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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0501~250507] 아실헬리 - Virgin White

초현_c 2025. 5. 7.

플레이타임 : 11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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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irgin White
 
Writer 1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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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라앉은 도시를 메우는 무거운 공기.
 
한참을 외롭게 비가 내리던 흑백의 어느 날입니다.
 
유리창에 부딪혀 스러지는 빗방울의 소리는 곧 세상이 잠겨 무너질 것만 같은 우울함을 띄고 있습니다.
 
문득 아까 사람들이 숨죽여서 하던 이야기가 당신의 기억을 스쳐갑니다.
 
사흘 후 열릴 명성 있는, 부유한 귀족 가문의 결혼식.
 
그래요, 헬레네의 결혼식이요.
 
철저하고도 계략적인, 가문만을 위한 정략결혼. 흔히 있는 일이잖아요.
 
결혼 상대에 관해 헬레네에게 물어본 적이 있나요?
 
아실링 펜들레엄:(소식을 듣자마자 바로 물어보러 갔던 것을 회상한다. 어떤 얼굴과 표정으로 물어봤는지는 자세히 기억해 내지 못한다. 갑작스러운 소식이었기도 했고, 그것이 달가운 소식은 아니었으니까.)
 
그는 답했었지요. 결혼 당사자인데도 약혼자가 누구인지 알지 못한다고요.
 
결혼 소식을 전할 때처럼 어두운 낯이었습니다.
 
그는 정녕 뜻에도 없는 결혼을 해야만 하는 걸까요.
 
그리고 당신은 소문과도 같은 한 마디를 들었습니다.
 
속삭이던, 그 낮은 목소리를.
 
그저 뒷거리에 떠도는 소문이지만 소문은 괜히 나는 법이 없기 마련입니다. 특히 그런 종류의 소문은 말이에요.
 
그렇다면 헬레네는? 그의 결혼은 없던 일이 되는 건가요?
 
진정 그가 결혼할 수 있나요? 정말로?
 
이에 대해 어떠한 감상을 품든 간에, 당신이 할 수 없는 일은 하나도 없습니다.
 
귀족의 신분 아닌 평범한 이가 무얼 할 수 있겠나요.
 
다시금 빗소리가 혼란스럽게 쏟아지며 잔향을 남깁니다.
 
약혼자의 얼굴도, 이름도, 아무것도 모른 채로 하는 결혼이 가당키나 한가요?
 
정말 이해할 수 없는 일입니다.
 
그야 높으신 귀족의 일이니까요. 당신 같은 평범한 사람은……
 
……끼익, 경첩이 맞닿는 소리와 함께 추락하는 빗소리가 더욱 크게만 들려옵니다.
 
???:…….
 
순간 커진 빗소리와 공기의 습도에 시선을 앞으로 향하자 문을 열고 한 사람이 서있습니다.
 
얼굴을 가린 로브와 어두운 날씨 탓에 그림자가 져 그 얼굴은 볼 수 없었습니다만,
 
비로 젖은 옷에서 물방울이 바닥으로 흐르는 모양이 묘하게 낯섭니다.
 
그가 무엇인가를 들고 당신에게로 다가옵니다.
 
툭, 소리와 함께 책상에 한 장의 종이, 그리고 작은 케이스 하나가 놓여집니다.
 
의뢰인인 걸까요?
 
그래요, 그에게 무슨 일이 있건,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든 간에.
 
당신은 당신의 일을 하고 삶을 살아가야겠죠.
 
아실링 펜들레엄:(손가락으로 미간 사이를 꾹꾹 누르다가 의뢰서를 집어 든다. 일에 집중하면 신경 쓰이는 것들에게서 생각이 멀어지겠지.)
 
이번에 죽음으로써 당신의 삶을 연명하게 해줄 자는 누구일까요.
 
비로 인해 눅눅해졌을 의뢰서를 집어듭니다.
 
의뢰인의 이름도, 내용 외에는 아무것도 찾아볼 수 없는 순백의 의뢰서는 마치 청첩장 같습니다.
 
살의를 담았을 검은 글씨는 오래된 핏자국처럼 느껴집니다.
 
……글씨를 훑어 내려가다보면 익숙한 이름이 시야에 들어옵니다.
 
헬레네?
 
당신의 손으로 죽여야 할, 그 이름이 당신이 아는 그 헬레네라고요? SANC (0/1)
 
아실링 펜들레엄:
SAN Roll
기준치: 59/29/11
굴림: 79
판정결과: 실패
 
이성 1 감소.
 
아실링 펜들레엄:(이런 곳에 이름이 적힐 만한 사람은 아닐 텐데. 그런 생각을 하는 것과 동시에 의뢰서를 가지고 온 자에게 시선을 쏟는다. 얼굴이나 특징은 안 보이나?)
 
<관찰> 판정
 
아실링 펜들레엄:
관찰력
기준치: 85/42/17
굴림: 67
판정결과: 보통 성공
 
그림자의 끝으로 묘하게 웃는 것만 같은 입가가 보입니다.
 
얼굴을 타고 흘러 툭, 떨어진 하나의 물방울. 비를 맞은 탓일까요.
 
아니, 그러기엔 이 곳은 비가 내리지 않는걸요.
 
대체 당신 앞의 사람은 누구인가요,
 
그에게 원한이라도 품은 걸까요?
 
헬레네가 누군가에게 원한을 살 만한 사람이 아니라는 건 당신이 이미 잘 알고 있는데 말이에요.
 
그를 살피기엔 주변이 너무나도 어두컴컴합니다.
 
몇 초간의 정적이 흐르고는, 당신이 뭐라 할 틈도 없이 그가 뒤돌아나갑니다.
 
어쩌면 도망치듯, 다시 빗속으로 걸어갈 테지요.
 
저벅저벅, 탁.
 
빗소리와 함께 잠시나마 커진 그 발소리, 문이 닫히는 소리. 그리고 정적.
 
그래요, 이건 당신의 일이니까.
 
목표물에 있어서 어떠한 감정도 가지지 않는 것, 그것이 이 세계에서 중요시하는 법칙 아닌가요.
 
곧 천둥이 칠 것만 같습니다.
 
문득 손에 차갑고도 딱딱한 촉감이 와닿습니다.
 
의뢰금이라던 그것.
 
작고도 작은, 검은색의 케이스.
 
아실링 펜들레엄:(누가 의뢰금을 식의 당일 착용하라는 것인지. 불만 가득한 손길로 케이스를 툭툭 건들다가 열어본다.)
 
무언가가 누르는 것처럼 무겁게도 닫힌 케이스를 열자,
 
반짝- 어둠 속에서 약하게나마 새어 나오는 빛이 너무나도 소름돋게 아름답습니다.
 
바깥이 한층 더 어두워집니다.
 
온몸의 감각이 빛으로 집중되는 듯한 그 순간,
 
“……저, 괜찮으신가요?”
 
갑작스레 내리친 번개마냥 환히 들리는 음성에 정신이 듭니다.
 
새하얀 벽, 조금 전만 해도 정적만이 가득했을……
 
아, 신부대기실입니다.
 
이벨린:갑자기 말이 없어지셔서 놀랐어요. 피곤하기라도 하신가요?
 
반짝, 왼손 약지에서 빛나는 반지로 시선이 향합니다.
 
한 눈으로 봐도 보이는 그 고급스러움, 그리고 박혀있는 찬란하게 맑고도 아름다운 다이아몬드.
 
그 고혹적인 아름다움에 누구라도 탐하지 않을 수 없을, ……당신의 결혼 반지.
 
확실히 의뢰금으로는 값어치 있는 물건일 테지요.
 
아실링 펜들레엄:긴장을 너무한 탓인지 저도 모르게 피로감이 몰려왔나 봐요. (걱정하지 말라고 손짓하며 손가락에 자리 잡은 결혼반지를 본다. 헬레네도 같은 것을 착용했으려나?)
헬레네... 제 결혼 상대는 이곳이 아니라 다른 곳에 있나 보죠?
 
이벨린:하긴 히페리데 정도의 큰 가문과의 결혼식이니 긴장하지 않기도 어려우시겠네요. (간드러지게 웃으며 당신의 머리칼을 빗어내린다.)
네, 아가씨께선 다른 대기실에서 준비를 하고 계실 거예요.
 
당신의 머릿결을 정돈하던 그녀가 말을 겁니다.
 
이벨린:그러고 보니…… 약혼자 분께선 성함이 어떻게 되시나요?
 
아실링 펜들레엄:(지긋이 바라보다가 미소) 결혼식이 바쁘긴 했나 보네요. 사용인들이 약혼자 이름을 모른다니.
 
이벨린:준비가 바쁘기도 했지만 주인님께서 알려주지 않으셔서요. 원체 저희 같은 사용인들에겐 관심이 없으시기도 하고요.
 
아실링 펜들레엄:아... 이번 일로 어떤 분인지 더 잘 알게 되었네요. 어쩜. 따님분이랑은 많이 다른 분인 것 같아요. (사용인 눈앞에서 이렇게 뒷담을 해도 괜찮은 건가 싶은 생각이 문득 들기는 했지만, 별다른 말을 덧붙이며 말을 취소하지는 않는다. 오늘만 지나면 안 보게 될 가문의 사람들과 그들의 사용인일 테니까.)
 
이벨린:헬레네 아가씨와는 여러모로 다르기는 하시죠. (돌려까는 표현을 알아들은 건지 아닌 건지, 애매모호한 대답을 내놓으며 단정히 빗은 머리를 묶는다.)
 
결혼 당일에도 약혼자의 이름도, 얼굴도 알지 못한다는 게 말이 되나요.
 
귀한 분들의 생각이란 참으로 알 수 없기 마련입니다.
 
뭐, 덕분에 당신이 가짜 약혼자 행세를 하며 이 자리에 앉아있을 수 있지만요.
 
이 예식장 어딘가에 있을 헬레네, 그도 이 사실을 알지 못하겠죠.
 
약혼자가 당신이라는 것을, 그리고 당신이 그를 죽이러 왔음을.
 
끼익- 문이 열리는 소리와 함께 당신의 머릿결을 어루만지던 손길이 거둬집니다.
 
헬레네 R. 히페리데:…….
 
당신을 당황 어린 눈으로 바라보고 있는 사람.
 
흰 드레스를 차려입은 헬레네입니다.
 
일순간의 정적, 그 당황한 얼굴이 꽤 볼 만 합니다.
 
헬레네 R. 히페리데:아실……? (제가 제대로 본 게 맞는지 의아하다는 듯 고개가 살짝 기울어진다.) 당신이 어떻게 여기에……?
 
정말 모르고 있을 줄이야. 예상치 못했다고 하는 편이 좋으려나요.
 
적당히, 그의 얼굴 모를 약혼자라도 되는 양 행세라도 해볼까요.
 
아실링 펜들레엄:사용인들은 제 이름이며 얼굴을 몰라서 꽤나 기분이 새롭던 참인데... 이렇게 저를 알아봐 주시는 분이 있으시다니, 이것 참 반갑네요. (무거운 드레스 자락을 무심하게 정리하다가 자리에서 일어난다.)
근데... 저를 잘 알고 계시나요? 첫 만남에 이렇게 애칭을 불러주시다니.
 
헬레네 R. 히페리데:네……? (상상도 못한 반응에 어안이 벙벙해져 눈을 깜박거리다가 천천히 다가온다.) 첫 만남이라뇨. 왜 그런 서운한 말씀을 하세요. 저희가 서로를 알아간 지도 벌써 3년이 넘어가지 않나요.
 
아실링 펜들레엄:(당신이 나에게 나쁘게 굴던가 적당히 맞춰주기라도 하면 상대하는 기분이 편하기라도 할 텐데. 그런 생각을 하며 표정이 차갑게 가라앉는다.)
(별다른 대꾸 없이 헬레네 바라보다가 사용인 쪽으로 몸 돌린다.) 저 피곤해졌어요. 결혼식 전까지 얼마나 남았죠? 그동안 좀 쉬고 싶어서요. 혼자서.
 
이벨린:결혼식까지는 세 시간쯤 남았네요. (헬레네와 아실링을 번갈아본다. 사이가 썩 좋아 보이진 않는데도 별다른 반응 없이 무덤덤한 낯이다.)
 
헬레네 R. 히페리데:아, 아실……! (어쩔 줄 모르며 조금 더 가까이 다가온다.) 어째서 제게 화가 나신 건지 모르겠어요. 이유를 말씀해주시지 않으시겠어요? 당신을 이곳에서 만나게 되리라고는 정말 예상도 하지 못했지만…… 이대로라면 저희는 결혼하게 되는 거잖아요. (처음에는 당황스러웠어도, 상황을 이해하고 나서는 기쁘기도 했는데. 아실링의 예상치 못한 냉정한 반응에 목소리가 풀이 죽는다.) 혹시 저와의 결혼이 싫으신 건가요?
 
아실링 펜들레엄:피곤해서 쉬고 싶다는 말을 방금 들었을 텐데. 신부를 괴롭히는 취미가 있으신가 봐요. (풀이 죽은 목소리를 들었음에도 입 밖으로 나오는 말들은 차갑기 짝이 없는 말들뿐이다.) ... 이런 식의 결혼은 싫네요. 결혼식 장소나 드레스 같은 것들은 아주 화려하고 보기 좋아 보이지만, 그것 외에는 좀... 처음 해보는 결혼인데 시작 전부터 이렇다니, 놀랍네요.
 
헬레네 R. 히페리데:……. (몇 년 동안 아실링을 봐 왔지만 이토록 차가운 모습은 처음이다. 어떤 반응을 해야 할지 몰라 제 드레스 자락을 꼭 붙잡은 채 발을 동동거리다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대화를 나누고 싶어요. 결혼식이 시작되면 한동안은 무척 바빠서 제대로 말할 시간도 없을 테니까요. (말끝에서 언뜻 간절함이 묻어나는 듯하다.) 제가 언제쯤 다시 오면 될까요?
 
아실링 펜들레엄:보통 이렇게 하면 정이 떨어져서 얼굴 안 보겠다고 할 만한데... (다시 오겠다는 말을 듣고 나서 한숨과 함께 얼굴을 잠시 찡그린다. 결혼식 전까지 보고 싶지 않다고 말해도 따라주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 한숨과 함께 헬레네를 마주 본다. 마주한 표정은 여전히 냉하기만 하다.) 대화라고 할 만한 게... ... 그래요. 무슨 대화를 하고 싶은 것인지 좀 궁금하기도 하니까.
 
헬레네 R. 히페리데:제가 어떻게 당신에게 정이 떨어지겠나요. 그런 매정한 말씀은 마세요. (여전히 쌀쌀맞은 표정에 입술을 꾹 다물었다가, 곁에 서 있는 금발의 사용인을 바라본다. 묘하게 그의 눈치를 살피는 듯하다. 그의 앞에서는 말할 수 없는 내용일까?)
 
아실링 펜들레엄:(사용인이 곁에 있는 게 편하지 않던 참이긴 했다. 일하는 사람이 무슨 죄가 있겠나 싶지만, 괜히 부담스럽게 사용인을 향해 시선을 집중하다가 헬레네 손을 잡고 끌어당긴다.) 집이라던가... 안내 좀 해주세요. 당신이 해줬으면 좋겠네요, 헬레네 양.
 
