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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914~230915] 쟈이&아이린 - 지구 최후의 인류

플레이타임 : 7시간

 

 
.
 
Writer 교수
 
.
 
우리, 언제쯤 우주로 가게 될까?
 
...
 
쟈이는 천천히 눈을 뜹니다.
 
쟈이 E. 에벤포드:....
 
환한 빛이 망막을 투과하자 익숙한 대피소 내부가 보입니다.
 
곧 차가운 기온이 쟈이의 피부에 내려앉습니다.
 
쟈이 E. 에벤포드:(익숙하게 상체를 일으키고 일어서 주변을 둘러본다. 평소의 대피소는 어떻더라...)
 
방 안은 정적입니다.
 
아이린의 모습은 보이지 않지만 조금 전까지 자리에 있었던 아이린의 흔적이 남아있습니다.
 
식물도감이며 나비 박제 표본, 당신이 글을 써내려간 노트나 천문학 책들.
 
쟈이와 아이린이 만들어낸 조악하지만 가득 찬 공간이 보입니다.
 
쟈이 E. 에벤포드:(눈을 끔박끔박 감았다 뜬다.) 아이린~. 일찍 일어났나요?
(자리에서 일어나며 담요며 주변 물건들을 치워냈다.)
 
언제 잠이 들었던 걸까요?
 
오래 잠들어 있었던 것처럼 눈꺼풀이 무겁습니다.
 
하지만 이상하게 몸은 가볍습니다.
 
겨울잠을 자기에는 봄이 찾아오지 않을 시대죠.
 
쟈이 E. 에벤포드:....? (얼마나 잤더라.)
 
정확히 얼마나 잤는지는 잘 기억이 나지 않네요.
 
쟈이 E. 에벤포드:으음.... (자기 몸상태를 체크한다. 배가 고플까?)
 
배는…… 딱히 고프지는 않습니다. 그냥 평이~한 느낌.
 
쟈이 E. 에벤포드:(평이~)
(마지막 기억이 언제쯤일까?) 테라코르~? 아이린~. (기지개 한 번 쭉)
 
대답은 들려오지 않네요. 대피소엔 없는 걸까요?
 
쟈이가 일어난 대피소 한쪽 벽은 지진과 해일, 충격을 버티기 위한 고강도 특수 강화 유리로 제작되었습니다.
 
투명한 유리 안에서 보이는 밖은 전부 새하얀 눈에 파묻혀 있습니다.
 
지구 전체가 얼음 같은 추위에 잡아먹혀지고 있는 상태입니다.
 
대피소 방 안은 어지럽습니다.
 
탁자에서 떨어져 있는 책들. 커피 자국이 남아 있는 컵. 일정한 속도에 맞춰 깜박이는 전등….
 
쟈이 E. 에벤포드:으.... (보기만 해도 추어.)
 
추어
 
아마 아이린은 곧 돌아올 겁니다.
 
그 전에 추위에 적응이라도 할 겸 방을 치워두는 게 낫겠습니다.
 
쟈이와 아이린은 지금까지 그래왔던 것처럼 계속 이 대피소를 집으로 삼아 살아가게 될 테니까요.
 
쟈이 E. 에벤포드:읏차.... (일단 적당히 정리해볼까!)
 
:[유리창 밖] [탁자] [냉장고] [현관] 조사가 가능합니다.
 
쟈이 E. 에벤포드:(일단 신경쓰이니까 책을 척척 정리해 올리며 탁자를 살펴본다.)
 
탁자와 함께 마련된 의자에는 아이린과 쟈이의 옷들이 아무렇게나 걸려 있습니다.
 
벽에 마련된 옷걸이도 똑같습니다.
 
아이린 옷도 같이 좀 정리해둘까요?
 
쟈이 E. 에벤포드:(정리해두자. 한번씩 팡 털고 잘 접어둔다.)
 
옷을 팡팡 털자, 아이린의 겉옷 주머니에서 작은 물건이 하나 떨어집니다. 이게 뭐지?
 
쟈이 E. 에벤포드:응? (물건을 조심조심 집어든다. 뭐지?)
(깨지는것만아니면돼깨졌으면날죽여요)
 
무선 전파기기입니다.
 
다행히 안 깨지고 멀쩡합니다 (애초에 깨질 만한 물건도 아니고요)
 
초소형으로 제작 된 이 기계는, 지구 주변을 이루고 있는 우주 상공 주파수를 미세하게 감지하고 그들이 보낸 신호를 지구의 언어로 변형해 송출시킬 수 있습니다.
 
쟈이 E. 에벤포드:(휴!)
(기기를 만지작거린다. 이거 내가 읽을 수 있나요?)
 
네, 쟈이도 조작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어떤 주파수도 잡히질 않네요.
 
탁자 위에는 오래된 [신문]들과 물컵. 책 몇 권이 어지럽게 놓여 있습니다.
 
쟈이 E. 에벤포드:(에잉... 기기 만지작거리다 잘 챙겨넣고 신문을 펼쳐봅니다.)
 
신문은 정말 오래 되었습니다.
 
인쇄된 글자 대부분이 지워졌고 알아볼 수 있는 거라고는 매끄럽게 이어지지 못하는 단어들 몇 개가 전부입니다.
 
우주선. 기상. 인구. 수용. 생존률…
 
단어들은 어떠한 집합도 가지지 못한 채 그 자리에 남아 있습니다.
 
<감정> 혹은 <예술> 판정
 
쟈이 E. 에벤포드:
감정
기준치: 5/2/1
굴림: 73
판정결과: 실패
(음! 아무래도 이과생이지.)
 
음! 이과생이라 잘 모르겠습니다.
 
정리되어 있지 않은 책의 제목은 제각각입니다.
 
쟈이 E. 에벤포드:(생존률이나 몇 글자 바라보다 신문 내려두고 책을 착착 정리하며 살핍니다. 무슨 책이더라~)
 
인류가 멸망을 선언하기 전 쏟아져 나온 수십 권의 생존과 우주, 그리고 새로운 행성에 대한 이야기가 적힌 책들.
 
아이린은 지구에 남은 이후 이 책들을 참 많이도 읽었습니다.
 
아마 당신의 소설 다음으로 많이 읽은 것 같네요.
 
3년간 아이린은 언제나 당신의 신권을 가장 먼저 읽어 보는 독자였고, 유일한 독자기도 했습니다.
 
쟈이 E. 에벤포드:(내 소설을 그만큼 읽어줬다구요........ 새삼 감동받음.)
(책을 조심스레 정리해둔 다음, 유리창 밖으로 시선을 돌립니다.)
좀 질리는 풍경이지만, 어쩔 수 없는거겠죠... (유리창 뽀득뽀득)
 
무척이나 적막하고, 적요하고, 지겨울 만한 시간이었죠.
 
유리창에 손을 대자 손톱 끝부터 한기가 느껴집니다.
 
밖이 얼마나 추울지 상상이 가는 온도입니다.
 
지구를 덮은 이 눈이 바다이고, 산이고. 곧 하늘인 것처럼 눈은 지평선도 되고 수평선도 되는 것 같습니다.
 
어디가 바다인지 또 어디까지가 땅인지 구분할 수 없습니다.
 
나무는 메마르고 가난한 채로 무거운 눈을 버티고 있습니다.
 
멸종의 시대가 다가오기 전 상상해봤던 인류의 멸망은 어떤 모습이었을까요?
 
지구에 살고 있던 모든 생명체들은 추위를 이길 수 없었습니다.
 
<관찰> 판정
 
쟈이 E. 에벤포드:(지구의 생명은 일정한 온도에서 생장하고, 살아간다. 동식물은 물론 인간도 다르지 않았다. 그러나 동시에 그들은 그 자연스러운 섭리에 저항하기 위한 힘을 길렀으니. 지금 자신은 방주를 태워보내고, 그 증거가 될 수 있을 터다.)
관찰력
기준치: 65/32/13
굴림: 90
판정결과: 실패
(눈 부비부비)
 
생명이라고는 전혀 느껴지지 않는 삭막한 겨울은 영원합니다. 그리고 낯설게 느껴집니다.
 
쟈이가 살았던 과거의 지구와는 전혀 다른 모습이 되어버린 이 곳.
 
쟈이 E. 에벤포드:어쩔 수 없지요~.... 이제 이게 익숙해지기도 했고. (혼잣말 중얼거리면서 냉장고 쪽도 정리할 요량으로 걸음한다.)
 
스스로 방주를 만들어 끝까지 저항한 인간들도 있었으나, 모두가 그러지는 못했겠죠.
 
죽거나, 도망친 이들도 있었고, 아이린과 쟈이의 최후도 아마 그들과 같을 겁니다.
 
방 안에 마련된 냉장고는 실상 쓸모없는 제품입니다.
 
쟈이 E. 에벤포드:(하긴...)
(밖에 자연냉장고가있는데)
 
대피소 안 온도는 영하를 웃돌고 있습니다.
 
아이린과 쟈이가 먹고 마시는 음식들은 온도에 큰 영향을 받지 않습니다.
 
하지만 그래도 아이린은 방 안에 냉장고를 가져다 두었습니다. 무슨 고집인지는 알 수가 없습니다.
 
같이 들어야 한다면서 쟈이까지 끙끙댔던 기억이 납니다...
 
쟈이 E. 에벤포드:(그래도 정리는 해야 하니까요! 열어버림)
냉장고.....
내다버리고싶네요... (솔직)
 
냉장고 안에는 물 두 병과 단단하게 밀폐 포장된 음식이 들어 있습니다.
 
쟈이가 한번만 봐주자
 
냉장고 : 끼잉
 
쟈이 E. 에벤포드:음. (봐줌)
(그렇게 어질러지진 않았겠지만 사삭 정리해두고 잘 닫아둔다.)
 
닫히기 전에 슬쩍 보니 아래칸에 술도 한 병 있습니다.
 
멸망한 지구에서 술이라니. 어울리지 않는 조합이 조금 웃기네요.
 
쟈이 E. 에벤포드:?
내가 봐줍니다.
(잘 내버려둬요)
 
깔끔하게 정리된 냉장고는 가진 것보다 가지지 못한 것이 더 많습니다.
 
아이린 E. 테라코르:깼니?
 
방을 정리한다는 명분으로 이곳저곳을 살피고 있을 때, 뒤에서 아이린의 목소리가 들립니다.
 
쟈이 E. 에벤포드:?
 
옷에 묻은 눈을 털며 현관에 서 있는 아이린의 모습은 과거나 지금이나 달라진 게 없습니다.
 
쟈이 E. 에벤포드:술 안 깠어요. (?)
 
아이린 E. 테라코르:아무 말도 안 했는데. (어깨 으쓱)
 
쟈이 E. 에벤포드:(장난스레 웃으면서) 어디 다녀왔나요~? 일어났는데 없어서 놀랐는데.
 
아이린 E. 테라코르:전망대에. 절반 넘게 눈에 파묻히긴 했어도 어디 부서지거나 망가진 곳은 없더구나. 다행이지.
 
협소한 현관에 아이린과 쟈이의 신발이 가지런히 정리되어 있습니다.
 
아이린이 달고 온 눈이 바닥에 떨어집니다.
 
대피소 전망대는 대피소와 조금 떨어져 있는 건물체입니다.
 
쟈이 E. 에벤포드:아, 얼른 옷 갈아입어요. 체온 더 떨어질라. (수건을 가져다준다.)
전망대.... 다행이네요. ....흠, 다음엔 나도 한번 가봐야겠어요.
 
3년 전이었나요?
 
생존 인류를 태운 우주선이 지구의 중력을 이겨내고 도착지가 정해져 있지 않은 우주로 날아 간 날이.
 
전망대는 우주선에 타지 못한 잔류된 인구가 우주로 향하는 우주선을 볼 수 있는 곳이었습니다.
 
아이린과 쟈이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들은 우주선에 타지 못했습니다.
 
우주선에 탄 채 새로운 지구, 새로운 개척지를 찾아 나선 인류가 어떻게 되었는지는 모르지만,
 
한 가지 확실한 건 아이린과 쟈이를 제외하고 지구에 남게 된 인류들은 모두 멸종했다는 사실입니다.
 
네. 그렇습니다.
 
아이린과 쟈이는 얼어붙은 행성에 남은 지구 최후의 인류입니다.
 
아이린 E. 테라코르:(수건 받아들어 어깨에 내려앉은 눈을 탁탁 턴다.) 정리하고 있었던 것 같은데, 또 더럽혀 버렸네. 오래 기다렸니?
 
쟈이 E. 에벤포드:(미련이 남는 건 어쩔 수 없지요~. 와 같은 상념 흘러넘기며 고개 저었다.) 그렇게 오래는 아니었어요.
만약 반나절정도 더 비웠다면 찾으러 나섰을지도 모르지만?
(장난스레) 최후의 인류라고요, 우리~.
 
아이린 E. 테라코르:그래, 인간이라곤 딱 둘만 남았는데 말도 없이 멀리 가버려선 안 되지. 그럼 혼자 남은 사람이 외로워질 것 아니니? (사실상 인류는 끝났다. 우주선은 이미 오래 전 지구를 떠났고 우리는 그곳에 오를 수 없었다. 전망대에서 멀어져가는 우주선을 바라볼 때 어떤 표정이었고, 어떤 생각을 했었는지는 이제 기억도 잘 나지 않았다.)
그리고 네가 다음에는 어떤 글을 쓸지 궁금해서라도 떠나지 않을 거니 걱정 마렴. 책을 읽어주는 사람이 없으면 기껏 쓰여진 글이 안타깝잖아.
 
쟈이 E. 에벤포드:외로움 뿐이겠어요? 앞으로 얼마나 더 남았을지 모를 최후를 혼자 버텨야 하는 건.... 막연하니까요.
(기실 우리는 전망대에서 우주선을 떠나보내는 순간부터 끝을 맞이할 운명이었으나, 끝까지 영원히 발버둥을 쳐야 했다.)
...그럼요, 다음 작품 주제는 '크리스마스 파티'랍니다. 냉장고를 열었다 옛날 생각이 나버렸어요~.
(글을 쓰는 것도, 발버둥 중 하나로.... 신작은 계속 쓰여질 것이다.)
 
아이린 E. 테라코르:막연하지. 예측할 수 없는 시간이라는 건. 앞을 알 수 없다면 무게는 배가 될 테니 말이야. (데린은 과연 우주선에 탔을까? 지구에 눈이 몰아치고 얼마 지나지 않아 그와 소식이 끊겼고, 더는 만날 수 없었다. 살아있기를, 우주선에 그의 자리가 있기를. 아이린이 할 수 있는 건 소망뿐이었다. 이 끝을 짐작할 수 없는 적요한 시간도 어쩌면 영원의 한 형태일까.)
크리스마스 파티? 좋은 주제네. 기대하고 있을게. 이제는 다른 이들과 함께 보냈던 파티도 잘 기억이 안 나. 그때에는 내게도 친구가 여럿 있었는데 말이야……. 이젠 하나밖에 안 남았네. (자신이 타지 못했다는 사실 자체에 절망하거나 분노하지는 않았다. 삶에는 언제고 큰 미련이 없었으니까. 다만 지구의 생명들이 모두 사라져간다는 사실을 실감할 때면, 아주 조금은 두려운 것 같기도 했다. 자신이 맞이할 끝이.)
참, 술은 언제든 마셔도 상관없어. 아껴봤자 무엇 하겠니.
 
쟈이 E. 에벤포드:음, ....그러면.
같이 마실래요?
마지막 파티. 아, 취하는 건 안 돼요. (잔잔한 웃음, 그러나 퍽 단호하다.) 만에 하나라도 인류 마지막 죽음이 주정 부리다 뭔가 실수해서 죽어버리는 건 납득 못 하니까.
 
아이린 E. 테라코르:술은 마시되 취하지 말아야 하는 거니? (고개 살짝 기울인다.) 어려운걸. 그러면 난 조금만 마셔야 하는데. 파티를 여러 번 열 수도 있지 않으려나?
확실히 그런 죽음은 우스울 것 같긴 해. 영화처럼 장엄하거나 멋진 끝 같은 건 기대도 안 하지만 말야. (약간 웃었다)
 
쟈이 E. 에벤포드:천천히 마시면 되지 않을까요? (키득) 어쩔 수 없어, 우린 이미 한 배를 탔으니 사인도 동일하게 만들 거에요.
가능하다면 밖에서 마시고 싶은데, 진짜 얼어죽게 될 것 같네요. 아쉬운걸~.
 
아이린 E. 테라코르:안 돼. 사실 지금 상황으로 보자면 얼어죽는 게 가장 유력할 것 같긴 하지만, 그래도 지금 그렇게 죽는 건 용납 못 하겠구나. 아직은 버틸 수 있는 온도잖니?
 
쟈이 E. 에벤포드:으음. ........ 사실 그렇게 따지면 우린 술을 체온 유지 장치로 써야 해요. (심란함)
 
아이린 E. 테라코르:낭만이 없어지니까 싫어. (?)
 
쟈이 E. 에벤포드:테라코르가 낭만을... ..... (어쩐지 감동받음)
 
아이린 E. 테라코르:어느 소설가한테 배운 거란다. (뿌듯)
 
쟈이 E. 에벤포드:앞으로도 유일 독자를 위해 힘낼게요, 나...... (완전만족 20000%)
 
아이린 E. 테라코르:힘내주렴. 언제나 신간을 기다리고 있으니까.
좋아, 그러면― 파티를 하자. 대신 그 전에 동면 기기를 확인하러 다녀올까 하는데. 같이 가겠니?
 
쟈이 E. 에벤포드:엇, 좋아요.
(동면 기기? 나도 알고 있는 부분일까?)
 
쟈이는 모르는 사항입니다. 물어볼까요?
 
쟈이 E. 에벤포드:동면 기기 같은 것도 있었나요? 멀어요?
그런 게 있으면 말 좀 해 달라고요. 아무리 오랜 친구가 떠났기로서니 마지막의 우리끼리.... (투덜거리며 뭔가 계속해 조잘거린다.)
 
아이린 E. 테라코르:어머. 내가 말해주지 않았던가? (뻔뻔한 낯짝으로 걷기 시작한다.) 자세한 건 가면서 얘기해줄게. 별로 멀지 않아.
 
.
 
