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레트:(무겁고 불편한 우주복도 수없는 훈련을 통해 어느덧 적응되었다. 우주에서 가장 문제가 되는 건 저를 실어나를 우주선에 생기는 결함이다. 가장 외로운 인간이기를 자처한 지금, 처음 숨 얻어 태어난 행성과 저를 연결해주는 유일한 고리였으므로. 파손이 꽤 큰 걸까? 심각한 낯으로 외벽을 바라본다.)
코레트:
관찰력
기준치:
75/37/15
굴림:
13
판정결과:
극단적 성공
가장 외로운 인간 앞에 나타난 자국은 꽤나 날카로워보입니다. 일정하고 넓은 간격으로 외벽이 사선으로 파여있는 걸 보니... 발톱 자국 같기도 하네요.
하필이면 손상 부위가 깊숙한 곳에 있어 안전한 로봇팔을 사용하기엔 무리입니다.
코레트가 안전줄을 매고 직접 가는 수밖에 없다는 뜻이죠.
하지만 너무 나쁘게 생각하진 맙시다.
우주유영은 하늘을 올려다본 모두가 소망하던, 당신만의 특권이니까요.
두 개의 안전줄을 우주선에 겁니다. 우주복의 무전기에 시답잖은 농담이 흘러들어옵니다.
나는 이럴 때마다 늘 안전고리를 풀어서 너희 중 하나를 별로 만들어 버리는 생각을 해. 태어났던 곳으로 돌아가는 것도 나쁘진 않겠네.
코레트:농담도요…… (희미하게 웃음 흘리며 안전줄을 단단하게 맨다. 다소 의아한 모양의 자국이지만 모양이 어떻든간에 할 일을 해야겠지.)
(몇 번이나 확인을 거치고 수리할 도구를 챙겨 손상 부위로 향한다.)
농담이 현실이 되지 않도록 꼼꼼하게 확인하고 나가면 다행히 기판의 손상은 심하지 않았습니다. 그럼에도 혼자 수리하기는 무리라, 약간의 지원이 필요합니다.
지원을 요청하면 기계공학자 제레미가 바로 요청에 응합니다.
*
손에 공구를 쥔 제레미가 데스티니 모듈 반대편에서 떠내려온 것은 정거장이 부자연스럽게 흔들린 직후였습니다.
정거장 전체가 위아래로 크게 흔들렸습니다. 반짝이는 태양광 패널 사이로 소행성 조각들이 날아옵니다.
“코레트, 제레미, 무사한가? 대답해!”
긴박한 통신이 코레트의 귓가에 반복적으로 울립니다
코레트:(소행성과…… 부딪힌 건가? 상황을 파악하려고 애쓰며 답한다.) 저는 무사합니다. 무슨 일이 일어난 거죠? (제레미는 괜찮나? 얼른 그가 있던 쪽을 바라본다)
코레트가 제레미를 살피려 고개를 돌리면 그는 부드럽게 흘러와 당신 옆을 지날 때 허리에서 두 조각으로 분리됩니다. 그 옆을 부유하는, 날이 선 잔해에 피가 얼어붙어 있습니다.
코레트:(충격에 얼어붙은 탓에, 무전기 너머의 비명을 알아차리는 건 한 박자 늦게였다. 처음에는 제레미의 죽음을 그들도 목격한 건가 하였으나 카메라가 켜져있지 않았으니 그건 불가능하다. 그제야 귓전에 '눈'이라는 단어가 들어온다.) 여러분? 다들…… 다들 괜찮으세요? 눈이라니, 대체 무슨 말씀이세요? (다급하게 묻는다.)
무전 너머에서는 아무도 코레트의 답에 답하는 사람이 없습니다. 오직 ‘눈’이라는 단어만 귓가에 울려 퍼집니다.
그리고 그때 또다시 정거장이 흔들립니다. 정거장과 안전줄로 연결된 코레트 역시 흔들립니다.
날카롭게 부서진 소행성 잔해와 정거장에서 떨어져 나온 파편이 당신의 우주복을 아슬하게 스쳐 지나갑니다.
코레트:(파편에 부딪히고, 안전줄이 잘려나가고, 정거장이 폭발하는 그 모든 순간이 마치 슬로우모션처럼 닥친다. 폭발의 충격에 몸이 저 멀리로 떠내려가면서도 반사적으로 동료들이 있었던 정거장을 향해 팔을 뻗었다.)안 돼요!(단말마 같은 비명이 우주복 안에서 처량하게 맴돈다.)
지능
기준치:
80/40/16
굴림:
10
판정결과:
극단적 성공
무언가 정거장을 잡고 있습니다. 부피를 가진 것이 정거장 외벽을 꾸물거립니다. 그리고 우주정거장 뒤편으로 광막한 우주를 갈라내는 눈이 보입니다.
‘그것’ 앞에서는 정거장도 작은 먼지와 같습니다. 온 우주를 품고 있는 것 같은… 거대한 무언가가 코레트를 응시합니다.
코레트:(정거장은 폭발했고 패널과 우주복을 연결하는 줄은 끊겼다. 돌아갈 곳 없고 살아남은 동료들도 없으니 영영 이 광막한 공간을 헤매게 되겠구나. 혼미해져 오는 정신으로도 제게 당도한 현실을 깨닫는다. 눈물이 나지 않는 건 운다 한들 알아줄 이가 아무도 없기 때문일까……)
거친 숨을 뱉어냅니다. ‘나’는 아직 살아있습니다. 점차 또렷해지는 코레트의 시야에는 우주가 절반으로 쪼개져 보입니다. 쓰고 있던 헬멧에 커다란 금이 생겼기 때문이었습니다.
조금 전의 일이 꿈은 아닌 듯 주변에는 많은 기계 잔해가 쌓여있습니다. 그리고 다시금 자각하건대, 당신은 여기서 숨을 쉴 수 있습니다.
헬멧이 깨어진 채로, 망가진 우주복을 입고도.
코레트:(천천히 눈을 뜬다. 파편에 맞았으니 우주복 어딘가가 손상되었을 테고, 정신을 잃은 채로 얼어죽거나 혹은 의식이 있더라도 시끄러운 경고음과 고통 속에 죽어갈 줄 알았는데. 숨을 쉴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자마자 눈이 크게 뜨인다. 무거운 몸을 일으켜 앉아 주변을 둘러본다. 어떻게 된 거지? 여긴…… 또 어디지?)
살아있다는 사실에 감사해야 할까요. 울리는 머리를 애써 무시하고 둘러보면 익숙한 것들이 눈에 들어옵니다.
사방에 흩어진 부품에는 영어가 쓰여 있고 정거장에서 뜯겨나온 태양광 패널이 코레트 주변을 떠다닙니다.
양옆에는 머리 위에 펼쳐진 우주를 좁히는 높다란 벽이 있습니다. 우주선 외벽입니다.
당신은 망가진 우주왕복선의 열린 화물칸 위에 누워있었습니다. 그러므로 여기 쌓여있는 잔해물은 대부분 이 비운의 우주선에서 난 것이겠네요.
우주선은 외부의 충격으로 완전히 부서진 상태입니다.
그나마 조종석이 있는 부분은 멀쩡하나, 이런 상태의 우주왕복선에 탑승했던 승무원이 무사할 리가 없습니다. ‘승무원 접근 출입문’은 그나마 피해가 덜해 보입니다.
코레트:이 우주선도…… (우주정거장이 폭발할 때 함께 부서진 건가? 대체 어떻게 숨을 쉴 수 있는 거지. 헬멧을 가른 금을 만지작거리며 승무원 출입문으로 향한다. 우주선이 이 지경이라면 안에도 생존자는 없겠구나.)
의문이 코레트의 안을 가득 채웁니다. 그러나 해결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다만 온통 깨지고 망가진 것들뿐이거늘 출입문은 무사하다는 걸 알 수 있겠네요.
그 주변의 기계들은 새것 같기까지 합니다. 매끄러운 은백색의 문 위에 굵은 글자가 새겨진 명패가 붙었습니다.
[Akashic Records]
아카식 레코드 혹은 아카샤 연대기. 19세기를 살았던 헬레나 블라바츠키가 주장한 인류, 나아가 온 우주의 모든 기록을 담았다는 가상의 정보집합체입니다.
흔히 도서관의 형상으로 묘사되고는 했죠. ‘가상의’라는 수식에서 알 수 있듯, 아카식 레코드가 증명된 적은 없습니다.
차가운 문을 열면 안의 따뜻했던 공기가 순간 서늘해집니다. 코레트가 내부로 들어가자 가까운 곳부터 순차적으로 불이 들어옵니다.
코레트:(눈. 익숙한 단어에 눈살을 살짝 찡그린다. 아직도 기이할 정도로 같은 말만을 뇌까리며 비명 지르던 동료들의 목소리가 생생하다. 저 또한 찰나였지만 거대한 무언가를 목격했었다. 여전히 그 정체를 이해할 수도, 이해하고 싶지도 않지만…… 일단 여기엔 눈이 없다고 하니 그 부분은 안심해도 되겠지?)
(그런데 4번 항목은 무슨 의미일까. 글씨를 읽을 수가 없는데. 곰곰 고민하며 문으로 시선 돌린다.)
안내가 붙은 문
불투명한 유리로 막힌 문입니다. 너머에서 인기척이 나는 것 같은데, 잠겨있어 열 수는 없습니다.
속삭이듯 누군가 서고 안에서 코레트를 부릅니다. 당신과 가장 가까운 왼쪽에 놓인 서가. 정확히는 서가 아래에서 4번째 칸에 꽂힌 책의 책등 사이입니다.
그 사이에서 오렌지빛 눈이 빛납니다. 어찌나 코레트를 애타게 부르는지 무시하기도 힘듭니다.
코레트:(흠칫 놀란다. 소리가 들려오더라니 살아있는 사람이 있었나?)
(왼쪽 서가로 다가간다.) 저를 부르신 건가요?