헬레네 R. 히페리데:(그제야 표정이 한결 풀어진다. 반갑게 손을 맞잡는다.) 기꺼이 그럴게요.
(곁에 서 있던 사용인을 향해 미소한다.) 이벨린, 잠시 다녀올게요.
 
이벨린:(그리 만족스러운 기색은 아니나 느리게 고개 끄덕인다.) 네, 아가씨.
 
맞잡은 왼손 약지에는 당신의 것과 같은 반지가 자리해 있습니다.
 
순간 두 반지가 맞닿음을 느끼며 문밖으로 발걸음을 옮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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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기실을 빠져나와 마주한 곳은 라운지입니다.
 
걸쳐져 양옆으로 묶인 커튼, 그 뒤로 바깥이 보이도록 크게 창문이 여럿 달린 흰 벽이 한쪽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낮의 거리의 풍경과 머지않은 곳에 있는 검푸르고도 어두운 숲이 환히 보입니다.
 
벽마다 고풍스럽게 장식된 문양, 장식용으로 놓인 희고 아름다운 리시안셔스 다발.
 
결혼식이라면 있을 희고 흰 것들. 그런 것 따위가 걸음마다 눈에 스쳐 갑니다.
 
헬레네 R. 히페리데:(걸음이 차차 느려진다. 여전히 조심스러운 어투로 묻는다.) 아실, 그분과 무슨 말씀을 나누셨나요?
 
아실링 펜들레엄:(희고 흰, 결혼에 어울릴 만한 장식들에 집중하며 은은한 불쾌감을 느낀다. 끝이 좋지 않을 결혼식이니 이런 것 몇 개 정도는 망쳐도 괜찮지 않을까? 같은 생각을 하다가 입 연다.) 이야기 나눌 것도 없던걸요. 제 이름도 모르는 사람이랑 무슨 대화를 하겠어요.
 
헬레네 R. 히페리데:…… 그런가요. (시선을 바닥으로 떨어뜨린다.) 근래에 안 좋은 일이라도 있으셨나요? 피곤하다고 하셔서 걱정이 되네요. (최근에는 결혼식 준비로 바빠 거의 만나지 못하기도 했으니.)
 
아실링 펜들레엄:(안 좋은 일이라니. 그걸 물어보는 당신이 어쩐지 원망스러워져서 꽃병에 담긴 리시안셔스 꽃 한 송이를 주먹으로 움켜쥐어 뭉개버린다.) 좋은 일은 없었네요. 당신은요? 어땠나요?
 
헬레네 R. 히페리데:안타까운 일이네요. (젖은 꽃잎이 뭉개지며 짙은 향기를 풍긴다.) 사실 저도 썩 좋지만은 않았어요. 뜻하지 않은 결혼식을 준비한다고 온 집안에서는 난리인데다 아버지께선 상대가 누군지조차 알려주지 않으셔서요. …… 아실과 하는 줄 알았다면 좀 더 즐거운 준비 기간이었을 텐데 말이에요.
 
아실링 펜들레엄:(당신 원래 약혼자가 죽은 것도 몰랐구나. 이 소식을 들으면 어떤 표정을 하려나? 그런 생각을 하며 조금 즐거운 표정을 짓다가 이어진 말에 표정이 굳는다.) ... 즐거웠을 거라고요?
 
헬레네 R. 히페리데:(못할 말을 한 걸까? 아실링의 눈치를 살피며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결혼식까지 얼마 남지 않게 된 상황이니 말씀드려도 되겠지요. 놀라기는 했지만, 아실이 제 결혼 상대라 기뻐요. 아실과 저는 마음이 잘 맞았잖아요. 금세 가까워져서는 마치 소꿉친구처럼 지냈죠. (사랑은 봄을 맞이한 꽃송이처럼 지극히 자연스럽게 피어났다.) 그런데 대기실에서 처음 당신을 뵈었을 때 표정이 많이 좋지 않으셔서…… 원치 않는 결혼을 억지로 하신 건 아닐까 죄송스러워지네요.
 
아실링 펜들레엄:(어쩐지 입꼬리 근처가 간지러워져서 고래를 획 돌렸다. 그 상태로 잠시 움직임이 없다가 고개 돌린 상태로 손 뻗어 헬레네 손가락 하나를 꾹 잡는다.) 마음 쓰지 마세요.
(그러기를 문득 의문이 들었다. 이 사람이 죽기를 바라는 사람은 대체 누구일까? 뭔 죄가 있다고? 죽은 전 약혼자 관련인 것일까?)
 
헬레네 R. 히페리데:(손가락이 잡히자 눈이 살짝 커진다. 조금은 기분이 풀리신 걸까? 저도 모르게 삐져나오려던 미소를 꾹 참는다.) 제가 잘못한 게 있다면 사과드리고 싶어요, 아실. 저는 당신과 행복하고 싶은걸요.
 
아실링 펜들레엄:뭘 사과까지... 그냥 이야기나 해주세요. 어떻게 행복해지고 싶은지 같은 거요. (자신도 모르게 미소 짓다가 말고 입모양이 삐죽해진다.) 설마 아까 빈말로 하신 건 아니죠?
 
헬레네 R. 히페리데:빈말일 리가요. (결국 입가에 초승달 같은 미소가 뜬다.) 아버지께서 결혼하면 제게 빈 영지를 준다고 하셨어요. 런던과는 조금 멀리 떨어진 곳이지만 저는 사교계에 큰 관심이 있는 편은 아니니까요. 거기에 딸린 저택은 여름에 종종 가고는 했었는데, 조용하고 평화로운 곳이에요. 근처에 강변이 있어서 산책을 가기 좋죠. 서점에서 책을 한가득 쌓아와서 읽거나 불우한 환경의 평민들을 돕고 봉사하며 지내는 삶…… 행복할 것 같지 않나요?
 
아실링 펜들레엄:(이야기를 들으며 눈앞에 그려지는 미래에 행복한 상상에 잠긴다. 너무 잠겨있던 나머지 행복할 것 같지 않냐는 물음에 너무 빠르고 생각 없이 대답할 뻔했다. 당신만 있으면 뭐든 좋을 것 같아요-라고.) ... 근데 그렇게 따님을 아끼는 분이 이렇게 빠른 결혼식을 준비하신다니. 조금... 신기하네요. 원래 그런 분이신가요?
 
헬레네 R. 히페리데:(아버지의 이야기가 나오자 표정이 사뭇 어두워진다.) …… 때가 되었다고 하셨어요. 히페리데 가문의 일원이라면 결혼은 꼭 해야만 하는 일인지라 저도 감히 거스를 수가 없었네요.
 
아실링 펜들레엄:(가족 내에서 다 그럴 만한 일이 있으려니... 하는 생각이 들지만, 그럼에도 계속해서 여러 의문들이 피어난다. 특히 헬레네의 얼굴이 어두워진 것을 확인하고 나서는 더.) 그 뜻을 당신은 모른다는 거죠?
 
헬레네 R. 히페리데:(한 번 드리워진 그늘은 거둬질 기미가 없다. 침묵 끝에 몸을 돌린다.) …… 죄송해요. 그 질문의 답은 나중에 드릴게요.
 
대화를 나누던 헬레네가 다시 천천히 발걸음을 옮깁니다.
 
그러고 보니 무기도, 아무런 도구도 챙겨 나오지 못했네요.
 
아무도 모르게 암살할 기회라면 단 둘뿐인 지금이 좋을 텐데요.
 
평소 같았으면 옷에 한 두 개쯤은 감추어 두었을 터이지만, 이건 당신의 옷이 아니니까요.
 
다행히도 가방은 잠겨있으니 시녀장이 열어보는 일은 없겠죠.
 
아직 시간은 많이 남아있습니다.
 
찬찬히 주변을 둘러보자면, 끝없이 넓고도 엄숙한, 그렇지만 깔끔하고도 밝은 분위기의 식장이 보입니다.
 
히페리데 가문의 소유라고 했던가요.
 
말끔히 차려입은 대여섯 정도의 사람이 근처에 있습니다.
 
그 외에 참석한 사람들은 모두 다른 곳에 모여있는 모양입니다.
 
대리석 바닥에 구두가 맞닿는 소리를 들으며 주위를 둘러보자니, 큰 액자에 걸려있는 그림이 보입니다.
 
어두운 느낌의, 꽤 오래되어 보이는 유화입니다.
 
붓의 질감이 그대로 그림에 남아있어요.
 
그 배경에는 검붉고 탐스러운 포도가 식탁에 가득 놓여 있습니다. 식탁에서 흘러넘칠 만큼요.
 
자세히 보자니 포도마다 몇 알은 상처 입고 짓눌려 그 즙이 배어 흘러나옵니다.
 
뚝뚝 흐르는 포도즙이, 곧 식탁 아래로 흐를 것만 같은 그 붉디붉은 액체가 어쩐지 사람의 피처럼 느껴지기만 합니다.
 
<아이디어> 판정
 
아실링 펜들레엄:
지능
기준치: 80/40/16
굴림: 63
판정결과: 보통 성공
 
그러고 보니 성경에서 포도는 신이 내리는 행복과 풍요, 그리고 젖과 꿀이 흐르는 축복받은 땅에 주로 비유되곤 했죠.
 
이곳은 이전에 교회였다고 하니, 그때 벽에 걸어두던 그림을 사용한 것일까요?
 
실물을 그대로 가져다 둔 듯 잘 그린 그림이긴 하지만 그림을 보자 어쩐지 서늘함이 느껴집니다.
 
전시해 둘 가치가 있는 그림인가요? 잘은 모르겠습니다만…….
 
그림을 지나쳐 걷자, 밝던 바깥의 빛이 점차 사그라들고 서린 어둠과 은은하게 빛나는 인위적인 조명등의 빛이 눈가에 와닿습니다.
 
사람들의 말소리, 그리고 놓인 흰 보자기로 덮인 테이블 여러 개와 의자.
 
연회장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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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화 소리, 웃음소리, 치맛자락이 스치는 소리, 잔이 맞부딪히는 소리. 여기저기 놓인 흰 꽃다발.
 
역시나 정장, 드레스 차림의 사람이 여럿 있습니다.
 
눈대중으로 세보자니 서른 남짓한 숫자입니다.
 
호화로운 결혼식치고는 숫자가 적네요.
 
전부 같은 귀족, 그중에서도 일부인 걸까요.
 
뭐가 즐거운지 무어라 마주 보며 웃고 대화하던 이들의 시선이 문득 이쪽을 향합니다.
 
아, 조용히 있기엔 너무 시선을 끄는 옷이었던가요…….
 
그야 결혼식의 주연이 입는 옷이니 당연하지만요.
 
그들의 시선이 당신을 향하더니 까딱, 하고는 가볍게 인사를 해 보입니다. 호의적인 눈웃음과 함께요.
 
그리곤 다시 고개를 돌리더니 주변 사람을 부르는 듯, 어깨를 가볍게 치곤 당신을 향해 손가락의 끝을 옮깁니다.
 
그 순간, 근처에서 누군가가 당신에게 낭랑한 목소리로 말을 겁니다.
 
하객1: 어머, 드레스가 정말 잘 어울리세요.
 
아실링 펜들레엄:(이런 칭찬에는 익숙하지 않아서 잔잔한 미소만 짓다가.) 헬리... 헬레네 양의 가족분이거나 친척이신 걸까요? 아니면 그전에 저랑 안면이 있다거나. (사람 알아둬서 나쁠 일은 없을 테니 일단 나름? 살갑게 대해본다.)
 
하객1: 후후, 가족은 아니에요. 이전에 헬레네 양과 함께 있는 걸 몇 번 뵌 적 있답니다. 그때는 이렇게 화려한 옷을 입으신 모습을 볼 줄은 상상도 못 했는데요.
 
순간, 그들의 얼굴에 띄고 있던 웃음이 더욱더 짙어집니다.
 
정체 모를 웃음을 감추려는 듯 장갑을 낀 손으로 얼굴을 가립니다.
 
두 개의 시선, 세 개의 시선, 수십 개의 시선이 당신을 향합니다. 그 웃음과 함께.
 
그 웃음은…… 아, 명백한 조소.
 
겉으로 보기엔 악의 없이 호의적이지만, 분명 당신을 깔보고 무시하는 듯한 태도입니다.
 
그야 그들은 당신이 그들과 같지 않은, 그다지 대단하지 않은 위치의 사람인 것을 알고 있을 테니까요.
 
기분 나쁘도록 수군대는 그 소리가 당신에게 와닿습니다.
 
아실링 펜들레엄:(직업이 뭔질 알면 이렇게 대하지 못할 텐데? 은은한 미소는 여전하다.) 성함이 어떻게 되시나요? 이렇게 인사도 했겠다, 이름을 모르면 섭섭하죠.
 
하객1: 다시 뵐 일도 없을 텐데, 일개 하객인 제 이름을 알아보았자 무엇 하시게요? (불쾌하리만큼 가식적인 눈웃음을 짓는다.)
 
아실링 펜들레엄:네에, 안 알려주셔도 아는 방법이 있긴 해요. (빙그레 웃음 짓고 얼굴과 주변 사람들을 쭉 확인한다.)
 
헬레네 R. 히페리데:아실. (말리는 듯 아실링의 손목을 조심히 잡아끈다. 하객에게 다감한 어조로 속삭인다.) 제 약혼자분께 너무 무례한 언사는 하지 말아주세요.
 
헬레네는 상황을 무마하면서도 아까부터 누군가를 찾는 눈치입니다.
 
곧 시선을 한 곳에 멈춘 헬레네가 그 방향을 지그시 바라봅니다.
 
작은 인파 속에서 한 중년의 남성이 여러 사람을 거느리곤 이쪽을 향해 걸어옵니다.
 
헬레네 R. 히페리데:…… 아버님. (드레스 자락을 잡으며 고개를 살짝 숙인다.)
 
헬레네의 아버지, 그러니까 히페리데 집안의 가주라도 되시는 분 같네요.
 
그가 짧게 헬레네를 바라보고는 다시 당신에게로 시선을 옮깁니다.
 
잠깐의 정적. 어쩐지 당신을 미심쩍은 듯 바라보곤, 낮은 목소리로 묻습니다.
 
코이오스 히페리데:아, 자네가…… ……자네, 이름이 뭐였지?
 
아실링 펜들레엄:(하고 싶은 말은 많았지만 헬레네 반응이 심상치 않아서 우선 헬레네 따라 고개 숙여 인사한다.) 아실링 펜들레엄입니다, 아버님.
 
코이오스 히페리데:아실링, 아실링이라. 원래 그런 이름이었던가. (무신경하게 중얼거린다.)
굳이 알아둘 필요는 없겠지.
 
여사: 코이오스, 저 사람이 그 사람인가요?
 
코이오스 히페리데:그렇소. 별로 중요한 건 아니네만.
 
여사: 그렇겠죠, 빨리 가요. 이런 데서 시간을 버리기엔 아까운걸요.
 
코이오스 히페리데:음. (고개를 끄덕인다.) 어서 가세.
 
