기는…… 홍차도 좋지만 달콤한 코코아도 좋죠!
 
아실링 펜들레엄:오늘같이 비 오는 날에는 따뜻한 음료죠~. 자, 어서 드세요. (헬레네 손에 열이 번진 따뜻한 코코아 잔 쥐여준 뒤 자기 컵을 들어 호록 마신다.) 근데 뉴스가... 다시 켜졌네요? 왜 이건 멀쩡하지? (주먹으로 TV 윗부분 통 친다.)
 
헬레네 L. 라세리온:앗, 그런데 왜 아실은 코코아가 아닌가요? 아실도 달콤한 걸 좋아하시잖아요. (제 잔을 양손으로 잘 받치고 마시려다가 아실 잔의 투명한 물을 발견했다.)
 
아실링 펜들레엄:아~ 그게 말이죠. 저 요즘 코코아를 너무 많이 마셔서 줄이려고요. 요즘 하루에 여섯 잔을 기본으로 마셨답니다. 줄인 만한 이유로 충분한 것이겠죠~? (역시 헬리는 눈치가 빨라요... 속으로 웃고는 주제를 돌리기 위해 뉴스에 집중한다.) 무슨 일이라도 있는 걸까요? 어디 보자 뉴스가...
 
헬레네 L. 라세리온:네에? 여섯 잔이요?! (눈 커짐) 아실, 아무리 단 게 좋으셔도 너무 많이 드시면 몸에 안 좋아요. (조곤조곤하게 옆에서 잔소리…… 하려다가 그래서 안 마시는 거구나 하고 납득했다. 코코아 홀짝대면서 TV를 올려다본다. 아실의 주제전환 시도는 훌륭하게 성공했다!)
 
“기습폭우에 의한 피해가…”
 
주간 날씨를 알려주는 화면은 온통 먹구름으로 가득합니다. 비, 비, 그리고 비.
 
여름철 장마는 흔한 일이라고 하지만, 전국을, 그리고 한 주가 비로 가득한 건 이번 여름 중 처음입니다.
 
“유명 스포츠 선수 A씨의 은퇴 사실에 관한 루머들이…”
 
<지능> 판정
 
아실링 펜들레엄:
지능
기준치: 80/40/16
굴림: 40
판정결과: 어려운 성공
 
다음으로 다루는 뉴스 내용은 처음 듣는 내용인 것 같은데, 낯설기만 하네요.
 
헬레네 L. 라세리온:비가 정말 많이 오네요. 여름은 자주 겪었지만, 이렇게 장마가 심한 여름은 처음인 것 같아요.
 
아실링 펜들레엄:(비가 내려도 너무 많이 내리는 것 같죠. 유독 길고 비가 많이 내리는 장마인 것 같아요. 햇빛이 그리워질 정도네요. (빗방울이 창문에 튕기며 나는 소리를 멍하니 듣다가 다시 헬레네에게 집중했다.) 근데 무슨 일로 외출하셨던 거예요? 바로 저희 집에 오실 정도였다면 근처였을 것 같은데. 그냥 전화로 불러주시지 그러셨어요. 제가 우비랑 우산을 바로 가지고 갔을 것을 아시면서.
 
헬레네 L. 라세리온:(두 다리를 모아 앉고 수건으로 감싸인 무릎에 머리를 툭 내려놓았다. 빗소리가 끊이지 않고 울린다. 평온하면서도 눅눅한 느낌이 드는, 금세 멍해지기 쉬운 여름의 한 나날.) 내일이 개학이니, 필요한 준비물을 좀 살까 해서요. 문구점에 가는 길이었는데 갑자기 소나기가 쏟아지더군요. 물건들을 사고 돌아오는 길이 아니어서 다행이었죠.
아실은 어떠신가요? 학교에 갈 준비는 마치셨나요?
 
아실링 펜들레엄:기억하고 싶지 않았던 사실을 이야기해 주시는군요. 아, 벌써 내일이 개학이라니. 저는 아직 방학에서 남아있고 싶은데 말이죠~.. (투덜거리던 것도 잠시 얼마 지나지 않아서 피식 웃어버린다. 그래도 헬레네가 있는 학교라서, 그곳에서 거의 매일 보게 될 것을 알기에 개학이 완전히 싫지는 않겠구나 싶어서.) 오는 길이 아니어서 다행이네요. 기껏 새로 산 준비물에 물에 젖으면 마음이 아프죠.
음... 교복이랑 가방 등은 준비해뒀답니다! (대충 준비했다는 뜻)
 
헬레네 L. 라세리온:그래도 오래 쉬었으니 이제는 학교에 가야죠. 오랜만에 친구 분들과 떠들썩하게 이야기를 주고받을 생각을 하니 설레는걸요? (코코아를 한 모금 더 마신다. 몸에 점차 온기가 돈다.) 교복과 가방만 잘 챙겨두었어도 큰 산을 넘은 거죠. 잘하셨어요. 혹시 부족한 게 있다면 말씀주세요. 노트라거나 펜이라거나…… 제 걸 기꺼이 나눠드릴 테니까요.
 
아실링 펜들레엄:그럼요. 개학 이후에는 지금의 기분은 느끼지도 못할 정도로 잘 지낼 거예요. 물론 아침에 일어나는 것은 조금 힘들겠지만요. (조금? 그것보다 좀... 아주 좀 더 힘들겠지만...) 어머, 역시 저를 챙겨주시는 건 헬리뿐이에요. 그럴게요. 학교 가서도 많이 의지할게요, 헬리~.
 
헬레네 L. 라세리온:후후…… 아실은 예전부터 일찍 일어나는 걸 힘들어하셨죠. 이제 일찍 주무시는 습관을 들이셔야 해요. (희미하게 웃음소리를 낸다.)
그럼요. 언제든 의지해주세요, 아실. (평이한 대화였지만, 마지막 말은 얼핏 간절하게 들렸던 것 같다.)
 
쏴아아, 비는 약해질 기미가 보이지 않습니다.
 
말발굽 소리처럼 휘몰아치는 비, 색을 잃은 잿빛 하늘, 습한 여름.
 
어느 정도 물기가 마른 헬레네는 간간이 멍한 표정을 짓습니다.
 
이질적인 하루입니다. 폭우와 정전, 빗방울과 헬레네, 아주 조용하고 평화로운 일상.
 
내일은 개학식이니 헬레네도 일찍 집에 돌아가야겠죠.
 
폭우에 헬레네의 가족이 걱정하고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주고받다 보면…….
 
헬레네 L. 라세리온:아실.
 
당신의 이름이 허공을 둥둥 부유합니다.
 
나지막한 목소리에 고개를 돌리면, 사뭇 진지한 표정의 그가 보입니다.
 
헬레네의 손등에 새겨졌던 빛이, 헛것이 아니라는 걸 증명하듯이.
 
당신만을 오롯이 담은 그 눈에 푸른 빛이 스칩니다.
 
동시에, 헬레네의 피부 위로 기하학적인 형태의 무늬가 그려집니다.
 
마치 별자리처럼……
 
지금 당신이 무얼 보고 있는 거죠?
 
아실링 펜들레엄:(시야에 들어오는 익숙한 푸른빛에 눈을 깜박이는 것도 잊었다. 꼭 물속에 가라앉아서 물 위로 일렁이는 빛을 보는 것만 같아서, 숨소리조차 죽이고 헬레네에게 손을 뻗는다.) 네, 헬리...
 
헬레네 L. 라세리온:(뻗어오는 손을 꼭 맞잡고서, 파란 눈에 새파란 눈을 똑바로 담으면서 속삭인다.) 이번에는 잘 될 거예요.
…… 기억하실 수 있죠?
 
아실링, <듣기> 판정.
 
아실링 펜들레엄:그럼요. 뭐든 당신 곁에서라면... (뒷말을 듣기도 전에 고개부터 끄덕였다. 당신은 내게 언제나 확신을 주는 사람이었으니까.)
... 기억이라니요?
듣기
기준치: 80/40/16
굴림: 81
판정결과: 실패
 
아실링은 지금 이 상황, 이 공간이 너무나도 고요하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비가 그쳤던가요?
 
창밖의 비는 그치지 않았습니다.
 
아니, 비는 허공에 방울방울 ‘멈추어’ 있습니다.
 
금방이라도 떨어질 것처럼, 둥근 물방울의 형태를 가지고서.
 
이해할 수 없는 비현실적인 상황에 SANC (0/1)
 
아실링 펜들레엄:
SAN Roll
기준치: 65/32/13
굴림: 78
판정결과: 실패
 
이성 1 감소.
 
헬레네 L. 라세리온:저도 그렇게 믿어요. (제 말을 듣기도 전에 긍정하는 아실링을 보면 절로 미소가 어린다. 어떻게 사랑하지 않을 수 있을까. 몇 번이고 몇 번이고 ■■하더라도 당신은……)
(그는 대답 대신 마주잡은 손에 힘을 주며 눈을 내리감는다.) 이번에는 학교에서 만나요.
기다리고 있을게요, 아실.
 
피부 위로 새겨진 무늬는 헬레네를 집어삼킬 듯 반짝이고, 어디선가 불어오는 매서운 바람에 숨을 쉬기도 어렵습니다.
 
별자리가 촘촘히 수놓인 헬레네에게서, 우리에게서 빛이 쏟아집니다. 중력이 배로 느껴지는 기분에 속이 울렁거려요.
 
흐르는 법을 잊은 구름, 잿빛 하늘.
 
허공에 방울방울 매달린 비는 여전히 떨어지지 않습니다.
 
그리고….
 
헬레네가 입모양으로 어떤 말을 전합니다.
 
하나,
 
둘,
 
셋.
 
 
깜빡.
 
 
“이번 주 내내 맑은 날씨가 이어질 것으로 전망되며, 열대야 역시 지속적으로…”
 
창밖은 맑으매 푸른 하늘은 눈이 부십니다.
 
무더운 여름은 건조한 탓에 비는 내리지 않고, 새들이 지저귀는 소리가 정적을 깨뜨립니다.
 