코레트가 가까이 다가가면 곤충의 겹눈 같은 커다란 주황색 눈, 반질거리는 비늘이 돋은 푸른 피부가 보입니다.
절대 인간은 아니겠죠...
그리고 가까이서야 알 수 있었던 것이, 저 생물체의 등 뒤로 펼쳐진 장소는 아득하게 높은 산지입니다.
이 인물도 막상 당신을 마주하자, 눈에 띄게 당황한 모습입니다.
코레트:(처음 보는 생명체인 것도 놀라운데 인간의 말을 해……? 심지어 여긴 우주선 안의 서가일 텐데 어떻게 산지가 펼쳐져 있지? 자신이 상태가 이상해져 환상을 보는 건지 넓은 우주를 떠돌다 외계인을 만난 건지는 모르겠다만, 이쯤 되면 정상적인 공간은 아닌 게 확실하다.)
(드물게도 할 말을 찾지 못하고 망설이다가 겨우 정신을 다잡고 입을 열었다.) 저…… 당신은 어떤 종…… 이신가요? (이런 질문이 올바른지는 모르겠다만 이렇게밖에 표현할 말이 없었다)
아, 제 이름은 코레트라고 해요. (뭐가 뭔지 알 수는 없지만 착실하게 자기소개부터 했다.) 혹시 이 우주선이나 이 공간이 뭔지 알고 계신가요? 그럼 설명을 부탁드려도 될까요? 제가 머무르고 있던 우주정거장이 폭발하면서 정신을 잃었는데, 눈을 떠보니 이 우주선의 화물칸이었거든요.
코레트:차원이…… (우주비행사가 되는 과정에서 배웠던 수많은 지식 속에 시간과 차원에 관한 내용도 있었지. 다만 그때 배웠던 3차원이나 4차원은 시공간을 다루는 어떤 수단 내지 과정에 불과했지 이러한 외계 생물과의 조우를 상정하지는 않았으므로 당혹스러운 동시에 호기심이 생기기도 한다.)
(황금판에 대해 물으려다 자못 심각해진다.) 위험이라니, 좀 더 자세히 설명해주실 수 있나요?
그리고 카메라의 셔터가 닫히듯이 코레트의 앞에 두꺼운 방화벽이 내려옵니다. 어쩌면 다른 무언가를 방화벽이라고 생각해 버렸는지도 모릅니다.
직후 당신은 휴게실 의자에 앉아있었습니다.
코레트:저…… (리코 씨는 어떻게 되는 건가요? 등록은 어떻게 하죠? 꺼내려던 질문이 쿵, 하고 내려온 방화벽에 막혀버린다. 여러모로 당황스럽다. 아무래도 이렇게까지 구체적인 환상이 존재하긴 어려우니 실제로 겪고 있는 일이 맞는 것 같은데, 너무 비현실적인 일들이 연달아 벌어져서 한 번에 받아들이기가 쉽지 않다.)
(일단 리코 씨가 무사해야 할 텐데. 괜히 나 때문에 사서한테 들켜서 험한 일이라도 당하시는 건 아닐까? 걱정이 되어 한동안 방화벽 앞을 떠나지 못하고 서성거렸다.)
(서고에 또다른 볼만한 건 없을까요)
방화벽 앞에 서 있어도 달라지는 건 없습니다. 굳게 닫힌 방화벽만이 움직이지 않고 있을 뿐입니다.
서고에서 더 이상 봐야할 것은 없을 것 같습니다.
코레트:(그럼 사무실로 가본다)
일을 처리하는 사무실보다는 문서 보관실에 가까운 모습입니다. 크지 않은 책상 위에 서류가 사람 키를 웃돌게 쌓여있습니다. 한쪽 구석에는 캐비닛이 서 있습니다.
책상과 서류, 캐비닛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코레트:(책상부터 살펴본다)
책상 위에는 높이 쌓인 서류뿐입니다. 그 위에는 필기구도, 자리 주인의 신원을 추측할 수 있는 흔적도 없습니다.
딱 한 장, 읽을 수 있는 서류가 있습니다. 엄밀히 따지자면 서류를 읽을 수 있는 것이 아니라 그 아래 적힌 서명을 알아본 것이지만요.
블레어의 서명입니다. 최근에 사용된 서류인지 다른 문서에 비해 위에 있는 편입니다.
코레트:…… 블레어? (친구의 익숙한 서명을 알아보곤 반가움에 눈이 커진다. 강한 정신력으로 버티고는 있었지만, 우주정거장에서 일상과 임무를 함께 하던 동료들을 죄 잃은 충격과 슬픔은 여전히 그의 안에서 찰랑이고 있었다. 그런 와중에 오랜 친구이자 또 하나의 우주비행사인 블레어의 이름을 보니 마음이 조금 안정되는 듯했다.)
(그런데 무슨 서류기에 블레어의 서명이 있는 거지? 서류를 들어 찬찬히 읽어본다.)
다시 읽어봐도 내용을 알 수 없습니다. 그저 정갈하게 적힌 블레어의 서명 많이 선명하게 남아있을 뿐입니다.
코레트:(블레어는 아까의 폭발이나 '눈'에 휘말리지 말았어야 할 텐데. 저와 같은 임무를 수행하는 중은 아니었다지만 급격히 걱정이 된다. 부디 무사하길.)
(서명에 좀 더 시선을 두다 캐비닛을 보왔다.)
블레어를 여기서 만나게 된다면... 기분이 어떨까요? 일어나지 않은 일을 가장하게 되는 건 우주에서 미아가 될 뻔 했기에 그런 것일까요. 캐비닛으로 시선을 옮기면 직장에서 흔히 찾아볼 수 있는 개인 캐비닛입니다.
잠금은 없어 보입니다.
코레트:(헬멧에는 금이 갔고 우주복도 손상되었으니 다른 우주선이 기적처럼 저를 찾아와주지 않는 이상 저는 이대로 우주에서 생을 마감할 운명이다. 이 기이한 도서관에 온 지금도 마찬가지다. 우주의 가혹한 환경에서 잠시 몸을 피할 수 있을 뿐. 심지어 리코의 말에 따르면 이곳도 마냥 안전한 건 아니다. 망가진 우주선을 찾아가는 임무 같은 건 없으니, 아마도 블레어를 만날 일은 없겠지. 그가 우주에서 해야 할 일을 마치고 안전히 지구로 돌아가기만을 기원하며 캐비닛을 열어보았다.)
활동하기 편한 옷이 들어있습니다. 얼추 코레트에게 맞을 것 같네요.
우주복이 무겁지 않나요? 갈아입는 걸 추천합니다.
코레트:(망가진 우주선이라 잠깐 망설였지만…… 헬멧이 깨졌는데도 숨을 쉴 수 있었으니 우주복을 벗는다고 해도 큰 문제는 없겠다 싶어졌다.)
(무거운 우주복을 벗고 편한 옷차림으로 갈아입는다.)
무거운 우주복을 벗었으니 조금 더 편하게 움직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휴게실과 안내데스크에 다시 가볼 수 있습니다.
코레트:(등록이라는 걸 빨리 해야 할 것 같은데. 다시 안내데스크로 가본다. 몸이 가벼워져서 이동하기 훨씬 편해졌다!)
안내데스크로 다시 향하면 복잡하게 생긴 기계가 작동하고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코레트:(아, 작동한다. 조금 밝아진 얼굴로 얼른 기계를 확인해본다.)
작동하는 기계 아래에 손을 넣을 수 있는 공간이 보입니다.
코레트:(손을 슥 넣어본다)
작동하는 기계 아래에 손을 넣으면 손등에 따끔한 통증이 느껴집니다.
이후 등록이 완료되었으니 즐거운 시간 보내길 바란다는 기계 패널의 안내가 나옵니다.
안내와 동시에 내려왔던 방화벽이 다시 올라갑니다. 다시 조사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코레트:(등록을 했으니 사서에게 잡혀갈 걱정은 덜어도 되려나. 다시금 리코가 떠오른다. 별 일 없어야 할 텐데.)
방화벽을 대신하는 듯한 묵직한 나무 문은 부드럽게 열리고, 그 안에 길이를 가늠할 수 없을 정도로 방대한 양의 서가가 늘어섰습니다.
‘등록’ 전과는 확연히 다른 모습입니다.
코레트가 막 서고 안으로 발을 디뎠을 때 맞은편 서가에서 책 세 권이 떨어집니다. 연달아 두 권, 잠시 후에 마지막 한 권. 어딘가 익숙한 박자네요.
이곳에서 가장 먼저 떠오른 ‘경이롭다’라는 생각이었을 겁니다.
흔한 싸구려 전등 대신 초신성이 되지 못한 백색왜성이 천장에서 길을 밝힙니다. 우리 머리 위에는 언제나 우주가 있었으나 이렇게 위를 대신한 우주는 처음입니다.
입구의 서가 옆면에 반듯한 1이 크게 쓰여있습니다. 멀리 떨어진 서가에는 숫자 2가 적히고, 서가가 멀어질수록 점점 큰 숫자가 적히는 것을 보니 이곳의 분류 기준인 듯합니다.
역시나 지구의 도서관과 비슷합니다.
1번 서고를 볼 수 있습니다.
코레트:저건 백색왜성……? (눈으로 보고도 믿기지 않는 광경에 절로 입이 벌어진다. 끝도 없이 펼쳐지는 서가의 모습도 그렇고 과연 경이롭다고밖에 표현할 수 없는 모습이다. 모든 기록들을 모아두었다는 이름답다고 해야 할까. 리코의 말을 떠올려보면 지구의 지식들만 모아둔 게 아니라 다른 차원 혹은 다른 행성의 지식들도 적혀 있는 걸까? 그런 거라면 제법 호기심이 생긴다.)
(맞은편 서가에서 떨어진 세 권의 책은 별다른 내용은 없을까요)
맞은 편 서가에서 떨어진 책은 읽어도 별 내용이 없습니다. 그저 우주에 관련된 책일 뿐입니다.
