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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0223~250415] 유진&아테나 - 나는 살아서 말하리라 ch 1. 스와콥문트를 동경하는 자들

초현_c 2025. 4. 16.

플레이타임 : 약 23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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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대의 달은, 한낱 인간 따위는 너무도 손쉽게 잡아먹으려 드는 것 같을 정도로 무거운 배를 부풀린 채 거친 눈을 뜨고 있습니다.
 
18살 9월, 사관학교에 입학하고 첫 달이 지나갔습니다.
 
각성자들은 학교에 적응하고 제나름의 친분을 쌓아 가며 바쁜 시간을 보내고 있습니다.
 
사관학교라고 해도 결국 분류는 대학, 지식의 보고죠.
 
바쁘게 뛰어가는 선배들, 과제 탓에 골몰하며 늦은 시간까지 도서실 불을 환히 밝히는 학생들, 느슨한 자유와 적당히 용인되는 비행.
 
저 장벽 너머에선 도무지 보기 어려운 녹음이 교정을 아름답게 물들이고 있었습니다.
 
세상이 다 이곳 같지는 않겠지만 어쨌든 오늘은 날이 좋아 하늘까지 맑습니다.
 
그것이 다 갖기 어려운 축복이라는 사실을, 카사블랑카의 시민들은 머리로나 알지 가슴으로는 제대로 인지하지 못합니다.
 
문득 손목에 찬 스마트워치가 반짝이며 알림을 울립니다.
 
홀로그램 패널이 온통 노란색이네요. 늦지 말라고 성화입니다.
 
오늘은 1학년 학생들이 두근거리며 기다리던 첫 가상 훈련이 있는 날이니 당연하겠지요.
 
운동장 두 개 크기만큼 널찍한 홀로그램 단련실에서 특수 렌즈를 착용하면 바깥 사막과 동일한 환경을 구성해 둔 가상 VR 세계로 진입할 수 있습니다.
 
첫 한 달간 이론으로만 배운 전투를 어서 빨리 실전과 비슷한 공간에서 경험하고 싶다며 애가 닳은 학생도, 몹시 긴장하여 창백하게 질린 채 서 있는 학생도 있습니다.
 
사실 학생들이 가장 궁금해하는 건 ‘자신과 맞는 구현자나 설계자가 누굴까’일 겁니다.
 
페어로 활동하는 각성자들은 70% 가량, 거기서 다시 15% 정도의 비율이 ‘각인’을 맺어 시너지를 내곤 합니다.
 
페어를 자율적으로 정하라고 하면 보통 친한 친구끼리 무턱대고 함께했다 도리어 전투 방식이 맞지 않아 다치는 경우가 있었으므로,
 
1학년 때에는 하늘길 시스템이 신체 데이터를 통해 서로 보조해줄 수 있겠다고 판단한 후보 학생들과 여러 번 짝을 바꾸어 가며 누가 자신과 알맞는지 테스트를 해 보는 것이 관례입니다.
 
깐깐해 보이는 학생부회장이 명단을 읽습니다.
 
요한 에를리히:자, 첫 번째 임시 페어 부른다.
구현 A반의 스즈키 와타루, 설계 E반 노노이 라가힛. 앞으로 서. 다음, 구현 B반의 시트라 볼크, 설계 D반 이한영…….
 
각자 자신의 임시 페어를 찾느라 장내가 소란스러워졌습니다.
 
당신의 이름은 한참 기다린 후에야 불렸습니다.
 
요한 에를리히:… 구현 B반, 유진 브리즈. 설계 E반, 아테나 히페리데.
 
꽤나 익숙한 이름이네요.
 
대대로 의료계에 종사하며 부와 명성을 쌓아 이미 부모 대에 카사블랑카로 이주해왔다던, 소위 ‘빽 있는’ 집안 출신.
 
집안 배경뿐 아니라 도도하고 오만한 성격으로 교내에서도 여러모로 유명합니다.
 
그런 사람과 페어가 됐다니…… 행운일까요 불행일까요?
 
저 멀리서 걸어오는 아테나가 보입니다.
 
아테나 K. 히페리데:흐음. 너구나? 대화해보는 건 처음이지? (이미 자신이 누군지 알 거라고 확신하는 듯, 자신감 넘치는 태도다.)
 
유진 N. 브리즈:(오, 대단한 자신감.)
(네 태도에 잠시간 바라보더니 재미있다는 듯 미소지었다.) ―우리 초면 아니던가요? 뭐, 내가 당신을 알고 있는 건 맞지만. 잠시간 잘부탁해요.
 
아테나 K. 히페리데:내 이야기 들었을 거 아니니. 나도 브리즈 형제가 나란히 각성자학교에 입학했단 소식 정도는 알고 있었고. (제 머리칼을 어깨 너머로 휙 넘긴다.) 어중이떠중이가 걸리면 바꿔 달라고 할 생각이었는데, 너 정도면 괜찮아 보이는구나. (당신을 노골적으로 위아래로 훑어본다.) 실망시키지 마렴?
 
유진 N. 브리즈:(흐음. 노골적인 시선에 저도 모르게 피식 웃었다.) 소문이라는 거 믿을 게 못 되던데. 눈으로 보기 전까지는 안심하지 말아요. 하지만 나는 당신의 그 기대에 부응해드리죠. ‘미스 히페리데’.
 
아테나 K. 히페리데:(그 호칭이 마음에 드는 듯 입꼬리 씩 올려 오연하게 미소한다.) 자, 그럼 우리 기수에 얼마나 한심한 애들이 많은지 보기나 하자꾸나.
 
앞선 순서 팀이 훈련실로 들어가고, 그들이 바라보는 가상 환경과 전투 광경이 부속실의 대형 스크린으로 중계되기 시작합니다.
 
학생들은 친구들을 응원하면서 손에 땀을 쥐는 스포츠처럼 중계를 관람하기 시작합니다.
 
가상 훈련인 만큼 부상을 입을 일은 없지만,
 
신체 부위마다 장착된 센서가 타격을 받으면 착용한 방어구가 고정되어 실제 부상처럼 움직임을 차단해 해당 부위를 사용할 수 없게 됩니다.
 
이 훈련 안에서는 진짜 다친 것이나 다름없죠.
 
몇몇 팀은 훌륭한 성과를 냈으나 대부분은 기본적인 타격 범위조차 가늠하지 못하고 제한 시간을 초과합니다.
 
비난받을 일은 아닙니다, 모두가 처음이니까요.
 
교수들도 채점 기준을 너그럽게 두고 있는 것 같습니다.
 
비록 곁의 아테나는 조소를 짓고 있지만……
 
유리 모하에:저기, 지금 좌표 C4에서 총 쏘고 있는 애 이름이 뭐더라?
 
요한 에를리히:아까 말했잖아. 입학 체력평가 때 5등인가 했다던 애라고.
 
불쑥 뒤에서 말을 건 사람은 학생회장 유리 모하에와 부회장 요한 에를리히입니다.
 
3학년 생도들 중 우수한 학생들은 1학년 생도들의 멘토가 되어 졸업하기 전까지 2년간 상급생으로서 후배들을 이끌어 주는 제도가 있는데,
 
구현 B반과 설계 E반의 멘토가 바로 이 페어입니다.
 
운이 좋다고 볼 수 있죠. 두 사람은 각 학년 수석 및 차석을 번갈아 차지하고 있었으니까요.
 
학기 첫 주에 유리가 구현자, 요한이 설계자라는 소개를 받았던 기억이 납니다.
 
유리 모하에:(대추야자 세 개를 한입에 삼키곤 씩 웃는다.) 설마 쫄아버린 건 아니지, 두 사람~? 눈빛은 좋아보이는데!
 
유진 N. 브리즈:(근처로 다가온 이들을 보고 가볍게 인사한다. 이어 웃고는) 그럴리가요. 해야 할 일이라면 제대로 해내고 싶을 뿐입니다. (옆에 있을 아테나의 반응을 살피듯 눈짓한다.)
 
아테나 K. 히페리데:(교양없긴! 하는 눈빛으로 유리를 바라보다가 새침하게 답한다.) 누가 이런 일에 위축되나요? 한 달 내내 배운 이론을 적용해볼 좋은 기회인데요.
 
유리 모하에:이야~ 포부가 대단한데. 너희 그러고 보니 1학년들 사이에선 꽤나 유명인사라며?
 
유진 N. 브리즈:(내가? 처음 듣는 말이다.)
 
유리 모하에:(유진의 어깨를 가볍게 두드린다) 유안 브리즈가 네 형이지? 걔랑도 좀 아는 사이거든. 형제가 나란히 각성자라니 멋진데.
 
요한 에를리히:(옆에서 혀 찬다.) 화면에 집중.
 
유리 모하에:그래 그래. 아무튼 너희 자신감 보니 가상 훈련에는 어렵잖게 적응하겠네. 빨리 실전 나가고 싶다고 안달나는 거 아닌가 몰라~
 
‘입학 체력평가 때 5등인가를 했다던’ 동급생이 화면 안에서 정확한 사격 실력을 보여 주고 있습니다.
 
능력이 총과 관련된 학생이었던 것이 얼핏 떠오르네요.
 
곁에서 그의 페어가 소리를 지르는 게 스피커를 통해 울립니다.
 
“좀 더 위로 경로를 끌어올릴 테니, 한 번에 쏘아 터뜨려! 마지막 한 방이다 생각하고 해치우자고!”
 
곧이어 설계자 쪽이 설계한 경로를 따라 미로를 뚫고 지나가듯 구현자의 총알이 궤적을 바꿉니다.
 
허공에서 몇 갈래로 갈라진 총알 파편이 굉장한 소리를 내며 크리쳐형 로봇의 머리를 터뜨립니다.
 
지켜보던 동기들이 환호성을 울립니다.
 
유리 모하에:어때? 저 두 사람은 합이 꽤 잘 맞는 것 같지? 너희는 인사 나눴어?
 
속 시원한 타격감을 따라 박수를 치던 유리가 유진과 아테나를 돌아봅니다.
 
유진 N. 브리즈:(그 말에 아테나를 한번 바라본다.) 네. 합이 맞을지는 이제부터 확인해보려고요. (농조)
 
아테나 K. 히페리데:(시선이 잠깐 맞닿는다.) 안 맞으면 바꾸면 그만이죠, 뭐.
 
유리 모하에:한 번에 동조율 높은 페어를 만나기도 어려운 일이니까. 그래도 이왕 하는 거 열심히 해보자고!
 
짧은 대화를 나누며 얼마나 기다렸을까요, 이제 두 사람의 순서입니다.
 
보급받은 특수 렌즈와 방어구를 착용하자 몸이 다소 무거워졌습니다.
 
유리와 요한은 통신 인이어를 끼면서 조원들에게 손짓을 합니다.
 
유리 모하에:자, 절대 긴장하지 말고. 굉장히 현실적이지만 실상은 그냥 거대한 훈련실이란 걸 잊지 마.
 
요한 에를리히:그렇다고 실전상황이 아니라는 생각으로 임해서도 안 된다. 그런 감각에 익숙해지면 장벽 너머로 나아가 진짜 적을 맞닥뜨려도 그 상황을 모의 훈련이나 게임처럼 느껴 버리고 마니까.
 
유리 모하에:우리가 앞뒤에서 너희를 엄호해 줄 거고, 진짜 부상을 입었을 경우에는 곧바로 시계 옆 S버튼을 연달아 세 번 눌러.
다들 알겠지만 원래 이 버튼 세 번 신호는 실제 위급상황에서 연락처에 등록된 비상번호 쪽으로 연락을 보내는 시스템인데, 이 훈련실 범위에 한정해 그 비상신호가 관리 교수님들께 도달하도록 시스템이 변경되어 있어. 게다가 저기 스크린으로 모두 보고 있을 테니까. 알았지?
 
아테나 K. 히페리데:그러니까, 긴장 같은 거 안 했다니깐요.
 
유진 N. 브리즈:(진짜 부상 당하는 일이 없으면 좋겠는걸.) 알겠습니다.
 
주의사항을 몇 가지 더 들은 후에야 훈련실 입실이 재가되었습니다.
 
네 사람이 모두 입실하고 마침내 문이 닫히자, 눈을 제대로 뜰 수도 없는 모래바람이 붑니다.
 
근래의 방독 마스크는 기능이 좋아 쓴 것 같지도 않게끔 호흡하게 해준다지만 이런 기후 속에서는 그마저도 여의치 않네요.
 
인이어 안에서 거친 숨소리가 울립니다.
 
한 차례 먼지 폭풍이 가셨을 때 비로소 풍경이 보입니다.
 
‘재앙의 날’을 기점으로 인류가 유사 이래 이룩한 빛나는 문명은 전부 사토 속에 묻혔습니다.
 
첫 몇 년간은 식물들조차 제대로 뿌리내리지 못해 말라 죽어갔던 고로,
 
당대에 흔히들 ‘인류가 멸망하면 몇 년 안에 건물 벽면을 담쟁이덩굴이 뒤덮고, 동물들이 활개를 치며……’ 라고 상상하던 광경조차 제대로 전개되지 않았었다고 하죠.
 
가동을 중단한 원자력 발전소가 비상 전력마저 잃고 인간이 직조한 가장 큰 멸망을 세상에 내보내려는 순간
 
갓 개화한 각성자들이 그 위기를 막아 처음으로 인류사에 큰 족적을 남겼습니다.
 
사람을 징벌하려 드는 것 같은 함신,
 
인간의 오만을 꾸짖듯 흐려진 날씨,
 
찬란했던 문명에 바치는 추모비처럼 모래 속에 묻혀 쓸쓸히 늙어 가는 빌딩숲,
 
그리고 멀리 가장 거친 먹으로 그려낸 듯이 일렁이는 바다.
 
장엄한 자연의 비난을 처음 보는 1학년들은 말을 잃기 마련이죠.
 
이 광경에 익숙한 멘토들이 앞장서 홀로그램 패널을 띄웁니다.
 
요한 에를리히:이 공간은 카사블랑카 북동쪽 게이트 바깥 구역과 일치하는 구조로 생성된 거야. 설계자들은 각자 지도에서 목적지까지의 최단 경로를 표시해 봐.
 
설계자인 아테나, <항법> 판정.
 
아테나 K. 히페리데:(가상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만큼 사실적인 공간이다. 모래바람에 반사적으로 눈을 감았다가 뜨고는 지도를 주의깊게 바라본 뒤 바닥을 향해 손을 뻗는다.)
항법
기준치: 90/45/18
굴림: 33
판정결과: 어려운 성공
 
그러자 아테나의 손길로부터 푸른빛이 도는 거미줄이 쏘아져나오더니, 가장 짧은 경로를 표시하듯 한 지점을 향해 뻗어갑니다.
 
무너져내린 잔해와 건물을 단번에 덮으며 뻗어나가는 거미줄의 모습이 인상적이네요.
 
요한 에를리히:(패널과 눈앞의 거미줄을 번갈아보며 올바른 경로가 표시되었는지 꼼꼼히 확인하곤 고개 끄덕인다.) 음, 좋아.
이제 우린 이 경로를 믿고 목적지까지 이동하면서 크리쳐 로봇을 하나 이상 파괴한다.
 
유리와 요한은 몇 가지 조언을 이어 갑니다.
 
가장 먼저 강조된 것은 안전이었고, 그 다음으로 이어진 조언은 엄폐물과 환경을 활용하는 방법입니다.
 
낡아 가는 건축물들을 이용해 몸을 숨기고 접근했다가,
 
설계자의 경로 구현에 에너지를 실어 구현자가 한 방을 터뜨리는 것이 기초적인 전투 방식이라고 합니다.
 
유리 모하에:마침 저기 적당한 폐건물이 보이네. 이동해볼까?
 
넷은 가장 가까운 폐건물 옥상으로 올라갑니다.
 
유리는 유진에게 단추 정도 크기의 정찰 드론을 건네줍니다.
 
유진 N. 브리즈:(작다.)
 
유리 모하에:이걸 바깥으로 던질 건데, 너네가 할 거야. 서쪽으로 30m 정도 위치에 크리쳐 로봇이 있어. 설계자는 왼쪽 창문으로 거리를 가늠하고 에너지 흐름을 느껴. 구현자는 이 드론에 네 에너지를 실어서 던지는데, 설계자의 경로에 얹어서 실어 보낸다는 느낌으로 해야 해.
나중에 익숙해지면 이런 드론 같은 유도장치 없이도 두 사람의 에너지 운용이 손쉽게 합쳐지는 거지. 자, 해 봐! 무서워하지 말고.
 
구현자는 정찰 드론을 던지면서 본인의 이능력과 관련된 핵심 기능 판정을, 설계자는 <항법> 판정을 시도합니다.
 
아테나 K. 히페리데:잘 하렴?
항법
기준치: 90/45/18
굴림: 4
판정결과: 극단적 성공
 
유진 N. 브리즈:……날씨가 너무 안 좋은데. (아테나의 말에 힐끔 바라보더니 혼잣말처럼 중얼거린다. 푸른 경로를 따라 능력을 실은 드론을 던진다.)
사격(권총)
기준치: 90/45/18
굴림: 55
판정결과: 보통 성공
 
그것은 몹시도 기이한 경험이었습니다.
 
전신의 감각이 단번에 확장되고, 시야가 환하게 트입니다.
 
공중에 투명하게 고여 있던 에너지가 희미한 푸른색으로 일렁이며 물들고,
 
제멋대로 엉겼다가 흩어지기를 반복하던 에너지 흐름이 점차 정렬되어 미로 지도 같은 꼴을 이룹니다.
 
방향은 서쪽으로 30m, 아테나는 에너지의 흐름을 가지런히 한 가닥으로 이어 뽑아 경로를 설정합니다.
 
유진이 섬세한 거미줄 위에 제 힘을 실어 드론을 날려 보냅니다.
 
미끄러지듯 경로를 타고 바깥을 떠가던 드론은 이내 적절한 길을 찾아 크리쳐 로봇에게로 향합니다.
 
머지않아 드론이 네 사람의 홀로그램 패널에 30m 너머의 크리쳐 로봇을 비춥니다.
 
미끌거리는 피부, 구역질나는 주둥이 속에서 긴 송곳니 두 개가 번쩍이는 크리쳐가 그르릉거리고 있습니다.
 
몹시도 끔찍한 모습이네요. <이성> 판정 (1/1D3)
 
유진 N. 브리즈:(어우)
SAN Roll
기준치: 65/32/13
굴림: 22
판정결과: 어려운 성공
 
아테나 K. 히페리데:
SAN Roll
기준치: 70/35/14
굴림: 79
판정결과: 실패
3
(오만상) 징그러.
 
2:1 전투를 시작합니다.
 
순서는 민첩 수치에 따라 유진-로봇-아테나...입니다.
 
:아테나와 유진의 부상은 가상 부상으로 처리되기에 실제 체력은 소진되지 않지만, 두 부위 이상 부상을 당할 경우 패널티 다이스 1개를 부여받습니다.
 
유진 N. 브리즈:
바람
기준치: 90/45/18
굴림: 42
판정결과: 어려운 성공
피해: 8
(날씨를 확인하고는 손을 모아 눈 앞의 크리쳐를 향해 사격하는 자세를 취한다.)
 
교육용 크리쳐 로봇:(당신의 존재를 알아차리고는 역겨운 주둥이를 쩍 벌리고 덮쳐들어 날카로운 이빨로 다리를 물어뜯으려 든다.)
비무장
기준치: 70/35/14
굴림: 28
판정결과: 어려운 성공
피해: 3
 
크리쳐가 달려들었으나, 유진의 바람이 더 빨랐습니다.
 
마치 총탄과도 같은 강렬한 위력의 바람이 크리쳐를 꿰뚫고 지나갑니다.
 
크리쳐의 송곳니가 하나 부러져 나가고, 몸뚱이에서 푸른 피가 흘러내립니다.
 
크리쳐 hp 5 감소. (8/13)
 
교육용 크리쳐 로봇:그륵……. (침을 흘리며 두 사람을 번갈아 바라본다.)
1. 유진 2. 아테나 2
 
유진 N. 브리즈:(오...)
 
교육용 크리쳐 로봇:(달려드는 대신 아테나를 향해 입을 벌리더니 강한 불꽃을 쏘아낸다.)
사격 (중화기)
기준치: 60/30/12
굴림: 39
판정결과: 보통 성공
피해: 2
 
아테나 K. 히페리데:이게 미쳤나 봐. (재빠르게 손을 내뻗자 거미줄이 뭉텅이로 뻗어나간다. 노리는 것은 크리쳐의 입. 아예 열지 못하게끔 막으려는 듯이)
설계
기준치: 90/45/18
굴림: 10
판정결과: 극단적 성공
피해: 4
 
크리쳐가 입을 벌리는 속도보다 아테나의 거미줄이 입을 막아버리는 속도가 빨랐습니다.
 
터져나오려던 불꽃이 입안에서 맴돌다 펑! 하고 폭발하는 소리가 납니다.
 
크리쳐 hp 4 감소. (4/13)
 
아테나 K. 히페리데:(내친김에 끝내버리겠다는 듯 거미줄을 추가적으로 뽑아내어 크리쳐의 목덜미에 밧줄처럼 휘감는다.)
설계
기준치: 90/45/18
굴림: 81
판정결과: 보통 성공
피해: 1
 
교육용 크리쳐 로봇:(날카롭게 비명을 질러대며 고개를 마구 휘저어 거미줄을 뜯어내려 발버둥쳤다.) 키에에엑!
비무장
기준치: 70/35/14
굴림: 54
판정결과: 보통 성공
피해: 7
 
크리쳐가 발악하였으나 거미줄이 그 동작보다 빠르게 목을 휘감고 파고듭니다.
 
그러나 설계자의 한계일까요, 조여드는 목에서 피가 흐르긴 했지만 치명적인 데미지까지는 주지 못한 듯합니다.
 
크리쳐 hp 1 감소. (3/13)
 
유진의 턴.
 
유진 N. 브리즈:(다시 집중해서 크리처를 노린다.)
바람
기준치: 90/45/18
굴림: 65
판정결과: 보통 성공
피해: 1
 
교육용 크리쳐 로봇:(몸을 옥죄는 거미줄에서 벗어나려는 듯 펄쩍 뛰며 유진에게 몸통박치기를 시도한다)
비무장
기준치: 70/35/14
굴림: 84
판정결과: 실패
피해: 3
 
달려들던 크리쳐는 바람에 밀려 옆으로 내던져집니다.
 
철퍽! 바닥에 부딪히는 소리가 퍽 역겹네요.
 
크리쳐는 이제 거의 빈사로 보입니다. hp 1 감소. (2/13)
 
교육용 크리쳐 로봇:1. 유진 2. 아테나 1
(눈앞에 먼저 보이는 상대에게 달려들며 입안에서 다시금 불길을 퍼붓는다)
사격 (중화기)
기준치: 60/30/12
굴림: 97
판정결과: 실패
피해: 3
 
유진 N. 브리즈:(반사적으로 손을 뻗어 크리처를 향해 한번 더 공격한다.)
바람
기준치: 90/45/18
굴림: 50
판정결과: 보통 성공
피해: 4
 
유진의 바람이 크리쳐의 입안을 정확히 강타합니다.
 
불길은 모래바람에 먹혀 사그라들고, 크리쳐가 바닥에 축 늘어집니다.
 
유리 모하에:(전투 상황과 홀로그램을 번갈아 지켜보다 눈을 크게 뜬다.) 최초 동조율이 60% 이상으로 계산됐어. 이거 놀라운데.
 
요한 에를리히:끝냈군. 고생했다.
 
사투 끝에 첫 전투가 마무리되었습니다.
 
아테나 K. 히페리데:(상처 하나 없다. 자신만만하게 팔짱 낀다.) 이래야지. 너도 조금은 하는구나?
 
유진 N. 브리즈:제법 실전같은데. (심호흡 하듯 숨을 내뱉었다.) 덕분에. 설계 경로가 괜찮던데요?
 
아테나 K. 히페리데:내가 얼마나 노력했다고 생각하는 거니. 태생적으로 위력이 낮은 건 마음에 안 들지만. 네 능력, 완전 공격 쪽으로 타고난 수준이더라. 역시 설계자 혼자서는 안 되는 건가. (중얼거리며 제 손을 몇 번 쥐었다 폈다.)
 
유진 N. 브리즈:(그 행동에 저도 따라 손을 몇 번 쥐었다 편다. 빈 손바닥을 바라보다 천천히 손을 내렸다.) 처음부터 공격적인 게 아니라 공격적으로 만든 거지. 이런 건 날씨의 영향을 많이 받아서요. 사격을 흉내내는 건 처음 시도해봤는데 나쁘지 않네.
 
아테나 K. 히페리데:그러니? 날씨가 좋을수록 네게 이점인 건가, 아니면 나쁠수록? 장벽 밖은 환경이 나빠서 대체로 이 지경일 텐데. (거칠게 부는 함신에 잠시 옷을 끌어올려 입가를 가린다.) 응용력이 좋구나. 너와 페어가 된 게 점점 더 만족스러운걸.
 
