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파란 하늘, 그리고 하늘을 담은 푸른 바다가 펼쳐져 있습니다. 눈이 부실 정도로 끝없이 푸름,
푸름, 푸름.
하늘이 어딘지, 또 바다와의 경계가 어딘지. 모호하고 아름다운 장소.
그 푸르름의 끄트머리에 걸려있는 것이 바로 당신의 목적지, 그리스군요.
어쩌다 이렇게 오랜 비행기를 타야 했더라.
…
…
...
...평범한 날이라고 생각했었는데요.
여느 때처럼 크리쳐를 섬멸했고, 피치 못할 상황에 처한 지휘자를 돌봐주었고,
일과를 마치고는 당신의 방에 자리를 잡았죠.
잠들 준비를 했을까요? 아니면, 다른 할 일을?
에르드 하이너스:(안내자가 된 지도 어느덧 7년. 많은 시간이 지나며 안내자로서의 삶에도 어느덧 적응하였다. 하지만 여전히, 지휘자와 엮이는 상황은 다소간의 피로를 유발한다. 사람과 밀접한 관계를 쌓거나 가까워지는 것을 싫어하는 그로서는 접촉으로 이루어지는 가이딩이 꽤 고역이었던 것이다. 그렇기에 꼭 필요한 경우가 아니라면 방사 가이딩으로 모든 걸 해결하려 하지만…… 오늘처럼 예기치 못한 상황에서는 자신의 독특한 가이딩 방식을 상대에게 설명하고 이해받는 일련의 과정이 쉽게 이루어지지 않기 마련이다. 결국은 입씨름을 거하게 하고 온 판이다. 이걸로 월말 평가도 더 떨어지겠군. 예나 지금이나 그런 걸 신경쓰는 편은 아니었으므로 깊은 생각은 그만두었다. 대신 자신의 또 다른 임무 중 하나인 크리쳐 격파를 위하여, 칼을 쥐고 여러 방향으로 휘두르며 자율 훈련을 한다.)
시간이 시간인지라 복도의 조명들은 꽤 어두워졌으나 아직까지는 대원들의 말소리가 들리는 편입니다.
새로 파트너쉽을 맺은 이야기, 저번 임무로 망가진 건물에 관한 복구 처리 상태, 하릴없는 잡담들…
그런 소리들을 지나쳐, 피스 건물 답게 깨끗하고 정돈되었지만..
그래서 오히려 삭막한 복도를 걷고 있노라면 타이밍 좋게 에르드가 있는 층에 멈춰서있는 엘리베이터 앞에 도착합니다.
에르드 하이너스:(여전히 쓰잘데기없는 얘기들만 늘어놓느라 바쁘군. 나오려는 하품을 참으며 엘리베이터에 올라탄다. 왜 이런 시간에 호출을 하는 건지 모르겠네.)
지부장실은 최상층에 있으므로 엘리베이터는 최상층으로 올라갑니다.
보통은 혼자 지부장실까지 가는 일은 잘 없지요.
거하게 사고를 쳤거나, 파트너를 바꿔 달라고 선언하거나, 혹은 새로운 파트너를 만나러 가는 길.
홀로 지부장실에 가는 이유들은 대부분 그렇지만...
에르드는 오늘 임무 중에 있었던 사소한 다툼으로 이미 불려간 전적이 있습니다.
에르드 하이너스:(내 탓은 아닌 듯.)
익숙하고도 낯선 기분으로 올라탄 엘리베이터가 멈춰섭니다.
최상층. 복도에 커다랗게 난 창문으로 도시의 야경이 내려다보이고, 널찍한 문은 단단히 닫혀있습니다.
저 굳건히 닫힌 문이 당신을 부른 이가 있는 곳이겠지요.
에르드 하이너스:(짧게 숨을 고르고, 절도있는 걸음걸이로 문 앞에 다가가 두 번 노크한다.) 에르드입니다.
기다렸다는 듯 지부장실의 문이 스르륵 열리고, 서류를 읽어내리는 지부장의 모습이 보입니다.
테이블 위에는 당신의 프로필이 화면에 열려있는 타블렛이 올라가 있고요.
지부장은 여전히 무표정하지만 평소보다 기분이 저조해 보이네요.
…그러고 보니 평소라면 임무 전달은 맞바로 타블렛으로 하거나 브리핑룸으로 호출했을텐데 굳이 지부장실로 불렀죠.
헝가리 지부장:에르드.
에르드를 부른 지부장은 ‘극비’ 인장이 찍혀있는 서류를 건네줍니다.
헝가리 지부장:출장을 좀 다녀와야겠네. 읽어봐.
에르드 하이너스:갑자기 출장을 말입니까. (내 출장인데 왜 저쪽 기분이 나쁜 건지 모르겠군. 서류를 펼쳐 읽는다.)
……300km 내 능력자 전원? (인상을 찡그렸다.) 크리쳐의 정보는 아직 입수하지 못한 겁니까?
헝가리 지부장:나도 사건에 관하여 보고 받은 것이 많지 않아. 저쪽에서 상당히 말을 아끼고 있거든.
에르드 하이너스:이런 곳에 하필이면 저를 보내시는 이유가 있습니까? 아시겠지만, 저는 그다지 쓸모있는 안내자는 아닙니다. (지휘자의 정보를 속독해나간다. 익숙한 이름이었다. 무척이나 강한 능력으로 먼 헝가리 지부에서까지 언급되는 정도였으니. 얼마나 대단한 위력을 가졌는지 한 번쯤 직접 보고 싶단 흥미를 가진 적은 있었지만 이렇게 기회가 오게 될 줄이야. 하지만 보고서대로라면 아테네 지부는 현재 비상상황. 베아트리체 정도의 능력자라면 잦은 횟수의 가이딩을 요할 텐데. 자신이 거기에 제대로 응할 만한 안내자는 아니지 않은가.)
헝가리 지부장:그래서 이쪽에서도 그렇게 전했다만, 그쪽에 하나 남은 지휘자가 너를 꼭 꼽았다고 하더군. ...파장이 어떻다고 하던가. (베아트리체의 정보가 적힌 서류를 가르킨다.)
지부장의 손 끝이 정확히 서류를 가르키면- 화르륵, 서류가 빠르게 타올라 재로 변하고 서류 뒤에 끼워져있던 비행기 티켓만이 손에 남습니다.
에르드 하이너스:그쪽에서 저를? (아테네 지부의 사람에게 제가 알려져 있단 말인가? 이건 이것대로 놀라운 사실이다. 특별히 강한 힘을 가진 것도, 인기가 많은 안내자도 아닌데. 접촉 가이딩을 피하려 드는 게 그나마 특이점이라면 특이점이겠지만, 보통 이건 안내자에게 마이너스 요소가 아닌가.)
헝가리 지부장:(깍지 낀 손에 턱을 괴며 바라본다.) ...예전에 본 적이 있다던가. 자세한 이야기는 가서 직접 전해 듣는 편이 빠를거야.
지금 당장 짐을 싸서 헬기 탑승장으로 이동하면 공항까지 이송해줄거다. 대외적으로는 출장이 아니라 휴가라고 되어있으니 부대 비행기는 사용이 불가해.
휴가계는 열흘. 내가 직접 올리고 승인해두지.
에르드 하이너스:지금 당장 말입니까. (아무리 명령하면 따라야 하는 군대라고는 하나, 이건 좀 너무하지 않나? 시간이 몇 시야. 불평을 하고 싶었지만, 이미 결정된 사실에 첨언해보았자 바뀌는 게 없다는 정도는 안다.)
…… 알겠습니다. 그럼.
헝가리 지부장:참, 이 사건은 코드 레드. 극비로 올라온 사건으로 최상부만이 알고있다. 결코 밖으로 새어나가면 안되니 입을 조심하도록 해. 너라면 걱정할 필요도 없겠지만.
참고로 기본 수당이 트리플로 붙은 임무다.
에르드 하이너스:잘 알고 계시면서. (어깨를 가볍게 으쓱한다.) 그나마 의욕이 나는 말이군요, 그건.
다녀오도록 하겠습니다. (목례하고 지부장실을 나선다. 예상치 못하게 바빠지겠군.)
헝가리 지부장:(돌아서는 등에 말을 덧붙인다.) 급하게 굴어서 미안하게 됐어. 그쪽에 혼자 남아버린 지휘자가 별써 열흘정도 안내자와 접촉을 못해서 굉장히 급한 모양이야.
도착하면 그쪽 지부장의 명령을 들으면 된다.
...모쪼록 신중하도록.
...해서 인사를 마치고 복도로 나와, 짐을 싸서 헬기에 탑승했죠.
지루한 비행 시간의 끝이 머지않았습니다. 천천히 고도가 낮아집니다.
새파랗던 하늘이 벌써 붉게 물들어 있는, 반나절만의 지상이군요.
코드 레드가 아무리 극비라지만, 큰 사건이 일어난 것 치고 공항은 여전히 관광객들로 북적입니다.
공항 직원들에게 인사를 받으며 내려서, 로비로 나가면 지인이나 가족을 찾는 사람들이 삼삼오오 모여있습니다.
그리고… 그 틈바구니 속에 시선이 빨려들 듯 확실히 보이는 인영.
프로파일에서 본 사진 속 인물 베아트리체. 그가 서 있고, 눈이 마주칩니다.
베아트리체 힐:(수많은 인파 속에서 그를 단숨에 찾아낸다. 이쪽이라는 듯 손을 흔들어보인다.)
에르드 하이너스:(가득한 사람들 틈에서도 단박에 눈에 띄는 이가 있다. 지부장이 파장 어쩌고 하더니, 그것 때문인가? 잠시 그를 바라보다가 성큼성큼 다가갔다.) 베아트리체 씨?
베아트리체 힐:반가워요, 에르드. 베아트리체입니다. (가볍게 손을 내민다.)
에르드 하이너스:(내밀어진 손을 다소 곤란하게 바라본다. 뭐, 이 정도는 커뮤니케이션에 있어 어쩔 수 없겠지. 장갑도 끼고 있으니 괜찮다. 손을 가볍게 맞잡아 악수를 하고 놓아준다.) 편하게 부르겠습니다. 베아트리체. 꽤 심각한 사태가 있었다는 것 같은데, 일단 지부장님을 좀 뵐 수 있을까요.
베아트리체 힐:(곤란한 얼굴에 손을 물려야 하나 고민하는 순간. 맞잡아지는 손을 가볍게 흔들었다가 놓는다. ...아주 잠깐 닿았을 뿐인데 미묘하게 숨통이 트인다. 조금만 더 힘주어 잡고 있을걸, 하는 미련이 스쳐 손을 물끄러미 내려보다 고개를 끄덕인다.)
...아, 그래요. 제 차로 이동할까요.
간단히 인사와 악수를 나눈 뒤 에르드는 베아트리체의 안내에 따라 베아트리체의 개인 차량에 탑승해 아테네 지부로 출발합니다.
에르드 하이너스:(조수석에 올라타자마자 방사 가이딩을 시작한다. 부드러워 보이는 옅은 금빛 안개가 가득 퍼져나와 차의 내부를 채웠다.) 가이딩은 보통 조용한 곳에서 하길 선호하는 터라 양해 바랍니다.
베아트리체 힐:...아. (운전대를 잡은 손에 들어간 힘이 부드럽게 풀린다. 신호가 걸린 사이 은은한 안개 속에서 가만 눈을 감았다가 느리게 눈꺼풀을 들어 올린다. 한결 차분해진 목소리.) ...고마워요.
(다시금 스틱을 움직이면 차가 부드럽게 나아간다.)
저녁의 그리스.
달리는 창 밖으로 노을이 벌써 뉘엿뉘엿 넘어가고 있습니다. 붉게 물든 거리 속 사람들은 평화로워 보이는군요.
고즈넉하고 한적한, 그러나 활기찬 관광 도시. 이런 사건으로 오지 않았다면 관광을 기대해볼 수도 있었을 텐데요.
베아트리체 힐:...인사가 늦었네요. 그리스에 온 것을 환영해요. 와주셔서 정말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아테네 지부까지는 15분 정도 걸릴 거에요.
(운전대를 손 끝으로 두드리며 말을 이어간다.) ...또, 아테네의 지부장은 각성자가 아니에요. 만약 그도 각성자였다면, 정말로 혼란스러울 뻔했어요.
부지부장은 각성자여서 현재 격리 중인 상태에요.
에르드 하이너스:그렇잖아도 그 생각이 들긴 했습니다. 지부장은 비각성자라니 불행 중 다행이군요. 다른 사람들의 상태는 어떱니까? 크리쳐와 전투한 후에 그렇게 큰 반경의 사람들이 전원 착란에 걸렸단 얘기는 처음 들어봅니다.
베아트리체 힐:...안타깝게도 좋은 상황은 아니에요. 아테네 지부를 비롯해서 그리스에 있는 모든 이능력자들이 정신 착란 증세를 보였어요. 그래서 부대에 소속된 대원들은 부대 병실로, 무소속 일반 이능력자들은 군 소속 병원으로 이송되어 있고요.
...제 전 파트너도 마찬가지에요.
에르드 하이너스:아직 회복한 이는 없는 모양이군요. (물끄럼 그를 바라본다) 파트너쉽의 계약은 파기하셨습니까?
베아트리체 힐:(여전히 앞만 응시한 채로 고개만 끄덕인다.) ... ...정신 착란이 오면서 강제적으로 끊어졌어요. ...다시 맺으려고 시도는 해봤는데, 불가능했어요.
...그래서 당신이 와준 데에 진심으로 감사해요.
에르드 하이너스:강제적으로 끊겼단 말입니까? (입을 맞추지 않고도 계약 파기라니. 처음 듣는 이야기였지만, 지금껏 페어를 맺어보지 않은 저로서는 파트너쉽에 관해서도 잘 모르는 게 많다. 특수한 경우가 있는 걸지도 모르지.)
…… 말이 나왔으니 말인데, 후회하지 않을 자신이 있으신지 여쭤보고 싶군요. 저를 지정하셨다면 이미 아시겠지만, 저는 주 가이딩 방식으로이걸택하고 있어서요. (차 안에 아까보다도 옅게 깔려 있는 금빛 안개를 손으로 살짝 휘저었다.) 만족스럽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베아트리체 힐:...아무래도 흔한 일은 아니죠. 그때 지부 전원이 크레타 섬의 크리처 토벌에 참전 중인 것은 아니었는데, 그 개체가 죽으면서 낸 울음소리를 들은 후에 일괄적으로 착란 증세를 일으켰다고 해요. ...그 탓일지도 모르겠네요.
정신이 명확하지도 않은 상태로 '돌아가야 해.' , '같이 가.' 같은 말을 반복하고 있거든요.
(사건에 관련된 정보를 담담하게 읊다가 문득 말이 멈춘다.) ......알고 있어요. (마지막 신호에 멈춰서 흐리게 남은 안개를 잡으려는 듯 손가락을 살짝 말아쥐었다가 놓아준다.) 제 선택이니 괜찮아요. 언젠가 당신과 꼭 한번 일해보고 싶다고 생각했었거든요.
(고개를 돌려 가만 응시한다.) 후회하지 않을 거에요.
에르드 하이너스:(기이한 증세다. 눈살을 살짝 찌푸렸다.) 크리쳐는 완전히 토벌된 게 맞습니까? 왜 죽었는데도 착란이 풀리지 않는 건지 모르겠군요.
그나저나, 저를 알고 계셨나 봅니다. 저 역시 당신에 대해 들은 게 있기는 했지만…… 강한 능력을 가진 당신과 달리 저는 별볼일 없는 안내자인데요.
베아트리체 힐:...연구팀에서도 지속적으로 연구 중인데 아직 이렇다 할 진척은 없는 것 같았어요. 아마 지부장님께서 좀 더 확실하게 얘기해주실 거에요.
...예전에 헝가리 지부로 지원을 간 적이 있었어요. 그때 누군가 스쳐 지나갔는데, 그 순간 숨통이 트이는 기분이 들었어요, 지금처럼. ...파장이 맞는 느낌이라고 해야 할까. 그래서 나중에 찾아봤더니 당신이었어요. (입가에 흐릿한 미소가 걸렸다가 사라진다. 다시금 나아가는 차 안.) ...어떻게 나를 알아요?
에르드 하이너스:(수많은 사람들 틈에서 자신이 바로 베아트리체를 알아볼 수 있었던 것과 비슷한 맥락일까. 파장이니 무어니 하는 건 증명할 수 없는 이야기라고 여겼다. 자신이 누군가와 파장이 맞으리라 생각해본 적이 없던 것도 한몫을 했다. 때문에 베아트리체의 이야기를 들으며 꽤 묘한 기분이 된다. 수소문한 안내자가 하필이면 이런 사람이라 실망하지는 않았을까 싶으면서도, 그러지 않았으니 급박한 상황에서 저를 지목했으리라 짐작한다.)
아무래도, 그 능력 때문이죠. 시간을 제어한다는 능력이 흔한 건 아니잖습니까. 위력도 대단하다고 들었고요.
베아트리체 힐:(과학적으로 증명된 것도 아닌 그저 느낌일 뿐이지만, 강한 확신이 있었다. 그의 방식에서 호기심을 느낀 것도 이 선택에 한 몫을 했지만.)
......아. (목소리가 사그라든다.) 그래서군요. ...능력 이야기가 나와서 말인데, 혹시 제 관련 서류나 전달받은 정보가 있나요..? ...당신이야말로 후회하게 될지도 몰라요. ... ...미리 사과할게요.
에르드 하이너스:(사그라드는 목소리를 듣자, 그가 이 문제로 상당히 고뇌했음을 알 수 있었다. 페어도 여러 차례 바뀌었다고 했었지.) 서류는 모두 전달받았습니다. 전부 읽고 출장에 응했고요. 사과할 필요는 없습니다. 당신이 지나친 패널티를 입지 않도록 돕는 게 내 역할이니까요.
방사 가이딩을 중점으로 두긴 하지만, 접촉 가이딩을 아주 하지 않는 건 아닙니다. 당신의 상태에 따라 대처를 신경쓰도록 하겠습니다. (아무래도 이번 출장에서는 접촉 가이딩을 최소화한다는 제 규칙이 깨질 것 같다. 그렇지만 썩 기분이 나쁘지만은 않다. 파장이 잘 맞는다는 말 때문인지는 몰라도, 연보라색 머리를 지닌 지휘자가 싫지는 않았기에.)
베아트리체 힐:(시선으로 어느덧 눈 앞에 드리운 높은 건물을 가르킨다. 그의 성실함이 제게는 퍽이나 다정하게 느껴져 몇 번이고 진심으로 감사를 전한다.) ... ...힘든 일일텐데 고마워요. 저기 보이는 건물이 아테네 지부에요.
도착하면 우선 지부장님을 뵙고 상황을 전달 받을텐데, 오늘 이외의 별다른 임무는 없을 거에요.
차가 부드럽게 코너를 돌면, 높다랗고 커다란 문 안으로 들어가 마련된 주차장으로 이동합니다.
어딜 가나 지부의 분위기는 비슷하지요. 다만 위로 높았던 헝가리 지부에 비하면 낮은 돔 형태의 건물에, 그리스 답다고 해야 할지 흰 건축물입니다.
두 개의 대리석 기둥을 세우고 세모난 조각을 올린, 신전의 문 같은 입구에…
확실히 다른 점은 지휘자와 안내자로 보이는 이들이 없고,
쥐어짜인 것 같아 보이는 흰 가운의 연구원과 의사들만이 좀비처럼 돌아다니고 있다는 정도군요.
차에서 내리면 지나가던 좀비.. 아니, 연구원이 베아트리체에게 약식으로 경례하고, 두 사람은 지부 건물로 들어섭니다.
어수선하네요.
흰 대리석 바닥은 깨끗하지만, 그 위를 걷고 있는 사람들은 분주하고, 생각에 잠겨있거나, 피곤해 보입니다.
입구로 들어서면 바로 보이는 벽에 커다란 안내판이 붙어있습니다.
에르드 하이너스:(헝가리 지부와는 사뭇 다른 분위기다. 타 지부로 가본 경험이 그리 많지는 않았으므로, 지부의 모습을 잠시 구경하다 안으로 들어선다. 최근의 사태가 짐작되는 광경이다.) 바로 지부장실로 갈까 합니다.
베아트리체 힐:이쪽이에요.
베아트리체는 에르드를 이끌고 1층 지부장실 앞에 도착합니다.
베아트리체 힐:(가벼운 노크 소리가 울린다.) ...베아트리체입니다.
마찬가지로 커다란 문 앞에서 베아트리체가 도착했다는 보고를 하면
문이 열립니다.
서글서글해 보이는 인상이지만, 약간 피로한 기색이 엿보입니다.
이번 사건으로 잠도 줄인 모양입니다.
아테네 지부장:(웃는 낯으로 맞이한다.) 어서 오게. 먼 길 오느라 고생이 많았겠어.
에르드 하이너스:헝가리 지부의 에르드 하이너스입니다. (절도있게 짧은 목례한다.)
아테네 지부장:대강의 이야기는 베아트리체에게 들었으리라 생각하네만, 다시 한번 설명하지.
4일 전, 크레타 섬의 신전 터에서 대형 병기 급의 새 형태 크리쳐가 발생해 총 10인으로 구성된 팀이 토벌에 나섰다네. ...토벌 자체에는 큰 어려움이 없었으나 크리쳐가 사망하며 내지른 비명과 함께 전원 착란증세를 일으켰어. ...그와 동시에 그리스 전역의 이능력자들에게 같은 현상이 나타났네.
...정신 착란을 일으키는 크리처가 처음은 아니고, 보통 데이터 상으론 사흘 정도면 정신이 돌아온다만... 이렇게까지 넓은 범위는 처음이라 경계 중일세. ...아직까지 회복한 이가 없기도 하고. (턱을 문지르며 씁쓸하게 웃는다.)
에르드 하이너스:(지부장의 브리핑을 주의깊게 듣는다.) 4일이 지났는데도 그 누구도 회복하지 못했단 말입니까. 왜 전투에 참여한 인원만이 아니라 그리스의 이능력자 전원에게 같은 현상이 나타났는지는 짐작가는 바가 없습니까?
아테네 지부장:...안 그래도 그 일로 골치 아픈 참이야. 원인을 밝히기 위해서 연구원들이 크레타 섬 신전 터에 파견 나가 크리처 시신을 수습하고 연구 하는 중인데도 진척이 크지 않아.
...울음소리가 원인이라는 것 외에는 아직 마땅히 밝혀진 바가 없군.
에르드 하이너스:(이 지경이면 긴급 호출을 할 만도 했다. 4일이 지나도록 이능력자가 죄다 착란에서 회복을 못하고 있는데다 유일하게 남은 이능력자가 하필 지휘자였으니.) 동일한 개체가 또 나타날 수도 있으니 주의깊은 관찰이 필요하겠군요. 같은 꼴이 될 순 없지 않겠습니까. (무덤덤하게 말하고) 한동안 잘 부탁드립니다.
아테네 지부장:나야말로 잘 부탁하지. (사람 좋은 웃음으로 대꾸한다.)
앞서 말한 대로 아직 진척이 없어. 두 사람이 할 일이 없다...고 하면 좋겠지만, 시민들 사이에서도 환각이나 환청을 듣는 사람들이 나오고 있다는 보고가 있네. 오늘은 여독을 풀고 내일은 정보 수집 겸 수도로 나가서 시민들의 동향을 파악해준다면 좋겠어.
에르드 하이너스:(간결하게 고개 끄덕인다.)
아테네 지부장:예상으로는 일반 시민들 중 환각이나 환청을 듣는 것은 아마 '안내자'의 기질이 있는 사람들일 확률이 높다더군.
크리처 시신이 끈적한 점액과 함께 땅에 들러붙은 터라, 아마 시신 연구에는 사흘에서 나흘 정도 걸릴 것으로 보고 있다네. ...그 동안은 수도 탐문과 불시에 나타날 크리처들을 처리해주면 좋겠군.
민간인들은 이 사태를 모르지만, 현재 지휘자와 안내자들의 활동이 전면 중지된 상태니. 시민들에게 눈도장을 찍어 안전함을 느끼게 해줄 필요가 있다는게지.
잘 이해했으리라 믿네.
에르드 하이너스:(안내자의 기질? 지휘자도 아니고? 단순히 이능력자만을 노린 게 아닌 건가? 짐작은 가지 않지만, 크리쳐를 향한 본능적인 불쾌감이 일어난다.) 무슨 의미인지 알겠습니다.
아테네 지부장:(웃는 낯으로 끄덕인다.) 먼 길 오느라 고생했으니 이만 물러가도 좋아.
.... .....아, 참.
잊은 게 있었군. 상황이 상황 인지라, 추가 인력인 연구원과 의사들, 부대원들의 격리까지 겸하고 있어서 현재 부대 내에 비어있는 숙소가 없어.
에르드 하이너스:…… 그럼 어느 숙소를 쓰면 되겠습니까.
아테네 지부장:베아트리체는 아테네 지부 소속이니 개인 자택이 마련되어있어. ...일단 베아트리체의 집에서 지내다 방을 치우게 되면 그때 다시 배정해주겠네. 어떤가?
에르드 하이너스:(갑자기 머리가 심히 아파진다. 베아트리체의 첫인상이 나쁘지 않았다곤 하지만 냅다 한집에서 머물라니. 가이딩이 부족했던 걸 메꾸려는 심산이 아닌가, 하는 의심도 든다.) 그건 저뿐만이 아니라 베아트리체의 동의도 받아야 할 것 같은데. (곁의 지휘자를 돌아보았다.)
베아트리체 힐:(제게로 쏠리는 시선에 잠시 멈칫한다.) ...아. 저는 상관없어요.
(대부분의 지휘자와 안내자는 한 방을 쓰는 것이 당연하게 여겨지고 있었으니 큰 고민은 없는 대답이었다.)
아테네 지부장:아무래도 한 곳에 있는 편이 혹시 모를 크리처 출현에 대비하고 출정하기 편하지 않겠나.
에르드 하이너스:(예상과 한 치도 다르지 않은 대답이 돌아오자 잠깐 천장을 올려다본다. 파트너쉽을 맺은 페어는 대개 이런단 말이지.) …… 알겠습니다.
아테네 지부장:이해해줘서 고맙네. 그럼 이만 돌아가도 좋아. 편히 쉬게.
에르드 하이너스:(목례하고는 지부장실을 나선다.) 일반 시민들에게까지 환각 현상이 일어나는 줄은 몰랐습니다.
베아트리체 힐:(이어 목례하고 따라 나선다.) ...영향을 받은 이들 역시도 미약한 이능력을 타고났다고 보고 있는 것 같아요.
에르드 하이너스:정말 심상치 않은 크리쳐인 것 같습니다. (얼른 정체가 밝혀져야 할 텐데. 그러나 연구와 조사는 제 몫이 아니다. 급하게 온 출장이니 지부장의 말대로 오늘은 잠시 쉬어도 되겠지.) 일정은 내일부터이니 자유활동을 해도 되는 거겠죠? 따로 하실 게 있습니까?
베아트리체 힐:...아니요, 없어요. 오늘은 별다른 임무가 없으니 돌아가는 편이 좋겠네요. 당신도 피곤할테고.
에르드 하이너스:음. 혹시 자택이나 자택 근처에 운동할 수 있을 만한 공간이 있습니까? 없다면 지부의 운동실에 잠깐 들릴까 하는데요. 급하게 비행기를 타고 오느라 오늘치 루틴을 하지 못해서요. (그렇다. 이인간은 운동바보에 근육돼지다)
베아트리체 힐:아. (눈이 동그랗게 뜨였다가 천천히 돌아온다.) ...체력이 대단하네요. (운동과는 담을 쌓은 사람은 그저 감탄만 한다...) ...운동이라면 주택 1층 공용 공간에 운동실이 있어요. ...지부의 운동실보다는 못할테지만. 이 쪽이 좋으면 하는 동안 기다릴게요. 편한대로 해요.
에르드 하이너스:음. 그러면 지부 쪽에서 하겠습니다. 함께 가실 생각은 없으십니까?
베아트리체 힐:.... .................그냥 구경만 해도 괜찮나요?
에르드 하이너스:상관은 없지만 심심하지 않으시겠습니까? (안내판 다시 읽어보더니) 카페테리아 같은 곳에서 기다리셔도 됩니다.
베아트리체 힐:(잠시 고민) ...당신을 구경하는 쪽이 더 재미있을 것 같아서요.
에르드 하이너스:…… (재미?) 남이 운동하는 게 재밌을지는 잘 모르겠는데…… 뭐, 맘대로 하십시오.
(2층으로 가자!!)
베아트리체 힐:(...신나보인다. 쫄래쫄래)
에르드 하이너스:(왜 신나보이는 거지? 이쪽은 이해 못하는 중. 아무튼, 캐리어에서 야무지게 운동복이랑 수건 꺼내서 갈아입고 운동실에 들어간다. 헝가리 지부의 운동실과 기구 등이 완전히 같진 않지만 이럭저럭 사용법은 비슷해 보이는 것들이 대부분이다. 간단한 스트레칭부터 시작해서 런닝머신, 로잉머신, 스쿼트머신 등 체계적인 루틴대로 움직인다.)
(힘들이는 기색도 없이 한참 운동하다가, 어떤 기구의 글씨 부분을 노려보더니 베아트리체에게 손짓한다.)
베아트리체 힐:(...누군가를 찾을 때나 와봤던가? 한번도 써본 적 없는 운동 기구들을 이것저것 유심히 들여다보다 기계적일만큼 척척 움직이는 그를 시선으로 계속 뒤쫒는다.)
(...사람이 맞나..? 하는 의문이 들 때 쯤 자신을 부르는 손짓에 쪼르르 옆으로 가 붙어선다.) ...무슨 일이에요?
에르드 하이너스:무게를 조절하고 싶은데, 어떤 게 더하는 버튼인지 모르겠습니다. 그리스 문자를 몰라서요. (그렇잖아도 무거워 보이는데 더 증량할 생각이다…….)
베아트리체 힐:....? (잘못 들었나 싶어서 눈을 깜빡이며 기구와 그를 번갈아본다.) .... ....여기서 더 올려요?
에르드 하이너스:예. (뭐가 문제냐는 표정으로 봄)
베아트리체 힐:... ...당신의 또 다른 이능력이 신체 강화였나요? (농담 반 진담 반으로 이르며 착실히 무게를 더해준다.) 이 버튼이에요. ...이게 내리는 거고.
에르드 하이너스:그랬더라면 전투가 한결 수월했겠죠. (가볍게 받아치면서 고개 끄덕인다.) 감사합니다. (그래도 이 기구가 마지막이었는지, 이십여분 정도 더 등근육을 단련한 후에는 마무리 스트레칭을 하고 수건으로 땀을 닦는다.) 샤워를 하고 올 테니 잠시만 기다려주시길.
베아트리체 힐:(방해되지 않게 옆으로 물러나서 지켜본다. 연구팀에서는 크리처를 연구할 게 아니라 사실 이 사람을 연구해야하는 게 아닐까...? 인류 발전에 큰 도움이 될텐데... 하는 생각을 하는 사이 끝이 났다.) ...아, 천천히 다녀와요. 그럼 로비에서 기다릴게요.
에르드 하이너스:(고개를 끄덕이고 샤워실로 향한다. 간단하게 씻은 후 머리를 수건으로 탈탈 말리면서 로비로 내려왔다. 그리스에 도착한 지 세 시간도 안 되었지만 원래 그리스 사람이었던 것처럼 금세 적응한 모습이다.) 가시죠.
베아트리체 힐:(....어째 자신보다도 더 적응을 잘하는 것 같다. 다행..인걸까...? 멍하니 보다 고개를 흔들고는 자리에서 일어선다.) 그래요.
지부장의 강요 아닌 설득과 베아트리체의 담담한 동의로 자택으로 향하기 전,
무사히 오늘의 운동 루틴까지 완벽히 마치고 산뜻해진 에르드는
다시금 베아트리체의 자택으로 향합니다.