아실링, 당신의 손을 잡고 있던 상대는 어디로 갔나요?
 
집 안에 남은 건 맑은 하늘에서 떨어지는 햇살, 그리고 당신뿐입니다. SANC (1/1d2)
 
아실링 펜들레엄:(얼굴 위로 부스스하게 흐트러진 머리카락을 정리하며 주변을 돌아본다. 비어있는 자리를 한참을 더 보고 나서야 손바닥에 얼굴을 묻는다. 꿈이었나?)
SAN Roll
기준치: 65/32/13
굴림: 75
판정결과: 실패
rolling 1d2
 
(
1
 
)
 
 
=
1
 
이성 1 감소.
 
마치 영화 속 장면이 빠르게 전환되듯, 페이드아웃 없이 한순간에 뒤바뀐 세상.
 
…이게 어떻게 된 일이죠?
 
아실링 펜들레엄:(꿈이라고 하기에는 바로 방금 전에 느꼈던 것 같은 일에 아직도 벗어나지 못해 소파에 머리만 툭 기대고 있는다.) 어쩌면 이게 꿈인가? (그러면서 자기 볼 쭉 잡아당겼다.)
 
쭉 잡아당기니... 아픕니다.
 
꿈은 아닌 것 같네요!
 
아실링 펜들레엄:(아프당...)
(시간 몇 시인지 확인하며 정신 차리려고 한다.)
 
시간은 여덟 시. 이른 아침입니다.
 
아실링 펜들레엄:(정신 차릴 수밖에 없는 시간에 눈 팍 떠진다. 벌써? 기억 속에 헬레네가 있던 자리에 푹 엎어진다.) 가기 싫어... 근데 가야지. 헬리 보려면. (꿍얼거리며 창밖 본다.)
 
푸른 하늘입니다. 작은 구름 몇 점이 동동 떠 있고, 햇살은 눈이 부시게 쏟아져 내립니다.
 
먹구름은 애초에 존재하지 않았던 것처럼….
 
헬레네가 있던 자리는 물방울 하나 남아있지 않습니다.
 
손으로 만져본 가구들은 모두 마른 상태입니다.
 
아실링 펜들레엄:진짜 꿈이었나 보네... (신기하며 팔 휘적거리며 핸드폰 잡았다. 이어지는 건 언제나 그렇듯 헬레네에게 카톡 하기. 저 오늘 헬리가 나오는 꿈을 꿨어요~.라고 적은 뒤 이모티콘까지 쓱 보냈다.)
(핸드폰을 내려놓고 주위에 기억과 달라진 것이 없나 두리번거린다.)
 
헬레네는 공부에 몰두하고 있지 않을 때는 답이 빠른 편이었죠.
 
지금은 아침, 학교에 가기 전 준비 시간이니 부지런한 헬레네라면 준비를 거의 마쳐 여유로울 텐데……
 
답장은 돌아오지 않네요.
 
주변의 다른 면면들을 꼼꼼히 살펴보아도, 평범하고 익숙한 당신의 집일 뿐입니다.
 
창밖은 그늘마저 푸르러 바다를 베어 옮겨둔 듯한 착각을 일으킵니다.
 
파도처럼 밀려오는 매미 소리, 물감을 풀어둔 푸른 하늘, 건조한 여름.
 
아실링이 꿈이라도 꾼 걸까요? 쏟아지는 햇살에 이처럼 눈이 따가운데도?
 
폭우도 헬레네도, 그리고 반짝이던 무늬마저도 일어날 수 없는 일인 게 틀림없잖아요?
 
헬레네는 연락을 받지도 않으니, 내일 학교에서 얘기를 해봐야 할 것 같습니다.
 
분명 학교에서 만나자고 말했었죠.
 
대체 오늘 무슨 일을 겪은 건지… 내일은 설명을 들을 수 있으려나요.
 
 
 
개학, 멀게만 느껴지던 단어가 오늘을 가리키고 있습니다.
 
펄럭이는 교복들이 흰나비처럼 이곳저곳 쏘아 다니네요.
 
어제 일어났던 일들이 생생한 꿈처럼 느껴집니다. 그러나 그 일을 빼면 이 여름은 평범한 하루와 다를 것 하나 없지요.
 
…정말 꿈이었을까요?
 
아실링 펜들레엄:(꿈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생생했는데... 그렇다고 그 모든 것이 현실이라고 하기에는 믿어지지 않았다. 여름이라 헛것을 봤다면 모를까.)
 
아무튼, 오늘은 긴 방학이 끝나고 마침내 개학날입니다.
 
이만 학교로 출발할까요?
 
아실링 펜들레엄:(빠트린 거 없나 하나하나 확인하고 문을 나서기 전에 핸드폰을 마지막으로 확인한다. 헬레네에게 연락은 없나?)
 
여전히 연락은 없습니다. 당신이 보낸 카톡 옆의 1 표시도 사라지지 않았네요.
 
밤이 바뀔 동안 답장하지 않았던 적은 없었는데 말이죠.
 
아실링 펜들레엄:(믿을 수 없다는 눈으로 카톡 옆의 1을 바라본다. 헬리가... 핸드폰을 분실했나?? 한참 안절부절못하며 한참 더 화면을 보다가 주머니에 넣고 문밖으로 나선다. 학교 가서 물어보면 되겠지!)
 
아실링은 학교로 향합니다.
 
보통은 횡단보도를 건너, 가로등 두어 개를 지나면 헬레네가 보이곤 했습니다. 하지만….
 
친구:아실링! 그거 들었어? 오늘 정상수업이래. 개학 첫날부터 너무한 거 아니냐?
 
아실링에게 자연스럽게 말을 걸어오는 건 다름 아닌 같은 반 친구입니다.
 
헬레네는 보이지 않습니다. 먼저 간 걸까요?
 
아실링 펜들레엄:학교가 뭐.. 그렇죠. 그래도 말만 정상수업이지 수업도 대충 할걸요?
(지금 그게 중요한 게 아니지. 고개 이리저리 돌리며 주변 더 확인하며 헬레네를 찾는다.) 혹시 헬리 못 봤나요?
 
친구:헬리? (한쪽 눈가를 찡그리며) 처음 듣는 이름인데. 누구야? 다른 반 앤가?
 
아실링 펜들레엄:뭘... 잘못 먹었나...? (못 들을걸 들었다는듯한 표정으로 보다가 손날로 정수리를 팍. 친다.) 어디서 그런 용기가 생긴 건지. 아니죠. 용기도 아니죠 그건. 어디서 그런 말을 제 앞에서 해요?? (괘씸!!!) 대답을 다시 하는 게 좋을 거예요.
 
친구:악! (갑자기 얻어맞고선 잔뜩 억울한 눈으로 본다) 갑자기 왜 때려?! 진짜 들어본 적 없는 이름이란 말야. 방학 사이에 새로운 친구라도 사귄 거야? (네 성격에? 라는 말은 덧붙이려다 안 했다)
(그러더니 아실링이 뭐라 덧붙이기도 전에) 아, 맞다. 서클 보고서 놓고 왔잖아!
 
친구는 뒤를 돌더니 왔던 길 위를 냅다 달리기 시작합니다. 무언갈 두고 온 모양이네요.
 
덩그러니 남겨진 아실링의 뺨 위로 푸른 나뭇잎 하나가 떨어집니다.
 
중력을 따라 떨어진 잎은 한가득 여름을 담아 푸르기만 합니다. 그리고….
 
<지능> 판정
 
아실링 펜들레엄:쟤는 정신머리를 어디다가 놓고 온 거야...?? (어이없어서 존댓말 까먹었다.)
지능
기준치: 80/40/16
굴림: 49
판정결과: 보통 성공
 
아까 그 친구는 헬레네와 친분이 있던 사이였습니다. 당신까지 셋이서 종종 어울리기도 했었죠.
 
하지만, 이상하게도 그를 모르는 눈치였습니다.
 
아실링 펜들레엄:(멈춰 섰던 걸을 다시 학교 쪽으로 향하며 혼잡한 머릿속 생각들을 정리한다. 내가 모르는 신종 괴롭힘인가? 아니면 친구들끼리 하는 새 장난? 제대로 된 답이 나오지 않아서 표정이 점점 굳어져만 갔다.)
 
의문도 잠시, 교문 앞 횡단보도입니다.
 
신호를 기다리던 중 휴대폰이 가볍게 진동합니다. 전화가 온 듯해요.
 
화면에 뜬 번호는 저장되지 않은, 처음 보는 번호입니다.
 
아실링 펜들레엄:(누구지? 처음 받아보는 전화번호를 보고 망설이다가 전화 버튼을 누른다.) 여보세요?
 
휴대폰 너머로 옅은 숨소리가 들립니다.
 
한참을 얘기하지 않은 채, 그저 숨소리만이. 잘못 건 전화일까요?
 
"……아실?"
 
그런 생각이 무색하게도, 한참 뒤 겨우 흘러나오는 목소리는 헬레네의 것입니다.
 
여유가 사라진 목소리에서 볼품없는 불안함이 읽힙니다.
 
동시에 그가 낯설기도 합니다.
 
아실링 펜들레엄:헬리!! (주위 시선 신경 쓰지도 않고 빽!!! 하고 헬리 이름을 외친다.) 어디세요?? 세상에 헬리. 오늘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아세요? 아니 생각해 보면 어제도 이상한 일이 있긴 했는데! 아, 설명하려고 하니 기네요. (늘어지게 한숨 푹 쉬고 나서야 진정? 한다.) 어디세요? 이건 만나서 이야기해야 해요. 아 혹시 지금 아프신 건가요? 그래서 등굣길에 못 본 건가요? 아님 학교? (질문 우다다다 발사!)
 
헬레네 L. 라세리온:어제의 일이라면, 설마 아직도 기억이 돌아오지 않으신 건가요? (잠깐 침묵하더니 말을 잇는다. 항상 햇살처럼 따스하고 밝던 음성이었으나 지금은 어딘지 우울하게 가라앉은 채였다.) 저는 먼저 학교에 도착했어요. 도서실에서 잠깐 찾아볼 게 있어서요.
 