유진 N. 브리즈:오늘처럼 바람이 강하다면 나는 좀 부담스럽네요. (한번 슥 본다.) 살면서 가끔 애드리브는 필요한 법이니까. 안그래요?
 
아테나 K. 히페리데:좋은 설계자를 만나야겠는걸. 나와 임시 페어가 된 걸 행운으로 생각하렴. (오만한 태도가 몸에 배여 있다) 전투는 짜여진 대로 돌아가는 판이 아니니 애드리브를 발휘해야 할 상황이 많을 거야. 적응하고, 감각을 길러야겠지. 그러려고 이런 모의 훈련이 있는 거지만.
 
유리 모하에:너희, 협력 수준이 아주 좋던데. 크리쳐를 물리치는 속도도 평균 이상이었어.
 
아테나 K. 히페리데:좀 더 칭찬하셔도 좋아요. (싸가지x)
 
유진 N. 브리즈:(아테나 슥 봄) 과찬입니다.
 
아테나 K. 히페리데:(째릿)
 
반파된 크리쳐를 바라보며 문득 드는 생각이 있습니다.
 
<관찰력>, 혹은 <지능> 판정
 
유진 N. 브리즈:
지능
기준치: 85/42/17
굴림: 47
판정결과: 보통 성공
 
저것은 어떤 길짐승도, 어떤 날짐승도 닮지 않았습니다.
 
……방사능 탓에 변이된 동식물이라기엔 조금 이상하지 않나요?
 
유진 N. 브리즈:(음?)
(이렇게 생긴 생물이 있던가?)
……. 이 크리쳐는 어떤 생물이죠? 비슷하게 생긴 녀석들은 지금까지 본 적이 없어서요.
 
유리 모하에:글쎄, 나도 몰라. 근데 크리쳐들이란 게 절반은 저래. 동식물들이랑 비슷하게 생긴 놈들도 있지만 도무지 왜 저렇게 생겨먹었는지 알 수 없는 놈들도 있거든.
 
유진 N. 브리즈:특이한 개체들이네요.
 
잠시 호흡을 가다듬으며 상념에 잠겨 있던 때,
 
동쪽 모래 폭풍 너머로 멀리 거대하게 솟은 첨탑이 어른거립니다.
 
<관찰력> 판정을 시도할 수 있습니다.
 
유진 N. 브리즈:
관찰력
기준치: 65/32/13
굴림: 83
판정결과: 실패
 
모래바람이 어른거려 잘 보이지 않네요.
 
한번만 다시해볼까?
 
유진 N. 브리즈:
관찰력
기준치: 65/32/13
굴림: 32
판정결과: 어려운 성공
(안경 벗어버림...)
 
아니 벗어도 보이냐고
 
부드러운 모랫빛 모스크입니다.
 
상단부에 발린 청록색 염료가 누렇게 바랬고, 아름다운 문양이 둘러쳐졌습니다.
 
아랫부분의 아치형 석벽에 파도가 들이칩니다.
 
침묵 어린 시선으로 그것을 바라보던 유리가 두 사람을 돌아봅니다.
 
유리 모하에:저 모스크는…….
 
뭔가 말하고 싶은 게 있는 눈치인데, 유리는 다른 것을 의식하는 모양입니다.
 
곧 입을 꾹 다문 유리가 몸을 돌립니다.
 
유리 모하에:가자. 다른 애들이랑 합류하게.
 
유진 N. 브리즈:(모스크를 바라보다 유리의 반응을 보고는 일단 따라간다.)
 
첫 가상 훈련이 종료되고 학교는 잠시간 그 화제로 시끄러웠습니다.
 
저마다 제 임시 페어와의 동조율이 어땠는지, 자신이 크리쳐 로봇을 얼마나 멋지게 부수었는지 떠들어 댔죠.
 
저런 흥분도 반복된 훈련을 거치고 나면 결국 사그라든다는 것을 아는 멘토들만 쓴웃음을 짓습니다.
 
이윽고 토요일, 학생들은 간만에 찾아온 휴식을 누리고 있습니다.
 
유진은 방금 잠에서 깬 참입니다. 이제 뭘 하면 좋을까요?
 
유진 N. 브리즈:(정신 차릴 겸 학교 근처에 있는 공원으로 산책하러 간다.)
 
막 산책하려 나가려던 그때 방문을 열고 동급생이 굴러들어오듯 뛰어옵니다.
 
헉헉거리던 그가 외칩니다.
 
동급생: 야, 너는 아니지?!
 
갑작스레 들어와 ‘너는 아니지’ 하고 묻는다고 해도, 뭐가 아니냐는 말인가요?
 
유진 N. 브리즈:(산책을 방해 당했어)
아니냐니, 뭐가요?
 
동급생은 답답하단 듯이 가슴을 칩니다.
 
동급생: 지금 인자 다 뒤집어졌어! 아직 안 봤어?!
 
유진 N. 브리즈:(인자?)
 
아무래도 서버에 접속해 봐야 할 것 같습니다.
 
유진 N. 브리즈:(인자미나 서버에 접속해본다.)
 
유진이 스마트워치를 통해 인자미나에 접속하면 실시간 검색어 순위 상위권이 보입니다.
 
유진 N. 브리즈:(스와콥문트?)
이게 대체 뭐야?
 
동급생: 이거 봐, 이거. (어떤 글을 클릭하곤 보여준다.)
 
…그러니까, 글의 요지는 ‘정부가 주장하는 바와는 달리 사실 스와콥문트에는 뭔가 조작된 구석이 있다’는 것 같네요.
 
유진 N. 브리즈:(써방 진짜 열심히 했네)
 
동급생: 나 새벽부터 잠 안와서 계속 새로고침 하고 있었는데 야, 글이 진짜 네 번을 올라왔다니까? 그러다 세 번째 글 삭제됐을 때 인자미나 서버가 잠깐 터졌거든? 그 뒤로 저 네번째 글이 오늘 동튼 직후에 올라왔는데 이상하게 저 글은 삭제가 안 돼.
코딩동아리 애들이 그러는데 사이트 자체를 해킹해서 글 작성한 아이디를 특수등급으로 빼둔 게 아니냐고 하더라고. 관리자 권한이 있어도 글 삭제가 안 되게.
 
그러고선 주변 눈치를 본 동급생이 귀에 속삭입니다.
 
동급생: 왜, 이런 반동분자 같은 글은 애초에 AI가 맥락을 검열해서 작성 자체가 안 되잖아. 글쓴 애도 시스템을 뚫을 줄 아는 녀석이 아니냐는 거지. 서버나 해킹, 계산 관련 이능력 가진 애들 아침부터 다 불려갔어.
 
그제야 기숙사가 이상하게 조용하다는 게 느껴집니다.
 
다들 숨을 죽이고 있는 것입니다.
 
정부 정책을 강도 높게 비판하는 사람이 어느 순간 소리소문 없이 사라지는 경우가 있다는 것은 시민들 사이에서 유명한 이야기죠.
 
딱히 근거는 없지만요.
 
유진 N. 브리즈:(아, 아침부터 조용하던 게 그것 때문이었구나?)
지금 이걸 모르는 사람은 있어요? (일단 본인은 몰랐다.)
 
동급생: 너 정도 아니고선 다 알 것 같은데? (좀 한심하게 봄)
 
유진 N. 브리즈:오… 말이 심하지 않나? (농조)
잡혀갈 걸 각오하고 알리고 싶은 사실이었나보지. 헛소문이라면 금방 묻힐 거고 만약 아니라면 정말 뭔가 있다는 거고.
사람들의 불안감을 조성해서라도 얻고 싶은 무언가 말이에요.
 
동급생: 쉽사리 믿기 어렵단 말이지. 네 번이나 올라온 걸 보면 분명 뭔가 있는 것 같긴 한데, 원체 허무맹랑한 얘기잖아? 내 친구들 중에서도 가족이 스와콥문트에 가있단 애들이 있다구.
 
유진 N. 브리즈:흐응. 이유없이 이런 소문이 돌지는 않을텐데. (왜지? 화면을 바라보며 가만 눈을 깜빡인다.) 가족들 안부 확인해 보라고 그래요. 혹시 모르잖아.
 
동급생: 말이야 해보겠는데, 다들 연락 잘만 된다던걸. 아무튼 넌 바람 능력이었으니까 불려갈 일은 없겠지만 괜히 이거 믿는단 식으로 떠들고 다니진 마. 다음날에 갑자기 못 보게 되면 어떡해? (농조지만 마냥 농담처럼 들리진 않는 상황)
 
유진 N. 브리즈:그럼 그때는 내 안위를 걱정해 줘요.
혹시 더 하고 싶은 이야기 있어요? 내가 조금 바빠서. (손으로 바깥을 가리키며 웃어보았다.)
 
동급생: 아니이. (스마트워치를 보여주던 팔을 내린다.) 어디 가려고?
 
유진 N. 브리즈:(아 바쁘다는 거 뻥이었는데)
바람 좀 쐬려고요.
 
동급생: 그래. 조심하는 거 잊지 말고! (한 번 더 당부하곤 밖으로 나간다)
 
유진 N. 브리즈:(걱정이 많은 착한 친구구나...)
 
이런 상황에 남의 눈에 띄어서 좋을 것은 없겠으나 그렇다고 하루 종일 기숙사 방에만 처박혀 있을 수도 없는 노릇이죠.
 
다가오는 중간고사도 있고, 과제도 있는걸요.
 
산책을 해도 좋고, 공부를 한다면 도서관에서 과제용 책을 빌려 자습실로 가도 좋겠네요.
 
유진 N. 브리즈:(공부는 다른 시간의 내가 할 테니 지금의 나는 산책을 하러 가야지.)(산책하러 간다.)
 
사관학교의 한켠에는 잘 꾸며진 공원이 조성되어 있죠.
 
학교를 빙 둘러 산책길도 꾸며져 있습니다.
 
유진 N. 브리즈:(길을 따라 걷는다. 오랜만의 자유를 누려야지.)
 
산책길을 걷고 있자니 확실히 돌아다니는 학생들이 확연히 적습니다.
 
다들 몸을 사리고 있다는 동급생의 말을 실감합니다.
 
어쨌건 날은 맑고 바람은 적당히 시원합니다.
 
유진 N. 브리즈:평소에는 사람이 이렇게 없지는 않았던 것 같은데. (다들 몸 사린다는 말은 사실이었군. 그런 생각을 하며 길 주변을 둘러본다.)
 
조경된 꽃과 정원수가 예쁩니다.
 
돈을 많이 들였나 보군요.
 
유진 N. 브리즈:(학비가 다 이쪽에 쓰이는 건 아니겠지?)(적당히 산책하고 돌아간다.)
 
좋은 산책이었다...
 
이젠 뭘 할까요?
 
유진 N. 브리즈:(기숙사에 돌아가도 조용히 쉬는 것 외에는 할 일이 없을텐데… 학생들이 많이 모일만한 곳이 있으려나?)
(잠시 생각하다 도서관 쪽으로 향한다.)
 
고요한 도서관. 각성자 사관학교의 도서관은 카사블랑카에서도 독보적으로 장서 수가 많아 유명하죠.
 
다가온 중간고사 때문에 대부분 공부에 몰입해 있지만, 서가와 서가 사이에서 두 학생이 수군거리는 소리가 들려옵니다.
 
“…그러니까, 몬로비아에서 시신 발견됐다는 거 구라 아니라니까. 아놀드 박사가 우리 사촌언니 담당교수였잖아.”
 
아무래도 아까 그 게시글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책 너머로 흘끔 살피니 2학년 선배들이네요.
 
궁금하다면 대인기능 판정이나 듣기 판정 등으로 정보를 얻을 수 있습니다.
 
유진 N. 브리즈:
듣기
기준치: 20/10/4
굴림: 65
판정결과: 실패
(흠. 이야기가 잘 안들린다 싶어 책을 뽑아 들고 자연스레 말소리가 들리는 곳으로 향한다.)
(옆에 자리를 잡아 다른 책을 고르는 척 책등을 훑다가 조용히 이야기 하는 선배들을 향해 작은 목소리로 말을 건네본다.) 소리가 너무 크지 않아요? 거짓말이 아니라니, 우리 선배님들 무슨 이야기 중이셨을까?
말재주
기준치: 35/17/7
굴림: 6
판정결과: 극단적 성공
 
"이런, 시끄러웠니? 미안."
 
"하지만 영 석연찮은 일이라서 그래. 너도 오늘 인자에 뜬 글은 봤지?"
 
유진 N. 브리즈:(앞에 검지를 가져다 대고 고개를 한번 끄덕인다.) 그래서 다들 조용하다던데요? 뭐, 탓하는 건 아니고 걱정되어서요. 조심해서 나쁠 건 없으니까.
 
"시끄럽게 떠들어서 좋을 것 없는 내용이긴 한데, 진짜 이상하다니까."
 
그러면서 선배는 한층 목소리를 낮춰 당신에게도 이야기를 해주기 시작합니다.
 
:화학자였던 아놀드 박사는 새로운 물질을 발견해 낸 공로가 있어 스와콥문트 시민권을 획득했습니다.
이후 제자에게 본인의 연구자료를 전부 넘기고 조용한 은퇴 생활을 즐긴다는 것이 널리 알려진 사실이죠. 최근에는 SNS를 통해 요리 연습에 매진하고 있다는 근황을 업데이트한 바 있습니다.
연구실 제자들 중 두어 사람은 아놀드 박사와 간간히 연락을 주고받습니다. 화상이나 음성통화도 이루어졌는데, 학생의 사촌언니 말로는 석연찮은 구석이 있다고 하네요. 연구제자와 아놀드 박사 사이에 있었던 일이라 당연히 알아야 하는 주제에 대해 의례적인 답변이 돌아오거나, 연구주제에 관해 질문해도 정확한 대답을 내주지 못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고 합니다.
 
"화상 통화도 음성 통화도 죄 조작 가능한 시대잖아, 요즘. AI만 있음 뭐든 다 되지. 이미 죽은 사람이어도 살아있는 것처럼 꾸미는 게 뭐 어렵겠어?"
 
유진 N. 브리즈:(AI라… 이야기를 들으며 잠시 생각한다.) 그래서 발견된 시신이, (살며시 주변을 살피듯 눈을 움직이며 책장을 등진다.) 아놀드 박사다? 그런 소문이라도 돌고 있는 건가요?
 
"그래. 스와콥문트에 갔다곤 하지만 사실은 이미 죽었을지도 모른단 거지."
 
"살아있으면 가장 좋겠지만! 이미 여러 의혹들이 있었으니까 말이야."
 
이전에도 의문들이 존재하지 않았던 것은 아니나, 인자미나의 글을 계기로 해 크기를 키우는 모양입니다.
 
유진 N. 브리즈:이유없는 소문이야 없겠지만 글쎄. 죽지 않았다는 가정도 할 수 있지 않아요? 왜, 방금도 말했잖아요. AI만 있으면 뭐든 되는 세상이니까 자신이 스와콥문트에 있는 것처럼 꾸미고 다른 어딘가에 있을지도 모르죠.
물론 눈으로 보지 않는 한 진실은 아무도 모르는 법이지만.
 
"네 말도 맞아. 사실은 스와콥문트에서 멀쩡히 지내고 있을 수도 있겠지."
 
"시원하게 알 수 있으면 좋을 텐데~."
 
선배들은 자기들끼리 소근거리면서 먼저 자리를 뜹니다.
 
유진 N. 브리즈:―인자 한번 뒤집어졌다고 학교 마저 뒤집어지겠네.
(책 한 권을 빌려 자습실로 이동합니다.)
 
학생회관 2층에 자습실이 있죠.
 
책을 빌려 자습실로 들어서려던 유진은 복도 끝 학생회실에서 누군가 고함을 지르는 소리를 듣게 됩니다.
 
유리 모하에:언제까지 ……냐고!
 
요한 에를리히:입 좀 다물어, 밖에 다 들려!
 
……저 목소리는 아무래도 유리와 요한 같네요. 말리는 쪽이 요한이고요.
 
말마따나 다 들립니다.
 
유진 N. 브리즈:(진짜 다 들려)
(들어볼 수 있나요?)
 
당연하죠~
 
두 사람이 싸우는 내용이 차라리 대놓고 들리면 모르겠는데,
 
가까이 가 보니 방음설계가 되어 있는지 대강 서로 탓하는 것만 얼핏 알 수 있고 정확한 내용은 도통 파악이 안 됩니다.
 
어떻게 할까요?
 
유진 N. 브리즈:(듣기 판정 시도해봐도 될까요?)
 
가보자고
 
유진 N. 브리즈:(가자 초기치)
듣기
기준치: 20/10/4
굴림: 79
판정결과: 실패
 
전혀 안들리네요.
 
방음 개좋네...
 
유진 N. 브리즈:(택도 없네... 고개 절레절레)
(문을 두드려봅니다.)
 
그때 유리가 갑작스레 학생회실 문을 박차고 나옵니다.
 
유진 N. 브리즈:(아)
 
화가 났는지 씩씩거리던 유리는 유진에게 눈길도 주지 않고 성큼성큼 복도 저편으로 사라져 버립니다.
 
열린 문 안에서 한숨을 쉬던 요한이 잠시 후 학생회실을 나오다 당신과 딱 마주칩니다.
 
요한 에를리히:…….
 
유진 N. 브리즈:(갈 곳 잃은 손을 뒤로 하며 꾸벅 인사한다.) 무슨 일이라도 있으셨나봐요?
 
요한 에를리히:(허공 본다.) 다 들렸나?
 
유진 N. 브리즈:안심하세요. 교내 시설 방음이 좋더라고요. 뭐, 그 전에 지나간 다른 사람들은 어땠을지 모르겠지만요.
 
요한 에를리히:(한숨 푹 쉰다.) 내가 늙는다, 늙어.
(그리곤 당신에게 스마트워치 하나를 내민다.) 이거, 유리가 두고 갔다. 내가 가면 또 화낼 테니 네가 좀 전해줘. 아마 학관 뒤뜰 정원에 있을 거다.
 
어려운 부탁은 아니지만, 이상한 점은 그게 아닙니다.
 
현대에 이르러 방수 기능까지 완벽해진 스마트워치는 정말 특이한 상황이 아니고서야 좀처럼 풀지 않고 늘 착용하는 기기죠.
 
어째서 스마트워치를 풀고 나간 걸까요?
 
유진 N. 브리즈:…… (건네받은 유리의 스마트워치를 바라보다 요한의 손목을 확인해봅니다.)
(요한은 스마트워치를 착용하고 있나요?)
 
요한은 평범하게 스마트워치를 차고 있습니다.
 
유진 N. 브리즈:(오.) 네. 두 분, 일이 잘 풀리셨으면 좋겠네요.
 
요한 에를리히:부탁 좀 하마.
 
유진 N. 브리즈:(인사하고 학교 뒤뜰 정원으로 이동합니다.)
 
요한의 예상대로 유리는 학교 뒤뜰에 있었습니다. 정확히는 흡연 구역에.
 
대기오염 탓에 담배는 굉장히 규제가 심한 기호품이죠.
 
한 갑에 네 시간어치 시급을 털어 넣어야 하는 그것을 유일하게 좀 저렴히 구입할 수 있는 사람들이 각성자들입니다.
 
세상이 한 차례 멸망했어도 군인에게 가장 중요한 보급품은 담배와 초콜릿인 모양입니다.
 
유진 N. 브리즈:(유리 선배... 흡연자였군...)
(흡연 구역에는 유리 뿐인가요? 주변을 살펴봅니다.)
 
지금은 유리만 있습니다.
 
유진 N. 브리즈:유리 선배! (유리를 부르고는 자연스레 스마트 워치를 유리 쪽으로 던집니다.)
 
유리 모하에:엥? (연기 뱉어내다가 고개 홱 돌린다. 놀라 눈 둥그랗게 뜨면서도 반사적으로 팔 뻗어 워치를 멋들어지게 잡아낸다.)
아, 냄새나겠다. (얼른 담배를 눌러 끄고 주변을 휘휘 저어 냄새를 빼려고 애쓴다.) 깜짝 놀랐네! 내가 이걸 놓고 갔었어?
 
유진 N. 브리즈:나이스캐치~
오, 놀랐어요? 반사신경이 무척 좋으시던데. (작게 웃었다.) 요한 선배가 전달해달라고 하더라고요. 걱정하던데요? (자연스레 주관적인 의견을 덧붙인다.)
 
유리 모하에:내가 또 이런 쪽으론 한가닥 하거든. (재치있는 답변이나 표정이 썩 밝지는 않다. 받은 스마트워치를 손안에서 만지작거린다.) 걱정했어? 난 나한테 잔뜩 화났을 줄 알았는데.
 
유진 N. 브리즈:진짜 화를 냈던 적은 있어요? (착용하지 않는 스마트워치를 바라본다.) 만약 그런 거였다면 나한테 이런 심부름은 시키지 않았을 거예요. 그 자리에서 해결하려 한다면 모를까, 선배 기분까지 신경 쓸 여유를 부리지는 않았을 테니까.
 
유리 모하에:많지. 3년간 우리가 얼마나 치고받으면서 지내왔게? 그렇다고 나랑 요한이 사이가 좋지 않단 건 아니지만. (그들의 유대감이야 의심할 이 없을 만큼 단단하다.)
하하, 고맙다. (생각에 잠긴 낯으로 스마트워치를 계속 만지작거리다가 불쑥 말한다.) 너, 아까 도서관에서 2학년 애들이랑 아놀드 박사에 관해서 얘기하지 않았어?
 
유진 N. 브리즈:걱정하는 사람은 있을 수 있죠. (어깨를 가볍게 으쓱였다.)
―…어떻게 알았어요? 그 시간에 우연히 도서관에 왔다는 말은 못 믿어서요.
 
유리 모하에:어떻게 알았냐고?
 
유리는 호쾌한 성격답지 않게 한참이나 숙고합니다.
 
검지를 입가에 가져가 ‘쉿’ 제스쳐를 취한 그는 손목의 스마트워치를 가리키고선 푸는 시늉을 해 보입니다.
 
아무래도 시계를 풀라는 뜻인 것 같습니다.
 
유진 N. 브리즈:…….
(말없이 시계를 풀고 네게 보여준다. 소리 없이 입모양으로 한 단어를 뱉으며 가만히 묻는다. 도청이라도 되는지.)
 
유진이 지시대로 시계를 풀어 내밀자, 유리가 옆면의 S버튼을 묘한 박자에 맞추어 여러 번 누릅니다.
 
갑작스레 홀로그램 패널이 켜지더니 초록색 안내창을 내보냅니다.
 
……음성 수집 기능?
 
그제야 유리가 입을 열었습니다.
 
유리 모하에:이 학교엔 듣는 귀가 많아. …… 그런 주제는 조심하는 게 좋지.
 
유진 N. 브리즈:(이제 놀랍지도 않다.)
 
상황이 가리키는 바는 분명하죠.
 
늘 가지고 다니는 스마트워치가 학생들의 대화를 수집하고 있었나 봅니다.
 
유리 모하에:네가 생각한 게 맞아. 우리의 대화는 언제나 도청되고, 그 기록은 학생회실 서버에 쌓이지.
학생회 소속 중에서도 임원만이 접근할 수 있는 정보지만 대화 중 특이한 단어가 수집되면 곧장 정부로 보고가 들어가곤 한다.
나는 이 수집에 반대하지만 당장 학생회장으로서 이런 도청을 막을 수 있는 권한이 없어.
 
유진 N. 브리즈:oO(그래서 그런 소문이 돌았던 거군.)
지레짐작만 하고 있었는데 궁금증이 빨리 풀렸네요. 선배가 이유없이 그런 행동을 할 리 없다고 생각했거든요. (손목 부분을 가리킨다.)
특이한 단어라 함은 스와콥문트에 관련된 건가요?
 
유리 모하에:눈치가 빨라 좋네. (끄덕) 그게 대표적이고, 오늘 인자미나의 실시간 검색어에 오른 것들도 포함됐거나 포함될 거야.
네게 이런 위험한 사실을 말해주는 건 아직 학교 규정을 잘 모르는 네가 혹여나 검열 기준에 어긋나는 말이라도 했다가 큰일을 당할까 봐 걱정이 돼서야.
뭐…… 바보같은 일일 수도 있지. (주머니에 양손 꽂은 채 바닥의 돌멩이를 툭 찬다.) 내가 이런 말 했다고 네가 당장 어디 날 고발할 수도 있고. 하지만, 아무것도 모르는 신입생들이 '반동분자스러운' 말 몇 마디 했다고 학교에서 사라지는 것보다 잘못된 일이라는 생각은 안 드네.
난 오래 전에 이미 한 번 친구를 잃었어. 같은 일을 다시 겪고 싶진 않아서 학생회장이 된 거야. 멘토 자리도 그 때문에 자원한 거고.
 