헬레네는 내내 당신의 옆에서 죄인처럼 고개를 숙이고 있습니다.
 
곧 그들이 별 볼 일 없다는 듯 곁을 스쳐 지나갑니다.
 
여인들의 웃음소리만이 흩어지듯 귓가에 남습니다.
 
그 소리가 온전히 멀어지자 헬레네가 천천히 고개를 들어 제 아버지가 있었던 자리를 오래도록 응시합니다.
 
곁눈질로 바라본 눈에는 푸른 회한이 서려 있습니다.
 
그러나 방금까지 눈 안에서 일렁이던 회한은 금세 사라지고, 헬레네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다시금 당신을 돌아봅니다.
 
헬레네 R. 히페리데:죄송해요. 제가 대신 아버님의 무례를 사과드릴게요.
 
아실링 펜들레엄:당신 잘못도 아닌걸요. (따른 것에 신경 쓰이느라 기분이 나쁠 틈도 없었다. 궁금한 것은 많으나, 사람들이 많은 곳에서 물어볼 만한 것이 아닌 것 같아서 주변을 두리번거린다.)
 
헬레네 R. 히페리데:(그 동작을 이해한 듯 아실링의 손을 살짝 맞잡는다.) 일단 어디라도 앉을까요? 시간이 남았는데 계속 서 있을 수도 없으니까요.
 
굽 있는 구두, 철저하게 타인에게 보이려는 의도로 만들어져 한 치의 여유도 없는 옷.
 
확실히 오래 입고 있기엔 불편한 옷이죠.
 
조금 둘러보자니 구석진 곳에 자리가 난 것이 보이네요.
 
아무도 신경쓸 것 같지 않은 장소.
 
결혼식의 주인공과는 조금 동떨어진 자리인 듯 보이지만.
 
아실링 펜들레엄:구두가 익숙하지 않아서 조금 발이 아프긴 하네요. 그럼, 같이 가실까요? 당신이랑 있으면 어디든 좋아요. (손 꼬옥...)
 
헬레네 R. 히페리데:마침 저쪽 테이블이 비어 있네요. 조금 구석이긴 하지만…… 지금의 저희에겐 저곳이 딱 좋을 것 같죠? (아버지 때문에 어두워졌던 낯빛도 잠시, 희미하게 웃는다.)
 
사람들의 웃음소리가 조금이나마 멎어드는 구석진 테이블로 향합니다.
 
헬레네 R. 히페리데:앉으시죠, 아가씨. (흰 보가 걸쳐진 의자를 하나 빼내며 조금은 장난스럽게 앉으라는 제스처를 취한다.)
 
아실링 펜들레엄:(자신이 할만한 일을 한 헬레네를 보고 작은 웃음이 터져 나왔다.) 저 위로해 주시는 거예요? 뭐, 가끔은 이런 것도 좋네요. (자리에 앉고 테이블에 팔 올려 턱 괸다.)
 
희고 넓은 테이블의 가운데에는 가늘고 얇은 꽃병에 담긴 흰 꽃다발, 그리고 오프너와 함께 와인이 세 병 놓여 있습니다.
 
아페리티프 와인인 크림 셰리, 일반적인 레드와인인 메를로 와인, 그리고 피노누아 와인.
 
……그러고 보니 와인잔이 없네요.
 
헬레네 R. 히페리데:(위로냐는 물음에는 대답 없이 미소만 짓는다.) 저희의 결혼을 축하하며 가볍게 와인 한 잔씩 마실까요? 종류마다 사용하는 잔이 다르니 원하시는 와인을 아무거나 골라 보세요. 아마 구석 쪽 테이블이라 깜박 잊고 가져다두지 않은 것 같지만요.
 
글쎄요, 평민의 눈에는 다 똑같아 보이는데.
 
아실링 펜들레엄:(평민 눈에는 다 똑같아 보이는데... 다른 사람들은 뭐 고르거나 손에 쥐고 있는지 슬쩍 본다.)
 
사람들은 보통 크림 셰리를 마시는 듯합니다.
 
뭐가 뭔지 모르겠다면 헬레네에게 설명을 부탁해도 괜찮겠지요.
 
아실링 펜들레엄:음... 헬리. 저 사실 뭐가 뭔지 잘 모르겠어요. 원래도 술 취향이 그렇게 고급 진 편은 아니라... (소곤거리다가 조금 시무룩해진다.)
 
헬레네 R. 히페리데:아, 제가 배려가 부족했네요. (얼른 와인 병 세 개를 앞으로 가져와 하나씩 짚어가며 설명해준다.) 크림셰리는 보통 식전이나 에피타이저 때 마시는 화이트 와인이에요. 디저트에 잘 어울리는 단맛이 나죠.
메를로 와인은 과일 향이 풍부하게 나는 레드 와인이에요. 맛이 부드러워 고기류나 치즈 같은 음식에 잘 어울린답니다.
그리고 피노누아 와인은 딸기나 크랜베리 같은 베리류의 향과 살짝 무거운 향기가 나요. 닭고기나 토끼, 연어나 송어 요리에 보통 곁들여 먹곤 하죠. 어떤 게 가장 마음에 드세요?
 
아실링 펜들레엄:(설명 하나하나마다 고개를 끄덕이며 적극적으로 반응하다가 마지막 물음에 조금 곤란한, 하지만 그런 것치고는 무척 즐거운 표정이 된다.) 음... 하나씩 마셔봐야 알 것 같아요. (방긋)
 
헬레네 R. 히페리데:(굉장히 즐거워 보이시는데? 방긋 웃는 모습에 저 역시 절로 웃음이 난다.) 그럼 화이트 와인용 잔과 레드 와인용 잔을 모두 가져와야겠네요. 잠시만 기다려주시겠어요?
 
그가 일어서서는 어딘가로 향합니다.
 
은은하게 샹들리에가 빛나 금빛으로 물든 연회장.
 
뭐가 그리 즐거운지 여전히 사람들은 웃습니다.
 
잔이 부딪치는 소리, 무어라 속삭이는 소리. 정확히 들리진 않지만요.
 
아무도 눈길 한번 주지 않을 법한 연회장의 끝자리입니다.
 
앉아서 주변을 둘러보자면 [꽃병], [거울]이 보입니다.
 
아실링 펜들레엄:(꽃병부터 본다. 부잣집에서 준비한 꽃은 뭐려나?)
 
하얀 라넌큘러스가 꽂혀 있는, 얇고 긴 유리병입니다.
 
투명한 꽃병 속 줄기의 끝을 적시고 있는 물은 조금은 희게 탁한 색깔입니다.
 
우유라도 떨어트린 것처럼 말이에요.
 
꽃은 희고 아름답게 피어있어요.
 
어쩐지……
 
<관찰> 판정
 
아실링 펜들레엄:
관찰력
기준치: 85/42/17
굴림: 8
판정결과: 극단적 성공
 
꽃병에 담기고 조금, 아니, 많은 시간이 지난 것처럼 느껴지지만. 꽃향기는 방금 꺾었다 착각할 만큼 생생합니다.
 
자세히 보니 꽃받침, 그리고 줄기 일부분이 샛노랗고 뻣뻣하게 말라 있어요.
 
시간이 지나면서 수분이 다 빠져나갔다는 듯이.
 
아실링 펜들레엄:(꽃 준비를 대충 했다고 생각하고 넘길 수도 있는 일이지만 어쩐지 찝찝함이 오래 남아서 혀를 한번 찬다. 이어 거울 바라본다.)
 
벽의 한 면을 차지하는 큰 거울입니다.
 
거울에는 연회장과 바깥의 모습이 비칩니다.
 
저 멀리서 흐릿하게 헬레네의 모습이 보이네요.
 
연회장의 바깥 통로에서 잔을 들고 조심히 걸어오고 있습니다.
 
당신의 시선 정면에는 거울이 있습니다.
 
당신의 시선으로 완성된 사치스럽고도 아름다워 눈길을 사로잡는 장식품들의 복제품이,
 
단정하고도 검은 양복, 눈에 확 띄지 않게 수수하고도 화려한 드레스 차림으로 신분을 드러내는 사람들이,
 
보가 덮인 하얀 테이블과 네 송이 장미가 꽂힌 꽃병,
 
그리고 누군가가 앉아있다는 듯 뒤로 빠진 빈 두 개의 의자가 거울에 드러납니다.
 
그래요, 당신이 앉아있는 의자요.
 
……그런데 당신은 어째서 비치지 않죠? SANc (0/1)
 
아실링 펜들레엄:
SAN Roll
기준치: 58/29/11
굴림: 79
판정결과: 실패
 
이성 1 감소.
 
……탁, 유리와 천이 맞닿는 소리에 정신이 듭니다.
 
헬레네 R. 히페리데:가져왔어요, 아실. 많이 기다리셨나요?
 
다시 거울을 보니 이번에는 당신도 보이네요. ……잘못 본 걸까요?
 
헬레네는 당신과 제 앞에 와인잔을 내려두곤 의자에 앉습니다.
 
아실링 펜들레엄:아...... 네. 아, 아니요. 많이 기다린 것은 아니고 잠시 멍 때리다가 그만. (화장이 지워지지 않게 살살 눈을 비빈다. 진짜 피곤하기라도 한 건가? 하면서 잔 하나를 잡는다.) 와인 고마워요.
 
헬레네 R. 히페리데:(아무것도 모른 채 소믈리에 오프너로 코르크 마개를 딴다.) 먼저 크림셰리 와인부터 따라 드릴게요. 화이트 와인 잔은 차갑게 마시기 위해서 레드 와인잔보다 볼이 조금 작답니다. (병을 기울여 잔 두 개에 와인을 절반에 못 미치게 따른다.)
 
아실링 펜들레엄:잔이 다르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그런 이유 때문에 다를 것이라고는 생각 못 했어요. 헬리 덕분에 몰랐던 것을 알게 되었네요. (좀 전의 일은 헛것이겠거니 생각하며 와인 잔을 잡는다. 어디서 들은 것은 있어서 일단 향부터 확인한다.) 저랑 같이 마셔주실 거죠? (헤헤)
 
헬레네 R. 히페리데:그럼요. (웃으며 잔의 스템 부분을 가볍게 잡아 들고 당신의 잔에 살짝 부딪힌다. 이내 잔을 기울여 한 모금 흘려넣었다.) 저는 술을 그리 즐기지는 않는 편이라, 와인도 가볍고 달달한 크림 셰리 정도만 마셔요.
 
아실링 펜들레엄:이게 당신이 즐기는 것이군요. (보통 술은 맛을 음미하기보다는 음료수처럼 삼켜버리는 편이지만, 헬리가 좋아한다는 것임을 알고 나름 맛을 음미한다.) 당신이 왜 좋아하는지 알 것 같아요. 가끔은 그냥 무작정 마시는 것보다는 이렇게 즐기는 것도 좋을 것 같네요~.
 
파티에서 외면받고 있는 두 주인공 배역. 참으로 어울리지 않는 자리입니다.
 
그러나 시간을 보내는 두 사람이 즐겁다면 된 거겠지요.
 
헬레네 R. 히페리데:그렇지요? 화이트 와인은 부담없이 즐길 수 있기도 하고요. 많이 마셔도 숙취가 비교적 덜하다는 말도 있어요. (나름 맛을 음미한다는 아실링보다도 느릿느릿한 속도로 와인을 마셨다.)
…… 아실은 저와 결혼한다면 가장 먼저 뭐부터 하고 싶으신가요?
 
아실링 펜들레엄:(맛있는 와인은 안주 없이 마셔도 좋구나~. 같은 생각을 하다가 이어진 물음에 한참 동안 고민에 빠진다.) ... 하고 싶은 게 너무 많네요. 역시 제일 하고 싶은 것이라 하면... 새 결혼반지 맞추기? 이건 당신하고 제가 고른 것이 아니잖아요.
 
헬레네 R. 히페리데:(눈이 커진다. 잠시간 아무런 말도 하지 못하다가 감정적 동요를 감추려는 듯 와인잔을 입가에 기울여 표정을 가렸다.) …… 좋네요. 이 반지도 아름답지만 저희가 고른다면 훨씬 저희에게 어울리는 디자인을 택할 수 있겠죠. 다이아몬드 대신 어떤 보석이 좋을까요?
 
아실링 펜들레엄:(제 손에 끼워진 반지를 보다가 헬레네 손을 잡고 손등을 제 쪽으로 향하게 한다.) 당신 손에 안 어울릴 보석은 없겠지만... 개인적으로는 진주나 사파이어가 잘 어울릴 것 같아요. 진주는 고상한 당신 이미지에 잘 어울리고, 사파이어는 많은 색 중에서 당신 눈 색이랑 어울리는 것이면 좋을 것 같고. (심오하게 종알종알)
 
헬레네 R. 히페리데:(손을 가만히 내준 채 아실링을 눈에 담는다.) 진주와 사파이어라…… 꼭 아실링을 떠올리게 하는 색이네요. 오묘한 은빛은 당신의 은발을, 깊은 푸른빛은 심해를 닮은 당신의 눈동자를 닮았잖아요. 저도 마음에 들어요. 보석이 모두 한색이니 링도 실버로 하는 게 좋으려나요.
 
아실링 펜들레엄:네에, 당신도 분명 마음에... ...? (말을 다 끝내지 못하고 눈 입 벌려진 상태로 헬레네와 손을 번갈아가며 본다.) 아, 아니 저는. 그게... 둘 다 당신에게 너무 잘 어울릴 것 같아서. 흠, 흠흠. (당황스러우면서도 동시에 쑥스러워하다가 입 연다.) 당신 손가락에 제... 가 생각나는 반지가 껴있다고 한다면 좋네요. 좋아요, 그럼 링도 실버인 것으로. ... 그런 거면 제가 끼는 반지는 당신이 많이 생각나는 것이 좋지 않으려나요? 가넷 중에 예쁜 주황색이 있다는 것으로 알고 있어요.
 
헬레네 R. 히페리데:저를 생각해서 해주신 말씀이란 건 잘 알아요. 그렇지만 듣고 보니 꼭 아실을 상징하는 듯한 조합이기에. (쑥스러워하는 아실이 귀여워 흐뭇하게 미소한다. 그러나 그 미소의 끝에서 언뜻 착잡함이 읽힌다.) 서로를 상징하는 보석을 끼우는 걸까요? 결혼반지면 한 쌍이 똑같은 게 더 보기 좋은 모양이지 않을까 싶으면서도, 디자인은 전부 동일하고 사파이어 자리에만 가넷을 끼워넣는 거라면 더욱 특별하게 느껴질 것 같기도 하네요.
 
아실링 펜들레엄:네에, 그걸 원했어요. 한 쌍인 것도 무척이나 좋겠지만, 그렇게 한다면 누가 봐도 서로 무척 아끼는 부.. 부의 것처럼 보일 테니까요. (말하면서 제 쪽에서 너무 의미를 담는 것이 아닌가 싶어져서 볼을 긁적거린다.) 음. 당신 바람을 모르네요. 당신은 저와 결혼한다면 가장 먼저 뭐부터 하고 싶은가요? 얼마 안 남았잖아요. 빠르게 고민해 보세요.
 