아이린은 동면실로 향하며 대피소 안에서 잠들어 있는 사람들에 대해 이야기해줍니다.
 
쟈이 E. 에벤포드:테라코르가 원래 자기 얘기 잘 안하고 그러는 건 알지만~. (파하 한숨쉬며 따라나선다.)
 
아이린 E. 테라코르:한두 해 일이니. 이쯤 봤으면 적응하렴. (진짜 낯짝 두꺼움)
 
우주선에는 타지 못했지만 최후까지 지구에 남았던 사람들이 세운 이 대피소는 약 2천여명의 인구를 수용할 수 있습니다.
 
죽음을 택한 사람이 훨씬 더 많았지만 남은 인구 중 소수는 동면을 선택했습니다.
 
지구가 다시 생명의 땅이 되면. 눈과 얼음이 녹고 추위가 물러나면.
 
… 혹은 지구를 떠났던 생존 인구가 다시 이 행성에 돌아 와 남은 사람들을 전부 데려 갈 그 날을 위해 잠든 사람들.
 
대피소 지하에 누워있지만 마치 관 속에 들어간 것과 다름없는 모습이라는 사실까지 아이린은 담담히 이야기합니다.
 
그들은 살아있지 않습니다.
 
얼어있을 뿐입니다.
 
쟈이 E. 에벤포드:이거.... 작동은 되고 있나요?
 
아이린 E. 테라코르:…… 만약 그러면 깨워줄 사람이 필요하다기에, 내가 하겠다고 했어.
잘 작동되고 있는지, 관리도 할 겸 해서.
 
쟈이 E. 에벤포드:.....흐음.
테라코르, 그렇게 되면....
(가능성이 남았는데. 그러면 우리 얘기가 달라지잖아요? ㅡ라는 말은 쉽사리 떨어지지 않는다. 이런 상황에서 가능성이나 희망을 얘기하기는 어려운 법이지.)
아니에요. 좀 더 자세히 알려주겠어요?
 
아이린 E. 테라코르:돌아올지 아닐지는 모르는 일이지. 우주는 아주 넓잖아. 3년 만에 새 행성을 찾고, 다시 돌아올 만큼 정착까지 할 수 있을 거란 생각은 안 해.
대신, 죽기 전까지 할 일도 없을 테니 하늘을 바라보며 기다리는 일을 일과에 추가해볼까 싶었어. 정말 그들이 돌아올지 궁금하기도 하고.
자, 이거 봐. (작은 카드를 꺼내서 들어보인다.) 관리자 인식증이란 거야. 좀 멋지지 않니?
 
쟈이 E. 에벤포드:(끙....) 나도 하나 해주면 안 돼요?
나도 나지만 테라코르도 만만찮게 낭만파 다 됐어요.... 몇십년 후에라도 그들이 돌아올 일이 있을까요?
 
아이린 E. 테라코르:안타깝지만 그건 안 돼. 인식증은 내가 만들어줄 수 있는 게 아니거든. 그러게 관리자를 모집한다고 할 때 엔시엇 너도 응하지 그랬니? (얄밉)
글쎄…… 올까? 왔으면 좋겠어?
(어쩌면 당연할지도 모르는 질문을 한다.)
 
쟈이 E. 에벤포드:칫.....
....말이라고 하나요, 기대는 할 수 있는 법인데~!
무리해서 돌아오길 바라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관리자면 관련 정보 다 얻을 수 있어요? 궁금한 게 한두 가지여야지.
(이대로면 아주 과학적 사실을 물어볼 작정이다.)
 
아이린 E. 테라코르:그래. 나도 돌아오면 좋겠어. 데린이 살아있는지 아닌지, 그것만 확인하고 숨이 끊어져도 좋으니까. (그만큼 오랜 시간이 흐르더라도 기다릴 요량은 있었다. 지루한 건 싫어했지만, 자신이 원하는 바에는 집착적일 만큼 끈기를 가지는 사람이었으니까.)
아니, 나라고 해서 자세한 걸 알지는 못해. 그냥 어느 정도 대피소를 관리할 자격이 있는 것뿐이지……. 자세한 건 묻지 마렴. (회피)
 
쟈이 E. 에벤포드:으음. (그 심정은 잘 알고 있어 덧붙이지는 않았다.) ...아쉬운걸요. 지금까지 숨겼으면 조오오금 알려줄 법도 한데..... (수동공격)
 
아이린 E. 테라코르:숨긴 게 아니라 모르는 거래도? (모른 척 고개 돌리고 인식증 가져다댄다)
 
아이린이 가지고 있던 관리자 인식증을 문에 갖다 대자 생경한 기계음이 들립니다.
 
아이린을 제외하고 사람의 목소리를 들어 본 적이 너무 오랜만입니다.
 
사람의 목소리를 닮은 것도 말이죠.
 
쟈이 E. 에벤포드:..... 이거 너무 어색한데요.
설마 테라코르 아닌 거랑 대화 비슷한 거 해야 하는 건 아니죠? (이런 걱정?)
 
아이린 E. 테라코르:푸훗. 웃는 법을 잊을 뻔했는데 너 때문에 다시 기억났어. (입가 가리며 작게 웃음소리 낸다) 걱정 마. 나 말곤 아무도 네 말상대가 되어주지 않을 테니까. (어째 어감이 이상함)
 
쟈이 E. 에벤포드:(헤유우 한숨 내쉬고 장치 바라본다.) 그거 다행이네요. 아무리 AI 앞이라도 뚝딱거리고 싶진 않다고요~.
 
쟈이는 아이린을 따라 동면실 안으로 들어섭니다.
 
아이린 E. 테라코르:난 네가 뚝딱거리는 모습 보면 재밌어서 좋을 것 같은데. (너무함)
 
쟈이 E. 에벤포드:너무해요! 하지만 테라코르보다 빨리 적응할 자신 있답니다. (진실.)
 
아이린 E. 테라코르:흥.
 
동면실에는 고작 한 사람이 누울 정도로 좁은 동면 캡슐 6대가 누워있습니다.
 
동면실에 진입하자 온도는 더 내려갑니다.
 
아이린 E. 테라코르:이 추위엔 내가 더 빨리 적응할걸. (겨울에 강함)
 
쟈이 E. 에벤포드:온도 얘기는 반칙이에요.... (옷 여미고 살핀다.)
 
곧 아이린은 동면 기기들을 하나 하나 확인하기 시작합니다.
 
작동에 이상은 없는지. 기기 안에서 잠든 사람들의 건강 상태는 어떠한지…
 
쟈이 E. 에벤포드:(동면 기기 체크하는 모습 곁눈질로 바라본다.)
 
<지능> 판정
 
쟈이 E. 에벤포드:
지능
기준치: 70/35/14
굴림: 87
판정결과: 실패
(추워서 머리도 안돌아가나봐)
 
이곳은 낯설지 않습니다. 아마 대피소 내부와 비슷하게 디자인 되어 있기 때문이겠죠.
 
하지만 이 알 수 없는 묘한 느낌은 무엇일까요.
 
이제는 너무 친숙해져버린 추위 때문에 감정과 판단에 이상이 생긴건 아니겠죠?
 
:[동면 캡슐] [자료 보관함] [프로젝트 화면] [철제 문] 조사가 가능합니다.
 
쟈이 E. 에벤포드:(하................ 아이린이 기기 조작하는 틈을 타 캡슐 살펴본다.)
 
성인 1명이 누우면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모두 채워질 것 같은 크기를 가진 캡슐은 매우 협소해보입니다.
 
조금만 몸을 뒤척이면 캡슐 뚜껑에 이마를 부딪힐 것 같은 높이지만 미동도 없이 누워있는 사람들에게는 문제가 되지 않는 것 같습니다.
 
캡슐 뚜껑 너머로 동면하는 인간의 얼굴이 보입니다.
 
슬쩍 바라 본 동면 인간은 우리와 같은 모습을 하고 있습니다.
 
당연한 말이겠지만 그들은 지구에 버려진 인간입니다.
 
죽음을 택하기보다 불확실한 미래와 영원의 잠을 선택한 인간.
 
쟈이가 들여다본 동면 캡슐 속 인간의 이름은 '제니(Jennie)' 입니다. 제니….
 
쟈이 E. 에벤포드:으음..... (좀 더 이해할 수 있었으면 좋겠는데. 아쉽게 손을 떼고 자료 보관함으로 향한다. 자료를 살펴보면?)
 
팔목보다 두꺼운 책과 서류들이 즐비합니다.
 
보관함에 자리를 잡고 있는 자료들은 이 지구에 남아있는 마지막 역사입니다.
 
과학과 우주에 관련된 연구자료부터 출간된 책까지.
 
굉장히 많은 정보가 마련되어 있습니다.
 
쟈이 E. 에벤포드:이걸알고서 나한테안줬다고요
(좀 펄쩍 뜀)
 
아이린 E. 테라코르:미안? 해야 하니?
그러니까 누누이 말하지만 네가 관리자만 됐더라면…… (똑같은 소리)
 
쟈이 E. 에벤포드:한권이라도 몰래 빼주면 안되는 거냐고요~.
(과학(천문학)롤 해볼래요)(?)
 
ㄱㄱ
 
쟈이 E. 에벤포드:
과학(천문학) Roll
기준치: 71/35/14
굴림: 92
판정결과: 실패
?
 
 
실화냐?ㅠㅠ
 
쟈이 E. 에벤포드:(어떻게이럴수가있어 머리야)
 
쟈이는…… 아무튼 뭔가 흥미로운 책을 펼쳤습니다.
 
‘생명의 자손’ 이라는 투박한 문구가 눈에 들어옵니다.
 
쟈이 E. 에벤포드:(하 그래도 열심히 즐김)
 
:<인간이 별의 죽음으로부터 탄생된 존재라는 건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수억 년 동안 반복된 별들의 죽음이 인간을 구성하고 있다. 그러나 최근 시행된 연구 결과를 기반으로 소수의 학자들은 인간이 태초의 우주 그 자체에서부터 존재한 미약한 생명체로부터 진화한 것이 아닌지 추측하고 있다 … >
 
<과학> 판정 다시!
 
쟈이 E. 에벤포드:This message has been hidden.
 
무슨일이있었나요?
 
쟈이 E. 에벤포드:
과학(천문학) Roll
기준치: 71/35/14
굴림: 37
판정결과: 보통 성공
(응응 아무일도없었죠~!!!!)
 
그럼그럼
 
연구 자료 대부분은 전문적인 단어와 발췌. 타 연구자들의 연구 결과로 되어 있습니다.
 
그들이 발견한 ‘태초의 우주 그 자체로부터 존재한 미약한 생명체’ 는 무엇일까요.
 
쟈이는 추가적인 내용을 찾아냅니다.
 
:<원래부터 존재했던 생명체의 시작을 찾을 수는 없다. 그 작은 생명체는 우주와 동시에 탄생했고 우주의 작은 점이 폭발했던 속도와 함께 우주로 뻗어 나갔다. 그리고 아주 우연적으로 45억년 전 지구에 안착했으며 몇 해 전, 지구를 떠났다. 지구의 생명과 멸망은 그 작은 생명체로부터 시작되었다. 미약한 증거로 지구의 온도가 낮아지기 전 지구 주변에서 지금까지의 과학 지식으로는 정의할 수 없는 생명을 가진 우주 물질 무리가 발견되었다. 그 외에도 … >
 
자료 보관함에는 동면 기기에 대한 사용법이 적힌 안내서도 있습니다.
 
안내서 앞에 표시되어 있는 동면 기기는 쟈이가 동면실에서 본 것과 같아 보입니다.
 
쟈이 E. 에벤포드:(호오.....)
(동면 기기 사용법 안내서 사삭 살펴본다.)
 
라는 글로 시작되는 설명서.
 
기기 장치를 다루는 방법과 긴급 상황시 대처 방법등이 적혀 있습니다.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낮은 온도에 얼어붙은 채 잠들어 있는 인간은 이렇습니다.
 
동면 기기는 지구에 남은 인류를 위해 개발되었습니다.
 
더 이상 추위와 병. 배고픔을 견딜 수 없는 사람들이 동면 기기의 사용을 원했고,
 
그들은 이 멸망한 행성을 떠나거나, 다시 살아갈 그 날을 위해 죽음 대신 잠을 선택했죠.
 
동면 기기의 최적 작동 유효 기간은 약 400년.
 
아이린이 더 이상 동면 기기를 관리하지 못한다면 잠든 인류는 어떻게 되는 걸까요?
 
쟈이 E. 에벤포드:흐으음.....
테라코르, 혹시...
지금 비어있는 캡슐 있나요?
 
아이린 E. 테라코르:아니. 여섯 개 모두가 다 차있지. 왜, 너도 써 보려고?
 
쟈이 E. 에벤포드:그건 아니라.... 없다면 말아요!
소설가라 그런지 이런저런 생각이 다 드는 거 있지요? (키득 웃으면서 다시 주변 둘러본다.)
(철제 문 쪽으로 쟈박)
 
아이린 E. 테라코르:종종 와서 살펴볼 때마다 드는 생각이지만, 살아있는 사람처럼 느껴지진 않아.
 
쟈이 E. 에벤포드:그래도 다시 깨어날 수 있다고 생각해서 관리하는 거 아니었나요?
 
아이린 E. 테라코르:그래. 깨어날 수야 있겠지. 하지만 깨어나기 전까진 모든 생명 활동이 멈춘 채로 잠들어 있으니까……. 잠은 매일 겪는 짧은 죽음이라는 표현도 있잖아.
 
쟈이 E. 에벤포드:일어날지 아닐지도 모르는 영원한 잠에 들었다면 살아있는 것이 아니다, 라는 개념이군요. 이해는 한다지만....
그래도 지금 테라코르가 '관리자'로 역할을 하고 있다면 그건 아직 관념적인 부분 아닐까요?
 
아이린 E. 테라코르:맞아. 어쨌건 이들은 생물학적으론 '살아있는' 상태겠지. 뇌가 멈춘 것도 아니니…… (하지만 만일 400년이 지나도록 우주선이 오지 않는다면? 그들은 끝을 알 수 없는 잠 속에서 진정 죽음을 맞이하게 되겠지.)
난 네가 동면을 선택하지 않은 게 다행이라고 생각해.
 
동면실 한쪽 벽에 마련된 철제 문은 출입이 제한되어 있습니다.
 
자물쇠도 없고 비밀번호 입력란도 없습니다.
 
이 문은 관리자 인식증을 통해서만 출입이 가능한 문인 것 같습니다.
 
지구에 남은 마지막 대피소의 관리자는… 아이린이죠.
 
쟈이 E. 에벤포드:으음. (이따 열어달라고해야지.)
(고개 돌려 프로젝트 화면 바라본다.)
 
화면에는 둥근 지구의 현재 모습이 보입니다.
 
쟈이 E. 에벤포드:나도 동면보다는.... 지금이 나은 것 같네요.
(자세히 살펴보면? 확대 축소라던가가 될까?)
 
푸른 지구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습니다.
 
얼어붙은 지구는 유일한 파란색을 잃고 새하얀 눈으로 덮여있습니다.
 
지구 내 생명활동 감지를 나타내는 불빛은 모두 꺼져 있습니다. 기기가 고장났나 봅니다.
 
아이린 E. 테라코르:너도 같은 생각이니 더 다행이네. (읊조리며, 어느덧 옆으로 다가와 화면을 움직인다.)
 
둥근 리모컨을 반대로 돌리자 대피소 내에 존재하는 두 개의 초록빛이 사라지고 지구 반대편이 나타납니다.
 
당연하게도 그곳에는 어떤 생명도 없습니다.
 
쟈이 E. 에벤포드:오.
 
참담할 만큼 차가운 온도와 얼어붙은 땅과 바다만 존재할 뿐입니다.
 
아이린 E. 테라코르:이렇게 반대편도 볼 수 있지.
 
쟈이 E. 에벤포드:꽤 유용한데요. 우리만 남기 이전에도 종종 살폈어요?
 
아이린 E. 테라코르:가끔씩……. 별 의미는 없었지만. 저곳에 한두 개쯤은 있었던 것도 같은데. 이제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구나.
 
쟈이 E. 에벤포드:....어쩔 수 없죠~. 아, 혹시나 해서 그러는데 테라코르. 동면캡슐의 사람들이랑 아는 사이에요?
 
아이린 E. 테라코르:별로…… 얼굴이야 자주 봤으니 익숙하지만, 내 성격 알잖니? (사회성 바닥. 인간관계 좁음. 밖에 잘 나가지도 않았던 내향성 인간)
 
쟈이 E. 에벤포드:알고는 있지만.......................
아무것도 아니라고 하면 좀 상처받을지도 몰라요? (전혀 아닌 얼굴)
 
아이린 E. 테라코르:여기의 누가 상처를 받는단 거지? (두리번거림)
왜, 내가 저 사람들이랑 알면 대화라도 해 보려고? (우스갯소리)
 
쟈이 E. 에벤포드:(이마짚음)
그냥.... 아는 사람이면 매일 관리하는 테라코르의 심정을 대충 알 것 같으니까요.
그러지 말았으면 한다는 거지요~.
 
아이린 E. 테라코르:후후…… 데린이 이 안에 있었다면 하루 종일 캡슐에 붙어있다가 그대로 아사했을지도 모르겠네. (이런 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함)
걱정 마. 그럴 일 없으니까. 내 마음은…… 지극히 평온해. (거짓말이지만.)
 
쟈이 E. 에벤포드:진짜 그러지말아요좀....
참, 저기 철제 문은 어디로 연결되나요?
 
아이린 E. 테라코르:아, 거기. 예전에 사용됐던 내부 통제실인데 지금은 출입 금지 구역이야.
 
쟈이 E. 에벤포드:엥?
 
아이린 E. 테라코르:출입할 수 있는 인간들은 다 죽었지.
(?)
 
쟈이 E. 에벤포드:??
테라코르는요?
 
아이린 E. 테라코르:산소도 희박하고 온도가 낮아서, 위험하다고 판단됐는지 AI들이 인간의 출입을 모두 통제했거든.
그러니 나도 못 들어가겠네? 인간이지만.
 
쟈이 E. 에벤포드:??
AI를 설득할래요. (이러고있어요)
 
아이린 E. 테라코르:흠? 해보려면 해봐.
 
그렇게 말하며 아이린이 자신의 인식증을 가까이 댑니다.
 