유리는 몸을 바르게 펴고 유진을 응시합니다.
 
그의 이력에 대해선 잘 알려져 있습니다.
 
어린 나이에 각성했고, 부모는 국가기관 연구소에서 일하는 ‘출신 성분 확실한’ 가정의 외동딸.
 
별달리 억압당한 가족도, 잃어버리거나 빼앗긴 재산도 없죠.
 
사관학교에 입학한 후로는 1학년부터 학생회에 있었습니다.
 
무엇이 옳은지 설파하기에 그의 삶은 다소 유복합니다. 일견 기만으로도 보일 수 있겠습니다.
 
그래도 그는 그렇게 말했습니다.
 
유진 N. 브리즈:(검열 기준. 그 말에 반사적으로 눈을 찌푸렸다.) 하나 묻겠는데, 내가 그런 걸로 다른 사람을 고발할 것 같아요? 나나 형이나 밖에서는 서로 말을 조심하는 편이라 선배가 걱정할 일은 없을 거예요.
그거 알아요? 진실에 가까워질 사람은 지금까지 쌓아 온 모든 지위도 내릴 준비가 되었다는 거.
내 눈에는 지금 당신이 그런 사람으로 보이네요.
 
유리 모하에:(희미하게 웃는다.) 그럼 고마운 일이고.
사실 음성 수집 기능을 꺼두는 건 그것대로 기록이 남지만, 오늘 건 몰래 지워줄게. 이 정도 권한은 있거든.
그럼 간다. 음성인식 다시 켜려면 S버튼 길게 세 번, 짧게 세 번, 다시 길게 세 번 누르면 돼. 자유를 좀 더 누리던가.
 
뭐라고 더 말할 듯이 입술을 달싹이던 유리는 고개를 내젓고 유진의 등을 두어 번 두드려준 후 자리를 떠났습니다.
 
감상은 유진의 몫입니다.
 
유진 N. 브리즈:(스마트워치를 바라본다.) 누구에게 보내는 구조신호려나.
 
잠시 후, 뒤에서 발소리가 들립니다.
 
돌아보니 아테나네요.
 
아테나 K. 히페리데:음? 네가 여긴 어쩐 일이니.
 
유진 N. 브리즈:오, 음. 심부름이요. 지나가던 길에 들렀어요. (오른팔에 스마트워치를 착용한다.) 당신은요?
 
아테나 K. 히페리데:그냥 산책. 생각 좀 하면서 걷다 보니 벌써 여기까지 왔네. 여기 흡연 구역이던데…… 너도 담배 펴?
 
유진 N. 브리즈:(너도? 아테나는 흡연자라는 뜻인가?) 다시 말하지만 심부름 때문에 지나가던 길에 들렸다고 했습니다. (어깨를 으쓱였다.) 내가 여기 있는 건 우연이에요. 게다가 담배같은 건 딱히 즐기고 싶지 않고.
여기까지도 거리가 꽤 되었을텐데, 생각할 일이 많았나 봐요?
 
아테나 K. 히페리데:네가 담배 심부름이라도 온 줄 알았지. (보통 여기 오는 사람들처럼 유진도 흡연자냐는 뜻이었다. 시니컬하게 말하곤) 나도 건강 관리 해야 돼서 그런 건 손대지 않아.
인자미나에 올라온 글을 봤거든. (여전히 오만한 낯이지만 평소보다 다소 그늘이 져 있다.) 우리 아버지도 스와콥문트에 가 계신데, 그걸 보고 나니 의구심이 드는 게 몇 가지 있어서.
 
유진 N. 브리즈:(가족이 스와콥문트에 있는 사례. 가만 시선을 맞춘다.) 의구심이라니? 연락이 끊기기라도 했어요?
 
아테나 K. 히페리데:우리 아버지도 어머니나 할머니처럼 의료계에 종사하고 계셔. 편지로 종종 의학 논문에 관해 토론을 하거나 새 논문을 얼마나 쓰셨는지 보내주시곤 하는데…… 연락이 끊기진 않았지만, 요즘 자꾸 안과 쪽 이야길 하신단 말이지. 아버지는 신경외과 전문의신데.
 
유진 N. 브리즈:(안과?) 갑자기요? 신경계라면 웬만한 기관에도 영향이 있으니 종종 이야기야 할 수 있겠지만 안과가 신경 쪽 이야기를 한다면 모를까 그 반대는 케이스가 드물텐데.
……―아테나, 마지막으로 아버지의 얼굴을 본 건 언제예요?
 
아테나 K. 히페리데:내 말이 그 말이란다. (침묵한다.) 스와콥문트로 간 뒤로는 한 번도 만나뵙지 못했어. 화상 통화를 한 적은 여러 번 있지만.
 
유진 N. 브리즈:스와콥문트에 가신 건 언제예요? 화상 통화를 마지막으로 한 적은?
 
아테나 K. 히페리데:스와콥문트로 가신 건 1년 전쯤. 화상 통화는…… 2주쯤 전이었던 것 같아. 취조라도 하니? (새침하게 흘겨본다.) 뭐 짚이는 거라도 있는 것처럼 구는구나.
 
유진 N. 브리즈:(눈을 크게 뜨고 당신을 잠자코 바라보다 어깨를 으쓱거린다.) 그냥, 조금 신경쓰여서요. 이상한 소문이 많이 돌았잖아요. 직접 스와콥문트에 가겠다고 생각한 적은 없어요? 나라면 그랬을 것 같거든.
 
아테나 K. 히페리데:가보고야 싶지. 거기야말로 지상낙원이라고 불리는 곳이잖니? 물론 카사블랑카도 일반인들은 죽기 전까지 쉬이 오기 어려운 곳이지만, 나야 태어났을 때부터 여기 살았으니까. 더 높은 곳을 바라보는 건 당연한 일이지.
하지만 공적을 쌓은 이들이나 갈 수 있는 곳이잖아. 우리 아버지도 의료계에 길이 남을 훌륭한 업적을 쌓으셔서 스와콥문트로 가실 수 있었던 거라고. (그땐 무척이나 자랑스러웠고, 마치 제 일인양 자부심이 하늘까지 치솟았지만…… 지금에 와서는 괜히 의구심이 생긴다.)
 
유진 N. 브리즈:당신이 못할 일은 아니잖아. (팔짱을 끼고 당신을 가만히 내려다보았다.) 사람은 언제나 높은 곳을 꿈꾸니까. 그리고 그만큼 경계를 하고 있으니까.
아테나, 의심하지 말아요. 소문이 어떻든 이곳에는 눈과 귀가 사방에 깔려있으니까. 조심해서 나쁠 것 없다는 소리예요. 알지?
 
아테나 K. 히페리데:응원해주는 거니? 일단은 눈에 띌 만큼 뛰어난 군인이 될 수 있게끔 힘낼 생각이란다. 능력을 갈고닦는 건 물론이고 성적도 좋아야겠지.
(의미심장한 말에 안경 너머의 노란 눈을 빤히 바라본다. 그러면 그 안의 의도를 읽을 수 있기라도 한 것처럼. 어쨌건 아테나 히페리데는 눈치가 빠르고 영민한 이였으므로, 유진의 말을 정확히 이해하진 못했어도 조심해야만 하는 어떠한 이유가 있다는 사실 정도는 금세 알아차렸다.) …… 신중함도 군인에게 꼭 필요한 미덕이지.
 
두 사람이 가만히 서로의 의도를 짐작하던 그때.
 
갑자기 두 사람의 스마트워치에 긴 진동이 느껴집니다.
 
서사의 판면을 강제로 집어 벌리고 삽입되는 개정 기호처럼 홀로그램 패널은 동의도 없이 방송 창을 띄웠습니다.
 
화면 너머에는 각성자사관학교의 학장이 무게감 있는 시선으로 카메라를 응시하고 있었습니다.
 
그가 말합니다.
 
학장: 사안이 중대해 전체방송을 실시하게 되었습니다. 오늘 새벽 익명 커뮤니티 ‘인자미나’에 게시된 글의 작성 IP가 교내인 것으로 추적되었습니다. 교수진은 불온한 선동 여론을 조작하려는 시도가 우리 학생 혹은 교원의 손에서 빚어졌다는 사실에 지극한 유감을 표합니다.
학생 여러분께선 헛된 소문에 경도되지 말고 우리 빛나는 오십 년 사학을 지킬 수 있도록 학업에 집중하도록 합시다. 각성자사관학교는 당 사안을 좌시하지 않고 엄중히…….
 
정말 헛된 소문이라면 이렇게 대응하는 것보다야 무시하는 것이 일을 덜 키우는 방식일 테죠.
 
행간에서 윗선의 압력이 있었음을 읽을 수 있는 연설이었습니다.
 
유진 N. 브리즈:(오히려 일을 키우시는데?)
 
지리한 말들이 이어진 후 학장은 벌떡 일어서 허공을 응시합니다.
 
화면에는 이제 학장의 얼굴 대신 아프리카 연합공화국의 국기가 송출되고 있습니다.
 
.
 
국가 <신이여, 아프리카를 굽어보소서>가 작사될 때에
 
이슬람 교도들과 기독교도들이 조사 하나까지 좀 더 서로의 종교에 알맞은 색깔을 담으려 다투는 광경을 보고,
 
유럽과 아시아의 ‘선진국’에서 건너온 초기 공화국 시민들은 퍽 당황했다고들 합니다.
 
그들이 생각하기로 아무튼 아프리카의 종교라고 하면 젬베를 두드리며 토착신을 찾는 종류였지 지극히 ‘문명화된’ 메이저 종교를 믿을 리는 없었으니까요.
 
이 무례하고 순진한 오해를 지닌 산부의 산도를 열고 새로운 공화국이 마침내 세상에 머리를 들이밀었을 때
 
정부는 좀 예민하다 싶을 만큼 ‘화합’을 강조했습니다.
 
출신도 문화도 다른 사람들이 재난 때문에 섞여 살게 되었으니 당연한 일이죠.
 
교정에, 회사에, 길거리에, 카페에, 펍에 국가가 울려퍼질 때,
 
우리는 당장 하던 일을 멈추고 어디에나 설치된 공화국 국기를 향해 경례해야 합니다.
 
나라 어디서나 국기는 휘날리고, 그것조차 여의치 않을 땐 하늘길 시계가 국가를 자동 인식하여 홀로그램 패널로 국기 이미지를 띄워 줍니다.
 
검은 상단은 여러 국가를 뿌리로 둔 시민들이 화합되어야 할 아프리카 연합공화국의 대표색상 역시 모든 색을 섞은 검은색이라는 의미이고,
 
흰 하단은 이 땅이 흐트러지기 전부터 오래 자리를 지켜 온 아프리카 대륙의 사막을 오염 이전으로 돌려놓겠다는 의지를 상징합니다.
 
가운데 노란 원이 태양을, 태양 안의 붉은 별 일곱 개가 일곱 도시를 나타냅니다.
 
아프리카 연합 공화국의 어린이들은 국부로 추숭되는 초대 대통령의 위인전을 읽으며 자라나고,
 
‘모든 사람은 동일한 권리를 타고난다’고 교육받으며,
 
험지를 헤치고 인간의 위대한 문명을 다시 이룩한 조국에 충성을 바치라는 가르침을 듣습니다.
 
학교는 고요하여 발걸음 소리 하나 들리지 않았습니다.
 
적은 돈으로 빈 방을 모두 채우라는 요구에 초를 사와 불을 밝혔다던 처녀의 일화처럼 이 광막한 공간에는 오로지 경건하고 엄숙한 국가 선율만이 가득합니다.
 
아테나는, 경례하지 않고 있습니다.
 
바람이 널리 드나들 수 있도록 지은 1층 회랑은 카사블랑카의 자부심입니다.
 
아프리카 대륙에서 이제 그런 통기성 좋은 건물은 좀처럼 찾아보기 어려워진 시대였기 때문이죠.
 
때로 함신은 굳건한 도시 장벽 너머로부터 날아와 외벽을 덮어 버리곤 했습니다.
 
그러나 비공식적 별명으로 ‘제1도시’ 라는 명칭을 가진 카사블랑카의 장벽만은, 공화국 시민들을 불편케 하는 모든 재난으로부터 사람을 지킵니다.
 
언제나 굳건하게.
 
따사로운 햇살과 축복 같은 적도편동풍이 뺨을 어루만지든 어쩌든, 학생들에게는 불행했던 중간고사가 거의 끝나갈 무렵입니다.
 
그 1층 회랑을 지나 2층에 도서관이 있습니다.
 
이제 시험은 두 개가 남았습니다.
 
<군사전략 입문>, <전략문화와 전쟁>.
 
<전략문화와 전쟁> 중간고사 시험 대체 조별 과제 에세이는 첫 가상 훈련 때 맺어졌던 페어끼리 함께 작성하는 것이 규칙이죠.
 
과제의 주제는 이러합니다.
 
…1학년이 당면하기에는 너무 어려운 과제네요!
 
본래 <전략문화와 전쟁> 강의 평가는 늘 심한 호불호 영역에 놓여 있었죠.
 
같은 수업을 듣는 학생들이 머리를 너무 쥐어뜯은 탓에 그걸 다 치워야 하는 근로장학생들의 스트레스도 갈수록 쌓여 갔다나요.
 
유진과 아테나는 도서관 구석 창가 테이블 하나를 차지하고 여러 자료를 읽어 내려가는 중입니다.
 
레포트는 마침내 결론 부분에 다다랐습니다.
 
아테나 K. 히페리데:(머리를 하나로 질끈 묶은 채 자료를 들여다본다. 남들은 어렵고 복잡하다며 괴로워하는 주제지만 그는 별로 막히는 구석도 없이 줄줄 아이디어를 내놓은 바 있다.) 좋아. 이제는 결론 정도만 쓰면 되겠구나.
 
유진 N. 브리즈:(아테나의 의견을 토대로 앉은 자리에서 과제를 작성해 나간다.) 이 정도로 정리해봤는데 더 넣을 내용 있어요?
 
아테나 K. 히페리데:흠. (고개 기울여서 읽어본다) 나쁘진 않지만 좀 더 보충하면 좋을 것 같구나. 논문 하나만 더 참고해서 적으면 될 것 같은데…… (책들을 이리저리 뒤적거린다.) 다른 시험들은 잘 봤니?
 
유진 N. 브리즈:(옆의 쌓아 둔 책더미에서 가장 위에 있는 책의 내용을 확인한다. 한번 훑어보듯 책을 넘기고는 다른 책을 찾아 책등을 바라본다.) 뭐, 나쁘지 않았네요. 시험이라는 건 형식적인 거니까. 그런 건 부담을 가질수록 더 어렵게 느껴지기 마련이잖아요?
(한참을 바라보다 책 한권을 다시 집어들고 훑어본다. 중간 지점 즈음의 페이지를 펼치고 네게 보여주듯 페이지 째로 내민다.)
 
아테나 K. 히페리데:흐음. (만족스럽단 듯 콧소리 낸다.) 지금까지 여러 명이랑 페어를 해봤지만 너만치 머리나 센스가 좋은 애는 없더라. 하나같이 멍청하기만 해. 그런 머리로 졸업은 어떻게 하려는지 원. (남들을 평가하는 태도가 지극히 자연스럽고 또 오만하다.)
(펼쳐준 페이지를 상세하게 읽어내리다가 볼펜 뒤쪽으로 중요해보이는 문장을 쭉 훑어내린다.) 이거. 참고해서 쓰면 좋을 것 같구나.
 
유진 N. 브리즈:(자연스러운 평가에 네게 아주 잠깐 눈길을 주다 거두었다.) 다른 사람의 졸업까지 신경을 써 줄 여유가 있을 줄은 몰랐네요. 내 걱정은 고맙지만 남들 앞에서는 말하지 마요.
(책상 위의 빈 손이 몇 번 둔탁히 지면을 두들긴다. 눈으로 내용을 확인하자 알았다는 듯 여백과 함께 해당 문장을 기입하였다.) 그렇게 말하는 당신은 과정이 꽤 만족스러웠나 봐요?
 
아테나 K. 히페리데:나도 눈치라는 게 있단다. 근데, 말해봤자 걔들이 뭘 어쩌겠니? 나보다 잘난 것 하나 없는 애들인데. 감사하게 받아들이고 반성이나 하라지. (진짜 개 못됨)
당연하지. 내가 이런 데서 지는 건 죽어도 싫어하는 사람이라. 무조건 최고점을 받아야 한다는 각오로 공부했단다. 이 과제도 완벽하게 해낼 생각이야. 조별과제는 팀원이 어떻냐에 따라서 결과가 갈리니 누구랑 같은 조가 되려나 내심 신경쓰였는데 너라서 잘됐지.
 
유진 N. 브리즈:(오. 다시 한번 너를 바라보고는 재미있다는 듯 작게 웃었다.) 당신 정말 못되었다는 거 알아? (악의없음 시비없음)
나는 굳이 최고점을 받지 않아도 괜찮은 사람인데. 그래도 다행이네요. 다른 사람이었으면 당신도 성에 차지 않았을 거잖아요.
 
아테나 K. 히페리데:잘 안단다. (씩 웃는다. 문제의식이라곤 한 톨도 느껴지지 않는다)
 
유진 N. 브리즈:(문제 의식을 가져야하는 거 아닌가? 순간 생각했지만 굳이 말하지는 않는다.)
 
아테나 K. 히페리데:성적에 관심이 없단 말이니? (상상도 못한 말인 듯 눈이 동그래진다.) 나참, 그 좋은 머리를 지니고서 이런 데 욕심없는 애는 처음 봐.
 
유진 N. 브리즈:모든 사람이 결과를 바라고 행동하지는 않아서요. 나한테 중요한 건 과정이라 결과는 아무래도 좋거든요. (이런 말을 하면서도 맡은 일에는 열심히 하여 평가가 좋은 편이었다.)
욕심이 없다니, 그런 게 아니라 나는 기본을 하는 사람인 거에요.
 
아테나 K. 히페리데:과정도 중요하긴 하지만 그렇게 노력한 만큼 결과가 어떻게 나왔는지도 신경쓰이지 않나? 뭐, 어딘가엔 너 같은 사람도 있는 법이겠지…… (말은 그리 하나 전부 납득하지는 못한 듯하다.)
 
잠시 대화를 나누다 보면, 근처 자리에서 골머리를 썩던 동급생이 다가와 아테나에게 말을 겁니다.
 
노노이 라가힛:히페리데, 30분 남았어. 슬슬 준비하러 가야 할 것 같은데?
 
남은 시험 중 다른 강의인 <군사전략 입문> 가상 훈련에서 아테나와 또다른 임시 페어를 맺고 있는 노노이 라가힛입니다.
 
아테나 K. 히페리데:아, 벌써 그렇게 됐니? (자리에서 몸 일으킨다.) 어차피 레포트는 거의 다 썼으니까 적당히 다듬어두고만 있어. 다녀온다?
 
유진 N. 브리즈:(자리에서 일어나는 모습을 바라보다 의자에 팔을 걸치고 몸을 제껴 인사한다.) 다녀와요. 레포트는 마무리해 둘 테니까.
(뒤에 있는 노노이에게 덩달아 손을 흔들어 인사해준다.)
 
아테나는 인사를 나누고 먼저 자리에서 일어납니다.
 
그 뒤에서 유리가 나타납니다.
 
유리 모하에:오. 너희 여기 있었구나? 뭐하고 있었어?
 
유진 N. 브리즈:(신출귀몰한 선배다. 유리에게 시선을 맞추고는 웃고는 능청스레 답한다.) 선배 생각?
(어깨를 한번 으쓱거린다.) 방금 건 농담이고 시험 레포트 작성 중이었어요.
 
유리 모하에:이야~ 이거 동급생 여럿 울릴 것 같은 멘튼데? (큭큭 웃으면서 다가온다. 노트북 화면 들여다보더니) <전략문화와 전쟁> 레포트구나? 그 끔찍한 거. 그 교수님도 참 어떻게 매해 이렇게 참신하게 엿을 먹이시는지, 재능이라면 재능이라니까.
 
유리는 근처 서가에서 책을 한 권 뽑아 오더니 아테나가 있던 자리에 앉습니다.
 
후르륵 몇 장을 넘겨 문단 하나를 가리키네요.
 
:「…전쟁이란 냉병기를 쥔 영웅들이 대강 ‘와아아’ 하고 몰려왔다가 단신으로는 보일 수 없는 무위로 세상을 휩쓸어 ‘그리하여 여기서 역사의 지도는 변곡점을 맞았다’ 따위로 묘사되는 일이 아니다. 레마르크의 ‘이 책은 고발도 아니고 또 고백도 아니다. 비록 포탄은 피했다 할지라도 역시 전쟁에 의해서 파괴된 어느 시대를 보고하는 시도에 지나지 않는다.’ 라는 문장이 저 사막의 신체를 입은 재앙 속에서도 온전히 남아 우리 세대로 전해진 사실을 감사히 여겨야 한다.」
 
<전략문화와 전쟁> 담당교수가 집필한 도서가 분명합니다.
 
그 교수는 특유의 유려한 어조로 전쟁의 비극과 날것 같은 참호전의 참상을 묘사하는 습관이 있었죠.
 
유리 모하에:그 교수님, 자기 책 인용하면 되게 좋아해. 이런 거 참고해서 써봐. 어디까지 썼냐?
 
유진 N. 브리즈:어쩐지 같은 책이 많더라니. (쌓아놓은 책더미 제일 아래 깔려있는 책에 순간적으로 시선이 갔으나 이내 거둔다. 네게서 책을 받아들고 문단을 눈으로 살펴보았다.) 다 써서 마무리 중이었긴 한데 인용을 덧붙이고 수정하는 정도야 괜찮아요. 내용과 결론이 완전히 바뀌는 건 아니니까.
 
유리 모하에:오오. 벌써 다 썼다고? (믿기지 않는단 듯 눈이 둥그래진다.) 날짜 좀 남지 않았어? 내가 오면서 머리 싸매고 괴로워하는 1학년들을 발에 채이도록 봤는데. 좀 읽어봐도 돼?
 
유진 N. 브리즈:조기제출 추가 점수를 바라는 사람이 곁에 있어서요. (아니다.) 그럼요. 선배가 봐준다면 좋죠. (작성 중이던 화면을 네게 보여준다.)
 
유리 모하에:(빠르게 훑어내려간다. 시선이 아래로 내려가면 내려갈수록 목소리에 감탄이 서린다.) 흠. 흐으음……. 야, 이게 진짜 1학년이 쓴 레포트라고? 이건 뭐 요한이 썼다고 해도 믿겠다. 참고로 나는 실기 부문에서 거의 점수를 따와서 수석이 된 거지만 요한은 실기랑 필기 다 뛰어나거든. 아무튼 엄청나단 뜻이야! 내가 안 도와줘도 이만하면 A+ 받겠는데?
 
유진 N. 브리즈:(잠자코 돌아오는 반응을 바라보다 옆으로 고개를 기울인다.) 멋진 칭찬이네요. 아테나가 수석을 노리는 것 같던데 들으면 좋아하겠어요. 그럼, 레포트는 안심하고 있겠습니다.
참, 그렇지. 군사전략 입문 시험에서 참고할 사항은 없나요?
 
유리 모하에:그래그래. 아까 내가 보여준 책에서 문장 몇 개만 마무리 부분에 넣으면 완벽할 것 같다. 이거이거, 나랑 요한이 미래 수석의 멘티가 되는 영광을 얻은 거 아닌가 몰라.
군사전략 입문? (기억 더듬는다.) 주어진 상황을 파트너와 어떻게 헤쳐나갈지를 보는 시험이었던 것 같은데. 소통과 협동이 중요할 거야.
그 시험은 히페리데랑 페어가 되지 않은 모양이네?
 
유진 N. 브리즈:(소통과 협동. 아테나와 노노이가 순간 걱정되었으나 한번쯤은 겪을 일이라며 스스로 생각을 정리했다.)
임시 페어였으니까요. 언제든지 바뀔 수 있기도 하고요. 한 사람에게 익숙해져 버리면 다른 사람과 만날 때가 힘들잖아요.
 
유리 모하에:그래? 근데, 평균적으로 첫 임시 페어와의 동조율이 50%만 넘어가도 정식 페어로서의 가능성이 있다고 치는 거 알아? 페어로 활동하는 각성자들은 보통 이것보다 낮은 동조율로 시작해서 합을 맞출수록 상승하곤 하니까. 너흰 시작부터 60%를 넘어섰잖아. 걔를 놓치는 건 너한테 아까운 일일걸.
아, 혹시…… 성격이 안 맞는다던가?
 
유진 N. 브리즈:오. 티 나요? (반쯤 농이다.)
 
유리 모하에:이런. (어깨 으쓱한다.) 왜. 너한테 못되게 굴기라도 해?
 
