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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0529~260608] 셔레트 - 나는 살아서 말하리라 Ch 1. 스와콥문트를 동경하는 자들

초현_c 2026. 6. 9.

플레이타임 : 20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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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대의 달은, 한낱 인간 따위는 너무도 손쉽게 잡아먹으려 드는 것 같을 정도로 무거운 배를 부풀린 채 거친 눈을 뜨고 있습니다.
 
18살 9월, 사관학교에 입학하고 첫 달이 지나갔습니다.
 
각성자들은 학교에 적응하고 제나름의 친분을 쌓아 가며 바쁜 시간을 보내고 있습니다.
 
사관학교라고 해도 결국 분류는 대학, 지식의 보고죠.
 
바쁘게 뛰어가는 선배들, 과제 탓에 골몰하며 늦은 시간까지 도서실 불을 환히 밝히는 학생들, 느슨한 자유와 적당히 용인되는 비행.
 
저 장벽 너머에선 도무지 보기 어려운 녹음이 교정을 아름답게 물들이고 있었습니다.
 
세상이 다 이곳 같지는 않겠지만 어쨌든 오늘은 날이 좋아 하늘까지 맑습니다.
 
그것이 다 갖기 어려운 축복이라는 사실을, 카사블랑카의 시민들은 머리로나 알지 가슴으로는 제대로 인지하지 못합니다.
 
문득 손목에 찬 스마트워치가 반짝이며 알림을 울립니다.
 
홀로그램 패널이 온통 노란색이네요. 늦지 말라고 성화입니다.
 
오늘은 1학년 학생들이 두근거리며 기다리던 첫 가상 훈련이 있는 날이니 당연하겠지요.
 
운동장 두 개 크기만큼 널찍한 홀로그램 단련실에서 특수 렌즈를 착용하면 바깥 사막과 동일한 환경을 구성해 둔 가상 VR 세계로 진입할 수 있습니다.
 
첫 한 달간 이론으로만 배운 전투를 어서 빨리 실전과 비슷한 공간에서 경험하고 싶다며 애가 닳은 학생도, 몹시 긴장하여 창백하게 질린 채 서 있는 학생도 있습니다.
 
사실 학생들이 가장 궁금해하는 건 ‘자신과 맞는 구현자나 설계자가 누굴까’일 겁니다.
 
페어로 활동하는 각성자들은 70% 가량, 거기서 다시 15% 정도의 비율이 ‘각인’을 맺어 시너지를 내곤 합니다.
 
페어를 자율적으로 정하라고 하면 보통 친한 친구끼리 무턱대고 함께했다 도리어 전투 방식이 맞지 않아 다치는 경우가 있었으므로,
 
1학년 때에는 하늘길 시스템이 신체 데이터를 통해 서로 보조해줄 수 있겠다고 판단한 후보 학생들과 여러 번 짝을 바꾸어 가며 누가 자신과 알맞는지 테스트를 해 보는 것이 관례입니다.
 
앨릭스는 지금 어떤 생각 중일까요?
 
앨릭스 J. 셔먼:(햇볕이 잘 드는 곳에서 누워있다가 느긋하게 상체를 일으킨다. 부스스한 머릿결이 어깨 너머로 흘러내린다. 방금 막 일어난 참이라 상황 파악이 더디다.)
(그러니까... 이제 곧 훈련을 시작한다는 거겠지. 함께 할 상대를 찾아준다고 했었던 것 같기도 하고.) ... 귀찮네.
(더 누워있고 싶지만... 그러면 분명히 성가셔질 테니까 가야겠지. 저번에 늦잠잤다가 교수한테 얼마나 깨졌는지. 아직도 그 시끄러운 목소리가 머릿속에 희미하게 울리는 것 같다.)
 
졸음기가 다 가시지 않은 채로 단련실로 향합니다.
 
이미 모든 1학년이 모여 시끌벅적한 곳에서 깐깐해 보이는 학생부회장이 명단을 읽습니다.
 
요한 에를리히:자, 첫 번째 임시 페어 부른다.
구현 A반의 스즈키 와타루, 설계 E반 노노이 라가힛. 앞으로 서. 다음, 구현 B반의 시트라 볼크, 설계 D반 이한영…….
 
각자 자신의 임시 페어를 찾느라 장내가 소란스러워졌습니다.
 
당신의 이름은 다시 졸음이 올 지경으로 한참 기다린 후에야 불렸습니다.
 
요한 에를리히:… 구현 C반, 아이작 토드. 설계 A반, 앨릭스 셔먼.
 
아이작 토드의 이름은 당신도 들어본 적이 있습니다.
 
모난 데 없이 선하고 차분한 성격에 성실한 태도로 평판이 꽤 좋은 편이죠.
 
직접 만나는 건 처음이네요.
 
저 멀리에서 그가 다가옵니다. 훈련 순서가 다가올 때까지 잠깐 인사나 나눠볼까요.
 
아이작 D. 토드:(주변을 두리번거리다가 앨릭스와 눈이 마주쳤다. 희미하게 미소지으며 조심스레 물었다.) 그쪽이 앨릭스 셔먼 씨인가요……?
 
앨릭스 J. 셔먼:(당연하게도, 상대가 다가올동안 단 한 발자국도 움직이지 않았다.)
(이름이 불리면 그제서야 상대방에게 시선을 둔다.) 응? 아, 맞아. 나야.
... (끔뻑.) 네가 그 애구나. 예쁘장하게 생겼다던. 얼굴 보니까 생각이 나네.
아이작, 이라고 불러도 돼? 너도 편하게 불러. 성으로 부르는 건 뭐랄까, 또래끼리 너무 정없잖아.
 
아이작 D. 토드:(예쁘장하단 표현에 뺨이 조금 붉어졌다.) 그, 그렇지 않아요…… (오히려 그렇게 말하는 눈 앞의 상대가 훨씬 더 미인인 것 같은데. 그도 앨릭스에 관한 소문을 조금 듣긴 했지만 본디 가십거리를 기억에 담아두는 성격이 아니라 금방 잊어버렸었다. 직접 대면해보니, 친화력 좋고 조금은 나른해 보이고…… 전혀 망나니 같지는 않은걸. 소문은 곧이곧대로 믿어서는 안 된다는 인생 지론이 조금 더 확고해졌다.)
네, 부디. 그럼 저도 앨릭스라고 부를게요. 이번 가상 훈련도 잘 부탁드려요. 서로의 이능력을 알아두는 게 좋을 것 같은데, 앨릭스는 어떤 능력을 쓰시나요?
 
앨릭스 J. 셔먼:이런 말 한 두번 들은 것도 아닐텐데, 쑥스러움이 많네. (미소 짓는다.)
이능력? 아아... (뒷목을 만지작거린다. 눈동자를 굴리는 모습이 누가 봐도 귀찮음이 가득해보이는 얼굴이다.) 그거 굳이 설명해야 해? 어차피 차차 알게 될 텐데. 앞으로 지겹도록 붙어다닐 거잖아, 우리.
 
아이작 D. 토드:물론 저희의 동조율이 잘 맞는다면 앞으로도 쭉 볼 수도 있겠지만, 아직은 임시 페어인걸요. (저도 엄청 떨리거나 설레는 건 아니지만, 눈앞의 이는 더욱 아무렇지도 않아 보인다. 입학 전에 이미 이런 훈련을 여러 번 해봤나……?) 어떤 식으로 활용할지 미리 전략이라도 세워 보려고 했어요.
 
앨릭스 J. 셔먼:아, 그래? 그러고보니 저 학생회장이 임시페어라고 했던 것 같기도 하고.
전략? 하하, 듣던대로 성실한 모범생이네. 교수님께서 아-주 좋아하시겠어. (무심히 어깨 으쓱인다. 그 바람에 자켓의 모양새가 흐트러지지만 전혀 신경쓰지 않는다.)
간단하게 말하자면... 난 에너지를 조종해. 사람이나 괴물이나, 힘을 가진 것이라면 무엇이든. 그걸 총에 넣어서 쏠 수도 있고, 아니면...
(느릿하게 다가가 한 손을 마주잡고는 힘을 불어넣는다.)
이렇게도 할 수 있어. 크게 다치지 않은 지금은 아마 기력만 보충해줄 뿐이겠지만.
그것도 아니면 설계자의 이름답게 네게 길을 알려줄 수도 있고. (싱긋, 미소 짓는다.)
 
앨릭스 J. 셔먼:이해했을까?
 
아이작 D. 토드:(별로 의욕이 없는 걸까? 아니면 성적에 관심이 없는 걸까? 어쨌건 성격이 나빠 보이지는 않으니 자신이 열심히 노력해서 이끌어야겠다고 생각했다.)
(손이 붙잡히고, 몸 안에 에너지가 주입된다. 조금은 긴장하고 있던 몸 안의 흐름이 부드럽고 충만하게 안정된다. 눈이 살짝 커졌다.) 좋은 능력이군요. 공격에도, 치유에도 활용할 수 있는 힘이라니. 분명 뛰어난 각성자가 되실 수 있을 거예요.
(뒤이어 제 능력도 선보인다. 소맷자락 위로 실처럼 가느다란 초록빛 에너지가 일어나더니 베틀의 형상을 만든다.) 저의 힘은 '직조'예요. 에너지를 실처럼 가늘게 뽑아 조정하고, 이 베틀을 매개체로 삼아 적을 공격할 수 있죠. 다만 공격 범위 지정이 중요한 능력이라, 교수님들께 설계가 필수불가결하단 조언을 많이 들었어요. 모쪼록 잘 부탁드려요, 앨릭스.
 
앨릭스 J. 셔먼:그런가? (잡고 있던 손에서 힘을 뺀다. 그러나 거리감은 여전히 가깝다.) 그럴 수 있을지는 미지수지만... 그 말, 듣기 좋네. 고마워.
(초록빛의 베틀을 가만히 바라보다가 성큼, 손을 뻗어 손가락으로 쓸어본다. 만져지나?) 네 눈동자 색을 닮았어. 아름다운걸. 이걸로 그 놈들을 공격한다면 정말 보기 좋겠네. 나중이 기대될 정도야.
나도. (손을 내민다. 다시 한 번 악수를 하자는 듯이.) 잘 부탁해, 아이작. 잘 지내보자.
 
아이작 D. 토드:(부드러운 에너지의 흐름이 얼핏 앨릭스의 손끝에 닿는다. 베틀의 잔상이 살짝 일렁거린다.) 과찬이세요.
저도요. 잘 부탁드려요, 앨릭스. (베틀의 형상을 흩어지게 만들며 손을 맞잡았다.)
 
두 사람이 인사를 나누는 동안 앞선 순서 팀이 훈련실로 들어가고, 그들이 바라보는 가상 환경과 전투 광경이 부속실의 대형 스크린으로 중계되기 시작합니다.
 
학생들은 친구들을 응원하면서 손에 땀을 쥐는 스포츠처럼 중계를 관람하기 시작합니다.
 
가상 훈련인 만큼 부상을 입을 일은 없지만,
 
신체 부위마다 장착된 센서가 타격을 받으면 착용한 방어구가 고정되어 실제 부상처럼 움직임을 차단해 해당 부위를 사용할 수 없게 됩니다.
 
이 훈련 안에서는 진짜 다친 것이나 다름없죠.
 
몇몇 팀은 훌륭한 성과를 냈으나 대부분은 기본적인 타격 범위조차 가늠하지 못하고 제한 시간을 초과합니다.
 
비난받을 일은 아닙니다, 모두가 처음이니까요.
 
교수들도 채점 기준을 너그럽게 두고 있는 것 같습니다.
 
유리 모하에:저기, 지금 좌표 C4에서 총 쏘는 애 이름이 뭐더라?
 
요한 에를리히:아까 말했잖아. 입학 체력평가 때 5등인가 했다던 애라고.
 
불쑥 뒤에서 말을 건 사람은 학생회장 유리 모하에와 부회장 요한 에를리히입니다.
 
3학년 생도들 중 우수한 학생들은 1학년 생도들의 멘토가 되어 졸업하기 전까지 2년간 상급생으로서 후배들을 이끌어 주는 제도가 있는데,
 
구현 C반과 설계 A반의 멘토가 바로 이 페어입니다.
 
운이 좋다고 볼 수 있죠. 두 사람은 각 학년 수석 및 차석을 번갈아 차지하고 있었으니까요.
 
학기 첫 주에 유리가 구현자, 요한이 설계자라는 소개를 받았던 기억이 납니다.
 
유리 모하에:괜히 쪼는 건 아니지? 몇 번 하다 보면 지루하고 졸려서 훈련이고 뭐고 빨리 실전이나 하고 싶다고 빌게 될걸. (대추야자를 쏙 집어먹는다.)
 
한편 요한은 혀를 차곤 안경을 밀어 올리며 스크린에 집중합니다.
 
‘입학 체력평가 때 5등인가를 했다던’ 동급생이 화면 안에서 정확한 사격 실력을 보여 주고 있습니다.
 
능력이 총과 관련된 학생이었던 것이 얼핏 떠오르네요.
 
곁에서 그의 페어가 소리를 지르는 게 스피커를 통해 울립니다.
 
“좀 더 위로 경로를 끌어올릴 테니, 한 번에 쏘아 터뜨려! 마지막 한 방이다 생각하고 해치우자고!”
 
곧이어 설계자 쪽이 설계한 경로를 따라 미로를 뚫고 지나가듯 구현자의 총알이 궤적을 바꿉니다.
 
허공에서 몇 갈래로 갈라진 총알 파편이 굉장한 소리를 내며 크리쳐형 로봇의 머리를 터뜨립니다.
 
지켜보던 동기들이 환호성을 울립니다.
 
유리 모하에:어때? 저 두 사람은 합이 꽤 잘 맞는 것 같지?
너희 둘은 서로 인사 나눴어?
 
속 시원한 타격감을 따라 박수를 치던 유리가 앨릭스와 아이작을 돌아봅니다.
 
앨릭스 J. 셔먼:(멍한 눈으로 화면을 쳐다보고 있다가 고개 돌린다.) 아, 응. 물론. 우리 친구하기로 했어. (나른하게 웃으며 아이작의 손을 잡고 장난스레 흔든다. 물론 딱히 합의는 하지 않았다.)
(...합이 꽤 잘 맞았나? 사실 조금 졸아서 못 봤다.) 그랬어? 로봇 머리가 산산조각나는 건 봤는데.
 
아이작 D. 토드:(얼떨결에 잡힌 손 그대로 흔들린다. 하지만 딱히 부정은 하지 않으며 학생회장에게 어색하게 미소지어 보였다.) 맞아요. 서로의 이능력에 대해서도 얘기 나눴구요.
 
유리 모하에:그새 친구가 됐어? 친화력 죽이는데. 좋아, 인성은 합격. (사람 좋게 웃으면서 아이작의 어깨를 툭툭 두드렸다.)
그래. 설계 경로가 제대로 된 덕분에 머리를 정확히 맞춘 거지. 각성자들은 혼자 전투에 임하긴 어려워. 구현자는 구현자대로, 설계자는 설계자대로 약점이 있으니깐. 그래서 이 페어 제도가 중요한 거지~.
 
짧은 대화를 나누고 있자면 어느덧 두 사람의 순서입니다.
 
보급받은 특수 렌즈와 방어구를 착용하자 몸이 다소 무거워졌습니다.
 
유리와 요한이 통신 인이어를 끼면서 조원들에게 손짓을 합니다.
 
유리 모하에:자자, 절대 긴장하지 말고. 굉장히 현실적이지만 실상은 그냥 거대한 훈련실이라는 걸 잊지 마.
 
요한 에를리히:그렇다고 실전상황이 아니라는 생각으로 임해서도 안 된다. 그런 감각에 익숙해지면 장벽 너머로 나아가 진짜 적을 맞닥뜨려도 그 상황을 모의 훈련이나 게임처럼 느껴 버리고 마니까.
 
유리 모하에:우리가 앞뒤에서 너희를 엄호해 줄 거고, 진짜 부상을 입었을 경우에는 곧바로 시계 옆 S버튼을 연달아 세 번 눌러. 다들 알겠지만 원래 이 버튼 세 번 신호는 실제 위급상황에서 연락처에 등록된 비상번호 쪽으로 연락을 보내는 시스템인데, 이 훈련실 범위에 한정해 그 비상신호가 관리 교수님들께 도달하도록 시스템이 변경되어 있어. 게다가 저기 스크린으로 모두 보고 있을 테니까. 알았지?
 
앨릭스 J. 셔먼:(무거워서 아이작 어깨에 기대고 있다.)
(손목을 들어 버튼의 위치를 대강 확인하고는 고개를 끄덕인다.) S버튼 말이지... 알았어.
걱정마, 잘 해치우고 올 거니까. 아마도.
 
아이작 D. 토드:알겠습니다. (들어갈 때가 되자 다시 긴장이 된다. 겉으론 차분하고 침착한 기색을 유지하면서 방어구를 다시 체크했다. 앨릭스가 기대고 있어서 고개를 움직이는 대신 팔을 들거나 시선만 움직이는 식으로…… 내 키가 앨릭스보다 작은데 기대기 불편하진 않나……?)
 
주의사항을 몇 가지 더 들은 후에야 훈련실 입실이 재가되었습니다.
 
네 사람이 모두 입실하고 마침내 문이 닫히자, 눈을 제대로 뜰 수도 없는 모래바람이 붑니다.
 
근래의 방독 마스크는 기능이 좋아 쓴 것 같지도 않게끔 호흡하게 해준다지만 이런 기후 속에서는 그마저도 여의치 않네요.
 
인이어 안에서 거친 숨소리가 울립니다.
 
한 차례 먼지 폭풍이 가셨을 때 비로소 풍경이 보입니다.
 
‘재앙의 날’을 기점으로 인류가 유사 이래 이룩한 빛나는 문명은 전부 사토 속에 묻혔습니다.
 
첫 몇 년간은 식물들조차 제대로 뿌리내리지 못해 말라 죽어갔던 고로,
 
당대에 흔히들 ‘인류가 멸망하면 몇 년 안에 건물 벽면을 담쟁이덩굴이 뒤덮고, 동물들이 활개를 치며……’ 라고 상상하던 광경조차 제대로 전개되지 않았었다고 하죠.
 
가동을 중단한 원자력 발전소가 비상 전력마저 잃고 인간이 직조한 가장 큰 멸망을 세상에 내보내려는 순간,
 
갓 개화한 각성자들이 그 위기를 막아 처음으로 인류사에 큰 족적을 남겼습니다.
 
사람을 징벌하려 드는 것 같은 함신,
 
인간의 오만을 꾸짖듯 흐려진 날씨,
 
찬란했던 문명에 바치는 추모비처럼 모래 속에 묻혀 쓸쓸히 늙어 가는 빌딩숲,
 
그리고 멀리 가장 거친 먹으로 그려낸 듯이 일렁이는 바다.
 
장엄한 자연의 비난을 처음 보는 1학년들은 말을 잃기 마련이죠.
 
이 광경에 익숙한 멘토들이 앞장서 홀로그램 패널을 띄웁니다.
 
요한 에를리히:이 공간은 카사블랑카 북동쪽 게이트 바깥 구역과 일치하는 구조로 생성된 거야. 설계자, 셔먼이었나? 각자 지도에서 목적지까지의 최단 경로를 표시해 봐.
 
앨릭스, <항법> 판정.
 
앨릭스 J. 셔먼:
항법
기준치: 50/25/10
굴림: 34
판정결과: 보통 성공
 
앨릭스는 공기 중의 에너지를 가볍게 불러일으켜 지도로 향하는 경로를 표시합니다.
 
푸른 에너지가 어두컴컴한 잔해 속에서 은은한 빛을 발합니다.
 
요한 에를리히:좋아. 이제 우리 넷은 이 경로를 믿고 목적지까지 움직이면서 하나 이상의 크리쳐 로봇을 파괴한다.
 
유리와 요한은 몇 가지 조언을 이어 갑니다.
 
가장 먼저 강조된 것은 안전이었고, 그 다음으로 이어진 조언은 엄폐물과 환경을 활용하는 방법입니다.
 
유리 모하에:낡은 건축물들을 이용해 몸을 숨기고 접근했다가, 설계자의 경로 구현에 구현자가 에너지를 실어 한 방을 터뜨리는 게 기초적인 전투 방식이야.
자, 그럼 어디 가까운 폐건물로 가볼까. (근처의 건물을 하나 가리켠다.) 저쪽. 저기 옥상으로 가자.
 
앨릭스 J. 셔먼:이건... 참 신기하네. (지금껏 보아온 풍경과는 완전히 다른 분위기. 여기가 정말 지구가 맞긴 한 건지, 라는 착각이 들 정도다.)
... 그래, 출발할게. (움직이는 건 귀찮지만, 어쩔 수 없나.)
출발하자. (아이작의 어깨를 툭툭 친다.)
 
아이작 D. 토드:(마찬가지로 눈앞에 펼쳐진, 도저히 가상 공간이라고는 믿겨지지 않는 날것의 풍경에 절로 입이 벌어졌다. 장벽 바깥을 본 건 이능력을 각성하고 세네갈에서 카사블랑카로 향하는 기차 안에서가 유일했다. 그마저도 선로 주변을 안전히 정비해둔 덕에 드넓은 사막만이 보일 뿐이었다. 이것이 우리가 잃어버린 과거구나. 강하게 몰아치는 함신에 저도 모르게 팔을 들어 얼굴을 가렸다가 어깨에 닿는 손길에 정신을 차리고 폐건물을 향해 발을 내디뎠다.) 아, 네.
 
넷은 반쯤 무너진 건물의 옥상으로 올라갑니다.
 
유리가 아이작에게 단추 정도 크기의 정찰 드론을 건네줍니다.
 
유리 모하에:이걸 바깥으로 던질 건데, 너희 몫이야. 서쪽으로 30m 정도 위치에 크리쳐 로봇이 있어. 설계자는 왼쪽 창문으로 거리를 가늠하고 에너지 흐름을 느껴. 구현자는 이 드론에 네 에너지를 실어서 던지는데, 설계자의 경로에 얹어서 실어 보낸다는 느낌으로 해야 해.
나중에 익숙해지면 이런 드론 같은 유도장치가 없어도 두 사람의 에너지 운용이 손쉽게 합쳐지는 거지.
자, 해 봐! 무서워하지 말고.
 
구현자는 정찰 드론을 던지면서 본인의 이능력과 관련된 핵심 기능 판정을, 설계자는 <항법> 판정을 시도합니다.
 
아이작 D. 토드:알겠습니다. (드론을 조심히 받아들었다. 서쪽 30M…… 이쯤일까. 방향과 거리를 신중하게 가늠하고, 드론을 흘끗 내려다봤다가 에너지를 불러일으키는 동시에 힘껏 던졌다.)
예술 Roll
기준치: 70/35/14
굴림: 5
판정결과: 극단적 성공
 
앨릭스 J. 셔먼:서쪽으로 30M... (드론이 던져지기 전, 눈을 감고 제가 가진 에너지를 바깥으로 방출시켜 길을 만들어낸다.)
항법
기준치: 50/25/10
굴림: 51
판정결과: 실패
(행운 깎습니다...)
 
행운 1 소모, 성공으로 판정.
 
그것은 몹시도 기이한 경험이었습니다.
 
전신의 감각이 단번에 확장되고, 시야가 환하게 트입니다.
 
공중에 투명하게 고여 있던 에너지가 희미한 올리브색으로 일렁이며 물들고,
 
제멋대로 엉겼다가 흩어지기를 반복하던 에너지 흐름이 점차 정렬되어 미로 지도 같은 꼴을 이룹니다.
 
방향은 서쪽으로 30m, 앨릭스는 에너지의 흐름을 가지런히 한 가닥으로 이어 뽑아 경로를 설정합니다.
 
아이작이 그 경로 위에 제 힘을 실어 드론을 날려 보냅니다.
 
미끄러지듯 경로를 타고 바깥을 떠가던 드론은 이내 적절한 길을 찾아 크리쳐 로봇에게로 향합니다.
 
곧 드론이 네 사람의 홀로그램 패널에 30m 너머의 크리쳐 로봇을 비춥니다.
 
미끌거리는 피부, 구역질나는 주둥이 속에서 긴 송곳니 두 개가 번쩍이는 크리쳐가 그르릉거리고 있습니다.
 
몹시도 끔찍한 모습이네요. <이성> 판정 (1/1D3)
 
앨릭스 J. 셔먼:
SAN Roll
기준치: 65/32/13
굴림: 69
판정결과: 실패
 
아이작 D. 토드:
SAN Roll
기준치: 85/42/17
굴림: 9
판정결과: 극단적 성공
 
앨릭스 J. 셔먼:2
 
앨릭스 이성 2, 아이작 이성 1 감소.
 
2:1 전투를 시작합니다.
 
순서는 민첩 수치에 따라 앨릭스-로봇-아이작...입니다.
 
:아이작과 앨릭스의 부상은 가상 부상으로 처리되기에 실제 체력은 소진되지 않지만, 두 부위 이상 부상을 당할 경우 패널티 다이스 1개를 부여받습니다.
 
앨릭스의 턴!
 
앨릭스 J. 셔먼:(등에 걸어뒀던 저격용 총을 꺼내들고 장전한다. 푸른 빛의 에너지로 형성된 실탄은 망설임없이 한줄기로 뻗은 길을 따라 빠르게 움직인다.)
0 Point
기준치: 50/25/10
굴림: 30
판정결과: 보통 성공
피해: 1
 
에너지를 붙잡아 가두어 실탄의 형태로 만듭니다.
 
방아쇠를 당기자 푸르게 빛나는 실탄이 정확히 경로를 타고 날아가 크리쳐 로봇의 다리에 명중합니다.
 