쟈이 E. 에벤포드:?
 
붉은 불빛이 몇 번 깜박이더니 동면실에 출입했을 때 들었던 목소리와 같은 음성이 들립니다.
 
쟈이 E. 에벤포드:(아까부터 물음표의 연속임)
 
쟈이 E. 에벤포드:?
 
아이린 E. 테라코르:할 수 있다면.
 
쟈이 E. 에벤포드:AI랑 대화할일 없다면서요!? (어버버)
 
아이린 E. 테라코르:그러니까 못 하지. 이건 인식증을 댔을 때 나오는 자동 답신 문구일 뿐이란다.
 
쟈이 E. 에벤포드:하.........
 
아이린 E. 테라코르:하지만 시도해보는 것도 나쁘진 않으니까. (손 놓고 뒷짐지고 있겠단 뜻이다) 근데 굳이 위험한 공간에 들어가봐야겠니?
 
쟈이 E. 에벤포드:그렇군요.... 일단, 그럼 테라코르가 아는 것만 알려줘요. 무슨 내부를 통제하는 곳인지.
이게... 인간이 원래 끝에 도달할 것 같으면 뭐든 해봐야 한다는 마음이 솟아나는 법이라.
 
아이린 E. 테라코르:너도 호기심 하난 정말 어지간하다니까. 그치만 나도 안에 들어가본 건 거의 3년 전이라 잘 기억이 나지 않아. 통제실이 뭐겠니, 말 그대로 대피소의 시스템 같은 걸 다루는 곳이겠지. (애매모호하다)
혹시나 해서 말하는데 '통제실에 들어가려 시도하다가 죽음' 같은 사인은 절대 용납 못 해. 알겠니?
 
쟈이 E. 에벤포드:호기심이야 테라코르가 자꾸 그런 식으로 말 돌리니까 생길 수밖에 없지 않나요~? (눈 가늘게 뜬다.)
(심리학 롤 합니다)
 
아이린 E. 테라코르:난 아무런 말도 돌리지 않았는데. (억울한 표정으로 어깨 으쓱인다)
 
<심리학> 판정
 
쟈이 E. 에벤포드:
심리학
기준치: 50/25/10
굴림: 15
판정결과: 어려운 성공
(아이린은 오래 전 통제실 안에서 본 것이 있기 때문에, 들어가지 않길 바라는 것일까?)
 
아이린은 태연하게 철문 너머가 출입 금지 구역이라고 말하고 있지만,
 
쟈이는 그의 보랏빛 눈에서 희미하게 묻어나는 걱정을 읽습니다.
 
통제실 내에서 본 걸 기억하지 못한다는 말은 거짓말인 것 같네요.
 
나쁜 걸 숨기는 듯한 느낌은 아닙니다.
 
쟈이 E. 에벤포드:.... 흐음, 테라코르가 뭘 숨기더라도 상관은 없지만요.
날 위해서, 라는 말은 그렇게까지 고마워하지 않을 거에요. 알지요?
 
아이린 E. 테라코르:아는 척 굴기는. (눈을 잠시 마주하다가 먼저 시선 돌린다.) 다 살펴봤으면 이만 나가자꾸나. (그러나 결국 명쾌한 대답은 내놓지 않았다.)
 
쟈이 E. 에벤포드:아는 척 구는 게 누군데요~! (볼멘소리 조금 내면서 뒤따라간다.)
또 아는 다른 곳도 있나요~?
 
아이린 E. 테라코르:대피소엔 저게 전부야. 동면하는 사람들의 상태는 다 확인했으니 일단 돌아가자.
아, 참. 돌아가기 전에 책을 몇 권 가져가지 그러니. 너무 늦게 알려준 게 손톱만큼은 미안하니까.
 
쟈이 E. 에벤포드:손톱만큼 들고가주시죠.
(자료실에서 두꺼운 책 두 권 꺼내 네 손에 턱 얹어준다.)
(자기도 들어요)
 
아이린 E. 테라코르:(턱 얹힘)
 
곧 동면실 불이 하나 둘 꺼집니다.
 
어둠 속에서 그림자도 만들어내지 못하는 동면 기기.
 
살아있다고 말할 수 없는 인간들….
 
아이린의 말이 맞을지도 모릅니다.
 
동면을 선택하지 않은 건 현명한 선택이었을 겁니다.
 
왜냐하면, 문이 닫히기 전 보게 된, 빛 한 점 들지 않는 동면실이
 
3, 2, 1….
 
너무 외로워보였으니까요.
 
아이린 E. 테라코르:(다시 대피소로 돌아와 책을 내려놓는다.) 무거워. (엄살임.)
 
쟈이 E. 에벤포드:엄살.
(책 정리해두고는)
그래서 와인 깔 건가요~? 보존식량은 여엉 분위기가 안 나긴 하는데....
애초에, 대피소 밖에도 숨긴 거 있다는거지요? 스크린으로 보고 있었다면.
 
아이린 E. 테라코르:숨긴 거라니. 말이 너무 심하잖니? (그러나 타격 눈곱만큼도 안 받았다.)
그냥, 전망대에 가볼 생각이었어. 이곳도 같이 가도 좋아. 그럼 내가 숨긴 게 있는지 아닌지 확인해볼 수 있지 않겠니?
 
쟈이 E. 에벤포드:뭐가 심해요~. 어라, 아까 다녀온게 아니었나요? 같이 가준다면 나야 좋지만.
(가보자고)
 
아이린 E. 테라코르:나는 또 다녀와도 상관없거든. 대피소에 가만히 있어봤자 할 게 없으니 몸이라도 움직이면 잡념 없애는 데 도움이 되니까.
파티는 조금만 더 미뤄야겠구나.
 
쟈이 E. 에벤포드:내가아는 테라코르는 육체파는 아니었는데..... (이런 말이나 하면서 따라나선다.)
 
아이린 E. 테라코르:상황이 상황이니까. (간결하게 축약하고 밖으로 나선다)
 
아이린과 쟈이는 함께 대피소 밖으로 나왔습니다.
 
쟈이 E. 에벤포드:3년동안 나 몰래 체력단련이라도 한건 아니죠?
 
아이린 E. 테라코르:…… 싸워볼까? 체력 늘었는지 안 늘었는지. (체력이 늘어난 걸 꼭 이런 방식으로 검증해야 하는지?)
 
쟈이 E. 에벤포드:......스읍, 자신없는데. 녹슬었거든요. (이걸 또 진지하게 임하고 있긴 함)
 
아이린 E. 테라코르:…… 됐어. 연약한 작가님 때렸다가 소설 집필이 미뤄지면 나만 아쉽거든.
 
쟈이 E. 에벤포드:연약이라니, 연약이라니...!
(하참나참어이없어하다가도 금방 으쓱이고 웃어보인다.)
아무리 그래도 원래 소설 쓸 때엔 인풋이 중요하거든요? 나가서 뭐라도 머리에 넣어보고 오자고요.
(어느 방향이지...........)
 
아이린 E. 테라코르:나는 연약한 대학원생이고 말이야. (별로 체력은 늘지 않았음을 돌려 고백한다)
이쪽이야. (익숙하게 방향을 잡아 걸어갔다.) 오늘은 바람이 강하지 않네. 조금 걸어도 괜찮겠구나.
 
여전히 대피소 밖은 강한 추위가 느껴지지만 시야를 가리는 눈 때문에 앞으로 걸어가지 못하지도, 세찬 바람 때문에 피부가 얼어붙을 것 같지도 않았습니다.
 
쟈이 E. 에벤포드:기왕 하는 거 좀 더 튼튼한 대학원생이 되지 그래요. 교수도 없는데..... (눈보라에 눈가를 가리고 천천히 나아간다.)
 
대피소 밖으로 한 발 내딛자, 눈이 바로 무릎 위까지 올라옵니다.
 
발은 푹푹 빠지고 중심도 제대로 잡을 수 없습니다.
 
한 발자국, 한 발자국 앞으로 갈 때마다 다리와 허리에 잔뜩 힘을 준 채 걸어야 합니다.
 
아이린 E. 테라코르:그건 내 의지대로 되는 일은 아니라서……. 학위도 못 따고 교수가 사라지다니 괘씸하기 그지없지만 말이야.
 
<행운&민첩> 판정
 
쟈이 E. 에벤포드:그건 진짜 너무했어요...
민첩
기준치: 40/20/8
굴림: 21
판정결과: 보통 성공
(오늘 쟈이의 운은 49
기준치: 49/24/9
굴림: 25
판정결과: 보통 성공
 
아이린 E. 테라코르:
민첩
기준치: 70/35/14
굴림: 24
판정결과: 어려운 성공
기준치: 50/25/10
굴림: 5
판정결과: 극단적 성공
 
쟈이 E. 에벤포드:나 조금...
자괴감이 들랑말랑..
 
아이린 E. 테라코르:이런 걸로. 하지만 부러워해도 좋아.
 
쟈이 E. 에벤포드:부럽네요. (솔직)
 
두 사람이 힘겹게 한 발을 내딛자마자,
 
쌓인 눈의 무게를 견디지 못한 나뭇가지가 뚝 부러져 직전까지 두 사람이 있던 자리 위로 떨어집니다.
 
하마터면 쏟아지는 눈과 나뭇가지를 다 맞을 뻔했네요.
 
쟈이 E. 에벤포드:오....
인류 최후의 사인이 압사가 될 뻔 했네요. (진담)
 
아이린 E. 테라코르:그건 안 되지. 다행히 큰 나뭇가지는 아니지만…… 눈이 옷 안에 잔뜩 들어가서 감기에 걸렸을지도 모르겠구나.
 
쟈이 E. 에벤포드:어휴.... 어쨌든 다행이에요. 괜찮지요?
(아이린 어깨에 쌓이려는 눈 탈탈 털어준다.)
 
아이린 E. 테라코르:그럼, 난 아무렇지도 않단다. 오늘은 눈도 별로 내리지 않네. (희미하게 햇살 비치는 뿌연 하늘을 올려다봤다가, 다시 크게 걸음 내딛는다.)
 
대피소에서 전망대까지 그렇게 먼 거리는 아니지만, 그건 눈이 쌓이기 전의 일입니다.
 
한 걸음 앞으로 걸어 가기도 힘든 지금. 걸음을 내딛으면 내디딜수록 점점 숨이 차오릅니다.
 
쟈이 E. 에벤포드:으음, .... (같이 하늘을 올려다보고, 계속해 걸음한다.)
 
아이린 E. 테라코르:걸을 만하니? 힘들면 업어줄까? (주 : 두 사람의 신장 차이는 13cm)
 
쟈이 E. 에벤포드:왜? 요?
내가 훨씬 낫지 않을까요? 객관적으로...........?
 
아이린 E. 테라코르:난 그래도 아직 버틸 만하거든.
키 차이는 좀 나도 업으려면 못 할 거야 없겠지. (근거 없는 자신감)
 
쟈이 E. 에벤포드:나도 아직 버틸만 해요. .....그...
그냥 걷는 거랑 무게 얹고 걷는 거 차이 엄청나거든요...?
(침착....)
 
아이린 E. 테라코르:나만한 사람 업고 눈길을 걸어본 것처럼 말하네…… (안 해봤어도 이 정도야 유추할 수 있겠지만)
 
쟈이 E. 에벤포드:옛날에 해본 편이죠....
 
아이린 E. 테라코르:오미크론?
아무튼 싫음 말아. (푹 빠진 반대쪽 발을 열심히 빼서 다시 한 걸음 앞에 푹 내디딘다)
 
쟈이 E. 에벤포드:(끄덕끄덕)
(그래도 적응하고 나면 꽤 잘 내딛고 있음)
 
전망대로 향하는 길목은 좁은 오르막길입니다.
 
이 길도 진작 얼음에 덮였어야 할 곳이지만 아이린이 꾸준히 길목을 관리한 덕분에 그나마 아직도 사람이 오갈 수 있는 곳으로 남았습니다.
 
잎이라고는 전혀 없는 메마른 나무는 얼어붙은 채로 빼곡하게 서 있습니다.
 
그 가운데를 지나갈 때마다 꼭 산에서 조난이라도 당한 기분입니다.
 
지구가 멸망하기 전, 사계절 모두 눈에 파묻혀 있는 도시가 있었으니까요.
 
지금도 종종 그렇습니다. 지구의 종말이 꿈처럼 느껴집니다.
 
아이린 역시 그렇게 생각하겠죠.
 
종말은 너무 빠르고 갑작스러웠습니다.
 
아이린과 쟈이가 우주선을 타지 못한 건 힘도 운도 없어서였지만…
 
그래도 우리들은 대피소에 도착했고, 최후까지 지구에서 살아남아 있습니다.
 
운이 나쁘다고 할 수 있을까요?
 
쟈이 E. 에벤포드:불행 중 다행이랄까.... (푹푹 빠지는 눈길 걷다 얼어붙은 나무 사이를 바라본다.)
어쨌든 이런 대피소에서 마지막까지 있을 수 있는 거 말이에요.
 
아이린 E. 테라코르:대피소도 가지 못한 채로 죽는 것보다는…… 그래도 이렇게 오래 버티고 있는 게 나은 거려나?
생사를 확인하고 싶은 사람이 있어서라도 쉽게 죽을 순 없었거든.
 
쟈이 E. 에벤포드:난 그냥 어영부영 온 것 같긴 해요. 그래도 앉아서 죽기를 기다리는 것보다는 뭐든 해야 했으니까.
뭐, 그래서 중요한 건 테라코르를 만나서 다행이라는 거지만....
 
아이린 E. 테라코르:(고개 얕게 끄덕였다.) 흘러흘러 들어온 이곳에서 널 만날 줄은 정말 상상도 못했지. 사람들과는 별로 섞이지 않으면서 살아왔지만, 솔직히 조금 마음이 놓였어. 최후의 인류로 남을 줄이야 몰랐지만…… 상대가 전혀 모르는 사람인 것보다야 친구인 게 몇 배는 더 좋지.
 
쟈이 E. 에벤포드:아무래도요.... (으, 중간에 신발 들어 무겁게 들러붙은 눈 뭉치 떼어내고 다시 걷는다.) 우리가 최후로 남게 된 것도 순전히 운이지 않았나요.
 
아이린 E. 테라코르:운이 좋다고 봐야 할지 나쁘다고 봐야 할지 정말 애매하구나. 뭐어, 최후의 인류로 남는다는 건 정말 다시 못 할 경험이기는 하지. 특별하다면 특별하겠어.
 
어느덧 전망대가 꽤 가까워졌습니다.
 
대피소 창문으로 봤을 때보다 훨씬 더 거대한 크기입니다.
 
이 정도 크기도 높게만 느껴지는데 전망대의 절반은 눈 속에 파묻힌 상태니, 과거에는 얼마나 어마어마한 높이였는지 상상도 되지 않습니다.
 
낡고 허물어진 전망대 안에는 꼭대기로 올라가는 계단이 있습니다.
 
쟈이 E. 에벤포드:하.... 이거 거의 중간부터 올라가는 수준이잖아요. 잘도 다녔네....
 
아이린 E. 테라코르:귀찮고 힘들어도 계속 다녀줘야 조금이나마 길이 남지. (헐떡거리면서 계단을 오른다. 꾸준히 오갔다곤 해도 식사도 겨우겨우 챙기는 판에 체력이 붙기는 어려웠으므로……)
 
쟈이 E. 에벤포드:길을 개척한 수준.... (그래도 속으로는 이거라도 다녀서 테라코르가 살아있는게 아닐까 싶어짐)
(계단을 오르면서 간간히 아래쪽 확인한다.)
 
아이린 E. 테라코르:(잠시 말없이 계단의 손잡이를 잡고 내디디기만 했다. 그러다 한결 나직해진 목소리로 묻는다) 쟈이. 우주선이 우주로 날아가던 때, 기억나니?
 
<지능> 판정
 
쟈이 E. 에벤포드:
지능
기준치: 70/35/14
굴림: 67
판정결과: 보통 성공
우주선이 날아가던 때요.... (기억 더듬음)
 
당연히 기억납니다.
 
우주선이 지구를 떠나는 장면을 본 게 어디 우리뿐이던가요?
 
3년 전 전망대에는 사람이 많았습니다.
 
대부분의 생존자들이 떠나는 우주선을 타지 못한 사람들이었습니다.
 
대기권 밖으로 사라지는 우주선을 바라보던 사람들의 표정이 어땠는지는 잘 기억나지 않습니다.
 
아마 기억 속에 흐릿하게 자리한 그 모습 그대로일 겁니다.
 
아이린 E. 테라코르:우주 상공으로 출발하기 전에, 우주선을 탄 사람들이 우리에게 말했었지…….
 
전망대 옥상 문을 열자 눈이 부십니다.
 
예전만큼 환하지는 않아도 여전히 전망대 위를 비추고 있는 태양 때문입니다.
 
쟈이 E. 에벤포드:..... (반사적으로 눈을 찡그리고 바라본다.) ....뭐라고 했었죠?
 
시야가 익숙해지자 두번째로 눈에 들어 온 건 누구도 밟지 않은 깨끗하고 깊은 눈.
 
우주선 발사지와 도착지를 가린 채 언덕처럼 쌓인 눈길.
 
무너진 건물과 서서히 파묻혀 가는 문명입니다.
 
아이린 E. 테라코르:반드시 우리를 데리러 오겠다고.
 
전망대 끝에 올라도 우주선이 발사되었던 발사지는 보이지 않습니다.
 
과거 전망대 꼭대기에 훤히 내다 보였던 그곳은 지구에 최후로 남은 우주선 발사지이자, 도착지였습니다.
 
쟈이 E. 에벤포드:.....
 
정말 인류가 남은 우리를 위해 지구로 되돌아온다면 바로 그곳일 겁니다.
 
쟈이 E. 에벤포드:으음.
 
대피소가 이곳에 있고 얼어붙은 채 잠든 인류가 바로 여기 있으며,
 
아이린과 쟈이가… 최후의 인류로서 여기에 남아 있으니까요.
 
아이린 E. 테라코르:어떻게 생각하니? (저기 의자가 있어. 두 개의 낡은 의자를 가리켠다.)
 