사서가 단언하며 커다란 발톱 달린 손을 주먹 쥡니다. 걸어오는 걸음마다 흘러내린 잉크가 목재 바닥에 붙었다 떨어지는 소리가 납니다.
몸에서는 어느 시대의 것인지 모를 활자가 떨어집니다.
좁은 서가 사이를 걸어오던 사서는 몇 번이나 머리를 꽂힌 책장에 부딪힙니다. 혹시 반사적으로 횟수를 셌나요?
두 번, 그리고 크게 몸을 비틀거리고 다시 한번. 그러나 부딪히는 소리는 차라리 나무가 삐걱거리는 소리를 닮았습니다.
질문에 대한 답은 돌아오지 않고 무조건 도와주겠다고 하는 사서를 보고 있으면 소름이 돋는 것 같습니다.
코레트:(사서가 책장에 부딪힐 때마다 작게 움찔한다. 눈이 없어서 보이질 않는가 보구나. 도와드리고 싶은데 손에 달린 발톱을 보니 섣불리 다가가서는 안 될 것 같다.)
(책에 관한 질문에만 답할 수 있는 건가? 좀 더 고민하다 관련없는 걸 하나만 더 물어보기로 한다.) 혹시, 블레어 레슬리라는 우주비행사가 여기 왔었나요? 혹은 그가 남긴 기록에 관해 아는 게 있으실까요?
사서는 답이 없습니다. 활자들을 뚝뚝 떨어트리며 주먹 쥔 손을 다시 폈다가 천천히, 그리고 빠르게 코레트에게 달려옵니다.
코레트:(왜? 왜요?)
도와주겠다는 말은 거짓말이었을까요. 아니면 도서관과 관련없는 질문이라 이해할 수 없었던 걸까요.
코레트:(정말 영문을 알 수 없는 사서다…… 아무튼 도망쳐야 할 것 같다. 눈이 없어 움직임이 불편해 보이니 서고 사이를 이리저리 가로지르며 빠르게 피해보자)
리코가 말해준 것처럼 눈이 없는 사서는 코레트를 쉽게 잡을 수 없을 것 같습니다.
이리저리 피하고 있는 코레트의 손목을 누군가 조심히 잡아 달립니다.
익숙한 검은색 머리카락이 흩날리고, 아프지 않게 잡은 손을 보고 있으면...
블레어 레슬리:쉿.
입가에 검지를 가져간 블레어 레슬리입니다.
코레트:블……! (놀라움과 반가움에 저도 모르게 이름을 소리내 부르려다가 제 입을 틀어막는다. 일단은 사서를 피하는 게 먼저일 테니.)
블레어가 이끄는 대로 서가를 뛰어갑니다. 이미 들어온 문이 어디인지 알 수 없었습니다.
서가의 번호는 전부 녹아내려 위치를 가늠하는 것조차 불가능했습니다. 어딘지 모를 방향에서 진득한 잉크 소리가 당신을 뒤쫒아 옵니다.
주변에서 꿀렁이는 물소리가 들립니다. 근원 모를 소리는 점점 거세집니다.
벗어나려는 블레어의 노력이 무색하게 잉크가 흐르는 손이 코레트가 바로 옆에 서 있던 서가를 짚습니다. 느린 숨소리가 느껴집니다.
서가의 모서리 하나만 돌면 그것이 있습니다. 질척거리는 발톱이 모서리를 부숴내고, 눈 없는 얼굴이 천천히 옆을 돌아봅니다. 양손이 한껏 잉크 자국을 남기며 서가를 훑어갑니다.
구석에 잠시 멈춰 숨을 고르던 블레어가 코레트를 바라봅니다.
블레어 레슬리:시간 없으니까 빨리. 알고 있겠지만... 내 이름이 뭔지 기억해?
코레트:(금세 벗어날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도 끈질긴 추격에 당황한다. 이대로면 잡히는 게 아닐까? 잉크 소리가 섬뜩하게만 들린다.) 네에? (그런 와중에 들려온 질문은 다소 황당했지만 망설임없이 대답했다.) 당연하죠. 블레어, 블레어 레슬리잖아요.
블레어는 자신의 이름을 불리자 잡았던 손을 놓고 그대로 서가를 밀어버립니다.
서가에 꽂혀있던 책이 전부 쏟아지자 요란한 소리에 사서는 괴성을 지르며 책더미에 돌진해 잡히는 대로 책을 찢어냅니다. 흰 종이에 흩뿌려지는 잉크가 꼭 피처럼 보였습니다.
코레트:(사서가 책을 찢어도 돼요?)
사서는... 자신의 본분을 잃고 있는 걸까요? 잘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다시 마주한 블레어의 얼굴에는 반가움이 가득합니다. 곧 멈춰있을 시간은 없다는 듯 블레어가 당신을 데리고 복잡하게 얽힌 서가 사이를 달립니다.
서가는 시시각각 배치와 형태를 스스로 바꾸는 중입니다. 지금도.
한참을 달려 외진 곳에 도달해서야 블레어가 멈춥니다. 여기서는 그 기분 나쁜 잉크 소리가 나지 않습니다. 천장에 떠 있는 별의 위치는 동일해 떠나온 거리를 가늠할 수 없습니다.
블레어 레슬리:그래서... 정말 왔구나. (평소보다 조금 상기된 얼굴로 코레트를 마주한다.) 하! 드디어... 드디어 왔어... 반가워, 코레트.
코레트:(가쁜 숨을 내쉰다. 간만의 만남이니 당연히 반가운 건 맞지만, 블레어의 반응은 단순히 오랜만의 조우 때문은 아닌 것 같다.) 저도 당신을 만날 수 있어서 기뻐요, 블레어. 당신의 서명이 적힌 서류가 있기에 혹시 당신도 이 공간에 들린 적 있었을까, 싶었는데…… 혹시 저를 오래 기다리셨나요? 이곳에 발을 들인 뒤로 전혀 영문을 모르겠는 일들만 일어나고 있네요.
블레어 레슬리:내 서명이 있는 서류...? 우주선에 챙겼던 서류라도 빠진 건가... 오래 기다렸냐고 물으면, 그래. 참 오래 기다렸지... 하지만 널 다시 만나기 위해서라면 얼마의 시간이 흘러도 상관 없어. (숨을 잠시 고르다가 앞머리를 정리한다.) 우주는 늘 미지의 공간이라고 하더니 생각보다 더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이 많이 일어나고 있는 것 같기도 하고.
다친 곳은 없어? 아프거나, 피가 나는 곳은?
코레트:대체 얼마나 여기 머무르셨기에…… 무슨 일이 있으셨던 건가요? (사서에게서 벗어날 대처법도 알고 있는 걸 보면 상당한 시간이었던 것 같은데. 하긴 저 자신도 많은 일을 겪기는 했다.) 저는 우주복의 헬멧에 금이 갔는데도 숨을 쉴 수 있더라구요. (쓴웃음을 짓다가 제 몸을 내려다본다. 느끼기로는 괜찮은 것 같은데.)
블레어 레슬리:별 거 아냐. 그냥 너를 만나기 위해서라면 기다리는 일 정도야 아무것도 아니었다는 사실만 알아줬으면 좋겠어. (코레트의 머리를 살짝 헝클인다. 작게 소리내어 웃고.) ...그래? 숨을 쉬는데 문제가 없다면... 그걸로 됐어... 지금 서로의 눈 앞에 서 있으니 뭐든 다행이야.
그나저나 여기서 찾아야 할 게 있어. 도와줄래?
코레트:그건 무척이나 감동적인 말이네요. (그래도 어떻게 된 일인지 자세한 전말을 알고 싶지만…… 이렇게 만났으니 언젠가 또 들을 기회가 있겠지. 블레어의 말대로 서로를 볼 수 있으니 다행 아니겠는가. 머리에 와닿는 손길에 눈을 살짝 감으며 미소한다.)
찾아야 하는 것? 어떤 걸까요? 말씀만 해주신다면 당연히 도울게요.
블레어 레슬리:(뻗은 손을 거두고 작게 웃는다. 머리카락을 살짝 넘기고는) 돌아가는 길. 여기에 계속 있을 수는 없잖아. 안 그래? 넌 꼭 여기 남을 사람처럼... (깊게 숨을 들이마시고 제 손을 문지른다.) 돌아가야지. 다시 가고 싶지 않아?
코레트:아. (희미하게 탄식한다.) 그럼요, 당연히 돌아가야죠…… 하지만 이 우주선도 망가졌고 제 우주복도 더는 원래의 기능을 하지 못할 텐데. 이 공간은 넓으면서도 기이해 보이니 열심히 찾아보다 보면 알 수 있으려나요.
블레어 레슬리:당연히 돌아갈 수 있지. 찾으면 나오게 되어 있으니까. 이 넓은 곳에 우리 돌아갈 곳 하나 없을까... 뭐든 있는 곳에 새로운 우주복과 우주선이 없겠어? (가벼운 농담) 가자. 앞으로 나아가려면 오래 걸릴 거야.
돌아갈 거지?
코레트:(객관적으로 보았을 때 저와 블레어는 제법 비관적인 상황에 처해 있다. 우주에 지구와 소통이 되지 않는 채로 단둘만이 남아있고 몸을 보호할 우주복조차 없으니까. 그러나 부정적인 감정은 그다지 들지 않는다. 이 공간 자체가 기이한 환상처럼 느껴져 현실감이 떨어지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제 오랜 친구가 침착하고 차분하게 해결책을 강구하기 때문이기도 했다. 블레어를 만난 것만으로도 큰 안정감이 든다. 앞으로 어떤 일이 일어나더라도 함께라면 헤쳐나갈 수 있을 것 같았다.)