아실링 펜들레엄:기억이라뇨...? (뭔가 까먹은 게 있는가 싶어서 진지하게 고민하느라 한동안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오랜 생각 끝에도 생각나는 게 없어서 누가 들어도 기죽은 듯 작게 떨리는 목소리만 이 저였다.) 저 뭔가 잊었던가요...? 헬리 생일.. 아닐 테고. 제 생일도 아니고. 중요한 게 뭔가 있었... 미안해요. 헬리가 그렇게 말할 정도면 뭔가 중요한 것이었을 텐데.
(한참 안절부절못하다가 마지막 말 듣고 고개 팍 든다.) 네에.. 저도 도서실로 갈까요...?
 
헬레네 L. 라세리온:사과하지 않으셔도 돼요. 질책하려고 한 말이 아닌걸요. (당신을 달래듯 말하지만 잘 되지는 않았다. 이미 그의 목소리에서부터 혼란이 묻어나고 있었으므로.) 아니에요. 굳이 오지 않으셔도 돼요. 금방 찾을 수 있을 것 같아서……
아실……. (한동안 다시금 숨소리만이 반복된다. 무슨 말을 해야 할지 고르는 듯이. 정적 끝에 조심스러운 물음이 흘러나왔다.) 혹시 제 이름이 기억나세요?
 
<정신력> 판정
 
아실링 펜들레엄:
정신
기준치: 85/42/17
굴림: 16
판정결과: 극단적 성공
 
당연한 걸 물어보네요. 당신의 헬레네, 헬리인걸요!
 
아실링 펜들레엄:(마지막 말 듣고 안색이 새하얘진다. 지금 이 상황에서 생각나는 것이 단 하나뿐이라서) 혹시 저한테 화... 났어요...? 저 바보라고... 둘러서 욕을.. 헬리가 그런 걸 할리는 없지만.. (눈물 핑 돈다.) 제가 헬리 이름을 기억 못 할 리가 없잖아요..!
 
헬레네 L. 라세리온:잊지 않으셨군요. (느리게 중얼거리고는) 화난 게 아니에요. 아실. 당황스러우신 질문이라는 건 알지만 그래도 확인하고 싶었어요……. 미안해요.
 
보행자용 신호등 불이 초록색으로 바뀝니다.
 
횡단보도, 그 하얀 선을 따라 걸을 때쯔음 헬레네가 중얼거립니다.
 
매미가 우는 소리에 묻혀버릴 정도로, 아주 작은 목소리로.
 
헬레네 L. 라세리온:…… 제 얼굴이 사라지고 있어요.
 
…이게 무슨 뜬구름 잡는 소리인가요? 그러나 헬레네는 장난을 치는 기색이 아닙니다.
 
휴대폰 너머의 표정까지는 알 수 없지만, 그 목소리는 낮게 가라앉아 있습니다.
 
그리곤 뚝, 당신이 무어라 반응할 새도 없이 전화가 끊어져 버립니다.
 
왜일까요? 분명 말도 안 되는 소리일 텐데.
 
일상과 비일상 사이에 정신이 멍해집니다.
 
그러나 의문은 오래가지 않습니다.
 
끼익-!
 
큰 소리에 심장이 덜컹, 내려앉습니다.
 
당신의 눈앞, 가까운 거리를 두고 아슬아슬하게 멈춘 차 옆으로 한 학생이 넘어져 있습니다.
 
부딪히진 않았지만, 모두가 웅성거리며 횡단보도 쪽을 쳐다보네요.
 
<관찰력> 판정
 
아실링 펜들레엄:
관찰력
기준치: 85/42/17
굴림: 56
판정결과: 보통 성공
 
운전자와 학생은 무어라 얘기하는 중입니다.
 
황급히 차로 시선을 옮기면… 바퀴가 없습니다.
 
네? 잘못 본 걸까요? 눈을 두어 번 깜빡이자 그제야 바퀴가 보입니다.
 
소란도 잠시, 지각을 피하고자 흰 교복 무리는 다시 학교로 걸음을 옮깁니다. 물론 당신도 그래야겠죠.
 
아실링 펜들레엄:(어제부터 무슨 이상한 일만 가득이야!! 손바닥으로 이마 짚고 한참을 서있다가 빠른 걸음으로 학교에 간다. 가면 헬레네를 볼 수 있겠지. 뭐든 만나고 나면 해결될 것이라고 생각하면서.)
 
어제부터 이상한 일의 연속입니다. 하루의 시작이 묘하네요.
 
학교에서 헬레네를 만나 자초지종을 들으면 해결이 되려나요.
 
어느덧 학교에 도달합니다.
 
한층 한층 계단을 오르다 보면 아실링의 반이 보입니다. 오늘따라 파아란 창밖이 무섭게도 아름답습니다.
 
시선을 굴려 헬레네를 찾으면, 당신의 교실 속 익숙한 얼굴은 보이지 않습니다.
 
아니, 헬레네만이 없는 게 아닙니다.
 
헬레네의 책상과 의자까지도 그림을 잘라 떼어놓은 듯 보이지 않습니다.
 
…어째서일까요?
 
지나가는 [친구들]은 무엇이 문제인지 모르는 눈치이며, 교탁에 붙은 [자리표]에는 학생들의 이름이 나열되어 있습니다.
 
아실링 펜들레엄:(헬레네의 책상과 의자까지 없다니 진짜 신종 왕따인가 싶어서 인상 찌푸렸다가 그동안 있었던 이상한 일들이 생각나 우선 침착을 유지하려고 한다.) 저기... 헬레네 아직 안 왔나요? (친구들 옆으로 슬쩍...)
 
방학 때 있던 일이나, 다른 학교보다 이른 개학에 대한 불만을 토하고 있습니다.
 
언제 도착했는지 등교 시간 때 만났던 친구도 보이네요.
 
친구:아직도 그애 타령이네. 대체 걔가 누군데 이렇게 찾는 거야? 야, 너 헬레네란 애 알아?
 
친구2:응? 아니, 처음 듣는데. 우리 반이야? 그런 애가 우리 학교에 있는 줄도 몰랐어.
 
아실링 펜들레엄:(친구들이 단체로 밥을 잘못 먹었나... 영문을 알 수 없어서 한숨만 마구 내쉰다.) ... 됐어요. 잠시만요. 이따가 다시 말 걸로 올게요. (마음 같아서는 주먹으로 가슴팍을 치며 답답한 것을 해소하고 싶지만 보는 눈이 많아서 참는다.)
(바로 자리 표를 보러 간다.)
 
교탁 위에 붙여진 자리표에는 학생들의 자리 위로 이름과 학번이 적혀있습니다.
 
손가락으로 하나하나 활자를 짚어 살피면….
 
없습니다.
 
애초에 없던 학생처럼 헬레네의 자리도, 이름도, 학번도. 그 어디에도 없습니다.
 
자리표와 친구들의 얘기를 확인한 아실링은 SANC (0/1).
 
아실링 펜들레엄:
SAN Roll
기준치: 63/31/12
굴림: 73
판정결과: 실패
 
이성 1 감소.
 
아실링 펜들레엄:... 이것 참 이상한 이야기 같군요. 줄거리가 별로예요. 저만 기억하는 당신이라니...
어디 가셨나요, 헬리. 저만 두고.
 
매미는 머리가 어지러울 정도로 울어댑니다.
 
하나, 둘, 셋.
 
당신에게 그리 속삭이던 헬레네는 어디로 간 건가요?
 
모두가 한 사람을 잊은 채 여름을 보내는 중입니다.
 
창밖의 [푸른 하늘]은 작위적으로 맑고, 나무 아래 그림자는 잠시도 흔들리지 않습니다.
 
[매미의 울음소리]에 귀를 기울이게 된다면, 당신은 무언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아실링 펜들레엄:(평소라면 그저 아름답기만 한 하늘을 힘없이 바라본다. 오늘따라 왜 꼴 보기 싫은 건지. 저렇게 아름다운데.)
 
구름 몇 점이 떠다니는 하늘은 지독하게도 푸릅니다.
 
<관찰력> 판정
 
아실링 펜들레엄:
관찰력
기준치: 85/42/17
굴림: 29
판정결과: 어려운 성공
 
아무리 바람 하나 불지 않는 날씨라고 해도… 구름은 못이 박힌 듯 제자리에서 움직이지 않습니다.
 
애초에 움직이는 법을 모르는 것처럼 그 자리에 굳어 있습니다.
 
아실링 펜들레엄:(하! 하고 헛웃음에 가깝게 숨을 뱉어놓고 나무 가까이 다가간다. 이 소리도 만들어진듯한 것인가?)
 
매미의 돌림노래는 끝날 기미조차 느껴지지 않습니다.
 
<듣기> 판정
 
아실링 펜들레엄:
듣기
기준치: 80/40/16
굴림: 71
판정결과: 보통 성공
 
마치 녹음본을 틀어둔 듯, 그 소리는 기이하게도 완벽히 반복됩니다.
 
잠시 멈추는 건 7초에 한 번, 소리가 커지는 것은 일정하게. 기분 탓일까요? 당신의 예상대로일까요.
 
띠리링-
 
힘차게 울리는 수업 종. 재잘거리던 아이들도 자리를 찾아 일사불란하게 움직입니다.
 
아실링, 당신은 당신의 기억을 믿을 수 있나요? 모두가 그것이 거짓이라고 속삭여도?
 
아실링 펜들레엄:(자기 자리에 착석하는 친구들 사이에서 덩그러니 서있는다. 이렇게나 정신적으로 피곤함을 느낀 게 얼마 만이었더라? 기억을 되짚다가 입꼬리가 축 내려진다. 뭐가 어떻게 된 지 판단하기 어려운 상황이었다. 어쩌면 피곤함을 느낀 과거의 기억조차 잘못된 것일지도 모른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실링 펜들레엄:모르겠네요... 이런 상황에 어떻게 하라는 법은 배운 적이 없어서. (손으로 앞머리를 마구 헤집다가 어색하게 미소 짓는다.. 모르겠으면 일단 하고 싶은 대로 한다. 그게 확실하게 알고 있는 자신의 형태였다. 일단 뭐든 해봐야지. 헬레네를 찾아봐야지. 다른 건... 그래. 나쁘게 말해서 내 알 바가 아니었다.)
 
