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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310~240712] 유진&아테나 - 푸른 델피늄의 신부

* 세션카드, 인트로 - 렌님

 

플레이타임 : 약 20시간

 

 

 
*
 
240310
 
COC 7th fan-made scenario
 
이미지
 
.
 
.
 
아, 아. 기억하나요? 당신의 이름은?
 
맞아요, 지나. 이지나.
 
당신의 이름을 기억하세요.
 
한창 더워지기 시작한 여름.
 
간밤에는 깜빡 선풍기나 에어컨을 틀지 않고 잔 탓인지 기묘한 꿈을 꾸었습니다.
 
정장을 곱게 차려 입고 가슴 한쪽에는 부토니에를 꽂은 유진이 푸른 꽃으로 만들어진 부케를 들고 걸어가는 꿈입니다.
 
그래요, 마치 새신랑처럼요.
 
상대는 보이지 않지만 이지나, 당신은 그 뒤를 따라가고 있었습니다.
 
이 위치라면 화동일까요?
 
누군가가 이지나에게 말을 걸어옵니다.
 
앞쪽에서 들리지만 유진의 목소리인지는 불분명합니다.
 
“오늘은 중요한 날이야.”
 
“네가 이 사람을 지켜야 해.”
 
아, 맞아요. 나는 이 사람을 지켜야만 합니다.
 
무언가에 홀리는 기분이 듭니다.
 
“오늘은―”
 
유진:칠석이네.
 
유진의 목소리와 함께 의식이 현실로 돌아옵니다.
 
지금 당신은 무엇을 하고 있었나요?
 
한낮, 인근 거리 한복판입니다. 유진은 근처 전봇대에 붙어있는 견우와 직녀가 그려진 포스터를 보고 있습니다.
 
유진:정확히는 7월 7일일 뿐이지만. 올해 칠석이 언제인지 알아요?
 
이지나:(그 꿈은 정말 이상했지. 에어컨 하나 안 틀었다고 새신랑 유진 같은 기묘한 꿈을 꾸다니. 고개를 가볍게 털어내며 손에 든 미니 선풍기를 조금 더 세게 튼다.) 7월 7일을 칠석이라고 하는 게 아니었니?
 
유진:음력 7월 7일이 칠석이지. 대부분 8월이던데 다들 신경쓰지 않는 분위기더라고요. 아, 참고로 올해는 8월 10일이에요.
그나저나 근처에서 애들 연극을 한다는데 관심 있으신 분? (고갯짓으로 전봇대쪽 포스터를 한번 가리키더니 눈웃음 짓는다.)
 
이지나:음력 7월 7일이었단 건 나도 지금 알았어. 다들 그렇게까지 자세한 관심을 두진 않으니까. 네가 알고 있는 건 너답네. (어깨를 가볍게 으쓱였다.)
애들 연극 같은 건 관심없어. (포스터를 흘끗 보곤 매몰차게 대답한다. 그나저나 내가 어쩌다 한낮에 거리 한복판에 있지? 순찰이라도 하고 있었나?)
 
유진:이참에 기억해둬요, 내 생일은 8월 13일이니까. (작게 웃고는) 매정한 사람이네. 애들이 열심히 준비했을텐데.
 
양력이면 어떻고 음력이면 어떻나요?
 
아무튼 오늘은 7월 7일, 칠석입니다.
 
견우직녀가 만난다는 바로 그날이요.
 
전설에 의하면 칠석에는 비가 온다고들 하던데 비는 커녕 한창 햇빛이 쨍쨍할 뿐입니다.
 
이지나:애들 연극은 애들이 봐야 순수하게 기뻐하지. 내가 가봤자 재미라곤 하나도 못 느끼는 표정으로 앉아있기만 할 텐데? 그애들도 떨떠름해할걸.
 
유진:애들만 보라는 법이 있던가. 가자고 해도 안 갈 생각이었잖아요? 그럴 여유도 없고.
 
햇빛 쨍쨍한 이 시각, 무슨 이유로 에어컨 바람도 마다하며 당신이 유진과 함께 밖을 걷고 있냐면…
 
그야 두 사람이 인근 구청에 볼 일이 있기 때문입니다.
 
기억 났나요?
 
바로 혼인 신고서를 받아오는 것이지요!
 
오, 물론, 아주 당연히도 두 사람이 결혼하는 것은 아닙니다!
 
최근 근방의 관공처나 웨딩홀에 ‘7월에 열릴 결혼식들을 중단하라’ 는 협박장이 날아오고 있어 형사들이 수사를 하고 있습니다.
 
그래요, 사건을 담당하게 된 형사들이 바로 당신들입니다.
 
이지나, 그리고 유진.
 
예비 부부처럼 보이자며 반지까지 맞춰 끼고 나오느라 얼마나 고생했던가요?
 
뭐, 굳이 그러지 않았더라도 적어도 유진은 끼고 나왔다는 것을 당신은 알고 있으니까요.
 
이지나:(그거 진짜 열받았지. 안 끼고 주머니에 넣어뒀다)
 
게다가 그 근처를 지나는 커플에게 빈 깡통이 날아온다거나 돌연 큰 소리를 낸다거나 하는 사람도 돌아다니고 있다던가….
 
협박범과 동일인물일지는 미지수지만, 출몰 시기가 정확히 겹치는 이상 가능성은 있겠죠.
 
두 사람은 오늘 범인을 끌어내기 위해 예비 부부 행세를 하며 다른 관공서나 웨딩홀 등에도 견학을 다닐 예정입니다.
 
혼인 신고서를 받는 것은 그 위장의 일부입니다.
 
왜냐고요?
 
그야 범인이 기관 내부에 있을지도 모르니까요.
 
이지나:뭐, 애초에 갈 생각도 없었지만 있었어도 못 가지. 이 일을 하면서 이미 자주 보긴 했다지만, 할 짓 없는 사람이 정말 많다니까. (바람으로 인해 날아간 머리칼을 정리하며 짜증스럽게 말했다.) 근방 웨딩홀 경쟁 업체의 공작 아냐?
 
유진:할 짓 없는 사람을 잡으러 가는 게 우리 일이고. (낮은 목소리로 답하며 네 표정을 살핀다.) 그러기에는 어느 쪽도 이득이 없어요. 결혼 준비에 얼마나 오랜 시간과 막대한 비용이 드는데. 안그래요?
예상되는 시나리오를 말해볼까요? 첫째, 그저 단순한 어린애 장난, 둘째, 지극히 극적인 확률로 나타나는 우연의 결과, 셋째, 예비 부부들의 (고개를 옆으로 기웃거리고는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 말을 이었다.) 새 출발을 싫어하는 누군가의 원한.
셋 중에서 어느 쪽일 것 같아요?
 
이지나:정-말 재밌는 일이야. (비아냥거린다.) 그러니까 경쟁 업체 아니냔 말이지. 금지령으로 이쪽 웨딩홀 손님이 줄어들면 그쪽으로 몰릴 거 아냐? 말마따나 비용도 시간도 막대하게 들 텐데 결혼 일정을 미룰 수도 없고.
내 생각은 여전하지만 첫 번째도 가능성이 높네. 할 짓이라곤 없는 어떤 한심한 인간의 장난질. 하필 7월을 콕 짚은 걸 보면 그때 자기 결혼이 실패해서 원한이라도 쌓였는지 모르지. 이렇게 보면 3번과도 관련이 있구나.
 
유진:이지나 씨, 당신 지금 다른 것 때문에 심기가 불편해 보이는데?
기분 나쁜 협박을 받는다고 사람들이 일정을 미루지는 않지? 결혼이라는 건 둘만의 약속이 아니잖아. (그렇다. 몇 주 전에 결혼식장에 다녀온 사람이다.)
말 나온 김에 물어나 봅시다. 한심한 인간 만나면 가장 먼저 뭘 하고 싶어요?
 
이지나:쓸데없이 눈치가 빨라선. 그래, 경쟁 업체의 농간이든 한심한 작자의 장난이든 사실 나완 상관이 없어. 중요한 건, 내가 이 사건을 해결하겠답시고 너랑 가짜 혼인신고를 하러 가고 있단 점이지! (목소리가 살짝 커졌다가 작게 헛기침을 한다.)
대체 왜 내가 허위 혼인신고 같은 걸 해야 하는 거지? 분명 다른 방식으로도 해결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아무튼 자기들 일 아니라고 미루는 건 잘하지. (짜증스럽게 중얼거린다.)
그래서 말인데 한심한 인간을 만나면 형사 훈련으로 다져진 주먹을 한 대만 날려주고 싶달까? 실수인 척 하면서.
(진짜 할 계획이든 아니든 이미 유진이 들어버렸으니 안 되겠지만. 나오는 대로 뱉는 것에 가깝다.)
 
유진:(웃음 띈 얼굴로 잠자코 듣다 눈썹을 치켜 올리더니 조용히 입을 열었다.) 나라고 좋은 줄 아나본데 나도 취향이 있는 사람이거든요? 달리 갈 사람이 우리 밖에 없었다잖아. 호랑이를 잡으려면 호랑이 굴로 들어가야지.
실수인 척 날리는 건 신경 쓰지 않겠지만 사람 봐가면서 해요. (말린다는 말은 안한다.)
 
이지나:어머, 나한텐 네가 더 취향이 아냐!! (대결이라도 하려는 건가? 유치뽕짝) 연애도 안 한지 몇 년은 된 것 같은데 냅다 혼인신고라니, 이거 정말 제대로 수리되지 않는 가짜인 게 맞겠지? 전산 오류 따위라도 뜬다면 그날로 구청을 뒤집어엎어버릴 거란다.
그나저나 안 말리는구나? 좋아. 그럼 넌 아무것도 못 들은 걸로 하렴. (주먹 꾹 쥐었다 편다)
 
유진:혼인신고서를 굳이 제출한다면 나도 말릴 의무는 없지만 부모님께 인사도 드리지 않고 법적으로 가족이 되는 건 좀 말리고 싶네요. (아무튼 싫다는 뜻)
(뒷말은 못들은 걸로 하는 듯 어깨를 한번 으쓱인다.) 협박범이 오기 전에 부부가 아니라는 걸 티내고 싶지 않다면 협조를 해 주거나 그러기 싫다면 가만히 있어요. 알아서 해볼테니까.
 
이런저런 이야기와 함께 도보로 10분 정도 걸으니 어느샌가 구청에 도착하였습니다.
 
평일 낮인 탓에 사람은 많지 않네요.
 
낡은 에어컨이 돌아가고 있습니다.
 
대기표를 뽑아볼까요?
 
35번이네요.
 
이지나:(심지어 겁나 길잖아)
사람이 왜 이렇게 많아? (짜증)
 
유진:그야 구청에 우리만 있는 게 아니니까. (진정하라는 뜻)
 
이지나:이 공간에 이렇게 오래 있어야 한다니. (가운데 의자를 차지하고 앉아 거만하게 다리를 꼰다.)
 
대기하는 동안 구청 안을 잠깐 살펴볼 수 있습니다.
 
유진:그렇게 싫다면 혼자 하고 올 테니 나가서 나가서 기다리고 있을래요?
 
이지나:그거 고마운 일이지. 그런데 바깥은 더우니까 잠깐 구경이나 할래. (관공서가 다 거기서 거기겠지만. 혹시나 협박범이 와 있을지도 모르니 스윽 둘러본다)
 
유진:(오) 날 위해 함께 가주겠다는 당신 마음 잘 알았어요. 차례 되면 데리러 갈테니 구경하고 와요.
 
협박범으로 보이는 사람은 없는 것 같습니다.
 
내부를 한바퀴 슥 둘러보면 벽면 게시판에 지역에서 열리는 행사 홍보 포스터가 여러 장 붙어있습니다.
 
새로 개장한 시민 풀장, 장거리 자전거 레이싱 대회, 불꽃놀이 축제 무대 팀 참가 모집…
 
가장 가까운 행사는 오늘 저녁 인근 호텔 빌딩에서 열리는 웨딩박람회입니다.
 
저녁 시간에 진행되는 모양이네요.
 
그리고 그 옆, 근처에서 있었던 작은 사건사고나 에세이를 붙여두는 게시판.
 
여름 특집 괴담이 실려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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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 한 연인이 있었습니다. 한 사람은 키가 크고 한 사람은 작았으며, 키 큰 쪽은 별 재주가 없었으나 키가 작은 이는 뛰어난 말솜씨로 많은 이들에게 사랑받아 큰 돈을 벌었습니다. 둘은 사이 좋은 연인으로 보였습니다만 키 큰 이가 사랑하는 것은 연인의 재산이었습니다.
 
결국 어느 날, 키가 큰 이는 자신의 연인을 죽이고 말았습니다. 이후 그는 죄값을 치룰 생각은 하지 않고 그의 돈을 전부 훔쳐냈습니다. 그리고 어디선가 시체 한 구를 구해와 자신과 자신이 죽인 연인이 강도의 손에 죽었다고 꾸며낸 후 도망쳤습니다.
 
이 연인의 비보에 많은 이들이 슬퍼했습니다. 많은 이들이 입을 모아 두 사람의 넋을 위로해주자며 두 사람의 영혼 결혼식을 올려주었습니다. 키 큰 이는 먼 곳에서 그들의 소식을 비웃었습니다.
 
며칠 뒤, 그는 눈을 뜨고 당황했습니다. 자신이 어느 어둡고 답답한 곳에 누군가와 갇혀있던 것입니다. 어둠에 눈이 익자 그는 깨달았습니다. 자신은 관 안에 있습니다. 옆에 있는 사람은 자신이 죽인 키 작은 이입니다. 두 사람은 저승에서 백년을 해로하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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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지나:(별 괴담을 다 붙여뒀네……)
(웨딩박람회라. 멀쩡하게 진행되진 못할 것 같다는 직감이 드는데.)
 
딩동
 
창구 옆 모니터에서 35번이라는 글자가 반짝이고 있습니다.
 
어느샌가 유진이 당신을 데리고 창구 앞으로 다가갑니다.
 
이지나:(정말 진짜 무척 가기 싫지만. 유진이 눈치채지 못하는 사이 직원이 실수라도 하면 안 되니까 창구로 향한다)
 
몽실몽실한 머리를 묶어 올린 부드러운 인상의 공무원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공무원:무슨 일로 방문하셨나요?
 
유진:혼인 신고하러 왔는데요. 신고서만 받아갈 수 있을까요? (지나를 한번 바라보고 공무원을 보며 웃어본다.)
 
이지나:(떨떠름하지만 애써 억지미소 지어준다)
 
공무원:(어쩐지 흐뭇해보이는 얼굴로 혼인 신고서를 한장 꺼내 내밀어준다.) 두 분이 직접 사용하시는 건가요?
 
이지나:……. (왜인지는 이해하지만 그런 표정은 짓지 말아주길)
 
유진:(누가 뭐라고 말하기 전에 지나 어깨에 손 올리고 제쪽으로 끌어당겨서 좋은 사이임을 어필하며 대답 없이 웃기만 하는 중)
 
이지나:(하…… 손 치우고 싶다) 네. 그럼요.
 
공무원:작성 요령을 알려드릴게요.
 
사이 좋은(?) 두 사람의 모습에 공무원은 웃으면서 동일한 혼인 신고서를 한 장 더 꺼냅니다.
 
공무원:이곳에 두 분의 이름을 적어주세요.
 
공무원은 혼인 당사자 란을 가리킵니다.
 
이름과 주민번호, 출생년도와 생일, 주소를 적는 칸이 보입니다.
 
당신이 무어라 하기도 전에 유진은 근처의 볼펜을 잡고는 제 쪽의 개인정보를 적어내려갑니다.
 
이지나:(내가 무슨 부귀영화를 누리자고(그런 거 아님) 이런 걸 쓰고 있지…… 진한 현타가 몰려오는 걸 느끼면서 적어내려간다.)
 
공무원:반지를 오른손에 끼셨네요?
 
유진:아, 제가 왼손잡이라서요. (가볍게 대답하고는 펜을 내려놓는다.)
 
이지나:(별걸 다 트집이네. -라고 꼬아 생각하는 중-)
 
공무원:실제로 적어 제출하실 때에도 두 분이 함께 오신다면 괜찮지만 한 분만 오신다면 상대의 신분증을 꼭 가지고 오셔야 해요.
(서류를 확인해보고는) 아, 전부 다 잘 적으셨네요.
여기 빈 증인 란에는 다른 가족이나 친구 분의 인적사항이랑 사인을 받아와주세요.
 
공무원은 그렇게 말하며 이지나에게 서류를 내밀어줍니다.
 
아까보다 더욱 환한 웃는 얼굴로 두 사람을 번갈아 보고 있네요.
 
이런, 완벽하게 이쪽을 커플이라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이지나:…………………………………………
 
하기사, 반지도 맞춰 끼고 왔으니 그럴 수 밖에요.
 
이지나:네. 감사합니다. (받음)
(난 안 꼈어)
 
한 사람이라도 끼고 온 게 어디인가요?
 
아무튼! 증인 칸만 채워 넣으면 그대로 제출할 수도 있는 두 사람의 혼인 신고서가 완성되었습니다.
 
버릴 수도 있지만 아무래도 보는 눈이 있으니 가져가는 게 좋겠네요.
 
공무원은 그 외에도 함께 가져와야 할 서류 등을 안내하고는 무언가 생각났다는 듯 입을 엽니다.
 
공무원:아참, 그러고보니 혹시 오늘 오는 길에 별다른 일은 없으셨나요?
 
이지나:별다른 일? (내가 처한 이 상황 말고는) 그런 건 없었는데요.
 
공무원:요즘 근처에 이상한 애들이 돌아다녀서요.
혼인신고를 하고 가시는 분들이나 하러 오시는 분들께 자꾸 못된 짓을 한대요. 적당히 연인처럼 보이는 두 사람을 노리나 보더라고요.
멀리서 빈 깡통을 던지거나, 뒤에서 갑자기 왁! 하고 소리지르고 도망치거나, 주차된 차에 낙서를 하거나 유리를 깨거나.
엊그젠가 저도 퇴근길에 만났는데요… 신랑이 마중을 와 줬거든요.
종이 뭉친 걸 이쪽으로 막 던지더라고요.
붙잡으려고 했는데 도망쳤어요.
 
공무원:학생들 같았는데, 세 명인가?
 
이지나:아하……. (속에서 뭐가 부글부글 끓어오른다. 분노겠지?) 알려주셔서 감사해요. 주의해야겠네요. (그리고 유진에게 속삭였다.) 네 1번 가설이 맞은 것 같구나.
 
유진:(공무원의 이야기를 듣다 저를 향해 속삭이는 지나의 말에 작게 웃으며 따라 소근거렸다.) 우리 쪽으로 다가오길 빌어야겠네요.
 
공무원:협박장 일도 그렇고, 요즘은 뒤숭숭하네요. 두 분은 조심하세요.
 
이지나:요새 학생들 인성이 말이 아니네. (꼰대스럽게 중얼거리고) 네. 감사해요.
 
유진:자기야, 우리 예쁜 말 하기로 약속했잖아.
(공무원에게 웃으며 인사하고는) 알려주셔서 감사합니다. 조심할게요.
 
이지나:? ? ????? (너무 못 들을 말을 들은 나머지 자연스럽게 유진의 발을 콱 밟아버린다)
 
유진:(순간적으로 너무 아팠지만 꿋꿋하게 웃는 얼굴)
 
이지나:으흠. (한 박자 늦게 헛기침하며 표정관리하고는 뒤돈다. 몇 걸음 걷고 나서야 유진한테 속닥인다) 미쳤니?! 그렇게까지 연기를 할 필욘 없어.
 
유진:(작은 목소리로 속삭이고는) 보는 눈이 많아서 다행으로 생각하고 밖에 나가면 당장 내 발에 대고 사과해요. (아프다.)
 
구청에서 나갈까요?
 
이지나:그럼 넌 내 귀에 대고 사과하렴. (툴툴대며 나간다.)
 
두 사람은 구청에서 나옵니다.
 
“캬악!”
 
나오자마자 출구에서 낮잠을 자던 고양이가 돌연 유진을 보고 하악질을 합니다.
 
뭐람?
 
떠나는 길까지도 계속해서 유진을 향해 캬악거립니다.
 
이지나:아는 고양이니?
 
유진:(고개를 젓는다.) 처음 보는 고양이인데.
 
이지나:원수라도 진 줄 알았네. (어깨 으쓱)
 
유진:내가 고양이에게 그렇게 인기가 없어 보이나? 우리 집 고양이는 나를 잘 따라주는데.
 