주차해두었던 차는 부드럽게 아테네의 번화가로 접어듭니다.
차는 번화한 거리를 느긋하게 지나, 민가가 모여있는 골목으로 들어가고
서서히 풍경이 느려지며 베아트리체의 집으로 보이는 자택의 차고에 멈춰섭니다.
번화가가 가까운 장소에 있는 흰 벽돌에 붉은 지붕, 자그마하게 난 정원에는 잔디 사이사이 피어난 동그랗고 작은 노란 꽃과 올리브 나무.
한 쪽 화단에는 길쭉한 잎들 사이로 연보랏빛의 아가판서스가 빼꼼 고개를 내밀고,
담장 너머로 가지를 늘어트린 샛노란 겹황매화가 흐드러지게 피어있는 곳.
깔끔하고 아름다운 외관인, 이 3층 짜리 단독 주택 중 3층이 베아트리체의 자택입니다.
에르드 하이너스:(가득 핀 꽃이 인상적이다. 척 보기에도 공을 많이 들인 티가 나는 아름다운 집이었다. 주절주절 떠드는 건 적성에 맞지 않기에 별 말은 하지 않고 차에서 내린다.) 서류에서 봤는데, 로마 지부에 있다가 아테네 지부로 자원하셨더군요. 특별한 이유가 있었습니까?
베아트리체 힐:(잠긴 차 문을 확인하고 대문으로 향한다.) 아테네 지부에서 새로운 지휘자를 필요로 했어요. ...때마침 파트너도 없었으니 이동하기 쉬웠던 게 저라 지원했구요.
에르드 하이너스:파트너가 자주 바뀌는 건 능력 때문인 겁니까? (따라 대문 너머로 들어선다.)
찰칵, 대문 너머로 들어서면 자그마하지만 공들여 꾸민 듯한 정원과 현관이 있습니다.
들어서면 적당히 천장이 높고 깔끔한 집안입니다.
베아트리체 힐:...그렇다고 할 수 있죠. 피해 범위가 크기도 하고, 리바운드가 심하거든요.
(계단을 오르려다 말고) ...참, 여기는 다른 부대원들과 쉐어 하우스처럼 쓰는 주택이니 ...너무 부담갖지 말아요. 미리 말해줬어야 했는데.
에르드 하이너스:리바운드를 구체적으로 설명해주시면 좋겠습니다. 대처법을 미리 염두해둬야 할 것 같아서.
(멈칫하자 의아한 기색으로 따라 멈춘다.) …… 자주 마주치진 않을 것 같으니 괜찮습니다. 어차피 현재는 모두 병원에 있는 게 아닙니까?
베아트리체 힐:(마음의 준비라도 하는지 숨을 짧게 들이켰다가 나누어 천천히 뱉어낸다.) ...그래요, 올라가면서 마저 얘기할게요.
...맞아요, 지금은 다들 병원 신세죠. 아마 마주칠 일은 없을거에요.
참, 아마 당신이 제 집으로 오지 않았다면 지부장님이 호텔을 잡아줬을거에요. ...한 방으로. 그것보다는 이쪽이 넓으니 낫지 않을까 해서 동의한거니까.
(변명처럼 덧붙이고는 계단을 오른다.)
넓은 1층 거실 창문은 커튼으로 가려져 있고, 값비싼 것은 아닌, 그러나 싸구려도 아닌 가구와 화분 따위가 조화롭게 배치되어 있네요.
옆으로 난 계단으로 올라가면 2층, 그리고 뒤이어 3층입니다.
욕실로 보이는 흰 문을 지나 시선이 돌면 빼꼼하게 열려있는 어두운 흑갈색 문이 주인을 반기는 듯하고,
들어서면 몇 시간 사이에 꽤 인지가 가능해진 베아트리체의 체향이 짙은 장소입니다.
바싹 메마른 잎사귀와 갓 피어난 옅은 꽃향기가 미묘하게 뒤섞인 듯 한 향으로 메워진 방에는
넓은 침대와 테라스, 창가에 놓인 간이 테이블과 의자.
한 쪽 벽면을 빼곡히 채운 책장과 이어진 책상. 그위 에는 마른 꽃 한 송이가 꽂혀 있습니다.
선반 위에는 화목해보이는 어린 시절의 가족 사진이 반듯하게 놓여있는
전체적으로 차분한 색감의 아늑한 분위기의 방.
시야에 들어오는 바깥의 풍경은 밤이 내리깔린 후덥지근한 거리.
아직 문을 연 가게나 불 켜진 집의 불빛과 높은 밤하늘의 별이 어우러지고 있네요.
에르드 하이너스:(마치 봄의 햇살처럼 포근하고 평화로운 정경이다. 그 안에 발을 내디디면 아직은 사이가 어색한 이의 체향이 가득 풍겨왔다.) 저는 어디에서 자면 됩니까? (단정한 방과 아름다운 바깥 풍경에 대한 감상 대신 노잼인 물음이나 뱉는다)
에르드 하이너스:그럼 당신은 어디에서 잡니까? (한 침대에서. 같이. 자야 한다는 대답을 어떻게든 외면하고 싶은 표정으로 의자에 앉았다.)
베아트리체 힐:(의아한 듯 눈을 깜빡인다.) ...침대에서죠? 넓으니까 괜찮을거에요. (걱정말라는 듯 넓은 침대를 가르킨다.)
... ...그럼 당신이 궁금해하는 리바운드에 대해서도 얘기해볼까요. (손 끝을 매만지며 망설이며 입을 연다.)
에르드 하이너스:(방에 소파가 있나? 제발 그래야 한다)
베아트리체 힐:(안타깝게도 원목 의자들 뿐이다!)
에르드 하이너스:(의자 위에서 자야겠다고 다짐하며…… 약간 초췌해진 채로 이야기를 듣는다)
베아트리체 힐:(초췌해진 얼굴을 갸우뚱 바라보다) ...음, 그러니까 섬망이라고도 하죠. 일시적이긴 하지만 정신 기능적으로 장애가 와요. 기억력, 집중력이 떨어지고 지남력이 상실되서 사람이나 시간, 장소를 못 알아보기도 해요.
... ...심해지면 적과 아군을 구분하기 힘들어져요. 환청이나 환각을 보기도 하고. 마치 꿈 속에 있는 것 같아요. 주변의 모든 것들이 시시각각 변하고 사라지고.
...어렸을 때는 파트너를 다치게 한 적도 있었어요.
에르드 하이너스:(무릎 위에 팔을 올려두고 허리를 약간 앞으로 숙인 채로 이야기를 듣는다.) 그 상태에서 능력을 더 사용한다면 아군을 다치게 할 수도 있겠군요. (안내자들이 겁을 낼 만도 한 리바운드다. 당장 제게 닥칠 수도 있는 위험이었지만 이야기를 듣는 표정은 덤덤하기만 하다. 태생적으로 겁이 없기도 하였고, 부상을 입더라도 큰 신경을 쓰지 않는 성향 탓일 터다.)
구체적으로 능력을 얼마나 쓰면 그런 상태에 돌입합니까? 패널티도 크게 4단계로 나뉘잖아요.
베아트리체 힐:(천천히 끄덕인다. 서서히 가이딩의 효과가 흐려지는 탓에 목 안 쪽이 타는 듯이 마르고 심장이 제멋대로 뛰기 시작한다. 마른 침을 어렵게 삼켜낸다.)
...다치게 한 이들이 많아요. ...강한 능력이라고 하는 만큼 피해가 크니까.
...그러니까, 적당한 중형 크리처를 소수로 사냥하는 정도까지는 참을 만해요. 광범위한 전체 피해를 주는 정도로 능력을 사용하거나, 강한 크리처들을 섬멸할 정도라면 방금 얘기한 정도까지 리바운드가 올거에요.
...3단계 정도가 고비라고 할 수 있겠네요.
에르드 하이너스:…… 알겠습니다. 3단계까지 가지 않도록 조절하는 게 최우선이겠지만, 크리쳐들이 언제 밀어닥칠지는 예상할 수 없는 법이죠. 지금처럼 그리스 지부의 안내자들이 죄다 드러누운 상황에서 크리쳐 웨이브가 일어날 수도 있으니까요. (곰곰 고민한다. 그러다 베아트리체의 표정을 보고는 한 박자 늦게 가이딩을 방사한다. 금빛 안개가 천천히 방을 채워간다. 안내자들을 워낙 여럿 상대하다 보니 가이딩이 필요한 이들은 표정만 봐도 알 수 있을 정도였다.)
안내자인 제가 있으니, 패널티는 크게 걱정 말고 능력을 사용하셔도 됩니다. 피해가 두렵다고 도망가는 짓은 하지 않을 겁니다.
베아트리체 힐:(떨리는 숨을 천천히 몰아쉰다. 내리감은 눈꺼풀이 잘게 떨린다.) ...그렇게 말해주니 고마워요. 믿음직스럽네요.
(숨을 들이마시고 내쉬기를 여러번.) ... ...그래서 말인데요. 내일부터는 임무에 들어가야하니, 파트너쉽을 맺어두는 편이 좋을 것 같아서. ...어떻게 생각해요?
...이 상태에서 파트너 없이 크리처 웨이브를 맞게 되면 위험할 것 같거든요.
에르드 하이너스:(그는 지금껏 한 번도 파트너쉽을 맺지 않았다. 마치 접촉을 무한히 허락한다는 무언의 표현처럼 느껴지는데다 누군가와 그리 깊은 관계를 맺길 원치 않았다. 지금 역시도 꺼려지지 않는 건 아니었지만, 베아트리체의 말대로 이런 상황에서 파트너 없이 안내자가 홀로 대항하는 건 무리다. 게다가 처음 보았을 때부터 느껴지는 이유없는 호감이 그의 단단한 경계를 녹이고 있었다. 어차피 서류를 처음 받고 읽었을 때부터 짐작하고 있던 바였다. 베아트리체는 원래 페어가 있었으니, 출장이 끝나고 돌아갈 즈음에는 파기하면 되겠지. 여러 합리적인 고민들을 거쳐 고개를 끄덕인다.) 알겠습니다. 계약을 맺도록 하죠.
베아트리체 힐:(그를 오래 눈여겨봐온 탓에 거절할지도 모른다고 한 구석에서 염두에 두고 있었다. 그럼에도 기대를 저버리지 못한 탓에 대답을 기다리는 순간이 하염없이 길게만 느껴졌다. ...비로소 그에게서 허락이 떨어졌을 때, 느슨하게 풀리는 긴장감과 동시에 놀라움이 튀어나왔다.) ...정말인가요?
에르드 하이너스:지금으로서는 달리 선택지가 없을 것 같아서. 억지로 하는 건 아니니 걱정 마십시오. 패널티를 신경쓰지 않고 발휘하는 당신의 능력이 궁금하기도 하고요. (본심을 숨길 생각 없이 솔직하게 터놓는다.)
베아트리체 힐:... ...사실 받아 들여주지 않을 수도 있다고 생각했던 터라. ...정말 고마워요. 기쁘네요. 진심으로. (내심 걱정이 많았던 터라 안도의 숨을 길게 뱉어낸다.) ...그럼 손을 줄래요?
미묘하게 가라앉아 긴장된 분위기 속, 베아트리체가 에르드에게 손을 내밉니다.
에르드 하이너스:출장에 응했을 때부터 상정하고 있었으니까요. (지금껏 안내자임에도 불구하고 파트너쉽을 맺는 수많은 이들을 지켜봐 오기만 했는데, 마침내 자신이 그 당사자가 되자 무척 묘한 기분이다. 분위기에 흐르는 긴장감의 일부는 자신의 것일 테다.)
(잠깐 망설이다 한쪽 장갑을 벗고, 손을 내밀었다.)
내밀어진 손바닥에 손등을 올리면,
다소 뜨거운 상태인 베아트리체의 체온과 에르드의 체온이 뭉그러져 섞이며
느슨했던 숨이 조금 밭게 죄어옵니다.
...파트너쉽은 정신적 교류라고들 하죠.
시선을 내리 깐 베아트리체가 천천히 에르드의 손바닥에 입술을 누르면,
보드라운 듯- 조금 메마른 입술의 감촉이 손바닥에 닿음과 동시에,
한차례 얕은 소름 같은 것이 발 끝에서부터 몸을 타고 정수리로 오릅니다.
파트너쉽을 맺어본 적 없는 에르드라면 누구보다 생소할 ‘맺어지는’ 감각.
베아트리체에게는 좀 더 큰 파도로 와닿고 있습니다.
마른 등이 들썩이고 어깨가 크게 오를 정도로 숨을 깊게 마셨다가 느리게 내쉬는 베아트리체의 숨소리가 방 안에 선명합니다.
숨결이 닿은 손바닥으로 간질간질,
보드라운 입술에서 느른한 한숨이 떨어짐과 동시에 어떤 견고한 유대로 서로가 묶였다는 것이 본능적으로 감지됩니다.
에르드 하이너스:(제 손바닥에 타인의 입술이 닿는다. 본래라면 상대의 얼굴이 가까워지기만 해도 흠칫하며 몸을 뒤로 뺐겠지만, 이번에는 도망칠 곳이 없을뿐더러 도망치고 싶지도 않았다. 베아트리체가 고개를 숙이고, 이질적인 촉감이 닿아오면, 그야말로 생소하기 그지없는 감각이 전신으로 퍼져나갔다. 익숙하지 못한 감각에 저도 모르게 눈살을 살짝 찡그렸다. 페어를 맺는다는 건 이런 감각인 거군. 한 번도 누군가와 깊은 관계를 맺어본 적 없던 그였기에 눈앞의 이에게 느껴지는 유대감이 신기하고 놀라웠다.)
(파트너쉽을 맺어본 게 처음이니, 보편적인 반응도 모를 수밖에. 저보다 격한 베아트리체의 모습이 신경쓰여 그를 향해 고개를 살짝 숙이며 묻는다) ……괜찮으십니까? 혹시 잘 안 된 건 아니겠죠?
베아트리체 힐:(고개를 가로저으며 비로소 편안한 숨을 뱉어낸다. 한결 부드러워진듯한 얼굴을 천천히 들어올린다. ...익숙하고도 낯선 감각이 아직도 선연하다.)
...아니에요, 제대로 맺어졌어요. ...혹시 기분 나쁘지는 않았어요? 괜찮았나요? (찬찬히 안색을 살핀다. 파트너십을 맺는 과정은 이미 끝이 났지만 어째서인지 잡은 손을 돌려주지 않는다. 힘을 주어 잡지도 놓지도 않고. 힘주면 부서질까 놓으면 금방이라도 사라질까 마치 소중하고 여린 것을 손에 쥔 것 처럼.)
에르드 하이너스:처음 느껴보는 감각이라 이상하긴 한데…… 기분 나쁘진 않습니다. (장갑을 벗지 않은 반대쪽 손으로 머쓱하게 제 뒷머리를 긁적인다. 원래 계약을 맺고서도 한동안 손을 잡고 있어야 하는 건가? 길어지는 스킨십에 의아하면서도 영 불편하지는 않았다. 마치 유리라도 잡듯이 소중하고 섬세한 손길 때문일까. 툭 치면 부러질 것 같은 쪽은 내가 아닌 당신인데. 정식으로 계약을 맺고 나니 눈앞의 상대가 더욱 선명히 눈에 들어온다. 정확히는, 그의 모습 하나하나를 자세히 눈에 담게 되었다. 풍성한 속눈썹이라거나 새벽녘 하늘을 닮은 연보랏빛 머리칼, 가녀린 몸매 같은 것들을. 베아트리체를 만난 후로는 처음 해보는 일들 투성이다.)
베아트리체 힐:…다행이에요. (무감한 표정이 한꺼풀 벗겨지고 자세히 들여다보지 않았다면 모를 미소가 일순간 스친다. 햇빛을 잔뜩 머금은 연갈색의 피부, 짙은 밤하늘보다 검게 흐르는 머리칼, 그 사이로 눈부신 금빛 눈동자. 자신의 안내자를 찬찬히 눈에 새기고 다시금 잡은 손으로 시선을 내린다.) ...너무 오래 잡고 있었죠. 미안해요. (아쉬움이 남은 말. 손 끝에 가볍게 입을 맞췄다가 그제서야 놓아준다.)
에르드 하이너스:(그리고 마침, 드물게도 상대를 깊이 들여다보고 있던 그의 눈에 당신의 미소가 제대로 담긴다. 처음 보았을 때부터 무표정이어도 순한 인상이란 느낌은 받았지만 웃으니 더욱 무해해보인다.) 아닙니다. (손끝에 예상치 못한 입맞춤이 닿았을 땐 그라도 놀라서 눈썹을 치켜올렸지만, 무덤덤한 척 다시 장갑을 착용한다.) 어쨌건 파트너가 되었으니 가이딩이 필요하시다면 말씀하십시오. 방사 가이딩 이상으로 발휘하도록 저도 노력해볼 테니까.
아, 그리고 나이가 비슷한 것 같던데…… 피차 편하게 말을 놓는 건 어떻습니까?
베아트리체 힐:(자신이 상상한 것 이상으로 자꾸만 행운이 찾아오는 것 같은 기분. 제게만 좋은 상황으로 돌아가는 듯해 저도 모르게 눈이 동그랗게 커진다. 고개만 주억거리다) ...고마워요. ...아니, 고마워. 너무 폐를 끼치지는 않을테니까.
...그러자, 한동안 같이 다닐테니 이 편이 편하겠지.
에르드 하이너스:폐를 끼친단 생각은 안 해도 돼. 문제가 있다면 내 쪽이지. 특이한 안내자라는 건 스스로도 알고 있으니까. (무덤덤하게 말했다.)
베아트리체 힐:...특이해서 끌린 거니까. (담담한 투로 말하며 자리에서 일어난다.)
주고 받는 대화 속 한결 편안해진 분위기.
커튼이 열린 테라스 너머로 붉은 태양은 완전히 가라앉아, 푸르던 도시에는 밤의 장막만이 선명합니다.
길거리의 가로등, 가게의 전등 불빛은 여전하고 시야에 번져드는 반짝임이 가득합니다.
사분히 지나는 거리 위 사람들의 웃음소리.
각자 즐거워 보이는 사람들이 길거리를 걷고, 벌써 취한 듯 벤치에 늘어진 이들도 있네요.
여름의 그리스는 여전히 활기가 넘칩니다.
베아트리체 힐:(커튼 틈으로 은은히 들어오는 바람에 날리는 머리칼을 쓸어 넘긴다.) ...참, 그러고보니 아직 아무것도 못 먹었겠네. 미안해, 정신이 없어서. 배고프지 않아?
에르드 하이너스:(파트너쉽으로 말미암은 흥분이 가라앉자 뒤늦게 허기가 느껴진다. 하긴, 워낙 많이 먹는 편이었으니.) 조금. 식사는 나가서 하는 편인가?
베아트리체 힐:(한동안의 정적) .... ....집에서도 해먹기는 하는데... 대부분?
에르드 하이너스:냉장고를 좀 봐도 될까? 나도 임무가 있을 땐 바깥에서 먹지만, 웬만해선 직접 만들어 먹는 편이라.
베아트리체 힐:아... ... 그럼 짐부터 풀고 내려올래? 먼저 내려가 있을게. 부엌은 공용 공간이라.
에르드 하이너스:(끄덕) 짐이 많지는 않아서, 옷이랑 개인 물건 몇 개만 놓으면 될 것 같아. 빈 공간이 있으면 거기다 정리할게.
베아트리체 힐:저쪽 벽장이 비어있어. 저길 쓰면 돼.
빈 벽장을 가르키기가 무섭게 베아트리체는 방을 나서서 곧장 계단을 내려갑니다.
에르드 하이너스:(왜 서두르는 것 같지? 약간 의아해했다가 가방에서 옷이나 운동기구, 수건 등을 꺼내 빈 벽장에 차곡차곡 쌓아놓는다. 각이 흐트러진 옷을 다시 반듯하게 개어두느라 시간을 약간 지체하고는 방을 나서서 부엌 쪽으로 내려가본다.)
간단한 짐을 정리하고 1층으로 내려오면-
냉장고 앞에 베아트리체가 서있습니다.
냉장고를 들여보는 표정이 다소 심각해보입니다.
에르드 하이너스:…… 표정이 안 좋은데?
베아트리체 힐:...아. 벌써 끝났어?
움찔, 하고 놀란 베아트리체의 옆에서 냉장고를 슬쩍 들여다보면-
언제부터 들어 있던건지 쭈그러든 방울 토마토와 구석에서 홀로 싹이 난 감자.
버석하게 마른 빵, 시들시들 말라가는 잎 채소 몇가지…
그나마 상태가 괜찮은 것들은 계란 몇 알과 페타 치즈, 요거트와 올리브 절임 정도 입니다.
…한 쪽면에는 아이스 와인이 줄지어 서있네요.
에르드 하이너스:(냉장고의 상태를 천천히 들여다본다. 이내 냉정한 평가를 내린다.) …… 멀쩡한 건 와인뿐이군.
베아트리체 힐:(감추기에는 턱도 없다는 걸 깨닫고는 슬쩍 물러난다. 괜히 변명처럼 덧붙인다.) ... ...원래 요리는 내 담당이 아니라서. 출장을 다녀오기도 했고.... .....이 앞에 마트가 있어.
장 보러 갈까?
에르드 하이너스:네 탓을 한 건 아냐. 최근엔 다 병원 신세까지 졌으니 관리가 안 될 만도 하지. (고개 끄덕인다) 마트가 근처에 있단 건 그나마 다행이군. 바로 가자.
번화가 근처인지라 조금만 걸어나가면 주변에 제법 큰 마트가 있습니다.
거리를 따라 걸으면 금세 도착합니다.
베아트리체 힐:...음, 혹시 먹고 싶은 건 있어?
에르드 하이너스:(마트가 가까워서 다행이군. 식재료가 떨어지거나 급하게 필요한 물건이 있으면 금방 오갈 수 있겠어. 주변 지리를 기억해두기 위해 주의깊게 살펴두고 마트 안으로 들어선다.) 내가 물으려고 했는데. 특별히 좋아하거나 싫어하는 음식이 있음 말해.
베아트리체 힐:...그리스로 부른 건 나니까. 대접하고 싶었는데. (오랜만에 오는 마트인지라 처음 온 사람 마냥 주변을 꼼꼼히 둘러본다.) ....음, 딱히 싫어하는 음식은 없어. 좋아하는 건... ... 페타 치즈 샐러드?
에르드 하이너스:(굉장히 이미지다운 음식을 좋아하네, 라는 감상이 잠깐.) 요리 담당이 아니었다며. 나야말로 헝가리식 요리를 만들어줄까 했는데. 페타 치즈는 있으니 채소류만 사면 되겠군.
베아트리체 힐:아, 그것도 좋아. 예전에 헝가리 지부에 출장 갔을 때 꽤 맛있었거든. 채소류는 저쪽이었을거야. (어느새 장바구니를 팔에 끼고와 손을 잡아 끈다.)
에르드 하이너스:(자연스럽게 손이 맞잡히자 몸이 살짝 굳었지만, 티내지 않고 채소 코너로 따라 걸어간다. 계약을 맺었으니 나도 적응해 나가야겠지.) 그럼 샐러드에 더해서 푀르쾰트랑 라코트 카포즈처를 만들어줄게. 라코트 카포즈처도 양배추를 베이스로 한 음식이니 입맛에 맞을 거야.
베아트리체 힐:(아. 그 미묘한 움직임을 눈치챈건지 잠시 멈춰 선다.) ...신경 쓴다는 게 그만. 혹시 기분 나쁘다면 언제든 얘기해줘. (그러면서도 채소 코너까지 가기까지 놓아주지는 않았다. 멈춰 서서 신중히 골라 든다. 나름 가장 신선해보이는 것들로 추려 담아본다...) ...내가 요리를 좀 더 잘했으면 좋았을텐데. )
양배추랑... 또 뭐가 필요해?
에르드 하이너스:괜찮으니 신경쓰지 마. (무덤덤히 말하고 채소들을 찬찬히 본다. 그래도 신선한 것들을 잘 골라담는 걸 보니 요리를 아주 안 하지는 않나 보군.) 요리도 마찬가지야. 그냥 내가 만들어먹는 걸 좀 더 선호하는 쪽이니 나한테 맡긴다고 생각해.
베아트리체 힐:(...신기해. 자신이 야채 하나를 고르는 사이 필요한 재료들을 속속들이 골라 담는 그를 신기하게 바라보며 따라간다.) ...집까지 데려와서 부려 먹는 기분이 들어서. (...이러려고 했던 게 아닌데. 하고 조용히 중얼거리면서 무화과도 한 팩 담는다.)
...음, 이 정도면 됐을까? (어느새 가득 찬 장바구니를 들여다본다.)
에르드 하이너스:난 전혀 그런 생각 안 했는데. (성격이 너무 생긴 거랑 똑같지 않나? 지나치게 착하고 남을 신경쓰는 사람이잖아. 이렇게 살면 인생 손해보기 딱일 텐데. 와중에 무화과를 담는 모습올 보고 먹기 좋게 잘 잘라줘야겠단 생각이나 하고 있다.)
그래, 배고플 텐데 어서 가서 만들어먹자.
베아트리체 힐:...그렇다면 다행이야. 계산 하러 가자. (장바구니를 톡톡 두드리고 그제서야 아주 희미하게 웃어 보이며 카운터 쪽으로 향한다.)
캐셔는 아주 익숙한 듯 밝은 미소와 빠른 손놀림으로 바코드를 착착 찍어나갑니다.
봉투 2개를 두둑히 채우고 계산까지 끝마칩니다.
한 번 지나온 곳이니 돌아가는 길은 빠릅니다.
눈에 익은 길을 지나 눈에 익은 집으로 돌아옵니다.
에르드 하이너스:(그래도 그새 눈에 익고 있다. 부엌으로 올라가 사온 재료들 중 필요한 것만 주방에 올려둔다) 다른 건 냉장고에 넣어줄래? 금방 만들어줄 테니까.
베아트리체 힐:응, 내가 할게. (시든 재료들을 한 곳에 몰아 넣고 새로 사온 싱싱한 재료들을 냉장고에 차곡차곡 넣고 돌아온다.)
에르드 하이너스:(그러는 사이에 요리를 빠르게 시작한다. 시간이 오래 걸리는 고기부터 양념을 해 굽고, 육수를 만들어 졸여나가면서 양배추와 각종 채소들을 잘게 썰어 라코트 카포즈처를 만든다. 자주 만들어 본 음식인 듯 속도가 무척 빠르다. 맛있는 냄새가 부엌을 채우며 퍼져나가고, 접시에 갓 나온 따끈한 음식들이 놓인다. 마지막으로 페타 치즈와 신선한 채소들로 샐러드를 만들고, 삶은 계란 두 개를 얹으면 접시 가득한 요리 세 개가 완성된다.) 식사하자.
베아트리체 힐:(요리가 준비되는 사이 종종 구경하며 테이블에 식사 준비를 끝마친다. 수저와 접시, 냅킨까지.)
...참.
베아트리체는 방금 막 열었는지 향긋한 내음의 포도주를 들고 옵니다.
도수가 낮으며, 아주 달콤하고 풍미가 좋은 그리스의 아이스 와인으로 가볍게 마시기 좋겠어요.
베아트리체 힐:...같이 마시면 좋을 것 같아서. (가늘고 긴 와인잔을 각자의 앞에 하나씩 놓는다.) 고마워, 잘 먹을게.
에르드 하이너스:음? (와인병을 보고는 잠깐 의아한 낯빛이었다가, 낮은 도수임을 확인하고는 별 말 없이 자리에 앉는다. 다음날 컨디션에 영향을 주는 탓에 술을 즐기지 않았지만, 한 잔 정도면 괜찮겠지.) 입맛에 맞아야 할 텐데.
베아트리체 힐:충분히 맛있어보여. (와인잔에 옅은 연두빛의 투명한 액체가 차오르고, 김이 오르는 음식을 한입 뜬다.)
(오물오물. 그러다 눈이 동그래진다. 천천히 씹어 삼키고나서야) ...진짜 맛있어. (이어 와인도 홀짝 한 모금 마신 후에 조금 풀어진 얼굴로 웃어보인다.)
에르드 하이너스:(제 몫의 고기를 입안으로 넣으며 당신의 반응을 곁눈질로 살피다가, 맛있다는 말에 느리게 미소한다) 다행이군. 샐러드는 어때? 사워크림을 직접 만들었으면 좋았을 텐데. 여기에서 파는 시제품 맛은 어떨지 잘 몰라서. (그래도 제 입맛에도 잘 맞는 것 같았다)
베아트리체 힐:(샐러드도 콕콕 집어 오물오물.) 맛있어. ...내가 샀던 거랑 같은 건데. 이상하게 맛이 달라. 만드는 사람이 달라서 그런걸까? (고개를 갸웃하고는 또 와인 한 모금. 조금씩 볼이 발그레해진다.)
에르드 하이너스:후추나 소금을 얼마나 쓰는지에 따라 맛이 천차만별이니까. 입맛에 맞는 것 같으니 앞으로도 쭉 동일하게 만들면 되겠어. (만족스럽게 식사를 한다. 와인잔에도 조금씩 입을 대는 걸 잊지 않았다. 그리스가 와인으로 유명하다더니, 과연 술을 즐기지 않는 제 입맛에도 달콤하고 부드러운 맛이었다. 그나저나, 어째 제 파트너의 얼굴이 조금씩 붉어지는 것 같은데.) 혹시 주량이 얼마나 되지?
베아트리체 힐:...그렇구나. (신기하네, 작게 중얼이며 한 잔을 비워낸다. ...한 잔만 더 마실까, 잠시 고민하는 차에) ...으으음, 와인으로는 두 잔..?
에르드 하이너스:(이 약한 걸 마시고서도 저 정도라고? 앞으론 술 마실 일을 최소화해야겠군…… 혼자 결심한다) 내일 임무도 있으니 한 잔만 마시고 끝냈으면 하는데. 어때?
베아트리체 힐:.... ...으음. (아쉬운 듯 빈 잔과 와인병을 한참을 번갈아보다 끄덕인다.) ...그럴게. 대신 쉬는 날에 또 같이 마셔줘야해? (정말 와인 두 잔이 주량이라는 듯 평소의 무감한 표정은 어디로 갔는지 헤실 풀어진 얼굴로 올려본다. 그러다 문득 에르드의 한 손을 끌고 와 가볍게 흔든다.) ...네가 와줘서 정말 기뻐. 정말...
에르드 하이너스:(어째 심상찮은 반응에 점점 당황스러워진다. 두 잔도 아니고 한 잔밖에 안 됐는데 이렇게까지 취한다고? 두 잔이라는 주량도 잘못 알고 있는 게 분명하다. 사워크림을 가득 올린 양배추를 씹다 말고 딱 굳어서 인형처럼 손을 내준다. 겨우 먹던 걸 삼키고 대답한다) …… 좀 생각해봐야 할 것 같은데. (그리곤 혼잣말을 중얼거린다.최소화하는 게 아니라 아예 없애던가 해야지.어떻게 반응해줘야 하는 건지 도통 감이 오질 않는다. 그야 남의 술주정을 받아줄 일이 없다시피 했으니.) 혼자인 게 많이 힘들었나 봐?
베아트리체 힐:(생각해본다는 대답에 미묘하게 시무룩해진 표정으로 치즈와 잎 채소를 동시에 꼭 집어 입에 넣고 꼭꼭 씹어 넘긴다.) ...누구랑 이렇게 마신 게 오랜만이라서. 다들 웬만하면 못 마시게 하거든. (잠시간 말이 없다가 와인잔에 맺힌 물방울을 검지로 올려 닦으며 대답한다.) ... ...마냥 힘들지 않았다고 하면, 그건 거짓말이겠지? (평소라면 하지 않았을 말인데, 와인 한 잔에 술주정이라는 핑계로. 당신 앞에서는 털어놓고 만다.)