헬레네 R. 히페리데:누가 봐도 알아볼 수 있는 금슬 좋은 부부…… 듣기만 해도 정말 좋은 단어네요. (잔잔한 목소리가 와인의 향기처럼 공중을 부유한다. 아실링의 물음에 한참을 함묵한 채 고민했다.) 저는……
아실과 바다를 보러 가고 싶어요. (그리 거창하지도, 어렵지도 않은 바람이다. 영국은 섬이고, 귀족가에 언제나 준비된 마차를 타면 바닷가까지야 금방이니까. 그런데 그 어렵지 않은 소망을 말하는 낯빛은 어째서 가을 낙엽처럼 쓸쓸해 보이는지.)
 
아실링 펜들레엄:(부정하지 않는 헬레네를 보며 걱정을 덜어냈지만, 그것도 아주 잠시였다. 쓸쓸함이 담김 고백 이후로 이유 모를 걱정이 다시 덜컥 들어앉았다.) 보러 가면 되는 거잖아요..? 저, 괜찮은 바다를 알고 있답니다. 그 바다가 아주 예쁘게 보이는 식당도 알고 있어요. 그 집 가재 요리와 레모네이드가 아주 일품이라, 당신도 마음에 들 거예요. 그러니까...
... ... 저랑 가주실 거죠...?
 
헬레네 R. 히페리데:가재 요리와 레모네이드를 먹으면서 바닷가를 바라보면 정취가 무척 뛰어날 것 같네요. (언제 쓸쓸함이 스쳤냐는 듯 평소의 다감하고 따뜻한 분위기로 되돌아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네, 데려가 주세요. 아실과 꼭 함께 보고 싶어요.
 
당신과 나의 결혼이라니. 본래라면 일어날 수 없는 일입니다.
 
왜냐하면, 당신은, 나는……. 나는, 당신을 죽이러 왔으니까요.
 
나의 역할은 그뿐이니까요.
 
그래야만 하는데…….
 
왜 미래를 그리고 소망하게 되는지.
 
헬레네가 새 잔에 두 번째 와인을 따라주려던 찰나, 어디선가 여럿의 웃음소리가 다시금 들려옵니다.
 
그가 놀란 듯, 어쩌면 심기가 불편한 듯 그 쪽을 바라봅니다.
 
표정이 흐려지는가 싶더니, 곧 헬레네가 자리에서 일어섭니다.
 
헬레네 R. 히페리데:죄송해요. 이번에는 조금 오래 걸릴지도 모르겠네요. 그렇지만…… 잠시만 기다려주실래요?
 
아실링 펜들레엄:(옆에서 같이 있고 싶은 마음이 강했지만, 헬레네 선택을 존중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일단 고개 끄덕인다.) 다녀오세요. 저는 좀 더 와인 즐기고 있을게요.
 
헬레네 R. 히페리데:나중에 어떤 와인이 가장 입에 맞았는지 들려주세요. (애써 미소하며 드레스 자락을 잡고 걸음을 내딛었다.)
 
헬레네가 어딘가로 멀어져갑니다.
 
마치 무언가로부터 도망치듯…….
 
.
 
문득 거울에 비추었던 헬레네의 표정이 신경 쓰입니다.
 
쓸쓸하고 착잡해 보이던 그 표정이요.
 
그는 어디서, 무얼 하고 온 건가요?
 
…조금은 오래 걸릴지도 모르겠다고 말했죠. 시간은 충분하게 남아있고요.
 
연회장의 사람들은 놀라우리만치 당신에게 아무런 관심이 없습니다.
 
그의 뒤를 밟으며 알아보는 것도 좋을 것 같습니다.
 
아실링 펜들레엄:(이렇게까지 관심을 안 주다니. 이걸 고마워해야 하는 것인지? 조소와 함께 자리에서 일어나서 헬레네 뒤를 조심조심 밟는다.)
 
그가 연회장 바깥, 왼쪽에서 들어왔던가요.
 
열린 문을 밀고 왼쪽으로 돌자니, 아차, 잠깐……!
 
<행운> 판정
 
아실링 펜들레엄:
기준치: 70/35/14
굴림: 89
판정결과: 실패
 
탁, 연회장으로 들어오던 직원과 어깨가 세게 맞부딪히고 맙니다.
 
순간 직원이 중심을 잃더니, 손에 든 쟁반이 휘청입니다.
 
접시가 위태로운 것이 떨어지기 직전입니다.
 
아니, 떨어지고 있어요!
 
……이대로 접시가 깨진다면 헬레네가 뒤를 돌아볼지도 몰라요!
 
<민첩> 판정
 
아실링 펜들레엄:(몸아 일하자!)
민첩
기준치: 70/35/14
굴림: 52
판정결과: 보통 성공
(휴)
 
낙하하는 접시를 재빠르게 잡아냅니다.
 
바닥에 닿기 직전이었네요. 조금만 더 늦었다면 큰일날 뻔했어요.
 
쟁반 위엔 냅킨, 포크와 나이프, 빈 와인잔 등이 제 위치를 잃은 채로 흐트러져 있습니다.
 
접시를 건네자 직원은 감사 인사와 함께 고개를 꾸벅 숙입니다.
 
그럼 다시 나가볼까요?
 
아실링 펜들레엄:(큰일 날뻔했네. 드레스에 뭐 묻은 것은 없는지 확인하고 다시 뒤따라간다.)
 
다행히 드레스는 깔끔합니다.
 
직원을 뒤로하고 연회장을 빠져나오니, 저 멀리 헬레네가 보입니다.
 
어쩐지 익숙한 옷차림의, 무리 지은 사람 여럿과 이야기를 하는 것처럼 보이네요.
 
아까 본 여인들, 그리고…….
 
헬레네 R. 히페리데:…… 이건, 다시……
 
그리고, 헬레네의 목소리.
 
잘 들리지 않습니다.
 
그보다 이곳에 서 있기엔 벽조차 없어서 들킬 것 같아요.
 
아, 반대편에 벽과 벽 사이 통로가 보입니다.
 
아무래도 저쪽으로 자리를 옮기는 것이 나을 것 같습니다. ……들키지 않고 말이에요.
 
<은밀행동> 판정
 
아실링 펜들레엄:
은밀행동
기준치: 40/20/8
굴림: 14
판정결과: 어려운 성공
 
이 정도 거리를 옮겨가는 것쯤은 당신에게 있어선 쉬운 일이죠.
 
저들은 당신의 소리 없는 걸음을 눈치채지 못한 듯합니다.
 
그 누구의 시선도 받지 않고 무사히 발걸음을 옮깁니다.
 
가만 벽에 몸을 붙이고 대화를 엿듣습니다.
 
여전히 소리는 잘 안 들리지만, 귀를 기울이자면……
 
<듣기> 판정
 
아실링 펜들레엄:(별것 아닌 이야기라도 들리면 좋을 텐데.)
듣기
기준치: 80/40/16
굴림: 27
판정결과: 어려운 성공
 
헬레네 R. 히페리데:부탁이니 한 번만 재고해주세요. 이렇게는 안 돼요. 저는 도저히……
 
부서지듯 가라앉은 헬레네의 목소리가 들립니다.
 
알 수 없는 말만 하네요. 무얼 재고해달란 말인가요?
 
아, 목소리가 더 멀어져 갑니다.
 
벽의 끝, 반대편 코너로 조금 걸어가 살펴보자니 넓은 홀과 어떤 문이 보입니다.
 
그러고 보니 거울에 비추었던 헬레네가 이쪽 통로에서 나왔던가요?
 
아무리 봐도 스탠드 바가 있을 법한, 아니, 연회장에 있을 물품을 갖춰 두는 곳이라는느낌조차도 들지 않는 공간입니다만…….
 
확인해보기엔 문 앞은 직원이 지키고 있어 들어가기가 쉽지 않을 것 같아요. 무슨 방법이……
 
노신사:이런, 당신은……
 
순간, 뒤에서 낯선 사람의 목소리가 들립니다.
 
번듯이 갖춰 입은 신사. 그가 당신을 위아래로 훑어보더니 웃습니다.
 
낄낄대며 웃어대는 소리가 어쩐지 광인의 웃음처럼 들리는 것은 기분 탓이 아닐 터.
 
아실링 펜들레엄:(슬슬 이런 반응에 피곤해져서 눈을 꾹 감았다가 뜬다. 인사는 없다. 상대 역시 그런 것을 안 보이기도 했고, 하고 싶지도 않았으니까.)
 
노신사:(반응이 돌아오지 않는데도 제 멋대로 클클 웃으며 수염을 만지작거린다.) 그 증표…… 아하.
당신이 그 사람이로군.
 
아실링 펜들레엄:(노인의 행동을 살피며 목적을 읽어 내려고 하다가) 증표라면 어떤 것을 말하는 것인지..?
 
노신사:그래, 알 턱이 없겠지. (번들거리는 눈으로 당신을 손가락질한다.) 당신이 가지고 있는…… 그 반지!
당신도 이제 저주받은 거야.
 
아실링 펜들레엄:(원래도 축복받은 편은 아니라고 생각해서 별 타격은 없다.) 노망이... ... (어쩐지 귓가에서 작은 천사 헬레네가 "아실! 나쁜 말!"이라고 하는 것이 들리는 것 같아서 입 다문다.)
(빼면 그만 아닌가? 반지 만지작거린다.)
 
알 수 없는 소리만 하는 것이 영락없이 미친 사람입니다.
 
뭐, 잘된 일이죠. 이 사람을 기회로 삼을 수 있겠어요. 저곳에 들어가 볼 기회 말이에요.
 
당신에게 있어 사람 하나쯤 기절시키는 건 쉬운 일이니까요.
 
한 대 먹여주고 기절한 사람을 발견했다며 직원에게 도움을 청합시다.
 
아실링 펜들레엄:(너무 큰 소리가 나는 일은 없어야겠지. 어깨에 무게를 실어 정확히 목덜미 부분을 향해 손날을 날린다.)
 
<근접전> 판정!
 
아실링 펜들레엄:
근접전(격투)
기준치: 70/35/14
굴림: 89
판정결과: 실패
 
이런, 발을 움직이다 긴 드레스 자락을 밟아 중심이 무너집니다.
 
목덜미를 겨냥해 휘두르던 손이 빗나가고 맙니다.
 
남자는 당황하는 듯 싶지만 반격할 의사는 보이지 않네요.
 
입을 놀린 대가는 치러야겠죠. 기회는 놓치지 않는 것이 당연하니까요. 재판정 가능합니다.
 
아실링 펜들레엄:
근접전(격투)
기준치: 70/35/14
굴림: 68
판정결과: 보통 성공
 
퍽, 하는 둔탁한 소리와 함께 남자가 쓰러집니다.
 
잠깐 정신을 잃은 것 같아요. 이쯤 되면 성공이네요.
 
소리를 듣지 못한 건지, 코너에 가려 보지 못한 건지 직원은 이쪽에 눈길조차 주지 않습니다.
 
아실링 펜들레엄:아, 이걸 어떡한담? 노인분께서 갑자기 기절을...! 여기, 여기 사람이 쓰러졌어요. (다급한 표정을 지은 상태로 직원을 바라본다.)
 
경비 직원: (아실링의 행색을 흘긋 훑곤 건성으로 격식을 차린다.) 사람이요? 아…… 이 사람 또 시작이군. 얼마나 마신 거야?
감사합니다. 이분은 제가 안전한 곳에 모셔다 드리겠습니다.
 
직원은 한숨이 섞인 채로 진심 없는 감사 인사를 건네고는, 남자를 부축해 자리를 옮깁니다.
 
지금이 기회에요. 들어갈 건가요?
 
아실링 펜들레엄:(직원한테 보내기 전에 한대라도 더 때릴걸. 묘한 아쉬움을 남기고는 안으로 들어간다.)
 
문고리에 손을 대자, 문은 쉽게 열립니다. 잠가두지도 않은 건가요?
 
끼익, 작은 소리와 함께 열린 문 사이로 어둠만이 보입니다.
 
.
 
어둡고도 어두운 방.
 
음산한 찬 공기, 그리고 소름 돋도록 역한 냄새에 숨이 막혀옵니다.
 
문고리에 잠금장치가 있네요. 안에서만 잠글 수 있는 구조인 듯합니다.
 
어둠에 시야가 익숙해질 무렵, 벽에 십자가를 붙였던 흔적이 보입니다. 지금은 남아있지 않지만요.
 
과거에 이곳은 기도실이었던 걸까요?
 
주변에는 [옷더미], [금고], [서랍]이 보입니다.
 
아실링 펜들레엄:(이런 역한 냄새가 날 일이 뭐가 있지? 손수건으로 코와 입 주변을 가린 상태로 옷더미부터 먼저 확인한다.)
 
흰 드레스, 예복 따위가 너덜너덜한 걸레짝처럼 한 곳에 무더기로 쌓여 있습니다.
 
자세히 보자면 옷마다 무언가로 잔뜩 얼룩이 진 채 딱딱하게 굳어있습니다.
 
마치 무언가를 가리기 위해 얹어두었다는 느낌이 듭니다.
 
아실링 펜들레엄:(이렇게 허술하게 가린 이유가 뭐지? 아니면 저렇게 가려도 상관없는 것인가? 찝찝함을 뒤로하고 옷더미를 치워본다.)
 
옷더미를 치운 아실링은 [톱], [시체] 한 구를 발견합니다.
 
아실링 펜들레엄:(역한 냄새의 원인이 이것이었나? 시체를 먼저 살핀다.)
 
지극히 평범하고도 평범한 여성의 시체입니다.
 
얼굴을 포함한 살이 드러난 모든 곳이 부패하고 뻣뻣하게 굳어있습니다.
 
벌레에게 파먹힌 듯, 형태를 알아볼 수 없도록 손상되고 썩어들어간 것이 죽은 지 일주일은 된 것 같아요.
 
초점 없이 흐리고 하얗게 썩어가는 눈이 당신을 번뜩 쳐다보는 것만 같아 어쩐지 소름돋습니다. SANc (1/1D2+1)
 
아실링 펜들레엄:
SAN Roll
기준치: 57/28/11
굴림: 83
판정결과: 실패
(시체를... 좀 자세히 볼 수 있나..?)
rolling 1d2+1
 
(
1
 
)
+1
 
 
=
2
 
이성 2 감소.
 
시체를 자세히 보니 복부에 작고도 깊게, 여러 번 찔린 상흔이 남아있습니다.
 
비록 굳고 부패해가며 상흔이 온전치 않아 제대로는 볼 수 없지만, 명백한 칼의 상흔입니다.
 
찬찬히 살펴보자니, 시체의 왼쪽 손목이 절단되어 있습니다.
 
인위적으로 자른 듯 썩은 살의 가운데로 희고도 얼룩진 뼈가 드러납니다.
 
그러고 보니 당신이 그 옷을 입고 이 자리에 있을 수 있는 이유가 뭐죠?
 
……이 시체가 왜 여기 있냐는 말이에요.
 
아실링 펜들레엄:(절단된 왼쪽 손목과 제 왼 손가락 약지에 끼워져있는 반지를 번갈아가며 보다가 시체 위로 다시 옷더미를 덮는다.)
(옆에 있는 톱은 범행도구라기보다는 손목을 잘라내기 위한 것인가?)
 