로봇 HP 1 감소.
 
교육용 크리쳐 로봇:1. 아이작 2. 앨릭스 1
(공중에 떠도는 에너지의 흐름을 냄새를 맡듯이 역으로 타고 흘러 두 사람을 찾아낸다. 아가리를 쩍 벌리자 불길이 화염방사기처럼 강하게 뻗어나와 아이작이 선 곳을 덮친다.)
화염방사
기준치: 60/30/12
굴림: 16
판정결과: 어려운 성공
피해
(0 - 야드):
0
피해
(.01 - 25야드):
3
 
아이작 D. 토드:(앨릭스와 어느 정도 거리를 벌리고 서 있었으므로, 우선 불길이 저에게만 뻗어오는 데 안심한다. 이미 베틀에 크리쳐 로봇을 새겨둔 뒤였기에 앨릭스가 만들어둔 설계에 제 힘을 합치는 데 신경쓰면서 에너지로 적의 목을 휘감도록 베를 짜내린다.)
직조
기준치: 70/35/14
굴림: 83
판정결과: 실패
피해: 1
 
짧은 시간 안에 너무 많은 요소를 신경쓰려 한 탓일까요?
 
아이작이 베틀 위에서 손을 휘저었으나, 목을 옭아매야 할 에너지는 크리쳐의 옆으로 비껴나가 허공만을 휘감습니다.
 
아이작 명중 다이스 1d20.
 
아이작 D. 토드:15
 
미처 피하지 못하는 사이 불길이 베틀을 살라먹으며 아이작의 가슴팍을 덮쳐 옵니다.
 
지글거리는 불길이, 죄 가짜임을 아는데도 선득할 만큼의 열기를 뿜어댑니다.
 
아이작 HP 3 감소.
 
이어 아이작의 턴.
 
아이작 D. 토드:미안해요! (실제 상황이었다면 피부가 바싹 타들었을 것이다. 처음으로 하는 전투 훈련이란 생각보다도 현실적이고 위험하다. 졸업 후 제대로 임관하고 나면 저런 적과 매일같이 싸워야겠지. 올리브빛 에너지가 다시 베틀의 형태를 이루어 엉긴다. 로봇을 새겨내고, 이번에는 직접적으로 제 에너지를 땅에서부터 불러일으켜 창처럼 크리쳐를 꿰뚫으려 시도한다.)
직조
기준치: 70/35/14
굴림: 28
판정결과: 어려운 성공
피해: 5
 
올리브빛으로 빛나는 창이 순식간에 크리쳐의 몸통을 꿰뚫으며 바깥으로 튀어나옵니다.
 
역겨운 점액과 핏물이 흩날리고, 창은 마치 화살처럼 허공을 가르다 공기 중으로 흩어집니다.
 
로봇 HP 5 감소.
 
앨릭스의 턴.
 
앨릭스 J. 셔먼:미안하긴, 잘하는데. 처음이 맞는지 의심될 정도인걸. (어깨 위에 손을 올리고 아까와 같이 에너지를 불어넣는다.) 아까 겪어봐서 익숙하지?
0 Point
기준치: 50/25/10
굴림: 69
판정결과: 실패
피해: 2
 
불길에 당한 아이작의 에너지를 치유해주려 시도합니다.
 
하지만 가상 훈련 속 가상일 뿐인 부상이어서일까요? 아이작의 에너지는 한껏 긴장 상태에 있긴 해도 실제 부상자처럼 망가지고 구멍나 있지는 않습니다.
 
치유는 못 했지만, 아이작의 마음을 안정시키는 데엔 도움이 됐을 거예요.
 
아이작 D. 토드:(깨끗하고 따스한 에너지가 몸안을 휘도는 것을 느낀다. 벌써 두 번째로 느끼는 감각.) 고마워요, 앨릭스.
 
앨릭스 J. 셔먼:음... 회복시켜주려고 했는데, 잘 안 되네. (멋쩍게 웃는다.) 그런데도 고맙다고 해준 거야? 역시 착하네.
 
아이작 D. 토드:회복해주려고 하신 그 마음이 감사해서요. 당연히 감사하다고 해야죠.
 
로봇의 턴.
 
교육용 크리쳐 로봇:1. 아이작 2. 앨릭스 2
(치유하는 사이 앨릭스가 방심했다고 느꼈는지, 이번에는 앨릭스가 서 있는 곳을 향해 불을 크게 내뿜었다.)
화염방사
기준치: 60/30/12
굴림: 16
판정결과: 어려운 성공
피해
(0 - 야드):
0
피해
(.01 - 25야드):
2
 
로봇의 불길이 앨릭스를 노려 옵니다! 앨릭스, 회피 혹은 반격하세요.
 
앨릭스 J. 셔먼:이런. (불길을 보고 가볍게 혀를 찬다.)
(곧바로 총을 장전하여 불길을 향해 방아쇠를 당긴다.)
0 Point
기준치: 50/25/10
굴림: 100
판정결과: 대실패
피해: 1
 
반격 실패. 명중 다이스 1d20 굴려주세요.
 
앨릭스 J. 셔먼:2
 
무섭게 끓어오른 불꽃이 앨릭스의 오른쪽 다리를 휩쓸고 갑니다.
 
방어구의 센서에서 데미지를 입었다는 의미인 삐- 소리가 납니다.
 
앨릭스 HP 2 감소.
 
아이작의 턴.
 
아이작 D. 토드:괜찮으세요?! (지체해서는 안 된다. 로봇이 태세를 정비하기 전 재빠르게 공격해야 한다. 날카로운 에너지를 만들어내어 베틀 위로 그대로 내리꽂았다. 크리쳐의 머리를 노린다.)
직조
기준치: 70/35/14
굴림: 27
판정결과: 어려운 성공
피해: 4
 
베틀에 새긴 그림이 그대로 눈앞에서 재현됩니다.
 
크리쳐의 머리를 실 같은 수많은 에너지의 흐름이 휘감아 강하게 압박합니다.
 
아슬아슬하게 힘이 모자라 머리를 완전히 잘라내진 못했지만, 살갗이 패여나가며 크리쳐가 엄청난 비명을 내지릅니다.
 
로봇 HP 4 감소. (3/13)
 
앨릭스의 턴.
 
앨릭스 J. 셔먼:그냥 좀 놀랐을 뿐이야, 안심해. (평소와 같이 나긋한 톤으로 답한다.)
(아무리 가상 훈련이라지만 한눈 팔아서는 안 된다는 건가... 깊은 숨을 내뱉어 맥박을 진정시킨다. 그리고, 다시 조준경을 들여다본다. 목표는, 크리쳐의 머리.)
0 Point
기준치: 50/25/10
굴림: 10
판정결과: 극단적 성공
피해: 2
 
아이작이 한 차례 공격해 너덜너덜해진 머리를 향해 확인사살을 노립니다.
 
조준경을 보는 새파란 동공에 번뜩 표적 마크가 발현하고,
 
동시에 총신에서 발사된 탄환이 크리쳐의 머리를 정확히 꿰뚫고 지나갑니다.
 
당신이 직접 만들고 짜낸 경로 위에서 총탄이 빗나갈 일은 존재치 않으니, 당연한 결과입니다.
 
크리쳐가 사지를 떨다 옆으로 쓰러집니다. 전투 불능.
 
사투 끝에 마침내 첫 전투를 승리로 마무리짓습니다.
 
아이작 D. 토드:앨릭스! (베틀에 새겨져 있던 로봇의 상이 부스러진다. 승리를 깨닫고 페어를 돌아보았다.) 너무 멋진 공격이었어요. 고생하셨어요!
 
유리 모하에:최초 동조율이 60% 이상으로 계산됐어. (화면을 보며 놀라 입을 벌린다.) 이거 놀라운데.
 
앨릭스 J. 셔먼:그건 내가 해야 할 말인데? (마주 웃으며 아이작의 어깨에 팔을 얹고 손바닥을 내밀어보인다.) 기념의 하이파이브.
그거 좋은 거야?
 
유리 모하에:좋은 정도가 아니지. 엄청 높은 수치야, 이거! 보통은 30%에서부터 시작한다니까? 능력 합이 좋다곤 생각했는데…… 대단한걸, 너희.
 
아이작 D. 토드:(처음 손바닥이 내밀어졌을 땐 눈치채지 못했다가 '하이파이브'라고 하고서야 뒤늦게 손바닥을 살짝 부딪혔다. 기쁘게 웃음짓다가 유리의 말을 듣고 얼떨떨해졌다.) 시작부터 60%라니…… 정말요? 믿기지가 않아요.
 
앨릭스 J. 셔먼:와, 대단하네. 우리 둘, 오늘 처음 보는 건데 말이야. 어쩌면 운명일지도 모르겠어.
그나저나 이제 슬슬 힘든데... 언제 쉴 수 있어? 설마 더 해야 해? (고개를 기울여 아이작의 머리에 제 뺨을 기댄다.)
 
요한 에를리히:로봇을 파괴했으니 훈련은 끝이다. 돌아가자.
 
반파된 크리쳐를 바라보며 문득 드는 생각이 있습니다.
 
<관찰력>, 혹은 <지능> 판정
 
앨릭스 J. 셔먼:
지능
기준치: 70/35/14
굴림: 49
판정결과: 보통 성공
 
저것은 어떤 길짐승도, 어떤 날짐승도 닮지 않았습니다.
 
……방사능 탓에 변이된 동식물이라기엔 조금 이상하지 않나요?
 
앨릭스 J. 셔먼:저기, 선배들. 나 궁금한 게 있는데.
내가 아는 동식물은 저렇게 안 생겼는데. 바깥에 있는 놈들은 전부 다 방사능때문에 변했다고 하지 않았어?
 
요한 에를리히:(쓰러진 크리쳐를 물끄러미 응시한다.) 듣고 보니 좀 이상하긴 하군.
 
유리 모하에:근데 크리쳐란 게 절반은 저래. 동식물과 비슷하게 생긴 것도 있지만 도무지 어쩌다가 저렇게 생겨먹은 건지 모르겠는 놈들도 있거든. 원형이 뭔진 나도 모르겠다. 으, 징그러. 빨리빨리 가자.
 
앨릭스 J. 셔먼:아하, 그런 거야? 역시 나보다 2년 더 구른 선배라서 그런가, 잘 아네.
이제 그만 가자. 슬슬 햇볕이랑 침대가 그리워지기 시작했어.
 
호흡을 가다듬으며 돌아가던 때,
 
동쪽 모래 폭풍 너머로 멀리 거대하게 솟은 첨탑이 어른거립니다.
 
<관찰력> 판정을 시도할 수 있습니다.
 
앨릭스 J. 셔먼:(웬 첨탑이람...)
(눈에 들어온 김에 한 번 자세히 살펴본다.)
관찰력
기준치: 60/30/12
굴림: 71
판정결과: 실패
(모래 폭풍때문에 눈이 침침하다)
 
아이작 D. 토드:(앨릭스의 시선을 따라 같은 방향을 바라본다.) 저건…… 하산 2세 사원의 모스크네요. 재앙의 날 이전에 여긴 모로코 왕국의 땅이었었죠.
 
침묵 어린 시선으로 그것을 바라보던 유리가 두 사람을 돌아봅니다.
 
유리 모하에:저 모스크는…….
 
뭔가 말하고 싶은 게 있는 눈치인데, 유리는 다른 것을 의식하는 모양입니다.
 
곧 입을 꾹 다문 유리가 몸을 돌립니다.
 
유리 모하에:이제 진짜 돌아가자.
 
앨릭스 J. 셔먼:왜 말을 하려다가 마는 거야? 재미없게.
(밀려오는 피로감에 관심은 금방 사그라든다.) 그래, 가자.
 
아이작 D. 토드:(이어지는 말을 들으려는 듯 유리를 돌아봤으나, 이내 흐지부지된다. 여전히 앨릭스의 팔을 어깨에 얹은 채로 훈련실을 나섰다.)
 
첫 가상 훈련이 종료되고 학교는 잠시간 그 화제로 시끄러웠습니다.
 
저마다 제 임시 페어와의 동조율이 어땠는지, 자신이 크리쳐 로봇을 얼마나 멋지게 부수었는지 떠들어 댔죠.
 
저런 흥분도 반복된 훈련을 거치고 나면 결국 사그라든다는 것을 아는 멘토들만 쓴웃음을 짓습니다.
 
이윽고 토요일, 학생들은 간만에 찾아온 휴식을 누리고 있습니다.
 
앨릭스는 방금 잠에서 깬 참입니다. 이제 뭘 하면 좋을까요?
 
앨릭스 J. 셔먼:(이제는 익숙해진 천장을 올려다보며 생각한다. 수업을 가야했었나? 아, 그러고보니 토요일이지. 좋아, 그렇다면 늘어지게 광합성이나 하면서 낮잠이나 자러가볼까.)
(잠옷차림으로 방 문을 열고 나가 도서관으로 향한다. 그곳에 자신이 찾아둔 햇볕을 쬐기 가장 좋은 자리가 있기 때문에.)
 
옷도 갈아입지 않은 채 막 방을 나서려던 그때.
 
당신보다 먼저 동급생이 굴러들어오듯 뛰어옵니다. 헉헉거리던 그가 외칩니다.
 
동급생: 야, 너는 아니지?!
 
갑작스레 들어와 ‘너는 아니지’ 하고 묻는다고 해도, 뭐가 아니냐는 말인가요?
 
앨릭스 J. 셔먼:갑자기 무슨 소리람.
 
동급생은 답답하단 듯이 가슴을 칩니다.
 
동급생: 지금 인자 다 뒤집어졌어! 아직 안 봤어?!
 
아무래도 서버에 접속해 봐야 할 것 같습니다.
 
앨릭스 J. 셔먼:방금 일어나서 못 봤는데.
(워치를 켜서 인자에 접속해본다.)
 
스마트워치를 통해 인자미나에 접속하자 실시간 검색어 순위 상위권이 보입니다.
 
앨릭스 J. 셔먼:(끔뻑...) 스와콥문트가 1위를 한 게 큰일이야?
(사관학교 커뮤니티에 접속해본다.)
 
커뮤니티에 접속하자, 게시글 목록 중 조회수가 가장 높아 맨 위로 올라온 글이 눈에 띕니다.
 
앨릭스 J. 셔먼:...... 별 일이 다 있네.
 
…그러니까, 글의 요지는 ‘정부가 주장하는 바와는 달리 사실 스와콥문트에는 뭔가 조작된 구석이 있다’는 것 같네요.
 
앨릭스 J. 셔먼:그래서, '너는 아니지?' 라고 말한 이유는 뭔데?
 
동급생: 나 새벽부터 잠 안와서 계속 새로고침 하고 있었는데 야, 글이 진짜 네 번을 올라왔다니까? 그러다 세 번째 글 삭제됐을 때 인자미나 서버가 잠깐 터졌거든? 그 뒤로 저 네번째 글이 오늘 동튼 직후에 올라왔는데 이상하게 저 글은 삭제가 안 돼.
코딩 동아리 애들이 그러는데 사이트 자체를 해킹해서 글 작성한 아이디를 특수등급으로 빼둔 게 아니냐고 하더라고. 관리자 권한이 있어도 글 삭제가 안 되게.
 
그러고선 주변 눈치를 본 동급생이 귀에 속삭입니다.
 
동급생: 왜, 이런 반동분자 같은 글은 애초에 AI가 맥락을 검열해서 작성 자체가 안 되잖아. 글쓴 애도 시스템을 뚫을 줄 아는 녀석이 아니냐는 거지. 서버나 해킹, 계산 관련 이능력 가진 애들 아침부터 다 불려갔어. 너도 에너지 자체를 활용하는 이능력이니까 혹시나 해서 와본 거야.
 
그제야 기숙사가 이상하게 조용하다는 게 느껴집니다.
 
다들 숨을 죽이고 있는 것입니다.
 
정부 정책을 강도 높게 비판하는 사람이 어느 순간 소리소문 없이 사라지는 경우가 있다는 것은 시민들 사이에서 유명한 이야기죠.
 
딱히 근거는 없지만요.
 
앨릭스 J. 셔먼:새벽부터? 부지런하네. (그 시간에 한참 자고 있었다.)
반동분자라... (미소짓는다.) 신경써줘서 고맙지만, 난 그런 글에 신경쓸 생각은 전혀 없거든. 앞으로는 주의해줘. 괜히 날 붙잡아두지 말고. 귀중한 토요일인데, 아깝잖아.
그리고 너, 내 아버지가 누군지 모르는 걸까... (동급생의 어깨에 손을 얹는다.) 나일리가 있겠어?
 
동급생: (어깨에 손이 올라오자 작게 움찔한다.) 하, 하긴. 내가 잠깐 잊고 있었어. 네가 그럴 리가 없지. 난 그냥 괜히 걱정이 돼서.
나, 난 그만 가볼게! 좋은 주말 보내. (도망치듯 나간다)
 
어쩐지 기묘한 상황이네요.
 
하지만 딱히 당신의 낮잠을 방해할 만한 사유는 되지 못하죠.
 
가려던 도서관이나 마저 갈까요?
 
곧 중간고사가 오니, 시험 공부에 관심이 있다면 책을 챙겨 자습실로 가도 좋고요.
 
앨릭스 J. 셔먼:(동급생의 뒤로 손을 흔들어주고는 가볍게 한숨쉰다. 써먹을 일이 없었으면 했는데.)
(서버나 해킹, 계산 관련 이능력을 가진 학생들이 다 불려갔다고 했나. 그렇다면 아이작은 무사하겠네.)
... 자, 그럼 다시 가볼까. (다시 도서관으로 향한다. 어차피 챙겨가봤자 무겁고, 베개 신세나 될 게 뻔하다.)
 
고요한 도서관. 각성자 사관학교의 도서관은 카사블랑카에서도 독보적으로 장서 수가 많아 유명하죠.
 
당신에게는 좋은 낮잠 스팟이기도 합니다.
 
학생들은 다가온 중간고사 때문에 대부분 공부에 몰입해 있지만, 서가와 서가 사이에서 두 학생이 수군거리는 소리가 들려옵니다.
 
“…그러니까, 몬로비아에서 시신 발견됐다는 거 구라 아니라니까. 아놀드 박사가 우리 사촌언니 담당교수였잖아.”
 
아무래도 아까 그 게시글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책 너머로 흘끔 살피니 2학년 선배들이네요.
 
자세한 내용을 듣고 싶다면 대인기능 판정이나 듣기 판정 등을 사용할 수 있습니다.
 
앨릭스 J. 셔먼:(다가가서 친절한 미소를 띈 얼굴로 말을 붙여본다.) 저기, 선배들. 그 얘기, 자세히 말해줄 수 있을까? 물론 안 바쁘다면 말이야.
매혹
기준치: 70/35/14
굴림: 38
판정결과: 보통 성공
 
햇살처럼 반짝이는 미소년 앨릭스의 웃음에 선배들은 곧바로 무장해제됩니다.
 
"어머, 그럼. 당연히 말해줄 수 있지."
 
선배들이 들려준 내용은 이하와 같습니다.
 
:화학자였던 아놀드 박사는 새로운 물질을 발견해 낸 공로가 있어 스와콥문트 시민권을 획득했습니다.
이후 제자에게 본인의 연구자료를 전부 넘기고 조용한 은퇴 생활을 즐긴다는 것이 널리 알려진 사실이죠. 최근에는 SNS를 통해 요리 연습에 매진하고 있다는 근황을 업데이트한 바 있습니다.
연구실 제자들 중 두어 사람은 아놀드 박사와 간간히 연락을 주고받습니다. 화상이나 음성통화도 이루어졌는데, 학생의 사촌언니 말로는 석연찮은 구석이 있다고 하네요.
연구제자와 아놀드 박사 사이에 있었던 일이라 당연히 알아야 하는 주제에 대해 의례적인 답변이 돌아오거나, 연구주제에 관해 질문해도 정확한 대답을 내주지 못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고 합니다.
화상 통화도, 음성 통화도 모두 조작이 가능한 시대. AI만 있으면 무엇이든 할 수 있죠. 이미 죽은 사람을 살아있는 것처럼 꾸며내는 게 뭐 그렇게 어렵겠나요?
 
아무래도 이런 내용에 대해 좀 더 자세히 알만한 사람들은 학생회 쪽이겠죠.
 
원한다면 학생회관에서 당신의 멘토인 유리나 요한을 찾아봐도 됩니다.
 
한숨 자고 가도 되고요 ㅋ
 
앨릭스 J. 셔먼:(뭔가 심상치않은걸. 다들 조용히 얘기하는 이유를 알겠네.)
알려줘서 고마워, 선배들. 시험 공부 힘내. (어깨를 두드리고는 자리에서 빠져나온다.)
(그리고 곧바로 낮잠이나 한숨 때린다. 원래라면 대략 1시간 전부터 자고 있어야 했는데, 예상치 않게 많이 늦어졌다.)
 
의도치 않게 낮잠 시간이 한 시간이나 미뤄졌어요. 이건 정말 심각한 일입니다!!
 
그러니 스와콥문트고 박사고 뭐고 일단 잠이나 잡시다.
 
도서관의 창가 자리는 햇살이 아주 끝내주게 들어오죠. 딱 잠들기 좋은 온도와 조도…… 바로 이거야.
 
앨릭스는 실컷 쿨쿨띠합니다.
 
앨릭스 J. 셔먼:(zzzz)
 
토요일 오후…… 낮잠 자기 딱 좋은 시간.
 
앨릭스는 1시간 동안 꿀맛 같은 잠을 잤습니다.
 
앨릭스 J. 셔먼:.......
(그렇게 1시간 동안 꿀잠자고 일어난다.)
(너무 많이 자면 머리 아프니까 그만 자야겠지... 단념하고 일어난다.)
(느적거리는 걸음으로 학생회관으로 향해 멘토 선배들을 찾아본다.)
 
느적느적 학생회관으로 향합니다.
 
복도에 들어선 앨릭스는 복도 끝 학생회실에서 누군가 고함을 지르는 소리를 듣게 됩니다.
 
유리 모하에:언제까지 ……냐고!
 
요한 에를리히:입 좀 다물어, 밖에 다 들려!
 
……저 목소리는 아무래도 유리와 요한 같네요. 말리는 쪽이 요한이고요.
 
말마따나 다 들립니다.
 
앨릭스 J. 셔먼:(잠 다 깼다.)
......
(이참에 더 가까이 다가가 엿들어본다. 왜 싸우는지 궁금하니까.)
 
두 사람이 싸우는 내용이 차라리 대놓고 들리면 모르겠는데,
 
가까이 가 보니 방음설계가 되어 있는지 대강 서로 탓하는 것만 얼핏 알 수 있고 정확한 내용은 도통 파악이 안 됩니다.
 
엿들어본다면 <듣기> 판정!
 
앨릭스 J. 셔먼:
듣기
기준치: 60/30/12
굴림: 44
판정결과: 보통 성공
 
유리의 목소리를 겨우 주워듣긴 했지만, 역시나 정확한 문장을 다 듣지는 못했습니다.
 
유리 모하에:애들은 모르잖아! ……다는 거!
 
앨릭스 J. 셔먼:(이런. 잘 안 들리네...)
(그냥 문 열고 당당히 들어간다.)
(... 노크가 먼저였던가? 라고 생각하기엔 이미 늦었다.)
안녕, 선배들. 바빠?
 
앨릭스가 문을 떡하니 열고 들어가자 두 사람의 시선이 동시에 꽂힙니다.
 
하지만 유리는 앨릭스의 말에 대답도 하지 않고, 화가 났는지 잔뜩 씩씩거리며 그대로 열린 문으로 나가 버리네요.
 
요한 에를리히:……. (한숨을 쉰다.) 들렸나?
 
앨릭스 J. 셔먼:어라, 정말 바쁜 모양이네.
뭘? (하품하며 어깨 으쓱인다.)
 
요한 에를리히:(한 손으로 이마를 짚는다.) 우리가 싸우던 소리 말이다. 하긴 들렸으니 들어왔겠지.
 
앨릭스 J. 셔먼:그렇게 소리지르면 학생회관 밖에서도 다 들릴걸. 걱정 마. 수상하게 여기진 않을게. 우리들의 멘토잖아?
 
요한 에를리히:(내가 늙는다는 얼굴로 다시 한 번 한숨을 푹 내쉬었다.) 내가 제명에 못 살지. (그리곤 스마트워치 하나를 앨릭스에게 내밀었다.) 이거, 유리가 두고 갔다. 내가 가면 화낼 게 뻔하니 네가 좀 전해줘. 아마 학관 뒤뜰 정원으로 갔을 거야.
 
어려운 부탁은 아니지만, 이상한 점은 그게 아닙니다.
 
현대에 이르러 방수 기능까지 완벽해진 스마트워치는 정말 특이한 상황이 아니고서야 좀처럼 풀지 않고 늘 착용하는 기기죠.
 
어째서 스마트워치를 풀고 나간 걸까요?
 
앨릭스 J. 셔먼:...... 흠. 뭐, 알겠어. 특별히 해줄게. (스마트워치를 받는다.)
이 빚은 나중에 갚아야 해. 날 시켜먹는 건 아무나 할 수 있는 게 아니거든. (고개를 까딱이며 인사하고는, 뒤뜰 정원으로 향해본다.)
 
요한의 예상대로 유리는 학교 뒤뜰에 있었습니다. 정확히는 흡연 구역에.
 
대기오염 탓에 담배는 굉장히 규제가 심한 기호품이죠.
 
한 갑에 네 시간어치 시급을 털어 넣어야 하는 그것을 유일하게 좀 저렴히 구입할 수 있는 사람들이 각성자들입니다.
 