이지나:저 고양이한테 이전에 미움받을 짓이라도 한 줄 알았지.
흐음. 성가신 3인조는 안 보이려나? (제 팔 꼬아 팔짱 낀 채로 주변을 휘휘 둘러본다.)
 
주변에 성가신 3인조는 딱히 보이지 않습니다.
 
근처를 둘러보거나 한다면 나타나지 않을까요?
 
오늘 볼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요.
 
이지나:여길 자주 오고 싶진 않은데. (중얼거리면서 주변을 대강 돌아본다)
 
흠, 대강 둘러보는 것만으로는 수상한 움직임은 보이지 않는군요.
 
근처에 웨딩 박람회가 있다고 했으니 그곳으로 가보는 건 어떨까요?
 
이지나:(지금 몇 시지? 저녁에 한다고 했던 것 같은데)
 
이제 곧 점심시간이랍니다. 아직 웨딩박람회가 열리기까지는 시간 여유가 많아요.
 
이지나:(흠. 만약 그들이 방해할 작정이라면 사전에 꿍꿍이를 꾸미고 있을 수도 있으니까) 박람회 쪽으로 한번 가보겠니?
 
유진:박람회가 이 근처던가? (핸드폰을 꺼내 시간을 확인하고는) 주변에 있다 움직여도 되겠네. 그러죠.
(짧게 반응하고는 걸음을 옮긴다.)
 
두 사람은 웨딩박람회가 열리는 장소 쪽으로 발을 옮깁니다.
 
.
 
..
 
혹시 느꼈나요?
 
어느 순간, 어딘가에서부터 시선이 따라붙고 있습니다.
 
이지나:
회피
기준치: 40/20/8
굴림: 78
판정결과: 실패
 
유진:
회피
기준치: 50/25/10
굴림: 58
판정결과: 실패
 
물을 반쯤 채워 넣은 500ml 페트병이 날아와 유진의 머리에 부딪힙니다.
 
이지나:
정신
기준치: 70/35/14
굴림: 27
판정결과: 어려운 성공
 
유진:(짧은 비명과 함께 땅에 떨어진 페트병을 바라보다 주변을 살핀다.)
 
등 뒤에서 멀어져가는 급한 발소리가 들립니다.
 
교복을 입은 학생 여럿이 달려가고 있습니다.
 
총 세 명, 하지만 전부 다른 방향으로 도망칩니다.
 
쫓아간다고 해도 한 명이 고작이겠어요.
 
이지나:어머. 안타까워라. (페트병을 주워든다.) 싸가지 없는 범인 놈들이 바로 쟤네구나?
 
유진:(허? 갑자기 머리를 얻어 맞아서 어안이 벙벙하다.) 저 싸갈머리 없는 것들이?
(본능적으로 입에 험한 말을 올리고 학생 중 한 명을 쫓아간다.)
 
이지나:힘내렴? (그럼 난 반대로. 다른 학생을 쫓아 힘껏 뛴다)
 
이지나는 학생 하나를 쫓아 뛰어갑니다.
 
유진은 유진대로 움직이라고 하세요.
 
사람이 세 명인데 혼자서 둘을 쫓을 수는 없잖아요?
 
이지나:(그럼그럼)
(핸드폰도 있으니 연락은 무리없지. 쫓는다)
 
이지나가 쫓는 학생은 누군가 따라온다는 것을 눈치 챘는지 열심히 달려갑니다.
 
어느샌가 달리고 달려 근처의 시민 공원으로 들어가는군요.
 
이지나:(학생 때가 팔팔할 때긴 하지. 하지만 난 형사란다?)
 
이 맞은편으로 빠져나가면 큰 번화가.
 
여기에서 놓치면 아마 더는 찾을 수 없을 것입니다.
 
어라? 그런데 잠깐.
 
분명 다른 학생을 쫓아갔을 게 분명한 유진이 어느샌가 공원 근처에 있습니다.
 
아무래도 학생을 놓친 모양이군요…
 
이지나:(잠깐. 얘한테 말걸다가 나까지 놓치는 거 아냐? 집중해서 쫓아본다.)
(민첩 판정 되나요?)
 
음, 민첩 대신 다른 걸 해볼테니 잠시만 기다려주세요.
 
유진:(공원 앞에서 너를 발견하고는 주변을 빠르게 훑더니 그대로 소리친다.) 이지나, 그대로 가! 그대로 쫓아! (이어 발을 돌려 반대편 공원 입구 쪽으로 향해 달려간다.)
 
아무래도 앞뒤에서 함께 잡자는 것 같습니다.
 
이지나:토끼몰이구나? 물론이지. (중얼이곤 가던 방향으로 쭉 달린다)
 
이지나는 그대로 추격을 계속하나요?
 
이지나:(계속한다!)
 
좋습니다.
 
이지나:52
 
유진:70
 
학생은 조금 지친 기색이지만 여전히 발이 빠릅니다.
 
공원의 출구로 빠져나가기 일보 직전.
 
유진:(맞은 편 공원 입구에서 어느샌가 나타나 기다리고 있다.)
 
다른 학생을 놓쳤다는 것이 거짓말처럼 재빠르게 달려와 공원 출입구 앞에 서 있는 유진을 발견합니다.
 
이지나:마음대론 못 도망치지. 그대로 붙잡아!
 
말릴 새도 없이 유진이 학생을 와락 붙잡습니다.
 
이수현:으앗! 이거 놔!
 
이지나:사람 머리에 병을 던져놓고 놓긴 뭘 놓니? (숨 고르면서 다가간다. 미소는 짓고 있지만 표정이나 말투가 무척 살벌하다.)
 
유진:우리 이상한 사람 아니거든? (숨 고르면서 가만 웃고는 학생 어깨에 팔을 올려 꽉 붙잡는다.) 사람한테 물병 던지면 안된다고 누가 안 알려주던?
(누가 봐도 수상한 사람처럼 말하는 사람들)
 
이수현:ㅁ, 뭐! 내가 알 바야!? 멀쩡하잖아!
 
이지나:휴. 미성년자한테는 손 안 대려고 했는데. 주먹이 우는구나.
 
유진:(이 싹바가지 없는 걸 어쩌면 좋을까 생각하며 속으로 참는 중이다.)
 
이지나:자. 좋은 말로 할 때 그 태도를 고치는 게 좋겠구나. (빠직거리는 신경줄 잡으면서 말한다) 우선은 사과부터 하는 게 맞겠지?
 
이수현:하아!? 내가 왜? 날 멋대로 쫓아온 건 아줌마잖아! (한눈에 보아도 애쓰는 어린아이의 발악처럼 보인다. 버둥거리며 빠져나가기 위해 유진의 발을 밟는다.)
 
유진:(소리없이 비명을 지르고는 학생을 더욱 꽉 잡았다.) 너 되게 당돌하구나. 오늘 발 여러 번 밟히네.
 
이지나:나를 비하하려는 멸칭으로 그런 표현을 쓰다니. 교육도 좀 필요할 것 같고. 내 말이 장난으로 들리니? (허리를 숙여 학생과 눈높이를 맞추며 차갑게 묻는다.)
위협
기준치: 70/35/14
굴림: 38
판정결과: 보통 성공
 
이지나:
정신
기준치: 70/35/14
굴림: 21
판정결과: 어려운 성공
 
이수현:(조금 움찔거렸으나 괜스레 아무런 대꾸도 못하고 시선을 피한다.)
아, 알 게 뭐야. 요즘 애들은 다 이렇거든요?
 
유진:(잠자코 듣다가 어이없는지 작게 웃고는) 그 애가 자라서 된 게 나다. 이 시간에 학교 밖에 있는 걸 보면 근처 학교 학생 같은데 벌써부터 수업을 빼먹다니, (지나를 바라보고는) 학교에 한번 연락이라도 해줄까요?
 
이지나:학생이 되어서 공부는 안 하고 사람한테 물병이나 던지고 있다니. 가정교육도 학교 교육도 알만한 수준이구나. (멸칭에는 패드립으로 갚는다) 학생증 줘보렴. 사과를 안 하겠다면 다른 방식으로 처리를 해야지. 너희가 요새 관공서 주변에 나타나서 혼인신고하는 사람들을 노린다는 애들이지?
 
유진:이지나 씨, 어른이 되어서 학생한테 쪼잔하게 그러면 안되지. (대충 패드립은 심하다는 어투로 하는 말이다.)
 
이지나:학생이 학생답게 굴어야 대접을 해주지.
 
이수현:(학생증은 내밀지도 않을 뿐더러 입을 꾹 닫고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있다.) ……하면 안되는 짓인 건 나도 알고 있어. 알고 있다고. 하지만… (무언가 말하려다가 눈치를 보듯 결국엔 입을 닫아버린다.)
 
이지나:어머? 내가 학생 몸수색까지 해야겠니? 미안한데 난 형사라서 곱게 대해줄 자신이 없단다. (제 허리에 한 손 얹고 내려다본다.) 잘못된 걸 알고는 있다니 칭찬을 해줘야 할지 모르겠네. 하면 안 되는 짓인 걸 아는데 왜 하는 거지?
 
이수현:…… 친구 때문에. (웅얼)
 
이지나:친구가 뭘 어쨌길래 그러니. 결혼의 피해자라도 돼? (가정형편이 안 좋은가?)
 
학생은 입을 꾹 닫고 이야기하지 않습니다.
 
이야기를 듣고 싶다면 다른 방법을 써보는 게 좋겠어요.
 
이지나:사정이 있는 건 알겠지만 자세히 말하지 않는다면 내가 도와줄 방법이 없단다. 최근 너희가 저지른 짓 때문에 민원이 점점 더 많이 들어온다는 거 알고 있니? 직업 때문에라도 우린 이 문제를 해결해야 하는데, 참작할 만한 이유가 아니라면 너흴 '법대로' 처리할 수밖에 없어. (협박인지 구슬리는 건지 분간이 안 되는 말)
말재주
기준치: 60/30/12
굴림: 27
판정결과: 어려운 성공
 
유진:1번 가설 뿐만 아니라 3번 가설도 포함이네. (이걸 어쩐다, 하며 잠깐 생각하다 잠자코 학생의 반응을 살핀다.)
 
이수현:……나도 잘 몰라. 친구네 오빠가 사고로 죽었는데… 지난달부터 7월이 될 수록 오빠가 죽는 게 자꾸 생각난다잖아. 결혼하는 사람들을 보고싶지 않다고 해서 우리도 고민하다가… 위로해주려고…… (눈치를 보면서 말끝을 흐린다.)
나도 뉴스를 봤고 이제 그만해야하는 걸 알아. 하지만 걔가 너무 즐거워보여서 그만하자고도 못했어. …요.
 
유진:(이야기를 들으며 잠자코 지나와 학생을 번갈아보다가는) 너 이름이 뭐니?
 
이수현:……이수현.
 
유진:(작게 한숨을 내쉬고는 비어있는 손으로 머리를 쓸어넘긴다.) 그 친구 이름은?
 
이수현:……연주. 서연주.
 
이지나:좋아. 드디어 좀 협조할 마음이 생겼나 보구나? 근데 이수현, 너도 알고 있겠지? 오빠가 죽은 건 안타까운 일인데 이런 방법으로 위로를 하는 건 옳지 못하단 거.
나 참. 요즘 애들은 대체 사고회로가 어떻게 되어먹은 거지? 자기랑 아무런 관련 없는 사람들을 괴롭히고 그걸 보며 즐거워한다니. 황당하기 이를 데가 없네.
유진, 네 가설이 이렇게까지 맞아들어갈 필요는 없었는데 말야.
 
유진:당사자 입장은 다르겠지. (하지만 역시 이해할 수 없는 눈이다.) 학생이 한 명 더 있을텐데. 그 애도 친구니?
 
이수현:연주는 아무 잘못 없어! (뒤이은 질문에는 대답하지 않는다.) 우리가 먼저 제안한거야!
 
이지나:잘못이 없기는? 널 말리기는커녕 즐거워했다며? 너도 악질이지만 그애도 똑같아.
남은 한 명은? 질문에는 성실히 대답해야지. (구두굽으로 바닥 탁탁 두드린다)
 
이수현:……민… 다윤.
나는 이제 그만하자고 하고 싶어. 하지만 나 혼자 말해도 연주는 들어주지 않을 것 같단 말이야.
 
이지나:'그만하자고 하고 싶어'가 아니라 그만해야만 한단다.
(와중에 태클검)
 
유진:지나, 너 애 취조하니? (와중에 태클검222)
 
이수현:…….
 
이지나:그래서. 그 다윤이란 애는 이게 잘못됐다는 걸 알고는 있니? 너 혼자가 아니라면 둘이서라도 말려봐야지.
 
이수현:그건… 나도 몰라. 안 물어봤으니까.
 
유진:뭐, 그래, 좋아. 그건 둘째치고 짚고 넘어갈 게 있는데 (수현을 잡은 손을 놓아주고는 웃으며 말을 얹는다.) 학생 말이 짧네요?
(방금까지 마찬가지로 짧았던 사람)
 
이지나:그러게? 아깐 '요' 자 붙이더니 그새 짧아졌네? (유교girl)
 
이수현:벌을 받아야 한다면 받을게. …요. 하지만 그 전에 연주 집에도 같이 가 주…세요.
 
이지나:그래. 한번 만나보긴 해야 할 것 같으니까. 다윤이란 애도 부르지 그러니?
 
이수현:다윤이는 핸드폰이 고장났다고 해서 못 불러요. (눈치 보는 중)
 
이지나:(거짓말인지 진짠지 심리학 판정 가능할가요)
 
가능합니다.
 
이지나:
심리학
기준치: 75/37/15
굴림: 11
판정결과: 극단적 성공
 
딱히 거짓말을 하는 기색은 없습니다.
 
정말 부르지 못해서 두 사람의 눈치를 본 것 같네요.
 
유진:(이야기를 들으며 지나를 힐끔 바라보고는 팔짱을 끼며 태평스럽게 대답한다.) 자기야, 어떡할까? 이 친구가 우리더러 같이 가달라네요?
 
이지나:(아, 맞아. 이 가짜 부부 놀이 아직도 진행중이었지……. 원래였으면 팔짱을 밀어내다 못해 한대 찰싹 쳤겠지만 이번엔 필사적으로 연기에 동참한다) 그래……. 해결을 위해서라면야. 같이 가줄 수밖에 없겠네.
 
서연주의 집으로 갈까요?
 
이지나:(간다!)
 
두 사람은 이수현의 안내를 받으며 서연주의 집으로 향합니다.
 
이수현은 가는 동안 이지나의 곁에 찰싹 붙어 있어요.
 
이지나:(왜지? 그닥 다정하게 굴어주지 않았는데)
 
좀 전까지 타박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붙다니 조금 이상한걸요.
 
이수현:(당신의 눈치를 살피고는 조금 떨어진다.) 저 아저씨 조금 이상하단 말이야. 께름칙하잖아. …요. (뒤늦게 생각났다는 듯 한글자 덧붙인다.)
 
정말 그런가요?
 
이지나:(난 니가 께름칙한데. 라고 말하고 싶은 걸 참았다) 어디가?
 
이수현:몰라요. 그냥 이상하게 기분이 나빠요. (흘끔 유진을 흘겨보고는)
 
유진:(어이없는지 살짝 웃고는) 웬만하면 다 받아주겠지만 아무래도 당사자 옆에서 그런 말 하면 조금 상처 받아요.
 
그런 말을 하기가 무섭게
 
“멍!”
 
알기 힘든 일들은 왜 이리 연달아 일어나는지.
 
하네스에 묶여 산책중이던 개가 갑자기 유진을 향해 멍! 하고 짖습니다.
 
하네스를 쥐고 있던 주인이 당황해 반려견을 달래려 하지만 그는 계속해서 유진을 향해 짖거나 이를 드러내는 등 적대적인 기색입니다.
 
이지나:아무래도 너 미움받는 저주라도 걸린 모양인데? (아까는 고양이. 지금은 개. 심지어 옆의 이수현까지?)
 
유진:동화같은 이야기네. (터무니 없는 소리라고 생각하지만 어느 정도 공감은 하는 모양인지 어이없다는 듯이 웃었다.) 그렇다면 저주를 풀 수 있는 방법은 뭐라고 생각해요? 그게 아니라면 이지나 씨도 내가 싫으신가? (작게 웃고는 두 사람을 지나쳐 앞으로 걸어간다.)
 
이지나:글쎄? 너에 대한 내 생각은 이전이랑 똑같은데. (그냥 적당한 비즈니스 관계의 동료. 좀 재수없는 사람. 이라고 말하려던 건 삼켰다. 어쨌건 이수현한텐 우리가 연인으로 보일 테니까.) 보통 동화라면 저주를 풀기 위해 마법사나 마녀를 찾아가지……. 병원이라도 가봐야 하나?
 
유진:세상 수많은 동화의 결말은 대체로 똑같아요. 진실된 사랑의 키스가 저주를 해제하지. 그 후의 이야기는 (작게 소리내어 웃고는) 그리고 행복하게 살았답니다.
 
이지나:쯧. (작게 혀 찬다.) 어딘가엔 다른 결말도 있겠지.
 
유진:예를 들면? 물거품이 되어 사라지기라도 바라시나?
 
이지나:진짜 그러길 바라줄까? (눈 흘긴다) 최근에 무슨 일 겪은 거 없니? 이런 일 이전엔 없었잖아.
 
유진:그러지 않을 거잖아. (가만 웃고는) 무슨 일이라고 해도 별 일이 있던가? 내가 모든 걸 다 기억하지 않는다는 걸 당신도 잘 알고 있잖아요?
특별한 일이라고 해도 지극히 사적이고 나보다는 우리 가족 일이었으니까.
 
이지나:
지능
기준치: 75/37/15
굴림: 45
판정결과: 보통 성공
 
문득 지나는 지난달 즈음 유진이 휴가를 냈던 것을 기억해냅니다.
 
가족의 결혼식이라고 했던가요?
 
지나에게 크게 중요한 일은 아니었지만 말입니다.
 
계속 길을 가던 중 갑자기 이수현이 이지나의 옷깃을 끌어당깁니다.
 
이수현:역시 저 아저씨 이상해.
 
이지나:아까부터 대체 왜 그러니?
 
이수현:나랑 연주 이름을 물어봤으니까 우릴 모를텐데 내가 알려주기도 전에 지금 연주 집으로 가고 있잖아요?
 
어라, 그러고보니…
 
유진이 그를 알고 있던가요?
 
처음 가보는 사람치고는 아주 정확하게 걸어가고 있습니다.
 
마치 자신의 집으로 가는 것처럼요.
 
이지나:……? (그러고 보니 그렇네. 자연스럽게 앞서나갔지.)
유진. 너 길을 알고 있니?
 
유진:(이야기를 듣고 잠깐 걸음을 멈추었다.) …그냥. 이쯤일 것 같아서.
 
이지나:(잠깐 이수현을 뒤로하고 유진에게 성큼 다가가 목소리를 낮추고 속삭였다.) 뭐 숨기고 있는 거 있음 솔직히 말해.
 
유진:숨기다니, 나만큼 솔직한 사람이 어디 있다고 그래.
 
이지나:그건 아니지. (정색)
 
유진:(태평스럽게 웃고는) 자기야, 그렇게 말하면 나 상처받아.
 
이지나:애도 뒤에 있는데 자꾸 그럴래? (짜증!) 사람들이 널 경계하는 것도 그렇고 좀 이상하잖아. 결혼식에서 무슨 일 없었니?
 
유진:경계하는 사람이라고 해봤자 저 친구 뿐이었는걸. 그리고 결혼식이 결혼식이지, 무슨 일 있었기를 바라는 것처럼 얘기하고 있지 않아요? 그렇게 관심 있었으면 오지 그랬어. 신랑 측 관계자로 초대해 줄 수 있었는데 안타까워라.
 
이지나:말은 그래도 동물까지 알아서 포함해서 들어야지. 센스 없긴. 무슨 일 있었길 바라는 게 아니라 그나마 의심스러운 구석이 거기뿐이라 그러는 거야. (듣고 있자니 열받는데?) 기껏 신경써줘도 날 놀리기에만 바쁘구나. 넌 물병으로 한 대 더 맞아야겠어.
 
유진:우리 이지나 씨가 나를 이렇게 걱정해주는 사람이었나? (작게 웃으며 농조로 말한다.)
 
이지나:걱정이 아니라 신경이라니까? 성질 그만 긁어. (그리고 수현에게 고개 돌린다.) 그냥 감으로 갔을 뿐이래. 다시 안내하렴.
 