유진 N. 브리즈:(잠깐 생각하는 듯 하더니 빠르게 답한다.) 아뇨? 오히려 내가 아니면 받아들이기 힘들걸요? 그쪽이 나랑 안 맞는다고 한다면 모를까.
정식 페어를 맺는다면 다른 사람보다 A가 편해서요. (형의 이름을 언급한다.) 동조율이야 지켜보면 되는 거고 무엇보다 마음이 잘 맞으니까요.
 
유리 모하에:하긴 첫 가상 훈련 때 보니 캐릭터 장난 아니게 뚜렷하더라. 실수는 용납 안 할 것 같고 막. 선배인데도 괜히 쫄았다니까? (너스레 떤다.) 히페리데 걘 타고나길 타인과 동조율 자체가 좀 높은 애 같더라. 아까 데려간 라가힛인가, 다른 애랑도 수치가 낮지는 않았거든.
가족이랑 페어를 맺는 경우는 잘 모르겠네. 애초에 같은 집안에서 각성자가 나오는 경우 자체가 드물다 보니. (제 팔 겹쳐 끼곤 고개 기울인다) 시간은 많이 남았으니 다른 애들이랑 충분히 합을 맞춰가며 결정해도 나쁘진 않겠지. 첫 합부터 60%를 넘는 페어는 진짜 흔하지 않단 것만 알아둬.
 
유진 N. 브리즈:선배가 그래도 돼요? (농담이다.) 캐릭터가 확실하다면 좋은거죠. 남들에게 그만큼 깊은 인상을 주었다는 뜻이니까. 그리고 타인과 동조율이 높은 편이라면 내가 아니더라도 그와 페어가 될 사람은 얼마든지 있다는 뜻이고요.
쌍둥이만큼 마음이 잘 맞다면 가능성이 아주 없지는 않겠죠. 누가 알겠어요? (어깨를 으쓱거린다.) 그리고 나도 다른 사람과 합을 맞춰보고 싶은 건 사실이니까요. 60%에 모든 걸 걸고 싶지는 않네요.
 
유리 모하에:열린 자세 좋지. 히페리데도 그렇고 나중에 네 페어가 누가 될지 진짜 궁금하다. 너흰 둘 다 성적이나 능력이 뛰어난 편이라 눈길이 가거든. 수석 페어인 우리 둘이 너희 멘티가 된 것도 우연은 아닐 테고? (씩 미소했다)
 
그런 대화로 시간을 보내고 있던 차에, 누군가가 도서관 내 정숙이라는 예절도 신경 쓰지 않고 미친 듯이 달려옵니다.
 
그가 누군지 보기도 전에 유진은 팔을 잡아채여 일으켜 세워졌습니다.
 
"브리즈! 너 가상 훈련 때 히페리데랑 임시 페어 맺었던 애 맞지?"
 
유진 N. 브리즈:(뭐야? 얼결에 붙잡혀 자리에서 일어났다.) 가상 훈련 때? 그건 맞지만 갑자기 무슨 일이에요?
 
"빨리 와! 설계 반동 터졌어!"
 
유진 N. 브리즈:(갑자기요?)
 
유리가 몸을 튕기듯 일어났습니다.
 
유리 모하에:얼른 따라와! 설계 반동이면 제2의무실로 실려갔을 거야!
 
유진 N. 브리즈:(손이 많이 가는 사람이라니까. 생각과 함께 반사적으로 자리에서 일어나 유리를 따라간다.)
 
의무실 바깥에서부터 심상치 않은 상황이 생겼음을 알 수 있었습니다.
 
푸른색 에너지가 문 밖까지 일렁이는 것이 보입니다.
 
그 위로 검붉은색 에너지가 얹혀 피처럼 뚝뚝 흘렀습니다.
 
유리가 문을 박차고 들어갑니다.
 
의료진 두 사람이 발작하는 아테나를 억누르고 약을 주사하고 있습니다.
 
항상 도도하고 멀끔하던 얼굴은 창백하다 못해 푸를 지경이고, 식은땀이 침대보를 적십니다.
 
핏줄이 돋은 손으로 가슴팍을 움켜쥐고 있고, 드문드문 신음이 흘러나옵니다.
 
유리가 침대 곁으로 달려가 의료진까지 제치고 화면에 표시되는 에너지 파동을 읽어냅니다.
 
그가 낭패라는 듯이 외칩니다.
 
유리 모하에:안정도가 엉망이야! 선생님, 약물로 해결이 안 되는 수준인가요?
 
의사: 반동이 너무 심하게…… 같이 시험 치르던 학생이 심하게 긴장했던 모양입니다.
 
아테나의 페어는 노노이 라가힛, ‘입학 시험 때 5등인가 했다던’ 그 동기.
 
이를 악문 유리의 시선이 허공에 머무릅니다.
 
유진 N. 브리즈:(아.)
 
정확히는 정체 모를 검붉은색 에너지의 흐름을 따라서.
 
그가 유진을 휙 돌아봅니다.
 
유리 모하에:당장은 방법이 하나뿐인 것 같다. 설계 반동이 이 정도로 왔으면 너라도 정신 똑바로 차려야 해.
이러다 얘 죽어!
 
의사: 아니, 유리 학생. 설계 반동이 위험하긴 해도 죽는 정도까지는…….
 
유리 모하에:죽어요!
 
무슨 확신이라도 있는지 고함을 지른 유리가 올올히 일어섭니다. 금색 눈동자가 불타는 듯 빛납니다.
 
유진 N. 브리즈:예?
 
유리 모하에:이거 에너지 주입 정도로는 안 돼. 언약해. 정식 페어 맺으라고.
 
유진 N. 브리즈:?
네?
 
유리 모하에:정식 페어가 된 순간 에너지 유량이 큰 폭으로 증가하니, 날뛰는 각성자를 안정시킬 수 있는 거의 유일한 수단이야.
 
유진 N. 브리즈:잠깐, 잠시만요. 지금 뭐라고 했어요? 정식 페어요? (이렇게 갑자기? 유리의 말을 들으며 아테나를 바라본다.)
 
유리 모하에:당황스럽긴 하겠지. (방금까지도 페어와 관련된 이야기를 하다 왔으니.) 하지만 그만큼 급박한 상황이야. 이거 아님 지금으로선 마땅한 방법이 없어.
정 싫으면 나중에 언약을 푸는 수단도 있으니까.
 
유진 N. 브리즈:(아직 싫다는 이야기는 안했는데.)
―…하. (당황스럽기 때문이었을까, 그보다는 어이없다는 생각이 가장 먼저 들어 저도 모르게 헛웃음이 나온다.) 60%에 모든 걸 걸게 될 줄은 몰랐네. 시간 없어 보이니까 방법부터 말해요.
 
유리가 방법을 설명해줍니다.
 
이후 그는 의료진을 이끌고 의무실 바깥으로 나갑니다.
 
‘페어 언약’ 절차시엔 근처에 다른 각성자가 있어서는 안 됩니다. 에너지가 엉킬 수 있기 때문이죠.
 
아테나는 몹시 괴로워하지만 의식은 있는 듯합니다.
 
유진 N. 브리즈:―…아테나, 내 말 들려요?
 
아테나 K. 히페리데:(희게 질린 낯을 일그러뜨리며 괴로워하다가, 겨우 푸른 눈동자만 유진을 향해 움직인다.)
 
유진 N. 브리즈:(움직일 힘은 있나 보네. 그 모습을 바라보다 곁으로 다가가 낮은 목소리로 정확히 발음한다.) 잘 들어. 지금부터 페어를 맺을 거야. 그게 당신이 당장 살 수 있는 방법이니까 불만이 있으면 털고 일어나서 나한테 따지든 유리 선배한테 따지든 알아서 해.
알아들었으면 대답해. 대답하기 힘들다면 눈을 두 번 깜빡이거나 고개를 끄덕여. 방법을 설명할 테니까.
 
아테나 K. 히페리데:윽…… (무언가 말하려는 듯했으나 통증 앞에 다시금 신음만이 샌다. 지금껏 느껴본 적 없는 고통에 사고회로조차 제대로 돌아가지 않는다. 페어를 맺는 것이 이 상황을 해결해준다는 사실만은 기억 속에서 간신히 건져낼 수 있었다.)
(결국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항상 또렷하고 맑던 푸른 눈이 열기와 통증으로 혼탁했다.)
 
유진 N. 브리즈:당신 처음부터 지금까지 제멋대로였어. 알아? (그러니 이번 만큼은 내가 정해. 낮게 혼잣말 하듯 중얼거렸다. 동의하지 않았더라도 강제로 시켰을 터이니 사실 상관 없었으리라.)
(손을 잡고 유리에게 들었던 페어 언약의 방법을 아테나가 알아들을 수 있도록 보다 빠르고 간략히 설명한다.)
 
구현자는 본인의 이능력과 관련된 핵심 기능 판정을, 설계자는 <항법> 판정을 시도합니다.
 
아테나 K. 히페리데:
항법
기준치: 90/45/18
굴림: 39
판정결과: 어려운 성공
 
유진 N. 브리즈:
사격(권총)
기준치: 90/45/18
굴림: 34
판정결과: 어려운 성공
 
…간난신고 끝에 뜨겁고 전류 같은 에너지가 심장까지 메다 꽂혔습니다.
 
일견 자해와 비슷하다는 기분이 들 만큼 무자비한 방식의 지배입니다.
 
심장을 움켜쥐는 에너지의 흐름, 온전히 열어젖힌 정서, 경로,
 
녹은 금속처럼 무섭도록 달아오르는 두 사람의 체온.
 
잠시 후, 자연스레 피어오른 에너지가 푸른색과 레몬색 빛을 뿌리며 허공을 맴돌기 시작했습니다.
 
고통으로 인해 생리적 눈물이 맺힌 아테나의 눈이 점차 맑아지기 시작합니다. 정신을 차린 것 같네요.
 
에너지 유량이 크게 늘어났습니다.
 
이전까지 되지 않던 것이 지금 이 순간부터는 수월하게 가능할 것 같습니다.
 
몹시도 기이한 기분입니다.
 
아테나가 아주 멀어지더라도 찾아낼 수 있을 것만 같은 감각.
 
언젠가 아주 떠나 버릴 것을 예고하듯이.
 
아테나 K. 히페리데:(깊은 물 속에 빠졌다 겨우 고개를 내민 사람처럼 기침을 하며 가쁜 숨을 내쉬었다.) 허억, 헉, 하아…… (본래라면 스킨십 따위 허락할 리 없었겠으나 이번에는 반사적으로 그 손을 꾹 쥐어 온다. 어깨가 잘게 떨리고 있었다.)
 
아테나는 힘겹게 숨을 내쉽니다. 큰 추위에 시달리는 듯합니다.
 
에너지 유량은 급속도로 늘어났는데, 반동으로 인해 고갈된 에너지가 도로 채워지질 않으니 추위를 느끼는 것이죠.
 
이것을 안정시키는 방법은 사람의 체온, 그리고 접촉으로 건네주는 에너지 주입뿐이라는 사실을 당신은 알고 있습니다.
 
유진 N. 브리즈:다시 봐도 손이 많이 가는 사람이라니까. (겉옷을 벗어 덮어주면서 가까이 다가가 아테나를 안는다.)
 
아테나 K. 히페리데:나 때문에…… (헐떡인다.) 이 꼴이 된 게 아니라고. (부모님과도 친밀한 스킨십을 해본 적이 기억나지 않을 만큼 아득히 오래 전인데, 알게 된 지 얼마 되지도 않은 이에게 포옹을 받을 줄은 상상도 하지 못했다. 그러나 그 어색한 체온을 필요로 하고 있음을 부정할 수 없다. 물 속에 빠진 이가 구하러 온 이에게 손을 내밀듯 본능적으로 그를 마주 끌어안았다. 아직 정신이 몽롱한 탓이다, 그렇게 제 행동을 합리화하면서.)
 
유진 N. 브리즈:내가 말했지, 불만이 있으면 당장 털고 일어나라고. (상대가 누구였든 이렇게 할 수 밖에 없었다면 기꺼이 했을 것이다. 제 선택의 결과로 눈 앞에서 타인이 죽는 것은 보고 싶지 않았으니.)
 
아테나 K. 히페리데:할 수 있었겠니? 정말 숨 넘어가는 줄 알았어. (감싸오는 체온에 아플 정도로 긴장했던 몸이 조금씩 진정되어간다. 그는 지금껏 많은 일을 경험해보았고 대개 빠르게 적응하고는 했다. 그러나 서로의 에너지를 섞고 관통하는 그 순간 느껴졌던 감각만큼은 정말이지 처음 느껴보는 것이었고, 익숙해질 것 같지 않았다. 인간관계를 철저히 비즈니스로만 대해 온 그였기에 더더욱 생경하게 다가왔는지도 모른다. 아무튼, 아테나는 유진을 꽤 후하게 평가하고 있었으므로, 그와 갑작스레 페어가 된 게 당황스럽긴 하면서도 썩 싫지만은 않았다.)
 
유진 N. 브리즈:할 수 있으면 해보라는 거지. 이제 말할 정신이 드나 보네. (안은 채로 가만 눈을 깜빡인다. 정식 페어를 맺는다는 것이 어떤 감각인지 알 수 없었다. 경험을 통해 얻은 것이라도 알 수 없는 기운. 그리고 본능적으로 느꼈다. 두번은 경험하고 싶지 않다고.) 미스 히페리데, 당신은 사람의 소중함을 알 필요가 있어. 상대에게 무리한 요구를 하지 마라는 뜻이야. (라가힛이 얼마나 긴장을 했으면 이런 일이 일어났겠어? 덤덤하게 시덥잖은 농담을 내던진다.)
 
아테나 K. 히페리데:하. (작게 헛웃음친다.) 나랑 임시 페어가 되는 영광을 얻었으면 최선을 다하는 게 당연한 거 아니겠니? 그리고 딱히 뭘 하지도 않았어. 라가힛이란 애, 입학 시험에서도 성적 좋은 편이었고 나랑 동조율도 나쁘지 않았으니까 어련히 잘하겠거니 했지. 그런데 이번엔 이상하리만치 에너지 제어를 못 하더구나.
색도 그래. 원래 에너지 색이 어땠는지는 모르겠지만 보통 에너지는 연기 같아서 어느 정도 투명도가 있잖니. 그런데 그 애의 건 검붉고 짙어서 앞이 전혀 보이질 않았어. 설계가 가려질 수밖에. 내 계획대로라면 분명 A+ 를 받을 수 있었을 텐데! 성적이 어떻게 반영됐나 몰라. (투덜댔다.)
 
유진 N. 브리즈:과한 욕심은 좋지 않은 법이야. 당신도 잘 알 텐데. (이어지는 말을 들으며 생각한다. 이게 우연일지 누군가 의도한 사건인지 여전히 알 수 없다. 하지만 그게 다 무언가. 원인이 중요하다면 지금부터 찾아낸다면 그만이다.)
성적 이야기에 길게 말하는 걸 보니 정신이 든 모양이네. (천천히 몸을 일으켜세웠다.) 고마워 해요. 나 하나 희생해서 당신 살린 거니까. 감사 인사는 유리 선배한테 하고.
 
아테나 K. 히페리데:욕심이 아니라 당연한 거지, 나한텐. (평소처럼 인성질을 하는 걸 보니 어느 정도 회복되긴 한 듯하다. 유진이 팔을 풀자 순간 떨어져나가는 체온이 아쉽다고 느끼고는, 그런 감상이 든 자신의 머리를 매우 칠 뻔했다. 정신 안 차려 아테나 히페리데?)
희생? 하기 싫었는데 억지로 한 것처럼 들리네. 물론 엄청 급박한 상황이긴 했지만. (저랑 페어를 맺은 게 싫다 이건가? 눈을 가늘게 떴다.)
 
유진 N. 브리즈:오, 모르는 것 같아서 하는 말인데 우리는 그걸 흔히 욕심이라고 불러요. (어깨를 으쓱였다.)
왜, 내가 60% 확률에 인생을 걸 것 같았어요? 나는 확실한 걸 더 좋아하거든요. 그리고 나는 지는 싸움은 절대 하지 않아.
 
아테나 K. 히페리데:그럼 정의를 바꾸렴. 나한텐 이게 옳으니까. (자신감 하나는 정말 가공할 만하다)
너, 보통 페어 언약은 55%만 되어도 시도 가능하단 건 알고 있니? 한 사람과만 오래 함께 해서 동조율을 끌어올린 게 그 정도인데, 너와 난 시작부터 60%였으니 객관적으로 봐도 높은 편이라고. (유진의 반응이 영 마음에 안 든다.) 흥, 누군 너랑 하고 싶었던 줄 알고. (아테나 역시 결코 상대에게 쉬이 져주는 이가 아니었으므로, 나쁘지 않다는 본심은 덮어두고 새침하게 답한다)
 
유진 N. 브리즈:당신이 잘 알지 못하는 사람과 어떤 합을 낼 지는 나도 알 수 없어서요. 나야 운명에 몸을 맡긴다지만 단 한 순간으로 모든 걸 결정하기에는 다소 아쉽지 않아요? (반응을 지켜보다 가볍게 웃었다.) 목숨 구해 준 사람에게 고마워하지는 못할 망정 이건 또 무슨 태도람.
(잠시 말 없이 앉아있다 자리에서 일어난다.) 다른 사람들이 기다릴 테니 이만 일어나죠.
 
아테나 K. 히페리데:동조율이 앞으로 더 높아질 수도, 낮아질 수도 있는 일이지. 그렇게 맘에 안 드면 다른 애랑 페어 맺든지 하렴. 언약을 아예 해제할 수 없는 것도 아니잖니. (그러고 보니 인사를 못 했구나. 다른 이도 아니고 모든 면에서 뛰어난 저와 언약을 맺고서도 영 떨떠름해 보이는 반응이 마음에 안 들어 이쪽에서도 못되게 굴었다만, 그래도 최소한의 예의는 지켜야겠지. 침대에서 몸을 일으키며 중얼거렸다.) …… 구해준 건 고마워.
 
유진 N. 브리즈:(돌아오는 대답에 재미있다는 듯, 소리없이 웃는다.) 당신은 다른 사람에게 갈 마음 있고?
다시 말하지만 감사 인사는 내가 아니라 유리 선배한테 해요. 유리 선배가 아니었다면 나도 여기 오지 않았을 테니까.
 
아테나 K. 히페리데:네가 알아서 뭐 하게? (째릿 노려봤다.) 흥, 알겠다니까.
 
급박했던 상황이 일단락되었습니다.
 
유리는 두 사람이 무사히 페어를 맺어 다행이라며 어깨를 몇 번 툭툭 두드려 주었습니다.
 
의료진도 아테나의 몸상태가 회복되었다고 판단, 어느 정도의 휴식만 권고하였습니다.
 
비록 아테나와 유진에게 일반적으로 언약을 맺은 페어다운 애틋함이나 깊은 감정은 없었지만? 모두가 감정적인 인간관계만을 맺는 건 아니죠.
 
그러나 이제는 서로를 평범하게 스쳐지나갈 이들 중 하나로 보기는 어려워졌습니다.
 
새로운 점이 찍혔고, 그 뒤에 이어질 내용은 이제부터 우리가 만들어가야만 할 테죠.
 
시간이 흘러갑니다.
 
모하메드 5세 광장에서 모하메드 알 한살리 거리를 따라 바다 쪽으로 10여분 걸으면 대형 선박들이 정박한 카사블랑카 항구가 나타납니다.
 
유럽 국가들과의 거의 유일한 교역 통로라고 할 수 있는 곳이죠.
 
오전부터 카사블랑카 항구에서 짐을 잔뜩 실은 트럭 여러 대가 각성자사관학교로 들어옵니다.
 
새 나라가 만들어졌다고 한들 멀쩡한 건물을 부수고 새 벽돌을 올릴 까닭은 없었으므로 아프리카 연합 공화국의 도시들은 저마다 기존 건축 양식을 아직 그대로 따르고 있습니다.
 
모로코의 상징은 흰 벽에 녹색 지붕을 이은 호화롭고 장대한 건물들.
 
아라베스크 문양이 조각된 나무판이 벽면을 둘러싸고, 안뜰은 대리석으로 꾸몄죠.
 
젤리즈 타일이 섬세하게 벽을 장식했고, 세밀한 조각과 촘촘한 문양은 사람을 황홀케 합니다.
 
종교 건축물처럼 웅장한 파사드를 지나 여러 개의 건물을 거쳐 이르는 중앙 정원은 안달루시아풍입니다.
 
오늘은 각성자사관학교의 명절이라고 할 수 있는 ‘베로니카 주간’ 둘째 날입니다.
 
본래 카사블랑카에는 없었던 명절이고, 다른 아프리카 지역에서 유래한 것도 아닌 절일이지만 학생들은 베로니카 주간을 퍽 좋아합니다.
 
초대 학장이 어릴 적 동생의 생일이 되면 가정에서 하던 놀이를 시험 삼아 내놓았던 게 의외로 좋은 반응을 얻어 이제는 아예 축제 주간으로 확장된 것이죠.
 
학생들은 이미 손에 맥주 한 잔씩을 든 채 동아리들이 준비한 행사에 참여하거나 미로 찾기 놀이에 끼는 등 즐거워하고 있습니다.
 
유진도 출발할 때가 되었습니다.
 
1학년들은 메인 게임에 참여해야 하거든요.
 
두 사람이 짝을 이뤄 한 조씩.
 
유진 N. 브리즈:(오, 2인 1조)
 
아무래도 일찌감치 페어를 맺었다 보니 유진의 짝은 당연하게도 아테나가 되었습니다.
 
준비를 하고 기숙사 밑으로 내려가볼까요? 아테나와 그곳에서 만나기로 했었죠.
 
유진 N. 브리즈:(선택지가 꽤 좁아졌군.)
(채도가 옅은 하늘색 셔츠를 입고 소매를 걷어올렸다. 오른손에 시계를 차고 여느때와 다름없이 머리를 정리하고는 거울을 한번 확인한 뒤 기숙사를 나선다.)
 
기숙사 아래로 내려가면 얼마 가지 않아 아테나가 걸어옵니다.
 
아테나 K. 히페리데:(머리를 하나로 깔끔하게 틀어올리고 발목까지 내려오는 통 넓은 끈 원피스를 입었다. 평소의 각 잡힌 교복 차림과 달리 편안한 옷차림이다. 다만 유복한 집안 딸이라는 걸 나타내듯 녹색 원피스의 끝단에 들어간 무늬라거나 팔찌와 귀걸이 등이 하나같이 고급이다.) 좋은 저녁.
 
유진 N. 브리즈:(색다른 모습이네. 반사적으로 시선이 악세서리를 향했다.)
(짧은 인사에 반응하듯 고개를 작게 끄덕이며 저도 답한다. 좋은 저녁, 하고. 허리를 숙여 네게 시선을 맞추고 왼손을 내민다.) 가실까요, 아가씨?
 
아테나 K. 히페리데:(흡족한 미소 지으며 그 위에 오른손 올렸다.) 그래. 베로니카 주간이 어떤진 말만 들었는데, 마침내 즐겨보게 되는구나.
 
두 사람은 함께 정원으로 향합니다.
 
이 계절이면 흐벅지게 피어 살랑이는 수선화가 너른 정원과 온실에 가득합니다.
 
햇살을 담은 듯한 노오란 꽃 수백 송이가 바람을 받아 흔들릴 때면 태양이 바다에 빠지면 이런 느낌일까, 싶을 만큼 아름답습니다.
 
2층 발코니에서 내려다보면 그렇게 아름답다죠.
 
축제 둘째 날, 이 밤에는 베로니카 주간의 핵심적인 행사인 ‘수선화 찾기’가 열립니다.
 
종종 피어나는 돌연변이를 아예 품종으로 만든 은색 수선화가 있는데,
 
이 은색 꽃을 황금빛 꽃들 사이에 단 서른 송이만 숨겨 놓습니다.
 
학급마다 정원을 돌며 은색 꽃을 가장 많이 찾아낸 사람이 상품을 받는 놀이죠.
 
두 사람이 짝을 짓는데, 아테나와 유진이 한 팀입니다.
 
설계 반동이라는 상황상 어쩔 수 없는 일이긴 했지만, 1학년인 주제에 벌써부터 정식 페어가 되었다는 것이 소문났기 때문이죠.
 
두 사람은 꽤 이목을 끄는 한 쌍입니다.
 
실제로 둘 다 미남미녀기도 하고요? ^^
 
유진 N. 브리즈:(이런 관심 부담스러운걸~)
(하지만 즐기기로 했다)
 
아테나 K. 히페리데:(이쪽은 원체 시선 받는 데 익숙해서 이미 즐기고 있다.) 보렴. 다들 우리에게서 눈을 못 떼는구나.
 
유진 N. 브리즈:사람들 시선을 받는 게 익숙한 가봐요? (아마 그렇겠지만. 처음 보았을 때부터 어느 정도 납득은 하였으니 그리 놀랍지는 않았다.)
 