세상이 한 차례 멸망했어도 군인에게 가장 중요한 보급품은 담배와 초콜릿인 모양입니다.
 
앨릭스 J. 셔먼:(잠옷 소매로 코를 막고는 유리 선배에게 다가간다.) 저기, 화난 건 알겠지만 기껏 찾아온 후배의 등을 터지게 하진 말아줄래?
이거, 놓고 갔다고 요한 선배가 전해달랬어. (스마트워치를 던져준다.)
 
유리 모하에:(인기척이 들리자 깜짝 놀라서 후다닥 담배를 눌러 끈다.) 야, 미안. 냄새나지. (옷을 탈탈 털어 냄새를 뺀다.) 내가 그걸 놓고 갔어? (얼른 스마트워치를 받아들고 몇 발짝 멀찍이 떨어져 섰다.)
……요한 많이 화났냐?
 
앨릭스 J. 셔먼:제명에 못 산다고 하던데. 걱정되면 빨리 화해해. 다시 안 볼 거 아니잖아. (어깨 으쓱한다.)
근데 둘이 왜 싸운 거야?
 
유리 모하에:뭐…… 싸웠다기보단 그냥 의견이 좀 안 맞은 거지. 원래도 나랑 요한은 자주 투닥대는 사이긴 한데 이번엔 내가 좀 욱했어. (제 뒷머리를 만지작거렸다.)
그런 넌 왜 잠옷 차림인데?
 
앨릭스 J. 셔먼:그럼 먼저 사과해. 요한 선배, 선배를 걱정하고 있던걸. (싱긋 웃는다.) 역시 사이좋다니까.
응? (제 옷차림을 내려다보고는) 아. 뭐, 도서관은 내 최고의 낮잠 명당이거든. (브이한다.)
참, 궁금한 게 있는데. 물어봐도 돼?
 
유리 모하에:그래, 사과해야지. (이제는 제 뒷목을 쓸었다.)
궁금한 거? 내가 맞춰볼까?
너 아까, 도서관에서 아놀드 박사에 관해서 얘기 나누지 않았어? 2학년 애들이랑.
 
앨릭스 J. 셔먼:어라. (두 눈 깜빡인다.) 어떻게 알았어? 완전 족집게네.
 
유리 모하에:어떻게 알았냐고?
 
유리는 호쾌한 성격답지 않게 한참이나 숙고합니다.
 
이내 그가 검지를 입가에 가져가 ‘쉿’ 제스쳐를 취하더니 손목의 스마트워치를 가리키고선 푸는 시늉을 해 보입니다.
 
아무래도 시계를 풀라는 뜻인 것 같습니다.
 
앨릭스 J. 셔먼:(뭐지? 싶지만 우선 풀어본다.)
 
앨릭스가 지시대로 시계를 풀자, 유리가 옆면의 S버튼을 묘한 박자에 맞추어 여러 번 누릅니다.
 
갑작스레 홀로그램 패널이 켜지더니 초록색 안내창을 내보냅니다.
 
……음성 수집 기능?
 
그제야 유리가 입을 열었습니다.
 
유리 모하에:이 학교엔 듣는 귀가 많아. …그런 주제는 조심하라고.
 
상황이 가리키는 바는 분명하죠.
 
늘 가지고 다니는 스마트워치가 학생들의 대화를 수집하고 있었나 봅니다.
 
앨릭스 J. 셔먼:...... 신기하네. 이런 것까지 수집하고 있었을 줄이야.
 
유리 모하에:우리의 대화는 언제나 도청되고, 그 기록은 학생회실 서버에 쌓이지.
학생회 소속 중에서도 임원만이 접근할 수 있는 정보지만, 대화 중 특이한 단어가 수집되면 곧장 정부로 보고가 들어가곤 해.
나는 이 수집에 반대하지만 당장 학생회장으로서 이런 도청을 막을 수 있는 권한이 없어.
……네가 누구의 아들인지 알면서도 내가 이런 위험한 사실을 말해주는 건, 아직 학교 규정을 모르는 네가 혹시나 검열 기준에 어긋나는 대화에 끼어서 화라도 당하지 않을지 걱정되기 때문이야. 음성 수집 기능을 잠시 꺼두는 건 그것대로 기록이 남지만, 이건 내가 지워줄 수 있으니 오늘 건 몰래 없애줄게.
 
앨릭스 J. 셔먼:...... 오늘은 정말 새로 알아가는 게 많은 날이네. (고개를 끄덕인다.) 그 대화를 듣고 있던 게 선배라서 다행이야. 고마워. 아쉽지만 빚은 이걸로 퉁쳐야겠네.
목소리 수집까지 하고 있다면 스와콥문트 박사는 유토피아로 향한 게 아니라 저승으로 향했을 가능성이 높아지겠는걸. 괜한 낭설이 돌고 있는 게 아니였구나.
 
유리 모하에:글쎄…… 진실은 아무도 모르지만. 괜히 도는 소문은 아니란 데엔 동의해.
뭐, 진실을 말해주는 게 현명한 선택은 아닐지도 모르지. 네가 날 고발하기만 하면 난 그대로 끝장날 테니까. 하지만 앨릭스, 그렇다면 아무것도 모르는 신입생들이 '반동분자 같은' 말 몇 마디 지껄였다고 학교에서 사라지는 게 옳은 일이냐?
나는 오래 전에 이미 한 번 친구를 잃었고, 같은 일을 다시 겪고 싶진 않아서 학생회장이 됐어. 멘토 자리도 그래서 자원한 거고.
 
유리는 몸을 바르게 펴고 앨릭스를 응시합니다.
 
그의 이력에 대해선 잘 알려져 있습니다.
 
어린 나이에 각성했고, 부모는 국가기관 연구소에서 일하는 ‘출신 성분 확실한’ 가정의 외동딸.
 
별달리 억압당한 가족도, 잃어버리거나 빼앗긴 재산도 없죠.
 
사관학교에 입학한 후로는 1학년부터 학생회에 있었습니다.
 
무엇이 옳은지 설파하기에 그의 삶은 다소 유복합니다. 일견 기만으로도 보일 수 있겠습니다.
 
그래도 그는 그렇게 말했습니다.
 
유리 모하에:…간다. 음성인식 다시 켜려면 S버튼 길게 세 번, 짧게 세 번, 다시 길게 세 번 누르면 돼. 오늘 기록은 내가 한꺼번에 지워줄 테니 자유를 좀 더 누리든가.
 
뭐라고 더 말할 듯이 입술을 달싹이던 유리는 고개를 내젓고 앨릭스의 등을 두어 번 두드려준 후 자리를 떠났습니다.
 
감상은 앨릭스의 몫입니다.
 
앨릭스 J. 셔먼:(유리 선배의 뒷모습을 빤히 바라보다가 워치에 시선을 둔다.)
...... (어찌 됐든, 지금과 같은 평화로움을 누리기 위해선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숨을 죽이는 수 밖에 없다. 아버지의 지위와 이름을 팔아가면서. 그래야 지금까지와 같은 평화를 영위할 수 있을 테니까.)
... 이제 슬슬 가볼까. 잠옷에 담배 냄새가 배는 건 사양이야. (워치의 음성인식을 다시 켜고는, 뒷뜰에서 나간다.)
 
뒤뜰에서 막 나가려 몸을 돌리는데, 발소리가 들립니다.
 
아이작이네요. 아직 앨릭스를 발견하지 못한 그는 수심 어린 낯을 하고 있습니다.
 
앨릭스 J. 셔먼:...... (놀래켜주려는 심산으로 조심히 다가가본다.)
 
아이작 D. 토드:(목걸이의 보석을 만지작거리며 느리게 걸어들어온다. 깊은 생각에 잠겨 있는지 앨릭스가 다가오는 것도 미처 발견하지 못한다.)
 
앨릭스 J. 셔먼:(발소리를 죽이고 옆으로 다가가 턱, 하고 두 어깨를 잡는다.) 아이작!
여기서 뭐해?
 
아이작 D. 토드:(깜짝 놀라 소리도 내지 못하고 크게 움찔한다. 동그래진 눈으로 곁을 올려다보았다. 상대를 알아보곤 그제야 어깨에서 힘을 뺐다.) 애, 앨릭스였군요. (그리곤 주변을 돌아본다. 어딘지도 모르고 무작정 걷던 모양이다.) 머리가 복잡해서 걷다 보니 어느덧 여기네요.
 
앨릭스 J. 셔먼:조용히 놀라는 타입이구나. 소리도 안 지르고, 재미없네. (장난스레 한숨쉰다.)
왜 그런 표정인지 궁금한데. 고민 상담이라도 해줄까?
 
아이작 D. 토드:원체 조용하단 말을 많이 듣기는 해요…… (머쓱하게 미소했다.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고민하며 한동안 입술을 달싹거리기만 했다. 한 손은 여전히 목걸이를 감싸쥔 채다.) 그게…….
앨릭스도 그건 보셨죠? 인자미나의 게시글.
 
앨릭스 J. 셔먼:(입을 열어줄 때까지 기다리다가 끄덕인다.) 응, 봤지. 어떤 친구가 와서 아주 친절하게 알려주던걸.
그것 때문에 심란한 거야?
 
아이작 D. 토드:음…… (답답할 지경으로 한참이나 미적거리며 망설이다가 겨우 말을 꺼냈다. 시선은 바닥을 바라보는 채고, 목소리는 쥐어짜낸 듯이 자그맣다.) 사실은 제 형이…… 스와콥문트에 가 있거든요. 그런데 그 게시글을 보고 나니 석연찮은 점이 있었던 게 떠올라서, 걱정이 되어서요.
 
앨릭스 J. 셔먼:(스스로 얘기해줄 때까지 얌전히 기다린다.)
형이 있구나. 나랑 같은 둘째네. 어쩐지 잘 통한다 싶었어. (어깨를 토닥여준다.) 너무 걱정하지마. 그 영상이랑 글, 지어낸 거라는 말이 많던걸. 네 형은 무사할 거야. (... 라고 해도, 정말 석연치 않지만.)
혹시 연락은 해봤어?
 
아이작 D. 토드:앨릭스도 위로 형제가 있으신가요? (어깨를 토닥이는 손길에 애써 미소를 지으려고 하지만, 잘 되진 않는다.) 아마 그럴 확률이 높겠죠. 그래도 구체적인 증거들을 보니 자꾸 신경이 쓰이네요.
저는 형과 그리 가깝지는 않아서 주로 부모님이 연락하시는 걸 듣는데…… 연락이 주기적으로 닿기는 하지만, 최근에 조금 이상한 점이 있었어요. 형은 어릴 적부터 에메랄드를 좋아했거든요. 탄생석이기도 하고요. 그런데 지난번 통화에선 갑자기 사파이어 장식을 제일 아끼게 되었다고 하더군요.
 
앨릭스 J. 셔먼:..... (이야기를 들으며 계속해서 토닥여준다.) 스와콥문트가 사파이어 광맥이 있는 곳일 수도 있잖아. 아니면 누군가 선물해줘서 아끼게 된 걸 수도 있고. 너무 깊게 생각하지 않아도 될 문제일 수도 있어, 아이작. 그나저나... 소중한 목걸이였구나, 그거. 늘 잘 어울린다고 생각했는데.
나도 형이랑 가까운 사이는 아닌데, 남동생이랑은 친하게 지내. 날 잘 따르거든. 그래서 그런가, 형의 입장으로서 위로해주고 싶네.
 
아이작 D. 토드:형이 남긴 목걸이에요. (그제야 자신이 무의식 중에 목걸이를 매만지고 있음을 깨닫고 보석을 놓았다. 에메랄드가 햇빛에 찬연하게 빛난다.) 정말 그랬으면 좋겠네요. ……위로해주셔서 고마워요, 앨릭스. 다음에 연락이 오면 다시 한 번 제대로 물어봐 달라고 부모님께 말씀드려야겠어요. 형을 무척 자랑스러워하고 계시거든요.
앨릭스는 가족이 많군요. 삼형제인가요, 아니면 아래로 동생이 더 있나요?
 
앨릭스 J. 셔먼:네게 물건을 남길 정도면 꽤 가까운 사이 아냐? (잠시간 햇빛에 반짝이는 에메랄드 목걸이를 바라본다.) 이 정도 고민 상담은 친구로서 당연히 할 수 있는 거잖아. 감사 인사는 안 해줘도 돼. (백색의 머리칼을 손가락 사이사이에 얽히며 장난을 치다가 귀 뒤쪽으로 넘겨준다.)
삼형제 정도면 평범하지. 아이작은...... 둘째이자 막내려나. 아, 동생이 더 있을 수도 있겠네. 어느 쪽이야?
 
아이작 D. 토드:정확히 제게 준 건 아니고, 집에 두고 간 걸 제가 이어서 차고 다니게 된 거죠. (목걸이를 다시 재킷 안으로 집어넣었다. 머리칼에 닿는 손길에 어깨를 살짝 움츠리며 작게 웃었다. 그제야 조금 표정이 풀렸다.) 간지러워요, 앨릭스.
둘째이자 막내예요. (일순 복잡함이 스쳤으나, 아주 잠깐일 뿐 금세 평소대로 돌아온다) 앨릭스의 동생과는 나이 차이가 얼마나 나나요? 형이나 동생도 각성자인지도 궁금한걸요.
 
앨릭스 J. 셔먼:(웃음 짓는 얼굴을 보고 함께 미소짓는다.)
...... (방금, 표정이 별로 좋지 않았는데. 눈치 챘지만 별 말 없이 고개를 끄덕인다.) 우리 형도 각성자야. 나보다 훨씬 빠르게 각성해서 군인이 됐어. 그 덕분에 아버지의 관심이 다 형한테 향했었는데... 지금은 각성자가 된 날 아-주 사랑해주시는 중이랄까.
나도 너처럼 형이랑은 그닥 연락을 주고 받지는 않아. 많이 바쁘거든. 1년에 한 번 연락이 올까 말까해. 동생이랑은 한달 전만 해도 같은 집에서 살았으니, 사이야 당연히 좋지만. (그 뒤로 수다가 이어진다. 동생이 늦둥이라 나이 차이가 꽤 난다는 말, 여기로 오기 전에 자신의 가방에 숨어들어갔었던 일... 등등.) 참, 사이가 별로 안 좋다는 게... 혹시 형이랑 싸운 건 아니지?
 
아이작 D. 토드:형도요? 형제가 나란히 각성자라니, 멋지네요. (수다를 집중해서 경청하며 중간중간 고개를 끄덕였다. 가방에 숨었다는 대목에선 입가를 손으로 가리며 웃음을 참기도 했다.) 평화롭고 화목한 가족이군요. (그는 소문에 관심이 없는 이답게 앨릭스의 가정 환경이나 부모가 누구인지 잘 알지 못했다. 그렇기에 편견 없이 들은 대로만 생각했다.)
(마지막 질문에는 잠시 멈칫했다가 부드럽게 고개를 내저었다.) 아녜요. 그냥 좀 서먹서먹할 뿐예요. 많이 만나지를 못했거든요. (여러 의미로 해석할 수 있는 문장이지만 자세한 설명을 덧붙이는 대신 그렇게만 말을 맺었다.)
 
앨릭스 J. 셔먼:뭐, 그렇지. 아직까지는 말이야. 만약 내가 이 학교에서 사고를 친다면 어떻게 될지 모르는 일이지만. (웃음)
그래? 형제가 많이 못 만나다니, 슬픈 일인걸. (어쩐지 자세히 말하기 꺼려하는 것 같아서 고개를 끄덕이고만 말았다.) 그러고보니... 곧 저녁이네. 같이 밥 먹으러 갈래? 따로 약속된 게 없다면 말이야.
 
아이작 D. 토드:사고를 치진 않으실 것 같은데요. (아닌가? 은근히 장난기가 많아 보여서 제멋대로 하다가 한 번쯤 사고를 내……려나? 하지만 남을 제멋대로 재단하는 건 나쁜 짓이므로 금세 상상을 멈췄다.) 그리고 그 정도로 가까운 가족이면 사고 한 번쯤은 감싸주실 것 같구요.
(노을로 붉게 물든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벌써 시간이 이렇게 되었군요. 네, 좋아요. 보통은 혼자 식사를 해서 친구랑 함께 밥을 먹는 건 처음이네요. (희미하게 웃었다.)
 
함께 식당으로 가려던 찰나,
 
갑자기 두 사람의 스마트워치에 긴 진동이 느껴집니다.
 
앨릭스 J. 셔먼:어라...
(스마트워치를 확인해본다.)
 
서사의 판면을 강제로 집어 벌리고 삽입되는 개정 기호처럼 홀로그램 패널은 동의도 없이 방송 창을 띄웠습니다.
 
화면 너머에는 각성자사관학교의 학장이 무게감 있는 시선으로 카메라를 응시하고 있었습니다.
 
그가 말합니다.
 
학장: 사안이 중대해 전체방송을 실시하게 되었습니다. 오늘 새벽 익명 커뮤니티 ‘인자미나’에 게시된 글의 작성 IP가 교내인 것으로 추적되었습니다. 교수진은 불온한 선동 여론을 조작하려는 시도가 우리 학생 혹은 교원의 손에서 빚어졌다는 사실에 지극한 유감을 표합니다.
학생 여러분께선 헛된 소문에 경도되지 말고 우리 빛나는 오십 년 사학을 지킬 수 있도록 학업에 집중하도록 합시다. 각성자사관학교는 당 사안을 좌시하지 않고 엄중히…….
 
정말 헛된 소문이라면 이렇게 대응하는 것보다야 무시하는 것이 일을 덜 키우는 방식일 테죠.
 
행간에서 윗선의 압력이 있었음을 읽을 수 있는 연설이었습니다.
 
지리한 말들이 이어진 후 학장은 벌떡 일어서 허공을 응시합니다.
 
화면에는 이제 학장의 얼굴 대신 아프리카 연합공화국의 국기가 송출되고 있습니다.
 
.
 
국가 <신이여, 아프리카를 굽어보소서>가 작사될 때에
 
이슬람 교도들과 기독교도들이 조사 하나까지 좀 더 서로의 종교에 알맞은 색깔을 담으려 다투는 광경을 보고, 유럽과 아시아의 ‘선진국’에서 건너온 초기 공화국 시민들은 퍽 당황했다고들 합니다.
 
그들이 생각하기로 아무튼 아프리카의 종교라고 하면 젬베를 두드리며 토착신을 찾는 종류였지 지극히 ‘문명화된’ 메이저 종교를 믿을 리는 없었으니까요.
 
이 무례하고 순진한 오해를 지닌 산부의 산도를 열고 새로운 공화국이 마침내 세상에 머리를 들이밀었을 때
 
정부는 좀 예민하다 싶을 만큼 ‘화합’을 강조했습니다.
 
출신도 문화도 다른 사람들이 재난 때문에 섞여 살게 되었으니 당연한 일이죠.
 
교정에, 회사에, 길거리에, 카페에, 펍에 국가가 울려퍼질 때,
 
우리는 당장 하던 일을 멈추고 어디에나 설치된 공화국 국기를 향해 경례해야 합니다.
 
나라 어디서나 국기는 휘날리고, 그것조차 여의치 않을 땐 하늘길 시계가 국가를 자동 인식하여 홀로그램 패널로 국기 이미지를 띄워 줍니다.
 
검은 상단은 여러 국가를 뿌리로 둔 시민들이 화합되어야 할 아프리카 연합공화국의 대표색상 역시 모든 색을 섞은 검은색이라는 의미이고,
 
흰 하단은 이 땅이 흐트러지기 전부터 오래 자리를 지켜 온 아프리카 대륙의 사막을 오염 이전으로 돌려놓겠다는 의지를 상징합니다.
 
가운데 노란 원이 태양을, 태양 안의 붉은 별 일곱 개가 일곱 도시를 나타냅니다.
 
아프리카 연합 공화국의 어린이들은 국부로 추숭되는 초대 대통령의 위인전을 읽으며 자라나고,
 
‘모든 사람은 동일한 권리를 타고난다’고 교육받으며,
 
험지를 헤치고 인간의 위대한 문명을 다시 이룩한 조국에 충성을 바치라는 가르침을 듣습니다.
 
학교는 고요하여 발걸음 소리 하나 들리지 않았습니다.
 
적은 돈으로 빈 방을 모두 채우라는 요구에 초를 사와 불을 밝혔다던 처녀의 일화처럼 이 광막한 공간에는 오로지 경건하고 엄숙한 국가 선율만이 가득합니다.
 
아이작은, 경례하지 않고 있습니다.
 
바람이 널리 드나들 수 있도록 지은 1층 회랑은 카사블랑카의 자부심입니다.
 
아프리카 대륙에서 이제 그런 통기성 좋은 건물은 좀처럼 찾아보기 어려워진 시대였기 때문이죠.
 
때로 함신은 굳건한 도시 장벽 너머로부터 날아와 외벽을 덮어 버리곤 했습니다.
 
그러나 비공식적 별명으로 ‘제1도시’ 라는 명칭을 가진 카사블랑카의 장벽만은, 공화국 시민들을 불편케 하는 모든 재난으로부터 사람을 지킵니다.
 
언제나 굳건하게.
 
따사로운 햇살과 축복 같은 적도편동풍이 뺨을 어루만지든 어쩌든, 학생들에게는 불행했던 중간고사가 거의 끝나갈 무렵입니다.
 
그 1층 회랑을 지나 2층에 도서관이 있습니다.
 
이제 시험은 두 개가 남았습니다.
 
<군사전략 입문>, <전략문화와 전쟁>.
 
<전략문화와 전쟁> 중간고사 시험 대체 조별 과제 에세이는 첫 가상 훈련 때 맺어졌던 페어끼리 함께 작성하는 것이 규칙이죠.
 
과제의 주제는 이러합니다.
 
…1학년이 당면하기에는 너무 어려운 과제네요!
 
본래 <전략문화와 전쟁> 강의 평가는 늘 심한 호불호 영역에 놓여 있었죠.
 
같은 수업을 듣는 학생들이 머리를 너무 쥐어뜯은 탓에 그걸 다 치워야 하는 근로장학생들의 스트레스도 갈수록 쌓여 갔다나요.
 
앨릭스와 아이작은 도서관 구석 창가 테이블 하나를 차지하고 여러 자료를 읽어 내려가는 중입니다.
 
긴긴 고난(아마 아이작 혼자만의) 끝에 레포트는 결론 부분에 다다랐습니다.
 
아이작 D. 토드:(산처럼 쌓인 자료를 교차검증하며 노트북으로 레포트를 써내려간다.) 결말부는 이 논문과 이 논문 두 개를 인용하면 될 것 같아요, 앨릭스. 어떠세요? (대답이 어떻건간에 일단 성실하게 물어보긴 한다)
 
앨릭스 J. 셔먼:(두꺼운 책들을 베개삼아 테이블에 엎드려있었다.) ... 지치지도 않아? 보기보다 체력이 대단하네. 아니, 근성이라고 해야하나... 난 이제 글자를 보기만 해도 신물이 날 지경이라고.
 
아이작 D. 토드:시험이니 열심히 임해야죠. (쑥스럽게 미소한다. 레포트에서 앨릭스가 차지한 비중은 과연 얼마 정도일까……?) 어려운 과제기는 해요. 하지만 그만큼 최선을 다해서 열심히 쓰면 교수님이 좋게 평가해 주시지 않을까요.
 
앨릭스 J. 셔먼:(아마 아이작이 시키는대로 책만 찾아왔을 것이다.) 이건 그 모범생 학생회장 선배도 싫어할걸. 고작 1학년한테 이런 과제를 내주다니, 불합리해. (여전히 엎드린 채로 투덜거리기만 한다.)
 
아이작 D. 토드:(앨릭스가 레포트에 거의 기여하지 않아도 아무런 불평불만 하지 않았다.) 그분도 같은 커리큘럼을 거쳐 오셨겠죠? 한 번 조언을 부탁드릴 걸 그랬네요. 아, 아니다. 그분도 시험 준비로 바쁘실 텐데 방해가 되었겠네요. (고개를 살짝 내젓고는 다시 키보드를 두드린다.) 다른 시험은 잘 준비하고 계세요?
 
앨릭스 J. 셔먼:우린 아직 미숙한 후배들인데 뭐 어때. 나중에 만나면 한 번 물어나보자. (양심따위는 어디 갖다 판 발언이나 한다.)
(고개를 틀어 아이작을 바라본다.) 으음, 아마? (얼버무린다...) 걱정마, 성적때문에 퇴학당해서 네 페어 자리를 비울 일은 없을 테니까.
 
아이작 D. 토드:그런 걱정은 하지 않았는걸요? (달리 말하면 간신히 퇴학당하지 않을 만큼만 공부한다는 소리인가? …깊이 생각하지 않기로 한다…….) 시험이 힘드시겠지만 조금만 더 힘내세요, 앨릭스. (교내에 마련된 카페에서 사 온 디저트를 밀어준다. 두 사람의 취향대로다. 앨릭스가 좋아하는 건 뭘까)
 
앨릭스 J. 셔먼:날 너무 믿는 거 아냐? 학교에 퍼진 내 소문이 그렇게 좋지는 않았을 텐데. (그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특유의 여유로운 얼굴로 웃는다.) 그래, 앞으로 조금만 더 참으면 중간고사는 끝이니까. (제 몫의 초코무스 조각케이크를 포크로 작게 자르고 네 앞으로 내민다.) 한 입 먹어볼래? 공부할 땐 당이 부족해지잖아.
 