그래도 괜찮아, 익숙하거든. (언제 그랬냐는 듯 눈을 접어 웃어넘긴다.)
에르드 하이너스:(못 마시게 하는 이유를 알 것 같은데. 그의 낯에서 시무룩한 감정을 읽어내고 괜히 시선을 피한다. 아직 알게 된 지 오래되진 않았지만, 딱 보아도 남을 너무 신경쓰느라 자신의 고뇌나 아픔은 홀로 숨기고 삼킬 스타일이다. 술에 의지해서라도 그 감정을 풀어놓는 걸까.) 이번, 그러니까 내가 오기 전의 페어와는 어땠어?
베아트리체 힐:(부러 시선을 마주치지 않으려 떠올리는 척 잔의 입구를 매만진다.) ... ...으음, 처음에는 괜찮았어. 들어온 지 얼마 안된 신입이었는데. 같이 일하게 되어 좋다고. (말이 부분 부분 끊기고, 다시 뒤죽박죽 섞여 이어진다.)
...잘해주고 싶었어. 다치게 하고 싶지도 않았고. ...폐 끼치기 싫어. ...그런데, 잘못 생각했나봐. 내가 다치게 했어. 좀 더 신경 썼어야 했는데... (어느새 테이블에 얹혀진 손에 힘이 들어간다.)
...말이 횡설수설이네, 미안. (손을 테이블 밑으로 숨기며 전처럼 웃는다.)
에르드 하이너스:(출장을 오기 전 읽었던 베아트리체의 서류를 떠올린다. 아테네 지부로 온 지도 3년이랬지. 이곳의 페어와는 관계가 원만할 줄 알았는데 아니었나 보군. 이건 다소 예상외다. 파트너쉽 계약은 그리스에 머무르는 잠깐 동안만 유지하고, 사건이 해결되면 금방 끊고 돌아가려 했는데. 원래 페어였던 이와 관계가 그리 좋지 않다면 그가 깨어난 후에도 다시 계약을 맺지 않을 수도 있겠어. 남이 파트너쉽을 맺든 말든 저와는 상관없는 일이건만 왜 이 사람에겐 자꾸 마음이 쓰이는 걸까. 제 탓도 아닌데도 자책하는 미련할 정도로 착한 사람이라서 그런 걸까. 아니면 이 또한 파장의 영향일까?)
너는 지나치게 많이 사과하는군. 나는 빈말로도 섬세한 성격은 아니라서, 웬만한 일로는 까닥하지 않으니까 그렇게 자주 미안해하지 않아도 돼.
베아트리체 힐:...응. 그렇게 말해줘서 고마워. 말 뿐이더라도. (한동안 말없이 제 몫으로 덜어둔 음식을 천천히 꼭꼭 씹어 삼킨다. 조금 뒤 비워진 접시 위에 커트러리를 올려둔다.)
그래도 그 덕에 너와 이렇게 일하게 되었으니까. (저 말이 진심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밀어내고 만다. 겁이 나서. 자신을 믿지 못하니까. 너 또한 그렇게 될까봐.) .... ...이 일이 끝나고 돌아가면 이제 더 멋진 파트너랑 일하게 되겠네. (농담처럼 쓴 말을 뱉으며 빈 접시를 들고 일어난다.)
...요리 해줘서 고마워. 정리는 내가 할게.
에르드 하이너스:난 쓸데없는 거짓말은 하지 않아. 가식으로 포장하는 건 잘 하지도 못하는데다 하고 싶지도 않고. (왜 말뿐이라고 생각하는 거지? 의아함을 느끼며 마지막 남은 고기를 입안에 넣는다.)
…… 글쎄. 이번 계약은 특별한 경우였기에 이뤄진 거지만, 돌아간 뒤로는 다시 이전처럼 혼자 활동할 것 같은데. (안쓰러움이나 안타까움이 느껴지기는 하지만 쉽게 곁에 남겠다 말할 만큼 확신을 가진 것도 아니다. 결국 건조한 대답만 하고는 자리에서 일어난다) 그렇게 취했으면서 무슨 정리. 먼저 올라가. 설거지는 금방 하니까.
베아트리체 힐:(...안다. 잠깐이지만 봐온 것만 해도 그런 사람이 아니란 것 쯤은 충분히 알고도 남을 정도였으니까. ...그냥 자신이 겁쟁이라서. 도망치고 싶었을 뿐.)
...한번이 어렵지, 두 번은 쉬울거야. (시선은 마주치치 않고 빈 접시만 내려본다.) ...이 정도는 할 수 있어. (평소라면 부리지 않을 괜한 오기로 빈 그릇들을 차곡 쌓는다.)
에르드 하이너스:무얼 안다고 확신해? (헛웃음을 치며 그의 손에서 그릇을 빼앗아 싱크대에 내려놓았다. 이번이 특별한 경우였을 뿐, 임무가 끝나면 다시금 누구와도 가까워지려 들지 않는 본래의 저로 돌아갈 것이다. 분명 그럴 테다.) 깨뜨리면 네가 다치니까 그냥 나 줘.
베아트리체 힐:(순간 심장이 무겁게 쿵 울린다. 거짓말이더라도 자신이 쉽게 할 말이 아니었는데.) ... ...미안해. 말이 심했어. (언제나처럼 이어지는 사과.) ...신경써줘서 고마워.
에르드 하이너스:…… 이것도 딱히 사과할 일은 아니야. (무심하게 말하곤) 쉬고 있어.
베아트리체 힐:(말없이 고개만 끄덕이고는 조금 떨어져 앉아있다.)
에르드 하이너스:(먼저 올라가 있으라니깐…… 벌어진 거리감에 그를 잠깐 돌아봤다가 달그락거리며 설거지를 시작한다. 세제로 깔끔히 닦아내고 뜨거운 물에 헹군 뒤 물이 빠지도록 차근히 정리해두었다. 설거지를 끝내고 고무장갑을 벗으며 다시 슬쩍 뒤돌아본다. 졸고 있진 않나?)
베아트리체 힐:(생각에 잠긴 듯 묵묵히, 한참 그의 뒷모습만 지켜보다 어느새 꾸벅꾸벅 기대어 졸고 있다.)
에르드 하이너스:(그럴 것 같았다. 다가가서 낮고 작은 목소리로 그를 부른다.) …… 베아트리체. 올라가서 자.
베아트리체 힐:(어느새 익숙한 목소리. 멈춘 고개가 서서히 들린다.) ........응. ...너는?
에르드 하이너스:같이 올라가야지. 부축해줄 테니까. (잡으란 듯 한 손을 내민다. 누군가에게 손을 내밀어보는 게 얼마만이더라.)
베아트리체 힐:...응. (...꿈일까. 미처 잠이 다 깨지 않은 몽롱한 얼굴로 내밀어진 손을 붙잡고 휘청 일어선다.)
에르드 하이너스:(손을 잡은 채로 계단을 올라간다. 설거지를 하느라 장갑을 벗었기에 상대의 온기가 그대로 전해져왔다.)
베아트리체 힐:(구름을 걷는 듯 몽롱한 감각에 따뜻한 손. 흐릿한 시야 사이로 커다란 등이 보인다. ...따뜻해. 어째서인지 놓고 싶지 않다는 생각만이 안개처럼 일렁인다.)
(...3층. 흐릿한 이성을 겨우 깨운다.) ...네가 침대에서 자.
에르드 하이너스:집주인은 넌데? (당신의 모습을 이리저리 훑어본다. 지금이라도 잠들기 직전이면서. 그를 침대로 이끌어 슬쩍 앉혀준다)
베아트리체 힐:...그럼 같이 자? (꾸벅꾸벅. 감기는 눈꺼풀을 겨우 깜빡인다.)
에르드 하이너스:그건 안 되지. (베아트리체는 편안한 옷으로 갈아입은 채인가?)
베아트리체 힐:...으응. 그럼? (아직 정리하느라 갈아입지 못한 셔츠를 밍기적 벗어낸다.)
에르드 하이너스:……. (고개 돌림.) 알아서 할게.
베아트리체 힐:....그치만. (겨우 벗은 셔츠를 침대 헤드에 걸어두고 그대로 옆으로 풀썩 넘어간다.)
에르드 하이너스:(줄을 서서 기다렸다가 요거트 두 개를 주문한다. 어쩌다가 여기서 고양이 간식이나 주고 있지)
주문한 요거트를 기다리는 사이,
주변에 와글와글 모여있는, 관광객들로 보이는 사람들이 목소리를 낮춘 채 나누는 대화가 귀에 들립니다.
관광객A:그래서 어제 그 부부 아들은 찾았대요?
관광객B:네. 정말 다행이죠. ...그런데 어디가 이상하다나 봐요.
관광객A:뭐가요?
관광객B:모르겠어요. 갑자기 오늘 일정을 다 취소하더니, 돌아갈 항공편을 급하게 구하고 있던걸요.
관광객A:어딜 다친 건 아닐까요? 걱정이네...
관광객B:...누가 그러던데, 뭐에 씌였는지 자꾸 바다로 가야한다나…
두 사람은 먼저 주문한 요거트를 받아 들고 무리 속으로 사라집니다.
에르드 하이너스:(석연찮은 대화다. 그러고 보면 베아트리체도 언급했지 않았던가. 이능력자들이 하나같이 같은 말을 반복하고 있다고. 곁의 베아트리체에게 목소리 낮춰 묻는다.) 착란이 걸린 이능력자들이 '돌아가야 해'라는 말을 했다지 않았어? 그거 혹시 바다로 돌아가야 한다는 의미였나?
베아트리체 힐:(주변에 들리지 않게 목소리를 낮춘다.) ...아무래도 그런 것 같네. ...바다로 돌아가야한다니. 무슨 소리지?
때마침 주문한 요거트가 눈 앞에 내밀어집니다.
에르드 하이너스:맞섰다는 그 크리쳐의 정보를 빨리 알아내야 할 것 같군. (인상을 작게 찡그리다가 요거트를 받아든다. 고양이 간식도 주나?)
가게 주인:여기 주문하신 요거트 두 개요~! 요거트도 두 배, 고양이 간식도 두 배로 드렸어요!
둘의 PS마크를 알아본 듯 찡긋 윙크도 날려줍니다.
가게 주인:자주 들러주세요!~
에르드 하이너스:(부담스럽다) 그럼.
(몸을 180도 휙 돌림) 간식이나 주자고.
베아트리체 힐:...감사합니다. (꼬박 인사하고는 같이 돌아간다.)
간식을 본 고양이는 어느새 발 밑에서 채근하듯이 애오앍, 하고 부르며 바짓단을 톡톡 잡아끕니다.
다른 고양이 역시 이를 눈치채고 다가옵니다.
베아트리체 힐:(다시 숙이고 앉아 간식을 골고루 나줘준다. 복복복복.)
에르드 하이너스:(베아트리체가 간식을 나눠주는 동안 우뚝 선 채로 그늘이나 만들어주고 있다)
맛나게 간식을 먹은 고양이들은 곁에서 고로로록 골골대기도 하고, 보비작 보비작 부벼대다가
만지는 손을 양 팔로 탁 잡고 까무작 까무작 장난치는 등 에르드의 커다란 그늘 아래서 즐거운 시간을 보내곤 두 사람을 배웅합니다.
베아트리체 힐:(가다 말고 돌아서서 다시 한번 손 흔들어준다)
...너도 주면 좋았을텐데.
에르드 하이너스:난 그런 거 못 해. (안 해가 아니라 못 해다)
베아트리체 힐:(...그렇구나. 아쉬운 표정으로 반대쪽 길을 가르킨다.)
에르드 하이너스:(요거트나 먹으면서 반대쪽 길로 걸어간다)
베아트리체가 가르킨 길을 따라 걷고 있으면, 약간 오르막인 길 양옆으로 가게들와 노점상들이 이어져 있습니다.
눈에 띄는 것은 올리브 나무로 만든 공예품 가게군요.
기념품으로 좋을 조각 제품과 올리브로 만든 비누도 판매하고 있습니다.
그다음으로 사람이 몰려있는 곳은 수제 가죽 신발을 파는 곳이네요.
사람 좋게 생긴 노인 한 사람이 자리를 깔고 앉아 가죽 신발을 엮고 있습니다.
멋들어진 필체로 쓰여진 시가 여러 장 걸려있는 헌책방, 은으로 만든 공예품,
그리스의 푸르름을 함뿍 담은 그림 가게의 앞에는 몇몇 화가들이 앉아서 즉석 그림을 그려주고 있습니다.
구경하며 오르다 보면
소년의 낭랑한 목소리가 들립니다.
소년:구슬 맞추기~! 성공하면 선물을 드려요!
선물이랍시고 올라와 있는 것들을 보면 소년이 조각한듯한 나무 조각품들입니다.
마감이 살짝 모자라지만 예상 외로 섬세하네요.
에르드 하이너스:(크리쳐의 습격과 단체 착란 사건이 있었던 것치고는 평온하고 활기찬 모습들이다. 이런 풍경을 지키기 위해 지부가 존재하는 것이니, 제 역할을 다하고 있는 셈이지. 가게들을 스치듯 바라보며 걷다가 낭랑한 목소리에 시선이 쏠린다. 나무 조각품이라. 무언가를 수집하는 데 큰 관심이 있는 건 아니지만…… 기념품 한두 개쯤은 가져가도 좋겠지. 이런 아름다운 도시에 머무를 수 있는 기회가 흔치는 않으니까.) 가볼래?
베아트리체 힐:(평소처럼 여유롭고 활기찬 주변을 둘러보다 소리가 나는 쪽으로 고개를 돌린다.) ...음, 그럴까.
둘러보면 개중에 눈에 띄는 것은 [황금빛 눈의 검은 늑대 조각], [귀 끝이 옅은 보랏빛으로 물든 토끼 조각],
[아까 봤던 고양이와 똑 닮은 고양이 조각] 과 각각의 색으로 물들인 알록달록한 꽃 조각들-
나무를 동글동글 반질하게 다듬어 가죽끈을 끼운 팔찌들도 있네요.
구미가 당긴다면 이 넉살좋은 소년과 종이컵 세 개를 둔 맞추기를 해볼 수도 있습니다.
에르드 하이너스:(음.) 구슬 맞추기는 어떻게 하는 거지?
소년:(빵끗) 여기 컵 세 개 중에 구슬이 들어있는 컵을 찾으시면 돼요! 해보시겠어요?
제가 이 중 하나에 넣고~ 샥샥 섞으면~! 마지막에 찾으시는거죠!
에르드 하이너스:(동체시력은 자신있다) 좋아.
소년:능력은 쓰시면 안돼요~?!
나란하게 세워진 세 개의 컵.
그 중 하나에 자그마한 구슬이 쏙 들어가고 소년은 현란하게 종이컵을 움직입니다.
소년:자 자~ 맞추면은~~ 선물이 있고~~ 틀리면~~! 나는 좋아요~~~
샤카샤카 챡!
이제 맞출 차례입니다.
과연 몇 번째 컵일까요? 1d3!
에르드 하이너스:2
소년:
rolling 1d3
(
3
)
=
3
에르드 하이너스:그쪽 능력도 아니거든. (주의깊게 보다가 제 턱을 매만지며 말한다.) …… 두 번째.
소년:헤헤~ 두구 두구 두구~~ 정답은 3번!
에르드 하이너스:……. (내 동체시력이 잘못됐다니)
소년이 넉살 좋게 웃습니다.
소년:...간만에 피스 분들 뵌 거니까 이번만 비밀이에요~? (과장되게 주변을 살피며 고양이 조각을 손에 쏙 쥐어준다.)
에르드 하이너스:(예나 지금이나 눈에 띄는 건 별로다. 어쨌건 감사 인사는 잊지 않는다.) 잘 받지. 받기만 할 순 없으니까 저것도 사겠어. (팔찌를 가리켠다.) 두 개.
소년:와아~! 감사합니다! 역시 피스분들은 마음도 멋지시다니까~
소년은 그 중에서도 제일 반질한 팔찌를 골라 골라 포장해줍니다.
에르드 하이너스:(값을 치르고, 하나를 베아트리체에게 건넨다.)
베아트리체 힐:...어? 나한테 주는거야? (소중히 받아든다. 꼬옥...) ...고마워.
에르드 하이너스:(말없이 고개만 끄덕였다)
소년:헤헤~ 감사합니다! 멋진 형 누나~!
흐음~ 만사형통하나 넘어지지 않도록 발 아래를 잘 보아야 하겠다아~!
헤헷. 아무말이에요. 또 놀러오세요!
때 아닌 덕담을 건낸 소년은 환한 웃음으로 두 사람을 배웅합니다.
한 쌍의 팔찌를 사이좋게 나누고 걷다 보면,
~ ♬
잔잔한 연주소리가 광장 쪽에서 들려옵니다.
분수대 앞에서 합주중인 이들이 보이는 풍경.
그러나 이 평화는 커다란 고함과 함께 어긋납니다.
관광객:소매치기야~!~!~!!!
느긋한 거리가 순식간에 소란해집니다.
소리가 난 방향으로 돌아보면 소매치기로 보이는 남자가 가방을 들고 달리고 있습니다.
뒤따라서 한 무리의 관광객들도 쫒아 달리고 있네요.
소매치기는 잽싸게 사람들의 사이를 요리조리 지나쳐, 저편으로 달려갑니다!
에르드 하이너스:평화롭다 싶더니. (이마 짚는다) 소매치기를 잡는 것도 피스가 해야 하는 일인가? (별로 관여하고 싶지 않은 티가 남)
베아트리체 힐:(달려가는 소매치기를 유심히 지켜본다.) ...음, 내가 잡으러 갈게.
에르드 하이너스:가려면 같이 가. 내 능력이 이런 데엔 또 특화되어 있으니까. (모른 척 발 빼는 건 안 되겠군……) 내 시간을 제어해서 소매치기에게 빠르게 이동할 수 있게 도와주면 내가 석화를 쓰겠어.
베아트리체 힐:..그럼 실례할게. (고개를 끄덕임과 동시에 에르드의 등에 손을 살짝 얹으면 미약한 빛이 온몸을 휘감고, 그 순간. 주변의 시간이 느리게 돌아간다.) 이제 금방 따라잡을 수 있을거야.
에르드 하이너스:(이런 감각이군. 마치 영화에서나 보던 광경처럼 주변의 모든 게 느려진다. 그러나 신기하다며 감상하고 있을 여유는 부리지 않는다. 신속하게 능력의 범위가 닿는 거리까지 이동해 멀리에서 소매치기를 멈춰세운다.) 거기 서 주셔야겠는데.
소매치기를 멈춰 세우면 어느새 시간은 원래대로 흘러갑니다.
소매치기:...으악!!!!!!
소매치기는 달리는 속도를 주체하지 못하고 우당탕탕 굴러 넘어집니다.
에르드 하이너스:뭘 잘했다고 소리치고 있어. (소매치기의 뒷덜미를 잡고 일으켜 그의 손에서 가방을 뺏어든다.) 피스의 인력을 이런 데 낭비시킨 걸로 가중처벌이나 부탁해야겠는데.
소매치기:....사, 살려주세요! 돌려드릴게요! 돌려드릴테니까..!
에르드 하이너스:그건 당연한 일이고. 안타깝게도 네가 크리쳐가 아니라서 죽일 수는 없겠군. (귀찮은 티를 팍팍 내면서 가방의 주인과 베아트리체가 도착할 때까지 기다린다.)
잔뜩 울상이 된 소매치기와 연신 감사 인사를 하며 환호하는 사람들.
그 뒤로 도착한 베아트리체가 튀어나옵니다.
베아트리체 힐:(조그만 탄성..) 고생했어. 역시 이런 상황에서 빛을 발하는 능력이네....경찰서가 가까우니까. 금방 데려다주고 올까?
에르드 하이너스:나야말로. 네 능력, 확실히 편하네. (우수한 지휘자로 유명한 이유를 직접 체감했다. 고개를 끄덕이고 주인에게 가방을 돌려준다.) 가자.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해요!"
연신 고개를 숙이며 감사를 표하는 가방의 주인을 뒤로 하고 두 사람은 근처의 경찰서로 향합니다.
그리 크지않은 문을 열고 들어서면, 경찰이 두 사람을 반깁니다.
경찰:아이고야. 감사합니다. 피스분들께서 이런 사소한 일에도 힘써주시다니!
에르드 하이너스:눈에 보였으니 어쩔 수 없지. (다소 츤데레 같음;)
경찰:그러고 보니 요 며칠 피스분들이 잘 보이지 않는 것 같았는데 이렇게 뵈니 안심했습니다.
여튼, 감사드립니다! 저희가 잘 처리하겠습니다! 살펴가세요!
에르드 하이너스:(그건…… 극비니까 말할 순 없다. 고개 까닥 끄덕인다) 가자. 또 살펴봐야 할 곳이 어디쯤이지?
베아트리체 힐:(잘 해결해놓고서 생색내는 모습이.... 조금 귀엽다. ...잠깐 스친 생각을 후다닥 털어내고,) ...이번에는 이쪽으로 가면 될 것 같아. 응.
오늘도 세계 평화에 이바지한 두 사람 덕분에
느긋하게 짙어지는 오후의 햇살 아래, 사람들은 여전히 한가롭습니다.
담장 위에는 낮잠을 자는 새들과 레이스로 뜬 듯한 담쟁이 덩쿨들. 띠링띠링 자전거가 지나가며 울리는 벨소리가 들립니다.
가르킨 길을 따라 쭉 걷고 있으면..
가로수 아래에 곤란해 보이는 쌍둥이 둘이 서서 발을 동동 구르고 있는 것을 봅니다.
남자아이:누나가 놀래켜서 놓쳤잖아~!
여자아이:네가 갑자기 우니까 나도 놓친거지!
들어보면 누나가 남동생을 놀래켜서 풍선을 놓치고 와앙, 우는 통에 누나도 잡을 새도 없이 풍선을 놓쳐버린 것 같습니다.
올려다보면, 새빨간 풍선이 가지에 걸려 흔들리고 있어요.
에르드 하이너스:(잡으려는 크리쳐는 안 보이고 어째 사소한 일들만 해결하는 듯한 느낌인데. 큰일이 없으니 다행이긴 하지만)
(풍선은 자신의 키로 잡을 수 있는 높이인가? 아니어도 나무를 타면 된다)
풍선이 걸린 가로수는 제법 높아요. 나무를 타고 올라야 할 것 같습니다.
에르드 하이너스:(베아트리체에게) 잠깐만 기다려. (그리고 두꺼운 나뭇가지를 훌쩍 타고 올라가서 손을 뻗어 풍선을 잡는다. 다시 가볍게 뛰어 내려와 손을 탈탈 털곤 아이들에게 말도 없이 풍선만 슥 내밀었다.)
훌쩍, 올라갔다가 타악.
커다란 나무의 나뭇가지가 흔들리면 사이사이로 햇빛이 떨어지고, 햇살을 품은 푸르른 나뭇잎이 에르드의 콧잔등에 멋지게 착지합니다.
풍선을 받아든 두 아이는 꺄르르 웃음을 터트립니다.
베아트리체도.... 즐거워보여요.
남자아이:감사합니다! 근데… 형이랑 누나는 피스에요?
에르드 하이너스:(굳이 알려줘야 하나 싶으면서도, 이미 옷에 자수가 박혀있으니 숨길 이유도 없겠지. 고개를 간결하게 끄덕였다.)
여자아이:와…! 능력자랑 이렇게 말해보는 거 처음이에요! 싸인 해주시면 안 돼요? 헉. 사진, 사진 찍어주세요!
베아트리체 힐:...괜찮아? (아이들을 복복 쓰다듬어주다가 힐끔 돌아본다.)
에르드 하이너스:연예인이 아니라서, 그건 좀. (역시나 피한다. 대신 베아트리체를 가리켜며) 이 누나는 해줄 거야.
베아트리체 힐:(풍선을 내려다 준 건 에르드인데도.... 하는 눈빛으로 보다가 아이들 쪽으로 웃으면서 끄덕인다.) ...그래. 같이 찍을까?
하나, 둘, 셋, ...찰칵!
나란히 얼굴을 맞대고 사진을 찍은 쌍둥이들은 만족스러운 듯 환하게 웃어요.
화면을 이리저리 보고는 두 사람을 배웅합니다.
에르드 하이너스:(사진 찍는 동안 모르는 사람인 것처럼 저~~ 멀찍이 떨어져 있었다.)
베아트리체 힐:(사진을 찍고 나서도 정작 찍어야 될 건 저 멀찍이 있는 에르드인데...하며 총총 다가온다.)
팔이 빠져라 손을 흔드는 쌍둥이들을 뒤로 하고 올라가다 보면 조금 높은 위치에 자그마하고 예쁜 식당이 있습니다.
새파란 지붕, 흰 담장. 붉은 장미넝쿨이 시선을 끌어요.
맛있는 냄새도 솔솔 흘러나오고 있고요.
베아트리체 힐:(걸어가다 우뚝 멈춰선다.) 저기, 동료들과 종종 들렀던 가게야. …들어가볼까? 무슨 이야기를 들을 수 있을지도 모르니까.
점심을 조금 넘기고 있는 시간이니, 간단히 요기를 해도 좋겠네요.
에르드 하이너스:그래? (코끝에 감기는 맛있는 냄새에 금세 고개 끄덕인다.) 마침 점심때가 되기도 했으니, 식사도 할 겸 들려도 좋겠어.
딸랑~ 맑은 종소리.
들어가면 푸근한 인상의 중년 부부가 두 사람을 맞이하고 풍경이 넓게 내려다보이는 테라스 자리로 안내해줍니다.
에르드 하이너스:(연쇄적으로 도착하는 알림을 보며 눈살을 찌푸린다.) 방 안에서 아무런 반응이 없는 게 불안해. 최대한 빠르게 도착하라고 요청해줘.
(니베의 상태가 신경쓰였지만, 각성자 페어가 하나밖에 없는 지금 상황에서는 무엇보다도 크리쳐의 처치가 우선이었다.) 어쩔 수 없지. 즉시 이동하자.
베아트리체 힐:...바로 연락해둘게. 마침 해변으로 가고 있는 비전투 인원들도 있으니까. (고개를 끄덕이며 손목의 작은 화면을 두드린다.)
플라카 지구에서 글리파다 해변까지는 차로 20분정도 걸리는 거리입니다.
아주 밟으면 15분도 어렵지 않겠죠.
베아트리체 힐:...바로 출발하자.
에르드 하이너스:(고개를 짧게 끄덕이고 신속하게 차로 향한다.)
차에 타고, 출발하면 그 순간에도 크리쳐 반응은 속속 오르고 있습니다.
지금은… 20%군요.
차량은 순식간에 시장거리를 빠져나와 외곽의 한적한 도로를 타고 달립니다.
어깨 너머로 보이는 바다. 태양 빛을 받는 푸르른 반짝임… 을 만끽할 수는 없는 상황이겠네요.
삑. 알람이 도착합니다.
[크리쳐 반응 50%돌파]
매섭게 달리고 있는 차.
글리파다 해변이라고 쓰여있는 표지판을 지나쳐 도로를 한 차례 더 빠져나오면 모래사장이 펼쳐집니다.
주변으로 이미 도착한 PS밴 여러대와 함께 접근 불가 라인이 쳐져있습니다.
차에서 내리면 자리를 지키고 있던 군복을 입은 비능력자 대원들이 두 사람을 발견하곤 빠르게 달려와서 군복 조끼를 내밉니다.
대원:안녕하십니까! 안쪽에 민간인들이 많은데 통제가 불가능해서, 도와주십시오!
에르드 하이너스:원래 크리쳐가 등장하기 전에 민간인이 이상 징후를 보이는 경우가 있었나? (인상을 찡그리면서 조끼를 입었다.)
베아트리체 힐:... ...이런 적은 거의 없었는데. (조끼를 입으며 혼란스러운 해변을 응시한다.)
말마따나 해변 안쪽이 소란스럽네요. 중간중간 고함 따위가 들리기도 합니다.
조끼를 입고 해변으로 돌입하면 관광을 하고 있었을, 혹은 해변가에서 음식을 팔던 상인들 삼십여명이 바다 안으로 들어가고 있습니다.
이미 반쯤 빠져버린 사람과 넘어진 채로 모래사장을 기어서 파도로 들어가려는 사람들까지.
대원들이 그런 사람들을 붙잡고 바깥으로 끌어내, 이송 차량에 태우고 있습니다.
대원1:이러시면 안 됩니다!
시민:.. … -놔.....
대원2:3번 차량 인원 끝났어요. 출발시키겠습니다!
대원3:4번 차량 대기중입니다!
..현재 크리쳐 반응은 65퍼센트.
우선 두 사람은 바다로 들어가려는 시민들을 막고, 차에 태울 수 있도록 다른 대원들에게 인계해주어야 합니다.
에르드 하이너스:착란을 유발하는 크리쳐는 이미 사살된 것 아니었어? (바다로 들어가려는 모습을 목격하자마자 당황한다. 그러면서도 걸음은 빠르게 해변으로 향하고 있다. 시민들을 멈추는 게 우선이다.)
황금 메두사
기준치:
100/50/20
굴림:
16
판정결과:
극단적 성공
피해:
15
(제 시야에 들어오는 사람들의 움직임을 모두 정지시킨다.)
에르드의 번뜩이는 시야에 잡힌 사람들이 일제히 멈춰서고, 그들을 대원들이 손쉽게 바깥으로 끌어냅니다.
베아트리체 힐:(대피를 돕는 비전투 인원들의 곁으로 가 가볍게 손을 얹는다.)
타임코어 Roll
기준치:
100/50/20
굴림:
14
판정결과:
극단적 성공
희미한 빛으로 둘러싸인 인원들은 더 빠른 속도로, 더 많은 인원들을 신속하게 옮겨나갑니다.
대원들에게 끌려가는 이들은 넘어지거나 붙들리면서도 팔을 허부적 움직여 해변 너머, 바다를 갈망하고 무언가에 홀린 것처럼 눈동자가 풀려있습니다.
초점이 전혀 없이 중얼중얼,
… … 다행인 것은 가지 못하게 잡는 것에도 반항은 하지 않으며 그다지 힘이 세진 상태도 아닌 것 같습니다만은..
무어라 중얼거리는 걸까요.
에르드 하이너스:대체…… (눈에 보이는 시민들의 움직임을 멈추면서도 의아함은 사라지지 않는다. 이미 4일 전 죽은 크리쳐가 여전히 영향을 미친단 말인가? 아니면, 지금 나타나려는 크리쳐가 동일 개체인 것인가. 만일 그렇다면 정말로 위험한 사태다. 유일하게 남아 있는 페어인 우리까지 당한다면 그리스는 정말로 무방비 상태가 돼.)
듣기 판정
에르드 하이너스:
듣기
기준치:
60/30/12
굴림:
30
판정결과:
어려운 성공
주변으로 끌려가는 그들의 중얼거림이 들립니다.
시민1:...구해줘야-…도, 도와…줘….
시민2:가야해..
시민3:..내보내줘… …이거 놔…
에르드 하이너스:정신 차려. 바다로 들어가면 죽을 뿐이야! (험악하게 외치며 시민들을 붙잡아 해변으로 끌어낸다. 무슨 전설 속의 세이렌이라도 등장한 것 같다. 하나같이 바다로 가겠다고 중얼거리는 꼴이라니.)
(크리쳐가 아직 나타나지도 않았는데 이 꼴이라니. 만일 크리쳐가 등장한다면 저와 베아트리체까지 착란에 당해버리는 것 아닌가? 익숙지 않은 불안이 등줄기를 타고 오른다. 그런 모습이 되는 건 사양이다.)
베아트리체 힐:...들어가시면 안돼요, 다들 대피하세요. (능숙하게 이능력을 사용하며 대원들과 함께 시민들을 이끌어낸다.)
두 사람의 이능력으로 수월하게 민간인을 대피시키고 있으면… 뒷덜미로 오싹한 감각이 스칩니다.