선생님께선 여느 때와 다름없이 수업을 시작합니다.
 
출석 역시 헬레네의 이름은 건너뛰고 이어지네요.
 
누군가의 부재는 애초에 없던 것처럼 하루가 흘러갑니다.
 
수업이 시작되지만 아실링의 귀에는 선생님의 목소리가 전혀 들어오지 않습니다.
 
당신을 둘러싼 묘한 하루와 기이한 상황 속에서 수업 따위에 집중할 수 있을 리 없으니까요.
 
그런 모습이 들킨 건지, 선생님이 당신을 탐탁찮게 쳐다봅니다.
 
선생님:펜들레엄이 오늘 영 집중을 못 하는 것 같네. 아까 말한 빈칸의 답, 한번 불러보렴.
 
모두의 시선이 당신에게 쏠립니다.
 
<관찰력> 판정
 
아실링 펜들레엄:(아프다고 거짓말하고 보건실 가는 척 다른 곳에 나 갈까? 하고 생각 중이었다.) 아, 그게...
관찰력
기준치: 85/42/17
굴림: 43
판정결과: 보통 성공
 
그때, 익숙한 인영이 복도 쪽 창가를 스쳐 지나갑니다.
 
긴 주황색 머리칼, 아담한 키, 헬레네와 비슷한 특유의 분위기까지.
 
선생님:펜들레엄?
 
선생님이 입을 벙긋거리며 무어라 얘기하기 시작합니다.
 
하지만 그 내용이 당신에게 중요한 것일까요?
 
어떻게 할까요, 아실링?
 
아실링 펜들레엄:선생님!! 아!! 제가 오늘 이상하죠! 죄송해요! 뭘 잘못 먹었는지 상태가 안 좋네요. 어쩜... 아아...
... 그러니까 저 보건실 좀 갈게요! 그럼!! (벌점이든 뭐든 알아서 하라지. 문 박차고 나가서 복도로 향한다. 어디 갔지?)
 
선생님:뭐어? 갑자기 보건실을? 얘, 펜들레엄!
 
당황한 표정의 동급생들과 선생님을 지나쳐 복도로 향하면, 주황빛 머리칼의 인영은 이미 계단을 오르고 있습니다.
 
아실링 펜들레엄:(뒤에서 뭐라 부르던 뒤돌아보는 일 없이 복도를 달려 계단으로 향한다.) 저, 저기요! 헬리?? 당신이세요?
 
위로, 그리고 다시 위로.
 
어느 교실에선 시를 읊는 소리가, 어느 교실에선 공식을 정의하는 소리가 들립니다.
 
계단을 오르는 이는 당신과 헬레네뿐입니다.
 
헬레네는 뒤 한 번 돌지 않고 계속해서 계단을 오르네요. 숨이 부족해집니다.
 
어느 순간, 당신은 헬레네를 시야에서 놓치고 맙니다.
 
그럼에도 그의 족적을 따라 한참을 걷고 걸어, 다리가 저릿해질 때쯤, 활짝 열린 옥상 문이 시야에 들어옵니다.
 
…헬레네가 이곳에 있을까요?
 
아실링 펜들레엄:(신고 있던 신발이 반쯤 벗겨지고 숨이 턱턱 막힐 즘 옥상 문 앞에 도착한다. 이곳에 헬레네가 있든, 없든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은 단 한 가지다. 문이 떨어져 나가게 확 밀어내고는 있는 힘을 다해서 크게 이름을 부른다.) 헬레네!
 
끼익- 문을 다급히 밀어젖히고 옥상에 발을 딛자, 철조망 밖 너른 하늘을 보는 이가 그곳에 서 있습니다.
 
흩날리는 머리칼은 왼쪽에서, 다시 오른쪽에서.
 
바람의 방향은 초 단위로 달라지고, 하늘 위 구름은 못이 박힌 듯 움직이지 않습니다.
 
펄럭이는 교복, 흔들리는 주황색 곱슬머리.
 
아실링 펜들레엄:... (혹시라도 자신이 뭐라 말을 꺼냈다가 지금 눈앞에 보이는 네가 사라질까 봐 말을 고르고 또 골랐다. 제발, 부디... 이것마저 보기 좋은 거짓말 같은 세계의 부품이 아니길.)
헬레네, 헬리. 옥상은 출입 금지인 거 당신도 알면서...
 
아실링이 재차 이름을 부르며 말을 걸자 헬레네가 천천히 뒤를 돕니다.
 
헬레네 L. 라세리온:…… 아실?
 
자그마한 키와 마른 체구, 풍성하게 흩날리는 곱슬머리, 단정하게 차려입은 교복.
 
그 모든 게 당신이 아는 헬레네지만, 얼굴만큼은 마치 지우개로 문대기라도 한 듯이 보이지 않습니다.
 
흐릿하고 뿌연 안개가 낀 것처럼 그 얼굴만은 알아볼 수가 없어요. SANC (0/1)
 
아실링 펜들레엄:... 거짓말이 아니었군요, 헬리.
SAN Roll
기준치: 61/30/12
굴림: 43
판정결과: 보통 성공
 
이성 감소 없음.
 
헬레네 L. 라세리온:제가 아실에게 거짓말을 할 리가 없는걸요.
 
당신에게, 그리고 그에게 무슨 일이 일어난 건가요?
 
헬레네 L. 라세리온:아실…… 뭔가 이상해요. 아무도 저를 기억하지 못해요. 이런 적은 한 번도 없었는데. (목소리가 떨린다. 여린 목소리였던가? 거칠었던가? 분간하기 힘든 음성으로,)
아실은, 아실만큼은 저를 알고 계신 거죠? 지금 제 얼굴이 보이시나요……?
 
혼란스럽고 불안해하는 표정. 아니, 저걸 표정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흐릿한 얼굴은 여전히 뿌옇기만 합니다.
 
…그의 눈은 어떤 색이었고, 어떤 모양이었고, 또 어디에 자리 잡고 있던가요?
 
또 그의 목소리는 어떠했던가요?
 
당신마저 떠올리기 힘들어집니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깨닫게 됩니다. 당신이 가진, 그에 관한 기억들 역시 하나둘씩 지워지는 중이란 것을요.
 
아실링 펜들레엄:당신은.... 당신은...... 헬레네죠. 제가 가장 아끼는, 헬리. (무슨 색이었지? 무척이나 아름다웠던 색이었던 것 같은데. 그래 당신 머리색에 잘 어울리는 아름다운 색이었는데.)
언제 봐도 사랑스러운 사람이죠, 당신은. 세상에 사랑스러운 것들을 다 합쳐놓은 것처럼... 무척이나 사랑스러운 사람.
 
헬레네 L. 라세리온:(명확한 답을 하지는 않았지만, 그 망설임이 저에게는 이미 대답이 되었다. 그 자리에 조각처럼 굳어선 채로 아무런 말도 하지 못하다가 천천히 손을 뻗는다.) 보이지 않는 거죠, 그렇죠……? 그런데도 아직 사랑스러운 사람인가요……?
 
아실링 펜들레엄:언제나 당신을 기쁘게 만들고 싶은 저이지만... 거짓말을 할 수는 없네요. 죄송해요... (능청스러운 거짓말은 자신에게 어려운 일이 아니었으나, 그러지 못한 것은 그것이 자신이 알고 있는 헬레네가 원하는 것 아닐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제가 당신이 아닌 누군가에게 사랑스럽다고 말할 일은 없을 거예요. 그 표현은 당신에게만 쓰고 싶으니까요. 제게 가장 사랑스러운 사람이기도 하고.
 
헬레네 L. 라세리온:아실……. (당신의 목소리에서 진솔함을 읽어낼 수 있다. 먹먹하게 그를 응시하다가 팔을 뻗어 아실링을 와락 끌어안았다. 빠르고 거칠게 뛰는 심장 소리가 맞닿은 면을 타고 크게 울린다.) 저를 사랑스럽다 여기는 그 면까지 잊혀지게 되면 어쩌죠? 무서워요. 왜 갑자기 이런 일이 일어나는 걸까요?
 
아실링 펜들레엄:제가 뭐라 말해야 당신에게 위로가 될지.. 잘 모르겠네요. 저는 이런 부분에 서투른 사람인지라... (늘 밝은 모습을 보여주는 헬레네였기에 두려워하는 목소리가 더 마음 아프게 다가왔다. 대체 무슨 일이 있었기에 강인한 사람을 이렇게나 괴롭게 만든 것일까? 가지고 있는 상식으로는 도저히 원인을 알 수 없는 일이었다.) 제 욕심을 말해도 될까요? 그럴 일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고 말하고 싶어요. 싫어요, 당신이 사라진다느니 그런 말... 왜 이렇게 된 건지 당신도 모르는 건가요?
 
헬레네 L. 라세리온:아녜요. 아실의 존재만으로도 저에겐 큰 위로이고 안심인걸요. 아실이 제게 얼마나 든든한 분인지, 지금의 아실은 아마 모르시겠죠……? (씁쓸함이 묻어난다.)
차원의 관문도 사용이 안 돼요. 마치, 이 세계에 갇혀버린 것처럼.
 
아실링 펜들레엄:당신에게 위로를 준다니 기쁘지만... 지금의 저라뇨...? (꼭 지금의 자신은 헬레네가 모르는 자신인 것처럼 말해서 두 눈이 동그래진다. 차원의 관문? 이 세계? 모르는 단어투성이다. 그럼에도 믿을 수밖에 없는 것은 그런 말을 하는 사람이 당신이니까.)
잘 모르겠으나 당신에게 큰 위험이 닥친 것은 알겠어요. 혹시 우리에게 시간이 얼마나 남아있나요? 당신을 돕고 싶어요.
 
