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랬더니 한참 서로 말이 없었어요. 그런데 갑자기 그 애가 아, 하고 소리를 내는거에요.”
“그리고 너 지금 밖이면 하늘 좀 보라고.”
“그 말을 듣고서야 하늘을 봤어요. 거기에, 있었어요. 별이 하나.”
“그리고 걔가 말해요. 보여? 저기 저 가장 위에 있는 게 북극성이야.”
“어딘지 모르겠으면 저 별 보고 따라와.”
“북극성은 25000년 주기가 다 지나기 전까지는 쭉 같은 별이래.”
“엉뚱하죠? 저도 왜 그 애가 그 때 그런 말을 했는지는 모르겠어요.”
“다만, 그냥 가끔.”
“또 저 자신에게 지쳐서, 누군가 나를 생각하고 있다는 것 조차 믿을수가 없어질 때.”
“그런 기분이 들면 하늘을 봐요. 늘 같은 자리에 같은 별이 있다는 걸 보면 기분이 나아져요.”
“25000년이 지나면 변하는 거겠지만, 일단 제가 사는 동안에는 영원히 같은 별인거네요.”
*
프로그램은 그렇게 끝이 났습니다.
아테나:(요새 사람들은 이런 이야기에 낭만을 느끼는군…….)
유진:낭만적이던가… (이해가 되지 않는 사람 하나 추가)
(북극성은 2만 8천년이 주기인데...)
아테나:(심지어 틀렸어?)
뭐어. 듣다가 졸 정도는 아니었구나.
유진:(2-3만년 사이야 오차가 작은 편이니까…)
뭐어, 누군가에게는 힘이 되는 이야기였겠죠.
아테나:그래. 일단 그 소꿉친구란 사람이 틀린 정보를 알고 있단 사실은 확실히 인지했어. (좀 웃겼는지 키득거린다) 그럼 1전망대로 가볼까?
유진:주기라는 건 가끔 변하기는 해요. (웃는 모습에 의외라는 표정을 지어본다. 그러고는 생각났다는 듯 작게 소리내어) 아, 그렇지.
아테나, 이런 거에 관심 있어요?
(주머니 속에서 무언가 꺼내 아테나에게 보여줍니다.)
아테나:응? 뭐니? (고개 숙여 유진의 손에 든 걸 살핀다)
목걸이네요.
푸른빛이 영롱한 보석이 달린 목걸이입니다.
아테나:어머? 내 귀걸이랑 잘 어울릴 것 같은 목걸이네. 네가 어쩌다 이런 걸 갖고 있니? 미리 주는 크리스마스 선물 같은 거야?
유진:대단한 건 아니지만 선물로 마련한 건 맞아요.
뭐, 크리스마스에 의의를 두는 건 아니지만 잘 지내보자는 의미에서?
아테나:네게 이걸 받을 줄 알았으면 나도 미리 선물을 준비해둘 걸 그랬네. 무척 마음에 드는걸, 고맙구나. (목걸이 받아들어 빛 반짝이는 모습을 바라본다)
건물 안에선 굳이 목도리를 안 해도 되니까 지금 바로 착용해볼까? (당신에게 걸어달란 듯 뻔뻔스럽게 넘겨주고 제 머리칼을 한쪽으로 정리해 넘긴다)
유진:마음에 든다니 다행이네. 다른 건 의미 있어보일까봐 고민 좀 했거든요. (둘 다 의미를 두지 않을 성격이라는 걸 잘 알고있다.)
(어깨를 한번 으쓱이고는 목도리부터 빼주고 목에 목걸이를 걸어줘요)
진품인지는 모르겠지만 그 보석 사파이어래요.
불변을 의미한다나. 당신이랑 어울리지 않아요? (가볍게 웃어본다.)
아테나:의미있어 보이는 선물이어도 의미 두지 않을 거 다 아는데 뭘. 그래도 네 그런 세심한 면은 좋구나. (목도리 한 손에 받아들어 갠다. 목걸이가 잘 걸리면 보석을 손톱 끝으로 살짝 만져본다) 그래? 나랑 꼭 어울리는 걸로 사왔네. 나는 지금 내가 쥔 것들이 불변하기를 바라니까.
네겐 답례로 페리도트 귀걸이를 선물해주면 좋으려나?
유진:그럼요, 나도 취향이라는 게 있는데. (그 모습을 지켜보고는) 변한다더라도 당신이 손에 쥐고 있는 것들을 놓치지 않을 거잖아?
그리고 나는 (미소 지으며 제 왼쪽 귓볼을 톡톡 건들이고는) 지금 하고 있는 게 마음에 들어서요. 이번에는 마음만 받을게요.
아테나:내게 변화가 온다면, 더 많은 걸 쥐는 방향으로여야만 하겠지. 잃는 건 용납 안 할 거거든.
그나저나 받기만 하는 건 거래의 예의가 아닌데…… 정말 괜찮겠니? 나중에 괜히 아쉽다고 딴소리 하면 안 된다?
유진:때로는 작은 실이 큰 득을 얻어온다는 말이 있죠. 무얼 선택하더라도 그건 오롯이 당신 몫이지만.
내게 선물을 주고싶다면 그건 차차 생각해봐요. 아직 오늘은 끝나지 않았잖아. 안 그래요?
아테나:좋아. 남은 시간 동안 네게 어울릴 만한 선물이 뭔지 잘 생각해볼게. (뭘 선물하더라도 마음에 들 것이라는 오만한 상념이 함께한다)
두 사람은 이제 전망대로 올라갈 준비를 합니다.
지금 위치는 5층, 제 1전망대로 이동하는 고속 엘리베이터가 위치한 탑승장.
1전망대의 입장은 무료인 것 같습니다.
한번에 50명 정도가 탑승할 수 있나보네요.
사람은 많지만 차례는 빠르게 돌아옵니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1전망대로 향하다 보면, 유리창 너머로 바깥이 보입니다.
1전망대로 향하는 위치에서만도 이미 대부분의 건물을 전부 내려다 볼 수 있을 정도로 높네요.
아테나:(50명이나 되는 사람이랑 좁은 엘리베이터 안에 있어야 하는 거야? 최악.)
사람들 사이에서 탄성이 흘러나옵니다.
아테나:쯧…… (와글거리는 사람들 틈바구니에 껴있는 상황이 별로 마음에 들지 않아서 작게 혀 참)
참고로 아테나는 구석에 자리잡기는 했지만 유진이 몸으로 사람들 속에 부딪히는 걸 막아줘서 나름 편하게 탑승했습니다.
아테나:(어둠이 무서운 아이 시절은 진작 지났다. ㅡ애초에 아테나는 어릴 때에도 어둠을 그다지 무서워한 적 없었지만ㅡ 문제는 이 갑작스러운 정전 사태다. 짜고 친 이벤트성 괴도 따위가 이런 일을 해냈을 리는 없으니 우연일 텐데. 이 우연이 프로피온까지 영향을 끼쳐서는 안 될 터. 초조함에 제 손을 꾹 말아쥐다가 낯익은 기척에 고개 휙 돌린다.)
익숙한 기척, 혹시…?
유진:따라와, 조용한 곳으로 가자. 여긴 곧 소란스러워지니까.
그 말과 함께 그는 아테나를 어딘가 구석으로 데리고 갑니다.
짙은 어둠 아래 도저히 그의 얼굴이 보이지 않습니다.
아테나:너, 맞지? 대체 지금까지 어디 있었던 거니?
근처를 지키는 직원도 경찰도 없는 2전망대의 후미진 구석.
아테나의 질문에 대답도 하지 않은 채 유진은 철컥거리며 무언가를 만지더니 문을 열고 밖으로 빠져나갑니다.
차가운 겨울바람이 뺨을 스치고 들어옵니다.
문 너머를 살펴보면, 위와 아래로 향하는 전망대 외부의 철골 계단이 보입니다.
유진은 위 쪽 계단을 올라가고 있습니다.
아테나:세상에나. 이젠 말도 없이 직원들이나 오가는 외부로 나가기까지? (아까 보았던 괴도를 떠올린다. 유진의 체형과 분명 흡사했었지. 대체 뭘 꾸미고 있는 거야?)
(신경질 90%와 호기심 10% 정도를 가지고서 그의 뒤를 따라 계단을 올라간다.) 나 참, 목도리를 다시 두를 시간 정도는 줘야 하는 것 아니니?
유진:(위쪽에서 걸음을 멈추고는 작게 웃음소리를 내었다.) 제멋대로인건 여전하네.
(난간에 끼익, 기대는 소리가 들리고는 잠깐 기다리는 듯 하더니 낮은 목소리로 입을 연다.) 서둘러. 네가 가야 할 곳이 있어.
아테나:어머, 여기서 제멋대로인 사람이 누구라고 생각하니? 아이의 친구를 찾아준다더니 갑자기 사라졌다가 갑자기 나타나서 전망대 밖으로 데려온 사람 아니려나?
(그래도 시간은 주는 거야? 어이가 없어 피식 웃으면서 목도리를 두른다) 어딘데 그러니? 나도 중요하게 물어볼게 있단다. 내 짐 어디다 뒀어?
유진:―어떤 일이든 방법은 있다더니. (진짜였네. 아테나에게 들리지 않을 만한 소리로 홀로 중얼거리고는 아래쪽에 있을 네게 전한다.) 올라가서 설명해줄게.
아테나가 목도리를 맨 것을 확인하기라도 했는지 유진은 다시금 위를 향해 올라갑니다.
아테나:어디까지 가려고? (목도리를 다 매고 유진을 따라간다.)
어느 정도 거리를 유지한 채 계속 계단을 걸어올라갑니다.
제 2전망대가 점점 멀어집니다.
도대체 얼마나 더 올라가야 하는거지?
그런 생각을 하기도 찰나,
곧 저 앞으로 철문이 하나 나타납니다.
앞서가던 유진은 그 문을 열고 안으로 먼저 들어갑니다.
뒤를 쫓아가면…
낯선 모니터나 기계 장치들이 가득한 방입니다.