뒷통수를 뎅 울리는 쎄하고 위험한 느낌.
‘크리쳐’ 가 곧 태어날 것입니다.
타블렛을 확인하면 85퍼센트.
주변에서도 크리쳐 탄생을 경고하는 대원들이 고함을 치고 대열을 정비중입니다.
베아트리체 역시 그들 곁에서 여전히 민간인들의 대피를 돕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상합니다.
분명 크리쳐 반응으로 올라온 것은 한 개체 뿐이었는데 지금 에르드의 본능에는 위험한 사이렌이 거세게 울리고 있습니다.
이 모래사장에, 저 바다에, 어디인지 모를 온 사방에서 기척이 느껴지는 기분입니다.
마치, 크리쳐의 둥지에라도 들어온 듯이.
크리쳐 웨이브와는 약간 다른 종류의… 처음 맛본다고 할 수 있을 정도로 거대하고, 짓눌리듯 위험한 감각이요.
...우리는 고작 두 명. 감당이 될런지.
에르드 하이너스:(숨을 삼키고, 목소리를 낮춘다.) …… 베아트리체. 느낌이 좋지 않아.
크리쳐가 하나만 있을 것 같지 않아. 조심해.
베아트리체 힐:(그의 목소리에서 위압감을 읽어내고 꾹 쥔 손에 힘을 준다.) ...응.
90%, 95, 97, 99…
… 머리가 아플 정도의 위압감과 함께 에르드가 딛고 선 모래사장이 부글부글 범위를 넓히며 끓기 시작하더니
새파란 막에 싸인듯한 무언가가 서서히 일어나기 시작했습니다.
지반 아래에서 태어난 것. 곧, 모래 바깥으로 나타날 존재.
… 그런데 어째서 한 곳일까요?
의문을 해소할 시간도 없이,
모래를 폭포처럼 떨어트리며 작은 주택 크기로 부풀어 오른 막을 거대한 날개가 찢으면-
그 안에 들어차있던 푸른 액체가 모래사장 안으로 빠져나가고, 결국 거대한 새 형태의 크리쳐가 모습을 드러냅니다.
에르드 하이너스:윽. (인상을 찌푸린다. 크리쳐는 수도 없이 상대해 왔지만, 상식과는 아득히 빗나간 울음소리에는 아무리 그라도 불쾌감이 치솟았다.)
머리가 찡하니 울리고 잠시간 시야에 잔상이 남습니다.
에르드와 베아트리체의 턴.
에르드 하이너스:(잔상을 지워내기 위해 머리를 거칠게 털어냈다. 베아트리체가 강하게 몰아붙였을 때 최대한 데미지를 쏟아부어야 한다. 창의 공격이 비교적 닿지 않은 지점을 중심으로 다시금 강하게 칼을 꽂아넣으며, 크리쳐가 쓸데없는 움직임을 하지 않도록 몸 중심부에 석화를 걸었다.)
석화
기준치:
100/50/20
굴림:
86
판정결과:
보통 성공
피해:
26
베아트리체 힐:(찡하게 울리는 귀를 막았다가 털어낸다.) ...에르드! 괜찮아?
(걱정스러운 얼굴로 들여보며 다시금 허공에 손을 휘저으면, 일그러지고 붙었다가 사라지고 나타나는 무수한 창들.)
시간 왜곡
기준치:
100/50/20
굴림:
18
판정결과:
극단적 성공
피해:
15
(땅으로 내리꽂히는 손을 따라 연보랏빛의 창대가 멈춰선 거대한 거체에 비처럼 쏟아져내린다.)
찰나도 허용하지 않는 날카로운 판단. 기세등등하고 정교한 일격은 크리쳐에게 치명적인 피해를 안겨줍니다.
크리처의 턴.
크리쳐는 순식간에 몸을 틀어, 제게 깊숙히 칼을 꽂아 넣은 에르드의 머리통을 향해 아가리를 벌립니다.
새 형태의 크리처:
물어뜯기
기준치:
99/49/19
굴림:
99
판정결과:
보통 성공
피해:
21
그 움직임에 살이 더욱 갈라져 열린 크리쳐의 상처 안에서 뜨겁고 시퍼런 피가 솟구쳐 에르드에게 끼쳐듭니다.
에르드와 베아트리체의 턴.
에르드 하이너스:난 괜찮아! (아직 귀가 먹먹한 탓에 평소보다 큰 목소리로 외친다. 근거리 전투를 하다 보면 필연적으로 크리쳐에게 공격당하는 빈도수가 늘어난다. 피를 뒤집어쓰는 일도 허다했다. 새파란 피가 역겨웠지만, 익숙하게 총을 꺼내어 크게 벌어진 입안에 연발 총알을 갈긴다. 칼로 어느정도 힘을 빼두면 총으로 확실하게 데미지를 주는 것이 제 전투방식이었다.)
석화
기준치:
100/50/20
굴림:
98
판정결과:
보통 성공
피해:
31
베아트리체 힐:(...다행이다. 시퍼런 피를 뒤집어 쓰고도 딛고 일어나는 그를 보며, 경악과 걱정으로 꽉 쥐고 있던 손이 조금 느슨하게 풀린다.) ...확실히 멈춰 놓을게. 다음번에는 더 깊이. ...심장을 노려.
하이퍼랩스
기준치:
100/50/20
굴림:
13
판정결과:
극단적 성공
피해:
19
(거대한 크리처의 아투명한 눈을 매섭게 노려본다. 눈이 마주치면 크리처의 눈이 순간 보랏빛으로 점멸한다. 덜컥, 멎는 움직임.)
힘이 다한 듯 보이는 크리쳐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끈질기게 고개를 들고, 날개를 휘두릅니다.
휘청이는 움직임. 얕은 지진과 함께 모래바람이 크게 날리고 일순간 시야가 차단됩니다.
---쿵, 크리쳐가 공격을 버티지 못하고 옆으로 쓰러집니다.
벌어진 부리에서는 아무런 소리도 나오지 않습니다.
에르드 하이너스:(숨을 고르며 얼굴에 온통 튄 피를 대강 팔로 닦아냈다. 이게 전부인가? 경계를 풀어선 안 될 것만 같다.)
…움직임을 멈춘 몸통.
숨통을 끊었나 싶은 순간,
“히,” 단말마를 내지르려는 듯, 크리쳐가 부리를 벌립니다!
에르드 하이너스:(역시. 여전히 경계로 몸이 팽팽했던 탓에 크리쳐의 여남은 움직임을 민첩하게 포착할 수 있었다. 베아트리체가 말했던 대로 크리쳐의 심장에 대고 총알을 격발한다.)
두터운 살가죽 깊숙이, 심장까지 격발되는 탄환은 거대한의 심장을 터트립니다.
으득, 하는 균열음과 함께-
바다보다 푸르고, 작열하는 태양빛보다 뜨거운 액체가 분수처럼 쏟아져 내립니다.
푸른 해변과 두 사람을 퍼렇게 물들이면서요.
짙은 노을. 터져 떨어지는 살점들 속 시퍼런 피를 딛고 선 두사람.
뒤늦게 바람을 따라 흩날리는 머리칼이 유려한 곡선을 그립니다.
크리쳐는 마지막 단말마도 내지르지 못한 채 머리부터 고꾸라집니다.
에르드 하이너스:(다른 크리쳐가 더 나타날 기미는 보이지 않는가? 주변을 계속해서 두리번거린다.)
쿵-!
주변을 둘러보는 에르드의 등 너머로, 뒤이어 거대한 몸까지 쓰러지면 커다란 모래바람이 일고 지면이 한 번 흔들립니다.
잔뜩 벌렸던 부리… 계속해서 위화감이 들었던 것 같은데. 두 사람은 이유를 알 수 없습니다.
베아트리체 힐:(모래바람이 가라앉자, 잔뜩 웅크린 몸을 펴고 바로 에르드를 찾는다.) ...에르드! 괜찮아?
에르드 하이너스:(안심이 안 되는군. 모래바람이 이는 동안 팔로 얼굴을 가리며 고개를 반대로 돌리고 서 있다가, 어깨에서 조금 힘을 빼고 자신의 파트너를 향해 다가간다.) 나는 괜찮아. 넌? 다친 데 없어?
베아트리체 힐:...다행이야. (끈적하고 푸른 피를 뒤집어쓴 것도 모른 채, 그의 얼굴만을 살핀다. 늘상 있는 일일텐데도, 오늘처럼 등골이 서늘했던 적이 없었다.) ...나는 없어, 넌? 정말 괜찮은거야?
에르드 하이너스:정말 멀쩡해. 피를 좀 뒤집어썼을 뿐이야. (옷자락으로 피를 닦아내본다. 이 옷은 세탁을 맡겨야겠군.) 분명 죽였는데도 계속 위화감이 들어. 뭔갈 놓치고 있는 것 같아.
베아트리체 힐:...정말, 정말 다행이야. (안도감과 함께 몰려오는 격통. 그제서야, 자신의 숨이 무겁게 억눌려있다는 것을 깨닫는다. 생각보다 무리하게 능력을 사용했나...?) ...위화감? (가쁜 숨을 몰아쉬며 어느덧 저물어가는 해변을 둘러본다.)
크리쳐의 시신을 운반하는 대원들 너머로 보이는 시퍼런 바다에는 어느덧 붉은 노을이 잔뜩 스미고,
위화감은 오싹함과 섞인 잔향만을 남기며 서서히 사그라들고 있습니다.
에르드 하이너스:…… 그놈뿐이 아니라, 더 많은 크리쳐가 있을 것만 같다는 느낌이 들었어. 지금은 조금씩 잦아들어가고 있지만.
그보다, 널 더 신경써야지. 몸은 어때. 가이딩이 필요한가?
베아트리체 힐:....이게 끝이 아닌걸까...? (그의 날카로운 감을 무시할 수 없다는 생각에 바다 너머까지 시선을 두다, 더해오는 갈증에, 천천히 고개를 끄덕인다.)
...손 잡아줄래?
에르드 하이너스:끝이라면 좋겠지만, 시민들의 이상한 반응도 그렇고 여기서 마무리는 아닐 것 같아. 왜 이런 상황이 계속 벌어지고 있는지 영문을 모르겠군.
(고개를 끄덕이며 한 걸음 가까이 다가선다. 금색 가이딩을 안개처럼 방사하며 베아트리체를 감싸는 동시에 푸른 피로 젖은 그의 양손을 감싸쥐었다. 제 손이 피로 엉망이었지만, 베아트리체에게도 피가 튀어 있었기에 별 미안함 없이 잡을 수 있었다.)
베아트리체 힐:(천천히 끄덕인다.) ...바다. 바다라는 말이 걸려. 그 곳에 무언가 있을 것만 같은.
(금빛에 둘러 쌓여 커다란 그의 손을 맞잡는다. 그리고 천천히, 아주 천천히 호흡하는 연습을 하듯 숨을 내쉬고 들이쉬기를 반복한다. 차게 식어가는 몸에 감도는 따스한 온기. 억눌린 숨이 다시금 돌아온다.)
에르드 하이너스:바다에 직접 들어가볼 수도 없는 노릇이고. 연구원들이 뭐라도 찾아냈어야 할 텐데. (여유로운 가이딩을 펼치며 그가 호흡을 고르는 모습을 찬찬히 지켜본다. 혹시라도 상태에 이상이나 특이점이 있지는 않은지 찾아보려는 듯.)
베아트리체 힐:...그러길 바라야겠지. (흐려지는 정신을 붙잡는 구원같은 손길. 자신을 살피는 모습에 괜찮다는 듯 희미하게 웃어보였다.) ...이제 괜찮아. 고마워. (인사를 건내면서도 여전히 손은 잡은 채로.)
에르드 하이너스:그래. (무심하게 대답했지만 손을 먼저 놓진 않는다. 크리쳐와의 전투가 얼마나 기운을 빨아먹는지 알고 있었으니, 원하는 만큼 잡고 있으란 심산이다.)
베아트리체 힐:(...이렇게나 다정해선. 서늘한 제 체온과 그의 온기가 섞여 뭉그러져가는 것을 잠시 눈을 감고 고요히 받아들인다.)
...숨을 고르고 있으면 어느 정도 상황이 정리되었는지,
무장한 대원이 이쪽으로 다가옵니다.
대원:...고생많으셨습니다. 어떻게 돌아가시겠습니까. 현재 부대 차량도 대기 중입니다.
모셔다 드릴까요, 타고 오신 차량은 저희가 본부까지 이송해드리겠습니다.
에르드 하이너스:어떻게 할래? 운전할 만 하겠어?
베아트리체 힐:...난 괜찮아. 네가 편한대로 하자.
에르드 하이너스:그럼 부대 차량을 타고 가지. (대원에게 말한다) 부탁드리겠습니다.
대원:네, 이쪽입니다.
보통 이능력자 대원들은 토벌 전후로 헬기에 탑승하는데, 아무래도 지금은 본부 인력이 모자라서 곤란한 모양이네요.
푹신한 시트에 몸을 기대면 차가 부드럽게 출발합니다.
마치 한 폭의 유화처럼 어물어물 새빨간 노을이 번지는 그리스의 풍경이 느긋하게 흘러갑니다.
노을의 따스한 빛은 여전히 맞잡은 두 사람의 손 위에도 사뿐히 물듭니다.
...
...
아테네 지부.
아무래도 그런 일이 있었으니 지부장에게 보고는 해둬야겠죠.
여전히 어수선한 기지 내에는 연구원들이 돌아다니고 있는데 어째 어제보다 좀 더 바빠보이고 인원이 적어진 느낌이네요.
“궁전 터에 추가 인력이라고?”
“맙소사, 난 언제 잤는지도 모르겠는데!”
“어쩔 수 없잖아. 공지하고 위에서 봐.” 등의 이야기 소리가 흩어지며 멀어집니다.
에르드 하이너스:(더 바빠질 만도 하지. 상황이 좋아지긴커녕 나빠지고만 있으니.)
(바로 지부장실로 향해 문을 노크한다.) 에르드입니다.
지부장실로 들어가면,
방금의 전투 영상을 보던 지부장이 일시 중지 후 두 사람을 맞이합니다.
미미하게 피곤한 기색이네요.
아테네 지부장:..훌륭했네, 우선 보고부터 들을까.
에르드 하이너스:크리쳐 자체는 별다를 것 없었습니다. 다만, 크리쳐 반응이 나타나면서 근처에 있던 시민들이 바다로 들어가려 하는 징후를 보였습니다. 또한 크리쳐 반응은 한 마리만을 표시하고 있었지만 저에겐 꼭 그 모래사장 전체에서 크리쳐가 태어날 것만 같은 위화감이 들었습니다. 크리쳐 웨이브와는 또 다른 감각이었습니다. (그때를 회상하며 눈을 가늘게 떴다.)
아테네 지부장:...위화감이라.
베아트리체 힐:...또한 바다, 라는 단어에 굉장히 민감하게 반응하기도 했어요.
...그리고, 이상행동. 즉, 착란을 보이는 민간인들이 여전히 보이기도 했습니다. 일가족 모두가 그러한 반응을 보기는 경우도 있었어요.
아테네 지부장:...일가족 모두가 예비 안내자일 확률은 희박할테니, 다른 가능성을 고려해봐야 할지도 모르겠군.
에르드 하이너스:착란을 일으킨 크리쳐에 관한 정보는 아직 없습니까?
아테네 지부장:크노소스 궁전, 즉 크레타의 미궁 터 지하에 뭔가가 감지되었다네.
다만 크리쳐 반응은 아니고 지하에 거대한 유적이 있는 것 같다는군. 연구원들이 충원되어 발굴 중이니.. 아마 내일 오후 정도면 육안으로 확인이 가능할 거라는 보고가 있었어.
에르드 하이너스:크레타의 미궁……? (신화에나 등장하는 이름이 여기서 들리니 신선하다. 하긴, 그리스에선 실제로 존재하는 지명이겠지.)
아테네 지부장:...그러므로 오늘 두 사람은 푹 쉬고, 내일 점심 식사 후 유적지로 출발하면 되겠군.
오늘 숙박은 어디서 묵어도 무관하네. 참, 마침 부대내에도 방이 하나 비었으니 그곳을 쓰면 되겠군. 어떤가?
에르드 하이너스:(베아트리체가 머무르는 집이 있는데 굳이?) 부대 내에서 머물러야 하는 이유가 있습니까? 그게 아니라면…….
아테네 지부장:우선 두 사람의 선택을 존중하겠다만, 불시에 출동해야 할 일이 생길지도 모르니 부대 내에서 숙박하는 것을 권하지. 크리쳐를 상대했으니 갑작스레 의무실을 사용하게 될 수도 있다는 점 역시 염두에 두어야 하지 않겠나?
에르드 하이너스:(듣고 보니 납득이 되었기에, 어렵지 않게 수긍한다.) 알겠습니다.
아테네 지부장:..불편하겠지만 하루 참아주기를 바라.
베아트리체 힐:(조용히 끄덕인다.) ..그럼 이만, 가봐도 괜찮을까요?
아테네 지부장:그래, 가봐도 좋네.
에르드 하이너스:(지부장실을 나온다.) 부대 숙소는 어느 쪽이지? 일단은 샤워부터 좀 해야겠어.
베아트리체 힐:지부 내의 숙소는 3층이야. ...응, 그래야겠다.
두 사람은 크리쳐의 비명 탓인가 묘한 피로감을 느낍니다.
우선 이 피부에 끈적하게 들러붙은 푸른 피부터 어떻게 하는게 좋겠죠?
방에 딸린 욕실이 있으므로 사용하면 되겠습니다. 자유시간이에요.
에르드 하이너스:(매번 크리쳐와 싸우고 나면 이 모양이라니까. 자신의 이능력 자체가 어느 정도 가까이 다가가야 쓸 수 있는 것이었으므로 근거리 전투는 피할 수 없는 숙명이나 다름없었다. 방에 들어와 수건만 챙겼다.) 넌 여기서 씻어. 난 공용샤워실로 갈게.
베아트리체 힐:...아. (손을 덥썩 붙잡는다.) ..아니야. 내가 갈게. 피도 더 많이 뒤집어썼잖아.
에르드 하이너스:됐어. 금방 다녀오니까. (7년간 스킨십을 거절해온 안내자의 짬밥으로 손을 자연스럽게 풀어내고서는 냅다 신발 신고서 바깥으로 사라진다)
베아트리체 힐:(....가버렸네. 훌쩍 사라지는 뒷모습을 차마 느린 걸음으로 잡지도 못하고 멍하니 보다가 자신도 수건을 들고 일어선다. 땋아내린 머리를 풀면 쏟아지는 긴 생머리.)
(작은 한숨과 갈아입을 옷가지를 챙겨 욕실로 들어선다.)
에르드 하이너스:(스르륵 문을 닫고서 민첩한 걸음으로 공용 샤워실로 향한다. 피에 젖은 머리를 깨끗이 감고 몸에 묻은 피도 하나도 남김없이 깔끔하게 닦아낸 뒤에야 샤워를 마쳤다. 결벽증 때문에 처음에는 피가 묻을 때마다 스트레스가 이만저만이 아니었지만, 이 또한 7년이나 반복되다 보니 반강제적으로 적응할 수밖에 없었다.)
(머리칼을 대강 말리고 수건을 걸친 뒤에…… 숙소로 돌아가는 게 아니라 2층의 운동실로 향한다. 전투를 했어도 오늘의 루틴은 따라야지. 대신 이번에는 평소 하던 시간의 절반만큼만 하고, 땀이 났으니 또 샤워를 하고서야 되돌아갔다.)
개인실에는 혼자 사용하기에는 꽤 넓은 침대, 보급된 책상과 책장, 의자. 작은 간이 테이블 작은 냉장고, 미니 인덕션, 푹신한 빈백과 옷장.
개인실마다 배치된 테라스 문 너머로는 연병장이 내려다보입니다.
돌아오면 바닥에 닿을만큼 긴- 머리칼을 여전히 닦아 말리고 있는 베아트리체가 에르드를 맞이합니다.
베아트리체 힐:...아, 어서와. 덕분에 편하게 썼어.
에르드 하이너스:(머리카락 진짜 기네.) 그래. 그나저나 같은 방을 쓰라고 해놓고 침대는 또 하나뿐이군…… 페어는 원래 침대까지도 같이 쓰는 게 일반적인 건가?
베아트리체 힐:(의아한 듯 기울어지는 고개, 를 따라 흐르는 긴 머리카락.) 여기서는 원래 지휘자와 안내자가 대부분 한방을 써. ...같은 방을 쓰면 좀 더 친해질수 있다거나, 크리처가 나타났을 때, 대비하고 출정하기 편하다고.
...참, 불편하면 이번에는 꼭 네가 침대를 써. 꼭. (이번에야말로, 라는 눈빛)
에르드 하이너스:같은 방을 쓰는 것도 내 딴엔 잘 이해가 안 가지만, 뭐 그렇다고 치는데. 침대까지 같이 쓸 필요가 있냔 말이지. (영 이해하기 어렵단 표정이다. 한 방에 침대를 두 개씩이나 넣기엔 방을 최대한 여러 개 만들어놔야 하는어른의 사정때문인 건가.)
됐어. 난 바닥에서도 잘 자거든.
여기 빈백도 있고. (빈백을 손으로 푹 눌러본다)
베아트리체 힐:(이런 생활에 익숙해진 터라 한참 생각해보고서야 끄덕인다.) ....그러네, 굳이 한 침대까지 쓸 필요는 없을텐데.
...아. (걸터앉아있던 침대에서 벌떡 일어나 빈백에 툭 앉아버린다.) ...내가 여기서 잘래.
에르드 하이너스:…… (말을 꺼낸 내 잘못이지) 나야 평소에 운동도 많이 하고 근육도 많아서 괜찮지만 넌 분명 내일 허리아플 텐데.
베아트리체 힐:....으음. (분명히 반박의 여지가 없는 사실들이지만...) ...아니야, 괜찮아. 푹신하기도 하고. (앉은 빈백을 툭툭 두드린다.)
(슬쩍 말돌리기) ..참, 배고프지는 않아? 저녁은?
에르드 하이너스:(의심스럽게 내려보다가) 밥먹을 때가 되긴 했지. 간단하게 만들어 먹을까? 마침 지하에 마트도 있었던 것 같고.
베아트리체 힐:(그제야 자리에서 일어나며 슬쩍 등을 떠민다.) ...으음, 그럴까? 맞아, 지하 1층에 있어.
(수건을 의자에 걸쳐두고 나가기 쉽게 문을 열어준다.)
에르드 하이너스:(머릿속으로 뭔가 꿍꿍이를 꾸민다. 문 밖으로 나가서 조용히 엘리베이터에 올라타더니) 와인만 좋아해? 혹시 맥주는 어때?
베아트리체 힐:(버튼을 꾹 누르고 내려가는 층을 바라보다 응? 하고 고개가 돌아간다.) ...응, 맥주도 좋아해. 넌?
(띵- 하고 지하 1층에 멈춰서면, 반걸음 앞에서 부대 마트까지 길을 안내한다.)
에르드 하이너스:난 와인보단 맥주파야. 오늘 전투도 있었고 하니 한 캔씩 하면 어떨까 해서. (마트 안으로 들어서서 식재료들을 두리번거린다)
베아트리체 힐:..아, 그랬구나. (그 옆에 붙어서 따라 걸으며 천천히 둘러본다.) 응, 기억해둘게. (끄덕)
...음, 난 좋은데. ...마셔도 괜찮아?
에르드 하이너스:응. 마시자. 그래도 와인보단 도수가 낮으니 괜찮지 않겠어? (어제까지만 해도 술을 절대로 안 먹여야겠다고 결심한 에르드가 이러는 이유는 명확하다. 베아트리체를 침대에서 재우기 위해서다. 그렇다, 이건 계략이다) 저녁은 뭐 먹을래?
베아트리체 힐:(술은 금지! 라고 했던 그가, 먼저 마시지 않겠냐는 권유에... 홀랑 넘어가 그의 계략은 까마득히 모른 채, 웃으며 끄덕인다.) 음, 뭐가 좋을까. 오늘 고생많았으니까, 최대한 간단한 걸로... (너무 고생시키고 싶지 않다는 생각에 열심히 머리를 굴려본다.) ....샌드위치?
에르드 하이너스:(그의 웃음을 보며 속으로 음흉하게 미소한다. 계략에 걸려들었군. 제 덩치의 절반보다도 더 마른 것 같은데다 곧 쓰러질 것처럼 가녀리기만 한ㅡ에르드적 왜곡이 들어감ㅡ사람을 침대 놔두고 빈백에서 재울 순 없지.) 샌드위치 좋지. 거기에 연어 샐러드도 같이 먹는 건 어때?
베아트리체 힐:좋아, 응. (끄덕, 메뉴 선정이 굉장히 마음에 드는 눈치.) ...참, 에르드는 고기를 더 좋아하지 않아? (어느새 채소 코너에 서서 요리조리 고민한다.)
에르드 하이너스:샌드위치에 고기를 넣으면 좋을 것 같은데. 고기를 얇게 다져서 계란물을 입히면 맛있거든. 어때? 네 것도 그렇게 만들어줘?
에르드 하이너스:그래. 그럼. (계란과 돼지고기, 토마토 등 샌드위치에 들어갈 재료들과 샐러드에 넣을 연어, 드레싱 소스 등을 함께 산다. 맥주 캔 두 개를 사는 것도 잊지 않았다!)
베아트리체 힐:(언제봐도 신기해... 속속들이 담기는 재료들을 신기하게 보다 계산대로 가서 이번에야말로! 먼저 계산을 끝내고 가득 담긴 봉지를 먼저 든다.)
(끄덕) 돌아갈까?
에르드 하이너스:금방 만들어 줄게. (봉지 안 무거운가…… 자신이 든다고 말하고 싶은 눈빛으로 잠깐 보다가 엘리베이터로 향했다.)
베아트리체 힐:(그 눈빛은 못본 척.... 때마침 멈춰선 엘리베이터에 올라탄다. 다시 올라가는 엘리베이터...)
에르드 하이너스:(도착한 후로는 바람처럼 스르륵 샌드위치와 샐러드를 만든다.) 양상추만 좀 씻어줘. (그렇게 부탁하곤 계란을 톡 깨서 잘 저은 뒤에 네모낳게 다진 고기를 잘 담그고 굽기 시작했다. 지글거리는 소리와 함께 군침 도는 냄새가 퍼진다. 각종 재료를 먹기 좋은 크기로 잘 자른다~)
베아트리체 힐:(양상추를 깨끗...하고 뽀독...뽀독...하게 열심히 씻어온다. 어쩐지 조금 너덜너덜해진 양상추를 들고 뒤에서 유심히 지켜본다.) ...언젠가 나도 너처럼 할 수 있을까?
에르드 하이너스:노력하다 보면? (너덜너덜해진 양상추의 모습에 비집고 나오려는 웃음을 참으면서 그릇에 양상추와 채소들을 담고, 깍둑썰기한 연어를 올린 뒤 드레싱을 뿌린다. 양상추의 일부는 두 손으로 감싸고 눌러 숨을 죽인 뒤에 샌드위치에 넣는다. 샌드위치에 고기와 토마토, 노릇노릇하게 구운 계란프라이를 넣어 완성하고, 옆에 맥주캔까지 올려두면 간단한 저녁 식사 완성!)
베아트리체 힐:...음, 노력...이구나. (...? 미묘한 표정에 갸우뚱했다가 에르드의 손 끝에서 펼쳐지는 이능력보다도 진기한 손놀림을 멍하니 지켜본다. ...어느새.) ...와. 잘 먹을게. 오늘도 고마워.
(재료들이 착착 가지런히 쌓인 샌드위치를 한입, 베어물었다. 우물우물...)
...역시 맛있어. (희미하게 반짝이는 눈동자)
에르드 하이너스:입맛에 맞는 것 같아서 다행이네. (만족스럽게 자신이 만든 샌드위치와 샐러드를 먹는다. 샌드위치 하나만으로는 성에 안 찰 걸 대비해서인지 두 개나 여분으로 더 만들어서 새 접시 위에 놓아두고 있다.) 몸에 이상은 없어? 막, 바다에 가고 싶단 생각이 든다던지.
에르드 하이너스:평소보다 조금 피곤하긴 한데, 아직 그런 충동은 안 들어. 솔직히 계속 신경쓰이긴 하네. 착란에 걸려서 나 자신을 잃어버리는 꼴은 질색이거든. (몇 입 먹지도 않았는데 벌써 절반을 넘게 먹었다.)
그 미궁과 관련이 있을까? 애초에, 그런 오래된 유적이 사람을 끌어당길 것 같지는 않지만. 크리쳐가 굳이 바닷속 유적에 관심을 가질 것 같지도 않고.
베아트리체 힐:...응, 그건 싫지. 지독히도. (잠시간 차분히 가라앉은 목소리. 그것도 금세 돌아와 아직도 3분의 2정도 남은 샌드위치를 천천히 먹는다.)
...처음 크리쳐가 나타났던 곳도 그 터였으니까. 전혀 관련이 없을 것 같지는 않아. ...어떻게 관련이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렇게 많은 민간인들이 반응했던 걸 보면, 이능력자들에게만 나타나는 현상도 아닌 것 같고.
에르드 하이너스:아, 신전 터에서 나타났다고 했던가. 크리쳐들끼리 서로 유기적인 작용이라고 하고 있는 건가? 그건 정말 상정하기 싫은 문제인데. (인상을 찌푸리며 새 샌드위치를 집어들어 먹기 시작했다.)
민간인들에게까지 이런 현상이 일어나는 게 제일 이상해. 처음에는 이능력자 한정인 줄 알았는데, 4일이 지난 지금까지도 착란 현상이 발생하고 있잖아. (애초에 단순한 착란이 아닐지도 모르겠지만.) 이러다간 크레타 섬 인구 전체가 놀아나겠어. 어떤 식으로든 빨리 해결을 해야지.
베아트리체 힐:응, 그렇게 된다면... 아마 우리 두 사람만으로는 힘들거야. ...내일 유적지로 가봐야 알겠지만, 다른 지원이 더 필요하게 될지도 모르겠네.
....나도 그 점이 제일 이상하게 느껴져. 섬 인구 전체가... 그렇게 되지 않기를 바라야겠네. (샌드위치 반쪽을 다 먹고 나서야 아직 찬기가 남은 캔을 손에 든다.)
에르드 하이너스:(아직도 반밖에 안 먹은 거야?) 지원이 더 필요할 일은 없길 바라야지. 그리고, 혹시나 너도 바다를 향한 충동이 느껴진다면 바로 말하고. 내가 뭔가 할 수 있는 건 없겠지만…… 적어도 네가 바다로 뛰어들려는 걸 막을 수는 있을 테니까.
(그리고 자신의 맥주 캔도 청량한 소리를 내며 땄다. 건배하겠냐는 듯 캔을 살짝 기울여본다)
베아트리체 힐:(....반쪽이면 충분히 다 먹은 거 아닐까..? 괜히 연어 샐러드도 한입...) 응, 그럴게. 만약 내가 그런 충동에 빠진다고 해도, 너라면 나를 막을 수 있을거야. ...확신해. (살짝 웃으며 맥주 캔을 가볍게 부딫힌다. 캉- 시원한 소리.)
만약 네가 그런 충동에 빠진다면, 나 역시 모든 힘을 다해 널 막을게.
에르드 하이너스:우리의 능력이 서로를 막는 데 최적화되어 있으니 다행이지. (긴장과 불안이 모두 풀린 편안한 낯으로 피식 웃으며 캔을 부딪혔다. 낯선 공간에서 이토록 편안한 심정으로 있어본 게 얼마만이지. 어딜 가든 금세 일부분처럼 자연스러운 광경으로 녹아드는 그였지만, 마음속으로는 언제나 모두를 경계하고 있었다. 관계를 맺지 않으려 드는 사람의 속내란 으레 그런 법이니까. 그러나 이 그리스의 풍경이 어딜 보아도 아름답고 평온해서 그런 것인지, 처음으로 만든 파트너에게서 느껴지는 단단한 유대감 덕분인지 그는 최근 몇 년간 보냈던 어떤 순간보다도 평화라는 단어를 실감할 수 있었다.)