아이작 D. 토드:소문은 입에서 입으로 옮겨지면서 살이 붙어서 진실과는 달라지기 마련이죠. 저는 믿지도, 기억해두지도 않아요. (담담하게 말하며 제가 사온 아몬드 쿠키를 절반으로 잘라 건넸다.) 아, 감사해요. 잘 먹을게요. (평소에 단 걸 그렇게 자주 먹는 편은 아니지만, 머리를 팽팽 쓰고 있는 지금은 무척 도움이 된다. 내밀어진 초코 케이크를 냠 먹는다)
 
앨릭스 J. 셔먼:... 그래? (쿠키를 건네받아 한 입 먹는다.) 어라, 절반이나 주는 거야? 고마워. (뿌듯한 얼굴로 지켜본다.) 잘 먹으니까 보기 좋네.
(계속해서 간식을 먹으며 창 밖을 쳐다본다. 때때로 학생들이 지나다니는, 조용한 교정이 유리창 너머로 비친다.) 참, 그거 알아? 날 그렇게 순수히 좋게 봐주는 사람은 네가 처음이야. 이 학교에서나 바깥에서나, 날 셔먼으로만 보는 사람들밖에 없거든.
 
아이작 D. 토드:같이 나눠 먹으면 더 맛있잖아요. (희미하게 웃으며 함께 사온 아이스 캐모마일 티를 마셨다. 앨릭스가 창밖을 바라보는 동안 논문을 한 장씩 넘겨가며 읽고 있다가 고개를 들었다. 입학 후 시간이 꽤 지난 만큼 이제 그도 '셔먼'이란 성씨를 알게 되었으나 그 사실은 앨릭스를 대하는 태도에 털끝만큼도 영향을 주지 않았다.) 앨릭스가 먼저 셔먼에 걸맞게 대하라고 했다면 저도 시선이 조금은 바뀌었을지도 모르죠. 하지만 그러지 않으셨잖아요. 그리고 지금 말씀하시는 걸 보면…… 가문에 당신이 가려지는 걸 원치 않으시는 것 같구요. 제 말이 틀렸다면 부디 정정해 주세요.
 
앨릭스 J. 셔먼:(이어지는 말에 잠시간 눈을 크게 뜬다.) 하하! 들켜버렸네. 이상하게도, 왠지 네 앞에서는 거짓말이 안 나온단 말이지... (왜일까? 들릴락 말락한 작은 목소리로 중얼거린다.)
정정할 생각없어. 그럴 필요도 없고. 네 말에 틀린 건 없으니까. 대신... (몸을 기울여 가까이 다가간다. 지척에서 푸른 눈동자가 은밀히 빛을 낸다.) 이건 비밀이야. 나와 아이작, 둘만의 비밀. 이런 건 알려져서 셔먼인 내게 좋을 게 없거든.
부탁, 들어줄 거지?
 
아이작 D. 토드:영광인걸요. (옅게 웃으며 조용히 답했다. 각성자의 에너지처럼 옅게 반짝이는 푸른 눈은 마치 저를 비추는 거울 같다. 맑고 청명한 올리브빛 눈동자가 그를 마주 응시한다.) ……그럼요. 저희만의 비밀로 간직하고 있을게요.
 
비밀을 나누고 앨릭스가 제자리로 돌아가 앉을 즈음, 근처 자리에서 골머리를 썩던 동급생이 다가와 아이작에게 말을 겁니다.
 
“아이작, 30분 남았어. 우리 슬슬 준비하러 가야 할 것 같은데?”
 
남은 시험 중 다른 강의인 <군사전략 입문> 가상 훈련에서 아이작과 또다른 임시 페어를 맺고 있는 노노이 라가힛입니다.
 
아이작 D. 토드:(눈이 마주치며 꼭 시간이 멈춘 듯한 감각에 빠져 있다가 정신을 차린다.) 시간이 벌써 그렇게 되었군요. (앨릭스에게 눈빛으로 양해를 구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럼 잠시 다녀올게요, 앨릭스.
 
앨릭스 J. 셔먼:(고개를 끄덕이며 손을 흔든다.) 잘 하고 와. 기다리고 있을게.
 
아이작이 노노이 라가힛과 함께 책장 저편으로 사라지고,
 
그 뒤에서 유리가 나타납니다.
 
유리 모하에:여, 멘티 후배. 뭐 하고 있었냐?
 
앨릭스 J. 셔먼:오, 유리 선배네. (테이블 위로 펼쳐진 갖가지 자료들과 노트북을 손짓한다.) 보다시피 열심히 과제 중. (...라고 하기엔 노트북은 자신과 정반대 방향에 놓여있다.)
 
유리 모하에:(허리를 굽혀 노트북의 내용을 확인한다.) 이거 <전략문화와 전쟁> 레포트지? 그 끔찍한 거? 이렇게 매해 참신하게 학생들 엿먹이는 것도 참 쉬운 일이 아닌데 말야.
 
유리는 근처 서가에서 책을 한 권 뽑아 오더니 아이작이 있던 자리에 앉습니다.
 
후르륵 몇 장을 넘겨 문단 하나를 가리킵니다.
 
:「…전쟁이란 냉병기를 쥔 영웅들이 대강 ‘와아아’ 하고 몰려왔다가 단신으로는 보일 수 없는 무위로 세상을 휩쓸어 ‘그리하여 여기서 역사의 지도는 변곡점을 맞았다’ 따위로 묘사되는 일이 아니다. 레마르크의 ‘이 책은 고발도 아니고 또 고백도 아니다. 비록 포탄은 피했다 할지라도 역시 전쟁에 의해서 파괴된 어느 시대를 보고하는 시도에 지나지 않는다.’ 라는 문장이 저 사막의 신체를 입은 재앙 속에서도 온전히 남아 우리 세대로 전해진 사실을 감사히 여겨야 한다.」
 
<전략문화와 전쟁> 담당교수가 집필한 도서가 분명합니다.
 
그 교수는 특유의 유려한 어조로 전쟁의 비극과 날것 같은 참호전의 참상을 묘사하는 습관이 있었죠.
 
유리 모하에:그 교수님, 자기 책 인용하면 되게 좋아해. 이런 거 참고해서 써봐. 어디까지 썼냐?
 
앨릭스 J. 셔먼:와, 역시 선배. (엄지 척.) 음, 아마... 마지막? 거의 마무리 단계일걸. 이거 인용하면 만점 노릴 수 있으려나?
 
유리 모하에:왜 '아마'인 거야? 이거 합동 과제 아니냐? 인용하면 분명 점수 더 주실 거긴 한데…… (눈을 가늘게 뜬다.) 설마 아이작한테 다 맡겨둔 건 아니겠지?
 
앨릭스 J. 셔먼:(은근슬쩍 시선 피하며 베개용으로 쌓아뒀던 책들을 옆으로 밀어둔다.) 나도 열심히 했어. 나중에 아이작한테 물어봐.
 
유리 모하에:으이그! 겁나 하기 싫은 과제인 건 알겠는데 어쨌건 합동 과제라고. (그리곤 아이작이 쓴 레포트를 대략적으로 쭉 읽어내려간다.) 오…… 이거 상당히 괜찮은데. 인용만 넣으면 정말 A+ 맞을 수도 있겠어. 이러니까 더욱 같이 했단 티는 내야 하지 않겠어? 교수가 이거 읽고 너한테 질문이라도 하면 어쩔 거야?
 
앨릭스 J. 셔먼:그거 다행이네. 아이작이 힘내줬거든. (눈동자를 굴린다...) 뭐어, 어떻게든 되지 않을까? 설마 나한테 질문하겠어.
 
유리 모하에:이거이거 상당히 대책없는 후배를 내가 멘티로 만났구만? (다리를 꼬고 의자 등받이에 몸을 기댄다.) 그래도 아이작이랑은 꽤 가까워진 모양이네. 너희 둘 다 성격이 모난 데가 없어 보이니 잘 맞을 것 같기는 했어.
 
앨릭스 J. 셔먼:그래도 얌전히 지냈잖아, 이때까지. 이 정도는 나름 괜찮은 후배 아냐? (뻔뻔하게 웃는다.) 선배가 보기에도 그래보여? 그거 기분좋네. 난 지금 파트너가 마음에 들어. 아이작도 날 내치지 않은 걸 보면 싫지는 않은 모양이니까 오래 갈 수 있겠지. 어쩌면 그 어렵다는 동조율 99%도 노려볼 수 있지 않으려나~
 
유리 모하에:말썽꾸러기라고 한 적은 없다? 후천적으로 될 수는 있을지 모르겠다만. (키득거린다.)
평균적으로 첫 임시 페어와의 동조율이 50%만 넘어가도 정식 페어로서의 가능성이 있다고 치는 거 알아? 페어들은 보통 이것보다 낮은 동조율로 시작해 합을 맞출수록 동조율이 상승하곤 하니까. 너희는 시작부터 60%를 넘어섰으니, 서로를 놓치는 건 상호 아까운 일이긴 하지.
아이작 걘 타고나길 타인과의 동조율 자체가 좀 높은 애 같더라. 아까 같이 간 노노이인가, 걔랑도 수치가 낮진 않았어. 그러니까 정식 페어가 되고 싶으면 힘내 봐. 착하다고 과제 다 떠넘기기만 하지 말고. (명백한 농조다.)
 
앨릭스 J. 셔먼:...... (잠시 생각에 빠진다.) 그런가. 하긴, 그 애는 누구한테나 상냥하니까. (한숨 섞인 웃음을 짓는다.) 이런. 성실한 모범생은 내 취향에 안 맞는데, 어려운 일이네.
참, 그럼 선배는 요한 선배랑 어땠어? 첫 동조율 말이야.
 
유리 모하에:그래? 그럼 우리 앨릭스 후배 취향은 어떻게 되는데? (손으로 제 턱을 매만지며 묻는다. 누가 봐도 잔뜩 흥미로워하는 기색이다.)
나랑 요한? 우리는~ 어땠더라. (잠시 기억을 더듬는다.) 45% 정도였지. 낮진 않지만 그렇다고 높지도 않은 애매한 수치. 처음엔 성격 합이 안 맞아서 엄청나게 싸웠는데, 싸우다 보니 어느새 정이 들어서 이 녀석 아니면 안 되겠다, 싶더라고. 졸업하자마자 정식 페어를 맺을 거야.
 
앨릭스 J. 셔먼:아, 싫다는 뜻은 아니였어. 모범생이라는 건 내가 되기 귀찮을 뿐이지, 친구나 연인이라면 환영이야. 착하고 귀여운 사람은 누구나 좋아하잖아?
(흥미롭다는 듯이 듣는다.) 그 말, 요한 선배가 들으면 좋아하겠어. 화해는 했지?
 
유리 모하에:그렇지. 나쁜 남자도 꾸준히 수요가 있는 것 같긴 하지만. 인성이 어떻건간에 깊은 관계를 맺으려면 무엇보다 서로에게 진실한 게 최고 아니겠어? 뭐, 내가 연애에 관심이 있는 건 아니지만 말야. (어깨를 으쓱했다.)
싸운 게 언젠데! 당연히 화해했지 그럼. 애초에 우리 둘 다 그 정도 언성 높인 걸로 오래 꽁해있는 성격은 못 된다고.
 
그런 대화로 시간을 보내고 있던 차에, 누군가가 도서관 내 정숙이라는 예절도 신경 쓰지 않고 미친 듯이 달려옵니다.
 
그가 누군지 보기도 전에 앨릭스는 팔을 잡아채여 일으켜 세워졌습니다.
 
"야, 셔먼! 너 가상훈련 때 토드랑 임시 페어 맺었던 애 맞지?"
 
앨릭스 J. 셔먼:맞는데.
그게 왜?
 
"빨리 와! 설계 반동 터졌어!”
 
유리가 몸을 튕기듯 일어납니다.
 
유리 모하에:얼른 따라와! 설계 반동이면 제2의무실로 실려갔을 거야!
 
앨릭스 J. 셔먼:... 알았어, 갈게.
 
의무실 바깥에서부터 심상치 않은 상황이 생겼음을 알 수 있었습니다.
 
올리브빛 에너지가 문 밖까지 일렁이는 것이 보입니다.
 
그 위로 검붉은색 에너지가 얹혀 피처럼 뚝뚝 흘렀습니다.
 
유리가 문을 박차고 들어갑니다.
 
의료진 두 사람이 발작하는 아이작을 억누르고 약을 주사하고 있습니다.
 
항상 온화하고 고요하던 얼굴은 창백하다 못해 푸를 지경이고, 식은땀이 침대보를 적십니다.
 
고통을 참으려는 듯하지만 도저히 그럴 수 없는지, 가슴을 부여잡고 괴로운 신음을 토해냅니다.
 
유리가 침대 곁으로 달려가 의료진까지 제치고 화면에 표시되는 에너지 파동을 읽어냅니다.
 
그가 낭패라는 듯이 외칩니다.
 
유리 모하에:안정도가 엉망이잖아! 선생님, 약물로 해결이 안 되는 수준인가요?
 
의사: 반동이 너무 심하게…… 같이 시험 치르던 학생이 심하게 긴장했던 모양입니다.
 
아이작의 페어는 노노이 라가힛, ‘입학 시험 때 5등인가 했다던’ 그 동기.
 
이를 악문 유리의 시선이 허공에 머무릅니다.
 
정확히는 정체 모를 검붉은색 에너지의 흐름을 따라서.
 
그가 앨릭스를 휙 돌아봅니다.
 
유리 모하에:당장은 방법이 하나뿐인 것 같다. 설계 반동이 이 정도로 왔으면 너라도 정신 똑바로 차려야 해. 이러다 얘 죽어!
 
의사: 아니, 유리 학생. 설계 반동이 위험하긴 해도 사망할 정도까지는…….
 
유리 모하에:죽어요!
 
무슨 확신이라도 있는지 고함을 지른 유리가 올올히 일어섭니다. 금색 눈동자가 불타는 듯 빛납니다.
 
유리 모하에:이거 에너지 주입 정도로는 안 돼.
언약해. 정식 페어 맺으라고.
정식 페어가 된 순간 에너지 유량이 큰 폭으로 증가하니, 날뛰는 각성자를 안정시킬 수 있는 거의 유일한 수단이야. 어쩔래?
 
앨릭스 J. 셔먼:...... (아이작의 모습에 놀란 것도 잠시, 죽는다는 말에 정신을 차린다.) 뭘 물어보는 거야. 하는 수 밖에 없잖아?
(여유로운 웃음 따위는 이미 사라진지 오래였다. 서둘러 아이작에게로 다가가 선배를 돌아본다.) 언약은 상호 동의 하에 맺을 수 있다고 알고 있어. 지금 아이작이 이 상태여도... 가능해?
 
유리 모하에:정신을 잃지는 않았으니, 상황을 설명하고 동의를 받아. 어떻게든 받아내야 해! 살리고 싶다면. (힘을 주듯 앨릭스의 어깨를 꽉 쥐었다가 놓았다.)
난 의사 선생님들이랑 밖으로 나가 있을게. 에너지가 엉킬 수도 있어서 언약할 땐 근처에 다른 각성자가 있어선 안 돼.
힘내라. (그리고 의료진에게 눈짓해 함께 바깥으로 나간다.)
 
사람들이 오가며 내는 온갖 소음으로 시끄럽던 의무실이 순식간에 고요해집니다.
 
아이작이 이따금 흘리는 신음만이 공간을 채웁니다.
 
앨릭스 J. 셔먼:...... (아이작의 손을 단단히 붙잡고 부드러운 목소리로 속삭인다.)
아이작. 나야, 앨릭스. 내 말이 들린다면 대답해줘.
 
아이작 D. 토드:(한껏 힘이 들어간 손이 앨릭스의 손을 무자비하게 붙들었다가 덜덜 떨리기를 반복한다. 단정하던 교복은 엉망으로 풀어헤쳐졌고 고통에 몸을 뒤틀 때마다 흰 머리칼이 베개 위로 흩어진다. 시야가 이지러져 피처럼 붉은 에너지 말고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을 만큼 상태가 엉망이었으나, 저를 붙드는 손길에 가까스로 속삭임을 알아듣는다.) 애, 앨릭, 스……?
 
앨릭스 J. 셔먼:(답지않은 악력에도 손을 놓지 않은 채로, 오히려 꼭 붙잡는다.) 응. 제대로 들리는구나. 다행이네. (안심하라는 듯이 아이작의 머리칼을 쓰다듬는다.)
많이 아프지, 괜찮아. 내가 왔으니까 해결할 수 있어. 그러니까... 넌 이것 하나만 답해주면 돼.
(간절함과 절박함이 담긴 목소리로 속삭인다.) 내 정식 파트너가 되어줘, 아이작.
선택지를 별로 주지 못해서 미안하지만, 그래야 널 구할 수 있어.
...... 들어줄 거지? 이번에도.
 
아이작 D. 토드:정식…… (이제껏 느껴본 적 없는 충격파 같은 고통에 제대로 된 사고가 어렵다.) 언약을… 말하는 건가요?
하, 하지만, 윽. (심장을 부여잡으며 신음했다. 겨우 쥐어짜낸 목소리는 금방이라도 꺼질 듯 아슬아슬했다.) 당신이 더 좋은, …좋은 상대를 만날 가능성을, 빼앗을 수는…….
 
앨릭스 J. 셔먼:하, 아이작. 지금 이 상황에도 그런 말을 하는 거야? 그런 건 됐어. 난......
(금방이라도 목숨이 꺼질 것처럼 위태로운 모습에 줄곧 태연함을 연기했던 목소리가 떨리기 시작한다.)
난, 네가 아닌 다른 파트너는 생각하기도 싫어. 진심이야. 믿어도 좋아.
이대로 널 잃을 수는 없어. 부탁이야......
 
아이작 D. 토드:(시야가 점점 더 붉고 푸르게 번져가고, 심장은 수축과 팽창을 넘어 곧 파열될 것만 같다. 그런 상황에서도 말린 건 자신이 결코 파트너로 삼기에 좋은 이가 아니라는 사실을 잘 알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정신이 흐린 와중에도 앨릭스의 목소리가 떨리는 걸 알 수 있었다. 더는 거절할 수 없다.)
알겠, 어요. (고개를 희미하게 끄덕여 겨우 긍정의 의사를 표했다.) 뜻대로…… 할게요.
 
구현자는 본인의 이능력과 관련된 핵심 기능 판정을, 설계자는 <항법> 판정을 시도합니다.
 
아이작 D. 토드:
예술 Roll
기준치: 70/35/14
굴림: 74
판정결과: 실패
 
앨릭스 J. 셔먼:
항법
기준치: 50/25/10
굴림: 44
판정결과: 보통 성공
 
앨릭스는 제대로 경로를 설정했지만, 아이작의 상태가 좋지 않은 탓인지 에너지가 제대로 얹히지 못하고 빗나갑니다.
 
아이작 D. 토드:아악! (거듭되는 반동의 여파도 이를 악물며 참아왔지만, 언약 시도가 실패하며 새로운 통증이 얹히자 결국은 비명을 참지 못한다.)
 
성공할 때까지 재시도 가능합니다.
 
앨릭스 J. 셔먼:....... 아이작. (비명소리에 이를 악문다. 하지만, 자신까지 흐트러져서는 더 큰 고통만 줄 뿐이다.)
항법
기준치: 50/25/10
굴림: 12
판정결과: 어려운 성공
 
아이작 D. 토드:
예술 Roll
기준치: 70/35/14
굴림: 68
판정결과: 보통 성공
(저를 붙잡은 손길을 감각하며 겨우 정신을 잃지 않고 에너지를 경로 위에 얹는 데 성공한다.)
 
간난신고 끝에 뜨겁고 전류 같은 에너지가 심장까지 메다 꽂혔습니다.
 
일견 자해와 비슷하다는 기분이 들 만큼 무자비한 방식의 지배입니다.
 
심장을 움켜쥐는 에너지의 흐름, 온전히 열어젖힌 정서, 경로,
 
녹은 금속처럼 무섭도록 달아오르는 두 사람의 체온.
 
세상을 묘사한 페이지가 불타 부스러지고 판정과 글줄로 이루어진 우주에 오로지 둘만이 온전한 것처럼.
 
잠시 후, 백금색 에너지가 자연스레 피어올라 허공을 맴돌기 시작했습니다.
 
고통으로 인해 생리적 눈물이 맺힌 아이작의 눈에 마침내 초점이 돌아옵니다. 정신을 차린 것 같네요.
 
앨릭스 J. 셔먼:...... 아이작. (조심스럽게 손을 내밀어 눈물을 닦아준다.)
괜찮아?
 
아이작 D. 토드:(에너지가 심장을 관통하는 순간, 한 번도 겪어본 적 없던 강렬한 감각과 함께 시야가 깨끗해진다. 온몸을 휩쓸던 반동의 여파가 차차 가라앉고, 그제야 눈앞의 이가 명확하게 보였다.) 네…… 이제는 괜찮아요. 고마워요. 절 위해 이렇게까지 하실 필요는 없었는데.
 
에너지 유량이 크게 늘어났습니다.
 
이전까지 되지 않던 것이 지금 이 순간부터는 수월하게 가능할 것 같습니다.
 
몹시도 기이한 기분입니다.
 
아이작이 아주 멀어지더라도 찾아낼 수 있을 것만 같은 감각.
 
언젠가 아주 떠나 버릴 것을 예고하듯이.
 
앨릭스 J. 셔먼:(화면 속의 에너지 파동이 안정된 곡선을 그려내는 것을 눈에 담고서야 안심한다.)
...... 죽을 뻔 했던 거, 알고 있지. 네 목숨이 걸린 문제인데, 내가 어떻게 두고 볼수만 있겠어?
(만약 그렇다고 해도, 놓칠 수는 없어. 널 붙잡았던 손에 더 힘을 준다.)
어디 가지마. 이제부터 넌 내 파트너니까. 알겠지?
 
아이작 D. 토드:그 정도인 줄은 몰랐어요. 설계 반동이 뭔지 배운 적은 있지만 이렇게나 괴롭다니 이상하다고 생각하기는 했는데……
가지 않을게요. (왜 그런 말을 하는지 몰라, 조금 의아한 낯빛이 스쳤다.) 당신의 파트너니까요.
 
열병에 들뜬 사람처럼 아이작은 힘겹게 숨을 내쉽니다. 큰 추위에 시달리는 듯합니다.
 
에너지 유량은 급속도로 늘어났는데, 반동으로 인해 고갈된 에너지가 도로 채워지질 않으니 추위를 느끼는 것이죠.
 
이것을 안정시키는 방법은 사람의 체온, 그리고 접촉으로 건네주는 에너지 주입뿐이라는 사실을 당신은 알고 있습니다.
 
아이작 D. 토드:앨릭스. 그런데 너무 추워요. (작게 속삭였다. 고통은 가셨음에도 여전히 몸이 와들와들 떨려왔다.)
 
앨릭스 J. 셔먼:...... 그래? (입고 있던 자켓을 벗어 덮어주고는, 조심스럽게 끌어안는다. 파트너의, 아이작의 안정된 심장소리가 들려온다. 만약, 조금이라도 늦었다면......)
(아니, 쓸데없는 생각은 넣어두자.)
(천천히 제 에너지를 아이작에게 흘러보낸다.) 지금은 어때?
 
아이작 D. 토드:(힘이 들어가지 않아 무거운 팔을 애써 들어 앨릭스를 마주 끌어안았다. 평소라면 절대 하지 않을 짓인데도, 어리광이라도 부리듯이. 체온이 닿고 에너지가 주입되자 몸이 조금씩 완전하게 안정을 찾아간다.) 훨씬 나아졌어요.
불편하시겠지만 조금만 더 이대로 있어 주시면 안 될까요……?
 
앨릭스 J. 셔먼:(너의 안정에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마음으로, 더 많은 에너지를 네게 보낸다.)
오늘 들은 말 중 가장 기쁜 말인걸.
 
한바탕의 소란. 앨릭스의 에너지 주입으로 아이작은 차차 반동의 여파에서 회복해 나갑니다.
 
이렇게 두 사람은 정식 페어가 되었습니다.
 
보통 사관학교를 졸업한 직후, 혹은 입대를 하고서야 페어를 맺는 경우가 많다는 걸 생각하면 1학년부터 정식 페어가 된 건 무척이나 이례적인 일이죠.
 
하지만 개의치 않습니다. 그를 살리기 위해서였으니까.
 
급박한 상황에서 쫓기듯 맺은 관계지만, 나눈 언약만큼은 거짓 하나 없는 진실이었습니다.
 
그렇게, 또 시간이 흐릅니다.
 
모하메드 5세 광장에서 모하메드 알 한살리 거리를 따라 바다 쪽으로 10여분 걸으면 대형 선박들이 정박한 카사블랑카 항구가 나타납니다.
 
유럽 국가들과의 거의 유일한 교역 통로라고 할 수 있는 곳이죠.
 
오전부터 카사블랑카 항구에서 짐을 잔뜩 실은 트럭 여러 대가 각성자사관학교로 들어옵니다.
 
새 나라가 만들어졌다고 한들 멀쩡한 건물을 부수고 새 벽돌을 올릴 까닭은 없었으므로 아프리카 연합 공화국의 도시들은 저마다 기존 건축 양식을 아직 그대로 따르고 있습니다.
 
모로코의 상징은 흰 벽에 녹색 지붕을 이은 호화롭고 장대한 건물들.
 
아라베스크 문양이 조각된 나무판이 벽면을 둘러싸고, 안뜰은 대리석으로 꾸몄죠.
 
젤리즈 타일이 섬세하게 벽을 장식했고, 세밀한 조각과 촘촘한 문양은 사람을 황홀케 합니다.
 
종교 건축물처럼 웅장한 파사드를 지나 여러 개의 건물을 거쳐 이르는 중앙 정원은 안달루시아풍입니다.
 
오늘은 각성자사관학교의 명절이라고 할 수 있는 ‘베로니카 주간’ 둘째 날입니다.
 