아테나:다리가 얼어버리는 줄 알았단다? (투덜거리면서 안으로 들어간다.) 알고 보니 네가 이 빌딩 관계자였니?
반딧불마냥 떠다니는 작은 빛의 구체가 내부를 희미하게 밝히고 있습니다.
안 쪽, 전력이 나간 작은 엘리베이터 옆에는 [Staff Only] 라는 팻말이 붙어있네요.
두 사람이 관제실 안으로 들어오면 어둠 속에서 아이가 모습을 드러냅니다.
아이비입니다.
아이비:기다렸어. 갑작스럽지만 나를 좀 도와줬으면 해.
아테나:너는 부탁할 때의 예의라는 걸 모르니? (짜증나서 일부러 이름으로 안 부른다.)
상황 설명을 하고 부탁해도 들어줄까 말까 고민하는 참인데, 응? 뭔진 몰라도 둘이 공모하는 건 알 것 같고. (유진을 째릿 바라본다) 아직도 입 닫고 있을 거야?
혼자 시간을 돌리는 모래시계라도 쓰다 온 거니? (인상을 작게 찡그리며 빛 아래에 드러난 당신의 모습을 빤히 바라본다.)
아이비:(유진을 바라보고는) 그런 건 하지 않아도 되는데.
유진:나는 이 쪽이 좀 더 편해서요.
(아테나의 말에는 가볍게 웃으며 대답한다.) 그럴리가. 뭐, 여기까지 오는데 시간이 걸렸던 건 맞아.
아테나:혼자 이십 년은 더 먹은 것 같네? 그러고 보면 오늘내내 위화감이 있는 일들이 좀 있었지. (인상 작게 찡그린다) 도와달란 일이 이것과 관련된 일이니?
유진:오늘 많은 일들이 있었나봐요? (가볍게 웃고는 질문에는 대답하지 않았다.) 여기 있는 아가씨가 당신에게 부탁하고 싶은 일이 있다고 해서 함께 왔어.
아테나:올라가서 설명해주겠다더니? (제 마음대로 돌아가지도 않고, 제가 제대로 파악할 수도 없는 상황이라. 아테나에겐 정말로 마음에 들지 않는 요소들뿐이었다.) 이애랑은 어떻게 알게 되었는데? 내가 알던 너는 말이지, 이애가 친구를 잃어버렸다고 해서 찾아주겠다며 날 먼저 2전망대로 올려보냈었거든.
아이비:이 사람은 내가 데려온 거야. 내가 당신을 찾아가자고 했어.
나를 도와줬으면 했거든. 이 세계에서 부른 건 아니지만.
단도직입적으로 말할게. 나는 멜 록스의 저울을 깨뜨리고 싶어.
너희도 봤지?
그건 올린 물건의 가치를 가늠해서 자기가 인정한 물건과 그 주인에게 영원을 가져다 주는 물건이야.
영원하게… 그러니까 모든 시간과 차원에서 대상을 지금 그대로 고정시키는 거지.
아이비:아주 옛날에 나도 그걸 사용한 적이 있어.
하지만 이제는… (느리게 말을 끌고는 눈을 한번 깜빡인다.) 충분할까 싶어서.
(빛의 구체를 바라보고는) 이 탑에 살고 있는 이 아이들은 시간과 차원을 넘나들며 경계선을 지키는 아이들이야.
원래는 그다지 특이할 거 없는 장소였는데 이 아이들이 오래 머물면서 성질이 좀 바뀌었어.
이 장소에는 수많은 시간대와 다른 차원, 어떤 순간들이 교차하고 있지.
어떤 초월적인 일을 저지르기엔 좋은 장소라는 거야.
아테나:흐음. 그럼 이 유진은 다른 시간대 혹은 다른 세계선에서 불러왔다는 거지? 짐에 대해 물어봤자 소용이 없겠구나.
정말 터무니없는 짓을 저질렀네. 영원을 경험해보고 싶었니? (높은 곳에서 본 반딧불이라거나 트리 앞에서 지나치게 오래 멍해 있었던 게 이 장소의 영향이란 의미인가. 새로 들어온 정보들을 서류철처럼 정리하여 머릿속 어느 서랍의 칸에 꽂아넣고 정리한다.)
그러니까 저울을 깨뜨려서 영원을 해제하고 싶다? 그게 초월적인 물건이라서 이 초월적인 장소와 합이 잘 맞는 거고?
아이비:맞아. 당신에게도 가치는 있을거야.
그냥 두면 이 땅도 얼어붙을 테니까. 그 저울로 세상을 영원하게 만드려는 사람들이 있거든.
지금 일어나고 있는 것도 그 계획의 일환이야.
지금부터 3주 쯤 전이었나, 그 사람들이 그 다이아몬드로 여기에서 그 저울을 썼어.
트리에 장식되어있던 커다란 다이아몬드 봤지? 그게 영원을 가져다 준다고 믿었다나.
세계를 이 상태로 영원하게 만들고 싶어하는 사람들이야.
아이비:뭐, 이대로 있으면 지구가 멸망할 것 같다거나, 죽지 않기를 바라는 사람이 있다던가, 지금 이 마음이나 관계가 변하지 않기를 바란다던가… 그런 이유들로.
실제로 가능성은 있어. 앞으로 20년 쯤 더 연구가 지속된다면 성공할지도 몰라.
당장은 실패로 끝나겠지만, 오늘 이 실험을 밑거름으로 삼아서 말야.
아테나:이런. 쓸데없는 짓들을. (짜증스럽게 미간을 찡그린다.) 영원을 책에서 접한 달콤한 이상으로나 아니까 그런 멍청한 짓을 저지르지.
유진:―…20년이면 금방이네. (덤덤하게 곁에서 얘기를 듣던 중)
아테나:결국은 너도 영원을 포기하고 그만두고 싶어하는데 말야. 그 사람들에게 네 선례라도 말해 주지 그랬니? (끝의 질문에는 일부러 다소간의 악의를 심었다. 어쨌거나, 성격이 좋은 편은 아니었고, 아이비는 어린 나잇대로 고정되었을 뿐 오랜 시간 살아왔으니 아이 취급을 해줄 필요도 없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아무튼 나를 찾는 건 잘 했네. 그런 건 필요없으니까. 그래서 저울을 어떻게 깨뜨리면 되는 거지?
아이비:저울이 존재하는 모든 차원과 모든 시간대에서 막아낼 가능성이 가장 높은 건 지금 이 세계의 이 시간대 뿐이야.
오늘이 지나면 그들의 손에 숨겨져서 다시는 밖으로 나오지 않을거야.
그러니까 오늘 해야만 해.
저울을 깨뜨리기 위해서는 그 저울 위에 올릴 새로운 물건이 필요해.
그건 지금 이 시간의 당신이 가지고 있을거야.
아테나:새로운 물건?
아이비:맞아. (손으로 아테나의 목을 가리키고는) 지금 당신이 가지고 있는 그 물건 말이야.
아테나:(반사적으로 목을 매만진다.) 설마 이 목도리는 아닐 테고. (목도리를 천천히 풀면 드러나는, 귀걸이와 세트인 것처럼 잘 맞는 목걸이.) 이 목걸이 말하는 거니?
아이비:맞아, 그거. 그 목걸이가 저울을 깨뜨릴 수 있는, 저울 위에 올릴 수 있는 새로운 물건이야.
아테나:(고개를 기울인다) 이건 나와 함께 있던 유진이 선물해준 건데. (그리곤 나이가 든 유진을 바라보았다) 도와줬음 해서 유진을 불렀다고 했지? 그가 이 상황에 무언가 특별한 관련이 있는 거니?
유진:관계가 없지는 않지. 내가 당신에게 줬던 물건이니까. 아니, 좀 더 정확히는 이 시간대의 내가 말이야.
나는 조금 오래 전의 일이라 기억이 잘 나지 않네.
아테나:그러니까, 꼭 '네'가 준 물건이어야 의미가 있냔 뜻이지. 아이비가 불러온 걸 보면 유진도 이 상황에 아무런 관련이 없는 건 아닌 것 같은데? 나처럼 영원을 원치 않는다는 공통점이라도 있었나?
유진:(네게 시선을 맞추고는 시선을 내리고 낮은 목소리로 속삭인다.) 테나, 영원을 바라는 사람들은 없어. 특히나 영생을 경험할 수 있었던 이들은 더욱 더.
미래라는 건 말이야, 수많은 원인이 결과를 바라며 꿈을 꿀 수 있도록 하는 매개체와 다르지 않아. 그런 미래를 위해서는 모든 시간이 중요한 법이지.
과거, 현재, 지금 이 순간 모두.
네가 앞으로 경험하게 될 미래에는 이런 일이 일어나.
아니, 좀 더 정확히는 내가 있던 세계에서 일어났던 일이야.
정확히 오늘, 자정이 되기 한 시간 쯤 전에 도시에서 대정전이 일어났어. 비상 전력을 포함해서 도시에 있던 모든 전력이 멈췄고 약 30분 정도던가.
유진:우리가 살던 곳에 이상이 있었던 건 아니지만 여파가 아주 없었던 건 아니지. (잠깐 생각하듯 시선을 옮기다 네게 눈을 맞추고는) 프로피온같은 곳 말이야.
당신과 내가 살고 있는 이 세계가 아주 동일하지는 않을테지. 하지만―
당신이 존재하는 이 곳에서는 과연 어떤 미래가 당신을 찾아올까?
아테나:어머, 영원을 바랐던 사람이 바로 여기에 있는데. 듣는 애 섭섭하게. (비뚜름하게 미소한다) 제정신을 가진 사람이라면 영원을 쉽게 언급할 수는 없을 테지.
내가 이 상황을 막지 않으면 네가 말한 미래가 닥쳐온다는 말이구나…… 프로피온에 관한 건 나도 걱정하던 차였어. 정확히 어떤 식으로 여파가 닥쳐오는지 묻고 싶지만, 괜히 부정적인 내용을 구체적으로 들어봤자 좋을 건 없으니 상상의 영역으로 남겨두는 게 좋겠지.