너무 많이 마시진 마. (가볍게 조언하곤 시원한 맥주를 들이켰다. 탄산수가 목을 타고 넘어가는 느낌이 퍽 좋았다.)
베아트리체 힐:...맞아. (결국 가벼운 웃음소리가 흐른다.) 내가 생각한 것보다, 우리는 훨씬- (너와 내가 아닌 우리, 고작 며칠 사이에 그와 자신을 한데 묶어서 말한다. 막상 직접 겪은 지는 얼마 되지 않으면서도, 어쩌면 누구보다 가장 마음을 터놓은 이가 아닐까. 희미한 생각을 조금 따끔하고 청량한 탄산과 함께 삼켜버린다.)
...잘 맞는 게 아닐까. (나지막하게 읊조리며 환하게 웃었다. 평소에 잘 짓지않는 웃음이 에르드의 앞에서는 이리도 쉽게 튀어나오니, 신기할 노릇이었다.)
...많이 마시고 싶어도 한 캔이 다 인걸. (앞서가는 마음을 다 잡으려는 듯 괜히 덧붙인다.)
에르드 하이너스:(우리.길지 않은 평생이었지만 누군가와 그런 단어로 얽혀본 적은 손에 꼽을 수 있을 정도로 드물었다. 여전히 이질적인 단어였다. 그래도 거부감만 느껴지지는 않는 건, 함께 묶인 상대가 눈앞의 베아트리체이기 때문이겠지. 잘 맞는다는 말에 부정하고 싶지 않아지는 것 또한. 그는 애초에 누군가의 얼굴에 깊게 시선을 두는 편이 아니었다. 그런데 베아트리체의 웃음은 저의 두 눈을 밧줄마냥 사로잡는다. 웃는 모습이 아름답다는, 저에게는 더없이 어색하기만 한 감상을 피어오르게 만든다.)
그런지도 모르겠네. (미소하며 이번에도 두 번만에 맥주캔의 반을 넘게 들이마셨다. 그리스에 온 이래로 처음 겪는 것들이 점점 늘어나고 있었다.)
그럼 천천히 마시기라도 해. (베아트리체의 안색이 붉어지거나 말이 늘어지는지 주의깊게 관찰하기 시작한다.)
베아트리체 힐:(...그도 알까, 본인이 어떤 얼굴을 하고 있는지. 그 빛을 조금도 놓치고 싶지 않아서 제게 드리워지는 시선을 피하지 않고 온전히 마주한다. 부정하지 않는 그의 웃는 낯에 어쩐지 저 한구석이 간지러운 것 같기도 하고, ...맥주 때문인가? 벌써 열이 조금 오르는 것 같기도 하고. 제 양 볼에 두손을 가져갔다가 다시 내린다.)
(...천천히 마시라는 말이 무색하게도 괜히 맥주만 급하게 꼴깍 들이킨다.)
...이 정도는 괜찮아, 괜찮아. (...미묘하게 풀어진 낯. 늘어지는...듯한 말투.)
에르드 하이너스:괜찮다는 말을 두 번 했는데. (손을 뻗어 그의 캔을 살짝 잡고 흔들어본다. 몇 모금 안 마신 것 같은데 벌써? 술이 정말 약하긴 약하구나. 이러면서도 좋아한다니, 베아트리체에겐 참 안된 일이다.) 애초에 어쩌다 술을 그렇게 좋아하게 된 거야? 마실 기회도 많지 않았을 것 같은데.
베아트리체 힐:응, 괜찮아. (반쯤 마신 캔을 만지작거린다.) ....으음, 그러니까... 마시고 난 후의 기분이 좋아. 현실과 동떨어진 것 같은 기분. 무엇도 신경 쓰지 않아도 될 것 같은 기분이 들어서.
에르드 하이너스:현실에선…… 신경써야 할 게 많으니까? 구체적으로 어떤 것들? (거의 비어가는 제 맥주 캔을 손끝으로 두드린다.)
베아트리체 힐:..... .....응. (캔의 입구를 매만진다.) ...주변의 시선. 그리고 패널티도. ...술을 마시면 몽롱하게 느껴져. ...예전에 누가 그건 현실도피라면서 화낸 적도 있었는데. 그래도 이게 왜 인지 마음이 편해져서.
(늘 남들을 신경 쓰느라 자신의 이야기는 쉽게 터놓지 못하는 성격도 한 몫을 함이 틀림없었다.)
에르드 하이너스:누구나 현실에서 도망치고 싶을 때가 있는 법이지. (문득, 각성자가 되기 이전의 삶이 떠오른다. 아무리 많은 시간이 지나도 그때를 결코 잊을 순 없겠지. 도망치고 싶었고, 기적처럼 능력이 각성하였다. 따라서 그는 과거의 그에게서 훌륭하게 달아난 셈이었지만…… 완전히 떨쳐낼 수는 없었다. 그 시절은 '스킨십을 거부하는 안내자'라는 이명으로서 여전히 남아 있었다. 당신에게도 저처럼 괴로운 현실들이 있는 거겠지. 그걸 속시원하게 해결하지도 못할 테고. 그를 본 지는 고작 이틀이었지만 금세 성격을 파악할 수 있었다.)
이제 이해가 되네. 너무 쉽게 취해서 무방비해지는 점은 좀, 많이 걱정되지만 말야. 그래도 내일이 있으니까 너무 취하지는 않는 게 좋을 거야. 참, 숙취는 어떻고?
베아트리체 힐:...그렇게 말해줘서 고마워, 정말로. (어느새 조금 식은 액체를 마저 들이키고 입을 연다.) ...무례한 말일지도 모르지만, 어쩌면 네게도 더한 힘든 일이 있지 않았을까. ...생각했어. 너는 이렇게 나를 이해해주니까.
(그의 손등에 제 손을 얹으며 다시 웃어보인다.) ...무방비하지 않은데. 으음, 머리는 괜찮아. 속도... 괜찮고. (끄덕이며 제 상태를 살핀다.)
(비어버린 캔을 테이블 위에 올려둔다. 발갛게 달아오른 볼.) ...다 먹었어?
에르드 하이너스:별로 무례하진 않아. …… 그래. 나에게도 고통스러운 시절이 있었어. 누가 더 힘들었다 아니다, 비교하고 싶진 않지만. (이 정도의 술로 제가 취할 리 없는데, 분위기에 취하기라도 한 걸까. 그 누구에게도 한 적 없던 자신의 이야기를 조금이나마 풀어놓고 있으니.) 네 말대로 너를 이해할 수 있었던 게 그 때문인지도 모르지. (누군가를 이해한다는 건 이러한 감각이구나. 베아트리체의 존재감이 제 안에서 물결마냥 퍼져나간다.)
(어째서일까? 당신에게만 이토록 경계의 벽이 낮아지는 것은. 이걸 노리고 한 방을 쓰게끔 했나 싶을 정도였다.) 벌써 볼이 빨간데. (지적인지 걱정인지 구분하기 어려운 투로 말하곤 제 캔에 남아있던 맥주를 전부 마셔 버렸다.)
베아트리체 힐:... ...응. 나는 괜찮아. 정말. (앞뒤가 맞지 않는 대답. 느릿하게 깜빡이는 눈 안으로 걱정과 미안함, 안쓰러움과 대견함, 다양한 감정이 뒤섞였다가 사라진다. 한참을 가만히 들여보다, 자리에서 비척 일어나 건너편으로, 천천히 다가간다.)
(그리고는 아주 천천히, 언제든 도망가도 좋을만큼 느린 속도로 팔을 들어 올린다. 금방이라도 품에 당신을 안을 것처럼.)
에르드 하이너스:(의자에서 일어나 다가오는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본다. 처음에는 뭔가 가지러 오는 거겠거니 하며 별 생각 없었지만, 점점 거리가 가까워지고 팔이 올라가자 작게 움찔하며 몸이 굳는다.) …… 뭐 하려고? (그를 제지하지는 않았다. 분명 저에게 닿고 말 텐데, 그 미래가 눈에 훤한데도 왠지 그러고 싶은 기분이 들지 않았다.)
베아트리체 힐:... ...그냥, 안아주고 싶어서. (미묘하게 물기가 어린 목소리였을까. 그리고는 자신의 품에, 안긴 건지, 안은건지 모를만큼 가득. 온기가 닿을만큼 끌어안는다. 그리고 가만, 어르듯 다정한 손길로 토닥토닥 두드린다.)
(위로 하는지 위로 받는지. 서로의 체온이 비슷하게 맞아들어갈 때까지.)
에르드 하이너스:……. (입술을 달싹였지만 소리가 새어나오지는 않았다. 무슨 말을 해야 할지 알 수가 없었다. 왜 나를 안아주는 거지? 그러면 네게 무슨 이득이 있다고? 나를 껴안고 무얼 하고 싶은데? 그 어떤 질문도 지금은 적절하지 않은 것 같았다. 그래서 그는 그냥 아주 어색한 이 감각에 던져지기로 결심했다. 누군가의 체온이 온몸으로 느껴진다. 타인과의 접촉은 기껏해야 손을 잡는 게 전부였다. 십 년을 넘게, 아니, 이십 년이 가깝도록 그리 살아왔는데, 누군가와의 포옹이라니.)
(제가 정한 선을 성큼 넘어 들어오는 사람. 포옹은 무척 어색했고, 조금은 불편하기도 했지만 그는 한동안 그 자세 그대로 있었다. 일단은 베아트리체가 저보다 한참 덩치가 작아 저를 물리적으로 해칠 수 없는 사람이었기 때문이고, 두 번째로는 그에게 자신을 해칠 마음 자체가 없음을 알았기 때문이었다.)
(그는 베아트리체가 다시 멀어질 때까지 아무 말도 없이 있었다. 긴장했던 몸에서 천천히 힘이 풀린다. 베아트리체에게 느껴지는 이 감정의 이름을 무어라고 명명해야 하는 걸까? 특별함, 이것 하나만은 분명했다.)
베아트리체 힐:(...필요에 의한 것이 아닌, 그렇다고 특별한 이유가 있는 것도 아닌. 그저 따스한 포옹. 한마디 말없이 오롯이 자신의 마음이 닿기를 바란 행동이었다. 서로에 대한 위로이자, 아직 이름 짓지 못한 미약한 당신을 향한 자신의 마음.)
(타인에게 두껍고 높은 거대한 벽을 세우고 선을 긋고 밀어내려 해도, 결국 제게 보인 그 안의 다정함을 그렇게 툭 내뱉었다.)
...조금 취했나보다. (그리고는 헤실, 웃어넘긴다.)
에르드 하이너스:(자신이 경계심을 모두 내려놓은 것처럼, 베아트리체 또한 걱정과 불안을 모두 물 속으로 풀어버린 것만 같은 낯이었다. 유순하고 섬세한 얼굴로 짓는 웃음, 사과처럼 발간 뺨은 에르드에게 다시 한 번 생경한 감정을 불러일으킨다. 아름답다는 감상을 넘어…… 꼭, 보호본능 같은 것이었다. 우습게도. 베아트리체는 자신의 보호 따위는 전혀 필요없는 강한 지휘자인데. 하지만 현실에서 도피하고 싶어 술을 마신다는 모습이나 패널티를 설명하며 제 눈치를 보던 모습이 눈앞에 떠오르면, 따뜻하다 말하는 이가 아주 여리고 연약해 보였다.)
그래…… 취한 것 같네. 이만 자야겠다. (발개진 그의 뺨을 쓸어주려는 듯 무심코 손이 얼굴 근처까지 올라갔다가 다시 툭 떨어진다. 여전히 그에게 스킨십은 작정하지 않으면 먼저 건네기 어려운 종류였다.)
베아트리체 힐:(서로의 시선이 얽히고, 떠오르는 생경한 감정들을 어지러운 머리로는 종잡을 수 없어 지금은 잠시 묻어두기로 한다. 떠올리기도 전에 잃을까, 내심 겁이 난 탓이었다. 고개를 끄덕이며 답하려는 찰나, 제가 다가오던 손길이 다시금 멀어지는 것에 가슴이 허하게, 마치 구멍이 난 것처럼 시리다.)
(놓으려고 해도 자꾸만 붙잡고 싶어지는. 결국 그 마음을 참지 못하고 떨어진 그의 손을 잡아 든다. 제 뺨에 살짝 가져갔다가 소중히 놓아준다.)
에르드 하이너스:너는……. (무언가 말하려다 말고 제 아랫입술을 지그시 깨물며 손을 쥐었다 편다. 아직도 불그스레한 외양처럼 열기가 돌던 부드러운 살갗의 촉감이 남아 있었다. 정말이지 그런 얼굴로 선을 불쑥불쑥 넘나든다니까. 악의라곤 털끝만큼도 보이지 않으니 뭐라 화를 낼 수도 없잖아. 게다가 당황하고 놀라긴 했지만 손끝에 닿았던 찰나의 감각이 결코 부정적으로만 느껴지지는 않았다. 그래서 더욱 혼란스러웠다.)
(침대 앞에서 별안간 우뚝 서서, 눈을 동그랗게 뜨고 올려본다.) ....또 바닥에서 잘거지.
에르드 하이너스:아니. 아냐. (충분히 취한 줄 알았는데, 갑자기 동그란 눈으로 물어오는 통에 시선을 옆으로 슬그머니 피한다.) 나도 여기서 잘 테니까. 자, 그러니까 얼른 옷 갈아입고 눕자.
베아트리체 힐:... ... ...정말? (눈을 깜빡이다 활짝 웃는다.) ..옷 갈아입을게. (휘청, 옷장으로 걸어가 마땅한 옷을 찾는다. )
에르드 하이너스:(죄책감은 느끼지 않을 것이다. 이런 무방비한 사람과 만난 지 이틀 만에 같은 침대를 쓴다는 건 에르드의 사전에 존재하지 않는 말이니까.) 그래, 그래.
베아트리체 힐:(... ...한참을 뒤적거린 끝에 커다란 티셔츠를 하나 꺼내들고 휙 돌아본다.) 이정도면 될까?
에르드 하이너스:(좀 크지 않나?) 뭐든 네가 입고 자기 편하다면야.
베아트리체 힐:(끄덕이고는 그 옆의 작은 드레스 룸으로 들어가 생각보다 빠르게 갈아입고 나온다. ...티셔츠라기보다는 원피스에 가까운 길이.) ..넌? 안 갈아입어도 돼?
에르드 하이너스:(바지는 어디 있냐고 물어보려고 했는데 안 그래도 되겠군.) 난 네가 눕고 나면 갈아입을 테니까.
베아트리체 힐:(...으음, 몽롱하게 풀린 눈으로 아주... 의심스럽게 바라보며 자박자박 앞에 와 선다.) 정말이지..?
(얌전히 침대에 툭 걸터앉는가 싶더니, 가까이 오라는 듯 손을 가만히 까닥인다.)
에르드 하이너스:(술을 더 먹여야 했나…… 같은 못된 생각을 하면서 그에게로 다가갔다.)
베아트리체 힐:(가까워지면, 잠투정과 술기운이 뒤섞인건지 한층 풀린 얼굴로 목덜미를 꼭 끌어안고 귓가에 속삭인다.) .... ... ...잘자, 거짓말쟁이.
에르드 하이너스:(또 거리감이라곤 사라진 스킨십이 다가오자 이번에야말로 당황해서 몸이 굳었다. 너는 왜 이렇게 나에게 가까이 다가오려 하는 걸까. 그 바람에 '거짓말쟁이' 라는 말은 한 박자 늦게 알아들었다. …… 알고 보니 능력이 거짓 간파였나.)
아무리 그래도 잠옷도 안 갈아입고 냅다 눕는 사람은 아니니까. (이 말이 아니겠지만, 아무튼 베아트리체가 누울 때까지 제 팔을 꼬아 팔짱을 끼고 내려다본다.)
베아트리체 힐:(농담인지 아닌지 모를 얼굴로 여전히 헤실, 웃다가 그대로 푹 쓰러지듯 눕는다.) ... ... ...나 자면, 손 잡아 줘. ....혼자 두면 안돼.
(...까물까물, 눈을 감는다.)
에르드 하이너스:손을? (어이없단 듯 되묻는다. 베아트리체가 완전히 눈을 감고 고른 숨을 내쉬기 시작하고서야 한숨과 함께 침대에 걸터앉았다.) 내가 널 만나기 전에는 스킨십을 피해 왔다는 걸 잊은 거야, 모른 척하는 거야?
자라는 건지 말라는 건지…… (투덜거리며 편한 옷으로 갈아입고는 빈백에 눕는다. 몸을 돌려 잠든 베아트리체 쪽을 물끄럼 바라보았다. 몸은 꽤 피곤했지만 오래 잠이 오지 않을 듯했다. 이 정도면 많이 받아주었다 싶어, 베아트리체가 말한 대로 손을 잡을 마음까진 없었지만…… 직전의 저녁 시간, 그는 자신의 안으로 들어왔다. 그리고 바위처럼 굳건하던 제 마음을 휘저어놓았다. 창밖에 뜬 달빛처럼 분명한 사실이었다.)
아테네 지부장:그래. 유적지에 연구원들이 많으니, 자세한 것은 그쪽에서 설명해줄걸세. 부디 조심히 다녀오게.
에르드 하이너스:알겠습니다. (간결히 대답하곤 헬기 탑승장으로 향한다.)
두 사람은 헬기 탑승장으로 이동합니다.
시끄러운 바람을 뚫고 헬기에 탑승하면,
본래 이 커다란 헬기에는 양옆으로 지휘자와 안내자들이 주르륵 앉아서 브리핑을 듣거나, 쉬곤 했는데 오늘은 적막하군요.
지체 없이 높게 뜬 헬기는 부대를 넘어서고, 펼쳐져 있는 넓은 바다 위를 지납니다.
얼마간 비행하면 저편에 커다란 섬이 보이고 두 사람은 곧 그 섬에 내립니다.
본래라면 관광객들로 붐볐을 이곳은 시야를 넓게 해보아도 궁전의 터만 보일 뿐 민간인은 하나도 없이 연구원과 직원들 뿐입니다.
다크써클이 광대까지 내려온 듯 보이는 피로한 인상의 연구원 하나가 두 사람에게 다가와 능력자 방어구용으로 만들어진 조끼를 건네줍니다.
에르드 하이너스:(감상은 뒤로하고 조끼를 걸쳐입는다.) 특별히 신경써야 할 사항이 있습니까?
연구원:(조끼를 착용하는 모습을 꼼꼼히 확인하고 끄덕인다.) 신전터로 이동하면서 전달해드릴게요. 이쪽이에요.
베아트리체 힐:(조끼를 갖춰 입으며 뒤따라간다.)
걸어가고 있노라면 오래된 궁전의 터.
무너진 담벼락과 오랜 세월이 느껴지는 계단. 복원되어있는 작은 지붕과 미술품, 도자기 같은 것들이 보입니다.
연구원은 두 사람을 궁전의 중앙 쪽으로 안내합니다.
연구원:(파일에 펜으로 무언가 죽 적어내려간다...) 으음, 그러니까- 우선은, 안 그래도 아까 막 입구로 보이는 곳을 발굴했어요. 죽은 크리쳐가 엉겨 붙어있던 장소에 여전히 크리쳐 반응이 있어 파내다 보니, 지하에 존재하고 있더군요. 저희 연구팀에서는 그 아래에 ‘태어나지’ 못한 것들이 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거대한 문이 있었어요.
에르드 하이너스:크리쳐 반응이 나타나 가본 곳에 크리쳐 대신 문이 있었다는 겁니까? 문의 너머에 있을지도 모르겠군.
연구원:네, 그렇죠. ..만약 이게 정말 미궁이라면, 에르드님이 말씀하신 것처럼 안에 함정이나 다른 크리쳐가 있을 수도 있거든요. 그래서 두 분과 함께 연구원들로 이뤄진 다른 팀이 같이 유적 탐방에 투입될 예정이에요. 일단 문 안을 살펴봐야 알겠지만 유적 크기가 워낙 상당하다보니… 다른 능력자 페어가 두어페어 추가 될 수도 있겠네요. (끄적끄적)
에르드 하이너스:추가 지원 요청을 했나 보군요. 현재 그리스엔 남은 이능력자가 저희 외엔 없는 걸로 아는데.
연구원:뭐어, 그렇죠. 사실 먼저 문이 열려야 겠지만요. ..우후후.. 그렇게 된다면 다른 나라로 지원 신청이 갈거에요.
아직 문이 열리지가 않아서요, 무리하다간 무너질 가능성이 있어서 다들 진땀 빼면서 이리저리 시도 중이구요.
..으음, 그러니 오늘은 우선 이 문을 여는 것에 주력하고, 만약 열린다면 안쪽을 조금만 살펴봐주시면 좋겠어요.
에르드 하이너스:(고개를 끄덕였다.) 혹시나 입구가 무너질 경우엔 제가 잔해들을 '멈출' 수 있을 겁니다. 일단 가보죠.
연구원:그때는 잘 부탁드릴게요? 두 달 뒤에 저희 딸애 생일까지는 꼭 살아있고 싶거든요.. 우후후...
이야기를 들으며 도착한 신전터는, 연구원의 말처럼 아주 커다란 구덩이가 파여있는 상태입니다.
거대한 씽크홀처럼 보이기도 한..
공동에서 불어오는 바람결에 미묘한 위화감이 스쳐지나갑니다.
아래쪽으로 내려가는 데에는 간이 엘레베이터를 사용하고 있네요.
내려가보면 연구원 몇몇이 모여있는 장소에 [거대한 문] 형태의 유적이 있습니다.
에르드 하이너스:(저 연구원은 잔해에 맞을 걱정보단 과로사 걱정을 먼저 해야 할 것 같은데.)
(그나저나, 또 이 위화감이다. 대체 뭐지. 인상을 작게 찡그리며 문 앞에 다가가 섰다.)
대형 크리쳐 정도는 쉽게 들어갈 정도로 장중한 문에 조각이 빼곡하군요.
그저 유적지일 뿐일텐데도 에르드는 어쩐지 압도되는 기분을 느낍니다.
마치 이 공간 전체가 숨죽인 것과도 같은 느낌이 들어요.
에르드 하이너스:(언제 크리쳐가 나타날지 모른다. 경계를 끌어올리며 문 주변을 주의깊게 살폈다.) 잠금 장치라도 있는 건가?
베아트리체 힐:(어느새 다시 옆으로 다가와 같이 유심히 살펴본다.)
문을 살펴보면, 손쉽게 조각이 말하고자 하는 바를 알 수 있습니다.
광활한 바다와 숲, 그 위에 높이높이 뜬 태양은 바람을 타고? 혹은 날개를 단 채 세상에 찬란한 빛을 뿜어내고 있는 게,
무한한 평화와 자연, 만물에 미치는 태양의 은혜를 주제로 조각한 것이라고 추정할 수 있겠네요.
다만.. 문을 열만한 홈이나 손잡이가 보이지 않습니다.
베아트리체 힐:... ...정말 열만한 틈이 전혀 없네. (문을 천천히 더듬어본다.)
에르드 하이너스:(먼 옛날에 이만한 걸 만들었다니, 대단하긴 하네. 감상은 짧고, 문을 열 수 있을 만한 방법을 찾는 데 집중한다.) 부숴야 하나.
그런 생각도 잠시.
문을 살펴보던 베아트리체가 문에 손을 대고 조금 지나면,
우르릉, 묵직한 울림이 들려옵니다.
그리고 동시에-
와지끈.
마치 거대한 크리쳐가 아가리를 벌린 것 같이 빠르게 갈라지는 발 밑.
부유감이 든다고 생각하기도 전에 몸이 추락합니다.
순식간에 시야가 어둡게 떨어지고-
“지휘자님!” “-안내자님!”
추락을 인지하자마자 빛과 위쪽의 목소리는 이미 한참 멀어져 있습니다.
에르드 하이너스:(발밑이 꺼지는 듯하다 생각했을 땐 이미 벗어나기엔 늦었다. 삽시간에 느껴지는 부유감과 함께 추락하기 시작한다.) 어떻게 된 거지?! (본능적으로 저와 베아트리체를 허공에 멈춰보려 한다. 가능한가?)
에르드 하이너스:젠장, 얼마나 깊은 거야? (갈고리가 사나운 소리만을 내며 튕겨나가자 욕설을 내뱉는다. 능력이 제대로 통하지 않는 상황에서는 차라리 구멍이 깊은 게 다행이긴 하지만, 이래서야 정말 추락사하겠어. 다시 한 번 힘을 짜내어본다. 제 능력이야말로 이 상황에 최적이건만.)
석화 Roll
기준치:
15/7/3
굴림:
72
판정결과:
실패
석화 Roll
기준치:
15/7/3
굴림:
7
판정결과:
어려운 성공
석화 Roll
기준치:
15/7/3
굴림:
10
판정결과:
보통 성공
석화 Roll
기준치:
15/7/3
굴림:
18
판정결과:
실패
석화 Roll
기준치:
15/7/3
굴림:
52
판정결과:
실패
베아트리체 힐:..에르드! (한 점 빛 없는 추락에서 그에게로 손을 뻗으며 어떻게든 능력을 끌어모은다. )
타임코어 Roll
기준치:
15/7/3
굴림:
36
판정결과:
실패
타임코어 Roll
기준치:
15/7/3
굴림:
3
판정결과:
극단적 성공
타임코어 Roll
기준치:
15/7/3
굴림:
72
판정결과:
실패
타임코어 Roll
기준치:
15/7/3
굴림:
72
판정결과:
실패
타임코어 Roll
기준치:
15/7/3
굴림:
74
판정결과:
실패
드디어 발동된 두 사람의 이능력이 허공에 잠시간 둘을 붙잡습니다.
그 덕에 추락 속도가 약간 늦춰집니다만... 그것뿐입니다.
다소 느려졌을 뿐 여전히 우리는 추락하고 있습니다.
대체 어디까지, 언제까지 떨어질지 모를 정도의 깊이로.
에르드 하이너스:(간신히 속도가 잦아들었지만 그뿐이다. 파트너를 향해 성마르게 외쳤다.) 틈을 놓치지 마! 다시 갈고리를 던져! (벽을 향해 로프를 거세게 던졌다. 믿을 만한 건 이것뿐이다.)
베아트리체 힐:(제발, 제발. 거센 바람에 휘날리는 머리칼에 시야가 제대로 보이지 않는데도 그저 끄덕인다.) ..너도 조심해!
에르드 하이너스:(저건 또 무슨 무늬지? 눈을 가늘게 뜬다. 잠깐잠깐 이능력이 되돌아올 때 최대한 두 사람을 현 좌표에 고정시키려 하고 있지만 쉽지는 않다. 어둠 속에서 다시금 이능력을 사용한다.)
석화 Roll
기준치:
30/15/6
굴림:
40
판정결과:
실패
석화 Roll
기준치:
30/15/6
굴림:
71
판정결과:
실패
석화 Roll
기준치:
30/15/6
굴림:
97
판정결과:
대실패
석화 Roll
기준치:
30/15/6
굴림:
27
판정결과:
보통 성공
베아트리체 힐:(어지럽게 흘러가는 시야 속에 잠깐 느려진 틈을 타 잔뜩 뻗은 손을 맞잡는다. ...두 사람의 힘이 더해진다면, 어쩌면, 살 수 있을지도 몰라.)
타임코어 Roll
기준치:
30/15/6
굴림:
66
판정결과:
실패
타임코어 Roll
기준치:
30/15/6
굴림:
35
판정결과:
실패
타임코어 Roll
기준치:
30/15/6
굴림:
63
판정결과:
실패
타임코어 Roll
기준치:
30/15/6
굴림:
52
판정결과:
실패
베아트리체 힐:
타임코어 Roll
기준치:
30/15/6
굴림:
69
판정결과:
실패
타임코어 Roll
기준치:
30/15/6
굴림:
11
판정결과:
어려운 성공
느려지는 추락 중에 어설프게 긁힌 돌벽에서 튀어나온 날카로운 파편이 에르드의 피부를 스칩니다.
아찔할 정도로 리바운드가 몰아닥침과 동시에 속도가 느려지고,
맞잡은 두 손, 갈고리에 묶인 로프가 순식간에 팽팽해지더니 뚝 끊어지는 소리가 납니다.
그렇게 ----쿵.
몸속에 존재하는 하나하나의 모든 뼈에 찡하게 울리는 고통.
바닥에 떨어진 순간의 충격 자체는 이능력과 로프가 어느 정도 상쇄했으나,
등과 다리, 뒷통수며 손가락 마디마디를 포함한 모든 신체 구석구석까지 화끈한 통증이 덮쳐옵니다.
두 사람의 체력4차감
에르드 하이너스:(지나치게 능력을 사용하려 시도했더니 손끝에서부터 몸이 굳어져가는 리바운드가 닥쳐온다. 바닥에 닿는 순간 베아트리체를 안고 구르려 했으나 움직임이 둔해진 탓에 그의 허리를 한 팔로 받치는 게 전부였다.) 큭!
임무복이 아니고, 중간에 능력이나 갈고리를 사용하지 않았다면 틀림없이 그대로 즉사했을 것입니다.
머리는 여전히 울려대고 전신은 비명을 지르지만 그것보다 더 급한 것이 있죠.
바로 무리하게 능력을 사용한 베아트리체의 패널티 상태입니다.
돌아보지 않아도 피부로 느낄 수 있습니다.
고통스러운 신체와 흔들리는 정신 속, 자신의 파트너를 무너트리는 거대한 갈망을.
금방이라도 삼켜질 것 같은 차갑고 격렬한 울부짖음을요.
베아트리체 힐:(흐려지는 감각과 몽롱해지는 시야, 가빠오는 숨과 식어가는 손. 추락을 저지한 끝에 겨우 닿은 바닥에서 오는 충격은 감각들을 가속화 시킨다.)
... ...하아-... (가쁜 숨을 몰아쉬며 제 의지와는 상관없이 사시나무 떨듯 와들와들 떨리는 손이 겨우 조끼를 더듬어 조끼에 구비된 안정제를 찾는다.)
정신
기준치:
60/30/12
굴림:
35
판정결과:
보통 성공
(겨우 찾은 약병을 열지도 못하고 숨만 몰아쉰다.)
에르드 하이너스:베아트리체. 괜찮아?! (한 차례 충격파가 휩쓸고 지나간 뒤, 급하게 그의 상태를 확인한다. 뒤늦게나마 그를 끌어안으며 방사 가이딩을 행했다.)
베아트리체 힐:(...숨, 숨이... 가빠오는 숨, 꿈과 현실을 오가는 듯한 풍경. 잔뜩 날이 선 오감에 깨질 듯한 머리. 환청과 환각에 물든 주변이 시시각각 변화하고 무너지며, 정신이 녹아내리고- 침잠해간다. 그 와중에도 오로지 에르드, 그만이 일그러지지 않고, 온전히, 비현실적인 만큼 선명하게 짙은 어둠 속에 한줄기 구원처럼 빛나고 있다.)
...에...에르드?
에르드 하이너스:그래, 나야. (방사 가이딩을 시작하며 흘러나온 금빛 안개가 주변을 희미하게나마 밝힌다. 그 틈에 급하게 베아트리체의 호흡과 시선의 방향을 확인한다. 딱 봐도 상태가 좋지 않았다. 그의 몸을 조금 더 강하게 끌어안았다.) 숨을 천천히 쉬어봐. 괜찮아, 내가 있어.
베아트리체 힐:(...싫어. 나 자신이 아니게 되는 기분이 끔찍이도 싫었다. 영원히 익숙해질 수 없는 감각. 싸늘하게 식어가는 제 몸에 점점 퍼져가는 희미한 온기. 그 온기를 놓치기 싫어서 두 팔로 목을 끌어안고, 굳어가는 숨을 들이마시고 내뱉는다.)