본래 카사블랑카에는 없었던 명절이고, 다른 아프리카 지역에서 유래한 것도 아닌 절일이지만 학생들은 베로니카 주간을 퍽 좋아합니다.
 
초대 학장이 어릴 적 동생의 생일이 되면 가정에서 하던 놀이를 시험 삼아 내놓았던 게 의외로 좋은 반응을 얻어 이제는 아예 축제 주간으로 확장된 것이죠.
 
학생들은 이미 손에 맥주 한 잔씩을 든 채 동아리들이 준비한 행사에 참여하거나 미로 찾기 놀이에 끼는 등 즐거워하고 있습니다.
 
앨릭스도 출발할 때가 되었습니다.
 
1학년들은 메인 게임에 참여해야 하거든요.
 
두 사람이 짝을 이뤄 한 조씩.
 
지금 기숙사 밑에선 아이작이 기다리고 있을 겁니다.
 
앨릭스는 어떤 옷차림일까요? 상세묘사부탁^^
 
앨릭스 J. 셔먼:(옷장 안 깊숙히 넣어두었던 사복을 꺼낸다. 정리를 대충 한 탓에 조금 구겨지긴 했지만... 티나지 않을 정도니 괜찮겠지.)
(학교에 입학한 이래로 처음 맞이하는 축제에 자신도 모르게 콧노래를 흥얼거린다. 이런 축제야, 많이 즐겨보긴 했지만... 함께 하는 상대는 다르니까.)
(오늘 입을 것은, 린넨 재질의 얇은 하얀 반팔 셔츠와 옅은 베이지색 슬랙스. 다음으로 깔끔하게 뒤로 넘겨 선물받은 리본으로 묶는다. 그리고 거울을 보며 옷매무새를 정돈하는 것으로 마무리하면 끝.)
이런, 늦었나.
(워치에 떠오른 시간을 보고 서둘러 기숙사 밑으로 향한다. 샌들을 잘못 신은 탓에 넘어질 뻔하긴 했지만...)
 
1층 로비에서 아이작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아이작 D. 토드:아, 앨릭스. (손을 가볍게 흔들었다. 올리브색 데님 셔츠에 품이 적당히 큰 청바지, 하얀 캡모자와 하얀 캔버스화 차림이다.)
사복 차림이신 건 처음 보는데, 멋지게 입고 나오셨네요. (웃는다)
 
앨릭스 J. 셔먼:(마주 손 흔든다.) 칭찬 고마워. 필요할 때 입으라고 어머니께서 사주셨던 건데, 이제서야 입게 되네.
너도, 아이작. 예쁜 옷으로 잘 꺼내 입었네. 어울려. 축제 기간에만 볼 수 있는 게 아까운걸.
 
아이작 D. 토드:그냥 적당히 어울려 보이는 걸로 입었을 뿐인걸요. (쑥스러워한다.) 그럼 갈까요.
 
두 사람은 함께 정원으로 향합니다.
 
이 계절이면 흐벅지게 피어 살랑이는 무영화가 너른 정원과 온실에 가득합니다.
 
안개처럼 여리게 나풀거리는 꽃잎, 태양처럼 찬란한 금색을 지녔다 하여 무영화라는 이름이 붙었죠.
 
밝은 백금색 꽃 수백 송이가 바람 아래에서 부드럽게 흩날리는 모습은 마치 안개 틈으로 비치는 햇살처럼 서정적입니다.
 
2층 발코니에서 내려다보면 더욱 장관입니다.
 
야자수 아래의 흰 벽돌과 로코코식 낮은 울타리 안에 피어나 깨질 듯이 반짝이는 꽃들.
 
군데군데 켜 놓은 조명이 부드럽게 퍼지면서 만드는 야경, 속살거리는 학생들의 목소리, 낭만적이고도 뜨거운 열대의 밤.
 
축제 둘째 날, 이 밤에는 베로니카 주간의 핵심적인 행사인 ‘무영화 찾기’가 열립니다.
 
종종 피어나는 돌연변이를 아예 품종으로 만든 은색 무영화가 있는데,
 
이 은색 꽃을 노란 꽃들 사이에 단 서른 송이만 숨겨 놓습니다.
 
학급마다 정원을 돌며 은색 꽃을 가장 많이 찾아낸 사람이 상품을 받는 놀이죠.
 
두 사람이 짝을 짓는데, 이번에도 아이작과 앨릭스는 한 팀이 되었습니다.
 
설계 반동이라는 상황상 어쩔 수 없는 일이긴 했지만,
 
1학년인 주제에 벌써부터 정식 페어가 되었다는 것이 소문났기 때문이죠.
 
두 사람은 꽤 이목을 끄는 한 쌍입니다.
 
앨릭스 J. 셔먼:우리, 꽤 유명한가 봐. (속닥거린다.)
 
아이작 D. 토드:(정원에 나오자마자 시선이 집중되는 상황에 잠깐 당황했다.) 아무래도 일찌감치 정식 페어가 되는 게 흔치 않은 일이긴 하지만요.
앨릭스가 잘생겨서 그런 거 아닐까요? (얼렁뚱땅)
 
앨릭스 J. 셔먼:(눈 마주치는 사람들한테 여유만땅 미소나 날려준다. 이런 거 많이 겪어봐서 익숙하다.)
응? 그건 너도 마찬가지잖아. 내가 들은 네 소문을 다시 읊어줘야 깨달으려나~ (네 뺨 쿡쿡 찌른다.)
 
아이작 D. 토드:저는 소문에 관심없다니깐요. (쿡쿡 찔린다. 왠지 얼굴 둘 곳이 없어지는 듯한 느낌에 얼른 꽃덤불 사이로 다리를 굽힌다.) 무영화나 찾아볼까요……?
 
앨릭스 J. 셔먼:(그러거나 말거나 이미 놀리고 있다.)
어디보자... 학기 초엔 예쁘고 귀여운 애가 착한데 공부도 잘한다고 들었었지. 아, 그거 알아? 여학생들 중에선 널 짝사랑하는 애들도 많아. 어떤 애들 중에선 이미 고백 준비 중이기도 하다던데~ (장난기 가득한 얼굴로 키득거린다.)
(실컷 놀렸으니 넘어가준다.) 그럴까? 움직이는 건 질색이지만 축제는 좋으니까.
 
아이작 D. 토드:(귀까지 빨개졌다. 이제 거의 꽃덤불 사이로 숨고 있다.) 그런 말 마세요…….
 
무영화를 찾아본다면 <관찰력> 판정!
 
앨릭스 J. 셔먼:어, 빨개졌다.
이제 익숙해질 때도 되지 않았어~? (또 놀림)
(와중에 무영화 한 번 찾아본다.)
관찰력
기준치: 60/30/12
굴림: 64
판정결과: 실패
(놀려먹으면서 찾느라 못찾았다...)
 
놀리는 데 정신이 팔려서 그런지 안 보이네요 ㅋ
 
앨릭스 J. 셔먼:(ㅋㅋ)
(그치만 놀리는 거 어떻게 포기함)
 
ㅇㅈ을 ㅇㅈ
 
아이작 D. 토드:전 몇 번 들어본 적 없어서 익숙해지지가 않는걸요. (빨개진 귀를 양손으로 가리면서 애써 꽃이나 찾아본다.)
관찰력
기준치: 75/37/15
굴림: 6
판정결과: 극단적 성공
(놀림과 시선에서 도망치려고 자세까지 낮추며 꽃에 집중하다 보니, 눈앞에 무영화가 나타난다. 언제 부끄러워했냔 듯 앨릭스를 불렀다.) 앨릭스, 여기! 여기에 두 송이나 있어요.
 
아이작이 가리켜는 곳을 보니 백금색 꽃 사이로 소담한 은빛 무영화 두 송이가 수줍게 숨어 흩날리고 있습니다.
 
앨릭스 J. 셔먼:어라, 정말?
(아이작가 들여다보는 쪽으로 고개를 돌리면, 두 송이의 은빛 무영화가 시야에 들어온다.)
와, 두 송이나 찾은 거야? 대단하네~
(아이작 머리 쓰담쓰담)
 
아이작 D. 토드:(얼떨결에 쓰다듬받는다.)
(막상 꽃을 찾으니 일반적인 꽃에선 볼 수 없는 은색 빛깔이 아름다워 꺾기가 아까워진다.) 앨릭스는 무영화 찾기 대회, 1등하고 싶으세요?
 
앨릭스 J. 셔먼:뭐어, 1등 상품이 뭔지 궁금하긴 하지. 같이 즐기는 첫 축제잖아?
(꽃이랑 아이작 번갈아보고는,) 왜 물어봤는지 알겠다. 꺾어가는 게 아까운 거지?
 
아이작 D. 토드:맞아요. 이렇게 예쁜데, 꺾으면 금방 시들고 말 테니까요. 하지만 저희가 그냥 두고 가도 다른 분들이 찾아낼지도 모른단 생각이 들기도 하네요.
 
앨릭스 J. 셔먼:그것도 그래. (곰곰히 생각하더니,) 그럼... 지금 찾은 건 기념으로 우리가 그대로 데려 갈까? 플라스틱 컵 같은 곳에 뿌리 채 넣어서, 흙이랑 같이. 전부 다 그렇게 하는 건 어렵겠지만. 어때?
 
아이작 D. 토드:아……! 좋은 생각이에요. (안색이 밝아졌다.) 그럼 제가 주점에서 컵을 받아올게요. 앨릭스는 꽃을 잘 지켜주세요.
(당부하고는 호다닥 주점으로 향해 맥주용 플라스틱 컵 두 개를 받아온다. 하나를 앨릭스에게 건넸다.) 하나씩 조심히 잘 담아볼까요?
 
앨릭스 J. 셔먼:(당부한대로 꽃 옆에 쭈그려앉아 아이작을 기다렸다...)
응, 그러자.
(플라스틱 컵 하나에 은빛 무영화 하나와 주변의 흙을 조심히 담아본다.) 이렇게 하는 게 맞을지 모르겠네. 꽃은 처음 키워보거든.
 
아이작 D. 토드:무영화는 키우기 어려운 꽃은 아니니, 물을 제때 주고 볕이 잘 드는 창가에 두면 잘 죽지 않을 거예요. 돌연변이 종은 어떨지 잘 모르겠지만…… 오래 살면 좋겠네요. (마찬가지로 무영화와 그 주변의 흙을 뿌리째 떠서 조심히 컵 안에 담았다. 축제가 끝나면 제대로 된 화분을 구해서 옮겨 심어야겠다.)
 
컵 안에 담긴 은빛 꽃잎이 퍽 예쁩니다.
 
다른 곳에서도 무영화를 찾아본다면 계속 <관찰력> 판정~
 
앨릭스 J. 셔먼:그래? 다행이네. 나중에 어머니께 영양제 같은 걸 보내달라고 해야겠어. 식물을 좋아하시거든. 집의 정원도 직접 관리하셔서, 아마 보내주실 거야. 받게 되면 네게도 줄게.
(다른 곳도 찾아본다.)
관찰력
기준치: 60/30/12
굴림: 56
판정결과: 보통 성공
 
아이작 D. 토드:정말요? 그럼 너무 감사할 것 같아요. (조금 들떴다.)
관찰력
기준치: 75/37/15
굴림: 15
판정결과: 극단적 성공
 
이번에는 앨릭스도 은색 무영화를 찾아냅니다!
 
담벼락 사이에 아슬아슬하게 피어 있었네요. 이런 곳에 숨겨두다니.
 
아이작은 또다시 한번에 두 송이나 찾아냅니다. 이쯤 되면 매의 눈이네요.
 
앨릭스 J. 셔먼:이번에도 두 송이야? 눈썰미가 대단한데.
 
아이작 D. 토드:이렇게 많이 찾을 줄은 생각도 못 했어요. (얼떨떨해하면서 꽃을 꺾었다.) 이쯤이면 1등할 수 있겠죠……?!
 
앨릭스 J. 셔먼:아마도? (잘 찾아지니까 좀 들떴다.) 이렇게 잘 찾아지니까 왠지 욕심이 나는걸.
 
아이작 D. 토드:많이 돌아다녔으니, 뭐라도 마시면서 찾아보지 않으시겠어요? 주점이 굉장히 많이 차려졌네요. 저는 술보단 음료수가 낫지만.
 
앨릭스 J. 셔먼:좋은 생각이야. 안 그래도 목이 마른 참이었는데.
 
주변에 음식을 파는 주점들이 쭉 늘어서 있으니, 원하는 대로 골라 가봅시다.
 
핫도그나 팝콘, 츄러스, 아이스크림 등 다양한 음식도 팔고 있습니다.
 
앨릭스 J. 셔먼:(메뉴판 앞에 두고 고민하다가...) 난 팔로마 한 잔. 마시고 싶은 거 있어? 내가 살게.
여기 무알콜 칵테일도 파네.
 
아이작 D. 토드:앗, 제가 사도 되는데. 그럼 감사히 받을게요. (아무 음료수나 마시려다가 마찬가지로 메뉴들을 들여다보며 신중히 고민한다.)
그럼 저는 골드 메달리스트로 부탁드려요.
 
앨릭스가 결제하자 곧 바텐더가 주문한 칵테일을 만들어줍니다.
 
새콤한 자몽 향이 나는 팔로마와 달고 상큼한 골드 메달리스트는 빛깔부터가 맛있어 보입니다.
 
앨릭스 J. 셔먼:오,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맛있어 보이네. 좋은걸.
그럼 마시기 전에~ 짠, 먼저 할까?
(유리잔이 아니라 소리는 거의 안나겠지만, 컵 내민다.)
 
아이작 D. 토드:좋아요. (미소를 띄며 컵을 살짝 부딪혔다. 소리는 안 나도 분위기 탓인지 그저 즐겁다.)
(한 모금 마셔보곤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인다.) 무알콜이라 술 맛도 전혀 나지 않고, 평범하게 과일 음료수 같네요. 잘 마실게요, 앨릭스.
 
앨릭스 J. 셔먼:이 정돈 별 거 아닌걸. (건배 후 한 입 마신다.)
술은 별로 안 좋아하나 봐? 맛있는데.
 
아이작 D. 토드:아무래도요. 괜히 취해서 못난 꼴이라도 보이면 안 되니까요. 아직 주량을 정확히 모르기도 하고요. (앨릭스 건 입에 맞으시나요? 하면서 홀짝홀짝 마신다.)
 
앨릭스 J. 셔먼:앞으로 술 마실 일이야 많을 수도 있는데, 미리 알아두는 게 좋지 않겠어? 괜찮다면 언제 나랑 한 번 마시자.
(어느새 다 마시고 똑같은 걸로 다시 주문해왔다.) 마셔볼래?
 
아이작 D. 토드:하긴 그러려나요. (고개를 끄덕였다.) 앨릭스는 이미 많이 드셔본 모양이에요. 성년이 된 지 얼마 안 되었는데. (미성년자 때부터 마셨다고는 꿈에도 모른다)
음…… 그럼 딱 한 모금만 마셔볼게요. (앨릭스의 잔을 받아 조심히 마셔본다. 그리 높은 도수는 아니라지만, 술은 처음이다 보니 자몽과 섞인 맛이 신기하면서도 이상해 묘한 표정이 된다.) 과일 맛이 나면서도 뭔가…… 알코올 맛도 확실하네요. 한 모금으로 취할 만큼 제가 술이 약하지는 않아야 할 텐데요…… (갑자기 걱정됨)
 
앨릭스 J. 셔먼:뭐어... (눈동자 굴린다.) 우리 아버지가 애주가시거든. 그래서 접할 기회가 많았다고나 할까.
이건 다른 칵테일에 비해 도수가 높은 편이 아니거든. 혹시나 취해도 내가 다 수습해줄 수 있으니까 걱정말고. 나 못 믿어?
 
아이작 D. 토드:아아, 그런 거였군요. (곧이곧대로 믿는다.)
이게 도수가 낮은 술이면 다른 건…… 지금도 알코올 맛이 꽤 나는데요. (사실 '도수'의 정확한 개념과 차이도 아직 잘 모른다. 그러다가 못 믿냐는 물음에 얼른 손사래를 쳤다.) 당연히 믿죠. 그래도 못난 모습을 보이면 창피하니깐요. 주말처럼 시간이 날 때 앨릭스한테 배워야겠는걸요.
 
앨릭스 J. 셔먼:(믿는다는 말에 미소 짓는다.) 그 말, 듣기 좋은걸.
좋아, 약속한 거다? (새끼 손가락을 내민다. 확실하게 약속 받아두려는 속셈.) 미리 준비해둘테니까 나중에 꼭 초대 받아주기야.
 
아이작 D. 토드:네에. 대신 너무 독한 술은 봐주세요……? (희미하게 웃으며 새끼손가락을 걸고 엄지손가락까지 꾹 맞댔다. 술이 아니라 분위기에 취하기라도 한 듯 기분이 들뜨고 웃음이 난다.)
 
노점 외에도 다양한 부스들이 마련되어 있습니다.
 
다트를 던져 풍선을 터뜨리는 게임 부스나 사진을 찍을 수 있는 포토존,
 
카드 게임 부스, 운세를 봐주는 타로 부스, 다양한 코스프레를 해볼 수 있게 도와주는 부스나 페이스 페인팅을 그려주는 곳도 있습니다.
 
발코니에서 휴식을 취하며 야경을 구경해도 좋습니다.
 
앨릭스 J. 셔먼:(주변 둘러보다가)
아이작, 우리 저거 해볼래?
(손가락을 가리킨 곳에는 다트를 던져 풍선을 터뜨리는 게임 부스가 있다.)
재밌을 것 같은데.
 
아이작 D. 토드:(앨릭스가 가리켠 곳을 본다.) 한 번도 해본 적이 없어서 잘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좋아요. 저것도 많이 맞추면 상품을 주려나요?
 
두 사람은 풍선 게임 부스로 향합니다. 한쪽 벽면에 풍선이 가득 붙어 있고, 1등부터 5등 보상이 쭉 쓰여 있네요.
 
앨릭스 J. 셔먼:오, 상품이 꽤 많네.
 
한 사람당 다트는 5개씩 주어지고, 몇 개를 맞췄느냐에 따라 1등부터 5등까지가 결정됩니다.
 
참고로 이능력 사용은 금지라고 하네요!
 
다트를 던질 시 <투척> 판정합니다.
 
앨릭스 J. 셔먼:한 번 던져볼까.
투척
기준치: 20/10/4
굴림: 91
판정결과: 실패
 
아이작 D. 토드:(다트를 들고 이리저리 가늠해보다가 던져본다)
투척
기준치: 20/10/4
굴림: 29
판정결과: 실패
 
학생들이 죄다 이능력자인데다 단련을 통한 신체 능력이 좋은 걸 고려해서인지 풍선이 상당히 멀찍이 세팅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투척과 연관없는 이능력을 가진 두 사람은... 처참히 빗나가고 말았네요.
 
괜찮아요. 아직 기회는 네 번이나 남았습니다. 계속해서 가보자고
 
앨릭스 J. 셔먼:(아이작은 풍선 옆에라도 꽂혔지만, 나는 아예 부스 밖으로 던져졌다...)
(그래도 꿋꿋하게 다시 던져본다.)
투척
기준치: 20/10/4
굴림: 64
판정결과: 실패
역시 잘 안 되네~
 
풍선들 틈에 꽂혔네요! 아까웠다... 진짜로.
 
아이작 D. 토드:거리가 좀 멀어서 그런가 봐요. (이얍)
투척
기준치: 20/10/4
굴림: 28
판정결과: 실패
(행운 8 깎겠습니다)
 
행운 8 감소, 성공으로 판정.
 
아이작이 던진 다트가 아슬아슬하게 풍선 하나를 터뜨리는 데 성공합니다!
 
펑, 하는 큰 소리가 기분 좋게 느껴지네요.
 
아이작 D. 토드:와, 제가 맞췄어요. (기뻐하다가도 앨릭스 눈치 슬쩍 봄)
 
앨릭스 J. 셔먼:(그 모습보고 휘파람 분다.)
잘 던지는데?
(하이파이브~)
 
아이작 D. 토드:(어설프게 하이파이브한다.) 운이 좋았죠.
 
앨릭스 J. 셔먼:운도 실력이라는 거 몰라?
넌 너무 겸손해서 탈이라니까.
 
아이작 D. 토드:얼른 다음 다트나 던져 봐요~ (모른척)
 
앨릭스 J. 셔먼:모른 척한다~ (놀림)
(다시 던져본다!)
투척
기준치: 20/10/4
굴림: 9
판정결과: 어려운 성공
 
앨릭스가 던진 다트가 풍선을 퍼벙, 두 개나 터뜨립니다!
 
아이작 D. 토드:와! (박수 짝짝짝)
투척
기준치: 20/10/4
굴림: 96
판정결과: 대실패
(그리고 처참하게 빗나감)
 
앨릭스를 축하해주느라 조준을 엉망으로 했는지, 다트는 풍선에 가기도 전에 바닥으로 떨어지고 맙니다.
 
앨릭스 J. 셔먼:저런.
괜찮아, 아직 기회는 있어.
못 본 척해줄게.
 
아이작 D. 토드:(제 갈피를 잡지 못하는 실력이 약간 웃긴 지경에 도달했다.) 네에……
 
네번째 다트 던져봅시다!
 
앨릭스 J. 셔먼:
투척
기준치: 20/10/4
굴림: 8
판정결과: 어려운 성공
 
이번에도 앨릭스의 다트가 풍선 두 개를 터뜨립니다!
 
한 번 성공하며 완전히 기술을 터득했군요.
 
던지는 순간 딱 사선으로 꺾어 가면 다트의 바늘이 기막히게 풍선 두 개를 터뜨리는 겁니다...
 
아이작 D. 토드:
투척
기준치: 20/10/4
굴림: 52
판정결과: 실패
 
반면 아이작은 평범하게 빗나갑니다 ㅋ
 
아이작 D. 토드:앨릭스는 1등 경품을 타실 것 같은데요? (또 박수친다.)
 
앨릭스 J. 셔먼:경품이 뭘지 기대되네~
(마지막으로 한 번 더 던져본다.)
 
마지막까지 힘내서 던져보자고요!
 
앨릭스 J. 셔먼:
투척
기준치: 20/10/4
굴림: 95
판정결과: 실패
 
이런! 힘이 많이 들어갔는지 풍선 옆의 빈 벽에 꽂히고 말았습니다.
 
괜찮습니다. 이미 1등은 따놓은 당상이에요.
 
아이작 D. 토드:
투척
기준치: 20/10/4
굴림: 82
판정결과: 실패
 
옆에서 계속 실패하는 당신의 파트너를 보세요 ㅋ
 
앨릭스가 무난하게 1등을 차지합니다.
 
1등 경품은 간이 솜사탕 메이커 기계입니다. wow
 
솜사탕에 관심있나요?
 
아이작 D. 토드:(생각보다 본격적인 경품이라 놀람)
 
앨릭스 J. 셔먼:이런 건 처음보네. 신기해.
 
아이작 D. 토드:솜사탕을 만드는 건 어렵지 않으니 먹고 싶을 때마다 기숙사에서 만들 수 있겠네요. 소문이 나서 앨릭스에게 만들어 달라고 찾아오는 거 아니에요? (앨릭스의 기숙사 방문 앞에 줄서 있는 학생들을 상상하고 웃음을 참는다.)
 
앨릭스 J. 셔먼:(아이작의 말 듣고 상상해보다가, 웃음을 터뜨린다.) 하하! 그거 웃기네.
기분 내킬 때 한 번 해보는 것도 나쁘지 않겠어.
(물론 진짜로 할 확률은 5%쯤 되겠지만...)
솜사탕 먹고 싶으면 내 방으로 와. 언제든지 만들어줄게.
 
아이작 D. 토드:후후, 술도 알려주시고 솜사탕도 만들어주시면 제가 너무 앨릭스에게 받기만 하는 것 같은데요?
 
앨릭스 J. 셔먼:파트넌데, 뭘. (어깨 으쓱인다.) 이 정도야 해줄 수 있지.
그럼 상품도 받았으니까...
다음엔 저기로 가볼까?
(페이스 페인팅 부스를 가리킨다.)
보니까 다들 얼굴에 뭔가 하나씩 그리고 다니더라.
 
아이작 D. 토드:처음에는 스티커인 줄 알았는데, 부스가 있었군요. (고개 끄덕인다.) 좋아요, 저희도 가서 뭔가 그려봐요.
 
페이스페인팅 부스에서는 여러 학생들이 의자를 마련해두고 찾아온 이들에게 그림을 그려주고 있습니다.
 
한쪽에 참고용 그림 책자가 놓여있고, 책자에 없어도 원하는 그림을 말하면 그려줄 수 있다고 하네요.
 
미술에 소질이 있는 학생들뿐 아니라 그림 관련 능력을 지닌 학생들도 꽤나 있어 보입니다.
 
앨릭스 J. 셔먼:(참고용 그림 책자 들여다보다가...)
저기, 이 친구는 이거로 (책자에 있는 강아지 그림 가리킨다.) 그려줄래?
이미지
(이거임)
 
아이작 D. 토드:에? (당연스럽게 각자의 얼굴에 그릴 걸 정하는 줄 알았으므로, 바보 같은 소리가 튀어나왔다.) 저, 저요?
 
앨릭스 J. 셔먼:응. (^-^)
 
아이작 D. 토드:저…… 저한테 이런 귀여운 강아지를요? (ㅠㅠ)
 
앨릭스 J. 셔먼:잘 어울릴 것 같은데 왜 그래.
(진심 반, 놀려먹으려는 마음 반.)
안 해줄 거야? (梁)
 
아이작 D. 토드:(강아지 그림을 한참이나 들여다보다가 앨릭스의 강아지(이쪽이 진짜 강아지 같은데) 눈망울에 무장해제됐다.) 하, 할게요……. (ㅠㅠ)
그럼, 대신 앨릭스는 뺨에 고양이 수염을 그려 주시면 안 되나요?
 