간신히 넘어지는 서가를 피합니다. 넘어진 서가가 바로 옆의 다른 서가를 밀고, 밀린 서가가 또 다른 서가를 밀고…
마치 도미노가 넘어지듯 한 열이 통째로 쓰러집니다. 굉음입니다. 고막을 찢는 소리에 사서들 역시 귀를 막고 괴로워하다 견디지 못하고 흩어집니다.
블레어 레슬리:아슬아슬했다... 스친 것 같지도 않지만 다친 곳 없지? (가벼운 투)
코레트:네에, 다행히 잘 피할 수 있었어요. 그나저나…… 저 많은 책들이 다 쓰러지다니. 정리가 쉽지 않겠네요. 책도 상했을 것 같고요. (책벌레였던지라 자신이 처한 상황에도 불구하고 조금 안타깝다)
블레어 레슬리:그건... 그래. 저 책들이 다 얼마야? 지구에 있었으면 분명 몇 년이고 걸쳐서 읽었을 텐데. (따라 아쉬운지 책을 가만 바라보다 걸음을 뗀다.) 다시 가자, 아깝지만... 이미 저렇게 되어버린 건 어쩔 수 없으니까... (살짝 미련이 남는지 뒤를 힐끔 거리다 만다.)
코레트:그렇죠? 지구에도 저런 공간이 있으면 좋을 텐데 말이에요. 저 사서 분들은 대체 무슨 존재일까요? 아까 블레어를 만나기 전에는 리코라는 분을 뵈었는데, 키마이라 족이라고 하시더라고요. 우주의 모든 미래가 적혀 있는 황금판을 찾아 여기까지 오셨다더군요. 비록 사서 분께 끌려가신 이후로는 어떻게 되셨는지 알 수가 없지만……
블레어 레슬리:아아... 다른 사람을 만났구나? 키마이라면 사람은 아니겠지만. 내가 알기로는 이 공간은 우주가 뒤섞인 것 같더라고. 그래서 다른 차원도 섞여 있었던 거겠지... 아마 만날 수 있었던 건 작은 틈이 있어서 그랬던 것 같은데. 나도 끌려가 보지는 않아서 어떻게 됐는지는 잘 모르겠어.
그래도 괜찮길 바라자... 키마이라면 강할 거 아냐? 사서 쯤은 아무것도 아니겠지.
코레트:평범한 공간이 아니라고는 생각했지만 역시 그렇군요. 우주와 차원이 뒤섞인 공간이라니. (고개를 끄덕인다. 그 알 수 없는 외계 존재가 무사하기를.)
그러고 보면 제가 있던 우주선의 동료 분들이 전부 '눈'이란 존재를 보았다고 비명을 지르셨었어요. 저도 찰나 그 존재를 목격했던 것 같은데, 무척 기이하면서도 비현실적인 광경이었죠. 이 도서관 같은 곳과 관련이 있는 걸까 싶네요. 블레어도 이곳에 오기 전 그 존재를 목격하신 적이 있었나요?
블레어 레슬리:음, 그 답에는 '없다'고 대답해 둘게. 눈? 그런 건 잘 모르겠지만... 아마 봤다면 난 널 만나러 올 수 없을 것 같다는 것만 확신할 수 있어. 운이 좋지 않은 쪽이니까. 그나저나 그런 거 보고도 멀쩡한 네가 더 신기한 걸. 어땠어? 우리가 지금껏 봤던 사서들과는 뭔가 좀 달라?
코레트:정확히 목도한 건 아니지만, 거대한 우주 정거장이 마치 장난감이라도 되는 것처럼 잡아채고 있더군요. 일반적인 상식으로는 도저히 이해하기 어려운…… 제가 먼지처럼 느껴질 만큼 거대한 존재였어요. (그때를 회상하며 눈가를 살짝 찡그렸다.) 그런 걸 제대로 목격했다면 미치는 것도 당연할지 모르겠네요. 사서 분들도 본질적으로는 비슷한 존재일지도요……?
블레어 레슬리:(생각에 잠긴 듯 말이 없다) 우리가 돌아갈 땐 없었으면 좋겠다. 그렇게 거대한 존재라면 돌아가기는 어려울지도 모르니까. 우주의 먼지라고 하던 게 완전히 거짓말은 아니었나 봐. 직접 보고 나서야 와닿는 건... 사람은 늘 배워야 한다는 말도 맞는 것 같고. (코레트의 미간을 살짝 누른다.) 그래도 이렇게 자주 보는데도 미치지 않는 거 보면 우주의 친절일지도 모르겠어.... 사서는? 저렇게 달려드는 것만 빼면. (쓰읍) 아닌가, 보고 있으면 기분이 나빠지는 것 같기도 하고.
그다지 중요한 건 아니지만.
그 말을 끝으로 블레어는 앞으로 걸어갑니다. 뭔가를 두고 온 사람처럼 뒤를 돌아보지 않네요.
코레트:제가 동료들을 모두 잃게 된 원인이기도 하죠. 돌아갈 길을 찾았을 때는 부디 마주치지 않기를 바라요. (블레어마저 잃고 싶지는 않다. 그는 차분한 성격이고 이별의 충격이나 슬픔도 비교적 성숙히 극복해내는 편이었지만, 그렇다 하여 익숙해지고 싶은 건 결코 아니었다. 블레어와 달리 무너진 서가를 다시 한 번 돌아보았다가 그를 뒤따랐다.)
빽빽하게 책이 꽂혀있던 이전 서고와는 다르게 서가 안에 비어있는 공간이 많습니다. 책의 배열도 조금 난잡하다고 할까요.
그리고 무엇보다, 자잘한 소음이 많습니다. 소리를 듣고 또다시 사서가 나타나지 않을까 하는 걱정도 잠시, 코레트의 발치에서 성났지만 가느다란 목소리가 들립니다.
코레트, 듣기 판정
코레트:
듣기
기준치:
50/25/10
굴림:
57
판정결과:
실패
뭐라고 아주 작은 소리가 발치에서 들립니다.
내려다보면 간신히 손가락 한 마디 길이가 될 소인이 코레트를 올려다보고 있네요.
코레트:(걸리버 여행기……?)
(무릎을 굽히며 몸을 낮추고 고개를 숙인다.) 죄송하지만 다시 말씀해주시겠어요?
소인:[이번에야말로 나갈 수 있었는데 뭐 하는 짓이냐고!]
코레트:아…… 저희가 뭔가 실수를 했을까요? (고개 살짝 기울인다.)
소인:[에잇! 밟고 있는 발이나 치워!! 내가 애지중지한 털이 잔뜩 밟혔잖아!!]
그러고 보니 신발 아래에서 작은 이물감이 느껴집니다. 발을 들어보면 형편없이 뭉개진 작은 탈 것이 보입니다.
주변에 빠진 바퀴가 있으니 탈 것이 맞겠죠?
코레트가 실수로 밟지 않았더라도 이 넓은 도서관을 고작 손가락 두 마디 남짓한 탈 것으로 나갈 수는 없었겠지만…
소인은 씩씩거리며 당신에게 삿대질 중입니다.
그러나 그는 곧 풀이 죽어 울음을 터트립니다. 소인은 두고 온 가족이 있어 여기서 나가야 한다 하나, 여기서 나가지 못하고 있는 것은 코레트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코레트:아, 이런. (그제야 제 발 아래에 밟힌 자그마한 탈것을 알아채곤 몇 걸음 옆으로 물러나보지만 이미 늦은 뒤다. 눈물까지 터뜨리는 모습에 당황해서 쩔쩔맨다.) 죄, 죄송해요. 절대 일부러 밟은 건 아니었어요. 혹시…… 어디에서 오셨나요? 저희가 데려가 드릴 수 있는 곳이라면 도움을 드리고 싶은데.
블레어 레슬리:...아마도 저기인 것 같은데? (저 멀리 밝아진 서가를 가리키며 소인과 코레트를 번갈아 가며 본다.) 저기까지 데려다 줄 거야?
소인:[당연히 그래야지!! 내 차를 망가트렸잖아! 데려다 줘! 걸어서 가기엔 너무 머니까~]
코레트:(블레어에게 속닥인다.) 죄송해요, 예기치 못한 일을 만들어서. 그래도 저 정도면 갈만하지 않을까요?
블레어 레슬리:괜찮아, 신경 쓰지 마. 이런 일 정도야... 쫓기는 것만 아니라면 뭐든 괜찮아. 마침 느긋하게 걷고 싶어졌겠다... 산책 하는 셈치치 뭐.
코레트:감사해요. (희미하게 미소하곤 소인에게 손을 내민다.) 그럼 이 위로 올라와 주실래요? 데려다 드릴게요.
소인이 열심히 코레트의 손을 타고 올라가 어깨에 마음대로 자리 잡습니다. 블레어는 소인을 빤히 보다 가자는 듯 턱짓하고서 걸어갑니다.
빛나는 서가 앞에 도착하면 옆에 적힌 숫자 273이 보입니다. 이 서가는 소인들로 가득합니다.
책 사이에 세워진 작은 문명이네요. 문명에 걸맞게 모두가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습니다.
누군가는 작은 짐승 위에 올라타고, 누군가는 한 손에 스패너를 들고 자동차 보닛을 엽니다. 하나같이 이동 수단을 매만지는 중입니다.
코레트:우아…… (저도 모르게 감탄한다.) 한 서가마다 하나의 문명이 있는 걸까요? 정말 신기하고 멋지네요. (저희에겐 얼마 걸리지 않는 거리였지만 이 정도로 자그마한 소인에게는 아주 험난하고 먼 길이었겠지. 어깨의 소인에게 고개를 살짝 돌리고 자그마한 목소리로 묻는다.) 그런데 왜 다들 이동 수단을 점검하고 계실까요? 어딘가로 떠나려 하시나요?
소인:[다들 돌아갈 곳이 있어서 그래! 우리를 돌아오기만을 손꼽아 기다리는 사람이 있거든.]
코레트:돌아갈 곳……? 그분도 여러분 같은 소인인가요?