... ..목이... 타들어가는 것.. 같아...
에르드 하이너스:(포옹으로는 안 되는 건가? 파트너의 꺼질 듯한 목소리에 초조해진다. 에르드의 체온은 평균보다 높았다. 그런 뜨거운 몸으로 당신을 거세게 껴안고 있는데, 어째서 몸이 점점 차가워져 가는 거지?) 내가…… 내가 뭘 하면 되겠어?
베아트리체 힐:(품에 매달려 아이처럼 고개를 내저었다. 그리고는 다시 숨을 몇 번이고 들이마시고 내쉬기를 반복한다. ...아직은 괜찮아. ....괜찮아, 몇 번이고 겪어왔으니까. 천천히 고개를 들어 얼굴을 마주한다.) ..넌. ...넌 괜찮은거야?
에르드 하이너스:난 참을만 해. 리바운드만 아니었어도 네가 추락의 충격은 받지 않게끔 했을 텐데. (스스로가 불만스러워 미간을 찡그렸다.) 나보다는 네가 더 중요하지. 패널티도 패널티인데다가 같이 떨어졌잖아. (최대한 느릿느릿하고 진중한 목소리로 말하며 진정된 분위기를 만드려 애쓴다.) 나와 호흡의 속도를 맞춰. (천천히 숨을 들이마시고, 잠시간 머금었다가 느리게 내뱉었다.)
베아트리체 힐:(떨리는 손끝이 뺨에 닿았다가 떨어진다. 그런 표정은 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처럼.) ..그래도, 네가, 도와 줬으니까... 괜찮, .. ...고마워... (숨을 최대한 느리게 쉬어보려 애쓴다. 몇 번이고 넘어갈 것 같던 숨이 조금씩, 조금씩 돌아온다.)
에르드 하이너스:(그는 지금껏 파트너를 만들어본 적 없었기에, 파트너와 급박한 상황을 함께 해본 적도 없었다. 경미한 패널티에 시달리는 지휘자에게 가이딩을 해준 게 전부였다. 단단한 유대로 묶인 이가 금세라도 숨이 넘어갈 듯이 격한 패널티에 시달리는 순간은 처음 겪는 것이었다. 그 때문이겠지, 이토록 불안하고 어지럽게 뛰는 심장은. 당신을 잃어버릴지도 모른다는 걱정이 늪처럼 차오르는 것은. 포옹 이상의 가이딩을 할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던 차에 겨우 파트너의 호흡이 잡힌다. 베아트리체의 등을 연신 쓸어내리면서 제 속도에 맞출 수 있도록 계속해서 느린 숨을 내쉬었다.)
베아트리체 힐:(...그의 속도에 맞춰 숨쉬기를 여러 번, 그 와중에도 울컥 치미는 고통과 갈망에 이를 악물기도 하고, 다시금 그의 온기에, 또 그의 목에 매달려 고개를 파묻었다. 숨길이, 입술이 목에 앉았다가 떨어진다.) ... ... ...조금만, ..조금만 더.. 참아볼게. 너무 폐 끼치고 싶지 않으니까...
에르드 하이너스:폐를 끼친단 생각 하지 마. (평소라면 결코 적응하지 못했을 스킨십이건만, 당신을 살려야 한다는 일념 때문인지 전혀 불쾌하게 느껴지지 않았다.) 패널티를 걱정하지 않게 해 주겠다고 했잖아. (그래. 당신과 만났던 첫날 분명 자신이 한 말이다. 처음부터 각오하고 온 게 아니었던가. 이미 그는 베아트리체에 의해 알지 못하던 미지의 영역에 잔뜩 발을 들여놓았지만, 더한 미지로 향할 것을 짐작하면서도 그 말을 한다.) 네가 원하는 대로 해. (당신이 죽는 건 원하지 않으니까.)
베아트리체 힐:...그렇지..만, (평소라면 ..이렇게 망설이지는 않았을 것이다. ...끊어지고 다시금 이어지는 숨. ...각오는 자신만 하면 된다고 생각했다. 조금만 참으면, 조금만 노력하면, 조금만 이능력을 자제하면 될 거라고. ...결국 이렇게 될 줄 알았으면서도. ...지나치게 예민해진 감각 탓일까, ...감정이 뒤죽박죽 섞이는 탓일까, 어지러운 머리로는 종잡을 수 없지만, ...계속 피하고 싶지는 않았다.)
... ...미안..해. (눈 앞이 물기로 일그러진다. ...차게 식었다가 다시금 끓는 체온 탓이겠지. ..분명 그럴테다. 숨을 크게 들이 쉬었다. 붙어있던 품에서 떨어지는 가 싶으면 시야 가득히, 서로를 담고, 입술을 가볍게 겹친다.)
에르드 하이너스:괜찮아. (괜찮아, 낮은 목소리로 재차 속삭였다. 베아트리체의 긴 머리칼을 쓸어내리는 손길은 단단했고 또한 다정했다.) 지금은 오로지 너 자신만 생각해.
(스킨십을 각오하고 비행기에 올랐지만 실제로 겪는다면 퍽 불쾌한 일일 거라고 생각했다. 괜히 가이딩을 꺼려왔던 게 아니었으니까. 하지만 어젯밤 베아트리체의 포옹을 받았을 때나 그의 뺨을 감쌌을 때, 어색하고 놀라기는 했어도 부정적인 감정은 느껴지지 않았었다. 그때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지만 마치 지금을 위한 준비 단계라도 거쳐온 것 같다. 어렴풋 무엇이 이어질지 짐작하고 있었으므로 가까워지는 당신의 얼굴을 피하지 않았다. 금빛이 반사되어 아른거리는 그의 젖은 눈가가 아름답다는, 상황과 어울리지 않는 감상이 들었을 뿐이다.)
( 마침내 입술이 맞닿는다. 상대의 체온이 전해져 온다. 지금껏 상상도 해본 적 없는 방식으로. 눈을 감지는 않았으나 등줄기를 타고 찌릿한 전율이 퍼져왔다. 이것이 세간에서 말하는 입맞춤이던가. 어째서 키스가 그토록 애틋하고 짜릿한 스킨십의 대명사로 꼽히는지 알 것 같았다. 그러나 지금은 제 감상에 몰두할 때가 아니다. 의식적으로 감상을 지우고 베아트리체에게 집중한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가만히, 베아트리체가 원하는 만큼 온기를 얻도록 두었다.)
베아트리체 힐:(... ...괜찮다는 저 속삭임이, 왜 이리도 따듯하게 들리는건지. 그 어떤 말보다도 다정했다. 감은 눈가에 시야를 가리던 물기가 한방울 떨어져 내린다. 다시, 끓는 불덩이 같은 제 몸과 맞닿은 다정하고 상냥한, 돌처럼 굳어져가던 몸. 그 위로 겹쳐지는 숨. 부서지는 생각. 사그라드는 자아 속에서도 .. ….본의이든 아니든 가장 원해마지않는 존재.)
(몇 번이고 반복했을 일이, 이 순간만큼은 확연히 다른 감각과 감정으로 다가온다. 마치, 태어나 처음 겪는 것처럼 느껴져 차분히 가라앉는 숨과는 반대로 심장박동은 빨라진다. 이내 섞이는 숨에 모든 것들이 천천히 제자리를 찾는다. 감은 팔을 풀어내고 그의 품에서 조금 떨어지고 나서야, 감은 눈을 천천히 떠올린다.)
....고마워. (진정되고 편안한 숨.)
에르드 하이너스:(지금껏 바위처럼 굳건하고 일관적이던 자신의 삶이 베아트리체를 만나고부터는 새로운 파도에 휩쓸리는 듯했다. 처음에는 발목이 잠겼고, 다음은 허리, 이번에는 머리끝까지 잠긴다. 위협적이고 거친 심해가 아닌, 햇살을 가득 받아 따뜻하고 평온한 바닷속이었다. 모든 것이 새롭고 이질적이어서 자꾸만 되돌아보게 돼.)
(베아트리체에게 집중하려 노력하고는 있었지만 입맞춤이라는 스킨십에 어쩔 수 없이 의식이 조금씩 쏠린다. 주변이 어두워서일까, 더더욱 억겁처럼 느껴지는 시간이었다. 베아트리체가 떨어져나가면 그제야 현실감이 되돌아온다. 조금은 잠긴 목소리로 물었다.) 좀 나아졌어?
베아트리체 힐:(...지나치게 예민해졌던 오감 탓일까. 괜스레 제 입술만 더듬어보다, 잠긴 목소리에 시선을 맞춘다. 그리고는 잠시 말없이 고개만 끄덕인다.) ..응, 덕분에.
(어둠 속에서도 그가 너무나 선명하게 보여서, 괜히 시선을 옆으로 흘렸다.) ...넌, 괜찮아?
에르드 하이너스:(직전의 상황에 온 신경이 몰렸던 탓인지, 그제서야 추락할 때 부딪히고 긁힌 곳의 통증이 조금씩 느껴지기 시작한다.) 타박상이랑 긁힌 데가 좀 있는 것 같긴 한데, 이 정도쯤 괜찮아. (시선을 맞출 수가 없어서, 괜히 주변을 살펴보기나 한다.)
베아트리체 힐:.. ...응. 다, 다행이야. (괜히 고개도 끄덕이며 주변을 같이 살펴본다.)
...조금 진정 되었을까요?
격류처럼 지나간 접촉 후 두 사람에게 뒤늦은 아픔이 재차 몰려듭니다.
고통으로 인한 화끈한 열기, 흥분으로 인해 끓던 피가 식자 몸에 한기가 훅 와닿아 춥군요.
문득 바라보면 벽에 드문드문, 정교한 홈이 파여있고 기름 먹은 천을 두른 막대기가 곳곳에 걸려있으므로 새로이 불을 붙여 들고 다녀도 괜찮겠습니다.
베아트리체 힐:...방금 지나온 곳인 것 같아. (나이프를 꺼내 벽 한 쪽에 다른 표식을 남겨둔다.)
에르드 하이너스:(일단 새 막대기에 불을 옮겨붙인다. 이거라도 여러 개 있어서 다행이다. 시야를 밝혀주는데다 추운 공기 속에서 열을 얻을 수 있는 수단이니.) 그럼 이번엔 반대쪽으로 가보자고.
베아트리체 힐:(다시 환한 빛을 내는 새 횃불을 들여보다 끄덕인다.) ...이렇게 오래된 곳인데도 여전히 남아있는 게 신기해. (이번에는 반대쪽으로 자박자박)
..참, 이제 돌려줄까? 안 추워?
에르드 하이너스:누군가 지속적으로 관리라도 하는 건 아닌가 싶을 정도야. 웬만해선 들어올 수 없는 곳처럼 보이지만 또 다른 출입구가 있을지도 모르니. (만약 관리하는 이가 있는 거라면 분명 범상치 않은 자일 테니, 상상일 뿐이길 바랐다.) 아직은 괜찮아. 너는? 추우면 불을 좀 더 가까이 하게.
베아트리체 힐:(일렁이는 빛에 비치는 벽을 유심히 들여다보며 걷는다.) ..시간이 멈춰버렸다기에는 너무 낡았으니. 네 말처럼 어쩌면, 여기에 다른 생명체가 있을지도 모르겠네. 난 괜찮아, 네 자켓도 걸치고 있는걸.
에르드 하이너스:뭘 위해 만들어진 공간인지 짐작이 안 가서 더 불쾌해. (눈살을 작게 찡그리며 높은 벽을 한 번 더 올려다보곤 걸음을 옮겼다.)
에르드 하이너스:아. (갑자기 한참 전의 입맞춤이 떠오른다. 어색하게 침묵하다가 손을 내밀었다.)
베아트리체 힐:...고마워. (괜히 고개를 여러 번 끄덕이며 내밀어진 손을 꼭 잡으면 거대한 미궁, 엄습하는 두려움이 고작 작은 온기에 녹는 기분이 든다.)
... ...참, 궁금한 게 있었는데. ... ... ...혹시 스킨십을 꺼리는 이유가 있어?
에르드 하이너스:(맞닿은 곳에서 전해져 오는 온기는 미약했지만 차가운 미궁에서는 분명하게 느껴진다.)
(이어지는 질문에는 한참 말이 없었다. 미궁의 바닥을 딛고 걸어가는 신발 소리만이 두 사람의 정적을 채웠다.) 너에게도 상처가 있듯 나에게도 그런 게 있을 뿐이지. 전날 술을 마실 때 했던 말처럼.
베아트리체 힐:(무거운 적막 속에서 불빛을 따라 일렁이는 옆 얼굴을 눈에 담았다. ..역시 그랬구나.) ...떠올리고 싶지 않은 이야기라면 괜찮아.
에르드 하이너스:좋은 기억은 아니라서. (워낙 충격적이고 수치스러운 순간이었기 때문인지 마치 어제 일처럼 생생하게 그날을 회상할 수 있었다. 기억에서 지워낼 수 있었다면 진작 그리했겠지만 에르드의 능력은 그런 류는 아니었으므로, 언제나 그는 그 순간과 함께해야만 했다.)
근데, 네가 며칠 만에 내 나름대로의 규칙을 엄청 뒤바꿔 놔서 말이야. 언젠가는 말해줄게.
베아트리체 힐:..미안해, 멋대로 상처를 헤집어 놓은 것 같아서. (매순간 숨처럼 달라 붙어있는 상처가 얼마나 아플까. 괜한 이야기로 상처를 주고 싶지는 않았지만, 그만큼 더 알고 싶었던 것도 사실이었으니, 이어지는 답에는 안타까움과 놀라움만큼의 기쁨이 담겼다.)
...응, 때가 되면. 그때 천천히 얘기해줘.
에르드 하이너스:사과할 것 없어. 지금은 그때만한 감정을 느끼는 것도 아니니까. 사실 진작 극복했어야 할 과거지만 아직도 잊지 못하는 내가 바보 같은 셈이지. (어깨를 가볍게 한 번 으쓱인다.)
베아트리체 힐:(우뚝 멈춰서는 만큼 당겨지는 손. 돌아보는 얼굴이 답지않게 진지하다.) ...전혀 바보같지 않아. 아주 조금도. 네가 극복하기에 그만큼의 시간이 걸리는 큰 상처였을 뿐이야. ...그러니까, 그런 말은 하지마.
에르드 하이너스:(조금 놀란 눈으로 베아트리체를 응시한다. 그가 지금껏 깊은 관계를 맺지 않고 살아온 건 인간을 향한 뿌리깊은 불신 때문이었다. 저 역시 타인을 믿지 못하고, 타인도 저를 믿지 않을 거라 여겼다. 특히나 저의 과거를 알게 되면 비웃거나 비난할 거라 여겼다. 물론, 베아트리체에게 아직 제 과거를 전부 털어놓은 건 아니지만, 그라면 듣더라도 저를 비웃지는 않을 것 같았다.) …… 그래.
베아트리체 힐:......그거면 됐어. (잠깐의 침묵 끝에 내려진 답에 화답하듯 미소를 잠시간 띄웠다가 손을 고쳐 잡고 다시 나아간다.)
에르드 하이너스:(베아트리체의 온기인가? 그래도 아까와는 조금 다른 것 같군. 왜 이런 차이가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잠깐 정신을 다잡고, 앞에 보이는 것을 향해 다가가본다.)
거대하고, 또 거대한.
중대형 크리쳐 정도 되는 크기의 거대하고 살아있는 ‘무언가’.
그리고 그 앞에 선 ‘누군가.’
고귀한 보석으로 치장하고 눈부시게 흰 비단으로 만든 토가를 입은 그 ‘누군가’가 또 멋드러지게 팔을 올립니다.
그러니까, … 그러니까. ‘지휘’ 하듯이.
그것을 깨달음과 동시에 꺼멓게 죽었던 시야가 순식간에 밝아지고,
곧바로 보이는 베아트리체의 얼굴에 ‘누군가’의 뒤통수가 겹쳐집니다.
...이 미궁은 대체 무엇일까요.
베아트리체 힐:(뺨을 도닥이며 시선을 확인한다.) ...에르, 에르드! 괜찮은거야..?
에르드 하이너스:(지휘? 누군가가 행하는 동작의 의미를 깨닫는 순간 검은 환상 같은 것에서 깨어난다. 아까만큼 고통이나 두려움이 생생하지는 않았지만 의문은 커져만 간다. 게다가 왜 이건 나에게만 보이는 거지?) 아까보단 괜찮아. 하지만, 아까와는 다른 걸 봤어.
크리쳐처럼 커다란 무언가가 있었고, 그 앞에 누가 서 있었는데. 그 사람의 동작이 꼭 뭔가를 지휘하는 것 같았어. (그 광경을 떠올리며 눈살을 찌푸렸다.) 귀한 사람 같은 복장이었는데. 최초의 지휘자 아니면 그리스의 대표 지휘자 같은 건가?
베아트리체 힐:..다행, 다행이다.... (그제야 안도의 숨을 뱉으며 굳은 몸에 힘을 푼다.)
... ...지휘? 혹시 인상착의가 기억나?
에르드 하이너스:그리스 전통 복장 같았고, 흰 옷이었어. 보석으로 꾸미고 있었고. 짐작가는 게 있어?
베아트리체 힐:(무언가 떠올리는 듯 손 끝으로 입가를 두드리다 아, 하는 작은 탄식을 흘린다.) ...그러고 보니, 가장 최초로 모습을 드러낸 각성자가 바람을 다루는 모습이 꼭 지휘하는 모습과 같다고, 그랬었지.
...네가 본 그 사람은 아마 최초의 지휘자 였을거야. ...그 모습이 어째서보였을까.
에르드 하이너스:최초의 지휘자라고? 그 지휘자의 모습이 왜 이런 미궁에서 보이는 거지. (이 미궁, 정체가 대체 뭐야? 아무리 봐도 괴이한 것을 숭배하는 듯했는데.) 지휘자가 막 나타나기 시작했을 당시의 기록은 없어진 게 많다고 했었지. 이런 공간과 관련이 되어 있어서 일부러 없애버린 거 아니야?
베아트리체 힐:(생각을 정리하는 듯 잠시 말이 없다가,) ...그런걸지도 모르겠네. ..일부러 기록을 삭제했을지도 몰라.
관련이 있다고 해도.. 어째서 너에게만 보이는걸까?
에르드 하이너스:(동의하듯 고개를 주억인다.) 만일 최초의 지휘자라면 지휘자인 네게 보여야 이치가 맞을 텐데. 게다가 내가 본 건 누군가의 기억 같았는데, 이 기억의 주인은 고통과 두려움을 느끼고 있었어. 아무리 생각해 봐도 연결점을 모르겠군.
베아트리체 힐:...그를 지켜보고 있었을 다른 이의 시야였던걸까? (곰곰히 생각하는 눈썹이 찌그러졌다가 이내 축 쳐진다.) ... ...네가 또 쓰러질까봐 걱정이 돼.
에르드 하이너스:기억의 주인과 같은 처지인 사람들이 무척 많아 보였어. 그 많은 사람들을 다 어떻게 하려던 걸까. (고민하다 말고, 축 처지는 모습에 곤란한 표정이 된다. 달래는 데 익숙한 것도 아닌데다가 원인이 제게 있는 것도 아닌지라.) 나도 어떻게 할 수 있는 게 아니라서.
베아트리체 힐:..정말? 여기서 대체 무슨 일을 하려고 했길래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필요했던 걸까. ...굉장히 고통스러워보였어. (여전히 걱정스러운 얼굴로 어깨에 고개를 기대었다가 떨어진다.)
...다음에도 깨어날 때까지 곁에 있을게. ..일어날 수 있겠어?
에르드 하이너스:나야 고맙지. 아, 그리고 이제 횃불을 네가 들고 가는 게 좋겠어. 지금까진 다행히 아무 일 없었지만 다음에도 또 갑작스럽게 의식을 잃었다가 저걸 놓쳐서 불이라도 나면 안 되니까.
베아트리체 힐:그게 좋겠다. (끄덕, 횃불을 받기 전에 그의 자켓을 다시 그의 어깨에 둘러주고 나서야 받아든다. 그리고는 반대쪽 손을 내민다.)
..다시 가볼까?
에르드 하이너스:(느릿하게 내밀어진 손을 맞잡고 고개를 끄덕인다. 현재로선 계속 나아가볼 수밖에.)
자세한 생김은 보이지 않지만 기괴할 정도로 느껴지는 생명력이 아니라면 당연히 석상이라고 생각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이 새들의 고개는 오직 한 방향만을 바라보듯 돌아가 있습니다.
동쪽.
저 새들이 공격 의지가 없는 건지, 이쪽을 알아채지 못한 건지 알 수가 없습니다.
다만.. 저런 것들이 존재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으니, 앞으로는 조금 조심하는 게 좋겠어요.
베아트리체 힐:(중얼거림에 돌아본다.) ....새?
에르드 하이너스:(아직도 손끝에서 통증이 느껴지는 듯해 제 손을 쥐었다 폈다. 자꾸만 환각에 시달리는 기분이 결코 좋진 않았다. 대체 언제쯤 여길 벗어날 수 있는 건지. 게다가 저 많은 새들이 죄다 살아있는 것이라니. 파란 새 형태의 크리쳐를 잡으러 갔을 때 느꼈던 수많은 위화감들이 이것이었나.)
(쉿, 조용히 해야 한다는 제스쳐를 취하고는 그대로 검지손가락을 위로 들어 천장을 가리켰다.)
베아트리체 힐:(....? 고개가 의아한 듯 기울어졌다가 가르키는 손끝을 따라 올라간다. 이내 덜컥 멈추는 고개. 흐린 시야덕에 가늘게 뜬 눈이 동그랗게 커진다.) ....말도 안돼. 저게 다...? (입을 틀어막고 조그맣게 중얼거린다.) ... ...혹시 모르니까 발소리도 죽여야겠다.
에르드 하이너스:위화감의 정체를 이제 알겠어. (중얼거린다.) 게다가, 모두 동쪽을 바라보고 있어. 동쪽은 해가 뜨는 방향. 벽화로 보았을 때 태양을 숭배하는 것 같았고 문에 새겨진 그리스어는 태양을 향해 날개로 다가가라…… 비슷한 문장이었으니, 이와 관련이 있을 것 같아.
(온몸의 직감이 깨어나 맹렬한 경계를 부르짖는다. 그토록 오랜 시간이 지났음에도 아직까지 살아 있었다니. 너머의 그림자뿐인데도 입안이 바싹 마르고 등골에 오소소 소름이 돋는다.)
대체 몇십 미터일까요?
삼십 미터는 가뿐해 보이는, 몸은 근육질의 사람과 같고 머리는 소 형태의 거대한 크리쳐가 명백하게 문으로 보이는 곳 앞에 서 있습니다.
우리는 아직 가까운 거리가 아니라 저 문지기는 베아트리체와 에르드를 발견하지 못한 것 같습니다만..
능력도 불안정한 상태에서 저걸 잡을 수 있을까요?
우뚝 솟은 산 같은 크리쳐는 건재한 능력자 페어 다섯은 몰려들어도 겨우 방향을 잡을 수 있을지 두고 봐야 할 정도의 급으로 두터운 살가죽에 약점이라고는 찾기가 어렵습니다.
베아트리체 힐:(.......말도 안돼. 그 크기만으로도 압도 당하는 기분에 선뜻 움직이지 못하고 서있다.)
... ...혹시 네 환상에서도 나타났었어? (잔뜩 소리를 죽인다.)
에르드 하이너스:저 형상이 정확히 보이진 않았지만, 저거였던 게 확실해. 지휘자 앞에 있었던 그 엄청난 크기의 크리쳐. 지휘자는 크리쳐를 막아내려는 과정에서 각성했다고 들었는데…… (또 다른 연결 고리가 있는 건가? 하지만 지금은 인과관계나 따지고 있을 때가 아니다.)
단둘이서 잡을 수 있을까.
베아트리체 힐:....둘이서. (찬찬히 문 앞을 지키고 선 존재를 파악한다.) ...아마 정면으로 돌파하기는 힘들거야. ...그렇다고해도, 돌아갈 방법 역시 없어.
에르드 하이너스:네 말이 맞아. 여기까지 와서 돌아갈 순 없지. 결국은 지나쳐가야만 해. 하지만 우리의 힘으로 저걸 완전히 제압하는 건 무리야……. 내가 저걸 석화로 굳혀두고, 네가 우리의 시간은 빠르게, 저놈의 시간은 느리게 제어해서 이곳을 벗어나게끔 할 수 있을까? 아주 기절시킬 수 있다면 더 좋겠지.
베아트리체 힐:(가만히 끄덕인다.) ...네 말처럼 석화로 발을 묶어두고 각각의 시간을 반대로 돌리면, 가능할지도 모르겠어. ...기절시키려면, 내 능력을 더 강하게 쓸 수 있으면 좋을텐데. ....잘못해서 무너지면 큰일이니까.
에르드 하이너스:석화시킨 사이에 내가 총이나 칼로 최대한 공격을 해보긴 하겠지만, 살가죽이 너무 두꺼워 보여서 통할지 확신할 수가 없어.
일단은, 시도해볼까?
베아트리체 힐:...... ....그래, 해보자.
널 믿어. ...우린 할 수 있을거야.
에르드 하이너스:(고개를 끄덕인다. 마른 입술을 축이고, 신중하게 크리쳐를 살피며 몸을 낮추고 접근하기 시작했다. 능력을 쓸 수 있는 최대한 먼 거리까지 접근한 뒤, 크리쳐의 전체적인 움직임이 멎도록 능력을 시전한다.)
석화 Roll
기준치:
50/25/10
굴림:
25
판정결과:
어려운 성공
두 사람이 돌입함과 동시에 문지기가 몸을 움직이면,
석화로 서서히 굳어가는 그 몸 위에 쌓여있던 돌과 먼지들이 무너져내리고-
“-----!!!!”
입을 열지만 목소리는 나오지 않은 채 흉흉하게 핏발선 눈동자가 움직여 베아트리체를 바라봅니다.
그 뒤로는 그야말로 집채만한 팔을 들어 그대로 베아트리체에게 내려치는데,
…
… …?
….. 그것은 공격이 아니라 주먹을 바닥에 대고 베아트리체의 앞에 반 무릎 꿇는 행위였습니다.
문지기가 베아트리체에게 ‘복종’합니다.
서서히, 서서히, 수그러지는 상체와 숙인 고개.
이미 빛을 잃은 두 눈이 감깁니다.
채 의문을 표하기도 전에 베아트리체의 눈에서 빛이 꺼지며, 혼절합니다.
::베아트리체의 시야 속에서 문지기와 에르드가 사라지고, 입을 벌려도 혀가 없는 듯 부름의 소리는 나오지 않습니다.
그런 베아트리체의 정신으로 흘러들어오는 ‘감정’이 있습니다.
고통, 사람을 으깨는, 분노, 그리고 ...마지막은 고독.
억겁의 시간 동안 홀로 이곳을 지키며 죽지도 살지도 못한 채.
한순간도 스스로 원한 적 없는 삶을 살아오며, 오로지 영원한 안식만을 원하고 또 기다려온 자의 고통과 외로움이 몰아닥칩니다.
… ….
...얼마 지나지 않아 베아트리체는 깨어납니다.
에르드 하이너스:(다가올 전투를 대비해 온몸을 팽팽히 긴장시켰지만, 문지기가 보여준 것은 전투 의사 대신 복종이었다. 복종이라니, 지휘자인 베아트리체에게? 상황을 파악할 여유도 없이 곁의 파트너가 쓰러진다.)
베아트리체, 베아트리체! (사색이 된 채 베아트리체를 끌어안고 연신 그를 부른다. 자신이 쓰러졌을 때 네가 이런 기분이었겠구나. 이제야 깨달을 수 있었다.)
베아트리체 힐:(순간 까마득해진 시야가 서서히 돌아온다. 따듯하게 자신을 지탱하는 온기에 차마 감당하기 힘든, 무거운 감정들을 털어내려 눈을 천천히 깜빡인다.) ...에르드.
(그럼에도 여전히 고독감이 전신에 생생하게 남아있다. 감히 상상하기에는 너무나도 긴 세월의 고독, 외로움. 마음뿐만이 아니라 정말로 온몸까지 서늘하게 식는 느낌이 들어 두 팔로 웅크리듯 꽉 감싸안는다.)
에르드 하이너스:(정신이 들자 안도의 한숨을 내쉰다.) 괜찮은 거야? (저와 비슷한 환상을 겪었겠거니 예상할 수 있었다.)
베아트리체 힐:… …난 괜찮아.
..에르드, 저 문지기는 나를 해치지 않을거야. 오로지 마지막만을, 죽음만을 바라고 있어. … …처형을 기다리고 있는거야.
에르드 하이너스:다행이다. 그보다…… 죽음을 기다린다니. (그야 이런 곳에서 아주 오랜 시간 버텨왔다면 일반적인 이는 정신이 붕괴되고 말겠지. 하지만,) 저건 크리쳐잖아. 크리쳐가 사고를 한다고?
베아트리체 힐:(눈을 감고, 품에 기대어 가만 끄덕인다.) ...저 문지기의 감정이 내게 흘러 들어왔어. 긴 세월 동안 받은 고통이 느껴졌어.
...크리쳐로 만들어지고 태어나, 이 거대한 미궁을 지키는 굴레를 끊어내기 위해 이 순간까지 살아온거야.
에르드 하이너스:크리쳐로 만들어졌다고……? 누군가에 의해 인위적으로 만들어진 거야? 게다가, 미궁을 지키는 굴레를 끊어내기 위해서라니. 잘 이해가 안 돼. (눈살을 작게 찡그렸다.)
베아트리체 힐:느낄 수 있었던 건 저 문지기의 감정 뿐이어서 나도 정확하게는 알 수 없어. ...하지만 이 곳에 끌려온 이들에게 고통을 준 것도 스스로가 원했던 게 아닌 것 같아.
에르드 하이너스:긴 시간 동안 지휘자가 오기만을 기다린 건가. 내가 본 환영에서도 지휘자에게 복종하는 것 같은 모습이었지. 인과를 자세히 알아낼 수는 없지만…… 우선, 전투를 하지 않게 된 것만으로도 다행이야.
저놈이 원하는 끝을 줘야겠지. 일어날 수 있겠어?
베아트리체 힐:(고독감을 털어내려 그의 목을 잔뜩 끌어안아 온기를 빌린다. 이내 조금 떨어져나와 고개를 주억인다.) ...응. 일어날 수 있어.
에르드 하이너스:(베아트리체가 일어날 수 있게끔 부축해준다. 한쪽 무릎을 꿇은 크리쳐를 바라보았다. 더없이 기괴하고 거대한, 보는 것만으로도 공포를 불러일으키는 존재. 이능력자로 각성하기 전에도 후에도 크리쳐는 언제나 토벌의 대상일 뿐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조금 더 알아봐야 할 것만 같다. 그들의 근원에 대해서.)
베아트리체 힐:(도움을 받아 두 발로 딛고 선다. 평상시 수많은 크리쳐를 상대할 때 느끼던 감정과 지금의 자신에게 흘러들어온 감정 사이에서 어지럽게 흔들린다. ...그럼에도, 저 존재에게 자신이 줄 수 있는 것은 안식 뿐이니까.)
...목을 끊어내면, 끝일거야.
에르드 하이너스:네 능력, 물리적으로도 활용할 수 있다고 들었는데. 내 석화가 도움이 되겠어? 아니라면 너 혼자서 끝내도 돼. 나는 너만한 공격 계열은 아니니까.
베아트리체 힐:...맞아. 하지만 이렇게 닫힌 공간에서는 오히려 위험할 것 같아서. 네가 쓸 무기에 힘을 보태줄테니 부탁해도 괜찮을까?
에르드 하이너스:좋아. 내 석화는 저항하는 적들을 막기 위한 용도였으니, 움직이지 않는 적이라면 오히려 공격하기 편하지. (고개를 가볍게 끄덕이고 칼을 꺼내들었다.) 내 시간을 조절해줘.