목걸이 하나 올려두는 일 정도라면야, 뭐 어렵겠니. 이 빌딩은 완전히 전력이 나간 채잖아? 설마 경비원이 이전처럼 철통같을까.
(어깨 으쓱인다) 그래, 그 저울 깨뜨려줄게. 난 영원은 필요없지만 내 이득이 깨지는 건 원치 않거든.
유진:타인의 감정을 멋대로 추측하는 것도 쉽게 할 수 있는 일은 아니지? (아테나를 향해 웃으며 몸을 옮겨 아이비와의 시선을 차단시킨다.)
아이비:됐어. 지금부터 바로 잡으면 돼.
할 수 있어.
아테나, 당신이 나, 아니 우리 제안을 받아들였다고 생각할게.
아테나:그래. 나도 지키고 싶은 게 있으니, 상호간의 거래야.
아이비:좋아. 그럼 이걸 받아.
아이비가 카드봉투 하나를 건넵니다.
안에 든 것은 문제의 그 예고장입니다.
설마 내가 예고장의 주인공이었나?
아이비:지금으로부터 3주 전으로 당신을 보낼거야.
그 날은 행사가 있어서 보안이 느슨해. 직원들이 사용하는 마스터 비밀번호를 알아오면서 이 카드를 두고 와 줘.
인식 장애 주문을 걸어둘게. 아는 사람과 마주쳐도 시선만 피하면 네가 누구인지는 모를거야.
일을 마쳤다면 박수를 두 번 쳐. 다음 장소에서는 합류해서 같이 움직일 거야.
아테나:무슨 첩보 영화에 나오는 주인공이라도 된 것 같은 기분이구나. (카드 봉투를 바라본다.) 설마 내가 괴도 같은 예고장을 보내는 당사자가 될 줄이야.
시공간을 자유자재로 조절할 수 있나 보지? (이거 정말 시간의 모래시계 같네)
아이비:(유진을 가리키며) 참고로 그 괴도는 여기 있는 이 사람이야. 앞으로 우리가 해내야 하는 일이지.
유진:(가만히 듣다가 아무것도 모른다는 듯 어깨를 한번 으쓱거린다.)
뭐, 타임 터너같은 게 아닐까 했는데 그건 아닌 것 같더라. 나도 책에서만 보던 거라 정확히 알지는 못하지만.
아테나:괴도가 정말 너였구나? 어쩐지 멀리서 봤을 때 널 닮았다 생각하긴 했었어.
근데 지금 좀 궁금해지는 게. 그럼 원래 나와 있던 유진은 어디에 있는 거니?
유진:내가 아닐 수도 있지. 네가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결과는 달라져.
인생이란 수많은 시간의 꼬여있는 법이라서.
아이비:맞아. 당신이 봤던 괴도는 당신이 나를 도와주기 때문에 나타난 거야.
아테나:꽤나 복잡하네. 그렇지만 난 복잡한 문제를 푸는 데는 일가견이 있어서.
아이비:지금부터 당신이 카드를 제대로 놓고 온다면 오늘 당신이 경험한 그 일을 그대로 겪게 될 거야.
우리가 그렇게 만들거니까.
그리고 그 사람은 걱정하지 마. 지금쯤이면 밑에 있을거야.
1전망대 어딘가에는 있지 않을까?
아테나:아아. 네 친구를 찾으러 돌아다니다 그대로 1전망대에 남겨졌나 보구나…… (좀 웃김) 정전 좀 일어났다고 죽는 것도 아니니 멀쩡하겠지.
당신이 이 스카이 빌딩에 방문했던 무렵인데 기억해? 이 시간대라면 아마 상점가 층에 있었던가.
다른 세계에서 부른 그 사람은 잠깐 필요한 물건을 가지러 갔어. 곧 올 거야.
비밀번호는 뭐였어?
아테나:내가 누구니. 맡은 일은 언제나 완벽하게 처리한다는 게 내 신조야.
그 말을 들으며 주변을 둘러보면 주변에는 온갖 먼지 쌓인 상자가 놓여있습니다.
아테나:비밀번호는3426.그나저나, 이것들은 다 뭐니?
지금 있는 이 곳은 비품실 혹은 창고 언저리 같네요.
아이비:여기가 가장 적당할 것 같았거든. 사람도 잘 오지 않고 편한 곳이잖아.
아테나:여기에 저울이 있으려나? (두리번거린다) 그나저나 그러면 원래의 나는 원래의 유진과 시간을 보내고 있는 거니? 동시에 존재하고 있는 걸까나.
아이비:저울은 여기에 없어. 아직 전시회가 한참인 시간이니까. 보석을 가져오기도 전에 저울부터 챙기는 순간 그 사람들한테 금방 들킬거야.
(이어지는 말에 고개를 끄덕이고는) 맞아. 여기 오기 전의 당신이 무슨 일을 했는지 기억해?
기억하지 못하더라도 상관없어. 타임패러독스가 일어날만큼 큰일이 나지는 않을테니까.
아테나:흐음, 그러니까…… 다이아몬드를 훔치고 거기에 유진이 준 목걸이에 달린 보석을 올려야 한다고 했었지. 다이아몬드를 훔치기까진 아직 시간이 꽤 남았겠구나.
이 시간이면 내가 유진을 짐꾼으로 부려먹기 시작했을 즈음 같네. (정말 타임 터너 같네. 동시간대에 존재학고 있는 두 명의 '나'라. 한 번쯤 날 마주해보고 싶지만 그랬다간 일이 매우 귀찮게 꼬이겠지. 눈앞에 나타난 또다른 자신을 바로 없애려 들지는 않겠지만, 귀찮게 따라다니며 뒤를 캐려 들 것이다. 아테나는 스스로를 잘 알았다.)
아이비:부려먹는다니, 당신은 그 사람이랑 친해?
나는 잘 모르지만 그 사람이 얘기해줬었어. 시간을 되돌릴 수 있는 마법의 시계가 있다고 말이야. 이 탑에서 일어나는 일은 조금 다른 개념이지만 당신도 그 사람과 같은 마법사라고 했으니 익숙한 일일지도 모르겠네. (마법에 대해서는 잘 모른다.)
아테나:흐음. 명색이 7년이나 한 학교에 다닌 동창이니까. 난 친구를 잘 만들지 않으니 아주 친하다고까진 못해도 어느 정도 맞는 구석이 있지. 그게 아니었음 같이 어울리지도 않았을걸.
그런데 말이야. 그 다이아몬드엔 어떤 힘이 있기에 저울 위에 올려뒀다고 영원을 얻어낸 거니? 설명에는 신이 마음에 들어할 만한 물건이라고 쓰여 있었던 것 같은데, 다이아몬드에 뭔가 특별한 힘이라도 있는 거니?
아이비:그 사람은 그래도 당신을 친한 친구라고 생각했던 것 같은데 당신에게는 아니었구나.
다이아몬드에 힘이 있는 게 아니야. 그 저울은 어떤 물건을 올려도 시간을 고정시켜줘. (눈을 깜빡이고는) ……내가 저울에 올린 건 동생이 남긴 스카프였거든.
아테나:어머, 그러니? (별로 미안함을 느끼지도 않는다) 난 애초에 친구라는 걸 쉽게 만들지 않아서 말이야.
다이아몬드가 특별해서 그리 된 게 아니라는 거구나. 그런데, 어떤 물건을 올려도 고정시켜준다면서 이 목걸이의 보석을 올리면 저울을 깨뜨릴 수 있다는 거니?
아이비:듣던대로 친구에 대한 조건이 까다로운 사람이네. 왜 그 사람이 처음에 당신에게 가자고 했던 걸 반대했는지 알겠어.
목걸이의 보석을 올리는 게 아니야. 목걸이를 올리는 거지. 저울을 깨뜨리기 위해서는 몇 가지 조건이 있어. 그 목걸이는 (아테나의 목에 걸린 목걸이를 바라보고는) 조건에 부합하는 얼마 안되는 물건 중 하나일거야.
아테나:후후, 그랬니? 유진은 내가 널 도와주지 않을 거라고 생각한 모양이구나? 합리적인 의견이라고 봐. 난 딱히 남을 위해 움직이는 사람은 아니니까.
조건이라면 어떤 거? 지금 말해줄 수 있는 거니? (고개 살짝 기울인다)
아이비:목적을 위해 무엇이든 할 수 있는 사람이라고 했거든. 당신과 같은 시간을 살았던 사람인지는 모르겠어. 그 사람도 내게 많은 걸 이야기해주지는 않았으니까. 나도 필요한 정보는 아니었고.
그건…
갑자기 삐걱거리는 소리가 들려옵니다.
아테나:으음? (소리 나는 쪽을 홱 돌아본다)
문이 열리고는 다른 시간선에서 왔다는 유진이 양손에 쇼핑백을 들고 들어옵니다.
아테나:왔나 보네. 필요한 물건이란 게 그거니?
유진:(두 사람을 보고는 멋쩍은 듯 웃는다.) 내가 좋은 시간 방해한건가?
조금 돌아와서 시간이 걸렸다고 생각했는데 더 있다 올걸 그랬네. 아테나와 마주치지 않을까 해서 다른 길로 왔거든.
아테나:마침 흥미로운 이야기를 들으려던 참이기는 했지. 그래서 '나'와 '너'는 잘 피해 돌아왔니?
유진:아마도? (웃는) 이쪽도 마침 들려줄 이야기가 있는데. 당신과 내가 이제 막 만난 참일걸요.
유진이 쇼핑백을 아테나와 아이비 앞에 내려놓습니다.
쇼핑백 안의 내용물을 살펴보면
스카이 빌딩의 직원 유니폼 두 벌과 후드가 달린 패딩, 망토가 한 벌 씩 들어있습니다.
어라? 이건…
아테나에게 티켓을 전해주고 간 수상한 사람이 입었던 패딩과 괴도가 입고 있었던 망토네요.