아테나 K. 히페리데:당연하지. 나만큼 뛰어난 애가 있으면 주목할 수밖에 없잖니? (진짜 왕재수)
 
유진 N. 브리즈:자신감이 대단한데? (솔직!) 당신이 주목 받는 건 내가 신경 쓸 일이 아니지만 시기를 얻지 않도록 조심해요. 너무 우수한 사람에게는 그런 일이 있기 마련이잖아요.
 
아테나 K. 히페리데:나한테서 자신감 빼면 남는 게…… 그래도 많긴 하겠지만(왕재수2), 난 남에게 고개 숙여본 적 한 번 없는 사람이란다. (자랑이라고) 걱정해주는 거니? 시기를 한들 날 넘어설 수는 없는데 어쩌겠니. 불쌍한 것들의 발악인 거지. 그보다 수선화 찾는 건 관심 있니? 상품이 뭔진 모르겠다만 이런 게 있으면 꼭 1등을 하고 싶어지거든.
 
유진 N. 브리즈:(이야기를 들으며 그저 가만히 미소지었다.) 혹시 성격 나쁘다는 이야기 들어본 적 있어요? (가볍게 어깨를 으쓱이고는) 내가 말하지 않았던가? 나는 게임에는 자신 있고 지는 싸움은 절대 하지 않아요.
 
아테나 K. 히페리데:글쎄? 다들 생각은 했을지 몰라도 감히 내 앞에서 쉽게 말하진 못하던데. (들었어도 딱히 고칠 생각도 없다) 좋아. 그럼 열심히 찾아보자꾸나. 은색 꽃이라니, 드문 편이라 갖고 싶기도 하고.
 
꽃을 찾는다면 <관찰력> 판정!
 
유진 N. 브리즈:(주변을 둘러보며 꽃을 찾아본다.)
관찰력
기준치: 65/32/13
굴림: 55
판정결과: 보통 성공
 
아테나 K. 히페리데:
관찰력
기준치: 65/32/13
굴림: 16
판정결과: 어려운 성공
 
유진의 눈에 금세 은색 꽃 한 송이가 보입니다.
 
아테나는 한 번에 두 송이나 찾았네요.
 
아테나 K. 히페리데:(꽃을 착착 꺾어들어 향기를 맡는다.) 향기도 구현해뒀네? 기술이 대단한걸. 이능력을 빌린 거려나.
 
유진 N. 브리즈:(근처에서 발견한 은색 꽃 한 송이를 조심스레 꺾어본다.) 이 근방에서는 좀처럼 보기 힘든 꽃일텐데 꽤 많이 있네.
운이 좋은가 봐요. 이렇게 빨리 찾을 줄은 몰랐는걸.
 
아테나 K. 히페리데:운도 있고, 우리가 그만큼 승부욕이 강한 것도 있겠지. 수선화는 좋아하는 꽃이니? 난 눈이 파란색이라 주로 파란색 꽃을 좋아하곤 했는데 말이야.
 
유진 N. 브리즈:굳이 따지자면 좋아하는 쪽이네요. 닮았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거든요. 뭐, 그만큼 어울린다는 뜻이겠지만.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를 안다면 왜 그런지는 모르겠어요.
사소하지만 멋진 이유네. 원래 관심이라는 건 그런 사소한 이유로부터 시작되거든요. 파란 장미는 좋아해요?
 
아테나 K. 히페리데:하긴, 노란 꽃이고 네 눈도 노란색이니까. (평범한 수선화도 한 송이 꺾어 유진의 눈가 근처에 대어본다.)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란 건 뭐니?
파란 장미, 좋지. 화려한데다 향기도 진한 편이잖니. 무스카리나 아가판서스 같은 꽃들도 많지만 따지자면 장미가 나랑 잘 어울리지 않으려나.
 
유진 N. 브리즈:호수에 비친 자기 모습에 반해 호숫가를 떠나지 않고 자신이 사랑하는 이의 곁에서 죽음을 맞이한 한 남자의 이야기예요. 결국 그는 꽃이 되었다는데 거기서 피어난 꽃이 수선화라는 이야기가 있어요.
화려해서 좋아하는 건가요? 나는 다른 이유일 줄 알았는데. (꽃을 바라보며 가볍게 미소지었다.) 당신은 불가능이 현실로 바뀌는 순간을 기록할 사람이니까.
 
아테나 K. 히페리데:아, 나르키소스 설화 말이지. 설명을 들으니 떠오르는구나. (재앙의 날 이후 수많은 기록이 소실되었다지만 그리스 신화는 워낙 오랜 시간 광범위하게 퍼진 내용이었기에 용케 지금까지 전해져 내려왔다.)
(남의 외모에는 그다지 관심이 없었지만, 수선화를 내려다보며 미소하는 유진의 모습을 보니 새삼 그가 미남이라는 사실을 실감하게 된다.) 파란 장미가 불가능이란 꽃말을 가지고 있던 것도 옛말이지. 그렇지만 기적이라고 부르기에도 무색할 만큼 쉬이 만들어낼 수 있잖니? 이 은색 수선화처럼 말이야.
자, 좀 더 찾아보자꾸나. 이 정도론 1등을 하기엔 모자라지.
 
유진 N. 브리즈:알고 있었네요? (작게 소리내어 웃는다.) 나는 그런 옛날 이야기를 좋아해요. 재미있잖아. 연구할 가치도 있고.
의미가 무엇이든 붙이기 마련이니, 어디선가는 기적을 뜻하기도 하고 어디선가는 불가능을 뜻하기도 하겠죠. 불가능이 실현되는 걸 우리는 기적이라고 불러요. (꺾어 들어올린 꽃을 바라보며 느리게 눈을 깜빡인다. 불가능이 이루어진 순간, 처음부터 불가능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공존하면서 공존하지 않는 두 단어를 떠올리며 시선을 아테나에게 고정시켰다.) 당신이랑 잘 어울리네.
(작게 고개를 끄덕이며 반응한다.) 이제 방해하지 않을테니 열심히 찾아봐요.
 
아테나 K. 히페리데:우리 집안은 영국계니까. 서양 쪽 지식을 특히 풍부하게 배웠지. 넌 학자가 되어도 잘했겠어. 연구 이야길 하는 걸 보니 말이야. 안경도 쓰고 있고. (이건 좀 고정관념에 가깝지만.)
후후, 칭찬으로 알아들을게. (아테나는 남들이 흔히 불가능하거나 어렵다 평가하는 것을 아주 세심하고 꼼꼼하게 탐구하며 파고들 약점을 찾았고, 끝내는 해결법을 알아내 논파하고는 했다. 마르지 않는 샘처럼 솟아나는 자신감과 언제나 당당한 태도는 그것에서 기인했다. 그는 무엇이든 해낼 수 있다고 스스로를 믿었고, 조금이라도 가능성이 보인다면 악착같이 매달려 길을 설계하고 믿음을 현실로 구현해내는 사람이었다.)
(은빛 수선화 두 송이와 노란 수선화 한 송이를 손에 들고서 다시금 꽃덤불 틈을 꼼꼼하게 헤쳐나간다.)
관찰력
기준치: 65/32/13
굴림: 48
판정결과: 보통 성공
 
유진 N. 브리즈:
관찰력
기준치: 65/32/13
굴림: 98
판정결과: 실패
 
아테나 K. 히페리데:아, 찾았다. (반대쪽 손을 뻗어 한 송이를 더 꺾어든다.)
 
반면 유진의 눈에는 보이지 않네요. 하긴 서른 송이밖에 없는데 이렇게 한 곳에 모여있는 것도 이상하지!
 
유진 N. 브리즈:(서른 송이 밖에 없었구나.)
(잠시 안경을 벗고 눈가를 매만졌다. 다시 찾아보자.)
관찰력
기준치: 65/32/13
굴림: 93
판정결과: 실패
(그새 피곤한가~)
 
똑같은 꽃들을 계속 보다 보니 눈이 조금 피곤해진 기분이네요.
 
눈 운동을 해줍시다!
 
유진 N. 브리즈:(꽃을 보는 건 익숙하지 않아서 눈이 많이 아프네. 손바닥으로 눈 위쪽을 살짝 눌러 매만졌다.)
 
아테나 K. 히페리데:너랑 나랑 합쳐서 네 송이나 찾았으니 이만하면 1등이려나? 아니면 좀 더 찾아볼까? 슬슬 목마르니 뭐 좀 마시고 와서 다시 찾아도 좋고.
 
유진 N. 브리즈:오. (4송이.) 사람을 기다리게 하는 취미는 없는데. 미안하지만 5분 정도만 기다려줄래요? 4송이는 어쩐지 애매하다는 느낌이 들어서요.
(주변을 다시 한번 살펴본다.)
기준치: 65/32/13
굴림: 77
판정결과: 실패
 
유진의 수선화 찾기 운은 소임을 다한 모양인가 봅니다...
 
안보인다~
 
아테나 K. 히페리데:5분 지난 것 같은데 어떻니? (스마트워치 봄)
 
유진 N. 브리즈:(꿈자리가 사납더니.)(안경을 고쳐 쓰며 허리를 폈다.)
운이 없나 보네. (아무것도 찾지 못하였다는 듯 빈 손을 펼쳐 네게 보여준다.) 4는 어딘가 삐걱거릴 것 같아서 마음이 영 편치 않단 말이지.
 
아테나 K. 히페리데:아프리카에 그런 미신이 있었나? 일단 뭐라도 마시고 와서 다시 찾아봐도 되니까 마음 급할 것 없단다. (등을 가볍게 팡 친다) 노점들이 줄지어 서 있으니 구경하러 가자.
 
유진 N. 브리즈:아니, 그런 건 없어요. 이런 것도 믿기 마련이니까. 4라는 숫자는 쉽게 나눠지잖아요. 나는 그런 게 별로라서. (어깨를 으쓱거렸다.)
당신 말대로 서두를 필요는 없으니 잠시 쉬었다 가볼까요? 적절한 휴식은 새로운 활동에 도움을 주기도 하니까.
 
아테나 K. 히페리데:그래? (별 신기한 징크스가 다 있네, 같은 표정) 나눠지는 게 왜 별로인 건지 이해는 안 가지만. 그럼 가자꾸나. 술은 잘 마시니?
 
유진 N. 브리즈:오, 기왕이면 완전수나 소수가 좋지 않아요? (가볍게 웃는다.) 그럼요. 나도 즐길 때는 즐기는 사람이라서요. 당신은?
 
아테나 K. 히페리데:수학자스러운 그 발언은 뭐니? 난 1을 제외하곤 숫자에 그렇게 신경을 기울이지 않아서. (뭐든지 최고를 노리는 이다운 대답이다.) 나도 물론이야. 그래도 싸구려 술은 싫은데, 와인은 없으려나? (이런다)
 
유진 N. 브리즈:0에도 관심을 가져보는 건 어때요? 0과 1로 구성된 세계에서 살게 될 지도 모르잖아. (어깨를 으쓱이고는) 글쎄, 가보면 알겠지. 당신이 생각하는 싸구려의 기준이 뭔지 물어봐도 돼요?
 
아테나 K. 히페리데:그렇지만 사회에 0등은 없잖니? 그리고 싸구려 술은 역시 맥주겠지. 아주 비싼 보리로 만든 거 아님 모를까, 무슨 맛으로 마시는지 모르겠다니까. 목 긁고 내려가는 탄산 맛도 별로고.
 
한 켠에 노점들이 쭉 줄지어 서 있습니다.
 
대개 동아리에서 자체적으로 음식을 만들어 술과 판매하는 형식입니다.
 
다트를 던져 풍선을 터뜨리는 게임 부스나 사진을 찍을 수 있는 포토존도 곳곳에 마련되어 있네요.
 
유진 N. 브리즈:(오, 다트 던지기.)
 
아테나 K. 히페리데:와인을 팔 것 같은 부스는 안 보이는구나……? (약간 실망)
 
유진 N. 브리즈:생각보다 본격적으로 꾸며 놓았는데? (꽤 흥미로운 눈빛이다.) 이참에 즐겨보는 건 어때요? 축제라잖아요. 파티만큼은 아니더라도 환상적인 시간이 될 지 누가 알겠어?
 
아테나 K. 히페리데:흐음. 파티 수준이 아니니 만족스럽진 않지만 이런 곳에서 뭘 기대하겠니. 넌 꽤 관심이 있나 보구나? 하고 싶은 거라도 있어? 맥주부터 마시기라던가.
 
유진 N. 브리즈:(아테나의 만족 수준은 디너 파티 쯤은 되어야 가능한걸까?)
나는 그냥 이것저것 구경하는 걸 좋아해요. 세상에 재미있는 게 이렇게 많은데 무엇 하나라도 놓치면 아쉽지 않아요? 그러다 예기치 못한 상황에 마주한다면 조금 당황스럽기는 하지만 즐길 때는 즐기는 게 좋지. 어떤 방식으로라도 일은 해결되기 마련이니까.
 
아테나 K. 히페리데:그래? (문득 유진을 빤히 바라보다 짓궂게 웃는다) 난 네가 술에 취한 모습을 구경하고 싶어졌는데. 와인은 없어도 스카치 위스키는 파는 모양이야. 저거라도 마시지 않겠니? (다들 술잔을 들고 돌아다니고 있다)
 
유진 N. 브리즈:(짓궂은 웃음과 함께 돌아오는 말에 너를 가만히 바라보다 재미있다는 듯 웃었다.) 자신있나봐요?
아가씨께서 즐기고 싶다면야, 어울려드리죠. (긍정하듯 작게 고개를 끄덕인다.)
 
아테나 K. 히페리데:내가 자신없는 게 있기는 하겠니? (한껏 콧대 높은 소릴 하며 씩 웃는다.) 그리 말하는 걸 보니 너도 못하지는 않는 모양이구나.
여기 스카치 위스키 두 잔.
 
곧 주문한 대로 위스키 잔 두 개가 나옵니다.
 
아테나 K. 히페리데:(한 잔 당신에게 건넨다) 마시면서 돌아자니자꾸나. 네가 보고 싶다는 구경도 하고?
 
유진 N. 브리즈:(위스키 테이크아웃. 재밌는 발상이다.)(잔을 건네받고는 주변을 잠시 둘러본다.) 게임 부스 같은 곳도 있던데 그런 곳에 가는 건 괜찮아요?
 
아테나 K. 히페리데:그 정도야 뭐. (잔을 가볍게 흔들자 얼음이 부딪히며 맑은 소리를 낸다.) 봐둔 데 있니?
 
유진 N. 브리즈:봐둔 곳이라. (잠시 생각하듯 눈을 굴리더니) 움직이는 건 좋아해요? 저쪽에 풍선 터뜨리기를 하는 곳이 있더라고요.
 
아테나 K. 히페리데:그런 게 있어? 풍선이라니…… 정말 애 같지만, 뭐 한번쯤은 어울려줄게.
 
유진 N. 브리즈:……다트 던지기 해봤어요? (혹시나 하는 마음에 단어를 바꿔본다.)
 
아테나 K. 히페리데:어릴 때나 종종 했지. (그게 그거)
 
유진 N. 브리즈:(해보기는 했군.)
그래요, 그거. 일정 거리에 다트판 대신 풍선을 둔 거잖아요. 범위도 넓어졌으니 누구라도 즐길 수 있지 않겠어요? 아, 아니면 우리 아가씨, 혹시 너무 어릴 때라 지금은 자신이 없으신가?
 
아테나 K. 히페리데:뭐? (유진의 도발에 곧바로 넘어가선 눈매가 뾰족해진다. '빠직' 하는 효과음이 들린 것도 같다) 자신이 없긴 뭐가 없어? 흥, 당장 따라오렴. 거기 있는 상품들 다 내가 쓸어줄 테니까.
 
유진 N. 브리즈:(재미있는 사람이라니까.)
 
두 사람은 풍선 게임 부스로 향합니다. 한쪽 벽면에 풍선이 가득 붙어 있고, 1등부터 5등 보상이 쭉 쓰여 있네요.
 
한 사람당 다트는 5개씩 주어지고, 몇 개를 맞췄느냐에 따라 1등부터 5등까지가 결정됩니다.
 
참고로 이능력 사용은 금지라고 하네요!
 
다트를 던질 시 <투척> 판정 해주세요!
 
참고로, 학생들이 죄다 이능력자인데다 단련을 통한 신체 능력이 좋은 걸 고려해서인지 풍선이 상당히 멀찍이 세팅되어 있습니다.
 
힘내봅시다~
 
유진 N. 브리즈:오, 거리가 꽤 있네?
먼저 던질게요?
(가까이 다가가서 자세를 잡고 다트를 하나 던진다.)
투척
기준치: 20/10/4
굴림: 80
판정결과: 실패
 
미처 풍선에 닿지 못하고 떨어져 버립니다. 처음이라 그래 처음이라~
 
유진 N. 브리즈:(거리부터 가늠해야겠구나. 떨어진 다트를 보며 허망하게 웃었다.)
 
아테나 K. 히페리데:능력을 못 쓰는 게 당연하긴 하다만 거리가 좀 거슬리는구나. (유진이 실패하는 걸 보고선 좀 더 신중하게 위치를 가늠하고 다트를 던져본다)
투척
기준치: 20/10/4
굴림: 12
판정결과: 보통 성공
 
펑!
 
초록색 풍선 하나가 무난하게 터집니다.
 
아테나 K. 히페리데:후후. 후후후……
봤니? (우쭐)
 
유진 N. 브리즈:(가볍게 웃으며 어깨를 한번 으쓱거렸다.) 실력이 녹슬지는 않았네요.
그대로 잘 해봐요. 혹시 알아? 오늘이 당신의 날일지.
(다시 한번 자리를 잡고 다트를 던진다.)
투척
기준치: 20/10/4
굴림: 68
판정결과: 실패
 
이번에는 거의 근접하는가 싶었지만! 아쉽게도 풍선이 붙어있는 위치보다 좀 더 아래에 가 맞았습니다.
 
아테나 K. 히페리데:먼저 제안하더니 실력이 영 아니구나? (웃으면서 이어 던진다)
투척
기준치: 20/10/4
굴림: 66
판정결과: 실패
 
그러나 맞추지 못한 건 마찬가지였습니다.
 
초심자의 운이었나? (아테나는 초심자가 아니라고 주장하겠지만요)
 
유진 N. 브리즈:(초심자의 운 괜찮지. 자세를 가다듬고 다시 한번 다트를 던져본다.)
투척
기준치: 20/10/4
굴림: 8
판정결과: 어려운 성공
 
펑!! 깔끔하게 파란색 풍선이 터져나갑니다.
 
거의 정중앙을 때렸네요. 이제 감을 좀 잡았나 본데?
 
아테나 K. 히페리데:아직 기회는 세 번이나 남았단다? (질 수 없지, 하고 이어서 던진다)
투척
기준치: 20/10/4
굴림: 54
판정결과: 실패
 
휭~ 하니 빗나가는... 그의다트.
 
아테나 K. 히페리데:두 번. (부들부들)
 
유진 N. 브리즈:(옆에서 왼손을 들어 다트를 한번 더 던진다.)
투척
기준치: 20/10/4
굴림: 34
판정결과: 실패
 
아테나 K. 히페리데:
투척
기준치: 20/10/4
굴림: 56
판정결과: 실패
 
쉽지 않네 이거 ㅋ
 
이제 기회는 한 번 남았습니다.
 
스코어는 1:1 !!!! 과연 승리는 누구의 것일까요
 
두구두구두구
 
유진 N. 브리즈:
투척
기준치: 20/10/4
굴림: 46
판정결과: 실패
쉽지 않네. (하지만 재밌어서 만족한다.)(손 탁탁 턴다.)
 
아테나 K. 히페리데:후. (심호흡 하고…… 맨 처음으로 맞췄던 그 감각을 떠올리며…… 완전 신중하게 던진다! 꼭 이겨야 돼!)
투척
기준치: 20/10/4
굴림: 4
판정결과: 극단적 성공
 
매끄럽고 정확하게 날아간 다트가…… 거의 정중앙의 은색 풍선에 적중!
 
2:1로 아테나가 승리를 가져가게 되었습니다.
 
아테나 K. 히페리데:(콧대가 또 하늘까지 높아진다.) 봤니? 내가 말로만 잘한다는 게 아니라는 걸 똑.똑.히 알았지?
 
유진 N. 브리즈:(너를 바라보다 박수를 두 어 번 친다.) 역시 못 당하겠네. 하지만 즐거웠죠? 이렇게라도 해야 당신도 즐기잖아요.
 
아테나 K. 히페리데:뭐, 나쁘진 않았어. (언제 집중해서 했냐는 듯 새침하게 군다.)
 
부스 담당자가 두 사람에게 각각 상품을 줍니다.
 
유진에게는 5등 보상인 동물 모양 키링을, 아테나에게는 멋들어진 자수가 놓인 반장갑을 주네요.
 
유진 N. 브리즈:(무슨 동물 모양이지?)
 
하얀 독수리 모양입니다. 멋진걸~
 
유진 N. 브리즈:오. (맘에 든다.)
 
아테나 K. 히페리데:디자인이 썩 나쁘지는 않구나. (장갑 이리저리 살펴본다)
 
유진 N. 브리즈:마음에 들어요?
 
아테나 K. 히페리데:나쁘진 않다구. (흘겨본다) 다른 거나 하러 가자.
 
반대쪽에는 사격 게임 부스도 있네요.
 
설욕전을 할 기회일지도?
 
유진 N. 브리즈:(설욕전이 필요한건가?)(잠깐 고민 중)
군사학교 아니랄까봐 공격적인 게임이 많네. (다른 게임은 없는지 살펴본다.)
 
카드 게임 부스, 운세를 봐주는 타로 부스, 다양한 코스프레를 해볼 수 있게 도와주는 부스나 페이스 페인팅을 그려주는 곳도 있네요.
 
유진 N. 브리즈:―본격적인 축제이기도 하고. (어디를 가보지?)
재미있어 보이는 곳이 많네요. 가보고 싶은 곳 있어요?
 
아테나 K. 히페리데:운세 같은 건 다 헛소리지. 카드 게임 정도는 괜찮아 보이는데 어떠니? (다트에 너무 열중하느라 잊고 있던 위스키 홀짝거린다)
 
유진 N. 브리즈:운세에 모든 걸 맡기는 사람도 있다는 걸 당신이 알아줬으면 좋겠는데요. 나는 그 헛소리, 제법 좋아하는 편이라서. (작게 웃는다.) 좋아요. 카드 게임 하러 가 볼까요? 어떤 룰일지 기대되네요.
 
아테나 K. 히페리데:그러니? 나로선 도통 그런 게 미신과 뭐가 다른지 모르겠다만, 그럼 조금 있다가 타로 부스도 가 보든지. (어깨 으쓱이고는 카드 게임 부스로 향한다.)
 
도착한 부스에서는 여러 카드 게임을 안내해주고 있습니다. 테이블은 넓고 깔끔하게 세팅되어 있네요.
 
간단하게 하기에는 업다운 게임이 가장 좋아 보입니다.
 
유진 N. 브리즈:업다운이 인기있나 봐요. 한번 해볼래요?
 
아테나 K. 히페리데:(위스키 한 모금 더 마시며 고개 끄덕인다) 이번에도 내가 이길 거란다.
 
담당 학생이 테이블에 카드를 놓아줍니다.
 
숫자는 30까지 있으며, 처음 뽑은 카드보다 다음 카드의 숫자가 높을지 낮을지 고르는 게임입니다.
 
유진 N. 브리즈:(범위 넓어)
 
그럼 카드를 뽑아봅시다.
 
유진 N. 브리즈:25
 
아테나 K. 히페리데:(이 숫자 뭐지)
 
유진 N. 브리즈:(웃김...) 다운.
 
아테나 K. 히페리데:나도 다운이야. 당연히. 이러면 다음 판으로 승부를 미뤄야겠구나?
 
담당 학생이 두 번째 카드를 뽑아서 보여줍니다.
 
22 이네요!
 
아테나 K. 히페리데:역시. 그럼 이번엔 내가 뽑을게.
 
유진 N. 브리즈:아무리 봐도 범위 넓지 않아? (필사적으로 웃음 참는 중)
 
아테나 K. 히페리데:한 번 더 해보고 카드 범위를 바꾸든지 하자꾸나. (좀 웃기긴 함)
24
…… 역시 바꾸는 게 나을지도. (더 웃겨짐)
 
유진 N. 브리즈:(이게 진짜 뭐람)
 
ㅋ바꾸자 바꾸자
 
너무 뻔한 결과에(ㅋㅋ) 학생이 카드를 바꿉니다.
 
유진 N. 브리즈:그대로 했어도 괜찮은데. (자연스레 입을 가린다.)
 
이번엔 범위가 1부터 10까지로 조정됐습니다.
 
아테나 K. 히페리데:그래봤자 우리 둘 다 다운이라고 했을 거잖니.
 
유진 N. 브리즈:글쎄요? 업일지 누가 알아요?
 