소인:[그건 몰라! 그냥 돌아가야 하는 것 뿐이야. ]
코레트:으음…… (기다리는 사람이 누구인지 모른다는 의미인가? 그런데도 그를 위해 돌아가야 한다니. 조금은 이해하기 어려운 이야기다.) 어디로 나가야 하는지 길을 아세요?
소인:[응! 근데 가기 전에 차를 고쳐야 하니까... 거기 먼저 들렸다가 가자. 그래도 되지? 그렇게 해줘!]
코레트:차를 고치는 곳은 어디인가요? 이 273번 서가가 아닐까요? (블레어를 돌아본다. 눈빛으로 허락을 구한다)
조금 특이한 서가가 하나 눈에 들어옵니다. 한 서가 전체를 사용해 꾸며둔 이곳은 마치 신전 같습니다.
소인들은 이 앞에서 빌고, 애원하고, 때로는 눈물 흘리며 무언가를 제물로 바칩니다.
그리고 이 서가의 가장 높은 곳에는 책이 한 권 펼쳐져 있습니다. 펼쳐진 페이지에는 소인들이 직접 그린 듯한 거대한 눈이 보입니다.
코레트:(흠칫한다.) 저건…… 혹시 저것이 여러분을 기다린다는 존재인가요?
코레트, 대인관계 판정
코레트:
설득
기준치:
60/30/12
굴림:
33
판정결과:
보통 성공
소인:[응? 아니~ 저건 이곳의 주인을 표현한 성화야.]
[주인한테 은혜를 입어서 이곳을 벗어날 수 있기를 기원하는 중이거든!]
[여길 벗어나는 게 생각보다 쉽지 않아서 말이야. 아까처럼 밟힐지도 모르고!]
[아무튼... 조금만 더 가면 돼! 조금만 더 분발해봐! 어떻게 나보다 크면서 가는데 하루종일 걸릴 수가 있어?]
코레트:아아, 그렇군요…… (블레어에게 작게 속삭인다. "저와 제 동료들이 목격한 존재를 형상화한 것 같아요.") 조금만 기다려 주세요. 자- 어디쯤일까요?
블레어는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고 주변을 둘러봅니다. 저기 누가봐도 자동차 모양으로 지어진 무언가가 보입니다.
그곳으로 향하고 있으면 어디선가 나타난 도서관의 의지가 모두를 빗자루로 쓸어버리는 걸 목격합니다.
소인들은 비명을 지르며 책 사이로 숨어듭니다. 도망치지 못한 소인은 빗자루에 얻어맞고 잉크 얼룩으로 변합니다.
시끄럽게 떠들던 소인도 이번 만큼은 조용히 입을 다물고 있습니다.
코레트:저쪽일까요? (하고 걸어가다 난데없이 나타난 빗자루를 보고 깜짝 놀란다. 가차없이 휘젓는 빗자루, 잉크 얼룩으로 변해 버리는 소인들…… 마치 사서에게 끌려가는 리코를 보는 듯해 괜히 등줄기에 소름이 돋는다. 그러면서도, 잉크 얼룩으로 변한다는 건 이들이 책에서 나온 존재라서일까? 싶은 의문 한 줄기가 들기도 했다.) 여긴…… 냉혹한 공간이네요.
블레어 레슬리:(입술을 짧게 물었다가 고개를 끄덕인다.) 맞아, 적어도 이곳은 낯선 사람을 크게 반기는 것 같지는 않아. 소인들도 낯선 존재로 보는 건가 싶고. 얼른 데려다 주고 가자, 여기도 마냥 안전하지는 않은 것 같아.
코레트:그래야겠네요. (마음을 붙이는 걸 막으려는 걸까? 아무튼…… 얼른 소인을 자동차 모양의 무언가로 데려다 준다.)
소인은 코레트가 자신의 자동차를 부쉈지만 여기까지 데려와 준 것에는 얌전히 감사를 표합니다.
코레트가 없었더라면 진작 도서관의 의지에 뭉개졌을거라면서요.
그는 다시 자동차 정비해 기필코 이곳을 떠나겠다는 이루어질 수 없는 다짐을 합니다.
코레트:저 '의지'는 자주 나타나는 걸까요……? (뭐가 뭔지 모르겠지만 일단은 소인을 응원한다. 열심히 하다 보면 정말로 해낼지도 모르니까!) 힘내세요. 꼭 벗어나서 돌아가실 수 있기를.
자동차 소인은 코레트의 응원을 들으며 손을 흔듭니다. 그렇게 지나가고 나면 빨간 망토를 두른 소인이 코레트를 부릅니다.
소인:[저기요!!]
코레트:(마주 손을 흔들며 지나가다 멈칫한다.) 저를 부르셨나요?
소인:[네!! 거기 둘이요!!]
[그 중에 갈색머리 당신!]
코레트:(콕 집어 부르는 덴 이유가 있겠지 싶어 가까이 다가가본다.) 무슨 일이신가요? 아까 그분처럼 도움이 필요하신가요?
소인:[맞아요. 당신은 우리 중 누구보다 빠르게 움직일 수 있을 것 같아서요.]
[저를 다른 서가로 옮겨주실 수 있나요?]
코레트:(블레어 눈치 슬쩍…… 살핌.) 어떤 서가로 가고 싶으세요?
소인:[(따라 그쪽 안 봄...) 여기서 16개 정도만 지나면 돼요. 제가 가기에는 너무 멀어서요. 발걸음 빠르니까 16개 정도는 금방 갈 수 있잖아요!]
코레트:네에, 16개 정도면 저희에게 금방이기는 하겠네요. …… 블레어, 혹시 괜찮으실까요? (이런 부탁을 받으면 지나칠 수가 없는 성격이다)
블레어 레슬리:(눈가를 문지르다) 그래, 처음부터 각오 했으니까. 한 명만 있을 줄 알았더니... 그러니까 이번이 마지막이야. 알겠지? 다음에 또 생기면 그땐 그냥 지나치기로 해.
코레트:그럴게요. (과연 정말 지나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만 대답은 착실하게 했다……)
(망토를 두른 소인을 어깨에 올려주고, 소인이 지정한 서가를 향해 걷는다.) 그 서가는 왜 가려 하시는지 여쭤도 될까요?
소인:[제가 살던 서가는 이쪽이 아니거든요. 이것저것 피하느라 길을 잘못 들었더니 이리로 와 버려서...]
[승낙해줘서 감사해요.]
코레트:다른 서가에도 소인들이 살고 있나 보군요. (그나저나 빨간 망토를 보니 정말 어떤 동화가 떠오른다. 잠시 고민하다가 입을 열었다.) 혹시 할머니와 함께 살고 계세요?
소인:[할머니? 아뇨, 전 혼자 살아요.]
[그런 존재는 여기 없을 걸요?]
코레트:그, 그렇군요…… (동화가 구현된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닌가 보다.) 그 서가에도 아까처럼 도서관의 의지 같은 게 나타나나요? 사서만 있는 줄 알았는데, 저런 존재는 처음 봤어요.
소인:[도서관의 의지는 어디서든 나타나요. 여긴 도서관이잖아요, 늘 조심해야 하는 이유 중 하나기도 하죠.]
코레트:피하기가 쉽지 않으시겠어요. 그 서가에선 어떤 분들이 살고 계신가요? 237번 서가에 계신 분들은 대부분 이동수단을 다루는 데 집중하고 계시던데.
소인:[가보면 알 수 있어요. 당신 걸음이라면 그렇게 멀지 않으니 조금만 더 가봐요.]
그렇게 말한 소인의 말을 마지막으로 주변이 조용해집니다.
이상하지 않나요, 고작 서가 몇 개를 지났을 뿐인데.
망토 소인은 연신 주변을 둘러보는 중입니다.
무언가를 찾고 있는 듯합니다. 그렇게 5, 7, 11, 14개의 서가를 지납니다.
앞으로 2개만 더 건너가면 소인이 말한 서가가 나옵니다.
그런데 여기는 소인이 한 명도 없는데 어떻게…
소인:[여기 사람이 있어요! 살아있는 사람!]
작은 몸에서 큰 소리가 납니다. 상황의 이해보다 사서의 본능이 더 빨랐습니다. 소리를 쫓아온 사서가 정확히 코레트에게로 달려듭니다.
소인:[내가 데려온 사람이니까! 나는 나가게-]
문장은 맺어지지 못했습니다. 너무 애쓴 걸까요? 균형을 잃은 소인이 바닥으로 떨어집니다.
다치진 않았으나 코앞으로 다가온 사서에 소인이 짓밟힙니다.
코레트, 민첩 판정
코레트:
민첩
기준치:
55/27/11
굴림:
50
판정결과:
보통 성공
(크게 당황했지만 반사적으로 피하려 해본다.)
사서에게 피함과 동시에 블레어가 옆에 있던 책으로 사서의 머리를 내려칩니다.
주변에 잉크가 튑니다. 한 대 맞았던 사서는 한 걸음 물러나 집요하게 코레트의 주위를 맴돕니다.
속도와 완력은 저것이 우리를 상회합니다. 정면 돌파! 명예롭지만 효율적인 선택은 아닙니다. 별수 있겠어요?
도망쳐야지.
코레트:미안해요, 블레어……. (다급한 상황이라는 걸 머리로는 인지하지만 직전에 일어났던 상황에 아직 마음이 빼앗겨서인지 맥이 빠진다. 허무하게 짓밟히는 소인의 모습이 아직 눈앞에 잔상처럼 떠다니고 있었다.)
퇴로를 찾아볼까요. 어서 몸을 피해야 할 것 같아요.
블레어 레슬리:사과는 됐어. 네가 늘 자신보다 남을 위한다는 건 누구보다 잘 아니까. 그렇기 때문에 내가 네 옆에 있는 거야, 나는 널 챙기니까. (책을 사서 쪽으로 던지고 코레트의 손을 잡고는) 가자, 앞에 길이 있으니 그걸 따라 가면 될 거야. (잡은 손에 살짝 힘을 준다.) 놓치마.