그렇게 크지는 않은, 녹이 슬었음에도 날카로움이 보이는 톱입니다.
 
이미 한 번 사용했는지 날에는 피가 잔뜩 말라붙어 있습니다.
 
어떤 용도로 쓰였으려나요. 당장 파악하긴 어렵네요.
 
아실링 펜들레엄:(궁금한 것이 많지만, 시체는 답을 해주지 못하지. 시체와 톱을 뒤로하고 금고로 향한다. 잠겨있나?)
 
단단히 잠겨있는 다이얼 금고입니다.
 
풀어보기엔 비밀번호도 알 수 없고 감조차 잡을 수 없네요.
 
무엇을 넣어둔 걸까요?
 
<관찰> 판정
 
아실링 펜들레엄:
관찰력
기준치: 85/42/17
굴림: 64
판정결과: 보통 성공
 
빈 금고는 아닌 듯한데……. 무언가를 더 알아보기엔 금고가 너무나도 단단히 잠겨있습니다.
 
기껏 해봐야 어둠의 방법으로 번 돈이나 있겠죠.
 
……아, 당신이 할 말은 아니긴 하지만.
 
굳이 여기다 둘 이유도 없어 보이는데 말이에요.
 
아실링 펜들레엄:(금고 퉁 차고 서랍 보러 간다.)
 
금고 옆에 있는 세 칸짜리 목제 서랍입니다.
 
오래되었는지 잘 맞물리지 않아 삐걱거리긴 하지만, 세 번째 칸을 제외하고는 잠겨있지 않습니다.
 
[첫 번째 칸],[두 번째 칸], [세 번째 칸]을 볼 수 있습니다.
 
아실링 펜들레엄:(첫 번째 칸부터 본다. 뭔가 정보가 될 만한 것이 있다면 좋을 텐데.)
 
살짝 손잡이를 뒤로 당기자 부드럽게 열립니다.
 
열린 서랍의 첫 칸에는 날에 핏자국이 묻은 채 여러 개로 조각난 칼의 파편, 그리고 잘린 손가락이 들어있습니다.
 
피가 나던 것을 그대로 넣었었는지 서랍의 바닥은 온통 거무스레한 자국으로 물들어 있습니다.
 
아실링 펜들레엄:(잘린 손가락들을 보고 인상 찌푸렸다가 비위 상하는 것을 참고 좀 더 자세히 살펴본다.)
 
손가락의 절단면에는 마치 무언가를 하려던 듯 칼로 여러 번 그은 자국,
 
그리고 조금 위쪽에는 눌리고 감겨 조인 듯한 자국이 나 있습니다.
 
몇 번째 손가락인지까진 알 수 없습니다.
 
엄지손가락이 아니란 것만 확실하네요.
 
아실링 펜들레엄:(반지 자국인가...? 근데 칼 파편은 뭐지? 이것 역시 자세히 살펴본다.)
 
하나의 칼이 여러 개로 조각난 듯합니다.
 
이 이상 알 수 있는 건 없습니다.
 
아실링 펜들레엄:(제일 커 보이는 파편 하나를 손수건에 감싸 손에 쥔다. 가지고 있다가 쓸 일이 없기를 바란다.)
(두 번째 칸을 확인한다.)
 
손잡이를 뒤로 당기는 순간, 찌익- 하고 종이가 찢어지는 소리가 들려옵니다.
 
반쯤 열린 틈새 사이로 알 수 없는 언어가 가득 쓰인, 한눈에 봐도 오래되었음을 알 수 있는 고문서가 서랍의 절반을 채웁니다.
 
쌓인 종이의 가운데가 무언가가 낀 듯 불룩하게 튀어나와 있어요.
 
아실링 펜들레엄:(종이들을 살피며 불룩하게 튀어나온 것이 무엇인지 찾아본다.)
 
종이 더미를 뒤져보니 약간 녹슨 듯한 은색 열쇠가 있습니다.
 
아실링 펜들레엄:(열쇠를 챙기고 세 번째 칸을 열어본다.)
 
세 번째 칸에는 잠금장치가 걸려있습니다.
 
아실링 펜들레엄:(열쇠를 넣는 구멍이 있나?)
 
있습니다!
 
아실링 펜들레엄:(좀 전의 열쇠를 구멍에 맞춰 넣고 돌린다. 열어지나?)
 
두 번째 칸의 열쇠를 밀어넣자 딱 맞게 열립니다.
 
바닥엔 조각으로 찢긴 채 구겨진 종이 뭉치가 떨어져 있네요.
 
아실링 펜들레엄:(종이뭉치들을 살펴본다. 이건 읽을 수 있나?)
 
종이는 구겨졌지만, 꽤 빳빳합니다.
 
두 번째 칸에서 본 오래된 고문서와는 다른 느낌이에요.
 
이후는 찢어져서 보이지 않습니다.
 
…의식이라니요? 초승달이라……
 
그러고 보니 어젯밤엔 달이 보이지 않았습니다만…….
 
바닥에 흩어진 종잇조각은 헬레네가 가지고 있던 것일까요?
 
아실링이 녹슨 은색 열쇠를 끼워 넣자 달칵, 하는 소리와 함께 잠금이 풀립니다.
 
서랍을 열자 오랫동안 열어보지 않은 것인지 약간의 먼지가 쌓여있고, 잔뜩 깨진 유리 조각이 바닥 일부분을 메웁니다.
 
<관찰> 판정
 
아실링 펜들레엄:
관찰력
기준치: 85/42/17
굴림: 20
판정결과: 어려운 성공
 
날카로운 물건들이 온통 어지럽게 놓여 있습니다.
 
그 틈으로 당신 손에 작고도 투명한 원통형의 병이 잡힙니다.
 
아실링 펜들레엄:(병? 내용물이 보일까?)
 
코르크로 봉인된, 투명하고도 탁한 맑은 물과도 같은 내용물이 보입니다.
 
당신은 알고 있습니다. 당신의 감이 말해주는 이것은…… 그래요, 분명한 독약입니다.
 
스산하고도 서늘한 병의, 생명의 온도.
 
이게 왜 여기 있죠? 아니, 그런 건 중요하지 않아요.
 
다시, 기회입니다.
 
큰 소란 없이, 큰 고통 없이 당신이 그를 죽일 기회.
 
지금이라면 아직 헬레네가 돌아오지 않았을지도 몰라요.
 
마침 앞에 다른 출구가 보입니다.
 
들어온 문은 돌아온 직원이 지키고 있을지도 몰라요. 가지고 나갈까요?
 
아실링 펜들레엄:(이걸로 몇몇 보낼 수 있으려나~ 같은 생각을 하며 일단 독약을 챙긴다.)
(얼굴 기억해뒀던 사람들 생각하며 빙그레.)
(볼 것은 더 없겠지? 톱을 챙기고 싶은 마음이 크지만... 눈에 너무 띌 것이 뻔하므로 아쉬움을 뒤로하고 방에서 떠난다.)
 
손잡이를 돌리려 손을 대는 순간,
 
코이오스 히페리데:이런 망신이 있나. 약혼자 하나 간수 못한 건 오롯이 네 책임이다, 헬레네.
사람들 앞에서 감히 그런 말을 하다니. 부끄럽지도 않느냐?
 
헬레네 R. 히페리데:하지만 아버님…….
 
찬 공기 중에 울린 두 익숙한 목소리에 감각이 곤두섭니다.
 
……헬레네의 대기실이 옆에 있던가요?
 
헬레네 R. 히페리데:도저히 받아들일 수가 없어요. 저로선 도저히…… 그러니 이제라도, 이제라도 그만두게 해 주세요.
그분만은 안 돼요. 아버님, 제발……
 
흐느끼며 애원하는 목소리.
 
헬레네가 지금 무슨 말을 하고 있는 건가요?
 
이어 누군가의 낮은 중얼거림.
 
그리고… 짜악, 날카롭게 귀에 와닿는 손찌검 소리.
 
잠시간의 정적 끝에 나지막한 목소리가 들려옵니다.
 
코이오스 히페리데:…… 쓸모없는 것.
 
이어 가까워지는 한 사람의 무게가 실린 발소리, 문을 열었다 쾅- 하고 닫는 소리.
 
문 너머로나마 모두 전해들은 당신은 지금 무슨 생각을 하고 있나요?
 
아실링 펜들레엄:(상황을 직접 눈으로 본 것은 아니지만, 굳이 확인할 필요 없었다. 아주 짧은 순간 이미 충분한 정보를 제공받았으므로.)
(고의적이고, 물리적인 위해. 직업 때문에 익숙하기 짝이 없는 것이지만, 피해를 입은 대상이 헬레네라고 하니 감상이 달라졌다. 아주 오랜만에 살의에 대한 것을 다시금 온몸으로 느끼다가 벽에 귀를 가져간다. 헬레네는 아직도 그 옆에 있나?)
 
희미하게 헬레네의 울음 소리가 들려옵니다.
 
끓어오르는 살의는 본래의 암살 대상이 아닌 다른 이에게로 향합니다.
 
목표물에 있어서 어떠한 감정도 가지지 않는 것.
 
그것이 당신의 최우선 가치인 걸 잘 알지만, 지금 일어난 일을 보고 어떻게 아무렇지 않을 수 있을까요.
 
그러나 이곳에 계속 머무를 여유는 없습니다.
 
당신이 여기 있는 것을 들킨다면 어떤 일이 일어날지 모르니까요.
 
아실링 펜들레엄:(방 안에서 챙긴 것들을 눈에 보이지 않게 챙긴 이후 방에서 벗어나려고 한다. 헬레네와 마주치지 않고 원래 그 자리로 돌아가야 할 텐데.)
 
작은 소리와 함께 열린 문으로 쏟아지는 밝은 빛에 절로 인상이 찌푸려집니다.
 
시야에 보이는 것은 멀어져가는 헬레네의 부친, 그리고 연회장의 문입니다.
 
옆 방에 있을 그가 오기 전에 다시 연회장으로 돌아갑시다.
 
연회장의 뒷문에서 가장 가까운 테이블에는 놓인 아직 비워지지 않은 와인잔 여러 개가 놓여 있습니다.
 
당신의 잔 옆에 있는 헬레네의 잔에 든 화이트 와인이 당신의 시선을 끕니다.
 
독약을 사용한다면 지금입니다. 저 잔에 약을 흘려넣으면 되겠죠.
 
아실링 펜들레엄:(헬레네 잔은 눈에 담지도 않고 내부 사람들을 관찰한다. 몇 명 정도인지, 나이는 어느 정도인지, 무기로 될만한 것은 가지고 있는지- 같은 것들.)
 
하객들은 서른여 명. 젊은 이들도 몇 명 있으나 대체로 중년입니다.
 
결혼식에 참석하러 왔을 뿐이니 무기를 소지한 이들은 없겠죠. 있더라도 입장 시에 사용인에게 맡겨두었을 테고요.
 
독약을 챙겨오기는 했으나 사용할 때는 지금이 아닙니다.
 
어째서인가요? 너무도 착한 헬레네에게 동정심이라도 들었나요?
 
아무렴 어떻습니까. 당신이 연회장의 인원을 파악하는 사이 어느 정도 시간이 흘렀고, 먼발치서 발소리가 들려옵니다.
 
헬레네 R. 히페리데:죄송해요. 기다리셨죠?
 
헬레네가 다가와 다시 제 자리에 앉습니다.
 
바라본 그의 눈가가 어쩐지 조금 붉습니다.
 
아실링 펜들레엄:... 아니에요. 사람들 구경하다 보니 시간 가는 줄도 몰랐어요. (볼은 괜찮나? 맞았다면 많이 아플 텐데.)
 
헬레네 R. 히페리데:(시선을 눈치채기라도 한 건지 자연스럽게 얼굴을 모로 돌리며 하객들을 응시한다.) 저희를 축하하기 위해 많은 분들이 와 주셨죠. 일반적인 하객에 비하면 적은 숫자지만…… 혹여 아쉽지는 않으세요?
 
아실링 펜들레엄:일반적인 하객들에 비하면 적은 것이었군요. 그런 줄 모르고 그냥 많이 와주셨네~하고 있었어요. (모르는 척하며 상관없다는 듯 웃어 보인다. 아쉬울 리가 없지. 오히려 적은 숫자가 참가해 줘서 고마울 뿐이다. 여기서 많기만 해봐야 신경 쓸 것들이 늘어나는 것뿐이니까.) ... 당신은 아쉬운가요?
 
헬레네 R. 히페리데:(하긴 아실링은 저와 달리 귀족가의 결혼식에 많이 가본 적이 없을 테니까. 고개 내젓는다.) 많이 와주셨더라면 저희가 맺어지는 걸 그만큼 많이 봐주실 테니 기쁘기는 하겠지만…… 수가 적은 게 좀 더 엄숙하면서 신성한 분위기를 줄 것 같아 좋네요.
참. 그러고 보니 남은 와인들은 드셔 보셨나요? 잔이 비어 있네요.
 
아실링 펜들레엄:(지긋...) 당신 마음에 든다는 것일까요? 약혼부터 당신 결정이 들어간 것이 아니라서, 하객 숫자나 분위기만이라도 당신 마음에 들어야 할 텐데.
아, 당신 오면 같이 마시려고 일부러 비워뒀답니다. 혼자 마시면 외로워요~.
 
헬레네 R. 히페리데:그럼요. 무척 마음에 들어요. 상대가 아실링이라서 무엇이든 좋게 느껴지는 것 같기도 하네요. (시선에 답하듯 부드럽게 미소한다. 그러자니 모로 돌렸던 얼굴이 결국 다 드러나게 되었는데, 왼쪽 뺨이 미세하게 더 불그스레하다. 최대한 화장으로 가리려고 한 것 같지만 아까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아는 아실링의 눈에는 보일 터다.)
그랬군요. 그럼 아까 남은 와인이…… 피노누아 와인과 메를로 와인이었던가요? 둘 중 무얼 따라드릴까요?
 
아실링 펜들레엄:(불그스름한 볼을 보자마자 자신도 모르게 손을 볼 근처로 이동시켰다가 멈칫한다. 숨기고 싶은 것을 괜히 들추고 싶지는 않아서 옆머리를 귀 뒤로 넘겨준 뒤로 손을 치운다.)
저는 피노누아요. 두 번째로 궁금했답니다~. 이번에는 조금만 따라주세요.
 
헬레네 R. 히페리데:(손길에 약간 놀라는 듯했지만 귀 쪽으로 향하자 머리를 정돈할 수 있도록 가만히 앉아 있는다.) 좋아요. 같이 먹을 만한 음식이 있었더라면 좋았을 텐데, 아직 식이 시작되지 않았으니 피로연도 준비가 되지 않았네요. (와인병을 열어 새로운 잔에 약간 따라주었다.)
 
아실링 펜들레엄:아쉬움이 들긴 하지만, 어쩔 수 없네요. 피로연에서 남은 아쉬움을 달래거나... 아니면 둘이 같이 갈 바다에서 아쉬움을 덜어내는 것으로 하죠. 셰프에게 준비한 와인이랑 어울릴만한 음식을 특별 주문하는 거예요. 이 계획 어떤가요? 당신이 참여해 줄만하죠? (능청스럽게 질문을 이어가며 반응을 살핀다. 지금은 확답을 얻고 싶었다. 자신과 함께 바다를 가줄, 미래를 당신이 가지고 있는지 없는지가 궁금하다.)
 