헬레네 L. 라세리온:역시, 아직도 기억이 돌아오지 않으셨군요. (어깨에 조금 더 얼굴을 묻는다. 아직 목소리에서만큼은 그나마 감정이 드러난다. 불안함과 서글픔…… 그리고 한 줄기의 의지.)
저희는 원래 세계에서 어떤 괴이한 것을 추종하는 신도들에게 쫓기고 있었어요. 도망치고 도망치다가 차원의 관문이라는 것까지 사용했지만 우주를 떠도는 미아의 신세가 되어버렸고, 원래의 세계로 돌아가기 위해 몇 번이고 차원을 넘어왔죠.
다른 세계로 떨어지는 과정에서 가끔 둘 중 한 명이 기억을 잃기도 했었어요. 그래도 다시 넘어온 이곳에서까지 기억이 되돌아오지 않을 줄은 몰랐는데.
 
…우리가? 헬레네의 말은 전혀 이해할 수 없는 내용입니다.
 
영화도 아니고, 일어날 수 없는 일이잖아요? 제물과 차원의 관문, 우주 미아와 다른 세계.
 
동시에, 기이하게도 익숙한 이야기입니다.
 
우주를 건너, 먼 은하를 건너, 다른 세계로 함께. 마치 당신이 겪은 일처럼.
 
모든 것을 떠올린 아실링, SANC (0/1d2)
 
아실링 펜들레엄:
SAN Roll
기준치: 61/30/12
굴림: 83
판정결과: 실패
rolling 1d2
 
(
2
 
)
 
 
=
2
 
이성 2 감소.
 
비가 멈추는 것은 주문진에 의해 발생하는 현상이었습니다.
 
그러니까, 비가 쏟아지던 그 여름도, 맑고 화창한 이 여름도. 모두 우리의 진짜 여름이 아닙니다.
 
우린 원래 세계를 찾아 한없이 우주를 넘나들었죠. 그 과정 중 일시적으로 기억을 잃는 경우도 종종 있었습니다.
 
여름인데도 선선했던 어느 세계, 잘못된 위치에 떨어져 바다에 빠졌던 우리, 겨울 별자리가 보이던 또 다른 세계.
 
그럼에도 포기하지 않고 집을 찾아서, 다음 세계로.
 
그렇다면 왜, 이번 평행세계에서 헬레네는… 사라지는 중인 걸까요?
 
헬레네의 존재 자체가 없었던 세계 또한 이번이 처음입니다. 무언가 잘못된 걸까요?
 
아실링 펜들레엄:뭐가... 뭐가 문제인 걸까요? 어째서 당신에게만... 문제가 있다면 저에게도 같이 있어야 할 텐데. 혹시 그게 제 기억에 관한 것이었을까요? 그렇다고 하기에는 지금 당신이 사라지는 이 상황은... 너무 큰 문제예요.
차라리 당신의 그 문제를 제가 안고 있는 것이라면 좋을 텐데...
 
헬레네 L. 라세리온:이제는 좀 떠오르시나요? 저희가 함께 보낸 시간과 거쳐온 수많은 세계들이. (비록 원래 세계를 잃어버린 미아 신세가 되었지만 아실링과 함께 하는 시간은 마냥 힘들지만은 않았다. 수많은 세계를 거치는 과정을 아실링과 함께 하는 여행처럼 받아들였다. 차가운 여름이나 깊은 바닷물, 함께 올려다봤던 별 가득하던 겨울의 밤하늘. 그 모든 광경은 단순히 방해물이나 이질감이라는 단어로만 표현할 수는 없는 것이었으므로. 그렇게 서로를 믿고 의지하며 긴 여행을 거쳐오고 있었는데, 대체 이 이변은 무엇일까. 아무리 지금까지 버텨왔다지만, 제 존재가 사라져가는 상황 앞에서는 흔들릴 수밖에 없었다.)
이 세계는 저희가 지금껏 거쳐온 곳들과는 확실히 달라요. 아무도 저를 기억하지 못하고, 존재가 사라져가고 있고…….
어쩌면 아실마저 저를 잊어버릴지도 모른다니.
 
흐르지 않는 몽글한 구름이 그림자를 만들어내면, 우리가 선 곳의 짙은 파랑이 가려집니다.
 
헬레네는 천천히 철조망에 기대앉습니다.
 
당신을 위해 옆자리를 가볍게 쓸어내리는 그 손은, 미약하게 떨리는 그 손은, 헬레네의 얼굴처럼 흐려지고 형태를 잃고 있습니다.
 
헬레네 L. 라세리온:이걸 받아주시겠어요, 아실? (작은 수첩과 샤프를 건넨다.)
 
아실링 펜들레엄:(형태를 잃어가는 손의 모습에 슬퍼하는 모습을 감추지 못했다. 자신이 망설이는 사이에 혹시라도 헬레네에게 무슨 일이 더 생기는 것이 아닐까 싶어 덥석 수첩과 샤프를 받아든다.) 제가 거절할 리가 없잖아요... 이건 무슨 수첩인가요...?
 
헬레네 L. 라세리온:저에 대한 걸 적어두면, 조금은 기억하기 쉽지 않을까 해서요. 잊더라도 기록을 보면서 떠올리면 되니까요. (비록 그게 제 희망사항일 뿐일지라도, 헬레네는 어떤 토양에서도 희망 한 줄기를 틔워낼 줄 아는 사람이었기에.)
 
이건 잊지 않기 위한 기록입니다.
 
아실링 펜들레엄:역시 헬리는 똑똑하다니까요. 네... 이걸 보면서 당신을 떠올릴게요. (무척이나 좋아하는 당신을 이 안에 다 담기 어렵겠지만, 지금 자신과 그가 할 수 있는 일의 최선이 이것임을 알고 있다. 소중하게 수첩을 열어서 읽어본다. 뭐라 적혀있나?)
 
아직은 아무것도 적혀 있지 않습니다.
 
당신이 기록해나가는 것입니다. 사랑스러운 사람에 대해.
 
헬레네 L. 라세리온:적어주시겠어요? (이내 조근조근하고 차분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저의 이름은 헬레네 레테 라세리온…… 오빠의 미들네임을 제 미들네임으로 따 왔어요. 키는 157cm, 머리색은 주황색. 눈은 아실링의 것보다 밝은 파란색이에요.
 
아실링 펜들레엄:(샤프를 쥔 손을 잠시 떨었다가 최대한 곱게 글씨를 써 내려간다. 같이 있을 때 즐거우며, 사소한 것도 기억해 주는 친절한 사람. 고양이를 좋아하며, 반대로 쥐는 무서워한다. 길고 힘든 여행에서도 미소를 잃지 않은 강한 사람. 언제나 애정을 담아 내 이름을 불러주는 사람. 얼굴이 자세히 기억나지 않지만, 항상 나를 따스하게 바라봐 준 사람... 생각나는 것들을 줄줄이어서 써 내려간다. 지금 할 수 있는 것이 이것뿐임을 아쉬워하면서)
아, 이걸 까먹을뻔했네요. 제일 중요한 건데. (이름 옆에 가장 사랑스러운 사람이라고 적는 것도 잊지 않았다.)
 
헬레네 L. 라세리온:(옆에서 아실링이 적어내려가는 글씨를 바라본다. 곱게 쓰려고 애를 쓴 티가 나는 서체. 점점이 묻어나는 애정과 경애의 마음. 잊혀지고 싶지 않다. 모두가 저를 잊어버린대도 아실에게만은 잊혀지고 싶지 않다. 다시 다가가서 말을 걸고 새로운 관계를 쌓는 건 자신있는 일이었지만…… 우리가 지금껏 함께 보낸 추억들이 모두 사라진다는 건 무섭고 안타까워서.) 저희는 같은 기숙사 출신이었고, 많은 일을 함께 했어요. 온 학교를 휘젓고 다니기도 했었고, 바다에 함께 가기도 했었고, 밤하늘 아래에서 함께 춤추기도 했었죠. 정말 행복하고 즐거운 시간이었어요……
 
아실링 펜들레엄:어머, 계속 이야기해 주세요. 쓸 것이 계속 떠오르거든요. 그런 것을 적기 위한 수첩이잖아요. 제 감상이 많이 들어간 것 같지만... (여름의 하늘 아래에서 가장 빛나지만 사실은 봄의 모습이 있는 사람. 봄 같은 따스함을 느끼게 해주어서 한번 만난 사람이라면 사랑하지 않을 수 없는 사람. 마음이 힘든 일이 있어도 항상 예의를 지켜 상대를 배려해 주는 마음씨마저 봄을 생각나게 한다. 부끄러워하는 모습이 무척이나 사랑스럽다.)
우리 서로의 관심사에 대해서 이야기 나누는 것도 좋아하죠. 학교 가는 일만 아니라면 밤이 새도록 이야기를 나눴을 텐데... 항상 당신이 이제 잘 시간이에요!라고 말해주고 나서야 침대에 눕곤 했어요. (호기심이 많지만, 그 호기심을 절대로 나쁜 일에 쓰지 않으며 언제나 진실한 모습으로 생활에 임하는 사람. 적다가 말고 웃음을 터트린다. 자신이 알고 있는 당신에 대한 기억이 아직 많이 남아서.) 저 슬퍼하는 것은 잊을게요. 아직 당신을 도울 수 있는 방법이 있을지도 모르니까요. 아니요. 있을 거예요.
 