코레트:(한 번 더 사과를 하려다가 입을 다물었다. 그건 저를 위해주는 당신에게 예의가 아니다. 대신 감사 인사를 했다.) 고마워요. 어서 가죠! (손을 꾹 맞잡고 길을 따라 최대한 속력을 높여 달렸다.)
이 뒤로는 지겨운 추격의 반복입니다. 이번에도 책으로 시선을 돌릴까, 아니면 또다시 서가를 엎을까…
과거의 반추가 이어집니다. 그러나 책 틈 사이의 우연한 시선에 사고를 빼앗깁니다.
명백히 사람은 아닌 것의 시선이 진득이 따라붙습니다. 어쩌면 이건 필연이라고 할지도 모르겠어요. 사서가 달려들어도 서가 사이의 눈에서 시선을 뗄 수가 없습니다.
먼 곳을 바라보는 눈은 언제나 저 너머를 향하고 있었는데. 과거와 현재와 미래가 교차하는 유일한 곳, 그 안에서 나는 어디에나 존재하며 어디에도 없는 존재가 되고…
아니, 지금 내가 무슨 생각을 했죠?
코레트, 이성 판정
코레트:
SAN Roll
기준치:
81/40/16
굴림:
78
판정결과:
보통 성공
이성 [1D2] 감소합니다.
코레트:2
(시선을 앗기면 그 뒤에는 사고마저 몽롱해지는 듯했다. 그러다 번개라도 맞은 듯 번쩍 정신이 든다. 고개를 빠르게 내저었다. 정말 위험한 공간이다.)
틈새의 눈이 크게 뜨여 자연히 책이 서가에서 밀려납니다. 커진 동공이 서가의 여백을 완전한 검은빛으로 물들입니다.
어쩐지 넘어갈 수 있다는 기분이 듭니다. 뒤쫓아 오던 사서는 구석에 웅크려 덜덜 떨고만 있습니다.
*
도착한 곳은 5601이라고 적힌 서고입니다. 이곳은 여기까지 봐온 서고와는 조금 다릅니다.
질리도록 본, 나무로 짜인 서가 대신 흔해빠진 디자인의 철제 캐비닛이 늘어서 있습니다.
그러나 형태가 달라졌을 뿐 서가처럼 끝없이 같은 형태의 캐비닛이 반복된다는 점은 동일합니다. 모든 캐비닛은 열리지 않습니다.
이곳에 있는 것은 서가와 비슷한 높이의 2층 캐비닛이 대부분입니다만, 멀리 벽이라고 생각했던 곳 역시 거대한 캐비닛입니다.
이 공간 자체를 캐비닛으로 지었다 해도 되겠습니다. 저건 열 수 있을 것 같아요.
코레트:여긴 또 다른 공간이네요. (블레어를 돌아본다.) 괜찮으세요? 저, 아까 뛰면서 서가의 틈새에서 '눈'을 봤거든요.
블레어 레슬리:(숨을 고르다 앞머리를 후 분다.) 그래? 난 달리느라 다른 건 못 봤어. 이 도서관은... 널 좋아하는 걸까? (농담)
코레트:보통 도서관이었더라면 감사했겠지만 이런 섬뜩한 공간에서는 좋은 일 같지가 않네요. (마주 농조로 답한다.)
아, 열 수 있는 캐비닛이 있는 것 같아요. (한 번 열어본다)
이름표도, 서고처럼 번호 또한 없는 캐비닛입니다
열려고 시도하면 요란한 소리를 내며 캐비닛이 열립니다.
캐비닛 안이 은은하게 빛이 납니다. 안에 들어있는 것은 낡은 캡 모자와 야구 글러브입니다.
오래 사용했는지 글러브의 실밥은 터졌고 모자의 천은 헤졌습니다.
코레트:이건…… 도서관에 있을 만한 물건은 아닌데. 누가 잃어버린 물건을 모아둔 걸까요?
블레어 레슬리:그럴 확률이 높을 것 같아. 아마 누군가의 기억들이겠지... 이름이 없는 걸 보면 일부로 누구 건지 모르게 숨겨둔 걸지도 모르겠어.
코레트:캐비닛이 굉장히 많은데, 저나 블레어의 물건도 있으려나요. (야구 글러브와 모자를 물끄러미 바라보다 캐비닛을 다시 닫았다. 무릇 잃어버렸다면 찾아가기 위해 되돌아와야 할 텐데, 이런 공간에 누가 섣불리 올 수 있을까?)
(관찰 판정 가능할까요?)
코레트, 관찰 판정
코레트:
관찰력
기준치:
75/37/15
굴림:
91
판정결과:
실패
(침침)
블레어 레슬리:
관찰력
기준치:
65/32/13
굴림:
49
판정결과:
보통 성공
블레어가 닫힌 캐비닛을 한참 보다 다시 엽니다.
물건을 들고 나오면 물건들이 물처럼 흘러내립니다. 살바도르 달리가 봤다면 분명 작품이 하나 나왔겠죠.
블레어 레슬리:이것 봐, 이 물건들 형태가 없어.
그냥 구현된 것에 그친다는 걸까? 여기 있는 모든 것들은.
코레트:(더 놀랄 일이 남아 있다니. 꼭 유명한 흘러내리는 시계 그림이 떠오른다.) 잔상만 남아있을 뿐 실존하지는 않는 건가 봐요. 신기하네요.
블레어가 고개를 끄덕입니다. 그 순간 멋대로 흘러내린 모자와 야구 글러브가 바닥을 적십니다.
갈색과 청색의 액체가 섞이다 제멋대로 움직여 바닥을 배경 삼아 그림을 그려냅니다. 물방울이 볼캡을 쓰고 글러브를 잡은 소년의 모습을 만듭니다.
물방울 소년은 자신보다 훨씬 큰 어른과 놀이를 시작합니다. 특별한 것도 없는 캐치볼이 이어집니다.
계속 공을 놓치기만 했던 소년이 마침내 공을 잡았을 때 동작이 멈춥니다. 물은 더 이상 흐르지 않고 그대로 정지합니다.
당신이 타고 온 우주선이 라그랑주며, 당신이 해야 할 일이 STS-168이었으니까요. 우주선의 발사 날짜 동일, 임무 기간 동일, 신문의 발행일은 오늘로부터 며칠이 지난 후.
질 나쁜 장난이라고 치부해도 좋습니다. 그러나 코레트는 여기서 죽습니다.
코레트, 이성 판정
코레트:
SAN Roll
기준치:
79/39/15
굴림:
68
판정결과:
보통 성공
(크게 놀랍진 않았다. 이 도서관은 지나치게 비현실적이며 일반적으로 우주선을 잃고 우주 공간으로 홀로 내팽개쳐진 비행사는 죽음을 맞이하기 마련이니까. 다만 하필 저와 관련된 기사를 담은 신문이 하필 제가 떠밀려 온 방에 놓여있다는 사실이 신기할 뿐이었다.)
코레트, 이성2감소합니다.
왜 이 기사가 여기에 놓여져 있는 걸까요. 주변을 더 둘러보면 답이 나올지도 모릅니다.
코레트:(기사의 내용을 한 번 더 되짚다가 커다란 창으로 향한다.)
느리게 흘러가는 우주가 펼쳐집니다. 비교적 가까운 곳에 있는지 백색 항성과 그의 세 개의 위성이 크게 보입니다.
이제 와 새삼스럽지만, 용케 코레트가 불타지 않았네요. 잠시 지켜보고 있으면 항성이 창을 가득 메울 정도로 팽창하더니, 붉은빛으로 변합니다.
코레트, 지능 판정
코레트:
지능
기준치:
80/40/16
굴림:
4
판정결과:
극단적 성공
혹시 지금 주계열성이 적색거성 단계로 넘어간 건가요?
지나치게 빠릅니다. ‘청년이 중년’이 되기까지는 수십 년의 세월이 필요하듯 별 역시 천문학적인 시간이 지나야 주계열성이 적색거성으로 변할 수 있습니다.
코레트:(일반적으로는 도저히 일어날 수 없는 일이다. 시간의 흐름이 다른 건가? 하긴, 애초에 창밖에 펼쳐지는 우주가 '진짜' 우주인지도 확인할 수 없으니.)
(천체 망원경으로 다가간다)
코레트가 천제 망원경 쪽으로 가기 위해 등을 돌렸을 때쯤에는 붉게 물들었던 창밖이 다시 별이 떠 있는 우주로 변합니다. 아까의 별은 없어졌네요.
천체망원경
어딘가를 향해 렌즈가 조정된 매끈한 몸체의 천체망원경입니다
누군가 이미 각도를 맞춰놓았습니다.
코레트:(무언가를 볼 수 있게끔 맞춰놓은 걸까? 들여다본다.)
조심스레 접안렌즈에 눈을 대면 보다 먼 우주가 눈에 들어옵니다. 수많은 별이 떠 있는 우주입니다.
조심스레 접안렌즈에 눈을 대면 보다 먼 우주가 눈에 들어옵니다. 수많은 별이 떠 있는 우주입니다.
코레트, 지능 판정
코레트:
지능
기준치:
80/40/16
굴림:
77
판정결과:
보통 성공
별이 사라진 게 아닙니다.
잠시 거대한 날개와 같은 것이 졉혔다 펴졌을 뿐입니다. 저 밖에는 신체 말단으로 별빛을 가릴 수 있는 아주 거대한 것이 있습니다.
이것도 생물이라 부를 수 있을까요?
코레트, 이성 판정
코레트:
SAN Roll
기준치:
77/38/15
굴림:
48
판정결과:
보통 성공
이성 1 감소합니다.
코레트:(이것도 '눈' 과 관련된 건가? 문득 제가 타고 있던 우주선을 잡고 있던 존재가 떠올라 소름이 쭈뼛 돋았다.)
(그 외의 또 다른 특이점은 없나요)
다행히 생물은 아주 커서 당신을 못 봤다는 특이점 말고는 없습니다.