베아트리체 힐:..부탁할게. (그의 칼을 잡은 손과 칼날에 손을 가볍게 얹으면 연보랏빛이 일렁이며 흐름이 거세어진다. 동작은 보다 빠르나, 일격은 저 두꺼운 가죽을 뚫을 수 있을 만큼 강한 흐름으로.)
에르드 하이너스:(주변의 모든 것이 느리게 느껴진다. 벽을 짚고 크리쳐의 발에서부터 다리, 어깨로 타고 오르는 동작이 무척이나 가벼웠다. 크리쳐의 어깨에서 크게 도약하며 양손으로 쥔 칼을 높게 치켜든다. 마치 투포환처럼 엄청난 속도로 스스로를 내리꽂는다. 칼날이 크리쳐의 목덜미를 날카롭고 깊게 베어내렸다.)
육중하고 거대한 몸체를 바람처럼 날래게 올라
두터운 가죽에 시간보다 빠르게 일렁이는 나이프를 박아넣으면,
보다 깊숙히. 단단한 살결과 근육, 뼈를 콰직콰직 갈라나갑니다.
두둑, 목을 끊어내면… 미노타우로스가 앞으로 고꾸라집니다.
쿵,
육중한 몸이 아래로 쓰러지며 깊은 울림을 내면 끈질겼던 생명이 꺼지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미노타우르스의 생명이 꺼짐과 동시에 천장에 있던 새들이 일제히 미궁을 향해 추락합니다.
그렇습니다. 추락.
우리의 머리 위로도 당연히, 수백 마리는 되는 새들이 거대한 우박처럼 추락해옵니다!
이대로라면, 새에 짓눌려 죽는 일뿐이겠지요!
쿵-!
바로 주변으로 추락해 터지는 새,
여타 다른 문과 마찬가지로 베아트리체가 손을 대면 거대한 문이 천천히 열리기 시작합니다.
철퍽, 콰직,
터진 새의 부리 파편이 에르드를 스쳐 살갗에 상처를 내고, 여전히 이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 두렵고 무섭게 느껴지지만
이제 에르드는 이것이 본인의 감정이 아님을 알고 있을텝니다.
그러니, 들어가야겠죠!
베아트리체 힐:...에르드! 빨리..! (드드득, 열리는 문 앞에서 손을 내민다.)
에르드 하이너스:(이렇게 많은 수의 새를 계속해서 멈출 수는 없다. 최대한 빠른 속도로 문을 향해 뛰쳐간다.) 베아트리체, 너도!
안으로 달려들어가면 문이 닫히기 시작하고, 바깥에서는 비처럼 추락하는 흰 새들의 살덩이가 터지는 소리가 희미하게 들려옵니다.
부서지고 으깨어지는 소리.
문 바깥의 미궁을 잠식해 점점 쌓여가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얼마나 수가 많은지 닫혀있는 문틈의, 꽤 높은 곳에서 검붉은 핏물이 스며 떨어집니다.
베아트리체 힐:...에르드! 괜찮아?
에르드 하이너스:파편에 좀 스치긴 했지만 이 정도는 괜찮아. 너는?
베아트리체 힐:(서둘러 다가와 긁힌 상처들을 살핀다.) ...생각보다 많이 스쳤네. 깊지는 않아서 다행인데... (얼굴이며 팔, 다리 꼼꼼하게 살피다 정작 자신은 대충 휘 훑어본다.) ..난 괜찮아.
에르드 하이너스:나보단 본인을 좀 더 신경쓰지? (그 모습이 어이없어서 저도 모르게 피식 실소가 나온다. 파편이 스쳐 작은 피가 새나오는 뺨을 대강 문질러닦으며 위를 올려다본다.) 그보다, 여긴…… 더 아래로 들어온 건가?
베아트리체 힐:...정말 괜찮은데. (스친 손등을 툭툭 털고는 같이 위를 올려본다.) ...아무래도 그런 것 같-
…
놀란 가슴을 가라앉힐까 싶으면,
“...키,” “..아악—..!!!”
거대한 홀에 비명과 닮은 울음소리가 가득 채워집니다.
소리가 들리는 쪽으로 고개를 들어보면, 피가 스민 문 위로 큰 부리와 날카로운 발톱. ...희미한 눈.
에르드 하이너스:나야 이 정도 상처쯤 아무렇지도 않아. 하지만 넌 나보다 한참 작고 말랐잖아. (신속하게 베아트리체의 몸에 상처가 없는지 훑고는, 내민 손을 맞잡아 그를 일으켜준다.)
민첩
기준치:
60/30/12
굴림:
2
판정결과:
극단적 성공
베아트리체 힐:
민첩
기준치:
70/35/14
굴림:
65
판정결과:
보통 성공
손을 맞잡고 달려나가는 두 사람, 숨이 턱 끝까지 차오르면
다시 갈림길입니다. ...중앙.
비로소 길의 끝에 다다르면,
뛰어내리라는 말처럼 낭떠러지가 눈앞에 있습니다.
까마득한 아래로 아무것도 보이지 않네요.
앞은 미지, 뒤는 새 떼.
믿음을 가지고 뛰어내릴 때입니다.
베아트리체 힐:... ...(까마득한 어둠을 내려보며 숨을 삼킨다. 마주 잡은 손에 힘이 들어간다.) ...뛰어내려야겠지?
에르드 하이너스:정체를 모르겠지만, 머릿속의 목소리도 뛰어내리라고 말했어. (무엇이 기다리고 있는지 알 수 없지만……. 숨을 고르고 힘주어 말했다.) 지금은 이것뿐이야.
(베아트리체를 끌어안고 뛰어내렸다.)
끌어안은 몸을 던지면 부유감, 그리고 빠른 추락.
벌써 추락만 두 번째군요.
...
...
...
절벽 아래는 호수로, 별안간 풍덩 소리와 함께 얼음장처럼 차가운 물이 잔뜩 달아올라 있던 피부로 파고듭니다.
시야가 뒤집히고 숨이 금방 부족해집니다.
다행히도 아주 깊지는 않으니 금방 빠져나갈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에르드 하이너스:(차디찬 물에 근육이 굳는 게 느껴진다. 수면에 부딪힌 충격 탓에 호흡이 보다 더 부족하다. 베아트리체는 어디 있지? 어두운 호수 속에서 그를 찾으려 손을 휘저으면서 수면을 향해 헤엄쳤다.)
베아트리체 힐:(... ...숨이. 잔잔하던 물의 표면에 공기 방울이 보글보글 올라오더니 물 속에서 고개가 올라온다. 그와 동시에, 급한 숨을 거칠게 내쉬자마자 다시 조금씩 가라앉는다.)
에르드 하이너스:(푸하, 소리와 함께 수면으로 고개를 홱 내민다. 모자란 숨을 가쁘게 들이마시며 시야로는 계속 파트너를 더듬어 찾았다. 마침내 가느다란 물방울 소리, 다시 가라앉는 고개를 발견한다. 수영을 할 줄 모르는 건가? 서둘러 다시 잠수해 그쪽으로 향해 베아트리체의 허리를 끌어안고 수면으로 고개를 들게끔 했다.) 숨 쉬어! (크게 외치고는 육지를 향해 헤엄쳤다.)
베아트리체 힐:(몸이 굳어 가라 앉으려나, 싶은 찰나 자신을 채어가는 손길에 안도하고 말았다. ...다행이다. 무사해서. 겨우 수면 밖으로 나온 고개에선 밭은 숨과 물먹은 기침 소리가 섞여든다.) ... ..콜록, 콜록-
그리 넓지는 않았는지 머지않아 금방 뭍에 닿을 수 있었습니다.
에르드 하이너스:(베아트리체를 부축하며 뭍으로 걸어나온다. 차디찬 물 탓에 제 다리도 후들거리며 떨려왔다. 아직 남아있을 물을 토해내도록 등을 두드려준다.) 괜찮아?
베아트리체 힐:(그 손길에 겨우 기침 소리를 멈추고서 에르드를 올려본다. ...추워, 잡고 있는 팔까지 서로의 떨림이 느껴지는 것 같아.) ...나는, 괜찮아. 너는? 아까 팔에 그 상처도...
에르드 하이너스:그깟 거 별거 아냐. (실제로도 팔의 통증은 잘 느껴지지도 않을 정도였다. 바깥은 여름이건만 이 미궁은 여름의 더위라곤 털끝만큼도 찾아볼 수가 없다. 그렇잖아도 미궁에 진입했을 때부터 온도가 너무 낮았었는데 이번엔 물에 빠지기까지 하다니.) 넌 하마터면 큰일날 뻔했잖아. 수온이 너무 차가워서 저체온증에 걸릴 수도 있겠어.
베아트리체 힐:...별거 아니긴. (한번 물에 씻겨나간 상처들을 바라본다. 생채기와 상처, 몸을 타고 흐르는 물줄기에 섞여드는 붉은 빛이 한 두군데가 아닌데. ...스스로보다 어째서 자신을 걱정하고 있는건지.) ...너도 물에 빠진 건 마찬가지야. ...너도 지금 떨리고 있잖아. (차게 식은 몸을 끌어안는다.)
에르드 하이너스:통각에는 무딘 편이니까, 나는. (옷을 타고 드문드문 번지는 붉은빛을 뒤늦게 발견하고는 혀를 찬다. 새와의 전투 후에 또다시 새떼의 습격과 종유석을 피해 도주한데다 호수에 빠지기까지 했으니, 아무리 강한 그라도 체력이 확연히 줄어들었다. 끌어안는 그를 막지 않고 마찬가지로 두 팔을 둘러 서로의 온기를 보호한다.) 나가면 수영을 좀 배워두는 게 좋겠군.
베아트리체 힐:...그래도. ...혹시 더 심해지면 그때는 아프다고 말해야 해? (그 말에도 안심이 되지 않는지, 눈으로는 상처들을 살피면서. 한참을 끌어 안고 있는다. 뼛 속까지 스미는 찬 기운이 물러날 때까지. 온기가 조금 엇비슷하게 돌 즈음이면 그제서야 곳곳에서 욱신대는 따가운 상처들이 느껴진다.)
...아무래도 그래야겠네.
에르드 하이너스:(가까이 붙어 빼앗겼던 온기를 서서히 되살린다. 이내 손을 뒤로 뻗어 물을 잔뜩 먹은 베아트리체의 긴 머리칼을 몇 번 쭉쭉 짜주었다.) 약이라도 바를까 싶어도, 아까 도망치면서 남아있는 게 별로 없는 것 같아. 있다고 해도 다 젖었을 테고. (제 주머니를 털어보곤 고개를 절레절레 내젓는다.) 조금 더 쉬다가 가자. 옷도 좀 말려야 할 것 같고.
베아트리체 힐:(그 손길에 염려로 가득했던 얼굴이 조금 펴진다. 희미한 미소가 걸렸나 싶으면 손으로 물방울이 똑똑 떨어지는 에르드의 앞머리를 가볍게 털어낸다.) ...아마 멀쩡한 게 없겠지..? (조끼의 주머니를 몇 번 뒤져보지만 물 속으로 사라져버린 듯 텅 비어있다.) 그러자, 이대로 움직이기도 힘들거야.
(물기가 없는 곳으로 손을 잡아 이끈다.)
에르드 하이너스:(눈을 살짝 감고 머리칼을 털도록 두고, 물가에서 떨어진 건조한 곳으로 향해 벽에 등을 기대고 앉는다. 그나마 최소한의 온기는 돌았지만 젖은 옷을 계속 입고 있으면 체온이 계속 빠져나갈 것이다. 잠시 고민하다가 말한다.) 옷이 젖어있어서, 열을 계속 뺏길 거야. 상의라도 좀 벗어서 옷을 말려야 할 것 같은데 괜찮겠어? (그나저나 여긴 빛이 있긴 한가?)
어둠에 익숙해진 두 눈으로 주변을 살펴보면, 이 곳 벽에도 드문드문 횃불이 걸려있습니다.
불을 붙여 온기를 만들어낼 수 있을 것 같아요.
베아트리체 힐:(그 옆으로 벽에 기대어 앉는다. 물기가 뚝뚝 떨어지는 소매며 옷 끝을 짜내는 사이 들려온 질문에 손이 뚝 멈춘다.) ... ...아, 응. 그래야지. 응, 그래도 돼. (미묘하게 버벅이는 손길로 다시 물기를 쭉쭉 짜낸다. ...미묘하게 달아오른 귀 끝이 화끈거려 젖은 머리칼로 슬쩍 가려둔다.)
에르드 하이너스:(어색한 대답에 저 역시 급 어색해져 눈을 이리저리 굴린다. 그러다 벽에 붙은 횃불을 발견했다.) 여기에도 횃불이 있군. 저걸로 옷을 말리면 얼마 안 걸릴 거야. 그…… 뒤돌아있을 테니까.
(일어나서 제 근처의 벽에 거치된 횃불에 불을 붙인다. 베아트리체에게 등을 돌린 채로 자켓과 실크 셔츠를 벗어 펼쳐두고 그 근처에 불을 기대두었다.) …… 너도 이 틈에 옷 좀 말려도 돼. 절대 안 돌아볼 거야.
베아트리체 힐:(어둡고 고요한 공간이라서일까, 작은 소리도 크게 울려 들리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어색한 공기에 괜히 뭐라도 한마디 할까, 힐끔 고개를 들었다가 에르드의 잘 깎아 만든 듯 넓은 등과 어깨를 보고는 고개를 다시 휙 돌린다.)
... ...음, 그러니까. 보면 안돼? (겨우 찾은 젖은 라이터를 몇 번 만에 켜서 불을 붙이고서 물에 젖어 무거운 외투며 셔츠를 벗어 근처에 널어둔다.)
에르드 하이너스:(등을 돌린 채로, 종유석에 스치며 난 팔의 상처나 새의 부리들이 스치고 간 잔상처들을 횃불에 비춰본다. 그래도 불이 있으니 한층 따스했다.) 여기에도 불이 있어서 다행이지. (어색하고 무거워진 공기를 에르드도 눈치챘지만, 의식하는 티를 내지 않으려 하며 중얼거리듯이 말했다.)
(뒤에서 옷을 벗는 듯한 사부작 소리가 나자 저도 모르게 몸이 살짝 굳었다. 하지만 약속했듯 고개를 조금도 돌리지 않고 뻣뻣하게 앞만을 바라본다. 의식하지 말자. 의식하지 말자……)
베아트리체 힐:...응, 그렇지. 정말 다행이야. 자칫 여름에 동사할 뻔 했네. (..괜한 농담을 덧붙인다. 흔들리는 불빛에 뒤늦게 옷에 가려져 있던 크고 작은 상처들이 눈에 들어오자 그제서야 통증이 몰려온다. 입술이며 눈을 꾹 감고, 숨을 천천히 내쉰다.)
(작은 불빛에 온기가 서서히 스미지만, 어쩐지 서로 돌리고 있는 등은 서늘하게 와닿는다. ... ...말할까, 말까. ...몇번을 입을 달싹거리며 고민하다, 결국 눈을 꾹 감고 결연하게 입을 열었다.) ... ... ...잠시 등만 맞대고 있을까?
에르드 하이너스:(의식하지 않으려고 애쓰면 더 의식이 될 수밖에 없는 노릇. 제 둔한 감각을 최대한 살려보려 하지만, 뒤에서 작게 움직이거나 숨을 들이쉬는 소리가 어찌나 예리하게 귀에 잡히는지. 말라가는 제 팔을 문질러 체온을 올리는 단순 행위에 집중하려다가, 선명하게 들려오는 목소리에 그 자세 그대로 멈칫한다.) …… 많이 추워? 아님 어디 심하게 아픈 데라도 있는 건 아니지?
베아트리체 힐:...아, 아니야. 그게- (괜한 걱정을 끼쳤나 싶어 급하게 돌아간 고개가 그의 등을 마주한 순간 다시 후다닥 돌아간다. 이어지는 말은 점점 자신감을 잃고 사그러든다...) ...그냥, 그럼 조금 더 금방 따뜻해질까해서. ...괜한 말을 했나봐, 그냥 잊어도 돼.
에르드 하이너스:공기가 많이 차갑긴 하지. (이럴 땐 둘이 함께 체온을 나누는 게 가장 효율적이라는 걸 알고 있었다. 누군가와 이렇게까지 맨살을 붙이는 건 정말 상상도 하지 못한 영역인데. 하지만 베아트리체와는 이미 스킨십 진도도 꽤나 나간데다가, 자주 손을 맞잡거나 포옹했기 때문인지 그다지 거부감이 느껴지지 않았다. 어서 기운을 찾고 나갈 길을 찾아야 한다는 사무적인 이유로 자신을 설득시키면서 입을 열었다.) 그렇게 하자.
(그래도 차마 돌아볼 수는 없었기에, 망설이다가 곁눈질로 거리감만 체크하면서 몸을 뒤로 뺀다. 베아트리체와 어딘가가 닿을 때까지 느릿느릿 뒤쪽으로 움직였다.)
베아트리체 힐:... ...정말? (되묻기도 전에 등 뒤 쪽에서 움직이는 작은 소리에 온 감각이 곤두서는 듯 했다. 그래도 차마 돌아볼 수는 없어 오로지 감각만으로 거리감을 재어 조금씩 뒤 쪽으로 움직인다. 그러다 툭, 맨 살결이 맞닿은 순간. 등줄기를 타고 흐르는 감각에 우뚝 멈춰선다. 머리 끝까지 울리는 찌릿한 감각. 차게 식은 등이 닿은 부분부터 순식간에 확 더워지는 것 같은 기분.) ... ...괜찮아? 기분 나쁘면 얘기해줘.
에르드 하이너스:(손을 잡거나 옷 너머로 닿는 것과는 또 다른 감각이다. 베아트리체의 맨살갗과 아무것도 입지 않은 제 등이 맞닿고 있다. 그 사실을 자각한 순간 등줄기를 타고 전류가 흐르는 듯하다. 언제 찬공기 속에 있었냐는 듯 얼굴이 화끈거린다. 베아트리체도 저만큼 의식하고 있을까? 제 생각을 들키지 않기 위해 무진 애를 쓰며 헛기침을 했다.) 기분…… 나쁘지 않아. 그런 너야말로 불편하면 바로 말해.
베아트리체 힐:(...선연한 감각. 마른 침을 삼키는 소리까지, 그 울렁임까지 닿을 것 같은 가까운 거리에 괜히 달아오르는 볼을 두 손으로 가득 감싸 안는다. ...혹여나 심장 소리가 전해 들리지는 않을까. 괜한 걱정을 하면서도 마주댄 등을 떼어낼 생각은 않는다. 나지막히 떨어지는 대답에 그제야 안도의 숨을 내뱉었으며 고개를 등에 툭 기댄다.) ...그럼 다행이다. ... ..전혀. (...조금은 불편한 걸까, 빠르게 뛰는 심장이. 그럼에도 편안하고 안심되어서 가만 기대 눈을 감았다.) ...따듯해.
에르드 하이너스:(등을 맞대고 있는 이 상황 자체도 놀라운 일이었지만, 이 정도의 스킨십에도 불쾌함을 느끼지 않는 스스로가 더더욱 신기했다. 특수한 상황이라서일까. 아무리 베아트리체가 자신을 해치지 않을 걸 알더라도, 원래였다면 극구 거절하고 말았을 스킨십인데. 제 반응에 대해 생각하느라 베아트리체의 심장 소리는 미처 신경쓸 틈도 없었다. 그가 저에게 고개를 기대는 순간 제 가슴의 박동도 바삐 뛰기 시작했기에 더더욱 그럴 테다.)
따뜻하다니 다행이네. 그런데 너…… (잠시 망설이다가) 다른 사람한테도 이렇게 거리감 없이 굴어?
베아트리체 힐:(에르드의 것인지, 자신의 것인지 알 수 없을만큼 고막을 웅웅 울리고, 온몸을 타고 내달리는 심장 박동에 잡아먹힐 것만 같을 때, 문득 내밀어진 질문에 마주댄 등이 확 떨어진다. 순간 몸을 휘감는 찬 기운을 느낄새도 없이 입이 몇 번이고 달싹거리다 등에 고개만 툭 기대었다.) ... ...아니야. 이렇게까지 대한 적은 없어.
에르드 하이너스:뭐라고 하려던 건 아니야. (입술을 달싹였다.) …… 그냥 넌 나보단 스킨십에 익숙한 것 같아서.
(이렇게까지 대한 적은 없다는 건, 자신이 다른 이보다는 특별하거나 다르다는 걸까? 이런 걸 의식해본 적은 전혀 없었던지라 스스로가 혼란스럽다.)
베아트리체 힐:...- (묻은 고개에서 목소리가 들릴 듯 말듯 작게 흐른다.) ...이런 건 네가 처음이야. (그의 질문에 그제서야 왜 자신이 에르드를 다른 이들과는 다르게 대하게 되는지, 의식되기 시작했다. .... ...어쩌지. 순간 어지럽고 숨이 턱 막히는 것 같아 살짝 떨어져 나온다.)
...옷, 다 말랐을까? (괜히 말을 돌리며 멀어진다. 어느새 조금 마른 옷가지를 주워들었다.)
에르드 하이너스:(입안이 바짝 마르는 듯하다. 무슨 대답을 해야 할지 알 수가 없었다. 고맙다고 할 수도 없고, 어째서? 라며 이유를 물어볼 엄두도 나지 않는다. 결국 함묵 끝에 건조한 대답만 내놓았다.) 그래. (맞닿은 부분에 불이라도 난 것처럼 뜨겁다. 베아트리체가 멀어지자 고마움이 느껴질 정도였다. 어떤 식으로든 체온을 올리는 건 성공한 셈이다.) 이 정도면 마를 때가 됐지. (한 번 더 헛기침을 하며 제 옷을 주워들어 얼른 셔츠를 걸쳤다. 완전히 마른 건 아니었지만 이제는 그대로 더 있으면 안 될 것 같았다.)
베아트리체 힐:(닿아 있던 온기가 사라지자 한기에 몸이 살짝 떨려, 적당히 마른 옷에 팔을 끼워 넣는다. 몸보다 마음 한구석이 시린 느낌을 고개를 흔들어 떨쳐낸다. ...짧은 시간동안 너무 가까워졌기 때문일까. 조금만 더 있었으면, 무슨 말을 하게 될지.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겠어서. ..조용히 외투를 걸쳐입은 다음 돌아본다.) ..응, 어느정도 괜찮은 것 같아. 다행이다.
..고마워, 덕분에 살았어.
에르드 하이너스:자켓을 한 번 더 앞뒤로 불에 쬐고, 다 입고 나서야 베아트리체를 향해 고개를 돌린다. 직전의 일 때문에 갑자기 얼굴을 보기가 민망해져서 일부러 시선을 피했다.) 괜찮다니 다행이네. 나도 체온을 올릴 필요가 있었으니까, 굳이 고맙다 할 필요까지는 없어.
아무튼…… 다시 움직이자고. (횃불을 들어 주변을 밝힌다. 나아갈 만한 길이 있나?)
낭떠러지 반대편을 바라보면 거대한 건축물이 보입니다.
그야말로 거대한 대리석을 통째로 가져와 조각해 만든 것 같은 웅장한, 그러나 무너진 신전.
높은 계단과 신전에 보이는 거대한 기둥들.
다가가 봐야겠지요.
멀지도 가깝지도 않기에 조금 걸어야겠습니다만, 얼음물에 빠졌던 여파가 남아서인지 몸이 으슬으슬 떨릴 정도로 춥습니다.
에르드 하이너스:(한때 더울 만큼 열이 올랐던 것도 금세 식어버리고 다시 찬공기가 훅 느껴진다. 다시 손을 잡고 걷는 게 좋을 것 같지만, 직전의 일 때문에 눈도 마주보기 어려운 와중에 그런 제안을 하는 게 쉽지는 않다.) 저 신전엔 분명 뭔가 있겠지. 저쪽으로 가는 게 좋겠어. (망설이다가 횃불을 잡지 않은 손을 내밀었다.)
베아트리체 힐:(원래라면 당연하게도 먼저 손을 내밀었겠지만, 바로 전의 일 때문에 시선을 제대로 마주치치도 못하고 망설이고 있었다. 그러나 머뭇머뭇 내어지는 손을, 괜히 울컥 뜨거워지는 눈을 깜빡이며 마주 잡았다.) ...응, 저쪽으로 가보자.
손을 마주 잡고 이어지는 동굴을 따라 걷다 보면,
따라붙는 미묘한 시선이 느껴집니다. 뒤 쪽에서요.
그러니까… 낭떠러지의 위 쪽.
두 사람이 뛰어내렸던 곳에 흰 새들이 바글바글 멈춰서서 두 사람을 내려다보고 있습니다.
...눈은 없지만요.
그러나 이곳을 침범할 수 없다는 듯이 더 이상 움직이지 않습니다.
때때로 날개를 펼치고 길게 울기도 하지만 그뿐입니다.
..두 사람은 다시 걸음을 옮깁니다.
자박자박, 동굴 바닥은 곧 끝났지만 이번에는 매끈하고 흰, 높은 계단이 시작됩니다.
계단을 오르고, 또 올라 마침내 마지막 계단을 밟고 올라가면
가장 먼저 보이는 것은 동굴 천장을 떠받치듯 세워진 거대한 기둥들입니다.
묘하게 당장이라도 무너질 것처럼 위태로운 이 기둥은 신전의 모서리마다 한 개씩 네 개.
그리고 신전 중앙의, 루비가 박혀있는 기둥까지 합쳐 총 다섯 개입니다.
중앙 기둥 앞에는 직사각형 형태의 재단이 있고, 그 제단에….
사람의 그림자가 있습니다.
두 사람이 바라보는 것을 눈치채면 사제는 말을 걸어옵니다.
머릿속에서 울렸던 그 목소리와 같습니다.
사제:……이쪽으로.
나를 도와다오. 미궁의 방랑자여.
그럼 나 역시 너희를 도우리니.
에르드 하이너스:사람……? (이 깊은 미궁에 살아있는 사람이 있다니. 본능적으로 경계하다가, 목소리를 듣고 멈칫한다. 베아트리체에게 속삭였다.) 아까 도망칠 때 방향을 알려줬던 목소리랑 같아.
베아트리체 힐:(마찬가지로 멈춰 서서 작게 속삭인다.) ...어떻게 그게 가능하지..?
에르드 하이너스:(기이하기 그지없는 일이지만, 이 미궁에 떨어져 일어난 일부터가 다 일반적인 상식으론 믿을 수 없는 일이다.) 우리가 무얼 도우면 됩니까?
얼핏 부서진 조각상처럼 느껴질 정도로 앙상한 몸을 기둥에 붙인 채 제단 위에 서 있는 사람입니다.
낡은 토가를 입었으며 머리카락은 길게 자라나있습니다.
남자인지 여자인지 모호하지만 새파란 눈동자만은 선명하여, 품고 있는 기묘한 분위기는 단언컨대..
이 사람을 오랜 현자나 성스러운 사제라고 부르기에 손색이 없도록 만들고 있습니다.
그 물음에 사제는 조용한 눈으로 에르드를 아주 오래 바라봅니다.
사제:이곳은 크레타의 신전, 흉악한 것들을 가두고 봉인한 곳.
나는 신전을 지키는 자이다. 그대들은 어찌 이곳까지 흘러왔느냐?
에르드 하이너스:(크리쳐를 가두는 곳인가? 여기까지 오면서 보았던 수많은 새들과 미궁의 문지기를 떠올린다. 하지만 제대로 기능하고 있는 것이 맞을지.) 우리는 크리쳐를 물리치기 위한 이능력을 타고난 안내자와 지휘자입니다. 최근 그리스에서 처치한 크리쳐가 이능력자들에게 바다에 가야 한다는 환각을 불러일으키고 있어 조사를 하던 도중 이곳까지 떨어지게 되었습니다.
사제:그래, 얼마 전에 큰 지진이 있었지.
해서 신전이 흔들려 기둥이 어긋나고 봉인석이 빠졌다. 그 탓에 봉인이 약해져 저주받은 것들의 악한 기운이 지상에까지 피해를 끼치게 되었구나.
에르드 하이너스:애초에 크리쳐를 봉인하는 곳이라는 게 어떻게 존재하는 겁니까? 크리쳐의 생성 원인은 전부 무작위적이라고 알고 있는데. (거대한 크리쳐 앞에 서 있던 지휘자의 환영도 그렇고, 이곳은 심상치 않은 장소다.)
사제:이 지하 미궁은 본래 범죄자를 가두는 감옥이었다. 그러나 그들은 추악한 것으로 변했고 결국 더 깊은 곳에 그들을 봉인하는 신전을 세웠지.
..그대가 말한 크리쳐가 추악한 것. 뒤집힌 것이겠지.
저 새들을 보아라. 죄악을 저지른 것들이 죄에 잡아먹혀 뒤집힌 것이 된다.
추악한 것을 지상으로 보낼 수 없어 고행의 길을 자처했건만, 지상도 엉망이 되어가는구나.
에르드 하이너스:범죄자? (눈을 찡그린다.. 내가 겪었던 환영은 이곳으로 끌려온 범죄자였나?) 그럼 크리쳐가 사람이었단 말입니까?
사제:그러하지. 죄를 지은 자들이 결국 그들의 죄악에 잡아먹힌 것이니.
결국 뒤집힌 것이 된다.
에르드 하이너스:대체 이건……. (눈을 찡그린다.) 하지만 크리쳐가 그리스에서만 나타나는 건 아니지 않습니까. 전세계의 크리쳐가 전부 범죄자였다는 겁니까? 애초에, 이 미궁이 단순히 감옥 같지는 않습니다. 벽화 같은 걸 보니 태양을 숭배하는 것 같던데요.
사제:...그것은 필시 봉인석의 힘이 약해진 터. 나로 하여금 봉인하고 있는 이곳의 삿된 영향이 지상으로 퍼져나갔기 때문이라. 나의 미약하게 남은 힘 만으로는 모두 막을 수 없었을 것이다.
옳다. 이곳은 태양을 숭배하는 신전이지. 나는 신전을 지키는 자. 뒤집힌 것들이 지상에 해를 끼치지 못하도록 미궁처럼 지어 올린 것이다.
에르드 하이너스:(이해가 되지 않는 점이 너무도 많다. 눈살을 작게 찡그린다.) 지휘자와 이곳은 무슨 관련이 있는 겁니까.
사제:...지휘자라, 저 힘을 그렇게 부르는가.
사제는 베아트리체를 오랫동안 응시합니다.
사제:..이 곳에서 추악한 것들을 억압하는데 너무 오랜 세월을 보냈으니 지상의 일에 대해서는 미지하여, 온전히 알 수 없으니.
모든 것이 제자리를 찾으면 신전은 힘을 되찾고 안전해지겠지. 지상으로 올라갈 수 있는 계단이 열릴 것이며 지상에 미치고 있던 삿된 영향도 사라질 것이다.
그러니 이곳 어딘가에 떨어져 있을 봉인석 네 개를 찾아 기둥에 끼워다오.
에르드 하이너스:봉인석이라는 것이 혹시 이겁니까? (시체에서 주웠던 루비를 꺼내 보여준다.)
사제:그래, 그것이다. 그 붉은 힘을 찾아다오.
에르드 하이너스:이건 뼈만 남은 시체 사이에 있었습니다. 지진이 일어나 봉인석이 빠졌다고 했는데…… 이전에도 저희 말고 여기 들어온 자가 있었던 겁니까?
사제:그러하다. 그대들과는 다르게 간악한 이들이었지. 그 힘을 탐내 훔치려 들었다.
에르드 하이너스:(그랬던 거군.) 남은 봉인석이 어디 있는지는 짐작이 갑니까? 이 미궁, 너무 거대해서 실마리 없인 찾아다니기가 힘들 것 같은데.
사제:이 신전 안을 둘러보면 찾을 수 있을거다. 그리 멀리 있지 않을테니.