<심리학> 판정
 
아실링 펜들레엄:
심리학
기준치: 70/35/14
굴림: 46
판정결과: 보통 성공
 
헬레네 R. 히페리데:멋진 계획이네요. 모두가 축하해 주는 성대한 결혼식도 좋지만, 역시 저희 단둘이서 보내는 시간이야말로 몇 배는 더 특별할 것 같아요. (곧잘 맞장구를 치지만, 묘하게 시선을 마주치지 못한다.)
 
대답하는 목소리는 평소와 같은 어투지만, 그러면서도 어딘가 불안해 보입니다.
 
다만 그 불안함은 당신과의 관계에서 기인한 것 같지는 않습니다.
 
그는 진정으로 당신과의 결혼을 기뻐하며 또 바라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무엇이 그를 그리 만들고 있는 걸까요?
 
결혼을 앞둔 신부는 설레어야 할 텐데, 왜 자꾸만 쓸쓸하면서도 슬퍼 보이는지.
 
헬레네 R. 히페리데:(제 잔을 들어 아직 남아있던 화이트 와인으로 목을 축인다.) 맛은 어떠신가요?
 
아실링 펜들레엄:(물음을 듣자마자 바로 와인 잔을 입가로 가져간다. 솔직히 맛은 잘 모르겠다. 분명히 훌륭한 와인이겠지만, 눈앞의 신부에게 정신이 쏠려 와인을 즐겁게 감상할 틈이 없다.) 입안에 남는 향이나 목 넘김이 좋네요~. 다음에 또 즐길 수 있으면 좋겠어요.
 
헬레네 R. 히페리데:다행이에요. 화이트 와인과 비교했을 땐 어떠세요? 말씀하신 계획을 이행하려면 취향에 맞는 와인을 미리 골라둘 필요가 있겠죠.
 
아실링 펜들레엄:화이트와인이 산뜻하고 가볍게 마시기 좋다고 한다면, 방금 피노누아는 확실히 무거운 것이 느껴지네요. 하지만 그런 것치고 제법 섬세한 편이라 저희가 곧 즐길 바다 요리와 함께해도 손색이 없다고 생각해요. 물론, 저한테 제일 중요한 것은 당신의 뜻이지만요. 저 혼자서 가는 바다가 아니잖아요.
 
헬레네 R. 히페리데:그렇죠? 전 단독으로 마시기에는 화이트 와인을 가장 선호하는 편이긴 하지만, 식사와 함께 곁들일 걸 생각한다면 피노누아 와인으로 고르는 게 좋지 않을까 싶어요. 아실과 분위기 좋은 식당에서 함께 고른 와인을 마시며 식사를 하는 상상을 하니…… 벌써부터 행복해지네요.
(만면에 퍼졌던 웃음이 시계를 확인하고는 금세 잦아든다.) 어느덧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군요.
 
탁. 그가 와인잔을 테이블에 내려놓습니다.
 
그가 잠시 당신을 빤히 바라보나 싶더니, 당신의 치맛자락을 가리킵니다.
 
헬레네 R. 히페리데:아실, 옷에 얼룩이 졌네요. (자그마한 목소리로 속삭인다.)
 
내려다보니 검은 자국이 묻어있습니다. ……창고에서 묻기라도 한 걸까요?
 
아, 이런 실수를. …눈치챘을까요? 그렇다면……
 
헬레네 R. 히페리데:아무래도 갈아입고 오시는 게 좋겠어요. 지금 입은 옷도 무척 아름다우시지만…… 대기실 옷장에도 드레스가 많이 있을 테니 저에게 다른 드레스 차림도 보여주세요.
옷을 갈아입을 만한 시간은 넉넉할 테니 혼자 하실 수 있으시겠나요?
 
아실링 펜들레엄:(손으로 자국을 가리고 부드럽게 미소 짓는다. 와인 자국이라고 생각해 주는 것일까? 아니면... ...) 그럼요. 있는 것 중에 제일 예쁜 것으로 골라 입고 올게요. 여기서 기다려주실래요?
 
헬레네 R. 히페리데:저도 옷매무새를 점검해야 할 테니 제 대기실에 다녀올게요. 조금 있다 만나요, 아실.
 
당신을 스쳐 지나가던 헬레네가 당신에게만 들릴 만한 목소리로 나지막이 속삭입니다.
 
헬레네 R. 히페리데:…… 고마워요.
 
한 치의 악의도 없을 터이나 어쩐지 소름돋는 한 마디.
 
방금…… 고맙다고요?
 
알아요, 알고 있었어요. 헬레네는, 당신이 어디에 있었는지, 무얼 가지고 왔는지…
 
손 한 번만 움직였더라면 독약이 떨어진 곳은 자신의 와인잔이었을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희미한 미소를 끝으로 헬레네가 멀어져 갑니다.
 
당신도 몸을 일으켜 대기실에 다녀오기로 해요.
 
아실링 펜들레엄:... ... (빠르게 갈아입고 오는 것이 좋겠다. 드레스 자락을 잔뜩 움켜쥐고 대기실 향해 빠르게 걸어간다.)
 
.
 
발걸음을 옮겨, 당신의 대기실에 들어섭니다.
 
이번에는 당신을 돕던 시녀도 없습니다. 있으면 되레 방해되니까요.
 
혹여나 불상사가 생길지 모르니 문을 잠그는 게 좋겠습니다.
 
아실링 펜들레엄:(문을 걸어 잠근 뒤에 뒤늦게 내부를 살핀다. 다른 사람이 들어온 흔적 같은 것은 없겠지?)
 
다른 사람이 오간 흔적은 없습니다.
 
당신의 가방도 제자리에 무사히 있습니다.
 
열어본 흔적 없이 자물쇠도 그대로 걸려있어요.
 
넓은 대기실은 고요하기만 합니다.
 
전신 거울의 옆에 벽장처럼 커다란 옷장이 있습니다.
 
아실링 펜들레엄:(미리 준비된 드레스가 있다고 했지? 옷장을 열고 내부를 살펴본다. 입을 만한 게 있나? 이왕 입는다면 덜 불편하고 헬리에게 보이기 좋을 만한 것을 입고 싶은데.)
 
옷장을 열자 세 벌의 흰 드레스, 그리고……
 
…바닥에 저게 뭐죠?
 
……아, 별거 아니네요. 누군가의 왼손이에요.
 
잠깐, 왼손이요? 이게 왜 여기 있죠?
 
아실링 펜들레엄:(왼손이 왜 이곳에? 경고인가? 가짜이길 바라면서 왼손을 살핀다. 정말 사람의 것이 맞나?)
 
아무리 봐도 진짜 사람의 왼손입니다.
 
잘 보니 약지 손가락이 없어요.
 
단면이 시간이 지나며 뭉개진 감이 있지만, 깔끔하게 잘린 흔적이 보이는 것이 아까 창고에서 본, 한 손이 없던 시체의 것인가 봅니다.
 
…움찔, 하고는 방금 손이 움직인 것만 같았습니다.
 
기분 탓인가요? 옷걸이에 걸린 옷의 그림자로 인해 잘 보이지 않습니다.
 
걸린 옷을 손으로 밀어내 그림자를 치워내려던 순간,
 
턱, 하고 잘린 손이 움직여 당신의 왼손을 잡습니다.
 
가뜩이나 차갑던 그 손에 더더욱 힘이 들어갑니다.
 
집요하게 당신의 약지 손가락을 잡은 모습이 마치 당신의 반지를 빼앗으려는 듯합니다.
 
기괴하게도 괴사한 손목의 잘린 단면에서 검붉은 피가 뚝, 뚝 떨어져 당신의 예복에 물듭니다.
 
거세고도 강한 힘. 그런데 어째서인지 당신 손의 반지는 빠지지 않습니다. SANc (0/1)
 
아실링 펜들레엄:
SAN Roll
기준치: 57/28/11
굴림: 17
판정결과: 어려운 성공
 
이성 감소 없음.
 
손의 반지를 빼려는 것이 아닌, 마치 당신의 약지의 관절을 뜯어내려는 것처럼 그 손아귀는 당신의 손가락을 으스러뜨리려 합니다.
 
손가락이 끊어지는 것 같이 너무나도 아파옵니다……!
 
이대로 있다가는 당신의 왼손이 전부 조각조각 부서질지도 모르는 일입니다.
 
<근력> 판정
 
아실링 펜들레엄:(손가락 하나 정도 뜯어지는 것은 살면서 큰 문제는 없을 만한 일이지만, 왼손이 부서질 것만 같은 악력은 도저히 버틸 수가 없다.)
근력
기준치: 50/25/10
굴림: 89
판정결과: 실패
 
통증이 손에, 그리고 머릿속에 가득 차 정신을 제대로 잡기 힘듭니다.
 
괴물 같은 힘에 붙잡힌 당신의 손이 점차 창백해져 갑니다.
 
…… 그렇게 몇 분이 지났을까요.
 
당신을 잡은 손에서 스르륵 힘이 풀리더니 그대로 바닥으로 툭 떨어집니다.
 
아실링 HP –1.
 
뼈와 살이 바닥과 맞닿는 소리. 끔찍하고도 역겨운 붉은 피가 사방으로 튑니다.
 
바닥에 나동그라진 끔찍한 손목은 더는 움직이지 않습니다.
 
그 강한 힘에도 반지는 어째선지 빠지지 않습니다.
 
아실링 펜들레엄:(뭔데 반지가 빠지지 않지? 노인이 말한 저주가 이것을 말하는 것일까? 그런 생각을 하며 왼손 약지에 자리 잡은 반지를 본다.) 최악의 경우에는 잘라내야 하나?
 
문득 신사의 말이 떠오릅니다. ‘증표’라던 반지.
 
헬레네의 손에도 있던, ‘증표’요.
 
그렇다면 무엇의? 신원불명의 평범한 사람만을 약혼자로 받아들이는 이 가문의 결혼식은 대체 무엇을 위해?
 
식의 시작까지 남은 시간은 단 30분.
 
드레스를 갈아입을 때가 되었습니다.
 
아실링 펜들레엄:(드레스를 급하게 갈아입으면서 가져온 무기들을, 특히 리볼버를 챙기는 것도 잊지 않는다. 가터벨트 쪽에 자리한 곳에 꼼꼼하게 무기들을 장착하고 거울로 제 모습을 확인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안 들키겠지?)
 
피로 더러워져 버린 드레스를 벗고, 옷장에서 희고도 흰 새 드레스를 꺼냅니다.
 
꺼내든 드레스을 걸치고 가방에 든 리볼버를 꺼냅니다.
 
당신은 대기실 끝의 의자에 앉아선 치맛자락을 걷어 올립니다.
 
총집을 웨딩 가터 바로 아래에 채우고 리볼버를, 탄환을 장착합니다.
 
치맛자락을 내리면 당신은 그저 평범한 신부일 뿐입니다.
 
이벨린:계신가요? 곧 식이 시작되어 모시러 왔습니다.
 
이벨린의 목소리입니다.
 
결혼식의 순백과는 어울리지 않을 차가운 무기를 숨기고 문을 엽시다.
 
아실링 펜들레엄:(이 문을 연 뒤로 무슨 일이 일어날지 상상조차 하기 어렵지만, 이대로 헬레네를 두고 자리를 피할 수도 없는 법이다.)
(문을 열고 헬레네가 있을 내부를 향해 걸어간다.)
 
...
 
.
 
시녀의 도움을 받아 식장의 문 앞에 섭니다.
 
화려한 장식이 달린 어두운 문.
 
당신 홀로 싸운다 해도 아무렴 어떻겠습니까, 무기를 가진 것은 오로지 당신뿐입니다.
 
이 문을 열고, 걸음을 걷다 보면 누군가의 죽음 또한 드리워질 겁니다.
 
신부 입장.
 
울리는 목소리와 함께 문을 엽니다.
 
들려오는 웨딩마치, 양옆으로 놓인 하객들의 테이블, 어째선지 옅게만 들리는 작은 박수 소리,
 
그 사이로 바닥에 깔린 순백의 버진로드를 걸어 나갑니다.
 
새하얀 부케와 함께 먼저 입장한 헬레네는 당신을 바라보지 않습니다.
 
늙지도, 젊지도 않은 인자한 분위기의 주례.
 
마침내 주례대 앞에 다다릅니다.
 
헬레네의 고운 낯과 푸른 눈빛엔 묘한 불안감이 담겨있습니다.
 
주례사가 시작됩니다. 헬레네가 당신의 시선을 의식했는지 살짝 웃어보입니다.
 
관례상 이어지는 주례사를 애써 듣습니다.
 
긴장을 늦출 수는 없죠. 당신의 본분은 그와의 결혼이 아닌……
 
주례:……오늘 이 자리에 모인 그분의 형제자매 여러분께, 그분의 축복과 뜻이 있기를 바랍니다.
의식의 날, 가문의 부가 한층 더 넓어지는 날을 기념하여, 다음으로 가문을 이끌어 갈 헬레네를 위하여, 위대하신 ▓▓▓▓▓▓의 영광을 얻은 가문에게 이 자리를 빌어 그분의 뜻 아래 영원한 부귀를 축원하는 바입니다.
 
당신을 축복하는 문구는 그 어디에도 없습니다.
 
오히려 다행이라고 해야 할까요.
 
헬레네는 죄인처럼 시선을 떨구고만 있습니다.
 
헬레네, 그의 가문은 도대체 무엇을……
 
어느새 주례가 혼인 서약을 읊기 시작합니다.
 
주례:헬레네 히페리데. 그대는 신부 아실링 펜들레엄을 영원히 사랑하고 함께 할 것을 맹세합니까?
 
헬레네 R. 히페리데:…… 네, 맹세합니다. (읽기 어려운 표정으로 주례를 바라보며 답한다. 맑고 차분한 목소리가 울린다.)
 
잠시 망설이는 듯하나 그럼에도 헬레네는 대답합니다.
 
이젠 당신의 차례일 테죠.
 
주례가 당신을 바라봅니다.
 
주례:아실링 펜들레엄. 그대는 신부 헬레네 히페리데를 영원히 사랑하고 함께 할 것을 맹세합니까?
 
고요하기만 한 식장.
 
모두가 당신의 대답을 기다리기만 할 순간,
 
쾅─!
 
고막을 울리는 굉음, 자욱한 연기.
 
술렁거리는 하객들, 분명 근처의 연회장 쪽에서 들려온……
 
옆을 바라보자면, 그 흰 부케를 당신에게 향하고 있는, 헬레네가……
 
탕,
 
그리고 웅성거림은 총성과 함께 비명으로 변해갑니다.
 
당신이 아닌, 헬레네의 아버지가 맥없이 바닥을 향해 쓰러집니다.
 
흰 의자와 테이블이 붉게 물든 채로요.
 
예식장은 순식간에 아수라장이 됩니다.
 
탕!
 