쟈이 E. 에벤포드:(의자 쪽으로 향한다.) 글쎄요..... 데리러 오면 참 좋겠지만.
만약 그렇다고 할 때, 그들은 기뻐할까요? 만에 하나라도 우리까지 죽은 이후라면...
실망이 이만저만이 아닐지도 모르겠네요. ....그런 기분. (은은하게 웃으며 의자의 눈을 치운다.)
 
아이린 E. 테라코르:우리는 죽었어도 동면한 사람들만은 데려갈 수 있을지도 모르지. 뭐어, 그 사람들 일은 내가 생각해봤자 의미 없겠지만. (타인의 일이라 생각하기에 퍽 냉정하게 끊어내는 투로 말하며 의자의 눈을 털고 그 위에 주저앉듯 앉아 숨을 내쉬었다.)
하아, 힘들구나……. 그래도 올라오는 건 나쁘지 않아. 때로 오늘처럼 해가 드는 날이면, 내려앉는 햇살의 아주 미약한 온기를 느끼는 순간이 꽤 좋거든.
 
쟈이 E. 에벤포드:테라코르가 아니면 그들이 얼마나 살아있을지도 모르는 판 아니에요? (그래도 동감하는 모양인지, 저도 크게 미련을 남기지는 않았다.)
으음, .... (의자에 앉아 이마 부근을 소매로 한 번 훔치고, 가만히 숨을 가라앉힌다. 후, 짧고ㅡ 이후로는 긴 심호흡. 눈을 가볍게 감고 햇살을 느낀다.)
 
쟈이는 숨을 깊이 들이마셨다 내쉬며 눈을 감습니다.
 
드러난 맨살갗인 콧잔등과 뺨에 옅은 햇빛이 내려앉고 있겠지만……
 
구름이 가셨다고 바람이 멈춘 건 아닌 탓에, 온기가 느껴질라쳐도 차게 베어가는 칼바람 탓에 쉽지가 않습니다.
 
쟈이 E. 에벤포드:추어.
(도끼눈됨)
 
아이린 E. 테라코르:오늘은 햇빛이 꽤 많이 드네. 조금 있으면 나비도 오겠어. (이쪽은 헛소리 중)
 
쟈이 E. 에벤포드:그러게요..... 살다보면 칼바람도 이겨내는 돌연변이 나비가 있을지도 모르고....
(중얼중얼)
 
아이린 E. 테라코르:얼음 나비 같은 게 있으면 예쁠 텐데. 안 그러니? 수정으로 되어서 빛을 받으면 반짝반짝 하고 빛나는 거야. 만지면 차갑고, 단단하고……
 
쟈이 E. 에벤포드:보고싶은 거 얘기하는 타임인가요....?
생물학적으로는 말도 안 되지만 예쁠 것 같긴 해요. (잘게 웃어버린다.)
 
아이린 E. 테라코르:상상하는 덴 제한이 없잖니? (쌓인 눈 위에 손끝으로 나비 모양을 그린다.) 너도 보고 싶은 게 있음 말해보렴, 에벤포드.
 
쟈이 E. 에벤포드:으으음~..... 당장 떠올려보라 해도.
원래라면 유성우 같은 거나 말했을 것 같지만요. 지금 상황이 되니까 그냥.... 따뜻하게 벽난로 같은데서 담요 덮고 차나 마시고 싶달까.
 
아이린 E. 테라코르:난로도 차도 전부 그리운 것들이네. 원래라면 평범하게 누렸을 텐데…… 몇십 년은 된 것처럼 아득히 멀리 느껴지는 것 같구나.
 
쟈이 E. 에벤포드:3년으로 이렇게 멀어질 수 있나요~. 좀 더 쟁여둘걸, 같은 후회도 안 남아요.
(대피소 탈탈 털었다.)
 
아이린 E. 테라코르:(열심히 털었지)
 
쟈이 E. 에벤포드:(살려면 털어야지.)
 
아이린 E. 테라코르:그래도 만일 우주선이 돌아온다면, 그들이 찾은 행성이 어디일지 보고 싶구나. 그곳엔 어떤 문화가 생겼을지도 궁금하고, 나비가 있을지도 궁금하고. (이게 본심인 듯)
 
쟈이 E. 에벤포드:어딘가엔 인류가 아니라 나비가 지배하는 행성이 있을지도요. (받아쳐줌)
 
아이린 E. 테라코르:나비가 지배할 정도면 아주 커다란 나비겠지? 그럼 위에 타고 날아다닐 수도 있을까…… 날갯짓을 할 때마다 가루가 떨어져서 예쁠 거야. (금세 어린아이처럼 상상의 나래가 뻗어간다) 그곳의 인류는 재채기를 하지 않도록 가루에 강하게 진화했을지도 모르겠네.
 
쟈이 E. 에벤포드:우리가 아는 커다람의 정도가 다를지도 모르겠어요~. (그쯤되면 인류는 그냥 먹이 아닌가.... 같은 생각 흘려넘김)
(햇빛 보고 있으니 눈에 반사되어 하얗당..... 우주선 발사지 쪽을 한번 시선 가늘게 하고 살펴보면 뭔가 보일까?)
 
발사지 쪽을 꼼꼼히 바라봐도 딱히 눈에 띄는 건 없네요.
 
아이린 E. 테라코르:(날개처럼 뻗어가던 상상도 어느 지점에서 빙벽으로 가로막히듯 뚝 멈춘다. 꿈꾸는 듯한 신비가 사라져간다.) 그냥 다른 행성으로 갈 필요도 없이 지구의 눈이 녹으면 다 해결되는 문제일 텐데.
그런 날은 역시 오지 않으려나. 이렇게 추워서야.
 
쟈이 E. 에벤포드:으음, ...... 언젠가 올지도 모르죠. 우리가 살아있는 동안은 아닐지도 모르지만.
 
아이린 E. 테라코르:살아있는 동안에 왔음 좋겠는데. 욕심일 것 같구나.
 
쟈이 E. 에벤포드:애초에 우린 얼마나 더 버틸 수 있을까요...? (하하, 잘게 웃었다.)
 
아이린 E. 테라코르:…… 할 수 있을 때까진 해 봐야지.
유일하게 곁에 남은 친구의 죽음을 보고 싶진 않아. (먼 곳을 바라보며 속삭이듯 중얼였다.)
 
쟈이 E. 에벤포드:으음.... 확실히.
우리 죽음은 외롭지 않았으면 좋겠네요!
 
아이린 E. 테라코르:그래. 끝이 외롭지는 않기를……. (목소리가 희미했다.)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어느덧 차차 하늘이 어두워집니다.
 
기온이 더 떨어지기 전에 돌아가는 게 좋겠습니다.
 
쟈이 E. 에벤포드:....시간 빨라!
슬슬 돌아갈까요...?
 
아이린 E. 테라코르:벌써 시간이 이렇게 흘렀구나. 가자. (툭툭 털고 일어난다)
 
쟈이 E. 에벤포드:어우, 이거 감기 걸리지 않아야 할 텐데요. 가서 할 것도 이것저것 많으니까.... 가요. (저도 이리저리 쌓인 눈을 털어내고 의자 똑바로 정리하고 따라나선다.)
 
전망대 계단을 내려가는 건 올라가는 것보다 훨씬 쉬운 일입니다.
 
아이린을 따라 전망대 계단을 내려가는 시간이 어쩐지 쌀쌀합니다.
 
해가 지면서 온도가 더 낮아졌기 때문이겠죠.
 
그 사실을 아이린도 잘 알 테니, 내려가는 걸음이 분주합니다.
 
<정신> 판정
 
쟈이 E. 에벤포드:
정신
기준치: 70/35/14
굴림: 22
판정결과: 어려운 성공
 
추위에 너무 오래 머물렀던 탓인지 미약하게 열이 나는 것이 느껴집니다.
 
하긴. 다른 날에 비해 좋은 날씨였다고는 하지만 객관적으로 인간이 버틸 만한 온도는 아닙니다.
 
쟈이 E. 에벤포드:
 
몽롱하고 까마득한 기분이 느껴지지만 그래도 아직까지는 괜찮습니다.
 
아이린 E. 테라코르:괜찮니, 쟈이? (걱정스럽게 당신 부른다.) 내가 괜히 나오자고 했나?
 
쟈이 E. 에벤포드:괜찮나 싶은 건 테라코르거든요.... (코 슥)
 
아이린 E. 테라코르:난 괜찮아. 이보다 험한 날씨에도 많이 오다녔는걸.
업히고 싶으면 지금이라도 말해. 아직 유효한 제안이란다?
 
쟈이 E. 에벤포드:차라리 내가 업겠어요! (눈꾹)
 
아이린 E. 테라코르:그럼 업어줘. (농담임)
 
쟈이 E. 에벤포드:? 그래요. (등 돌린다.)
(근데이제얼마나갈진모르는...)
 
아이린 E. 테라코르:…… 같이 눈밭에 쓰러져서 동사할 일 있니? (등 손으로 스윽 민다) 가자. 난 멀쩡하니까.
 
쟈이 E. 에벤포드:동사하기전에 무사한 테라코르가 날 업어주겠죠. 후후후....
(그래도 냉큼 일어나 걷는다.)
 
대피소 안으로 들어가자 바깥 공기와는 다르게 따뜻한 온도가 쟈이를 맞이합니다.
 
내부 온도는 고작 영상 9도에 그치지만 충분한 온도입니다.
 
쟈이 E. 에벤포드:(9도면 영하 -25+???도보다야 훨씬 포근하지. 조금 녹아있다.)
 
아이린 E. 테라코르:(녹아있는 쟈이 두고 이리저리 움직이더니 곧 데운 물을 대야에 담아 가져온다.) 쟈이. 발을 좀 씻어야겠어. 아까 걸어올 때 보니 너 걸음이 조금 이상하더라. 동상 증세가 아닐까 싶은데.
 
쟈이 E. 에벤포드:?
나 걸음 이상했나요? (감각이 없나? 다리 내려본다.)
 
발에 감각이 없고, 다리가 잘 움직여지지 않습니다.
 
대피소에 도착해 긴장이 풀리고 나니 그제서야 몸의 이상이 느껴집니다.
 
쟈이 E. 에벤포드:하............
 
아주 걷지 못할 수준까지는 아니지만 달리거나 계단을 오르는 일 등은 조금 어려울 것 같네요.
 
쟈이 E. 에벤포드:괜찮아요, 내가 처치할게요. (감각 없는 다리로 절뚝이며 침착하게 담요와 핫팩 등을 꺼낸다.)
물은 거기 둬 줄래요....? (미안한 표정)
 
아이린 E. 테라코르:괜찮겠니……? 나야 상관없지만. (혹시 몰라 금방 닿을 만한 근처에 내려둔다.) 일찍 자는 게 좋겠어, 오늘은.
파티가 조금 더 미뤄지겠구나. 괜히 나가자고 했나 봐. (미안해하는 기색이다.)
 
쟈이 E. 에벤포드:어쩔 수 없지요, 내가 한 선택이기도 하고.... 그래도 간만에 즐거웠으니까~. 마음에 담아두지 말아요. (의자에 앉아 처치하고, 적당히 편한 자세로 자리한다.)
그래도 조금 피곤하긴 하네요, ....그래도 조금 먹어둬야지.
 
아이린 E. 테라코르:그 상태로 술을 마시겠단 건 아니겠지, 설마? (쪼금 의심)
 
쟈이 E. 에벤포드:......아니거든요~? 근데 그렇게 말하니까 마시고싶어지게.
 
아이린 E. 테라코르:절대 안 돼. (흘긴다) 오늘은 네가 자는 모습까지 보고 잠들어야겠구나. 그러지 않음 안심이 안 되겠어.
 
쟈이 E. 에벤포드:잔소리쟁이..... (원래 이쪽도 만만찮은 잔소리쟁이며)
 
아이린 E. 테라코르:평소엔 네가 잔소리를 많이 했으니까, 업보라고 생각하렴. (?)
 
쟈이 E. 에벤포드:(?)
나.... 조금 억울해지려고 해요.
(진짜다 왜 하필 이러고 동상을 걸려서)
 
아이린 E. 테라코르:억울하면 빨리 나으면 되겠지?
그럼 잔소리 열 번 정도는 나름 열심히 들어줄 테니까. (그간은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렸다)
 
쟈이 E. 에벤포드:(하..........)
(할 말이 없어져.... 그저 열심히 처치하고 적당히 풀렸다면 널부러진다.)
얌전히 잘 거니까 테라코르도 얌전히 자야해요. 눈 떴더니 또 사라져있으면 분리불안 올라올 것 같으니까..... (주절주절)
 
아이린 E. 테라코르:어머, 엔시엇 네가 분리불안이라니 재밌구나. 이런 날도 다 오고. (내용은 가벼웠지만 어조는 가라앉은 채였다. 당신의 목 아래까지 이불을 끌어올려 덮어준다.) 내가 어딜 가겠니. 네가 더 앓지 않는지 살피기 위해서라도 얌전하게 있을 테니까……. 마음 놓고 자렴. (양심x)
 
쟈이 E. 에벤포드:(이걸믿을수있을거라고생각하는건아니죠?????? 목 끝까지 차오른 물음 ...말 안하고 얌전히 잠든다.)
 
창 밖에는 내리지 않던 눈이 내립니다.
 
잠에서 깨고 나면 지금 보는 풍경보다 좀 더 쌓인 눈을 보게 될 겁니다.
 
아이린이 손바닥으로 쟈이의 눈을 덮습니다.
 
얼굴 주위로 아이린의 미미한 온도가 퍼집니다.
 
아이린 E. 테라코르:푹 쉬고 깨자꾸나.
 
아이린의 말을 마지막으로 쟈이의 의식이 꺼집니다.
 
……
 
<듣기> 판정
 
쟈이 E. 에벤포드:
듣기
기준치: 60/30/12
굴림: 49
판정결과: 보통 성공
 
AI 음성이 문 밖을 가득 채우고 있습니다.
 
동면실 상태 이상? 소란스러움에 쟈이는 눈을 뜹니다.
 
눈을 뜨자 불길한 붉은 빛이 문 밖에서 깜박이고 있습니다.
 
대피소 내부에서 무슨 일이 생긴게 분명합니다.
 
문을 닫아 놓았지만 복도에서 뿜어져 나오는 빛을 전부 막을 수는 없습니다.
 
SANc (1/1d2)
 
쟈이 E. 에벤포드:
SAN Roll
기준치: 70/35/14
굴림: 89
판정결과: 실패
1
 
이성 1 감소.
 
쟈이 E. 에벤포드:헉, 이게 무슨.... 테라코르?
(상체를 일으키고 둘러본다.)
 
이른 아침입니다.
 
주위를 둘러봐도 아이린은 보이지 않습니다.
 
대피소 밖을 나갈 때 입는 외투와 신발이 없어진 걸 보면 또 전망대로 간 것 같습니다.
 
얌전하게 있겠다고 했으면서……
 
쟈이 E. 에벤포드:(내부는 멀쩡할까? 복도 쪽은?)
얌전하게 있겠다고 했으면서....................
 
아직까지 쟈이가 있는 쪽의 내부는 멀쩡해 보이지만, 복도로는 나가 봐야 알 것 같습니다.
 
붉은 불빛이 깜박 깜박 요동칩니다.
 
쟈이 E. 에벤포드:(조심스레 복도 쪽 문을 열어본다.)
 
문을 열자 동면실로 가는 복도 전체에 붉은 빛이 요란스럽게 깜박거리고 있습니다.
 
AI의 목소리까지 더불어 정신이 하나도 없습니다.
 
전망대에서는 대피소가 보이지 않을 텐데….
 
그렇다는 건 아이린은 동면실에 문제가 생겼음을 모르고 있다는 말입니다.
 
쟈이 E. 에벤포드:뭐에요, 이게....? (동면실 쪽으로 다급하게 걸음한다.)
테라코르! (일단 근처에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소리치며)
 
아무리 불러봐도 대답은 돌아오지 않습니다. 머리카락 하나 보이질 않네요.
 
이대로 계속 방치해둘 수는 없는 일입니다.
 
동면실에는 여러 명의 사람들이 잠들어 있습니다. 그들에게 무슨 문제가 생겼을 수도 있습니다.
 
동면실을 관리하는 사람은 아이린이니 관리 책임을 아이린이 감당해야 할 수도 있죠.
 
뭐, 책임을 물을 존재가 있다면요.
 
쟈이 E. 에벤포드:하........ (눈동자를 굴리다, 결국 동면실 방향 문을 연다. 말 안 들은 테라코르 탓이에요!)
 
문은 손잡이가 없습니다.
 
어제 아이린이 문을 어떻게 열었었죠?
 
쟈이 E. 에벤포드:아, (이 상황에 카드키 찾으라고)
 
아이린의 옷 주머니에 관리자 인식증이 있지 않을까요?
 
쟈이 E. 에벤포드:(옷은 두고 갔을까? 다시 대피소 내부로 후다다닥...)
(솔직히 컴퓨터사용으로 해킹하게 해달라고 하고싶은 심정입니다-되겠냐-)
 
ㅋ 외부에서는 컴퓨터가 보이질 않아서 해킹은 무리일 것 같습니다.
 
다행히 어제 대피소로 갈 때 입었던 가벼운 외투가 테이블의 의자에 걸려 있네요,
 
쟈이 E. 에벤포드:(외투째로 팔에 걸치고 나가며 주머니 뒤적인다. 카드키가 있을까?)
 
옷 주머니를 뒤지자 동면실 출입이 가능한 아이린의 관리자 인식증이 나옵니다.
 
옷을 챙기고 다시 동면실로 향하던 쟈이는 듣게 됩니다.
 
그곳의 사람들이…
 
곧 잠에서 깨어날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쟈이 E. 에벤포드:어라?
......
 
정말일까요?
 
하지만 이해가 가지 않습니다. 동면이 이렇게 빨리 풀릴 리가 없을 텐데.
 
쟈이 E. 에벤포드:(일단 카드키를 댄다.)
 
아직 우주선은 되돌아오지 않았습니다.
 
아니. 다른 행성을 찾았을 리도 없습니다.
 
우주선이 지구를 떠난 지 고작 3년.
 
새 터전을 찾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시간입니다.
 
네온등이 켜진 것처럼 밝은 복도에서 쟈이는 인식증을 가져다댑니다.
 
곧 익숙한 음성이 들립니다.
 