아테나:으응? 이 옷들 익숙한데.
망토는 아마 네가 입게 될 거고. 그럼 이 패딩은 설마……? (자신을 손가락으로 가리켜본다)
유진:(아이비에게) 부탁한대로 챙겨왔는데 이거면 돼요?
아이비:응, 이거면 돼.
그럼 지금부터 해야하는 일을 설명할게.
아이비가 벽에 붙어있는 스카이 빌딩의 지도를 가리킵니다.
아이비:멜 록스의 저울을 파괴하면 모든 문제는 해결 돼.
아테나에게는 이미 한번 이야기를 했지만 저울을 파괴하기 위해서 필요한 건 다음과 같아. 저울 본체, 가장 최근에 올라갔던 축복받은 물건, 그리고 저울을 움직일 정도의 가치가 있을 새 물건.
마지막 건 아테나가 가지고 있어.
그러니 지금부터 우리가 해야할 일은 저울과 보석 탈환.
보석은 2전망대 트리 꼭대기에 달려있어. 거기에 가까이 다가갔다가 무사히 도주하기 위해서는 사전 공작이 필요해.
메리의 집에 달린 굴뚝은 그 안에 있는 창고와 연결되어 있어. 그 창고에서는 2전망대의 직원층, 엑스트라 플로어로 바로 이동할 수 있고.
아이비:굴뚝을 미리 뚫어두고, 위로 올라가 요란하게 보석을 훔쳐내.
도망갈때는 다시 그 굴뚝을 통해 창고, 그리고 엑스트라 플로어로 빠져나와 직원인 척 이동하는거야.
엑스트라 플로어에는 모든 층으로 이동이 가능한 직원 엘리베이터가 있으니까.
괴도 소동이 끝나고 적당한 타이밍에 스카이 빌딩에 정전을 일으키겠어. 그 전에 5층까지 내려와.
나는 동시에 저울을 빼내올테니 플라네타리움 안에서 합류하는걸로.
아테나:정전도 네가 한 일이었니?
…… 혹시나 해서 묻는 거지만 도시의 대정전도 네가 한 건 아니겠지.
아이비:맞아, 내가 했어. 하지만 도시에 일어난 대정전은 내가 아니야.
유진:도시의 대정전은 예정되어있던 거였어. 나도 그걸 겪었으니까.
아테나:대정전도 그 저울과 연관이 되어있던 걸까나. (고개 기울인다) 아무튼, 알아들었어. 괴도 연기자는 이쪽일 테고. (유진 바라봄) 굴뚝은 함께 뚫어두면 되려나.
아이비:맞아. (아테나를 따라 유진을 바라보고는 고개를 끄덕인다.) 지금부터 역할을 나눌거야. 괴도는 당신이 맡고 아테나, 당신은 아래에서 저 사람을 도와줘.
보석을 위에서 떨어뜨리려면 누군가는 보석을 맞춰야 하니까.
그러니까… 이걸로. (무언가 꺼내 아테나에게 던진다.)
이건… 권총? 상당히 고풍스럽게 생겼네요.
아이비:손에 한 번 쥐면 목표는 빗나가지 않아. 그런 장치가 되어있어. 뭐어, 당신들에게는 필요없을지도 모르지만.
그리고 굴뚝은… 유진이 잠금장치를 미리 풀어둬. 아테나는 따로 해야할 일이 있어.
이 시간대의 너에게 2전망대 티켓을 어떻게든 구해다 줘.
네가 2전망대에 있어야 나중에 관제실까지 올라올 수 있으니까.
패러독스를 줄이기 위한 일이야.
그리고 직원용 엘리베이터를 써서 2전망대의 엑스트라 플로어로 가.\
아이비:나는 그 전까지 스카이 빌딩을 정전시킬 준비를 해 둘게.
따로 질문은?
아테나:꽤 고풍스러운 디자인이네. 이게 머글의 지팡이 비슷한 물건이라지? (권총 들어 이리저리 만지작거린다.)
2전망대 티켓이라…… 패딩을 보면서 예상한 게 맞았네. 그 사람, 진짜 수상하고 이상하다고 생각했었는데 설마 나였을 줄이야. (헛웃음친다) 보석을 얻고, 엑스트라 플로어로 이동한 다음에 5층의 플라네타리움에서 합류하자는 거지? 이해했단다.
아이비:좋아. 그럼 시작하자.
두 사람은 창고에서 바로 직원용 유니폼으로 갈아입을 수 있습니다.
그야 당연히 탈의실을 이용할 수는 없으니까요.
아테나:자, 적당히 뒤돌도록 하렴. (목도리 주섬주섬 벗는다) 무슨 영화배우라도 된 기분이네.
괴도가 입을 예정이라는 망토는 유진이 따로 쇼핑백을 이용해 챙겨두는 모양입니다.
유진:네, 네. 보지 않을테니 다 갈아입으면 얘기하세요. (정말 신경 안쓰고 주섬주섬 유니폼으로 갈아입는 중)
아테나:(대강 코트랑 목도리 벗어두고 유니폼 챙겨입었다.) 디자인이 마음에 안 드네.
(와중에 디자인 품평)
유진:다 입었어?
아테나:아직 뒤돌아있었니? 말 잘 들으니 좋구나.
유진:(어딘가에 널브러졌을 코트와 목도리 주섬주섬 챙겨서 쇼핑백에 정리해서 넣어준다.)
아테나:고맙단다. (그래도 인사는 함)
유진:까다롭게 구는 사람이 누군데 그러실까.
(가만 바라보더니 손을 뻗어 옷깃을 정리해준다.)
아테나:이 정도로 까다롭긴. 날 잘 알면서? (정리받음…… 왠지 묘한 기분이다) 이렇게 보니 나이 든 티가 나기는 하네.
관찰력
기준치:
65/32/13
굴림:
83
판정결과:
실패
지능
기준치:
75/37/15
굴림:
20
판정결과:
어려운 성공
아테나는 문득 유진이 자신이 알던 모습과 다르게 겉보기에 특별한 액세서리를 하지 않은 것을 떠올립니다.
아테나:귀걸이가 없네. 하긴 이십 년이면 취향이 변할 만한 시간이긴 하지?
왼손에 무언가 반짝이는 게 보였는데 기분 탓이려나요?
아테나:결혼은 했니? (왼손 흘끗 봄)
유진:(질문에 그저 웃음만 내비친다.) 어떨 것 같아?
(아테나에게 패딩 건네줘요)
아테나:또 또, 네바에식 말돌리기는 이십 년이 지나도 여전하네. (눈 흘기며 패딩 받아 걸친다) 네가 약지를 보여주면 확실히 알 수 있겠지.
유진:내 운명이 아니었나 보지. 당신이 모르는 내 시간에서는 많은 일이 있었거든. (주섬주섬 패딩 지퍼 끝까지 올려주고는)
아테나가 직원용 유니폼 위에 패딩을 걸치면 일반 손님과 다름 없는 모습이 됩니다.
유진:(잠깐 바라보다가 제 안경을 벗어서 아테나에게 씌워준다.)
사람 눈을 피하기에는 이게 제격이거든.
아테나:(장녀인지라 이렇게 대해지는 게 좀 어색하다. 그래도 썩 나쁜 기분만은 아니네.) 어린애가 아니거든? 안경 정도는 혼자 쓸 수 있어. (안경대를 살짝 조절한다. 안 쓰던 걸 쓰려니 좀 이질적이긴 한데 어지럽진 않으니 다행이지.)
유진:내가 보는 당신은 한참 어린 아가씨인데 어쩌지. (느리게 눈을 깜빡이며 살짝 웃고는) 즐겨봐요. 지금껏 잘 해왔잖아.
아테나:흥. (반박할 말이 없어서 괜히 새침한 소리만 내고) 내가 못하는 일이야 없으니 당연하지.
모든 준비가 끝났습니다.
세 사람은 각자의 장소로 흩어지기로 합니다.
아이비:당신이 겪었던 일에서 크게 벗어나는 일은 삼가는 편이 좋을거야. 말했다시피 타임패러독스가 일어나니까. 음... 말 한두마디 정도는 괜찮겠지만.
아이비의 충고를 잘 기억해둡시다.
아테나:걱정 마렴. 일이 틀어지게 하진 않을 테니. (자신만만하게 말하고 권총을 잘 챙겨넣는다)
아테나가 먼저 향할 곳은 1전망대의 이벤트 코너네요.
분명 이 시간대의 두 사람이 게임의 참가 여부를 고민하던 중이었죠.
인파에 섞여 고속 엘리베이터를 타고 1전망대로 향합니다.
어쩐지 기시감이 느껴지는 풍경.
저 구석, 둥글게 몰린 인파 속에서 환호성이 울리고 있습니다.
그리고 멀지 않은 곳에서 그 모습을 바라보는 아테나와 유진이 보입니다.
유진:저거 사행성 아니야?
아테나:아무리 봐도 사행성 그 자체지. 이런 괘씸한 빌딩이 있나!
그냥 안 가고 말지. 전망대 하나 가자고 무슨 게임이니?
유진:주사위 게임 같은데.
아테나:(음, 여기서 내가 어떻게 했었더라…… 기억 더듬음)
(그래, 분명이거였지?)
(패딩의 후드를 수상하게 뒤집어쓰곤 아테나-자신-의 등을 툭툭 두드린다. 진짜 묘하고 신기한 기분이네. 타임 터너를 사용하고서 나를 합법적으로 마주하는 기분이랄까.)
아테나 (과거):(휙 뒤돈다)
(당신을 바라보고는 수상하다는 눈빛을 하며) 누구시죠?
아테나:(난…… 너야.)
(그렇지만 말할 수는 없지. 웃음을 참으면서 티켓 두 장을 내민다)
아테나 (과거):?
(무척 의심스럽다는 눈빛으로 티켓과 당신을 바라본다.) 저 주시는 건가요?