다시 한번 들려오는 총성에 샹들리에가 무너져 깨져버립니다.
 
이어 몇 번 더 울리는 총성, 사방으로 튀는 피,
 
챙강, 산산이 조각나 깨지는 유리, 비명을 내지르며 도망치는 하객들.
 
헬레네가 당신을 돌아봅니다.
 
헬레네 R. 히페리데:첫 번째 의뢰 내용…… 결혼식을 철저하게 망쳐줄 것.
잊지 않으셨지요?
그러니…… 도와주세요. (눈망울에 슬픔이 번져나간다.)
 
…… 방금 뭐라고요?
 
정장을 입은 하객: 헬레네, 당신…… 가문을 배신한 건가?
아니, 우선 제물이 도망치지 못하게 잡아라!
 
탕, 되물을 틈도 없이 다른 곳에서도 연이어 총성이 들리기 시작했습니다.
 
팍 하는 소리와 함께 헬레네의 어깻죽지에서 붉은 피가 튑니다.
 
그에게 무어라 말을 하기도 전 당신에게 두 명의 정장을 입은 사람이 달려듭니다.
 
전투를 시작합니다.
 
순서는 아실링-사교도1-사교도2입니다.
 
사교도는 총을 사용하지 않습니다.
 
아실링 펜들레엄:(아- 역시 당신이었구나. 하고 싶은 말은 많았으나 가벼운 미소와 함께 준비해둔 리볼버를 손에 쥔다.)
.45 리볼버
기준치: 20/10/4
굴림: 3
판정결과: 극단적 성공
피해: 5
(쓸 수 있는 총알은 한정되어 있다. 상대가 총기류가 없다고는 하지만, 순간의 방심에 목숨을 뺏길지도 모르지.)
(하객 1을 향해서 총을 겨누고, 익숙하게 방아쇠를 당긴다. 사용한 총알은 우선 한 발.)
 
하객1:
회피
기준치: 25/12/5
굴림: 75
판정결과: 실패
 
하객1의 허벅지를 총알이 관통하고 지나갑니다.
 
핏물이 솟구쳐오르고, 비명이 울려퍼집니다.
 
하객1:으아악! (고통에 털썩 주저앉는다. 그러나 애써 고개를 들어올린다. 두 눈에서 증오와 광기가 타오른다.)
빠져나갈 수 없다. 절대로! (초인적인 힘으로 몸을 일으켜 달려든다. 노리는 건 총을 든 아실링의 팔.)
비무장
기준치: 35/17/7
굴림: 31
판정결과: 보통 성공
피해: 2
 
아실링, 반격 혹은 회피가 가능합니다.
 
아실링 펜들레엄:(회피한 이후에 공격할 일이 또 오길 바라며 근처 바닥을 향해 몸을 구른다.)
회피
기준치: 35/17/7
굴림: 43
판정결과: 실패
 
몸을 구르며 총을 빼앗기는 것만은 피했으나 하마터면 총을 놓칠 뻔했습니다.
 
얻어맞은 팔뚝이 얼얼합니다. HP 2 감소.
 
하객2:우리를 위해 죽어라! (그대로 달려들어 아실링의 몸을 짓누르려 한다)
비무장
기준치: 35/17/7
굴림: 44
판정결과: 실패
피해: 2
 
아실링, 반격이 가능합니다.
 
아실링 펜들레엄:(피할 시간에 총 겨누는 것이 훨씬 좋은 선택이겠구나. 아픈 팔을 뒤로하고 하객 2를 향해 총을 겨눈다. 이번에는 급소를 향해서.)
.45 리볼버
기준치: 70/35/14
굴림: 29
판정결과: 어려운 성공
피해: 10
 
천둥같은 소리와 동시에 방아쇠에서 연기가 뿜어져나옵니다.
 
뻗어나간 총알은 당신이 겨냥한 목표를 정확히 꿰뚫습니다.
 
하객2는 비명조차 지르지 못하고 그 자리에 멈춰서더니, 목각인형마냥 털썩 쓰러집니다.
 
다시 아실링의 턴입니다.
 
아실링 펜들레엄:(상대가 이렇다 할 반응을 보이기 전에 다시 총을 겨눈다. 장착되어 있는 총알 개수 안에 다 해치우면 좋을 텐데.)
.45 리볼버
기준치: 70/35/14
굴림: 93
판정결과: 실패
피해: 1
 
하객1:
비무장
기준치: 35/17/7
굴림: 75
판정결과: 실패
피해: 1
 
빈틈을 탄 하객이 아실링을 공격하려 했으나, 다리에 맞은 총상 때문인지 휘청거리며 힘을 잃습니다.
 
하객1:(겨우겨우 주변의 테이블을 붙잡고 지탱했다가 튕겨나가듯 아실링에게 달려든다.) 귀찮게 굴지 마라……!
비무장
기준치: 35/17/7
굴림: 53
판정결과: 실패
피해: 3
 
헛웃음이 날 정도로 우스운 움직임입니다.
 
아실링, 반격이 가능합니다.
 
아실링 펜들레엄:앞으로 그 다리 못 쓸 텐데? (가슴팍에 향해져 있던 총구를 위로 올려 머리를 향하게 한다. 이어 총알 발사.)
.45 리볼버
기준치: 70/35/14
굴림: 35
판정결과: 어려운 성공
피해: 1
 
하객1:크윽!
 
하객이 아슬아슬하게 총알을 피해갑니다.
 
이마에 붉은 실선이 그어집니다.
 
하객 HP 1 감소. (4/10)
 
아실링의 턴.
 
아실링 펜들레엄:(답지 않게 왜 머리를 노렸는지. 면적이 넓은 곳을 쏘아야겠다.)
.45 리볼버
기준치: 70/35/14
굴림: 76
판정결과: 실패
피해: 1
 
이런! 하필이면 아까 하객에게 맞은 팔이 말썽을 부립니다.
 
시큰시큰거리는 손목에 힘이 빠졌는지 겨냥이 살짝 빗나가고 말았습니다.
 
하객1:
비무장
기준치: 35/17/7
굴림: 85
판정결과: 실패
피해: 1
(그렇게 총을 맞고도 피하거나 도망칠 생각은커녕 계속해서 아실링을 공격하려 든다. 이쯤 되면 일반인이라곤 볼 수 없는 광기와 집념이다.)
 
하객이 움직일 때마다 바닥에 피가 줄줄 흐릅니다. 봐주기 어려운 꼴이네요.
 
이번에도 어설픈 움직임인지라 아실링이 충분히 피할 수 있습니다.
 
하객1:
비무장
기준치: 35/17/7
굴림: 18
판정결과: 보통 성공
피해: 3
이미 벗어날 수 없다. 넌 이미 붙잡힌 거나 다름없어! (악을 쓰며 아실링의 어깨를 밀어 넘어뜨리려 한다.)
 
회피 혹은 반격이 가능합니다.
 
아실링 펜들레엄:이상하다. 슬슬 피 부족해서 어지러울 만도 한데. (욱신거리는 팔을 고통이 느껴지지만, 정신을 집중해 다시 반격한다.)
.45 리볼버
기준치: 70/35/14
굴림: 77
판정결과: 실패
피해: 4
 
총을 장전해 쏘는 것보다 하객의 힘이 당신을 덮치는 게 먼저였습니다.
 
아실링은 하객에게 밀려 넘어지고 맙니다. 콰당탕!
 
HP 3 감소.
 
아실링의 턴.
 
아실링 펜들레엄:(언제 이렇게 다쳐버린 거지? 여유가 사라졌다.)
.45 리볼버
기준치: 70/35/14
굴림: 34
판정결과: 어려운 성공
피해: 6
 
이번에야말로 빗나갈 수 없습니다.
 
생명의 위협 앞에서 감각은 더욱 예민하게 다듬어지기 마련.
 
당신은 그대로 방아쇠를 당겨 하객의 심장을 관통합니다.
 
가까운 거리 탓에 하객이 미처 피할 새도 없었습니다.
 
분수처럼 뿜어져나오는 혈액과 함께 남은 하객이 맥없이 쓰러집니다.
 
겨우 한 고비를 넘겼네요.
 
그러나 그 순간 탕, 하는 소리와 함께 탄환이 당신의 바로 옆을 스치고 지나갑니다.
 
섬뜩함에 절로 솜털이 쭈뼛 섭니다.
 
이벨린:그 총…… 당신도 한패로군요.
할 말이라도 있으신가요?
 
익숙한 목소리의 시녀가 예식장의 문가에서 당신에게 총을 겨눕니다.
 
아차, 무기를 가진 자와 맞닥뜨리다니……
 
…아무래도 당신을 죽일 작정인가 봅니다.
 
그가 다시 총을 장전합니다.
 
전투를 시작합니다.
 
순서는 아실링-이벨린-아실링... 입니다.
 
아실링 펜들레엄:(처음 본 순간부터 마음에 안 들었다. 내 이름도 모르다니.)(뒤끝)
.45 리볼버
기준치: 70/35/14
굴림: 13
판정결과: 극단적 성공
피해: 4
 
이벨린:
7.65 리볼버
기준치: 40/20/8
굴림: 69
판정결과: 실패
피해: 5
 
이벨린이 당신과 거의 동시에 총을 쏘았으나, 목표물을 명중시킨 건 한 명뿐입니다.
 
이벨린:크윽…… (비명을 삼키며 제 팔을 쥐고 휘청거린다.)
 
이벨린의 왼팔에서 피가 줄줄 흘러내립니다.
 
그러나 그는 망설이지 않고 총을 쥔 오른팔을 들어 당신을 겨냥합니다.
 
한 팔로라도 당신과 싸우기를 포기하지 않겠다는 강경한 의지.
 
이벨린:(아실링의 가슴팍을 겨누고 쏜다.)
7.65 리볼버
기준치: 40/20/8
굴림: 53, 50, 38
+2: 보통 성공
+1: 실패
0: 실패
-1: 실패
-2: 실패
피해: 3
 
그러나 두 팔로 받치고 쏘던 자세에서 한 팔이 사라지면 총구가 흔들리기 마련.
 
이벨린의 총은 바닥을 맞춰 애꿎은 대리석을 깨뜨립니다.
 
아실링 펜들레엄:(총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언제나 상대하기 까다로워서, 조금의 여유도 두지 않고 바로 방아쇠를 당긴다.)
.45 리볼버
기준치: 70/35/14
굴림: 10
판정결과: 극단적 성공
피해: 3
 
총격전에서는 속도가 곧 생명이죠.
 
몇 번이나 대결해본 당신은 이미 잘 알고 있습니다.
 
빠르게 방아쇠를 당기자 이벨린의 몸이 다시금 크게 흔들립니다.
 
쇄골을 맞은 듯, 이번에는 신음을 참지 못하고 기둥에 몸을 기대네요.
 
다시 아실링의 턴입니다.
 
아실링 펜들레엄:(이대로 더 시간을 쓸 수는 없다. 헬레네에게 보이기 민망하니까.)
.45 리볼버
기준치: 70/35/14
굴림: 61
판정결과: 보통 성공
피해: 2
 
이벨린:
7.65 리볼버
기준치: 40/20/8
굴림: 18
판정결과: 어려운 성공
피해: 4
 
아실링은 이벨린의 어깨를 다시 한 번 맞춰 타격을 입히는 데 성공했으나,
 
이벨린 역시 호락호락하게 물러나지 않습니다.
 
그는 끝내 한 손만으로 권총의 반동을 제어해 당신의 왼쪽 팔뚝을 제대로 명중시킵니다.
 
총상에 하객들과의 전투에서 누적된 데미지까지 더해지자 눈앞이 핑그르르 돕니다.
 
청부업자는 암살이 전문이지 이렇게 대놓고 하는 전투는 할 일이 많지 않지요.
 
예상보다 더 많이 다치고 말았습니다. 이러다간 목숨이 위험할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때였습니다. 저 멀리서 울리는 총성이 조용해졌다 싶더니, 헬레네가 뛰어옵니다.
 
헬레네 R. 히페리데:아실! (당신의 이름을 외치며 나타나 이벨린을 향해 부케를 겨눈다.)
 
헬레네의 부케에서 불꽃이 번쩍, 튀더니 이벨린의 가슴에서 피가 튀어오릅니다.
 
이벨린:아, 가씨……
당신이, 우리를…….
 
이벨린은 무어라 중얼거리는 것 같았으나 그대로 쓰러져 절명합니다.
 
흰 벽에 온통 핏자국이 난자합니다.
 
사방이 검붉게 물들고 꽃도 모조리 떨어진 채 깔끔하던 식장은 엉망진창이 되었어요.
 
한숨 돌리려던 순간, ……
 
.
 
저 멀리서 다른 정장을 입은 사내가 헬레네에게 총을 겨누고 있는 것이 보입니다.
 
헬레네는 미처 눈치채지 못한 듯해요.
 
사내가 방아쇠를 겨눕니다.
 
위험해요, 헬레네!
 
남은 탄환은 두 발. 어떻게 할까요?
 
아실링 펜들레엄:(총알을 아낄 생각도 못 하고 남은 두발을 사내에 쓴다. 사내의 공격이 헬레네에게 닿는 일만큼은 있어서는 안 된다. 절대로.)
 
큰 총성음 두 번.
 
반대쪽 벽에 피가 터지며 사내가 주르륵 쓰러집니다.
 
헬레네가 눈을 크게 뜨고 당신을 돌아봅니다.
 
아무 말도 하진 않았지만, 그 눈에서 무슨 말을 하려는지 느껴집니다.
 
……왜 그를 도와줬나요, 아실링? 본래라면 당신이 죽여야 할 사람인데?
 
아실링 펜들레엄:(계약 같은 것 안 지키면 그만이다. 계약을 지키지 않은 대가로 뭘 내놓으라고 하거나, 미움을 받는다고 해도 상관은 없다. 눈앞에 여자가, 헬레네가 죽는다면 나는 무척이나 후회하고 괴로울 것이 뻔함으로.) 왜 그런 표정으로 보나요?
 
축하해주던 하객과 악단의 웨딩마치는 전부 사라지고,
 
비로소 결혼식의 주인공밖에 남지 않은 예식장.
 
헬레네가 철컥, 다시금 방아쇠를 당겨보더니 탄환이 없음을 깨닫고 총을 바닥에 떨어뜨립니다.
 
헬레네 R. 히페리데:고맙다고 해야 할지, 놀랍다고 해야 할지 알 수가 없어서요. (안색이 무척이나 지치고 어두웠다.)
저는 결국 당신을 속이고 기만한 것과 다름없는데…… 어째서 저를 구해 주셨나요?
 
아실링 펜들레엄:당신도 참... 상황이 여기까지 왔으면 그런 말은 안 꺼내도 될 텐데. 꼭 그렇게 내 대답이 듣고 싶은가요? (당신도 나를 참 모르는구나. 그런 생각을 하며 자기 몸보다는 헬레네 몸을 살핀다. 크게 다친 곳은 없겠지?) 난 지금이라도 당신이... 며칠간의 일은 없었던 것으로 하자고 해도 흔쾌히 승낙할 거예요. 바보.
그야 당연한 것 아닌가요. 나를 위해서 그랬어요. 당신이 죽는 모습을 보기 싫거든요. 네. 살아주셨으면 좋겠어요. 이왕이면 제 눈앞에서. 저와 같이 바다 보러 가기로 약속도 하셨잖아요?
 