아테나 K. 히페리데:말은 누가 못해. (흘김) 아무튼 다시 카드 뽑아볼게.
2
 
뭐지 이거
 
유진 N. 브리즈:(웃음 참는 중)
 
아테나 K. 히페리데:차이가 없는데? …… 이게 뭐람!
난 확실한 결과엔 도박은 안 해. 당연히 업.
 
유진 N. 브리즈:아, 배 아파. (필사적으로 웃음을 참았다.) 당연한 결과 같지만 너무 뻔한 것도 재미없겠네요. 다운으로 할게요.
 
아테나 K. 히페리데:네가 도박을 즐기는 줄은 몰랐는데. (농조) 자, 어서 보여주렴. 누가 맞을지 보자꾸나.
 
학생이 두 번째 카드를 뒤집습니다. 과연...!!
 
카드에 적힌 숫자는 3입니다.
 
와 아슬아슬했어~
 
유진 N. 브리즈:차이는 맞췄네. (진짜 웃김)
 
아테나 K. 히페리데:아까웠단다. 그래도 내 승리네. (승리 같지도 않아서 김 새지만) 어때, 한 판 더 해줘?
 
유진 N. 브리즈:엎드려서 절을 받고 싶지는 않네요. (팔짱을 끼고 가만히 웃었다. 손으로 따옴표를 만들어 단어를 강조한다.) 당신이 즐겼다면 나는 그걸로 만족해서요.
더 하고 싶으신가? 우리 볼 수 있는 곳이 많이 있잖아요.
 
아테나 K. 히페리데:내가 하고 싶은 건 아니고 너한테 해보고 싶은 건 있는데. (일어나서 손가락으로 어딘가를 가리켠다.)
 
저쪽은…… 페이스페인팅을 해주는 부스네요.
 
유진 N. 브리즈:(뭐지?)
 
아테나 K. 히페리데:얼굴에 귀여운 그림 그리고 다니는 걸 보고 싶단다. (사악하게 웃음)
 
유진 N. 브리즈:오, 의도가 불순한걸. 거절할게요. (즉답)
 
아테나 K. 히페리데:그림이야 금방 지울 수 있는 거잖니? 하고 싶은 거 있냐고 물어본 건 너였잖아. (떼?씀)
 
유진 N. 브리즈:그래서 내 연약한 피부를 도화지처럼 쓰시겠다? 당신도 같이 한다면 그 제안 받아들일게요.
파트너인데 이 정도는 같이 해 줄 수 있지 않나?
 
아테나 K. 히페리데:연약ㅡ? (볼 한 번 잡아당겨 봄) 이럴 때만 파트너 소리지.
 
유진 N. 브리즈:아하여. (무력하게 늘어나는 볼)
 
아테나 K. 히페리데:엄살부리지 마렴. 힘 별로 주지도 않았어. (몇 번 더 쫙쫙 늘리다가 놔줬다.)
흐음. 흐으음…… (고민함) 좋아. (작은 걸로 그려달라고 해야지)
 
유진 N. 브리즈:(당겨졌던 볼 문질문질한다...)
미리 말해두는데 같은 걸 그린다는 조건도 붙일 거예요.
 
아테나 K. 히페리데:…… 싫어! 너랑 나랑 외모가 다르니 어울리는 그림도 다른 게 당연하잖니?
 
유진 N. 브리즈:오, 침묵이 길지 않아요? (웃음..)
 
아테나 K. 히페리데:같은 그림은 안 그릴 거란다. (한 번 더 말함)
 
유진 N. 브리즈:좋아요. 대신 내가 정할 거예요. 이 정도 협상은 해 줄 수 있잖아. 안그래?
 
아테나 K. 히페리데:이상한 걸로 하면 안 그릴 거야. 진짜란다. (매우 의심)
 
유진 N. 브리즈:나에 대한 평가가 야박하시네. 가시죠. (페이스 페인팅 부스로 간다.)
 
페이스페인팅 부스에서는 여러 학생들이 의자를 마련해두고 찾아온 이들에게 그림을 그려주고 있습니다.
 
한쪽에 예시용 그림 책자가 놓여있지만 원하는 그림을 말하면 그려줄 수 있다고 하네요.
 
미술에 소질이 있는 학생들뿐 아니라 그림 관련 능력을 지닌 학생들도 꽤나 있어 보입니다.
 
아테나 K. 히페리데:뭘로 할 거니? (이상한 건 안 돼! 하는 눈으로 봄)
 
유진 N. 브리즈:(예시용 책자를 몇 번 살피다가 네 얼굴을 바라본다. 부스 담당자에게 시선을 옮기고는 제 눈가를 가리키더니) 눈 옆에 그림을 그리는 것도 가능할까요?
(옆에 있는 아테나의 어깨에 손을 올렸다.) 대상은 내가 아니라, 이 아가씨에게요. 샘플을 보니 파란색을 잘 쓰시던데 파란 장미로 부탁하고 싶네요.
 
아테나 K. 히페리데:음? 장미는 나쁘지 않은데…… (손목 덥썩 잡음.) '내가 아니라' 는 무슨 소리지? 너도 하기로 했잖니, 브리즈.
 
유진 N. 브리즈:이래서 눈치 빠른 사람은 싫다니까. (태연)
 
아테나 K. 히페리데:이 도련님도 포함이란다. 원래라면 너한테는 고양이 코에 수염이나 그려달라고 하려고 했는데…… 네가 평범한 걸 말했으니 나도 너그럽게 굴어줘야겠지. 수선화로 부탁해.
 
"수선화와 파란 장미, 알겠습니다!"
 
싹싹하게 대답한 담당 학생들이 두 사람을 각각 의자에 앉힙니다.
 
붓에 물감을 묻히고는 슥슥, 어렵지 않게 그림을 그려나가는데요.
 
얼굴에 붓이 닿는 촉감이 간질간질하네요.
 
잠시 뒤 "완성이랍니다~" 하며 학생이 거울을 건네줍니다.
 
둘 다 눈가에 꽃과 잎이 그려져있네요. 과연 어울리려나?
 
<외모> 판정 해봅시다.
 
아테나 K. 히페리데:
외모
기준치: 75/37/15
굴림: 11
판정결과: 극단적 성공
 
유진 N. 브리즈:
외모
기준치: 70/35/14
굴림: 39
판정결과: 보통 성공
 
아테나는 쿨톤이어서 그런지 파란 장미가 기가 막히게 잘 어울립니다.
 
가시를 표현하듯 뾰족하게 덩굴처럼 늘어진 잎도 무척 조화롭네요!
 
유진 또한 눈가에 고운 수선화가 세 송이쯤 그려졌습니다.
 
원래도 잘생긴 인상을 한층 부드럽게 만들어주네요.
 
아테나 K. 히페리데:흐음. (거울 이리저리 들여다본다.) 뭐, 계획에 없던 일치고는 나쁘지 않구나.
 
유진 N. 브리즈:(거울을 한번 바라보고는 담당학생에게 고맙다고 인사한다.) 누가 보아도 축제를 즐기러 온 사람이네요. 마음에 들어요?
 
아테나 K. 히페리데:이렇게까지 할 생각은 아니었지만. (거의 비어가는 잔을 한 번 더 찰랑인다.) 특별히 그렇다고 해줄게.
은색 수선화, 더 찾아보겠니? 조금 있으면 제출하는 시간이 마무리될 것 같구나.
 
유진 N. 브리즈:당신이 한번 더 어울려준다면? (네게 손을 내밀었다.)
 
아테나 K. 히페리데:매너 하나는 깍듯하단 말이지. (어깨 가볍게 으쓱하곤 그 위에 제 손을 올렸다.)
 
유진 N. 브리즈:그럼 가실까요? (수선화 찾는 곳으로 자리를 옮긴다.)
(유진은 위스키를 남겼다1 다마셨다2 1)
 
아테나 K. 히페리데:(이쪽도 아직 좀 남아있긴 하다)
 
수선화를 찾는다면 <관찰력> 판정!
 
유진 N. 브리즈:
관찰력
기준치: 65/32/13
굴림: 22
판정결과: 어려운 성공
 
마침내!!
 
새로운 은색 수선화를 두 송이나 발견했습니다.
 
곳곳을 돌아다닌 보람이 있네요.
 
유진 N. 브리즈:아, 찾았다. (은색 수선화를 들고 일어난다.)
6송이. 나쁘지 않은 숫자네요. (나름 만족한 듯) 당신은 더 찾지 않아도 괜찮아요?
 
아테나 K. 히페리데:드디어 4를 벗어났구나. 그것도 나름 반으로 나뉘어지는 숫자인데 괜찮은 거니? (흥미) 난 됐어. 우리가 1/5를 찾았으니 1등은 따놓은 거겠지.
 
유진 N. 브리즈:(1/5)
말했잖아요. 나는 완전수도 좋아하거든요. (고개를 끄덕인다.) 1등을 할 수 있다면 1등을 노리는 게 당신이 원하는 바이기도 하고요.
(손에 쥔 은색 수선화 줄기를 돌리며 바라보다 가만히 웃었다.) 나는 충분히 즐겼어요. 즐거운 기억으로 남을 것 같네요.
 
아테나 K. 히페리데:(각자의 손에 세 송이씩 들린 은색 수선화를 바라보며 오연하게 미소했다) 나도. 파티는 대개 사람들과 대화하고 관계를 쌓는 데 치중되는 편이니 이렇게 순수하게 놀아본 건 꽤 오랜만이었단다. 와중에도 이길 수 있을 만한 일에선 다 이겨서 만족스러웠어.
그럼 이 완전수 수선화를 제출하러 가보자꾸나.
 
유진 N. 브리즈:서민들의 파티도 나쁘지 않죠? (장난스레 미소를 띄우고는 수선화를 제출하러 간다.)
 
두 사람은 사관학교 이벤트 본부에 여섯 송이의 수선화를 제출했습니다.
 
제출 시간이 마무리되고 대조해본 바, 유진과 아테나 페어가 압도적인 차이로 1등을 차지하게 되었다고 하네요!
 
1등 보상으로는 커다란 곰 인형과 함께 각성자사관학교의 상징과 수선화가 그려지고 베로니카라는 글씨가 쓰여진 멋들어진 메달을 받았습니다.
 
아테나 K. 히페리데:메달은 그렇다 치는데 이 인형은 뭐니? 어린애도 아니고!
 
유진 N. 브리즈:(갑자기 예정에 없던 인형이 생겼다.)
…… (말없이 아테나 몫으로 인형을 옮긴다.) 1등 상품이니 당신이 기꺼이 누릴 영광이네요.
 
아테나 K. 히페리데:어머. 이런 영광은 필요 없거든? 네가 가져. 넌 키가 멀대같이 크니 이런 인형을 갖고 다녀야 이미지가 좀 중화가 되지. (유진 쪽으로 다시 민다)
 
유진 N. 브리즈:미안하지만 나는 비상사태를 대비해서 빈 손으로 다니자는 주의에요. 손을 쓸 수 없는 상황은 무척 힘들어서. (작게 웃고는) 뭐, 그래도 원한다면 내가 들어줄 수는 있네요. 삭막한 방에 귀여운 친구를 둘 생각은 없어요? (아테나가 정리 정돈을 잘할 것 같다는 편견아닌 편견)
 
아테나 K. 히페리데:바람으로 띄우고 다니지 그러니. (냉정) 왜 내 방이 삭막할 거라고 생각하는 거니? 당연히 깔끔하긴 하지만 너보다는 좀 더 화사할걸? 우아한 내 방에는 저런 귀여운 인형은 안 어울려. (급기야 외면한다)
 
유진 N. 브리즈:내가 그래도 생명의 은인인데 내 노동력을 너무 가볍게 대우해주는 거 아닌가? (!) 이참에 이미지 체인지를 해 봐요. 당신은 뭐든 잘 어울리니까. 오, 아니면 좋아할 만한 사람에게 선물로 주지 그래요?
 
아테나 K. 히페리데:하아? ('거기서 지금 그 얘기를 꺼낸다고?' 하는 눈으로 유진 바라보며 황당해한다.) 너는 말이지…… 그런 비장의 카드를 고작 이런 인형에 쓰고 싶니? 무를 기회를 딱 한 번 줄게.
 
유진 N. 브리즈:미스 히페리데, 나는 이 이야기를 한번만 언급한다고 이야기한 적은 없어. (앞으로도 기회 보면서 계속할 거란 소리)
 
아테나 K. 히페리데:(눈 가늘게 뜨고 째려본다) 내가 한 번 밖에 안 들어줄 거거든! 누가 계속 당해줄 줄 알고?
네 주변에도 인형 좋아할 만한 애는 있겠지. 그런 애들한테나 주렴. (휑하니 몸 돌림)
 
유진 N. 브리즈:(그 반응을 지켜보다 피식 웃으며 어깨를 가볍게 으쓱거린다.) 그런 상대가 있으려나. 그렇게까지 말한다면야 그렇게 할게요. 빠른 시일 내 적임자가 나타나면 좋겠네. (농담처럼 하는 말이지만 진담이다.)
 
아테나 K. 히페리데:안 나타나면 버려. 딱히 필요없잖아. 인형 껴안고 자는 어린애도 아니고. 난 어릴 때도 인형을 끌어안고 잔 적은 없지만. (도도)
 
유진 N. 브리즈:전세계 인구의 절반 가량을 적으로 돌린 용감한 발언, 잘 들었습니다. 쓰레기 처리가 얼마나 번거로운지 모르시네. 이런 걸 원하는 사람은 한둘은 나타나기 마련이에요. (한손에 인형을 끌어안는다.)
 
아테나 K. 히페리데:절반이나 그런 짓을 한다고? 나약한 인간이 이렇게 많아서야. (인형 끌어안은 모습 보며 픽 웃는다) 사진이라도 찍어줄까? 혼자 보기 아깝구나.
 
유진 N. 브리즈:몰랐어요? 인간은 원래 나약해요. (옆으로 고개를 한번 까딱인다.) 거절할게요. 귀한 모습 혼자 보는 특별한 사람이 되어봐요.
더 보고 싶은 곳은 있어요? 나는 이만하면 제법 축제를 즐겼다 보는데.
 
아테나 K. 히페리데:찍어서 두고두고 놀려줄 생각이었는데 아깝구나. (고개 살짝 내젓는다) 됐어. 나도 이만하면 만족해. 어느새 시간도 제법 늦어지긴 했구나. 그나저나 네가 술에 취한 모습을 끝까지 보지 못한 게 아쉬운걸. 학교 축제에서 파는 술 수준이 다 거기서 거기지만.
 
유진 N. 브리즈:oO(노리는 게 있었구나.)
그렇게 궁금하면 다음에 한번 더 같이 마셔줄 수 있는데 자리라도 마련해볼까요?
 
아테나 K. 히페리데:거절할 이유 없지. 후후, 조금 기대가 되는구나. (제 눈가의 푸른 장미를 살짝 만져본다) 이거 잘 지워져야 할 텐데.
 
유진 N. 브리즈:잘 지워질테니 걱정 말아요. (작게 웃었다.) 이것도 기념인데 오늘 남은 시간동안 그 모습으로 다녀보는 건 어때요?
 
아테나 K. 히페리데:이제 곧 들어갈 건데 뭘. 너도 인형 들고 수선화 그린 채로 즐기다가 가렴.
 
두 사람은 꽃을 찾아다니고 여러 부스를 돌아다니며 한껏 축제를 즐겼습니다.
 
베로니카 주간의 핵심 행사인 수선화 찾기에서도 1등을 했으니 이만하면 더 아쉬울 것도 없겠죠!
 
밤은 깊어가고 하늘도 맑아 밝게 뜬 달과 별이 잘 보입니다.
 
내내 돌아다녔으니 이만 방에 가서 쉬어도 좋겠습니다.
 
유진 N. 브리즈:(하늘을 바라보다 나지막이 중얼거린다.) 별이 밝네.
나는 이만 돌아갈까 하는데, 당신은요? 함께 돌아가신다면 내가 친히 에스코트 해드릴까 해서.
 
아테나 K. 히페리데:나도 이젠 아쉬운 게 없어서. 돌아가자꾸나. 그래도 시간이 늦어가니 아까보단 좀 더 시원해져서 좋네.
 
유진 N. 브리즈:(아테나와 함께 기숙사로 돌아갑니다.)
 
베로니카 주간의 하루가 이렇게 지나갑니다.
 
...
 
베로니카 주간의 셋째 날.
 
늦게까지 잠들지 않았던 학생들이 오전나절 내내 침대 위나 뒹굴며 쉬고 있었기에 학내는 고요했습니다.
 
“----!”
 
평화를 깬 것은 누군가의 날카로운 비명입니다.
 
웅성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리더니 몇몇 학생이 그 방향으로 뛰쳐나가는 기척이 느껴집니다.
 
당신은 어떻게 할까요? 창문을 통해 내다봐도 좋고, 직접 가 봐도 좋습니다.
 
유진 N. 브리즈:(뭐야? 반사적으로 창문을 한번 슥 훑어보려다 어쩐지 심상치 않은 기척을 느끼고 현장으로 가 봅니다.)
 
“라가힛!”
 
“누가 응급콜해! 빨리!”
 
쓰러져 발작하며 피를 토하는 학생을 둘러싸고 주변 사람들이 혼란스러워하고 있습니다.
 
유진 N. 브리즈:(라가힛?)
 
아테나와 임시 페어가 되었던 노노이 라가힛, 그입니다.
 
그 틈을 뚫고 몇 사람들이 군홧발 소리를 내며 다가옵니다.
 
2주 전 들이닥쳐 아직도 ‘불온 게시글’ 사건을 수사 중인 헌병대원들입니다.
 
아프리카 연합 공화국의 헌병대 예장에는 기묘한 모자-가면-투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서아프리카 도곤족의 전통을 따른 사팀베 마스크가 그것입니다.
 
디자인 자체는 서아프리카 전통에서 따온 것이니 이상하다고 할 게 없지만,
 
가면을 쓴 헌병대가 붉은 줄과 구슬을 관자놀이에 드리우고 표정을 감춘 채 사람들을 내려다보면 아무래도 조금 두렵기 마련이죠.
 
죽음의 사자가 내려다보는 광경 속인 것처럼, 노노이 라가힛은 바닥을 긁으며 몸부림을 치고 있었습니다.
 
손톱이 깨지고 피를 토하는 소년의 몸 위에서 검붉은 에너지가 마치 자아를 가진 듯이 움직이며 그를 감싸죕니다.
 
요한 에를리히:무슨 일이야!
 
라가힛의 꼴을 보고 놀란 요한이 달려와 몸을 구부립니다.
 
엎드려 울부짖는 소년을 껴안아 달래고, 뒤집어 똑바로 눕히고,
 
눈에 품은 렌즈로 아주 오랜 노출을 주어 사진을 찍듯이 그 광경을 들여다봅니다.
 
요한 에를리히:의료진 아직 안 왔어?! 누가 1학년 히페리데 좀 불러! 라가힛은 히페리데와의 동조율이 가장 높지 않았나?!
 
아테나 K. 히페리데:무슨 일이죠? (영 떨떠름한 낯으로 사람들이 둥그렇게 모여 선 중간으로 파고든다.)
 
요한 에를리히:상태가 안 좋아. 히페리데, 네가 그나마 임시 페어 때 동조율이 높은 편이었으니 에너지 주입을 부탁한다.
 
아테나가 그의 말에 따라 푸른빛 에너지를 불러일으키려던 순간이었습니다.
 
모여 있던 학생들은, 사람이 터지면 그런 소리가 난다는 것을 강제로 알게 되었습니다.
 
안에서부터 폭탄 스위치가 눌린 것처럼 노노이 라가힛은 말 그대로 터져버렸습니다.
 
공중에 살점과 피가 흩날리는 광경을 굳이 무참하게 묘사할 필요는 없겠죠.
 
곁에 서 있던 요한과 아테나는 피를 흠뻑 뒤집어쓰고 말았습니다.
 
끔찍한 광경을 목격한 유진, <이성> 판정 (1/1D4)
 
유진 N. 브리즈:(반사적으로 낮은 목소리로 욕을 내뱉었다.) 이게 대체 뭐야?
SAN Roll
기준치: 64/32/12
굴림: 91
판정결과: 실패
2
 
이성 2 감소.
 
너무도 갑작스럽고 충격적인 순간이라 비명은 뒤늦게 산발적으로 커집니다.
 
비틀거리며 도망치거나 주저앉아 구토하는 학생도 있었습니다.
 
그 가운데에서 헌병대 한 사람이 노노이 라가힛의 가장 큰 부분을 집어들었습니다.
 
유진 N. 브리즈:(이런 미친)
 
도곤족뿐만 아니라 아프리카의 많은 부족들이 가면을 자아 표현과 제식 수단으로 썼지만,
 
장례식에서 쓰는 가면은 오로지 사팀베 마스크 하나뿐이라는 점을 생각하면 저 표정 없는 얼굴은 더욱 두렵게 느껴집니다.
 
어떤 사회문화 연구자들은 이 예장을 두고,
 
인류의 기원 이후 아주 오랜만에 사람들을 지도하는 역할을 가질 수 있었던 아프리카인들이
 
‘문명국’에서 넘어온 ‘비흑인’들을 ‘비문명적’ 방식으로 위압하기 위해 선택한 방식이 아니었나 논설했더랬죠.
 
억압받지 않던 자가 억압받던 자들의 방식을 야만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다른 의미로 야만이 될까?
 
어떤 역사의 신성한 전통을 압제에 사용하는 것은 야만이 아닐까?
 
이제는 토론할 수 없습니다.
 
그 연구자들은 언젠가부터 보이지 않았고,
 
이 아프리카 땅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고대부터 그러하였듯 기록보다는 구전이어서,
 
말할 입이 없어진 목소리는 이내 사그라들었습니다.
 
요한 에를리히:가만히 놔 둬!
 
오래 내려앉은 그 침묵을 사르고 타는 불꽃처럼, 요한이 고함을 지르며 라가힛의 다리를 붙잡습니다.
 
그러자 라가힛을 집어들던 헌병대원이 빈 손으로 가면을 밀어 벗었습니다.
 
안에서 드러난 것은 이런 상황에서 만나지 않았다면 인상이 참 좋은 청년이라고 평가했을 법한 남자의 얼굴입니다.
 
<관찰력> 혹은 <지능> 판정
 
유진 N. 브리즈:
관찰력
기준치: 65/32/13
굴림: 9
판정결과: 극단적 성공
 
유진은 그 청년과 요한 에를리히가 퍽 닮았다는 느낌을 받습니다.
 
유진 N. 브리즈:(가족인가?)
 
사관생도가 헌병대원에게 함부로 반말을 해선 안 될 텐데요. 두 사람은 무슨 관계일까요?
 
남자는 낮고 부드러운 음성으로 입을 엽니다.
 
남자: 노노이 라가힛의 신병은 헌병대에서 인수하겠다. 손을 놓기를 권유한다, 요한 에를리히.
 
요한 에를리히:이 애를 더는 훼손하지 마! 살아있을 때 가지고 논 걸로 충분하잖아, 미친 자식들아!
 
그러자 남자는 자비를 베풀겠다는 것처럼 조심스럽게 ‘라가힛의 가장 큰 부분’을 다시 내려놓았습니다.
 
그러고선 한쪽 무릎을 굽혀 자신과 닮은 얼굴을 바라봅니다.
 
남자: 사관생도 노노이 라가힛에게는 즉결 처분 가능한 혐의의 증거가 있다.
 
요한 에를리히:…… 웃기는 소리 마!
 
남자: 그가 불법적인 약물을 도핑해 그 부작용으로 발작을 일으켰다는 증언이 접수되어 수사한 결과 여러 혐의를 확보했다.
이 폭사(爆死) 역시 관련이 있을지 없을지 알 수 없으니 부검이 필요하겠군. 수사가 종료된 후에는 최소한의 인권을 존중하여 유해를 화장하겠다.
불만 있나, 요한 에를리히? 그렇다면 정식으로 소를 제기하는 건 어떤가.
 
요한 에를리히:개새끼야! 닭이 시장 가는 것을 어떻게 거절한단 말이야!
 
이제 공화국 시민들은 다양한 옛 지역에서 유래된 속담을 다 섞어 씁니다.
 
‘닭은 시장 가는 것을 거절할 수 없다’는 말은 중부 아프리카에서 올라온 관용어구.
 
약자는 강자를 거부할 수 없다는 의미죠.
 
이성적으로 구는 요한답지 않게 점점 격앙되고 있습니다.
 
헌병대에게 이런 식으로 반항하다간 징계 감입니다.
 
어떻게 할까요? 끼어들어 요한을 말릴 수도 있고, 그들은 내버려두고 피를 뒤집어쓴 아테나를 데려갈 수도 있습니다.
 
유진 N. 브리즈:(상황이 제법 위험한데? 채 생각을 끝마치기도 전에 요한의 앞으로 다가가 두 사람 사이를 가로 막고 그를 바라본다.) 선배, 이쯤 하죠. 대화로 해결할 수 있는 건 상대 역시 지성체일 때 해당되는 말이라서요.
말재주
기준치: 35/17/7
굴림: 25
판정결과: 보통 성공
 
요한 에를리히:…… 젠장할. (씨근덕대면서도 시신에서 천천히 손을 뗐다.)
 