앨릭스 J. 셔먼:난 사람인데.
뭐... 나도 원하는 걸 이뤘으니까, 받아들일게.
 
아이작 D. 토드:저도 사람인걸요?? (강아지 도안 가리켬)
 
앨릭스 J. 셔먼:(ㅇㅅㅇ)
 
아이작 D. 토드:(듀...)
 
앨릭스 J. 셔먼:아, 참.
이거 오늘 방에 들어가기까지 지우면 안 돼.
알겠지? (^-^)
 
아이작 D. 토드:네에? 웃…… 알겠어요. (반쯤 포기하고 고개를 끄덕인다. 의자에 앉기 전 그림 담당 학생에게 뭔가 소근거렸다.)
 
아무튼간에 학생들이 요청을 받아들여 두 사람의 얼굴에 그림을 그려주기 시작합니다.
 
아이작의 뺨에 앨릭스가 가리킨 아주 귀여운 흰색 가나디가 그려집니다.
 
그리고 앨릭스는, 단순히 고양이 수염만 그리는 것치고는 시간이 꽤 오래 걸린다 싶었는데…
 
거울을 보니 고양이 수염 위, 눈가 아래에 백금색과 은색 무영화 몇 송이가 함께 그려져 있습니다.
 
아이작이 속삭인 게 이걸 부탁하는 거였나 봅니다.
 
앨릭스 J. 셔먼:(다 끝났나? 싶어서 거울 본다.) 이런 걸 부탁한 거야?
예쁘네, 마음에 들어.
 
아이작 D. 토드:마음에 드세요? (차마 자기 얼굴을 거울로 볼 용기는 내지 못하고, 앨릭스가 거울을 보기만을 조마조마하게 기다렸다. 마음에 드는 기색이자 안심한다.) 다행이다.
오늘 무영화를 열심히 찾아서 돌아다녔으니 그 추억을 남기면 좋을 것 같았거든요. 역시 잘 어울리세요.
 
앨릭스 J. 셔먼:그럼, 당연하지. 이렇게 예쁜데, 마음에 안 들리가 없잖아.
(그림 담당 학생에게 돈을 지불하고 아이작의 어깨 위에 팔을 얹는다.)
그럼... 조금 더 확실하게 추억을 남겨볼까?
(가까이에 있는 사진 부스를 가리킨다.)
 
아이작 D. 토드:이미 평생 기억에 남을 것 같지만, 좋아요. (솔직히 제 얼굴에 그려진 귀여운 강아지 그림을 볼 엄두가 안 난다. 이미 여기까지 온 마당에 거절할 수도 없지만.)
 
사진 부스는 이른바 인생*컷 같은 구조입니다.
 
사진 찍는 기계가 여러 대 있고, 커튼으로 입구가 가려져 있어 원하는 곳에 들어가 찍으면 됩니다.
 
삼삼오오 모여 사진 찍는 학생들의 다리가 보입니다.
 
운좋게 비어있는 기계가 두어 대 있으니 두 사람도 원하는 만큼 사진을 찍도록 합시다.
 
앨릭스 J. 셔먼:너무 쑥스러워하는 거 아냐? (어깨동무한 채로 볼 쿡쿡 찌른다.)
(같이 부스 안으로 들어간다.)
 
아이작 D. 토드:사람이 무척 많은 날인데 이런 눈에 띄는 그림까지 그리니 더 부끄러워서요. (축제도 처음이고, 페이스페인팅도 처음이라 더 생경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아마 혼자였다면 아무것도 하지 않고 제 기숙사에서 조용히 시간을 보냈겠지.)
(안으로 들어서고 나서야 화면에 비친 제 얼굴을 보고 작게 탄식한다. 잠깐 양손으로 얼굴을 가렸다가 말았다.) 귀엽기는 하네요, 강아지가요.
 
앨릭스 J. 셔먼:넌 너무 걱정이 많아. 부끄러워하지 않아도 돼. 어차피 다들 축제랑 술에 취해있는걸.
(그 모습에 웃음을 터뜨린다.) 무슨 소리를. 너도 귀여워, 아이작. 자신감을 가져봐.
(부스 기계에 원하는 사진 갯수와 기타 등등을 입력하고... 카드를 꽂아 계산한다. 그리고 이어서 카운트다운이 시작된다.)
이왕 이렇게 된 거, 즐겨보는 게 어때? 재밌잖아.
 
아이작 D. 토드:이미 앨릭스 덕분에 실컷 즐기고 있어요. 정말로요. 일전에는 이런 축제에 한 번도 가본 적 없었거든요. (귀엽단 말에는 고개를 내젓는다.)
(그래도 이왕 사진까지 찍으러 왔으니 빼기만 할 수도 없겠지. 차라리 앨릭스의 말대로 제대로 된 추억으로 남기는 게 낫겠다. 여전히 자신감 넘치는 표정은 아니지만, 그래도 카메라를 제대로 보고 미소짓는다.)
 
앨릭스 J. 셔먼:처음이야? (놀란다.) 그건 예상 못했는데. 그럼 남은 시간동안 더 재밌게 즐겨야겠는걸.
(아이작과 함께 어깨동무한 채로, 화면을 보고 윙크한 채 미소짓는다.)
 
두 사람 <외모> 판정!
 
아이작 D. 토드:
외모
기준치: 80/40/16
굴림: 30
판정결과: 어려운 성공
 
앨릭스 J. 셔먼:
외모
기준치: 80/40/16
굴림: 72
판정결과: 보통 성공
 
두 사람 모두 아주 잘 나왔습니다.
 
역시 공설 미소년다운 미모!
 
특히 아이작은 흰 가나디 덕분인지 인상이 한결 더 밝아졌네요.
 
앨릭스 J. 셔먼:잘 찍혔네~ (만족한다.)
 
아이작 D. 토드:(생각보다 잘 나와서 놀랐다.) 그러게요. (이내 사진이 두 장 출력된다. 하나씩 나눠 가졌다.) 덕분에 오래오래 기억에 남을 것 같아요.
 
앨릭스 J. 셔먼:(사진을 빤히 보고는 활짝 웃는다.) 그러게. 책상 위에 붙여놔야겠어. 들고 다니면 분명히 잃어버릴테니까.
 
아이작 D. 토드:저도 다이어리에 소중히 붙여 둬야겠어요. (앨릭스의 밝은 웃음을 오래도록 응시했다. 그러고 있자면 제게까지 그 기쁨이 옮는 듯하다.)
 
그때 바깥에서 방송이 울려퍼집니다.
 
'무영화 찾기' 행사 시간이 종료되어 승자를 발표한다는군요.
 
앨릭스 J. 셔먼:벌써 시간이 그렇게 됐나?
들으러 가보자. 우리가 될지도 모르잖아.
 
아이작 D. 토드:아, 좋아요. (잘 챙겨다니고 있던 무영화가 담긴 컵을 들어보인다.) 이건 상품이 뭘지 궁금하네요.
 
광장으로 가자, 학생들이 가득 모여 있습니다.
 
가운데의 연단에 선 축제 담당자가 마이크를 잡습니다.
 
"'무영화 찾기' 행사 우승자는…… 무려 다섯 송이를 찾은 앨릭스 셔먼과 아이작 토드 조입니다!"
 
"두 사람은 앞으로 나와 상품을 받아가세요!"
 
앨릭스 J. 셔먼:우리래, 아이작. (신났다.)
 
아이작 D. 토드:와! 정말 저희가 우승했군요. (들떠서 컵을 흔들었다.) 열심히 찾은 보람이 있어요.
 
앨릭스 J. 셔먼:그러게. 열심히 찾길 잘했어.
자, 그럼 상품 받으러 가볼까~ (아이작 손 잡고 상품 받으러 간다.)
 
상품은 바로! 무영화 모양의 챰이 달린 은색 체인 팔찌입니다.
 
앨릭스 J. 셔먼:오, 예쁘네.
 
아이작 D. 토드:정말로요. (팔찌가 든 상자를 이리저리 돌아본다.) 열심히 찾기를 잘했는걸요.
앨릭스 덕분에 이런 경품까지 받고, 오늘 너무 재밌었어요.
제가 이렇게 즐겨도 되나 싶을 정도로요. (부드럽게 웃었다.)
 
앨릭스 J. 셔먼:네가 어울려주지 않았다면 이런 추억도 못 만들었을걸.
놀아줘서 고마워, 아이작. 다음 축제에서도 함께해줘. 알았지?
 
아이작 D. 토드:그럼요. (팔찌를 조심스레 꺼내 손목에 찼다. 그리곤 손목을 살짝 들어보인다.) 소중한 추억이 이렇게나 많이 생겼으니, 다음에는 어떨지 벌써 기대돼요.
 
앨릭스 J. 셔먼:(상자에서 팔찌를 꺼내 손목에 걸고 들여다본다.) 그러게. 다음 축제까지는 한참 남긴 했지만, 벌써부터 기대되는걸.
 
공원을 비추는 조명 아래에서 팔찌가 아름답게 반짝입니다.
 
소중한 추억으로 남을 열대의 밤이 깊어 갑니다.
 
베로니카 주간의 셋째 날.
 
늦게까지 잠들지 않았던 학생들이 오전나절 내내 침대 위나 뒹굴며 쉬고 있었기에 학내는 고요했습니다.
 
“----!”
 
평화를 깬 것은 누군가의 날카로운 비명입니다.
 
웅성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리더니 몇몇 학생이 그 방향으로 뛰쳐나가는 기척이 느껴집니다.
 
당신은 어떻게 할까요? 창문을 통해 내다봐도 좋고, 직접 가 봐도 좋습니다.
 
앨릭스 J. 셔먼:(비명소리에 막 잠에서 깼다. 느적거리며 창가로 걸어가 밖을 내다본다.)
 
“라가힛!”
 
“누가 응급콜해! 빨리!”
 
쓰러져 발작하며 피를 토하는 학생을 둘러싸고 주변 사람들이 혼란스러워하는 광경이 보입니다.
 
그 틈을 뚫고 몇 사람들이 군홧발 소리를 내며 다가옵니다.
 
2주 전 들이닥쳐 아직도 ‘불온 게시글’ 사건을 수사 중인 헌병대원들입니다.
 
아프리카 연합 공화국의 헌병대 예장에는 기묘한 모자-가면-투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서아프리카 도곤족의 전통을 따른 사팀베 마스크가 그것입니다.
 
디자인 자체는 서아프리카 전통에서 따온 것이니 이상하다고 할 게 없지만,
 
가면을 쓴 헌병대가 붉은 줄과 구슬을 관자놀이에 드리우고 표정을 감춘 채 사람들을 내려다보면 아무래도 조금 두렵기 마련이죠.
 
죽음의 사자가 내려다보는 광경 속인 것처럼, 노노이 라가힛은 바닥을 긁으며 몸부림을 치고 있었습니다.
 
손톱이 깨지고 피를 토하는 소년의 몸 위에서 검붉은 에너지가 마치 자아를 가진 듯이 움직이며 그를 감싸죕니다.
 
요한 에를리히:무슨 일이야!
 
라가힛의 꼴을 보고 놀란 요한이 달려와 몸을 구부립니다.
 
엎드려 울부짖는 소년을 껴안아 달래고, 뒤집어 똑바로 눕히고,
 
눈에 품은 렌즈로 아주 오랜 노출을 주어 사진을 찍듯이 그 광경을 들여다봅니다.
 
요한 에를리히:의료진은 아직인가? 누가 1학년 아이작 토드 좀 불러! 라가힛은 토드와 동조율이 가장 높지 않았나?!
 
부르지 않아도 소란을 듣고 이미 아이작은 군중이 둥그렇게 모여 선 한중간으로 파고들고 있었습니다.
 
그가 백금색 에너지를 불러일으키려던 순간이었습니다.
 
모여 있던 학생들은, 사람이 터지면 그런 소리가 난다는 것을 강제로 알게 되었습니다.
 
안에서부터 폭탄 스위치가 눌린 것처럼 노노이 라가힛은 말 그대로 터져버렸습니다.
 
공중에 살점과 피가 흩날리는 광경을 굳이 무참하게 묘사할 필요는 없겠죠.
 
앨릭스 J. 셔먼:...!
 
곁에 서 있던 요한과 아이작은 피를 흠뻑 뒤집어쓰고 말았습니다.
 
끔찍한 광경을 목격한 앨릭스, <이성> 판정 (1/1D4)
 
앨릭스 J. 셔먼:
SAN Roll
기준치: 63/31/12
굴림: 100
판정결과: 대실패
 
대실패로 최대치 4 감소...
 
너무도 갑작스럽고 충격적인 순간이라 비명은 뒤늦게 산발적으로 커집니다.
 
비틀거리며 도망치거나 주저앉아 구토하는 학생도 있었습니다.
 
그 가운데에서 헌병대 한 사람이 노노이 라가힛의 가장 큰 부분을 집어들었습니다.
 
도곤족뿐만 아니라 아프리카의 많은 부족들이 가면을 자아 표현과 제식 수단으로 썼지만,
 
장례식에서 쓰는 가면은 오로지 사팀베 마스크 하나뿐이라는 점을 생각하면 저 표정 없는 얼굴은 더욱 두렵게 느껴집니다.
 
어떤 사회문화 연구자들은 이 예장을 두고,
 
인류의 기원 이후 아주 오랜만에 사람들을 지도하는 역할을 가질 수 있었던 아프리카인들이
 
‘문명국’에서 넘어온 ‘비흑인’들을 ‘비문명적’ 방식으로 위압하기 위해 선택한 방식이 아니었나 논설했더랬죠.
 
억압받지 않던 자가 억압받던 자들의 방식을 야만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다른 의미로 야만이 될까?
 
어떤 역사의 신성한 전통을 압제에 사용하는 것은 야만이 아닐까?
 
이제는 토론할 수 없습니다.
 
그 연구자들은 언젠가부터 보이지 않았고,
 
이 아프리카 땅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고대부터 그러하였듯 기록보다는 구전이어서,
 
말할 입이 없어진 목소리는 이내 사그라들었습니다.
 
오래 내려앉은 그 침묵을 사르고 타는 불꽃처럼, 요한이 고함을 지르며 라가힛의 다리를 붙잡습니다.
 
요한 에를리히:가만히 놔 둬!
 
그러자 라가힛을 집어들던 헌병대원이 빈 손으로 가면을 밀어 벗었습니다.
 
안에서 드러난 것은 이런 상황에서 만나지 않았다면 인상이 참 좋은 청년이라고 평가했을 법한 남자의 얼굴입니다.
 
<관찰력> 혹은 <지능> 판정
 
앨릭스 J. 셔먼:
지능
기준치: 70/35/14
굴림: 48
판정결과: 보통 성공
 
앨릭스는 그 청년과 요한 에를리히가 퍽 닮았음을 깨닫습니다.
 
사관생도가 헌병대원에게 함부로 반말을 해선 안 될 텐데요. 두 사람은 무슨 관계일까요?
 
남자는 낮고 부드러운 음성으로 입을 엽니다.
 
남자: 노노이 라가힛의 신병은 헌병대에서 인수하겠다. 손을 놓기를 권유한다, 요한 에를리히.
 
요한 에를리히:이 애를 더는 훼손하지 마! 살아있을 때 갖고 논 걸로 충분하잖아, 이 미친 자식들아!
 
그러자 남자는 자비를 베풀겠다는 것처럼 조심스럽게 ‘라가힛의 가장 큰 부분’을 다시 내려놓았습니다.
 
그러고선 한쪽 무릎을 굽혀 자신과 닮은 얼굴을 바라봅니다.
 
남자: 사관생도 노노이 라가힛에게는 즉결 처분 가능한 혐의의 증거가 있다.
 
요한 에를리히:…웃기는 소리 마!
 
남자: 그가 불법적인 약물을 도핑해 그 부작용으로 발작을 일으켰다는 증언이 접수되어 수사한 결과 여러 혐의를 확보했다. 이 폭사(爆死) 역시 관련이 있을지 없을지 알 수 없으니 부검이 필요하겠군. 수사가 종료된 후에는 최소한의 인권을 존중하여 유해를 화장하겠다.
불만 있나, 요한 에를리히? 그렇다면 정식으로 소를 제기하는 건 어떤가.
 
요한 에를리히:개새끼야! 닭이 시장 가는 것을 어떻게 거절한단 말이야!
 
이제 공화국 시민들은 다양한 옛 지역에서 유래된 속담을 다 섞어 씁니다.
 
‘닭은 시장 가는 것을 거절할 수 없다’는 말은 중부 아프리카에서 올라온 관용어구.
 
약자는 강자를 거부할 수 없다는 의미죠.
 
이성적으로 구는 요한답지 않게 점점 격앙되고 있습니다.
 
헌병대에게 이런 식으로 반항하다간 징계 감입니다.
 
어떻게 할까요? 끼어들어 요한을 말릴 수도 있고, 그들은 내버려두고 피를 뒤집어쓴 아이작을 데려갈 수도 있습니다.
 
앨릭스 J. 셔먼:...... 이런.
(노노이 라가힛이 터지는 광경을 보고 아이작을 그대로 내버려 둘 수 없어 이미 내려와있던 참이었다.)
(자신이 나선다고 해결될 일이 아닐수도 있지만, 적어도 시도는 해봐야겠다는 생각에 사이에 끼어든다.)
선배, 진정해.
 
대인 기능 판정이 가능합니다.
 
앨릭스 J. 셔먼:
말재주
기준치: 70/35/14
굴림: 75
판정결과: 실패
 
요한 에를리히:지금 진정하게 생겼어?! (거칠게 외치며 헌병대를 노려본다.)
 
재시도 가능합니다!
 
앨릭스 J. 셔먼:...... 나도 알아. 이해해.
하지만 선배는 우리 모두를 대표하는 부학생회장이야. 만약 여기서 선배가 끌려가기라도 한다면 우리는 리더를 잃는 셈이지. ......그리고 선배한텐 파트너인 유리 선배도 있잖아.
말재주
기준치: 70/35/14
굴림: 63
판정결과: 보통 성공
 
요한 에를리히:(유리 이야기에 움찔하더니, 씨근거리며 숨을 몰아쉰다. 천천히 시신에서 피범벅이 된 손을 떼고, 이마를 짚었다.) ……알겠다. 네 말이 맞아.
 
남자가 소리없이 웃습니다.
 
문득 그와 눈이 마주쳤던 것도 같습니다.
 
이게 다 무슨 일인지 모르겠네요.
 
노노이 라가힛의 시신은 결국 헌병대가 회수해 갔습니다.
 
오후 일정과 행사는 모조리 취소되었습니다.
 
학생들에게는 기숙사로 돌아가 경거망동하지 말고 얌전히 있으라는 식의 공지가 내려왔습니다.
 
그나마 기숙사 안에서는 자유로이 다닐 수 있었으므로 친구들의 방과 방을 건너다니며 몰래 저들만의 추측을 속삭이고 있는 듯싶습니다.
 
그날 밤 유리 모하에가 죽었습니다.
 
그 믿을 수 없는 소문은 학생회로 처음 전해져서, 기숙사 휴게실을 몇 개 거쳐 교정 전체로 퍼졌습니다.
 
독재에도 등급이 있습니다.
 
아프리카 연합 공화국의 지독하리만치 세련된 통치 방식은 사람들을 자기 주도적으로 감화시켰습니다.
 
우리는 문명인이야.
 
한번 스러진 인류를 복구해 빛나는 새 역사를 써내려 가고 있어.
 
나라가 잘 하고 있으니 박수를 치는 것은 시민의 지지이지 신민의 굴종이 아니야.
 
사람들은 공화국 정부가 정상적인 정책을 펼치지 않는다는 것조차 알지 못합니다.
 
그렇게 몇십 년.
 
전시도 아닌 교내에서 헌병대원의 손에 학생회장이 죽었다고 합니다.
 
이 문명적인 나라에서 실로 있을 수 없는 일이 터졌습니다.
 
사람은 상상도 하지 못한 잔인한 억압을 보면 일단 공포에 질려 입을 닫는 법입니다.
 
하지만, 왜? 그리고 정말로?
 
요한을 설득시킨 뒤 앨릭스는 어떻게 행동했나요? 어찌되었건, 지금 당신은 당신의 방에 있습니다.
 
원한다면 기숙사를 돌아다니며 정보를 수집할 수 있습니다.
 
정보 없이 가만히 숨어 있어서는 무슨 일에 휘말릴지 모릅니다.
 
앨릭스 J. 셔먼:(어느새 다시 조용해진 교내의 고요한 풍경을 보다가, 커튼을 닫아둔다.)
(그리고 침대에 앉아있는 아이작에게 다가가 부드럽게 손을 잡는다.) ...... 좀 진정이 됐어?
 
아이작 D. 토드:(앨릭스의 욕실을 빌려 잔뜩 튄 피를 씻어내고 새 옷으로 갈아입은 참이다. 아직 채 마르지 않은 머리칼에서 물방울이 떨어진다. 창백한 안색으로 그림처럼 앉아 있다가 손을 통해 온기가 전해져 오자 그제야 눈을 몇 차례 깜박였다.) ……네. 덕분에요. (그 손을 조금 더 힘주어 맞잡았다. 뭐라도 기댈 만한 대상이 필요한 것처럼.)
사실…… 아직 잘 믿기지 않아요. 눈앞에서 그렇게 사람이……. (비록 설계 반동 사건이 터지긴 했지만 이후로도 노노이와는 평범한 친우 관계를 유지하고 있었다. 바로 어제도 축제에서 스쳐지나갔고. 그렇기에 더더욱, 꿈이라도 꾼 게 아닐까 부정하고 싶어진다. 충격에 대응하려는 본능적인 방어기제다.)
 
앨릭스 J. 셔먼:(평소와 다르게 텅 비어버린 올리브빛 눈동자를 마주보며 조금 더 힘을 준다.) 그렇겠지. 거기 있던 사람들 중에 가장 가까이서 봤잖아. (조금이라도 안심하길 바라는 마음으로 맞잡은 손을 통해 자신의 에너지를 흘려보냈다.)
...... (지난 몇 달간 아이작의 파트너로서 지내왔다. 짧다면 짧은 시간이지만, 파트너인만큼 그의 마음을 파악할 수 있는 시간은 충분했다.) 아이작. 잔인한 현실이지만, 피해선 안돼. 거기서 벌어진 일은 사실이고, 노노이 라가힛은 이제 세상에 없어. 그러니까 내가 하고 싶은 말은...... 그 사건은 네 탓이 아니고, 네 파트너인 나는 네 곁에 있다는 거야. 앞으로도 계속.
(지금 당장 해줄 수 있는 건 말 몇 마디와 자신의 이능력을 통한 치유 뿐. 차라리 빨리 달려가 그 광경을 보지 않게 막아줄 수 있었더라면. 한 번도 느껴보지 못한 후회와 무력감이 손끝을 저리게 만들었다.)
오늘은 내 방에서 자. 잠들기 전까지 같이 있어줄게.
 
아이작 D. 토드:(따스한 에너지가 봄바람처럼 몸 안을 채운다. 맴도는 그 감각을 느끼며 눈을 내리감고, 어깨에서 힘을 뺐다. 심호흡 몇 번으로 평정심을 되찾는다.) ……맞아요. 앨릭스의 말대로예요. 대체 무엇 때문이었는진 모르겠지만 노노이가 죽은 건 변하지 않죠.
그러니, 그 이유를 알아야겠어요. 심상치 않은 일이 일어나고 있는 게 분명해요. (그는 아직 유리가 죽었다는 소문까진 전해듣지 못했으나 교내의 분위기가 수상하단 사실은 눈치챘다.) 조금이라도 그 끔찍하고 의문스러운 죽음에 대해 알아내고, 할 수 있는 일을 하고 싶어요.
사실 이대로면…… 금방 잠이 오지 않을 것 같기도 하고요. (쓴웃음을 지었다.) 악몽을 꿀 것 같아요.
 
앨릭스 J. 셔먼:(미소 짓는다. 역시, 내 파트너는 강하구나.) 나도 마찬가지야. 지금 잠에 든다면 분명 악몽을 꾸게 될 게 뻔해. 학교에 헌병대원이 들이닥친 것부터 수상했어. 라가힛에게 그런 혐의가 있다고 해도, 그런 식으로 대하는 건 불합리한 일이야.
(서랍에서 마른 수건을 꺼내서 아직 물기에 젖어있는 아이작의 머리를 닦아주며 말했다.) 같이 찾아보자. 교내에 단서가 있을지도 모르니까. 뭔가 알고 있는 사람이 있을지도 모르고.
 
아이작 D. 토드:함께해주셔서 감사해요. (앨릭스에게 가만히 머리칼을 맡긴다.) 차근차근 돌아보도록 해요.
 
학생들이 많이 가는 장소를 떠올려 보니 기숙사 1층 학생식당이나 2층 휴게실 정도가 떠오릅니다.
 
우선 학생식당부터 가볼까요?
 
앨릭스 J. 셔먼:(아이작과 함께 학생식당부터 가본다.)
 
학생식당에는 헌병대원 두 사람이 경계를 서고 있습니다.
 
들어 보니 공식적인 사유는 어제 라가힛의 사건 탓에 교내에서 동요가 일어나는 것을 단속하기 위해서라고 하네요.
 
감시가 있는 탓인지 학생식당은 영 조용합니다.
 
학생들 몇몇이 눈치를 보며 식사를 하고, 주방 직원들도 친근하던 평소와 달리 좀처럼 말을 걸지 못하고 허둥거립니다.
 