헬레네 L. 라세리온:저에게는 봄 같은 면이 있다고 하셨지만, 제가 동시에 여름을 닮을 수 있었던 건 곁에 아실이 있기 때문이에요. 아실은 정말 청량하고, 새파랗고, 시원스러우신 분이죠. (저에 대한 걸 적어달라고 했으면서 막상 아실링에 대한 생각들이 흘러나온다. 어쩔 수 없는 마음이다. 오늘도 하늘이 이렇게 파랗지 않은가. 절로 당신의 홍채를 상기할 수밖에 없을 만큼.) 그나저나 아실이 저를 이렇게 좋게 봐주시고 계셨군요. 조금은 부끄럽기도 하네요. (그래도 당신의 감상이 읽히는 글줄이 좋아서 수첩을 한참이나 들여다보고 있었다.)
기억나요. 매번 너무 늦게 잠들면 다음 수업 때 늦을 거라고 말했었죠. 하지만 어떨 때는 토론하던 주제가 너무 즐거워서 결국 늦게 잠든 적도 있었고요. 다급하게 일어나서 준비를 하던 기억이 떠오르네요. (오래도록 많은 세계를 헤맸지만, 그래도 우리의 원래 세계에서 보냈던 소중한 추억은 아직 저의 가슴 속 보관함에 소중히 담겨 있다.)
네, 슬퍼하는 건 나중으로 미루기로 해요. 눈물을 흘릴 시간도 아까운걸요…….
 
수첩을 얼마간 채워갔을까요, 어느 순간 헬레네의 목소리마저 뭉툭하게 흐려집니다.
 
헬레네는 아실링의 어깨 위로 툭, 힘없이 머리를 기대네요.
 
그 무게마저 낯섭니다. 흐릿해지는 기억을 애써 붙잡아도, 모든 게 낯설고 어색하기만 합니다.
 
헬레네 L. 라세리온:분명 다시 만날 수 있을 거예요. 그러니 그 수첩을 간직해 주세요. 저를 잊지 않아 주실 거죠?
 
아실링 펜들레엄:왜 헤어질 것처럼 말씀하시는 거예요... 저는 헤어짐 같은 것 몰라요. 적어도 당신에 관해서는... 당신을 보낼 생각 같은 거 전혀 없는걸요. (수첩을 잡는 손에 힘이 들어간다. 당신이 준 것이니 소중하게 다뤄야 하는데...) 앞으로 계속 함께할게요. 손에 놓는 일도 없을 정도로요.
 
헬레네 L. 라세리온:제가 괜히 확답을 듣고 싶나 봐요. 절 향한 아실의 마음을 모르는 게 아니에요. 그래도, 그래도…… 믿기 때문에…….
(꺼질 듯한 목소리로 속삭였다.) 제 이름을 불러주세요, 아실.
 
아실링 펜들레엄:확답을 듣고 싶을 정도로 저를 좋아한다는 것으로 생각할게요. 저 무척 무척 아끼시는 거죠~. 아끼는 만큼 믿어주시는 거죠~? 그렇죠?
(헤어짐 따위는 없다고 말했음에도 대답을 하면 당신이 그대로 사라질 것 같아서 아주 잠시 침묵을 지켰다.) 대답을 안 하면 당신을 불안하게 만드는 것이겠죠...? 어쩔 수 없네요. 네에, 헬리. 헬레네. 계속 믿어주세요.
 
헬레네 L. 라세리온:차마 말로 다 표현할 수 없을 만큼 깊이, 아실을 믿고 아끼고 있어요. (당신에게마저 제가 사라진다고 해도, 나는 끝없이 당신을 떠올리겠지.)
(아실의 한 손에 제 손을 겹친 채로, 어깨에 고개를 기댄 채로 저를 발음하는 목소리를 듣는다. 여름의 바람결에 실려오는 당신의 체향을 맡는다. 내리쬐는 햇볕이 뜨겁다.)
…… 기억해주세요.
 
그 이름 역시 떠올리기 힘들어질 때면, □□□는 천천히 눈을 감습니다.
 
흰 물감을 군데군데 풀어둔 하늘 아래, 한 사람의 그림자가 서서히 지워집니다.
 
기대어 느껴지던 무게가 사라지기 시작합니다.
 
□□□, □□□, □□□….
 
우린 차원을 넘기 전, 집으로 돌아가길 빌며 속삭이곤 했죠. 이렇게, 지금처럼.
 
하나,
 
둘,
 
셋.
 
 
깜빡.
 
 
여름은 맑으매 푸른 하늘은 눈이 부십니다.
 
무더운 여름은 습하지만 비는 내리지 않고, 새들이 지저귀는 소리가 정적을 깨뜨립니다.
 
데자뷔처럼 옥상에는 당신만이 홀로 남아있습니다. SANC (0/1)
 
아실링 펜들레엄:
SAN Roll
기준치: 61/30/12
굴림: 71
판정결과: 실패
 
이성 1 감소
 
손에는 힘껏 구겨진 수첩, 공들여 적은 티가 역력한 글이 남아있네요.
 
가장 크게 '□□□에 대하여'라고 적혀있으며, 그 아래로는 누군가의 사소한 정보들이 새겨져 있습니다.
 
□□□, □□□, □□□….
 
절대 잊어선 안 될 이름인 것 같은데, 왜 이렇게 기억이 흐릿한지.
 
이젠 여름이 원망스럽게 느껴집니다.
 
당신이 무엇을 해야 할지 압니다.
 
□□□를 되찾고, 이 세계에서 탈출하는 방법을 찾아야만 합니다.
 
오로지 당신의 힘으로만, 홀로.
 
…… 한참을 되뇐다고 하여 금세 방법이 생기는 건 아닙니다.
 
철조망에 오래 기댄 탓에 몸이 찌뿌둥하기도 하네요.
 
아실링 펜들레엄:(수첩 옆 빈칸에 뭔가를 더 적어내렸다.)
(기억하지 못하는 나를 보며 외로워했을 당신을 위하여. 보고 싶은 당신. 당신은 지금 어디에 있나요? 당신도 지금의 제가 느끼는 감정을 느꼈나요? 혼자서 방법을 찾아야 했었겠죠. 외로워하면서요. 확실한 방법이 있는지 없는지 몰라서 더욱 괴로워하면서... 당신이 그랬을 것을 생각하니 내 마음이 더욱 아프네요.)
(하지만 걱정 마세요. 당신이 묵묵히 그 시간을 견뎠던 만큼, 아니 그 이상으로 시간을 견디며 방법을 찾아낼게요. 제가 하고 싶고 해야만 하는 것을 위해... 당신을 다시 되찾기 위해 노력할게요. 투정은 여기서 끝. 혼자서 꿍얼거릴 수는 있지만 글로 쓰는 것은 마지막으로 할게요. 이 수첩을 당신에게 다시 보여줬을 때 당신이 너무 슬퍼하면 안되니까. 그때까지 잘 보관하고 있을게요. 그럼 여기서 끝! 또 봐요~.)
 
아실링이 수첩에 글씨를 적기 위해 움직이자 가벼운 쪽지가 품안에서 툭 떨어집니다.
 
아실링 펜들레엄:(조심스럽게 쪽지 끝 잡고 펼친다. 헬레네의 것인가?)
 
<지능> 판정
 
아실링 펜들레엄:
지능
기준치: 80/40/16
굴림: 90
판정결과: 실패
 
휘갈겨 쓴 탓에 더 알아보기 힘듭니다. 숫자는 뭐고, 또 그사이의 글은 뭔지…
 
띠리링-
 
/desc …그 사이에 수업 하나를 완전히 빠진 것 같습니다.
 
아니, 생각해보면 이곳은 진짜 세계가 아니므로 상관없는 일일까요?
 
어쨌든 쉬는 시간입니다. 이름도, 성격도, 함께한 추억도, 그 모든 게 조각난 사람이 마지막으로 한 부탁만이 남은.
 
<정신력> 판정
 
아실링 펜들레엄:
정신
기준치: 85/42/17
굴림: 31
판정결과: 어려운 성공
 
절대 잊어선 안 됩니다. □□□를 오롯이 기억하는 건 당신뿐입니다.
 
쪽지에 적힌 글귀는 꼭 책등에 붙은 분류표 같습니다.
 
도서실로 향해야 하지 않을까요?
 
아실링 펜들레엄:(그러고 보니 헬레네가 도서실 이야기를 꺼냈었지. 쪽지를 손에 꼬옥 쥔 상태로 도서실로 간다.)
 
그 아이는 어떤 표정을 지으며 웃었던가요?
 
이 평화로운 세계를 떠날 정도로, 그 아이는 당신에게 의미가 있는 사람인가요?
 
머릿속은 어지럽고, 울렁거리는 속은 이 계절을 완전히 받아내지 못합니다.
 
구겨진 수첩에는 옅은 금이 가기 시작합니다.
 
아실링 펜들레엄:안돼... 내가 그 사람을 기억할 수 있는 방법은 이것 말고 없단 말이야... (혹시라도 도서실에 도착하기 전에 수첩이 망가지는 것을 피하기 위해 빠르게 뛰어간다.)
 
도서실에 도착하면 [종교], [예술], [언어]가 적힌 책장들이 빼곡합니다. 사서 선생님께선 보이지 않네요.
 
아실링 펜들레엄:(종교 관련 책장으로 가서 살펴본다.)
 
200번대 책들로, 다양한 종교에 관한 책들이 나열되어 있습니다.
 
<자료조사> 판정
 
아실링 펜들레엄:
자료조사
기준치: 70/35/14
굴림: 99
판정결과: 실패
 
□□□에 관한 기억이 조금 더 흐려집니다. 수첩을 한 번 더 봐야겠어요.
 
아실링 펜들레엄:(수첩을 다시 읽는다. 아직 제대로 된 방법을 찾지도 못했다. 기억을 잃어서는 안 된다.)
 
다시 한 번 <자료조사> 판정!
 
아실링 펜들레엄:
자료조사
기준치: 70/35/14
굴림: 86
판정결과: 실패
 
눈에 띄는 책은 보이질 않네요.
 
아실링 펜들레엄:(눈 비비고 예술 관련 책장으로 넘어간다. 이래서 종교란... 쯧!)
 
600번대 책들로, 다양한 예술에 관한 책들이 나열되어 있습니다.
 
<자료조사> 판정
 
아실링 펜들레엄:
자료조사
기준치: 70/35/14
굴림: 25
판정결과: 어려운 성공
(특이한 별자리에 대해서 기억하고는 언어 책장으로 넘어가서 살펴본다.)
 