코레트:(그럼 턴 테이블을 보러 갑니다)
턴테이블
방 안에 흐르는 클래식 음악의 시발점입니다. 평범한 턴테이블의 플래터 위에 반짝이는 금빛 LP 디스크가 돌아가고 있습니다.
LP 디스크를 볼 수 있습니다.
코레트:(LP 디스크 빠안히)
중앙의 라벨에 영어로 이름이 적혀있습니다.
‘THE SOUNDS OF EARTH’.
보이저 금제 음반, 흔히 말하길, 골든 레코드입니다.
머나먼 옛날 우주로 쏘아보내져 고작 0.12픽셀에 담긴 지구를 떠나온 곳으로 돌려보낸 보이저호의 유일한 유품.
코레트:(나사 소속으로 교육을 받아 왔으니 보이저 호에 관해 모를 수가 없다. 골든 레코드의 정체도 어렵지 않게 알아보았다. 이게 어떻게 여기 있는 걸까? 보이저 호는 아주 먼 곳까지 지금도 나아가고 있을 텐데…… 혹시 어느 차원에서는 제가 탄 우주선을 붙잡은 존재에게 똑같이 잡힌 걸까? 이런저런 생각이 든다.)
(책장도 이어 본다)
책장
장르를 구별하지 않고 책들이 무작위적으로 꽂혀있습니다.
‘네소르탄델리아 탐방’, ‘유피아소리테 여행기’와 같은 낯선 지명이 가끔 눈에 띕니다.
코레트:(순서대로 한 번 읽어본다!)
순서대로 바다에 꽃이 자라고, 황금이 흐르는 섬에 대한 얘기와 대기 중 독이 가득하지만 그것에 적응된 종족이 자신들의 지역을 소개하는 내용입니다.
안에 실린 지도가 지구와 상이하게 다른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코레트:(지구와 다른 차원의 이야기이려나? 나름대로 흥미롭게 읽었다. 우주엔 온갖 다양한 환경을 지닌 행성들이 가득하다고들 하니 그 중 하나에는 정말로 이런 종족들이 살지도 모른다.)
(그나저나 웬만큼 살펴봤는데도 별다른 단서는 보이지 않는 듯하다. 조금 힘이 빠진다)
크게 주어진 단서는 코레트가 죽는다는 기사를 담은 것 하나 뿐입니다.
이곳은 안전합니다. 힘이 빠질 정도로 맥 빠지기도 하고요. 조금 앞의 시대가 당신에게 전하길 오늘은 당신의 기일입니다.
축축하게 젖었던 옷은 이미 말랐습니다. 그러니 뺨에서 흘러내리는 물방울은 위에서 온 것입니다.
코레트의 관자놀이를 스쳐 책 한 권이 바닥으로 곤두박질칩니다.
코레트:(깜짝)
(어디서 온 책이지? 주워서 제목부터 본다)
고급스러운 가죽 장정의 책입니다. 금박을 입힌 책 제목은 코레트의 이름입니다.
코레트:코레트……? (내 이름이 제목으로 적힌 책이라니. 딱히 어떠한 의미를 가진 이름이 아니었으므로 평범한 책은 아니란 것을 직감한다.)
(조심히 책을 펼쳐보았다.)
책을 펼치면 종이가 흠뻑 젖어있습니다. 책을 잡은 손에는 캐비닛 실을 채웠던 물의 감촉이 남습니다.
판권면이 가장 먼저 나타납니다.
1968년 3월 10일 제1판 제1쇄 발행
2025년 3월 21일 제1판 제2쇄 발행
.
.
.
(하략)
코레트의 출생에서 시작해 당신이 살아온 모든 시간이 낱낱이 적혀있습니다. 그때 무슨 일이 있었는지를 넘어 당신이 어떤 생각을 했는지까지 정확히 서술되어 있습니다.
심지어 이곳에 온 일과 안에서 겪은 일까지 전부.
여전히 장난이라면 질 나쁜 장난입니다.
코레트, 이성 판정
코레트:
SAN Roll
기준치:
77/38/15
굴림:
5
판정결과:
극단적 성공
이성 감소 없습니다.
그러나 기운차게 당신을 묘사하던 책의 ⅔ 가량은 빈 백지입니다. 그 책의 마지막 문장은,
‘코레트는 빈 페이지를 내려다봤다.’
라는 문장이었을 겁니다.
그렇죠?
그리고 코레트는 지금 빈 페이지를 내려다보고 있고요.
책에 고정되었던 시선을 들면 안락했던 방은 어디 가고 이 안에는 우주선의 잔해뿐입니다. 처음 당신이 아카식 레코드에 발 딛기 전에 봤던 잔해입니다.
비스듬히 바닥에 박힌 거대한 파편에 라그랑주라는 이름이 선명합니다. 오늘 이 시간에 무너져 내리고 만 우주선의 잔해.
그리고 그 사이에 볼품없는 패널이 하나 세워져 있습니다.
그나마 깨끗한 우주선의 패널에 코레트의 이름을 새긴 묘비입니다.
글자 하나하나를 꾹꾹 눌러 써 오히려 글자가 정갈하지 못합니다.
깨진 모서리에 튿어지고 찢어진 채로 걸려있는 네 개의 인형은 만들어진 중력에 의해 아래로 향합니다.
행여 소행성 잔해라도 날아올까 걱정했었는지 역시 라그랑주호에서 뜯어낸 철판이 묘비를 비스듬하게 가리고 있습니다.
코레트의 등 뒤로 조금은 낯선 목소리가 들립니다. 뒤를 돌아보면 블레어입니다. 코레트의 기억보다는 조금 더 나이 들고 어쩌면 지쳐 보이는 모습입니다.
블레어 레슬리:네가 몰랐으면 했는데. 역시 일은 내가 계획한 대로 흘러가질 않네.
코레트:('빈 페이지를 내려다보던' 코레트는 가만히 고개를 들었다. 이 비현실적인 감각은 언제쯤 끝이 날까. 현실로 되돌아갈 수 있을지도 모른다고 믿었는데 저를 기다리는 건 묘비다. 그리고, 그 믿음의 유일한 근거였던 블레어는 지친 낯을 하고 있다.)
…… 무엇을요?
블레어 레슬리:(마른 세수를 하다 버석하게 마른 숨을 뱉는다.) 네 죽음 말이야, 코레트. 네가 몰랐으면 했어. 그래... 넌 이미 한 번 죽었고, 다시 돌아왔지... 내 앞에 말이야.
영원히 숨길 수 있었다면 좋았을 걸. 운이 좋지 않은 건 내가 치밀하지 못했던 탓일까, 그것도 아니면 습관처럼 운이 좋지 않다고 해서 그런 걸까.
코레트:(그는 무슨 말을 해야 할지 고르기에 앞서, 희미하게 미소했다.) 걱정하셨나요? 제가 충격을 받을까 봐.
저는…… 많이 놀라지 않았어요. 이 망가진 우주선에서 다시 눈을 뜨기 직전에 제게 일어났던 일을 떠올려보면 충분히 가능성이 있었죠.
다만 의문이 있다면 이곳에서 보았던 모든 광경이 다 저의 꿈인 건지, 제가 정말 죽었다면 어떻게 지금 당신 앞에 서서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지, 네요.
그리고 당신의 안위는 괜찮은지도요. 아마 당신은 저처럼 죽음을 맞이하지는 않은 것 같지만, 이 공간은 영문 모를 것들 투성이라서 인과를 추측하기가 어렵네요.
블레어 레슬리:아냐, 충격 받을까봐 그런 건 아니었어. 다만, 네가 지금처럼 수긍하고 기꺼이 받아드릴 것 같아서. 그래서 숨기려고 했던 거야. 난 네가 살았으면 좋겠어. 별과 같이 반짝이는 모습을 보고 싶어. 네 미래가 궁금하거든, 앞으로도, 영원히.
굳이 말하자면, 이건 꿈이 아니라 현실이라는 거겠지. 우주에 서서 마주보고 있는 일이 말이야... 네 말대로 난 죽지 않았지만... 널 살리기 위해 커다란 약속을 하나 했다고만 말해둘게. 그러니까 정확히는 죽었지만, 다시 살아나서 두 번째 기회를 얻은 거라고 생각해도 될 것 같아.
보시다시피 난, 언제나 그렇듯 괜찮고.
그래, 너랑 나랑은 다른 시간에 있다고 해둘까. 두 개의 우주가 공존하고 있다고 생각하면 편하려나?
코레트:저의 미래를 바라주시는 건 정말로 감사한 일이지만…… (블레어는 일반적인 사람이 받아들이기에는 힘든 고통과 불행도 '괜찮다' 고 뭉뚱그리는 습관이 있다. 블레어가 자신이 죽음에 초연하리라는 점을 미리 알았던 것처럼 그 역시 블레어에 대해 알았다. 친구니까. 함께 보내온 시간과 세월이 있으니까. 어쩔 수 없는 염려가 낯빛을 스친다.)
커다란 약속이라는 단어가 마음에 걸리네요. 저를 오래 기다리셨다는 말도 그렇고. 그럼 아까 저와 함께 아카식 레코드를 누빈 블레어와 지금 눈 앞의 블레어는 다른 존재인가요? 제가 두 번째 기회를 얻었는데 당신과 다른 시간에 있다는 말이 이해가 어려워요. (꼭 당신을 두 번 다신 볼 수 없다는 의미로 들려서.)
블레어 레슬리:(걱정스러운 낯빛에 웃음을 터트린다. 그래, 넌 그런 사람이었지. 자신의 모습이 어떻게 보이는지는 몰랐으나 이 순간만큼은 쌓여왔던 피로가 가시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알아, 무모하고 부담스러운 일이라는 거.
언제까지고 숨길 수는 없겠지. 네가 탔던 라그랑주호는 내 시간대에서는 이미 파괴된 채로 우주선의 잔해만 일부 기념관에 남아 있었어.