쟈이 E. 에벤포드:..... 설마, 설마. (아무리 자고 일어난 후라도, 한번 동상 걸렸다 풀린 다리로 뛰어다녔기 때문인지... 숨이 차다.)
(도어락이 해제되었다면 열어보자!)
 
동시에 문이 열립니다.
 
동면실 내부는 경고등이 켜진 것 외에 달라진 게 없습니다.
 
동면캡슐들 중 하나의 캡슐이 붉게 깜빡거립니다. 제니의 캡슐입니다.
 
의식이 돌아오고 있는 사람은 제니였던 모양입니다.
 
쟈이 E. 에벤포드:...!
 
동면 캡슐에서 일어난 단순 이상일까요?
 
다시 동면기기 사용 설명서를 찾아 읽어볼 수 있습니다.
 
쟈이 E. 에벤포드:(설명서를 찾아들고 캡슐로 가까이 다가간다.)
(설명서를 읽으면서, 캡슐의 우측 하단을 살펴본다.)
(동면체 의식 단계는?)
 
우측 하단을 보자, 제니의 의식이 6단계에 머물러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스스로 의식을 만들어내고 있는 단계입니다.
 
이 상태라면 머지않아 곧 동면에서 풀려날 것 같습니다.
 
그 다음은 어떡해야 좋을까요.
 
지구는 아무것도 달라진 게 없고 오히려 상황은 더 안 좋아지고 있는데도요.
 
제니의 동면 캡슐은 ON 버튼에 붉은 빛이 들어와 있고 경고등은 여전히 빛나고 있습니다.
 
제니의 의식이 돌아왔다는 걸 아이린에게 어떻게 알려야 할까요?
 
<관찰> 판정
 
쟈이 E. 에벤포드:
관찰력
기준치: 65/32/13
굴림: 37
판정결과: 보통 성공
 
동면 기기 사용 설명서가 놓여 있던 자료 보관함 깊숙한 곳에 상자 하나가 놓여 있습니다.
 
쟈이의 손바닥만한 작은 상자는 먼지 하나 없이 깨끗하지만, 어딘가 오래 되었다는 느낌을 지우기 어렵습니다.
 
쟈이 E. 에벤포드:....? (상자를 살펴본다. 열릴까?)
 
닫혀 있는 상자는 손쉽게 열립니다.
 
상자 안에는… 여러 명의 인식증 카드가 담겨 있습니다.
 
그리고 그 카드에 있는 사람들의 이름에는 제니도 있습니다.
 
제니. 동면 캡슐에 들어가 있는 사람 중 한 명이죠.
 
그렇다는 건 이 인식증 카드는 동면 캡슐에서 동면하고 있는 저 사람들의 것이군요.
 
쟈이 E. 에벤포드:아하....
 
인식증에는 이름과 국적만 다를 뿐 동일한 정보가 기재되어 있습니다.
 
아이린의 직급은 대피소 관리인이지만 그들의 직급은 대피소 생존 인류.
 
그렇다면,
 
왜 쟈이의 인식증은 없는거죠?
 
쟈이 E. 에벤포드:.... (내 기억 상 대피소는 인식증이 필요한 곳인가?)
 
대피소에 사람이 많았던 시절에는 배급 등의 구별을 위해 필요했던 것 같습니다.
 
아이린은 꼭 관리자만 인식증을 가질 수 있는 것처럼 말했는데, 이상합니다.
 
동면 캡슐에 잠들어 있는 사람들은 아이린처럼 관리자가 아닙니다.
 
쟈이와 같은 대피소 생존 인류입니다.
 
쟈이에겐 인식증을 받은 기억도 없습니다.
 
<지능> 판정
 
쟈이 E. 에벤포드:
지능
기준치: 70/35/14
굴림: 25
판정결과: 어려운 성공
 
정말 없나요? 그들의 인식증을 손에 들고 물끄러미 바라보면서 기억을 더듬습니다.
 
아니. 당신에게도 인식증이 있었습니다.
 
대피소에 들어온 직후 누군가가 쟈이에게 주었으니까요.
 
그렇다면 잊고 있었을만큼 오래 전에 잃어버렸나?
 
쟈이 E. 에벤포드:(인식증을 손 끝으로 쥔다.)
(내가 이것과 같은 -내 인식증을 손에 가장 가까운 곳에 두었다면 어디에 두었을까?)
(지능판정 해봅니다!)
 
흠 한번 해봅시다
 
쟈이 E. 에벤포드:
지능
기준치: 70/35/14
굴림: 4
판정결과: 극단적 성공
 
응?
 
쟈이는 열심히 기억을 더듬어봅니다……
 
쟈이 E. 에벤포드:(잘 자서 그래요 잘 자서)
 
하지만 아무리 떠올려 보아도 짐작이 가는 곳조차 없습니다.
 
만일 가까이 두었다면 쟈이가 금방 찾을 수 있어야 할 텐데, 대피소의 넓지 않은 공간에서 한 번도 비슷한 물건조차 본 적이 없으니까요.
 
철문은 굳게 닫혀 있습니다.
 
경고음은 끊이지 않고 계속해서 울려댑니다.
 
쟈이 E. 에벤포드:........
 
이 정도로 지속되는 경고라면 동면실 내에 있는 AI 기계들이 손을 쓸만 한데도 그렇습니다.
 
쟈이 E. 에벤포드:(일단 철문 쪽으로 다가가 아이린의 카드키를 댄다.)
 
정말 저 문 안에 기계들이 있는 걸까요?
 
쟈이는 여러 인식증을 들고 동면실에 존재하는 문을 향해 걸어갑니다.
 
쟈이가 아이린의 인식증을 꺼내 문에 가까이 갖다 대면 어제와 똑같은 음성이 들립니다.
 
쟈이 E. 에벤포드:(다음은 인식증을 대보자. 제니의 것.)
 
제니의 인식증을 가져다대자, 예상과는 다른 AI 음성음이 들립니다.
 
쟈이 E. 에벤포드:.........
 
...
 
그게 마지막이었습니다.
 
동면실에 위치한 대피소 내부 통제실은 개방되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아이린이 개방 준비를 하고 있던 AI를 작동 정지했기 때문입니다.
 
고개를 돌리기도 전에 들리는 아이린의 가쁜 숨소리.
 
그의 주변에서 느껴지는 외부의 한기.
 
머리부터 발끝까지 쌓인 눈을 털어내지도 않고 달려왔는지 아이린의 모습은 엉망진창입니다.
 
쟈이 E. 에벤포드:....테라코르?
 
불안함과 조급함이 느껴지는 경고등 소리가 유독 크게 들립니다.
 
붉은 센서에 물들었다가 꺼졌다가.
 
다시 물들었다가 꺼졌다가 반복되는 빛이 아이린의 얼굴을 연속적으로 비춥니다.
 
아이린의 눈에 비치는 쟈이도 마찬가지일 테죠.
 
쟈이 E. 에벤포드:(그 표정이 어땠더라....)
 
화가 난 걸까요? 아이린의 표정은 미동 없이 잠잠하기만 합니다.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쟈이를 바라보던 아이린은 몇 분 뒤 입을 뗍니다.
 
아이린 E. 테라코르:…… 다리는 괜찮니?
 
이런 상황에서 묻기엔 다소 낯선 질문이네요.
 
쟈이 E. 에벤포드:조금 서둘러서 저리긴 해요! .....
지금 그게 중요한가요?
 
아이린 E. 테라코르:중요하지. 네 건강보다 중요한 게 어디 있겠니? (자연스럽게 당신의 손에서 인식증을 가져간다.)
 
쟈이 E. 에벤포드:.....
진실?
지금 내가 테라코르를 믿어야 할지 모르겠거든요. 너무 뻔한 거 아닌가요? (빈 손을 한 번 휘적인다.)
 
아이린 E. 테라코르:뭐가 뻔하지? 내가 왜 거짓말을 하겠니. 가까운 사람들을 얼마나 챙기는지는 너도 잘 알 텐데.
(기계는 관심도 없는 듯, 여전히 쟈이와 그 너머의 철문을 바라본다.) 오래 전에 폐쇄된 곳이야. 위험하다고 했잖아.
 
쟈이 E. 에벤포드:너무 챙기려 드니까 문제에요. (철문을 열어본다.)
 
맨손으로 여나요?
 
문이 없는디?
 
쟈이 E. 에벤포드:(왜 없어? 아까 댓잖아요)
 
아이린이 가져갓읍니다
 
쟈이 E. 에벤포드:(댔으면열리는게아니야!?)
 
열리다가 멈췄었죠. 아이린이 작동 정지를 햇습니다
 
쟈이 E. 에벤포드:저 관리인 진짜 관리태만
 
아이린 E. 테라코르:기계 때문에 여기까지 온 거지? 고장났나 보구나. 가끔 이렇게 오류가 생길 때가 있다고 들었어.
네가 잠든 사이에 잠시 전망대에 다녀오려고 했는데, 예상치 못하게 일어나버렸구나. 일단 미안해. 분리불안 안 생겼지?
 
쟈이 E. 에벤포드:하.................
됐어요, 그거 주는 게 좋겠는데요.
내 머리 쳐서 기억 없앨 거 아니면.
 
아이린 E. 테라코르:위험하다고 했잖니. 지금 중요한 건 따로 있다고 네가 말했었지?
(인식증을 아예 품 안에 넣으며 동면 캡슐 쪽으로 다가간다.) 무슨 문제가 생긴 거니? 파악했다면 말해줘.
 
쟈이 E. 에벤포드:제니의 캡슐에 의식이 생기려고 하고 있어요. 깨어나기 직전. (일단 간략하게 정리해 전한다.)
그리고 난 우연찮게도 그들의 인식증이 있다는 사실을 알았고, 그게 저 문을 열 수 있다는 사실도 깨달았죠. (동면캡슐의 스크린을 살피며 덧붙인다.)
테라코르는 문 열기를 억지로 멈췄고, 그에 대해 내가 납득할 수 있게 설명해야 할 거에요.
 
아이린 E. 테라코르:내가 뭘 더 설명해야 하니? 그곳은 오래도록 인간이 들어가지 않은 곳이야. 그만큼 관리가 안 되어 있다는 것과도 같지. (한숨을 쉬며 기계를 이리저리 살핀다.)
이미 위험하다는 이유를 말했는데, 뭘 더 알고 싶어하는 건지 모르겠구나. (여전히 녹지 않은 눈이 머리칼과 옷자락에 달라붙어 있어서일까, 뒷모습이 유달리 왜소하고 처져 보였다.)
 
쟈이 E. 에벤포드:출입 부적합 대상과 적합 대상은요?
(뒷모습을 바라보다 손을 내밀어 머리카락을 살살 털어준다.)
 
아이린 E. 테라코르:저들이 동면에 들어간 이후로 통제실의 관리가 어려워졌어. 어차피 인식증을 쓸 수 있는 건 나뿐이니 내 인식증 권한만 통제해둔 거야. 동면하는 이들은 인식증을 쓸 일이 없을 테니까. (나직한 목소리로 설명한다. 이게 당신을 전부 납득시킬 수 없다는 것 정도쯤은 이미 알고 있다. 그래도……)
 
그가 INF 버튼을 누르자 제니의 고유 정보와 의식 단계가 캡슐 위로 생성됩니다.
 
아이린이 캡슐과 프로젝트 화면을 오가기를 몇 번. 동면실의 경고등이 꺼졌습니다.
 
복도에서 깜빡거리고 있던 센서도 사그라든 걸 보니 대피소 내부 전체를 밝히던 경고 센서가 제어된 것 같습니다.
 
쟈이 E. 에벤포드:(현재 의식 단계는 몇으로 표시되어 있을까?)
 
의식 단계는 3단계로 조정되었습니다.
 
아이린 E. 테라코르:이제야 조용해졌네……. 난 시끄러운 게 싫어.
(제니의 동면 기계에 한 팔을 올려놓고 그대로 그 위에 머리를 기댔다. 머리칼에 와닿는 손길을 감각하며 한동안 말이 없었다.)
 
쟈이 E. 에벤포드:.... (슬슬 머리카락을 정리해주다 손을 뗀다.) 그러니까 내가 시끄럽게 물어보기 전에 다 말해주면 안 돼요~?
 
아이린 E. 테라코르:뭘 더 말해줬으면 하는 거니?
 
쟈이 E. 에벤포드:혹시 알아, 잘만 설득하면 내가 이런 일 있으면 알아서 딱 내려줄지도요.
통제실이 위험하다는 것 외에.... 흠,
내 인식증 어디 있나요?
 
아이린 E. 테라코르:네 인식증을 나한테 찾으면 어떡하니? 잃어버린 거겠지, 아마. 그게 없어도 대피소 생활에 지장이 있는 건 아니니 상관없잖아.
 
쟈이 E. 에벤포드:그랬다면 기억하고 있을거에요. 확실히 대피소 생활에 지장은 없었지만.
통제실의 권한을 없애려면 모든 출입을 통제하는 게 더 간단했을 거라고 생각해요. 굳이 테라코르 것만 찾아서 통제하는 게 더 번거로울테지...
내가 왜 논리까지 찾아가며 테라코르를 설득해야 하나요?
 
아이린 E. 테라코르:네가 아예 관심을 갖지 말았으면 해서 그랬어. 동면실에도 괜히 데려왔나 봐. (중얼거린다.) AI가 출퇴장을 관리한단 것도, 온도가 바깥과 동일하단 것도 정말이야. 들어가 봤자 안에 있는 기계들은 전부 얼어서 작동도 안 되겠지. 나도 가보지 않은 지 한참 됐는걸.
정말로, 위험해서 막았던 거야. 널 걱정하는 내 마음을 믿어주렴, 쟈이. (고개를 더 깊이 묻는다. 눈꺼풀이 무겁게 느껴졌다.)
 
쟈이 E. 에벤포드:믿지 않는다는 게 아니잖아요. 알아요, 나도. (네 뒤에 천천히 앉는다. 손길은 좀 더 조심스럽다.)
하지만 그걸 알기 때문에 테라코르 혼자 견디게 하고 싶지 않아서 그래요.
이미 알아버렸고, 나는 호기심을 참지 못하는 사람이라.
그게 테라코르의 마음이라면 더더욱 알아둬야겠는데요.
 
아이린 E. 테라코르:착한 건지 집요한 건지 모르겠네. (작게 바람 빠지는 소리를 낸다.)
 
쟈이 E. 에벤포드:아마도 둘 다~?
 
아이린 E. 테라코르:(입술 달싹거린다. 당신은 볼 수 없을 낯에서 짧은 사이 수많은 감정이 스친다.) 호기심은 때로 독이 될 때가 있어.
저곳은 위험해, 그러니 들어가선 안 돼. 넌 그것만 알고 있으면 되는 거야.
…… 우선 나가자. 오류는 해결했으니, 여기 오래 있어봤자 춥기만 하지.
 
쟈이 E. 에벤포드:흐으으음. 나 이미 테라코르 고집에 충분히 넘어가주지 않았나요?
위험한 거랑 별개로 알고싶단거지...
 
아이린 E. 테라코르:알게 될 날이 오겠지. 언젠가는.
(애매모호하게 말 마무리한다)
 
쟈이 E. 에벤포드:지금 말해주면 지금 알게 되는데요!
(안 애매함.)
 
아이린 E. 테라코르:그건 내가 싫어. (몸을 홱 일으켰다.) 갈래.
 
쟈이 E. 에벤포드:왜지요ㅡ! (따라 일어선다)
좀 알려주면 안 되나요? 내가 걱정을 좀 많이 해야지.
(조잘조잘거리기로 함)
제대로 대답 안 해주면 계속 붙어다닐거에요. 재워도 안 자요.
 
아이린 E. 테라코르:싫어. 한 번 싫다고 했으면 좀 알아듣지 그러니? (동면실의 문을 닫고 복도를 걷는다.) 자꾸 그러면 또 혼자 전망대로 갈 거야.
 
그러고 보면 아까도 전망대에 다녀왔다고 했었죠.
 
쟈이 E. 에벤포드:또 따라갈래요.
 
아이린은 대체 전망대에서 무엇을 보는 걸까요?
 
쟈이 E. 에벤포드:왜 자꾸 가요!?
 
왜 그렇게 매일, 추운 온도를 감내하고 전망대로 가는 걸까.
 
우주선 발사지와 도착지도 보이지 않는 그곳에.
 
여태까지 어떤 신호도 오지 않았던… 그 전망대에.
 
쟈이 E. 에벤포드:우주선 올까봐 그래요? 애초에 제니 캡슐은 오류 맞나요?
 
아이린 E. 테라코르:동상 걸린 애가 어딜 온다고 그러니? 안 돼. (칼처럼 끊음) 더 묻지만 마. 그럼 분리불안 안 생기게 같이 있을 테니까.
 
쟈이 E. 에벤포드:분리불안 이미 생겼어요. (안생김)
 
아이린 E. 테라코르:거짓말. (눈 꾹 감았다가 뜬다.)
 
쟈이 E. 에벤포드:진짠데. (뻥임)
테라코르 잘때 소매치기해가기 전에 그냥 알려주는게 덜 피곤하잖아요~. (솔직.)
 
아이린 E. 테라코르:우주선은 오면 좋은 거고, 제니의 캡슐은 오류 경고등을 띄우는 걸 직접 봤으면서 그러니?
그럼 안 자야겠다. (급기야;)
 
쟈이 E. 에벤포드:자라고
 
아이린 E. 테라코르:너나 자라고
 
쟈이 E. 에벤포드:난 자고 일어났거든요!?
 
아이린 E. 테라코르:또 자면 되잖니!!!
 
쟈이 E. 에벤포드:내가 동면중인줄알아요!?!
 
아이린 E. 테라코르:몰라! 말 안 할 거야! (아이처럼 외치곤 대피소 안으로 우다다 뛰어가버린다)
 
아주 중요한 무언가를 놓치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쟈이 E. 에벤포드:뭐가 문제에요, 진짜~! (민첩40은 70을 쫒지 못하고 성냄)
 
아이린 E. 테라코르:네가 그렇게 성가시게 구는 게 문제라면 문제지. (한동안 쟈이 안 보고 창문가에 서서 바깥만 빤히 보고 있는다)
 
쟈이 E. 에벤포드:성가시게 구는 건 테라코르가 나보다 한수 위에요. (커피타서 슬쩍! 밀어준다. 제 몫도 이미 타서 쥐고있음)
 
아이린 E. 테라코르:흥. (그래도 내밀어주는 커피는 슬쩍 받는다.) …… 따뜻하네. (홀짝)
 
쟈이 E. 에벤포드:성가시게 안 굴테니까 살짝 힌트만. (결국 이러고 만다.)
 