유진 N. 브리즈:(요한의 행동을 확인하고는 남자의 반응을 살펴본다.)
 
요한이 손을 놓자 남자가 곁에 선 다른 헌병대원들에게 작게 고갯짓을 합니다.
 
그들이 노노이 라가힛의 잔해를 모으기 시작합니다.
 
이게 다 무슨 일인지 모르겠네요.
 
시신은 결국 헌병대가 회수해 갔습니다.
 
오후 일정과 행사는 모조리 취소되었습니다.
 
학생들에게는 기숙사로 돌아가 경거망동하지 말고 얌전히 있으라는 식의 공지가 내려왔습니다.
 
그나마 기숙사 안에서는 자유로이 다닐 수 있었으므로 친구들의 방과 방을 건너다니며 몰래 저들만의 추측을 속삭이고 있는 듯싶습니다.
 
그날 밤 유리 모하에가 죽었습니다.
 
그 믿을 수 없는 소문은 학생회로 처음 전해져서, 기숙사 휴게실을 몇 개 거쳐 교정 전체로 퍼졌습니다.
 
독재에도 등급이 있습니다.
 
아프리카 연합 공화국의 지독하리만치 세련된 통치 방식은 사람들을 자기 주도적으로 감화시켰습니다.
 
우리는 문명인이야.
 
한번 스러진 인류를 복구해 빛나는 새 역사를 써내려 가고 있어.
 
나라가 잘 하고 있으니 박수를 치는 것은 시민의 지지이지 신민의 굴종이 아니야.
 
사람들은 공화국 정부가 정상적인 정책을 펼치지 않는다는 것조차 알지 못합니다.
 
그렇게 몇십 년.
 
전시도 아닌 교내에서 헌병대원의 손에 학생회장이 죽었다고 합니다.
 
이 문명적인 나라에서 실로 있을 수 없는 일이 터졌습니다.
 
사람은 상상도 하지 못한 잔인한 억압을 보면 일단 공포에 질려 입을 닫는 법입니다.
 
하지만, 왜? 그리고 정말로?
 
지금 유진은 자신의 방에 있습니다.
 
원한다면 기숙사를 돌아다니며 정보를 수집할 수 있습니다.
 
정보 없이 가만히 숨어 있어서는 무슨 일에 휘말릴지 모릅니다.
 
유진 N. 브리즈:…….
(오른손에 착용한 스마트 워치를 풀고 측면의 S 버튼을 박자에 맞추어 누른다.)
 
'음성 수집 기능이 해제되었습니다.'
 
기계적인 음성이 흘러나옵니다.
 
해제했다는 기록이 학생회실 서버에 남을 텐데요
 
유진 N. 브리즈:…―서버에 기록이 남는다면 지우면 그만이지.
(음성 수집 기능을 해제한 스마트 워치를 자연스레 다시 오른손목에 착용하고 기숙사 방을 나선다.)
(학생회실 방향으로 가겠습니다.)
 
학생회실에선 분명 임원들이 모여 나름대로 대책 회의를 하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혹은 죽었다던 유리 모하에가 멀쩡히 앉아 농담 따먹기나 하고 있을지도 모르는 일이죠.
 
그러나, 도착한 학생회실은 텅 비어 있습니다.
 
불도 켜져 있지 않아 일견 음산하기까지 하네요.
 
학생들이 많이 가는 장소는 기숙사 1층 학생식당이나 2층 휴게실이죠.
 
우선 학생식당부터 가볼까요?
 
유진 N. 브리즈:(그런 상황이 일어났는데 이렇게 조용하다고?)
여기나 저기나 멀쩡한 곳이 없어. (빈 학생회실을 보고는 학생 식당 방향으로 발을 옮긴다.)
 
학생식당에는 헌병대원 두 사람이 경계를 서고 있습니다.
 
들어 보니 공식적인 사유는 어제 라가힛의 사건 탓에 교내에서 동요가 일어나는 것을 단속하기 위해서라고 하네요.
 
감시가 있는 탓인지 학생식당은 영 조용합니다.
 
학생들 몇몇이 눈치를 보며 식사를 하고, 주방 직원들도 친근하던 평소와 달리 좀처럼 말을 걸지 못하고 허둥거립니다.
 
그때 직원 한 사람이 유진에게 손짓합니다.
 
유진 N. 브리즈:(주변을 살펴보다 손짓하는 직원에게 자연스럽게 다가간다.)
 
직원이 들리지 않도록 조그맣게 속삭여 옵니다.
 
직원: 학생, 요한 군이랑 그 멘토인가 그거지?
요한 군이 어제부터 통 안 보이는데, 큰일이네……. 괜찮으면 이것 좀 전해줄 수 있겠어요?
 
직원이 건넨 것은 웬 달걀 두 개와 음료수입니다.
 
유진 N. 브리즈:어제부터 안 보였다고요? (달걀 두 개와 음료수를 받는다.) …네, 제가 전달하겠습니다.
 
달걀은 묘하게 가볍고, 안에서 달각달각거리는 소리가 납니다.
 
유진 N. 브리즈:(응?)
 
평범한 달걀은 아닌가 보네요.
 
그때, 그 광경을 유심히 보고 있는 학생 하나가 눈에 띕니다.
 
1학년 명찰을 달고는 있는데 영 처음 보는 얼굴이네요.
 
그는 멀찍이 선 헌병대원들의 눈치를 보더니 식판을 돌려놓는 척 다가와 속삭입니다.
 
학생:앙셰네 지 수습기자예요. 우리 빨대가… 아니, 미안해요. 그러니까 우리 취재원이, 학교에서 어제 큰일이 있었다고 하길래 내용을 알고 싶어서 몰래 들어왔어요.
뭐 얘기해줄 거 없나요?
 
앙셰네 지라면 풍자와 비판으로 유명한 대형언론사네요.
 
유진 N. 브리즈:……유감스럽게도 지금은 제가 전달해드릴 수 있는 게 없네요. 여기도, (숨을 고르는 듯 하더니 시선이 빠르게 주변을 훑었다.) 사람이 사는 곳이라서요.
 
학생:그렇군요. 그럼…… (명함 하나를 당신의 손에 쥐여준다.) 혹시 나중에라도 말해줄 수 있다면 이 번호로 연락 줘요.
 
그 학생은 다시 자연스럽게 멀어져갑니다.
 
주변 학생들에게 요한의 위치를 물어볼까요.
 
유진 N. 브리즈:(주섬주섬 명함을 챙긴다. 근처에 앉아있는 학생들에게 자연스레 다가가 테이블을 노크하듯 콩콩 두들겼다. 웃으며 옆자리에 서서 학생들을 내려다보고는) 시간 방해해서 미안한데 말 좀 물어도 될까요? 오늘 요한 에를리히가 어디있는지 아는 사람?
 
대부분의 학생들은 잘 모른다는 반응이지만,
 
‘아까 2층에서 본 것 같다’는 말을 해 주는 선배가 하나 있네요.
 
2층에는 기숙사 휴게실이 있었죠.
 
유진 N. 브리즈:(방이 아니라 휴게실이라.)
(고맙다는 인사를 하고 휴게실로 가봅니다.)
 
식당을 나와 2층으로 막 올라가려던 때, 뒤에서 누군가 당신을 부릅니다.
 
아테나 K. 히페리데:브리즈?
어디 가는 길이니?
 
유진 N. 브리즈:아테나?
휴게실로 가려고요. 잠시 쉴 곳이 필요해서.
 
아테나 K. 히페리데:이런 상황에 휴게실을? (머리칼을 어깨 너머로 길게 넘기며 곁으로 다가온다.) 정말로 단지 쉬려고 가는 거니? 네가 '소문'을 못 들었을 것 같진 않은데.
 
유진 N. 브리즈:'소문'이라니, 그게 무슨 의미야?
 
아테나 K. 히페리데:학생회장 말이야. (간결하게 줄여 말하며 어깨 으쓱한다.)
 
유진 N. 브리즈:……아. (그 '소문'을 말하는 거였군. 느리게 눈을 깜빡이며 시선을 옮겼다.) 소문은 소문일 뿐이니까. 우리가 거기에 휩쓸려서는 안되잖아요.
 
아테나 K. 히페리데:휩쓸려선 안 되지. 하지만 상황을 파악할 필요는 있어.
네가 휴게실에 가는 게 그 이유가 맞는지 물어본 거였단다. 맞다면 함께 가자고 하려고.
 
유진 N. 브리즈:이런 분위기에, 눈과 귀가 사방에 깔려있을지 모르는 곳에서 나를 믿나 보네?
 
아테나 K. 히페리데:(눈을 가늘게 뜬다.) 브리즈? 너와 난 페어야. 이능력자들 사이에 페어가 갖는 의미가 뭔지 모르지는 않겠지? 우리가 세간의 이미지만큼 각별하진 않더라도, 내가 너를 믿지 않으면 누굴 믿겠니? 물론 어디까지나 '다른 애들에 비해서'지만.
 
유진 N. 브리즈:오, 아무나 믿지 마라는 이야기지. 당신 말처럼 우리 사이가 각별하지는 않잖아? 이건 내 '충고'야. 정이 많은 사람들은 누군가의 표적이 되기 쉽거든요. (이야기를 이어가며 오른손 검지를 입가에 가져다댄다. 이어 왼손으로 제 손목에 드러난 시계를 톡톡 건드리고는 눈짓으로 당신의 시계를 가리켰다.)
그러니 반드시 혼자만의 휴식은 필요한 법이고. 안그래?
 
아테나 K. 히페리데:네가 '아무나'인지 아닌지는 내가 판단해. (한 번 더 새침하게 눈을 흘기곤 시선을 제 스마트워치로 떨어뜨린다. 유진의 눈짓과 말과 행동으로 미루어보건대 현재 상황과 관련된 정보를 함부로 언급해서는 안 된다는 의미로 보인다. 워치에 도청 기능이라도 있는 건가? 그러고 보면 몇 달 전 학교 뒤뜰에서도 이와 비슷한 대화를 나눴었지.)
…… 흥. 어쨌건 지금은 혼자 휴식하긴 어렵겠구나. 어서 가자.
 
유진 N. 브리즈:―정말 제멋대로라니까. (어깨에 힘을 빼고는 팔짱을 잠시 꼈다. 눈치가 빠른 사람이니 이런 표현으로도 제가 하고 싶은 말을 파악했을테지. 그런 생각을 하듯, 잠시 침묵을 유지하다가 고개를 한번 까딱인다.) 가시죠, 아가씨.
(2층 휴게실로 가겠습니다.)
 
두 사람은 계단을 오릅니다. 이상하게 식당을 제외하면 기숙사엔 헌병대원이 전혀 없습니다.
 
헌병대 수색이 학교와 전부 다 협의되지 않기라도 한 걸까요?
 
휴게실은 각층마다 2개씩은 있고, 퍽 넓어서 작은 도서관처럼 여러 학생들이 쓸 수 있는 구조로 되어 있었지만 오늘은 인구밀도가 심하게 높네요.
 
문이 열리는 소리가 나자 수십 개의 눈동자가 화들짝 놀라거나 경계하는 시선으로 돌아보다가, 같은 학생이라는 것을 알아보고 안도합니다.
 
학생 몇이 다가와 유진에게 말을 겁니다.
 
“얘기 듣고 온 거야, 아니면 그냥 들른 거야?”
 
유진 N. 브리즈:얘기?
 
“…모르고 왔구나. 우리, 그 소문이 맞는지 확인 좀 해보려고 모였어.”
 
“진짜라면 학교를 다 뒤집어야 할 사안이잖아. 유리 선배 얘기 말이야.”
 
다들 밤을 샜는지 눈이 벌겋습니다.
 
씨근덕거리는 숨소리, 엎드려 자고 있는 학생들, 어디론가 연락을 잔뜩 돌리는 학생들.
 
유진 N. 브리즈:(그걸 전부 확인하기 위해 헌병이 없는 2층 휴게실로 모인건가?) …나는 찾는 사람이 있어서 온 건데요. 요한 선배 있어요?
 
북적북적한 학생들 가운데 요한이 앉아 있습니다.
 
그는 태블릿 디바이스를 조작하고 있었는데, 요즘엔 잘 쓰이지 않는 물리 키보드까지 두드리는 중입니다.
 
요한도 잠을 제대로 자지 않았는지 얼굴 상태가 말이 아닙니다.
 
유진 N. 브리즈:(안경이 시야를 가렸나봐)
(맙소사)
……어제부터 안 보였다더니 설마 여기 있었던 거야?
(요한에게 가까이 다가가 달걀과 음료수를 건넨다.) 진전은 있어요?
 
요한 에를리히:음? (조금 놀란 표정으로 그것들을 받아들었다.)
 
부활절도 아닌데 귀여운 그림이 그려진 그 달걀에는 ‘성심성당’ 이라는 손글씨가 쓰여 있습니다.
 
잠시 고민하던 요한은 달걀 껍질을 깨트립니다.
 
안에서 나타난 건 삶은 달걀 흰자가 아니라 빈 내부입니다.
 
손톱만한 메모리 카드가 툭 떨어졌습니다.
 
요한 에를리히:너희 마침 잘 왔다. 나 좀 도와줄 수 있어?
오전 04시를 기해 정부지침으로 학교와 외부 통신이 완전히 차단됐다. 인자미나도 접속이 안 돼. 학교가 정보적으로 완전히 고립된 상황이지. 내 설계로 이 차단 시스템을 잠시 들어내는 중이야.
유리 얘기가 사실이 맞는지부터 확인하고, 맞다면 다음 대응 방침을 생각할 거다.
 
유진 N. 브리즈:(아, 아예 외부와 차단이 된 건가?)
만약 아니라는 가정이 붙는다면? 뭐, 거기까지는 생각도 안 해 볼 것 같지만요.
 
요한 에를리히:아니라면 차라리 다행인 거지. 그렇다 해도 유리의 행방을 찾아나서야 하는 건 똑같지만. 결론적으로 시스템에 간섭해야 하는 건 똑같아.
 
요한의 능력은 해킹.
 
에너지를 섬세하게 다루어 서버 간 데이터 전자 신호에 간섭하는 용도로 활용하곤 합니다.
 
충분히 가능한 일이라고 생각되긴 하지만, 거기에 두 사람의 도움이 왜 필요할까요?
 
유진 N. 브리즈:도움이 필요하다는 건 무슨 의미예요?
 
요한 에를리히:학교 서버는 규모가 몹시 크고 복잡해. 보안도 아주 철저하지. 이제 마지막 단계만 남았는데, 내 설계가 조금이라도 흐트러지면 곧바로 추적될 거다.
너희는 이 학교의 유일한 정식 페어. 동조율이 안정된 페어가 에너지를 뒷받침해 주면 안정적인 설계에 도움이 돼.
…… 하지만 브리즈, 히페리데. 이 일을 돕는다는 건 너희도 이 학교나 정부 지침에 반기를 드는 동조자가 된다는 뜻이다. 나는 유리와 관련된 진실을 파헤쳐야 할 필요가 있고, 여기 모인 애들도 그 목표에 공감하는 사람들이지만, 너희 생각이 어떨지는 몰라. 응할지 말지는 너희의 자유다.
 
유진 N. 브리즈:당신, 머리가 좋을 줄 알았는데 바보같은 말도 하는군요? 내가 이 일을 한다면 돕는 게 아니라 내 의지로 하는 거예요.
유리 선배는 말도 없이 사라질 사람이 아니고 스스로 목숨을 끊을 사람도 아니에요. 여기에 왔다는 것만으로도 나는 긍정적인 답을 주었다 생각하는데요.
물론 여기까지는 내 생각이고 내 파트너 생각도 들어볼 필요는 있어요.
 
아테나 K. 히페리데:(팔짱을 끼고 선다. 평소처럼 도도하고 냉담한 모습이었다. 그러나 자신이 몰아닥칠 격류의 코앞에 서 있다는 사실은 인지하고 있었다. 지금은 태풍의 눈 속에 있는 것과 다름없는 상태. 학생들과 정부의 관계는 무너지기 직전인 댐처럼 위태로운 줄다리기를 하고 있다. 아주 자그마한 균열만 생기더라도 그 사이로 폭포처럼 쏟아져내리겠지. 그 선두에 설 것인가, 아예 외면할 것인가? 짧은 순간 그의 머릿속에는 수많은 가능성과 미래가 스친다.)
(원래의 그였다면 결코 정부에 대항하는 일 따윈 없었을 것이다. 오히려 능숙한 대처로 정부에 소속되기를 바랐다면 또 모를까. 하지만, 스와콥문트로 간 아버지가 행방을 알 수 없는 지금 학생회장마저 죽었다는 소문이 파다하게 나돌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저 혹은 제 남은 가족들마저 소리소문없이 사라질 가능성이 없다고 어떻게 자신하겠는가? 지금 카사블랑카에 가지 드리운 상부는 이른바 '쓸 만한' 정부가 아니다. 아테나는 그리 판단을 내렸고, 대답은 길게 걸리지 않았다.)
확실한 정보를 이끌어내고, 확실한 유효타를 먹여야 할 거예요. 승리와 성공이 없다면 힘을 실어주어봤자니까.
내 도움을 의미없는 짓으로 만들지 말란 뜻이에요.
 
유진 N. 브리즈:오, 내가 당신에게 이야기 안 했던가?
나는 절대 지는 게임은 하지 않아.
 
아테나 K. 히페리데:자신있니? (시릴 만큼 푸른 홍채가 눈앞의 이를 꿰뚫듯 바라본다.)
 
유진 N. 브리즈:(엷은 금빛 눈동자가 당신을 바라보며 조소를 짓는다.) 내 파트너가 나와 함께 한다는데 당연한 말씀을.
 
아테나 K. 히페리데:(코웃음을 친다.) 그럼, 우리의 몫을 해내자꾸나.
 
구현자는 본인의 이능력과 관련된 핵심 기능 판정을, 설계자는 항법 판정을 시도합니다.
 
아테나 K. 히페리데:
항법
기준치: 90/45/18
굴림: 67
판정결과: 보통 성공
 
유진 N. 브리즈:
사격(권총)
기준치: 90/45/18
굴림: 62
판정결과: 보통 성공
 
레몬빛과 푸른빛의 순수한 에너지가 휴게실을 채웁니다.
 
요한은 두 사람의 에너지가 넘실거리는 가운데 조심스럽게 명령어를 입력하고,
 
엔터를 친 후 옆 사람을 돌아봅니다.
 
요한 에를리히:인자미나 접속돼?
 
학생: ……돼! 잠깐만, 성당으로 전화 걸어 볼게.
 
미리 약속이 되어 있었는지, 학생들은 단계별로 차단이 해제되었는지 확인해 나가기 시작합니다.
 
요한 에를리히:좋아, 이 휴게실 범위 내에서, 그러니까 내 태블릿 핫스팟으로 데이터가 연결된 범주 내에선 추적당하지 않고 기록 없이 자유롭게 웹에 접속할 수 있다.
우선 유리가 정말 헌병대에게 끌려간 게 맞는지 확인하겠어. 신부님이 목격하셨다곤 하지만 혹시 모르니까.
 
요한이 모두가 볼 수 있도록 홀로그램 패널을 위로 끌어올려 크게 키웁니다.
 
화면이 여러 개로 분할되며 다양한 각도의 CCTV를 재생하기 시작합니다.
 
새벽 시간대를 계속해서 돌려 보며 유리를 찾아내고 있는데, 쉽지 않아 보이네요.
 
돕는다면 <자료조사> 판정
 
유진 N. 브리즈:
자료조사
기준치: 40/20/8
굴림: 38
판정결과: 보통 성공
 
화면 구석 ‘16번 카메라’에서 헌병대원 네 사람이 사람으로 추정되는 것을 어깨에 둘러메고 기숙사 뒷문으로 빠져나가는 장면을 발견합니다.
 
시각은 오늘 새벽 1시 24분.
 
유진 N. 브리즈:(오늘 새벽?)
여기. (구석의 16번 카메라 화면을 가리킨다.) 기숙사 뒷문 방향, 헌병대가 누구를 데려가고 있어요.
 
"그래, 맞네! 사람 들고 가잖아!"
 
“근데 저게 유리 선배라고 어떻게 확신해?”
 
화면을 자세히 들여다보니 학생의 머리가 붉은색인 듯합니다.
 
키와 체구도 커다란 편이네요. 당신에게 퍽 익숙한 선배의 모습입니다.
 
유진 N. 브리즈:……데려 갈 사람이 유리 선배 뿐이니까.
 
요한 에를리히:(카메라 화면을 유심히 들여다본다.) 내가 봐도 유리 같다.
 
“어, 차에 태운다. 어디로 데려가는지 봐!”
 
“미카엘관 뒤쪽으로 나갔네. 저기로 가면 방위사령부 방향 아냐? 헌병대 본부가 거기잖아!”
 
“하지만… 저건 ‘끌려갔다’지 ‘신변에 문제가 생겼다’는 근거는 아니잖아.”
 
학생들이 웅성거립니다.
 
맞는 말입니다. 신중할 필요가 있겠죠.
 
고민하던 요한이 입을 엽니다.
 
요한 에를리히:만일 방위사령부로 끌려 갔고, …정말 무슨 일이 생겼다면 치료를 위해서든 은폐를 위해서든 병원으로 연락이 갔을 거야. 군 내부에서도 난리가 났을 테고.
저 근방에서 가장 가까운 대형병원이 어디지?
 
학생1: 하씬느. 근데 거기 물어본다고 이렇다할 대답이 나오겠어?
 
학생2: 괜히 우리가 들쑤셨다가 더 큰일나는 거 아냐?
 
학생3: 정보 캐는 건 기자들이나 능숙한 일이잖아. 차라리 어디 제보를 하는 건 어때?
 
의견이 분분합니다. 어떻게 하는 게 좋을까요?
 
유진 N. 브리즈:둘 다 해 보는 건요? 소득이 없더라도 우리가 병원에도 연락하고 기자에게 제보도 하는 거예요. (고이 챙겨둔 명함을 꺼내 학생들 앞에 보여준다.)
 
요한 에를리히:…… 앙셰네 지 기자인가. (명함에 적힌 이름을 확인하고는 잠시 고민하다 입을 연다.) 그래. 거긴 그나마 정부에 비판적인 논조의 기사를 많이 내는 곳이지. 한 번 제보해 보자.
병원에 연락하는 건 리스크가 있어. 정보를 얻는 건 기자에게 맡기고 우리는 가능한 한 많은 학생들을 모아 항의하는 거다. 유리가…… 유리가 지금 어떤 상황이든 간에, ‘대학 내에서 학생을 헌병대가 새벽에 몰래 끌고 갔다’는 사실 자체가 특종 감이니.
 
유진이 명함 속 번호로 전화를 걸면 학생식당에서 마주쳤던 수습기자가 연락을 받습니다.
 
유진 N. 브리즈:이렇게 빨리 연락을 드릴 줄은 몰랐네요. 제보 드릴 건이 있어서요. (낮은 목소리로 조용히 말을 이어간다.) 오늘 새벽 학생이 헌병대에 끌려가는 것이 목격되었습니다. 기자님께서 찾으시던 내용 같은데 관심 있으실까요?
 
수습기자: 학생이 헌병대에? …… 이해했어요. 끌려갔다는 학생의 이름을 말해주겠어요?
 
유진 N. 브리즈:……'유리 모하에'입니다.
 
수습기자: 알겠습니다. 우린 우리대로 알아보고, 정황이 나오면 공유해 줄게요. 급한 일이 있으면 이 번호든, 앙셰네 지 공식 번호든 연락해요. 위에 보고해 둘 테니까요.
 
전화를 마무리한 뒤, 학생들은 저마다 할 일을 하며 상황 정리를 기다립니다.
 
아테나 K. 히페리데:주사위는 던져졌네. (중얼거리며 책상에 기대어 선다.)
모하에가 아무 이유도 없이 끌려가진 않았겠지. 에를리히, 짐작가는 일이 있겠죠? 노노이 라가힛에 관해서도 뭔가 알고 있는 눈치였고.
 
요한 에를리히:…….
첫 가상 훈련 때가 기억나나? 그때 유리는 하산 2세 모스크를 보고 있었지.
우린 하늘길 시스템의 크로노미터 지도를 그대로 따른 북동 게이트를 묘사한 가상세계에 있었고. 그 모스크는 그 방향에서 보일 수 없어. 좀 더 서쪽에 있으니까.
유리는 그 말을 하고 싶었던 거다. 시민들이 일상적으로 보는 지도마저 조작되고 있다고. 정부가 뭔가 말도 안 되는 걸 숨기고 있는 게 분명해.
스와콥문트는 카사블랑카로부터 정확히 1만 km 떨어져 있다. 진실을 호도하기엔 너무 좋은 거리감이지.
카사블랑카의 지도가 스와콥문트 문제를 증거한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처음의 의심은 그렇게 시작되었다는 거지. 보여서는 안될 게 보이니까. 그때부터 유리와 내가 손을 잡고 스와콥문트 문제를 파 보기 시작했어. 아놀드 박사와 관련된 소문이 그때부터 돌고 있었거든.
 