700번대 책들로, 다양한 언어에 관한 책들이 나열되어 있습니다.
 
<자료조사> 판정
 
아실링 펜들레엄:
자료조사
기준치: 70/35/14
굴림: 75
판정결과: 실패
 
□□□에 관한 기억이 조금 더 흐려집니다. 수첩을 한 번 더 봐야겠어요.
 
재판정이 가능합니다.
 
아실링 펜들레엄:(조심조심 수첩을 다시 읽고 책장을 더 살펴본다.)
자료조사
기준치: 70/35/14
굴림: 31
판정결과: 어려운 성공
 
그리고, 아실링은 뒤이어 800번대 [문학] 책장을 발견합니다.
 
쪽지에 적힌 창구 번호, 840.01이12꽃.
 
그것은 <꽃갈피>란 제목의 얇은 책 한 권이었습니다.
 
아실링 펜들레엄:(이 책인가? 뭔가 답을 얻길 바라며 꽃갈피 책을 핀다.)
 
꽃으로 책갈피를 만드는 방법과 짧은 시들이 실려있습니다. 수분을 완전히 제거하기 위해서는 꽃을 여러 번 말려야 한다고 하네요.
 
마치 우리의 여름을 닮았습니다.
 
수없이 반복한 탓에, 심장에 꽂을 수 있을 정도로 얇게 마른 우리의 NN번째 여름.
 
책에는 쪽지 한 장이 끼워져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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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실링 펜들레엄:당신답지 않게 바보 같은 생각을 하셨군요.. 똑똑한 사람일수록 가끔 이런 면이 있다는 말을 듣긴 했는데... 그래도 이런 바보 같은 생각은 너무했어요, 헬리. (입 삐죽 내밀었지만 쪽지를 들고 있는 손은 조심스럽다.) 그 많고 많은 여름의 뒤에서 다시... 다시 당신과 함께 존재하고 싶어요. 다시 희망을 가지고 싶어요. 언제까지나 반복한다고 할지라도.
 
그 아래에는 누군가의 이름이 적혀있습니다.
 
□□□, □□□, □□□…
 
그래요, 헬레네.
 
외부세계와 가장 강하게 연결되어 있고, 이 거짓된 세계를 부술 수 있는 한 단어.
 
그러나 당신, 그 이름을 쉬이 부를 수 있나요? 거짓된 세계라고 하여도, 단 한 사람만이 사라진 이곳은 평화롭고 고요합니다.
 
굳이 원래 세계로 돌아가야 할까요?
 
우린 다시 우주 미아가 되고 말 텐데, 기약없이 차원의 관문을 다시 넘나들어야 할까요?
 
아실링, 당신에게 헬레네는 그럴 가치가, 의미가 있는 사람인가요?
 
아실링 펜들레엄:(헬레네, 헬리. 당신은 알고 있을까? 그 이름과 애칭을 부르고 생각할 때 내가 얼마나 큰 감정을, 당신을 향한 애정을 꾹꾹 담아 말하는지? 단 한 번도 가벼운 마음으로 그 이름을 부른 적 없다. 이번에도 역시 그럴 것이고.) 당신이 없는 세상은 너무 이상해요. 평화와 고요... 전부 제게 어색하게만 다가오네요. 전부 당신이 없어서 그래요. 그러니 제가 할 수 있는 것은 이번에도 단 하나뿐이네요.
당신과 다시 미아가 되고 싶은 저를 너무 미워하지 말아 주세요. 그 기약 없는 시간을 당신과 다시 겪고 싶을 만큼 저는 당신을 애정하고 있어요. 보고 싶어요. 저에게 가장 사랑스러운 당신, 헬레네.
 
이름을 부르고, 거짓된 여름을 부숴요.
 
남을 기억하고, 형상화할 수 있는 최고의 단어를.
 
헬레네를 오롯이 기억하는 당신의 입으로.
 
 
깜빡.
 
당신이 헬레네의 이름을 부르자, 모든 기억이 선명해지기 시작합니다.
 
배를 타고 도착한 호그와트. 머리 위에 올려진 낡은 모자가 힘껏 외치는 소리. '래번클로!'
 
기숙사 연회장에서 만난, 큰 모자를 쓴 주황색 머리칼의 소녀.
 
룸메이트가 되어 같은 방에서 자고 일어나던 나날들. 자기 전 침대에서 소곤소곤 나누었던 이야기들.
 
호그와트를 휘저으며 할로윈 사탕을 찾고, 쥐를 만나 기겁하는 헬레네를 달래주기도 하였으며,
 
예쁜 드레스를 차려입고 달빛 아래에서 맨발로 춤을 추기도 하였죠.
 
졸업 후에는 어땠던가요. 함께 여행을 가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죠. 바닷가에서 물장구를 치고, 높은 밤하늘을 올려다보고…….
 
두 사람만의 시간을 만끽하던 어느 날, 갑작스럽게 두 사람을 뒤쫓는 무리들에게서 도망치다 이곳까지 오게 된 것입니다.
 
동시에, 세계의 소리가 멈춥니다.
 
맴맴 울던 매미의 소리, 복도에서 아이들이 재잘재잘 떠드는 소리, 바람에 커튼이 흔들리는 소리까지.
 
시간이 멈춘 듯 이곳은 고요해집니다. 기이한 침묵.
 
충분히 겁먹을 만한 상황인데도, 되레 익숙하다는 느낌이 먼저 듭니다.
 
<관찰력> 판정
 
아실링 펜들레엄:
관찰력
기준치: 85/42/17
굴림: 72
판정결과: 보통 성공
 
깜빡이던 형광등이 꺼지고 맙니다. 정전일까요?
 
아니… 창밖을 봐요, 아실링.
 
창밖으론 하늘, 땅이랄 것도 없이 검은 우주만이 펼쳐져 있습니다.
 
어지러울 정도로 새까만 밤과 반짝이는 은하수, 촘촘히 박힌 별들.
 
건물도 도로도 그 무엇도 남아있지 않습니다. 짙고, 또 짙은 밤하늘이 전부입니다. SANC (0/1d2)
 
아실링 펜들레엄:
SAN Roll
기준치: 58/29/11
굴림: 74
판정결과: 실패
rolling 1d2
 
(
1
 
)
 
 
=
1
 
이성 1 감소.
 
당신은 깨닫습니다. 이 거짓된 세계가 부서지고 있다는 것을요.
 
모두가 사라지고, 오로지 아실링만이 이곳에 남아있습니다.
 
아뇨, 아니에요, 당신은 혼자가 아니라…
 
헬레네 L. 라세리온:아실!
 
운동장이었던 그 너른 공간 한가운데, 우주 위로 헬레네가 동동 떠 있습니다.
 
반짝이는 별들 사이, 중력을 무시한 채 흩날리는 주황빛 머리카락.
 
마치 그림의 한 폭 같습니다.
 
그가 당신을 향해 무어라 소리칩니다.
 
<듣기> 판정
 
아실링 펜들레엄:
듣기
기준치: 80/40/16
굴림: 36
판정결과: 어려운 성공
 
헬레네의 입모양과 더불어 목소리가 아련하게 들려옵니다.
 
헬레네 L. 라세리온:당장 밖으로 나오셔야 해요. 학교가 무너지고 있어요!
 
쿠궁, 무언가 무너지는 소리와 함께 별가루들이 흐드러집니다.
 
100번, 600번, 800번. 책장들이 모두 별 가루가 되어 사라지고 있어요.
 
심지어… 도서실 전체가, 학교 전체가. 저 먼 바닥부터 하나둘씩 흩어져 부서지는 중입니다.
 
당연하죠, 이 세계를 부수는 단어는 당신이 읊었잖아요?
 
주변을 둘러보면 마땅한 탈출구가 보이지 않습니다. 이대로 잔해 속에 깔리면 어쩌죠?
 
다행히도 옆 벽면에 창문이 보입니다.
 
아니, 이게 다행인가요? 지금이 당신이 있는 층은 1, 2, 3… 떠올리지 않는 편이 좋겠습니다.
 
그러나 다른 방법이 없어요.
 
헬레네 L. 라세리온:제가 받아드릴게요. 뛰어내리세요, 아실!
 
부서지는 학교, 창문 아래의 헬레네가 소리칩니다.
 
창틀을 딛고, 유일하게 부서지는 세계 속 당신을 바라보는 이에게 뛰어내려요, 아실링.
 
응원하듯, 거센 바람이 당신의 등 뒤에서부터 불어옵니다.
 
아실링 펜들레엄:이성적으로 생각하면 이건 낙법으로도 생존이 확실할 수 없는 높이인데. (아찔한 높이에 삐질 거리며 웃다가 창틀에 발바닥을 올린다.) 좀 무섭지만! 그리로 갈게요! 헬리!
 
창턱을 밟고 아래로, 다시 아래로.
 
별가루가 흩어지매 까만 우주는 눈이 부시게 아름답습니다.
 
이어질 추락에 눈을 질끈 감아도, 당신은 아주 천천히. 중력을 무시하고 아주 천천히.
 
바람 따라 나는 민들레 씨처럼 느릿하게 떨어집니다.
 
와락, 그런 당신을 헬레네는 쉽게 그러안아 잡습니다.
 
여전히 흐릿하지만, 그 얼굴의 이목구비는 점점 선명해지고 있어요.
 
나풀거리는 머리카락 탓에 꼭 물에 빠진 것만 같습니다. 별가루가 우리를 감싸요.
 
이윽고 외부 세계로 나가기 위해, 외부 세계와 가장 강하게 연결된 헬레네가 묻습니다.
 
헬레네 L. 라세리온:아실, 제 이름이 기억나세요?
 
아실링 펜들레엄:... 모른다고 말했다가 당신에게 조금 혼나고 싶어졌어요. 아, 그러면 당신은 저를 혼내는 게 아니라 슬퍼하려나요, 헬리?
 