이수현은 여전히 께름칙한 표정으로 유진을 바라보지만 유진은 아무렇지 않은 듯 합니다.
 
다시금 세 사람은 서연주의 집으로 향합니다.
 
서연주의 집은 조용한 곳에 위치한 1층짜리 주택입니다.
 
마당의 개 집은 비어있고, 잔디를 깎는 기계가 주변에 적당히 놓여있습니다.
 
사람이 있는건지 없는건지 알 수 없을 만큼 조용합니다.
 
지금 이 장소만 시간이 멈춘 것만 같아요.
 
이수현이 대문으로 다가가 초인종을 누릅니다.
 
담 너머에서 희미한 인기척이 느껴집니다.
 
나오고 있는건가?
 
대문을 빤히 보던 유진이 앞으로 한 발자국 나서서 대문을 툭, 투둑, 하고 기묘한 박자로 두드립니다.
 
이지나:(저 박자는 또 뭐야?)
지능
기준치: 75/37/15
굴림: 33
판정결과: 어려운 성공
 
이지나는 문득 유진이 오른손으로 대문을 두드렸다는 것을 깨닫습니다.
 
안쪽에서 들려오는 인기척이 더욱 빨라집니다.
 
벌컥, 문이 열립니다.
 
서연주 모친:(다급하게 대문을 열고는) 건우야?
 
이지나:(눈살을 미묘하게 찡그린다. 저 박자며 오른손으로 두드리는 것하며, 뭔가 명백하게 이상한데.) 죄송하지만 아닙니다. 혹시 서연주 학생이 집에 있나요?
 
서연주 모친:아… 죄송해요. 저희 집 아이인 줄 알고…
연주는… 지금 집에 없는데 죄송하지만 누구신지…?
 
이지나:최근 관공서나 주변 예식장에 협박장을 보내고, 혼인신고를 하러 오는 커플을 괴롭히는 사건이 일어나서요. 따님이 그 범인으로 추정되어 수사를 하고자 찾아왔습니다.
 
서연주 모친:(조금 놀란 모양인지 눈을 몇 번 깜빡이다가는 조심스레 입을 연다.) 우리 연주가요? 정말 저희 집 아이가 맞나요?
 
이수현:(쭈뼛쭈뼛 앞으로 나서더니 인사를 하고는) 연주랑 저희랑 같이 한 게 맞아요.
 
이수현은 그동안 있었던 일을 서연주의 모친에게 조심스레 설명합니다.
 
서연주의 모친은 당황하는 듯 했지만 어딘가 짐작가는 구석이 있었는지 차분하게 이야기를 들으시고는
 
서연주 모친:안으로 들어오시겠어요?
 
여러분을 집 안으로 안내합니다.
 
들어갈까요?
 
이지나:실례하겠습니다. (그리고 유진을 흘끗 돌아본다.)
 
유진은 별다른 반응을 하지 않습니다.
 
이지나, 당신처럼 인사를 하고 집 안으로 들어갈 뿐입니다.
 
이지나:(흐음.)
 
평소와 다르지 않은 것 같네요. 아마도요.
 
이지나:(표정관리를 워낙 잘 하는 사람이니 티를 내지 않고 있는 걸 수도 있지.)
 
서연주의 집 안은 전반적으로 깔끔하지만 어딘가 쓸쓸하게 느껴집니다.
 
복도로 들어서면 바로 앞에 아무런 팻말도 걸리지 않은 방문이 보입니다.
 
그 옆으로 [연주의 방]이라고 쓰인 플레이트가 걸린 문이 보입니다.
 
복도를 지나 바로 보이는 곳은 거실이네요.
 
이지나:(팻말 없는 방이 건우라는 사람의 방이겠지.)
 
거실 안쪽으로는 보이는 방은 아무래도 안방인 모양입니다.
 
서연주의 모친은 거실로 여러분을 안내했습니다.
 
낡은 TV와 장식장, 꽃이 없는 화병과 좌식 테이블이 보이는군요.
 
서연주 모친:편히 둘러보셔도 되니 잠시 기다려주시겠어요? 마실 것 좀 내올게요.
 
이지나:네. 그럼. (연주의 방부터 들어간다)
 
말하기가 무섭게 이지나는 망설이지 않고 서연주의 방으로 향합니다.
 
이수현의 어이없는 눈치를 받았지만 주변에서 뭐라고 하든 무슨 상관인가요.
 
책장에 교과서나 문제집, 만화책 등이 어지럽게 꽂혀 있습니다.
 
책상에는 불이 반짝이는 컴퓨터와 액자가 세 개 놓여있네요.
 
하나는 네 사람이 찍힌 가족 사진, 다른 하나는 이수현과 서연주, 그리고 또래의 다른 한 사람이 찍힌 사진,
 
또 다른 하나는 서연주와 닮은 누군가가 함께 찍은 사진입니다. 아마 이 사람이 서건우겠죠.
 
이지나:
관찰력
기준치: 65/32/13
굴림: 54
판정결과: 보통 성공
 
책상과 벽쪽에 비스듬하게 끼워져 있는 종이 조각을 발견합니다.
 
이미지
 
…종이에 아무렇게 자필로 쓴 듯한 협박장입니다.
 
이지나:(흠. 증거물. 일단 사진 찍어두고 사진들을 살펴본다. 특이점이 있나?)
 
종이에 별다른 특이점은 보이지 않습니다.
 
이지나:(세 사람이 찍은 사진을 본다. 민다윤이라는 애 얼굴도 알아둬야지.)
 
사진 속 학생들을 바라봅니다.
 
뒷모습만 보아서 확실하지는 않지만 얼핏 보기에는 아까 물병을 던지고 도망간 학생들이 맞는 것 같습니다.
 
이지나:(컴퓨터도 본다)
 
어제 서연주가 끄지 않았는지 가까이 다가가는 것만으로도 화면이 켜집니다.
 
엑셀 창 몇 개와, 메신저 창이 하나 떠 있습니다.
 
엑셀 창에는 [7월에 열릴 결혼식을 중단하라] 라는 문구가 적혀 있습니다.
 
인쇄하려고 했는지 프린트 창도 하나 떠 있네요.
 
이지나:진짜 계획적이네, 얘.
(메신저 창도 본다. 뭔 얘기를 했으려나?)
 
메신저 창에는 최근까지 갱신되던 대화내역이 하나 있습니다.
 
상대 이름을 보니 민다윤이라고 적혀있습니다.
 
이미지
 
ㄴㄴ
 
이미지
 
이지나:하? 결혼식장이란 결혼식장마다 다 훼방놓고 다니고 있었으면서 이건 또 괜찮다고? 진짜 요새 애들은 알 수가 없네. (중얼거리면서 창을 내린다. 아무튼 행방은 알았다.)
이 초대권은 또 누구한테 어떻게 받은 걸까나.
 
그건 알 수 없는 일이에요.
 
여기서 더 살펴볼 건 없는 것 같네요.
 
이지나:(그럼 서연주의 방을 나와서 옆방으로 들어가본다.)
 
이지나:
민첩
기준치: 40/20/8
굴림: 39
판정결과: 보통 성공
 
아무 일도 없었습니다.
 
이지나는 옆방으로 향합니다.
 
들어간 순간, 한눈에 이곳이 죽은 서건우의 방이라는 것을 깨닫습니다.
 
사망한 이후 정리하지 않은 모양인지 그가 사용하던 그대로 보존되어 있는 듯 하네요.
 
회계나 사무에 관련된 책이 한 구석에 꽂혀있고, 소설책도 몇 권 꽂혀있습니다.
 
책상 위에는 손때 묻은 노트북이 열린 채로 놓여있습니다.
 
옆쪽에는 노트북 배터리 코드가 뽑혀 있네요.
 
이지나:(누가 최근에 썼나 본데. 노트북 화면을 켜본다.)
 
이지나는 노트북에 배터리 코드를 꼽습니다.
 
잠시 기다리자 화면에 불이 들어옵니다.
 
동시에 인터넷 창이 자동으로 열립니다.
 
검색 창이 여러 개 떠 있네요.
 
이지나:(흠? 배터리 코드가 꽂혀 있기에 그 연주란 애가 쓴 줄 알았는데. 서건우가 마지막에 사용했던 모습 그대로인 건가?)
 
어쩌면 그럴지도 모르죠!
 
이지나:(추측하기론 프로포즈를 준비하거나 하던 과정에서 사고를 당해서 죽은 것 같은데. 그러면 서연주의 이 행동도 납득이 된다.)
(물론? 정당하단 뜻은 아니지만.)
 
서건우의 방을 더 살펴볼까요?
 
이지나:(소설책같은 것도 한번 슬쩍슬쩍 들춰봅니다)
 
이지나:
자료조사
기준치: 70/35/14
굴림: 5
판정결과: 극단적 성공
 
슬쩍슬쩍 소설책을 살펴보던 중 그 옆에서 눈에 띄는 앨범이 하나 보입니다.
 
표지에 마카로 하트가 그려져 있네요.
 
펼쳐보니 서건우가 연인과 찍은 사진들이 스크랩 되어 있습니다.
 
어떤 사진은 꽤 서투르게 찍혀있는 반면 어떤 사진은 굉장히 유려하게 찍혀 있습니다.
 
주로 서건우가 찍힌 사진입니다.
 
이지나:(만약 내 추측대로라면 서연주는 서건우의 연인이었던 사람도 엄청 미워했을 것 같은데. 자세한 상황은 들어봐야 알겠지.)
(사진에 특이점은 없나?)
 
사진에 무언가 특이점은 보이지 않네요.
 
굳이 특이점을 꼽자면 서건우가 찍힌 사진이 유독 잘 나온 것이 프로 작가가 찍은 것 같아요.
 
이지나:(방에 더 둘러볼만한 건 없나 한번 더 살펴봅니다)
 
더 이상 방에서 살펴볼 만한 것은 없는 듯 합니다.
 
이지나:(그럼 방을 나서서 거실로 향합니다.)
 
마침 이수현이 당신을 데리러 왔네요.
 
아무래도 당신이 자리를 비운 동안 불편하다는 사람과 함께 있는 것이 굉장히 부담스러웠나 봅니다.
 
이지나:(왠지 웃기네)
민첩
기준치: 40/20/8
굴림: 16
판정결과: 어려운 성공
 
~그리고 아무 일도 없었다~
 
이지나:(거실로 가자...)
 
이지나:
듣기
기준치: 55/27/11
굴림: 80
판정결과: 실패
 
서현주의 모친도 마침 거실로 돌아온 것인지 유진에게 얼음을 건네주고 있었습니다.
 
테이블 위에는 이지나와 이수현의 몫으로 추정되는 컵 하나가 올려져 있습니다.
 
향을 맡아보니 따뜻한 커피네요.
 
이지나:(커피 좋지. 하지만 마실 생각이 없어 아직은 그대로 둔다.) 따님의 행방은 대략 파악이 됐습니다. 다른 친구와 뷔페에 간다는 것 같군요.
아드님의 사망에 관한 전말을 말씀해주실 수 있을까요?
 
서연주의 모친은 느릿느릿 조심스러운 투로 입을 엽니다.
 
서연주 모친:…1년 쯤 전이에요. 갑자기 사고로 죽었죠. 우리 건우는 원래도 그리 건강하지는 않았지만 그래서 더 그런 식으로 갈 거라고 생각하지 못했어요.
저희 모두 충격을 많이 받았지만 연주는… 더 상처를 받았나봐요. 애들끼리 아주 친했거든요. 저도 이제는 안정되었다고 생각했지만, …….
……7월은 건우의 사혼식을 올려줬던 달이에요. 7일이었으니까… 마침 오늘이네요.
오래 사귄 연인이 있었거든요. 지희 씨가 원래 건우에게 결혼하자고 하려 했었나봐요. (아, 하고 상대 분 이름이에요, 라며 한마디를 덧붙였다.) 그래서 마음의 정리를 하고 싶으니 도와달라는 말을 들어서, 저희야말로 부탁드린다고 했죠.
건우에게도, 지희 씨에게도, 저희에게도… 무언가 하나 일단락이 될 거라 생각했어요.
연주는 반대했지만 결국 도움이 될 줄 알았는데… 그러네요.
 
서연주 모친:(작게 한탄하듯 혼잣말로 중얼거린다.) ……연주와 마지막으로 대화한 게 언제였더라.
 
이지나:공교롭게도 오늘이군요. (그러고 보면 유진이 칠석 얘기를 꺼냈지. 그를 잠시 바라보았다가, 모친에게만 들리도록 목소리를 낮추고 속삭인다.) 여쭤볼 게 있어요. 아까 처음 이 집에 방문했을 때 저쪽 형사가 독특한 박자로 문을 두드렸죠. 혹시 그 박자가 아드님과 연관이 있을까요?
 
서연주 모친:(살짝 놀란 눈치를 보이고는) 어머, 네. 건우가 항상 그런 식으로 노크를 하기는 했어요. 그래서 저도 모르게 그만… 주책을 부렸네요.
 
이지나:(하. 무슨 빙의라도 된 거야? 웃기네 진짜. 이게 소설도 아니고.)
 
문득 이지나의 눈에 장식장 위의 액자가 눈에 들어옵니다.
 
이지나:힘드셨을 텐데 이야기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서연주가 결혼을 훼방놓고 다닌 건 자기가 반대한 사혼식을 기어코 강행해서였나?)
 
30대 초반 쯤으로 보이는 여성이 푸른꽃으로 만들어진 부케를 들고 흑백의 액자 옆에 앉아 있습니다.
 
그 뒤에 서연주의 모친과 비슷한 나이대로 보이는 중년 남성, 교복을 입은 서연주가 함께 있네요.
 
이지나:(저게 사혼식 때의 사진이겠지.)
 
어라? 그러고보니…
 
무언가 생각 날 듯 말듯 한 걸요.
 
이지나:
지능
기준치: 75/37/15
굴림: 59
판정결과: 보통 성공
 
아, 생각났습니다.
 
사진 속의 저 부케, 어디선가 본 적이 있지 않던가요?
 
꿈 속에서 유진이 들고 있던 부케입니다.
 
이지나:(이게 진짜 말이 되는 일이라고?)
 
유진:아이에게, (잠깐 숨을 고르는 듯 하더니 천천히 운을 띄운다.) …연주에게 무슨 특별한 일은 없었나요?
 
서연주 모친:이걸 말씀드려도 될런지…
 
이지나:사건 해결을 위해선 필요합니다. 말씀해주세요. (진지하게 부탁한다.)
 
서연주 모친:연주가 요즘 상담을 받고 있다 하더라고요. 상담 선생님 말로는 기록을 하는 게 도움 될 거라고 해서…
잠시만 기다려주세요.
 
서연주의 모친은 잠깐 자리를 비우더니 곧 노트 한 권을 들고 돌아옵니다.
 
노트를 펼쳐볼까요?
 
이지나:(망설임없이 펼친다)
 
이지나:(눈살을 찌푸린다. 지희를 데리고 가?) 이 노트 내용을 읽어보신 적 있나요?
 
서연주 모친:아뇨, 저는 읽어본 적 없어요. 아무래도 연주가 얘기해주기 전까지는 저도 묻기 조심스러워서…. 여러분께서 필요하다고 하셔서 전달드렸어요.
 
…….
 
아무래도 무슨 일이 있는 게 분명합니다.
 
그러지 않고서는 이 이상한 일을 말로 설명할 수가 없잖아요?
 
.
 
잠시 후,
 
슬슬 시간이 되었는지 돌아가려는 여러분을 서연주의 모친이 배웅해줍니다.
 
그리고 그는 유진의 얼굴을 빤히 바라보다가는
 
서연주 모친:저기…… 혹시 이름이 어떻게 되나요?
(조심스레 유진의 한손을 꼭 감싸쥐고는) 가능하다면 또 들러줄 수 없을까요? 이런 말 하면 안되는 걸 알지만…… 우리 건우랑 많이 닮아서 자꾸 생각나네.
 
유진:(한참을 말없이 있다 느리게 눈을 깜빡이고는 빈 손을 조심스레 제 손을 감싼 양손 위에 얹힌다.) ―…된다면 또 찾아뵐게요. 건강하세요.
 
순간, 자리에 있던 사람들의 숨이 멈춥니다.
 
이지나 또한 강한 위화감을 느낍니다.
 
유진이 원래 이런 식으로 말하던 사람이었나?
 
뭔가에 씌인 것만 같은 느낌이 듭니다.
 
이지나:(게다가 이름은 말해주지도 않았어. 아무리 봐도 내 추측이 맞는 것 같잖아.현대사회에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는 건가……?)
SAN Roll
기준치: 70/35/14
굴림: 78
판정결과: 실패
 
이지나:꼭 자주 알던 사람처럼 말하는구나? (일단은 아무렇지 않은 척 말 걸어본다.)
 
유진:(아무렇지 않은 척 조용히 속삭인다.) 그럴리가.
 
.
 
..
 
자리를 파하고 떠나는 길.
 
서연주의 집을 떠나온 뒤로 유진은 아무런 말이 없습니다.
 
어깨를 나란히 마주하고 걷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 하여 앞뒤로 서로를 따라걷고 있지도 않습니다.
 
평소에 두 사람 사이에 아무런 교류가 오가지 않았던 적이 있었던가요?
 
이지나, 당신은 지금 무엇을 하고 싶나요?
 
이지나:(둘다 말수가 그렇게 적은 편은 아니니 사건에 대해서든 스몰토크든 대화가 잦은 편이었다. 그러니 이 침묵은 꽤 드문 일이다.) 고작 사건 때문에 잠깐 지나치는 사람 집에 또 찾아뵙겠다고? 네가 물병을 맞더니 충격이 컸나 봐. 한 대만 더 때려봐도 되니?
 
때려볼까요?
 
유진:(이상하게 다가오는 질문과도 같은 말에 아무런 대답 없이 아주 잠깐 네게 시선을 두었다. 정작 신경쓰지 않는다는 마냥.)
 
이지나:(하. 이딴 식으로 반응한다 이거지. 이러니까 더 확실해졌네.) 왜 하필 유진인 거지?
(고양이나 강아지는 귀신을 볼 수 있다지? 생전 귀신이며 유령 같은 건 믿어본 적 한 번도 없는데.) 내 상식을 바꿔버리려고 하네. 마음에 안 들거든?
근력
기준치: 45/22/9
굴림: 52
판정결과: 실패
(한대 팍 때려보지만 힘이 제대로 안 들어감)
 
큰 한 방을 기대했지만 아무래도 그닥 크지 못한 한 방이었나 봅니다.
 
이지나의 손은 그대로 허공을 휘적거립니다...
 
그때,
 
갑자기 발을 헛디디기라도 하였는지 유진이 앞으로 넘어집니다.
 
(정말로 발을 헛디뎠습니다.)
 
이지나:뭐하니? (한심하게 봄)
 
유진:(갑자기 넘어져서 저도 모르게 땅을 짚은 채 있다가 정신을 차리고 일어났다.)
…발을 헛디뎠어. (넘어진 곳을 정리하듯 손으로 툭툭 털어내본다.)
건강
기준치: 70/35/14
굴림: 94
판정결과: 실패
(살짝 눈을 찌푸리고는 혼잣말로 중얼거린다.) 그새 까졌네.
 
이지나:
정신
기준치: 70/35/14
굴림: 62
판정결과: 보통 성공
(그건가? 자기 집에서 멀어졌으니 잠깐 빠져나간거야?) 유진, 방금 무슨 일이 있었지?
네가 넘어지기 전에 말야.
 
유진:너 지금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그야 당연히 (자연스레 무언가를 말하려는 듯 하다가도 살짝 눈을 찌푸리며 눈을 방황하기 시작한다. 내가 무슨 일을 했더라? 지난 기억을 헤집듯 이어지는 침묵을 깨는 것은 그로부터 수 초의 시간이 지난 후였다.) 그 학생의 집에서 나왔다가…… 뭘 했었지?
(손바닥에 생긴 상처를 바라보다가는 조용히 말을 이었다.) 이상하게 기억이 없어.
 
이지나:그럴 거 같더라. 집에서 있었던 일이 기억나긴 하니?
 
유진:(어이없다는 눈으로 바라보고는) 알면서 물어봤어요? 집에서 무슨 일이 있었던 것까지는 기억이 나. 거기서 조금 이상한 기분이 들었으니까.
 
이지나:아무래도 믿기지 않는 일이어서 말이지. 평소였더라면 너한테 내 생각을 꺼내자마자 비웃음이나 들었을걸?
이상한 기분이라면 어떤 거?
 