아이린 E. 테라코르:…….
좋은 소식이 있는데, 말 안 해줄까 봐.
미련 좀 버리렴.
 
쟈이 E. 에벤포드:.....
좋은 소식부터 알려줘요. (일단 한발 물러나기로... 커피 호로록)
 
아이린 E. 테라코르:좋은 소식'만' 알려줄 거야. (와중에 철저함)
 
투닥거리곤 있어도, 아이린의 표정은 지쳐 보이던 동면실과 다르게 조금 들떠보입니다.
 
좋은 소식이라는 게 무엇일까요?
 
쟈이 E. 에벤포드:진짜 너무해........ (들어보고 생각해볼게요.)
 
아이린 E. 테라코르:(말이랑 생각이 바뀌었잖아)
 
아이린은 자신이 가지고 있던 무선 전파기를 꺼냅니다.
 
우주 전파를 감지할 수 있는 전파기입니다.
 
아이린이 전파기 버튼을 누르자 지지직. 지지직. 부서지는 전파음 소리가 들립니다.
 
쟈이 E. 에벤포드:아, 그거....
(있었지참.)
들려요?
 
아이린 E. 테라코르:확실하진 않지만, 지구 근처 상공에 누군가 와 있는 것 같아.
전망대에 갔을 때 신호가 잡혔었거든. 너무 통신이 짧아서 미처 대화는 하지 못했지만……
착각이 아니라면, 우린 곧 지구를 떠날 수 있을 거야.
 
쟈이 E. 에벤포드:아하.... ....
(저 역시 기대와 긴장이 뒤섞인 표정이 되고 만다.) ...그래서 자꾸 전망대로 간 건가요?
 
아이린 E. 테라코르:그래. 조금이라도 더 자주 가보면 전파가 잡히지 않을까 해서…… 가지 못했을 때 놓치는 전파가 있으면 너무 아깝잖니.
 
쟈이 E. 에벤포드:으음, 그런 거면 말해줬으면 나도 도와줬을텐데요. .....
더 궁금해졌는데, 역시 말 안해줄거죠?
 
아이린 E. 테라코르:어차피 떠나게 되면 더 이상 가볼 수도, 갈 필요도 없는 곳이야. 아직도 그게 궁금하니? (질린단 듯 눈을 가늘게 뜬다.)
좀 더 순수하게 기뻐할 줄 알았는데 말이지.
불순해. (?)
 
쟈이 E. 에벤포드:테라코르가 그렇게 숨기니까 더요~.
?
기, 기뻐했는데....
아니 순수하게 기뻐할만한 상황이어야 기쁘죠...!?
테라코르 말대로 3년이면 짧다고요.
 
아이린 E. 테라코르:순수하게 기뻐할 만한 상황이지?
(근데 그 말을 들으니까 아닌가 싶기도 하고)
 
쟈이 E. 에벤포드:3년만에 우주선이 돌아온게..... 요..?
정확히는 그럴 확률이 있다, 정도라지만.
 
아이린 E. 테라코르:…… 좋게 생각하자꾸나.
어디든 얼어붙어가는 지구보다는 낫겠지. 예상보다 진척이 빨랐을지도 모르고.
 
쟈이 E. 에벤포드:....진짜 내가 후회하게 될 일 만들기만 해봐요. (반쯤 식은 커피 마셔버린다.)
 
아이린 E. 테라코르:그럼 네가 어떡할 건데? (흘겨본다) 나랑 싸우기라도 할 거니?
 
쟈이 E. 에벤포드:아뇨, 진짜 잘 때 소매치기할건데요. (누구 정신력이 더 센지 가보자고)
 
아이린 E. 테라코르:너 이러려고 커피 타 온 거지.
 
쟈이 E. 에벤포드:?
그럴리가요!?
(근데그럴듯해.)
 
아이린 E. 테라코르:맞는 것 같은데. 음험한 에벤포드 같으니.
 
쟈이 E. 에벤포드:아니라니까아아아
 
아이린 E. 테라코르:좋아, 그럼 어제 하지 못한 파티를 하자. 우주선이 온 건 어쨌건 축하할 만한 일이니까. (이걸로 진짜 정신력을 가려보자고)
 
쟈이 E. 에벤포드:........이거 거절하고 싶은데, 와인이 너무 유혹적이에요. (미쳤나봐)
 
아이린 E. 테라코르:하얀 눈이 가득 쌓여 멸망해가는 세상 속에서 구출될 일만 남은 상황이 오면 누구나 와인의 유혹에 당하게 돼 있어. (겪어본 줄)
 
쟈이 E. 에벤포드:맞는 말인데 방금 이 대사 좀 적고와도 되나요? (작가는 가끔 이래)
 
아이린 E. 테라코르:어머? (이내 눈이 휘어진다. 근래 보였던 것 중에 가장 밝은 웃음이다) 마음대로 하렴. 그럼 난 그사이에 우리의 파티를 준비해야겠구나.
 
쟈이 E. 에벤포드:두고봐요, 와인으로 모든 걸 결판낸다. (스사삭 무지노트 펼쳐서 이것저것 단어를 적기 시작한다.)
 
아이린 E. 테라코르:(와인과 잔 두 개를 꺼내 테이블에 올려둔다. 안주로는 얼마 안 남은 과자를 올려뒀다. 파티라기에는 소박하다 못해 텅 빈 수준이지만, 저에게는 이만해도 화려하게 느껴졌다.) 취하지 않을 자신 있니?
 
쟈이 E. 에벤포드:(금방 수첩을 적고 담요 두 장까지 꺼내 테이블로 다가온다. 네게 한 장을 건네며 맞은편에 앉았다.) 글쎄요~. 너무 간만이라 술이 받을지도 모르겠어요.
 
아이린 E. 테라코르:(담요를 받아 어깨에 잘 두르고 와인을 당신의 잔에 따라준다. 마개를 열자마자 풍겨오는 내음을 들이마시며) 냄새만 맡아도 취하는 거 아닌가 몰라?
 
쟈이 E. 에벤포드:그렇게까진 아니거든요~? (괜히 볼멘소리하며 잔을 받아든다. 과자도 사삭 까고)
 
아이린 E. 테라코르:후후. (제 잔에도 같은 양의 와인을 따르고 건배하자는 듯 살짝 들어보였다.) 건배사는 뭘로 하지?
 
쟈이 E. 에벤포드:으음~. 어려운걸요. (한참 고민하는 듯 하다 잔 흔들흔들....)
멸망해가는 세상 속 와인은 달콤하다? (이러고)
 
아이린 E. 테라코르:(고개 숙이며 웃는다) 좋아. 선창하렴.
 
쟈이 E. 에벤포드:(소리내 웃다가 잔들 들며,) 멸망해가는 세상 속 ㅡ!
 
아이린 E. 테라코르:와인은 달콤하다 ―! (쨍! 하고 부딪힘)
 
쟈이 E. 에벤포드:(경쾌하게 잔 맞부딫히고 마신다.)
(과자도 집어먹으면.... 대만족.)
 
아이린 E. 테라코르:(입가에 잔 기울여 조금씩 마신다.) 술은 정말 오랜만에 마시는 것 같네. 숙성도는 구별도 못 하는 게 뻔할 테지만 나에겐 오백 년은 묵힌 와인처럼 맛있게 느껴지는구나.
 
쟈이 E. 에벤포드:숙성은.... 우리가 숙성됐다고 쳐요. 후후, 간만의 파티 분위기도 나도 좋은걸.
 
정말 지구를 떠났던 인류가 우리를 데리러 오기 위해 지구에 돌아온 거라면.
 
혹은 그들이 아니어도 우리의 존재를 알아봐 준 누군가가 있다면 이 지구를 떠날 수 있을 겁니다.
 
3년 만에 왔다는 건 조금 불안하긴 해도, 그래도 이만하면 좋은 소식이라고 볼 수 있겠죠.
 
이 추위와 고립 속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거니까요.
 
아이린의 저런 미소를 너무 오랜만에 보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우리들은 생각보다 빠르게 멸망한 지구에서 벗어날 수 있겠습니다.
 
그들은 언제 지구에 도착할까요?
 
아이린 E. 테라코르:(어느새 잔을 다 비웠다. 조금 빨리 마셨나?) 한 번에 다 마시진 않을 거지?
 
쟈이 E. 에벤포드:어어? 병 따면 다 마셔야지요. (저도 금방 잔을 비워버렸다.) 내버려두면 향이 날아가기도 하고.... 보관도 마땅찮으니.
 
아이린 E. 테라코르:어머? 취하지 않을 자신있니? (그러면서 이미 잔을 채워주고 있다) 정말 하루로 끝날 파티네.
 
쟈이 E. 에벤포드:어차피 반으로 나누면 그렇게 많지도 않은데도요. (저도 자연스럽게 병 받아 잔 채워준다.) 일어나서 또 마시기엔 이 느낌이 안 살 것 같지 않나요?
 
아이린 E. 테라코르:그건 그래. (다시 한 번 잔을 가볍게 쨍 부딪힌다.) 어때? 취기가 올라오는 것 같니?
 
쟈이 E. 에벤포드:약간? 기분좋은걸요~. (잔을 기울이고는 다시 입으로 가져가 홀짝인다. 그렇게 말한것 치곤 아직 멀쩡해보이긴 함.)
 
아이린 E. 테라코르:우주선이 온다면…… 그들이 찾은 행성에도 이런 술이 있으려나. (나비에 이은 술) 일단 그곳에도 책과 글은 분명히 있을 거야.
 
쟈이 E. 에벤포드:아직 문명화되지 않은 곳이면 어렵지 않겠어요~? (역사부터 생각중)
 
아이린 E. 테라코르:그래도 처음부터 시작하는 건 아니니까. 지구의 문명을 그곳에 그대로 적응하진 못하겠지만 같은 글과 언어를 쓰는 집단이 있을 것 아니니? 네 소설도 몇 권 챙겨가는 게 어때. 나만 읽기엔 너무 아까워.
 
쟈이 E. 에벤포드:으으음, 그건 고민 좀 해봐야겠어요. 일단 어디까지 통할지도 모르겠고.... 현재의 문화에서만 알 수 있는 공감대란 것도 있으니.
(홀짝거림)
 
아이린 E. 테라코르:네 책이 역사로 남을지도 모르지. 한 명보다는 수많은 독자에게 읽히는 게 좋지 않니? (두 번째 잔도 어느덧 절반쯤 비어간다)
 
쟈이 E. 에벤포드:그건.... 역시 일단 가서 보는걸로. (자신의 글에 있어서는 신중하던 편이었으니. 과자도 몇 개 집어먹고, 금새 잔을 비운다.)
 
아이린 E. 테라코르:역시 신중하구나. (한 모금 더 마신다) 어쨌건 난 3년간 네 글을 가장 먼저 읽을 수 있어서 즐거웠어. 덕분에 낭만이라는 것도 배울 수 있었고 말이지…….
 
한 잔 두 잔 주거니받거니 하다 보면 금세 병이 비어갑니다.
 
두 사람 <정신력> 판정
 
쟈이 E. 에벤포드:
정신
기준치: 70/35/14
굴림: 23
판정결과: 어려운 성공
 
아이린 E. 테라코르:
정신
기준치: 45/22/9
굴림: 76
판정결과: 실패
머리가 좀 띵한 것 같아……. (세 번째 잔까지 비우고서는 한 손으로 이마 짚는다. 이미 눈꺼풀이 가물가물하다.) 넌 괜찮은 거니?
 
쟈이 E. 에벤포드:후후, 후후후.... 이제야 병 다 비었는걸요~. (기분좋게 취해있다. 잔 흔들흔들)
 
아이린 E. 테라코르:안 되겠어……. 졸음을 이길 수가 없구나. (자리에 앉은 채로 꾸벅꾸벅 졸다가 가까스로 일어나 비틀거리며 이불 안으로 기어들어간다.)
그래도 즐거웠어, 파티 말야.
 
쟈이 E. 에벤포드:나도 그래요. 푹 자요.... (잘게 웃으며 네 이불 덮어주고, 다 먹은 잔을 챙기고 과자봉지를 접어든다.)
 
아이린 E. 테라코르:소매치기하면 절연할 거야……. (거의 희미해져가는 목소리로 중얼거린다)
 
쟈이 E. 에벤포드:할 수 있겠어요~? (정리 다 하고 나면 잠든 네 옷 주머니에서 인식증을 꺼내든다. 제 품에 잘 챙겨넣고....)
(현관쪽으로 향하다가 테이블에 무릎 부딫힌다. 아 졸리네 이거. 결국 적당히 침대 아래쪽에 담요말이하고 엎어져 잠듬....)
 
쟈이는 아이린의 절연 선연을 무시하고 인식증을 소매치기하는 데 성공했지만...
 
역시 오랜만에 술을 많이 마셔서인지 취기를 이기기가 쉽지 않네요.
 
지구에서의 마지막 파티는 이렇게 막을 내립니다.
 
...
 
.
 
며칠이 지났습니다.
 
고요하고 평화로운 하루하루였습니다.
 
쟈이는 여전히 아이린에게 통제실을 볼 수 있게 해달라 떼를 썼고, 아이린은 거절했죠.
 
약간의 문제가 있다면,
 
아이린이 들었다던 우주 전파는 그 이후 더이상 소식이 없었고,
 
지구의 기온이 이전과 다르게 더 낮아지고 있다는 사실뿐입니다.
 
아침이고 저녁이고 할 것 없이 눈이 몰아쳤습니다.
 
이미 멸망된 지구지만 그 사실을 더 확고히 하는 것처럼, 다시는 생명을 품지 않겠다고 다짐하는 것처럼 지구의 얼음은 자꾸만 두꺼워집니다.
 
그리고 바로 오늘입니다.
 
하루도 빠짐없이 우주전파음을 잡겠다고 전망대로 간 덕분에 아이린이 감기 몸살로 열이 올라 앓아 눕게 된 날이.
 
쟈이 E. 에벤포드:테라코르으으으
.... (가능한 한 따뜻한 환경을 조성했다. 이제 보온단열재도 많지 않은데.....) 쉬고 있어요. 오늘 전망대는 내가 다녀올게요.
 
아이린 E. 테라코르:안 돼……. 날이 점점 더 추워지는데, 너까지 아프면 어떡하니.
역시 내가 직접 가야만 하는데…… (붉어진 낯으로 콜록거리면서 도리 없이 이불 속에 파묻혀 있다.)
 
쟈이 E. 에벤포드:먼저 아파서는 하나도 설득력 없거든요? (미지근한 물 컵에 따라 근처에 둔다.)
 
저런 몸을 하고 이 추위에 대피소 밖을 나갈 수 있을리가 없죠.
 
결국 아이린은 침대에 누워 무선 전파기를 몇 번 만지다가 잠들었습니다.
 
<듣기> 판정
 
쟈이 E. 에벤포드:
듣기
기준치: 60/30/12
굴림: 47
판정결과: 보통 성공
 
… 주파수가 갈라지는 소리가 들립니다.
 
지직. 지지직 —.
 
쟈이 E. 에벤포드:...! (귀를 기울인다.)
 
어디서 나는 소리지?
 
고개를 돌리자 아이린이 잠들기 전 가지고 있었던 무선 전파기에서 낯선 소리가 새어 나옵니다.
 
확실합니다. 무선 전파기에서 전파 소리가 들려오고 있습니다.
 
높게 오른 열에 시달리던 아이린은 전파음을 듣지 못하고 아이처럼 잠들어 있습니다.
 
아픈 사람을 깨울 필요는 없겠죠.
 
쟈이 E. 에벤포드:(전파기를 슬쩍해-계속슬쩍하네요-이리저리 조작했다. 좀 더 전파가 잘 들리는 방향?)
 
전파기를 이리저리 만져봅니다.
 
이 전파는 누가, 어디서, 왜 보낸 걸까요?
 
바로 그때. 무선 전파기 너머에서 모스 부호로 해독된 문자가 재생되어 들렸습니다.
 
정말 사람인가?
 
아이린의 말대로 지구를 떠난 인류가 새로운 행성을 찾은 건가?
 
쟈이 E. 에벤포드:(AI아냐!? 불안감을 억누르고 옷을 겹쳐입는다. 전파기는 전망대 쪽에서 더 잘 들릴까? 생각해보자.)
(지능판정?)
 
전파기에서는 계속 낯선 사람들의 목소리가 흘러나오고 있습니다.
 
잡음 때문에 그들의 대화를 전부 알아 들을 수는 없지만 생명 활동 감지 대상이 없다는 말을 계속 반복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럴 리가 없는데.
 
우리들은 이곳에 이렇게 살아 있는걸요.
 
<지능> 판정
 
쟈이 E. 에벤포드:
지능
기준치: 70/35/14
굴림: 32
판정결과: 어려운 성공
 
그들이 이 지구에 남아있는 생명체를 확인하기 위해 전파를 흘리는 것처럼 우리 역시 우주를 향해 전파를 쏘아 올려야 하는 게 아닐까요?
 
우리들이 이곳에 살아 있다는 것을 알리기 위해서요.
 
저들이 이 지구를 다시 떠나기 전에 전파를 쏘아올릴 수 있는 곳은 이 대피소 안…
 
전파 탐지실입니다.
 
다른 방법이 없습니다.
 
지금 쟈이가 할 수 있는 최선은 전파 탐지실로 가서 대피소에 부착되어 있는 전파 기기를 작동시키는 것뿐입니다.
 
쟈이 E. 에벤포드:........ (나는 전파 탐지실을 알고 있을까? 알고 있다면 바로 향해보자.)
 
전파 탐지실의 위치는 위층에 있습니다.
 
탐지실에 가기 위해서는 아이린의 관리자 인식증이 있어야 합니다.
 
쟈이 E. 에벤포드:(또 훔쳐? ....)
(근데 훔칩니다)
 
쟈이가 저번에 쌔벼둔거 아니었어?ㅋ
 
쟈이 E. 에벤포드:(아프지말던가!)
(아 그거 인식증이요ㅠㅋㅋㅋㅋㅋ)
 
아프지말던가!
 