소행성 잔해에 국제우주정거장은 큰 피해를 입었고... 그 다음은 네가 겪은 것과 같아.
승무원 전원 사망도 마찬가지고...
수년이 지나서야 간신히 일부가 회수 됐어. 그것도 너무 멀리간 잔해와 시신은 찾을 수도 없었고.
난 그 잔해를 수습하기 위해 파견된 우주 비행사야. 아시다시피 너의 지인이었고...
블레어 레슬리:신화생물로 네 죽음을 없던 일로 하려고 했지. 라그랑주호를 수습하면서 네 시신이나 유품을 챙기려고 했는데 이게 웬 걸. 더한 걸 마주쳤잖아.
난 한결같이 같은 존재였어. 네가 알고 있는 나랑 동일인이야. 다른 건 너와 다른 시간을 살고 있는 것 뿐이겠지. 이것저것 많은 요소가 겹쳐서 만날 수 있었던 거야.
그래, 어렵게 받아들일 필요 없어. 그냥 난 나야.
코레트:그 넓은 우주에서 라그랑주호의 잔해가 조금이나마 수습이 된 게 기적이라면 기적 같네요. (자신의 일인데도 너무나도 멀게 들린다. 두 발을 우주선에 내딛고서 숨을 내쉬고 있기 때문일까…… 블레어가 신화생물을 어떻게 이용한 건지는 모르겠지만.) 더한 존재라면 아마도 '눈'을 말씀하시는 걸까요.
(이제야 조금씩 퍼즐이 맞춰지는 것 같다. 자신이 정신을 잃었다가 눈을 떴을 때 누워 있던 우주왕복선이 자신이 타 있던 라그랑주호였구나.)
하필 당신이 이 임무를 맡다니. 나사에서 의도한 건 아니었겠지만 참 너무한 일이었네요. (서글프게 미소했다.)
(복잡한 설명 대신 한 마디로 당신의 존재를 정리하는 모습은 여전히 자신이 알던 블레어다. 나이가 더 들었어도, 저와는 다른 시간대의 사람이어도.) 그러면, 이제 저는 어떻게 되나요? 그리고 당신은요?
블레어 레슬리:열심히 모아야지. 이렇게 넓은 우주에서 영원히 혼자 둘 순 없으니까. (위를 올려다보며 눈을 천천히 감았다가) 아마도 그게 맞지 않을까 싶어. 아카식 레코드가 '눈'의 형태로 나타난 건 아닐까 생각하고 있거든. 틀려도 어쩔 수 없고.
이 임무를 맡은 건... 내 의지였어. 널 다시 지구로 데려오고 싶었거든. 너라면 우주도 좋아할 것 같았지만... 그냥, 다시 볼 수 없어도 닿을 수 없는 곳에 있는 건 또 다른 문제니까. 같은 꿈을 꾸면 이런 경우도 있구나, 싶었지. 늘 다른 사람의 죽음은 생각도 해본 적 없었는데, 이렇게 직면할 줄은.
이제 남은 건 네가 선택하는 일 밖에 없어. 이 도서관에서 나가도 되고, 다시 머물러도 돼. 난 네게 선택지를 하나 더 만들어 준 것 뿐이고. 나는 평상시와 다를 거 없어.
여전히 어딘가에서 숨 쉬며 살아있겠지.
코레트:당신의 의지였군요. (저를 죽음에 마음 아파하고, 이 임무에 자원하였을 블레어를 상상하니 코끝이 시리다. 블레어의 말대로다. 그는 자신의 고난에는 쉬이 수긍하면서 남의 고통을 제 것처럼 공감하고 위로하였다.) 네, 무슨 의미인지 이해해요. 쉬운 일이 아니셨을 텐데 고마워요. 우주비행사로서 우주를 하염없이 떠도는 것도 나쁘지는 않았겠지만…… 역시 사랑하는 이들이 있는 지구로 돌아가는 게 더 좋네요.
(그는 제 이름 새겨진 패널-묘비-을 가만히 쓸어내렸다. 제 이름을 꾹꾹 눌러쓴 이는 아마도 블레어겠지. 그는 차분한 음성으로 여러 번 질문한다.) 도서관에서 나가면 지구로, '현실'로 되돌아갈 수 있나요? 다시 본래대로 살아갈 수 있을까요? 그리고 그 삶에서 당신을 만날 수 있을까요……?
블레어 레슬리:응, 넌 사랑이 많잖아. 아직 지구에 겪지 못한 일들도 참 많은 걸. 사랑하는 사람들과 시간을 보내. 혼자 우주를 떠도는 일은 한참 시간이 지나서 해도 괜찮으니까.
(연속된 질문에 작게 웃음을 터트린다.) 응, 돌아갈 수 있어. 다시 네 시간대로 돌아가서 그곳의 햇빛을 보고, 밤과 별을 보며 살아갈 수 있겠지.
그리고 뭐가 문제야? 날 만나는 건 일도 아닐 텐데. 내가 사는 시간대에서도 친구니까 네가 사는 시간대 역시 그렇게 될 거야.
돌아가서도 나 기억할 수 있겠어?
내가 누군지, 말할 수 있어?
코레트:그 말은 곧, 당신의 시간대로 갈 수는 없다는 의미인가 보군요. 당신에게 코레트는 여전히 죽은 사람인 거죠? 만날 수 없는 거잖아요. (틀렸다고, 그게 아니라고 정정해주기를 바라면서 말했다.)
(기실 선사받은 두 번째의 삶이 반갑거나 기쁘지 않은 것은 아니다. 저에게는 삶이 끊긴 적이 없었던 듯한데 실은 되살아난 것이라 하니 조금 얼떨떨하기는 했지만. 그러나 저에게 새로운 삶을 준 것은 블레어다. 기회를 준 이가 그 결과를 누리지 못한다면 너무 안타깝고 불공평한 일이 아닌가?)
잊지 않아요. 우리는 어디에서나 친구일 테니까요.
당신이 누구인지도 언제든 말할 수 있을 거예요. 대신 설명할 게 조금 많아지기는 하겠군요.
블레어 레슬리:그렇지. 내 시간의 너는 이미 죽었으니... 여기서 헤어지면 끝이야. 하지만 넌 나를 알고 있잖아. 너도 올바른 시간으로 돌아간다면 거기선 네 친구인 블레어가 있을 테니 걱정 안 해도 돼.
(후, 길게 숨을 내쉬고 팔을 벌린다.) 헤어지기 전 포옹 좋아해? (가벼운 투)
코레트:잔인한 일이네요. 저는 어떤 블레어와도 함께 있고 싶은데, 시간대가 나뉘어 버려 한 명은 영영 만날 수 없게 된다니…… (본래 인생이 이렇다. 아무리 발버둥쳐도 원하는 걸 전부 이룰 수는 없다. 이상이란 말 그대로 꿈과 같아서 목표를 향한 의지를 드높여줄 뿐 전부 이루리라 확언해주지는 못한다.)
이미 질문이 많았지만 또 묻고 싶은 게 있어요. (벌린 팔 안으로 다가가 친구를 마주 끌어안으며 그가 말했다.) 블레어도 돌아가시는 건가요? 당신이 원래 있던 곳으로, 지구로요.
블레어 레슬리:내가 줄 수 있는 답은 하나야. 네가 원하면 그렇게 된다는 것.
너무 깊게 생각하지 마. 돌아가지 않아도 답은 네 앞에 있어.
우린 다시 만날 수 있을 거야. 알겠지?
천문학에서 라그랑주 포인트는 질량이 다른, 공전하는 두 천체의 중력이 상쇄되어 평형을 이루는 안정된 위치를 말합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지금 그 누구보다 안정된 상태입니다. 내가 당신에게 더 이상 영향을 줄 수 없듯 당신 역시 나에게 더 이상 영향을 끼치지 못합니다.
안정이란 으레 그렇습니다.
인간은 그 윗세대부터 오래 흘러 내려온 피의 영향으로 변화를 싫어한다고들 합니다. 그러므로 이 또한 변화를 바라지 않았던 이기적인 생각일 겁니다.
우리가 가진 중력의 세기도 서로 다를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내가 그랬듯 당신 역시 나와 같은 상황이었다면 조금은 나를 그리워하지 않았을까. 그런 바람입니다.
대단한 희생은 아니니 우리 서로 너무 애틋하게 생각하지는 맙시다. 누군가를 친애한다는 것이 그렇습니다.
눈을 뜨면 다시 텅 빈 중앙 홀입니다.
처음 이곳에 들어왔을 때처럼 코레트를 제외한 인기척은 없습니다.
여전히 모든 가구는 새것뿐입니다. 이제 서고는 굳게 닫혔습니다. 더 이상 열릴 필요가 없습니다.
평범한 도서관처럼 안내데스크가 있고, 휴게실이 있으며, 서고가 있을뿐더러 아주 방대한 양의 지식을 축적한 도서관의 정문이 코레트를 맞이합니다.
당신은 손잡이를 당기고, 문을 열면 그만입니다.
코레트:(우리 둘 다 서로를 '친구'라는 관계로 명명한들 거기에 갖고 있는 무게는 각자 다를지 모른다. 그럴 수밖에 없다, 개개인은 모두 독립된 개체이기에. 그럼에도 확신할 수 있다. 우리는 모자라지도 넘치지도 않는 평형, 라그랑주 점을 이루고 있다고. 서로를 향한 신뢰와 함께 맞이한 시간이 단단한 받침대가 되는 안정을 만들어냈다.)
(이곳에서 본 수많은 광경처럼 머릿속이 이런저런 상념으로 복잡했었지만 블레어의 간결한 문장이 해답처럼 그 폭풍을 잠재워준다. 많은 걸 생각할 필요 없다. 답은 나의 앞에 있을 테니까.)
(원하는 걸 전부 이룰 수는 없는 게 인생이라지만, 나의 뜻대로 되는 게 있다면 오로지 당신의 안위가 무사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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