아테나:(고개 끄덕끄덕. 이때는 정말 수상하다고 생각했는데 사실은 나와 내가 짜고 치는 연극이었다니. 이렇게 우스운 일이 또 있을까? 특별히 최근 겪은 일 중 가장 재밌는 일로 선정해주도록 해야겠다.)
아테나 (과거):(의심하는 눈과 다르게 솔직하게 받는 손!)
암표상…… 뭐 그런 거 아니죠?
아테나:(퇴장 타이밍이군!)
(티켓 잘 쥐여주고 스르륵 사라진다. 의심스러워도 어쩔 수 없단다. 위로 올라가기만 하면 장땡이잖니?)
아테나:처음 만났을 때부터 자연스럽게 날 애칭으로 부르는데 20년쯤 뒤면 나도 애칭을 허락할 만큼은 물러지나 봐? (물론, 지금도 애칭을 허락한 이들이 있기는 하므로 이건 반쯤 농담이다.)
(주변 잘 둘러보고 유진에게 다가간다)
유진:(그 말에 가만 당신을 바라보더니 이내 헛웃음을 터뜨리고는) 이 아가씨 정말 못하는 말이 없네. 그래서 싫어?
아테나가 유진이 있는 곳으로 향하면,
텅 빈 창고 안입니다.
아테나:싫다곤 안 했단다? 별 말도 아닌데 뭐. (새침하게 말하곤 창고 안으로 들어서서 둘러본다)
위로 올라갈 수 있는 사다리가 하나 내려와 있습니다.
전부 풀린 자물쇠들이 바닥에 구르고 있네요.
유진:지금 당신은 모르겠지만 우리는 한때 뜻이 맞았거든. 조금은 다른 의미였지만서도.
(검지를 입가에 대고 위층을 가리키며 손짓한다.) 이 위가 메리의 집 안쪽에 있는 창고야. 준비 되었어요?
아테나:한때? (고개 기울인다) 그거 궁금해지네. 좀 자세히 들어보고 싶긴 한데. 미래에 영향을 끼칠지도 모르니 안 되겠지. (영 아쉽다)
준비는 됐어. 가자꾸나. (먼저 사다리로 올라가란 듯 눈짓한다)
유진:(가기 전에 왼손으로 제 눈가를 톡톡 가리킨다. 안경부터 돌려줘요.)
글쎄, 지금 당신의 미래에 영향을 끼치지는 않을걸. 다른 건 몰라도 그건 확실해.
아테나:(안경 벗어서 유진 얼굴에 씌워준다. 키 차이 때문에 발돋움을 해야 하는 건 좀 짜증났지만!) 그럼 소상히 얘기해줄 마음은 있고?
유진:(안경 다시 정리해서 올려쓰고는 이어지는 질문에 웃어본다.) 못해줄 것도 없지. 원래 미래의 일은 함부로 입에 담는 게 아니지만 지금 당신과는 관계없는 일이니까.
(먼저 사다리를 타고 올라간다.)
아테나:난 들을 의향이 충분히 있단다. (따라 올라간다)
아테나는 사다리를 타고 올라갑니다.
불이 꺼진 회색빛 창고에 새어들어온 조명 불빛이 여러 비품을 비추고 있습니다.
먼지 쌓인 뜨개 직물, 카페트, 손상된 흔들의자…
메리의 집을 꾸미고 남은 소품들이겠죠.
굴뚝으로 올라가는 사다리와 커튼이 쳐진 창문 하나도 보입니다.
유진:저기 창문 보여? 시간이 되면 나는 굴뚝으로 올라 갈 거야. 테나, 저 창문 쪽에서 기다리다 내가 신호하면 보석을 맞춰 줘. (망토를 챙겨입고는)
그래서, 우리 아가씨께서는 뭐가 궁금하실까?
아테나:좋아. 보석을 얻으면 다시 사다리를 타고 엑스트라 플로어로 내려가서 5층으로 가면 되는 거지. (다시금 계획을 중얼이고는)
나야 네가 말해줄 수 있는 선의 모든 게 궁금하지.
유진:내가 말해줄 수 있는 선의 모든 것이라. (느리게 눈을 깜빡이고는 답변을 나지막이 되풀이한다.) 반대로 질문할게. 내가 정말 모든 것을 말할 거라고 생각해?
여기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모르지만 적어도 내가 겪은 모든 일들을 당신이 겪지 않았다는 것만 알겠어.
짐작했겠지만 나는 당신이 살고 있는 미래 시간대에서 온 게 아니야. 다른 사건이 있었던 다른 차원의 시간대에서 온 거야. 물론, 이것도 내 짐작이지만. 그렇다고 밖에 할 수 없겠네.
아테나:질문은 내가 했어. (한쪽 눈썹 치켜올린다.) 말해주는 건 어디까지나 네 자유지. 그나저나…… 단순한 미래가 아니었구나. 뭐, 워낙 여러 차원과 시간이 꼬여 있었다고 아이비가 말했었으니 납득이 어려운 건 아니다만.
다른 사건이 뭔지는 말할 생각이 있고?
유진:당신이 생각하기에는 당신이 겪을 수 있는 미래에서 당신이 나와 돈독한 사이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해? (농담이다.)
(이어지는 질문에 잠깐 생각하듯 당신을 바라보고는 느리게 눈을 깜빡인다.) 테나, 신을 믿어?
아테나:어머? 발칙한 질문을. 관계가 발전을 하려면 할 수야 있겠지. 하지만 글쎄, 우리 둘 다 발전에 그다지 적극적이지 않을 것 같은데? 유진 너에 대해선 확신 못해도 나는 그렇거든. 무슨 특별한 사건이 있는 게 아니고서야.
(무슨 그런 질문을 하냐는 듯한 표정이다) 아니, 전혀. 난 내 자신만 믿는단다.
유진:오, 나는 관계 발전에 적극적이라고 생각했는데 말이지. 어느 날 갑자기 우리 중 누가 청첩장을 내밀어도 기꺼이 자리에 참석할 수 있을 만큼의 가까운 사이는 되지 않았으려나.
(답변에 시선을 아래로 향하고는 가만 웃는다.) 그래, 당신다운 대답이네.
당신이 이 이야기를 들어봤을 지는 모르겠어. 먼 옛날, 모든 인간은 평등했지.
신께서는 그 중 소수의 존재에게 어떠한 명령과 함께 특별한 힘을 하사했어. 자신의 명을 따른다면 대대손손 무궁한 영광을 남기게 한다 하였지.
그 특별한 힘이 마법이야. 내가 살던 세계에서는 그랬어.
어느 순간부터 수많은 마법사들이 잠에 빠지고 깨어나지 않았어. 하나 둘 잠들기 시작하더니 시간이 지나도록 영영 깨어나질 않더라.
유진:시간이 흐르고 흘러 모든 마법사들이 잠이 들었지만 단 몇 명만이 잠들지 않았어. 그 중 하나가 당신과 나야.
잠이 든 마법사들을 깨우기 위해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하나였어. 신의 명령을 따르는 것.
신은 어질러진 세계를 바로잡기를 원하였고 그 일을 우리에게 행하라 이른 거지. 목적만 이루어진다면 잠이 든 마법사들은 깨어날테고, 그렇다면 다시 평화로운 일상을 살아갈 수 있을테니까.
그리고 신이 바라던 것은 (느리게 눈을 깜빡이고는 당신을 향해 옅게 웃었다.) 인간을 향한 처벌.
하지만 그건 신이 바랐던 거고 언젠가는 자연적으로 치유될 일이었어. 다만 아주 오랜 시간이 걸릴 뿐이었지. 어쩌면 영원이 될 지도 모르는 시간 말이야.
요컨대, 머글을 죽이지 않아도 잠 든 마법사들은 언젠가 깨어난다. 그걸 알게 된 거지. 그게 가장 중요한 사항이었어.
유진:두 가지 방향이 나온 만큼 우리 의견도 갈렸어. 신의 명을 따르고 눈 앞의 행복을 되찾자는 사람들과 불필요한 희생없이 자연스레 기다림을 갖자는 사람들로 나뉘었지.
그 뒤는 말하지 않아도 짐작하겠지만 두 의견이 공존할 수는 없으니 어느 한 쪽을 선택해야했고 어느 한 쪽을 따라야만 했어.
아테나:결혼식 정도의 중요한 행사면 지금도 참석할 수 있단다. 날 대체 뭘로 보는 거니? (약간 투덜거렸다)
(그것도 이내, 유진이 풀어내는 긴 이야기에 입을 다문 채로 가만 레몬빛 눈을 응시한다. 네가 이렇게까지 긴 거짓말을 꾸며낼 이유는 없어. 그러니 그건 어느 시간선에서는 분명히 일어났을 진실일 테다.) 내 세계에서 일어날 일만 아니라면야 상관은 없는 문제야, 그렇지만…… 과연 놀랍기는 하네. 신이라는 게 실제로 존재했고 심지어 인간들 사이에 간섭하기까지 했다니.
몇 마법사를 제외하고는 모두가 잠들어버린 세상이라. 끔찍한걸. (짜증스럽단 듯이 피식 웃었다) 자연적으로 치유되길 기다리느냐, 머글을 죽여 빨리 잠을 깨우느냐…… 그렇게 나뉘었다는 거지?
그래서 네가 택했던 쪽은? (자신이 택했을 방향은 묻지 않는다. 굳이 묻지 않아도 알 것 같았으니까.)
유진:안 왔으니까 하는 얘기지. (과연?)
(이야기를 듣고는 가만 웃었다.) 어땠을 것 같아?
테나, 나는 지는 게임은 하지 않아.
아테나:(제 팔 겹쳐 팔짱을 끼며 고개를 살짝 기울인다.) 잘 모르겠네. 너는 나처럼 원하는 걸 얻기 위해 뭐든지 할 만한 타입 같으면서도 선은 지키는 것 같아서 말이지.
설마 내가 졌다는 거야? 나야말로 지는 선택 따위 하지 않는데.
유진:내가 당신과 같은 의견을 가졌을 거라는 생각은?