그때 직원 한 사람이 앨릭스와 아이작에게 손짓을 합니다.
 
앨릭스 J. 셔먼:(앞장서서 가본다.)
무슨 일이시죠?
 
아이작 D. 토드:(한순간에 바뀌어 버린 주변의 분위기를 살피며 그 뒤를 따른다.)
 
직원이 주변에 들리지 않도록 조그맣게 속삭여 옵니다.
 
직원: 학생들, 요한 군이랑 그 멘토인가 그거지? 요한 군이 어제부터 통 안 보이는데, 큰일이네…….
괜찮으면 이것 좀 전해줄 수 있겠어요?
 
직원이 건넨 것은 웬 달걀 두 개와 음료수입니다.
 
앨릭스 J. 셔먼:(...!)
만나게 되면 잘 전달해줄게요. 걱정마세요.
(달걀과 음료수를 받아든다.)
 
달걀은 묘하게 가볍고, 안에서 달각달각거리는 소리가 납니다.
 
그때, 그 광경을 유심히 보고 있는 학생 하나가 눈에 띕니다.
 
1학년 명찰을 달고는 있는데 영 처음 보는 얼굴이네요.
 
그는 멀찍이 선 헌병대원들의 눈치를 보더니 식판을 돌려놓는 척 다가와 속삭입니다.
 
학생:앙셰네 지 수습기자예요. 우리 빨대가… 아니, 미안해요. 그러니까 우리 취재원이, 학교에서 어제 큰일이 있었다고 하길래 내용을 알고 싶어서 몰래 들어왔어요.
뭐 얘기해줄 거 없나요?
 
앙셰네 지라면 풍자와 비판으로 유명한 대형언론사네요.
 
앨릭스 J. 셔먼:(헌병대원의 가려진 얼굴을 힐끔 쳐다본다. 우리를 주시하고 있을지 모르는 상황에 전부 말해버린다면 분명히 의심을 살 거다. 지금은 말을 아끼는 게 나을 거야.)
(난처히 웃으며 고개를 젓는다.) 미안해요. 지금은 좀 바쁘거든요.
 
학생:……그렇군요. (재빠른 손길로 앨릭스의 손에 명함 하나를 쥐어 준다.) 혹시 나중에라도 자세히 이야기해줄 수 있으면 이 번호로 연락 줘요.
 
앨릭스 J. 셔먼:(평소대로 친절한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인다.) 그럼요.
 
우선 요한에게 전달을 해줘야겠는데, 학생식당에는 보이지 않습니다.
 
소재를 아는 이가 있는지 주변 학생들에게 물어볼까요?
 
앨릭스 J. 셔먼:(우선... 간단한 음식을 구매한 후 테이블에 앉아있는 학생에게 다가가 말을 붙인다.) 물어볼 거 있는데. 바빠?
 
"응? 아니, 뭔데?" 평범하게 대답하지만, 이 학생도 헌병대원의 눈치를 살피는지 목소리가 평소보다 작네요.
 
앨릭스 J. 셔먼:요한 선배를 찾고 있어. 어딨는지 알아?
 
"에를리히 선배? 나는 잘 모르겠는데……" 학생이 함께 있던 다른 학생들에게 시선을 보냅니다.
 
대부분의 학생들은 잘 모른다는 반응이지만,
 
‘아까 2층에서 본 것 같다’는 말을 해 주는 선배가 하나 있네요.
 
2층에는 기숙사 휴게실이 있었죠.
 
앨릭스 J. 셔먼:(기숙사 휴게실인가.) 알겠어, 고마워.
아이작, 들었지? 거기로 가보자. (소근거린다.)
 
아이작 D. 토드:좋아요. (소근소근)
 
앨릭스 J. 셔먼:(학생들에게 손 흔들어주고 2층 기숙사 휴게실로 향한다.)
 
이상하게 식당을 제외하면 기숙사엔 헌병대원이 전혀 없습니다.
 
헌병대 수색이 학교와 전부 다 협의되지 않기라도 한 걸까요?
 
아이작과 함께 조용한 복도를 지나 휴게실로 향합니다.
 
휴게실은 각층마다 2개씩은 있고, 퍽 넓어서 작은 도서관처럼 여러 학생들이 쓸 수 있는 구조로 되어 있었지만 오늘은 인구밀도가 심하게 높네요.
 
문이 열리는 소리가 나자 수십 개의 눈동자가 화들짝 놀라거나 경계하는 시선으로 돌아보다가, 같은 학생이라는 것을 알아보고 안도합니다.
 
학생 몇이 다가와 앨릭스에게 말을 겁니다.
 
“얘기 듣고 온 거야, 아니면 그냥 들른 거야?”
 
앨릭스 J. 셔먼:무슨 얘기? (고개 기울인다.)
우린 요한 선배를 찾으러 온 거야.
 
“…모르고 왔구나. 우리, 그 소문이 맞는지 확인 좀 해보려고 모였어.”
 
“진짜라면 학교를 다 뒤집어야 할 사안이잖아. 유리 선배가 죽었단 얘기 말이야.”
 
아이작 D. 토드:(그제야 학교에 맴도는 소문을 알아채고 충격을 받는다. 작게 숨을 들이킨다.) 유리 선배님께서……?
 
앨릭스 J. 셔먼:...... (아이작의 어깨를 토닥인다.) 그래서, 정말 사실인지 확인은 해봤어?
 
"노력하는 중이야."
 
다들 밤을 샜는지 눈이 벌겋습니다.
 
씨근덕거리는 숨소리, 엎드려 자고 있는 학생들, 어디론가 연락을 잔뜩 돌리는 학생들.
 
그 가운데 요한이 앉아 있습니다.
 
그는 태블릿 디바이스를 조작하고 있었는데, 요즘엔 잘 쓰이지 않는 물리 키보드까지 두드리는 중입니다.
 
요한도 잠을 제대로 자지 않았는지 얼굴 상태가 말이 아닙니다.
 
앨릭스 J. 셔먼:(... 다들 엉망이네.)
(우선, 전해달라고 한 건 전해줘야겠지.)
(요한 선배에게 다가가 달걀과 음료수를 건네준다.) 선배, 이거. 식당으로 가니까 직원 분이 전해달라고 하던데.
 
요한 에를리히:음? (조금 놀란 표정으로 받아든다.)
 
부활절도 아닌데 귀여운 그림이 그려진 그 달걀에는 ‘성심성당’ 이라는 손글씨가 쓰여 있습니다.
 
잠시 고민하던 요한은 달걀 껍질을 깨트립니다.
 
안에서 나타난 건 삶은 달걀 흰자가 아니라 빈 내부입니다.
 
손톱만한 메모리 카드가 툭 떨어졌습니다.
 
요한 에를리히:토드, 셔먼…… 너희 마침 잘 왔다. 나 좀 도와줄 수 있어?
오전 04시를 기해 정부지침으로 학교와 외부 통신이 완전히 차단됐다. 인자미나도 접속이 안 돼. 학교가 정보적으로 완전히 고립된 상황이지. 내 설계로 이 차단 시스템을 잠시 들어내는 중이야. 유리 얘기가 사실이 맞는지부터 확인하고, 맞다면 다음 대응 방침을 생각할 거다.
 
요한의 능력은 해킹.
 
에너지를 섬세하게 다루어 서버 간 데이터 전자 신호에 간섭하는 용도로 활용하곤 합니다.
 
충분히 가능한 일이라고 생각되긴 하지만, 거기에 두 사람의 도움이 왜 필요할까요?
 
앨릭스 J. 셔먼:...... 알겠어. 도울게.
그런데, 우리가 할 수 있는 게 뭐지? 선배도 알겠지만, 나랑 아이작의 능력은 해킹과는 전혀 관계가 없어.
 
아이작 D. 토드:(소문을 막 들은 차라 아직 비현실적으로만 다가왔지만, 정부 지침으로 통신을 모두 끊을 정도라면 심각한 일임이 분명하다. 초조한 낯빛으로 요한을 바라본다.)
 
요한 에를리히:학교 서버는 규모가 몹시 크고 복잡해. 보안도 아주 철저하지. 이제 마지막 단계만 남았는데, 내 설계가 조금이라도 흐트러지면 곧바로 추적될 거다. 너희는 이 학교의 유일한 정식 페어잖아. 동조율이 안정된 페어가 에너지를 뒷받침해 주면 안정적인 설계에 도움이 돼.
…하지만 토드, 셔먼. 이 일을 돕는다는 건 너희도 이 학교나 정부 지침에 반기를 드는 동조자가 된다는 뜻이다. 나는 유리와 관련된 진실을 파헤쳐야 할 필요가 있고, 여기 모인 애들도 그 목표에 공감하는 사람들이지만, 너희 생각이 어떨지는 몰라. 괜찮겠어?
 
앨릭스 J. 셔먼:......
(지금 요한 선배와 손을 잡는 것은 아버지의 명령에 반기를 드는 것과 같은 행동임을 잘 알고있다. 안정된 평화 속에서 살기 위해서는 이 부탁을 무시하는 것이 더 올바른 선택이겠지. 곧바로 문을 닫고 기숙사의 방으로 돌아가 눈을 감고 잠에 드는 것이 맞는 선택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러고 싶지 않다, 는 마음이 멋대로 고개를 든다. 그리고 어쩌면, 이것이 유일한 기회일지도 모르니까. 셔먼에서 벗어날 수 있는 기회.)
들었잖아. 난 이미 정했어, 선배.
(고개를 돌려 아이작을 바라본다. 대답을 묻는듯이.)
 
아이작 D. 토드:(쉽사리 답이 나오지 못한다. 흔들리는 눈빛이 그의 동요하는 심정 일부를 잘라내어 비춘다. 노노이의 죽음에 관해 알아내고 할 수 있는 일을 하고 싶다며 방 밖으로 나왔지만, 정부가 개입했을 정도로 큰일에 끼어드는 건 또 다른 문제다. 핏기 없는 낯빛으로 긴 침묵을 유지하는 동안, 내면에선 폭풍처럼 복잡한 갈등이 일었다. 나는, 어떻게 해야 할까. 부모님은 절대 허용하지 않을 행동이다. 그였다면, 이 상황에서 어떻게…….)
(그때 앨릭스의 대답이 저를 침몰하는 상념에서 깨운다. 몇 달간 셔먼이란 성씨의 무게가 그의 실제 성격과는 상관없이 그의 이미지나 소문을 만들어내는 걸 보아 왔다. 그리고 그건 앨릭스가 원치 않는 일이란 것도 알았다. 이 선택은 분명 앨릭스에게 위험한 결정이 될 것이다. 그럼에도 그는 한 치 망설임 없이 반기를 들겠다 말한다. 그 침착하고 부드러운 음성이, 흘러들어오던 에너지처럼 제게 용기를 준다.)
(입을 여는 순간까지, 혹은 그 이후로도 끝없는 고뇌에 시달리게 되리라. 그 사실을 직감하면서도…… 진실을 알고, 부당한 일을 당했을지 모르는 이를 돕기 위해, 마음이 옳다고 외치는 길로 발을 들인다.)
마찬가지예요. (무의식 중에 목걸이를 쥐면서, 속삭이듯 말했다.) 저도, 도울게요.
 
요한 에를리히:……고맙다, 둘 다. 그럼 부탁하지.
 
구현자는 본인의 이능력과 관련된 핵심 기능 판정을, 설계자는 항법 판정을 시도합니다.
 
아이작 D. 토드:
예술 Roll
기준치: 70/35/14
굴림: 78
판정결과: 실패
 
앨릭스 J. 셔먼:
항법
기준치: 50/25/10
굴림: 15
판정결과: 어려운 성공
 
긴장한 탓인지, 앨릭스의 설계 위로 아이작의 에너지가 합쳐지려다가 흩어지고 맙니다.
 
재시도!
 
아이작 D. 토드:
예술 Roll
기준치: 70/35/14
굴림: 91
판정결과: 실패
 
앨릭스 J. 셔먼:
항법
기준치: 50/25/10
굴림: 70
판정결과: 실패
 
성공할 때까지 갑시다 #진짜로
 
아이작 D. 토드:
예술 Roll
기준치: 70/35/14
굴림: 14
판정결과: 극단적 성공
 
앨릭스 J. 셔먼:
항법
기준치: 50/25/10
굴림: 44
판정결과: 보통 성공
 
여러 차례의 시도 끝에 마침내 백금색 에너지가 휴게실 내부를 가득 채웁니다.
 
요한은 두 사람의 에너지가 넘실거리는 가운데 조심스럽게 명령어를 입력하고,
 
엔터를 친 후 옆 사람을 돌아봅니다.
 
요한 에를리히:인자미나 접속돼?
 
학생:……돼! 잠깐만, 성당으로 전화 걸어 볼게.
 
미리 약속이 되어 있었는지 학생들은 단계별로 차단이 해제되었는지 확인해 나가기 시작합니다.
 
요한 에를리히:좋아. 이 휴게실 범위 내에서, 즉 내 태블릿 핫스팟으로 데이터가 연결된 범주 안에선 추적당하지 않고 기록 없이 자유롭게 웹에 접속 가능하다.
우선 유리가 정말 헌병대에게 끌려간 게 맞는지 확인해보겠어. 신부님이 목격하셨다곤 하지만 혹시 모르니까.
 
요한이 모두가 볼 수 있도록 홀로그램 패널을 위로 끌어올려 크게 키웁니다.
 
화면이 여러 개로 분할되며 다양한 각도의 CCTV를 재생하기 시작합니다.
 
새벽 시간대를 계속해서 돌려 보며 유리를 찾아내고 있는데, 쉽지 않아 보이네요.
 
돕는다면 <자료조사> 판정
 
앨릭스 J. 셔먼:(cctv 화면을 꼼꼼히 살펴본다.)
자료조사
기준치: 65/32/13
굴림: 100
판정결과: 대실패
 
앨릭스도 피곤했던 탓일까요, 아니면 공간에 넘실거리는 두 사람의 에너지 탓일까요. 눈앞이 매우 침침합니다.
 
괜찮아. 갠찮아
 
아이작 D. 토드:
자료조사
기준치: 70/35/14
굴림: 73
판정결과: 실패
(화면이 너무 많아서 이쪽도 어려움을 겪는다)
 
CCTV 영상이 너무 많아 어지럽네요.
 
그때 근처의 선배가 한쪽을 향해 손가락질합니다.
 
:“저기 멈춰 봐! 1시 24분경. 그래, 맞네! 사람 들고 가잖아!”
“근데 저게 유리 선배라고 어떻게 확신해?”
"자세히 봐. 빨간색 머리카락에 길이도 짧잖아. 요한, 영상 좀 확대해줘!"
 
요한이 가리킨 방향의 영상을 확대합니다.
 
꼼꼼히 들여다 보더니, 고개를 끄덕입니다.
 
요한 에를리히:확실해. 저 신발, 유리가 좋아하는 운동화거든.
 
:“어, 차에 태운다. 어디로 데려가는지 봐!”
“미카엘관 뒤쪽으로 나갔네. 저기로 가면 방위사령부 방향 아냐? 헌병대 본부가 거기잖아!”
“하지만… 저건 ‘끌려갔다’지 ‘신변에 문제가 생겼다’는 근거는 못 돼.”
 
학생들이 웅성거립니다.
 
맞는 말입니다. 신중할 필요가 있겠죠.
 
고민하던 요한이 입을 엽니다.
 
요한 에를리히:만일 방위사령부로 끌려갔고, …정말 무슨 일이 생겼다면 치료를 위해서든 은폐를 위해서든 병원으로 연락이 갔을 거야. 군 내부에서도 난리가 났을 테고. 저 근방에서 가장 가까운 대형 병원이 어디지?
 
학생1: 하씬느. 근데 거기 물어본다고 이렇다할 대답이 나오겠어?
 
학생2: 괜히 우리가 들쑤셨다가 더 큰일나는 거 아냐?
 
학생3: 정보 캐는 건 기자들이나 능숙한 일이잖아. 차라리 어디 제보를 하는 건 어때?
 
의견이 분분합니다. 어떻게 하는 게 좋을까요?
 
앨릭스 J. 셔먼:기자라...... 마침 딱 좋네.
선배, 학교로 숨어들어온 기자가 있어. 양셰네 지 쪽이라던데. (명함을 건네준다.) 무슨 일이 있으면 연락달라고 해서 받아뒀어.
연락해볼까?
 
요한 에를리히:…좋아, 앙셰네 지는 그나마 정부에 비판적인 논조로 기사를 많이 내는 곳이지. 그쪽에서 취재해 주길 기다리는 동안, 우리는 가능한 많은 학생들을 모아 항의를 하는 거다. 유리가…… 유리가 지금 어떤 상황이든 간에, ‘대학 내에서 학생을 헌병대가 새벽에 몰래 끌고 갔다’는 사실 자체가 특종 감이니. (고개를 끄덕였다.)
 
앨릭스 J. 셔먼:그래, 알았어. (마찬가지로 고개를 끄덕인다.)
유리 선배가 걱정되네... 빨리 알아봐달라고 해야겠는걸.
(명함에 적힌 연락처로 메세지를 보낸다. 제보할 게 있는데 아직 궁금해요?)
 
기다렸다는 듯 답장이 옵니다.
 
[물론이죠. 어떤 내용인가요?]
 
앨릭스 J. 셔먼:(헌병대가 학생을 새벽에 몰래 끌고 갔어요. 게다가 통신망도 외부와 완벽히 차단해뒀더군요.)
(원하시던 정보를 알려드렸으니 부탁 하나 해도 될까요?)
 
[끌려간 학생의 이름을 말해줄 수 있겠나요?]
 
[어떤 부탁인지 우선 말씀해 주세요.]
 
앨릭스 J. 셔먼:(유리 모하에, 라고 합니다.)
(그 선배의 안위를 확인하고 싶은데, 도움을 받을 수 있을까요?)
 
[알겠습니다. 우린 우리대로 알아보고, 정황이 나오면 공유해 줄게요. 급한 일이 있으면 이 번호든, 앙셰네 지 공식 번호든 연락해요. 위에 보고해 둘 테니까요.]
 
앨릭스 J. 셔먼:(감사합니다. 행운을 빌게요.)
선배. (메세지를 나눴던 화면을 보여준다.) 여기, 일단 연락을 보내놨어.
 
요한 에를리히:(화면을 확인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고맙다. 일단 한시름 놨군.
 
학생들은 곧 저마다 할 일을 하며 상황 정리를 기다립니다.
 
아이작 D. 토드:(앨릭스의 곁에서 문자 화면을 지켜보고 있었다. 긴장감에 짓눌릴 듯하던 분위기가 조금 풀어지고, 의자에 앉아 입을 열었다.) 그런데 대체 어쩌다가 유리 선배님께 이런 일이 일어난 건가요?
 
요한 에를리히:……. (침묵하다가, 다소 뜬금없는 질문을 했다.) 너희, 첫 가상 훈련 때가 기억나나?
그때 유리는 하산 2세 모스크를 보고 있었지. 우리는 하늘길 시스템의 크로노미터 지도를 그대로 따른, 북동 게이트 바깥을 묘사한 가상세계에 있었고.
그 모스크는 그 방향에서 보일 수 없어. 좀 더 서쪽에 있으니까.
유리는 그 말을 하고 싶었던 거다. 시민들이 일상적으로 보는 지도마저 조작되고 있다고. 정부가 뭔가 말도 안 되는 걸 숨기고 있는 게 분명해. 스와콥문트는 카사블랑카로부터 정확히 1만 km 떨어져 있다. 진실을 호도하기엔 너무 좋은 거리감이지.
카사블랑카의 지도가 스와콥문트 문제를 증거한단 얘긴 아니야. 의심이 그렇게 시작됐단 거지. 보여서는 안 될 게 보이니까. 그때부터 유리와 내가 함께 스와콥문트를 파헤쳐보기 시작했어. 마침 아놀드 박사와 관련된 소문도 돌고 있었거든.
…인자미나에 글을 쓴 게 유리야. 내가 그걸 도왔고. 아마, 유리가 끌려간 것도 그 때문인 게 유력하다.
 
요한 에를리히:설령 그 모든 소문이 거짓이라서 처벌을 받아야 하더라도, 그 결과가 새벽에 남몰래 끌려가 종적을 감추는 형태여야 하나? (피로가 얹혀 있지만 눈빛만은 형형하다. 이마로 내려온 머리칼을 쓸어넘겼다.) 난 결코 동의할 수 없어.
 
앨릭스 J. 셔먼:(아이작의 옆자리에 앉은 채로 잠자코 요한 선배의 말을 듣는다.) 그렇게 된 거였구나. 어쩐지.
우선, 같은 편이 됐으니까 기념으로 몇 가지 물어볼게. 궁금한 게 생겼거든.
첫번째, 그 메모리 칩은 뭐야? 어쩐지 삶은 계란치고는 가볍다 싶었는데, 그런 게 들어있을 줄은 몰랐네.
 
요한 에를리히:아…… 이거. (반으로 나뉘어진 달걀 껍질을 들어 보인다.) 내가 부탁해서 신부님께서 보내주신 거야. 애초에 유리에게 무슨 일이 생긴 것 같다고 연락해주신 것도 그분이고.
만일을 위해 물리적 공간에 데이터를 저장할 필요가 있겠다 싶었지. 서버에 뭘 기록해봤자 검열당하면 끝이니까.
 
앨릭스 J. 셔먼:역시 선배는 준비성이 철저하네. 멘토다워.
성당 쪽 신부님이랑은 언제부터 그런 관계였어? 처음부터 아는 사이였나?
 
요한 에를리히:원래부터 개인적으로 아는 사이였지. 하지만 이런 쪽으로 도움을 주기 시작하신 건 최근이야. 내가 이 나라 윗선이며 정치에 관심을 갖기 시작하게 되고서부터, 신부님도 나와 같은 의문과 답답함을 품고 계신 걸 알았지.
뭐, 내 능력이 능력이니까. (작은 헛웃음.)
 
앨릭스 J. 셔먼:(요한의 얼굴을 가만히 바라보면... 닮은 사람을 봤던 기억이 떠오른다.)
윗선들에게 관심을 갖게 된 계기가... 혹시 가족과도 관련이 있어?
그 헌병대원, 선배랑 닮았던데. 충분히 친분도 있어보였고.
 
요한 에를리히:……그래. 내 형이야. 집안과 절연하면서 관심을 갖게 된 것도 맞고. 그 자식은 해선 안 되는 일을 벌이고 있어.
그래서 말인데, 셔먼…… 괜찮겠나? 너를 '셔먼'으로 판단한 적은 없지만, 네 행동이 가족들에게 어떻게 비춰질지는 걱정이 된다. 나도 그런 집안 속 일부였으니까 더욱.
 
앨릭스 J. 셔먼:..... 솔직히, 나라고 해도 아무 생각이 없는 건 아냐. 내 아버지는 다소 끈질긴 분이거든. 그래도, 뭐... 이미 결정해버렸는걸. 내 파트너도 같은 답을 해줬는데, 이제 와서 어떻게 말을 바꾸겠어.
선배도 내가 편이 되어준다면 든든할 거 아냐? (장난스레 웃는다.)
 
요한 에를리히:(그 웃음을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희미하게 마주 웃었다.) 부정하지 않겠다. 고마울 따름이야. 항상 웃고만 다녀서 생각도 밸도 없는 놈인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굳은 심지를 가졌군.
변치 않기를 바란다. (앨릭스의 어깨에 짧게 손을 얹었다 뗀다.)
 
앨릭스 J. 셔먼:(심장을 움켜지는 척, 하면서 너스레를 떤다.) 아야, 아파라. 나 상처받았어. 기껏 도와준 후배한테 그런 소리하기야?
...... 그래. (나도 그러길 바라. 작은 목소리로 덧붙인다.)
 
그날 밤, 학생회관.
 
결과적으로 말하자면 앨릭스가 앙셰네 지에 한 제보는 상당한 유효타였습니다.
 
똘똘 뭉친 기자들이 병원과 군 양쪽에 '빨대를 꽂고' 소식을 물어 왔죠.
 
오전 07시 04분, 유리 모하에의 시신이 하씬느 병원 응급실로 실려 들어왔습니다.
 
심폐소생술을 담당했던 의사는 시신이 구급차에 실릴 때부터 이미 심정지 상태였다고 증언했습니다.
 
헌병대는 참으로 교묘한 방식을 사용해 유리의 혐의와 라가힛의 죽음을 하나로 묶었습니다.
 
노노이 라가힛이 금지 약물 혐의를 썼고, 그 공급책으로 유리 모하에가 지목된 것이죠.
 
수사 과정 중 라가힛과 동일하게 약물을 과용한 유리가 쇼크사했다는 것이 군과 정부의 입장이었습니다.
 
공분한 학생들이 벌떼처럼 일어났습니다.
 
이 '평화로운' 나라에서, 고작해야 가끔 강성 노조의 시위 정도나 일어나던 도시에서 갑작스레 불길이 치솟습니다.
 
시위 현장에서 화염병을 던지는 기술은 재앙의 날을 거치며 실전되었지만, 화염병만 저항의 상징인가요? 무기는 많습니다.
 
그러나 학생들은 입을 굳게 다물고, 누구도 공격하지 않은 채 학생회관을 점거하고 농성을 시작했습니다.
 
이능력을 사용할 수 있는 자들이 한번 폭력사태를 일으키기 시작하면 상황을 겉잡을 수 없다는 학생회의 판단이 들어맞았죠.
 
4학년 학생들이 학생회관을 겹겹이 둘러 지키고,
 
아직 전투 역량이 모자란 저학년들은 내부에 모여 앉아 손을 잡고 촛불을 들었습니다.
 