에르드 하이너스:그들이 훔쳐간 건 하나뿐이었나 보군. 베아트리체, 내가 왼쪽을 살펴볼게.
베아트리체 힐:...혹시 모르니까 같이 찾아보자.
에르드 하이너스:그럼. (신전 왼쪽부터 차례차례 살펴본다)
신전을 살펴보려 둘러보면,
눈에 띄는 건 거대한 [기둥들] , 드넓은 대리석 [바닥] 과 방금 지나온 [계단] 입니다.
에르드 하이너스:(기둥들부터 살펴보자!)
신전의 천장을 받치고 있는 다섯 개의 기둥입니다.
금이 가거나 마모 되긴 했지만 여전히 희고 웅장합니다.
다섯 개의 기둥 중 사제가 기대고 있는 기둥에는 붉은 보석이 이미 박혀있고, 나머지 기둥들에는 확실히, 보석은 없지만 [보석을 끼우는 홈]이 파여있습니다.
에르드 하이너스:(홈에 가까이 다가가 살펴본다.)
홈이 약간 높은 위치이기 때문에 루비를 끼우려고 한다면 발돋움이 필요합니다.
에르드 하이너스:(내 키로도 발돋움을? 이건 좀 신선하다)
(발뒤꿈치를 들어 뼈 속에서 주운 루비를 끼워넣는다)
달깍, 루비는 제자리를 찾은 듯 딱 소리를 내며 끼워집니다만…
별안간 새들이 낭떠러지 위에서 크게 비명을 지릅니다.
거대한 날개를 펼친 재 악다구니를 쓰고, 메아리가 사납게 울려 퍼집니다.
에르드 하이너스:(시끄러운 메아리에 제 귀를 틀어막으며 눈살을 찡그렸다.) 갑자기 난리를 치는군. 뭐지?
베아트리체 힐:..그러게. 공격할 것 같지는 않는데. (옆에서 귀를 틀어 막으며 주변을 둘러본다.)
그 소란 속에서도 어쩐지 힘이 돌아오는 기분이 들어요.
베아트리체 힐:(위화감에 눈을 깜빡이다) ...다시 조용해졌네. 다른 곳도 살펴볼까?
에르드 하이너스:이상하게 힘이 돌아오는 것 같아. 저것들의 울음소리와 관련이 있는 건가. (제 손을 두어 번 쥐락펴락했다가 바닥으로 시선을 돌린다.)
베아트리체 힐:...너도 느꼈구나. 둘 중 뭐 때문인걸까. (홈에 딱맞게 끼워진 루비와 울음을 멈춘 새들을 번갈아 보다 지끈, 하고 이상하게 울리는 두통에 눈살을 찡그렸다가 시선을 옮긴다.)
천장에서 무너져내린 종유석이 박혀 부서지고 금이 간 대리석 바닥입니다.
날카롭게 부서진 조각과 돌덩이, 낡은 양피지 따위로 지저분해져 있음에도 불구하고 과거의 위용을 느낄 수 있습니다.
매끄러운 대리석 바닥은 찬란한 번영과 무한한 영광을 암시하며, 더없이 섬세하게 조각되어 있습니다.
눈앞까지 다가온 거대한 그림자가 입을 쩍 벌리면 시커멓고 뾰족한 이빨, 입안에서 촉수가 뻗어지고,
그 뻗어진 촉수 안에서 다시 촉수.
죽음입니다.
빨려 들어가는 감각과 함께 수 천 개의 이가 당신의 몸을 꿰뚫겠다는 듯 크게 벌어지면,
….. 에르드는 베아트리체의 목소리를 듣습니다.
베아트리체 힐:..에르드, 에르드!! (언제부터 안고 있었는지, 파리하게 질린 안색과 가늘게 떨리는 목소리로 붙잡은 어깨를 흔든다. 눈앞에서 금방이라도 생명이 꺼질 듯한 그를 바라만 볼 수 밖에 없는 심정은 처참하고도 비참해서, ..다시는 겪고 싶지 않을 지옥같은 참담함이었다.)
에르드, 죽음을 느껴본 기분은 어떠했습니까?
에르드 하이너스:(영문을 알 수도 없고, 피할 수조차 없는 죽음. 제가 본 환상의 주인이 겪었을 죽음이 어째서 저에게까지 비슷한 수마를 뻗치는 것일까. 제 의지대로 할 수 있는 게 하나도 없던 그 찰나의 순간이 지독히도 끔찍하고 처참했다. 온몸이 식은땀으로 젖은 채 억눌린 신음을 토한다.그는 누구고, 또나는 누구기에 이런 일이 벌어지는 걸까. 미궁에 들어온 뒤로는 자신이 자신 같지 않았다.)
(실핏줄이 터진 눈으로 베아트리체의 손을 꾹 쥔다. 갈라진 목소리가 흘렀다.) 사제, 사제는 무얼 하고 있지?
베아트리체 힐:(...절망, 짧게 안도하기도 잠시, 식은땀에 달라붙은 머리칼들을 넘겨주며, 천천히 말을 이어간다.) ...무얼 하고 있는 것 같지는 않았어. ..간간히 새들의 울음소리만 들렸으니까.
에르드 하이너스:제정신이 아닌 사람이야. 그 복장, 최초의 지휘자와 비슷해 보였는데…… 끔찍한 크리쳐를 불러내려는 것 같았어. (베아트리체까지 그 위험에 삼켜질지도 모른다는 위기감에 자신이 본 광경들을 두서없이 뇌까렸다.) 난, 난 어떻게 됐던 거지?
베아트리체 힐:(말이 다 끝나고 나서야 무겁게 침묵하던 입술을 떼어낸다.) ... ....어쩌면 저자는 다른 이를 사칭하고 있는 게 아닐까? ..진짜 사제가 아닐지도 몰라. (다정한 손길로 천천히 진정할 수 있도록 가슴께를 토닥토닥 두드려준다.) .. ...갑자기 쓰러져서는 숨도 제대로 쉬지 않고 몸이 차게 식어갔어. 꼭- ( ...금방이라도 죽을 사람처럼.)
에르드 하이너스:그럼 무엇을 위해 사제 행세를 하는 거지? 이 루비가, 저자의 어떤 삿된 짓을 도울 수단인 건지도 몰라. 이걸 제자리에 돌려두는 게 맞는 건지 모르겠어. (루비를 쥔 손이 인지하지도 못한 사이 작게 떨리는 중이었다. 베아트리체의 도닥임을 받으며 천천히 호흡을 고른다. 뒷말은 듣지 않아도 짐작할 수 있었다.) 이쯤 되면 단순한 환각이 아닐지도 모르겠어. 하지만 나는 그리스에 처음 와볼뿐더러 미궁과도 전혀 관련이 없는데…… 대체 왜 이러는 거지.
베아트리체 힐:(...나까지 불안해하면 안돼. 떨리는 그 손 위에 제 손을 얹고 가만히 도닥인다.) ...저자가 하려는 일이 더 끔찍한 크리쳐를 불러내는 일이고, 루비를 기둥에 넣는 것이 그를 돕는 일이라면... ... 돌려놓으면 안되는 걸지도 몰라. (루비를 손에 쥘 때 마다, 이 미궁에 들어온 순간마다, 환각을 보던 에르드를 떠올리고 입술을 꾹 깨문다.) ...이 미궁에 있는 것들에게 간섭받는 건 확실해보여. ...왜 하필 너인지는 모르겠지만.
에르드 하이너스:이게 있어야 바깥으로 나갈 계단이 열린다고 했었지. 그 제안도 거짓말일 확률이 높겠군. 하지만, 루비도 아니라면 대체 어떻게 해야 이곳을 빠져나갈 수 있는 거지. 이제야 단서를 잡았다고 생각했는데. (길이 보이지 않는 상황에 초조하다 못해 신경질이 났다.)
베아트리체 힐:..지금의 상황이라면- (끄덕이던 고개가 천천히 멎는다.) ... ...에르드, 이 루비를 파괴한다면?
에르드 하이너스:…… 그럼 확실히, 사제의 알 수 없는 계획은 망가뜨릴 수 있겠지만. (갑작스러이 부상하는 하나의 가능성에 눈이 크게 뜨인다. 잠시 망설였다.) 바깥으로 나갈 수도 있는 수단을 우리 손으로 없애는 꼴이 될 수도 있어. 괜찮겠어?
베아트리체 힐:..응, 우선은 그를 설득해보자. 여태 한 것들이 거짓말이라면, 다른 방법이 있을지도 몰라. ... ...혹시 저 자를 설득하는 것이 불가능해지면, 그때. ...그렇게 하자. ( ..여차하면 이 미궁에 묶이게 되어버릴지도 모르지만, 지상까지 위험해지게 둘 수는 없었다.)
에르드 하이너스:…… 저 자가 만일 최초의 지휘자가 맞다면, 바람 능력을 다룬다고 했었지. 여차하면 내가 능력으로 발을 묶어둘 테니 네가 그를 막아. (그렇게 되어 나갈 방법을 찾지 못한 채 영영 이곳에 갇힌다 해도 어쩔 수 없다. 자신이 본 크리쳐는 단순한 대형 크리쳐처럼 분류할 수 있는 존재가 아니었다. 저주 그 자체. 그런 것이 지상에 발을 들이기라도 한다면 크레타 섬은 끝장이 날 것이다.) 희생하는 건 질색이지만, 그래야만 하는 순간도 있는 법이지.
베아트리체 힐:응. (다짐하듯 고개를 끄덕인다. 저자가 진정 무엇을 원하는지는 알 수 없지만, 그가 원하는대로 두어서는 안될 것 같다는 강한 직감이 있었으니까. 다만 마음에 걸리는 것은-) ... ...너를 이런 위험에 빠트려서 미안해. ..너를 부르지 않았더라면, 이런 일은 없었을텐데.
에르드 하이너스:그런 말은 마. (바닥을 짚고 몸을 일으켜 앉는다. 베아트리체의 머리칼을 쓰다듬었다.) 그리스로 온 건 내 선택이었어. 이 미궁까지 온 것도 역시 내 의지로 한 일이고. 위험해진 건 나뿐만이 아니라 너도 마찬가지잖아?
헤쳐나갈 생각을 하자. 마음 굳게 먹어.
베아트리체 힐:... ...에르드. (다정한 손길에 기대 강하게 그를 끌어안는다. 다시 한번 결심을 다짐하듯이. ..이 일이 어떻게 끝맺어질지는 모르지만, 네가 있어서 참 다행이다.)
...응, 우리는 할 수 있을거야.
에르드 하이너스:(커다란 손으로 그의 뒷머리를 두어 번 쓸어내린다. 준비를 마치면, 루비를 자켓의 안주머니에 숨겨두고 베아트리체와 함께 감옥 문을 나서 사제를 찾아간다.) 계십니까.
사제를 찾아 다시 계단을 올라가면, 새들의 비명이 들려옵니다.
바라보면, 멀리서 돌연 한 마리의 새가 낭떠러지 쪽으로 몸을 던지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
낭떠러지 바깥으로 날아간 새는 순식간에 몸이 터지며 산산조각나, 곧 먼지가 되어 호수 아래로 가라앉습니다.
마치 스스로 목숨을 끊는 것처럼.
죽었음에도 생명력이 이어져 죽지도 살지도 못한 것. 미궁에 묶인 존재들.
차라리 죽음을 선택한 새.
그 기묘한 광경 아래, 어쩐지 사제의 상태가 좋아 보입니다.
머리카락에는 윤기가 흐르기 시작했고, 피부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붉은 보석이 박혀있는 기둥은 마모되고 금 갔던 흔적도 없이 깨끗해 보입니다.
...부름이 들리지 않는지 사제가 무언가 중얼거리는 채 베아트리체를 바라보고 있네요.
베아트리체의 움직임에 따라 미세하게 고개가 움직이고 있습니다.
베아트리체 힐:... (그를 다시 마주하자 작게 이어지던 두통이 심해지고 몸의 어딘가 불편함이 느껴진다.)
에르드 하이너스:(사제의 모습을 주의깊게 관찰한다. 아까 그가 루비를 가리켜 '붉은 힘'이라고 했었지. 루비에 그의 힘이 나누어져 봉인되어 있었고, 기둥에 꽂으니 힘이 되돌아오고 있나 보군. 지금껏 그의 부활을 도와준 꼴이나 마찬가지다. 게다가 왜 베아트리체를 저렇게 기분 나쁘게 바라보는 거야? 이 또한 필시 일을 꾸미는 거겠지 싶어, 한 발짝 나서서 베아트리체의 앞을 가리고 선다.) 남은 루비 하나는 보이지 않더군요.
사제:(중얼거림이 우뚝 멈춘다.) ..거짓말을 하는구나. 돌아간 것.
나눠진 보석을 기둥에 넣거라. 그럼 내 임무는 끝나노라.
에르드 하이너스:임무라는 게 정확히 무엇입니까? 애초, 루비를 넣으면 지상으로 갈 길이 열리는 게 맞긴 한 겁니까?
사제:루비가 제자리를 찾으면 비로소 나의 힘도 제자리를 찾는다. 지상으로 돌려보내 줄 테니 자, 어서.
해야 할 일을 완수하라.
에르드 하이너스:미안하지만 그렇겐 못하겠습니다. 거짓말을 하고 있는 건 당신도 마찬가지 아닙니까?
당신은 사제 같은 게 아니야. 본래의 모습을 밝혀라. 어떻게 지금까지 이 미궁에서 살아남아 왔고, 여기에 끌려온 자들이 무엇을 위해 희생되었는지 말해.
베아트리체 힐:(그의 마지막 문장이 떨어짐과 동시에 폐부에 무언가 차오르며 울렁이는 것이 느껴진다. 내부에서부터 들어차는 물. 집어삼켜지는 듯한 두려움, 제대로 쉴 수 없는 숨, 말 대신 짠 소금물만 토해질 뿐. 밖으로 뱉어지지 못하고 삼켜들어가는 이름. … …에, 에르드. 소리는 먹혀들어가고 토해낸 물만 바닥으로 쏟아진다.)
(물러설 곳은 없다. 미궁에 영영 갇힐 미래를, 더하여 베아트리체의 죽음을 각오하고서라도 맞서야만 하는 순간이 온 것이다. 고통스럽게 컥컥대는 베아트리체에게 잠깐 시선을 두었다가, 그를 끌어안은 팔을 풀고 일어난다. 품안에서 루비를 꺼내어 온 힘을 다해 바닥에 내던진다. 산산이 부서져 버리도록.)
피처럼 녹아내린 루비는 기둥으로 빨려들듯이 날아가 안착해 서서히 본래의 모양을 갖춰가기 시작합니다.
...그렇다면, 저 루비가 박힌 기둥을 부순다면요?
에르드 하이너스:어리석은 건 당신이야! (포기해서는 안 된다. 기둥으로 온 힘을 다해 달려, 자신의 다리에 석화를 건다. 돌처럼 단단해진 다리를 거세게 휘둘러 기둥을 박살내려 한다.)
돌보다 굳건하고 단단한 다리가 기둥에 매섭게 박히지만 꿈쩍도 않습니다.
거대한 기둥은 몸을 던져 해결하기에는 지나치게 단단합니다.
절체절명의 순간, “키야아악----!” “아아악!!!!”
저편의 새들이 비명을 지르더니 일제히 신전쪽으로 몸을 날립니다.
터지고, 재가 되고, 한 마리가 아닌 열 마리 스무마리, 서른,
달려드는 새들의 숫자가 기하급수로 늘어날수록 사제가 휘청이고, 루비가 반응하며 빛을 내기 시작합니다.
그와 함께 에르드는 스스로의 몸에 스며들어오는 어떠한 힘을 느낍니다.
몸에 넘쳐흐르는 마력,
마치 작은 묘목이 순식간에 거대한 나무가 되듯, 뻗어있던 가지에서 꽃이 피고 무수한 과실이 맺히는 듯이.
에르드의 손끝에 붉은 광채가 어립니다.
이것은, 완전히 새로운 장입니다.
::에르드의 이능력이 개화합니다.
에르드 하이너스:(한 번으로 안 된다면 몇 번이든 제 몸을 내던지려 했다. 절망하여 좌절할 수는 없었으니까. 그 순간 어둠을 가르듯 새 떼가 몰려오고, 기이한 힘이 스며든다. 지금껏 한 번도 느껴본 적 없는 새로운 감각으로 온몸이 채워진다. 몸 안에 움튼 능력이 순식간에 새싹을 틔우더니 꽃을 피우고 나무로 자라난다. 한때 사람이었다던 저 새들은, 어쩌면 저와 같은 안내자들이었던 것일까? 저들의 힘이 나에게로 모이는 것일까.)
(무엇이든 간에, 붉은 광채가 어리는 지금 이 순간만큼은 불가능한 일이란 존재하지 않을 것 같았다. 심장이 터질 듯한 고양감과 열의가 차오른다. 대상의 행동을 '멈추는' 것만 가능하던 그였으나, 개화한 능력은 대상 자체를 자유로이 다룰 수 있는 힘을 가져다준다.)
(상처와 환각에 시달려 지쳐 있던 몸이 한순간 아주 가볍게 느껴진다. 망설임없이 걸음을 내디뎌 팔을 뻗었다. 하얀 표면에 제 손끝이 닿는 순간, 기둥이 굉음을 내며 순식간에 조각조각 부서지고 해체된다. 커다란 조각에서 주먹만한 조각으로, 그보다 더 자그마한 조각으로 잘게 갈라지던 기둥은 이내 먼지로 변해 공기의 흐름에 날아가버린다. 무언가가 세워져 있었다는 뿌리만이 남아있을 뿐, 루비를 품었던 기둥은 어느덧 흔적도 없다.)
에르드 하이너스:…… 이젠 우리 차례인가? (피로감에 절로 다리에서 힘이 풀린다. 몸이 완전히 무너지기 전에 한쪽 무릎을 꿇어 어떻게든 버티고, 베아트리체를 향해 기어가다시피 다가간다.) 숨쉬는 건 좀 어때.
베아트리체 힐:..에, 에르드..! (잔기침을 토해내며 겨우 숨을 갈무리하고 무너지려는 에르드에게 넘어질 듯 후들거리는 다리를 이끌며 다가온다.) ...난, 나는 괜찮아, 나는.... (물기어리는 눈으로 쓰러져가는 그를 붙잡고 몇 번이고 쓰담고 끌어안는다.)
에르드의 손끝에 어리던 붉은 광채가 서서히 사그라들고
온몸을 뒤덮을 듯 가득 밀려들던 힘이 막을 방도도 없이 빠져나가는 것이 느껴집니다.
..밀물과 썰물처럼.
힘이 몰아칠 바람 앞에 촛불과도 같이 불안정하게 흔들립니다.
에르드 하이너스:괜찮아졌다니 다행이다. (제 손을 들어본다. 광채는 어느덧 사그라들었다.) 이제는 어떻게 되는 거지…….
베아트리체 힐:(말없이 그를 끌어안는다.)
투둑.
신전이 붕괴되기 시작했습니다.
땅과 동굴이 흔들리고, 새들은 마치 환호하고 반기듯 갈라지는 천장을 향해 몸을 부딪치며 날갯짓합니다.
쿵, 거대한 돌덩이가 떨어져 내리고 바닷물이 폭포처럼 쏟아집니다.
한 곳, 두 곳, 세 곳.. 수압 탓에 쩌저적 돌 갈라지는 소리가 사방에서 들려오고
천장 여기저기에 뚫린 구멍마다 바닷물이 치밉니다.
베아트리체 힐:(떨어지지 않을 듯 끌어안은 품에서 결심한 듯 고개를 든다.) ..에르드.
..내 능력을 한계까지 사용하면, 이 바다를 거슬러 올라갈 수 있을거야. (바닥 난 체력과 아직 온전히 돌아오지 않은 능력. …중간에 정신을 잃기라도 하면 큰일이지만. 그럼에도 할 수 밖에. 에르드, 네가 해냈듯이. 너만은 이렇게 둘 수 없어.) 반경을 그렇게 넓힐 수는 없겠지만. 우리 주변으로만 몰아치는 바닷물을 멈추고, 그 주변을 역행시킬거야.
에르드 하이너스:(끝이 오는 건가? 힘이 쭉 빠진 몸으로 무너져내리는 신전의 천장을 바라보다가 시선을 굴린다. 사고가 둔해진 탓에 다소간의 시간이 지나고서야 파트너의 말을 이해하곤 차차 표정이 굳어져갔다.) 리바운드가 클 거야. 폭주가 올 수도 있어.
베아트리체 힐:...에르드, (작은 목소리는 결심을 굳힌 듯 결연했다.) ...그것마저도 감수할 수 있어. 여기서 너를 잃을 수는 없으니까. ...적어도 너만은.
네가 불가능해보이는 일을 해냈듯이, 나도 해낼게. ...내 옆엔 네가 있으니까.
(에르드의 손을 두 손으로 조심스레 감싸 제 뺨으로 가져간다.)
시린 바닷물은 이미 발목을 지나 종아리, 무릎. 매섭게 차오르고 있습니다.
에르드 하이너스:나도 너를 잃고 싶지 않아. 폭주가 시작되면 얼마나 위험한지 알잖아……! (그런데도 너는 무척이나 결연한 표정을 하고 있어서. 말릴 수 없다는 걸 이미 알았는데도, 미련이 남아 매달리고야 만다.)
(와중에도 물은 차오르고 있다. 모두가 이곳에 수장될 것인가. 낮은 가능성을 믿고서라도 수면을 향할 것인가. 같은 선택지가 자신에게 주어졌더라도 망설임없이 후자를 택했을 테지.)
나 역시, 네 곁에 있겠어. 어떤 일이 벌어지더라도…… (저로 인해 폭주가 일어난다면 오롯이 나의 책임. 모든 가이딩을 쏟아부어서라도 베아트리체를 진정시킬 것이다.)
베아트리체 힐:... ... ...응, 네가 나를 막아줘. 너라면 할 수 있을거야. ..믿어. 해낼 수 있어. ..우리는 반드시. (가져온 손 끝에 가볍게 입을 맞추고, 마지막 희망을 쥐어짜내어 결연한 미소를 띄운다.)
(떨리는 손을 꾹 쥐었다가 눈을 감고 온 힘을 집중한다. 비로소 수면까지 닿을 수 있을 만큼, 정확히 남은 힘을 계산해서 분배해야했으니.)
두 사람의 턱까지 물이 차오르고,
마침내 완전히 천장이 무너져 머리 위로 거대한 물줄기가 쏟아져 내리는 순간…
떨리는 손끝에서부터 서서히 번져가는 힘,
두 사람이 투명한 구체에 감싸인 듯 순식간에 바닷물이 차단되고 빛 한 점 없는, 암흑의 심해를 거슬러 오르기 시작했습니다.
베아트리체 힐:(감은 눈꺼풀이 파르르 떨리고, 입술을 꽉 문다.)
(깨질듯한 머리에 차오르는 숨. 괴롭게 목을 긁고 나오는 소리. 마치 패널티처럼. 그럼에도 이를 악물고 버틸 수 밖에 없는 이유는 방벽이 부서지면 바다 속의 시신이 두 구.. ..안돼. 겨우 버티는 손 끝이 후들거린다. 그럼에도 섭리를 거스를 수는 없었던걸까. 부지불식간에 체온이 훅 떨어지고 눈앞이 까무러진다. 어둠, 있을리 없는데도 섬망하는 빛과 다시 짙은 어둠. 푸름. 발밑이 훅 꺼지는 듯한 부유감. 모호하고 몽롱한 감각에 잠겨간다.)
...에르드. 손 잡아줄래?
에르드 하이너스:(깊디깊은 심해를 거슬러올라간다. 일반적인 능력이라면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엄청난 힘. 자연히 그에 따라오는 부하도 엄청나겠지. 베아트리체가 집중할 수 있게끔 미동도 하지 않았지만 시시각각 나빠져가는 그의 상태를 하나하나 눈에 담고 있었다. 어떻게든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해야만 한다. 바닷물에 금세 떠밀려버릴지라도 방사 가이딩을 행하면서 베아트리체의 손을 꾹 잡았다.)
이것만으로 되겠어?
베아트리체 힐:(천천히 끄덕여지는 고개. 이내 내리감은 눈꺼풀을 들어올려 온 힘을 다해 웃어보인다. ..걱정마. 너만은 절대 이 바다에 잠기게 두지 않을테니까-)
상태가 좋지 않은 듯 숨을 제대로 삼키지 못하며 얼음장처럼 차갑게 식어가는 베아트리체.
순간 얇은 막이, 깨어질 듯 어른거리고….-
베아트리체가 크게 휘청이더니 에르드의 품으로 무너집니다.
그 순간,
하얀 것들이 하나, 둘, 방벽을 감싸기 시작합니다.
그렇습니다. 새들이에요.
이들은 자신을 무저갱에서 구해준 은인을 결코 이 바닷속에 수장시키지 않습니다.
부디 함께, ..빛을 향해.
수십 개의 흰 날개가 두 사람을 빈틈없이 끌어안고 바다를 오르면
상승감과 함께 비로소 베아트리체의 숨이 천천히 안정되기 시작합니다.
두 사람은 바다를 역으로 오르고 있습니다.
추락한 만큼, 내려온 만큼 올라가야 하기에 시간이 걸리는군요.
하지만 우리는 이 새하얀 둥지 속에서 안전합니다.
베아트리체 힐:(쓰러진 품에서 겨우 느른한 숨이 흐른다. 아직 초점을 잡치 못한 눈동자가 오로지 하나만을 찾는다.) ... ...에르드.
에르드 하이너스:응. (주변을 둘러싸는 흰 날개들을 보며 베아트리체를 고쳐안았다. 그의 마른 등을 감싸고 빈틈없이 밀착한다.) 새들이 우릴 보호하고 있어.
베아트리체 힐:(따뜻한 그의 품에서 차게 식은 체온이 서서히 돌아오는 것을 느끼며 눈을 깜빡인다.) ... ...정말,이네. 다행이다... (천천히 팔을 들어올려 가득 끌어안는다. 빈틈없이 들어차는 온기에 서로의 심장박동이 마침내 맞아 들어갈 때까지.)
에르드 하이너스:안심하고 쉬어. (새들이 언제까지 보호할지 알 수는 없지만, 그래도 지금만큼은 마음을 놓아도 될 것 같았다. 베아트리체의 등을 느리게 토닥인다. 그러고 있자니 새삼 작은 웃음이 샌다. 내가 언제 이렇게 스킨십에 자연스러워지게 되었지.)
온도를 삼키는 행위.
이 묘한, 그러나 비할 데 없는 안정감은 어디에서 나오는 것일까요.
[05. 모험의 끝. 푸른 하늘]
몸이 확 뜨는 감각, 뒤이어서는 부드럽게 한 번 출렁이며 멈추는 느낌.
둘을 감싸고 있던 흰 날개가 날아가 열리면.. 눈부신 태양이 두 사람을 반기는군요.
햇빛이 잘게 부서져내리는 바다에 둥실 뜬 채 청명하고 푸르른 하늘과 새하얀 구름,
내리쬐이는 따뜻한 햇살을 맞이합니다.
바다와 하늘의 경계가 모호한, 아름다운 풍경이군요.
그리고.. 시원한 물을 함뿍 튀기며 바닷속에서 나온 흰 새들이 새파란 하늘을 향해 날갯짓합니다.
수십, 수백마리가 높은 하늘로, 더 높이.
그들은 곧 태양빛에 녹아내리듯 빛이 되어 사라지지만, 충분히 느껴집니다.
그들이 동굴을 떠나 자유를 만끽했다는 것.
억겁의 시간 동안 원해왔던 단 하나를 이뤄냈다는 것을.
무수히 많던 새가 푸른 하늘의 별이 되고, 마지막 한 마리까지 빛이 되어 사라집니다.
이변을 알아챈 듯 저 너머에서 군용 헬기가 두 사람을 향해 다가오고 있습니다.
베아트리체 힐:…살아서 다행이야. (느른하게 눈이 감았던 눈을 뜨며 그제서야 작게 웃음을 흘린다.)
에르드 하이너스:그러게. (하늘로 사라지는 새들에 잠깐 시선을 두었다가 이내 베아트리체를 바라본다.) 상태는 어때? 리바운드가 심한가?
베아트리체 힐:.... (하늘과 바다의 푸른 빛을 담던 맑은 눈동자가 말없이 에르드에게 향한다. 감은 팔에 조금 힘이 들어가나 싶으면, 어느새 눈 앞까지 다가온 얼굴. 팔랑이며 날아간 흰 깃털처럼 그의 윗입술, 아랫 입술에 차례로 내려앉았다가 마침내 온전히 온기를 겹친다. 서로의 숨을 삼키듯이.)
에르드 하이너스:(금빛 눈과 보랏빛 눈이 맞닿는다. 봄꽃을 닮은 색채의 홍채를 마주보고 있자면 다음에 무엇이 이어질지 짐작이 갈 법도 하다. 끌어안은 팔과 가까워지는 거리를 선명하게 감각했지만 피하지 않았다.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천천히 눈을 내리감으면, 새까만 어둠 속에서 맞닿는 곳에 온 신경이 집중된다. 서로의 숨을 교환하고 체온을 나눈다. 햇빛을 잔뜩 받은 얕은 바다처럼 따스한 입맞춤이었다.)
(가이딩을 위한 스킨십은 아니었다. 너도, 나도 알 사실.)
베아트리체 힐:(가슴 안 쪽에서부터 손 끝까지 번지는 간질간질하고도 저릿한 느낌에 온 감각을 내맡겼다. 그의 검은 머리칼 사이를 손 끝으로 쓸어내리고, 서로의 숨이 겹치고 교차하며, 오로지 마음을 나누기 위한 행위. 그 외에 아무런 이유도 없었다. 이 순간만큼 솔직할 수도 없을테니까.)
(맞붙은 입술이 떨어지기 전 새의 부리처럼 가볍게 부딫혔다가 조금 멀어진다. 잇새로 흐르는 가벼운 웃음소리. 얉은 바다 위로 부서지는 햇살보다 반짝이는 웃음.)
에르드 하이너스:(베아트리체는 정말 특이한 사람이다. 동시에 특별한 사람이기도 했다. 자신이 그어둔 바위처럼 높고 단단한 선을 불쑥 넘어들어오더니 끝내 바위를 물처럼 녹여버린 사람. 졸지에 가장 큰 방어벽을 잃어버렸지만, 내가 모든 걸 놓고 완전히 무방비해지더라도 너는 나를 상처입히지 않겠지.)
(그의 아름다운 웃음을 온종일 보고 싶어진다. 그의 목소리를 듣고, 손을 잡아 체온을 느끼며 함께하고 싶어진다. 한 번도 파트너를 만들어본 적 없는 저에게 처음 다가온 유대감이란 강렬할 수밖에 없겠지만, 초심자가 느끼는 생경함보다는 베아트리체라는 사람 자체를 향한 특별함이 더 컸다.)
파트너쉽, 당분간 해제하지 않고 싶어지는데. 네 생각은 어때?
베아트리체 힐:(...이 일이 끝나면, 결국에는 각자의 길을 가게 될지도 모른다고, 잠시 뿐이라고. 숨기고 밀어뒀던 마음이 파도처럼 밀려든다. 온몸을 흠뻑 적시고 잠기게 한다. ...어째서, 처음부터 너였을까.)
... ...먼저 얘기해줘서 고마워. 좋아, 당연히. (바라마지 않던 말. 지금 이 순간이 너무도 기뻐서, 가득 끌어안는다.)
에르드 하이너스:나도 고마워. 기꺼이 들어줘서. (파트너를 마주 와락 끌어안는다. 저도 모르게 웃음이 샌다. '당분간' 이라고 표현하기는 했지만, 에르드는 무엇이든 쉽게 질리는 성격이 아니었고 한 번 결정한 바는 쭉 밀고 나가는 우직한 이였으므로, 두 사람의 계약은 꽤 오래 유지될 것 같다. 어쩌면 죽기 직전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