영원을 견딜 생각은 없었을 뿐더러, 그게 내 운명이라면 나는 따를 수 있어.
아테나:글쎄…… 너, 머글을 죽일 수 있어? 네 손에 피를 묻힐 수 있니? 망설임없이 저주를 쓸 자신은?
네가 겁이 많다는 건 아니야. 하지만, 왠지 네가 아바다 케다브라를 외치는 모습은 상상이 가질 않는구나.
유진:…―테나, 사람을 죽여봤어?
아테나:여기선, 아니? 그렇지만 내 목표를 위해 필요한 일이라면 못할 것도 없지. (태연히 말한다.)
유진:세상에는 수많은 방법들이 있어. 인간은 누구나 죽어. 비단 인간 뿐만이 아니라 생명을 가진 모든 이들에게 해당되는 말이야.
사람을 죽이는데 마법을 써야만 했을까? 내 대답은― ‘아니’.
네 목표를 이루기 위해서라면 뭐든 한다고 했었지? 누구나 그랬어. 다른 사람들이 하루 빨리 깨어나기를 바라는 이들이 많았다는 거야. 그리고 그들을 깨우는 게 목표라면 (가만히 당신을 바라보고 눈을 깜빡인다.) 못할 것도 없지.
당신이 한 모든 질문에 답을 해 줄게. 이 모든 건 당신이 볼 수 있는 미래에서는 일어나는 일이 아니야.
나는 내 운명을 받아들이기로 했고 신의 뜻에 따라 머글을 죽이는 쪽에 찬성을 했어. 그리고 우리가 이겼지.
내가 지금 이 자리에 있다는 게 무슨 뜻일까?
유진:나는 지금 당신이 겪을 일들을 모두 겪었어. 우리는 사람들을 죽였고 신께서는 원하는 것을 이루셨고 그 대가로 잠 든 사람들은 일어났어.
그게 당신의 앞날을 알고 있는 이유야. 나는 영원을 살지 않았으니까.
아테나:어머나, 네 말은 그럼ㅡ 넌 사람을 죽였다는 거구나. (유진의 깜박거리는 눈을 마주하다가, 이내 웃는다.) 흥미로운걸? 유진 네바에 브리즈, 네가 그럴 수도 있는 사람이었다니. (네가 이전에 선한 사람이 되고 싶어하겠다느니, 좋은 일을 하겠다느니 같은 가식을 떤 적이 없었기 때문에 지금 자신이 들은 바는 신선하면서도 재미있게 느껴졌다.)
그러면 너와 내가 같은 패를 들었고 함께 승리를 거머쥐었단 뜻이구나. 마음에 드네. 내가 지지 않았다는 사실이. 확실히 그래. (어떠한 시간선에서의 자신이 저지른 살인이나 범죄에 대한 죄책감은 찾아볼 수 없다. 애초부터 아테나 안에 뿌리내린 씨앗이 아니었으므로. 비정하고 냉담하며 야욕을 위해서라면 인간성도 기꺼이 버릴 수 있는 이, 그것이 바로 아테나 히페리데였으니.)
신에게 이리저리 휘둘린 건 좀 마음에 들지 않지만, 어쨌건 내 세상을 지켜냈으니 된 거겠지. (게다가 내가 겪은 일도 아니고 말이야. 꼭 영화라도 보는 듯 흥미진진했다.)
상세한 설명 고맙단다. 어딘가에선 그런 일도 겪었구나.
유진:내가 못할 것 같았어? (시선을 아래로 내리면서 소리없이 쓴웃음 짓고는) 당신 세상을 지킨 만큼 세상이 무너진 사람도 있어.
(네게 가까이 다가가 시선을 맞추듯 허리를 숙이고는) 테나, 내게 결혼은 했냐고 물어봤지? 못했어. 그 사람이 죽었거든.
누군가의 세상을 지키기 위해 누군가의 세상을 무너뜨린 거야.
아테나:안타깝구나. (눈썹 하나 까닥이지 않은 무표정으로 읊는다.) 하지만 내 자신보다 소중한 건 없어. 내 세상을 위해서 남의 세상이 몇 개나 무너지든 신경쓸 바 아니잖아? 남에게 신경쓸수록 내가 깎여나갈 뿐.
유진:그럴테지. 네가 맡은 환자들 중에서도 무연고 환자들이 죽어나갔었으니까. 뭐, 겪어보지 않았더라도 예상한 결과야.
아테나:한때 뜻이 맞았다는 게 무슨 의미인지 이제 알겠네.
자, 한 번 더 뜻을 맞추게 되겠구나. (무거운 주제를 환기하듯 사다리를 바라본다) 멋들어진 괴도로 등장할 준비는 됐니?
유진:(느리게 눈을 깜빡이고는 좀처럼 웃지 않는 얼굴로 나지막이 읊는다.) 역시 제멋대로인 아가씨라니까.
이 모든 이야기의 교훈이 뭔지 알아요? (후드를 뒤집어 쓴다.)
아테나:교훈도 있니? (총을 꺼내어 장전한다)
유진:인생은 어떻게 될 지 모른다는 것.
그 말과 함께 유진은 사다리를 타고 올라갑니다.
그리고 잠시 기다리면………
“저기 봐! 누군가 있어!”
익숙하지만 낯선 소리가 들려옵니다.
팟, 하고 조명이 꺼지는 소리가 울려 퍼집니다.
창고 안 쪽으로 새어 들어오던 빛이 어둠 속으로 사라집니다.
바로 지금, 2전망대에 소문의 괴도가 나타났습니다.
아테나:(이쯤 저기 어디에선가 '나'도 당황하고 있겠지.)
아테나는 어둠 속에서 창문을 통해 몸을 기울입니다.
굴뚝 위에 서 있는 괴도;유진의 모습이 보입니다.
천천히, 그가 양손을 하늘높이 들어올리는 것을 보고는 당신 또한 총으로 보석을 겨눕니다.
마치 총이 팔을 이끄는 듯 기묘한 감각을 느끼며
정확하게 보석을 겨냥하면…
탕!
가느다란 박수소리를 뒤로 공포탄이 발포됩니다.
트리가 흔들리고 보석이 유진의 손에 떨어집니다.
성공했다!
다시 창고 안으로 들어오면 2전망대를 뒤흔드는 듯한 거대한 환호성이 들립니다.
모든 조명이 소등되고 유진이 굴뚝 위에서 안쪽으로 다시 모습을 드러냅니다.
아테나:(우습긴 우습네.) 어서 와, 괴도.
유진:그대로 내려갈테니까 거기서 떨어져.
(말이 끝나기 무섭게 아래로 뛰어내린다.)
“유진 네바에 브리즈!!!”
…어디선가 아테나의 목소리가 들려옵니다.
아테나:(이거 설마 내 목소리?)
(ㅋ)
(그래, 내 짐을 찾으려고 유진을 불렀지. 하지만 정작 내가 아는 유진은 1전망대에나 있을 것이다)
유진:…나를 얼마나 못 믿었으면 저렇게 애타게 찾을까. (반 농담이다.)
아테나:넌 모르겠지만, 나는 이곳의 유진에게 내가 산 짐을 맡겨뒀거든. 동생들에게 준 크리스마스 선물이란다. 괴도 행세를 한다고 비싼 선물을 잃어버리면 곤란하니까. 내 딴엔 당연한 거라구?
유진:오, 이런. 당신 눈에는 내가 그렇게 매정한 사람으로 보여요? (작게 헛웃음치고는)
서두르자. 길은 기억하고 있지?
두 사람은 미리 정해둔 도주로를 이용해 단숨에 2전망대 엑스트라 플로어의 직원용 엘리베이터에 탑승합니다.
그런데…
아테나:뭐어, 아예 버리진 않았겠지만 어디 다른 곳에 둘 수는 있다고 생각했지. (침착하게 엑스트라 플로어로 향해 엘리베이터를 탔다.)
어라?
엘리베이터가 예정되었던 층보다 조금 더 아래로 내려가네요.
딩동.
여긴… 2층이잖아?
그러나 되돌아갈 새도 없이 덜컹, 하는 소리.
엘리베이터와 모든 층의 전기가 나갑니다.
어떻게 된 거지?
아테나:분명 5층으로 오라고 하지 않았었니?
유진:분명히 5층 버튼을 눌렀는데. (엘리베이터 스위치를 한번 살펴보다가 바깥을 바라본다.)
…계단을 통해서라도 이동해야겠는걸. 전기가 나갔어.
(마법사지만... 전기를 넣을 줄은 모르는 마법사들...)
아테나:우리 계획을 누가 알아챘을 리는 없고. (짜증스럽게 계단을 찾아간다.) 마법사나 되어서 계단을 직접 올라가야만 한다니.
유진:글쎄, 정말 알아챘을리 없다고 생각해? (지팡이 만지면서 빛을 비출까 잠깐 생각한다.) 내가 영원을 바라고 저울을 소중히 다루던 사람 중 하나라면 저울이 없어진 걸 깨닫고 바로 찾으러 다녔을걸.
아테나:흐음…… 알아챈 거라면 대응이 아주 빠르네. 짜증나게 말이야.
혹시라도 마주치지 않게 빨리 이동하자꾸나. (계단을 한번에 두세 개씩 올라간다)
두 사람은… 아직 계단에 도달해지 못했지만…
계단을 찾으러 이동하였습니다.
아테나:(아 아직 못햇군)
엘리베이터에서 내리고 복도를 하나 빠져나옵니다.
그리고,
마치 기다렸다는 듯 눈부신 손전등 빛이 두 사람을 비춥니다.
“저기! 저 사람들이에요!”
“CCTV에 찍혔던!”
이런, 경호원입니다.
들켰다!
지금부터 경호원 세 명과 추격전이 시작됩니다.
아테나:(속으로 욕을 내뱉는다) 빠르기도 하지.
경호원들이 두 사람을 쫓아옵니다.
눈 앞에 계단이 보입니다.