유진:언제는 안 그러셨나, 이지나 씨. (안그랬다.) 그렇게 말하는 걸 보면 얘기해 줄 마음은 있나봐요?
아주 당연하지만 낯선 느낌. 그런데 동시에 처음이 아닌 것 같은 느낌. …그래서 이상하다는 거야.
사람의 감정이란 복잡해서 때로는 모순적이라고 하지만 이런 느낌을 받은 건 좀처럼 없었던 것 같아서.
 
이지나:네가 날 비웃는단 소리였단다? 물론 내가 널 비웃는 일도 심심찮지만.
 
유진:그럼, 내가 당신을 비웃는다는 뜻이었지. (농조)
 
이지나:흠, 믿기지 않지만 말이지. 죽은 서건우의 영혼인지 뭔지가 네게 빙의되었다 방금 사라진 것 같아. 내 꿈에 부케를 든 네가 나왔거든? 그런데 그 집에서 본 사혼식을 올렸다는 여자의 손에 정확히 같은 부케가 들려있었어. 네가 그 어머니에게 또 찾아뵙겠다고 한 것도 영 이상했고.
 
유진:(이게 무슨 소리람?)
 
이지나:(그 표정을 익히 알기에 눈썹 한번 치켜올린다.) 나도 이런 말 하고 싶지 않거든? 내가 세상에서 제일 안 믿는 게 귀신이니 유령 따위였다고. 그런데 오늘 너한테 일어난 일련의 일을 보면 이것밖에 추론되는 게 없어.
 
유진:(정말 이상하다는 눈으로 한번 쳐다보고는 어이없이 웃으며 작게 속삭인다.) 내가 꿈에 나올 만큼 내 생각을 그렇게 많이 한 거예요? 와, 이 기대에 얼마나 보답을 해야 할 지 모르겠는걸.
 
이지나:이게 제일 듣기 싫었는데! 진짜 오해하지 말아줄래??!?!?! 난 절대로!!!! 그만큼 네 생각 많이 하지 않으니까!!!! (발 콰아악)
 
유진:악! (반사적으로 나오는 비명)
 
이지나:
정신
기준치: 70/35/14
굴림: 51
판정결과: 보통 성공
 
유진:(그 자리에 주저 앉아서 발을 붙잡고는 고통을 참듯 호흡을 멈추고는 크게 내쉰다.) 이지나, 당신 이게 몇 번째야.
 
이지나:싫으면 밟힐 만한 말을 하지 말아줄래??
 
유진:(발을 한번 손으로 꾹 누르고는 그대로 자리에서 일어난다.) 빙의니 뭐니 그런 건 나도 믿는 편이 아니지만 당사자 앞에서 귀신이 씌었다는 건 너무하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그리고 그 사진, 나도 봤어요. 거실에 아주 잘 보이는 위치에 걸려있었으니까. 파란 꽃을 쓴 부케는 흔치 않으니까 기막힌 우연이라고 생각했지.
(잠깐 생각하다가는 낮은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또 뵙겠다고 했던 건 나도 모르겠네. 왜 그런 말을 했었지? 뭐, 별 이유는 없어요. 그냥 그때는 그러고 싶었거든.
 
이지나:어쩌겠어? 수사를 하고 있는 상대는 넌데. 너 아닌 누구한테 네가 귀신 씌인 것 같다고 말하겠니. 그리고 내가 이런 허황된 소릴 쉽게 뱉을 사람인 것 같아? 나도 내 딴에 여러 각도로 관찰하고 생각해서 꺼낸 말이거든.
봐. 이유도 없고. 그냥 그러고 싶었던데다 기억도 좀 흐릿하지. 아무튼, 뭔가 관련되어 있는 건 분명한 것 같아.
왜 하필 너와 나인지는 모르겠지만. (눈살 찡그린다.) 집에서 본 노트의 내용은 기억나니?
 
유진:나니까 이런 이야기를 하는 거겠지. (팔짱을 끼고는 짧게 반응하며 생각하다가) 그 집에서 있었던 일까지는 모두 기억 나. 짐작가는 게 하나 있기는 한데 확실하지는 않고.
 
지나는 무언가 생각나는 게 있나요?
 
이지나:
지능
기준치: 75/37/15
굴림: 23
판정결과: 어려운 성공
 
좀 전에 유진이 한 말을 떠올려 봅시다.
 
파란 꽃 부케는 흔치 않으니 기막힌 우연이라고 생각했다던가요?
 
이지나:기막힌 우연? 설마 네 형의 결혼식에서도 부케가 파란 꽃이었니? 짐작가는 게 있다면 모두 말해야 해.
 
유진:(이어지는 질문에 너를 한번 바라보고는 고개를 끄덕인다.) 그거랑 비슷한 부케였어요. 지금은 나한테 있거든. 형수가 던진 부케를 누가 받고는 나한터 줘서. 그거랑 같은 부케인지는 모르겠지만 이전에도 다른 사람들 손을 몇 번 탔던 거라고 하니 어쩌면 동일한 부케일 수도 있겠는걸. (살짝 눈을 찌푸리고는 농조를 띄운다.) 오, 갑자기 찝찝해졌다.
 
이지나:그러니까 지금 부케가 너한테 있다는 거지? 그게 이 상황의 단서가 되려나? 일단 지금은 네가 멀쩡해진 것 같긴 한데, 서건우가 또 네게 빙의인지 접선인지 될 수도 있잖아. 아니라면 좋겠지만.
 
유진:정말 빙의인지 접선인지 모르겠지만 예상되는 시나리오가 하나 있는데 들어볼래요?
그리고 나도 귀신이 그렇게 잘 붙들리는 체질이 아니거든. (정정할 건 정정하고 넘어가자는 주의)
 
이지나:빨리 말해. 알고 보니 니가 서건우 친구였단 소릴 들으면 꽤 놀라울 것 같거든.
(그럴 리 없겠지만)
 
유진:차라리 그랬다면 마음이 편하기라도 했겠지 안타깝게도 나도 서건우 씨와는 초면이네요. (양쪽으로 따옴표 제스쳐를 취하고는 말을 이었다.)
무슨 이유인지 모르겠지만 그 부케가 정말 사진 속의 부케라면 부케 속에는 서건우의 영혼이 묶여있다. 그리고 그 부케가 연인을 데려가려고 한다.
제일 찝찝하고 말이 안되는 이야기지만 반대로 가장 말이 되는 이야기이기도 하죠. 안그래?
그리고 그 꿈 이야기 다시 해 봐요. 생각할 수 있는 범위는 늘리는 게 좋으니까.
 
이지나:내가 본 노트에도 영 꺼림칙한 내용이 쓰여 있었지. 민다윤이란 애가 서연주에게 바람을 넣었던데. 대체 무슨 해괴한 짓을 했는지는 몰라도 그게 정말이라면 지희란 사람도 위험하겠구나. 빨리 그 애들을 찾아서 무슨 짓을 한 건지 알아내야겠네.
애초에 서건우의 사혼식 때 쓰인 부케가 왜 하필 너희 형 결혼식 때 쓰였는지는 알 수 없지만 말이야. (눈살을 찡그린다.)
 
유진:지금 우리 형수 취향에 토다는 거예요? (악의 없음)
 
이지나:그게 아니라, 사혼식 때 쓰인 부케라면 보관이 되던가 했을 텐데 어쩌다가 그 결혼식까지 흘러들어갔냐는 말이야. (황당)
(꿈을 되새겨본다. 정확히 어떤 꿈이었더라? 부케를 든 유진이 걸어가고 있었고, 그리고 누가 내게 말을 걸었었지.) 알 수 없는 누군가가 오늘은 중요한 날이라고, 너를 지켜야 한다고 했어.
 
유진:(잠자코 이야기를 듣다 저도 모르게 눈을 찌푸렸다.) 지켜요? 나를? (지금 그런 행동을 보였나 싶어서 고개를 옆으로 기울이다가는) 부케의 출처는 나도 잘 모르는데 프리저브드 플라워로 만들어진 건지 전혀 시들지도 않았고 좀처럼 손상되지도 않을 뿐더러 예쁘게 다듬어져 있다 보니 다른 신랑신부들 손에서도 꽤 빙빙 돈 모양이에요.
(손버릇처럼 제 머리를 톡톡 건드리고는 너를 가리켰다.) 요컨대 정말 기막힌 우연인거지.
 
이지나:하. 그러니까 그애들은 죽은 사람 연인을 해치려는 것도 모자라서 부케를 확실하게 보관하지도 않아서 여러 사람한테 닿도록 일을 키웠구나? 이건 안 되겠는데. 굉장히 사적 재재를 하고 싶어져.
자, 그 뷔페까지 빨리 가자꾸나. 낯짝을 좀 봐야겠거든.
그리고 의아해하지 마. 내가 그딴 사소한 꿈을 주의깊게 기억해둘 리 없다는 걸 알잖니?
 
유진:(잠깐 생각하듯 제 입가를 톡톡 만지다가) 정정할까요. 애들이 부케를 보관하지는 않았을테고 서연주 학생의 노트 내용으로 추정컨데 그 학생은 아무것도 모를 확률이 무척 높다고 생각이 되어서요.
그리고 하나 더 짐작을 해보자면 왜 하필 당신이 그 꿈을 꾼 걸까?
정말 귀신이 있다면, 아니지. (고개를 젓고는) 부케에 죽은 사람의 영혼이 머문다면 간단하게 말해서 부케의 소유자를 데려간다는 것 아닌가?
(뒤이어 생각났다는 듯 혼잣말로 중얼거린다.) …그게 나네.
 
이지나:난 그애들에게 책임감이 전혀 없단 소리를 하는 거야. 영혼이 머무르니 사람을 데려가니 하는 큰일이 걸려있는데 부케 관리엔 신경 하나 안 쓰고. 서연주는 어느 정도 참작은 되겠지만 책임소재가 전혀 없을 순 없어. 결과를 알면서도 응한 거잖아? 그리고 노트의 지워진 부분이 있어서 정확히는 알 수 없지만, 뭔가를 본 것 같던데.
하. 이것 봐. 자기들 행동에 책임을 안 지니 네가 당하게 됐잖니? (짜증스럽게 혀를 찬다.) 솔직히 지금 이 상황이 다 허황된 말 같지만 보고 들은 게 있으니 거짓으로 치부할 수도 없는 노릇이지.
 
유진:이지나 씨, 왜 이러실까. 생각을 바꿔 봐요. (손으로 무언가를 뒤집는 시늉을 하고는) 누가 당신 목걸이에 당신이 그리워하는 사람의 영혼을 머무르게 해주겠다. 그럼 1년 후에 그 사람을 만날 수 있다. 이렇게 말하면 믿을 거예요? (긴 시간이 가시기도 전에 웃고는) 아니잖아. 당신은 그런 사람이니까.
어쨌든 갈 곳은 정해졌네요. 그 학생들이 간다고 했던 뷔페로 가죠.
 
이지나:참작할 만한 요소는 있다고 했단다? 책임을 피할 수 없단 뜻이지. 내가 보고 싶은 사람이 있다고 죄없는 사람을 같이 죽이겠단 거, 누가 봐도 이상한 발상 아니니? (어깨 으쓱한다.)
 
어디로 갈 지 정했나요?
 
이지나:(뷔페로 향합니다)
 
두 사람은 학생들이 있을 곳으로 추정되는 뷔페로 향합니다.
 
목적지를 정하기가 무섭게 두 사람은 금새 호텔 빌딩에 도착합니다.
 
역시 3보 이상 택시는 진리예요.
 
스스로의 상태가 이상하다는 것을 깨달은 것인지 유진이 직접 택시를 타자고 요청하지만 않았다면 말이죠.
 
두 사람이 도착한 호텔은 90층까지 있는 초고층 대형 건물입니다.
 
이지나:(택시는 편하긴 하지. 유진이 먼저 요청한 건 나름 의외였지만.)
 
호텔 뿐만 아니라 대형 쇼핑몰이나 주거시설, 식당, 오피스 공간이 복합적으로 들어차 있습니다.
 
입구에는 오늘 열리는 웨딩 박람회 패널이 늘어서 있네요.
 
연인으로 보이는 사람들이 많이 오가고 있습니다.
 
그러고보면 택시 기사도 목적지를 듣고 자연스럽게 두 사람을 신혼부부로 생각하고는 했었죠.
 
……뭐, 아무래도 좋아요!
 
이지나:(떼잉)
 
어허, 표정 펴세요.
 
이지나:(흠흠.)
 
운명을 받아들여요.
 
이지나:(이건 어디까지나 수사를 위해서다)
 
하늘이 이렇게나 밝은데도 핸드폰으로 시간을 확인해보니 어느새 7시가 가까워지고 있습니다.
 
유진:(택시에서 내린 이후부터 이마를 짚은 채로 서 있는다. 여간 상태가 좋지 않음을 심히 느끼는 모양인지 웃음기가 싹 가신 얼굴이다.)
지나, 나 어깨 좀 빌려줘요. (채 허락이 떨어지기도 전에 한손을 네 어깨에 올리고 잠시 가만히 있는다.)
 
이지나:
정신
기준치: 70/35/14
굴림: 77
판정결과: 실패
 
좀처럼 방심을 할 수가 없네요.
 
오늘따라 왜 이리 손이 많이 가는 걸까요?
 
이지나:(그렇게 유들유들하던 사람이 웃음기가 싹 사라지니 정말 상태가 나빠 보이긴 한다.) 참나. 내 어깨가 얼마나 비싼데. (원래라면 매몰차게 손을 밀어냈겠지만, 유진에게 일어난 현대 과학으론 믿을 수 없는 일 때문에 조금 마음이 약해졌다. 게다가 이전 임무에서 부상을 입고 유진에게 신세를 진 적도 꽤 있었고. 결국 볼멘소리를 하면서도 손을 떨쳐내진 않았다.)
업어주는 건 못 한단다? 많이 힘들면 약국 같은 데라도 가던지. 이만한 공간이니 하나쯤은 있겠지.
 
유진:말 시키지 말아요, 지금 죽을 것 같으니까. (마지막 양심은 있는지 험한 말은 꺼내지 않았다. 그러나 곧이어 생각이 바뀌었는지 그새를 쉬지 않고 한마디 덧붙인다.) 아니다, 다시 생각해보니 계속 이야기하는 게 정신 유지에 더 도움 되겠어.
(고개를 들고는 눈두덩이를 꾹꾹 눌렀다.) 애초에 그런 건 바라지도 않았고. 약국을 가더라도 약효가 있을지는 장담을 못해서 섣불리 못가겠네요. (그렇다. 약에 사비를 쓰기 싫어하는 중이다.)
 
이지나:아까는 이 정돈 아니었잖니. 상태가 갑자기 안 좋아지기라도 한 거야? (어깨를 으쓱하려다가 얹힌 손을 상기하고 멈춘다.)
설마 굳이 약에 돈 쓰기 싫어서 이러는 건 아니겠지? 9
(황당하게 본다) 정확히 어디가 어떻게 안 좋은지 말해 봐. 아무것도 안 하고 억지로 돌아다니다 쓰러지기라도 하면 나만 번거롭거든?
 
유진:컨디션이 좋지 않으니 멀미라도 했나 보지. 그게 아니라면 죽을 때가 다가오기라도 하나? (실없이 웃는 듯 하였지만 뒤이은 표정은 영 웃지 않고 있다.)
이지나 씨, 당신이 뭘 모르나본데 이런 곳에 있는 약국은 사람들이 비상약을 사는 개념이라 비싸요. 오히려 바가지만 쓰인다고.
우리 까놓고 얘기해볼까? (눈가를 매만지고는 이어 네게 시선을 맞추었다.) 단시간에 반복되는 일시적인 기억 상실을 해결할 수 있는 약물이 있을 거라 생각해?
 
이지나:듣기 싫은 말 하지 말아줄래? 재수 없는 소리 하다가 나한테까지 그 재수 옮을라. 우린 아직 창창한 20대거든. (진짜 상태가 말이 아니네.) 네가 약 하나 살 돈도 없는 줄은 몰랐구나. 그깟 약에 바가지가 쓰여봤자 얼마나 쓰이겠어.
반복되고 있단 말이야? (가늘게 눈 찌푸렸다가) 그럼 피로회복제 같은 거라도 마셔보던가. 너 지금 갓 태어난 기린처럼 비실거리고 있거든?
 
유진:딱히 틀린 말은 아니지 않나? (진담이다.) 원래 진단이란 건 확실하지가 않아서 단순한 두통을 느낀다는 말에 약을 네다섯 개는 권유한단 말이지. 지금 나는 상황이 어떤지조차 모르는데 모든 증상을 말했다가 오히려 짐만 될 뿐이에요.
(갓 태어난 기린...)(싸늘한 눈) 당신 비위 좋던가?
 
이지나:진통제 같은 거라도 먹지 그래. 정말 안 필요하겠어? 내가 이렇게까지 누굴 신경써주는 경우는 많지 않으니까. (거만하게 말하면서) 비위는 왜? 혹시라도 토하면 버리고 갈 거야.
 
유진:못 버틸 건 아니야. 물이라도 마시면 괜찮겠지. (여간 거만한게 아니군. 알았다는 듯 고개를 한번 끄덕이고는) 그래, 다행이네. 쉽게 이야기 해 줄게. 지금 정체를 알 수 없는 생물체가 몸 속에 들어가서 기어오르는 느낌이 목 끝까지 찬 상황이야.
기분 탓일지 모르겠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정도가 심해지는 것 같기도 하고. (말 끝을 흐리고는 작게 소리내어 웃는다.) 그리고 이지나 씨? 당신이 그런다고 나를 버리고 갈 사람은 아니잖아요. (물론 스스로도 그러지 않을 거라고 생각하고 있다.)
 
이지나:그럼 물을 사야겠구나. (짧은 한숨을 쉬며 편의점이나 마트를 눈대중으로 찾아본다.) 정말 끝내주는 감각이겠는데. 영혼 조각 같은 거려나? 안타까워라. (감정이라곤 없는 투)
어머. 내가 못할 것 같아? …… 이놈의 임무만 아니었으면 진짜 버리고 갔을 거야.
 
유진:오, 그건 조금 상처인데. 나는 끝까지 함께 갈 생각이었거든요.
 
이지나:내가 가능하다고 해서 상대에게도 똑같은 걸 바라면 안 되지. (냉담하게 대답한다)
관찰력
기준치: 65/32/13
굴림: 52
판정결과: 보통 성공
 
근처 안내도를 보니 2층에 편의점이 있는 듯 합니다.
 
특별히 좋아하는 편의점 브랜드가 있나요?
 
이지나:(딱히 없다. 다 거기서 거기지)
 
그래요, 다 거기서 거기인 편의점이죠.
 
파란 간판이 인상적인 편의점이에요.
 
이지나:끝까지는 못 가도 비위 상할 만한 일을 안 보게끔 도와줄 순 있지. 2층에 편의점이 있다니 가보자꾸나. (엘리베이터로 눈짓한다)
 
유진:짚고 넘어가야 할 게 있는데 토할 것 같다는 이야기가 안했어요. (엘리베이터를 한번 보고는 저도 모르게 살짝 눈을 찌푸렸다. 2층인데 엘리베이터를 타는건가?)
(내 세금이 이렇게 소비된다니 알 수 없는 일이다.)
 
두 사람은 엘리베이터를 타고 2층으로 올라갑니다.
 
이지나:상태 봐선 할 것 같기도 한데? (질질 끌고 편의점으로 가서 물 한 병을 결제한다.)
자, 마셔. (건네줌)
 
유진:아니, 전혀. (딱 잘라 말하고는 물을 건네 받았다.)
(이어 자신도 이것저것 몇 가지를 결제하고는 지나에게 물건을 하나 건넨다.)
가자.
 
이지나:(뭘 준 거지? 본다)
 
에너지바네요.
 
그러고보니 여지껏 계속 공복이었어요.
 
이지나:(하긴. 적절한 열량 섭취는 중요하지.) 잘 먹을게. (한입 먹으면서 안내도에서 뷔페를 찾아본다.몇 층에 있지?)
 
하나 더 있으니 걱정 말아요…
 
이지나:(아직.. 아직 한입밖에 안먹었다)
 
유진:(뚜껑을 열어 물을 마시고는 안내도를 한번 보더니) 뷔페는 69층이네.
(옆에서 에너지바 한입 까먹은 거 보고는) 밥 먹고 갈래요?
 