당신이 대답하자, 흐릿하던 헬레네의 얼굴이 되돌아옵니다.
 
헬레네 L. 라세리온:정마알…… 짓궂으세요! (당신의 눈과는 색이 다른 푸른빛 눈이 별빛을 가득 담고 아른하게 반짝거린다. 태양을 닮은 주황빛 머리칼이 바람에 물결쳤다.)
그래도 아실이 불러주는 제 애칭을 들으니 너무 좋네요. (웃는다. 이제는 분명해진 표정. 너무도 행복하고 기뻐 보이는 낯으로.)
그러면, 저희가 어떤 관계였는지도요?
 
아실링 펜들레엄:이런 제 짓궂음까지 당신이 다 받아줘서 그래요. 조금만 덜 받아주셨다면! 어쩌면 저는 성숙한 사람이 되었을지도 몰랐을걸요? (점점 선명해지는 얼굴을 보다 두 뺨을 손바닥으로 감싼다. 그래. 이 색이 너무나도 그리웠다. 웃을 때 당신 눈이 어떻게 접히는지, 장밋빛 입술이 어떻게 벌어지는지 찬찬히 살피다가 고개 숙여 제 뺨을 비비적거렸다.)
계속 좋아해 주셔야 해요. 앞으로도 그렇게 부를 테니까요. 이미 질리도록...? 물론 질리지 않아야 하지만! 많이 들으셨지만 더 들으셔야 해요. (마음이 편해졌는지 히죽.. 하고 입꼬리가 휘어졌다.)
그럼요. 제가 당신을 무척이나 아끼고, 당신이 무척이나 저를 아꼈죠. 세상에 둘도 없는 친구면서, 이해자, 앞으로 같이 수없이 여행을 떠나줄 동반자잖아요. 아니라고 하지 마세요!
 
당신이 대답하자, 반짝. 둘의 팔에 새겨진 주문진에 빛이 들어옵니다.
 
헬레네 L. 라세리온:(뺨에 온기가 느껴진다. 맞잡는 손, 절로 휘어지는 눈가.) 어떤 일이 있어도 아실은 저를 잊지 않아 주실 거라고 믿었어요. 고마워요, 불안에 차 떠올렸던 상념을 의미없는 것으로 만들어주셔서. (도서실에서의 쪽지를 말하는 듯.) 그러니 저는 어떤 아실이더라도 좋아할 수밖에요. 장난기가 넘치는 아실도 재치 넘치는 아실도 모두 소중해요.
어떻게 질릴 수가 있겠나요. (당신으로 말미암아 형상화된 '헬레네' 라는 이름이 저의 것인데.) 제 이름이 헬레네고, 당신의 이름이 아실링인 한, 우리는 언제까지고 서로의 헬리이고 아실일 거예요. 끝도 없이 들려주세요. 저의 애칭을.
(부정할 마음은 손톱만큼도 없었다. 친구이고 이해자이며 동반자. 그것만큼 우리가 거쳐온 세월을 충실히 표현할 수 있는 단어가 있을까?) 이제는 또다시 새로운 여행을 떠나기로 해요. 둘이 함께.
그리고 또 하나…… 예쁜 드레스를 차려입은 프롬 때 저희만이 보냈던 특별한 시간을 기억하시나요?
 
아실링 펜들레엄:제 세상에 당신의 존재가 얼마나 크게 자리 잡고 있는지 모르시군요..! 당신이 없었다면, 지금의 저 역시 없었을 거예요. 이런 장난 가득한 저도 다정하다고 해주셨죠. 그런 다정한 부분을 만들게 도운 것은 당신인걸요. 웃을 수 있는 것도, 다 당신 곁에서 웃음을 배운 것인걸요... (말하다가 중간에 울음이 나올 것 같았는지 작게 훌쩍였다.) 우리의 만남이 계속 있는 동안, 저는 당신의 아실이에요. 그러니 소중하게 여겨주세요. 동시에 제가 가장 애정하고 있는 당신도 소중하게 여겨주시고요...
멈출 생각이 없답니다. 어느 세계에 도착하던지 당신의 이름을 부를게요. 당신의 애칭을 매번 애정 담아 말할게요. 당신 말대로 우리는 언제까지 서로의 헬리이고 아실이니까... 우리의 이 부름은 끝이 없을 테니까...
아, 또 여행이라니 기대가 되네요. (당신 얼굴에 지침의 기색이 없나 살펴봤다. 당신이 지쳤다고 한다면 자신이 업고 다니면 될 일이다. 우리는 어떤 상황에도 함께 있어야 할 테니.) 이번에는 또 얼마나 아름다울까요? 이번에는 걱정 없이 다니도록 해요. 방금 전의 여행은 조금 힘들었으니까요.
당연하죠. 그것만 기억하는 줄 아세요? 제가 생각보다 똑똑한 것 아시죠? 당신과 같은 래번클로의 아이잖아요. 그래서 많은 것들을 기억한답니다. 아무런 색도 없던 회색 교복 차림으로 당신과 처음 만났던 날도 기억하는걸요. 귀염기 없던 저에게 말을 걸어준 당신이 아직도 생생해요. 같은 색의 교복을 입고 좋아하던 날도, 저를 깨워주시던 날의 당신도, 프롬 때 맨발로 춤추던 것까지 전부 기억한답니다.
 
헬레네 L. 라세리온:울지 마세요, 아실. (하지만 그런 저 역시도 감격과 안도감, 그간 쌓여온 시간의 무게에 절로 눈물이 맺힐 것 같았다. 손가락으로 다정히 그의 눈가를 쓸어준다. 꼭 유리를 대하듯 당신에게 손을 뻗고 끌어안을 것이다. 여리게 끼인 얼음을 밟듯이 아실에게 저의 자취를 남기고 싶었다.) 그럴게요. 걱정 마세요, 아주 자신있는 일이니까요. (얼마나 멀어지더라도 우리는 서로를 향해 손을 뻗겠지. 기꺼이 맞닿아 손가락을 얽을 수 있으리라고 믿어 의심치 않으면서.)
후후. 귀염기 없기는요. 아직도 앳된 아실이 제 눈에 선한걸요. 자라서 눈에 별안간 붕대를 감고 왔을 때에는 얼마나 놀랐는지. 아실과 보낸 모든 추억이 소중해요. 저 하늘에 뜬 수많은 별들이 꼭 추억인 것처럼, 끝도 없이 헤일 수 있을 것 같답니다.
 
당신이 대답하자, 모든 별가루가 허공에 둥둥 뜬 채로 멈춥니다.
 
헬레네 L. 라세리온:그러면 마지막으로 물어볼게요.
저와 함께 소중한 세계로 돌아가실 거죠? (양손을 꼭 맞잡은 채, 조금은 촉촉해진 탓에 반짝이는 눈가를 하고서 묻는다.)
 
아실링 펜들레엄:제가 뭐라 대답할지 이미 알고 계시면서...
(못할 일도 없었다. 당신이 원한다면 언제든지, 원하는 만큼, 아니 그 이상으로 말할 수 있었다. 언제나 당신을 향한 애정을 가득 담아서... 당신의 영원한 아실으로서.) 당신과 함께 갈 거예요. 돌아가요. 저와 당신의 세계로.
 
답을 들은 헬레네가 당신의 두 손을 잡습니다.
 
피부 위로 새겨진 별자리와 같은 무늬가, 애초에 하나였던 것처럼. 둘의 팔을 타고 이어져 반짝입니다.
 
우리의 눈에는 푸른 빛이 스칩니다.
 
어디선가 매서운 바람이 불어오고, 중력이 배로 느껴지는 기분에 속이 울렁거립니다.
 
하지만, 이건 모두 집으로 돌아가기 위한 일이었잖아요?
 
헬레네 L. 라세리온:아실과 함께라면 이 여정이 얼마나 길어지더라도 그저 즐거운 여행만 같겠죠.
다시금 오랜 길을 헤매게 되더라도 서로를 믿고, 서로를 붙잡고 기대기로 해요. (저를 위해 이 평화로운 세계를 포기해 준 당신에게 바치는 헌사.)
 
부서져 가는 세계, 거짓된 세계, 꾸며진 여름.
 
우린 그것들을 두고 차원의 관문을 넘을 거예요.
 
어쩌면 다시 우주 미아가 될지도 모르는 일입니다. 하지만…
 
아실링 펜들레엄:아주 길어질지도 모르죠. 하지만 이것 하나만큼은 약속할게요. 당신이 지루하거나 슬플 일 없도록 할게요. 그 여행의 끝과 시작이 새롭고 기대될 수 있도록요.
헤맨다고 해도 그 과정까지 즐길게요.. 당신 말대로 우리는 혼자가 아니니까.. 함께할 사람이 있으니 언제나 기대고 일어설 수 있어요. (나의 모든 것이나 다름없는 당신. 사랑하는 당신. 나를 모든 생을 당신에게 헌사합니다. 영원히.)
 
눈앞의 상대가 환히 웃습니다. 마주 잡은 손이 웅웅, 진동하며 가볍게 떨립니다.
 
이번에는 어쩐지 감이 좋아요.
 
여름을 말려 심장에 꽂는 법.
 
수없이 반복한, 수없이 넘은 이 여름을.
 
헬레네 L. 라세리온:다음 세계에서도 서로를 기억에 남기기로 해요.
(행복한 웃음. 꼭 맞잡은 손. 우리를 밀어주는 바람에 기대어, 목적지를 알 수 없는 곳으로.)
 
이젠 모두 훌훌 털어버릴 차례입니다.
 
강한 빛이 주문진에서 쏟아집니다.
 
우린 차원을 넘기 전, 집으로 돌아가길 빌며 속삭이곤 했죠.
 
이렇게, 우주 한가운데에서, 서로를 보며, 지금처럼.
 
하나,
 
둘,
 
셋,
 
 
깜빡.
 
ENDING 1. 집으로, 함께.
 
헬레네 생환, 아실링 생환
 
: 보상 : 진행 중 감소한 이성 전체 회복, 우리가 살던 세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