서둘러 이동할까요?
아테나:(명색이 마법사인데 머글 경호원 따위에게 시시하게 잡힐 순 없지. 품에서 지팡이를 꺼내 쥔다.) 무언마법 쓸 줄 아니?
이동은 민첩 판정을 통해 진행합니다.
타 기능치 사용도 가능합니다.
유진:(손에 쥐고 있던 지팡이를 다시금 꽉 쥐어본다.) 테나, 그거 알아? 당신은 가끔 너무 당연한 걸 물어봐.
아테나:못 쓰면 내가 다 처리하려고 했지. 그럼 기절시킬게. (지팡이를 뒤로 뻗어 경호원을 겨누고 무언으로 기절마법을 사용한다.)
마법 Roll
기준치:
65/32/13
굴림:
87
판정결과:
실패
아테나는 허공에 지팡이를 흔들었습니다.
아테나:(뛰는 와중에 쓰는 건 무리였나? 그러니까 마법사는 뛰는 게 어색하다니깐~)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아테나:비웃지 마렴? (아무 말도 안 했는데)
유진:
마법 Roll
기준치:
55/27/11
굴림:
52
판정결과:
보통 성공
(경호원 하나를 향해 지팡이를 휘두른다.)
유진이 지팡이를 휘두르자 경호원 하나가 반동으로 튕겨나갑니다.
경호원들은 순간 놀란 눈으로 그들을 바라보지만 그것도 잠시 몸을 움직입니다.
경호원:
민첩
기준치:
50/25/10
굴림:
75
판정결과:
실패
경호투:
민첩
기준치:
50/25/10
굴림:
24
판정결과:
어려운 성공
경호원 하나가 두 사람 중 하나를 공격합니다.
경호투:
Fightning(Brawl) Roll
기준치:
30/15/6
굴림:
12
판정결과:
어려운 성공
rolling 1d2
(
2
)
=
2
아테나:(근데 어케 공격하는 거죠? 손전등으로 때리나요 뭔가를 던지나요)
경호원 하나가 유진에게로 달려듭니다.
방금 사람 하나가 날아가는 것을 보았음에도 불구하고
무모하게 주먹을 쥐고 달려드네요.
아테나:(쯧쯧) 저 정도는 네 선에서 처리할 수 있지?
유진:
마법 Roll
기준치:
55/27/11
굴림:
41
판정결과:
보통 성공
유진이 지팡이를 휘두릅니다.
유진에게 달려든 경호원 하나가 보이지 않는 벽에 부딪혀 날아가버립니다...
유진:당신보다 실전은 내가 더 많이 겪어봤어.
(잠깐 상황을 보고는 아테나의 주머니에서 총을 꺼내고 다이아몬드를 집어넣는다.) 테나, 계획을 바꿔야겠어. 저 놈들은 내가 처리할테니까 먼저 가.
무언 마법 쓰기 힘들면 주문이라도 외우고.
아테나:무언 마법이 힘들어서 그런 거 아니거든?! (발끈)
유진:어련하시겠어, 아가씨. (웃으며 머리 한번 톡톡 건들이고는 계단을 향해 아테나의 등을 밀친다.)
아테나:(계속 애 취급 받는 것 같아 묘하게 열받는데, 진짜 나보다 오래 산 사람이니 뭐라 할 수도 없고…….) 먼저 갈 테니 최대한 빨리 따라오렴.
유진:
마법 Roll
기준치:
55/27/11
굴림:
86
판정결과:
실패
자장자장. 들으렴, 아가. 희디흰 사과꽃 망울질 적 태어난 우리 아가야.
아저씨가 옛날 이야기 하나 해줄까? (경호원들을 향해 지팡이를 겨누고는) 예언자 브리즈가 감히 말하건데 당신들은 절대 저 위로 못 올라가.
당신이 받은 그 목걸이에 무엇이 담겨있는지는 몰라. 하지만 오늘 이 시간대의 그 사람이, 유진이 당신에게 전한 진심이 여기에 걸려 무게가 재어지는 거야.
내가 언젠가의 옛날에 그랬던 것처럼 평범하게 이 저울을 사용하면 당신도 영원을 손에 넣을 수 있어.
아이비:당신이 원할 때, 가장 최고의 당신으로 스스로를 고정시키거나…
그 사람들처럼 연구한다면, 원하는 다른 무언가를 영영 변하지 않게 만들 수도 있겠지.
어쩌면 그건 그 가능성까지 포함한 선물일지도 몰라.
그리고 그 모든 건 당신에게 주어진 거야. 그러니 당신에게도 선택할 권리가 있어.
어떻게 하고 싶어?
아테나, 당신은 어떻게 하고 싶나요?
아테나:흐으음. 네 말은 일견 유혹적이지. 그렇지만 결국 여기까지 오게 된 과정에서의 '너'를 보렴. 너는 결국 영원을 포기하기로 마음먹었어. 질렸든 만족했든간에. 흔들리는 건 으레 오래도록 가졌던 것을 내려놓을 때 드는 내적 갈등이지.
그럼 내가 저울을 써서 영원을 거머쥐었다고 가정해보자. 언젠가는 반드시 너처럼 그만두고 싶어지는 때가 올걸.
간결하게 말하자면, 나는성공한 나 자신에게 질리고 싶지 않단다.
내 성공이 오래도록 이어진다면 분명 좋기는 하겠지, 그렇지만 그건 오롯이 내 힘으로 얻어낸 것이어야만 해. 그때 느껴지는 희열과 기쁨, 충족감은 이런 저울 같은 물건에 의지해선 얻을 수 없거든.
(매력적으로 웃는다.) 아무리 좋은 것이라도 오래 보면 질리기 마련. 그런 식으로 나와 내 성과를 소모시키긴 싫단다.
아이비:…그게 당신의 대답이야?
그렇구나.
당신의 대답에 아이비는 희미하게 웃습니다.
그는 낡은 저울을 들어올려 접시 반대 편에서 추를 빼내고 새 접시를 답니다.
이제 저울이라기보다 천칭같은 모습이네요.
아이비:한 쪽에 보석을, 다른 한 쪽에 당신의 물건을 올려.
아테나:(다이아몬드와 목걸이를 꺼내어 각각 저울의 접시 위에 올려둔다.)
아테나는 두 물건을 천칭 양 쪽에 올립니다.
한 쪽은 거대한 다이아몬드, 그리고 한 쪽은 당신이 오늘 유진에게 받은 목걸이입니다.
무게도, 크기도 너무나 차이가 나는 두 가지의 물건을 올려놓고도 천칭은 고정된 것처럼 조금도 움직이지 않습니다.
아이비:(천칭을 높이 들어올리고는 당신과 시선을 맞춘다.) 내가 하는 말을 따라해줘.
멜 록스여, 보라.
아테나:(호오. 신기하네.) 멜 록스여, 보라.
아이비:보다 더 밝은 빛에 축복을.
아테나:보다 더 밝은 빛에 축복을.
그러자 천칭이 천천히 기울어지기 시작합니다.
다이아몬드가 허공에 떠오르고 목걸이가 조금씩 가라앉습니다.
그렇게 천천히, 천천히 움직이더니…
툭.
천칭의 쇠막대가 반으로 깨져 부러집니다.
유진에게서 받은 목걸이가 당신의 손으로 떨어지고, 다이아몬드는 땅을 구릅니다.
아이비:... 끝났구나.
이제 다시 그 애를 떠올리면서 웃어도 되는거야.
아이비의 몸이 천천히 반투명해집니다.
그가 주변에서 날아다니던 빛의 구체 두 마리를 양 손에 모아, 당신에게 보내듯 밀어줍니다.
아이비:그 사람에게도, 유진에게도 고맙단 인사 전해줘. 그리고, 착각해서 미안했다고도.
이 둘을 따라 걸으면 두 사람 다 각자의 시간대로 돌아갈 거야.
당신도 저울을 손에 쥐었으니 조금 더 헤멜지도 모르겠지만 그 사람이 마중 올 테니까.
그럼 이만 갈게.
그 말과 함께, 아이비는 빛과 함께 완전히 사라집니다.
아테나:…… 잘 가렴. (조금이라도 후련하려나?)
아테나의 주변으로 빛의 구체 두 개만이 남아있습니다.
그리고… 끼이익.
무거운 철문이 열리는 소리.
유진:테나?
(너를 한번 보더니 숨을 고르게 내쉰다.) 다치진 않았구나.
아테나:이젠 네가 부르는 애칭이 적응될 지경이야. 왜 이리 늦었니?
유진:(그 말에 미묘하게 웃으며 입을 연다.) 다시 묻는 거지만 그래서 싫어?
그 경호원들은 전부 처리하기는 했는데… (왼쪽 어깨를 잡고 몸을 풀듯 고개를 옆으로 쭉 기울였다.) 아, 죽은 건 아니야. 갑자기 큰일난 것처럼 어딘가로 사라졌거든.
(주변을 잠깐 둘러보고는) ……아이비는?
아테나:싫다고 한 적은 없단다? (어깨 가볍게 으쓱인다.) 영원을 고정해두는 게 풀려서 사라졌나 보네. 저울에 다이아몬드랑 목걸이를 올려두고 아이비가 하는 말을 몇 마디 따라했더니 저울이 부서졌단다.
그애도 사라졌고. 네게 고맙단 말을 전해달라던데. 착각해서 미안했다는 건 누구한테 말하라는 건지 좀 헷갈리네.
(빛의 구체를 손끝으로 톡 건드렸다.) 이걸 따라 걸으면 각자의 시간대로 돌아갈 거라는구나.
유진:(어깨를 으쓱이고는 가볍게 대꾸한다. 그렇다면야.) 오, 나한테 하는 말일걸. 나도 갑자기 이 일에 연루가 된 사람이라서.
(아테나가 건드린 빛의 구체를 바라본다.)
빛의 구체가 하나 유진에게 이동해 빙빙 돌더니,
다른 한 쪽 구체와 함께 플라네타리움을 빠져나갑니다.