이지나:됐어, 그 정돈 아냐. 그리고 빨리 해결해야지? 몸도 안 좋은 파트너를 달고 움직이려니 영 불편해서 말야. (말을 해도 꼭 이런 식으로 한다)
 
유진:예의 상 물어봤어요. (본인이 별도로 결제했던 에너지바와 음료 하나를 더 건넨다.)
 
이지나:(사양않고 받아든 다음 69층으로 이동한다. 어디 낯짝 좀 보실까.)
 
안내에 따르면 60층부터는 호텔 이용객 혹은 관련자들만 출입 가능한 VIP 구역이라고 합니다.
 
VIP 구역으로 입장하기 위해서는 초대장이나 유료 입장권의 구매가 필요하다고 하네요.
 
이지나, 어떻게 하고 싶나요?
 
이지나:(형사 권력으로 어떻게 안되나?)
 
ㅎㅎ
 
이지나:그나저나 민다윤이란 애는 집안이 어떻길래 이런 곳 초대장을 받은 거람? (꽤 있는 집인가 보군. 나처럼.)
 
그런 생각을 하기도 잠시,
 
옆에서 유진이 망설임없이 카드를 긁습니다.
 
이지나:약값은 아깝다더니.
 
유진:권력은 이럴 때 써야지. 경비 처리하면 돼.
 
이지나:(오~ 좀 하는데. 란 표정)
 
두 사람은 60층까지 한번에 고속 승강기를 타고 올라와 로비에 도착합니다.
 
여기서 VIP층 전용 승강기를 타고 위층으로 이동이 가능한가 보네요.
 
웨딩 박람회를 방문하는 손님들이 많은 탓에 총 세 대의 승강기 중 하나는 아예 박람회 전용으로 움직이고 있습니다.
 
다른 두 승강기는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는 모양입니다.
 
유진이 승강기 옆의 벨보이에게 다가가 무언가 물어봅니다.
 
서연주와 민다윤의 행방을 묻는 것 같네요.
 
잠깐 스치고 지나갔던 두 사람의 인상착의를 정확하게 기억하고 있습니다.
 
벨보이:어… 본 것 같아요. 아까 저 박람회 가는 승강기 탄 거 같은데?
 
이지나:벌써 밥은 다 드셨나 보지?
또 무슨 개판을 칠지 정말 기대가 되는구나. 박람회로 가자, 우리도.
 
유진:(잠깐 생각하고는) 두 사람이 박람회에 갔다고?
(혹시라도 잘못 본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잠깐 들었지만 굳이 말하지는 않았다.)
 
두 사람은 박람회로 향하는 승강기 쪽으로 다가갑니다.
 
이지나:
민첩
기준치: 40/20/8
굴림: 42
판정결과: 실패
 
아이쿠! 이지나는 큰 박스를 가득 안고 위태하게 걷던 사람과 부딪힙니다.
 
떨어진 상자 하나에서 우드득 하는 불길한 소리가 들립니다.
 
이지희:죄송합니다. 안 다치셨어요?
 
다행히도 이지나와 유진은 모두 다친 곳이 없습니다.
 
오히려 상대가 더 난처해 보이는 걸요.
 
엎어진 상자들은 아무리 봐도 한 명이 한 번에 옮길 수 있는 양이 아닙니다.
 
뒤를 보니 더 남아있기까지 한 것 같은데…
 
유진:괜찮아요? (지나에게 손 내밀고는 일으켜 세워준다.)
 
이지나:괜찮습니다. (그보다 대체 뭘 이렇게 많이 옮기는 거야?) 박람회 관계자신가요?
(자연스럽게 잡고 일어남)
 
유진:(좋아, 자연스러웠다.)
 
이지희:네? 아, 네… 위층에서 열리는 박람회에 참가를 해서요.
오늘 카트가 고장나는 바람에 제가 직접 옮기려다 보니 짐이 너무 많아서 앞을 보지 못했네요. 정말 죄송합니다.
 
이지나:아니에요. 저도 미처 피하질 못했는데요.
(보통이면 이쯤에서 '저희도 마침 박람회에 가는 길이었으니 짐을 들어드릴게요' 라고 해야겠지? 근데 무거운 거 들기 귀찮은데.)
(라는 생각이 함축된 표정으로 당당하고 뻔뻔하게 유진을 본다.)
 
유진:(부딪힌 상대를 보며 잠깐 한눈 팔린 표정으로 있다가 너의 시선을 느끼고는 짧게 반응하였다. 이어 잠시 생각하더니 낮은 목소리로 네게 속삭인다.) 이지희 씨 맞지? 그 부케 들고 있던 사람. 도와줘야 할 것 같은데 어떻게 생각해요?
 
이지나:어머. 그새 알아본 거니? (그 말을 듣고 다시 보니, 확실히 사진 속 사람과 닮았다.) 흐으음. 그래. 그들이 노리는 게 이 사람일 테니, 무슨 문제라도 생기면 지켜줘야지.
(이지희에게 고개를 돌리며 대외용 미소를 장착한다.) 그럼, 짐이 많으니 저희가 들어드릴게요. 마침 저희도 박람회에 가는 길이었거든요.
 
유진:(잠깐 기다리라는 듯 급한 손짓으로 네 어깨를 잡았다.) 저기, 사람 말 좀 끝까지 들어줄래요?
 
이지나:(그럼, 까지 말하다가 막힘)
 
유진:(이지희와 눈이 마주치자 웃어보이더니 언제 그랬냐는 듯 네게 다시 속삭인다.) 지나 네가 화낼 것 같긴 한데 나는 애들을 찾으러 가고 혼자 가는 게 좋겠어.
그 집에서처럼 내가 언제 정신이 어떻게 오갈지 모르는데 상대가 이지희라면 아무래도 위험 요소가 커.
 
이지나:뭐라고? 그럼 내가 짐을 혼자 들…… (짜증이 팍 깃든 목소리로 말하려다가 말고 멈칫한다. 확실히, 이유를 들으니 납득이 갔기 때문이다.)
…… 연락 자주자주 해. 사실 난 네가 서연주를 혼자 보는 것도 그다지 좋을 것 같지는 않지만. 서건우의 동생이잖아?
 
유진:(처음 들리던 목소리에 저도 모르게 역시, 하는 반응을 내보이며 쓴웃음을 짓는다.)
오히려 동생 쪽이 나을지도 모르지. (네 어깨를 툭툭 두어번 두들기고는) 그래요, 연락하면 잘 받고.
 
이지나:상태 안 좋으면 무리하지 말고 그냥 쉬고 있어. 알겠지? (쯧, 하여간 신경쓰인다니까.)
 
유진:(의외라는 듯 너를 한번 바라보고는 슬 웃었다. 인사하듯 고개를 한번 끄덕이고는 네 어깨에 올렸던 손을 내린다. 이어 무언가를 잊은 듯 초조한 목소리로 너를 부르고는 너와 시선을 마주하자 걱정스러운 눈으로 쓸쓸한 미소를 짓고서 나지막이 마지막 말을 전달한다.) …지희랑 이야기 좀 해 줘. 부탁해.
 
유진은 알 수 없는 말 한마디를 남기고 자리를 떠납니다.
 
이지나:(으. 이놈의 영혼조각, 아직도 안 빠져나갔나? 갑자기 변화한 태도와 의미심장한 말에 괜히 소름이 돋는다. 사고로 죽은 건 안타까운 일이긴 한데, 익숙한 사람한테 들어가서 안 익숙한 말 하게 만들지 말라고!)
(아무튼…… 이번에야말로 다시 이지희에게 고갤 돌린다.) 죄송해요. 잠시 이야길 하느라.
짐이 많으니 제가 들어드릴게요. 마침 저도 박람회에 가는 길이었거든요. (아…… 정 말 귀 찮 다)
 
이지희:(조금 놀란 듯 안절부절한 모습을 보이다 뒤에 있는 짐을 보고는 조심스레 인사를 건넨다.) 가, 감사합니다. 지금 들고 가는 게 마지막이라 이것만 들어주시면 되세요.
(상자 몇 개를 지나가 무리하지 않을 선에서 올려주고는 자신도 상자 여러 개를 들어올렸다.)
 
이지나:네. (하아…… 짐꾼 역할은 매번 유진에게 시켰는데. 내가 맡게 되다니. 불만을 속으로 꾹 누르며 상자를 들고 이지희의 뒤를 따른다.)
 
짐꾼이 사라진 건 아쉽지만 어쩔 수 없는 일입니다.
 
이게 다 유진이 이상한 것에 씌여서 그래요.
 
이지나:(잡것 취급 안하는 것만도 고마워해야 돼)
 
모든 일이 끝나면 굿이라도 해보는 게 좋겠어요.
 
이지나는 이지희를 따라 박람회장으로 이동합니다.
 
이제 막 시작하기라도 하였는지 행사가 한창 진행 중입니다.
 
이지희의 안내대로 부스 한 군데에 짐을 가져다 두었습니다.
 
분명 짐카가 고장났다고 들었는데 기존에 가져다 두었다던 짐이 생각보다 많습니다.
 
 
아무튼, 이제 두 사람도 손이 빈 모양이군요!
 
이지희:(허리 숙여 인사를 하고는) 도와주셔서 감사합니다.
 
이지나:네. 그나저나 짐이 엄청 많으시네요. 혼자 나르기는 어려우셨겠어요.
 
이지희:아무래도 중요한 행사다 보니까요. 그래도 도와주신 덕에 늦지 않게 옮길 수 있었어요.
(아, 하고 품 속에서 명함을 하나 꺼내 네게 건낸다.) 도와주시기까지 했는데 소개가 늦었네요. 이지희라고 합니다. 사진사로 일하고 있어요.
 
스튜디오 77, 포토그래퍼 이지희
 
이지나:(명함을 받고는 마주 제 경찰증을 보여준다.) 반갑습니다, 이지희 씨. 저는 형사로 일하는 이지나입니다. 사실, 이미 성함을 알고 있었습니다. 서건우 씨의 자택에 들렸거든요.
웨딩박람회에는 어쩌다 참여하게 되셨나요? 취조를 하려는 목적으로 온 건 아니고, 그냥 질문이니 편하게 답해주셔도 돼요.
 
이지희:(이름을 알고 있다는 말에 놀라는 반응을 보이다 이어지는 말에 안색이 조금 흐려진다.) 아… 형사님이셨군요.
박람회는 업무 차 참가하게 되었어요. 제가 일하는 사진관이 업체로 참가를 한 거라……
저기… 서건우… 씨의 자택에 들리셨다고 하셨는데 제게는 무슨 일로……?
 
이지나:…… 간단하게 설명드리자면, 이지희 씨가 위험할지도 모릅니다.
(서연주가 사혼식을 못마땅해했던 것이며, 민다윤과 함께 영혼을 부케에 붙잡으려 했다는 등……. 서연주의 노트에 적힌 내용들을 요약해 설명했다.)
저는 혹시 모를 사건을 방지하기 위해 이지희 씨를 보호하고, 이 사태를 해결하기 위해 이곳에 왔습니다.
 
이지희:(믿을 수 없다는 듯 시선을 아래로 내리며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믿을 수가 없어요. 연주가……
……어쩌면 당연할 지도 모르겠네요. 건우가 죽은 건 제 탓이었으니까요.
사고가 났던 날… 제가 건우에게 만나고 싶다고 연락을 했었어요. 절 보러 오는 길이었죠.
건우네 가족에게는 그 사실을 밝히기가 너무 죄송스럽고 무서워서 저는 입을 다물었고요.
아무도 모를 거라고 생각했었는데 연주는 알고 있었군요.
모두 제 탓이에요. (쓰게 웃고는) 그런데도 결혼이라니, 그런 걸 부탁할 자격은 없었을지도 모르겠어요.
 
이지나:서건우 씨의 죽음은 이지희 씨 때문이 아닙니다. (무미건조하게 말한다.) 사고를 의도하신 것도 아니지 않나요.
책임이 있다 여기실 수도 있겠지만, 그렇다 해서 서연주 양과 민다윤 양의 행적이 옳은 것도 아니고요.
최근 이상한 일을 겪으신 적은 없나요? 혹은 신변에 위협을 느끼신 적은요?
 
이지희:…제가 그날 건우를 부르지 않았다면 건우는 살아있었을지도 몰라요. (으음, 하고는 짧게 반응하다 조용히 고개를 저었다.) 전혀요. 신변의 위협이라고 할 일까지도 없었고…
사람 사는 게 다들 비슷하잖아요. 이상한 일이라고 하여도 지금처럼 믿을 수 없을 일은 아니에요.
 
이지나:서건우 씨는 지희 씨가 자신 탓을 하길 바라지 않으실 겁니다. (제 직장 동료에게 서건우 씨 영혼이 들어가서 압니다, 라고 말할 수도 없고......) 어쨌건, 제 동료가 지금 서연주 양과 민다윤 양을 찾고 있으니 곧 소식이 올 거예요. 이지희 씨는 예정대로 박람회에 참여해주시되 다가오는 이들을 예의주시하시길 바랍니다.
(그리고 유진에게 전화를 걸어본다. 받나?)
 
이지나:
기준치: 70/35/14
굴림: 26
판정결과: 어려운 성공
 
관찰도 한번 굴려보겠어요?
 
이지나:
관찰력
기준치: 65/32/13
굴림: 62
판정결과: 보통 성공
 
유진에게 전화를 걸어봅니다.
 
신호음이 가는동안 주변을 둘러보니 땅에 떨어진 전단지 하나가 눈에 들어옵니다.
 
근처 주얼리 업체에서 나눠주던 전단지처럼 보이는데 누군가 지나가다 흘린 모양이군요.
 
이미지
 
딸칵,
 
길게 이어지던 연결음을 끝으로 수화기 너머에서 잡음이 들려옵니다.
 
바람 소리와 함께 무언가 크게 울리는 소리가 들리고 있어요.
 
유진:(수화기 너머에서 무슨 일을 하고 있는지 소란스러운 소리 뒤로 뒤늦게 서야 숨을 몰아쉬며 반응한다.) 너 타이밍 죽인다. 지금 어디야?
 
이지나:박람회장에서 지희 씨 보호중이지. 그런 넌? 실마릴 좀 잡았니?
 
유진:딱 좋네. 이지나, 당장 나와서 중앙 계단 쪽에서 대기해.
그 둘, 찾았는데 이야기 하던 중에 갑자기 도망쳐 버렸어.
지금 여기가 (올라가면서 발이 걸렸는지 짧게 반응하고는) 72층, 72층이니까 위에서 막아줘요.
 
그리고 전화는 끊깁니다.
 
전화를 받을 상황이 아닌 것 같은데…
 
용케 받았었네요.
 
웨딩 박람회는 78층입니다.
 
이지나:또 도망쳤어? 튀는 덴 선수네. (짜증스럽게 중얼이며 핸드폰을 주머니에 넣는다.) 이지희 씨. 제 연락처입니다. 그 둘, 도주했다고 해요. 지금부터 쫓아가볼 예정입니다만 혹시라도 그들을 먼저 마주친다면 바로 연락해주세요. (명함을 주고 중앙 계단으로 뛰어간다.)
 
유진이 72층이라고 한 걸 보면 시간이 얼마 없어요.
 
이지나는 이지희에게 연락처를 남기고 중앙계단 쪽으로 향합니다.
 
이런 고층 건물에서 계단으로 도망칠 생각을 하다니 요즘 아이들은 정말 대범하군요.
 
무거운 철문을 열고 중앙에 있는 비상 계단 쪽으로 나옵니다.
 
고층 건물인 탓에 비상 계단은 거의 이용되고 있지 않습니다.
 
서늘하고 습한 공기.
 
비상등 외에는 조명이 켜져 있지 않아 어둑어둑합니다.
 
유진의 말대로라면 이 쪽에서 서연주와 민다윤이 나타날 것입니다.
 
그런데…
 
……
 
어라? 조용하다.
 
아무리 기다려도 인기척이 느껴지지 않습니다.
 
이지나:(중간에 엘리베이터로 튄 거 아냐?!)
 
유진도 전화를 받지 않네요.
 
혹시 아래에서 잡았나?
 
……
 
어쩐지 불안한 기분이 들어요.
 
이지나, 당신은 자신도 모르게 발걸음을 옮깁니다.
 
한없이 높은 텅 빈 공간 속 발소리가 울립니다.
 
조금 내려오면…
 
어두운 인영이 쓰러져 있는 것이 보입니다.
 
이지나:(아니 설마... 유진이 당했다고? 애들 둘한테? 급하게 다가가본다.)
 
이지나, 당신이 명심할 것이 있어요.
 
설마가 사람을 잡습니다.
 
이지나:(이러면 안 되는데)
유진. 유진?!
 
쓰러진 건 설마했던 유진이었고,
 
잘 보니 머리에서 피가 흐르고 있습니다.
 
아무래도 의식을 잃은 듯 합니다.
 
이지나:(피가 나잖아. 둔기까지 쓴 건가?) 유진? 내가 널 부축하는 게 얼마나 어려운지 알잖니. 대체 왜 이 꼴이 된 거지? (일으키려 끙끙 애를 쓴다.)
 
이지나:
정신
기준치: 70/35/14
굴림: 36
판정결과: 보통 성공
 
지나가 투덜대며 유진을 일으키려 끙끙 애를 쓰던 중,
 
유진이 정신을 차린 모양인지 당신을 보고는 무언가 말합니다.
 
유진:―…뒤…… 피해……
 
다음 순간, 퍽 소리가 울립니다.
 
시야가 기울어집니다.
 
한 박자 늦게 습격당했다는 것을 깨닫습니다.
 
이지나:(내가 이 좁은 비상계단에서 애들 기척 하나 못알아채고 당하기까지 한다고? 형사 자존심이)
 
이지나:(목걸이 사용하겠습니다!)
 
 
 
시야가 자신의 피로 얼룩지는 것이 보입니다.
 
점점 의식이
 
멀리서 째앵거리는 경보음이 울리고 있습니다.
 
소리가 멀게 느껴지고 감각이 아득합니다.
 
흐려진 시야가 천천히 바로잡히면 불타는 상자들이 보입니다.
 
여긴 어디지?
 
온갖 기물이 불타고 화재 경보기가 울립니다만 인기척이 느껴지지 않습니다.
 
손발은 박스테이프로 결박되어 있네요.
 
천천히 모든 감각이 돌아옵니다.
 
분명, 쓰러진 유진을 발견한 후 누군가에게 습격을 당했습니다.
 
그 이후 이 곳으로 끌려왔고…
 
지금, 불타는 창고 한 가운데입니다.
 
이지나:으....... (눈살을 찡그리며 작은 신음을 뱉는다. 안개처럼 뿌얀 시야가 조금씩 되돌아오면 가장 먼저 느껴지는 것은 열기다. 묶여있는 것도 모자라서 지금 날 불구덩이에 던져둔 거야? 고등학생들의 수준이 아닌데? 황당함과 분노, 위기감이 여과없이 뒤섞인다.)
(유진은 옆에 있나?)
 
유진이나 다른 사람은 보이지 않지만 바로 옆에 뭔가 떨어져 있습니다.
 
…사람의……
 
…손입니다.
 
사람의 손만이 잘려 떨어져 있습니다.
 
그제서야 화재 경보음에 묻히던 비명이 똑바로 귀에 꽂힙니다.
 
누군가 꺽꺽거리는 소리를 내고 있습니다.
 
저 쪽 벽으로 불에 비춰진 누군가의 그림자가 길게 늘어져 있습니다.
 
……
 
상황이 이렇지만 않았다면, 마치 그림자 연극처럼 보였을지도 모릅니다.
 
거대한 괴물 같은것이 긴 막대기를 하나하나 분지르며 집어삼키고.
 
막대가 꺾일 때마다 비명이 들립니다.
 
이지나:
SAN Roll
기준치: 69/34/13
굴림: 49
판정결과: 보통 성공
(너무 비현실적인 광경에 도리어 잘 믿기지가 않는다. 이게 대체...... 뭐지?)
 
그 광경을 멍하니 보고 있으면, 괴물처럼 보이는 그림자가 멈춥니다.
 
목소리가 들려옵니다.
 
???:일어났나요?
미안한데 식사 중이라. 좀 기다려요.
 
이지나:....... (차분하게 상황을 파악하려 한다. 설마 저 하나씩 꺾이고 있는 게 유진은 아니어야 할 텐데.) 네가 민다윤이니? (이런. 목소리가 멀쩡해서 더 뭣같은데?)
 
민다윤:알고 있네요? 맞아요. 제가 연주 친구예요. 민·다·윤.
 