헬레네 R. 히페리데:이런 일을 겪었는데도 제가 밉거나 싫지 않으세요? (아실링의 반응에 도무지 울어야 할지 웃어야 할지 모르겠다. 탈력감에 절여진 머릿속에 혼란이 더해진다. 당신을 위해 이 모든 일을 저질렀으나…… 당신이 저를 아무렇지 않게 받아줄 거란 상상은 차마 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모두 진심이었어요. 바다를 보러 가고 싶다는 것도, 반지를 맞추자는 것도 전부. 하지만 어려울 것 같아요. 그럴 수는 없을 것 같아요, 아실.
당신도 이미 짐작하셨겠지만 저희 가문은 삿된 신을 위해 당신을 제물로 바치려 했어요. 이 반지가 그 제물이라는 상징이죠. 둘 중 하나가 죽지 않는다면 반지는 빠지지 않아요.
이제 더는 이런 불행한 의식을 이어가게 두고 싶지 않아서 패륜을 감수하면서까지 아버지를 죽이고 하객들을 죽였지만…… 이미 일어나 버린 일만은 되돌릴 수가 없네요. (절망 어린 목소리로 말하며 고개를 숙였다.) 당신을 이런 위험한 일에 이용해서 죄송해요.
두 번째 의뢰. 헬레네 히페리데를 살해한다.
저를 죽이고 자유로워지세요, 아실.
 
아실링 펜들레엄:그럼 당신은요? 나에게 실망하지 않았나요? 보통은 이런 직업을 가진 사람을 좋아하지는 않잖아요. 꺼리는 편이고... 당신이라면 이런 직업을 가진 저를 분명 좋아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어요. (아직 긴장이 풀리지 않아 굳어진 표정 위로 눈썹이 불만스럽게 휘어진다.)
그럴 수는 없다니. 그게 무슨-... (진심이었다는 말은 듣기 좋았으나, 이어진 이야기를 듣고 쉽게 제 왼손을 들어 올린다. 빠지지 않고 계속 자리를 잡고 있는 반지를 보며 헛웃음 짓는다. 웃음의 의미는 별것 아니다.)
(그래봤자 손가락이 없으면 그만인 것 아닌가? 이런다고 제물에서 벗어나질지 아닐지는 잘 모르겠지만, 손가락 하나? 손 하나도 쉽게 내줄 수 있었다.)
당신 덕분에... (사람을 덜 죽이긴 했죠. 같은 말이 입 밖으로 튀어날 올 뻔한 것을 겨우 막는다. 피를 좀 흘렸더니 머리가 이상하게 굴러가 나보다.) 흠흠... 네에. 그래도 고용하기에는 딱... ...
아직도 그런 말을 하시네요. 뭐 하나만 물어볼게요. 저를 사랑하세요?
 
헬레네 R. 히페리데:처음 아실이 청부업을 한다는 걸 들었을 때는 놀랍기는 했지만…… 이제 와 사람을 죽이면 안 된다는 말을 할 자격은 제게 없는걸요. 다만 앞으로는 이 직업을 그만둬주셨으면 해요. 위험하잖아요. 지금도 제가 아니었더라면…… (상상하기도 싫은 듯 입술을 깨문다.)
(흘러나온 질문에 어깨를 움찔하며 아실링을 올려다보았다. 눈망울이 흔들렸으나, 망설임은 길지 않았다. 이미 한참 전부터 피어오르던 마음이었다. 맺힌 꽃송이를 제 손으로 꺾기 직전에야 고백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다.) 사랑해요.
당신을 사랑하고 있어요, 아실.
그래서 더더욱 제 가문의 저주에 얽매이지 않으셨으면 하는 거예요. (목소리가 조금씩 울음기에 젖어들어가기 시작했다.) 히페리데 가문에 내려오는 건 약혼자를 제물로 바친다는 악습뿐만이 아니에요.
'히페리데의 일원이 사랑하는 사람은 가장 끔찍한 방법으로 죽게 될 것이며, 주변의 사람들이 모두 그를 외면하고 떠나가리라.’ 이 저주가 함께 전해져오고 있어요. 제 사랑을 받는다는 이유만으로 당신이 죽기를 바라지는 않아요.
 
아실링 펜들레엄:제가 이 직업을 이어나갈지, 아니면 멀어져서 좋은 일을 할지는 당신 눈으로 확인하면 될 일이에요. 아. 확인을 안 하시겠다면... 저 기분이 무척 상해서 더 나쁜 사람이 될지도 모르겠네요. (타인의 최악을 상상하면서 이렇게나 괴로워하는 사람이 대체 어떻게 자신의 죽음을 의뢰한 것인지. 정말 어려운 사람이면서, 사랑스러운 사람이라고 생각하며 손을 뻗어 깨문 입술 근처를 지분거린다.)
나를 사랑한다고 했으면서. 이렇게 고백을 했으면서... (부상당한 곳보다 가슴 근처가 더 욱신거렸다. 꾹 조여지는 통증에 눈살을 한껏 찌푸린다.) 이런 말 하면 좀 죄송하지만... 저를 좀... 그다지 사랑하지 않으시군요.
저를 사랑한다면서 어떻게 그런 말을 하나요, 헬리. (이미 엉망이 된 드레스 차림으로 헬레네 앞에 한쪽 무릎을 꿇는다. 떨리는 손으로 헬레네 왼손을 잡아다가 그대로 제 뺨에 가져가 조심스럽게 비비기 시작한다.) 아무리 그래도 오늘은 저희 결혼식 날인데... 너무해요.
그래서. 그것 때문에, 당신이 사랑한다고 말한 우리... 제 결혼식을 이렇게 만들 것인가요? 다른 발버둥도 없이 바로 포기를 하는 것인가요? 이런 말 하면 죄송하지만, 저는 당신이 더욱 발버둥 쳤으면 좋겠어요. 이미 많이 지쳤지만, 그래도. 더. 저는 당신이 그래줬으면 좋겠어요.
 
헬레네 R. 히페리데:제가 확인할 수 있을까요? 그래도 되는 걸까요? 전 약혼자 분이 시녀장의 손에 죽었다는 걸 알았지만 아무것도 할 수 없던 저였어요. 반항하려고 애쓰고 애써도 이미 잡힌 결혼식은 취소되지 않았고 다음 제물을 낙점해야만 했죠. 당신에게 저를 죽여달라 부탁하고 이 결혼식을 망치는 게 제가 할 수 있는 최선이었어요, 아실.
저를 죽이지 않으면 이 반지는 빠지지 않을 거예요. 저주도 계속 당신을 따라붙겠죠. 고작 저의 사랑 때문에 당신을 이런 위험에 밀어넣을 수는 없는걸요. (손길에 닿아오는 당신의 뺨은 부드럽고도 따스하다. 살아있는 사람. 사랑하는 사람. 함께 살아가며 행복하고픈 마음은 굴뚝같으나 저에게 달려있는 족쇄 같은 제약이 너무도 많다.)
그래도…… 저와 함께 바다를 보고 싶으세요?
 
아실링 펜들레엄:... 그동안 너무 많이 힘들고 괴로웠죠. 진작에 알지 못해서, 당신을 빠르게 돕지 못해서 죄송해요.
그래도 헬리. 당신은 분명히 노력했고, 잘 해줬다고 생각해요. 저는 부족한 사람이지만, 당신은 스스로를 놓아버릴지언정 그 무엇도, 누구도 쉽게 놓아버릴 사람이 아니라는 것 정도는 아니까요. 당신은 최선을 다했어요. 그리고 그 최선이 지금의 당신과 저를 숨 쉬게 하고 있죠. (잘했어요. 그런 칭찬과 함께 방긋 웃어 보인다.)
반지야 뭐... (손가락 하나 자르면 그만이죠. 이런 생각과 함께 반지가 껴진 손으로 입을 가리고 웃는다.) 고작? 이럴 수가. 당신이 고작이라고 말하는 그 사랑이 저에게 얼마나 값진 것인지를 모르니까 그런 말을 하시는 거죠? 그게 얼마나 대단하고, 제가 가지고 싶어서 두 눈에 불을 켜는지는 앞으로 알려드릴게요.
헬리. 저는 꽤나 위기에 강한 편이에요. 당신은 조금 운이 없는 편이고, 저는 당신의 불운도 받아낼 수 있는 사람이니... 분명 다 괜찮을 거예요. (설령 괜찮지 않다고 해도, 그 끝이 고통스러운 저주 속에 죽어 나간다고 해도 괜찮을 것 같았다.)
제 바람은 변함이 없답니다. 당신과 함께 바다를 보러 가고 싶어요. 남은 생도 함께하고 싶고요. 허락해 주실 거죠?
 
헬레네 R. 히페리데:아니에요. 저도 이 비밀을 안 지는 얼마 되지 않았으니까요. (아실링과의 사랑을 자각했을 즈음 성인이 되었고, 후계로 점찍히며 지금껏 몰랐던 가문의 진실을 접하게 되었다. 그때의 절망이 얼마나 깊었는지는 굳이 말로 표현하지 않아도 될 것이다. 홀로 외로운 반항과 싸움을 해 오며 헬레네는 무척이나 지쳐 있었다. 아실링에게 죽음을 의뢰한 건 그와 한 번이라도 맺어지고 싶다는 소망이기도 했고 사랑하는 그의 품에서 숨을 거두고 싶다는 바람이기도 했다.)
(그러나 지금 당신이 저에게 희망을 불어넣는다. 한때 아주 익숙했던 가치. 자신의 안에서 언제나 살아숨쉬리라 믿었으나 언젠가부터는 찾아볼수 없었던 그 새벽빛 같은 가치를.)
(죽고 싶은 사람이 누가 있을까. 특히나 헬레네는 삶의 애착이 강했다. 사랑하는 것들도 많았다. 만물을 아끼고 소중히 대했으며 수많은 이들에게 웃음을 전파하고 또 나눠받았다. 무엇보다 아실링, 그를 향한 사랑이 선명한 색을 지니고 살아숨쉬고 있었다. 사랑하는 이가 저에게 직접 미래를 말하고 함께할 수 있다는 희망을 전하니, 아무리 모든 걸 포기했었다 한들 어떻게 믿지 못할 수 있을까? 마치 온실 속에 들어간 듯한 안도와 안심이 심장에서부터 천천히 번져 나간다.)
(아실링의 약지에 끼워진 반지를 손끝으로 느릿하게 쓸었다가 품 안에 안겼다.) 이제는…… 아무것도 숨기지 않고 진실하게 서로를 대하며 함께하고 싶어요. (당신의 말에 하여금 용기를 얻고 마침내 제 바람을 꺼내놓는다. 허락과도 다름없다.)
 
아실링 펜들레엄:어머나. (안겨드는 가벼운 몸에 반사적으로 팔을 뻗었다가 그대로 품에 가두듯 껴안는다. 헬레네 몸 위로 둘러진 팔이 좀 전의 부상으로 통증을 호소하지만, 지금은 그 통증마저 기쁘게 받아들인다.)
그러고 보니 서로 숨기는 것이 꽤 있었죠. (이제는 많이 알아버린 상태라고 말을 정정해야 하나? 그런 생각이 들기도 했지만 웃어넘긴다. 그런 말보다는 다른 말을 먼저 전하고 싶었으니까.) 솔직히 말하자면, 당신에게 숨긴 것은 몇 없어요. 그래도... 앞으로는 당신 말대로 진실되게 서로를 대하는 것이 좋은 선택이겠죠. 저희 둘은 이제 부부 사이니까. 맞죠?
제 부끄러운 허물을 보이는 것은 꽤나 힘든 것이지만... 이런 저도 받아주실 것이라 믿어요.
허락해 주셔요 감사해요. 다시 한번 용기를 내주신 것도요. 당신에게 후회를 안겨주지 않으리라 약속할게요, 사랑하는 헬리.
 
헬레네 R. 히페리데:네. 주례사도 들었고 저희 모두 사랑의 맹세까지 하였으니 의심할 수 없는 부부네요. (마침내 미소가 얼굴에 떠오른다. 불안도 슬픔도 없는 순수한 기쁨으로 빚어진 웃음이다.) 서로의 치부도 부끄러움도 보듬고 함께하는 게 마땅하지 않겠나요.
저를 포기하지 않고 이끌어주셔서 고마워요. (꽃향기보다는 혈향이 짙고 순백이어야 할 결혼식장은 짙은 붉은색으로 물들었지만, 서로를 향한 마음만은 그 무엇으로도 변질시킬 수 없을 것이다.) 영원히 당신을 사랑하고 함께 할게요.
 
헬레네를 죽일 수는 없습니다.
 
도대체 당신은 왜, 나는 왜 죽어야만 하는 건가요.
 
부귀 따위를 위해 무참히 사랑하는 사람을 살해하는 멍청한 짓은 여기서 끝내도록 해요.
 
결혼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을 총은 이미 바닥에 떨어진 지 오래.
 
한낱 부귀영화보다 더욱 이기적인 바람일지 모르나 지금은 그저 행복하고만 싶습니다. 혼자서가 아닌, 둘이서요.
 
왜긴요, 오늘은 당신의, 나의 결혼식인걸요.
 
당신의 부탁을, 당신의 의뢰를 거절하고는, 손을 내밉니다.
 
당신의 마음을, 모든 뜻을 이해한 헬레네는 웃으며 그 손을 잡습니다.
 
비로소 결혼식의 주인공에게 맞는 표정입니다.
 
세상에서 행복을 바라지 않는 이는 없을 테죠.
 
영원이 언제 끝날지는 모르는 일입니다. 당신도, 나도 언젠가는 죽을 테죠.
 
하지만 지금이 되고 싶진 않아요.
 
그러니 도망쳐요.
 
그래서, 도망치는 것입니다.
 
사실 죽고 싶지 않았을, 당신도 죽이고 싶지 않았을 그와 함께.
 
누구의 죽음도 아닙니다.
 
한때는 새하얬을 붉은색의 버진로드를 걸어 나갑니다.
 
당신 혼자가 아닌 둘이서요.
 
여기저기 피에 물든 채로 쓰러진 시체 여럿을 스쳐지나갑니다.
 
더없이 완벽한 결혼식입니다.
 
마침내 만개한 사랑을 위한, 그 저주를 위한,
 
당신들의 영원을 위한, 속절없는 영원을 위한……
 
END 5. Black, Far From White
 
헬레네 생환?, 아실링 생환?
 
:두 사람 모두 슈브 니구라스의 제물. 저주대로 둘은 가장 끔찍한 방법으로 죽을지도 모르는 일입니다. 그게 언제가 될지는 모르는 일이기도 하고요. 당장 몇 시간 후일 수도, 몇 년 후일 수도 있겠지만. 어쩌면 서로의 손에 죽는 미래가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지금 그런 건 중요하지 않아요. 오늘은 신부가, 당신과 내가 행복해야 할 날이니까요. 그렇게 프러포즈하는 게 어딨나요? 다음에 할 거라면 반지는 조금 더 멋지게 건네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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