앨릭스는, 이때 어디 있었을까요?
 
당신은 어쩌면 선택할 수 있습니다.
 
앨릭스 J. 셔먼:(그 모습을 바라본다. 자신의 방에서 커튼을 친 채, 그 사이로.)
(호기 넘치게 한쪽 편을 들었던 나는, 결국 침묵을 선택했다. 그 어느 편도 들지않고 눈과 입을 가리고 손을 내렸다. 이유는 간단하다. 두려웠으니까.)
 
학생회관 건물 위에는 커다란 TV 화면이 있어, 그곳에서 일어나는 일이 생중계되고 있습니다.
 
학생회관 앞의 오래된 연단 위로 요한이 뛰어오릅니다.
 
그는 떨고 있었습니다.
 
두려워서, 무서워서, 긴장되어서가 아닙니다.
 
생생하게 살아 지펴진 격노가 그 부르짖음 안에 있습니다.
 
요한 에를리히:「높으신 분의 말 한 마디는 한 세기가 끝날 때까지 결코 잊어서는 안 된다. 눈썹 하나 까딱하면 날벼락이 떨어지고, ……사람들은 알아서 몸을 낮추고는 풍자시를 달콤한 아부의 시로 고쳐 버린다. 그러나,」
……그러나. 그러나, 우리…….
 
차마 목이 메어서, 요한은 더 말을 잇지 못합니다.
 
그가 읽고 있는 것은 어떤 시입니다. 그것도 수첩에 메모한.
 
수첩이 아래로 툭 떨어집니다.
 
우리는 선택할 수 있습니다.
 
어떤 역사의 기로에서 적극적이거나 방조적이거나 소극적일 수 있죠.
 
이를테면 요한의 해킹을 적극적으로 도왔으나 지금은 두려움에 방조하게 된 당신부터,
 
처음에는 소극적이었으나 지금, 수첩을 주워들며 일어선, 당신의 파트너처럼.
 
아이작 D. 토드:「그러나 우리 노래의 선율이 서글픈 것은 어찌할 수가 없다.」
「슬픔도 분노도 없이 사는 사람은 자신의 조국을 사랑하지 않는 사람이니라.」
 
그 문장이 아이작의 명료한 발음을 타고 터진 순간,
 
근처 반경에 있던 모든 스마트워치가 새빨갛게 진동하며 경고음을 내보내기 시작합니다.
 
금지 문장이 인식되었습니다.
 
검열된 문장이 인식되었습니다.
 
음성이 검열되었습니다.
 
이를 악문 요한이 마이크에 대고 말을 이어 나갑니다.
 
요한 에를리히:이 시를 아십니까? 세상에서 삭제된, 기록말살형을 받은, 끝없이 무수한 텍스트를 아십니까? 러시아 땅이 절반쯤 황폐화되었다고 해서 네크라소프의 시까지 사라져야 합니까?
슬픔도 분노도 없이 살아가던 우리는 어제 학우 두 사람을 잃었습니다.
 
그렇게 마이크가 순서대로 돌았습니다.
 
울며 더듬더듬 준비한 말을 읽는 학생도 있었고, 분노하여 주먹을 휘두르는 학생도 있었으나 대체로는 평화로웠습니다.
 
그때,
 
삐이익―――!
 
저 멀리에서 지나치게 큰 호루라기 소리 같은 것이 들립니다. <이성> 판정
 
앨릭스 J. 셔먼:
SAN Roll
기준치: 59/29/11
굴림: 77
판정결과: 실패
 
이성 1 감소.
 
기숙사까지 생생하게 들릴 만큼 커다란 방송이 울려퍼집니다.
 
“각성자사관학교 생도들에게 알린다.”
 
“지금 즉시 학생회관 점거를 중단하고 해산하도록 한다. 00시 정각까지 해산하지 않을 시 헌병대는 강경 진압을 시도할 수밖에 없다.”
 
“반복한다, 각성자사관학교 생도들에게 알린다…….”
 
자정까지는 이제 40분도 채 남지 않았습니다.
 
더 이상 카메라는 아무것도 비추지 않으나, 학생회는 한곳에 모여 무어라 이야기를 나누는 듯합니다.
 
당신은 이제 어떻게 할까요? 아이작에게 연락을 취해볼까요?
 
앨릭스 J. 셔먼:(아무것도 비춰지지 않은 TV 화면을 바라보다가 커튼을 다시 내린다. 방금 들린 서늘한 목소리가 아직도 귓가에 울린다. 헌병대의 강경한 진압. 그 뜻은 자세히 생각하지 않아도 깨달을 수 있었다.)
(여전히 커튼 자락을 움켜쥐고 있던 손의 소맷자락 아래로 은색의 무영화가 미약하게나마 빛을 반사한다. 다음 축제가 기대된다며 웃던 목소리가, 방금의 목소리가 겹쳐진다.)
(곧장 아이작에게 연락을 취한다. 지금 어디야?)
 
문자에 금방 답이 오지 않습니다.
 
그러는 사이 학생회관은 점점 더 시끄럽고 복잡해져 갑니다.
 
무슨 일이 일어나고 말리란 것을, 먼발치에서도 직감할 수 있습니다.
 
앨릭스 J. 셔먼:...... 젠장.
(워치의 화면을 뚫어져라 쳐다보지만, 아무리 기다려도 화답은 오지 않는다. 지금 나간다면 분명히 휩쓸린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하지만, 이번에도 역시 생각보다는 감정이 먼저 발길을 이끌었다. 처음으로 생긴 나의 파트너. 너만큼은 무사했으면 하니까.)
(다급히 학생회관을 향해 뛰어가면서 아이작에게 전화를 건다.)
 
전화를 걸어봐도 역시 한 번에 받지는 않았습니다.
 
하지만 두 번, 세 번 거듭해 걸자 마침내 워치 너머로 파트너의 목소리가 들려옵니다.
 
아이작 D. 토드:이걸요? 잠시만요, 선배님…… (주변이 무척 시끄럽다. 누군가 당부하는 소리, 그에게 무어라 대답하는 소리가 뒤섞여 들린다.) 앨릭스? 앨릭스인가요?
 
앨릭스 J. 셔먼:아이작!
(다행이다, 무사하구나.)
지금, 학생회관이야? (뛰느라 진정되지 못한 목소리로 답한다.)
 
아이작 D. 토드:네, 하지만 선배님이 저학년은 어서 빠져나가라고 하셔서…… 곧 나가려던 참이었어요. (시끄러워 잘 들리지 않았지만, 앨릭스의 목소리가 평소보다 가쁘고 빠르단 건 용케 알아들었다.) 앨릭스는……? 무슨 일 있으신 건 아니죠?
 
앨릭스 J. 셔먼:(잠시 자리에 서서 숨을 몰아쉰다.) 아니, 난 괜찮아.
아까...... 널 봤거든. 방송도 들었고. 걱정돼서 연락했는데, 안 보길래.
그럼, 우선 만나자. 할 말이 있어.
 
아이작 D. 토드:아, 보셨군요. ……좋아요. 학생회관 서쪽이 사람이 적은 것 같으니 그쪽으로 나갈게요. 거기에서 만나요.
 
학생회관 쪽으로 향할수록 인파가 물밀듯 많아집니다.
 
거의 모든 학생들이 몰려들었는지, 멀리서부터 엄청난 소란이 느껴집니다.
 
학생회관 서쪽은 외진 곳이라 상대적으로 인적이 적죠. 그쪽으로 갈까요.
 
앨릭스 J. 셔먼:알았어, 금방 갈게.
(전화를 끊고 서둘러 학생회관 서쪽으로 향한다.)
(얼마 지나지 않아 서쪽에 도착한다. 그리고 곧바로 아이작을 찾으려 주변을 살핀다.)
 
사람들 사이를 뚫고 학생회관 옆을 향해 달립니다.
 
오로지 파트너를 향한 염려와 불안 하나로.
 
학생회관 서쪽, 외벽에 기대어 있는 아이작이 보입니다.
 
무언가를 손에 들고 훑어보고 있네요.
 
앨릭스 J. 셔먼:......
아이작, 나 왔어.
 
아이작 D. 토드:(고개를 든다. 반가움과 착잡함이 뒤섞여 얼룩진 낯은 아무런 상처도 없이 깨끗하다.) 앨릭스.
여기까지 오시느라 고생하셨어요. 저 때문에…… 오시는 길에 위험한 일은 없었나요?
 
앨릭스 J. 셔먼:(제 눈으로 아이작의 얼굴을 확인하고 나서야 완전히 안도한다.)
(고개를 젓는다.) 걱정마. 별 일 없었으니까. ......뭘 보고 있었어?
 
아이작 D. 토드:(들고 있던 것은 수첩이다.) 요한 선배가 주신 거예요. 저를 콕 짚어 주시기에 의아했는데……
유리와 요한 선배가 인자미나에 올리셨던 글 있죠. 스와콥문트 관련 이야기를 어떤 망명 정부가 수집하고 있다던 것 말예요. 아프리카에 나라라곤 이 공화국뿐이니 망명 정부 같은 게 존재하긴 어렵다고 생각했는데, 여기에 연락책과 위치가 적혀 있어요. 칼라하리 사막을 넘어서, 보츠와나에요.
 
그때 탕! 소리가 들립니다. 분명한 총성입니다.
 
학생회관 방향에서 들려왔죠.
 
저편이 몹시 시끄러워집니다.
 
사이렌 소리, 확성기 소리가 뒤엉켜 무슨 말인지 하나도 알아들을 수 없습니다.
 
앨릭스 J. 셔먼:....... (총성이 들리면 흠칫, 놀란다.)
그래서... 그쪽과 연락할 셈이야?
 
아이작 D. 토드:(반사적으로 총성이 들린 방향으로 고개가 돌아갔다. 아직까진 사람이 없는 외진 길. 학생회관을 한참이나 응시하면서, 아이작은 또 한 번 깊은 고뇌에 빠진다. 그러나 이번에는 지난밤처럼 길게 고민할 여유도 주어지지 않고, 지난밤과는 비교도 되지 않을 무게를 짊어져야 할 테다. 모든 것이 최악으로 치닫기만 하는 상황 속에서 그가 눈을 한 번 질끈 감았다 떴다. 무더운 아프리카에 있는데 찬 얼음 덩어리를 삼킨 것처럼 몸이 시렸다.)
(마침내 떨리는 목소리가 흘러나온다.) 저는…… 저는, 가봐야 할 것 같아요. 그곳으로.
 
앨릭스 J. 셔먼:(다급히 아이작의 손을 잡는다. 그때서야 자신도 모르게 제 손이 떨리고 있었다는 걸 깨닫는다.)
...... 가지마.
방금, 총 소리 못 들었어? 헌병대원이 강경한 대응을 하게 된다면, 네가 위험해질 거야. 난......
(머릿속에서 노노이 라가힛의 마지막 모습이 선명하게 그려진다. 헌병대원에 붙잡혀 물건처럼 실려 나가던 유리 선배의 모습도.)
네가, 무사했으면 해.
 
아이작 D. 토드:지금이라서 갈 수 있는 거예요. 아니, 이미 결정을 내린 이상 지금 가야만 해요. (그 손을 감싸쥐며 제 아랫입술을 깨물었다.) 소란이 벌어진 지금 떠나야 이곳에서 자연스럽게 죽은 걸로 처리되어 추적을 막을 수 있어요.
제가 학교를 떠난 걸 들키면 페어인 당신에게까지 불똥이 튀어, 강도 높은 조사를 받게 되겠죠. ……앨릭스. 제가 오늘의 사고에 휘말려 죽었다고 증언해 주세요.
 
앨릭스 J. 셔먼:(그 말을 듣자마자 들이마시던 숨을 멈춘다. 떨리는 눈으로 아이작과 시선을 마주한다. 자세히 들여다보지 않아도 알 수 있다. 아이작은, 내 파트너는 나를, 이곳을 떠나는 것을 그만두지 않을 것이다.)
......하하, 아이작. 내게 그런 부탁을 하는 거야? 너무하네. 난 지금 네게 가지말라고 했는데.
(아무런 소용이 없다는 걸 알면서도 다시 한 번 더 묻는다. 붙잡은 손에는 조금 더 힘을 주면서.)
정말로... 떠날 거야? 우린 서로의 파트너잖아, 아이작.
 
아이작 D. 토드:(떨려오는 손길이, 누구 때문인지 알 수 없다. 이제는 저의 손도 떨리기 시작했으니까. 저라고 앨릭스를 두고 떠나고 싶은 게 아니다. 지금이라도 멈추면, 더 이상 말을 얹지 않고 방조하면, 예정된 대로 사관학교를 졸업하고 어엿한 군인이 되는 탄탄대로를 걷게 될 터다. 좋은 옷을 입고 좋은 대우를 받으며 부족함 없는 삶을 누리게 되리라. 허나 그는 이미 결정을 내렸다. 그 모든 빛나는 미래와 언약으로 맺어진 파트너를 두고서 거친 미지의 황야로 나아가겠다고. 그것은 불의에 대항할 용기와 정의뿐만이 아니라…… 지금까지 그가 버텨 온 삶의 전부를 건 의지였다.)
드릴 말씀이 있어요. (시선이 바닥으로 떨어진다. 누군가는 숭고하다 부를 만한 결정을 내린 직후건만 이 순간의 그는 무척이나 위축되어 보인다.)
저는… 저는, 아이작이 아니에요. 앨릭스. 제가 지금껏 쌓아 온 인생은 모두 가짜예요. 스와콥문트로 떠났다던 이가 바로 진짜죠. 저는 그 빈자리를 채우기 위해 빚어진 대체품일 뿐…….
 
앨릭스 J. 셔먼:(불안한 눈빛으로 아이작을 바라보던 눈이 크게 뜨인다. 뒷뜰에서 나눴던 수다를 아직도 기억한다. 스와콥문트로 떠났던 형을 걱정하지만, 어딘가 복잡한 얼굴을 했던 아이작을.)
...... 가짜라니, 그게 무슨 소리야. 넌 한낱 대체품 따위가 아니야. 줄곧 그렇게 생각했던 거야? 대체...... 아니, 그런 건 됐어. 지금 그런 걸 따질 때가 아니니까.
(숨을 들이킨다.) 가장 중요한 건, 네가 잊지 말아야 할 건... 무슨 일이 있어도 넌 내 파트너라는 사실이야. 네가 아니면, 이 자리를 대체할 수 있는 건 아무도 없는데...
(형편없이 떨리는 목소리가 입을 뚫고 나온다. 어떤 상황에서도 미소를 유지했던 셔먼의 미소는 이제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다.)
...... 그럼, 물을게. 네가 생각하는 너는 누구야?
 
아이작 D. 토드:모든 행동, 사소한 말 한 마디, 어떤 선택을 내리건 저는 생각해야 했죠. 진짜 아이작은 어떻게 했을까?라고. 양부모님께서 말씀해 주셨던 '진짜'의 성품을 토대로 판단하고 움직여야 했어요. 완벽히 흉내내야 비로소 사랑받을 수 있었죠.
부모님은 어릴 적 그분들의 아들을 잃었고, 그 빈자리를 채우기 위해 저를 데려오셨어요. 얼마 전에야 그가 스와콥문트로 향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요.
앨릭스, 저는…… 저는 이제 누군가를 따라하는 건 그만두고 싶어요. 보츠와나로 떠나는 건 처음으로 오롯이 가 가진 의지예요. 정부가 숨기고 있는 진실을 파헤치고, 스와콥문트에 가 있는 그의 행방을 찾아내고, 스스로에게 떳떳해지고 싶어요.
그러기 위해선 당신이 절 보내주셔야만 해요. ……알아요. 혼자 남는 게 얼마나 외롭고 힘들지. 하지만 지금 믿을 수 있는 사람은 오로지 당신뿐이에요. (역설적이게도, 가장 가까워진 파트너에게 가장 힘든 짐을 떠넘기게 된다. 이 얼마나 너무한 부탁인지.) 부디 절 도와주지 않으실래요?
 
앨릭스 J. 셔먼:...... 소용없다는 건 알았어. 학생회관으로 올 때까지, 잘 알고 있었어. 그래도 난 네가... (내 옆에 남아주길 바랐는데. 작은 목소리로 속삭이듯이 말한다. 내가 널 특별한 하나로 여기는 것처럼, 너도 날 그렇게 여겨 떠나지 않길 바랐다.)
(널 잡았던 손에서 점점 힘이 빠진다. 끝내 아무것도 잡히지 않은 손바닥을 펼쳤다가 접으면서, 씁쓸히 웃는다.) 그렇게 말하면 더 이상 붙잡지도 못하잖아. 잔인하네... 그거 알아? 내가 들었던 이별 멘트 중에 가장 아파.
알았어. 도울게. 어차피 내게 남은 선택지는 그것밖에 없는 것 같네. ...
(다시 만날 수 있을까? 내내 입안을 맴돌았던 말은 내뱉지 못한 채로 사라진다. 널 만나지 못할까봐, 네가 어떤 대답을 할지 두려웠기 때문에. 또 다시 뒤로 물러서는 선택을 해버린다.)
(손목에 걸어뒀던 은빛 팔찌를 풀어 네게 내민다.) 난 네 결정을 응원해. 앞으로도 그럴 거야. 그러니 뒤돌아보지말고 떠나. 그 이름도, 미련도 버려. 그건 내가 감당할게.
...알겠지?
 
아이작 D. 토드:(붙든 손에서 점차 힘이 빠져나가자 더럭 겁이 난다. 잔뜩 선 긋는 말을 뱉은 건 본인인 주제에, 막상 헤어질 때가 오자 남겨질 그와 떠나갈 자신의 앞날이 실감이 나서.)
(허공에서 손을 몇 번 움직였다. 붙잡으려는 듯 펼쳤다가도 다시 힘이 빠진다. 종내는 손가락을 꾹 말아쥐었다. 와닿지도 않을 사과를 하는 대신, 제 손목에서 스마트워치를 풀어내어 건넸다.)
스마트워치는 각성자들을 에너지 파동으로 구분하죠. 저희는 언약을 맺었으니 제가 이걸 당신께 드리고, 당신이 이걸 학생회관에 던져 두면 위치 추적이 되지 않을 거예요. 제가 떠났다는 사실을 숨기고 이 스마트워치를 유품으로 삼는 거예요. ……부탁드려요.
(무영화 장식이 걸린 팔찌를 받아들자 감정이 울컥 밀려온다. 그러나 참았다. 억지로 참아 누르면서, 떨리는 반대쪽 손으로 제 에메랄드 목걸이를 끌러냈다.) 재회했을 때 서로에게 돌려주기로 해요.
반드시 당신에게 되돌아올 테니까.
 
앨릭스 J. 셔먼:......하.
(헛웃음이 차오르지만, 건네진 스마트워치를 받아든다. 유품이라는 단어가 날카로운 비수가 되어 심장에 박히는 듯했다.)
(고개를 숙인 채로 에메랄드 목걸이를 손에 쥐었다. 초록색 보석이 아프리카의 무더운 햇살을 받아 반짝거리며 빛을 냈다.) 그런 말하는 사람 중에 정말로 돌아오는 사람은 없던데. 오히려 다른 사람한테나 가버리지...
(어두워진 얼굴에 그림같은 미소가 걸리지만 평소보다 흐려진 눈동자는 널 마주하지 않는다.)
(그리고, 다음을 기약하지 않는다.)
잘 가, 아이작.
 
아이작 D. 토드:(웃고 있는데도 우는 것처럼 보일 수 있다니. 옅은 햇살처럼 그려지던 당신의 미소가 이렇게나 아프게 느껴질 수도 있다니…….)
(시선을 피한 채 고요히 작별 인사를 하는 앨릭스가 너무나 서글프고 어두워 보여서. 떠날 듯 발을 돌리려다가도 다시 그 자리에 멈춰서게 된다.)
(무언가 말하려는 듯 입술을 달싹이지만 차마 아무런 소리도 새어나오질 못한다. 금방이라도 젖을 것처럼 흔들리는 올리브빛 홍채로 한참 동안 그를 응시하다가, 와락 끌어안았다.)
(발뒤꿈치를 들어 귓가에 속삭였다.) 다시 만났을 때는 코레트라고 불러주세요.
(그게 끝이었다. 영원 같은 찰나가 지나면 당신을 안은 팔을 천천히 풀고, 떨어져나와, 종내는 몸을 돌린다.)
 
눈시울이 뜨겁습니다.
 
목에 뭔가 걸린 것 같아서.
 
손에 쥐여진 목걸이의 촉감이 선명합니다.
 
멀리서 불어오는 바람에 머리카락이 사정없이 나부낍니다.
 
허공을 희미하게 꿰차는 모래바람 소리, 발밑에 흐트러진 무영화, 스무 살의 한 갈피에 고인 너.
 
돌아올게요… 정말로, 돌아올게요. 그 약속밖에는 할 수 없겠죠.
 
믿고 의지하던 대상을 놓고 떠나는 것이 생살을 자르는 것보다도 힘듭니다.
 
추억이란 두려운 것입니다.
 
꺼내 보고 쓸어 만질 때마다 닳아 없어지니까.
 
이윽고 그것으로조차 견딜 수 없을 때가 오면 기억이 사라진 자리에 텅 빈 구멍이 남게 되니까.
 
아, 우리의 청춘은 이다지도 겁이 많아서!
 
갑작스럽게 맺어진 언약처럼 작별의 순간 역시 갑작스럽습니다.
 
하지만 이제 우리는, 멈추지도 망설이지도 말아야 할 순간이 닥쳤다는 것을 압니다.
 
앨릭스 J. 셔먼:(잠시동안 채워졌던 품을 되새기기라도 하듯이 팔을 들어올리다가 주먹을 말아쥔다.)
... 차라리 아무것도 남기지 말고 떠나지. 이래서야, 원망도 못하잖아.
(제게 남은 것은 이제 아무에게도 매여있지 않은 스마트워치와 올리브빛 눈동자를 연상시키는 에메랄드 목걸이, 그리고...)
......코레트.
(한참이 지나서야 네가 떠났던 길을 돌아본다. 이미 보이지 않지만, 어쩐지 그의 뒷모습이 보이는 것 같은 착각이 들었다.)
 
우리는 어쩌면 선택할 수 있습니다.
 
이게 정말 선택일까요?
 
상황에 내몰려서, '그렇게 할 수밖에 없어서', 우리 스무 살에, 죽기보다도 힘든 순간을 고르는 것이 선택이기는 한가요?
 
슬픔도 분노도 없이 살아가는 자는 조국을 사랑하는 게 아니기 때문에,
 
발뒤꿈치를 잘라 놓고 떠나는 것 같은 감각 속에서 진실을 알고자 한 발짝 나아가는 게 대체 의미가 있기는 할까요?
 
그러나 그는 한 발짝을 뗍니다.
 
다시 한 걸음.
 
돌아보지 않고 걷다가, 뜁니다.
 
그제야 눈물이 후두둑 쏟아졌습니다.
 
끔찍한 격통 속에서, 심장을 쥐뜯는 것 같은 성장통 안에서 코레트는 달립니다.
 
앞으로, 너머로, 자오선을 넘어서…….
 
어깨를 무언가 두드립니다.
 
조금씩 비가 내리기 시작하다가, 끝내는 소나기로 길어져 키질되는 쌀처럼 땅바닥에 까불렸습니다.
 
어떤 빗줄기는 해풍의 구조를 이루는 방파제처럼 윤무의 일부에 이르러 춤을 춥니다.
 
세상의 모든 경로와 진실이, 구현이, 설계가, 두 사람을 중심으로 재편되는 것만 같은 감각.
 
그러나 신의 사랑을 받는 주인공이라면 이런 이별은 겪어도 되지 않겠죠.
 
학생회관 쪽에서 울분에 찬 노래가 들려오기 시작합니다.
 
……
 
……
 
……
 
4년 뒤, 각성자사관학교.
 
계절에 맞지 않게 일부러 피워낸 무영화가 지천을 뒤덮은 오늘은 각성자사관학교의 49기 졸업식입니다.
 
4년 전의 소요는 학교에 짐승이 할퀴고 간 듯한 총탄 자국 몇 개만 남겼을 뿐이었죠.
 
죽은 사람은 몇 없었습니다.
 
그마저도 오발에 의한 사고라고 판단되어 몇 사람이 징계를 받고 군복을 벗었을 뿐이었습니다.
 
이 위대한 공화국에 악의적인 사고란 것이 있기나 하겠나요?
 
도열한 학생들은 저마다 다른 태도로 바로서 연단을 응시합니다.
 
학장의 지루한 축사가 끝나고, 귀빈들의 특별 축사가 이어질 예정입니다.
 
어떤 발걸음이 계단을 오릅니다.
 
4년 전 학생회관에서의 일 이후, 학생들은 두 파로 갈려 서로를 물고 뜯었습니다.
 
'순수한 운동'이란 말이 그 시절쯤에는 농담밖에는 되지 않았습니다.
 
분기마다 한 번씩은 누군가가 밀고당하여 학교 바깥으로 사라졌고, 다시는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반대로 말하자면 그만큼 많은 사람이 체제에 반항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어떤 변절은 사람을 이토록 지난하게 만듭니다.
 
고요한 걸음, 짧은 흰 머리카락이 흩날립니다.
 
감정이 죽어버린 듯한 올리브빛 눈이 학생들을 응시합니다.
 
아이작 D. 토드:…여기, 사랑했던 동기들을 길러낸 자랑스러운 나라의 요람에 돌아오게 된 것을……
기쁘게 생각합니다.
 
<나는 살아서 말하리라>
 
1부, ‘스와콥문트를 동경하는 자들’ 끝.
 
2부, ‘아무도 너에게 세계를 구하라 시키지 않았다’ 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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