이지나:네 지금 꼴을 보면 사람이라고 부를 수도 없을 것 같은데?
이게 지금 뭐하는 짓이지?
 
민다윤:어머, 뭐 하냐니. 저는 친구의 소원을 들어줬을 뿐이에요.
너~무 보고싶어하길래 친구 된 도리로 소원을 들어준 거라구요. 올해 7월 7일까지 그 부케를 든 사람이 결혼하지 않는다면 서건우를 불러와 주겠다고 했어요.
아~ 설명은 다 안 했네요. 그런데 갑자기 산 사람은 다 죽고 죽은 사람은 다 살아나서 세상이 뒤엎힐거라고 해도 보통 안 믿잖아요.
마음에 들었으니 얘기해줄게요. 자정이 지나면 백귀야행이 찾아와요. 오래 떨어져 있던 연인이 다시 만난다니 아, 이쯤 되면 들려오는 이야기가 있죠?
1년에 단 한번 뿐인 만남이라니, 그런 옛날 이야기를 좋아하는 사람이 꽤 많더라고요.
(가만 웃고는) 언니도 좋아해요?
 
이지나:네게 죽은 자와 산 자의 경계나, 생사의 이치를 거스르면 안 된다는 고리타분한 이야길 해봐야 의미 없겠구나. 서연주도 참 안쓰러워, 하필 걸려도 이딴 걸 친구로 두고 있었다니......
미안하지만 난 낭만 같은 건 관심 없어. 남들 결혼을 훼방놓는 싸가지없는 아이들을 막고 싶을 뿐이거든. 그런데 웬걸. 불타 죽게 생겼구나?
유진은 어디다 뒀지? (싸늘하게 묻는다.)
 
민다윤:어머, 그게 내 탓인가요? 불이 좀 크게 난 걸 가지고. 아아… 귀찮아… 얌전히 좀 있지…
음~ 다른 곳에 뒀는데 그새 깨서 제 친구랑 도망쳤나봐요. 곤란하네~
함부로 돌아다니다 죽으면 어쩌려고 그러는 거람. 둘 다 아직 죽으면 곤란한데.
내 친구는 아직 먹을 때가 안 되었고 언니 애인은 오늘 자정까지 숨이 붙어 있어야 해서. 제가 한 말 다 기억하죠? (웃는다.)
 
이지나:네 목적이 그거니? 산 자와 죽은 자를 뒤바꾸는 것? 대체 그게 네게 무슨 이득이 있는 거지?
 
민다윤:그게 궁금해요?
그건 비밀.
 
이지나:(아무리 봐도 정상적인 사람은 아니지. 죽은 사람의 영혼이 돌아오질 않나, 사람을 막대기처럼 부러뜨리고 있질 않나...... 이 또한 현대 과학으론 증명할 수 없는 영역이다. 짜증스럽게 이를 간다. 상식을 아득히 벗어나는 범인이라.)
그리고 하나 정정하자면 내 애인 아니거든?
 
민다윤:어머, 그럼 더 알려드려야겠네. 저는 아주 많은 이득이 있어요. 언니가 상상하지 못할 만큼, 아~주 많은 이득.
세상이라도 구하고 싶어요? 못할텐데~ 나는 부케같은 걸 어떻게 해야할 지 몰라서요. 연주한테 알려줬으니 연주가 알지 않을까요?
아, 근데 걔도 잊어버렸겠다.
그럼 방법은 하나네?
(당신에게 가까이 다가가서 내려다보고는) 결혼이라도 할 건가요?
 
이지나:(지켜야 한다는 게 이 소리였나? 예지몽인지 뭔지, 아무튼 기분 더러워. 공기가 점점 더 뜨거워진다. 여기서 타죽고 싶진 않은데.)
부케에 영혼을 묶어 데려간다고 한 건 너였잖아?! (그런데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른다니?)
(유진과 혼인신고를 하면, 아니, 아무튼 결혼과 비슷한 무언가를 하면 방법을 찾을 수 있는 건가?)
 
지나, 힘내요. 당신은 할 수 있어요.
 
이지나의 머리 속에서 수많은 생각들이 스쳐지나가는 동안,
 
민다윤은 재미있다는 듯 웃으며 더 가까이 다가가 손발에 묶은 테이프를 떼어내 줍니다.
 
민다윤:있죠. 가서 그 두 사람을 지켜줘요. 자정까지면 돼요.
아직 위층 어디에서 돌아다니는 거 같아요. 나도 곧 찾으러 갈게요.
당신은 할 수 있을 거예요. 부케에게 선택받은 사람이니까요.
맞아.
그 눈 아주 예뻐요.
 
......
 
불타는 창고를 빠져나오면, 새빨간 불길이 온갖 곳에서 치솟고 있습니다.
 
아까는 멀게 들리던 화재경보음이 더 가까이에서 울립니다.
 
군데군데 바닥이 부서져 있고, 조금 더 큰 홀로 나오면 아예 바닥이 뻥 뚫려 아래층이 보이는 곳도 있습니다.
 
가볍게 진동이 느껴지는 것도 같습니다.
 
이 건물, 설마 무너지는 건 아니겠지?
 
이지나:
SAN Roll
기준치: 68/34/13
굴림: 34
판정결과: 어려운 성공
 
이지나:
rolling 1d3
 
(
2
 
)
 
 
=
2
 
P.S. 실패했으면 수호자도 같이 판정 했어요.
 
이지나:(저 애가 나를 직접 풀어줄 줄이야. 이건 또 예상치 못한 일이다. 결박이 풀리자마자 빠르게 창고 바깥으로 뛰쳐나갔다. 여기, 그 호텔이 맞긴 한 거야?)
 
믿을 수 없는 광경이지만 그 호텔이 맞습니다.
 
여기는…
 
주변 표지를 찾아보니 81층인가 봅니다.
 
이지나:(이지희는 어떻게 된 거지? ..... 아니, 그보다도 일단은 유진을 찾는 게 우선이다. 위층에 있다고 했었지. 바로 위층을 말하는 건지, 90층까지 중 하나인지 알 수 없으니 하나씩 확인하는 수밖에. 계단을 통해 82층으로 달려올라가며 크게 이름을 외친다.) 유진. 유진!
 
유진을 찾으러 갈까요?
 
건물 우측과 좌측에 비상계단이 하나 씩 있습니다.
 
이지나:(당연)
(설마 갈림길?)
 
불이 옮겨 붙고 있지만 돌아다니는데 지장은 없어 보여요.
 
하지만 중앙 비상계단은 화재로 인해 진입이 불가합니다.
 
(원하는 길로 갈 수 있어요)
 
이지나:(비상계단이 세 개나 되다니 건물이 크긴 크네)
(좌측으로 갑니다)
 
이지나는 좌측 계단을 통해 위층으로 올라가기로 합니다.
 
이지나:
정신
기준치: 70/35/14
굴림: 84
판정결과: 실패
민첩
기준치: 40/20/8
굴림: 56
판정결과: 실패
 
어?
 
이지나:
SAN Roll
기준치: 66/33/13
굴림: 79
판정결과: 실패
rolling 1d2
 
(
1
 
)
 
 
=
1
 
잊지 말아요, 지나.
 
우리는 아직 81층에서 올라가려던 중이었다는 것을...
 
문을 열려고 하는 순간 갑자기 문이 벌컥! 열립니다.
 
미처 보지 못하고 문에 이마를 박고 말았습니다.
 
머리에 혹이 난 것만 같아요.
 
이지나:악! (문에 제대로 이마 부딪히고 비틀거린다. 이를 갈았다. 이게 다 유진 탓이야. 영혼한테 빙의를 당하질 않나, 피 흘리면서 쓰러져 있지를 않나....... 자꾸 신경이 쓰이니까 내 집중력까지 흐려지잖아!)
누구야? (벌컥 문 연 사람이나 찾으려고 살벌하게 목소리 깐다)
 
서연주:(당신을 발견하고는 다급해진 얼굴로 붙잡고는) 도와주세요! 사람이 깔렸어요!
 
이 사람은 서연주가 아닌가요?
 
사진으로 봤던 모습과 달리 막 마주친 서연주는 엉망진창인 얼굴입니다.
 
이지나:생각보다 빨리 만났네. 네가 서연주지? 깔렸단 사람이 설마 하얀 머리에 노란 눈을 한 사람이니?
 
서연주:지금 위에서! (횡설수설 말을 이어간다) 위에 어떤 아저씨가 아니, 누군지 몰라요! (그럼에도 하얀 머리는 맞는지 고개를 끄덕이고는) 그런데 나를 구해주려다가 지금 대신 깔렸어요. 빨리 도와줘야해요!
 
이지나:젊은데, 걔...... (아무튼 지금은 그게 중요한 게 아니지.) 그래. 어서 안내하렴. 마침 나도 걜 찾고 있었거든.
 
서연주:그치만 경찰 아저씨라고 자기가… 아니, 지금 그런 거 중요한 게 아니에요 빨리! (다급하게 네 손을 잡아 이끈다.)
바로 위층인데 거기로는 못 가고 한번 더 올라가야해요. 지금 문에 불이 붙어서 바로 갈 수가 없어요.
 
82층은 83층과 합쳐서 중앙 천장이 트인 거대한 파티장으로 쓰이는 곳입니다.
 
하지만 서연주의 설명에 따르면 82층 문에는 불이 옮겨붙어 있어 이동이 불가한 모양입니다.
 
83층으로 들어가 내려가야 합니다.
 
이지나:그럼 더 신속하게 뛰어야겠구나. (서둘러 83층으로 향한다.)
 
두 사람은 83층으로 이동합니다.
 
문을 열고 들어서면 탁 트인 중앙으로 82층의 전경이 내려다 보입니다.
 
기둥과 가벽, 테이블이 전부 불타며 무너져 엉망진창입니다.
 
구석 어딘가에서 움직이는 사람들이 보입니다.
 
무너진 잔해 아래에서 빠져나오려 하는 유진, 그리고……
 
옆에 있는 사람은 이지희로군요.
 
옆에서 유진을 도우려 하고 있습니다.
 
이지나:난리도 아니군. (이지희까지 발견하고 이마를 짚는다. 그리고 서둘러 주변을 둘러봤다. 잡고 내려갈 만한 게 있나?)
 
내려갈 만한 길을 찾고자 둘러보던 중,
 
서연주가 갑자기 헉 하고 숨을 삼킵니다.
 
자연스레 시선을 돌립니다.
 
82층의 반대편 한구석에서 무언가가 유진과 이지희를 향해 다가가고 있습니다.
 
멀리 떨어져 있는데도 그것을 본 것 만으로도 날 리 없는 악취가 느껴집니다.
 
흐물거리는 검은 몸체가 슬라임처럼 기듯 이동합니다.
 
수많은 눈들이 깜빡입니다.
 
이지나:
SAN Roll
기준치: 65/32/13
굴림: 35
판정결과: 보통 성공
rolling 1d6
 
(
4
 
)
 
 
=
4
 
알 수 없는 그것은 확실하게 유진과 이지희를 노리고 접근하고 있습니다.
 
계단을 찾아 내려가는 것보다 그것이 두 사람에게 접근하는 쪽이 빨라 보입니다.
 
직감적으로 어떻게든 한다면 지금 뿐이라는 것을 깨닫습니다.
 
이지나:
기준치: 70/35/14
굴림: 75
판정결과: 실패
 
주변에 있는 불타는 커다란 잔해가 눈에 들어옵니다.
 
저걸 아래로 떨어뜨리는 건 어떨까요?
 
다소의 화상은 감안해야겠지만요.
 
이지나:하아...... 피부미용에 돈이 얼마나 드는데. (저 믿기지 않는 괴물에게서 의식적으로 시선을 떼기 위해 아무렇게나 중얼거린다. 계단을 찾기엔 늦었어. 그럼 어쩔 수 없겠지.)
너, 이리 와. 이걸 저 괴물을 향해 떨어뜨릴 거야. (서연주에게 손짓해 함께 힘을 모아서 잔해를 괴물 쪽으로 떨어뜨려 본다.)
 
서연주:저, 저도 같이요? (아직 주변 파악이 안되는 눈을 하고 있지만 콘크리트 더미를 한번 바라보고는 고개를 끄덕인다.)
 
이지나:당연하지. 손이 하나라도 더 있음 도움이 되거든. (둘이서 위치를 조정하고는 발로 뻥 차본다)
 
보너스 다이스가 들어갑니다.
 
이지나:
근력
기준치: 45/22/9
굴림: 75, 52, 68
+2: 실패
+1: 실패
0: 실패
-1: 실패
-2: 실패
rolling 1d4
 
(
2
 
)
 
 
=
2
 
체력을 2 감소하고 재판정하겠습니다.
 
보너스 주사위 그대로 굴려주세요.
 
이지나:
근력
기준치: 45/22/9
굴림: 57, 8, 16
+2: 극단적 성공
+1: 극단적 성공
0: 실패
-1: 실패
-2: 실패
 
좋습니다.
 
한번 타이밍이 어긋나서 지나는 발목을 삐끗한 것 같았으나 그 다음은 다행스럽게도 정확하게 타이밍을 맞추었습니다.
 
잔해를 아래로 떨어뜨리자,
 
쿵! 무시무시한 비명이 울립니다.
 
남녀노소를 구분할 수 없는 끔찍한 소리.
 
아래를 살펴보면 부서진 샹들리에 아래로 검은 폭탄이 터진 양 뭔지 모를 물체가 깔려 있습니다.
 
곧이어 그 위로 불타는 테이블이 쓰러집니다.
 
불길이 거세지더니 비명은 더욱 커집니다.
 
 
이제 아래 층으로 이동해도 괜찮지 않을까요?
 
이지나:(완전히 제압한 거겠지? 샹들리에 아래의 무언가를 좀 더 살피다가 82층으로 내려선다.)
 
두 사람은 서둘러 82층으로 내려옵니다.
 
유진은 여전히 잔해에서 나오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고 이지희는 그런 유진을 돕고 있습니다.
 
주변에 누가 왔다는 걸 신경쓸 틈은 없어 보입니다.
 
서연주:지희 언니?
 
이지희:(깜짝 놀라 너를 바라보고는) 연주야! 연주 네가 왜 여기에 있어?
 
이지나:얘. 괜찮니? (서연주와 이지희의 재회 따위엔 관심없다. 서둘러 유진에게 뛰어가 그를 깔아뭉갠 잔해를 가늠한다. 들어서 뺄 수 있을 만한 무게인가?)
 
유진:시간 잘 맞춰서 와 줬네. (잔해를 밀어내려 하면서도 억지로 깔린 다리를 빼내려 하고 있다.) 내 상태는 모르겠지만 지갑은 안 괜찮을 것 같아요. (안경이 깨졌어, 라며 대수롭지 않은 듯 말을 흐린다.)
 
잔해를 혼자 들기에는 힘들지만 여럿이서라면 가능할지도 모르겠어요.
 
이지나:지갑 중요하긴 하지. 분실신고라도 해보렴. (시답잖은 대답을 돌려주면서 서연주와 이지희를 부른다.) 여기, 이쪽부분을 셋 세면 동시에 드는 걸로 하죠.
하나, 둘, 셋. (이야압)
 
유진:당신도 알다시피 요즘 분실물로 지갑이 들어오는 경우는 잘 없어서. (시답잖은 농담을 되받아치고는 타이밍에 맞춰서 몸을 빼내려 한다.)
 
이지나의 구호에 맞춰 다 함께 잔해를 가까스로 들어올리자
 
때를 놓치지 않고 유진이 아래에서 빠져나옵니다.
 
유진:(하... 나 잊혀진 줄 알았다.)
 
이지나:많이 다쳤니? 설만 해?
 
유진:(주변을 딛고 일어서려다 잠깐 멈칫한다. 애써 침착하게 차분한 목소리로 입을 연다.) …이지나 씨, 우리 지금 몇 층에 있지?
설 수는 있겠는데 걷지는 못하겠어. (양쪽 발을 제대로 딛기가 힘든지 한쪽에 체중을 실은 듯 몸을 기울였다.)
 
이지나:82층. (간결하게 답하곤 팔을 붙잡아준다.) 어쩔 수 없지, 기대렴. 이 상태로 도망칠 수나 있겠니? 민다윤을 만났어, 널 자정까지는 살려둬야 한다던데. 뭔가 들은 건 있고?
 
유진:내가 누누이 말했지만 법적으로 고층 건물은 못 짓게 해놔야 해. 이런 데서 사람 찾는 게 얼마나 힘든지 자기들이 겪어봐야 안단 말이야. (반쯤 체념한 듯 팔을 자연스레 네 어깨에 걸친다. 연행 당하는 기분을 느끼고 싶지는 않았기에.)
들은 건 있지만 (서연주와 이지희를 바라보더니) 여기보다는 나가서 얘기하는 게 좋겠어. 가면서 얘기할게.
거기 두 분, 감동적인 재회를 방해하고 싶지는 않지만 그 감동 좀 더 오래 느끼고 싶으시다면 같이 나가시죠?
 
그제서야 서연주와 이지희는 상황을 다시금 깨닫고 고개를 끄덕입니다.
 
현재 좌측 계단은 불이 붙어 이동할 수 없다, 라고 이지희가 알려줍니다.
 
이지나:(과연 반갑기만 할진 모르겠지만. 유진을 부축하고 움직인다.) 그런데 어디로 가야 하지? 위, 아래? 옥상에서 비행기라도 불러야 하나?
 
유진:옥상에서 비행기를 부르는 게 아니라 우리가 기다려야 하는 입장 아니야? 80층을 내려가거나 10층을 더 올라가거나 둘 중 하나를 택하라니 선택지가 너무 극단적인걸.
(지나에게 기대어 자신의 발 아래를 한번 보는 듯 하더니 골치아프다는 듯 느리게 눈을 깜빡인다.)
이지나 씨, 나를 데리고 위로 올라갈 수 있겠어? 지금 나는 올라갈 여건이 되지 않아. 내려가면서 구조대를 만날 확률이 더 높을 거야.
 
이지나:10층과 80층을 비교한다면 당연히 전자인데, 네 상태가 엉망이긴 하구나. (이 상황이 굉장히 짜증스러워 아랫입술을 세게 깨문다.) 그럼 지체할 시간 없으니 이동하자. 나에게 최대한 체중을 지탱하렴. (우측 계단참으로 지체없이 이동한다. 서연주와 이지희에게 눈짓한다) 이쪽으로. 제 동료가 상태가 안 좋으니, 아무래도 아래쪽으로 가야겠어요.
 
유진:조심해주시죠, 섬세한 몸이라서요. (그 상황에서 조용히 농담같지도 않은 농담을 조용히 내던진다.) 당신이야말로 버틸 수 있겠어? (뒤따라 오는 서연주와 이지희를 향해 아래로 내려가자 안내한다.)
 
네 사람은 아래층으로 이동하기 시작합니다.
 
이지나:어쩌겠니. 같이 타죽을 수는 없어서.
 
서연주는 이지희를 따라, 이지희는 서연주와 함께 유진과 이지나를 따라 계단을 하나하나 내려갑니다.
 
이지나:
회피
기준치: 40/20/8
굴림: 11
판정결과: 어려운 성공
 
얼마나 내려왔을까요?
 
아니, 생각할 여유도 없을 것입니다.
 
몇 층 내려오지 않았다는 것을 당신도 분명 깨닫고 있으니까요.
 
78층을 지나던 중,
 
쿵!
 
문가에 쌓여있던 불타는 박람회의 대형 패널이 네 사람의 사이로 쓰러집니다.
 
위쪽으로 이지나와 유진, 아래쪽으로 이지희와 서연주를 정확하게 가르고는 바닥에 깔려있던 양탄자에 불이 옮겨 붙습니다.
 
순식간에 불길이 커지고 마는군요.
 
이지나는 형사의 촉을 발동시켜 재빠르게 몸을 피했으나...
 
불길이 팔을 스치고 맙니다.
 
이지나:(혀를 찬다. 화상은 흉터가 잘 지워지지도 않는데.) 적어도 구조요청이 들어가긴 했겠지? 이렇게 큰 건물에 사람이 가득할 텐데.
 
이지희:괜찮아요!? 건너올 수 있겠어요?
 
저 반대편에서 이지희와 서연주가 소리칩니다.
 
그러나 다친 유진을 부축하며 이 불길을 뚫고 나갈 방법은 없습니다.
 
유진:오, 여기서 죽는 건 내 계획에 없었는데. (네게 들릴 정도의 작은 소리로 시덥잖은 농담을 내던졌다.)
 