쟈이 E. 에벤포드:(둘다 훔쳐요)
 
뭐 당연한 말이지만 쟈이의 인식증은 없으니까 말이죠.
 
쟈이 E. 에벤포드:(다양하게 쌔볏다.)
 
굿 ㅋ
 
아이린이 그토록 기다렸던 인류가 돌아왔습니다.
 
우리는 우주로 갈 수 있을 겁니다.
 
쟈이 E. 에벤포드:(탐지실로 향해 아이린의 인식증을 댄다.)
 
◇ 전파 탐지실
 
아이린의 관리자 인식증으로 전파 탐지실 문을 열었습니다.
 
전파 탐지실은 2인이 앉을 자리만 있을 정도로 좁고 기계들이 벽을 가득 잠식하고 있습니다.
 
기계 작동법을 알고 있던가요?
 
<교육> 판정
 
쟈이 E. 에벤포드:
교육
기준치: 65/32/13
굴림: 18
판정결과: 어려운 성공
 
이전에 아이린이 간단한 작동법을 알려줬습니다.
 
기기 작동 조작법이었지만 잊어버리지 않았습니다. 생각보다 복잡하지도 않았고요.
 
쟈이는 몇 번 전파 탐지기기를 만진 끝에 곧 기계의 전원 버튼을 찾아냅니다.
 
쟈이 E. 에벤포드:(순서대로 몇 가지 버튼을 누르고, 가동음을 확인한다.)
빨리, 닿아라....
 
전파 기기 전원을 누르자 곧 불이 들어오더니 전류가 흐르는 소리가 들립니다.
 
오래 사용되지 않은 전선에서는 스파크가 튀고 이미 끊어져 버린 전선들도 보입니다.
 
그래서인지 전파 기기에 부착되어 있는 모든 전원 화면이 켜지지는 않았습니다.
 
하지만 걱정할 건 없죠.
 
지금 우리들에게 필요한 것은 순조롭게 작동되어 가는 것 같으니까요.
 
곧 화면에 지구 주위 우주 상공 상태창이 나타납니다.
 
초록 화면에서 돌아가고 있는 작은 행성.
 
얼어붙은 지구 주변으로 작은 물체가 잡힙니다. 무언가 있습니다.
 
전파는 그곳에서 모스부호가 되어 번역되고 있습니다.
 
쟈이 E. 에벤포드:...!
 
정말… 정말, 인간이 왔습니다.
 
AI의 음성이 귀를 강하게 때립니다.
 
쟈이 E. 에벤포드:(다급하게 작동시킨다.)
 
쟈이는 전파 생성 기기를 작동시킵니다.
 
곧 아주 무거운 전류가 느껴져옵니다.
 
<정신> 판정
 
쟈이 E. 에벤포드:
정신
기준치: 70/35/14
굴림: 63
판정결과: 보통 성공
 
전류가 꽤 무겁지만 견뎌낼 만합니다.
 
5분. 10분. 20분. 억겁 같은 시간이 흐르는 기분입니다.
 
기기 화면에는 아무것도 뜨지 않지만 적어도 지구 근처에 존재하는 우주선이 떠나지는 않았습니다.
 
뭔가 잘못되었나, 느낄 때 드디어 화면에 그들의 규칙적인 전파 음성이 나타납니다.
 
쟈이가 쏘아 올린 전파가 그들에게 닿았나 봅니다.
 
그들이 답을 보냈으니 우리도 답을 보내야 합니다.
 
뭐라고 보내는 게 좋을까요?
 
우선은 이 지구에 사람이 살아 있다는 것. 그것부터 알리는 게 좋겠습니다.
 
쟈이 E. 에벤포드:(우리는 생존자입니다, SOS. 간략하지만 명료한 뜻을 전한다.)
 
쟈이가 화면에 대답을 생성하자 기기는 그 대답을 일정한 주파수로 바꾸어 우주로 쏘아올립니다.
 
다시 몇 분의 시간이 더 지났습니다.
 
화면에 그들이 보낸 답이 송출됩니다.
 
…뭐?
 
생명체가 감지되지 않았다니. 그럴 리가 없습니다.
 
쟈이 E. 에벤포드:......뭐?
 
지금 이곳에 아이린과 쟈이가 살아 숨쉬고 있습니다. 그 사실이 이렇게도 명백한걸요.
 
쟈이 E. 에벤포드:(우린 계속해서 살아있었습니다. 다급하게 주파수로 바꾸어 쏘아올린다.)
 
대체 무엇이 잘못되었지?
 
방황하고 있는 쟈이의 생각을 아는지 모르는지 그들은 다시 답을 송신했습니다.
 
우주에 떠 있을 그들이 보낸 짧은 말.
 
SANc (1/1d3+1)
 
쟈이 E. 에벤포드:
SAN Roll
기준치: 69/34/13
굴림: 89
판정결과: 실패
3
 
이성 3 감소.
 
쟈이 E. 에벤포드:(머리가 울리는 기분이다. 그러나 할 수 있는 것은, 저희는 인간입니다. 그렇지 않고서야 이 기기를 다룰 수 있습니까?.)
(계속해서 신호를 보내는 것.)
 
그들:[우리들의 기계가 고장난게 아니라면 너에게선 인간의 생체 활동이 전혀 감지되지 않아. 우리 쪽 기기 오류는 아닌 것 같은데. 우리는 네가 전파를 쏘아 올린 그곳 바로 위에 있어.]
[네가 있는 곳은 아주 오래된 대피소 같은데, 너는 그곳을 관리하는 관리자인가?]
 
쟈이 E. 에벤포드:(당신네 기기가 잘못됐겠지요, 튀어나오려던 말은 억누르고 답했다. 확인하러 오십시오. 지금 관리자는 잠들어 있습니다.)
 
그들:[잠들 수가 있다고? 내 생각에 너와 관리자라는 존재는 인간이 아니야. 너무 긴 시간동안 작동되어서 그런지 정보 저장에 오류가 생긴 것 같아. 하긴. 400년이면 그럴 만도 하지.]
 
쟈이 E. 에벤포드:.......
 
그들:[대피소 전체를 스캔해봤는데 지하에 동면 캡슐이 6개 있다고 나타나는군. 하지만 그 외에는 없어. 너를 포함해서 그 관리자라는 존재도 생체 활동이 감지되지 않아.]
 
쟈이 E. 에벤포드:(제대로 확인하러 내려오십시오. 그 6개의 동면 캡슐을 전부 꺼버리기 전에. 결국 참지 못하고 협박이 튀어나온다.)
 
그들:[우릴 협박하기라도 하는 건가? 미안한데 그런 어줍잖은 협박에 응할 생각 없어. 우린 너희를 구하거나 데리러 온 게 아니니까.]
 
쟈이 E. 에벤포드:........ (그래, 그렇단 말이지. .... 그렇다면 목적은요? 신호를 보내고, 이번엔 아이린의 것이 아닌 인식증을 쥔다.)
 
그들:[우린 지구를 버렸던 인류의 후손으로, 행성 '알파 566'을 고향으로 가진 인류야. 알파 566도 이젠 살기 어려운 땅이 되어버려서 이전 고향을 탐사하러 온 거야. 그런데 이곳은…… 선조들이 말했던 대로 여전히 최악이군.]
[우리 우주선의 탑승 인원은 제한되어 있어. 탑승인원은 최대 4인이고, 지금은 나와 셴, 크리스가 타고 있지. 알파 566으로 돌아간다고 해도 다시 지구를 방문하지는 않을 거야. 여긴 말 그대로 우리가 버린 행성이니까. 이 행성은 버려졌어.]
 
그들이 말합니다.
 
지구는 버려졌습니다. 아주 오래 전에.
 
지구를 버리고 우주선을 탄 인류는 새로운 지구를 찾았고 그곳을 ‘알파 566’ 이라고 명명했으며 400년이 지난 지금까지 그곳에 거주하고 있습니다.
 
아이린은 무엇을 기다린 걸까요.
 
이미 버린 행성 속에서. 우리를 생각하지도 않았을 떠나버린 인류에게.
 
그들:[며칠 전에 신호를 처음으로 수신한 존재가 있었지. 그 존재가 네가 말하는 관리자인가 본데. 그 역시 우리에게 SOS 신호를 보내더군. 그래서 이야기해줬어. 너희가 로봇이든, 정말 400년 동안 살아남은 인류든 알파 566으로 데려 가려고 온 건 아니라고 말이지. 자리는 한 자리밖에 없고, 이후에는 다시는 이곳을 방문하지 않을 거라고.]
[그랬더니…… 좋아하던데. 데려가야 할 존재가 있다고 간절히 부탁하길래 기다렸는데, 이 행성의 기후가 지나치게 혹독해서 244시간 동안 통신이 먹통이었어.]
[내부 통제실에 한 번 가봐. 그곳에서 또 다른 기기 작동 신호가 잡혀.]
 
그들의 통신은 잠깐 거기서 끊겼습니다.
 
아이린의 말은 어디까지가 진실일까요? 또 어디까지가 거짓일까요?
 
쟈이 E. 에벤포드:(당장 전파실에서 나와 내부 통제실로 향한다.)
(확인할 것은 그쪽.)
 
◇ 내부 통제실
 
내부 통제실에 진입하는 건 어렵지 않았습니다.
 
무선 전파기로 전파를 보낸 인류의 후손이 내부 통제실을 막고 있던 AI 활동을 제한시켰기 때문입니다.
 
동면 중인 제니를 지나쳐 쟈이는 내부 통제실 문 앞에 섭니다.
 
AI가 쟈이를 인지하더니 곧 익숙한 음성이 들립니다.
 
쟈이 E. 에벤포드:(인류의 것, 제니의 인식증을 댄다.)
위험하겠지, 그야....
 
제니의 인식증을 대자 곧 통제실이 열립니다.
 
쟈이 E. 에벤포드:우리가 인류가 아니라면, 부적합 대상일 테니......
 
이번에는 아이린이 중간에 작동을 정지하는 일은 없었습니다.
 
쟈이 E. 에벤포드:(가능한 한 빠르게 통제실 내부를 둘러본다.)
(활동 자체가 어려울지도 모른다. 시간제한 같은 형태로 나타날지도 모르지. 그러나 아직 움직일 수 있으므로.)
 
그리고… 그제서야 보이는, 당신이 그리도 보고자 했던 통제실의 모습.
 
얼어붙은 먼지들이 오랜만에 불어오는 외부 불빛을 환영합니다.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추운 온도가 쟈이를 감쌉니다. (HP-1)
 
마치 대피소 밖으로 나온 것처럼 온몸에 한기가 듭니다.
 
금방이라도 또, 동상에 걸릴 것 같은 기분입니다.
 
<정신> 판정
 
쟈이 E. 에벤포드:
정신
기준치: 70/35/14
굴림: 70
판정결과: 보통 성공
 
겨우겨우 한기를 이겨냅니다.
 
내부 통제실은 여태까지 봤던 대피소의 그 어떤 곳보다 크기가 거대합니다.
 
대부분의 기계들이 추위에 얼어붙었고 뚝뚝 끊어진 전선들이 바닥을 나뒹굴고 있습니다.
 
쟈이가 내부 통제실에 들어서자 불길한 경고등이 통제실 내에 가득 켜집니다.
 
음성 AI는 똑같은 말만 반복합니다.
 
:[통제실 화면] [음성 녹음기] [통제실 연구 보관함] 조사가 가능합니다.
 
쟈이 E. 에벤포드:(찡그리다 통제실 화면을 먼저 살핀다.)
 
통제실에 있는 수많은 화면 중 단 하나의 프로그램 화면만이 빛을 내고 있습니다.
 
동면 캡슐에 잠들어있는 사람들과 아이린, 그리고 쟈이의 고유 정보가 화면에 인식되고 있습니다.
 
익숙한 이름도 보입니다. 제니.
 
그 아래 함께 나열되어 있는 우리들 역시.
 
쟈이 E. 에벤포드:하하, ... (그들의 말로 예상했다면 우스운 일이겠지. 바로 음성 녹음기로 시선을 돌리고 작동시킨다.)
 
아이린과 쟈이는 인간이 아닙니다.
 
우리들에게는 인간이 살아있을 때 발생되는 생체 신호도 감지되지 않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들이 이 지구에서 살아남은 생명체가 없다고 생각한 거겠죠.
 
400년 동안 지구에서 동면되지 않은 채 살아가기 위해서… 인간의 모습을 선택하지 않은 겁니다.
 
화면은 빠르게 변해서 지난 400년간 대피소 내부에서 녹음된 음성 화면을 띄웁니다.
 
쟈이 E. 에벤포드:(음성 파일을 재생시킨다.)
 
동면에서 깨어날 인류를 위해 저장된 음성 화면에서 흘러나오는 목소리… 아이린입니다. 그리고 낯선 사람이 한 명.
 
녹음된 시기는 쟈이가 기억하고 있는 지구 멸망의 날.
 
그들의 말에 의하면 400년 전입니다.
 
내부 통제실 음성 화면 저장 데이터
 
- XXX. XX. XX. 음성 녹음
 
제니:정말 동면하지 않을 거야?
 
아이린 E. 테라코르:안 해. 어차피 동면실의 관리자가 필요하다며. 너희에겐 좋은 일 아니니?
 
제니:그건 로봇들에게 맡기면 돼. 그들은 우리 인간들과는 다르게 수 세기가 지나도 여전히 작동할 수 있어. 물론 대피소 전체의 관리를 로봇에게 맡기는 건 굉장한 도박이긴 하지. 그래도 추위와 굶주림에 얼어죽는 것 보다는 나아.
인류가 언제 돌아올지 모르잖아. 안 돌아올지도 모르고.
 
아이린 E. 테라코르:……얼어죽게 두지 않아. 내가 그와 함께할 테니까.
 
제니:그 말 후회하지 않을 자신 있어? 쟈이도 너도 사람이야. 지구에서 살아남을 수 있을 리가 없잖아.
 
아이린 E. 테라코르:…….
 
제니:너, 이상한 생각 하고 있는 거 아니지?
 
아이린 E. 테라코르:…….
 
제니:쟈이의 의견을 고려한 선택인 거야?
 
- XXX. XX. XX. 음성 녹음
 
아이린 E. 테라코르:만약 동면에서 깨어나도 소용없으면 어떻게 하면 좋겠니?
 
제니:무슨 소리야?
 
아이린 E. 테라코르:너와 다른 이들이 유효기간까지 동면을 쭉 유지했는데도 지구엔 가망이 없고, 인류가 우릴 데리러 오지 않는다면.
 
제니:최악의 상황에 관한 답이 필요한 거야?
 
아이린 E. 테라코르:혹은 그들이 지구에 다시 돌아와도 우리를 데려가려 하지 않는다면, 까지 가정해야겠구나.
 
제니:…… 그거 참. 슬픈 가정이네.
 
아이린 E. 테라코르:깨어있기를 택했으니 너희를 관리하는 책무를 소홀히 하지는 않겠지만, 언제나 가설은 모든 방향을 열어둬야 하지 않겠니. 여기 있는 모두를 데려갈 거라 확신할 순 없어.
 
제니:만약 그렇게 된다면…… 그래. 그렇게 된다면 그냥 우리를 비활성해줘.
 
아이린 E. 테라코르:죽음과 다를 바 없을 텐데.
 
제니:나도, 동면하는 다른 이들도 모두 그걸 원해. 우린 또다시 절망하고 싶지 않아.
 
- XXX. XX. XX. 음성 녹음
 
제니:대피소를 잘 부탁해. 아니, 우리를 잘 부탁한다고 해야 하려나.
 
아이린 E. 테라코르:노력은 해볼게.
 
제니:동면에서 눈을 뜨면…… 너와 쟈이가 없었으면 좋겠어. 무슨 선택을 한 건지 바로 알게 될 테니까.
아이린. 제발 무모한 짓 하지마.
 
- XXX. XX. XX. 음성 녹음
 
아이린 E. 테라코르:……미안해.
나와 쟈이가 죽을 일은 없을 거야.
 
— — — 지지직.
 
내부 통제실 화면 신호가 불안정합니다. 흘러나오던 음성이 잠깐 멈췄습니다.
 
아이린이 무슨 선택을 한 건지 이제는 압니다.
 
지금은 쟈이의 기억으로부터 400년 후입니다.
 
쟈이의 기억이 400년 전에 머물러 있는 것도, 쟈이가 아직 자신을 인간이라고 기억하고 있는 것도.
 
… 전부 아이린이 그렇게 만들어낸겁니다.
 
쟈이와 함께 이 지구에서 살아남기 위해.
 
동면을 선택하는 대신, 지구로 돌아올 우주선을 하루하루 기다리기 위해.
 
멸종하지 않기 위해서.
 
친구를 잃지 않기 위해서.
 
어쩌면 아이린은 알고 있었는지도 모릅니다.
 
인류가 돌아올 확률이 아주 희박하다는 것쯤은요.
 
인류가 돌아와도 대피소에 있는 모두를 데려가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그런 가정들을 말이죠.
 
언제나 가설은 모든 방향을 열어두어야 하는 법이니까요.
 
이제 곧 대피소는 완전히 눈에 파묻힐 테고 전망대의 꼭대기는 상공에서 보이지 않게 되겠죠.
 
절망하고 싶지 않으니 비활성 의식 유지를 해달라고 하던 사람들.
 
쟈이 E. 에벤포드:..... (입가를 가리고 음성 녹음을 들었다. 하, 바람 빠지는 소리 내며 웃어버리고는)
차라리 이해가 가네요. 이거.... (엄청나게. 찡그리듯 웃으면서 통제실 연구 보관함을 살핀다.)
 
기온이 낮은 내부 통제실의 장점은 연구 자료들의 훼손이 덜하다는 것입니다.
 
언제 작성한건지 모를 자료들은 대부분 인간과 로봇의 개조 특성에 대해 기재 되어 있습니다.
 
<과학> 판정
 
쟈이 E. 에벤포드:
과학(천문학) Roll
기준치: 71/35/14
굴림: 16
판정결과: 어려운 성공
 
빽빽하게 저장되어 있는 보관함에서 <인간과 기계의 신체 결합 개조>에 대한 자료를 발견합니다.
 
자료에는 인간의 피부조직과 장기, 어떻게 정보 인식을 처리하고 결과를 만들어 낼 수 있는지에 대한 자세한 과정이 적혀있습니다.
 