유진 N. 브리즈:문제를 뒷받침 할 수도 있겠죠. 사람들 사이에서 이야기가 오가기 전부터 스와콥문트를 알아본 건 지금으로선 당신들이…, ―당신이 유일해요. 정보는 조작되기 마련이고 누군가 의심을 하기 시작한다면 진실은 언제든지 바뀔 수 있어요.
방금도 말했다시피 정보는 조작되기 마련이라 (손을 들어 시선을 가리듯 눈 앞을 잠시 가로막는다.) 사람들에게서 보이는 걸 지우면 그만이니까.
그래서, 알아낸 건 있어요?
 
요한 에를리히:알아냈지. 그 사실은, 너희도 이미 알고 있을 거다.
인자미나에 글을 쓴 게 유리야. 내가 그걸 도왔고.
 
유진 N. 브리즈:(학생회장이 인자를 뒤집었구나)
 
요한 에를리히:만일 우리가 인자에 올린 글이 사실이 아니라 해도, 우리가 알아낸 모든 게 거짓이라 처벌을 받아야 하더라도, 그 결과가 새벽에 남몰래 끌려가 종적을 감추는 형태여야 하나?
 
유진 N. 브리즈:보츠와나 이야기는 뭐예요? 보츠와나 망명정부요.
 
요한 에를리히:…… 그건 지금 당장은 말해 주기 어려워.
히페리데. 네 아버지께서 스와콥문트에 계시지? 나중에 따로 이야기하자.
 
아테나 K. 히페리데:그래요. 내가 당신을 돕게 된 건 아버지 때문이니 아는 게 있다면 꼭 설명해줘야 할 거예요.
 
그날 밤, 학생회관.
 
결과적으로 말하자면 유진이 앙셰네 지에 한 제보는 상당한 유효타였습니다.
 
똘똘 뭉친 기자들이 병원과 군 양쪽에 '빨대를 꽂고' 소식을 물어 왔죠.
 
오전 07시 04분, 유리 모하에의 시신이 하씬느 병원 응급실로 실려 들어왔습니다.
 
심폐소생술을 담당했던 의사는 시신이 구급차에 실릴 때부터 이미 심정지 상태였다고 증언했습니다.
 
헌병대는 참으로 교묘한 방식을 사용해 유리의 혐의와 라가힛의 죽음을 하나로 묶었습니다.
 
노노이 라가힛이 금지 약물 혐의를 썼고, 그 공급책으로 유리 모하에가 지목된 것이죠.
 
수사 과정 중 라가힛과 동일하게 약물을 과용한 유리가 쇼크사했다는 것이 군과 정부의 입장이었습니다.
 
공분한 학생들이 벌떼처럼 일어났습니다.
 
이 '평화로운' 나라에서, 고작해야 가끔 강성 노조의 시위 정도나 일어나던 도시에서 갑작스레 불길이 치솟습니다.
 
시위 현장에서 화염병을 던지는 기술은 재앙의 날을 거치며 실전되었지만, 화염병만 저항의 상징인가요? 무기는 많습니다.
 
그럼에도 학생들은 입을 굳게 다물고, 누구도 공격하지 않은 채 학생회관을 점거하고 농성을 시작했습니다.
 
이능력을 사용할 수 있는 자들이 한번 폭력사태를 일으키기 시작하면 상황을 겉잡을 수 없다는 학생회의 판단이 들어맞았죠.
 
4학년 학생들이 학생회관을 겹겹이 둘러 지키고,
 
아직 전투 역량이 모자란 저학년들은 내부에 모여 앉아 손을 잡고 촛불을 들었습니다.
 
유진은, 이때 어디 있었을까요?
 
당신은 어쩌면 선택할 수 있습니다.
 
유진 N. 브리즈:(학생회관에… 있었습니다…)
(혁명의 칼날을 갈며 학생회관에…)
 
그리고 그의 곁에 아테나가 있었습니다.
 
혁명의 칼날도 봉기의 불씨도 아테나와 어울리는 것은 아니나, 그 역시 결코 무관할 수 없기 때문에.
 
그에게도 소중한 가족이라는 건 존재하는 법이라.
 
시선은 건물과 옥상을 타고 흘러 모래바람에 실립니다.
 
날아가, 장벽 너머로, 닿고 싶은 곳에.
 
학생회관 앞에는 오래된 연단이 있습니다.
 
뛰어오른 것은 요한이었습니다.
 
그는 떨고 있었습니다.
 
두려워서, 무서워서, 긴장되어서가 아닙니다.
 
생생하게 살아 지펴진 격노가 그 부르짖음 안에 있습니다.
 
요한 에를리히:「높으신 분의 말 한 마디는 한 세기가 끝날 때까지 결코 잊어서는 안 된다. 눈썹 하나 까딱하면 날벼락이 떨어지고, ……사람들은 알아서 몸을 낮추고는 풍자시를 달콤한 아부의 시로 고쳐 버린다. 그러나,」
……그러나. 그러나, 우리…….
 
차마 목이 메어서, 요한은 더 말을 잇지 못합니다.
 
그가 읽고 있는 것은 어떤 시입니다. 그것도 수첩에 메모한.
 
그 수첩이 유진 앞으로 툭 떨어집니다.
 
우리는 선택할 수 있습니다.
 
어떤 역사의 기로에서 적극적이거나 방조적이거나 소극적일 수 있죠.
 
유진 N. 브리즈:(수첩을 주워 메모를 보다 요한을 대신하여 문장을 마저 읽습니다.)
"그러나 우리 노래의 선율이 서글픈 것은 어찌할 수가 없다."
"슬픔도 분노도 없이 사는 사람은 자신의 조국을 사랑하지 않는 사람이니라."
 
그 문장이 당신의 명료한 발음을 타고 터진 순간,
 
근처 반경에 있던 모든 스마트워치가 새빨갛게 진동하며 경고음을 내보내기 시작합니다.
 
금지 문장이 인식되었습니다.
 
검열된 문장이 인식되었습니다.
 
음성이 검열되었습니다.
 
이를 악문 요한이 마이크에 대고 말을 이어 나갑니다.
 
요한 에를리히:이 시를 아십니까? 세상에서 삭제된, 기록말살형을 받은, 끝없이 무수한 텍스트를 아십니까?
러시아 땅이 절반쯤 황폐화되었다고 해서 네크라소프의 시까지 사라져야 합니까?
슬픔도 분노도 없이 살아가던 우리는 어제 학우 두 사람을 잃었습니다.
 
그렇게 마이크가 순서대로 돌았습니다.
 
울며 더듬더듬 준비한 말을 읽는 학생도 있었고, 분노하여 주먹을 휘두르는 학생도 있었으나 대체로는 평화로웠습니다.
 
그때,
 
삐이익-----!
 
지나치게 큰 호루라기 소리 같은 것이 들립니다. <이성> 판정 (0/1)
 
유진 N. 브리즈:
SAN Roll
기준치: 62/31/12
굴림: 46
판정결과: 보통 성공
 
이성 감소 없음.
 
“각성자사관학교 생도들에게 알린다.”
 
“지금 즉시 학생회관 점거를 중단하고 해산하도록 한다. 00시 정각까지 해산하지 않을 시 헌병대는 강경 진압을 시도할 수밖에 없다.”
 
“반복한다, 각성자사관학교 생도들에게 알린다…….”
 
자정까지는 이제 40분도 채 남지 않았습니다.
 
새하얘진 얼굴, 벌건 눈동자들이 요한과 학생회 임원들에게 향합니다.
 
요한 에를리히:……다들 어떻게 하고 싶어? 진압이란 단어까지 썼다면 학교 징계 따위로 끝나지 않을 거야. 체포당했다가, 다신 돌아오지 못할 수도 있어. 빠져나갈 사람은 지금 나가도록 해.
 
학생1: 선배는요? 지금 제일 위험한 거 사실 선배예요.
 
학생2: 1학년, 2학년부터 일단 내보내. 농성을 하더라도 우리가 해야지 전교생의 절반이 여기 몰려 있을 필요는 없잖아.
 
유진 N. 브리즈:지금 그만 둘 일이었다면 처음부터 시작하지도 않았어요.
내가 분명 말했을텐데요. 나는 지는 게임은 하지 않는다고. 그건 내가 절대 물러서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요한 에를리히:브리즈. 네 의지와 용기는 존경해 마땅하다. 하지만 지금은 물러나야 할 때야.
특히나 네 페어가 히페리데니까 더더욱.
이 이상은 우리에게 맡기도록 해. 신입생들을 죽을지도 모르는 위험한 투쟁에 밀어넣는 건 내 쪽에서 사양이다.
 
아테나 K. 히페리데:(유진의 소맷깃을 살짝 잡아당겼다.) 동의해. 너, 강경 진압이란 게 무슨 뜻인지 이해가 안 되니?
 
요한 에를리히:(조용한 어조였으나, 그의 눈은 불타오르고 있었다.) 옳은 말은 거세되어선 안 된다. 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살아서 이야기하는 거다.
그래야 다음 세대로 우리 말들이 전해질 수 있어. 어떤 구전은 기록보다도 강력하다. 내 말 이해하겠어?
 
유진 N. 브리즈:(가만히 당신을 응시한다. 살아서 이야기한다. 빛을 받아 더욱 선명하게 빛나는 눈동자가 천천히 웃는다.) 내가 예언 하나 할까요? 여기 있는 사람들은 절대 안 죽어.
나는 이런 데 감이 좋거든요.
 
요한 에를리히:(바람 빠지듯 웃는다.) 그래. 나도 순순히 죽어줄 생각 같은 건 없으니까.
 
몇 마디 말이 더 오가고, 치솟는 말들을 삼키던 그는 아테나에게 제 수첩을 쥐여 줍니다.
 
요한 에를리히:상황이 어떻게 될지 모르니 지금 주는 거다. 이건 네가 가져가. 가면서 빨리 읽어보고. 난 내용 다 외우고 있어.
 
아테나 K. 히페리데:네? 갑자기 웬 수첩을…… (조금 당황하지만 얼떨결에 받아든다.)
 
이런 걸 가지고 실랑이할 시간이 없습니다.
 
우선은 함께 이 장소를 빠져나가야 합니다.
 
유진 N. 브리즈:(아테나의 옷깃을 잡고 바깥 방향으로 살짝 끌었다.) 아테나, 가자.
 
아테나 K. 히페리데:(요한을 잠시 바라보다 이내 몸을 돌렸다.) 그래.
 
두 사람은 아우성치는 학생들 틈바구니에서 간신히 빠져나와 겨우 인적 드문 길로 접어들었습니다.
 
아테나 K. 히페리데:(그제야 수첩을 펼쳐 빠르게 훑어내려간다. 그는 말수가 제법 많았고 말이 없을 때는 대개 생각에 잠겨 있을 때였다. 그를 증명하듯 한동안 침묵이 흘렀다.)
에를리히가 나에게 이걸 준 이유가 있었구나.
 
유진 N. 브리즈:(인적이 드문 길이더라도 주변 경계를 놓치지 않는다. 시선을 네게 한번 던지고는 낮은 목소리로 남은 침묵을 깬다.) 뭐가 적혀있는데? 나한테도 이유 알려줄래요?
 
아테나 K. 히페리데:인자에 올라왔던 글, 기억하지? 스와콥문트 관련 이야기를 무슨 망명 정부가 수집하고 있다던 거.
아프리카 땅에 나라라곤 공화국밖에 없는데 망명 정부는 무슨, 하고 넘겼었는데…… 연락책과 위치가 쓰여 있구나. 칼라하리 사막을 넘어서, 보츠와나에.
 
그때 탕! 소리가 들립니다. 분명한 총성입니다.
 
유진 N. 브리즈:보츠와나에?
(반사적으로 총성이 들린 곳을 바라본다.)
 
학생회관 방향에서 들려왔죠.
 
저편이 몹시 시끄러워집니다.
 
사이렌 소리, 확성기 소리가 뒤엉켜 무슨 말인지 하나도 알아들을 수 없습니다.
 
아테나 K. 히페리데:(마찬가지로 그 방향을 바라본다. 찰나의 순간 수도 없이 많은 상념과 가능성이 뇌내를 스쳤다. 그리고 언제나 그랬듯 아테나는 빠르게 최선의 결정을 내린다. 평소의 침착함과 도도함이 얼굴과 음성에 어려든다.) 브리즈. 아무래도 난 나가봐야 할 것 같구나.
 
유진 N. 브리즈:나간다니, 어디를? 당신 지금 제정신으로 하는 소리야?
 
아테나 K. 히페리데:나도 미친 소리처럼 들린단 건 알아. 사실 제정신이었으면 이런 결정 내리지 않았겠지. (그때 또다시 들려오는 총성에 눈살을 살짝 찡그렸다.) 하지만 어쩔 수 없어. 아버지의 단서를 얻기 위해선 이 보츠와나 망명 정부란 곳에 가봐야 할 것 같으니까.
떠난다면 지금이 가장 좋은 기회야. 이만한 소란이 벌어졌으니 휩쓸려 죽었다고 하면 그만이지. 사상자 한 사람쯤 더 생긴다고 달라질 건 없으니.
 
유진 N. 브리즈:잠깐, 잠깐만요. (생각할 것이 많아지자 머리가 아파온다. 손으로 네 행동을 저지하며 관자놀이를 누른다.) 히페리데 씨, 아니, 지금 그게 내가 납득을 할 수 있는 이유가 될 거라 생각하는 거야?
사상자가 더 생긴다고 해서 달라지는 게 없는 게 아니잖아. 당신과 내가 얼마나 주목을 받고 있는지 몰라? 오, 그럼 이 참에 생각을 해 보셔야겠네. 거기다 보츠와나 망명 정부로 가겠다니, 당신 혼자서? 말해 봐요, 당신 혼자서 어딜 가겠다는 거지? 나를 두고?
 
아테나 K. 히페리데:너와 내가 주목을 받고 있다고 해도 그건 사관학교 내에서지 헌병대의 귀에까지 들어갈 정도는 아냐. (머리카락을 어깨 뒤로 넘기는 자세는 일견 태평하게까지 느껴졌다.) 나도 언약을 맺은 상대를 두고 혼자 떠나는 게 멍청한 짓이란 건 알아. 달리 말하면 그만큼 중요한 순간이자 기회가 지금뿐이라는 의미지.
스마트워치는 각성자들을 에너지 파동으로 구분해. (손에서 시계를 풀어냈다.) 이걸 네게 줄 테니 학생회관에 던져 놓으렴. 그럼 위치 추적이 되지 않으니 경로가 그려지지 않아. 그리고 넌 내가 거기에서 죽었다고 증언하면 돼.
 
유진 N. 브리즈:―하. (숨을 토해내듯 조소를 띄운다.) 그거 알아? 당신 정말 농담에 재능이 있어.
(지금이 적기라는 말에는 반박하지 않는다. 사람이 가장 많이 사라지는 시기는 혼란의 때요, 순간이 지나면 기억 속에서도 잊혀져 비로소 세상에서 사라지고 만다. 얼굴을 굳히고 너를 내려다 보며 시계를 받았다.) 지금 나한테 위증을 하라. 놈들이 속을 거라 생각해?
(속지 않는다 하여도 상관없었다. 그렇게 믿게 만들면 그만이니까. 네 스마트워치를 쥔 손에 저도 모르게 힘이 들어간다.) 당신이, 목적을 이룰 자신은 있고?
 
아테나 K. 히페리데:속아넘어가게 만들어야지. 너라면 할 수 있잖니. 해내야만 하고. (그리고 어쩌면 당신이 생각했을 그대로를 입으로 읊는다.) 브리즈. 내가 왜 네게 이런 부탁을 하는 것 같아? 믿을 사람이 너뿐이라서란다. 내가 꼭 내 입으로 말해야겠니? (우리, 남들처럼 스킨십이 잦거나 깊은 사이는 아니라 할지라도, 쌓여온 유대감만큼은 무시할 수 없었기에. 이미 결정내린 일을 남에게 설득하는 건 평소라면 하지 않을 일이다. 자신은 무조건 옳고 타인은 거기에 따르기만 하면 된다는 게 아테나의 가치관이었으니까. 신뢰를 자신의 입으로 언급하는 것 역시도, 평소라면 결코 하지 않을 것이었고.)
후후. 나에게 자신감을 묻는 거니? 너무 당연하잖아. 해낼 수 없어도 해낼 거란다. (낯빛에 번지는 웃음은 차갑고 견고하다. 언제나의 그처럼.)
브리즈. 언약을 끊었을 때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알아? 기억을 잃어. 뭘 잃을지는 몰라. 자기 이름, 아니면 소중한 순간일 수도 있고, 별거 아닌 게 될 수도 있지. 상대가 죽어서 해제된 언약만이 기억 손상을 일으키지도 않고 에너지 색을 원래대로 돌이키지도 않는단다. 내가 없어지기엔 지금이 너무 완벽한 조건이야.
 
유진 N. 브리즈:나는 이런 기대를 원하지 않아. 굉장히, 그것도 아주 굉장히 부담스럽거든. (잠시 너를 바라보았다.) 오, 나는 당신에게 그런 말도 기대 못하나? 이런 부담을 안겨주시는데 내 눈 앞에 있는 아가씨께 진심어린 칭찬 한 마디 받지 못하는 건 나도 너무 서러워서요.
아무렴, 누가 선택한 사람인데 어련하실까. 하늘의 선택을 받았으니 할 수 없는 일도 해내야지, 안그래요? 어떤 게임이더라도 나는 지는 게임은 절대 하지 않거든.
(느리게 눈을 깜빡인다. 이어지는 말을 들으며 숨을 고르고는 한껏 가라앉은 목소리로 뒤를 이었다.) 미스 히페리데. 내가 납득할 만한 이유를 대라고 해서 그런 이유를 댈 필요는 없어요. 당신이 왜 가겠다고 했는지 알고 있으니까. 다만 한번 쯤은 주변에 맞출 생각도 해 봐요. 그래도 내가 생명의 은인인데 이런 조언을 해 줄 위치는 되지 않나?
 
아테나 K. 히페리데:이런…… 다 큰 어른인 줄 알았더니 아직 칭찬이 필요한 아이였구나. (머리를 쓰다듬어주려는 듯 손을 뻗었다가 백색 앞머리를 검지손가락으로 톡 건드린다.) 너의 굳은 심지와 자신감을 믿어서 떠날 수 있는 거야. 그러니 힘내 보렴.
너를 설득하기 위한 근거는 이쯤이면 다 제시한 것 같으니…… 그래. 네 조언에 잠시 맞춰줘 볼까. (오른쪽 귓가에서 귀걸이를 끌러내어 시계 위에 함께 올려놓았다. 예리하게 세공된 사파이어가 이 난리통 속에도 선명한 광채를 뽐낸다.) 반드시 돌아오겠다는 증표라고 해두자꾸나. 잘 갖고 있다가 돌려주렴. 알았지?
 
유진 N. 브리즈:몰랐어요? 나는 원래 이런 사람이에요. 나에 대해 좀 더 아셔야겠네. (다가오는 손길에 피식 웃으며 옆으로 살 고개를 기울였다.)
(스마트워치 위에 함께 올려진 사파이어 귀걸이를 보고 시선을 네게 던진다. 자연스레 왼쪽 귓가의 귀걸이를 빼내어 네 손에 쥐어준다.) 부적으로 가져가요. 다시 만나면 돌려주는 것도 잊지 마시고. 나한테는 소중한 거라서.
미리 말해두겠는데 당신 취향이 아니라고 함부로 대하지는 말아요.
 
아테나 K. 히페리데:(유진의 귀걸이를 받을 줄은 몰랐는지 푸른 눈이 잠시 동그래졌으나, 이내 고개 끄덕인다.) 귀걸이가 부적이라니, 우습지만 사막에서 버티려면 때로는 미신도 필요한 법이겠지. 서로 잊지 말고 챙겨야 할 게 생겼구나.
너무 심플해서 어디 모래틈에 흘리면 그대로 못 찾겠어. (농조는 가볍다. 험한 길을 떠나는 사람같지 않게.)
 
유진 N. 브리즈:지금까지 나를 지켜줬으니 부적이지. 노란 페리도트라도 나한테 의미 있다면 그만 아닌가? (작게 웃고는 천천히 눈을 깜빡인다.) 그러니 잃어버리지 말아요.
 
손에 쥐여진 귀걸이의 촉감이 선명합니다.
 
멀리서 불어오는 모래바람에 머리카락이 흩날립니다.
 
허공을 희미하게 꿰차는 바람 소리, 발밑에 흐트러진 수선화, 스무 살의 한 갈피에 고인 너.
 
돌아오겠다 말하는 목소리는 굳건하고 어투에는 확신이 어려 있으나,
 
본디 약속의 성질이란 그 순간이 오기 전까지는 안심할 수 없는 것입니다.
 
기억은 금세 흐무러지고 막 쌓아가기 시작한 추억의 단은 뒤돌아볼 때마다 닳아가겠지요.
 
갑작스럽게 맺어진 언약처럼 작별의 순간 역시 갑작스럽습니다.
 
하지만 이제 우리는, 멈추지도 망설이지도 말아야 할 순간이 닥쳤음을 압니다.
 
우리는 어쩌면 선택할 수 있습니다.
 
이게 정말 선택일까요?
 
상황에 내몰려서, '그렇게 할 수밖에 없어서', 우리 스무 살에, 이런 괴로운 순간을 고르는 것이 선택이기는 한가요?
 
슬픔도 분노도 없이 살아가는 자는 조국을 사랑하는 게 아니기 때문에,
 
스스로를 갈라 파괴하는 듯한 감각 속에서도 진실을 알고자 한 발짝 나아가는 게 대체 의미가 있기는 할까요?
 
그러나 옛 신화 속 신의 이름을 가진 여자는 망설임없이 한 발짝을 뗍니다.
 
다시 한 걸음.
 
돌아보지 않고 걷다가, 숫제 뛰기 시작합니다.
 
앞으로, 너머로, 자오선을 넘어서…….
 
어깨를 무언가 두드립니다.
 
조금씩 비가 내리기 시작하다가, 끝내는 소나기로 길어져 키질되는 쌀처럼 땅바닥에 까불렸습니다.
 
어떤 빗줄기는 해풍의 구조를 이루는 방파제처럼 윤무의 일부에 이르러 춤을 춥니다.
 
세상의 모든 경로와 진실이, 구현이, 설계가, 두 사람을 중심으로 재편되는 것만 같은 감각.
 
그러나 신의 사랑을 받는 주인공이라면 이런 이별은 겪어도 되지 않겠죠.
 
학생회관 쪽에서 울분에 찬 노래가 들려오기 시작합니다.
 
……
 
……
 
……
 
4년 뒤, 각성자사관학교.
 
계절에 맞지 않게 일부러 피워낸 수선화가 지천을 뒤덮은 오늘은 각성자사관학교의 49기 졸업식입니다.
 
4년 전의 소요는 학교에 짐승이 할퀴고 간 듯한 총탄 자국 몇 개만 남겼을 뿐이었죠.
 
죽은 사람은 몇 없었습니다.
 
그마저도 오발에 의한 사고라고 판단되어 몇 사람이 징계를 받고 군복을 벗었을 뿐이었습니다.
 
이 위대한 공화국에 악의적인 사고란 것이 있기나 하겠나요?
 
도열한 학생들은 저마다 다른 태도로 바로서 연단을 응시합니다.
 
학장의 지루한 축사가 끝나고, 귀빈들의 특별 축사가 이어질 예정입니다.
 
어떤 발걸음이 계단을 오릅니다.
 
4년 전 학생회관에서의 일 이후, 학생들은 두 파로 갈려 서로를 물고 뜯었습니다.
 
'순수한 운동'이란 말이 그 시절쯤에는 농담밖에는 되지 않았습니다.
 
분기마다 한 번씩은 누군가가 밀고당하여 학교 바깥으로 사라졌고, 다시는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반대로 말하자면 그만큼 많은 사람이 체제에 반항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어떤 변절은 사람을 이토록 지난하게 만듭니다.
 
또각또각 울려퍼지는 당당한 걸음. 발을 내디딜 때마다 검은색 곱슬머리가 흩어집니다.
 
차가우리만치 오연하고 새파란 눈이 학생들을 응시합니다.
 
아테나 K. 히페리데:…….
여기, 사랑했던 동기들을 길러낸 자랑스러운 나라의 요람에 돌아오게 된 것을 기쁘게 생각합니다.
 
<나는 살아서 말하리라>
 
1부, ‘스와콥문트를 동경하는 자들’ 끝.
 
2부, ‘아무도 너에게 세계를 구하라 시키지 않았다’ 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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