이지나:내 계획에도 없거든? (뾰족하게 말하곤 주변을 둘러본다.) 하나부터 열까지 마음에 드는 게 없네.
 
주변을 살펴보는 이지나를 향해 이지희가 소리칩니다.
 
이지희:전망대에 비상용 낙하산을 뒀다고 들었어요!
 
이지나:전망대? 그게 몇 층이죠?
 
방법이 아주 없는 모양이 아닌가 봅니다.
 
전망대는 90층에 있네요.
 
전망대니까 전망이 아주 잘 보이는 곳에 있겠지요.
 
이지나:(유진의 상태로는 올라갈 수가 없다. 그래서 내려가는 길을 택했던 건데.) 너, 90층까지 견딜 자신 있니? 내가 업어주기라도 해야 할 지경인데, 지금으로선.
 
유진:자신은 없는데. 당신이 나를 업고 올라갈 수는 있어?
(작게 숨을 내쉬고는) 81층에 전망대로 올라가는 리프트가 있어. 목숨 걸고 도박하는 셈 쳐야지.
민간인 둘을 안 데리고 간다는 것에 의의를 둬야겠네.
 
이지나:내 곁의 형사가 지금은 민간인보다도 더 못한 몸상태가 되긴 했지만 말야. (평소처럼 뼈 있는 말을 하면서 그를 부축한 채로 방금까지 열띠게 내려오던 계단의 위쪽에 발을 내디딘다.) 자, 3층만 올라가자꾸나. 겸사겸사 아까 저 민간인들 앞에선 못한 얘기도 해보고. 민다윤에 대한 거 말야.
 
유진:이지나 씨, 당신 지금 말에 뼈가 있지 않아? (평소같은 반응에 어이없다는 듯 작게 웃음을 터뜨리고는) 지금 우리 해결해야 할 일이 한두가지가 아니야. (네게 몸을 기대고는 발을 앞으로 내딛는다.)
 
두 사람이 위로 올라가기를 다짐한 순간,
 
서연주:아, 잠시만요! 부케! 오빠가 했던 말이 있어요!
오빠가 평소에……!
 
이지나:(가려다가 멈칫하고) 평소에?
 
다음 순간,
 
쾅!
 
폭발 소리와 함께 땅이 진동합니다.
 
“연주야, 내려가야 돼!”
 
“자, 잠깐만…!”
 
건너편에서 소리가 멀어집니다.
 
이지나:(열받음) 정말로 절묘한 상황들만 이어지고 있구나.
 
유진:클리셰적인 무언가네. 영화였으면 위기의 클라이맥스겠어.
 
이지나:지금 네가 50%쯤 서건우니까 한 번 깊이 생각해보지 그래? (열받아서 아무말이나 내뱉으며 다시 올라간다.)
 
유진:지금 저주 걸어? 나는 나로 살고 싶지, 다른 사람으로 죽을 생각은 없거든.
 
이지나:분명 그 부케가 뭔가 연관이 있을 텐데. 이 난장판 속에 푸른색 꽃을 찾아나설 수도 없고 말이야.
 
유진:푸른색 꽃은 없지만 푸른 것에 해당되는 무언가가 있긴 해. 그러니 우리가 여기까지 온 거겠지. 민다윤하니 생각난 건데, 부케를 없애지 않더라도 해결 방법은 있다고 했어.
그게 조금 골치 아프고 지나 네가 반기지 않을 방법일지도 모르지만.
 
이지나:이미 충분히 골치 아프고 반갑지 않은 상황이란다. 여기에서 더 나빠져 봤자 크게 다를 것도 없겠지. 어서 말해보렴.
 
유진:중요한 건 부케잖아? 부케가 누구한테 있어? (나지, 하고 조용히 읊조리고는 숨을 골라낸다.) 지금까지의 상황을 보건데 어떻게 본다면 내가 부케이고 부케가 나인 상황이야.
그렇게 된다면 선택 사항은 두 가지. 첫째, 나와 부케를 떼어놓거나 둘째, (잠깐 생각하는 듯 하더니 덤덤히 말을 잇는다.) 부케를 없애거나.
 
이지나:형의 결혼식에서 쓴 부케, 네가 받았다고 했었지. (곰곰) 하지만 그걸 지금 네가 갖고 있는 건 아니잖니?
 
유진:민다윤은 내가 오늘까지 살아있어야만 한다 했거든. 그럼 내가 부케와 연관이 되었다는 건 확실하지.
그보다 서연주 학생이 하려 했던 말은 뭐야? 짐작 가는 게 있어?
 
이지나:아니, 짐작가는 건 따로 없지만…… 서연주와 서건우의 집에서 노트를 봤었어. 암호를 1년간 지키면 부케가 시들지 않는다고 했는데. (그 암호가 뭐지? 눈살을 찡그렸다.)
지능
기준치: 75/37/15
굴림: 28
판정결과: 어려운 성공
 
이지나는 기억을 더듬어 봅니다.
 
아, 분명 민다윤이 말하지 않았던가요?
 
올해 7월 7일까지,
 
그러니까 오늘까지 부케를 가지고 있는 사람이 결혼하지 않는다면 서건우를 불러와 주겠다고요.
 
그렇지 않다면 부케를 없애는 방법도 있겠지요.
 
부케를 어떻게 할 지는 서연주가 알고 있다고 했어요.
 
어쩌면 서연주가 하려던 말이 부케를 시들 수 있게 하는 암호가 아닐까요?
 
이런저런 생각이 오가며 두 사람은 힘겹게 81층에 도착합니다.
 
이지나:(오늘이 7일인데. 오늘 안에 결혼식을 올리라고? 그야 가짜 혼인신고를 할 생각이긴 했지만 아직 최종 제출을 하지 못했다. 지금으로선 할 수 있는 상황도 아니고. 게다가 서연주의 말은 듣기도 전에 헤어져 버렸잖아?!)
지금 몇 시지? (나에겐 핸드폰이 있나)
 
유진:아마 10시 쯤?
 
핸드폰이 있네요.
 
핸드폰 시계를 확인해보면 유진이 말한 시간과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이지나:2시간 안에 혼인신고를 하던지 서연주한테 빨리 말을 들어야겠어. (투덜거리면서 리프트를 찾아 주위를 두리번거린다.)
 
유진:? (내가 지금 잘못 들었나?) 진심이야? 지금 구청 문 닫았어.
 
이지나는 멀지 않은 곳에서 리프트를 발견합니다.
 
하지만…
 
이지나:그럼 남은 방법은 하나뿐이겠고. (하지만?)
 
지금은 작동이 멈춰있네요.
 
기계를 고쳐야만 정상적으로 작동이 가능할 듯 합니다.
 
이지나:불이 옮겨붙은 게 아니라 다행이라고 해야 할지 모르겠구나. (냉소적으로 말하면서 유진을 잠시 멀쩡한 곳에 앉혀두고 기계를 살펴본다. 어딜 고쳐야 하지?)
 
이지나, 기계에 대해 잘 아는가요?
 
이지나:(나…… 기계과 출신은 아니라서)
 
음, 봐도 모르겠군요!
 
단순 고장으로 움직이지 않는 걸지도 모르겠어요.
 
이지나:(그렇다고 발로 차서 고칠 순 없잖아!)
(어디가 어떻게 고장인지 모르겠지만 일단 뭐라도 해보자. 기계수리 판정하겠습니다)
 
이지나:
기계수리
기준치: 10/5/2
굴림: 91
판정결과: 실패
 
옛말부터 이런 말이 있지요.
 
기계는 때리면 정상 작동을 한다고요.
 
이지나는 리프트를 탕탕 쳐 봅니다.
 
하지만 그런다고 전혀 고쳐질 리 없지요!
 
괜히 손만 아프네요.
 
이지나:(그럼 이번엔 발로차보면 안되나)(ㅋ)
 
유진:…너 뭐해? (흐린 눈)
 
이지나:너 기계 좀 고칠 줄 아니? (발로 퍽퍽 깐다)
 
유진:아니? 제대로 해 본 적이 없어서 잘 모르겠는걸. (발로 퍽퍽 까는 걸 막고 한번 살펴본다.)
기계수리
기준치: 10/5/2
굴림: 84
판정결과: 실패
오, 봐도 모르겠다. (솔직!)
 
이지나:뭐, 우리 둘 다 그쪽 전문은 아니니까. 그나저나 이거 아니면 타죽는 수밖에 없는데 큰일이구나.
 
유진:우리 걸어 올라갈까?
 
이지나:네 상태로 가능하겠니?
 
유진:내가 당신보다 체력이 좋았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줬으면 하는데요. (명백하게 과거형이다.)
지나야, 나는 힘들지 않아. 네가 힘든거야. (......)
 
이지나:안 힘들면 너 혼자서도 갈 수 있겠어, 안 그러니? (갑자기 개열받음)
입이 산 거 보니까 부축 없이도 가겠는데?
 
유진:……자기야, 날 버리고 가려고? (갑자기 지나 어깨 꼭 잡음)
 
이지나:네 발이 이미 난리가 나서 또 밟아줄 수 없다는 게 통탄스럽구나. (손을 팍 쳐내고 아까처럼 유진을 부축한다. 물론, 그러려면 어차피 유진이 자신의 어깨에 손을 얹어야 하지만…… 성질 한 번 내고 싶었다.) 힘든 소리 내면 버리고 갈 거란다.
 
유진:(손이 팍 쳐내진다. 이 정도 반응은 예상하기라도 했다는 마냥 미묘한 표정을 지으면서도 받아들이는 듯 숨을 한번 내쉰다. 뒤이어 조그맣게 한마디 내뱉는다. 이지나 씨, 성질 머리 하고는.)
혼자 걸을 수 있는 상태였다 하더라도 오늘 발이 남아나질 않았겠는데.
 
이지나:날 긁어놓고서 내 성질을 탓하는 거니? 네 인성이야말로 뒤지지 않는다는 거 알지? (뾰족하게 말하고 계단에 발 디딘다.) 네가 입만 다물었어도 성했을 거란다.
기준치: 70/35/14
굴림: 83
판정결과: 실패
 
오늘 하루 이지나의 운은 영 좋지 못한 것 같네요...
 
마음에 들지 않는 혼인신고부터 시작해서
 
어쩌면 결혼으로 끝을 맺어야 하는 상황이 오기까지 했는데
 
하물며 상대가 유진이라니...
 
혼자서는 제대로 걷지도 못하는 유진을 데리고 부지런히 계단을 올라가던 중
 
침묵이 짧게 이어집니다.
 
유진:(침묵 속에서 나지막이 네 이름을 부른다.) ―지나야.
할 말이 있어.
 
이지나:낯간지럽게 왜 그렇게 부르는 거니? (툴툴대고선) 뭔데?
 
유진:네가 그동안 여기에서 자유롭지 못했고 못할 거란 것도 알아. 여기에는 너를 지긋지긋하게 하는 것들이 많고 네가 그런 것들을 모두 답답하게 느끼고 있으니까. (떨리는 목소리로 쓰게 웃고는) 그동안 내가 했던 말은 전부 진심이야. 네가 자유로웠으면 좋겠어. 하지만 그게 전부가 아니라는 걸 기억해 줘.
마지막에는 나와 함께 있지 않을래?
떠나고 싶다면 마음껏 다녀도 돼. 하지만 여기로 다시 돌아와 줘. 그리고 언젠가 서로가 서로에게 완전히 질릴 때까지만이라도 같이 있자.
 
이건 유진의 말일까요?
 
아니면 다른 누군가?
 
얼핏 프러포즈처럼 들리기도 합니다.
 
이지나:하아? (한쪽 눈썹 치켜올린다. 누가 봐도 저 자신에게 하는 말이 아니지 않은가. 저는 제 주변의 환경을 자유롭지 못하다 여긴 적도, 답답하다는 감상을 받은 적도 없다.) 이런 급박한 상황에서 또 가 튀어나온 거니? 미안한데 나는 이지희가 아니거든. 미처 프러포즈를 하지 못하고 죽은 건 안타깝지만 대상은 똑바로 해야지.
이 말이 유진 네 본심이라 하더라도, 고백 멘트는 좀 갈고닦아 오렴! 난 아직 누구랑 질릴 만큼 같이 있고 싶지도 않단다.
 
계단을 올라가던 이지나의 어깨 위로 강한 압력이 느껴집니다.
 
유진:(네 몸에 의지하기라도 하듯 어깨 위에 올린 손에 스스로의 체중을 싣고는 네 쪽으로 몸을 기울인다. ) ―마지막으로 한마디만 해주면 안될까?
사랑한다고 해줘. 늘 그랬듯이.
 
이어 계단 위로 유진의 몸이 쓰러집니다.
 
......
 
아무래도 의식을 잃은 듯 합니다.
 
이지나:난 이지희가 아니래도. 안타깝네. 나랑 유진이 아니라, 이지희와 네가 같이 고립됐어야 했는데 말이야. (한숨 쉬면서 유진을 흔든다.) 얘, 여기서 쓰러지면 정말 버리고 갈 거란다?
 
깨워볼까요?
 
혹시 아나요, 치료라도 해보거나 뺨을 때리면 일어날지?
 
이지나:(머리를 치료할 수는 없을 것 같으니까 물리적 방법을 쓰자.)
(따귀를 갈긴다)
 
이지나 씨? 우리에게는 응급처치라는 방법도 있습니다.
 
이지나:
근력
기준치: 45/22/9
굴림: 37
판정결과: 보통 성공
(촤 악)
 
이지나의 매서운 감정을 담은 스매시가 유진의 뺨을 치고 갑니다.
 
일어나지 않는다면 일어날 때까지 때려보는 게 제일이랬어요.
 
몇 번을 때렸을까, 쓰러졌다는 말이 무색하도록 금세 정신을 차린 유진이 반사적으로 이지나의 손을 붙잡습니다.
 
이지나:드디어 정신 차렸구나? 한 번만 더 때려도 안 일어났으면 버리고 가려고 했단다.
 
유진:(체념한 눈으로 미간을 살짝 찌푸리고는 비어있는 반대손으로 안경을 벗었다.) 나한테 원한 있어요?
 
이지나:너였어도 자기보다 한참은 큰 상대를 힘들게 부축하면서 올라가야만 하는 급박한 상황에 갑자기 상대가 픽 쓰러졌으면 나처럼 했을걸. (가책이라곤 1g도 안 느껴지는 태연한 낯으로 말하고는 일으켜세운다.) 정신 차렸음 어서 가자.
 
유진:저기요, 나 지금 안경 깨졌었거든요? 이지나 씨, 안경 쓴 사람 치면 위험하다는 거 몰라? 양심의 가책이라고는 하나도 느껴지지가 않네. (당연하게도 본인보다 큰 사람을 아직 만난 적이 없다.)
(하... 잠깐 이마를 짚더니 머리를 흐뜨러뜨리고는 네게 손을 내밀었다. 마치 일으켜세워달라는 듯이.)
 
이지나:네가 여기에서 타죽는 것보단 덜 위험하겠지. 그러게 누가 괴상한 프러포즈랑 사랑고백의 발언을 내뱉고 의식을 잃으랬니. (손 잡아당겨 일으켜준다.)
 
유진:…내가 멋없는 말을 했을 리 없을텐데. 당신이 감정이 메마른 건 아니고? (네 힘과 반동으로 인해 자리에서 일어난다.)
 
유진이 일어나며 반사적으로 층수를 확인합니다.
 
이지나도 시선을 함께 따라 층수를 확인해봅니다.
 
어느샌가 89층에 올라왔었네요.
 
옥상 전망대가 가까운 곳에 있습니다.
 
이지나:너 그거 진심으로 한 말이었니? 당연히 네 안의 서건우가 한 말이라고 생각했는데. 만약 진짜라면 넌 플러팅 방법을 다시 배워야겠구나. (무척 힘들지만 입은 살아서 나불대는 중…… 무거운 다리를 움직여 90층까지 가자!)
 
유진:(셔츠 앞주머니에 안경을 넣어두고는 나지막이 말을 잇는다.) 글쎄, 어떻게 생각해요? 나는 모르겠네.
(네 몸에 기대어 마지막 계단을 올라간다.)
 
이지나:네가 무슨 말을 했는지 기억은 해?
 
유진은 대답하지 않습니다.
 
정말 기억하는지는 혼자만 알고 있겠네요.
 
이지나:(싱겁긴)
 
두 사람은 어느덧 90층에 도착합니다.
 
옥상 전망대로 올라오면 시원한 바람이 전신을 감쌉니다.
 
주변을 둘러보니 이지희의 말대로 낙하산 하나가 보입니다.
 
2인용이라고 표기되어 있는 것을 보니 두 사람이 함께 사용가능한 모양입니다.
 
이지나:이 지경인데 옥상에 구조 헬리콥터 하나 오질 않았다고? (신경질적으로 말하면서 낙하산을 집어든다.)
 
그러나 다음과 같은 쪽지가 붙어 있습니다.
 
류 (GM):비상 탈출용 낙하산 사용 방법
하네스를 빠짐 없이 장착한다.
착륙 지점을 계산하여 장애물이 없을 방향으로 선 후, 낙하한다.
직후 손잡이를 강하게 잡아당긴다.
착륙 시 부상에 주의할 것.
(07.05) 자동 손잡이 제외 사용에 이상 없음.
 
류 (GM):현재 자동 손잡이의 기어에 트러블이 있어 사용시 낙하하며 세 개의 기어를 동시에 작동시켜야 합니다. 곧 수리 예정입니다.
 
세 개의 기어는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었으나 크기가 제법 큰 탓에 한 손에 하나를 쥐는 것이 고작입니다.
 
아무래도 두 사람이 타이밍을 맞춰 동시에 잡아당겨야 겠어요.
 
이지나:하나같이 멀쩡한 게 없어. (진짜 열받음) 트러블이 있는 걸 왜 비상용으로 갖다놓느냔 말야. 이 안전불감증 대한민국 같으니.
 
유진:새삼스럽네. (안내 문구를 보자마자 손은 멀쩡한지부터 확인해본다.)
(주먹을 쥐었다 폈다 쥐었다 폈다...)
 
이지나:(유진에게 하네스를 건넨다) 어때, 손등뼈는 멀쩡하니?
 
유진:부서진 건 다리지, 손이 아니네요. (자연스레 왼손으로 하네스를 받는다.)
너야말로 날 때렸던 걸 보면 잡아 당길 힘은 있겠네.
 
이지나:나야 쌩쌩하지. 이 정도로 지치면 형사란 직업이 부끄럽지 않겠니. (제 몫의 하네스를 몸에 딱 맞게끔 둘러 장착한다. 훈련을 받을 때 낙하산을 타본 경험이 있으니 처음 겪어보는 경우는 아니라지만, 이 고층에서 뛰어내리는 건 좀 아찔하긴 하네. 게다가 트러블이 있는 낙하산 확정이라니.) 호흡이 안 맞아서 낙사하지나 않게 주의하자꾸나.
 
유진:(익숙하게 하네스를 착용하고는) 하고싶은 말이 하나 있는데 해도 되나요?
영화에서 보면 그런 대사가 클리셰적인 요소더라.
 
낙하산 사용을 위해 뛰어내릴 준비가 되었나요?
 
이지나:어디 한 번 해보렴. (기어를 잡아당길 준비를 한다.) 까딱하면 죽을지도 모르는데, 할 말은 하고 가야지.
 
유진:그러니까 그런 거라고. 실패에 관한 클리셰.
가자. (아랑곳 않고 타이밍을 맞춰 너와 함께 건물 아래로 뛰어내린다.)
 
두 사람은 건물 아래로 뛰어내립니다.
 
이지나는 보너스 주사위를 잊지 말아요!
 
유진:77
 
이지나:7
8
 
두 사람은 기어를 있는 힘껏 끌어당깁니다.
 
하지만 공중이었기 때문일까요?
 
그렇지도 않다면 그저 힘이 모자랐던 것일까요?
 
낙하산은 펼쳐지지 않았습니다.
 
불행 중 다행히 예비 낙하산이 펼쳐지는군요.
 
이지나:(왜 이렇게 풀리는 일이 없는거지)
 
착륙한 곳은 시민 공원의 공터입니다.
 
두 사람이 탈출하는 것을 확인한 소방대원들이 매트리스를 펼쳐놓고 있었으나
 
본디 펼쳐져야 했을 낙하산이 아닌 탓에 예상 지점보다 일찍 지면이 가까워집니다.
 
첨벙!
 
호수에 빠져버리고 맙니다.
 
HP -1
 
이지나:(약간 해탈)
 
곧이어 소방대원에게 구출 받습니다.
 