적합한 개조를 위해 인간이 가지고 있는 키와 몸무게, 성별 정보가 필요했는지 수식은 빽빽하게 채워져 있습니다.
 
그 정보에 정확히 부합하는 존재가 누구인지는… 이제 쟈이도 알고 있겠죠.
 
값은 두 명입니다. 당연한 말이죠.
 
쟈이뿐만 아니라 아이린 역시 인간이 아니라 로봇이 되었으니까요.
 
둘은 로봇이 되었지만 외관은 인간과 동일합니다.
 
로봇이 된 인간은 인간처럼 고통과 미각, 후각, 청각을 똑같이 느낄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건 실제가 아닙니다. 그렇게 ‘인식’ 하도록 우리들의 내부에서 프로그래밍 된 결과일 뿐이라고 나와 있습니다.
 
부품이 낡고, 고장이 났고 오류가 생기는 것을 꾸준히 관리 교체 해주면 로봇은 더 오랜 기간 작동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아이린과 쟈이가 400년이 지난 지금까지 의식을 가지고 있는 게 분명합니다.
 
대피소에서 구할 수 있는 부품이 모두 떨어지면 아이린과 쟈이도 작동이 멈추겠죠.
 
살기 위해서는 우주로 가야 합니다.
 
— — — 지지직. 지지직.
 
쟈이가 보관함을 살피고 나자, 멈춰 있었던 음성 녹음 화면이 다시 작동됩니다.
 
음성 녹음 화면에 입력되는 날짜와 연도는 가장 최근입니다.
 
동면 캡슐에 이상이 생겨 쟈이가 다녀갔던 그 날부터 바로 며칠 전.
 
한참 동안 들어간 적 없단 말도 전부 거짓말이었군요.
 
쟈이 E. 에벤포드:(두고보자)
 
- XXX. XX. XX. 음성 녹음
 
아이린 E. 테라코르:결정은 끝났어. (지독하게 담담하고 고요한 목소리가 흘렀다.)
무모한 짓이었지. 터무니없이 이기적이고 편향적이었어. 네가 만약 깨어 있었다면 내게 관리자를 맡긴 걸 후회했으려나.
그래도 어쩔 수 없지. 시간은 되돌릴 수 없는데, 난 그걸 알면서도 붙잡아 보고 싶었어.
이만하면 영원이라 불러주기에도 나쁘지는 않았겠지…….
미안해. 내 곁에 유일하게 남은 친구를 잃고 싶지 않았어.
이 죄는 무엇으로도 용서받을 수 없겠지. (자조가 어린 음성이 맺힌다.)
 
당신이 가진 전파 수신기가 짧게 울립니다.
 
쟈이 E. 에벤포드:(수신기를 바라본다. 소리가 날까?)
 
그들:[지금 전망대 위에 네가 말했던 관리자가 있는 것 같아.]
 
쟈이 E. 에벤포드:[그렇군요. 지금 상태는 별로 안 좋을 거에요.]
[데려갈 생각은 없지요?]
 
그들:[결정하는 건 너희지. 남은 자리는 하나야.]
[마음을 정했다면 신호를 보내.]
 
쟈이 E. 에벤포드:(통제실을 빠져나와 전망대 방향으로 향한다. 한기도 결국 프로그래밍된 것이라 생각하니 한결 발이 가볍다.)
(오히려 뭐든 할 수 있을 것만 같은 기분.)
 
눈이 내립니다.
 
하긴. 눈이 내리는 건 이 지구에서 너무 자연스러운 일이 되었습니다.
 
대피소 밖에는 강한 눈보라가 치고 있습니다.
 
그 눈보라를 보고 있으면 이제 모든 게 끝인 것 같아요.
 
지구에 기대되는 미래 따위는 없고 최후에 남은 인류도 없습니다.
 
인정할 수밖에 없는 사실은 지구가 버려졌다는 것과 우리 역시 버려진 존재라는 겁니다.
 
전망대로 향하는 길에 누군가의 발자국이 찍혀 있습니다.
 
세차게 내리는 눈 때문에 새겨진 발자국은 금방 새로운 눈 아래로 덮여 사라지지만 쟈이는 알 수 있습니다.
 
아이린이 신발도 신지 않고 전망대로 걸어갔다는 것쯤은… 짧은 순간이라도 알 수 있어요.
 
두 팔과 다리. 뺨이 얼어붙을 것처럼 차갑지만 이 통증 역시 인간이 느끼는 실제 감각이 아니겠죠.
 
모든 게 얼어붙을 것 같은 이 감정도, 지금 쟈이가 생각하는 모든 것들도요.
 
전망대 계단을 한 칸 한 칸 올라갑니다.
 
겨울만 계속되는 추운 행성. 지구.
 
계단 끝에 도착하자 꼭대기로 나오는 문이 열려 있습니다. 열린 문 사이로 눈이 쌓여갑니다.
 
쟈이 E. 에벤포드:.....다 알았어요, 다 알아서.......
좀 멋대로 하고싶어졌는데요.
 
밖을 향해 한 발자국 걸어나갑니다.
 
그곳에 아이린이 서 있습니다.
 
아이린 뒤로 눈 속에 겹겹이 파묻혀 가는 풍경이 보입니다.
 
아이린 E. 테라코르:…… 그래. 다 알았겠지. (나뭇가지나 뾰족하게 튀어나온 돌멩이 등에 긁혔는지 발에는 붉은 선과 푸른 피멍이 들어 얼룩덜룩했다.)
미안해. 사과가 네게 의미가 있을지는 차치하고서라도……
 
쟈이 E. 에벤포드:왜요? 테라코르는 날 살려두었는데....
내 의지도 무시하고요. .....
난 정말...! 우리가 하나를 버리고는 제대로 못 살 거라고 생각하거든요? 지금도 그래요.
(프로그래밍되었을 추위가 살갖을 에워싼다. 부품 교체, 수리, 그렇게 연장된 삶. 그리고 모든 것이 만들어진 감각이다.)
내가 못 미더웠나요? 같이 기계로서 살아가자고 하면 거절할 거라고 생각했어요?
 
아이린 E. 테라코르:아냐, 그게 아니라…… (상처와 동상에 걸린 피부는 자신의 색을 잃어간다. 그러나 그게 더 이상 두 사람에게 무슨 상관이 있던가. 동상에 걸린다 해서 죽는 것도 아닌데. 그저, 프로그램에 오류가 생기고 작동이 멈추는 것뿐이겠지. 그런데 지금 쟈이를 바라보는 아이린의 표정은 그 어느 때보다도 흔들리고, 무너진다. 아랫입술이 파르르 경련하고 어깨는 추위에 처량하게 떨렸다.)
네가 대피소에 들어온 지 얼마 안 되었을 때, 심한 눈보라가 쳤어. 물자를 구하려 나갔었던 너는 폐렴과 동상에 걸려서 생사를 넘나들었지. 손쓰지 않으면, 그대로 죽을 것만 같았는데. 도저히 이곳엔 널 치료할 만한 약이 없어서…… (손이 떨렸다. 이내 양손에 고개를 묻는다.) 내가 할 수 있는 건……
너를 잃고 싶지 않았어. 미안해…….
 
쟈이 E. 에벤포드:내가 죽어가고 있었다 하더라도....
테라코르가 최선을 택했다면 나를 속이지 않을 수 있었을 거에요.
기만자, 나도 알아. 나를 얼마나 소중히 여겼는지, 얼마나 살리고 싶었을지. .... (한 발자국, 이어 다음 발자국. 알고 나니 생경한 걸음이 무겁다. 네 쪽으로 비틀거리며 다가가....)
(눈썹을 늘어뜨리고 찡그리듯 웃는다.) ....끝까지 속였다면 나를 살려보낼 수 있었을 텐데. ....아쉽게 됐어요, 그렇지...? (눈보라에 순간적으로 시야가 가려진다.)
(그러면 양 손을 들어 당신의 어깨를 끌어안고, 숨-이라 정의하는 것-을 내쉰다.)
.....속죄하라고는 안 해요. 그러니까 이기적일 부탁 하나만 하죠.
 
쟈이 E. 에벤포드:날 보내지 말아요. 테라코르도 못 가요. 그냥 모른척 할게요. 여기서 같이 끝을 맞이해요.
 
아이린 E. 테라코르:(기만자. 그래, 그게 저에게 가장 어울리는 단어다. 한 번도 두 번도 아니고, 400년을 속여 왔다. 당장 며칠 전만 해도 뱉은 거짓말이 몇 개던가. 이젠 셀 수도 없다. 네가 사실을 알아차리고 화를 내면 리셋하고, 망가지면 또 리셋하고, 다시 깨어나면 또 똑같은 설명을 하고……. 수십 번을 반복해도 질리지 않았던 건 아이린이 염원한 영원을 손에 쥐었단 생각 때문이었다.)
내가 틀렸어. 내 예상이……. 이토록 오래 우리를 구하러 오지 않을 줄은 몰랐지. 우리가 정말로, 완전하게 버려졌을 줄은 몰랐지. (닿아오는 체온은 왜 아직도 따뜻한 걸까? 기계라는 거죽을 뒤집어썼음에도, 인간의 마음과 이지가 아직 우리 안에 살아 숨쉬기 때문일까…….)
처음부터 살 생각은 하지 않았어. 널 이렇게 만들어두고 어떻게 내가 살아가겠니. 죄책감의 무게란 대단하더구나. 대피소 안에서 숨을 쉬고 있어도 눈에 파묻혀가는 기분이었으니까.
(품에서 인식증을 하나 꺼내 내밀었다.)
 
아이린은 쟈이에게 낯설지만 익숙하게 생긴 인식증 카드를 건넵니다.
 
쟈이의 얼굴이 새겨진 이 카드는 잃어버렸던 쟈이의 인식증입니다.
 
400년 전의 물건을 다시 가지게 되었습니다.
 
쟈이 E. 에벤포드:...역시 가지고 있었나요. (인식증을 받아든다.)
의미가 있나요.... 이거?
 
아이린 E. 테라코르:네 인식증은 이미 대피소 내에서 인간으로서의 통제 권리를 잃어버려서, 네가 이상하게 생각할까 봐.
 
쟈이 E. 에벤포드:(인식증을 하늘을 향해 들어보인다.) ...그렇지요, 이미......
 
아이린 E. 테라코르:…… 이걸로 네가 지구에서 생존했었던 인간이라는 건 충분히 증명할 수 있을 거야.
네 부탁은 들어줄 수 없어. 들어주기 싫어.
 
멸망한 지구에서 우리는 수 세기를 살아냈습니다.
 
살았다고 하는 표현은 이상하네요. 살아낼 수밖에 없었습니다.
 
쟈이의 앞에 있는 아이린도. 아이린 앞에 있는 쟈이도 그렇게 되기 위해 만들어지고 개조된 인공 로봇이기 때문입니다.
 
인간의 형태는 갖추고 있지만 이미 인간으로서의 정의는 잃었습니다.
 
아이린은 인간이었던 쟈이를 로봇으로 만들었고 스스로도 그렇게 변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들은 살아가고 있는 걸까요?
 
우리들을… 지구 최후의 인류라고 말해도 괜찮은 걸까요?
 
인류라고 하기엔 아무것도 없는 우리가?
 
우리, 언제쯤 우주로 가게 될까?
 
이 질문을 언제 마지막으로 들었더라….
 
눈이 몰아칩니다. 세차게 부는 바람 때문에 앞을 제대로 볼 수가 없습니다.
 
아이린과 쟈이가 서 있는 이곳은 너무 춥습니다.
 
날은 점점 어두워지고 눈은 순식간에 더 높게 쌓여갑니다.
 
이 추위에 나와있는 우리들은 이번에도 역시 동상에 걸리거나 감기를 앓게 될까요. 하지만 그래도.
 
그렇게 된다고 해도 전혀 달라지는 게 없습니다.
 
아이린 E. 테라코르:…… 우주로 가, 쟈이.
지구를 떠나.
제발.
 
더 거세진 눈발에 아이린의 얼굴이 제대로 보이지 않습니다.
 
하지만 알 수 있습니다. 그의 뺨을 타고 눈물이 흐르고 있다는 사실을.
 
아이린의 그 눈물에는 인간의 감정이 조금이라도 섞여 있을까.
 
인간이 아닌 쟈이가 생각해봐도 알 수 없는 문제입니다.
 
쟈이 E. 에벤포드:.... (잠시간 고개를 하늘로 들고, 인식증을 내렸다.)
아뇨? 안 가요.
 
아이린의 눈은 이렇게 말합니다.
 
쟈이 E. 에벤포드:테라코르, 그들도 망해가고 있어요.
내가 왜 나를 이만큼 살리려는 친구를 버리고 망해가는 행성에 가겠나요? (입김이 흐른다. 인식증을 물끄러미 바라보다 그대로 힘을 줘 갈라낸다.)
증명은 내가 해요.
그들이 명색이 인류라면.....
다시 지구에 돌아올 때, 인류의 마지막 흔적 정도는 알아내라지.....
자... 그러면 테라코르와 함께 남길 글을 써야겠어요. 내일도 내 소설을 읽어줄 거지요?
 
쟈이 E. 에벤포드:(부정할 수 있을까, 이만한 감정적 교류를 하고 이런 선택을 하는 것이 AI라고? 그가 아는 인공적 존재는 늘 합리적 선택을 한다. 그러니ㅡ,)
(그가 남겼을 모든 글은 지구 최후의 존재가 AI가 아님을 반증한다.)
 
아이린 E. 테라코르:그래도, 그래도 여기보단 나을 거 아니니. 이곳에 있어봤자 얼어죽을 뿐이야. 그곳에선 다른 선택지가 있을지도 모르잖아! (반쯤 악을 썼다.) 내 이기적인 선택 때문에 원치도 않는 400년을 살게 만들었어. …… 적어도 그토록 기다린 우주선에는 너를 태워 보내고 싶었는데.
(찢어진 인식증이 눈발에 흩날린다. 곧 하얀 눈에 덮여 보이지 않게 되겠지. 점점 더 눈이 쌓여가는 우리의 하얀 머리카락처럼.)
 
쟈이 E. 에벤포드:논증에 목소리의 크기는 중요치 않아요. 테라코르는 졌어요. 내게 이걸 쥐여준 순간.... (인식증을 눈발에 날려보내고, 손을 내민다.)
돌아갈까요, 우리의 대피소로.
 
아이린 E. 테라코르:…… (눈을 타고 흐른 눈물은 뺨을 굴러떨어질 때쯤에는 진주처럼 얼어붙어 떨어진다. 긴 시간을 제가 원하는 대로 당신을 휘둘러 왔다. 그러니, 그토록 기다려온 우주선에 오르지 않는 것이 내 죄의 벌이라면 벌인 거겠지.)
(그리고 동시에, 끝까지 외롭지 않을 수 있는 당신의 안배이기도 할 것이다.)
그래……. (눈물이 흐르는 와중에도 희미하게 웃었다.) 끝까지 네 독자가 되어줄게.
(다리가 얼고, 너무 많은 기능이 고장나서, 남은 시간은 얼마 되지 않겠지만……)
(그래도, 그 시간만이라도.) 가자.
 
쟈이 E. 에벤포드:....의식 잃지 마요. 나 부품 교체라던가 수리하는 방법 알려줘야죠.... (너를 부축해 계단을 내려간다.)
(포기하게 만든 것은, 너 뿐 아니라 저도 비슷했던가.)
괜찮아요. ....괜찮게 할게요.
 
아이린 E. 테라코르:이제 남은 부품도, 수리할 만한 연료도 없어. 지금이라도 우주선에 연락해. 그럼 살 수 있을 거야……. (꺼져가는 목소리로 중얼였다.)
 
쟈이 E. 에벤포드:싫어요. 그걸 살아간, 다고 부를 수 있다면 테라코르는 날 잘못 봤네요? (밭은 기침을 하고 다시금 걸음을 내딛는다. 돌아가는 길에 쓰러진다 하더라도.)
(다음, 걸음을.)
 
아이린 E. 테라코르:그럼 어쩔 수 없겠구나…….
함께 지구 최후의 인류가 되는 수밖엔.
 
쟈이 E. 에벤포드:내가 AI로 눈 뜬 순간부터 그렇게 결심한 거 아니었나요~.
 
아이린 E. 테라코르:이렇게 되는 것도 조금은 예상하고 있었지.
돌아가자……. 함께.
 
이대로 우주로 간다고 한들 그게 무슨 소용이 있을까요.
 
쟈이가 인간이었을 시절 살았던 지구는 이곳에 있고 아이린 역시 이곳에 있습니다.
 
우리들의 행성은 멸망하고 있지만… 우리는 아직 이곳에 남아있습니다.
 
인간이 아닌 어떤 존재로 남았던 여전히 춥습니다.
 
겨울을 살아내고 있다는 뜻이겠죠.
 
더 이상 전망대 위에서도 보이지 않는 발사지를 매일 바라보며 아이린은 무슨 생각을 했을까요.
 
400년 동안 아이린에게 중요한 존재는 단 하나뿐이었습니다.
 
함께 있을 존재도, 서서히 멸종되어 갈 존재도.
 
붉게 부은 눈가로 눈물을 흘리는 아이린의 얼굴은 인간 아닌 쟈이가 보기에도 조금은 인간처럼 보입니다.
 
마지막까지 글을 써내려가는 쟈이 역시, 아이린이 보기에도, 언젠가 이곳에 올 누구더라도, 인간이라고밖에 생각되지 않겠죠.
 
—지지직. —지지직.
 
400년을 기다렸던 인류의 전파가 멀어져 갑니다.
 
무선 전파에는 더 이상 아무 말도 흘러나오지 않을 겁니다. 그래도 후회는 없어요.
 
두 사람은 대피소로 돌아갑니다. 남은 부품도 수리할 연료도 없으나, 어쨌건 숨을 내쉬기 위해 돌아갑니다.
 
우리는 진작 멸종되었어야 할 지구 위 생존 인류입니다.
 
살아서 죽음을 기다리고 있다고 해도,
 
끝의 순간까지도 외롭지는 않을,
 
지구 최후의 마지막 인류입니다.
 
Ending 2. 멸종된 시대에 남은 최후의 존재
 
아이린 로스트, 쟈이 로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