그 뒤를 천천히 걷습니다.
두 빛은 5층의 외부 계단으로 향합니다.
이 위는 1전망대로 이어진 것 같네요.
따라오라는 듯, 두 빛이 천천히 돌며 앞을 밝힙니다.
유진:그 애, 수많은 세계를 돌아다니다가 그 목걸이가 저울을 움직일 수 있다는 걸 알았대. 그래서 나한테 먼저 왔던 거야.
하지만 내가 조건에 맞지는 않았던 거지.
아이비가 말했었지? 그 저울은 마음을 재는 물건이라고 말이야.
아테나:아하. 목걸이를 준 유진이 아니라 다른 세계선의 유진을 찾아가버렸던 건가 보구나?
유진:맞아. (느리게 눈을 깜빡이고는 웃어본다.) 옛날의 나는 어렸고 무엇이 옳고 그른지도 몰랐고, 바라는 게 있더라도 진짜 원하던 게 무엇이었는지 몰랐을 거야.
곧, 양 쪽으로 나뉘어지는 계단이 나타납니다.
유진과 함께 있던 구체는 왼쪽으로, 아테나와 함께 있던 구체는 오른쪽으로 향합니다.
아테나:그럼 지금은 아니? 무엇이 옳고 그른지. 진짜 원하는 게 뭔지.
자연스레 두 사람은 서로 다른 계단을 걸어올라갑니다.
반대편에서 유진의 목소리가 들려옵니다.
유진:글쎄, 모두 안다고는 못하겠네. 세상에 옳고 그른 건 주관적인 평가니까.
당신도 알다시피 당신과 나의 시간은 다르게 흐르고 있고.
이제는 내가 당신을 이해하려 해도 이해하지 못해.
이건 예측이 아니야, 확신이지.
다음 층계참에서, 두 계단이 다시 만납니다.
반대편에서 유진이 모습을 보입니다.
유진:―미스 히페리데.
이 오만하고 영악한 아가씨야.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예언자 브리즈가 당신에게 미래를 알려드리지요.
(천천히 눈을 깜빡이며 당신을 바라본다. 움직이는 시선이 아래를 향하다 이내 편한 얼굴로 당신에게 미소를 내보인다.)
테나, 당신의 시간을 살아. 당신에게 찾아오지 않을 미래라 하여도 그 수많은 시간 속에서 당신은 영원하였고 그 모든 시간을 내가 기억하고 있으니까.
(당신에게 가까이 다가가 한쪽 무릎을 꿇고 시선을 올려다 본다. 조심스레 네 손을 잡고 미소진 얼굴로 나지막이 속삭였다.)
유진:지금 이 순간, 지금 여기, 우리가 있었다는 사실만은 변하지 않아.
(손등에 짧게 입맞춤하고는 가만히 일어나 뒤로 물러난다.)
유진이 다시 천천히 뒤로 물러나, 자신의 계단으로 돌아갑니다.
아테나:미래를 알려준다기에 조금 설렜는데…… 시시하잖니? (당신은 이 대답을 들으면 그래, 이거야말로 아테나다운 대답이겠지, 라고 생각하겠지. 언제나처럼의 자신만만한 미소를 띈다.)
하지만 그래. 나도 기억할게. 네가 여기 있었고, 우리가 어떠한 한 순간을 함께 공유했었단 것 말이야. 여기의 유진에게 해줄 이야기가 하나 늘었구나.
너는 꽤 나쁘지 않았어. 아마 다신 만나지 못하게 되겠지만 그곳에서도 잘 지내렴. 내가 해줄 수 있는 최고의 덕담이란다. (손을 잡고 입맞춤을 하도록 가만 내어준다. 묘한 기분으로 눈앞의 중년을 내려다보았다. 네게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듣는 예언이네.)
(이 일은 그에게도 꽤나 특별한 기억이 될 것 같았다.)
아테나는 제 위치로 돌아간 유진과 마주합니다.
그는 대답 대신 눈을 깜빡이고는 미소만을 남긴 채 뒤돌아 계단을 걸어올라갑니다.
몇 번 철골 계단 위를 걷는 발소리가 들리고 나면 더는 위에서 아무 소리도 들려오지 않습니다.
아테나가 가야 할 계단은 앞으로 조금 더 남아있습니다.
.
당신 눈 앞에 펼쳐진 계단에서 위를 향해 조금 더 걷습니다.
혼자가 되니 주변은 온통 조용합니다.
도시의 불빛은 전부 다 꺼져 아직 돌아오지 않네요.
지면이 한참이나 아득해지면, 빛의 구체가 자리에 멈춰 가까이 오라는 양 빙빙 돌기 시작합니다.
그것에 더 가까이 다가가면…
덜컹.
위쪽, 1전망대의 외부 계단으로 이 시간대의 유진이 뛰쳐나오는 모습이 보입니다.
어라라?
그 모습을 시선으로 다 쫓을 새도 없이 세계가 화이트아웃됩니다.
…
… 그리고, 눈을 뜨면 주변은 온통 새하얗습니다.
투명한 실루엣들이 주변을 오가고 있습니다.
어라, 여긴 어디지?
나는… 어디로 가고 있었더라.
그런 것을 멍하니 생각하고 있으면 문득 깨닫습니다.
사람이 투명한 것이 아닙니다.
당신이 투명한 겁니다.
온갖 것이 무감하고, 아무것도 와닿지 않습니다.
그 무엇도 당신의 세계에 있는 것들이 아닙니다.
모든 세계를 바라보며 당신은 이 모든 일들이 무의미하다는 것을 깨닫습니다.
주변에 있는 모든 것들이 한 순간 피어오르면, 곧 다시 꺼져 사라집니다.
모든 조각에서 제각각의 사람들이 저마다의 이유로 슬퍼하고, 기뻐하고, 사랑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 식으로 사라져 갑니다.
“왜일까?”
문득 누군가 당신에게 묻습니다.
당신은 대답할 수 있습니다.
아테나:인간은 영원할 수 없으니까.
찰나의 순간 자신을 가장 밝은 불꽃으로 태웠다가 흐드러지는 거겠지.
(진이 쭉 빠지는 듯한 탈력감이 들었지만 마냥 무의미한 일이라고만은 생각되지 않는다. 분명 자신에게도 슬퍼하거나 기뻐할 만한 일이 있었을 것이다. 사랑이란 건 좀 바보같아 보이긴 하지만.)
‘그 사람’ 은 언젠가부터 투명한 당신을 바라보고 있습니다.
곧이어 그가 대답합니다.
“나도 그렇게 생각해.”
그리고 당신의 손을 잡아당깁니다.
이끌려 한 발자국을 내딛으면, 세계에 금이 갑니다.
어디선가 들려오는 고동 소리가 크게 울려 퍼집니다.
...
아테나, 당신은 살아있습니다.
두근, 하고 몸에서 고동이 크게 울립니다.
유진:아테나!
덜컹거리는 소리와 함께 당신의 몸이 크게 기울어지고, 아득하게 멀고 어두운 지면이 보입니다.
막 떨어질 것처럼 층계참에 아슬히 몸을 빼둔 당신을 유진이 끼어들어 온 몸으로 막고 있습니다.
그의 왼손에는 지팡이가 쥐여 있습니다.
유진은 그대로 힘을 주고 아테나를 끌어안아 뒤로 밀어냅니다.
쿵,
아테나의 등이 벽에 닿고
서로 기댄 형태로 바닥에 주저 앉습니다.
떼구르르 굴러가는 지팡이 소리만이 층계참에 울려퍼집니다.
아테나:어머. 내가 왜 이러고 있지? (고개를 절레절레 젓는다.)
이 곳은… 2전망대에서 관제실로 오르는 외부 계단의 층계참.
당신을 끌어안은 유진에게서 빠른 심장 소리가 전해지고 있습니다.
겨울인데도 난로처럼 몸이 뜨겁고, 숨을 몰아쉬고 있습니다.
그것을 가만히 느끼고 있으면 당신이 원래 자신의 시간대로 돌아왔다는 것을 깨닫습니다.
유진:그건 내가 묻고 싶은 말이에요. (네게서 떨어지며 숨을 고른다.)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
아테나:꽤나 많은 일이 있었지……
내가 세상을 정상화시키는 데 일조했다고만 알아두면 돼. (더 뜻모를 소리로 들릴 말이나 하며 지팡이를 줍는다. 그제야 이전의 기억이 조금씩 떠오른다. 다소 헤맬지도 모른다더니 이게 그 의미였나 보네. 아무리 그래도 날 바깥에서 떨어뜨려 죽일 뻔하다니. 마지막까지 맹랑한 애라니까, 진짜.)
넌 뭘 하고 있었니? 어린애 친구는 찾아줬고?
(자연스럽게 지팡이 건네준다)
유진:(숨을 내몰아 쉬며 좀처럼 보기 힘든 표정으로 이해할 수 없다는 듯 너를 바라보았다.)
내가 묻고싶은 건 저 위에서 어쩌다 여기까지 왔냐는 거예요. 당신이 이만한 거리를 걸어서 내려올만한 사람이 아니잖아, 안그래?
(자연스럽게 건네준 지팡이를 받았다.) 혹시나 싶어서 직원에게 길을 물어서 왔더니. (눈을 깜빡이며 숨을 내쉰다. 한껏 진정된 숨소리이다.)
내가 찾아주었다기보다는 아이도 갑자기 사라져버리는 바람에 두 사람을 찾느라고 힘들었지. 우리, 연락할 방법도 없었잖아요.
아테나:정전이 됐었잖니. (설마 이것도 없었던 일이 되진 않았겠지?) 혹시나 그 여파가 프로피온까지 미칠까 봐 좀 확인해보려고 바깥까지 나왔단다. (납득시키기 어려울 것 같긴 하지만 일단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의 변명을 대본다)
그나저나 그애 사라졌니? 처음 봤을 때부터 재수가 없더라니. (이 틈을 놓치지 않고 험담함) 네가 고생이 많았겠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