.
 
.
 
지금 두 사람의 모습은 영락없는 물에 빠진 생쥐꼴이에요.
 
이제 무엇을 하고 싶나요?
 
이지나:(축축)
그래도 여름인데 덥지는 않구나. (마지막 남은 한 톨의 인내심으로 긍정적인 사고를 해보려 한다.)
자, 너는 응급처치를 좀 받고 있으렴. 나는 서연주를 찾아봐야겠어.
 
유진:서연주를 찾겠다고? 너도 지금 치료 받아야 하는 사람이야.
 
이지나:어차피 화상은 응급처치론 안 돼. 나중에 피부과에 제대로 가던가 해야지. 지금은 급한 게 있잖니? 자정 전에 해결을 봐야지.
 
유진:뭘 모르는 소리를 하시네, 화상도 응급 처치가 중요한 건 맞아. 내 말은 서연주 학생이 지금의 우선순위는 아니라는 거지.
그 학생에게 들었던 이야기 없어요? 그, (생각하면서 버릇처럼 머리를 톡톡 건드리다 조용히 이름 석자를 부른다. 민다윤… 이어 자연스레 그리 좋지 못한 언행을 입에 올린다.) 개자식한테서.
아, 실수. 나도 모르게 그만. (뻔뻔한 얼굴)
 
이지나:개자식이 맞으니깐 실수라고 할 필요 없어. (그 인간도 아닌 것 때문에 겪은 고초를 생각하면 오만 욕이 다 쏟아져나올 지경이니 지적이나 정정 따윈 하지 않았다.)
산 자와 죽은 자가 뒤바뀐다고 했지. 백귀야행이 온다나. (칠월 칠석에 관한 무대 포스터가 갑자기 떠오른다. 인상을 살짝 찡그렸다.) 결혼밖에는 답이 없는 것처럼 말했는데. 그치만 구청은 문을 닫았잖니?
 
유진의 답을 듣기 전에 지능 판정 한번 해볼까요?
 
이지나:
지능
기준치: 75/37/15
굴림: 66
판정결과: 보통 성공
 
유진:오, 미안하지만 나는 애인도 있고 이지나 씨와는 사적인 관계로 발전하고 싶지 않아서. (농조)
 
정말 결혼 밖에 답이 없을까요?
 
이지나:그건 나도 마찬가지거든?! (발끈)
 
서연주의 일기장이 기억나나요?
 
암호만 지킨다면 부케가 시들지 않을 수 있다고 했던가요?
 
아, 민다윤은 또 무어라 했었지요?
 
부케가 원하는 것을 이루어준다면 된다 하였지요.
 
하지만 정말 그런 것이라면…
 
원인이 된 부케를 없애면 되지 않을까요?
 
그리고 지금 이곳에서 부케와 가장 가까운 사람은……
 
유진:농담도 못하나. 아마 우리 팀에서 당신이 나를 제일 싫어할 거예요.
 
이지나:너뿐 아니라 모두에게 다 똑같이 대하니까, 네가 특별취급받는단 생각은 안 해도 돼. (그냥 평소 태도가 모두에게 고압적이고 거만한 사람이다.) 물론, 너는 다른 사람들 중에서도 좀 얄밉긴 하지만.
(부케를 없애는 건 안 될 일이지. 유령 사건 하나 해결하겠다고 애꿎은 동료를 죽여? 평소 유진에 대한 호불호를 떠나서라도, 다른 방법이 있다면 굳이 고를 선택지는 아니다. 그럼 남은 건 하나. 어젯밤의 꿈에서 들려왔던 말처럼 부케를 지키는 것인데…… 암호. 암호가 대체 뭘까. 화상을 입은 곳이 시큰거리는 것도 무시한 채 이전의 상황을 복기하고 또 복기한다.)
 
유진:아무렴. 당신이 누구인데. (작게 웃어보며 어깨를 으쓱거린다. 이내 눈을 두어번 깜빡이며 조용히 너를 바라본다.) 그래서, 생각 정리는 되었고?
 
이지나:(이질적인 그의 언행…… 설마, 그 말은 아니겠지. 아니, 이건 알아도 내가 할 수 있는 범위가 아니라고!!! 절로 나오는 한숨을 참지 않으면서 이마를 짚는다.) 아무래도.
 
유진:이지나 씨, 하기 싫은 일이나 궁지에 몰리면 아무 생각도 안 나서 얼굴만 찌푸리거든요. 본인은 그걸 아시나?
 
이지나:하기 싫은 거니까 당연한 노릇이지. (냉담하게 답한다. 아, 이거 진짜 내가 해야 돼?)
(저는 저 자신 말고는 사랑하는 사람이 없는 인간인데, 아무런 감정도 없는 팀 동료에게 이런 말을 해야 한다니 정말 죽을 맛이다. 적어도 한 시간 내로 상황을 해결하지 않으면 세상에 큰 혼란이 일어난다는 대전제만 없었다면 어떻게든 다른 방법을 찾았겠지. 하지만, 그럴 수는 없었으므로. 눈을 꾹 감고 심호흡을 한다.) 내가 지금부터 하는 말은 다 상황을 해결하기 위해서일 뿐이란다. 사적인 감정은 하나도 없어, 알아듣겠니? 이걸로 놀리면 네 발이 나을 때까지 기다렸다가 또 밟아줄 거야.
 
유진:(오)
환자 앞에서 발을 밟겠다는 이야기를 이리 정성스레 해주실 줄은 몰랐네. (덤덤히 네 반응을 이어 보다 느리게 눈을 깜빡인다. 사실 방법이야, 알겠지. 그렇기에 네가 무얼 원하고 무얼 바라는지 알겠다는 그런 느낌이 들었다.)
지나야, 하기 싫으면 하지 않아도 돼. 방법이 하나만 있는 건 아니잖아, 안 그래?
 
이지나:(제 팔끼리 겹쳐 팔짱을 끼고, 그를 내려다보았다.) 다른 방법이 뭔지는 알고? 내가 널 죽여야 할지도 모르는데? 아니라도, 그에 준하는 중상을 입혀야 할지도 모르고. 그래도 좋니?
 
유진:(우리가 바라보던 시선이 이리도 달랐었나? 이제는 통증조차 느껴지지 않는 다리를 외면한 채, 너를 올려다보며 푸른 불꽃이 일렁이는 눈동자에 시선을 둔다.) 뭐, 거기까지 생각도 해봤죠. 지금 다리도 못 쓰겠다, 나는 네가 망설임없이 그럴 거라고 생각했는데.
(한 손으로 바닥을 짚고 부러진 다리에 영향이 없도록 조심스레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난다.)
 
이지나:내가 빈말로라도 좋은 성격은 아니라지만, 날 너무 나쁜 사람으로 보는 거 아니니? 그깟 부상이야 치료받으면 되는 건데 내가 그 정도로 널 죽음의 저울에 올려둘 거라 여겼다고? (혀를 찬다.) 총을 쏘는 것보다야 혀를 움직이는 게 몇 배는 쉽지. 심적으로는 더 어렵긴 하지만.
(내려다보고 있던 시선이 다시금 천천히 올라간다. 분노와 부아, 짜증, 고민 등이 뒤섞인 눈빛으로 잠깐 말이 없다가) 눈 감아. 사실 맘 같아선 귀도 막으라고 하고 싶구나.
 
유진:이지나 씨, 야박하시네. 왜요, 사랑하는 동료를 편히 보내줄 생각도 못하신 건가? 여기서 죽는 건 내 계획에 없었지만 나도 나름 각오를 다지고 한 말이라서요.
 
이지나:뭘 편히 보내? 누가 보면 곧 죽을 중상인 줄 알겠어. (한 번 더 혀를 찼다.) 다른 방법을 택할 건데 그 표정을 네가 보게 하기 싫어서 그런 것뿐이니까 빨리 눈 감아. 넌 말 한 마디 듣기만 하면 돼. 이 방법이 안 통한다면, 널 죽이는 방법은 그때 고려해보겠단다.
 
유진:아, 이래 보여도 사람 구하다 다쳤지만 실비 처리도 안되는 아주 악독한 중상이에요.
(팔짱을 끼고 자연스레 너를 내려다 보았다.) 내가 거절한다면?
 
이지나:음, 대한민국의 암담한 현실이니 받아들이도록 하고.
그럼 내가 감을 수 있게 해줘야지. 자, 뭘로 해줄까? 주먹질? 발길질? (뼈를 뚜둑거리며 손을 풀기 시작한다.)
 
유진:남일이라고 막 던지시네.
어? 그럼 폭력에 대한 증거를 남겨놔야지. (주머니 속에서 핸드폰을 꺼낸다.)
 
이지나:대신 살려준 거에 감사하고? 자, 셋 셀 테니까 결정해. 한 대 맞을지 얌전히 눈 감을지.
하나, 둘-
 
유진:지금 생색내는 거예요? (이어오는 말에는 가볍게 반응하며 버튼을 조작하여 빠르게 카메라 어플을 켰다. 지나에게는 안 보였겠지만!)
 
이지나:좀 내도 되지 않겠어? 살려주는 건데. (그리고 망설임없이 빡! 유진의 명치를 갈긴다. 급소인 걸 알고 있으니 적당히 눈 못 뜨고 괴로워할 정도로만 조절해서 때렸다.)
(난장판이 되는 그 와중에, 빠르고 낮게 속삭였다.) ……사랑한단다.
 
유진:(갑작스레 명치를 얻어맞고는 숨을 토해낸다. 컥, 하며 소리없는 비명과 함께 앞으로 몸이 고꾸라졌다. 손 안의 핸드폰은 어느샌가 바닥으로 떨어져 나뒹굴었고 하늘로 향한 액정은 어느샌가 여러조각으로 빛을 낸다.)
(땅 위에 엎드려 무릎을 꿇은 채 호흡을 크게 반복하던 중 귓가에 들려오는 소리에 다시금 고개를 들었다. 평소보다 날카로워 보이던 눈이 그 순간만큼은 이해가 되지 않는지 눈썹을 치켜올리는 것이 제법 멍청해 보이기까지 하여 네게는 퍽 재미있는 모습이었으리라.)
무슨 소리야?
 
이지나:(깨진 핸드폰에 짧게 시선을 두었다가 별것도 아니란 듯 제 손을 탁탁 털었다. 그러게 누가 감히 핸드폰을 들이미래? 목적은 달성했으니 됐다.) 반응 보니 전혀 예상 못했나 보네?
네가 나한테 해달라고 한 말이잖니. 정확히는 네 안에 있는 서건우의 영혼이겠지만.
내가 왜 이렇게 질질 시간을 끌었는지 알겠지? 그리고, 이 일은 기억에서 잊어버리는 게 좋을 거야.
 
유진:(아프다. 호흡을 진정시키며 바로 옆의 주머니 속에 있는 안경을 확인한다. 마지막으로 보았던, 깨진 모습 그대로. 자시 주머니 속에 안경을 집어넣고는 네게 손을 내밀었다.) 맨입으로?
 
이지나:(눈살을 찡그린다.) 뭘 원하니? 오히려 넌 나한테 목숨을 빚진 쪽이라고 생각하는데? (인성쓰레기)
 
유진:우리 지나 씨, 인성 왜 이러실까. (솔직!) 이렇게까지 했는데 눈치도 없으실 줄은 몰랐네.
일으켜 달라는 거잖아.
 
이지나:(안경 수리비라도 달라는 줄 알았다. 물론, 그것 또한 쓰러진 유진을 깨우려다 깨진 거였으니 안 주려고 했지만.)
(아하, 하는 표정을 짓더니 손을 맞잡고 힘주어 그를 일으켰다. 다친 다리에 무게중심이 들어가지 않게끔 힘을 잘 조절했다.) 이번에야말로 병원에 갈 때가 된 것 같네.
 
유진의 내민 손을 붙잡고, 이지나는 그를 일으켜 세웁니다.
 
자, 이제는 우리가 할 수 있는 모든 일이 끝났어요.
 
적어도 당장은 평화로울 거예요.
 
그렇죠?
 
.
 
..
 
이미지
 
병원으로 향하는 길.
 
어두워진 하늘에는 구름마저 껴 더욱 우중충합니다.
 
구급차에서 내려 건물로 들어가기 직전, 코에 물방울이 내려앉습니다.
 
비가 한 방울, 두 방울 떨어집니다.
 
“아, 비다.”
 
“다행이다. 곧 불도 꺼지겠네요…”
 
건물로 들어섭니다.
 
시계 바늘이 자정을 넘어가고 있습니다.
 
현장에 있던 관공서 직원의 말에 따르면 이지희나 서연주는 이미 다른 병원으로 이송되었다고 하는군요.
 
적절한 처치를 마치고,
 
뒤이어 출동하였던 동료 형사에게서 하루 이틀은 입원해 치료에 전념하라는 말을 듣습니다.
 
아, 생각해보니 두 사람의 부상이 말이 아니었어요. 부상의 정도에 따라서는 더 길어질 수도 있겠죠.
 
이지나는 힐끔 유진을 바라보았겠지만…
 
뭐, 자업자득인 것을요.
 
어느샌가 병원에 앉아 유진과 입원실이 배정되기를 기다립니다.
 
……아.
 
이지나는 한순간 유진을 바라봅니다.
 
오늘 종일 유진에게 느껴졌던 묘한 거슬림이 이제는 느껴지지 않아요.
 
정말 모든 것이 끝난 걸까요?
 
이제 슬슬 졸음이 몰려옵니다.
 
피곤한 하루였어요.
 
대기하는 주변 사람들의 잡담 소리가 작게 들립니다.
 
“비 많이 내리네.”
 
“칠석이라 그래.”
 
.
 
..
 
이후의 이야기입니다.
 
서연주는 무사히 귀가하고 이수현과 함께 학교에서 처분을 받았습니다.
 
다만 민다윤의 행방은 여전히 알 수 없었습니다.
 
주소지를 따라가 봐도 그 곳에 사는 사람은 전부터 아무도 없었다고 하네요.
 
경찰이 수색에 들어간 모양이지만 찾아낼 수 있을지는 미지수입니다.
 
이지희의 이야기도 함께 전해 들었습니다.
 
이야기를 전해 준 동료 형사의 말에 의하면 서연주가 귀가하는 길에 함께 동행해주었다고 하네요.
 
서로 무언가 이야기를 나눈 모양입니다.
 
지금은 완전히 일상으로 복귀하였다는 평화로운 소식이에요.
 
언젠가 거리를 걷다보면 이수현과 함께 아이스크림을 나눠먹는 서연주나
 
스튜디오에서 손님들을 배웅하는 이지희의 모습을 마주칠 날도 있겠죠.
 
다시 평일 낮.
 
세상은 바쁘게 돌아가지만 이지나는 여전히 유진과 병원의 침대 위에서 한가롭게 시간을 보내고 있습니다.
 
두 사람을 병문안 하러 온 지인들이 가져온 음료수가 한 구석에 쌓여있습니다.
 
유진은 심심하다며 어디선가 가져온 잡지에서 크로스워드를 풀고 있네요.
 
유진:이지나 씨? 사람들에게 가장 선호도가 높은 색이 뭔지 알아요?
 
이지나:그걸 내가 어떻게 아니? (TV 화면을 바라보다가 심드렁하게 대답한다.)
 
유진:싱겁기는. 당신처럼 머리가 좋은 사람이라면 당연히 알 줄 알았죠. (빈 칸에 펜으로 몇 자 적어 내려간다.)
 
이지나:사람마다 취향은 다 다른 법이잖니. 너는 알고?
 
유진:그럼요. 이런 문제의 답은 앞뒤를 끼워 맞추면 알 수 있는 법이니까.
파란색이에요. 누구도 가져가지 못하는 색이기도 하죠.
 
이지나:왜 가져가지 못하는 색이지? (재밌다는 듯 눈가를 살짝 휘며 웃는다. 그 안에서 푸른 홍채가 빛났다.)
 
유진:태양이 탐을 내어 그 빛을 가져간다 한들 세상은 여전히 푸른빛으로 가득하니까요.
그래서 형이 그러더라고요. 영원을 고백하는 자리에서는 푸른색이 좋겠다고. 왜, 그 부케도 푸른색이었잖아요?
 
이지나:흐음. 과연 그랬지. 흥미로운 가설이구나. 당분간 그 부케 관련된 일은 생각도 안 하고 싶지만.
 
유진:델피늄이래요.
우리 형 결혼식에서 내가 받았다는 꽃.
원래 부케로 자주 쓰인다나봐요. 꽃말이 ‘당신을 행복하게 만들어 줄게요’ 라고 하던가.
 
이지나:내가 결혼할 일은 한참이나 뒤일 것 같으니 내 부케에 어떤 꽃이 쓰일진 모르겠구나.
어쨌건, 너희 형도 행복하셨음 좋겠네. (이런 말을 해줄 정도의 사회성은 있음)
 
유진:(한번 너를 바라보는 듯 하다가 다시 잡지 속 크로스워드 퍼즐에 시선을 옮긴다.) 이지나 씨, 결혼할 생각은 있었고? (악의 없는 말이다.)
 
이지나:상대가 나타나면 할 수도 있겠지. 영원이니 사랑이니 하는 낭만을 위해서는 아닐 것 같지만. (철저히 실리주의인데다, 저 자신조차 누군가를 사랑할 수 있을지 의심스러운 수준이니.)
 
유진:재미없어라. 지금 그 말, 나는 관심도 없고 평생 혼자 살겠다는 이야기로 들리는걸. 이래서 혼자 살고 싶지는 않지만 결혼은 하기 싫은 이들을 위해 생활동반자법이 제정이 되어야 된다니까요.
내가 다음달에 결혼한다고 하면 믿을 거예요?
 
이지나:그런 넌 내게 관심이 있고? 직장 동료에게 동료 이상 무슨 관심을 가져야 하니? (매몰차게 대답했다.)
애인 있다더니 그 사람이랑? (헛소린 줄 알았는데) 결혼은 신중하게 생각하고 결정해야 하는 일이란 거 알지? 네가 알아서 잘 하겠지만.
 
유진:오, 나한테 관심 있었어요? (그렇게 받아들일 줄은 몰랐네. 작게 웃으며 한마디 덧붙이고는) 나는 모두에게 관심이 많아요. 아무렴, 사랑하는 동료인걸.
아니? 그냥 해 본 말이에요. (애인의 유무에 대해서는 대답하지 않았다.)
 
이지나:동료로서의 관심밖에 없다는 말이잖니? 꼬투리 잡지 마. (괜히 투덜거렸다.)
뭐니? 싱겁게.
 
유진:그야 이지나 씨가 내게 얼마나 관심이 많은가 떠 본 거지. 8월 13일이 무슨 날인지 알아요?
 
이지나:(며칠 전 나눴던 대화를 머리 한구석에서 뒤져본다. 칠석이라고 했지만 음력은 8월이라고 했던 것 같다. 진짜 칠석은 10일이었고, 13일이란 날짜도 분명 들은 기억이 나는데…….) 아하. 네가 한 살 더 나이드는 날이었구나.
 
유진:오, 기억하고 있었네. 나는 선물도 줬는데 기억 못하면 섭할 뻔 했어요.
(제 옆에 잡지를 내려두고 자리에서 일어난다.)
산책이라도 다녀올까 하는데 같이 갈래요?
 
이지나:내 기억력을 무시하지 마렴. (선물은 아직 안 정했지만.)
그러자꾸나. 누워있기만 해서 몸이 찌뿌둥한 참이었어. (기지개를 켜고 일어나 신발을 신었다.)
 
이지나는 자리에서 일어납니다.
 
유진이 앉아있던 자리에,
 
그가 전부 푼 크로스워드가 보이는군요.
 
문장 하나에 시선이 미칩니다.
 
우물 안 개구리는 넓은 바다를 알지 못하나 푸른 하늘을 안다.
 
자유로운 사람.
 
무언가에 얽매이는 사람.
 
그렇기 때문에 약해지는 사람과 강해지는 사람.
 
당신은 어디에서 어느 지점을 향하고 있나요.
 
 
푸른 하늘을 가로지르며 비행기가 지나갑니다.
 
길을 따라 흰 구름이 그려집니다.
 
ENDING 5 「하늘을 그리며」
 
KPC 유진, PC 이지나
 
…아니,
 
KPC 유진, PC 아테나 생환
 
협박장 사건을 해결한 당신을 위하여 1D3의 이성 회복
 
이지나:3
 
푸른 부케를 해체한 당신을 위하여 1D5의 이성 회복
 
이지나:3
 
―모든 이들의 사랑을 위하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